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야? 너 다시 말해 봐라! 나하구 한번 붙겠다구? 하하하하…>> 승화는 어이없다는듯 군이를 건너다 보며 머리를 뱅뱅 돌렸다. 그리고는 옆에 있는 애들을 부르며 깔깔댔다. <<얘들아, 너희들도 방금 들었지? 군이가 나하구 붙어 보겠단다. 히히히… 옛날 영웅들처럼 말이다.>> 말을 마친 승화는 또 배를 잡고 돌아갔다. <<어쩔래?!>> 승화가 어떻게 나오든 군이가 짤막하게 한마디 했다. <<얌마, 그러다가 너, 그 얼굴이 파바다가 돼두 괜찮겠니?>> <<어쩔래? 정식으로 한판 붙자. 남자대 남자루, 일대 일루, 딱 단둘이서 말이다. 네가 지면 다신 나하구 깝대지 말구! >> <<그러다가 네가 지면?>> <<맘대루!>> <<어디서 붙을래?>> <<연집강변에서!>> <<그래, 오늘 한번에 네 얼굴을 피바다로 만들어 줄게.>> 승화는 어깨를 으쓱하며 큰 소리를 치고는 옆에 있는 친구들을 보고 말했다. <<너희들, 따라 오지 마라. 저 애가 단둘이 붙자잖아! 크크크… 랠 아침, 저 자식의 얼굴이 어떻게 변했나, 구경이나 해라.>> <<흥!>> 군이는 찧고 까불며 웃어대는 승화에게 코웃음을 날리고는 먼저 몸을 돌려 연집강변을 향해 씨엉씨엉 걸어갔다. 시내를 가로질러 흐르는 연집강은 학교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그래서 도심소학교의 애꾸러기들은 간혹 싸울 일이있으면 이렇게 선생님들의 눈을 피할수있는 연집강변으로 가군했다. 앞에서 당당하게 걸어가는 군이를 바라보며 승화는 흠칫 놀라움이 머리를 쳤다. (군이, 저 자식이 뭘 잘못 먹었나? 어쩜 나에게 결투를 걸어올수있을가? 반장이랍시구 누가 싸우는가를 살피다가 선생님께 고자질이나 하던 자식이… 그래 규호가 요즘 뒤를 봐주니 무서움이 없어졌는가? 참, 규호가 알면 어쩌지?) 이런 생각이 들자 승화는 속으로 규호가 께으름직해났다. 싸움기술뿐만아니라 덩치를 놓고봐도 자기가 규호의 상대가 아니라는것은 너무도 자명한 일이였다. 규호가 마음먹고 군이를 봐주자고 나서는 날에는 앞일이 재미없을건 뻔한 사실이였다. 하지만 일이 이 지경으로 발전한 시점에서 어떻게 빨뺌을 할수도 없었다. (어떻게 할가?) 군이에게 요즘 너무했구나, 하는 생각이 갈마들었다, 하지만 군이를 괴롭힌것이 자기 혼자의 잘못이 아니라고 믿고있는 승화였다. 다른 애들은 몰라도 군이에게는 꼭 그렇게 하고 싶었고 군이가 괴로와 하는것을 보는것이 통쾌하기만 했다. (흥! 나만 탓할게 아니지 뭐!) <<야, 임마!>> 승화가 소리쳤다. 그 바람에 군이가 걸음을 멈추고 머리를 돌렸다. <<얌마, 너 맞아두, 누구에게 말할내기 없기다.>> 먼저 다짐을 따서 군이의 입을 막아보자는 심사였다. <<누구에게 말해?>> 군이가 코웃음을 쳤다. <<선생님이나, 그리구 규…규호에게나.>> <<놀구있네, 흥! >> 군이는 승화를 쏘아보며 유치하다는듯 코방귀를 뀌였다. <<그렇게 자신이 없니? 그럼 후에는 나에게 납뜨지 마라. 내가 뭐 그냥 당하고만 있을것 같니?>> <<쳇, 납뜨지 말라구? 천만에. 