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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최동일 장편소설-천사는 웃는다

새가 되고 싶다
2010년 03월 10일 15시 26분  조회:1965  추천:0  작성자: 동녘해
새가 되고 싶다

마음이 산란했다. 괜히 헤여 나오기 바쁜 미궁에 빠져드는듯한 기분이였다.
(과연 요즘 무엇이 잘못되여 가고있는걸가? 승화, 그 애는 도대체 나에게 무슨 감정이 새록새록 생겨나는것일가? )
군이는 착잡해지는 마음을 달래며 천천히 교실을 빠져나왔다. 시원히 바람이라도 쏘이고싶어서였다. 원쑤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군이는 운동장 남쪽에 있는 정자 앞에서 또 승화와 마주쳤다.
<<히야~ 반장어른~>>
승화의 목소리에는 진한 비아냥이 고름처럼 흐르고있었다.
군이는 모진 거부감을 나타내며 쌀쌀한 눈길로 승화를 쏘아보았다.
<<히히히…반장어른, 어디 한대 달콤히 태워 볼가?>>
승화는 어느새 담배 한대를 꺼내들고 군이의 코앞에서 못된 강아지 꼬리를 흔들듯 흔들어대며 키득키득 웃음을 날렸다. 칼끝으로 살짝 그어놓은듯한 승화의 두 눈에서는 분명 군이에 대한 도전같은것이 새여나왔다. 군이는 <<흥!>>하고 가볍게 코방귀를 뀌며 몸을 픽 돌려 정자 서쪽에 있는 백양나무숲을 향해 씨엉씨엉 걸어갔다.
군이는 정말 승화하고 입씨름을 할 생각이 없었다. 승화를 상대로 아웅다웅 한다는 그 자체가 바로 부질 없는 짓이라고 생각되여서였다.
<<하하하… 안되지? 너, 그럴 줄을 알았다! 어림도 없지, 벗겨라 벗겨, 가면을 벗겨라. 홀라당 모두 벗겨버려라. ~ >>
승화의 히스테리적인 목소리가 군이의 뒤통수를 때렸다. 군이는 울컥 뭔가가 가슴속 밑자락으로부터 올리미는 감을 느겼다.
(구렁이같은놈, 유치한놈, 짖을려면 짖으라지.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는거다.)
군이는 오싹 몸서리를 치며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니글니글 웃음을 흘리며 구렁이처럼 칭칭 감겨드는 승화의 얼굴이 징그러울 정도로 크게 눈앞에서 언뜰거렸다.
군이는 요즘 승화를 두고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라고 생각하고있었다.
얼굴이 가무스름하고 키가 작달막한 승화가 긴 구렁이처럼 사람만 만나면 칭칭 감겨들지못해 안달이나 하는것은 사실 하루 이틀사이의 일이 아니였다. 승화는 늘 사소한 일도 놓지지않고 다른 사람과 시비를 하고 하루 새롭게 못된 놀이로 녀자애들이나 성정이 약한 남자애들을 골탕 먹이군했었다. 하여 군이는 속으로 승화를 구렁이라고 불렀다. 사실 군이가 아니라도 연룡도시 도심소학교 6학년2반에서 승화는 구렁이로 통하고있었다.
하지만 얼마전까지만 하여도 승화는 군이를 대하기 어려워하며 여러면에서 많이 양보를 하는 눈치였다. 아마도 반장이라는 군이의 위치가 승화로하여금 군이를 허투로 대하지 못하게 한 모양이였다.
그런데 문제는 지난주 월요일부터였다.
그날, 중간체조를 끝내고 교실에 들어섰을 때는 청소당번들이 중간청소를 말끔히 끝낸후였다.
<<와~ 깨끗하다.>>
호들갑을 잘 떠는 녀자애들이 목소리를 과장해가며 감탄사를 뽑아올렸다.
<<와~ 어지럽다. >>
언제나 왜지밭을 찾는 남자애들의 삐뚜렁소리가 인차 뒤를 따랐다. 그쯤이면 몰라도 어디선가 종이오리들이 어지럽게 날리기 시작했다. 누가 생각해도 과하다싶은 짓거리였다.
