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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문턱은 낮지 않다
2010년 03월 14일 11시 05분  조회:1936  추천:0  작성자: 동녘해

선진국문턱은 낮지 않다

눈고장이라 큰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가을이 떠나간 빈 자리에 눈 이 내려 쌓이니 마음이 푸근해진다. 어디로들 다 가버렸는지 새소리 도 뜸하고, 개울물 소리만 한결 그윽하게 들려온다. 눈쌓인 깊은 산속에서 청정한 산하 대지와 마주하고 있는 이 적막이 태고적 같아 좋고 좋을 뿐이다.
눈치는 가래를 사러 저자에 내려가보니 여기저기서 겨울맞이 채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상황이 코앞에 닥쳐야만 바삐 서두는 세상인정. 사람 사는 일이란 비슷비슷한 되풀이 속에서 날이 가고 달이 가고
세월이 간다. 이러다가 한 생애도 후딱 지나가버릴 것이다.

 

 

○「벼락성장」의허상
지난 가을 어느날, 꽃에 향기가 있다는 사실에 나는 새삼스레, 정말 새삼스럽게 놀란 적이 있다. 그 전날 산자락에서 노란 들국화 를 한가지 꺾어다가 조그만 오지병에 꽂아 식탁에 놓아 두었더니, 은은한 국화향기가 내 영혼에까지 스며들어 마구 흔들어댔다. 도대체 이 꽃향기가 어디서 온 것일까, 무엇이 이런 꽃향기를 낳게 하는 가, 한참을 헤아리면서 그 꽃향기에 도취되었었다.
사람에게도 그 사람 나름의 향기가 있을 법하다. 체취가 아닌 인 품의 향기 같은 것. 그럼 나는 어떤 향기를 지녔을까? 내 자신은 그걸 맡을 수 없다. 꽃이 자신의 향기를 맡을 수 없듯이. 나를
가까이하는 내 이웃들이 내 향기를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사회나 국가도 주관에 치우친 우리들 자신의 눈으로는 스스로를 잘 모른다. 우리와 다른 사회와 나라들 이 보다 정확한 객관적인 평가의 눈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지난 한달동안 우리는 온통 무너진 성수대교에 매달려 너 나 할 것 없이 안팎으로 큰 상처를 입어왔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올림픽 까지 치른 한 나라의 수도에서 일어났다니 자탄을 금할 길이 없었다. 며칠전 마음먹고 현장에 가까이 가서 끊어진 다리를 한참 바라보 면서 묵상에 잠겼었다. 이건 하나의 상징이다. 한개의 다리만 무너진 것이 아니라 그동안 우리가 애써 일으켜 세운 이 사회의 한 모서리가 주저앉은 것이다. 기회 있을 때마다 단시일안에 이룬 고도성장을 자랑하며 우쭐거리던 그 발전의 허상이 무너져내린 것이다. 그리고 이 시대와 사회에 몸담아 살아가는 우리들 자신의 실상이, 그 속얼굴이 하루 아침에 드러난 것이다. 이제 와서 부실공사를 탓하고 관리소홀을 추궁해봐야 무참히 희생된 넋들이 얼마나 위로를 받을 것이며 끊어진 다리가 이어질 것인가. 이건 우리 모두가 잘못 뿌려서 거둔 병든 열매 아니겠는가. 모든 현상은 인과관계로 엮어진 하나의 고리다. 자연의 도리와 사물의 법칙을 무시한 행위가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는가를 보여준 참담한 교훈이라고 여겨졌다. 개인이건 집단이건, 원리 원칙을 무시하고 편법과 적당주의로 처신해 온 우리사회, 대충대충 빨리빨리로 밀어붙여 공기를 단축하는 것을 자랑거리로 여겨온 건설업계의 그릇된 관행. 그리고 공공장소에서 함부로 침을 뱉고, 피우다 만 담배를 서슴없이 내버리며, 쓰레기를 아무데나 내던지고, 차선과 신호등 무시하고 질주하는 등 이런 기본적인 질서가 지켜지지 않은 잘못된 우리 생활습관이 마침내는 다리를 무너지게 하고, 온갖 비리를 낳게 하여 우리사회를 휘청거리게 한 것이다.

 

○참된 국력은 무언가
선진국에 이르는 문턱은 결코 낮지 않다는 것을 이번 참사를 통해 실감하게 했다. 국민소득이 좀 불어났다고 해서, 국제경기에서 메달을 몇개 더 차지했다고 해서 선진국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 나라 국민들의 자질과 교양과 시민의식과 책임감과 도덕성이, 버젓한 세계시민의 수준에 도달해야만 비로소 선진국의 문턱에 들어설 수 있다. 속은 빈채 밖에 드러난 현상이나 물질의 더미만으로 어떻게 선진국 대열에 설 수 있겠는가. 지난번 히로시마 아시아경기 기간에 우리들은 얼마나 메달에 집착했던가.그것도 금메달에만. 금메달 몇개를 가지고 일본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그토록 순위에 집착하게 된 우리 국민들. 사실은 언론에서 그렇게 부추긴 것이지만 운동경기는 어디까지나 운동경기일
뿐 그것이 국력 그 자체일 수는 없는데, 우리는 그걸 국력인양 착각할 지경이었다.바로 그 순간, 스웨덴아카데미에서는 올해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일본의한 작가를 선정했다는 발표가 있었다.
무엇이 진정한 국력인가를 보여준 시의적절한 뉴스거리라고 생각되었다. 하나의 씨앗이나 열매가 익기까지는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의 질서와 은공이 받쳐주어야 한다. 그 계절의 질서와 은공에는 편법이나 적당주의가, 빨리빨리나 대충대충이, 그리고 과속이나 추월이 용납되지 않는다. 우리가 선진국이 되려면 모든 분야에서 「원리 원칙 」으로서 편법과 적당주의를 극복해야 하고, 「차근차근 꼼꼼하게」로써 빨리빨리 대충대충의 조급함을 이겨내야 한다.
요즘은 뉴스에 귀를 기울이기도 사뭇 두렵다. 어디서 또 무슨 사건이나 사고가 터지지 않았는가 싶어서다. 이렇게 불안한 세상을 우리가 지금 살고 있다. 대통령의 국민에 대한 사과도 한두번은 들을
만하더니, 너무 자주 듣게 되자 그 처지가 딱하게 여겨졌다. 제발 그런 사과의 말을더이상 들을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신바람나는 사회는 그만두고라도, 서로 믿고 의지하면서 마음놓고 오순도순 느긋하게 살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누가 그런 세상을 가져다 주는가. 우리 모두가 한사람 한사람 저마다 처해 있
는 그 자리에서 만들어가야 한다. 삶은, 창조적인 삶은 늘 새로운 시작이다. 그래서 날마다 새로운 날을 맞이한다.

*법정스님의 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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