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
방촌(方寸)에 담긴 력사와 인물
김 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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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칭 난 우취인(邮趣人)이다. 우표를 모은 시간도 꽤 오래되고 모은 우표도 수권으로 분류할 만큼 량으로도 적지 않다.
생활고와 도난(盜難)의 아픔때문에 한동안 우표수집을 중단한적 있지만 지금도 간헐적이나마 직성에 맞는 기념우표들을 수집해 들이고 있다.
어릴적 우리집에서 주문해보는 “인민화보”에서 강치방(姜治方)이라는 우표수집가에 대한 소개를 본적 있다. 한장에 수만원이나 한다는 룡우표도 소장하고 있고 이사를 할때에는 우표만도 두개의 트럭으로 싣고 다닌다는 천방야담같은 그의 이야기에 환혹해 우표를 모으기 시작했다. 그때 천진에 가서 투병하고있는 어머니의 달마다 부쳐오는 편지에 붙어 있는 색다른 우표가 나의 여리나 투명한 감수를 끄당겼다.
게다가 마침 한 반급의 그림 잘 그리는 주씨성을 가진애 (그는 지금 한 방송매체에서 촬영기자로 활약하고있다.)도 우표에 흥취를 가져 둘이는 승벽내기로 우표를 모으기 시작했다.
당시 연변에 주둔하고있는 한 주둔군 부대의 퇀장님이라하는 분이 나의 우표수집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어린 나에게 찾아올지경이였다. 그때 그분이 나의 우표수집책중에서 참대곰 우표 몇장을 당시 돈으로는 엄청난 고가로 사들이려 했으나 내가 견결히 거절했고 어머니가 상당히 아쉬워 했던 기억이 있다. 그분이 내 든 가격으로는 어머니가 감질나게 사고퍼 하는 압력밥솥(高压锅) 그리고 몇달 생활비로 충당할고도 남음이 있을것이였다.
그러다 1992년경 청빈하기로 책외에 책밖에 없는 나의 세방집이 도적의 환을 당했다. 그때 첫 중편소설 “미망의 도시”로 받은 고료- 300여원의 현찰과 함께 우표책 두권을 더불어 잃었다. 하남가 파출소에서도 도난소식을 받고 출두했으나 무가내였다. 그중 하필이면 문화대혁명에 관한 귀중한 우표만 정선해 꽂은 우표책을 도난당하고 말았다.
그후로 우표에 대한 나의 흥미는 벼락맞은 묘목처럼 동강이 나 버렸다. 또한 우표수집에는 만만치않는 자금투입이 들어가는것이 가난에 쭉줄렸던 당시 그 취미를 아프게 접은 요인이기도 했다.
옛날 문인들에게는 “4대 애장품”이나 “4대 취미”가 있다고 했다. 책 읽기, 영화CD모으기, 애완견 키우기 그리고 우표 모으기가 나의 애장품이요 취미요 그리고 일상이라 할수 있다.
지금도 가끔 서재에 꽂혀있는, 구도(狗盜)의 마수에서 용케 살아남은 몇권의 우표책을 꺼내 음미하노라면 감흥이 한 가슴 그득 넘쳐 오르며 고단한 삶에 힐링(Healing)이 되여주는듯 하다.
2
요즘 들어 우표를 흔상하는 나의 시선과 모으는 손탁의 움직임이 달라졌다.
옛날에는 동물우표나 항천(航天)우표에 커다란 흥미를 가졌었다.
그중에 내가 모은 진귀한 우표를 자랑해 볼작시면, 멸종위기에 이른 새 주환(朱鹮)에 대한 80년대의 기념우표나 로씨야 우주항행의 대부 가가린에 대한 60년대에 발행한 우표들은 우취인들 사이에도 보배롭게 생각하는 귀중한 우표들이다. 그리고 민국시대에 발행한 손문(손중산)에 대한 우표는 그 발행사가 백년도 넘으니 그 진가는 우취인들만 알 바이다.
요즘에는 력사에 획을 그은 사건이나 그 행간에 우뚝 선 인물을 담은 기념우표에 갑절 눈길이 간다.
