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몸 담고 숨쉬며 살아가고 있는 살림집이 바다를 내다보고 있다 보니 내 생활에 쉼표를 딱 찍고 가야 할 고비에 걸리면 만경창파 바다의 품에 안겨 하소하는 데 제일 편해진듯 하다. 자투리 시간이건 큼지막한 휴식시간이건 바다라는 이 자연의 수용소만 찾아갔다 하면 그는 조건부 없이 세상멋을 다 담은 몸짓으로 철렁 철썩 맞이해준다. 신발을 벗고 바지가랭이를 걷어올리고 자꾸 벌어져 터지려는 입을 간신이 억제하면서 그 푸른 피부에 살을 대는 순간부터 일이라는 짠물에 폴싹 죽어버린 몸뚱아리가 령단묘약을 먹은 것마냥 쭉쭉 펴지고 불과 1초도 안되는 사이에 혼신이 젊음의 활력을 흠씬 머금게 된다.
그리고 활짝 열린 바다의 가슴에 안기기만 하면 덤으로 다가오는 선물 또한 막는 수 없다. 제일 귀여운 것이 바로 고놈의 새 희망이다. 그렇다! 그는 밀물로 번민을 밀어내고 썰물로 번민에 젖었던 자리를 설겆이해간다. 그리고는 사람마다의 마음의 길을 활짝 넓혀주고는 만능의 코드로 알려진 희망이란 배터리를 재주스럽게 마음의 단추구멍에 착착 끼워 맞춰준다. 그런가 하면 그 심금을 잡아주는 철썩임으로 몸자세를 한번씩 바꿀 때마다 나에게 듬뿍듬뿍 생의 새 우주를 하나씩 내여주니 이 즐거운 마음과 행복해지는 넋은 또 어디에 기대면 좋겠는가!
시야를 들어 저 멀리 지평선으로 무한히 펼쳐진 바다 우를 바라보노라니 심청이 효심의 대가로 바다에 몸을 날리고 그 효심이 전화위복이 되여 룡왕의 부인으로 거듭났다는 옛이야기가 반짝반짝 물 우를 수놓으며 흘러가고 있는 듯하다.
실은 나도 오늘은 로모의 거처가 마음의 목에 걸려 효의 정답을 얻어보고저 하는 아픔을 안고 이리로 왔다. 그삼의 막이 터져 짜개지고 피고름이 나는 상처투성이 나의 고민을 바다물 우에 띄워 저 멀리 실어보낼가 해서 왔다. 바다는 오늘도 여느때와 같이 광대무변한 앞가슴을 철렁이며 나를 품어주었다. 행복에 등 밀려 이곳을 찾아오면 몇배의 행복을 더해서 넘치게 챙겨주고 아픔의 송곳을 품고 이곳에 걸음하면 아픔을 여는 열쇠를 손에 쥐여주던 저 바다가 오늘도 나에게 상처난 마음을 잘 어루만져줄가? 납덩이를 품은 듯 내 마음은 깊이를 모르는 푸른 물으르 닮아 나락의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다.
나에게는 년세 높은 87세의 로모가 계신다. 그이는 오는 다음달에 한국행 비행기를 타시게 된다. 자식이 많아 마냥 든든하다면서 로후를 대비해 마련해드린 집마저 돈으로 바꾸어 어려운 아들을 구제하셨던 로모가 이제는 몸 담을 곳이 없게 되여 그야말로 게릴라식 삶의 길에 오르고 말았다.
