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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엄, 그것을 담을수 있는 얼굴
존엄이란 단어를 “조선말사전”에서는 “함부로 침범할수 없는 위엄”이라고 풀이했다. 다른 사람이 나를 함부로 침범할수 없게 하자면 나에게 나 자신을 보호할수 있는 위엄이 있어야 한다는뜻일것이다.
지난 4월 15일, 우리 단위에서는 전문가를 청하여 특강을 들은적이 있다. 그 특강의 제목이 바로 “출판환경의 변화와 민족출판인의 존엄”이였다.
전에는 집단부락을 형성하여 살아가던 전반 조선족사회가 경제환경의 변화와 더불어 엄청난 지각변화를 일으키게 된것이다. 그 중심에서 피부로 실감할수 있는 변화가 바로 문화환경의 변화라 해야겠다.
“밭머리쉴참에 시원한 막걸리 한잔 마시고 도라지타령에 어깨춤을 추던 시대”는 지나갔다. 색다른 음식이 생기면 바가지에 담아들고 다니며 소박한 정을 나누던 사람들이 살길을 찾아 친인들과 떨어져 관내로 외국으로 떠나버렸다. 현재 우리 조선족은 서장, 신강, 해남도를 포함하여 전국 각지 어느 곳에나 다 살고있다고 한다.
송이송이 민들레씨로 되여 날아가버린 옛터에서 옛날의 모식대로 자기의 문화를 부여 안고있는다면 역시 옛터에서 이밥을 먹으려는것이나 다름없을것이다.
변화되는 문화환경속에 “어떻게 자기의 문화를 고양할것인가?” 하는 문제가 우리에게 제기되고있는데 이 문제는 나름대로 우리 출판인들에게도 해당되는것이다.
문화환경이 변화되는 시점에서 조선족출판인들은 어떻게 자기의 위치를 잡아야 하며 어떻게 자기의 진지를 고수해야 할것인가?
재래로 출판이 있으면 책이 있었고 책이 있으면 독자가 있기 마련이였다. 전에는 독자가 책을 찾아다녔다. 하지만 오늘의 출판현실을 고찰해보면 책이 독자들을 찾아다녀야 한다. 이는 출판업이 시장경제라는 이 바다에 뛰여든후 나타난 새로운 시추에이션이라해야겠다.
중국 주류출판업계에서는 대부분 경제적인 효익을 위주로 팔릴수 있는 책을 찍어내는것을 방향으로 하고있다. 하여 그들이 찍어낸 책은 독자들을 찾아 전국각지 어디라도 뛰여 간다.
하지만 우리 민족의 출판은 경제적인 효익보다도 나라의 민족출판구제정책의 힘을 빌어 연명해가고있는 상황이다. 때문에 민족출판에 주는 그 항목경비를 쟁취하기 위해 민족출판인들은 밤잠을 설치가며 갖은 노력과 지혜를 바쳐 민족도서를 출판하는데 그 출판된 책은 정부구매정책에 의해 독자들을 찾아간다.
그날 특강에서 그 전문가가 언급하다싶이 새로운 출판현실에서 방향을 잘못 잡으면 우리의 민족출판사는 “조선민족출판박물관”으로 될수있는것이다. “우리 나라의 어떤 소수민족은 어느때 어떤 책을 출판했었다.”는 식의 박물관으로 말이다. 우리의 출판사가 박물관으로 될 때 우리 민족출판인들은 관연 그 박물관앞에서 무엇이라고 변명을 할것인가?.
하기에 민족출판인의 존엄문제가 제기되는것이다. 과연 우리의 출판사는 어떤 방법으로 어디를 향해 나아가야 하는가?
전문가는 “문화적시각에서 퇴색하지 않는 경전을 남겨야 하고 문화적인 사고로 조선족의 삶을 리드해가는 본보기를 보여줘야 하며 문화적인 내포가 있는 민족적인 출판문화를 창도해야하고 문화적인 배려로 우리만의 인문문화를 구축해야 한다”고 제기했다. 우리의 문화, 우리의 출판이 “민족”이라는 범주를 벗어나지 말고 “민족”이라는 토대에 기초하여 진정한 조선족인문문화를 구축할 때라야만 우리 민족출판이 존엄을 론할수 있다는것이다.
“언어, 지역, 경제생활 및 문화의 공동성에 의하여 표현되는 심리적상태의 공통성의 토대우에서 발생하여 력사적으로 이루어진 사람들의 공고한 공동체”가 바로 민족이다. 때문에 우리 민족출판사는 우리의 언어에 기초해야 하고 우리 지역에 기초해야 하며 우리만의 경제생활에 기초를 두어야 하는것이다.
지금 과연 우리의 언어, 우리의 지역, 우리의 경제생활에 관심을 가지고있는 우리 민족후대들이 얼마나 될가?
우리는 후대들에게 우리의 언어를 물려주고 우리의 인문환경을 전해주어야 하며 또 우리만의 경제생활을 훌륭하게 벌려갈수 있도록 이끌어주고 신심을 북돋우어주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문화의 몫이고 이 문화를 정리, 발굴하고 전승하는것이 우리 출판인들의 몫이다.
