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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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조선족문학의 대부 - 김학철 옹의 문학정신
2006년 01월 19일 00시 00분  조회:4070  추천:50  작성자: 김관웅
☆평론☆

중국조선족문학의 대부 - 김학철 옹의 문학정신

김 관 웅


김학철 옹은 중국조선문학의 대부(代父)라고 평가되고 있는 분이다.
김학철 옹(1916〜2001년)은 함경남도 원산사람이다. 우리 민족의 국권회복을 위해
항일투쟁에 자진하여 참가하여 용감하게 싸워온 투사이고 이 세상의 모든 불의에 몸을 던져 저항한 중국 조선족동포문단의 저명한 소설가이고 수필가이다.

김학철 옹은 군자(君子)요 의인(義人)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2002년 10월 김학철 옹이 타계하기 직전에 한마디의 유명한 유언을 남기셨다.

“편안하게 살려면 불의를 외면하고 사람답게 살려면 불의에 저항하라”

김학철 옹의 의미심장한 이 유언은 사실은 자신의 일생에 대한 고도의 개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말씀은 의(義)와 이(利)는 선택의 문제임을 시사하고 있다. 의(義)와 리(利)는 흔히 겸하여 얻을 수 없으므로 양자택일(兩者擇一)을 해야 함을 맹자는 다음과 같이 메타포를 동원하여 비유하고 있다.

“어물도 내가 원하는 바요, 웅장도 내가 원하는 바이지만, 이 두 가지를 겸하여 얻을 수 없을진대 어물을 버리고 웅장을 취하겠다. 삶도 내가 원하는 바요, 의도 내가 원하는 바이지만, 이 두 가지를 겸하여 얻을 수 없을 진대 삶을 버리고 의를 취하겠다.(魚, 我所欲也; 熊掌, 亦我所欲也. 二者, 不可兼得, 舍魚而取熊掌也. 生, 我所欲也; 義, 我所欲也.二者, 不可兼得, 舍生而取義也.)”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김학철 옹은 어물도 걷어 안고, 웅장도 걷어 안은 그런 욕심쟁이 속물이 아니다. 웅장만 택하고 어물은 미련 없이 버렸다. 즉, 김학철 옹은 의(義)와 리(利)의 양자택일(兩者擇一)에서 한평생 의(義)만 선택하여온 분이다. 김학철 옹의 일생은 대중의 이익과 사회의 진보를 위해 한평생 정의를 견지하고 불의에는 목숨을 던지면서 싸워 온 일생이었다. 맹자님의 말씀을 빈다면 김학철 옹은 “부귀에도 음탕해 지지 않고 권세와 폭압에도 굴복하지 않은(富貴不能淫, 威武不能屈)”, “목숨을 버리고 의를 취한(舍生取義)” 군자요, 의인(義人)의 귀감이라고 할 수 있다.

김학철 옹의 이러한 군자, 의인으로의 본질은 자신의 주체적인 자유선택에 의해 이룩된 것이다. 눈먼 망아지 워낭소리 따라 가듯이 결코 남들을 추종하다가 얻어진 것은 아이라 주체의 자유선택에 의해 이룩된 것이다. 저는 이 점을 「김학철 옹과 자유선택」이라는 수필에서 언급한적 있다. 지금도 저의 홈페지에 들어가시면 이 글을 볼 수 있다.

중국말에 《개관론정(蓋棺論定)》이라는 말이 있다. 한 인간의 본질에 대해서는 죽은 다음에 가서야 옳바른 평가를 내릴 수 있다는 뜻이다.

《김학철 선생의 파란만장한 인생경력과 그 와중에서 한번도 흐트러짐이 없이 한평생 정의를 위해 싸우셨고 죽는 그 순간까지 80여성상을 하늘을 우러러 부끄럼 없이 사신 분은 세계문화사적인 견지에서 보아도 하나의 기적입니다.》
이는 일본의 와세다대학의 오오무라 마스오교(大村益夫)수가 2003년 10월에 있었던 김학철선생 1주기추모 및 김학철선생문학선집 출간기념모임에서 김학철 옹에 대해 내린 평가이다.

방관자청(旁觀者淸)이라는 말이 있듯이 이방인인 오오무라 마스오교수의 평가는 누구보다도 공정하고 객관적인 평가이다.
김학철 옹은 불세출의 투사이며 인격자이시다. 지난 한세기 남짓한 우리 민족의 력사에서가장 주체성 있게 살아오신 지성인의 귀감이시다. 우리 중국조선족은 김학철 옹같은 문학과 인격의 거목의 모시고 있었다는 것을 뿌듯하게 느껴야 할 것이다.

