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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련옥(煉獄)의 소나무 댓글:  조회:2582  추천:5  2014-05-28
[김혁 독서칼럼 7]   련옥(煉獄)의 소나무 -  장편소설 “붉은 바위”   1980년대에 출간 된 "붉은 바위" 조선문 표지   당대중국문학작품중에 가장 많이 팔린 책은 어떤 책일가? 바로 “붉은 바위(红岩)”였다. 1950년대에 출판된 이래 397차 재판,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한국등지에서 번역 출간되였으며 국내에서만1000만책의 발행량을 기록했다고 일전 청명을 맞으며 중경의 매체가 피로하였다. 소설은1949년 해방전야 중경의 사재동이라는 감옥을 배경으로 국민당의 야만적인 고문과 학살만행에도 굴하지 않는 “붉은 수인”들의 숭고한 품성과 자기희생정신 그리고 철저한 혁명정신을 구가하고있다. 1949년 인민해방군이 파죽지세로 승리를 거두며 국민당의 마지막 보루인 중경을 향해 매진해 오자  역전할수 없는 고립의 난국에 처한 국민당 옥지기들은 광분하면서 사재동(渣滓洞)감옥에 갇힌 혁명자들에게 마수를 뻗치기 시작한다. 소설은 감옥내에서의 투쟁과 중경시가지에서의 학생운동, 로동자운동을 교차해 보여주고있다. 더욱이 혁대, 몽둥이, 족쇄가 란무하는 련옥과도 같은 감옥내에서 불굴의 신념을 가진 혁명자들이 패망을 앞두고 미쳐 날뛰는 국민당과의 최후의 결전에 많은 필봉을 기울이고 있다. 당대문학작품으로는 국내 발행량의 최다를 기록한 책은 몇 세대 사람들의 정신을 고무했고 그들 저마다가 간주한 “문학 메모리(记忆)로 뇌리에 깊숙히 갈무리되여 있다. 소설이 미친 영향력은 컸다. 나의 초중시절 학교에는 지어 소설의 제목을 따서 박홍암, 최홍암등의 이름을 가진 애도 몇명 되였다. “붉은 바위”는 조선어로 번역 출간되였을뿐만 아니라 영화, 가극, 련환화등 각종 쟝르로 번안되고 각색되였다. 요즘의 형용어를 빈다면 그야말로 초대박 베스트셀러였다. 소설을 각색한 영화 “렬화속에 영생하리”의 포스터   출판계가 지금처럼 활성화되지 못하고 열독물이 적었던 당시 여러번 곱씹어 읽었던 이 소설을 통해 우리는 생명의 기본 가치를 알게 되였고 정신적 자양분을 흡취하였으며 작중인물들의 영웅기개에 대한 앙모의 마음을 가지게 되였다. 소설을 각색한 영화 “렬화속에 영생하리(烈火中永生)”와 가극 “강누님(江姐)” 역시 당시의 경전작품으로 떠오르며 더불어서 그야말로 “붉은 바위”붐을 일으켰다. 중국전역에서 순회 공연을 했던 가극에서 강누님을 맡은이가 또한 조선족 배우 김만이여서 우리로서는 은근히 자호감을 머금었었다. 책의 공동 집필자들인 라광빈(罗广斌)、양익언(杨益言)은 이 집중영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생존자들이다. 그들은 해방의 려명을 앞두고 피와 불의 고험을 직접 피부로 겪었다. 그들은 일찍 옥중생활에 대한 회고록을 써낸적 있는데 그 회고록이 바로 소설의 모태로 되였다. 때문에 작중인물중 주인공들인 강설금, 허해봉등은 거개가 실존인물들이였다. 그저 이름자중의 한,두자를 바꾸었을뿐이였다. 문학적인 허구를 덧입혔지만 그 이야기의 줄거리는 모두가 옥중에서 일어난 진실한 사건에 문학의 개연성을 조금 가미한것이였다. 때문에 평단에서는 작품을 가리켜 “실화소설”이라고 정평하기도 했었다. 다문화가 다투어 각축전을 벌리고 있는 오늘날에도 소설 “붉은 바위”는 그로서의 독특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하나 또 하나의 풍만한 인물형상으로 엮어진 혁명서사시로서의 작품은 흘러간 력사의 흐름을 면면히 살피면서 혁명의 간거함과 승리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고 있다.   참대꼬챙이로 손톱눈을 들쑤시는 악행에도 굴하지 않은 강누님, 손으로 돌벽을 후벼 뚫어서 탈출의 길을 연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자 허운봉, 감옥에서 태여나 영양실조로 머리가 커서 “무우골”이라 불린 혁명자의 후예,미치광이로 가장하고 감옥에 잠복해 탈옥을 도운 화자량, 극형의 약물주사와 거짓말 탐지기도 이겨낸 성강, 쌍 권총으로 반역자를 단죄한 “쌍총 로파”… 그들의 이야기는 독자들더러 숙연을 머금게 했고 눈물을 흘리게 하였으며 갈채를 올리게 했다.     소설을 각색한 가극 "강누님"에서 주역을 맡은 조선족 유명배우 김만   참대꼬챙이로 생살을 쑤시고 고추물을 부어넣고 약물주사를 투입하는 극형도 이겨내게 한 그 힘은 무엇이였을가? 책을 읽으며 그 불가사이한 힘의 정체를 읽어내려 애썼다. 오랜 시간이 흘러 더 성숙된 독서가의 시각으로 다시금 반추해보며 더듬어낸 그들의 정신의 요체는 바로 정의로움과 신념에 대한 성실함이였다. 세계적인 사전으로 불리고 있는 “웹스터 사전”에서는 신념에 대해 “어떤 사람이나 생각이나 사물의 진실성,가치 혹은 신뢰성에 대한 확실한 믿음, 론리적인 증명이나 물질적인   증거에 의거하지 않은 믿음”이라고 정의되여 있다. 이처럼 신념은 무형의 추상적인 관념이며 어쩌면 아직 과학적으로 립증되지 않은, 립증할수도 없는것일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것을 기꺼이 받아들이려는 마음, 그 하나의 올곧은 마음이 력사상 세상을 바꾸기 위해 혁명과 투쟁을 선택하고 기꺼이 산화해간 무수한 영웅을 낳게 했다. 소설의 표지 디자인이 내내 인상에 남는다. 붉은 바탕을 기조로 암바위우에 우뚝 선 소나무를 새긴 목판화이다. 간결하면서도 극명하게 소설속 인물들의 견정한 의지와 신념을 보여준 표지였다. 오롯이 작중 인물들을 은유하는 그 소나무는 신념이라는 자양분을 마시고 척박한 암바위우에서도 꿋꿋한 기상으로 강건하게 자라고 있었다.   “길림신문” 2014년 5월 26일   ☞ 김혁 문학블로그: http://blog.naver.com/khk6699 ☜  
17    개의 순애보 댓글:  조회:1776  추천:15  2014-04-21
[김혁 독서칼럼 6]   개의 순애보 실화 “하치의 이야기” 일본 렬도에서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를 바탕으로 세계를 울린 감동 실화 소설이다. 흰 눈이 소담하게 내리는1923년의 어느 겨울날, 시골 농가에서 황금빛 바탕에 흰 털 무늬가 섞인 강아지가 태여난다. 강아지는 시부야의 농학부교수 우에노의 집으로 보내진다. 교수의 제자가 은사에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보낸 선물이다. 팔(八)자 모양의 두 다리를 가진 강아지에게 우에노교수는 일본어로 수자 8을 칭하는 “하치”라는 이름을 달아준다. 우에노 교수는 벼룩도 잡아주고 욕조에서 같이 목욕도 하면서 하치를 지극히 보살핀다. 하치는 매일 아침 시부야 역까지 따라가 출근하는 우에노 교수를 배웅하고 저녁에는 마중 나간다. 받은 사랑만큼 보답하고자하는 강아지 나름의 약속, 하치에게는 무엇보다 소중한 약속이다. 그러던 어느 하루, 불행이 닥쳐와 평화롭고 행복한 일상은 고장난 기차처럼 탈선한다. 유달리 하치에게 애정을 쏟던 우에노 교수가 강의 도중 뇌출혈로 쓰러져 유명을 달리한것이다. 하지만 하치는 그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채 시부야 역에서 주인을 기다린다. 언젠가 기적이 울리고, 주인을 실은 기차가 도착하고, 역사(驿舍)의 문을 열고 나올 자신의 주인을 만날수 있을거라는 생각에 하염없이 기다린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치의 기다림은 그후 10여년 동안 매일마다 한결같이 계속 된다. 1935년 3월 8일, 눈내리는 시부야 역에서 기다림에 지친 하치는 눈을 감는다. 련민과 안타까움 그리고 아름다움 마저 느껴지는 모습을 남긴채 드디여 주인이 간 곳으로 찾아간것이다. 일본 북부 아키다현에서 태여난 순종 아키다견(犬)인 하치는 일본에서 “충견”으로, “국민영웅”격으로 칭송받는다. 하치의 이야기는 일본의 소학교 2학년용 수신(修身)교과서에도 실렸고 시부야 역 광장에는 하치의 동상이 세워졌다. 일본의 저명한 화가가 조각했고 동상의 좌대에는 “충견 하치공”이라고 새겨넣었다. 한 마리 개에게 공(公)이라는 존칭을 붙여 추대한것이다. 동상 제막식에는 당시 살아있던 하치 자신도 참석했다고한다. 하치의 시신은 박제되여 일본국립과학박물관에 지금까지 보존되여 있다.   하치의 이야기는 세월이며 국경을 초월해 불과 몇해전에도 할리우드에서 동명의 영화로 제작, 할리우드의 톱스타들이 대거 주연과 조연으로 출연해 감동의 연기를 선보였다. ​ ​ 할리우드에서 각색한 영화의 장면들     2012년 100세라는 천수를 누리고 간 저자 신도 가네토는 씨나리오 작가로서 히로시마 원폭에 관한 작품을 쓰면서 유명해 졌다. 그의 작품은 “인간에 대한 신뢰와 사랑”을 일관된 테마로 하고 있다고 평론가들은 정평한다. ​ 독특한 일본문화에 대한 해부서인 “국화와 칼”의 저자, 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는 “은혜를 갚은 강아지”라고 그의 저서에서 하치를 언급하면서 “일본의 은(恩)이라는 글자는 충성, 친절, 사랑등 모두를 포함하면서 그 모두를 합한것보다 훨씬 복합적인 의미를 갖는다”면서 “충성, 의무, 의리라는 륜리관이 일본인들이 각별히 하치를 사랑하는 리유”라고 분석했다. ​ 복잡다단한 기복과 스토리를 기대하고 읽는다면 약간 재미가 덜할수 있는 책이다. 하지만 애틋하고 아련한 문체로 씌여진 글발들은 동물과 인간과의 끈끈한 련결을 보여주고 따뜻한 교감을 보여주고 있어 급기야 책에 빠져들게 하고 나중에는 저도모르게 코허리가 매콤해지고 눈시울을 적시게 한다. ​ ​ 역전 광장에 세워진 하치의 동상 강아지 두마리를 키우는 애견인으로서 처음 “하치의 이야기”를 읽었을때 엄청 눈물을 흘렸었다. 반려동물과의 교감은 직접 키워보지 못한 이들에겐 리해불가, 하지만 그 교감을 느껴본 이에겐 마법 같은 령역이다. 그래서 사내의 체면도 잊은채 볼썽사납게 눈물을 펑펑 쏟았었다. 책을 내려놓고 내 무릎가에서 잠든 애견들을 다시한번 품에 꼭 껴안았다. 무리한 독서와 컴퓨터작업때문에 안구건조증으로 늘 안약을 투약하고있던 나는 나를 울린 그 책 덕분에 그날따라 한결 맑아진 눈망울을 가질수 있었었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가 일회용으로 계산되고있는 요즘 세월, 한 강아지의 순애보는 우리 모두가 잊고 살았던 사랑, 우정, 그리고 신뢰를 눈물속에 다시 한 번 곱씹어보게 한다. 익히 알려진 이 이야기를 재다시 읽는 리유도 금방 지나온 겨울처럼 차거운 인정을 봄날의 독서속에 녹이고픈 따뜻한 감성의 수요에서 일것이다.     “길림신문” 2014년 4월 18일   ☞ 김혁 문학블로그: http://blog.naver.com/khk6699 ☜      
16    무라카미 하루키를 읽다 댓글:  조회:1760  추천:10  2014-03-30
[김혁 독서만필 5]    무라카미 하루키를 읽다         어느 중국드라마에서 나오는 장면이다. 녀자가 열심히 읽고있는 책표지를 보고 남자친구가 비아냥거린다. 《아직도 무라카미냐? 이그 촌시러!》 일각에서는 하루키를 읽는것이 《수준이 낮다》거나 《하루키가 과대평가됐다》는 시각도 있지만 이는 하루키의 독창적인 어법을 모르고 하는 소리이다. 하루키는 이제 낡투로 치부되며 고갈되여가는 작가가 아니다. 30년이 넘도록 세계의 독자들을 사로잡고있고 《하루키 현상》이라는 문화적인 신드롬이 확산되고있으며 하루키의 독자들이 나날이 늘어가고있다는 사실을 무시할수는 없다.   일본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다니자키 준이치로》상을 비롯해 거의 모든 문학상을 수상했고 근년에는 프란츠 카프카상, 예루살렘상, 카탈로니아 국제상 등 지구촌 굴지의 상을 휩쓸고있다. 무라카미 하루키, 현시대를 살면서 문화적감각이 있다는 사람들이 그의 소설을 읽지 않으면 대화가 안된다는 정도로 대단한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작가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은 600만부 이상 팔릴 정도로 기록적인 베스트셀러행진을 하며 오래전부터 중국, 한국, 독일 그리고 북유럽에서 많은 애독자를 낳아왔다. 중국에서도 80년대 중기로부터 진행돼온 그의 베스트셀러 행진은 지금까지 이어져오고있다. 하루키의 작품을 적지 않게 읽었다. 그의 처녀작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로부터 《댄스 댄스 댄스》, 《해변의 카프카》와 근작인 《1Q84》까지… 《1Q84》 를 금방 읽었는데 얼마전에는 신작 장편소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가 또 출시되였다.   하루키의 작품은 대표작으로 되는 《노르웨이의 숲》(후에 제목을 《상실의 시대》로 개칭)을 중문판본으로 맨먼저 접했다가 후에 친지가 한국에서 부쳐온 삼진기획 88년 판본으로 다시 읽었다. 오래동안 《좌》의 철쇄에 매여 살아온 우리의 정서와 너무도 앞서간 그들의 성문화때문에 약간의 거부감을 가졌었고 그래서 오히려 기어코 읽었었다. 당시 하루키의 책을 처음 읽고 나는 생각을 많이 할수 없었다. 솔직하고 감성적인 소설속의 주인공들은 현실속에서 우리가 드러내지 못하는 숨겨진 모습이 아닐가? 하는 상당히 혼란스런 느낌을 받아안았다. 그리고 나에게서 이 소설은 재미는 없었지만 길게 느껴지지 않은것은 정말 신기했다.   하루키의 책을 읽으면서 흥미를 갖게 되는 점은 어쩔수 없는 운명에 휩싸인 주인공이 시련을 이겨나가는 과정이다. 책의 마지막장까지 덮고나면 폭풍이 한차례 휩쓸고 지나간듯한 느낌이다. 하루키의 작중인물들은 저마다 살아가면서 갑자기 어쩔수 없는 힘에 이끌려 감당하기 어려운 시련에 당착한다. 자칫 그대로 좌초되여버릴것만 같지만 끝내는 고해의 수면밖으로 떠오르는데 성공한다. 그들에게는 끈질긴 생명력이 있다. 그리고 삶에 대한 애착과 나름의 살아가는 방식이 있다. 그것이 모든 일이 해결되고 모든 사람이 행복해졌다는 중국식의 모식인 대단원(大團圓) 결말 같은걸 기대할수 있는 방식은 아니지만, 마지막장까지 호흡을 달구는 그 불투명함이 하루키식의 모식이라면 모식일것이다. 그리고 하루키의 소설들은 거개가 재미있고 스릴있는 모험, 그리고 초현실적 인물이 가미되여 완성된 읽을거리가 풍성한 소설들이다. 하루키는 소설을 쓸 때 곳곳에 환상적인 부분을 설정함으로써 현실이 아닌 소설의 특성을 살려 다시 현실을 돌아보게 하는 기법을 사용한다. 비현실적이지만 이런 요소때문에 하루키의 소설에 끌리는지도 모른다. 내가 늘 꿈꾸면서도 감히 행하지 못하는 꿈의 여유를 하루키의 소설에서 느낀다. 