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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불귀(胡不归) * 적안
2013년 07월 03일 16시 20분  조회:1826  추천:0  작성자: 동녘해
단편소설
 
 
호불귀(胡不归)
 
적안
 
 
사실 그는 75세부터 85세 사이의 십년에 대해 만족하지 않았다. 그 십년사이 그는 내내 죽음이 두려워 전전긍증했었다. 언제라도 그 십년을 돌이켜보면 늘 부끄럽고 난처했다.
75세 되던 해가 1982년이였던지 1983년이였던지는 딱히 기억되지 않지만 그해 제일 작은 손녀가 태여났다는것만은 확실했다. 그날 그는 엄숙하게 두눈을 꼭 감고있는 어쩌면 거대한 파충 같은 손녀를 넌지시 바라보았다. 그는 갑자기 손녀가 못견디게 미워났다. 손녀가 너무 작은것이 미웠고 그 애가 자라 성인이 되는것을 볼수 없다는것에 분노를 느꼈으며 손녀가 일부러 그렇게 늦고 작게 태여난것만 같아 화가 치밀었고 또 의식적으로 자기가 이 세상을 떠난후 건강하고 이쁘게 자라 소박하거나 섹시한 녀인으로 되려는것 같아 참을수 없었다. 그는 자기에게 죽음을 예언하는 모든것에 혐오감을 느끼고있었다.
안해는 진작 그의 기분을 꿰뚫어본것 같았다.
 “손자가 셋이나 되지 않아요? 그러니 이번에 손녀를 본것을 다행으로 생각해야지요. 애 눈이 얼마나 커요? 입술선도 선명하게 살아있구요. 크며는 꼭 얼굴이 반반하다는 소리를 들을거예요.”
안해는 만족되는듯 머리를 끄덕이다가 말을 이었다.
“성이는 1978년에 태여났지요. 그리구 올해 손녀가 태여났으니 이 두 애는 참으로 명이 좋다고 해야지요. 우리 가정의 힘든 나날이 다 지난후에 태여났으니 참으로 제때를 만나 태여났다고 할만 하거든요…”
두눈을 쪼프리며 웃는 안해의 코등에 가는 주름이 보였다. 그는 안해의 말을 듣는지 마는지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안해는 태여난 애가 녀자애라고 그가 뿌루퉁해 있는것이라고 생각하는것 같았다. 안해는 늘 자기의 마음을 빌어 그의 모든것을 추측하고있었다. 그와 함께 하는 시간이 길수록 안해는 더구나그의 뼈속까지도 속속들이 들여다 보고있다고 자신하는것 같았다. 그 바람에 그는 자기에게 속하는것인지 아니면 안해에게 속하는것인지도 모를 그 추측들을 당연한 자기의 일부분으로 알고있었다. 하여 그는 종래로 안해에게 그런것들을 구태여 해석하려고 하지 않았다.
작은 손녀가 태여나서 6개월이 되였을 때 그는 한차례의 검진을 받은적이 있었는데 바로 그 검진에서 자기가 암에 걸렸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그날 그는 병원 복도의 긴 걸상에 앉아서 처음으로 저승사자를 보았는데 어쩌면 그보다도 나이가 어린듯싶었다.
60살이나 됐을가?
그는 나름대로 사색을 굴렸다. 하지만 젊은이들의 눈에는 그나 저승사자나 모두 늙은이로 보일것은 당연한것이였다. 저승사자는 볼품없이 낡았지만 깨끗하게 손질을 한 중산복을 입고있었다. 만약 안해가 저승사자의 중산복을 보게 된다면 보증코 첫마디로 “원단이 참 좋네요.” 하고 말할것이라고 생각했다. 저승사자의 얼굴은 온화하고 자애로와보였는데 첫눈에도 쉽게 접촉할수 있는 사람, 아니 쉽게 접촉할수 있는 신으로 느껴졌다. 저승사자는 스스럼없이 그의 앞에 놓여진 낡은 장의자에 앉아 습관적으로 두손을 무릎우에 올려놓았다. 저승사자는 입을 열기전에 먼저 호주머니에서 누렇게 된 위생종이 한장을 꺼내여 힘껏 코를 풀었다.
“요즘 날씨가 참 좋네그려?”
저승사자가 드디여 어색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면서 먼저 입을 열었다.
“저… 얼마나 남았는지요?”
그는 저승사자를 향해 온화한 목소리로 물으면서 오른손을 호주머니에 넣어 곱게 접은 화험단을 꼭 움켜쥐였다. 그는 온갖 정성을 다하여 화험단을 네모나게 곱게 접어서 호주머니에 넣었던것이다. 그는 그것으로 자신이 랭정하게 현실을 받아드렸다고 확신했다.
“뭐가 얼마나 남았는가구 물었수?”
저승사자가 모르겠다는듯 되물었다. 그 목소리에는 조금도 거짓이 없는것 같았다. 신이라는 그 량반이 구사하는 표준어는 그보다도 더 서툴었는데 딱히 어디 방언이 섞여있는지는 가늠할수 없었다.
“나를 데리러 온것이 아닌가요?”
그는 억지로 입가에 웃음 한점을 피워올리면서 마음속에 내려앉은 그 쓸쓸함에 만족을 느껴야 한다고 자신을 다독였다. 그 처량함은 필경 자존심으로부터 생겨나는것이라고 믿고있는 그였다.
“오― 그 문제를 물은거유?”
저승사자의 목소리가 차츰 틀이 잡히기 시작했다.
“사실 이 문제는 그리 대단한것이 아니유. 해결하자면 아주 쉬우니까.”
저승사자는 여유작작 담배를 꺼내더니 그를 보지도 않고 입속으로 웅얼거렸다.
“성냥이 어디 있더라?”
“저…저는 페암이거든요.”
그는 난처한 표정을 지으면서 저승사자를 보고 말을 이었다.
“그러니 내쪽에 대고 담배를 피우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비록 의사의 말로는 내가 운이 좋아서 초기에 암을 발견했다고하지만요…”
저승사자는 어디서 성냥을 찾아냈는지 끝내 담배에 불을 붙이면서 말했다.
“괜찮소, 담배 한대때문에 무슨 일이 있을라구.”
그도 사실은 저승사자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비록 75세가 되던 그해 많은 일들을 겪기는 했지만 여전히 스스로가 매우 천진했었다고 생각했다. 근 30년이 흐른뒤에도 그는 자기가 어떻게 사형판결서와도 같은 화험단을 억지로 접었고 그때 손가락이 어떻게 떨렸으며 나중에는 또 어떻게 화험단의 아래, 우 귀를 딱 맞춰냈는가를 똑똑하게 기억하고있었다. 화험단의 아래, 우 귀를 잡아서 백분의 백으로 딱 맞게 접어내는 순간 그의 오른손 식지와 중지와 무명지는 신통히도 평면을 이루었다. 그는 아래, 우 귀가 꼭 맞게 놓인 화험단에 힘을 주어 손가락들을 쓱 그었다. 화험단은 그의 손가락들에 순간적으로 따끔한 느낌을 주면서 깔끔하게 접혀졌다. 그는 다시 손가락들에 힘을 주어 접혀진 그 부분을 여러번이나 그어댔다. 그러한 동작들을 반복하면서 그는 스스로도 얼마나 어색하게 느껴지는지 알수 없었다.
그런 어색한 장면을 회억할 때마다 그에게는 그 어색함을 피면하는 나름대로의 방법이 있었다. 매양 그렇게 몸둘바를 모르게 하는 장면이 머리속에 떠오를 때마다 그는 흥얼흥얼 코노래를 불렀는데 곡조는 당시의 기분에 따라 정해졌다. 최근 20여년간, 그는 비교적 유쾌하고 밝은 곡조의 노래를 흥얼거리기 좋아했는데 그 노래들은 그가 1948년에 해방구에서 배운것이였다. 1948년에 그는 이미 40살을 넘겼었지만 그 노래들을 부를라치면 마치 어린애 같았다.
