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빠, 할아버지 있잖아, 진짜 웃겨.
진이는 원래 작은 두눈을 찔끔 감았다 뜨면서 배시시 웃음을 빼여물었다.
또 무슨 재미나는 이야기를 하려는 모양이구나.
정우는 귀여워서 못 참겠다는듯 진이를 바라보면서 짐짓 설레설레 머리를 저어보였다.
―진이야, 너 거짓말이지?
―아니야, 아빠. 진짜라니까. 할아버지 있잖아.
―그래, 할아버지 계시지.
―할아버지 진짜 웃긴다니까.
―어떻게?
호기심이 동한다는듯 일부러 한 옥타브 높이는 정우의 목소리에 진이는 쫑드르르 달려와 정우의 무릎에 포동포동한 엉뎅이를 올려놓으며 신비하게 종알거렸다.
―할아버지 그러시는데 옛날에 할아버지 “똥푸개”였대.
―뭐라구?
너무나도 뜻밖의 말에 정우는 진이의 얼굴을 똑바로 내려다보며 동공을 키웠다. 진이가 그러는 정우의 표정이 재밌다는듯 머리를 살래살래 저으며 말했다.
―몰라, 옛날에 할아버지 “똥푸개”였다는데 뭐.
말을 마친 진이는 입술을 귀밑으로 올리붙이며 캐드득캐드득 웃기 시작했다. 그러는 진이의 두눈이 한일자로 맞붙으며 새물거렸다. 은방울 굴리는듯 해맑은 웃음소리가 까르르까르르 터져나왔다. 하지만 정우는 그 웃음소리에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다.
자식, 웬 소리를 하는거야?
정우는 얼굴에 피여났던 웃음을 걷우며 목소리에 가시를 박았다.
―너 못하는 말이 없구나. 어데서 그런 말을 배웠니?
―진― 짜라니까. 할아버지가 그랬는데 뭐.
정우의 얼굴에 박혀있는 잔가시를 발견했던지 진이는 정우를 향해 두눈을 올롱하게 치떠보이며 억울하다는듯 아래입술을 쏙 내밀었다. 표정으로 보아 진이가 너무 허황한 거짓말을 하는것 같지는 않았다. 정우는 오른손을 내밀어 진이를 당겨다 다시 무릎우에 올려앉히고는 애써 목소리를 고르며 한결 부드럽게 물었다.
―말해봐, 진이야. 할아버지가 어떻게 말씀했는데?
―ㅋㅋㅋㅋ… 할아버지가 있잖아. 유치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연집강변에서 말이야. “진이야, 똥 푸러 가자.” 이러면서 모자로 강물을 퍼다가 가로수에 막 주었어.
진이는 정우의 무릎에서 폴짝 뛰여내려 제법 모자로 물을 푸는 흉내까지 내면서 웃음을 흘렸다. 정우는 촐싹거리는 진이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그냥 철 없는 애의 싱거운 소리로 받아 넘기기에는 너무 버거운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똥푸개”라니…
정우는 가슴에서 뭔가 툭- 하고 떨어져내리는듯한 진동을 느꼈다. 가슴밑자락으로부터 진한 아픔이 스멀스멀 기여올랐다. 정우는 지그시 두눈을 감았다가 번쩍 떴다. 눈앞에 현기증 같은것이 일었다.
진이의 말이 사실이라면 심상찮은 일이다.
―그리구 또, 할아버지 있잖아…
진이는 뭔가 더 말하고싶은듯 정우앞에 한발 다가섰다. 정우는 종알거리는 진이를 뒤로 한채 자리를 차고 일어나 급히 옷을 주어입기 시작했다.
―아빠, 어디 가?
정우의 반상적인 거동에 놀란 진이가 목소리를 높였다. 그바람에 주방에서 저녁준비를 하던 은이가 객실로 나오며 웬 일이냐는듯 정우에게 눈길을 박았다.
―나, 아버지네 댁에 갔다와야겠소.
―갑자기 거긴 왜요?
은이가 놀랍다는듯 눈동자를 키우며 젖은 손을 앞치마에 닦았다.
―얘가 방금 이상한 소리를 하길래.
―나두 들었어요. 당신두 참, 괜히 애 말에 신경을 쓰면서…
은이는 아무 일도 아닌것을 가지고 유난을 떤다는듯한 표정이였다. 하지만 정우의 얼굴에는 점점 그늘이 비끼고있었다. 정우는 급히 웃옷을 걸치면서 입을 열었다.
―아니요. 괜한 말이 아닌것 같아서.
―괜한 말이 아니면 아버님이 진짜 똥 푸러 어디에 가실가봐요? 호호호호…
은희는 웃음소리를 길게 늘어뜨리며 정우를 향해 눈을 흘겼다.
―그것보다두…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정우는 뭔가를 더 말하려다가 뒤말을 얼버무렸다. 은이는 정우의 그런 변화에 신경을 쓰지 않고 기분 좋은듯 제 말에만 급했다.
―어머니 말이예요. 지난번에 사보낸 약을 자시고 혈압이 많이 내려갔대요. 약효가 좋다고 오늘 전화가 왔는데 목소리가맑았어요.
―다행이네.
정우는 웃옷 마지막 단추를 끼우며 한마디 했다.
―그래요. 한시름 놓았어요. 어머니 어쩌는줄 아세요? 당신이 사위질을 잘한대요.
―저녁이 다되면 당신 먼저 먹소. 난 아버지네 댁에서 몇술 뜨고 오겠소.
말을 마친 정우는 몸을 돌려 출입문쪽을 바라고 종종걸음을 놓았다.
―기어이 가려구요?
―가봐야지.
정우가 구두에 발을 넣으며 말했다.
―당신 참, 신경이 예민해가지구는…
―혹시 무슨 일이라도 있을가봐 근심이 돼서…
정우의 목소리가 약간 떨리고있었다. 그것은 정우가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을 당할 때마다 나타내는 일종 징크스 같은 반응이였다. 과분하다 할만큼 반상적인 정우의 행동에 은이도 약간 불안한 기색을 띠며 못마땅한듯 정우를 바라보았다.
―참 못 말린다니까요. 당신 같은 효자두 없을거예요.
―당신 같은 효자두 없을거예요.
진이도 은이를 본 따 한마디 던졌다. 그러고는 제딴에도 우스운지 또 한번 까르르 웃어제꼈다.
정우는 멀리까지 따라나오는 진이의 웃음소리를 뒤로 한채 급급히 계단을 내렸다.
대지에 뉘엿뉘엿 어둠이 깃들고있었다.
2
아버지가 왜 그런 행동을 하셨을가? 그게 정녕 사실일가? 사실이라면 그 행동은 무엇을 의미하는것일가?
생각할수록 두려워났다. 그게 사실이라면 더 말치 않아도 답은 나오는것이다.
치매?!
65세인 아버지와 “치매”를 이어 생각하기조차 싫었다. 하지만 싫다고 해서 생각하지 않아도 될 일이 아니라는 느낌이 정우의 뇌리를 치고 들어왔다. 어느 자료에서 본적이 있는데 근년에는 40대에도 치매에 걸리는 사람들이 늘어가는 추세라고 했다. 그러니 한뉘 뼈돈을 벌어 아글타글 자식들을 키워오신 아버지가 65세에 치매를 앓지 말라는 법은 없을것이라고 생각되였다.
치매? 다른 병도 아니고 치매라니…
정우는 가슴이 침침해나며 목에 뭔가가 가득 걸려있는듯싶어 캑캑하고 힘주어 건가래를 뗐다. 하지만 목에서는 아무것도 올라오지 않았다. 너무 힘을 주었던때문인지 목이 먹먹해오더니 이어 코등이 시큼해났다.
발걸음은 어느새 연집강변에 이르고있었다.
저기서 아버지가 그런 행동을 하셨다고 했지?
정우는 일부러 발걸음을 강뚝으로 옮겨갔다. 늦봄이라 강기슭은 진작 푸른 단장을 하고있었다. 푸르른 단장속에서 노오란 꽃들이 가담가담 웃음을 짓고있었다. 만개한 민들레였다. 찰랑찰랑… 흘러가는 물소리가 정답게 귀를 간질렀다.
아버지의 가슴에도 아직 그 세월의 아픔이 앙금처럼 남아있는것일가?
시름없이 흘러가는 강물을 멍하니 바라보고있노라니 정우는 저도 몰래 눈굽이 촉촉히 젖어왔다. 생각하고싶지 않은 그 세월의 흐릿한 화폭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잊으려고 해도 점점더 깊이 파고드는 아픈 추억은 내내 정우의 가슴 한구석에 똬리를 틀고있었다.
그것은 정우가 진이만한 나이때의 어느날이였다.
유치원에서는 그날 봄나들이로 공원을 찾게 되였다. 유치원에서 공원이 멀지 않기에 정우네는 손을 잡고 걸어서 공원으로 가는 길이였다. 긴긴 겨울 교실에만 박혀있던 애들이라 봄을 맞아 밖으로 나오니 마치도 해바라기를 하는 병아리들 같았다. 종알종알… 까르르까르르… 여기저기서 애들의 말소리며 해맑은 웃음소리가 터져올랐다.
대오가 막 연집강을 지나고있을 때 누군가 갑자기 소리쳤다.
―똥푸개 온다― 똥푸개 온다―
소리치는 애가 가리키는쪽을 바라보니 아니나다를가 뒤쪽으로부터 큰 양철통을 실은 마차 한대가 굴러오고있었다. 그 양철통에 무엇이 들어있다는것은 말하지 않아도 그 시절엔 누구나 아는 사실이였다. 애들은 더럽다고 코를 싸쥐며 부산을 떨었다.
―똥푸개, 똥푸개… 똥 푸다가 똥물에 빠져죽어라…
애들은 손벽을 짝짝 치며 소리쳤고 길에서 작은 돌멩이를 주어 마차에 뿌리기까지 했다.
―조용하세요, 조용히 걸으세요.
더럽다고 코를 싸쥐고 소리치는 애들에게 교양원이 소리쳤다. 그때 정우는 마차와 마차옆에서 걸음을 옮기는 그 사람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 사람은 분명 아버지였던것이다.
아버지가 위생대에 다닌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래서 남들보다 돈을 좀더 번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런 아버지가 왜 “똥푸개”로 되였는가?
삼검불 같은 사색의 실마리가 정우의 작은 머리에서 엉켜 돌아가기 시작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답은 떠오르지 않고 두볼만 확확 달아오르며 빨갛게 상기되여갔다.
―저게… 저게…
그 소리에 정우는 목소리 임자를 찾아 머리를 홱 돌렸다. 철이였다. 정우네와 한동네에 사는 철이였다. 철이는 분명 정우의 아버지를 알아볼수 있을것이였다. 정우는 너무도 급해서 가슴에 토끼 한마리를 품은듯한 기분이였다. 정우는 당금 튀여나오려는듯 팔딱팔딱 높뛰는 작은 심장을 꼭 누르고 철이에게 애원의 눈길을 보냈다. 제발 철이가 아버지를 알아보지 못했으면, 알아보았다 해도 정우 아버지라고 소리치지 말았으면 하고 속으로 빌고 또 빌었다. 하지만 철이는 정우의 마음을 너무도 몰라주었다. 철이는 단번에 정우의 아버지를 알아보았고 또 정우를 위해 입을 다물려고 하지 않았다.
―저게 정우 아버지다. 정우야, 저게 너네 아버지 옳지? 저 똥푸개 너네 아버지 옳구나.
―아니다.
정우는 철이를 쏘아보며 칼로 두부모 베듯 딱 잘라버렸다.
―이― 거짓말, 저게 너네 아버지 아니구 누구야?
철이는 마차옆에서 걸음을 옮기는 정우 아버지를 가리키며 목소리를 뽑아댔다.
―아니라는데, 너 왜 그러니?
정우는 들까부는 철이를 향해 있는 힘껏 쏘아붙였다.
―옳은데 뭐. 내가 잘못 볼리 있니? 저 똥푸개 딱 너네 아버진데.
―이 새끼, 아니라는데.
정우는 그만 솟구치는 분을 억누르지 못하고 주먹을 날려 철이의 나불거리는 입을 들이박았다.
―똥푸개 같은게 누굴 때리니?
철이도 만만치 않게 달려들었다. 정우와 철이는 삽시간에 안고 돌아갔다.
돌연적인 사태에 잠간 멍해있던 교양원이 그제야 사태를 파악했던지 소리쳤다.
―그만하세요. 싸우지 마세요.
교양원이 달려들어 정우와 철이를 뜯어 갈라세워놓고는 엄하게 꾸짖었다.
―조용하세요. 똥푸개가 어떻다는거예요? 시민들을 위해 변소청소를 해주는분들인데 응당 존경받아야 해요.
교양원은 손으로 멀어져가는 마차를 가리키면서 말을 마쳤다. 아버지는 정우네가 치고 박고 할퀴고 물어뜯는것을 아예 보지 못했던지 마차를 몰고 저 멀리 앞서가고있었다.
그날 다른 애들은 즐겁게 공원놀이를 했지만 정우만은 어떻게 하루를 보냈는지 몰랐다. 정우에게 있어서 그 하루는 너무도 길게 느껴졌다.
그날 저녁 정우는 퇴근하여 들어온 아버지를 보고 바락바락 소리를 질렀다.
―아버지, 미워. 밉다구!
