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춘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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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수필] 커피 한잔에 깃든 서정 댓글:  조회:156  추천:0  2023-01-15
             모든 아기새는 그 종류나 크기를 막론하고 갓태어날때는 알에서 부화되어 나오는 진통으로 하여 날개란것에 대해서는 단지 남의 일로만 알고있습니다! 그런데 엄마가 불원천만리로 천상천하를 누비며 사냥해다 주는 새끼고기나 꼼틀곤충벌레를 받아 먹 으며 성장의 여정을 걷게 되면서부터 꿈이란 신경이 하나 더 생겨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엄마새처럼 겨드랑이에 날개를 달고 천공세상을 날아보자는것이랍니다. 꼬마 새는 그렇게 엄마의 사랑을 받아먹으며 퍼드덕퍼드덕 서투른 날개짓을 흉내내고 미구 에는 몸을 날려 창공의 주인으로 거듭나는 그날을 맞이합니다.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내는 그 생리적 행진이 참으로 신기만기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중천을 헤가르며 자유로이 날으는 새를 보면서 가슴에 꿈을 심습니다. 나도 저 새처럼 날수 있으면 좋으련만, 나도 저 새처럼 온 세상을 마음껏 종횡했으면 좋으련만!         사람들은 부러움에 젖은 이 꿈을 마음의 메모리에 저장하는 그 순간부터 틈이 날때마다 나만의 꿈저장고를 열어보기도 하고 타임머신을 타고 천자만홍이 서려있는 가상의 세계로 훨훨 날으는 황홀경을 그려보기도 합니다. 그야말로 날개가 있다면  백조가 떼지어 노니는 청해호에도 날아보고, 야생 동물들이 화목하게 모여사는 아을산의 태고연한 자연에도 날아보고, 티벳의 청정고원을 수놓으며 유유히 풀뜯는 야크(牦牛)떼를 지척에 두고 저만치 내려앉은 무지개 머 금 은 솜구름도 만져보고,....         사람들은 조류보다 날개가 필요한건 인류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조물주의 윤허없이 날개를 가질수 없는 스스로의 한계 때문에 인조날개에 꿈을 싣는 일에 익숙합니다. 지금은 인조날개가 화려해질대로 화려해져 사람이 못하는 일 빼 고는 뭐든지 다 할수 있게 되었습니다. 마음만 먹는다면 지구밖의 모든 미지의 세계 를 앉아서 일주할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로 하여 미지의 것에 대한 갈망이 메마르게 되고 이는 또 사람들의 마음에다 작은 사막 하나를 만들어주었습니다. 그런데다가 가상의 세계 역시 이 세상을 쥐락펴락 하는 윗쳇이라는 걸작때문에 인간과 인간 사이 에는 낯선 사람마저 없어지고 비밀을 여는 비번들을 갖게 되였습니다. 고놈의 날개 때문에 전에는 신비롭기만 했던 모든것들이 초고속으로 페품처리되고 있습니다. 이런 연고로 60억이 사는 실상세계는 꼴불견스럽고 퇴행하는 일개의 초라한 마을이 되였 습니다.        그리하여 어떤 사람들은 이젠 날개가 부럽지 않고 날개가 인기를 잃어가고있다고 생각할 겁니다. 아닙니다! 커피의 향이 바다가 되여 출렁이는 아담한 문학의 섬에서 소중한 한잔을 기울이며 마주 앉은 문학도들에게서 이제 막 핑크빛 대화로 제조된 만능의 새 날개가 무수히 출산되었습니다. 심장 지닌 사람들이 일단 대박이 터져 그 기운을 타게 된다면 가보고싶어하는 곳을 어디든지 갈수 있습니다. 만약 그대가 가보고싶었던 곳이 매력을 잃어 헌신짝같은 존재로 되여버렸다면 나만의 락원을 만들어서라도 갈수가 있게 되였습니다. 이것은 바로 글자 나부랭이들을 이리저리 붙여 보석을 만드는 글 장인들의 공로패에 깃든 문과 학의 이야기입니다. 그들에게는 나름의 재량들이 묻어나오는 기적의 날개가 필요에 따라 수시로 탄생하게 되는 날개 의 원샘이 있답니다.   인간이 살아가는 길을 윤택나게 하는 근본은 내일을 위한 상향식 비행에 있습 니다. 문학도, 문화도, 건축도, 교육도,, 그 어느것이든 상상이라 이름하는 무형에너지에 힘입은 상승려정을 필요로 합니다. 이처럼 인간은 상상력이란 엔진을 품고있습니다. 이 무기의 위력을 알아보고자 하는 이들이 문학이라는 프림을 진하게 섞인 커피한잔으로 만났습니다. 그들은 마음의 한자리를 비워 지구밖으로의 행진을 꿈꾸고 있습니다. 그들이 있음으로 하여 인간의 큰집인 지구가 잔병앓이에 끊임없는 지금도 NASA가 발견한 제 2의 지구에 단방에 몸내릴 무한의 가능성이 이루어집니다. 그 가능함이 있기에 먹향기 그윽한 文이 꽃바다를 만들고있습니다. 이렇게 핀 꽃은 지지도 않고 늙지도 않습니다. 육체가 퇴행하는것은 막을수 없지만 지적인 젊음을 유지하여 미래에 연결시키는 일을 열어가는 것은 이들의 몫입니다. 세월의 걸음을 필요한 방향으로 돌려서 상시로 수많은 도약을 만들어가는 것 역시 이들의 몫입니다.          찜통 더위가 미쳐서 발가벗은 나날에도 문과 학은 커피한잔 가운데 놓고 서로의 마음속에 품은 빛나는 별들을 쏟아냈습니다. 학문과 문학의 동심들이 한잔의 커피향 으로 합류를 이루어냈으니 어딘들 못 날아보겠습니까! 이제 막 시동이 걸렸으니 세상 어디든지 가보고 싶은곳 끝까지 가보는건 시간문제일 뿐입니다. 우리는 라떼 한잔을 받쳐들고도 불쑥불쑥 터져나오는 지혜의 레이저로 겨례의 맥을 진단하군 합니다. 그리고 아메리카노 두잔으로 한자리에 멈춰서 있던 자신을 알아보고 제때제때에 재 충전의 호스도 꽂습니다. 영혼의 밧데리가 그득하니 차가는 소리를 가슴 열고 듣습니다. 잠시후 그 소리들은 자주색 블로베리쥬스 한잔으로 변하여 텅텅 비어 있었던 가슴의 벌판에 희망의 청사진을 멋지게 그려넣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날개가 완벽하게 완성되여 있는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슈퍼맨도 연습끝에 날개가 생겼답니다. 이 날개는 새로운 생의 지평을 열어가고자 하는 이에게만 있는 특이한 DNA입니다. 인생의 휴면 상태를 거절하고 싶다면 자신의 마음에다 날개를  다는 일에 게을리하지 않는게 이 세상 최상의 리치입니다.          어떤 이는 자기에겐 지금 날개가 없다고 말할겁니다. 하지만 지금 없다고하여 영 원히 없는것은 아닙니다. 인생은 연습이 없지만 훈련은 얼마든지 소유할수 있습니다. 이러한 훈련은 우리에게 능사란 바로 우리가 자기의 슬픔안에 있는 그림을 발견하고 아픔안에 있는 시와 노래를 알아보는 혜안을 갖추어가는 일임을 가르쳐줍니다. 그 가르침의 덕분에 우리는 지금 마음의 지평에다 새삶의 모습을 스케치하면서 미래로의 꿈을 무르익혀가고자 제각기 날개짓을 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예술은 이렇게 탄생하게 됩니다. 무한리필의 커피잔을 마주하고 앉아 작고 보잘것 없는 일상생활의 더미에 쌓아두었던 수다조각들이 지금 막 내일의 자신을 가꿀 에너지로 태어나는것을 봅니다. 느낍니다! 이로써 갈라터지려 하던 삶의 일상에 즐거움이란 밑거름을 주며 자신을 응원합니다. 물론 우리는 자신을 가꾸어 갈 시간이 얼마나 될지 모르지만 그 미지수에 연연하지 않고 커피 한잔으로 오늘의 삶에다 아름다운 미소를 심어봅니다. 그 미소가 꿈이 되어 날아오르는 모습을 그려봅니다.                                                                                                                                    2019년 10월에 씀      
19    [수필] 작은 설 (小年) 댓글:  조회:167  추천:0  2023-01-13
                            내일은 소년이라고 부르는 작은 명절이다. 우리의 정보통인 위쳇방 이방저방들에는 ‘소년행복’이라는 말들이 눈과 귀를 ‘오염’시키기 시작했고 그것도 성차지 않은 사람들은 멋진 그림과 우미한 음악을 배경화하여 그 모두에‘소년’이란 꼬리표를 달아서 배달을 거듭하고 있다. 내일은 작은 설이니 물만두를 만들어먹어야 한다는 시누이의 전화가 들어오는가 하면 살림집 주변을 감도는 매캐한 폭죽냄세 또한 설의 흥건한 기분을 더해준다. 개인 위쳇으로 들어오는 인사말도 심심치 않다. 내일을 찾아가는 오늘의 이 하루시간은 아무래도 ‘소년’의 아름다운 연무에 묻히고 말것 같다.        엄마가 남겨주신 기억에 의하면 이날은 단지 섣달 스무사흩날일 뿐이고 명절로는 말씀하시지 않았었다. 그러나 풍랑이 유난히 심했던 력사흐름에 밀려 터전을 옮겨 앉았고 현재는 공동체 중국의 소수민족으로 사는 우리에게는 우리가 안겨 사는 이 나라 이 명절을 지나칠수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조금만 공부해 보면 작은 설은 선진(先秦)때부터 몇천년 동안을 중화민족의 정서와 함께 해왔음을 알수 있다. 100여년도 넘게 이 대가족의 일원으로 살아온 우리는 이에 낯설지도 않다.  나는 사전에서 소년의 유래에 관련된 글귀들 속을 바로도 보고 거꾸로도 봐가면서 그 의미를 알아내고자 열심했다. 그 글귀들을 바로 보는 것은 전통문화의 흐름선을 그대로 받아들여 정해진 해석의 궤도를 따르자는데서이고 거꾸로 보는것은 글자 뒤에 숨어있는 역사의 내력에 새 의미를 부여해보자는데서이다.        소년의 내력을 지지콜콜 알아보기 전에 결과부터 말한다면 이날은, 말하자면 매년 섣달스무사흩날은 하늘에 사는 지존의 존재인 옥황상제를 찾아가는 조왕신 (灶神)에게 제를 지내고 이로 평안을 비는 날로 알려졌다.        조왕신은 누구이고 또 어찌하여 그는 옥황상제를 면대할 수 있는 대운을 가지게 되었을까? 나는 이것이 궁금해져 깨알사전을 아래우로 글귀짬을 훓어보았다. 버전이 여러갈래로 뻗어나가긴 했으나 뿌리는 하나로, 알고 보면 조왕신으로 추대받는 그 신적인 존재는 원래 평민출신의 장생이라는 이름을 가진 한 남자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일개 남아로 몇천년을 누리고 있는 중국의 전통세속문화를 만들어낸 것은 아이러니 하게도 삶의 옳바른 도덕의 룰을 지키지 않아서이라는 것이다.         장생의 이야기를 알아내는 순간 사람이 유명해지는 길은 성공에서뿐만 아니라 대실패에서도 있다는 걸 알고 놀랐다. 성공만을 향해 가는 세상길은 좁아질대로 좁아져 수없는 실패자가 속출하는게 삶이니 장생은 남다른 삶을 꿈어본 것일까? 대실패를 하여 위망의 탑을 올려보자고 생각했을까? 그도 나름 성공의 그림을 그리려 애쓰다가 거기까지 갔을까? 상상을 그만두고 장생을 알아보자.      장생은 혼인할때가 되어 성가를 하였다. 가정이 생겼으니 그 책임에 충실하고 아내에게 충성을 바치며 사는것이 정리였으나 아내를 맞은 후로는 세상 만방의 주색에 풍덩 빠져 원래도 얇았던 가업을 다 탕진해 먹고 나중에는 알거지로 나앉게 된다. 빌어서야 배를 달래며 사는 삶이 몸에 베어서 살던 어느날, 장생은 밥을 빌러 갔다가 전처 곽정향네 대문을 두드리게 된다. 루추한 꼴로도 밥을 듬뿍 담아준 그 고운 마음의 임자를 보고자 머리를 드는 순간 바로 자기의 전처임을 알아보고 장생은 지옥의 손에 잡혀버린다. 그는 자기의 과거 삶은 무릂을 꿇어도, 신령에게 호소를 해도 다 무효임을 그 순간에 깨닫는다. 붉은 쇠붙이를 쥐고 손이 타들어가는 한이 있어도 자신을 찾아낼수만 있다면 그는 과감히 그길로 가고자 했을것이나 자기에게 남은 생은 오직 죽음이라는 판단을 한다. 그는 부끄러움이 너무 깊어 죽어서도 다른 사람에게 알려지지 않게 하기 위해 어떤 이름모를 민가집 부엌의 가마밑에 붙어 음식을 만드는 불에 타 죽어버린다.        