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은 야근이라 진나는 오후에 문을 나섰다. 도서관에 가서 일찌기 자리를 잡으려는것이였다. 지난달에 공무원시험을 신청해놓은 진나는 일분이라도 쪼개여 시험공부를 해야 했다.
낮잠에서 깨여난후 요한은 베란다에 나가 벌써 담배를 세가치째 피우고있었다.
진나는 문어구에 가서 신을 찾아 신으면서 얼굴을 벽으로 향한채 높은 목소리로 당부했다.
―잊지 마세요. 저녁에 전보다 반시간 앞당겨 과과를 데려와야 해요.
요한은 심드렁한 목소리로 그러마 하고 대답했지만 머리속으로는 여전히 종량은 지금쯤 낮잠에서 깨여났을가 하고 생각했다.
사실 요한은 낮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진나가 문을 닫고 층계를 내려가는 소리를 들으면서 그는 자기가 지금까지 줄곧 진나가 문을 나서기를 기다리고있었고 또 몇백리 밖의 도시에 살고있는 종량이 낮잠에서 깨여나기를 기다리고있었다는것을 의식하게 되였다.
종량에게 그 전화를 걸려고 결정하기전에 요한은 스스로 며칠이나 고민했다. 이번 일에서 좋은 결과를 보려면 꼭 종량의 손을 빌어야 한다는것을 느끼게 된 그날부터 요한은 그렇게 자신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사실 그들이 대학을 졸업한지도 어언 10년에 가까왔다. 요한은 당초 자기가 별생각없이 진나더러 종량에 대해 알게 한것을 몹시 후회했다.
대학교때 요한은 종량과 한전업에서 공부했었다. 그리고 두 사람 다 곽산이 고향이였다. 곽산현에서 그해 성사범대학에 붙은 사람은 그와 종량을 제외하고도 세 사람이 더 있었다. 그들 다섯 사람은 학교에 도착한 이튿날 한자리에 모였고 자기들을 “곽산 5걸”이라 부르기로 했다. “곽산 5걸”이란 이름을 들으면 참으로 그럴듯해보일지도 모르지만 사실은 그저 식당에 가서 가끔 밥이나 한번씩 먹는 정도였다. 그때 요한과 종량 사이는 그렇게 가까왔다고 할수 없었다. 요한은 한숙소에 있는 류흥원과 더 가깝게 지냈다.
졸업을 앞두고 그들 다섯은 마지막으로 리별연을 베풀었다. 연회가 끝난후 종량은 특별히 요한 한 사람을 따로 청했다. 다른 사람이 없이 딱 요한만을 청한것이다. 그것은 자기에 대한 요한의 도움에 보답하기 위해서였다. 요한이 종량의 졸업론문을 대신 써주었다. 요한의 론문은 상당한 수준을 갇추었다고 할수 있었다. 요한은 그 론문을 학보에 발표하려고 준비중이였다. 그때 종량이 요한에게 도움을 청했고 요한은 아쉬움을 눅잦히면서 편집부에 전화를 걸어 발표를 취소했다. 종량은 요한의 도움에 감개무량해하면서 원고비는 받지 않겠다고 하면 별수 없지만 인정만은 꼭 받아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종량의 청은 그처럼 간절하고 견결했다. 지어 애원에 가깝기까지 한 종량의 눈길을 보면서 요한은 더 이상 그의 청을 거절할수 없었다.
어쩌면 아무것도 아닌 일을 크게 말하는듯싶지만 그때 요한은 확실히 종량의 몸에서 보여지는 일종의 세심함을 느낄수 있었다. 종량은 그 일에서 평소 보여주던 데면데면함과는 달리 깐깐한 성미를 보였다. 하기야 겉으로 보여지는 데면데면한 성격 그대로라면 종량은 오늘날 청장의 비서라는 자리에 오를수 없었을것이다.
곽산은 성소재지에서 100여킬로메터 푼히 떨어져있었는데 그곳까지 가는 뻐스도 있고 기차도 있었다. 하지만 졸업후 10년 사이에 요한은 동창이고 고향친구인 종량을 겨우 한번밖에 보지 못했다. 그 만남도 6, 7년전에 “곽산 5걸”중의 넷째가 결혼식을 올릴 때였다. 아쉽게도 종량과 요한만이 결혼식에 참가했었다. 류흥원과 다른 한 동창은 불시에 일이 생겨 결혼식에 참가하지 못했다. “곽산 5걸”이 다 모이지 않아 요한과 종량은 도무지 기분을 돋굴수 없었다. 그들사이에 오간 몇마디 안되는 말은 그저 술잔에서만 촐랑거렸다.
요한은 사실 성소재지로 늘 출장을 다녔다. 그곳에서 일주일이상 머물 때도 있었지만 요한은 종래로 종량을 찾지 않았다. 웬지 종량을 찾아보고싶은 마음이 없었고 지어 전화도 하고싶지 않았다. 요한도 자기가 종량에 대하여 멀리했다는것을 승인했다. 하지만 그것을 전적으로 요한의 책임이라고 할수는 없었다. 사실 종량도 몇번 곽산에 다녀간적이 있었지만 한번도 요한을 찾지 않았다.
몇년전에 요한의 안해 진나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 교통계통에 취직하게 되였다. 그러니 종량이 사업하는 교통청의 기층단위에 출근하게 된 셈이다. 이때로부터 요한은 웬지 모를 일종의 불편함을 의식하게 되였다.
요한의 핸드폰에는 종량의 전화번호 두개가 수록되여있는데 하나는 핸드폰이고 하나는 고정전화이다. 종량의 핸드폰은 언제나 통했다. 해마다 추석이나 음력설 때면 그들은 핸드폰으로 축하메시지를 주고받았다. 하지만 요한은 이번에 핸드폰이 아닌 고정전화를 걸려고 마음 먹었다. 그런 생각이 아니였다면 구태여 토요일을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전화를 받는 사람은 시아비였다. 요한은 첫마디에 시아비의 목소리를 알아들을수 있었다. 그렇게 여러해가 흘렀지만 시아비의 목소리는 여전히 그가 학교방송실에서 “쥴리에트에게”를 랑송할 때의 그 목소리와 다를바 없었다. 요한은 인차 자기의 이름을 댔다. 전화 저쪽에서 인차 “왕요한!” 하는 부름소리가 들렸다. 시아비가 부르는 요한(约翰)과 요한(耀汉)은 한어에서 발음이 같았기에 시아비는 옛날에도 단둘이 있을 때면 요한(耀汉)을 요한(约翰)으로 부르기 좋아했다. 시아비의 친절한 목소리를 들으면서 요한은 웬지 목구멍이 꺽- 막히는듯싶었다. 요한은 여러해가 지났건만 시아비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은근히 목구멍이 메는 자신이 얄밉게 느껴졌다.
―7, 8년쯤 되던가?
―아니, 8년철이야.
―정말, 뜻밖이네. 또 이렇게 만날수 있다니.
―만난게 아니구 목소리만 듣는거지.
시아비의 말에 요한이 웃으면서 말했다.
―만나면 어떻구 들으면 어떻구… 같은거지 뭐.
시아비가 자기의 뜻을 주장하더니 차츰 목소리를 낮추면서 물었다.
―왕요한, 나를 찾는거야? 아님 종량을 찾는거야?
―그가 있어?
―그래, 있지.
―잘됐네.
요한은 기쁜 목소리로 한마디 했다. 일이야 어떻게 되든간에 종량이 집에 있다는것만으로도 요한은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모든 일은 시작이 중요하다고 첫번째 전화에서 종량을 찾았으니 참으로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반달이 다되여도 종량에게서는 아무 소식도 없었다. 요한은 종량에게 다시한번 전화를 걸어볼가고 생각하다가 어쩐지 타당한것 같지 않아 그만두었다. 하지만 그대로 무작정 기다릴수만은 없었다. 진나는 이 문제에 대하여 시종 적극적이였다. 그는 요한에게 한번 성소재지로 다녀오라고 제기했다. 아무래도 돈을 써야 할 일이라면 일찌기 쓰는게 나을것이라고 말했다. 진나는 종량에게 희망을 걸면서부터 전처럼 그렇게 도서관으로 부지런히 다니지 않았다. 종량이라는 금바줄이 눈앞에 있는데 전처럼 힘들게 공부를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것 같았다. 요한은 진나의 말에 아무런 태도표시도 하지 않고 묵묵히 종량의 소식만 기다렸다.
