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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세월의 그 꽃신* 효소
2013년 08월 11일 14시 08분  조회:2129  추천:0  작성자: 동녘해
그 세월의 그 꽃신
 
효소
 
 
1
 
고희연을 치른 이튿날 아침, 온구(温九)는 여느때보다 늦게 잠을 깼다. 고희연을 치르느라 기쁜김에 술을 좀 과하게 마셨던것이다. 그가 힘겹게 두눈을 뜨고보니 어느새 일곱시가 되여있었는데 해살은 그의 집어구의 마당을 비추고있었다. 빠알간 해살은 마치도 마당에 따뜻한 비단이불을 한벌 덮어놓은듯싶었다.
그때 김국(金菊)은 부엌에서 물을 끓이고있었다. 아침밥을 지으려는것이였다. 온구가 객실에 막 들어서는것을 본 김국이 부엌에서 나와 잰걸음으로 온구앞에 와섰다. 김국은 너무 급히 달려나오느라 취화통(吹火筒)을 내려놓는것마저 깜빡 잊고있었다. 취화통을 손에 들고 허둥지둥 달려나오는 김국을 보고 온구는 김국이 자기를 때리려고 헤덤벼치는줄 알았다.
김국은 온구를 때리려는것이 아니였다. 그는 온구를 향해 웃음을 날렸다. 하지만 그 웃음이 어딘가 어색하다고 생각되였다. 입귀가 우로 올라가있었고 머리는 18살 소녀처럼 갸우뚱 기울어져있었다. 그 모양을 보면서 온구는 매우 이상하게 생각되였다.
이 로친이 왜 나를 보고 이렇게 웃는것일가?
김국이도 사실은 이미 68세에 나는 할망구였다. 지난 몇십년 동안 김국은 온구앞에서 종래로 그렇게 머리를 갸웃하고 웃음을 지은적이 없었다.
“왜…왜 그렇게 웃는거유?”
온구가 모르겠다는듯 김국에게 물었다.
김국은 여전히 입가에 웃음을 물고 눈까지 껌뻑거리면서 말했다.
“령감, 령감이 꼭 70살이 됐다우.”
“내가 70살이 됐는데 뭐가 그렇게 우스운 일이라구…”
온구는 더욱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김국은 취화통으로 온구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70살이 되면 령감이 그 사실을 있는 그대로 다 말해줄거라 하지 않았수? 령감, 설마 그 일을 잊은거야 아니겠지?”
“어느 일을 그러우?”
온구가 김국을 향해 두눈을 부릅떴다.
“신…”
김국이 취화통을 휙 저으면서 목소리를 높여 다시한번 그루를 박았다.
“꽃신에 대한 일을 말이우.”
김국이 “꽃신”이라고 꼬집자 온구의 머리에는 즉시 예쁜 꽃신 한컬레가 떠올랐다. 온구는 그만 참지 못하고 푸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온구는 여전히 웃음을 거두지 못하고 김국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참, 대단하오. 로친… 기억력이 좋기도 하구려. 어느 왕금년의 일인데… 깨알만한 그깐 일을 나는 잊은지 옛날인데 로친은 아직두 기억하구있소?”
온구는 껄껄 웃으면서 배꼽을 잡고 돌아가다가 철썩철썩 허벅다리를 치기까지 했다. 김국은 약이 오른듯 취화통으로 온구의 입을 가리키면서 소리쳤다.
“웃긴? 왜 이렇게 배꼽 빠지게 웃는거유? 웃지만 말고 얼른 사실대로 말하지 못하겠수? 그 꽃신이 도대체 어디서 온거였수? ”
“급하기는…”
온구가 겨우 웃음을 거두면서 아래말을 이었다.
“아침밥을 먹은후 천천히 말해주리다.”
“안되우!”
김국이 꽥 소리치며 다그쳤다.
“당장 말하란 말이우. 령감이 분명 약속했더랬지. 칠십살을 채우면 꼭 말해주겠다구. 내 이날을 꼭 22년이나 기다려왔단 말이요. 나는 워낙 어제밤에 령감에게 물을가 생각했더랬수. 령감이 어제밤에 그 뜨물을 들이켜구 인사불성이 돼 돼지처럼 쓰러지는 바람에… 그래두 좀 불쌍한 생각이 들어서 깨우지 않은게우.”
김국의 말이 끝나자 온구는 입가에 어색한 웃음을 띠며 말했다.
“참, 성질 하나는 급하다니까. 몇십년을 기다려왔을라니 아침밥 먹을 새를 못 참는단 말이우? 그래 그새도 못 참겠다는게유? 이런… 변소가 급해지네. 온밤을 채웠더니 오줌깨가 터지려구 하네. 좀만 더 지체하면 오줌을 지리게 생겼다우.”
말을 마친 온구는 바지춤을 움켜쥐고 변소를 향해 어정어정 걸어갔다. 김국은 별수없다는듯 머리를 저으면서 말했다.
“좋수. 아침밥 다 먹을 때까지만 참아주겠수. 그래두 말을 하지 않으면 가만 놔두지 않을게유.”
그 말에 온구가 머리를 돌리고 물었다.
“로친, 가만 놔두지 않으면 어쩔건데?”
김국은 잠간 머뭇거리더니 소리쳤다.
“밥을 안 끓여줄거유.”
온구는 무슨 일에서나 솜씨가 쟀지만 부엌일만은 아예 모르고 살았다. 하기에 김국은 오직 밥을 끓여주지 않는다고 을러메야만 온구를 굴복시킬수 있다고 생각했던것이다. 아니나 다를가 온구는 공손히 김국을 향해 흰기를 들었다.
“알았다니까. 아침밥을 다 먹은후 내 꼭 그 꽃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도 빠짐없이 그대로 다해주리다.”
온구가 그렇게 고분고분 나오자 김국은 취화통을 들고 다시 부엌으로 들어갔다.
마당가에는 돌구유며 매돌이며가 가득 널려있었고 채 만들지 못한 작은 돌절구도 하나 놓여져있었다. 돌절구는 절구홈과 절구공이로 되여있었다. 절구홈은 모양이 번져놓은 모자를 방불케 했고 정구공이는 길고 굵직한 오이를 떠올리게 했다. 유채파의 사람들은 돌절구로 많이는 깨를 빻았지만 간혹 마늘이나 산초를 빻는 사람들도 있었다.
마당에 널려있는 석기는 모두 온구의 손에서 만들어진것이였다. 온구는 유채파일대에서 이름난 석공이였다. 온구가 만들어낸 석기들은 만드는족족 팔려나갔다.
온구는 변소에서 나오는 길에 또 석기를 사러 온 사람을 만났다. 그 사람의 이름은 복아(福娃)였는데 리귀의 아들이였다. 리귀와 그의 마누라 원봉은 온구네 집 맞은켠에 있는 산등성이에 집을 잡고 살았다. 두 집 사람들은 마당에 나서기만 하면 서로 마주볼수 있었고 말하는 소리도 들을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는 똑똑히 알아들을수 없었다.
복아는 서른살을 훨씬 넘긴 로총각으로서 해마다 외지에 돈 벌러 나갔다. 하기에 집에는 늘 리귀와 원봉이만 남아있었다. 효심이 많은 복아는 계절마다 집에 와서 부모들을 찾아뵙군 했다.
복아는 온구에게 절구를 사겠다고 했다.
“우리 집 늙은이들은 말인데여… 마늘즙을 내 자시길 좋아하거든여. 식칼로 마늘을 쪼으려니 그게 어디 제대로 되나요.”
온구는 마당에 널려있는 석기들을 살피면서 입을 열었다.
“돌절구라… 만드는게 하나 있긴 한데 아직 일이 끝나지 않았단다. 홈은 이미 다 팠지만 절구공이는 아직이구나.”
“그러세요? 그럼 오후에 다시 올게요.”
복아가 일어나 돌아가려고 하자 온구가 인차 입을 열었다.
“아침밥을 먹으려면 아직도 한시간 기다려야 하니 이 짬에 내가 손을 보마. 너 가서 아침밥을 먹구 와라. 그때면 아마 일이 끝날게다.”
“그럼 수고하세요.”
복아는 인사를 올리고 돌아섰다.
온구는 급히 집으로 들어가 도구상자를 들고 나왔다. 그리고 나무걸상도 하나 들어왔다. 복아는 그때까지 돌아가지 않고있었다. 복아는 만들다만 돌절구옆에 서서 뚫어져라 온구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바이는 참 기력이 좋으시네요. 걸음걸이가 날파람이 나서 전혀 로인 같지 않아요.”
온구가 허허 웃으며 말을 받았다.
