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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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문) 생각하기와 말하기
2015년 11월 04일 17시 37분  조회:4372  추천:0  작성자: 최균선
                                  생각하기와 말하기
                     
 
    인간의 말은 그의 인생과 같다. 말은 행동의 거울이다. 말은 행동보다 더 긴 생명을 가진다. 인류가 말을 할줄 알게 된것은 문명개화의 길에서 더구나 금상첨화가 아닐수 없다. 자초에는 사람들의 단순한 의사전달을 목적으로 생각한것을 곧이곧대로 털어놓았을것이다.
   말이 없는 인생은 상상할수도 없다. 어떤 말을 하며 사는가는 그 사람의 인생내용으로 되여진다. 그러나 인간은 차차 문명개화하면서 말속에 말을 숨기고 말에 말을 얹거나 빙빙 에둘러 말하는 등 기량을 터득하게 되였다. 사람이라면 말을 하며 살아 야 하고 말을 할 때에는 해야지만 말로 롱간질을 하지 말아야 할것이다.
   “백유경(百喩经)”이라는 옛글에 이런 일화가 있다. 한 부부가 떡 세개를 구웠는데 마지막 한개를 누가 먹어야 하는가를 두고 내기를 하였다. 즉 누가 마지막까지 말을 하지 않으면 그것을 먹을수 있다는 조건이였다. 도박이 시작되였다. 이때 공교롭게도 도적이 들었다. 도적은 처음엔 사람이 앉아있는지라 망설이다가 아무 반응도 없는지라 차츰 담이 커졌다. 도적은 집안의 값이 갈만한 물건들을 챙겨가지고 나가려다가 녀자가 십분 자색을 가지고있는지라 음심이 솟구쳤다.
   하여 녀자에게 다가와 손발을 놀리기시작했다. 녀자는 더는 참지못하고 소리쳤다.
   “너는 죽은 사람이냐? 눈앞에서 제녀편네를 희롱해도 관계하지 않을작정이냐? 이 뒈질놈아!”
    녀편네가 발악하며 고함질렀지만 남편이란자는
   “네가 졌다. 이 떡은 내가 먹게 됐다. 히히히… ”하고 바보스럽게 웃음을 터뜨렸다.
    물론 이건 우화이다. 말 한마디에 천근이 오르내린더더니 말 한마디에 떡한개가 오르내리는 문제라서 함구무언을 도박의 조건으로 삼았다는 그 자체에 의의가 있지 않은가? 문명개화시대에 하나의 떡을 먹으려고 침묵할 사람은 없다. 이런 경우에는 말은 해야 맛이고 고기는 씹어야 맛이라는 속담이 어울릴듯싶다.
   머리는 우리를 생각하게 하고 행동하게 하며 말하게 한다. 하지만 생각한것이 그렇게 완미하고 적극적이고 선진적인것이라도 입을 통하여 말하지 않거나 혹은 글로 써내여 표달하지 않고는 아무쓸모가 없다. “벙어리속은 낳은 에미도 모른다”는 속담이 바로 말의 중요성을 제시한것이 아닐가?
   그러나 인간이 차차 역어지면서 생각하기와 말하기는 점점 협조적이 되지 못하고 생각 따로, 말 따로 해야 할 경우가 비일비재이니 정말 인류의 원초적비애라 아니할 수 없다. 생각하기와 말하기가 그렇게 다를수밖에 없다는 막무가내함을 보여준 전고 로는 또 진조의 간신 조고의 “지록위마(指鹿为马)”를 들수 있을것이다.
    제위를 차지할 야심을 가진 조고가 대신들이 자기 위세에 얼마나 굴종하는가를 시탐하기 위해 황제 호해앞에 사슴을 끌어다놓고 말이라고 하면서 대신들더러 진가를 가리라고 했다. 결국 사슴이라고 이실직고한 대신들은 처형되고 량지를 꿍져박고 말 이라고 말한 대신은 승직하였으며 명철보신하여 입을 다문 대신들은 목숨을 건졌다.