그러나 책을 내려놓고보면 하루키의 소설은 전혀 비현실적이지가 않다. 실재하기 어려운 모험적상황을 전제로 하고있지만 그렇게 설정된 상황은 또 현실주의를 뺨칠 정도로 리얼리티를 띠고있다. 현실과의 직접적회로를 갖고있는것이다. 사실은 내가 살고있는 세계도 하루키의 소설에서처럼 여러가지 신기한 일들이 일어나지만 내가 모른채 살아가고있는게 아닌가 하는 착각을 느끼게 할 정도로 현실성을 가지고있다. 실제로 일본의 권위있는 문예비평가들 가운데는 하루키의 소설은 일본문학이라고 부를수 없다는 정도로 혹평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만의 문체 그리고 미국문화에서나 볼수 있는, 서양문학의 영향이 마음에 안 든다는것이다. 《일본소설에는 모종의 전형적인 문체 같은것이 있는데 나는 그런것들과는 전혀 다른데에서 새로운 스타일의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때문에 내 소설을 받아들이기에는 시간이 많이 걸리고 그래서 비판도 많이 받는다.》 하루키의 답변이다. 그의 작품을 가리켜 《무국적성》이라든가 《가벼움의 미학》이라고도 얘기하지만 하루키문학의 외면적인 가벼움은 어쩌면 오늘을 살아가는 개인들에게 필연적으로 부과되는 존재의 무거움을 견뎌내려는 몸부림에 대한 표현이라 할수 있다. 또한 그 무국적성이나 가벼움때문에 변강의 오지인 이곳 사람들에게마저도 이렇게 친근하게 읽혀지고있는것이 아닐가? 어법과 소설방법론을 자신만의 독창적인것으로 만들어 세계에서 가장 잘 소통하고있는 작가를 우리의 틀로 재단해보려는 시도는 어찌보면 우습광스러운 행태일는지도 모른다.     솔직히 순 문학을 한답시는 개인적으로는 거개가 대중적이면서도 튀는 소설을 쓰는 하루키가 특별히 좋은 글을 쓴다고 생각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내가 느끼는 하루키의 장점이라면 그의 글을 읽으면 위로받는 느낌을 받곤 하는것이다. 그런 그가 좋아서 그의 대부분의 책을 읽었다. 이상하게도 무라카미의 소설은 내 마음을 강하게 잡아끄는데가 있다. 이는 다른 외국작가들의 작품들을 읽었을 땐 느끼지 못했던 다른 느낌이다. 인물의 내면들이 놀랍도록 나와 비슷하잖은가.외국사람이 쓴것인데도 하루키란 사람이 생각하는 방법이 우리와 완전히 같은데가 있었다.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인간의 존재, 그들의 고독감을 그려내는 우화적 에피소드들이 꼭 서로 닮아있는것이다.   우리의 작가들은 자기 격정과 독단을 제어하지 않거나 제어하지 못하고 살아가고있다. 대부분 자기가 말하는것을 전달하고 리해시키기 위하여 설명의 톤을 높인다. 그러나 하루키는 설명하지 않는다. 직설적으로 설명하는것보다 훨씬 더 소통이 잘되는 방법을 찾아낸다. 하루키는 독자들에게 주입하는 대신에 깊이 있게 관찰하고 판단은 조금만 내린다. 최종적인 판단은 독자의 몫으로 남겨둔다. 그리고 현란하게 기교를 부린 문장은 아예 때려치우고 캔맥주와 음악처럼 가벼운 어법을 사용한다. 작품내내 설명하지 않는 무진장한 유머와 단문으로 치달으며 일상어로 소박한 경이로움의 세계를 보여준다. 하루키가 지구촌 어디서든 독자들과 효과적으로 소통하고 세월이 지날수록 독자층을 넓혀가는 비결은 바로 여기에 있지 않나싶다.   "길림신문" 2014-03-29      ☞ 김혁 문학블로그: http://blog.naver.com/khk6699    
15    피빛 령혼의 만가 댓글:  조회:2061  추천:15  2014-03-20
  【김혁 독서칼럼 4】   피빛 령혼의 만가 - 장편소설 “금릉 13채”     요즘 들어 남경대학살, 그 끔찍했던 기억이 자주 회자(膾炙) 되고 있다. 일부 몰지각한 섬나라의 우익분자들이 공공연히 남경대학살과 그 침략력사에 대해 부정하면서이다. 따라서 남경대학살 소재의 픽션작품들이 다시 서점가에서 독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고한다. 남경대학살 소재의 소설작품들중에서 압권을 꼽으라면 바로 “금릉 13채 (金陵十三钗)”이다. 장예모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 “금릉 13채”가 흥행가도를 달리기 이전에 나는 이미 그 원작소설의 작가 엄가령에게 빠져 있었다. 문화대혁명을 소재로 한 첫 장편 “마마꽃 응달에 피다”를 창작하면서 문혁관련 장편들을 닥치는대로 읽던차 역시 문혁소재를 다룬 엄가령의 작품 “천욕(天浴)”을 읽으면서 그의 작품에 매료되기 시작한것이다. 조선족 독자들에게는 그의 중편 “녀자의 목초지 (雌性的草地)”가 “연변문학”지에 의해 번역, 소개된적 있다. 상해의 문인가정에서 태여난 엄가령은 20대 초반부터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해 서른살 무렵에는 미국으로 류학, 시카고콜롬비아 예술대학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저력있는 작가로서 그의 작품은 대부분 탄탄한 스토리 전개와 리얼리티, 섬세하고 절제된 묘사, 휴머니즘의 깊이, 력사적 시각 그리고 예술적 력량까지 두루 갖추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주요 작품으로는 “천욕”, “한 녀인의 서사시” 등이 있다. 그중 “둬허 이모(小姨多鶴)”는 2009년 중국소설학회가 뽑은 “올해의 가장 좋은 장편소설”로 선정되기도 했다. 묵직한 소재와 빛나는 문체로 사랑받는 녀류작가 엄가령   “금릉 13채”는 일제에 의해 자행된 남경대학살이라는 거대한 주제와 중국영화계의 거장 장예모감독이 대작영화로 제작했다는 두가지 이슈를 낳은 작품으로 엄가령의 작품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작품은 2005년 경 중편소설로 먼저 발표되였다가 그후 엄가령이 새롭게 확보한 자료와 사실적 고증에 근거해 보다 호흡이 길고 내용이 풍부한 장편소설로 재창조되였다.    소설은 남경대학살 당시 13살의 소녀였던 맹서견(孟书娟)이 조각난 력사의 증언을 찾아나서며 회고하는 형식으로 시작된다. 그녀의 눈길에 좇아 피빛으로 물들었던 끔찍한 과거, 결코 되풀이되여서는 안될 전쟁의 참상이 적라라하게 펼쳐진다. 1937년의 추운 겨울, 일장기를 단 일제의 땅크가 남경성에 진입하고 광분하는  일제의 총칼아래 아름다운 남경은 삽시에 피범벅이 된 몸뚱들이 네거리에 뒹굴고 길녘 배수구로는 피물이 벌창해 흐르는 지옥의 나락으로 변한다. 잉글먼 신부는 미처 남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윌슨교회당에서 맹서견을 비롯한 13명 성가대의 어린 녀학생들과 함께 몸을 숨기고있다. 어느 날, 차림새가 요염하기 짝이 없는 녀인들이 교회당에 나타난다. 옥묵(玉墨)이라는 녀자를 선두로 한 이들은 청루의 창녀들이였다. 이어 세명의 중국 군인까지 혈전에서 살아남아 교회당에 찾아 든다. 이렇게 전혀 어울리지 않을것 같았던 순수한 녀학생과 천대받던 창녀들, 외국의 신부와 중국 군인들이 교회당에서 함께 어우러지게 된다. 본의아니게 창녀들과 함께 생활하게 된 맹서견은 입으로 끊임없이 육두문자를 내뱉는 방종한 모습의 그녀들을 몹시 혐오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인차 안전할것만 같았던 교회당에도 일본군의 마수가 뻗친다. 일본군관은 교회당에 숨어있는 13명의 소녀들을 발견하고 며칠후의 성탄절날 소녀들이 군영으로 가서 그들을 위해 노래를 불러달라고 강요한다. 이미 한명의 창녀와 소녀가 그들의 유린에 의해 처참히 목숨을 잃는다. 이제 일본군들이 득실거리는 군영으로 간다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될지 뻔한 일이였다. 어린 소녀들이 일제의 유린을 모면치못할 관두에 소녀들을 대신해 열세명의 창녀들이 나선다… 세월이 흘러 일제전쟁범들을 재판하는 국제법정에서 맹서견은 일제의 죄행을 증언하는 한 녀자의 목소리가 당년의 옥묵과도 꼭 닮았음을 느낀다. 하지만 얼굴을 보니 그녀가 아니다. 원체 옥묵은 그날 일본군관에 의해 얼굴에 상처를 입고 그후 돌팔이 의사에 의해 치료를 받지만 얼굴모습이 완전히 변했던것이였다. 오래동안의 수소문을 거쳐 맹서견은 자신들을 위해 나섰던 열세명 창녀들의 최후를 알게 된다. 그들중 일부는 반항하다가 당장에서 살해당하고, 도망치다가 총에 맞아 죽고, 일부는 자결하고 겨우 옥묵 한 사람만이 4년간이나 일제의 고위관원에 시달리다 도망쳐 나온것이였다. 청루에 더럽힌 몸을 가진 창녀들이지만 선과 악의 충돌, 악몽같은 전쟁의 고난중에서 그녀들은 남다른 온정을 보여준다. 전쟁의 잔혹한 선택앞에서 창녀들은 생명의 세례를 바탕으로 신분에 대한 자각과 인격의 승화를 가져온다. 자신들의 방식으로 인성의 아름다움과 빛을 발한한것이다. 재난은 인성에 대한 가장 큰 고험이다.미천한 존재로 조소했던 창녀들의 의연하면서도 아픈 선택은 우리 모두를 숙연하게 하며 잔혹한 전쟁에서의 그녀들의 선량한 인성의 거듭나기는 처량한 비장미마저 느끼게 한다.  소설은 정면으로 남경대학살의 장면들을 다루지 않는다. 하지만 자그마한 교회당은 전반 남경의 축도와도 같다. 이 작은 곳에서 남경성에서 자행된 일제의 온갖 만행들이 프리즘으로 재현된다. 절제된 묘사이지만 작가는 광기로 물든 전쟁이 어떤 비극을 만들어내고 어떻게 인간을 유린해가는지를 보여주면서 인간의 근간을 이루는 인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따라서 소설은 비천과 고귀함, 더러움과 순결함을 저울에 달아 독자들로 하여금 그 무게와 전률을 느끼게 한다. 제목에 나오는 “금릉”은 남경의 별칭이다. 지금의 남경의 종산을 춘추시기부터 금릉산이라부르면서 생겨난 명칭, 예로부터 불려진 남경의 아치하면서도  또 다른 명칭이다. 그리고 “13”이라는 수자도 특별한 상징적 의미를 가진다. 흔히 “13”은 서방에서는 불길함을 내포한 상징적인 수자이다. 여기서 이 수자는 마지막까지 교회당에 남겨진 창녀들과 소녀들의 공통된 수자일 뿐만 아니라 소설속 화자인 맹서견의 나이이기도 하다. 또한 남경이 함락 된 력사적 비극의 그날이 겪는 아픔과 고통에 대한 암시이다. “13”이라는 수자는 소설속 인물들의 개인적 아픔이자 전체 남경의 비극을 상징한다. 이처럼 작가 엄가령은 소설의 제목에서부터 플롯의 줄기에 “13”이라는 수자를 적절하게 장치해두었다.       동명영화 "금릉 13채"의 포스터   소설을 읽으면서 내내 모파쌍의 명단편 “비게 덩어리”가 생각났다. 전란속에서 자신의 몸을 바쳐 동행자들을 보호해 내지만 나중에는 그들의 버림을 받는 한 창녀의 이야기를 다룬 “비게 덩어리”와 “금릉 13채”는 어딘가 닮은데가 있다. “비게 덩어리”가 한 창녀의 희생으로부터 인간의 탐욕과 위선을 차가운 시선으로 묘사해 냈다면 “금릉 13채”는 더 장대한 스케일로 남경대학살이라는 세상의 시선이 집중된 대무대에 처한 여러 명 창녀의 희생으로부터 그 전대미문의 인류력사의 참극과 그 속에서 보여준 인간들의 인성의 빛갈을 현란하게 보여 주었다. 리기주의가 가치체계의 구성원리로만 기능하고 타인의 희생만을 요구하고있는 오늘의 사회상에서 소설은 그로서 또 다른 열독가치가 있다고 본다.   일전 전국인대 상무위원회 회의에서는 해마다 12월13일을 남경대학살조난자 국가 추모일로 지정했다. 그 소식을 접하고 서가에서 다시 꺼내 본, 력사적 시각으로 인류의 아픈 력사를 적절한 문체로 그려낸 작품을 읽으면서 그 어제를 반추해 본다.  [ 길림신문 ]  2014-03-15      ☞김혁 문학블로그:http://blog.naver.com/khk6699☜  
14    원숭이에게 바치는 헌사(獻辭) 댓글:  조회:2173  추천:12  2014-03-20
  김혁 독서칼럼 3   원숭이에게 바치는 헌사(獻辭) 영원한 고전 “서유기”  흑룡강민족춢판사에서 출간한 "서유기"     동년시절 아버지가 신발장을 고쳐 만들어주었던 내 서가에 꽂혀있는 책등중에서“보물 1호”는 단연 “손오공이 백골정을 세번 치다”라는 련환화였다. 동네애들이 감질내며 보여 달라 지청구를 들이대도 다른 그림책에 비해 절대로 빌려 안주던 책, 요즘처럼 아동을 상대로 한 읽을거리가 풍성하지 못해 어른들의 책을 빌어 독서욕구를 간신히 말리던 그 시절, 그야말로 독실한 신자가 경서를 어루만지듯  그 그림책을 보풀이 일도록 보고 또 보았었다.  그러다 완정하게 제대로 읽은건 1983년에 연변인민출판사에서 출간한 3권본 “서유기”를 읽고서였다.       어린시절 그림책으로 맨 처음 접했던 "서유기"     그동안 “서유기”를 그저 당승과 그의 세 제자들이 서역으로 불경을 얻으러 가는 모험담으로만 읽어왔었다. 하지만 단순히 현란한 환상으로 이어지는 려행이 아니라, 일상에서의 자기 극복과 구도의 과정으로 다시 읽은것은 근자의 일이다. 오승은의 천재적인 필끝에 의해 “서유기”에는 정말로 정채로운 인물들이 많이 나온다. 이들의 성격 또한 판이한데 오공은 용맹하지만 외골수이고 저팔계는 탐욕스러우면서도 간계한 일면이 있고 사승은 충직하지만 약간 미련한 구석이 보이고 당승은 독실하고 진지하지만 무능력자로 그려진다. 여기서 자연히 주인공인 손오공이라는 원숭이를 다시금 괄목(刮目)하게 되였다. 생명을 점지해준 부모가 누군지도 모르고 돌에서 태여난 원숭이, 치기가 넘쳐 흘렀던 시절 미후왕(美猴王)이라는 용모보다는 우미한 이름을 스스로 붙이고 그것도 모자라 “제천대성(齊天大聖)이라는 아름찬 작위를 스스로 내려 자신의 위력을 뽐내기도 한다. 근면이 결여 한지라 수보리조사의 문하에서 쫓겨난 뒤에도 약간의 재주와 도술(道術)을 믿고 룡궁의 보배 여의봉을 빼앗는가하면 하늘의 천도복숭아와 미주, 금단을 훔쳐 먹는등 온갖 난장판을 벌린다. 천지높은줄을 모르고 석가여래와 맞장뜨다가 “부처님 손바닥우의 손오공”이라는 천고의 속담의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 그러다 결국은 바위속에 갇혀버리는 형벌을 받게 되고 만다. 치기와 속안으로 우쭐대다가 꼼짝 못하고 다시 본래 태여났던 대로 돌이 되는 운명에 처하는것이다. 바위틈에 끼여 옴짝달싹 못하고 500년이라는 몇겁의 시간을 지내다 드디여 당승을 만난다.  이로서 손오공은 그 운명의 전환점을 맞는다. 그 이전까지만 해도 손오공은 부처의 손바닥에서 들까부는 잔나비에 불과했다. 그러다 언제 끝날지 모를 징벌을 온몸으로 겪고 서역으로 가는 길에서 구구 팔십일 의 난(難)을 거치고 갖가지 요괴를 퇴치하면서 결국 득도(得道)를 하게 된다. 이로서 “서유기”는 한 원숭이의 성장사(成長史)라는 보편적인 의미와 가치를 갖고있는 명작이기도 하다.     “서유기”는 남녀로소가 모두 좋아하는 뛰여난 고전이다. 