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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최동일 신작

단편소설 * 유희인생
2013년 08월 29일 06시 49분  조회:1968  추천:0  작성자: 동녘해






단편소설

유희인생

최동일


1

안해의 눈길이 타고있었다. 섣불리 들어섰다가는 뼈도 추리지 못하게 빠작빠작 타버릴것만 같이 활활 타오르고있었다. 천사의 날개같은 하얀 잠옷을 차려입은 안해의 쌍까풀눈이 그 같은 불을 토하고있다는것에 정우는 놀라울따름이였다. 아니 놀랍다기보다는 두려움에 가슴이 꺽꺽 막혀왔다고 하는것이 더 적절할것이다. 정우는 화장실문앞에 우두커니 서서 잠간 분위기를 살피다가 안해를 태우는 그 불길이 어디로부터 시작된것이라도 알고싶어 약간 떨리는 목소리 “여보.” 하고 낮게 불렀다.
안해가 용수철 튕기듯 튀여 일어나며 손에 들고있던 핸드폰을 침대우에 둘러메쳤다. 쏘파위라서 그렇지 맨 봉당에 그 힘으로 던져졌더라면 핸드폰이 산산 조각이 났을것이다. 정우는 자기의 몸뚱이가 그렇게 바닥에 팽개쳐지는 퉁 하는 소리를 듣는것만 같아 몸을 흠칫하면서 뒤로 한걸음 물러섰다. 화장실에서 막 나오는 걸음이였던지라 한걸음 물어서자 화장실문에 몸이 닿았다. 정우는 본능적으로 두손으로 움켜쥐였던 타올을 놓아버렸다. 배꼽아래로부터 치부까지만 살짝 가리우고있던 타올이 주르르 풀려 바닥에 떨어졌다. 사와를 한후 아직 기지개 한번 켜보지 못한 정우의 그 물건이 검실검실한 대가리를 여섯시방향으로 툭 떨군채 들어나버렸다. 정우는 급히 두손바닥을 쫙 펴서 그 물건을 가리우며 다시한번 “여여, 여…여보.” 하고 목소리를 쥐여 짲다.
―여보라니, 개떡같은… 어디다 여보라는거야? 이럴줄 알았지. 내 정녕 이럴줄 알았다구.
고래고래 괴성을 질러대는 쫙 벌린 안해의 입은 그대로 정우를 삼켜버리고도 남을상싶었다. 정우는 그 물건을 가리운 두손에 힘을 주며 한껏 몸을 옹크리고 더듬거렸다.
―왜 그러는거요? 갑자기.
―뭐, 갑자기?”
안해의 동공이 기가 막히다는듯 무서움 없이 커지고있었다. 정우는 입을 하 벌린채 무기력하게 머리를 끄덕였다. 넋이 나간듯한 정우의 몰골을 쏘아보던 안해는 “천사의 날개”를 훨훨 날리며 침실로 들어가버렸다.
정우는 후들후들 떨리는 다리를 간신히 끌고 쏘파곁으로 다가가 안해가 던져버린 핸드폰을 주어들었다. 액정에 메시지가 펼쳐져있었다.
“그날 너무 즐거웠어요. 영원히 잊지 못할거예요. 언제 또 당신에게 안길수 있을가요? 불러주세요. 유희가.”
―유…유희?
정우는 핸드폰을 손에 든채 얼굴을 천정으로 향하면서 입을 떡 벌리고말았다. 하지만 그렇다할 답안이 입으로 떨어져들어오는것도 아니였다. 정우는 한껏 쳐든 그 맵시로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다가 풀썩 쏘파에 주저앉으며 다시 핸드폰에 눈길을 가져갔다.
틀림없었다. 안해에게는 청천벽력이 되고도 남을만 하고 정우에게는 사형판결서가 되고도 남을만한 메시지였다.
유희? 즐거웠다니… 영원히 잊지 못할것이라니… 내가 언제 너를 안은적이 있게? 다시 불러달라구?
갈수록 심산이라고 생각할수록 오리무중에 빠져드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정우는 천천히 일어나 주섬주섬 옷을 주어 입기 시작했다. 그로서도 자기가 왜 그 시간에 옷을 주어 입어야 하는지를 알수 없었다. 아니, 알수 없는것이 아니라 아예 그 필요성에 대해 생각을 하지 못하고있었다. 그저 그 순간 그렇게 그 모양으로 그 옷들을 몸에 걸쳐야 한다고 기계적으로 생각하고있을 따름이였다. 정확하게 혁띠의 네번째 구멍을 찾아 걸침을 걸고난 정우는 량쪽 엄지손가락을 혁띠안쪽에 넣어 앞으로 툭툭 튕기며 후― 하고 긴 숨을 토해냈다. 스르르 두눈이 감겨졌다. 정우는 미동도 없이 선자리에 굳어졌다. 어디론가 정처없이 떠나고싶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기여들었다. 정우는 꿈속에서 헤여나온듯 두눈을 번쩍 뜨고는 출입문쪽을 향하여 씨엉씨엉 발걸음을 옮겼다.
―어디 가?
안해의 앙칼진 목소리가 칼처럼 정우의 귀에 박혔다. 정우는 칼 맞은것처럼 흠칫 몸을 떨면서 걸음을 멈추었다.
―기어이 간다는거지?
―왜 이래?
정우는 피를 토하듯 힘들게 한마디를 뽑아올리면서 픽 몸을 돌렸다. 안해가 문설주에 기대여 있었다. 아예 침실로 들어가지 않고 쭉 정우를 지켜보고있었던것인지 아니면 정우가 옷을 입느라고 부산을 떨 때 일어나서 문설주에 기댄것인지는 모를 일이였지만 그 자태는 퍽 온건해보였다.
―몰라서 물어?
말을 마친 안해가 오른손식지를 들어다 입어 넣었다. 빨간 매니큐어를 바른 오른손식지가 빨간 립스틱을 진하게 바른 입술 사이에 물렸다.
―당신, 그 버릇 아직도 못 버렸어?
정우의 입에서 엉뚱한 소리가 튀여나갔다.
―당신은 세살적 버릇 떼버릴수 있어?
안해가 빨간 혀끝을 날름거리며 빨간 입술 사이에 물려진 빨간 손톱을 핥고있었다. 정우는 한달음에 안해곁으로 뛰여가 한아름에 안해를 번쩍 들어 침대우에다 메쳤다.
―이러는게 아니야, 당신.
정우는 침대에 큰 대(大)로 널부러진 안해를 넌지시 내려다보면서 절레절레 머리를 흔들었다. 어쩌면 안해에게 아니라 혼자서 애타게 중얼거리는듯싶었다.
―그럼 어쩌는건데?
안해 역시 침대에 큰 대(大)로 널부러진채 눈도 뜨지 않고 잠꼬대 하듯 물었다.
―물었어야 했지.
정우가 침대가에 한발 다가서며 또박또박 말했다.
―뭘 물어?
안해가 반쯤 몸을 일으키며 목소리에 가시를 박았다.
―누군가고? 어떻게 된 일이냐고?
정우가 다시 침대가에 한발 다가섰다.
―그래? 누구야? 유희라는 그 녀자? 어떻게 된 일이야? 유희라는 그 녀자와는?
안해의 목소리가 여전히 파르르 떨리기는 했지만 처음보다는 좀 부드러워지기 시작했다. 정우는 인차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입술을 감빨다가 갑자기 안해의 목을 와락 끌어안았다. 안해가 몸을 빼려고 정우를 밀었다. 정우는 우악스럽게 안해의 목을 와락 당겨다가 헉헉 모두숨을 톺으면서 입술을 덮쳤다.
흐흑―
안해가 경련을 일으키는듯 부르르 몸을 떨면서 정우의 목을 끌어안았다. 정우의 심장이 팡팡 널뛰기를 해댔다.
―죽었어, 죽여버릴거야. 쾅쾅 밟아버릴거야!
―죽여, 죽여버리라구! 쾅쾅 밟아버리라구!!
안해가 발딱 일어났다가 다시 정우앞에 무릎을 꿇고는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혁띠의 네번째 구멍에 건 걸침을 빼느라 헤덤비면서 피를 토하듯 한마디한미디 뱉어냈다.
―넌덜머리가 났어. 진종일 일에 지치고 들어왔으면 죽은 돼지처럼 팍 쓸어져야 도릴텐데 왜 자꾸…자꾸 발정난 고얘((고양이)처럼…
혁띠의 네번째 구멍에 걸렸던 걸침이 빠졌다. 정우는 아래도리에 감전이라도 된듯 흠칫 몸을 떨면서 허리를 꺾었다. 안해가 걸침이 해제된 정우의 바지를 단번에 와락 당겨내렸다.
―헉!
안해가 허무한듯 외마디 소리를 토했다. 정우는 본능적으로 두손바닥을 쫙 펴 아래도리를 감쌌다. 그 물건을 감싼 팬티가 흥건히 젖어있다는 느낌이 머리를 쳤다.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눈앞에서 무수한 오각별들이 탁탁 튀여오르는듯싶었다.
아닌데, 이게 아닌데. 정녕 이게 아닌데…
정우는 팬티위로 그 물건을 꽉 움켜쥔채 안해옆에 스르르 무너져내렸다…


