남춘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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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기다림의 미학
2023년 01월 17일 19시 37분  조회:247  추천:0  작성자: 남춘애
 
     지난해 7월 중순에 학회차로 충칭을 가게 되었다. 비행 시간이 4시간을 날아야 하는 거리때문인지 직항이 없었다. 별수 없어 대련-린이-충칭선으로 된 남방항공 Cz2864 항공편을 선택하였다.
     시간에 맞추어 탑승 수속을 무난히 마치고 안전검사를 받기 시작했다. 국내선이라고는 하지만 항공편을 이용하는 여객들은 기차역을 방불케 했다. 그러다보니 줄서서 차례가 오기를 기다리는 일은 여객들의 통과의례가 되었다. 나도 30여분쯤 기다려 탑승장으로의 안전체크인을 하는데 들고 있던 물병이 문제가 되었다. 물병을 쓰레기통에 버리라는 요구에 따르긴 했다만 마음통로 턱 막히는듯했다. 방금 내 앞에 선 아줌마가 가정용 물컵에 물이 담긴대로 통과하는 것을 보고 내 물병도 괜찮을라나 희망을 품은것이 문제가 되였다.
희망은 어떤때는 거품을 담는 그릇이 되기도 한다. 희망이란 상상의 안목엔 가득찬 것 같으나 육안으로 보려고 하면 종적도 없이 사라지는 그런것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만나고 있는 모든 것에 대한 예우는 다른 법인가 봅다.
 
     비행기에 탑승했다. 9시에 리륙한다던 시간 약속이 거의 90분 지났지만 꿩을 구워먹었는지 아무소식이 없다. 그럼에도 기내에는 테블릿 pc로 드라마를 보는 사람, 휴대폰으로 게임하는 사람, 비행장의 활주로에서 날개를 접으넣으며 높이로 상승하는 비행기에 조준하여 사진을 찍는 사람, 신문을 뒤적이는 사람, 동행자와 말을 주고 받는 사람들로 평온한 기분이 흐른다. 리륙이 딜레이되는 리유에 대해 궁금해하는 여객은 한사람도 없는듯하다. 입술가에까지 이른 질문을 표정으로 포장해버린 것인지 다른 사람에 의해서 정답을 받을 수 있다는 자기보호식 처사법을 따름인지 알길이 없다.

      시간은 조급해하는 내 마음을 못본체하고 그냥 제갈길을 갔다. 탑승권에 명시된 리륙시간과 무관하게 비행기는 당당하게 정지상태를 지속하였다. 이때 VIP 좌석에서부터 쏟아내는 문의소리가 터졌다. 일반석에서도 호응하는 소리가 일어났다. 그에 승무원들의 답은 ‘현재 공항의 상공에 불명 비행물이 날아다니고 있어 리륙을 못하고 있습니다’였다. 단, 대체로 리륙시간이 언제가 될지에 대해서는 말이 없다. 미래는 손에 잡히지가 않는 물건이다. 우리는 ‘불청객’들이 물러가기만을 빌며 그냥 기다림의 자세를 지속했다.  