네가 뭐 영웅이라도 된듯 싶냐? 이 바람난 나쁜놈의 새끼야.>> 승화는 째지게 군이를 쏘아보며 이사이로 욕설을 짜냈다. 그들은 드디여 연집강변에 도착했다. 모래불이 두툼하게 펼쳐진 곳이있었다. 군이는 몇번인가 여기서 친구들의 싸움을 말린적이있었다. 사실 자갈 한알 없는 순 모래불이라 그냥 엎어지고 뒹굴며 한판 붙기는 안성맞춤한 곳이였다. 모래불 밖에는 파아란 풀들이 가담가담 돋아나있고 그 옆으로는 폭이 서너메터가량 되는 강물이 시름없이 흘러가고있었다. 군이가 먼저 가방을 벗어 풀우에 던졌다. 승화도 가방을 벗어서 군이의 가방옆에 뿌렸다. 군이는 밖에 입은 교복을 벗어 가방옆에 놓았다. 그리고 힘을 주어 손가락을 꺾어보였다. <<얌마, 정말 붙는거지?>> 승화가 다짐을 따는듯 새삼스레 물어왔다. <<……>> 군이는 쓴웃음을 지으며 승화를 노려보았다. <<후회는 안하는거지?>> 승화가 이사이로 찍 침을 쏘며 빈정거렸다. <<얏!>> 군이가 별안간 승화를 향해 뛰여가서 주먹을 날렸다. 너무도 갑작스러운 타격이여서 승화는 미처 피하지못하고 입술에 한대 강타를 당했다. <<야, 시작두 없니? 너, 너, 너,>> 승화가 꺽꺽 거리는 사이 군이는 승화의 아래배를 향해 오른발을 날렸다. 승화가 날아오는 군이의 발을 두손으로 받아잡아 자기의 앞으로 당기며 오른발을 날려서 군이의 왼다리를 걷어찼다. 군이는 다리를 흠칫하다가 몸을 가누지못하고 쓰러졌다. 그 바람에 승화도 잡았던 군이의 오른다리를 놓으며 몸을 피끗했다. 승화는 살맞은 승냥이처럼 소리치며 넘어진 군이를 향해 덮쳐들었다. 군이는 어쩔새 없이 승화의 밑에 깔리고 말았다. 승화는 군이의 얼굴에 련속 주먹을 날렸다. 군이는 깔리운채로 연신 삿대질도 하고 죽어라 다리도 날려보았지만 떨어지는 승화의 주먹은 좀처럼 피할수 없었다. 군이는 어금이를 꽉 깨물며 두 눈을 꼭 감았다. 승화의 손바닥이 군이의 오른쪽 뺨을 쳤다. <<얌마, 이건 울아버지를 대신해서 복수하는 거다.>> 승화의 손바닥이 군이의 왼쪽 뺨을 때렸다. <<얌마, 이건 반장이라고 우쭐대는 너를 경고하는 거다.>> 승화의 손바닥이 군이의 두 뺨에 련속 날아왔다. <<나쁜자식, 넌 얼굴만 봐도 미워, 밉다구.>> 비발치듯 떨어지는 승화의 손바닥 세례를 받으며 군이는 온몸의 힘이 쑥 빠져버리는듯 무기력함을 느겼다. <<얌마! 나하구 붙겠다구? 흥, 어림도 없다!>> 승화는 다시 한번 군이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날리고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시뚝해서 한마디 했다. 그 순간 군이는 몸을 탈며 젖먹던 힘까지 다해 승화를 떨쳐버리고 벌떡 일어섰다. 눈깜짝할사이였다. 승화가 한쪽으로 벌렁 넘어갔다. 군이는 그러는 승화를 향해 벼락같이 오른발을 날렸다. <<악!>> 승화가 비명을 질렀다. 그러건 말건 군이는 승화를 타고 앉아 주먹을 날렸다. 승화는 군이를 떨쳐버리려고 악을 썼지만 비발치듯 떨어지는 군이의 주먹을 막느라 어쩔수가 없었다. <<얌마, 이건 터무니없이 날 모욕한 대가를 치르는거다.