<<누구니? 종이오리는 왜 뿌리니?>>
군이는 소리치며 종이오리가 날려오는 곳을 향해 눈길을 주었다. 종이오리를 뿌리고있는 사람은 승화였다. 그는 책상우에 두 발을 뻗치고 서서 종이를 북북 찢어 사처에 뿌리고있었다.
<<승화, 너 뭐하는거니? 금방 청소를 해놓은것이 안 보이니?>>
<<왜 안 보이겠니? 히히히…반장. 너, 청소를 한번 더 하면 안되니? 반장이 솔선수범해야지…>>
승화는 말을 하며 두팔을 쫙 벌리고 으깨를 으쓱해보였다. 마치도 일을 저질러 놓고도 아닌보살을 떠는 파렴치한 신사들의 그런 동작 같았다. 군이는 승화의 전에 없던 거동에 깜짝 놀랐다.
<<승화야, 너 오늘 웬일이니? >>
<<내가 뭘? 교실이 어지러우면 반장이 청소하는게 당연한 일이 아니니? 히히히… 반장은 동학들의 심부름군이라며?>>
승화가 군이를 손가락질하며 너같은 애는 안중에도 없다는듯 꺼리낌없이 내뱉었다. 순간 군이는 승화에게 욱~하고 격한 감정을 느꼈다.
<<심승화, 너 방금 뭐라구? 정말! 말이 아니구나. >>
<<뭘? 내가 뭘?>>
승화는 제쪽에서 억울하다는 표정이였다
<<동지들! 보십시오. 동학들의 심부름군이 말을 잘 듣지 않을려고 합니다. 벗겨라, 벗겨. 가면을 벗겨라. 홀라당 모두모두 벗겨버려라…>>
승화가 또 <<벗겨라>>를 열창하고있을 때 담임선생님께서 교실에 들어오셨다. 교탁밑에까지 널려있는 종이오리들을 발견한 담임선생님께서 목소리를 높였다.
<<청소를 안한거니? 웬 종이오리들이냐?>>
담임선생님의 성격을 건드린것이였다. 평소에도 담임선생님께서는 중간체조가 끝난후에도 교실이 어지러운대로 있는것을 그냥 보아 넘기지 못하셨다. 그래서 동학들은 담임선생님을 두고 <<남자치고는 결벽증이 심하다.>>고 뒤공론을 하고있었다. 사실 결벽증까지 운운할것은 못되지만 담임선생님은 조각을 한듯 개성있는 깔끔한 얼굴만침이나 매사에 정갈함을 추구했던것이다.
<<누가 한 짓이냐구?>>
담임선생님께서 손으로 교탁을 탕! 하고 내리치며 또 한번 격한 목소리로 물었다. 동학들은 여전히 묵묵부답이였다. 담임선생님의 눈길이 매섭게 동학들의 몸을 참빗질하며 천천히 흘러지나갔다. 군이는 그러는 담임선생님의 눈길을 따라 승화의 얼굴을 훔쳐보았다. 승화는 짐짓 모르쇠를 놓으며 머리를 책상에 틀어박고있었다.
<<반장, 일어섯!>>
다시 교탁우에 올라선 담임선생님께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 담임선생님의 이 뜻밖의 거동에 군이는 흠칫 몸을 떨며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정말 모르는거냐? 반장도 모른다구? 군이, 너 있는대로 말해 봐라!>>
담임선생님의 엄한 목소리에 주눅이 든 군이는 괜히 입술만 감빨며 다시 한번 승화를 훔쳐보았다. 이때 승화는 구렁이 담 넘어가듯 아닌보살을 하며 슬며시 머리를 들어 군이를 노려보고있었다. 그러는 승화의 눈길은 마치도 <<말 할래? 너 죽었어!>> 하고 경고하는듯싶었다.
(자식! 뭘 잘했다구! 진정 담이있으면 저절로 일어나서 승인할것이지! 어디, 한번 혼나봐라.)
군이는 담임선생님을 바라보며 처마밑에 락수물떨어지듯 똘랑똘랑 말을 이어갔다.