요즘 판타지물의 흥행으로 “반지제왕”과 “해리포트”등 해외의 판타지물을 읽는 열조가 일고 있지만 이들은 그 수천년전에 나온 동양 최고의 판타지 “서유기”에 대해서 그처럼 열성을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서유기”를 단순한 랑만주의 색채로 충만한 신화소설로 여기며 단지 온갖 기괴한 요괴와 마귀들이 기묘하게 변신하는 렵기적인 이야기로만 감상하면서 한 걸음 더 깊이 들어가 손오공이라는 이 립체적인 인물에 대해 다 아지 못했다. 당승은 자기 일생을 걸고 서역으로 가서 불경을 갖고와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마음을 안고 길을 떠났고 그 와중에 시종 선두에서  그의 안위를 보필한 이는 손오공이다. 읽는 이들은 재미있어도 오공에게는 무지하게 어려운 고행의 나날들임에 틀림없다. 살이 타들어 가는 열기를 내뿜는 사막, 깊이를 알수 없는 누른 강에는 어김없이 푸른 털 요괴, 꼬리 아홉 개 달린 요괴,들이 칩복해 있으면서 손오공을 기다렸다. 당승 일행의 후견인격인 관음보살과 석가여래는 때때로 의도적으로 요괴들을 사주하여 일행의 길목을 지키게 만든다. 불법을 향해 떠나는 당승 일행을 시험에 들게 하는 것이다. 그 요괴들은 서천으로 구법의 길에 오른 이들의 허점만을 노려 파고 든다. 당승의 자비심, 저팔계의 탐욕, 사승의 어리석음등 허점들을 온갖 수단으로 파고든다. 공공연한 랍치와 협박, 부귀영화를 눈앞에서 흔들어대는 유혹, 살 떨리는 미인계 등등… 이러한 무차별 공격에 선두에서 대응한 이가 바로 손오공이다. 81난의 어려움에 당착한 오공, 하지만 손오공은 힘껏 변신술을 부리고 여의봉을 사납게 휘두르면서 악착빼기 요괴들을 하나 둘 섬멸해 간다. 손오공이 요괴를 물리치는 장면은 사실 구도자를 시험하는 심마(心魔)를 물리치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때로는 저돌적으로 보이는 오공이지만 취경의 의지와 우직함은 변함이 없다. 그는 자신의 노력으로 원숭이의 속태를 벗기 위해 싸우고 또 싸운다. 두려움과 고통과 힘듦을 직시하면서 말이다. 그는 스승과 팔계, 사승의 무정함과 몰리해에도 도망가지 않고 자기를 시험하는 81난을 스스로 한몸으로 받아가며 깨달음의 계기로 삼았다.  하기에 다시 읽어보면 “서유기”는 한 원숭이의 성장기요, 깨달음의 지난한 과정을 보여주는 구법기(求法記)로 읽을수도 있다.       갑오년 음력설을 맞아 새로 개봉된 "서유기"소재의 영화 "대뇨천궁"의 포스터     요즘 들어서도 “서유기”에 대한 독자들의 애대는 변함없다. 갑오년을 맞아 설기간에 개봉된 영화 "서유기- 대뇨천궁(大闹天宫)"이 흥행 수입 10억원을 돌파하는 기염을 토하면서 중국영화의 신화를 다시 쓰고 있다.  독자들의 “서유기”에 대한 세기를 넘는 지속적인 애대를 보여준다. 그동안 오승은의 이 경전은 손오공의 72가지 술법의 그 유명한 분신처럼 하나의 손오공 이야기가 끝나기도전에 또다른 손오공을 볼수있을 만치 끊임없이 반복되며 모든 세대를 거쳐 사랑받아왔고 수없이 번안되고, 리메이크 되여 왔다. 홀리우드의 영화 “아바타”를 보았지만 돈을 퍼부어 만든 그들의 상상력도 “서유기”에 비하면 부분에 불과하다. 이번에 리메이크 된 영화의 주목할점은 액션 스타 견자단을 비롯해 우리가 익숙한 주윤발, 곽부성등 톱스타가 대거 출연하는 막강 라인에도 있지만 바로 처음으로 되는 “서유기” 3D 영화 라는것이다. 3D물, 거리지각의 착시를 강화시킨 3차원영화 즉 립체영화이다. 디지털 미디어의 개발과 고선명 비디오 표준의 등장과 맞물려 요즘 크게 류행하고 있다. 3D물을 관람하듯이 여러 각도로 들여다보니 “서유기” 그리고 그 당당한 주인공 손오공이 다시 보인다. 누리꾼들은 재미삼아 오공에게 현대식 상장을 발급했다. 그 헌사를 불후의 고전속 주인공으로 인기가 변함없는 사랑스러운 원숭이에게 바친다. “손오공 동지는 불경을 구하는 신성한 사명을 위하여 백절불굴의 의지와 완강한 의력, 그리고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정신으로 하루와 같이 신근한 로동으로 수많은 요괴들을 물리쳤고 당승등 령도를 종경하고 저팔계등 동지들과 우의를 화목하게 하면서 서천으로 가서 불경을 구해 왔는바 그 성적이 돌출하여 이 상장을 발급함”     “길림신문”2014년 3월 9일 ☞김혁 문학블로그:http://blog.naver.com/khk6699☜  
13    이토 히로부미, 안중근을 쏘다 댓글:  조회:1993  추천:12  2014-03-20
[김혁 독서칼럼 2]   이토 히로부미, 안중근을 쏘다     민족영웅 안중근에 대한 책자는 많이 나왔고 나의 서가에도 적지않게 꽂혀 있다. 지난 1980년대 장춘의 송정환 선생이 집필한 인물전기 “안중근”, 조선족 시인 김파의 장편서사시 “천추의 충혼 안중근”으로부터 한국의 유명작가 리문렬이 안중근의 일대기를 소설화 한 장편소설 “불멸”에 이르기까지 안중근 관련전기물들을 픽션과 논픽션물로 여러권 소장하고 읽었다. 하지만 이 책은 접하는 순간 제목부터 강렬하게 나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았고 감질난 독서욕구를 불러 일으켰다.   책은 짧은 단편 력사소설로 포켓(袖珍)용으로 발간되였다. 몇해전 한국행차에서 이 책을 접했고 귀국하는 비행기내에서 단숨에 독파해버렸다. 몇십분내에 읽을수 있는 분량이였지만 읽고난뒤 그 느낌은 강렬했다. 책은 한국의 력사학자 리태진 서울대 국사학과 명예교수와 안중근의 모친 조마리아의 후손인 조동성 서울대 경영대 교수가 집필했다. 력사적 사실에 기반을 두고 소설형식을 빌었다.   안중근     안중근의 할빈 거사 30년 후인 1939년 10월 16일. 안중근의 둘째 아들 안준생은 일본이 이토 히로부미를 기념하기 위해 서울 남산 장충단에 지은 절에서 이토 히로부미의 아들 이토 히로쿠니에게 사죄의 머리를 숙인다. 이튿날 일본과 한국 전체가 발칵 뒤집힌다. 각 신문들은  톱소식으로 "안중근의 아들이 아비 대신 용서를 구했다!"라고 전했다. 안중근의 거사에 두손 번쩍 쳐들었던 전체 민족의 환성이 탄식으로 바뀌는 순간이였다. 안중근은 민족의 이름으로 조선침탈의 괴수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다. 이토는 죽었고 그로서 안중근은 나라 잃은 조국과 민족에 불세출의 영웅으로 남았고 력사에 큰 획을 그으며 잠들었다. 그런데 한국 근현대사 최고의 영웅의 아들은 대체 왜 이런 력사를 거꾸로 뒤집는 선택, 터무니없는 행각을 벌렸을가?   안중근이 중국 려순의 감옥에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뒤 일제치하에 남겨진 가족의 생은 분명 곤고했다. 큰 아들은 일곱살 어린 나이에 일제의 끄나불이 넘겨준 독이 든 과자를 먹고 죽었고 안중근 일가족이 김구선생을 찾아 상해로 가지만 림시정부가 일제의 추적을 받게 되자 급히 철퇴하면서 안중근의 유가족을 챙기지 못해서 둘째아들 안준생은 타지에 버려졌다. 책은 바로 그 둘째 아들 준생의 힘겨운 성장과정을 극화시켜서 독자들에게 보여주고있다. 가족은 돌보지 못하고 오로지 조국과 민족만 생각했던 아버지, 영웅 아버지를 둔 덕에 그는 평화와 행복도 누리지 못하고 일제의 탄압과 감시속에 촌보난행의 힘겨운 나날을 보낸다. 기억하지도 못하는 아버지 안중근의 아들로 태여나 형은 피살당하고 일제의 방해와 횡포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근근득식하면서 결코 쉽지 않은 삶을 살아간 그다. 그런 안준생을 향해 일제가 손을 내민다. 그 배후에는 력사를 기만하려는 일제의 야욕이 숨어있었다. 일제는 안준생이 다름 아닌 안중근의 아들이기에 “내선일체”에 리용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고 그 민족말살정책에 안준생을 끌어들이고자 악랄한 수법을 꾸몄던 것이다. 그만큼 안준생의 고뇌는 깊었다. 일제의 요구에 따르지 않으면 그 자신은 물론 어머니와 누이까지 죽이겠다는 협박이 그의 잔등을 윽박질렀다. 무릎을 꿇으면 일시 안정된 삶이 주어질터지만 그때로부터 친일파, 변절자라는 오명이 따라 붙을것이였다. 그러다 모진 세월을 견디다 못해 그만 아버지가 단죄한 그 민족의 원쑤의 후예에게 사죄의 머리를 숙인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죽은 이토 히로부미는 안중근과 우리 민족을 향해 복수의 방아쇠를 당긴 셈이다.   앞자리 맨 왼쪽 안준생, 오른 쪽이 이토히로부미의 아들 이토 히로쿠니   호부견자(虎父犬子: 호랑이 아비에 개 같은 자식). 안준생에 쏟아진 가장 큰 비난이다. 영웅 안중근의 삶과 그 뒤에 가려져 고난의 삶을 살아야했던 영웅의 아들의 엇갈린 간극을 보여준 소설, 하지만 책은 그에 대해 단죄하고 묻어버리기 보다 그를 그렇게 만든 어두웠던 과거에 대해 묻고 그 심연에 대해  극명하게 드러내 보이고 있다. 책을 읽어 내려가노라면 겨레를 더럽히는 선택을 강요받는 극단적인 비극에 던져져야 했던 한 심약한 령혼의 절규가 들리는 듯하다. 근년래 문체혁신에 고민하는 소설가들에 의해 대체력사(代替历史, Alternate History)물이라는 새로운 쟝르가 나왔다. "실제 력사가 다른게 전개되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라는 가정하에 그 뒤의 이야기를 재구성하는 가상소설의 한 기법이다. 제목만 보면 대체력사소설처럼 보일 소설, 하지만 그런 현학적인 문체로 쓰지않고 담담히 내려간 이야기가 독자들에게 외려 더 강한 메세지를 던져주고 있다. 요즘들어 섬나라의 몰지각한 지도자들에 의해 우경화의 행보가 더 우심화되고 중국 할빈의 역두에 드디여 안중근 기념관이 설치된 시점에서 다시 읽은 책, 작은 책자가 주는 울림은 그래서 더욱 강했다.   “길림신문” 2014년 2월 15일       안중근의 의거를 재현한 유화(김봉학 그림).      ☞김혁 문학블로그:http://blog.naver.com/khk6699☜
12    말잔등에 실려온 휴머니즘의 감동 댓글:  조회:1694  추천:11  2014-03-20
[김혁 독서만필(1)]   말잔등에 실려온 휴머니즘의 감동     -중편소설 《군마(战马)》       소설 《군마》의 중국판 표지     갑오년 말띠의 해에 읽을만한 책을 추천하라면 아마 올 한해의 주인공이요 용맹하면서도 진취적인 기상인 말에 관한 책이 가장 적격일것이다. 영국 작가 마이클 모퍼고의 《군마(战马)》(남해출판사)는 말에 관한 픽션작품중에서 단연 수작이 아닐가싶다. 저자 모퍼고는 지금까지 100여권이 넘는 작품들을 발표해온 탁월한 이야기군이자 영국의 계관 아동문학가이다. 또한 그의 대표작 격인 《군마》는 30년간 전 세계 독자들에게 꾸준한 사랑을 받으면서 영국을 대표하는 문학작품으로 인정받아왔다. 소설은 지난해 《신들러 명단》으로 널리 알려진 세계적인 거장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에 의해 영화로 제작, 제84회 오스카 영화상에서 최우수작품상, 촬영상, 미술상, 음악상 등 총 6개 부문에 선정되여 전 세계 언론과 팬들의 이목을 이 작품에 집중시켰다. 영화의 흥행에 때맞추어 출시된 소설을 읽었다.       할리우드에서 각색한 영화 "군마"의 한 장면     영국의 한 자그마한 농장, 술 취한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온 태여난지 여섯달도 안된 망아지 조이는 순박하고 수줍음 많은 열세살 소년 앨버트와 운명적으로 만난다. 늘 술에 절어있는 주인보다 그 아들 앨버트와 교감하며 조이는 건장한 말로 훌쩍 자란다. 앨버트는 조이에게 각별한 애정을 보이며 마치 피를 나눈 형제처럼 많은 시간을 함께 한다. 1차세계대전이 시작된 어느 여름날, 폭우때문에 농사를 망치고 돈이 궁했던 아버지는 조이를 기병 장교에게 팔아버린다. 조이는 그렇게 전쟁터 한가운데로 끌려가게 된다. 불비가 쏟아지는 전장에서 조이는 군인들과 함께 적진을 향해 돌진하기도 하고 진창길에서 대포를 끌기도 하고 부상병들을 야전병원으로 옮기기도 하면서 평범한 농장의 말에서 차츰 용감한 군마가 되여간다. 조이가 전쟁터에 끌려갈 때는 어렸던 앨버트가 그후 자원입대한다. 수의가 되여 전장에 나선다. 앨버트는 폭탄의 충격으로 잠시 시력을 잃는다. 앞을 보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애마(愛馬)의 생김새를 세세히 설명하면서 찾고찾아 결국 극적으로 조이와 해후한다.       소설 《군마》의 저자 마이클 모퍼고     작품속에서 말은 독보적인 주인공이다. 이야기는 담담하게 조이의 서술에 의해 진행된다. 인간이 아닌 말의 립장에서 서술하기때문에 그의 주변에서 일어난 일들에 대해서 비교적 담담하게 전하는데 이것이 바로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이다. 저자는 화려한 문체가 아닌 그저 일기를 쓰듯이 써갔다. 그럼에도 지루하지 않고 계속 무언가 가슴을 울리게 한다. 그건 아마도 조이의 커다란 눈망울이 담아낸 진실성이 아닐가싶다. 작품을 읽으면서 붉은 갈기를 날리며 코잔등에 허연 표시를 갖고있는 멋진 말 조이에게 깊이 빠져들었다. 읽는 내내 조이의 무사귀환과 주인 앨버트와의 조우를 빌었다. 따뜻한 작품이였다. 전쟁의 참상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면서 그 안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인간들의 삶에 포커스를 맞춰 그 모습들을 아름답게 그려보였다. 절망속에서도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가슴 뭉클한 이야기들이 작품의 행간에 마구간의 건초향기처럼 깊게 배여있다. 전쟁의 배경은 어둡고 질척하고 공포스러웠지만 군마 조이는 그 연무를 뚫고 잔등에 진한 휴머니즘의 감동을 싣고 독자들앞으로 다가왔다.   [ 길릴신문 ]  2014-02-01    ☞김혁 문학블로그:http://blog.naver.com/khk6699☜  
11    령혼의 표류기 댓글:  조회:2730  추천:13  2013-05-14
