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노라면 가끔씩 흘러간 동년시절이 눈앞에 떠오를 때가 있다. 벌써 가슴속밑자락 어딘가에서 곰삭을 때로 곰삭았을 그 옛날의 작은 추억이지만 오늘에 와서 다시 꺼내 다듬어보노라면 그속에서 피여나는 동년의 향연때문에 가슴이 훈훈해 난다. 그시절, 나는 엄마의 무릎을 베고 누워 옛날옛적에 있었다는 이야기를 듣는것이 그렇게도 좋았다. 해와 달이 된 오누이의 이야기며, 원숭이엉뎅이가 빨갛게 된 이야기며, 곰이 백날동안 마늘을 먹고 사람이 된 이야기며… 어떤 이야기는 너무도 여러번 들어서 엄마가 서두를 떼면 내가 다음을 줄줄 내리 외울수 있었다. “엄마, 다른 옛말이 없수? 새 옛말을 좀 해주.” 어느날 내가 낡은 옛말에 실증을 느끼고 이렇게 투정을 하니 엄마는 “어디 보자!” 하시며 이윽히나 새 옛말을 더듬어내시느라 고심을 하셨다. “동이야, 그럼 우리집 구새목에 깃든 옛말을 해줄가?” 엄마가 드디여 시무룩히 웃으시며 입을 열었다. “우리집 구새목에 무슨 옛말이 있는데? 엄마, 거짓말이지?” 내가 두눈이 올롱해서 쳐다보자 엄마는 짐짓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손사래를 하셨다. “거짓말이라니? 얘를 봐라. 우리집 구새목 옛말을 하면 네가 진짜 재미있어 할것 같은데, 싫으면 말구…” (비가 오거나 흐린 날이면 연기가 밀밀 나오는 우리집 구새목에 옛말이있다구?) 나는 호기심이 동해서 엄마를 졸랐다. 엄마는 나의 재촉에 못이기는척 하시며 천천히 우리집 구새목에 깃든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그것은 옥수수들이 탁탁 물을 튕기며 오동통 염글어가던 음력 7월 중순께의 어느 점심녘이였다고 한다. 엄마가 약수동 장사래밭에서 한창 조이밭 김을 매고있는데 웃집에 사는 삼이네가 올라오며 엄마를 보고 장인에서 손님이 왔다고 기별을 넣었다. “언제 내려왔다오?” 엄마가 호마자루로 밭고랑을 짚고서서 허리를 두드리며 물었다. “내사 모르지, 방금 문앞을 지나며 볼라니까 그 재인강할망구가 문앞에서 왔다갔다 하면서 허둥거리고있습데.” 삼이네가 걸걸한 목소리로 보는듯이 일러주었다. 재인강할망구라면 엄마는 짚이는데가있었다. 마을에서 60여리 떨어진 림장마을 장인골에 사는 사돈집 할머닌데 정신이 드나들어서 가끔 엄마를 찾아오군 했던것이다. “알았소. 그럼 내려가봐야지.” 엄마는 김을 잡던 조이밭고랑을 절반이나 남겨둔채 호미를 걷어들고 밭머리를 향했다. 아침에 들어서면 저녁이나 돼야 끝을 보네마네 하는 장사래밭이라 밭머리까지 나오는데도 한참이나 걸렸다. 만삭이 된 배가 아래로 당겨져서 여간만 힘든것이 아니였다. 엄마는 허이허이 발걸음을 옮기면서 속구구를 해보았다. 해산일까지는 아직도 한 사흘 남은듯 하니 래일까지 일을 하고 모레쯤에 간단한 준비를 한다면 분만에 지장이 없으리라 생각되였던것이다. 집에 도착해보니 아니나다를가 사돈할머니는 그새 못참겠다는듯 집마당을 주름잡으며 올리걷고내리걷고 분주히 돌아치고있었다. “아매. 어떻게 오셨씀둥?” 엄마가 알은체를 했다. 그제야 엄마를 발견한 사돈할머니는 씽하니 달려오며 엄마의 얼굴에 삿대질을 해댔다. “뭐 하다가 이제야 싸잡아왔노? 내가 와 보지 않구 그래 집구석을 시름놓을수 있나? 너희들이 눈에 밟혀서 내가 어떻게 그냥 살어? 아이~ 덥다, 빨라당 찬물이나 한바가지 떠올려라.” “그러게 뭐 할라고 그렇게 분주히 뛰여다녔씀둥? 그늘에 앉아서 쉬시지.” 엄마가 사람 좋게 웃으시며 문을 따고 집안으로 들어가 바가지에 찬물을 담아들고 나오셨다. “할매, 집안이 탐탐하오께 저 비슬나무그늘에 앉아서 찬물 마시며 솜 쉬이소. 내가 제꺽 점심을 끓이겠스꾸마.” 엄마는 사돈할머니와 벙글벙글 수작을 하시며 구새목으로 검불을 안으려고 들어가셨다. 엄마는 머리를 가렸던 채갑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문지르고는 검불을 안으려고 허리를 굽혔다. 불시에 배가 아래로 당겨지는 감이 들더니 동통이 오기 시작했다. 엄마는 “아이구~” 소리지르며 그 자리에 퐁당 주저앉아버리고 말았다. 엄마의 아우성에 놀란 사돈할머니가 구새목으로 달려왔다. 때는 이미 양수가 터져서 흐르던 참이였다. 사돈할머니가 소리를 쳐서 사람들이 산파를 모셔왔을 때는 갓난애가 이미 밖으로 나와버린 뒤였다. 