<<선생님, 저 종이오리들은 승화가 종이를 쫙쫙 찢어서 옛날 삐라를 뿌리던 영웅들처럼 책상우에서 이렇게 내리 뿌린것입니다.>>
마지막 부분을 말할 때는 제법 손동작까지 했다. 교실에서는 짝짜그르르 웃음이 터졌다.
<<왜 웃어? 뭐가 우습다는거냐? 심승화, 일어섯!>>
담임선생님의 칼날같은 눈길이 승화의 몸에 가서 꽂혔다. 승화는 기죽은 표정으로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언제나처럼 왼쪽 어깨를 축 내리뜨리우고 머리도 역시 왼쪽으로 삐딱하니 기울인채 퀭~하니 교실북쪽 모서리를 바라보고있었다.
<<심승화, 반장 말이 사실이지?>>
<<……>>
<<다시 한번 묻는다. 반장 말이 사실이지?>>
<<네!>>
<<오~ 사실이랬다. 그럼 너 절로 알아서 해라! 어쩔래?>>
<<휴~>>
승화는 흐느적흐느적 걸어나와 종이오리들을 줏기 시작했다. 그러는 승화를 바라보며 담임선생님께서는 또 한번 엄포를 놓았다.
<<심승화, 알아둬라! 다시 한번 못된짓을 했다가는 더 엄한 벌을 주겠다.>>
담임선생님께서는 말을 마치고 교실문을 나섰다. 삽시에 동학들은 술렁대기 시작했다.
<<얌마, 여기두 있다! 빨라당 못해? 이 왕구렁아!>>
소리와 함께 승화가 보기좋게 푹 엎어지고 말았다. 삽시에 동학들의 눈길이 승화쪽으로 쏠렸다. 엎어지며 팔굽을 다쳤는지 기신기신 기여 일어나며 팔굽을 싸쥐고 고통스러워하는 승화의 얼굴에는 말못할 불만과 함께 일종의 순종도 비쳐나왔다. 그 표정에서 동학들은 승화를 골탕먹인 주인공이 누군지를 짐작할수있었다. 아니나다를가 규호의 목소리가 오뉴월 벼락치듯 울렸다.
<<얌마, 여기두 있다는데 못들었니?>>
<<알았다. 주으면 될거아니니?>>
승화의 목소리는 싹 죽어들어가는듯했다. 녀자애들은 그러는 승화를 훔쳐보며 깨고소하다는듯 킥킥 도적웃음을 날렸다.
<<자식, 까불긴! 하늘같은 우리 반장이 너의 심부름군이라구? 너같은 자식이 널어놓은 종이쪼박을 반장더러 주으라구?>>
규호는 뒤켠으로 걸어가는 승화의 엉뎅이를 툭 걷어찼다. 그래도 승화는 뒤 한번 돌아보지 못하고있었다.
이만침 반에서 승화가 무서워하는 사람은 규호뿐이였다. 규호는 반에서 키도 제일 크고 몸집도 웬만한 어른은 저리 가라는 식으로 건장했다. 평소 말수가 적은편이지만 간혹가다 엉뚱한 일을 벌리기 좋아하는 규호여서 누구나 서뿔리 그를 건드리지 못하고있었다. 규호앞에서 잘 못 납들었다가는 방금 승화의 꼴이 되기 십상이였던것이다.
승화는 엎어지고 기여일어나며 굴욕스럽게 규호의 옆에 널려있는 종이오리들을 다 줏고 군이의 옆으로 왔다. 승화의 눈길이 무섭게 군이의 얼굴에 가 꽂히고있었다. 군이는 그 눈길에서 승화로부터 오는 일종의 도전을 읽고있었다.
(도대체 승화가 웬 일로 불시에 나를 이렇게 대하는것일가? 내가 언제 승화에게 위엄을 잃을 짓이라도 했던가?)
군이는 이렇게 자신에게 물었다. 아무리 생각을 해보아도 승화의 앞에서 그 무슨 큰 실수를 하여 스스로 위엄을 잃은적은 없는것 같았다.
(그렇다면 왜 나를 건드리지 않고 피하려 하던 승화의 태도가 하루밤새에 변한것일가? 승화의 심상에 무슨 일이 생긴것일가? 아니면 나에게 무슨 내 자신도 모를 변화가 일어나는것일가?)