일을 이미 시작했는지라 어떻게든 끝을 봐야 했다. 그러자면 일정하게 피를 흘려야 한다고 요한도 생각하고있었다. 하지만 종량에게 물건을 사줘야 할지 아니면 현금을 건네줘야 할지를 두고 진나와 의견이 달랐다. 진나는 요모조모 자기 좋게 생각하는 요한의 뜻을 알것 같아 아예 통쾌하게 금을 그었다.
―진상은 꼭 해야 할게 아닌가요? 벗을것들을 다 벗었을라니 그까짓 한견지 남은게 뭐가 대순가요? 벗어요.
요한은 순간 귀방울이 화끈화끈 달아오르는것을 느꼈다. 그는 괜히 오른쪽귀방울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이것은 요한의 습관적인 동작이였다. 자기의 생각이 남에게 들켰다싶으면 요한은 그렇게 무의식적으로 귀방울을 만지작거렸다.
요한은 갑자기 몇년전에 어느 한 머리방으로 들어갔던 일이 떠올랐다.
그날 몇몇 동창들이 술을 마신후 기어코 요한을 끌고 그곳으로 갔다. 요한을 접대하는 녀자애는 나이가 많지 않았지만 행동은 매우 대범해보였다. 녀자애는 요한을 보자마자 단도직입적으로 나왔다. 그 바람에 요한은 놀라서 어쩔바를 몰라 했고 녀자애는 그것이 재미있다는듯 기어코 달려들어 요한에게 키스를 퍼부었다.
여기까지 왔는데 더 볼게 있는가?
머리속에서 그런 생각이 떠오르자 요한도 더 이상 구속을 받지 않았다.
요한은 지금이 바로 그때와 같은 경우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나는 소뿔을 단김에 빼려는듯 이튿날점심에 퇴근할 때 은행에 들렸다. 집으로 돌아온 진나는 요한의 손에 신용카드 한장을 쥐여주었다. 진나는 오른손 식지와 중지를 쫙 펴들고 비장한 표정을 지으면서 요한의 눈앞에서 힘껏 흔들었다. 그 수자는 진나가 내놓을수 있는 최고봉이였다.
드디여 일요일이 되였다. 요한은 종량에게 메시지를 보내여 집에 있는가를 물었다. 종량은 인차 집에 있다고 답장을 보내면서 무슨 일인가고 물었다. 요한은 핸드폰을 호주머니에 넣은후 큰마음을 먹고 집을 나섰다. 곧추 터미널로 발걸음을 옮겼다. 뻐스가 시내를 벗어날무렵, 요한은 종량에게 두번째 메시지를 보내려고 준비했다.
―나는 간부훈련반에 참가하려고 이곳에 왔다. 편리하다면 저녁에 너를 만나고싶다.
요한은 발송단추를 누르려다가 문뜩 손가락을 멈추고 잠간 생각을 굴렸다. 이어 그는 “너”라고 썼던 호칭을 “동창”이라고 고쳤다.
두번째 메시지를 날린지 한참이 지났지만 종량에게서는 답복이 없었다. 질주하는 뻐스안에서 요한은 쉴새없이 핸드폰을 꺼내여 메시지가 도착했는가를 확인했지만 번마다 실망감이 스멀스멀 머리를 쳐들었다. 그래도 요한은 종량이 불시에 급한 일이 생겨 메시지를 확인하지 못했거나 확인하고도 미처 답복할 새가 없어 메시지를 보내지 못하는것이라고 좋게 생각했다. 요한은 종량에게 다시한번 메시지를 보낼가고 궁리하다가 그만두었다. 이미 자기는 차에 오른 상태인데 구태여 종량의 메시지를 확인하느라고 애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요한이 차에서 내릴 때는 오후 2시가 조금 넘었다. 점심밥을 먹지 않았지만 조금도 배고프지 않았다. 요한은 터미널 맞은켠에 켄터키치킨점이 있던 기억이 났다. 배고프지는 않아도 들어가 잠간 다리쉼은 하고싶었다. 하지만 광장을 한고패 돌아도 보이지 않았다. 요한은 자기가 잘못 기억한것인지 아니면 다른 곳으로 옮겨간것인지 알수 없었다.
요한은 성소재지에 사는 고모에게 도착했다는 전화를 하려고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저녁식사는 몰라도 잠은 고모네 집에서 자야 했다. 고모부는 십분 례절을 따지는분이였다. 3, 4년만에 고모와 고모부를 찾아뵙는지라 되도록 례의는 지켜야 할것 같았다. 요한이 금방 통화버튼에 손가락을 올려놓았을 때 핸드폰이 먼저 울렸다. 종량이 걸어온 전화였다. 지도자들을 모시고 공지에서 돌아오는 길이라 메시지를 보지 못하고있다가 금방 확인하고 전화를 건다는것이였다. 종량은 요한에게 이미 도착했는가고 물었다. 도착했다고 대답하니 학습은 며칠동안 하는가고 물었다. 순간 요한은 저녁에 종량을 보기는 틀린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한은 어느 정도 여지를 두어야 할것 같아 학습은 이틀이지만 뒤에 여러가지 활동들이 있어서 확실하지 않다고 둘러댔다. 이어 그 활동들에 꼭 참가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그러자 종량은 그렇다면 시간적으로 넉넉할것 같으니 어느날 시간을 타서 만나자고 했다. 자기는 잠간후에 또 지도자를 모시고 다른 활동에 참가해야 하기에 좀처럼 몸을 뺄수 없다는것이였다. 종량은 한 이틀후에 다시 전화를 하겠으니 그때 시아비와 함께 저녁식사를 하자고 덧붙였다. 그 말을 들으며 요한은 솟아오르던 격정이 다 식어버렸지만 입으로는 여전히 괜찮다고 말했다.
종량과의 통화를 끝낸후 요한은 다시 고모네 집에 전화를 걸었다. 고모는 여전히 전화를 받지 않았다. 5분쯤 지나서 또 전화를 걸었지만 통하지 않았다. 요한은 그제야 고모의 핸드폰번호를 눌렀다. 고모의 목소리는 멀리에서 들려오는듯 높았다 낮았다 고르롭지 않았다. 고모는 남경의 부자묘에서 기름에 튀긴 썩두부를 먹고있다고 말했다. 고모부네 단위에서 로인들을 모시고 유람을 조직했는데 어제밤 기차로 남경에 도착했다는것이였다.
성소재지에 동창이나 낯 익은 사람이 몇이 있기는 했지만 요한은 그들에게 알리고싶지 않았다. 자기의 걸음이 그렇게 당당한게 아니여서 알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아무렇게나 밥 몇끼 먹고 눈이나 붙이면 될 일이 아닌가.
자는것도 사실 별문제가 아니였다. 터미널에서 동쪽으로 몇십메터쯤 가면 려관거리가 있는데 그곳에는 려관이 과일매대보다도 더 많았다.
이튿날 잠에서 깨니 벌써 아홉시가 넘었다. 간밤에 요한은 참으로 잘 잤다고 생각했다. 요한에게는 려관에 들면 텔레비죤을 특히 오래 보는 습관이 있었다. 평소 아무 뜻도 없다고 느끼던 련속극도 타향에서 혼자 밤을 패며 보느라면 별다른 재미가 있었다. 지난밤에도 요한은 새벽 한시까지 텔레비죤을 보다가 너무 피곤하여 눈까풀을 이기지 못할 때에야 자리에 누웠다. 요한은 침대에 눕자마자 잠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평소 집에서 잘 때보다 더 달게 잔것 같았다.
점심무렵에 진나가 전화로 단도직입적으로 종량을 만났는가고 물었다. 요한은 모든 일이 제대로 풀리기나 한듯이 유유하게 하품을 하고는 입을 열었다.
