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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리유를 달라 * 리치방
2013년 11월 18일 09시 24분  조회:2059  추천:0  작성자: 동녘해
문학의 창/단편소설



나에게 리유를 달라

리치방


1

37살이라니, 스스로도 놀라왔다. 겉보기에는 금방 30살 문턱에 올라선듯싶다. 1.78메터의 키에 하얀 피부, 두눈이 특별히 매력적인데 녀자들의 봉의눈을 방불케 했다. 겉모양만 보아서는 유럽쪽의 사람이 아닌가 착각이 갈것이지만 사실 리중은 유럽사람들과는 아무 유전관계도 없다. 친구들은 리중을 두고 응당 멋지게 생겨야 할 부분은 한곳도 빠짐없이 충분하게 멋지게 생겼다고 말한다.
리중은 한 광고회사에서 부총경리로 일한다. 부총경리, 처녀들이 들으면 귀가 활짝 열릴지도 모르지만 리중이 일하는 광고회사는 겨우 직원이 7명뿐이다. 주요한 업무는 거리의 영상광고를 제작하는 일이다. 총경리는 리중의 친삼촌이다. 리중은 몇번이나 삼촌의 회사를 떠나려고 했지만 삼촌이 번마다 간곡하게 말려서 여직 결심을 내리지 못하고있다. 
“너의 아버지가 일찍 돌아간후 누가 너를 오늘까지 돌봤니? 내가 아니라면 너의 오늘이 있었을가?”
삼촌이 이 말을 처음으로 했을 때 리중은 무엇인가 묵직한것이 지지리도 힘들게 가슴을 내리누르는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뒤 듣기 싫은 노래처럼 한루건너 반복되자 그냥 귀등으로 흘려버렸다. 솔직히 말하면 리중이 해마다 회사를 위하여 벌어들이는 돈은 삼촌이 “누가 너를 오늘까지 돌봤니?”에 대답을 못할만치 적은것이 아니였다. 하지만 삼촌은 “누가 너를 오늘까지 돌봤니?”라는 리유때문에 그냥 리중을 시장바닥에서 구을러다니는 못생긴 호박정도로나 생각하고있을뿐이였다. 삼촌은 3년에 차를 3대나 바꾸더니 나중에는 보마(BMW)에 올라앉았지만 리중은 여전히 중고차시장에서 들여온 마고탄(MAGOTAN)을 굴리고다녔다.
리중은 대학시절부터 련애를 했는데 그뒤로 몇번이던지 스스로도 아리숭했지만 여직껏 기억에 남아있는 상대는 몇이 안되였다. 대부분의 경우에 대방에서 리중을 보고 헤여지자고 제기를 했었다. 리중으로서는 그게 분하고 억울했지만 상대는 그렇다할만한 리유도 주지 않고 돌아서군 했다. 후에 삼촌이 리중에게 직설적으로 한마디 했다.
“너 주제를 알아야 하지, 너에게 뭐가 아쉬운게 있니? 그것도 파악 못하고 줄창 예쁘게 생긴 녀자애들의 꽁무니만 따랐으니…”
리중이 생각해보아도 삼촌의 말에 도리가 있는듯싶었다. 그야말로 한달을 뼈빠지게 일해도 손에 들어오는것은 겨우 강초 두병 값이 될가말가 하지 않는가. 친구들과 함께 밥 몇끼 먹으면 호주머니가 바닥을 보였다.
리중은 고지식한 사람이였다. 사귀던 녀자애들이 떠나갈 때마다 그는 멀어져가는 그들의 뒤모습을 바라보며 떠나는 리유나 알려달라고 소리쳤다. 하지만 매번 돌아오는것은 똑 같은 한마디 “리유가 없다.”였다.
어느한번은 정말 얼굴에 철판을 깔고 리유를 받아내겠다며 달려들었다. 2년간 련애를 했고 호상 헉헉 오르가즘을 타며 그 장면까지 연출했던 녀자에게서 갈라져야 하는 리유 한마디 듣지 못한다는것이 그처럼 억이 막혔던것이다. 그녀는 침대우에서 줄곧 리중의 이름을 불렀고 “사랑해, 이대로 죽어버리고싶어!” 하고 열연했었다. 리중은 그 말에 너무도 감동되여 닭똥같은 눈물까지 둘둘 떨궈버렸다.
그러던 녀인이 눈길을 돌려버린것이다. 그후 리중이 하도 검질기에 리유를 달라고 하자 그녀는 두리뭉실하게 말했다.
“너, 알어? 네가 사는 그 집이 되게 작은거. 특히 그 화장실은 너무 작아서 방귀도 맘대루 뀔수 없었단 말이다. 그 낡아빠진 침대란 놈이 방안을 다 차지해버렸다는거 너 생각해보았니? 그 침대두 너의 아버지가 너에게 물려준거라며? 삐꺼덕삐꺼덕… 듣기싫게 타령은 왜 그렇게 한대? 그 소리만 들으면 막 치닫다가도 랭수를 들쓴듯이…”
리중은 그녀가 주어대는 리유때문에 떡 벌려진 입을 다물수 없었다. 어쩌면 이런 리유때문에 2년간 련애를 하고 살을 섞던 사람들이 헤여질수 있단 말인가? 그녀가 나를 사랑하기는 했었는가? 정말 사랑했는데 “화장실이 작아 방귀를 맘대루 뀔수 없어”서, 침대가 “타령을 불러… 막 치닫다가도 랭수를 들쓴듯”해서 갈라진단 말인가?
그녀는 고통에 부르르 어깨를 떠는 리중을 바라보면서 약간은 미안한듯 얼버무렸다.
“네가 기… 기어코 말하라 했잖아? 내가 죽어두 말 아아…안한다는데…”
리중의 집이 20평남짓하니 작은것만은 엄연한 사실이다. 침실외에 사람이 겨우 지나다닐수 있는 복도 하나가 있었는데 그 저쪽끝에 “방귀도 맘대로 뀔수 없는” 화장실이 있었다.
이 집은 아버지가 리중에게 물려준것이였다.
아버지는 어머니와 리혼한후 이 집을 리중에게 넘겨주었던것이다. 리중의 손에 열쇠를 넘겨주던 날 아버지가 했던 말이 늘 리중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너 재간이 있으면 이 집을 가지지 말아봐라. 이 집을 가지면 넌 무골충밖에 안되는기라.”
리중은 아버지의 손에서 열쇠를 받았고 그후 2년이 채 안되여 아버지는 췌장암으로 급급히 이 세상을 떠나고말았다.
아버지의 죽음을 두고 어머니는 원한에 찬듯 말했다.
“누구를 탓할게 없어. 모두 그 물건이 속이 너무 좁았던 탓이야. 그야말로 밴댕이소박채를 그대로 닮았더랬지.”
아버지가 어머니와 리혼을 하게 된 리유를 리중은 줄곧 모르고있었다. 겉보건대 아버지와 어머니는 금실이 좋은 잉꼬부부였다. 간혹 거리를 나갈 때면 아버지가 어머니의 손을 잡아주었다. 하다면 그 친절도 꾸며낸것이였단 말인가? 리중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리혼을 하게 된 리유를 아버지에게 물은적이 있었다. 아버지가 얼굴을 확 붉히면서 내쏘았다.
“너 에미에게 물어봐라.”
리중은 어머니에게도 리유를 달라고 했다. 어머니가 몹시 상심해서 말했다.
“너의 아버지는 근본 나를 눈에 차하지 않았단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아버지나 어머니의 말이 모두 충분한 리유로 될수 없다고 느껴졌다.
리중이 34살에 나던 해, 어머니가 자궁암에 걸렸다. 리중은 어머니를 간병하느라 더 이상 련애에 정력을 쏟을수 없없다. 매일 칼날같이 퇴근해서는 어머니를 돌봐야 했던것이다. 돌본다고 해야 고작 밥을 짓고 어머니가 심심하지 않게 말동무가 되여주고 잠자기전에 얼마간씩 안마를 해드리는것이 전부였다. 어머니는 점점 응석이 많은 어린애로 변해서 가무에는 아예 손을 대지 않으려고 했다.
그 무렵, 리중은 친구들의 소개로 문화관에서 사업하는 무용보도원처녀를 만나게 되였다. 리중보다 나이가 6살이나 어렸는데 보기에는 23, 4살밖에 안되는것 같았다. 그녀는 리중네 집이 좁은것을 탓하지 않았고 “타령을 하는” 그 낡은 침대를 꺼리지도 않았다. 리중은 어느 모로보나 조건이 괜찮은 그녀가 자기를 따르는것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녀는 부모가 모두 무용학원의 교수라고 말했다. 그녀는 그렇게 예쁜 축은 아니였지만 그렇다고 절대 미운축에는 들지 않을것이였다.
그날, 리중은 그녀와 함께 커피숍에 들어갔다. 리중은 그녀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사실 나는 보잘것 없는 사람이라오. 자궁암에 걸린 어머니가 침대에 누워 시간을 다투구 월급이라 해봤자 4천원 푼히 되구 달린지 20만킬로는 더 될 헌 마고탄을 굴리구…”
그녀가 입가에 실웃음을 피워물었다.
“전… 사실 그쪽의 이런 점이 마음에 들어요. 쑥스러움을 탈줄 알구 솔직한… 우리 처음 만났던 날, 식사가 끝나고 그쪽에서 복무원을 불러 얼마인가고 물었었죠? 복무원이 460원이라고 대답하자 그쪽은 나를 건너다보며 쑥스럽게 웃었더랬죠. 그리고는 몸을 돌려 호주머니에서 돈을 꺼냈구요. 쑥스러움을 탈줄 안다는거, 지금 그만치 보귀한게 또 있을가요?”
그녀의 말에 리중이 또 한번 쑥스럽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날, 내 호주머니에 딱 460원이 있었거든요. 물론 쑥스러울만 했었죠.”
그녀가 리중의 말을 받았다.
“지금 세월에 쑥스러움을 아는 남자는 꼭 녀자를 아낄줄도 알거예요. 절대 딴눈을 팔지 않을거니까요. 그것만 있으면 전 만족이예요. 집이 작은게 뭐가 중요해요? ”
그날밤, 리중은 그녀를 데리고 어머니를 보러 갔다.
어머니가 문에 들어서는 리중을 향해 빨리 뒤를 파달라고 소리쳤다.
“어머니, 화장실에 가셔야지요.”
어머니가 노한 목소리로 바락바락 소리질렀다.
“이놈아, 내가 제 발로 화장실에 갈만하면 왜 너를 부르겠냐?”
리중은 그녀를 보고 잠간 자리를 피해달라고 사정했다. 하지만 워낙 집이 작은지라 딱히 어디로 피할 자리도 없었다. 어머니가 누워있는 그 방을 내놓고 갈수 있는 곳이란 화장실뿐이였다. 그녀는 그 자리에 서서 리중이 어머니의 뒤를 후비는것을 바라볼수밖에 없었다. 뒤를 절반쯤 파냈을 때 어머니는 일부러 얼굴을 찡그리며 신음을 시작했는데 그 소리는 웬지 신음이 아니라 행복한 타령같이 듣겼다. 리중이 어머니의 뒤를 다 후비고 머리를 들려보니 그녀가 서있던 자리는 어느새 비여있었다. 어머니가 입가에 실웃음을 물고있었다. 리중이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어머니에게 말했다.
“왜 이러세요? 어머니. 왜 딱 그녀앞에서 나보구 뒤를 파달라했어요? 어머니는 마음 먹구 내가 녀자친구를 못 사귀게 하려는게 아니예요?”
어머니가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맞아. 내가 죽은 담에나… 네가 련애에 빠져 재미를 보느라 나를 돌보지 않으면 나는 어쩌니?”
리중은 뭐라고 말을 이을수 없었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은 자식의 행복을 위해 목숨까지도 내놓을 각오가 돼있다고 하지 않는가? 헌데 나의 어머니는 어쩌면…
리중은 무슨 일에나 과분하게 참다운 태도를 보였다. 그만치 무슨 일이나 리유를 똑똑히 알지 않고는 마음이 불안해서 견디기 힘들어 했다. 하여 리중은 어머니에게 캐여 물었다.
“어머니, 내가 친아들이 맞아요? 납득할수 있게 리유를 줘봐요. 내가 친아들이 옳다면 왜 나를 이렇게 대해요? ”
어머니는 텔레비죤프로를 보다가 건성으로 대답했다.
“네가 데리고 왔던 그 녀자, 안돼. 제가 나를 얼마나 지켜봤다구 그새를 못 참구 꼬리를 빼는가 말이다. 내가 일부러 그년을 떠보느라구 그랬다. 너 이제야 알겠니?”
리중은 그야말로 울수도 웃을수도 없었다. 리중은 그녀에게 여러번 련계를 하려 했지만 번마다 핸드폰이 꺼져있었다. 사흘후, 그녀가 리중에게 메쎄지를 보내왔다.
“그쪽이 한 늙은 녀인의 뒤를 후비는것을 보고 웬지 토하고싶었어요. 나를 토하고싶게 만든 그쪽도 메스껍게 느껴졌구요.”
리중은 분노해서 인차 메쎄지를 보냈다.
“그 ‘늙은 녀인’은 나의 어머니란 말이요. 그쪽은 응당 나의 효심에 감동을 했어야 했소.”
흙인형이 바다에 떨어진듯 그후 그녀에게서는 다시 회답이 없었다. 리중은 선후로 그녀에게 십여차례나 메쎄지를 보내여 갈라져야 하는 리유를 달라고 했지만 그녀에게서는 시종 아무 회답도 없었다.
어머니의 운명이 경각에 달린듯싶었다. 리중은 구급실에서 힘겹게 숨을 톱는 어머니를 지켜보면서 머리속이 하얗게 바래지는것만 같았다. 어머니는 힘겹게 눈을 뜨고 리중을 멀거니 바라보았다. 그 눈길에는 리중에 대한 부름이 담겨져있는듯 했다. 리중은 귀를 어머니의 입가에 바싹 가져다댔다. 어머니가 헉헉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말을 이었다.
“너너… 어머니와 아버지가 왜…왜 리혼을 했는지 알고싶다 했지?”
리중이 두눈을 슴뻑이며 머리를 끄덕였다. 어머니의 눈가에 맑은 이슬이 맺혀 반짝였다. 어머니는 잠간 무엇인가를 생각하는듯싶더니 말을 이었다.
“나는 이 비비, 비밀을 가지고 지옥에 가가, 갈란다. 그곳에 가서 네 애애, 애비를 만나 도리를 따져볼란다.”
어머니의 말을 들으면서 리중은 순간 눈앞이 아찔해나는것 같았다. 어머니가 다시 입을 열었다.
“너, 이이, 이젠 겨겨, 결혼할 때가 됐다. 나의 통장에 아아, 아직 4만원이 남아있을게다. 너에게 주는 이이, 이 에미의 사랑이라구 새새…생각해라.”
말을 마친 어머니는 스스로 옆으로 머리를 떨구었다. 리중은 어머니의 몸을 가리웠던 흰 보의 복부쪽이 홀쭉해지면서 심전도가 곧게 줄을 긋는것을 똑똑히 보았다. 리중은 그때까지 어머니의 침상옆에 무릎을 꿇고있었다. 리중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면서 두무릎이 몹시 아프다고 느꼈다. 의사가 급히 병실로 들어왔다. 그제야 리중은 어머니가 남긴 마지막 그 한마디를 음미하기 시작했다.
저금통장이 어디에 있는가? 통장을 찾았다해도 비밀번호가 얼마인지는 어떻게 알아내는가?
리중은 2년나마 어머니의 병시중을 들면서 숱한 말을 들었지만 모두 별로 값 가는 내용이 아니였다. 그러다가 어머니의 림종에 어쩌다가 무게 있는 말 한마디를 들었는데 열쇠가 없는 자물쇠로 되고만것이다. 리중은 곧 미쳐버릴것만 같았다.
리중은 자기에게 있던 3만원의 저축을 털어 교외에다 묘지를 사서 부모를 합장했다. 묘지는 크지 않았고 사람들의 눈에 잘 뜨이지도 않았다. 리중은 비석에 박혀있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진을 보면서 코끝이 시큰해났다.
당신들 생전에 복혼을 못했으니 천당에서나 함께 하세요.
무용보도원이 리중의 어머니가 돌아간 사실을 어떻게 알았던지 귀신같이 나타나 리중을 도와 어머니가 살던 집을 거두기 시작했다. 리중이 그녀에게 물었다.
“그쪽, 다시 나를 찾아온 리유를 말해줄수 있어?”
그녀가 살풋이 웃으면서 말했다.
“왜 모든것에 리류를 따져요? 어머니가 돌아가셨으니 이 세상에 그쪽 혼자 남은게 아니예요? 그쪽이 고독해할가봐 말동무나 해주려고 왔어요. 설마 믿지 못하는거야 아니겠죠?”
리중은 말없이 무슨 생각엔가 잠긴듯싶었다. 따져보면 그녀의 말이 못내 감동스럽기도 하다고 느껴졌다. 리중은 으스러지게 그녀를 안아주었다. 리중은 그녀의 몸이 그처럼 가냘픈데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어쩌면 뼈다귀를 안고있는듯한 느낌마저 들 정도였다. 하지만 리중은 그녀를 끌어 자기의 갈비뼈쪽에 당겨왔다. 여전히 뼈가 딱딱하게 맞혀오는 느낌이였지만 리중은 그녀의 얼굴에 자기의 입술을 가져갔다.
리중이 어머니가 쓰던 궤짝을 밑바닥까지 뒤졌지만 저금통장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2