군이는 승화에 대한 복잡한 생각으로 그날 내내 공부에 집중할수 없었다.
그때로부터 승화는 대놓고 군이와 맞장을 뜨려고했다. 군이는 그러는 승화가 싫었다. 힘으로 승화를 눌러볼가고도 생각해보았지만 반장이라는 신분이 군이로하여금 쉽게 그런 결정을 내릴수 없게 했다.
하여 군이는 될수록 승화와 정면으로 부딛치는것을 피했다. 그럴수록 승화는 얄밉게도 군이를 물고 놓아주지 않았다.
(구렁이같은놈, 그 속내를 어떻게 안단말인가? 아마도 점점 나를 힘으로 누를것 같은 자신이 생긴다는거겠지. 쳇, 너같은 놈을 힘으로 재끼라면 나도 지지는 않을걸… 나쁜 자식!)
군이는 속으로 이렇게 승화를 욕하면서 백양나무에 등을 기대고 섰다. 무성한 나무잎들 사이로 진한 해살이 비쳐와 두 눈을 자극했다. 군이는 해살을 피해 지긋이 두 눈을 감았다. 쏟아지는 해살만침이나 오만가지 잡생각들이 예리한 침끝이되여 군이의 머리속을 찍어대고있었다. 군이는 흠칫 몸을 흔들며 두 눈을 떴다. 순간 눈앞에서 노오란 별들이 란무했다. 군이는 점차 온몸이 지긋지긋해나며 무기력해지는 자신을 발견했다. 군이는 맥을 놓고 천천히 백양나무에 기대 앉았다.
군이는 한창 물이 오르는 백양나무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백양나무잎사귀들이 파릇파릇 연한 얼굴을 빠끔히 내밀고있었다. 나무가지에 이름모를 새 한마리가 앉아서 짹짹짹 뭔가를 열심히 지절거리고있었다. 들어줄 친구도 없는데 그처럼 성수나게 지저귀는 이름모를 새를 바라보며 군이는 허구픈 웃음이 킥 터져나왔다.
<<너도 마음이 외로운거니? 그런거니? 그 심정을 누구에겐가 말하고 싶은거지?>>
순간 새가 되고싶다는 생각이 새삼스럽게 군이의 머리를 쳤다. 그렇게 된다면 자기도 저 나무가지에 앉아 갑갑한 심정을 혼자서 궁실거릴수있을것 같았다. 군이는 조용히 나무에 귀를 가져다 댔다. 어쩜 나무잎사귀들이 속삭이는 소리가 들리는것 같았다.
군이는 순간이나마 말못할 편안함을 느꼈다.
군이는 조용히 두 눈을 감았다.
<<군이야, 여기서 뭘 하니?>>
분명 옆에서 나는 소리였다. 군이는 화들짝 놀라 눈을 떴다.
먼저 동그스름한 얼굴의 녀자애가 예쁜 볼우물을 파며 옆에서 새물새물 웃는 모습이 보여왔다. 그 옆에는 갸름한 얼굴에 살결이 하아얀 긴 머리칼의 녀자애가 서있었다.
미림이와 은경이였다.
미림이는 부반장이고, 은경이는 선전위원이였다. 이들은 늘 이렇게 만나서 반의 규률이나 활동을 두고 토론을 벌리군 했었다. 미림이와 은경이는 까아만 눈들을 올롱하게 뜨고 은근히 군이를 지켜 보고있었다. 무척이나 찾았다는 눈빛들이였다.
<<어, 너희들. 언제 왔니?>>
<<여기 있은걸 가지구, 온 마당을 다 찾아다녔잖니? 혼자 뭘 하고있은거니? 여기서! 어데 갔나하구 애타게 찾았는데, 아까부터.>>
미림이가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련주포를 쏘았다.
<<어, 그래? 나, 깜빡 졸았나봐. 근데 너희들, 왜 날 찾았는데?>>
<<그게 말이다, 웬 일인가 하면, 너하구 토론 할 일이 있어서지.>>
<<크크크… 얼른 말해라. 볏은 그만 달구. 웬 일인데?>>
군이가 은경이에게 사람좋게 웃어보이며 재촉했다.