언제나 입을 꼭 다물고 어른들의 눈치만 살피던 정우의 돌연적인 행동에 아버지는 너무도 놀라 목석처럼 굳어지고있었다. 저녁준비를 하고있던 어머니가 정우의 웨침소리를 듣고 뛰여나왔다.
―정우야, 왜 그러니? 아버지하구.
―아버지, 똥푸개질해요. 더러워요.
―얘가!
어머니는 다짜고짜 정우의 뺨을 후려갈겼다.
―엄마―
어머니에게 뺨을 맞고서도 정우는 “엄마”를 부르며 서럽게 울어제꼈다. 아버지는 말없이 옷을 벗어 몇번 털고는 천천히 집안으로 들어갔다.
그날 밤 어머니는 팔을 베고 누운 정우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정우야, 오늘 몹시 서러웠니? 하지만 네가 아버지를 더럽다고 생각하면 안된단다. 아버지는 조금이라도 돈을 더 벌자구 자원해서 그 일을 하는것이란다. 어머니가 직업이 없어서 돈을 제대로 벌지 못하지, 너의 누나가 학교에 다니지 그리구 너의 동생은 자꾸 앓음자랑을 해서 병원으로 다녀야지… 아버지가 그 일을 하면 원래보다 한달에 20원을 더 벌수 있단다. 그래서 아버지가 그 일을 자원해서 하는거란다.
―아빠는 왜 철이 아빠처럼 돈을 많이 못 벌어요? 철이 아빠는 와늘 높은 간부라는데 아빠는 왜 간부 못해요?
―사람마다 다 간부질을 하는게 아니란다. 우리 정우는 열심히 공부해서 간부질을 해야 한다.
그날 밤 “열심히 공부해서 간부질을 해야 한다.”던 어머니의 말씀은 어린 정우의 가슴에 깊이 뿌리를 내렸다. 힘들 때마다 정우는 애어린 가슴에 란도질을 하던 잊지 못할 그날을 떠올렸고 그날 밤에 들려주던 어머니의 말씀을 떠올리면서 악착같이 공부했다.
누나는 돈을 번다며 중학교를 졸업하고 나와 허드레일들을 찾아했다. 동생도 차츰 공부에 흥취를 잃어갔다. 하지만 정우만은 끝까지 공부를 해서 대학에 붙었고 졸업후 어느 작은 잡지사의 편집으로 취직을 했다.
인물체격도 남한테 꿀리지 않고 사업능력도 훌륭했지만 부모에 시집 가지 않은 누나 그리고 장가 들지 않은 동생까지 있다는 말만 꺼내면 다가들던 녀자들이 꽁무니를 뺐다. 그렇게 혼기를 늦추다가 사업에 참가하여 5년이 되던 해에 한 지인의 소개로 어느 작은 진에서 시내에 들어와 세집에 살면서 옷매대를 경영하던 지금의 안해 은이를 만나 살림을 차렸다. 한국문이 열리면서 누나는 한국으로 시집을 갔고 동생도 한국으로 돈벌이를 떠나게 되였다. 그러자 자연히 정우가 부모를 돌보아야 했다. 그래도 아버지, 어머니가 건강한게 다행이였다. 어쩌면 정우가 부모를 돌보는것이 아니라 부모가 되려 정우네 살림을 도와주는편이였다. 하지만 그같이 좋은 날도 오래가지 못했다. 한국으로 돈 벌러 나간 동생이 달동네에 세집을 잡고 살다가 그만 가스중독으로 목숨을 잃었다. 그 충격에 어머니는 뇌출혈로 쓰러졌다. 동생의 죽음도, 어머니의 병환도 아버지에게는 큰 타격이 아닐수 없었다. 하지만 고맙게도 아버지는 정신줄을 놓지 않으시고 묵묵히 어머니를 돌보았다. 그리고 저녁편이면 시간을 맞춰 진이를 유치원에서 데려오군 했다.
그만큼 정우에게 있어서 아버지는 기둥이셨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저녁식사를 하고계셨다.
급히 들어서는 정우를 보고 아버지가 놀라셨다.
―련락도 없이 어떻게 왔니?
정우는 신을 벗으며 아버지쪽에 눈길을 돌렸다.
―별일없으시죠?
―벼… 별일은 무무, 무슨, 그냥 이 모모모, 모양이지.
어머니가 푸들푸들 팔을 떨며 힘겹게 숟가락을 입에 가져가다말고 한마디 했다.
―저녁전이지? 얼른 와라.
아버지가 일어나 수저를 가져다 상에 놓으며 권했다.
―네, 몇술 뜨고 갈게요.
정우는 밥상에 다가가 아버지의 곁에 앉으며 유심히 살폈다. 별다른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오늘 할아버지와 참 재미나게 놀았다고 진이가 좋아하던데요.
정우가 아무 일도 없는듯 한술 떴다.
―삥궐(冰果)을 먹겠다고 해서 사줬더니 단번에 두대나 재끼더라. 오늘 유치원에서 속이 컬컬했나보더라.
아버지는 장국을 떠서 후루룩 마시며 한마디 할뿐이였다. 진이의 말대로라면 이상한 조짐이 보여야 할게 아닌가? 정말 내가 신경이 예민해진것인가?
너무도 태연한 아버지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정우는 오리무중에 빠져드는듯한 느낌이였다. 그러면서도 꽉 막혔던 가슴이 다소 뚫리는듯 안도감이 드는것도 어쩔수 없었다.
3
―당신, 신경이 예민해졌다니까요.
은이가 어떠냐는듯 정우를 곱게 흘겨보며 한마디 했다.
―그런것 같소. 내가 신경이 예민했던거지. 그런데 웬지 자꾸 못된 생각부터 든다니까.
정우는 웃옷을 벗어 옷걸이에 걸며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 말을 듣고 은이가 정우의 얼굴에 다시한번 눈을 박았다. 정우는 급히 아버지네 댁에 다녀오느라 몹시 피곤했던지 얼굴이 약간 상해있었다. 정우가 침대에 다가와 은이옆에 엉뎅이를 붙이자 은이는 정우의 어깨를 톡 치며 일부러 목소리를 띄워 한마디 건넸다.
―40이 래일이라, 당신 생활에 신심을 잃어가는거예요.
―허허허… 무슨 신심까지나? 그건 너무 엄중한게 아니요?
정우는 짐짓 웃음소리를 크게 내느라고 했지만 그 웃음소리는 어딘가 허탈하게 느껴졌다. 은이는 오른손을 펴들고 정우의 옆얼굴을 어루쓸면서 부드럽게 말했다.
―너무 근심 마세요. 설마 무슨 일이야 있을라구요.
―그러게 말이요. 제발 별일이 없어야겠는데. 근년에 자꾸 큰일들을 당하게 되니…
―남들도 모두 이렇게 살거예요. 당금 40대가 아닌가요? 우로는 부모님들이 년로해가고 아래로는 자식들이 커가고… 당신 나이가 일생에 제일 부담이 많은 나이죠.
은이는 정우의 얼굴을 쓸던 손을 내려다 정우의 왼손을 꼭 잡아주었다. 정우도 그우에 오른손을 올려놓으며 그윽한 눈길로 은이를 바라보았다. 안해에 대한 믿음이 눈길을 타고 흘러나왔다.
―당신이 있어서 내가 참 든든하네. 휴― 큰일을 당할 때마다…
―참 당신은… 제가 아니면 누가 나서겠어요. 지금은 집집마다 독신자녀들이라잖아요.
―하기사, 형제가 있은들 뭘 하겠소. 요즘에야 직업이 온전치 못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외국으로 나가는 판인데.
―그러니 우리 조선족은 저마다 “독신자녀” 같다 하는거죠.
―같은게 아니라 진짜 독신자녀들도 많지. 당신도 무남독녀가 아닌가.
―그래요. 내 나이때야 독신자녀 아닌 사람이 몇이나 됐어요? 그래서 우리또래를 “력사의 산물”이라 하는거예요.
―력사의 산물?
정우가 은이를 돌아다보며 허허허 웃음을 날렸다. 그 웃음을 물고 은이가 또 입을 열었다.
―우리 진이에게는 꼭 동생을 만들어줄거예요. 사실 아버지가 세상 뜬후 나는 하루도 발편잠을 자본적이 없어요.
―마찬가지야, 나도 은근히 어머님이 신경 쓰이거든.
정우가 은이의 말을 받아물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호호호… 그래서 낮에 엄마가 전화 와서 당신을 “모범사위”라 했다잖아요. 정말 근심이얘요. 어머님은 불편하셔도 아버님이 옆에서 수발을 해주니 그런대로 생활할수 있지만 우리 엄마가 어머님 형편이 되면 어떻게 해요? 요즘 어머니도 기력이 많이 못해졌어요. 쩍하면 혈압이 올라서 힘들어하죠. 참, 이 로친이 어떻게 하고있는지. 저녁밥이나 잡쉈나?
말을 마친 은희는 핸드폰을 찾아들었다.
―엄마, 로로(姥姥)께 전화해요?
침대에 올라앉아 퍼즐 맞추기에 여념이 없던 진이가 머리를 들어 은이를 쳐다보았다.
―그래. 로로 저녁 잡쉈나 물으려구.
―나 바꿔줘요. 나두 로로께 할 말이 있어요.
진이가 기여와 은이의 무릎에 손을 올려놓으며 재촉했다.
―여보, 우리 진이 로로께 할 말이 있다잖소. 어서 바꿔주오.
정우가 은이에게 권했다.
―그래, 진이야. 로로두 너의 목소리를 듣고싶다 하신다.
은이가 핸드폰을 진이에게 넘겨주었다. 진이는 좋아라 핸드폰을 받아들더니 신나서 종알거렸다.
―로로, 있잖아요. 오늘 우리 할아버지 진짜 웃겼어요. 왜냐구요? ㅋㅋㅋㅋ… 모자로 강물을 푸면서 “똥 푸러 가자― 똥 푸러 가자―” 이랬다니까요.
―얘, 로로하구 그런 말하면 못쓴다.
은이가 진이를 나무라며 급히 핸드폰을 당겨왔다. 핸드폰 저쪽에서 급한 목소리가 날아왔다.
―은이야, 걔가 웬 말이냐? 할아버지가 어쨌다니?
―별일 아니예요. 오늘 유치원에서 오면서 할아버지와 웬 놀음을 논것 같아요. 그게 재미있었는지 아까부터 저렇게 엉뚱한 소리를 한다니까요.
은이는 괜한 소리를 해서 어머니를 심란하게 만들었다는듯 진이를 흘겨보며 해석하느라고 애썼다.
―늙은이들 일은 모른다. 그렇게 점잖은 량반이 갑자기 애와 무슨 그런 놀음을 하겠니? 애 말이라구 등한하게 듣지 말구얼른 시부모들 댁에 다녀오거라.
―어머니두 참, 애아버지가 어디 그렇게 등한한 사람인가요. 벌써 갔다왔어요. 두 늙은이가 밥상을 앞에 놓구 냠냠 맛있게 저녁을 드시더래요.
은이는 직접 보기라도 한듯 뼈에 살을 붙여가며 냠냠 밥을 씹는 흉내까지 냈다.
―허허허… 진이야. 너 엄마 배우해두 되겠다.
정우는 진이의 손을 끌고 객실로 나가며 허허허 웃어버렸다. 은이가 어머니와의 통화를 끝내고 나오다가 그 소리를 듣고 변명했다.
―그렇게 말하지 않으면 그 로인네 또 온밤 제 좋은 생각에 잠을 설칠거라니까요. 하기사 로인네 혼자서 독수공방하느라 밤이 오죽이나 길겠어요? 쯧쯧쯧…
은이의 혀 차는 소리를 이어 텔레비죤곁에 놓아둔 전화기가 울어번졌다. 그 바람에 진이가 급히 뛰여가 수화기를 들었다.
―와이. 할머님까? 예. 아빠 있슴다.
진이가 정우에게 수화기를 쑥 내밀었다.
방금 다녀왔는데 웬 전활가?
이상한 예감이 머리를 치고 들어왔다. 정우는 급히 수화기를 받아 귀가에 가져갔다.
―크크크, 큰일…
―큰일이라니요? 어머니, 급해 마시구 천천히 얘기하세요.
―저… 저, 려려, 령감이… 저 령감이. 아이구머니, 나 어어어, 어떻게 말하라오… 휴― 휴―
어머니는 말을 잇지 못하고 꺽꺽 한숨만 톺고있었다.
―어머니, 어머니. 안되겠네. 제가 갈게요.
정우가 수화기를 놓고 급히 침실로 들어갔다. 은이가 따라 들어오며 다그쳐물었다.
―웬 일이래요?
―모르겠소. 어머니가 한숨만 톺으면서 말을 잇지 못하네. 아버지가 뭘 어쨌다는데…
―함께 가요.
은이도 옷장문을 열어젖혔다.
―진이는 어쩌구. 가보구 내가 전화를 할게.
대충 바지를 걸치고 웃옷을 벗겨든 정우는 몸을 픽 돌려 출입문쪽으로 잰걸음을 놓았다.
어머니가 주방까지 기여나와 와들와들 떨고있었다.
―어머니, 아버지는요? 웬 일이세요?