축구선수는 자기앞에 굴러온 뽈을 멋지게 찰 때 존엄을 론할수 있다. 같은 도리로 민족출판은 자기의 소임을 다했을 때 존엄을 론할수 있는것이다.
민족출판사업에 몸을 담그고있는 우리 매개인은 민족출판이라는 이 범주속의 한 분자이다. 우리의 민족출판은 너와 나라는 개개의 분자를 떠나서 운운할수 없고 우리 민족출판의 존엄 역시 너와 나의 존엄을 떠나서는 론할수 없다.
다른 사람이 “함부로 침범할수 없는 위엄”을 갖추려면 다른 사람을 감복시킬수 있는 나만의 노하우가 있어야 하는데 그 노하후가 바로 ”나의 자질”이다.
이날 특강에서 전문가는 “민족출판인의 추구”에 대해 언급하면서 무엇인가를 추구를 할수 있는 전제조건이 바로 “자질”이라고 말했다. 이를테면 정치자질, 실무자질, 문화자질, 법률자질, 심리자질, 경영자질 등이 바로 우리 출판인들이 갖추어야 할 기본자질이라는것이다. 이런 자질을 갖춘 “잡가”가 되여야 우리의 문화를 두루 설렵할수 있는 진정한 출판인으로 성장할수 있다는것이다. 이는 십분 정확한 말이다.
실무자질이 아무리 뛰여난 편집이라 해도 정치자질이나 법률자질이 따라서지 못하고 심리자질마저 차하다면 언젠가는 수레를 번지고야 말것이다. 자기가 타고가는 수레마저 번진다면 구태여 존엄을 운운할 형편이 못된다.
따져보면 “제앞의 뽈을 잘차기 위해서는 기본공을 부지런히 딲아야 하고 제앞의 뽈을 잘차야만 남들앞에서 머리를 들고다닐수 있다.”는 소학교 교육방식이 여기서도 통하는것이다.
오래동안 지방문예원고편집을 하던 나는 지난해 12월에 본의 아니게 새로운 편집실무를 접촉해야 했는데 그게 바로 번역원고편집이였다. 허구와 상상을 위주로 엮어진 문예작품을 다루다가 번역원고를 대하고보니 처음엔 정말 손에 익지 않았다. 번역원고편집을 원만히 하려면 원문의 뜻을 제대로 파악하고 번역자의 의도를 알아내야 했으며 문맥의 흐름에 따라 직역을 선택하는가 의역을 선택하는가 하는 등 기술적인 문제들도 처리해야 했다.
이미 문예원고편집에 습관이 되였던 나로서는 번역에 대한 전문지식을 수요하는 새로운 실무가 여간만 힘든것이 아니였다. “40대 중반에 과연 이런 령역을 다시 파고들어야 하는가?” 하는 고민도 심히 들었고 따라서 정서를 걷잡지 못해 일에 정신을 집중할수 없었다.
외국어에 문맹이나 다름없는 신세라 외국어로 된 지명이나 인명을 우리 말로 번역할 때는 외국어에 능한 갓 입사한 젊은이들의 손을 빌어야 하는 판이라 얼굴이 뜨겁고 해낼수 있을가에 회의도 들었었다. 하지만 이미 이 자리에 동댕이쳐진 이상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하면 도태되고말것이였다.
“일정한 사회활동분야에서 낡고 쓸모없는 존재로 되여 그 자리에서 밀려나가는것”을 “도태”라고 한다. “낡고 쓸모없는 존재로 되여 그 자리에서 밀려나가는 사람”에게 과연 존엄이 있을가? 물론 존엄을 떠올린다는 그 자체가 유모아에 지나지 않을것이다. “존엄”을 필요로 하지 않는 순간, 사람은 사람이기를 포기해야 할것이다.
존엄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살아가는데 수요되는 자질을 키워야 할것이다. “출판사편집”이라는 이름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내가 이 자리에서 존엄을 잃지 않자면 출판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자질를 두루 갖추어야 하는것이다.
바로 전문가가 특강에서 제기하다싶이 “잡가”로 되여야 하는것이다.바로 그 “가”로 된다는게 힘이 들고 뼈를 깎는 진통이 따르겠지만 반드시 감내해야만 하는것이다.
20대나 30대나 40대나를 막론하고 고통은 매 한가지로 아픔을 동반한다. 당하는 사람의 자질, 그 순간의 심태에 따라 더 아프거나 덜 아픈 차이가 있을뿐이다. 진정 아픔을 이겨내고 민족출판인이 수요하는 자질을 두루 갖춘 “잡가”로 다시 태여날 때 내 인생에는 손바닥만한 얼굴이 설것이고 그 얼굴에다 존엄이라는 힘을 담아둘수도 있을것이다.
존엄, 그것을 담아둘수 있는 얼굴!
그 얼굴을 갖추기 위해 아픈 진통을 이겨내고 목표한바를 향해 끊임없이 달리는 법을 배워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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