삼촌이 전화를 걸어와 누가 아버지와 어머니를 합장하라고 했는가고 따졌다. 리중이 대답했다.
“내 생각대로 했어요. 이것두 삼촌의 동의를 거쳐야 하나요?”
“미친놈의 자식 같으니라구. 너의 아버지는 리혼후 나에게 죽어서두 네 에미를 용서하지 않겠다고 했단다.”
삼촌의 말에 리중은 웬지 말못할 분노가 치밀었다.
“그만하세요. 회사에서 삼촌이 나의 상사이지 집에서는 그저 삼촌일뿐이예요. 나에게는 내 부모를 합장할 권리가 있다구요. 그들은 분명 한때 부부였으니까요.”
리중의 말을 듣고 삼촌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이런 미친놈을 봤나? 씨팔, 네 부모들이 저승에서 너를 후레자식이라구 할거다.”
말을 마친 삼촌이 일방적으로 통화를 끊어버렸다.
무용보도원이 리중에게 말했다.
“그쪽, 있잖아요. 그쪽이 살고있는 집과 어머니의 이 집을 모두 팔고 돈을 합해서 새 집을 한채 사요. 내가 보아둔집이 한채 있는데 화장실이 두개나 달렸어요.”
리중이 웬 일이냐는듯 그녀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보아둔게 있다니?”
그녀가 흥이 도도해서 말했다.
“89평이라나요, 침실은 18평이구 객실은 30평이래요. 화장실 두개를 합치면 20평이 되구요. 그리구 베란다도 두개나 됐어요. 복도도 꽤 넓었어요. 거기다가 얼마든지 주방을 앉힐수 있을거예요. 우리 둘이 쓰기에는 충분해요. 그쪽의 집을 팔면 40만원은 받을수 있을거예요. 어머니의 이 집은 위치가 좋아서 60만원은 받을거구요, 합치면 100만원이 아니예요? 장식에 드는 돈은 제가 낼게요. 십여만원이면 충분할거예요.”
리중은 그녀의 열변을 들으면서 마치도 꿈속에서 헤매는것 같았다. 그러면서 어머니가 세상을 떴다는 소식을 들은후 그녀가 먼저 자기를 찾아온것이 아니라 마음에 드는 집을 찾아본후 방향을 잡아놓고 달려온것이 아닐가 하는 생각마저 갈마들었다.
이튿날아침, 그녀가 낯모를 사람 둘을 데리고 리중의 앞에 나타났다. 집을 보러 온 사람들이라고 했다. 그녀는 손을 내저으면서 흥이 도도해 집을 소개했다. 리중은 곁에서 그녀의 말을 들으며 그야말로 이 집을 사지 않으면 세상에 둘도 없는 멍청이, 바보, 천치로 될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집을 보러온 사람들은 그녀의 말에 감염되여 하늘 무서운줄 모르고 집 값을 높였다. 집 값이 70만원으로 껑충 뛰여올랐다. 그녀는 맑고 순진한 눈길로 그 두 사람을 바라보고있었다. 하지만 리중은 그녀의 눈길에 반죽되여있는 기쁨을 읽을수 있었다.
바로 그때, 변호사라고 자칭하는 사람이 집에 들어섰다.
“망자의 아들이 옳은가요?”
변호사가 물었다. 리중은 영문을 알수 없어 어리둥절해졌다. 변호사가 다른 설명도 없이 서류가방에서 어머니의 유서를 꺼내 읽었다. 어머니는 유서에서 분명하게 이 집을 황천초라고 하는 사람에게 증정한다고 밝혔다. 리중은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짐작할수 없었다. 무용보도원이 앞으로 한발 나서더니 변호사의 옷깃을 잡아채며 언성을 높였다.
“리중은 망자의 유일한 아들인데 어디서 굴러온 황씨예요?”
변호사는 그녀의 말을 아랑곳 하지 않고 랭정하게 못을 박았다.
“믿기지 않으면 공증처를 찾아가보십시오.”
말을 마친 변호사는 몸을 돌렸다.
“황천초, 황천초가 누굽니까?!”
리중이 대중없이 변호사의 뒤에 대고 소리쳤다.
“망자가 유서에 명확하게 밝히지 않았습니까? 집을 친구인 황천초에게 증정한다구요. 황천초 그 사람의 련락방법을 알려드리지요. 하지만 이 유서는 인젠 개변할수 없습니다.”
변호사가 떠나갔지만 리중은 넑을 놓고 침대가에 앉아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하루아침에 자기 집을 삼켜버린 그 황천초가 누구인지 떠오르지 않았다. 한춤후에야 정신을 차린 리중은 변호사가 알려준 전화번호를 눌렀다. 전화가 인차 련결되였다.
“내가 황천초요.”
대방의 목소리는 년륜이 들어있는것 같았지만 웬지 끌리는데가 있었다. 리중이 에돌지 않고 정곡을 찔렀다.
“저의 어머니가 왜 집을 선생님께 주었습니까?”
“자네 어머니는 나를 위해 자네 아버지와 리혼을 했다네. 하지만 결국 자네를 위해 나와 합치지도 못했더랬지. 자네 어머니는 나에게 진 감정빚을 갚기 위해 그 집을 나에게 주기로 결정한거라네.”
리중이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어찌 그럴수가 있죠?”
전화저쪽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리는듯싶었다.
“나는 나의 모든 정을 깡그리 자네 어머니에게 쏟았다네. 지어 하나밖에 없는 딸과 관계를 단절하면서 말이네. 자네 어머니가 병치료에 그렇게 많은 돈을 쓰지 않았는가? 그게 모두 내 호주머니에서 나간거라네. 자네 어머니는 전에 주식에 손을 댔다가 20만원이란 빚을 지고 말았다네. 그때문에 자네 아버지는 자네 어머니와 죽네 사네 하는 사이로 됐더랬지. 나는 내게 있던 집 한채를 팔아 그 빚을 갚아주었다네…”
리중은 더 이상 들어내려갈수 없었다. 리중은 그러한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살아왔지만 필경 일은 이미 터져버린것이였다.
리중은 핸드폰을 내리우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집을 사려고 왔던 두 사람도 무용보도원도 보이지 않았다.
리중은 혼자서 묘지를 찾았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찍은 부모의 사진을 바라보다가 손으로 그 사진을 두드리며 가슴이 터지게 어머니의 이름을 불렀고 왜서냐고 무엇때문이냐고 그 리유를 물었으며 왜 자기를 속였는가고 절규했다.
그날, 하늘에서는 구질구질 비가 내렸다. 비록 비살이 굵지는 않았지만 진종일 끊이지를 않았다. 리중은 묘지주변을 두서없이 맴돌았다. 비방울이 리중의 온몸을 때려주었다.
삼촌이 전화를 걸어와 아버지가 왜 집을 너에게 준줄을 알겠는가고 물었다. 삼촌은 또 만약 아버지가 너에게 집을 물려주지 않았다면 너는 거리에 나앉았을것이라고 했다.
“인제는 내가 왜 네가 부모들을 합장하는것을 반대했는지 알만하겠지? 너의 아버지는 저승에서 너를 이를 갈며 욕할것이다. 미친놈 같으니라구.”
“이런 일을 왜 인제야 나에게 말하는거예요? 아버지는 생전에 왜 이런 말을 나에게 하지 않았나요? ”
리중이 리해할수 없다는듯 삼촌에게 물었다. 삼촌이 신경질적으로 대답했다.
“네놈이 등한해서 보아내지 못했을뿐이지, 따져보면 그래 너네 집에 이상한 일들이 적게나 많았니? 내가 너에게 돈을 적게 준것도 사실은 다 너를 위해서였다. 너의 아버지가 나를 보고 너에게 돈을 조금만 주고 나머지는 저금하라고 당부했었거든.”
삼촌의 말에 리중이 코웃음을 쳤다.
“옛말이면 듣기나 좋게요? 삼촌 같은 깍쟁이가, 인제 와서 아버지를 방패로 삼지 말아요. 좋아요, 그 돈, 나를 위해 저금했다면 인젠 돌려주세요.”
리중의 말에 삼촌은 배은망덕한 놈이라고 리중에게 줄욕을 퍼부었다.
리중은 묵묵히 묘지를 걸어나왔다. 비살이 조금 누그러든듯싶었지만 날씨는 여전히 세때쯤 굶은 며느리상으로 잔뜩 흐려있었다. 때는 어스름이 깃드는 저녁무렵이였다.
리중은 차에 올랐다. 사람그림자 하나 얼씬하지 않는 묘지에서는 두려울 정도로 무거운 정적이 흐르고있었다. 차창유리를 타고 천천히 흘러내리는 비방울은 누군가의 눈물을 방불케 했다. 리중은 어머니가 자기를 낳을 때 무척 힘들었을것이라는 생각이 새삼스럽게 머리속을 파고드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리중을 낳던 그해 어머니는 40살을 바라보고있었다.
리중은 태여나자마자 골연화증에 걸려 팔과 다리가 비가시처럼 여위여갔다. 어머니는 매일 리중에게 어간유를 먹였는데 리중은 투명한 알약을 보기만 하면 울음을 터뜨렸다. 리중이 울면 어머니도 따라서 눈굽을 찍으셨다. 그때 집에서는 어머니의 급성신염을 치료하기 위하여 집에 있던 대부분의 저금을 써버리고있었기에 살림이 매우 힘들었다. 어머니는 자신의 몸이 아프면서도 기름진 음식이 생기면 모두 아버지와 리중에게 양보했다. 그 바람에 어머니는 엎친데 덮친격으로 부종까지 들어 신다리를 약간만 눌러도 그 자리가 한참 지나야 웬 상태를 회복하군 했다. 음력설을 쇠던 어느날, 아버지가 리중의 국사발에서 돼지고기 한점을 건져 먹었다. 그것을 본 리중이 기절하듯 울어번졌다. 어머니는 그러는 리중이 가슴 아파 자기의 국사발에 있던 몇점 안되는 고기를 건져 리중의 사발에 놓아주었다.
리중은 그러던 어머니가 집을 황천초에게 주었다는 사실이 리해되지 않았고 또 리해하고싶지도 않았다. 리중은 도무지 어머니의 행동에 대한 합당한 리유를 생각해낼수 없었다. 황천초는 무슨 방법으로 어머니의 마음을 모조리 빼앗아 아버지와 리혼하게 했고 나중에는 집까지 삼켜버렸을가? 어머니에게는 그 무슨 말 못할 사연이 있었던것일가?
비는 띁내 멎었다. 리중이 차에 발동을 걸 때 한오리의 해빛이 힘들게 구름을 뚫고 나와 주변을 붉으스름하게 물들이고있었다. 리중은 그 한줄기의 해빛이 어쩌면 어머니의 눈빛이 아닐가 하는 생각이 머리를 쳤다. 그것이 진정 어머니의 눈빛이라면 단번에 자기를 알아볼것이고 무엇인가 적당한 리유를 줄수있을것이라고 생각했다.
리중은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눈물이 두볼을 타고 둘둘 굴러내렸다. 리중은 그 눈물을 딲을념도 못하고 묵묵히 힘들게 차를 몰았다. 마침 퇴근시간이라 거리는 사람들로 붐볐다. 모두들 집으로 걸음을 재우치는것 같았다.
하지만 리중은 자기에게 집이 없다고 생각되였다. 아니 집에서 기다려줄 사람이 없다고 하는게 더 타당할것이다. 리중은 차들의 길다란 흐름속에서 버러지처럼 꿈틀꿈틀 하면서 아직 살아있음을 아렴풋이나마 느끼고있을뿐이였다. 리중은 무의식적으로 라지오를 틀었다.

