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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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문단의 흑마 ― 김관웅교수 (조성일)
2007년 02월 28일 20시 18분  조회:4763  추천:35  작성자: 김관웅

김관웅교수를 머릿속에 떠올릴 때마다 나는 언제나 거친 초원에서 갈기를 휘날리면서 질주하다가는 문뜩 멈춰 서서 갑자기 무엇에 노했는지 두 앞발을 건뜩 쳐들고 울부짖는 한필의 야생 흑마(黑馬)를 연상하군 한다.

흑마(黑馬)를 영어에서는 다크 호스(dark horse)라고 한다. 영어에서 다크 호스는 단순히 털빛이 검은 검정말을 지칭하는 것만은 아니다. 다크 호스는 선거나 경기 등에서 미처 예상치 못했던 강력한 우승후보나 선수 또는 유력한 경쟁상대를 뜻하기도 한다. 이런 영어의 뜻 빛깔이 한어에 영향을 주어 흑마(黑馬)라는 이 낱말은 영어와 비슷한 뜻 빛깔을 가지게 되였다.

1970년대 말, 김관웅교수는 대학교 학부생 1학년 때 단편소설 《청명절》로 문단에 데뷔하였다. 처녀작인 이 작품이 개혁개방이후 연변의 첫 문학상에서 수상하게 되면서 그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고, 1985년 단편소설집 《소설가의 아내》로 문단에 호적을 붙이기는 했지만 김관웅교수가 《강력한 우승후보나 선수》 또는 《유력한 경쟁자》의 이미지로 내 머리 속에 각인되지는 못했다.

김관웅교수가 진정으로 우리 문단의 한필의 흑마로 내 시야에 유표하게 안겨들어 오게된 것은 1990년대 중반이후였다. 70년대 말부터 90년대 초까지 학사, 석사, 박사를 거쳐 10년 이상이나 대학교에서 두문불출하고 공부에만 정진하고 있던 김관웅교수가 소설창작에서 문학평론에로 전향하여 유망한 평론가로 갑자기 문단에 부상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쓰지 않으면 그뿐이지만 한번 쓰기만 하면 문단을 놀라게 하는 그러한 평론들이 김관웅교수의 손에서 속사포마냥 쏟아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1990년대 중반 이래 그가 내놓은 저서들과 논문 그리고 평론문장들의 골자만 대충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이론저서들로는 《조선고대소설서사방식연구》, 《조선고대소설사고》, 《조선문화와 문학의 이해》, 《조선고전문학의 발전과 중국문학》, 《중조고대소설비교연구》, 《중조시가비교연구》, 《조선문학의 이해》, 《외국문학사》, 《서양문학사》, 《서방모더니즘 문학사론》, 《수필창작논》 등 10여권이 있고, 60여 편의 학술논문과 70여 편의 중국조선족문학과 관련된 비평문장을 써냈다. 이밖에도 그는 문학창작도 게을리 하지 않아 칼럼, 수필에서도 자기의 개성과 장끼를 과시하기 시작했다. 그가 달성한 학문적인 수준은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게 되였는데, 적어도 조선문학이나 중한비교문학 등 분야에서는 중국 국내에서는 물론이고 조선반도의 남과 북을 비롯한 세계 각 국의 조선―한국학 학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게 되였다. 이는 중국조선족평단에서는 있어본 적이 없는 일로서 우리 노일대의 문학이론가, 평론가들이 해내지 못한 장거라고 할 수 있다. 바로 이러한 학문적 수련과 기초를 바탕으로 하여 김관웅교수는 대학강단에서 서양문학, 서방모더니즘문학, 조선문학, 20세기서방문학이론, 문학이론, 비교문학, 문화학, 세계문화사, 수필창작 등 다양한 학과목을 가르치고 학사, 석사, 박사에 이르는 다양한 차원의 제자들을 가르치고 지도함과 동시에 이런 와중에서도 학문연구와 문학창작의 쌍 풍수를 거두어냈던 것이다. 그리고 2003년부터는 《우리동네 문학동네》라는 개인홈페지를 운영하면서 품위있는 연설고, 강의고, 수필 등 다양한 장르에 걸치는 글들과 면도칼처럼 날카로운 칼럼, 비평문장들을 쏟아내어 우리 문단의 이목을 한 몸에 집중시키고 있다. 이 개인홈페지가 우리 문단에서의 문학적 영향은 어중간한 문학지를 능가한다.

그 가운데서 특히 중국조선족문단 평론계에서 김관웅교수의 눈부신 활약상이 가장 주목된다. 그의 비평문장의 가장 큰 특점은 우리 민족의 현실문제에 초점을 맞춘 그의 《민족적사실주의론》에서 잘 보여진다. 이밖에도 그의 비평문학은 새로운 문학비평방법론에 립각한 엄밀한 론리성과 심각하고 날카로운 사회, 문화 비판성에서 보여진다. 이를테면 《식민주의사관과 김문학현상》, 《김문학의 <반문화지향의 중국인>을 평함》, 《민족적 사실주의로 나아가는 우리 소설문학》, 《여성과 시》, 《문화혁명시기 중국여성의 애정비극과 정치》 등은 그의 이러한 특징을 잘 보여주는 비평문장들이다.