소설가 김혁의 독서칼럼 (11)   령혼의 표류기 - 오스카상 원작소설 “소년 파이의 기이한 표류”       지난 2월, 미국 로스안젤스에서 열린 제85회 오스카 시상식에서 리안 감독의 “소년 파이의 기이한 표류 (少年派的奇幻漂流)”가 감독상, 음악상, 촬영상, 시각효과상 등 총 4개 부문의 트로피를 앗아가며 최다 수상작으로 떠올랐다.     영화의 흥행과 함께 “도가(都家)집 강아지”같이 눈치 빠른 출판사에 의해 불과  한두달 사이에 인차 번역 출판된 따끈따끈한 원작소설을 읽었다.   인도에서 동물원을 운영하며 살아가던 주인공 파이의 가족은 더 나은 미래를 기약하며 카나다로 이민을 떠난다. 온갖 동물들을 싣고 카나다로 떠나는 배에 탑승했던 가족들은 상상치 못한 거대한 폭풍우를 만나게 된다. 배는 침몰하고 가까스로 구명보트에 탄 소년 파이만이 목숨을 건지게 된다.   구명 보트에는 소년외에도 다리를 얼룩말과 하이에나, 오랑우탕 그리고 벵갈 호랑이 한마리가 전설속 “노아의 방주”에서처럼 함께 몸을 싣게 된다.   시간이 갈수록 배고픔에 허덕이는 동물들은 서로를 공격하고 결국 소년과 벵갈호랑이만이 배에 남게 된다.    이로부터 허허바다 한가운데 좁은 구명보트에 한마리의 호랑이와 함께 남게 된 인도소년의 놀라운 이야기가 시작된다.   작품은 2002년에 영국의 가장 권위있는 소설상인 제34회 부커상을 수상했다. 소설은 출간되자 곧 전 세계 40여 개국언어로 번역되였고 부커상 최대 베스트셀러를 기록했다. 1963년 에스빠냐에서 카나다 외교관의 아들로 태여난 저자 얀 마텔은이 작품으로 단숨에 세계적인 작가로 발돋움했다.   저자 얀 마텔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내용의 작품이였다. 극적인 운명앞에서 신을 숭배하고 자연을 경외하는 소년은 놀라울만큼 령리하게 지혜롭게 그리고 강인하게 살아남는다. 난파선 쪼박들을 무어 또 하나의 구명선을 만드는가 하면 비가 오면 물을 받아서 갈증을 달랬고 태양증류기를 통해 물을 만들어내기까지 한다. 채식을 고집하던 식성이 무엇이든 다 먹을수 있게끔 변하기도 한다. 지어 자기와 한 구명선에 탑승한 흉악한 호랑이를 마술단의 조련사처럼 길들인다. 몽당연필로 공구서적의 여백에 일기를 써가며 갈증과 공포, 그리고 사무치는 외로움을 이겨낸다.   풍랑에 뒤집혀진 난파선에서 벗어난 어린 소년이 좁은 배에서 그것도 맹수인 호랑이와 기묘한 공생 관계를 유지하며 8개월에 가까운 시간을 살아남아서 륙지까지 다닿는다. 거기까지만 해도 책은 충분히 흥미롭다. 하지만 저자는 책속에서 단지 흥미로운 표류담에만 그친것이 아니다.   동명 영화의 한 장면     사실 표류담을 다룬 명작도 적지않다. “로빈손 표류기”, “파리대왕”, “15소년표류기”… 하지만 이 작품은 단순한 생존의 이야기이기를 거부한다. 상기 작품들이 건드리지 못했던 근원적인 문제에 대한 질문까지 소설은 던지고있다. 기독교, 이슬람교, 힌두교를 동시에 믿는 한 소년의 사유와 모험을 통해 “삶을 어떻게 볼것인가”라는 궁국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한다.   책에는 놀라운 은유와 상징으로 가득하다. 여기서 주인공을 죽이고도 남았을 호랑이의 존재가 주는 은유는 대단하다. 호랑이때문에 주인공은 한눈 팔새도 없이 경계를 갖추어야 했고 그 늘 깨여있는 각성이 그를 오히려 공포와 권태에서 늘 깨여있게 했다. 호랑이는 파이을 살게 하는 힘, 즉 죽고 사는 문제까지도 잊게 만드는 삶에서의 고난, 고통, 어려움, 재앙, 적이였다. 태평양에 표류한 소년과 호랑이의 관계를 통해 작자가 궁극적으로 말하고 싶은 이야기는 바로 인생이다. 여기서 바다는 인생에, 폭풍우는 절망에 비유되며, 배에 탄 다양한 동물들은 인간군상을 은유하고 있는것이다. 이렇듯 인간과 함께 위기에 빠진 호랑이를 통해 작자는 인간과 동물의 교감, 인간과 자연의 공생을 이야기 한다. 소설의 각색으로 오스카상을 수상한 중국인 감독 리안   책은 구명보트에 간단없이 닥쳐오는 파도처럼 인간의 실존을 끊임없이 건드리고 있다. 이 소설을 읽노라면 생존을 위한 인간의 처절한 몸부림, 그리고 그속에서 보여주는 나약함과 강인함을 모두 경험할수 있지않을가 싶다. 또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과연 무엇으로 부터 구원을 받으려 하며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하는지 뒤돌아보게 된다.   파이는 주인공의 소년의 별명이다. 수학에서 원주률을 뜻하는 무한소수로 지어진 별명. 그 무한한 원주률처럼 쭈욱 이어지는 상상초월의 이야기들, “우리는 왜 살고 있으며 어떻게 살아야할까?” 라는 의문이 끊이지 않는 요즘 소설은 그 읽은 이들에게 그 경이로운 답을 말해주고 있다. 연변일보 2013년 4월 26일    ☞김혁 문학블로그:http://blog.naver.com/khk6699☜     리안감독의 영화 ost    
10    영웅이 없는 시대, 영웅을 읽다 댓글:  조회:2657  추천:11  2013-04-17
    소설가 김혁의 독서칼럼 (10) 영웅이 없는 시대, 영웅을 읽다 - 시바료타로의 "류방과 항우"   지난한해 중국의 영화가에서는 한 가지 소재의 영화와 드라마가 여러차레 겹쳤다. 비평가들의 인적자원에 대한 랑비라는 혹평에도 유명 감독 배우들이 커다란 흥심을 보이며 만든 제재는 바로 초나라와 한나라의 전쟁을 텍스트로 한 작품들이였다. 영화로는 려명, 류엽, 장진, 오언조등 중국과 향항, 대만의 톱스트들이 대거 등장하는 "홍문연(鸿门宴)"과 "왕의 성연(王的盛宴)”이 나왔고 거기에다 “신 삼국연의”의 고희희감독의 80부 드라마 “초한전기(楚汉传奇)”도 브라운관을 달구었다. 극장가가 온통 류방과 항우의 이야기로 흥건했던 한해였다. 영화들을 보고나서 시바료타로의 "류방과 항우"를 다시 꺼내들었다. 인류사를 수놓은 숙명적 라이벌은 수없이 많았지만 장대한 스케일과 빛나는 인간적 매력, 극적인 반전으로 대미(大尾)를 장식한 류방과 항우를 따를 라이벌을 달리 찾기도 어려울것이다. 그래서 진말한초의 천하대란 한가운데서 제국의 패권을 놓고 다퉜던 두 영웅의 대결 즉 “초한지”는 삼국지와 더불어 내노라하는 작가들이면 저저마다가 다루고싶었던 소재의 상위권에 등극했다. 그중에서도 압권은 일본작가 시바료타로(司马遼太郞)의 “항우와 류방”이다.          시바료타로     일본의 “국민작가”, “동양 력사소설의 거목”으로 정평이 나있는 시바료타로는 본명이 “후쿠다 사다이치(福田定一)”로 1923년 일본 오사카 후쿠오카현에서 태여나 오사카외대 몽골어과를 졸업하고 처음엔 저널리스트의 길을 걷다가 그후 본격적인 작가의 길을 걷게 되였다. 살아 생전 백여부의 소설과 평론, 에세이, 대담집 등을 발간했는데 그중 1백만부이상 판매된 작품만해도10종이 넘는다. 국가, 종교, 환경등 제분야에 걸친 깊이있는 학문적 견해들뿐 아니라 력사소설을 통해 2차 세계대전후 일본이 나아갈 길과 일본인의 원형을 제시해준 인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지난 1996년 시바 료타로가 이순의 나이에 타계했을때 일본의 매체들은 사설을 통해 “국사(国士)가 돌아가셨다”라며 그의 위치를 높이 승격시켰다. 력사 소설를 집필할 때마다 “트럭 하나분의 자료를 가지고 글을 쓴다”고 할 정도로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그의 소설들은 력사의 큰 흐름을 주도한 인물들에 대한 뛰여난 통찰력과 묘사로 전세계 독자들의 깊은 사랑을 받았다. 초, 한의 대결과 한 제국의 성립을 다룬 재래의 거의 모든 저술은 한무제 시대의 력사가 사마천이 저술한 “사기”에 근거를 두고 있다.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초한지의 구성과 진행을 보면 진시황은 아비규환의 전국시대를 통일에로 이끌지만 그의 폭정은 다시 란세를 다시 부르고 결국 류방과 항우라는 두 영웅을 세상에 불러낸다. 시바료타로는 이 소설의 집필을 위해 역시 철저한 준비를 했다. 사마천의 “사기”를 거듭 정독한것은 물로 풍부한 사료를 찾기 위해 전쟁이 치러졌던 중국의 여러 전적지를 둘러보고 락양의 곡물 저장창고에까지 직접 들어가 보는등 눈으로 보고 듣는 작업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고한다. 저자는 사마천의 혼이 되여 류방과 항우가 뛰놀던 시절의 풍경과 사람들의 모습을 재구성하여 소설화하고 있다. 우선 시바료타로의 "항우와 류방"은 특히 캐릭터의 새로운 창조라는 측면에서 매우 뛰여나다. 한시대의 력사적 사실들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변주해 내고있는데 그렇게 되 살아난 인물들은 선이 분명하다. 따라서 그들의 그 행동과 감정을 굴곡속에 이끌어가면서 독자들로하여금 그들의 운명에 환호하게 만들고 슬퍼하게 만든다. 처음부터 류방은 항우의 적수가 아니였다. 모든 면에서 류방은 항우보다는 한 단계 아래 있었다. 항우는 초나라의 반듯한 귀족의 집안에서 출생하였지만 류방의 출신은 보잘것없는 천민이였다. 그의 원명은 “류계(刘季)”라고 불렸다. “계”란 넷째 아들 또는 막내라는 뜻으로 변변한 이름도 없이 “류씨네 막내놈” 정도로 통했다는 이야기다. 그 아버지 이름인 류태공도 “류씨 할아범”, 어머니의 이름도 “류씨 할멈”이라는 뜻밖에 없어 류방이 얼마나 변변찮은 집안 출신인지 알게 해준다. 게다가 류방은 일도 안 하고 주색잡기로 소일하는 백수건달이였다. 그래서 나중에 왕이 되였을 때까지도 거칠게 살던 버릇이 남아 있어서 귀족들을 곤혹스럽게 했다고 한다. 류방 스스로도 그것을 인정하고 항우를 무서워하였다. 처음부터 항우와 류방은 철저하게 대비되는 인물이였다. 항우는 뼈대있는 가문 출신에 머리도 총명하고 힘도 천하장사였던 빼여난 인물이였다.  20대의 젊은 나이에 천하를 놓고 장정에 나선다. 류방은 동네 건달 출신에 일자 무식이며 힘도 없었다. 그가 천하쟁패에 나선 것은 40살의 나이. 그러나 결국에 승자는 류방이 된다. 류방은 결코 도덕심이 강한 인물은 아니였다. 탐욕도 있었고 녀자도 밝혔다. 하지만 그에게는 사람이 있어 늘 그의 주위를 감쌌다. 류방이 항우보다 나은 점이라곤 포용력이였다. 어떻게 보면 그 포용력도 자기가 보잘것 없다는데서 생겨난것일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많은 사람이 필요하였고 그들을 공경할수밖에 없었을것이다. 그래서 곁에는 그후 고사에도 빈번히 나오는 뛰여나고 충성스러운 인물들이 많았다. 처음부터 류방을 따랐던 소하, 번쾌, 하우영은 물론이고 그후 천하의 충신 장량, 한신까지도 얻을수 있게 되였다. 이것이 절대 강자인 항우를 이길수 있는 밑거름이 되였다. 항우는 자신의 재주만 믿고 인재들을 소홀히 했으나 류방은 그런 인재들을 끌어들여 점점 힘을 불려서 마지막에 항우를 쓰러뜨릴수 있었다. 이런 평가는 일본작가의 소설적 상상력에만 근거한것이 아니다. 사마천(司马迁)의 “사기”를 보면 초, 한 전쟁의 최종 승리를 축하하는 자리에서 류방은 스스로 자신의 승인을 이렇게 분석한다. “나는 행정에서는 소하(蕭何)에 못 미치고 지략에서는 장량(张良)에 못 미치고 군사지휘에서는 한신(韓信)에 못 미친다. 그러나 나는 이 모두를 부릴수 있었다. 반면 항우는 범증(范增) 한 사람도 제대로 부리지 못했다. 그래서 내가 승리한것이다.” 이렇게 류방이 이기고 항우가 진것은 일종의 “사필귀정”, 두 사람의 인성을 놓고 연구가들은 리더십 리론에서 사례연구를 하기도 했다.   영화 "홍문연" 포스터 시바 료타로를 읽는것은 이렇듯 여러모로 재미있는 경험이다. 그에게는 그만의 사관이 있고 그가 펼쳐놓는 여러 장치들, 가령 력사적 고증이나 인물에 대한 그만의 해석 솜씨, 우리가 익숙히 아는 사건에 대한 의미 재부여 등을 갖추고 있다. 우연적이고 소설적인 상상이 가미되여서 이야기를 끌어가지만 창의성과 치밀함은 물론 사적인 사실의 추론을 통한 그 나름대로의 인간 분석이 참 멋있었다. 제목부터 시사하는 바가 크다. “류방과 항우”가 아니고 “항우와 류방”이다. 류방이 승자이고 항우는 패자인데 항우를 앞자리에 놓았다. 어떤 의미에서 이 책의 주인공은 "류방"이 아니라 "항우"이다. 시바 료타로는 승자가 아닌 패자로서의 항우에 좀더 매력을 느끼고 있었다. 책의 전개 역시 류방이 어떻게 승리했는가하는것보다는 항우가 어떻게 패배하게 되였는가에 중점을 두고 있다. 항우는 패배했기에 력사의 뒤안길에 사라져야할 사람이였다. 하지만 오늘날 그는 오히려 더 추앙의 대상이 된다. 항우의 그 기개와 그 패배가 작품들마다에서 예술로 승화되였다. 중국의 국수(国粹) 경극에서 레퍼토리 종목인 “패왕별희”가 로 바로 그것이다. 싸움에 나가서는 용맹을 떨치며 어떠한 상황에서도 당당히 맞붙어 굴하지 않는 기개를 보였다. 죽는 순간까지 그러한 태도를 보이며 죽어갔다. 하늘이 버린 영웅을 후세사람들이 기리고 있는것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대업을 위해 비굴함도 마다하지 않았던 철저한 현실주의자 류방과 기개와 힘을 갖춘 대장부의 전형 항우의 두 면면을 읽을수 있었다. 천하 용력을 자랑하던 귀족 출신의 항우가 보잘것 없는 미천한 류방에게 결국은 패하는 력사적 사실은 비단 우리에게 소설적 재미만을 선사하는것이 아니다. 소설은 춘추전국에서 진 한으로의 전환기에 그 소용돌이를 해처나간 인물들의 개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처세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즉 고대의 물로서 현대의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계수해 주고있는것이다. 사실 류방과 항우의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우리 삶 속에 이미 깊이 침투해있다. 자고로 가장 서민적인 게임이였던 장기놀이가 그에서 비롯되였기 때문이다. 초나라와 한나라의 양보할 수 없는 한판 승부. 영웅 항우와 류방이 천하를 손에 넣기 위한 고전(苦战)- 두 영웅의 파란만장한 각축전을 우리는 장기판을 통해서 대리전을 치루어 온것이다. 때문에 일본작가의 작품일지라도 우리에겐 전혀 낯설지 않게 읽힌다. 요즘의 드라마속에 종종 등장하는 력사적 사실은 야사를 내세워 진실을 가장하고 있다. 진실이 아니란 점에서 의사력사(疑似历史)이다. 여기서 철저한 고증을 거친 사마료 타로의 작품이 다시금 읽혀진다. 그리고 오로지 "삼국연의"등 몇부만이 력사소설 대접을 받는 우리의 폭이 무척이나 좁은 독서풍토에서 시바 료타로의 품격있는 력사소설을  만날수 있다는건 애독자로서는 크낙한  행운이다.   “연변일보” 2013년 4월 15일       ☞김혁 문학블로그:http://blog.naver.com/khk6699☜  
9    아Q, 블랙 코미디적인… 댓글:  조회:2792  추천:15  2013-04-03
