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사는 소리, 까페:http://cafe.naver.com/ybcdr
http://www.zoglo.net/blog/ybcdr 블로그홈 | 로그인
<< 11월 2024 >>
     12
3456789
10111213141516
17181920212223
24252627282930

방문자

홈 > 최동일 장편소설-천사는 웃는다

전체 [ 20 ]

20    차 례 댓글:  조회:1796  추천:0  2010-03-10
                                                                                                    차 례 ************************ 새가 되고 싶다 엄마의 편지 미림의 비밀 승화의 <<선물>> 결투 비오던 날의 아픈 추억 미궁 파아란 하늘 아버지의 밀회 세상을 사는 법 <<6.1>>절을 기다리는 아이 예고 없이 닥친 불행 아픔속에서 크는 나무 그날 밤, 하늘에는 별찌가 없었다 가는 사람, 오는 사람 미움이란 없다 크면서 깨치면서 꿈꾸는 천사들 후기
19    새가 되고 싶다 댓글:  조회:1965  추천:0  2010-03-10
새가 되고 싶다 마음이 산란했다. 괜히 헤여 나오기 바쁜 미궁에 빠져드는듯한 기분이였다. (과연 요즘 무엇이 잘못되여 가고있는걸가? 승화, 그 애는 도대체 나에게 무슨 감정이 새록새록 생겨나는것일가? ) 군이는 착잡해지는 마음을 달래며 천천히 교실을 빠져나왔다. 시원히 바람이라도 쏘이고싶어서였다. 원쑤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군이는 운동장 남쪽에 있는 정자 앞에서 또 승화와 마주쳤다. <<히야~ 반장어른~>> 승화의 목소리에는 진한 비아냥이 고름처럼 흐르고있었다. 군이는 모진 거부감을 나타내며 쌀쌀한 눈길로 승화를 쏘아보았다. <<히히히…반장어른, 어디 한대 달콤히 태워 볼가?>> 승화는 어느새 담배 한대를 꺼내들고 군이의 코앞에서 못된 강아지 꼬리를 흔들듯 흔들어대며 키득키득 웃음을 날렸다. 칼끝으로 살짝 그어놓은듯한 승화의 두 눈에서는 분명 군이에 대한 도전같은것이 새여나왔다. 군이는 <<흥!>>하고 가볍게 코방귀를 뀌며 몸을 픽 돌려 정자 서쪽에 있는 백양나무숲을 향해 씨엉씨엉 걸어갔다. 군이는 정말 승화하고 입씨름을 할 생각이 없었다. 승화를 상대로 아웅다웅 한다는 그 자체가 바로 부질 없는 짓이라고 생각되여서였다. <<하하하… 안되지? 너, 그럴 줄을 알았다! 어림도 없지, 벗겨라 벗겨, 가면을 벗겨라. 홀라당 모두 벗겨버려라. ~ >> 승화의 히스테리적인 목소리가 군이의 뒤통수를 때렸다. 군이는 울컥 뭔가가 가슴속 밑자락으로부터 올리미는 감을 느겼다. (구렁이같은놈, 유치한놈, 짖을려면 짖으라지.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는거다.) 군이는 오싹 몸서리를 치며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니글니글 웃음을 흘리며 구렁이처럼 칭칭 감겨드는 승화의 얼굴이 징그러울 정도로 크게 눈앞에서 언뜰거렸다. 군이는 요즘 승화를 두고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라고 생각하고있었다. 얼굴이 가무스름하고 키가 작달막한 승화가 긴 구렁이처럼 사람만 만나면 칭칭 감겨들지못해 안달이나 하는것은 사실 하루 이틀사이의 일이 아니였다. 승화는 늘 사소한 일도 놓지지않고 다른 사람과 시비를 하고 하루 새롭게 못된 놀이로 녀자애들이나 성정이 약한 남자애들을 골탕 먹이군했었다. 하여 군이는 속으로 승화를 구렁이라고 불렀다. 사실 군이가 아니라도 연룡도시 도심소학교 6학년2반에서 승화는 구렁이로 통하고있었다. 하지만 얼마전까지만 하여도 승화는 군이를 대하기 어려워하며 여러면에서 많이 양보를 하는 눈치였다. 아마도 반장이라는 군이의 위치가 승화로하여금 군이를 허투로 대하지 못하게 한 모양이였다. 그런데 문제는 지난주 월요일부터였다. 그날, 중간체조를 끝내고 교실에 들어섰을 때는 청소당번들이 중간청소를 말끔히 끝낸후였다. <<와~ 깨끗하다.>> 호들갑을 잘 떠는 녀자애들이 목소리를 과장해가며 감탄사를 뽑아올렸다. <<와~ 어지럽다. >> 언제나 왜지밭을 찾는 남자애들의 삐뚜렁소리가 인차 뒤를 따랐다. 그쯤이면 몰라도 어디선가 종이오리들이 어지럽게 날리기 시작했다. 누가 생각해도 과하다싶은 짓거리였다. <<누구니? 종이오리는 왜 뿌리니?>> 군이는 소리치며 종이오리가 날려오는 곳을 향해 눈길을 주었다. 종이오리를 뿌리고있는 사람은 승화였다. 그는 책상우에 두 발을 뻗치고 서서 종이를 북북 찢어 사처에 뿌리고있었다. <<승화, 너 뭐하는거니? 금방 청소를 해놓은것이 안 보이니?>> <<왜 안 보이겠니? 히히히…반장. 너, 청소를 한번 더 하면 안되니? 반장이 솔선수범해야지…>> 승화는 말을 하며 두팔을 쫙 벌리고 으깨를 으쓱해보였다. 마치도 일을 저질러 놓고도 아닌보살을 떠는 파렴치한 신사들의 그런 동작 같았다. 군이는 승화의 전에 없던 거동에 깜짝 놀랐다. <<승화야, 너 오늘 웬일이니? >> <<내가 뭘? 교실이 어지러우면 반장이 청소하는게 당연한 일이 아니니? 히히히… 반장은 동학들의 심부름군이라며?>> 승화가 군이를 손가락질하며 너같은 애는 안중에도 없다는듯 꺼리낌없이 내뱉었다. 순간 군이는 승화에게 욱~하고 격한 감정을 느꼈다. <<심승화, 너 방금 뭐라구? 정말! 말이 아니구나. >> <<뭘? 내가 뭘?>> 승화는 제쪽에서 억울하다는 표정이였다 <<동지들! 보십시오. 동학들의 심부름군이 말을 잘 듣지 않을려고 합니다. 벗겨라, 벗겨. 가면을 벗겨라. 홀라당 모두모두 벗겨버려라…>> 승화가 또 <<벗겨라>>를 열창하고있을 때 담임선생님께서 교실에 들어오셨다. 교탁밑에까지 널려있는 종이오리들을 발견한 담임선생님께서 목소리를 높였다. <<청소를 안한거니? 웬 종이오리들이냐?>> 담임선생님의 성격을 건드린것이였다. 평소에도 담임선생님께서는 중간체조가 끝난후에도 교실이 어지러운대로 있는것을 그냥 보아 넘기지 못하셨다. 그래서 동학들은 담임선생님을 두고 <<남자치고는 결벽증이 심하다.>>고 뒤공론을 하고있었다. 사실 결벽증까지 운운할것은 못되지만 담임선생님은 조각을 한듯 개성있는 깔끔한 얼굴만침이나 매사에 정갈함을 추구했던것이다. <<누가 한 짓이냐구?>> 담임선생님께서 손으로 교탁을 탕! 하고 내리치며 또 한번 격한 목소리로 물었다. 동학들은 여전히 묵묵부답이였다. 담임선생님의 눈길이 매섭게 동학들의 몸을 참빗질하며 천천히 흘러지나갔다. 군이는 그러는 담임선생님의 눈길을 따라 승화의 얼굴을 훔쳐보았다. 승화는 짐짓 모르쇠를 놓으며 머리를 책상에 틀어박고있었다. <<반장, 일어섯!>> 다시 교탁우에 올라선 담임선생님께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 담임선생님의 이 뜻밖의 거동에 군이는 흠칫 몸을 떨며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정말 모르는거냐? 반장도 모른다구? 군이, 너 있는대로 말해 봐라!>> 담임선생님의 엄한 목소리에 주눅이 든 군이는 괜히 입술만 감빨며 다시 한번 승화를 훔쳐보았다. 이때 승화는 구렁이 담 넘어가듯 아닌보살을 하며 슬며시 머리를 들어 군이를 노려보고있었다. 그러는 승화의 눈길은 마치도 <<말 할래? 너 죽었어!>> 하고 경고하는듯싶었다. (자식! 뭘 잘했다구! 진정 담이있으면 저절로 일어나서 승인할것이지! 어디, 한번 혼나봐라.) 군이는 담임선생님을 바라보며 처마밑에 락수물떨어지듯 똘랑똘랑 말을 이어갔다. <<선생님, 저 종이오리들은 승화가 종이를 쫙쫙 찢어서 옛날 삐라를 뿌리던 영웅들처럼 책상우에서 이렇게 내리 뿌린것입니다.>> 마지막 부분을 말할 때는 제법 손동작까지 했다. 교실에서는 짝짜그르르 웃음이 터졌다. <<왜 웃어? 뭐가 우습다는거냐? 심승화, 일어섯!>> 담임선생님의 칼날같은 눈길이 승화의 몸에 가서 꽂혔다. 승화는 기죽은 표정으로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언제나처럼 왼쪽 어깨를 축 내리뜨리우고 머리도 역시 왼쪽으로 삐딱하니 기울인채 퀭~하니 교실북쪽 모서리를 바라보고있었다. <<심승화, 반장 말이 사실이지?>> <<……>> <<다시 한번 묻는다. 반장 말이 사실이지?>> <<네!>> <<오~ 사실이랬다. 그럼 너 절로 알아서 해라! 어쩔래?>> <<휴~>> 승화는 흐느적흐느적 걸어나와 종이오리들을 줏기 시작했다. 그러는 승화를 바라보며 담임선생님께서는 또 한번 엄포를 놓았다. <<심승화, 알아둬라! 다시 한번 못된짓을 했다가는 더 엄한 벌을 주겠다.>> 담임선생님께서는 말을 마치고 교실문을 나섰다. 삽시에 동학들은 술렁대기 시작했다. <<얌마, 여기두 있다! 빨라당 못해? 이 왕구렁아!>> 소리와 함께 승화가 보기좋게 푹 엎어지고 말았다. 삽시에 동학들의 눈길이 승화쪽으로 쏠렸다. 엎어지며 팔굽을 다쳤는지 기신기신 기여 일어나며 팔굽을 싸쥐고 고통스러워하는 승화의 얼굴에는 말못할 불만과 함께 일종의 순종도 비쳐나왔다. 그 표정에서 동학들은 승화를 골탕먹인 주인공이 누군지를 짐작할수있었다. 아니나다를가 규호의 목소리가 오뉴월 벼락치듯 울렸다. <<얌마, 여기두 있다는데 못들었니?>> <<알았다. 주으면 될거아니니?>> 승화의 목소리는 싹 죽어들어가는듯했다. 녀자애들은 그러는 승화를 훔쳐보며 깨고소하다는듯 킥킥 도적웃음을 날렸다. <<자식, 까불긴! 하늘같은 우리 반장이 너의 심부름군이라구? 너같은 자식이 널어놓은 종이쪼박을 반장더러 주으라구?>> 규호는 뒤켠으로 걸어가는 승화의 엉뎅이를 툭 걷어찼다. 그래도 승화는 뒤 한번 돌아보지 못하고있었다. 이만침 반에서 승화가 무서워하는 사람은 규호뿐이였다. 규호는 반에서 키도 제일 크고 몸집도 웬만한 어른은 저리 가라는 식으로 건장했다. 평소 말수가 적은편이지만 간혹가다 엉뚱한 일을 벌리기 좋아하는 규호여서 누구나 서뿔리 그를 건드리지 못하고있었다. 규호앞에서 잘 못 납들었다가는 방금 승화의 꼴이 되기 십상이였던것이다. 승화는 엎어지고 기여일어나며 굴욕스럽게 규호의 옆에 널려있는 종이오리들을 다 줏고 군이의 옆으로 왔다. 승화의 눈길이 무섭게 군이의 얼굴에 가 꽂히고있었다. 군이는 그 눈길에서 승화로부터 오는 일종의 도전을 읽고있었다. (도대체 승화가 웬 일로 불시에 나를 이렇게 대하는것일가? 내가 언제 승화에게 위엄을 잃을 짓이라도 했던가?) 군이는 이렇게 자신에게 물었다. 아무리 생각을 해보아도 승화의 앞에서 그 무슨 큰 실수를 하여 스스로 위엄을 잃은적은 없는것 같았다. (그렇다면 왜 나를 건드리지 않고 피하려 하던 승화의 태도가 하루밤새에 변한것일가? 승화의 심상에 무슨 일이 생긴것일가? 아니면 나에게 무슨 내 자신도 모를 변화가 일어나는것일가?) 군이는 승화에 대한 복잡한 생각으로 그날 내내 공부에 집중할수 없었다. 그때로부터 승화는 대놓고 군이와 맞장을 뜨려고했다. 군이는 그러는 승화가 싫었다. 힘으로 승화를 눌러볼가고도 생각해보았지만 반장이라는 신분이 군이로하여금 쉽게 그런 결정을 내릴수 없게 했다. 하여 군이는 될수록 승화와 정면으로 부딛치는것을 피했다. 그럴수록 승화는 얄밉게도 군이를 물고 놓아주지 않았다. (구렁이같은놈, 그 속내를 어떻게 안단말인가? 아마도 점점 나를 힘으로 누를것 같은 자신이 생긴다는거겠지. 쳇, 너같은 놈을 힘으로 재끼라면 나도 지지는 않을걸… 나쁜 자식!) 군이는 속으로 이렇게 승화를 욕하면서 백양나무에 등을 기대고 섰다. 무성한 나무잎들 사이로 진한 해살이 비쳐와 두 눈을 자극했다. 군이는 해살을 피해 지긋이 두 눈을 감았다. 쏟아지는 해살만침이나 오만가지 잡생각들이 예리한 침끝이되여 군이의 머리속을 찍어대고있었다. 군이는 흠칫 몸을 흔들며 두 눈을 떴다. 순간 눈앞에서 노오란 별들이 란무했다. 군이는 점차 온몸이 지긋지긋해나며 무기력해지는 자신을 발견했다. 군이는 맥을 놓고 천천히 백양나무에 기대 앉았다. 군이는 한창 물이 오르는 백양나무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백양나무잎사귀들이 파릇파릇 연한 얼굴을 빠끔히 내밀고있었다. 나무가지에 이름모를 새 한마리가 앉아서 짹짹짹 뭔가를 열심히 지절거리고있었다. 들어줄 친구도 없는데 그처럼 성수나게 지저귀는 이름모를 새를 바라보며 군이는 허구픈 웃음이 킥 터져나왔다. <<너도 마음이 외로운거니? 그런거니? 그 심정을 누구에겐가 말하고 싶은거지?>> 순간 새가 되고싶다는 생각이 새삼스럽게 군이의 머리를 쳤다. 그렇게 된다면 자기도 저 나무가지에 앉아 갑갑한 심정을 혼자서 궁실거릴수있을것 같았다. 군이는 조용히 나무에 귀를 가져다 댔다. 어쩜 나무잎사귀들이 속삭이는 소리가 들리는것 같았다. 군이는 순간이나마 말못할 편안함을 느꼈다. 군이는 조용히 두 눈을 감았다. <<군이야, 여기서 뭘 하니?>> 분명 옆에서 나는 소리였다. 군이는 화들짝 놀라 눈을 떴다. 먼저 동그스름한 얼굴의 녀자애가 예쁜 볼우물을 파며 옆에서 새물새물 웃는 모습이 보여왔다. 그 옆에는 갸름한 얼굴에 살결이 하아얀 긴 머리칼의 녀자애가 서있었다. 미림이와 은경이였다. 미림이는 부반장이고, 은경이는 선전위원이였다. 이들은 늘 이렇게 만나서 반의 규률이나 활동을 두고 토론을 벌리군 했었다. 미림이와 은경이는 까아만 눈들을 올롱하게 뜨고 은근히 군이를 지켜 보고있었다. 무척이나 찾았다는 눈빛들이였다. <<어, 너희들. 언제 왔니?>> <<여기 있은걸 가지구, 온 마당을 다 찾아다녔잖니? 혼자 뭘 하고있은거니? 여기서! 어데 갔나하구 애타게 찾았는데, 아까부터.>> 미림이가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련주포를 쏘았다. <<어, 그래? 나, 깜빡 졸았나봐. 근데 너희들, 왜 날 찾았는데?>> <<그게 말이다, 웬 일인가 하면, 너하구 토론 할 일이 있어서지.>> <<크크크… 얼른 말해라. 볏은 그만 달구. 웬 일인데?>> 군이가 은경이에게 사람좋게 웃어보이며 재촉했다. <<그게 말이다. 오라잖으면 <6.1>절이 오지 않니? 그래, 한20일 남았나? 소학교에서의 마지막 <6.1>절인데 그저 의미 없이 보낼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와 미림이가 토론을 했는데, 선생님께 제기해서 주제반회를 열자고 그런다. 너의 생각은 어떻니?>> 은경이가 군이 앞에 한발 다가서며 시뚝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선전위원이 다르긴 다른데. 난 왜 그 생각을 못했을가? 소학교에서의 마지막 <6.1>절주제반회라? 참, 좋은 활동이지. 난 대 찬성이다. 두 손 들어 동의한다.>> 군이가 얼굴에 환한 웃음을 띄우며 일부러 목소리를 높였다. 군이의 밝은 표정을 읽은 은경이와 미림이는 입가에 흐믓한 웃음을 띄우며 서로 눈길을 마주쳤다. <<봐라, 군이도 동의 할거라고 내가 말했잖니. 그게 말이다. 이게 텔레파시가 통한다는 거다.>> 은경이의 말에 미림이가 지지않으려고 한발 나섰다. <<텔레파시로 말하면 내가 군이와 더 잘 통하는 거지. 난 지금 군이가 무슨 생각을 하고있는지 알고있거든. 어떤 내용으로 활동을 조직할가? 하고 생각하고있는 중이지? 그렇지, 군이야?>> 새초롬한 눈길로 미림이를 훔쳐보던 은경이가 살짝 웃음을 지으며 군이의 어깨를 톡 쳤다. <<그게 말이다. 군이야, 이번 주제반회를 소학교를 마치며 가장 이루고 싶은 소망을 이야기하는 내용으로 하면 어떻겠니? 참, 소학교시절에 난 아버지와 함께 프랑스 파리에 유람가는게 소망이였는데.>> <<뭐? 프랑스 파리로?>> 미림이가 아닌 밤중에 웬 홍두깨냐는듯 올롱한 눈길로 은경이를 건너다보았다. 은경의 얼굴에는 벌써 농익은 랑만이 흐르고있었다. <<그래, 지난 겨울, 울아버지께서 상무고찰단의 일원으로 파리에 갔었거든. 파리는 정말 멋진 도시래, 파리의 에펠탑은 높이가 300메터도 넘는데 7천300톤이나 되는 철근으로 만들었단다. 에펠탑 밑으로는 아름다운 세느강이 흐르고… 에펠탑에 올라서면 세계의 패션을 리드해가는 아름다운 도시 파리의 얼굴이 한눈에 확 안겨온단다.>> 은경이는 마치도 이미 아름다운 세느강변에 서있기라도 하듯 두 눈을 살풋이 내리깔고 열변을 토했다. 그러는 은경이를 아니꼽게 바라보던 미림이가 픽 웃으며 부러 은경이를 간지르기 시작했다. <<놀구있네, 파리가 뭐 그렇게 대단하니? 난 미국의 뉴욕으로 가보는게 소망이란다. 울아버지는 뉴욕에서 멋진 곳을 다 돌아보았단다. 사진도 숱해 찍어보내구. 미국 뉴욕항의 리버티섬에 세워진 자유녀신상이 얼마나 멋진지 너 아니? 오른손에는 홰불을 들고, 왼손에는 독립선언문을 들고 서있는 자유녀신상, 이 조각상은 조각가가 자기의 어머니를 모델로 만든것이란다. 우리 어머니가 계시는 상해는 또 얼마나 멋진지 아니? 상해의 동방명주탑은 세계에서 세번째, 우리 아시아에서 제일 높은 텔레비죤발사탑이란다. 그 높이는 얼만지 아니? 와~ 무려 468메터, 너 상상이나 되니?>> 미림이는 은경이 앞으로 한발 다가서며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군이는 그러는 미림이와 은경이를 바라보며 짐짓 궁색한 표정을 지었다. <<얘들아, 이거, 출국못해본 아버지를 모시구 사는 사람은 서러워 어디 살겠니? 부끄러운말인데, 난 아직 장백산에도 못 가봤다. 코 앞에 있는 장백산에도 말이다.>> <<어머어머, 어쩜 아직 장백산에도 못 가봤니? 얘, 거 짓말이지? 난 지난달에도 아버지의 차에 앉아 장백산에 갔다왔는데, 장백산엔 아직도 눈이 쫙 덮여서 천지엔 올라가지 못하겠더라,>> 은경이가 외계인이나 발견한듯 이상한 눈길로 군이를 건너다 보며 호들갑을 떨었다. 미림이는 역시 곱지않은 눈길로 은경이를 쓸어보고있었다. <<그만해라, 그만해. 주제반회 토론을 하다가 웬 소리니? 군이야? 너의 생각엔 어떤 내용으로 주제반회를 조직하면 좋을것 같니?>> <<글쎄다, 소학교에서의 마지막 <6.1>절이라는게 주요하지 않겠니? 이 점을 둘러싸고 좀 더 연구해보는게 좋겠다.>> <<그렇지. 그게 말이다. 그래서 반장이 다르다는거다. 군이야, 그럼 우리 좀 더 깊이 생각해본 다음 며칠후에 다시 결정하자. 아야! 핸드폰이 울리네.>> 은경이는 말을 하다말고 호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렌즈가 달린 신식 핸드폰이였다. <<네, 오~ 알았다. 알았어! 내 여기서 군이랑 사업토론을 하고있었다. 내 인차 갈게. 잠간만.>> 은경이는 통화를 끝낸후 핸드폰을 쥔채 교실쪽으로 뛰여가며 군이와 미림에게 멋진 포즈로 손을 흔들었다. 그것을 보는 미림의 얼굴에 쌀쌀한 웃음이 스쳤다. <<은경이, 쟤는 맨날 저런다니까. 언제나 제밖에 없는듯, 무엇이나 다 아는듯. 흥!>> <<아는게 많으면 좋지 뭐.>> 군이가 미림이를 힐끗 건너다보며 말했다. <<그래도 그렇지, 누군 뭐 머저리로 아나 봐, 참, 군이야, 너, 한국에 친척이 있지?>> 미림이가 깜빡했다는듯 자기의 신다리를 탁 치며 군이에게 머리를 돌렸다. <<그래, 엄마가 한국에 있다! 근데?…>> <<자, 받어. 수발실 선생님께서 가져왔더라. 애들이 빼앗아 볼려는걸 내가 가져왔다.>> 미림이는 테두리가 파아란 편지봉투를 군이에게 쑥 내밀며 동그스름한 얼굴에 보조개를 옴폭 파보였다. <<그래? 고마와!>> 군이는 벌씬 웃으며 미림의 손에서 편지를 받아 호주머니에 넣었다. <<군이야. 너 편지를 안보니?>> <<있다가 보지 뭐, 가자.>> 군이는 말을 마치고 교실쪽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래, 가자. 너의 엄마, 한국 간지 오래니?>> <<3년!>> <<숱한 돈을 벌었겠네, 넌 아버지와 단 둘이 산댔지? 밥은 누가 짓니?>> 미림이가 은근한 눈길로 군이를 바라보며 숨가쁘게 물었다. <<미림아~ 나, 새 됐다!>> 군이는 홀연 두팔을 쫙 벌리며 미림에게 훨훨 나는 시늉을 해보였다. <<뭐야?>> 미림이는 그러는 군이를 향해 곱게 눈을 흘겨주었다. <<나, <6.1>절엔 새처럼 날아서 한국에 갈란다. 날아가서 엄마를 봐야지~ 미림아, 한국녀자애들은 너보다 엄청 더 이쁘다더라. 매롱~ >> 군이는 미림이를 향해 귀엽게 왼눈을 찡긋해보이고는 교실쪽을 향해 뛰기시작했다. 미림이는 그러는 군이를 바라보며 생각을 굴렸다. (군이는 참 재밌는 애야, 정말 새가 되여 엄마 곁으로 가고싶나봐!)
18    엄마의 편지 댓글:  조회:2601  추천:0  2010-03-10
엄마의 편지 군이야: 사랑하는 내 아들아! 전화나 메일로 너하고 이야기를 할가 생각도 해보았다. 하지만 이런 방법으로 이기기를 하기엔 너무도 아름찰것 같아서 이렇게 필을 들었다. 군이야, 올해 너, 열네살이지? 어쩜 인젠 엄마하고 이런 이야기를 나눌수도있을것 같아서 이 편지를 쓰기로 결심을 내렸단다. 엄마에 대해서, 아빠에 대해서, 그리고 우리 가정에 대해서 말이다. 엄마가 한국에 나온지도 벌써 3년이 지났구나. 이 3년사이 엄마는 어느 한시도 군이를 잊은 적이 없단다. 잠이 오지않는 밤이면 내내 군이 생각으로 눈물을 흘리구, 자기 몸조차 가늠하기 바쁜 아침이면 또 군이 생각에 용기를 내서 자리를 차고 일어난단다. 군이는 정말 엄마가 살아가는 전부의 의미란다. 이처럼 금쪽같은 우리 군이를 감히 아버지에게 맞겨놓고 여기로 올수있은것은 엄마가 그만침 아버지를 믿고있었기 때문이였단다. 하지만 얼마전 엄마는 인편에 정말 실망스러운 이야기를 들었구나. 어떻게 너하고 이야기를 했으면 좋을지 모르겠다. 요즘 엄마는 정말 마음속의 기둥이 송두리채 뽑혀져 나가는듯한 아픔을 겪고있단다. 무었때문일가? 그래 아빠 때문이야! 엄마는 한국에서도 가끔 인편에 아빠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거든, 비록 어른들의 일이여서 우리 군이는 두서를 잘 분간하지 못할수도 있지만 엄마에게는 그 소문들이 얼마나 큰 타격인지 모르겠구나. 아빠를 믿지못하게 된거지. 엄마가 없는 사이 아빠는 엄마의 믿음을 야금야금 갉아먹고있었던거야, 군이야, 믿음이란 무엇인지를 알고있지? 그래, 믿음이란 사람과 사람이 시름놓고 살아갈수있는 기초돌이란다. 믿음이 없어지면 결국 상처만 남게되겠지. 참, 쉬운 말로 군이하고 이야기해야 하는데, 그게 잘 안되네… 군이는 여기까지 읽고 편지를 잠간 책상우에 내려놓았다. 엄마의 편지를 읽으며 우리 가정에 새로운 일이 일어나고 있구나 하는것을 직감할수있었다. 하지만 구경 아버지에게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있는지는 제대로 알수가 없었다. 군이는 조용히 일어나 객실로 나갔다. 시계는 벌써 아홉시를 향해 달리고있었다. (오늘도 늦어지는구나.) 군이는 중얼거리며 무너지듯 쏘파에 내려앉았다. (엄마는 아버지에 대한 어떤 이야기를 들었을가? 무엇때문에 엄마는 전에 없이 불안해하실가? 엄마에게서 갉아간다는 그 믿음이란 무엇을 의미할가?) 생각할수록 머리속이 복잡해났다. 그럴수록 아버지의 늦은 귀가가 불안스러웠다. 사실 아버지는 일때문에 늘 밤늦게 귀가를 했었다. 인젠 습관이 되다싶이했지만 그래도 이 시간쯤 되면 군이는 늘 근심이 앞섰다. 얼마전에도 아버지는 술을 마시고 어데선지 모르게 돈지갑이며 핸드폰을 날려버렸던것이다. 이튿날 아침, 술기운이 가셔지자 아버지는 혼자서 속앓이를 했다. <<허참, 그게… 정말 생각이 안나네…>> <<뭐가 생각이 안나세요?>> <<아니다, 참 이상하네.>> 그날 저녁 돌아온 아버지의 허리춤에는 새 핸드폰이 걸려있었다. <<샀어요? 핸드폰!>> 군이가 따져물어서야 아버지는 어제밤에 술을 마시고 돈이며 핸드폰이며를 잃어버린 얘기를 해주셨다. <<정말 생각이 안난단 말이다. 아버지도 인젠 늙어가나봐, 술도 얼마 마시지 않았는데 어떻게 잃어진것을 모르니… 참!>> <<인젠 술 적게 마셔요. 핸드폰이 얼마나 비싼데… 글구 나쁜애들이 전문 술취한 사람을 강탈한다구, 지난번에 텔레비죤에서 말합디다.>> <<그래 알았다. 자식, 다 컸네.>> 아버지는 사람좋게 허허 웃으며 군이의 머리를 쓱 쓸어주었다. 군이는 쑥스러운듯 그러는 아빠의 손을 피해 머리를 외로 탈며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엄마가 한국에 가신후, 아빠도 많이 수척해진것 같았다. 늘 벌겋게 충혈되여있는 아버지의 눈을 보며 군이는 아버지가 안스럽게 생각된적이 한두번이아니였다. …… 군이야, 엄마로 생겨서 이런것을 직접 너에게 물어보기도 힘들구나. 하지만 우린 가족이 아니냐? 제대로 한번 생각해 봐라! 아버지의 행동에서 이상한것을 발견한적은 없니? 이를테면 아버지의 몸에서 향수냄새가 난다거나, 밤에 집에 들어오지 않는다거나, 아니면 술을 많이 마신 날, 엉뚱한 잠꼬대를 한다거나 하는것 말이다. 글구 아빠가 너에게 뭔가를 속인다는 느낌은 든적이 없었니? 이러한 것이 엄마로하여금 아빠에 대한 믿음을 앗아가게 하는구나. …… 군이는 엄마의 편지를 읽어갈수록 가슴이 답답해나서 덮쳐오는 불안감을 떨쳐버릴수 없었다. 사실 엄마의 말대로라면 아버지는 맨날 의심스럽기만 했다. 일이있어 늦어지는 날이 한달에도 십여일은 되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늦게 들어오시는 날, 아버지의 손에는 늘 빵이며 과일이며 하다못해 아이스크림이라도 들려있었다. <<우리 군이 불쌍해서 어쩌지. 오늘 저녁도 라면을 먹은거니?>> 아버지께서 늦게 돌아오시는 날은 대개 이런 말로 대화가 시작되였다. <<지난번에 시를 발표해줘서 감사하다고 작자가 저녁초대를 한거야.>> <<그래서 함께 술을 마셨죠? 됐어요. 쉬세요.>> 대화는 대개 군이의 짜증섞인 대답으로 끝나버렸다. 하지만 아버지는 언제나 군이의 우상이였다. 잡지사의 편집이고 작가라는 점이 군이가 친구들 앞에서 아버지를 내세울수있는 큰 자랑거리가 되였던것이다. 군이는 심심할 때면 아버지가 발표한 글들을 꺼내 읽기도 했다. 그런 영향때문인지 군이도 글쓰기를 무척 좋아했다. 벌써 세편의 작문이 소년아동간행물에 발표되였던것이다. 첫 작문이 발표되던 날, 아버지는 매우 기뻐하시며 군이를 데리고 나가 양고기뀀을 사놓고 콜라를 따주면서 축하를 해주었다. 군이는 그러는 아버지가 그렇게 고마울수가 없었다. 그리고 늦게까지 일을 하고 술을 마실수있는 작가아버지가 되려 멋져 보였었다. 하기에 군이는 한시라도 아버지의 늦은 귀가를 의심해본적이 없었다. (구경 아버지는 왜 이렇게 늦게 들어오실가?) 엄마의 편지를 받은 오늘, 군이는 처음으로 아버지의 늦은 귀가를 두고 심각하게 생각을 굴려보게되였다. (도대체 뭐가 잘못되여 가고있는 걸가? 내가 정말 아버지를 너무도 모르고있었던것일가?) 이런 생각이 머리를 쳐들자 군이는 아버지의 세계를 엿보고싶어졌다. 군이는 쏘파에서 일어나 아버지의 침실로 향했다. 아버지의 침대머리에 놓여진 재떨이에는 담배꽁초가 수북히 담겨진대로있었고 여지저기에 벗어놓은 옷들이 어지럽게 뒹굴었다. 책상우에는 보다가 만듯한 잡지가 펼쳐진대로있었다. 군이는 잡지에 눈길을 주었다. 한족글로 되여서 뜻은 다 알수 없었지만 대개 스포츠잡지인것 같았다. 군이는 그 잡지를 제자리에 놓은후 다시 두리벙두리벙 눈길을 돌렸다. 혹시 아버지가 써놓은 일기같은것이라도 발견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것은 눈에 뜨이지 않았다. 어쩜 책상서랍에 일기책 같은것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서랍은 잠겨져있었다. 군이는 김빠진 뽈처럼 맥이 빠져서 다시 자기의 침실로 넘어왔다. 도무지 마음을 진정할수 없었다. 군이는 다시 몸을 일으켜 창가로 다가갔다. 달이 없는 밤하늘에서 뭇별들이 총총히 빛을 뿌리고있었다. 군이는 창문넘어로 별이 빛나는 밤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어느 땐가 시골 할아버지네 집으로 갔을 때, 별바다를 가리키며 누구나 하늘에 별자리를 하나씩 가지고있다고 흥미진지하게 별나라이야기를 들려주시던 할아버지의 얼굴이 아렷이 떠올랐다. (나의 별은 어느 쯤에 있을가?) 군이는 자기의 별을 찾아 갑갑한 마음속 사연을 속삭이고 싶었다. 군이는 창턱에 팔굽을 고이고 서서 별을 세기 시작했다. 별하나, 별둘, 별셋, 별넷, 별다섯… 여기까지 와서 군이는 피씩 웃어버렸다. 감상에 빠져 별을 세는 제 모습이 마치도 유치원에 다니는 개구쟁이들 만침이나 천진하게 생각되였던것이다. <<참, 가지가지 하네.>> 군이는 중얼거리며 컴퓨터 곁으로 다가가서 전원을 꾹 눌러켰다. 찌릉찌릉~ 잠간 전류가 흐르더니 어느새 모니터가 밝아졌다. 이어서 유채꽃이 노오랗게 피여난 아름다운 벌판에서 예쁜 소녀가 꽃놀이를 하는 그림이 펼쳐지며 컴퓨터의 해당 메뉴들이 얼굴을 들어냈다. 군이는 마우스를 돌려 메신저를 클릭했다. 밤이 깊었는데도 학급친구 몇이 올라있었다. <<가냘픈진달래>>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 좋은 밤~ - 그래, 좋은 밤~ <<갸냘픈진달래>>는 미림이의 아이디였다. 꽃은 비록 작고 가냘퍼보이지만 엄동의 추위를 이겨내고 제일 먼저 봄을 알리는 꽃이 진달래라며 미림이는 자기를 진달래에 비유하고싶다고 했다. <<갸냘픈진달래>>가 계속 말을 보내왔다. - 너 엄마편지 받구 흥분해서 못자는 거지? - 아냐. - 그럼? - 멀라(몰라). - 엄마보구싶어? - 아니, - 거짓말! 너 엄마편지보면서 우는 모습이 상상된다. - 아니라니까! - ㅋㅋㅋ 너, 엄마 좋니? 아빠 좋니? - 유치하지 않아? 그 물음이? - 유치하다고 생각해? - 그럼, - 난 아빠가 없어서 그런 생각조차 못하고있는데, 넌 그렇게 물어보는 것 마저 유치하다구? 정말 배부른 놈이 배고픈 사람의 고통을 몰라주는 식이네. - 뭐? 너, 아빠가 어째 없는데? 너의 아빤 미국에서 돈을 잘 벌고 계시잖니? 뉴욕항의 리버티섬에서 자유녀신상과 함께 산다며? - 뉴욕? 정말 멋진 곳이지. 아, 자유의 녀신이여! 소녀의 마음을 아시나이까? - 야~ 너, 오늘 달나라에 갔다 왔니?? - 달나라? - 제법 시인같아 보여서 그런다. 달나라에 가서 시짓는 법을 배우고 왔나해서, ㅋㅋㅋ - 오~ 난 원래 달나라에서 온 사람이거든, - 쳇, 불기는… - 그렇지, 넌 내가 분다고 생각될테지. 하지만 나에게는 정말 나만의 큰 비밀이있거든. - 너만의 큰 비밀? 어떤건데? 말해줄래? 이때 출입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 미안, 아버지가 오셨나 봐, 랠 보자! 그때 너의 비밀을 이야기해줘라! - 그래, 좋은 꿈 꿔! - 88 군이는 메신저를 눌러 끄고 객실로 나갔다. 아니나 다를가 아버지께서 신을 벗고 계셨다. 손에는 큼직한 바나나 한송치가 들려있었다. <<바나나다. 우리 군이 군것질을 하고싶었지? 가져다 먹어라.>> 말씀을 하시는 아버지의 입에서 술냄새가 확확 풍겨나왔다. 군이는 아버지곁으로 다가가 일부러 아버지를 부축했다. 아버지는 그러는 군이의 머리를 쓸어주며 입을 열었다. <<군이야, 미안~ 아버지가 또 늦었네.>> <<아뇨~>> 군이는 별일이 없다는듯 짧게 대답을 하며 일부터 아버지의 웃옷에 코를 가져다댔다. 스스로도 이상하게 생각되였다. 하지만 아까 엄마의 편지를 받은후 반사적으로 취해지는 이런 행동은 도무지 걷잡을수 없었다. <<군이야, 저녁엔 뭘 먹었니?>> <<그냥 있던 걸루요.>> <<쯧~ 닭알이라도 튀겨서 먹지 그랬어.>> <<아버지, 오늘은 왜 늦었어요?>> <<다음 달 원고토론을 끝내고 편집실선생님들 하고 한잔 했지. 왜? 그 새 아버지가 보구 싶었어?>> 말씀을 하시는 아버지의 얼굴이 무척 밝아보였다. <<아뇨, 아버지, 좀 일찍 일찍 다니면 안돼요?>> <<어? 너 오늘은 웬 일이냐? 아버지가 괜히 미안해지자구 그러네. 너 혹시 학교에서 무슨 일이있은건 아니냐?>> 아버지께서 놀랍다는듯 군이를 바라보았다. <<아뇨, 그냥 해보는 소리예요.>> 군이도 당돌한 자기의 말이 이상하게 생각되였던지 얼굴을 붉히며 뒤말을 끊어버렸다. <<그래, 우리 군이에게 별일이 있을수 없지, 군이는 착한 동지니까.>> 아버지는 롱담기섞인 목소리로 말씀을 하시며 자신의 침실로 들어가다가 무슨 생각이 나셨는지 군이의 침실로 발걸음을 고쳤다. <<보자, 우리 군이 오늘 뭘 하고있었나.>> 순간 군이는 깜짝 놀랐다. 책상우에 있는 엄마의 편지가 생각났던것이다. <<아버지!>> 군이는 급하게 아버지를 부르며 침실로 뛰여들어갔다. 아버지의 눈길이 벌써 엄마의 편지에 가있었다. <<어? 웬 편지? 엄마가 보낸거야?>> <<아뇨!>> 군이는 급히 편지를 걷어서 손에 쥐였다. <<엄마의 편지가 옳지? 보자, 뭐라구 썼는가?>> <<아니라니까요!>> <<보자니까, 아버지의 문안두있는거지?>> 아버지가 손을 내밀어 편지를 나꿔채려고 서둘렀다. <<왜 이래요? 아니라는데!>> 군이는 너무나 굳어진 자신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 이 자식이, 소리는 왜 질러?>> <<아니라니까요? 왜 그래요? 뭘 보자는거예요? 아버지가 뭘 볼게있어요?>> <<그 자식, 오늘 정말 이상하게 구네.>> 예상밖으로 예민해있는 군이를 이상한듯 바라보며 아버지는 기분상한 모습으로 자신의 침실을 향했다 군이는 사라져가는 아버지의 뒤모습을 바라보며 가슴속으로부터 뭔가 욱~ 올리미는 감을 느꼈다. 그게 어쩜 아버지에 대한 불만이라고 생각해보았다. 하지만 축 처진 아버지의 어깨가 측은하게 안겨오는것을 보면 불만만은 아닌것 같았다. 그게 어쩜 아버지에 대한 련민이라고 생각해보았다. 하지만 련민이라고 하기에는 또 너무나도 감정적인것들이 많이 섞여있는듯싶었다. 군이는 생각하면 할수록 머리가 산란스러워났다. 엄마가 한국에 가신후 엄마에 대한 그리움만 빼면 군이는 지금까지 오늘처럼 머리 아프게 뭔가를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그래도 생활상에서나 감정문제에서 복잡하게 얼키는 일이 별로 없었다. 다른 애들이 사춘기랍시고 담배를 피우고 부모나 선생님과도 엊장을 뜨면서 힘겹게 놀아도 군이는 그냥 이웃집 잔치 구경하듯 피식 웃으며 지나보내군했었다. 그래서 군이는 늘 자신을 심리소질이 꽤나 좋은 편이라고 믿고있었다. 하지만 생각지않던 엄마의 편지 한통이 자신을 이처럼 곤혹스럽게 만들어놓을줄은 군이도 생각지못한 일이였다. 군이는 밑둥잘린 나무처럼 침대에 쓸어졌다. 이불을 머리끝까지 당겨썼다. 참으려고 해도 말못할 설음이 자꾸만 치밀어 오르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소리내여 울고싶었다. 아니 금방 울음이 터질것만 같았다… 눈물이 꼴독한 눈가에 엄마의 얼굴이 아렴풋이 비껴왔다. 엄마는3년전 떠날 때보다 볼품없이 야위여있었다. 그 시각 엄마는 서울의 어느 작으마한 식당 뒤울안에서 때자국이 흐르는 수건으로 눈굽을 찍으며 흐느끼고 계셨다. 무시로 오르내리는 엄마의 가냘픈 두 어깨는 그동안의 고통과 설음을 하소연하며 <<군이야~ 아들아!>> 하고 애절하게 웨치는듯싶었다. <<엄마!>> 군이는 목구멍이 꺽 메여오는 감을 느끼며 조용히 엄마를 불렀다. 못견디게 엄마가 보고싶어졌다. 군이는 이불을 차고 일어났다. 허둥지둥 엄마의 편지를 다시 찾아들었다. …… 군이야: 사람이 살아가면서 제일 소중한것이 무엇인지 알고있니? 엄마는 한국에 와서야 알게되였단다. 그게 바로 가족이였다. 기쁠 때 첨으로 마음속을 찾아오는 이도 가족이였고 엎어졌을 때 일어나라고 용기를 주는 이도 가족이였다. 우리는 소중한 것일수록 지킬줄 아는 사람이 되여야 한다. 이 세상에는 한순간의 유혹을 못 이겨 가족을 버리려고 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단다. 이럴 때 누군가가 그들을 유혹에서 건져내고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게 이끌어 줘야 한단다. 군이야, 너에게 너무나도 벅찬 일인줄 알면서도 엄마는 말하고 싶구나. 우리 함께 우리 가정을 지켜보자고… 편지는 이렇게 끝났다. 하지만 편지가 남겨주는 여운은 너무도 크게 군이의 마음을 울리고있었다. (엄마를 위해서라도, 이 가정을 지켜내야 하는거야. 그 누구도 우리 기정에 불행을 가져오지 못하게 꿋꿋이 지켜내야 하는거야. 하지만 내가 우리 가정을 위해서 무엇을 할수 있을가? 아버지를 엄하게 감시하는게 과연 내가해야 할 일일가? 그래, 어느 날 기회를 잡아서 아버지와 참답게 대화를 나눠 봐야겠다! ) 군이는 이 가정을 위해서 자기가 무슨 일을 해야하는지를 아렴풋이나마 알것 같았다. 군이는 엄마의 편지를 차고차곡 접어서 서랍에 넣고는 자물쇠를 꼭 잠궜다.
