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림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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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천재시인 오장환 댓글:  조회:1714  추천:1  2014-08-28
신—문학살롱 신금철입니다. 지난시간에는 30년대 대표적 시인 김기림과 그의 일부 작품들을 살펴보았는데요 이번 시간에는 충북이 낳은 천재적인 시인 오장환과 그의 시들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도 연변시가학회 부회장 림금산선생님과 함께 합니다. 안녕하세요?   림—수고하십니다.   신—오장환시인은 조선전쟁때 병으로 사망한줄로 알고있습니다. 그런데 문단에서 천재적 기질을 보이던 시인이였는데 아깝게도 34세라는 아까운 나이로 저 세상으로 갔더군요. 먼저 생평에 대해서 소개해주시겠습니까?   림-오장환의 생애 오장환은 1918년 5월 15일 충북 보은군 회인면 중앙리140번지에서 오학근의 3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 한학수는 오학근의 첩이었기에 그는 서자 출신인 셈이다. 회인공립보통학교를 3학년까지 다니고 1930년(13세), 경기도안성공립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이듬해 중등학교 속성과 수료후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한다. 하지만 경제적 부담으로 인해 학비를 마련하지 못하고 1933년에는 휴학을 하게 된다. 휘문고보시절에 “휘원”이라는 교지에 시를 발표. 동시도 방정환이 꾸리는 “어린이”지에 동시 “바다” 등 발표. 1933년(16세)11월에 『조선문학』에 시「목욕간」을 발표. 1936년(19세)에 『낭만』『시인부락』 동인으로 참가하게 된다. 한편 이 해 4월부터  명치대학 전문부 문예과 별과에 수학하게 되지만 1년 만에 제적된다. 1937년(20세),『자오선』동인으로 참가하였으며, 이 해 7월에는 제 1시집 을 간행하기에 이른다. 이 첫 시집은 발행인이 홍구(洪九)로 되어 있으나 실상은 100부 한정의 자비 출판이었다. 1938년(21세), 에는 부친 오학근이 사망하고, 자신은 서울 종로구 관훈동에 남만서점(南蠻書店)이라는 책방을 낸다. 이는 오장환이 시 쓰기 이외에는 별 다른 직업을 가져보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실상은 경제적 궁핍에 의해서 호구지책으로 일을 하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1939년, 제2시집 를 간행하는데 발행인이 자기 자신으로 되어있다. 1945년(28세)에는 신장병으로 병운 입원실에서 해방을 맞게 된다. 그리고 이듬해 2월에 에 참가하여 활동을 하게 된다. 이러한 활동을 하는 가운데 5월에 번역시집『에쎄닌 시집』을 간행하였고, 7월에는 제 4시집 『병든 서울』을 간행하는 등 활발한 작품 활동을 전개한다. 1947년(30세)에는 장정인과 결혼하였고, 6월에 제 3시집 『나 사는 곳』 을 간행한다. 『나 사는 곳』이 제 3시집인 이유는 1939년부터 해방 때까지 쓴 시들이 수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1937년에 『성벽』1939년 “헌사』두 권의 시집이 발간된 직후 문단에서는 시단의 새로운 왕이 나타났다고 말했다 한다. 백석, 이용악과 더불어 오장환은 1930년대를 대표하는 시인이다. 해방 직후에도 가장 왕성하게 활동을 한 시인 중의 하나였으며, 그의 시집 『병든 서울』은 해방 직후의 모습을 그 어떤 역사서보다 더 사실적으로 전하고 있는 시집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오장환은 이 시집으로 해방기념 조선문학상 대상 후보작에 오르기도 했다.  1947년에 정부에서 발행한 중학교 국어교과서에 그의 시 “석탑의 노래“가 실렸던 것만으로도 그의 문학적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신—오장환시인은 16세부터 시를 발표하기 시작했다면서요? 동시도 아주 잘 썼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정지용시인과도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들었는데요. 두분은 또 어떤 사이입니까? 림—네 휘문고보 2학년으로 스승인 정지용에게 글을 배우고 있을 때였다. 당시 정지용은 휘문고보에서 교사. 그가 10대에 쓴 동시도 뛰어나다. “ 눈물은 / 바닷물처럼 / 짜구나 // 바다는 / 누가 울은 /  눈물인감. 이 동시는 방정환이 운영하던 에 발표한 「바다」이다.  이 동시에서 오장환은 눈물을 미각적으로 표현한다. 눈물의 맛이 바닷물처럼 짜다고 한다.  그러다 눈물이 일상의 삶속에서 솟는 것이라면 바다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눈물이 거기 스며들어가 있는 것인가 하는 질문을 던진다. 그리하여 이 시의 눈물은 개인적인 슬픔에서 측량할수 없이 넓고 큰 슬픔으로 확장된다. 눈물을 흘리며 바다를 생각하고, 바다를 보며 가없는 슬픔을 생각한다. 간결한 방식을 통해 짚어내는 슬픔의 의미가 깊고 크다.그저 월북시인이란 딱지에 갇혀있던 좁은 의미의 오장환시인을  다시 더 폭넓게 연구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가는 비가 내리면/ 송송송/ 물방울이 솟아오르고/ 물고기들은 입을 쳐들며/ 송송송/ 빗방울 받아 먹는다" 오장환의 동시 '가는 비' 전문이다. '바다' '가는 비' '편지' 등 오장환은 동시만 해도 44편을 썼다. 그는 해방 후의 혼란한 현실속에서 미소공동위원회의 합의를 통해 통일될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 길을 지지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런 일들을 국민들에게 알리는 문화운동을 하다가 2차 미소공동위원회가 결렬되는 날 새벽 테러를 당해 죽을 정도로 두들겨 맞는다.  평소에 신장병을 앓고 있어서 병상에서 해방을 맞았던 사람이었는데 테러를 당해 생명이 위험해지자 치료할 곳을 찾아 조선의 남포병원으로 도망쳐 간다. 그리고 거기서도 치료가 되지 않아 모스크바 볼킨병원으로 옮겨가 치료를 받다가 귀국하고 전쟁이 터진 뒤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해 1951년에 34살의 나이로 죽고 만다. 이민족이 지배하는 시대에 태어나 식민지와 해방과 분단이라는 격동의 시기에 청춘을 보내다 전쟁이 터지면서 죽고만 불행한 시인이었다. 오장환과 정지용은 다가 충북사람이고 다가 휘문고보에 있었고 보은군과 옥천군은  서로 린접해있는 군이다. 다가 일본에 갔다왔고 다가 조선에로 넘어가서 사망했고 그 구체사망에 대해 불명하다. 이런 면에서 아주 비슷하다. 둘은 또 사제간이다. 신— 오장환시인의 고향에서는 또 오장환을 기념하여 문학제가 해마다 열린다면서요?   림—네 오장환시인의 생가와 문학관 오장환시인의 시비  오장환시인의 문학제행사가 16회나 진행됨. 초기엔 도종환시인이 많이 힘썼다. 도종환이 문학관 관장, 명예회장 등   신: 오장환시인의 경력에 대해서 깊이있는 연구를 해온 분은 도종환시인이라고 들었습니다. 오장환시인의 많은 자료들을 발굴하는데 큰 공로를 세웠다고 들었는데요. 이 방면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소개해주시지요?   림:오장환문학제추진위원회위원장인도종환시인은 ‘오장환시연구’(충남대)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도시인은 특히 오장환생가와 함께 개관하는 오장환문학관에 박사학위논문을 쓰며 수집한 관련자료들을 제공하는 한편 새롭게 발굴된 동시 44편을 엮어 시집 ‘바다는 누가 울은 눈물인가”를 펴냈다. 도시인의 논문이 주목받는 이유 가운데는 휘문고보의 교지인 ‘휘문’을 통해 최초의 시가 ‘목욕간’이 아닌 ‘아침’과 “화염’이며 이미 ‘어린이’ 등의 아동문학월간지를 통해 소년시인으로 활동해 왔다는 점이다. 도시인은 천재시인으로 불리며 누구보다 해방공간의 사회상을 가장 사실적으로 표현한 오장환 시인임에도 조선으로 건너간 작가라는 이유로 제대로 조명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아쉬움도 또한 토로했다. 신장이 좋지 않았던 오장환 시인이 1947년 문화공작대활동 이후 우익의 테러로 두들겨 맞고 병원치료를 받으러 평양남포병원과 소련적십자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은 사실, 이후 조선에서조차 감시를 받으며 병원에서 죽음을 맞아야 했던 비극적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나마도 오장환 시인에 대한 연구 논문이 100여편에 이르는 현실을 도시인은 고무적으로 내다봤다. 오장환백일장, 오장환시그림 그리기 대회, 시 그림전, 시화전, 연구논문, 오장환시집, 오장환전집, 오장환평전, 오장환 사진, 오장환문학제 자료전시 등 다양한 전시행사… 시낭송, 시노래, 달팽이의 합창 등 시와 노래의 향연으로 오장환시인의 문학과 삶을 기렸다. 시낭송대회 입상자 등의 시낭송, 김은정·송문선·이진솔씨의 창작판소리, 김영미·박영옥씨의 경기소리 한마당 등 오장환의 시와 우리 소리가 어우러지는 환상의 무대… 신—네 그럼 시 감상과 함께 오장환시인에 대해서 더 깊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오장환시인의 대표작 입니다.                                            고향 앞에서-                      오장환 흙이 풀리는 내음새 강바람은 산짐승의 우는 소릴 불러 다 녹지 않은 얼음장 울멍울멍 떠내려간다. 진종일 나룻가에 서성거리다 행인의 손을 쥐면 따뜻하리라. 고향 가까운 주막에 들러 누구와 함께 지난날의 꿈을 이야기하랴. 양귀비 끓여다 놓고 주인집 늙은이는 공연히 눈물지운다. 간간이 잔나비 우는 산기슭에는 아직도 무덤속에 조상이 잠자고 설레는 바람이 가랑잎을 휩쓸어 간다. 예제로 떠도는 장꾼들이여! 상고(商賈)하며 오가는 길에 혹여나 보셨나이까. 전나무 우거진 마을 집집마다 누룩을 디디는 소리, 누룩이 뜨는 내음새……. 신: 오장환시인의 시 였습니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아주 쓸쓸한 심정으로 적었다고 생각되는데 구체적으로 해설 부탁드립니다.   림—해설 성격 : 낭만적, 서정적, 감각적, 비극적, 애상적 표현 : 다양한 감각적 표현  현재형의 사용으로 작품의 사실감 고조      회한과 자책속에서 쓸쓸하고 애잔한 목소리가 차분히 드러남. 제재 : 고향 주제 : 잃어 버린 고향 앞에서 느끼는 비애와 향수   신: 시어와 시구마다 깊은 뜻을 품고있다고 생각되는데 좀더 구체적으로 풀이해주시겠습니까?   림  * 흙이 풀리는 내음새 → 봄이 찾아오고 있음을 후각적으로 표현함.     * 강바람은 / 산짐승의 우는 소릴 불러 → 강으로 불어오는 바람에 산짐승의 우는 소리가 실려 있음을 표현.     * 다 녹지 않은 얼음장 울멍울멍 떠내려간다.   → 계절적으론 봄이 왔지만 민족이 간절히 기다리는 상징적인 봄은 아직 멀었다는 것을 의미(해빙기)    '얼어붙은 시대상'을 암시     * 울멍울멍 → 얼음이 물에 떠내려가는 모양의 표현이자, 울음이 곧 터질듯한 모양을 나타내는 말로 보면 화자의 쓸쓸한 감정이 이입된 표현으로도 볼수 있음.     * 진종일 / 나룻가에 서성거리다 → 고향을 앞에 두고 머뭇거리고 있는 화자의 처지     * 행인의 손을 쥐면 따뜻하리라 → 따뜻하고 정겨운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감각적(촉각)으로 표현함.     * 누구와 함께 지난날의 꿈을 이야기하랴 → 예전 고향 모습은 사라지고 황폐화된 고향을 간접적으로 암시하면서, 더 이상 고향에 대한 추억을 누구와도 함께 할수 없다는 상실감을 드러냄.     * 양귀비 끓여다 놓고 → 마약의 원료, 고향에 갈수 없는 아픔을 벗어나려는 주인집 영감의 행위로 해석됨.     * 주인집 영감 → 동병상련의 대상으로 여겨짐. 화자와 마찬가지로 고향 상실감에 젖어있는 인물     * 잰나비 우는 산기슭에는 → 청각적 심상을 통해 쓸쓸하고 그리운 분위기를 형성함.(우리 나라에는 흔치 않은 원숭이 울음소리는 보통 한시에서는 쓸쓸한 고향을 나타내거나 고향을 그리워할 때 쓰는 관용적 표현임.)     * 아직도 무덤속에 조상이 잠자고 → 변함없는 것은 무덤뿐이라는 인식이 담겨있는 표현. 자연속의 고향은 변함이 없음을 나타냄.     * 설레는 바람 → 고향으로 가고 싶은 설레는 마음을 나타내는 객관적 상관물     * 예제로 → 여기저기로     * 상고하며 → 물건을 팔며, 장사하며     * 장꾼 → 화자는 자신이 그리워하는 고향을 스스로 확인하지 못하고, 장꾼을 통해서 확인하고자 하는 모습에서 화자의 고향 상실감이 더욱 강조됨. 고향의 정취를 확인해 줄 존재들.     * 전나무 우거진 마을 → 추억속 고향의 시각적 이미지     * 집집마다 누룩을 디디는 소리, 누룩이 뜨는 내음새  → 지금은 갈 수 없는 예전의 아름답고 평화로왔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감각적(청각, 후각)으로 제시 신: 이 시는 아주 잘 짜여진 시라고 생각되는데 어떻습니까?   림: [시상의 흐름(짜임)] 1연 : 해빙이 될 무렵의 강가의 모습 → 배경제시(고통, 방랑) 2연 :고향 앞에서의 머뭇거림 → 그리운 고향에 가지는 못하고 서성거리고 있음. 3연 : 고향 근처 주막의 쓸쓸함 → 주막집 주인과 고향 상실의 슬픔을 함께 나눔. 4연 : 무덤의 쓸쓸함과 설레는 마음 → 설렘과 쓸쓸함. 5연 : 장꾼을 향한 하소연 → 고향에 대한 그리움 6연 : 그리운 고향의 모습 → 풍요롭고 평화로운 고향의 이미지 이 시는 라는 제목으로 발표하였다가 로 개제(改題)한 작품이다. 고향이 있어도 그 품에 안길수 없는 사람은 고향을 잃은 자나 다름없다. 이 상실감은 그 무엇으로도 채울수 없는 비극적인 것이다. 고향에 대해 가지는 그리움의 정서는 모든 인간에게 가장 근원적이고 보편적인 정서로 마음속에 깊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고향은 모든 사람들에게 삶 의 안식처요, 인간존재의 근원이며 포근한 어머니의 품이다. 따라서,  고향을 눈앞에 두고서도 갈수 없는 화자의 처지는 깊은 회한과 자책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 화자는 고향근처의 주막에서 자신이 떠난 동안의 슬픈 고향 소식을 전해 들으며 집집마다 누룩을 띄워 술을 빚는, 전나무 우거진 고향 마을은 이미 이 지상에서 사라지고 없음을 실감한다. 변하지 않는 것은 조상의 무덤밖에 없다. “고향은 고향이로되 그리던 고향은 아닌” 것이다. 완전한 고향을 찾지 못하고 고향을 바라보며 떠돌이 장꾼들에게 고향의 정취만이라도 확인하려는 화자의 모습이 눈물겹기만 하다. 독특한 감각적 표현을 바탕으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의 정서를 잘 형상화한 시다. 고향을 버리고 살아왔기에 고향이 있어도 갈수 없는 화자의 쓸쓸한 모습이 선연하게 떠오른다. 고향을 버린자가 느끼는 정신적 상실감이 당시의 시대적 현실과 결부되어 가슴아프게 다가온다. 오장환의 시에는  '귀향 회귀(歸鄕回歸)의 모티프를 가진 작품이 많은데 이 작품도 그 가운데 하나다. 1940년대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버리고 만주와 중국 등지로 떠돌던 우리 민족의 시대적 아픔과 그로 인한 그리움의 정서를 독특한 감각적 표현과 현재법을 사용하여 형상화한 작품이다.   신-네 오장환시인의 시 에 대한 선생님의 상세한 해설을 들었습니다. 그럼 계속하여 오장환시인의 대표적 작품 입니다. 이 시는 조정래의 대하소설 태백산맥에도 인용되였다고 하는데요. 함께 감상하고 선생님의 해설을 듣겠습니다.     병(病)든 서울   오장환 8월 15일 밤에 나는 병원에서 울었다. 너희들은 다 같은 기쁨에 내가 운줄 알지만 그것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일본 천황의 방송도, 기쁨에 넘치는 소문도, 내게는 곧이가 들리지 않았다. 나는 그저 병든 탕아(蕩兒)로 홀어머니 앞에서 죽는 것이 부끄럽고 원통하였다. 그러나 하루 아침 자고 깨니 이것은 너무나 가슴을 터치는 사실이었다. 기쁘다는 말, 에이 소용도 없는 말이다. 그저 울면서 두 주먹을 부르쥐고 나는 병원을 뛰쳐나갔다. 그리고, 어째서 날마다 뛰쳐나간 것이냐. 아, 저마다 손에 손에 깃발을 날리며 노래조차 없는 군중이 만세로 노래를 부르며 이것도 하루 아침의 가벼운 흥분이라면…… 병든 서울아, 나는 보았다. 언제나 눈물 없이 지날수 없는 너의 거리마다 오늘은 더욱 짐승보다 더러운 심사에 눈깔에 불을 켜들고 날뛰는 장사치와 나다니는 사람에게 호기있게 먼지를 씌워주는 무슨 본부, 무슨 본부, 무슨 당, 무슨 당의 자동차. 그렇다. 병든 서울아, 지난날에 네가, 이 잡놈 저 잡놈 모두 다 술취한 놈들과 밤늦도록 어깨동무를 하다시피   아 다정한 서울아 나도 밑천을 털고 보면 그런 놈 중의 하나이다. 나라 없는 원통함에 에이, 나라 없는 우리들 청춘의 반항은 이러한 것이었다. 반항이여! 반항이여! 이 얼마나 눈물나게 신명나는 일이냐   아름다운 서울, 사랑하는 그리고 정들은 나의 서울아 나는 조급히 병원 문에서 뛰어나온다 포장친 음식점, 다 썩은 구루마에 차려놓은 술장수 사뭇 돼지 구유같이 늘어선 끝끝내 더러운 거릴지라도 아, 나의 뼈와 살은 이곳에서 굵어졌다. 병든 서울, 아름다운, 그리고 미칠 것 같은 나의 서울아 네 품에 아무리 춤추는 바보와 술취한 망종이 다시 끓어도 나는 또 보았다. 우리들 인민의 이름으로 씩씩한 새 나라를 세우려 힘쓰는 이들을…… 그리고 나는 외친다. 우리 모든 인민의 이름으로 우리네 인민의 공통된 행복을 위하여 우리들은 얼마나 이것을 바라는 것이냐. 아, 인민의 힘으로 되는 새 나라 8월 15일, 9월 15일, 아니, 삼백예순 날 나는 죽기가 싫다고 몸부림치면서 울겠다. 너희들은 모두 다 내가 시골 구석에서 자식 땜에 아주 상해 버린 홀어머니만을 위하여 우는 줄 아느냐. 아니다, 아니다. 나는 보고 싶으다. 큰물이 지나간 서울의 하늘아 그때는 맑게 개인 하늘에 젊은이의 그리는 씩씩한 꿈들이 흰구름처럼 떠도는 것을…… 아름다운 서울, 사무치는, 그리고, 자랑스런 나의 서울아, 나라없이 자라난 서른 해 나는 고향까지 없었다. 그리고, 내가 길거리에서 자빠져 죽는 날, 그곳은 넓은 하늘과 푸른 솔밭이나 잔디 한뼘도 없는 너의 가장 번화한 거리 종로의 뒷골목 썩은 냄새 나는 선술집 문턱으로 알았다. 그러나 나는 이처럼 살았다. 그리고 나의 반항은 잠시 끝났다. 아 그 동안 슬픔에 울기만 하여 그냥 질척거리는 내 눈 아 그 동안 독한 술과 끝없는 비굴과 절망에 문드러진 내 쓸개 내 눈깔을 뽑아버리랴, 내 쓸개를 잡아떼어 길거리에 팽개치랴.   신: 이 시는 에 실린 시라고 하는데요. 이미 병환에 있으면서 광복을 맞는 시인의 복잡한 심정을 그대로 적고있지 않는가 생각됩니다.  좀 구체적으로 해설해주시지요.   림— ‘병든 서울’을 지은 오장환은 일제하에서도 친일시를 쓰지 않은 얼마되지 않는 사람중 한명이라고 한다. 그만큼 그의 의지는 곧았고 또한 그의 생각과 사상이 투철한 시를 많이 배출했던 것으로 보인다. 오장환은 전통적인 우리의 생활들, 오래된 인습들을 부정하고 새시대를 지향하는 시를 많이 써냈는데 그렇다고 하여 문명을 예찬하는 모습을 보이지는 않는다. 그는 걱정이 많은 시인이며 생각이 많은 시인임에 틀림없다. 그가 원했던 고향, 그가 원했던 시대는 절대 오지 않았고 결국 자신의 원하는 세상을 찾아 월북하게 된 시인인 듯하다. 조선에서 접한 세상 또한 시인이 원하는 세상은 아닐 것이었다는 짐작을 해보지만 그토록 자신이 소망하는 세계관이 강했기에 가능했던 것이 아닐까 해방은 도적처럼 왔다고 함석헌은 말했다. 이렇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미처 준비하지 못한채 광복을 맞이했다는 것을 뜻한다. 많은 사람들은 실로 일제가 패망하여 본국으로 돌아갈것을 예상치 못했다. 이때 사람들이 선택할수 있는 삶의 길중 하나가 “병든 탕아”로 살아가는 것이었을 것이다. 「병든 서울」은 해방도시 서울에서 역사적 미래에 대한 희망없이 자포자기적으로 살아왔던 지식인의 참회의 심사를 노래한 시이다. 시는 자기반성으로 시작된다. 해방을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채 병든 몸으로 죽어가리라 예감하던 화자의 부끄러움이 맨 먼저 고백된다. 이 고백은 그러나 시적 양심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인데, 왜냐하면 양심적 지식인 뿐만아니라 친일부역자들도 해방이후 애국지사로 변 모하는 실정이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시적 화자가 택하는 것은 인민의 나라를 건설해야 한다는 뚜렷한 이념적 지향점이다. 오장환이 왜 조선으로 가게 되였는가를 알려주는 시적 진술인데, 이런 신념이 화자로 하여금  “맑게 개인 하늘”과 “씩씩한 꿈”을 노래하도록 한다. 그리고 시는 다시 반성으로 끝난다. 잘못된 삶의 “쓸개”와 “눈깔”을 길거리에 팽개치는 것이 화자의 희망이며 이로써 새 현실이 올수 있다고 시인은 외치는 것이다. 신—네 광복을 맞이했지만 남다른 안광으로 현실을  보여주고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럼 계속하여 오장환문학관내에 있고 오장환시비에 새겨진 시 “나의 노래”를 감상하고 해설을 듣겠습니다.   나의 노래 오장환 나의 노래가 끝나는 날은 내 가슴에 아름다운 꽃이 피리라 새로운 묘에는 옛 흙이 향그러 단 한번 나는 울지도 않았다 새야 새 중에도 종다리야 화살같이 날라가거라 나의 슬픔은 오직 님을 향하야 나의 과녁은 오직 님을 향하야 단 한번 기꺼운 적도 없었더란다 슬피 바래는 마음만이 그를 좇아 내 노래는 벗과 함께 느끼었노라 나의 노래가 끝나는 날은 내 무덤에 아름다운 꽃이 피리라 신: 오장환시인의 시 였습니다. 오장환시인은 시마다에서 죽음과 련관시키고 있습니다. 젊어서부터 병환에 계신것만큼 자신의 생을 예견했던 모양입니다. 이 시도 제목은 지만 이라던가 같은 시구들을 쓰고있습니다. 림—해설: 신—네 어느덧 약속된 시간이 다 되여가는데요 오늘은 한국의 천재적 시인 오장환과 그의 일부 작품을 살펴보았습니다. 또다른 시적 재질을 보여준 천재적시인이 아니였는가 생각합니다. 선생님 오늘도 수고가 많았습니다. . 림—네 수고하셨습니다.
88    수필 여름과 가을의 길목에서 댓글:  조회:1679  추천:2  2014-08-23
오늘은 무더운 여름이 서늘한 가을로 가는 계절의 길목인 처서(处署)이다. 또 한계절이 하늘로부터 날아내린다. 바야흐로 눈앞에 날아내리는 크나큰 가을앞에 인간은 구경 어떤 답안지를 펼쳐내야만 할가?           요즘 중국시단에서 인기를 한몸에 받고있는 락영시인(원명:황노파)에 대한 자료를 읽어보게 되였다 참 탄복이 가는 시인이였다. 그가 어린 시절, 부대에서 군관으로 근무하던 그의 아버지가 퇴대하면서 조직의 분배에 잘 복종하지 않았다 하여 3년판결을 받는다 아버지는 화김에 약을 먹고 자결한다 란주로부터 녕하 은천으로 이사하여 고독한 동년을 보내던 락영시인은 중국서남의 편벽한 곳에서 고등학교시험을 치는데 당시로는 어마어마한 대학인 북경대학에 입학한다. 1998년에 그는 또 중국구라파국제공상학원을 졸업하고EMBA학위를 획득한다.             더구나 그후에는 중공중앙선전부에 배치받는다. 더 후에는 또 중국시장협회 회장조리(中国市长协会会长助理)로도 사업한다. 이만하면 어느정도 학자타입이고 또 권력기관의 정치물도 어지간히 맛보았다고 할수있을것이다. 하지만 그한테는 이것도 썩 마음에 내키지 않은가 보다 후에 그는 또 북경중곤투자집단동사장(北京中坤投资集团董事长)으로 있으며 유람풍경구를 개발하면서 처음으로 중국제4대상업모식을 창도하여 기업계에도 엄청난 센세이숀을 일으켰다. 물론 돈도 많이 벌었다.           헌데 그가 창업초기부터 아니, 중공중앙선전부에 있을때부터 절친하게 진했던 그의 동아리들이 그를 배신할줄이야. 그들은 락영의 밑에서 일하면서 그의 회사돈 3천만원이나 움직여 락영이 몰래 회사하나를 더 꾸렸던 것이다. 일시에 전신에 배신감이 몰려들면서 피가 거꾸로 솟았다. 인간의 욕심과 허영심은 오랜 옛정까지 여지없이 짓뭉개버리고 돈의 회오리바람에 휘청인것이다. 그는 강한 정신적인 공허감을 느꼈고 고독의 심연속에 깊숙히 빠져 허우적이였다. 3천만원이 그한테는 별로 큰돈은 아니였지만 정수리를 사정없이 내리치는 인간의 비탈아진 량심은 더는 눈뜨고 볼수가 없었다. 그는 시를 썼다. 고독과 방황, 인간에 대한 절망과 우정에 대한 불신임, 그는 그래서 아마 시에 그렇게도 많이 비탄과 우수를 담아낸것은 아닌지? 그런 시들이 차츰 축적되면서 중국시단을 놀래웠다. 하여 그는 중국시가학회 리사로, 북경대학신시연구소 부소장으로 발탁되기도 한다. 그는 근년래 시단에서 크게 각광을 받으면서 시집 “다시는 나를 사랑하지 말라”, “우수를 거절한다”, “락영집”, “도시류랑집”, “7+2등산일기” 등 시집과 중편소설 “푸른 태양”등을 써냈다.         몇몇 기업가들이 그한테 도대체 얼마만큼한 돈이 있을가고 서로 맞춰보기까지 했다는데 나중에는 그가 어지간히 큰 섬(岛)을 살수있는 돈까지 있다고 짚고 있는걸 봐선 그는 돈에서도 자유를 얻은 시인이였다. 하다면 이제 그한테 무엇이 더 필요할가?        헌데 그는 이에 만족함이 없다. 그는 크게 배신당한 일이 있고 인간의 존엄과 량심에 한대 얼얼하게 얻어맞은 일이 속에서 내려가지 않았을것이다. 요즘 그는 세계적으로 폭팔성적인 소식을 또다시 터쳐내 세인을 놀래우고 있다 그는 기업을 경영하고 시를 쓰는 와중에도 등산을 꾸준히 견지하면서 인간의 극한에 도전하고 있었는데 이미 전 세계의 가장 높은 봉우리 즉 7대봉우리를 다 독파하고 남극주와 북극에도 다녀왔단다 지금까지 7+2를 성사한 분은 전 세계적으로 15명밖에 없다는데 그가운데의 한사람이 바로 락영시인이다. 하여 그는 세계의 제일 높은 봉우리에서 시를 쓰는 시인으로 되였다.            그의 시는 여러나라 언어로 번역되였다. 그의 특이한 경력으로 하여 그의 시 또한 아주 특이하고 개성적이였다 헌데 거기서도 제일 주목되는건 그의 시에는 한결같이 랑만이 없다는것이다 시편마다 쓸쓸하고 비참하고 지어 랭혹한 그늘까지 비껴있는게 독특하다. 그가 해발 5,895m의 세계 7대륙 최고봉중 하나이자 아프리카 대륙 최고봉인 킬리만자로산을 독파하고 돌아올 무렵 북경대학에서는 그의 시집 “7+2등산일기”에 대한 출간기념회로 한창 열기를 띠고 있는 참이였다 그가 금방 인간의 극한에 도전하면서 생명의 위협속에서 살아나와 인간속세에 내려와서 자기의 시집 출간회 분위기에 들어설때 그의 감수는 과연 어떠했을가? 절대로 기쁘지만은 않았을것이다.             그한테는 지위나 권력이나 돈도 다가 만족을 줄수없다. 그가 지금 제일 관심하는 일은 바로 인간의 본능적 약점에 대한 투시(透视)와 인간의 극한(极限)에 대한 도전과 그런 도전으로부터 오는 짜릿한 시적인 그 어떤 감수일것이다 그는 자기를 포함한 인간을 항상 이 세상의 제일 끝머리의 한계점에 세워놓고 그 심태와 느낌을 새김질하면서 인생을 다루고 인간을 사색하고 있는것이다. 그는 일단 이런 소재로 시를 쓸때면 비애와 그리움과 동경속에 푹 젖어 밤잠도 설칠때가 많단다               참으로 우리 속세인간들로서는 리해하기 힘든 그런 경지에 매달려 자기를 저울질해보고 자기를 반추하고 인간의 심령깊이를 자대로 재보면서 세상의 풍전등화를 눈여겨 보고있는것이다. 인간의 삶의 시작은 구경 어디서부터이고 인간은 구경 어디로 가야하는가? 돈이란 무엇이며 지위란 무엇이며 권력이란 무엇이며 인간덕성의 최고경지와 최저경지는 또 어떤것인가? 락영시인앞에서 우리는 그 어마어마한 마음의 깊이와 넓이, 그리고 물(物)보다 령(灵)을 속속들이 참빛질하는 그 예리함에 머리가 숙여지지 않을수가 없는것이다. 락영시인은 바로 이런 속세인간들이 엄두도 못내고 있는 그 인간심해의 바다에서 티끌과 진주를 가려내며 인간이 아직 닿지 못하고 있는 극한에 우뚝 서서 찬서리가 뽀얗게 낀 짜릿한 느낌을 혼자만 맛보며 세상을 웃고있는게 아닌가?  추구란 무엇이며 성공이란 또 어떤 것일가? 이런 숙제앞에 락영시인이 엄숙한 모습으로 또 현란한 빛으로 지금 우리앞에 걸어가고 있는것이다…                                    (에서)
87    독일시인 릴케 댓글:  조회:1890  추천:3  2014-08-21