2

―당신, 괜찮아. 진실을 말해줘. 내가 싫어진거지? 아예 내가 싫어져서 나하구는 안되는거지?
안해가 빨간 손톱으로 정우의 가슴을 박박 긁으면서 앙탈지게 파고들었다. 정우는 그러는 안해를 밀어버리고 천천히 몸을 일으켜 쏘파에 다가가 앉았다. 자기의 몸뚱이가 천근 돌이 되여 자자드는것만 같았다. 정우는 잔뜩 몸을 옹크리고 머리를 무릎우에 박았다. 뜨거운 액체가 무릎을 적시고있었다.
내가 울어?
정우는 머리를 번쩍 쳐들고 주먹으로 눈확을 찔끔찔끔 눌렀다.
―당신, 울어?
멀리에서 들려오는듯 했다. 정우는 부르르 몸을 떨면서 소리나는쪽에 눈길을 돌렸다. 안해가 창가에 기대서서 넌지시 정우를 바라보고있었다.
달빛이 교교했다. 교교한 달빛이 정우에게는 사뭇 처량하게 느껴졌다. 정우는 발등에 걸린채 볼품없이 구겨져있는 바지를 집어 당기며 쏘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정우는 자기의 두손이 약간 떨리고있음을 감지하고있었다.
푸―
애써 자신을 진정하면서 길게 들숨을 끌었다가 한껏 내쉬였다. 얼굴이 화끈화끈 달아올랐다. 정우는 엉덩이까지 올라온 바지를 놓고 두손으로 얼굴을 감싸쥐였다. 손바닥에까지 열기까 느껴졌다. 정우는 두손바닥에 힘을 주어 한껏 두볼을 비비다가 다시 바지춤을 잡았다. 혁디가 손에 잡혔다. 정우는 혁띠를 찬찬히 내려다보며 네번째 구멍을 찾았다.
그래, 조 구멍에 꽂아야지.
정우는 그 와중에 걸침이 네번째 구멍에 쑥 들어가는 그림이 그처럼 또렷하게 머리속에 펼쳐지는것이 이상하리만치 놀랍다고 생각되였다.
그래, 조 구멍에 쑥 꽂는거야!
정우는 오른손으로 혁띠의 걸침을 찾아들고 네번째 구멍을 묘준하여 쑥 밀어넣었다. 걸침은 별 소리도 없이 슴슴하게 네번째 구멍을 찾아들어갔다. 습관대로 량쪽 식지를 혁디안쪽에 넣어 앞으로 툭툭 튕겼다. 바지가 혁띠에 걸려 한결 편하게 허리를 감싸고있었다. 정우는 혁띠에서 손을 떼고두팔을 어깨와 나란히 올려들고 쑥쑥뒤로 뻗으며 가슴을 앞으로 튕겼다.
―자자.
아마츄어배우의 어설픈 연기를 감상하듯 얼굴에 아무 표정도 없이 멀거니 정우를 지켜보던 안해가 한마디 던지고는 “천사의 날개”를 하늘거리며 침실로 들어갔다. 그 말에 안해를 따라 침실로 들어가려고 발걸음을 옮기던 정우가 무슨 생각에서였던지 네번째 걸음을 떼다 말고 우뚝 멈춰섰다. 침실쪽을 바라보던 정우의 눈길이 천천히 창문쪽으로 옮겨졌다. 몸도 창문쪽으로 향해졌다. 발걸음이 다시 창문쪽으로 세 걸음 옮겨졌다. 정우는 두팔을 창턱에 올려놓고 창문넘어에 눈길을 던졌다. 뭉게구름밑으로 둥근달이 흘러가는 모습이 환영처럼 뿌옇게 보여왔다. 너무 뿌옇해서 달에 상아가 있는지 옥토끼가 있는지 보여지지 않았다. 그냥 달이라고만 생각되였다.
후―
정우는 다시한번 한숨을 내뿜으며 담배 한가치를 뽑아 입에 물었다. 떨리는 손으로 라이타를 켜들었다. 재수없게도 불꽃은 담배를 묘준하지 못하고 코밑으로 날아들었다. 다 된 죽에 코물을 떨궈버린 못 사는 집 아낙네처럼, 하늘에서 떨어지는 빵에 눈동자를 맞아버린 나그네처럼 정우는 절망적으로 악! 하고 짤막하게 비명을 질러올리며 라이타를 떨어뜨렸다.
주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일시 궁리가 떠오르지 않았다. 정우는 파아란 불꽃이 사그러진채 댕그라니 바닥에 떨어져있는 라이타를 멍하니 내려다보다가 허리를 꺽었다. 대뇌가 오른손에다가 라이타를 주으라는 신호를 보내고있는것 같았다. 라이타를 주어들었다. 손은 여전히 떨리고있었다. 정우는 오른손엄지에 힘을 주었다. 그것마저 뜻대로 되여주지 않았다. 엄지가 아파날 지경으로 라이타를 켜려고 애썼지만 종시 불꽃은 일지 않았다. 정우는 맥을 놓고 오른손에 라이타를 움켜쥐고있다가 스르르 무너져내렸다. 다시 눈확이 젖어들었다. 자신이 그처럼 무기력하게 느껴졌다.
라이타, 라이타도 제대로 켜지 못해? 등신, 병신, 무골충…
정우는 오른손에 움켜쥐였던 라이타를 사타구니밑에 쑥 밀어넣었다. 라이타가 들어가면서 그 물건을 스치는듯싶었다. 찡― 하고 전류가 흘렀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그때 그 물건이 정신을 차리고 일어선다게 쳐 죽이고싶도록 괘씸해났다. 정우는 한줌에 와락 그 물건을 움켜쥐고 흔들어댔다. 하지만 바지에 살짝 대가리를 숨긴 그놈은 일부러 정우를 골려라도 주려는듯 용케도 정우의 손바닥에서 몸을 빼는가싶었다. 맹랑하게도 괜히 바지앞섶만 쥐고 아래우로 흔들어대던 정우는 모든것을 체념한듯 벌렁 뒤로 몸을 날려 큰 대자로 널부러졌다.
두눈을 감아버렸다. 부르르 몸을 떨었다.
어떻게 된걸가? 내가 왜, 왜… 왜 이렇게 되여버린것일가?

