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크리트길량옆에 아담하게 가꾸어진 파아란 풀밭을 볼 때마다 나는 그 작은 돼지를 떠올린다.
보잘것 없는 그 작은 돼지가 세상에 무서운것 없다는듯 사람그림자 하나 얼씬하지 않는 풀밭을 지나서 혼자 숙영지로 돌아오군 했던것이다.
나는 지금도 해빛아래에서 반짝이던 연분홍 몸뚱이를 가진 그 작은 돼지를 똑똑히 기억하고있다.
모종의 의미에서 볼 때 젖소는 두가지 부류가 있다.
그중 한가지는 송아지가 먼저 젖을 빨아 먹은후에야 젖을 짜게 하는 류형이다. 만약 송아지가 젖을 먹지 않았다면 어떤 일이 있어도 어미소는 사람들이 젖을 짜지 못하게 한다.
다른 한가지는 송아지가 젖을 빨지 않았는데도 사람들에게 젖통을 내주는 류형이다.
내가 초원에 있을 때 거주했던 빠투네 집 젖소는 첫 류형에 속했다.
빠투네 집에 살 때 나는 처음으로 눈물을 흘리는 소를 보게 되였다.
그날아침, 금방 태여난 송아지가 무슨 영문인지 우리안에 죽어있었다. 내가 밖에 나갔을 때 검은 점과 흰 점이 얼룩진 어미소가 담장 한구석의 나무기둥에 매여져있었는데 얼굴에서 콩알같은 눈물이 둘둘 굴러내렸다.
어미소는 그때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있었다.
그 장면을 보기전에 나는 동물도 눈물을 흘린다는 말을 들은적이 있었지만 그저 사람들이 해보는 소리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눈앞에서 펑펑 눈물을 쏟고있는 어미소를 보면서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을수 없었다. 눈물을 통해 비감한 정서를 표달하는것을 보면 소도 감정이 풍부한 동물인가싶다.
내가 빠투네 집에 거주할 때 마신 우유차는 모두 그 젖소의 젖으로 만든것이였다.
송아지가 죽은 그날아침부터 어미소는 젖을 내지 않았다. 빠투의 안해가 갖은 방법을 다해보았지만 아무 소용도 없었다.
어느날, 빠투는 마두금(马头琴)으로 흐느끼는듯 쓸쓸한 곡조를 연주했고 그의 안해는 그에 걸맞는 몽골족민요를 불렀다.
그것은 유구한 력사를 가진 권내가(劝奶歌)였다.
목민들은 늘 이런 방식으로 새끼에게 젖을 먹이지 않으려는 어미들의 모성을 자극해서 젖을 내게 했던것이다.
하지만 그 곡조도 어미소에게는 아무 작용이 없었다.
빠투는 어미소가 그냥 그 상태대로 나가면 꼭 병에 걸릴것이라고 근심했다.
빠투는 사실 식구들이 마실 소젖이 없어 근심하는것은 아니였다. 빠투네 소우리에는 금방 새끼를 낳은 어미소가 두마리나 더 있었다.
며칠간, 비통에 젖어있던 어미소는 차츰 투우장에서 칼에 찔린 투우처럼 미쳐날뛰면서 보이는 물건은 모두 떠박질렀다.
빠투는 별수없이 어미소를 우리에서 끌어내여 울안 한구석에 단독으로 매놓았다. 어미소는 조각상처럼 외롭게 서서 울밖의 세상을 멀거니 바라보았다. 어미소는 세상에 대한 모든 흥미를 잃은것 같았다. 지어는 밤에 미친듯이 달려들어 피를 빨아대는 등에를 쫓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송아지가 죽은후 네번째 아침, 내가 아침밥을 먹고 강변에 나가려고 할 때 어미소가 송아지를 단 다른 두마리의 어미소와 함께 울안을 벗어나 방목장으로 가고있었다.
나는 빠투에게 어미소가 안정을 찾았는가고 물었다. 그러자 빠투는 나를 바라보며 빙그레 웃더니 입을 열었다.
“그렇소, 아침에 젖을 짰다오.”
“참 좋은 일이군.”
나의 말에 빠투가 동을 달았다.
“참 알고도 모를 일이요. 저놈이 새끼를 잃고도 저렇게 빨리 젖이 돌아서다니.”