         신—문학살롱 진행을 맡은 신금철입니다. 네 지난주 작가초대석시간에는 독일의 대문호 괴테와 그의 대표작들에 대해서 살펴봤는데요 오늘은 독일의 유명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와 그의 작품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오늘도 연변시가학회 림금산시인을 마이크앞에 모셨습니다. 네 안녕하세요? 림—네 안녕하십까? 신—릴케라고 하면 윤동주의 시 “별혜는 밤”에서 나오는 라이너 마리야 릴케가 떠오르는데요. 윤동주시인도 릴케의 시들을 많이 좋아했나 봅니다. 림—네 바로 그렇죠. 신—그럼 오늘도 먼저 릴케의 생평부터 소개해주시지요. 림-릴케 -  1875년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던 체코의 프라하에서 칠삭둥이로 태어난 그는 어린 나이에 죽은 첫 딸을 잊지 못한 어머니에 의해 여자아이처럼 키워졌다. 일곱 살때까지 여자옷을 입고 지냈을 정도였다. 여자아이처럼 자란 릴케를 어머니는 다시 군사학교에 보냈다. 지옥 같은 기숙사 생활을 탈출한 그는 프라하대학, 뮌헨대학, 베를린대학 등에서 예술사, 문학사, 철학 등을 공부했고 시를 쓰기 시작했다. 릴케는 산문 `말테의 수기`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와 수많은 시편들을 남겼다. 릴케의 저작중 최고 걸작으로 `두이노의 비가`를 꼽는다. 삶과 죽음, 종교와 논리, 정신과 육체의 경계를 훌쩍 뛰어넘은 시집 `두이노의 비가`는 릴케 미학의 완성품이다. "내가 이렇게 울부짖은들 천사의 대열에서 누가 들어주랴. 우리가 아름다움을 그토록 찬미함은 파멸하리만큼 아름다움이 우리를 멸시하기 때문"이라는 절규는 릴케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불가능한 릴케만이 할수 있는 통찰이다. 전 10편으로 이루어진 `두이노의 비가`는 시인 릴케의 절정이다. 독일 비가의 전통을 이어받은 이 위대한 연작시는 정신성을 중시하는 근현대 시문학의 거대한 원형이다. 릴케는 1926년 51세로 사망했다. 알려진 것처럼 장미가시에 찔려 죽지는 않았다. 장미가시에 찔린 것이 백혈병을 악화시켰다는 설은 있지만 그것이 직접적인 사인은 아니었다. 워낙 장미를 좋아했던 릴케였기에 호사가들이 만들어낸 전설마저도 그와 너무나 잘 어울린다. 그의 묘비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 신- 릴케의 생평에는 루살로메라는 녀성을 빼여놓을수 없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들의 관계에 대해서 소개해주시지요. 이 녀성은 릴케보다 14년이나 년상이라고 들었는데 이들 둘은 어떻게 만나게 되였습니까? 림—네 살로메를 알기전 릴케는 모성 결핍속에 성장기를 보냈다. 세기말의 우울이 유럽을 휩싸고 있던 1897년 5월 어느 날 뮌헨,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는 소설가 야콥 바서만의 집에서 살로메를 만난다. 릴케는 열네살 연상의 유부녀 살로메를 처음 본 순간 이 사랑의 폭풍이 평생 자신을 따라다닐 것임을 직감한다. 루 살로메는 당대 최고 지식인이자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는 `뮤즈(muse)`였다. 철학자 니체, 심리학자 프로이트 같은 천재들이 살로메의 영향권 아래 있었다. 니체가 살로메를 처음 봤을 때 했다는 "우리는 어느 별에서 내려와서 이제야 만난 거죠"라는 말은 지금도 유명하다. 물론 살로메는 그 스스로도 훌륭한 작가이자 평론가였으며 심리학자이기도 했다. 릴케는 박력이라곤 없는 남자였다. 몸은 왜소했고, 피부는 유럽인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검었으며 모성결핍에 시달리는 무명 시인이었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살로메를 잊을수 없었던 릴케는 용기를 내서 살로메에게 편지를 보낸다. "친애하는 부인, 당신과 내가 보낸 어제 그 황혼의 시간은 처음이 아니었습니다"로 시작하는 달콤한 연애편지였다. 여기서 릴케가 처음이 아니라고 표현한 건, 이미 그녀의 에세이집 `유대인 예수`를 읽고 감명을 받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살로메와의 만남은 릴케의 모든 것을 바꿔버린다. 이름을 `르네`에서 `마리아`로 바꿨고, 필체까지 살로메를 흉내냈으며, 옷차림과 말투까지 달라진다. 무엇보다 릴케는 시인으로 성숙하기 시작한다. 살로메의 소개로 니체를 알게 된 그는 더 넓은 인식의 지평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낭만과 감수성의 대명사인 시인 릴케는 이렇게 탄생했다.   신—릴케의 인생에 이처럼 큰 영향을 준 루 살로메란 과연 어떤 여성입니까?  아주 지적인 녀성이고 자아를 최대한 추구한 특이한 녀성이라고 들었는데요. 어떻습니까? 림--루 살로메란 그녀는 과연 어떤 여성인가? 페이스북미투데이 - 내가 알고 있는게 있다면 그것은 나 자신에 대해서이다. 나는 이상에 따라 살수 없다. 그러나 아주 확실하게 나의 삶을 살수 있다. –루살로메. 확실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말했고, 자신이 원하는대로 생을 이끌어간 루살로메는 어떤 여자일까? 니체와 릴케, 프로이트와의 관계로 인해 사람들에게 더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그녀의 매력은 대체 무엇인가? 사람을 매혹시키는 기술에 대해 말할 때, 흔히 관능미를 말한다. 인간의 관능적인 욕구 가운데 하나는 우리 자신의 진정한 자아를 알고 싶어하고, 또 확인받고 싶어하는 욕망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흔히 요부라 표현하며 성적인 유혹을 유혹자란 단어에게서 떠올리지만, 역사속에서의 유혹녀들은 상당한 지성을 갖추었고, 상대방의 자아를 일깨워주는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루살로메는 사람의 심리를 꿰뚫는 통찰력과 탁월한 상담술을 가졌다고 다. 다이아몬드와 같은 지성이라고 격찬했던 그녀의 학교 교수들의 말대로 그녀의 지성의 매력은 막강했나보다. 그녀는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학자 파울 레와 니체와 함께 동거를 제안한다. 니체는 자신의 사상을 유일하게 이해해주고, 자신의 관심사의 본질에 대해 토론할 수 있는 그녀에게 빠져들었고, 친구인 파울 레와 경쟁하지만, 민한 성격의 소유자인 그는 먼저 둘을 떠나고, <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완성한다. 성관계없는 동거를 하던 파울 레와 루의 관계역시 깨졌고, 루는 안드레 아스와 결혼한다. 안드레아스와의 결혼의 조건도 성관계를 하지 않는 것이었다. 안드레아스는 이 자유분방한 여인과 희생적인 결혼관계를 유지한다. 딱 한 번 안드레아스는 루를 강간하려고 했으나, 미수에 그치고 만다. - 여자라는 것, 섹슈얼리티만이 부각된 여자의 운명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인간이라는 존재가 할 수 있는 다른 모든 것을 박탈당하는 셈이지.- 이렇게 연인들의 성적인 요구를 가차없이 거절했던 그녀는 30대 중반에 비로소 성에 눈을 뜬다. 그녀의 첫 상대가 누구인지는 불분명하다. 아마 임신도 했을꺼라는 추정을 받고 있는데, 아이는 유산되어졌다. - 자기 자신을 뛰어넘는 것은 엄청난 집중을 요구한다.- 철저하게 자유롭기를 원했던 그녀는 모성을 거부했다. 그녀는 서른 여섯살에 매혹적인 서정시인 14살 연하의 릴케와 만난다. 두 연인은 서로에게 빠져들었고, 루의 충고대로 릴케는 이름을 르네에서 라이너로 바꾸며, 완전한 복종을 보인다. 민감한 성격의 릴케가 신경불안을 보이자, 루는 더 많은 자유를 찾아 그를 버리지만 둘의 사이는 릴케가 죽을 때까지 서신교환을 하며 이어진다. 프로이트와 루의 관계는 이성적인게 아니라 스승과 제자의 관계로 시작되었고, 프로이트는 루의 지성을 두려움을 느낄 정도라고 표현했다. 그녀는 정신분석을 연구하며 프로이트의 학문에 도전해 나르시시즘, 사랑, 여성의 성욕에 대한 자신의 이론을 발전시켰다. - 사랑은 불성실의 원칙을 두고 있다.- 숱한 연인들을 유혹해서 울리고 자살까지 이르게 한 그녀의 매력은 무엇일까? 그녀는 자신의 결정에는 굽힘이 없었다고 한다. 연인들을 버리는데도 자책감을 갖지 않았다. 늘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아가는 그녀의 자유로움이 매력인 것인가... - 남성적인 근엄함과 어린 아이와 같은 환희와 여성적인 열의가 매력적으로 뒤섞여 있는 모습 - 루의 친구의 말. 루 살로메는 작가, 사상가, 심리분석가로 저작활동을 꾸준히했지만, 그것은 부차적인 것으로 보인다. 그녀가 원했던 건 자신의 < 자아 >를 찾는 것으로 보였다. - 그녀의 진정한 걸작은 그녀 자신이었다.- < 자아를 찾아가는 예술가로서의 선구자 > 철저하게 자기 자신에게 집중한 유혹녀... 러시아 장군의 딸로 태어난 그녀는 18세에 처음으로 42세의 유부남 러시아 황실교사로부터 청혼을 받았다. 그후 니체의 제자인 철학자 레와 사귀고, 그의 스승인 17년 연상 니체는 에서 "이 지상에서의 이상"이라고 그녀를 칭송했으며 14세 연하인 시인 릴케는 22세에 그녀를 만나 "저는 기도하고 싶은 심정으로만 당신을 보았습니다. 저는 당신앞에 무릎 꿇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심정으로만 당신을 열망했습니다." 라고 고백하고 평생을 존경하고 흠모 했다. 이후 프로이트는 연인이며 후원자로 그녀의 후년을 지켜주었다. 그의 서재에는 항상 살로메의 사진이 놓여 있었다. 그녀의 이러한 남성들로부터의 사랑은 단지 그녀의 미모만이 아니라 활달하면서도 대범한 그녀의 마음이 , , 등의 그녀의 책에 잘 나와있다. 신—릴케의 성장에 거대한 영향을 준 루살로메에 대해 알아보았는데요. 참 대단한 여성이였다는 느낌이 듭니다. 아주 지적이면서도 쾌활하고 또 신비로운 마력을 가진 작가였습니다. 그럼 아래에 릴케가 그토록 추구했던 루살로메에 대해 쓴 시를 함께 감상해보겠습니다. 루살로메 라이너 마리아 릴케 내 눈빛을 없샌다해도   나는 당신을 볼 수 있습니다. 내 귀를 막는다해도   나는 당신을 들을수 있습니다. 나는 발이 없어도 당신한테 갈수 있고 나는 입이 없어도 당신을 부를수 있습니다. 나의 두팔이 꺾이어 당신을 붙들수 없다면 나의 불타는 심장으로 당신을 붙잡을 것입니다. 나의 심장이 멈춘다면 나의 뇌수라도 그대를 향해 노래를 부를것입니다. 나의 뇌수마저 불태운다면 나는 파도치는 나의 피속에 당신을 싣고갈 것입니다. 신—네 이 시를 보니깐요 릴케가 진짜 어느 정도 살로메를 사랑했는가를 알것같습니다. 림: 해설—네 해설이 필요없습니다. 온 몸과 온 마음과 혈관속의 소품치는 피로 한 여인을 사랑한 사랑의 거창한 출렁임이고 사랑의 몸부림이고 사랑의 솟구치는 불길 그대로입니다… 신—그럼 계속하여 릴케의 시 을 감상해보고 림금산선생님의 해설을 듣겠습니다. 가   을 라이너 마리아 릴케 잎이 진다. 멀리에선듯 잎이 진다. 하늘의 먼 정원이 시들어 가는 듯 거부하는 몸짓으로 잎이 진다. 그리고 깊은 밤중에 무거운 지구가 고독에 잠긴다. 다른 모든 별들에게서 벗어나. 우리들 모두가 떨어진다. 이 손이 떨어진다. 보라, 다른 것들을. 모두가 떨어진다. 그러나 어느 한 사람이 있어, 이들 낙하를 한없이 너그러이 그의 양 손에다 받아들인다. 신: 네 릴케의 시 이였는데요. 이시에 대해서 해설해주시지요.   림—해설 하늘의 먼 정원이 시들어 간다는 표현도 멋지고 무거운 지구가 고독에 잠긴다는 발상도 놀랍다. 그보다 더 좋은 건, 릴케의 눈이다. 릴케의 눈은 하늘의 먼 정원과 무거운 지구를 바라볼 수 있는 광폭의 시야를 거느린다. 가을이란 나뭇잎 하나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우주 전체의 문제이기도 하다. 지구가 다른 모든 별들에게서 벗어나는 고독한 시간이라고 그는 말하고 있지 않는가. 그 시야에서만 보이는 게 있다. 낙하하는 것들을 양 손에 받아들이는 어떤 사람. 그는 누구일까. 이 따뜻한 언어로 세상의 추락을 들여다보고 있는, 시인 자신일까. 아니면 대지의 품을 그렇게 말한 것일까. 일차적으로 보면 그렇지만, 결국은 죽어가는 목숨을 거두어들이는, 시간이 펼치고 있는 손이다. 모든 삶들은 가을에 직면할 것이며, 그들은 떨어진다. 내가 펼쳐든 이 손 또한 같은 방식의 낙엽이 될 것이다. 거부하는 몸짓으로 경련을 일으키겠지만 결국 다 떨어진다. 그것을 다 받아주는 건 죽음의 시간이다. 세상 모든 사물의 추락을 기다렸다가 묵묵히 다 받아주는 존재의 발견. 피할 수 없는 '죽음'을 그는 한없이 너그러운 손이라고 부른다. 릴케만큼 가을의 진상을 명쾌하게, 그리고 따스한 겹눈으로 바라본 사람이 있었을까. 신: 릴케의 시에 대한 림금산시인의 해설이였습니다. 그럼 계속하여 릴케의 사랑시 를 감상하고 해설을 듣겠습니다. 한 그루 꽃나무 라이너 마리아 릴케 시간이 우리를 다시 떼어 놓는다 해도 활짝 피어나는 꽃나무 아래 함께 있듯 우리는 언제나 꿈속에서 함께 있겠어요. 우리는 시끄러운 말일랑 잊어버리고 별들이 별들을 말하듯 우리를 말하겠어요, 시끄러운 말들이야 모두 잊겠습니다, 활짝 피어나는 꽃나무 아래 함께 있듯이. 신: 참으로 아름답고 순수한 사랑시라고 생각되는데요. 이 시에 대해서도 해설해주시지요.   림—해설 이 시는 역시 루살로메에게 바친 릴케의 사랑시이다. 님과 함께 함께 하는 시간만은 말다툼도 다른것도 다 거두고 오직 별들과 같은 말, 별들이 하늘에서 서로서로 소곤대는 것과 같은 별처럼 빛나는 말만을 골라서 서로서로 서로에게 말하겠단다. 릴케는 후에 살로메와 갈라졌어도 서로 편지는 계속 오가군했단다. 그니깐 릴케의 사랑은 계속된것만 사실이다.   [출처] [본문스크랩] 한 그루 꽃나무 - 릴케(김재혁 옮김)|작성자 에스더 신—다음은 릴케의 시 을 함께 감상하고 해설을 듣도록하겠습니다. 고독 릴케 고독은 비와 같다. 고독은 바다에서 저녁을 향해 오른다. 고독은 아득히 외딴 평원에서 언제나 고독을 품고 있는 하늘로 향한다. 그러나 비로소 하늘에서 도시 위로 떨어져 내린다.   동틀 녘에 고독은 비가 되어 내린다. 모든 골목들이 아침을 향할 때, 아무 것도 찾지 못한 몸뚱어리들이 실망과 슬픔에 서로를 놓아줄 때, 서로 미워하는 사람들이 한 침대에서 자야 할 때,   고독은 강물과 함께 흐른다 신: 이 시에 대해서도 간단히 설명해주시지요.   림: 해설 《두이노의 비가》는 1912년 1월 하순에 시작하여 1922년 2월 26일에 완성되었다. 10년이 넘게 걸린 작품이다. 릴케는 첫 를 쓴 뒤 간헐적으로 작품에 손을 대면서 마치 소화되지 않은 음식물처럼 정신적으로 거북함을 느껴오다가 마침내 스위스의 뮈조트 성에서 작품의 완성을 보기에 이른다. 이탈리아 아드리아 해안에 있는 탁시스 후작 부인 소유의 두이노의 성 절벽 아래를 산책하다가 바람결에 들려온 소리를 그대로 받아적었다는 그 첫 머리는 다음과 같다.    내가 이렇게 소리친들, 천사의 계열 중 대체 그 누가  내 목소리를 들어줄까? 한 천사가 느닷없이  나를 가슴에 끌어안으면, 나보다 강한 그의  존재로 말미암아 나 스러지고 말 텐데. 아름다움이란  우리가 간신히 견디어내는 무서움의 시작일 뿐이므로.     릴케 스스로 천재적 정신의 결정적인 업적으로 여긴 대작 《두이노의 비가》의 이 첫 구절에서 우리는 무엇을 떠올릴 수 있을까? 대담한 메타포, 암호화된 상징, 현 시대와 동떨어진 것들의 시적 수용, 언어의 웅장함과 모호성, 무어라 규정할 수 없는 비장감, 그로 인한 해석상의 열린 특성, 이것이 우리가 릴케의 《두이노의 비가》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이리라. 바로 이로 인해 《두이노의 비가》는 현대 독일시 중 가장 접근하기 힘든 시 중의 하나가 되었다.     총 10편의 복잡한 상징 체계로 이루어진 이 연작시에 외견상으로나마 통일성을 부여하는 것은 '천사'라는 상징적 존재이다. 그렇다면 이 '천사'는 우리가 익히 떠올릴 수 있는 기독교의 천사를 말하는 것인가? 릴케는 폴란드의 번역가에게 쓴 편지에서 《두이노의 비가》의 천사는 기독교의 찬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밝힌다. "왜냐하면 《두이노의 비가》에서는 삶에 대한 긍정과 죽음에 대한 긍정이 한가지 것으로 증명되기 때문이다."   자신의 보잘것 없음에 한없이 자신을 낮추는 시적 자아는 이 상상의 높은 존재인 '천사를 향해 노래를 바친다. '천사'는 눈부신 완벽한 아름다움을 구가한다.   제1비가는 첫 머리에서 '천사'의 '거대함'앞의 인간존재의 기본 조건, 즉 인간의 불안정성과 미심쩍음을 노래한다. 이러한 완벽성을 지닌 천사는 '무서운' 존재로 나타난다. 제1비가와 주제상으로 가장 밀접한 관계에 있는 제2비가는 천사의 비가라고 할 수 있으며 나르시스처럼 완결된, 아무것도 잃지 않는 천사의 완벽성에 대한 찬가이다. 이것과 비교할 때 인간 존재의 '덧없는' 특성은 더욱 두드러진다. 이러한 현상은 제3비가에 들어서 다른 측면에서 더욱 강화된다. 비탄과 위험과 내맡김의 상태는 외부세계와의 관계에 있어서가 아니라 인간의 내면으로부터 생겨나는 추동으로 인한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태생적인 존재의 조건으로 이 비가는 사랑에 빠진 젊은이의 운명적인 충동뿐만 아니라 인간의 집단 무의식, 그 태고적 세계가지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이것을 대변하는 상징은 '숨겨진 죄 많은 피의 하신(河神)'이다.     자유로운 리듬뿐만 아니라 형상세계의 완결성으로 인해 《비가》 전체에서 우뚝 솟은 제5비가는 《비가》의 중심 축을 형성한다. 여기서 인간 존재를 비유하는 시적 대상은 파리의 곡예사 일가이다. 시인은 능숙하기는 하지만 영혼이 없고 기계적인 그들의 '능력'을 외향적이고 가상적이고 무의미한 것으로 해석한다. 그들은 이와 같은 비본질적인 평균적 존재의 표본이다.     보통의 인간 존재는 늘 인생의 '꽃핌' 속에 머물길 바라며, 죽음의 '열매'를 피하려 한다. 하지만 의식의 한계로 인하여 '저편'의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제6비가에서 인간의 부족함의 영역을 비탄조로 그리고 해석조로 형상화한 후 제7비가에서는 인간이 지닌, 제거할 수 없는 덧없음에 대한 통찰을 근거로 하여 '이곳의 것'을 긍정하는 찬양의 노래로 급변한다. 호흡이 긴 찬양조의 문장이 다음의 분명한 고백으로 상승된다.: "이곳(현세)에 산다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다." 이것은 자연의 칭송이자 모든 인간적 존재의 긍정이다. 세계의 멍청한 뒤바꿈이라고 느낀 현시대에서도 이곳 현세에서의 인간적인 존재의 의미를 파악하고 포고하는 것이 시인에게 존재의 이유를 부여한다.     이것은 곧 변용의 문제와 직결된다. 형체도 없는 기술 시대의 시대 정신에 의해 지배되는 시대에 자꾸만 벌어지는, 주변의 것의 덧없는 사라짐의 현상이 과거의 것과 현재 존재하는 것의 내면적인 것으로의 변용을 시인의 절대절명의 과제가 되게 한다.     제8비가는 리듬상으로 다시 축소되어 다시 한번 비판의 음조를 띤다. 여기서 시인은 인간과 자연의 생물 사이의 차이는 극복할 수 없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인간은 의식에 의해서 모든 자연스런 생물 존재들과 떨어져서 모든 생물들이 '죽음에서 벗어나' 두 눈으로 똑똑히 바라보는 '열린 세계'를 보지 못한다. 어린아이, 죽어가는 자, 간혹 사랑하는 사람만이 '열린 세계', 즉 한계지어지지 않은 이 세계에 접근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이것 저것 따지는 존재인지라 언제나 '세계'와 마주 서 있다.' 이것은 인간이 스스로 죽을 존재임을 언제나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인은 이것이 우리의 '운명'임을 받아들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명, 그 걷어치울 수 없는 한계와 일회성을 받아들여 어떻게 그것을 우리가 결실있게 할 것인가――제8비가는 제7비가에서처럼 변용을 이야기한다. 이것이 더욱 뚜렷한 윤곽을 얻는다. 그것은 말하기로 시작된다. 우리가 손을 쓸 수 없는, '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들'을 이야기하는 것, 마법적인 소환의 말을 통해 본래의 존재를 넘어서는 내밀성에 이른다. 오늘날 이 사물들은 '모습이 없는 행동', 즉 상징성이 없는 천박한 행위에 사로잡혀 있다. '말하기'를 통해서 이런 사물들은 보이지 않는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를 찾는다. 이렇게 보이지 않는 것으로의 변용이 사물들, 즉 '대지'가 우리에게 부여한 '사명', 즉 그것들을 덧없음에서 구원해낼 수 있는 가능성이다. 이 사명을 수락하고 무상한 이곳 존재와 친숙한 죽음에 대한 인정에서 삶에 대한 수긍의 태도가 자라난다.    대지여, 그대가 원하는 것은 이것이 아닌가? 우리의 마음에서  보이지 않게 다시 한번 살아나는 것. ― 언젠가 눈에 보이지  않게 되는, 그것이 그대의 꿈이 아니던가? ― 대지여! 보이지 않음이여!  변용이 아니라면, 무엇이 너의 절박한 사명이랴?     릴케가 스스로의 해석에서 《두이노의 비가》의 본래적인 의미이자 '사명'이라고 한 것을 우리는 시인의 지금까지의 다름 작품들을 토대로 해서 결론지을 수 있다. 그것은 이승의 삶과 세계 그리고 현존재에 대해 동조하는 찬양의 자세이다. 그것을 시인은 제10비가의 첫머리에서 다음 같이 노래한다.    언젠가 나 이 무서운 인식의 끝마당에 서서  화답하는 천사들을 향해 환호와 찬양의 노래를 부르리라.     제10비가는 비탄과 환호 사이의 균형감을 보여준다. 이 연작시의 대구적인 구조가 웅대하고 치밀한 메타포의 신화적 비전 속에 하나로 합쳐지고 지양되어 나타난다. '고통'과의 관계 속에서 그리고 고통의 풍경에 대한 묘사 속에서 두 영역의 통일성이 상징적으로 형상화된다. 시인은 여기서 다시 한번――이번에는 이같은 형이상학적 측면에서――우리 인간 존재의 비본래성, 특히 문명적인 일에 종사하고 그로 인해 정신이 분산될 경우를 들추어낸다. '고통의 도시'라는 풍자적인 알레고리를 통하여. 이러한 도시의 껍데기 같은 성격은 이 도시가 고통과 죽음을 구축한다는 데서 드러난다. 진정한 것은 이것들을 배경으로, 즉 죽음을 향한 공공연한 전이와 비탄의 풍경으로의 전이 속에서 얻어지는 것이다. 죽음의 나라――죽은 젊은이가 의인화된 '비탄'에 의해 인도되는 곳――는 이집트의 고대 풍경을 연상시킨다. 그런데 이곳의 가장 깊은 곳, 원초의 고통의 산맥에 둘러싸인 계곡에서 '기쁨의 샘물'이 솟아난다. 신—네, 어느덧 약속된 시간이 다 되여갑니다. 오늘도 림금산 시인과 함께 독일의 저명한 시인 릴케의 사랑과 그의 사랑시들을 살펴보는 뜻깊은 시간을 가졌습니다. 림선생 수고많았습니다. 림—네 수고하셨습니다. 신—그럼 노래한곡 감상하면서 오늘 문학살롱프로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오늘 프로편집에 김철운이였습니다.
86    백석시인 댓글:  조회:1659  추천:3  2014-08-21
  신—네, 문학살롱 신금철입니다. 지난시간에는 30년대 대표적 시인의 한사람이였던 오장환시인에 대해서 알아봤는데요 이번 시간에는 역시 30년대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가장 충실하게 노래한 대표적 시인 백석에 대해서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도 연변시가학회 림금산선생님을 모셨습니다. 안녕하세요? 림—네 수고많습니다. 남에는 정지용, 북에는 백석이라고할 정도로 국문학자들도 많이 거론한다는 시인 백석에 대해서 먼저 그의 생평부터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림--백석생애: 1. 어린 시절 백석의 본명은 백기행이다. 백석은 1912년 7월 1일, 평안북도 정주군 갈산면 익성동에서, 수원 백씨 17대손인 아버지 백시박과 단양 이씨인 모친 이봉우사이에서 3남 1녀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백석이 태어난 평안북도 정주는 역사적으로 서양의 신문화가 일찍 들어온 곳, 문단사적으로 보면 이광수, 김억, 김소월등의 대가들이 태어나고 성장한 곳이기도 하다. 백석은 7살이 되던 1918년에 오산소학교에 입학하였다. 그리고 13살이 되던 1924년에 오산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여 18세가 되던 해에 오산고보를 졸업하였다. 말하자면 오산학교를 생각하면 떠오르는것은 그 학교의 교사로 우리 근대소설사의 선구자인 이광수가 부임하여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또한 우리 근대시사의 앞자리에 놓이는 김억이 이 학교의 교사가 되어 역시 우리 근대시사의 유명 시인인 김소월을 이 학교에서 발굴하였다는 사실이다.  2. 동경 유학 및 등단 백석은 가정형편상 진학을 하지못하고 1년간 집에서 머무르던 시절동안 그가 이전부터 관심을 가져왔던 문학공부를 계속하여 다음해인 1930년 1월의 신춘문예 공모에서 소설부문에서의 「그 母와 아들」로 당선. 백석은 두 편의 단편소설를 쓰고 세편의 외국소설을 번역함. 백석은 정주에서 금광으로 부자가된 계초 방응모의 후원에 힘입어 그 장학금으로 일본의 동경에 있는 청산학원 영문과에 입학하면서 영어 불어 러시아에 능통하게 됨. 1934년, 귀국 조선일보사 교정부에서 일하게된 백석은 산문창작활동에 중점을 두다가 1935년 8월 31일, 조선일보 지면에 「定州成」이라는 작품을 발표함으로써 시인활동을 시작함. 3. 첫 시집 발간 후 주목 1936년에 이르러 「사슴」이라는 제목의 첫 시집을 100부 간행하였다. 백석은 이 시집을 출간함으로써 일약 1930년대 한국 시단의 신예시인으로 그 자리를 확고하게 굳히며 많은 관심속에서 중요한 논의의 대상으로 떠올랐고, 한국 시사의 주목받는 시인으로 평가될수 있는 바탕을 마련하였다. 김기림, 박용철, 임화, 오장환 등이 백석의 시에 관심을 보였는데 이들은 동시대의 이름있는 문인들로서 백석과 함께 당시의 문단을 만들어 나갔던 사람들이다. 4. 김자야와 만남 백석은 함흥에 머문 것은 그의 나이 25세부터 27세까지의 기간으로 이 기간 동안 백석은 그곳에서 김자야를 만나 사랑을 하게 된다. 이 김자야와의 만남은 3,4년에 불과한 일이었지만 백석의 생활과 그의 문학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최근에는 김자야에 의하여 그가 백석과 나누었던 사랑 이야기의 비밀이 「내 사랑 백석」이라는 이름의 책으로 출간되었다. 이 책에서 김자야가 밝힌 내용에 따르자면, 백석은 김자야와 실질적인 부부생활을 해가면서도 부모들의 권유와 강압에 못이겨 두번이나 봉건적인 중매결혼을 했던 것으로 되어 있다. 그때마다 백석은 결혼식만 치르고 뛰쳐나와 김자야에게로 달려왔다고 말한다. 5. 만주로 이주와 해방후 조선에 남음 일본 군국주의 통제가 심해지자 백석은 만주에 가서 관청에 다녔지만 창씨개명을 하라는 상사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고 그 직장을 나와 측량보조원, 측량서기, 소작인생활 등을 하다가 단동의 세관에 근무하였다고 한다, 백석은 해방을 맞아 조선에 남았고1961년까지는 조선작가동맹에 문인으로 소속되어 조선작가동맹 기관지인 월간 지에 작품을 지속적으로 발표하고 있었으나 그후 생사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신—백석시인의 작품경향을 한두마디로 간단히 귀납해본다면 어떻게 말할수 있을가요? 1.평안도방언을 시어로 사용 2.우리의 토속적인 삶의 모습을 이야기시형태로 형상화 3.백석작품의 특색은 민속적 세계다. 그의 시는 향토맛 짙은 아름다운 방언의 보물고이고 우리 민족 토속적인 생활의 박물관이고 민속세계이다… 신—그럼 백석시인의 대표적 작품의 한수인 “모닥불”을 함께 감상해봅시다.     모닥불   백석   새끼오리도 헌신짝도 소똥도 갓신창도 개니빠디도 너울쪽도 가락닢도 머리카락도 헌겊 조각도 막대꼬치도 기와장도 닭의 깃도 개터럭도 타는 모닥불 재당도 초시도 문장늙은이도 더부살이아이도 새사위도 갓사둔도 나그네도 주인도 할아버지도 손자도 붓장사도 땜쟁이도 큰 개도 강아지도 모두 모닥불을 쪼인다 모닥불은 어려서 우리 할아버지가 어미아비 없는 서러운 아이로 불쌍하니도 몽둥발이가 된 슬픈 역사가 있다 ----「모닥불」전문 이 시의 첫연에 나오는 사물들은 생물, 무생물의 구분을 따로 나눌것없이 우리들의 유년체험과 친숙하게 맞닿아 있는 모닥불의 재료들이다. 하지만 여전히 요긴하고 쓸모있는 것이 아니라 실생활에서 거의 쓸모없게 되어 삶의 뒷전으로 물러나 있거나 아예 버려진 하찮은 사물들끼리 모여서 이처럼 따뜻한 모닥불의 광휘와 온기를 이루어내고 있는 것이다. 1∼2연에 등장하는 각 낱말끝에 '∼도'라는 특수조사가 낱낱이 붙어있는것은 모닥불이라는 공간이 애틋한 소외존재들이 서로 만나는 평등한 장소임을 일깨워주는 하나의 시적장치로 여겨진다.   신— 백석의 시세계에서 또하나 돋보이는 것은 농촌적 정서를 아주 현장감이 느껴지도록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하던데요 다음에 감상할 시는 관서지방 농촌공동체의 여름, 저녁풍경을 실감나게 그려내고 있다고 합니다. 함께 보시죠   박각시 오는 저녁   백석 당콩밥에 가지 냉국의 저녁을 먹고 나서 바가지꽃 하이얀 지붕에 박각시 주락시 붕붕 날아오면 집은 안팎문을 휑하니 열젖기고 인간들은 모두 뒷등성으로 올라 멍석자리를 하고 바람을 쐬이는데 풀밭에는 어느새 하이얀 대림질감들이 한불 널리고 돌우래며 팟중이 산옆이 들썩하니 울어댄다 이리하여 하늘에 별이 잔콩마당 같고 강낭밭에 이슬이 비오듯 하는 밤이 된다 ---「박각시 오는 저녁」 전문   림—해설: 박각시—박각시나방의 일종. 주락시나방의 일종—나비의 일종으로서 곤충의 일종이다. 바가지꽃-박꽃 돌우래, 팟중—곤충의 일종. 강낭밭—옥수수밭 주제: 자연속에 묻혀지내는 시골의 생활풍경을 시화한 작품. 자연과 인간이 소통하며 살아가는 삶의 모습을 아름답게 보여주는 작품.   백석과 금지시인들   1987년 『백석시전집』(창작과비평사)이 발간된 이후 백석의 시는 문학인에 대한 금지가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조치인가를 그대로 일깨워 주었다. 동시에 백석의 문학에 대한 경탄과 더불어 백석처럼 그동안 금지라는 강제에 매몰되어 왔던 월북문인들의 작품에 대한 관심이 봇물 터지듯 일거에 터져나오게 되었다.   전후 세대들의 상당수는 백석을 비롯한 이찬, 오장환, 임화, 이용악, 설정식, 정지용, 김기림, 박아지, 여상현, 조벽암, 조영출, 권환 등 많은 금지시인들의 작품은 물론 그들의 존재조차 모르고 살아왔으며, 이런 분위기속에서 분단시대 남한의 문학인들은 개별적인 작품활동에 종사했다.   많은 신진문학연구가들에 의해 백석의 작품은 주요 단골연구 테마로 각광받고 있으며 전집 발간이후 가장 최근에 발간된『백석전집』에 이르기까지 무려 100여편이 넘는 연구논문, 학위논문, 또는 평론들이 학계와 문단에 제출발표되었다. 이와 동시에 문단에서 현역으로 활동하는 전후세대 시인들에 의해 백석의 문학작품과 시정신은 깊은 영향의 수수관계로 재창조되어서 계승되어가고 있다.   신—백석시인은 동시대의 기타 시인들과 좀 다른 풍격으로 시를 쓴것같은데요 그렇다면 백석문학의 특징들은 어떤 면에서 어떻게 찾아볼수 있습니까? 이 부분에 대해서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죠 림---백석문학의 특징:   상실되어가는 고향의식의 회복, 이를 통한 제국주의 문화의 극복, 전통문화유산에 대한 따뜻한 긍정, 백석 특유의 방언주의와 북방정서 등으로 정리될수 있다. 백석의 시는 우선 문체상의 개성이 다른 시인들에 비해 매우 뚜렷하다. 그가 즐겨 쓰고 있는 방법들은 대개 회고체, 방언체, 구어체, 의고체, 연결체, 만연체, 아동 어투의 독백체 등이며, 이는 민중적 정서를 농도짙게 풍겨나게 하는 기대를 갖고서 구사된다. 시인 자신의 유소년 시절의 체험과 고향 정서로써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방법들이 어김없이 회고체를 채택하게 하는 것이며, 시인의 고향인 평안북도 정주지역의 방언이 그의 시작품의 방언적 토대가 되고 있다. 백석의 시는 형태면에서도 독특한 변별성을 나타내고 있다. 그의 시가 대체로 서사성을 담보하고 있는 사례가 많으므로 담시, 서술시, 이야기시의 형태로 자연스럽게 구체화된다. 한편 백석시의 특징적인 분위기 가운데는 이미지의 구사가 유난히 독특한 면이 느껴진다는 점이다. 추억을 환기시키거나 토속적 분위기를 강렬하게 불러 일으킬때 주로 사용하는 이미지는 회고적 상상적 이미지이다. 이와 더불어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등의 다섯가지 감각 기관의 민감한 반응을 작용시켜 현장의 생동하는 느낌을 더욱 실감나게 고조시킨다. 군침이 돌거나 오줌냄새가 나거나…등   신-다음 역시 그의 대표적 시의 한수인 “동뇨부”를 함께 감상하고 해설을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동뇨부(童尿賦)                                백석    봄철날 한종일내 노곤하니 벌불 장난을 한 날 밤이면 으례 히 싸개동당을 지나는데 잘망하니 누어 싸는 오줌이 넙적다 리를 흐르는 따근따근한 맛 자리에 펑하니 괴이는 척척한 맛    첫여름 이른 저녁을 해치우고 인간들이 모두 터앞에 나와 서 물외포기에 당콩포기에 오줌을 주는 때 터앞에 밭마당에 샛길에 떠도는 오줌의 매캐한 재릿한 내음새    긴긴 겨울밤 인간들이 모두 한잠이 들은 재밤중에 나 혼자 일어나서 머리맡 쥐발 같은 새끼요강에 한없이 누는 잘 매럽 던 오줌의 사르릉 쪼로록 하는 소리    그리고 또 엄매의 말엔 내가 아직 굳은 밥을 모르던 때 살 갗 퍼런 막내고무가 잘도 받어 세수를 하였다는 내 오줌빛은 이슬같이 샛말갛기도 샛맑았다는 것이다   림—해설: 시「동뇨부」와 같은 경우는 1연의 '누어 싸는 오줌이 넓적다리를 흐르는 따끈따끈한 맛 자리에 펑하니 괴이는 척척한 맛'으로 표현된 촉각적 이미지, 2연의 '첫여름 이른 저녁 터앞에 밭마당에 샛길에 떠도는 오줌의 매캐한 재릿한 내음새'로 표현된 후각적 이미지, 3연의 '새끼오강에 한없이 누는 잘 매럽던 오줌의 사르릉 쪼로록 하는 소리'로 표현된 기발한 청각적 이미지, 4연의 '막내고무가 잘도 받어 세수를 하였다는 내 오줌빛은 이슬같이 샛말갛기도 샛맑았다는' 색채 형용의 이미지가 한 편의 시작품속에서 절묘하게 어우러져 기이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시 「북관(北關)」에서 명태창란젓을 '시큼한 배척한 퀴퀴한 이 내음새'라는 후각적 이미지와 '얼근한 비릿한 구릿한 이 맛'이라는 미각적 이미지로 연결 통합시키고 있는 부분들은 백석 시만의 독특한 방법이라 아니할 수 없다.   