―당신, 나 없이 살수 있어요?
6년전, 공항에서 정우의 손을 잡고 안해가 목소리를 파르르 떨면서 그렇게 물었다. 그렇게 묻는 안해의 바스음에는 근심과 불안함이 가득 묻어있었다.
―살아볼게. 믿어!
정우가 힘있게 머리를 끄덕였다. 안해가 정우의 가슴에 살풋이 머리를 댔다. 툭툭툭… 정우는 자기의 심장이 급촉하게 뛰기 시작한다는것을 느꼈다. 안해가 그 심장소리를 듣고있는것 같았다.
―이번에 꾼 돈을 갚아버리구 100평짜리 아빠트 한채를 사구 아들놈 대학 보내구 장가보낼 돈만 벌면 돌아올게요.
안해가 정우의 가슴에 얼굴을 댄채 속삭였다. 정우는 안해를 꼭 껴안으며 입을 열었다.
―그 돈이 언제쯤 벌어지는데?
―한 3년? 4년?
―3, 4년?
―너무 길어?
―나, 그때면 아바이로 될거야?
―당신은… 참. 40대중반의 아바이도 있어? 길게 쳐 4년이라도 당신은 45살밖에 안돼.
―반 구십이네.
―괜찮을거야. 당신은 쎄잖아. 반백이라도 당신은 씩씩할거야.
안해가 주먹으로 정우의 가슴을 툭 치면서 자기의 얼굴을 뗐다.
손님들이 거의 빠지고있었다. 안해도 가방을 끌고 대기실로 들어갔다. 정우는 안해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오래오래 대기실을 향해 손을 저었다.
1년 3개월만에 안해가 한국으로 갈 때 꾸어들였던 빚 5만원을 다 갚아버렸다. 다시 2년 5개월이 지나 20만원을 주고 시내변두리에 100평되는 아빠트 한채를 샀다.
그날밤, 정우는 가옥소유증을 베개밑에 깔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렇게 행복할수가 없었다. 친구들이 안마방으로 가자고 잡아끌어도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모양으로 떡 벝이고 서는 정우를 일러 “가짜내시”라고 불렀다. 그때마다 그 소리가 고깝게 들리고 그 소리에 부아통이 터지기도 했었다.
―쨔식들, 맘대루 짖어봐. 내가 눈 한번 끔뻑 하나?
안해를 돈 벌러 외지에 보내고도 집에서 흥야붕야 신선놀음을 해대는 친구들을 한심하게 생각하는 정우였다.
네놈들처럼 미친듯 놀아대다가 언제 아빠트를 장만해? 언제 와이프를 다시 집에 불러들여?
안해가 없는 나날에 아들애를 건사하면서 출근을 하느라 힘들었지만, 밤이면 밤마다 옆구리가 시려 외로왔지만 그 힘든 세월이 모여 가옥소유증으로 된것 같아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몰랐다.
하지만 그 행복, 그 위로는 딱 그때까지였다.
―여기다 돈을 저금하는게 더 유리할것 할것 같아. 한국돈이니까 여기에 두고있어야 시세를 따를게 아냐?
금방 집장식을 마치고 숨도 채 돌리지 못하고있을 때 걸려온 안해의 전화였다.
“그그, 그… 그래 그럼.”
정우는 등곬에 식은땀이 쫙 흐르는것을 느끼며 송수화기를 쥔 손을 떨었다. 순간 다리맥이 쫙 풀려나갔다. 정우는 송수화기를 어떻게 놓았던지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정우의 손은 후줄근해 있는 그놈을 꾹 쥐고있었다. 정우는 벌떡 일어섰다. 후들후들 떨리는 다리를 간신히 옮겨놓으며 화장실로 들어갔다. 거울에 비쳐진 얼굴이 파김치를 방불케 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불깃불깃 혈기가 도는듯 하던 자기의 얼굴이 어느새 그렇게 풀이 죽었는지 알수 없었다.
―어! 흠!!
정우는 힘있게 건가래를 떼고는 급히 잠옷바지춤을 아래로 쑥 밀어내렸다.
안해가 떠나간 시간들에 굳어진 습관이였다.
이 정도쯤 되면 그놈이 벌써 마을돌이를 나선 이웃집강아지마냥 벌떡벌떡 모두뜀을 했어야 했다. 이상했다. 그놈이 병든 고양이처럼 대가리를 아래로 떨어뜨린채 미동도 없이 여섯시를 가리키고있었다. 화가 터지려고 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된 화염인지도 알수 없었다. 정우는 그놈을 꽉 잡아 흔들었다. 역시나 죽여줍시사였다. 한참이나 싱갱이질 했지만 그놈은 종시 열두시를 가리키지 못하고말았다.
그때로부터 안해는 정말 돈 한번 부쳐오지 않았다. 로임은 변변치 않지만 그래도 문을 닫을일이 없는 든든한 일자리를 가지고있는게 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되였다. 대학에 간 아들놈에게는 안해가 직접 생활비를 보내는것 같았다.
처음에는 자기를 믿지 못하는 안해가 좀 고깝게 생각되기도 했지만 그것도 인차 리해가 되였다. 전에도 경제권은 시종 안해가 쥐고있었던것이다.
그래, 필요 없는 돈을 건사하느라 힘들기만 했지… 내 벌어 내 사는게 편하지.
일이란 마음 먹기에 달린것이였다. 그렇게 생각하자 찜찜하던 가슴이 탁 트이는것 같았다. 탁 트인 가슴이 투닥투닥 뛸 때면 정우는 어김없이 화장실을 찾아들었다. 마실을 나선 이웃집강아지처럼 벌떡 벌떡 모두뜀을 하는 그놈의 대가리를 꾹 쥐고 이리저리 휘둘러대는 그 즐거움이 한량없었다.
6년이였다.
그새 안해는 한번도 귀국한적이 없었다. 필경은 불법체류라 섣불리 귀국했다가는 다시 나갈수 없는 처지였다.
6년이였다.
그새 한국문턱도 많이 낮아졌다. 불법체류자도 자진신고를 하고 일정한 벌금을 물면 다시 정상적인 도경을 통해 나갈수 있다는 새로운 정책을 내놓았던것이다.
그 동풍을 타고 안해가 6년만에 날아온것이다.
그 6년간 정우는 자기가 죽어있다는것을 모르고있었다.
놀라왔다. 억울했다. 통분했다.
정우는 벌떡 얼어섰다.
탕 소리 나게 화장실문을 닫아버렸다. 끌신도 신지 않고 급급히 거울앞에 마주섰다. 거울에 비쳐진 얼굴은 불깃불깃한 풍채 좋은 사나이의 얼굴도 아니요 그렇다고 3, 4월의 쉬여빠진 파김치 같은 얼굴도 아니였다. 정우는 헉헉 모두쉼을 톺으며 거울에 얼굴을 가져갔다.
“가짜내시”라던 친구들의 비아냥소리가 귀전을 스쳤다.
미친놈들, 괘씸한 놈들, 단매에 쳐죽여야 속이 씨원할 놈들…
정우는 연신 궁시렁거리며 와락 그놈을 움켜쥐였다. 한식경이 지났지만 그놈은 사흘 굶은 이웃집 강아지처럼 종시 맥을 추지 못하고있었다. 그놈을 잡아 흔드는 오른손가락이 뻣뻣해졌고 두다리가 지진을 만난 담벽처럼 후들거렸다. 정우는 그 짓을 포기한채 허둥지둥 객실로 나왔다.
―앗!
정우의 입에서 신음같은것이 터져올랐다. 아까 샤와를 할 때 바닥에 흘린 물을 닦지 않았던지라 정우의 발바닥이 젖어있었던것이다. 젖은 발바닥이 마루판에 쫙 밀키면서 보기좋게 정우를 무너뜨렸다. 정우는 다시 일어설념도 못하고 큰 대자로 너부러진채 멍하니 천정을 바라보았다.
“아이(爱)”라는 글이 찍혀져있는 등갓이였다. 집장식을 할 때 정우가 조명상점 십여집을 돌아보고난후에야 결정한 등갓이였다. 바로 그 “爱”자옆에 먼지알갱인지 아니면 파리똥인지 모를 까아만 점들이 찍혀져있었다.
점 하나, 점 둘, 점 셋…
푸하핫!!!
갑자기 웃음을 뿜어올렸다.
푸푸푸… 하하하… 푸하푸하…
정우가 벌떡 일어섰다. 목욕통창문넘어로 샤와를 하는 녀체를 훔쳐보려는 악동처럼 한껏 발뒤꿈치를 치켜들고 머리를 뒤로 하며 등갓의 까아만 점에 눈길을 박았다.
녀자야, 그래. 바로 녀자얼굴이라니까.
그 생각이 정우를 그처럼 웃게 했던것이다. 정우는 손등으로 두눈을 비비고 다시 그 점들에 눈길을 가져갔다. “爱”자옆에 자잘하게 들어붙은 까아만 점들은 신통하게도 녀자의 얼굴을 그리고있었다.
녀자다, 저 녀자가 왜 저 갓우에 올라가있을가?
뿌옇게 먼지가 오른 등갓으로부터 부옇한 얼굴이 나타났다 살아졌다를 반복했다.
누굴가?
정우는 지그시 주눈을 감았다.
유희!
그 이름 석자가 정우의 머리속을 치고들었다.
유희, 유희!
그녀는 과연 누구일가?


3

저녁노을이 타고있었다. 섣불리 다가섰다가는 그림자도 없이 깡그리 타버릴것만같았다. 정우는 활활 타오르는 저녁노을을 막연하게 바라보다가 절레절레 머리를 저었다. 저녁노을이 언제까지 더 타오를수 있을가 하는 생각이 머리속을 스쳤다. 겉으로는 타오르는듯싶지만 속은 이미 정오의 이글거리는 태양과 멀어진 여운에 지나지 않는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입가에 허구픈 웃음 한자락이 스쳐지났다. 정우는 저녁노을로부터 천천히 눈길을 돌리고 푹 머리를 숙였다. 후― 저도 모르게 입에서 킨 한숨이 처져나갔다. 하지만 여전히 가슴이 갑갑해났다. 정우는 두손을 호주머니에 찌르고 어데라 없이 발걸음을 옮겨놓았다. 한식경을 그렇게 걸은듯싶었다.
―찌르라는데, 안되지? 맥이 없지? 물알 같은것이…
악청에 가까운 소리였다. 그 소리에 놀라 정우는 순간 머리를 쳐즐었다. 발걸음은 이미 강변광장에 와 있었다. 소학교 3, 4학년쯤 되여보이는 애들 넷이 뽈을 차고있었다. 십여메터를 사이 두고 가방으로 만든 꼴문이 있었다. 둘씩 한편이 되여 대방의 꼴문을 공격하고있었다. 키가 크고 몸집이 뚱뚱하게 생긴 애였다. 동작이 그닥 날렵하지 못했다.
―물알이라니까, 몸뚱이가 커서 뭐해. 빨리 쏴라니까.
키가 작말막하고 몸이 다부지게 생긴 애와 한편인듯싶었다.
―무슨 말이 그리 많니? 쏘쏘…쏜다는데…
뚱뚱하게 생긴 애가 뽈을 몰고 대방의 꼴물을 향해 가며 말을 벅벅 더듬었다.
―개소리 치지 말구 말리 쏴라, 찍!
다부지게 생긴 애의 말을 뒤로한채 뚱뚱하게 생긴 애가 뽈을 얼마간 더 몰고 가다가 꼴문을 힘껏 날려보냈다. 하지만 뽈은 꼴문을 명중하지 못하고 왼쪽으로 기울면서 생뚱같이 나가버렸다.
―에―잇, 물알같은것이… 너하구 한편이 된 내가 재수없는게지.
다부지게 생긴 애가 뚱뚱하게 생긴 애를 향해 주먹을 흔들어보이고있었다. 그래도 뚱뚱하게 생긴 애는 이미 그런 핸동에 습관이된듯 다부지게 생긴 애를 향해 헤헤 웃음을 지어보일뿐이였다.
―자식, 성격이 좋은거야? 머리에 물이 들어찬거야?
정우는 뚱뚱하게 생긴 애가 맹랑하게 생각되여 쩝쩝 입을 다시며 뚝에 올라가 강울을 바라보고 앉았다. 저녁노을이 마지막 그림자를 강물에 길게 드리우고있었다. 붉으스름한 강물이 반짝이고있었다.
저 붉은 색조가 다 하면 어둠이 찾아들겠지?
어둠이 기다려지는것인지 아니면 찾아드는 어둠이 두려운것인지 정우로서도 짐작할길 없었다. 다만 이제 곧 어둠이 대지를 감쌀것이고 자기도 어김없이 그 어둠속에 삼켜질것이라는 생각이 머리속을 꽉 채우는것은 어쩔수 없었다. 그 어둠속에서 자기가 잠들것이고 그 잠길에서 어지러운 꿈밭을 헤매이게 될것이라는 막연함이 머리를 어지럽게 했다.