“늙었단다, 늙었지. 벌써 칠십인데…”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아요. 어디 저의 아버지 같겠어요. 우리 아버지가 아바이보다 몇살 아래지요? 그래두 어디 아바이처럼 망치를 흔들수 있나요? 비자루로 마당을 쓸라 해도 우리 아버지는 허리를 굽히기 힘들어할거예요.”
그때 부엌으로부터 고소한 기름냄새가 풍겨나왔다. 복아는 코를 몇번 벌름거리더니 또 말을 시작했다.
“이 집 아매두 참 기력이 좋은것 같아요. 밥을 짓고 돼지를 먹이고 빨래를 하고… 어디 하나 빠지는데가 있나요? 아까는 왜 취화통을 들고 아바이한테로 뛰여왔댔어요? 우리 엄마는 이 집 아매에게 비기지도 못해요. 몇걸음만 걸으면 다리가 아프다고 란리인데요. 이 집 아매는 우리 엄마보다 세살이나 이상인걸요.”
온구는 복아의 말을 들으면서 머리를 끄덕이다가 입을 열었다.
“복아야, 너 참 입이 달구나. 우리 어디 네가 말하는것처럼 그렇게 기력이 좋으냐? 너의 에미애비는 참 복받은게지, 너 같은 효자를 둬서…”
복아가 사라지자 김국이 부엌에서 쓰던 뒤집개를 손에 든채 문밖으로 나왔다. 온구가 마당에서 열심히 절구공이를 다듬는것을 본 김국이 입가에 묘한 웃음을 담고 시까스르듯 소리쳤다.
“세상에… 칠십이 돼도 일손은 역시 잽싸네유.”
온구가 김국의 말을 받아쳤다.
“왜? 칠십이 되면 서북풍을 먹고 사는가?”
온구가 그렇게 들이대자 김국은 일시 뭐라고 할 말을 찾지 못했다. 김국은 진작 온구의 말속에 다른 뜻이 숨어있다는것을 알았던것이다. 사실이지 그 몇년간 가정살림은 모두 온구의 손에 의지해왔었다. 그렇다고 온구와 김국에게 아들딸이 없는것은 아니였다. 아들은 장가 가서 세간을 났고 딸도 이미 시집을 갔었다. 그들은 해마다 두 로인에게 천원씩 생활비를 보태주겠다고 약속했었다. 하지만 그 약속은 강물에 가랑잎 흘러간 꼴로 되여버렸다. 두 로인은 자식들에게 생활비를 보내라고 독촉을 하지 않았다. 자식들도 생활이 여의치 않다는것을 너무도 잘 알고있었던것이다. 온구에게 돌을 다루는 좋은 재간이 있는게 참으로 다행이였다. 온구가 석기를 만들어 벌어들이는 돈으로도 두 로인은 얼마든지 생계를 이어갈수 있었다.
김국은 부엌으로 들어가 한참 있다가 다시 부엌문앞에 나와섰다. 김국의 입에서 또 꽃신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아침밥을 먹은후에는 절대 떼질을 못쓸거유.”
“떼질이라니?”
“꽃신에 대해 말해야지유. 얼른 말해보슈. 도대체 그 꽃신은 누가 준거였수?”
온구가 한심하다는듯 쩝쩝 입을 다시다가 말했다.
“떼질이라니? 이 나이를 먹구서… 내가 만약 떼질을 쓰면 로친이 나에게 밥을 안해준다면서?”
김국이 어깨를 으쓱하며 배포유하게 한마디 했다.
“흥! 무서운걸 알면 됐슈.”
 
2
 
온구는 나무걸상에 앉아 절구공이를 다듬었다. 그는 일손을 놀리면서 그 꽃신을 머리에 떠올렸다.
김국의 말은 실로 그른데 없었다. 꽃신에 대한 추억은 22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갈수 있었다. 그해 온구는 48살이였는데 몸집이 젊은이들과 별반 다름이 없었다. 일은 온구의 48살 생일 전날에 생겼다.
그날 저녁편에 온구는 소를 끌고 집으로 돌아오고있었다. 그의 한손에는 소고삐가 들려있었고 다른 한손에는 등초융(灯草绒)으로 만든 헝겊신이 들려있었다. 온구는 흥겹게 걸음을 옮겨놓으면서 흥얼흥얼 코노래를 불렀는데 마치도 인삼탕을 한사발 마신듯한 기분이였다.
그때 김국은 마당에서 돼지풀을 썰고있었다. 김국은 멀리에서 벌써 온구의 손에 들려있는 헝겊신을 보아냈다. 김국은 그 신을 보자마자 돼지풀을 쏠던 손을 우뚝 멈추었다.
“어디서 났어요?”
김국이 호기심이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오다가 주은거라우.”
온구가 시물시물 웃었다.
“그래서 흥얼거렸군요, 신 한컬레가 생겼으니…”
말을 마친 김국은 다시 돼지풀을 썰기 시작했다. 두어번 칼질을 하던 김국이 갑자기 손을 멈추었다. 어딘가 석연치가 않았던것이다. 김국은 신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바투 들이댔다.
“어디서 주었어요?”
“방공호어구에서 주었지.”
말을 마친 온구는 꽃신을 들어 찬찬히 여겨보다가 아래말을 이었다.
“방공호앞에 샘터가 있잖수? 그옆에는 또 오동나무가 한그루 서있구. 아마두 누가 샘물을 마시느라구 신을 오동나무가지에 걸어두었다가 깜빡하구 두고갔나보지 뭐. 하하하… 내가 횡재를 한거지.”
그 말을 듣고서야 김국은 시름을 놓고 다시 돼지풀을 썰었다.
소를 우리에 몰아넣은 온구는 집으로 들어와 신을 부억칸과 이어진 따뜻한 안방벽에 걸어놓았다. 저녁밥을 다 먹은 온구와 김국은 안방으로 들어가 따뜻한 물에 발을 담갔다. 발을 다 씻은 온구는 갑자기 벽에 걸려있는 신을 가리키면서 김국에게 말했다.
“여보, 내가 주어온 그 신을 벗겨주오. 발에 맞는지 한번 신어보게…”
김국은 신을 벗겨들고 꼼꼼히 살펴보았다. 신안에는 꽃 한송이가 수놓아져있었다. 복숭아꽃이였다. 분홍색을 띤 복숭아꽃은 활짝 피여있었다. 그 꽃을 바라보는 김국의 눈살이 꼿꼿해졌다.
“제대로 말해요. 이 신을 도대체 누가 주었어요?”
“말했잖아? 주은거라구? 몇번을 더 말해.”
온구가 태연한 기색으로 짜증스럽게 말했다. 김국이 온구를 쏘아보며 흥 하고 코웃음을 쳤다.
“주었다구요? 진짜 솜씨가 좋네요. 꽃신을 다 주어오다니…”
온구가 깜짝 놀라면서 되물었다.
“꽃신이라구? 꽃을 수놓았다구?”
말을 마친 온구는 김국의 손에서 와락 신을 빼앗아 눈앞에 가져왔다. 온구는 신을 이리저리 살피면서 연신 중얼거렸다.
“정말이네, 진짜 꽃을 수놓았네.”
잠간 말을 끊었던 온구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런이런… 그것도 복숭아꽃이네. 아마두 맘에 있는 사람에게 주려던것 같군.”
온구의 말을 들으며 두눈을 껌뻑거리던 김국이 목소리에 가시를 박았다.
“신어요, 얼른. 당신 발에 맞는가보자요.”
온구가 웬 일인지 얼굴을 붉히며 얼버무렸다.
“됐소. 신어보나마나… 이같이 예쁜 신을 내가 어떻게 신고 밖에 나간다구. 그대루 벽에 걸어두오. 혹시 누가 신을 잃어버렸다고 하면 돌려줘야지. 시간이 흘러두 찾는 사람이 없으면 그때 신어봐두 늦지 않지 뭐.”
하지만 김국은 온구의 말을 듣는척도 않고 소리쳤다.
“신어보라는데두, 왜? 오늘 꼭 내앞에서 신어보아야 해요.”
온구는 얼굴에 어설픈 웃음을 담고 마지못해 신을 신기 시작했다. 신은 온구의 발에 딱 들어맞았다. 어쩌면 온구의 발을 재여서 맞춘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듯싶었다.
“하하하… 재수가 좋네. 어쩌면 이렇게 딱 맞을가?”
온구가 일부러 목소리를 높여 크게 웃었다. 그 웃음소리가 김국의 분노를 자아냈다. 김국은 주먹으로 온구의 옆구리를 쿡 치며 말했다.
“당신, 제대로 말해봐요. 이 신을 어느 년이 줬어요?”
온구는 억울하다는듯 두덜거렸다.
“주었다고 하잖았소? 방공호앞에서.”
김국의 목소리가 더욱 커졌다.