“나는 해볕속에서 그대를 기다리고있네/얼어터진 마음을 치유하고있다네/지난 일은 어느때고 잊혀질것이니/즐거움은 스스로 생각하기 나름//나는 해볕속에서 그대를 바라보고있다네/그대의 웃음이 나의 눈동자를 빛내여주기를/검은 구름 지나가고 비는 멎어 하늘 개였네/무지개처럼 기쁨이 걸렸네/어제날의 음영에서 벗어나/마음은 차츰 맑아진다네”

삼촌이 큰 돈벌이항목 한가지를 맡아왔다. 금방 시장에 나온 새로운 브랜드의 승용차를 위해 영상광고를 제작하는 일이였다. 광고비가 100만원이 드는 일감이였다. 삼촌은 리중에게 잘만 하면 효익에 따라 장려를 주겠다고 장담했다. 리중은 두눈을 쪼프리고 피식 웃고말았다. 리중은 여태 그런 말을 수없이 들어오다나니 더 이상 흥미를 느낄수 없었던것이다. 삼촌은 리중의 표정을 보고 정중하게 물었다.
“얼마쯤 장려하면 될가?”
리중이 짧게 한마디했다.
“10만원.”
삼촌이 허허허 너털웃음을 하더니 입을 열었다.
“넌 나의 친조카다. 일이 성사되면 설마 너를 서운하게야 하겠니?”
리중은 삼촌과 더 이상 입씨름을 하고싶지 않아 몸을 돌리며 속으로 두덜거렸다.
“삼촌은 시종 나를 서운하게 했거든요.”
삼촌은 리중에 대하여 그다지 근심을 하지 않는 눈치였다. 리중은 늘 표현은 애매하게 했지만 일을 시작하기만 하면 침식을 잃어가는 그런 타입이였다. 게다가 리중은 영상광고를 제작하는 일을 제일 좋아했다. 촬영에 들어가기만 하면 어디에서 그렇게 많은 령감이 튀여나오는지 모를 일이였다.
그 승용차회사의 경리조리는 시체를 따르는 모던아가씨였는데 황황이라고 불렀다. 리중은 그 이름이 누구네 집 강아지 이름 같아서 터지려는 웃음을 겨우 참았다. 리중은 대방의 요구에 따라서 간편한 촬영기를 들고 승용차회사를 찾아갔다. 황황이 리중을 접대했다. 몇마디 대화를 거치지도 않았는데 황황이 리중을 데리고 새로운 브랜드 승용차곁으로 다가갔다.
“몇개 각도에서 화면을 잡아봐요. 현장효과를 봅시다.”
리중은 황황이 자기에게 먼저 장군을 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쯤은 두려울게 없는 리중이였다. 리중은 촬영기를 들고 아래우와 좌우로 몇개 화면을 잡아 황황에게 보여주었다. 황황이 몇번 화면을 돌려보더니 모르겠다는듯 물었다.
“현장엔 빛이 없는데요, 어떻게 빛효과를 촬영했죠?”
리중이 창문쯤으로 비쳐드는 몇오리의 해빛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있잖아요. 하지만 좀더 늦으면 저 빛도 잡기 어려울걸요.”
황황이 머리를 돌려 창문밑으로 새여들어오는 그 몇오리의 해빛을 살펴보았다. 아니나다를가 그 빛들이 눈에 뜨일 속도로 바깥쪽을 향해 움직이고있었다. 황황이 입가에 실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대단하네요. 그쪽 같은분이 왜 그런 회사에 박혀있어요?”
리중은 봉긋하게 솟아오른 황황의 앞가슴과 코끝을 스쳐지나는 붉으스레한 해빛을 살피면서 웃다가 되물었다.
“그렇다면 ‘그런 회사’에 그처럼 큰 일감을 맡기는 그쪽도 그저 그렇다고나 할가요?”
리중의 말에 황황이 입을 다셨다.
“그쪽도 참 고지식하군요. 그쪽 어른은 아마 그쪽을 데리고 놀자고 생각했을거예요. 그야말로 쇠몽둥이를 들고 바늘이라고 생각하고있는거죠.”
리중이 격하게 소리쳤다.
“뭐라고 하는겁니까? 협의까지 끝난 상태가 아닙니까?”
“누가 협의까지 끝났다고 했어요? 그쪽 어르신, 참 꿈은 야무지셔. 이 새로 나온 브랜드를? 흥, 그쪽 회사에 광고를 의뢰해서는 한대도 못 팔아먹을거예요.”
리중도 사정없이 소리쳤다.
“잘 듣고 전해줘요, 그쪽 어르신께. 이까짓 브랜드, 천만원을 준대도 홍보하지 않을거라구.”
말을 마친 리중은 촬영기를 거두어가지고 돌아섰다. 리중은 황황이 뒤에서 킥킥 거리며 “우린 꼭 다시 만날거예요” 하고 소리치는것을 들을수 있었다.
회사에 돌아온 리중은 삼촌에게 자초지종을 물었다. 삼촌이 얼굴에 간교한 웃음을 띠우며 말했다.
“일부러 너를 골탕 먹이려는것은 아니였다. 먼저 사연을 알려주지 않는게 너의 승부욕을 불러일으키는데 더 유리할것이라고 생각했을뿐이다.”
“하지만 그렇게 나의 자존심을 건드릴 필요는 없었잖아요.”
“우리앞에는 경쟁상대가 셋이나 됐는데 모두 우리보다 실력이 앞섰단다. 하지만 우리 회사에는 네가 있지 않니? 나는 너만을 믿었더랬지. 그래서 나두 그 항목을 감히 욕심내게 된거구.”
리중이 픽 하고 코웃음을 쳤다.
“나를 믿어요? 너무 믿어서 일이 끝나면 장려를 한다는 말로 나를 유혹했어요? 말해보세요. 어떻게 장려를 하려고 했어요?”
삼촌이 머리를 숙이며 말했다.
“너 이런 어조로 나와 말하지 말아. 나는 네가 이런 방법으로 나를 대하는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리중도 격한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삼촌이 나에게 무엇을 해주었는데 나보구 일에 목숨을 걸라는거예요?”
그 말에 삼촌이 탕 하고 상을 내리쳤다.
“난 너의 삼촌이다. 너의 아버지가 진 20여만원의 빚을 내가 다 갚아주었다.”
리중은 삼촌의 뜻밖의 말에 말문이 막혀버렸다. 삼촌이 계속 열변을 토했다.
“너의 아버지는 도박쟁이였다. 도박빚을 20여만원이나 졌는데 갚을수 없었지. 빚쟁이들이 너의 아버지를 쫓아다녔단다. 너의 아버지는 네가 이 사실을 알가봐 전전긍긍했었지. 어느날, 나를 찾아와 무릎을 꿇고 살려달라고 애걸하더라.”
리중이 더 이상 들어내려가지 못하고 상을 내리쳤다.
“누가 믿어요? 증거가 있어요? 나는 왜 하나도 몰라요?”
삼촌이 서랍에서 서류를 꺼내여 책상우에 메쳤다.
“너의 아버지가 죽을 때 너는 대학교에 다녔더랬지. 이것은 너의 아버지가 나에게 남긴 차용증이다.”
리중은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서류를 당겨다 펼쳤다. 차용증에는 아버지의 지장까지 찍혀져있었다. 뻘겋게 찍혀져있는 지장은 마치도 아버지의 손끝에서 흐른 피자욱 같아보였다.
리중은 아버지의 림종무렵에 담당의사가 알려주어서야 아버지가 심한 심장병을 앓고있었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병을 치료하기에 너무 늦은 시점이였다.
리중은 대학교에서 친한 녀자친구를 데리고 아버지가 눈을 감을 때까지 병간호를 했었다. 아버지는 리중의 녀자친구를 보고 “자네, 내 아들과 결혼해준다면 그것은 내 아들에게 더 없는 복으로 될걸세.”라고 한다미 했다.
아버지, 어머니는 그렇게 총망히 떠났다. 누구도 응당 리중에게 알려야 할 비밀들을 알려주지 않고 총망히 떠났다. 리중은 합당한 리유를 찾아 부모들의 그런 처사를 리해하고싶었다.


