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네이션기행
승민아, 멀었니? 정말 너무 힘들어서 그런다…” 밖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거의 절망에 가깝게 떨리고있었다. 승민이는 그 목소리를 즐기듯이 받아들이면서도 일부러 목소리를 힘껏 찢으며 고통스러운듯 더듬거렸다. 아이구, 으으으… 죽기 5분전입니다. 아니 1분전에 왔습니다. 아이구 배야…” 승민이는 고통스러워 얼굴이 일그러져갈 그 모습을 그려보며 묘한 웃음을 피워 물었다. (애 좀 떼보라니까. 흥, 날 그렇게 만만하게 보지말아야 했지. 크크크…) 승민이는 나름대로 달콤하게 꿀맛을 떠올리며 두 손으로 아래배를 슬슬 만지기 시작했다. 전에 없이 아래배가 거뜬해진듯싶었다. 승민이는 왼손바닥으로 다시 두어번 아래배를 톡톡 쳐보고는 두눈을 껌뻑거렸다. (인젠 일어나볼가?) 생각을 굴리며 슬그머니 문밖의 동정에 귀를 기울였다. 문밖은 쥐죽은듯 잠잠했다. (웬 일이야, 다른데로 떠나가는 동정도 없었는데. 그냥 버티고있는건가? 크크크… 인내심 하나는 죽인다니까, 재간있으면 좀 더 해보시지…) 승민이는 두 주먹을 으스러지게 틀어잡고 끄드득 소리나게 힘을 주었다. 두 어깨가 시원해나서 흐으윽 들숨을 크게 들이쉬였다. 그때였다. 문밖에서 괴성이 터졌다. 으악 승민아!” 얼굴에 철판을 깔고 앉아서 은근히 문밖의 동정을 즐기고있던 승민이는 밖에서 나는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벌떡 일어섰다. 으~악~” 밖에서 다시 한번 괴성이 터졌다. 소리 그 자체가 공포였다. 승민이는 뒤를 닦을 생각도 잊어버린체 바지를 춰올리며 화장실문을 열고 뛰여나갔다. 새엄마는 뜨거운 물에 퐁땅 빠진 새우처럼 온몸을 옹송그린채 왼쪽으로 쓸어져있었다. 얼굴은 찢어진 백지장을 떠올렸다. 무시로 파르르 떨리고있는 엉뎅이를 감싼 잠옷우에 찍혀진 이름모를 꽃송이우로 누릇한것이 배여나와 잠옷을 적시고있었다. (웬 일일가? 큰 일 난것이 아닌가?) 승민이는 완전히 무너져내린 새엄마의 처참한 몰골을 바라보며 후둑후둑 뛰는 가슴을 부여안고 더듬거렸다. 왜...왜 이럽니까? 일어나시오.” 새엄마는 땀으로 얼룩진 얼굴을 고통스럽게 쳐들고 이를 옥물며 벌벌 기여서 화장실로 들어갔다. 화장실문이 닫기자바람으로 와앙~”하고 울음소리가 터져나왔다. 새엄마의 울음소리는 예리한 갈퀴가 되여 승민이의 가슴을 마구 헤집고있었다. 승민이는 저도몰래 한껏 가슴을 옴츠렸다. 태여나서 지금껏 어른들이 이처럼 처량하게 울부짖는 소리를 들어보지 못했던것이다. 머리에서 왕~” 소리가 나는듯하더니 목을 타고 가슴을 지나 두 다리를 통해서 온몸의 힘이 싹 빠져나가는듯싶었다. 승민이는 물먹은 토담처럼 스르르 무너져내리고 말았다. 잔뜩 어깨를 옹크린채 흘끔흘끔 화장실안의 동정을 살피며 두 눈을 슴뻑거렸다. (저러다 저 녀자가 죽기라도 하면 난 어쩌는가? 살인범이라도 되는게 아닌가?) 무서웠다. 그냥 오기로 생각없이 했던 행동이 후회되기 시작했다. * 어제 오후 마지막 시간까지 다 보고난후였다. 담임선생님께서 들어와 총화를 지으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동무들, 래일이 무슨 날인지를 모두 알고있죠? 그렇습니다. <3.8국제부녀절>입니다. 소학교에서 맞는 마지막 <3.8절>이죠. 어쩜 동무들은 자기하고 별 관계가 없는 명절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저의 생각은 그렇지 않습니다. 각도를 바꿔보세요. 동무의 어머니는 소학교에서의 마지막 <6.1절>을 놓고 어떻게 생각하실것 같습니까? 이런 어머니의 립장에서 한번 생각할수는 없습니까? 동무는 언제 한번 어머니께서 동무에게<6.1절>을 쇠주듯이 어머니에게 <3.8절>을 쇠드린적이 있습니까? 소학교에서의 마지막 <3.8절>만은 실제 행동으로 어머님들을 기쁘게 해드립시다. 사랑이란 주고받으면서 더 커지는것입니다. 지금껏 우리를 키우느라 로심초사하신 어머님들께 영원히 행복한 추억으로 되게 사랑의 마음을 전합시다.” 담임선생님께서는 이외에도 많은 말씀을 하셨다. 승민이는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여느때없이 심중하게 새엄마를 생각했다. 언제나 문구방집의 곱살한 아지미처럼 새물새물 웃으며 손님을 때하듯 깍듯이 자기를 대해주는 새엄마로부터 승민이는 스스럼 없는 친근함은 느낄수 없었지만 그래도 딱 요때다싶게 던져주는 그 웃음때문에 언제나 외롭지 않고 힘들지는 않았었다. 승민이도 착한 손님만치나 새엄마를 깍듯이 대했고 그 이상을 벗어나는 애정표현을 하지 않고있었다. 새엄마가 싫다기보다는 어쩐지 딱 그만한 거리가 느껴지군 했던것이다.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며 승민이는 래일아침 일어나 새엄마께 꽃송이를 드리며 수고하셨습니다.”하고 인사라고 해야겠다고 속구구를 굴렸었다. 돌아오는 길에 승민이는 꽃방에 들렸다. 한책상에 앉는 짝궁이 진이도 승민이를 따라 꽃방으로 들어왔다. 어머, 승민아, 너 꽃을 사려구?” 진이가 웬 일냐는듯 까아만 눈을 올롱하게 치뜨며 물었다. 왜? 안되니? 내가 꽃을 사면.” 승민이가 도전적으로 물었다. 진이가 홀랑 혀를 내밀어보이며 목소리를 과장스럽게 뽑아올렸다. 얘, 얘를 봐라. 누가 안된다니? 평소에는 하도 꽃하구 안 어울리던 네가 꽃방에 오니 신기해서 그러지? 어머니께 드릴려구 그러니? 그럼 카네이션을 사야해. 카네이션.” 뭐? 카네이션? 장미를 사는거 아니야? ” 이 촌뜨기야, 장미야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는거지. 어머니에게는 모정을 대표하는 카네이션을 사야하는거야.” 진이가 시뚝해서 손을 내저으며 이야기를 해나갔다. 오, 그럼 카네이션으로 하지 뭐. 저 흰색이 순결해보인다야. 저걸루 할가? 아님 노란것도 괜찮아보이는데.” 승민이는 꽃에도 이렇게 많은 학문이 있냐고 생각하면서 혼자말 비슷이 중얼거렸다, 꽃을 파는 아지미가 시무룩히 웃으며 승민이의 곁으로 다가왔다. 너 3.8절에 엄마께 선물하자구 그러지?” ......” 승민이는 대답을 않고 시무룩히 웃기만했다. 꽃방아지미가 말했다. 3.8절선물로는 빨간색 카네이션을 사야한단다.” 빨간색? 왜요?” 진이가 앞질러 물었다. 꽃에만 꽃말이 있는게 아니라 꽃의 색갈에도 말이 있거든. 그래서 부모님 가슴에 꽃을 잘못 달아드리면 부모님을 욕보이는 행동이 된단다.” 네? 꽃색갈에도 말이 있다구요?” 진이의 까아만 눈동자가 튀여나올듯 커졌다. 