“개뿔, 줏기는… 귀신이나 속을가.”
그날 밤, 김국은 울고 불고 하며 복새통을 벌렸다. 지어 온구의 온몸을 손이 가는대로 잡아뜯기도 했다. 김국이 한번 또 한번 신을 누구에게서 가졌느냐고 물었지만 온구는 한번 또 한번 주었다고 되풀이했다. 련속 대엿새를 그렇게 달구어치고서야 김국은 약간 분이 풀려했다.
김국이 온구에게 약간 풀이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누가 주었다는것을 제대로 말만 하면 나는 더 이상 떠들지 않을거예요.”
그러자 온구도 대놓고 주었다며 딱 잡아떼지는 않았다. 김국이 그렇게 양보하는데 자기가 계속 주었다고 하는것도 좋은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던것이다. 하지만 온구는 사실의 경과를 김국에게 사실대로 털어놓지는 않고 둘러붙였다.
“그 신 말이야, 사실 주은것은 아니거든. 어느 녀자가 기어코 던져주길래…”
“누가 준거야?”
김국이 다잡아물었다.
“아직은 대답할수 없어.”
온구가 잡아똈다.
“왜 대답할수 없어?”
김국이 바짝 다가들었다.
“거야 당신이 찾아가 큰일을 칠가봐 그러지.”
온구가 대답했다.
일시 뭐라고 말을 못하고 씨근거리던 김국이 물었다.
“그럼 당신, 언제나 실말을 할건데?”
온구가 잠간 무엇인가를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건… 내가 칠십살이 되였을 때 말해줄게.”
김국이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
“세상에… 아직도 22년을 기다리란 말이야?”
온구가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더 길더라도 기다려야 할걸. 나는 70살이 되지 않으면 때려죽인대두 말하지 않을걸.”
온구가 그 꽃신을 들먹이고있을 때 사실은 김국이도 그 꽃신에 대하여 생각을 굴리고있었다. 김국은 반찬을 만들면서 조용히 꽃신에 대하여 생각했다. 사실이지 지난 22년간 김국은 늘 꽃신을 온구에게 선물한 녀자가 누구일가를 추측했었다. 몇몇 떠오르는 얼굴이 있었지만 종시 누구라고 딱히 짚을수는 없었다.
그중에서도 세 녀인에게 가능성이 많다고 생각했다. 그 세 녀인의 얼굴이 다시 김국의 머리속에 떠올랐다.
제일 의심이 가는 녀자는 그래도 “조롱박”이라고 해야 할것이였다. 그녀의 젖무덤이 조롱박 두개를 앞가슴에 달아맨듯 해서 사람들은 그녀를 “조롱박”이라고 불렀다. 날이 감에 따라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이 없다싶이 했다. “조롱박”은 여러 남정들과 집적거려 말썽을 일으킨적이 있었다. 김국은 비록 온구가 “조롱박”과 좋아하는 장면을 직접 목격한적은 없지만 어느땐가 직접 “조롱박”의 젖무덤이 풍만하다고 말하는것을 들었던것이다. 그날 온구는 김국을 보고 파렴치하게도 이렇게 말하는것이였다.
“당신의 젖무덤이 조롱박처럼 크다면 얼마나 좋겠소?”
다른 한 녀인의 별명은 “야래향”이였다. 그녀의 남편은 좀 어리숙한편이였고 몸도 비실비실했다. 하기에 다른 남정네들이 밤이면 늘 그녀네 집을 기웃거렸다. 다른 남정네들이 밤중에 그녀의 집 문을 두드리면 그녀의 남편이 먼저 나와 문을 열어준다는 소문까지 있었다. 김국은 온구가 밤중에 “야래향”네 집에 간적이 절대 없다고 믿고있었다. 하지만 언젠가 “야래향”을 위해 매돌을 만들어준적이 있다는것은 알고있었다.
그날 아침, 온구는 아침 일찍 “야래향”네 집으로 갔다가 밤중이 되여서야 돌아왔었다. 김국이 뾰로통해서 물었다.
“그까짓 매돌을 온 하루 만들었단 말이예요?”
온구가 시무룩이 웃으며 말했다.
“두짝이 아니요? 오전에 웃쪽을 만들고 오후에 아래쪽을 만들었지.”
김국이 의심을 하는 다른 한 녀인은 신을 누빌줄 아는 “작은아씨”였다. 그녀는 신을 누비는 재간이 좋아서 린근에 소문이 자자했는데 그녀가 신바닥에 수놓은 꽃송이는 실로 일품이라고 할수 있었다. 하지만 “작은아씨”는 심성이 고와서 종래로 남녀간의 일에 말려들지 않았다. 김국이 구태여 그녀를 의심하는것은 온구가 들고 온 신에 수놓여진 복숭아꽃이 보통솜씨가 아니기때문이였다.
김국은 당년에 그 꽃신때문에 온구와 크게 다툰후 유채파의 부녀주임을 찾아간적이 있었다. 촌에서 부녀주임은 비록 권력이 그렇게 크지 않았지만 사소하게 삐치는 일은 적지 않았다. 오직 녀자들과 관계되는 일이라면 나서지 않는데가 없었다. 누군가 온구에게 꽃신을 선물했다는 김국의 말을 듣고 부녀주임은 아주 놀라는 표정이였다. 그날, 부녀주임은 김국과 함께 온구를 찾아 집으로 왔었다. 부녀주임은 먼저 온구를 예리하게 비판한후 누가 신을 선물했는가고 따져물었다. 온구가 두덜거렸다.
“이렇게 비평하면 됐지 왜 기어코 누군가고 묻는거유?”
“누군가를 알면 찾아가서 엄숙하게 비평하자고 그래요. 손벽은 혼자서 소리를 낼수 없어요.”
부녀주임이 그렇게 들볶는데도 온구의 입은 자물쇠를 잠근듯 도무지 열리지 않았다.
부녀주임은 김국을 살뜰하게 보살펴주었다.
그날도 김국이 온구에 대한 불만때문에 부엌에 불을 지피지 않았기에 김국도 온구도 하루종일 쌀알 한알 입에 넣지 못하고있었다. 그 정황을 알게 된 부녀주임이 저녁무렵에 찾아와 밀가루수제비를 끓여주었다. 부녀주임은 수제비를 사발에 담아 그들앞에 놓아주며 따뜻할 때 얼른 먹으라고 재촉했다. 김국은 부녀주임의 관심에 얼마나 감동했는지 모른다. 김국은 부녀주임이야말로 이를데없이 훌륭한 간부라고 생각했다.
그날, 부녀주임이 문을 나서려 할 때 김국은 자기가 의심하고있는 세 녀자의 이름을 말해주면서 자기를 도와 “진범”이 누구인지를 알아맞춰달라고 청을 들었다. 부녀주임은 량미간을 찌프려가며 한참이나 분석을 하더니 머리를 저으면서 자기도 “진범”이 누구인지를 정확히 알수 없다고 말했다. 부녀주임은 나중에 김국이를 보고 말했다.
“쓸데없이 자꾸 생각하면 머리가 아파지거든. 그리구 좋은 사람을 억울하게 굴수도 있구. 후에 온구를 잘 지키기만 하면 돼.”
부녀주임은 말을 마치고 김국의 어깨를 툭툭 쳐주었다.
김국은 마지막 료리까지 다 볶아냈다. 아침밥을 먹을수 있었다. 김국의 가슴은 어떻다고 형언할 길 없이 설레였다.
아침밥만 다 먹으면 누가 꽃신을 저 령감에게 선물했던가를 알게 되겠지.
그새 온구도 절구공이를 다 다듬은후 만족해서 살펴보고있었다.
 
3
 
아침밥상은 풍부했다. 전골 한가지에 뜨거운 료리 4가지가 올랐다. 김국은 또 온구를 위해서 닭알후라이 두개를 해올렸다. 온구는 어딘가 감격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아침에 무슨 닭알후라이는…”
김국은 두눈을 쪼프리면서 말했다.
“닭알후라이를 먹어야 힘이 나지유.”
온구는 김국의 말을 인차 리해하지 못하고 잠간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힘을 내서는 뭘 하는데? 석재 나르러 갈것두 아니구.”
김국이 입가에 웃음을 띠면서 대답했다.
“꽃신에 대해서 얘기해야지유.”
그 바람에 온구는 킥킥 웃음을 삼키면서 입을 열었다.
“못 말린다니까, 이 로친은.”
온구는 말하면서 저가락으로 김국의 이마를 살짝 찔러주었다. 그 모양이 어쩌면 신혼부부가 사랑놀이를 하는듯싶었다.
아침상이 거의 끝나갈무렵에 김국이 또 입을 열었다.