그런데 일이 되려고 그랬는지 이 일은 9만리를 달려 옥황상제의 귀에까지 전해진다. 옥황상제는 이 일의 자초지종을 안후 장생이 자기의 후안과 무치를 깨닫고 생명을 접어버렸다는것은 그에게 아직 구원의 여지가 남아있다고 너그럽게 여기고 그가 부억솥 밑에 붙어 죽었다하여 그를 ‘조신’ 즉 ‘조왕신’로 봉해준다. 그리고 해마다 그가 육체를 죽인 섣달스무사흩날에는 조왕신을 상천하게 하여 지상인의 삶의 모습을 고하여 듣도록 정하였다.        나쁜 일에 푹 빠졌던 장생이 그 추악한 본질을 알아보고 죽음을 택하는 각성을 가져오는 순간부터 삶의 대운은 빛을 동반하여 찾아온 것이다. 그는 옥황상제의 명에 따라 해마다 하늘로 올라가서 지상세계를 보고하게 되는 최고의 역을 담당한다. 조왕신이 대접을 받을 절호의 기회는 이렇게 온 것이다.        이날이 되면 민가들에서는 총동원이 되어 자기들의 대표로 뽑혀 상천하는 장생을 섬기는 일로 하루를 보내면서 즐거움을 만끽한다. 일단 먼저 일년내내 묵은 먼지들을 털어내고 진수성찬을 마련하여 먼길 떠나는 조왕신을 바랜다. 민생들은 이렇게 하는것이야말로 조왕신이 평안하게 하늘나라로 도달하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고, 옥황상제에게 자신들의 삶의 모습이 아름답게 전달되길 기원했을 것이다.        운이 따르자고 작심하면 요술쟁이도 피할 수 없게 되나보다. 전생에 있었던 깨달음 하나로 조왕신은 하늘로 올라가 그곳에서 한주 동안 업무보고를 하고 마지막 날 즉 섣달 그믐날에는 다시 부억가마 밑으로 귀환하여 다시 성대한 대접을 받는 운명을누린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한해동안 행했던 선과 악이 조왕신에 의해 일일이 옥황상제에게 알려지고 이를 기준으로 옥황상제가 다시 상과 벌을 내린다고 생각하여 그가 오는 그믐날에는 더 큰 잔치를 벌여서 영접하는 일에서 복을 느낀다.        조왕신은 하늘로 올라가는 날 최대의  대접을 받는다. 아마도 좋은 것이 좋은것이 라고 하여 민간에서는 삶에다 길함의 의미를 싣고자 매년 섣달스무사흩날을 조신의 업적을 기리는 작은 설로 정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이날부터 시작하여 일년 동안 일에 절어진 심신에 충분한 쉼을 주는 날로 기억하는것도 참으로 아름답다고 할 것이다.        거꾸로 보는 시간을 잠깐 가져본다. 새로운 해석들이 인식의 그릇을 채울만큼 줄을 섰다. 그 중 단 한가지만 설파하고자 한다. 그것은 이 세속문화의 바탕에는 사람들에게 아름답게 착각되는 뇌물문화, 우리의 현대식말로 한다면 선물문화가 기원되지 않았나 싶다. 조왕신에게 잘 보이기 위한, 옥황상제에게서 벌이 아닌, 상을 받기 위한 깊이 있는 생각이 담긴 것이라 하여도 괜찮을듯 싶다. 여기에서 당신도 좋고 나도 좋은 것이 다 좋은 것이라는 중용 문화의 원래의 모습을 읽게 된다.        이처럼 작은설은 나에게 중화의 기둥문화 중용의 근원을 리해하게 하는 날이라 하여 작은 설레임으로 남는다. 그러나 이날은 집집마다가 사람마다가 새해의 희망을 시작하는 동락의 날이라는것에 더 큰 의미를 실어주고 싶은것이 현재 나의 진실된 마음임도 밝혀두고 간다.                                                                                                                             2023년 1월 13일  씀  
18    [수필] 만족의 집에서 살고지고! 댓글:  조회:177  추천:0  2023-01-12
                  만족의 집에서 살고지고!       무릇 정상인이라면 가난한 날에는 살아가기가 막막했다고 말한다. 나 역시 이러한 설법에 의문을 품어본적은 없다. 가난한 날을 밥먹듯 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주는 확고한 신념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그때는 밥상에 반찬있는 날이 많지 않았는데, 거의 끼마다 노랑 조밥에 간장을 비벼먹었던 기억이다. 조밥이 까칠해서 잘 넘어 가지 않으면 물독 바가지로 냉수를 벌컬벌컥 들이키고 단지 배를 불리기 위한 목적으로 좀 편해진 식도 안에 다시 밥을 떠 넣군 했었던 지난 시절의 모습도 삼삼하다. 그리고 통옥수수에 팥알을 넣고 삶아먹는 통옥수수밥에 비하면 조밥은 또 열배의  사치라는 것도 잊혀지지 않는다.             조밥과는 달리 통옥수수밥은 목에 걸리진 않는다. 그러나 밥알이 너무 굵어 배 불릴 때까지 씹다 나면 양볼이 무감각해지고 맛감이 무뎌지게 된다. 별 수 있나, 세상만물 속에 얹혀 살려면 조건 없이 먹어야 했던 시절에 양식이 되어준 옥수수밥의 추억에 감사를 드려야 하겠지! 그밖에 감자알로 하루를 살기도 했었는데  감자알은 윤활하고 달큼한 맛이 있어 먹기가 괜찮았었다. 감자를 쪄서 먹는 것이 주식이었고 엄마가 손이 돌아가시면 가끔 감자떡도 만들어주셔서 그래도 괜찮은 기억을 남겼다. 그렇지만 그 때 그 맛에 질려버렸는지 지금도 감자요리는  내 식단에 적혀있지  않다. 먹는 것도 변변치 않았으니 입는 것은 말해 뭘하랴. 한 겨울동안 속옷없이 팬티 위에 솜바지를 입었을 때 칼바람이 그채로 몸을 토막쳐 먹던 추운 기억이나, 갈아입을 옷이 없어 빌려입던 슬픈 기억이 지금도 파랗게 살아있다. 그러한 아픈 기억들이 지금은 아름다운 추억 으로 남았다. 이유는 그런 극한을 이겨내고 좋은 생활을 마련하는 오늘이 있어서 그럴까!.      옷 가난은 그런데로 참을 수 있었으나 배 가난은 정말 참을 수가 없었다. 낮에는 그럭저럭 집일이나 장난 속에 시간을 쉽게 보냈지만 잠자리 이불 속에 누웠을 때 찾아오는 고픔의 고통을 달래기란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때는 밤이 어쩌면 그렇게도 길었는지! 설이나 부모님 생일을 내놓고  고기 구경을 하지 못한다.  그러니 어쩌다가 육붙이를 먹는 경우에는 가난에 길들여진 배가 기름진 부자음식에 체해서 설사만 하는 때가 거의다. 아마도 성장기에 든 마을의 청년들도 그러한 고기의 고픔을 참지 못해 그랬는지 여염집 닭을 훔쳐다 밤도와 같이 고와 먹기도 하는 일도 여기저기서 생겼었다. 지금도 환한데, 어느 하루 밤에는 우리 집에도 닭도적이 들었었다. 한밤중인데 닭의 집에 뱀이라도 들어간 것처럼 닭들의 비명소리가 들려왔고, 아빠 엄마는 손전지를 들고 속옷바람으로 번개같이 뛰어 나갔으나 날렵한 총각들의 꼬리는 잡지 못하였다. 엄마는 날이 희붐히 밝기 바쁘게 닭들을 집합시켜 놓고 열번도 넘게 헤아렸지만 끝내는 씨암탉 세 마리가 없어진 사실을 확인하고 말았다. 그때 아픈 가슴을 두드리며 푸념반, 저주반을 반죽하시던 엄마의 목소리와 모습이 지금도 눈앞에 영화를 돌린다. 후에야 안 일이지만 오빠도 또래들 몇몇이 남의 집 닭장을 털어서 궁증을 뗐다고 한다. 그러니 가난 앞에서 군자와 소인을 가리기가 쉽지 않다는 말이 그런데 없다. 그런 지지리 가난한 날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겠지만 가난한 사람이 곧은 절개를 지키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른다. 가난한 날에 밥은 하늘이고 땅이라는 설법보다 더 정확한 표현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 생활은 옛날에 비하면 지주가 되고 자본가가 된 듯이 호사스러운데도 잘 살지 못하고 있다는 설법에 시장이 크다. 나는 이에 대해 일찍 생각해 본적이 없다. 그런 느낌을 따르게 되는 것은 나를 포함한 인간들이 무엇이 잘 사는 것인 지에 분별이 서지 않았기 때문일까.        알다 싶이 오늘날은 배불리는 일에 걱정이 필요없을 뿐 더러 마음만 먹는다면 산해진미도 먹을 수 있는 사람이 적지 않다. 하지만 그것을 먹지 못하는 사람 속에는 남이 먹을 수 있는 산해진미를 자기는 먹을 수 없음으로 하여 자기의 생활이 좋지 못하다고 생각하는데 길들어있다. 그리고 자택을 갖고 있으면서도 저쪽에 별장이 일어서면 금방 못사는 사람으로 전락되는 사람은 또 얼마나 될까!  A라는 사람이 붐비는 버스를 이용하고 있다가 B라는 사람이 자가용 차에 앉아서 오가는걸 보면 그 역시  금방 못산다는 느낌 속에 빠져버린다. 월급이 대폭 인상되기는 했지만   자기 보다 많이 또는 곱으로 버는 사람들만 눈에 담는 사람도 천만억만으로 늘 판이다. 그래서 요즘들어 보통 우리들의 귀를 배불리는 요인은 ‘젠장, 요즘 세월은 참 살기가 쉽지 않다니까’라는 맥빠진 소리들이다.         모르긴 해도 잘 산다는 것은 스프링 성격을 가진 것 같기도 하다. 우리가 숨쉬는 시대에는 생활을 윤택시키는 물질이 유족하고 치부의 정보가 넘쳐나고 있는 배면에 빛나는 유혹과 어두운 함정도 심심찮다. 그런 이유로 가지고 있으면서도 부족함을 느끼는가 보다. 또한 그런 연고로 개인 의지에 따른 당당한 선택 사항이 가난한 날에 비해 엄청 줄어들고 있다. 그렇다고 대신 만물이 충분한 오늘에 무엇을 갖고 싶다면 금방 무엇이 솟아나는 것도 아닌데…          어제로 되돌아가 보면 가난했던 나날들에 진정 마음심처로부터 우러나온 최선의 요구라면 단순히 배불리 먹는 것 뿐이다. 어느 신문에서 얻어 읽은 것인데, 귀주성의 어느 궁벽한 산골에는 어른이나 아이들이나 할 것없이 밥만 배부르게 먹으면 한가히 모여 해볕을 쬐면서 자연도 누리고, 밤이 되면 달콤하고 행복한 잠을 잔다고 한다. 그들은 만사에 마음을 긁지 않기에 눈길이 갖 태어난 새끼양처럼 부드럽다고 한다. 그들의 삶의 모습 속을 잘 들여다 보면 가난이란 살기 어려운 나쁜 면을 갖고 있지만 만족하기 쉬운 좋은 면도 갖고 있음이 해명된다. 인간은 만족하면 행복해진다. 만족이란 것은 마음의 상태에 대한 정의이다. 지내본 사람은 잘 알겠지만, 가난한 날에 힘든 것은 배고픔이고 유족한 날에 힘든 것은 마음의 고픔이이고 즐거움의 고갈이다. 그런데 마음에 여지가 없고 기분이 상쾌하지 않으면 무엇을 먹은들 맛을 느낄 수 없으니 행복의 그림자는 자연 멀리멀리로 사라지기 가버린다.         알고 보면 잘 산다는 것은 물질의 것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보다는 정신의 것이고 마음의 것이고 영혼의 것이다. 그렇다면 흔히 인간의 삶의 본원을 좌우하는 영혼은 어디서 우리 곁으로 오는건가? 영혼은 독서에서 오고 자기 가꿈에서 오고  지혜에서 오고  안정된 마음의 샘에서 솟는다. 영혼은 거지같은 허영을 멀리했을 때 오고 걸레같은 욕심을 접었을 때 온다. 영혼은 또 시간을 아낄 때 오고, 타자를 존경할 줄 아는 사람에게 왕림하며, 건강관리를 잘 할 때 찾아든다. 그러니 사실 잘 사는 것은  개개인의 마음이 그려진 손안에 담겨있는 법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자기 손안에 있는 이 운명을 보좌하는 기교 다듬기에 게을리 하고는 “내가 어디가 부족해”하는 불평의 뿌리만 키우는데 신경을 세운다.      그러니 잘 사는게 뭔지 모르게 되는 것에는 서로 다른 정답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원제목: 욕심을 멀리하는 길은 어디에 있나?                                     발표내역: (2018년 5기)    
17    [수필] 페스티벌은 삶의 노래 댓글:  조회:144  추천:0  2023-01-09