―어제밤에 주최측에서 환영연회를 열었거든. 술을 많이 마시고 열시가 넘어서야 호텔에 들어왔소.
며칠전에 요한은 진나에게 주말쯤 성소재지로 학습을 간다고 말했다. 진나의 일을 처리하기 위해 성소재지로 간다고 말했다가 종량을 보지 못할가봐 스스로 걱정되였다. 진나는 종량을 만나려면 직접 그의 집을 찾아가거나 사무실로 찾아가라고 권했다. 요한의 말을 중둥무이하면서 말꼬리를 잡아채는 진나의 목소리에 어딘가 가시가 돋쳐있었다. 진나의 뜻인즉 술자리에는 쓸데없는 말들이 많아 중요한 일을 의론할수 없다는것이였다. 요한은 사실도 모르고 이것저것 지시하는 진나한테 코웃음을 치면서 “나도 속에 수자가 있어.” 하고 얼버무렸다. 요한은 진나에게 과과에 대하여 물으려고 생각했다. 월요일 과과네 유치원에서 어린이들에게 무슨 백신인가를 접종한다고 했다. 하지만 진나의 어조가 곱지 않은것을 느끼고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삼켜버렸다.
요한은 려관앞에 있는 음식점에서 물만두 반근을 청해 먹고는 려관에서 텔레비죤과 씨름했다. 다섯시가 다되였지만 종량에게서는 시종 전화가 없었다. 그제야 요한은 어제 종량이 말한 “한 이틀후에”에 어제가 포함되지 않았을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니면 종량은 직접 래일이라고 말했을것이다. 에어컨이 진종일 돌아갔지만 요한은 조금도 선선한감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웬 일인지 발은 얼음처럼 차거웠다. 요한은 창문에 카텐을 쳤지만 밖에서 짙은 어둠이 스멀스멀 기여드는것을 보는것만 같았다.
밖이 완전히 어두워져서야 요한은 문을 나섰다. 그는 힘껏 손을 흔들어 택시를 세웠다. 택시에 오른 요한은 운전수에게 봉황소구역으로 가자고 했다. 봉황소구역은 바로 교통청일군들의 아빠트구역이였다. 어제 종량이 전화에서 자기네 집이 봉황소구역에 있다고 지나가는 말로 한마디 하는것을 새겨두었다.
봉황소구역에는 한번도 가본적이 없기에 요한은 운전수가 내리라는 곳에서 내렸다. 요한은 마루를 사이두고 막연하게 맞은켠을 바라보았지만 “봉황”이라는 글자가 보이는 건물은 없었다. 혹시 어디엔가 있을수도 있겠지만 밤이라 어둠때문에 보이지 않을것이라고 요한은 생각했다. 요한은 핸드폰을 꺼내들고 종량의 번호를 눌렀다. 종량은 지도자를 모시고 식사중이라고 말했다. 요한은 그게 사실이라고 믿었다. 종량의 목소리에서 술냄새가 나는듯싶었다. 요한은 “그래?” 하고 실망어린 목소리로 짤막하게 한마디 했다. 사실 요한은 그때 몹시 실망하고있었다. 하지만 그는 애써 정서를 눅잦히며 차분하게 말했다.
―그렇구나. 원래는 너네 집에 들려 잠간 앉았다 가려고 생각했는데… 금방 저녁을 먹고 호텔로 가다가 너네 아빠트앞을 지나게 된거다.
요한의 말에 종량이 혀가 꼬부라진 소리로 크게 떠들었다.
―그…그런 일이구나. 이보게 동창, 나 그러면 미안해 어쩌지? 내가 아직 너를 만나러 호텔에 가보지도 못했는데 네가 되려 나를 보러 우리 아빠트까지 갔다니.
그 말에 요한은 종량이 자기의 심사를 알아차린것 같아 급히 둘러댔다.
―아니, 그럴 필요 없다. 내가 우연히 너네 아빠트앞을 지나게 된거라니까. 인차 돌아올수 있니? 왔던김에 내가 잠간 여기서 너를 기다릴가? 호텔에 돌아가도 별로 할 일이 없는데.
요한은 자기가 이미 홀랑 벗고 종량의 앞에 나서는거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말을 하지 않고는 목적했던바를 이루지 못할것 같아 시름이 놓이지 않았다. 종량은 여전히 요한의 뜻을 모르는듯 급히 소리쳤다.
―필요 없어, 필요 없다구. 기다리지 말어. 절대 기다리지 말어.
말소리와 함께 드르륵- 하고 걸상을 당기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 누군가 걸상을 옮겨놓고 일어서는듯싶었다. 이어 종량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늘밤에도 언제 집에 들어갈지 모르겠다. 여기서 끝나면 지도자를 모시고 마작 몇판을 돌려야 할것 같다. 어쩌니, 어른이 좋다는데 내가 모셔야지. 우리 래일 보자, 래일 내가 너를 부를게. 나의 전화를 기다려라. 오늘 이렇게 약속하는거다. 래일 무슨 일이 있어도 뒤로 미뤄라. 래일 밤시간은 나에게 남겨라.
종량이 그렇게 나오는데야 또 무슨 말을 할수 있으랴.
래일도 허무하게 종량의 전화를 기다려야 한단다. 사실 요한은 시간이나 숙박비가 아까운것이 아니라 막연하게 종량의 전화를 기다리고있어야 한다는것이 억울하게 생각될뿐이였다. 요한은 속으로부터 올라오는 울화 같은것을 어딘가에 쏟아붓고싶었지만 그 어딘가가 어디인지를 알수 없었다.
요한은 사실 직접 종량네 집에 전화를 걸수 있었다. 만약 시아비가 전화를 받는다면 자연스럽게 올라가서 자리를 잡고 앉아 차물을 마시면서 한담을 할수도 있었다. 하지만 요한은 시아비만 있는 집에 올라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시아비를 통하여 신용카드를 종량에게 전할수 없다고 판단했다. 진나의 일을 처리하지 못하더라도 절대 그렇게는 할수 없다고 요한은 자신을 단속했다. 시아비앞에서 그만한 자존심은 세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성소재지에 도착한 세번째날, 요한은 “곽산 5걸”중의 한 사람인 류흥원을 인터넷에서 만나게 되였다. 그것은 요한에게 뜻밖의 수확이라고 할수 있었다.
아침에 자리에서 일어난후 요한은 카운터에서 숙박료를 예납하고 돌아왔다. 그때 복무원이 한창 방을 청소하고있었다. 보아하니 그렇게 쉽게 끝날 일이 아닌것 같아 요한은 PC방에 가서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내기로 마음 먹었다. 아무 일도 할것이 없는데 그것도 좋은 소일거리라고 생각되였다.
그때 흥원이 QQ에 올라있었다. 흥원의 서명에는 “성공은 백분의 99의 천부에다 백분의 1의 노력을 더한것이다.”라고 씌여져있었다. 요한은 “나에게 모자라는것이 바로 그 백분의 1의 노력이다.”라고 적어 흥원에게 날려보냈다. 흥원은 커다란 두개의 물음표를 적어 요한에게 보내왔다.
흥원은 늘 그렇게 QQ서명을 바꾸군 했다. 바꾸는 차수가 많아 가끔 스스로도 잘 기억하지 못했다. 요한은 흥원에게 구태여 자기의 정황을 말하고싶지 않아 게임을 놀기 시작했다. 한참후 흥원이 또 문자를 보내왔다.
―공적인 일로 왔니? 사적인 일로 왔니?
불시에 날아든 문자를 보면서 요한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흥원이 또 한마디를 덧붙였다.
―나도 성소재지에 있다. 이 도시로 온지 한주일이 지났다.
요한은 그제야 자기가 사용하고있는 인터넷의 IP주소가 성소재지로 뜨고있다는것을 생각했다. 류흥원은 분명 IP주소를 보고 그렇게 물었을것이다. 요한은 자기가 무엇때문에 성소재지로 왔다는것을 말하지 않고 되려 흥원에게 반문했다.
―넌 왜 이곳으로 왔니?
흥원은 “절방(截访)”이라는 두 글자를 날려보냈다.