신—다음은 백석시인이 중국 만주에 왔을때를 배경으로한 시 “북방에서”를 함께 감상하고 그 해설을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북방에서                         백석    아득한 옛날에 나는 떠났다    부여를 숙신을 발해를 여진을 요를 금을    흥안령을 음산을 아무우르를 숭가리를    범과 사슴과 너구리를 배반하고    송어와 메기와 개구리를 속이고 나는 떠났다   나는 그때    자작나무와 이깔나무의 슬퍼하든 것을 기억한다    갈대와 장풍의 붙드든 말도 잊지 않었다    오로촌이 멧돌을 잡어 나를 잔치해 보내든 것도    쏠론이 십리길을 따러나와 울든 것도 잊지 않었다    나는 그때    아모 이기지 못할 슬픔도 시름도 없이    다만 게을리 먼 앞대로 떠나 나왔다    그리하여 따사한 햇귀에서 하이얀 옷을 입고    매끄러운 밥을 먹고 단샘을 마시고 낮잠을 잤다    밤에는 먼 개소리에 놀라나고    아츰에는 지나가는 사람마다에게 절을 하면서도    나는 나의 부끄러움을 알지 못했다      그동안 돌비는 깨어지고 많은 금은보화는 땅에 묻히고 가마귀도 긴 족보를 이루었는데    이리하여 또 한 아득한 새 옛날이 비롯하는 때    이제는 참으로 이기지 못할 슬픔과 시름에 쫓겨    나는 나의 옛 한울로 땅으로―나의 태반으로 돌아왔으나      이미 해는 늘고 달은 파리하고 바람은 미치고    보래구름만 혼자 넋없이 떠도는데      아, 나의 조상은 형제는 일가친척은 정다운 이웃은    그리운 것은 사랑하는 것은 우러르는 것은    나의 자랑은 나의 힘은 없다 바람과 물과 같이 지나가고 없다  림—해설: 1940년대 백석의 시는 자신의 삶과 문학에 대한 극심한 회의와 갈등을 보여준다. 일제 말기의 식민지 현실에 대한 자책감을 보여주는 시이다. 이 시의 화자는 백석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역사가 시작되던 때부터 현재까지 살고 있으면서 민족의 역사와 함께 희로애락을 같이 해온 역사적 화자이며 그의 삶은 역사 자체이다. 이 화자는 현재의 입장에서 자기가 살아온 삶과 역사를 되돌아보고 반성하고 가책하는 인물로 설정되어 있다. 이 떠남의 밑바탕에는 "이기지 못할 슬픔", "시름"이 개재되어 있지만 화자는 그러한 시름이나 슬픔 없이 자신을 의지하고 살던 오로촌, 쏠론족과 산천과 거기에 사는 현실을 극복한다기 보다는 회피함으로써 일신의 안일을 추구하는 행위로 규정되고 있음을 알수 있다. 또한 그 다음에 이어지는 "먼 개소리에 놀라나고/ 아츰에는 지나가는 사람마다에게 절을 하면서도/ 나는 나의 부끄러움을 알지 못했다"는 구절은 떠남 이후의 그의 삶의 비겁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의 삶 전체가 그러한 비겁성으로 얼룩져 있으며 그로 인해 급기야는 더이상 피할수 없는 경지에 다다르게 되고 그때에 와서야 슬픔을 안고 옛고향으로 찾아가지만 거기에는 조상도, 일가친척도, 자랑도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았다는 고백을 통해 일제 말기의 극한적인 상실감과 자신의 삶에 대한 가책과 슬픔을 보여주고 있다. 이 시는 백석이 북방을 유랑하던 시절에 씌어진 것으로 그의 역사에 대한 가책을 보여주는 시이다. 특히 지난 과거의 역사에 대한 반성을 삼자의 입장이 아닌, 민족의 역사와 함께 살아오고 있는 화자 자신의 목소리를 통해 제시함으로써 역사를 조상들의 탓으로 돌리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 짊어지고 그 슬픔을 감당하려는 한 시인의 진실한 면모와 역사적 현실앞에서의 무력감과 가책을 잘 보여주는 시이다.  신—백석시인은 어떤 소재와 제재로 시를 많이 씁니까? 소재 제재적 측면에 대해서 말씀주시죠?   림—백석의 시에서 다른 소재들에 비해 가장 빈번하게 나타나는 소재는 음식물과 관련된 사례들이다.   그의 시전집을 통틀어 음식물 소재는 대략 150여종이나 된다. 이 음식물들을 살펴 보면 우리의 토착적인 음식문화를 느끼게 하는 부분들이 있다. 이는 외래문화, 즉 제국주의적인 일본문화의 침탈을 시인이 의식하고 더욱 적극적으로 민족적 분위기가 강렬히 풍겨나는 토속음식들을 열거하고 집착을 보이기까지 했을것이다. 례: 막써레기, 돌나물김치, 백설기, 제비꼬리, 마타리, 가지취, 고비, 고사리, 두릅순, 회순, 물구지우림, 둥굴네우림, 도토리묵, 도토리범벅, 광살구, 찰복숭아, 잔디, 등 도합 148종이 넘는다. 이 음식물들의 종류를 가려뽑아서 보면 백석의 시에서 동원된 음식들이 모두 일반 서민들이 먹는 생활음식들의 명칭이라는 사실을 알수 있다. 이 가운데는 시골 아이들이 어릴적에 주워먹던 길바닥의 닭똥도 있고, 젓갈에 가자미식혜 등의 지역 음식도 보인다. 거의 대다수가 민중적 향취가 느껴지는 음식물들이며, 동물성보다는 식물성음식이 압도적으로 많은것도 특징이다. 백석의 시에 등장하는 동물과 식물의 구체적인 명칭도 상당수인바 야생동물, 가축, 물고기, 곤충 따위의 동물적 소재와 과수, 야생초, 약초, 해초, 채소, 과일, 곡식 등의 식물적 소재를 모두 추출하여 대비해보면 식물성이 약간 많다. 신--동물적 소재는 모두 72종이나 된다고 들었는데요. 림—네 지렝이, 박각시, 주락시, 개구리, 자벌기, 거미, 찰거머리, 버러지, 노랑나비, 벌, 딱장벌레, 파리떼, 노루, 곰, 멧도야지, 승냥이, 배암, 산토끼, 잔나비, 여우, 쪽재피,다람쥐, 도적괭이, 땅괭이, 호랑이, 당나귀, 오리, 개, 도적개, 얼럭소새끼, 도야지, 닭, 말, 토끼, 노새, 게사니, 소, 멧새, 물총새, 대부분의 동물들이 맹수류가 아니라 평화스러웁고 양순한 성질의 동물들이다. 이러한 동물들의 선택에서도 시인의 기질이나 품성을 엿볼수 있을것이다. 신—동물소재에 비해 식물적 소재들은 도합 79종이나 되는데 거의 모두가 시골생활에서 흔히 대할수 있는 것들이라지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림—네 돌나물, 제비꼬리, 마타리, 가지취, 고비, 고사리, 두릅순, 회순, 도토리, 살구나무, 찰복숭아, 배나무, 무이, 찹쌀, 왕밤, 천도복숭아, 콩가루, 섭구슬, 박, 감나무, 산뽕, 땅버들, 석류, 수리취, 송이버섯, 도라지꽃, 옥수수, 아카시아, 미역, 수무나무, 아주까리, 밤나무, 머루넝쿨, 재래종의 임금나무, 돌배, 벌배, 다래나무, 갈부던, 복사꽃, 이러한 식물들의 성격은 조용하고 평화스러운 동물들의 이미지와 어울려서 작품 세계의 아늑하고 민중적인 삶의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키는데 이바지하고 있다. 적어도 시작품속에서는 동물성과 식물성의 구별이 느껴지지 않는 합일공간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신--시인으로서의 백석은 천부적으로 참된 슬픔의 의미와 진정한 가치의 고귀함 등을 타고난 시인적 기질의 소유자라고 알고있습니다. 백석은 말합니다. '시인이란 세상의 온갖 슬프지 않은 것에 슬퍼할줄 아는 영혼을 지닌 사람'이다. 시인은 진실로 슬프고 근심스럽고, 괴로운 탓에 그속에서 즐거움의 참듯을 건진다.”  네 참으로 의미심장한 말씀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럼 아래에 백석시인이 슬퍼할줄 아는 령혼을 깊이 간직했음을 잘 보여주는 시 “여승”을 함께 감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여승             백석 여승은 합장하고 절을 했다 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 쓸쓸한 낯이 옛날같이 늙었다 나는 불경처럼 서러워졌다 평안도의 어느산 깊은 금덤판 나는 파리한 여인에게서 옥수수를 샀다 여인은 나어린 딸아이를 때리며 가을 밤같이 차게 울었다 섭벌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십년이 갔다 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 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   산꿩도 설게 울은 슬픔 날이 있었다 산절의 마당귀에 여인의 머리오리가 눈물방울과 같이 떨어진 날이 있었다   림-해설 여승—여자승려 기지취-산나물이름 금덤판—금전판-돈벌이간 곳 가을밤 같이 차게 울다—가을날의 밤열매같이 차갑게 울다 머리오리가 떨어진건—승려가 되려 머리를 깎았으니 머리가 떨어질밖에.. 분석: 현재—내앞에 합장하고 선 여승 여인의 과거1-돈벌러 깊은 산에 간 남편 여인의 과거2-10년간 돌아오지않은 남편 과거 3-죽어서 돌무덤에 묻힌 어린 딸 과거 4-여성은 머리깎고 슬프게 여승이 되다 주제: 살아가기 힘들어 남편은 잃고 딸은 죽어가고 자기는 여승이 된 민초들의 고달픈 생을 시화한 작품이다. 여기서 우리는 시인의 가엾은 생에 대한 남다른 동정과 관심과 애착을 볼수있으며 높은 슬픔이 있는 시인적 혼을 볼수 있다.   신--이 글속에서 백석이 말하는 '슬픈 정신'은 무엇이라고 이해해야 합니까? 아마도 세상과 뭇사물에 대한 크나큰 연민이 아닐까 한다. 모든 것을 다 내 마음속에 애틋하게 수용하고, 특히 모든 소외된 사물들에 대하여 따뜻한 가슴으로 끌어안으려는 불교적 자비심, 혹은 기독교적인 긍휼이나 사랑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높은 시름이 있고, 높은 슬픔이 있는 혼' '진실로 인생을 사랑하는 마음' '생명을 아끼는 마음' 등은 모름지기 시인이 가져야할 가장 기본적인 필수 덕목이자 품성인 것이다. 백석의 시가 유난히 작고 가냘프고 여린 것, 외롭고 못난 사물과 가여운 생명들에 대하여 남다른 관심과 애착을 가지는 이유도 바로 이러한 점에 있을 것이다. 잘나고 거만하고 자신을 뻐기는 존재나 화려한 사물들은 적어도 백석의 문학적 관심에서 일단 벗어나 있다. 신--다음으로는 백석의 시에 나타나는 인물들의 유형과 그 성격에 대하여 말씀주시죠? 림—네 이것은 백석의 문학이 지니고 있는 지향과 가치관을 보다 확연히 꿰뚫어 알아볼수 있는 중요한 경험이다. 앞의 소재 탐구에서도 알아본 바 있거니와 백석의 시는 민중적 삶의 정서와 그 분위기를 환기하는 일에 혼신의 문학적 정열을 기울였다. 그것은 인물 유형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거의 절대다수가 낮고 평범한 민중적 신분들이며, 하나같이 외롭고 쓸쓸하며 가난한 서민들이다. 시인이 굳이 이러한 인물들과 그들의 구체적 생활을 담으려 했던데는 그만한 이유가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시인은 가장 다수의 사람들의 처지를 대변하며 그들의 아픔과 고통을 위로하는 역할에 대한 자각을 분명히 갖고 있었던 듯하다. 친족집단이나 혹은 그와 유사한 방계집단을 중심인물로 등장시켜서 우리 모두가 공동체적 삶을 영위하던 민족이었음을 강력히 환기하고자 하는데도 그 목적이 있다. 특히 식민지시대의 제국주의 침탈과 문화적 유린속에서 민족의 주체성이 완전히 말살되어가는 위기에 직면하여 시인의 자기인식은 더욱 적극적으로 이러한 관심을 극대화시키도록 추동했을 것이었음에 틀림없다. 이 점에서 동시대의 비평가 박용철이 누구보다도 먼저 시인 백석의 작품에 대한 평가를 제대로 정확하게 했던것 같다. 박용철은 백석의 시를 '전반적으로 침식받고 있는 조선어에 대한 혼혈작용앞에서 민족의 순수를 지키려는 의식적 반발의 표시'로 보았던 것이다. 백석의 시에 등장하는 인물 유형들은 몇몇 역사적 인물을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이 농민들이거나 중심에서 비켜난 주변적 인물 유형들임을 알수 있다. 그들은 하나같이 착하고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으며, 오히려 남에게 고통과 상처를 받았으면서도 그것을 호소하거나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 그저 평범하게 자신의 일상적 삶을 묵묵히 살아가는 민초들인 것이다. 시인 백석은 영문학을 공부한 일본유학생 출신이었지만 귀국후 그의 활동은 이처럼 민족언어를 통한 민족본체성의 유지와 확보를 위한 노력에 바쳤다. 그의 시는 단 한마디도 민족주체를 말하지 않았으나 동시대 어느 누구의 시보다도 더욱 진한 민족주체의 정신적 토양을 확고히 끌어안고 있었다. 그의 시에서는 1930년대 중후반에서 1940년대 초반까지의 황량한 시대를 배경으로 전형적인 한국인의 표상들이 그려져 있다.    메기수염을 한 늙은 과일장수, 앓는 아버지를 위하여 약물을 받으며 오는 갸륵한 산골소년, 굿판에서 날이 시퍼런 작두를 타는 애처러운 애기무당, 민물고기를 잘 잡는 뻐드렁니 소년, 주막집에서 왁자지껄한 떠돌이 장사꾼들, '논두렁 개구리를 잡아서 구어먹는 소년들, 평안도의 어느 금광 입구에서 옥수수를 파는 한 여인의 슬픈 생애와 그 내력, 산골 여인숙에서 반들반들하게 기름때가 오른 목침을 베고 하루밤을 자고간 한없이 마음이 참담했던 식민지의 백성들, 일본인 순사의 집에서 서름구덩이로 식모살이를 하면서 손들이 거북등처럼 얼어터진 불쌍한 소녀 등등.   백석은 항상 힘없고 사는것이 어려우며 고통스러운 사람들편에 서서 그들의 삶의 아픔과 애환을 생생하게 그리고 정감이 감도는 필치로 그리려 하였고, 또 그것을 정감이 담뿍 감도는 필치로 그려서 보여주었다.   신—네, 어느덧 약속된 시간이 다 되여가는데요 요즘같이 말이 타락할대로 타락해서 말이 지닌 본래의 질서, 본래의 기품이 현저히 상실되어버린 시대에 우리는 지난날 민족언어의 질서를 회복하려고 일제탄압에도 혼자서 안간힘을 쓰던 백석시인의 눈물겹고도 아름다웠던 시정신을 다시금 뜨겁게 가슴으로 느끼게 됩니다. 네 오늘도 림선생님 수고하셨습니다. 림-네 수고하셨습니다. 신—그럼 이것으로 오늘 문학살롱프로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이시간 프로편집에 김철운이였습니다.  
85    김기림 시인 댓글:  조회:1638  추천:2  2014-08-20
신-문학살롱 신금철입니다. 네 지난시간에는 설을 맞는 기분으로 새해새날을 맞는 시들을 모아 살펴보았는데요 이번 시간에는 한국 30년대의 대표적 시인의 한사람인 김기림시인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도 연변시가학회 림금산시인님을 모셨습니다. 안녕하세요? 림-네 수고하십니다. 먼저 김기림시인의 생평부터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림-김기림소개 본명은 인손(仁孫) 호는 편석촌(片石村). 1921년 함경북도 성진시에서 태어나 보성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으나 곧 중퇴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릿쿄[立敎] 중학에 편입했다. 1926년 일본대학 문학예술과에 입학, 1930년 졸업 후 바로 귀국했다. 같은 해 4월 〈조선일보〉 기자로 근무하면서 조선일보에 〈가거라 새로운 생활로〉를 발표하여 문단에 등단, 같은 해 같은 신문에 평론 〈시의 기술 인식 현실 등 제문제〉를 발표하며 문학평론에도 뛰어들었다. 이듬해 고향에 내려가 무곡원(武谷園)이라는 과수원을 경영했다. 1933년 이태준·정지용·이무영·이효석 등과 함께 구인회를 조직했다. 1936년에는 첫 시집 《기상도》를 발표하였다. 1936년 일본 센다이[仙臺]에 있는 도호쿠대학[東北大學]에서 영문학을 전공했으며, 1939년 졸업과 함께 귀국해 〈조선일보〉 기자생활을 계속했다. 1942년에는 경성중학교 영어 교사를 지냈는데, 이때 배운 제자가 시인 김규동이다. 1945년 가족과 함께 월남하여 중앙대학교·연세대학교 강사를 거쳐 서울대학교 조교수, 신문화연구소장 등을 역임했다. 1946년 2월 8일에 열린 제1회 조선문학자대회에서 '조선 시에 관한 보고와 금후의 방향'이라는 연설을 했다. 같은 해 임화·김남천·이태준 등이 중심이 된 조선문학가동맹에 참여하여 시부위원회(詩部委員會) 위원장을 맡았다. 6·25전쟁 때 납북되어 1988년에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김기림시인에게도 많은 저서들이 있는줄로 알고있는데요 어떤 책들을 써냈습니까? 구체적으로 말씀주시죠 림-- 시집:《기상도》(장문사, 1936) 《태양의 풍속》(학예사, 1939) 《바다와 나비》(신문화연구소, 1946) 《새노래》( 1948) 이론서《문학개론》(신문화연구소, 1946) 시론집《시론》(백양당, 1947) 수필집《바다와 육체》(평범사, 1948) 번역서《과학개론》(을유문화사, 1948) 시론집《학원과 정치》(수도문화사, 1950) 유진호, 최호진, 이건호 공저. 시연구서《시의 이해》(을유문화사, 1950) 이론서《문장론신강》(민중서관, 1950) 엘리엇에게서 영향받아 주지주의 이미지즘 시를 주로 썼다. 동시대 한국 모더니즘 시의 기교주의를 비판하며 내용과 형식이 조화를 이룬 '전체시'의 창작을 주장하였다. 그의 초기 시들은 자신의 이론에 지나치게 충실하여 파편화된 이미지들이 흩어져 있을 뿐 시적 구체성을 결여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았으나, 그런 결점들은 차차 극복되었다. 평론 면에서는 영미 이미지즘과 주지주의를 도입하여 한국 시문학계의 한 전환이 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신-그럼 그의 대표작품의 하나인 “바다와 나비”를 함께 감상해 보시죠   바다와 나비  -김기림-   아무도 그에게 수심(水深)을 일러 준 일이 없기에 흰 나비는 도모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청(靑)무우밭인가 해서 내려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절어서 공주(公主)처럼 지쳐서 돌아온다.   삼월(三月)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글픈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   림-분석 상황-바다로 향함 반응-시련을 당하고 돌아옴    「바다와 나비」는 사물의 이미지를 나열하였던 김기림의 초기 시와는 달리, 압축되고 단단한 구조를 이루고 있다. 7행의 3연으로 이루어진 이 시는 의미에 있어서 1연과 3연이 2연을 둘러싸고 있다. 즉 1연과 3연은 나비의 자아인식을 다루고 있고 2연은 나비의 행동과 체험을 묘사하고 있다. 이를 좀 더 잘게 나누어 보면 이 작품은 연을 단위로 하여 처음, 중간, 끝으로 나누어진다. 처음 1연에는 나비와 바다의 관계가 나타난다. 먼저, 1, 2행에서 알 수 있듯이 나비는 바다를 무서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비가 바다에 대한 공포 의식이 전혀 없다는 것은, 사실 바다는 무서운 존재라는 것과 이런 바다의 무서움을 알아채지 못한 나비의 순진성을 동시에 암시한다. 나비는 순진한 꿈만으로 세계에 뛰어들지만 그 세계는 결코 만만치 않다. 무서운 줄 모르고 바다에 내려 앉으려다가는 그 수심에 휩쓸려 죽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바다의 무서움은 특히 수심을 통해 잘 드러난다. 수심은 바다의 헤아릴 수 없는 깊이의 두려움, 냉혹함을 상징한다. 이 시는 3단 구성의 탄탄한 구조를 취하고 있다. 1연의 나비의 무지함이, 2연에서 바다의 잔혹성을 경험하게 되는 계기가 되고, 3연에서는 그렇게 경험한 바다에 대하여 촉발된 나비의 공포감과 좌절감이 드러나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의 긴밀성은 시적 안정감과 균형감을 느끼게 한다.       신-다음은 1930년대 대표적인 모더니스트 시인의 한사람인 김기림의 「길」을 함께 감상하고 해설을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길 김기림       나의 소년 시절은 은(銀)빛 바다가 엿보이는 그 긴 언덕길을 어머니의 상여(喪輿)와 함께 꼬부라져 돌아갔다. 내 첫사랑도 그 길 위에서 조약돌처럼 집었다가 조약돌처럼 잃어버렸다. 그래서 나는 푸른 하늘 빛에 혼자 때없이 그 길을 넘어 강(江)가로 내려갔다가도 노을에 함뿍 자줏빛으로 젖어서 돌아오곤 했다. 그 강(江)가에는 봄이, 여름이, 가을이, 겨울이 나의 나이와 함께 여러 번 다녀갔다. 가마귀도 날아가고 두루미도 떠나간 다음에는 누런 모래둔과 그리고 어두운 내 마음이 남아서 몸서리쳤다. 그런 날은 항용 감기를 만나서 돌아와 앓았다.   할아버지도 언제 난 지를 모른다는 동구 밖 그 늙은 버드나무 밑에서 나는 지금도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 돌아오지 않는 계집애, 돌아오지 않는 이야기가 돌아올 것만 같아 멍하니 기다려 본다. 그러면 어느새 어둠이 기어와서 내 뺨의 얼룩을 씻어 준다.                                                                                                                                             림-분석 짐작하듯이 이 시는 작품 전체 속에 슬픔과 눈물이 배어 있다. 사람들에게서 가장 커다란 슬픔 중 하나는 사랑하는 어머니와의 이별일 것이다. 위 시의 첫 연은 바로 ‘어머니 상여(喪輿)’와 함께 시작한다. 어떤 영문인지 몰라도 어머니는 돌아가셨고 시적 화자는 ‘그 긴 언덕길’을 어머니의 죽음과 함께 했다. 그것도 시적 화자가 이제 막 새롭게 성장하려던 소년시절에 말이다. 1연에 ‘그 긴 언덕길’이라는 말에서 보듯이 소년의 슬픔은 아주 오랫동안 계속되었던 것 같다. 소년기의 불안과 초조, 그리고 어머니를 잃었다는 상실감을 그 누구도 달래주지 못했으니 말이다. 어머니를 잃은 슬픔 못지않게 소년의 가슴을 아프게 한 사건은 또  첫사랑을 잃은 슬픔이다. 햇빛에 반짝이는 물가의 조약돌처럼 우연히 시야에 들어왔다가 어디론가 금새 사라져 버리는 첫사랑. 아무리 움켜쥐려 해도 손가락 사이로 달아나 버리는 사랑, 어머니를 잃고 마음 붙일 곳 하나 없던 이 소년에게 첫사랑은 얼마나 간절했을까. 하지만 첫사랑이란 늘 그렇듯 소년의 가슴에 큰 상처만 남긴 채 조약돌처럼 사라져버렸다.  어머니도 잃고, 첫사랑도 잃어버린 소년의 감정은 어떠했을까. 그는 먼저 심한 자책과 자괴감에 시달렸을 것이다. ‘나’만 아니었다면 어머니가 돌아가시지 않았을 텐데, ‘나’만 어리석게 굴지 않았다면 첫사랑이 떠나지 않았을 텐데 하고 말이다. 소년은 그리움과 허전함에, 그리고 엄청난 혼란과 상실감에 수없이 강가에 내려갔다가 그곳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며 해가 저물면 노을에 젖은 채 돌아오곤 했을 것이다.  그렇게 소년의 세월은 흐른다. 봄이, 여름이, 가을이, 겨울이 소년의 나이와 함께 흘러갔다. 그리고 그 사이 소년에게서 가마귀도 떠나고 두루미도 떠난다. 그럴 때마다 소년은 다시 어두운 상실감에 빠져든다. 하지만 가마귀와 두루미가 모래둔덕을 정말 떠나갔을까. 가마귀와 두루미는 이내 모래둔덕을 다시 찾지 않았을까. 원래 자연에 속한 존재들이니 말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진정 떠났을까. 그것은 소년의 소년시절, 그 자체다. 가마귀와 두루미를 바라보던 소년의 눈은 어느새 점점 어른의 눈이 되어갔기에 그것들을 더 이상 바라볼 수 없었던 것이다. 어디 가마귀와 두루미뿐이었을까. 유년시절을 함께 했던 소중한 것들은 이제는 낯설어져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을 소년은 깨닫고 있었다. 친구도, 가족도, 마을의 뒷산도 점점 곁에서 멀어지고 이제는 홀로 서야 한다는 자각, 험한 세상을 헤쳐가야 한다는 서러운 다짐 속에서 소년은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마지막 연에서 소년은 이미 성장해 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소년시절을 잊지 못한다. 어머니를, 계집애를, 돌아오지 않는 소년 시절의 숱한 이야기들을 말이다. 내 존재의 근원이었고, 또 내 삶에서 처음 만나는 사랑의 감정이었는데 그것을 어떻게 잊을가만, 어른이 된 소년은 소리 없는 눈물로서 그리움을 달랜다.  마지막 시행, ‘어느새 어둠이 기어와서 내 빰의 얼룩을 씻어 준다.’라는 표현을 보자. 감정을 절제하고 이미지를 활용했던 시인답게 김기림은 소년이 울었다는 표현을 직접 하지 않는다. 다만 뺨에 묻은 얼룩이 눈물 자국이라는 것을 우리가 상상할 수 있을 뿐이다. 눈물을 흘리는 것. 그것은 아쉬움과 그리움의 표현이다. 상실감에 젖어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자. 이미 소년의 울음은 멈춰 있다. 뺨의 얼룩은 어둠이 와서 이미 씻어내지 않았나. 그는 울음을 쏟아내고, 자신의 복받치는 감정을 정화한 것이다. 그러니 소년은 이 시가 끝나는 그 순간, 무엇인가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 실컷 울고 나서 삶의 일상으로 되돌아온 것이다. 어느새 성인이 다 된 소년은 앞으로도 세상일에 지치고 고되고 어려운 일을 겪을 때, 늙은 버드나무 아래에 와서 서러움의 눈물을 흘릴 것이다. 남에게 보일 수 없는 눈물을 흘리며 새롭게 살아갈 마음을 다잡을 것이다. 어머니와 첫사랑을 잃은 이 소년이 너무 가엾지 않은가. 혼자서 딛고 일어서야 하는 이 친구가 안타까워 보이지 않는가. 그리고 그 삶에서 연민과 동정, 슬픔이 느껴지지 않는가? 왜? 그것은 바로 우리 자신의 모습과 너무나 닮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소중한 누군가를 잃었던 기억, 첫사랑에 실패했던 기억. 그것들이 새삼 기억의 저편에서 떠오르지 않는가. 그러니 이 시를 읽으며 조용히 한 번 울어보자. 무겁고 힘겨운 삶을 내려놓고 한 번쯤 산 어귀에 홀로 앉아 유년시절을 떠올리며 울어보자. 다 쏟아내고 나면, 작품 속 소년이 그렇듯 언젠가 눈물은 마르고 삶에 대한 새로운 용기가 꿈틀거릴 것이다. 시원하게 울어나 보자.  신-다음은 김기림시인의 시 “기상도”를 살펴보겠는데요 먼저 장시 “기상도”의 줄거리에 대해서 개괄적으로 소개해주시죠 림—소개  그는 비록 식민지의 조건에서였지만 근대라는 패러다임이 조선에도 실현되고 있었고 조선은 그러한 변화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한자로서 ., 근대적 환경에 대해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고민하고 그 속에서 우리 민족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신중하게 탐구한 자이다. 근대는 서구적인것이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며 우리는 우리 실정에 맞는 새로운 역사적 전망을 지녀야 한다는 인식을 기반으로 하여 모더니즘의 기초를 닦았다.   기상도는 7부로 구성된 장시로서 김기림이 현실에 대한 총체적인 비판의식을 담겠다는 의도로 기획된 것이다. 이 시는 일관된 주제와 단일한 구성을 지니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아왔지만 그보다 더 본질적인것은 김기림이 이 시를 통해 주체를 회복한 것이다. 그 주체는 과거시에서 편향적으로 드러났던 소극적이고 추상화된 자아가 아닌 역사와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과 극복의지를 지닌 적극적인 자아이다. 이때의 자아는 근대의 모순과 부조리를 인식하되 그 위에서 새로운 역사에의 전망을 지닌 강화된 주체이다 김기림은 이렇게 변화된 주체를 인식하고 수준 높은 시를 쓸 수 있게 되었다.  기상도 이후를 김기림의 모더니즘 시 전체의 질적 변환 시기로 볼 만큼 김기림에게나 우리나라 문학계에서 중요한 작품이다. 신-다음은 김기림의 대표적 작품인 장시 “기상도”의 제1부를 함께 감상하고 “기상도”전체를 분석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눈물, 진정한 성숙의 의미-김기림의 '길'|작성자 꿈별   기상도(氣象圖) 세계의 아침 김기림   비늘 돋힌 해협(海峽)은 배암의 잔등처럼 살아났고  아롱진 ‘아라비아’의 의상을 둘른 젊은 산맥들.   바람은 바닷가에 ‘사라센’의 비단폭처럼 미끄러웁고 오만(傲慢)한 풍경은 바로 오전 칠시(七時)의 절정(絶頂)에 가로 누었다.   헐덕이는 들 우에 늙은 향수(香水)를 뿌리는 교당(敎堂)의 녹쓰른 종(鍾)소리. 송아지들은 들로 돌아가렴으나. 아가씨는 바다에 밀려가는 윤선(輪船)을 오늘도 바래 보냈다.   국경 가까운 정거장(停車場). 차장(車掌)의 신호(信號)를 재촉하며 발을 굴르는 국제열차. 차창마다 ‘잘 있거라’를 삼키고 느껴서 우는 마님들의 이즈러진 얼골들. 여객기들은 대륙의 공중에서 티끌처럼 흩어졌다.   본국(本國)에서 오는 장거리 ‘라디오’의 효과를 실험하기 위하야 ‘쥬네브’로 여행하는 신사(紳士)의 가족들. ‘샴판’. 갑판. ‘안녕히 가세요’. ‘다녀 오리다’ 선부(船夫)들은 그들의 탄식을 기적(汽笛)에 맡기고 자리로 돌아간다.   부두에 달려 팔락이는 오색의 ‘테잎’ 그 여자의 머리의 오색의 ‘리본’   전서구(傳書鳩)들은 선실의 지붕에서 수도(首都)로 향하여 떠난다.   …… ‘스마트라’의 동쪽. …… 5 ‘킬로’의 해상(海上) …… 일행 감기(感氣)도 없다. 적도(赤道) 가까웁다. …… 20일 오전 열 시. ……   신-네 “기상도”제1부였는데요 아래 제1부와 더불어 제2부부터 제7부까지의 개략적인 내용을 좀 말씀해주시죠 림-네 비단폭처럼 미끄러운 바람 부는 바닷가에서 윤선을 타고 떠나고, 국경 근처에서는 국제 열차가 떠나고 또 여객기를 타고 떠나기도 한다. 어떤 방향도 없이 그저 어지럽게 떠난다는 사실만을 강조한 부분이 바로 제 1부이다. 다만 김기림은 이들 이미지들을 통하여 세계를 그저 하나의 입체적이고 동적인 상황으로 제시코자 한 것 같다.  제 2부 '시민 행렬'은 모두 39행으로 서로 관련성이 없는 12개의 토막 난 사건들을 임의로 모아놓고 있다.  제 3부의 '태풍의 기침시간'은 62행으로 마침내 이 작품의 중심 제재인 태풍이 등장하고, 태풍이 일어난 위치를 알리는 첫 연에 이어 태풍과 사공의 대화, 중앙 기상대의 태풍 경보수신, 제 1보, 제2보, 시의 게시판 등으로 전개된다.  제 4부 '자최'는 총 110행으로 에서 가장 많은 연수와 행수를 갖고 있는데 태풍이 중국 대륙을 강타한 장면을 그리고 있다. 가 태풍을 제재로 한 만큼, 구성상 이 시의 중심이며 내용상으로 가장 절정을 이룬다고 할 수 있다. 제 5부 '병든 풍경'은 40행으로 현대 자본주의의 문명의 파산을 예고하기 위해 장치된 장면이다. 그러나 그의 수사력은 문명의 종언을 예언할 수 있을 만큼 준비되어 있지 못했다. 그 작품은 내면적 중심성을 설정치 않은 채 촉수적 감각으로 문명에 대한 기상을 예보하려 했던 것을 입증해 주고 있다.  제 6부 '올빼미의 주문'은 79행으로 제 5부의 연장이다 고 볼 수 있는데 차이가 있다면 제 5부는 해안 풍경인데 반해 제 6부는 도시 풍경이란 점이다. 의 전체중 리얼리티가 가장 살아나 있다. 제 7부 '쇠 바퀴의 노래'는 62행으로 의 대단원인데 현실을 놓친 자들의 터무니없는 낙관론적인 태도가 문명의 종언을 막을 수 있다는 식의 '태양 예찬'으로 꾸며져 있다. 