         페스티벌은 삶의 노래               요즘은 귀빈 대접을 받을 수 있는 다양한 잔치들이 많아져 살맛이 난다. 약간 시간만 내면 즐거운 만남과 다양한 음식을 즐길 수 있는 곳이 과연 심심치 않다. 모임의 장에서 자연의 애무를 받으며, 찬란한 네온의 빛을 입으며, 달콤한 와인잔 기울이며, 한가로운 시간들을 보낼 수 있어 마음은 자못 넉넉하게 된다.         사람들은 이러한 잔치를 가리켜 '축제'라고 이름한다. 영어를 배우는 람들의 대오가 늘면서 요즘은 ‘축제’라는 우리말이 페스티벌(festival)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경우가 더 많아졌다. 그래서 이에서도 그렇게 지칭하기로 한다.      페스티벌은 삶의 화장품이나 다름없는 불가결의 자격으로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꾸며준다. 어떠한 성격의 페스티벌이든 그에 경사의 의미가 담겨있어서 일단 정신적 고양을 한 번 시켜주는 역할을 하기에  자기의 시간과 금전과 여가시간을 할애하여 참석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그 화려함 뒤에 숨겨진 걱정스러운 일면도 생기는 것을 묘파하지 않을 수 가 없다.  요즘 페스티벌들은 어떠한 화제에 포커스를 맟추어 놓고 미소를 지으며 '꾼'들마냥 모여서 한잔씩 나누고 헤어지는 모임의 한가지로 도장이 찍히는 경우가 그러하다. 그리하여 ‘얼마나 아름다웠던 시간이냐’ 라든가 ‘너무 좋은 만남이였어’ 와 같은 고운 느낌의 색상들은 빛이 바래지기 시작하였다. 스트레스 해소제나 다름없는 만남의 시간들이 소중함을 몰라서라기보다 새라새로운 변화들에 눈 팔린 사람들의 내심세계가 요술을 맞이한 것이다. 세상에 낡지 않는 물건이 없듯이 편안하게 풀어보면 그것도 별 나쁜 것은 아닌 셈이다. 잔치를 매일같이 치르는 집주인에게 번마다 색다 르게 꾸며내길 바란다는 것은 너무도 피곤하게 하는 성가신 요구가 될 수도 있다. 자주 만나는 이유로  페스티벌 행사가 이젠 싱거워졌다고 생각하는 행렬이 길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것이다. 재한 중국인 문화 축제와 같은 국제 잔치일 경우에도 역시 마찬가지 공식시스템을 면치 못하는 까닭을 알만도 하다. 어떤  페스티벌에 꼬박 세번만 참석해보면 잔치의 원색이 바래지고 있구나 하는 느낌이 파고 들게 된다. 차량의 무료 왕복 운행, 휴게소에서의 도시락 점심, 행사장 에서의 도시락 저녁식사, 노래자랑, 그에 따른 상주기, 주최담당측의 축사, 끝날 무렵의 기념품 선물하기로 경직된 듯한 그 순서감이 양고기꼬치마냥 흐름선에 쭉 꿰여져 있다. 국제 금산인삼페스티벌도 별다른 기대를 품고 가긴 했으나 역시 인삼을 캐고, 캔 인삼을 들고 사진을 찍고, 인삼 삼계탕을 대접 받고, 인삼 제품 구경하고, 귀가하는 공식화된 코스 그대로를 따랐을 뿐이었다. 좀 다른 것이 있었다면 피부색이 더 다양해진 것뿐이다. 국제Food페스티벌도 별로 옛맛의 패러디었다. 세계 각국 인사들이 자국의 음식을 만들어놓고, 오가는 손님을 불러들여 무료 체험을 하게 하고 무기명 투표 이후 등급에 따른 수상식을 행하고 제구들을 청소 운반하는 것으로 끝을 보는 것이 전부 였다. 말하자면 패스티벌 대부분은 너무도 담백한 맛에만 정박해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른 맛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어찌보면 만사에는 다 부족함이 있기 마련이고 사람들을 그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산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축제라는 행사는 이러한 따분함을 떠나 일차적으로 먼저 세상에 사는 가족들의 가슴의 빈 구석을 얼마만이라도 채워주고 수식해주고 있어 감사해야 할 일이긴 하다. 물을 탄 술이라고 할 만큼 맛의 원조가 심심해져가고 있긴 해도 늘 마음을 끄는데가 있는 것이야말로 페스티벌의 경지인 때문인가 한다.  이것이 다원화 세상에 페스티벌이 살아남는 이유같은 것일 것이다.    어찌하여 어마어마한 돈을 축내여 가며 행사잔치를 할가 하는 의혹도 가끔 마음을 찾는다.  모든 참석자들에게 주는 선물의 값을 묶으면 눈 앞에 보이는 빈자들을 배불리 먹일 수 있을것 같고, 보잘것 없는 4년삼이긴 해도 체험에 온 사람마다에게 한뿌리씩 선물하는 그것으로 수해나 흑사태 한번이면 빈털터리로 전락되는 마을들을 존엄으로 세워낼 수도 있을 것 같고, 오가는 길거리 모든 사람 분별없이 무료로 체험케 하는 그 다량의 음식들을 화페로 바꾸면 국제 의미를 갖춘 근사한 레스토랑쯤은 넉넉하니 만들 수도 있을 것도 같다. 그리고 행사장의 책임자분들과 도우미들이 봉헌하는 몸과 마음 담아 모으면 또 얼마나 많은 가치의 산을 높일 수 있을가. 정말 한참씩 넋 놓고 생각해 보아도 심산 요지경이다.      페스티벌은 어쩌면 요즘인들이 사치를 위해 만들어낸 미궁을 닮은 특허품 같기도 하다. 하지만 야릇한건 이러한 생각에 시각을 새롭게 해보면 또 다른 이름으로 불러 봐야 할것 같다는 느낌도 선다는 사실이다. 분명한 것은 풍요로운 이름자 밑에 헤아릴 수없는 자본이 낭비의 강을 이루고 흘러가고 있기는 하지만 이러한 낭비 부분을 전혀 감안도 않은것 같은 환한 모습으로 단순한 의미의 실현을 위한 그런 시라소니의 금자탑을 쌓는 일이 아닐 것이라는 그것이다. 그렇다면 페스티벌이란 시대동전의 배면에는 어떤 그림이 그려져 있는걸까.         눈한번 크게 뜨고 세심을 기울여 살펴보니 축제의 뒷 마당에는 정말 화려한 무늬가 있는 그림들이 걸려있다.  무엇이든 받아 안을 수 있는 따스한 장을 소박하게 꾸며놓고 미소와 나눔으로 가까이 다가가서 어떤 거대한 물체를 자랑의 대안으로 운행해 가고 있는 듯 한 그림, 열두폭 치마의 손으로 나누어 흥성흥성해진 작은 마당안을 들여다보는 사람이 보이는가 싶더니 문을 열고 들어서는 사람이 그려진 그림, 포장이 잘 된 예쁜 선물을 받아 들고 환하게 웃는 아줌마가 그려진 그림, 체험장을 올리뛰고 내리뛰며 신이 나있는 어린이들의 귀여운 모습이 담긴 그림……           정말 이 그림을 보고 끌리지 않을 사람이 몇이 있으랴는 자신감이 묻어있는 작은 설명글들을 읽고 있노라니 욕망으로 사는 인류 본성의 좌판에 집짓고 있을 소유욕의 금고를 허물어 가져가는 느낌을 하게 된다. 페스티벌이란 존재는 이렇게 스스로의 미모를 한껏 사람들의 시야와 마음에 심어주고 그것을 매체로 하여 얼굴을 익히고 숨소리 나누고 가슴뛰는 소리를 듣게 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 같다. 어쩌면 패스티벌이란 자신이 굴리는 굴렁쇠를 따라 착착 열리는 수단과 챤스와 인포메이션을  개척의 신화 콜롬보스의 학문속에 융합시킨 산물일지도 모른다. 나는 페스티벌에 갈때마다 그것이 인정의 룰에 있는 눈금을 마음으로 헤아리고 정을 먹으며 사는 인간들에게 고독한 마음을 풀어주기 위해 태어난 것 같기도 하고, 다이야몬드가 잔뜩 붙은 양의 몸뚱이를 뜯는 독수리에게 박수만 보내는 고전의 신 같기도 하고, 잠시 무료공급자로 둔갑하여 출렁이는 경제의 바다를 만들고 있는듯도 하고, 쾌활하고 즐거운 축하잔치의 덫을 만장같이 쳐놓고 스스로를 만드는 음모가인듯도 하고, 참가자들의 몸과 눈과 마음을 불러가 경영의 족보속에 기입시키는 홍보의 문명한 그물인것 같기도 하고…         어쩜 페스티벌이란 이름은 이러한 삶의 노래가 점철된 집합체들에서 모여서 이루어졌을 것이다. 그 이름의 내용을 채우려면 필시 인간과 인간이 서로를 융합할 때만이 가능하여 잔치가 행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축제의 원조는 즐거움의 에너지를 무한 극대화하는데까지 가는 것이 목적일것이다.  그야말로 마음의 풍경과 삶의 낙원이 합일된 교류의 새 얼굴이 성형되기까지에서 생긴 휴게소 같은 쉼터일것이다.     축제라는 것은 좋은 것을 좋다고 말하고  자기 몸의 털을 뽑아 잔칫상을 차려 많은 사람들에게 새 기회의 삽작문들을  열어주는  낭비와 즐거움이 믹스된 산물이라 해야 할 것이다. 삶의 새 질서가 다양한 페스티벌의 땅에 자리를 펴고  인간의 좁은 경비실을 확장시키고 있는 것이다. 페스티벌이 나름대로 우리 곁에 사는 것은 우리에게 스스로의 마음자락을 자유롭게 펴내게 하는 미덕을 키워주기 위함이 아니냐 싶다.                                                             원 제목:    마음의 자락을 펴내는 마당                                           발표내역: (2018년 5기)                                     
16    [수필] 다독상(多读奖) 댓글:  조회:132  추천:0  2023-01-08
            다독상(多读奖)                                                         택시를 타고 M시  공증 청사로 운전면허증을 공증하러 찾아갔다. 건물의 1층 로비에 들어서니 8명 쯤 되는 장정들이 휴게실 의자에 비스듬히 앉아 흡연을 하거나 잡담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관공서에 의뢰한 공증 서류가 조속히 완성되어 나오길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운전면허증 공증실은 3층이라 하여 그리로 올라갔다. 그 곳 역시 서류를 의뢰하고 나서 완료되기를 기다리는 대기 중 인원이 10여명 넘어 있었다. 휴대폰 게임하는 이. 쪽잠 자는 이, 한담하는 이, 타인의 서류절차 진행을 멍하니 지켜보고 있는 이… 그들 역시 1층 로비에서 대기하고 있는 사람들처럼 시간아 좀 빨리 가거라를 하나같이 복사하고 있었다. 다가 공증을 의뢰한 후의 즉석 결과를 원하지겠만 가운데 걸려있는 시간이 보통 3시간이 되는지라 여기서는 기다림의 왕좌에서 시간을 반죽하는 수밖에 별 도리가 없다.              기다림의 자세는 도시 문명과 개개인의 교양 차원에 따라 다르다. 짧은 시간을 기다리면서도 그것을 길게 사용하는 사람이 있고, 긴 시간이더라도 한담이나 담배연기로 줄이는 사람이 있다. 언젠가 북경 지하철을 탔을 때었는데 그때 입석마저 콩나물통속 같은데서도 가끔 기분을 밝게해주는 신문지 번지는 소리가 들려와서 좋았던 기억이 있다.  상해, 소주, 천진에서도 가끔 눈에 즐겁고 귀가 환해지는 독서장면이 안겨왔었다. 그런데 청도나 위해나 연대나 대련 같은 곳에서는 열차석이나 장거리 버스안에서 이런 장면들과 거의 마주하지 못했던 기억이고 지금도 그러하다. 시간은 이러한 모습을 두고 말없이 공정하게 생명의 한 토막에 플러스와 마이너스를 해 줄 뿐이다.            4년전으로 기억이 된다. 내가 위쳇을 보기 시작한지가 2014년 6월부터이니까 아마도 그때 시골에서는 아직도 위쳇과 평유쵠에 대해 별로 요해가 없었던 것이라 기억이 된다. 바로 그 시점에 나는 작은 수술을 한 남편의 병간호를 위해 입원실에서 한주쯤을 보내게 되었다. 정작 긴 시간과 같이 있어보니 시간 보내기가 지루하다는 말의 깊이를 알듯도 하였다. 다행히 여러 가지 볼거리가 있어 그런대로 하루하루를 넘겼다. 처음에는 다른 환자와 병간호를 온 가족들 보기에 좀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소심해도 신문과 책장 번지는 소리는 죽이기 어려웠기때문이다. 그러나 곧 당당한 일로 생각하게 되었다. 본인까지 합하면 네명의 간호인원이 한 병실에 있었는데 그들은 타인의 정숙한 공간 파괴에 대해 불안 의식같은건 전혀 갖고 있지 않은듯 했다. 왈패스럽게 침 튕기며 세상만사 주고 받고 해바라기를 까고 또 몇 명씩 문병을 와서는 높은 소리로 주고 받았다. 아무리 신문지번지는 소리가 높다한들 그들의  소리의 당당함과는 견줄 수 없다는 것을 느낌하고는 그에 참고 지낼수 밖에 없었다. 대신 그들도 내가 내는 소리에 대해 개의치 않았다.       