>> 군이의 손바닥이 승화의 오른쪽 뺨에 떨어졌다. <<얌마, 가면이 어디 있어 가면을 벗긴다는거니? 이건 널 정신차리라구 선사하는거다.>> 군이의 손바닥이 승화의 왼쪽뺨에 날아들었다. <<남의 자존심을 너무 건드리지 말았어야지, 그렇게 사는게 아니란 말야, 이 구렁아!>> 한참이나 치고 박고 하노라니 군이도 승화도 지쳐버렸다. 둘 다 맥을 놓고 모래불우에 큰 대자로 너부러졌다. 그제야 군이는 코등에서 오는 동통을 느꼈다. 군이는 손을 들어 코등을 만져보았다. 부은것 같았다. 코피가 터졌는지 손에 뻘건피가 묻어났다. 온몸이 땅속으로 잦아드는듯한 고통을 느끼며 군이는 두눈을 꼭 감았다. 승화도 입술에서 오는 모진 고통을 느꼈다. 입술쪽으로 손을 가져갔다. 아래 입술이 엄청 부어있었다. 승화는 신경질적으로 몸을 비탈며 침을 뱉었다. 뻘건 피가 침과 함께 뺕어져나왔다. 승화도 맥을 버리고 두 눈을 지긋이 감았다. 찰랑찰랑… 흘러가는 강물소리가 정적을 깨뜨리며 귀속을 파고 들었다. 군이는 살풋이 눈을 떴다. 파아란 하늘이 두 눈을 꽉 채우며 아름차게 안겨들었다, 시름없이 떠다니는 뭉게구름이 친근하게 느껴졌다. 삣쬬롱삣쬬롱… 이름모를 새들의 구성진 노래소리가 귀맛을 당겼다. 군이는 큰 일을 치르고 났을 때처럼 가슴이 개운해지는 자신을 발견하고있었다. <<승화야, >> <<왜?>> <<아프니?>> <<아니. 군이야, 나, 너에게 일부러 못되게 굴었다.>> 낮고 떨리는 승화의 목소리는 그처럼 생경스럽게 느껴졌다.
<<알어.>> 군이가 짧게 대답했다. <<근데 왜 하필이면 나야? 내가 반장이 돼서야?>> <<아니,>> <<그럼?>> <<……>> 승화가 잠간 입을 다물었다가 갈앉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꼭 알고싶니?>> <<궁금하거든.>> 군이가 승화쪽으로 몸을 탈았다. <<그래, 말할게. 건, 네가 너의 아버지의 아들이 돼서 미웠던거야.>> 승화의 목소리는 흐르는 고요와 함께 무척이나 자냥스럽게 들려왔다. <<뭐? 내가 우리 아버지의 아들이 돼서라구? 쳇, 그런게 어딨니?>> 군이는 모르겠다는듯 되물으며 벌떡 일어나 앉았다. <<정말이다, 너의 아버지가 우리 엄말 꼬시고있거든.>> 승화도 일어나 앉으며 진지하게 대답했다. <<뭐? 뭐라구, 그게…>> 군이는 승화의 말에 큰 타격을 받았는지 일시 말끝도 잊지 못하다가 소리쳤다. <<방금 뭐랬어? 울아버지가…>> <<내 눈으로 똑똑히 봤다. 너네 아버지가 우리 엄마하구 다방에서 나오는것을. 너처럼 얼굴이 하얀게, 잘 생기기는…그래서 너두, 너의 아버지와 같이 미워진거야. >> <<그… 그럴수가 없다. 그럴수 없어! 네가 잘못 본거야. 거짓말하는거야!>> 군이는 승화를 바라보며 바락바락 소리질렀다. <<정말이다. 울아빠가 한국에 나간지 3년철이거든. 내가4학년 후학기부턴가, 울엄만 편집선생님을 만난다며 가끔 늦게 들어왔어. 울엄마, 울아빠가 없는 사이, 시를 쓴다고 맨날 바빠. 지난학기부터는 그 차수가 너무 잦아지는거야. 지난 일요일 저녁, 내가 울엄마를 미행하다가 내 눈으로 똑똑히 봤다. 너의 아버지와 울엄마가 단둘이 다방에서 나오는걸.