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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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디아스포라, 사과배 그리고 문화의 뿌리
2005년 11월 22일 00시 00분  조회:5250  추천:42  작성자: 김관웅
디아스포라(Diaspora)라는 말은 원래 성서의 신명기(申明記)에 나오는 말로 고국 팔레스타인의 땅을 쫓겨난 유태인들의 민족 이산(離散)을 뜻하는 말로 사용되었으나 최근 20세기후반에 들어 여러 이유로 고국을 떠난 사람들의 경험을 가리키는 개념으로 부각하게 되었다. 중국조선족의 문학은 디아스포라 문학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중국조선족의 디아스포라 문학을 중국조선족 북방 시단의 원로시인 리삼월의 <<접목>>(1993)을 통해 보기로 하자.


접목의 아픔을 참고
먼 이웃
남의 뿌리에서
모지름을 쓰면서 자랐다

이곳 토질에 맞게
이곳 비에 맞춤하게
이곳 바람에 어울리게

잎을 돋치고
꽃을 피우고
이제는 접목한 자리에
든든한 테를 둘렀거니

큰바람도 두렵지 않고
한 마당 나무들과도 정이 들고
열매도 한 아름 안고…

그러나 허리를 잘려
옮겨오던 그날의 칼 소리

가끔 메아리로 되돌아오면
기억은 아직도 아프다.


시인은 고국을 떠나 중국에 사는 우리 조선족을 산 설고 물 설은 타향의 나무에 접목된접수(椄穗)에 비유한다. 이 어린 나뭇가지는 타향의 풍토와 기후에 적응해 튼튼하게 자라났고 다른 나무들과 어울려 숲을 이루었으나 “허리를 잘려/ 옮겨오던 그날의 칼소리”만은 잊을 수 없다고 노래하고 있다. 우리 중국 조선족의 이민사와 생활사를, 우리민족의 정체성의 갈등을 뛰어난 은유와 상징기법으로 노래한 시라고 하겠다. 다만 우리를 중국조선족을‘남의 뿌리’에 접목한 접수(椄穗)하고 한 것은 어딘가 탐탁치가 않다.

반대로 우리 중국조선족은 자기의 문화의 뿌리에다 남의 문화의 가지를 가져다 접목시켰다고 보는게 더 합당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중국조선족은 모국을 떠나 타국에서서 살아가는 이민 민족이요, 또 그러는 가운데서 중국문화와를 자기 문화의 뿌리에 접목을 시키게 된 것이다. 이런 중국조선족의 디아스포라적인 경험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 연변의 특산물인 사과배다.

지금으로부터 70여 년 전 용정시 로두구(老頭溝)의 한 조선족농민이 조선 함경남도 북청에서 배나무가지를 벼여 가져다가 당지의 야산에서 자라는 야생 돌배나무 세 그루에 접목을 했더니 그 해 겨울을 나니 한 그루가 죽고 두 그루가 살았다. 몇 년 후 접목한 이 두 그루의 돌배나무에는 특이한 열매가 달렸다. 추운 연변의 풍토에서는 열릴 수 없는 크고 달고 시원한 배가 열렸던 것이다. 그 껍질이 마치 사과처럼 반나마 붉은 빛을 띠어서 사과배라고 이름을 지었던 것이다.

연변 사과배나무의 원조는 아직도 로두구에 있다. 이 두 그루의 배나무가지를 접목한 돌배나무가 연변 사과배 나무의 단초를 열어놓았다고 한다. 봄철이면 마치 흰 눈이 내리기라도 한 듯이 몇 십리 이어진 모아산(帽兒山) 산자락을 덮고 있는 용정과수농장은 거의 대부분 사과배를 재배하는 초대형의 과수원이다.

접목법에서는 북청에서 가져온 배나무가지는 접수(椄穗)라고 하고 로투구의 야생
돌배나무 뿌리는 접본(接本)이라고 한다. 접목하는 구체적 방법은 나무의 종류에 따라서 좀씩 다르기는 하나 대부분 접본을 땅에서부터 조금 윗 부분을 잘라내 버리고 그 끝을 세로 짜개고 목질부와 껍질 사이에 접수(椄穗)를 꽂아 잘 밀착하도록 헝겊으로 꼭 잡아매고 흙을 발라두기도 한다.

사과배만이 아니라 다른 품종의 과일나무도 접목의 리치는 마찬가지이다. 세계 제일의 품질을 자랑하는 한국 사과인 후지도 그 뿌리는 야생종인 매조의 일종이라고 한다. 매조의 열매는 크기가 도토리보다도 보잘 것 없는 나무이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세계 각국에서 여왕의 자리를 차지하였던 미국의 원예학자들이 접목을 통해 만들어 낸 피스(Peace)라는 유명한 장미꽃은 그 예술적인 색깔과 모양으로 세계 사람들을 감탄시켰다. 1946년, 제2차세계대전이 끝난 후 열렸던 제1차 유엔총회에 모인 각국 대표들은 모두 이 피스--평화라는 장미꽃을 가슴에 꽂았다고 한다. 이 피스의 접본은 찔레꽃나무뿌리였다.