로모가 정해진 곳 없는 세월 우를 걸으신 지도 벌써 5년이 흘렀다. 고향의 흙집을 떠나 훨훨 도시로 날아가버린 자식들의 집으로 짐을 푸시기는 했지만 어느 자식의 집이든 한참 있으시면 고향이 그리워나서 어느 하루 고향에 가겠다고 말씀하지 않는 날이 거의 없다. 고향에는 친구도 있고 고향 길도 눈 감고도 찾아가고 변신한 고향의 길에는 흙먼지도 없고 고향의 양국은 약도 가지가지라며 말주머니와 밥주머니에 모두 고향 노래를 채우신다. 그래서 그 노래에 곡을 달아주고저 혼신의 힘을 다하여 고향에 장사보따리를 푼 새끼한테로 이동해 가셨지만 그 곳에선 또 멀리에 두고 떠나온 그 새끼가 그립고 그래도 몇째네집이 좋았다며 끊임없이 흘러간 옛 노래를 부르신다. 그러다가 그 노래에 지치셨는지 료양원에까지 생활의 범위를 넓혀보시겠다며 로년 삶의 새 가사를 지어놓고 매일 노래를 하신다. 이에 여기저기 흩어져 삶의 현장에서 뛰며 사는 새끼들은 그 노래만은 정녕코 들어드릴 수 없다며 결사 도리질을 한다. 이에 로모는 자신이 이제는 자식들의 아이가 되여 힘없어진 것을 알아내시고 품안에서 날아가버린 새끼들의 옷자락을 잡기로 하셨다며 결국 한번도 함께 한 적 없는 한국의 새끼 집으로 발걸음을 하시겠단다.
누구나 엄마의 자궁세계를 떠나 속세에 왔을 때 그에게 처음 차례진 인생수업은 걷기이다. 인간은 걸으면서 웃고 우는 인생사를 겪는 것이다. 그러다가 모르는 사이에 인생의 막바지까지 가게 되는데 나의 로모에게 남은 것이 바로 이 막바지 수업을 잘 풀어가는 길이다. 로모께서는 얹혀사시는 삶의 예술들을 잘 기억해두셔야 만년을 즐겁고 무난하게 보낼 것이라 생각하셔서 부지런히 마음수업을 해두셨던 것 같다. 오금이 쑤실 때도 언제든지 짘줄 수 있는 의료지킴이에 의뢰하시고 또 반자식 사위가 해주는 음식ㅇ라면 맛없는 음식도 맛있다고 드시겠단다. 그리고 타향에서 남 못지 않게 벌어먹겠다고 새벽 나간 새끼한테 짐으로 업히려 하시지도 않으시겠단다. 잡숫고 싶으신 것이 있으면 참읏ㅆ다가 장이 설 때마다 당신 스스로 걸음하시는 데 습관하시겠단다. 그리고 마디가 쏘거나 속이 안 좋거나 하면 고향에서 보따리로 해가신 것들을 들춰서 해결해보시겠다고 하셨다.
내가 어릴 때 엄마와 잘하겠다고 약속할 때처럼 지금은 어른이 된 어린 것들과 엄마도 아이가 되여 한번 잘해보겠다고 다짐을 하시는 것 같다. 엄마의 그 말들은 길다란 대못이 되여 내 가슴의 바닥에 하나 또 하나의 구멍을 뚫으며 박힌다. 나는 래일이면 저 바다 건너 타향의 자식을 찾아 가실 엄마께서 당신 스스로 말씀하신 로년의 인생수업을 잘하시고 그 곳에서 정평을 받으셨으면 하는 쓰리고 아린 바람으로 오늘도 기도해본다. 바다의 트림질이 일구는 물로바 때문인지 아니면 부모님을 외국으로 모셔야 하는 막무가내에 젖은 슬픔의 향연 때문인지 비뚤비뚤한 두개의 일자가 량볼에 내리그림을 그린다.