      마음의 보따리밑에 깔린 불만을 확확 털어내고 느긋함으로 바꾸어넣기 시작했다.  만사에는 다 때가 있으니 때가 되면 리륙하겠지. 이렇게 생각하며 나는 주최측에서 보내온 호텔이름과 위치 등을 재점검하면서도 구역구역 옆구리로부터 가슴으로 기여올라오는 걱정을 물리칠수가 없어서 나름 힘이 들었다. 이대로라면 행선지 도착시간이 밤으로 될지도 모른다. 초행길인데다가 인구 천만이 넘는 슈퍼도시라 찾아가는 길에 차질이 생길까 우려된다. 그래도 애써 불안의 티는 싹 감추고 모든 일은 풀리게 되어있으니 마음의 준비만 있으면 된다는 주문을 외우고 또 외웠다. 불안한 마음을 감출양으로 나는 앞좌석의자 뒷주머니에 껴서 삐죽이 내민 신문지를 꺼내들었다. 기내에서 파는 초고급 화장품에 대한 설명문들이 깨알같이 박혀 있었다. 내가 안경을 걸고 그걸 읽노라니 여자 승무원이 언제 봤는지 내 옆으로 다가오며 친철한 어투로 물어온다. 관심을 보인것이 아니라 심심풀이었다고 넘기고는 다시 책 한권을 꺼내들었다. 요즘 나는 이 책에 부쩍 재미를 붙였다. 수필형식을 빌어 쓴 두만강류역의 력사문화론이라 평가받는 책인데 백두산맥과 두만강을 둘러싸고 흘러온 력사의 현장들이 숨쉬는 글들이다. 작가의 의혹과 통찰의 수사학이 함께 하고 있어 참 읽기가 멋스러운 글이다. 이렇게 내가 마음을 잘 길들이고 즐기고 있는데 여객기 이륙 안내 방송이 나오고 뒤어어 비행기는 둔중한 몸뚱아리를 가누고 방향을 잡아 질질걸음을 하기 시작했다.  
 
      비행기는 한시간을 날아 산동성 린이시 공항에서 잠시 쉬었다. 20분 뒤에 다시 충칭으로 출발하니 탑승권을 잘 챙기라고 하는 방송을 들으며 내림계단을 내려서 휘휘 둘러보니 멀미멀리까지가 허허벌판 황폐했던 옛날의 린이 대신 하늘과 높이내기를 하는 건물들이 시야를 채워줬다.  
 환승을 위한 우리 일행이 대기실안으로 들어가는데 탑승객들이 줄을 서서 떠밀고 떠밀리우면서 발을 밟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뒷몸에 붙어 얹혀 쏟아져나왔다. 춘절 교통의 기억을 되살리게 하는 장면을 공항에서 보기는 처음이다. 탑승장에 대기하는 여객선이 없다면 버스정류장이라 오해할 것이다. 나는 그 모습이 정겹기만 하여 휴대폰카메라를 열었다.    
  
   
      린이의 탑승대기실에서  20분 후에 탑승한다고 했던 원 시간표는 장난표가 되었다.   리유는 비행기의 기름이 부족하여 주유를 하는데 조금 지체된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출발 시간은 아직 모른다고 했다. 나는 기다림의 만능칩을 꺼내 다시한번 가슴 바닥에 깔아야 했다. 

     공항대기실에는 빈 좌석이 보이지 않았다. 한참 기웃거리다가 5번 탑승구 가까이에서 다행히 앉을 자리를 하나 얻었다. 의자팔걸이끄터머리에 큐알코드가 박혀 있었다. 그 옆에는 ‘휴대폰 위쳇비자루로 한번 슬쩍 쓸어만 주면 안마가 가능합니다’라는 내용이 찍혀 있었다. 어디를 가나 육신의 고단함을 풀어주는 장치들이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는 것은 이곳의 문화중 문화가 되었다. 몸을 만져주면 통한다는 중의의 철학이 빛을 받은 것이다. 미국서 96세에 별세한 손경령은 하루 생활에서 몇시간쯤은 안마에 투자한다고 한다. 온몸의 나사들이 윤활하게 잘 돌아가 몸의 건강샘을 깊에 파준 것인가보다. 내 친구 한사람도 동인당 약국을 열었는데 가보니 역시 안마가 주를 차지하였다.
 
      허리마사지가 하고 싶어졌다. 15분에 20위엔이니 부담스럽지도 않다. 새벽 다섯시에 기상하여 조찬도 못먹고 공항으로 달려갔고 거기서 거의 네시간을 보내고 한시간을 비행하여 이제 린이까지 달려왔으니 피곤이 켜켜히 쌓여있다. 그런데다가 정해진 탑승시간이 언제까지인지를 모르니 육신윈안이 훨씬 절실했다. 나는 큐알코드를 스켄했다. 제시어가 떴다. 15분에 20원 또는 30분에 40원이라에서 15분을 선택하였다. 의자에 온몸을 맡긴지 5분도 안되었는데 충칭행 비행기탑승이라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나는 나머지 시간을 누구에게 양도할 생각도 못하고 부랴부랴 탑승객들과 함께 줄을 섰다.
 