독서를 좋아하는 것이 한 사람의 교양이라면 소리높여 말하는 것도 그 사람에게는 굳어진 습관일 것이다. 누군가가 이것이 우아하고 그것이 예의적이고 저것이 고상한 것라고 가르려 해도 삶의 환경 토양에 따라 개개인마다 다를 것이니 그쯤에서 눈앞의 현실에 적응됨이 도리일 것이다.                 다원화된 삶의 양상을 원하는 오늘날 서민의 분위기 속에 책 읽는 즐거움이 엄청 삭감되어 있다는 것을 나름대로 짚어본다. 인간삶의 이데올로기에서 한시도 멀리하지 않고 늘 동참해야 할 서정과 슬기의 발원지가 차츰 고갈되어지고 있다고 말하면 과분할지. 인터넷 읽기 시대에 살긴 하지만, 그렇다고 기기의 옆을 떠나서 사는 여유 시간들에 독서의 제로상태만으로 생활을 채울 수는 없지 않은가. 다 알다시피 표준 미달의 건물에 사는 경우, 윗층물이 아래집으로 이사를 하여 작은 강을 만들거나, 또는 여름 비물에 벽이 젖어들거나 폴싹부실 흘러내리는 일을 체험하는 여염집들이 있다.  이러한 것들은 처음에는 핫이슈로 뜨다가 어느 순간 그냥 지나치는 일이 되어버렸다.하다면 사람이 책보다 마작이나 윗쳇이나 술좌석에 더 익숙해 있을 때는 이러한 표준 미달의 건물과 무엇이 다를가. 공부 해라, 책 보라가 먹히지 않는 자식을 원망하는 사람을 누드화 시킨다면 다만 연장자 혹자는 부모라는 외의가 고작일 것이다. 다들 유족한 사람이 되고 부자가 되고 있지만 동시에 모두들 가난뱅이가 되고 있기도 하다. 세계에서 책읽기의 최고라고 불리우는 일본인의 책읽기 풍속은 바라보지 않아도 좋다. 다만 생명을 맡아 주는 삶이라는 어머니의 얼굴에 여드름이 몇 개 생겼고 유방에 생긴 종양의 성질은 무엇이라고 진단하고 지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할 것이다.         외국 공부시절에 나에게서 과외를 받던 3학년 여학생에게서 받은 충격에 가까운 감동이 아직도 살아있다. 아직 애티가 진하게 묻어있는 그 꼬마의 공부방 벽 높은 곳에는 많은 수상장이 줄지어 걸려 있다. 그 중에 “다독상[多讀]”이란 상장이 유난히 눈길을 끌었다. 알고 보니 책 많이 읽은 학생에게 주는 상장인 것이다. 어떠한 책을 읽었냐고 하니까 책장을 가리켜 보이는데 500여권의 종류 다양한 독물[讀物]이 있었다. 그중 읽은 것이 대부분이라고 하였을 때 정말 놀람과 감동과 함께 부끄러움도  감출 수가 없었다.       책을 읽음에 있어 한 글자씩, 한 줄씩, 한 페이지씩, 한 권씩 읽는 흐름은 다를 바 없겠으나 결과는 천양지별을 이루어낼 수 있다. 그것은 정신력과 의지력, 말하자면 사랑과 열심과 항심이 베푸는 기적의 집을 지속하여 경영할 수 있냐 없냐가 시금석이 되어준다. 누구나가 다 이 기적의 집안 식구가 되였으면 하는 꿈과, 그것을 초월한 꿈넘어 꿈을 가지기를 좋아한다. 하지만 나의 경험에 비추어보면 인간의 균일 요구에 가꾸운 이것은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자고 일어나면 무용지물에 가까운 것으로 전락하고 마는게 아니냐 싶다. 무엇이나 끊이지 않고 하는 것이 중요하다. 책 읽기는 더욱 그러하다. 공무원 시험을 목적으로 책을 읽는 것, 대학 진학을 위해 책을 읽는 것, 상사에 잘 보이기 위해 책을 읽는 것, 가르치기 위해 책을 읽는 것, 즐거움을 위해 책을 읽는 것, 교양 향상을 위해 책을 읽는 것, 글 쓰기 위해 책을 읽는 것, 술상 친구들에게 스스로의 위상을 세우기 위해 책을 읽는 것, 지루함을 이기기 위해 책을 읽는 것... 어떠한 방식으로든 책을 읽는 목표를 향해 앞으로 가기만 한다면 조건부 달지 말고 미소를 보내야 하는 일이다. 그만큼 스스로 읽는 책이 쌓이고 쌓여 인간 모두에게 교양대학의 영원한 자격을 지원해 주는 것이다.       인간나무는 과정을 속성으로 하고 자란다. 그 나무가 얼마나 높고 얼마나 곧으며 또 얼마나 푸르른가에 상관없이 공부는 영원히 성장의 여정 속에 산다. 성장 완료 상태의 인간은 우주 나라로 삶의 터전을 이전하는 날이 와도 가능하지 않다. 배움의 최고 정상에 올랐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한참은 잘못 된 오해의 옥속에 갇혀버린거나 다름이 없다. 금전을 인간 신상의 지방이라고 이른다면 장소와 때에 상관없이 다독하는 것은 그야말로 인간의 담백질과 비타민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운동이 건건강위생의 사우나라고 한다면 책 읽기는 정신때밀이를 위한 찜질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삶의 미래공간을 살찌우는데 배움을 따를자는 없다. 배움은 인간의 다른 한 이름이다.                         발표내역: (2018년 5월호)                                 
15    [수필] 일상의 저변에는 ...... 댓글:  조회:157  추천:0  2023-01-06
      마스크 착용을 단단히 하고 아침시장을 갔다. 주차를 해놓고 차에서 내리는데 해산물의 맛있는 비린 냄새부터 나를 반겼다. 저 먼발치에서 사구려를 웨치는 소리가 귀맛을 돋구고 유유히 흐르는 시장의 인파가 일렁거리는 것이 한눈에 안겨왔다. 생동하는 시장의 모습이 참 좋다. 오늘은 시금치하고 블루베리, 토종계란을 사야 한다. 그리고 아침시장의 오붓한 야외식당으로 가서 조반까지 해결하고 귀가한다. 순두부 한 그릇과 야채말이 하나, 그리고 녹차 계란 하나면 영양만점 아침식사가 될터이니. 식사밖에도 금방 갈아서 우려낸 보얀 콩물을 두 컵 사가지고 가야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시장 입구를 향해 걸어가는데 유난히 눈길을 끄는 것이 있어 눈여겨보니 안경을 끼고 깊은 사색을 하고 있는 표정을 한 조각상이었다. 다시 보니 그 조각상이 자리한 곳은 새로 오픈한 자그마한 약국 출입문앞이었다. 약국의 문은 잠겨져 있었지만 그 조각상은 든든한 지킴이마냥 지키고 서있었다. 나는 그 조각상에 대해 궁금해지는 마음을 달래보고자 휴대폰의 바이두카메라에 담아 검색버튼을 눌렀다. 그 조각상이 누구인지를 확인해내는 순간 나는 크게 놀라고 말았다. 조각상모델은 ‘의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히포크라테스(Hippocrates)였다. 고대 그리스의 의사로 인체 해부를 중시하고 임상 관찰과 병리 연구를 강조하고 체액학설을 제기한 인류의학의 선구자였다.        보잘것 없는 자그마한 약국앞에 이렇게 거물급 인물조각상을 세워놓다니 하는식의 세속적인 생각이 먼저 앞서긴 했으나 요즘 ‘오직 신적인 존재만이 이 세상을 안다’는 말이 흥행할 정도로 바이러스의 기승에 엉망을 닮아가는 마당에서 내가 히포크 라테스라는 의학의 선구자를 만났다는 것은 큰 경사라는 감이 더 강하게 들었다. 이어 험난해진 세상을 긍정적으로 살게 하는 힘을 주는 또 하나의 원천을 얻은것같은 보배스러운 생각도 들었다. 히포크라테스는 약국을 지키고 선 것이 아니라 자기 앞을 지나가는 이들에게 건강을 나누어주는 신령한 존재같았다. 네번째로 덮친 코로나의 왕심술에 빠져 일상의 자리를 조금씩 내주며 마음의 불안을 잠재우지 못하고 살아가는 나날에, 육신이 너덜너덜 익어 떨어질듯한 찜통더위에도 마스크중무장을 벗지 못하고 사는 날들이 이어지고 있는 와중에 이런 상서로운 기운을 옮겨받다니, 참으로 경사가 따로 없다.       요즘 글로벌 대사인 올림픽경기가 한창 열기를 올리고 있다. 그런데 경기장을 볼라치면 눈이 딱 감기고 기가 떡 막힌다. 국가를 대표하는 스포츠선수들이 경기 종목을 마감하는 즉시로 마스크착용부터 한다. 그들이 휴식처 의자에 돌아가서도 선수들끼리 주먹끄터머리를 스치거나 또는 팔굽악수를 통해 인사를 건네야 하는 작고도 큰 서글픔이 경기장의 구석마다에 얼기설기 서려있다. 심지어 경기를 치르 다가 스톱을 하여 코치의 지도를 받는 고 단편의 시간에도 마스크를 착용하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가 있는데 경기장에서 매일마다 감염이 되는 선수들이 두자리수로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가끔 포옹하는 ‘용사’들이 있긴 하나 편하고 자연스러웠던 이러한 가까이하기가 반칙이라고 꼬집을만큼 꺼림직스러운 일처럼 느껴지게 한다. 경기장의 심장가운데 퐁퐁 넘쳐야 할 박수소리와 응원소리 또한 푹 꺼져버렸다. 멀리서 봤을 때 관중석이 가득찬듯 하나 관중코끝도 볼수 없는 랭냉한 무관중석은 불안의 추만 무겁게 얹고 또 얹어지고 있다.   이렇게 우리는 대사와 소사를 막론하고 뾰족뾰족 일어선 불안의 가시들에게 모든 일상들이 때끔때끔 빈자리 하나 없이 찔리는 속에 숨막히게 닫힌 생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누구나 우리를 괴롭히는 그 ‘난쟁이거인’을 정복하고야 말 날이 올것이라는 신념장만은 포기하지 않고 가슴으로 키워가고 있다. 삶은 사활을 평상심 하나로 대한다. 삶이라는 이 거룩한 존재는 어떠한 비상의 경우에도 앞을 향한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그 마당에서 살아가는 인간은 그 룰에 완벽하게 길들여져서 땅이 꺼지고 하늘이 구멍난다고 해도 희망의 티켓은 고스란히 품고 살아간다. 만가지 어려움을 넘어서서 승리의 대안까지에 꼭 이르고야 마는 인간성은 삶이라는 일상이 우리모두에게 준 선물이기도 하다. 나도 례외가 아니다. 보기엔 소박하나 무적의 힘으로 이겨낼것이라는 생각은 내 마음에서 이미 커다란 나무로 서있다.        의학의 힘이 무궁무진하다 것을 우린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다. 인간 몸의 생명적 균형을 잡아주는 일부터 시작해서 생명의 세포들에게 목욕을 시키고 다시 따뜻한 생명옷을 입혀서 삶이 춥지 않게 해 주는 일, 바이러스가 천변만화를 하고 와도 한눈에 딱 알아보고 꼼짝 못하게 다스려 낼 수 있는 일, 사그라져가는 삶의 불길을 올려주는 일 ......... 인간이 살아가는 길에서 보호신의 일을 한다. 사람들이 의학을 무기로 단장한 사람에게 백의천사란 이름을 붙여주는 것을 그냥 습관적으로 불렀었 지만 이제는 백의천사란 네 글자가 갖고 있는 위대함과 지혜로움을 가슴으로 부르고 싶다.         그러나 의학의 몸에 생명지킴이란 파워가 영생하고 그것이 우리 삶속에 영원히 살아 숨쉬게 하려면 개개인의 행위를 눈높이 갖춘 자율이라는 마음의 그릇에다 잘 챙겨담고 다녀야 한다는 것을 상식으로 지녀야 할 것이다. 더군다나 네번째로 번복되는 변이바이러가 천하만방을 휘정거리고 다니는 요즘 세월은 더욱 그러하다. 고 고얀놈은 천신만고 검증끝에 태어난 예방접종의 도움을 거친 사람까지를 툭툭 건드려서 넘어뜨리려고 발악하고 있다고 하니 소심과 조심이 우리 모두의 만사우 선이라 하겠다. 지금 몰라보게 새 둔갑을 한 귀신가시들이 여기저기 눈치를 보면서 독냄세를 퍼뜨리려고 애쓰고 있다. 고것들은 어둑시그레해지기만 하면 뛰쳐나와 북치고 장구치면서 요리조리 기웃거리고 여기저기에 으시대려고 한다. 잘난체하면서 방어를 다 벗어버린 ‘용자’의 어리석음을 닮지 말고 고놈들을 뿌리째 소멸하는 길에 일심실천을 옮기는 일만 남았다. 강물을 흐리는 미꾸라지 같은건 그물하나로 잡아내 수 있지만 대가리꼬리도 없는 악의 바이러스를 정복하는 길은 억만사람의 일심뿐 이다.        그러기전에는 코를 막지 않고 있어도 숨이 턱턱 막힐 것이다. 요즘 내 상황이 바로 그러하다. 무형무색의 유령의 간사한 작간땜에 병석에 계시는 엄마를 뵈러 가는 길이 막혀버렸다. 고놈이 뿌려놓은 무형그물에 잠시 걸려 허물어져가는 억장을 한층 또 한층 헤아리기만 해야 한다. 지금도 자식그리워 순간을 손꼽아 기다리시는 엄마의 심정을 아프게 읽으며 걱정이 덕지덕지 않은 나날들을 지속하고 있다. 아, 언제면 일상을 막아버린 담장을 시원히 밀어버릴 수 있을까? 언제면 병마를 몰아내시느라 기진맥진해지신 엄마의 힘이 될 수 있을까? 언제면 엄마 곁에 오손도손 앉아서 엄마의 옛날이야기를 들어나 볼까?       우연에 필연이 내함됨은 만사의 섭리다. 어쩌면 오늘 내가 우연히 히포크라 데스를 발견한 것은 생명의 왕성함을 재발견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기적의 씨앗들이 꽉 차있는 일상에로의 회귀라는 대길의 신호인지도 모르겠다. 그러할 것이다. 꼭 그러할 것이다. 만사길흉은 재심이라 하더니 생각을 바로 가지니 마음에 꼈던 독들이 싹 물러가버린다. 한없이 거뜬해진다. 시장에 벌여진 좌판마다에서 잔치를 하고 있는 파란색윤택들이 나를 사로 잡는다. 그것은 생명의 흐름선 여기저기에 생의 기쁨꽃이 다닥다닥 피여날 날이 곧 도래한다는 상서로운 메시지였다.       저기 저 평범한 일상의 저변에서 나를 향해 가까이 오고 있는 행복의 사자가 점점 또렷하게 보이고 있다. 그가 내 앞까지 왔을 때는 꼭 그와의 눈맞춤을 진하게 해둬야 겠다. 내 마음의 눈동자에 삶의 갖가지 맛이 어우러진 일상의 조화미를 듬뿍 담아서!                       발표내역: (2021년 9월호)