꽃방의 아지미가 살풋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렇지 이를테면 빨간색은 부모님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표현하는 색이기도 하고 이성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색이기도 하단다. 하지만 노란색은 정반대의 뜻을 가지고있거든. 이를테면 '난 당신을 경멸합니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지. 그러니 부모님 가슴에 달아드리면 큰일나는게 아니겠니? 무척 주의해야 하는색이지.” 그럼 흰색은 무슨 뜻을 가지고있나요?” 승민이도 궁금해서 한술 떴다. 흰색은 돌아가신 부모님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색이란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사람들이 부모님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자신의 가슴에 다는 색갈이란다. ” 세상에 큰 일 칠번했잖아, 어쩜 승민아, 넌 딱 흰색과 노란색이 좋아보이던.” 크크크 그러게... ” 승민이는 숙스럽게 머리를 숙이고 손가락으로 빨간색 카네이션을 쓸어보았다. 승민이는 꽃 한송이가 새엄마와 함께 했던 일년세월을 대표한다고 나름대로 생각을 굴리면서 빨간색 카네이션 세송이를 골라들었다. 진이도 빨간색 카네이션을 네송이 골랐다. 진이는 카네이션 한송이가 50원짜리 소비돈으로 변하여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돌아오는 길 내내 종알거렸다. 참, 유치하기는, 녀자애들은 이래서 알린다니까.” 승민이는 악의 없이 진이를 흘겨보며 핀잔을 주었다. 하지만 진이는 승민이의 말을 듣는지 마는지 여전히 좋아죽겠다는 표정이였다. 승민이도 그러는 진이를 보면서 나름대로 흥분에 들떠있었다. 카네이션을 받아들고 새엄마가 어떤 표정을 지을가를 그려보기도했다. 새엄마가 그냥 살풋이 웃으면서 고맙다.”하고 인사하며 조용히 받을것 같았다. 승민이는 얼굴에 피식 웃음을 지으며 머리를 살래살래 저었다. 어쩐지 슴슴할것 같아서였다. (머리라도 쓸어주든지 아니면 엉뎅이라도 두어번 쳐주든지 하면 좀 좋아? 그럼 모르는척 하면서 손이라도 슬쩍 쥐여줄텐데…크크크 하기야 손님의 엉뎅이를 치면 법에 걸리지. 암, 걸리구 말구. 드라마에서는 그런걸 뭐라더라?) 승민이는 부러 카네이션을 옷섶에 치우고 열쇠를 꺼내여 출입문을 열었다. 객실은 불만 켜져있을뿐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어쩐지 썰렁해보였다. 전에 같으면 새엄마가 벌써 와서 저녁준비를 하고있었을 시간이였다. 승민이는 신을 벗어 신발장에 넣으며 은근히 신경을 아빠와 새엄마의 침실쪽에 돌렸다. 몇년이요. 아직도 그렇게 신경이 예민하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간단말이요.” 아버지의 목소리가 침실에서 새여나왔다. 승민이는 자기의 침실로 들어가려다말고 못박힌듯 굳어졌다. 평소에 들어보지 못하던 아버지의 격한 목소리였다. (웬 일로 저러실가?) 승민이는 아버지네 침실쪽을 향해 두어걸음 다가가서 귀를 기울였다. 그래요. 몇년이예요? 몇년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이 짓거린가 말이예요.” 짓거리라니? 어떤 형편이든 필경은 애엄마가 아니오. 이틀후이면 승민이의 생일인데 엄마로 생겨서 생일선물로 옷 몇벌 보내는것도 안되오? 황차 올해는 우리 승민이 소학교에서의 마지막 생일인데.” 아버지의 목소리는 낮고 무시로 떨리는것이 애써 흥분을 누르는듯 해보였다. 하지만 새엄마의 목소리는 이미 톤을 넘어서고있었다. 네, 이것 참 완전히 감동돼서 못봐주겠네요. 그럼 왜 아예 데려다 기르라고 못해요? 그렇게 가슴아프면 제 새끼를 던지고 외국가서 그렇게 느러지게 산대요? 제 새끼가 아파서 열이 팔팔 끓을 때는 뭘 하다가 생일이나 되면 눅거리옷 몇견지 달랑 보내면서 사람가슴을 바락바락 긁어댄대요?” 이거이거 완전히 막 나가자는거구만 완전히…” 아버지의 목소리는 다시 격하게 울리고있었지만 이미 뭔가 빠져나간듯 힘이 없이 들렸다. 승민이는 얼굴을 잔쯕 찌프리고 퉁퉁한 두볼을 푸들푸들 떨어댈 아버지의 모습을 보는듯싶었다. 새엄마와의 전쟁도화선이 뭐라는것을 짐작할수있었다. 승민이는 픽 몸을 돌려 자기의 침실로 들어가 안으로 자물쇠를 절컥 잠궈버렸다. 컴푸터옆에 나란히 세워놓은 탁상달력이 눈에 맞혀왔다. 3월 9일에 파란색으로 동그라미가 커다랗게 그려져있었다. 일요일이여서 빨간색으로 찍혀진 9자가 파란색 동그라미와 조화를 이루면서 제법 묘한 느낌을 연출하고있었다. 언젠가 책에서 보았던 로신전집”이 떠올랐다. 그 책에 아Q정전”이라는 소설이 있었는데 주인공 아Q가 자기를 사형에 처한다는 문서에 그린 동그라미가 자꾸 덜 동드란듯 해서 아쉬워하던 모습이 눈앞에서 흔들거리고있었다. 빠알간 9자도 어쩌면 자기의 목을 조르는 포승끈처럼 느껴졌다. 승민이는 침대로 털썩 내려 앉으며 두눈을 꼭 감았다. (하필이면 아Q야,) 승민이는 설레설레 머리를 저어댔다. 그러다가 허구픈 생각이 들어서 픽하고 찬웃음을 짧게 터쳤다. (그래, 내가 바로 아Q지. 저 녀자의 저런 마음도 모르고 하냥 고맙다고, 그래도 나는 새엄마치고는 맘씨 좋은 녀자와 살아서 늘 행복하다고 자신을 다독여왔지. 나에 비하면 영림이도 불쌍하고 수정이도 불쌍하고 광태도 불쌍하고 하면서 그 애들에게 눅거리 동정심도 보내면서, 쳇, 내가 과연 그애들보다 나은게 뭐야! 에잇! 음특한 녀자, 여우같은 녀자…) 승민이는 억울한듯 주먹으로 가슴을 두드리다가 윽” 하고 외마디소리를 질렀다. 옷섶에 넣었던 카네이션대가 주먹에 맞아서 살을 파고들었던것이다. 승민이는 점퍼의 쪼르래기를 쫙 내리열고 안에서 카네이션을 꺼내여 바닥에 메쳤다. 빠알간 카네이션 세송이가 바닥에 누워 웃는듯 승민이를 쳐다보고있었다. 타는듯이 빠알간 카네이션이 얄밉다고 생각되였다. 승민이는 벌떡 일어나 카네이션을 주어들었다. 우에 씌웠던 비닐을 와락 벗겨버렸다. 카네이션꽃잎이 살랑 날아떨어졌다. 떨어지는 그 모양마저 역겹게 생각되였다. 승민이는 카네이션꽃잎을 주어 입으로 가져갔다. 이발사이에서 딱딱 소리가 나게 꽃잎을 씹어댔다. 그러다가 아예 카네이션을 송이채로 한송이한송이 씹어나갔다. 어디로 가는거예요. 훌렁 나가버리면 다예요? ” 새엄마의 앙칼진 목소리가 침실문을 뚫고 들어왔다. 나도 힘드오, 힘들어. 혼자서 생각 좀 해보구려.” 무슨 생각을 하라는거예요? 아직도 나를 나쁘다는거예요? 길가는 사람을 아무나 잡고서 물어봐요. 내가 틀렸는가?” 새엄마의 목소리에 이어 탕!”하는 소리가 문쯤으로 들려왔다. 승민이는 두손을 쫙 펴서 귀를 막으며 본능적으로 카네이션을 씹어댔다. 