흥원은 대학을 졸업한후 네번째되던 해에 공무원시험에 통과되여 고향 곽산현과 이웃해있는 한 현성의 교통지대에 배치를 받게 되였다. 그가 사업하는 현성에서는 건축업이 한창 흥기하고있었다. 도처에 쌓여있는 목재들처럼 아빠트가 군데군데 일어섰다. 그러다보니 가옥 이전을 두고 분쟁이 일어나 군중들이 상급으로 신소하러 떠난다고 소란을 피워댔다. 그 바람에 현성의 공안일군들이 현소재지며 북경으로 들어가 신소하러 온 사람들을 데려가느라 여간만 애를 먹지 않았다. 가끔 기차역전에서 보름씩이나 지키면서 그런 사람들을 타일러 돌려보낼 때도 있었다. 공안일군들만으로는 일손이 딸리기에 교통경찰들도 그 일에 개입하게 되였다.
흥원은 “성소재지에 왔으면서도 왜 말 한마디 없었는가?”고 요한을 나무랐다. 요한은 굳이 흥원에게는 감출것이 없겠다싶어 한마디 했다.
―그래, 개인적으로 일이 좀 있어서 왔다. 이미 이틀이 지났다.
요한은 흥원이가 계속 꼬치꼬치 캐여물으리라는것을 알고 주동적으로 사실의 경과를 털어놓았다. 흥원이도 진나가 종량과 한계통에서 사업한다는것을 알고있었다. 하기에 요한의 말이 어떤 뜻이라는것을 짐작하고는 화제를 돌렸다.
―너 지금 어디에 있니?
―여기, PC방이다.
흥원은 인차 술병이 그려져있는 그림을 요한에게 날려보내며 물었다.
―점심은? 우리 몇잔 할가?
요한은 더 생각하지도 않고 “좋지.” 하고 대답했다. 타향에서 고향친구를 만난다는것은 즐거운 일이였다. 요한은 차츰 기분이 들뜨기 시작했다. 흥원은 요한에게 한시간후 자기가 차를 가지고 가겠으니 먼저 호텔에 돌아가 전화를 기다리라고 했다.
침실은 이미 깨끗하게 정리되였기에 요한은 더 기분이 상쾌해지는것 같았다. 그는 들뜬 기분으로 침대에 털썩 드러누우려다가 생각을 고쳐 쏘파에 엉뎅이를 붙였다. 침대가 깔끔할수록 함부로 드러누울수 없었다. 요한이 금방 리모컨을 손에 들었을 때 메시지가 들어오는 소리가 울렸다. 진나가 보내온 메시지였다.
진나는 요한에게 학습반에 참가하려고 성소재지에 갔다는 사람이 왜 PC방에 가있었는가고 따졌다. 진나는 마치 모든 사실을 다 알고있는듯싶었다. 진나가 또 메시지를 보내왔다. 자기가 요한의 사무실에 전화를 걸었었는데 쑈왠(小袁)이 전화를 받으면서 학습반으로 간다는 말이 없었다고 했다는것이다. 요한은 핸드폰을 손에 들고 진나에게 사실대로 말할가 궁리했다. 그때 누군가 급하게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요한은 분명 흥원일것이라고 생각했다. 흥원은 침실에 들어서자마자 급히 화장실로 들어가며 소리쳤다.
―겨우 참았다. 터질번했다.
흥원은 손에 쥐고 온 차고뿌를 내려놓지도 못하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얼마나 급했던지 화장실문을 닫지도 못했다. 흥원은 쏴― 소리나게 일을 보면서 말했다.
―어쩌니? 식사를 같이할수 없을것 같다. 금방 소식을 접했는데 한시 반에 또 나가야 한단다. 그래서 일부러 알리러 온거다.
요한은 식사시간이 당금인데 시름 놓고 쉴수 없는 흥원을 보면서 “너희들도 참 쉽지 않구나.”고 생각했다.
흥원은 일을 다 본후 손을 씻으면서 말했다.
―맨날 이렇게 허둥지둥해야 하니 통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종량은 언제 만나니?
요한은 얼굴에 약간 웃음을 띠우면서 발뺌을 하려는듯 중얼거렸다.
―그도 금방 비서로 되였으니 너처럼 바쁠거다.
―그래, 바쁠테지. 그는 아마 지금 누구보다도 더 바쁠거다. “나는 룡은 대가리만 보이고 꼬리는 보이지 않는 법”이라고 하잖니?
흥원의 얼굴에 야릇한 웃음이 피여올랐다. 요한은 문뜩 뭔가 짐작되는바가 있어서 물었다.
―너도 그를 찾는거니?
―그래, 찾은적이 있었지.
―누구의 일때문에?
―……
흥원이 더 이상 말하려고 하지 않기에 요한도 캐여묻지 않았다. 사실 전에 흥원이는 요한이에게 종량과의 래왕에 대하여 말한적이 없었다. 만약 이번에도 요한이가 먼저 묻지 않았다면 흥원은 종량과의 래왕에 대하여 말하지 않았을것이다. 대학교때 흥원은 종량이보다도 요한이와 더 가깝게 지냈다. 하지만 지금의 사회생활을 살펴보면 친분보다 리해득실에 따라 끼리끼리 모이는것이다. 흥원이도 교통경찰이니 교통부문과 직업적인 련계가 있을것이였다. 요한은 자기가 너무 민감한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더 이상 상상하지 않았다. 요한은 화제를 돌려 교통경찰들에 대한 복리문제를 끄집어냈다. 얼마전에 신문에서는 성소재지 어느 구의 차량관리소 부소장이 규률위반으로 잡혔다는 소식을 보도한적이 있었다. 그 소식을 보면서 요한은 한개 구의 차량관리소라면 고(股)급이나 될가 하고 짐작해보았다. 그런 부문의 부소장이 2년 사이에 70, 80만원의 돈을 손에 넣었다니 정말 알고도 모를 일이라고 생각했다. 흥원은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혀를 끌끌 찼다.
―세상이 어쩌자고 이러는지 참. 점점 못해간다니까. 거리에 차들이 날로 많아지지만 교통경찰들에 대한 대우는 점점 못해가니 별수없이 로임으로 겨우 입에 풀칠이나 하는거지 뭐.
그 말에 요한은 터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흥원은 말하면서 자주 핸드폰을 꺼내보았다. 그 거동에 요한은 흥원이가 누구의 전화를 기다리지 않으면 시간을 알아보는것이라고 짐작하면서 입을 열었다.
―너 급하면 먼저 가서 일을 봐라. 다시 시간을 잡으면 되지 뭐.
―그럼 저녁에 만날가?
흥원이가 말했다.
―안돼, 저녁에 종량을 만나기로 했거든. 그가 겨우 시간을 낸다는데 어길수야 없지. 아니면 우리 함께 만날가?
―종량을 만나 중요한 일을 부탁한다면서? 내가 왜 끼여들어.
흥원은 눈치 빠른 사람이였다. 하기에 흥원이 절대 동의하지 않을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일부러 다시한번 청을 들었다.
―함께 하면 좋을텐데, 남도 아니구 동창들끼리.
말을 마치고난 요한은 스스로도 너무 허위적인듯해서 얼굴이 붉어졌다. 흥원이 얼굴에 웃음을 띠우면서 말했다.
―내가 끼이면 진짜 남이 되고말걸. 종량은 지금 나를 멀리하고있거든.
―그건 또 무슨 뜻이지?
흥원은 인차 대답하지 않고 차잔을 들어 차물 한모금을 마셨다.
흥원은 차물이 묻은 입술을 몇번 감빨더니 눈길을 차고뿌에서 돌리며 물끄러미 요한을 바라보았다.
―너 이번에 종량을 만나러 왔다 했지? 너의 생각엔 이번에 종량을 만날수 있을것 같니?
요한이 설레설레 머리를 저었다.
―나도 알수 없다. 사실 말이지 이번에 와서 그냥 부딪쳐보려는 생각이다. 졸업한지 이렇게 여러해가 되지만 나는 한번도 먼저 그에게 전화를 해본적이 없다. 평소에 크게 련락이 없었는데 어찌 그가 도와줄것을 바라겠니?