3

삼촌을 떠나 집에 온후에야 리중은 자기가 아직 저녁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리중은 차를 몰고나와 한 물밴새집을 찾아 들어갔다. 리중은 고기소를 넣은 물밴새 석냥 반을 청했다. 리중은 물밴새를 먹으면서 자기와 함께 아버지의 림종을 지킨 그 녀자친구가 누구던가를 떠올려보았다.
리중은 자기의 사랑이 서글프다는생각이 갈마들었다.
밤이 깊어갔다. 물밴새집에는 손님이 몇 사람 남지 않았다. 리중은 여전히 창가에 묵묵히 앉아있었다. 창밖에서는 비가 내리고있었다. 짙어가는 어둠과 함께 비줄기가 점점 더 굵어졌다. 리중은 머리를 돌려 하염없이 창밖을 내다보았다. 대살같은 비줄기는 리중으로 하여금 지나온 나날들의 수많은 이야기를 떠올리게 했다. 리중은 그 시각 어머니를 떠올렸다. 비가 내릴 대면 어머니는 늘 뒤에서 리중을 향해 소리치군 했었다.
“우산을 쓰거라, 감기에 걸리면 엄마는 관계치 않겠다.”
그 목소리가 그리웠다. 하기야 지금은 비가 와도 그렇게 소리쳐줄 사람 하나 없다는것을 리중은 잘 알고있었다. 리중의 눈시울이 촉촉해졌다. 어머니가 집을 리중이 얼굴조차 모르는 황천초라는 남자에게 줘버렸지만 리중은 어머니를 그렇게 증오하고싶지는 않았다. 리중은 또 아버지도 그렇게 원망스럽지 않았다. 다만 “아버지는 왜 도박을 하셨을가?” 하는 리유를 못내 알고싶을뿐이였다.
아버지가 혹시 무엇인가를 잃으셨던것은 아닐가? 아니면 어머니와 갈라진 타격을 받아당할수 없어 그 고독을 달래려고 도박에 손을 댔던것인 아닐가?
모든것이 추측일뿐 누구도 리중에게 정확한 리유는 주지 못했다.
사흘후의 오후, 네 광고회사의 고수들이 승용차회사에 모였다. 황황이 회의를 사회했다. 황황은 그날 검은색 정장차림이였다. 리중은 그날 편안한 기분으로 천천히 황황의 얼굴을 살펴볼수 있었다. 황황의 살결은 놀랍게도 희였고 두눈은 아주 컸다. 하지만 그 큰 두눈에 웬지 말 못할 애수같은것이 그들먹하게 고여있는듯싶었다. 얇은 두입술은 짙은 빨간색을 띠고있었는데 입술의 원색이지 절대 립스틱을 진하게 바른것은 아닌듯싶었다.
황황은 열정적으로 네명의 경쟁상대들과 악수를 나누었다. 리중과 악수를 나눌 때 뜻밖에도 황황이 이렇게 속삭였다.
“나를 미워하나요?”
리중은 못들은듯 례의적으로 황황의 손을 잡았다가 인차 놓아버렸다. 리중은 제비 4번을 뽑아 맨 마지막에 경쟁연설을 하게 되였다. 리중은 다른 경쟁자들의 연설에 귀를 기울이다가도 긴장한 모습으로 사태를 지켜보고있는 삼촌의 얼굴을 살폈다. 리중의 차례가 되였다. 리중은 먼저 연설을 한 세 경쟁자들처럼 서류를 황황에게 넘겨주지 않고 침착하게 열변을 토했다.
“승용차가 네온등이 명멸하는 도시의 밤거리를 달리고있습니다. 십자기거리의 신호등도 모두 이 승용차를 위해 푸른등만 켜주는것 같군요. 승용차는 립체교를 지납니다. 립체교를 지나서 호수가를 달립니다. 네, 승용차가 상업거리에 들어서네요. 승용차는 거기서 나와 따듯한 가정분위기가 흐르는 주택구역에 들어섭니다. 여러분들은 묘령의 모던아가씨가 승용차에서 내릴것으로 상상하시겠지요? 아닙니다. 승용차에서는 백발을 떠이신 우아한 모습의 로인님이 얼굴에 미소를 가득 담고 내리고있습니다.”
리중은 흥에 겨워 연극대사처럼 연설을 끝내고는 자리에 돌아와 차고뿌를 손에 들고 황황을 건너다보았다.
삼촌이 화장실까지 따라들어와 간절한 눈길로 리중을 바라보며 물었다.
“어때? 희망이 있는것 같아?”
“알수 없죠.”
리중이 짧막하게 한마디 던져주었다. 삼촌이 봉투 하나를 리중의 손에 쥐여주며 말했다.
“안에 만원이 들어있다. 황황이라는 저 녀자와 저녁 한끼 먹어라. 저 녀자가 승용차회사 기획부 경리다.”
“저보구 ‘미남계’를 쓰라는건가요?”
삼촌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결혼한 녀자야. 하지만 남편은 미국에 있대. 요즘 아마 리혼소리가 오가나보더라.”
리중이 후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기다려 보세요. 보이지 않는 경쟁이 더 심할걸요.”
삼촌이 긴장한 얼굴로 바투 들이댔다.
“거, 무슨 뜻이냐?”
“다른 회사들에서도 목숨 걸 각오를 한다던데요. 인맥에 돈이 합쳐지면 못해낼 일이 있겠어요?”
삼촌이 묵묵히 머리만 끄덕였다. 리중이 다시 입을 열었다.
“삼촌, 그쪽 어른께 얼마나 찔렀어요?”
삼촌이 머리를 저으며 말했다.
“질펀하게 부었지. 하지만 그래두 60만원은 떨어질걸. 대단한 돈은 아니지만 우리 회사로 말하면 적지 않은거야.”
그날밤, 뜻밖에도 황황이 먼저 커피를 마시자고 리중을 청했다.
리중은 고급상업구역의 43층에 자리잡은 그 커피숍에 가본적이 없었다. 커피숍은 네면이 모두 대형유리창으로 되여있어 네온등이 명멸하는 도시의 밤거리를 한눈에 바라볼수 있었다. 커피솝에는 손님이 별로 많지 않았다. 하지만 자리가 대부분 두 사람이 앉게 배치되여있어 여간만 아기자기해보이지 않았다.
“무엇을 마실래요?”
황황이 물었다.
“블루마운틴으로 할가요?”
황황이 다소 흥분한듯 말했다.
“제가 에스프레소를 대접할게요.”
리중이 다소 긴장한듯한 표정을 짓자 황황이 득의양양해서 말했다.
“못 마셔봤어요?”
“아니요, 못 들어봤어요.”
“최상급이예요. 시내에서 오직 이 집에만 있어요. 때를 잘 못 오면 없을수도 있구요. 오늘밤에는 있을려나?”
말을 마친 황황이 웨이터를 불러 에스프레소를 주문했다. 웨이터는 잠간 난색을 짓더니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잠간 들어가 이 브랜드가 있는지 확인하고 올게요. 오래 동안 이 브랜드를 들여오지 않아서요.”
리중은 거들먹거리는 황황의 행실이 곱지 않게 느껴졌지만 꾹 참고 정곡을 찔렀다.
“우리 회사, 어떻게 될가요?”
황황이 입가에 가는 웃음을 띠우며 물었다.
“그렇게 급해요?”
“락선될가봐 이러는게 아닙니다. 다만 나는 나의 기획에 대한 당신들의 태도가 궁금할뿐입니다.”
황황은 잠간 무엇인가를 생각하는듯 하더니 바투 들이댔다.
“왜 차에서 내리는 사람이 백발의 로인이여야 하죠?”
리중이 자신있게 대답했다.
“그쪽 회사의 승용차는 아직 류행을 타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목표를 보통사람들에게 돌려야 합니다. 가격도 15만원좌우니까요. 백발의 로인이 탈수 있는 승용차라면 누구도 감히 넘볼수 있지 않을가요? 마음만 먹으면 누구라도 집앞까지 몰아갈수 있는거죠.”
황황이 웃으면서 갑자기 엉뚱한 질문을 했다.
“그쪽 혹시 예쁜 녀자들에 대해 흥취가 없는것은 아니겠죠?”
“승용차광고에서 예쁜 녀자라… 너무 식상한게 아닌가요? 실증도 안나나보죠?”
황황이 다리를 꼬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은은한 조명에 비쳐지는 미끈한 다리가 성감적으로 느껴졌다. 리중은 아무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황황을 바라보기만 했다. 사실 리중도 못 당해본 장면이 없을 정도로 사교장소에 드나들던 사람이였다. 그럴 때마다 일반적으로 리중이 결산을 했고 그 값으로 한참씩 대방을 애 먹이다가 자리를 뜨군 했었다.
황황이 물었다.
“듣자니 그쪽 아직도 싱글이라면서요?”
리중의 입가에 가는 웃음이 스쳤다.
“나는 그쪽 회사의 태도를 알고싶습니다.”
하지만 황황은 여전히 리중의 관심사에 눈길을 돌려주지 않았다.
“그게 그쪽과 그렇게 중요한 관계가 있나요?”
그때 웨이터가 쟁반에 커피잔 두개를 받쳐든 산뜻한 옷차림의 중년신사를 데리고 나타났다.
“이분은 우리 커피숍의 커피조제사입니다.”
황황이 조제사의 손으로부터 커피잔을 받아서 리중에게 권했다. 커피잔은 작다못해 손바닥으로 움켜쥐면 보이지 않을것 같았다. 리중은 커피잔을 입에 가져다 두어번 맛을 보는듯 하더니 후루룩 마셔버리고는 그 맛을 음미하는듯 두눈을 스르르 감았다. 황황이 놀라며 한마디 했다.
“이렇게 빨리 마셔버리다니요.”
커피제조사가 황황에게 말했다.
“아닙니다. 이분이야말로 마실줄 안다고 봐야죠. 이 커피는 빨리 마시지 않으면 맛이 변합니다.”
황황은 얼굴이 시쁘둥해서 입을 열었다.
“마셔본적이 있죠?”
리중이 만족한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
“커피를 마시는데도 참 학문이 많답니다. 지난해 제가 화란의 암스테르담으로 갔을 때 한 부자친구와 함께 커피를 마신적이 있는데 그게 바로 에스프레소였습니다. 마시고난후에도 오래동안 그 은은한 맛에 취했더랬지요.”
리중의 말을 들으면서 황황은 천천히 머리를 끄덕였다.
은은한 맛에 취했다구? 이거야 뭐 모기가 피를 빨아먹은거나 진배없지 않은가? 3밀리리터도 되나마나 할것 같은데…
리중이 말을 이었다.
“커피라고 해서 어느 브랜드나 모두 천천히 마셔야 한다는 법은 없습니다. 어떤 브랜드는 빨리 마셔야 맛이 변하지 않죠. 문제는 어떻게 마시냐가 아니라 어떻게 그 무궁무진한 맛을 음미할줄 아는가 하는것이죠…”
황황이 리중의 말을 중동무이하면서 말했다.
“보아하니 그쪽은 나에 대해 연구가 있는것 같네요.”
리중이 황황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쪽, 커피에 조예가 깊다는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인데요.”
황황이 웃었다.
“그쪽, 참 남다른 사람 같아요. 알려드릴게요. 그쪽, 떨어졌어요.”
“그래요? 리유는요?”
“없어요, 리유는.”
“없다니요? 리유가…”
리중의 목소리가 약간 떨리고있었다. 황황이 입을 열었다.
“저 그쪽과 친구하고싶어요.”
리중은 뭐라 대답하지 않고 몸을 일으켜 카운터로 다가갔다. 커피 두잔 값이 3960원이 나왔다. 리중은 그 천문수자에도 놀라는 눈치가 아니였다. 리중은 삼촌이 주던 봉투를 찾아서 돈을 꺼내여 한장한장 열심히 세였다. 황황이 다가와 불쾌한 표정으로 물었다.
“나를 두고 이대로 가려했어요? 무엇때문이죠? 리유나 알려주세요.”
리중이 돈을 물고 돌아서서 입가에 미소를 띠우며 말했다.
“리유요? 없어요.”
황황이 격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한번쯤 나의 태도를 물어주면 안돼요?”
리중이 가벼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게 중요해요?”