14    [수필] 사랑의 밧떼리 댓글:  조회:143  추천:0  2023-01-05
                         사랑의 밧떼리                                           여자는 물이라고 했던 ‘홍루몽’의 한 구절이 생각납니다. 물은 깨끗 정결하여 만사람의 사랑을 그득하니 받고 살아갑니다. 물은 또한 소중함으로 하여 그에 생명이란 두 글자를 붙여주어도 손색없는 존재입니다. 물은 자연이 살아가는 에너지원이고 인간을 생존케 하는 목숨입니다. 물은 여자이고 물은 생명이며 생명이고 여자입니다.       물로 일컬어지는 여자는 결혼하면 곧바로 한 남자의 아내가 됩니다. 아울러 한 남자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삶이 그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여자들은 결혼을 하면서 자기 옆을 지키는 남편이란 나무를 단지 바람도 막아주고 그늘도 만들어주는 것으로 알고 남편에 기대여 매일 행복이란 그늘아래서 살아가기를 원하고 또 그렇게 살아갑니다. 그래서 애초엔 언제나 함께하고 싶은 마음을 곱게 담아 다정스러운 눈길로 남편을 사랑스럽게 바라봅니다. 그 눈길에 남편은 혼신을 다해 값가는 삶을 만들어 내기에 흰머리가 되고 허리가 휘어집니다. 그러다 보니 여자는 남편 사랑으로 신분승격을 하여 아내로서의 시발점을 넘어버리고 어느듯 엄마라는 종점까지 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남편을 관찰하고 가끔 박수도 쳐주고 사기도 살려주던데로부터 그에서 귀찮아져 무조건 평가하는데로 넘어가버리고 맙니다. 그래서 일방식 대화가 줄줄이 늘어나게 되지요. 당신은 화장실 쓰고 왜 물을 안 내리고 그래?  당신은 왜 손도 안 씻고 식사해? 당신은 왜 늦어 집에 와? 당신은 왜 휴대폰만 끌어안고 살아? 당신은 왜 다른 여자와 채팅해? 당신은 왜 방귀가 그리도 많아? 당신은 무슨 코를 천둥소리같이 굴어?...등등. 그러면서 자기도 유의하지 못한 사이에 그 남편나무가 싫어지기 시작합니다. 그런가 하면 사람하나에 보따리가 한 광주리라고 하여 남편이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남편때문에 시야가 가리고 항상 돌봐줘야 하기 때문에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할 때도 많아진다는 생각이 점점 새깨를 쳐 심중에는 남편에 대한 불평과 투정과 미움의 나무가 자라기 시작합니다. 말하자면 사랑으로 가슴과 가슴을, 몸과 몸을 하나로 합했지만, 또 백년을 사랑의 초심으로 이어가려 했지만 사회와 세월의 연기에 그을러버려서 이젠 남편이 싫어지기 시작했다는 말이 됩니다. 싫은 정도면 그래도 괜찮다고 하겠지만 싫다 못해 귀찮아지고 밉기까지 하게 되어버립니다. 그래서 뿌리 없는 짜증도 내고 그이가 하는 일에 내조보다 심술을 부어놓고 힘들게 합니다.      이러한 세월이 길어지면서 아내들은 남편나무가 시들기 시작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가족에 대한 애심이 점점 줄어드는가 싶다가 아내와의 대화도 끊기기 시작합니다. 하루 종일 같이 있어도 몇마디 대화가 없고, 멀리 출장 가 있어서 전화를 한통 해도 서로가 할 말이 별로 없고 해서 이유없이 멋적어지기도 합니다. 이렇게 남편은  아내들의 곁에서 점점 멀어지기 시작합니다. 남편들은 친정의 일에, 자식의 일에 얼굴의 앞면과 마음의 전부를 투자해버린 아내를 이해하는가 싶다가도 언젠가부터는 소외하고 외면하고 남일처럼 대하게 됩니다. 그런날이 길어지면 어느날부터는 안색이 거무 튀튀해지고 식사도 별로 맛있게 하지 않고 이어서 시름시름 시들어가는 나무처럼 생기가 부족해지기 시작하게 됩니다. 말하자면 갈라터진 삶의 터전에서 뿌리내려 베겨내기를 잘하지 못하고 죽어가고 있는 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그러한 세월이 흘러가던 어느 하루 남편한테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집에 빨리 한번 오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직장에서 하던일을 뒤죽박죽으로 해놓고 부랴부랴 차를 달려 집에 가니 남편의 손에는 진단서 한장 달랑 들려 있었고 몸은 분명 떨고 있었습니다. 남편의 몸에 심한 태풍이 찾아온 것입니다. 태풍이 지나가면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릴 수 있다고 하면서 따뜻한 위안의 말로 남편의 마음을 펴게 하려 했으나 남편은 그 거센 비바람에 더는 버티지 못하고 그만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사랑의 먹이가 부족한 남편에게는 태풍을 견딜 수 있는 견인력과 항체가 생기지 않았나 봅니다. 이제는 강해질대로 강해져서 아무리 뜨거운 태양이라해도 남편나무 없이도 충분히 잘 살 수 있다고만 여겼던 나의 애초의 생각과 마음이 폴싹 내려 앉고 말았습니다. 남편 없이도 근사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그 생각은 틀렸다는 것을 나는 알아내고 말았습 니다. 삶의 마당에서 올리뛰고 내리뛰고 하면서 살아가다 보니 30년 세월을 훌쩍 떠나보내고 나서야 이러한 마음의 성장이 이루어졌습니다.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알기까지는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마음의 그늘진 곳을 나오면서 자신을 깨닫고 일어서야 했습니다. 아내의 사랑이 부족해서 참고 견디고 버티고 강한체하면서 살다가 끝내는 쓰러 져버린 남편나무가 나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알고 말았습니다. 살아가면서 받는 것에 습관이 되고 주는 것에 인색해져서 남편의 사랑은 그저 받기만 하면 된다고 여겼던 생각의 집을 뿌리째 털어낼 때가 되었음을 절감했습니다. 대수롭지 않게만 생각하는 그 사이에도 남편은 나에게 얼마나 소중한 해빛막이로 되어주었 는지를 깊이깊이 깨달았습니다.   ‘이제부터라도’ 라는 식으로 마음에 새 길을 열어주고자 함입니다.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남편 앞에서 도고했던 몸과 마음을 굽혀서 정성과 사랑을 모아서 이미 쓰러진 남편 나무를 다시금 일으키고 싶습니다.     이제 돌아서서 나 자신이 걸어온 마음의 길과 삶의 자세를 보노라니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자기 중심의 마음의 길을 넓혀서 남편나무를 앞에 세우고 사랑을 받는 것이 천만지당한 것으로 알고 받고도 고마움으로 돌려주지 못했던 삶의 자세를 낮추어서 남편을 일으켜 세우고 싶습니다. 물의 밑에는 바다가 있고 몸을 낮추면 왕이 된다고 했습니다. 여자로서 아내로서의 몸을 좀 굽혀서 살아 올라가는 높은 남편나무의 원조 모습을 보고 싶어집니다.        부부회사 경영에는 주고 받는 사랑이 심히 기울어지지 않도록 관찰해내는 능력이 필수입니다. 이제부터 사랑으로 그이 곁에 내내 서 있을 겁니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너무나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잊지 않고 남은 인생을 살아갈 겁니다. 남편 나무님 오랫동안 죄송했습니다. 앞으로는 잎이 마르거나 시들기 전에 남편이란 나무에 사랑의 거름을 주면서 살아가려 합니다. 남편 나무는 사랑을 먹고 사는 나무 입니다.                          발표내역: (2018년 10월호)          
13    [수필] 력사의 흉금 댓글:  조회:183  추천:0  2023-01-03
                                      력사의 흉금                                                                                                                                  해마다 가을 학기에 들어서면 정해진 커리큘럼(课程)의 배정에 따라 이란 교과목을 가르치게 됩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문학사라면 단순히 문학이 걸어온 자취가 루적된 력사의 장이라는 인식에 머물수도 있겠지만 가르치는 실천의 현장에서 본인이 쌓아온 경험에 의하면 꼭 그런 것도 아닌듯 합니다. 크게 뭉뚱그려서 본다면 력사란 그릇에는 일개 민족의 발전의 흐름과 그것을 문자화하여 문학의 그릇에 담은 문학작품이 필연적으로 자리하게 됩니다. 가령 어떤 력사가가 문학을 홀대시하여 문학작품을 력사의 그릇에서 삭감하거나 삭제하는 일이 발생한다면 아마 력사라는 이 거목은 생존의 뿌리를 뽑히는 것과 맞먹는 나쁜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력사는 문학의 원천지이고 본가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문학은 력사의 자식으로 인식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자식 잃은 부모의 인생 가치는 어디 있을까요! 그리하여 양자는 언제나 아기자기하게 한 집안에서 상호 화목으로 사는 법인가 봅니다.       물론 한국문학사가 살고 있는 집 뜰안을 들여다 보면 기성된 문학의 소속 여부에 의문부가 달려있는 것들이 상당하여 갈래가 복잡하게 느껴지지만 그 의혹을 문제시하기보다 원상 그대로 받아들여 고대 인접국 문화와의 상호 공유지에서 일어났던 융합의 가치를 읽어내는 것이 정확한 자세라 여겨집니다. 바로 이러한 리유로 문학의 력사를 가르치는 시각에서 볼 때 바람직한 것은 학습자들이 난해해 한다고 작품의 제목만 줄세워서 대체로 에지볼(擦边球)식으로 짚고 가거나 또는 작품들의 스토리만을 라열하며 지나치지 말고 력사의 뒤엉킨 갈피들을 풍만하게 장식하고 기존하는 대표 작품들의 영혼에 대해 눈여겨보는 일이야말로 진정한 선택지입니다.        