만능이란 원래부터 없는 존재인가보다. 다만 인간이 인생사에서 열 수 없는 자물쇠 같은 일에 맞띠우면 만능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 기대의 옷을 입혀 그의 파워에 기대고 싶을 뿐이다. 그러니 한계를 모르고 산다는 바다도 만능은 결코 아닌 듯하다. 자책과 불효로 꺼져들어간 내 심경을 일으켜세우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괴로움에 절은 세포들을 활력으로 불어넣어 주지도 못했다. 시세를 따르는 현시대 근성을 지니고 있어 행복한 자에게는 플러스를 해서 넘치게 채워주지만 시름의 구정물에 빠진 자에게는 만능은 련마했으나 오늘의 내가 그처럼 바라고 믿고 찾아온 바다도 만능은 아닌가 보다. 아름다운 저녁노을에 비친 바다는 황혼으로 물들어가는 구름송이들을 사진 찍는 것에만 전념하고 내가 띄워보낸 인생 숙제에는 아무 답도 보내오지 않았다.
나는, 우리 형제들은 왜 한 마을에 살던 동년배 로년친구들이 모여서 재미있게 지내고 있다는 그 료양원을 가시려 하는 로모의 뜻에 따르지 못할가에 다시 생각의 모를 박아본다. 정말 형제들의 말뜻 따르면 로인네가 료양원에서 만년을 보내는 일이 천륜을 거스르는 막된 짓이 되는 것인가? 그래서 그들은 내내 ‘엄마는 뚱딴지 같은 소리만 하고 그래요?’라는 말로 엄마의 생각길을 막았던 것인가? 그렇다면 엄마가 자기의 뜻을 꺾으시고 새끼들의 고집에 따라 이국타향으로 걸음을 하는 일이 과연 완벽한 것일가? 자식들이 거의 이사를 가서 동네마냥 모여사는 곳이라 하여 비록 때묻은 곳은 아니지만 그래도 고향 아닌 고향이 될 수 있을 것인가? 그 곳에 가셔서는 무난무탈하게 하루하루의 달력장을 넘기실 수 있을가? 아이들이 커가면서 독립생활을 위해 홀로서기를 배울 때처럼 로모가 가시는 길에도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 다시 홀로서기의 련습장에 들어가셔야 하는 건가?
조선을 대표하는 저명한 작가 조명의의 <락동강>속의 한토막 대화가 떠오른다. 이 짧은 구절로 지금 막 사막화되여가는 가슴에 한점이 오아시스라도 만들어보고저 꺼내본다. 작품에서는 자식을 키워 공부시켜놓으니 새 사회를 갈망하는 주의주장에 빠져 남자들의 틈바구니에 끼여 사는 하나 밖에 없는 딸에게 아빠는 이런 말을 한다.
“우리가 백정까지 해가면서 뭐할라꼬 니 공부시켰노? 다 니 덕 볼라꼬 안 그랬나?” “아베는 뭐 돼지 키워 덕 보듯이 나를 덕 볼라꼬 키웠능교? 내사 모르겠다, 내 갈란다 구마!”라고 하는 녀혁명가로 성장된 딸 로사의 말.
새로운 제도의 도래를 위해 자신과 가족을 희생하는 한 녀자의 목소리임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사회발전을 위해 자신을 바치고 부모님에 대한 효도를 다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우리 자식들은 지금 혁명을 위해 부모보다 국가를 먼저 택해야 하는 형편 앞에 온 것도 아닌데 무엇을 위해 부모님을 끝까지 보내드리지 못하고 마감인생을 혼자 서게 하는 건가!
번뇌의 물에 절여진 내 마음을 저 바다물에 실어보냈건만 답을 담은 배는 아직도 보이지 않는다. 그 배는 어디로 갔는가? 그 배는 어디에 있는가? 그 배가 간 곳은 어디인가? 어두움이 내리자 바다는 검은 표정으로 무섭게 출렁인다.
바다의 끝을 보고저 눈을 멀리로 보내니 하늘과 바다가 붙어버리는 듯하다. 바다 밖은 하늘인데 하늘 밖은 무엇인고?! 아, 내 아픔의 너머에로 고름의 강이 흐르고 있다.
발표내역: <장백산> 2019년 3기
<민족문학> 2020년 1기-
<해외문학-미국과 국제 현대시 산책> 제 25호,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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