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만난 숫처녀의 가슴속에 숨쉬는 건 봄의 격정이고 소주를 앞에 놓은 로씨야 남자의 표정은 봄의 충동이며 숨소리만 들어도 만년퇴적밑에 소생의 기지개를 피는 건 인간의 오색 심상이다. 그래서인지 내 마음의 의상도 봄기운으로 바뀌어진다. 시양에 파고드는 건 귀여운 아장걸음으로 인간신변을 찾아와 수줍게 옷섶을 쥐고 흔들어주는 풀싹, 마음속 비집고 드는 건 바람과 해빛과 구름과 동체가 되어 재잘거리며 뛰어노는 꼬마의 동심.
피려고 준비 다그치는 3월 꽃봉오리의 꿈, 부글거리는 된장국에 깃든 구수함의 진맛, 주대를 고집하며 버티는 실버들의 가냘픈 몸부림, 천태만상을 풍경으로 꾸며가는 자연이 짚는 뮤지선다운 아름다운 운률의 템포속에 인간의 마음은 넘실대는 바다가 되어버린다.
하여 봄날의 부름소리 듣기 바쁘게 봄처럼 가뜬히 하고 찬연한 여름잔치에 참가할 마음가짐이 갖우어진다.
봄바람이 마음의 문을 열고 마실을 다니는 호시절이라 연 뛰우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난다. 봄날의 부름소리 듣기 바쁘게 봄차림 가뜬히 하고 나선 나도 생명에 활기를 만들어주고자 아들애를 앞세우고 혼하강변을 달려가고 달려온다. 하늘을 가리운 아파트가 들어앉아있는 주택구에서는 보기조차 어려운 새 세계, 자연의 순수한 마음을 담은 바람이란 존재가 노래와 춤을 선사하고 있는 강변이다. 변덕을 부리는 바람길을 따라 걷기도 달리기도 하며 연 띄우기에 열심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움직이는 그림처럼 안겨온다.
나는 아들애가 원하는대로 독수리모양을 본따서 만든 연 중에서 가장 큰 놈을 골라잡았다. 어릴 때 아버지께서 다 보시고 난 신문지를 오려 밤알로 붙여 만든 연과는 너무 판이하게 훌륭하고 멋진 연이다. 예술미와 실용미를 함뿍 갖춘 연을 사서 두손에 드니 어쩐지 그 속에 무엇이 모자라는듯한 서운함이 내 가슴 한귀통이를 파고 들었다. 지폐만으로 뭐나 편리하게 살 수 있는 줄 알고 있고 자기손을 움직여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못가진 아들애가 좀 가엾게 보이기도 했다. 편안하게 살기 위하여 편안하지 않았던 세월조각속에 빛이 나는 그 삶의 기억을 과거라는 무덤속에 몽땅 던져버린 인간들, 환경의 흐름에, 적자생존에 걸음맞춰 살아가는 것이 바로 인간인가보다.
연띄우는 사람들로 공간이 좁아진 틈틈을 용케 비집고 뛰며 하늘을 향해 열심하고 있는 아들애 모습이 내 카메라렌즈에 포착되었다. 자기의 연이 높이높이 날기를 간절히 바라는 그 애티나는 얼굴에 노을같은 희망이 비꼈다.
잠간은 잘 나는가 싶던 연이 무엇에 발목을 잡히기라도 한듯 몸을 비틀어꼬며 고통스레 땅에 내려꽂힌다. 나의 마음에도 순간적이나마 실망의 그림자가 스치고 지나갔다. 아들애의 서운함을 지워버리기라도 할 듯 나는 어린 생명 다루듯 연을 조심스레 보들어들었다. 새로운 도약을 꿈꾸며 바람에 날려 맡기곤 아들애와 같이 뛰어본다.