―저저저, 저― 기. 이이, 이 일을…
어머니는 성해있는 오른손으로 땅을 치며 꺼이꺼이 울음을 터쳐올렸다. 정우는 불안한 눈길로 주방을 둘러보았다. 원래 작은 주방이라 구태여 찾을것도 없었다
북쪽 구석쪽에 누런 색의 작은 무지가 보였다. 그때까지도 역한 냄새가 간간이 풍겼다. 어머니는 손바닥으로 땅을 치며 벅벅 말을 더듬었다.
―무무무, 문소리가 나구 하하, 한참 지나도 사… 사람이 안 보이길래 내내내, 내가 웨웨, 웬 일인가싶어… 이이이, 이상한 냄새까지 나나, 나서 이렇게 버버버, 벌벌 기여 여기 와보니 그그그, 글쎄… 이이이, 이 령감이…
어머니는 무기력한 손으로 연신 땅을 쳐댔다.
―아버지는 안 들어왔어요?
정우는 목에서 겨불내가 확확 풍기는것만 같았다. 어머니는 너무도 급해 대답은 못하고 힘겹게 머리만 끄덕이였다. 정우는 후들후들 떨리는 다리를 간신히 옮겨놓으며 침실로 가서 옷장문을 열었다. 아버지의 옷은 입고 나간것외에는 그대로 옷장에 걸려있었다. 작정을 하고 나가신것은 아닌것 같았다. 어딘가를 목적하고 나가셨다면 적어도 집에서 입는 헌옷차림은 아닐것이였다. 아니, 구태여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느낌이 머리를 쳤다. 주방구석에 점잖게 내려앉아 야릇한 냄새를 풍기는 그 누런 색의 작은 무지가 모든것을 너무도 리얼하게 설명하고있는것이였다.
아버지를 찾는것이 급선무였다. 하지만 어디로부터 어떻게 시작한단 말인가? 정우는 호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그 순간 떠오르는 사람은 은이밖에 없었다.
신호가 넘어가자마자 은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떻게 됐어요?
―아… 아버지가 나가셨소. 당신, 빨리 여길 와주오. 난 밖에 나가 아버지를 찾아야겠소.
말을 마친 정우는 핸드폰을 꺼서 호주머니에 넣고는 허리를 굽혀 어머니를 안았다.
―애에미가 인차 올겁니다. 어머니는 시름 놓고 기다리세요. 내가 아버지를 찾아볼게요.
―이이이, 이 령감을 어어어어, 어쩌면 조조조…
정우는 어머니의 넉두리를 뒤로 한채 다시 주방으로 건너갔다. 작은 무지였지만 정우에게는 큰 산처럼 느껴졌다. 정우는인차 손을 쓰지 못하고 서성거리다가 찬장서랍에서 비닐봉지를 찾아들었다. 정우는 작은 무지에 비닐봉지를 씌운후 머리를 돌리고 손으로 그것을 끌어담았다. 역한 냄새가 코구멍을 자극했다. 순간 정우의 두볼에서 구슬같은 눈물이 둘둘 굴러내렸다.
4
어디로 가셨을가?
급히 문을 나서기는 했지만 미로에 선 애들처럼 막막하기만 했다. 아무리 생각을 굴려보아도 평소 아버지가 즐겨 다니던 곳을 생각해낼수 없었다. 아니, 아버지는 원래 즐겨 다니는 곳이 없다고 함이 나을것이였다. 시환경관리처에서 허드레일을 하다가 정년퇴직한후로 자질구레한 집일들을 하면서 만년을 보내고있는 아버지에게 남다른 흥취나 애호가 있을리도 만무했다. 가정, 안해, 자식 그리고 손자 진이가 전부인 아버지였다. 그러한 아버지가 밤중에 집을 나가 갈수 있는 곳이 과연 어디일가?
정우는 무작정 가로등불빛을 따라 걸으며 연신 주변을 둘러보았다.
멀리서 꽹과리며 북 소리가 들려왔다. 정우는 잠간 걸음을 멈추고 소리나는쪽에 눈길을 주었다. 앞에 있는 작은 광장에서였다. 둥둥챵 둥둥챵… 양걸을 추는 사람들이 꼬리를 물고 돌아가는것이 어렴풋이 보여왔다. 순간 아버지가 그 꼬리에 묻어 빙글빙글 돌아가지 않을가 하는 묘연한 생각이 머리속을 스쳐지났다. 아니, 그 무리에 아버지가 있을것 같다는 확신 비슷한것이 뿌리를 내렸다. 그 확신이 어디로부터 오는것인지도 가늠할 새 없었다. 정우는 양걸대가 돌아가는 그곳을 향해 허둥지둥 발걸음을 옮겼다.
둥둥챵― 둥둥챵…
꽹과리소리며 북소리가 점점 더 가까이로 들려왔다. 그제야 정우는 저 멀리 추억의 밑바닥에 깔려있던 색 바랜 음영을 더듬어낼수 있었다.
그것은 정우가 진이만할 때의 어느 무더운 여름날 저녁이였다. 아버지는 잔업을 한다면서 퇴근을 하지 않았고 어머니는 가두로 회의를 나갔다. 누나는 동생을 데리고 바람을 쏘인다면서 친구들을 찾아가려고 했다. 정우도 누나를 따라가겠다고 떼질을 썼지만 누나는 동생들을 둘씩이나 데리고 다니면 친구들이 흉을 본다면서 기어코 정우는 집에 떼놓고 문을 나섰다. 너무도 심심했다. 반도체라지오를 틀어보았지만 도무지 알아들을수 없는 말들이 두런두런 흘러나올뿐이였다. 정우는 그 소리를 들으며 꾸벅꾸벅 졸다가 문뜩 은은하게 들려오는 꽹과리소리며 북소리에 정신을 차리게 되였다. 꽹과리소리며 북소리는 분명 정우네 집쪽을 향해 가까와지고있었다. 정우는 정신을 번쩍 차리며 자리를 차고 일어나 신뒤축을 꺾어 신고 밖으로 나갔다. 멀지 않은 곳에서 빨갛고 파아란 옷을 괴상하게 차려입은 사람들이 꽹과리를 치고 북을 두드리며 너울너울 다가오고있었다. 정우는 너울거리는 그 무리가 바로 양걸대라는것을 알고있었다. 언젠가 아버지가 정우에게 양걸에 대해 이야기를 해준적이 있었다. 그때 아버지는 양걸은 원래 한족농민들이 농사가 풍년이 들기를 기원해서 밭머리에서 노래 부르고 춤을 추던데로부터 전해져내려온것이라고 하였던것 같았다. 동작을 과장해서 최대한 크고 괴상하게 하면 할수록 가슴속에 있던 소망이 있는 그대로 이루어진다는것이였다. 그래서 사람마다 능력을 다해 우습고 괴상한 동작을 크게 연출해낸다는것이였다. 들을 때는 그냥 그런것이였구나 하는 정도로 별 감흥을 느끼지 못했었지만 외로운 밤에 갑자기 꽹과리소리며 북소리를 들으니 저도 몰래 흥분되여 가슴이 설레였다. 자기도 양걸대에 끼이면 외롭고 심심하지 않을것 같다는 엉뚱한 생각이 머리를 쳐들었다. 정우는 흥겨움이 농익는 양걸대를 향해 잰걸음을 놓았다.
둥둥챵― 둥둥챵…
흥겨운 절주에 따라 정우는 저도 몰래 팔이 흔들어졌고 다리가 박자를 타기 시작했다.
둥둥챵― 둥둥챵…
제법 어깨까지 덩실덩실 파도를 타주었다. 양걸대가 정우의 앞으로 다가왔고 인차 정우의 옆을 스쳐지나갔다. 정우는 어느새 양걸대의 꼬리에 붙어서서 혼신을 놓아버렸다. 자기가 양걸을 추고있다는것도, 자기가 양걸대를 따라 어디로 흘러가고있다는것도 감감 잊은채 정우는 승무를 추는 동자승처럼 흐르는 인파에 싣겨가고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던지 양걸대는 어느 광장 같은 곳에 도착해있었다. 그곳에서 대장인듯한 남자가 뭐라고 한어로 몇마디 말을 했고 이어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제야 정우는 자기가 낯선 곳에 와있다는것을 의식하게 되였다. 말 못할 두려움이 스멀스멀 머리속을 찾아들었다. 주위를 둘러보아도 눈에 익은 건물은 보이지 않았다. 시간이 좀더 흐르자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사라지고 간혹 지나가는 길손들만 한둘씩 보일뿐이였다. 어떻게 가야 집에 닿을수 있는지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떠오르지 않았다.
집을 못 찾으면 어쩌지? 나쁜 놈들에게 잡혀가면 어쩌지? 아버지며 어머니며 누나며 동생을 못 보면 어쩌지…
지나친 근심은 눈물로 되여 두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엄마― 아부제―
정우는 애처롭게 소리지르며 어둠이 깃든 거리를 헤매고 다녔다. 그때 두리모자를 쓰고 팔에 붉은 완장을 낀 두 사람이 다가오더니 정우를 불러세웠다.
―길을 잃었니?
―네.
―어떻게 되여 여기에 왔니?
뚱뚱한 몸집의 사나이가 정우의 손을 잡아주면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야… 양걸구경을 하면서 여여, 여기까지 왔어요.
정우는 여전히 두려움이 가득 담긴 목소리를 파르르 떨면서 기여들듯 더듬거렸다.
―어디서부터 따라왔니?
―집이 어디에 있지?
―신흥가에 있어요
―이런, 이곳은 광명가란다.
두 사나이는 뭐라고 두런거리더니 정우를 신흥가파출소에 데려다주었다. 담당경찰이 정우의 말에 따라 호구대장을 뒤져서 용하게 정우네 집이 있는 주소를 찾아냈고 정우를 집까지 데려갔다. 그때 금방 집에 들어선 아버지와 어머니는 정우가 잃어진것을 발견하고 찾아나서려 덤벼치던 참이였다. 경찰의 손에 이끌려 집에 들어서는 정우를 보고 아버지는 연신 경찰들에게 감사를 표했고 이어 정우의 엉뎅이를 치면서 크게 꾸짖었다.
―왜 이렇게 어시들 속을 뒤집는거냐? 이 밤에 잃어라도 지면 어쩔번했니?
―경찰아저씨들이 집을 찾아주는데요, 뭘.
정우는 급해서 입술마저 초들초들해진 아버지를 빤히 쳐다보면서 또박또박 대답했다.
정우는 멀리서 들려오는 꽹과리소리며 북소리를 뒤로 한채 파출소를 바래고 잰걸음을 놓았다.
아버지는 과연 접대실 걸상에 앉아서 두눈을 슴뻑거리고있었다. 가담가담 쒝― 쒝― 하는 거친 숨소리가 터질 때마다 목젖이 푸들푸들 떨리고있었다. 모든것을 포기하신듯 무기력하게 한껏 몸을 웅크리고 앉아 바들바들 떠는 아버지를 바라보면서 정우는 아래다리가 후들후들 떨려 몸을 주체할수 없었다. 정우는 잠간 두눈을 감았다 뜨면서 애써 목소리를 짜냈다.
―아버지.
그 소리에 담당경찰인듯한 사람이 정우쪽으로 머리를 돌렸다.
―이분이 부친입니까?
―네, 수고 많았습니다.
―환자인듯한데 관리를 잘해야지요.
경찰의 목소리에는 정우에 대한 핀잔이 다분했다. 하지만 그런것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정우는 다가가 아버지앞에 무릎을 꺾으면서 두손을 부여잡았다.
―아버지, 놀라셨죠?
정우의 말에 아버지가 되려 와뜰 놀라더니 두눈을 퀭하니 뜨고 정우를 눈여겨보았다.
―댁은 뉘슈?
아버지의 목소리에는 아무런 색채도 없었다. 무시로 슴뻑이는 두눈처럼 기계적으로 가담가담 목소리가 흘러나올뿐이였다.
―큰일칠번했습니다. 순라팀에서 연집강가를 거닐다가 발견했답니다.
―연집강가요?
―모자로 물을 떠서 가로수에 쏟으며 “똥 푸러 가자― 똥 푸러 가자―” 하고 소리치기에 이상해서 살펴보았고 그 거동이 이상해서 이것저것 물었는데 한심한 말씀만 하시더랍니다.
―그랬었군요.
―집에 환자가 있으면 각별히 신경을 쓰셔야죠.
경찰의 목소리에는 여전히 가시가 배여있었다.
―미안합니다. 신경 쓰겠습니다.
정우는 담당경찰이 내미는 사건기록부에 싸인을 하고 아버지의 팔을 부축했다.
―댁은 왜 우리 집에 왔수?
아버지가 여전히 정우의 얼굴을 퀭하니 지켜보며 랭랭하게 물었다. 전혀 모르는 얼굴을 대하는듯싶었다. 그러는 아버지를 지켜보는 정우의 마음은 당금 찢어질듯 아파났다. 정우는 잘근잘근 아래입술을 씹다가 올리미는 설음을 눅잦히며 떠듬떠듬 말을 이었다.
―아아, 아버지, 저… 저요, 정운데요. 아버지를 모셔가자고 왔습니다.
―정우라면 내 큰아들인데…
아버지가 못 믿겠다는듯 설레설레 머리를 저었다.
아버지가, 아버지가 어느새 아들도 못 알아보게 되셨을가? 그새 나는 무엇을 하고있었는가?