17    미림의 비밀 댓글:  조회:1859  추천:0  2010-03-10
미림의 비밀 이틀날 아침, 군이는 자명종소리에 눈을 떴다. 흐릿한 기분속에서도 군이는 주방쪽에 귀를 기울였다. 대개 전날 밤 아버지께서 술을 과음한 아침이면 주방이 고요한 채로 있었다. 그러면 군이는 조용히 일어나서 저절로 라면을 끓여먹지 않으면 빵같은것으로 대충 아침을 에때우고 학교로 가군 했었다. 하지만 오늘 아침은 아니였다. 주방에서 장국 끓는 냄새가 코를 간지럽혔던것이다. (몹시 피곤하실텐데 어떻게 일어났을가?) 군이는 어쩐지 아버지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어제밤에 너무도 매정하게 아버지를 대했다는 자책감도 머리를 쳤다. 군이는 자리를 차고 일어났다. 평소에도 군이는 간혹가다 식탁을 닦거나 수저를 놓는 일 같은것을 돕군했었다. 군이는 별 생각없이 주방으로 가다 말고 흠칫 멈춰섰다. 어제밤, 그런 모습으로 아버지를 대하고 아침에 별 일 없었던듯 아버지 앞에 나타난다는것이 스스로도 무척 싱겁게 느껴졌던것이다. (어떻게 할가? 아침, 먹어? 말어?) 순간 머리가 복잡해졌다. 어쩜 이 기회를 빌어 아버지에게 뭔가를 경고해 놓는것도 괜찮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방을 메고 나오는 군이를 보고 아버지께서 입을 열었다 <<벌써 학교에 갈려구?>> <<네.>> <<아직은 일찍한데. 아침을 먹구 가야지.>> <<생각 없어요.>> <<아버지가 겨우 일어나서 장국까지 끓여놨는데 생각이 없다니? 그러지 말구 얼른 와서 한술 뜨구가거라.>> 군이는 아버지의 서운한 목소리를 등뒤로 흘리며 문을 빠져나왔다. 자기로서도 잘한 일인지 못한 일인지가 알수가 없었다. 다만 역시 뭔가를 해냈다는 그런 생각으로 자신을 위로할 다름이였다. 시계를 보니 정말 등교시간이 이르기는 했다. 군이는 시원한 아침공기도 마실 겸 천천히 걸어서 북동뻐스역까지 가기로 했다. 거기서 3선뻐스를 타면 학교까지 갈수가 있었던것이다. 군이는 가로수를 요리조리 걸어 지나면서 가끔 손바닥으로 가로수를 탁탁 건드려보기도 했다. 그러는 새에 어느덧 북동시장부근에 도착했다. 북동시장 앞마당의 아침시장은 발디딜 틈이 없이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매대우에 즐비하게 올라있는 먹음직스러운 음식들을 보노라니 군이는 새삼스럽게 배 고파 옴을 느꼈다. (아침을 먹고왔던걸.) 하는 생각이 갈마들었다. 군이는 왼손을 호주머니에 넣어 보았다. 소비돈이 만져졌다. 군이는 먹고싶은 음식을 골라 매대를 훝기시작했다. 노오란 콩기름이 반지르르 돋아난 입쌀밴새가 못견디게 군이의 식욕을 당겨주었다. 군이는 입쌀밴새를 파는 매대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얼굴에 주근깨가 가담가담 보이는 40대쯤 되여보이는 아주머니가 매대 뒤에 서있었다. 동그스름한 얼굴에 쌍까풀눈이 빛나는것이 젊었을 때는 꽤나 이뻤을 모습이였다. <<몇개를 줄가? 금방 쪄낸 떡이라 아직도 따뜻하다.>> 아주머니가 떡함지를 덮은 꽃부리담요를 젖히며 군이에게 알은체를 했다. <<하나에 얼마예요?>> <<하나에 30전씩 한단다. 몇개를 줄가?>> 아주머니가 다시 물어왔다. <<다섯개를 주세요.>> <<그래 다섯개라. 다섯개 값만 내라. 하나를 더 넣었다. 다섯개를 가지고 배불릴수있겠니?.>> 아주머니는 입쌀밴새 여섯개를 비닐봉지에 넣어 군이에게 넘겨주며 사람좋게 웃어보였다. <<잘 먹겠습니다.>> 군이는 아주머니에게 인사를 올리고 몸을 돌렸다. <<엄마, 아이, 무거워라. 빨리 받아요.>> 군이는 걸음을 옮기다말고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어쩐지 귀에 익은듯 해서 머리를 돌렸다. 책가방을 멘 녀자애가 매대우에 떡소래를 내려 놓으며 엄살을 부리고있었다. 그 녀자애를 보는 순간 군이는 깜짝 놀랐다. 매대우에 떡소래를 내려놓고있는 그 녀자애는 분명 미림이였던것이다. (미림이가, 아니 미림이가 방금 저 아주머니를 엄마라고 불렀잖아?) 군이는 도무지 자기의 귀를 믿을수가 없었다. 그랬다. 미림이가 방금 그 아주머니를 분명 엄마라고 불렀던것이다. (어떻게 된 일이지? 미림의 어머니는 큰 간부가 돼서, 상해의 어느 판사처에서 일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래서 미림이는 잠시 이모와 함께 산다고 한것 같은데?) 군이는 궁금해서 도무지 견딜수가 없었다. 군이는 걸음을 돌려 다시 입쌀밴새를 파는 매대앞으로 걸어갔다. <<엄마, 그 분들이 오늘 산보를 간대요? 웬 떡을 이렇게 많이 산대요? 나까지 고생시키면서.>> 미림이가 행복한 투정을 부리고있었다. <<그래도 엄마는 이런 일이 날마다 있었으면 좋겠다. 입쌀밴새를 한가마 더 판다는게 어디니? 감사하다, 미림아. 네가 마지막 가마를 담아 왔기에 망정이지, 그 떡이 다 되기를 기다려 나왔더라면 늦을번 했잖니?>> 아주머니가 미림이를 건너다 보며 부드럽게 이야기했다. (옳구나, 저 분이 분명 미림의 어머니구나.) 군이는 신대륙이나 발견한듯 두눈이 화등잔이 되여 미림이를 바라보았다. <<미림아!>> 미림이가 머리를 돌렸다. 군이를 발견하는 순간 미림이는 깜짝 놀라며 흠칫했다. <<구…군이야.>> <<미림아, 여기서 만나네.>> <<저…저, 학교에 갈게요.>> 미림이는 군이의 손을 끌고 매대를 지나며 연신 내려오지도 않은 머리칼을 쓸어올렸다. 시장마당을 다 지나서야 미림이는 군이의 손을 놓았다. 얼굴에는 여전히 당황스러운 기색이 력연했다. <<미림아, 너의 이모, 참 이쁘더라.>> 군이가 얼굴에 묘한 웃음을 띄우며 입을 열었다. <<어쩜… 군이야…>> <<나 방금 다 들었다. 미림아, 정말 뜻밖인데?>> <<군이야, 제발 빈다. 다른 애들에겐 말하지 말아라 응? 너, 어제밤 메신저가 생각나지. 나 원래 요즘 시간을 타서 너에게 사실을 말하려고 했단다. 너에게 만은 이 사실을 말해도 될것같은 믿음이 생겼거든.>> <<어제 밤에 네가 말하던 너만의 비밀이 이것이였니?>> <<그래, 사실 나도 이런 비밀을 속에 넣고있는게 너무너무 힘들었단다. 학급 모든 친구들에게는 몰라도 꼭 누군가에게는 이 비밀을 털어놓고싶었단다. 군이야, 난 널 믿는다.>> <<고맙다. 헌데 도대체 어떻게 된거니?>> 군이는 미림에게 진심으로 물었다. <<군이야, 우리 아빤 정말 나쁜사람이 아니였다.>> 파르르 떨리는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미림의 눈에는 어느새 마알간 이슬이 맺혀 반짝이고있었다. 군이는 그 이슬을 보는것이 두려웠다. 수정같은 이슬뒤에 미림의 말못할 아픔이 숨어있을듯싶어서였다. <<미림아, 괜찮다. 말하기 싫으면 하지마라!>> <<아니다, 군이! 너, 꼭 들어줘!>> 군이는 다시 머리를 돌려 미림의 눈을 바라보았다. 아릿한 슬픔을 그들먹 담고 반짝이던 미림의 눈길이 강경하게 번져가고 있었다. <<군이야, 사실 난 아빠가 없어!>> <<어! 세상뜨셨니?>> <<아니.>> <<그럼?>> <<나도 몰라, 내가 어릴 때 아빠는 로씨야에 돈벌러 갔었거든. 그 뒤로 난 아빠를 한번도 본적이 없어.>> 미림이는 군이를 바라보며 또박또박 말을 이어나갔다. 그말을 들으며 군이는 은근히 미림이에 대한 련민을 느끼고있었다. 미림의 약간 떨리는듯한 목소리가 무대에 선 주인공의 독백처럼 담담하게 들려왔다. <<전에 내가 살던 마을에서는 소문이 자자했어.>> <<무슨 소문?>> <<아빠는 로씨야에서 조폭으로 되여버렸대.>> <<뭐, 조폭?>> 순간 군이는 온몸으로 전률을 느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던 흉측한 문신을 한 흉악한 조폭의 모습이 눈앞에 떠올랐다. <<그래, 한 마을에 살던 사람이 로씨야에서 돌아와 그렇게 소문을 퍼뜨렸거든.>> <<그래, 그게 사실이라니?>> <<몰라, 마을에서는 불 안땐 굴뚝에서 연기가 나겠냐구 했어. 나중엔 아빠가 조폭들의 무리싸움에서 맞아죽었다는 소문까지 돌았거든.>> 미림이는 잠간 말을 끊고 길에서 실북나들듯 오가는 차량들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아래말을 이었다. <<내가 살던 곳은 흑룡강성 해림에서두 멀리 떨어진 시골마을이였어. 아빠가 로씨야로 돈벌러간다구 떠난후 엄마는 집에서 농사일도 하구, 짐승개들도 키우면서 정말 열심히 사셨거든. 이듬해에 아빠는 한번 집에 다녀오셨어. 돈도 꽤 벌어오신것같았어. 나에게 고운옷이랑, 예쁜 놀이감이랑 가득 사다주셨거든. 아빠는 얼굴에 수염이 되게 많았어. 미림아~ 하면서 나를 훌쩍 들어올려 그 꺼슬꺼슬한 수염에다 나의 얼굴을 문대는데, 내 얼굴이 막 뜨거워 나는거 있지?…>> 이야기를 하는 미림이의 얼굴에는 순간 홍조가 피여나기 시작했다. <<그번에 와서 두어달 집에 계시다가 아빠는 또 로씨야로 가셨어. 엄마의 말씀에 의하면 그렇게 떠나서도 한 일년간은 종종 전화도 오고 물건도 인편에 들어왔대. 내가 2학년에 올라간 그해로부터 아빠에게서는 소식이 완전히 끊겼어. 마을에 나가면 애들이 나에게 <깡패네 계집애>라며 돌멩이를 뿌렸어, 그래서 난 마을을 나가기 싫어했어. 그러니 친구도 없었구. 학교에 가서도 나는 늘 왕따를 당했거든. 억울함을 당하고 내가 울며 집에 들어가면 엄마도 나를 끌어안고 울었어…>> 미림이는 남의 이야기를 하는듯 차분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엮어나갔다. 군이는 그러는 미림이를 정말 달나라에서 온 손님을 바라보듯 뚫어지라 지켜보기만 했다. <<그후로 엄마는 할아버지네 집에도 잘 안다니구, 외가집에도 잘 가지 않았어. 간혹 우리가 가도 그들은 우리를 썩 반가와 하는 눈치가 아니였구. 엄마는 차츰 말수가 적어졌어. 그러던 어느날 엄마는 나보고 연변으로 나가자는 거야. 남들이 모르는 곳에서 나더러 시름놓고 크라면서 말이야.>> 미림이는 큰 짐을 덜어놓은듯 <<호->>하고 가는 숨을 내쉬였다. 그 한숨소리와 함께 군이는 미림의 얼굴을 훔쳐보았다. 미림이는 두 눈을 살풋이 내리깐채 가끔 입술을 감빨고있었다. 잠간 침묵이 흘렀다. <<너 여기에 친척이있니?>> 군이는 침묵을 깨야 되겠다싶어 입을 열었다. <<아니야. 아무도 없어.>> <<근데 어떻게 여기 와서 자리를 잡았니?>> <<엄마가 연룡도에 나왔다 갔거든. 알아 봤대. 날 공부시킬수 있는가를. 지금 우리 연룡도시도 조선족학교는 학생수가 줄어들어 학교에 붙겠다는 애들은 호구를 따지지 않구 다 받아드리지 않아?! 엄만 날 공부시킬수만 있으면 된다는거야, 그래서 한 이틀 조용히 짐을 꿍져가지구 도망치듯 여기 연룡도에 나오게 된거야.>> <<하지만 너의 엄만 직업도 없잖니? 힘들어 어떻게 사니?>> <<우리 엄마? 직업이 많아. 새벽에 일어나선 입살밴새를 만들어가지고 아침시장에 나가거든. 그것을 다 판후에는 출근을 해.>> <<어디로?>> <<새로 지은 지하상가가 있잖니? 옷매대인데 남의 옷을 팔아주고있어. 우리엄마, 일을 잘 해서 로반(매대주인)아지미가 되게 좋아 한대. 전번에는 나를 주라고 로반아지미가 새옷도 사줬다. 이거야.>> 미림이는 자기가 입은 하늘색 셔츠를 만져보이며 들떠서 이야기 했다. 얼마나 비쌌것인지는 가늠할수 없었지만 무척 깨끗하고 정갈해 보였다. 군이는 미림이가 입은 옷으로부터 천천히 미림의 얼굴로 눈길을 가져갔다. <<미림아, 너, 엄마를 이모라고 애들에게 소개하면서 엄마께 미안하지 않았니?>> 미림의 얼굴이 삽시에 흐려졌다. 잠간 무거운 구름이 스쳐지나는듯싶더니 파르르 입술을 떨었다. <<미안했지. 그런 말을 하고 난 날, 집에 돌아가면 엄마 얼굴 보기가 죽도록 싫었단다. 그래서 혼자 울기도 많이 울었지. 하지만 고향에 있을 때 나를 없신 여기던 애들을 생각하면 거짓말을 꾸며서라도 새 학교에선 애들 앞에 당당히 나서고싶었어. 앞으로도 난 당당하게 살거야! 군이야, 난 정말 너를 믿는다.>> 군이를 바라보는 미림의 눈에서는 일종의 믿음과 애원의 빛이 진하게 비쳐지고있었다. 군이는 미림이를 바라보며 무겁게 머리를 끄덕였다. <<시름을 놔라, 미림아, 너 날을 믿어도 된다.>> <<고맙다. 정말 고맙다. 그리구 군이야, 우리 아빤 정말 나쁜사람이 아니였단다.>> 미림이의 목소리에는 진정 아버지에 대한 확신이 가득 차 있었다. <<미림아, 넌 정말 지금도 너의 아버지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군이는 미림이를 바라보며 도전적으로 물었다. 미림이는 두 눈을 깜빡이며 오돌차게 대답했다. <<그럼, 믿고있단다. 아빠는 나쁜사람이 아니라구, 친구를 잘못 친해서 나쁜 일을 했을 뿐이라구 말이다. 우리 아빠가 정말 조폭이 됐다면 그 일은 용서할수 없지만 우리 아빠란 사람은 진짜 좋은 사람이라구 난 믿고있거든. 글치? 군이야!>> <<어… 그, 글치>> 군이는 인차 말끝을 흐려버렸다. 나쁜사람이 아니면 조폭으로 되였겠는가? 너무도 상식적인 일이였다. 하지만 갈망어린 눈길로 자신을 바라보며 <<글치?>>하고 물어오는 미림이 앞에서 군이는 차마 <<아무리 뭐라 해도 너의 아빠는 조폭이야!>>하고 말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 군이야. 너라면 그렇게 생각할줄 알았다. 넌 리해심이 강한 애니까. 넌 다른 애들하구 달라. 나는 그렇게 생각해. 첨부터 그렇게 느껴졌다. 군이야!>> 미림이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하면서 살며시 군이의 손을 꼭 쥐여주었다. 군이는 짜릿한 전률 같은것을 느끼면서 슬며시 미림이의 손에서 자기의 손을 당겨 뺐다. 별안간 미림이가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너, 수집어하는구나. 군이야!>> <<뭘? 내가 뭘?>> <<아니다. 너, 어제 밤, 엄마편지를 보구 울었지?>> <<아니라는데.>> <<피~ 너, 엄말 3년이나 못봤다면서. 너처럼 감상적인 애가 그래 엄마편질 받구두 안울어?>> <<야, 너네 엄마두 저녁에 늦게 들어오니?>> 군이는 순간 엄마의 편지가 떠올라서 엉뚱한 물음을 미림이에게 던졌다. <<어? 늦게들어오는가구? 엄마가? 아니, 우리 엄만 4시반에 퇴근이거든. 퇴근하자마자 입쌀을 씻어서 퍼지우구, 저녁을 지어 먹은 다음 입쌀을 이고 가공공장에 가서 가루를 내오구, 그 다음은 밴새소를 만들구, 그러면 한 10시가 되나? 그리구는 자거든. 왜?>> 미림이는 얼음에 박밀듯 엄마의 하루를 엮으며 이상하다는듯 군이를 바라보았다. <<아니야, 그냥 물었어.>> <<이봐. 군이, 너 또 날 못믿는거지? 말하다 마는걸 보라니까.>> 군이는 정말 미림이의 믿음에 보답하지 못하는것 같아서 조용히 입을 열었다. <<우리 아버지는 맨날 늦으셔.>> <<왜? 일이 많나보구나. 너 아빠, 작가라했지?>> <<응.>> <<그러게, 작가들은 원래 일이 많은 거야. 작가들은 창작소재를 찾느라구 취재를 다녀야 하잖아. 그래서 그런거지 뭐!>> <<그렇지? 미림아, 우리 아버지 그래서 늦는거지?>> 군이는 이렇게 미림이에게 다짐을 따듯이 말해놓고는 스스로도 우스운지 히히 웃어버렸다. <<넨들 어찌 알겠니? 나두 모르는걸.>> <<아니라니까. 내 생각에 작가들은 다 일이 많을것 같다. 그렇잖으면 어떻게 그 재미나는 소설이랑 시랑 써내겠니?>> <<하지만 우리 엄마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것 같다.>> <<왜?>> <<우리 엄마가 편지에 썼는데, 우리 아버지가 엄마의 믿음을 갉아먹구 있대.>> <<어떻게?>> <<우리 엄마, 한국에 있어두 아버지가 엄마의 믿음을 갉아먹는걸 다 안대. 엄마는 나에게 우리가정을 함께 지켜가자구 했다니까.>> <<어떻게?>> <<몰라.>> <<너네 아버지 혹시 바람났니?>> <<뭐야? 바람났다니?>> 군이는 별안간 미림이의 말에 격한 감정을 느끼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 바람에 미림이도 깜짝 놀랐다가 인차 입을 열었다. <<미안, 군이야! 나 별 궁리없이 한 소리야. 속에 넣지마. 응?!>> 군이는 순간 머리속에서 뭔가 쿵 하고 작렬하는 소리를 들었다. 무서운 생각이 굴뱀처럼 꿈틀꿈틀 치달아올랐다. (그래, 내가 왜 이 점을 생각 못했을가? 엄마는 편지에 아버지가 바람났다고 꼭 집어 쓰지는 않았지만 분명 이런 뜻이 아닌가? 늦은 귀가, 향수냄새, 이상한 잠꼬대. 그래 엄마가 귀띔해주던 그런것들이 바로 아버지가 바람난 증거를 잡으라는 소리가 아닌가? 아버지가, 아버지가…) <<미림아, 어른들은 참 못돼먹었지?>> 군이의 엉뚱한 물음에 미림이는 이상하다는듯 되물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니?>> <<몰라. 암튼 어른들은 참 치사하단 말이야.>> <<건 사람나름이지뭐, 난 우리 엄마를 애들에게 이모라고 소개하고있지만 속으로는 정말 존경한단다. 우리 엄만 세상에서 제일 대단한 사람이야. 우리 엄마도 어른이거든.>> <<그럼 우리 아버지만 치사해지는가?>> <<아버지를 어떻게 그렇게 말할수있니? 너의 아버진 작가가 아니니?>> <<미림아, 난 우리집에 무슨 일이 일어날가봐 정말 무섭다.>> <<군이야, 그렇게 멋진 아버지가 지켜주는데 뭐가 무서워 그런 생각을 하니?>> <<몰라, 암튼 그런 예감이 든다니까. 정말이야, 세상이란, 참! 미림아…>> 군이는 뭔가를 더 말하려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그러는 군이를 바라보며 미림이도 뭔가 더 물으려다 말고 머리를 숙였다. 둘은 조용히 학교를 바라고 발걸음을 다그쳤다.
16    승화의 <<선물>> 댓글:  조회:1756  추천:0  2010-03-10
승화의 길에서 미림이와 이야기를 하느라고 걸음이 처졌던 모양이였다. 교실에 들어서니 벌써 많은 동학들이 와서 자습을 하고있었다. 언제나 학급에서 다섯손가락 안으로 학교에 도착하던 군이가 늦게 온것이 이상한지 동학들의 눈길이 삽시에 군이에게로 쏠렸다. 그러는 동학들의 눈길을 피해 군이는 조용히 자리에 가 앉았다. 군이는 수학교과서를 꺼내서 책상우에 올려 놓은 후 가방을 책상안에 넣으려고 서둘렸다. 순간 군이는 책상안에 자그마한 함이 들어있는 것을 발견했다. 군이는 무심결에 그 함을 꺼내 들었다. 함은 뻘건종이로 포장이 되여있었는데 어딘가 거칠어 보였다. 머리를 스쳐지나는 생각이였다. (나에게 소포를 보내 올 사람이 없는데… 혹시 엄마가?) 어제 받은 엄마의 편지가 떠올랐다. 하지만 엄마는 편지에서 소포에 대한 말은 없었다. (그렇다면? 누가 보낸 선물일가? 쳇, 누가 나한테 선물을 보내?…) 군이는 야릇한 생각을 굴리며 뻘건종이를 뜯었다. 포장지속에서 종이함이 머리를 들어냈다. 운동화를 담았던 재질이 좋지않은 종이함이였다. 군이는 종이함 덮개를 열었다. 군이는 소리치며 종이함을 책상우에 털썩 떨어뜨렸다. 기겁한 군이의 소리에 전 학급의 눈길이 군이에게로 쏠렸다. 군이의 얼굴은 삽시에 백지장으로 변해버렸다. 넋을 놓고 앉은 군이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여기저기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창문옆줄에 앉은 규호가 먼저 소리쳤다. 그러자 군이의 옆에 앉은 짝꿍이 종이함 덮개를 다시 열었다. 짝꿍도 종이함을 던지며 기겁을 해서 소리쳤다. 그 바람에 남자애들이 욱~하고 군이의 책상으로 모여들었다. 노오란털이 까실까실해진 병아리는 두 눈을 꼭 감고 죽어 있었다. 쏠랑대기 좋아하는 애들이 손끝으로 병아리를 이리저리 뒤척이며 소리쳤다. 누군가 군이의 어깨를 톡 치며 놀림조로 말했다. 그때까지도 군이는 넋을 놓고 앉아있었다. 이때 누군가 소리쳤다. 모두들 깜짝 놀라며 목소리의 임자를 찾았다. 미림이였다. 그 바람에 동학들은 서로서로 눈길을 주고 받았다. 하지만 누구도 선뜻이 나서는 이가 없었다. 내가 왜 그런짓을 해? 하는듯한 표정들이였다. 미림이가 격분에 차서 쏘아댔다. 은경이도 뒤질세라 자리에서 일어나 열띈 목소리로 누군지 모를 의 주인공을 질책했다. 동학들은 서로서로 누굴가 하고 눈길을 주고받았다. 군이에 대한 보복이라구? 군이에게 보복할만한 사람이 누군데? 동학들의 눈길은 하나같아 승화에게로 쏠렸다. 어제 있은 이 의심스러웠던것이다. 또 다시 미림이가 승화에게 소리쳤다. 그바람에 승화는 머리를 쳐들어 미림에게 눈길을 주었다. 과하다싶을 미림이의 반발에 동학들은 모두 손에 땀을 쥐고 사태의 발전을 지켜보고있었다. 원래대로라면 승화가 발딱 일어나 미림이쪽으로 뛰여가 멋지게 미림이를 한대 먹일수도 있다. 그러면 미림이는 얼굴을 싸쥐고 쿨적거릴것이고 그 다음은 미림이가 담임선생님께 고자질을 할것이고 또 그 다음은 담임선생님이 승화에게… 참 그럴듯한 대본이 짜여있는듯 싶었다. 하지만 오늘은 그 대본이 빗나가고있었다. 승화가 괴상한 소리로 타령을 시작한것이다. 군이가 끝내 정신을 가다듬고 승화에게 소리쳤다. 승화는 얼굴에 깨고소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당연하다는듯 빈정거렸다. 승화의 그 괴상한 에 동학들의 눈길이 일제히 군이의 얼굴에 와서 꽂혔다. 군이의 창백하던 얼굴이 격분으로하여 빨갛게 타올랐다. 승화가 군이에게 격한 감정을 한바탕 퍼부었다. 미림이가 못참겠다는듯 또 승화를 향해 시비를 걸어왔다. 하지만 승화는 듣는둥마는둥 그냥 자기의 엘라리꼴라리타령을 불러댔다. 교실 여기저기서 키득키득 웃음소리가 터져나왔다. 미림이가 악에 바쳐 바락바락 소리질렀다. 이때 창문 옆줄에서 불호령이 터졌다. 불같이 소리친 규호는 미림이를 찍! 가로보며 씽~하고 승화의 옆으로 걸어가더니 다짜고짜 승화의 뺨을 갈겨주었다. 정말 눈깜짝할사이에 일어난 일이였다. 승화는 일시 뭐라고 반응을 보일사이도 없었다. 잠간후 승화가 살맞은 승냥이처럼 소리쳤다. 규호는 두말없이 다시 한번 손바닥을 날려 승화의 다른 쪽 뺨을 갈겼다. 승화는 더는 소리를 지르지 못했다. 얼굴은 단통 백지장처럼 창백해졌다. 그러는 승화를 보면서 규호가 낮으나 위엄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승화가 기여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규호가 짧게 물었다. 여기저기서 키득키득 웃음소리가 터졌다. 규호는 승화에게 호령하고는 제 자리로 돌아갔다. 승화는 넋을 놓고 퀭하니 교실북쪽 모서리를 응시하고있다가 규호의 불호령이 떨어지기 바쁘게 죽은 병아리를 담은 함을 들고 교실밖으로 나갔다. 승화는 정말 자기가 규호에게 무엇을 잘못했는지 생각나지 않았다. 그랬다. 사실 승화는 녀자애들이나 성정이 약한 남자애들을 애먹일뿐이지 곰같이 우직한 규호는 늘 피해다니며 조심하느라고 애쓰는 편이였다. 하지만 요즘에 와서 늘 규호하고 얽히는 일이 이상했다. 조용히 따져보니 규호하고 얽힐 때에는 번마다 사이에 군이가 끼여있었다. 생각같아서는 정말 군이를 통쾌하게 골탕 먹여주고 싶은데 안될것같았다. 규호라는 보호산이 군이를 지켜주고있다는 생각이 직감적으로 승화의 머리를 엄습했던것이다. (웬일일가? 군이, 그 자식이 규호하구 친척이라도 되는가? 아닌데, 그런 말을 들은적이 없는데…하다면 규호는 왜 번마다 군이의 편을 들어 나를 혼내는걸가? 혹시 군이가 반장이돼서 잘 보일려구 그럴가? ) 여기까지 생각을 굴리고는 승화도 스스로 도리머리를 했다. 공부도 수수하고 말수도 적은 규호가 뭔가를 바라고 반장에게 아첨한다는것은 도무지 있을수 없는 일 같았다. 그럼 무었때문일가? 알고싶었다. 그럴수록 승화는 오리무중으로 빠져드는 자신이 초라하게 생각되였다. 죽은 병아리를 쓰레기통에 던지고 교실에 돌아온 승화는 교실에서 흐르는 정적때문에 숨마저 쉬기 바쁠 지경이였다. 흐르는 정적속에서 동학들의 눈길이 일제히 자기를 주시하는것 같았다. 승화는 머리를 책상에 틀어박고 죽은듯이 두 눈을 감았다. 정말 재수없는 하루가 시작되는구나 싶었다. 하지만 이 날은 승화에게 너무 재수없는 날이 아니였다. 오후에 규호가 학교에 나오지 않았던것이다. 군이에 대한 복수심이 또 발동하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오후 첫시간이 끝나자 동학들은 대부분 운동장으로 나갔다. 승화는 군이가 자리를 뜨기를 기다렸다가 슬그머니 군이의 걸상에 접착제를 바르기 시작했다. 통쾌하게 접착제를 짜서 걸상에 바르며 승화는 자기의 총명함에 만족하는지 입가에 능글능글 웃음을 피워물었다. 승화의 가방에는 늘 접착제며 낚시줄이며 고무총이며 하는 잡동사니들이 들어있었다. 딱히 어디에 쓸곳도 없지만 늘 이렇게 가지고 다니다가는 오늘처럼 요긴할 때 서슴없이 쓰군했다. 휴식이 끝나 상학종소리가 울리자 군이는 그 줄도 모르고 들어오자 바람으로 주저없이 걸상에 앉아버렸다. 그러는 군이를 키져보며 승화는 키득키득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무시로 허리를 갑삭거리고있었다. 오후 두번째 시간은 담임선생님이 맡은 조선어문 시간이였다. 담임선생님께서는 교탁에서 아래를 쭉 흩어보다가 규호의 빈자리를 발견하고 입을 열었다. 규호의 짝꿍이 규호의 서랍을 살피며 먼저 대답했다. 담임선생님은 규호에 대해 궁금한것을 묻다가 갑자기 눈길을 군이 쪽에 박았다. 군이는 담임선생님께 대답을 올리려고 자리에서 일어나려 서둘렀다. 하지만 바지가 걸상에 착 달라 붙어서 도무지 일어설수 없었다. 그 바람에 옆에 앉은 짝꿍이 먼저 웃음보를 터뜨렸다. 군이는 서지도 앉지도 못하고 몸을 웅크린채 난처한 표정으로 선생님을 응시했다. 담임선생님이 교탁에서 내려와 군이의 곁으로 다가갔다. 바지는 완전히 걸상에 달라붙어있었다. 담임선생님이 이상하다는듯 중얼거리며 힘을 주어 군이의 바지를 당겼다. 다행이 접착제를 바른 시간이 오라지 않아서인지 바지는 인차 걸상에서 떨어졌다. 담임선생님이 군이에게 물었다. 담임선생님은 교탁으로 올라가며 은근히 위압적인 목소리로 누구라 없이 둘러보았다. 교실은 물뿌린듯 잠누룩해졌다. 바늘떨어지는 소리마저 들릴것같았다. 군이는 비닐로 된 책가위를 걸상에 놓고 그 우에 조심스레 앉았다. 책가위가 바지에 달라 붙을가와 자주 엉덩이를 들썩거리다나니 도무지 시간집중을 할수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흉수는 역시 승화일것 같았다. 군이는 머리를 돌려 승화가 앉은 쪽을 건너다보았다. 승화는 제법 신난 모습이였다. 풀방구리에 쥐나들듯 가느다란 외까풀눈을 무시로 판들거리고있었다. (정말 웬 일일가? 저 자식은 요즘 왜 나만 보면 잡아 먹지못해서 안달일가? 뭐? 나하구 할 일이 많다구? 어느 때까지 날 골탕 먹이겠다는 건가! 왜 나하고 그러겠다는 걸가?) 생각하면 할수록 승화에게 그저 당하고만있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갈마 들었다. (그래, 그냥 이렇게 당할수만은 없어. 가만히 있을수록 저 자식은 더욱 나를 업신 여길거야. 어떻게 한다? 무슨 묘책이라도 없나? 아니야, 그래도 힘으로 붙어보는거야. 규호처럼 힘으로 완전히 저 자식을 정복해야만 다시는 나하고 집적거리지 못할거야. 헌데 규호는 왜 오후에 안 나왔을가?) 군이는 갑자기 규호가 생각났다. 새삼스럽게 규호가 고맙게 느껴졌다. 언제나 헛소리 한마디없이 무표정한 얼굴로 잠자코 있다가는 무시로 예고없이 엉뚱한 일을 저질러 내는 규호가 못내 신비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규호는 전학생이였다. 원래는 어느 작은 시골학교에서 공부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규호가 3학년에 붙는 해에 시골학교가 마사지는 바람에 대부분의 학생들이 현성에 있는 학교로 전학을 하게 되였다. 그때 규호의 아버지께서 움직일바 하고는 교육조건이 좋은 연룡도시로 옮기자면서 큰 마음을 먹고 집과 밭을 처분한채 연룡도시에 와서 자리를 잡았던것이다. 재작년 봄인가 학교옆에 있던 규호네 세집이 만기가 되여 북동으로 옮길 때 군이는 학급의 몇몇 간부들과 함께 규호네 이사를 거들어주러 간적이있었다. 온돌이라해야 사람 서넛이 겨우 누울수있는 작고 볼품 없는 집이였다. 자전거를 타고도 30분은 걸려야 학교에 도착할수있을것 같았다. 이게 군이가 알고있는 규호의 전부였다. 언제부터인지는 잘 생각나지 않지만 군이도 규호가 자기에게 남달리 잘해준다고 생각은 하고있었다. 하지만 군이는 아직 왜서일가는 생각해본적이 없었다. 따져보면 정말 고마운게 한두가지가 아니였다. 보다싶이 어제 있은 일도, 오전에 있은 일도 사실 규호가 나서지 않아도 무방한 일이였다. 하지만 고맙게도 규호가 나서는 바람에 군이는 그 일들을 얼굴이 서게 수습 할수가있었다. 이쯤 생각이 흐르자 군이는 그 어떤 보호산이 자기를 지켜주는듯한 든든함이 생겼다. (그래, 붙어 보는거야. 승화, 그 자식하고 붙어 보는거야. 죽을 힘을 다해서 그 자식을 깔아뭉개는거야, 그 자식 앞에서 나의 자존심을 찾아내는거야.) 군이는 선생님의 강의는 듣는둥마는둥 속으로 비장한 결투를 계획하고있었다.