요즘 나는 대학의 강단에서 실존주의문학의 철학적인 기초인 사르트르의 존재과(存在觀)을 강의할 때마다 김학철 옹의 생애를 실례로 들어 학생들에게 설명을 하군 한다. 주지하다시피 사르트르의 실존주의철학의 총론점은 《존재는 본질에 선행한다》는 것이다. 그렇다. 인간이란 태여날 때는 하나의 백지장 같은 존재이다. 결코 엄마의 배 안에서 인간의 본질을 지니고 이 세상에 태여 나는 것은 아니다.
김학철 옹도 예외일 수 없었다. 소년시절의 김학철 옹은 탐스럽게 열린 남의 집 호박을 활로 쏘아서 벌집을 만들어놓는 개구쟁이였고, 《넉가래는 못 받아오고 온통 오리만 받아와서》어머니에게 늘 지청구를 듣는 평범한 소년으로서 그 무슨 신동으로 태여 나신 분도 아니다. 그리고 투사의 본질을 지니고 태여 나셔서 어려서부터 반일의식을 갖고 있은 것은 더욱 아니었다.
“5학년부터는 국사라는 것을 배우는데 천조대신(天照大神)이니 신무천황(神武天皇)이니하는 따위를 내리 먹였으나 별 거부감 없이 그대로 배웠다. 오히려 재미가 있을 지경이었다.”김학철 옹은 자서전 《최후의분대장》에서 자신의 철없던 소년시절을 이렇게 술회하셨다.

우리 인간들은 우연하게 이 세상에 주어졌을 뿐이다. 먼저 인간이 이 세상에서 태여 나서 이 세상에 존재해야만 인간의 주관성이 존재하고 그 다음에야 인간의 행동이 있게 된다.한 인간의 본질은 그 자신의 생각과 행동에 대한 자아의 개인의지에 따른 부단한 자유선택에 의해서만 악한 사람이냐 착한 사람이냐, 군자냐 소인이냐, 투사냐 반역자이냐, 용감한자이냐 비겁한 자아냐를 판단할 수 있으며 비로소 자기의 본질을 만들어 가지고 자기의 존재를 증명하며 자기에 대해 정의를 내릴 수 있다. 실존주의에서 일컫는 존재란 자아의 존재를 뜻한다. 말하자면 인간의 자아가 인간의 본질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비유를 할 것 같으면 인간은 한 장의 백지장에다 나름대로 그림을 그려가는 것이다. 어떤 내용의 그림을 그리고 어떤 색채, 선을 사용하는 것은 자기가 선택할 나름이다. 그림 그리는 사람의 선택에 의하여 다 빈치의 《모나리자》같은 명화가 될 수도 있고 화장실의 락서같은 추잡한 그림으로 될 수도 있다.

김학철 옹이 자신의 본질을 창조하기 위한 첫 번째의 자신의 개인의지에 따른 자유선택은 서울 보성고등보통학교 3학년에 올라와서였다.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이 이상화의 유명한 시와 군자금을 모으러 서울로 들어왔다가 체포당해 징역을 살게 된 “서원준사건”은 청년 김학철이 직업혁명가의 험난한 길을 선택하게 된 가장 큰 계기로 되였다고 한다.
“가출을 결행하는 날 ‘학교 유도(柔道) 부에서 합숙훈련을 한다’고 거짓말을 하고 트렁크에다 유도복과 다른 옷가지 따위를 버젓이 챙긴 뒤에 짐짓 례사롭게 휘파람을 불면서 집을 나서는데 머리가 착잡해서 ‘내가 미친 짓을 하잖나’라는 생각을 떨쳐버리기가 어려웠다.”

이는 김학철 옹이 대한제국 임시정부를 찾아서 혈혈단신 상해로 떠나던 그날의 내심의 모순상태를 술회한 부분이다. 이처럼 한 인간이 자기의 본질을 선택하는 자유선택의 과정은 심리적인 모순과 갈등을 동반하게 되는 것이다. 만일 그날 김학철 옹의 생각이 바뀌어 서울에 눌러앉으셨다면 김학철 옹의 인생은 아주 다른 양상으로 되였을지도 모른다.

무사하게 상해에 도착하여 직업혁명가의 길에 들어선 김학철 옹은 점차 민족주의자로부터 공산주의자로 이념선택을 하셨고, 국민당군대로부터 나중에는 공산당이 이끄는 조선의용대에 참가하여 총을 들고 일제와 피 어린 투쟁을 하셨다.