정우는 그 맵시로 벽에 머리라도 콱 박고싶었다. 스스로는 아버지에게 정성을 쏟느라 했지만 아버지는 어느새 자기만의 길을 저 멀리 가버리고계셨던것이다.
―아버지, 제가 바로 아버지 아들 정웁니다. 저랑 함께 집으로 갑시다.
―좋소― 갑시다.
그제야 아버지는 걸상에서 일어나 몸을 후들후들 떨며 정우를 따라나섰다. 정우는 아버지의 팔을 꼭 부여잡고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입을 열었다.
―아버지, 왜 거기 가셨댔어요?
넋을 놓고 정우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던 아버지가 머리를 푹 숙이며 기여들어가는듯한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정우야, 그날 나는 네가 애들이랑 싸우는것을 보았댔다.
그때 아버지의 목소리는 꽉 막혀 힘겹게 흘러나오고있었다.
―애들이랑 싸우다니요?
정우는 아버지의 얼굴에 눈길을 박으며 영문을 알수 없어 되물었다.
―그날 네… 네가 위생국집 아들이랑 싸우잖았니? 그 애랑 싸우는걸 아버지는 다 보았단다. 똥 푸러 가는 길이라 네 얼굴에 똥칠을 할것 같아서 아버지는 못 본듯이 지나쳐버린거다. 미안하구나.
말을 마친 아버지는 떡 버티고 서서 애들처럼 왕왕 소리내여 울음을 터뜨리다가 손을 내저으며 소리쳤다.
―똥 푸러 가야지― 늦겠다. 빨리 가자.
―아버지!
정우는 피 터지게 소리치며 아버지를 와락 품에 끌어안았다.
5
―아버님은 어떠세요?
은이는 여느때보다 약간 일찍 퇴근하여 직접 아버지네 댁으로 오다가 마당에서 서성이는 정우를 발견하고 급히 물었다.
―낮에는 별 기미가 없었소.
정우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대답하며 은이의 얼굴을 일별했다. 몹시 지친듯 은이의 얼굴이 상해있었다.
―어디 아픈게 아니요?
―그 병이 워낙 그렇대요.
―당신 얼굴색이 영 안 좋네.
―처음엔 간간이 발작하다가 깊어지면 아예 정신줄을 놓아버린대요. 아버님 일을 낮에 아줌마들께 여쭈었더니 모두들 그렇게 이야기했어요.
―의사도 그렇게 말하더군.
정우는 근심스러운 눈길로 은이를 바라보면서 한마디 했다. 그에 은이가 머리를 끄덕이며 말을 받았다.
―완치도 어렵대요. 약을 바싹 써서 악화되게 하지 않으면 그나마 다행이래요.
―그러게, 여기서 더 악화되지만 않아도 다행이지.
―빨리 들어가 저녁을 지어야겠어요. 혹시 아버님이 또 발작을 하면 야단이예요. 초기환자는 발작시간도 비슷하대요. 그러다가 증세가 악화되면 시도 때도 없이 반복한대요.
은이는 말을 마치고 몸을 돌려 집으로 들어갔다. 정우도 은이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아버지는 어머니옆에 다리를 토시고 앉아 뚫어져라 어머니의 얼굴을 지켜보고있었고 어머니는 그 얼굴을 쳐다보며 넉두리를 해댔다.
―이이이, 이 일을 어… 어떻게 하면 좋슴둥. 다다다, 당신이 치… 치매에 걸렸다꾸마.
―괜한 소리를… 내가 왜 치매에 걸려? 이렇게 멀쩡한데.
―머머머, 멀쩡한 사사사, 사람이 주… 주방에 으― 이― 나나나, 낯 뜨거워…
―왜 진종일 없는 소리를 해대는기여? 내가 뭘 주방에 어쨌다구 씨부렁거리는기여?
은이는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 오가는 설전을 귀동냥하면서 다소곳이 머리를 숙여 인사를 올리고는 진이가 있는 객실로 나갔다. 그러자 정우가 어머니옆에 자리를 잡고 앉으며 입을 열었다.
―어머니, 아버지 하구 자꾸 뭐라 그러지 마세요. 아버지가 한번 실수를 한것 가지고 왜 그렇게 끝이 없이 나무라세요.
―그그그, 그랬으면 얼마나 조조조, 좋겠냐? 아이구, 내내내, 인젠 주주주, 죽을 때가 됐나보구나.
어머니의 눈귀를 타고 멀건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정우는 어머니의 머리맡에 놓여져있는 종이를 뽑아 어머니의 귀속으로 흘러드는 눈물을 훔쳐드렸다.
―진종일 저렇게 누워있노라니 너 에미가 환각이 생기는것 같구나.
아버지가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정우에게 말했다. 정우는 아버지가 정말 자신의 상태를 모르시는 모양이구나 하는 생각을 굴리며 대답했다.
―그런것 같아요, 아버지.
그때 객실에 앉아 퍼즐을 맞추던 진이가 할아버지를 보고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할아버지, 신경질나요. 이게 왜 제대로 맞춰 안 지죠?
―세상에 쉽게 맞춰지는게 어디 있겠니?
아버지는 진이를 돌아보지도 않고 그렇게 덤덤히 한마디 하면서 주방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은이는 한창 저녁준비에 바삐 돌고있었다.
―내가 도울게 없냐?
아버지가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은이는 얼굴에 약간 웃음을 띠면서 대답했다.
―시름 놓고 쉬세요. 아버님, 오늘 피곤하셨죠? 어머님을 친구해드리느라.
―불쌍하기도 하지, 진종을 구들을 지고 누워서. 내가 없으면 저 로친이 어찌 살겠니.
아버지는 그렇게 말씀하면서 다시 객실로 들어와 진이의 옆에 앉았다.
―할아버지, 보쇼. 이 빨간색을 이렇게 돌려놓으면 노란색이 이쪽으로 오죠? 그래서 노란색을 이쪽으로 돌리면 빨간색이 또 제자리로 온단 말이예요. 신경질나요.
진이가 할아버지의 눈앞에서 퍼즐을 돌려보이며 종알거렸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진이의 말을 들었는둥말았는둥 두눈을 지그시 감은채 미동도 하지 않고있었다.
―할아버지. 생각 좀 해보세요. 어떻게 맞추면 돼요?
진이가 할아버지의 팔을 잡아 흔들면서 소리쳤다.
잘 자거라 아가야 내 사랑 아가야
밤은 첩첩 깊어도 잠 잘 자거라
―할아버지!
진이가 퍼즐을 내려놓으며 두려움이 가득한 목소리로 웨쳤다. 그 바람에 정우도 은이도 객실로 달려나왔다. 아버지는 오른손으로 자신의 허벅다리를 살랑살랑 치면서 그 두구절만 반복하고있었다.
잘 자거라 아가야 내 사랑 아가야
밤은 첩첩 깊어도 잠 잘 자거라
―엄마, 할아버지 왜 저러셔?
진이가 은이의 품에 감겨들며 파르르 떠는 목소리로 속삭이듯 물었다. 은이가 진이를 꼭 품어주며 입을 열었다.
―진이야, 할아버지 많이 아프시단다. 어쩌면 좋아요? 여보.
은이의 눈길이 애절했다. 정우는 애꿎게 아래입술을 감빨며 은이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다가 허리를 굽혀 앉으며 아버지의 어깨를 꼭 감싸안았다.
―시간이며 환경 같은것을 두고 도착증세를 보인다고 했소. 그리고 가슴속에 응어리로 남아있던 아픈 사연을 자주 들춰내기도 하구… 아버지가 하시는 행동들이 오늘 의사가 말한대로 나타나고있소.
―불쌍해서 어떻게 지켜봐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라고 했소. 우리가 주의해 살피지 못해서 그렇지 벌써 오래전부터 경한 증상을 보였을거라더구만. 이를테면 기억력이 못해진다거나 자주 화를 낸다거나 꼭 필요한 물건을 두고 다닌다거나…
―우리가 등한했어요.
―그러게 말이요.
―그런데 아버님은 왜 자장가를 부르실가요?
―젊었을 때 마음껏 부르지 못한게 한이 미쳐서겠지.
―하기사 그 세월에…
―사실 나는 아버지에게서 역한 냄새가 난다고 늘 아버지를 피했었거든.
정우가 말을 마치고 후― 한숨을 내쉬였다. 그때 아버지가 문득 노래를 끊으시고 은이를 퀭하니 바라보며 물었다.
―댁은 뉘슈?
―아버님, 저 아버님의 며느리예요.
은이가 잦아드는듯한 목소리에 두려움을 가득 담으며 대답했다.
―그럴수가 없는데, 저렇게 어린 놈이 벌써 장가 들수 없는데.
아버지가 진이를 가리키면서 머리를 저으셨다. 두려움에 떨던 진이가 그 광경을 보고 소리쳤다.
―할아버지 왜 저래요? 할아버지 무슨 말을 하는거예요?
―내내내, 내가 너무 사사사, 살았구나. 지지지, 진이야 쥐약을 사사사, 사다달라. 쥐약을… 아이구 내내내, 내 팔자야―
어머니가 아버지가 하는 허망한 말을 들었던지 침실에서 꺼이꺼이 울음을 터치셨다. 정우가 아버지의 어깨를 감았던 팔을 조용히 풀고 침실로 들어갔다. 어머니는 얼굴이 눈물범벅이 되여 땅을 치고있었다. 정우는 마알간 물이 고여드는 두눈으로 어머니를 잠간 응시하다가 꺽꺽 막혀오는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
―어머니, 어머니까지 왜 이러세요?
―사사사, 살아서 뭔 락을 보겠냐? 쥐쥐쥐, 쥐약을 머머, 먹구 끄… 끔뻑 주주주, 죽어버리고싶다.
정우는 어머니의 손을 꼭 잡아드리며 애원하듯 말했다.
―어머니가 정신을 차리셔야 아버지 병을 고칠수 있습니다. 두분 다 정신을 놓으시면 이 집을 어떻게 합니까?
―내내내, 내가 너무 오오, 오래 살았구나. 오래 사사사, 살았어.
그렇게 땅을 치던 어머니가 지치셨던지 스르르 두눈을 감았다. 조금 지나자 잠이 든것 같았다. 정우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객실로 나갔다. 아버지도 그새 잠이 들어계셨다.
은이는 방금 지나간 풍파때문에 저녁준비를 할 기력마저 잃었던지 그 맵시로 쏘파에 몸을 싣고 두눈을 지그시 감고있었다. 눈까풀이 파들파들 떨리고있었다. 얼굴이 창백하다 못해 파아랗게 질려있었다. 정우는 은이의 옆에 다가앉아 오른팔을 길게 뻗어 은이의 어깨를 감싸주었다.
―여보, 인젠 우리 어떻게 해야 해요?
은이의 목소리가 떨리고있었다. 정우는 부드럽게 은이의 어깨를 쓸어주다가 입을 열었다.
―우리 집 혼자만의 일이 아닌것 같소. 오늘 의사가 그러는데 65세 이상 로인들중 열에 한 사람은 치매증상을 보인다오. 아버지는 그중에서 증상이 좀 엄중할뿐이요.
―인젠 우리 어떻게 해야 해요?
은이는 목석처럼 앉아서 그 말만 되풀이했다.
―낮에 병원에서 치매를 앓는 부모를 모시고 사는 사람들을 더러 만났더랬소. 모두들 간병인을 쓴다고 하더구만.
―간병인이요?
―집에 와서 주숙을 하면서 돌봐줄수 있는 사람 말이요.
―돈이 많이 들겠죠?
은이가 정기 없는 눈으로 정우를 건너다보며 무기력하게 물었다.
―로인 한 사람을 돌보는데 1500원이 들어야 한다니 우리 같은 경우는 좀더 줘야겠지.
―좀더 주면 얼마나 줘야 할가요? 2000원? 설마 3000원을 달라는 말은 안하겠죠?
―……
정우는 뭐라고 딱히 할 말이 없어 쩝쩝 입만 다셨다. 그때 진이가 돈소리에 뭔가 생각났던지 한마디 끼여들었다.
―엄마, 피아노학비를 낼 때가 됐다 했어요. 전번날 피아노선생님이 그렇게 말했어요.
―오, 그렇지. 벌써 피아노학원에 다음달 학비를 낼 때가 됐구나.
은이는 흠칫 놀라면서 정우의 얼굴에 시선을 박았다.
―벌써 날자가 이렇게 흘렀네.
―이번달도 장사가 말이 아니예요. 죽벌이도 안돼요.
―옷 파는 사람이 옷 사는 사람보다 더 많으니…
―어마나. 엄마 생활비도 보내야겠어요.
은이가 부랴부랴 가방에서 돈지갑을 꺼내더니 안에서 돈을 꺼내 세기 시작했다.
―어머님 생활비는 아직 며칠 남지 않았소? 날자가.
―전번에 고혈압약을 사면서 돈을 많이 썼을거예요. 로인네가 돈이 없이 어떻게 혼자 지내겠어요. 래일 꼭 보내야겠어요.
―그래야지.
정우는 덤덤하게 한마디 하고는 두눈을 퀭하니 뜨고 막연하게 천정을 올려다보았다.
먼지가 뽀얗게 오른 일광등주변 천정에 까아만 점들이 가득 박혀 웃고있었다…
6
―간병인이요?
남자가 정우를 힐끔 건너다보며 되물었다.