15    결 투 댓글:  조회:1696  추천:0  2010-03-10
결 투 <<뭐야? 너 다시 말해 봐라! 나하구 한번 붙겠다구? 하하하하…>> 승화는 어이없다는듯 군이를 건너다 보며 머리를 뱅뱅 돌렸다. 그리고는 옆에 있는 애들을 부르며 깔깔댔다. <<얘들아, 너희들도 방금 들었지? 군이가 나하구 붙어 보겠단다. 히히히… 옛날 영웅들처럼 말이다.>> 말을 마친 승화는 또 배를 잡고 돌아갔다. <<어쩔래?!>> 승화가 어떻게 나오든 군이가 짤막하게 한마디 했다. <<얌마, 그러다가 너, 그 얼굴이 파바다가 돼두 괜찮겠니?>> <<어쩔래? 정식으로 한판 붙자. 남자대 남자루, 일대 일루, 딱 단둘이서 말이다. 네가 지면 다신 나하구 깝대지 말구! >> <<그러다가 네가 지면?>> <<맘대루!>> <<어디서 붙을래?>> <<연집강변에서!>> <<그래, 오늘 한번에 네 얼굴을 피바다로 만들어 줄게.>> 승화는 어깨를 으쓱하며 큰 소리를 치고는 옆에 있는 친구들을 보고 말했다. <<너희들, 따라 오지 마라. 저 애가 단둘이 붙자잖아! 크크크… 랠 아침, 저 자식의 얼굴이 어떻게 변했나, 구경이나 해라.>> <<흥!>> 군이는 찧고 까불며 웃어대는 승화에게 코웃음을 날리고는 먼저 몸을 돌려 연집강변을 향해 씨엉씨엉 걸어갔다. 시내를 가로질러 흐르는 연집강은 학교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그래서 도심소학교의 애꾸러기들은 간혹 싸울 일이있으면 이렇게 선생님들의 눈을 피할수있는 연집강변으로 가군했다. 앞에서 당당하게 걸어가는 군이를 바라보며 승화는 흠칫 놀라움이 머리를 쳤다. (군이, 저 자식이 뭘 잘못 먹었나? 어쩜 나에게 결투를 걸어올수있을가? 반장이랍시구 누가 싸우는가를 살피다가 선생님께 고자질이나 하던 자식이… 그래 규호가 요즘 뒤를 봐주니 무서움이 없어졌는가? 참, 규호가 알면 어쩌지?) 이런 생각이 들자 승화는 속으로 규호가 께으름직해났다. 싸움기술뿐만아니라 덩치를 놓고봐도 자기가 규호의 상대가 아니라는것은 너무도 자명한 일이였다. 규호가 마음먹고 군이를 봐주자고 나서는 날에는 앞일이 재미없을건 뻔한 사실이였다. 하지만 일이 이 지경으로 발전한 시점에서 어떻게 빨뺌을 할수도 없었다. (어떻게 할가?) 군이에게 요즘 너무했구나, 하는 생각이 갈마들었다, 하지만 군이를 괴롭힌것이 자기 혼자의 잘못이 아니라고 믿고있는 승화였다. 다른 애들은 몰라도 군이에게는 꼭 그렇게 하고 싶었고 군이가 괴로와 하는것을 보는것이 통쾌하기만 했다. (흥! 나만 탓할게 아니지 뭐!) <<야, 임마!>> 승화가 소리쳤다. 그 바람에 군이가 걸음을 멈추고 머리를 돌렸다. <<얌마, 너 맞아두, 누구에게 말할내기 없기다.>> 먼저 다짐을 따서 군이의 입을 막아보자는 심사였다. <<누구에게 말해?>> 군이가 코웃음을 쳤다. <<선생님이나, 그리구 규…규호에게나.>> <<놀구있네, 흥! >> 군이는 승화를 쏘아보며 유치하다는듯 코방귀를 뀌였다. <<그렇게 자신이 없니? 그럼 후에는 나에게 납뜨지 마라. 내가 뭐 그냥 당하고만 있을것 같니?>> <<쳇, 납뜨지 말라구? 천만에. 네가 뭐 영웅이라도 된듯 싶냐? 이 바람난 나쁜놈의 새끼야.>> 승화는 째지게 군이를 쏘아보며 이사이로 욕설을 짜냈다. 그들은 드디여 연집강변에 도착했다. 모래불이 두툼하게 펼쳐진 곳이있었다. 군이는 몇번인가 여기서 친구들의 싸움을 말린적이있었다. 사실 자갈 한알 없는 순 모래불이라 그냥 엎어지고 뒹굴며 한판 붙기는 안성맞춤한 곳이였다. 모래불 밖에는 파아란 풀들이 가담가담 돋아나있고 그 옆으로는 폭이 서너메터가량 되는 강물이 시름없이 흘러가고있었다. 군이가 먼저 가방을 벗어 풀우에 던졌다. 승화도 가방을 벗어서 군이의 가방옆에 뿌렸다. 군이는 밖에 입은 교복을 벗어 가방옆에 놓았다. 그리고 힘을 주어 손가락을 꺾어보였다. <<얌마, 정말 붙는거지?>> 승화가 다짐을 따는듯 새삼스레 물어왔다. <<……>> 군이는 쓴웃음을 지으며 승화를 노려보았다. <<후회는 안하는거지?>> 승화가 이사이로 찍 침을 쏘며 빈정거렸다. <<얏!>> 군이가 별안간 승화를 향해 뛰여가서 주먹을 날렸다. 너무도 갑작스러운 타격이여서 승화는 미처 피하지못하고 입술에 한대 강타를 당했다. <<야, 시작두 없니? 너, 너, 너,>> 승화가 꺽꺽 거리는 사이 군이는 승화의 아래배를 향해 오른발을 날렸다. 승화가 날아오는 군이의 발을 두손으로 받아잡아 자기의 앞으로 당기며 오른발을 날려서 군이의 왼다리를 걷어찼다. 군이는 다리를 흠칫하다가 몸을 가누지못하고 쓰러졌다. 그 바람에 승화도 잡았던 군이의 오른다리를 놓으며 몸을 피끗했다. 승화는 살맞은 승냥이처럼 소리치며 넘어진 군이를 향해 덮쳐들었다. 군이는 어쩔새 없이 승화의 밑에 깔리고 말았다. 승화는 군이의 얼굴에 련속 주먹을 날렸다. 군이는 깔리운채로 연신 삿대질도 하고 죽어라 다리도 날려보았지만 떨어지는 승화의 주먹은 좀처럼 피할수 없었다. 군이는 어금이를 꽉 깨물며 두 눈을 꼭 감았다. 승화의 손바닥이 군이의 오른쪽 뺨을 쳤다. <<얌마, 이건 울아버지를 대신해서 복수하는 거다.>> 승화의 손바닥이 군이의 왼쪽 뺨을 때렸다. <<얌마, 이건 반장이라고 우쭐대는 너를 경고하는 거다.>> 승화의 손바닥이 군이의 두 뺨에 련속 날아왔다. <<나쁜자식, 넌 얼굴만 봐도 미워, 밉다구.>> 비발치듯 떨어지는 승화의 손바닥 세례를 받으며 군이는 온몸의 힘이 쑥 빠져버리는듯 무기력함을 느겼다. <<얌마! 나하구 붙겠다구? 흥, 어림도 없다!>> 승화는 다시 한번 군이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날리고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시뚝해서 한마디 했다. 그 순간 군이는 몸을 탈며 젖먹던 힘까지 다해 승화를 떨쳐버리고 벌떡 일어섰다. 눈깜짝할사이였다. 승화가 한쪽으로 벌렁 넘어갔다. 군이는 그러는 승화를 향해 벼락같이 오른발을 날렸다. <<악!>> 승화가 비명을 질렀다. 그러건 말건 군이는 승화를 타고 앉아 주먹을 날렸다. 승화는 군이를 떨쳐버리려고 악을 썼지만 비발치듯 떨어지는 군이의 주먹을 막느라 어쩔수가 없었다. <<얌마, 이건 터무니없이 날 모욕한 대가를 치르는거다.>> 군이의 손바닥이 승화의 오른쪽 뺨에 떨어졌다. <<얌마, 가면이 어디 있어 가면을 벗긴다는거니? 이건 널 정신차리라구 선사하는거다.>> 군이의 손바닥이 승화의 왼쪽뺨에 날아들었다. <<남의 자존심을 너무 건드리지 말았어야지, 그렇게 사는게 아니란 말야, 이 구렁아!>> 한참이나 치고 박고 하노라니 군이도 승화도 지쳐버렸다. 둘 다 맥을 놓고 모래불우에 큰 대자로 너부러졌다. 그제야 군이는 코등에서 오는 동통을 느꼈다. 군이는 손을 들어 코등을 만져보았다. 부은것 같았다. 코피가 터졌는지 손에 뻘건피가 묻어났다. 온몸이 땅속으로 잦아드는듯한 고통을 느끼며 군이는 두눈을 꼭 감았다. 승화도 입술에서 오는 모진 고통을 느꼈다. 입술쪽으로 손을 가져갔다. 아래 입술이 엄청 부어있었다. 승화는 신경질적으로 몸을 비탈며 침을 뱉었다. 뻘건 피가 침과 함께 뺕어져나왔다. 승화도 맥을 버리고 두 눈을 지긋이 감았다. 찰랑찰랑… 흘러가는 강물소리가 정적을 깨뜨리며 귀속을 파고 들었다. 군이는 살풋이 눈을 떴다. 파아란 하늘이 두 눈을 꽉 채우며 아름차게 안겨들었다, 시름없이 떠다니는 뭉게구름이 친근하게 느껴졌다. 삣쬬롱삣쬬롱… 이름모를 새들의 구성진 노래소리가 귀맛을 당겼다. 군이는 큰 일을 치르고 났을 때처럼 가슴이 개운해지는 자신을 발견하고있었다. <<승화야, >> <<왜?>> <<아프니?>> <<아니. 군이야, 나, 너에게 일부러 못되게 굴었다.>> 낮고 떨리는 승화의 목소리는 그처럼 생경스럽게 느껴졌다. <<알어.>> 군이가 짧게 대답했다. <<근데 왜 하필이면 나야? 내가 반장이 돼서야?>> <<아니,>> <<그럼?>> <<……>> 승화가 잠간 입을 다물었다가 갈앉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꼭 알고싶니?>> <<궁금하거든.>> 군이가 승화쪽으로 몸을 탈았다. <<그래, 말할게. 건, 네가 너의 아버지의 아들이 돼서 미웠던거야.>> 승화의 목소리는 흐르는 고요와 함께 무척이나 자냥스럽게 들려왔다. <<뭐? 내가 우리 아버지의 아들이 돼서라구? 쳇, 그런게 어딨니?>> 군이는 모르겠다는듯 되물으며 벌떡 일어나 앉았다. <<정말이다, 너의 아버지가 우리 엄말 꼬시고있거든.>> 승화도 일어나 앉으며 진지하게 대답했다. <<뭐? 뭐라구, 그게…>> 군이는 승화의 말에 큰 타격을 받았는지 일시 말끝도 잊지 못하다가 소리쳤다. <<방금 뭐랬어? 울아버지가…>> <<내 눈으로 똑똑히 봤다. 너네 아버지가 우리 엄마하구 다방에서 나오는것을. 너처럼 얼굴이 하얀게, 잘 생기기는…그래서 너두, 너의 아버지와 같이 미워진거야. >> <<그… 그럴수가 없다. 그럴수 없어! 네가 잘못 본거야. 거짓말하는거야!>> 군이는 승화를 바라보며 바락바락 소리질렀다. <<정말이다. 울아빠가 한국에 나간지 3년철이거든. 내가4학년 후학기부턴가, 울엄만 편집선생님을 만난다며 가끔 늦게 들어왔어. 울엄마, 울아빠가 없는 사이, 시를 쓴다고 맨날 바빠. 지난학기부터는 그 차수가 너무 잦아지는거야. 지난 일요일 저녁, 내가 울엄마를 미행하다가 내 눈으로 똑똑히 봤다. 너의 아버지와 울엄마가 단둘이 다방에서 나오는걸.>> <<얌마, 개소리친다. 억지부리지 말어. 거짓말이다!>> <<못믿어? 흥! 내가 또 목격하면 그때 널 부를게. 그럼 믿겠니?>> 승화는 자신있다는듯 당당하게 말했다. <<못믿어, 뭘 믿으라구? 미쳤어?>> 군이는 별안간 허리를 굽혀 모래를 한웅큼 쥐여 승화에게 뿌렸다. <<너, 또야?>> 승화도 질세라 모래를 한줌 쥐여 군이에게 반격을 가했다. <<야, 이 구렁아, 너, 개소리지? 우리 아버지가… 그런게 어딨어?>> <<얌마, 애비처럼 나쁜 새끼, 속에는 개똥을 담구다니면서… 가면은 무슨 가면이야? 반장이라구? 얌마, 더럽다! >> 둘은 서로 욕설을 퍼부으며 또 다시 부등켜 안고 잡아먹지못해 으으렁 거리는 새끼호랑이들처럼 기갈을 뽑았다. 그러다가 누구라없이 손을 놓고 모래불에 몸을 맞겨버렸다. 군이는 분명 눈앞에서 란무하는 노오란 별들을 보았다. 마음은 뭐라고 말할수 없이 착잡해났다. 군이는 정말 믿고싶지 않았다. 아버지가 승화의 어머니를 꼬시느라고 다방에 다닌다는것은 있을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되였다. 분명 승화가 뭔가를 잘못 알고 저렇게 납뜨는 것이라 믿고싶었다. <<군이! 너, 안믿지? 꼭 믿을 때가 있을거야.>> 승화가 자기의 가방을 찾아들고 일어서며 말했다. <<난 너의 아버지가 밉다, 그래서 너두 밉구. 울엄마두 밉구… 울아빠 한국에서 일하다가 층집에서 떨어져 허리를 상했거든, 그래두 돈을 벌자구 돌아오지 못하고있단 말이다. 아빠가 불쌍해!>> <<아빠가 불쌍해!>>하고 말할 때 승화의 목소리에는 분명 눈물이 꼴똑 담겨져있었다. 군이는 머리를 푹 떨구고 힘 없이 강역을 따라 걸어가는 승화의 뒤모습을 멀거니 바라보았다. 코끝이 시큼해났다. 그 순간 승화의 모습은 몸서리 쳐 질 지경으로 거부감을 느끼게 하던 그 애꾸러기 모습이 아니였다. 어쩜 말못할 상처를 한가슴 가득 안고 정처없이 떠나가는 한마리 어린양처럼 측은하게 느껴졌다. <<벗겨라, 벗겨. 가면을 벗겨라! 홀라당 모두 벗겨버려라~>> 승화의 벗겨라타령이 강바람에 날아와 군이의 머리를 장대비처럼 내리쳤다. 알것같았다. 승화가 벗기라는 가면이 무엇이고 어째서 홀라라당 벗기라는 것인지를 군이는 알것같았다. (정말일가? 정말 아버지가 승화의 어머니를 꼬시고 있는것일가? 손님이 청한다는 날마다 승화의 어머니와 함께 있느라고 늦어진 걸가? 그렇다면 아버지, 어머니, 승화의 아버지, 승화의 어머니, 글구 승화와 나는 구경 어떻게 되는 걸가?) 엄마의 편지가 머리속에 또렷이 떠올랐다. 아렴풋이나마 그 모습이 머리속에 그려지고있었다. 군이는 고통스럽게 두 눈을 꼭 감았다. 외로움이 몰켜왔다. 전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외로움이였다. 어딘가에 홀로 버려진듯한 그런 외로움이 였다. <<개굴개굴개굴…>> 강역 풀숲 어딘가에서 청개구리의 울음소리가 슬프게 들려왔다…
14    비오던 날의 아픈 추억 댓글:  조회:1876  추천:0  2010-03-10
비오던 날의 아픈 추억 도심소학교 6학년 2반이 악마구리 끓듯 끓어대기 시작했다. <<웬 일이니? 웬 일? 어머어머… 눈굽이 퍼렇게 멍이 들었네.>> <<저런저런, 코등도 말이 아니네. 뼈가 끊어진게 아니냐?>> 교실에 들어서는 녀자애들마다 군이의 얼굴을 보고는 일부러 목소리를 한 옥타부씩 높여가며 호들갑을 떨어주었다. 그러자 남자애들도 군이 옆에 다가와서 서성거리며 한술씩 떴다. <<누구하구 붙었댔니? 혼자서 엄청 터진게 아니냐?>> <<야~ 한바탕 죽이지 그랬어. 왜? 못당하겠던?>> 참견도 각각이였다. 그러는 동학들이 싫어서 군이는 일어나 밖으로 나가려고 출입문쪽으로 다가갔다. 그러다 문가에서 들어오는 승화와 부딛쳤다. 승화의 얼굴도 퍼렇게 멍이 들어 말이아니였다. 승화는 군이를 향해 어색하게 웃어주었다. 군이도 건성으로 승화에게 약간 웃음을 띄워보이고는 급히 교실밖으로 나갔다. 속이 갑갑해서 나왔지만 어디로 마땅히 갈곳도 없었다. 군이는 복도를 지나 화장실로 가는 길목으로 꺽어들어서 괜히 바닥에 깔아놓은 자갈들만 툭툭 걷어찼다. 이때 자습종소리가 울렸다. 군이는 마지못해 내키지않는 발걸음으로 교실을 향했다. 교실은 여전히 벌둥지를 터치운듯 소란스러웠다. 그새 미림이도 교실에 도착해서 소식을 얻어 들었는지 들어오는 군이를 보자마자 뛰여오며 소리쳤다. <<야, 정군! 너, 어떻게 된거야? 언제 이랬어? 누구하구 붙었댔니? 아프지 않아?>> 한바탕 련주포를 쏘고난 미림이는 군이의 긁힌 이마며 터진 입술을 만져보려고 군이의 얼굴에 손을 가져갔다. <<왜 이래?>> 군이가 미림이의 손을 피해 얼굴을 돌렸다. 그때 규호의 눈길이 이윽히 군이를 주시하고있었다. 군이는 규호를 건너다보며 어색하게 웃음을 띄웠다. 규호가 몸을 움직였다. 곧 바로 승화의 쪽으로 오고있었다. 군이는 규호의 움직임을 따라 눈길을 돌렸다. 규호가 승화의 옆에 와서 뚝 멈춰섰다. 순간 승화가 흠칫 몸을 떠는것을 볼수있었다. <<네가 한짓이지?>> 규호가 승화의 멱살을 검어잡았다. <<어…>> 규호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기 시작했다. <<규호야.>> 군이가 말했다. <<그만해라. 나만 터진게 아니다. 승화두 많이 맞았다. 글구 우리 어제 화해했다. 정말이다.>> 군이가 설명을 해도 규호는 듣지 않고 승화의 귀뺨을 갈겨주었다. <<너, 군이하고 다신 안그런다고 했지? >> <<씨~>> 승화가 황소숨을 내쉬며 규호의 손에서 몸을 빼고는 교실밖으로 달음박질쳐 나갔다. 교실에서 무거운 긴장이 흐르기 시작했다. 잠간 지나 교실문이 열리며 승화가 담임선생님의 손에 끌려들어왔다. 담임선생님의 얼굴은 몹씨도 굳어있었다. <<심승화, 자리에 가 앉아라.>> 담임선생님이 교단에 올라섰다. 동학들을 빙~ 둘러보던 담임선생님이 탕! 하고 교탁을 내리쳤다. <<도대체 웬 일들이냐? 리규호, 일어나!>> 규호가 엉겹결에 일어섰다. 왼손을 책상우에 올려놓고 어깨를 기웃한채 두눈을 내리 깐 모양이 어딘가 불편해보이는 표정이였다. <<말해봐, 웬 일루 승화를 때렸니? 글구 어제 오후엔 왜 결석을 했어? 청가도 없이!>> <<……>> 규호가 잠자코 입을 다물고있었다. <<입이 붙었니? 왜 대답이 없어?>> <<……>> 규호는 여전히 묵묵부답이였다. 담임선생님은 결김에 <<탕!>>하고 교탁을 내리치더니 분필통에서 분필한대를 뽑아 규호를 향해 뿌렸다. 분필이 씽~하니 날아가 규호의 코등을 명중했다. 이구석 저구석에서 킥킥하는 웃음소리가 터졌다. <<쳇!>> 규호가 움찔하더니 책가방을 꺼내쥐고 교실밖으로 씨엉씨엉 걸어갔다. <<리규호, 게 못 서?>> 담임선생님이 소리쳤다. 규호는 못들은듯 가방을 안고 복도를 뛰여지나 운동장으로 내달았다. 담임선생님은 뛰여가는 규호의 뒤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중간체조시간에 군이와 승화는 담임선생님에게 불리워 갔다. 군이가 먼저 그냥 놀다가 싸움이 난것이라고 둘러댔다. <<자식들, 뿔난 송아지냐? 싸움은 웬 싸움질이냐. 글구, 군이 너, 반장도 싸움질에 나서냐?>> 담임선생님이 먼저 군이에게 큼직한 꿀밤 한대를 먹여 주었다. 이윽고 승화에게도 보기 좋게 한대 선사했다. <<화해해라.>> 담임선생님의 말씀대로 둘은 악수를 하는것으로 화해를 하고 교실로 돌아왔다. 군이는 규호의 생각때문에 가슴이 불안해나서 안절부절할수 없었다. 하학하자 바람으로 군이는 규호를 찾아 떠났다. 학교 옆에서 3선뻐스를 타고 일곱정거장인가 지나 길역에서 내린후 모래길을 따라 10분정도 걸으니 전에 규호가 이사할 때 보았던 그 세집이 눈에 안겨들었다. (규호가 집에 있을가?)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지났다. (있겠지. 규호는 그렇게 막나가는 애가 아니거든, 학교에서 선생님께 욕 좀 먹었다고 마구 밖으로 돌 애가 아니야.) 군이는 이런 생각을 굴리며 규호네 집앞에 이르렀다. 문에는 자물쇠가 걸려있지 않았다. 군이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문을 두드렸다. 잠간 지나 출입문이 열렸다. 규호가 머리를 내밀었다. <<어, 군이야,>> <<규호!>> <<어떻게 왔니? 어서 들어와라!>> 규호가 반가운 얼굴로 군이의 팔을 잡아끌었다. 군이는 온돌에 올라가 앉았다. 규호가 쑥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잠간만, 군이야. 쌀을 밥가마에 앉히면 돼, 글구 스위치만 누르면 저절로 밥이 된다니까.>> 규호는 말하며 썩썩 쌀을 씻기 시작했다 <<난 네가 집에 없으면 어쩌나 하구 근심했거든.>> 군이가 얼굴에 엷은 웃음을 띄우며 입을 열었다. <<쳇, 없기는, 내가 어디로 가. 저녁밥을 지어야 하는데. 아버지가 늦게 돌아오시거든.>> <<그래? 어머니는?>> <<어머니?!>> 순간 군이는 규호의 얼굴에서 꿈틀거리는 분노를 읽었다. 규호는 풀바가지에 씻은 쌀을 밥가마에 확 쏟아넣고는 손으로 밥물을 가늠하더니 밥솥덮개를 콱 닫아 덮은후 신경질적으로 스위치를 꾹 누르며 말했다. <<죽었다!>> <<뭐?>> 군이는 깜짝 놀랐다. 어쩜 규호의 아픈 마음을 건드렸나 싶어 인차 사과했다. <<미안, 규호야~ 난 정말 몰랐다.>> <<아니야, 달아났어.>> <<뭐라구?>> 군이는 야릇한 눈길로 규호를 바라보았다. <<됐어, 밖에 나가자. 갑갑해, 집안이. 이러면 밥이 저절로 되겠는데 뭐.>> 말을 마친 규호는 먼저 바당에 내려서 신을 찾아 신었다. 군이도 따라 일어섰다. 둘은 규호네 집뒤켠으로 흘러내리는 작은 개울가를 찾았다. 시내와 떨어진 시교여서 그런지 개울물은 그래도 맑아보였다. 군이와 규호는 나란히 흐르는 개울물을 바라고 앉았다. 규호가 말없이 풀잎을 훑어 개울물에 놓아주었다. 들쑹날쑹한 풀잎들이 물을 따라 춤을 추며 떠내려갔다. 내려가는 풀잎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규호의 눈길은 뭔가를 말하고있는듯싶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있니?>> 군이가 먼저 침묵을 깼드렸다. <<아니야,>> <<오.>> <<군이야,>> <<응?>> <<난 녀자가 정말 무섭다.>> <<무슨 말이니?>> <<오, 아니야.>> 규호가 말끝을 흐렸다. <<너의 눈이 말하고있는데. 하고싶은 말이있다구.>> 군이가 일부러 능청을 떨며 규호에게 말했다. <<쳇, 누가 작가의 아들이 아니랄가봐.>> 규호는 잠간 말끝을 끊었다가 휴~ 한숨을 내쉬고는 아래 말을 이었다. <<울어머니가 도망간지 3년철에 난다, 이곳으로 세집을 옮기구 몇달 지나서 북경으로 돈벌러 간다구 떠난것이 여태껐 소식 한번 없었다.>> <<그래서? 그간 어떻게 살았니?>> 군이가 몹시 놀랍다는듯 물었다. <<아빠하구 둘이서… 아빠는 돈을 벌겠다구 낮이면 삼륜차를 몰구, 밤이면 또 어느 양고기뀀집에서 양고기를 꿰는 일을 하구… >> <<참, 안됐구나, 혹시 너의 어머니께 무슨 일이라도 생긴게 아니니?>> <<차라리 죽어버렸더라면 더 좋았겠는데, 쳇, 어제 점심에 렴치없이 나를 찾아온거야.>> <<어머니가?>> <<응, 제법 멋진 옷을 해입구, 손에 금가락지를 해끼구, 돈많은 한족사람하구 함께 살고있대. 아버지하고 리혼수속하러 왔다는거다.>> 말하는 규호의 입술이 파르르 떨리고있었다. <<어쩜 그…그럴수가… 너네 아버지가 알고있니?>> <<아직 몰라. 아버지가 불쌍해서 말 안했다.>> <<그랬구나.>> <<녀자들이란 정말 무섭다. 울어머니, 나에게 돈 천원을 주는거야. 그래서 받았지. 울아버지 한달을 벌어두 천원을 겨우 벌거든. 근데 뭐라는지 알어? 흥! 아버지께 말하지 말구 나 혼자 쓰라는거야,>> <<왜? >> <<몰라, 뭐 나에겐 아직도 정이있다나? 그래서 그 돈을 도루 어머니에게 던져버리구 떠나왔어.>> 이 말을 하는 규호의 얼굴에는 순간 당당한 빛이 력력히 흐르고있었다. <<어쩜, 너의 어머니가 그렇게 할수있는데?>> 군이는 규호의 처지가 안타까와 가슴이 터질것 같았다. <<울어머니, 원래 그런 사람이야, >> 규호는 입술을 감빨며 한참이나 흐르는 개울물을 바라보더니 다시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그 분은 나의 새 어머니야, 나의 친어머니는 내가 돐이 금방 지나자 로씨야로 장사를 간다고 떠난것이 종무소식이였대. 그래서 아버진 법원에 가서 친어머니와 리혼수속을 하고 지금의 새 어머니를 만난거야. 새 어머니는 아이를 못낳는 분이거든. 그때 아버지는 현성에서 어느 큰 공장에 다녔었나봐. 얼마후에 아버지가 다니던 공장이 문을 닫구, 아버지도 직업을 잃고 말았지. 그후로 아버지와 어머니는 늘 티격태격 타퉜어. 나도 여러번 그러는걸 봤거든… 어머니가 떠나던 날, 밖에서는 비가 억수로 퍼부었어. 어머니는 이번엔 견결히 떠난다며 아버지와 며칠째나 싸우던 참이였지. 아버지는 부부간이 갈라져서 가정이 마사진 집들을 실례 들며 자신이 더 열심히 벌겠으니 제발 떠나지 말라고 어머니에게 빌었어. 어머니는 아니라는거야. 가난이 신물이 난다는거야, 그리구 그날, 북경으로 가는 기차표를 이미 끊었다는거야. 어머니는 비가 퍼붓는데도 챙겨놓았던 가방을 들고 문을 나섰어. 아버지는 너무도 분해서 식장문을 열고 술을 꺼내 병사리채로 마시구, 나는 무서워서 문을 나서는 어머니의 다리를 붙잡았어. 어머니가 먼저는 손으로 나를 다리에서 뜯어 내려는거야. 난 어머니의 다리를 놓지않았어. 그러자 어머니는 힘껏 다리질을 해서 끝내 나를 떨구어 놨어. 그리고는 가방을 들고 비속으로 막 달려갔지. 나두 어머니를 부르며 진흙탕으로 뛰여가구. 어머니는 택시를 잡아타고 비속으로 사라져버렸어. 그게 내가 본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이야.>> 규호는 잔잔하게 흐르는 개울물처럼 남의 이야기를 하듯이 비오던 날의 그 아픈 추억을 헤쳐나갔다. 군이는 그러는 규호를 뚫어지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넌 아버지하고 어머니가 리혼해도 괜찮니?>> <<흥, 난 어머니가 아버지와 리혼하는걸 절대 볼수없다. 우리 아버지가 얼마나 어머니를 기다렸다구.>> <<너의 어머니가 견결히 너의 아버지와 리혼하겠다면 어쩌겠니?>> 군이가 근심스러운듯 물었다. <<정말 리혼하겠다면 죽여버릴거야. 아버지 몰래 어머닐 죽여버릴거야.>> 군이는 규호의 눈에서 순간 퍼런 살기가 스쳐지나는것을 보았다. <<규호야, 무슨 그런 무서운 소리를 하니? 그래도 아버지께 알려드려라. 그래도 아버지께서 이 일을 알아야지.>> <<아니야. 말하지 않는게 났지 뭐. 아버지가 알면 그 타격을 당해내지 못할거야. 우리 아버진 밤낮으로 일만 하느라구 몸과 마음이 다 너무 지쳤어!>> 순간 규호는 눈시울을 붉히며 머리를 돌렸다. 혹시라도 군이에게 눈물을 보일가 두려운듯싶었다. <<지금도 자다가 비오던 날, 나를 차버리고 비속으로 사라지던 어머니의 모습이 문뜩문뜩 떠올라. 그럴 때마다 이가 갈리게 어머니가 밉거든, 글구 어머니가 무섭기도 하구, 정말이야, 난 나의 친 어머니도 새 어머니도 다 미워, 아니 녀자들이 다 밉거든!>> 규호의 눈길은 정말 그 어떤 분노로 이글이글 타는듯 싶었다. 군이는 그러는 규호가 안스럽게 생각되였다. <<규호야, 마음을 넓게 가져라. 옥생각을 하면 안된다. 너만 힘들어 지거든.>> <<흥! 난 아버지를 위해서라면 뭐나 다할수 있다. 아니, 어떤 일도 다 해낼거야!.>> 규호는 터지는 울분을 주체할수 없는지 땅에서 작은 돌멩이 하나를 주어 개울물에 던졌다. 돌멩이는 퐁당 개울물에 떨어지며 동그란 파문을 일으키고있었다. <<휴~>> 규호는 잠간 한숨을 내쉬고 말을 이었다. <<군이야, 어쩐지 난 네가 좋다. 혼자서 외로울 때면 가끔 너의 어깨에 기대고 싶은 생각이 들거든. 이렇게 너하구 털어놓고 말하니 속이 다 시원하다. 사람이란 아마도 가슴속에 비밀을 많이 담아두지 못하는 모양이지?!>> 규호의 말을 들으며 군이는 측은한 눈길로 규호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규호의 곁으로 한뼘 다가앉으며 주먹을 꽉 쥐고있는 규호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규호가 무척 고맙다는듯 은은한 눈길로 군이를 바라보았다. 군이는 말못할 아픔을 속으로 삼키고있는 규호의 상한 마음을 자기의 손으로 보듬어 주고싶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군이의 마음은 내내 규호의 생각으로 쓰리기만 했다.