    이 이야기로부터 우리는 인간의 머리와 입은 본의 아니게 불협조적일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된다. 속담에 “말은 바른대로 하고 큰고기는 내앞에 놓아라”고 하였지만 어찌 그냥 말로 은공을 갚고 천냥빚을 갚을 절창만 내놓을수 있으랴!
   사슴인가 말인가는 아주 간단한 사유를 하면 되지만 보이는대로 사슴이라고 할가, 량심을 속이고 말이라고 할가? 하는 문제는 치렬한 내심투쟁을 거쳐야 하는 심각한 문제이다. 사슴을 사슴이라고 말한 대신들의 그 올곧고 대바른 성미는 길이 찬양할바 이고 사슴을 말이라고 한자들은 더없이 가증스럽지만 정작 자기가 그 경우에 놓이면 침묵을 지키는것을 상책으로 여길 사람이 많을것이다.
   생활속의 많은 현상들은 그렇게 “지록위마”처럼 쉽게 판단할수 없다는것을 모두 느끼고있다. 중국에는 쓸데없이 일에 참견말라는 처헤철학의 정수가 류전되고 있다. 말하자면 형편을 봐가며 입에 자물쇠를 잠그고 수수방관하는것을 명지한 처사로 인정 하는것이다. 실용가치가 있는 처세술인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과연 백사에 자기와 리해관계가 없다고 해서 입을 다물고 명철보신하면 만사대길인가? 꼭 그런것은 아니다. 이런 이야기가 전해지고있다. 독일신교의 마틴 니모라목의 비문에 독일나치스들의 대도살에 대한 한단락의 글이 새겨져있는데 전인 류적인 심사숙고를 자아낸다.
   “처음 그들이 공회인사들을 도살할 때 나는 말하지 않았다. 나는 공회인사가 아니였기때문이다. 후에 그들이 공산당원들을 학살할 때도 역시 아무말도 하지않았다. 나는 공산당원이 아니였기때문이다. 다음 그들이 유태인을 학살할 때도 나는 침묵을 하였다. 나는 유태인이 아니였기때문이다. 계속하여 천주교도들을 학살할 때도 의연히 침묵을 지켰다. 나는 기독교인이 아니였기때문이다. 마지막에 그들이 나를 죽이려 할 때는 이미 아무 사람도 나를 위해 말해줄수 없었다. 말할수 있는 사람들을 그들이 모조리 죽여버렸기때문이다. ”
    독일목사의 비문에 새겨진 참회에서 우리는 금이라고 일컬어지는 침묵도 경우에 따라서는 만전지책이 아니라는것을 알수 있다.
    중국에는 “적게 말하는것이 제일 좋다”거나 “시비거리가 생기면 입을 다물고 충돌을 피하라.”거나 “둥글둥글하고 매끄러워야 한다.”는 벼슬지남이 있다. 항간에도 “입은 재화의 문이라 사람을 만나 말을 삼가하고 마음을 다 주지말라”거나 “나라일은 입에 담지도 말라.”는 등 금과옥률이 있다. 이런 명철보신술이 몇천년이나 내려오다 보니 이른바 쓸데없는 일에 참견하지 말라고 하는것이 불문률로 된듯하다.
   우리는 선인들이 남겨놓은 이런 금언들에 담긴 생존의 지혜와 인생철리를 승인하지 않을수 없으며 제입 건사에 십분 신경을 쓰지 않을수 없다. 그것은 력사적으로 빚 어진 피와 눈물의 비극속에서 총화해낸것들이기때문이다.“말잘하고 징역가랴.”하는 속담이 있지만 말한마디에 목이 날아나고 옥고를 겪고 멸문지화를 당한 사실이 얼마였던가!
    목을 내대고 참말을 한 지사들도 있지만 극히 소수이다. 하여 중국의 몇천년 전 제사회에서 사람들은 감히 노할수는 있어도 감히 말할수는 없었던것이다. 그때는 차집이나 술집벽에 “국사를 론하지말라”는 고시가 나붙어있었다고 한다. 대신은 황제에게, 노복은 주인에게, 안해는 남편에게, 제자는 스승에게 그저 “예예”하고 무조건 순종하는 길밖에 없었다.