그날 나는 많은 일들을 처리하느라 더 이상 어미소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날밤, 나는 일기를 쓰고난후 울안에 나가 산책이나 하자고 생각했다. 나는 손전지를 들고 밖에 나섰다. 교교한 달빛이 울안에 부드러운 빛을 뿌려주고있어 손전지가 필요 없었다.
얼마나 오래동안 별구경을 하지 않았던가?
하늘에는 뭇별들이 바다를 이루고있었다. 나는 수많은 별자리중에서 몇개밖에 알지 못했다.
그때 갑자기 무슨 소리가 들렸다. 둥지에 돌아온 제비의 즐거운 비명 같았다. 아니, 든든히 닫지 않은 수도꼭지에서 물이 새는 소리 같기도 했다.
그 소리는 소우리의 한쪽 구석에서 들려왔다.
바로 그때 초원의 지평선에서 아름다운 람색의 불꽃이 튕겨올랐다. 나는 어딘가 긴장해 났다. 하지만 나는 스스로에게 그 불꽃은 초원에서 흔히 볼수 있는 린광에 지나지 않는다고 귀띔했다.
나는 손전지를 켜들고 소우리안의 구석구석을 비춰보았다. 나는 그 불빛을 빌어 영원히 잊을수 없는 그 장면을 보게 되였다.
그때, 송아지를 잃은 어미말은 엎드려 저녁에 먹은 먹이를 반추하고있었다. 놀라운것은 그 장면이 아니라 빠투네가 기르는 흰털의 작은 돼지가 어미소의 젖을 빨고있다는것이였다.
작은 돼지는 앞다리를 꿇고 앉아 열심히 소젖을 빨고있었다. 어미소도 작은 돼지도 내가 자기들을 바라보고있다는것을 눈치채지 못하고있었다.
어미소는 손전지의 강렬한 빛에 눈이 부신지 두눈을 껌뻑이다가 옆으로 머리를 돌렸다.
나는 손전지를 끄고 높뛰는 가슴을 진정하느라 애썼다.
어미소가 돼지에게 젖을 먹인다는것은 어느모로 보나 납득이 잘 가지 않는 일이였다.
나는 다시 손전지를 켜서 어미소와 작은 돼지를 비춰보았다. 작은 돼지는 그때까지도 소젖을 빨기에 여념이 없었다. 어쩌면 흘러간 동년의 그 행복했던 나날로 돌아간듯싶은 모양이였다.
나는 기적과도 같은 그 장면을 두고 상상을 펼쳐보았다.
어느날, 송아지를 잃고 비통에 빠져있던 어미소가 지쳐서 우리바닥에 엎드려있는데 세상 무서운줄을 모르는 그 작은 돼지가 우연히 어미소의 젖꼭지를 발견하고 달려들었을것이다. 작은 돼지가 젖꼭지를 빨자 어미소는 서서히 잃어가던 모성의 본능을 다시 찾게 되였을것이다.
그것은 새끼를 잃은 어미늑대가 엄마를 잃은 어린 아이에게 젖꼭지를 물려 키웠다는 전설과도 같은 맥락일것이다.
이튿날아침, 나는 빠투네 부부에게 이 일을 말해주었다. 나의 말을 듣고도 빠투네 부부는 믿지 않는 눈치였다.
작은 돼지는 여러 사람이 보는앞에서 어미소의 젖을 빨려고 하지 않았다.
빠투네 부부가 못 믿겠다는듯 나를 보며 머리를 저었다. 그러자 나도 어제밤에 본 모든것이 꿈인양 아리숭해졌다.
우리안에 있던 다섯마리의 소가 방목장으로 풀을 뜯으러 나갈 때 놀랍게도 작은 돼지가 따라나섰다. 나와 빠투네 부부는 놀라운 눈길로 작은 돼지가 어미소의 곁에 딱 붙어서서 작은 언덕을 지나 초원심처로 들어가는것을 보았다.
그야말로 믿기 어려운 장면이였다. 나는 작은 돼지가 머리에 뿔을 이고 돌아올가봐 겁이 났다.
그날, 나는 자전거를 타고 외출을 하려다가 앞바퀴가 터진것을 발견했다. 뾰족한 작은 양뼈가 바퀴에 박혔던것이다.