꿈이였다고 생각하기엔/너무나도 아쉬움 남아/가슴 태우며 기다리기엔/너무나도 멀어진 그대/사랑했던 마음도/미워했던 마음도/허공속에 묻어야만될 슬픈 옛이야기/스쳐버린 그날들/잊어야할 그날들/허공속에 묻힐 그날들
 
노래소리가 슬프다고 생각되였다. 정우는 고개를 들어 노래소리가 울리는 그쪽을 바라보았다. 생머리를 어깨에까지 드리운 하얀판에 연분홍 꽃잎이 자잘하게 박힌 원피스를 차려입은 녀인이 하염없이 강물을 바라보고있었다. 어느때 어디에서 와 그 자리에 서있는지 알수 없었다. 자기가 왔을 때 그녀가 이미 그 자리에 있었는지 아니면 자기가 와서 강뚝에 앉은후에 그녀가 왔는지도 기억에 없었다. 하지만 노래소리가 그녀의 손에 들려진 핸드폰에서 울리는것만은 틀림이 없었다. 서산으로 사라지는 저녁노을을 배경으로 해서인지 더더욱 가슴을 긁어대는 그림이고 노래였다.
무슨 아픈 사연이 있는것일가?
그런 생각이 머리를 치는 순간 정우는 저도 몰래 뻘떡 몸을 일으켰다.
아니야, 어쩌려구?
그녀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려던 정우가 입가에 서글픈 웃음 한오리를 피워올리다가 갑자기 “아!” 하고 신음비슷하게 내뱉었다.
유희, 유희!
그 이름을 떠올리자 정우는 또 다시 가슴이 꺽 막혀오는것 같았다.
유희, 그녀는 과연 누구일가?
정우는 부랴부랴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어제밤, 정우를 쇼크직전에 몰아갔던 그 폭탄같은 메시지가 고스란히 핸드폰에 담겨있었다.
“그날 너무 즐거웠어요. 영원히 잊지 못할거예요. 언제 또 당신에게 안길수 있을가요? 불러주세요. 유희가.”
정우는 뿌옇해지는 눈시울을 비벼가며 메시지를 읽고 또 읽었다. 하지만 여전히 떠오르는 얼굴은 없었다. 그만치 안해가 한국에 있었던 그 6년간, 정우는 어느 녀자에게 눈길 한번 더 준적이 없었던것이다.
그날이라니? 영원히 잊지 못한다면 그날 꼭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건데… 아니야, 이건 아니야?
정우는 다시한번 힘껏 머리를 저으면서 핸드폰메시지창을 열었다.
“메시지를 받고 놀랐습니다. 누구시죠?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떠오르지 않아요…”
정우는 주저없이 메시지를 날려보냈다. 만약 정말 자기와 관계가 있는것이라면 유희라는 그녀가 꼭 다시 메시지를 보내올것이라고 생각했다.

잊는다고 생각하기엔/너무나도 미련이 남아/돌아선 마음 달래보기엔/너무나도 멀어진 그대/설레이던 마음도/기다리던 마음도/허공속에 묻어야만될 슬픈 옛이야기/스쳐버린 그 약속/잊어야할 그 약속/허공속에 묻힐 그 약속
  
  바다에 던진 돌멩이가 솟구쳐 오르기를 기다리는 소년처럼 핸드폰만 멍하니 바라보고있는 정우의 뒤로 슬픈 노래가락이 흘러지나고있었다. 정우는 본능적으로 핸드폰에서 눈길을 돌려 노래소리가 울리는 곳으로 가져갔다. 하얀 원피스였다. 하얀 원피스에 자잘하게 박힌 연분홍 꽃잎이 눈에 부셨다. 장미꽃잎인가싶었는데 그게 아니였다. 어디서 본듯싶으면서도 딱히 떠오르지 않는 장미꽃잎보다도 더 작은 꽃잎이였다.
  어디서 보았던가? 저 꽃잎을…
  “에루와 어쩔씨구 좋구나 좋네/해란강도 노래하고 장백산도 춤을 추네…”
  갑자기 귀전을 치는 노래소리에 정우는 깜짝 놀라면서 손에 들고있던 핸드폰에 눈길을 가져갔다.
  “에루와 어쩔씨구 장고를 울리세 연변조선족자치주 세웠네.”
  아, 전화다!
  정우는 허둥지둥 핸드폰을 귀가에 가져다댔다.
  유희, 그녀다. 그녀가 전화를 걸어왔다!
  순간에 스치는 생각이였다. 가슴이 벌렁벌렁 파도를 탔다.
  ―여여, 여…보세요…
  ―개뿔, 여보는… 밥시간이 다 됐는데 어디서 뭐하고있는거야?
  헉!
  정우는 전신으로 한가닥의 한기를 느꼈다.
  ―다…당신.
  ―왜? 퇴근시간이 지난지 언젠데? 기여와도 그새면 집에 다 왔겠다.
  안해의 목소리에는 큰 가시가 떡하니 박혀있었다. 정우는 무엇에 목구멍을 꽉 막히운듯 도무지 소리를 뽑아낼수 없었다. 핸드폰을 쥔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안 들어와? 어디서 뭐하고있는거야? 재밌어?
  정우는 바락바락 후벼대는 안해의 목소리를 가름하며 핸드폰을 쥔 손을 스르르 내리웠다. 머리속이 바퀴벌레 백마리에게 짓밟히듯 어지러워났다. 정우는 천천히 무릎우에 얼굴을 얹었다. 안해의 가시 박힌 목소리가 어디나를 가리지 않고 팍팍 찍어대는것 같았다.
  안해의 목소리가 6년전에도 그렇게 앙칼졌던지 아니면 한국에 가있는 6년 사이에 그렇게 앙칼스러워 졌는지 기억에 없었다. 아니, 안해의 목소리가 어떨 때 그렇게 앙칼지게 변하는지 가늠할수 없다는게 나을것이였다.
지난밤, “죽여, 죽여버리라구. 쾅쾅 밟아버리라구!” 하던 그 목소리는 앙칼지다기보다 열광에 가까왔다고 생각되였다.
6년만에 만난 안해는 그대로가 어느때 터질지 모를 활화산이였다. 활화산을 옆에 두고 산다는것은 그 자체가 고문이였다. 그런 고문은 안해가 집에 도착했던 첫날밤에 벌쎄 예언된것이였다.
―당신, 어떻게 참았어?
샤와를 마친 안해가 “천사의 날개”를 나풀거리며 다가와 정우의 목을 끌어안고 던진 첫 마디였다.
어떻게 참았지?
코등이 시큰해났다. 지나간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눈앞을 스쳤다. 정우는 입가에 가는 웃음을 피워 물며 안해의 손을 당겨다 무릎에 앉쳤다. 안해가 오른손식지를 정우의 왼쪽볼에 가져다댔다.
―주름이 생겼다, 당신.
안해의 오른손식지가 정우의 얼굴을 오리기 시작했다. 정우는 가볍게 쉼을 몰아쉬며 안해를 끌어안은 두팔에 힘을 넣었다.
―당신, 고생 많았어.
진심이였다. 언제나 안해를 떠올리기만 하면 자기가 부족해서 안해를 한국에 보내여 고생시키는것이라고 랭가슴을 앓던 정우였다.
―고생? 고생도 고생이지만… 후― 얼마나 그리웠는데. 돈이 뭐길래…
“돈이 뭐길래”라는 그 말이 폭탄이였다. 3년전의 그날밤, 안해의 전화를 받았을 때처럼 아래도리에서 뭔가가 쑥 빠져나가는 느낌이였다. 정우는 안해를 끌어안았던 두팔을 풀면서 조용히 몸을 일으켰다. 괜히 목에서 겨불내가 나는것 같았다. 정우는 급히 주방으로 들어가 랭수를 받아 꿀꺽꿀꺽 들이켰다.
―당신, 뭐해?
안해가 소리쳤다. 하지만 정우는 안해의 곁으로 가기 두려웠다. 정우는 쏘파로 다가와 담배갑을 주어들며 힘끔 안해를 훔쳐보았다.기껏해서 5초가 될가 말가한 순간이였지만 안해는 벌써 정우의 기색에서 뭔가를 짚어낸것 같았다.안해의 정우의 오른팔을 당겨다 곁에 앉혔다. 정우는 말 잘 듣는 막둥이처럼 안해가 당기는대로 쏘파에 엉뎅이를 붙였다. 안해의 손이 갑자기 정우의 그곳을 치고 들어왔다. 정우는 다시한번 흠칫 몸을 떨었다. 안해의 동공이 커지고있었다. 놀라움과 야릇함이 반죽되여 있었다.
―당신, 너무 긴장한게 아니야?
안해가 근심이 어린 눈길로 정우를 쓸어보고있었다. 정우가 오른 손을 들어 과장된 동작으로 손부채질하며 한마디 했다.
―덥네.
―더워?
―응, 땀이 나!
―개뿔… 한밤중에도 이렇게 덥네.
그 말에 정우가 안해에게 눈길을 돌렸다. 안해의 입에서 그같이 험한 소리가 나온다는게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6년전, 정우의 머리속에 마지막으로 남은 안해의 목소리는“당신, 나 없이 살수 있어요?” 하던 바스음이였다. 그 목소리에는 근심과 불안함이 가득 묻어있었다. 그 불안한 목소리가 머리에 남아 무시로 정우를 괴롭혔었다.
그 마음 여린것이 어디 가서 사람들에게 업수임을 당하는것은 아닌지? 업수임을 당해 팡팡 울고있는것은 아닌지?
내내 그런 생각에 가슴이 찢어질듯 아팠던것이다. 그때면 자기가 무능한것 같아 자신이 그렇게 미울수가 없었다.
6년간, 무시로 그렇게 자기의 가슴을 꼬집은것이 몇번이던지 정우로서도 가늠할수 없었다.
하지만 6년이 지난 그 시점에 정우가 느낀것은 아픔과 련민만이 아니였다. 그 6년간 안해는 변해이썼다. 정우는 몰라보게 변해버린 안해로 하여 일종의 두려움을 느끼고있었다. “가까이 하기엔 너무도 멀어져버린 그대”처럼 느껴졌다.
안해가 돌아온후의 그 한달간, 정우는 벌써 여러차례나 안해가 무섭다고 느껴졌었다. 그래서인지 그 한달간 정우는 한번도 밤일에 성공하지 못하고있었다.
―이 물알아, 그것도 못 넣어? 코앞에서…
잔뜩 거칠어진 목소리가 정우의 귀속에 날아와 박혔다. 정우는 흠칫 하면서 소리나는쪽에 머리를 돌렸다. 아까 올 때 보았던 그 애들이 그때까지도 광장에서 뽈을 차고있었다. 뚱뚱하게 생긴 애가 또 제앞에 굴러온 뽈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모양이였다. 그래서 많이 주눅이 든것 같았다. 상대가 분명 자기보다 약해보이는데도 뚱뚱하게 생긴 그애는 멀거니 그애를 바라만 볼뿐이였다.어쩐지 보고싶지 않은 그림이라고 생각되였다. 정우는 그애들로부터 천천히 머리를 돌리고 괜히 입술을 감빨다가 터벅터벅 발걸음을 옮겨놓았다.
  “에루와 어쩔씨구 좋구나 좋네/해란강도 노래하고 장백산도 춤을 추네…”
흥겨웠다. 흥겨워서 특별히 벨소리로 다운받은것이였다. 하지만 그 순간 정우는 도무지 흥겨움을 느낄수 없었다. 괜히 그 노래를 벨소리로 다운받은것이 부아통이 터질것 같았다. 하지만 벨소리가 울리는 핸드폰을 그때문에 받지 않을수도 없었다. 정우는 약간 떨리는 손을 호주머니에 가져다가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당금 안해의 앙칼진 목소리가 고막을 치는것 같았다. 잠간이라도 늦게 그 소리를 들을수 있었으면 좋을것 같았다. 정우는 액정에 눈길을 박으며 찬찬히 전화번호를 확인했다. 얼핏 떠오르지 않는 번호였다.
누구던가? 맞아!
정우는 오른손에 쥐고있던 핸드폰을 급히 왼손에 바꿔지고 다시 전화번호를 살펴보았다.
틀림 없었다.
전화는 바로 유희가 걸어온것이였다.