“내가 설겆이를 대충 끝내면 령감은 즉시 그 얘기를 해야 해유.”
온구는 머리를 끄덕이며 그러마 하고 대답했다. 김국은 마당을 내다보면서 말했다.
“나는 마당에 나가앉아서 그 이야기를 들을거유. 따듯하게 해볕을 쪼이면서 말이유.”
온구는 여전히 머리를 끄덕이면서 중얼거렸다.
“그것두 좋겠지. 얘기를 듣다가 로친이 덜덜 떨지도 모르니까.”
김국은 풀이 펄 나게 설겆이를 끝냈다. 온구는 도구상자를 사랑채에 가져다 둔후 나무걸상을 들고 인차 마당으로 나왔다. 김국은 자기가 들고 나왔던 나무걸상을 방금 온구가 가져온 걸상옆에 나란히 놓았다. 김국은 머리를 돌려 온구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됐어유, 편히 앉아서 얘기를 시작해유. 나는 더 이상 못 기다리겠수.”
온구는 나란히 놓인 걸상 두개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허허허… 걸상을 참 재미있게 놓았구려. 조본산하구 송단단이 소품을 하는것 같네. 부끄럽지도 않수?”
김국은 흥 하고 코방귀를 뀌고는 입을 열었다.
“부끄럽긴? 당년에 령감이 그 꽃신을 받을 때는 부끄럽지 않았수?”
온구는 김국의 시까스름소리를 들으면서도 일시 뭐라고 할말을 찾지 못해 공손히 걸상에 엉뎅이를 붙였다. 하지만 김국은 인차 온구의 옆에 앉지 않고 갑자기 몸을 돌려 부엌으로 들어갔다. 다시 돌아져나올 때 김국의 손에는 차탁이며 주전자며가 들려있었고 입에는 차잔도 물려있었다. 그 모양을 보고 온구가 급히 일어나 김국의 손에서 물건들을 받으며 목청을 높였다.
“세상에… 로친, 무슨 재간을 피우는거유?”
김국은 차탁을 나무걸상앞에 놓은후 걸상에 앉아 차잔에 차물을 부으며 온구를 향해 머리를 까땍했다.
“됐어유, 앉아서 차를 마시며 천천히 얘기해봐유. 낯 뜨거운 얘길텐데 입이 마르면 안되지유.”
온구는 걸상에 엉뎅이를 붙이며 입가에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참… 로친두, 못 말린다니까. 이게 와늘 유명한 사람들이 땐스(电视)프로를 찍는것 같지 않수?”
김국이도 그렇게 생각하는지 입가에 웃음을 바르며 말했다.
“령감두 워낙 우리 유채파의 명인이 아니유?”
“나같은 석공이 무슨 명인씩이나…”
“명인이 아니면 어찌 꽃신까지 선물받을수 있었겠수?”
해볕이 참 좋았다. 마당에는 두터운 금빛해살이 한벌 쫙 깔려있었다. 비록 초겨울이지만 사람들에게 초봄인듯한 착각마저 일으킬것 같았다.
“날씨가 참 좋지?”
온구가 입을 열었다.
“날씨가 좋으면 왜유? 말을 돌리지 말구 얼른 꽃신얘기나 하세유.”
김국이 재촉했다. 온구가 어험 건가래를 떼더니 결심한듯 입을 열었다.
“좋소. 그럼 내 얘기를 시작하지.”
김국은 온구의 곁으로 한뽐 다가앉으며 귀를 기울였다. 온구가 정색해서 말했다.
“로친, 내가 본론을 얘기하기전에 두가지 요구를 제기하겠수. 반드시 그러마 하구 대답해야 하우.”
“무슨 요구라는거유?”
김국이 급히 들이댔다.
“누가 그 꽃신을 선물했다는것을 말해도 절대 화를 내면 안되우.”
“생각하는것 하구는, 벌써 22년이 지났는데두. 화는 무슨 화를 낸다구 그러우?”
“그리구 나에게 성깔을 부려두 안되우.”
“알았슈, 성깔을 부리려면 진작 당신을 기 채워 죽였을거유. 됐으니께 얼른 얘기나 하슈.”
김국이 두가지 요구를 다 들어주겠다고 약속하자 온구는 막 입을 열려고 했다. 그때 복아가 마당에 들어서며 알은체를 했다. 김국이 복아를 바라보며 입을 쩝쩝 다시다가 원망 비슷이 한마디 했다.
“복아야, 왜 딱 이때에 오는거니?”
온구는 마당에 널려있는 석기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허허허… 돈이 굴러들어오네. 복아는 절구를 사러 온거라우.”
온구의 말이 떨어지기도전에 복아가 차탁앞에 와섰다. 복아는 두눈을 크게 뜨고 웬 일이냐는듯 온구와 김국을 살펴보더니 다시 눈길을 차탁에 옮겨왔다. 잠간후 복아가 입가에 약간 웃음을 띠고 물었다.
“아매아바이, 무슨 땐스프로를 찍어요?”
“땐쓰프로는 무슨, 볕이 하두 좋아서 차를 마시며 볕쪼임을 하는게지.”
온구가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복아가 그래도 못 믿겠다는듯 잠간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참 생활이 재미있으시네요. 나란히 앉아서 차를 마시며 웃고 얘기를 하고… 뭐가 그리 재미나서 막 손짓까지 신나게 하셨어요? 아까 저 마당에서 다 보았어요. 땐스프로를 찍는가 했어요.”
복아의 말에 김국이 얼굴을 붉히며 장황하게 동을 달았다.
“산골에 사는 령감로친이 무슨 날구뛰는 재간이 있어서 땐스프로까지 다 찍겠냐? 겨울이라 별루 할 일도 없구 해서 나앉아 볕쪼임을 하는게지. 참 볕이 좋지? 이런 날씨가 어디 흔하냐?”
복아는 김국의 말을 들으면서 머리를 돌려 자기네 집쪽을 바라보다가 후―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우리 아부지, 엄마두 아바이와 아매 같았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분들은 진종일 가두 서로 말씀 한마디 안 나눈대요. 벙어리들 같아요. 아침에 그분들도 마당에서 볕을 쪼였어요. 서로 등을 돌리구요. 마치두 서로 모르는 사람들처럼요.”
온구는 처음에 복아의 말이 믿기지 않아 머리를 들어 복아네 집쪽을 바라보았다. 아니나다를가 리귀와 원봉이도 마당에 나와 볕쪼임을 하고있었다. 복아네 마당에는 동서에 벼짚무지 두개가 있었는데 리귀가 동쪽벼짚무지옆에 누워있었고 원봉이 서쪽벼짚무지옆에 누워있었다. 그들은 모두 잠이 든것 같았다. 김국이 리귀와 원봉을 건너다보고 복아에게 물었다.
“복아야, 너네 아부지, 엄마는 왜 나란히 누워서 볕쪼임을 하지 않는다냐?”
“우리 엄마는 아부지가 코를 곤다구 꺼리구 아부지는 엄마가 이를 간다구 꺼려요.”
“그런게 싫으면 밤에는 어쩐다냐?”
김국의 물음에 복아가 잠간 주저하다가 대답했다.
“두분이 다른 침대에서 잔지가 오래요. 벌써 십여년이 됐을거예요.”
복아의 말을 들으면서 김국은 슬쩍 온구를 건너다보았다.그때 온구도 김구에게 눈길을 보내오고있었다. 두 사람의 눈길이 공중에서 부딪치며 반짝 하고 불꽃을 튕겼다. 그 불꽃은 두 사람의 얼굴을 빠알갛게 물들였다. 복아가 용기를 내서 물었다.
“아매와 아바이도 잠자리를 갈랐나요?”
온구가 깜짝 놀라다가 “아직은…” 하고 얼버무렸다. 김국이 인차 온구의 말을 받았다.
“우리두 진작 갈라야지 하구 생각은 했는데… 우리 집은 워낙 이불이 적어서.”
온구는 그때 절구공이를 주어들고 복아에게 말했다.
“절구가 다됐다. 얼른 가지구 가서 부모들께 마늘즙을 내드려라.”
“얼마예요?”
복아가 온구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다른 사람이라면 100원을 받겠는데 그저 80원만 내라.”
복아가 절구를 안고 사라지자 김국은 다시 온구를 재촉했다.
“인젠 됐지유? 어서 얘기를 시작해봐유.”
온구는 걸상에 앉아 차잔을 들어 입에 가져가며 차분하게 물었다.
“어디로부터 얘기하면 좋을가?”
“직접 이름만 말해유, 그게 누구라구.”
“그럼 당신이 너무 놀랄걸. 그래두 처음부터 천천히 얘기하는게 좋을거유.”
김국이 잠간 생각을 굴리더니 말했다.
