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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럼
양철북을 두드리다
김 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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햐쿠타 나오키(百田尙樹)라고 하는 일본작가가 있다.
자살특공대를 소재로 한 소설 “영원(永遠)의 제로”를 출간, 3백만부가 팔리면서 유명해 졌고 최근 그 소설이 영화로 제작돼 인기리에 상영중이다.
하지만 그보다도 세계의 이목을 끈 것은 그의 작품이 아니라 그가 람발한 련이은 망언이다.
▲ 망언 제조기 햐쿠타 씨
도꾜 신주쿠(新宿) 와 아키하바라(秋葉原)에서 내 뱉은 그 망언들을 볼작시면:
- "세계 각국은 남경대학살을 무시했다", "왜냐하면 그런 일은 없었기 때문"
- “태평양전쟁 말기 미군에 의한 도꾜 대공습과 원폭 투하는 비참한 대학살이다”, “일본인 전범을 단죄한 도꾜재판은 이(대학살)를 지우기 위한 재판이었였다"
- “일본이 1941년 진주만을 선전포고 없이 기습했는데", "20세기 전쟁에서 선전포고가 이뤄진 전쟁은 거의 없다"
- "아마 일부 (일본) 군인들에 의한 잔학 행위가 있었지만 그것은 일본인뿐 아니라 미군도 하고 중국군도 하고 쏘련군도 했다", "이런것을 의무 교육을 받는 아이들에게 가르칠 리유는 어디에도 없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에게 자학 사관을 심을 필요는 어디에도 없다"
햐쿠타는 평화헌법을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일본 문화계의 대표적 우익 인사로서 아베 신조총리와 친분이 깊다.
아베는 신사참배를 앞두고 햐쿠타의 영화를 관람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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햐쿠타씨의 망언과 행각을 지켜보노라니 또 다른 한 작가가 머리에 떠 올랐다.
귄터 그라스, 소설 “양철북”으로 1999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독일작가이다.
나치 점령에서 2차대전까지 독일의 력사와 사회상을 촘촘히 그린 소설은 영화로 각색되여 1980년 제52회 오스카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 내가 소장한 소설 “양철북”의 중국판 표지
필자는 지난 1994년경에 소설 “양철북”을 접했으나 부피가 만만치 않고 문체도 까다로워 채 읽지 못하고 영화로 먼저 보았었다.
성장을 멈춘 소년 오스카가 생일 선물로 받은 양철북을 두드리는 장면, 괴성을 질러대면 거리 유리창들이 부서지는 초현실주의 장면들이 지금도 눈앞에 선연하다.
후에 다시 중문판 소설을 소장해 까근히 읽었다. 요란한 양철북 소리와 날카로운 괴성은 세상의 부조리에 맞서는 소년 오스카의 저항방식을 황당한 필치로 은유해 보인것이였다.
작품은 나치의 광기와 그에 무비판적으로 휩쓸린 민중에 대한 통렬한 은유로 평가 받는 고전으로 귄터 그라스를 세계 대문호의 반렬에 올려 세웠다.
▲ 영화 “양철북”의 한 장면.
이 소설에 대해 평단은 칭찬일색으로 자자했다. 노벨상도 진작 받았어야 했는데 너무 늦었다는게 문단의 중론이였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몇년후 귄터 그라스는 “양파 껍질을 벗기며”라는 자서전을 발표했다.
그 자서전을 읽은 애독자들 그리고 여론은 들끓었다. 자서전을 통해 귄터 그라스는 자신이 나치 친위대에 복무했음을 뒤늦게 고백했던것이다.
그는 나치 친위대 대원이였다.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17세에 자원입대해 수류탄 파편에 부상을 입고 포로가 된 1945년 2월까지 그는 “SS”가 새겨진 군복을 입고 히틀러의 병사로 지냈다. 그는 평생 이 사실을 비밀로 하고 싶어했지만 량심의 혁편질에 못이겨 결국은 고백하고 말았다.
그는 "나는 평생 이 문제를 떠나지 않았고 이 문제와 함께 있었다"며 심적 고통을 토로했다.
▲ 저자 권터 그라스
전체 독일민중은 찬 얼음물이라도 뒤집어 쓴듯 그만 어안이 벙벙해 졌다. 자부하며 애대했던 작가가 나치라니?!
한때 찬양했던 작가에 대한 비판이 장대비처럼 쏟아졌고 그의 노벨문학상을 박탈하자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귄터 그라스는 그 비평을 고스란히 한몸으로 받아안았다.
과거에 대한 고백이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 학식, 덕망을 한 순간에 허물어 버리는 결과가 될것이라는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라스는 늦게나마 어두운 과거를 스스로 들춰냈고 여태 짐져왔던 량심의 책무를 갚으려 했다. 용기있는 행동이였고 숙고된 자아성찰의 결과였다.
소설 “양철북”을 세세히 읽어보면 그 거대한 은유속에 자신을 포함한 20세기를 살았던 독일인들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 그는 마음속 짐을 필생의 역작을 통해 속죄했던것이다.
소설 "양철북" 주인공의 캐릭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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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은 제2차 세계대전 전범국(戰犯國)인데도 일본과 독일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독일은 노르망디 상륙작전, 스딸린그라드 전투 희생자를 기리는 승전국 행사에 고위 정치인이 거의 매년 참가해 거듭 사죄와 반성을 보여준다.
그에 반해 일본의 우경화 행보는 이제 자기 제어능력을 잃고있다. 그 행보의 근저에는 반성 없는 과거사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러한 극우의 준동(蠢動)은 국제사회에서 더 고립되고 더 몰락하는 악순환을 초래할수도 있다. 력사는 감추고 싶다고 감춰지는게 아니다. 아무리 력사를 인위적으로 부인하려 하면 할수록 진실된 력사에 대한 “죄책감”에 계속 시달리게 될것이다.
력사에 대한 인식에서 작가들마저도 일본과 독일은 서로의 차이를 보여준다.
작가가 력사의식을 가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 시공간속의 진실이 우리에게 우리가 누구인지를 말해주고 있는데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전혀 모르는 청맹과니같은 의식으로 작가가 되여 세상을 향해 떠들게 되면 어떻게 될까 ?
그 작품은 시간의 고험을 이겨내지 못하는 아류작으로 남을것이며 그 작가 역시 극소수 특정 독자층의 구미나 맞추는 알량한 3류작가로 남을것이다.
그야말로 우리에게 울림이 큰 커다란 양철북과 북채가 주어져 극우작가들의 졸렬한 심안(心眼)을 깨우는 각성의 양철북을 세차게 두드리고 싶다.
요즘 중국에서도 잘 팔리고 있는 역시 일본작가인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소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没有色彩的多崎作与他的巡礼日子)”에 나오는 한 구절을 청맹과니같은 일본 극우작가에게 드린다.
"기억을 어딘가에 감췄다 해도 또 깊은 곳에 잘 가라앉혔다 해도 거기서 비롯된 력사를 지울수는 없다”
2014년 2월 5일
☞김혁 문학블로그:http://blog.naver.com/khk66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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