 
그는 참으로 바보였지, 소문난 바보였지
삼 더하기 사가 칠인줄도 모르고 팔이라 하겠지
그는 참으로 바보였지, 소문난 바보였지
아홉살에 엄마로 되였다고 자랑하겠지
그는 참으로 바보였지, 소문난 바보였지
보초를 서라니 귀신이 잡으러 올가 무섭다 하겠지
하하하… 우습구나, 여러분들 말해보슈
귀신이 어데 있다고 그런 얘기 하는지
그가 왜 바보 같을가, 문화가 없기때문이지
글을 읽으면 바보를 면할수 있지
 
그는 간단하면서도 재미나는 이 민요를 고집스럽게도 매일 반복했다. 그때면 그는 의식적으로 스스로에 대한 조소를 노래에 담아냈는데 그러느라면 어색한 추억들이 머리를 움츠리군 했다.
이 노래를 배울 때 그는 교원이였는데 해방구의 어린이들과 촌민들에게 글을 가르쳤다. 그는 군데군데 떨어져나간 소흑판에다가 수자보를 적고 아래에 가사를 적어나갔다. 그러다가도 틀린 글자가 있으면 급급히 팔소매로 쓱쓱 닦았다. 그 일이 끝나면 군중들앞에 나서서 힘있게 손을 저으며 노래를 지휘했다. 그의 얼굴에는 언제나 알릴듯 말듯한 자부심 같은것이 어려있었는데 어쩌면 오직 혁명자의 눈길만이 보아낼수 있는 광채 같은것인지도 몰랐다. 그의 표정은 언제나 다른 사람들보다 몇배는 더 당당해보였다. 그는 자기의 표정이 밝고 자신감에 넘쳐야 그 노래의 선률을 흥겹게 표달할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의 몸은 군중들에게 노래를 배워주면서 점점 더 흥분했고 그럴수록 그는 노래에 빨려들어갔는데 힘껏 당겨진 활을 방불케 했다.
그는 그 신비로운 정토에서 늘 자신의 복잡한 과거때문에 일종의 공포감 같은것을 느끼고있었다. 그는 젊었을 때 북양시기의 학당을 졸업했고 후에는 또 일본사람이 경영하는 공장에서 오래 동안 일을 했던것이다. 그러한 공포감은 오직 노래를 배워줄 때라야만 다소 사라지는듯싶었다. 그는 자기가 새롭고 합리하고 아름다운 사물을 선택했기에 흘러간 청춘을 되찾을 기회를 가지게 되였고 그로 하여 천진란만한 어린이의 감수를 다시 느끼게 되였다고 믿었다.
 그는 누군가의 긍정을 받고싶었고 포상을 받고싶었으며 용서를 받고싶었다… 그의 생명은 그러한 기다림속에서 흐르는 세월과는 상관 없을 만치 강력하게 변해갔다. 그의 웃음과 눈물도 더 이상 그의 존엄을 념두에 두지 않았다.
“할아버지, 저하구 얘기하는거예요, 아니면 혼자서 중얼거리는거예요?”
그날, 그는 보청기를 끼고있었기에 손녀 녕향의 목소리를 똑똑하게 알아들을수 있었다. 그는 자기의 입술이 약간 벌려져있다는것을 느꼈다. 그때 그는 마음속에서 흐르는 곡조에 따라 반복적으로 노래를 부르고있었던것이다. 그는 자신이 두시간전에 무엇을 먹었던지를 기억하지 못했지만 반세기전에 배웠던 그 노래만은 기억하고있었다.
그는 손녀에게 뭐라고 대답하지는 않았지만 조용히 입술을 꼭 다물었다. 사실 녕향은 진작 그의 무관심에 습관이 되여있었다. 104세에 나는 그는 이미 녕향의 눈에 요물로 보인지 오랬었다. 하기에 녕향은 종래로 보통사람들의 표준으로 그를 바라본적이 없었다.
14년전, 식구들이 모여서 그의 90세 생신을 쇠여드리는 순간에도 녕향은 핸드폰으로 친구와 통화를 했었다.
“오늘 진짜 몸을 뺄수 없을것 같아. 우리 할아버지가 오늘 90세 생신을 쇠거든… 쇼핑은 아무때나 할수 있지만 우리 할아버지는 정말 힘들게 오늘까지 사셨거든. 그러니 손녀인 내가 어찌 축하를 하지 않을수 있겠니?”
녕향의 아버지 즉 그의 막내아들이 녕향의 통화를 엿듣고 마뜩찮은 눈길로 흘겨보았다. 그때만 해도 그는 청력이 좋아서 웬간한 소리는 다 들을수 있었다. 그는 사실 누구앞에서도 승인하지 않았지만 몇몇 손자손녀들중에서 녕향을 제일 이뻐했다. 그것은 녕향이 제일 어려서가 아니였고 그가 그렇게 이쁘지는 않지만 그래도 약간 자색을 갖춘 녀인으로 자라주어서도 아니였다. 식구들은 모두 그를 공경스럽게 대했지만 녕향만은 그의 몸에서 흐르는 세월의 흔적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것이다. 그만치 녕향의 몸에는 천성적으로 익살스러운데가 있는것 같았다. 녕향은 스스로도 자기의 스스럼없는 웃음뒤에 일종의 심각한 랭혹함이 서려있다는것을 모르는듯싶었다. 그는 바로 녕향에게서 풍기는 그 랭혹함을 좋아했다. 녕향은 그가 앉아있는 휠체어앞에 다가와 허리를 굽히고 입을 열었다.
“할아버지, 방금 무슨 말을 하려고 했죠?’
녕향은 가볍게 그의 얼굴을 보듬어주었는데 그 모습은 마치도 그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방불케 했다. 녕향의 뒤에 놓여진 쏘파에는 그의 18살에 나는 손자가 꼬부리고 누워있었다. 그는 이 가정의 제4대로서 그의 장손의 아들이였다. 그 애는 고집스럽게도 녕향을 “고모”라고 부르지 않았다. 그 애는 누나벌로밖에 보이지 않는 녕향이 어떻게 “고모”로 되는지 리해가 되지 않아했다. 그 애는 그 여름이 지나면 대학에 입학하게 되였다. 식구들은 그에게 악을 쓰고 몇년 더 살아서 5대까지 보라고 했다. 그도 가끔은 5대가 태여나면 어떤 모습일가 하고 상상한적이 있었다. 5대라고 해도 모양은 같을것 같았다. 두눈을 꼭 감고 도톰한 입술을 오물거리며 아무런 뜻도 담기지 않은 동물성적인 소리를 낼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누구에게도 5대를 보고싶다는 말을 할수 없었다. 그는 자기가 주역을 맡은 드라마가 이미 너무도 오래 동안 이어져왔다는것을 잘 알고있었던것이다. 제5대로 태여나는 손군은 사실 자기와 아무 관계도 없을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보통사람들이 엮는 드라마가 30집 푼하다면 자기가 엮어가는 드라마는 이미 300집에 이르렀다고 느껴졌다. 이 드라마는 길다는 의미에서 사람들에게 호기심을 부여했고 그 호기심때문에 사람들은 이 드라마가 도대체 얼마나 오래 이어지는가를 보고싶어하는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이 드라마는 그가 75세 나던 해에 종말을 고할번한적이 있었다.
그는 수술이 성공적이라는것을 알게 되였다. 맹아상태에 있던 종류를 깨끗하게 도려냈다는 의사의 말을 들었던것이다. 수술을 맡았던 의사는 그가 사는 도시에서 제일 유명했다. 관건은 암세포가 다른 곳으로 확산되는가를 자세히 관찰하는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 같은 락관적인 말도 병상을 둘러선 가족들의 얼굴에서 근심을 몰아가지는 못했다.
그날 그는 처음 저승사자를 보게 되였다. 저승사자는 빙그레 웃음을 띠고 안해와 큰 며느리 사이에 서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순간에 지나지 않았다. 그가 거슴츠레한 눈을 완전히 떴을 때 저승사자는 벌써 사라지고 없었다. 모든게 너무도 갑작스러워 그는 미처 어떻게 반응도 하지 못했다.