소설가 김혁의 독서칼럼 (9) 아Q, 블랙 코미디적인…      몇해전의 어느 여름, 서울행차를 했던 나는 서초구 예술의 전당에서 행복한 고민에 빠져있었다. “맘마미아”, “브로드 42번가” 등등 세계 유명 뮤지컬들이 한낮에도 한창 공연되고 있는데, 변강의 오지에서 뮤지컬이란 감상도 할수없는 궁핍한 문화풍토에서 온 나로서는 눈앞에서 연줄로 펼쳐지는 뮤지컬의 향연에 어느것을 보아야할지 량수집병 (两手执餠) 가라사니가 서지 않았던것이다. 그렇게 우왕좌왕하고 있는 나의 시선을 대번에 사로잡는 포스터가 있었다. 바로 로신의 "아Q정전"이였다. "아Q정전이 뮤지컬로 나오다니"? 물론 로신의 작품중 “축복”, “약”등 작품을 비롯해 "아Q정전"도 오래전에 이미 영화로 각색되여 중국관중들과 만났다. 하지만 뮤지컬로 된 아Q는 처음이였다. 가격이 엄청난 입장료를 냉큼 사들고 부푸는 가슴을 눅잦히며 극장으로 들어갔다.     "아Q정전".  너무나 익숙한 작품이다. 8,90년대 중소학교 교과서에는 로신의 거의 전부의 대표작들이 실려있어 우리는 비교적 일찍 대문호 로신을 접할수 있었다. "아Q정전"은 로신이 1921년 “신보부간(晨报附刊)”에 련재했던 중편소설. 중국인의 렬근성에 대해 희화화(戏画化)한 이 작품으로 로신은 문단에서 작가적 지위를 굳혔다. 로신은 어리석고 불썽사나운 아Q의 형상을 통해 소용돌이치는 근대화의 과정속 중국 인들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핍진하게 그리고 유머스레 그려 보였다. 이러한 신랄하게 풍자적이고 야유적인 비판속에는 당시 사람들의 자주적인 민족의식이 결여된 슬픔을 담고 있으며 그러한 교훈으로부터 민족의 병근(病根)을 도려내고 치유함으로써 다시 민족의 결의를 촉구하는 주제가 글의 기저에 강하게 흐르고 있다. 한국 국립현대무용단이 만든 뮤지컬 "아Q”는 로신의 ‘아큐정전’을 모티브로 현대무용을 접목한 퓨전식 뮤지컬이였다. 로신의 작품이 백여년이 지난 오늘에도 또 해외에서 재해석되여 새로운 형식의 감동을 전달하고있었다.   한국 국립현대무용단의  뮤지컬 "아Q” 몇해전 로신의 몇몇 작품을 교과서에 그냥 게재해야하나 말아야하나하는 쟁명이 일면서 "왜 아직도 로신일까?" 하는 물음이 나온적있다. 이에 중국의 학계와 문단은 “로신은 이미 인류의 고전이고 그가 없이 중국 현대혁명사와 문학사, 학술사를 론할수 없다”고 명료하게 답했다.   문학가이자, 사상가, 교육자로서의 로신은 격동기를 온 몸으로 살다간 고뇌의 중국인 지성을 대표한다. 구질서가 붕괴하고 새로운 문화가 뿌리를 내리는 력사적인 과도기에 그는 문학혁명을 주도하며 조국의 근대화에 앞장섰던 시대의 선각자였고 20세기 내내 중국 문학의 중심부에 강건하게 서온 인물이였다. 로신의 전 생애와 맞물린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엽의 중국사회는 암흑의 먹구름으로 뒤덮인 시대였다. 아편전쟁이후 계속 심화되여온 정치, 사회적 혼돈과 경제적 궁핍으로 인해 그리고 근대화의 문명을 거부하고 발전을 저해하는 중국 봉건사회의 유교적인 폐습으로 인해 중국 사회와 중국민족은 병상에서 단말마로 신음하고 있었다. 이러한 곰삭은 국민정신을 계몽하하기 위한 문화운동이 진보적인 지식인들 사이에서 일어나게 되고 드디여 1919년 5•4운동이라는 희망의 불꽃이 중국 전역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로신은 그 선두에서 신문화운동을 주도하며 민족의 낡은 사상과 의식을 비추고 불태우는 홰불을 높이 추켜들었다. 문학을 통해 봉건례교를 비판하고 국민정신을 개조하고 인간의 참다운 개성과 자유를 추구하고자 했던 로신은 문학이 무엇을 할수 있는가를 항상 고민했다. 어디까지나 현실에 뿌리박은 강인한 사고를 거듭하면서 1936년 세상을 떠날때까지 왕붓을 놓지 않았다. 청말의 몰락하는 가문에서 태여나 의술을 배우고저 일본류학을 떠났지만 어느 수업시간 일본선생이 돌려준 환등에서 중국인을 처형하는데도  멍한 표정의 구경꾼들은 모두 머리를 땋아내린 멍한 표정의 중국인들임에 충격을 받고 의대를 그만두고 펜으로 "중국인의 렬근성(劣根性)"을 해부하고 치료하겠노라!고 마음 먹은 로신이였다. 그가 저서 "납합"에서 갈파했듯이 "무릇 어리석고 약한 국민은 체격이 제아무리 건장하고 튼튼하다 하더라도, 하잘것없는 본보기의 재료나 구경꾼밖에는 될수가 없다." 그리고 로신이 구한 행동반경의 답은 문학이였습니다. 어리석은 국민을 치료하는데는 신체를 고치는 의학이 아니라 정신을 고치는 의학, 즉 문학이 필요하다는 판단이였다. 그렇게 펜을 그루박아 중국의 낡은 전통을 철저히 공박(攻驳)하는 "광인일기(狂人日记)", 구지식인의 몰락으로부터 경향심을 불러일으킨 “공을기(孔乙己)”, 무지로 인한 중국인의 병증을 진맥한 “약”, 농촌생활의 암담함과 피폐함을 보여준 “고향”등의 시대 고발적인 일련의 소설들과 고도의 상징과 날카로운 통찰력을 핵심으로 한 “촌철살인”의 잡문으로 중국문학사에서 확고부동한 위치를 점했다. 우리 조선족문단의 김학철 선생이 경모해 마지않으면서 역시 많은 필봉을 돌렸던 쟝르였던 로신의 잡문은 민중의 무지몽매함과 아큐식의 정신승리법을 비판하면서 시대의 암흑에 맞선 투쟁에서 결코 물러서지 않았다. 중국인들의 문제점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불굴의 투쟁정신으로 외세와 봉건세력과 마주했다. 그의 작품들은 말 그대로 "시대를 향한 비수이자 투창"이였다. 이렇듯 로신은 평생을 바쳐 봉건의식에 젖어 있던 무지한 중국인을 일깨우기 위해 로심초사했다. 그러한 그이의 학문과 정신을 높이 기리여 그가 타계했을때 중국인들은 그의 시신을 "민족혼"이라고 쓴 비단으로 감싸 깊은 추모의 뜻을 표했다. 그와중에 무엇보다도 로신의 이름을 중국 근대문학의 선구자로서 후세에까지 길이 남을수 있게해준 작품은 바로 “아Q정전”일것이다. 로씨야 작가 고리끼가 “아Q정전”을 읽고 눈물을 흘렸다는 유명한 일화도 있듯이 로신의 소설은 여러가지 언어로 번역되여 세계명작의 반렬에 올랐다. 작품속의 아Q는자기 자신의 현실적인 위치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자기 만족에 취해 있는 주인공의 모습으로 신해 혁명 직후 민족의 위기 속에서도 자아의식에만 사로잡혀 있던 중국인들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소외되고 탈락되고 짓눌린 자의 모습을 집요하게 그려낸것이다. "아Q정전"에는 블랙 코미디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의 유머가 전반 작품을 관통한다. 그러나 웃음기를 싹 거두고 진지하게 풀어내는 문제의식은 철저한 주제 의식 아래 치밀하게 전개된다.  타성에 젖어 사명감도 목적의식도 없이 무기력하고 비겁하게 살아가는 아Q는 아무리 경멸을 당하고 조롱을 당해도 대항조차 못하지만 마음속에는 자신이 이겼다고 합리화하는 일명 “정신 승리법”을 지니고 있다. 또한 강한 자에게 약하고 약한 자에게 강한 미래도 없고 현재도 없이 어영부영하면서 왜곡된 가치관으로 운명에 맡긴 한탕주의 인생을 살아가는 전형이다. 이러한 아Q의 성격은 심각한 현실적 의의와 력사적 의의를 내포하고 있다. 작품이 련재되던 당시 많은 이들이 아Q라는 인물은 자기를 빗대고 고의로 풍자한것이 아니냐며 흥분했다고한다. 아Q는 오늘날의 우리의 모습과도 매우 닮아 있다. 오만과 독선에 빠져 타인을 폄하하는 본능적인 마음이나 힘센 자들 앞에서 굽실거리는 공리적인 자태. 예나 지금이나 이런 인물은 주변에 흔하디 흔하게 널려 있고그러한 광경들은 우리 주변에서 익숙한 풍경이다. 죽을 때까지 왜 죽어가는 지도 모르는 자기 합리화와 자기 착각에 빠져 사는 주인공 “아Q”, 여기에서 자기 성찰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깨닫게 한다. 우리의 심리적 리기심을 치부까지 드러내 보이며 속물적인 근성에 젖어 있는 시대의 락오자(落伍者)에 대한 로신의 꾸중. 지금의 우리에게도 이같은 꾸중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책을 읽은지 오래된 오늘까지도 갈마든다.   “연변일보” 2월 4일  ☞김혁 문학블로그:http://blog.naver.com/khk6699☜        
8    춤추는 저가락 댓글:  조회:2859  추천:14  2013-01-08
소설가 김혁의 독서칼럼 (8) 춤추는 저가락 - 료리전문서 “혀끝우의 중국” 김  혁     한 그릇 음식에 담긴 사람들의 추억은 과연 어떠할가? 달착지근 밥 한 보시기, 따끈한 국 한 숟가락,  매운 술 한 모금, 새콤한 김치 한 저가락에 우리들은 얼마나 많은 추억과 웃음과 눈물을 떠올릴가? 주방에 평생을 담근 녀인네가 아니지만 료리전문서 “혀끝우의 중국”을 감흥에 넘쳐 뒤적여 보았다. 지난해 광명일보출판사에 의해 출간된 “혀끝우의 중국”은 미감뿐이 아닌 우리들의 오감을 지극히 자극한다.  그야말로 저가락을 춤추게 하는 책이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제작된 음식문화에 관한 7부작 다큐멘터리를 다시 청중뿐이 아닌 독자층을 두텁게 아우를 양으로 책자로 묶어 내놓았다. 대륙을 종횡무진하면서 13개월동안 제작한 이 다큐멘터리의 인기는 가히 폭발적이였다. 제작진 100여명이 중국 전역 60개 지역을 돌며 저저마다의 특색을 가진 음식의 제작과정 그에 깃든 일화들을 예술성 짙은 화면으로 꾸며 맛의 향연, 시각의 향연을 펼쳤다. 소개된 음식은 전국에서 이슈를 만들며 판매량이 솟구쳤다. 평균 시청률도 다큐멘터리로는 수년만의 최고를 기록했다. “나에게 인간을 정의하라면 ‘불로 료리하는 동물’이라 하겠다. 동물도 기억력과 판단력이 있으며 인간이 지닌 능력과 정열을 모두 어느 수준까지는 가지고 있다 그러나 료리하는 동물은 없다. 음식을 맛있게 차려먹는것은 오직 인간만이 가진 능력이다. 모든 인간은 직업에 관계없이 어느 정도는 료리사다. 자신이 먹는 음식에 스스로 양념을 친다는 점에서 말이다.” 미국 하버드대학 교수이자 진화인류학자인 리처드 랭엄은 “료리 본능”이라는 저서에서 이렇게 말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음식에 대해 가벼이 볼 민족이 있으랴! 이처럼 인류의 생성과 함께 한 음식에 관한 이 세상의 식탁과 그에 관한 이야기는 해도해도 끝없을것이다. “당신이 무엇을 먹는지 말해주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겠다.” "식사의 쾌락은 다른 모든 쾌락이 사라진후에도 마지막까지 남아 우리에게 위안을 준다." “새로운 료리의 발견은 새로운 천체의 발견보다 인류의 행복에 더 큰 기여를 한다.” 세계각지의 음식에 관한 명언들이다.  그만큼 “민이식위천(民以食为天)”이라는 위대한 금언(金言)을 탄생시킨 중국, 지난세기 60년대 “대식품 시절”이라는 굶주린 고난의 세월을 경유해온 중국이기에 음식에 대한 중국사람들의 맛망울은 더 크고 더 벼려져 있다고 해야할것이다. 중국인의 식탁은 그 “대륙 스타일”에 걸맞게 풍성해 상상할수 없을 정도로 많은 료리가 있다. 일설에 의하면 중국에는 약 1만5000 가지의 료리가 있으며 1급 주방장이 평생 익힐수 있는 료리수는 1000 종에 불과하다고 한다. 모든 료리를 익히기 위해서는 료리사의 15대(代)까지 전해내려와야 한다고한다. 그런 “음식왕국”의 이야기인지라 청중들의 호응도는 컸다. 또 다큐멘터리가 끝나자 출판 요구가 비발쳤다. 출판권을 따내기 위해 중국의 대형 출판사 200여 곳이 경쟁을 벌렸다. 출간전 인터넷에서 만 이미 20만권이 주문 예약됐다. 지난 7월초 정식 출간이후 한달이 안돼 판매량이 100만 권을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다. 베스트셀러였던 “스티브 잡스 전기”의 판매 열기를 훨씬 릉가했다. 책자에서는 그 색감좋던 화면이 도편으로 그냥 펼쳐지는 외에 명료한 료리 레시피가 세세히 적혀있어 료리애호가들에게 커다란 도움을 준다. 책은 또 다양한 언어로 번역 중이라 한다 책에는 밀과 쌀, 콩등으로 만드는 중국인들의 주식을 소개하면서 각 음식 주재료의 산지 및 조리 과정, 영양적 가치에다 음식에 얽힌 주민들의 애환까지 담고 있다. 봄의 송이, 여름의 죽순, 가을의 연근등 재료에 따라 또는 소금에 재여 3년을 바람에 말려 숙성시킨 돼지고기 등 조리법들이 유난히 흥미롭다다. 해마다 혹한 속에 북방의 한 호수에서 두꺼운 얼음장 밑에 2km에 이르는 그물을 펴서 물고기를 잡는 등 식재료를 얻는 지난한 과정도 소개한다. 우리 민족의 김치를 앞자리에 언급한것도 눈에 띈다. 각 음식뒤에는 문인들이 해당음식과 관련해 쓴 글도 곁들어 실었다. 책은 음식이 사람을 감동시키는것은 맛뿐 아니라 음식에 깃든 력사, 인정, 고향과 기억이라고 설명한다. 하나 또 하나의 고향의 맛이 모여 음식의 대향연을 펼치며 이 거대한 음식문화를 이끌어간다. 료리전문서이지만 책을 읽는 와중에 우리는 인간과 만물지간의 조화로운 관계를 보아내고 우리를 감동시킨것은 음식물의 맛이 아니라 력사의 맛, 인간미, 고향의 맛, 기억의 맛임을 느끼게 된다.     일전 연변대학 민족교육연구소와 한국 제주대학교 스토리 텔링연구개발센터에서 공동으로 조직한 스토리 텔링 연수반이 연변대학에서 개강했다. 중한 량국의 10여명으로 무어진 작가, 교수, 작가진영에 동참하면서 나는 스토리를 통해 다양한 문화콘텐츠를 개발하는 방법론에 대해 깨쳐 알게 되였다. 또한 문화 콘텐츠의 령역을 넘어 경제, 사회, 문화의 각 방면으로 인간 삶의 구체적인 부면(部面)들과 밀접하게 련관되여가고 있는 스토리 텔링과 음식을 접목하면 어떨가하는 생각을 떠올려본적 있다. 한국에서는 음식테마를 이야기로 풀어내린 드라마 “대장금”으로 아세아에서 폭넓은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우리에게 그럴듯한 음식이야기는 없다. 우리에게는 랭면이며 개고기, 양꼬치등 타민족과 외빈들이 감탄해 마지않은 특색음식들이 있지만 그에 대한 이야기는 전무하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픽션을 다루는 작가가 괜히 료리전문서를 뒤적여 보면서도 갈마드는 하나의 생각- “혀끝우의 연변”. 이라는 책자가 나왔으면… 미감뿐 아니라 오감을 총동원해 읽는 전문서의 출현은 우리의 식탁뿐만이 아닌 많은것들을 풍성하고 향그럽게 해줄것이다.   “연변일보” 2012년 1월 7일   ☞김혁 문학블로그:http://blog.naver.com/khk6699☜      
7    징글벨이 울릴 때 댓글:  조회:3872  추천:13  2012-12-24