이에 대해 북경대학 박충록교수는 90년대의 중국조선족평론문학을 논하면서 김관웅교수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가하고 있다.

《평론가 김관웅은 학자형의 평론가로 그의 장끼는 비교문학평론이다. 그는 근년에 새별처럼 평단에 등장하여 맹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문학의 여러 장르에 다 장끼가 있는데, 평론에서도 다방면시각에서 문학을 평론하는 인기평론가로 부상하였다. 그의 평론이 돋보이는 점은 그가 동서방의 문학에 정통하고 맑스주의문예학, 유럽의 예술수법을 잘 알고 있으며 조선문학에도 익숙하다는 점이다. 그 이론전개가 넌리적이고 설복력이 강하다… 김관웅은 동서방문학에 정통한 학자형 평론가로 우리 문단의 작가들의 창작을 잘 지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유망한 평론가이다. 평단은 그에게 기대하는바가 크다.》(박충록 《중국조선민족문학비평연구》. 민족출판사. 2003년. 107∼109쪽을 참조.)

박충록교수의 평가처럼 김관웅교수는 동서고금의 문학사와 문학리론에 대해 조예가 깊을 뿐만 아니라 동서고금의 역사, 문화 등 문학 밖의 기타 문화 분야에 대해서도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 이처럼 그릇이 큰 학문적 스케일과 합리한 지식구조를 가진 김관웅교수는 50년대에 대학공부를 한 우리 같은 기성세대문인들에 비하면 분명히 우세를 갖고 있다. 김관웅교수는 한필의 흑마마냥 선배평론가들의 유력한 경쟁자로 나타났다. 《청출어람이승어람(靑出於藍而勝於藍)》이고, 후에 난 뿔이 우뚝하다고 나는 우리 평단에 김관웅교수 같은 유망한 신진평론가가 나타난 것을 진심으로 기뻐했다.

나는 김관웅교수에게는 탄탄한 학문적인 준비만이 아니라 천생적인 평론가의 기질도 갖고 있음을 발견하였다. 우수한 평론가는 작품의 해명과 취미의 교정가이면서 불의에 도전하는 영원한 《도전자》이고 《시비군》이여야 한다. 한사람이 평론가로 성장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은 그 사람의 감상능력의 수준여하에 달릴 뿐만아니라 그 사람이 시비 가르기를 좋아하고 변별력이 강한가 약한가에도 달린다. 극히 이지적인 소크라테스로부터 자기의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는 니체에 이르기까지 무릇 대평론가들은 모두 불의에 도전하기를 좋아하지 않은 사람이 없으며 쟁투적 비평을 하는 것을 능사로 여기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한마디로 평론가들은 세상만사에 대하여 시비 가르기를 좋아하는 《시비군》의 기질을 가져야 하고 스페인 투우장의 뜨개소 같이 용감하게 뜨고 박는 기질을 가져야 한다. 김관웅교수는 천성적으로 이런 뜨개소 같이 용감하게 뜨고 박는 저돌적인 성향과 기질을 갖고있다.

김관웅교수는 급하고 속심의 말은 참지 못하고 다 뿜어내는 성미를 갖고 있다. 그는 기교를 부릴 줄도 모르고 아첨하지도 않는다. 하나라도 마음에 맞지 않으면 잠시도 참지 못한다. 높은 벼슬을 하는 사람은 워낙 시비를 마음속에 두고 겉으로 관용을 내비쳐야 하는 법이지만, 그는 성격적으로 관청에서 벼슬을 하는 것보다는 글방에서 선비노릇을 하는 게 적성에 더 맞는 것 같다. 김관웅교수는 자기가 옳다고 생각할 때는 물불을 가리지 않고 달려들며 목에 칼이 들어와도 말하고야마는 성격을 가졌다. 설사 상대가 선생이든, 선배이든, 친구이든,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막강한 파워를 가진 정계의 요인이든 전혀 상관하지 않는다. 김관웅교수의 사전에는 숫제 《거짓》이나 《아첨》 같은 단어는 없는상 싶다. 그는 학문적 견해나 정치적 견해를 그때 그때의 세류에 따라 수정하거나 바꾸는, 바람 따라 돛 다는 속물근성이 가득한 평론가들과는 완전히 다른 대 바른 인격의 소유자이다.

김관웅교수는 속심의 말은 참지 못하고 다 뿜어내다보니 최근 몇년동안만 해도 다섯번이나 필화를 당하기도 했다. 그는《입덕》을 많이 입은 셈이다.