입귀를 타고 피같이 빠알간 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승민이는 주먹으로 입술을 쓱 닦으며 생각했다. 이렇게 내 입속에서 꽃이 죽어가고있구나. * 괴로왔다. 죽음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스믈스믈 기여들 때 승민이는 온몸으로 오싹 전률을 느꼈다. (으으윽~) 승민이는 두 손을 쫙펴서 머리칼을 움켜쥐고 탁탁 두어번 당겨보다가 벌떡 일어섰다. 짜릿하게 아래배가 당겨오는듯한 감을 느꼈다. 승민이는 본능적으로 화장실을 떠올리며 사이문가로 다가갔다. 막 손을 내밀어 사이문을 당기려는 순간 밖으로부터 문이 쫙 열려지고있었다. 승민이는 흠칫 놀라며 선자리에 굳어졌다. 새엄마의 얼굴이 먼저 침실로 삐쑥이 들어왔다. 새엄마도 흠칫 놀라는듯 했다. 너, 언제 들어왔댔니?” 새엄마의 목소리는 떨리고있었다. 승민이는 곱지 않은 눈길로 새엄마를 흘깃 훔쳐보았다. 새엄마는 황황한 눈빛을 옆으로 돌리고있었다. 승민이는 말없이 새엄마의 곁을 쓱 스쳐지났다. 입어라!” 뒤에서 새엄마의 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새엄마로서는 무엇을 입어라고 찍어말하지 않았지만 승민이는 분명 입어라”는 단어가 무엇을 의미한다는것을 알것같았다. (흥! 위선자. 속 다르고 겉 다르고...여우야, 여우지, 꼬리가 몇개나 달렸나 벗겨볼가?) 승민이는 이렇게 아니꼬운 생각을 하면서 화장실에 들어갔다. 쏴~”하고 줄기가 굵게 오줌발을 쏟고나니 짜릿짜릿 아래로 당겨오던 찜찜한 감각이 가신듯이 사라져버렸다. 카네이션을 씹을 때의 그 침침하던 기분이 사라지면서 (어쩔텐데, 과연 당신이 어쩔텐데.)하는 오기가 서서히 머리를 쳐들기 시작했다. 승민이는 바지호주머니에 두 손을 찌른채로 늘쩡늘쩡 걸어서 객실을 지나갔다. 객실은 조용하다 못해 괴괴한 분위기까지 던져주고있었다. 주방쪽에서 새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승민아, 와라, 밥먹어라.” 승민이는 침실문을 밀어열려다말고 주방쪽으로 머리를 돌렸다. 빨리 와라, 국이 식겠다.” 새엄마의 목소리는 아빠에게 길가는 사람을 아무나 잡고서 물어봐요. 내가 틀렸는가?”하고 바락바락 소리치던 그 목소리가 아니였다. 들으면 사람의 가슴을 편하게 하는 그런 부드러움이 깔려있었다. 여느때 같으면 그 목소리를 들으며 은근히 식욕을 느꼈을 승민이지만 그 순간만은 꼬리가 아홉개 달린 여우의 유혹에 넘어가는듯한 느낌이 묘하게도 머리를 쳐들었다. 승민이는 대꾸도 없이 바지호주머니에 두 손을 찌른채로 주방으로 들어갔다. 새엄마는 식탁에 수저를 놓고있었다. 승민이가 들어오는것을 눈치챈 새엄마는 승민이 쪽에 머리를 돌리며 말했다. 식기전에 먹어라. 난 입맛이 없구나. 난 우유나 한 고뿌 마시겠다.” 새엄마는 말을 마친후 랭장고문을 열고 우유한봉지를 꺼내들었다. 승민이는 여느때와 다름없는 새엄마의 그 행동이 그렇게도 아니꼽게 생각되였다. (누가 여우가 아니랄가봐. 저녁밥을 해놓고 무슨 우유는 우유야, 나하구는 함께 밥을 안먹는다 이거지. 흥! 먹다가 배탈이나 콱 나버려라.) 승민이가 뭔 생각을 굴리고있는지도 모르고 새엄마는 가위로 우유봉지를 자른후 고뿌에 우유를 따르기 시작했다. 승민이는 부지런히 밥술을 입에 날라가면서 흘끔흘끔 새엄마의 거동을 훔쳐보았다. 새엄마는 우유를 담은 고뿌를 전자레인지에 넣고 버튼을 누른후 객실로 나갔다. (갔다. 나갔다.) 번개같이 승민이의 머리속으로 들어오는 생각이였다. 배탈이나 콱 났으면 하던 아까의 그 생각이 다시 머리를 쳐들었다. 승민이는 잠간 술질을 멈추고 지긋이 두 눈을 감았다. 반짝하고 뭔가 머릿속을 치고 떠올랐다. 승민이는 발딱 일어섰다. (그래, 이거야, 이렇게 하는거야.) 승민이는 랭장고씌우개 주머니에서 약봉지를 주어냈다. 한번에 세봉지나 쥐여졌다. 변비가 있는 아버지께서 잡수시는 밀방약이였다. 뭐로 만들었는지 몰라, 아무맛도 없는 가룬데 먹으면 즉효라니까.”하시며 일보기 힘들 때마다 한봉지씩 자시던 하얀 가루약이였다. 승민이는 약봉지를 들고 전자레인지앞으로 다가가 객실쪽에 머리를 내밀어 그쪽동정을 살폈다. 새엄마는 그새 화장실에 들어가 뭘 하는지 화장실에 불이 켜져있었다. 승민이는 전자레인지문을 당겨 열고 우유를 담은 고뿌를 꺼냈다. 황급히 약봉지를 풀어서 세봉지를 다 고뿌에 쏟아넣었다. 하아얀 분말이 우유속으로 천천히 슴여들고있었다. 승민이는 급해서 젓가락을 고뿌에 넣어 저어댔다. 하얀 분말은 삽시에 우유속에 사라져버렸다. 승민이가 다시 고뿌를 전자레인지에 넣으려고 할 때 발자국소리가 가까와 왔다. 승민이는 짐짓 시간이 다 돼서 우유고뿌를 꺼내는것처럼 하면서 시간이 채 차지 않은 전자레인지버튼을 슬쩍 눌러껐다. 그후 일부러 우유고뿌를 전자레인지 우에 올려놓으며 온도를 가늠하는듯 손가락으로 고뿌벽을 슬쩍 건드려보았다. 승민이가 꺼냈니? 자꾸 얼굴에 열이 올라서 세수를 좀 하느라구...” 새엄마는 손으로 얼굴을 문지르며 천천히 전자레인지앞으로 걸어가서 우에 놓여있는 우유고뿌를 집어들었다. 맞춤이 데워진것 같네.” 새엄마는 한결 밝은 목소리로 기분좋게 말하면서 우유고뿌를 입가에 가져갔다. 잠간새에 꿀꺾꿀꺽 우유 한고뿌를 비워버린 새엄마는 고뿌를 대야에 놓고 수도꼭지를 틀어 물을 부은후 몸을 돌려 객실로 나가며 말했다. 승민아, 밥 다먹구 사발을 대야에 불궈놓아라, 내 잠간 누웠다가 일어나 설겆이를 할거니까.” 승민이는 멀어져가는 새엄마의 발자국소리를 들으며 픽하고 코웃음을 쳤다. (설겆이를 하느라말구 뒤건사나 열심히 하세요) 저녁밥을 다 먹은 승민이는 객실로 나왔다. 텔레비죤을 마주하고 앉아 리모컨을 들고 이쪽저쪽 쟌넬을 바꾸며 무시로 새엄마가 들어간 침실을 훔쳐보았다. 30분쯤 지나서일가 새엄마가 아래배를 움켜쥐고 화장실로 들어가는것이 보였다. 승민이는 입가에 묘한 웃음을 빼여물었다. (이재 시작인가봐. ㅋㅋㅋ 고생 좀 해보시지...) 승민이는 리모컨을 돌리면서 슬슬 휘파람까지 불어댔다. 한참만에야 새엄마가 화장실에서 나왔다. 승민이는 피끗 새엄마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입술을 꼭 깨문 새엄마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있었다. 그리고 두 눈을 아래로 힘들게 깔고있었는데 무시로음~음~”하고 앓음소리를 냈다. 승민이는 고소하게 그 장면을 훔쳐보다가 새엄마가 침실로 들어가자 천천히 쏘파에서 일어섰다. 잠간 쏘파앞에서 서성이던 승민이는 자기의 침실로 들어가 잡지를 한책 주어들고는 천천히 화장실로 향했다. 승민이는 바지띠를 풀고 변기에 눌러앉아 유유하게 잡지를 번지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는 그냥 재미를 느끼고있었다. 