오리지날 한족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교단에 서는 것이 원인이 되어 모국어의 반사작용 때문에 받침이 없는 발음이나 또는 ‘ㅅ’를 ‘ㅊ’로 사람을 ‘차람’으로, ‘공항’을 ‘고향’으로, ‘중국’을 ‘중구’로, ‘학교’를 ‘하교’...... 등으로 발음하는 친구들 이 속출하여 종종 표정의 평행수위를 잃을때가 많습니다만 그들에게서 보이는 사물의 본질을 판독하는 지혜를 감안한다면 발음에 걸린 문제는 문제시 되지 않음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무엇인가를 토론장에 내놓으면 유의미한 내용들이 수없이 쏟아져 나옵니다. 또한 사전에 토론 째마를 정해주거나 과제를 매개인에게 배분하면 수업시에 상당한 감흥을 얻게 됩니다. 나는 그들과 함께 하는 시간에서 흘러간 력사들을 그냥 이왕지사로서 기억의 더미에 쌓아두는데 그치지 말고 력사와 현재의 우리 삶에서 접점을 찾아 지심(至深)이 잠들어있는 력사의 령혼을 재현시키는 길을 알아내는 것이 더없이 유익하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예컨대 당조 때 16년 동안 당나라에서 류학을 했고 절강성의 지방 관리 경력까지 가진 신라의 최치원과 그의 작품을 공부할 때는 작품 속에 있는 중한 문화교류의 찬란한 력사를 읽게 되는 것 이외에도 자국 문화의 파워와 융성발전했던 당조를 자랑으로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애국의 마음을 부르는 계기이기도 합니다. 물론 그때 우리 조상들이 신라, 백제, 고구려 중의 어느 한 나라의 백성으로 생활하였을 것이지만 현재를 존중하는 자체는 책임적이고 영원한 력사적 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뿐만 아니라 최치원 작품을 잘 음미해보면 타국의 일개 류학생에게 지방관의 자리를 선뜻 내어주는 중국인의 흉금과 포용이라는 대인 관계 매력도 감탄하게 됩니다. 그야말로 태평성세를 공유하고 소유물을 아낌없이 서로 나누며 살아왔던 옛 사람들의 삶의 모습은 문명 발전의 최고 성과를 누리고 있는 우리들에게 귀감이 아닐수 없습니다. 이밖에도 고급 대신으로 중국에서 26년을 머물며 황제를 보좌하였던 이제현의 한시 작품들이나 박지원의 장편기행문 … 등을 대할 때도 동일한 감흥이 솟아납니다. 력사의 크고 작은 그릇과 그릇들에 알맹이로 자리잡힌 이러한 작품들을 현재에 걸맞는 문화적 접점만 하나하나 찾아주면 금방 피와 살이 섞인 한 모태의 생명으로 부활하여 생생한 모습으로 재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요즘 빈출하는 박물관이란 용어가 바로 이것을 설명해 주고 남음이 있습니다. 이처럼 막강한 힘을 갖춘 령혼체들이 뭉쳐서 가까운 오늘의 삶의 담벽에 청청한 채색을 올리는 것이 살아있는 박물관의 력사 작용이기도 합니다. 조선시기의 판소리계 소설이고 한국의 3대 고전으로 불리우는 , ,  에 대하여서도 이러한 리치는 역시 일맥상통하고 있습니다. 고매한 형제 우애를 그린 은 협력 정신을 제일의 보자에 올려놓은 오늘날의 사회 분위기에 굉장한 에너지를 부여하게 될 것이고 은 사랑이 상업의 힘에 매도되어가는 현시대의 사랑 관념에 상당한 정화력을 과시하는 현실적 의미를 가지게 됩니다.       특히 현재 외동자식의 핵가족화가 성행하는 사회에서 에 담긴 효사상 전파 역할은 참말로 거대합니다. 물론 본인의 경우는 이미 인생의 대학에서 삶을 배운지도 벌써 반백년이 넘는 원인으로 효가 무엇인지, 효를 행하는 도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마음길이 환하게 열려 있습니다만 외독자로 자란 아이들이 효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잘 모르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 어지간히 우려하게 됩니다. 그러나 효에 대해 리론으로 다가선다면 소화가 어려워지고 역방향으로 가는 경우가 비일비재인데 대비해 일단 이라는 문학 작품에 대한 강의로 다가선다면 자연스럽게 접목될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효에 대한 해석이 아무리 천만가지라고 해도 그것의 외의를 벗기고 보면 부모님을 생각하는 마음이 그 전부라고 할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봤을 때 어린 나이때부터 이집저집 동냥한 밥을 자기는 먹지 않고 아버지께 대접하거나, 아버지가 다시 광명을 볼 수 있게 하는 조건으로 몸을 바다에 던져야 함에도 서슴치 않는 에서의 심청의 치사랑이야 말로 자식을 위해 생명도 마다하지 않는 부모님의 자식사랑을 그대로 답습한 효심의 그 자체라 하겠습니다. 이는 또 현대인들의 감동을 자아내는 강심제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물론 현실에서라면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떨치기 어려우나 작품에 대한 토론을 거쳐 효심의 아름다움을 간접 체험하고 부모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게 된다는 이것이 보귀한 것입니다. 바로 이러하기에 력사의 문학 창고에서 유출하는 령혼의 에너지를 현실 속 우리 삶에 이식하는 작업은 참으로 보람이 차게 됩니다. 이렇게 탄생된 작품은 령혼을 재활시키는 시너지를 끊임없이 방출하게 됩니다.  을 토론하면서 한 사람에게 있어서 특히 자식으로 사는 모든 외독자들에게 부모님에 대한 효성이 무엇인지를 깊이 깨닫게 하는 시간임을 알게 됩니다.         예까지 글을 써 내려가노라니 문학의 큰 무대로 사는 력사의 존재에 사뭇 감동하게 됩니다. 그야말로 력사의 구성원 중 일성원으로 사는 모든 문학작품들이 수천년이 흘러도 자기의 곱고 빛나는 빛을 잃지 않을 수 있은 것은 더넓은 흉금의 나라- 력사가 있기 때문인가 합니다!                                                                 발표내역: (2019년  5기)  
12    [수필] 개나리는 봄에, 국화는 가을에 댓글:  조회:370  추천:2  2021-02-08
          부산 김해국제공항은 어딘가 초라하다는 느낌이다. 국제라는 멋진 명색을 갖고 있긴 하되, 1976년 8월부터 일하기 시작해서 2004년까지 달려왔으니 이젠 서른살 연륜을 갖고 있어서 그런가. 인간 서른은 팔팔 청춘인 것과는 달리 공항 30은 파파 늙은이로 살고 있다.          3월 중순이라 비행기에서 내리니 봄이 정겹게 소꿉놀이를 하고 있다. 비행기가 착륙하자 쏟아져 나온 손님들 중, 한 손에 휴대용 빽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휴대 폰으로 웃으며 말하며 하는 한국인들이 유난히 눈에 띈다. 그런데 그 모습들은 복사된 듯 하나 같다. 사람이 휴대폰을 이용하고 있는 건지, 휴대폰의 부림을 못 견디고 있는 건지…봄은 금세 가족에 평안을 전하고 있는 자국 귀국객들의 휴대폰 소음에 질려 발컥 화를 내더니, 이어 표정을 바꾸고 회오리 바람으로 둔갑한다. 그리고는 공항의 하늘 밑을 총총히 걷고 있는 여객들의 머리카락을 잡아 일으켜 세우고 그것도 모자라 코트를 벗기려 들고 있다.     엘리베이트로 내려가는 맞은 편 정광판에 내가 타고 온cz686 항공 번호가 뜨고, 수하물 찾는 코너도 묻어 나왔다. 짐카를 준비해 가지고 자기 물건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타원을 만들어 기다리고 섰다. 짐의 꼬리표를 촥인하면서 자기 짐을 찾아 싣고 돌아서는 사람, 나오는 짐마다에 코를 바싹 대고 벌름거리며 냄세를 맡는 세바트개, 두 눈에다 번개 빛을 담고 오고 가는 경찰복을 한 공항 사무원들…         나도 한 자리를 잡았다. 기내에서 나의 옆 좌석에 앉아 왔던 한국인 아저씨가 약간 허리를 굽혀 보이며 곁을 지나갔다. 그 옆에는 그 여자가 따라 걸었다. 위장결혼으로 한국에 시집 오는 조선족 여자이다. 기내에서 알게 되었다. 그녀는 수심에 잠긴 표정을 하고 있다.  내가 위장결혼에 대해 좀 알게 된것은 20년 전 일이다. 1995년 10월, 우리 일행이 연변대학에서 열린 한국 트롯트 가요연구 학술세미나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가짜 결혼으로 연변 땅을 멀리하고 한국 입국을 위해 심양으로 행하던 여자의 모습에서 아픔을 읽었던 일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미리 승차한 우리 일행이 침대차에 타고 있는데 갑자기 욕지거리가 크게 들려왔다. 차창을 올리고 밖으로 내다 보니 마흔이 약간 넘은 듯한 한 남자가 줄창 고래고래 함경도 방언으로 소리소리 말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남자와 가까운 왼쪽 옆에는  떠나는 여자의 친정 엄마인 듯한 노부인이 넋두리를 하고 있고, 또 그녀의 딸인 듯한 처녀애가 ‘엄마, 엄마’ 하며 애처롭게 우는 것도 보였다. 그런데 뒤이어 무슨 말이 나가는지도 모르고 지껄이던 그 남자는 플랫홈의 세멘트 땅이 꺼질 정도로 콱 주저앉더니 주먹으로 바닥을 꽝꽝 두들겨댔다. 그러다가 더는 참아낼 수 없다는 듯이 몸을 훌쩍 일으켜 나는듯이 열차 차간 안으로 달려 올라왔다. 같은 시각 차창가에 가만히 앉아 그 광경을 보며 눈물만 찍던 그 여자가 몸을 일으켜 침대석을 나오더니 “동뮈, 어째 이럽까?”하며 열차간 통로를 막아 섰다. 호칭으로 보아하니 그 남자의 아내인 둣하다. 이어 수많은 시선속에서도 남자는 그 여자를 으스러지게 껴안고 눈물바다가 되어 무슨 말인지를 끊임없이 쏟아 내었다. 여자와 함께였던 한국인 남자는 그러한 광경을 전혀 못 본 듯 무표정 담담했다. 열차 승무원이 다가와서 기차 출발 시간이 되었으니 배웅자는 하차하라고 권할 때까지 그들 부부는 내내 그러고 있었다. 그러한 광경을 본지 세월이 한참 지난 현재, 부산공항 안에서도 그 삶의 아픔이 은은하게 이어지고 있다니…           나의 짐은 엄청나게 컸다. 그 짐덩이들을 찾아 짐카에 챙겨 싣고 세관을 무사히 통과하여 마중 나온 인파 속에서 부산 신평 노리트의 기사식당에서 일하고 있다는 언니의 얼굴을 찾으며 짐카를 밀고 나가는데 명찰을 찬 김 씨성을 가진 한 세관이  손짓으로 나를 정지시키며 가까이로 다가왔다. 허리를 약간 굽혀 보이며 여권을 보자고 했다. 그 사무원은 내 본인의 얼굴과 짐을 번갈아 두 세번 보더니 ‘나이가 한참 되는 것 같은데 무슨 공부를 하시겠다고’ 하면서 말 끝에다 난해하다는 표정을 매달았다. 나는 그러는 사무원이 못마땅하게만 느껴졌다. 어쩐지 그 아저씨에게 답말이 꼭 필요하다는 판단이 서면서 ‘아줌마 나이라고 공부를 못 한다는 법은 없잖습니까?’라는 식으로 끝내 40대 조선족 아줌마의 파워를 보여주고 말았다.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그때 나의 그 말에 그 아저씨 사무원은 허리를 처음처럼 약간 굽혀 보이고는 자기의 다음 일을 이행하러 총총히 자리를 떴다. 순간 나도 모르게 피씩 웃음이 나갔다. 자신의 당당함에 자축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        실은 스스로도 현재 갖고 있는 연령이 허허벌판에 던져버리고 싶은 짐보따리 같을 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 그런 시점에서 봤을 때 세관 사무원의 느낌 또한 인지상정이리라. 아줌마가 되어가지고, 그것도 남편, 새끼 다 떼어 두고 무슨 영화를 만들겠노라 나선 여자냐, 라고 스스로도 끊임없이 질문한다. 하지만 마음의 가짐을 바꾼다는 건 세상의 최고 난사 중 난사라 했지 않은가! 