75살이라 그럴만도 하지, 게다가 방금 암수술까지 받았으니 행동이 느릴만도 한게지.
그는 입가에 쓸쓸한 웃음을 피워올렸다. 행동만 느려진것이 아니라 정서마저 무감각해졌다고 생각되였다. 그는 애써 팔을 들었다. 스스로라도 자신이 아직 살아있다는것을 증명하고싶었다. 팔이 약간 우로 올라갔지만 검버섯이 가담가담 피여난 손등은 볼수 없었다. 안해는 그의 쇠약한 팔을 잡아다 이불속에 넣어주며 말했다.
“팔은 왜 꺼내요? 힘들게…”
그날새벽, 그는 드디여 저승사자와 단독으로 만날수 있었다. 병상을 지킨다는 맏아들은 그때까지도 잠을 자고있었다. 그는 맏아들의 피곤한 얼굴을 바라보면서 어쩜 자기보다 먼저 갈수도 있지 않을가 하는 허무한 생각을 해보았다. 저승사자가 그한테로 다가올 때 병실에서 한가닥의 빛이 번쩍이는것 같았다. 새벽이라고 하지만 그는 똑똑하게 저승사자의 얼굴을 가려볼수 있었다.
“맘대루 하시죠.”
그는 저승사자를 보고 웃지 않았다. 스스로도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는 평소 누구에게나 깍뜻하게 례의를 갖추었지만 저승사자를 보고는 웬지 “교양”이라는 허울을 벗어버리고싶었던것이다. 그는 사람과 신의 관계는 본질적으로 사람과 사람의 관계와 다르다고 생각했다. 이 점에 대해 그는 누가 구태여 배워주지 않아도 알수 있었다.
“뭘 맘대루 하라는거유?”
저승사자가 물었다.
“지금 바로 갑시다. 날자를 골라 가느니보다 이렇게 만났을 따라가는게 더 좋을듯하군요.”
그는 자기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있다고 느꼈다.
“왜 그리 급해하는거유?”
저승사자가 그를 보고 빙그레 웃으며 아래말을 이었다.
“언젠가는 떠날 길인데, 급해하는 그 모습이 보기 안 좋구려.”
“기다리기 갑갑해서 그럽니다.”
하지만 이 말을 할 때 그의 표정은 그렇게 평온할수 없었다.
“이보소, 거짓말을 하지 말게나.”
저승사자는 익숙한 동작으로 침대가에 걸터앉아 이윽토록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바로 지금 데려가주시오, 안되겠습니까? 식구들이 없는 이 순간이 얼마나 맞춤합니까? 아들놈도 잠을 자고있는데요.”
그 말을 하면서 그는 자기에게 더 이상 죽음에 대한 불안을 표달할만한 기력마저 없다는것을 의식하고있었다.
“정말 그렇게 급한거요? 날 밝기마저 기다리지 못하겠다는거요?”
저승사자는 마작상에 앉아 벙글거리는듯한 표정이였다. 그는 지그시 두눈을 감았다.
“그렇습니다. 더 이상 기다리지 못하겠습니다. 이미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 무엇을 더 바란단 말입니까?”
“이렇게 비관할것까지는 없을텐데.”
느릿느릿 말을 이어가는 저승사자는 허물없는 이웃집 나그네를 방불케 했다. 그는 정신을 집중하고 호흡을 딱 멈추었다. 그는 하얀 빛이 반짝이는 어둠에 자기의 의지를 모았다. 잠간후 그는 마치도 큰 결심을 내린듯싶었다.
“그런 말을 마십시오. 정말 더 기다리고싶지 않습니다. 수고 많았습니다. 지금 갑시다. 내 소원을 들어주시오.”
“소원이라니? 생사는 지천명이라고 했소. 나는 그저 길잡이에 지나지 않소. 다른 일들은 내가 말해도 소용이 없소.”
저승사자의 표준어는 점점 더 표준에서 멀어지는것 같았다. 아마도 탕개를 늦추니 몸에 배여있던 방언이 머리를 쳐드는것 같았다.
“그래도 기다리라면 자신이 없습니다. 내 마음을 알겠습니까?”
그는 천천히 두눈을 떴다. 그는 이 말을 할 때 반드시 두눈을 떠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기의 진정을 보여주는 이 말을 할 때 두눈을 감고 평온한 표정을 짓는다는것은 자기의 뜻에 어울리지 않는것이라고 생각했다.
“자네, 참 쉽지 않구려. 후―”
저승사자는 큰 짐을 벗어버린듯 길게 숨을 내뿜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자네, 승인하게나. 지금 두려움에 떨고있는거지?”
“누가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겠습니까? 말해보시오. 그래 진정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는 사람을 본적이 있단 말입니까?”
그는 자기의 속심을 숨김없이 들어내보였다.
“본적이 있지. 자네는 영웅을 본적이 없소?”
“그렇습니다. 나는 영웅이 아니여서 죽음을 두려워 합니다. 내 대답이 만족스럽겠지요?”
“내가 만족스러운것 하구는 별도의 문제지. 설사 죽음을 두려워 한대도 그건 얼굴이 깎이는 일이 아니거든. 나같은 저승사자앞에서 얼굴이 깍이는것을 두려워 할 사람도 없을게구.”
“나는 이미 죽음을 두려워 한다고 말했습니다. 내가 완전히 공포에 빠지기전에 빨리 나를 데려가주시오.”
“참으로 답답하구려. 자손들이 가득한데 좀더 느긋한 모습을 보여주면 안되우?”
“그래서 더구나 그들에게 떠나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는겁니다. 지금 그들이 보지 않을 때 빨리 떠나면 안되겠습니까?”
“안되오. 그들이 보면 뭐라우? 자네는 자손들로 하여금 자네가 죽음을 두려워 한다는것을 모르게 하려는게지. 그렇게 사느라니 피곤하지도 않소?”
“물론 피곤하지요. 그래서 더 살고싶지 않다는겁니다. 빨리 나를 데리구 떠나주시오.”
“뭐라구? 다시한번 큰 소리로 말해보오. 자네 방금 어쩌고싶다 했지? 참―”
저승사자는 약간 흥분에 젖은 목소리로 탄식을 했다.
“나…나는…”
그는 말끝을 잇지 못하고 두눈을 감았다. 가까스로 다잡고있던 자신의 정서를 본래의 면목 그대로 놓아버린것이다.
“정녕 나를 데려가지 않을수 있단 말입니까? 나는 사실 죽고싶지 않습니다. 비록 빨리 떠나고싶지만 나는 너무도 죽음이 두렵습니다. 도대체 내가 진정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겠단 말입니다. 그러니 나를 영원히 살게 해주시오…”
그는 이 말을 할 때 자기가 울고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오줌을 흘렸던것이다. 그는 두눈을 떴다. 창밖이 푸름푸름 밝아오고있었다. 담록색 빛이 창문으로 새여 들어와 눈섭을 간질렀다. 그는 아래몸에 걸쳐져있는 바지며 침대보가 오줌에 푹 젖어있다는것을 느낄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어쩔수 없었다. 자기의 몰골을 생각하니 허구픈 웃음이 흘러나올뿐이였다.
맏아들이 잠에서 깨여났다. 머리칼이 푸수수하고 눈에는 여전히 잠기가 어려있었다. 맏아들은 초점없는 눈길로 그를 바라보면서 길게 하품을 했다. 그는 맏아들을 불러 바지를 갈아입혀달라고 청들고싶었다. 막 입을 열려던 그는 문득 잠투정을 하던 맏아들의 어릴 때 모습을 보는듯싶었다. 맏아들에게 자기의 루추한 몰골을 보이고싶지 않았다. 저승사자를 만나 길고도 굴욕적인 이야기를 나눈 사실도 알려주지 않기로 했다. 그는 아버지라는 신분을 다시한번 자각하고있었다. 비록 그 순간 바지가 오줌에 절어있고 침대보가 질퍽해 있을지라도…
그는 애써 자애로운 표정을 지으면서 아들을 바라보았다. 그는 반드시 좀더 사랑이 담긴 눈길로 세상을 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인제 와서 이것저것 따질것도 없다고 느꼈다.