    말한다는것은 인간의 본능이고 일종 욕망이다. 로백성의 금욕은 황제의 종욕을 야기시는법이다. 분명 허튼소리이지만 황제가 말한것은 다가 “현명하옵니다.”라고 개여올려야 하였다. 말은 마음의 소리라라고 하지만 언제 마음의 소리를 다하고 살수 있었던가? 그러다보니 말하는자는 힘들어지고 듣는자는 정신을 가다듬어 말속의 말을 더듬어내야 하고 말밖의 말을 터득해야 했다. 총명한 사람들은 말을 들을 때 그 소리만을 듣는다고 하여 로련하고 수양이 있는 사람은 소홀하게 말하려 하지 않거나 혹은 분명하게 말하지 않으려 한다.
   고대인들에게 신체언어가 있었는지는 모르나 표정관리예술은 잘 알고있었을것이다. 그래서 기뻐도 내색을 내지말고 노해도 안색을 흐리지 말라고 하였다. 쏟아내는 말이 마음과 같을수 없고 표정도 마음과 동보할수는 없다. 그럴때면 될수록 자기 마 음의 문을 꽁꽁 닫아걸고 아무도 들여다보지도 못하고 넘겨짚지도 못하게 해야 실수 가 없으리라고 하였다.
    비단 자기 입을 주의해야 할뿐만아니라 시시로 남의 말밥에 오르지 않도록 근신해야 한다. 남을 해치기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먼저 사탕알을 입에 넣어 잠시 말문을 막듯이 대방에게 듣기좋은 말만 하여 자신에게 해로운 말을 할 마음을 어루만져놓거나 극단적으로서 약자선손이라는 말처럼 말처럼 먼저 대방에게 높은 모자를 씌워주고 아주 공손한듯이 가장하는것도 은신술의 하나이다.
   인간관계는 책에 씌여진것처럼 그렇게 조화롭지 못하다. 말잘하는 소진, 장의라도 이 복잡다단한 인간사이를 조화롭게만 할수 없을것이다. 말을 많이 한다해서 말을 잘하는것이 아니며 청산류수라 해서 말을 잘 한다고 할수 없다. 말은 하기 쉽기도 하 고 어렵기도하다. 특히 늘 참말을 한다는것은 더구나 어려운 일이다.
   사람은 크게 나누어 세가지 말을 하며 살게 된다. 첫째는 여러사람앞에서 공식적으로 하는 말인데 참말도 있고 거짓말도 있다. 이런 말은 사회언론이 되는 경우가 많다. 둘째는 일상에서 사사로히 하는 말로서 역시 진가가 뒤섞있다. 그것은 마음의 문 을 활짝 열어놓고 하는 말이 아니다. 셋째로 마음의 골방에 챙겨져있지만 감히 쏟아 내지 못하는 말로서 가능하게 죽을때까지 마음의 골방에서 혼자 잠자야 할것이다.
    어떤 종류의 말을 하든 참말은 자유의 메아리이다. 그러나 흔히“충언역이(忠言逆耳)”라고 자고로 용납되지 않았다. 참말이 잘 용납되지 않는것은 참말이 진정 진 귀하고 진귀한것인만큼 더구나 수요되기때문이다. 참된 말이란 진리를 의미하는것이 아니며 정확하기만 한것이 아니다. 무엇을 생각하면 무엇을 말하고 어떻게 생각하면 어떻게 말하는것이 바로 참말이다.
    옛글에 이르되(桃李无言下自成蹊)고했다.“물이 깊으면 고기가 절로 모여 든다”는 말도 있다. 늘 참말은 하지 못하더라도 참된 마음을 가지고 덕을 쌓으며 살아가는것만큼 보람있는 인생이 어디 또 있으랴만 그게 잘안되니 사람들이 개탄하는것이리라.
 
                                2007년 10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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