      기내에 들어가 좌석을 정하고 앉으니 이제부터 두 시간 사십분쯤 지나면 곧 충칭에 도착하게 된다고 방송하였다. 그 짧은말은 내 마음에 품고 있던 모든 의문부호들을 쭉 펴줬다. 각종 음료수가 비치된 기내 손밀차가 내곁에 와 섰다. 커피한잔을 요구했다. 유난히 정신차 려야 하는 출장길이라 커피가 제격이다.
      의례대로 음료수를 마셨으니 식사가 나올 차례다. 점심시간이 훌쩍 넘겼는지라  배속에는 꼬르륵난타모임이 한창이다. 군침 돋구는 음식의 냄새가 코의 냄새샘을 자극했다. 그것들을 담은 밀차가 식사칸에서 앞으로 나와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이때다. 기내 방송이 울렸다.
‘여객 여러분, 아주 죄송합니다만 우리가 탄 여객기는 현재 상공에서 비행 연습이 진행되고 있어 리륙이 늦어짐을 알립니다. 인내심으로 잘 기다려주시기 바랍니다.’ 라는 좌석대기 메시지를 전했다. 금방 밀고 나오던 식사차들은 되돌아 들어갔다. 내 앞좌석의 뚱뚱한 남성이 소리 높여 물었다.
 ‘밥은 언제 주지요?’
‘비행기가 이륙해야 식사가 가능합니다.’라는 종업원의 답이다. 순간 힘의 주머니를 지탱하고 있던 바람은 단방에 새어나갔다. 비행기의 리륙과 여객들의 식사가 이렇게 밀접한 관 계속에 있을 줄은 생각해 본적이 없다. 비행기가 뜨지 않으면 식사는 없다. 리륙시간이 아무리 연장되어도 밥은 없다. 기다리면서 밥이라도 먹으면 지겹지 않을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다. 말하자면 비행기가 아직 일을 안하고 있으니 밥벌이가 못되어서 이렇게 하는 것인가!
 
      아까 탑승전 한 아가씨가  언제일지 모르는 재탑승을 기다리며 터렁크를 밀고 와 내옆에 앉아 라면을 먹던 일이 생각난다. 그때 나는 라면을 후루룩 거리는 그녀를 보고 ‘기내식이 나올텐데’라고 했었다. 그때 그녀는 ‘배고파서 더는 못기다리겠어요’ 라고  하며 라면을 맛있게 먹었다. 똑똑한 처사라는 것을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일에 닥치면 판단을 하고 그에 따라 추진을 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다. 일에 끌려서 가다보면 끌려가다가 그야말로 암흑속에 굴러떨어질 수 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나는 그 시골 아가씨의 라면 한그릇으로 이를 깨달았다.
 
      여객들은 역시 아무 내색없이 조용히 기다렸다. 65분만에 비행기는 린이공항활주로를 떠올랐고 우리는 밥을 먹을 자격을 갖게 되었다. 기내밥이 별미라는 비밀은 이렇게 알아 내고 말았다. 
비행기는 공중에 떠 있을때가 생의 전승기를 사는것인가보다. 공중에 뜨지 않았을 때는 기다림덩어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오늘의 경우는 기다리지 않으면 다른 선택은 없다. 그것을 개변시키지 못할 때 마음다스림으로 적응하며 가는 시간에 실려 기다렸다. 그랬더니 행선지까에 갈수가 있었다.
 일상의 삶 또한 그러하다. 뛸때는 죽을 힘을 다해 뛰더라도 현재보다 좋아지기를 기다리는 넉넉함이 받쳐져야 하는 것이다. 오늘 하루는 기다림으로 보냈다. 하루 종일 원망 담은 마음의 시선으로 보내지 않은 것이 정말 다행스러웠다. 살아가면서 느끼고 만들어낸  또 하나의 선물이었다.




                           
                                                             2021년 9월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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