13    미 궁 댓글:  조회:1809  추천:0  2010-03-10
미 궁 <<늦었구나. 무슨 일이있었니?>> 군이가 집에 들어서자바람으로 아버지께서 기다렸다는듯 물었다. <<네.>> <<무슨 일인데 이렇게 늦은거니?>> 아버지께서 군이를 지켜보며 인차 동을 달았다. 군이는 그러는 아버지를 돌아보지도 않고 건성으로 대답했다. <<별 일 아닙니다.>> 말을 마친 군이는 침실문을 열고 들어가버렸다. 이어 <<탕!>>하고 문닫기는 소리가 들렸다. 찬 바람이 쌩~ 부는듯한 군이의 태도에 아버지는 망연자실한듯 멍하니 군이의 침실문을 바라보았다. 전에 없던 군이의 반상적인 행동에 아연해진 아버지였다. (웬 일일가? 사춘기가 오는건가?) 아버지는 절레절레 머리를 저으며 주방으로 들어가 저녁밥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수저까지 갖추어 놓았는데도 군이는 침실에서 머리를 내밀지 않고있었다. 아버지는 군이의 침실로 다가가 조용히 문을 열었다. <<군이야 밥 먹자.>> 아버지의 출연에 군이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앉으며 불부은 소리를 했다. <<들어올 때 문을 두드리면 안돼요?>> <<뭐야? 너 요즘 웬 일이니? 아버지가 아들 방에 들어오며 노크를 해?>> <<저두, 제 생활이 있단 말이예요?>> <<그게 뭔데? 아버지가 보면 안될 사생활이 뭔데?>> 아버지께서 군이를 향해 도전적으로 물었다. <<됐어요.>> 군이는 신경질적으로 궁실거리며 침대에서 내려 주방으로 갔다. 아버지도 그러는 군이를 따라 주방으로 들어가 걸상에 앉으며 입을 열었다. <<군이야, 우리 진지하게 대화를 해야하지 않겠니? 아버지는 그럴 필요성을 느끼는데.>> <<……>> <<학교에서 유쾌하지못한 일이라도있은 거니? 아버지께 털어나 봐라. 혹시 도움이 될지 아니?>> <<……>> 군이는 볼부은듯 숟가락이 부러지게 밥을 퍼서 입에 넣었다. 아버지는 그러는 군이를 이윽토록 지켜보다가 말을 이었다. <<아버지를 믿고 속시원히 말해봐라. 그래도 아버지는 사람들의 심령을 그려내는 작가가 아니냐?>> 아버지께서 약간 롱담기섞인 목소리로 자부심에 차서 말씀했다. 군이는 반찬을 집다말고 우습다는듯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아버지, 믿음이란게 뭐죠?>> <<어?>> 아버지께서 굳어진 얼굴로 뒤말을 잇지못하셨다. 군이의 당돌한 물음에 뭔가를 의식한듯싶었다. 하지만 인차 얼굴을 풀며 허허허 웃어버렸다. <<자식, 아버지를 시험치겠니? 믿음이란 서로 간에 비밀이 없음을 말하는거지. 너와 나사이처럼 말이다.>> 군이는 저가락을 밥사발우에 내려놓으며 역시 날이선 목소리로 물었다. <<아버지와 나사이에 비밀이 없어요?>> <<그래, 없지.>> 아버지께서 확신에 차서 말씀했다. <<아버진 그렇다고 생각하세요? 맹세 할수있어요?>> <<그럼, 자식이란 무엇이니? 내 몸밖의 또 다른 내가 아니냐? 근데 무슨 비밀이있겠니?>> 아버지가 군이의 밥사발에 된살이 많이 붙은 삽겹살을 한점 짚어놓았다. 군이는 어버지께서 짚어주신 삼겹살을 입으로 가져가며 말했다. <<아버지,우리 교과서에 <위선자>라는 단어가 있거든요.>> 말하는 군이의 입가에 묘한 웃음이 스쳐지났다. <<위선자라구?>> 아버지의 목소리가 약간 떨리는듯 했다. <<무슨 뜻인지 잘 몰라서 사전을 찾아 봤더랬어요. 뭐라고 해석했는지 알아요? 사전에서는 위선자를 <겉으로만 착한 체 하는 사람>이라고 해석했어요.>> 군이는 저가락을 식탁우에 착 소리나게 놓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와~ 배부르다.>> 군이는 흐느적흐느적 걸어서 자기의 침실로 들어갔다. 그 모습은 마치도 세상을 다 살아온 할아버지의 배포유연한 모습같았다. 그러는 군이를 바라보며 아버지는 말못할 허전함을 느끼고있었다. (사춘기의 반항 때문일가?) 착하기만 하던 아들의 갑작스러운 변화는 정말 아들에 대한 자부감으로 가득찼던 아버지의 가슴에 랭수를 끼얹는 격이였다. 아버지는 군이를 따라 들어가 구경을 따져볼가고 생각을 굴리다가 생각을 고쳐먹고 설걷이를 시작했다. 군이의 침실에서 열광적인 쟈즈음악이 흘러나왔다. 군이는 두눈을 지긋이 감고 걸상등받이에 몸을 맏겨버렸다. 생각하고싶지 않았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쟈즈음악의 열광에 빠져버리고싶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였다. 사색의 실마리는 헝클어진 삼뭉치마냥 큰 덩어리를 이루며 군이의 머리속을 파고들었다. 가정을 지키자던 엄마의 편지며, 엄마의 꼬리를 잡겠다고 나선 승화며, 시를 발표하겠다고 편집선생님을 찾아다닌다는 승화의 어머니며, 마약장사를 하다가 총살을 당했다는 미림이의 아빠며, 그 자식을 남보다 못지않게 키워내겠다고 고향을 등진채 낯설고 물선 이 도시를 찾아온 미림의 엄마며, 그리고 돈많은 한족사람과 함께 살겠다고 리혼을 제출하고 있다는 규호의 새 어머니며… 군이는 벌떡 일어나 침대에 몸을 던지고는 이불로 머리를 확 감싸쥐였다. 숨이 막혀왔다. 군이는 그냥 그렇게 세상이 뚝 멈춰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짧게 머리를 스쳤다. 점점 숨이 턱에 닿아왔다. 군이는 머리를 감싸쥔채로 이불과 내기라도하듯 가쁘게 숨을 톺았다. <<후~>> 드디여 군이는 이불을 확 걷어버리며 벌떡 일어나 앉았다. 눈앞이 핑~ 돌아가는듯한 감을 느꼈다. <<따르르릉~ 따르르릉~>> 요란스러운 쟈즈음악의 발빠른 리듬을 헤치며 전화벨소리가 간간히 울려왔다. 군이는 침대에서 뛰여내려와 수화기를 움켜잡았다. <<여보세요.>> 수화기 저쪽에서 석쉼한 녀인의 목소리가 전화선을 타고 흘러왔다. 군이는 침실을 꽉 메우고있던 쟈즈음악소리를 꺼버리고 전화기옆에 걸상을 당겨 앉았다. <<군이니? 엄마다.>> <<네, 엄마!>> 군이가 짧게 대답했다. <<아프지는 않니? 공부는 잘하니? 편지는 받았니? 아버지는 있니? 미안하다, 엄마가! 흐흐흐흑…>> 엄마는 군이가 대답 할 사이도 없이 련주포를 쏘고는 먼저 흐느끼기 시작했다. <<엄마, 시름 놓으세요. 군이예요. 저도 인젠 다 컸어요.>> <<엄마가 미안하다. 전번에 그 편지를 보내지 말아야 하는데. 네가 뭘 안다구, 군이야, 얼마나 속상했니? 내가 미쳤지? 그저 급하고 기막힌 마음에 흑흑흑…>> 전화선을 타고 와 귀전을 치는 엄마의 목소리는 군이의 아픈 가슴을 발기발기 찍어놓기 시작했다. 군이는 입술을 깨물었다가 또박또박 말을 이었다. <<엄마, 시름놓으세요. 저두 공부를 잘하구, 아빠도 잘해요. 날마다 꼭꼭 제시간에 퇴근해요. 오늘 저녁에도 삼겹살볶음을 해주어서, 영~ 배부르게 먹었어요.>> <<……>> <<엄마 시름놓으세요. 엄마가 올 때까지 제가 우리집을 잘 지킬게요. 엄마가 돈을 벌어 보내서 산 집이 아닌가요? 아버지도 그렇게 말씀했어요. 꼭 잘 지킬게요. 엄마!>> 저도모르게 눈물이 두볼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렸다. 전화 저쪽에서도, 전화 이쪽에서도 잠간 아무말 없이 침묵이 흘렀다. <<군이야, 밥 많이 먹어라!>> 엄마의 울음섞인 목소리와 함께 툭 하고 전화가 끊겼다. 뚜-뚜- 하는 경고음이 흘러왔다. 군이도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군이는 책상우에 머리를 틀어박고 두눈을 꼭 감아버렸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모두 시골태생이였다. 시내물이 마을 앞으로 돌돌돌 흘러지나는 아름다운 시골마을에서 아래웃집으로 집을 잡고 살아온 아버지와 어머니는 소학교도 함께 다니고 중학교도 함께 다녔었다. 마을 어른들은 그러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천상배필이라고 했다. 그 소리가 부끄러워 어머니는 한때 의식적으로 아버지를 피해다니려고 마음 먹었었다. 하지만 생각하지말자고 해도 저절로 생각나는 사람이 아버지였다. 하루라도 아버지를 보지못하면 뭔가를 잊어버린듯 싶고 마음이 불안하였다. 정말 아버지가 보고싶을 때면 아버지네 집에 소금을 빌러가는것처럼 꾸며서라도 먼발치에서 아버지를 보고야 시름을 놓았다. 그 그리움을 못이겨 어머니는 초중2학년 때 먼저 아버지께 비밀편지를 보냈었다. 아버지도 마을의 꽃으로 불리우는 어머니의 비밀편지가 싫지 않았다. 이렇게 시작된 아버지와 어머니의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는 동구밖을 가로지나는 철다리우에서도, 마을 뒤산을 덮은 사과배나무 아래에서도 아기자기 엮어졌다. 하지만 불행은 쌍으로 온다고 고중 시험을 치던 해, 외할머니가 병으로 돌아가시고 외삼촌마저 채석장에서 일을 하다가 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어머니는 고중입학통지서를 받고도 현성에 있는 고중으로 갈수가 없었다. 어머니가 없으면 허리를 상한 외삼촌의 병 수발을 할 사람이 없었고 어머니가 없으면 때시걱을 끓일 사람도 없었다. 어머니는 미칠것만 같았다. 비록 현성과 시골에 떨어져 있었지만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늘 꽃편지를 보내왔고 어머니도 늦을세라 아버지에게 편지를 보내주군 했다. 아버지는 대학을 졸업하고 현성의 어느 중학교에 교원으로 배치를 받았다. 그해 아버지께서는 정식으로 어머니와의 결혼을 집에 제기하셨다. 그러자 할아버지께서는 천정이 낮다고 올리뛰며 아버지와 어머니의 결혼을 반대하고 나섰다. 하지만 아버지는 여전히 어머니에 대한 일편단심을 꺽지않으셨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끝내 아버지와 어머니의 진정에 감동하고 간단하게 결혼식을 올려주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현성에 자그마한 세집을 얻어 살림을 시작하셨다. 군이는 바로 그 현성의 작으마한 세집에서 고고성을 울렸다. 아버지는 교학을 하는 한편 시도 쓰고 소설도 쓰면서 적극적으로 활약을 하셨다. 그때 어머니는 현성의 작은 식당에서 주방장으로 일하다가 시장에 작은 가게를 세내여 옷장사도 했다. 비록 살림이 빠듯하고 일이 힘들어도 아버지가 계시기에 언제나 행복한 어머니였다. 군이가 일곱살 나던 해, 아버지는 연룡도시에 있는 한 잡지사에 전근을 하게 되였다. 아버지보다도 더 기뻐하신 이는 어머니였다. 하지만 연룡도시에서의 생활은 상상처럼 그렇게 행복한것만은 아니였다. 모든것을 새롭게 시작해야했던것이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고운 마음만으로는 안되는 일들이 참 많았다. 군이는 지금도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아버지의 엷은 로임봉투를 사이에 놓고 다투시던 기억이 새롭다. 그 달따라 아버지는 이러저러한 부조로 꽤 많은 돈을 날려버린 모양이였다. <<반년치 집세도 이번 달에 물어야 하고, 군이의 유치원 학비도 물어야 하는데요. 그리구. 아버님 생신도 이번 달에 들었는데…>> <<어떻게 하라는거요? 좀 바가지를 적게 긁을수는 없소?>> 아버지께서 무섭게 소리를 치고있었다. 그러는 아버지가 무서워 군이는 어머니의 뒤에가 숨었다. 어머니께서는 군이를 꼭 안아주더니 소리없이 일어나 밖으로 나가셨다. 군이도 어머니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 어머니께서는 집뒤에 있는 버드나무 아래에서 서럽게 어깨를 들먹이며 울음을 터뜨리셨다. 군이는 그러는 어머니가 무서워서 함께 소리내여 울었다. 얼마 안되여 어머니께서는 가정을 지키고 자식을 공부시키고 남편을 더 크게 출세시키려면 돈을 벌어야겠다며 리자돈을 맡아가지고 한국수속에 덤벼들었다. 가족을 위한 어머니의 정성에 하느님도 감동을 했던지 어머니는 한번에 한국수속을 성공했다. 어머니는 한국에 가서도 억척스럽게 일한 모양이였다. 군이네는 일년만에 리자돈을 다 갚고 2년이 좀 더 지나자 작지만 그래도 아빠트라고 한채 제집을 장만할수있었다. 아버지가 인젠 돌아오라고 재촉해도 어머니는 자신이 번돈으로 마음놓고 군이를 공부시키겠다면서 다시 3년계획을 세우셨다. 이것이 바로 어머니의 발자취였다. 이렇게 아버지와 자식을 위해 뒤 한번 돌아볼사이 없이 달려온 어머니였다. 어머니께서 방금 고향을 등지고 이국타향에서 전화통을 부여잡고 흐느끼신것이다. 군이는 벌떡 일어섰다. 주먹으로 눈굽을 쓱 닦고는 아버지의 침실을 향해 걸어갔다. 아버지는 책상앞에서 뭔가를 열심히 쓰고 계셨다. 그 시각 돋보기를 눈에 걸고 부지런히 필을 날리는 아버지의 모습은 감히 범접하기 어렵게 무거워보였다. 군이는 문역에서 주춤 걸음을 멈추었다. 그 바람에 아버지께서 필을 날리다말고 머리를 돌렸다. <<어, 군이! 웬 일이니?>> <<아니예요.>> <<들어와라. 아버지도 군이에게 하고싶은 말이있는데.>> <<아니예요,>> 군이는 뒤말을 얼버무려버렸다. 정작 아버지의 얼굴을 마주하니 들어가서 아버지의 기분을 망가뜨리고싶지 않았다. 군이는 문역에 선대로 머뭇거리다가 떠듬떠듬 말을 이었다. <<아참, <우리말사전>이 여기 있나 해서요. 그래요 제 칸에 있거든요. 책꽂이에요. 그냥 쓰세요,갈게요.>> 군이는 쫓기듯 자기의 침실로 돌아왔다. 군이는 책상앞에 턱을 고이고 앉았다. 돋보기를 걸고 열심히 뭔가를 써내려가던 아버지의 얼굴이 또렷이 눈앞에 떠올랐다. 얼굴이 화끈화끈 달아올랐다. 방금 자신의 반상적인 행동이 꼭 아버지에게 간파되였을것 같아 불안스러웠다. 그렇게 되면 아버지께서 얼마나 서운해 하실가 하는 생각이 머리를 치자 못내 가슴이 쓰려났다. 따져보면 이 3년사이, 아버지도 무척 바삐 보내셨다. 아버지는 전날 저녁, 술을 과음한 날을 빼고는꼭아침밥을지어군이와함께먹었고한주일에한번씩은꼭꼭군이와자신의옷을빨았다집안구석구석도언제나먼지한점앉을세라청소를게을리하지않았다 군이의 일이라면 열밤중에도 나서시는 아버지였다. 하여 담임선생님은 학교에 곤난한 일이있으면 아버지를 부르기 좋아했다. 그때마다 아버지는 두말없이 학교에 와서 선생님께서 만족하실수있게 일을 처리해 놓군 했다. 학부모회의가 있을 때마다 여느 학부모님들은 아버지를 두고 아버지자 어머니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었다. 일터에서도 아버지는 능수였다. 지난해에는 선진사업일군으로 상급의 표창을 받기도 했다. 가끔 멋진 시나 소설을 써서 신문이나 잡지에 발표하기도 했다. 이것이 군이가 알고있는 아버지의 모습이였다. (이런 아버지가 정말 승화의 엄마를 꼬시려고 낯뜨거운 일을 할수가 있을가?) 군이는 도리머리를 저었다. (아닐거야, 승화가 잘 못 알고있을거야, 근데 승화가 두분이 다방에서 나오는것을 제눈으로 똑똑히 봤다는것은 무엇을 설명하는것일가? 쳇, 다방에서 나오면 다 나쁜가? 승화, 그 자식이 너무 오도방정을 떠는거지 뭐. 그래 그럴거야, ) 군이는 애써 합리한 리유를 달아 아버지를 변호해주고싶었다. 하지만 뇌리를 치는 어머니의 편지를 떨쳐버릴수 없었다. (그래, 어머니께서는 한국에서 아버지에 대한 무슨 이야기를 들은것일가? 무엇이 어머니를 그렇게 불안하게 하셨을가?) 생각할수록 군이는 미궁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이였다. 군이는 신경질적으로 컴퓨터의 전원을 꾹 눌러켰다. 찌륵찌르륵~ 컴퓨터에 전류가 들어오는 소리가 요란스럽게 났다. 군이는 그 소리를 들으며 멍하니 모니터가 밝아지기를 기다렸다.
12    파아란 하늘 댓글:  조회:1895  추천:0  2010-03-10
파아란 하늘 - 야~ 군이!!!!!!!!! 메신저에 오르자마자 모니터에 글이 떴다. 군이는 <<어!>>하고 놀라며 글을 보내온 사람의 아이디를 살폈다. (덤 벼라?!) 낯선 아이디였다. 군이는 시무룩히 웃음을 피워물었다. 귀엽지는 않지만 기분 나쁜 아이디는 아니였다. 누굴가? 피뜩 감이 잡히지 않았다. - 누구??????????????? 군이는 물음표를 길다랗게 달아서 띄워보냈다. - 맞춰봐! 역시 짤막한 한마디가 돌아왔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처음보는 아이디였다. - 멀라,멀라!(몰라,몰라!) 너 어느 별에서 왔니? - ㅋㅋㅋ… 나 규호야, - 뭐? 너 규호라구? 어떻게 된거니? 군이가 놀랍다는듯 물었다. - 네가 간 다음 생각해 냈지. 그래서 여기로 온거다. 나 지금 PC방이거든. - 너, 무섭지두 않니? 누가 보면 어쩔라구? 소학생이 PC방에 드나드는것을 선생님이 알면 너 칵! 이렇게 된다? 그래 숙제는 다하구? - ㅋㅋㅋ…건, 너같은 우수생들에게나 하는 말이구. 나같은 꼴지들이야 뭐. 글구 허구한 날 숙제 숙제, 머리가 아프지두 않니? 우리 중국 애들에겐 노는 시간이 없는게 제일 큰 흠이야, 미국애들은 이렇게 안 산대. -뭐 미국애들? 이런… 규호야, 너 오늘 무척 유식해졌다. -쳇, 유식하기까지야 뭐, 방금 내 너를 기다리며 인터넷을 훑다가 보았거든. 미국애들은 정말 자유시간이 많대. 뭐 자연실천시간이라나? 우리야 어디 자연실천을 론할수있니? 매일매일 숙제더미에 눌려서, 우린 공부하는 기계야. 로보트라니까. 드릉드릉 소리를 내는… 롱담같으면서도 어딘가 뼈있는 말 같았다. 군이는 어떻게 대답하면 좋을가? 하고 잠간 생각을 굴리다가 그래도 가볍게 받쳐주는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야, 로보트도 좋은거지 뭐, 엄청 비싸지 않아? 현대적이구. 아, 방금 너 날 우수생이라 했니?싸움질에 코등까지 깼는데도 우수생이라구? ㅋㅋㅋ 근데 아이디가 뭐야? 왜 덤벼라야?>> - 멀라(몰라), 덤빌놈은 다 덤벼보라지 뭐, 두려운게 없어. 아, 맞다. 여기서 널 기다린 목적은 따로 있으면서도. 군이야, 우리 랠 천렵을 가자. - 천렵? 군이가 웬 일인가싶어 물었다. - 그래, 천렵! 래일 토요일이잖아, 너 어제 승화와 결투를 하느라고 피를 흘렸잖니? 의란강에 가서 물고기를 잡아 영양보충을 시켜줄게.>> - 와!!!!!!!!!!!!!!!!!!!!!!!!!!!!!!!! 군이는 무수한 감탄표를 찍어 규호에게 날려보냈다. 가슴이 뭉클해났다. 아니나다를가 규호쪽에서 <<ㅋㅋㅋ>>하고 글이 왔다. - 너 감동을 먹었지? 괜찮아, 우린 친구가 아니니?! - 그래, 고맙다. 친구야! 군이는 진정 감동을 먹고있었다. 이때 컴퓨터에서 또 <<삐삐~>>하는 소리가 나더니 모니터에 새로운 아이디가 나타나 <<할룽~>>하고 인사를 걸어왔다. <<갸냘픈진달래>>였다. - 어, 미림이! 너두 올랐니? - 그래, 혹시 네가 올랐나 싶어서 올라본거야. 다행이네, 네가 있어서. 미림이는 반갑다는듯 활짝 웃는 얼굴모형을 세개나 보내주었다. - 감솨(감사)~ 웬 일로 나를 찾았는데? 군이도 웃는 얼굴모형을 함께 띄워보냈다. - 래일이 토요일이잖니? 우리 산보가자. - 어? 산보? 군이는 깜짝 놀랐다. 얘들 왜 이래? 천렵에 산보에… - ??????????? 이때 규호로부터 무더기로 물음표가 날아왔다. 불시에 대화가 끊기니 무척이나 궁금한 모양이였다. 그러건말건 군이는 그냥 미림이와 대화를 했다. - 너희들, 약속이나 한거니? - 뭔 약속? - 방금 규호가 메신저에서 래일 의란강으로 천렵을 가자고 하던데… - 너를 영양보충시켜준다구? ㅎㅎㅎㅎㅎ… 네가 승화와 한판 붙느라구 피까지 흘렸다구, 장려를 해 준대?ㅎㅎㅎ 군이는 마치도 미나의 통쾌한 웃음소리를 듣는듯싶었다. - 군이야, 그럼 우리 규호랑 같아 가자. 마침 잘됐어. 친구들이 많으면 좋지 뭐. 나 은경이도 부를게. 그애, 아까 간부들이 함께 널 위문하자고 제기하더라. - 뭐 은경이가? ㅋㅋㅋ 내가 뭐, 전쟁터에 갔다 온 영웅이나 됐나 봐? - 야~ 군이, 뭐해? 규호가 기다리다못해 <<찌릉찌릉찌릉~>>하고 세번이나 진동경고를 보내왔다. 무척이나 급해난 모양이였다. 군이는 혼자서 쿡쿡 웃으며 규호에게 문자를 날렸다. - 미림이도 방금 메신저에 올랐다. 그 애도 나보구 산보를 가잔다. - 피~멋이 없이, 녀자애들이랑 어떻게 같이 가니? 규호는 기분 나쁘다는듯 또 찌릉찌릉 진동경고를 보내왔다. 모니터가 진동을 받아 와르르 떨렸다. - 싫어? 그 애들이랑 아니면 나 안간다. 군이가 짐짓 진지한체 했다. 그러자 인차 회답이 왔다. - 암튼 랠 가기로 하자. 너희들, 아홉시에 북동 3선뻐스역에서 차를 타라. 나는 우리집 부근 역에서 너희들을 기다릴게. - 알았어. 군이는 규호와 약속을 하고 인차 미림이에게 시간과 지점을 알려주었다. - 약속~ 랠 봐! 내꿈 꿔! 미림이가 문자끝에다가 하트모형을 보내왔다. 군이는 일부러 우는 사람 얼굴모형을 날려주고는 크크크 웃으며 컴퓨터에서 내렸다. 초저녁의 외롭고 쓸쓸하던 기분이 얼마간 가셔진듯싶었다. 군이는 오전 아홉시에 미림이네와 약속대로 북동 3선뻐스역에서 만났다. <<안녕?>> 은경이가 먼저 군이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보냈다. 은경이는 파르스름한 넓은테 선글라스를 걸고있었다. 빠알간 웃동복은 어깨에 멘 노르스름한 가방과 조화를 이루어 너무나도 로맨틱해 보였다. <<군이야, 환영하는거지?>> <<내가 뭘, 너희들이 날 청한거 아니니?>> <<그게 말이다. 친구지간의 의리라는거다. 사람이란 의리가 있어야거든.>> 은경이는 예쁜 비닐병에서 알약같은것을 꺼내 군이에게 건네며 입을 열었다. <<군이야, 씹어라, 프랑스껌이다.>> 아니꼬운 눈길로 은경이를 지켜보던 미림이가 입귀를 살짝 들어보였다. <<흥, 너네 아버진 껌장사도 하려는가보다. 지난해 프랑스에 갔다왔다는데 그 껌이 지금도 있니? 팔아 볼려구 엄청 들여온게 아니냐?>> <<왜? 부럽니? 아빠의 친구가 프랑스에서 부쳐보냈거든. 안되니?>> <<너네 아버진 참 좋겠다. 프랑스에서 껌을 부쳐주는 친구가 다 있어서…>> <<됐다. 그만해라. 그만해.>> 군이가 나서서야 미림이는 은경이를 찔 째려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규호는 벌써 뻐스역에 나와 기다리고있었다. 뻐스가 멈춰서자 규호는 인차 뻐스에 몸을 실었다. 규호의 손에는 반두와 큼직한 비닐주머니가 들려있었다. <<여긴 뭐가 있는데?>> 미림이가 비닐주머니를 툭 치며 규호에게 물었다. <<여기 말이니? 중요한 무기들이지.>> <<무기라구?>> 은경이가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비닐주머니를 툭 쳐보았다. 땅땅한것이 손에 맞혔다. 은경이는 궁금해서 못참겠다는듯 규호의 손에서 비닐주머니를 받아 열어보았다. 냄비며 사발이며 양념통들이였다. <<얘, 규호야, 너 강역에서 살림을 차리자구 그러니?>> <<녀자가 뭘 안다구 참견이니?>> 규호가 은경에게 찔끔 눈을 흘기며 말했다. 그러자 은경이가 마음이 불편한 모양이였다. <<왜? 함께 가주니 시뚝하기는! 흥, 너, 오늘 미꾸라지나 한마리 잡는가 보자.>> <<참, 오도방정은, 녀자들 말은 오뉴월에도 서리를 친단다.>> 규호의 말에 옆에 있던 뚱뚱한 아줌마가 키득키득 웃으며 한마디 했다. <<지금 애들은 정말 못하는 말이 없다니까…>> 오전이라 그런지 강물은 몹시도 찼다. 하지만 규호는 시간이 모자라다면서 바지를 걷어올리고 성큼 물에 들어섰다. 규호가 반두질을 하고 미림이가 강역에서 고기를 담을 비닐봉지를 들고 따랐다. 군이와 은경이가 물에 들어서서 고기를 쫓았다. 은경이는 덤벙거리다가 두번이나 발을 헛디디며 강물에 그대로 넘어져서 물병아리가 되고 말았다. 그래도 하느님이 도왔던지 그들은 버들치를 한사발 푼히 건져 올렸다. 그들은 반두를 걷어가지고 평평한 곳을 찾아 강역을 따라 걸었다. <<이게면 오늘 물고기탕은 실컷 되겠다.>> 은경이가 미림이의 손에서 비닐봉지를 받아들고 눈앞에 흔들며 환성을 올렸다. <<흥, 누구의 솜씨라구?>> 규호가 시뚝해서 말했다. <<애개~ 말하는것하구는, 누가 쫓았는데. 군이와 나지. 아님, 너 어림이나 있겠니?>> 은경이가 지려하지 않고 바투 들이댔다. <<됐다. 너하구 입씨름 하는 내가 우둔하지. 그만 고기밸이나 따라. 우린 냄비를 놓을 부엌을 만들어야겠다.>> 규호는 말하며 발옆에 보이는 큼직한 돌을 주어들었다. 살펴보니 부억을 만들만한 돌들이 많이 보였다, 군이도 큼직한것으로 하나 골라들었다. 비슷한 돌 세개를 삼각으로 놓고 그 우에 냄비를 올려놓았다. 제법 부엌같아보였다. 규호가 로련한 솜씨로 냄비에 고추장을 풀고 깨끗이 손질한 물고기를 넣었다. 그들은 냄비덮개를 닫고 불을 지폈다. 한참 지나자 빠아갈 고추장물이 불렁불렁 끓어번지며 구수한 물고기냄새를 피워올렸다. 군이네는 냄비를 사이에 두고 빙 둘러앉았다. 미림이가 먼저 자기가 싸온 도시락을 꺼내서 보자기를 풀기 시작했다. 은경이도 자기의 도시락을 헤쳤다. 그제야 군이는 자기는 아무것도 갖추어가지고 오지 않았음을 느끼고 쑥스럽게 입을 열었다. <<참, 물고기를 잡는다니 난 아무것도 가져오지 않았는데.>> <<오늘은 너를 위해 온거잖아, 응당 입만 가지고 와야지.>> 은경이가 입빠르게 군이를 두둔해 나섰다. 그새 미림이는 말없이 도시락 덮개를 열었다. 제일 웃층에는 닭알 세알이 나란히 들어있었다. <<군이야, 먼저 이 닭알을 먹어라. 영양보충을 하게.>> 미림이가 닭알을 집어 군이 앞에 내밀었다. <<아니, 네가 먹어라. >> 군이가 손사래를 했다. <<애두 영양보충을 해야지. 이게 그래두 토닭알이다. 우리 이모, 날 먹으라구 특별히 서시장에서 사온거다.>> 무심결에 말을 던진 미림이는 흠칫 놀라며 군이를 건너다 보았다. 군이는 못들은듯 먼산을 바라보고있었다. <<그게 그렇게 귀한거니? 나두 먹자.>> 규호가 갑자기 미림이의 손에서 닭알을 나꿔채더니 은경이의 이마에 대고 탁 쳤다. <<얏!>> 은경이가 새된소리를 질렀다. 그바람에 군이와 미림이는 손벽을 치며 웃음보를 터뜨렸다. <<규호야, 너, 너무하는거 아니니?>> 은경이가 성나서 씩씩 거리며 소리쳤다. 그 새 규호는 닭알 한알을 제꺽 입에 넣어버렸다. 미림이가 그러는 규호를 어이없는 눈길로 바라보더니 아예 규호를 피해 돌아앉으며 도시락채로 군이 앞에 내밀었다. <<군이야, 빨리 먹어라. 저러다 규호가 다 먹어버리겠다.>> 그러자 규호가 기어이 미림이 곁으로 다가가 도시락에 남아있는 닭알 두알을 냉큼 주어내며 중얼거렸다. <<왜 군이만 권하니? 좋은 것은 나두 먹을줄 알거든.>> <<얘, 규호야.>> 미림이가 새된 소리를 쳤다. 하지만 규호는 벌써 한손에 닭알 한알씩 쥐여 으스슥 짓개고있었다. 미림이는 너무도 분해서 두 눈을 올롱하게 뜨고 바락바락 소리질렀다. <<규호야, 너 게걸년에 났니?>> <<야, 미림아 그만해라. 나도 닭알을 삶아가지구 왔다. 토닭알은 아니지만.>> 은경이가 자기의 도시락덮개를 열었다. 역시 제일 웃층에 닭알이 들어있었다. 은경이는 닭알 한알을 집어 규호에게 넘겨주며 물었다. <<규호야, 더 먹을래.>> <<아니, 사실 나도 닭알을 삶아왔드렁~ 미림아, 너 먹을래?>> 규호가 가방에서 닭알이 들어있는 비닐봉지를 꺼내 미림이 앞에 흔들며 약을 올려주었다. 규호의 손에 들려있는 비닐봉지가 묵직한것을 보니 닭알이 꽤 들어있는것 같았다. <<녀자애들은 이래서 안된다니까, 그까짓 닭알 세알을 어느 코에 바르냐? 봐라, 열개다. 이 정도는 돼야지.>> <<흥! 토닭알하구 양계닭알이 같니? 딱 세개밖에 안남아서 그랬지. 그걸 네가 다 먹으면 어쩌니? 군이를 주자고 가져온건데.>> 미림이가 코묻은 소리로 웅얼거렸다. <<그럼 어쩔가? 크크크,,, 군이야, 살짝, 해줄수도 있는데. 미림이의 정성을 봐서라두…>> 규호가 말하며 토하는 시늉을 해보였다. 군이는 그러는 규호를 이윽토록 바라보았다. 전에 입을 꾹 다물고 있던 규호가 아니였다. 능글능글 말도 잘 하고 행동마다 익살이 폭 배여 있는것이 여느 때 없이 맑아보였다. <<군이야, 미안 내거라도 먹어라.>> 규호가 닭알 한알을 쥐여 군이에게 뿌렸다. <<미림아, 괜찮아, 이러면 될거 아니니? 이걸 네가 가져온걸루 생각하면서 고맙게 먹을게.>> 군이는 규호가 뿌려주는 닭알을 받아서 껍질을 벗기며 미림이를 보고 말했다. <<그래 군이야 고맙다. 맛있게 먹어.>> 규호가 옆에서 한술 떴다. <<군이야, 먹지마! >> 미림이가 군이의 손에서 닭알을 빼앗으며 소리쳤다. <<물고기탕이 다 끓었다. 시원히 물고기 탕을 먹어라!>> <<어, >> 군이가 잠간 어쩔줄을 몰라 규호와 미림이를 번갈아 보았다. 미림이는 군이의 손에서 빼앗은 닭알을 대충 껍질을 벗겨서 통째로 입에 넣고 앙금앙금 씹더니 꿀떡 삼켜버렸다. 미림이는 목이 메는지 련속 구역질을 했다. <<쯧쯧쯧. 닭알을 그렇게 먹구서야 어찌 시집을 가노~>> 규호의 말에 미림이는 <<꺽>>하고 딸꾹질을 하며 질끔 눈물을 짰다. 군이와 은경이는 그러는 미림이를 보며 재밌다고 손벽을 쳐댔다. 그럴수록 미림이는 긴장해서인지 더 자주 딸꾹질을 했다. 한참 웃고나니 배가죽이 아파났다. 군이는 배곱을 부여잡고 웃음을 참으며 머리를 쳐들었다. 파아란 하늘에서 하아얀 구름송이들이 어디론가 동동 떠가고 있었다. 깜찍한 토끼같은 구름도있고 귀여운 참대곰같은 구름송이도있었다. 치마자락을 휘날리는 엄마같은 구름도있고 달리기에 나선 소년같은 구름도있었다. <<하늘이 참 푸르지? 저 구름송이들을 봐라. 정말 각양각색이다.>> 군이가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얘, 저 봐라. 저 구름은 옛말을 하는 할아버지 같지 않니?>> 은경이가 구름 한송이를 가리켰다. <<저봐, 저 구름은 빨래하는 아줌마 같애!>> 미림이도 꺽하고 딸꾹질을 하며 끼여들었다. <<와~ 하늘이 파랗다. 파아란 하늘이여, 물고기탕이 다 끓었나이다~>> 규호가 능청을 떨었다. 그 바람에 시인이나 된듯 구름을 감상하며 감정을 잡던 군이네들이 또 다시 깔깔깔 웃음바다에 빠져들었다.
11    아버지의 밀회 댓글:  조회:1962  추천:0  2010-03-10
아버지의 밀회 <<따르릉따르릉~>> 전화벨소리가 울렸다. 군이는 두눈을 번쩍 뜨고 일어나 앉았다. 그새 깜빡 잠이든것 같았다. 낮에 의란강변에서 웃고 떠들며 규호랑 미림이랑 은경이랑 어울릴 때는 힘든 줄을 몰랐었는데 집에 와서 침대에 누우니 한낮의 피로가 한곬으로 몰려든 모양이였다. <<따르릉따르릉…>> 전화벨소리가 쉬지않고 울렸다. 군이는 침대에서 내려가 수화기를 잡아들었다. <<군이니? 나, 승화다, 빨리빨리…>> 승화는 몹씨 급한듯 뒤말도 제대로 잊지못하고있었다. <<오, 승화. 웬 일이니? 천천히 말해라.>> <<군이야, 빨리 여기로 나오라, 빨리!>> <<그게 어딘데?>> 군이도 저으기 긴장해나서 수화기를 바꿔들며 다급히 물었다. <<제1백화 동쪽에, 만남다방 앞이다. 빨리 나와야 한다.>> <<만남다방>>이라는 말에 군이는 괜히 신경이 긴장해졌다. 군이의 목소리가 저도몰래 높아졌다. <<웬 일인데? 다방엔 왜 가있니?>> <<잡았다. 방금 너네 아버지하구, 우리 엄마하구 다방에 들어갔다. 빨리 와야 된다. 네에게 확인시켜준다구 했잖니?>> 승화의 목소리에는 어딘가 불안이 깔린듯싶으면서도 그렇지! 하는 흐믓함이 느껴졌다. 군이는 구경을 알고싶은 생각이 머리를 쳤다. <<그래, 알았다. 지금 갈게.>> <<오, 내가 지키고있을게, 빨리와야 한다.>> <<기다려라.>> 군이는 수화기를 놓고 벌떡 일어섰다. 층계를 내리자 바람으로 군이는 택시를 잡아탔다. 운전수는40대초반으로 보이는 상고머리아저씨였다. 아저씨는 군이가 혼자 택시에 오르는것이 이상했던지 상냥하게 물었다. <<너, 혼자냐?>> <<네, 아저씨 일백화청사 앞의 만남다방으로 가주세요.>> <<만남다방? 너 혼자서?>> <<네, 아저씨 급해요. 빨리 몰아주세요.>> <<알았다. 그곳까지 5원이다.>> 아저씨는 부르릉~ 하고 출발을 하더니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승화는 만남다방 앞에서 진정을 못하고 서성거리고있었다. 택시에서 내리는 군이를 보자 승화는 한달음에 군이의 옆으로 뛰여왔다. <<있다. 아직 안나왔다.>> <<너 어떻게 발견했는데?>> 군이가 못믿겠다는듯 급히 물었다. <<저녁밥을 다 해놓구두 우리 엄마, 밥먹을 궁리를 안하는거야. 나보구 먼저 먹으라면서, 점심 먹은게 뜨직해난다는거야. 그래서 나두 혼자 먹기 싫어 대수 한술 뜨네 하구 말았지. 저녁밥을 먹구 객실에 나와 보니 엄마가 얼굴에 화장을 하고 있는거야.>> 승화가 제 얼굴을 쓱 문대며 아래말을 이었다. <<엄마는 그러면서 자꾸 벽시게를 쳐다보는거야, 이상하다고 생각했지. 아니나다를가 잠간 지나자 엄마의 핸드폰이 울렸어. 엄마는 뭐라고 잠간 말을 하더니 가방을 들고 나가면서 말하는것이였어. 편집선생님이 보잔대.>> 승화는 일부러 <<편집선생님>>에 악센트를 주면서 군이를 흘끔 쳐다보았다. <<그래서 나는 올것이 왔구나 하고 판단했지. 인차 엄마의 뒤를 밟은거야. 지난번에도 바로 이 다방에서 너의 아버지와 만났더랬어. 너의 아버지가 진작 이 앞에 와 있었어. 우리 엄마를 보자 둘은 약속이나 한듯이 나란히 다방안으로 들어가는거야.>> 승화는 손으로 다방입구를 가르키며 흥분에 들떠있었다. 군이는 그러는 승화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정말 사실이 아니기를 바랐건만 보고싶지않은 일이 현실로 눈앞에서 벌어지고있다는것이였다. <<가자, 내가 다 정찰을 해놨다. 다방문은 나무로 됐는데 웃켠에 손바닥만한 뽀얀유리를 넣었거든. 그 뽀얀유리에 입쌀알 만한 맑은 점이있어. 그 맑은점으로 안을 들여다 보면 다 보여.>> 승화는 군이의 손을 끌고 다짜고짜 다방안으로 들어갔다. 어둑시그레한 빨간색 불빛아래서 멍하니 탁자뒤에 앉아있던 호리호리한 몸매의 아줌마가 웬 일이냐는듯 군이네를 바라보았다. <<우리 엄마를 찾으러 왔어요. 얼마 전에 들어오는것을 봤어요.>> 승화가 목소리를 낮추며 앞질러 대답했다. 아줌마는 이상하다는듯 군이네를 바라보며 별말이 없었다. 승화는 군이를 뒤에 달고 <<장미방>>을 지나 <<백합방>>을 건너 <<씀바귀방>>앞에 와 섰다. 승화는 조용하라는듯 손가락을 입술에 가져다 대더니 먼저 살금살금 문가로 다가갔다. 문에는 정말 손바닥만한 뽀얀유리가 있었다. 승화는 조용히 그 유리에 눈을 가져다 댔다. 잠간 지나자 승화가 군이의 옆으로 다가와 군이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한창 열이 올랐다. 너네 아버지, 우리 엄마께 뭐라고 말하고있다.>> 군이도 승화처럼 살금살금 문가로 다가가 뽀얀유리에 눈을 가져갔다. 뽀얀것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군이는 머리를 돌려 승화를 건너다 보았다. 승화가 손가락으로 뽀얀유리 아래 쪽을 가리켰다. 군이는 뽀얀유리 아래 쪽으로 눈길을 가져갔다. 아니나다를가 유리를 갈 때 잘못되였던지 정말 뽀얀유리 아래 쪽에는 입쌀알만한 맑은 점이있었다. 군이는 그 맑은 점에 눈을 가져다 댔다. 아버지 맞은 켠에 앉은 녀자가 키득키득 웃으며 손으로 아버지의 손등을 툭 치고있었다. (저 분이 승화의 어머니구나.) 이런 생각과 함께 군이는 그 녀자에 대해 말못할 거부감을 느꼈다. 승화 어머니의 말이 끝나자 아버지가 손으로 책상우에 놓여진 종이장을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목소리가 낮아서 뭐라고 하는지는 알아들을수 없었다. 승화의 어머니는 또 손으로 아버지의 손등을 톡 치며 얼굴에 웃음을 날렸다. <<흥!>> 군이는 낮으막하게 코방귀를 뀌며 흥미없다는듯 몸을 돌렸다. 그러자 승화는 군이를 보고 혀를 홀랑 내밀어보이며 무슨 볼거리라도 난듯이 또 문가로 발볌발볌 다가갔다. 군이는 아니꼬운 눈길로 그러는 승화를 쏘아보고는 혼자서 밖으로 나와 버렸다. 잠간후 승화도 밖으로 나왔다. <<군이야, 봤지 방금두 너네 아버지가 뭐라고 껄껄 웃으며 우리 엄마에게 말했다.>> 그말을 하는 승화의 목소리는 마치도 <<봐라, 너네 아버지가 우리 엄마를 꼬시고있다.>>는 식으로 들렸다. 군이는 그러는 승화가 아니꼬와 못들은듯 걸음만 옮겼다. 하지만 승화는 군이의 그런 정서도 읽어내지 못했는지 계속 입을 놀렸다. <<지난번에도 그랬다. 너네 아버지가 껄껄 웃으며 우리 엄마에게 뭐라구 온 하루 이야기 했다.>> 승화는 특별히 <<온 하루>>에다 힘을 주어 말했다. 군이는 걸음을 뚝 멈추고 승화를 쏘아보았다. <<말 다 했니?>> <<어, 그래.>> <<왜 말끝마다 우리 아버지냐? 너네 엄마는 못봤니? 입이 크담해가지구 키득키득 웃으며 우리 아버지 손등을 치는걸. 두번이나 치더라. 빨간립스틱이 뭐야, 빨간게, 쥐를 잡아 먹었다니? 촌스럽긴, 네가 어째 촌스럽게 노는지 알겠다.>> 한번에 이 많은 말을 다 퍼붓고 나니 군이는 어딘가 속이 후련해나는것 같았다. 승화는 군이의 청산류수같은 반격에 어정쩡 해서 할말을 찾지 못하고 멍하니 군이의 입만 바라 보았다. <<인젠 됐지? 속시원하지? 구렁이같은 자식.>> 군이는 몸을 픽 돌려 앞을 바라고 잰걸음을 놓았다. <<야, 군이, 군이야~>> 승화가 소리치며 군이의 옆으로 뛰여왔다. <<방금 너 뭐라구? 그래, 우리 엄마가 너네 아버지를 꼬신단 말이니? 흥!>> <<그래, 너네 엄마는 우리 아버지를 꼬시면 안되니? 킥킥 웃음을 날리는게, 꼬시구두 남겠더라.>> 군이는 아니꼽게 승화를 쏘아보며 아버지의 손등을 치던 승화 어머니의 동작을 그대로 흉내냈다. 승화의 얼굴이 단통 지지 벌개졌다. <<너, 정말 발뺌을 하는구나. 남은 좋은 뜻에서 불러줬더니.>> <<그래, 저 잘난 장면을 보구 어쩌겠다는 거니? 뭘 하자는 거니? 왕구렁이 같은 자식!>> <<너, 점점… 사람을 욕까지 하는구나. 뭘 잘 한게 있다구. 지난번에 너하구 싸움을 한 다음 부터는 너를 잘 대해 주자 했는데…>> <<뭘 잘 대해 주는데. 또 붙겠니? 네같은 놈하구는 백번이라두 붙겠다.>> <<백번이라두 붙는다구? 너, 규호에게 또 말하면 엠나(계집애)다..>> <<얌마, 네사 바로 엠나다.>> 서로 대방의 자존심을 발기발기 찢지못해 어르렁거리던 군이와 승화는 누가 먼저랄것 없이 한덩어리가 되여 돌아갔다. 군이는 눈앞에서 노란별들이 반짝이는것을 보았다. 얼굴 여기저기가 아프고 화끈거렸다. 여겨보니 승화의 코에서는 어느새 뻘건피가 흐르고있었다. 피를 보자 더 흥분했는지 군이는 악악 소리치며 기승스레 승화에게 달려들었다. <<야, 그만들 해!>> 갑자기 누군가 군이네를 향해 꽥 소리쳤다. 군이와 승화는 그 소리에 날리던 주먹을 뚝 멈췄다. <<이 놈들아, 담이 배밖에 붙었냐? 파출소 곁에서 웬 싸움질이냐?>> 방금 소리를 친 사람은 경찰이였다. 그제야 군이와 승화는 주위를 살펴보았다. <<신광파출소>>라는 간판이 보였다. 허무했다. 서로 소리치고 욕하며 오느라고 자기들이 어느새 파출소 곁에까지 온것도 모르고있었던것이다. 죽었구나! 하는 생각이 군이의 머리를 스쳐지났다. 경찰은 군이와 승화를 나란히 세워가지고 파출소로 몰아갔다. 군이는 다리맥이 풀려서 후둘후둘 떨렸다. 피뜩 건너다 보니 승화도 얼굴에 비지땀을 흘리며 두눈을 퀑하니 뜬채 허둥대고있었다. 군이는 두려움이 꼴똑 찬 눈으로 파출소 안을 훔쳐 보았다. 군이가 서있는 맞은 쪽 칸 철문에는 쇠창살이 꽂혀있었다. 머리에 회색물감을 들인 20대의 청년이 쇠창살 저쪽에서 퀭하니 군이네를 훔쳐보고있었다. <<웬 놈들이오?>> 책상앞에 앉아 있던 나이 들어보이는 경찰이 물었다. <<허허허… 장군들입니다. 방금 파출소 곁에서 죽기내기를 하는걸 끌고 옵니다.>> <<장군은 장군이네. 파출소를 저희들 유희청 만큼이나 아는가? 허허허…>> 나이 들어보이는 경찰이 어이없다는듯 허허허 웃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무서운게 없는가 봅니다.>> 군이네를 잡아 온 경찰이 심문기록부를 꺼내 책상우에 올려 놓으며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 곧이 곧대로 불어라, 아니면 콩밥을 먹을 줄 알어.>> 경찰은 먼저 무섭게 한마디 하고는 이름이며 학교며 부모들의 련계전화며 하는것들을 물었다. <<자식들, 한반에 다니는 놈들이 무슨 원한이 있다구 이렇게 싸우냐. 자, 말해 봐. 왜 싸웠는가를.>> 경찰의 말에 군이와 승화는 서로 얼굴을 쳐다 보았다. <<안 말할래?>> 경찰이 손으로 책상을 탕 내리쳤다. <<내가 먼저 때렸씀다. 놀다가 저 애가 너무 하는 바람에. 그랬씀다.>> 승화가 또 엉뚱한 소리를 할것같아서 군이가 앞질러 대답했다. <<옳씀다. 내가 너무했씀다. 잘못했씀다.>> 승화도 후들후들 기여들어가는 목소리로 한술 떴다. <<야. 이 자식아, 어쩜 싸움질을 할 정도로 너무하냐?>> 경찰이 시무룩이 웃으며 승화의 머리에 꿀밤을 한대 먹였다. <<경찰아저씨, 내, 까불기를 좋아해서 자주 그램다. 그래서 우리반 애들이 날 좋아하지 않씀다. 잘못했씀다. 다신 안그러겠씀다.>> <<아저씨, 저도 잘못했씀다. 우릴 보내주시오. 네?>> 군이가 경찰의 표정이 좀 풀린것을 보고 애원에 찬 목소리로 간청했다. 군이와 승화를 번갈아 보던 경찰이 심문기록부를 덮으며 입을 열었다. <<됐다. 이 자식들아. 친구끼리 싸움은 무슨 싸움질이냐? 맹세할수 있지? 다신 싸움질을 안하겠다구!>> <<옛!>> 군이도 승화도 자기들의 어디에 그렇게 큰 목소리가 숨어 있었는지 몰랐다. <<돌아가라. 어릴 때부터 싸우길 좋아하면 그게 습관이 된다. 그게 습관이 되면 커서 건달밖에 뭐가 더 되겠냐? 자식들!>> 경찰이 군이의 머리를 툭 쳐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감사합니다.>> 군이는 경찰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 불이나게 파출소에서 나왔다. 밖은 벌써 어둠이 깔려있었다. 군이는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정신없이 뛰여가다가 걸음을 멈추었다. 그때까지도 가슴은 방망이질을 하듯 두근두근 뛰고있었다, 군이는 전등불을 빌어 <<신광파출소>>라는 간판이 걸려있는 3층짜리 건물을 멍하니 바라 보았다. 길지는 않았지만 파출소안에서의 무섭고 긴장하던 기억이 또렷이 군이의 눈앞에서 주마등처럼 흘러지났다. <<후~>> 막혔던 수문이 터졌을 때처럼 긴 한숨이 쏟아져 나왔다. 생각만해도 눈앞이 아찔했다. (내가 파출소에 들어갔댔구나. 파출소에! 감옥에라도 갇더면 어쨌을가?) 이런 생각이 들자 또 다시 두려움이 엄습해왔다. 간신히 지탱해 서고있는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군이는 맥 없이 몸을 돌려 앞을 행해 걸음을 옮겼다. 눈물이 두 볼을 타고 소리없이 흘러내렸다. 군이는 누가 볼가 두려운듯 머리를 숙이고 주먹으로 연신 눈물을 닦았다. 머리속이 텅빈듯 했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저 빨리 집으로 가야한다는 일념뿐이였다. 집에 가서 침대에 누워 이불을 푹 덮어쓰고 실컸 자고 싶었다. 그렇게 자고 나면 어둠이 가셔질것 같았다. 어둠이 가셔지면 새날이 올것이고 새날이 오면 아무 일도 없었던듯 학교에 가고싶었다. 군이는 어둠을 헤치며 부지런히 걸음을 옮기고 또 옮겼다.