새엄마가 그렇게 화장실밖에서 고통을 호소하는것을 즐기고있었다. 하지만 아니였다. 화장실에서 나와 본 새엄마의 참상은 승민이를 무형의 공포로 몰아넣었던것이다. (웬 일일가? 정말 큰일이 나는것이 아닐가?) 승민이는 초조하게 화장실문을 바라보았다. 새엄마가 화장실안에서 쇼크라도 해서 쓸어져있지나 않는지가 무척이나 근심되였다. (쓸어졌다가 일어나지못하고 그 맵시로?... 으윽! 내가 뭔 일을 저지른거야? 이걸 어쩌면 좋아?... ) 승민이는 연신 두 손을 마주 부비며 발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저도몰래 목이 확확 달아오르며 이마에서 식은땀이 뽀질뽀질 돋아났다. 드디여 조용히 화장실문이 열렸다. 이윽해서야 새엄마가 모습을 들어냈다. 새엄마의 하신에는 타올이 감겨져있었다. 괜...괜찮습니까?” 승민이가 떨리는 목소리로 더벅거렸다. 새엄마가 오른손으로 벽을 짚으며 간신히 걸음을 옮기다가 잠간 승민이쪽으로 머리를 돌리고 가쁜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승민아, 아...아버지께 전활 좀 해주겠니?” 네, 할게요.” 승민이는 테불앞으로 다가가 수화기를 들고 아버지의 핸드폰번호를 눌렀다. 뚜~뚜~”련결음이 건너왔다. (받으세요. 빨리 받으세요. 아버지...) 하지만 련결음이 끝날 때까지 아버지는 핸드폰을 받지 않고있었다. 승민이는 다시 한번 아버지의 핸드폰번호를 눌렀다. 여전히 련결음이 넘어갈뿐 아버지는 핸드폰을 받지않고있었다. 승민이는 울고싶었다. 이렇게 전화고 핸드폰이고 야속스러울수가 없었다. 그새 새엄마가 옷을 갈아입고 간신히 걸어서 객실로 나오고있었다. 안 받습니다. 통하기는 하는데 안 받습니다.” 승민이가 앞질러 말했다. 새엄마는 대답대신 입술을 앙다물고 간신히 걸음을 옮겨 출입문쪽으로 다가가고있었다. 병원으로 가는겁니까? 저하구 갑시다, 제가 업을만 합니다.” 승민이는 출입문께로 뛰여갔다. 새엄마 먼저 신발장에서 새엄마의 신을 내리워놓은후 자기도 인차 침실에 들어가 웃옷을 벗겨들고 다시 출입문께로 다가섰다. 그새 새엄마는 간신히 발에 신을 꿰고 문을 열려고 손을 뻗치고있었다. 잠간만요.” 승민이는 신발장에서 자기의 신을 내리워 신고는 새엄마 먼저 손을 내밀어 출입문을 열었다. 승민이는 밖으로 나가 새엄마앞에 쭈크리고 앉으며 말했다. 업히세요. 제가 업을만 합니다.” 괜... 괜찮아. 집에 있어라 넌.” 갑시다. 제가 업을만 합니다.” 승민이가 다시 재촉을 했지만 새엄마는 힘겹게 손을 저으며 한손으로 벽을 짚고 천천히 층계를 내렸다. 승민이는 그러는 새엄마의 팔을 부여잡고 부축하며 함께 층계를 내리기시작했다. 승민이는 새엄마의 침대곁에 서서 링겔관을 타고 흘러내리는 약물을 한참이나 멀거니 바라보다가 천천히 일어섰다. 그제서야 아까 왜 자기의 핸드폰으로 아버지에게 한번 더 전화를 해보지못했을가 하는 후회가 머리를 쳤다. 승민이는 꼭 감겨져있는 새엄마의 두 눈을 잠간 지켜보다가 조용히 문을 열고 나와서 자기의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아니나다를가 아버지는 인차 핸드폰을 받았다. 승민이니? 웬 일루?” 아버지 빨리 와야겠어요. 큰 일 났어요.” 승민이의 목소리는 무시로 떨리고있었다. 아버지의 황급한 목소리가 전화선을 타고 날아왔다. 큰 일이라니? 웬 일이냐?” 알아누웠어요. 지금 마을 병원에서 링겔을 맞고있어요?” 웬 일루? 누가? 네가 말이냐?” 아니요.” 그럼? 엄마가 말이냐? 언제, 어떻게 아프대?” 아버지의 목소리는 너무도 급해 전화통을 뚫고나올듯했다. 승민이도 급해서 꺽꺽거리며 말했다. 아까, 저...저녁을 먹을 때 우유를 마신것이 설사... 배가 아파하는것 같아요. 빨리 오세요. 무서워요. 마을 병원에 있어요.” 승민이가 두서없이 주어섬기자 아버지께서 소리쳤다. 그래, 알았어. 기다려라. 간다. 당금!” 승민이는 핸드폰을 접어서 호주머니에 넣었다. 순간 두다리가 후둘후둘 떨려나며 온몸의 힘이 싹 빠져 나가는듯 했다. 승민이는 복도벽에 간신히 등을 기대고 섰다. * 승민이는 덤덤하게 침실문을 밀었다. 그 시각 승민이의 머리속은 하얗게 첫눈이 내린 황야를 방불케하고있었다. 그 누구도 밟지 않은듯 하지만 하야얀 눈을 젖히고 보면 들쑹날쑹하게 말라버린 풀들이며 우둘투둘하게 널려있는 돌멩이들이며 그리고 어지러이 찍혀있을 깊고 옅은 발자국들이며 하는 생활의 자취들이 숨어있을 눈덮인 황야, 지금 승민이의 머리속은 바로 그 눈덮인 황야를 방불케하고있었다. 승민이는 아무것도 생각하고싶지 않았다. 하아얀 눈우에 아무 흔적도 남기고싶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눈을 감고 십년이고 이십년이고 자고싶다는 생각뿐이였다. 승민이는 본능적으로 침대를 향해 걸어갔다. 잠간새에 침대까지 다달은 승민이는 주저없이 침대에 내려앉았다. 순간 부시럭하고 미약하게 뭔가 맞히는 소리가 났다. 승민이는 눈길을 침대우에 던졌다. 침대우에 있는 회색 옷봉지가 눈에 안겨들었다. 승민이는 흠칫 놀라며 튕겨 일어났다. 헉하고 숨이 막혀오는는듯싶더니 후두둑 가슴이 떨리기 시작했다. 저녁을 먹기전의 그 장면들이 뇌리를 스쳤다. 새엄마는 접때 이 회색옷봉지를 오른손에 겹쳐쥐고 들어오며 분명히 낮으나 날이선 목소리로 입어라!”하고 짤막하게 말했던것이다. 새엄마의 원망이 가득 담겨져있을 옷봉지, 승민이는 봉지안에 옷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힘들게 하는 괴물이라도 들어있는듯싶어졌다. 승민이는 왼손바닥을 쫙 펴서 후둑후둑 뛰는 가슴을 이윽하니 누르고 있다가 후~” 하고 긴숨을 내쉬며 천천히 침대우에 눈길을 돌렸다. 승민이는 침대우에 누워있는 옷봉지를 보면서 새엄마가 옷에 대하여 일종의 콤플렉스를 가지고있다고 생각했다. 새엄마가 승민이네 집에 들어와서 3년사이 한국에 있는 엄마가 보내온 옷을 두고 아버지와 서너번 다툰적이 있었다. 새엄마는 번마다 격분한 목소리로 바락바락 소리를 뽑군했었다. 그렇게 끔찍히도 새끼생각을 하면 아예 데려다가 기르라 그래요. 같지도 않은 옷 몇벌을 달랑 사보내면서 에미라고 생색은 웬 생색인가구여.” 어쩌겠소. 에민걸...” 아버지는 언제나 죄진사람처럼 목소리를 떨면서 더듬거리군했었다. 그러면 새엄마는 아버지의 태도가 확실하지못하다고 더욱 괴성을 뽑아올렸다. 다 당신때문이에요. 당신의 태도가 확실치가 않으니 아예 날 업신보고 이런다니까요.” 새엄마는 끝도없이 소리를 지르다가도 제풀에 맥이 지나야 그만두었다. 이튿날 아침이나 다음날 저녁이되면 승민이의 침대우에 낯선 옷봉지가 놓여져있었다. 그때마다 승민이는 옷봉지를 옷궤안에 박아넣고있다가 어느날엔가 궁리없이 헤쳐서 입기시작하면 그 옷이 볕을 보는 날로 되는것이였다. 