4

누군가 리중과 황황이 고가의 커피를 마시는 장면을 사진 찍어 블로그에 올렸다. 삽시간에 몇천명의 블로거들이 그 사진을 전재했고 평론을 달았다. 그것을 보고 삼촌이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리중을 찾아왔다.
“그놈들이 우리를 속인거야. 그런데도 넌 어떻게 되여 그녀자와 그런 관계까지 되였니? 결산은 누가 했니?”
“물론 내가 결산했죠. 삼촌이 준 그 만원으로.”
삼촌이 분통이 터져라 소리쳤다.
“돈을 쓸데가 없었더냐? 황황이란 그년이 절대 우리를 위해 좋은 말을 해준것 같지 않다.”
리중은 그 시각 삼촌과 계속 대화를 하는것이 매우 힘들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몸을 돌렸다. 삼촌이 뒤에서 소리쳤다.
“그쪽에서 큰 마음이나 쓰듯이 우리에게 작은 항목 하나를 던져주더라. 20만원쯤 될거다.”
리중은 걸음을 멈추고 야멸찬 눈길로 삼촌을 바라보다가 사무실로 들어갔다. 뜻밖에도 무용보도원이 사무실에 와있었다. 리중은 그녀가 일부러 옷차림을 요염하게 한것이라고 생각했다. 화장도 과분할 정도로 짙은것 같았다. 리중이 먼저 허허허 웃음을 터뜨렸다.
“그쪽두 내가 고급커피를 마시는 사진을 본게 아니요?”
그녀가 말했다.
“많이 생각해봤어요. 우리 계속 합시다.”
리중이 잠간 무엇인가를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두번이나 일방적으로 나를 떠났었는데 인젠 적당한 리유를 줘야할게 아니요?”
그녀가 인차 말을 받았다.
“저는 보이는대로 구속없이 사는 사람이랍니다. 불쾌한 기분이 들면 당장에서 폭발했다가도 인차 사그러들지요. 아무일도 없었던듯.”
“하지만 그 아무일이 나에게는 그대로 남아있는걸.”
그녀가 갑자기 화제를 돌렸다.
“그쪽, 황황을 좋아하나요?”
그 말에 리중이 깜짝 놀라며 다잡아 물었다.
“그쪽, 어떻게 황황을 아오?”
그녀가 어이없다는듯 입을 열었다.
“뻔한 사실이 아닌가요? 블로그에 대서특필됐는데.”
리중이 어설프게 웃음을 짓다가 말을 시작했다.
“나는 참 한심한 사람이요. 30살도 훨씬 지났지만 아무 일도 해놓은것이 없으니. 게다가 부모는 모두 돌아가시구… 집이며 차는 더 이상 낡을래야 낡을수도 없는 고물이구… 그러니 그쪽, 나에게서 눈길을 돌리는게 좋을거요.”
그녀는 가위다리를 하고 의자에 앉았는데 그 모습이 황황하고는 비할수 없이 천해보였다. 그녀가 말했다.
“전 종래로 그쪽의 물건이나 돈을 탐해본적이 없어요. 나는 그쪽의 정신세계를 흠모하는거예요.”
그 말을 들으면서 리중은 어딘가 서글퍼지는 기분을 달랠수 없었다.
“번마다 내가 채였는데 이번에 그쪽이 이렇게 나오니 참으로 몸둘바를 모르겠소.”
그녀가 웃으며 말을 받았다.
“그러줄 알았어요. 그쪽은 그렇게 뼈속까지 선한 사람이예요. 난 그점이 맘에 들어요.”
그날밤, 리중은 황천초가 걸어온 전화를 받았다. 황천초는 전화에서 꼭 한번 옛집을 찾아달라고 간청했다. 옛집이란 바로 어머니가 살던 그 집이였다. 리중의 가슴에 돌덩이처럼 내려앉은 집이기도 했다. 황천초는 리중을 찾는 리유를 밝히지 않았다. 그래도 리중은 한번 옛집을 찾아보려고 마음 먹었다.
집에서 음식을 만들어 먹는 일은 물에 물 탄듯 아무 격정도 기대할수 없는 일상사였다. 물을 끓이다가 밀가루국수를 넣고 잠간후 닭알을 풀어넣은 다음 송송 썬 파를 몇잎 집어넣고 깨기름을 몇방울 뜰구면 끝나버렸다. 리중은 밥을 지을줄을 몰랐다. 언젠가 무용보도원에게 밥을 지을줄을 아는가고 물은적이 있었다. 그녀가 대답했다.
“몰라요, 결혼하면 아마도 그쪽 신세를 져야할것 같아요.”
그 말에 리중은 기분이 잡쳤다. 웬지 운명이 늘 자기에게 롱담을 걸어오는것만 같은 기분이였다.
사흘이나 무용보도원에게 련계를 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아무일도 없는듯한 태도를 보였다. 그녀는 늘 집을 보러 다녔다. 그녀는 리중에게 자기에게도 20여평쯤 되는 단간방이 있다고 말했다. 그녀는 또 지금 세월에 80평쯤 되는 집을 가지고있으면 참으로 괜찮은 셈이라고 했다. 그녀는 리중에게 빨리 집을 팔아치우고 새집을 사야하며 20만원쯤 들 장식비도 어서 마련해놓으라고 달구쳤다. 리중은 그녀가 집문제를 말할 때마다 가슴이 갑갑했다. 어쩌면 그녀가 자기에게 시집 오려는게 아니라 자기가 이제 사야할 새집에 시집 오려는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리중은 문을 두드리지 못하고 한참이나 망설였다. 전에는 이 문을 어머니가 열어주었었다. 어느한번은 광고촬영을 마치고 급히 집으로 돌아가며 어머니에게 “어머니, 문 열어요.” 하고 메쎄지를 보낸적이 있었다. 그후 어머니가 리중에게 말했다.
“네가 나에게 보낸 메쎄지를 대부분 삭제해버리고 딱 하나만 남겨놓았단다. 그게 바로 ‘어머니, 문 열어요.’란다.”
리중은 더 이상 어머니가 그 문을 열어줄수 없다는것을 알고있었다. 하지만 기어코 그 문을 두르려야 하는 리중의 팔은 그 순간 더없이 무거워났다.
드디여 문이 열리고 60세를 넘긴듯한 얼굴이 나타났다. 정신이 포만해보였는데 어딘가 문화적인 기질도 있는것 같았다. 로인이 리중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내가 황천초라네.”
리중은 집안으로 들어가 구석구석을 살폈다. 어느 한곳도 변한것이 없이 어머니가 계실 때와 꼭 같았다. 리중은 습관적으로 침대머리에 섰다. 마지막 두해 동안 어머니는 바로 그 침대에 누워계셨고 리중은 늘 그렇게 서서 어머니에게 사과껍질을 깎아드렸던것이다.
황천초가 리중에게 저금통장 하나를 넘겨주며 말했다.
“자네 어머니가 자네에게 남긴것이라네. 비밀번호는 자네의 생일이라네. 내 기억이 틀리지 않았다면 760525일거야. 바로 76년 5월 25일이라는 뜻이겠지. 은행에 가서 비밀번호를 변경하게나. 비밀번호는 내가 모르는게 좋아.”
리중은 저금통장을 호주머니에 잘 간수한후 입을 열었다.
“괜찮습니다.”
리중은 황천초에게 비밀번호를 어떻게 알게 되였는가고 묻거나 어머니가 왜 자기에게 남기는 저금통장을 당신에게 주었는가고 묻고싶었다. 하지만 나중에는 그 말들을 모두 속에 담아두고말았다. 황천초가 리중에게 커피를 마시겠냐, 아니면 차물을 마시겠냐고 물었다.
“커피요.”
황천초가 주방으로 건너간지 한참 지나서 향긋한 커피향기가 풍겼다. 이어 황천초가 커피 두잔을 들고 주방에서 나왔다. 그때 리중은 객실에 책꽂이가 하나 늘어난것을 발견했다. 책꽂이에는 책들이 가득 꽂혀있었다. 황천초가 커피를 입가에 가져가며 말했다.
“자네가 나를 찾아준것을 대단히 고맙게 생각하네. 자네 어머니가 이 집을 나에게 준것때문에 당신은 꼭 불평이 많을거야…”
그때 리중의 눈길이 문뜩 베란다에 걸려있는 어머니의 옷에가 멎었다. 리중은 천천히 베란다로 다가가 옷 한벌을 벗겨서 가슴에 꼭 끌어안았다. 그것은 어머니가 즐겨 입던 치포였다. 리중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주르르 굴러내렸다. 리중은 뒤에서 들려오는 울음소리를 들었다. 머리를 돌려보니 황천초의 얼굴이 눈물로 얼룩져있었다. 황천초가 목이 메여 더듬거렸다.
“나와 자네 어머니는 워낙 오래전부터 사귀였다네. 그 와중에 내가 경제상에서 잠간 문제가 생겼더랬지. 하여 나는 잡혀들어가 2년동안 로동개조를 했다네. 로동교양소에서 나와보니 자네 어머니는 자네 아버지와 결혼을 했더군. 나는 자네 어머니를 탓하지 않았다네…”
황천초는 목이 메여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리중은 가슴에 안은 어머니의치포를 내려놓지 않았다. 황천초가 잠간 지나서 말을 이었다.
“자네 아버지가 세상을 뜬후 나는 자네 어머니와 결합하려고 안해와 리혼을 했다네. 하지만 자네 어머니는 결국 자네를 위해서 나와 합치지 않았더랬지. 자네 어머니는 자네를 잃을가봐 두려웠던거야. 하지만 나는 리혼을 하면서 가장 사랑하던 딸을 잃고말았어. 딸이 나와 관계를 끊어버린거야.”
리중은 더 이상 그곳에 있고싶지 않아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황천초가 리중을 눌러앉히며 말했다.
“자네도 나의 딸을 알걸세. 나두 블로그에서 자네와 나의 딸이 커피를 마시는 사진을 보았다네.”
리중이 깜짝 놀라며 물었다.
“황황이 딸이라구요?”
황천초가 머리를 끄덕였다.
“오늘 자네를 부른게 저금통장을 건네주려는것만은 아니였다네. 자네, 나를 도와주게나. 그 애에게 잘 말해서 집으로 돌아오게 해주게나. 자네의 어머니가 없는 이 마당에 딸애까지 떠나버렸으니…”
리중은 세상이 너무 좁아 손바닥에 모두 움켜쥘수 있을것 같다고 생각되였다. 리중은 황천초를 바라보며 말했다.
“말할게요, 하지만 내가 말한다고 그가 들을가요?”
황천초는 어딘가 실망하는 눈치였다.
“자네 왜 그럴거라고 생각하나?”
“황황은 시종 자신이 나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고있어요. 내가 그에게 이런 문제를 이야기한다는것은 그에게 내가 스스로를 높게 보는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을거예요. 그러니 아예 말을 하지 않는것이 나을거예요. 내가 말한다고 해도 그는 곧이 듣지 않을게 뻔하거든요.”
말을 마친 리중은 문을 밀고 나왔다. 리중은 자기의 무거운 발걸음소리가 어두컴컴한 복도에서 청승스럽게 들리는것 같았다. 그 시각 리중은 못견디게 어머니의 목소리를 듣고싶었다. 어머니가 뒤에 대고 “얘야, 조심하거라. 2층복도에 큰 광주리가 놓여져있네라.” 하고 소리쳐주었으면 좋을것 같았다.
무용보도원은 리중에게 줄곧 집을 보러 가자고 졸랐다. 자기가 보아둔 그 집이 아주 좋다는것이였다. 리중은 더 이상 그녀의 청구를 거절할수 없어 따라나섰다. 그녀는 성격 좋은 가이드처럼 집안 구석구석을 빼놓지 않고 소개했다. 화장실에 들어서자 그녀는 변기우에 들어앉아서 시범을 보였다. 리중은 정말이지 그것만은 보아줄수 없었다. 울컥 화가 치밀어 목소리를 높였다.