그렇다고 해서 김학철 옹의 본질이 완전히 결정된 것은 아니었다. 인간은 늘 변화, 발전하고 있으며 태여 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시시각각 크고 작은 선택에 직면하게 된다. 김학철옹에게 있어서 직업혁명가의 길에 들어 선후에 자신의 본질에 대한 선택은 더욱 준엄하셨다.

1943년, 태항산 지역에 있는 산서성 호가장 전투에서 김학철 옹은 왼쪽 대퇴골이 파편에 깎여 나가는 중상으로 의식을 잃고 쓰러진 후 일본군의 포로로 되었다. 이는 아마도 김학철 옹의 일생에서 가장 준엄한 도전이고 시련이었다. 그것은 죽음이냐 삶이냐 하는 선택이었던 것이다.

의식을 회복하고 보니 나는 들것에 들려서 일본군과 함께 황망히 퇴각을 하는 중이었다. 우리 편이 쏘는 탄알들이 전후좌우에 누리떼 튀듯 하는 가운데 나는 난생처음으로 일말의 공포감도 없이 태연할 수가 있었다.
─제발 한방 맞아만 다오.
─우리 탄알에 맞아죽으면 얼마나 고마우랴. 죽는 것이 하나도 두려울게 없다는 경지에 전생애를 통해 내가 딱 한번 이르렀던 순간이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경지에 이르러 본 사람에게 있어서 다른 곤난이나 시련은 별거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김학철 옹의 비범한 용감성과 초인간적인 의지는 바로 이러한 피와 불과 죽음의 세례를 받은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석가장의 나카사키 형무소에서의 3년 이상의 감옥살이도 김학철 옹의 자유로운 선택에 의해 차례진 것입니다. 김학철 옹은 징역을 살고 다리 하나 일본 땅에 묻을지언정 일신의 안위를 위해 자신의 지조를 굽히지 않으셨다.

3.1절을 맞으면서 한국의 한 단체에서는 7백명이 넘는 친일파들의 명단을 발표하였는데, 그 중에는 이광수, 최남선을 필두로 하여 우리가 익숙히 알고있는 많은 거물급의 인물들도 섞여있었다. 암흑기에 친일파로 전략한 많은 거물급의 인물들은 처음에는 반일적인 의식과 감정을 지니고 민족독립운동에 투신하였던 선각자들이나 투사들이었다. 그러나 단 한번의 얼빠진 선택으로 하여 이광수 류들은 영원히 역사의 치욕주에 이름이 아로새겨지고 말았지 않았는가. 이광수 류들을 두엄무지를 헤집는 닭무리들에 비긴다면 김학철 옹은 창공을 나는 수리개에 비길 수 있다!!!

해방이후 김학철 옹에게 있어서 자신의 본질에 대한 자유선택은 더욱 고통스럽고 어려운 것이었다. 그것은 자신이 일생을 바쳐서 충성한 이념과 제도가 흔들리고 그리고 수령의 결함으로 인기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10년 동란 시기에 심지어는 곽말약 같은 중국문단의 거물들도 4인방에게 비굴하게 허리를 굽석거리면서 꼬리를 흔들어댔지만 김학철 옹은 10년 동안 옥고를 치르면서도 자신의 고귀한 머리를 한번도 숙이지 않으셨다.

김학철 옹의 추호의 두려움도 없는 저항정신을 알려면 중국의 문학거장과 비교를 할 필요가 있다. 로신은 추호의 노예근성도 없이 뼈마디가 가장 억센 분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흔히 파금 옹은 로신 선생처럼 용감하지 못했다고 평가하고들 있다. 그러나 이런 평가는 비교의 가능성이 희박하다. 왜냐하면 로신은 36년에 별세하여 그 후의 문단투쟁에서 떠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로신이 살아 있었으면 어떻게 되였을까? 이런 가설을 내놓고 로신이 해방 후 쭈욱 문화대혁명까지 계속 살아 계셨더라면 여차여차 했을 것이라는 것은 공담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력사에는 가설이 설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파금 옹과 김학철 옹은 비교의 가능성이 있다. 왜냐하면 파금 옹과 김학철 옹은 모두 해방 후 살아 계시면서 쭈욱 문화대혁명까지 겪으셨기 때문이다. 파금 옹이 문화대혁명의 호된 충격을 받고나서 개혁개방 후에야 《신은 없다》고 말씀했지만 김학철 옹은 이미 파금 옹보다 20여년 앞선 1965년에 이미 《20세기의 신화》에서《신은 없다》고 말씀하셨다. 우리의 김학철옹은 파금 옹을 포함한 중국의 그 어떤 문학대가들에 비해서도 조금도 손색없는 시대의 선두에 서셨던 선각자임을 보여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파금 옹은 결코 낮추 평가할 수 없다. 파금 옹이 《수상록》에서 보여준 자아폭로, 자아비판의 참회정신은 김학철옹의 저항정신보다 더욱 전형성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파금 옹 같이 문화대혁명중에서 한신(韓信)처럼 남의 두 가랑이 사이로 기여 나가는 굴욕을 참으면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문화대혁명 중에서 대다수였다면 김학철 옹 같이 목숨을 불사하면서 똑 부러지게 그 시대에 저항 투사는 지극히 개별적인 까닭이다.