―네, 조선족아줌마면 더 좋겠는데요.
정우는 남자의 물음에 대답하며 인차 자기의 요구를 덧붙였다. 그러자 남자는 얼굴에 히물히물 웃음을 게바르며 정우를 세상물정을 모르는다는듯 시까슬렀다.
―간병인에 조선족아줌마라― 아무래두 서울에나 가서 찾아봐야 할것 같슈―
남자의 말에 정우는 오리무중에 빠지면서 두눈을 크게 떴다. 서울은 무슨? 아닌 밤중에 홍두깨냐 하는 식이였다. 그러자 남자는 다시한번 허허허 웃음을 날리더니 정색해서 말했다.
―이보슈, 량반. 지금 조선족간병인을 어디서 찾는다구 그러우? 70살 아래의 사지가 성한 조선족녀자가 연변에서 놀고 먹는것을 본적이 있소? 보고 죽자 해도 없다우. 그래, 없지. 없구말구…
―네? 그런가요…
―하하하, 모르기는 한참 모르시네. “책상족”인가?
다시한번 정우를 째려보는 그 눈길이 아니꼬왔다.
―아니, 조선족이요.
정우가 급히 손을 저었다. 그러자 남자가 뒤통수를 툭 치며 입을 쩝쩝 다셨다.
―하하하, 이런… 그쪽이 하두 순진해보여서 사무실에만 앉아있는 사람인가 물었소.
―아, 네…
―이보슈. 제몸을 움직일만하면야 왜 이곳에 남아있겠소? 모두들 한국에 나가 큰돈을 벌려구 하지.
―네, 그런 일이군요.
―그런데 왜 딱 조선족아줌마요? 한족아줌마들도 깨끗하구 부지런하구 책임성이 강한데.
남자는 사무실 한쪽 구석에 놓인 긴 의자에 앉아서 이야기장단을 쳐대는 서넛 되는 아줌마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정우도 남자의 손길을 따라 그쪽을 힐끔 바라보다가 머리를 남자에게 돌렸다.
―저의 모친이 한어에 아주 서툴답니다. 게다가 뇌출혈후유증으로 말도 어눌하구요.
―쯧쯧쯧… 그런 일이구만 참, 안됐네. 그렇다면 조선말을 할줄 아는… 그래, 장메이, 꿔라이(张妹,过来).
남자가 얼굴이 퉁퉁하고 살색이 거밋거밋한 아줌마에게 손짓을 했다. 그러자 그 아줌마가 기다리기나 했다는듯 남자를 향해 벙싯 웃어보이더니 시리시리한 몸을 날래게 움직여 남자쪽으로 다가왔다. 남자는 아줌마의 펑퍼짐한 엉뎅이를 툭 치면서 흐흐흐 웃고는 정우를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짱메이, 이분이 조선말을 할줄 아는 간병인을 구한다오.
―그램까?
아줌마가 정우를 힐끗 훔쳐보고는 남자에게 머리를 돌리며 말을 이었다.
―시세를 말해줬지 예?
―아니, 거야 당사자들끼리 협상해야지.
남자가 머리를 저었다. 그러자 아줌마는 알겠다는듯 머리를 끄덕하더니 정우를 보고 말했다.
―주숙을 댁에서 책임지구 한달에 1500원입꾸마.
―좋습니다.
정우는 아줌마의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대답했다. 그러자 아줌마가 입가에 묘한 웃음을 피워올리며 동을 달았다.
―아까 내 저쪽에서 피끗 들을라니 댁에 환자 두 사람이 있다쟀소?
―네, 모친은 뇌출혈로 몸이 불편하구 부친은 치매기를 좀 보이구요.
―저런저런… 안됐네. 그러믄사 자식들이 죽어나지무. 그런 형편이라믄, 원래는 3000원 받아야 하는건데 그 집 사정이 딱해보여서 내 2800원만 받을게.
아줌마가 큰 인심이라도 쓰는듯 두손을 들고 손가락 여덟개를 쫙 펴보였다. 그 바람에 정우가 흠칫 놀라며 동공을 키웠다.
―방금 1500원이라구…
―이 아즈바이 봐라. 그게사 한 사람이 1500원이라는게지.
―한 사람이요?
―그렇지, 한 사람이. 그런데 그 집엔 머저리령감하구 풍맞은 로친이 있재?
아줌마가 조선족도 찜져먹을만큼 류창한 조선어로 제법 “머저리”요, “풍맞은 로친”이요 하고 생동하게 표현하기까지 했다. 정우는 2800원이라는 말에 지레 놀라서 두눈을 퀭하니 뜬채 아줌마를 바라보며 “아, 네.” 하고 멍청하게 대답했다. 그러자 아줌마가 정우에게 손을 내저어보이며 말을 이었다.
―2800원, 하나도 안 비싸오. 나처럼 조선말을 왕왕 하는 사람이… 원래사 더 받아야지무.
아줌마는 제쪽에서 되려 크게 밑지기나 한다는듯 고아댔다. ―어쩔테요? 저레 계약을 하겠소?
남자가 손끝으로 책상머리를 톡톡 치며 정우를 바라보았다.
―아, 네…
―그럼 먼저 이 로무계약서를 읽어보오.
남자가 서랍에서 우에 “로무계약서”라는 글이 박혀있는 종이 한장을 꺼내여 정우앞에 내밀었다. 하지만 정우는 그 시각 그 종이를 쉽게 받아들수 없어 내밀었던 손을 당겨왔다. 주춤하는 정우의 거동에 남자가 흘끔 정우의 얼굴을 쳐다보더니 입을 열었다.
―왜 그러슈?
― 아, 네. 오늘은 먼저 알아보구요. 집에 가서 안해와 토론하구 다시 결정할게요.
말을 마친 정우는 누가 쫓기라도 하듯 인차 직업소개소문을 나섰다.
하늘에는 검은구름이 낮게 드리워져있었다. 당금 비라도 내릴것만 같았다.
휴― 저도 몰래 긴 한숨이 터져나왔다. 정우는 호주머니에 두손을 찌른채 터벅터벅 걸음을 옮겨놓았다. 그렇다고 해서 딱히 어디라고 방향이 서는것도 아니였다. 속이 갑갑해서 어디론가 무작정 걷고싶을뿐이였다.
어느새 직업소개소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연집강가에 도착해있었다. 정우는 강뚝에 서서 흘러가는 강물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그 맵시로 강뚝에 쪼크리고 앉았다. 출렁출렁 강물이 흐르는 소리가 귀속을 파고들었다. 반갑지가 않았다. 방금 직업소개소에서 고아대던 아줌마들의 시끄러운 말소리처럼 불편하게 들렸다.
참, 2800원이 뉘 집 강아지 이름인가? 그렇게 쉽게 달라 하다니. 몸집이 시리시리한 그 아줌마의 말을 상기하노라니 또 괜히 기분이 잡쳤다.
그것도 크게 인심이나 쓰는것처럼… 2800원이면 내 한달 로임보다도 더 많은 돈인데.
정우는 달마다 어머니와 장모에게 생활비로 각각 5백원씩 보내야 했고 진이의 피아노학원 학비로 4백원을 내야 했다. 그나마 아버지는 달마다 퇴직비로 800원씩 나오기에 아버지의 생활비는 보내지 않고있었다. 그런데 예상밖으로 2800원의 지출을 더해야 한다니 그달 벌어 그달 사는 정우로서는 막막하지 않을수 없었다. 안해 은이의 옷장사가 어떻게 되는지 전에 종래로 묻지 않던 정우였다. 누가 돈을 달라는것도 아닌데 은이는 늘 “죽벌이도 안된다.”고 바가지를 긁었다.
정우는 “3000원이야 달라지 않겠지요?” 하고 물으며 불안에 떨던 은이의 얼굴을 방불히 보는것만 같았다. 진이도 당금 학교에 붙어야 하겠는데 남들의 경험을 보면 학교에 들어가는 날부터 영어써클이요, 작문써클이요, 수학써클이요 하면서 돈을 쏟아붓고있었다. 거기에만도 달마다 5백원 돈은 들어간다고 친구들이 하는 말을 들어서 알고있었다. 로인들이 그나마 건강할 때는 몰랐었는데 정작 로인들이 모두 병으로 기울어져가는 형편이고보니 큰 문제가 아닐수 없었다. 그렇다고 독신자녀인 은이를 보고 고혈압으로 앓는 장모를 돌보지 말라고 할수도 없는 일이요, 그렇다고 해서 자립을 못하는 어머니나 치매로 언제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르는 아버지를 집에 끼고 살수도 없는노릇이였다. 정우는 무거운 생활의 압력앞에서 점점 무력해지는 자신으로 하여 화가 났고 괜히 두려움이 앞섰다.
순간 누나의 얼굴이 떠올랐다. 한국에 시집 간 누나의 얼굴이 혜성처럼 눈앞을 스쳐지났다. 누나에게 큰 방조를 바라는것보다 갑갑한 마음을 누나에게 털어놓고 조언이라도 듣고싶었다. 정우는 호주머니를 뒤져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뭐라고 첫마디를 뗄가? 괜히 누나가 놀라서 뒤로 넘어가는것은 아닐가?
정우는 차마 통화버튼을 인차 누르지 못하고 머뭇거리기만했다.
그래, 뭘 어째 달라는것도 아니구… 누나도 이곳 형편을 알아야 할게 아닌가.
정우는 애써 자신을 달래면서 마음 먹고 통화버튼을 꾹 눌렀다. 뚜― 뚜― 뚜― 신호가 넘어가는 소리가 정우의 가슴을 벌렁벌렁 뛰게 했다.
―여보세요―
신호 넘어가는 소리가 끝나고 생경한 한국말로 전화를 받는 녀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나가 분명했다.
―누나, 나 정우.
―그래, 정우구나. 그새 잘 지냈니? 오래동안 전화가 안 오길래… 어머니는 어떻구? 아버지는 무사하냐?
누나는 무슨 알고싶은것이 그렇게나 많았던지 입을 열자마자 단숨에 많은것들을 물어왔다. 정우는 잠자코 누나의 목소리를 듣고있다가 잠간 숨을 고르고 입을 열었다.
―누나, 어… 어떻게 말할가?
그 말에 누나가 숨가쁘게 다그쳐물었다.
―너 무슨 일이 있구나. 말해라, 그래 무슨 일이니?
정우는 잠간 아래입술을 잘근잘근 씹다가 입을 열었다.
―아버지가 치… 치매가 온것 같소.
―뭐? 치매라구 했니? 왜왜왜? 언제부터?
―사나흘 되는데… 갑자기 증상이 엄중해졌소.
―어… 어떻게? 어떻게 엄중한데?
―자꾸 옛날 일을 끄집어내구 화장실이구 주방이구 분간 못하구… 생뚱같이 옛날 행동을 반복하구…
―그게 정말이냐? 어쩌면 좋으냐, 정우야.
―나두 어쩔 대책이 안 서서…
―……
한참이나 누나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누나.
―정우야, 네가 그렇게 아무 대책도 없으면 안되지. 방법을 대서 어떻게 해야지.
누나가 울고있었다. 후― 정우는 다시한번 긴 한숨을 내쉬고 입을 열었다.
―간병인을 찾고있소. 우리가 집에서 시중을 들수도 없구 해서.
―그러면 많은 돈이 들어야 하는게 아니니? 우리 여기서도 간병인을 구하려면 뭉치돈이 들어간다구 그러더라.
누나의 목소리가 무거워지고있었다. 정우는 흐려지는 누나의 얼굴을 그려보면서 말끝을 얼버무렸다.
―그러게 말이요.
―어쩌면 좋니? 내가 도와줄 형편도 못되고…
―……
정우는 누나에게 괜히 전화를 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후회하기 시작했다.
―중국사람들은 한국, 한국 하면서 한국사람들은 돈을 장져놓고 사는줄 알지만 우리 같은 사람들은 한국에서도 살기 참 힘들단다. 너의 매형은 지난달부터 회사가 부도를 맞아 집에서 쉬고있다.
―그렇구만. 누나, 내 그저 여기 사정을 알리느라구… 담에 다시 전화할게.
말을 마친 정우는 일방적으로 통화를 끊어버렸다. 당초 누나에게 전화를 할 때 무슨 도움 같은것을 받으려는 희망을 걸었던것은 아니지만 누나의 말을 들으면서 어딘가 서운한 마음이 갈마드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빈말로라도 “어쩌겠니? 나도 좀 도와줄게. 좋은 사람으로 간병인을 구해보거라.”라고 했더라면 얼어드는 가슴이 얼마라도 녹을듯싶었지만 아직 달라는 말도 꺼내지 않았는데 몸부터 숨기는 누나를 대하고나니 어딘가 믿던 사람에게서 배신을 당한듯한 억한 생각이 들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정우는 누구에게 분풀이라도 하려는듯 주먹만한 돌멩이를 주어 무작정 강물에 던져넣었다. 풍덩! 돌멩이가 물에 떨어지며 미약한 소리를 내더니 인차 종적없이 사라졌다. 강물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더냐싶게 동쪽을 바라고 흘러만 갔다.
하늘에서 후둑후둑 비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7
―비가 오네, 비가 오네―
아버지는 애들처럼 창가에 붙어서서 비 내리는 창밖을 내다보며 발을 동동 굴렀다. 얼굴에 말 못할 긴장감이 어려있었다.