  소설가 김혁의 독서칼럼 (7) 징글벨이 울릴때 - 오 헨리의 명단편 “매치의 선물” 김 혁            매양 크리스마스 시즌이 시작되면 생각나는 작품이 있다.   바로 안데르쎈의 “성냥파는 처녀애”와 오 헨리의 “매치의 선물”이다. 오 헨리의 이 작품은 우리 문단에는 “매치의 선물”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되였지만 사실 그 원제는  “동방박사의 선물”이다.   지독하게 가난한 삶을 살아가고있는 부부의 사랑 이야기이다.  …매치는 소중한 긴 머리채를 잘라 팔아 크리스마스 선물로 남편의 금시계 줄을 산다.  한편 남편은 대대로 물려받은 그 소중한 금시계를 팔아 안해의 아름다운 머리를 치장하기 위한 빗을 크리스마스 선물로 준비한다。서로의 선물 꾸러미를 헤치는 순간, 이 아이러니한 상황에 소설속 주인공들은 물론 독자들은 당혹감으로 허둥거리게 된다.   책을 놓은 그 다음 독자들은 인생에서 가장 소중하고 가장 귀중한것은 무엇인지?하는 궁극적인 질문을 스스로 던지게 된다.   가난에 찌들린 나머지 어딘가 어리석어 보이는 바보 같은 두 사람의 특별할것 없는 이야기같지만 그 반전의 이야기는  가족을 위한, 사랑을 위한, 서로를 위한 값진 희생이란 무엇인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또 물질만능의 풍조에 젖어 정말 소중한것이 무엇인가를 잊고 사는 요즘 사람들에게 받는것보다 주는것이 더 아름답고 행복한 일임을 환기시켜 준다. 저자 오 헨리   저자 오헨리는 1862년 10월 11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의 그린스보로에서 태여났다. 원명은 윌리엄 시드니 포터. 오헨리는 그의 필명이다. 세살적에 어머니를 잃고 알콜중독자 아버지밑에서 자랐다. 어려운 가정환경속에서 그는 용접공, 약사, 목장일군, 제도사, 극단의 만돌린 연주자, 은행원, 우편배달부, 기자등의 직업을 전전하면서 안 해 본 일이 없었다..   결혼후 장인의 집에 의탁하면서 글을 쓰기 시작했고 안해의 도움으로 주간지를 창간하기도 했다.  그러나 재직하였던 은행에서 계산 실수를 범했다는 리유로 고소되였다. 그는 체포되여 법정으로 가던 도중 목숨을 걸고 도주를 시도했다.   1897년 안해가 결핵으로 죽어간다는 소식을 듣고 안해의 림종을 지키기 위해 집으로 돌아왔다. 안해는 사망하였고 오헨리는 체포되여 횡령죄로 5년의 징역을 언도받았다. 오하이오주 련방 교도소에서 수감생활을 하게 된 그는 자살까지 생각했지만 9살 난 딸을 위해 그런 생각을 거두었다. 대신 펜을 잡았다. 공모전에 당선돼 딸의 학비라도 벌어 볼 생각이였던것이다. 그는 딸에게 자신의 수감생활을 숨기기 위해 간수의 이름을 빌려 작품을 발표했다. 그 이름이 바로 미국 문학사에 한 획을 그은 작가로 우뚝 선 오 헨리였다.   오 헨리라는 필명으로 발표한 “휘파람 부는 딕의 크리스마스 스타킹”으로 그는 알려지기 시작했다.   1901년 출소후 뉴욕에서 창작에 매진, 그동안 얻은 풍부한 경험과 일화들을 바탕으로 “마지막 잎새”를 비롯한 300여 편의 단편소설들을 발표했다.   알콜 중독으로 건강이 악화되고 간경변증, 폐결핵, 당뇨병 등이 겹쳐1910년 6월 5일 마흔여덟의 나이에 사망했다. 그의 사후, 8년 뒤인 1918년에 오 헨리 문학상이 제정되였다. 그후 오 헨리 문학상은 매년 그해 최고의 작가에게 수여되는 영미문학계의 가장 권위있는 상으로 자리매김되였다.     소외된 사람들의 삶 속에서 인간의 본성과 삶의 모순을 포착하여 따뜻한 유머와 재치로 승화시켰던 오헨리는 모파상, 체호프와 더불어 “세계 3대 단편소설 작가”로 불린다. 모파쌍의 영향을 받아 풍자, 애수에 찬 화술로 평범한 미국인의 생활을 그렸다. 그리고 무엇보다 작품에서 독자의 의표를 찌르는 반전의 결말로 농숙(浓熟)한 기교를 보여준다. 작품의 마지막에 와서 작품 전체를 관통했던 조용함이 깨지는 순간 가슴을 두드리는 파렬음으로 독자들에게 강한 울림을 준다. 하여 창작에서 "오 헨리식 결말"이란 기법마저 나왔다. 압축과 긴장, 극적 반전, 생에 대한 촌철살인(寸铁杀人)의 통찰은 오헨리의 단편만이 보여주는 소설미학이다.   “추수 감사절의 두 신사”, “붉은 추장의 몸값”, “물레방아가 있는 교회”, “시계 추”등 많은 작품들이 있지만 막상 우리 조선족 문단과 독자들에게 오 헨리의 작품은 많이 알려지지 못했다. “매치의 선물”, “마지막 잎새”가 교과서와 과외열독선에 수록되여 알려졌고 그외 “경찰관과 찬송가”가 “연변문예”지에 번역 소개된것으로 알고있다.   그의 글의 결말은 반전으로 유명하지만 그의 생에서 반전은 끝내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밑바닥 삶은 다양한 내용의 작품을 쓸 발판을 제공했다. 그는 늘 먼지 낀 골목을 헤매고 싸구려 술집을 드나들었다고 한다. 외롭고 비참하게 살았던 그였지만 자신을 벼랑끝까지 몰아세웠던 세상과 운명을 바라보는 그의 눈길은 담담하고 따스했다. 그의 작품을 읽다 보면 저절로 입가에 빙그레 미소가 고이고 눈가에 눈물이 맺힌다. 자신이 겪었고 함께 살아왔던 가난과 삶에 지친 인간들의 모습들을 다채로운 표현과 교묘한 화술로 그려냈기때문이다. 밑바닥 삶을 살아가는 각양각색의 인물들의 심리의 미묘한 변화를 포착해 일상의 깨달음으로 전환하면서 우리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다.   그의 과거는 불행했지만 오늘날 우리는 그의 많은 작품들을 감상하며 그 아름다운 작품들로 인해 희망과 살아갈 용기를 제공받고 있다. 그것은 마음속 소망과 선의에 대한 응답의 메세지이다. 소소한 삶에서 느끼는 행복을 이야기한 작품들, 고된 삶의 희망이 되여주는 작품들은 그가 100여년이 지난 지금도 사랑받고 있는 리유일 것이다.   "매치의 선물" 삽화   오헨리의 작품들은 읽기도 쉽고 내용도 따뜻하다. 때문에 그 부피의 미소함에도 불구하고 얼어붙은 우리의 가슴에 따뜻한 기운을 선사하는 크리스마스 선물 꾸러미같은 글들이다. 그리고 그속에 흐르는 따뜻한 휴머니즘은 블루칩처럼 건전하고 방대한 내용으로 여느 장편소설 못지않은 크고 깊은 감동을 우리에게 선사하고 있다.   정보시대, 책의 홍수가 터진 요즘 세월에 읽을 책들은 수두룩히 쌓여있다. 하지만 오헨리의 작품은 단편이라서 벼르지 않고도 수시로 읽기가 너무 좋다. 크리스마스 시즌이 당금, 상가마다 성탄 캐럴이 울려퍼질때 고전이 그리운 이들과 따뜻한 겨울을 맞고 싶은 추운 이들에게 이 작품을추천한다. 그 소설의 행간에 숨어있는 따뜻한 낱말, 그리고 이야기들은 날카로운 겨울 바람을 멈춰세우고 차가운 눈발의 란무를 잠재우며 미구에 다가올 봄날같은 희망의 온기로 추위에 시르죽은 당신의 온몸을 감싸줄것이다. “연변일보” 2012년 12월 24일     ☞김혁 문학블로그:http://blog.naver.com/khk6699☜    
6    녀류작가의 덫에 걸리다 댓글:  조회:3702  추천:12  2012-12-11
소설가 김혁의 독서칼럼 (6)   녀류작가의 덫에 걸리다 - 아가사 크리스티의 “쥐덫 (捕鼠器)”         지난 가을, 어떤 연극의 입장표를 사려는 사람들이 상해의 대극원앞에서 장사진을 이루었다. 이들이 보려는 극은 2013년 5월에야 비로서 공연하게 될 극이였다. 하지만 사람들은 장대같은 비줄기속에서도 몇시간이고 줄을 서서 일년후에야 상영될 극표를 사려하고 있었다. 그 작품은 바로 “추리소설의 녀왕” 아가사. 크리스티의“쥐덫”이였다. “쥐덫”은  상해역문출판사(上海译文出版社)판본으로 올 년초에 읽었다. 크리스티의 작품은 적지않게 읽었지만 연극본으로 된 이 작품은 이제야 중문으로 읽었다.      크리스티의 여느 작품들과 같이 엄청난 반전이 일품이다 영국 런던에서 두시간 거리에 있는 몽크스웰의 산장, 가일즈랄 스톤과 그의 안해인 몰리랄스톤은 새롭게 산장을 열게 된다. 려인숙을 처음 운영하는 젊은 부부에게로 군인, 건축가, 외국인, 귀부인, 형사 지어 정신병자까지 찾아와 투숙한다. 그런데 폭설로 인해서 외부와 단절되고 전화마저 끊긴 이곳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분명 이들중에 범인은 있다.... 크리스티 특유의 치밀한 구성과 반전, 독창적 트릭로 얽히고 설킨 작품을 읽고나면 “역시 크리스티였어!”하고 찬사가 또 한번 터져나오게 된다. 제한된 공간, 모두가 범인으로 의심하게 만드는 구성 등 애거사 크리스티의 특징이 고루고루 망라된 작품, 짜임새 있는 극적 요소와 기발한 착상 단정한 문체가 특징이며 폐쇄된 상황을 설정하여 사건 용의자를 미리 로출시킨뒤 관객으로 하여금 추리하게 함으로써 극적 긴장과 쾌감을 느끼게 한다.  밀폐된 공간안에 제한되여 있는 용의자들이 서로가 서로를 끈임없이 의심하고 두려워하는 심리의 상태를 적라라하게 보여주어 극도의 긴장감과 심리적인 압박감을 느끼는 와중에 독자들이 형사와 함께 추리의 얼개를 풀어가는 재미를 준다.  “쥐덫”은 크리스티의 51번째 추리작품으로서 그로서는 보기드문 중편이지만 어떤 장편보다 많은 사랑을 받은 작품으로 널리 알려진 작품이기도 하다.     “추리소설의 녀”으로 지칭되고있는 아가사. 크리스티(Agatha Mary Clarissa Miller Christie Mallowan)는 1890년 9월 15일 영국의 데번에서 태여났다. 그녀는 뉴욕 출신의 아버와 영국 태생의 어머니사이의 삼남매중 막내로 어린 시절을 빅토리아 양식의 저택에서 보냈고 이때의 경험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열여섯살에 빠리로 건너가 성악과 피아노를 공부하다가 1912년에 영국으로 돌아와 1914년 크리스티 대령과 결혼, 남편이 출전하자 자원 간호사로 일했다. 미스터리 소설을 즐겨 읽던 그녀는 1916년 첫 작품으로 “스타일즈 저택의 수수께끼”를 썼는데 1920년에 출간되었다. 이후 계속 소설을 발표하던 그녀는 남편과의 불화로 리혼한 후, 려행을 하던 중 고고학자 맥스 멜로윈을 만나 1930년에 재혼하였다. 1967년 녀성으로는 최초로 영국 추리협회의 회장이 되였다. 1971년, 추리문학에서의 뛰여난 재능과 업적으로 영국 왕실이 수여하는 남성에 해당하는DBE 작위를 엘리자베스 녀왕으로부터 수여받았다.  1976년 1월 12월 런던 교외의 저택에서 8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창작에서 주가를 올리던 지난 1947년, 당시 영국 메어리 녀왕이 80회 생일을 맞아 BBC 방송국장이 생일 축하 방송으로 무엇을 듣고 싶냐고 물어 보았다. 이때 방송국측에서는 웅장한 오페라나 쉐익스피어 연극을 내심 생각하고 있었다 한다. 그런데, 메어리 녀왕의 대답은 뜻밖이였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극을 듣고 싶다고 통고해 온것이다. 메어리 녀왕은 애거서 크리스티의 열렬한 팬이였다.   이러한 연유로 BBC의 요청을 받은 애거서 크리스티는 1주일 만에 작품을 완료했다. 그리고 메어리 녀왕은 생일 축하파티가 열린 궁전에서 3분짜리 이 방송극을 듣고는 매우 멋진 생일 선물이였다고 흡족해 했다 한다. 그 작품이 바로 “쥐덫”의 원본이 된 “어린 쥐의 복수”이다. 나중에 크리스티는 이것을 5막의 장막극 “쥐덫”으로 직접 각색했다.    이 연극은 1952년 11월 25일 런던의 앰배서더스 극장에서 첫 공연을 가졌다. 그 이후 이 작품은 오늘날까지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공연되여사상 최장기 공연 기록으로 기네스북에도 올라 있다.   중국문단과 연변에서는 80년대 중기로부터 추리소설붐이 인적 있다. 일본의 사회파 추리소설가 모리무라 세이이치의 작품과 한국의 김성종이 주로 소개되여 왔다. 김성종의 경우 그의 거의 모든 작품들이 조선족 독자들에게 소개되였다. 작품집으로 묶여져 나왔고 조선말 간행물을 펼치만 잡지마다 김성종의 작품이 어김없이 실려있어 당시 잡지 발행부수의 “보증수표”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하지만 외국의 추리거장들의 상당수는 아직도 소개되지 못한 상태이다. 추리소설의 녀왕으로 일컫는 크리스티의 작품도 우리는 겨우 “동방렬차살인사건 (东方快车谋杀案)”, “나일강 참안 (尼罗河上的惨案)”, “해빛아래의 죄악 (阳光下的罪恶)”등 영화로 몇편 정도 접촉한 상태이다.    나는 추리소설에 내내 특유의 흥미를 가져왔다. 그런데 내가 추리소설을 써보련다고 하자 몇몇 선배작가며 동인들이 기겁하며 말린적 있다. 꼭 마치 추리는 정통문학의 범주에 들지못하는 허접쓰레기인양 치부하면서,    사실 제임스 조이스, 윌리엄 포크너, 마크 트웬등 영미 문학의 쟁쟁한 대가들도 소위 말하는 장르 소설을 즐겨 창작해 왔었다. 유령 소설, 미스터리, 판타지, 추리물, 거기다 해양소설까지… 이렇게 위대하다는 수식어가 아깝지않는 작가들 또한 장르 소설을 썼음에도 장르 소설은 문학계에서 늘 홀대를 받아 왔다. 하지만 요즘들어서는 장르문학이 대세이다. “다빈치 코드”나 “해리포터”를 구태여 례를 들지않아도 독자층의 장르문학에 대한 선호도를 우리는 알고있다.    장르문학은 최근 전세계 대중문화의 가장 중요한 화두다. 최근 몇년 사이에 불붙어 문학에서 뚜렷하게 감지되는 장르 효과의 징후를 우리는 느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협, 공포, 추리, 판타지, SF 등 장르가 굳건히 자리 잡은 미국, 일본, 한국 그리고 서서히 자리잡고있는 중국문학계와는 달리 연변에서 이한 장르는 내내 비주류로 인식되고 있다. 장르가 척박한 우리 문학의 토양에서 다양성 확보에 기여할수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과거에는 문화가 류입되는 창구가 방송 하나뿐일 정도로 일원화에 가까웠다. 시대가 바뀌고 인터넷, TV 채널 증가 등 외부에서 들어오는 문화창구가 다원화되면서 독자들에게서 참조계는 많아졌다. 따라서 주류를 장악하던 순문학이 그 위상을 잃기 시작하자 그 빈자리를 채울 대안(?)이 장르문학이라는 키워드로 떠오르게 된것이다. 이는 소위 장르문학과 본격문학의 울타리를 허무는 문학적 돌파이면서도 작가 개인에게는 문학적 확대이기도 하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장르문학을 어떻게 우리의 경직되여있는 소위 순수문학과 접목할지는 여태껏 장르문학의 대표작가 한 사람도 배출하지 못한 우리 조선족문단이 연구해야 할 하나의 과제가 아닐가! 아예 읽기조차 거부한채 장르문학을 그 어떤 하위문학으로 폄하(貶下)하고있는 이들에게 “쥐덫”을 한번 읽으라 권장하고 싶다.   “연변일보” 2012년 12월   ☞김혁 문학블로그:http://blog.naver.com/khk6699☜  
5    시린 선률의 사랑 댓글:  조회:4768  추천:14  2012-11-28