>> <<얌마, 개소리친다. 억지부리지 말어. 거짓말이다!>> <<못믿어? 흥! 내가 또 목격하면 그때 널 부를게. 그럼 믿겠니?>> 승화는 자신있다는듯 당당하게 말했다. <<못믿어, 뭘 믿으라구? 미쳤어?>> 군이는 별안간 허리를 굽혀 모래를 한웅큼 쥐여 승화에게 뿌렸다. <<너, 또야?>> 승화도 질세라 모래를 한줌 쥐여 군이에게 반격을 가했다. <<야, 이 구렁아, 너, 개소리지? 우리 아버지가… 그런게 어딨어?>> <<얌마, 애비처럼 나쁜 새끼, 속에는 개똥을 담구다니면서… 가면은 무슨 가면이야? 반장이라구? 얌마, 더럽다! >> 둘은 서로 욕설을 퍼부으며 또 다시 부등켜 안고 잡아먹지못해 으으렁 거리는 새끼호랑이들처럼 기갈을 뽑았다. 그러다가 누구라없이 손을 놓고 모래불에 몸을 맞겨버렸다. 군이는 분명 눈앞에서 란무하는 노오란 별들을 보았다. 마음은 뭐라고 말할수 없이 착잡해났다. 군이는 정말 믿고싶지 않았다. 아버지가 승화의 어머니를 꼬시느라고 다방에 다닌다는것은 있을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되였다. 분명 승화가 뭔가를 잘못 알고 저렇게 납뜨는 것이라 믿고싶었다. <<군이! 너, 안믿지? 꼭 믿을 때가 있을거야.>> 승화가 자기의 가방을 찾아들고 일어서며 말했다. <<난 너의 아버지가 밉다, 그래서 너두 밉구. 울엄마두 밉구… 울아빠 한국에서 일하다가 층집에서 떨어져 허리를 상했거든, 그래두 돈을 벌자구 돌아오지 못하고있단 말이다. 아빠가 불쌍해!>> <<아빠가 불쌍해!>>하고 말할 때 승화의 목소리에는 분명 눈물이 꼴똑 담겨져있었다. 군이는 머리를 푹 떨구고 힘 없이 강역을 따라 걸어가는 승화의 뒤모습을 멀거니 바라보았다. 코끝이 시큼해났다. 그 순간 승화의 모습은 몸서리 쳐 질 지경으로 거부감을 느끼게 하던 그 애꾸러기 모습이 아니였다. 어쩜 말못할 상처를 한가슴 가득 안고 정처없이 떠나가는 한마리 어린양처럼 측은하게 느껴졌다. <<벗겨라, 벗겨. 가면을 벗겨라! 홀라당 모두 벗겨버려라~>> 승화의 벗겨라타령이 강바람에 날아와 군이의 머리를 장대비처럼 내리쳤다. 알것같았다. 승화가 벗기라는 가면이 무엇이고 어째서 홀라라당 벗기라는 것인지를 군이는 알것같았다. (정말일가? 정말 아버지가 승화의 어머니를 꼬시고 있는것일가? 손님이 청한다는 날마다 승화의 어머니와 함께 있느라고 늦어진 걸가? 그렇다면 아버지, 어머니, 승화의 아버지, 승화의 어머니, 글구 승화와 나는 구경 어떻게 되는 걸가?) 엄마의 편지가 머리속에 또렷이 떠올랐다. 아렴풋이나마 그 모습이 머리속에 그려지고있었다. 군이는 고통스럽게 두 눈을 꼭 감았다. 외로움이 몰켜왔다. 전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외로움이였다. 어딘가에 홀로 버려진듯한 그런 외로움이 였다. <<개굴개굴개굴…>> 강역 풀숲 어딘가에서 청개구리의 울음소리가 슬프게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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