―평소 련락이 있어도 그가 도와줄것이라고 생각하니?
―그래도 평소 련락이 잦았다면 또 다른 문제지. 아무리 마음이 돌 같은 놈이라도 가슴이야 역시 고기로 된게 아니겠니?
―너에게 실말을 한가지 해줄가? 지금의 문제는 나나 너에게 있는것이 아니라 그에게 있다는거다. 알겠니? 종량의 얼굴에 어리는 그 엄숙함을 보아라. 지금은 그의 위치가 완전히 달라진거다. 따라서 그의 생각도 달라질수 밖에 없는거다. 동창이라는 이 관계는 어쩌면 아예 없는것보다 못할 때도 있다. 이것은 내가 직접 느껴본것이다. 참고로 해라. 우리가 서로 대방의 사정을 너무 잘 알고있으니 되려 부담스럽게 생각되는거다. 너, 졸업전야에 종량이 파출소에 잡혀갔던 일을 알고있니?
―파출소에? 무슨 일로?
―오입질로.
―뭐 오입?
―그래, 그 일을 아는 사람은 그때 학교에서 나밖에 없었다. 졸업을 앞둔 그해 겨울방학이 시작되자 너희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갔었지. 그때 나는 금방 맹결이랑 사귀기 시작했을 때여서 떨어지기 아쉬웠던거야. 나는 맹결이랑 며칠 더 함께 있으려고 숙소에 남았었댔지. 어느날 밤, 열두시가 넘어서 종량이 나에게 전화를 걸어온거다. 돈 5천원을 가지고 와서 자기를 꺼내달라고. 문화로에 있는 그 파출소로 오라 했어. 아마 그 파출소 소장의 성씨가 구양이였을거다. 만약 그날로 돈을 가지고 가서 그를 꺼내지 않으면 이튿날 날이 밝는대로 학교에 통지한다는거야. 학생증도 모두 파출소에 압류되여있는 상태였거든. 종량은 당시 나의 신용카드에 돈이 있다는것을 알고있었다. 노트북을 사려고 돈을 준비했다고 내가 종량에게 말한적이 있었거든. 나와 함께 파출소에서 나오는 길에 종량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아달라고 손이야 발이야 비는거였다. 내가 그러마 하고 답복하지 않으면 내앞에서 무릎이라도 꿇을 태세였거든. 졸업이 당금인데 그 일이 학교에 알려지면 졸업증도 타기 힘들었을걸.
흥원의 말을 들으며 요한은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그런 일이 종량에게서 발생했다는게 놀라왔고 그것도 십년전의 종량에게서 발생했다는것에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흥원은 호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냈다. 그는 요한이가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는것을 알고 권하지 않았다. 그는 소리없이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번에 내가 그를 선뜻이 도왔으니까 순리대로 하면 그가 나에게 인정빚을 졌다고 해야 옳은게 아니니? 하지만 내가 선뜻이 나서서 도와준 그 일이 되려 역반응을 일으킬줄이야. 지난해 나의 장인이 사는 동네가 파가이주범위에 들게 되였다. 하여 장인은 진에다가 괜찮은 영업집을 하나 장만하려고 계획했었지. 7, 8만원 정도의 돈이 모자랐다. 그때 너도 사는게 힘들다는것을 알고 너에게는 그 일을 말하지 않았던거다. 나는 종량을 찾아가 5만원만 먼저 드텨달라고 청을 들었댔다. 나는 말만 하면 그가 도와줄줄로 알았거든. 그때 종량은 이미 청장의 비서로 제발된후였으니까. 게다가 그의 안해 시아비네가 어느 정도 산다는것은 너도 아는 일이 아니니? 내가 입을 열자 종량은 과연 안된다고 하지 않았다. 하지만 돌아가서 시아비와 토론해보겠다는거다.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았거든. 그래서 아무 궁리도 없이 “당년에 내가 컴퓨터도 사지 않고 돈을 너에게 꾸어주지 않았니? 오늘 내가 급한 일이 생겼으니 너도 응당 나를 도와줘야지.” 하고 한마디 했던거다. 나는 순전히 롱담으로 그 말을 한것이지 정말 그 보답을 받으려는것은 아니였다. 하지만 종량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지. 나는 후에야 일이 잘못되였음을 알게 되였다. 이틀이 지나도 소식이 없어서 내가 종량의 핸드폰번호를 누르니 핸드폰이 꺼져있었다. 그후 날마다 걸어도 핸드폰은 그대로 먹통인거다. 그래서 어느날 내가 사무실의 전화를 가지고 그에게 련계를 했지. 뜻밖에도 인차 련결이 되였다. 종량은 낯선 전화번호라 나인줄은 생각도 못했던거지. 내가 돈에 대한 말을 꺼내자 그는 마치도 다른 사람으로 변한듯 어조마저 달라졌다. “이보게 동창, 나도 지금 집을 장식하고있다네. 그래서 5만원이나 되는 큰돈을 인차 꺼낼수 없구려.” 그는 자기의 손에 현금 2천원이 있으니 쓰겠으면 먼저 가져다 쓰라고 했다. 나는 수화기를 내려놓은후 다시 핸드폰으로 그에게 련락을 해보았다. 그의 핸드폰은 여전히 꺼져있더구나. 그제야 나는 모든것을 알수 있었다. 그는 나의 핸드폰번호를 블랙리스트에 집어넣었던거다. 의식적으로 나의 핸드폰을 받지 않으려 했던거지.
―그럴수가… 이미 십년이 지난 일인데.
―하지만 그 일은 여전히 자료에 남아있는거다.
흥원의 말을 들으며 요한은 종량에 대하여 말할수 없는 회의가 드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그리고 십여년전의 종량이 자기가 알고있는 형상과 그렇게 큰 차이가 있었다는것에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그러니 10년이 지난 오늘 종량이 어떻게 변해있으리라는것은 정말 추측하기 어렵다고 생각되였다. 사실 어떤 사람은 십년이 아니라 영원히 속내를 알수 없게 자신을 위장하고있다. 십년이란 시간은 짧은것이 아니다. 그것도 십년전에 그러한 과거가 있는 종량이라면 더더욱 추측할수 없을것이였다.
요한은 애써 종량을 리해하려고 생각했다. 사람이란 높은 곳에 오르면 오를수록 스스로 조심하기 마련이다. “조심한다는것”은 어떤 상태를 말하는것인가? “조심한다는것”은 바로 조심하는 마음이 있다는것을 뜻할것이다. 일이 잘될라 치면 많은 사람들이 그를 주시하게 된다. 요한은 며칠전에 인터넷을 달구던 그 기사를 떠올렸다. 30살도 안되는 어느 도시의 공청단서기가 학교때 졸업론문을 표절했다고 누군가 고발했다는것이다. 만약 그가 아무 관직도 없는 백성이라면 그가 졸업론문을 표절하든말든 누가 관심이나 가지겠는가? 종량이처럼 그럴듯한 관직에 있는 사람들은 남의 눈이 무서워서라도 전에 있었던 오점들을 단번에 긁어버리지 못해 안달이 나할것이다.
론문이라는 생각이 떠오르자 요한의 머리에는 학교때 발표하기로 했던 론문을 종량의 졸업론문으로 양보하던 일이 떠올랐다. 게다가 흥원이 방금 말한 일들을 련계하여 곰곰히 생각하노라니 차츰 머리가 무거워졌다. 갑자기 누군가에게 한매 강타라도 당한듯 눈앞이 아찔해났다.
흥원은 떠날 때가 되였다면서 문가로 다가가다가 몸을 돌려 지나가는 말처럼 한마디 했다.
―그래, 아까 QQ에서 너의 와이프를 만났댔다. 너의 와이프는 네가 여기로 온것을 모르는것 같더라.
요한은 그제야 진나가 왜 자기에게 메시지를 보냈는가를 알게 되였다. 흥원을 바래고 침실에 들어온 요한은 주저하지 않고 즉시로 진나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늦어도 래일은 돌아갈거요. 당신, 아마 사상준비를 해야겠소. 일이 잘 풀리지 않는구려.
