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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최동일 장편소설-천사는 웃는다

승화의 <<선물>>
2010년 03월 10일 15시 24분  조회:1756  추천:0  작성자: 동녘해
승화의 <<선물>>

길에서 미림이와 이야기를 하느라고 걸음이 처졌던 모양이였다. 교실에 들어서니 벌써 많은 동학들이 와서 자습을 하고있었다. 언제나 학급에서 다섯손가락 안으로 학교에 도착하던 군이가 늦게 온것이 이상한지 동학들의 눈길이 삽시에 군이에게로 쏠렸다. 그러는 동학들의 눈길을 피해 군이는 조용히 자리에 가 앉았다. 군이는 수학교과서를 꺼내서 책상우에 올려 놓은 후 가방을 책상안에 넣으려고 서둘렸다. 순간 군이는 책상안에 자그마한 함이 들어있는 것을 발견했다. 군이는 무심결에 그 함을 꺼내 들었다. 함은 뻘건종이로 포장이 되여있었는데 어딘가 거칠어 보였다.
<<뭘가? >>
머리를 스쳐지나는 생각이였다.
(나에게 소포를 보내 올 사람이 없는데… 혹시 엄마가?)
어제 받은 엄마의 편지가 떠올랐다. 하지만 엄마는 편지에서 소포에 대한 말은 없었다.
(그렇다면? 누가 보낸 선물일가? 쳇, 누가 나한테 선물을 보내?…)
군이는 야릇한 생각을 굴리며 뻘건종이를 뜯었다. 포장지속에서 종이함이 머리를 들어냈다. 운동화를 담았던 재질이 좋지않은 종이함이였다.
군이는 종이함 덮개를 열었다.
<<앗!>>
군이는 소리치며 종이함을 책상우에 털썩 떨어뜨렸다. 기겁한 군이의 소리에 전 학급의 눈길이 군이에게로 쏠렸다. 군이의 얼굴은 삽시에 백지장으로 변해버렸다. 넋을 놓고 앉은 군이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여기저기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군이야, 웬 일이니?>>
창문옆줄에 앉은 규호가 먼저 소리쳤다. 그러자 군이의 옆에 앉은 짝꿍이 종이함 덮개를 다시 열었다.
<<병아리다. 죽었다.>>
짝꿍도 종이함을 던지며 기겁을 해서 소리쳤다.
그 바람에 남자애들이 욱~하고 군이의 책상으로 모여들었다.
노오란털이 까실까실해진 병아리는 두 눈을 꼭 감고 죽어 있었다.
<<야~ 불쌍하다.>>
쏠랑대기 좋아하는 애들이 손끝으로 병아리를 이리저리 뒤척이며 소리쳤다.
<<군이야, 너 참 좋은 선물을 받았구나. 히히히>>
누군가 군이의 어깨를 톡 치며 놀림조로 말했다. 그때까지도 군이는 넋을 놓고 앉아있었다. 이때 누군가 소리쳤다.
<<누가 한짓이니?>>
모두들 깜짝 놀라며 목소리의 임자를 찾았다.
미림이였다. 그 바람에 동학들은 서로서로 눈길을 주고 받았다. 하지만 누구도 선뜻이 나서는 이가 없었다. 내가 왜 그런짓을 해? 하는듯한 표정들이였다.
<<정말 나쁘 잖니? 어떻게 하면 이런 장난을 할수있니? 이건 장난수준이 아니다. 악질이라구. 누가 군이를 보복하는거야.>>
미림이가 격분에 차서 쏘아댔다.
<<그게 있잖니? 보복이라는건 담이 작은 애들이나 하는짓이다. 담이 있으면 왜 광명정대하게 나서지못하니? <난 군이가 이래서 이런 짓을 했다!> 하고 말이다.>>
은경이도 뒤질세라 자리에서 일어나 열띈 목소리로 누군지 모를 <<병아리사건>>의 주인공을 질책했다. 동학들은 서로서로 누굴가 하고 눈길을 주고받았다. 군이에 대한 보복이라구? 군이에게 보복할만한 사람이 누군데? 동학들의 눈길은 하나같아 승화에게로 쏠렸다. 어제 있은 <<종이오리사건>>이 의심스러웠던것이다.
<<심승화, 네가 한짓, 맞지?>>
또 다시 미림이가 승화에게 소리쳤다. 그바람에 승화는 머리를 쳐들어 미림에게 눈길을 주었다.