바퀴를 다 수리하니 오전 아홉시가 넘어있었다. 초원의 오전 열기가 확확 뿜겨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무더위로 하여 몹시 기분이 처졌다.
나는 자전거를 타고 강변으로 나갔다. 바로 그곳에서 나는 또 한번 깜작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아물아물 피여오르는 아지랑이로 하여 나는 내가 잘못본것이라고 생각했다.
연분홍 털을 가진 작은 돼지가 타박타박 걸어오고있었던것이다.
망망한 대 초원에서 늑대 한마리가 달려온다면 말 한필이 뛰여온다면 지어는 소 한마리가 걸어온다면 그렇게 놀라지는 않을것이다. 하지만 내 눈앞에 나타난 그놈은 연분홍 털을 가진 작은 돼지였다.
나는 도무지 믿고싶지 않았다.
하지만 작은 돼지는 그렇게 당당해보였다. 그렇게 당당한 걸음으로 초원에 있는 숙영지로 돌아오고있었던것이다.
그 장면을 띄워본것은 나 혼자가 아니였다. 백양나무아래에 서서 뻐스를 기다리던 그 두 사람도 분명 그 장면을 보았던것이다. 그들도 작은 돼지에게 호기심을 느끼는것 같았다. 그중 한 사람은 그 사실을 증명해보려는듯 작은 돼지의 뒤를 한참이나 쫓아가며 큰 소리로 뭐라 웨쳐댔다.
뻐스가 백양나무아래에 멈춰서자 그 두 사람은 뻐스에 올랐다. 나는 사라져가는 뻐스를 바라보면서 그 두 사람은 긴긴 장거리려행에 흥미로운 화제를 찾게 되였을것이라고 생각했다.
그후 작은 돼지는 당당하게 소우리에 자리를 옮겼다.
소무리가 숙영지로 돌아올 때면 작은 돼지는 깡충깡충 뛰여나가 어미소를 마중했다. 어미소도 머리를 숙이고 작은 돼지를 살랑살랑 핥아주었다.
우리에 들어가 어미소가 엎드리면 작은 돼지는 앞다리를 꿇고 앉아 젖꼭지를 빨았다. 소문을 듣고 모여온 애들이 그 장면을 보고 놀라 두눈을 올롱하게 뜨고 쯧쯧쯧 혀를 찼다.
매일아침, 작은 돼지는 어미소를 따라 방목장으로 갔다가는 해가 중천에 걸리기도전에 혼자서 숙영지로 돌아왔다.
그해 늦여름, 내가 초원을 떠날 때까지 작은 돼지는 본분에 어울리지 않는 어미소와의 동거를 계속하고있었다.
초원에 늑대가 출몰한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작은 돼지는 행운스럽게도 한번도 늑대를 만나적이 없는것 같았다.
이듬해, 나는 다시 초원으로 가서 빠투네 집을 찾았다. 나는 문에 들어서기 바쁘게 빠투에게 작은 돼지가 잘 자라는가고 물었다.
“잡아 먹었소.”
빠투가 주저없이 대답했다. 나는 문뜩 커다란 실의감을 느꼈다. 내 표정이 몹시 흐려있었던지 빠투가 물었다.
“왜 그러오?”
“정말 잡아 먹었단 말이요? 그 돼지를.”
“그럼 정말이지. 그놈의 고기가 참 고소했다오. 다른 돼지고기들은 비교도 못할만치.”
나는 작은 돼지가 큰 돼지로 성장했다는것을 잊고있었던것이다. 큰 돼지로 성장한 “작은 돼지”는 필경 여느 큰 돼지들이 맞는 운명을 빗겨갈수 없었던것이다.
그놈이 비록 소젖을 먹고 자란 돼지일지라도.
그놈은 망망한 초원을 수없이 홀로 지나면서도 늑대에게 잡히우지 않았지만 사람들의 식탐은 벗어날수 없었던것이다.
나는 어미소에 대해서도 물었다.
빠투네가 작은 돼지를 잡아 먹은후 어미소는 또 거칠게 변하여 사람을 몇이나 상하게 했다고 한다. 원성이 잦아지자 빠투는 어미소를 팔아버렸다는것이다…
나는 지금도 가끔 그놈들을 머리에 떠올리군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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