  . 소설가 김혁의 독서칼럼 (6) .   시린 선률의 사랑 -  장편소설 "닥터 지바고"    내가 소장한 영화 "닥터 지바고" 계절따라 계절의 책이 있다. 나더러 겨울의 책을 선정하라한다면 선참 떠오르는 책이 바로 시베리아의 넒다란 설원을 배경으로 뜨거운 비련을 눈우에 새긴 “닥터 지바고”이다.   밀레니엄의 첫해 북경에서 열린 전국청년작가 문필회에 갔다가 석장으로 된 VCD "닥터 지바고"를 사들었다. 해적판이라 화질이 나빴지만 장장 4시간이 넘는 영화를 단숨에 보았다. 영화에서는 로씨야의 전통악기인 발랄라이카의 유려한 음색으로 연주된 주제곡이 전반에 관통된다. 영화가 끝나고 몇년이 지나도 그 발랄라이카의 소리가 그냥 귀전에 남았다. 그래서 한때 내 핸드폰의 컬러링은 영화 “닥터 지바고”의 선률이였다.   그후 소설을 읽었다. 문자로 곱씹어보는 감동은 여전했다. 와인잔에 집어넣는 각진 얼음덩이를 더운 입술에 물었을때와도 같은 차거우면서도 흥그러운 느낌, 너무나 아름다워 가슴이 저리고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사랑 이야기를 다시 읽노라니 발랄라이카에 못지않은 아름다운 문체가 뇌리를 파고든다.     모스크바 부호의 아들로 태여났으나 어려서 고아가 돼버린 지바고, 지바고는 남의 집에 입양되여 성장하고 나중에 의사가 된 그는 자기를 입양했던 그로메코 집의 딸 또냐와 결혼을 약속한다. 반면 다른 한 주인공인 라라는 신년맞이 무도회에서 고위법관인 코마로프스키를 향해 총을 쏜다. 라라 어머니의 련인이였던 코마로프스키는 10대인 소녀 라라를 롱락했었다.     총상을 입은 고마로프스키를 구하면서 라라와 처음 만난 지바고는 그녀에게 반하지만 결국은 어려서부터 같이 자란 또냐와 결합한다. 몇년후, 라라는 혁명가인 파샤와 결혼을 하지만 자신의 어두운 과거를 털어놓자 파샤는 라라를 떠나 군에 입대한다.    1차대전이 일어나고 군의관으로 참전한 지바고는 전장에서 종군간호부가 된 라라와 만나게 된다.     전쟁이 끝나자 지바고는 자기가 아끼는 전통악기인 발라라이카를 지니고 가족과 함께 우랄산맥에 있는 시골로 이주한다. 호젓한 시골에서 안정을 찾고 시를 쓰며 나날을 보내던 지바고는 도서관에서 우연히 라라와 재회하게 된다. 또냐와 라라 사이에서 혼란스러워 하던 지바고는 라라와의 관계를 알게 된 라라의 남편 파샤에 의해 군대로 끌려간다. 그 곳에서 끔찍한 나날을 보내던 지바고는 겨우 탈출하다 허기져 쓰러지고 그런 그를 라라가 발견한다. 한편 지바고의 생사를 알수 없었던 그의 가족은 시골을 떠난다. 이제 단 둘뿐인 지바고와 라라, 하지만 라라를 위하여 지바고는 그녀를 곁에서 떠나 보낸다.     수년후의 어느날, 모스크바의 대가의 전차우에서 지바고는 길 가는 안해 또냐를 보게 된다. 지바고는 그녀를 소리쳐 부르다가 심장마비로 길바닥에 쓰러지고 만다.     쏘련문학하면 오스뜨롭스끼나 고리끼에만 버릇되였던 우리 문단에서 “닥터 지바고”의 작자는 어쩌면 낯선 인물이다. 력사적 지각변동이 일어난 로씨야 혁명이라는 대로망과 그 로망속 인물들의 부침을 보여준 이 작품은 구 쏘련의 시인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단 하나의 장편이다. 저자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그는 섬세한 감정을 나타낸 서정시로 로시아 마지막 순수 예술파 시인으로 평가받는다. 1890년 2월 10일 모스크바에서 화가인 아버지와 피아니스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는 음악을 지망하였다가 철학에 몰두하여 모스크바 대학을 졸업 독일 마르부르크에 류학하여 철학을 연구하였다. 상징주의의 영향을 받은 많은 시를 발표했으나 난해한 시를 쓴다고 비난을 받아 한동안 시 작업을 중단하고 주로 쉐익스피어의 시 번역에 종사하기도 했다. 1922년부터 1933년까지의 기간을 제외하고는 거의 작품 활동을 중지당하다싶이 했던 그는 생애 마지막 창작열과 자신의 모든것을 “닥터 지바고”에 쏟아부었다. 작품에는 그가 직접 겪었던 혁명과 내전 전후 20여 년의 력사와 시대 상황, 력사와 개인의 운명적 갈등, 인물들의 세계관으로 표현되는 깊이 있는 철학이 담겼다. 하지만 작품은 "10월 혁명과 혁명을 일으켰던 사람과 쏘베트 련방체재를 중상"한다는 리유로 출판을 거절당했다. 그러다 다행히 원고가 1957년 이딸리아의 한 출판사에서 발간되였고 그후 그 진가를 높이 인정받아18개국 언어로 번역출판되였다. 1958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되였으나 정부의 압력으로 쏘련작가 동맹에서 제명되고 노벨상마저 사퇴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리고 불과 몇년 후에 51세 단명으로 타계했다.  1987년 복권되어 "닥터 지바고"가 쏘련에서 출판되였으며 그의 생가도 지금은 문학인과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박물관으로 되였다. 그의 사후에 만들어진 영화 “닥터 지바고” 역시 1994년에 이르러서야 로씨야에서 처음으로 상영되였다. 력사의 거대한 눈사태가 덮치는 바로 그 곳에서 몸부림치다 묻혀버린 사람들. 지바고가 살던 그 시대도 마찬가지였다. 작품은 지바고로 대표되는 구 쏘련 지성인들의 비참한 운명을 보여준다. 하지만 작자는 그 뼈저린 비극속에서도 따뜻한 화로불 빛갈의 로맨틱한 색깔을 입혔다. 눈과 얼음에 덮여있는 시골집에서 불안과 공포가 지배하는 속에서나마 지바고와 라라가 꿈같은 사랑을 나누는 장면은 아마 로맨티시스트들의 가슴을 숨막히게 하는 탁월한 명장면이 아닐수 없다. 또한 서사시적인 전개를 펼쳐나가는 와중에 서정시와도 같은 아름다움과 미묘한 심리, 심오한 사색 그것들을 서로 조화시키면서 극도로 세련된 문체를 소설은 보여준다. 단풍잎을 구부러진 별이라고 비유하고 살모사를 은빛으로 반짝이나 땅에 스며들진 않는 물줄기라고 묘사하고… 파스테르나크는 정말 성에꽃과도 같이 정교하고 빛나는 글솜씨를 가졌다.  소설은 이데올로기라는 광신(狂信)에 의해 파멸되고 마는 인간의 삶과 사랑을 통해 격동기 구 쏘련 인테리들리의 량심을 대변하고자 했다. 따라서 소설이 간직한 철학적인 사색, 심오한 종교관은 이 작품을 불멸의 고전으로 세계 소설사의 반렬에 올려놓았다.   영화 포스터     “닥터 지바고”는 영화화 되여서도 또 한번 흥행가도를 달리면서 영화사에 빛나는 명작으로도 남았다. 이딸리아의 국제적인 프로듀서 카를로 폰티(그는 영화 "카산드라 철교"로 조선족관객들에게도 익숙한 배우 소피아 로렌의 남편이다.)가 제작을 맡고 데이비드 린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영화는1965년 제38회 오스카 영화상 씨나리오, 촬영, 미술, 의상, 음악등 5개 부문을 석권했다.      모든것이 추위에 묶인 그러나 오히려 그래서 침잠(沈潛)한 겨울, 서재에서 또 다시 “닥터 지바고”를 펼쳐드니 로씨야 수종의 하얀 자작나무 숲속에서 흘러나오는 작은 바람소리같은 발랄라이카의 선률이, 그 선률의 닮은 아름다운 사랑의 이야기가 내 귀전에, 내 심령에 흘러든다. 흘러들어 눈송이처럼 켜켜이 쌓인다.     “연변일보” 2012년 11월 26일         영화 "닥터 지바고"의 주제곡 Giovanni Marradi 김혁 문학블로그:http://blog.naver.com/khk6699  
4    춘향, 사랑을 버리다 댓글:  조회:3465  추천:12  2012-11-18
. 소설가 김혁의 독서칼럼 (3) .   춘향, 사랑을 버리다   김  혁    김인순의 장편소설 “춘향(春香)” (중국녀성출판사)을 읽다 2009년에 사서 이미 읽은 책인데 일전 이 작품이 소수민족”준마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뒤적여 보았다. 조선족이지만 데뷔한 이래 줄곧 중문으로 창작하면서 중국문단에서 “70후 대표작가”의 한 사람으로 자림매김하고있는 김인순의 “춘향”에 대해 출판계는 “로미오와 줄리에”, “서상기(西厢记)” 에 견줄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라고 극찬을 보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삼척동자마저도 익숙한 그 춘향전을 념두에 두고 읽는다면 당신은 “막걸리를 기대했는데 카페라떼를 맛본” 어리친 기분일거다. 김인순은 “춘향”에서 고전을 국계와 시공간을 뛰여넘은 현대인들의 시각에 맞추어 재구성하고있다. 그리고 춘향의 회고로 된 일인칭 시점 등 파격적인 문체도 선보이고있다. 소설은 원작에 과감하게 정형(整形)의 메스를 대였다. 우선 김인순의 “춘향”에서 춘향의 어머니 월매는 퇴기가 아니라 약제사이다. 그는 미혼약을 제작해서 춘향에게 수청을 강요하는 변학도를 대처한다. 변학도의 집요한 스토커의 시달림에서 벗어난 춘향은 어머니의 가업을 계승해 미혼약을 제조하는 약제사가 된다. 리몽룡이 과거에 급제하고 돌아와보니 춘향은 어제날의 춘향이가 아니였다. 이에 몽룡은 커다란 실의에 빠진다. 영구불변의 생사를 넘나든 사랑에 대한 찬가로 향그럽던 원작은 김인순에 의해 그야말로 미혼약에 취한듯한 이야기로 이목구비를 잃고 “성형”되여 버렸다. 기존에 우리가 버릇되였던 고전 “춘향전”의 팩트(骨組)에 새로운 픽션을 입힌것이다. 작품은 “바다가 마르고 산이 닳아도 님향한 일편단심”으로 점철되였던 우리의 경전적인 사랑에 대해 조소를 보낸다. 하지만 알쏭함에 이마살을 모으며 읽는 와중에 경전적인 설화가 퇴장한 자리에서 우리는 도덕과 륜리의 중압감을 맛보게 된다. 김인순은 경전적이다 못해 찬란하기 그지없어 바라보기마저 눈이 아픈 모두가 선망하는 사랑속에서 고전의 금고(禁锢)에 얽동였던 몽룡과 춘향 두 사람을 마음껏 풀어주었다. 맹세나 언약같은것으로만 위장되였던 사랑을 풀어주어 다른 감동과 해법을 독자들에게 전시해 보였다. 이제는 죽어버린 고전의 시신우에 현대관념의 혼을 불어넣은것이다.    소설에서 몽룡은 더는 주인공이 아니다. 두번째자리도 차지하지 못하고 춘향의 어머니에게 그 자리를 내준다. 소설의 주인공은 춘향과 그의 어머니이다. 두 사람의 사랑에 대한 관조와 리행으로부터 두 세대 녀인의 정과 한, 그리고 운명에 대해 소설은 말하고있다. 김인순은 준마상을 수상한뒤에 있은 창작담에서 “춘향”은 우리의 경전적인 고전이지만 나는 그 뻔한 이야기에 어쩐지 만족감을 느끼지 못해왔다고 말했다. 중국의 “백사전”, “량산백과 축영대” ,”맹강녀”등 고전에 비해보면 그 전기적 색채가 좀 뒤쳐진다는 생각을 가졌다. 그래서 자기 나름으로 고전을 언감 재해석해보고싶은 충동을 가졌다고한다. 김인순은 “중국문화권에서 생활하고있는 자신에게서 ‘춘향’의 집필은 자기민족에 대한 마음의 귀향”이라고 말한다. “온 지구촌이 글로벌화로 박차를 가하고있는 요즘 세월, 소수민족작가들은 자기 민족의 문화를 써내릴때 민족의 특성을 보존하는 동시에 양호한 소통의 길을 모색해야 하는바 세계속에 자신을 융화시켜야 한다”고 자신의 창작주장을 펼치고있는 김인순은 그래서 과감히 민족의 고전에 메스를 가하고 더 업그레이드 된 사유의 실리콘을 넣어 봉합했고 춘향을 새로워진 심미안의 세상에 완벽한 “성형미인”으로 볼륨감있게 세워주었다.   소설은 전형적인 번안소설(翻案. 원작의 내용이나 줄거리는 그대로 두고 풍속, 인명, 지명 따위를 시대나 풍토에 맞게 바꾸어 고침) 형태를 띠고 있다. 사실 번안소설은 오래전부터 독자들의 인기를 받아 왔다. “춘향전”처럼 또 하나의 고전인 “심청전”도 한국작가들에게서 몇번이고 번안되였다. 그중 독자들에게 가장 “멘붕”(멘탈 붕괴를 줄인말로 정신적으로 충격을 받은 상황을 뜻하는 신조어)의 주먹을 먹인 작품은 “장길산”의 저자 황석영이 번안한 “심청전”이다. “련꽃의 길”이라 개칭된 이 소설에서 임당수에 빠졌다가 구조된 심청이는 대만, 싱가포르, 일본등지를 주유하며 부자의 첩으로 악사로, 만두집 사장으로, 기생으로 파란만장하게 살아간다. 이렇게 번안소설은 원저를 벗기고 그에 다시 변화하는 시대에 따른 새 시체옷을 입히면서 새로운 인물, 새로운 이야기, 새로운 정신을 디자인해 넣어 독자들의 심미변화에 동조한다.   중국에서 리메이크 한 월극(越剧) "춘향전"   흔히들 고전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읽을 만한 가치를 지닌것”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즐겨 고전을 선택하는 리유는 “고전을 통하여 도야된 정신이 인간관계나 사물에 관하여 판단하고 추리하는데 유용하기때문”이라고 평론가들은 정평한다. 그래서 번안물이라는 쟝르가 세월이 지나도 독자들의 애대를 받으며 리메이크 (예전에 발표된 소설, 영화, 음악, 드라마 따위를 같은 제목과 내용으로 다시 만듦. 또는 그렇게 만들어진 작품)를 거듭하고있는것이다. 중국작가들도 번안물에 커다란 흥심을 보인다. 중국의 고전인 “백사전”, “후예가 해를 쏘다”, “맹강녀”등도 몇해전 모두다 소설로 번안되여 계렬도서로 나왔다. 어쩌구려 요즘 세월은 사랑이라는 아름다운 판타지가 물질에 둔화되고 순수하게 향유하려하지 않는 황폐한 현실이 돼버렸다. 춘향과 몽룡시절의 사랑이라는 표현을 입밖에 내는것은 상상하기 어려웠던 어제와는 달리 지금의 현대문화가 안고 있는 왜곡된 사랑에 대한 상업주의와 획일성, 저급함 등의 문제는 우리에게 사랑에 대한 실의을 자아내게 하고있다. 이러한 풍토에서 어제날 복고와도 같은 순수한 사랑에 대한 번안은 우리에게 새로운 패러다임을 알리고 있다. 따라서 컨텐츠로써의 사랑의 가치는 더욱 높아졌고 그래서 춘향과 리몽룡이, 량산백과 축영대가, 백랑자와 허선이. 견우와 직녀의 이야기가 지칠줄 모르고 번안되고 리메이크되고있는것이다. 동배기름 가르마에 옥양목 치마저고리를 받쳐입고 옷고름을 배배탈며 두눈을 내리깔던 춘향이와는 전혀 다른 어쩌면 미니스커트에 하이힐을 받쳐신고 카페라떼를 마시는것 같은 기분의 춘향이를 보면서도 우리가 김인순의 “춘향”이가 결코 낯설지 않은것도 바로 그러한 패러다임을 반기는 수요에서일것이다.   “연변일보” 10월 15일   ☞김혁 문학블로그:http://blog.naver.com/khk6699☜   판소리 '춘향가' 중에서 사랑가  
3    욕망이라는 이름의 노트 댓글:  조회:3959  추천:15  2012-11-15