거기서 김기림이 상상하는 '태양의 고향'은 목가적이고 동화적임을  읽을 수 있는데, "전위적이고 실험적이고 또 새로운 것에 대해 무조건적인 예찬은 변화하는 유행에의 찬양으로 쉽게 타락할 수 있다."는 레나토포 지올리의 모더니스트들에 대한 경고는 김기림에 대한 적절한 표현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장시 는 7부로 되어있습니다. 신—네 장시 “기상도”를 다시 3개단락으로 나누어 분석해본다면요? 림-네 “기상도”는 또 3개단락으로 나누어 분석해볼수있습니다.  제 1단은 '세계의 아침', '시민 행렬', '태풍의 기침시간'으로서 태풍의 도래 단계이며, 제 2단은 '자최', '병든 풍경', '올빼미의 주문'으로서 태풍이 휘몰아 치고있는 상황과 태풍이 통과한 직 후의 폐허 된 모습이고, 제 3단은 '쇠 바퀴의 노래'로서 대단원인 태풍이 완전히 물러간 뒤의 밝고 희망찬 새 삶에 대한 기대 등으로 짜여져 있다. 태풍을 주제로 한 는 세계를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긍정적인 미래를 지향하는 초기시의 관념을 태풍의 발생 이전, 활동기, 소멸 이후란 줄거리로 초기 시에서 실험했던 갖가지 기교로 형상화 했다.   즉, 는 현대문명의 위기상황을 태풍에 비유하여 그것이 태동하여 휩쓸고 지나가기까지의 과정을 치밀한 설계도에 의해 그려낸 거대한 구조적 장시이다. 신-김기림시인의 대작 “기상도”가 여러가지 약점도 드러냈다는 평도 있던데요 어떻습니까? 림-- 시 전체로 볼 때 ‘태풍의 내습과 강타‘라는 상황이 ·풍유적(諷喩的, allegory) 기법에 의해 일본의 침략을 그려냄으로서 당대의 시대적 상황과 역사적 관점을 문명적 비판으로 표출하고 있는데, 파편처럼 흩어져 있는 그러한 이미지가 통합되지 못한 까닭에 시적 정서가 시인의 관념 속에서만펼쳐져 이미지즘의 구체성이 결여되었다는 비평도 있다. 김기림의 장시 는 그전의 감상적, 주정적 시를 극복하고 새로운 주지적 시풍을 확립하려는 그의 실험 정신의 소산이라 할 수 있다.  김기림은 말한다 '나'라는 좁은 세계에 감금당한 주정적 시는 직선적, 단선적 시각밖에는 가지지 못한 반면 새로운 주지적 시는 세계역사, 우주 전체를 향해 부단히 이동 확대를 꾀한 거시적 시각을 가지는 것이며, 복잡다단하고 굴곡이 많은 현대 문명에 알맞은 시 형태가 바로 장시이다, “기상도”는 김기림의 이런 시적 논리의 결과이다. 그러나 한국 근대시사상, 모처럼 시도된 김기림의 장시 는 문명 비판이라는 광범위하고 포괄적이고 피상적인 주제를 형상화 할만한 내적 긴밀성과 전체의 통일성을 상실한 채 단편적인 이미지의 나열에 그치고 말았다. 결국 문명의 모순과 세태풍자 정치적 위기 상황을 그려 내려던 는 애당초 김기림이 의도했던 "현대의 교향악"이 되기는커녕 국적 불명, 주제 불명의 혼란스러운 일개 포즈(pose)에 그치고 말았다고 보는 평론가들도 더러 있다. 신-다음은 “태양의 풍속”을 함께 감상해보시죠            태양의 풍속                                              김기림     태양아,   다만 한 번이라도 좋다. 너를 부르기 위하여 나는 두루미의 목통을 빌려 오마. 나의 마음의 무너진 터를 닦고 나는 그 위에 너를 위한 작은 궁전(宮殿)을 세우련다. 그러면 너는 그 속에 와서 살아라. 나는 너를 나의 어머니 나의 고향 나의 사랑 나의 희망이라고 부르마.그리고 너의 사나운 풍속을 좇아서 이 어둠을 깨물어 죽이련다.     태양아,   너는 나의 가슴 속 작은 우주의 호수와 산과 푸른 잔디밭과 흰 방천(防川)에서 불결한 간밤의 서리를 핥아버려라. 나의 시냇물을 쓰다듬어 주며 나의 바다의 요람을 흔들어 주어라. 너는 나의 병실을 어족들의 아침을 다리고 유쾌한 손님처럼 찾아오너라.     태양보다도 이쁘지 못한 시. 태양일 수가 없는 서러운 나의 시를 어두운 병실에 켜 놓고 태양아 네가 오기를 나는 이 밤을 세워 가며 기다린다. 신—다음은 “연가”를 함께 감상해보시죠  연가(戀歌)                                      김기림   두 뺨을 스치는 바람결이 한결 거세어 별이 꺼진 하늘 아래 짐승처럼 우짖는 도시의 소리 피해오듯 돌아오면서 내 마음 어느 새 그대 곁에 있고나 그대 마음 내게로 온 것이냐. 육로(陸路)로 천리(千里) 수로(水路) 천리 오늘 밤도 소스라쳐 깨우치는 꿈이 둘 가로수 설레는 바람소리 물새들 잠꼬대…… 그대 앓음소리 아닌 것 없고나. 그대 있는 곳 새나라 오노라. 얼마나, 소연하랴* 병 지닌 가슴에도 장미 같은 희망이 피어 그대 숨이 가뻐 처녀같이 수다스러우리라. 회오리 바람 미친 밤엔 우리 어깨와 어깨 지탱하여 찬비와 서릿발 즐거이 맞으리라 자빠져 김나는 뭉둥아리 하도 달면 이리도 피해 달아나리라. 새나라 언약이 이처럼 화려커늘 그대와 나 하루살이 목숨쯤이야 빛나는 하루 아침 이슬인들 어떠랴. 림—그대와 나 하루살이 목숨은 죽어도 괜찮다는, 새나라를 건설할 설계도가 화려하기때문에… 님과의 연가이자 조국과의 연가인것같은 느낌이 든다.. 신-다음은 김기림의 시 “공동묘지”를 함께 감상해뵈시죠   공동묘지                   김기림  일요일 아침마다 양지 바닥에는 무덤들이 버섯처럼 일제히 돋아난다. 상여는 늘 거리를 돌아다보면서 언덕으로 끌려 올라가군 하였다. 아무 무덤도 입을 벌리지 않도록 봉해 버렸건만 묵시록의 나팔 소리를 기다리는가 보아서 바람 소리에조차 모두들 귀를 쭝그린다. 조수(潮水)가 우는 달밤에는 등을 일으키고 넋없이 바다를 굽어본다. 림—공동묘지를 아주 어둡고 쓸쓸하게 그리지 않고 양지쪽의 버섯이라든가 무덤이 입을 벌리지않도록 봉해준다든가 조수가 우는 달밤에는 등을 일으키고 바다를 구경한다든가 암튼 무덤을 쓴 시로서는 어딘가 독특함이 보이는듯 하다. 신-다음은 김기림의 “연륜”함께 감상해보시죠  연륜(年輪) 김기림             무너지는 꽃이파리처럼            휘날려 발아래 깔리는            서른나문 해야            구름같이 피려던 뜻은 날로 굳어            한금 두금 곱다랗게 감기는 연륜(年輪)            갈매기처럼 꼬리 털며            산호(珊瑚) 핀 바다 바다에 나려앉은 섬으로 가자            비취빛 하늘아래 피는 꽃은 맑기도 하리라            무너질적에는 눈빛 파도에 적시우리            초라한 경력을 육지에 막은 다음            주름 잡히는 연륜(年輪)마저 끊어버리고            나도 또한 불꽃처럼 열렬히 살리라.  림—연륜과 바다, 갈매기, 섬 등을 아주 폭넓고 쓸슬히 펼쳐서 서른여해나 되는 남아의 채펴지못한 꿈과 리상을 열렬히 실현하고자 하는 결의를 아주 김기림만의 특색있게 시화했다. 읽기에 참 입맛이 당기는 좋은 시라 생각한다…우리 시각에서 보면 아주 신선한 느낌이다. 신-어느덧 약속된 시간이 다 되여가는데요 오늘은 30년대 모더니스트시인의 한사람인 김기림과 그의 부분적 작품들을 살펴보았는데요 김기림시인에 대해 어느정도 료해가 있었으리라 믿습니다. 오늘도 림선생님 수고많았습니다. 림-네 수고하셨습니다. 신-그럼 이것으로 오늘 문학살롱프로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이시간 프로편집에 김철운이였습니다. 김기림 시인 신-문학살롱 신금철입니다. 네 지난시간에는 설을 맞는 기분으로 새해새날을 맞는 시들을 모아 살펴보았는데요 이번 시간에는 한국 30년대의 대표적 시인의 한사람인 김기림시인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도 연변시가학회 림금산시인님을 모셨습니다. 안녕하세요? 림-네 수고하십니다. 먼저 김기림시인의 생평부터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림-김기림소개 본명은 인손(仁孫) 호는 편석촌(片石村). 1921년 함경북도 성진시에서 태어나 보성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으나 곧 중퇴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릿쿄[立敎] 중학에 편입했다. 1926년 일본대학 문학예술과에 입학, 1930년 졸업 후 바로 귀국했다. 같은 해 4월 〈조선일보〉 기자로 근무하면서 조선일보에 〈가거라 새로운 생활로〉를 발표하여 문단에 등단, 같은 해 같은 신문에 평론 〈시의 기술 인식 현실 등 제문제〉를 발표하며 문학평론에도 뛰어들었다. 이듬해 고향에 내려가 무곡원(武谷園)이라는 과수원을 경영했다. 1933년 이태준·정지용·이무영·이효석 등과 함께 구인회를 조직했다. 1936년에는 첫 시집 《기상도》를 발표하였다. 1936년 일본 센다이[仙臺]에 있는 도호쿠대학[東北大學]에서 영문학을 전공했으며, 1939년 졸업과 함께 귀국해 〈조선일보〉 기자생활을 계속했다. 1942년에는 경성중학교 영어 교사를 지냈는데, 이때 배운 제자가 시인 김규동이다. 1945년 가족과 함께 월남하여 중앙대학교·연세대학교 강사를 거쳐 서울대학교 조교수, 신문화연구소장 등을 역임했다. 1946년 2월 8일에 열린 제1회 조선문학자대회에서 '조선 시에 관한 보고와 금후의 방향'이라는 연설을 했다. 같은 해 임화·김남천·이태준 등이 중심이 된 조선문학가동맹에 참여하여 시부위원회(詩部委員會) 위원장을 맡았다. 6·25전쟁 때 납북되어 1988년에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김기림시인에게도 많은 저서들이 있는줄로 알고있는데요 어떤 책들을 써냈습니까? 구체적으로 말씀주시죠 림-- 시집:《기상도》(장문사, 1936) 《태양의 풍속》(학예사, 1939) 《바다와 나비》(신문화연구소, 1946) 《새노래》( 1948) 이론서《문학개론》(신문화연구소, 1946) 시론집《시론》(백양당, 1947) 수필집《바다와 육체》(평범사, 1948) 번역서《과학개론》(을유문화사, 1948) 시론집《학원과 정치》(수도문화사, 1950) 유진호, 최호진, 이건호 공저. 시연구서《시의 이해》(을유문화사, 1950) 이론서《문장론신강》(민중서관, 1950) 엘리엇에게서 영향받아 주지주의 이미지즘 시를 주로 썼다. 동시대 한국 모더니즘 시의 기교주의를 비판하며 내용과 형식이 조화를 이룬 '전체시'의 창작을 주장하였다. 그의 초기 시들은 자신의 이론에 지나치게 충실하여 파편화된 이미지들이 흩어져 있을 뿐 시적 구체성을 결여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았으나, 그런 결점들은 차차 극복되었다. 평론 면에서는 영미 이미지즘과 주지주의를 도입하여 한국 시문학계의 한 전환이 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신-그럼 그의 대표작품의 하나인 “바다와 나비”를 함께 감상해 보시죠   바다와 나비  -김기림-   아무도 그에게 수심(水深)을 일러 준 일이 없기에 흰 나비는 도모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청(靑)무우밭인가 해서 내려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절어서 공주(公主)처럼 지쳐서 돌아온다.   삼월(三月)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글픈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   림-분석 상황-바다로 향함 반응-시련을 당하고 돌아옴    「바다와 나비」는 사물의 이미지를 나열하였던 김기림의 초기 시와는 달리, 압축되고 단단한 구조를 이루고 있다. 7행의 3연으로 이루어진 이 시는 의미에 있어서 1연과 3연이 2연을 둘러싸고 있다. 즉 1연과 3연은 나비의 자아인식을 다루고 있고 2연은 나비의 행동과 체험을 묘사하고 있다. 이를 좀 더 잘게 나누어 보면 이 작품은 연을 단위로 하여 처음, 중간, 끝으로 나누어진다. 처음 1연에는 나비와 바다의 관계가 나타난다. 먼저, 1, 2행에서 알 수 있듯이 나비는 바다를 무서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비가 바다에 대한 공포 의식이 전혀 없다는 것은, 사실 바다는 무서운 존재라는 것과 이런 바다의 무서움을 알아채지 못한 나비의 순진성을 동시에 암시한다. 나비는 순진한 꿈만으로 세계에 뛰어들지만 그 세계는 결코 만만치 않다. 무서운 줄 모르고 바다에 내려 앉으려다가는 그 수심에 휩쓸려 죽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바다의 무서움은 특히 수심을 통해 잘 드러난다. 수심은 바다의 헤아릴 수 없는 깊이의 두려움, 냉혹함을 상징한다. 이 시는 3단 구성의 탄탄한 구조를 취하고 있다. 1연의 나비의 무지함이, 2연에서 바다의 잔혹성을 경험하게 되는 계기가 되고, 3연에서는 그렇게 경험한 바다에 대하여 촉발된 나비의 공포감과 좌절감이 드러나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의 긴밀성은 시적 안정감과 균형감을 느끼게 한다.       신-다음은 1930년대 대표적인 모더니스트 시인의 한사람인 김기림의 「길」을 함께 감상하고 해설을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길 김기림       나의 소년 시절은 은(銀)빛 바다가 엿보이는 그 긴 언덕길을 어머니의 상여(喪輿)와 함께 꼬부라져 돌아갔다. 내 첫사랑도 그 길 위에서 조약돌처럼 집었다가 조약돌처럼 잃어버렸다. 그래서 나는 푸른 하늘 빛에 혼자 때없이 그 길을 넘어 강(江)가로 내려갔다가도 노을에 함뿍 자줏빛으로 젖어서 돌아오곤 했다. 그 강(江)가에는 봄이, 여름이, 가을이, 겨울이 나의 나이와 함께 여러 번 다녀갔다. 가마귀도 날아가고 두루미도 떠나간 다음에는 누런 모래둔과 그리고 어두운 내 마음이 남아서 몸서리쳤다. 그런 날은 항용 감기를 만나서 돌아와 앓았다.   할아버지도 언제 난 지를 모른다는 동구 밖 그 늙은 버드나무 밑에서 나는 지금도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 돌아오지 않는 계집애, 돌아오지 않는 이야기가 돌아올 것만 같아 멍하니 기다려 본다. 그러면 어느새 어둠이 기어와서 내 뺨의 얼룩을 씻어 준다.                                                                                                                                             림-분석 짐작하듯이 이 시는 작품 전체 속에 슬픔과 눈물이 배어 있다. 사람들에게서 가장 커다란 슬픔 중 하나는 사랑하는 어머니와의 이별일 것이다. 위 시의 첫 연은 바로 ‘어머니 상여(喪輿)’와 함께 시작한다. 어떤 영문인지 몰라도 어머니는 돌아가셨고 시적 화자는 ‘그 긴 언덕길’을 어머니의 죽음과 함께 했다. 그것도 시적 화자가 이제 막 새롭게 성장하려던 소년시절에 말이다. 1연에 ‘그 긴 언덕길’이라는 말에서 보듯이 소년의 슬픔은 아주 오랫동안 계속되었던 것 같다. 소년기의 불안과 초조, 그리고 어머니를 잃었다는 상실감을 그 누구도 달래주지 못했으니 말이다. 어머니를 잃은 슬픔 못지않게 소년의 가슴을 아프게 한 사건은 또  첫사랑을 잃은 슬픔이다. 햇빛에 반짝이는 물가의 조약돌처럼 우연히 시야에 들어왔다가 어디론가 금새 사라져 버리는 첫사랑. 아무리 움켜쥐려 해도 손가락 사이로 달아나 버리는 사랑, 어머니를 잃고 마음 붙일 곳 하나 없던 이 소년에게 첫사랑은 얼마나 간절했을까. 하지만 첫사랑이란 늘 그렇듯 소년의 가슴에 큰 상처만 남긴 채 조약돌처럼 사라져버렸다.  어머니도 잃고, 첫사랑도 잃어버린 소년의 감정은 어떠했을까. 그는 먼저 심한 자책과 자괴감에 시달렸을 것이다. ‘나’만 아니었다면 어머니가 돌아가시지 않았을 텐데, ‘나’만 어리석게 굴지 않았다면 첫사랑이 떠나지 않았을 텐데 하고 말이다. 소년은 그리움과 허전함에, 그리고 엄청난 혼란과 상실감에 수없이 강가에 내려갔다가 그곳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며 해가 저물면 노을에 젖은 채 돌아오곤 했을 것이다.  그렇게 소년의 세월은 흐른다. 봄이, 여름이, 가을이, 겨울이 소년의 나이와 함께 흘러갔다. 그리고 그 사이 소년에게서 가마귀도 떠나고 두루미도 떠난다. 그럴 때마다 소년은 다시 어두운 상실감에 빠져든다. 하지만 가마귀와 두루미가 모래둔덕을 정말 떠나갔을까. 가마귀와 두루미는 이내 모래둔덕을 다시 찾지 않았을까. 원래 자연에 속한 존재들이니 말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진정 떠났을까. 그것은 소년의 소년시절, 그 자체다. 가마귀와 두루미를 바라보던 소년의 눈은 어느새 점점 어른의 눈이 되어갔기에 그것들을 더 이상 바라볼 수 없었던 것이다. 어디 가마귀와 두루미뿐이었을까. 유년시절을 함께 했던 소중한 것들은 이제는 낯설어져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을 소년은 깨닫고 있었다. 친구도, 가족도, 마을의 뒷산도 점점 곁에서 멀어지고 이제는 홀로 서야 한다는 자각, 험한 세상을 헤쳐가야 한다는 서러운 다짐 속에서 소년은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마지막 연에서 소년은 이미 성장해 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소년시절을 잊지 못한다. 어머니를, 계집애를, 돌아오지 않는 소년 시절의 숱한 이야기들을 말이다. 내 존재의 근원이었고, 또 내 삶에서 처음 만나는 사랑의 감정이었는데 그것을 어떻게 잊을가만, 어른이 된 소년은 소리 없는 눈물로서 그리움을 달랜다.  마지막 시행, ‘어느새 어둠이 기어와서 내 빰의 얼룩을 씻어 준다.’라는 표현을 보자. 감정을 절제하고 이미지를 활용했던 시인답게 김기림은 소년이 울었다는 표현을 직접 하지 않는다. 다만 뺨에 묻은 얼룩이 눈물 자국이라는 것을 우리가 상상할 수 있을 뿐이다. 눈물을 흘리는 것. 그것은 아쉬움과 그리움의 표현이다. 상실감에 젖어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자. 이미 소년의 울음은 멈춰 있다. 뺨의 얼룩은 어둠이 와서 이미 씻어내지 않았나. 그는 울음을 쏟아내고, 자신의 복받치는 감정을 정화한 것이다. 그러니 소년은 이 시가 끝나는 그 순간, 무엇인가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 실컷 울고 나서 삶의 일상으로 되돌아온 것이다. 어느새 성인이 다 된 소년은 앞으로도 세상일에 지치고 고되고 어려운 일을 겪을 때, 늙은 버드나무 아래에 와서 서러움의 눈물을 흘릴 것이다. 남에게 보일 수 없는 눈물을 흘리며 새롭게 살아갈 마음을 다잡을 것이다. 어머니와 첫사랑을 잃은 이 소년이 너무 가엾지 않은가. 혼자서 딛고 일어서야 하는 이 친구가 안타까워 보이지 않는가. 그리고 그 삶에서 연민과 동정, 슬픔이 느껴지지 않는가? 왜? 그것은 바로 우리 자신의 모습과 너무나 닮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소중한 누군가를 잃었던 기억, 첫사랑에 실패했던 기억. 그것들이 새삼 기억의 저편에서 떠오르지 않는가. 그러니 이 시를 읽으며 조용히 한 번 울어보자. 무겁고 힘겨운 삶을 내려놓고 한 번쯤 산 어귀에 홀로 앉아 유년시절을 떠올리며 울어보자. 다 쏟아내고 나면, 작품 속 소년이 그렇듯 언젠가 눈물은 마르고 삶에 대한 새로운 용기가 꿈틀거릴 것이다. 시원하게 울어나 보자.  신-다음은 김기림시인의 시 “기상도”를 살펴보겠는데요 먼저 장시 “기상도”의 줄거리에 대해서 개괄적으로 소개해주시죠 림—소개  그는 비록 식민지의 조건에서였지만 근대라는 패러다임이 조선에도 실현되고 있었고 조선은 그러한 변화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한자로서 ., 근대적 환경에 대해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고민하고 그 속에서 우리 민족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신중하게 탐구한 자이다. 근대는 서구적인것이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며 우리는 우리 실정에 맞는 새로운 역사적 전망을 지녀야 한다는 인식을 기반으로 하여 모더니즘의 기초를 닦았다.   기상도는 7부로 구성된 장시로서 김기림이 현실에 대한 총체적인 비판의식을 담겠다는 의도로 기획된 것이다. 이 시는 일관된 주제와 단일한 구성을 지니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아왔지만 그보다 더 본질적인것은 김기림이 이 시를 통해 주체를 회복한 것이다. 그 주체는 과거시에서 편향적으로 드러났던 소극적이고 추상화된 자아가 아닌 역사와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과 극복의지를 지닌 적극적인 자아이다. 이때의 자아는 근대의 모순과 부조리를 인식하되 그 위에서 새로운 역사에의 전망을 지닌 강화된 주체이다 김기림은 이렇게 변화된 주체를 인식하고 수준 높은 시를 쓸 수 있게 되었다.  기상도 이후를 김기림의 모더니즘 시 전체의 질적 변환 시기로 볼 만큼 김기림에게나 우리나라 문학계에서 중요한 작품이다. 신-다음은 김기림의 대표적 작품인 장시 “기상도”의 제1부를 함께 감상하고 “기상도”전체를 분석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눈물, 진정한 성숙의 의미-김기림의 '길'|작성자 꿈별   기상도(氣象圖) 세계의 아침 김기림   비늘 돋힌 해협(海峽)은 배암의 잔등처럼 살아났고  아롱진 ‘아라비아’의 의상을 둘른 젊은 산맥들.   바람은 바닷가에 ‘사라센’의 비단폭처럼 미끄러웁고 오만(傲慢)한 풍경은 바로 오전 칠시(七時)의 절정(絶頂)에 가로 누었다.   헐덕이는 들 우에 늙은 향수(香水)를 뿌리는 교당(敎堂)의 녹쓰른 종(鍾)소리. 송아지들은 들로 돌아가렴으나. 아가씨는 바다에 밀려가는 윤선(輪船)을 오늘도 바래 보냈다.   국경 가까운 정거장(停車場). 차장(車掌)의 신호(信號)를 재촉하며 발을 굴르는 국제열차. 차창마다 ‘잘 있거라’를 삼키고 느껴서 우는 마님들의 이즈러진 얼골들. 여객기들은 대륙의 공중에서 티끌처럼 흩어졌다.   본국(本國)에서 오는 장거리 ‘라디오’의 효과를 실험하기 위하야 ‘쥬네브’로 여행하는 신사(紳士)의 가족들. ‘샴판’. 갑판. ‘안녕히 가세요’. ‘다녀 오리다’ 선부(船夫)들은 그들의 탄식을 기적(汽笛)에 맡기고 자리로 돌아간다.   부두에 달려 팔락이는 오색의 ‘테잎’ 그 여자의 머리의 오색의 ‘리본’   전서구(傳書鳩)들은 선실의 지붕에서 수도(首都)로 향하여 떠난다.   …… ‘스마트라’의 동쪽. …… 5 ‘킬로’의 해상(海上) …… 일행 감기(感氣)도 없다. 적도(赤道) 가까웁다. …… 20일 오전 열 시. ……   신-네 “기상도”제1부였는데요 아래 제1부와 더불어 제2부부터 제7부까지의 개략적인 내용을 좀 말씀해주시죠 림-네 비단폭처럼 미끄러운 바람 부는 바닷가에서 윤선을 타고 떠나고, 국경 근처에서는 국제 열차가 떠나고 또 여객기를 타고 떠나기도 한다. 어떤 방향도 없이 그저 어지럽게 떠난다는 사실만을 강조한 부분이 바로 제 1부이다. 다만 김기림은 이들 이미지들을 통하여 세계를 그저 하나의 입체적이고 동적인 상황으로 제시코자 한 것 같다.  제 2부 '시민 행렬'은 모두 39행으로 서로 관련성이 없는 12개의 토막 난 사건들을 임의로 모아놓고 있다.  제 3부의 '태풍의 기침시간'은 62행으로 마침내 이 작품의 중심 제재인 태풍이 등장하고, 태풍이 일어난 위치를 알리는 첫 연에 이어 태풍과 사공의 대화, 중앙 기상대의 태풍 경보수신, 제 1보, 제2보, 시의 게시판 등으로 전개된다.  제 4부 '자최'는 총 110행으로 에서 가장 많은 연수와 행수를 갖고 있는데 태풍이 중국 대륙을 강타한 장면을 그리고 있다. 가 태풍을 제재로 한 만큼, 구성상 이 시의 중심이며 내용상으로 가장 절정을 이룬다고 할 수 있다. 제 5부 '병든 풍경'은 40행으로 현대 자본주의의 문명의 파산을 예고하기 위해 장치된 장면이다. 그러나 그의 수사력은 문명의 종언을 예언할 수 있을 만큼 준비되어 있지 못했다. 그 작품은 내면적 중심성을 설정치 않은 채 촉수적 감각으로 문명에 대한 기상을 예보하려 했던 것을 입증해 주고 있다.  제 6부 '올빼미의 주문'은 79행으로 제 5부의 연장이다 고 볼 수 있는데 차이가 있다면 제 5부는 해안 풍경인데 반해 제 6부는 도시 풍경이란 점이다. 의 전체중 리얼리티가 가장 살아나 있다. 제 7부 '쇠 바퀴의 노래'는 62행으로 의 대단원인데 현실을 놓친 자들의 터무니없는 낙관론적인 태도가 문명의 종언을 막을 수 있다는 식의 '태양 예찬'으로 꾸며져 있다. 거기서 김기림이 상상하는 '태양의 고향'은 목가적이고 동화적임을  읽을 수 있는데, "전위적이고 실험적이고 또 새로운 것에 대해 무조건적인 예찬은 변화하는 유행에의 찬양으로 쉽게 타락할 수 있다."는 레나토포 지올리의 모더니스트들에 대한 경고는 김기림에 대한 적절한 표현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장시 는 7부로 되어있습니다. 신—네 장시 “기상도”를 다시 3개단락으로 나누어 분석해본다면요? 림-네 “기상도”는 또 3개단락으로 나누어 분석해볼수있습니다.  제 1단은 '세계의 아침', '시민 행렬', '태풍의 기침시간'으로서 태풍의 도래 단계이며, 제 2단은 '자최', '병든 풍경', '올빼미의 주문'으로서 태풍이 휘몰아 치고있는 상황과 태풍이 통과한 직 후의 폐허 된 모습이고, 제 3단은 '쇠 바퀴의 노래'로서 대단원인 태풍이 완전히 물러간 뒤의 밝고 희망찬 새 삶에 대한 기대 등으로 짜여져 있다. 태풍을 주제로 한 는 세계를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긍정적인 미래를 지향하는 초기시의 관념을 태풍의 발생 이전, 활동기, 소멸 이후란 줄거리로 초기 시에서 실험했던 갖가지 기교로 형상화 했다.   즉, 는 현대문명의 위기상황을 태풍에 비유하여 그것이 태동하여 휩쓸고 지나가기까지의 과정을 치밀한 설계도에 의해 그려낸 거대한 구조적 장시이다. 신-김기림시인의 대작 “기상도”가 여러가지 약점도 드러냈다는 평도 있던데요 어떻습니까? 림-- 시 전체로 볼 때 ‘태풍의 내습과 강타‘라는 상황이 ·풍유적(諷喩的, allegory) 기법에 의해 일본의 침략을 그려냄으로서 당대의 시대적 상황과 역사적 관점을 문명적 비판으로 표출하고 있는데, 파편처럼 흩어져 있는 그러한 이미지가 통합되지 못한 까닭에 시적 정서가 시인의 관념 속에서만펼쳐져 이미지즘의 구체성이 결여되었다는 비평도 있다. 김기림의 장시 는 그전의 감상적, 주정적 시를 극복하고 새로운 주지적 시풍을 확립하려는 그의 실험 정신의 소산이라 할 수 있다.  김기림은 말한다 '나'라는 좁은 세계에 감금당한 주정적 시는 직선적, 단선적 시각밖에는 가지지 못한 반면 새로운 주지적 시는 세계역사, 우주 전체를 향해 부단히 이동 확대를 꾀한 거시적 시각을 가지는 것이며, 복잡다단하고 굴곡이 많은 현대 문명에 알맞은 시 형태가 바로 장시이다, “기상도”는 김기림의 이런 시적 논리의 결과이다. 그러나 한국 근대시사상, 모처럼 시도된 김기림의 장시 는 문명 비판이라는 광범위하고 포괄적이고 피상적인 주제를 형상화 할만한 내적 긴밀성과 전체의 통일성을 상실한 채 단편적인 이미지의 나열에 그치고 말았다. 결국 문명의 모순과 세태풍자 정치적 위기 상황을 그려 내려던 는 애당초 김기림이 의도했던 "현대의 교향악"이 되기는커녕 국적 불명, 주제 불명의 혼란스러운 일개 포즈(pose)에 그치고 말았다고 보는 평론가들도 더러 있다. 신-다음은 “태양의 풍속”을 함께 감상해보시죠            태양의 풍속                                              김기림     태양아,   다만 한 번이라도 좋다. 너를 부르기 위하여 나는 두루미의 목통을 빌려 오마. 나의 마음의 무너진 터를 닦고 나는 그 위에 너를 위한 작은 궁전(宮殿)을 세우련다. 그러면 너는 그 속에 와서 살아라. 나는 너를 나의 어머니 나의 고향 나의 사랑 나의 희망이라고 부르마.그리고 너의 사나운 풍속을 좇아서 이 어둠을 깨물어 죽이련다.     태양아,   너는 나의 가슴 속 작은 우주의 호수와 산과 푸른 잔디밭과 흰 방천(防川)에서 불결한 간밤의 서리를 핥아버려라. 나의 시냇물을 쓰다듬어 주며 나의 바다의 요람을 흔들어 주어라. 너는 나의 병실을 어족들의 아침을 다리고 유쾌한 손님처럼 찾아오너라.     태양보다도 이쁘지 못한 시. 태양일 수가 없는 서러운 나의 시를 어두운 병실에 켜 놓고 태양아 네가 오기를 나는 이 밤을 세워 가며 기다린다. 신—다음은 “연가”를 함께 감상해보시죠  연가(戀歌)                                      김기림   두 뺨을 스치는 바람결이 한결 거세어 별이 꺼진 하늘 아래 짐승처럼 우짖는 도시의 소리 피해오듯 돌아오면서 내 마음 어느 새 그대 곁에 있고나 그대 마음 내게로 온 것이냐. 육로(陸路)로 천리(千里) 수로(水路) 천리 오늘 밤도 소스라쳐 깨우치는 꿈이 둘 가로수 설레는 바람소리 물새들 잠꼬대…… 그대 앓음소리 아닌 것 없고나. 그대 있는 곳 새나라 오노라. 얼마나, 소연하랴* 병 지닌 가슴에도 장미 같은 희망이 피어 그대 숨이 가뻐 처녀같이 수다스러우리라. 회오리 바람 미친 밤엔 우리 어깨와 어깨 지탱하여 찬비와 서릿발 즐거이 맞으리라 자빠져 김나는 뭉둥아리 하도 달면 이리도 피해 달아나리라. 새나라 언약이 이처럼 화려커늘 그대와 나 하루살이 목숨쯤이야 빛나는 하루 아침 이슬인들 어떠랴. 림—그대와 나 하루살이 목숨은 죽어도 괜찮다는, 새나라를 건설할 설계도가 화려하기때문에… 님과의 연가이자 조국과의 연가인것같은 느낌이 든다.. 신-다음은 김기림의 시 “공동묘지”를 함께 감상해뵈시죠   공동묘지                   김기림  일요일 아침마다 양지 바닥에는 무덤들이 버섯처럼 일제히 돋아난다. 상여는 늘 거리를 돌아다보면서 언덕으로 끌려 올라가군 하였다. 아무 무덤도 입을 벌리지 않도록 봉해 버렸건만 묵시록의 나팔 소리를 기다리는가 보아서 바람 소리에조차 모두들 귀를 쭝그린다. 조수(潮水)가 우는 달밤에는 등을 일으키고 넋없이 바다를 굽어본다. 림—공동묘지를 아주 어둡고 쓸쓸하게 그리지 않고 양지쪽의 버섯이라든가 무덤이 입을 벌리지않도록 봉해준다든가 조수가 우는 달밤에는 등을 일으키고 바다를 구경한다든가 암튼 무덤을 쓴 시로서는 어딘가 독특함이 보이는듯 하다. 신-다음은 김기림의 “연륜”함께 감상해보시죠  연륜(年輪) 김기림             무너지는 꽃이파리처럼            휘날려 발아래 깔리는            서른나문 해야            구름같이 피려던 뜻은 날로 굳어            한금 두금 곱다랗게 감기는 연륜(年輪)            갈매기처럼 꼬리 털며            산호(珊瑚) 핀 바다 바다에 나려앉은 섬으로 가자            비취빛 하늘아래 피는 꽃은 맑기도 하리라            무너질적에는 눈빛 파도에 적시우리            초라한 경력을 육지에 막은 다음            주름 잡히는 연륜(年輪)마저 끊어버리고            나도 또한 불꽃처럼 열렬히 살리라.  림—연륜과 바다, 갈매기, 섬 등을 아주 폭넓고 쓸슬히 펼쳐서 서른여해나 되는 남아의 채펴지못한 꿈과 리상을 열렬히 실현하고자 하는 결의를 아주 김기림만의 특색있게 시화했다. 읽기에 참 입맛이 당기는 좋은 시라 생각한다…우리 시각에서 보면 아주 신선한 느낌이다. 신-어느덧 약속된 시간이 다 되여가는데요 오늘은 30년대 모더니스트시인의 한사람인 김기림과 그의 부분적 작품들을 살펴보았는데요 김기림시인에 대해 어느정도 료해가 있었으리라 믿습니다. 오늘도 림선생님 수고많았습니다. 림-네 수고하셨습니다. 신-그럼 이것으로 오늘 문학살롱프로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이시간 프로편집에 김철운이였습니다. 