수차례의 어려움을 거쳐 연이 드디어 반공중에 날아올랐을 때 아들애의 얼굴이 나에게로 홱 돌로졌다. 성공의 희열로 두 눈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꼬맹이의 연을 따라 걷기도 뛰기고 하던 나는 지쳐오는 다리힘때문에 잠시 멈추어섰다. 바로 그 순간 나는 좀전에는 보지 못했던 광경을 발견하였다. 연띄우는 사람들 속에 깃든 한점의 신기한 풍경이랄가, 자식들의 기쁨을 함께 하는 엄마나 아빠외에 백발의 할아버지들이 무척 량을 차지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정말로 나의 사색을 자아내는 광경이었다.
아이들이야 천성이 놀기를 좋아하는 동심이라 쌀쌀한 바람이 판을 치는 추위에도 즐거울테지만 할아버지들은 무슨 연고로 강바람만 소리높은 저 텅빈 하늘을 쳐다보며 공중을 날으는 연을 지키고있는걸가!
시간에 쫓기며 일에만 붙들려 살았던 그 야속한 시절때문에 한으로만 남았던 옛삶의 한페이지를 이제 와서 벌충해보느느걸가! 아무런 시름도 없이 저 하늘을 나는 연을 바라보며 미처 실현하지 못했던 자신의 꿈의 세계에 다시 살아보는걸가! 아니면 무시로 덮치는 야박학 고독의 쓰거움을 저 말못하는 연줄에 실어 먼먼곳으로 날려보내는걸까!
사상가다운 모습으로 점잖게 걸상에 앉아 연줄을 다루는 저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면상에는 세월의 자취가 력력하니 찍혀있었고 그 력력한 자욱속에 어찌 보면 느긋한 미소가 깃들어있는듯도 하다. 타인의 호기심이나 오가는 방관자에게는 한가닥 눈길도 주지 않는 그 박정에 가까운 몸가짐에서 나는 파아란 두루마기옷 이비고 환한 생기를 발산하는 전심(专心)의 발원지를 보았다. 석양의 다리밑에서도 리상이라는 지팽이만을 버리지 않는 고상한 집요함의고향이었다.
할아버지의 연은 높이높이 날고 있다. 문득 한 깨달음이 문을 두드렸다.
한가지에 몰두하는 전심이 없이는 날릴 수 없는 연! 전심 없이는 창공을 오연히 나래칠수 없는 인생의 무거운 연!
연 띄우는 할아버지를 보노라니 나는 아침 기상시 커턴을 열어젖힌듯 내 마음이 환히 밝아옴을 느꼈다. 먼지를 털어버린듯 마음의 갈피들이 깨끗해진다. 화초들이 새로운 자양분을 빨아들이머 만족함을 느끼듯 나도 만족에서 오는 달콤한 웃음이 저절로 흘러 나온다.
그 웃음은 하늘을 향하여 들판을 달리며 향상의 래일을 그려보는 한 인간의 마음공부이다. 험난한 세상을 오연히 나래치고 싶어하는 한 인간의 갈망이다!
그 웃음은 분명 아름다운 유혹에 눈길을 뺴앗기지 않고 알뜰한 전심에 인생의 연을 멋지게 띄우고 싶어하는 한 인간의 깨달음, 그리고 그 깨달음에서오는 행복한 그림이었다!
2002년 3월 18일
발표내역: <료동문학>( 2002년 8월 3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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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 2 ]
2 작성자 : 유람객
날자:2015-02-07 17:37:39
좋은 수필 감상했습니다.
시양에 파고드는 건
아마도 시야에 파고드는 건의 오타 같습니다.
그리고 커턴을 열어젖힌듯
북한어로 카텐이라고 하고 한국어로 커튼이라고 하는것이 옳바른 표현입니다.
1 작성자 : 남춘애
날자:2015-02-07 07:45:00
자화자찬의 혐의가 좀 있긴 합니다만, 이 글을 옮기며 읽노라니까
앞의 글들에 비해서는 표현법이 좀 자란듯 한 느낌이 듭니다. 만족스럽다고까지는 할 수 없으나 마음이 좀 흐뭇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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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양에 파고드는 건
아마도 시야에 파고드는 건의 오타 같습니다.
그리고 커턴을 열어젖힌듯
북한어로 카텐이라고 하고 한국어로 커튼이라고 하는것이 옳바른 표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