만약 그때가 정말 림종이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가?
20년후, 맏아들의 장례에서 그는 이렇게 생각했었다. 그 생각을 하면서도 그의 마음속에는 세상에 대한 어느 정도의 미련이 남아있었다. 거기서 모든것을 끝낸다면 이를데 없이 좋았을것이다. 하지만 사람 목숨이란 뜻대로 되는것이 아니였다. 물론 자기의 뜻대로 세상을 사는 사람도 없는것은 아니지만. 일부 사람들은 뜻대로 살고 뜻대로 죽을수도 있는데 그런 삶을 모두어보면 대개 우아하다고 할수 있었다. 하지만 그 “우아함”뒤에 수많은 정밀한 고리들이 이어져 있다는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맏아들은 60살 나던 해 심근경색으로 돌아갔다.
그는 맏아들을 조문하러 온 사람들이 자기를 훔쳐보고있다는것을 직감했다. 사람들은 맏아들의 돌연적인 사망으로 하여 타격을 받고 그도 인차 떠날것이라 근심하는것 같았다. 90살을 넘긴 로자에 대한 그 같은 근심은 맏아들의 사망으로부터 오는 비감과 그리움을 달래주는듯싶었다. 그는 웬지 앞서 떠나간 맏아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맏아들의 장례식에서 그는 시종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그런 눈길속에서 그는 조용히 자신의 첫 아들을 머리속에 떠올렸다.
맏아들은 항일전쟁이 승리를 거두던 해 중경에서 태여났다. 그와 안해는 공기 좋은 어느 아침에 가릉강변에서 만났다. 그해 그는 30살이였고 안해는 19살이였다. 넓다란 강변에 서서 그를 바라보는 안해의 두눈은 수시로 깜빡이고있었는데 저도 몰래 그로 하여금 고향의 호수를 떠올리게 했다. 그는 벌써 몇년이나 고향의 호수를 보지 못하고있었다. 그의 앞에 서있는 열아홉살의 녀대학생은 마치도 하늘가에 걸려있는 깜찍한 초승달처럼 고향에 대한 그의 그리움을 불러주었다.
그는 그녀에게 말했다.
“내가 산 부부페편(夫妻肺片)을 먹었으니 그쪽은 나와 부부로 되여야 하오.”
그녀는 놀라운 눈길로 그를 바라보면서 얼굴을 붉혔다.
그녀, 아니 안해도 맏아들도 이미 이 세상에 없다. 안해를 처음 만나던 60년전의 그날에 보았던 강물도 아득한 그 옛날에 벌써 어디론가 자취를 감췄을것이다. 하다면 오늘의 가릉강에 더 이상 그 어떤 의미도 부여할수 없다고 그는 생각했다.
안해는 그가 암수술을 해서 4년만에 세상을 떠났다. 그는 웬지 자신이 안해의 생명을 갉아 먹은듯한 죄책감이 들었다. 안해가 만약 자기의 병시중을 드느라 힘들지 않았다면 얼마든지 오래 살수 있었을것이라는 생각이 갈마들었다. 그는 안해를 처음 보던 그 순간에 벌써 안해가 그렇게 견강하고 튼튼한 녀자가 아니라는것을 알았다. 안해와 달리 일부 녀인들은 확실히 태여날 때부터 윈시인들이 숭배하던 토템처럼 그 어떤 곤난도 이겨낼수 있을듯 튼실해보였던것이다. 안해는 몸매가 가냘프고 뼈골이 약했다. 기나긴 생명의 진화과정을 살펴볼 때 안해와 같이 생긴 생명체는 세상에서 소실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되였다.
수술을 하고난후 그는 늘 안해에게 “빨리 죽어야겠는데, 당신을 힘들게 할가봐 두렵구려.” 하고 말했었다. 하지만 그도 속으로는 이 말이 진심이 아니라는것을 알고있었다. 그때문인지 저승사자는 확실히 그 몇년 동안 한번도 나타난적이 없었다.
“나 홀로 남는다면 무슨 살멋이 있겠어요?”
이 말을 하면서 안해는 손바닥을 가볍게 그의 어깨에 올려놓았다. 그때 그는 병원 복도의 의자에 앉아있었고 안해는 그의 옆에 오도카니 서있었다. 화학치료를 기다리는것이였다.
“괜한 소리를. 애들이 돌봐줄게 아니요?”
그는 내심하게 안해를 설복하려고 했다.
“애들은 이미 다 자라지 않았나요? 그 애들이 하는 말을 나는 하나도 알아들을수 없어요.”
그는 애써 담담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아래말을 이었다.
“그래도 당신이 이렇게 살아있는게 좋아요.”
“하지만 나는 이제 곧 떠날거요.”
그 말을 하고나자 웬지 가슴이 갑갑해났다.
“그런 말씀 마세요. 하루를 살아도 편하게 살아야죠.”
안해는 일분일초가 아까운듯 차분하게 그를 위안했다.
“그럴테지. 당신도 나에게 며칠 남지 않았다는것을 승인하는게지?”
그는 갑자기 말 못할 분노가 느껴졌다.
“당신, 점심에 무엇을 자실래요?”
안해가 살갑게 물었다.
“안 먹어!”
그는 소리치며 안해를 쳐다보았다. 순간 그는 자기의 눈길에 그 어떤 원한이 담겨져있을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자기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필경은 자기가 없게 될 이 세상에서도 잘 살아가게 될것이라고 생각했다. 처음엔 자기를 가끔 떠올리기도 하겠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자기가 없는 그 공간을 다른 무엇으로 메워가면서 완전한 호수를 이루어갈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도 또 혹시 자기를 떠올릴 때가 있겠지만 그때 자기는 벌써 호수에 거꾸로 비춰진 그림자에 지나지 않을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할라치면 분노가 치밀었고 쓸쓸함이 덮쳐들었다. 그는 가끔 저승사자가 왜 자기를 데리러 오지 않을가 하는 생각을 굴려보았다. 오직 저승사자라야만 자기의 분노와 쓸쓸함을 알아줄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던것이다.
왜 내가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자식들을 떠나기 아쉬워 한다고 생각하는걸가? 나는 하루 빨리 떠나고싶은데…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그는 뭔가가 시름이 놓이지 않는듯 주위를 둘러보았다. 회색 중산복을 입은 늙은이들이 여럿이나 병원 복도에 있었지만 그중에 저승사자는 없었다. 그의 가슴은 차츰 높뛰기 시작하였다. 높뛰다 못해 호흡마저 가빠졌다. 그는 저도 몰래 손을 올려 가슴을 문다졌다. 별 이상은 없는것 같았다. 그는 입가에 가는 웃음을 피워올렸다.
그래, 어느 암환자가 심장병으로 마감길을 간적이 있었던가?
암환자가 심장병으로 갈 확률이 많지 않다고 느꼈기에 그는 자기의 심장이 당금 폭발할것 같았고 당금 타번질듯 뜨거워났지만 별로 개의치 않았다. 그런 증상때문에 죽지는 않을것이라고 확신했던것이다. 그러한 느낌속에서 그는 매일 안해와 비슷한 대화를 반복했다.
“빨리 죽어야 할텐데, 당신을 힘들게 할가봐 두렵구려.”
“나 홀로 남는다면 무슨 살멋이 있겠어요?”
“괜한 소리를. 애들이 돌봐줄게 아니요?”
“애들은 이미 다 자라지 않았나요? 그 애들이 하는 말을 나는 하나도 알아들을수 없어요. 그래도 당신이 이렇게 살아있는게 좋아요.”
“하지만 나는 이제 곧 떠날거요.”
“그런 말씀 마세요. 하루를 살아도 편하게 살아야죠.”