“좋아유. 그럼 처음부터 들읍시다.”
“그날은…”
온구는 이마살을 약간 찌프리더니 아래말을 이었다.
“그날은 바로 내 생일 전날이였수. 나는 소를 끌고 방공호부근으로 갔댔지. 방공호앞에 샘물터가 있지 않았수? 샘물터옆에는 오동나무 한그루가 있지. 내가 샘물터로 다가가면서 보니 오동나무가지에 붉은 실 한오리가 걸려있는거유. 실오리가 워낙 가늘어서 찬찬히 여겨보지 않으면 아예 있는줄도 모를거유. 하지만 나는 붉은 실을 한눈에 보아냈구 또 방공호안에서 누가 나를 기다리고있다는것을 알았다우.”
“그게, 바루 그게 누군가 말이유.”
김국이 다잡아물었다.
“급해하기는? 천천히 들어보슈.”
온구가 김국을 슬쩍 건너다보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 붉은 실은 사실 우리만 알고있는 암호였소. 오동나무에 붉은 실이 매여져있으면 영낙없이 안에 사람이 있었지. 방공호에서 나를 기다리는 그 사람은 나의 생일을 알고있었소. 그는 벌써 며칠전에 내 생일 전날에 방공호에서 나를 기다리겠다고 약속을 했었다오. 나에게 생일선물을 주겠다는거였소. 나는 소고삐를 부근에 있는 소나무에 매여놓았소. 그곳은 풀밭이였던지라 소가 마음대로 풀을 뜯어먹을수 있었다우. 나는 풀을 뜯는 소를 잠간 바라보다가 시름을 놓고 흥겹게 방공호로 들어갔다우.”
“안에 사람이 있었수?”
김국이 또 참지 못하겠다는듯 물었다.
“있었지.”
온구가 짤막하게 대답하고는 푸― 하고 긴숨을 내쉬더니 아래말을 이었다.
“방공호안은 손을 내밀어도 보이지 않을만큼 어두웠수. 하지만 나는 안에 들어서자마자 인차 크림냄새를 맡을수 있었다우. 나는 그가 꼭 안에 있다구 확신했수. 그는 방공호에 올 때마다 얼굴에다 크림을 발랐다우. 목이나 가슴에다두 가끔 문대군 했었지. 나는 그 크림냄새를 무척 좋아했수. 그 냄새를 맡기만 하면 애들이 가지고 노는 고무풍선처럼 온몸이 불어나는것 같았다우.”
“아유― 길기도… 도대체 그게 누구유? 안에서 둘이 무슨 짓을 했수?”
김국의 목소리가 파르르 떨리고있었다.
“분명 로친이 화를 안 낼거라 했수. 화를 내면 나는 말을 안할거유.”
    온구가 김국을 건너다보면서 침을 놓았다.
“내가 어디 화를 내우? 누군가 묻지를 않수?”
“급하긴, 내가 알려준다는데. 그리구 우리 둘이 안에서 무엇을 했겠소? 남녀가 둘이 컴컴한 방공호안에서…”
“선물은? 생일선물은?”
김국이 소리치며 온구를 쏘아보았다.
“그가 방공호안에서 생일선물을 건네준게 아니라우.”
온구는 아름다운 추억을 떠올리는듯 잠간 말을 끊었다가 천천히 이야기를 이어갔다.
“우리는 안에서 급급히 그 일을 치렀다우. 일이 끝나자 그가 먼저 밖으로 나갔수. 나를 보고 한시각 지나서 나오라는거유. 번마다 일을 끝내고는 그가 먼저 밖으로 나가고 나는 한시각뒤에 나갔댔으니까. 남들의 눈에 뜨일가봐 두려웠던게지. 그날 그는 밖으로 나가면서 생일선물을 오동나무에 걸어두겠다고 말했수. 절대 잊지 말고 가져가라면서 김국이 물으면 주은것이라고 말하라 당부까지 했다우. 내가 방공호에서 나와보니 아니나다를가 오동나무가지에 무슨 물건인가 걸려있었는데 가까이 다가가보니 신이였수.”
김국이 갑자기 몸을 일으키며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이 령감쟁이가… 빨리 말하라는데. 그 화냥년이 도대체 누구냐구?”
온구가 얼굴을 흐리우면서 느릿느릿 말했다.
“로친이 성을 내면 난 말하지 않을거유.”
김국이 급해서 변명했다.
“누가 화를 냈다구 그래유? 당신, 변덕을 부리면 안돼유.”
“로친이 지금 화를 내구있지 않수?”
김국이 한풀 꺾여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알았어유. 화를 안 낼테니 빨리 말이나 하슈.”
“진작 이렇게 나올게지.”
온구는 입가에 시무룩이 웃음을 피워올리면서 김국에게 그 사람이 누구일가를 맞춰보라고 했다. 김국이 머리를 흔들면서 말했다.
“내가 왜 맞춰보지 않았겠수? 제대루 맞추지 못해서 그렇지.”
“허허허… 오늘 또 한번 맞춰보구려.”
김국이 눈알을 몇번 굴리다가 물었다.
“ ‘조롱박’인가유?”
“아니유.”
“그럼 ‘야래향’이겠네유.”
“그도 아니라우.”
김국은 실망스러운 표정으로 잠간 무엇인가를 생각하다가 목소리를 낮추며 물었다.
“설마… 신을 잘 누비던 그 ‘작은아씨’는 아니겠쥬?”
“더구나 아니지. 나는 그의 손 한번 잡아본적이 없으니까. 하하하…”
 온구가 푸하 웃음을 터치며 머리를 저었다.
“그럼 도대체 누구유? 제발 좀 뱅뱅 탈지 마슈.”
김국이 애원에 가까운 목소리로 말했다. 온구는 여유작작차 한모금을 마시고는 또박또박 말을 이었다.
“그 사람은 바로 추홍이였다우.”
김국은 벌떡 뛰여일어나 두눈을 한껏 치뜨면서 물었다.
“누누…누구라우?”
“추홍이였다니까.”
온구가 다시 확인해주었다.
“그럴수 없수, 절대 그럴수 없수.”
김국이 딸랑이북처럼 머리를 마구 젓다가 아래말을 이었다.
“추홍이라면 그 부녀주임이잖아유? 부녀주임이 어떻게…”
“믿든지 말든지 맘대루 하구려. 나는 이미 알려주었으니까.”
온구의 목소리가 배포유하게 들렸다. 김국은 아무 말도 못하고있었다. 잠간 지나자 김국의 몸이 한쪽으로 기울어졌다. 온구가 급히 일어나 김국을 부축하며 긴장한 기색을 하고 물었다.
“로친, 괜찮겠수?”
김국이 두눈을 지그시 감은채로 말했다.
“머리가 어지러워 그런다우. 집에 들어가 누워야겠수. 나를 좀 부축해주슈.”
 
4
 
김국이 온돌방에 들어가 눕자 온구는 옆에 앉아서 근심스러운 얼굴로 김국을 지켜보았다. 김국은 마치도 술에 취하기라도 한듯 두눈을 꼭 감고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반시간쯤 지나자 김국이 정신을 차리는듯싶었다. 김국은 눈을 뜨자마자 온구를 보고 소리쳤다.
“당장 여기서 나가슈!”
온구가 깜짝 놀라다가 주눅이 든 목소리로 더듬거렸다.
“로…로친, 왜왜…왜 그러우? 우리 약속하지 않았소? 화두 안 내구 성깔도 안 부린다구.”
“내가 그래 화를 내구 성깔을 부리는것으로 보이유?”
“그럼 화두 안 내구 성깔도 안 부린다는 사람이 왜 나를 쫓아내는거유?”
온구가 볼부은 소리를 했다. 그제야 김국이 약간 부드러운목소리로 대답했다.
“내가 너무 힘들어서 그래유, 혼자 있게 해주세유.”
온구는 울며 겨자 먹기로 마당으로 나갔다. 나무걸상에 엉뎅이를 붙인 온구는 눈이나 좀 붙여볼가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참이나 지나도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온구는 몸을 털고 일어나 사랑채로 가서 도구상자를 꺼내다가 석기를 다듬기 시작했다. 마당에는 석재가 가득 무져져있었다. 온구는 그 석재들로 아무것이나 만들어낼수 있었다. 온구는 절구를 하나 만들어볼가 생각했다. 아까 복아가 사갔기에 절구가 없었던것이다.
온구는 도무지 일손이 잡히지 않았다. 어이없게도 몇번이나 헛망치질까지 하여 손등을 칠번했다. 온구는 진심으로 김국이를 근심하고있었다. 혼자 온돌방에 누워 무엇을 하고있는지가 궁금했다. 온구는 몇번이나 온돌방에 들어가 김국이 무엇을 하는가를 보고 올가 생각했다가도 지레 겁을 먹고 몸을 움츠렸다.