10    세상을 사는 법 댓글:  조회:1946  추천:0  2010-03-10
세상을 사는 법 <<네? 승화를 형이라 부르라구요? 안돼요. 그럴수가 없어요.>> 군이는 고통스러워 머리를 쥐여 뜯으며 버럭버럭 소리쳤다. 하지만 아버지는 에누리가 없다는듯 다시 한번 정중하게 말했다. <<그래, 승화가 너보다 생일이 3달 앞이니, 물론 형이라고 불러야지. 우리는 이제 부터 가족이 아니냐? 가족이라면 서렬이 있어야 하는거다.>> <<누가 승화와 가족을 하겠대요? 그럴수가 없어요. 전 승화와 한집에서 살수가 없어요. 그리구 저 아줌마도 싫어요.>> 군이가 승화의 어머니를 가리키며 히스테리적으로 소리쳤다. <<에익, 덜 된 놈!>> 아버지가 목소리를 부르르 떨더니 불이나게 군이의 귀뺨을 올리쳤다. 군이는 그러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악에 받혀 시위했다. <<그럼, 아버지가 저 사람들과 한 가족을 하세요. 전 나갈래요. 이 집에서 나갈래요. 혼자 살래요.>> 말을 마친 군이는 문을 차고 밖으로 나갔다. 종주먹을 부르쥐고 어디론가를 향해 죽어라고 뛰여갔다. 하지만 애타게도 걸음이 되여주지 않았다. 두발은 허공에서 허둥거리기만 했다. 뒤에서는 아버지며 승화며 승화의 어머니가 쫓아오고있었다. 군이는 너무도 당황스러워 젖먹던 힘까지 다해 발걸음을 옮기느라 악을 썼다. <<어머니, 어머니~>> 군이는 어머니를 부르다가 눈을 떴다. 얼굴은 온통 땀으로 범벅이 되여있었다. 군이는 주먹으로 이마의 땀을 훔쳤다. <<휴~>>가슴속에 침침하게 막았던 한숨이 터져 나왔다. <<꿈이였구나.>> 군이는 중얼거리며 일어나 앉았다. 창문넘어로 반짝이는 별들이 군이를 지켜보고있었다. 군이는 다시 한번 얼굴의 땀을 훔치며 창가로 다가갔다. 창턱에 턱을 고이고 앉아 무수한 별바다를 응시했다. 별들은 뭔가를 속삭이는듯 쉼없이 반짝이고 있었다. 별찌 하나가 긴 꼬리를 그으며 떨어져내렸다. (별찌구나!) 군이의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였다. 그러자 할아버지의 얼굴이 떠올랐다. 어릴 때, 할아버지네 집을 찾아 시골로 내려가면 할아버지께서는 군이와 함께 창문가에 붙어서서 늘 별자리를 살피시군 했다. 그러다가 별찌를 발견하면 군이를 보고 소망을 빌어보라고 했다. 군이에게는 정말 소망이 많았다. 너무도 많아서 어떤 것을 제일 갈망하고있는지 자기로서도 아리숭했다. 하지만 그래도 별자리를 살피며 별찌를 보고 별찌를 보면서 자기의 꿈을 그리는 재미가 그렇게도 좋았다. (별찌를 보고 소망을 빌면 이루어 진다구?) 군이의 입가에 서글픈 웃음이 피여올랐다. (그럼 진짜 소망이나 빌어볼가? 그래, 지금 내게 무슨 소망이 있지?) 어머니를 보고 싶었다. 언젠가 꿈에서 보았던 그 얼굴, 서울의 작은 식당 뒤울안에서 손수건으로 눈굽을 찍던 어머니의 초췌한 얼굴이 새삼스럽게 눈앞에 떠올랐다. (과연 어머니는 이 밤을 어떻게 보내고 계실가?) 저녁에 승화와 함께 보았던 아버지의 얼굴이 떠올랐다. 승화의 어머니를 보면서 시무룩히 웃음을 날리던 아버지의 얼굴이 어머니의 고통스러운 얼굴과 겹쳐지면서 군이의 눈앞에서 어룽거렸다. 군이는 벌떡 일어섰다. 침대를 내려 객실로 나갔다. 언제 돌아오셨는지 아버지의 침실에서 불빛이 새여나왔다. 군이는 발볌발볌 아버지의 침실로 다가갔다. 열어놓은 출입문으로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아버지는 원고를 보고계셨다. 인기척에 아버지는 눈길을 돌렸다. <<어, 깨여났니? 오늘 많이 곤했나 보구나, 아까 아버지가 들어간것도 모르고 자더구나. 그래서 깨우지 않았다.>> <<네, 아직 안쉬셨어요?>> <<오늘까지 끝내야 할 원고가 밀려서 마저 볼려구…>> 아버지께서 손에 들었던 필을 원고지 우에 내려 놓으며 말씀했다. <<그럼 원고를 보시지 왜 늦게까지 밖에 계셨어요? >> 군이가 아버지를 힐끗 훔쳐보며 말했다. <<그럴려구 했는데, 한 작자와 토론할 문제가 있어서 나갔댔구나. 조금만 수정하면 참 좋은 시가 될것 같았지. 그래서 시를 둘러싸고 이것저것 얘기하는 사이 저도모르게 시간이 많이 흘렀거든.>> 아버지는 못내 기분좋아 보였다. 군이는 아버지가 얄미워지기 시작했다. <<위선자>>라는 낱말이 머리를 쳤다. (흥, 왜 승화 어머니와 함께 노닥거리며 시간을 보냈다구는 말 못하세요? 원고를 보는게 중요했어요? 아님 함께 있는게 좋았어요?) 군이는 아버지에게 <<쉬세요.>> 하고 짤막하게 한마디 하고는 몸을 돌렸다. <<그래, 푹 자거라. 잠을 제대로 자야 래일 힘이나지.>> 아버지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뒤에서 날아왔다. 하지만 군이는 아버지의 그 목소리마저 거짓으로 똘똘 쌓여진듯 싶었다. 군이는 침실로 돌아와 침대에 누웠다. 창문넘어로 자기를 훔쳐보는 별들이 싫어졌다. 군이는 일어나서 신경질적으로 카텐을 당겼다. 별들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군이는 다시 침대에 누웠다. 도무지 잠을 이룰수 없었다. 오만가지 생각들이 뇌리를 치며 군이를 엄습해왔다. (구경 어떻게 해야 하나? 그저 지켜 보고만있어야 하는가? 아니지, 난 아들이니까, 어머니에게 이 집을 지키겠다고 약속했는데… 그럼 아버지에게 직접 자초지종을 묻구 아버지에게서 다시는 승화어머니를 만나지 않겠다는 다짐이라도 받아낼가? 역시 아니야, 아버지가 정말 승화 어머니와 좋아 한다 해도 내 앞에서는 절대 승인하지 않을거야. 과연 아버지는 승화 어머니와 좋아 하는걸가?방금 꿈에서 본것과 같은 일이 정말 일어나면 나는 어떻게 하지? …) 군이는 긴긴 밤을 뜬눈으로 밝혔다. 날이 휘붐히 밝아오자 군이는 자리를 차고 일어나 책상앞에 앉았다. <<아버지, 어제 저녁에 어머니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토론할 일이 있다면서 오전 아홉시에 메신저에 오르랍니다. 전 친구들이랑 약속이 있어서 먼저 나갑니다.>> 군이는 글을 써놓은 종이를 쭉 찢어들고 아버지의 침실로 건너갔다. 아버지는 군이가 들어온것도 모르고 곤하게 주무시고 계셨다. 군이는 글을 적은 종이를 아버지가 보시던 원고지우에 올려놓았다. 그리고는 일어나자마자 아버지께서 발견할수 있을가를 가늠해보다가 베개옆에 놓여져 있는 아버지의 안경을 들어 종이 우에 가져갔다. 안경을 찾기위해서라도 아버지는 일어나자마자 종이곁으로 갈것같았다. 군이의 입가에는 묘한 웃음이 약간 스치고 지나갔다. 군이는 어머니의 아이디 <<민들레>>로 메신저에 올랐다. 언젠가 군이가 신청해서 어머니께 알려준 아이디였다. 아니나다를가 아버지는 정각 아홉시에 메신저에 올라왔다. <<믿음직한 기둥>>이라는 아이디를 보는 순간 군이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어쩔가? 먼저 말을 건넬가?) 군이는 생각을 굴리며 손을 자판우에 올려놓았다. (아니야, 먼저 말을 걸면 안돼. 아버지를 보구 먼저 어머니의 아이디를 찾게해야 돼, 그리구 나는 좀 성난체 한 어투로 말을 받아야 해. 글구 지금 누구와 좋아하고있다는 소문을 들었다는 걸 명백하게 말하구, 아버지가 해석을 하게 해야 해!) 군이가 이렇게 속구구를 하고있을 때 아버지가 말을 건네왔다. <<잘 있었소? 정말 올라왔구만>. <<네, 잘 보냈어요?>> 자판을 두드리는 군이의 손이 저도몰래 후들후둘 떨렸다. <<군이가 말할길래 혹시나 했지. 오늘은 무슨 시간이 있어서 메신저에 까지 올랐소?>> <<일요일이 아닌가요? 그래서 하루 쉬기로 했어요. 당신하구 꼭 할말두 있구요.>> <<허허허, 긴장되네, 무슨 말인데?>> <<시를 쓰는 녀자하고 친하다는 소문이 여기까지 왔던데, 재미 좋겠습니다.>> 군이는 단숨에 이 글을 써서 띄우고는 <<아차!>>하고 후회했다. 너무도 중요한것을 너무 빨리 물어본게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던것이다. 아버지가 방금 보낸 글을 보고 흥분해서 대화를 거절할가와 근심스러웠다. <<무슨 소린지 모르겠네, 시를 쓰는 녀자야 어디 한두 사람이요?>> 생각밖으로 아버지가 느긋하게 반격을 해왔다. 군이는 그만 말문이 막혀버렸다. (뭐라고 해야 하는거야? 승화 어머니라고 딱 짚어? 말아! 아니야, 짚으면 안되지. 승화 어머니라고 딱 짚으면 아버지께서 누가 그러던가고 물을 테지? 그럼 완전히 할말이 없어지는 거야.) <<아니예요. 그럴것 같아서요. 조심하라는 거예요.>> <<사람은 참, 유치하긴. 아직도 남편을 그렇게도 못믿소? 그게 세상을 사는 법이 아닌데… 믿음이 없으면 이 세상을 살아가기가 점점 힘들어 질테구. 허허허…>> 아버지께서는 배포유유하게 <<허허허허…>>하고 웃음까지 띄워보냈다. 느긋한 아버지의 글을 보면서 군이는 정말 어제 저녁, 승화의 어머니와 함께 있던 아버지를 상상할수 없었다. 정말이지 아버지가 진짜 승화의 어머니와 좋아한다면 이렇게 스스럼없이 <<어머니>>와 대화를 하지못할것 같았다. (그래, 우리가 잘 못 알고있는 걸거야. 승화도 나도 말이야. 아버지는 편집이시니까, 작자들과 만나서 이야기를 할수도 있는거지뭐… 그럼 뭐야, 승화의 어머니가 우리 아버지를 꼬시는게 아냐? 그날도 크담한 입을 헤 벌리구 킥킥 거리던 것이…) 생각이 별랗게 흘러갔다. 군이는 더는 어떻게 아버지와 대화를 해야할지 갈피를 잡을수가 없었다. (그래, 아버지는 나쁜 일을 안하셔. 내가 잘 못 알고있는 거야. 혹시라도 일이 생기면 다 승화의 어머니가 아버지를 꼬신거야.) 군이는 급히 자판을 두드렸다. <<됐어요. 시간이 없어요. 몸 조심하세요.>> 군이는 일방적으로 메신저에서 내려버렸다. 군이는 컴퓨터앞에 앉은채로 두눈을 꼭 감았다. 자신이 잠간 어딘가 높은 곳에서 조용히 땅으로 날아내리는듯한 환각에 잠겼다. 높은 곳이 어디고 땅우의 그 곳이 어딘지 감지할수 없었다. 갑자기 엄마의 얼굴이 커다랗게 군이의 머리를 채웠다. 군이는 번쩍 눈을 떴다. 엉뚱한 구상이 꿈틀거리며 군이를 불렀다. (그래, 아버지와 직접 맞서 보는거야. 난 아버지의 눈을 보면 거짓말인지 정말인지를 알수가 있어. 아버지의 눈은 거짓말을 못하시거든.) 군이는 벌떡 일어섰다. 카운터에 가서 돈을 물고 PC방을 나섰다. 군이는 곧추 집주변에 있는 새마을진료소를 향했다. 감기를 앓을 때 몇번 와서 링겔을 맞은 일이 있어서 의사하고도 초면이 아니였다. 진료소 문앞에까지 도착한 군이는 들숨을 몰아쉬고는 아래배를 움켜잡았다. 제법 복통으로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의사선생님 앞으로 다가갔다. 의사선생님이 군이를 발견하고 안경을 올리추며 입을 열었다. <<아니, 작가량반네 도련님이 아닌가? 어디가 아파서 왔니?>> 군이는 힘껏 목소리를 누르며 말했다. <<배…배가 아파서 죽을것 같아요. 으으으…>> <<보자, 저기, 누워라.>> 의사선생님이 침대를 가리키며 말했다. 군이는 신을 벗고 침대에 겨우 기여올라가는 시늉을 했다. 의사선생님이 명치끝을 누르며 물었다. <<여기냐?>> <<아니요.>> 군이가 머리를 저었다. 미리 자기의 병을 설사나 리질정도로 진단하고 왔던것이다. <<그럼 여기냐?>> 의사선생님이 아래배를 눌렀다. <<예, 아이고… 거깁니다. 거기 맞습니다. 아이고…>> 군이가 죽어가는듯 신음소리를 냈다. <<아침에 화장실에 몇번 갔댔니?>> <<두번…아니, 세번이요.>> <<저런, 설사로구나, 리질이 도는가?>> 의사선생님이 머리를 저으며 이상하다는듯한 눈길로 군이를 내려다 보았다. <<어제 저녁엔 뭘 먹었니?>> <<빵두 먹구요, 아이스크림도 먹구요, 소세지도 먹구요, 사과도 먹구요, 바나나도 먹었어요.>> 군이가 두눈을 지긋이 내리뜨고 주어섬겼다. 그러자 의사선생님이 허허허 웃으며 말했다. <<이 자식아. 무슨 음식을 그렇게 주어 먹었니? 제대로 씻지도 않고 먹었겠구나. 먼저 링게르나 한병 맞구, 갈 때 약을 지어줄게.>> <<링게르요?>> 군이는 일이 제대로 되여간다고 흐믓하게 생각했다. 의사선생님이 처방을 쓰는 사이 군이는 호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아버지의 번호를 눌렀다. 아버지의 핸드폰과 인차 련결되였다. <<군이야, 웬 일이니? 아침부터 어디 가서 헤매는거야?>> 아버지의 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군이가 앓음소리를 내며 말했다. <<아버지, 빨리 오세요. 배가 아파요. 새마을진료소에 있어요. 아이구,,,>> <<어떻게 아픈데?>> 아버지께서 다급히 물었다. <<모르겠어요. 의사가 그러시는데 설사같대요. 아이구…>> <<그래, 알았다. 곧 갈게.>> 십분도 걸리지 않아 아버지께서 진료소에 도착했다. 아버지께서는 들어오자 바람으로 의사선생님과 무엇인가를 급히 이야기하셨다. <<급성리질인것 같다는구나, 링겔을 맞구 약을 좀 먹으면 인츰 나을거래.>> <<네.>> <<자, 도련님. 저기 관찰실에 갑시다.>> 얼굴이 넓즈그레한 호사가 롱담기 섞인 목소리로 군이에게 말했다. 군이는 이마를 잔뜩 찌프리고 마지못해 관찰실로 발을 옮겼다. 링게르가 고르롭게 떨어지는것을 확인하고서야 호사가 관찰실에서 나갔다. 아버지는 근심어린 눈길로 침대 옆에 앉아서 군이를 바라보았다. <<급성리질이라니? 뭘 잘못먹어서 그런가?>> <<……>> <<언제부터 아팠는데?>> <<……>> 군이는 두눈을 꼭 감고 못들은듯 누워있었다. 어떻게 서두를 뗄가고 궁리를 해보았다. 군이가 대답이 없자 아버지는 군이가 너무 힘들어서 그러는가보다고 생각하셨는지 손으로 군이의 이마를 짚어보고는 입을 다물어버렸다. 잠간 침묵이 흘렀다. <<아버지, 우리 반에 련애를 하는 애들이 있어요. 웃기죠?>> <<엉?>> 너무나도 엉뚱한 군이의 말에 아버지는 잠깐 멍해있다가 인차 얼굴에 웃음을 띄우고 말을 받았다. <<자식들, 련애가 뭔데?>> <<남자하구 녀자가 서로 좋아하는게 련애가 아닌가요?>> 군이가 대답하며 아버지의 표정을 힐긋 살폈다. <<서로 좋아하는게 련애라… 서로 좋아하면 좋은게 아니니?>> <<안 웃겨요?>> <<글쎄다. 련애가 웃기는게 아니라 아직은 련애를 할 때가 아니면서, 그리구 련애라는게 뭔지를 잘 모르면서 납뜨는게 좀 웃기기는 하지, 허허허… 군이도 련애하니?>> 아버지께서 약물이 흐르는 비닐관을 손끝으로 톡톡 치며 물었다. <<아니요. 내가 뭘요… 아버지, 참 웃기죠? 우리반 승화 어머니는 시를 쓴다면서 자주 집에 늦게 들어온대요.>> <<엉?>> 아버지께서 또 군이의 엉뚱함에 깜짝 놀라는듯한 표정이였다. <<시를 쓰는데 왜 집에 늦게 들어온대? 시라는건 더구나 집에서 열심히 써야하는건데.>> 아버지께서 모르겠다는듯한 표정을 지었다. <<편집을 만난다구 늘 밖에서 돈대요.>> <<허허허, 그 편집은 늘 밖에서 작자를 앉혀놓고 글을 보나봐. 나쁜 편집인데.>> 말을 하는 아버지의 눈가에서 깜짝 놀라움이 스쳤다. <<그래서 승화는 자기 어머니와 함께 다니는 그 편집이란 사람을 잡겠다구 미행을 했대요.>> <<그래서?>> 아버지가 다잡아 물었다. <<그래서 잡았대요.>> <<잡아서 어쨌대?>> <<잡아서…>> 군이는 차마 승화가 아버지와 승화의 어머니가 함께 있는 현장을 잡고 자기를 부르더라는 말을 할수가 없었다. 군이는 괜히 이마를 한번 쓸어보고는 말머리를 돌렸다. <<아버지, 승화의 어머니, 참 나쁜 사람이죠?>> <<승화가 그래? 어머니가 나쁘다구?>> <<승화는 자기의 어머니와 함께 있는 그 편집을 나쁘대요. 그 편집이 자기의 어머니를 꼬신대요.>> <<어떻게?>> <<……>> 군이는 또 말문이 막혔다. 아버지께서 온화한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군이야, 세상일이란 나쁜 눈으로 보면 다 나빠 보이고 좋은 눈으로 보면 다 좋아 보이게 돼있단다. 어떤 마음에서 문제를 보는가가 중요하거든. 사람이 살면서 사람을 좋아 하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겠니?>> 아버지는 군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아래 말을 이었다. <<문제는 어떤 마음으로 그 사람을 좋아 하는가 하는 것이다. 건전한 마음이 아니구, 저속한 욕심때문에 한 사람을 좋아 한다면 그 사람은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게될것이다. 아버지는 늘 이 점만은 명기하고있거든. 이게 바로 아버지가 세상을 사는 법이구. 승화라는 애도 아마 자기 엄마를 다 리해하지 못해서 그럴거다. 이 세상에는 자기의 가정을 소중히 여기지 않고, 자기의 가족을 커하지 않는 사람이 없단다. 가정마저 소중히 여기지 않는 사람이라면 아마 이 사회가 용서하지 않을거다. 참, 내가 오늘 우리 아픈 군이에게 너무 힘든 말을 하는게 아닌지 모르겠네.>> 아버지는 말을 마치고 빨갛게 상기된 군이의 볼을 쓸어주었다. 그때 아버지는 분명 군이의 두눈에 맑디맑은 눈물이 고였다가 눈귀를 타고 또르르르 굴러 내리는것을 보았다. 그랬다. 군이는 분명 울고있었다.
9    <<6.1>>절을 기다리는 아이 댓글:  조회:1962  추천:0  2010-03-10
<<6.1>>절을 기다리는 아이 <<군이야, 점심을 먹자.>> 아버지의 부름소리가 침실에까지 들렸다. 군이는 책을 보다말고 일어나서 <<네~>>하고 대답을 하며 주방으로 행했다. 밥상앞에 앉아서야 군이는 아버지께서 그새 군이를 위해 입살죽을 끓여놓은것을 발견했다. 군이는 자기의 꾀병으로하여 아버지가 근심하는것 같아 저으기 미안스럽게 생각되였다. <<죽은 왜 끓였어요. 밥도 괜찮은데.>> <<위가 놀랐을 텐데 오늘은 소화가 잘 되는 음식을 먹어야 지. 맛이 없더라도 간장을 발라서 천천히 꽁꽁 씹어먹어라. 저녁까지 약을 먹으면 괜찮아질거다.>> 아버지께서는 말씀을 하시며 작은 종지에 간장을 약간 담아서 군이의 앞에 놓아주었다. <<네, 먹을게요.>> 코끝이 찡 저려왔다. 군이는 머리를 수긋하고 아버지의 눈을 피해 죽을 한술 푹 떠서 입에 넣었다. 아버지의 눈길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천천히 먹어라. 아직은 너의 위가 그렇게 급하게 들어가는 음식을 당하기 버거워 할거다.>> <<네.>> 군이는 역시 짤막하게 한마디 하고는 부지런히 입에 죽을 퍼넣었다. 잠간 새에 사발이 굽이났다. <<다 먹었니? 배가 안차더라도 좀 지났다가 좀 더먹어라. 한번에 많이 먹으면 위에 부담이 가거든.>> <<네.>> 군이는 숟가락을 놓고 인차 자기의 침실로 들어갔다. 책상을 마주 앉았지만 근심에 쌓인 아버지의 얼굴이 눈앞에서 아른거려 무엇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군이는 침대에 올라가 천정을 바라고 누웠다. 이때 군이의 핸드폰이 울렸다. <<도련님, 전화받으세요~>> 오늘따라 벨소리가 새삼스럽게 귀를 자극했다. 군이는 벌떡 일어나 핸드폰을 찾아들었다. <<군이니? 나야, 승화.>> 푹 깔린 승화의 목소리가 핸드폰 저쪽에서 울려왔다. 군이는 승화라는 말에 반상적으로 기분이 이상해져서 곱지않게 내쏘았다. <<웬 일인데? >> <<군이야,>> <<왜? 아직도 우리 할 말이 남았니?>> <<아니야, 나 지금 역전에 있거든.>> <<역전에? 근데는 왜?>> 군이는 역시 곱지않은 목소리로 물었다. <<여기를 떠나기전에 너하구 할 말이 있는것 같아서 그런다. 우리 한번 만날가?>> 말을 하는 승화의 목소리는 어딘가 모진 슬픔에 꽉 찬듯 싶었다. 군이는 잠간 승화의 목소리에서 이상한 분위기를 느꼈다. 군이는 핸드폰을 내렸다가 다시 귀가에 가져가며 다잡아 물었다. <<너 방금 뭐라구? 여기를 떠난다니? 그게 무슨 소리냐?>> <<그렇게 됐어. 이 고장을 떠난다고 생각하니 생각되는것도 많아지구… 그래도 마지막으로 네가 생각나드라. 그래서 한번 만나고싶어서…>> 마지막 구절을 말할 때는 분명 목소리에 울음이 섞여 있었다. 군이는 지금 무슨 일이 발생하고있구나 하는것을 직감했다. <<승화야,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는데, 너 지금 어디라 했지? 역전이라구? 기차역전 말이지?>> <<그래. 기차역전이야.>> <<거기서 딱 기다려라. 내가 금방 갈게. 약속이다. 남자대 남자루.>> 군이는 말을 마치자 바람으로 핸드폰을 호주머니에 넣고 침실을 나섰다. 황급하게 서두는 군이를 보고 아버지께서 물었다. <<오후에는 좀 쉬지, 어디로 나가니?>> <<아버지, 급한 일이 있거든요. 돌아와서 말씀 드릴게요.>> <<그래, 너무 힘들게는 놀지 말어라. 아직은 몸도 안 좋다면서.>> <<네, 아버지~>> 군이는 층계를 내리자 바람으로 택시를 잡아탔다. <<기차역전까지요.>> <<10원이다.>> 운전수가 머리도 돌리지 않고 말했다. <<네, 빨리 가 주세요.>> 군이가 운전수를 재촉했다. 승화는 역전매표구 앞에서 군이를 기다리고있었다. 택시에서 내리는 군이를 발견한 승화가 군이를 행해 뛰여왔다. 그 바람에 등에 멘 려행가방이 털썩거렸다. <<어떻게 된 일이니?>> 군이가 다잡아물었다. 승화는 군이의 손을 잡고 잠간 머뭇거리더니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군이야. 나 가출했다.>> <<뭐? 네가 가출을 해?>> <<응, 엄마가 없는 먼곳으로 갈거야. 가서 혼자 살거야.>> 승화의 진지한 표정을 보니 거짓말은 아닌것 같았다.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군이의 머리를 스쳐지났다. <<승화야, 아직은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는데, 우리 먼저 어디 가서 앉아 보자. 응?>> 군이는 말을 마치고 안성맞춤한 곳을 살피다가 역전광장 북쪽 나무숲속으로 승화를 잡아 끌었다. 그들은 숲속에 설치된 나무걸상을 찾아 앉았다. <<군이야, 난 아무래도 엄마랑 못살겠다. 우리 엄만 사람도 아니야.>> 승화는 걸상에 앉자마자 격하게 어머니를 이야기 했다. 군이는 짚이는 데가 있어서 물었다. <<어제 일로 어머니와 다퉜니?>> <<그래, 대판 다퉜어. 엄만 날 나가래. 사람질을 못할거면 일찌기 나가서 죽으래…>> 승화는 잠간 입술을 필룩거리다가 아래 말을 이었다. 아침에 승화는 어머니가 두드려 깨워서야 겨우 자리에서 일어났다. 눈을 부비며 어머니의 얼굴을 살펴보니 어제밤의 화장도 지우지 않은채로였다. 입술에 바른 빨간 립스틱이 류달리도 승화의 눈길을 자극했다. <<빨간립스틱이 뭐야. 빨간게. 네가 어째 촌스러운지 인제 알겠다.>>던 군이의 말이 귀전을 스쳐지나갔다. 승화는 괜히 기분이 잡쳐졌다. <<엄마는 어제 밤에 또 어디로 갔댔어요?>> <<어제 밤에? 편집선생님을 만나러 갔댔지. 엄마의 시가 또 잡지에 발표될것 같아. 편집선생님이 수개의견까지 차근차근 이야기해 주었거든.>> 어머니는 승화의 기분도 살피지 않고 제 기분에 들떠서 손을 흔들며 이야기 했다. 승화는 그러는 어머니가 더 얄미워 보였다. <<시, 시, 시, 그게 그렇게 좋아요? 아들보다 더 좋아요>> 그제야 심상치않은 승화의 기분을 발견한 어머니는 웬 일이냐는듯 목소리를 높였다. <<애가 아침부터 웬 일이니? 간 밤에 꿈이라도 잘 못 꿨니?>> <<네, 엄마가 입이 크담해가지구 편집선생의 손을 탁탁 치며 낄낄대는 꿈을 꾸었어요? 좋은가요?>> <<너 못하는 소리가 없구나. 왜 이래? 아침부터.>> <<그렇게 다방에서 남자들을 만나 낄낄 거려야 시를 발표하는가요? 다방에는 왜 가요. 어째서 그렇게 자주다녀요.>> <<너, 그게 무슨 말이니? 남자들을 만나 낄낄 거리다니? 그게 엄마에게 하는말이야?>> 어머니는 승화에게 삿대질을 하며 바락바락 소리질렀다. <<네, 사실 대로 말하는데요. 어쩔가요? 한국에 있는 아버지께 다 말 할가요?>> <<너 정말 점점 험한 소리를 하는구나. 그게 대체 무슨 소리냐? 그게.>> <<나도 다 컸다구요. 인젠 다 알아요. 어제밤 다방에 가서 어머가 하는짓을 다 봤다구요. >> <<야, 이 덜된 놈아, 뼈빠지게 자래워 놓으니 인젠 엄마를 미행까지 해? 엄마가 어쨌는데? 뭐 벌받을 나쁜짓이라도 했니?>> <<아버지는 한국에서 뼈빠지게 일하는데, 어머니는 맨날 화장이나 하구, 입술에다는 왜 그렇게 뻘건칠을 하구 다녀요. 촌스럽지도 않아요?>> 승화는 쏟아지는 물처럼 속에 두었던 말들을 마구 퍼부었다. 어머니는 그러는 승화를 바라보며 외계인을 보는것 만침이나 큰 충격을 느끼고있었다. 말을 마친 승화가 울분을 못참겠다는듯 씩씩 들숨을 몰아쉬였다. 어머니는 갑자기 얼굴을 싸쥐더니 울음을 터뜨렸다. 억울함을 당한 열두살 소녀처럼 엉엉 소리내며 어깨를 들먹거렸다.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세살 때 급성페렴이 와서 네가 입에 거품을 물고 다 죽어갈 때, 아버지는 집에 없구, 나 혼자서 널 업구 병원으로 가면서 얼마나 울었는데…돈이 없어서 밖에서 큰비가 오면 집안에는 작은비가 내리는 그런 세집에서 살면서도 너만은 남못지않게 입히고, 먹이고… 인제 좀 살만해서 소녀 시절에 못다한 문학공부를 하겠다구, 좀 나다니니 새끼라는 건 없는 소리만해대구, 엉엉엉~>> 어미니가 갑자기 히스테리적으로 소리쳤다. <<나가라, 나가서 썩어져라. 이 사람질을 못할 놈아, 이 배은망덕한 놈아.>> 어머니는 승화의 어깨를 마구 잡아 뜯으며 단말마적으로 소리질렀다. 승화는 어머니의 손을 물리치며 벌떡 일어섰다. <<나갈게요 썩어질게요, 그래야 엄마가 속시원하겠죠.>> <<그래, 나갔다가 영원히 들어오지 말어라. 내 눈앞에서 썩 사라져버려라!>> 어머니는 완전히 리지를 잃고 세계의 말일이나 맞이한듯 바락바락 마지막 목소리를 톺고있었다. 승화는 그러는 어머니를 외면한채 부랴부랴 옷을 주어입었다. 그후 책상서랍을 열어 돈지갑을 꺼내들고 밖으로 나왔다. 어머니는 그때까지도 어깨를 들먹이며 승화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승화는 무작정 택시를 잡아타고 역전으로 나왔다. 떠나야 한다는 강박의식이 승화로하여금 저도몰래 역전으로 발길을 돌리게 한 모양이다. 택시에 실려와 역전광장에 버려지자 승화는 세상없이 처량해진 자신을 발견했다. 승화는 사람들이 없는 곳을 찾아헤매다가 화물처와 매표구사이의 ㄱ자형으로 된 구석에 가 쪼그리고 앉았다. 눈물이 앞을 가리웠다. 북받치는 설음을 주체할수 없어 그냥 땅에 퍼더버리고 앉아 어깨를 들먹이며 엉엉엉 소리내여 울었다. 한참을 그렇게 울고나자 가슴이 후련해지는듯싶었다. 승화는 주먹으로 눈물을 훔치며 머리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화물처와 매표구 건물에 가리운 하늘은 맛 없는 삼명지쪼각처럼 세모꼴이 되여보였다. 회색 구름 한쪼각이 세모꼴 하늘을 쓸쓸하게 흘러지나고있었다. (어디로 갈가?) 하는 생각이 승화의 머리를 쳤다. 머리속이 텅빈듯 아무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도련님, 전화받으세요~>> 핸드폰이 울렸다. 접때 학급에서 남학생들이 돌려가며 다운받은 벨소리였다. 승화는 그 핸드폰소리가 얼마나 반가운지 몰랐다. 승화는 구명은인이나 만난듯 제꺽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발신인은 어머니였다. 승화는 움찔 핸드폰을 받으려고 하다가 동작을 멈추었다. (아니야, 그저 이렇게 받을수 없어. 어머니와 담판을 하고 받아도 받아야 돼.) 승화는 핸드폰을 다시 호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도련님, 전화받으세요~>> 역시 발신인은 어머니였다. 승화는 신경질적으로 핸드폰전원을 꺼버렸다. 승화는 ㄱ자형 구석에서 나와 사람들이 많이 모인 대합실로 들어갔다. 승화는 북적거리는 사람들속을 헤집고 다니며 생각을 굴렸다. (그래, 이 사람들처럼 어디론가 가는거야. 엄마를 혼빵 내주는거야. 그래야 엄마는 얌전히 집에 앉아있을거야. 그래, 이 방법밖에 없어. 어디로 가는거야.) 승화의 머리속에는 무작정 어디로 떠나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문뜩 호주머니에 넣은 돈지갑이 생각났다. 승화는 오른손을 호주머니에 넣어 돈지갑을 꼭 눌러보았다. 돈지갑에는 설에 받았던 세배돈이며 평소에 모아두었던 소비돈이며 해서 7백원가량이 들어있었다. (이 돈이면 어디로 갈수있을가? 가서 얼마나 살수있을가?) 정작 이런 생각이 들자 승화는 앞일이 그 처럼 막막할수가 없었다. 승화는 그렇게 잡생각을 굴리며 온 오전을 역전에서 헤매고 다녔다. 아침도 먹지않고 근심에 쌓여 정처없이 걸음을 옮기노라니 여간만 피곤한것이 아니였다. 승화는 2원을 주고 생수 한병을 샀다. 그리고는 매표구 앞에 와서 층계에 걸터 앉았다. 생수병덮개를 열고 벌컥벌컥 생수를 마셔댔다. 너무 급하게 들이마시는 바람에 생수가 흘러서 목을 타고 가슴을 적시며 내려갔다. 깜빡 정신이 맑아지는듯싶었다. 군이와 결투를 하던 연집강변이 눈앞을 스쳤다. (그래, 군이가 있었지? 그 애도 아빠와 다투고 가출을 생각하고있을지 몰라. 그래, 이거야. 군이와 토론해보는거야. 군이와 함께 떠나는거야. 군이도 분명 아버지를 미워하고 있을거야.) 승화는 핸드폰을 꺼내 전원을 눌렀다… <<군이야, 우리 떠나자, 어른들이 없는 곳으로 가서 살자.>> 승화가 군이를 바라보며 애원에 차서 말했다. 군이는 그러는 승화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얼굴이 불깃불깃 상기된 승화가 못내 낯설어보였다. 뭐라고 승화에게 말했으면 좋을지 할말을 찾지 못했다. <<너두 아버지를 미워하잖아? 우리 떠나자.>> 승화가 다시 군이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군이는 천천히 머리를 흔들었다. <<승화야, 너 정말 어머니가 그렇게 밉니?>> <<미워, 정말 미워.>> 승화가 에누리가 있느냐는듯 딱 짚어 말했다. <<너의 어머니도 널 그렇게 미워할가?>> 군이가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미워할거다, 나가랬어. 나가서 죽으랬어.>> 승화는 정말 분노하고있었다. <<승화야, 난 아버지가 밉지않다. 울아버진 좋은 사람이야, 우리 아버지에겐 아버지만의 살아가는 법이 따로 있거든.>> <<살아가는 법?>> 승화가 궁금하다는듯 물었다. <<그렇지, 사람이 사람을 좋아 하는게 나쁜 일이 아니래. 다만 저속적인 욕심을 가지고 한사람을 의식적으로 좋아 하는체 하는게 나쁠뿐이래. 난 울아버지를 믿어.>> <<어떻게 믿는데? 어제 저녁에 보았으면서두.>> <<어제 저녁에 본것? 그것을 너의 어머니하구 우리 아버지, 아니, 시인과 편집이 조용한 다방을 찾아서 원고토론을 했다고 생각하자. 우리 아버진 좋은 원고를 건졌다며 영~좋아 하셨어.>> 군이는 말하면서 승화를 훔쳐보았다. 승화는 진지하게 군이의 말을 듣고있었다. <<우리의 부모들이 잖니? 왜 미워해야 하는데. 우리에게 우리만의 세계가 있는것처럼 부모들도 부모들의 세계가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그들을 간섭하지 말고 지켜보는게 총명한 처사일것 같아.>> <<그러다가 일이 잘못되면 어쩌니? 한국에 있는 아버지께 얼마나 미안하니?>> <<가정을 버리고 자기의 욕심만 차리는 사람이라면 그럴수도있겠지. 하지만 그런 어른들이 많지 않을거야. 난 그렇게 생각해. 선생님도 말했잖니? 세상엔 좋은 사람이 더 많다구.>> 군이는 말을 마치고 잠간 얼굴을 쳐들었다. 나무가지들 사이로 따스한 해살이 빠끔히 내려와 군이의 얼굴을 간지럽혔다. <<승화야, 저 봐, 해살이 좋지?>> 승화도 얼굴을 쳐들었다. 해살에 눈이 부시는지 잠간 눈살을 쪼프렸다가 인차 펴면서 말했다. <<벌써 여름이 되였나봐. 그렇지, 이러고보니 정말 <6,1>절이 오라지 않구나.>> 승화의 목소리가 맑아졌다. <<소학교에서의 마지막 <6,1>절, 와~ 어떻게 쇠면 좋을가? 군이야, 우리반 <6.1>절맞이주제반회는 준비가 어떻게 되여 가니?.>> 승화의 얼굴에 홍조가 피여났다. 정말 <<6.1>>절을 두고 문뜩 무엇인가 생각난 모양이였다. <<군이야, 난 이번 <6.1>절에는 아버지랑 엄마랑 함께 공원에도 가구 민속촌에도 갔으면 좋겠다. 그래, 꼭 그럴거야. 난 인차 아버지께 전화를 할거야. 집에 돌아와서 나하구 함께 <6.1>절을 쇠자구. 아버지 보구 꼭 돌아오시라고 떼질을 쓸거야. 중학교에 가면 언제 다시 <6.1>절을 쇠겠니?>> <<그래, 중학교에 가면 <6.1>절을 쇨수 없지. 그러니 이번 <6.1>절은 꼭 뜻깊게 쇠야할텐데.>> 군이도 얼굴에 홍조를 띄우며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는 군이를 바라보며 승화가 속삭였다. <<군이야, 난 정말 <6.1>절이 빨리 왔으며 좋겠다.>> 그 시각 승화의 얼굴에서는 아지랑이처럼 연한 미소가 피여 남실거리고있었다.`
