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
이종격투기 아줌마
김 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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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들어 갑절 인기가 높아진 스포츠경기가 있다. 이종격투기이다.
이종격투기(异种
格斗技), 문자 그대로 서로 다른 종류의 항목으로 모든 싸움기술을 사용하여 상대를 쓰러뜨리는 경기를 말한다. 종합격투기라는 별칭도 있다.
이종격투기는 주먹, 발, 무릎을 리용해 상대를 가격하기도하고 메치기, 조르기, 누르기와 관절꺾기 등 동작들이 주를 이룬다. 이종격투기의 기원은 고대 올림픽 종목이였던 “판크라티온”이라고한다. 이는 복싱과 레슬링을 합친 형태로 반칙만 범하지 않으면 한 쪽이 포기할때까지 경기가 계속된다.
근년래 인기의 상승가도를 달리고있는 이종격투기는 스포츠와 엔터테인먼트(많은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것을 바탕으로 하는 문화 활동)의 요소를 모두 갖췄다.
몸과 몸을 부딪히며 링우에서 고투를 벌리는 선수들, 예측할수없는 최후의 결과, 균일한 규칙과 정정당당한 경쟁, 순수한 노력이 만드는 챔피언. 이것이 바로 이종격투기의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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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의 전용물로 알았던 이종격투기장에 녀인이, 그것도 조선족 아줌마가 도전장을 내밀어 화제다.
일전 지금의 거주지 미국에서 고향 연길을 방문, 그야말로 “금의환향”한 심영희씨가 다시금 세간의 화제로 떠오르고있다.
지금은 녀자이종격투기가 남성들과 더불어 정규적인 경기도 펼치고 있지만 십여년전에, 그것도 전업훈련이 전무한 조선족 아줌마가 이종격투기장에 도전장을 내민것은 어찌보면 “달걀로 바위치기”의 무모한 도전이였다. 하지만 그녀는 주먹으로 바위를 내질렀고 그 편견의 바위를 부서뜨렸다.
중한수교가 이루어지기전인 1989년, 심영희씨는 남보다 비교적 일찍 출국의 쪽대문을 조심스레 열고 한국으로 나갔다.
오로지 가족을 위해 식당의 음식배달, 공사장의 타일붙이기등 어지럽고 힘든 일들을 가릴 새없이 닥치는 대로 했다.
어느 한번 한 체육관에 음식배달을 하게 되였는데 그 체육관이 바로 이각수 세계격투기련맹 사무총장이 경영하는 곳이였고 그날 격투기에 대해 처음 알게된 그녀는 호기심이 부쩍 동해 관장에게 격투기를 배우고 싶다는 의향을 내비쳤다.
어릴때부터 륙상, 배구, 체조에서 기량을 보이며 뛰여난 운동신경을 가졌던터라 선택한 도전이였다. 밤을 패고 끼니도 거르며 련습기를 보낸뒤 조건이 구비됐음을 느낀 심씨는 1999년 미국으로 건너가 본격적인 이종격투기 인생을 시작했다.
근 10년이라는 노력끝에 기회가 왔다. 2007년 3월22일 메히꼬에서 열린 “월드챔피언 십이종격투기대회”, 무려 7천여명의 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녀는 세계녀자이종격투기 챔피언인 메히꼬선수 이사벨 마르티네즈를 제압했다. 2008년 마르테네즈의 재도전에서 심씨는 또 한번 상대를 제압해 세계 챔피언의 자리를 굳혔다. 당년 44세의 연변아줌마가 22세의 새파란 세계정상급선수를 링우에서 무찌른것이다. 홈팬들의 일방적인 응원을 등에 업은 20살짜리 딸 같은 선수와의 대결. 결코 쉽지 않은 경기였다. 경기후 우승벨트를 차면서 심씨는 링우에서 상처투성이 얼굴을 한 채 뜨거운 눈물을 쏟았다.
2003년 프로무대에 입문한 심씨는 불혹의 나이를 넘겼지만 젊은 선수들을 련이어 제치고 지금까지 48차의 경기에서 무려 45차나 우승을 하는 기염을 토했다.
심씨는 현재 미국 로스안젤레스에서 도장을 차려100여명의 제자들을 가르치며 후학 양성에 힘쓰고 있다.
이미 미국 시민권을 따낸 심씨는 미국 경찰들에게 합기도를 전수하게 되였고 따라서 캘리포니아주로부터 경호자격을 취득했다.
심씨는 미국 부시 전대통령으로부터 4차례의 감사장을 받아 안기도 했고 박근혜 한국대통령이 2007년도 미국을 방문했을때의 측근경호원으로 선발되였으며 또 한국의 피겨녀왕 김연하의 밀착경호를 맡기도했다.
심씨는 격투기를 시작한 리유로 “녀성들도 할수 있다는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경기에서, 일상에서 심씨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4가지 덕목은 “백절불굴, 례의, 정직, 극기”라고한다. 심씨는 “무술은 남을 이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이기는것이라고 그의 스포츠와 생활신조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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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 파워”가 실감되는 요즘 세상이다.
이 수십년래 한국이나 로씨야, 일본, 미국으로 진출한 조선족은 수십만명을 넘어서고 있으며 그들이 벌어들인 외화만도 수억원, 연변의 경우 길림성 외화수입에서 조선족이 단연 첫자리를 차지한다. 그중 선두주자와 절대주역은 녀성이라는 집계도 이미 나왔다.
조선족 아줌마들은 일찍 1980년대 중기, 개혁개방으로 국문이 열리기시작하자 해외의 경제구조에 대해 일찍이 눈을 돌렸으며 이 천재일우의 기회를 선점해 친척방문이나 로무송출로 남들보다 재빠른 가족의 부를 이루어 왔다.
오로지 자기희생을 무릅쓰고 자식을 위해 가족을 위해 헌신하고있는 우리 아줌마들이다. 입시공부때면 아이의 공부환경을 위해 맹모삼천(孟母三迁)은 기본이고 더 나은 생활을 위해서는 리산의 아픔도 눈물과함께 삼키며 해외로 나가 몰리해와 천대속에서도 머리를 수굿하고 3D업종에서 한몸을 혹사하는 아줌마들이다.
어깨가 결리고 손목이 붓고 다리가 아프도록 가족을 위해 치렬하게 사는 우리의 아줌마들. 그들의 헌신덕에 우리 가정과 사회가 바른 궤도로, 더 높은 종착지로 이나마 굴러가는것이 아닐가!
해외에서 이종격투기라는 이색적이며 가혹한 무대에서 정상에 까지 오른 연변 아줌마 심영희씨의 경우가 그 범례(范列)라 말하고싶다.
2014년 4월 15일
“청우재/听雨斋”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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