<<그게 말이다. 오라잖으면 <6.1>절이 오지 않니? 그래, 한20일 남았나? 소학교에서의 마지막 <6.1>절인데 그저 의미 없이 보낼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와 미림이가 토론을 했는데, 선생님께 제기해서 주제반회를 열자고 그런다. 너의 생각은 어떻니?>>
은경이가 군이 앞에 한발 다가서며 시뚝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선전위원이 다르긴 다른데. 난 왜 그 생각을 못했을가? 소학교에서의 마지막 <6.1>절주제반회라? 참, 좋은 활동이지. 난 대 찬성이다. 두 손 들어 동의한다.>>
군이가 얼굴에 환한 웃음을 띄우며 일부러 목소리를 높였다. 군이의 밝은 표정을 읽은 은경이와 미림이는 입가에 흐믓한 웃음을 띄우며 서로 눈길을 마주쳤다.
<<봐라, 군이도 동의 할거라고 내가 말했잖니. 그게 말이다. 이게 텔레파시가 통한다는 거다.>>
은경이의 말에 미림이가 지지않으려고 한발 나섰다.
<<텔레파시로 말하면 내가 군이와 더 잘 통하는 거지. 난 지금 군이가 무슨 생각을 하고있는지 알고있거든. 어떤 내용으로 활동을 조직할가? 하고 생각하고있는 중이지? 그렇지, 군이야?>>
새초롬한 눈길로 미림이를 훔쳐보던 은경이가 살짝 웃음을 지으며 군이의 어깨를 톡 쳤다.
<<그게 말이다. 군이야, 이번 주제반회를 소학교를 마치며 가장 이루고 싶은 소망을 이야기하는 내용으로 하면 어떻겠니? 참, 소학교시절에 난 아버지와 함께 프랑스 파리에 유람가는게 소망이였는데.>>
<<뭐? 프랑스 파리로?>>
미림이가 아닌 밤중에 웬 홍두깨냐는듯 올롱한 눈길로 은경이를 건너다보았다. 은경의 얼굴에는 벌써 농익은 랑만이 흐르고있었다.
<<그래, 지난 겨울, 울아버지께서 상무고찰단의 일원으로 파리에 갔었거든. 파리는 정말 멋진 도시래, 파리의 에펠탑은 높이가 300메터도 넘는데 7천300톤이나 되는 철근으로 만들었단다. 에펠탑 밑으로는 아름다운 세느강이 흐르고… 에펠탑에 올라서면 세계의 패션을 리드해가는 아름다운 도시 파리의 얼굴이 한눈에 확 안겨온단다.>>
은경이는 마치도 이미 아름다운 세느강변에 서있기라도 하듯 두 눈을 살풋이 내리깔고 열변을 토했다. 그러는 은경이를 아니꼽게 바라보던 미림이가 픽 웃으며 부러 은경이를 간지르기 시작했다.
<<놀구있네, 파리가 뭐 그렇게 대단하니? 난 미국의 뉴욕으로 가보는게 소망이란다. 울아버지는 뉴욕에서 멋진 곳을 다 돌아보았단다. 사진도 숱해 찍어보내구. 미국 뉴욕항의 리버티섬에 세워진 자유녀신상이 얼마나 멋진지 너 아니? 오른손에는 홰불을 들고, 왼손에는 독립선언문을 들고 서있는 자유녀신상, 이 조각상은 조각가가 자기의 어머니를 모델로 만든것이란다. 우리 어머니가 계시는 상해는 또 얼마나 멋진지 아니? 상해의 동방명주탑은 세계에서 세번째, 우리 아시아에서 제일 높은 텔레비죤발사탑이란다. 그 높이는 얼만지 아니? 와~ 무려 468메터, 너 상상이나 되니?>>
미림이는 은경이 앞으로 한발 다가서며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군이는 그러는 미림이와 은경이를 바라보며 짐짓 궁색한 표정을 지었다.