해가 중턱에 걸릴무렵이 되자 절구홈이 모양을 갖추었다. 이미 점심때가 되였는지라 온구는 살살 배가 고파옴을 느꼈다. 온구는 끝내 온돌방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결심했다. 김국이 온 오전을 온돌방에 혼자 있었으니 화도 어느정도 가라앉았을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또 김국에게 점심밥을 지으라고 귀띔도 해야 했다.
온구는 도구들을 상자에 챙겨넣고 슬금슬금 온돌방으로 들어갔다. 문쪽을 바라고 누워있던 김국이 들어오는 온구를 보고 등을 돌려댔다. 그 바람에 김국의 엉뎅이가 온구의 눈에 들어왔다. 그 동작이 너무도 빨라 잉어가 펄떡이는듯싶었다. 김국의 반상적인 동작에 온구는 그만 참지 못하고 푸하하 웃음을 터뜨리며 물었다.
“로친, 아직도 화 안 풀렸수?”
“누가 화를 내우?”
김국이 등도 돌리지 않고 대답했다. 온구가 김국의 엉뎅이를 툭 치면서 말했다.
“화를 안 내면 좋은 일이지. 그럼 얼른 일어나서 밥이나 챙기우. 배에서 꾸륵꾸륵 란리가 났다우.”
김국이 온구의 팔을 밀치며 바락 소리 질렀다.
“추홍이를 찾아갈게지.”
“이 말하는 꼴 좀 보우…”
온구가 어설프게 입가에다 웃음을 피워올리며 아래말을 이었다.
“추홍이 유채파를 떠난지 언젠데, 어디 가서 추홍이를 찾는단 말이유?”
“거리에 가면 찾을수 있지.”
김국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년이 로아진에다 차잎공장을 꾸렸다는걸 몰라서 그러우?”
온구는 뭐라고 일시 대답할수 없어 입만 쩝쩝 다셨다. 푹 숙어진 온구의 머리속에 추홍의 모습이 또렷하게 떠올랐다.
추홍의 아들은 농업전업학교를 졸업한후 로아진에다 차잎가공공장을 꾸렸는데 돈을 많이 벌어 진복판에다 번듯하게 층집도 지었었다. 그후 추홍이와 그의 남편을 진에 모셔갔다. 시간은 류수같이 흘러 추홍이 유채파를 떠난지도 10여년이 되였다.
추홍이 이사를 가서 처음 몇년간, 온구는 가끔 진으로 가서 차잎가공공장에 들려보군 했었다. 온구는 겉으로는 추홍의 남편을 만난다고 했지만 실지는 추홍이를 보기 위한것이였다. 온구와 추홍의 남편은 유채파에 있을 때 관계가 아주 좋았는데 평소 형님, 동생 하는 사이였다. 한번은 김국이도 온구를 따라 진으로 가겠다고 나섰다.
“부녀주임을 못 뵌지가 오래됐어유. 보고싶네유.”
“그럼 같이 가보세.”
온구가 쾌히 동의했다.
온구가 추홍이를 떠올리고있을 때 김국이도 추홍이에 대해 생각하고있었다.
김국은 그날 온구를 따라 로아진으로 가던 그 정경을 여전히 똑똑하게 기억하고있었다.
그날, 문을 나설 때 김국이 입을 열었다.
“전문 시간을 내서 부녀주임을 찾아뵙는데 빈손으로 갈수야 없지요.”
온구가 잠간 무엇인가를 생각하는듯하더니 말했다.
“그럼 우리 돌상을 하나 가지구 갈가? 마당에다 놓구 차를 마실 때 쓰게.”
“좋아요. 당신이 쪼은 돌상을 볼 때마다 그들은 당신을 떠올릴거예요.”
김국이 기뻐서 손벽을 쳤다. 그들은 돌상에 딸린 작은 돌걸상 4개도 가져다주었다.
그날, 그들은 뜨락또르를 세내여 그것들을 실어갔다. 추홍은 온구네 부부가 선물한 돌상과 돌걸상을 보고 감동돼서 뜨거운 눈물을 줄줄 흘렸다.
온구는 너무도 배가 고파 견딜수 없었다.
“로친, 얼른 일어나 밥을 챙겨주우. 배 고파서 죽을 지경이라우.”
온구는 김국의 표정을 살피면서 용기를 내서 또 한번 김국의 엉뎅이를 철썩 때렸다.
“추홍이를 찾아가라는데.”
김국은 역시 그 한마디였다.
“거리에 있는 사람을…”
온구가 뒤말을 흐렸다.
“그럼 거리에 갈거지.”
김국이 바락 소리를 질렀다.
김국의 마지막 말에 온구의 두눈이 번쩍 빛났다. 온구는 거리에 있는 음식점을 머리에 떠올렸던것이다. 사실 거리가 아니여도 촌사무실옆에 작은 음식점이 몇개 있었던것이다.
그래, 오늘 식당놀이나 해볼가? 아까 복아에게 절구를 판돈 80원이 있는데. 한끼는 푸짐하게 먹을수 있을게다.
“식당놀이”를 생각하자 온구는 괜히 흥분을 금할수 없었다. 전에 온구는 종래로 촌사무실곁에 있는 그 음식점에 가본적이 없었던것이다.
온구가 시물거리며 김국에게 말했다.
“밥 안 챙겨주려면 말구, 설마 내가 굶어죽을라구?”
“그래, 추홍이 있는데 굶어야 안 죽겠지.”
“추홍에게 가는게 아니여.”
“그럼 령감, 또 다른 녀편네가 있다는거유?”
온구가 일부러 목소리를 높여 소리쳤다.
“촌에 있는 음식점에 갈거유.”
그 말에 김국이 뭐라고 말할듯 입을 벌리다가 그대로 굳어졌다. 금방 온돌방을 나갔던 온구가 다시 들어와 김국의 옆으로 다가갔다.
“왜 돌아왔어요?”
김국이 아니꼬운 눈길로 온구를 쏘아보며 물었다. 온구가 잠간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로친두 나와 함께 가기유. 어쩌다가 식당놀이를 하는데 부인을 옆에 끼구 가야 체면이 서지.”
“부인”이라는 말에 김국이 참지 못하고 키드득 웃음을 터치며 말했다.
“체면 좋아하구있네. 부인씩이나. 령감이 뭐 총리라두 됐나 착각하는게 아니우? 낯짝이 두꺼운 석수쟁이 같으니라구.”
김국의 얼굴에 웃음이 어리자 온구는 더욱 신나서 손을 내밀어 김국을 당기며 말했다.
“낯짝이 두꺼우면 좋은게지 뭐. 어서 일어나슈. 석수쟁이 부인.”
그래도 김국은 좀처럼 움직이지 않고 말했다.
“가고싶으면 령감이나 가시우. 나는 오늘 밥을 먹고싶은 생각이 없수다.”
“그럼 로친은 지금 뭘 하구싶소?”
온구가 물었다. 김국이 잠간 뜸을 들이다가 입을 열었다.
“령감하구 추홍이 어쩌다가 눈이 맞았는지를 알구싶수.”
온구가 멋적게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거야 쉽지. 로친이 나와 함께 식당으로 가면 알게 아니유? 식당에 가서 내가 추홍이와 어떻게 눈이 맞았는지를 있는 그대로 다 말해줄게.”
김국이 기뻐하며 바투 들이댔다.
“그게 정말이쥬?”
“나는 역시 그 한마디라우.”
온구가 여부가 있느냐는듯 대답했다.
“어느 한마디를 그러우?”
“장부일언 중천금!”
김국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주어입고는 온구의 손을 끌고 문을 나섰다.
음식점은 유채파기슭에 자리잡고있었는데 옆에는 큰길이 뻗어있었다. 근년에는 또 큰길옆에 층집들이 들어앉아서 어느 진의 작은 거리를 방불케 했다.
음직점은 온구네 집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온구네는 마당을 벗어나 뜨락또르길을 따라 10분쯤 걸은후 굽이를 돌아서 층집들이 일어선 거리에 들어섰다.
그 층집들은 촌민들이 외지에 나가 돈을 벌어다가 지은것이였다. 워낙 그들은 유채파골짜기 여기저기에 널려살았댔는데 층집을 짓고 내려와 이웃으로 살아가고있었던것이다. 김국이 전에 의심하던 그 세 녀인도 모두 층집에 살고있었다. 하지만 그들도 모두 김국이처럼 늙은 할머니로 되여있었다.
온구네가 촌사무실에 거의 도착하고있을 때 김국이 문뜩 온구에게 물었다.
“오늘 그 세 녀편네를 만나지야 않겠쥬?”