“그럴테지. 당신도 나에게 며칠 남지 않았다는것을 승인하는게지?”
절망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여기와서 생겨나군했다. 두 사람이 주고 받는 거짓말은 흐르는 물처럼 거침이 없다가도 어찌해서 여기까지 와서는 번마다 진심을 들어내군했던것이다. 그는 자신이 허무하게 느껴졌다.
나는 무엇때문에 안해가 “하루를 살아도 편하게 살아야죠.” 하고 말한후 침묵을 하지 못하는것일가? 그리고 안해는 왜 “당신은 먼저 갈수 없어요. 당신의 몸은 꼭 회복될거예요.” 하고 말해주지 못하는것일가?
하지만 그는 또 인차 무엇인가를 알수 있을것 같았다. 만약 안해가 정말 “당신의 건강은 꼭 회복될거예요.” 하고 말한다면 더구나 분노를 느낄것 같았던것이다. 그는 이 말이 너무도 황당하다고 느껴졌다. 누구도 진실을 말할수는 없지만 또 너무 황당한 거짓말을 해도 안된다고 생각되였다. 이것이 바로 생활이라고 그는 믿고있었다.
그 몇년간 그는 날로 쇠잔해 가는 안해의 모습을 보고도 별다르게 의식하지 못했다. 그리고 하루 다르게 조폭해지고 불안해 하는 안해의 정서도 읽어내지 못했다. 안해는 검진을 받으러 그를 배동하여 병원에 갈 때면 늘 그보다도 걸음이 느렸었다. 병원에 새로온 호사는 되려 안해가 환자인줄로 오해하기까지 했다.
어느날, 시집갔던 딸이 그들과 함께 살겠다고 찾아왔다. 그는 사뭇 놀란 눈길로 딸을 바라보며 웬 일인가고 물었다.
“어머니 건강이 날로 못해가는게 안보여요? 내가 와서 어머니와 함께 아버지를 돌봐야지요.”
그는 딸의 그 말이 참으로 귀에 거슬린다고 생각되였다. 하지만 딸은 그의 이런 심정을 조금도 헤아리지 못하는것 같았다.
“참으로 미안하구나. 애비가 오래 살아서 너를 힘들게 하네.”
그는 의식적으로 목소리에 가시를 박았다.
“아버지.”
딸은 못마땅한듯 목소리를 높이며 아래말을 이었다.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그날이후, 딸은 그의 원쑤로 되였다. 딸의 일거일동은 그에게 오래 사는것은 그리 좋은 일이 아니라고 알려주는것 같았다. 그는 늙은 몸으로 살아가려면 어딘가 요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때로부터 그는 딸과 대화할 때면 언제나 “애비가 오래 살아서 너를 힘들게 하네.”로 끝냈다. 시간이 흐르자 딸은 아예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하는 말도 하지 않았다.
그날아침, 그는 혼자 식탁앞에 앉아 안해가 뜨거운 콩물을 가져다주기를 기다렸다. 오랜 시간이 흐른듯싶었다. 딸은 그때 주방문앞에 서있었다. 그는 딸이 자기를 주시하고있다는것을 직감할수 있었다. 딸이 문득 입을 열렀다.
“아버지, 여위신것 같아요.”
그는 흥 하고 코방귀를 뀌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죽을 날을 받아놓은 사람이 어찌 여위지 않을수 있겠냐?”
그 말에 딸이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웃음소리에는 오래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따스함이 녹아있는듯싶었다. 딸은 웃음끝에 호― 하고 한숨을 짓더니 입을 열었다.
“제가 콩물을 떠다드릴게요. 어머니는 아직 일어나지 않았어요. 좀더 쉬라고 해야죠.”
하지만 안해는 영원히 일어나지 못했다. 자다가 뇌출혈이 생겼던것이다. 안해는 그처럼 조용히 떠났다. 그는 안해의 죽음이 작다 못해 그 이상 더 작을수 없는 일처럼 느껴졌다. 마치도 늘 상에 올리던 콩물 한사발을 잊고 올리지 않은것만치나 작은 일로 생각되는것이 이상스러웠다. 몇달후, 그의 80세 생일이 지나서 며칠 안되여 의사가 그에게 말했다.
“축하합니다. 수술한지 만 5년이 지났는데 도지지 않는군요. 아마도 암세포가 말끔히 살아진것 같습니다.”
그 일이 있은후 딸은 자기의 가방을 들고 그의 집을 떠났고 또 며칠이 지나서 작은 아들네 세 식구가 그의 집을 찾았다. 작은 아들은 그가 혼자 있는것이 시름이 놓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작은 아들이 사는 단칸방이 불편해서일것이라고 나름대로 생각했다.
녕향은 그해 다섯살이였다.
녕향의 미간에는 빨간 점이 작게 나있었다.
이렇게 시작된 그들의 동거는 어느덧 25년을 이어가고있었다. 이는 누구도 짐작하지 못한 일이였다.
작은 아들네가 집에 들어오던 그날밤, 저승사자가 그를 찾아온적이 있었다. 그는 길게 들숨을 쉬고는 일어나 침대에 앉아 저승사자를 보고 말했다.
“의사가 그러던데 내 병이 다 나았답니다.”
말을 마치고난 그는 자신이 사리분별이 잘 안되여 저승사자를 보고 이런 말까지 할수 있었다고 후회했다. 저승사자는 얼굴에 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의사는 의사로서의 일이 따로 있는게지. 그들은 병만 볼뿐 생사는 관계할수 없다네.”
그는 무겁게 머리를 저으면서 말했다.
“왜 딱 지금 찾아온겁니까? 바로 지금에 말입니다. 2년전에 왔더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때 나는 마음속에 아무런 상념도 없었더랬는데요.”
저승사자도 천천히 머리를 저었다.
“자네, 참으로 세상물정을 모르는구려. 나와 생사를 두고 흥정을 하려는거요?”
그가 푸―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나는 5년을 뻗쳐왔단 말입니다. 지금 간다면 그 5년철에 미안하지 않겠습니까?”
저승사자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에게 있어서 그 5년은 실로 너무도 보잘것 없는것이요. 나는 그저 자네를 안해에게 데려다 주려는것뿐이요. 자네의 안해는 지금 그곳에서 혼자 외롭게 세월을 보내고있단 말이요. 자네는 안해한테 가는게 즐겁지가 않소?”
어떻게 대답했으면 좋을지 몰라 망설이는 그를 보고 저승사자가 물었다.
“자네들은 50년간 부부로 살았었는데 보고싶지도 않단 말이요?”
“보고싶죠. 꿈에서도 보고싶습니다.”
“그렇지. 내가 보건대도 자네는 꿈에서나 보고싶어하는것 같소.”
저승사자는 잠간 말을 끊고 허허 웃더니 아래말을 이었다.
“사실 이 세상은 진작 자네와 아무 상관도 없게 되였단 말이요. 자네의 자식들을 보오. 그들은 모두 나름대로의 인생을 살고있소. 자네는 허수아비처럼 이 세상에 남아있는데 그래 외롭지도 않단 말이요?”
“물론 외롭지요.”
“그래서 자네를 데려가려는거요. 우리 함께 자네 안해가 있는 곳으로 가기요.”
“아직 그럴 생각은 없는데요.”
“자네가 아니고 안해가 먼저 죽었다는것이 기분 좋은것은 아니겠지?”
그는 저승사자의 돈후한 얼굴을 이윽토록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당신은 신인데 어찌 인간들의 사정을 알겠습니까?”
“하지만 나는 자네가 지금 살아있는것을 아주 다행스럽게 생각하고있다는 사실만은 잘 알고있다네.”
“언젠가는 나도 이 곳을 떠나게 될겁니다. 그때면 로친을 다시 보게 되겠지요.”
“보게나. 자네 지금 살아있는것을 얼마나 행복해 하는가?”
“그러니 나를 데려가지 마십시오.”
말을 마치고난 그는 마치도 무거운 짐을 벗어내친듯 홀가분한 심정이였다. 저승사자는 모르겠다는듯 머리를 저으며 진심으로 말했다.