파금 옹의 《수상록》이 보여주고 있는 기본정신은 문화혁명 중에서의 불의와 폭압에 용감하게 저항하지 못했던 부끄러웠던 자신의 과거에 대한 자아폭로, 자아비판의 참회정신이다. 파금 옹은 자기를 꾸짖고 비판하는 것을 통하여 사회상의 보편적인 불의를 꾸짖고 비판했다. 프랑스의 대문호 루쏘와 로씨야의 대문호 똘쓰또이가 그러했듯이 말이다.

문학적 성취와 중국문학에서의 지위 같은 것은 그만 두고 단 저항정신만을 비교한다면 중국에서 로신을 포함해서 다리뼈, 허리뼈, 목뼈가 가장 단단한 분은 아마도 우리의 김학철옹 일 것이며 저항정신이 가장 투철하고 치렬한 분은 아마도 김학철 옹일 것이다. 척각(隻脚)으로 이 땅에 계셨었지만 가장 올곧게 서 계신 분은 아마도 김학철 옹이실 것이다.

김학철 옹의 문학정신을 쉽게 표현한다면 바로 《능지처참(陵遲處斬)을 당하다라도 황제를 말에서 끌어내리는》정신이며, 《시퍼런 칼이 숨통을 겨누어도 할 말은 다하는》정신이다.

김학철 옹이 10년 옥고를 치르고 사회에 돌아오셨을 때는 65세의 고령이셨다. 하지만 선생님은 또 한번의 중대한 자유선택을 하셨다. 그것은 바로 얼마 남지 않은 여생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말씀을 다하시고 저 세상으로 가시겠다는 비장한 결의였습니다. 김학철 옹은 자신의 이 선택을 비범한 노력으로 충실하게 실천하셨습니다. 선생님의 거의 대부분 글들은 바로 출옥후의 만년에 불철주야로 창작한 작품들이다.

2001년 여름에 김학철 옹은 또 한번의 비장한 자유선택을 하셨다. 서울대병원에서 치료를 받으시다가 의료사고로 받은 내상이 도지자 김학철 옹은 자신의 유언에서처럼 《사회와 가족들에게 부담을 더 주지 않기 위해》결연히 죽음을 선택하였다. 삶에 연연한 분이라면 병원에 입원해서 고급약을 쓰고 치료를 받으면 아마도 2, 3년은 수명을 얼마든지 연장하실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김학철 옹은 단호히 죽음을 선택하였던 것이다. 추도회도 하지 못하게 하셨고 몇몇 생전의 친우들과 문단의 후배들의 전송을 받으시면서 조용히 두만강물을 따라서 고향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이 모든 절차까지도 선생께서 일일이 선택하여 결정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냉철한 이성으로 죽음과 그 방식을 선택한 문인은 이 세상에는 아마도 유일무이할 것이다.

김학철 옹은 여러 차례의 중대한 인생선택에서 단 한번도 부끄럽고 추레한 선택을 한 적이 없이 떳떳하고 깨끗한 선택을 하셨다. 단 한번도 불의를 선택하여 불의의 편에 선적이 없이 언제나 정의를 선택하셨고 정의를 위하여 목숨도 불사하시면서 용감히 싸우셨다. 바로 이런 까닭에 김학철 옹은 편안함과는 아무런 인연이 없는 기구한 80여성상을 살아오셨다.

그리하여 윤동주 님의 서시에서처럼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80여성상을 사시면서 이 세상에서 가장 거룩한 인간의 본질을 스스로 만들어 내시였다. 이는 실로 우리 속인(俗人)들은 엄두조차 낼 수 없는 성(聖)의 경지 아닐 수 없었다.