84    김승종 시인 댓글:  조회:1343  추천:2  2014-08-19
  신-문학살롱 신금철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청도에서 오래동안 몸담고 시창작을 하시다가 미국에 이민간 홍군식시인을 소개했는대요 이번 시간에는 다년간 화룡시에서 시창작활동을 하시다가 한국에도 가서 한동안 일하면서 문학활동을 줄기차게 펼쳐온 김승종시인과 그의 일부 시들을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겠는데요 오늘도 연변시가학회 림금산부회장과 함께 합니다. 안녕하세요? 림-네 수고합니다.   신-그럼 먼저 김승종시인의 시 “그립다 그리워 또 다시한번”을 감상하겠습니다.   그립다 그리워 또 다시한번                 김승종   외할머니 우리 집으로 놀러오시면 그 언제나 삼베보따리엔 그윽한 향기에 물씬 젖어있고   모시수건에선 알락다람쥐와 다투며 주었다는 노오란 깸알이 어느새 요 내가슴에 똑또그르―  구수히  흘러든지 오래고   앞내가 버들가지에 돌쫑개며 버들개며를 해빛 몇오리와 함께 스리슬슬 군침 돌게 스리슬쩍 말리웠다는 어느새 울 아버지 맥주병 들고 코노래 흥흥 넉사자 입은 언녕 귀가에 걸린지 오래고   외할머니, 우리 집으로 늘 놀러 왔으면…   신-외할머니는 누구의 동년에나 다 인상깊은 분이시죠 외할머니, 외가집 등 이 시는 김시인이 어렸을때 외할머니가 자기집에 오시던 때를 추억하면서 그때가 그립다고 쓴 시인데요 진짜 우리 민족의 시골에서는 흔히 볼수있는 삼베보따리,깸알, 돌쫑개, 버들개 그것도 해볕에 말리우느라 해빛 몇오리까지 함께 있는 향기론 물건들 그래서 아빠는 이날만은 맥주도 마이고 즐거워하신다는 …물론 시인 자신은 더욱 즐겁겠지요. 그래서 정말 외할머니가 오시는 날은 명절같은 날이고 뭔가 먹을수 있는 날이여서 그 살기힘들던 시절 더욱 잊혀안지는거겠죠… 이 시는 외할머니가 오시기를 기다리던 일을 추억하면서 그리운 고향과 고향사람들, 친지들을 그리는 마음을 잘 시화한것이지요       신-그럼 김승종시인의 프로필에 대해서 소개주시죠 림-네, 김승종시인은 1963년 화룡시 로과향 죽림촌에서 출생하였습니다, 연변대학사범학원졸업후 연변작가협회 이사, 화룡시 모향 신용사에서도 10여년 근무, 화룡시청년시인회 회장, 화룡시작가협회 주석 등 단위를 떠나 한국에 가있는 5년동안 경상북도안동 간고등어가공회사에 서 일하면서(고등어를 밸따기일) 유관 유지인사들과 련계하여 해마다 한화 천만원을 유치해 연변작가협회에 보내주어 중국조선족대학생“이육사문학상”행사를 펼치고 있다. 이미 2011과 2012년에 진행했고 앞으로도 매년 하는 활동으로 자리매김 하는것 같다. 그리고 서지월선생이 책임진 대구시인학교에도 가서 시낭송 등 문학행사에 참가했고 안동의 이육사기념관, 옥천의 정지용생가 등도 다니고 또 재한조선족문인회에도 참가하여 활약상을 보였다. 룡정에서는 또 룡정시아동문학학회에서 아동소설창작에 대한 강의도 하시고 …요몇년전엔 또 자신이 한국서 땀흘려 번 돈 300만(한화)을 기증하여 중국조선족중청년들의 모던시집 “은회색 두 동네 카니발”을 출판하였다. 한국세계계관시인협회 본상, 두만강여울소리상, 등 수상. 시집: “보리 한알과 등록되잖은 R와 일회용삶”-연길에서 출간기념회까지 가짐.       “보리깜부기와 ‘구혼광고’와 흰 그림자의 삶” 등 펴냄.   지평선너머     김승종     지평선너머 노을이 몸풀이하던   개바자너머로 쥬우― 쥬쥬쥬 닭들을 어둠과 더불어 하아얗게 불러들이던   문턱너머 화로불우에서 시라지국이며 오누이장국이며 구수히―  얼룩고양이 코끝을 건드리던   나의 고향 느즈막 추억과 함께 새까아맣게 부서지고 그늘 비낀 마음속에서 하냥 색바래지고있는 아―   ―모두들 안녕하시우   림- 매일같이 고된 노동에 지치다 지평선너머 멀리를 눈주어 바라보면 고향이 그립겠지요 이제 마저 일을 다 마치고 가야할 그리운 고향, 지금 그곳에서는 예전처럼 어른들이 개바자너머로 쥬쥬-하며 닭들을 불러들일것이고 집안에서는 시라지국이며 오누이장이며를 홀-홀 불며 마시고 있을것 같은 그런 느낌과 그런 영상이 떠오르겠죠…물론 그것도 어린 시절의 그림이겠죠 그래서 새까맣게 부서지는 추억이고 또 마음속에는 그늘이 비끼고 색바래지는 추억…하나는 하루일에 고달파서 추억까지 부셔졌을것이고 다른 하나는 요즘 스러져 가는 우리 농촌의 현실이 안타까운것도 있겠죠. 이 모든것을 마지막 한줄에 담아 “ –모두들 안녕하시우”하고 문안이나 올리는겁니다. 역시 고향과 이웃을 그리는 고향애가 다분히 풍기는 시라고 생각됩니다.   새벽   김승종   어머님 어머님 어머님은ㅡ 남을 위한 종을                   그렇게도 많이 쳐주셨소이다   어머님 어머님 어머님은ㅡ 자신을 위한 종은                       단 한번도 못쳐보고 가셨소이다   어ㅡ머ㅡ님!ㅡ   림-돌아간 어머님을 부르고 부르는데 그 부르는 소리가 사방으로 종소리처럼 막 비껴갑니다. 쓸때 진짜 이쪽 저쪽으로 시행을 옮기면서 종소리가 비껴가는것 형태처럼 썼습니다. 진짜 우리 어머님들은 한생동안 남을 위한 종은 많이도 쳤지요 아침부터 “얘들아, 빨리 일어나 밥먹고 학교가라…”,또는 “얘들아, 남산더기의 콩기음을 오늘은 끝내라…” , “얘들아, 내가 오늘은 고사리말린것 팔아갖고 오마” 그리고 또 학교가서 선생말씀 잘듣거라, 나쁜 일을 하지말라..종을 많이 쳤죠. 그러나 단 한번도 자기를 위한 종을 치지 안았습니다. 어머니란 그 자체가 희생적인 존재이니깐요. 오직 자식과 남편과 늙으신 량가부모님과 동네 사람들을 위해 살아오신 어머니죠 어느 가사에도 있다싶이 “부모라는 그이름이 생겨날때엔 사랑이란 그 이름도 함께 나왔다.” 등…. 말린 나물을 팔아서는 그래서는 애들 고무신이나 소금같은걸 사오느라 몇십리씩 도회에 걸어갔다 캄캄한 밤에야 돌아오신 우리들의 어머님이시죠 더우기 김시인이 살던 곳은 깊은 산속…그러니깐 숭선으로 가는데 큰산을 넘는데 그 큰산을 거의 넘어서 아직은 숭선은 좀 멀고 그런 곳에 있는 자그마한 산속마을에서 살았으니깐…그때 당시는 화룡시로 오자면 걸어서 다녀올때가 많았죠. 즉 이 시는 한생을 자기아닌 남을 위해 살아오시다 돌아간 어머님을 피타게 부르는 그 부름자체인것입니다. 그래서 제일 마지막 한행은 “어머님-!”하고 세글자에 감탄부호가까지 달아놓았죠…   7천만 족보찾기              김승종     봄우뢰 운다. 새하아얀 가슴 가슴마다에 봄우뢰 운다 뜨거운 맘, 맘 너머 시꺼먼 금이 간 골짜기에 봄우뢰 운다 봄우뢰 메인다   오해 아닌 최대의 죄악의 오해 아니기를 시비 아닌 최대의 죄악의 시비 아니기를 슬픔 아닌 최대의 죄악의 슬픔 아니기를 고독 아닌 최대의 죄악의 고독 아니기를 랑비 아닌 최대의 죄악의 랑비 아니기를                                                                      ... 의 번지는ㅡ 의 족보는ㅡ 세상은?ㅡ 세상은?ㅡ 봄우뢰 운다 봄우뢰 메인다 엇허, 살아서 한냥짜리 될가... 엇허, 죽어서 천만억조...냥짜리 될가... 모두들 종당엔 저ㅡ 높고 장중한 큰산아래 자그마한 이 되련만... 봄우뢰 운다 봄우뢰 메인다...   림-우리 민족이 아직도 제대로 족보를 찾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와 부르짖은 시같습니다. 즉 우리 민족은 북에서도 남에서도 모두 제대로 되는 “족보”를 못찾고 있는 현실입니다. 즉 통일되지 못하고 아직도 미국이든가 등 나라들의 간섭을 많이 받고있는 상황… 시가 박력이 강하고 넓고 ..전반 우리 민족의 가장 큰 운명적인 문제를 다루었는데 처지는 감이 없고 거창하게 흘러 좋았습니다. 봄우뢰 메인다. 사람도 너무 울면 목이 메인다. 봄우뢰도 의인화하여 울다 목이 메인다…남북통일에 대한 갈망으로 몸부림치다 목메여 쓰러지는 …피타는 절규…피타는 호소…   그 어느 날의 빛                    김승종   오늘도 흐른다... 맥(脈), 맥과 맥으로ㅡ   개굴개굴 ㅡ 복사꽃 피는 내 고향이다가 옹기종기 ㅡ 꿀샘을 파는 초가삼간이다가 새콤달콤 ㅡ 오얏 따주는 할배할매이다가 시원컬컬 ㅡ 막걸리 빚는 시골의 향음이다가 에루와 데루와 ㅡ 강강수월래 강강수월래이다가 어절씨구 저절씨구 ㅡ 아리 아리 아리랑이다가   오늘도 흐른다... 맥(脈), 맥과 맥으로ㅡ   진단(震檀)이다가 이다가 이다가 이다가 에루와 데루와 ㅡ 강강수월래 강강수월래이다가 어절씨구 저절씨구 ㅡ 아리 아리 아리랑이다가   오늘도 흐른다... 맥(脈), 맥과 맥으로ㅡ   이다가 10월의 빛, 그 어느날의 찬란함이다가 이다가 백두대간 너머 너머 두만강 압록강 건너 건너이다가 에루와 데루와 ㅡ 강강수월래 강강수월래이다가 어절씨구 저절씨구 ㅡ 아리 아리 아리랑이다가   오늘도 흐른다... 맥(脈), 맥과 맥으로 흐르는ㅡ 그 마력(魔力) 영원불멸, 영원불멸, 아, 그 이름 세월과 더불어 온 누리 만방에... 누누천년의 푹풍 새하야니 일으키는 훈민정음 !   신-이 시는 훈민정음을 말하는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요 여기서 수자들인 1446이라든가, 14+10이라든가, 3434…등은 뭘 의미합니까?   림- 이 시는 우리 문자가 생겨난 즉 훈민정음 창제된 그걸 기념해서 쓴 시라고 생각합니다. 제목에서부터 제시했는데 “그날의 빛”이라고 여기서 그날은 즉 훈민정음이 창제되여 공포된 날이겠죠 개굴개굴 ㅡ 복사꽃 피는 내 고향이다가-개구리-논을 푸는 마을 꽃이 피는 마을 옹기종기 ㅡ 꿀샘을 파는 초가삼간이다가-초가삼간이 옹기종기 모여사는 마을 새콤달콤 ㅡ 오얏 따주는 할배할매이다가-오얏의 맛은 새콤달콤…아바이아매랑 모시고 오손도손사는 그런 기분이 떠도는 마을 … 시원컬컬 ㅡ 막걸리 빚는 시골의 향음이다가-막걸리나 술 에루와 데루와 ㅡ 강강수월래 강강수월래이다가-노래와 춤 어절씨구 저절씨구 ㅡ 아리 아리 아리랑이다가-노래와 춤 총적으로 이 련에서는 화기애애하고 오붓하게 논농사를 지으면서 초가삼간 짓고 술마이면서 오손도손살아가는 우리 민족의 사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밑에 련에서 1446년이라고 년도수도 밝혀 있구요 14+10=이란건 사실 우리 문자의 자모의 개수를 말한것 같구요. 맥이 흐른다에서 “맥”은 하나는 산맥-즉 백두대간에서부터 한나산까지의 그 척추뼈같은 그 산맥을 말하고 다른 하나는 혈맥-즉 혈통- 피의 맥을 말한것 같아요 그리고 3434, 3434이다가 3543은 곧바로 우리 민족의 시조의 글자수배렬을 말한거구요 정형시조의 기본 글자수… 에루와 데루와 ㅡ /강강수월래 강강수월래이다가/어절씨구 저절씨구/ ㅡ 아리 아리 아리랑이다가….등은 노래와 춤을 즐기는 우리 민족이 훈민정음 창제날을 기념해서 막걸리랑 마이고 노래와 춤을 추면서 기념하는 그런 분위기를 잘 그려냈습니다. 후렴구처럼 반복해서 몇번 나오는데 말입니다. 참 노래와 춤과 수자와 피진한 민족적 정서가 다분히 깔려있는 좋은 시라고 생각됩니다…   38의 영탄조   백두산 세상 1번지 산천어 999 쫑- 쫑- 에 와 닿고...   한라산 세상 1번지 고등어 999 쏭- 쏭- 에 와 닿고...   두 세상1번지 권커니작커니 산천어매운탕 얼쑤~ 간고등어구이 절쑤~ 아리아리 아리랑 쾌지나칭칭 그 정다운 맛,- 그 성스러운 멋,- 새하야니 새하야니 한누리 너머너머 끝없으련만...   후유,ㅡ 이날은 핫, 또 누런 이끼 끼며 루루 저물어만 가고 그리고 저기 저 녹쓸어가는 쇠붙이를 또 서로서로 맞대고 들어야만 하는...   림-그러니깐 여기서 999는 9자가 세번이나 들어간 1999년에 쓴 시같아요 여기서 9자는 형태가 산천어나 간고등어와 비슷하고 아직 세기를 넘어갈 대목에 있는 해입니다. 그래서 그래서 시구에서 “이날은 핫, 또/ 누런 이끼 끼며 루루 저물어가만 가고…라고 했습니다. 즉 통일을 이루지 못하고 새천년으로 들어서는데 대한 아쉬움, 만약 통일된다면 북에있는 산천어나 남에 있는 간고등어나 다 얼쑤 절쑤 춤노래 펼치겠는데 말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백두산은 북에 한나산은 남에 모두 1번지로 (제일 높은 산)있고 ….즉 통일에 대한 갈망을 산천어나 간고등어, 통일각이나 평화의 집, 백두산이나 한나산을 매개물로 노래하고 있다. 마지막 련에서는 통일도 못되고 새천년에 들어서는 아쉬움을 목놓아 읆조렸다.     노을             김승종       고 독 과 고독과 고독이다가 그 리 움 그리움 그리움 그리움이다가   해     님 해 해 님 이 그리움으로 그리움으로 하냥 발그무레 흐르다가 부 힌딪부  고치디 피 울음 !  피울음 !   림- 이 시는 형태가 노을이란 글자로 되여있다. 그리고 노을을 통해 한국에서 매일같이 고된 일을 하며 고향을 그리는 그 고독과 그리움을 피타는 노을에 비유해 슬프고 서럽고 부르짖고 있다. 이런 감정은 한국에 가서 고된 일을 못해본 사람이면 느낄수 없는 감정정서다. 현실생활에 깊숙히 발붙이고 쓴 시인것이 확연히 알린다 즉 현장감이 뚝뚝 떨어지고 질펀히 흐른다. 형식을 노을이란 글자처럼 한것도 독특하다. 누가 뭐라던 시인은 또 시인의 나름대로의 창작쓰질을 내세우느라고 노력한것인것 같다. 이런 형식상의 탐구형식을 우리는 지지하고 높이 찬양해야 할줄로 안다. 왜? 그만의 독특한 노력이니깐… 여기서 주목되는것은 고독이 고독이다가 그리움으로 화했고 또 그 그리움도 노을빛에 빛을 튕기다가 다시 빛이 소리(피울음소리)로 변하는 이런 시적 승화가 돋보인다. 그리고 리념적인것(고독)이 다시 또 시각적(해빛)으로 화했다가 다시 또 청각적(피울음)으로 끝나는것은 기발한 상상과 시적 재능을 잘 보여준다…결코 쉽지가 않다.   신-그렇다면 김승종시인의 시작품특점을 귀납해본다면요? 림-네 주로 두가지로 귀납할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김시인의 시들은 내용면에서 하나같이 민족애, 고향애(물론 고향애도 민족애속의 하나지요 왜냐 우리 민족이 살던 고향, 조선족인 내가 살던 고향이기때문이죠) 통일에 대한 갈망 역시 민족적인 거지요. 어느 시나 민족, 고향, 통일 등 주제들이 많이 담겨있습니다. 여기 우에서도 보았지만 “어머니”를 노래한 시라든가, 7천만의 대화합을 갈망한 시라던가, 지평선너머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라던가, 외할머니가 오기를 기다리는 시라든가 등 거의 모두가 민족과 고향, 즉 민족애와 고향애 조국애 등이 시들에 다분히 깔려있습니다. 둘째는 형식상의 특점인데 한국 이상의 시창작수법 비슷한 시들이 아주 많아요. 수자를 도입한다든가, 시줄을 널어놓거나 삼각형으로 쌓는다든가, 또는 례하면 락엽을 쓴다할때 락엽이 흩날리듯 여기저기 뚝뚝 떨어지는 식으로 시어나 시행을 안배한다든가, 메돼지란 시가 있는데 진짜 매돼지처럼 시어와 시행들을 메돼지몸체처럼 배렬- 꼬리도 있고 머리도 있고 지어 다리도 있고…그래서 아주 우습기도 하지만 어딘가 색다른 풍경선이 보이죠. 이 면에서는 우리 민족시단에서 김승종시인이 제일 특이하게 그런 형식을 연구하고 있고 추구하고 있습니다. 이는 형식면에서의 김시인의 진지한 탐구태도라고 보아야 할것이고 또 이런 형식이 극히 희소하기때문에 지지하고 응원을 보내야 할줄로 저는 생각합니다. 고로 이런 시형식자체가 김승종시의 또하나의 특점이라고 짚고 싶습니다.   신-네 어느덧 약속된 시간이 다 되였습니다. 오늘은 김승종시인과 그의 민족적 정취가 다분히 풍기는 독특한 시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오늘도 림선생님 수고많았습니다. 림-네 수고하셨습니다. 신- 그럼 이것으로 오늘 문학살롱프로 여기서 이만 접겠습니다. 이 시간 프로편집에 김철운이였습니다.
83    시인 리문호 댓글:  조회:1735  추천:12  2014-08-17
  신—문학살롱 신금철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우리 시단의 녀류시인 최기자님과 그의 일부 대표적 작품들을 만나보았는데요 이번 시간에는 료녕성에서 다년간 살아오면서 많은 좋은 시들을 펴낸 료녕시인 리문호시인과 그의 일부 작품들을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보겠는데요 오늘도 연변시가학회 림금산선생과 함께 합니다. 안녕하세요? 림—네 반갑습니다. 신—리문호라고 하면 료녕성쪽에서는 많은 분들이 잘 알고있는 시인이라 생각됩니다만 어떻습니까? 시를 쓰신지 오래되엿습니까? 그럼 먼저 리문호시인의 프로필에 대해서 소개해주시죠   림—네 리문호시인은 70년대 으로 시단데뷔, 그러니깐 시창작시간이 30년도 넘었지요. 2007년 8월 26일 11회 연변 지용제 정지용 문학상 수상했구요 KBS성립 45주년과 50주년 기념행사에서 망향시 우수상 2차 수상하엿고 연변작가협회 회원, 료녕성 작가협회 회원, 심양조선족문학회 부회장, 심양시 시조문학회 부회장 등을 력임하였습니다. 시집 등이 있음 신—리시인은 낚시질을 아주 즐겨한다면서요 ? 림—네 료녕의 거의 강과 호수는 다 돌아다니면서 낚시질하는 분이라고 하데요. 신—낚시질은 많은 사람들이 즐겨하는 행사로 알고 있는데요. 그렇다면 시인인 리문호가 낚시질을 하는건 어떤 의미같은것이 부여되나요?   림—네, 리문호시인은 이 문제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총적으로 낚시질은 마음을 정화하고 성정을 다스리는 일이요 속세를 떠나 신선이 된기분이요 자연으로 회귀한 기분이요 참을성과 강한 의지를 련마하는 일이요 무한의 시공에 잠기여 사유를 넓이는 일이다” 신—그렇다면 리시인의 시문학관을 어떻게 말할수 있겠습니까? 림—그가 다섯번째 시집을 내면서 쓴 시가 있는데요 이 시에서 그의 시문학관을 우리는 잘 알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시(詩)래기 –(诗来记) -        다섯번째 시집 을 내며   시집 한권을 또 낸다 질긴 고집으로 엮은 배추시래기 무시래기 그리고 끓는 물에 데친 민들레 취나물 한 다랑구 두 다랑구, 무정의 바람에 바즈작 바즈작 부서지는 기쁨과 슬픔과 인정이 말라버린 무미(無味)와 무감(無感)의 줄거리, 상가나 마트에 내 놓지 못할 값도 없는 시집 한권을 또 낸다   울부짓는 소리도 메말라 사락사락 호탕한 웃음소리도 메말라 바작바작 눈물도 메말라 소금끼가 하얗게 돋은 허무와 고민의 아픔이 건조된 시집 한권을 또 낸다   싱싱 파랗던 고락의 시래기 세상길에서 허리 굽혀 줏어 모은 한 아름 된장국이 될가 개장국이 될가 모르는 집념의 고혈이 까맣게 마른 시집 한권을 또 낸다   세상길에서 허리 굽혀 줏어 모은 한 아름 된장국이 될가 개장국이 될가 모르는 시집 한권을 또 낸다   림—제목을 시래기(诗来记)라고 한건 우리 민족이 즐겨 자시는 찌개를 끓이는 시래기와 诗来记(시가 오다)가 우리 말로 대조시켜보면 음이 같던요 시인은 이걸 이용해서 자기의 시를 시래기에 겸손하게 비유했고 또 그러면서 자신의 시가 오게된 과정을 말하겠다는 뜻이겠지요 이 시를 살펴보면 그의 시는 “바즈작 바즈작 부서지는 기쁨과 슬픔과 인정이 말라버린” 시래기같은 시, 상가나 마트에 내놓지 못하는 그런 시, 세상길에서 허리 굽혀 줏어 모은 한 아름 된장국이 될가 개장국이 될가 모르는 시,   하지만 그의 시는 또 “집념의 고혈이 까맣게 마른”, “눈물도 메말라 소금끼가 하얗게 돋은 허무와 고민의 아픔이 건조된” 시인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시인이 추구하는 시는 눈물을 말리워서 쓴 생활의 밑바닥에서 우려낸 시임을 알수 있고 짜디짠 소금끼가 하얗게 돋을 정도로 생활에 푹 절은 시를 추구하고 있음을 알수있고 허무와 고민의 아픔을 탁마가공해서 건조시킨 시임을 쉽게 보아낼수 있는것이다. 즉 현실의 허무와 고민의 아픔을 쓴 시를 추구하고 사실주의의 기치를 가장 소중히 여기는 시인임을 알수 있고 생활이 있는, 최하층 삶을 읊어가는 시인임을 알수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리문호시인의 시창작 자세와 문학창작에 입문하는 그 각도를 잘 보아낼수 있다. 신—리시인은 자신의 창작담에서도 자기의 시문학관에 대해서 많이 말슴했다고 들었는데요 림—네, 자신의 창작담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시적 기교와 묘한 언어는 시적 내용과 유기적으로 결합되여야해요, 그럼으로서 극치를 보여주어야해요, 즉 감동을 주어야해요. 내용이 없는 기교나 무리한 언어의 조합은 시로 인정할수 없어요 ---누구나 다 좋은 시를 쓸수 있어요.. 문제는 시적 발견이에요. 자기만의 개성으로 쓰는 시와 다른 시인이 쓰지 못하는 시를 어떻게 발견하는가하는 문제에요.. --시적 발견은 시인의 지식, 체험, 감수에서 나타나는 것이에요. 시인이 인문학적 바탕이 없으면 좋은 시적 발견이 있을수 없어요, 사물을 관찰하는데 인문학적인 안광이 있어야해요 ---한수의 시가 발표되였을때 시인의 이름은 자기만의 것이 아니에요. 사회적인 것이에요. 그러기에 신중성이 필요해요. 즉 어떤 이미지의 특징적인 이름으로 사회에 나타나는가하는 문제에요. 독자들에게 그의 시적 형상의 이름을 심어주는 것이지요.그러기에 시를 쓰는것은 장난이 아니에요 ---고금중외 책을 많이 보아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자기의 시적세계를 넓혀야해요,특히 명시는 반복 구독하고 연구해야해요, 모르고는 형상을 창조할수 없어요, 독서는 어떤 의미에서 시창작보다 백배의 노력이 더 수요되지요, 이것이 바로 자기의 개성을 수립하고 창작 바탕을 두텁게 다지는 일이에요. 바탕이 엷으면 시창작의 다산은 불가능하지요 ---사물에 대한 감수성은 시인의 발상에 불꽃을 튀겨주는 것이에요, 풍부한 감정이 없이 좋은 시를 쓸수없어요. 감정이란 생활에 대한 사랑에서 오는것이에요. 생활에 대한 사랑이 없으면 울고 웃고, 슬프고 기쁘고, 고민하고 염오하고, 서럽고 우울하고, 애상하고 그립고, 열렬하고 헌신적인 감정이 있을수 없어요, 시인의 감수성은 이런 생활에서 축적되는것이에요. 생활을 사랑하는것은 자기 인생에대한 가치의 책임감에서 오는것이에요 ----상상--- 시간과 공간속엔 무수한 시적 소재가있어요. 상상력은 무한히 넓은 시적 무대를 열어가는것이에요. ----시인은 몸으로 감각하고 마음으로 감수해요, 여기에는 시적 자질이 있어야 해요,  시인은 쉽게 된다고 생각하지 말아요, 몇편의 시를 발표하고 시인이 되였다고 더욱 생각말아요, 장기적인 고군분투를 거치는 심혈이 필요해요, 지독하게 노력하는 자만이 이 계관을 따올수 있어요. ---수련, 공유적 욕구, 나만의 정신생활 ---시인에게 왜 시인이 되려했는냐 물으면 참 답복하기 힘들어요. 천부와 그리고 후천적 동기, 처한 생활환경이 그를 시인에 지향하게 되였거든요.. 시를 쓰는것은 자기의 마음을 수련하고 자기의 새로운 정신적, 감정적 세계를 풍부히하는 것이에요, 그리고 자기가 느낀 느낌과 정을 더 많은 독자와 공유하려는 욕구가 있는것이에요. 시창작을 수련이라고 생각하면 고생도 달갑겠지요. 다른 사람이 없는 하나의 풍부한 정신생활이에요.   신—그럼 아래에 리문호시인의 시들을 함께 감상하면서 더욱 깊이 이 시인을 료해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시 “걸인과 시”를 함께 감상하시죠   걸인과 시인                   리문호   상해 한 지하철 입구, 사람들을 향해 깡통의 깡전을 요란히 흔드는 저 걸인   금은보화 가득찬 이 세상을 향해 차거운 깡전 한잎 애걸하는 눈빛   문뜩 그의 눈빛에서 나는 나를 본다   나는 정을 동냥하러 방랑하는 시인 도시를 헤맨다, 레온등 불빛을 헤친다   인정은 어디로가고 음침한 황금 사막인가   가상과 공상과 추상에 건초같은 나의 시 불을 지를까?   갈망의 거리에서 부르짓으며 나는 녹쓴 마음을 쇠줄에 꿰여 들고 깡통처럼 흔들며 다니는 걸인 ! 신- 참 신기하네요 대도시 상해에서 걸인을 썼고 또 걸인과 시인을 대비적으로 쓰면서 뭔가 시인의 의도를 부여한것 같은데요? 림—해설: 이 시에서는 거리에서 동전을 동냥하는 걸인과 인정이 메마른 거리를 누비며 시를 동냥하는 시인을 대비적으로 묘사하면서 부에로 날아가는 도시에 아직도 불쌍한 생명이 있는것과 인정이 메말라 가는 거리에 아직도 후한 정을 동냥하는 불쌍한 생명을 잘 보여주었다. 기발한 착상입니다. 중국의 부유한 도시 상해 거리바닥에 나부러진 두 걸인 하나는 물질상의 걸인, 하나는 정신상의 걸인…대비적 수법…실물인 깡통, 녹쓴 마음의 깡통 여기서 “가상과 공상과 추상에  건초같은 나의 시 불을 지를까?” 등 표현은 살아가기 힘든 시인의 심정을 아주 잘 표현, 다른 시인들도 앞의 장면묘사는 어느 정도 할수 있겠지만 이 구절은 이 시인만이 내 던질수 있는 시구들이라고 생각한다.   신호등                리문호   파란빛, 노란빛, 빨간빛 물막이처럼 올리고 닫히는 십자거리 어느 물목으로 가라는 신호냐   상어와 고래들이 물결쳐가는 섭에 은어 한마리 고향의 개울 그리며 두눈은 향수에 흐려라   제 노는 물 따로 있거늘 조수에 쓸리는 괴로움 오죽이나 옛 생각의 지느러미 저리도 저으랴     림—이 시는 십자거리의 신호등을 보고 서로 제갈길을 따라 달리는 사람들을 보고 자기갈길은 이 휘넓고 눈이 뒤집히는 호화스런 시중심이 아니라 고향, 신선한 공기와 자연임을 자각하는 시인을 볼수 있다. 시인은 별로 현대문명에 미련이 없는듯 싶다. “상어와 고래들이 물결쳐가는 곳에 은어 한마리는 가고 싶어하지 않는다 고향의 개울가를 그리고 두눈은 향수(고향에 대한 그리움)에 흐려진다 그래서 제노는 물 따로 있다고 은어는 지느러미를 막 그 그 쪽으로 젓는다 조수에 아프게 쓸리우지만 계속 제쪽으로 젓는 은어…그것이 바로 피여나는 안개와 신선한 공기로 충만된 자연을 그리고 고향의 산천초목을 그리는 시인자신인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상해의 십자거리에선 시인의 순수한 마음을 읽을수있고 깨끗한 향수의 마음을 읽을수 있는것이다.   백 년을 못 사는 사람들이            천 년을 살겠다는 자라를 잡아 먹는다            양자강 류역의 어느 한 호텔식당            료리사가 산 자라를 들고 와            료리 솜씨를 보여주겠다고 한다            자라는 천년을 기어 가야 할 네발을            천 년의 허공에 발버둥치며            무엇을 소리 없이 부르짖다가            주방, 비참히 도살장으로 끌려간다            얼마 후 하아얀 백자옹에            자라의 눈물과 한, 그리고                                                                                 그의 부르짖음 소리가            젖빛 뽀얀 곰탕이 되여            식탁 정중에 오른다            - 자, 듭시다, 몸 보신에 좋습니다            금이빨 사장의 말, 드디어            금 숟갈들이 오고 가고            은 젓가락들이 집어가고            입들은 냠냠, 훌훌,             자라가 장송곡 부르며 목 고개를 넘어간다            곰탕에 우러난            천 년의 정한은 달고            김 안개에 서리는            세월의 슬픔은 향긋하다            우리는 지금 파렴치하게            우리 것이 아닌 미래를 먹는다                       술상에 뒹구는            탐욕의 찌꺼기들…….            쌓인 쓰레기 너머로 백 년이 흘러            야윈 우리의 후손들이            손 가락을 빨며          우리를 원망하고 있다                      - 고기는 다 뜯어 먹고          가시와 뼈다귀만 남겨 놓았다고               림—이 시는 선에 수록되였고 역시 리문호시인의 대표작의 하나라고 할수 있겠죠 조선족고급중학교과서 조선어문 필수교과서에 수록된 작품입니다.   시인은 사람들이 음식점에서 자라곰탕을 끊여먹는 장면을 통하여 현시대를 인간들의 팽창된 심리적 욕구와 앞으로의 미래를 먹어가는 아픔을 읊조리고 있다. 이 시는 록색시라고도 할수 있지만 저개인적으로는 록색시란 좁은 울타리를 벗어나서 인간들의 팽창된 타락과 코앞밖에 못보는 무지하고 욕념에 절어버린 현대사회에 대한 시인의 타는 부르짖음이라고 생각한다.     … … 천 년의 정한은 달고            김 안개에 서리는            세월의 슬픔은 향긋하다            우리는 지금 파렴치하게            우리 것이 아닌 미래를 먹는다   참으로 억이 막혀 더 말이 안나가게 만드는 대목이다. 백년도 못사는 인간이 천년을 살아가야 하는 자라를 삶아서 국물까지 다 마이고 뼈다귀만 달랑 천년후의 후손들에게 남기는 이 장면, 너무나 어이가 없다… 우리는 눈물을 거들먹이 고이면서 자라의 립장에서 생각해보게 되고 우리 자신을 포함한 얄미운 인간들을 기소롭게 보면서 발을 동동 구르게 된다. 탄식하게 되고 비탄하게 되고 통탄하게 되는것이다. 여기에 또 이 시인의 부르짖음이 있고 이 시의 성공이 있는것이다.                벽계수                            리문호               청산벽곡에          미역 감던 소녀가 풀어놓은          파란 댕기가          길게 늘어져          요리조리 휘젓히네          그우로          해와 달이          조약돌처럼 굴러가고          별들이 모래알처럼 흘러가네          두손으로          한자락 떠 마시면          가슴 골골에도          시원스레 팔락이네          어디선가          들려오는          바위들의 속삭임소리          청산의 맑은 웃음소리          가슴 속속          아름다운 노래로 화음하네.   신—이 시 역시 중국조선족명시선에 오른 시라지요 참 아름다운 시입니다. 림—그렇죠 청산벽곡에 흐르는 벽계수에 소녀가 풀어놓은 파란 댕기가 여울치고 그우에 해달이 조약돌처럼 구르고 또 별들이 모래알처럼 흐른다는 건 참 아름답고도 기발한 상상이죠 하늘의 해와 달, 별까지 다 벽계수의 구성물이 되게 아름다운 미의 극치를 쪼아새겼죠 역시 시인의 깨끗함을 추구하는 맑은 마음을 들여다 볼수있고 한생을 깨끗함을 추구하는 참삶의 참인생의 발로라고 할수있지요 우리는 이 시를 읽으면서 이 시인의 순수하고 맑은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리게 되고 동감하게 되고 또 그런 와중에 우리의 마음도 순화되고 려과되는 감을 받아안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이 시의 성공이 있겠죠 신-네 참 아름다운 시인데요 우리의 마음도 벽계수처럼 정화되는 감을 느끼게 해주는데요 벌써 약속된 시간이 다 되였습니다. 오늘은 료녕을 대표하는 시인중의 한분이신 리문호와 그의 일부 대표적 작품을 감상하는 시간으로 인상이 깊습니다. 오늘도 림선생님 수고많았어요 림-네 수고하셨습니다. 신-그럼 이것으로 오늘 문학살롱 프로 여기서 이만 줄입니다. 이 시간 프로편집에 김철운이였습니다.  