“지금 뭘하고있는거요?”
그녀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며 말을 더듬었다.
“나나, 나… 지금 그쪽 보구 이 집을 좋아해달라고 청들고싶어요.”
리중이 어이없어 입을 쩝쩝 다시다가 물었다.
“왜 자꾸 집을 좋아해달라는 말만 하구 그쪽을 좋아해달라는 소리는 하지 않소? 이 집이 그래 그쪽보다 더 중요하단 말이요?”
그녀가 갑자기 벌떡 일어서더니 리중의 품을 파고들며 말했다.
“전 정말 이런 집을 가지고싶어요. 그쪽은 모를거예요. 전 어릴적부터 9평도 되나마나한 집에서 오빠와 함께 살았댔어요. 가끔은 오빠가 내옆에서 수음을 하는것까지 보아야했어요.”
리중을 끌어안은 그녀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리중이 몸을 뽑아 두 팔을 벌려 그녀를 꼭 안았다. 하지만 뭐라고 위안을 해야할지 일시 떠오르지 않았다.
이때 리중의 핸드폰이 울렸다. 익숙한듯 하면서도 금방 떠오르지 않는 목소리였다.
“아직도 나를 기억하고있겠지?”
스스럼없는 그 말투에 리중은 깜짝 놀랐다. 분명 자기와 깊은 인연이 있는 사람이라고 판단되였지만 그 얼굴이 인차 그려지지 않았다. 대방에서 까르르 웃음을 터쳐올렸다.
“왜, 생각나지 않아? 나 고영이야.”
리중은 컥 하고 심장이 멈추는것만 같았다. 바로 고영이라고 부르는 이 녀자애가 리중네 집 화장실이 너무 작아 방귀도 마음대로 뀔수 없다고 돌아섰던것이다. 바로 고영이라고 부르는 이 녀자애가 리중을 동무해서 병원으로 가 림종에 이른 리중의 아버지를 간호했던것이다. 그번에 고영은 사흘낮, 사흘밤을 별로 눈도 붙이지 못했다. 대학교에서의 마지막 2년간, 고영이 줄곧 리중을 동반해주었다. 그들은 그때 벌써 결혼생활을 그려보았다. 하지만 고영은 그 한마디를 남기고 리중과 갈라진후 바다에 들어간 흙인형마냥 다시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었다.
리중이 호기심이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너 지금 어디에 있니? 나의 핸드폰번호는 어떻게 알았구?”
“너의 핸드폰번호, 원래거잖아? 난 너의 핸드폰번호를 시종 남겨두고있었거든.”
“어… 어, 그래?”
리중이 말을 잇지 못하고 얼버무렸다. 그때 고영이 또 한번 까르르 웃으며 물었다.
“너, 곁에 녀자가 있지?”
리중이 무용보도원을 훔쳐보았다. 그녀가 눈 한번 깜빡하지 않고 리중을 지켜보고있었다. 리중이 고영에게 물었다.
“어쩌다가 나에게 전화를 하려고 생각했니? 인젠 십년도 더 지났는데.”
고영이 일부러 익살스럽게 말했다.
“네가 생각나서 전화했지. 나 아직 너만한 남자를 만나지 못했거든.”
리중은 고영의 말에 얼굴이 확 붉어졌다. 그는 이미 녀자들의 그같은 도발적인 말을 받아 당할수 없었던것이다.
“너너…너, 어떻게 지내니?”
“만나서 얘기해, 우리. 나도 블로그에서 네가 예쁜 아가씨와 고급커피를 마시는 사진을 보았거든. 대단하다, 너. 커피 두잔에 3900원이라니… 사람피보다도 더 비싸구나.”
리중은 놀라운 블로그의 힘을 다시한번 느끼면서 고영이 리해할수 있게 해석하려고 애를 썼다.
“아니야, 그것은 한차례의 비즈니스였어.”
그 말에 고영이 동을 달았다.
“나두 너와 함께 커피를 마시고싶다. 하지만 그녀와 마셨던 그런 고급커피가 아니라 우리가 늘 함께 마셨던 블루마운틴을 마시고싶을뿐이야. 너 시간과 지점을 정한후 나에게 련락해라.”
리중은 무용보도원을 집까지 차에 실어다주었다. 리중은 그녀가 자기와 침대에 오르고싶어한다고 느꼈다. 사실 리중은 그녀와 진정으로 참답게 살을 섞어본적이 없었다. 하지만 리중은 조금도 그럴 흥심이 없었다. 그녀는 리중의 어깨에 머리를 살풋이 대고 쉴새없이 종알거렸다. 리중은 품격이 있는 녀자라면 절대 그녀와 같이 가볍게 놀지 말아야 하며 가볍게 놀기 시작하면 곧 남자들에게 업신여김을 당하게 된다고 생각했다.
하늘에서 구질구질 비가 내려 차창유리를 깨끗이 씻어내리고있었다.
그녀가 갑자기 엉뚱한 화제를 꺼냈다.
“나, 이번 달에 안 왔어요, 달거리가.”
순간 리중은 무엇엔가 호되게 머리를 얻어맞은것만 같았다. 사실 리중은 그녀와 마지막으로 침대에 오른것이 언제였던지도 기억이 묘연했다. 리중은 의식적으로 그녀에게 바투 들이댔다.
“언제야? 차안에서 그때야?”
그녀가 머리를 끄덕였다. 리중은 그번 차안에서의 정사를 떠올렸다. 그녀는 그날 실 한오리 남기지 않고 리중의 옷을 홀렁 벗기며 흥분해서 소리쳤다.
“나, 차안에서 처음이야. 실컷 경험해보고싶어.”
그녀가 리중을 차 뒤좌석으로 밀어갔다. 리중의 머리가 뒤창문에 맞혔고 두다리는 창문밖으로 밀려났다.
리중은 그날 차를 어디에 세웠던지 기억에 없었지만 그곳이 어느 호수가라는것만은 또렸했다. 그것은 그리 크지 않은 호수였는데 시내중심에 자리잡고있었다. 그날 리중은 분명 물새들의 지저귐소리를 들은것 같았다. 하지만 그 소리가 그녀의 신음소리가 아니였던지도 아리송했다.
그녀가 물었다.
“어쩔래요?”
리중은 머리가 천근같이 무거워나 일시 뭐라고 대답을 주지 못했다. 그녀가 기분이 잡친듯 말했다.
“부담을 갖지 말아요. 원하지 않는다면 수술해버릴게요.”
리중이 다잡아 물었다.
“만약 수술을 하지 않는다면?”
그녀가 배시시 웃으면서 대답했다.
“결혼해야죠. 새집을 그쪽도 보지 않았나요? 우리 어서 낡은 집들을 팔아요. 새집주인이 시간을 한달밖에 주지 않았어요.”
그때 리중은 차머리가 무엇인가에 부딪치는 느낌을 받았다. 아니나다를가 차 한대가 앞에 멈춰서있있다. 차안에서 한 남자가 나오더니 리중의 차앞에와 버티고 섰다. 리중이 차창을 내리웠다. 남자가 리중의 코끝을 가리키며 소리를 질러댔다.
“당장 내리지 못해?”
리중이 차에서 내렸다. 남자가 자기의 차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당신이 무슨 짓을 했나 똑똑히 보라구. 나의 차는 보마란 말이요.”
리중이 다가가 살펴보니 약간 긁힌 흔적이 나있었다. 리중이 큰 일이 아니다싶어 한마디 했다.
“보험회사에 가보시죠. 약간 긁힌건데요뭐.”
그 말에 남자가 분노했다.
“나의 차는 보마란 말이요. 알겠소? 당신의 눅거리를 어디에 비기려구.”
그 말에 리중도 버럭 화를 내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게 보만데 나하구 무슨 상관이요? 보험회사를 찾으라고 하지 않았소?”
남자가 여전히 두눈을 부릅뜨며 소리쳤다.
“왜 하필이면 내 차를 박았는가 말이요?”
리중이 맞받아쳤다.
“내가 고의로 들이박았소? 그만 조심하지 않아 당신 차에 내 차를 너무 가까이 들이댄것뿐이지.”
남자가 갑자기 리중을 뚫어지게 살펴보더니 픽 하고 랭소를 하며 말했다.
“당신, 리중이구만. 내 와이프하구 커피를 마신 그놈이지?”
리중이 다잡아 물었다.
“당신 와이프가 황황이요?”
남자가 웃으며 말했다.
“그렇소, 우린 아직 리혼을 하지 않았으니. 하지만 그년을 기다릴 필요는 없소. 그년을 위해 줄을 선 병신들이 가득하니. 당신은 아마 열번째쯤에나 설수 있을가?”
그 말에 리중이 랭소를 하면서 소리쳤다.
“줄? 나는 종래로 그런 놀음을 하지 않소. 내 녀자친구가 차안에서 나를 기다리고있으니까. 생각있으면 보여줄가?”
그때 무용보도원이 차에서 내렸다. 그러자 남자가 홰홰 손을 흔들면서 소리쳤다.
“헛소리는 걷어장지구 말해보우, 어떻게 처리하면 좋은가.”
리중도 맞받아 소리쳤다.
“못 들었소? 보험회사를 찾으라구. 세번은 말했을거요.”
말을 마친 리중이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남자도 누군가와 통화를 했다. 그녀가 다시 차안으로 들어갔다. 잠간후 남자가 리중의 곁으로 다가와 핸드폰을 넘겨주며 말했다.
“내 와이프 당신하구 보통 사이가 아니네.”
리중이 핸드폰을 받아 귀가에 가져갔다.
“뜻밖이네요, 우리 두 사람이 진정 블로그스타가 되였네요. 듣자니 그 커피숍장사가 전보다 훨씬 잘 된대요.”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가요?”
리중이 화제를 돌렸다.
“어느 정도예요?”
리중이 긁힌 자국을 다시한번 살피고는 대답했다.
“살짝 한군데…”
황황이 남자를 욕하기 시작했다.
“그 사람 워낙 그렇게 억지를 부리는데 습관이 돼있어요. 그래서 전 그 사람과 리혼하려고 해요…”
리중이 황황의 말을 중동무이하며 물었다.
“저, 어떻게 하랍니까?”
황황이 칼로 자르듯 과단하게 대답했다.
“차를 몰고 그 자리를 뜨세요.”
리중은 핸드폰을 남자에게 넘겨주고는 차에 올랐다. 남자가 리중을 향해 소리쳤다.
“당신, 어찌하든 먼저 사과는 해야 할게 아니야?”
리중이 중얼거렸다.
“보험회사를 찾아 가든 말든 맘대루 해보시우. 아무튼 내 돈이 나가는게 아니니까.”
남자가 계속 시비를 걸어왔다.
“당신의 차가 내 꼬리를 쳤단 말이요. 이럴 때는 먼저 잘못했습니다 하고 사과하는게 도리가 아닌가?”
무용보도원이 듣다못해 입을 열었다.
“그래요, 저희들이 잘못했어요.”
리중이 부르릉 차를 몰아나갔다. 남자가 리중의 차에 주먹질을 하면서 소리쳐댔다.
“알아두라구, 난 아직두 황황의 남자야. 제딴에 뭐가 대단하다구!”
비가 멎었다. 온 하늘의 공기가 비에 젖어 녹녹해진듯싶었다.
리중은 뭐라고 형용할수 없이 마음이 산란해났다.
무용보도원이 옆에서 쉴새없이 재잘거렸다.
“어서 결정하세요. 맞같지 않으면 아예 수술을 해버리고말겠어요. 그쪽을 좀 보세요, 당황해서 어쩌구 있는가. 정말 절 미치게 만드네요.”
리중이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으며 소리쳤다.
“수술해, 수술하라구. 진짜 날 미치게 하네.”
그녀가 갑자기 어깨를 들먹이면서 리중에게 바락바락 대들었다.
“좋아요. 말해보세요. 그러는 리유를 말해보세요.”
리중은 멍하니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랬다. 그는 실로 자기가 그처럼 분노하는 리유를 알수 없었다. 둥근 달이 두터운 구름을 뚫고나와 번잡한 밤도시를 비추고있었다.