<<얘들아, 이거, 출국못해본 아버지를 모시구 사는 사람은 서러워 어디 살겠니? 부끄러운말인데, 난 아직 장백산에도 못 가봤다. 코 앞에 있는 장백산에도 말이다.>>
<<어머어머, 어쩜 아직 장백산에도 못 가봤니? 얘, 거 짓말이지? 난 지난달에도 아버지의 차에 앉아 장백산에 갔다왔는데, 장백산엔 아직도 눈이 쫙 덮여서 천지엔 올라가지 못하겠더라,>>
은경이가 외계인이나 발견한듯 이상한 눈길로 군이를 건너다 보며 호들갑을 떨었다. 미림이는 역시 곱지않은 눈길로 은경이를 쓸어보고있었다.
<<그만해라, 그만해. 주제반회 토론을 하다가 웬 소리니? 군이야? 너의 생각엔 어떤 내용으로 주제반회를 조직하면 좋을것 같니?>>
<<글쎄다, 소학교에서의 마지막 <6.1>절이라는게 주요하지 않겠니? 이 점을 둘러싸고 좀 더 연구해보는게 좋겠다.>>
<<그렇지. 그게 말이다. 그래서 반장이 다르다는거다. 군이야, 그럼 우리 좀 더 깊이 생각해본 다음 며칠후에 다시 결정하자. 아야! 핸드폰이 울리네.>>
은경이는 말을 하다말고 호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렌즈가 달린 신식 핸드폰이였다.
<<네, 오~ 알았다. 알았어! 내 여기서 군이랑 사업토론을 하고있었다. 내 인차 갈게. 잠간만.>>
은경이는 통화를 끝낸후 핸드폰을 쥔채 교실쪽으로 뛰여가며 군이와 미림에게 멋진 포즈로 손을 흔들었다. 그것을 보는 미림의 얼굴에 쌀쌀한 웃음이 스쳤다.
<<은경이, 쟤는 맨날 저런다니까. 언제나 제밖에 없는듯, 무엇이나 다 아는듯. 흥!>>
<<아는게 많으면 좋지 뭐.>>
군이가 미림이를 힐끗 건너다보며 말했다.
<<그래도 그렇지, 누군 뭐 머저리로 아나 봐, 참, 군이야,
너, 한국에 친척이 있지?>>
미림이가 깜빡했다는듯 자기의 신다리를 탁 치며 군이에게 머리를 돌렸다.
<<그래, 엄마가 한국에 있다! 근데?…>>
<<자, 받어. 수발실 선생님께서 가져왔더라. 애들이 빼앗아 볼려는걸 내가 가져왔다.>>
미림이는 테두리가 파아란 편지봉투를 군이에게 쑥 내밀며 동그스름한 얼굴에 보조개를 옴폭 파보였다.
<<그래? 고마와!>>
군이는 벌씬 웃으며 미림의 손에서 편지를 받아 호주머니에 넣었다.
<<군이야. 너 편지를 안보니?>>
<<있다가 보지 뭐, 가자.>>
군이는 말을 마치고 교실쪽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래, 가자. 너의 엄마, 한국 간지 오래니?>>
<<3년!>>
<<숱한 돈을 벌었겠네, 넌 아버지와 단 둘이 산댔지? 밥은 누가 짓니?>>
미림이가 은근한 눈길로 군이를 바라보며 숨가쁘게 물었다.
<<미림아~ 나, 새 됐다!>>
군이는 홀연 두팔을 쫙 벌리며 미림에게 훨훨 나는 시늉을 해보였다.
<<뭐야?>>
미림이는 그러는 군이를 향해 곱게 눈을 흘겨주었다.
<<나, <6.1>절엔 새처럼 날아서 한국에 갈란다. 날아가서 엄마를 봐야지~ 미림아, 한국녀자애들은 너보다 엄청 더 이쁘다더라. 매롱~ >>
군이는 미림이를 향해 귀엽게 왼눈을 찡긋해보이고는 교실쪽을 향해 뛰기시작했다. 미림이는 그러는 군이를 바라보며 생각을 굴렸다.
(군이는 참 재밌는 애야, 정말 새가 되여 엄마 곁으로 가고싶나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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