82    박장길시인 댓글:  조회:1580  추천:7  2014-08-16
  신—문학살롱 신금철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연변녀성시회 회장으로 활약하면서 좋은 시를 많이 쓴 녀류시인 리순옥과 그의 일부 작품들을 살펴봤는데요 이번 시간에는 연길시 조선족예술단에서 사업하면서 가사창작을 비롯한 좋은 시들을 많이 창작하고 있는 박장길시인과 그의 일부 작품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오늘도 연변시가학회 림금산선생과 함께 합니다. 안녕하세요?   림—네 수고많습니다.   신-박장길시인은 군복무를 하면서 시를 쓰기 시작했다고 들었습니다. 후엔 또 예술단창작실에서 명가사들도 많이 창작한줄로 알고있는데요. 먼저 박장길시인의 약력에 대해서 얘기주시죠   림—네 박장길시인은 1960년 2월,   화룡시덕화향 길지촌에서 출생. 시인의 고향이라 불리우는 덕화향 길지. 길지에는 허충남, 허봉남, 허두남 허씨3형제 한마을 장길네 집과도 가까운 곳에 있었음 소학교 담임교원 김응룡 고중시절에 허충남선생의 지도를 받으면서 문학가의 꿈에 열을 올렸다. 허충남선생은 학교에서 써클을 조직하여 문학강의. 시창작연습. 최룡관선생도 박장길시인과 머지않은 곳에서 살고있었음. 신창수시인, 그리고 중견시인들인 김영건, 김승종 시인들도 모두 덕화향에 살았습니다. 박장길시인은 향문화소에도 있었고 청춘시절엔 배구를 잘 쳐서 성대회에도 참가한적 있습니다. 후에 박장길은 군대에 참군합니다. 참군하여서도 작품창작을 계속하여 소속부대 표창도 받았습니다.   신—박장길시인은 3가지 일에 동시에 흥취를 가지고 몸잠구고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3가지 일들이 있었습니까?   림-네  1. 참군2.배구. 3. 문학. 그의 아버지는 군관이였는데 퇴대하여 농촌에 와서 농사일을 하셨습니다. 그의 아버지의 이름은 마을에서 였습니다. 박장길은 박군대의 아들답게 역시 군대로 떠났습니다. 당시 전 연변주에서 남평배구팀이라면 다 알았다. 길림성대회에까지 가서 전주를 대표하여 성에서 1등 한번 2등 한번을 했다. 그때 징병모집이 내려왔다. 학교몰래 보명해써 키 170 배구로는 키가 작다했지만 군대에는 특등 신체로 입대—운동원이였으니깐 빵빵하지요 성대한 환송속에서 참군.   신-그러니 군대에 가지 않았더라면 계속 배구운동쪽으로 나갔겠네요. 어찌보면 참군이 그한테 문학의 길을 열어주지 않았겠는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림—네 흑룡강성 흑하 그 쪽. 먼저 자동차련대. 후에 치치할쪽 포병부대로 전근. 군복무 3년간. 전투명령이 내려 집에다 유언까지 써보내던 가장 간고하던 년대 흑하현 백운공사. 어느 촌락. 전등불도 없고. 집에 들어가 자는데 바닥에는 닭개, 돼지, 게사니들과 함께 자던일, 변소갈때 가축을 모르고 건드리면 …큰 소동이 생기기도 하고. 당시 남쪽에서는 윁남전쟁, 그들은 혹시나 있을 북쪽 쏘련침략을 방지하느라 1급전투태세에 들어간 것이였음. 그런 환경에서도 시창작을 견지. 라지오에서 웥남전쟁에서 영웅이 속출한다는 이야기 듣고 영웅을 노래하는 시를 썼다.   신—이 시기 박장길시인이 쓴 라는 시가 센세이숀을 일으켰다면서요? 림—네 “초소에 날아온 까치”의 창작이야기. “숙아, 너는 구름을” –연변문학에 발표됐는데 후에 이 시가 “민족문학”에 번역되여 발표—박길춘이가 번역. 박길춘은 방정현의 사람. 서로 편지가 오가다가 방정현에 가서 교장인 길춘아버지의 소개로 거기서 교원사업도 함. “잠못 이루는 밤”이란 작품은 아이들한테 사탕 사주면서 편지로 부치라 했다. 부대에서 령넘어 백운공사에 가야 우편국이 있으니깐. “흑룡강성조선말방송국”에도 투고. 원고료 7원이 왔다. 가끔씩 치치할시 조선족중학교 교원한테 다니며 시를 배웠는데 그 선생한테 5원으로 적삼 사갔다. 시를 발표했다고 전 련의 표창받음. 68사에서 조선족전사들한테는 이름이 다 알려졌다. 그후부터 전사들은 박장길이 글잘 짓는다하여 련애편지를 써달라 해서 많은 연애편지를 써주면서 시창작에서의 정서도 많이 키웠다고 한다. 한번은 한창 쓰는데 순라대에서 발견, 헌데 조선말을 알아못보고 간첩활동을 하는가 사부에 붙들어 갔는데 조선족전사를 찾아 읽어본게 영웅노래시이니깐 풀려났다는 이야기. 모얼뚱이란 동굴에 숨었다가—집합나팔소리가 나니깐 굴에서 나가는데 그만 굴이 무너졌지만 호주머니의 창작시만은 그냥 보존하고 있었다. 겨울엔 잉크가 얼어서 연필을 썼는데 연필속대가 자주 끊어져서 혹간 연필속대가 끊어지지 않을때는 그렇게 기뻐했단다. 포탄상자에 눌리워 팔목을 상함. 시까지 발표한 사람이라고 특혜를 줘서 팔에다 완장을 끼고 검사원질 하는 대접도 받았단다 역시 시한편때문에 받은 혜택이였다. 저녁이면 아홉시에 통일취침. 그래서 전지불. 초불. 등을 켜고 창작, 그러다 한번은 침대에 불이 달린적도 있었다. 전지약이 없어지면 취사칸. 사부의 불빛빌어…책을 읽었는데 모기가 너무 매달려 고생하던 일도 있었음 … 제대후 군인생활을 시화한  제대군인 시초 “고향의 흙” 을 창작 그리고 몇년전에는 또 로신문학원 제11기 전국중청년작가고급연구반도 수료하였는데 북경에 있는 기간 수편의 시를 한문으로 각지 잡지에 발표함.   신—문단활동도 아주 적극적인줄로 알고있는데요. 지금은 구체적으로 어떤 일들을 하고 있으며 어떤 성과들이 있습니까? 림- 중국소수민족작가학회 회원.  연변작가협회 리사.  연변시가학회 부회장. 사단법인 연변문학예술연구원 부원장,연길시 조선족예술단 창작실 주임 선후로 아리랑문학상, “두만강여울소리”시가탐구상, 국가급 가사창작1등상, 정지용문학상, 가야하문학상 등 30여차 수상. 몇년래 인기가 높은 대형무극 “계절의 노래” 등 창작 신—많은 작품들을 써냈으니 당연히 적지 않는 문학작품집들을 펴냈으리라 생각되는데요. 박장길시인에게는 어떤 작품집들이 있습니까? 림-네 시집 “매돌”, “찰떡” ,“짧은 시 긴 탄식”, “ 동시집 “소녀의 봄” 가사집 “춘하추동” 수필집 “어머니 시집가는 날” 등 8책.   신—수상작도 많겠는데요? 림—네 두만강여울소리 상 몇차 제14회 정지용상. –“짧은시 긴 탄식”으로 “동년의 뜨락” 가사 상—히트친 노래 전국급상 , 성급상 등 30여차. 가요무대 “사계절의 노래”는 인기가 확끌려 연변에 많은 돈을 벌어들였다.   가정- 안해는 중학시절의 동창생. 아들 무한대학졸업.  세식구   신—박장길시인도 시에 대한 나름대로의 생각이 있을것으로 알고있는데요.  어떤 견해를 갖고 있습니까? 림—네 풍격에서—진실과 뜨거운 정감과 애틋한 그리움으로 얼켜야 한다고 주장, 언어장난으로 시를 짜내는 건 혐오한다. 언어의 발견으로 시를 창작하는걸 싫어하고 시적 발견으로 시를 써내는걸 주장. 그러니깐 형식이나 기교보다 내용을 앞에 놓자는 주장. 시에서 받은 혜택--시는 무너지는 나를 춰세운 친구이고 농민의 자식으로부터 국가 1급작가로 만들어주었다. 언제든 자신한테 많은 행운과 복을 안겨준 시를 배반하지 않을것이다고 다기차게 말함.   신—박장길시인의 시에 대해서 객관에서는 어떻게 평가하고있습니까? 림—네 장정일 평론가는 “수상작품집 ‘짧은 시, 긴 탄식’은 무엇보다 먼저 시인적인 역설의 재치를 바탕으로 인생만사에 대한 관조의 깊이를 탐구하는 의지가 돋보인다. 생활에 밀착되고 함축되고 절제된 시어를 구사하는 그의 시작들중 기발한 역설에 기대여 시적사유의 도약을 실현한 수작들이 그의 작품집의 근간을 이루고 있어보인다”고 평했다.   신—네 시 형식보다도 시 내용을 주장한다는 박장길시인인데요. 그럼 아래 박장길시인의 시작품들을 감상하면서 박시인의 문학향기를 더욱 가까이 느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감상할 시는  “콩꽃”입니다. 함께 감상하고 그 뜻을 밝혀보도록 하겠습니다. 콩꽃 박장길   네가 맺은 열배로 조선족은 조선족다와졌다 해볕에 부끄럼없이 탱탱 여물어 황금 같은것 고르고 골라서 오래오래 퍼지웠다가 매우매우 삶아서 뭉개고뭉개서 빚어낸 메주 거기에서 짜낸것 만들어낸것 간장이며 된장이며 고추장이며 청국장을 지나 장국에 이르러 승화된 맛 어머니같이 할머니같이 그렇게 정 깊어 무작정 좋아 불러만 보아도 입이 구수하고 군침이 도는 그 모든것이 우리들의 피에 흘러 대를 내려오며 같이 해온 대를 이어가며 함께 할 맛이 가지 않을 영영 우리의것 우리를 우리답게 하는것은 콩꽃에서 비롯되였다 보잘것없이 잘게 잘게 피여 희게 피여 결실한것은 보귀한 꽃 콩꽃은 조선족꽃이다   신—네 “콩꽃”으로부터 우리 민족의 음식문화를 이끌어낸것 같은데요 참 자연스러우면서 기발하다는 느낌이 드는데요… 림-네, 하얀 콩꽃이 피여나면 우리의 제일 전통적이고 고유한 음식의 하나인 콩이 달리고 콩으로는 또 된장, 간장, 썩장, 콩장,두부 등을 만든다. 하기에 콩꽃은 어떻게 보면 우리 민족만의 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색갈까지 하얀 색이니… 시인은 우리의 꽃인 콩꽃으로부터 시작해서 우리 민족이 즐겨 자시는 콩의 력사를 이 시에서 써냄으로써 우리의 음식문화를 도출해냈고 그속에 끈끈히 고패치는 민족의 문화, 민족의 맛, 더 나아가서는 민족녀성들의 고달프지만 또 찬란한 력사를 주목하고 있다. 그래서 시줄에서 살펴보면  “우리들의 피에 흘러 대를 내려오며 같이 해온 대를 이어가며 함께 할 맛이 가지 않을 영영 우리의것” 이라고 했고 “우리를 우리답게 하고” “네가 맺은 열매로 하여 조선족은 조선족다와졌다”고 호소하는것이다. 콩꽃으로부터 우리 민족을 생각하고 우리의 음식문화의 피나는 역사를 파헤친데서 이 시의 뜻이 염글어진 것이 특이하다. 무심히 콩꽃을 보고 지났더라면 이 시는 세상에 태여나지 못했을것이다. 신—네 콩꽃에서 민족의 얼을 찾아 적은 한수의 좋은 시였습니다. 그럼 계속하여 박장길시인의 력작 “거울앞에서 “를 감상하고 그 뜻을 파보도록 하겠습니다. 거울앞에서 박장길 텅 비여서 다 품어주는 거울앞에서 내안을 들여다본다 가득차서 좁은 가슴? 바라보면 벌써 안겨있는 거울은 비여있기에 넓어진것을! 채운만큼 좁아지고 비운만큼 채워지는것을 가르침 펴는 거울의 밝은 가슴 비여있어도 빈 소리 없다 신—네 거울앞에 서서 거울과 자기를 비유해서 시적인 의미를 찾은것 같은데요 그 깊은 뜻이 담겨있을듯합니다. 림-거울앞에서 거울을 보면서 발견하는 철학은 바로 비워있는것과 채우는 것 즉 비우면 많이 채울수 있고 채우고 있으면 좁아진다는, 소유와 무소유의 철학을 잘 말해주고 있다. 거울은 늘 비여두고 있기에 뭐나 비쳐드는건 그 비운 자리만큼 그득 채울수 있지만 거울앞에서 “내안을 들여다보니 가득차서 좁은 가슴”이 보인다. “거울은 비여있기에 넓어졌고” 나는 “채운만큼 좁아지고” 거울은 지금 “비운만큼 채워지는것을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또 마지막 련에 한술 더 떠서 거울은 “비여있어도 빈소리 없다”고 함으로써 –(사실 거울은 말이 없는 물체이다. 그만큼 또 빈소리할줄 모른다)무소유인 거울의 풍만함과 진실함 즉 그 품위를 한층 더 승화시키는데 성공하고 있다. 신—박장길시인은 로신문학원에서 연수를 받았다고 합니다. 다음 감상할 시는 로신학원에서 문학공부를 하면서 지은시라고 합니다.  시 제목은 “나에게”인데요. 함께 감상하고 그 해설을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나에게 박장길 접혀있는 손풍금이여 주름을 펴고 가득 차있는 그 소리 울려라 새바람 잡아 가슴 가득 재워 깊은 호흡으로 울려라 주름 잡힌 가슴에 접어넣은 사색 활짝 펴고 태양을 안고 타면 하얀 소리 울려나와 무대는 다시 열리고 해와 달의 조명아래 나래쳐 열광할 백이십뻐스 접혀져있는 손풍금이여 가슴을 열어 세월이 데려간 화려하던 한때를 털어버리고 선생을 타며 한껏 울려라 신—네 자기 자신을 손풍금에 비유하여 쓴 시같은데요 아마도     로신문학원에서의 자기의 감수를 시화한것 같습니다. 림—네, 그렇습니다. 이 시는 시인이 북경에 있는 로신문학원에 가서 연수받을 때 쓴 시같다. 여기서 화자는 자신을 주름이 가득찬 풍금에 비유하여 풍금이 주름을 펼때마다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것으로 상상하였다. 시인은 그때 이미 쉰고개를 넘어서고 있으니 인생의 주름이 잡히기 시작했 고 또 쉰고개를 넘고 있으니 속에는 소리의 소재(즉 생활체험같은것)들이  가득차 있는것이다.   (120호 뻐스는 뻐스선로를 말하는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선생을 타며 한껏 울려라 는 “신생”을 타며로의 오식이 아닌가도 생각되고 진짜 선생을 타며는 선생을 초과하며로 해석할지 저도 조금 궁금한데요)   시인은 매일 교수들의 강의를 들으러 간다 –시구에서는 “새 바람 잡아 가슴 가득 재워(지식을 많이 배워) 깊은 호흡( 깊은 시적인 사색)으로 울려라” 고 하면서 새로운 시야와 새로운 의식으로 새로운 시를 창작해 낼것을 다진다. 이 시에서의 새로운 창작수법이라면 그저 자기의 감수를 적은것이 아니라 손풍금을 대상물로 삼아 손풍에 의탁하여 시인자신을 표현한것이 기발하고 묘하다.   신—다음은 박장길시인의 대표작중 한수인 “세월조각가”입니다.  감상하고 그 구체적인 해설을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세월조각가   박장길 이 세상에 울리며 데리고와서 모르고 운 울음맛을 옹이를 박으며 배워준다 때가 되면 빠짐없이 조각을 한다 입가에 눈가에 이마에 새기기만 하고 삭제는 할줄을 모른다 전시장에 내놓고 해와 달로 비추어보며 지우지는 않고 그냥 보충만 한다 때가 되면 한점 한점 빠짐없이 저승사자를 시켜 눕혀 데려가고 세상의 문을 닫는다 세상문은 회전문 세월의 조각가는 할 일이 하도 많아 한해에 허옇게 늙는다   신—세월의 무상하고 또 무정함을 쓴것 같기도 한데요 어떻습니까?   림- 제1련을 살펴보면 이 세상에 울리며 데리고와서—사람이 이 세상에 태여날때 울며 태여남을 말함 모르고 운 울음맛을—아길적 응아응아 하고 저도 모르고 운 그 맛을 옹이를 박으며 배워준다—차츰 커가면서 옹이를 박으며 배워간다. 세월의 흐름속에.. 제2련을 보면 때가 되면—시간이 가면…세월이 흘러가면 빠짐없이 조각을 한다—시간을 하나도 빠뜨림없이 얼굴에 새긴다   제3련을 보면 입가에 –입가의 주름살 눈가에 –눈가의 주름살 이마에 –이미의 주름살 새기기만 하고 –그냥 주름살을 남겨주기만 하고 삭제는 할줄을 모른다 –주름살을 없애버리지는 않는다..   제4련을 보면 때가 되면-죽을 때가 되면 한점 한점 빠짐없이 저승사자를 시켜-한명한명씩 죽음의 신을 시켜 눕혀 데려가고—사람이 죽으면 눕는다 눕혀서 저승으로 데려간다는 뜻 세상의 문을 닫는다-이 세상과 리별을 하게 함을 말함 세상문은 회전문—헌데 세상문은 회전문이기에… 세월의 조각가는 –죽은건 보내고 조각가는 다시 돌아온다—즉 세월은 다시 돌아온다   할 일이 하도 많아 –세월은 할일이 많아서 한해에 허옇게 늙는다—한해사이에도 많은 사람을 저승에 보내느라 허옇게 늙어진다 여기서 한해라고 한것은 한해에 하나의 인생만 저승에 보내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인생을 저승에 보내야 하기에 드바쁘다는걸 말한다. “세월의 조각가” 누가 술을 많이 마여 간을 파괴하면 간암을 만들어주고 위를 파괴하면 위암을 만들어 준다. 또 누가 자연의 생태평형을 파괴하면 지진을 보내주고 해일을 보낸다…가차없다. 이 시는 이렇게 세월의 무상함과 가차없음을 …누구에게나 동등한 세월의 칼날같은 예리함을 밝힘을로써 세월-즉 시간앞에서는 누구도 용서나 회의나 후회같은것이 있을수 없음을 …즉 무정한 인생을 똑 찍어 말해줌으로써 다시 더 올수 없는 한생을 다시 수개할수 없는 한번의 인생을 허송하지 말고 분발하고 노력하여 알찬 한걸음한걸음을 찍어가라는 부탁과 명령과 조언인것이다. 이 시는 이렇게 아주 랭정한 인생자세와 갖춤새를 따갑게 말해주는데 그 성공을 두고 있는것이다. 구 쏘련의 저명한 대 문호 고리끼는 이런 뜻의 말을 한 일이 있다. 즉 사람들은 매일 매일 자기무덤을 향해 한발작 한발작 다가가고 있다.- 그렇다, 하루를 살면 하루만큼 자기의 죽음을 향해 전진한것이니깐 …이런 견지에서 볼때 우리는 매 한시간 매하루 매 1년을 소중히 살고 알차게 살아내야 할것이다. “세월의 조각가”는 사정은 봐주지 않으니깐… 신: 계속해서 감상할 시는 입니다. 문학작품에 많이 등장하는 물과 별인데요. 박장길시인은 어떤 물과 불을 쓰고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물과 불                     박장길 물은 아래로 흘러 바다로 커지고 우로 솟아 불은 재로 사라진다 가장 낮은 곳은 바다 가장 높은 곳은 허공 신: 네 아주 짧은 시지만 박장길시인의 글솜씨를 보여주는 시가 아니였는가 생각됩니다. 림-물은 허심하고 겸손한 인생을 말하고 불은 기세차고 하늘을 쯔를듯 거창하지만 허무함을 말하고 가장 높은 곳에 있을수록 허무하게 인생을 낭비하는 허상을 비판한다. 우리 주변에도 이런 걸 많이 볼수있다. 가장 낮은것같지만 가장 휘넓은 바다같은 삶을 안고 살고있는 참다운 생이 있는가 하면 가장 높은것 같지만 사실 아주 허풍적이고 아주 텅빈 공중루각같은 풍만과 삶의 진가를 떠나서 물거품인생을 살아버리는 허무맹랑하고 갈대같은 인생을 심심찮게 만나게 된다. 시인은 이 시로써 이런 현실을 비판한것이다. 이 시는 설명이 필요없이 조금만 사색해보면 그 뜻을 짚어낼수 있는 그런 철리적이고 사색적인 단시이다… 신: 네 오늘 문학살롱 작가초대석시간에는 연변시가학회 림금산부회장님을 모시고 시인 박장길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또다른 시창작 자세를 엿볼수있는 시간이 되지 않았는가 생각됩니다. 물론 박장길시인한테는 좋은 시들이 많지만 시간상관계로 오늘은 이만 줄이겠습니다. 림선생님 오늘도 수고가 많았습니다. 림: 네 수고많았습니다. 신: 네 이것으로 오늘 문학살롱프로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이시간 프로편집에 김철운이였습니다. ------- 노래 ------
81    최기자 시인 댓글:  조회:1905  추천:1  2014-08-12
  서태문-문학살롱프로에서 인사드리는 서태문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다년간 조선족예술단 창작실에서 가사창작을 하시면서 많은 시를 써낸 중견시인 박장길과 그의 일부 시작품에 대해서 알아보았는데요 이번 시간에는 중국조선어문 잡지사에서 부주필로 사업하시면서 시, 수필 등을 많이 창작하신 녀류시인 최기자선생과 그의 일부 시편들을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겠는데요 오늘도 연변시가학회 림금산부회장과 함께 합니다. 림선생님, 안녕하세요? 림—네 수고하십니다. 서—최기자라고 하면 년세가 좀 계시는 분인줄로 알고 있는데요 저도 최기자선생을 잘 아는 사이인데요. 사람 참 좋은 분이시죠, 성격도 좋으시구…집체호에도 내려갔었죠? 언제 출생했으며 어떤 경력을 가지고 있습니까? 먼저 최시인의 프로필에 대해 소개해 주시죠   림-네 최기자시인은 1947년 1월11일 연길 출생. 연길시 공원소학교 졸업. 소대장, 연길시 3중 졸업. 대대위원, 학교 공청단선전위원 연변일중 졸업. 단지부서기, 학교공청단위원회 선전위원 소학교때 , ,와 같은   책읽기를 즐기고 글짓기와 시랑송에 흥취가 있었음. 리상은 대학공부를 마치고 작가나 변호사가 되는것이였지만 1966년 고중졸업을 앞두고 문화혁명바람에 휘말려 농촌으로  내려갔음.   하향하여 문학의 꿈을 버리지 않고 가사, 시 등을 쓰면서 대대선전대의 청탁으로 연길시 신풍대대 선전대의 연출자료, 이를테면 가사, 삼로인, 극본 등을 썼다. 1973년 가사 등이 연변방송과 텔레비 우수가요상을 받았고 수필 가 연변일보 을 수상. 시 가 18회두만강여울소리 탐구회 우수상, 가 25회두만강여울소리 시탐구회 우수상 이 26회 두만강여울소리 시탐구회 우수상을 받음. 시 이 에 수록되였고  시 무제(2), 종합포도술(2) 가 에 수록되였음. 그외 교육론문 십여편이 시,주, 성, 전국급우수론문상을 받았음. 길림성신문출판우수작품편집 2등상과 3등상을 수상. 길림성정부 민족사무위원회로부터 네차례 선진사업자로 표창받음. 저서로는 시집 2006.12 (길림성 우수도서)(공저)  연변교육출판사 (공저))   연변대학출판사 (공저)  연변인민출판사 연변조선족녀류시회 초대회장,  사단법인 연변조선족어머니수필회 회장을 력임하고 녀류시회 회원 작품집 2권과 어머니수필회 회원작품집 1권을 펴냈다. 3회로 되는 중국조선족어머니수필상 응모를 벌리고 시상식을 가졌다.   현재 연변작가협회 회원, 연변단풍수필회 회원, 연변시인협회 회원,   가정—아들딸이 다 일본 류학생이다. 최기자시인은 45세에 남편을 잃는다. 시인의 시어머니도 일찍 남편 잃었고 시어머니의 시어머니도 일찍 남편 잃었단다. 그래서 며느리는 절대 최씨를 안삼는다고 했는데 장씨를 삼았다. ㅎ   서—최기자 시인께서 문학에 대한 나름대로의 생각이 있다면 어떤것들이 있습니까? 림-네 얼마전 서로 메일이 통했는데 최시인은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문학은 흥취만으로 되는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고독과 고통과 아픔과 희열을 망라한 생활이 있고 뼈를 깎는 노력이 있어야 할줄로 안다. 한두편의 문학작품을 발표하였다고 문학가로 된것은 아니다. 나는 종래로 내가 시인이나 수필가라고 생각해본적이 없다. 그저 시나 수필을 좋아하고 시나 수필창작에 노력하는 사람중의  한사람이다. 선배님들은 물론 후배들에게서도 허심히 배우면서 창작능력을 키우고 문학소양을 쌓아가고있는중이다. 나는 시를 쓰고싶어서, 쓰지 않고는 못견딜것 같을 때 쓴다. 가장 알맞는 언어 하나를 발견하였거나 정말로 신선한 시어로 내 감성과 감정을 토로하였거나 독자들에게 순간이나마 가슴을 탁 칠수도 있음직한 시 한수을 써낸후의 그 희열과 짜릿함은 무엇이라 형언할수 없다. 솔직히 는 것이 그리 쉬운것이 아니다. 쓰는 사람이나 읽는 사람 모두가 일정한 문학소양을 구비하였을 때에 가능하지 않을가고 나름대로 생각해본다.” 신-최기자시인의 시집 출간기념식도 가졌다면서요? 시집이 어떻게 평가되였습니까? 림—네, 시집 (2006.12)출간기념식이 있었는데요     문학평론가이며 연변문화발전추진회 조성일회장은 인생살이가 묻혀나오고있는 이 시집은 자기 나름대로의 삶의 의지, 저항의 시적응전이 시퍼렇게 날을 세우고있는 좋은 시들을 담았다고 높이 평가했습니다. 출처(연변모이자 yanbian.moyiza.com) : 최기자 - 최기자 시집 《아침에 머리카락 줏는 녀자》 출간 - http://yanbian.moyiza.com/jizi/82003   서태문—그럼 최시인의 시들을 감상하면서 그의 시에 좀더 가까이 접근하겠는데요 먼저 최기자시인의 시 “굴”을 함께 감상하면서 그 뜻을 음미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굴(牡蛎) _대련에서 굴을 까며              최기자     꼭 돌에 살아야 하는 리유와 기어이 돌로 살려는 속심을         결코 가볍게 부산떨지 않았다   무섭게 달려드는 파도와 귀찮게 감겨드는 바다풀과 얄밉게 달라붙는 벌레따위도 바위에 뿌리 박고 하늘 향해 피여나는 그 옹골찬 몸짓을 막지 못했다            굳게 문 닫아걸고                    홀로 어둠속에서 묵묵히 소금 끓여 우유를 빚지만 집이 떠나가면 집을 빼앗기면 젖빛같은 눈물 흘리며                             두부같이 연한 알몸을 고스란히 통채로 바치는것이                                         고작 돌에 살아야 하는 리유와 돌로 사는 보람이였던가            시방 돌이 아닌 돌들이 아무렇지 않게 그의 목숨을 씹어대고있다 (2009.7.26)   서태문—바다에서 굴을 캐면서 느낀 감수를 시로 적은것 같은데요 실생활에서 느낀 시여서 퍼그나 생활맛이 짙게 풍기고 또 철리적인 일면도 있는것 같은데요   림금산—해설: 네, 대련에 있는 딸집에 갔다가 굴을 캐면서 느낀 감수를 시화했는데 역시 특이하다. 제재가 역시 평소 시인들이 자주 쓰지않는 제재이다. 이 시는 제26회 두만강여울소리 시탐구회 우수상 수상작이다. 시인은 이 시에서 굴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통하여 우리 현실의 수고한 인간이 수고한 대가를 받지못하고 억울하게 당하는 그 인간상을  조명하였다. 굴은 자기한테 주어진 운명앞에서 절대로 락방하거나 우울해 하지 않는다. 무섭게 달려드는 파도와 귀찮게 감겨드는 바다풀과 얄밉게 달라붙는 벌레따위도 바위에 뿌리 박고 하늘 향해 피여나는 그 옹골찬 몸짓을 막지 못했다            그만큼 굴은 현실에 대해 실망하지 않았고 고스란히 연한 알몸을 통채로 인간에게 바친다. 즉 인간의 입속으로 들어간다. 헌데 그 인간들이 문제다. 사실 굴의 집은 돌이고 바위이다 헌데 돌도 아니고 바위도 아닌 즉 돌이 아닌 돌들이 그의 목숨을 씹어대고 있다. 여기서 돌이 아닌 돌이라고 했는데 여기서 두번째 돌은 결국 아둔한 인간들을 암시하고 있는것이다. 한생을 돌을 붙잡고 살았지만 나중엔 돌에 목숨을 바친것이 아니라 돌도 아닌 인간들에게 잡히워 씹힌것이다. 아주 억울한 한생이요 불공평한 한생의 막끝이다. 화자는 여기서 굴의 억울함을 현실을 위해서 죽도록 헌신했지만 되려 그 현실에 버림받고 억울함을 당하는 인간으로 상징하였다. 사실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이다. 특히 문화혁명후기에 이런 악성일들이 많이 벌어지였다. 그 어떤 조직이나 집단을 위해 헌신했지만 조직의 불신임에 의심받게 되고 갇혀서 고생하다 무주고혼이 된 우수한 인간들이 아주 많았다. 시는 굴을 통하여 인간사회의 비리와 현실의 암흑면을 아주 예리하게 풍자 비판한것이다. 여기에 이 시의 깊은 무게가 있지 않을가 나름대로 생각해 본다. 진짜 눈물나는 시이다…   서—다음은 최시인의 시 “정자의 미로”를 함께 감상하고 그 해설을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역시 두만강여울소리 상을 탄 시라고 하는데요…       정자의 미로             최기자   수억의 경쟁을 물리치고 나는 태여났다 시공의 한순간에   세상에 나왔으나 내가 갈 길은 어디인가 공기는 혼탁하고 물은 썩고 오존층 페는 구멍이 뚫렸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갈곳이 없다 빛을 잃은 반디불과 숨죽은 개구리 기침을 쿨룩이는 창백한 사나이에 도시는 피를 토하고 아파트마다 걸려있는 젊은 팬티는 피임을 선언했다   아, 어디로 가야 하나 깊은 밤 미궁을 헤매다가 잠을 청한다 밤이 깊을수록 새벽이 가깝다는 한 모금의 신앙으로 할머니적부터 넘겨받은 표주박을 들고 생수 마시러 산으로 가는 녹색의 꿈을 찾아 잠을 청한다   서태문--네 역시 제18회 두만강여울소리 상을 받은 시인데요 제18차라면 아마도 근 10년전에 쓴 시같은데요 그때 감히 정자에 대해서 쓴다는건 어딘가 대담하고 특이한 소재를 다루었다고 생각합니다. 어떻습니까?   림금산—네 참 신기하다 할 정도입니다. 그때에 대담하게 이런 소재를 이 정도로 시화했다는건 조련찮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시편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주로 자연오염과 생태파괴에 대한 주제를 다룬것 같은데요 어딘가 생신한 제재이면서도 또 그때 금방 성행되기 시작한 록색문학류에 속하는 시라고 봅니다. 시인은 시에서 파괴된 자연과 오염된 인간의 적라라한 현모습을 그려내면서 “수억의 경쟁자를 물리치고 태여난 정자”가 갈곳이 없어서 방황하는 묘사를 통하여 당시 너무나 생태환경을 홀시하고 인간의 정신적 육체적 오염이 심했던 현실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정자가 세상에 나왔으나 갈곳이 없다. 공기는 혼탁하고 물은 썩고 지구의 오존층은 구멍이 뚫리고 반디불은 빛을 잃고 개구리는 숨을 죽였으며 사나이는 기침을 깇고 도시는 또 피를 토하고 아파트에 걸려있는 젊은 팬티는 임신하지 않겠다고 피임을 선언했다. 그래서 갈곳없어서 온밤 자지못하고 새벽을 기다린다. 여기서 새벽은 오염이 가셔진 새로운 세상에 대한 갈망이고 희망이다. 그리고 새벽이 도래하면 오염안된 할머니의 표주박을 들고 오염안된 산속의 생수마시러 갈 것을 생각하고 겨우 잠을 청한다. 온 시가지에 오염안된것이 없으니깐 산에다 희망을 걸고 산으로 갈 꿈을 꾸는 불쌍한 정자의 신세다. 우리 연길시로 말하면 모아산에 물길러 다니는 식이다. 총적으로 이 시는 록색시로서 심하게 오염된 자연과 오염된 인간사회를 준렬히 비판한 시이다. 10년전에 이런 시를 썼다는건 최시인의 시적 안광이 아주 예리함을 단적으로 보여주지 않았는가 생각된다.  종합포도술(1)            최기자   낮고 비좁은 무도장에 빨갛고 파랗고 노랗고 검은 녀자들이 알몸으로 혹은 면사포만 가리고 퐁당퐁당 뛰여들어 스치고 부딪치고 밀고 밀리우면서 동동 둥둥 한들한들 느믈느믈 춤을 춘다  어떤 게슴츠레한 염색체들만이 붉은 유혹을 후룩후룩 들이킨다 야위여가는 무도장에는 버림 받은 알몸들만이 거멓게 죽어가고있다 그날 숱한 녀자들이 라체춤을 추다가 죽었다   서태문—포도주가 형성되는 과정을 무도장의 상황에 비유해서 다루었는데 기발하고 독특하다고 느껴집니다.   림금산—해설: 이시는 2009년 중국코리언명시정선에 오른 시이다.   그렇다, 포도는 술병에 미끄러져 들어가면 껍질이 벗겨지고 살이 찢어지고 푸욱 고와져 나중엔 포도주가 된다. 이 시에서는 포도가 포도주병안에 들어가는 것을 즉 포도주병을 무도장에 비유하고 포도알들을 무도장에서 춤을 추는 여인들에 비유했다. 여기서 “빨갛고 파랗고 노랗고 검은 여자”라고 묘사한건 빨간 포도알, 파란 포도알, 노란 포도알, 검은 포도알을 말한다. 즉 포도알을 의인화했다. 착상이 기발하고 시를 다루는 솜씨가 아주 능란함을 엿볼수 있다. “스치고 부딪치고 밀고 밀리우면서”—란 묘사들은 세월에 부대끼고 사람에 부대끼고 비리에 부대낌을 상징적으로 제시한다. 그 다음 “동동 둥둥 한들한들 느믈느믈”- 등 시어들은 표면적으로는 행복한체 하고 점잖은체 하고 동동 둥둥 즐거운척 하지만 허황하고 허무하고 허탈한 인간들의 내면세계에 대한 은근한 풍자와 조소인것이라고 해석해도 무방한줄로 안다. 전반 시의 노리는 점을 감안할때 가히 이렇게 말할수 있겠다.   “야위여가는 무도장에는 버림 받은 알몸들만이 거멓게 죽어가고있다”--- 이런 시적 표현은 결국 허무하고 허황하고 공허한 요즘 인간들의 무도장은 절대로 풍요로운 즐거움이나 행복한 곳이 아닐것은 당연함을 암시하고 또 그래서 “야위여가”는 무도장이라고 했다. 나중엔 거멓게 죽어갈수 밖에 없는것이다. 절대로 싱싱히 살아나거나 또는 새힘을 얻거나 부활하는게 아닌 그와 정반대인것이다.   “그날 숱한 녀자들이 나체춤을 추다가 죽었다”고 한 표현은 껍질이 다 벗어진 라체의 포도알처럼 요즘 인간들도 광대와 들뜸과 허위와 허상의 표면적인 껍질을 다 벗으면 그 안엔 죽은 시체밖에 안남는건 당연한 일일것이다.   이 시는 포도가 술병속에서 시달리다 죽어가는 것을 무도장에서 허무에 말려서 죽어가는 인간과 비유해서 요즘 많이 들떠있고 붕- 떠있고 실속없이 자기를 세월속에 던져버리는 인간상을 예리하게 해부햇으며 나아가서는 전반 이 사회 거품식 현실을 폭로하고 통책하고 비판한 것이다. 이면에서 이 시는 이 시로서의 자기의 사명을 완수할수 있은것이라 해야겠다.     서태문—다음은 최기자시인의 력작 “언감자떡”을 함께 감상하고 그 해설을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언감자떡   어느 배부른 자의 버림을 받아 한겨울 쓰레기로 나뒹굴던 감자들이 우리 집에서 옷을 벗으며 눈물을 쏟았다 엄마 손톱눈처럼 아린 눈물을   들어누워 열물을 토해낸 언감자 주렁주렁 처마끝에 내걸린 념주 알알마다 엄마손을 울린 동전들이 얼면서 녹으면서 마침내 하얀 속돌로 잘랑거리면 굶주렸던 절구친구가 배를 불린다                 엄마 머리에 하얗게 감자분꽃을 피우면서   엄마가 반나절이나 빚은 내 고사리손이 되짚으며 세여낸 언감자떡이 쑥불에 화독을 쓰고 무겁게 무겁게 장터에 나앉았다 엄마얼굴처럼 까맣게 나앉았다 1954년 팔월 스므이틀 오후 네시 엄마는 서시장에서 언감자떡을 팔다가 진달래동생을 낳았다 할머니는 또 계집애라고 토라지시고   서—언감자떡을 만드는 과정에 대한 묘사도 아주 핍진하고 또 임신한 엄마가 임신한 배를 해갖고 서시장서 언감자떡을 파는 장면도 …참 눈물나는 묘사들인데요 이 시는 무엇을 말해줍니까?   림—해설: 네, 엄마가 언감자떡을 만들어 장에 나앉아 파는 장면에 대한 시적인 묘사를 통하여 잔밥들을 키우시느라 숱한 고생을 밥처럼 자신 엄마의 눈물나는 일생을 추억했다.   언감자가 녹으면서 물을 줄줄 흘리는걸 “열물을 토해낸다”고 하고 념주처럼 처마에 달아맨 언감자들을 동전에 비유한다 왜? 그것으로 이제 언감자떡을 해서 팔면 동전이 되기때문도 있지만 또 조롱조롱 달아놓았을때 동전같기두 하다. 또 다 마른 다음에는 가벼운 속돌같기도 하다. 그걸 또 절구에다 하얀 감분을 머리에 들쓰면서 찧어 가루를 낸다 그후 엄마가 감자떡을 빚으면 나는 그것을 헤여본다 몇개나 만들었는가 나중엔 시장에 나앉아 판다. 이때 엄마는 임신때였고 드디여 언감자떡을 파는 동안 “1954년 팔월 스므이틀 오후 네시”에 최시인의 녀동생을 낳았다. 시에서는 진달래동생—진달래냉면 유한공사 총경리를 말한다. 시의 마지막 행이 또 재미있다. 낳은 애가 계집애라고 할머니는 토라진다…그 살기힘든 세월에도 또 남존녀비사상까지 우리 할머니들을 괴롭히여 더욱 가슴 아프다.   이 시는 녀성시인으로서의 섬세하고 구체적인 핍진한 시적 묘사가 돋보인다. 그리고 우리 민족 여성들만이 알수있는 언감자떡을 만드 는 전반 과정이 시줄을 타고 눈물과 한숨과 함께 잘 익어갔다. 시인의 재치를 잘 보여주는 눈물나는 시이다. 언감자를 만드는 과정도 눈물나고 피나는 과정이지만 그걸 또 임신한 배를 해갖고 장에 나앉아 파는 장면은 더구나 눈물나고 후일 진달래동생이 그 큰 중국조선족의 유명짜한 어마어마한 냉면집 총경리 동사장이 된것도 아주 잘 안받침되여 못살던 그때 당시의 엄마의 형상이 더욱 돋보인다. 이면에서 이 시는 읽는 사람의 가슴을 짠하게 만들어주고 또 그러하기에 이 시는 아주 딱소리나게 성공했다. 신-다음은 역시 바다가에 갔다가 현장에서 느낀 감수로 쓴 시인데요 아주 독특한 내용을 쓴 시입니다. 함께 감상하시죠   대련 칠현령(七贤岭)에서 본 말매미   외손자 보러 왔다는 어느 할머니 손에 아이노리개로 되여버린 말매미 반나마 잘리워나간 날개 불구자의 고독한 연기입니다   가냘프게 치르르르 숫놈만 운다니 필시 숫놈일텐데 짝을 불러 열창하던 그 목청이 병들었습니다   넘어질듯 휘뚝휘뚝 빛에 취해 무리 지어 시공을 휘젓던 남자 그 남자가 거세되였습니다   고작 일곱날을 살려고 기껏 짝 한번 짓자고 칠년을 땅속에 묻혀산것 그것이 억울하지도 않은가요   녀자 하나 못 잡고 이렇게 허무하게 이렇게 값없이 이렇게 무참히 노리개로 앓다가 병신으로 살다가 제명으로 못살고 외토리로 가는건 아닙니까   희비는 엇갈리고 생사는 지척이고 명암은 불빛이니 애당초 번데기로나 살거지   치르르르 치이 짝을 찾아 우시는가요 새끼 원해 우시는가요 세월 탓해 우시는가요   누구의 동생 누구의 오빠 누구의 삼촌  누구의 남자여   서—참으로 재미있는 시라고 생각됩니다. 말매미를 썼는데 또 그 말매미도 병신말매미를 썼고 수컷구실을 못하는 말매미를 써서 더구나 독특한것 같습니다.   림—네, 제재가 역시 특이합니다. 시인은 이 시에서 병신 말매미를 썼고 수컷구실을 못하는 말매미를 썼고 기껏 일주일간 살자고 땅속에서 7년을 묻혀산 말매미를 썼는데 그것도 또 병신이여서 한번 밖에 짝을 짓지못하는데 짝도 지을수 없는 불쌍한 말매미를 썼다. 정말 말매미의 기구한 운명을 통해서 은근히 인간의 삶의 기구함을 배면에 깔아주고 있다. 시에서 “녀자 하나 못 잡고 이렇게 허무하게 이렇게 값없이 이렇게 무참히 노리개로 앓다가 병신으로 살다가 제명으로 못살고 외토리로 가는건 아닙니까” 라고 한다. 완전히 우리 사회에 점점 시들어가고 병들어 가고 남편이 남편노릇못하고 지어 한생동안 외토리로 겨우겨우  살아가고 있는 인간상을 비유해서 탄식을 쏟았다. 치르르르 치이 짝을 찾아 우시는가요 새끼 원해 우시는가요 세월 탓해 우시는가요 라고 한것은 이런 남자들에 대한 측은한 감정과 눈물겨운 동정, 더 나아가서는 실망하는 그런 한탄을 풍겨준다…세월에 대한 한탄과 시들어가는 속세의 시들어가는 인간상에 대한 비탄을 쏟아냈다.   진짜 이런 병들고 제노릇못하는 남자가 누구의 동생이고 누구의 오빠이고 누구의 삼촌이고 누구의 남편인지? 만약 누가 이런 남자와 관계된다면 그건 진짜 그 사람의 비극이 아닐수가 없다. 그래서 시인은 마지막련, 마지막 행에서는 호격토 “여”까지 써가면서 피타게 부르짖고 있는것이다.   서태문—네, 어느덧 약속된 시간이 다 되여가는데요 오늘은 녀류시인 최기자님의 재미나고 독특한 시들과 가까이 만나서 아주 좋은 시간이 되지 않았나 생각되는데요 오늘도 림선생님 수고많았습니다. 림금산--네 수고하셨습니다.   서태문-그럼 이것으로 오늘 문학살롱프로 여기에서 이만 줄입니다. 이 시간 프로편집에 김철운이였습니다.