온구가 모르겠다는듯 다잡아 물었다.
“세 녀편네라니?”
“ ‘조롱박’, ‘야래향’ 그리구 그 ‘작은아씨’를 말이지유.”
“왜, 그들을 보기 무섭수?”
“무서운게 아니라 좀 미안해서 그러지유.”
온구가 짐짓 모르쇠를 놓으며 물었다.
“미안하다니? 왜?”
김국이 얼굴을 약간 붉히면서 말했다.
“그때 나는 정말 그 셋중에 꽃신임자가 있는줄 알았다니까유.”
“그러게 누가 로친 보구 맘대루 억측을 하라 했수?”
김국이 팔굽으로 온구를 툭 치면서 말했다.
“모두 령감탓이라우. 그때 령감이 추홍이라고 알려만 주었어두 내가 왜 그런 억측을 했겠수?”
그들은 너 한마디 내 한마디 주고받으면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잡화점이 눈에 띄였다. 김국은 잡화점문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식당은 저쪽끝에 있는데, 왜 멈췄수?”
온구가 물었다.
“아침에 절구를 판 돈에서 10원을 꺼내줘유.”
“돈 10원을 해서 뭘 하려구?”
“사탕을 사려구유.”
“이 로친네가 애들처럼.”
온구가 한심하다는듯 말했다.
“내가 먹으려는게 아니유. 그 녀편네들 손군들에게 주려구 그래유.”
그제야 김국의 심사를 알아챈 온구가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 사탕을 주고 미안함을 씻겠다 그거로군.”
온구는 호주머니에서 돈을 꺼내여 김국에게 넘겨주었다.
김국은 사탕 한봉지를 손에 사들고 신나서 흔들어보였다. 온구는 그 모양을 보고 푸하하 웃음을 터쳐올렸다. 그러자 김국이 목소리를 높였다.
“왜 웃어유? 웃긴?”
얼마 걷지 않아 그들은 “야래향”네 문앞에 도착했다. 그때 “야래향”은 문앞에 앉아서 락화생을 말리우고있었다. “야래향”은 곱게 늙어있었는데 머리는 여전히 깔끔하게 빗어서 얹었고 바지에는 꽃도안까지 수놓았었다. 김국이 다가가서 손자는 어디에 갔는가고 물었다. 학교에 갔다고 했다. 김국은 사탕을 한줌 쥐여주며 말했다.
“이 사탕을 손자놈이 오면 주시유.”
“야래향”이 어정쩡해있다가 물었다.
“혹시 집에 무슨 경사라도 생겼수?”
온구가 인차 해석했다.
“아니유, 경사는 무슨. 방금 저 로친이 길에서 돈 10원을 주었다우.”
그제야 “야래향”은 사탕을 받으면서 말했다.
“글쎄… 내가 이상하다 생각했지. 암튼 감사하우.”
 “작은아씨”네 집에 도착하니 그는 없고 그의 다섯살 나는 손녀가 문앞에 앉아서 고양이를 데리고 놀고있었다.
“할머니가 어디 갔니?”
김국의 물음에 손녀가 “할머니는 고모네 집으로 갔어요.” 하고 대답했다.
“그랬구나, 너 사탕을 먹을래?”
김국의 물음에 손녀가 기뻐서 “먹을래요.” 하고 대답했다. 김국이 사탕 한줌을 손녀에게 쥐여주었다. 그것을 지켜보며 온구가 말했다.
“너의 할머니가 돌아오면 김국할머니가 사탕을 주더라고 일러야 한다.”
“알았어요.”
손녀가 사탕을 입에 넣으며 대답했다.
“조롱박”의 아들은 특산품수구소를 경영하고있었다. 그는 온구와 김국을 알아보고 뛰여와 허리를 굽히며 인사를 올렸다. “두분, 참으로 오랜만이네요.”
김국이 좌우로 두리번거리다가 물었다.
“자네 엄마는 왜 안 보이나?”
“조롱박”의 아들이 대답했다.
“어머님은 뒤울안에서 검정귀버섯을 포장하고있어요.”
온구와 김국은 인차 뒤울안으로 들어갔다. 아니나다를가 “조롱박”은 한창 비닐봉지에다 검정귀버섯을 담고있었다. 온구는 허허 웃으며 롱담을 했다.
“자네, 아직도 앞가슴이 조롱박 같나?”
“조롱박”이 손으로 앞가슴을 더듬으며 말했다.
“언제적의 소리를… 내려앉은지 옛날이라우.”
김국은 나머지 사탕을 모두 “조롱박”에게 주면서 말했다.
“참, 오랜만이네그려. 이 사탕이나 맛보게.”
“조롱박”이 일부러 목소리를 높이면서 말했다.
“세상에, 무슨 이런 성의까지…”
“조롱박”네 집에서 나온 그들은 몇십메터를 걸어서 “일과자(一锅煮)”라는 이름의 작은 음식점에 들어갔다. 온구와 김국을 알고있는 음식점주인은 웬 일이냐는듯 두눈을 휘둥그레 뜨고 물었다.
“무슨 바람이 두분을 여기까지…”
“왜 우리는 못 올덴가?”
온구가 빙그레 웃으며 되물었다. 주인이 게면쩍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런것은 아니지만… 어디 두분처럼 멋지게 식당놀이를 하는 어르신들이 있나요?”
온구가 얼굴에 웃음을 가득 담고 주인의 어깨를 툭 쳤다.
“참, 듣던중 기분 좋은 말일세.”
료리를 주문할 때 온구가 주인에게 물었다.
“여기서 제일 맛 좋은 료리가 어떤것인가?”
온구의 물음에 주인이 더 생각지도 않고 대답했다.
“물론 일과자지요. 고기두 풀두 다 들어가니까요. 한가마에 50원입니다.”
온구가 주저없이 말했다.
“좋아, 한가마 들이세. 그래, 그게 한가마면 되겠지?”
“너무 비싼게 아니우?”
김국이 온구의 눈치를 살폈다.
“비싸지 않아, 비싸지 않구말구. 처음으로 ‘석수쟁이 부인’을 음식점에 모셨는데… 한끼 기분 좋게 먹어야지.”
그 말에 김국이 상밑으로 온구를 걷어차며 말했다.
“이 두상이, 정말 낯가죽이 두껍네.”
온구는 일과자를 올릴 때 흰술도 반근 가져오라고 했다. 김국은 처음에 술을 마시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자 온구가 김국의 귀에 입을 대고 말했다.
“로친두 마셔야 내가 추홍이와 사귀던 옛말을 하지.”
온구가 이렇게 나오자 김국은 두말없이 술잔을 들었다. 너 한잔 내 한잔… 두 로인은 점점 정신이 알딸딸해졌다.
 
5
 
온구와 김국이 “일과자”에서 나왔을 때는 오후 3시가 넘어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볕이 좋았는데 오전 8, 9시경과 별반 다름이 없었다.
평소에 술을 마시지 않던 김국인지라 술이 좀 과하니 머리가 어지러워나고 걸음이 비틀거렸다. 온구는 할수없이 김국의 팔을 부축해 걸었다. 그들이 팔을 겯고 촌사무실앞을 지날 때 많은 사람들이 무슨 구경거리나 난듯 나와서 그들을 지켜보았다. 어떤 사람은 대놓고 “정말 사는것 같네.” 하고 부러워했다. 촌사무실앞을 지나 뜨락또르도로로 얼마간 걸으니 갈림길이 나타났다.
“잠간 앉았다 가유.”
김국이 먼저 입을 열었다.
“좋을대루 하기유.”
온구가 대답했다. 온구가 금방 자리를 찾아 앉자 김국이 온구의 옆구리를 툭 쳤다.
“빨리여, 추홍이와의 일을 얘기하슈. 내가 술을 마시면 얘기한다구 하지 않았수?”
“급하기는… 내 입술이 바짝 말라든게 보이지 않수?”
온구는 혀끝으로 입술을 적시면서 말했다.
갈림길의 한가닥은 방공호로 통했다. 김국은 방공호로 뻗은 그 길을 바라보다가 뭔가를 생각해낸듯 두눈을 반짝이며 입을 열었다.
“우리 방공호에 가서 샘물을 마시자유. 방공호앞에 샘물터가 있잖수?”
온구가 잠간 무엇인가를 생각하는듯하더니 머리를 끄덕였다.
“그것두 좋지. 거기서 집이 멀지 않으니까.”
그들은 걸어서 10분도 채 안되여 방공호앞에 도착했다. 방공호는 문화대혁명시기에 판것이지만 한번도 사용한적이 없었다. 김국은 방공호앞에서 무엇인가를 찾아내려는듯 부지런히 여기저기를 살폈다.
