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머리에
저는 두 아들을 둔 아버지입니다.
작은애는 올해 열살, 아직까지는 보고싶은 그림영화를 마음대로 보면 좋아하고 먹고싶은 새우깡을 마음대로 먹으면 좋아하고 하고싶지 않은 숙제를 빼먹어도 욕을 먹지 않으면 만족해하는 때묻지 아니한 순진한 개구쟁이입니다.
하지만 올해 열아홉살에 나는 큰애는 아닙니다.
남들이 사춘기를 앓느라 힘들어하는 열대여섯살 때까지만 해도 한점 흐트러짐이 없이 학교생활을 착실하게 해서 우리 부부는 “저 애에게는 사춘기가 없는 모양”이라고 롱담을 하며 시름을 놓았더랬습니다. 헌데 지난해 중점고중에 붙은 다음부터 차츰 신상에 변화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초중때까지만 해도 부모들이 머리를 감았냐고 물어야 겨우 뜨거운 물을 찾던 애가 요즘은 날마다 머리를 감고야 학교에 가고 남들이 간다면 우스워하던 pc방에도 몰래 다니는 눈치입니다. 전에는 교과서공부밖에 모르던 애가 요즘은 부모들 몰래 서점에 다니며 공포나 련정에 관한 자극적인 책을 사다가 밤도와 읽군 합니다.
다른 애들보다는 좀 늦게 온 사춘기지만 필경 내 아들도 사춘기를 앓는것이였습니다.
그래도 로골적으로 문제를 만들지 않고 반항적으로 부모들과 엇서는 일이 없어서 한시름은 놓이지만 날로 변해가는 아이의 신상변화를 읽으며 과연 우리 아들은 별고없이 사춘기를 넘길수 있을가가 무척 근심스럽습니다.
직업적인 민감성이라 할가, 집착에 가까우리만치 묵묵히 아들의 모든것을 살폈고 진정 오늘의 소년소녀들은 어떻게 사춘기를 넘길가를 생각해보았습니다. 하여 인터넷에 올라 사춘기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았고 여러가지 아이디로 소년소녀들과 채팅도 했으며 인터넷에 싸이를 만들어놓고 아들 친구들과 1촌을 맺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한 아동문학작가의 작은 공간”이라는 부제를 달고 “소년소녀들”이라는 블로그를 개설하여 사춘기를 겪는 소년소녀들과 대화도 시도했습니다. 그러한 공간을 통하여 저는 오늘을 살고있는 소년소녀들의 희로애락을 어느 정도 가늠해볼수 있었습니다.
따져보면 우리는 소년소녀들을 교정안에 있는 부류와 교정밖에 있는 부류로 나눌수 있습니다.
하다면 교정안에 있는 친구들이 행복할가요? 아니면 교정밖에 있는 친구들이 행복할가요?
어느 정도 오늘의 소년소녀들을 접촉해본 사람이라면 그 생각 자체가 천진하다고 느껴질것입니다. 교정안에 있는 친구들은 응시교육의 멍에에 눌리워 성적순으로부터 오는 압력에 숨도 바로 쉴수 없어하고 교정밖에 있는 친구들은 암담한 자기의 미래로부터 오는 불안때문에 방황을 하고있습니다.
사춘기라는 그 자체만으로도 힘들어할 나이에 우리 조선족소년소녀들은 또 새로운 민족대이동으로부터 오는 부모들과의 리별, 부모들의 불화로부터 오는 가정의 파탄 등 원인으로 하여 이중, 삼중의 성장통을 겪고있습니다.
“운무의 저쪽”에서 성적순때문에 고민하는 봉이의 형상, “아직은 초순이야”에서 자기만의 개성적인 헤어스타일을 고집하려다가 불량아로 점찍혀 방황하는 웅진이의 형상 그리고 “노란것”에서 알콜중독이 된 아버지와의 갈등때문에 힘들어하는 령이의 형상 등은 정말 누구라도 머리를 돌리면 볼수 있는 이웃집 소년소녀의 형상이라고 생각됩니다.
우리 주변에는 아직도 우리가 발견하지 못했거나 보고서도 그냥 스쳐버린 형상들이 많을것입니다.
정말 “아이들을 구하라!”고 호소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는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조선족청소년들을 위한 아동문학작가라고 자부하는 저로서는 방황하고있는 청소년들을 위해 뭔가를 해야 할 의무감 같은것을 느꼈습니다. 큰일은 할수 없지만 오늘날 청소년들의 진실한 형상을 세상앞에 보여주고 대중들로부터 그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불러낼수 있다면 그 이상 더 바랄것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내 나이 올해 마흔다섯, 소년소녀들과 몇 세대를 사이 두고있지만 아직도 마음만은 그들과 함께 하고싶습니다.
그들과 무릎을 맞대고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사춘기라는 인생의 보리고개를 넘는 소년소녀들의 지팽이로 되고싶은 마음입니다.
2009년 5월 4일 최동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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