8    예고 없이 닥친 불행 댓글:  조회:1981  추천:0  2010-03-10
예고 없이 닥친 불행 요즘 동학들은 모여 앉으면 <<6.1>>절주제반회를 둘러싸고 의론했다. 지난번 군이가 동학들에게 이번 주제반회의 내용을 <<하고 싶은 말>>로 정했다고 공포한후 저마다 주제반회에서 어떤 이야기를 하겠는가고 고민하는 모양이였다. 소학교에서의 6년간, 동학들은 정말 많은 말들을 가슴속에 고이고이 간직하고있었다. 이제 곧 6년간의 소학교 생활을 끝내면서 이것만은 정말 소학교 교정에 털어놓고 가야겠다고 생각되는 하고싶은 말 한가지, 과연 나에게는 어떤것이 될가? 오늘도 예비종소리가 울리자 동학들은 교실로 들어와 또 이문제를 둘러싸고 소조토론을 시작했다. 이때 갑자기 교실문이 벌컥 열리며 누군가 헐레벌떡 뛰여 들어왔다. <<얘들아, 얘들아, 들었니? 특종이다, 특종!>> 동학들의 눈길이 일제히 소리나는 쪽으로 쏠렸다. 목소리임자는 승화였다. 승화는 긴장으로 해서 얼굴마저 하얗게 질려있었다. <<웬 일이니?>> <<특종이라니?>> <<지구의 말일이라도 닥쳤다니? 동학들이 너한마디 나한마디 승화에게 다그쳐 물었다. <<자…자…자살이래.>> 승화는 너무도 긴장하여 말까지 벅벅 더듬고있었다 <<뭐 자살이라구?!>> 승화의 말은 폭탄처럼 동학들을 놀래웠다. <<방금 화장실에 갔다가 선생님들이 하는 말을 들었어. 자살했대.>> 승화는 역시 두서없이 자살이라는 말만 곱씹었다. <<천천히 제대로 말해라, 누가 자살 했다는 거니?>> <<은경이, 그 애가 자살을 하자구 약을 먹었대.>> <<뭐? 은경이가?>> 동학들은 승화의 말에 뒤통수라도 한대 얻어 맞은듯 깜짝 놀라며 서로서로 눈길을 주고 받았다. 은경이는 오전에 결석을 했었다. 선생님께서는 은경이가 아파서 청가를 맡았다고 했다. 동학들은 모두 은경이가 보통 감기정도나 앓는 모양이라고 생각하고있었다. 헌데 자살이라니? 동학들에게 충격이 아닐수 없었다. <<너 잘못들은거지? 은경이가 왜 자살을 해?>> 미림이가 목소리를 높였다. <<아니야, 내가 이 귀로 똑똑히 들었어. 분명 자살하려고 약을 먹었다고 했어.>> 승화가 확실하다는듯 자기의 귀를 툭툭치며 말했다. <<왜, 왜 자살을 했다니? 은경이가 어디 탐탐한데가 있어서 자살을 하겠니?>> 누군가 또 바투 들이댔다. 승화는 대답거리를 찾지못하고 꺽꺽거리며 얼버무렸다. <<건 나두 몰라. 방금 화장실에서 선생님들이 말하는걸 정말 내 귀로 직접 들었다니까…>> <<확실하지?>> 군이가 승화에게 짤막하게 물었다.. <<정말이라니까. 똑똑히 들었다니까.>> 승화가 목소리를 높였다 군이는 동학들을 뒤로 하고 조용히 교실을 나섰다. 담임선생님께서도 구체적인 원인은 말씀하지 않았지만 은경이가 약을 먹은것만은 사실이라고 했다. 시립병원에 입원했는데 이미 위를 씻어내서 생명위험은 없다고 했다. 교실로 들어오는 군이의 발걸음은 몹시도 무거웠다. (무엇때문일가? 구경 은경이가 무엇때문에 자살을 하려고 했을가?) 꿈을 꾸고 있는것만 같았다. 정말이지 언제나 동학들 앞에서 이 세상에 부러운것이 없는듯 도고해 하던 은경이였다. 너무 잘난체, 너무 아는체, 너무 있는체 한다고 많은 동학들이 뒤에서는 은경이를 썩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은경이를 서뿔리 대하지도 못했다. 언제나 대범하게 동학들을 위해 돈을 펑펑 쓰는 은경이여서 학급에서 말깨나 하는 애들속에서는 영향력이 꽤나 컸다. 이러한 은경의 눈에 난다는것은 동학들속에서 왕따를 당하겠다고 나서는거나 마찬가지였던것이다. 적지않은 애들이 앞에서 은경이에게 아부를 하는 눈치였다. 이러는 동학들을 보는것이 은경의 기쁨이고 자부심인것 같았다. 이같은 기쁨, 이 같은 자부심을 안고 사는 은경이가 자살을 시도 했단다. 과연 원인은 무엇일가? 마지막 종소리가 울렸는데도 동학들은 자리를 뜰려고 하지 않았다. <<청소당번들이 남아서 교실청소를 하구 다른 애들은 빨리 돌아가려무나.>> 군이가 동학들을 재촉하고는 먼저 가방을 메고 교실을 나왔다. 몇몇 동학들이 인차 군이를 따라나섰다. 그들은 또 은경의 일을 거론하기 시작했다. <<은경에게 무슨 큰 일이 생긴거야. 틀림없어.>> <<얼마나 큰 일이면 자살을 결심하겠니? 난 리해를 못하겠어.>> <<어떻게 저절로 제 목숨을 끊을수있니? 으~ 무서워!>> <<그 애가 원래 허영심이 있잖아.>> <<그러게 사람은 흉금이 넓어야 한다니까. 어떤 세상이라구.>> 동학들은 너한마디 나한마디 생각나는대로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왜들 이래? 옛말거리라도 생겼니?>> 누군가 갑자기 꽥 소리질렀다. 동학들은 놀라서 소리나는 쪽으로 머리를 돌렸다. 규호가 무서운 눈길로 동학들을 노려보고있었다. 동학들은 입을 다물고 서로 눈치만 살폈다. 규호가 격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모두들 이러고싶니? 은경이를 침대에 눕혀놓고 말장난을 하고싶니?>> 규호의 격한 행동에 동학들은 누구도 뭐라고 반박을 못했다. 동학들은 조용히 걸음을 옮겼다. <<가자, 우리 병원에 가서 은경이를 보자.>> 미림이가 누구에게라 없이 제기했다. <<그래, 가보자. 은경이가 지금 정말 괴로와 하고 있을거야.>> 누군가 호응해나섰다. 동학들의 눈길은 군이에게로 쏠렸다. 군이도 사실은 가는 길에 병원에 들려 은경이를 보려던 참이였다. 군이는 동학들을 향해 천천히 머리를 끄덕였다. 은경이는 링겔을 맞고있었다. 두눈을 퀭하니 뜨고 동학들을 바라보는 은경이의 모습은 마치도 모든 사색이 굳어져버린듯 했다. <<은경아, 우리가 왔다.>> <<널보러 왔다. 힘내라.>> <<빨리 회복돼야 <6.1>절맞이주제반회에 참석할수 있지? 힘내라! 은경아.>> 동학들이 다투어 은경이를 위로했다. 하지만 은경이는 묵묵히 동학들을 바라만 볼뿐 여전히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그러는 은경이를 바라보며 녀자애들이 눈시울을 붉히기 시작했다. 들어올 때 군이네를 보고 약간 머리를 끄덕여 인사를 보낸후 한참이나 잠자코 계시던 은경이 어머니가 끝내 참지못하고 손으로 얼굴을 가리우며 흐느끼기 시작했다. 동학들의 눈길은 은경이 어머니에게로 쏠렸다. 은경이 어머니는 동학들의 눈길을 피해 밖으로 나갔다. 군이가 그러는 은경이 어머니를 따라 복도로 나갔다. 은경이 어머니는 복도 유리창문을 마주서서 세차게 어깨를 들먹이고있었다. <<은경이 어머니, 은경이가 인차 좋아질겁니다. 너무 근심하지 마십시오.>> 군이가 은경이 어머니 옆에 다가서며 말했다. 은경이 어머니는 머리를 돌려 군이를 바라보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은경이를 보러와서 고맙다. 네가 군이냐?>> <<네.>> <<그렇구나. 평소에도 은경이가 자주 너에 대해 말하군 했다. 반장이 참 똑똑한 애라구.>> 은경이 어머니는 잠간 뜸을 들였다가 군이쪽으로 한발 다가섰다. <<군이야, 애들이 모두 은경의 일에 대해서 궁금해하지? 동학들이 이상한 추축들을 할것 같아서 이번 일을 너에게 이야기한다.>> 은경이 어머니는 고통스러운듯 두눈을 지긋이 감고 길게 숨을 들이쉬였다가 나직히 내 뿜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은경이 아버지는 자그마한 려행사를 꾸려놓고 사실은 로무자들의 출국수속을 해주고있었다. 한국이요, 미국이요, 프랑스요, 카나다요 하면서 1프로의 희망이 보여도 99프로의 노력을 들이며 물불을 가리지 않고 뛰여다녔다. 그새 돈도 좀 벌었다. 하지만 그 일도 그렇게 쉬운것만은 아니였다. 노력한만큼의 대가를 얻기가 그렇게도 힘들었던것이다. 하지만 은경의 아버지는 여전히 그 길에서 헤여나오지 못하고있었다. 지난해 가을, 은경이 아버지는 미국에서 큰 회사를 경영한다는 미국적 한국인과 손잡고 또 로무송출실무를 취급하게 되였다. 은경이 아버지는 로무자들로부터 매인당 십여만원의 수속비를 받아들였다. 미국측 대리인에게 어느 정도 수속비를 먼저 넘겨주고 출국수속을 밟던중에 미국측 대리인이 갑자기 잠적해버렸던것이다. 수속비를 낸 로무자들이 출국날자를 기다리다가 드디여 은경이 아버지를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미국측 대리인은 여전히 나타나지 않았다. 이미 사라져버린 수속비는 2백만원도 넘는 돈이였다. 출국이 가망이 없게 되자 로무자들은 련명으로 은경의 아버지를 검찰원에 고소했다. 은경이 아버지는 그날 저녁 집에 돌아와 은경이 어머니에게 사실을 이야기하며 문제가 엄중해질것같다고 근심했다. 은경이 어머니도 깜짝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은경이가 문제구만. 은경이가 모르게 일이 처리되여야겠는데. 일이 터지면 은경이가 얼마나 타격이 크겠오…>> 아버지는 진심으로 은경이를 걱정하고있었다. 하지만 사실은 은경이 아버지의 욕망처럼 쉽게 끝나지 않았다. 은경이 아버지는 끝내 사기죄로 구속령장을 받게되였던것이다. <<어머니, 그럼 아버지는 어떻게 되는거에요?>> 아버지의 소식을 듣고 은경이는 두려움이 가득찬 눈길로 어머니를 바라보며 애절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직은 결과를 알수없지만 아마도 오라지 않아 체포령장이 내릴것 같구나. 사실이 엄중하다고 하니까.>> <<그럼 아버지가 감옥에 가는 거예요? 아버지가 나쁜 사람이 되는거예요? >> <<은경아,>> 은경이 어머니는 두려움으로 파르르 떠는 은경의 갸냘픈 어깨를 꼭 안아주었다. <<그럴수 없어요. 아버지가 나쁜 사람이 되다니요. 아버지가 감옥으로 가다니요. 그럼 전 뭐가 돼요? 죄범의 딸이 되는 거예요? 그럴수 없어요. 그럴수 없어요…>> 이렇게 중얼거리던 은경이가 갑자기 어머니의 품을 떨쳐나가 자기의 침실로 들어갔다. 은경이 어머니는 근심스러워 인차 은경이를 따라섰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은경이가 침실문을 안으로 잠근후였다. 은경이 어머니가 은경에게 문을 열라고 그렇게 애원을 해도 은경이는 대답이 없었다. 은경이 어머니는 열쇠를 찾아 은경의 침실문을 열고 들어갔다. 은경이는 넋을 놓고 멍하니 천정을 쳐다보고있었다. 책상우에 펼쳐놓은 일기장에는 <<나쁜놈, 감옥, 죄범, 죄범의 딸>>과 같은 글들이 란잡하게 오려져있었다. 침실로 들어 온 어머니를 발견한 은경이는 갑자기 <<악!>>하고 소리치며 자기의 머리를 마구 잡아 뜯었다. <<은경아, 너 왜이러니?>> 어머니가 은경의 손을 잡았다. <<나가요. 나가! >> 은경이가 히스테리적으로 소리쳤다. <<은경아. 진정해라. 일이 다 잘 풀릴거야.>> 하지만 은경이는 막무가내였다. <<미워요. 다 미워요. 썩 사라져요.>> <<은경아, 진정해라. 그러면 더 힘들단다.>> <<그래요. 힘들어요. 죽고싶어요. 아니 죽을래요.>> 은경이는 자기의 가슴을 벅벅 긁어대며 고통스럽게 소리질렀다. 어머니는 은경이와 함께 있는것이 은경이를 더 흥분시키는 일이 아닌가싶어서 은경의 침실에서 나왔다. 어머니는 은경이가 근심스러워 객실 쏘파에 앉아 온 밤을 뜬눈으로 보냈다. 새벽녘에 은경의 어머니는 문열리는 소리를 들었다. 소스라쳐 놀라 눈길을 돌려보니 은경이가 주방으로 들어가고있었다. <<벌써 깼니?>> 어머니도 은경이를 따라 주방으로 들어갔다. 은경이는 음수기에서 물을 뽑고있었다. <<은경아,>> 어머니는 불안한 눈길로 은경이를 살폈다. 컵에 물을 꼴똑 받아 든 은경이는 몸을 돌리며 어머니께 말했다. <<어머니, 근심마세요. 돌아가 편히 쉬세요.>> 생각밖으로 은경의 표정은 담담했다. 어머니는 저으기 한시름을 놓으며 애써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그래, 오늘 힘들면 학교에 나가지말어라. 어머니가 선생님께 청가를 맡을게.>> 말끝을 맺고 보니 은경이는 벌써 침실로 들어가버리고 없었다. 어머니는 아침밥상을 다 차려놓고 은경이를 부르며 은경의 침실로 들어갔다. 은경이는 침대에 반듯이 누워있었다. <<아직도 자니? 웬간하면 아침을 먹고 계속 자렴.>> 은경의 어머니가 살펴보니 책상우에 약병이 놓여져있었다. 어머니는 섬찍한 생각이 들어 냉큼 약병을 주어들었다. 정통편을 넣었던 병은 밑굽이 들어나있었다. 은경의 어머니는 너무도 놀라 목석처럼 굳어졌다. 간혹가다 이발이 아프다면서 투정을 하기에 그때마다 림시구급으로 정통편을 먹으라고 며칠전에 50알이나 사서 병에 넣어놓았던것이다. <<은경아!>> 어머니는 은경이 쪽으로 몸을 돌리며 경악에 차서 소리쳤다. 은경의 입에서는 흰거품이 게질게질 흘러내리고있었다. <<은경아, 은경아!>> 은경이 어머니는 피터지게 소리치며 은경이를 잡아 흔들었다. 은경이는 완전히 의식을 놓아버리고있었다. 은경이 어머니는 황급해서 120긴급전화를 눌렀다. 구급차가 잠간새에 도착했다. <<그 속이 못된 계집애가 끝내 옥생각을 펴지못하고 일을 친거야. 며칠전까지만 해도 <6.1>절이 오라지 않다면서 소학교에서의 마지막 <6.1>절에는 아버지랑, 어머니랑 함께 대련으로 유람을 가고싶다고 아버지께 응석을 부리더니, 너무도 큰 타격을 당해내지못한거지. 그리구 은경이, 그 앤 늘 자기의 아버지로하여 자호감을 느끼고있었거든, 흐흐흑… 정말 우리는 은경이를 볼 면복이 없구나. 너희들이 은경이를 리해해줘라. >> 은경이 어머니의 목소리에는 여전히 울음이 섞여있었다. <<네. 은경이 어머니, 시름놓으십시오. 저희들이 자주 와서 은경이를 보겠습니다. 은경이가 마음을 돌리수있도록 잘 동무해 주겠습니다.>> <<그래 고맙다.>> 은경이 어머니는 군이의 손을 꼭 잡았다. 군이는 은경이 어머니의 손이 몹시 차다고 생각했다. 그 시각 군이는 몹시도 괴로왔다. 고통에 신음하는 자식을 바라보며 오열을 토하는 이 갸냘픈 어머니의 손을 뜨겁게 해주지 못하는것이 괴로왔고 소학교에서의 마지막 <<6.1>>절 소망을 이루지못하고 침대에서 신음하는 은경이를 보는것이 괴로왔던것이다. 군이는 돌아서서 주먹으로 눈굽을 찍었다.
7    아픔속에서 크는 나무 댓글:  조회:1768  추천:0  2010-03-10
아픔속에서 크는 나무 군이네는 끝내 은경이와 한마디 대화도 나누지 못한채 병원을 나왔다. 그들은 모두 은경의 모습에서 큰 충격을 받았는지 말 한마디 없이 머리를 푹 숙이고 걸음만 재우쳤다. 시립병원 앞에있는 공공뻐스정류소에서 친구들은 제 각기 흩어졌다. 미림이랑 몇몇은 7선 뻐스를 타고 먼저 떠났다. <<곧추 집으로 가니?>> 규호가 군이 옆으로 다가서며 조용히 물었다. <<그래, 집으로 가야지. 저녁 때가 다 되는데.>> 군이가 서산에서 빨갛게 타오르는 석양을 바라보며 머리를 끄덕였다. <<그렇지, 군이야. 넌 여기서2선을 기다렸다가 타고 가야지?>> 규호의 목소리에는 어딘가 서운함이 깃들어있었다. 군이는 직감적으로 규호에게 무슨 할 말이 남아있음을 느꼈다. <<규호야, 너, 3선을 타려면 신문사역에 가야지 않니? 출판사쪽으로 해서 두 정거장을 더 가야 도착할수있는가?>> <<그래.>> 규호가 머리를 끄덕였다. <<가자, 내가 널 동무해줄게.>> <<넌 어떻게 가자구?>> <<괜찮아. 3선을 타고 가다가 북동시장역에서 내려 두정거장 정도 더 걸으면 집에 도착하는데 뭐.>> <<그래두 어떻게 그렇게 돌아가겠니?>> 규호가 미안스럽다는듯 군이를 바라보았다. <<가자. 신체단련을 한다고 생각하지 뭐.>> 군이는 규호 먼저 걸음을 옮겼다. 규호도 인차 군이를 따라섰다. 군이와 규호는 잠간 말 없이 조용히 걸음만 옮겨놓았다. <<군이야~>> 규호가 갑자기 군이를 바라보며 짧막하게 불렀다. <<어, 규호야 왜?>> <<아무리 생각해도 울아버지, 어머니와 리혼하는게 옳은것 같다.>> 규호의 목소리는 몹시 가라앉아있었다. 군이는 잠간 걸음을 멈추고 규호를 뚫어지게 건너다보았다. 지난번에 아버지와 어머니의 리혼을 두고 그렇게 흥분하던 규호의 변화가 이상하게 생각되였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리혼하는게 옳은것 같다구?>> 규호는 군이를 보며 힘껏 머리를 끄덕였다. <<너, 지난번에 뭐라 했니? 어머니가 기어이 아버지와 리혼하겠다면…>> 군이는 뒤말을 이을수가 없었다. 아버지, 어머니가 정말 리혼하면 어머니를 죽여버리겠다며 절규를 하던 규호의 그 말을 차마 다시 옮길수가 없었던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다.>> 규호가 약간 흥분한 목소리로 확실하게 말했다. <<어떻게?>> <<리혼하는게 아버지가 행복해지는 길이야, 난 그렇게 믿어. 나도 인젠 심리준비가 다 됐구.>> <<너의 아버지도 그렇게 생각하시니?>> <<어제 밤에 아버지께 나의 생각을 말했다. 아버지도 생각해 보신다 했어.>> 군이와 규호는 말하면서 신문사 앞의 청년공원까지 걸어왔다. <<가자, 청년공원에 들어가 잠간 앉았다 가자.>> 군이가 규호의 손을 잡아 끌었다. 그들은 나무의자에 나란히 앉았다. 규호가 담담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규호가 군이와 어머니의 이야기를 나눈지 이틀이 되던 날 저녁무렵, 규호의 어머니는 정말 규호네 집을 찾아왔다. 그때까지 어머니가 설마 진짜 아버지를 찾아올수있을가 하는 생각으로 어머니가 왔다는 사실을 아버지께 말하지 않고있던 규호는 갑작스러운 어머니의 출연에 당황하여 어쩔줄을 몰랐다. <<가세요. 어서 돌아가세요. 아버지가 금방 돌아와요.>> <<안돼, 아버지를 보고갈거다. 만나서 직접 말해야겠다.>> 어머니의 태도는 뜻밖으로 몹시도 강경했다. <<그럼 있으세요. 내가 나갈테니까.>> 그냥 지청구만으로는 어머니를 돌려보낼수 없음을 느낀 규호가 밖으로 나와 버렸다. 어머니가 집에 온 사실을 먼저 아버지께 말씀 드려야겠다고 생각했던것이다. 규호는 집옆에 난 골목길을 따라 종종 걸음을 놓았다. 뻐스역까지 거의 도착할 무렵에야 규호는 삼륜차를 몰고오는 아버지와 마주쳤다. <<규호야, 너 어디로 가니?>> 아버지께서 삼륜차에 앉은 대로 반갑게 소리쳤다. 규호는 아버지 곁으로 뛰여가서 대답했다. <<어디로 가긴요. 아버지 마중을 나왔죠.>> <<그래?>> 아버지는 매우 기뻐하셨다. <<빨리 올라 타라. 제꺽 가자.>> <<아니요. 아버지, 제가 밀게요. 걸읍시다.>> <<허허허, 그래? 그것도 좋지. 아들하구 나란히 걸어본지도 오랜데.>> <<주세요. 제가 밀게요.>> 규호가 삼륜차손잡이를 잡았다 <<괜찮대두. 빨리 가자.>> 아버지께서 삼륜차를 밀며 걸음을 옮겼다. 군이는 자기 앞에서 걸어가시는 아버지의 뒤모습을 잠간 응시했다. 허리를 구부정하고 삼륜차를 미는 아버지의 모습은 그렇게도 작아보였다. <<아버지,>> 규호가 아버지곁으로 다가서며 나직히 불렀다. <<어.>> 아버지께서 머리를 돌렸다. <<아버지께 하지못한 말이 있어요.>> <<그게 뭔데?>> 아버지께서 다잡아 물으셨다. 규호는 잠간 머뭇거리다가 끝내 입을 열었다. <<아버지, 집에 어머니가 와있어요.>> <<뭐라구?>> 아버지는 자기의 귀를 의심하는듯싶었다. <<집에 어머니가 와있다구요.>> <<엄마가? 집에 왔다구? 엄마가 왔다구?>> 아버지가 어린애처럼 환성을 질렀다. 규호는 그러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천천히 머리를 끄덕였다. <<가자, 빨리가자. 어때? 어머니가 몹시 축하셨지? 많이 힘들어 보이지?>> 아버지는 규호를 재촉했다. 규호는 아버지의 독촉을 못이겨 삼륜차에 올라 앉았다. 규호는 차마 그처럼 기뻐하시는 아버지께 어머니가 리혼을 제기하러 왔다고 밝힐수가 없었다. 아버지는 힘차게 페달을 밟으셨다. 아버지의 얼굴은 해덩이가 내려앉은듯 활짝 밝아있었다. 어머니가 떠나가신후 규호는 그렇게 밝은 아버지의 얼굴을 본 기억이 없었다. 저 밝은 아버지의 얼굴에 쏟아질 폭풍우를 생각하니 규호는 정말 미칠것만 같았다. 어머니는 집문앞에 나와서 규호네를 기다리고있었다. 먼저 어머니를 발견한 아버지께서 삼륜차에서 뛰여내려 소리치며 어머니를 향해 뛰여갔다. <<여보, 여보~>> 한달음에 어머니옆에 다달은 아버지가 어머니의 목을 으스러지게 껴안았다. <<올줄 알았소. 돌아올줄 알았다니까. 규호의 엄만데. 우리 규호의 엄만데…>> 분명 아버지의 목소리는 떨리고있었다. <<네. 규호 아버지. 그 동안 잘 있었어요?>> 어머니가 아버지의 품에서 몸을 빼며 아무 색채도 없는 다디찬 목소리로 인사했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그런 기분도 느끼지못하시고 다시 어머니의 손을 와락 잡았다. <<됐소. 돌아왔으니 됐소. 고맙소. 정말 수고했소.>> 아버지는 흥분으로 어머니의 손을 마구 흔들더니 규호쪽으로 머리를 돌렸다. <<규호야. 가자. 우리 시내에 가서 식당놀이를 하자. 엄마의 환영식을 해야지.>> 아버지의 얼굴은 여전히 싱글거리고있었다. <<아니예요. 규호 아버지, 오늘은 안돼요. 할말도 있구요.>> 어머니께서 여전히 차디찬 목소리로 말했다. <<할말이라니, 천천히 하면 되지, 이게 얼마만이요.>> <<중요한 말이에요. 아마도 오늘 저녁에 꼭 해야할것 같아서요.>> 어머니는 몸을 돌려 먼저 집안으로 들어갔다. 그날 밤, 어머니는 과연 아버지에게 돌아온 사연을 그대로 이야기했다.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아버지의 얼굴은 약간 경련을 이르키는듯싶더니 점차 검푸르게 굳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주먹으로 구들바닥을 탁 내리치며 투우장에 나선 성난 황소처럼 소리쳤다. <<리혼이라니? 미친소리를 걷어치우오. 리혼이라니!>> <<인젠 쏟아놓은 물이예요. 저도 어쩔수가 없어요>> 어머니도 사뭇 견결하게 나왔다. <<생각해보세요. 다시 오겠어요.>> 아버지에게 자기의 뜻을 다 밝히고 난 어머니는 뒤도 돌아보지않고 돌아갔다. 아버지는 사라져가는 어머니의 뒤모습을 멀거니 바라보며 길게 한숨을 내쉬였다. 아버지는 긴긴 밤을 엎치락뒤치락 하며 잠을 못이루고 있었다. 이튿날, 어머니는 또 아버지를 찾아왔다. 아버지의 태도는 여전히 견결했다. 지금처럼 갈라져있더라도 리혼만은 절대 안된다는것이였다.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행악질을 해대며 꿈을 깨라고 고래고래 소리쳤다. 그날밤, 어머니가 돌아가자 아버지는 혼자서 흰술을 꾸역꾸역 마셔대기 시작했다. 어느새 술 한병이 굽이났다. 아버지는 술독이 올라 뻐얼개진 눈으로 안스럽게 규호를 바라보았다. 규호는 그러는 아버지를 지켜보기 괴로와 자기의 방으로 올라갔다. 아버지는 자리도 펴지않고 옷을 입은채로 누웠다. 잠간 잠드신듯싶던 아버지께서 일어나 규호의 방문을 열었다. <<규호야, 아버지는 정말 너에게 에미 없는 아픔을 더는 주지말자고 그랬는데. 이 불쌍한것아.>> 규호의 친어머니가 행방없이 사라진후 새 어머니를 친 어머니로 알고 크는 규호에게 다시는 어머니의 사랑을 잃지 않게 하자고 그렇게 바라는 아버지였던것이다. 이튿날에도 아버지는 의연히 삼륜차를 몰고 일거리를 찾아나섰다. 규호는 그날 밤에도 아버지께서 혼자 술을 마시고 이불속에서 내내 한숨을 쉬는 것을 눈치채고있었다. 그후에도 어머니는 두번이나 아버지를 찾아와 울고불며 리혼을 해달라고 란리를 피우고 갔다. 아버지는 번마다 안된다고 잡아떼다가는 어머니가 돌아가신후 술을 마시고 한숨으로 밤을 샜다. 아픔에 치를 떠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규호는 깊은 생각을 굴렸다. 과연 아버지께서 이렇게 어머니를 잡아두는것이 옳을가? 진정 아버지는 그게 더 행복하실가? 규호는 새 어머니에 대한 원한이고 리혼으로 오는 자기의 아픔이고를 떠나 처음으로 아버지를 대신해서 생각해보았다. 어머니의 마음은 진작 아버지곁을 떠난지가 오래다. 이미 돈 많은 한족사람의 품에서 사치를 배우고 사치에 습관되여온 어머니는 다시 삼륜차를 몰아 그날그날 생활을 영위해가는 아버지의 곁으로 돌아오지 않을것이다. 규호는 돌아오지 않는 사람을 기다린다는게 얼마나 힘든 일이라는것을 어머니를 기다리며 배워서 알고있었다. 어제밤, 아버지께서 돌아오시자 규호는 마음을 다잡고 말문을 열었다. <<아버지, 할 말이 있어요.>> <<그래, 해 봐라!>> 아버지께서 규호를 바라보았다. <<아버지, 리혼하세요.>> 규호는 끝내 진종일 가슴속으로 되네이던 말을 해내고야 말았다. <<뭐라구?>> 아버지께서 깜짝 놀라셨다. <<리혼하세요, 저 때문이라면 리혼하세요. 아버지가 괴로와 하시는것을 더는 못보겠어요.>> 아버지께서 또 긴 한숨을 내쉬였다. <<엄마 없는 애라는 소리를 듣는게 얼마나 힘든지 너 아니? 비록 새 엄마라지만, 지금까지는 그래도 기다리면서라도 마음은 든든하지 않았었니?>> <<하지만 어머니의 마음은 이미 다른 데로 갔어요! 어떻게 잡아올수도 없잖아요? 보내버리세요. 저도 다 컸어요. 아버지가 편하다면 보내버리세요.>> <<규호야!>> 아버지는 규호의 어깨를 꽉 끌어안아주었다. 아버지의 두 볼에서는 주먹같은 눈물이 주르륵 굴러떨어졌다. 규호는 처음으로 아버지의 눈물을 보았다. 어쩜 새 어머니를 기다리며 눈물마저 말라버렸는가 싶던 아버지에게도 아직 눈물이 남아있다는것을 규호는 이제야 느끼고있었다… 규호는 말을 마치고 천천히 머리를 들었다. 두눈에는 눈물이 아니라 그 무엇을 결심한듯한 장엄함이 어려있었다. <<정말 괜찮겠니?>> 군이가 근심스러운 눈길로 규호를 바라보았다. 규호는 머리를 끄덕였다. <<정말 많이 생각해봤다. 첨엔 막막하기도 하구 무섭기도 하구, 살고싶은 생각이 없었지만 마음을 굳히구 다시 생각하니 그렇게 무서운것도 아닌것 같아. 글구 뭐 아버지, 어머니가 리혼한 애들이 한둘이니? 그래도 모두들 잘 뻗쳐가고있지 않니?>> <<하긴 그래, 우리도 인젠 다 컸으니까.>> <<그래, 피해가지 못할 일이라면 맞다들어 보는거지 뭐.>> <<규호야, 너 참 멋져!>> 군이는 으스러지게 규호의 손을 잡아주었다. <<아버지를 독촉할거야. 빨리 어머니와 리혼해버리라구. 그리구, 거뜬한 마음으로 소학교에서의 마지막 <6.1>절을 쇠달라구 할거야.>> 규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두어깨를 쩍 벌리고 힘있게 앞으로 걸어갔다. 군이는 규호의 뒤모습을 바라보며 머리를 끄덕였다. 어쩜 한그루의 소나무를 보는듯싶었다. 한여름의 폭풍우에도, 엄동의 설한속에도 푸름을 잃지 않고 대굵게 커가는 한그루의 꿋꿋한 소나무를 보는듯싶었다. 군이는 아픔속에서 크는 나무이기에 더 튼실한것이 아닐가고 나름대로의 생각을 굴려 보았다.