5

리중은 승용차회사를 위해 짧막한 영상광고를 제작했지만 웬지 그것을 들고 황황을 찾아가고싶지 않았다. 삼촌이 되려 그러는것이 당연하다는듯 얼굴에 웃음을 담고 말했다.
“네가 싫으면 내가 다녀오마. 돈은 비록 많지 않지만 그 정도면 그래도 괜찮다고봐야지.”
리중은 회사맞은켠에 있는 물밴새집에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가 아직 숨도 채 돌리지 못하고있는데 뜻밖에도 고영이가 다가와 맞은켠 걸상에 눌러앉았다. 그 바람에 리중은 깜짝 놀라며 고영의 얼굴에게 눈길을 박았다.
“너두 저 청사에 출근하니?”
고영이 말하면서 손을 들어 맞은켠을 가리켰다. 리중이 머리를 끄덕였다. 호- 고영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세상에, 나두 저 청사에 출근한단다. 그런데 어쩌면 한번도 마주친적이 없을가?”
“넌 어느 회사냐?”
리중이 물었다.
“해관의 통관수속을 하는 회사다.”
“그 회사 몇층이지?”
“20층. 넌?”
“난 너보다 높아, 22층.”
말을 마친 리중이 허허 웃었다. 고영이도 얼굴에 야릇한 웃음을 피워올리며 말했다.
“넌 언제나 나의 우에 있었더랬어. 내가 우에 오르려 하면 넌 절대 안된다고 했지.”
이어 두 사람은 하하하 호호호 시름없이 웃어댔다.
“너, 양고기소를 청했지?”
고영이 문뜩 화제를 돌렸다. 리중이 머리를 끄덕이며 되물었다.
“맞아, 넌 돼지고기소를 청한거지?”
고영이 또 한번 웃음을 터치며 말했다.
“그래, 둘 다 하나도 변한게 없네.”
두 사람은 한담을 하면서 물밴새를 먹었다.
“너, 하나두 안 궁금해?”
“뭐가?”
“결혼했니? 리혼은 안했니? 애는 있니? 이런것들 말이지.”
이때 리중의 핸드폰이 울렸다. 황황이 걸어온것이였다.
“그쪽, 왜 직접 작품을 가지고 오지 않았어요? 나를 보고싶지 않다 이거죠?”
리중이 인차 대답했다.
“그럴수가요. 그저 그쪽에 가서 주눅이 들고싶지 않았을뿐이지요.”
“회사의 일은 어디까지나 우리 어른의 일이지 나와는 상관 없어요. 전 그래도 그쪽을 위하여 좋은 말을 많이 했어요.”
리중이 인차 화제를 돌렸다.
“그쪽 아버지께서 말씀했습니다. 그쪽보구 신변에 돌아오라구요.”
그 말에 황황이 잠간 뜸을 들였다가 물어왔다.
“그쪽이 어떻게 저의 아버지를 알아요?”
순간 리중이 목소리를 높였다.
“설마 그쪽 아버지가 나의 어머니의 집에 살고있다는것을 모르는것은 아닐테죠?”
황황이 다시한번 뜸을 들이더니 놀랍다는듯 목소리를 높였다.
“세상에, 저희 아버지가 좋아했다는분이 설마 그쪽 어머니란 말씀인가요? 이거 참, 귀신을 봤나?”
“뭐요? 뜻인즉 나의 어머니가 귀신이라는 말씀?”
리중의 목소리에 가시가 박힌것을 느낀 황황이 급히 해석했다.
“아니요, 그럴수가요. 귀신이라면 저의 아버지가…”
리중은 괜히 기분이 잡쳐 일방적으로 통화를 끊어버렸다.
고영은 여전히 물밴새를 맛나게 먹으면서 창밖에서 흐르는 인파와 차물결을 바라보고있었다.
물밴새집을 나온 두 사람은 묵묵히 걸어서 어느새 호수가에 이르렀다.
고영이 입을 열었다.
“여기, 대학때 우리 늘 오던 곳이지? 여기서 우리 첫 키스를 했구 너 무던히도 나를 밝혔었지. 어느 한번인가 우리 키스를 하고있는데 한무리의 남자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치안대원들이라고 하면서 벌금을 물라고 했었지.”
리중이 고영의 말을 받았다.
“맞아, 그들이 우릴 보고 벌금 200원을 내라고 했잖아. 그때 학생인 우리에게 어디 그 많은 돈이 있었겠어.”
“너, 그래서 잽싸게 나의 손을 끌고 도망을 쳤잖아? 그들이 우리를 쫓아오구… 나중에 더 도망갈 곳이 없으니 우린 호수에 뛰여들었댔지. 난 헤염을 칠줄을 모르잖아. 너 나를 끌고 헤염을 쳐서 끝내 맞은켠 기슭에 올랐더랬지.”
리중이 말을 받았다.
“그때 나의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해 있었는데 네가 나와 함께 병원에 가서 아버지를 간호했더랬지.”
고영이 머리를 끄덕이며 동을 달았다.
“맞아, 너의 아버지가 뒤를 보시겠다고 할 때 네가 곁에 없으면 내가 방조해드리군 했어. 그러느라면 내 두손에 모두 너의 아버지의…”
고영의 말을 들으며 리중은 무용보도원을 머리속에 떠올렸다. 그리고 고영이가 자기와 함께 아버지를 간호해드렸다는 그 사실을 어찌 잊을수 있었을가도 생각했다. 순간적으로라도 그 사실을 잊고있었던 리유를 찾을수 없었다.
한무리의 물새들이 수면을 스치며 날아서 땅에 올라와 쫓거니 쫓기거니 재롱질을 했다.
리중과 고영은 그쪽을 향해 발볌발볌 다가갔다. 물새들은 조금도 놀라는 기미가 없이 시름을 놓고 먹이를 주어먹고있었다.
너무나 평화로와 보였다.
그 평화를 깨며 리중이 입을 열었다.
“너, 너 왜 그때 그렇게 나를 떠났니?”
“너에게 한단락의 공백을 남겨주고싶었어. 어떤 일은 밝히면 되려 재미가 없어지잖아?”
리중이 차분한 눈길로 고영을 바라보며 물었다.
“요즘은 어때?”
“혼자야, 여섯살짜리 아들놈을 데리고있어. 장난이 심해. 의사들이 그러는데 그놈, 산만증이 있대나?”
그들은 호수가를 떠났다. 걸음을 옮기면서 리중은 수시로 머리를 돌려 호수를 바라보았다.
가을빛이 짙어가고있었다. 호수가의 나무들에 단풍이 내려앉았다. 붉은색, 귤색, 록색으로 아롱진 나무들은 가을의 풍성함을 그대로 보여주려는듯싶었다.
고영이 리중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너네 집 그 침대 말이야, 지금도 일하고있니? 삐꺽삐꺽삐꺽… 참 지금 생각해보면 요람곡 같을수도 있었는데… ”
고영이 말을 끊고 킥킥 웃어댔다. 리중도 시무룩히 웃으며 말을 받았다.
“그래, 바로 그 삐꺽거리는 침대에서 너 나를 사랑한다고 소리쳤댔다.”
고영이 그윽한 눈길로 리중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런 일이 있었어? 난 왜 하나도 기억이 안날가?”