<<옳구나, 심승화! 어쩜 너, 그런짓을 할수가 있니? 이건 장난이 아니다, 성품에 문제가 있는거라구!>>
과하다싶을 미림이의 반발에 동학들은 모두 손에 땀을 쥐고 사태의 발전을 지켜보고있었다. 원래대로라면 승화가 발딱 일어나 미림이쪽으로 뛰여가 멋지게 미림이를 한대 먹일수도 있다. 그러면 미림이는 얼굴을 싸쥐고 쿨적거릴것이고 그 다음은 미림이가 담임선생님께 고자질을 할것이고 또 그 다음은 담임선생님이 승화에게…
참 그럴듯한 대본이 짜여있는듯 싶었다. 하지만 오늘은 그 대본이 빗나가고있었다. 승화가 괴상한 소리로 타령을 시작한것이다.
<<엘라리꼴라리 우습드래요. 미림이가 사랑한대요. 반장이 입이 째져요. 엘라리 꼴라리…>>
<<승화, 너 정말, 왜 나하구 이러니?>>
군이가 끝내 정신을 가다듬고 승화에게 소리쳤다. 승화는 얼굴에 깨고소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당연하다는듯 빈정거렸다.
<<얌마, 몰라서 묻니? 난 너에게 할 일이 많거든, 크크크… 벗겨라 벗겨, 가면을 벗겨라. 홀라당 모두 벗겨버려라.>>
승화의 그 괴상한 <<벗겨라타령>>에 동학들의 눈길이 일제히 군이의 얼굴에 와서 꽂혔다. 군이의 창백하던 얼굴이 격분으로하여 빨갛게 타올랐다.
<<승화, 도대체 내가 너하구 무슨 원쑤가 있니? 정말 너무하는거 아니니?>>
<<얌마, 뭐가 너무하는거니? 너 그래 꼭 계집애들처럼 그렇게 선생님께 대놓구 고자질 해야 하니? 뭐라구? 옛날 영웅들처럼 이렇게 내리 뿌렸다구?… 그 병아리두 옛날 영웅들처럼 그렇게 죽었는가 잘 봐라. 군이, 임마, 넌 원래 나쁜놈의 자식이야!>>
승화가 군이에게 격한 감정을 한바탕 퍼부었다.
<<심승화, 너 정말 너무 하는구나. 이게 보복이라는거지. 흥, 보복은 소인배들이나 하는짓이다. 너, 어쩜 그럴수가 있니?>>
미림이가 못참겠다는듯 또 승화를 향해 시비를 걸어왔다. 하지만 승화는 듣는둥마는둥 그냥 자기의 엘라리꼴라리타령을 불러댔다.
교실 여기저기서 키득키득 웃음소리가 터져나왔다.
<<심승호! 너, 너, 너, 무슨 소리니? 미쳤니? 구렁이 같은게!>>
미림이가 악에 바쳐 바락바락 소리질렀다.
이때 창문 옆줄에서 불호령이 터졌다.
<<그래, 계집애가 무슨 말이 그리 많니?>>
불같이 소리친 규호는 미림이를 찍! 가로보며 씽~하고 승화의 옆으로 걸어가더니 다짜고짜 승화의 뺨을 갈겨주었다. 정말 눈깜짝할사이에 일어난 일이였다. 승화는 일시 뭐라고 반응을 보일사이도 없었다. 잠간후 승화가 살맞은 승냥이처럼 소리쳤다.
<<씨~ 규호, 왜 날 때려?>>
규호는 두말없이 다시 한번 손바닥을 날려 승화의 다른 쪽 뺨을 갈겼다. 승화는 더는 소리를 지르지 못했다. 얼굴은 단통 백지장처럼 창백해졌다. 그러는 승화를 보면서 규호가 낮으나 위엄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얌마, 구렁이! 네가 한일 맞지?>>
<<……>>
<<맞니?>>
<<오.>>
승화가 기여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어때?>>
규호가 짧게 물었다.
<<어…>>
<<어떠냐구?>>
<<어… 어, 좋아.>>
여기저기서 키득키득 웃음소리가 터졌다.
<<뭐가 좋다는거니?>>
<<아니, 잘못했다. 다신 안그럴게.>>
<<자식! 알면 됐어. 저 물건 쓰레기통에 던지구 와!>>
규호는 승화에게 호령하고는 제 자리로 돌아갔다. 승화는 넋을 놓고 퀭하니 교실북쪽 모서리를 응시하고있다가 규호의 불호령이 떨어지기 바쁘게 죽은 병아리를 담은 함을 들고 교실밖으로 나갔다.