어쩜 인젠 습관될만도 할 시간이 흘렀지만 승민이는 점점 이 일이 더 부담스럽게 느껴지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승민이는 옷봉지를 치워버리려고 약간 허리를 굽혀 옷봉지를 주어들었다. 옷봉지아구리가 열리며 봉지안에 있는 옷이 보였다. 흰바탕에 푸른줄이 간 셔츠같았다. 당금 자신을 눌러버릴것만 같던 옷이였지만 보고싶다는 생각이 머리를 쳐드는것이 이상스러웠다. 승민이는 본능적으로 옷봉지를 꺼꾸로 들어 안에 담겨져 있는 옷들을 쏟아냈다. 재질이 두터운 천으로 만들어진 셔츠와 신다리에 작은 호주머니를 달고 그 우에 누른색으로 된 금속줄을 부친 캐쥬얼바지였다. 디자인이 너무 과감해서 학교에는 입고 다닐수 없지만 휴식일에 입고 나서면 친구들의 눈길을 끌만한 마음드는 바지였다. 승민이는 자기의 몸에 바지를 대고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엄마의 기대가 가득 담겨져있을 옷, 승민이는 옷이 아니라 엄마의 애환과 눈물을 손에 들고있는듯한 느낌이였다. 엄마!” 그리워 죽을 같으면서도 어딘가 서먹서먹하게 느껴지는 이 한마디가 조용히 입에서 뿜겨져나갔다. 순간 승민이는 누군가에게 자기의 치부를 들킨것 같아서 얼굴이 붉어졌다. 승민이는 손에 들었던 바지를 되는대로 바닥에 팽개치고는 침대모서리에 주저앉았다. 승민이는 불안한 눈길로 바지와 셔츠를 번갈아 보았다. 되는대로 팽개쳐진 그 셔츠와 바지 때문에 자기의 침실이 여간만 청승스럽게 느껴지지가 않았다. 전에는 그래도 깔끔하고 오붓하게 느껴지던 자기의 침실이 지지리도 란잡하게만 생각되였다. 승민이는 벌떡 일어나 신경질적으로 셔츠와 바지를 주어들었다. 속으로부터 말못할 분노가 치솟아올랐다. 승민이는 셔츠와 바지를 한데 움켜쥐고 단말마적으로 아무렇게나 이리저리 당겨댔다. 손만 얼얼해날뿐 옷은 옷대로 이리저리 승민이의 손에 자기의 몸을 맞기고있었다. 그러기를 한참이나 반복하다가 승민이는 손을 멈추고 침실문을 열었다. 승민이는 그 맵시로 주방에 달려가 옷을 쓰레기통에 처넣어버렸다. 볼품없이 구겨진 옷이 털썩하고 쓰레기통에 떨어져 들어가는 찰나 승민이는 말못할 쾌감을 느끼고있다. 하지만 그것도 한순간이였다. 승민이는 머리를 숙이고 쓰레기통에 던져진 옷들을 멍하니 내려다보았다. 뜨거운것이 눈굽에 고였다가 뚤렁 쓰레기통안의 옷에 떨어져내렸다. 승민이는 머리를 들어 천정을 올려다보며 주먹으로 눈굽을 꾹꾹 찍고는 몸을 돌려 자기의 침실로 들어갔다. 승민이는 웃옷과 바지만 벗어서 바닥에 팽개쳐버린후 이불을 뒤집어썼다. 두눈을 꽉 감았다. 입술을 앙다물고 숨도 꼭 참았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그대로 팡 터져버리고만싶었다. 가슴이 갑갑해왔다. 머리가 커져오는듯 했다. 정말 온몸이 팡하고 터지기 일보적전에 다달은듯했다. 그 순간에 터지려는 머리속으로 흐릿한 형상 하나가 헤집고 나오고있었다. 승민이는 환각속을 걷는듯이 그 형상을 찾아 허둥거렸다. 푸~” 승민이는 더는 숨을 참지못하고 침대가 꺼져라 숨을 토하며 이불을 활 젖혀버렸다. 터져버린 진공속에서 그 형상도 더 선명하게 머리속에 자리를 잡고있었다. 손으로 찔끔찔끔 눈굽을 찍고있는 그 녀인은 바로 엄마였다. 8년전, 그러니까 승민이가 6살나던 해, 공항에서 보았던 엄마였다. 엄마가 한국으로 떠나기 전날 밤이였다. 집에서는 엄마의 환송모임을 열었다. 많은 친척들이 모여왔었다. 어른들은 술도 마시고 이야기도했다. 하지만 승민이는 평소 만나지못하던 친척집 또래들과 우야우야 소리치며 뛰여나디는 멋이 참 좋다고 생각되였다. 밤이 깊어서야 모여왔던 친척들이 돌아갔다. 엄마는 그날 밤, 승민이를 불러서 옆에 누우라고 했다. 승민이는 생일을 쇠는것만치나 신이났다. 전에 은근히 엄마곁이 생각나서 베개를 가지고 기신기신 다가가면 남자애가 웬 일이냐며 기어코 자기의 침실로 몰아넣던 엄마였던것이다. 헌데 이날은 엄마가 오늘은 승민이하고 자야지.”하며 승민이의 침실로 건너왔던것이다. 엄마는 승민이에게 팔베개를 해주고 한손으로는 승민이의 얼굴을 만져주었다. 승민아, 엄마 없이도 잘 할수 있지?” 엄마의 목소리가 매우 낮았지만 승민이는 한마디도 빠뜨리지 않고 다 알아들을수 있었다. 어째 엄마가 없어? 엄마 어디로 가? ” 그래, 잠간, 아주 잠간 엄마가 어디 갔다와야 하거든.” 어디로 가는데?” 한국이라는 델 갇다와야 하거든.” 승민이에게는 엄마의한국이라는 델”하는 말이북대에 있는 할머니네 집엘” 하는 말처럼 쉽게 들렸다. 한국이라는 델 가? 몇밤 자고 와?” 글쎄...” 올 때 맛있는걸 많이 사다줄거지? 난 쵸코파이가 젤로 맛있는데, 쵸콜레트 많이 바른거 사와라. 크크크... 쵸콜레트 먼저 핥아먹는게 참 맛있거든.” 그래, 쵸콜레트 많이 바른 쵸코파이 사다줄게, 글구...고운 옷도 많이 사다주구. 승민이 울지 않구 엄마를 기다릴수 있지?” 기다리지 않구, 내가 뭐 애긴가. 얏! 나 이렇게 큰데. 경찰도 될수 있는데.” 승민이는 누운대로 허공에 대고 주먹을 뻗치며 기압소리를 내보였다. 그래그래, 우리 승민이 정말 다 컸구나. 군대에 가도 되겠네.” 엄마는 승민이를 으스러지게 안아주었다. 이튿날, 승민이네는 아침을 먹기 바쁘게 공항으로 떠났다. 아버지가 큼직한 려행용가방을 들고 승민이는 엄마의 손을 쥐고 따라나섰다. 공항에 도착해보니 할머니며 이모며 삼촌이며 많은 친척들이 이미 공항에 나와 있었다. 엄마가 한참이나 뛰여다니며 뭔가를 하시더니 다시 친척들이 모여선 곳으로 왔다. 그때부터는 웬일인지 모두들 엄마의 손을 잡고 눈굽을 찍었다. 홀이 좁다고 뛰여다니는 승민이를 불러다 옆에 서운 엄마는 손으로 승민이의 어깨를 잡고 쪼크리고 앉아 한참이나 승민이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엄마의 두 볼을 타고 구슬같은 눈물이 하염없이 굴러내리고있었다. 엄마, 아픈거야? 왜 울어?” 승민아, 아프지말구 잘 커야 한다. 엄마 올 때까지 아프지 말아야 한다.” 엄마 울지말아. 나 하나도 안 아프다. 경찰도 될수 있다.” 승민이는 고사리같은 손을 내밀어 엄마의 얼굴에서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었다. 엄마는 승민이를 와락 끌어다가 품에 안더니 흑흑 느끼기 시작했다. 할머니가 다가와 그러는 엄마의 품에서 승민이를 당겨가며 말했다. 그러지마오, 먼길 떠날 사람이 그러면 쓰오? 승민이는 우리들이 있으니 시름을 놓으랑게.” 어마이, 수고합소 예? 집값만 벌면 돌아오겠스꾸마. 그새 고생합소 예?” 엄마는 홈으로 나가는 내내 손으로 눈굽을 찔끔찔끔 찍고있었다. 엄마는 한국에 도착해서 두어달 지나자 집으로 돈을 부쳐왔다. 엄마가 떠나서 2년에 나던 해의 가을에 아버지는 엄마가 보내온 돈으로 침실이 두개 달린 아빠트를 샀다. 엄마의 말대로라면 승민이가 학교에 들어가는 기념이라고 했다. 