80    김응룡 시인 댓글:  조회:1512  추천:1  2014-08-12
신-문학살롱 진행을 맡은 심금철입니다. 지난시간에는 훈춘에 계시는 김동진시인과 그의 시작품들을 살펴보았는데요。 이번 시간에는 다년간 방송국, 잡지사에서 편집사업을 맡아오시면서 우리 문단을 장식해온 김응룡시인과 그의 일부 작품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오늘도 연변시가학회 림금산선생과 함께 합니다. 안녕하세요?   림-네 수고합니다.   신-김응룡시인은 많은 문학인들을 탄생시킨 두만강기슭-화룡시에서 탄생한줄로 알고있습니다. 두만강과 문학은 어떤 필연적인 련관이 있는것처럼 느껴지는데요. 먼저 김을룡시인의 프로필에 대해서 소개해주시지요.   림-네, 김응룡시인은 1946년7.11. 길림성 화룡현 덕화향 유동촌 소유동골에서 출생, 선경대 그 아래. 유동하기슭. 좀더 내려가면 길지촌, 덕화향, 남평진, 맞은켠은 두만강건너 조선 이 부근에 많은 문학인들이 산출, 로과에 리욱선생(비록 여기서 태여나지 않았지만), 최룡관, 허충남, 허봉남, 허두남 등 허씨3형제, 길지촌에 박장길, 김영건, 김응룡, 최홍일도 이 부근 하향 등   신-원래 형제가 여러분이였는데 후에 병으로 사망했다고 들었습니다.   림-네, 그는 화전농의 아들이다. 그의 아버지는 지금 국가급 풍경구인 선경대아래골인 소유동에서 화전을 일구고 감자와 보리를 심어 식구들을 먹여살리였다. 그의 우로 형 둘과 누이 둘이 있었는데 형 둘과 누이 하나가 전염병으로 어린 나이에 죽자 아버지는 막내아들(후에 남동생이 하나 생겨났음)인 그마저 잃을가봐 사주팔자를 잘 보는 로인을 집에 청해놓고 그의 이름을 짓게 하고 또 그의 평생 사주를 쓰게 하였다. 하여 그의 가문 형제들의 이름은 모두 만자돌림이였으나 그만은 이름을 응룡이라고 지었다. 신-이름을 바꾸었는데도 여러차 죽음의 고비를 넘었다고 들었습니다.   림-네 이름이 좋아도 그는 어릴 때부터 내내 죽음의 신을 뒤꽁무니에 달고 다니는 운명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두살을 잡는 해의 추석맞이때였다. 어머니등에 업혀 물레방아간에서 어머니가 방아를 찧는것을 보아온 그는 어머니가 제사상을 차리려고 기름떡을 굽는 사이에 아장아장 걸어서 방아간에 가 어머니처럼 방아확안의 쌀을 번지는 시늉을 하다가 그만 방아확에 빠졌는데 방아공이 내리치자 얻어맞아 정신을 잃었다. 그때 어머니가 찾으러 나왔으니 망정이지 방아공에 한번만 더 맞았더라면 물아이였던 그는 진작 죽고말았을것이다. 또 한번은 그가 다섯살이 되던 해 봄이였다. 그의 집은 두만강변의 작은 마을로 이사를 했는데 이사한 이튿날 그 때는 1952년, 조선전쟁이 치렬한 때라 강건너 조선의 신작로로 중국인민지원군이 이틀 낮과 밤을 이어 전선으로 나가고있었다. 그는 군대들의 자동차며 땅크를 가까이에서 보려고 풀리려고 버석버석해진 얼음우로 건너가다가 그만 얼음이 꺼지는바람에 물에 빠지고말았다. 다행히도 강가에서 빨래를 하던 옥동이라는 처녀가 발견하고 기겁한 소리를 치자 그의 아버지가 달려나와 겨우 그를 건져냈다. 그 외에도 일곱살때 백일해에 걸려 죽을번하던 일, 강변에서 놀다가 뱀한테 물려 죽을번하던 일, 개한테 물려 범의 고기를 먹고 살아나던 일… 15살에 급성페염, 급성신염 등 합병증이 와서 다 죽게 되였는데 마침 연길현간부휴양소가 마을앞에 있어 휴양소 의사들의 극진한 치료를 받아 또 한번 사경에서 벗어날수 있었다. 그러나 그 흔적으로 소년이였던 그의 머리는 반나마 희여버렸다. 그래도 죽음의 고비마다 귀인들이 나타난것은 아마도 이름 덕을 입은것 같다. 신: 그같은 일들이 그의 문학의 길에 어떤 힘을 주지 않았는가 생각하는데요.   림: 그는 죽음의 고비고비를 넘어오면서 생명의 귀중함과 그런 고비마다 사랑의 손길을 뻗쳐준 사람들한테서 사랑을 배우고 사람이 되는 도리를 조금씩 깨우쳐왔다. 이 모든것은 아마도 후날 그가 작가로 시인으로 될수 있은 밑거름이 되였으리라. 그는 아홉살에 13리나 되는 먼 곳의 학교에 입학하였다. 그래서 학교로 오가는 길에 책을 들고 걸으면서 암송 같은 숙제를 하고 손에 들어오는대로 문학작품을 탐독했다.   신-초중때부터 작품을 쓰기 시작했다면서요? 그때 어떤 작품을 썼습니까?   림-네 초중때 《참외에 깃든 이야기》란 아동소설을 써서 연변방송국에 응모작품으로 보냈는데 뜻밖에도 우수상으로 입선되여 상을 받게 되자 그는 문학에 대한 뜻을 더욱 확고히 굳히게 되였다. 초중시절의 반주임선생이였던 남흥범선생님은 문학에 집념하는 그를 기특히 여기고 의식적으로 인도하고 지도해주었다. 그래서 초중을 졸업할 때는 일정한 문학수양을 갖게 되였다. 초중을 졸업하고 상급학교에 지망을 쓸 때 가정살림이 구차하여 아버지 뜻대로 연변사범에 지망을 썼는데 조선어문이 만점을 맞는 기적을 내여 화룡고중에서 먼저 입학시키는 바람에 사범학교로 못가고 화룡고중을 다니게 되였다. 1967년 화룡고중졸업. 문화혁명이 일어나 대학으로 가는 길이 막히자 68년 8월 고향에 돌아와 민영교원-남평소학교에서 1970년까지 교원을 하다가 (이때 학생가운데 박장길시인이 있음) 화룡현 중학교교원훈련반에 가서 근 8달동안 학습하고 덕화향 경흥중학교 교원으로 배치를 받았다. 그는 이 시기에 시와 아동문학작품을 써서 발표했다. 1972년에 연변작가협회에 가입. 이런 덕으로 1974년 8월 덕화향문화소에 소장으로 전근. 공사문화소사업을 하는 기간 김성휘시인의 가르침을 받으며 《공사의 아침》이란 덕화공사시집을 편집출판했으며(정식출판) 길림성 모범문화소의 영예를 따냈다. 1978년 5월, 그는 연변방송국 오태호주필의 안중에 들어 곡절끝에 전근수속을 마치고 연변방송국에 전근이 되였다. 방송사업을 하는 기간 그는 연변대학 조문학부의 함수공부를 하면서 청소년프로를 당담했기에 몹시 분망한 나날을 보내야 했다. 그래서 사업의 수요로 가끔 아동문학작품과 가사만을 썼을뿐 어려서부터 사랑해온 시는 별로 쓰지 못했다. 1985년에 함수졸업. 방송국청소년부 대리주임. 문학부부주임으로 사업. 신: 에 전근되여서부터 본격적으로 문학편집과 창작에 몰두하였다고 들었는데요.   림:1988년 12월, 연변문학월간사에 전근이 되여서야 그는 비로소 본격적으로 문학작품을 편집하는 한편 문학에 대해 재학습하게 되였다. 당시 그는 주관적으로 편집자가 좋은 작품을 많이 쓰지 못하면 과외작자들의 인정을 받지 못하는것이라고 인식하고 수필, 실화, 시를 닥치는대로 써서 발표했다. 이때 그는 수필편집, 실화문학편집, 시편집 등을 맡았댔는데 시문학작품을 편집하게 되자 그는 여러 류파의 시리론 특히 현대시리론을 알아야 함을 절실히 느끼고 학습에 게으르지 않았다. 나중엔 시평론실 주임도 맡아하면서 학습과 창작실천과정에서 그는 시란 심미적이고 정감적이고 생명의 상징이여야 한다는것을 깨우치게 되였고 그의 시에 이런것을 체현하려고 노력했다. 2006년 8월 정년퇴직. 신-그렇다면 김응룡시인에게는 어떤 작품들이 있으며 또 지금 정년퇴직후에도 많은 사업을 펼친다고 들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일들을 하고계십니까?   림-1969년에 시 “빈하중농호장”을 처녀작으로 발표하면서 아동서사시 “붉은 사과”, 덕화공사 시집 “공사의 아침”편집, 방송드라마 “산골마을의 아이들”, 동화그림책 “알룩이와 흰둥이”, 동요 “우리 꽃명절 노래부르자” 등 백여수 성인가사 “그리운 고향길” 등 수십수. 1988년부터 본격적으로 성인작품쓰기시작했는데 실화문학작품 “사랑의 손길”, 수필 “망돌” 등 50여편, 시 150여수 많은 가사를 창작, 시집 “잔디풀의 작은 사랑”, 황장석시인과 합작하여 장편실화소설: “얼의 몸부림”, “삶의 선택”, “물속의 불”, --주로 기업가들의 일대기- 그중 리송웅도 있음. 역시 황장석시인과 함께 “숲속에서 맺은 사랑”이란 소설집을 번역 그리고 대형문학총서 “두만강”, 단풍수필회 비전기간행물 “단풍잎” 연변시인협회에서 꾸리는 시문학총서 “시향만리”등의 편집에 참가. 중앙문화부를 비롯한 8개부문에서 공동주회한 “전국 “꽤꼴새컵”동요창작콩클에서 동요 “우리 꽃명절 노래부르자”가 1등상을 타는 등 전국 성주 우수 문학창작상 수십차 수상. 한국 “문예시대” 해외동포문학상 수상. 현재: 연변시인협회 부회장 겸 비서장. 중국소수민족작가협회 회원. 연변작가협회 회원. 연변아동문학연구회 비서장. 시총서  "시향만리" 편집, 조직자의 한사람, 등   신-실로 많은 작품창작과 문단활동들을 펼친 김응룡시인이였습니다. 그럼 먼저 시골 외톨이들의 현실상황을 아프게 쓴 그의 시 "기다림"을 감상하고 림선생의 해설을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기다림   김응룡   정오무렵 사람 그림자 하나 없는 시골마을에 개가 짖는다 컹컹 마을길에 느닷없이 나타난 녀인 보고 이 집개 저 집 개 짖어댄다 목 메여 짖어댄다 산비탈 메밀밭에서 다락논에서 김을 잡던 외기러기 사내들 약속이나 한 듯 일손 놓고 일어선다 행여 행여… 저마다 부서지는 마음을 추슬러 본다   신: 농촌의 현실생활에 눈길을 돌린 시였는데요 해설부탁드립니다.   림-녀성이 없어진 우리 농촌들에서 살아가는 외톨이 사내들이 정오무렵에 한적한 마을에 느닷없이 나타난 녀인에 대한 동일한 눈길을 통하여 리향, 해외로무송출 등으로 인한 부부리산의 아픔, 로총각들의 결혼난 그리고 이로부터 이어지는 농촌에서의 가정의 해체화 경향을 잘 보여주었다. 우리농민들의 고통스러운 실존상황을 아주 짧지만 특색 있는 모멘트를 통해 집약적으로 보여준데 이 시의 묘미가 있다. 시제목 "기다림"에는 많은 뜻이 담겨있다. 혹시 마을에 여인의 그림자라도 나타날가고 기다릴수도 있고 한국간 친척이나 안해를 기다릴수도 있고 장가갈 그 날을 기다릴수도 있고...   신: 네농촌의 현실을 그려낸 김응룡시인의 시 이였습니다. 그럼 계속하여 시를 감상하겠습니다. 까치둥지          김응룡   지는 잎들이 받들어 올린 까만 그리움 하나 백양나무 가지에 동그랗게 걸려 쳐다보는 나의 눈 이슬 젖는다 언어도 음악도 삶의 온기마저 잃은 비인 둥지 주인은 어데 갔나 동구밖 나선 할배할매 눈이 허는데 반가운 기별은 전하지 않고 늙은 총각들 술병 안고 쓰러졌는데 오작교는 놓지 않고 생기가 떠나간 자리 까만 그리움 하나 행복했던 나날들이 락엽되여 뒹구는 시골 백양나무가지에 높이높이 걸렸구나   신: 백양나무에 걸려있는 빈 까치둥지를 통해 생기를 잃어가고있는 농촌의 전경을 그려내고있습니다.   림- 이 시에서는 우리 농촌에서의 가정이 해체되는 현실을 나무에 달린 빈 까치둥지에 비해 표현했다. 까치는 사실 좋은 소식을 알려주는 새이다. 그러나 그런 길상스런 까치들은 어디론가 날아가 버리고 《언어도 음악도/ 삶의 온기마저 잃은/ 비인 둥지"밖에 남기지 않고 애오라지》 《까만 그리움만 하나》만이 《백양나무 우에 높이 높이 걸렸구나》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는 시인의 민족적인 우환의식에서 우러나온 진실한 정서의 발로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 시는 이러한 민족적 사명감에서 우러난 김응룡시인의 우환의식을 잘 보여주었다. 민족적인것이 사라져가는 농촌의 현실에서 느낀 진실한 정서를 비교적 생동한 시적 형상화를 통해 표현한 점이 돋보인다. 이 시는 한국《문예시대》2006년 해외동포문학상수상작 신: 급속한 사회의 발전에 비해 피페해진 농촌의 현실을 밝힌 시였습니다. 계속하여 감상할 시는 입니다. 향수   김응룡 삶은 올감자에 하얀 김이 서리고 된장 찐 풋고추 향을 피워 올리면 내사 65도 배갈 한 병 마셔도 취하지 않소 앞강의 여울소리 긴긴 전설 풀어내고 숲속의 새들 딸기빛 사랑을 노래했소 젊은 시인은 심장을 뽑아 미루나무에 걸고 둥둥 북을 쳤소 먼먼 지평선 저쪽 내가 태를 묻은 땅이 있으련만 강물의 여울소리도 새들의 사랑노래도 들리지 않고 안개만 자욱하오 불볕에 달아오른 세멘트길 따라 홍개미 한 마리가 포복전진하오 35도 배갈에 취해 비틀 비틀   신: 역시 농촌의 실생활에 눈길을 돌리고 쓴 시라고 생각되는데 해설부탁드립니다.   림-시인의 고향은 앞강건너 저쪽 먼곳의 지평선저쪽에 아득히 보인다. 허나 갈수가 없는것이 또한 현실이다. 젊은 시절의 아름다운 추억과 함께 눈앞에 비쳐지는 것은 사랑도 희망도 빛바래진 농촌의 현실이고 그 속에서 정신상태가 허전하여  술이나 마이며 마음을 추슬리려 하는 사람들도 꽤 많다.  이 시에는 쓸쓸함과  눈물이 반죽되여있다. 그리하여 독자들에게 이러한 시들은 우리 농촌의 쓸쓸한 통곡소리처럼 아프게 느껴진다. 마지막 부분에 홍개미가 포복전진한다는것과 술취한 작품중인물이 비틀비틀하며 겨우 한발작씩 전진한다는 표현이 아주 재치있어보인다. 이런 시적 형상화와 표현은 힘들게 향수를 참으면서 하루하루 한발작씩 옮겨디디며 살아가는 고달픈 정서를 더욱 짙게 해준다.   신: 계속하여 감상할 시는 입니다. 역시 농촌의 정경을 적은 시인데요. 함께 감상하겠습니다. 시골개구리들의 울음   김응룡   어둠이 깃든 시골 개구리들이 운다 눈물도 없는 개구리들이 울음 높이 질벅하다 비도 오지 않아 강가 모래불에 묻은 엄마 물에 밀려갈 근심도없는데 왜 우느냐 물었더니 아니란다 개굴개굴 개구리들이 우는 리유 아는지 모르는지 이영이 고삭은 초가에서 진작 잠에 곯아떨어진 늙은 량주 꿈을 꾼다 꿈에 안아보는 손자손녀 재롱에 행복의 웃음 느침으로 흘러내려 베개잇 적신다 이 시골 인적 늙은 량주마저 초가에 묻힐가바 개구리들은 운다 밤새껏 밤새껏   신: 농촌에 내려가면 시상이 잘 떠오르는가 봅니다. 비록 도시에서 생활한 경력이 더 길지만 농촌제재를 많이 다르고있구나 하는 느낌이 듭니다. 이시도 농촌에 내려갔다가 느낀 감수를 적은것같은데 해설부탁드립니다.   림- 고향에 간 시인은 현대적인 문화향수에 푹 빠져 보내던 도회지와는 달리 밤에 우는 개구리소리를 듣게 된다. 문화도 없고 아예 늙은 량주밖에 안남은 그런 시골, 한산하기 그지없고 고적하고 스산하고 괴괴한 그 저녁 그저 하염없이 우는 개구리소리만 들린다 시인은 이제 늙은 량주만 늙어서 사망하면 이 시골은 완전 인적이 없어진다. 즉 사람냄새가 영영 없어진다는 말이겠다. 그래서 초가에 늙은 량주가 묻혀없어질가봐 개구리가 밤새껏 운다고 한다. 역시 사그라져가는 시골의 삭막한 풍경에 대한 시인의 애탄의 목소리다.   신: 계속하여 감상할시는 입니다. 젊음을 잃은 아쉬운 마음을 담은 시인데요. 함께 감상하겠습니다. 창졸한 시절 김응룡   꽃은 그때 벌써 다 지고 죽은 나비들의 장송곡이 슬펐다 웃음이 찬란했던 얼굴에 지렁이가 꿈틀거리며 흘러가는 세월을 잡노라 모지름 쓴다   눈물이 떠나간 자리에 아직 죽지않은 뼈들이 숭숭 구멍나는데 고해의 끝은 어디 굼실대는 저 파도우 지는 별이 차갑다   생명의 페지를 아무리 번져도 가장 빛났던 페지는 그 한장 행복도 그속에서만 파랗게 열기뿜는데 돌이켜 번질수 없는 오 창졸한 시절이여   신: 세월이 원쑤라는 말처럼 모든 사람들이 다 느끼고 경험했던 그런 감수를 적지 않았는가 생각합니다. 림—고향에 있을때의 그 청춘시절 젊은 시절이 너무도 빨리 창졸하게 흘러간걸 아쉬워하는 마음을 시화했다. “웃음이 찬란했던 얼굴에 지렁이가 꿈틀거리며 흘러가는 세월을 잡노라 모지름 쓴다”—여기서 지렁이는 울뚝 돋아오른 피줄을 비유한것이고 그 지렁이가 세월이 가지말라고 모지름쓰지만 허사이다   신: 계속해서 감상할 시는 입니다. 우에서 감상한 시들과 비슷하게 농촌전경을 빌어 시인의 감수를 적은 시인데요. 함께 감상하겠습니다.   우물                           김응룡 페허로 된 마을에 드레우물 하나 하늘이 좁다고 울던 개구리들 강따라 사방 흩어지고 돌담벽에 돋은 푸른 이끼 사라지는 농경세월 손저어 바래거니 시이미지 쫓던 이 붓대 갈팡질팡   신: 아주 짧은 시지만 사회현실을 잘 보여준 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림-페허로 된 마을, 스산한 마을에 드레우물 하나밖에 안남았다. 그 우물속에서 울던 개구리들도 이젠 다가 강따라 골안을 빠져나가 어디론가 산지사방으로 흩어졌다. 돌담벽엔 이끼만이 외롭게 푸르러진다 어딘가 락후햇지만 인심이 아주 후했던 농경세월은 차츰 세월의 뒤안길로 사라져간다. 휑덩그렁하고 스산한 살풍경이 된 고향에서 시인은 뭔가 쓸수가 없어, 정서를 흘릴수가 없어 붓대가 갈팡질팡 허공에서 헤매인다…여기서 또 하늘이 좁다고 울던 우물안의 개구리는 결국 시골세계가 너무나 좁다고 웨치며 그 어떤 꿈을 안고 버덕으로 도회지로 떠나간 사람들을 상징한다…   신: 계속해서 감상할시는 입니다. 우에서 감상했던 시들보다 더 슬프고 쓸쓸하게 농촌의 분위기를 그려낸 시인데요. 함께 감상하겠습니다. 감자 두알 김응룡 이글거리던 숯불도 꺼지고 화로를 마주한 할머니와 손자 주고받던 이야기도 꺼지고 이제 남은 재불엔 감자 두알 인적 끊긴 마을이라 개도 일찍 잠들어 밤이 긴 도포자락 끄는 소리만 스르럭 스르럭 이따금씩 문풍지 울린다 다가는 인생과 막 시작하는 인생을 익은 감자속살이 펴내는 한가닥 흰김이 이어주어 아직은 온기가 도는 시골 초가의 밤   신: 할머니와 손자의 내일이 근심되는 쓸쓸한 시라고 생각됩니다. 림-령감도 없는 홀로인 할머니와 아빠 엄마도 없는 형제도 없는 홀로인 손자 합했자 둘이서 마주 앉아있다. 분위기가 어딘가 외롭고 조용하고 적막하다. 그래서 숯불도 이글거리는 숯불이 아니고  화로불 개도 일찍 잠들다. 인적이 없으니 개가 짖을일이 없게 됐고 그래서 더구나 적막강산. 거기다가 또 밤이니. 그래도 시인은 완전히 식은 모습에 붓을 놓아버리지 않고 감자속살이 펴내는 한가닥 휜김속에 그 조그만한 온기를 되살려 준다. 미소하나마 그래도 그 어떤 묘연한 희망을 살작 얹어주는 배려를 보였다. 가는 인생은 가더라도 아직 어린 손자 그는 오는 인생이요 시작하는 인생이니깐. 희망같을걸 얹어주는 배려를 보여준것이 다행이라 하겠다.   신: 계속해서 감상할 시는 입니다. 유리창을 생기발랄하던 학창시절을 떠올리록있는 시입니다. 함께 감상하겠습니다. 유리창                  김응룡 님아 너 상금도 기억하느냐 우리들의 숨결이 닿아 정열의 눈물 흐르던 그 투명한 유리창을 안에도 반짝이는 새별 한쌍 밖에도 반짝이는 새별 한쌍 서로서로 애타게 갈망하면서도 마음의 빗장 못열어 별만 쌍쌍 얼어붙던 그 투명한 유리창을 님아 그 유리창은 지금도 그 곳에 그 모습 그대로 달겨있고 소쩍새는 지금도 그날 밤처럼 그렇게 슬피 울고있어 님아 우리 함께 가자 그 시절 그 유리창가로 그리고 세월의 울타리 넘어 마주서 보자 너의 한쌍의 새별을 나의 한쌍의 새별을 그럼 축복같은 눈이 너와 나의 머리 하얗게 덮어놓고 꿈같은 옛말을 들려줄거야   신: 생기와 정열로 차넘치던 청춘시절의 사랑을 샛별눈을 빌어 잘 보여주지 않았는가 생각됩니다.   림-사랑시다. 사춘기시절, 서로 창을 두고 눈사랑하고 기다리고 숨어서 보고 애타게 그 얼굴 그모습, 그 눈동자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리던 그 때 그 순진한 티없는 사랑. 지금처럼 대놓구 말하지도 못하던 전통적인 사랑, 수집은 사랑, 허나 가슴이 두근거리고 심장이 쿵-쿵 방아찧던 그런 사랑을 진솔하게 시화했다. 구성상으로 보면 님아가 세번 첫번째 님아로부터는 그때 젊음의 새별같은 눈동자가 유리창을 사이두고 얼어붙던일, 두번째 님아로부터는 지금도 그 유리창이 그냥 그 자리에 달려있다는 (혹은 기억속에 달려있다는) 세번째 님아로부터는 우리가 다시 그 유리창창가로 즉 그 추억속으로 다시 가자는 가서 추억의 눈을 맞으며 서로 그때의 콩콩 뛰던 가슴을 얘기하자는 걸 썼다. 그래서 구성상에서도 흩어짐 없이 아주 정연하고 자연스레 흘렀고 아주 째였다.   신-네 김응룡시인에게는 시작품외에도 수필, 소설, 드라마, 실화 등 다양한 문학장르의 작품들이 있지만 오늘은 그의 시작품에 대해서만 살펴보았습니다. 시간이 허락되면 더 넓은 범위에서 살펴보면 좋겠지만 시간상관계로 오늘은 여기서 그치겠습니다. 선생님 오늘도 수고하셨습니다.   림-네 수고하셨습니다.   신-그럼 이것으로 이 시간 문학살롱프로 이만 줄이겠습니다. 이 시간 프로편집에 김철운이였습니다.
79    김창희 시인 댓글:  조회:1201  추천:3  2014-08-09
신-문학살롱 신금철입니다. 이번 시간에는 다년간 편집사업을 해오면서 열심히 시창작을 견지해 오고있고 또 좋은 시들도 많이 써낸 중견시인 김창희와 그의 일부 작품들을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도 연변시가학회 림금산부회장을 모셨는데요 안녕하세요? 림-네 수고합니다. 신-김창희시인이라고 하면 시창작을 시작한지 꽤 오래된 분으로 알고있는데요 그럼 먼저 김창희시인의 프로필부터 소개해주시지요? 림-네   김창희 략력 1965년 안도현에서 출생 필명: 김희. 연변작가협회 회원 시, 수필, 평론 300여편 발표, 칼럼 다수 발표, 시집 “기차가 서서 달리지 않는 리유”(2008) 출간. 선후로 교원, 그리고 , , 등 신문,잡지들에서 편집사업을 하다가 지금은 지에서 시편집으로 사업하고 있습니다. 신-그렇다면 김창희시인은 어떤 상들을 수상했습니까? 림-네 연변일보 해란강문학상(1990), 24회 두만강여울소리 시탐구상, 19차 중국조선족아동문학필회 최우수상, 제 3차 중국조선족동시탐구회 최우수상 등 문학상 수상. 흑룡강성보도특별상(2005), 흑룡강신문우수작품 2등상(2006) 등 각종 상 30여차 수상.    신-김창희시인에 대한 평론가들의 평판은? 림-네   한춘: 김창희시인의 파격적인 시구조는 우선 기존의 정연한 객관구조질서를 해체하여 자기의 심성을 보여주는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는데서 잘 보여지고있다. 해학적인것 같지만 그것은 단순한 해학을 넘어서 어딘가 풍자적 요소가 다분한 그리고 원유질서를 흔들어보려는 야심이 보여진다 김룡운: 김창희의 시들이 몇가지 양상을 보여주기는 하지만 그중 가장 두드러진것이 아이로니적(풍자, 비꼬기, 반어법: 사실과 반대되는 표현으로 사실을 더욱 강조하는 말)인 모습이 아닌가 싶다…아이로니로 삶의 뒤안길을 정성껏 비춰보는 김창희의 시는 차거움속에 따스함이 있고 빈정거림속에 진정이 있으며 질타속에 인류구원의 강렬한 불꽃이 번뜩이고 있다.   림—이 두분의 말씀을 분석해 보면 둘다가 김창희시는 아이러니한 멋이 다분히 풍긴다고 했다. 김창희의 시에서 아이러니란 야유적이고 눈물겨운 풍자, 해학, 조소, 자초 등이 다 포함되는것 같다. “아이로니는 배부른자, 아픔을 모르는 자들의 소유물이 아니다. 김창희의 시가 주로 아이로니의 뿌리에서 돋아나고 거기에 걸터앉아 이 세상과 지껄이기를 즐기는 까닭은 김창희가 걸어온 오솔길에 널린 삶의 편린들과 그의 타고난 성격적 기질에서 표현된다.”-김룡운 김창희시인은 자기 시집 “기차가 서서 달리지 않는 이유”에서 말한다. 신—김창희시인은 젊어서 남들보다 더 많은 인생고 비슷한 것을 겪었다고 아는데요 아마 이것이 그의 시창작에 그 어떤 영향을 미치지 않았는지요? 림—네 그렇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보다 젊어서 많이 그달프게, 아프게 인생을 살아온 사람이다. 안도에 있을때 20여평방메터가 되나마나 한 단간방(이집에 저두 가봤습니다.)에서 로모를 모시고 최하층삶의 쓰고 매운 맛을 볼때로 보았고 그후 어쩔수없이 숙명의 멍에에 끌려 갖가지 연길에 와서 일자리도 없이 전전긍긍하면서 고초와 애로를 겪었고 하지만 문학의 끈은 계속 놓지않았을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욱 조여갔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친인들을 련이어 잃고 비애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기도 하였다. 아빠, 엄마, 조카, 누님 등이 련이어 사망. 그러한 삶의 쪼각들이 알게 모르게 시인의 세포에 슴배여 있다가 시의 불꽃으로 변해 세상밖으로 튕겨나온다. 배고픔과 아픔속에서 걸어나오는 김창희시들은 그때문에 리유가 많고 그때문에 인생이란 기차역을 휘딱휘딱 시름없이 지나치는것이 아니라 멈춰서서 달리지 않는다. 결국 달리지 않는 방식으로 달리고 있는것이다.  간신히, 혹은 말을 바꾸어 말하면 이악스레, 히질기에…밑바닥인생을 살아오면서 생에 대한 사색이 누구보다 더 깊다고 생각됨…     신-네 그럼 아래에 김창희시인의 시작품을 감상하면서 더욱 가까이 김시인을 만나보도록 하겠습니다. 처음 감상할 시로는 “수박”입니다. 함께 감상하시죠.     수박                   김창희 계절에 맞춰 입은 파란 색상의 숙녀복 그것은 생존을 위한 수단이였다 모난돌이 정맞는다는 속설 또한 너무 잘 알기에 둥근 모습에 얼굴도 반반했다 그러나 무참한 칼날의 세례에 속마음 활짝 열면 세월에 피멍든 몸 그 진실은 남을 유인하고도 여유가 있었다 진실은 늘 쓴맛만은 아니였던가 안팍을 다르게 살아야 하는 수박의 생 누구의 탓인가   신—네 참 일상에서 흔히 볼수있는 수박에서 령감을 얻은것 같은데요 수박에다 깊은 뜻을 담은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이 시가 …   림—해설: 이 시는 2007년 8월호 결국 안팍이 다르게 살아야 하는 수박의 일생을 의인화하여 수박처럼 겉과 속이 다르게 살수밖에 없는 인간들을 대비했죠 그리고 이렇게 만든 것을 이 사회에 돌린것이다. 사실 요즘 세월엔 겉과 속, 안과 밖이 똑 같으게 살기 힘든 세월이다. 없어도 있는것 처럼 흉내내고 아파도 말을 못하고 세력앞에서는 지는척해야 하고 령도앞에서는 웃음을 지어야 하고 등 수박처럼 벌건 진실을 가슴속에 품고있으면서도 또 수박의 겉모양처럼 둥글둥글 살아야하는 요즘 세상의 비리에 대한 칼질이다. 풍자적인것을 바탕에 깐 아아러니한 작품이다. 사실은 화약냄새가 풀풀 나는 시인데. 시구에서도 칼이란 말이 나온다   … … 그러나 무참한 칼날의 세례에 속마음 활짝 열면 세월에 피멍든 몸 그 진실은 남을 유인하고도 여유가 있었다   하지만 칼로 짜개보기전엔 겉모습은 그냥 둥굴둥글, 즉 편안하게 살게 위해서는 자기를 억제하고 둥글둥글 하게 살수밖에 없었다는 그런 안타까움을 썼다. 결국 비판이죠 신—다음은 김창희시인의 시 “연변명태는 찢겨져 누구 반찬이 되나”를 함께 감상하고 그 해설을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연변명태는 찢겨져 누구 반찬이 되나                      김창희   연변 도문발 렬차를 타면 비릿한 바다 바람이 매콤한 고추내음을 타고 나그네들 겨드랑이 사이를  비집고 흐른다 깡통맥주에 땅콩이며  소세지며 닭손이며 무더기로 모여온 안주속에 창백한 몸매에 발갛게 화장한 연변명태로 이름 바꾼 북어는 동해바다 너른 옷자락이 비좁게 미이라처럼 비닐에 꽁꽁 묶이여 남국인들 호기심 벅찬 눈길 벌겋게 받으며 한몸  활짝 열고 나그네의 손길을  기다리고있다 가리가리 찢기기를 기다리고있다 찢어져야 제구실을 하는 숙명 데치고 삶아지고 끓여여지는것도  모자라 한구(一軀)의 미이라가 돼서도 재번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이를 환생이라 하나 소세지 햄 땅콩에 세련된 나그네들에겐 연변명태란 입맛 바꾸는 하나의 존재일뿐 이따금 색다른 맛 즐기려 찾아들면 은근슬쩍 비릿한 향기에 개성있게 톡- 쏘는 일침으로 버려지는 그 아픔을 재생이라 해야 하나 동해바다서 태여나 연변호적 달고 여윈 몸 추스르며 동해바다보다 너른 세상 찾아 연변명태는 오늘도 무번호 승차권에 완행렬차 급행렬차 번갈아 타며 익숙하면서도 낯선 풍경 연출하며 번지없는 어디론가 떠난다 찢어지는 아픔이  즐거움으로 승화할  열반의 그날을 기약하며...   신-네 아주 흥미롭게 쓰면서 어딘가 씁쓸하고 서글픈 느낌이 드는 내용인데요 어떻게 봐야 할가요?   림- 이 시는 2008.4월에 쓴 시이다. 그렇다. 연변명태를 통해 연변사람들을 썼다. 즉 조선족을. 도문에서 발차하는 차를 타면 꼭 조선족은 있기마련이고 조선족이 있으면 꼭 맥주같은걸 마실 가능성이 많다 맥주만 만나면 조선족은 명태를 안주하길 즐긴다. 요즘엔 또 고추양념까지 바른 비닐봉지속에 넣은 명태. 이건 가지고 다니기 편리하니깐… 숱한 민족들속에 끼인 명태 어디론가 잘 살수있는 방법을 찾아 또 잘살려고 차타고 “번지없는 어디론가 떠난다” 요즘 나의 사촌동생도 한국가서 돈벌어왔는데 상해쪽으로 뭘찾아 떠났다…사실 번지도 없이…그저 알아볼라 떠나더라… 기타 민족들한테 씹히면서. 일단 조선족이면 꼭 이런 저런 문의를 물어온다. 그래서 대답해야 한다. 하지만 제일 마지막 부분에서 시인은 긍정적인 답을 던진다. 확신을 준다. “찢어지는 아픔이  즐거움으로 승화할/열반의 그날을 기약하며...” 총적으로 이 시에서는 명태와 조선족을 비유하여 아직은 뭔가 뚜렷하지 못한 목표를 찾아 즉 잘살수 있는 길을 찾아 떠나는 모습을 묘사함으로써 이제 앞으로 다가올 찢어지는 아픔을 미리 예견하면서 종내는 열반의 그날을 기약하는 우리 민족의 삶을 위해 몸부림치는 몸부림을 썼다. 시에서 명태를 통한 묘사가 아주 시적으로 잘된 점 또한 돋보인다.   신—네 다음은 역시 시 “상금도 시를 쓰는 시우가 부럽다”를 함께 감상하고 그 해설을 들어보도록 하죠.       상금도 시를 쓰는 시우가 부럽다                            김창희   2006년 1월 3일 할빈 중앙대가에 쓸리다 오랜만에 서점가에 끌려 2005년중국시가정선이라 이름 한 시집을 골라잡고 오랜만에 시고랑을 빗질한다 소학생이 장편소설 읽듯 훑어보다 세집살이에 옹송거리면서도 등이 휘지 않는 시우의 파리한 얼굴이 읽혀진다 세월에 살면서도 세월의 중앙을 범하지 못하고 오늘도 시를 끄적이며 삶의 그림자 흉내내는 장하고 용한 시우가 부럽다 누구라 할것없이 빚진것도 없으면서 늘 마음 하가득 근심을 지고가는 달팽이처럼 훔쳐본 세상을 세상의 모든것이나 한듯이 으시대며 알았다는듯 머리를 주억대는 파리처럼 왜 그리 소심하게 용감하게 사를수 있을가 부쉬낀, 조기천, 김소월, 마리아 릴케,리상, 윤동주, 북도, 이싸… 사실주의, 이미지즘, 초현실주의, 신사실주의,포스터모더니즘 맑스, 모택동, 칸트, 니체, 베르그송, 사르트르 조선시, 조선족시, 중국시, 한국시… 짬뽕으로 말아먹으며 기신기신 헐레벌떡 콜록쿨룩 오늘까지 붙어온 살아온 시우가 눈물 아니라 코물이 나게 피물이 나게 감사스럽다 사재를 틀어 시집을 만들고 나팔꽃처럼 바지랑대에 따라오르며 해빛인양 향기를 피우며 한무리 잊혀진 족속속에 살면서도 마음은 지구의 중심에 사는 유치원어린이보다 유치하지 않고 김삿갓보다 해학적이고 황소보다 고집이 센 시우가 부럽다 2006년 추운 할빈 겨울을 나며 2005년중국시가정선을 에어콘해 언손 녹여보다 언제면 파리한 얼굴의 시우의 시도 이 시집 한자리 녹일수 있을가 중얼대본다 왜소한 시우의 모습이 삶에 부닥껴 부황 든 비대한 내 그림자보다 너무 살가와 할빈의 겨울이 푸근해진다. 2006.1   신-시를 쓰는 친구에 대해서 가엾게 생각하는 마음을 쓴것같은데요 그 배면에 또 더 깊은 인생철리가 있는것 같기도 하구요…시 쓰는 작업이 별로라는 말은 아닌듯 싶은데요?   림-네 맞습니다. 한시기 할빈에서 흑룡강신문사에 있을때 쓴 시로 추정되는데 결국 문학을 하는 참다운 인생을 아이러니컬하게 썼다. 가엾게 보고 비웃는 것 처럼 빈정대며 썼는데 결국 정신적인 추구에 대한 소중함을 썼다. 돈내풍기는 요즘 세상에서 시쪼각이나 가지고 노는 인간에 대해 겉으로는 실망하는것처럼 하면서 내면에서는 소중하게 생각하는게 배면에 알린다. 그리고 여기서는 친구한테 쓰는식인데 사실은 친구를 포함한 자신을 쓰고있다. 경제시대에 문학을 하는 이들에 대한 근심과 걱정, 또 그밑에 깔린 소중하고 존경하는…그런 심태를 시로 써냈다. 시에서 “부럽다”고 여러번 말하는게 바로 이런 심태를 엿보게 한다. 그리고 이 시에서 시인과 철학자들, 그리고 문학인들의 필독해야 하는 여러가지 주의, 등을 쭉- 라렬했는데 자유자재로…그 어떤 활기찬 감을 주고 문학인들의 지식면의 넓음과 정신세계의 풍부함을 잘 표현해주었다. 생활은 비록 각박하지만 정신상태나 지식구조같은것은 풍부한 삶을 사는 그 부를 시에 깔아주는데 아주 좋은 표현방식이였다고 생각된다. 적어도 이 시에서만은 …   신—다음은 김창희시인의 시 “기차가 서서 달리지 않는 리유”를 함께 감상하고 그 해설을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기차가 서서 달리지 않는 리유 -친구에게                  김창희   산다는것이 페철의 옷을 벗기듯 피곤한 사연인줄 알면서도 하얀 이 바자처럼 세우고 언제나 희죽이 미소하는 친구여! 숙명이란 그림자를 호주머니에 구겨넣고 물새인양 삶의 갈대숲을 후여후여 누비며 송사리든 대어든 투정없이 건져올리고 장독대 비물이 고이면 얼큰한 매운탕이 되는 친구여 물소의 뿔이 하필이면 뒤로 번져지고 지붕은 위태롭게 물매지며 지렁이는 안스럽게 주름으로 걷는지 그 사연을 구태여 풀지 않으면서 나름의 기분으로 세상사 굽어보는 새벽 이슬밭의 참딸기같이 싱싱한 친구여!     림—친구에게”라는  부제를 붙인 이 시는 2000년 6 월에 쓴 시인데     시인의 자화상이라고도 볼수 있겠다. 배고픔과 아픔속에서 걸어나오는 김창희 시들은 그런고로 리유가 많고 그런고로 인생이라는 역전들을 시름없이 휘딱휘딱 지나치는것이 아니라 맘취서서 달리지 않는다. 그리하여 김창희의 시들은 기차가 서서 달리지 않는 리유를 펼쳐보이게 된다. 페철의 때를 벗기는 고역의 주인공, 호주머니에 미지의 숙명을  구겨넣고 물새처럼 아득한 삶의 갈대숲을 날아예는 물새가 바로 시인이 아닐가. 시인은 달리려는 렬차를 세워놓고 생각에 잠겨 머리칼을 세여본다. “고달플 땐 그림자를 줄이고/ 빈혈에 걸린 머리칼을 세여보는 시간을 키워야겠습니다” 내가 미워날 때면 머리칼을 세여보는중에서 시인은 더욱더 아픔과 배고품을 느끼고 그것의 해결책을 빈정거림과 야유와 흘겨봄에서 찾는다.   비운속에서도 락오자가 되지않고 늘 하얀 이 드러내고 웃으면서 살아가는 친구(자기)…그게 슬프단다 또 그게 락관적으로 사는 모습이여서 위안이 된단다.그래서 새벽 이슬밭의 참딸기같이 싱싱한 친구,친구를 썼지만 결국 자기도 동감이라고 흰트주면서 결국 자기도 함께 쓴 시같다.   신—다음은 김창희시인의 시 “랭장고는 계절을 몰라도 좋소”를 함께 감상하고 림선생님의 해석을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랭장고는 계절을 몰라도 좋소                     김창희     아기와 정신질환 환자를 한방에 두지 마오 혹은 그래도 좋소   모기와 거미를 한 공간에 보태지 마오 혹은 그래도 좋소   계절과 랭장고를 접속시키지 마오 혹은 그래도 좋소   들판 허수아비가 감기를 하고있소 혹은 당신이 대신  약을 먹어도 좋소     림—이 시는 듣는 자가 아주 막연한 당신이고 화자는 베일에 가리운         아리숭한  자이다. 얼핏 보면 길 가던 싱거운 사람이 무심히 던지는 값 눅은 지껄임 같지만 그 지껄임 속에는 결코 가볍지 않은 사색이 흐르고있다. 가령당신을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라고 가정하면 시인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약자, 위험에 처한 인간들을 구원하라고 반어적 귀띔을 하고있는것이다. 또한 모든 부조리를 조리로 환원시키려는 의도도 내포되여있다. 여기서 “혹은 그래도 좋소”라고 련마다 마지막행에 이렇게 썼는데 그 뜻인즉 “응 정안된다문 혹시 그래봐라 그래두 좋다. 어디보자. 콱 그래다”등의 뜻으로 즉 반어적으로 리해해야 할줄로 안다.   신-다음은 김창희시인이 백두산 “온천”을 소재로 쓴 시 “온천”을 함께 감상하고 림선생님의 해석을 들어보도록 하죠   온천         김창희   추웠어요 아버지 모습   느꼈어요 아버지 마음   신—짧은 시이지만 그속에 온천처럼 따가운 아버지의 사랑의 마음이 담겨있는것 같습니다. 맞죠?   림-네 맞아요. 바로 그걸 쓴거지요 이 시는 난해하지도 않고 짧지만 뭔가 처주는 그런 시라고 생각되네요. 이 시는 1988년에 씌여진 시인데요 참 아버지를 백두산아래에 있는 온천에 비유해서 쓴 시입니다. 여기서 아버지를 춥다고 한건 아버지가 원체 어머니보다 무서운 존재이고 엄엄한 존재이기 때문이고 또 백두산자체가 늘 백설을 떠인 추운 존재이기에 이렇게 비유한것이 아주 타당하고 자연스럽다고 생각됩니다. 한어로 말하면 恰如其分이지요. 그리고 온천은 따가운 물인데 바로 추운 아버지도 자식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은 따가운 온천처럼 후덥다는 것이 동감갑니다. 이 시는 짧지만은 추우면서도 마음은 따가운 우리 민족 모두의 아버지들을 잘 개괄했고 진짜 야, 그렇구나 하고 동감하게 되는 그런 시가 아니였나 생각되네요   신-네 어느덧 약속된 시간이 다 되여가는데요 오늘은 김창희시인과 더불어 그의 독특한 시들을 만나보는 시간을 가졌는데요 한층 더 가까이 김창희시인한테 다가가는 아주 좋은 시간이 되지않았나 생각됩니다. 오늘도 림금산시인님 수고하셨습니다. 림-네 수고 하셨습니다. 신- 그럼 이것으로 오늘 문학살롱프로 여기서 이만 접겠습니다. 이시간 프로편집에 김철운이였습니다.  
