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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최동일 장편소설-천사는 웃는다

꿈꾸는 천사들
2010년 03월 10일 15시 12분  조회:1971  추천:0  작성자: 동녘해
꿈꾸는 천사들

군이는 잠결에 아렴풋이 들려오는 전화벨소리를 들었다. 꿈인가? 생시인가? 군이는 흐리터분한 잠길을 헤치며 힘겹게 눈을 떴다. 전화벨소리는 계속 울리고있었다. 군이는 간신히 일어나 수화기를 손에 들었다.
<<군이니?>>
전화 저쪽에서 석쉼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아버지, 이른 새벽에 어쩐 일이세요?>>
<<자는 걸 깨웠구나. 어머니의 일차 수술이 방금 끝났다. 얼굴에 화상이 심해서 먼저 덴 자리를 제거하고 새살이 돋아난 다음 2차수술을 해야한다는구나.>>
<<어머니가 몹시 힘들었겠네요.>>
군이가 일어나 앉아 정신을 추스리며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전신마취를 해서 괜찮다고는 하더라만, 오늘 너희 반 주제반회가 있지? 수술이 끝나구, 시름이 활 놓이니 피뜩 생각나서 전화했다. 미안해서 어쩌니? 군이야.>>
군이는 이국타향에서 아픈 안해를 병실에 눕혀놓고 자식을 근심하는 아버지의 심정을 알것같았다.
<<괜찮아요, 아버지. 시름을 놓으세요.>>
<<소학교에서의 마지막 <6.1>절이라는게 얼마나 기념할만한 순간인데. 이런 뜻깊은 명절을 기념해서 조직한 주제반회에 참가하여 우리 군이를 응원해주자고 했는데. 참…>>
아버지께서 말끝을 흐리셨다.
<<괜찮아요. 아버지, 할머니께서 학교에 오신다고 했어요. 아버지, 저 잘 할게요. 시름 놓으세요.>>
군이가 일부러 목소리에 힘을 넣어 말했다.
<<그래 아버지는 믿는다.>>
군이는 아버지께서 밝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시느라 애쓰시는 모습을 보는듯싶었다.
오후 3번째 시간이 끝나서 나가보니 많은 학부모들이 벌써 복도에 와서 기다리고있었다. 평소에 얼굴이 익은 분들도 있고 초면인 분들도있었다. 군이는 그속에서 손쉽게 할머니를 발견했다. 군이는 할머니 옆으로 다가갔다
<<할머니, 일찍 오셨네요.>>
<<군이야, 어쩌니? 다른 집에서는 여럿이 왔건만… 넌, 이 귀신 같은 할미밖에 없어서…>>
<<괜찮아요. 할머니, 전 얼마든지 잘 할수있어요.>>
군이는 할머니의 손을 꼭 잡았다. 꺼슬꺼슬한 할머니의 손에는 온기라곤 없었다. 얼굴에 근심이 폭 담겨져있는 갸냘픈 할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군이는 손처럼 얼어있을 할머니의 마음을 보는듯싶었다.
<<6.1>>절맞이주제반회는 오후 3시에 시작되였다. 학교의 령도선생님들이며 학부모들까지 참석을 하게 된데서 주제반회는 교실이아니라 학교의 다공능실에서 진행되였다. 교실보다는 2배나 큰 곳이였지만 발디딜틈이 없이 사람들로 붐볐다.
군이는 이번 주제반회를 위해서라도 마음을 크게 먹고 자기의 정서를 잘 조절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은경이를 제외한 48명의 동학들이 모두 주제반회에 참석했다. 운동복으로 된 하늘색 교복을 차려입은 동학들이 군이의 구령에 따라 먼저 학교 령도와 학부모들에게 대례를 올렸다.
교실에서는 우뢰와 같은 박수소리가 터져올랐다.
군이는 긴숨을 한번 들이쉬고는 천천히 또박또박 서두를 뗐다.
<<6년전 우리는 엄마의 손에 이끌려 도심소학교라는 이 배움의 요람에 들어서게 되였습니다. 우리는 이 곳에서 아,야,어,여… 우리 글을 익혔고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수자도 익혔습니다. 키도 크고 마음도 컸습니다. 비록 그 사이 이 곳에서 크고 작은 일들도 많이 겪었지만 우리는 서로 보듬어 주고 이끌어 주면서 천사같은 예쁜 마음으로 아름다운 성장이야기를 엮어 놓았습니다.>>
군이는 잠간 말을 멈추고 동학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모두들 빠알갛게 얼굴이 상기되여 있는것이 흥분을 가까스로 누르는 모양이였다.