―너 왔구나. 그래, 왔으니 됐어.
―아버지, 자리에 누워 쉬시지 그랬어요.
정우가 신을 벗으면서 아버지에게 말했다. 아버지는 정우쪽으로 마주오며 입을 열었다.
―밖에서 비가 오지 않느냐? 비가 오지 그래.
―네, 비가 옵니다.
정우는 비에 흠뻑 젖은 웃옷을 벗으면서 말했다.
―비를 맞으면 감기에 걸린다. 조심해야지.
―괜찮아요, 아버지. 그렇게 비살이 세지는 않아요.
―네가 없으면 너의 에미를 어쩌겠니? 너의 에미가 불쌍하지. 크게 락이란것도 모르구.
아버지의 눈가에 멀건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었다. 정우는 그러는 아버지를 잠간 지켜보다가 목멘소리로 말했다.
―아버지가 있지 않아요. 아버지가 이렇게 친구해드리는데 어머니도 행복해하실겁니다.
정우의 말에 아버지가 절레절레 머리를 저으셨다.
―아니다. 내가 날로 못해가는게 알린다. 이러다가 어느날 저승사자가 데리러 오면 훌쩍 떠나게 되는기라. 정우야, 여기 오너라.
아버지가 오랜만에 “정우야.” 하고 부르면서 신비스럽게 손짓했다. 아버지는 어느새 어머니의 시선이 미치지 않는 집구석에 가계셨다. 정우는 젖은 옷을 옷걸이에 걸어 옷장손잡이에 걸어놓은후 아버지를 향해 다가갔다. 아버지는 웃옷 안쪽호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고계셨다. 얼굴이 자못 엄숙해있었다.
웬 일이실가?
정우는 아버지의 근엄한 얼굴에서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읽으면서 한껏 정신을 도사렸다. 아버지는 호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쥐고 가슴에 꼭 댔다가 그것을 정우에게 내밀며 낮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했다.
―인젠 이것을 네가 보관해라.
아버지의 퇴직금이 들어오는 은행의 신용카드였다. 정우는 인차 받지 못하고 떠듬거렸다.
―아… 아버지, 이것을 왜?
―내가 이렇게 정신이 말짱할 때 너에게 맡기려고 그런다. 내가 자꾸 깜빡깜빡 한다는것을 인제야 알겠다. 네가 맡아서 잘 보관해라. 비밀번호는 네 생일이네라.
―네? 제 생일이라구요? 왜 제 생일로 하셨어요?
―네 생일이 제일 잊어 안 지니까. 안에 한 2천원 푼히 남아있을게다. 그게 내 전 재산이다.
―아버지.
정우는 그렇게 한마디 불러놓고는 아래입술을 옥물었다. 목이 꺽 메여 도무지 아래말을 이을수 없었다. 아버지는 손에 꼭 쥐고있던 신용카드를 정우앞에 내밀었다. 아버지에게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어금이를 꽉 깨물었지만 눈물은 정우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둘둘 굴러만 내렸다. 아버지는 후들후들 떨리는 손을 들어 정우의 얼굴에서 굴러내리는 눈물을 훔쳐주었다.
아버지의 손끝이 떨리고있었다.
아버지의 왼쪽볼에 경련이 일어 푸들거렸다.
아버지는 몸을 돌려 어머니가 누워계시는 침실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정우는 구부정한 아버지의 등뒤에 대고 떨리는 목소리로 한마디 했다.
―시름 놓으세요, 아버지. 다 잘될거예요.
정우는 아버지가 넘겨준 신용카드를 손에 꼭 쥔채 몸을 돌려 창문가로 다가갔다. 눈물에 시선이 가려 창밖이 뿌옇게 보였다. 정우는 주먹으로 찔끔찔끔 눈굽을 찍었다.
―전화 받으세요― 전화 왔어요.
핸드폰이 정우를 부르고있었다. 정우는 그 소리에 흠칫 놀라다가 인차 호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쩡로빤마?(郑老板吗?)
걸걸한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귀에 익은듯하면서도 인차 임자가 떠오르지 않는 녀자의 목소리였다. 정우가 인차 응답을 하지 않자 대방에서 높이 소리쳤다.
―아이 듣김둥? 쩡로빤. 내 2800원.
그제야 정우는 목소리의 임자를 떠올릴수 있었다. 아까 직업소개소에서 만났던 “2800원, 하나도 안 비싸오.” 하고 소리치던 그 한족아줌마였다.
―아, 네.
―정로빤이 가구 내 가만히 생각해보았는데…
아줌마가 뒤말을 잇지 않고 잠간 뜸을 들이더니 정우쪽에서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자 아래말을 이었다.
―남의 일 같지 않아서… 령감, 로친이 애 먹여서 얼마나 속상하겠슴둥. 그래서 내 도와주는 셈치구 2000원만 받겠습꾸마.
―네?
―그 대신 로임을 미루거나 하는 일은 없어야겠습꾸마.
―아, 네.
―그럼 빨리 와서 계약서를 씁소.
―아, 네.
―그럼 빨리 옵소.
아줌마는 정우의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통화를 끊어버렸다. 정우는 핸드폰을 멍하니 내려다보다가 정신을 차린듯 핸드폰을 호주머니에 넣으며 창밖을 내다보았다. 밖은 여전히 흐리터분했지만 비는 끊겨있었다.
하늘이 맑아지려나?
정우는 창문을 밀어 열었다. 비온 뒤라 서늘한 기운이 집안으로 날아들었다.
환자 두 사람을 돌보고 가무일까지 하는데 2000원? 그 가격이 높은건지 낮은건지 정우로서도 가늠할 길이 없었다. 정우는 핸드폰을 꺼내여 은이를 찾았다.
신호가 가자마자 은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버님이 또 나가셨어요?
은이의 목소리가 두려움에 떨리고있었다. 정우는 잠간 숨을 고르고는 애써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방금 직업소개소에서 한달에 2000원씩 받고 일하겠다는 사람이 전화를 걸어와서…
―2000원이요?
―너무 비싼가?
―아마 그 정도는 줘야 할것 같아요. 2500원은 줘야 할거라는 아줌마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또 어떤 아줌마들은 1500원에도 가능할거라네요.
―그럼 어쩔가?
―먼저 그 아줌마를 잡아놓고 계약은 며칠후에 하는게 좋겠어요. 그간 아줌마의 일솜씨도 살펴보구 가격도 더 확실하게 알아보구요.
―그게 좋겠소. 그럼 내 가서 그렇게 말하구 아줌마를 래일부터 오라 할가?
―네, 다녀오세요.
정우는 급히 문을 나섰다.
가격이 합리한지 합리하지 않은지는 확실하게 알수 없지만 마음을 고쳐먹고 자기에게 전화까지 해준 그 아줌마가 고맙게 느껴졌다. 성격도 서글서글한게 붙임성도 좋아 아버지나 어머니와 쉽게 어울릴것 같았다. 만약 값이 맞춤하고 일솜씨까지 야무져 계속 그 아줌마의 손을 빌게 된다면 자기도 그 아줌마를 단지 일군으로가 아니라 한집 식구처럼 따듯이 대해주리라고 정우는 생각했다. 직업소개소에 들어서는 정우를 보고 아줌마는 자기가 주인인듯 열정적으로 맞아주었다. 정우는 그러는 아줌마에게 단도직입적으로 계약은 며칠후에 하자고 제의했다.그 말에 아줌마가 손사래를 하면서 혀를 끌끌 찼다.
―세상에, 세상에… 도시사람들은 이렇게 약아빠졌다니까. 힘으로 벌어먹는 우리가 지고 들어야지 뭐.
오전에 정우를 보고 “책상족”인가고 묻던 그 남자가 정우에게 머리를 돌리며 말했다.
―이 정도라도 협상이 이루어졌으니 먼저 수속비를 내시오.
―아, 네. 얼마를 내면 될가요?
―50원만 내면 되오. 그러면 손님이 만족해할 때까지 일군을 소개해줄수 있으니까.
―네, 그래야지요.
정우는 호주머니에서 50원짜리를 꺼내 남자에게 건넸다. 정우는 아줌마와 래일아침에 다시 련계하기로 하고는 직업소개소문을 나섰다.
어쩌면 땡 잡은것 같기도 하고 또 어쩌면 가격이 높은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누구와 알아보면 정확하게 알수 있을가?
생각을 굴리던 정우는 별안간 무릎을 탁 쳤다.
그래, 내가 왜 인터넷을 생각 못했을가? 인터넷 벼룩시장을 뒤지면 즉시 답이 나올것을 가지고.
정우는 부랴부랴 집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새 아버지네 댁에서 사느라 며칠 집에 들리지 않았더니 컴퓨터상에 먼지가 내려앉아 뿌옇게 보였다. 정우는 버튼을 눌러 컴퓨터를 작동시킨후 걸레를 적셔들고 컴퓨터상을 닦았다. 컴퓨터가 작동하는데는 1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모니터에 QQ등록창이 떠있었다. 그제야 정우는 며칠이나 QQ에 오르지 않았다는 생각이 뇌리를 쳤다. 평소 QQ를 통해 원고를 주고받던 정우였다. 정우는 QQ등록창에 비밀번호를 쳐넣었다. 모니터아래쪽에서 펭긴 한마리가 두팔을 나풀거리며 한참 분주하게 설치더니 갑자기 “축하합니다”라는 글자가 박혀있는 작은 화면이 떠올랐다.
축하라니?
정우는 웬 일인가싶어 유심히 작은 화면을 살펴보았다.
축하합니다. 당신의 QQ번호가 “행운추첨활동”에서 2등상을 받게 되였습니다. 상금 58000원과 삼성표노트북을 부상으로 선물받게 됩니다. 당신의 행운인증번호는 ****번입니다. WWW.*******.com에 들어가서 해당 절차를 밟으시기 바랍니다.
안내문을 읽는 정우의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58000원에 삼성표노트북이라니?
자기의 눈마저 의심되였다.
사기술이 아닐가? 제 엄마를 내놓고는 뭐나 의심해야 한다는 이 세월에…
정우는 그렇게 의심하면서도 안내문에 밝혀진 사이트에 접속했다. 공증서까지 박혀있는 정규적인 활동임에 분명했다.
그래, 대형회사이니 이런 홍보활동도 벌리는 모양이구나. 그런데 어쩌면… 어쩌면 나에게 이런 행운이…
눈앞에서 뻘건 돈뭉치가 후득후득 떨어져내리는것 같았다. 하지만 정우는 인차 절레절레 머리를 저었다.
나에게 어찌 이 같은 행운이 떨어진단 말인가? 나같이 지지리도 복이 없는 놈에게. 아니야, 하도 열심히 사니까 하느님이 나를 가엾게 생각하신거야. 한족아줌마도 2800원의 로임을 달라던것이 스스로 2000원에 일해주겠다고 나서는것이 아닌가? 58000원, 그 돈만 있으면 간병인을 청하는데 쓸 돈은 근심을 하지 않아도 될것이 아닌가?
정우에게는 삼성표노트북보다도 현금 58000원이 훨씬 더 유혹적이였다. 될수만 있다면 노트북도 돈으로 바꾸고싶었다.
정우는 당금 튀여나올듯 툭툭 뛰는 가슴을 가까스로 누르며 사이트 곳곳을 훑어보았다. 절차마다 인증번호를 적어넣고 신분증번호도 밝혀야 했다. 정우는 사이트에서 요구하는대로 등록표에 자기의 신상정보를 까근하게 적어넣었다. 등록표 맨끝에 이런 글이 적혀있었다.
회사의 재무규정에 따라 세금 1800원을 보내야 상금수령수속을 밟을수 있습니다. 송금후 송금령수증(汇款单)번호를 보내주시면 상금수령인증번호를 알려드립니다.
1800원의 세금?
정우는 흠칫했다.
혹시 이 돈을 보냈다가 사기당하는거나 아닌가? 아니야, 쥐꼬리만한 내 로임마저 세금을 물어야 하는데 58000원이나 되는 상금을 세금없이 공것으로 받을수야 없지. 이 세금을 내는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절차야. 헌데 당금 1800원을 어디서 구하지?
순간 정우는 아버지가 건네주던 신용카드를 떠올렸다. 안에 2천원 푼히 남아있다던 아버지의 말씀이 귀가를 스쳤다.
정우는 다시한번 안내문에서 알려준 사이트에 들어가 처음부터 한보한보 절차를 확인해보았다. 지어 공증서를 발급한 공증처의 사이트까지 확인했다. 공증처의 사이트에는 두 공증원의 사진과 직무까지 어김없이 밝혀져있었다.
그래, 틀림없어. 이것은 지금껏 열심히 살아온 나에 대한 보상이야!
정우는 벌떡 자리를 차고 일어섰다. 너무도 흥분되여 가슴이 마구 방방이질을 해댔다. 정우는 택시를 잡아타고 곧추 은행으로 달려갔다.
인출기에서 현금 1800원을 찾아낸 정우는 사이트에서 알려준 전화번호에 확인전화를 걸었다. 인차 전화가 련결되였다.
―QQ회사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가요?
한 녀자의 달콤한 목소리가 귀속을 파고들었다.
―추첨활동에 대하여 문의하려 하는데요.
그때 전화 저쪽에서 한 남자의 목소리가 전화를 타고 날려왔다.