“사는게 진정 그렇게 좋소?”
“아니요.”
그는 저승사자를 바라보면서 또박또박 아래말을 이었다.
“나는 이미 사는데 습관이 되여버렸을뿐입니다.”
“이런 리유라면 나도 접수할수 있을것 같구려.”
저승사자의 말은 그리 똑똑하게 들리지 않았다. 어쩌면 저 멀리 하늘가에서 울려오는듯싶었다. 순간 그는 저승사자와의 몇차례 만남을 어떻게 끝 맺었던지 잘 생각나지 않았다. 번마다 저승사자와의 만남을 떠올릴 때면 시간이 그 만남으로부터 얼마간 지난후인것 같은 느낌이였다. 그 만남을 떠올릴 때면 언제나 온몸에 식은땀이 흐르고 심장에 돌멩이가 떨어져 내린듯 가슴속 깊은 곳에서 물보라가 튕겨올랐다. 그는 다시한번 암환자는 절대 심장병으로 죽지 않는다고 확신했다. 그는 이 생각을 얼마나 많이 했던지 스스로도 알수 없었다. 그는 늘 자신은 암세포와 5년간의 사투를 벌렸고 의사가 자기를 보고 이미 암세포를 물리쳤다고 했기에 절대 심장병으로 죽지 않을것이라고 장담했다.
“할아버지.”
녕향의 작은 몸체가 빠끔히 열려진 문틈으로 보였다.
“왜?”
“나 오줌 누고싶어.”
그는 힘들게 침대에서 내려와 끌신을 찾아신었다.
“그래, 오줌 누러 가자.”
 끌신 끌리는 소리가 방안에 울렸다. 녕향은 금방 그의 집에 왔기에 화장실문이 세탁기가 놓인 바로 옆이라는 사실을 자주 잊군했다. 그는 녕향의 작은 손을 끌고 화장실쪽으로 다가갔다. 그때 그의 마음은 말 못할 “감동”으로 설레이고있었다. 그는 저승사자가 아닌 손녀가 자기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에 감동하는것 같았다.
그는 녕향을 위해서라도 살수 있는 한 악착같이 살아낼것이라고 마음 먹었다. 녕향이 자라 성인이 되는것까지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생각을 하면서 그는 저승사자의 너털웃음소리를 듣는것만 같았다.
그후의 몇년간 그는 늘 “죽음”이라는 낱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간혹 옛 친구들을 만나도 자기의 “죽음”을 두고 롱담을 했는데 대개는 잊지 말고 자기의 장례음식을 먹으러 오라는것과 같은것이였다. 그는 어떤 음식을 상에 올리는것이 좋으냐를 두고 친구들과 상론도 했다. 친구들은 정말 상에 올릴 음식을 두고 진지하게 토론을 벌리기까지 했다.
그는 작은 아들에게 자기가 죽은후에도 자기 집에 눌러 살라고 당부했다. 대신에 책장에 가득 꽂혀있는 책들을 잘 처리해야 한다고 조건을 달았다. 그는 생각 같아서는 책들을 녕향에게 물려주고싶지만 녕향이 책보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자신이 출근했던 단위의 도서관에 기증을 해도 된다고 소원했다.
전에 그의 암을 치료했던 의사가 그믐날에 전화를 걸어와 설인사를 올렸다. 그는 목소리에 힘을 주면서 말했다.
“관심에 감사 드립니다. 나는 아직도 살아있습니다. 내가 아직 살아있다는게 신비할따름입니다. 하하하…”
웃음소리는 전화선을 타고 울려나갔다.
바로 그 무렵부터 그는 진작 잊은줄로 알고있던 그 오래된 민요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는 참으로 바보였지, 소문난 바보였지/삼 더하기 사가 칠인줄도 모르고 팔이라 하겠지...”
사실 그는 자신이 무엇을 하고있다는것을 잘 알고있었다. 그는 당년에 자기들이 새로운 시대, 새로운 세상을 창조했듯이갖은 유머와 락관적인 태도로 죽음이라는 현실을 대체하려고 했던것이다. 그는 자신이 남에게 억지로 보여주는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는 정신력”으로 죽음을 전승하려고 발버둥질 치고있었던것이다. 그는 그러한 노력을 들여야만 좀더 오래 살수 있을것이라고 착각하고있었다.
암수술후의 두번째 5년은 그렇게 흘러갔다.
그뒤의 기억들은 그리 똑똑하지 않았다. 눈 깜빡 할 사이에 세상은 살같이 흐르고있었다. 그는 지나온 기억들을 하나하나 잃어가면서도 질풍같이 달리는 세월의 말발굽소리는 똑똑히 듣는것만 같았다. 그는 사람들이 자기가 암에 걸렸었다는것조차 잊은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게 언제부터일가? 딱히는 알수 없지만 대개는 자기가 종이기저기를 착용하던 그때부터일거라고 생각되였다. 그의 청력과 시력은 나이에 비해 괜찮다고 할수 있었다. 하지만 다리는 점점 말을 들어주지 않더니 나중에는 반석처럼 굳어버렸다. 객실로부터 화장실 사이의 거리가 그에게는 고대의 두 봉화대 사이의 거리만치나 멀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미 종이기저기를 착용했기에 그 거리가 얼마나 멀든지 별 문제가 아니였다.
그의 몸은 어쩜 모래가 휘날리는 전쟁마당으로 변해버렸는지도 모를 일이였다. 암세포마저 그의 몸에서 잠들고 화석으로변했으니 말이다.
종이기저기를 착용하면서 그를 찾아온것은 날로 늘어가는 막연함뿐이였다. 그는 차츰 자기의 몸에서 풍기는 무엇인가가 부식되는듯한 그 냄새에도 그렇게 신경이 쓰이지 않았고 객실에서 누군가 자기의 바지를 벗겨놓고 몸을 씻어주는것에 대해서도 거부감을 느끼지 않았으며 졸음이 올 때 느침이 흘러내려 옷섶을 적시는것도 개의치 않았다. 하기야 느침이 흘러 옷섶을 적셨다 해도 잠간이면 말라버리는데 무슨 대수랴. 느침이 인차 마르지 않는다 해도 또 무슨 대수랴?
그는 친구들이 전화를 걸어와 다른 친구들의 부고를 전해도 무감각해 했다.
딱히 어느때부터인지는 기억에 없지만 어느날부터 간병인이 찾아와 매일 3시간씩 그를 씻어주고 닦아주고 옷을 갈아 입혀주고 먹여주느라 분주하게 돌아쳤다. 간병인은 워낙 이웃집에서 일을 하던 사람이였다. 그와 30년을 이웃하여 살고있는 나그네는 그보다 20살이나 젊었는데 알츠하이머병을 앓고있었다. 그 나그네에게는 괴상한 증상이 있었는데 간병인이 머리를 숙이고 몸을 씻겨줄 때면 갑자기 덮쳐들어 간병인의 어깨를 물어버리는것이였다. 간병인은 약들을 접시에 놓아주며 그를 보고 말했다.
“내 어깨에 난 이빨자국을 좀 보세요. 어제밤까지도 피가배여나와 무서워 죽는줄을 알았어요. 그 사람에 비하면 로인님은 정말 행복해요. 90세가 넘었는데도 정신이 말짱하니까요. 이웃집에서 일할 때면 언제 퇴근시간이 되나 시계만 쳐다봐요. 그집 일을 빨리 끝내고 로인님을 보러 오고싶어서요.”
그는 간병인을 보고 어뚱하게 물었다.
“손님이 있소?”
간병인은 잠간 멍해있다가 대답했다.
“아니, 없는데요.”
그는 여전히 덤덤한 목소리로 물었다.
“내가 잠을 잘 때도 없었나?”
 “그럼요. 손님이 오면 내가 어련히 로인님을 부르지 않았을라구요.”
