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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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의 미학
2015년 06월 01일 19시 42분  조회:5690  추천:0  작성자: 최균선
                                기다림의 미학
 
   당신은 어떤 기다림끝에 가슴가득 마연자실의 재티가 쌓여본적 있으신가? 참으로 못견디게 절절한 기다림이라면 그것이 곧 생명의 연소이며 인생의 소야곡이다.
   누군가를 기다릴 때만큼 분침이 게을러보일 때가 없을것이며 그대로 예리한 바늘이 되여 가슴을 아프게 찌를 때가 없을것이다. 그런 기다림은 막무가내한 자기 학대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인간은 모두 기다림과 등지고 살수는 없다. 우리가 탄 인생렬 차는 크고작은 무수한 기다림의 역에서 실망을 부리고 새 희망을 싣고 달려가기 마련이다.
    어릴적 개눈깔사탕을 사준다며 빈 집에 남겨두고 장보러 간 어머니를 해가 지도록 동구밖에서 지켜섰던 그 기다림은 지금 생각해봐도 미쁜 기다림이 아닐수 없다. 초침을 헤아리며 님을 기다리던 그 밤의 기다림은 그 많은 못잊을 사연들과 더불어 생활의 별책(别册)을 이어준다는 의미에서는 더없이 소중하기도 한것이다.
   저 유명한 베케트의 황당극《고도를 기다리며》의 주인공들처럼 무엇을 기다리는지 모른다면 그것은 그저 소극적인 시간의 헤아림이지만 생사존망과 관계되는 목마른 기다림은 원망고 초조함으로 절어있기에 아무리 독실한 신다라도 하느님까지 곁들어가며 푸념질할것이다. 그러다가도 바라던것이 마침내 오고 이룸과 만남의 꽃다발이 안겨지면 그 모든 괴롭던 마음은 바람앞의 구름처럼 사려져버릴것이다.
   기다림끝에는 또한 무지개같은 현란함만 있는것이 아니다. 기다림의 저쪽에 혹《어부의 이야기》에서처럼 바다마귀같은것이 나타나 당신을 아연실색하게 할수도 있다. 마음의 기둥이 밑뿌리채 흔들리게 하지 말라. 생명의 상록수엔 아직도 희망의 열매가 달릴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될가, 남들이 모두 대학입학통지서를 받고 기쁘게 들 떠날 때 한 청년은 기다림의 한끝까지 가보지 않고 그만 자기를 포기해버렸다. 운명은 결과적으로만 아니라 과정으로도 인간을 희롱하기 일쑤다. 그 청년이 자살한 사 흘만에 그 운명적인 대학입학통지서가 왔다. 그러나 기다림의 락제생이였던 그 청년은 이미 인생학교에서 자퇴해버렸으니 그저 애석하다 해야 할가?
   어떤이에게는 또 기다림이 절주 빠른 선률처럼 고조를 이루다가 저조에 들어가면서 불협화음을 연주할수도 있다. 훼멸적인 충격파로 되여 자칫 가느다란 희망의 빛마 저 쓸어버리기도 하는것이다.
 《희망에 들어서란 바보라도 령리하나니/실수는 반병신이요 락심인즉 천치니라》는 옛시조가락 한번 되새겨보라. 절해고도에서의 로빈손의 기다림은 처절한 인생박투였다. 하지만 그렇듯 강한 끈질긴 기다림이 마침내 숙망의 귀국선을 불러오지 않았던가! 로빈손이야말로 기다림의 강자, 자기 운명의 지배자가 아니겠는가?
   기다림은 확실히 인생예술의 일종이다. 기다림은 결코 나무밑에 앉아 두번째 토끼가 뛰여와 죽기를 기다린 송나라 사람의 그런 기다림이 아니다. 기다림은 한사람의 의지와 감내력을 벼리는 모루이며 인격적 성숙도를 표지하는 눈금이기도 하다.
   마음속에 륙도삼략(六韬三略)을 지니고 앉아서도 벌써 3분천하의 웅대한 구상을 끝내고있었던 천하기재인 제갈량이 와룡강언덕에 밭갈고 풍월을 읊으며 기다린것이 과연 무었이였던가, 비록 류비가 삼고초려(三顾虑) 하여 간청했기에 산을 내렸지만 결코 륭중땅에  숨어있던 와룡이 중원을 휩쓸며 나래칠 천시(天时)는 아니였던것이다. 마침내 당대의 명주였던 류비를 받들어 3분천하 하고 대업은 이루었지만 통일대업은 이루지 못하고 그것으로 마침표를 찍을수밖에 없었으니 불우하다고 해야 하리라.
   기다림과 포옹할 아량을 지니라. 기다림의 고험을 이겨낼 사람은 비바람 사나운 밤 갈림길에서도 자기가 가야 할 길을 찾아낼수 있다. 기다림은 비장한 기대감이며 아름다운 풍경선너머 신비한 약속이기도 하다. 판도라가 닫아버린 전설의 상자속에 유일하게 남아있는것이 희망이였다는것을 명기하라. 상하5천년 인류의 영속은 바로 희망에 대한 기대감과 기다림이 있었기에 가능했던것이 아니랴. 기다림에 지겹더라도 언젠가는 뜨거운 만남과 아름다움이 반겨줄것이다. 기다림끝에서 환희를 느낄 때 당 신이 기다림에 소모한 생명도 보람찬것이며 그지없이 아름다운것이다.
   깡그리 타버린 재무지속에서 일체 공리가 소실되고 허무만이 남았을지라도 당신은 자신의 생명체의 실존의미를 기쁘게 발견하고 우주와 함께 흔들리는 이 삶의 마당에 튼튼히 버티고 서있다는 자각만도 소중한것이 아니랴.
   변화다단한 인생길에 기다림의 역이 없었다면 너무나 피로한 길일것이요, 그 촉박함에 늘 숨가쁠것이다. 기다림이 기다림을 마중나선 길에 실망이 막아서더라도 주저앉지 마시라. 또 다른 기다림의 새 언덕에 올라 마음 넉넉히 잡고 이마에 손을 얹으시라. 인생의 굽이마다에 생화가 피지는 않더라도 그 길로 래일이 오리라.
   당긴채 놓아둔 활처럼 팽팽하게 휘여져있는 마음이라면 기다림이 높낮은 고개고 개를 넘을수 없다. 더 멀리 뛰기 위해 몇걸음 물러서는 그 자세도 기다림의 한 자세이다. 기다림이란 바로 생명운동의 일종 방식이다. 확고한 기다림속에 많은 성공들이 잉태되고 한차례 또 한차례의 기다림은 생명의 승화가 될수도 있다.
   맨 나중에 제일 통쾌하게 웃을지도 모르니 조금 더 조금만 더 기다리시라. 그리고 자기를 가다듬어라.
 
                            2000년 10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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