6

동지날, 리중은 삼촌에게 청가를 맞지 않고 오스트랄리아로 유람을 떠났다.
삼촌의 광고회사에서 그냥 일만 하다가는 질식하고말것 같았던것이다. 그래도 일은 끊이지 않고 들어왔고 일을 맡을 때마다 리중은 창의력이 점점 못해지는것을 느꼈다. 그야말로 머리속에 있는것을 깡그리 털어내도 뾰족한 수를 떠올릴수 없었다. 리중은 스스로가 초라해보였다. 어쩌면 자기야말로 자기가 그렇게도 싫어하는 자기의 고물차 마고탄처럼 몰면 몰수록 모병이 생기는것 같았다.
리중은 수도공항에서 삼촌에게 전화를 걸어 오스트랄리아에 가서 며칠 바람을 쏘이다오겠다고 말했다. 뜻밖에도 삼촌이 관심조로 물었다.
“너, 오스트랄리아돈이 있니? 나에게 만원이 있는데, 떠나기전에 말이라두 하지.”
비행기는 싱가포르에서 5, 6시간을 체류한후 다시 날게 되여있었다. 리중은 싱가포르공항에서 조용히 리륙시간을 기다렸다. 공항대기실에 abc 세개의 슈퍼마케트가 있었지만 리중은 웬지 돌아보고싶은 흥심이 없었다.
평소에 리중은 늘 팽이처럼 돌아쳤다. 아침에 눈을 떠서부터 밤에 잠자리에 들 때까지 리중은 어느 한순간도 머리속에서 일을 놓아본적이 없었다. 잠이 들어서도 낮에 처리하던 일이나 근심하던 일이 꿈에 나타나 리중을 괴롭히군 했다. 꿈에서는 무슨 일을 처리해도 그렇게 순리롭지가 않았다. 지어는 악몽에 시달리다가 깨여날 때도 있었다.
리중은 대기실에 있는 서점을 잠간 둘러보았다. 눈길이 일본의 저명한 작가 와타나베준이치의 《부휴(浮休)》에가 멎었다. 리중은 책 제목이 이상하다고 생각되여 몇장 번져보았다. 머리말에서 “부휴”에 대하여 해석을 했는데 그 내용이 리중의 호기심을 끌었다. “인생의 짧음과 세속의 무상함”을 이야기하고있었다. 글은《장자 각의》에 나오는“삶은 뜬 구름 같은것이요, 죽음은 휴식 같은것이여라.” 라는 구절을 인용하고있었다.
헌데 사람은 왜 늙어야만 “뜬 구름”이요, “휴식”이요 하는 말에 담긴 뜻을 깨달을수 있는것일가?
글의 마지막부분에는 당조의 대시인 백거이의 시 한구절이 인용되여있었다.
“사람은 천지의 손님이거늘 모든것이 뜬 구름이요, 휴식과 같아라.”
작자는 “뷰휴”의 뜻을 더 잘 설명하기 위하여 이런 통속적인 해석을 덧붙였다.
“세상의 모든것은 조금만 시기를 늦추어도 가버리게 된다. 하기에 눈앞의 생활을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
리중은 글을 읽으면서 머리속에 무용보도원을 데리고 병원에 가서 인공류산을 시키던 그날을 떠올렸다. 수술을 끝내고 복도에 나온 그녀의 얼굴은 백지장처럼 창백해있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리중은 정말 “우리 결혼합시다.” 하고 말해주고싶었다. 그때 그녀가 입을 열렀다.
“그쪽, 나에게 배상해야 해요. 난 이렇게 내 자식을 아무 대가없이 버릴수 없어요.”
리중은 그녀를 생각하기만 하면 고영이 떠올랐다. 그날, 리중과 함께 물밴새를 먹은후 고영은 어디론가 출장을 갔었다. 외지로 연수하러 가는데 짧아도 반년은 걸릴것이라고 했다. 고영은 그후 리중에게 메쎄지를 한번 보내왔다.
“너를 다시 보게 되여 참 기쁘구나.”
리중이 오스트랄리아로 떠나오기전에 황황이 전화를 걸어와 이렇게 말했다.
“끝내 해방됐어요. 나도 그쪽처럼 싱글이예요.”
리중은 황황에게 진심으로 아버지곁에 돌아가라고 권했다. 그러자 황황이 또박또박 이렇게 대답했다.
“전 용서할수 있는 일을 극력 용서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예요. 하지만 용서할수 없는 일은 영원히 용서할수 없어요.”
리중은 아버지에 대한 황황의 원망이 얼마나 큰가를 짐작할수 있었다. 그렇게 친아버지마저 용서할수 없는 녀인과 함께 한다는것은 상상만 해도 몸서리가 쳐지는 일이라고 생각되였다.
비행기가 다시 리륙했다. 비행기안에서 리중은 계속《부휴》를 읽었다. 마지막부분을 읽을 때 비행기가 들썽이기 시작했다. 리중은 금시 토할것만 같아 비닐봉지를 찾아들었다. 하지만 내용물은 올라오지 않았다. 리중은 더 이상 책을 읽고싶은 생각이 없어서 휴지통에 던져넣었다. 와타나베준이치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사실 리중을 크게 감동시키지 못했던것이다. 와타나베준이치 역시 자기만의 고루한 사상으로 남녀주인공의 사랑을 다루고있었다.
남자주인공 구와 녀자주인공 아신은 진정으로 서로를 사랑했지만 결국은 갈라지게 되였고 각기 다른 사람을 만나 결혼한다. 몇년후에 다시 만난 그들은 또 다시 사랑을 불태우게 되는데 그때 아신이 불치의 병에 걸린다. 세속관념의 압력과 가정에 대한 책임 앞에서 구는 아신과 갈라져야 하는가? 아니면 잡아줘야 하는가? 구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결과는 식상하게도 “부휴”라는 책 제목을 그대로 그리고있었다.
현창밖으로 펼쳐지는 파아란 하늘을 내다보면서 리중은 이제 얼마만한 시간을 진정 자기만을 위해 살수 있을가 하고 생각해보았다. 리중은 전에 쉬임없이 높뛰던 자기의 심장에 안정을 찾아주고싶었다. 이제 다시 번잡한 일에 몸을 맡기면 언제 다시 시간을 내서 바깥의 신선한 공기를 마실수 있고 나무에서 지저귀는 새들의 노래소리를 들을수 있을가싶었다.
리중의 사무실에는 큰 베란다가 있었는데 거기에 나서면 큰 나무 한그루를 볼수 있었다. 나무는 잎이 무성했다. 전에 일이 바쁠 때면 그 나무에서 까치가 지저귀여도 내다볼 겨를이 없었다. 리중은 자기가 너무 일에만 빠져있고 사회교제에만 열중한다고 생각했다.
친구들의 모임이 두 곳에 있으면 그는 그 두곳 모임에 모두 참가하려고 노력했다. 누구도 노엽히고싶지 않았던것이다. 하여 리중은 한 곳에 잠간 앉았다가는 인차 다른 곳으로 달려가군 했다. 리중은 힘들어 죽을 맛이였지만 친구들은 그런 작법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어느날 한 친구가 리중에게 물었다.
“너, 말해봐라. 그렇게 죽을둥 살둥 모르고 뛰여다니는 리유가 뭐니?”
리중의 첫 려행코스는 황금해안이였다. 리중은 려행사에 편입된것이 아니라 자유려행형식을 택했었다. 호텔은 리중이 인터넷에서 예약한것이였다. 리중은 행리를 들고 6층에 있는 방에 들어섰다. 베란다에 나서면 바다를 볼수 있었다. 침대는 놀라울 정도로 컸는데 여간만 폭신폭신하지 않았다. 리중은 샤와를 하고 여름옷을 갈아입은후 호텔을 나가 모래사장을 천천히 거닐었다. 바다는 눈이 시리도록 푸르렀다. 수많은 갈매기들이 시름없이 바다우를 날고있었다. 리중은 자기가 살고있는 그 도시의 호수를 머리속에 떠올렸고 그 호수의 수면을 날아예던 물새들을 상기했다.
고영의 모습이 눈앞을 스쳤다. 석달동안 고영은 아무 소식도 없었다.
배가 고팠다. 그제야 리중은 이미 저녁때가 지났다는것을 상기했다. 비행기에서 내리기전에 기내식을 먹은게 전부였다. 리중은 발이 가는대로 작은 음식점을 찾아들어가 창가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바다가 창문너머로 보여왔다. 센 파도가 이는것 같았다.
리중은 소갈비를 주문하면서 숙련되지 않은 영어로 6할쯤 익혀달라고 부탁했다. 웨이터가 크림수프는 필요하지 않는가고 물었다. 리중이 일시 결정을 하지 못하고 머멋거리고있을 때 뒤에서 한 녀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셔봐, 버섯을 넣었거든. 쏘세지도 들어있구.”
리중이 소리나는쪽에 머리를 돌리다가 깜짝 놀라 굳어졌다. 고영이 땅에서 솟은듯 그곳에 서있었던것이다. 리중은 마치도 영화나 텔레비죤드라마의 한 장면을 촬영하고있는것만 같이 느껴졌다.
“이게 웬 일이야?”
“웬 일이긴, 너 내가 황금해안에 와 연수를 하고있는줄을 몰랐니? 너 특별히 황금해안으로 나를 찾아온게 아니였니?”
고영은 자리에 앉아 숙련된 영어로 웨이터와 뭐라고 이야기를 했다. 그후 리중에게 눈길을 돌리며 말을 이었다.
“넌 이미 내가 이 호텔옆에서 연수를 하고있고 이 음식점에서 음식을 먹는다는것을 다 알고있었던거야, 그러면서 웬 일이냐구?”
리중은 뭐라고 변명을 하려다가 그만두었다. 아무리 우연이라고 해석해도 고영이 믿어주지 않을것이라고 생각했던것이다.
저녁을 먹은후 두 사람은 모래사장을 거닐었다. 그들은 손에 손을 잡고 바다에 떨어져내리는 태양을 바라보았다. 지나가던 화인이 다가와 배에 올라 일몰을 감상하면 더 아름답다고 꼬드꼈다. 그리고 배우에 맛이 좋은 술도 있다고 덧붙였다. 리중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많은 아름다움이 동시에 존재하면 좋지 않답니다.”
석양이 해면에 동동 떠있었다. 하늘은 더 이상 떨어지는 태양을 잡을수 없었던지 손을 놓아버렸다. 석양은 바다에 몸을 던졌다. 비록 석양은 볼수 없었지만 그가 남겨놓은 붉으스름한 여광은 여전히 눈길을 끌었다.
몇몇 젊은이들이 모래사장에서 원반을 뿌리고있었다. 리중도 그들과 함께 원반을 뿌리고싶어 다가갔다. 리중이 뿌린 원반이 바다에 날아들었다. 리중은 바다에 들어간 원반을 건져올렸다. 그 순간 리중은 바다에 떨어진 석양을 건져올리는듯 가슴이 활랑거렸다.
호텔의 폭신폭신한 침대우에서 고영이 흥분하여 가슴을 떨면서 “사랑해, 사랑해!” 하고 소리쳤다. 리중이 차분하게 말했다.
“너, 지금 나를 사랑한다고 소리치고있다.”
고영이 말했다.
“사랑해, 진정 사랑한다구!”
밤이 깊어갔다. 두 사람은 베란다에 앉아 등불이 깜빡이는 밤바다를 바라보았다. 고영이 말했다.
“우연이라구? 이 부근에 몇십개나 되는 음식점이 있는데 우리가 딱 그곳에서 만날수 있었다는게 우연이라구? 어디 내가 믿을수 있게 리유를 말해봐.”
“없어, 리유 같은게.”
고영이 리중에게 키스를 퍼부었다. 숨박히는 그 순간이 지나자 리중이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리유를 알아야겠어. 왜 다시 나를 좋아하게 됐는지?”
고영이 속삭였다.
“더 좋은 사람을 만날수 없는게 아니야. 리유는 내가 이미 너를 만나버렸다는거야. 내 마음을 움직여 놓은 사람이 없는게 아니야. 리유는 네가 이미 내옆에 나타났다는거야… 나는 더 이상 다른 사람을 사랑할수 없어. 나는 이미 어떻게 너를 아껴야 한다는것을 알아버렸거든. 우리가 다시 만났다는건 쉽지 않은 일이야. 내가 점 찍은 사람을 나는 절대 포기하지 않을거야. 세상에 좋은 사람이 많고도 많지만 나는 너 하나만으로 만족할거야!”


리치방(李治邦), 천진시군중예술관 관장. 중국작가협회 회원. 천진문학원 계약작가,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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