4

―뭐뭐, 뭐라구요?
정우의 눈동자가 한정 없이 커지고 목소리가 필요이상으로 높아졌다. “뭐라구요?” 하면서 동그랗게 벌린 입이 다물어 지지 못한채 그대로 동그라미를 그리고있었다.
전화저쪽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던 정우가 소리쳤다.
―뚱퉈우(东头)에 있다구요? 유…유희다방이? 네?
정우가 “네?”하며 물음표에 악센트를 가할 때 일방적으로 전화가 끊겼다. 정우는 뚜―뚜― 전류소리만 간간히 들려오는 핸드폰을 멍하니 내려다보다가 절레절레 머리를 저으며 입을 쩝쩝 다셨다.
뭐야?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다방이라구? 그럼 유희가 다방마담이라도 된다는 얘기인데… 뚱터우에 있다구?
정우는 동쪽교외를 떠올려보았다. 아직 건설이 잘 안되여 스산한 동네가 눈앞에 펼쳐졌다. 정우는 평소 동쪽교외로 가는 일이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였다.
언제쯤이였던가?
동쪽교외에 산다는 중학교때 동창을 만나러 간것이 3년전이였던지 4년전이 였던지 기억에도 아리숭했다. 그게 전부였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그곳에 가 다방출입을 한 기억은 없었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이게 말로만 듣던 “어장관리”? 눈먼 낚시로 고기를 낚아다 자기 어장에 던져넣으려는 다방마담의 꼬임수란 말인가?
정우는 괜히 부아통이 터지려고 했다. 유희라고 부르는 괘씸한 그 마담을 만나 건침이라도 탁 뱉어주고싶었다.
뚱터우라고 했지?
정우는 주저없이 길옆으로 달려가 택시를 잡아탔다.
―어디로 모실가요?
택시기사가 깎듯이 물어왔다.
―뚱터우, 유희다방.
잠간 어리둥절해 있던 택시기사가 인차 얼굴에 웃음을 띠웠다.
―아, 유― 유희다방…
―알아요, 유희다방?
―그런 이름 들은적이 있는것 같아요. 뚱터우 고물시장곁에서요.
택시기사가 천천히 머리를 끄덕였다. 정우는 그 말을 들으면서 두눈을 살풋이 감고 의자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생각할수록 한심한 세상이라고 느껴졌다. 옛날 어른들이 “눈감으면 코라도 베갈 세상”이라는 말을 자주해서 설마 하고 생각했더랬는데 그게 아닌것 같았다. 자기의 행동이 대방에게 어떤 폭탄이 될지를 생각지도 않고 그 같은 메시지를 함부로 날리는 유희와 같은 녀자들은 코가 아니라 심장이라도 눈 한번 깜빡 하지 않고 도려낼수 있을것 같았다.
―손님, 도착했습니다.
택시기사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정우를 불렀다.
―아, 네.
정우는 급히 값을 치르고 택시에서 내렸다.
한국 녀배우 리영애의 사진오른쪽으로 “유희다방”이라는 글이 궁서체로 찍혀진 자그마한 간판이 눈에 뜨였다. 6층짜리 건물의 1층이였다.
정우는 인차 안에 들어가지 않고 주변을 두루 살펴보았다. 아빠트앞으로 포장도로가 나있었는데 언제 부설한것인지 콩크리트가 떨어져 곳곳에 웅뎅이가 패여있었다. 그 웅뎅이에 비물이 고여 섞으면서 악취를 풍기고있었다. 아빠트서쪽에는 큼직한 쓰레기상자가 놓여져있었는데 비닐봉지들이며 종이곽들이며 지어는 음식물찌꺼기들까지 주변에 널려있었다. 청승스러운 주변환경은 실로 다방과 어울리지 않았다. 정우는 알겠다는듯 머리를 끄덕였다.
그래, 그럴테지. 이런 곳에 자리 잡은 다방에 손님이 많을수가 없지. 마담도 별수없어서 그런 얄팍한 수를 생각해낸거겠지.
정우는 얼굴에 씁쓸한 웃음을 피워 올리며 느릿느릿 다방으로 들어갔다. 붉으스름한 조명이 침침하게 비추는 방안의 오른쪽켠 카운터앞에 20대초반의 한 처녀가 서있었다.
―어서오세요.
정우는 그녀에게 눈길을 돌리며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마담을 찾았다.
―아, 네. 로반(老板)님을 찾으세요? 오늘 나오시지 않으시는데요.
정우는 흥 하고 코웃음을 쳤다. 얼마나 존경했으면 구구절절 존경어로 도배를 할가? 아무렴…
―마담이 무슨 분부가 없었소?
정우가 다시한번 무뚝뚝하게 물었다.
―없었는데요.
“로반님이 나오시지 않으시는데요.” 할 때보다 조금 날이선 목소리였다. 정우는 빠알갛게 립스틱을 바른 그녀의 입술에 잠간 눈길을 주었다가 돌리면서 말했다.
―들어가 기다리겠소. 마담하구 약속이 있었으니까.
―그럴리가요.
카운터처녀의 목소리가 또 한옥타브 높아졌다. 그 목소리가 저으기 귀에 거슬렸다.
―왜? 안 믿어?
카운터처녀가 입가에 쌀쌀한 웃음을 피워올렸다.
―로반님은 오늘 할빈으로 가셨어요. 친척집동생이 결혼식을 한대서요. 그런 로반님께서 어떻게 약속을…
―뭐요? 그럼…
정우가 말끝을 흐렸다. 유희가 전화에서 정우를 “유희다방”으로 오라고 했을뿐 자기가 “유희다방”의 마담이라고 말하지 않은것은 사실이였다.
그럼? 도대체 어떻게 된거야!
정우는 다시 부아통이 터지려고 해서 괜히 입술을 소리나게 감빨다가 머리를 저으며 두덜거렸다.
―마담이라도 되는것처럼… 왜 하필 유희야? 유희다방은 또 뭐구…
일시 어쩔바를 모르고 서성이던 정우가 결심을 내린듯 다방을 나서려고 하는 찰나, 출입문이 열리며 하얀 원피스가 들어섰다. 하얀 바탕에 연분홍 꽃잎이 자잘하게 박힌 원피스였다.
―아!
놀라움이 아니였다. 흥분도 아니였다. 다만 본능적으로 “아!”소리가 시위를 벗어난 화살처럼 정우의 입에서 튀여나왔을뿐이였다. 정우는 왼쪽으로 한발 비켜섰다. 하지만 눈동자는 되려 하얀 원피스를 따라 움직였다. 원피스가 카운터로 다가가더니 오똑 멈춰섰다.
―조용하고 깨끗한 방 있어요?
순간 그녀의 얼굴에 웃음이 남실거려 강변에서 보았던 그 슬픔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사람의 표정이 때에 따라 이렇게 판이하게 변할수 있다는게 놀라울따름이였다. 카운터에 섰던 처녀가 하얀 원피스를 안내했다. 하얀 원피스가 카운터처녀를 따르며 말했다.
―이제 한 중년선생이 와서 유희를 찾을거예요. 들여보내주세요.
유희? 유희! 저 녀자가…
“숙명”이라는 엄숙한 낱말이 정우의 머리를 치고들어왔다. 어떤 이야기가 이제 곧 펼져지게 될것이라는 예감을 밀어버릴수 없었다. 정우는 하얀 원피스를 따라 걸음을 재우치다가 그녀가 들어간 방문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멍하니 출입문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얼굴을 들어 빠알간 조명이 수집게 내리비추는 천정을 쳐다보았다. 순간이였다. 머리속에서 찰칵 하고 볼륨이 켜지는 소리가 울리는듯 했다.