좋지 않은 느낌은 과연 현실로 되였다. 낮잠에서 깨여나니 3시가 지나있었다. 그때 종량이 전화를 걸어와서 성근하게 미안하다고 사죄를 했다. 방금 전화를 받았는데 청장이 백마시로 가서 한 공정의 정초의식에 참가한다는것이였다. 오후에 떠나 래일저녁에야 돌아온다고 했다. 자기는 당금 출발해야 하니 요한의 학습반이 언제 끝나는가고 물었다.
요한은 진작 그런 경우도 그려보고있었던지라 그다지 충격을 받지 않았다. 요한은 차분한 목소리로 학습반이 래일 끝나게 된다고 말했다.
요한은 이제 어느 정도 속이 개운해지는것 같았다.
요한은 종량이 먼저 진나의 일을 끄집어내기를 기다렸다. 지난번에 전화에서 요한은 분명 진나의 일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종량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더냐싶게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요한은 종량이가 자기가 무슨 말을 하려 한다는것을 모를수가 없을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종량이 진나의 일을 입밖에도 꺼내지 않으니 무슨 생각을 하고있다는것을 묻지 않아도 알수 있었다. 요한은 속으로 쌓아가던 닭알무지가 와르르 무너지는듯싶었다.
핸드폰을 호주머니에 넣으면서 요한은 종량을 두고 여러가지로 추측해보았다.
종량이 나를 멀리하는데는 진나의 일외에도 또 다른 원인이 있을것이다. 대학교때 나는 “곽산 5걸”중에서 흥원이와 관계가 제일 밀접했다. 게다가 흥원이와 한숙소에 있었기에 종량은 “오입에 관한 일”을 흥원이가 나에게 말했다고 생각할수 있다. 당시 종량은 흥원에게 꼭 비밀을 고수해달라고 빌었다지 않는가? 그러고보니 종량이 당시 근심한것은 졸업증만이 아니였을수도 있다. 종량이 흥원에게 애원할 때는 이미 파출소에서 나온후이다. 그러니 학교나 파출소에서 그 일을 다시 추궁하지 않을것이라는것은 그도 짐작할수 있었을것이다. 그렇다면 그때 종량이가 소문이 나갈가봐 진정으로 근심하게 된 원인은 시아비가 그 일을 알가봐 두려웠을것이다. 시간적으로 따져보아도 그무렵은 종량이와 시아비의 관계가 관건적인 상황에 놓인 시각이였다.
사실을 대충 알고나니 요한은 기분이 가벼워지는듯했다. 자기는 응당 해야 할 노력을 다했다고 생각했다. 순간의 고민과 려비를 좀 팔았을뿐 다른 손실은 본것이 없다고 스스로를 위안했다. 희망으로 부풀어있는 진나에게는 그럴듯한 구실을 달아 속여넘기면 될것이였다. 요한은 진나에 대하여 잘 알고있었다. 그는 열정이 빨리 오는것만큼 식기도 빨리 식었다. 시계를 보니 4시도 채 되지 않았다. 즉시 터미널로 나가면 곽산으로 가는 뻐스를 탈수 있었다. 요한은 인차 물건을 수습하기 시작했다.
침실을 떠나기에 앞서 요한은 흥원에게 떠난다는 인사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요한은 흥원에게 이미 교통청앞의 커피숍에서 종량을 만났다고 거짓말을 했다. 전화속에서 복잡한 소리들이 마구 들리는것으로 보아 흥원은 한창 일에 바쁜 모양이였다. 흥원은 요한에게 침실을 물렸는가고 물었다. 요한은 바로 내려가 침실을 물리려 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흥원은 자기가 저녁에 시간이 나니 하루밤만 더 묵어가라고 권했다. 저녁에 만나서 밥이라도 먹으며 그동안의 회포를 풀어보자는것이였다. 그러면서 흥원은 자기에게 화위달호텔의 우대권 두장이 있다고 덧붙였다. 요한은 사실 하루밤을 더 묵을 생각이 없었지만 일시 타당한 구실이 생각나지 않아 꾸물거리다가 얼떨결에 동의하고말았다.
요한은 흥원이 말하는 음식점이 화위달호텔꼭대기의 회전식당인줄을 몰랐다. 만약 그곳이 회전식당인줄을 알았다면 요한은 다른 곳을 택했을것이다. 화위달호텔광고판은 성소재지로 들어오는 길 량옆에 번듯이 세워져있었다. “화위달(华威达)”이라는 금빛나는 세 글자가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화위달호텔은 성내에서도 소문 높은 건축물로서 58층이나 되였다. 높이가 높은것처럼 장식 또한 호화롭기를 이를데 없었다. 로임으로 사는 사람들은 자기의 돈을 팔고 그곳으로 들어갈 엄두조차 낼수 없었다. 뜻인즉 그안에 들어가 돈을 팔수 있는 사람은 결코 자기의 로임으로 사는 사람이 아니라는 셈이다. 화위달호텔에 별 관심이 없어서였던지 요한은 꼭대기에 회전식당이 있는것조차 모르고있었다. 알았다고 해도 요한은 그렇게 반갑지 않았을것이다. 그 원인은 그곳의 소비가 너무 비싸서도 아니였다. 요한이 근심하는것은 화위달호텔이 너무 높다는것때문이였다. 요한은 사실 고소공포증을 가지고있었는데 그러한 증상은 어릴 때부터 있었다. 조금만 높은데로 올라가면 허리를 제대로 펼수가 없었다. 평소 집에서 유리창을 닦거나 전등을 바꾸는 일도 진나가 담당했다. 요한의 부모와 진나를 내놓고는 누구도 요한의 고소공포증에 대하여 모르고있었다. 그것이 큰 병집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랑할만한 일도 아니기에 여직 숨겨왔다.
요한은 밥 한끼를 먹기 위하여 고소공포증까지 느끼며 높은 곳으로 오른다는것이 그렇게 달갑지 않았다. 화위달호텔은 확실히 높았다. 엘레베터를 타고 오르는데만 5, 6분은 실히 걸렸다. 두세층 오르고는 멈춰서서 몇 사람을 부리우고 또 몇 사람을 실었다. 몇층인가를 알리는 지시등은 혈압을 재는 혈압계처럼 느껴졌다. 자꾸 높아지는 수자를 보면서 요한은 누군가 실오리로 자기의 심장을 묶어 당기는것만 같았다. 요한은 아예 두눈을 지그시 감아버렸다.
료리점에 들어간 요한은 통로곁에 자리를 잡았다. 너무 일찍해서인지 상들이 반나마 비여있었다.
요한의 거동을 보면서 흥원은 절레절레 머리를 저었다. 보통사람들은 회전식당에 오면 창문과 가까운 자리를 찾아 앉아 도시풍경과 도시주변을 둘러싼 뭇산들을 보는것을 일종의 향수로 생각했다. 회전식당은 매 59분마다 한고패씩 돈다고 했다. 회전식당의 설계가 그처럼 교묘하고 아름다왔지만 요한은 조금도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메뉴를 번지면서 요한은 연신 자기의 거동을 해석했는데 그 구구한 말들에는 어딘가 스스로에 대한 조소까지 섞여있는듯싶었다.
―난 참 담이 작단 말이야. 조금만 높은 곳에 오르면 두려움부터 앞서거든. 정말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너, 그저 그러려니 하구 나를 리해해라. 세상에… 이렇게 비싼거야? 가지튀김 같구만.
―고기속을 넣은 가지튀김 같은데 한 접시에 68원이나 하다니. 진짜 그저 놀음이 아니네.
―괜찮아, 골라라. 너를 보고 돈을 내라고는 안할테니. 너는 일전도 낼 필요가 없다.
말을 마친 흥원이는 요한에게 택시에서 하던 말을 계속하려고 말머리를 헤쳤다. 흥원은 아까 차에 앉아 오면서 요한에게 오후차를 마실 때 종량의 태도가 어떠했는가를 넌지시 물었다. 요한은 말을 잘못했다가 거짓말인게 탄로날가봐 허투루 말을 하지 못하고 종량이가 노력해보겠다고 대답했다고 얼버무렸다. 흥원은 옆에 택시운전수가 있다는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종량이가 받던가고 물었다. 요한은 인차 “아니.” 하고 대답했다. 그러자 흥원은 흥- 하고 코방귀를 뀌고는 듣기 거북하게 한마디 욕지거리를 했다.