―북경에 계시는 호금덕선생님이죠. QQ번호는 *********이구요, 신분증은 **************번이구요.
남자의 목소리가 낮게 들리기는 했지만 통화내용은 똑똑하게 알아들을수 있었다.
―손님, QQ번호를 알려주시겠습니까?
정우는 긴장으로 하여 입술마저 초들초들 말라드는것 같아 힘껏 아래입술을 감빨고는 자기의 QQ번호를 불러주었다. 그러자 달콤한 목소리가 감탄을 터쳐냈다.
―세상에, 세상에! 축하드립니다. 선생님께서 “행운추첨활동”에서 2등상을 받으셨습니다.
녀자는 정우의 신분증번호며 사업단위까지 일일이 물어왔다. 이어 녀자는 날아갈듯 상쾌한 목청으로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이 작성하신 자료와 일치합니다. 상금수령에 필요한 세금을 무시고 송금번호를 알려주시면 상금수령인증번호를 알려드리겠습니다.
그때 전화 저쪽에서 또 아까 그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네, 감사합니다. 선생님의 상금과 노트북을 이미 부쳐보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상금과 노트북을 받으신후 인차 저희 회사에 소식을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 소리를 들으며 정우는 당금 심장이 튀여나올것만 같은 긴장을 느꼈다.
사실이구나. 의심할바 없는 사실이구나. 내가 곧 58000원의 현금에 삼성표노트북을 소유하게 되는구나.
정우는 그 사실이 꿈으로 되여 깨여져버릴것 같아 두려웠다.
―인차 세금을 보내드리겠습니다. 다시 련락하겠습니다.
정우는 송금령수증을 찾아 대방의 구좌번호와 구좌명을 적은후 돈 1800원을 은행일군에게 넘겨주었다.
눈 깜짝할 새에 인민페 1800원이 대방의 구좌로 넘어갔다.
―송금이 끝났습니다. 또 무엇을 도와드릴가요?
은행일군이 정우를 향해 사무적으로 말을 걸어왔다.
―감사합니다.
정우는 급히 밖으로 나와 QQ회사에 전화를 걸었다.
뚜― 뚜― 뚜―
인차 신호가 이어졌다.
―QQ회사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가요?
전화를 받는이는 여전히 달콤한 목소리의 그 녀자였다.
―방금 세금을 보냈습니다. 확인해주십시오.
―송금번호를 알려주시겠습니까? 네 잠간만 기다려주십시오.
잠간 통화가 끊어졌다가 이어졌다.
―1800원이 입금되였습니다. 잘 쓰겠습니다.
그 소리와 함께 찰칵 통화가 끊겼다.
잘 쓰겠다니?
정우는 일순 무슨 뜻인지를 몰라 흠칫했다.
잘 쓰겠다니? 상금수령인증번호는?
정우는 다시 대방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핸드폰에서는 기계적인 목소리가 딱딱하게 흘러나왔다.
―대방의 전화기가 꺼져있습니다.
이럴수가, 이럴수가… 세상에 어쩜 이럴수가!
정우는 눈앞이 캄캄해났다. 두다리가 와들와들 떨려나 도무지 몸을 주체할수 없었다. 정우는 후들후들 떨리는 다리를 끌고 가까스로 벽쪽으로 다가가 무너져내리려는 몸체를 고통스럽게 벽에 기대고 섰다.
8
―전화 왔습니다― 전화 받으세요.
핸드폰이 울고있었다. 정우는 본능적으로 핸드폰을 꺼내여 발송자의 번호를 확인했다. 벌써 세번째로 걸려오는 은이의 전화였다. 정우는 손가락을 받음버튼에 가져갔다가 또 주저하고말았다. 자신이 없었다. 전화에 대고 은이에게 “나 아버지의 퇴직금을 날려버렸소.” 하고 말할 자신이 없었다.
그것이 아버지에게 어떤 돈인데, 그것이 자기들 가정에 어떤 돈인데… 그 돈을 허무하게 눈 깜박할 새에 날려버리다니.
정우는 생각할수록 자기가 그렇게 한심하게 느껴질수가 없었다. 어디 가서 단돈 10원도 공것으로 가져본적이 없는 자기에게 어찌 하늘에서 뭉치돈이 떨어질수 있다고… 그것을 믿은 자신이 너무나도 미웠다. 세상에 둘도 없는 바보요, 미련둥이로 생각되였다. 바보라 해도 좋고 미련둥이라 해도 좋지만 신용카드에 비여있는 그 돈을 당금 어떻게 맞춰넣는단 말인가?
―띠리링― 띠리링―
핸드폰에 메시지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정우는 다시 핸드폰을 들고 발신자의 번호를 확인했다. 역시 은이였다.
“어디에 있어요? 혹시 무슨 일이라도 있는게 아닌가요? 아무리 큰일이라도 저하고 토론해야지요. 메시지를 확인하면 꼭 회답을 주세요.”
근심에 떠는 은이의 얼굴이 눈앞에 떠올랐다. 은이가 측은한 눈길로 자기를 바라보는듯싶었다. 이어 그 눈길이 이글이글 타오르더니 독기를 뿜으면서 자기를 태워버리려는듯 화염을 날름거리는것 같았다. 정우는 두눈을 꼭 감았다. “어쩔거예요? 어쩔거예요?” 은이가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고있었다.
그래 과연 내가 어쩌려는것인가? 어떤 일이 있더라도 내가저질러놓은 일을 나절로 수습해야 한다. 종이로 불을 쌀수 없다고 언제까지 이 일을 감춰둘수 없다. 은이에게 말하자. 속시원하게 말하고 처분을 기다리자. 정우는 용기를 내여 은이의 번호가 저장되여있는 단축버튼 1번을 눌렀다. 신호가 가자마자 은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당… 당신인가요?
―별일이 없지?
―당신을 기다리다가 금방 저녁을 먹었어요. 당신 어디로 간다는 말도 없었다면서 어머니가 아주 노여워하셨어요. 어디 있어요? 뭘 하고있어요? 누구랑 같이 있어요?
은이는 생각하고있던 모든것을 한시바삐 알고싶은듯 련주포를 쏘아댔다. 정우는 잠자코 은이의 목소리를 듣고있다가 힘없이 대답했다.
―일은 무슨. 그냥 속이 갑갑해서 바람 좀 쐬느라구…
―그래두 저녁이야 잡숴야죠. 혼자서 이게 웬 일인가요? 지금 어디예요?
―이게… 아, 이게…
정우는 그제야 자기가 지금 연집강가에 와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갑한 마음에 그냥 발 가는대로 와서 무작정 쪼크리고 앉아 오만가지 생각에 잠겨있느라 어딘지조차 생각해보지 않았던것이다. 정우는 시름없이 흘러가는 강물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더듬거렸다.
―여기가… 여여, 연집강변이요.
―알겠어요. 내가 인츰 갈게요.
―오기는 뭘. 내가 곧 들어가겠는데.
―꼼짝 말고 거기서 기다리세요. 제가 가서 말동무를 해드릴게요. 약속하세요.
은이는 마치도 그렇게 다짐을 받지 않으면 정우가 어디로 사라져버리기라도 할것 같은 모양이였다.
―……
정우는 그러는 은이에게 뭐라고 대답할지 몰라 핸드폰을 든채 입만 쩝쩝 다셨다.
―저 떠날게요.
말소리와 함께 통화가 끊겼다. 하지만 정우는 그대로 멍하니 핸드폰만 내려다보았다.
―전화 왔습니다. 전화 받으세요.
그 소리에 정우는 흠칫 놀라면서 핸드폰을 귀에 가져다댔다.
―전화 왔습니다. 전화 받으세요.
핸드폰에서는 여전히 그 말만 반복되여나왔다. 그제야 정우는 새 전화가 들어오고있음을 느끼고 받음버튼을 눌렀다.
―선배, 저예요.
전화 저쪽에서 부드러운 녀자의 목소리가 울렸다.
―예나구나. 어쩌다가 너.
―어쩌다라니요? 서운하게요. 선배가 걱정스러워 전화했죠.
예나의 맑은 웃음소리를 들으며 정우는 보조개가 옴폭 패여들어가는 예나의 하아얀 얼굴을 그려보았다. 예나는 한 잡지사에서 근무하는 대학 후배였다. 한대학을 졸업하고 한직장에 배치받았다는 인연때문인지 예나는 진심으로 정우를 따르고 믿어주었다.
―감사하다. 예나야.
―선배 부친이 편찮다고 했죠?
―그래, 누워서 일어 못 나는건 아니구. 간병인이 올 때까지 곁을 비울수가 없어서. 사무실엔 별일이 없지?
―일이야 뭐. 우리 일이야 늘 물에 물 탄듯 미지근하지 않아요? 그래두 박주필 말이예요. 선배가 언제까지 자리를 비우겠냐면서 툴툴거렸어요.
―그랬을테지, 박주필이니까. 쯧쯧쯧…
정우는 뭐라 할 말이 없어 뒤말을 얼버무리며 쩝쩝 입만 다셨다. 정우보다 두살 이상인 박주필은 몇 안되는 편집부 동료들중에서 나이로 보나 능력으로 보나 정우의 라이벌이라고 할수 있었다. 그때문인지 평소에도 정우는 박주필과 사사건건 껄끄러운데가 있어서 고민하고있었다.
예나가 동을 달았다.
―박주필 말이예요. 항상 무슨 콤플렉스가 있는지 선배를 잡아먹지 못해 안달을 하던 사람 아니예요? 뭐라는지 아세요? 오래 자리를 비울거면 다른 사람을 대신하겠다는거예요. 자기는 뭐 한뉘 집에 일이 없을것처럼.
―며칠 자리를 비웠으니 박주필도 힘들어 그러겠지. 래일 일이 처리될것 같으니 모레쯤이면 나갈수 있을거다.
―알았어요. 래일 제가 박주필께 잘 말씀드릴게요. 선배, 수고하세요.
예나는 통화를 시작할 때처럼 그렇게 맑은 목소리로 인사를 건네고 일방적으로 통화를 끊어버렸다. 정우는 예나의 맑은 목소리가 계속 울려나올것 같은 핸드폰을 잠간 바라보다가 맥없이 머리를 숙이며 그것을 호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래, 박주필이 툴툴거릴만도 하지.
그날 아버지가 편찮아서 못 나가겠다고 전화로 박주필께 알린후로는 다시 전화를 할만한 경황이 없어서 여직 다른 소식을 알리지 못하고있었다.
래일, 아줌마가 약속을 지켜 와줘야 할텐데. 간병인이 있어야 시름 놓고 출근할수 있겠는데…
은이가 택시에서 내리고있었다. 정우는 그 모습을 보면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은이는 멀리에서 첫눈에 정우를 알아보고 손을 저었다. 정우도 은이를 향해 손을 들어보였다. 은이는 정우를 향해 반달음으로 뛰여왔다. 은이가 가까와질수록 정우는 입술마저 바짝바짝 타들어갔다. 정우는 괜히 두손바닥만 썩썩 비비면서 불안하게 두발을 엇바꿔 디뎌댔다.
―당신, 정말… 어쩌면 당신까지 이렇게 내 속을 태우는거예요?
―……
정우는 은이의 눈을 피해 소리없이 머리를 돌렸다. 은이가 정우곁으로 다가와 손을 잡으면서 물었다.
―여태 여기 이러구있었어요? 배고프지도 않아요?
―배고프긴 뭐…
―별소리없이 나갔다는 사람이 여태 집에 안 들어갔으니 어머님이 노엽지 않게 생겼어요?
―내가 뭐 철부지라도 되는가…
정우는 그렇게 자신없이 우물거리다가 말끝을 삼켰다. 그래, 철부지라도 됐으면 좋을것 같았다. 잘못을 저지른 철부지라도 되여 엄마에게 한바탕 얻어터지고 지나쳐버릴수 있었으면 차라리 속이 편할것 같았다. 하지만 현실은 그게 아니였다.
어떻게 말끝을 떼면 좋단 말인가?
휴―
정우의 입에서 긴 한숨이 터져올랐다. 은이는 잡고있는 정우의 손등을 만지작거리면서 입을 열었다.
―아버님이 어쨌는지 아세요?
정우는 “아버지”라는 말에 흠칫 놀라면서 “어?” 하고 신음 비슷이 소리를 냈다.
―아버님, 말이예요. 저녁을 잡수시다가 눈물을 흘렸어요.
―왜?
―자기가 자꾸 깜빡깜빡 하시는걸 알겠다면서 저보고 앞으로 고생이 많을거라고 했어요. 스스로 마음이 허한가봐요.
―그러실테지.
―정신을 놓으실 땐 아무것도 모르셔두 평소엔 항상 근심에 사시는것 같아요. 그러면서 그 말도 했어요.
―그 말? 그그그, 그… 그 말?
정우는 흠칫 놀라면서 목소리를 벅벅 더듬었다.
―왜 그렇게 놀라요?
―그 돈 말이야.
―네?
―그그그, 그 돈… 내가 깜빡 돌았댔나봐. 나는 정말 큰돈을 받을수 있을줄 알구 보냈다니까.
말을 마친 정우는 푸― 긴숨을 토해내며 지그시 두눈을 감았다. 은이는 잡았던 정우의 손을 놓으며 목소리를 높였다.
―당신 무슨 말을 하는거예요?
―QQ, QQ 있잖아.
