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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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락의 변증법
2015년 05월 21일 11시 50분  조회:5062  추천:0  작성자: 최균선
                               고락의 변증법
 
    인생은 무변고해라는 옛로인들의 교훈이 있고 반대로 고진감래(苦尽甘来)라는 말도 있으니 초로인생에 성씨를 단다면 고(苦)가 돼야 하나? 락(乐)씨가 돼야 하나?
   인생고를 뜻하는《고》에는 고생, 고난, 고역, 고뇌, 고통 등 정신적육체적인《고》가 들어있겠으나 결국《괴로움》에 모아지고 인생락을 가리키는《락》에는 환 락, 쾌락, 영락, 오락 등 여러가지 의미가 담겨있겠으나 역시《즐거움》에 귀결될것이다. 파란만장한 우리네 인생에서 락이야말로 제한된 삶을 완벽화하는것이여서 저마다의 가치척도로, 추구로 되여있다.
   살며 느끼는 인생은 비극이요, 생각하는 인생은 희극이라고 누가 말했던지, 그래서 바랄수는 있어도 오를수는 없는 천당이라는것을 환상해내고 아직 누구도 가보았다는 사람이 없는 지옥을 고안해 내였을게다.
   그러나 동경은 동경에 머물고 두려움은 두려움으로 지속되나니 무릇 숨쉬는자에게는 고통이 있고 생각하는자에게는 비애가 있다.
     성경에 이브가 금과를 훔쳐먹은 죄로 아담과 함께 에덴동산에서 쫓겨날때부터 인류에게는 고생무이 터져서 남자는 밭갈고 녀자는 길쌈하고 남자에게 몸바치고 아이를 낳는 피나는 고통을 겪어야 했다고 쓰고있다. 그 얘기가 비록 신화일지라도 아무튼 인간은《고(苦)》와 숙명적인 인연을 맺았다고 해야 하리라. 이른바 흥진비래요, 고진감래이니 아마도 우리 인생의 성은 두자성인《고락》이라 하는게 적절할것 같다.
   고와 락의 관계는 동전의 량면과 같아서 고락의 의미는 대응되는 량면에 대한 각자 소감의 차이에서 현연되는것으로서 모두가 추구하는 락이란 실제상 차일시 피일시라 지구촌 수십억 인간들로 말하면 수십억개일수 있다. 말하자면 나의 쾌락은 이때의 여기에서 느껴질수 있고 당신의 쾌락은 그때의 그곳에서 선택될수 있다는 말이다.
   아담과 이브는 고통을 알기전에 향락에 젖어있었는바 인류는 그 향락의 유전인소를 고스란히 받아안았던것이다. 하여 소수의 놀고 먹는자들이 다수사람들의 고통우에 안락궁을 짓고 향락에 질탕거렸다. 현대에 와서는 더구나 고기술적으로 락이 창출되고 그 차원도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있다. 사람은 저마다 락을 추구하게 마련이니 락을 두고 왈가왈부할것은 없으되 문제는 물극상반(物极相反) 의 변증관계가 전혀 망각되고있는 그 점이다. 희망에만 매달려있는 사람은 꼭 실망하기 마련이고 극도의 쾌락이 지나간 자리에는 극도의 비애가 들어앉는다지 않는가, 하지만 말을 타면 소수레를 타던 때를 잊어버리고 자동차를 타면 말타던 때의 희열을 부끄럽게 여기는 우리 현대인이다.
   고대희랍의 륜리학자인 니코마코스는 쾌락을 정신적인것과 육체적인것으로 나누어서 론하였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락은 거개가 촉각에서 오는 실제적향락으로서 크게는 식도락이나 섹스같은것을 첫손으로 꼽을것이다. 이에도 단순성분의 락과 혼합성 분의 락이 있다. 례하면 강간범의 광란적배설만족에서 오는《락》은 동물적인것에 불과한 단순성분의《락》이다.
    자고로 백성의 고혈을 빨아먹고 배꼽이 깊이 패인 탐관오리들이나 오늘의 허울좋은《충복》들이 나라의 거금으로 롱탕치면서 만끽하는《락》은 곧 악마의 향연과도 같은것으로서 문명의 허울을 쓰고 붉은 외투밑에서 감행되는 혼합성락이다.
    정신적쾌락에는 인류공영의 위업을 이루어 명예를 얻거나 학문을 탐구하거나 하는데서 오는 락이 들어있다.
    그런데 인륜지락의 복지는 인간의 본능적인 쾌락이 거의다 점유해버리고 말아서 정신적인것이란 별로없다. 인간의 원죄와 비애가 여기에 있는것이 아닐지? 어찌하여 인간은 육체적, 본성적쾌락에 기울어져버렸는가? 우리가 가장 빈번하게 육체적쾌락을 지향해왔고 누구나 다 경험해보았기때문이라고 고대희랍의 철학자 니코르마코스는 해석하고있다.