<<소학교에서의 마지막 <6.1>절을 맞으며 우리는 가슴속 깊은곳에 간직해두었던 진정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자리를 마련하기로 했습니다. 그 이야기가 친구들사이의 우정에 대한 것이든지, 아니면 학교생활에서의 고민이든지, 그리고 또 가정생활로부터 오는 방황이든지. 이 모두가 우리들의 진정이라는것만은 믿어주십시오.>>
동학들은 순서대로 교단에 나가 소학교에서의 마지막 <<6.1>>절을 맞으며 가장 하고싶은 말들을 털어놓았다.
승화의 차례가 왔다. 승화는 벌써 좋아서 죽겠다는 표정이다. 입이 귀에 가 걸리고 원래 작은 눈이 거의 맞붙다싶이 되여버렸다. 교단에 오른 승화는 먼저 장내를 둘러보며 씩 웃음을 날리고는 학부모석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관중석에 앉아 있던 승화의 아버지와 어머니도 늦을세라 밝게 웃으며 승화에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규호도 연단에 올랐다. 그는 벌써 이마에 잔이슬이 번져가고 있었다. 규호는 주먹으로 이마의 땀방울을 쓱 닦고는 관중들을 바라보다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오늘 주제반회가 있다는것을 알고 아버지께서는 일하던 삼륜차를 그대로 끌고 여기에 오셨습니다. 평소 저는 말수가 적은 편입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한번도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하는 말을 못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여태껏 하지못했던 그말을 하고싶습니다.
아버지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규호는 주먹으로 눈굽을 찍으며 교단을 내려갔다. 강마른 몸매의 40대 사나이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규호는 아버지의 어깨를 꽉 끌어안았다. 아버지의 왜소한 어깨는 규호의 품에 채 차지도 못했다. 규호의 아버지는 뭐라고 한마디 말도 잇지 못하시고 눈시울만 붉혔다. 어금이를 꽉 깨물면서 규호의 볼에 수염이 꺼슬꺼슬한 자신의 얼굴을 연신 문다져주었다.
<<아버지, 커서 꼭 아버지께 효도하겠습니다. 아버지, 믿어주십시오.>>
장내에서는 오래도록 박수소리가 이어졌다.
미림이도 연단에 올랐다. 미림이는 천천히 자리에서 누군가를 찾는듯싶었다. 미림의 눈길은 학부모님들 좌석의 두번째줄에 앉은 소박한 차림의 녀인한테 가서 멎었다. 미림의 입술이 파르르 떨리고있었다.
눈굽에 맑은 이슬이 맺히더니 두볼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렸다. 교실은 바늘 떨어지는 소리마저 들릴듯 고요했다. 관중들은 숨을 죽이고 미림이를 바라보고있었다.
미림이가 갑자기 피터지게 소리쳤다.
<<엄마!>>
미림이는 교단을 내려 어머니를 향해 뛰여갔다. 어머니께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엄마!>>
미림이는 어머니의 품에 머리를 파묻고 주먹으로 어머니의 가슴을 팡팡 치더니 건듯 머리를 쳐들고 장내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이분이 저의 엄맙니다. 제가제일 제일 사랑하는 저의 엄맙니다.>>
미림이는 손으로 얼굴을 감싸쥐더니 엉엉 소리내여 울었다.
어머니는 세차게 파도치는 미림이의 어깨를 꼭 껴안아주셨다.
<<여러분, 앞에서 여러 동학들이 말했듯이 <6.1>절을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즐겁게 보내려는것은 너무나도 소박한 소망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 학급의 대부분 동학들은 이런 소망마저 이룰수가 없습니다. 저도 그중의 한 사람입니다.>>
군이가 관중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벌써 옷섶으로 눈굽을 찍고 계시는 할머니가 뿌잇하게 군이의 눈에 안겨들었다. 군이는 천천히 입술을 깜빨고 아래 말을 이었다.