그중 우리 민족의 력사와 직결되는 인물을 담은 우표 몇장을 뽑아 읽어 본다.
우선 2007년 한국정보통신부 우정사업본부가 발행한 ”헤이그 특사 100주년 기념”우표 가 있다.
우표 디자인을 보면 헤이그특사 3인의 모습이 고종황제의 위임장을 배경으로 오버랩(한 장면에 다른 장면이 겹치게 하는 촬영 기법)되여 있다.
1907년 고종황제는 일제 강압의 의한 을사륵약의 무효와 대한제국의 국권회복을 세상에 호소하기 위해 그해 6월 화란 헤이그에서 개최되는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 리상설, 리준, 리위종 특사를 비밀리에 파견했다. 하지만 일제의 횡포와 방해로 뜻을 이루지 못하자 리준은 헤이그에서 분사하고 리상설과 리위종은 유럽을 순회하며 국권회복을 위한 투쟁을 계속 전개했다.
“헤이그특사 사건”은 민족항일독립운동의 려명을 연 대사건이라는 점과 렬강 45개국이 모인 외교 무대에서 동양의 은둔국 한국을 알린 최초의 특사외교라는 점에서 력사적 의의가 크다.
내가 이 우표를 아끼는 점은 리상설이 헤이그로 떠나기 앞서 개숙(開塾)한 서전서숙이 바로 내 고향 룡정에 있기때문이다. 지금의 룡정 실험소학교자리에 위치했던 서전서숙은 중국조선족 근대교육의 서장을 연 중요한 유적지이다.
다음 중국에서 발행한 김염에 대한 우표가 있다. 중국영화탄생 백주년을 맞으며 지난 2005년 발행된 우표이다.
조선인으로서는 중국 유일의 “영화황제”로 평선되여 당년에 상해를 주름잡았던 김염은 중국 영화의 성장시대를 이끈 배우로서 아시아 영화계의 거장일뿐더러 우리 민족의 굴지의 자랑이다.
지난해 나의 장편소설 “상해 수은등”이 “중국소수민족작가 중점지지 작품”에 선정되였는데 그 추천작품이 바로 김염의 일대기를 소설화하는 작품이였다. 그 입선 소식을 듣던 날 나는 우표책에서 김염 우표를 꺼내 감회를 머금고 들여다보았었다.
영화인으로는 또 연변 명동학교출신의 한국영화계의 거장 라운규에 관한 우표도 있다.
한국우정사업본부가 “한국의 영화 시리즈” 첫번째 묶음으로 2007년에 발행한 우표 4종 가운데의 하나로 라운규의 대표작 “아리랑”을 비롯해 “사랑을 찾아서”, “임자없는 나루배”, “춘향전” 등 초창기 한국 영화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작품을 소재로 한 우표 4종을 각 56만 장씩 발행했다.
이 가운데 “’아리랑’은 “조국을 잃은 백성의 울분과 설움을 표현하며 초창기 한국영화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던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춘사 라운규를 당대의 스타로 만드는데 디딤돌 역할을 했던 작품”이라고 한국우정사업본부는 설명했다.
역시 명동출신으로 윤동주의 절친 문익환목사에 대한 우표도 발행되였다. 윤동주와 일년을 사이두고 태여나 숭실학교에도 함께 진학했던 문익환, 그후 “남북 통일의 아버지”로 추앙되는 문익환에 대한 우표는 2000년 조선에서 발행했다.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엔
계수나무 한나무 토끼 한마리
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이
가기도 잘도 간다 서쪽 나라로
윤극영의 동요 “반달” 우표도 1986년도에 언녕 나왔다.
한국 체신부에서는 민족 음악을 보다 널리 보급시키기 위하여 우리 생활속에 즐겨 불리우는 민요,동요 및 가곡을 모아 그 노래에 담긴 내용을 소재로 디자인 하고 악보를 삽입한 우표를 수년간 발행하고있는데 그 일환의 하나로 “반달”이 발행되였다.