그래서 그는 조화보다는 쟁투가 더 많은 삶을 살아오고 있다. 그러나 그 쟁투가 번번이 그의 옳음과 대방의 그름으로 인해 벌어진 것만은 아니지만, 십중팔구는 그가 옳았다. 김문학씨와 김관웅교수사이의 오랜 논쟁과정에서 그는 처음에는 문단의 적지 않은 사람들로부터 많은 오해를 받았고 많은 불이익을 당했지만 나중에는 그가 완전히 옳은 것으로 판정이 났다.

이처럼 김관웅교수는 쟁투로 점철된 문단생활을 하다 보니 많은 동지를 규합하게 된 동시에 또 많은 적을 만드는 결과에 이르게 되였다. 한마디로 그는 애증이 분명하고, 옳고 그름은 분명히 밝히려 고집한다. 그는 사랑과 증오, 옳음과 그름, 정의와 불의 사이에서 물타기를 하거나 줄타기를 하거나 중용적 입장을 취하지 않는다. 미우면 밉고 고우면 곱고, 옳으면 옳고 그르면 그르다고 똑 부러지게 말한다. 에누리하는 법이 없다. 바로 이러하기 때문에 그에 대한 객관의 평가도 아주 양극적이다. 그래서 김관웅교수는 주변의 많은 사람들로부터 《겉보기에는 터프해도 사귀여보면 다정다감하고 남을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평가와 함께 《잘난체하는 놈》이요, 《뜨개소》요, 《괴짜》요 하는 소리까지 들으면서 살아오고 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 어떤 사리를 볼 때 동양사람들 이를테면 우리 조선족은 그 사리를 객관적, 이성적인 논리구조에 따라 보는 서구인에 반하여 주관적, 감성적으로 보려는 극단적인 논리구조를 갖고 있다. 예컨대 로씨야의 위대한 문호 똘스또이는 생전에 악처에 늘 시달렸다. 똘스또이 자신은 물론 그를 흠모하는 사람들도 그 사실을 은페한다는 법 없이 공개적으로 말하였다 한다. 그런 사실이 주관적 사고를 하는 우리 조선족들에게 큰 착오로 여겨져 말썽이 자자하기 마련이지만 객관적 사고를 하는 서구인들은 똘스또이의 이미지에 루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 조선족은 사리를 봄에 있어서 훌륭하면 모두가 훌륭해야 하고 그렇지 말아야 한다는 극단 논리에 사로잡히는 것이 상례이다. 우리는 이런 극단적인 구조에서 헤어 나와 사람을 평가함에 있어서 그의 공(功)과 과(過)를 객관적으로 전면적으로 평가함과 아울러 그의 과(過)로 공(功)을 무시하거나 과소평가하는 것을 삼가해야 한다.

요즘 우리 평단의 어떤 평론가들은 온통 중간에서 시비를 캐는 것을 말리고 남의 귀에 거슬리지 않는 찬송가만 부르고 만세삼창만 외치고 있다. 심지어 자기를 욕하고 자기가 속한 공동체를 욕해도 비평은커녕 맞장구를 치면서 잘한다고 칭찬한다. 그리고 또 어떤 평론가들은 오늘날의 상업주의에 물젖어 돈이나 생기고 이득이나 생기면 달갑게 거짓말을 하고 칭찬을 한다. 이런 유순한 무 골격 평론가, 세류를 따르는 바람잡이평론가, 상황에 따라 향배(向背)를 달리하는 눈치보기평론가들이 번성하는 이 문단에서 문학은 일정한 가치판단의 기준을 잃고 있다. 문학창작에 대한 감시와 감독의 기능을 잃고 있다.

이런 지조 없고 주체성이 없는 문인들이 있는 문단에서 좌충우돌하며 불의와 싸우는 흑마 같은 김관웅교수가 있다는 것은 우리 문단의 자랑이고 희망이 아닐 수 없다.

나는 김관웅교수의 인격적 매력은 바로 그 저돌성과 쟁투성에 있고, 정의를 위해서 목숨을 거는 그 의로움에 있다고 본다. 비록 이러한 저돌성과 쟁투성이 앞으로도 그에게 많은 불이익을 가져다줄 소지는 많지만 그렇다고 그 모난 것을 다 죽이고 점잖은 젠틀맨이 되고자 한다면 그때는 김관웅교수가 자기의 본질을 잃는 날이라고 생각한다. 김관웅교수가 김관웅교수로 되지 않는 날이라고 생각한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는 하지만 모난 돌이야말로 좋은 돌이다. 우리 문단의 흑마(黑马)― 김관웅교수가 앞으로도 그 날카로운 모를 죽이지 말고, 그 강인한 초지(初志)를 굽히지 말고 계속 용왕매진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동시에 문단쟁명에서 경우에 따라 자제도 하고 수단과 방법에도 유의하고 표현의 강약완급에도 신경을 쓰길 바란다.

19세기 초반에 러시아야 비판적 사실주의문학을 올바른 궤도에로 올려 세우고 러시아문학의발전방향을 리드한 벨린스키처럼 김관웅교수가 중국조선족문학을 올바른 길로 이끌어갈 수 있는 대비평가로 성장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연변문학>> 2006년 7월호에서 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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