꿈이였다고 생각하기엔/너무나도 아쉬움 남아/가슴 태우며 기다리기엔/너무나도 멀어진 그대

정우의 입에서 노래소리가 흘러나왔다. 오래된 고장난 축음기에서 흘러나오기라도 하는듯 곡조가 파도를 타고있었다. 카운터처녀가 문을 열고 나오다가 웬 일이냐는듯 정우를 지켜보았다. 정우는 그녀가 보든 말든 관계치 않고 계속 노래를 불러댔다.

설레이던 마음도/기다리던 마음도/허공속에 묻어야만될 슬픈 옛이야기

카운터처녀가 살래살래 머리를 저으며 카운터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때 화답이라도 하는듯 방안에서 노래소리가 울렸다.

스쳐버린 그날들/잊어야할 그날들/허공속에 묻힐 그날들

정우는 드디여 접선을 이루어낸 특무처럼 주저없이 문을 밀고 들어섰다.
―오셨네요.
그녀가 사쁜 쏘파에서 몸을 일으키며 정우쪽에 얼굴을 돌렸다. 아까 “조용하고 깨끗한 방 있어요?” 하고 물을 때 얼굴에서 남실거리던 웃음은 오간데 없고 강변에서 보았던 그 우수와 슬픔과 처량함만이 얼굴 가득 어려있었다. 정우는 자기가 두눈을 펀히 뜨고 백만갈래의 미궁속으로 빠져드는듯해서 정신이 흐릿해났다.
―초면인것 같은데요.
정우의 목소리가 떨렸다.
―초면이죠.
그녀의 목소리가 잦아들듯 미약했다.
―잘못 보낸거죠?
정우의 목소리에 약간 힘이 들어갔다.
―잘 간거예요.
그녀의 목소리에 확신이 어려있었다.
―네?
정우의 동공이 한껏 커졌다.
카운터처녀가 차주전자를 들고 들어섰다.
―고마와요.
그녀가 카운터처녀에게 머리를 끄떡해보였다.
―좋은 시간 되십시오.
카운터처녀가 허리를 다소곳이 숙여보이고는 문을 나섰다. 하얀 원피스의 그녀가 다시 일어나 차주전자를 잡더니 허리를 굽히고 정우의 앞에 놓인 잔에 차물을 부으며 물었다.
―선생님은 믿어요?
―뭘요?
―인연, 운명… 이러루한걸요.
―글쎄요.
―난 오늘 이런것들을 믿기로 했어요.
그녀는 자기의 잔에 차물을 채워놓고는 조용히 쏘파에 엉뎅이를 대였다. 그 시각 그녀의 얼굴은 세상의 모든 잡념을 벗어버린듯 그처럼 담담해보였다. 아니, 세상의 모든것을 체념한듯한 표정이였다. 정우는 어떻게 허두를 뗄가고 망설이며 입술을 감빨다가 더듬거렸다.
―그럼… 우리가 인연이 닿았다는… 그렇게 리해해도…
정우가 말을 끊고 그녀를 살폈다. 두눈을 꼭 감고있었다. 왼쪽눈까풀이 파들파들 떨리고있었다. 그녀가 오른손을 가슴쪽으로 올려가 천천히 문지르기 시작했다. 빨간 혀를 날려 빨간 입술을 쓸었다.
―한국에 갔다가 5년만에 돌아왔어요.
빠알간 색으로 섬세하게 디자인된 빠알간 록음기에서 흘러나오는듯한 바스음이였다.
―그새 한국에서 번 돈을 한푼도 남김없이 몽땅 남편에게 부쳐보냈더랬죠. 그만치 남편을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몽땅, 깡그리 믿었던거죠. 얼마전에 귀국했어요. 집을 사고도 30만원쯤은 남았을거라고 생각했어요. 그 돈으로 자그마한 옷가게나 하나 차려놓고 남편과 아기자기 살아보려고 꿈을 꿨지요. 하지만 남편이 그새 내가 돈 벌어 산 집에서 내가 보낸 돈을 가지고 다른 녀자를 품고있을줄을 어찌 알았겠어요. 미칠것만 같았어요. 하늘이 무너지는듯싶었어요.
그 사실이 밝혀지던 그날밤, 나는 무작정 집을 뛰쳐나왔어요. 정처없이 거리를 헤맸죠. 맥이 지나자 무작정 찾아든게 이 다방이였어요. 맥주를 불렀어요. 한병 또 한병… 사는게 마치도 유희를 노는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는 열심히 돈을 버는데 그 사람은 제놀음에만 빠져 그 돈을 탕진하고… 얼마나 허무하고 재미나는 세상인가요? 그래서 나도 유희를 놀아보고싶었어요. 그래서 그 같은 메시지를 작성해서 무작정 손이 가는대로 번호를 찍어 날려보냈죠. 유희다방! 이름이 얼마나 로맨틱해요? 그래서 이름을 유희라 달았구요. ㅋㅋㅋ…ㅋㅋㅋ… 그 돌멩이에 선생님이 맞은거예요, 선생님이.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정우는 눈앞에서 탁탁 튀여오르는 무수한 오각별들을 보고있었다. “아, 예” 하고 볏 한번 달아볼 새 없이 그녀의 말에 끌려 어디론가 둥둥 떠가는듯싶었다.
―바보처럼 말이죠. 바보천치처럼 말이죠. ㅋㅋㅋ…
그녀가 갑자기 몸을 일으켰다.
―아, 예!
그제야 정우는 정신을 가다듬으며 더듬거렸다.
―유흰거죠. 모든게 유희예요. 유희!
―유희요?
―그럼요, 유희! 우리도 유희 한번 놀아볼가요?
그녀가 와락 정우의 목을 끌어안았다.
―아!
정우는 헉 들숨을 끌며 본능적으로 오른손을 들어 그녀를 밀쳤다.
―유희라니까요.
―이…이러시면 안됩니다.
―산다는 자체가 유희죠.
그녀가 다시 정우의 목을 끌어안으며 입술을 덮쳤다.
―헉!
순간 정우는 짜릿한 전률을 느꼈다. 천만 볼트의 고압선에 툭하고 몸이 맞혀 쾅 하고 터져버리는것 같았다. 정우는 으스러지게 그녀를 끌어안았다. 그녀가 부르르 몸을 떨며 가슴을 밀착해왔다. 정우는 벌떡 뛰여일어나 무작정 그녀를 쏘파에 쓰러뜨렸다. 급히 바지춤을 내렸다. 그녀가 흑흑 느끼며 팬티우로 그 물건을 잡아쥐였다.
―허억!
갑자기 정우의 입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새여나왔다.
―아악!
그녀가 괴성을 뽑았다.
뿌우연 액체가 그녀의 손바닥을 적시고있었다…