그는 저승사자가 오래동안 오지 않는게 이상하다고 생각되였다. 그는 저승사자를 만나보고싶었다. 그렇다고 해서 기어코 저승사자를 따라가려는것은 아니였다. 구체적으로 따라가는가 마는가 하는것은 분위기에 따라서 다시 상론해볼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는 저승사자의 편하고 온후한듯 하면서도 어딘가 교활함이 어려있는 그 얼굴을 보고싶을뿐이였다. 그 무렵, 저승사자처럼 그를 흥분하게 하고 격동하게 하는 사람이나 물건들이 별로 없었다. 언젠가 그는 젖 먹던 힘까지 다해 지팡이를 짚고 이웃집으로 간적이 있었다. 그날 그는 웬지 이웃집나그네를 꼭 한번 만나보고싶었다. 하지만 이웃집나그네는 진작 그를 기억하지 못하고있었다. 그는 처량한 눈길로 이웃집나그네를 마주보기만 했다. 이웃집나그네는 그를 보면서 연신 알아들을수도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이웃집나그네의 아들이 긴장된 눈길로 그를 바라보고있었는데 그 표정은 마치도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을 지켜보는듯 했다. 잠간후 이웃집나그네의 아들이 그의 집으로 건너가 간병인을 불러왔다. 그들은 합심해서 그를 부축해 세웠는데 마치도 귀중한 골동품을 다루는듯한 긴장함을 내비쳤다. 간병인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로인님, 담에 다시 오기로 하고 오늘은 집에 가서 약을 드십시다.”
 그는 알겠다는듯 머리를 끄덕이다가 힘껏 머리를 돌려 이웃집나그네를 바라보며 말했다.
“담에 또 당신 보러 올거요.”
이웃집나그네는 갑자기 어린애들처럼 두팔을 쩍 벌리면서 히스테리적으로 소리 질렀다.
“당신에게 실말을 하오만 그것은 내 뜻이 아니였소. 일본사람들이 나를 그렇게 하라고 핍박을 한거요. 그들이 나를 보고 그 녀자를 강간하라고 협박했소. 정말 그들이 나를 핍박한거라니까.”
간병인은 이웃집나그네를 바라보면서 웃음을 참느라 킬킬 거렸는데 마치도 재미있는 드라마를 보는듯한 표정이였다.
그는 99세가 되던 해에 녕향의 결혼식에 참석했다. 그날도 손님들은 결혼식보다 그를 “참관”하는것을 더 흥미있어 하는것 같았다. 그는 눈꺼풀이 무거워 뜨는듯 마는듯 하고있었다. 결혼식장을 장식하느라 띄워놓은 고무풍선이 포도송이처럼 안겨들었다. 그는 누구에게도 특별히 아는체를 할 필요가 없었다. 그를 보는 사람마다 먼저 허리를 굽적거리며 얼굴에 웃음을 피워올렸던것이다. 그는 사람들이 보통 그러한 얼굴로 갓난애나 참대곰을 어를것이라고 생각했다. 저승사자는 하얀 보를 씌운 밥상 사이에 서서 그를 바라보며 간교한 웃음을 질질 흘리고있었다. 그는 저승사자가 따사로운 해빛속에서 그를 향해 다가오는것을 보았다. 저승사자는 그와 하얀 드레스를 차려입은 녕향의 사이에 와서 걸음을 멈추었다.
“오랜만이네요.”
그는 저승사자를 향해 진심으로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이구려.”
저승사자는 담담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저승사자의 나이가 자기 아들들또래나 될것이라고 짐작했다. 그는 자기가 지나온 쇠락의 시간이 보통사람들의 일생만치나 길것이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우리 인젠 갑시다.”
그는 잠간 말을 끊고 저승사자를 바라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인젠 떠날 때가 됐겠지요?”
“여전하시구려.”
저승사자가 입가에 웃음을 띄우며 아래말을 계속했다.
“자네는 그래 정말 살고싶으면 살고 죽고싶으면 죽을수 있다고 생각하는건가? 그것도 자기가 제일 죽고싶을 때 죽을수 있다고 말일세. 생사가 그렇게 뜻대로 된다면 자네를 어찌 사람이라고 할수 있겠나?”
“내 뜻은 내가 전처럼 죽음을 그렇게 두려워 하지 않는다것을 알려주고싶을뿐입니다.”
“축하하네. 자네가 그 경지에 이르러서.”
저승사자의 말에는 짙은 조소가 어려있었지만 그는 이미 그런것에 습관이 되여있었다.
“이번엔 진심입니다. 하지만 역시 조금도 두렵지 않은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는 허공에 대고 손을 허우적거리다가 말끝을 맺았다.
“이번엔 꼭 나를 데려가주십시오.”
저승사자가 바투 들이댔다.
“정말 생각을 굳힌겐가?”
“정말입니다.”
“무엇때문이지?”
“전에는 죽음만 생각하면 두려웠습니다. 두려워 죽을것 같았지요. 하지만 인젠 두려움에 지쳐버렸습니다. 지쳐버리니 되려 두렵지가 않습니다. 당신을 따라 가는게 더 행복할듯 합니다. 지금 죽으면 모든것이 그처럼 안락하게 느껴질것 같습니다.”
“거짓말을 하지 말게나.”
저승사자는 엄숙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언젠가도 이런 말을 하는 그를 본적이 있다고 생각하는것 같았다.
“거짓말이 아닙니다.”
“사는것이 죽는것보다 더 두렵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던게지?”
저승사자의 목소리에는 전에 없던 처량함이 묻어있었다. 저승사자가 푹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자네는 왜 그렇게 실말을 하기를 두려워 하는가?”
“믿기지 않으면 맘대루 생각하십시오.”
그는 볼부어 소리쳤다. 순간 그는 자기의 몰골이 이웃집 나그네와 흡사할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할아버지.”
녕향의 챙챙한 목소리가 울렸다. 그는 힘겹게 눈길을 소리나는 쪽으로 돌렸다. 녕향이 손짓을 했다.
“할아버지, 함께 사진을 찍는게 어때요?”
그는 100세 생일을 침대에서 쇠였다. 100세를 살아가던 어느날 그는 자기가 완전히 움직일수 없다는것을 의식했다. 그날부터 휠체어는 그의 신체의 일부분으로 되였다. 팔도 굳어져서 누군가 그의 입에 밥을 떠넣어줘야 했다. 언어능력도 떨어져서 누구도 그의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지만 그는 말을 하고싶었고 또 능히 말을 할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도 사실 자기가 말을 하는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라는것을 알고있었다. 하여 그는 아예 말을 할수 없는것처럼 위장하리라 마음 먹었다. 그렇게 되면 자기가 사람들을 보고 말을 하지 않아도 실례는 안될것이라고 생각되여서였다.
그는 휠체어에 앉아 이웃집에서 나는 동정에 귀를 기울였다. 누군가 놀라는듯한 고함소리가 들리고 고통스럽게 몸부림을 치는듯한 동정이 나더니 이윽고 이웃집나그네의 욕지거리가 터져나왔다. 이어 강아지가 놀라서 왕왕 짖어댔다. 그는 문어구에 놓아둔 개사료를 이웃집나그네가 훔쳐 먹어서 생긴 해프닝일것이라고 짐작했다. 이웃집나그네의 아들이 하는 소리가 그것을 충분하게 증명한다고 믿었다.
그의 작은 아들은 퇴직을 하던날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인젠 남아 도는게 시간이거든요. 제가 아버지를 잘 돌봐드리겠습니다.”
귀밑머리가 희슥희슥해진 작은 아들은 매일 아침저녁으로 고혈압을 치료하는 약들을 복용했다.
그는 104세가 되였다.
녕향은 29살에 과부로 되였다. 녕향의 남편은 어느 비 오던 날밤에 술을 마시고 차를 몰다가 고속도도로의 란간에 부딪쳐 당장에서 목숨을 잃었던것이다.
그는 녕향이 음침한 표정을 한채 가방을 들고 집으로 들어오는 모습을 똑똑히 보았었다. 그는 두눈을 지그시 감고 저승사자에게 물었다.