윤극영 작사. 작곡으로1924년에 만들어진 “반달”은 단순한 동요곡이라기 보다는 우리 민족의 력사적 시련기였던 일제시대에 나라 잃은 민족의 아픈 마음을 달래주었던 겨레의 노래라 할수 있는 작품이다. 어린이부터 로인에, 지역 불문하고 모든 사람이 즐겨 부르는 이 노래는 “고향의 봄”과 더불어 한민족의 얼이 깊이 새겨져 있는 명동요로 꼽힌다.
그 작사, 작곡가 윤극영이 오래동안 룡정에서 교편을 잡고 활동해 온 력사에 대해서는 그 당시 력사에 대해 천척하고 있는 이들이 착잡하게 반추해보고있는 후일담이다.
중국 군가의 작곡자 정률성에 대한 우편엽서도 제1회광주정률성국제음악출제를 맞으며 출시되였다.
한국 광주 출신으로 1933년 항일운동에 가담한 형을 따라 중국으로 건너가 남경, 상해 등지를 전전했고1937년 연안의 로신예술학교를 졸업하고 “연안송” 등을 작곡, 그 가운데 “팔로군행진곡”은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의 건국과 함께 “인민해방군군가”로 선정되였다.
중국인 80% 이상이 그의 곡을 노래할수 있다는 사실과 그가 바로 우리민족의 출신임은 우리 모두가 자호할만한 일이다.
조선인으로서 13억 대륙을 흔든 세계적인 음악가 정률성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한국과 중국에서 성세하게 기념하는 시점에서 그 우편엽서의 의미가 각별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3
4월9일, 한국 서울지방우정청이 연변 명동출신의 민족시인 윤동주에 관한 우표를 발행했다. “영원우표” 추억의 인물 시리즈 두번째 묶음으로 발행된 우표에는 민족시인 한용운, 이육사, 윤동주”를 액면에 담았다.
우표에는 액면가격 대신 “영원우표 국내규격 25g”이라는 문구가 표기돼 있다. 여기서 “영원우표”라 함은 우편료금이 인상되더라도 사용일 당시의 국내 기본 통상우편요금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계속 사용이 가능한 우표를 말한다.
무려 130여만장을 발행한 우표는 시를 통해 민족의 한을 달래주었던 민족시인 3인의 모습과 그들을 대표하는 시 구절을 담았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내 고장 7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등 이들을 각각 대표하는 시 구절이 새겨져 있다.
한국에서는 2001년에도 윤동주의 연희전문시절의 모습을 배경으로 그의 대표작 “서시” 전문을 배경으로 담은 우표를 발행한적 있다.
우표에 오른 윤동주를 지켜보노라니 그의 동시 “편지”가 떠오른다
누나!
이 겨울에도
눈이 가득히 왔습니다.
흰 봉투에
눈을 한 줌 넣고
글씨도 쓰지말고
우표도 부치지 말고
말쑥하게 그대로
편지를 부칠까요.
누나 가신 나라엔
눈이 아니 온다기에.
우표는 서로의 통신수단으로 편지를 주고받는데 보조의 기능만을 가지고 있는것이 아니다. 우표는 가히 “력사 교과서”라고 할수 있다. 세계각지에서 발행되는 기념우표를 보면 알수 있듯이 우표는 당시의 력사적 사건, 문화등을 면밀하게 담고 있다. 방촌(方寸)의 작은 우표딱지를 통해 우리는 그 당시 생활상 및 시대적 상황에 대해 배울수 있는것이다. 그만큼 우표는 문화이고 력사적 산물이며 지금도 시대를 반영하고 있는 하나의 쪽거울이다.
서신교환을 위한 제도적인 인프라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 왔던 우표가 인터넷이나 스마트폰, 이메일의 보급으로 설 자리를 점점 잃어가고있어 우취인으로서는 가슴 아픈 현실이다.
하지만 우표라는 프리즘으로 우리의 민족의 력사나 그 풍운인물에 대해서도 읽을수 있으니 이러한 감흥은 단 우취인만을 떠난 모든 이들의 아취(雅趣)적이면서도 중후한 흔상의 시선이기도 할것이다.
2014년 4월 10일
“청우재/听雨斋”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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