. 소설가 김혁의 독서칼럼 (1) .  욕망이라는 이름의 노트   김 혁           화제의 소설 “은교”를 읽다 첫 장을 펼치는 순간 바로 빠져 들어 “밤에만 읽으라”는 작가의 희망사항을 어기고 밤낮 이틀사이에 다 읽어 버렸다. 유명한 원로시인 리적요가 죽은지 일년이 되자 변호사는 그의 유언대로 그가 남긴 노트를 공개하기로 한다. 그러나 막상 노트를 읽고 나자 공개를 망설인다. 노트에는 칠순의 시인이 열일곱 소녀를 좋아했으며 제자를 친히 죽였다는 충격적인 고백이 담겨 있었던것이다. 또한 제자의 작품은 전부 시인이 써주었다는 엄청난 사실까지! 문단에서 시인을 위한 기념관 설립을 서두루고있는 대목에 이 노트가 공개된다면 문단에 일대 파란이 일어날것이 빤하고 그의 명예가 일락천장 실추될것이였다. 노트를 공개해야 할지 변호사는 고민에 빠진다. 원로시인 리적요는 어느 날 자기의 저택에 나타난 은교라는 17세 소녀의 젊음을 보며 관능과 아름다움을 느낀다. 핫팬츠를 입고 여름 한 날 나타난 요정같은 은교, 투명 인간처럼 눈부신 모습으로 서재의 유리창을 닦던 은교에게서 칠순 작가의 꺼져 가던 감성에는 모닥불이 인다. 나이의 장벽과 사회적인 륜리에서 혼란스러워 하던 그는 결국 자신의 내부에 꼭꼭 숨겨져 있던 욕망의 덩어리가 활활 타오르는것을 느끼게 되며 사랑에 빠졌음을 인정하게 된다. 한편 원로시인의 제자 서지우는 은교를 바라보는 스승의 눈빛이 심상치 않다는것을 깨닫지만 그 또한 아름다운 청춘 은교에 대한 집착이 커져간다. 사제지간인 리적요와 서지우의 관계는 은교를 둘러싸고 조금씩 긴장이 흐르기 시작하고 욕망과 질투, 배반의 일장 활극이 벌어진다.    동명영화 "은교" 포스트  저자 박범신의 소설은 80년대 후기, 장춘에서 발간되는 문학지 “북두성”에서 단편 하나로 읽었던 기억이 있다. 지금 그 문학지는 페간되였지만 한국작품은 추리소설 작가 김성종이 유일하게 중국에 소개되였던 그 시기에 순문학작품이라는 타이틀때문에 박범신의 작품은 그래서 기억에 남았다. 작가의 필력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매력 있는 이야기 전개에 더우기 치밀한 심리묘사로 마음을 사로잡는다. 소설은 존재의 내밀한 욕망과 그 근원을 현미경 처럼 들여다본 소설이다. 주인공의 몸은 늙었다. 그러나 감성은 아직도 젊다. 그래서 본성과 리성의 괴리가 각축전을 벌린다.  그 와중에 “갈망을 억누름으로써 위태로운 경계에서 자기 자신을 컨트롤”하면서 시인은 자신이 쌓아온 명성과 작품세계가 거짓임을 쓰디쓴 자각으로 느낀다.   책을 읽으며 소설의 주인공처럼 역시 칠순에 가까운 작가의 뛰여난 문학적 감수성과 예민함 나아가 예술혼에 감동했다. 대중에게 어필하려고 한 뻔한 불륜의 이야기, 망녕된 사랑이야기라고 일견에서는 손가락질할지 모르지만 외설과 예술, 그 한끝 차이의 경계를 소설가는 묘한 줄타기처럼 잘도 이어나갔다. 대담하고 파격적인 묘사가 보이고 추리소설처럼 반전도 뒤따르므로 흥미롭게 읽을 책이다. 하지만 결코 가벼이 읽을 작품은 아니다. 작가가 작품 전반에 관통하여 계속해서 존재론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기때문이다. 남자와 녀자의 애욕, 젊음과 늙음의 충돌, 사회적 눈금안에 갇혀있는 지식인에 대한 사회의 이중적 태도등등에 대해… 소설은 인간의 내면에 꿈틀거리는 자연스러운 욕구와 제도라는 울타리의 경계에서 방황하고 갈등하는 주인공을 그렸으며 물욕의 시대 륜리적으로 정립된 가치를 다시 환기 시키면서 우리가 자신을 분렬시키지 않고 다른 사람과 교감하며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한다. 그리고 결코 단순하지 않은 인간의 내면의 진실을 소상하게 밝히려 했다.    사랑에 대해서, 사람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드는 소설이다.   “연변일보” 2012년 7월 23일     ☞김혁 문학블로그:http://blog.naver.com/khk6699☜      
2    “윤동주 평전”을 읽다 댓글:  조회:3808  추천:21  2012-11-12
. 소설가 김혁의 독서칼럼 (4) .   “별”의 초상화 - “윤동주 평전”을 읽다 김 혁       “위편삼절(韋编三绝)”이라는 일화가 있다. “사기(史记)”의 “공자세가(孔子世家)”에서 나오는데 공자가 책을 묶은 가죽끈이 세번 끊어지도록 “주역”을 탐독했다는 일화에서 유래된 말이다.    내게서 “위편삼절”의 책이 있다면 바로 “윤동주 평전”일것이다.    80년대 윤동주가 뒤늦게나마 고향 연변에 알려지면서 “문학과 예술”지에서 윤동주라는 이름을 맨 먼저 접했다. 그의 시비가 다른곳도 아닌 나의 모교인 룡정중학에 세워졌을때의 놀라움, 저 유명한 “서시”를 처음 읽었을때의 그 전률, 지금도 내 심방(心房) 깊은 곳에 화인처럼 남아 잊을수 없다.   1988년 열음사판으로 나온 “윤동주 평전”을 선배문학인에게서 빌려 읽었고 윤동주의 생애를 장편으로 소설화하면서 다시금 증보판, 개정판들을 거의 모조리 사들여 거듭  읽었다.   윤동주의 생애 읽기는 이미 많은 사람들에 의해 적극적으로 시도되여 독자들과 만났다. 한국에서만도 그의 시세계에 대한 연구로 박사, 석사학위를 받은 이가 무려 50여명이라 한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송우혜의 “윤동주 평전”이 압권중의 압권이요, 경전중의 경전이 아닌가 생각한다.   평전에는 그의 맑은 령혼이 준미(俊美)하게 담겨져 있다. 우리가 가장 많이 접하게 되는 학사모를 쓰고 순수하게 앞을 바라보고 있는 그의 그 졸업사진처럼. 력사학에 천착하면서도 원체 소설가라 뛰여난 작가적 감수성으로 송우혜는10여년을 갈고 닦은끝에 윤동주 생애에 대해 황홀하게 복원해 내였다. 친지와 친우들의 증언들을 토대로 하고 빈틈없는 현장답사와 풍부한 자료를 섭렵, 룡정광명중학의 학적부, 일경의 극비취조문서, 판결문 등을 비롯한 각종 자료들을 동원하고 그에 대한 집요한 추적과 분석을 가했다. 그저 단순한 책상물림의 상상력 연 띄우기 방식이 아니라 치밀한 작업으로 실존적 고뇌와 준엄한 륜리적 태도를 지니고있는 한 고절한 시인의 마음의 행보를 샅샅이 더듬으면서 그 생생한 숨소리까지 평전은 들려주고있다.   평전을 읽노라면 반일의 책원지인 북간도 명동에서 태여나 어려서부터 서울에서 보내온 간행물을 읽으며 문학의 꿈을 키워온 윤동주, 일본야수들의 민족말살의 잔학한 술책에 학교를 이리저리 옮겨야 하는 수모를 겪는 윤동주, 경성의 연희전문에 입학하여 구지욕을 불태우던 윤동주, 참회를 읊조리며 일본으로 류학길에 올랐던 윤동주, 일본형사들의 마수에 떨어져 후쿠오카 감옥에 갇혀서 생체실험의 의혹을 남긴채 민족의 해방을 불과 몇달 앞두고 비명에 간 윤동주…의 삶과 문학의 려정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그 외에도 평전을 통해 그 시대를 올곧게 살아내려고 애썼던 이들의 삶의 궤적을 우리는 만날수 있다. 민족을 위해 혼신을 던지면서 윤동주라는 고고한 별이 창공에 빛나기까지 깊은 영향을 주었던 스승, 친지, 친구, 은사, 문호들인 김약연, 송몽규, 명의조, 최현배, 문익환, 정병욱등 주변인물들의 다채로운 삶의 자취, 윤동주라는 별자리에 주위에 모여 함께 빛을 내는 다른 별들의 공전과 밝음에 대해서도 더불어 료해할수가 있었다.       작가는 시인의 생의 순간순간에 현미경을 들이댔는데 대상에 대한 장악력으로 그 일거수 일투족을 묘사하는 치밀성에 엄지를 빼들지 않을수 없다. 과시 “윤동주라는 인물연구의 결정체요, 평전문학의 진수”라는 평단과 독자들의 찬사처럼 인물전기의 진수를 보여준 평전이였다.   고향사람인 우리도 미처 몰랐던 연변지역의 당시 시대상과 풍토가 평전의 초반에 오렷이 그려지는데 이 또한 작가가 우리에게 선물한 또 하나의 경이로움이였다. 명동지역에서 재배한 콩이 2차세계대전시기에 벌써 구라파에 까지 수출되였다는 당시의 경제상황도 흥미롭고 특히 작가가 진지하게 풀이한 함경북도 사투리에 대한 진지한 해석도 재미있다. 어딘가 툽상스럽다고 우리 스스로 생각되였던 이 사투리는 사실 “경음화하지 않은 '순하고 은근하고 아름다운' 말”이며 “윤동주의 시는 그런 언어문화의 산물이기도 하다”고 작가는 깊은 의미를 덧대여 해제를 달고있다.   사건들을 추적하여 그 력사를 따라가면서도 다시 시의 궤적을 따라 시를 통해 력사를 읽고 인물의 생애를 다시 읽는 기법을 쓰고 있어서 문학인으로서는 인물전기외에도 시집, 작품론평을 읽는것처럼 “일석다조”의 감흥으로 읽혔다.   고향의 산하와 인간의 존엄이 야수들의 잔학한 마수에 짓밟혔던 한민족 근세사의 가장 암울했던 일제강점기, 그 짙은 어둠으로 점철된 공간에서도 시대의 모순을 외면하지 않고 끝까지 그에 대해 고민한 지식인 청년이 바로 윤동주였다. 그런 고민을 글로 풀어내고 그 진지한 자세와 성품이 일신에 배여있어 그의 사람살이에도 속된 잡티가 없다.   스물아홉 짧은 생의 그의 삶은 또한 그의 시와 너무도 닮았다.. 그는 닥쳐오는 어려움을 있는 그대로 받아내면서 순수한 마음과 투명한 감수성으로 한 시대를 갈파하고 량심을 노래했다. 오히려 자기 자신에게 한없이 부끄러움을 느끼고 자신의 소명을 받아들이며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갔다. 깊은 바다속 조개가 진통을 견뎌내며 진주를 품듯이.   천형처럼 짊어지고 평생을 살아온 문학적 열망과 민족애로하여 북간도 오지의 한 문학지망생이 민족 최고의 시인으로 떠올랐으며 그렇게 엮여진 그의 작품은 알알이 진주처럼 값지고 빛나오르는 것이다.   조선족문단에서도 뒤미처 인물전기가 각광받는 풍토가 일고있다. 작가들 저마다 전기문학에 매이고 책들도 적지 않게 나왔다. 하지만 그 작품수, 더우기 수작(秀作)의 미량(微量)으로 우리의 전기문학은 아직도 걸음마타기이며 그 저변이 아직도 척박하다. 이렇게 볼때 “윤동주평전”은 우리의 전기문학장르를 꿈꾸는 작가들에게는 범문이요, 독자들에게는 애장서격이라고 말해도 지나침이 없을것이다.   작가의 설명처럼 “자기 몸을 던져서 사람의 삶이 업보처럼 지니게 마련인 근원적인 부끄럼과 마주 선 존재”인 드높은 격조와 기품을 갖춘 윤동주, 고향이 배출한 자랑스러운 한 시인의 이야기를 그의 탄생 95주년을 맞아 다시금 필사(笔写)로 남기며 밑줄 그어가며 읽는다.   “연변일보” 2012년 11월 12일   서시 ( 윤동주, 이용주, 이명주 ).wma ☞김혁 문학블로그:http://blog.naver.com/khk6699☜  
1    避暑의 방식 댓글:  조회:3166  추천:14  2012-07-25
. 칼럼 . 피서(避暑)의 방식 김 혁   1 에어콘이 고장났다. 하필이면 이 삼복더위에. 판매상과 련계해 고치려니 이핑계 저핑계 시종 찾아주질 않는다. 그렇다고 스스로 뜯어 가져가기도 번거롭고해서 더위에 대처할 궁여지책으로 구석에 처박아 두었던 구식 선풍기를 꺼내 먼지를 닦고 다시 돌렸다. 개운치 못하다. 나의 애견 두마리도 더워에 꼬리를 사린채 혀를 잔뜩 빼물고 있다. 빈 콜라병에 물을 채워 랭장고에 얼구었다 꺼내주니 두 녀석 다 찬 병에 배를 딱 붙이고 엎드려 있다. 그래도 여전히 더운지 혀를 빼물고 주인장을 빤히 쳐다보며 할딱거린다. 더웁기는 사람이나 매 한가지다. 본격적으로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며 사람을 들볶는다. 불볕더위란 말이 명실상부하게 다가온다. 게다가 올해는 이례적으로 삼복이 왕년보다 열흘이나 더 길다고하니 이 더위를 어떻게 지낼지 짜증부터 앞선다.   2 요즘 세월에는 에어콘이다 선풍기다 랭장고다 해서 그나마 더위를 쉽게 보내지만 옛날 사람들은 어떻게 이 더위를 물리쳤을가? 살펴보니 옛사람들은 더위나기에 무척 고심했고 그 노력은 나름 이채롭기까지 했다. “오월춘추 (吴越春秋)”의 기재를 보면 춘추시기 여름이 되면 궁정에서는 얼음찬장 (冰厨) 을 만들었다고 한다. 월나라 왕 구천(勾践)은 가장 더운 삼복기간이면 그 얼음 찬장”에서 지냈다고 한다. 당나라때에 이르러서는 한수 더 떠서 궁정에 기계의 힘을 빌어 좌우로 움직이는 부채를 설치했다고 한다. "극록담(克录谈)이란 책에도 룡피선(龍皮扇)이라는 부채가 등장을 하는데 신라의 스님들이 가져온 특수 어피(漁皮)로 만든 이 부채는 당나라의 대부호가 소유했던 것으로 이 부채는 흔들지 않아도 저절로 부채에서 찬 바람이 나왔다고 적고 있다. 요즘의 선풍기의 비조(鼻祖)라고 할가. 그리고 또 찬물을 관작들의 거처의 지붕으로부터 내리부어 인공비줄기를 만들었는데 그 장면이 실로 가관이였다. 이러한 피서 장치가 되여있는 집을 “수정(水亭)”이라고 불렀다. 당나라의 경국지색 양귀비는 더운 여름엔 설산의 눈속에서 자란 누에 꼬치에서 뽑아낸 명주 실로 짠 빙잠옷(氷蠶衣)을 입고 더위를 이겨 냈다고 한다 이 옷을 입고 있으면 더위가 석자 앞에서 물러 났다나? 거기다 양귀비의 오라비 양국충의 피서법도 가히 사치와 호사의 극치 였다, 빙병(氷屛)이라 하여 얼음으로 만든 병풍을 만들어 쳤는데 그 얼음병풍에다 산수화나 “십장생”그림까지 새겼다고 한다. 얼음병풍을 치고 연회를 벌이다가 지나치게 추워지면 기생들을 홀랑 벗겨 그 체온으로 냉기를 중화 시켰다 하는데 이를 가리켜서는 육병(肉屛)이라 했다. 그야말로 피서 무도(避暑无道)가 아닐수 없다, 청나라때에는 임금과 황후들이 궁정을 나와 피서지로 가는 방법이 류행되였는데 그래서 오늘의 유람성지인 하북 승덕(承德)피서산장이 생겨나게 되였다. 문헌 "두양잡편"(杜阳杂篇)에서는 특이한게 눈에 띄는데 신기한 화분 한점을 키워 이를 창문에다 올려 놓으면 더운 바람이 지나면서 저절로 시원한 바람으로 바뀐다고 했다. 봉황의 머리 모양을 닮았다 해서 "봉수목(鳳首木)"이란 이름이 붙은 이 화분은 이를 방안에 두면 서너칸 랭방은 거뜬 했다고 한다, 이러한 피서백태(百態)는 더위에 시르죽은 마음들을 무마하기 위한 전설이라 여겨진다. 우리민족의 선조들도 더위를 물리치기 위해 갖은 방법을 동원하였다. 먼저 열(热)로서 더위를 다스리는 “이열치열 (以热治热)”의 방법이 있다. 이맘때 딱 좋은 음식으로 삼계탕과 개장국을 든다. 당연히 “이랭치열(以冷治热)”의 방법도 있다. 참외, 수박 같은 과일을 흐르는 물에 담가두었다가 먹고 싶을때 꺼내 먹군했는데 그 시원 달콤한 맛은 무더위를 싹 가시게 한다. 남녀로소 할 것 없이 즐겨 입었던 것은 삼베옷, 모시옷이다. 더위가 계속 이어질 때는 생모시로 된 고의, 적삼 또는 치마를 해 입었다. 이런 옷들은 습기를 흡수하고 통풍이 잘 되였다. 통풍과 해볕 가림을 하기위해 발을 치고 돗자리를 깐다. 발이 처진 방안에 돗자리를 깔고 누우면 더위도 한 발 물러서게 마련이다. 낮잠이라도 청할 양이면 없어서는 안될 것이 목침이다. 다음 탁족(濯足)이라는 운치있는 방식이 있다. 말 그대로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흐르는 물에 더위를 씻어내는 일이다. 록음이 만드는 짙은 그늘과 귓가를 스치는 요란한 물소리가 한여름 더위를 단번에 사라지게 한다.. 더위 피해 물 가에서 다투어 발 담그니(避暑水边爭濯足)… “도하세시기속시(都下岁时紀俗诗)” 중의 한 구절이다. 탁족은 몸의 열을 내모는 기 순환의 원리를 리용한 것이다. 즉 발은 모든 신경이 모여 있는 곳으로 발을 식힘으로써 온몸에 찬 기운을 불어넣는 리치이다.    호젓한 계곡을 찾아 흐르는 물에 신심을 담그고 속세의 번뇌를 씻어내리며 그윽한 시조 한수 읊조리는 일, 그야말로 운치있는 더위나기가 아닌가!   3 옛사람들에게 또 하나의 유용한 피서법으로는 책읽기가 있다. “열하일기”의 저자 연암 박지원은 사촌형에게 보낸 편지에서 “옷을 벗거나 부채를 휘둘러도 불꽃 같은 열을 견뎌내지 못하면 더욱 덥기만 할뿐, 책읽기에 착심(着心)해 더위를 이겨나갈 것”을 충고하기도 했다. 사실 책읽기 정말 힘든 계절이다. 눅눅한 습기와 끈적끈적한 무더위, 어지간히 책에 대한 애정이 없다면 손에 책을 잡고 있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이런 무더위를 책을 통해 날려버릴 수도 있으니 여름과 책의 관계는 역설 그 자체이다. 책읽기를 뜻하는 한자말에는 독서말고도 “간서(看书)”, 그리고 “피서(披书)”라는 말이 있다. 그러고不上보니 “피서(披書)”와 “피서(避暑)”는 음이 꼭 닮았다. 독서야말로 습하고 더운 일상에서 벗어나는 가장 쉽고 매우 저렴한 길이 아닐가 한다. 올 여름엔 독서삼매경에 빠져 망서(忘暑)하리라!    김혁 문학블로그:http://blog.naver.com/khk66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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