“신이라는 당신이 뭔가 착각한게 아닌가요?”
그는 매일 텔레비죤을 보았다. 아니 그가 본다기보다 식구들이 텔레비죤을 볼 때면 그의 휠체어를 당겨다 텔레비죤앞에 놓아주었다. 텔레비죤에서 방송하는 프로가 뉴스든 경제프로든 드라마든 관계없이 텔레비죤을 들여다보고있으면 그만이였다. 누군가 갑자기 다른 채널을 돌려놓아도 그는 불평 한마디 하지 않았다. 그는 자기가 텔레비죤을 바라보다가 네모난 그 막에서 혹시 저승사자를 볼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바램같은것을 하고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저승사자가 어느때 어디에서 나타날지는 누구도 알수 없었던것이다.
그것은 깊은 밤이였다. 작은 아들과 며느리는 대학교 동창만회에 참가하러 나가고 없었다. 녕향은 쏘파에 앉아서 몇분에 한번씩 채널을 바꾸어댔다. 그는 멍하니 텔레비죤만 바라볼뿐 녕향의 신경질적인 행동에는 아무 불만도 없었다. 그는 텔레비죤프로보다도 조용한 여름밤에 풍기는 공기중의 촉촉한 느낌을 더 좋아하고있었다.
녕향이 손에 들었던 리모컨을 내려놓았다. 그때 텔레비죤에서는 대화프로를 방송하고있었는데 내용은 석유가격과 중동전쟁의 관계에 대한것이였다. 녕향은 얼굴도 돌리지 않고 한참이나 웃어제꼈다.
“할아버지, 참 재밌죠? 그 사람이 죽은 이 몇달간 저는 왜 한번도 울지 않았을가요?”
녕향은 뭔가를 알고있다는듯 잠간 말을 끊었다가 다시 이어나갔다.
“할아버지는 알고있을거예요. 사실 나는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거든요. 근년에 나는 그가 모는 차에 앉아 다니면서 진작 그 점을 의식했어요. 그에게는 속도를 빨리면서 안전띠를 풀어버리는 습관이 있었거든요. 하지만 나는 웬지 그 위해성을 끝까지 그에게 귀뜸하지 않았어요. 그 습관이 계속되면 꼭 사고를 칠것이라는것을 명확하게 알면서도 말이죠. 할아버지, 사람의 행동이란 참으로 이상하죠? 분명 그 습관이 위험하다는것을 알면서도 속도가 빨라질 때면 나까지 가끔 안전띠를 풀어버린거 있죠? 내가 안전띠를 푸는것을 보면서도 그는 못 본체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할아버지, 이건 무엇때문일가요?”
녕향은 잠간 한숨을 내쉬고 아래말을 이었다.
“할아버지, 나는 왜 울지 않을가요? 할아버지에게만 미리 말씀 드리는건데요, 저는 많은 사람들앞에서 우는것을 제일 싫어해요. 그래서 할아버지의 장례식에서도 울지 않을수 있어요. 하지만 그건 절대로 내가 할아버지를 그리워하지 않아서가 아니예요. 이 점을 꼭 기억해주세요. 될수 있겠죠?”
그는 녕향을 바라보며 덤덤하게 말했다.
“그래, 울지 마라. 나는 너의 마음을 충분히 리해할수 있으니까.”
“나는 할아버지가 능히 말할수 있다는것을 진작 알고있었어요.”
녕향은 그를 바라보며 다섯살 나는 계집애처럼 천진하게 웃음을 빼여물었다.
그날밤, 우뢰소리가 들렸다. 그는 두눈을 꼭 감았다. 자기의 몸이 목 마른 식물처럼 비를 기다리고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저승사자가 침대머리에 앉아있었다. 그들은 서로 마주 보며 시무룩이 웃음을 피워올렸다.
“갈 때가 됐겠지요?”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런것 같네.”
 저승사자가 머리를 끄덕였다. 그는 저승사자를 보기 시작해서 처음 긍정적인 대답을 들었다고 생각했다.
“참으로 감사합니다.”
그는 두눈을 감았다.
“정말 미련이 없다는게지?”
저승사자는 한숨을 내쉬였다. 그는 저승사자를 바라보면서애써 또박또박 말을 이어갔다.
“그렇습니다. 당신의 말은 틀린데 없습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나는 정말 사는게 두려웠습니다. 하지만 요즘엔 사는것도 그렇게 두렵지 않습니다. 그러니 바로 때가 된게 아닌가요?”
그는 저승사자가 약간 허리를 굽히고있다고 느껴졌다. 이어 웃음기를 띤 저승사자의 목소리가 귀속을 파고들었다.
“자네에게 한가지 비밀을 알려줘야겠네. 내가 왜 자꾸 자네를 찾아오는지 알고있는가? 나는 사실 모든 사람들에게 이같은 관심을 가지고있는게 아니라네. 자네는 이 나라에서 가장장수한 사람이라네. 그러니 길이길이 력사에 남아있을거네. 자네보다 더 장수한 사람이 나타나 자네를 대신할 그때까지는 말일세. 그러니 너무 급해 말게. 아직도 갈 때가 멀었으니까.”
그는 더 으스러지게 두눈을 감았다. 그의 눈앞에 스치는것은 지난세기 60년대말에 그가 살았던 농장이였다.
그날 그는 소를 방목해야 했다. 하지만 그날아침에 그는 조심하지 않아 신을 잘못 신었다. 두발에 모두 왼쪽신을 신었던것이다. 진종일 발이 불편했지만 그는 책임자에게 차마 신을 바꿔 신으러 가겠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로동시간에 신을 바꿔 신으로 간다는것은 당시 또 하나의 죄증으로 될수 있었던것이다. 책임자는 그가 일하기 싫어서 일부러 신을 짝짝이로 신고나왔다고 할수 있었던것이다. 그는 사람들이 자기가 신을 짝짝이로 신어 걸음을 걷기 힘들어 하는것을 재미나게 바라보고있다는것을 알고있었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그때 그 눈길들은 지금 간병인이 이웃집나그네가 개사료를 훔쳐먹는것을 살필 때의 그 눈길과 다를바 없다고 생각되였다.
그는 느릿느릿 걸음을 옮기는 황소에게 기대서서 퉁퉁 부어오른 오른발을 왼쪽다리뒤에 숨겼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못한듯 위장하면서 태연한 목소리 중얼거렸다.
“석양이 참 좋구나!”
그는 자신이 그 맵시로 이미 100년을 위장하여온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는 막연하게 나마 자기의 애원을 듣고있었다.
“제발 빕니다. 빨리 나를 데려가주십시오.”
그는 아무리 빌어도 소용이 없을것이라는것을 잘 알고있었다. 그의 앞에 펼쳐진것은 알른알른 빛이 나는 장판이였다. 어쩌면 그것은 신의 령지일것이고 자기는 그 장판을 닦는 사람에 지나지 않을것이라고 생각되였다. 때물이 흐르는 구질구질한 밀걸레는 “죽고싶지 않아 하는 사람”이나 “살고싶지 않아 하는 사람”들의 갈망 같은것일것이라고 느껴졌다. 그는 다시한번 저승사자를 향해 구걸했다. 아니, 엄숙하게 말해서 응당 간구했다고 해야 할것이다. 필경 그를 마주한것은 신이였으니까. 하지만 그게 무슨 구별이 있을가?
창문유리를 두드리는듯한 소리가 들렸다. 밖에서 비가 내렸다. 이제 곧 5대가 한집에서 살수 있을것이였다.
 
적안(笛安), 녀, 1983년 산서성 태원시에서 출생. 빠리 제4대학, 프랑스고급사회과학원을 졸업. 2003년부터 소설을 발표. 《천당을 고별하다》, 《련꽃은 얼굴과 같고 버들은 눈섭과 같아라》,《서결(西决)》, 《동예(东霓)》등 장편소설이 있음. 현재 《문예풍상(文艺风赏)》잡지 주필로 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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