연변의 사과배거나 한국의 후지 사과거나 미국의 피스 장미거나간에 그 생명의 바탕이 되는 뿌리인 접본은 예외 없이 야생종이여야 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커다란 계시를 준다.
그것은 나무의 생명의 바탕은 예외 없이 그 나무의 뿌리인 까닭이다. 한 식물의 종(ðú)이 아무리 인간에 의해 변이를 많이 일으켰다고 하더라도 그 원형은 자연상태의 야생으로부터 진화된 것이기 때문이다. 21세기는 생물공학의 세기라고도 한다. 그래서 남들보다 앞서 생각하고 있는 구미의 여러 나라들에서는 세계 각지에 널려 있는 야생 식물들을 수집하고 보존하기 위한 전쟁을 벌리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는 이것이야말로 가장 큰 재부임을 보아냈기 때문이다.

생물의 세계에서만이 아니라 인간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줄기나 잎보다도 뿌리가 중요하듯이 문화의 줄기나 잎보다도 뿌리가 중요하다. 아무리 물질문명이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한 민족이나 나라의 문화에서의 핵심이요, 뿌리는 물질문화가 아닌 정신문화이다. 물질의 풍요로움만 따르다가는 자칫하다가는 문화의 뿌리를 잃고 말수도 있다.

그러면 한 민족의 정신문화의 핵과 뿌리는 어디에 있는가? 관념문화에 있고 그 관념문화를 담고 나르는 문자부호와 철학, 역사, 문학, 예술 같은데 있다. 민족이나 나라가 아닌 개인도 마찬가지이다. 아무리 첨단과학의 권위자라고 해도, 또 아무리 대단한 작가나 예술가라도 그가 영원한 인간이 되려면 그 정신의 접본은 제 민족의 정신문화와 그 역사에서 찾아내야 할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참패를 당해 만신창이 되여 수많는 일본인들이 락망하고 우왕좌왕하고 있을 때 한 일본의 철학가가 일본이 재기하려면 스모, 바둑, 가부끼를 잘 보존하고 지켜나가야 한다고 예언했다는 것이다. 이 삼자는 일본의 국수(國粹)요, 정신문화 상징이다.말하자면 일본문화의 뿌리인 셈이다. 이상에서 든 접목의 리치대로라면 접본인 셈이다.이 접본을 잃지 말아야만 외래의 그 어떤 문화도 자국의 문화에 접목시킬 수 있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 리치이다. 우리 중국조선족문화도 접본을 잃지 말아야 한다. 그러면 우리 중국조선족문화의 접본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우리의 말과 글 , 그리고 우리의 말과 글을 그릇으로 삼아 담아내는 우리의 문학과 예술 같은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연길시 하룡촌에 가면 마을 동쪽의 펑퍼짐한 언덕에 세 그루의 아름드리 큰 소나무가 웅장한 모습으로 서있다. 사람들은 그 우람한 나무의 줄기와 가지만 바라보고 모두 감탄한다.
그러나 그 나무가 왜 그처럼 거목으로 자랐는지 그 까닭을 생각해보지 않는다. 그 나무가 수백년에 걸쳐서 그처럼 크게 자란 것은, 보이지 않는 그 나무의 뿌리가 땅속에서 그처럼 나무를 키워온 까닭이다.

어떤 나무를 막론하고 그 나무의 크기는 결국 땅속에 뻗어 있는 그 나무의 뿌리에 정비례하는 것이다. 또 나무가 말라 죽고 있는 까닭은 그 나무의 뿌리가 땅속에서 말라 죽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공동체로서의 민족도 마찬가지이다. 이 세상의 그 어떤 민족이나를 막론하고 모두자기 문화의 뿌리를 가지고 있다. 마치도 나무에 뿌리가 있고 강에는 근원이 있는 것처럼 현실적으로 생기발랄하고 무성하게 자라나는 민족은 그 문화의 뿌리가 왕성하게 살아있음을 증명하며 현실적으로 쇠락해 가는 민족은 그 문화의 뿌리가 말라 죽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조선족이 자기의 선명한 개성을 지니고 중국의 56개 민족들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원인은 민족문화의 뿌리가 깊고 튼튼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작은 민족이 큰 민족에게 동화되어야 하는 시기거나 세계가 하나의 민족으로 되여야 하는 대동세계가 아니라 민족문화가 개화 발전해야 하는 시기이다. 즉 세계 각 민족문화의 다원공존의 시기이다. 하기에 중국조선족은 앞으로도 자기의 땅속 깊이 내린 민족문화의 뿌리를 통해 부단히 자양분을 섭취해야 할 것이다.


2005년 3월 9일 한국 배재대학 국제교류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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