승화는 정말 자기가 규호에게 무엇을 잘못했는지 생각나지 않았다. 그랬다. 사실 승화는 녀자애들이나 성정이 약한 남자애들을 애먹일뿐이지 곰같이 우직한 규호는 늘 피해다니며 조심하느라고 애쓰는 편이였다. 하지만 요즘에 와서 늘 규호하고 얽히는 일이 이상했다. 조용히 따져보니 규호하고 얽힐 때에는 번마다 사이에 군이가 끼여있었다. 생각같아서는 정말 군이를 통쾌하게 골탕 먹여주고 싶은데 안될것같았다. 규호라는 보호산이 군이를 지켜주고있다는 생각이 직감적으로 승화의 머리를 엄습했던것이다.
(웬일일가? 군이, 그 자식이 규호하구 친척이라도 되는가? 아닌데, 그런 말을 들은적이 없는데…하다면 규호는 왜 번마다 군이의 편을 들어 나를 혼내는걸가? 혹시 군이가 반장이돼서 잘 보일려구 그럴가? )
여기까지 생각을 굴리고는 승화도 스스로 도리머리를 했다. 공부도 수수하고 말수도 적은 규호가 뭔가를 바라고 반장에게 아첨한다는것은 도무지 있을수 없는 일 같았다.
그럼 무었때문일가?
알고싶었다. 그럴수록 승화는 오리무중으로 빠져드는 자신이 초라하게 생각되였다.
죽은 병아리를 쓰레기통에 던지고 교실에 돌아온 승화는 교실에서 흐르는 정적때문에 숨마저 쉬기 바쁠 지경이였다. 흐르는 정적속에서 동학들의 눈길이 일제히 자기를 주시하는것 같았다. 승화는 머리를 책상에 틀어박고 죽은듯이 두 눈을 감았다. 정말 재수없는 하루가 시작되는구나 싶었다.
하지만 이 날은 승화에게 너무 재수없는 날이 아니였다.
오후에 규호가 학교에 나오지 않았던것이다.
군이에 대한 복수심이 또 발동하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오후 첫시간이 끝나자 동학들은 대부분 운동장으로 나갔다. 승화는 군이가 자리를 뜨기를 기다렸다가 슬그머니 군이의 걸상에 접착제를 바르기 시작했다. 통쾌하게 접착제를 짜서 걸상에 바르며 승화는 자기의 총명함에 만족하는지 입가에 능글능글 웃음을 피워물었다.
승화의 가방에는 늘 접착제며 낚시줄이며 고무총이며 하는 잡동사니들이 들어있었다. 딱히 어디에 쓸곳도 없지만 늘 이렇게 가지고 다니다가는 오늘처럼 요긴할 때 서슴없이 쓰군했다.
휴식이 끝나 상학종소리가 울리자 군이는 그 줄도 모르고 들어오자 바람으로 주저없이 걸상에 앉아버렸다. 그러는 군이를 키져보며 승화는 키득키득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무시로 허리를 갑삭거리고있었다.
오후 두번째 시간은 담임선생님이 맡은 조선어문 시간이였다. 담임선생님께서는 교탁에서 아래를 쭉 흩어보다가 규호의 빈자리를 발견하고 입을 열었다.
<<규호가 왜 안보이니?>>
<<선생님, 규호의 가방은 그대로 있습니다.>>
규호의 짝꿍이 규호의 서랍을 살피며 먼저 대답했다.
<<첫시간부터 없어진거냐? 어디로 간다고 말은 없었니?>>
담임선생님은 규호에 대해 궁금한것을 묻다가 갑자기 눈길을 군이 쪽에 박았다.
<<반장, 너두 모르는거니?>>
<<네.>>
군이는 담임선생님께 대답을 올리려고 자리에서 일어나려 서둘렀다. 하지만 바지가 걸상에 착 달라 붙어서 도무지 일어설수 없었다. 그 바람에 옆에 앉은 짝꿍이 먼저 웃음보를 터뜨렸다.
<<히히히히…군이야, 너 바지가 걸상에 붙었다.>>
군이는 서지도 앉지도 못하고 몸을 웅크린채 난처한 표정으로 선생님을 응시했다. 담임선생님이 교탁에서 내려와 군이의 곁으로 다가갔다. 바지는 완전히 걸상에 달라붙어있었다.