공장에서 자동차운전수로 일하는 아버지로서는 일생을 벌어도 이루지못할 꿈이였다. 새집들이 하던 날, 아버지는 집구경을 온 친척들에게 엄마에 대한 고마움을 이야기하면서 어떤 일이 있더라도 승민이를 공부 잘 시켜 큰 사람으로 만들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로부터 또 1년이 지났다. 아버지의 얼굴에 차츰 근심이 비끼기 시작했다. 가끔 엄마의 전화를 받고서는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승민이는 나이가 들면서 차츰 전화내용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고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의 비밀도 얼마간 알수 있었다. 엄마는 사실 아버지와 가짜리혼을 하고 한국으로 시집을 갔던것이다. 처음 2년간 엄마는 한국에서 약속대로 한국측의 가짜남편과 한달에 두어번 꼴로 만나면서 련계를 끓지 않고 살았다고 한다. 3년철에 접어들어 엄마가 한국국적을 신청하려고 하자 가짜남편은 정식으로 엄마에게 가정을 꾸릴것을 제기해왔고 그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가짜결혼 사실을 밝히고 엄마를 중국으로 강제송환되게 조취를 취하겠다고 나섰다는것이였다. 이미 3년간 한국생활에 젖을 때로 젖은 엄마로 말하면 중국으로의 강제송환은 너무도 아름찬 대가였는지도 모른다. 엄마는 할수없이 가짜남편과 정식으로 가정을 꾸리는것을 조건으로 끝내는 한국국적을 취득했고 이듬해에는 아들까지 하나 낳았다. 인젠 중국에 가고싶어도 무슨 낯으로 친척들을 보며 무슨 면목으로 승민이를 대하느냐면서 아예 8년철을 한국에서 살아오신 엄마였다. 자동차를 모는것 외에는 가족밖에 모르시던 아버지는 가끔 술이 만취되여 집으로 들어와 긴긴밤을 술주정으로 날을 패기도 했다. 차츰 엄마의 일이 친척들에게 알려졌고 친척들로 아버지에게 다시 가정을 꾸려 새 삶을 시작하라고 권고를 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은근히 엄마를 기다리며 2년이나 더 힘든 나날을 보냈었다. 이러구러 5년이 지나던 그해 겨울, 아버지는 어느날 한 녀인을 데리고 승민이앞에 나타났다. 승민아, 인사해라. 새엄마가 될 분이시다.” ......” 그해 11살에 나던 승민이는 아버지의 말씀이 떨어지기 바쁘게 그 녀인을 흘끔 쳐다보았다. 살풋이 깔려있는 녀인의 눈은 가는 외까풀이였는데 왼쪽 눈두덩이에 있는 까아만 점이 무척이나 눈길을 끌었었다. 녀인은 승민이를 향해 애써 미소를 지으려고 했는데 웃입술이 약간 푸들거리고있었다. 승민이는 가끔 아침에 학교로 가는 길에 학용품을 사려고 문구방에 들리군하는데 아침마다 피곤한 얼굴로 매대앞에 나와서 학용품을 골라주던 상점집의 아줌마를 보는듯한 생각이 피뜩 머리를 스쳐지났다. 귀엽게 생겼네.” 역시 녀인은이 연필이 예쁘지?”하던 문구방집아줌마의 목소리만치나 담담하게 한마디를 했다. 에미 없이 자라서 애가 많이 수집다니까.” 아버지가 뒤질세라 녀인의 말에 동을 달아주셨다. 그날 이후로 십여일이 지난 어느날, 녀인은 작은 가방을 하나 달랑 들고 들어와서 여직껏 엄마자리를 찾이하고 살고있었다. 오늘같은 일로 몇번 아버지와 언성을 높인것을 빼고라면 새엄마와의 생활은 물에 물탄듯이 평범게만 흘러갔다. 승민이도 가끔 가족이란 그저 이렇게 담담하게 사는것이로구나 하는 생각을 굴릴뿐이였다. 그만치 승민이의 머리속에서 엄마의 얼굴은 차츰 잊혀져가고있었다. 아무리 힘을 들여 생각을 굴려보아도 엄마의 얼굴이란 공항에서 눈물을 짓던 그 모습밖에 기억에 없었다. 승민이는 문뜩 엄마가 한국에서 낳았다는 동생이 궁금해졌다. (누구를 닮았을가? 엄마가 같은 나의 동생인데 혹시 나를 닮지는 않았을가?) 승민이는 이제 겨우 말을 번질 3살배기 어린애가 아장아장 자기앞으로 걸어오는 모습을 그려보았다. 엄마가 달려가서 그 애를 와락 끌어안고 얼굴이며 이마를 쪽쪽 소리나게 빨아주고있었다. 쳈!” 승민이는 저도몰래 볼부은 소리를 뽑아올렸다. 괜히 엄마가 미워지기 시작했다. 순간 엄마가 자기도 아빠도 다 배반했다는 생각으로 분노가 치밀어오르려고 했다. (다시는 생각도 안할거야. 낳기만 해서 엄만가? 길러야 엄마지. 그래, 그래서 기른 정이란 말도 생긴걸거야.) 순간 새엄마의 얼굴이 다시 눈앞에 떠올랐다. 으악!”하고 소리치던 새엄마의 단말마적인 괴성이 아프게 귀속을 파고드는듯싶었다. 승민이는 온밤을 내내 악몽에 시달려야했다. 꿈에 머리에 뿔이난 괴물들이 승민이를 쫓아오기에 그 괴물들을 피해서 여기저기 뛰여다니느라 무던히도 힘들게 꿈길을 헤매다가 딱딱딱” 하는 칼질소리에 놀라 잠을 깼다. 창문가를 바라보니 벌써 날이 훤하게 밝아있었다. 래일은 어머니들의 명절 3.8절입니다.” 담임선생님의 말씀이 귀전을 스쳐지났다. (설마 벌써 일어났을가? 어제 밤에 그렇게 앓아가지구 벌써 일어난걸가?) 승민이는 벌떡 자리를 차고 일어나 앉아 주방쪽에 귀를 강구었다. 여전히딱딱딱”하는 칼질소리만 고르롭게 들릴뿐이였다. 승민이는 일어나서 발볌발볌 침실문가로 다가가 다시 주방쪽에 귀를 기울였다. 칼질소리 외에는 아무런 동정을 느낄수 없었다. 승민이는 조용히 침실문을 당겨 열었다. 발끝을 세워가지고 주방쪽으로 다가갔다. 아버지가 뭔가를 열심히 썰고있었다. 승민이는 호~”하고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아버지라면 괜찮을것 같았다. 누군가 자기를 위해 3.8절”아침을 준비해준다고 생각하면 새엄마로서도 기분이 괜찮을것 같은 예감이 들어서였다. 승민이는 열심히 칼질을 하는 아버지와 뭔가 말이라고도 걸어보고싶은 충동을 느끼면서 주방안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 동정에 아버지께서 승민이쪽으로 머리를 돌렸다. 어, 승민이 일어났네.” 네, 아버지, 아침을 합니까?” 그래, 오늘이 3.8절이 아니냐? 어제 밤에 엄마가 몹시 아팠는데.” 네, 괜챃습니까?” 누구? 엄마가?” 아버지께서 엄마”에 악센트를 주면서 물었다. 네.” 승민이가 입속으로 나지막하게 대답을 하며 다시 한번 아버지를 힐끔 쳐다볼 때 식탁이 놓인 칸으로부터 새엄마가 걸어나오고있었다. 새엄마의 손에는 어제 밤 승민이가 꿍져서 던져버렸던 옷이 들려있었다. 네귀가 반듯하게 포개여져 있는 모양이 깔끔하게 다리미질을 한것같았다. 승민이는 감히 새엄마와 눈길을 마주치지 못하고 급히 아버지쪽으로 눈길을 돌리며 옆으로 비켜섰다. 새엄마가 승민이 쪽으로 다가오며 약한 목소리를 가다듬어 이야기를 했다. 승민이 어제 밤 놀랐지? 내가 그렇게 급병을 해서... 승민이까지 집에 없었더라면 어쩔번했니? 그래서 가족이 있어야 하는거지. 