그런데다 요즘 세상이란 청춘밥을 먹고 사는 여자가 늘고, 그리하여 여자의 인생을 너무 일찍 접는데 습관된 아시아 생활권에서는 그러한 말이 어울릴 법도 하겠지만, 아직은 받아 들일 마음의 준비가 안 되어 있어서 그런가, 그 아저씨 공항사무원의 공무집행에 마음이 약간 긁히웠던 기억이 종시 지워지지가 않는다. 다행히도 세상만사란 세월의 세례를 받아 그것이 먼먼 지난 일로 되고 보면 다 아름다운 기억이 되어주니 이또한 감하살 일이 아닌가 싶다. 지금에 와서도 그때 그 일을 꺼내 보면 기분이 묘하게 좋아지니 참 믿을만도 한 세상이치가 아닌가.       몇십년을 쌓아 둔 생리연령과 여자라는 이유  때문에 신분 상승의 도전 같은건 죽었다 살아나도 불가능이라는 분위기 중에서 몸을 빼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가족이야 직장이야 자녀야 부족한 것 없는데 어쩐 일로 키우고 가꾸던 현재 삶의 나무를 송두리째 뽑아버리느냐 묻는다면 나로서도 대답이 궁할 것이다. 그 시기 그 엉뚱한 행보때문에 나의 신변사 모두를 도배한 그 한마디 말처럼 아마 난 ‘한참 미쳤나’ 보다. 10여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생각을 해봐도 저그만치 미쳐있었던 거 같다. 그런데 미치지 않으면 가고 싶은 곳에 닿을 수 없는 게 인생이라 했으니, 살면서 한 번쯤 미쳐보는 것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을 것이다.        나이가 들면 더더욱 견과를 챙겨 먹어야 한다고 의학은 말하고 있다. 견과를 먹은 사람은 뼈가 튼튼하고 잔병은 있을 지라도 큰 병은 없다고 한다. 늦깍이 공부가 바로 그러한 견과가 아니냐 싶다. 이것은 한 개인의 작디작은 개달음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이 아무리 작은 것일지라도 깨닫는 그 자체는 인생 즐거움의 최고 경지와 함께 하는 법이다. 인간이 그의 진실함과 한몸이 되려면 시작의 용기와 고집을 지키내는 나만의 길이 필요하지 않을가 싶다.        이 세상 사람들마다 생명을 태우며 달리는 속도와 그 시간의 도표는 다르겠지만, 언제든 시작이 필요할 때 못나게 행하지만 않는다면 더 나은 삶의 장에서 자신의 모습을 본다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자연의 이치가 수시로 이를 말하고 있지 않는가.  화사한 개나리는 봄에 피어 인간에 무궁한 시작의 환희를 동반해 주는 것으로 삶을 살고, 계절 나이가 듬직한 소박한 국화는 가을철을 제철로 맞아 피어나서 인간에 삶의 정신력을 심어주 일에 만족하는 삶에 충실한다.  아니 그런가!                                             2004년 3월 15일 일기형식의 초고,  2014년1월 8일 수필로 정리                                                                           발표내역: (2015년 4월호)      
11    [수필] 버스는 지나가지 않았다. 댓글:  조회:301  추천:0  2021-02-08
                                버스는  아직도 지나가지 않았다.                                   남춘애         보충 웨딩사진을 찍을 데 대한 남편과의 약속은 내 인생의 레루를 따라 장장 20여년이나 같이 걸어왔다. 말하자면 보충 결혼촬영 에 대한 화두는 내 생활의 한 구석에서20여년 동안 같이 살아 있은 것이다. 지난 그 세월 동안 그것에 대한 생각은 마치 하나의 아름다운 꿈마냥 늘 내 마음을 장식해 주었다. 내내 마음에다 품고 자고, 품고 일어났으니 그것은 나에게 있어 꿈이 되고도 남을 것 같다. 거창하다고 하여 아름다운 꿈이라고 이름해  주고, 작다고 하여 하잘 것 없는 나부랭이 취급만 하지 못할 것이 우리 모두의 삶이기도 하다. 사실 결혼 할 때는 그 어려운 시절에도 대학 공부 할 수 있은 것 만으로도 족한 마음이었다. 그래서 수저 한 벌 없이도 한 지붕 밑에서 한 이불을 쓸 수 있었던 것이다. 결혼한 첫 몇년은100원도 안 되는 매달 월급으로 셋방살이를 하면서도 그저 생활은 늘 환한 미래로 충만된듯 하고, 내일이 항상 보여서 좋은 느낌으로 서로를 아껴주며 살아왔던 것 같다. 그런데 세월의 오리가 굵어지고 잔 손금이 늘면서 자꾸 그러한 원래의 마음이 서글퍼지는가 싶고, 또 섭섭한 생각이 들 때가 많어졌다. 그런데 그것이 뭔지 스스로도 정답을 얻어내질 못하고, 그저 연고없이 속이 쓰려나면 하소할 데를 찾지 못하고 혼자 끙끙 앓기만 했었다. 그러다가 어느날 새집들이 하는 젊은 동료의 집에 모이게 되었는데, 그 곳에서 내가 마음으로 늘 바라던 그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그 젊은 친구의 새 집은 결혼한 후 반년 만에 시아버지가 직장에서 타게 된 집인데, 그 집을 아들 며느리에게 준 것이다. 집들이 모임에 참석한 우리들은 은근히 그녀의 그러한 시가집 배경에 부러움을 금치 못했었다. 그날 쏸차이에 당면과 돼지고기 삼겹살을 넣고 끓인 냄비 반찬을 가운데 놓고 술잔을 나누며 주고 받은 인생이야기는 지극히 즐거웠었다. 술이 좀 되었다 싶으니 화장실 드나드는 치들이 늘어나면서 자리가 자꾸 비기 시작했다. 그 시절에는 지금 처럼 노래방 문화나 찜질방 혹은 마사지 문화가 낯설었었다. 그래서 우리는 앉은 자리에서 이야기로 알콜 소화를 하면서 한가한 밤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나도 화장실을 가려고 좁은 식사칸을 비집고 나왔다. 나는 술김에 빨간 사과가 되어버린 얼굴을 냉각시키느라고 얼굴에 냉수를 수없이 끼얹었다. 그러고 나니 좀 정신이 나는 것 같아서 그곳을 나오다가 거실의 벽에 걸린 액자를 보게 되었다. 그 액자 속에는 신혼부부가 서 있었는데, 한복을 입은 아름다운 신부를 은근하게 보는 신랑의 그 눈길이 너무 신사스러웠다. 순간 내 머리 속에는 세상에 제일 보기 아름다운 화폭은 신랑신부가 가지런히 섰을 때의 모습이라고 하던 친정 엄마의 그 말씀이 떠올랐다. 정말 그런것 같았다. 그 확대된 사진 속에 서 있는 신혼부부의 모습은 만세상의 행복이란 행복은 다 가지고 있는듯 했다. 왜 그런지 그 웨딩 사진을 보면서 내 마음은 은은히 아려왔다. 행복하게 살고 있는 자신이라고 늘 자신했었는데, 그러한 행복을 담은 사진 앞에서 무한정 약해지는 이유가 뭔지를 내 가슴은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다. 결혼할 때 제로로 생활의 여정을 시작했으니 남이 하는 대로 흉내를 낼 수 있는 여지란 전혀 없을 수 밖에 없다. 그때는 서로가 한맘, 한몸이 되어 자식 낳고 살면 생활이지, 이런 저런 바람이 다 무슨 소용이더뇨 했었다. 그런데 행복의 대명사 같은 그 웨딩 사진을 보는 순간, 내 가슴엔 바람이 들어도 단단히 들어버렸다. 그날이 시작이었다. 말이 많아지는 때마나 나는 언제면 우리 부부도 그런 웨딩 사진을 보충할 것인가를 잊지 못했다. 나중에는 그것이 내 푸념이 되었고 내가 남편과 주고 받는 말의 소금이 되었다. 남편은 처음에는 그럴듯한 약속을 해 주기도 하고 또 정말 그렇게 할 것처럼 귀에 속속 들어오는 말도 제법 해 주었지만, 세월이 오래 흐르니 남편은 잊어버리기나 한 듯이 묵묵 부답이었다. 그때부터 웨딩 사진을 보충 촬영해야 겠다는 염원은 내 생활의 한 구석에 서서 항상 나를 지켜주었다. 날이 갈수록 나는 웨딩 사진을 남겨야만 내내 가정 생활에 사랑이 오손도손 넘어나게 살 것 같은 생각이 들고, 언젠가 꼭 그 사진을 남겨야만 백년을 같이 갈 것이라는 나름 대로의 공식으로 인생을 쓰려 했었다. 남편은 남이 아름답다고 하는 그림은 척척 잘도 만들어내면서 아내가 꾸며보자는 그 아름다움에는 왜 늘 타이밍이 안 맞는지, 납득은 땅이 꺼지도록 되지 않았지만, 고집스러운 황소 끌듯이 촬영소로 이끌고 갈 수도 없는 일이다. 어느덧 나는 남편의 그 ‘바쁘다, 시간이 없다’는 텅빈 말로 인생의 중턱까지 헐떡거리며 올라왔다. 나도 이젠 제법 흰머리가 늘어나기 시작하여 가끔 남편의 손을 빌어 그 흰머리를 뽑는 처지가 되어 버렸고 머리카락은 하루하루 낙엽을 닮아가고 있다. 이렇게 내 삶이 이미 늙음이라는 나무의 그늘아래에 사는 처지가 되어서 인지, 나도 거의 그 일을 잊은 듯 하다. 그런데다가 변하는 시대의 줄에 당당히 서자면 공부도 좀 해야 겠고, 또 어른이 다 된 아들애의 앞날에 대해서도 구상을 좀 씩 늘여가야 하고, 무엇보다도 자꾸 비만해지고, 로쇠해지는 건강 상황에 대해서도 신경을 써야 하는 때다. 그러니 내 생활의 꿈도 자연도태가 될 때가 되었는가 보다.. 그런데 오늘 남편이 난데없이 불쑥 전해오는 말에 가슴은 다시 설레이고 말았다. 아름다운 가을도 그냥 보내지 말고, 바다 구경도 할 겸, 웨딩 사진을 찍으러 가잔다. 그리고는 시다 달다 아무 말도 없는 나를 내버려 두고 서재에 가벼렸다. 나는 화장실에 가는척 하면서 서재안을 눈질 해보았다. 그가 한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남편은 미술촬영전용의 카메라를 꺼내놓고 한참 준비하고 있었다. 나는 설레이는 마음을 누르고 나 몰라라 라는 배심을 보였다. 내가 마음 아프게 그 사랑 노래를 부를 땐 뭘 하고 있다가, 젊음이 겨우 눈꼽 만큼 남은 지금에서야 이미 잊어진  내 꿈의 가사에 악보를 세팅하려 서두르는지. 나는 한편 그러는 남편이 원망스러웠다. 내가 아무말 없이 침대 머리에 기대어 내 볼 책만 보고 있는데, 그러한 나의 심정을 읽은 듯이 남편은 방으로 들어와 내 곁에 앉았다. 곁눈으로  보니 웬 보따리를 안고 있었다. 내 한복과 옥패를 싸놓은 그 보따리었다. 남편은 그 보따리를 곱게 풀어헤치고 한복을  두손으로 들어 꺼냈다. 그리고는 옷장 구석에서 다리미를 찾아 냈다. 뚱단지같이 갑자기 뭐하려냐고 묻는 말에 한복 다림질을 하여서 내게 입히겠다고 한다. 남편은 서투른 다리미질을 시작하였다. 언제 눈에 익혀 두었는지 내가 하던 것처럼 손수건을 대고 조심스레 다림질을 하고 있었다. 다리미를 먹은 한복 옷 고름은 금방 예쁘게 기재개를 폈다. 반쯤 몸을 일으키고 자기를 지켜보고 있는 나를 보며 남편은 전에 없이 멋진 웃음을 한방 날려왔다. 그러면서 우리말에 서툰 그가 언제 배워뒀는지 버스는 아직 떠나지 않았으니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고 말한다. 평소 같으면 닭살이 될 만큼 어색할 그말이 왜 그리 내 마음을 녹이는지. 나는 그 동안 내 마음을  섭섭하게 한 세월에 낀 때가 얼마나 두꺼운데, 하고 불평으로 말을 시작했다. 그런데 웬 걸, 그 불평으로 가던 내 마음은 어느새 유턴을 하여 제 그림에만 파묻혀 있던 남편에 대한 야속함을 풀어주는 일을 하고 있었다.                                                         2009년 11월 연변문학에 게재
10    안중근 유묵에 담긴 중국적 요소 연구 댓글:  조회:1454  추천:2  2015-03-15