78    문학살롱 김영춘 시인 댓글:  조회:1575  추천:17  2014-08-09
신-문학살롱 신금철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흑룡강성의 저명한 시인 한춘선생과 그의 일부 작품들을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봤는데요 이번 시간에는 우리 연변의 중견시인이고 또 녀류시인인 김영춘과 그의 일부 시들을 살펴보는 시간을 가지겠습니다. 오늘도 연변시가학회 림금산시인님을 마이크앞에 모셨습니다. 안녕하세요? 림-네, 수고합니다. 신-김영춘시인이라고 하면 여성시인으로는 꽤 오래전부터 시를 쓴걸로 알고있는데요 석현에 계셨댓지요? 먼저 김영춘시인의 프로필부터 소개해주시죠 림-네 1968년 장백현 출생, 연변제1사범학교를 거쳐서 연변대학 졸업,석현에서 교원, 석지신문편집 등을 하셨구요. 도문에 다니며 두만강시회에서 활약。 연변작가협회 리사, 연변녀성시회 부회장 등 현 연길텔레비죤방송국 편집. 여류시인으로는 아주 빼여나게 여성만이 쓸수있는 알찬 시들을 써낸 시인입니다. 2006년 8월 첫시집 출간. 두만강여울소리 시인상(2004년) 제1회 중국조선족녀성백일장상, 연변시조 우수상 등 수상   신- 그럼 아래 김영춘씨의 구체시작품들을 감상하면서 더욱 가까이 김영춘시인한테 다가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처음으로 감상할 시는 “8월의 호수가를 거닐며”입니다. 함께 감상하시죠 8월의 호수가를 거닐며 김영춘 8월의 호숫가를 거닐면 한 마리 은빛 잉어가 되고 싶어요 그대 하늘색 셔츠와 금 빛 낚싯대 곱게 잠그고 있는 호수   그 푸르른 호심에서 헤염치며 그대 넋을 빼앗는 백조가 못 될 바에는 물속에 숨어 그대를 지켜보는 자그마한 꿈이고 싶어요.   그러나 서글피 읊조리는 그대 사랑시 나를 부르는 예쁜 미끼라 믿어질 때 그대 사랑의 낚시를 덤벙 물고 행복한 죽음으로 그대 손에 이르고 싶어요. 신- 참 기발하면서도 재미나게 쓴 시라고 생각되는데요 구체적인 분석 부탁할게요 림--이 시를 보면 사춘기라 할까, 아니 사랑에 빠진 처녀들의 심리를 너무나 핍진하게 노래하고 있다. 여기서는 사랑의 감정을 직설적으로 토로하지 않고 님을 사랑하는 자신을 미끼를 덤벙 무는 은빛 잉어에 대상화시키는 지혜를 보여주고 있는데 은근히 김영춘시인의 시재를 엿보게 한다. 이 시에서는 8월의 호수가를 거닐면서 본 낚시질관경, 그것으로부터 서정적주인공의 생각을 펼쳤다. 아, 나도 잉어처럼 그 사람의 낚시줄에 달린 미끼를 덥석물고 그 사람한테 잡혀서  사람의 손바닥에까지 떨어지고 싶은 그 심정. 낚시에 물리면 즉 잡히면 나중엔 죽기마련이지요 그래서 죽으면서까지도 사랑하는 님한테 이르고 싶은 그 사춘기의 심정이랄가… 아주 묘하게 시화하고 있습니다. 재미나고 멋스런 또 여성의 각도에서 남성을 그토록 갈망하는 심정을 아주 잘 표현한 그런 시라고 생각되는데 시가 너무나 아름답게 흘러 진짜 사랑시로서는 진품입니다. 신-다음은 김영춘의 시 “현대 승냥이”이 입니다. 제목만 봐도 아주 무시무시할것 같은 그런 느낌이 오는데요 함께 감상해보시죠  현대승냥이 김영춘 진정 나를 슬프게 하는 건 너의 눈이 였다 번개처럼 날카로운 야성이 번뜩이던 그 옛날의 네 눈빛과 하늘 땅 사이에 턱 버티고 서서 사납게 울부짖던 용맹한 위풍 이젠 조금도 찾아 볼수 없었다 양처럼 순한 눈매로 철창밖의 나를 바라보는 너는 나를 우울케 하는 풍경이였다 비린 바람이 불때마다 초원이 그리워 운다던 전설속의 승냥이는 나와 점점 멀어지고 한 가닥 애수가 흐르는 너의 흐린 눈빛만이 가까와지고 있다 네가 너무 승냥이답지 않은 모습이길래 아름다운 사람옷 입은 승냥이들 이 겨울에 하나, 둘 늘어가는 걸가? 진정 나를 슬프게 하는건 너의 눈이 였다 너를 너답지 않게 만든 이 부술수 없는 쇠살창과 양보다 더 순한 너의 눈매였다 신- 점점 시들어가는 용맹을 잃어가는 승냥이를 남성에 비유해서 쓴것같은데요. 왜서 요즘 남성들은 남성다운 기품을 점점 잃어가고 있을가요? 해설 부탁합니다… 림---여기서 하는 건 만든 부술 수 없는 과 양보다 더 순한 였다. 다시 말해서 에 갇혀 을 잃어 가는 승냥이가 슬프다는 것이다. 그 보다도 승냥이가 을 잃어감과 동시에 을 입은 들이 에 하나, 둘 늘어가기 때문이다. 이 승냥이를 승냥이 답지 않게 만들었다면 은 을 입은 들이 하나, 둘 늘어가게 한다. 그렇다면 은 무엇이며 을 입은 는 또 누구인가? 을 입은 가 어떤 부류의 을 가리키고 있음을 텍스트 자체가 제시해 주고 있다. 즉 =으로 읽을수 있다. 사회가 점점 상업화로 나아가면서 농경생활이 없어지고 기계적인 움직임과 빠른 절주 등은 요즘 남성들을 꽁꽁 묶어서 스트레스에 쌓이게 하고 일상에 빠지게 하고 그러다나니깐 야성 즉 푸들지고 날파람나고 위풍당당한 그런 웅성이 점점 미약해진다. 그래서 나약해지고 여성화되고 특히 그 눈들이 정기가 없어지고 야성이 없어지고 무기력하다. 헌데 일상에 빠지고 삶에 지친 남성자신은 때론 그걸 잘 모른다. 이 시에서는 여성쪽에서 먼저 남성의 남성답지 못한 그걸 발견하고 탄식하고 아쉬워하고 나중에는 실망감을 느끼는 것이다. 남성에게 용맹한 남성다운 기질이 다분히 보였으면 좋겠는데 아주 무기력한 남성들이 숙보이게 되는것이다. 이 시는 스러져가는 남성들의 주눅든 모습을 쓰는것으로 남성답지않은 남성들한테 회초리를 안기고 더 나아가서는 남성들을 남성답게 만들지 못하고 남성의 야성을 죽여가는 이 사회를 비꼬는 것이다. 이 면에서 이 시는 또 사회적의의를 가진다고 생각된다. 이 시가 발표되던 당시에는 아주 인기를 끌던 시였고 지금봐도 그 새로운 사색령역에 대한 창조는 돋보인다.  신-네 참으로 묘하게 씌여진 시라는 느낌이 드는데요 다음엔 시 “젖먹이는 순간마다”를 함께 감상하고 그 해설을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젖 먹이는 순간마다 김영춘 젖 먹이는 순간마다 나는 물이 된다 주고 주어도 더 주고만 싶은 샘터가 된다 하얀 사랑샘에 매달려 눈 한번 안 깜박이고 쉼없이 젖 빠는 아가는 풀이 되고 별이 되고 사슴이 되여 작은 나와 큰 세상을 이어준다 엄마 되는 길이란 내가 여위어지고 아기가 커 가는 아프면서 예쁜 여행인 줄 젖 먹이는 순간마다 조용히 행복하게 느낀다   신-네 참으로 아기엄마의 그 마음, 그 모성애가 아주 잘 형상화된 시라고 느껴집니다. 어떻습니까? 림--김영춘시의 특색을 말하라면 아마 현실적인 녀성생활미가 흐르는 것이라고 하겠다. 김영춘의 시를 읽으면 현실속의 장면 장면들이 리얼하게 눈앞에 보인다. 이 시는 전혀 해석이 필요 없는 시다. 여기서 살펴보고저 하는 것은 연상이다. . 에서 , 에서 으로 연상이 자연스럽게 직선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 에서 로 이어지다가 와 , 와 , 와 의 형식으로 연상이 빛발처럼 사방으로 퍼져간다. 그러다가 와 이라는 대립속에 발산하던 연상들이 모이게 한다. 마지막 연에서 이란 이라고 하면서 에서 으로 자연스럽게 연상을 끌어올리고 있다. 이러한 다양한 련상들이 이 시의 단순성을 극복시키는 작용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이 시에서는 젠더 문제가 제기 된다. 아가에게 젖을 먹이면서 행복에 잠긴 여인의 모습. 전형적인 의 형상이다. 하지만 는 시행이 제시해 주듯이 그 은 달갑게 맛보는 이고 그 자체가
77    산속시내 댓글:  조회:1571  추천:1  2014-08-04
  인적기없는 산속에서 맘담아 흐르고 노래부르고 쉼없이 하얀 가슴 씻어내더니 종내는 맑은 숨결 토하누나 그래서 새들은 합창하고 온갖 향기는 진동하는데 나리꽃은 목을 빼들고 구경하고 개구리도 첨벙 너의 품에 뛰여든다 달빛묻혀 별빛휘감아 다지고 염근 니 흐름아, 깊은산 괴곡속에 깊이를 심고 높은산 구름너머에 넓이를 펴며 너는 흔연히 속세를 웃는구나 물씬 풍겨오는 생명의 약동…                                      (2014년 4호에서)
76    수필 렬차속의 미녀 댓글:  조회:1630  추천:3  2014-08-04
기자사업을 시작해서 얼마 안되던 때의 일이다. 그러니깐 지금으로부터 25년전의 일이겠다… 도문-북경행렬차에 몸을 던졌는데 렬차안엔 시루속의 콩나물처럼 온통 사람천지다.  장춘역을 지나니 모두 하품이 나오기 시작했고 피곤기가 갈마들어 시들어갔다. 온 차바곤은 생기라곤 없고 차체는 거의 죽은 뱀이 그냥 꾸물거리며 기여가는상 싶다…  심양역에서 한 25-30세쯤 되여보이는 미모의 녀인이 우리 차바곤에 올랐다. 사람들이 너무많아 앉을 자리는커녕 설자리조차 거의 없는데 그녀가 미니스커트를 따악 받쳐입고 우리옆에 다가와 멈춰섰다.  그녀의 몸과 머리에선 진한 향수냄새가 가득 풍겨나와 주위의 오염된 공기를 세탁해주고 있었다. 하아얀 신다리까지 미끈하게 올리신은 스타킹과 두귀에 달랑거리는 귀걸이며 더우기 호수같이 찰랑이는 눈동자는 온 차바곤을 환히 비춰주었다.  줄곧 내앞자리에 앉아 끄떡끄떡 졸고있던 한 사십대의 사나이가 깨여나더니 푸접좋게 일어나 그녀한테 자리를 권하는것이였다. 그분도 아마 이 천하절색인 처녀가 그냥 서있는것이 못마땅하다고 생각되였던 모양이다.  피곤에 몰리고 로독에 주눅이 들던 려객들이 그녀의 출현으로 하여 차츰 기분이 피여나기 시작했다. 지독한 쌈지담배도 그녀앞에선 말아물기 점직해하는 려객이 있는가하면 자기의 흩어진 자세를 바로 잡느라 어색하게 움직이는 치들도 있었다.  서있던 그녀가 앉으니 앉은 자세 또한 별멋이다. 진짜 선녀가 내려앉은것 같다. 복장모덜들은  서있는것도 멋지지만 걷는 자세나 지어 엉뎅이를 삐딱거리는것까지 아름다운것과 같은 리치이리라.  여기서 피끗 저쪽에서 피끗 꽃같은 그 얼굴을 감상한다. 한번 피끗 보고는 그냥 눈감고 오래오래 그 꽃맛을 새김질하는이가 있는가 하면 좀 수준이 낮은치들과 뻔뻔스런 치들은 지어5분내지 10분까지도 남들의 어깨너머로 그냥 퀭-그녀의 얼굴을 쳐다본다.  하건만 그녀는 도고하지도 않고 뽐내지도 않고 아주 자연스럽고 평온하게 오래오래 꽃같은 얼굴에 부드런 빛만을 달고 있는게 고맙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작은 사건이 생겼다. 그녀가 귀걸이 하나를 살짝 뽑아 이리저리 들여다보더니 그만 부주의로 떨궈버렸다. 몇천원은 잘될것 같은 귀중품이니깐 그녀는 저으기 당황해했다. 주위사람들이 하나 둘 자기의 의자밑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누구든 그 귀걸이를 감히 자기가 주어가지려는 기색은 없었다. 이 아름다운 녀인을 위해 저그나마 자기들의 성의를 보이고 싶어하는 낌새였다. 이 경우 만약 다른 그 어떤 불청객이 이렇게 귀걸이를 떨구었다면 서로 찾아주기는커녕 임자가 찾는것마저 짜증낼것이다. 허나 이 녀왕앞에선 누구도 유순한 지원자의 손길을 내미는게 퍼그나 흥미로왔다.  바로 내옆에 앉은 나그네가 자기의 의자밑 멀리에 반짝거리는걸 발견하고는 환성을 올렸다. 뿐만아니라 그녀를 눌러 앉히고 자기가 손수 허리를 깊이 구부려 손을 뻗쳐서는 그 귀여운 귀걸이를 짚어내여 옷소매에다 살살 문질러 그녀에게 공손히 바치는것이였다. 그녀는 얼굴에 홍조를 띠우며 하고 머리를 까땍인다.  두어시간만에 처음 뿜어낸 그녀의 음성, 실로 사과같이 맛있는 사근사근한 음성이다…  미인이 웃고있는 렬차는 화기애애하다. 미인이 많은 민족은 행복하다. 미인을 존중하고 좋아하고 사랑하는 남자는 진짜 멋진 남자다.  뿡- 렬차는 미인을 싣고 평화를 싣고 동북평원을 쭉-가르며 화북평원에 들어선다…   
75    깊은 동시는 깊은척 하지 않는다--김정도 댓글:  조회:1658  추천:1  2014-08-02
                        근간에 나온 림금산의 동시집 “사랑의 동그라미”를 읽으면서 참 좋은 시집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걷는 걸음마다 산꽃은 따라오며 핀다   내가 숲속에 숨어 들자 꽃도 숲속에 숨어서 핀다          -(“산길”전문)   이 얼마나 탐스러운 동시인가. 온통으로 동심의 덩어리이다. 기술로 만든 동시가 아니여서 좋다. 농도짙은 체험의 소산이여서 가상하기 그지없는것이다. 동심의 눈으로 본 대자연의 경이가 이 시를 낳게 한 체험적 바탕일것이다. 계절처럼 산에는 꽃이 핀다. 어디가나 꽃이다. 그처럼 이쁠수가 없다. 그러한 경이로움이 시인의 몸에 천연스레 옮아 꽃의 순수가 한수의 동시로 태여날을것이니 이 어찌 소담하지 않으랴. 유심한 독자라면 누구나 언어의 배면에서 강하게 풍겨나오는 미적인 호소에 압도되지 않을수 없을것이다. 동시 “분계선”도 찾아보기 힘든 수작이다.   눈물겨보록 아름다운 진달래 무궁화   그 부드러운 꽃가지에 언제부터인가 파아란 뱀 한마리가 칭칭 감겼다.          -(“분계선”전문)   분단의 비극을 읊은 시치고는 참 야무진 절창이다. 깊은 동시는 깊은척 하지 않는다.오히려 얕은척 한다. 이것이 순수이며 경지이다. 림금산의 일부 동시는 이런 경지에 도달해 있다. 동시 “향기로운 강”을 보면서 림금산의 솜씨에 다시 한번 무릎을 쳤다.   젖빛 다리가 불궈져서   물은 온통 젖내난다.   달랑 고추가 풀어져서 강은 더욱 향기롭다.   매일같이 강을 세탁하는 너희들이 진짜 강의 주인이구나.           -(“향기로운 강” 전문)   이 시집의 최고의 백미로 꼽을수 있는 “향기로운 강”은 중국조선족동시단이 이룩한 새로운 성취로 알고 싶다. 아이들의 달랑 고추, 그것이 풀어져서 향기를 풍기는 강, 참 빼여난 표현이다. 강을 바라보는 시적 화자의 눈길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동시는 강에 대한 상상적 표현에서 가볍게 벗어나 높은 미적인 각성에 접근한다. 강에 대한 기묘한 형상화작업을 바탕으로 마지막련에 이르러서는 시의 의미적 령역을 보다 높고 깊은 경지에로 확장시킨다. 읽는 이의 마음마저 세탁되게 한다. 오래만에 맑은 동시의 강에서 목욕을 하고난 후련한 기분이다. 현대시의 지나친 기술주의가 병페라고 한다면 림금산의 동시는 체험을 바탕으로 생리처럼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이런 자세를 높이 사고싶다.                     (연변일보 1998년 12월)
74    채마전의 숨결 댓글:  조회:1763  추천:1  2014-07-30
              나에게는 언제부터 갖고싶어하던 채마전이 생겼다. 옆집 로인님이 88세가 되니깐 더 가꿀 힘이 모자라다면서  나한테 선물하셨다. 낚시할줄도 모르고 마작같은거나 골프같은데는 뻐꾹인 나한테 이는 천하 그 무엇보다 더 좋은 굉장한 선물이였다. 너무도 감사하여 술을 사갖고 인사를 갖더니 이젠 술도 못드시고 지어 고추가루같은것도 못잡수신다고 하셨다. 헌데 얼굴은 희고 보얗고 하여간 좋은 모습이였다. 피끗 보기에는 70좌우가 돼보였다. 퇴직하여 여직껏 25년간 채마전을 다루었다는 것이다. 아마 그래서 그렇게 강건하신지 모르겠다. 늘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역전 부근 철길 건너에 300여평이나 되는 채마전을 가꾸었단다. 헌데 점점 힘에 부치여 한뙈기 두뙈기 이웃들한테 선사하다보니 나중엔 나한테도 차려지게 되였다. 헌데 너무 크지도 않고 또 너무 작지도 않은 좋이 백평은 실히 될 밭이였다. 로인님은 밭을 나한테 넘겨주면서 라고 웃으면서 말씀하셨다. 나는 밭을 넘겨받은 그날부터 가슴이 둥-둥 부풀어 올라 어떻게 하나 로인님의 기대와 성의를 저버리지 않고 잘 가꿔보리라 작심했다. 남들이 채마전을 가꾸는걸 볼때면 늘 부러운 눈길을 던지군 하면서 나도 퇴직하면 밭뙈기나 잘 다뤄봤으면 하던 나였는데 갓 쉰다섯에 일찍이도 차례진 밭이였으니깐.    헌데 말이 쉽지 정말 쉽지가 않았다. 화학비료를 한줌도 안주고 순 유기농으로 만든다는게 쉬운 일이 아니였다. 나는 붕어나 잉어같은걸 사다 먹고는 그 밸을 딴것이라든지 묵어있던 밥이라든지, 쌀뜨물 등등 등속을 푹 썩여서는 밭에 가져다 내군 하였는데 하루이틀도 아니고 몇달씩 그 노릇을 하자니 쉽지가 않았다. 처음엔 10여가지 남새를 심어놓고도 어느곳에 뭘 심었던지가 기억안나 심은 자리에 또 심는다든지 이미 심어놓은걸 매버린다든지 …또 열심히 심었어도 빈자리가 많이 나왔다. 날씨가 차츰 푸르러 지면서 남새들이 얼굴을 내밀기 시작하니 너무 신기해서 가슴은 활랑거렸지만 진짜 가관이였다. 무질서하게 돋아오르는것이 참 보기에도 민망할 지경이였다. 자주 가서 김도 매주고 풀도 뽑고 했지만 기타 로인들이 다루는 밭보다 엉성하기 그지없었다. 물론 출근하면서 하다보니 전문으로 하는 로인들보다는 못할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너무 했다. 남새보다 풀이 점차 더 많아지고 어느것이 남새이고 어느것이 풀인지 가려보기조차 힘든 곳도 여러군데 있었다. 하지만 그랫어도 땅은 속일줄 모른다. 심어놓은 자리마다 우썩 우썩 잘도 자라올라 6월부터 7월사이에는 거의 사흘에 한번꼴로 달려가는 채마전엔 고추며 가지며 상추, 오이, 열콩, 호박 등이 쉴새없이 열려서 미처 뜯어올새없이 또 온 밭을 꽈악 채워주군 했다. 일상에 분주히 돌아치다 한주일만 못가보면 벌써 어떤 가지나 호박같은건 땅에 대여 썩기도 했다. 잡풀도 너무 기승스레 자라올라 한번 뽑아도 언제 뽑았던가 싶게 또 무럭무럭 자라올랐다. 나중엔 뽑은 풀마저 던질 자리가 없었다. 밭에 미안했고 나자신이 부끄럽기까지 했다. 옆집들의 채마전은 질서정연하고 풀대 하나 없이 깔끔한데 비해 나의 채마전엔 온통으로 잡풀천지이고 거기다가 땅이 선물한 각종 남새들을 제때에 받아주지도 못해 죄스러웠다. 온 여름 남새 한근 안사고 먹어댔지만 남새는 줄어들줄 몰랐다…오, 이런 재미에 모두들 남새를 가꾸는구나 생각하면서 힘들어도 힘든줄 모르겠고 채마전에서 돌아올때면 온 몸에 싱그런 식물들의 향기를 듬뿍 안고 돌아오는 멋이 너무나 좋았다. 그때마다 나는 송나라의 저명한 문인 소식과 당나라 명시인 백거이가 생각나군 했다.   당송8대가의 한분이며 서예, 미술, 시와 사에 능한 소식은 후세에 소동파로 그 문명 널리 전해지고 있다. 그의 호를 동파거사라 부르게 된데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원풍2년(공원1079년)12월에 소식은 황주로 좌천되였는데 생활이 몹시 빈곤하였다. 당시 황주의 통판으로 있던 마정경이란 사람이 주부(州府)에서 얻어온 묵밭 50무를 그한테 주어 다루게 하였다. 그 밭이 바로 황주의 동쪽비탈(东坡)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래서 소식은 그해 봄날에 그곳에 설당을 짓고 그 이름을 (东坡雪堂)이라고 하였다. 또 후에는 자신이 그렇게 우러르던 백거이거사가 역시 자기처럼 황주에 좌천되여 갔을때 그곳 동쪽비탈에 화초를 가꾸고 나무를 심으며 시를 지어 읊었던걸 생각하면서 자신을 라고 이름하였다. 이 시각 나의 채마전도 단순히 채마전의 의미를 썩 넘어서 소동파나 백거이의 숨결을 느끼게 해주어 수확은 엄청 크다. 나는 잘 다루지 못한 거칠지만 그래도 알찬 열매를 많이도 나한테 선물해주는 나의 채마전에서 소동파의 숨결과 백거이의 , 등을 읊조리며 페부깊이 스며드는 싱그런 냄새속에 푹 잠겨버린다...                                                                                                                                                                                                                                                                                                                                                              2014년 음력7월 13일 에서
73    댓글:  조회:1524  추천:1  2014-07-30
    어느 새벽의 안개가 자욱한 숲을 걷는다. 숲으로 나진 길을 따라 걷다보면 어느새 길은 사라지고 뒤돌아보면 내가 온 길을 찾을수가 없어 내가 어디로 가고싶은지 어디로 가려고 들어온 것인지도 잊어버린채 끝나지 않는 숲속의 미로를 걷고 또 걸어가고있다. 쉬어가고싶은데 멈춰있는것이 불안해진다. 방향도 안잡히는 낯선 곳에 머물고싶지 않아 어딘지도 모를 목적지이지만 그곳으로 걸어가고있다는 것이 안정을 준다.
72    에덴의 푸른 동산 댓글:  조회:1545  추천:2  2014-07-26
  나는 드디여 행운스레 나의 새로운 삶의 공간을 찾아냈다 아니, 내가 찾아낸것이 아니라 님께서 내게 하사하였다 그곳에는 맑은 물이 빛으로 흐르고 그곳에는 꽃사슴이 큰 눈을 슴벅이고 그곳에는 밝은 하늘에 흰 구름송이들이 흘러가고 있었다 그곳에는 푸른 풀을 뜯고 있는 어린 양들이 화목하게 서로 쫓니며 뛰놀고 있었다   거기 식솔들은 모두 겸손하였고 따뜻하였고 말수가 적었고 다정다감하였다 마치도 잘 다음어진 대나무 같았다 거기 여인들은 모두다 절세의 미인이였고 거기 남정들은 모두다 영준한 미남이였다   날개를 한번 상한 새는 날기를 저어한다 뒤돌아보니 내가 걸었던 길에는 아직도 피비린 내가 진동하고 혼탁한 공기가 자욱하다 나는 두눈을 차분히 내리깔고 숙연한 마음으로 기도(祷告)한다 흰눈은 배꽃으로 가득 내려 나의 지나온 어지런 발자국을 깨끗이 묻어버렸다… …   나는 지금 평화를 찾은 신생하는 꽃구름이다                         잡지 2014년 1기에서    
71    살아간다는 것은 댓글:  조회:1761  추천:1  2014-07-24
눈물을 버리지 말아라 놋대야에 잘 담아뒀다 화분에 주어라 그러면 눈물을 먹고 꽃은 피여난다 그 꽃에서 풍기는 향기는 눈물냄새가 나리라   아픔을 버리지 말고 하얀 손수건에 잘 싸두어라 그랬다가 가슴에 번열이 날때 꺼내보면 가슴에 봄이 내려앉는다 그 봄이파리에는 고름이 탐스럽게 열릴것이다                             2013년 4기에서
70    록차(绿茶)를 마시며 댓글:  조회:1572  추천:2  2014-07-23
            한결 젊어진다는 록차를 마시며 나는 장수(长寿)보다 그 사색의 록색수풀을 맘껏 날수 있는게 심히 편하다 일상에 젖어 부러진 날개죽지를 끼고 거친 숨소리 고누기 보담 은밀한 맛에 잠간이나마 헝클어지는 머리를 식히는게 더구나 가쁜한 기분이다 요즘 세월에 한순간의 정적을 찾아 고요와 평화(平和)를 마음에 고이 받음이 얼마나 착한 일인지 모르겠다 록차를 마시며 내밀한 자아를 반추하고 조용히 차물을 불며 한세상 어지런 티끌을 갈앉힌다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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