5

그녀의 눈빛이 타고있었다. 점도록 정우를 올려다보며 활활 눈빛을 태우고있는 그녀의 얼굴에는 일종의 막연함이 커다란 물름표로 되여 걸려있었다. 정우는 감히 그녀의 눈동자를 정시할수 없어 머리를 숙이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흥건히 젖은 팬티의 그 부분이 유난히도 눈길을 끌었다. 정우는 급히 손바닥을 쫙 펴서 팬티의 그 부분을 가리웠다. 밑에 놓인 왼손바닥이 축축하게 느껴졌다. 정우는 급히 팬티에서 손을 떼고 허리를 굽히면서 허벅다리에 걸려있는 바지춤을 찾아쥐였다. -병원에 가보세요,
그녀가 쏘파에 일어나 앉아 함에서 종이 몇장을 뽑아들고 손바닥을 닦으며 입을 열었다.
-네?
정우가 혁띠를 찾다 말고 굳어지면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흠칫 놀라는 정우를 일별하던 그녀가 왼손에 쥔 종이를 오른손에 옮겨 손가락을 꼬물거리며 비벼댔다. 종이가 동그랗게 모양을 잡아갔다. 그녀는 공들인 작품을 감상하듯 동그란 종이말이를 눈앞에 가져다 잠간 들여다보더니 쓰레기통에 훌 던져넣으며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병원에 가보시라구요. 어쩜 선생님이 무슨 병에 걸렸을수도 있어요.
-네? 제가요?
정우가 그녀쪽으로 머리를 돌리며 “요?”에 악센트를 주었다.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이였다. 그녀는 인차 대답을 하지 않고 정우의 얼굴에 이윽토록 눈길을 박고있다가 입가에 가는 웃음 한오리를 피워올리며 말했다.
-괜한 소리를 한것 같아요, 제가...
-네, 아니요. 제가 일시 리해를 못해서요.
정우는 진정으로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듯한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녀가 빠알간 혀를 내밀어 빠알간 립스틱을 바른 입술을 한번 살랑 핥더니 물었다.
-오래됐어요?
-뭐가요?
정우는 여전히 오리무중에 빠진듯 다잡아 물었다. 그녀는 다시한번 입술을 깜발고는 “후우-”하고 긴 한숨을 내뿜더니 살래살래 머리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욕망뿐이겠죠? 그 욕망이라는것이 있었기에 고통스러웠을거구요.
말을 마친 그녀는 쏘파에 등을 기대며 두눈을 지그시 감았다. 정우는 그녀가 무엇을 말하는지 감을 잡은듯 가볍게 머리를 끄덕이며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사실 당황했습니다. 당황할수록 더 당황한 일만 생기더라구요.
그녀가 살며시 두눈을 뜨면서 정우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정우는 혁띠의 네번째 구멍을 찾고있었다.
-6년이였습니다.
-6년이였다구요?
그녀가 복창을 하듯 정우의 말을 받았다. 정우는 혁띠의 걸침을 찾아쥐고 말했다.
-6년만에안해가 돌아온 그날밤, 처음으로 당황한 일을 겪었더랬죠.
-그랬었군요.
-네. 그랬습니다. 365일이 여섯번 흘러가는 동안이였죠.
이 말을 하면서 정우는 자기의 목소리에 일종의 익살같은것이 섞여져있지 않느냐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익살스러움을 느꼈던지 그녀가 정우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래 만족했나요?
-만족이요?
정우가가 어설프게 웃음 한송이를 입가에 꽂으며 담담하게 되물었다.
-녀자들은 그래요. 습관되면 덤덤해지거든요. 하지만 습관되기가 그토록 힘든거죠.
-힘들어요? 그럼 습관 못될수도 있겠네요?
역시 “요?”에 악센트를 주는 정우를 바라보며 그녀는 또 한번 입가에 웃음 한오리를 피워물었다. 아까 “제가요?” 하고 되묻던 정우의의 물음에 보내던 웃음보다 약간 짙어보였는데 어쩌면 장한 일을 해놓고 “잘했죠? 제가요.” 하고 엄마에게 묻는 아들놈을 련상하는듯해보였다. 그녀는 혁띠의 네번째구멍을 찾아 걸침까지 든든히 걸어 잠근 정우를 향해 입을 열었다.
-못될수도 있겠죠, 습관이. 녀자도 그렇구 남자도 그렇구... 억지로 습관을 하느라면 병이 생기죠. 남편을 떠나 한국에 가 있는 녀자들중 수란관에 종기가 생기는 경우가 그렇게 많대요. 그때문에 그녀들은 갱년기를 빨리 맞구요. 그렇게 자기를 죽여가면서 돈을 버는거죠. 남자들은 어때요? 6년간 와이프랑 떨어져있으면 남자들은 어떻게 돼요?
그 물음을 그처럼 담담하게 물을수 있는 그녀로 하여 정우는 분노를 느꼈다. 어쩌면 그녀가 “6년간 꿀단지에 혀를 안대면 어떻게 될가요?”하고 엉뚱한 수수께끼라고 내는듯싶어서 한심하게 생각되였다.
이 녀자가... 뭐 하자는거야?
생각은 그렇게 하면서도 일시 어떻다고 대답했으면 좋을지 몰라 망설이고있을 때 그녀가 또 입을 열었다.
-남자들도 병이 나겠죠. 병이 안나자고 우리 집 그 물건은 고삐를 벗어난 들말처럼 그렇게 날쳤겠지만. 푸하하...
잠간 말을 끊은 그녀가 갑자기 크게 웃음을 터쳐올렸다. 정우는 순간 온몸으로 한기를 느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얼굴이 웃음소리에 걸맞지 않게 질려있었다. 그녀는 툭툭 소리나게 주먹으로 자기의 가슴을 몇번 두드려대더니 어-흠- 건가래를 떼면서 아래말을 이었다.
-선생님은 지금 병에 걸렸어요. 큰 병이 들었다구요.
그녀는 벌떡 일어나 차탁에 올려놓았던 핸드백을 주어들고 정우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병원에 가보세요. 환자는 응당 병원에 가야 해요.
말을 마친 그녀는는 몸을 돌려 문쪽으로 다가가더니 다시한번 정우를 돌아보며 살짝 웃고는 문을 밀었다. 툭 하고 문이 닫기는 소리를 들으면서 정우는 쏘파에 털썩 주저 앉아 지그시 두눈을 감아버렸다. 숨소리만 간간히 들려올뿐이였다. 분명 숨소리를 들으면서도 정우는 숨쉬기가 가빠 가슴이 터질것 같았다. 정우는 주먹으로 가슴을 툭툭 치다가 푸 하고 크게 숨을 토하고는 벌떡 쏘파에서 일어났다.
붉으스름한 조명이 괴괴하게 내리비추는 방안이 당금 터지려는 또치카를 방불케 했다. 당장 그 숨막히는 공간을 벗어나고싶었다. 한시라도 더 그 공간에 몸을 담고있으면 그대로 폭발해버릴것 같았다. 정우는 카운터쪽으로 다가가면서 돈지갑에서 오십원짜리 돈 한장을 꺼내들었다.
카운터처녀가 문소리를 듣고 정우에게 얼굴을 돌렸다. 정우는 카운터처녀와 눈 한번 마추지 않고 그대로 지나면서 돈을 카운터에 던졌다.
-하셨어요.
카운터처녀가 소리쳤다. 정우가 우뚝 걸음을 멈추고 카운터쪽에 눈길을 던지며 소리쳤다.
-언제 했어?
-방금 하셨어요.
카운터처녀의 목소리가 챙챙하게 울렸다. 하지만 정우는 못 믿겠다는듯 소리쳤다.
-안했어, 안했다구.
-하셨다는데요, 방금 먼저 나간 녀사님이.
카운터처녀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정우는 또 다시 부아통이 터지려는 자신을 발견했다.
-제가 뭔데, 제가 왜 해. 하기는...
정우는 씨엉씨엉 카운터로 다가가 돈을 확 집어들고는 다시 문쪽을 향했다.
카운터처녀가 웬 일이냐는듯 잠간 정우를 째려보다가 흥 하고 코웃음을 치며 한마디 했다.
-징선삥(精神病)!
뭐야? 징선삥? 내가 왜 정신병이야? 왜왜...
정우는 마치도 스스로가 다시 헤여나오지 못할 수렁속에 말려들어가는것 같았다. 지푸라기라도 잡지 않는다면 머리카락한오리 남기지 못하고 그대로 사라져버릴것만 같은 두려움이 머리속을 엄습해왔다.