6    그날밤, 하늘에는 별찌가 없었다. 댓글:  조회:1787  추천:0  2010-03-10
그날밤, 하늘에는 별찌가 없었다. 군이는 해가 서산으로 넘어간 후에야 마지막 공공뻐스를 잡아 타고 부랴부랴 집으로 돌아왔다. 길에서 군이는 내내 침대에 누워서 링겔을 맞고있던 목석과도 같은 은경의 얼굴을 떠올렸고 흥분에 떨며 아버지를 리혼시키겠다고 열변을 토하던 규호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정말이지 군이는 모든것이 꿈만 같았고 모든것이 그처럼 낯설어 보였다. 아빠트에서는 집집마다 전등불이 명멸하고있었다. <<인제야 오니?>> 집에 들어서자 주방으로부터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군이는 주방쪽에 머리를 돌리고 짤막하게 대답했다. <<어서 와라, 저녁을 먹자.>> 아버지께서 그냥 주방에서 군이를 불렀다. 군이는 침실에 들어가 바삐 옷을 갈아입고 주방으로 나와 밥상앞에 앉았다.. <<학급에 무슨 활동이 있었니?>> 아버지께서 밥술을 뜨며 물었다. <<아니요. 병원에 갔다오느라구요.>> 은경의 일이 더 충격적이여서인지 규호와의 진지한 대화보다도 은경의 사건이 먼저 머리를 쳤다. <<병원이라니, 왜? >> 아버지께서 급히 말꼬리를 잡았다. 군이는 밥술을 뜨다 말고 아버지에게 눈길을 주었다. 피뜩 이런 말도 아버지에게 해야하나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던것이다. 아버지도 군이의 속궁리를 읽었던지 그냥 물어본것 뿐이라는듯 한마디 했다. <<그냥, 누가 입원이라도 했나해서 그런다.>> 군이는 아버지의 담담한 목소리를 들으며 어쩐지 아버지에게 못할짓을 하는것 같았다. 군이는 아버지에게 만은 아무것도 속이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던것이다. <<우리 반에 은경이라는 애 있잖아요.>> <<알지, 그 애 아버지가 려행사를 한다 했던가? 가정형편이 괜찮다고 하던데…>> 어머니가 한국으로 간 3년사이 학부모회의에 한번도 빠짐없이 다닌 아버지인지라 군이네 학급의 웬간한 애들의 이름은 다 알고 있었다. 하여 평소에도 군이와 마주앉아 누구는 공부는 잘하는데 성격이 괴벽하고 누구는 품성이 좋은데 수학성적이 따라가지 못하고 또 누구는 노래에 장끼가 있더라는 것과 같은 대화를 얼마든지 나눌수있었다. <<보기에는 애가 건실해보이던데, 무슨 병이래?>> 아버지께서 근심스러운듯 물었다. <<병이 아니구요, 오늘 그 애가 죽자고 약을 먹었어요.>> <<죽자고 약을 먹었다구? 저런, 웬 일루 그 애가 그런짓을 한다니?>> 아버지께서도 너무나 충격적인 모양이였다. 얼굴에 복잡한 표정이 교차되였다. <<따르릉, 따르릉~>> 이때 전화벨이 울렸다. <<제가 받을게요.>> 군이가 수저를 놓고 일어섰다. 군이는 객실로 나가 수화기를 쥐며 번호표시판을 피끗 내려다보았다. 군이는 날듯이 기뻤다. 번호표시판에는 분명 한국 전화번호가 찍혀져있었던것이다. (어머니의 전화구나. 어머니께서 지난번에 내가 보낸 메일을 읽으셨나 봐. 그 메일을 보고 어머니는 아버지를 믿고 아버지를 리해하려고 생각하셨나 봐. 그래, 어머니께서는 그 메일을 보시며 많은 생각을 하셨을거야, 어쩜 아버지를 잠시나마 의심한것을 매우 미안하게 생각하셨을지도 몰라… 그래서 이번에 집에 와서 아버지와 함께, 그리고 나와 함께 <6.1>절을 쇠려고 생각하셨을지도 몰라. 그래, 어머닌 참 리해심이 많은 분이시니까.) 군이는 이런 생각을 굴리며 내심의 기쁨을 누를길이 없었다. 지난번 병원에서 아버지와 진지한 대화를 나눈후 군이는 집으로 오자바람으로 어머니께 메일을 보냈었다. 군이는 메일에서 어머니에게 아버지를 믿고 리해해주자고 절절하게 이야기를 했다. 아버지는 자기만의 방법으로 자기만의 생활을 참답게 배치해 가시는 훌륭한 분이라고 자기 나름대로의 생각을 피력했다. 그러면서 <<6,1>>절 무렵에 한번 집에 다녀오라고 권했다. <<6.1>>절도 함께 쇨겸, 오랜만에 한가족이 단란히 모여 회포를 풀자고 했다. 드디여 오늘 어머니께서 전화를 걸어온것이다. 군이는 높뛰는 가슴을 가까스로 진정하며 높은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어머니, 저 군이에요. < 6.1>절에 오시는거예요?>> <<미안합니다. 전영호씨 댁인가요?>> 뜻밖에도 전화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굵은 남자의 목소리였다. 군이는 잠간 한풀 꺾이며 나직히 대답했다. <<네, 맞습니다.>> <<전영호씨 계신가요?>> 대방의 목소리는 여전히 굳어진대로 딱딱하게 들렸다. <<네, 계시는데요. 잠간만 기다려 주십시오. 바꿔 드리겠습니다.>> 군이는 수화기를 놓고 주방에 대고 소리쳤다. <<아버지, 전화 받으세요.>> <<알았다~.>> 아버지께서 객실로 나와 수화기를 받으며 누구냐는듯 군이에게 눈길을 주었다. 군이는 홀랑 혀를 내밀어 보이며 도리머리를 했다. 아버지께서는 알겠다는듯 머리를 끄덕이며 수화기를 받아들었다. <<네, 전화 바꿨습니다.>> 기분좋게 전화를 받아들고 이야기를 하던 아버지의 얼굴이 점차 흐려지기 시작했다. 무거운 구름이 감도는듯한 표정이였다. 차츰 아버지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래, 지금 어떤 정황입니까? >> 아버지의 목소리는 공제를 잃어갔다. <<네? 아직도 의식을 차리지 못하고있다구요? 상처는 어떻습니까? 그럼 어떻게 되는 겁니까?>> 아버지는 황소숨을 몰아쉬고있었다. <<네,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대방에서 뭐라고 말하는지 아버지는 완전히 사색이 되여 연신 머리를 끄덕였다. 전화가 끝났다. 아버지는 수화기를 내려놓고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눈길은 초점없이 허공에서 돌고있었다. 할말을 찾지못하고 있는지 입은 하~ 벌린채로있었다. 큰일이 터졌구나! 하는 생각이 군이의 뇌리를 쳤다. 더럭 무서움이 엄습해왔다. 군이는 아버지의 손을 잡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아버지, 웬 전홥니까?>> <<어, 아무일도 아니다!>> 아버지가 와뜰 놀라며 도리머리를 했다. 하지만 군이는 믿고싶지 않았다. 아무일도 아닌것 같지 않았던것이다. 군이는 심장을 치는 긴장을 한가슴 안고 아버지의 앞에 한뼘 다가 앉았다. 아버지는 불안한 눈길로 군이의 얼굴을 일별하더니 드디여 무겁게 입을 열었다. <<어머니가 사고를 당했단다.>> <<어머니가… 사고를요? 언제요? 무슨 사고를요?>> <<오늘 아침에 어머니가 일하는 식당에서 액화가스가 폭발했단다. >> <<그래서요? 어머니가 어떻게 됐대요?>> <<어머니는 다행이 액화가스와 좀 떨어져있었기에 목숨은 건졌지만 아직은 병원에서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있단다.>> <<그럼 어떻게 되는거예요? 어머니가 어떻게 되는거예요?>> 군이는 아버지의 턱밑에 바싹 다가 앉으며 아버지의 어깨를 잡아 흔들었다. 아버지는 그린듯이 한참이나 꼼짝하지 않고있다가 수화기를 잡아들었다. 아버지는 잡지사사장님께 전화를 했다. 어머니의 사고 때문에 래일 심양으로 출발해야 한다고 하셨다. 이어 아버지는 또 할머니네 집에 전화를 넣었다. 무시로 눈굽을 찍으며 한참이나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셨다. 수화기를 내리워 놓은 아버지는 근엄한 얼굴로 군이를 바라 보았다. <<아버지가 한국에 나가서 어머니의 일을 처리해야겠다. 그새 군이가 집을 돌봐야겠다. 아마 할머니께서 래일 오전에는 우리집에 내려올거다.>> <<아버지, 어머니는 어떻게 되는거예요? 네, 어떻게 되는거예요?>> 군이는 여전히 정신을 추스리지못하고 당황한 눈길로 아버지를 바라보며 곱씹었다. 아버지는 약간 떨리는 손으로 군이의 손을 꼭 잡아주며 말씀했다. <<괜찮을거다. 한국은 의학이 발달해서 어머니는 얼마든지 의식을 회복할수있을 거다. 근심하지 말어라. 어머닌 꼭 아무일도 없을 거다.>> <<아버지, 어머닌 정말 괜찮은거죠? 네, 아버지.>> 군이는 울먹울먹해서 아버지의 손을 잡아 흔들었다. 아버지께서는 불깃불깃한 눈으로 군이를 바라보며 머리를 끄덕이셨다. 아버지는 침실로 들어가 웃옷을 찾아들고 객실로 나왔다. 아버지는 두려움에 떨고있는 군이의 어깨를 조용히 다독여 주며 말했다. <<군이야, 너무 근심하지 말고 먼저 자거라. 아버지는 지금 잡지사에 가서 한국에서 온 팩스를 찾아야겠다. 어머니가 일하던 식당에서 아버지를 한국으로 오라는 서류를 보냈 다는구나. 오늘 저녁에 자료를 작성해가지고 래일, 심양으로 들어가야 할것 같다.>> <<네, 아버지! 시름놓고 가보세요. 제가 집을 지킬게요.>> <<그래, 너무 근심을 하지 말어라.>> 아버지는 다시 한번 군이의 어깨를 다독여 주고는 문을 열고 나갔다. 군이는 사라지는 아버지의 뒤모습을 멍하니 바라 보았다. 군이는 밑둥잘린 나무처럼 쏘파에 털썩 주저 앉았다. 너무도 고통스러워 자기의 머리를 부등켜 안았다. (이국타향에서 어머니는 혼자 어떻게 그 아픔과 싸우고 계실가? 어머니는 이 시각, 병원의 어느 한 구석에 혼자 버려진채로 누워서 신음을 하고있는것은 아닐가? 혹시 어머니께서 영영 일어나지 못하면 어쩔가?…) 오만가지 생각이 군이의 머리를 엄습해왔다. 그러자 못견디게 어머니가 보고 싶어졌다. 군이는 당금 어머니의 곁으로 날아가지 못하는것이 한스럽기만 했다. 군이는 자기의 침실로 들어가 책상서랍을 열었다. 서랍안에는 사진첩 몇권이 들어있었다. 군이는 그중에서 가위에 예쁜 녀자애가 고무풍선을 들고 어디론가 뛰여가는 그림이 그려져있는 사진첩을 꺼내들었다. 그 사진첩에는 어머니가 한국으로 가기전에 군이와 함께 찍은 사진들이 들어있었다. 군이는 사진을 보면서 한가지 새로운 점을 발견했다. 사진마다에서 어머니는 군이를 꼭 끌어안고있지 않으면 군의 손을 잡고있었다. 군이와 함께 하는 어머니의 얼굴에는 사진마다 그처럼 행복한 미소가 어려있었다. 군이는 사진첩을 번지며 어머니의 진한 향기를 맡는듯싶었다. 방불히 어머니께서 옆에 계시는듯싶었다. <<어머니!>> 군이는 조용히 어머니를 불러보았다. 어머니의 얼굴이 가담가담 눈앞에서 지나갔다. 군이는 갑갑한 마음을 달래려고 밖으로 나와 천천히 층계를 내리기 시작했다. 군이는 아빠트 정원에 있는 정자를 향해 걸어갔다. 아빠트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이 정자를 밝혀주고있었다. 정자에는 두 꼬마가 앉아있었다. 머리를 짧게 깎은 남자애가 이상인듯 해보였다. 양뿔머리를 한 녀자애가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남자애에게 물었다. <<오빠, 오빠는 어느 별을 가질래?>> <<나는 저기서 제일 반짝이는 저 별들을 가지겠다.>> 남자애가 북두칠성을 가리키며 말했다. 녀자애가 손벽을 치며 종알거렸다. <<히야~ 오빠, 나도 그 별을 가지고 싶은데. 저 별들이 얼마나 밝니? 저렇게 밝으니까 엄마랑, 아빠랑 있는 한국에서도 볼수있을게 아니야. 그렇지 오빠야, 아빠랑, 엄마랑도 저 별을 보고있겠지?>> <<볼수있겠지뭐. 근데 볼수 없을거야.>> <<왜 볼수 없는데?>> 양뿔머리 녀자애가 못내 아쉬운듯 남자애에게 물었다. 남자애는 뭔가를 생각하고있는지 잠간 말이 없었다. 녀자애가 칭얼거렸다. <<오빠야, 응? 왜 볼수 없는데?>> <<지난번에 할머니가 하는 말씀을 못들었니? 엄마는 식당에서 새벽까지 일하고 아버지는 돈을 더 벌겠다고 공장에서 맨날 곱대거리를 한다고 하시던 말씀을 말이다. 그러니 어떻게 시간이 나서 지금 우리처럼 별을 보겠니?>> <<참, 아빠랑, 엄마랑도 저 별을 봤으면 좋겠는데, 그러면 아빠랑, 엄마랑도 우리가 저 별을 보고있는걸 알수있을텐데, 그치? 오빠야~>> 녀자애는 못내 아쉬운듯 오빠를 불렀다. 군이는 못박힌듯 그자리에 서서 오누이의 이야기에 귀를 귀울였다. 어쩜 인기척에 별구경을 하는 오누이가 놀랄가 우려되였다. <<오빠야, <6.1>절에 할머니가 우리를 데리고 공원에 갈가?>> 녀자애가 무척 기대에 찬 목소리로 남자애에게 물었다 <<나도 모르지, 할머니는 맨날 허리가 아프시다는게 어쩌겠는지.>> <<우리반 애들은 전번에도 공원에 가서 원숭이랑, 공작새랑, 락타랑, 하마랑 보았다더라. 나도 보고싶은데.. 할머닌 맨날 허리가 아프다면서…>> 녀자애가 여기까지 말했을 때 갑자기 등뒤에서 신경질이 가득한 할머니의 목소리가 꼬장꼬장 들려왔다. ` <<<야, 이것들아, 여기서 뭘 하고있니?>> 녀자애는 하던 말을 딱 끊어버렸다. 몸매가 겨릅대같이 여원 할머니 한분이 군이의 등뒤에서 허이허이 걸어 나왔다. <<이것들아, 독보조에 일이 있어서 갔다 오자고 그새 혼자 있으라 했더니, 그 어간을 참지를 못하고 이 어두운데 밖에 나왔냐? 호랑이가 와서 물어가면 어쩔라구 그러니? 아유~ 이 원쑤들아. 애비, 에미는 어디 가서 제 돈을 버느라 헤매구, 이 늙은것은 그 새끼들을 건사하느라 이 고생을 하구! 유~ 세상 돌아가는 꼬라지하구는…>> 할머니는 정자에 올라가 오누이를 끌고 내려오며 입을 쉬우지 않았다. 오누이는 아무 대꾸도 못하고 비틀비틀 할머니에게 끌려오고있었다. 군이는 멍하니 선자리에 선채로 할머니에게 끌려가는 오누이를 지켜보았다. 녀자애는 할머니의 손에 끌리우면서도 머리를 들어 가끔 하늘을 쳐다보고있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보고있을지 모르는 그 북두칠성을 찾는 모양이였다. <<이것아, 온천히 걷지 못하겠니? 왜 이렇게 흐믈 거리니?>> 할머니가 녀자애를 마구 잡아 흔들었다. 녀자애는 여전히 대꾸 한마디못하고 걸음을 옮기고있었다. 군이는 할머니의 손에 끌려 자기 앞을 지나는 오누이를 축은하게 지켜 보았다. 그들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군이는 방금 오누이가 앉았던 정자에 가서 오누이가 앉았던 그 자리를 찾아 앉았다. 군이는 하늘을 바라고 머리를 쳐들었다. 오누이가 보면서 아빠, 엄마를 그리던 그 북두칠성을 찾았다. 은구슬을 뿌려 놓은듯 망망한 별무리들속에서 국자모양의 북두칠성이 유난히도 반짝이고 있었다. 문뜩 시골에서 할아버지와 나란히 창가에 서서 별찌를 보던 달콤한 추억이 또 머리를 쳤다. <<군이야, 별찌를 보면서 소망을 빌면 그 소망이 이루어 진단다.>> 할아버지의 말씀이 방불히 귀전에 들려오는듯 싶었다. 군이는 정성을 다해 별찌를 찾았다. 별찌를 보면서 어머니께서 무사하기를 빌고싶었다. 그리고 어머니께서 빨리 병상에서 일어나기를 빌고싶었다. 군이는 어머니의 몸이 완쾌 된다면 어떤 일이 있더라도 어머니를 집으로 모셔오리라고 다졌다. 어머니와, 아버지와 단란히 모여 오손도손 달콤하게 살고싶었다. 하지만 그날 밤, 하늘에는 별찌가 없었다.
5    가는 사람 오는 사람 댓글:  조회:1568  추천:0  2010-03-10
가는 사람 오는 사람 객실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군이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계를 보니 다른 날보다 30분쯤 먼저 깨여난듯 싶었다. 군이는 잠옷바람으로 객실로 나갔다. 아버지께서 행장을 꾸미고 계셨다. 행장이라해야 평소에 입던 옷 몇견지와 간단한 생활용품이 전부였다. 려행가방에 옷들을 주어넣는 아버지의 얼굴은 무서울 정도로 이그러져있었다. <<아버지,>> <<어, 좀 더 자지.>> 군이를 발견한 아버지는 애써 얼굴에 웃음기를 띄우며 머리를 끄덕였다. 굳어진 얼굴에 웃음을 짜올리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군이는 말못할 괴로움을 느꼈다. <<오늘 심양차에 들어가야겠구나.>> 아버지께서 담담하게 이야기를 하느라 애썼다. <<하루 기다렸다가 비자가 떨어지면 그 길로 한국에 나가겠다. 어머니의 일처리를 하느라면 며칠 걸릴지 잘 모르겠다. 그새 할머니께서 오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군이가 집안의 일들에 신경을 좀 써줘야겠다. 할머니는 인제 년세가 드셔서 힘든 일은 버거워하실거다.>> <<알겠습니다. 아버지, 시름놓으십시오.>> 군이는 힘껐 머리를 끄덕였다. 군이는 아버지의 적삼을 포개여 려행가방에 넣으며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펴지지않은 아버지의 얼굴은 밤새 십년이상 늙어버린것 같았다. 푹 꺼져들어간 아버지의 두 눈에는 안스럽게도 많은 피발이 서있었다. <<아버지, 빨리 짐을 꾸려놓고 한잠 쉬십시오. 어제 밤에 한잠도 못쉬셨죠?>> <<아니, 잠간 눈을 부쳤댔다. 휴~, 너의 어머니… 정말 고생도 수없이 했지. 남부럽지 않게 살겠다고 한국에 나가 악착스럽게도 일하더니…>> 아버지께서 뒤말을 흐리우며 머리를 숙였다. 꺽 하고 목이 메여오는 모양이였다. 군이도 따라서 가슴이 뭉클해왔다. 눈굽이 젖어들기 시작했다. 군이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머리를 숙였다. 아버지께서 직접 군이에게 이 같은 말을 하기는 이번이 처음이였다. 아버지의 목소리에는 어머니에 대한 미안함과 무한한 고마움이 반죽되여있는듯싶었다. 군이는 이처럼 진정으로 마음속의 이야기를 할수있는 아량을 가지신 아버지가 참 멋지다고 생각했다. 접때 승화때문에 잠시나마 아버지를 의심해본 자신이 아버지에게 미안하다고 생각되였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이 깊으신 아버지를 의심해서 어머니에게 나쁜 말을 전한 누군지 모를 그 사람도 미워졌다. 군이는 무슨 말로 아버지를 위로해 드려야 할지 가슴이 답답하기만 했다. 심양으로 가는 기차는 점심 11시25분에 있었다. 군이는 선생님께 말미를 맞고 부랴부랴 기차역으로 나갔다. 아버지께서는 아침에 학교에 가는 군이를 보고 시름놓고 공부나 잘 하라고 하셨지만 군이는 좀처럼 아버지를 혼자 떠나보낸다는게 가슴에 걸려 진정을 할수가 없었다. 역전에는 할머니도 와 계셨다. 할머니께서는 아버지의 옆에 서서 찔끔찔끔 눈굽을 찍으셨다. <<할머니, 언제 오셨어요?>> 군이는 조용히 할머니 옆으로 다가섰다. 군이를 발견한 할머니는 끝내 소리내여 꺼이꺼이 울음을 터뜨렸다. <<군이야, 아이고, 내 새끼야!>> 사람들의 눈길이 할머니의 몸에 와 멈췄다. 그러건 말건 할머니는 군이의 어깨에 몸을 맏기며 흐느끼기 시작했다. 군이는 으스러지게 할머니를 껴 안았다. 순간 군이는 할머니의 몸이 참 왜소하다고 생각되였다. 어릴적 할머니의 등에 엎혀 옥수수 밭으로 가며 투정을 부릴 때 엉뎅이를 다독여 주시던 그 할머니가 아닌듯싶었다. 군이는 할머니의 얼굴을 오래도록 응시했다. 검버섯이 가담가담 돋아난 할머니의 얼굴에는 세월을 말해주는듯 얼기설기 주름살들이 패여있었다. (할머니가 울고계신다. 돈을 벌어 잘 살아보겠다고 이국 타향에서 악착같이 일하다가 변을 당해 의식을 잃고 누워있는 며느리를 그리며 꺼이꺼이 울고 계신다). 군이는 할머니의 아픔이 심장으로 와 닿는듯했다. 군이는 울먹이며 말했다. <<할머니, 제가 있잖아요. 어머닌 인차 일어나실 거에요.>> <<고맙다, 군이야, 이렇게 잘 자라줘서 할미가 감사하다.>> 할머니는 소나무껍질같이 터실터실한 손으로 군이의 등을 다독여 주었다. <<어머님, 그만 하십시오.>> 아버지께서 흐느끼는 할머니를 군이로부터 떼여내고는 힘있게 두손을 꼭 잡아드렸다. 금방 쓸어질듯 갸냘픈 할머니를 내려다보시며 아버지는 어금이를 꽉 깨무셨다. 아픈 눈길만 보낼뿐 더 이상 말씀은 아끼고있었다. 아버지를 떠나보낸 군이는 그 길로 곧장 학교에 왔다. 운동장은 뽈을 차는 애들로, 술래잡기를 하는 애들로, 고무줄 뛰기를 하는 애들로 법썩거렸다. 세상에 근심걱정이란 없는듯이 웃고 떠드는 애들을 보면서도 군이의 마음은 좀처럼 가벼워지지 않았다. 오는 길에 내내 어머니와 아버지의 얼굴이 번갈아 눈앞에 떠올라서 도무지 감정을 정리할 길이 없었던 것이다. <<군이야~>> 어느새 군이를 발견한 미림이가 저쪽에서 뛰여오며 불렀다. 미림이의 얼굴은 기쁨 반, 근심 반으로 종잡을 수 없이 번져가고있었다. <<어디 갔댔니? 선생님께 물어봐도, 그저 일이 있어 청가를 맡았다고만 하시지, 어디 근심스러워 살겠니? 말도 없이…>> 미림이가 련주포를 쏘아댔다. 군이는 미림이를 향해 어색하게 입귀를 들어보였다. <<규호도 아까 나에게 묻더라. 네가 어디 갔는가구. 그래서 내가 되려 너에게 물어보자 했다고 말했지. 빨리 교실로 가자, 규호도 한창 근심하고있을 거다.>> 미림이는 군이를 재촉하며 앞에서 잰걸음을 놓았다. 군이는 말없이 미림이의 뒤를 따랐다. 군이가 들어서자 동학들의 눈길이 일제히 군이쪽으로 쏠렸다. 정말 모두들 무척이나 근심하는 눈치였다. 군이는 그러는 동학들이 참 고맙게 생각되였다. 순간 가슴속 저 끝으로부터 무언가 훈훈한것이 서서히 올리밀기 시작했다. 군이는 얼굴에 가벼운 웃음을 띄우고 누구에게라 없이 머리를 끄덕여 주었다. 규호가 바삐 군이의 곁으로 다가왔다. 얼굴에는 벌써 의문이 가득차있었다. 군이는 그러는 규호에게 얼굴을 돌렸다. 규호가 먼저 물었다. <<무슨 일이 있었댔니?>> <<어머니가 한국에서 사고를 당했대, 하여 아버지께서 어머니의 일을 처리하려고 오늘 한국에 가셨어.>> <<너의 어머니가? 어떤 사고를 당했는데.>> 규호의 목소리에는 순간 불안이 섞여 나왔다. 삽시에 동학들의 눈길이 다시 군이와 규호의 쪽으로 쏠렸다. 군이는 잠간 머뭇거리다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똑똑한건 모르겠는데, 어머니가 일하던 식당에서 액화가스가 터졌다나 봐.>> <<야!, 그럼 너의 어머닌 어떻게 되는 거니?>> <<몹씨 상했대?>> <<지금 병원에 있다니?>> 동학들이 근심에 찬 목소리로 다투어 물어왔다. 이때 출입문이 열렸다. <<얘들아, 안녕~>> 얼굴이 환하게 피여난 승화가 손에 큼직한 비닐봉지를 들고 교실에 들어섰다. 승화는 아직 교실안의 분위기를 파악하지 못했는지 손사래를 쳐댔다. <<미안미안, 오늘 오전에 울집에 큰 경사가 있었거든. 그래서 오전에 청가를 맡은거야.>> 승화는 자기의 자리를 찾아 책상우에 비닐봉지를 올려놓고는 계속 너스레를 떨었다. <<우리 아버지가 한국에서 돌아온거야. 나의 생일도 쇠주구, 소학교에서의 마지막 <6.1>절도 함께 보내면서 뜻깊은 추억을 만들어준다나? 히야~ 짐이 어찌나 많은지, 손에다 빼크(려행가방)를 두개나 들고, 또 세개나 화물로 부치구…>> 한참이나 고아대던 승화가 문뜩 가라앉은 교실의 분위기를 파악했는지 동학들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미림이는 벌써 눈살이 꼿꼿해서 승화를 쏘아보고있었다. 승화는 인츰 규호쪽에 머리를 돌렸다. 규호도 얼굴이 퍼렇게 부어가지고 승화를 노려보고있었다. 당금이라도 씽 하니 뛰여와 귀뺨이라도 올리부칠 태세였다. 승화는 <<아차.>> 하고 혀를 홀랑 내밀어 보이고는 자리에 앉아 옆자리에 앉은 짝꿍에게 머리를 돌렸다.. <<웬 일이냐? 반에 무슨 일이 있었니?>> <<군이 어머니가 한국에서 사고를 당했대.>> 옆자리에 앉은 짝꿍이 나지막하게 알려주었다. 승화의 얼굴이 대번에 굳어졌다. <<승화야, 축하한다. 좋겠구나. 아버지가 돌아와서.>> 군이가 무겁게 흐르는 분위기를 깨며 입을 열었다. <<군이야, 난 정말 몰랐다. 그런 줄을.>> 승화가 기죽은 목소리로 얼버무렸다. 군이는 애써 얼굴에 웃음을 띄웠다. <<아니야, 별 일 없을거야. 승화야, 너 가지고 온게 뭐니? 그 비닐주머니 안에 있는게 말이다.>> 군이가 승화의 책상우에 놓여진 비닐주머니를 가리키며 물었다. 승화의 얼굴에 금방 웃음기가 돌았다. 승화는 벌떡 일어나 비닐봉지를 헤쳤다. <<이게 울아버지 직접 한국에서 사가지고 온 사탕이다. 너희들을 먹어보라고 가져왔다.>> 승화가 비닐주머니를 먼저 군이의 앞으로 가져갔다. <<군이야, 먹어봐, 영~ 맛있더라.>> <<그래? 와~ 한국사탕맛을 보자.>> 군이가 일부러 목소리를 높이며 비닐주머니안에서 사탕을 한줌 꺼냈다. <<많이 먹어라. 많이 가져왔거든.>> 승화는 차례로 동학들 앞을 돌려 비닐주머니를 벌리고 사탕을 집어내게 했다. 동학들의 얼굴에는 차츰 웃음기가 돌았다. 학급간부회의까지 끝나서야 군이는 하학길에 올랐다. <<6.1>>절맞이주제반회의 시간이 가까와 오기에 동학들의 발언준비가 어떻게 되였는지를 검사하라고 담임선생님께서 포치하셨던것이다. 담임선생님께서는 이번 주제반회가 소학교에서의 마지막 주제 반회가 될지도 모르기에 회의시간이 좀 길어지더라도 모든 동학들이 다 발언을 할수있게 하라고 특히 강조를 하셨다. 간부들은 분조 별로 한사람씩 책임을 지고 준비정황을 조사해보기로 했다. (소학교를 졸업하면서 가장 하고 싶은 말! 과연 내가 가장 하고싶은 말은 무엇일가?) 군이는 속으로 자기에게 물어보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6.1>>절이 명절로 머리속에 자리를 잡던 그때로부터 군이는 은근히 <<6.1>>절이 기다려졌다. <<6.1>>절이 오면 아버지, 어머니는 어떤 일도 제쳐놓고 군이와 함께 공원으로 가군했다. 열살나던 해 <<6.1>>절날, 군이는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공원에서 처음으로 공중렬차를 타보았다. 아스라니 높은 공중레루우에서 렬차를 타고 질주하며 군이는 아버지의 품에 꼭 안겼다. 어머니는 그 장면을 부지런히 필림에 담으며 행복하게 웃고 계셨다. 그것이 아버지, 아머니와 함께 보낸 마지막 <<6.1>>절이였다. <<군이야~>> 교실에서 나와 금방 대문을 나서자 군이는 누군가 자기를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군이는 본능적으로 소리나는 쪽에 머리를 돌렸다. 승화가 손을 흔들고있었다. 군이는 웬 일이냐는듯 승화를 바라 보았다. <<같이가자구 기다렸다. 군이야.>> <<그래?>> 군이는 승화의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승화가 군이를 보고 히쭉 웃고있었다. <<우리 같이가자. 내가 너네 집부근까지 가서 우리집 방향으로 가는 차를 타면 되니까.>> <<웬 일로 그렇게 돌겠니?>> <<그냥 그러고 싶어서. 그리구 이걸…>> 승화는 쑥스러운듯 가방에서 정교하게 포장한 선물을 꺼내여 군이에게 건넸다. <<뭔데? 나를 주는거니?>> <<응, 울아버지 한국서 가져온거야, 만년필하구 원주필.>> <<이렇게 좋은 걸 내가 어떻게 가지니? 싫어, 네가 뒀다가 써라.>> <<아니야, 내겐 또 있다. 너에게 주고싶어서 그런다. 받아라.>> 기어코 선물을 넘겨주는 승화의 얼굴은 자못 진지해있었다. 군이는 그러는 승화의 진정을 물리치는것이 저으기 미안스럽게 생각되였다. <<승화야, 고맙다.>> <<아니야, 군이. 내가 네게 더 고맙지 뭐.>> 승화가 제법 얼굴까지 붉혔다. <<네가 아니면 이번에 정말 엄마하구 화해를 못하고 밖에서 헤맬번 했다. 그날은 정말 가출하구 싶었거든.>> <<가끔 그럴 때도 있는거지 뭐. 아버지가 돌아왔으니 얼마나 좋겠니?>> 군이는 걸으면서 승화쪽에 얼굴을 돌렸다. 승화를 바라보는 군이의 눈길에는 진정 승화에 대한 부러움이 가득 담겨있는듯 싶었다. <<군이야, 엄마가 아파서 어쩌겠니?>> 승화의 목소리에는 어딘가 근심이 어려있었다. 군이를 위해 함께 아픔을 감당해 주고싶다는 승화의 진정이 물씬 풍겨왔다. <<어쩌겠니? 방법이 없지 뭐. 하지만 인츰 좋아질거다, 아버진 한국의학이 발달해서 괜찮을 거라고 했어.>> 군이가 낮은 목소리로 승화를 건너다 보며 말했다. <<너의 아버지가 한국에 갔다니까 참 잘됐다. 너의 아버지가 옆에 계시면 너의 어머닌 더 힘을 낼거야.>> 승화는 군이를 보며 힘있게 주먹을 흔들어 보였다. 군이는 승화의 말에서 어딘가 묘한 기분을 느꼈다. 지난번에 있은 <<아버지의 데이트>>사건이 떠올랐다. 군이는 피식 웃으며 승화를 보고 물었다. <<어때? 너의 어머닌 지금도 편집선생님들을 만나러 자주 나가니?>> <<아니야, 차수가 많이 줄어들었어. 생각해보니 그런거지 뭐, 어머니도 아버지가 없으니 집에 혼자 있기 싫었겠지. 그래서 그냥 놀러다니기는 미안하고 하니까, 편집선생님들을 만나러 다닌다고 했겠지 뭐.>> <<히히히, 승화야 너 오늘 무척 헴이 든것 같다.>> 군이가 승화에게 오른 눈을 찡긋해보였다. <<쳇, 나도 너 같은 14살이다. 너만 14살을 먹었나 하니?>> <<그래, 14살, 참 재미나는 나이지. 다 큰것같으면서도 그게 아니구, 다른 사람들이 우릴 어리다고 하면 또 맘속으로는 다 커버린것 같아서 듣기가 불편하구.>> <<선생님이 그랬잖아, 14살의 하늘은 심술많은 아낙네의 얼굴같다구. 금방 맑았다가두 또 금방 벼락이 쏟아지는 심술많은 아낙네의 얼굴 같다구말이야. 히히히…>> 승화가 키드득 웃음을 터뜨렸다. 군이도 승화를 따라 소리내여 웃었다. <<승화야, 오늘 보니 너, 제법 시인감이 잖아, 그래, 너 어머니를 닮았구나.>> <<뭐야?>> 승화가 군이를 보며 곱게 눈을 흘겼다. 파출소에 잡혀가던 그 날의 한장면이 떠올랐던것이다. 승화는 또 한번 키드득 웃으며 군이를 향해 손바닥을 펼쳐들었다. <<군이야, 아자!>> <<고맙다. 승화야!>> 군이는 승화의 손바닥에 자기의 손바닥을 힘있게 부딛쳤다. 순간 군이는 승화에게서 전에 없던 감동을 느끼고있었다. 둘은 마주보며 씽긋 웃었다. 둘은 힘있게 인파를 헤집고 앞으로 걸어갔다. 가는 사람 오는 사람, 모두들 무슨 일이 그렇게도 바쁜지 서로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제 갈길만 재촉하고있었다.
