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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에서부터 영원을
2010년 05월 01일 16시 06분  조회:1871  추천:0  작성자: 동녘해
현존에서부터 영원을



구 상



이 가을에 나는 그 문턱에서부터 탈이 났다. 양력 8월 그믐께 아침 저녁과 밤이면 썰렁하곤 했었는데 그런 어느날 어스름 때 옛친구가 찾아와 함께 동네 횟집엘 가서 한잔 마시고 들어온 김에 더웁길래 창문을 열어놓고 자다가 한밤중 깨어나니 지병인 천식이 도져 스무 날 가까이 자리보전을 하고 말았다.

이렇게 되면 병에서 오는 고통도 고통이려니와 학교강의를 비롯하여 예정되어 있던 원고, 강연, 주례, 회합 등 약속이 모두 무너지게 되어 사람노릇을 못하게 되는데, 이것도 어쩌다 한 번이면 몰라도 지난 3년 동안 여섯 차례나 되니 그 꼴이 말이 아니다. 그래서 하루 이틀은 와병 소문을 내기 싫어서 출타부재를 빙자하지만 남과의 약속한 일도 있으니 만부득 실토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래서 ‘지금은 천식이 발작중이라 전화도 받을 형편이 못 된다’고 알리게 되어 주변들을 놀라게 하고 그러다가 기침이 멎어 멀쩡해서 나가면 마치 거짓 늑대를 만난 소년의 꼴이 되는 것이다.

실상 천식이니 해소니 해서 옛부터 집안에 그런 노인들이 한 분쯤 계셔 그저 저녁이나 밤이면 고통을 받다가도 낮에는 가라앉아, 일도 하면서 버티는 게 보통인데 나는 연전에 폐수술을 두 번이나 하여 호흡기능이 1천7백cc로 보통 사람의 반도 안 되는지라 한번 천식이 발작했다 하면 그야말로 금세 숨이 꼴딱 넘어가는 것처럼 괴롭다. 어지간해야 이번 병상에서 다음과 같이 읊었겠는가!


병상에서 내다보이는/책보만한 가을 하늘이/서럽도록 맑다. /오늘은 천식의 발작도 멎고/열기도 가시고/향유를 바른 시신처럼 편안하다. /나 자신의 갈구도 /무엇에 대한 미련도 벗어난/이 시각! /죽음아, 낙엽처럼 소리없이/다가오렴.


일반적으로는 죽음이 공포와 기피의 대상이지만 인간의 육신적 고통이나 정신적 고통이 극한에 달하면 오히려 죽음이 간절해지는 것을 나는 때마다 체험한다. 지금의 천식의 경우가 아니더라도 해방 직후 원산에서 시집 <응향> 사건으로 필화를 입고 탈출하다가 체포되었는데 때마침 겨울이라 불기 하나 없는 가옥사(假獄舍)에서 얼어드는 추위와 피곤과 절망에 휩싸였을 때나, 또는 1965년 일본 동경 교외 기요세 병원에서 제1차 폐수술 후 그것이 탈을 내서 8,9일이나 고통이 멎지 않았을 때도 바로 그랬었다. 이 어찌 나뿐이겠는가. 이즈막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박희범교수 부부의 동반자살이나 그 뒤 이를 본따듯이 젊은 미망인이 어느 호텔에서 추락 자살한 사건이나 이 모두가 당사자들에게 있어서 죽음의 안식을 취하려는 행동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문제는 그 ‘죽음의 안식’이 그렇듯 뜻대로 와지느냐가 문제이다. 가령 죽은 뒤에 아무것도 없고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면, 즉 우리 영혼의 불멸이나 내세가 없이 육신의 죽음으로 종말을 짓고 만다면 죽음에 대한 불안이고 공포가 있을 것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앞에서 ‘죽음아, 다가오렴’ 하고 읊은 나는 그 시 다음 절에서는


앓아 누워야만/천국행 공부를 한다. /마치 입시 전날에사/서두르는/게으름뱅이 학생 같다. /교과서야 있고/참고서도 많지만/무슨 준비를 어떻게 해야 할지/갈피를 못 잡고 허둥댄다. /그래서 재수부터 마음먹는/수험생처럼/‘다시 한 번만 기회를 주신다면’ 하지만/번번이 헛다짐이다./이러다간 영원한 낙제생이 되지싶다. /아니! 그건 안 된다.


이렇듯 내 스스로를 따져볼 때 죽음의 공포와 불안의 정체는 내세에 직결되어 있음을 깨달을 수가 있다. 그런데 내세를 믿는다는 나는 왜 죽음이 불안하고 두려워지는 것인가. 이것은 한마디로 말해 행복한 내세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만일 누구나 저승에서의 행복이 확보되어 있다면 못 가 본 외국으로 여행을 떠나듯 죽음을 맞이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런데 이 내세에 대한 길흉의 가능성이란 스스로가 선택하고 스스로가 준비하고 스스로가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은 죽음 앞에서 전율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20세기의 현철(현철)인 가브리엘 마르셀의 말마따나 우리는 ‘현존에서부터 영원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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