우린 가족이니까, 가족이 있어서 얼마나 힘이되니?” 네,” 승민이는 기여들어가는듯 짤막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우리는 가족이니까, 가족이 있어서 얼마나 힘이되니?”하던 새엄마의 마지막 두 마디는 자꾸 가슴속 밑자락으로 깊숙히 잦아들려고 하는듯싶었다. 승민아, 네 칸에 가져다 놓을게, 입고싶을 때 입으렴. 의사는 급성위장염이 아닌가고 하더라. 암튼 승민이가 옆에 있어서 든든하단다. 난.” 네,” 승민이는 문뜩 새엄마의 이야기를 듣고있는 이 순간이 바로 고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쩜 새엄마가 어제밤에 있은 일을 빤히 알고있으면서도 일부러 그렇게 말씀을 하는것이 아닌가싶기도 했다. (그렇다면 과연, 그렇다면 나는 뭐라고 대답을 해야하는가? 어떻게 대답을 해도 겉다르고 속다른 치한으로밖에 안 보일텐데...) 승민이는 네거리에 발가벗겨진채 던져진듯한 자신을 느끼면서 한시바삐 그곳을 떠나고싶은 생각밖에 없었다. 여보 이 소고기를 실로 썰가? 아님 네모로 썰가?” 아버지께서 새엄마를 향해 목소리를 약간 높여 물었다. 없어요. 내칸으로 갔어요.” 승민이는 괜히 아버지에게 목소리를 높이면서 몸을 픽 돌렸다. 아버지는 승민이의 반상적인 행동에 웬 일이냐는듯 밉지 않게 눈을 흘기더니 허허허 웃으며 입을 얼었다. 자식, 엄마는 저쪽칸에서도 다 듣는다. 여보, 그치?” 맘대루 하세요. 아무렴 맛이 없을라구요. 당신이 만들어주는건데.” 새엄마가 승민이의 침실에서 나오며 말했다. 승민이는 그러는 새엄마를 피해 인차 자기의 침실로 들어가버렸다. 옷은 다시 승민이의 침대우에 놓여져있었다. 승민이는 침대와 한발 떨어진곳에 서서 한참이나 옷을 바라보았다. 아픈 몸으로 저 옷을 다리며 새엄마는 과연 무슨 생각을 굴렸을가가 못내 궁금해났다. 그런 생각이 들자 승민이는 도무지 새엄마와 한 밥상에 앉아서 아침밥을 먹을 자신이 없었다. (그래, 나가는거야. 이대로 학교에 가는거야, 이 시간이 지나면 뭔가 방법이 나지겠지. 그래, 먼저 아침밥상을 피하고 보는거야.) 승민이는 부랴부랴 옷을 찾아 입은후 가방을 손에 들고 침실에서 나오면서 부러 비명비슷하게 소리를 질러댔다. 나 먼저 갑니다. 야~ 깜빡했어요. 오늘 내가 청소당번인데. 늦으면 큰 일나요.” 승민이의 급해맞은 거동에 아버지도 새엄마도 출입문가로 나오시며 소리쳤다. 그래서 이대로?” 아침도 안 먹구 이대로 간다구?” 먹을 새가 없어요. 천천히 잡수세요.” 승민이는 누가 잡기라도하듯 급히 문을 나와버렸다. * 공공뻐스정류소에는 벌써 많은 사람들이 와있었다. 승민이는 그속에서 뻐스를 기다리는 진이를 발견했다. 진이의 얼굴에는 생글생글 웃음이 흐르고있었다. 야, 김승민, 굿모닝~” 왜? 아침부터 꿀먹은 상판이냐? 어제 밤에 돼지꿈이라도 꿨니?” 승민이는 진이를 향해 부러 퉁명스럽게 말했다. 진이는 승민이의 정서는 읽을 념도 않고 여전히 들떠있었다. 승민아, 넌 수입이 어때?” 수입? 웬 수입?” 카네이션!” 어, 카네이션?!” 승민이는 말끝을 흐렸다. 그제야 어제 저녁에 진이와 함께 꽃방에 들려 카네이션을 샀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아서 죽을상을 하는 진이의 표정을 봐서 과연 예상대로 소비돈을 듬뿍 받은것이 틀림 없었다. (흥, 유치하기는 제 엄마에게서 소비돈을 홀려내면서도 저렇게 기분좋을가?) 승민이는 자르르 웃음이 흐르는 진이의 얼굴을 꾹 물어뜯고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진이는 역시 기분파였다. 내 전술이 맞았다니까. 난 참 머리가 좋은 사람이야, 말했지? 엄마가 소비돈을 한 2백원쯤 줄지도 모른다구.” 그래서 정말 2백원을 받았니?” 승민이가 아니꼬운 눈길로 진이를 찔 째려보며 물었다. 먼저는 백원을 주는거야, 쳇 그정도에 물러설 내가 아니지.” 그럼 엄마의 가방이라도 훔쳐냈니?” 말하는것하구는, 훔쳐내다니? 엄마들께 그런 방법이 통할것 같니? 안되지, 안되구말구. 내가 손을 내밀자 엄마는 먼저 나에게 백원짜리 한장을 올려놓으며 이거면 되나요? 하고 묻는거야. 그래서 먼저는 어머니, 고맙습니다. 잘 쓰겠습니다 하고 인사를 했지. 엄마가 카네이션을 들고 감동을 먹으며 바라볼 때 엄마의 목을 끌어안으며 볼에다가 뽀뽀를 해준거야, 명절 축하합니다! 하면서 말이야. 엄마는 나의 엉뎅이를 툭 쳐주면서 돈가방을 주어들었어. 옛다. 큰 마음을 쓴다 하면서 말이야, 크크크... 이런게 바로 전술이거든.” 손짓발짓 해가면서 이야기를 하는 진이의 목소리는 무서운줄 모르고 커지는 고무풍선을 방불케하고있었다. 승민이는 행복이 찰랑대는 진이의 목소리에 괜히 부아통이 터져올라 먼산을 바라보며 휙휙 휘파람을 불어댔다. 오전 내내 휴식시간만 되면 동학들은 끼리끼리 모여서 엄마에게 선물을 드린 이야기며 엄마에게서 답례로 뭔가를 받던 이야기를 했다. 평소같으면 승민이도 끼여서 한술 떴으련만 이날만은 점점 더 가슴이 찜찜해나는것을 달랠수 없었다. 드디여 오전 공부가 끝났다. 선생님들이 모여서 3.8절”을 쇠기에 오후에는 휴식을 한다고 했다. 교실안은 또 한번 벌둥지를 터치운듯 시끌벅적거렸다. 자식들, 노는것이 그렇게 좋은가? 유치하게는...” 오후에 휴식한다고 해야 별다른 계획이 없는 승민이는 그저 심드렁한 표정으로 교정을 벗어나가는 동학들을 바라보면서 늘쩡늘쩡 걸음을 옮겨놓았다. 생각같아서는 오후 공부까지 하고 저녁 늦게 집에 도착하여 머리를 푹 숙이고 저녁밥을 먹은 뒤 침실에 들어가 이불을 뒤집어 쓰고 잠들어버리고싶었다. 그러면 새엄마와 마주할 시간이 그만치 줄어들어 덜 괴로울것 같았다. (어쩐담, 어디 가서 온 오후 놀다가 집에 들어갈가?) 승민아, 잠간만 기다려라.” 승민이가 신끝으로 땅바닥을 쓸어차며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을 때 뒤에서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승민이는 본능적으로 소리나는 쪽에 머리를 돌렸다. 진작 집에 간줄로 알았던 진이가 손에 뭔가를 들고 씽하니 달려오고있었다. 승민이는 저도몰래 기분이 좋아져서 진이를 향해 소리쳤다. 진이, 너 원래 집에 간게 아니였니?” 아니야, 가기는. 방금 상점에 들려서 이것들을 샀지.” 진이는 말하면서 승민의 옆에까지 뛰여왔다. 진이의 손에는 쵸코파이며 음료같은 먹거리들이 담긴 비닐봉지가 들려있었다. 야~, 말리지 못한다니까. 너 아직도 애기냐? 쵸코파이에, 음료에, 왜 아예 우유까지 사서 통에 넣어 먹지 그러니?” 야, 이 인정머리라곤 눈꼽만치도 없는 놈아. 남은 그래도 널 주자고 많이 삿것만은...” 거짓말도 알량하게 하시네, 내가 어딧는줄을 어떻게 알고 날 주자구?” 방금 상점안에서 널 봤거든. 