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춘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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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개나리는 봄에, 국화는 가을에
2021년 02월 08일 18시 43분  조회:371  추천:2  작성자: 남춘애
 
 
      부산 김해국제공항은 어딘가 초라하다는 느낌이다. 국제라는 멋진 명색을 갖고 있긴 하되, 1976년 8월부터 일하기 시작해서 2004년까지 달려왔으니 이젠 서른살 연륜을 갖고 있어서 그런가. 인간 서른은 팔팔 청춘인 것과는 달리 공항 30은 파파 늙은이로 살고 있다.  
 
     3월 중순이라 비행기에서 내리니 봄이 정겹게 소꿉놀이를 하고 있다. 비행기가 착륙하자 쏟아져 나온 손님들
 중, 한 손에 휴대용 빽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휴대 폰으로 웃으며 말하며 하는 한국인들이 유난히 눈에 띈다. 그런데 그 모습들은 복사된 듯 하나 같다. 사람이 휴대폰을 이용하고 있는 건지, 휴대폰의 부림을 못 견디고 있는 건지…봄은 금세 가족에 평안을 전하고 있는 자국 귀국객들의 휴대폰 소음에 질려 발컥 화를 내더니, 이어 표정을 바꾸고 회오리 바람으로 둔갑한다. 그리고는 공항의 하늘 밑을 총총히 걷고 있는 여객들의 머리카락을 잡아 일으켜 세우고 그것도 모자라 코트를 벗기려 들고 있다.

    엘리베이트로 내려가는 맞은 편 정광판에 내가 타고 온cz686 항공 번호가 뜨고, 수하물 찾는 코너도 묻어 나왔다. 짐카를 준비해 가지고 자기 물건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타원을 만들어 기다리고 섰다. 짐의 꼬리표를 촥인하면서 자기 짐을 찾아 싣고 돌아서는 사람, 나오는 짐마다에 코를 바싹 대고 벌름거리며 냄세를 맡는 세바트개, 두 눈에다 번개 빛을 담고 오고 가는 경찰복을 한 공항 사무원들…
  
     나도 한 자리를 잡았다. 기내에서 나의 옆 좌석에 앉아 왔던 한국인 아저씨가 약간 허리를 굽혀 보이며 곁을 지나갔다. 그 옆에는 그 여자가 따라 걸었다. 위장결혼으로 한국에 시집 오는 조선족 여자이다. 기내에서 알게 되었다. 그녀는 수심에 잠긴 표정을 하고 있다.
 내가 위장결혼에 대해 좀 알게 된것은 20년 전 일이다. 1995년 10월, 우리 일행이 연변대학에서 열린 한국 트롯트 가요연구 학술세미나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가짜 결혼으로 연변 땅을 멀리하고 한국 입국을 위해 심양으로 행하던 여자의 모습에서 아픔을 읽었던 일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미리 승차한 우리 일행이 침대차에 타고 있는데 갑자기 욕지거리가 크게 들려왔다. 차창을 올리고 밖으로 내다 보니 마흔이 약간 넘은 듯한 한 남자가 줄창 고래고래 함경도 방언으로 소리소리 말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남자와 가까운 왼쪽 옆에는  떠나는 여자의 친정 엄마인 듯한 노부인이 넋두리를 하고 있고, 또 그녀의 딸인 듯한 처녀애가 ‘엄마, 엄마’ 하며 애처롭게 우는 것도 보였다. 그런데 뒤이어 무슨 말이 나가는지도 모르고 지껄이던 그 남자는 플랫홈의 세멘트 땅이 꺼질 정도로 콱 주저앉더니 주먹으로 바닥을 꽝꽝 두들겨댔다. 그러다가 더는 참아낼 수 없다는 듯이 몸을 훌쩍 일으켜 나는듯이 열차 차간 안으로 달려 올라왔다. 같은 시각 차창가에 가만히 앉아 그 광경을 보며 눈물만 찍던 그 여자가 몸을 일으켜 침대석을 나오더니 “동뮈, 어째 이럽까?”하며 열차간 통로를 막아 섰다. 호칭으로 보아하니 그 남자의 아내인 둣하다. 이어 수많은 시선속에서도 남자는 그 여자를 으스러지게 껴안고 눈물바다가 되어 무슨 말인지를 끊임없이 쏟아 내었다. 여자와 함께였던 한국인 남자는 그러한 광경을 전혀 못 본 듯 무표정 담담했다. 열차 승무원이 다가와서 기차 출발 시간이 되었으니 배웅자는 하차하라고 권할 때까지 그들 부부는 내내 그러고 있었다.
그러한 광경을 본지 세월이 한참 지난 현재, 부산공항 안에서도 그 삶의 아픔이 은은하게 이어지고 있다니   
 