흥원은 료리가격을 보며 좀자르는 요한의 손에서 메뉴를 당겨가더니 단번에 료리 몇개를 짚어보였다. 복무원이 돌아서자 흥원은 인차 얼굴에 랭랭한 웃음을 띠우며 말했다.
―넌 네가 담이 작다고 하지만 종량이 그 자식은 너보다도 더 담이 작은거다.
요한은 흥원의 앞에서만은 자존심을 세우고싶어 두리뭉실하게 한마디 했다.
―너도 알지 않니. 종량은 무슨 일에서나 조심성이 많다는것을.
흥원은 잠자코 요한의 말을 듣고만 있을뿐 뭐라고 동을 달지 않았다. 흥원은 담담한 눈길로 요한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엉뚱한 물음을 물었다.
―너, 내가 여기 있다는것을 그에게 말했니?
―그라니?
―종량이하구.
―아, 아니. 그건 왜?
―그래, 말하지 않는게 좋아. 그 자식이 내가 여기 있다는것을 몰라야 해.
그 말에 요한이 흥미롭다는듯 물었다.
―그렇다면 지금 그가 너를 피하는거니? 아니면 네가 그를 피하는거니?
흥원이가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전에 나는 이곳으로 올 때마다 그에게 전화를 했다. 하지만 지난번 돈을 꾸던 그 일이 있은후부터 한번도 전화를 하지 않았다. 내가 자꾸 그의 앞에 나타날 필요가 없는것 같아. 그가 나의 이름을 블랙리스트에 처넣었는데 내가 그에게 칼자루를 넘겨줄수는 없는거지. 세상이 이렇게 작은데 어느때 어떻게 만날지 모르지 않니? 네가 그에게 무엇인가를 바라지 말아야 하지만 그가 너에게 무엇인가를 바라지 말게도 방비해야 하는거다. 이런 도리는 모두 알고있는것이 아니니?
요한은 얼굴에 시무룩이 웃음을 담으며 말했다.
―흥원아, 그러고보니 너도 무척 담이 작네.
―조심하는것은 나쁜 일이 아니지. 조심하면 풍랑속에서도 배를 번질리가 없거든.
료리 한 접시가 상에 올랐다. 흥원은 허리를 쭉 펴고 자세를 바르게 한후 잔을 들며 목소리를 다듬어 말했다.
―자자자, 동창, 오랜만이다. 너를 환영하는 의미에서 그리고 우리의 만남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이 잔을 비우자. 들어라.
그들은 흰술을 마셨다. 요한의 주량은 딱히 어떻다고 말하기 어려웠다. 그가 술을 많이 마시는가 적게 마시는가는 전적으로 대방의 분위기에 달려있었다. 대방이 한잔을 권하면 요한은 석잔을 권할수도 있었다. 눈 깜박할 새에 술 서너잔이 배속으로 들어갔다. 기분이 둥둥 뜨는듯했다. 온몸의 무게가 머리로 쏠리는듯싶었다. 흥원은 눈길마저 풀리는듯했다. 복무원이 료리를 상에 올리고 돌아갈 때 그는 치마밑으로 보여지는 복무원의 미끈한 다리에서 눈길을 떼지 못했다. 그 눈빛은 곁에서 보기에도 민망했다. 요한은 흥원의 눈앞에 저가락을 흔들어 그가 눈길을 저가락에 돌리게 한후 그 저가락을 천천히 료리접시에 가져다가 톡톡 두드렸다.
―참, 금방 술 몇잔을 마셨다고 그렇게 정신이 아늑해지는거니?
그제야 흥원은 료리접시쪽으로 눈길을 돌렸지만 아쉬움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있었다.
―너 이번에 와서 옛 련인을 만났니?
요한은 흥원이 말하는 그 “옛 련인”이 누구를 두고 하는 말이라는것을 알고있었다. 하지만 요한은 일부러 모르쇠를 대면서 “옛 련인은 무슨? 누구를 두고 하는 말인데?” 하고 되물었다.
―너 모르쇠를 대기는…
요한은 이런 일은 숨기려고 하면 할수록 더욱 대방의 흥미를 불러일으킨다는것을 잘 알고있다. 요한은 흥미가 없다는듯 갱충맞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리 옛 련인이라 해도 때와 장소를 가려야지. 이번에 와서 일이 잘 안 풀려 기분이 늘 꿀꿀해있었는데 어디 옛 련인을 생각할 흥이나 있었니?
―기분이 나빠서가 아니라 너는 아예 그를 생각하려고 하지 않은거겠지. 내 말이 틀려?
흥원은 술에 취해 혀가 잘 돌아가지 않았지만 정신만은 올똘한것 같았다.
요한은 흥원을 바라보며 허허허 웃음을 터뜨렸다.
―그것도 그렇지, 나는 이번에 종량의 도움을 청하려고 왔단 말이다. 그런데 량심이 없게도 그의 와이프를 찾아 옛정을 나눌수 있겠니? 있을수 없는 일이지.
―여기서 받아주지 않는단 말이지?
흥원이 저가락을 들고 자기의 가슴을 쿡쿡 찔렀다.
―그렇다고 할수도 있지.
―하지만 그게 누군가를 봐야지. 우린 오랜 동창이라니까. 잊지 말어. 그 자식이 먼저 너에게 미안한짓을 한거라구. 당년에 종량이 그 자식이… 어느 한 면에서 너와 비길수 있었댔니?
그 말을 들으며 요한은 서글프게 웃었다. 그리고는 자기가 주인이라도 되는듯 술잔을 들어 흥원의 눈앞으로 가져갔다. 흥원은 술잔을 피해 눈길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
―사실 말이지…
흥원은 매번 속심의 말을 할 때면 구두선처럼 “사실 말이지” 하고 코를 뗐다. 그 말을 들으면 전에 한 말들이 모두 사실이 아닌것처럼 들렸다.
―네가 너무 로실했던거야. 그래서 종량이 그 자식이 구멍수를 본거지. 그렇지 않았다면 시아비는 너의 와이프가 됐을거다. 그리구 너는 지금의 종량의 자리에 앉았을거구. 말해봐, 당년에 시아비가 주동적으로 너를 집에 청한적이 있었지? 단둘인데두 넌 그저 쏘파에 앉아서 멋없이 커피만 한잔 마시고 나왔지. 참, 너처럼 순진한 사람이 어디 있니? 그날 넌 너무했단 말이다.
방관자가 더 똑똑히 본다고 당년에 흥원은 시아비와 요한과 종량의 삼각관계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있었다. 그러한 흥원이였으니 말이지 요한은 만약 다른 사람이 자기앞에서 직접 그 일을 꺼낸다면 그저 덤덤히 들을수만 있을지 의문스러웠다. 요한은 흥원의 말을 들으면서 당시 시아비와의 일이 성사되지 못한것을 두고 종량이만 탓할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시아비를 탓할수도 없었다. 따져보면 사람마다 사는 방법이 다른것이 문제였다. 사랑도 어쩌면 살아가는데서의 한가지 방법이라고 할수 있다. 요한은 오래동안 기분이 잡치던 그 일을 다시 꺼내고싶지 않았다.
―내가 말했잖니? 나는 원래 그렇게 똑똑치 못한 놈이라구. 안계가 좁은거지 뭐. 높은 곳에 있는 물건은 바라보지 못하고 또 바라볼 엄두도 못 내는거야.
―하지만 지금 생각해도 늦지 않지. 기회가 눈앞에 왔거든.
―기회라니?
―종량이 지금 시아비와 랭전중이거든. 그들사이에 큰 문제가 생긴거다. 너 정말 모르니? 아니면 모르는체하는거니?
요한이 번쩍 머리를 쳐들었다.
―그게 무슨 문젠데? 난 정말 모르고있다.