   어찌되였든간에 쾌락은 생활고를 제거하는데 유일한 령약임에는 틀림없다. 무시로 인간고를 겪고있는 세속의 중생이나만큼 락을 갈구하는것은 당연한 권리이고 응당한 선택이니 더욱 그럴수밖에, 고난이 인간에게 숙명적인것이고 원초적인 결핍일 진대 바로 그때문에 그 결핍을 충족시키는것이 쾌락인것이다. 먼저《고》가 있기에 후에《락》이라는것이 인간의 정감사전에 새겨졌다. 유감스러운것은 락이란 안개같은 것이여서 곧잘 사라져버리고 고통의 토양에서 자란 추억의 나무만은 상록수로 뿌리가 깊은것이 우리네 삶의 현장이다.
   우리 모두는 모체가 가장 고통에 모대길 때 이 세상에 나왔다. 울음으로 시작한 인생은 이런저런 인간고의 련속이고 마감에는 역시 죽음이라는 고통으로 한생에 종지 부를 찍게 되여있다. 그런데도 인생고의 일면을 외면해버리고 락만 내내 누리기를 바란다면《사회색망》으로서《고통》의 포로로 될수밖에 없다.
   지위와 명예와 권력과 금전만 있으면 쾌락한 인생이라고 자처하는 총명하고 유식한《사회색망》들이 우리 주위에 날로 많아지고있다. 외국속담에 무식하 멍청이보다 유식한 멍청이가 더 심한 멍청이라는 말이 있다.
    지금 당장 먹고 살 근심이 없는 사람들에게 고생을 락의 전제라고 말한다면 창백무력한 설교가 되겠지만 참으로 티끌세상의 고해를 헤쳐나오느라 갖은고난을 겪었다는것은인생에 승화를 가져왔다는것을 의미한다. 생명이 훼멸되지 않고 자신이 감당해 낼수 있는 인간고는 모종 의미에서 무형의 재부이다. 고락은 결코 인생마당에 단선경주로처럼 금이 그어져있는것도 아니다. 고난속에 굳어진 근육은 순발력을 산생할수 있으며 인간고속에 제련된 사상은 그후의 향락열을 식혀줄수 있다. 인간고속에서 피와 땀의 세례를 받은 령혼은 허황한 잠꼬대를 하지 않으며 그 인격을 가늠하는 시금석이 되기도 한다.
   만약 당신이 감히 인간고를 정시할수 있다면 그것은 삶의 용기의 표현이며 그것 과 감히 맞서려는 심리자세가 갖추어졌다면 현실적인 인생기술을 닦은 대장부의 길에 올랐다는것을 의미한다.
   옛사람이 고생을 회피하는 사람에게는 고생이 평생을 따라다니지만 고생과 동반 하여 끈질기게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고생도 절로 알고 반생만 따라다닌다고 했다. 아마 그래서 초년고생은 은을 주고도 못산다는 금언을 남겼을것이다.
    이 세상에는 완전한 쾌락도 없고 영구한 고생도 없다.《천당》에 오르느냐 《지옥》에 굴러떨어지느냐 하는것은 그의 인생행각에 달린것이고 그 자신의 됨됨이와 인 격저력에 달렸다. 이 도리를 깨우쳤을 때 그는 비로소 살기시작한것이다.
   오늘 잘살고 못살고로 인끔을 가를수는 없다. 저속한자의 쾌락은 어디까지나 감성적이고 동물적일테지만 지성인들의 쾌락은 정적인것에 가까운것이다. 사유와 독서같은데도 육체적, 자극적쾌락에 짝지지 않는 제나름의 쾌락이 있다. 진정한 인생지락은 재래로 조용하고 담박하며 결백하고 진솔한 삶을 가꾸는 그런 보통인들의 가슴속에 머물러있기를 더 좋아하는 법이다. 오래 지속된다 해서 그것 이상으로 완성되는 법이 없으며 그저 순간순간으것일뿐이다.
   부정축재로 누리는 락에 깃든 속썩은 한숨을 우리는 별로 귀를 기울이지 않고도 들을수 있다. 세상에 깨지 않는 악몽이 없는것처럼 파하지 않는 잔치란 없는것, 한때 일세영달하고 부귀속에서 이른바 락을 누리다가 철창속에서 늦고생을 하사받은 재미란 뼈저릴것이다.
   행복이 쾌락을 낳을수는 있겠지만 모든 락이 곧 행복과 등호인것은 아니다. 아이들이 너무 좋아하면 나중에 울음이 터진다는 말이 있다. 사람은 좋을 때 자기를 자제하는것이 곧 바람직한 일이다.
   지금 어렵더라도 깔깔한 인생고의 모래알속에 삶의 금싸락이 있을수 있다.그것을 소중히 여기여 열심히 금싸락을 이는 그런 사람에게 락이 차례지기를 기대해본다.
 
                            1999년 2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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