     나의 짐은 엄청나게 컸다. 그 짐덩이들을 찾아 짐카에 챙겨 싣고 세관을 무사히 통과하여 마중 나온 인파 속에서 부산 신평 노리트의 기사식당에서 일하고 있다는 언니의 얼굴을 찾으며 짐카를 밀고 나가는데 명찰을 찬 김 씨성을 가진 한 세관이  손짓으로 나를 정지시키며 가까이로 다가왔다. 허리를 약간 굽혀 보이며 여권을 보자고 했다. 그 사무원은 내 본인의 얼굴과 짐을 번갈아 두 세번 보더니 ‘나이가 한참 되는 것 같은데 무슨 공부를 하시겠다고’ 하면서 말 끝에다 난해하다는 표정을 매달았다. 나는 그러는 사무원이 못마땅하게만 느껴졌다. 어쩐지 그 아저씨에게 답말이 꼭 필요하다는 판단이 서면서 ‘아줌마 나이라고 공부를 못 한다는 법은 없잖습니까?’라는 식으로 끝내 40대 조선족 아줌마의 파워를 보여주고 말았다.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그때 나의 그 말에 그 아저씨 사무원은 허리를 처음처럼 약간 굽혀 보이고는 자기의 다음 일을 이행하러 총총히 자리를 떴. 순간 나도 모르게 피씩 웃음이 나갔다. 자신의 당당함에 자축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
 
     실은 스스로도 현재 갖고 있는 연령이 허허벌판에 던져버리고 싶은 짐보따리 같을 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 그런 시점에서 봤을 때 세관 사무원의 느낌 또한 인지상정이리라. 아줌마가 되어가지고, 그것도 남편, 새끼 다 떼어 두고 무슨 영화를 만들겠노라 나선 여자냐, 라고 스스로도 끊임없이 질문한다. 하지만 마음의 가짐을 바꾼다는 건 세상의 최고 난사 중 난사라 했지 않은가!
그런데다 요즘 세상이란 청춘밥을 먹고 사는 여자가 늘고, 그리하여 여자의 인생을 너무 일찍 접는데 습관된 아시아 생활권에서는 그러한 말이 어울릴 법도 하겠지만, 아직은 받아 들일 마음의 준비가 안 되어 있어서 그런가, 그 아저씨 공항사무원의 공무집행에 마음이 약간 긁히웠던 기억이 종시 지워지지가 않는다. 다행히도 세상만사란 세월의 세례를 받아 그것이 먼먼 지난 일로 되고 보면 다 아름다운 기억이 되어주니 이또한 감하살 일이 아닌가 싶다. 지금에 와서도 그때 그 일을 꺼내 보면 기분이 묘하게 좋아지니 참 믿을만도 한 세상이치가 아닌가.
 
    몇십년을 쌓아 둔 생리연령과 여자라는 이유  때문에 신분 상승의 도전 같은건 죽었다 살아나도 불가능이라는 분위기 중에서 몸을 빼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가족이야 직장이야 자녀야 부족한 것 없는데 어쩐 일로 키우고 가꾸던 현재 삶의 나무를 송두리째 뽑아버리느냐 묻는다면 나로서도 대답이 궁할 것이다. 그 시기 그 엉뚱한 행보때문에 나의 신변사 모두를 도배한 그 한마디 말처럼 아마 난 한참 미쳤나 보다. 10여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생각을 해봐도 저그만치 미쳐있었던 거 같다. 그런데 미치지 않으면 가고 싶은 곳에 닿을 수 없는 게 인생이라 했으니, 살면서 한 번쯤 미쳐보는 것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을 것이다.
 
     나이가 들면 더더욱 견과를 챙겨 먹어야 한다고 의학은 말하고 있다. 견과를 먹은 사람은 뼈가 튼튼하고 잔병은 있을 지라도 큰 병은 없다고 한다.
늦깍이 공부가 바로 그러한 견과가 아니냐 싶다. 이것은 한 개인의 작디작은 개달음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이 아무리 작은 것일지라도 깨닫는 그 자체는 인생 즐거움의 최고 경지와 함께 하는 법이다. 인간이 그의 진실함과 한몸이 되려면 시작의 용기와 고집을 지키내는 나만의 길이 필요하지 않을가 싶다.
 
     이 세상 사람들마다 생명을 태우며 달리는 속도와 그 시간의 도표는 다르겠지만, 언제든 시작이 필요할 때 못나게 행하지만 않는다면 더 나은 삶의 장에서 자신의 모습을 본다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자연의 이치가 수시로 이를 말하고 있지 않는가.
 화사한 개나리는 봄에 피어 인간에 무궁한 시작의 환희를 동반해 주는 것으로 삶을 살고, 계절 나이가 듬직한 소박한 국화는 가을철을 제철로 맞아 피어나서 인간에 삶의 정신력을 심어주 일에 만족하는 삶에 충실한다.  아니 그런가!
 
 
             
                          2004년 3월 15일 일기형식의 초고,  2014년1월 8일 수필로 정리

                     
 
                                                  발표내역: <연변문학> (2
015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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