김학철 옹이 장구한 사회실천 속에서 만들어 오신 가장 귀중한 억센 사나이의 정신, 불요불굴의 저항정신, 백절불굴의 강철 같은 의지, 특히 만년에까지 보여준 그 추호의 노예근성과 아첨기도 없이 날카롭게 사회의 각종 부조리와 비리를 행해 투창을 날리는 그 용기와 의지와 작가적 양지(良知)는 아마도 앞으로도 중국조선족문단에서 상당히 긴 동안 그 계승자가 없을 것이다.

학술사나 예술사를 꼼꼼히 들여다보면 살아생전에 부귀영화를 누린 사람들가운데 후세에까지 두고두고 남을만한 독창적인 업적이나 고매한 인격을 남긴 사람들은 지극히 드물다. 그것은 살았을 때 유명했던 사람들은 당대의 사회적 통념이나 유행사조 그리고 당대의 가치관에 영합하고 권세에 아부하여 명예를 누린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죽고 나면 잊혀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일수록 죽어서도 이름을 휘날리려고 죽기 전에 자기를 명예롭게 만들어놓으려고 애쓴다. 시비를 세운다, 문집을 만든다 하면서 부산을 떨지만 이는 죄다 부질없는 짓거리이다. 이렇게 부산을 떤다 해서 아름다운 인간의 본질이 만들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런 촐랑거리는 인간들과는 달리 김학철 옹은 분명히 살아생전에는 별로 대접을 받지 못했지만 세상을 뜬 후 더욱 그 영명(英名)이 빛을 뿌리고 있다. 비록 생전에 김학철 옹의 문학비가 세워지지 않았지만 사후에는 문집이 출판되였고 국내외에서 김학철문학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실정이다. 김학철옹의 작품세계와 그의 고매한 인격은 진작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영원한 기념비로 우뚝 솟아있으며 앞으로도 영원히 우리들의 마음속에 불멸의 기치로 남아있을 것이다. 그것은 김학철 옹이 80여성상 자아의 가장 주체적인 자유선택에 의해 자신의 수준 높은 문학의 기념탑과 인격의 산을 만드셨기 때문이다.

한 인간이 이 풍진세상을 살아가면서 만일 김학철 옹처럼 개인의 주체적인 의지에 좇아 《자유선택》을 하지 못하고 타인의 의지만 따른다면 그것은 자유로운 인간, 주체적인 인간이 아니라 타인이라는 쇠사슬에 결박당한 노예이다.

이 사람, 저 사람의 눈치만 보면서 바람에 따라 돛을 달고, 동풍이 불면 동풍파요, 서풍이 불면 서풍파요, 남풍이 불면 남풍파요, 북풍이 불면 북풍파로 변신하는 눈치꾼, 바람잡이들이 득실거리는 이 황당한 세상에서 살아가노라니 김학철 옹이 더욱 그리워진다. 김학철옹은 아마도 우리 시대의 마지막 올곧은 선비인 것 같다. 김학철 옹의 치열한 문학정신은 마땅히 우리 중국조선족문학의 문학정신으로 되어야 한다.

그러나 김학철 옹도 결함이나 맹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 분의 맹렬한 비판정신
은 자연히 조화성과 포용성이 모자라게 했으며 일부 독선(獨善) 적인 경향도 존재하게 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래서 김학철 옹이 살아 계셨을 때는 적지 않은 사람들은 옹의 필봉에서 또 무슨 불똥이 자기 몸에 튕길까 전전긍긍했다. 그리고 이 속세에서 누구나 김학철 옹처럼 한 점 부끄럼 없이 산다는 것은, 네모반듯한 인생을 산다는 것은 지극히 어렵기 때문에 김학철 옹의 문학정신은 우리 같은 속인들에게 있어서는 한낱 이상(理想)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결코 없어서는 안 되는 항로를 가리켜주는 등대(燈臺) 같은 존재이며, 휘날리는 전진의 기치이고, 어둠을 밝혀주는 홰불 같은 존재이다.

그래서 우리는 당신들에게는 무엇이 있소? 하고 묻게 되면 선뜻 우리에게는 김학철 옹이 있다고 대답한다. 정녕 중국조선족문인들은 김학철 옹 같은 어르신님을 모셔온 것을 무상의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다. 오로지 김학철 옹이 밝히고 있는 등대를 향해 나아가야만 우리 중국조선족동포문학은 자기의 올바른 항로를 따라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2006년 1월 17일 연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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