사돈할머니는 산파의 손에서 갓난애를 받아 집으로 들여가며 카랑카랑하게 웨치셨다. “너희들 보거라, 내가 룡을 안았더라. 구새목에서 룡이 난다고 이 애가 바로 룡이 될 징조로다.” 여기까지 듣고난 나는 처음 듣는 구새목이야기가 무척이나 신비스럽게 생각되였다. “엄마, 그 구새목에서 태여난 애가 누구유?” “구새목에서 태여난 애가 호호호호… 여기 있잖니?” 엄마가 나의 코끝을 꼭 누르며 웃으셨다. 나는 엄마의 말씀에 얼굴이 확 붉어졌다. 구새목에서 나왔다는 사실이 부끄러워 났다. “아니지 엄마, 거짓말이지, 응? 그 애가 내가 아니지?” 엄마는 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계속 이야기를 하셨다. 나는 갓 태여나서 젖만 먹으면 혼자서 놀았고 놀다가 지치면 또 젖을 빨고 잠을 자군했다. 구새목에서 이 세상을 찾을 때처럼 그렇게 쉽게 자라는 나를 하늘이 질투를 했던지 두돐이 금방 지나자 나의 온몸에 작은 물집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물집은 붉은 당콩알처럼 커지면서 성기를 빼고는 퍼지지 않은 데가 없었다. 물집이 생기면서 차츰 온몸이 불덩이처럼 달아올랐다. 나는 차츰 기력을 잃어가며 정신을 놓아버리기도 했다. 침깨나 놓는다는 의사들을 찾아보았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그렇게 보름정도 지나자 나는 완전히 사색이 되고 말았다. 어느날 저녁 내가 두눈을 희뜩거리더니 입에 거품을 물며 머리를 외로 탈았다고 한다. 엄마는 울면서 마을의 의사를 불러왔다. 의사가 나의 눈까풀을 번져보더니 설레설레 머리를 저으셨다. 엄마는 가슴을 뜯으며 나를 보자기에 싸서 구새목에 내다 놓으셨다. 엄마는 열네살 나던 해에 일곱살이나 이상인 아버지에게로 시집을 왔었다. 이붓어머니의 손에서 이붓형과 함께 째지게 가난하게 사는 아버지지만 얼굴이 조각을 한듯 잘 생기고 성품 또한 도도해서 앞으로 큰 일을 할 목이라며 엄마의 이상 올케가 자청을 하여 엄마를 아버지에게 주어버렸던것이다. 역시 어려서 부모를 잃은 엄마는 이상 오빠의 손에 얹혀 살면서 이상올케의 말이면 법으로 알고 따랐었다. 자기보다 일곱살이나 이상인 아버지가 좀 어렵기는 했지만 엄마는 군소리 한마디 없이 아버지를 따라 시집이라고 왔다고 한다. 이듬해 첫 아이로 딸을 낳아서부터 엄마는 나까지 아이 여덟을 낳으셨다. 그 험한 세월에 그래도 아들 둘, 딸 둘을 살려내고 나에 이르렀던것이다. (아마도 이렇게 일찌기 떠나가자고 구새목에서 그렇게 쉽게 이 세상에 나온 모양구나.) 이튿날 아침, 옷이나 갈아 입혀서 산에 묻으려고 구새목에 가서 보자기를 푸는 순간 엄마는 그만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내가 보자기안에서 꼼지락거리고있었던것이다. 죽은줄로만 알았던 내가 움직이는것을 보면서 엄마는 너무도 놀라고 기뻐서 하느님을 부르며 보자기채로 와락 끌어안았다고 한다. 그날부터 나의 몸에 난 물집들이 터지기 시작하더니 물집자리에 작은 흉터들을 남기면서 아물어 붙기 시작했다. 일주일이 지나자 나의 몸에 마마꽃처럼 번졌던 물집이 가신듯이 사라져버렸다. “정말 잃어버리는 줄을 알았지, 그때 요렇게 귀여운 막내를 잃었더라면 엄마가 어떻게 살았겠니?” 엄마는 이야기를 마치면서 꺼슬꺼슬한 손으로 나의 볼을 쓸어주셨다. 거짓말 같으면서도 너무 진지한 엄마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그때 우리집 구새목이 그렇게 신비하고 안온하게 느껴졌다. 그후에도 나는 가끔 서러운 일이 있으면 구새목을 찾아서 혼자 흐느끼군 했다. 한번은 친구들과 싸움을 하고 구새목에 무져놓은 벼짚가리에 들어갔다가 깜빡 잠이 드는 바람에 온집안이 나서서 나를 찾은적도 있다. 나의 첫 고고성을 들어준 구새목, 나를 사선에서 당겨준 구새목, 이미 이 세상에서 없어져버린지 오랜 구새목이지만 생활에서 난관에 부딛칠 때마다 나는 우리집 구새목을 떠올리며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마음가짐으로 신들메를 조이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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