정우는 꺽꺽거리면서 힘들게 낮에 있었던 일을 토해내고말았다.
―어쩌면… 어쩌면…
말끝을 있지 못하고있던 은이가 두손으로 얼굴을 가리우며 무너져내렸다.
―여보, 미안해…
―세상에… 잡지사에서 편집씩이나 한다는 사람이…
―내가 제제제, 제정신이 아니였나봐.
―어쩌면… 어쩌면…
은이는 이 한마디만 반복하면서 어깨를 들먹였다. 정우는 파도처럼 오르내리는 은이의 어깨를 멀거니 바라보다가 엉뚱하게 한마디 했다.
―여보, 아버지께는 알리지 말아주오.
그 말에 은이가 무릎우에 떨어뜨렸던 머리를 쳐들고 정우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눈물이 은이의 얼굴을 타고 줄줄 흘러내리고있었다.
―여보…
―알았어요. 우리 집에 들어가요.
은이는 눈에 뜨이게 아래입술을 몇번 힘들여 빨더니 놀라울만치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게 되려 정우에게는 무형의 압력으로 다가왔다.
―왜 이러오? 욕이라도 하오. 내 속이 시원하게.
―당신, 혼자서 얼마나 속을 태웠어요.
―욕하라니까.
―욕할 힘도 없어요. 우리 집에 가요.
은이가 정우의 손을 끌고 앞에서 걸음을 옮겼다. 그 바람에 은이에게 끌려가는 정우의 발걸음이 다리에 천근돌을 달아맨듯 무겁기만 했다.
9
―할아버지, 더럽다, 로망났다.
진이가 코를 싸쥐고 소리쳤다. 그때 아버지는 벽가에 쭈크리고 앉아서 벽에다 무엇인가를 열심히 바르고있었다. 아버지의 손길이 스치는 곳에 누런것이 덕지덕지 묻어났다. 아버지는 역한 냄새를 풍기는 그 누런것을 만족스럽게 바라보면서 느긋하게 웃음을 흘리고있었다.
―멋있다. 무지개 같다. 정우야― 무지개 구경 가자. 흐흐흐흐…
아버지가 손벽을 치면서 웃음을 날리고있었다.
먼저 집안에 들어선 은이가 신을 벗다말고 아버지의 말에 깜짝 놀라면서 굳어졌다. 은이와 정우가 들어서는것을 본 진이가 별일이라는듯 퐁퐁 모두뜀을 하면서 손벽을 쳐댔다.
―엄마, 아빠. 큰일났어요. 할아버지 벽에다가 똥칠을 해요. 똥칠을 한다니까요.
―진이야!
정우가 버럭 소리질렀다. 은이도 큰소리로 진이를 꾸짖었다.
―너, 너 방금 뭐라 했니?
―보세요. 할아버지를… 온 벽에다가 똥칠을 했다니까요. 똥칠을…
은이가 급히 주방으로 들어갔다. 정우도 인차 따라섰다. 둘은 눈앞의 정경에 흠칫하면서 걸음을 멈추었다. 주방 한쪽 벽은 이미 누런 색으로 도배되여있었다. 역한 냄새가 주방을 채웠다.
―정우야, 무지개 구경 가자. 노란 무지개 걸렸다.
―할아버지 진짜 로망났구나. 그게 어디 무지개야? 똥이지.
진이가 할아버지를 가리키며 킬킬거렸다.
―너 정말 막돼먹었구나.
은이가 버럭 언성을 높이며 씽하니 진이한테로 다가가더니 별안간 진이의 멱살을 와락 잡아끌고 객실로 나갔다. 너무나도 눈 깜박할 새에 일어난 일이라 진이는 놀라서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와들와들 떨기만 하며 일그러져가는 은이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드디여 와― 하고 울음을 토해냈다. 정우가 객실로 나가며 은이를 나무랐다.
―왜 이러는거요?
―보구서두 그래요?
―애가 놀라지 않소?
―듣구서두 그래요?
―그래두 말로 해야지.
―그렇게 잘하는 당신이 해보세요. 집안 꼴이 돌아가는것 하구는.
―당신, 거 무슨 뜻이요?
―안 보여요? 너까지 왜 이렇게 애 먹이는거니?
말과 함께 은이의 주먹이 진이의 머리에 올라갔다. 그 바람에 진이는 더구나 죽는듯이 소리질러댔다.
―왜… 왜들 이러냐? 애애애, 애는 왜왜, 왜 패는거냐?
침실에서 어머니의 노한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은이의 시선이 어머니가 누워계시는 침실쪽으로 날아갔다.
―내내내, 내가 너무 오… 오래 사는구나. 쥐쥐쥐, 쥐약을 다구. 쥐… 쥐약을 다… 다…
어금이를 꽉 깨문 은이의 얼굴이 푸들푸들 떨렸다. 두볼을 타고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사람을 때리면 나쁜 놈이 된다.
아버지가 언제 객실에 나왔는지 우둑하니 서서 은이를 바라보다가 누런 색이 가득 묻은 손으로 은이를 가리키며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은이의 눈길이 아버지쪽으로 휙 날아갔다.
―네… 네가 나쁜 년이다.
아버지의 손끝이 은이의 코끝을 가리키고있었다. 무엇이나 당금 태워버리려는듯 황황 타오르는 은이의 눈길이 아버지를 훑고있었다. 그 눈길에 기가 죽었던지 아버지가 머리를 돌리며 갑자기 울음을 터쳤다.
―무섭다. 저게 나를 가로본다.
―아― 악!
은이가 별안간 괴성을 지어올렸다. 은이에게 머리를 쥐여박히고 징징거리던 진이가 너무도 놀라 울음을 딱 그치고 은이의 몸에 눈길을 고정했다. 정우도 흠칫하다가 은이를 바라보았다. 은이가 몸을 픽 돌렸다. 한달음에 출입문쪽으로 달려간 은이는 신을 찾아신고 쫓기듯 문을 밀고 나갔다.
―여보―
그제야 사태를 파악한 정우가 소리치며 은이를 따라나갔다.
탕탕탕… 층계를 내리는 은이의 발걸음소리가 급촉했다.
텅텅텅… 그뒤를 따르는 정우의 발걸음소리가 무거웠다. 복도를 벗어나 마당으로 나서던 은이가 그만 왼쪽발을 흠칫하더니 그 맵시로 나가 너부러졌다. 정우가 달려가 은이의 오른쪽팔을 잡아 부축하며 더듬거렸다.
―괘괘, 괜찮소? 여보.
은이는 입술을 옥물고 간신히 일어나더니 정우의 팔을 뿌리치고는 몸을 돌려 걸음을 옮겼다. 정우가 은이의 뒤를 따라가며 말했다.
―여보, 왜 이렇게 흥분하는거요.
은이는 정우의 말을 들었는지 말았는지 앞만 바라고 잰걸음을 놓았다.
―여보, 어데 가려는거요? 나하구 잠간 얘기 좀 하기요.
은이는 아빠트경비실앞을 지나 거리에 나서고있었다. 정우는 급히 뛰여가 은이의 팔을 잡았다.
―당신답지 않게 왜 이러는거요?
그 말에 은이가 정우쪽으로 머리를 픽 돌렸다.
―뭐요?
낮으나 날이 선 목소리였다.
―아니, 당신이 너무 흥분하길래?
―내가 흥분해요? 나답지 않아요? 내가 왜 흥분하는데요? 나다운게 어떤건데요.
은이가 정우쪽으로 한발 다가섰다. 그 서슬에 정우는 한발 뒤로 물러서며 더듬거렸다.
―다다, 당신까지 이렇게 나오면 나나나, 난 어쩌라는거요?
―죽어요. 다같이 죽어버려요.
―당신, 진짜 막 나가네.
―막 나가고싶어요. 막 나가서 이대로 죽어버리고싶어요. 당신 같은 사람을 믿고…
―……
정우는 아무 말도 못하고 망연자실한 눈길로 은이를 퀭하니 바라보았다.
―요즘 내 마음이 어떤지 알아요? 두렵구 급하구 기막히구… 하늘이 와르르 무너져내릴것만 같다구요. 하늘이!
은이가 발을 탕 구르며 손을 들어 하늘을 가리켰다.
―당신 하나 믿고 살아왔어요. 남들이 돈자랑, 남편자랑, 시집자랑할 때마다 내 남자는 누구보다 정직하고 열심히 산다고 스스로 위안하며 살았다구요. 그런데, 그런데 이게 뭐예요. 뭔가 말이예요?
―여보, 참기요. 우리 힘을 합쳐 이번 고비만 잘 넘기면…
―힘을 합쳐요? 누구와 합쳐요?
은이가 흥- 하고 코방귀를 뀌며 입가에 차거운 웃음 한점을 피워올렸다.
―당신 누나라는 사람이 뭐라는지 알아요?
―누나라니?
정우가 놀라며 되물었다.
―당신이 혼자 애태우는게 너무 딱해서 누나라면 무슨 방도가 있을것 같아서 낮에 전화했댔어요.
―누나에게 전화했었다구?
―흥, 당신 누구덕에 대학 다녔는지 아냐 하데요. 당신 아니면 누나 대학 졸업하구 의사됐을거라 하데요. 당신 동생 정호…
―뭐요? 정호얘긴 여기서 왜 나오는거요?
―안 나오게 됐어요? 정호 장례때 돈을 얼마나 썼는지 아느냐고 하데요. 동생 한국에 데려다놓구 세집에서 가스중독으로 죽게 하구는 그 장례에 돈을 얼마나 썼는지 아느냐구 하데요.
―그 입 닥치지 못하겠소?
정우가 은이쪽으로 한발 다가서며 천둥같이 소리쳤다. 그러자 은이도 정우쪽으로 한발 나서며 바락바락 숨을 톺았다.
―왜, 왜요? 내가 없는 말을 했어요? 남들은 한국에 시집 가서 부모들 생활비를 전담한다고 하더구만 누나는 뭐 손가락 하나 싸맬 천쪼박이나 보낸적이 있어요? 누가 달라는 말도 안하는데 제쪽에서 전화마다 만날 없다는 소리만 했잖아요.
―이런… 속물 같은것이.
―흥, 내가 속물이라구요? 그러는 당신은? 당신 누나는?
―왜 이 마당에 누나까지 끌어들이는거요?
―이 마당이 어떤 마당인데요? 이 마당이 그래 당신네 로망난 늙은이들이 청승을 떠는…
―이런!
별안간 정우의 손이 은이의 뺨으로 날아올랐다.
―쳤어요? 당신이?
은이가 정우를 향해 손을 번쩍 들었다가 내리더니 몸을 픽 돌렸다. 그리고는 무작정 앞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제야 자기가 무슨 일을 저질렀다는것을 알아챈 정우가 은이를 부르며 쫓아갔다. 은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내처 달리기만 했다.
―여보, 잠간만. 말 좀 하기요.
정우가 드디여 은이의 팔을 잡았다.
―여보. 내 잠간 돌아섰나봐. 미안하오.
―됐어요.
이사이로 내뱉는 짧은 말이였지만 섬뜩할 정도로 서리치고있었다.
―잘못했소. 제발 한번만 봐주오.
정우가 진심으로 빌었다.
―아니요. 잘했어요. 내 맘이 되려 시원해지네요.
은이의 목소리가 차분하게 변해가고있었다.
―날 내버려둬요. 조용히 생각하고싶어요. 아무 생각도 없이 당신 하나 믿고 내가 너무 먼곳까지 온것 같아요.
말을 마친 은이가 손을 들어 달려오는 택시를 불러세웠다.
―여보, 어디로 가려는거요? 가지 마오.
정우가 택시에 오르는 은이의 팔을 부여잡았다.
―전화할게요. 그새 찾지 말아요.
은이가 정우의 팔을 뿌리치며 택시에 올랐다.
―다… 다시한번 생각하면 안되겠소?
택시는 정우의 애절한 목소리를 뒤로 한채 은이를 싣고 뿌연 가로등불빛속으로 사라졌다. 정우는 후들후들 떨리는 두다리를 간신히 지탱하고 서서 사라지는 택시를 망연자실하게 바라보았다. 잠간사이에 택시는 정우의 눈에 작은 점으로 보이다가 사라졌다. 머리속이 하얗게 바래지며 눈앞에서 현기증이 일었다. 정우는 자기의 몸을 더는 지탱하지 못하고 물 먹은 솜처럼 그 자리에 무너져내렸다.
둥둥챵― 둥둥챵―
갑자기 어디선가 꽹과리소리며 북소리가 들려왔다.
정우는 간신히 머리를 쳐들고 소리나는쪽을 바라보았다. 정우가 있는 곳으로부터 얼마 떨어지지 않은 강변광장에서 양걸대가 빙글빙글 돌아가고있었다. 요사스럽게 몸을 타는 남녀들이 정우의 시야에 안겨들었다.
신들린 무당처럼 정우의 어깨가 들썽이기 시작했다. 그 순간 그 자리에서 어깨가 리듬을 타는것이 이상하게 생각되였다. 하지만 정우는 자기가 지금 그 무리에 몸을 던지고싶어한다는것을 묘연하게나마 느낄수 있었다. 그 욕망이 어디로부터 어떻게 생겨난것인지 정우로서도 알수 없었다. 다만 그 욕망을 향해 짙어가는 어둠속으로 무작정 뛰여들고싶을뿐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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