-왜냐구? 내가 왜 정신병이냐구?
정우가 다방안으로 다시 들어가며 소리쳤다. 왜 그렇게 다시 다방안으로 들어가야 하는지는 그로서도 알수 없었다. 그냥 그렇게 들어가 고래고래 소리지르고싶다는게 전부였다.
사람이 없는 카운터만 조용히 정우를 맞아주었다. 카운터를 지키던 그 처녀가 어디로 갔을가를 생각할 새도 없이 눈굽이 젖어들었다. 코등이 시큰해났다. 괜히 입술을 빡빡 긁어댔다. 닭똥같은 눈물이 둘둘 굴러내렸다. 정우는 손바닥으로 이리저리 두볼을 훔치며 급히 밖으로 뛰여나왔다. 머리를 푹 숙인채 어디라없이 씨엉씨엉 발걸음을 옮겼다.
-앗!
정우가 급한 소리를 지르며 우뚝 멈춰섰다. 길옆에 누군가 자전거와 함께 너부러져있는것이 보였다. 왼쪽어깨로부터 시큰시큰 통증이 느껴졌다.자건거와 함께 쓰러져있던 사람이 기여일어나며 소리쳤다.
-쌰촹싸야? 메이짱 얜징아?(瞎闯啥呀?没长眼镜啊?)
나이 지긋해보이는 중년 녀인이였다. 정우는 다가가 부축하려다가 우뚝 멈춰섰다.
-찡선삥(精神病).
중년 녀인이 자전거를 일으키며 앙칼지게 욕설을 퍼부어댔다. 그 욕지거리를 들으면서 정우는 순간 쿡 하고 웃음을 뽑아올렸다.
뭐, 정신병이라구? 또 날보구 정신병이라구...
“쑈신댈, 뿌왠이따리니(小心点,不愿意搭理你).
중년 녀인이 궁시렁거리며 자전거에 훌쩍 뛰여오르더니 힘있게 페달을 밟았다. 어둠속으로 살아지는 그녀의 뒤모습을 바라보면서 정우는 한없이 작아지는 자신을 보고있었다.
왜 모두들 나를 보고 병에 걸렸다는거야?
정말 병에 걸린거나 아닐가 하는 생각이 그렇게 처음으로 정우의 머리속을 치고들어왔다.
설마...
정우는 설레설레 머리를 저으면서 얼굴을 쳐들었다.
촉수 낮은 가로등빛이 괴괴하게 거리를 비추고있었다. 정우는 연신 두눈을 슴뻑거리면서 멍하니 가로등을 쳐다보았다가로등도 아무 표정 없는 눈길로 정우를 내려다보는것만 같았다. 분하고 억울하게 느껴졌다.
내가 왜 병에 걸린거야? 6년간 착실하게 출근을 하고 때가되면 아귀아귀 밥을 먹고 감기 한번 하지 않았는데... 풀떡풀떡 뛰는 그 놈을 어르느라 허구한 날 팔힘은 얼마나 뺐다구...이렇게 건장한 나를 왜 모두 병에 걸렸다고 하는거야?
-에루와 어쩔씨구 좋구나 좋네
핸드폰이 갑지기 노래를 시작했다. 정우는 흠칫 놀라면서 잡생각에서 헤여나와 급히 호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들었다.액정에 “마누라”라고 떠있었다. 장백산날씨처럼 한순간에도 검으락 푸르락 해지는 안해의 얼굴이 눈앞을 스쳐서 선뜻 핸드폰을 받을수 없었다.
-장백산도 노래하고 해란강도 춤을 추네
핸드폰은 정우의 기분 같은것은 아랑곳 하지 않고 여전히 흥겨워했다. 정우의 머리가 손을 향해 어서 핸드폰을 받으라고 지령을 보내고있었다. 정우는 핸드폰의 수신버튼을 누른후 천천히 귀가에 가져다댔다.
-당신, 어디야?
천둥번개가 아니여서 다소 시름은 놓였지만 인차 어떻게 대답할수 없었다. 정우는 잠간 말을 끊고 멍하니 가로등을 쳐다보다가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더듬었다.
-여여... 여기 있잖아, 병원이야.
-뭐? 병원?
-그래, 벼...병원.
-병원엔 왜 갔어?
-여보, 나...나나... 병에 걸렸대. 그래서 지금 여기서 링겔을 맞고있어.
-......
당금 터져버릴것 같은 침묵이 핸드폰에서 흘러나왔왔다. 안해가 어떤 표정을 지을지 떠오르지 않았다. 그리고 안해가 자기의 말을 믿어줄가가 궁금했다. 흐흥- 코웃음이 터졌다.
링겔을 맞는다구? 내가 지금 링겔을 맞는다구?
정우는 그렇게밖에 대답하지 못하는 자신이 그렇게 못나고한심해보일수 없었다.
정우는 오른쪽 귀에 댔던 핸드폰을 왼손에 바꿔쥐였다. 숨소리마저 죽이고 핸드폰을 왼쪽귀에 꼭 가져다댔다. 적막감은 여전히 핸드폰을 타고 정우의 가슴에 흘러들고있었다. 순간 말 못할 두려움이 스멀스멀 정우의 머리속으로 기여들었다.
-여...여보.
정우는 기여들어가는듯한 목소리로 안해를 불렀다.
-알았어, 큰 병이 아닐거야.
안해의 목소리가 떨린다고 생각되였다.
-그래, 큰 병은 아닐테지.
정우는 그 말이 안해를 위로하는것인지 자기를 위로하는것인지 스스로도 알수 없었다. 안해의의 목소리가 속삭이듯 들려왔다.
-그렇구 말구. 큰 병일수 없지.당신, 원래 강한 사람이였잖아.
그 말을 들으면서 정우는 문뜩 “당신, 나 없이 살수 있어?” 하고 묻던 6년전의 안해의 그 목소리를 떠올렸다. 부지중 안해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머리를 쳤다.
내가 못난거잖아? 내가 못나서 와이프를 외국에 돈 벌러 보낸거잖아?
한달전, 비행기에서 금방 내린 안해의 손을 잡고 이 생각을 한번 해본후로는 처음인것 같았다.
그 여리던 사람이... 제대로 습관이 되였을가?
“억지로 습관을 하느라면 병이 생기죠. 남편을 떠나 한국에가 있는 녀자들중 수란관에 종기가 생기는 경우가 그렇게 많대요. 그때문에 그녀들은 갱년기를 빨리 맞구요. 그렇게 자기를 죽여가면서 돈을 버는거죠.”
그 순간 새삼스럽게도 아까 다방에서 그녀가 하던 말이 머리속에 떠오르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당신, 괜찮아?
정우가 저도 몰래 목소리를 높여 소리쳤다. 안해의 대답이 인차 날아왔다.
-괜찮지, 나는. 알았어, 근심 말구 링겔을 다 맞구 집에 와. 기다리고있을게.
안해는 말을 마치고 일방적으로 핸드폰을 꺼버렸다.
그래, 여기는 병원이야.
그런 생각이 머리를 쳤고 이어 기분좋게도 말 못할 해탈감이 느껴졌다.
그래, 아직도 한시간쯤은 여기 있어도 되는거야. 아직도 한시간쯤 지나야 링겔 한통을 다 맞을수 있는거야.
정우는 만부하로 당겨졌던 탕개가 스르르 풀리는듯하면서 다리맥이 빠지는것을 느낄수 있었다. 정우는 그곳이 가로등밑이라는것도 잊고 스르르 무너져내렸다.
나는 지금 링겔을 맞고있는거야. 그래. 링겔 한통만 뚝딱 맞고 나면 나는 예전처럼 강하게 변할수 있을거야.
정우는 한없이 넓은 정글속에서 껑충껑충 뛰여다니는 자기를 보고있었다. 아니, 분명 자기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보니 갈기를 잔뜩 세운 수사자였다. 자기라고 생각되는 그 수사자가 수많은 암사자들을 끌고 위무당당하게 정글을 누비고있었다.


6

   -가자, 우리.
“우리”라는 말이 참 다정하게 느껴진다고 생각하면서 정우는 두눈을 번쩍 떴다.
-힘들었지? 우리 집에 가자.
말을 마친 안해가 빨간 매니큐어를 바른 오른손식지를 빨간 립스틱을 진하게 바른 입술사이에 물렸다.
-다다, 당신이...
정우는 소리치며 벌떡 일어났다. 안해가 입에 문 오른손식지를 배배 돌리다가 정우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끝났어. 끝났다구. 유희는 이제 끝난거야.
-뭐? 뭐뭐... 유희?
-유희가 끝났으니 이제 우리 행복하게 잘 살 일만 남은거야.
안해의 목소리가 담담하게 들렸다.
-당신, 어떻게 알고 여기 왔어? 여기…
정우는 그제야 뭔가 심상치 않다는것을 의식하면서 한껏 동공을 키워 안해를 바라보았다. 안해가 말없이 정우의 손을 꼭 잡아쥐고 흔들더니 목소리에 힘을 담아 또박또박 말을 이어나갔다.
-나, 다시 한국에 나가지 않을거야. 여기서 당신하구 제대로 한번 살아볼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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