―이미 오래 되였어. 그들은 지금 리혼을 한다고 떠드는중이다. 나두 집사람이 말하는걸 들었다. 지난해 그들 력사계에서 동창회가 있었거든. 그때 모인 사람들은 아마 다 알고있을걸. 듣자니 그들은 지금 각방을 쓰고있대. 석자 얼음이 하루아침에 얼수 없는거지. 그들은 결혼한지 7, 8년이 돼두 아직 애가 없어.
요한은 흥원의 말을 들으면서도 입에 넣은 료리를 아귀아귀 씹어댔다. 속에서 누군가 마구 뛰여다니고있는듯싶었다. 그렇게 가슴속 구석구석이 그 발길에 숭숭 구멍이 뚫릴것만 같았다. 하지만 요한의 얼굴에는 여전히 아무런 표정도 피여오르지 않았다. 요한이 덤덤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들이 리혼을 하든말든 나하구 무슨 관계가 있는데?
―그래, 네가 관계 없다면 없는것이구 네가 관계 있다면 또 있게 되는거지.
흥원은 말을 마치고 묘한 눈길로 요한을 바라보았다. 입가에 알릴듯말듯 실웃음이 스쳐갔다.
―너, 시아비의 전화번호를 아니?
―모른다.
그것은 사실이였다. 요한은 종래로 시아비의 핸드폰번호를 알려고 생각한적이 없었다.
―그럴테지. 나에게 시아비의 핸드폰번호가 있다. 네가 요구하면 내가 지금 입력해줄게.
요한이 미처 좋다 궂다 자기의 뜻을 밝히지도 않았는데 흥원이 벌써 호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요한은 응당 흥원이를 제지시켜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웬 일인지 혀가 굳어지면서 소리가 나가지 않았다. 잠간후 호주머니에 들어있는 요한의 핸드폰이 울렸다. 메시지가 들어오는 소리였다. 찰랑찰랑… 시내물이 졸졸 흘러드는듯한 소리였다. 기분 좋을 때 들으면 가슴마저 시원해질것 같았다. 요한은 인차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시아비”라는 세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시아비라는 이름뒤에 길다란 아라비아수자가 적혀있었다. 요한은 각양각색의 모양으로 쭉 늘어선 그 아라비아수자들을 보면서 그것들이 마치 자기의 생명을 구해주기 위해 대기하고있는 “결사대”들 같다고 생각했다.
―종량이 지금쯤 백마시에 있을것이 아니니? 잘된 일이지. 네가 왜 이렇게 멋없이 왔다가 멋없이 돌아가야 하니? 대학교때 종량이 그 자식이 너와 시아비 사이를 뚫고 들어온것이 아니니? 이번에는 네가 그들사이를 한번 뚫어봐라. 군자의 보복은 십년도 늦지 않다고 했거든. 복수를 하는거지 뭐.
요한의 귀방울이 달아올랐다. 흥원은 그저 요한이 술을 마셔 울기가 오른것이라고 생각했다. 요한은 손가락 두개를 펴들고 오른쪽귀방울을 만지기 시작했다. 한번 또 한번… 마치도 귀방울에 그 무슨 원한이라도 있는것만 같았다. 요한은 천천히 눈길을 들어 뭔가를 이윽토록 응시했다. 하지만 나중에 다시 천천히 눈길을 떨구며 어깨를 흠칫했다. 요한이라는 인간 자체가 운동을 멈추고 처량한 정적속으로 빠져들어가는듯싶었다. 그러던 요한이 드디여 입을 열었다.
―아니야. 그럴수 없어. 난 진나를 위해 종량에게 청을 들려고 온것이지 절대 종량에게 복수를 하러 온것이 아니다.
갑자기 흥원의 입에서 웃음소리가 터졌다. 그 웃음소리는 너무도 갑작스럽고 컸다. 한참이 지나서야 흥원은 겨우 웃음을 멈추었다.
―이런, 이런… 동창동지.
52도짜리 “양하대곡”병이 밑굽을 보였다. 그들은 맥주 두병을 더 올렸다. 한 사람이 한병씩 쥐고 마개를 땄다. 그들은 제각기 잔에다 맥주를 따랐다. 거품이 부질부질 잔에 넘쳐났다. 술기운은 그들의 혈액속에서 파도를 치고있었다. 그 순간 그들에게 있어서 술은 참으로 좋은 물건이였다. 술은 담을 키워줬다. 술을 마시고는 걸직한 롱담도 마음대로 할수 있었다. 속심의 말도 마음대로 할수 있었다. 흥원이 술잔을 높이 들고 소리쳤다.
―이봐, 동창, 내 오늘 진짜 너에게 속심의 말을 해야겠다.
―무슨 말인데?
―너 참 대단해. 진짜 사나이란 말이다.
흥원이 엄지손가락을 내들어 정중하게 요한의 눈앞에서 흔들며 말했다.
―사실 말이지 나는 진짜 너에게 탄복한다. 진짜다. 너에게 아부하는게 아니다. 진심으로 너에게 탄복하는거다. 만약 이 일이 나에게서 일어났다면 나는 결코 너처럼 처리하지 못했을거다. 와이프를 위해서 종량이를 찾아 청을 들러 오다니. 화끈거리는 얼굴을 그 자식의 얼어붙은 엉덩짝에 들이대다니… 그…그 자식은 옛날 너의 녀자친구의 남편되는 사람이 아니니? 그러니 련적이라고 할수 있지. 넌 진짜 남자다, 종량이 그 자식은 비기지도 못해.
흥원의 말은 실말이라 할수 있었지만 여전히 듣기가 거북했다. 바늘에 따끔 찔리는듯한 아픔까지 느껴졌다. 요한은 자기를 위해 어떻게 변명해야 할지 몰랐다. 요한은 두눈을 퀭하니 뜨고 상우에 놓여져있는 술잔을 바라보다가 누구에게라 없이 중얼거렸다.
―사람은 말이다. 높은 곳에 있으면 높은 곳에서 사는 방법이 있고 낮은 곳에 있으면 또 낮은 곳에서 사는 방법이 나지는거다.
화위달에서 나와 흥원이와 갈라진후 요한은 려관으로 돌아가려고 택시에 올랐다. 요한은 그래도 평지에서 사는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평지에 있으면 마음이 편안하고 걸음걸이가 온당하여 어딘가 믿음이 선다고 느껴졌다.
요한은 택시의 차창을 열었다. 밤바람이 살랑살랑 들어왔다. 가슴마저 시원하게 하는 바람이였다. 술기운이 반나마 날아나는듯싶었다. 택시는 골목을 따라 십여분 달렸다. 한 골목에 멈춰서서 붉은등이 바뀌기를 기다릴 때 요한은 오른쪽 가로등옆에 세워져있는 광고판을 보았다. “굉달가구(宏达家居)”에 대한 광고였다. 하지만 “居”자 아래쪽의 “古”가 떨어져 “굉달가시(宏达家尸)”로 되여있었다. 요한은 운전수에게 그곳에서 봉황소구역까지 얼마나 되는가고 물었다. 운전수는 요한에게 왼쪽으로 돌아서 1, 2백메터쯤 가면 봉황소구역이라고 알려주었다. 요한은 호주머니에 손을 넣어 핸드폰을 움켜쥐였다. 당금 심장이 튀여나올것만 같았다. 툭툭- 하는 심장소리를 스스로도 들을수 있었다.
종량이 만약 정말 백마시로 갔다면…
푸른등이 켜졌다. 택시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운전수가 얼굴을 돌리며 요한에게 물었다.
―어디로 갈가요? 곧추 갈겁니까? 아니면 돌아서 봉황소구역으로 갈겁니까?
요한은 호주머니에서 손을 꺼내고 자세를 고쳐 앉으며 술냄새가 간간이 풍겨나오는 목소리로 운전수에게 말했다.
―곧추 갑시다.
왕옥각(王玉珏): 한족, 1983년 출생. 2004년에 중국인민해방군 제남륙군학원을 졸업. 현재 제남군구 정치부문공단 창작실에서 사업. 선후로 《해방군문예》, 《서북군사문학》 등 잡지에 소설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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