<<이번 주제반회를 위해 저는 동학들속에서 한차례의 조사를 해보았습니다. 우리 반에는 현재 49명의 동학들이있습니다. 이중에서 아버지 혹은 어머니가 외국이나 큰 도시로 돈 벌러간 동학이 24명입니다. 그리고 아버지, 어머니가 리혼을 한 동학이 11명입니다. 그외 다른 원인으로 부모중 한분이 계시지 않는 동학이 2명입니다. 그러니 현재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생활을 하고있는 동학이12명밖에 되지 않습니다. 37명이나 되는 우리의 동학들이 아버지, 혹은 어머니를 부르며 그림움속에서 소학교에서의 마지막 <6.1>절을 보내야 합니다. 어머니, 보고싶습니다…>>
군이가 끝내 주먹으로 눈굽을 찍었다. 터지려는 울음을 가까스로 참으며 잘근잘근 입술을 씹었다. 동학들속에서 누군가 먼저 흐느끼기 시작했다. 삽시에 교실은 울음바다로 변해버렸다. 몇몇 녀학생들은 서로 목을 끌어안고 어깨를 들먹이기 시작했다.
주제반회는 무거운 기분속에서 끝났다…

군이네가 약속대로 뇌과병원 문앞에 모인것은 <<6.1절>>날 오후 2시경이였다.
군이는 먼저 핸드폰으로 지난번에 만났던 담당호사에게 련계를 했다.
생각밖으로 은경이의 정서가 오늘 매우 좋다는 것이였다.
담당호사가 은경이를 데리고 병원 정원으로 나왔다. 환자복을 입은 은경이는 그새 얼굴색이 파리하리 만침 창백해 있었다. 은경이는 작으마한 비닐주머니를 가슴에 꼭 껴안고 천진하게 까치뜀을 하며 달려왔다.
<<은경아,>>
동학들이 은경의 앞으로 뛰여가며 반갑게 불렀다. 동학들을 알아보는지 은경이는 얼굴에 함뿍 웃음꽃을 피우며 초점이 없는 눈을 껌뻑이고있었다.
<<은경아, <6.1>절을 축하한다.>>
동학들이 가지고 온 생화묶음을 은경에게 넘겨주었다.
은경이는 또 한번 벌씬 웃으면서 생화묶음을 받아들었다.
<<나는 천사다, 나는 천사 됐다.>>
은경이는 말하면서 품에 안고 있던 비닐봉지를 군이에게 내밀었다. 군이는 은경이로부터 제꺽 비닐봉지를 받아들었다. 비닐봉지 안에는 수십개의 종이학이 들어있었다.
<<나는 천사 됐다. 종이학을 내가 접었다. 학을 접으면 천사 된다.>>
은경이는 얼굴에 천진한 웃음을 띄우고 연신 중얼거리고 있었다. 담당호사가 설명해주었다. 지난번 군이네가 다녀간후 은경이는 심심하면 동학들이 보내준 편지를 침대우에 쫙 펴놓고 한장, 두장 세더라는 것이다. 하여 담당호사가 이 편지들로 은경이의 집중력을 키울수있지 않을가 싶어서 종이학을 접으면 천사가 되여 인차 병이 나을수있다고 일러주었던것이다. 과연 은경이는 담당호사의 도움밑에 날마다 종이학접기를 견지했다.
<<많이 좋아 졌단다. 정서를 조절하고 약물치료를 견지한다면 조만간에 완쾌될수있을것 같구나.>>
담담호사가 기쁨에 겨워 말씀해주셨다.
<<은경아, 힘내라, 넌 꼭 천사가 될거다. 그래, 넌 이미 천사가 된거야.>>
미림이가 은경이의 손을 꼭 잡으며 속삭였다.
<<너두 웃어봐! 천사는 잘 웃는거래! 천사의 웃음소리는 하늘로 날아가는거래. 천사의 앞에는 마귀가 오지 못하는거래. 스마일~ 히히히히히…>>
은경이가 갑자기 소리내여 웃음을 터뜨렸다. 창백한 얼굴에 어울리지 않게 목소리는 그처럼 맑고 청아했다.
<<그래, 우리는 이미 거뜬한 마음으로 새로운 출발을 시작하는 천사가 된거지!>>
군이가 머리를 끄덕이며 의미있게 말했다.
누군가 먼저 박수를 쳤다. 따라서 박수소리가 병원정원을 을 쩌렁쩌렁 울리며 퍼져나갔다. 저마다의 얼굴에 아름다운 미소가 피여나고있었다.
그랬다.
이들은 정녕 가슴속 밑자락에 묻어두었던 아픔도, 고민도, 비밀도 다 털어버리고 미궁과도 같은 사춘기를 헤치며 새로운 나래를 퍼덕이는 14살의 꿈꾸는 천사들이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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