<<웬 일이야?>>
담임선생님이 이상하다는듯 중얼거리며 힘을 주어 군이의 바지를 당겼다. 다행이 접착제를 바른 시간이 오라지 않아서인지 바지는 인차 걸상에서 떨어졌다.
<<어떻게 하다 이렇게 됐니?>>
담임선생님이 군이에게 물었다.
<<모르겠습니다. 지난 시간까지도 이렇지 않았는데…>>
<<누가 고의로 한짓이지? 그렇지. 누구의 짓이냐?>>
담임선생님은 교탁으로 올라가며 은근히 위압적인 목소리로 누구라 없이 둘러보았다. 교실은 물뿌린듯 잠누룩해졌다. 바늘떨어지는 소리마저 들릴것같았다.
군이는 비닐로 된 책가위를 걸상에 놓고 그 우에 조심스레 앉았다. 책가위가 바지에 달라 붙을가와 자주 엉덩이를 들썩거리다나니 도무지 시간집중을 할수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흉수는 역시 승화일것 같았다. 군이는 머리를 돌려 승화가 앉은 쪽을 건너다보았다. 승화는 제법 신난 모습이였다. 풀방구리에 쥐나들듯 가느다란 외까풀눈을 무시로 판들거리고있었다.
(정말 웬 일일가? 저 자식은 요즘 왜 나만 보면 잡아 먹지못해서 안달일가? 뭐? 나하구 할 일이 많다구? 어느 때까지 날 골탕 먹이겠다는 건가! 왜 나하고 그러겠다는 걸가?)
생각하면 할수록 승화에게 그저 당하고만있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갈마 들었다.
(그래, 그냥 이렇게 당할수만은 없어. 가만히 있을수록 저 자식은 더욱 나를 업신 여길거야. 어떻게 한다? 무슨 묘책이라도 없나? 아니야, 그래도 힘으로 붙어보는거야. 규호처럼 힘으로 완전히 저 자식을 정복해야만 다시는 나하고 집적거리지 못할거야. 헌데 규호는 왜 오후에 안 나왔을가?)
군이는 갑자기 규호가 생각났다. 새삼스럽게 규호가 고맙게 느껴졌다. 언제나 헛소리 한마디없이 무표정한 얼굴로 잠자코 있다가는 무시로 예고없이 엉뚱한 일을 저질러 내는 규호가 못내 신비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규호는 전학생이였다. 원래는 어느 작은 시골학교에서 공부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규호가 3학년에 붙는 해에 시골학교가 마사지는 바람에 대부분의 학생들이 현성에 있는 학교로 전학을 하게 되였다. 그때 규호의 아버지께서 움직일바 하고는 교육조건이 좋은 연룡도시로 옮기자면서 큰 마음을 먹고 집과 밭을 처분한채 연룡도시에 와서 자리를 잡았던것이다.
재작년 봄인가 학교옆에 있던 규호네 세집이 만기가 되여 북동으로 옮길 때 군이는 학급의 몇몇 간부들과 함께 규호네 이사를 거들어주러 간적이있었다. 온돌이라해야 사람 서넛이 겨우 누울수있는 작고 볼품 없는 집이였다. 자전거를 타고도 30분은 걸려야 학교에 도착할수있을것 같았다.
이게 군이가 알고있는 규호의 전부였다.
언제부터인지는 잘 생각나지 않지만 군이도 규호가 자기에게 남달리 잘해준다고 생각은 하고있었다. 하지만 군이는 아직 왜서일가는 생각해본적이 없었다. 따져보면 정말 고마운게 한두가지가 아니였다. 보다싶이 어제 있은 일도, 오전에 있은 일도 사실 규호가 나서지 않아도 무방한 일이였다. 하지만 고맙게도 규호가 나서는 바람에 군이는 그 일들을 얼굴이 서게 수습 할수가있었다. 이쯤 생각이 흐르자 군이는 그 어떤 보호산이 자기를 지켜주는듯한 든든함이 생겼다.
(그래, 붙어 보는거야. 승화, 그 자식하고 붙어 보는거야. 죽을 힘을 다해서 그 자식을 깔아뭉개는거야, 그 자식 앞에서 나의 자존심을 찾아내는거야.)
군이는 선생님의 강의는 듣는둥마는둥 속으로 비장한 결투를 계획하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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