4    미움이란 없다 댓글:  조회:1807  추천:0  2010-03-10
미움이란 없다 승화의 생일파티가 끝난것은 오후 2시무렵이였다. 군이와 친구들은 승화 아버지의 배웅을 받으며 승화네 집에서 나왔다. 규호는 자기가 승화의 생일파티에 초대를 받은것이 못내 감격스러워 무시로 벙글거리고있었다. 미림이는 그러는 규호를 재밌다는듯 바라보며 까르르 입을 열었다. <<규호야, 너 오늘 벙어리 례단 받은 거야?>> 규호가 시무룩히 웃으며 대답했다. <<그럴수 있지. 히히히히. 쩍하면 답새겨 놨는데, 승화가 무슨 생각하구 나까지 초대했을가? 히히히히… 초대하지 않았다가 내가 알면 재미 없을것 같았던 거지, 흥! 아마 그래서 일거야.>> 규호의 말을 들으며 미림이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있었다. 평소 규호가 승화를 살갑게 대해주지 않는다는것은 동학들 누구나가 다 아는 사실이였기 때문이다. <<승화, 그 애가 전화번호를 잘못 누른게 너한테로 갔겠다.>> 미림이가 짐짓 규호의 비위를 긁어댔다. 과연 미림의 말에 규호가 목소리를 높이며 반박했다. <<이것 좀, 모르면 입을 다무시죠, 난 전화를 받은게 아니라, 어제 오후 하학할 때 벌써 기별을 들었다. 승화가 직접 자기의 생일파티에 꼭 와달라구 하더라.>> <<정말? >> <<두말이면 잔소리지.>> 규호가 씨뚝해서 대답했다. <<이상한데, 아마도 승화, 그애가 너에게 사탕폭탄을 던지는것 같다.>> 미림이가 얼굴에 묘한 웃음을 띄우며 규호를 향해 까르르 웃어보였다. <<이 렴치없는것들아, 방금 생일파티에 가 잘 대접받구 나오면서 그건 왜 씹구있니? 승화에게 미안하지두 않아?>> 군이가 얼굴에 웃음을 날리며 악의 없이 핀잔을 주었다. 그 바람에 규호도 미림이도 우습다고 깔깔 소리내여 웃어제꼈다. <<욕을 먹어도 그렇게 좋니? 웃는걸 봤으면… 근데 규호야, 너 오늘 왜 늦었니?>> 청년공원 대문을 지나며 군이가 말머리를 돌렸다. 오늘 승화의 생일파티에 규호가 약속 시간보다 반시간이나 늦게 도착했던것이다. 군이의 물음에 규호는 깜짝 놀라는듯싶더니 잠간 군이와 미림이의 얼굴을 일별했다. <<그럴 일이 있었다. 우리 공원에 들어가 앉을가?>> 해맑던 규호의 얼굴에 옅은 구름이 스쳤다. 군이와 미림이는 가볍게 규호를 향해 머리를 끄덕였다. 규호가 먼저 공원안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라일락이 탐스럽게 피여난 오솔길섶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자갈돌을 예쁘게 깔아놓은 오솔길 아래에는 아담한 인공호수가있었다. 인공호수에서는 빠알간 금붕어들이 자유롭게 헤여놀았다. 양뿔머리를 한 예쁘게 생긴 녀자애가 엄마의 손을 잡고 금붕어를 구경하고있었다. <<엄마, 금붕어도 엄마가 있나?>> 녀자애가 까아만 두눈을 깜빡이며 어머니에게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물었다. 어머니의 얼굴에 금방 웃음꽃이 피여났다. <<금붕어도 엄마가 있지. 금붕어 엄마는 한번에 예쁜 금붕어새끼를 여러마리 낳는단다.>> <<그럼 저 금붕어들은 다 쌍둥이겠네.>> 녀자애가 또 금붕어를 가리키며 종알거렸다. 그바람에 녀자애의 어머니도 웃고 군이네도 웃었다. <<얼마나 귀엽니?>> 미림이가 속삭이듯 말했다. <<좋을 때지… 근심도, 걱정도 없구, 아마도 저 녀자앤 이 세상이 다 금붕어처럼 빠알갛게 보일거다.>> <<하하, 요즘은 웬 일들이야. 너희들 모두가 시인이 되는 기분이다.>> 군이가 규호의 어깨를 툭 치며 웃었다. 규호는 머리를 돌려 군이를 바라보더니 옆에서 작은 돌멩이 하나를 주어 호수에 뿌렸다. <<오늘 갔어. 아까 기차역에 나갔다 오느라고 늦은거야.>> 규호의 말에 군이는 일시 갈피를 잡지 못해서 되물었다. <<누가 갔니?>> <<어디로 갔기에?>> 미림이도 한술 떴다. 규호는 다시 한번 작은 돌멩이를 주어 호수에 던져 넣으며 입을 열었다. <<우리 어머니라는 사람이 영~ 가버렸다.>> <<아,>> 군이가 신음비슷한 소리를 냈다. <<어머니라는 사람이라니? 그런게 어딨니? 어머니면 어머니구 아니면 아닌거지.>> 미림이가 규호의 곁으로 한뼘 다가 앉았다. <<떠난다고 전화가 왔더니?>> <<아니, 지난 목요일에 아버지와 어머니는 리혼수속하러 갔었어, 떠나면서 말하는거야, 리혼수속이 제대로 되면 토요일에 북경으로 들어간다구. >> 규호는 잠간 말끝을 맺고는 두손으로 땅을 짚고 머리를 쳐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가슴이 갑갑해나는 모양이였다. 그때까지도 무슨 영문인지를 확실하게 모르고있는 미림이는 분위기를 보니 끼여들 틈이 보이지 않아서 참견은 못하고 그저 규호만을 이윽토록 바라보았다. <<그래서 오늘 역전에 나갔댔구나. 잘했다.>> 군이가 진심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군이야, 너두 그렇게 생각하니?>> 규호가 군이에게 눈길을 돌렸다. 촉촉히 젖어오르는 규호의 눈길에는 많은 이야기가 담겨져있는듯싶었다. 군이는 규호를 향해 말없이 무겁게 머리를 끄덕여보였다. 규호는 감격어린 눈으로 군이를 바라보았다. 언제나 진심으로 자기를 리해해주고 믿어주는 군이를 두고 규호는 마음속으로부터 감격해 하는 모양이였다. 규호가 말을 이었다. <<첨엔 역전에 나가지 않으려고 생각했었다. 어머니를 증오하기까지 했거든. 근데 어머니가 떠나겠다는 날이 가까와 올수록 마음이 불안해나는거야. 그래서 그냥 어떤 모습을 하구 떠나는가를 보기나 하자구 나가기로 했지.>> <<너의 어머니가 아버지와 리혼하구 다른 데로 간거니?>> 미림이가 끝내 궁금증을 참지못하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규호는 미림이에게 머리를 끄덕여보였다. 미림이가 안스러운듯 젖어든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일이 있었구나. 그런 아픔이 있었구나.>> <<어머니는 혼자 대합실밖에서 서성거리고있더라. 어머니는 나를 보더니 엎어질듯 달려오는거야. 와서는 나의 목을 끌어 안고 마구 울기 시작하는거야.>> 군이도 미림이도 조용히 규호의 눈길을 지켜 봐 주었다. <<첨엔 그냥 말못할 반감이 생겨서 어머니의 품을 벗어나려고 몸을 비탈았지. 그럴수록 어머니는 더 으스러지게 나를 껴안는거야. 도무지 뺄수가 없었어. 난 어머니에게 그런 강한 힘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거든. 그래서 어머니에게 그냥 몸을 맞겨버렸어. 어머니는 오래도록 말 한마디 못하고 울기만 하는거야.>> 규호는 잠간 하던 말을 줄이고 다시 머리를 쳐들었다. 눈길은 어느새 저 하늘을 떠가는 구름송이에 가 멎어있었다. 유유히 떠가는 구름쪼각과 함께 규호의 젖어버린 눈길도 어디론가 흘러가고있었다. 어쩜 흘러가는 구름에서 어머니의 흔적을 찾아내려고 집착하는것 같았다. 미림이는 또 다른 규호를 보는것 같았다. 평소 말없이 있다가는 엉뚱한 일들을 깜짝깜짝 벌려내는 우직한 규호의 마음속에도 14살 소년의 여리디 여린 감성이 숨어있음을 보아낼수있었던것이다. <<그럼 어머닌 영 떠나버린거니?>> 미림이가 규호를 향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렇겠지뭐, 어머니는 나를 붙들고 한참이나 울기만 하다가 한마디 하더라. 나에게 미안하다는거야. 그말을 남긴후 어머니는 손으로 얼굴을 싸쥐고 대합실로 뛰여들어갔어. 따라 들어가보니 어머니네 식구들이 모두 나와 있더라. 어머니가 도망간후 한번도 본적이 없는 사람들이였지. 서로가 어색한 기분이여서 뭐라고 말할것도 없구, 난 개찰구에까지 나갔댔어. 기차가 떠나갈 때까지 바라보았지. 그때까지 울고있는 어머니가 차창으로 보여왔어.>> <<규호야, 너의 어머닌 너를 고맙게 생각할거다. 아무래도 떠나는 사람인데 좋은 추억을 가지고 떠나게 하는게 얼마나 좋니? 너 오늘 잘 나간거야.>> 군이가 규호의 손을 으스러지게 잡아주었다. 규호는 고맙다는듯 머리를 끄덕였다. <<인젠 어머니를 증오하지 않기로 했다. 증오해서 뭘해. 필경은 나를 키워준 분인데. 어디 가서든 잘 살면 좋은거지 뭐. 인젠 나에게서 어머니에 대한 미움이 없어졌어. 그래 미움이란 없는거야.>> 애써 담담한체 목소리를 가다듬는 규호의 얼굴은 빠알갛게 피여오르고있었다. <<그럼 너의 아버진 어쩌니?>> 미림이가 근심스러운듯 물었다. <<울아버지?>> 규호가 짤막히 되물었다. 미림이가 여전히 정색해서 머리를 끄덕였다. <<새 장가보내지무. 난 꼭 울아버지를 다시 장가 보낼거야.>> 규호가 신심에 차서 이야기를 했다. 군이는 열띈 목소리로 열변을 토하는 규호를 이윽히 바라 보았다. <<우리 아버지, 인젠 정말 행복해야 해! 난 아버지보구 새 어머니를 데려오라고 말하겠다. >> 규호의 목소리에는 힘이 들어가있었다. 절대 롱담이 아닌것 같았다. <<규호야, 너, 지금은 녀자들이 안 밉니?>> 군이는 피뜩 떠오르는것이 있어 규호에게 짤막하게 물었다. 규호가 후~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몰라, 하지만 우리 아버지에겐 녀자가 있어야 해. 누군가 옆에 있어야 울아버지가 행복할수있을거야. 외롭지 않을거야.>> <<옆에 네가 있잖니?>> 미림이가 끼여들었다. <<아니야, 울 아버진 나에게 고생스럽다는 말을 안하셔. 내 앞에서 아버진 그냥 강한체만 하거든. 나는 그게 아닌줄을 안지 오랜데.>> 그말을 들으며 군이가 정곡을 찔렀다. <<아버지만을 위해서 새 어머니를 모시겠다는거니? 넌 새 어머니가 필요없구?>> <<내가? 나라면 문제가 달라지지. 난 정말 녀자가 싫거든, 으~ 생각만 해도 불안해나거든.>> <<그럼 장가는 어떻게 갈건데?>> 미림이가 피씩 웃음을 날리며 바투 들이댔다. 규호도 피씩 따라 웃더니 말했다. <<누가 장가를 간댔어? 난 독신주의야, 울아버지의 삶이 산 교재로 날 그렇게 가르치는데? 죽어도 난 울아버지처럼은 안 살거야. 녀자들, 헤잇, 어떻게 믿어.>> 규호는 또 무언가 격한 감정이 치미는지 조약들을 주어 호수에 던졌다. 돌은 수면에 커다란 원을 그리면서 잔잔한 파문을 일어갔다. 미림이는 잠간 퍼져가는 파문을 지켜보다가 말했다. <<독신주의는 무슨 얼어죽을 독신주의야? 난 커서 좋은 남편을 만나 아들 낳구, 딸두 낳구, 잘 살고싶은데.…>> 오손도손 가정을 이루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자기의 미래를 그려보는지 미림의 얼굴에는 달콤한 미소가 퍼져가고있었다. 규호가 그러는 미림이에게 찬물을 껴얹었다. <<시집 좋아하고있네. 너같이 드살짝이 센 계집애를 어느 남자가 데려간대? 수호전의 흑선풍 리규나 환생하면 모를가? 크크크…꿈을 깨라, 꿈을 깨!>> <<너 리규호!>> 미림이가 주먹을 메고 달려들었다. 규호가 벌떡 일어나 뛰여가며 소리쳤다. <<시집간대요~ 시집간대요~>> 군이도 그들을 따라 일어섰다. 미림이는 종주먹을 쥐고 규호를 쫓아가고있었다. 규호의 건들건들한 목소리가 차분한 5월의 해살을 헤치며 바람에 날려왔다. <<시집간대요~ 시집간대요~ 말괄량이 미림이가 시집비유 났대요~>> 규호와 미림이는 깔깔 거리며 저쪽까지 갔다가는 돌아오고 돌아왔다가는 또 뛰여가며 시름 없는 한순간을 즐기고있었다. <<어머니를 증오하지 않기로 했다… 인젠 나에게서 미움이 없어졌어, 그래 미움이란 없는거야.>> 군이는 흥분에 들떠 이야기 하던 규호의 목소리가 방불히 귀전을 스치는듯싶었다. 미움을 긁어버린 14살 소년의 마음속 끝자락에서 아지랑이처럼 피여오르는 맑은 향기가 바람에 날려오는듯싶었다
3    크면서 깨치면서 댓글:  조회:1562  추천:0  2010-03-10
크면서 깨치면서 <<얘들아, 얘들아, 들었니? 최신 소식이다.>> 문소리와 함께 승화가 교실로 뛰여 들어오며 소리쳤다. 승화는 숨이 차서 헐떡거리고있었다. 얼굴은 방금 뛰여와서인지 빨갛게 상기되여있었다. 하지만 동학들은 별로 궁금해하는 눈치를 보이지 않았다. 승화에게는 노상있는 행동이였던것이다. 아니나 다를가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승화쪽에서 되려 숨기지못하고 내용을 방송했다. <<방금 내눈으로 똑똑히 봤다. 은경이, 은경이가 걔 어머니와 함께 교무실에 들어가더라.>> 승화는 손까지 흔들며 기본내용을 다 전달하고는 어떠냐 하는듯 동학들을 빙~ 둘러보았다. 삽시에 동학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은경이가 어떻더니? 몸이 몹시 축했더니?>> 누군가 승화에게 물었다. <<아니야, 내 보기엔 원래 보다 더 실해진것 같았어. 음~ 원래 미츨한 장미였다면 지금은 푹 퍼진 함박꽃이라 할가?>. 승화가 두 손으로 활짝 핀 함박꽃을 그려보이며 신비하게 두눈을 껌뻑거렸다. <<자식, 함박꽃 좋아하네. 암튼 꽃이면 되는거지 뭐.>> <<은경이가 마음고생을 무지도 했을 거다.>> <<그래, 얼마나 힘들었으면 자살하려고까지 했겠니?>> 동학들이 은경이를 두고 걱정을 하고있을 때 출입문이 열렸다. 담임선생님의 뒤로 은경이가 따라 들어왔다. 승화의 말대로 은경의 얼굴은 퉁퉁 부어있었다. 전에 쩍하면 눈을 올롱하게 뜨고 <<그건 말이다…>>하고 서두를 떼던 도고하고 깔끔하던 은경이가 아니였다. 동학들은 측은한 눈길로 은경이를 바라보았다. <<은경이, 제자리에 가서 앉아라.>> 담임선생님께서 <<제자리>>라는 말에 힘을 주었다. 은경이는 머리를 수긋한채로 두번째 줄 세번째 책상을 찾아 들어갔다. 바로 미림이의 뒤자리였다. 은경이는 미림이의 옆을 지나다가 책상우에 놓인 미림이의 필기장을 팔로 쳐서 땅에 떨어뜨렸다. 툭! 하고 가벼운 소리가 났다. 은경이는 와뜰 놀라며 그 자리에 멈추어 섰다. <<괜찮아. 은경아.>> 미림이가 허리를 굽혀 필기장을 주으며 상냥스럽게 말했다. 갑자기 은경이가 미림이의 손에서 필기장을 나꿔채서 책상우에 콱 하고 던졌다. <<괜찮다구? 속에 없는 말을 하지 말아! 내가 모르는 줄 아니?>> 은경이의 너무나도 신경질적인 반응에 미림이는 깜짝 놀라서 멍하니 은경이를 건너다 보았다. 은경이의 눈은 이글이글 타고있었다, <<미안, 은경아. 책이 떨어지는거야 늘 있는 일이지 뭐. 정말 괜찮아.>> 미림이가 애써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말했다. 그러건 말건 은경이는 자기의 자리에 가서 앉더니 책상에 머리를 틀어박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내가 이럴줄 알았어. 이럴줄을 알았다니까. 너희들 원래 부터 날 미워하고있었지? 그래, 날 눈에 든 가시처럼 미워했던거야.>> 동학들은 모두들 숨을 죽이고 은경이를 지켜보았다. 조용한 교실에서는 은경이의 흐느낌소리만이 구슬프게 울려퍼졌다. 잠자코 은경이를 지켜보고있던 담임선생님께서 조용히 은경이의 곁으로 다가갔다. <<은경아!>> 담임선생님께서 은경의 어깨를 다독이며 나지막하게 불렀다. 은경이는 화들짝 놀라며 머리를 쳐들었다. 은경의 눈에는 공포와 증오와 애절함이 섞여서 흐르고있었다. <<은경아, 마음을 넓게 가지고 옛날처럼 동학들을 대해라, 동학들은 언제나 은경의 편이란다.>> 담임선생님께 은경의 어깨에 부드럽게 오른손을 올려놓으며 말씀하셨다. 은경의 입가에 경멸에 찬 웃음이 찰랑 스쳤다. <<아닌데요. 얘들은 모두가 위선자들이예요. 뒤에서 모두들 내가 죽었으면 했을 거에요. 내가 죽지않고 돌아오니 심술이 나 하는 거예요.>> 은경이가 동학들을 쏘아보며 이사이로 한마디한마디 내뱉었다. 은경이의 목소리는 소름이 끼칠 정도로 동학들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은경아, 그렇게 생각하지 마라, 제발. 우린 모두 네가 빨리 회복되기를 손꼽아 빌었단다. 이건 진심이야.>> 미림이가 머리를 돌리며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또박또박 말을 이었다. 갑자기 은경이가 <<악!>> 하고 소리치며 일어났다. <<이 여우같은년, 마귀같은 년! >> 은경이는 와락 달려들어 미림이의 머리칼을 잡아챘다. 미림이는 <<악!>> 하고 비명을 지르며 두손으로 자기의 머리를 움켜잡았다. 담임선생님께서 힘껏 은경이의 팔을 잡아당겼다. 은경이는 미림이의 머리칼을 놓지 않으려고 바락바락 힘을 썼다. <<은경아, 이러지 말어, 은경아!>> 담임선선생님께서 미림이의 머리칼을 잡은 은경이의 손을 뜯어내며 급하게 소리쳤다. <<은경아, 이러지 말어. 이러면 너만 더 힘들어지잖니?>> 군이가 뛰여가서 담임선생님을 도와 은경이의 손을 뜯어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은경이는 드디여 미림이의 머리칼을 잡았던 손을 풀었다. <<너희들, 조심해라. 다 없애버리고 말겠다. 다 없애버려!>> 은경이는 누구에게라 없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더니 가방을 확 나꿔채가지고 휑~하니 밖으로 나가버렸다. <<은경아, 잠간만.>> 담임선생님께서 은경이를 따라 나가며 애타게 소리쳤다. 망가져가는 제자를 바라보는 선생님의 마음이 찢기는 순간 같았다. 담임선생님의 목소리는 안타까움에 파르르 떨리고있었다. 뛰여나가는 담임선생님을 멍하니 바라보던 미림이가 갑자기 얼굴을 싸쥐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꺽꺽 하는 울음소리는 그렇게도 슬프게 고요한 교실을 녹이고있었다. 은경이가 뇌과병원 정신과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전한 사람도 승화였다. 교무실 앞을 지나다가 은경이 어머니가 담임선생님과 이야기하는 소리를 엿들었다는 것이였다. 누구하나 뭐라고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 모두들 머리를 수긋하고 책만 들여다보았다. 도무지 서로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갈피를 잡을수가 없었다. 담임선생님께서 하루 총결을 지으며 은경이에 대해서 말씀해서야 승화의 말이 사실임이 증명되였다. <<선생님, 이번 주 토요일에 저희들이 은경이를 보러 가겠습니다.>> 군이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담임선생님께서 머리를 끄덕이셨다. <<그래, 너희들의 진정으로 은경의 얼어버린 마음을 녹여줘라. 지금 은경이에게 제일 수요되는 약은 아마도 너희들의 진정일것이다.>> 담임선생님께서는 말을 마치고 동학들을 바라보았다. 선생님의 눈길이 강한 빛을 뿜고있었다. 군이는 선생님의 타는듯한 그 눈길을 보면서 갑자기 목이 메여왔다. 담임선생님이 녀자분이라면 어떨가 하는 생각이 야릇하게 머리를 스쳤다. 군이는 담임선생님께서도 지금 속으로 눈굽을 찍을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천천히 눈굽에 주먹을 올렸다. 담임선생님께서는 불깃불깃한 눈으로 묵묵히 교실을 나갔다. 하지만 동학들은 누구하나 일어날 념을 하지 않았다. 군이가 조용히 교단에 올랐다. <<얘들아, 토요일까지 하루가 남았구나. 하루 동안 은경이에게 보낼 선물을 준비하자. 물건으로가 아니라 저마다의 진정으로 말이다. 은경이가 마음이 편할 때 볼수있게 편지를 한통씩 쓰는게 어떻겠니? >> 군이는 동학들에게 고마운 눈길을 보냈다. <<소학교에서의 마지막 <6.1>절맞이주제반회도 얼마 남지않았다. 아마도 은경이는 이 주제반회에 참가할수 없을것 같구나. 어느 순간, 은경이가 우리들의 편지를 보고 자기의 마음을 적을수있다면 얼마나 좋겠니? 6년동안 함께 했던 우리의 우정을 소학교에서의 마지막 주제반회에서 진실하게 이야기 할수있다면 얼마나 좋겠니? 우리 함께 은경에게 힘을 주자.>> 누군가 먼저 조용히 박수를 쳤다. 삽시에 교실에서 우뢰와 같은 박수소리가 터져올랐다. 군이를 비롯한 몇몇 학급간부들이 동학들의 편지를 가지고 뇌과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토요일 오후 3시경이였다. 은경이는 2층 병실에 입원해있었다. 군이는 복도를 걸으면서 창문으로 병실안을 들여다보았다. 환자복을 입은 사람들이 병실안을 분주히 거닐고있었다. 은경이는 214호 방에 들어있었다. 네사람이 한방을 쓰고 있었는데 모두 은경이보다 나이가 많아 보였다. 호사가 문을 떼고 들어서며 은경이를 불렀다. <<친구들이 널 보러왔다. 은경아.>> 멍하니 벽을 마주한채 동상처럼 앉아있던 은경이가 군이네를 향해 머리를 돌렸다. 눈길은 여전히 굳어진채로 초점이 없었다. <<은경아, 우리가 보러왔다. 동학들이 너에게 쓴 편지를 가지고 왔다.>> 군이가 은경의 옆으로 다가가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은경아. 정말 보고 싶었다. 너두 우리가 그리웠지?>> 미림이가 은경이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미림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던 은경이가 픽 웃어버렸다. <<우리 아버지 부자다. 바쁜 일이 있으면 나에게 말해라. 다 해결된다니까.>> 미림이는 은경의 말에 뭐라고 대답할수가 없어서 담당호사에게 눈길을 돌렸다. 담당호사가 아무 일도 아니라는듯 은경이와 맞장구를 쳐주었다. <<은경이 참 좋겠다. 아버지가 부자 돼서. 은경아, 우리 빨리빨리 치료하구 나가야지? 아버지가 집에서 기다리는데.>> <<히히히히… 우리 아버진 감옥에 안간다. 우리 아버진 부자거든. 우리 아버지, 엄청 돈이 많거든. 우리 아버지 부자다…>> 은경이는 두서없이 주절거리고있었다. 군이네는 가슴아프게 은경이를 바라보다가 가방에서 가지고 온 편지들을 꺼내서 은경이에게 내밀었다. <<은경아, 보고싶을 때 봐라. 친구들이 널 그리며 쓴 편지란다. 모두들 네가 빨리 낫기를 기다리고있단다. 우린 한 반에서 공부하던 동창들이 아니냐? >> 은경이는 군이의 손에서 편지묶음을 받아 가슴에 꼭 가져다댔다. 초점없이 데글거리던 두 눈을 꼭 감았다. 감겨진 눈에서 구슬같은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리고있었다. 제 정신으로 돌아온걸가? 군이네는 긴장해서 담당호사의 얼굴을 살폈다. 담당호사도 군이네와 마찬가지로 은경이를 주시하고있었다. 갑자기 은경이가 손에 든 편지묶음을 담당호사 앞에 내밀며 애원에 차서 소리쳤다. <<이 돈을 다 드리겠습니다. 집을 팔아서라도 받은 돈을 다 물어드리겠습니다. 우리 아버질 감옥에 넣지 마세요. 네? 우리 아버지를 집에 보내주세요, 아버지~>> 은경이는 통곡하며 벽구석을 찾아 쪼크리고 앉았다.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당황한 눈길을 마구 날리고있었다. <<진정제주사를 맞고 한 잠 자게 해야겠다. 너무 흥분해서 저런다.>> 담당호사가 군이를 보고 말했다. 군이네는 묵묵히 은경이에게 손을 흔들어보이며 병실에서 나왔다. 긴 복도를 지나며 누구도 말이 없었다. 뚜벅뚜벅 발걸음소리만이 청승스럽게 긴 복도를 울렸다. <<참, 너무 잔인하다. 어쩜 은경이가…>> 밖으로 나오자바람으로 미림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누구를 탔하겠니? 은경이 아버진 응당한 벌을 받은거 잖아. 집을 팔아서 은경이 아버지에게 수속비를 낸 사람들도 많다던데…>> 누군가 미림의 말을 받았다. <<그래, 은경의 아버진 응당한 벌을 받았다고 하자. 하지만 은경인 저렇게 안 돼도 되잖니?>> 미림이가 흥분에 들떠 목소리를 높였다. 미림이가 어째서 그렇게 흥분하고있는지 군이는 은근히 알것같았다. 군이는 미림의 말을 긍정하며 자기의 생각을 털어놓았다. <<미림이 말이 맞아, 은경인 얼마든지 저렇게 안될수도 있었지. 하지만 은경이는 평소 자기의 아버지를 너무 믿었던거야. 우상처럼 믿던 아버지가 사고를 치니 일시 방향을 잃은거지 뭐. 생활의 방향이 없어지니 이 세상 무엇이나 다 무서워 보이고 자신 없어진거지.>> <<참, 난 그것을 리해하지 못하겠단 말이다. 유치원이나 1, 2학년 때라면 몰라도, 고급학년에 올라온 후에는 저절로 자기의 주장을 길러야 하는게 아니니? 생활에서 자기의 주장이 없다면 우리는 늘 누군가에게 의지하면서 살아야 하는거야. 평소에는 보호산이 있어서 큰 소리를 치며 당당한체 할수있어도 그 보호산이 없어지면 생활의 방향을 잃게되는거지. 은경이가 이 점을 더욱 잘 말해주잖아?>> 미림이는 마치도 온갖 세파를 다겪은 누나가 동생들을 가르치듯 오돌차게 자기의 뜻을 펼쳐나갔다. 군이는 알것같았다. 이것이 미림이의 진정이고 미림이가 가파로운 14살 인생길에서 배우고 깨친 인생의 철리라고 생각했다. 군이는 머리를 끄덕였다. 사람이란 아픔속에서 크고 크면서 살아가는 도리를 깨치는 것이라고 믿고싶었다. 깨치는 도리가 많을수록 세상을 살기가 더 쉬워질것이라고 생각했다. 군이는 머리를 건듯 쳐들고 앞을 향해 힘있게 발걸음을 옮겼다.
2    꿈꾸는 천사들 댓글:  조회:1969  추천:0  2010-03-10
꿈꾸는 천사들 군이는 잠결에 아렴풋이 들려오는 전화벨소리를 들었다. 꿈인가? 생시인가? 군이는 흐리터분한 잠길을 헤치며 힘겹게 눈을 떴다. 전화벨소리는 계속 울리고있었다. 군이는 간신히 일어나 수화기를 손에 들었다. <<군이니?>> 전화 저쪽에서 석쉼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아버지, 이른 새벽에 어쩐 일이세요?>> <<자는 걸 깨웠구나. 어머니의 일차 수술이 방금 끝났다. 얼굴에 화상이 심해서 먼저 덴 자리를 제거하고 새살이 돋아난 다음 2차수술을 해야한다는구나.>> <<어머니가 몹시 힘들었겠네요.>> 군이가 일어나 앉아 정신을 추스리며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전신마취를 해서 괜찮다고는 하더라만, 오늘 너희 반 주제반회가 있지? 수술이 끝나구, 시름이 활 놓이니 피뜩 생각나서 전화했다. 미안해서 어쩌니? 군이야.>> 군이는 이국타향에서 아픈 안해를 병실에 눕혀놓고 자식을 근심하는 아버지의 심정을 알것같았다. <<괜찮아요, 아버지. 시름을 놓으세요.>> <<소학교에서의 마지막 <6.1>절이라는게 얼마나 기념할만한 순간인데. 이런 뜻깊은 명절을 기념해서 조직한 주제반회에 참가하여 우리 군이를 응원해주자고 했는데. 참…>> 아버지께서 말끝을 흐리셨다. <<괜찮아요. 아버지, 할머니께서 학교에 오신다고 했어요. 아버지, 저 잘 할게요. 시름 놓으세요.>> 군이가 일부러 목소리에 힘을 넣어 말했다. <<그래 아버지는 믿는다.>> 군이는 아버지께서 밝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시느라 애쓰시는 모습을 보는듯싶었다. 오후 3번째 시간이 끝나서 나가보니 많은 학부모들이 벌써 복도에 와서 기다리고있었다. 평소에 얼굴이 익은 분들도 있고 초면인 분들도있었다. 군이는 그속에서 손쉽게 할머니를 발견했다. 군이는 할머니 옆으로 다가갔다 <<할머니, 일찍 오셨네요.>> <<군이야, 어쩌니? 다른 집에서는 여럿이 왔건만… 넌, 이 귀신 같은 할미밖에 없어서…>> <<괜찮아요. 할머니, 전 얼마든지 잘 할수있어요.>> 군이는 할머니의 손을 꼭 잡았다. 꺼슬꺼슬한 할머니의 손에는 온기라곤 없었다. 얼굴에 근심이 폭 담겨져있는 갸냘픈 할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군이는 손처럼 얼어있을 할머니의 마음을 보는듯싶었다. <<6.1>>절맞이주제반회는 오후 3시에 시작되였다. 학교의 령도선생님들이며 학부모들까지 참석을 하게 된데서 주제반회는 교실이아니라 학교의 다공능실에서 진행되였다. 교실보다는 2배나 큰 곳이였지만 발디딜틈이 없이 사람들로 붐볐다. 군이는 이번 주제반회를 위해서라도 마음을 크게 먹고 자기의 정서를 잘 조절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은경이를 제외한 48명의 동학들이 모두 주제반회에 참석했다. 운동복으로 된 하늘색 교복을 차려입은 동학들이 군이의 구령에 따라 먼저 학교 령도와 학부모들에게 대례를 올렸다. 교실에서는 우뢰와 같은 박수소리가 터져올랐다. 군이는 긴숨을 한번 들이쉬고는 천천히 또박또박 서두를 뗐다. <<6년전 우리는 엄마의 손에 이끌려 도심소학교라는 이 배움의 요람에 들어서게 되였습니다. 우리는 이 곳에서 아,야,어,여… 우리 글을 익혔고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수자도 익혔습니다. 키도 크고 마음도 컸습니다. 비록 그 사이 이 곳에서 크고 작은 일들도 많이 겪었지만 우리는 서로 보듬어 주고 이끌어 주면서 천사같은 예쁜 마음으로 아름다운 성장이야기를 엮어 놓았습니다.>> 군이는 잠간 말을 멈추고 동학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모두들 빠알갛게 얼굴이 상기되여 있는것이 흥분을 가까스로 누르는 모양이였다. <<소학교에서의 마지막 <6.1>절을 맞으며 우리는 가슴속 깊은곳에 간직해두었던 진정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자리를 마련하기로 했습니다. 그 이야기가 친구들사이의 우정에 대한 것이든지, 아니면 학교생활에서의 고민이든지, 그리고 또 가정생활로부터 오는 방황이든지. 이 모두가 우리들의 진정이라는것만은 믿어주십시오.>> 동학들은 순서대로 교단에 나가 소학교에서의 마지막 <<6.1>>절을 맞으며 가장 하고싶은 말들을 털어놓았다. 승화의 차례가 왔다. 승화는 벌써 좋아서 죽겠다는 표정이다. 입이 귀에 가 걸리고 원래 작은 눈이 거의 맞붙다싶이 되여버렸다. 교단에 오른 승화는 먼저 장내를 둘러보며 씩 웃음을 날리고는 학부모석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관중석에 앉아 있던 승화의 아버지와 어머니도 늦을세라 밝게 웃으며 승화에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규호도 연단에 올랐다. 그는 벌써 이마에 잔이슬이 번져가고 있었다. 규호는 주먹으로 이마의 땀방울을 쓱 닦고는 관중들을 바라보다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오늘 주제반회가 있다는것을 알고 아버지께서는 일하던 삼륜차를 그대로 끌고 여기에 오셨습니다. 평소 저는 말수가 적은 편입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한번도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하는 말을 못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여태껏 하지못했던 그말을 하고싶습니다. 아버지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규호는 주먹으로 눈굽을 찍으며 교단을 내려갔다. 강마른 몸매의 40대 사나이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규호는 아버지의 어깨를 꽉 끌어안았다. 아버지의 왜소한 어깨는 규호의 품에 채 차지도 못했다. 규호의 아버지는 뭐라고 한마디 말도 잇지 못하시고 눈시울만 붉혔다. 어금이를 꽉 깨물면서 규호의 볼에 수염이 꺼슬꺼슬한 자신의 얼굴을 연신 문다져주었다. <<아버지, 커서 꼭 아버지께 효도하겠습니다. 아버지, 믿어주십시오.>> 장내에서는 오래도록 박수소리가 이어졌다. 미림이도 연단에 올랐다. 미림이는 천천히 자리에서 누군가를 찾는듯싶었다. 미림의 눈길은 학부모님들 좌석의 두번째줄에 앉은 소박한 차림의 녀인한테 가서 멎었다. 미림의 입술이 파르르 떨리고있었다. 눈굽에 맑은 이슬이 맺히더니 두볼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렸다. 교실은 바늘 떨어지는 소리마저 들릴듯 고요했다. 관중들은 숨을 죽이고 미림이를 바라보고있었다. 미림이가 갑자기 피터지게 소리쳤다. <<엄마!>> 미림이는 교단을 내려 어머니를 향해 뛰여갔다. 어머니께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엄마!>> 미림이는 어머니의 품에 머리를 파묻고 주먹으로 어머니의 가슴을 팡팡 치더니 건듯 머리를 쳐들고 장내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이분이 저의 엄맙니다. 제가제일 제일 사랑하는 저의 엄맙니다.>> 미림이는 손으로 얼굴을 감싸쥐더니 엉엉 소리내여 울었다. 어머니는 세차게 파도치는 미림이의 어깨를 꼭 껴안아주셨다. <<여러분, 앞에서 여러 동학들이 말했듯이 <6.1>절을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즐겁게 보내려는것은 너무나도 소박한 소망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 학급의 대부분 동학들은 이런 소망마저 이룰수가 없습니다. 저도 그중의 한 사람입니다.>> 군이가 관중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벌써 옷섶으로 눈굽을 찍고 계시는 할머니가 뿌잇하게 군이의 눈에 안겨들었다. 군이는 천천히 입술을 깜빨고 아래 말을 이었다. <<이번 주제반회를 위해 저는 동학들속에서 한차례의 조사를 해보았습니다. 우리 반에는 현재 49명의 동학들이있습니다. 이중에서 아버지 혹은 어머니가 외국이나 큰 도시로 돈 벌러간 동학이 24명입니다. 그리고 아버지, 어머니가 리혼을 한 동학이 11명입니다. 그외 다른 원인으로 부모중 한분이 계시지 않는 동학이 2명입니다. 그러니 현재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생활을 하고있는 동학이12명밖에 되지 않습니다. 37명이나 되는 우리의 동학들이 아버지, 혹은 어머니를 부르며 그림움속에서 소학교에서의 마지막 <6.1>절을 보내야 합니다. 어머니, 보고싶습니다…>> 군이가 끝내 주먹으로 눈굽을 찍었다. 터지려는 울음을 가까스로 참으며 잘근잘근 입술을 씹었다. 동학들속에서 누군가 먼저 흐느끼기 시작했다. 삽시에 교실은 울음바다로 변해버렸다. 몇몇 녀학생들은 서로 목을 끌어안고 어깨를 들먹이기 시작했다. 주제반회는 무거운 기분속에서 끝났다… 군이네가 약속대로 뇌과병원 문앞에 모인것은 <<6.1절>>날 오후 2시경이였다. 군이는 먼저 핸드폰으로 지난번에 만났던 담당호사에게 련계를 했다. 생각밖으로 은경이의 정서가 오늘 매우 좋다는 것이였다. 담당호사가 은경이를 데리고 병원 정원으로 나왔다. 환자복을 입은 은경이는 그새 얼굴색이 파리하리 만침 창백해 있었다. 은경이는 작으마한 비닐주머니를 가슴에 꼭 껴안고 천진하게 까치뜀을 하며 달려왔다. <<은경아,>> 동학들이 은경의 앞으로 뛰여가며 반갑게 불렀다. 동학들을 알아보는지 은경이는 얼굴에 함뿍 웃음꽃을 피우며 초점이 없는 눈을 껌뻑이고있었다. <<은경아, <6.1>절을 축하한다.>> 동학들이 가지고 온 생화묶음을 은경에게 넘겨주었다. 은경이는 또 한번 벌씬 웃으면서 생화묶음을 받아들었다. <<나는 천사다, 나는 천사 됐다.>> 은경이는 말하면서 품에 안고 있던 비닐봉지를 군이에게 내밀었다. 군이는 은경이로부터 제꺽 비닐봉지를 받아들었다. 비닐봉지 안에는 수십개의 종이학이 들어있었다. <<나는 천사 됐다. 종이학을 내가 접었다. 학을 접으면 천사 된다.>> 은경이는 얼굴에 천진한 웃음을 띄우고 연신 중얼거리고 있었다. 담당호사가 설명해주었다. 지난번 군이네가 다녀간후 은경이는 심심하면 동학들이 보내준 편지를 침대우에 쫙 펴놓고 한장, 두장 세더라는 것이다. 하여 담당호사가 이 편지들로 은경이의 집중력을 키울수있지 않을가 싶어서 종이학을 접으면 천사가 되여 인차 병이 나을수있다고 일러주었던것이다. 과연 은경이는 담당호사의 도움밑에 날마다 종이학접기를 견지했다. <<많이 좋아 졌단다. 정서를 조절하고 약물치료를 견지한다면 조만간에 완쾌될수있을것 같구나.>> 담담호사가 기쁨에 겨워 말씀해주셨다. <<은경아, 힘내라, 넌 꼭 천사가 될거다. 그래, 넌 이미 천사가 된거야.>> 미림이가 은경이의 손을 꼭 잡으며 속삭였다. <<너두 웃어봐! 천사는 잘 웃는거래! 천사의 웃음소리는 하늘로 날아가는거래. 천사의 앞에는 마귀가 오지 못하는거래. 스마일~ 히히히히히…>> 은경이가 갑자기 소리내여 웃음을 터뜨렸다. 창백한 얼굴에 어울리지 않게 목소리는 그처럼 맑고 청아했다. <<그래, 우리는 이미 거뜬한 마음으로 새로운 출발을 시작하는 천사가 된거지!>> 군이가 머리를 끄덕이며 의미있게 말했다. 누군가 먼저 박수를 쳤다. 따라서 박수소리가 병원정원을 을 쩌렁쩌렁 울리며 퍼져나갔다. 저마다의 얼굴에 아름다운 미소가 피여나고있었다. 그랬다. 이들은 정녕 가슴속 밑자락에 묻어두었던 아픔도, 고민도, 비밀도 다 털어버리고 미궁과도 같은 사춘기를 헤치며 새로운 나래를 퍼덕이는 14살의 꿈꾸는 천사들이였다. (끝)
1    후기 댓글:  조회:1643  추천:0  2010-03-10
후기  저는 그들을 천사라 부릅니다. 그들은 천사의 하얀 날개만침이나 티없이 맑고 깨끗한 마음씨를 지닌 천진하고 귀여운 친구들입니다. 정말이지 그 하얀 마음에 오점이 묻을가 차마 가까이 하기도 주저되는 심정입니다. 그런 친구들이 아파하고있었습니다. 그들을 보는 저의 마음은 너무도 괴로왔습니다. 사람들은 요즘 중국조선족사회가 흔들리고있다고들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정든 고향을 등지고 외국으로, 대도시로 나가는 아빠들이, 엄마들이 날로 더 많아지고있습니다. 그들은 돈을 벌어서 내 자식도 남들 부럽지 않게 잘 살게 하련다고 말씀하십니다. 아빠, 엄마들이 정말 많은 돈을 벌어오기도 했습니다. 그만침 남부럽지 않게 물질상 부요를 누리는 친구들도 참 많습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우리 친구들이 아파서 우는것은 또 무엇때문일가요? 이것은 청소년들을 위한 텔레비죤프로를 만들어오면서 늘 제 마음에 걸리는 문제였습니다. 과연 우리 친구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있는지? 우리 친구들이 진짜로 바라는것은 또 무엇인지? 어느 한번 인터넷채팅을 통하여 <<슬퍼하는 왕자>>라는 아이디를 가진 열네살의 소년을 만난적이 있습니다. 소년은 엄마가 미국에 간지 10년에 난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엄마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는다며 소년은 무척이나 상심해 했습니다. 꿈에 어떤 녀인이 자주 나타나 <<엄마>>라고 자처하는데 그 녀인이 미워서 못살겠다고 소년은 말했습니다. 자식을 위해서 돈을 번다고 하는데 구경 <<내가 <6.1절>날 아빠 엄마의 손을 잡고 공원에 가는 애들을 바라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엄마가 알고있겠는가고 소년은 저에게 물어왔습니다. 소년은 자기의 가슴속에서 엄마는 지금 죽어가고있다고 말했습니다. 우리 천사들의 가슴속에서 엄마가 죽어가고있답니다. 이 얼마나 무서운 현실입니까? 요즘 우리 친구들은 정말 아파하고 있습니다. 아파하는 친구들을 보면서도 제가 할수있는 일이 너무나 적은것이 정말 안타깝습니다. 저는 늘 아파하는 우리 친구들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말해주고싶은 충동을 느꼈습니다. 2007년 5월부터 석달간, 저는 북경 로신문학원에서 문학공부를 하게 되였습니다. 로신문학원의 짙은 문학적 분위기는 저의 가슴속 밑자락에서 잠자던 수많은 천사들을 깨워주었습니다. 저는 그들을 만나면서 무엇인가를 쓰지 않고는 못견딜 그런 감동을 느꼈더랬습니다. 그 천사들이 바로 오늘 이 책에 나오는 군이가 되고 승화가 되고 규호가 되고 미림이가 되고 은경이가 되였습니다. 저에게 수많은 천사들과 대화를 나눌수있도록 기회를 마련해주신 연변작가협회 지도부에 감사를 드리고 저에게 다시 문학공부를 할수있게 황금같은 시간을 허락해주신 연변텔레비죤방송국 지도부에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저의 졸작을 이처럼 예쁜 책으로 만들어 출판해주신 연변교육출판사의 지도부와 지금껏 저의 성장을 지켜보시며 뒤에서 밀어주고 앞에서 당겨주신 선배님들과 동사자들께도 머리숙여 고마움을 전합니다. 늘 내곁에서 힘이 되여 주는 사랑하는 안해와 튼실하게 쑥쑥 잘 커주는 금쪽같은 두아들- 민이와 성이에게도 항상 감사한 마음입니다. 언제나 고마운 마음으로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여러분들께 보여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