온구는 정말 목이 말랐던지 샘물터에 도착하자마자 물가에 쭈크리고 앉아 손바닥을 쫙 펴서 연신 물을 퍼마셨다. 얼마간 갈증이 가라앉을무렵에 김국이 다가와 물었다.
“꽃신을 걸어두었다던 그 오동나무는 왜 보이지 않수?”
“벌써 잘라버린지 오래다우.”
온구가 대답했다. 김국이 호― 하고 한숨을 내쉰후 말했다.
“그 아까운 오동나무를… 왜 베버렸대유?”
“하지만 그루터기는 아직 있을걸.”
온구가 말을 마치고 샘물터 가까이를 돌면서 찾아보았다. 아니나다를가 샘물터에서 얼마 멀지 않은 곳에 오동나무그루터기가 있었다. 그루터기는 썩지 않았는데 국사발만큼 통사리가 굵었고 높이는 반메터 정도 되였다. 걸상으로 쓰기 좋을것 같아 온구는 그 그루터기에 엉뎅이를 붙였다.
“거기에 앉으니 행복하지유?”
김국이 얼굴에 묘한 웃음을 담으며 물었다.
“행복하지.”
온구가 정말 행복에 도취된듯 두눈을 스르르 감았다.
“잘됐구려, 목도 마르지 않겠다, 행복하게 옛 나무를 찾았겠다… 인젠 그 풍류사를 더듬어도 되겠지유?”
그제야 온구는 자기의 허벅다리를 툭 치며 말했다.
“알았소, 잘 들으라구. 옛말은 그 절구로부터 시작되였지.”
그해 여름의 어느날, 김국은 부녀대회에 참가하고 집으로 돌아와 온구에게 말했다.
“부녀주임이 당신 보고 래일 집에 와서 절구를 만들어달라고 했어요.”
온구는 달갑지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
“간부들에게 석기를 만들어주는 일은 하고싶지 않은데… 그들에게서 어찌 돈을 제대로 받을수 있겠소?”
“그래두 가서 하나 만들어주세요. 부녀주임은 좋은 사람이니 섧게 대하지 않을거예요.”
“당신의 면목을 봐서 갈수 밖에 없구려.”
온구가 대답했다.
이튿날, 온구는 추홍이네 집으로 찾아갔다. 추홍이는 차물을 따라주고 담배를 권하면서 아주 살갑게 굴었다. 그날 점심에는 또 랍육(蜡肉)까지 삶아주는것이 무슨 귀한 손님을 초대하는것 같았다. 온구도 있는 솜씨를 다해서 일을 제껴나갔다. 오전 9시에 일을 시작했는데 오후 3시가 되자 끝났다. 그때 추홍의 남편은 일하러 밭으로 나가고 추홍이만 집에 있었다. 온구가 추홍이를 불러 절구를 검사해보라고 했다. 그러자 추홍이 온구를 보고 살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급할게 없어요. 저 먼저 가서 목욕을 하고 올게요.”
추홍은 목욕을 마친후 비단옷을 바꿔입고 나왔는데 옷이 너무 엷어서 안에 입은 팬티까지 다 보일 지경이였다. 추홍의 모습을 본 온구는 너무도 놀라 두눈이 휘둥그래지고 얼굴이 확확 달아올랐다. 추홍이는 또 크림을 얼굴에 발랐는데 그 냄새가 온구의 코구멍을 파고들었다.
절구는 추홍이네 뒤뜰에서 보기로 했다. 온구는 절구공이를 절구홈에 넣었다. 새로 다듬은 절구공이는 매캐한 돌가루냄새를 풍기고있었다. 추홍은 먼저 절구홈을 살펴본후 절구공이를 꺼냈다. 추홍은 한손으로 절구공이를 들고 다른 한손으로 절구홈을 만지면서 얼굴에 묘한 웃음을 띠였다.
“이 절구홈과 절구공이가 무엇 같아요?”
“절구공이는 오이 같구 절구홈은 모자 같지유.”
추홍이 머리를 저으면서 말했다.
“그보다 더 같은게 있어요. 생각해보세요.”
온구가 급히 물었다.
“더 같은게라니요? 뭘가요?”
추홍이 온구에게 눈을 끔쩍해보이며 신비하게 말했다.
“이것들이 남자와 녀자의 그 물건과 똑같지 않아요?”
추홍이는 말을 마치고 절구공이를 다시 절구홈에 밀어넣은후 힘을 다해 몇번 찧어보았다. 그 모습을 보면서 온구는 추홍이 무슨 생각을 하고있다는것을 금세 알것 같았다. 온구는 갑자기 두팔을 쫙 벌려 으스러지게 추홍을 끌어안았다…
온구는 여기서 갑자기 말을 끊었다.
“그래, 그렇게 바루 잤수?”
김국이 바투 들이댔다.
“아니, 그렇게 잠간 안고있는데 추홍이 나를 밀어내더군. 제 남정네가 돌아올가봐 두려웠던게지.”
“그럼 언제 또 만나서 자기 시작했수?”
김국의 목소리가 여전히 떨렸다.
“그날 오후 다섯시쯤이였을게유.”
“어디서?”
온구는 직접 대답을 하지 않고 손을 들어 뒤에 있는 방공호를 가리켰다. 김국은 멍하니 방공호를 바라보다가 물었다.
“누가 먼저 이곳을 생각해낸거유?”
“추홍이 생각해낸거지. 그가 나를 보고 다섯시에 그곳에 오라고 했소. 만약 오동나무가지에 붉은 실이 걸려있으면 바루 안으로 들어오라고 했소.”
온구의 말이 끝나자 김국이 몸을 돌려 방공호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온구가 김국의 팔을 잡으며 말했다.
“안되우. 몇십년을 사람이 드나들지 않았는데 위험할수 있수.”
김국은 온구의 말을 들은체도 않고 기어이 안으로 들어가며 소리쳤다.
“말리지 마우, 나는 기어코 들어가볼거유.”
온구는 더 으스러지게 김국을 잡아끌며 말했다.
“그래두 오늘은 안되우. 기어코 들어가보겠으면 후날에 손전지를 가지고 와서 다시 들어가기유.”
온구가 애원하듯 말해서야 김국은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날, 온구와 김국은 방공호앞에 오래동안 머물다가 석양이 불타오를무렵에야 돌아섰다. 뜨락또르도로가 굽이를 도는 그곳에서 김국은 걸음을 멈추고 온구를 보면서 말했다.
“우리 래일 로아진으로 가유.”
그 말에 온구가 깜짝 놀라며 물었다.
“로아진에 가서는 뭘 하려구?”
“추홍이를 보려구.”
온구가 긴장해서 말했다.
“로친, 설마 가서 성깔을 부리려는게 아니지?”
김국이 담담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22년이나 지난 일인데 무슨 성깔을 부릴게 있수.”
“그럼 왜 가보겠다는거유?”
“모르겠슈. 갑자기 부녀주임이 보고싶어 그러우.”
온구는 김국의 말이 진정으로 들려 큰 결심을 내린듯 말했다.
“좋소. 그럼 래일 가는거로 하기유.”
집에 거의 도착할 때 그들의 뒤에서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들려 돌아다보니 복아였다. 복아의 어깨에 화학비료 한자루가 메워져있었다. 복아가 높은 목소리로 소리쳤다.
“아매아바이, 식당놀이를 하셨다면서요? 참으로 멋지게 사셔요.”
“식당놀이 한번 한게 그렇게 멋져?”
온구의 말에 복아가 부러운듯 말했다.
“그럼요. 어디 우리 아부지, 엄마 같을라구요. 진종일 밖에는 한발작도 나가려 하지 않지요. 그들의 생활은 얼마나 따분할가요?”
온구가 어깨를 으쓱하며 신나서 한마디 했다.
“래일 우리는 또 로아진에 가기로 했다.”
온구의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김국이 온구의 옆구리를 꼬집으며 욕했다.
“참으루 얼굴이 두껍구려. 로아진에 왜 가는지 잊고 떠들어대는것은 아니겠쥬?”
온구가 김국의 말을 받으며 하하하 웃었다. 김국이도 호호호 웃음을 터쳐올렸다. 웃음소리가 통쾌하게 울려퍼졌다. 그들의 얼굴에 피여난 웃음꽃은 불타는 석양보다도 더 찬란했다.
 
효소(晓苏), 1961년 출생. 1983년 화중사범대학 중문전업 졸업. 1985년에 문학창작을 시작하여 이미 400여만자의 작품을 발표. 소설집 《산사람 산밖의 사람(山里人山外人)》, 《검은 등(黑灯)》,《구희(狗戏)》,《금미(金米)》등이 있음. 현재 화중사범대학 문학원 교수로 사업. 1급작가. 중국작가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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