김이 나간 축구뽈마냥 후줄근해서 지나가는걸, 너 분명 속에다가 뭔가를 두고 있는거지. 점심을 굶을것 같아서 마음 한번 써봤더니, 감사는 못할망정” 진이는 짐짓 서운한체 하면서 눈을 곱게 흘겼다. 승민이는 시무룩히 웃으며 진이의 어깨를 툭 쳐주었다. 알았다. 감사. 그래도 짝꿍이 다르긴다르구나. 됐니?” 무슨, 그럴것까지야. 근데 너 오후엔 뭘 할래?” 글쎄다. 뭘 할지?” 아동락원에 가자, 새로운 놀이기구들이 많이 들어왔대. 실컷 놀아보자. 내가 한턱 쏠게. 엄마가 준 돈 다 가지구 나왔거든.” 걸 다 써버릴려구?” 다야 뭐, 쓸만치 쓰면 되는거지. 근데 너 기분이 이상해 보인다. 속에 뭐가 들어있는데?” 아니야, 아무것두. 그냥 좋아. 아동락원에 가자. 대신 점심은 내가 쏠게, 나도 소비돈이 약간 있거든.” 승민이는 말을 하면서 바지 뒤호주머니를 툭 쳐보였다. 뒤호주머니에는 평소 모아두었던 소비돈이 몇십원 실히되게 있었던것이다. 가자, 승민아. 넌 통쾌해서 좋다니까. 그래 우리 뭘 먹을가?” 진이는 당금 식당에 들어서는듯이 기뻐서 들먹였다. 승민이는 그러는 진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얼굴에 느슨하게 웃음을 피워물었다. 맘대루 해라, 난 별루 가리는 음식이 없으니까.” 좋지. 좋았어. 뭘 먹을가? 떢볶이? 햄버거? 피자? 건 너무 비싸구, 랭면? 돈까스?...” 진이가 제 흥에 겨워 들떠있을 때 핸드폰이 울렸다. 승민이와 진이는 약속이나 한듯 핸드폰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내거다.” 승민이가 호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네, 그래요. 네?” 승민이의 얼굴색이 변하기 시작했다. 무시로 아래입술을 잘근잘근 씹어댔다. 변해가는 승민이의 표정을 읽으며 진이의 얼굴에도 약간 긴장감이 돌았다. 승민이가 소리쳤다. 왜 이래요. 제가 뭐 아직도 어린앤줄 아세요? 언제 절 생각이나 한적이 있어요? 그래요. 생일이면 딱 이 아들이 생각나는거겠죠? 그런 눅거리 생각 하지두 말아요. 불쾌해요.” 열변을 토하고난 승민이는 여전히 입술을 씹으면서 두 눈을 꼭 감고있었다. 전파를 타고 뭔가 아픈 사연이 넘어오는듯싶었다. 한참이나 그 맵시로 듣고만 있던 승민이가 또다시 소리치기 시작했다. 됐어요. 전 이미 엄마라는 말을 잊어버린지 오래요. 생일에 옷 몇벌 보내주면 엄만가요? 절 버리고 아버지를 버리고 다른 사람한테로 가서 아기를 낳을 때는 왜 절 생각안했어요? 전 지금이 행복하다구요. 잘 살고있다구요. 잘 사는 우리집에 불덩이를 던지지 말라구요. 다신 전화하지 말아요.” 말을 마친 승민이는 일방적으로 핸드폰을 꺼버렸다. 한참이나 거칠게 숨을 톱더니 더는 서서 지탱하기 힘든지 그 자리에 쪼크리고 앉아 두손으로 무릎을 감싸 쥐고 머리를 그 우에 얹어버렸다. 승민아, 너 괜... 괜찮니?” 진이는 발볌발볌 승민이의 옆으로 다가가서 승민이의 어깨에 살그머니 손을 얹으며 나지막하게 물었다. 승민이는 그린듯이 그대로 쪼크리고있었다. 승민아, 참아라 참으면 괜찮아질거다.” 진이가 다시 한번 승민이의 어깨를 다독이며 자신없이 말했다. 승민이는 별안간 머리를 쳐들더니 움찔 일어섰다. 승민이의 두볼을 타고 이슬같은 눈물방울이 주르륵 굴러떨어지고있었다. 울엄마야, 날 보고싶어 죽겠대. 랠 내 생일을 쇠주고싶은데, 날 보고싶어 죽겠는데... 안된대. 한국에서 올수가 없대. 흥, 위선자. 올려구 생각은 했는데? 안된다구? 싫어, 싫다구! 어른들이 다 싫다구.” 왜? 너의 엄만 집에 있잖니? 한국이라니? 뭔 소리야?” 진이가 깜짝 놀라 소리쳤다. 승민이가 눈물 고인 눈으로 진이를 바라보다가 울음섞인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집에 분은 새엄마야, 나를 키워주는 분이라구. 난 사람도 아니야, 고마움도 모르고 살았거든. 흥, 날 보고싶어죽겠다구? 그래 낳기만 하면 엄마야? 난 어제 밤에 새엄마를... 새엄마에게 못된짓을 해버리고 말았어. 죽어도 날 용서못할거야! 영원히, 영원히 용서가 안될거야!” 승민이는 주먹으로 자기의 신다리를 힘껏 후려쳤다. 발그레 달아오른 두볼이 고통으로 파들파들 떨리고있었다. 승민아, 너 진짜 가슴에 아픔이 있었구나. 그렇다고 생각은 했지만... 승민아, 널 어쩌면 좋니? 어쩌면 좋겠니?” 진이도 승민이만치나 혼란스러운지 말소리를 더듬거리며 근심스러운듯이 승민이를 지켜보았다. 새엄마에게 미안해. 오늘 아침 새엄마는 그 옷을 다리미질까지 해서 나에게 돌려줬어. 그래, 난 다시 새엄마께 카네이션을 사드릴거야. 빠알간 카네이션을 드리며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 하고 용서를 빌거야.” 승민아, 진정해라. 응? 진정해라! 우리 차근차근 생각해보자. 그래야 좋은 방법을 생각할수 있지 않겠니?” 진이는 떨리는 목소리로 진정을 토로하며 흥분에 떠는 승민이의 손을 살그머니 잡아주었다. 승민이는 고통스러운듯 두 눈을 꼭 감고있다가 천천히 뜨면서 조용히 입을 열었다. 어제 밤에 내가 새엄마께 너무도 큰 죄를 진거야. 난 인제야 새엄마의 마음을 알게되였어. 우리는 가족이야. 가족이라구! 난 다시는 가족을 잃고싶지 않아. 우리가정은 내가 지킬거야.” 승민이는 잠간 말을 마치고 머리를 들어 저 멀리 푸른하늘을 쳐다보았다. 승민아, 너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는 다 알지 못하겠지만 암튼 멋있다. 너의 말이! 사랑이란 주고받으면서 커지는것이라고 선생님께서도 말씀하지 않았니? 난 널 지지한다! ” 진이는 승민이를 향해 진심으로 주먹을 흔들어 보였다. 승민이도 진이를 향해 무겁게 머리를 끄덕여주었다. 그래, 진이야, 난 꽃방에 갈거야. 이 길루 꽃방에 가서 제일 예쁜 카네이션을 살거야. 엄마께 드릴거야. 카네이션에 나의 마음을 담아 드리는거야. 엄마! 하고 부를거야! 이 세상에서 엄마를 제일제일 존경하고 사랑할거야.” 말을 마친 승민이는 다시 한번 머리를 쳐들어 저 멀리 푸른하늘을 응시하다가 씩씩하게 걸음을 옮겼다. 승민아, 나도, 나도 함께 가겠다. 나도 카네이션을 사서 엄마께 드리겠다.” 진이가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너도? ” 그래, 오늘은 엄마에게서 꽃값을 받지 않겠다. 그냥 엄마에 대한 사랑을 담아 진심으로 선물드리겠다.” 그래, 가자.” 맑게 개인 파아란 하늘로 하아얀 비둘기들이 꾹꾹꾹 노래하며 나라예고있었다. 가슴을 쑥 내밀고 힘차게 발걸음을 옮겨놓는 승민이의 얼굴에는 빠알간 홍조가 피여올랐다. 그랬다. 승민이와 새엄마의 카네이션기행이 바야흐로 시작되고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