Ⅰ. 들어가며:  안중근 의사 순국 105주년을 맞으며 여순 러일감옥구지박물관 안중근 전시관을 방문할 기회를 가졌다. 전시관의 벽에는 안중근의 유묵과 함께 주은래의 친필 제사 인《中日甲午战争后中朝人民反对日本帝国主义侵略的斗争,是在20世纪初,安重根在哈尔滨刺杀伊藤博文开始的≫(중일갑오전쟁 후 중조 인민이 일본 제국주의 침략에 맞서 투쟁의 봉화를 올렸다면 그것은 바로 20세기 초반, 안중근이 하얼빈에서 이등박문을 사살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가 눈에 띄었다. 전시관의 유묵을 보며 안중근 연구에 약소하나마 힘을 보태야 겠다는 생각이 이 논문을 쓰게 된 계기라면 계기라 하겠다.   안중근에 대한 연구가 오래 지속된 까닭으로 본 연구가 고루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지만. 모든 연구는 언제든지 그 나름의 의의를 갖고 있기에 문제 될 건 없다. 필자는 본 논문을 쓰는데 필요한 , , 장편 전기소설  등 원전 텍스트를 비롯하여 중, 한 학계에서의 안중근 연구에 관련된 연구성과들을 두루 살펴보게 되었다. 그 결과 기존 연구의 갈래는 크게 여섯 개로 분류해 볼 수 있었다.     첫째는 안중근의 의거에 초점을 맞춘 사상과 관련된 연구, 둘째는 안중근의 천주교 의식을 바탕으로 연구한 종교사상과 관련된 연구, 셋째는 안중근이 옥중에서 집필한 을 바탕으로 한 안중근의 동양평화사상 연구, 넷째는 안중근의 교육구국과 의병운동을 비롯한 민족독립운동에 관련된 연구, 다섯째는 안중근 유묵 작품에 숨어있는 미학적 가치와 관련된 연구, 여섯째는 안 중근 의거에 대한 국내 외 인식에 관한 연구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연구들 중, 학술 논문이 제일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바, 백여편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안중근 유묵에 담긴 중국적 요소에 대한 연구논문은 현재까지 전무한 상태이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여 본 논문에서는 대련 여순러일감옥구지박물관 안중근 전시관에 보존된 안중근 유묵 53점을 연구 대상으로, 그에 담긴 중국 문화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Ⅱ 중국 문화와 유묵   21. 안중근의 學書 과정과 중국 문화 형상. 안중근의 유묵은 사형선고를 받고 사형 집행 직전까지 옥중에서 남긴 것들로  옥중 안중근의 심사를 담아내는 의사 전달의 매개로 역할했다.“書는 散(풀어놓는 것)이다. 書를 하고자 한다면 우선 懷抱(마음)을 풀어 놓아야 하며 성정에 맡긴 연후에 書하여야 한다”는 동한의 서예가 蔡邑(132-192)의 서예 이론에 따르면 최후를 앞둔 안중근이 마음을 평온하게 다스리고 200여점의 유묵을 남겼다는 것은 초인의 의지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그의 유묵은 거의가 王羲之, 欧阳询, 颜真卿의 필체를 닮아 있고 해서를 중심으로 해행이 섞여있으며 초서가 병행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말하자면 안중근의 서체부터가 중국 문화의 요소를 다분히 담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것은 안중근이 살았던 시대는 한글 창제가 되었음에도 한문 중심의 역사 환경과 무관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선택의 여지가 없이 중국 문화를 받아들여야 했던 구한말이라는 시대적 흔적이기도 하다.              안중근의 유묵에서 중국 문화형상이 가장 집중적으로 나타나는 부분은 그 유묵의 내용들에서이다.  안중근은 자신의 학력에 대하여 옥중 자서전 「안응칠 역사」에서 “6-7세 때부터 漢文學敎에 들어갔으나 8-9년 동안에 겨우 보통 한문을 깨우쳤을 뿐 이었다”라고 회고하였다. 이 자서전에 의하면 그는『千字文』,『四書 五經』 『萬國歷史』, 『資治通監』,『朝鮮歷史』를 공부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이것이 그의 한문을 공부한 전부였다.    안중근은 공부에 뜻을 두기보다는 어려서부터 사냥과 말 타기 등 활동적인 것을 즐겨 하였다. 그의 나이16세에 김아려와 결혼하여 두 아들과 딸을 두었고 18세에 부친 안태훈이 무고를 당하고 위험에 처하여 천주교 교리를 믿게 됨으로써 안중근도 온 가족과 함께 천주교의 교리를 듣게 된다. 29세에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는 백성 들의 교육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고향의 가산을 정리하고 진남포로 옮겨, 삼흥학 교와 돈의학교를 설립하고 교육 사업에 투신한다. 1895년의 을미사변으로 국권이 위태로워지고, 1905년 을사조약으로 외교권을 박탈당하고, 1907년 한일신협약을 계기로 조선은 국권상실의 나라로 전락한다. 이러한 국내 외의 급박한 사정으로 안중 근은 교육 사업을 포기하고 북간도, 해삼위 등 지를 다니면서 의병활동에 참여한다. 그가 소속한 의병부대가 인력과 자원부족으로 큰 타격을 입게 되자 더 적극적인 독 립운동 방법을 모색하기에 이르른다. 그는 서양 열강들의 동양과 조선 진출을 경계했고, 한,중,일 3국이 힙을 합쳐서 서양 세력이 차츰 동쪽으로 옮기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이때 이등박문은 일본 최고권력의 위치에서 정책을 주도하여, 조선의 합병을 획책하고, 청나라와의 전쟁을 확장시켜 나가고 있었다. 미미한 의병활동으로는 조국을 지킬 수 없다고 생각한 안중근은 단지동맹을 맺고 이등박문을 제거할 것을 결의한다. 이등의 야욕을 끊어야만 전쟁을 막을 수 있고, 그렇게 함으로써 조국이 독립을 하고, 동양의 평화가 지켜질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 판단에 따라 안중 근은 1909년 10월 26일 중국 흑룡강성 하얼빈역에서 의거를 단행한다. 안중근은 의거이후 현장에서 체포되어 하얼빈에서 열하루 갇혔다가, 대련 여순의 러일감옥에 수감되었다. 그는 관동 여순지방법원에서 재판을 받은 결과 1910년 2월 14일자로 사형이 선고되었고, 이후 사형이 집행된 1910년 3월 26일까지 약 40일 동안 서작을 하여 유묵을 남겼다.     이처럼 안중근의 일생 동안의 행적을 살펴보면 學書의 기회를 충분히 갖지 못한 듯하다. 그가 학업을 한 시간도 따져보면 7-8년간에 지나지 않는다. 말하자면 학업 을 할 수 있었던 기간은 漢文과 經書를 공부했던 십 칠세 이전까지의 7-8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러함에도 막론하고 그의 유묵에는 ‘고상한 서체미는 결여되어 있지만 중국 당조때의 4대 해서가 중 일원인 안진경체에서 보이는 장수의 기개를 표현한 堅質浩氣하고 沈着通快한 陽剛美를 지니고 있’어 오랜 기간 상당한 수련이 있지 않고는 이루기 어려운 높은 수준의 실력이 드러난다. 이것은 그에게 선천적인 재능이 있었겠다는 추정을 하게 하는 부분이 된다. 그의 이러한 선천적 재능은 옥중 에서 짧은 시간에 완성한 자서전 와 미완작 , 그리고 몇 편의 한시에서도 지식과 문장의 수준 또한 공부를 대충해서 이룰 수 있는 천박한 정 도를 넘어서고 있음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박은식은 안중근의 어린시절을 평가 하기를 “총명이 과인하고, 經史와 서예에 통달하였으며, 서법에도 능하였다”고 하였다. 비록 어린 시절에 대한 기록이기는 하지만 안중근의 유묵이 안진경의 忠節의 글씨로 불리는 顔體가 배어 있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안진경은 중국 서예의 대표자이다. 중국의 서예는 중화문화의 정신적 근원으로서 필수 수양이기도 하였다.    “書는 사람의 학문과 같고, 재주와 같고, 뜻과 같다”는‘書如其人論’ 의해 생각 해 보면, 안중근의 유묵을 통해 서자(書者)인 안중근의 인격을 알 수 있고, 인품, 철학, 학문 등 내재된 정신세계까지 들여다 볼 수 있게 된다. 이것이 이른 바 ‘서여기인 서위심서(書如其人,書爲心畵)’라는 것일 것이다. 이같이 書體와 書者의 성품은 닮는다는 말이니 안중근 유묵의 풍격은 곧 그의 人品이 되는 것이다. 안중근 집안의 유가 학풍은 안중근에게 올곧은 유가적 정신세계를 형성하게 하는 데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 특히 공판을 앞두고 두 동생을 면회 보내면서 “의를 행 한 것이니, 항소를 하여 일본인들에게 구차하게 목숨을 구걸하지 말라”고 한 어머 니의 말에서 안중근이 그 절의의 정신을 이어받았음도 알게 된다. 이처럼 중근은 충절정신의 소유자이므로 당나라 顔眞卿의 충절의 서체를 이어받는데 남달랐던 것일 것이다. 안진경을 포함하여 중국은 시대마다 대표적인 서예가들이 출현하였다.  안중근의 유묵에 담긴 중국 문화형상을 정확히 이해하려면 그의 인생철학과 사상에 대한 이해가 수반되어야 하고, 그의 성정 형성과정을 이해하는 것은 그의 모든 것을 이 해할 수 있는 기반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 필자는 안중근의 學書과정을 먼저 살펴보았다. 하지만 안중근 유묵의 서체에서 보이는 중국 문화의 형상은 미술과의 연관 속에서 논술을 피면할 수 없게 된다. 필자에게 관련 지식이 부족한 탓으로 진일보의 논술은 이에서 피하기로 한다.   2.2. 유묵에 담긴 중국 유교문화 형상   안중근 의거의 정신적 근간이 되어준 유가사상적 문화형상을 연구한다는 것은 안중근 연구에 또 하나의 의의를 더해 주게 될 것이다. 본 쳅터에서는 안중근의  유묵에 체현된 중국 유교문화사상을 연구하고 확인함으로써 유묵에 숨어있는 문 화적 가치를 인식하는데 일조하게 된다. 유가사상적 문화요소는 일생의 목표가 대한의 독립과 동양의 평화라고 했던 안중근의 뜻이 어떻게 중국 유가문화 사상 과 융합되어 있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이로서 유묵의 정신적 배경으로 되어 있는 유가문화에 대해 짚어볼 것이다. 여순 러일감옥 구지박물관 안중근 전시관을 가득 채우고 있는 53점 옥중 유묵 중 다수의 유묵을 통해 안중근은 조선선비의 정신 을 지니고 있고 조선의 선비로써 의리사상에 정신적 기반을 두고 살았다는 것도 짐작할 수 있다. 맹자는 선비의 도리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선비는 인의에 뜻을 두는 것일 뿐이다. 한 사람이라도 죄 없는 사람을 죽이면 仁한것이 아니며, 자기의 소유가 아닌데 그것을 취하면 義로운 것이 아니다. 거처해야 할 곳이 어 딘가? 인이 그것이며, 길은 어디에 있는가? 의가 그것이다. 인에 거처하며, 의로 말미암 으면 大人의 일이 갖추어진것이다.    위의 인용문에서 맹자는 선비는 인의에 따라 살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맹자가 말하는 이상적 인격자의 표본인 선비는 바로 仁에 居하면서 義의 길을 걷는 사람이다. 이와 같이 선비는 인과 義에 뜻을 두고서 도덕적 가치를 실현하는 사람이다. ‘선비는 의리사상을 정신적 뿌리로 삼아, 평화시대에는 吟風弄月을 하며 자연과 하나 되어 浩然之氣를 기르고, 국가가 위기에 빠졌을 때에는 節義精神으로 仁과 忠을 실행하기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으로 義를 실천하는 것’이다. 안중근은 선비로서 인의의 성품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맹자가 말한 선비의 덕목으로 ‘인에 거처하며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 대인의 품위인 유가사상을 지닌 것이다.    중국의 공자에 의해 개시되는 유교사상은 일종의 가장 주목받는 문화적 요 소로 오랫 동안 한국에 존속되어 왔다. 이러한 유가철학은 현실적으로 한국사회 경 영의 윤리 규범으로 실용되어 오면서 인간의 옳은 삶이 무엇인가를 제시하는 준거 역 할을 수행해 왔다. 유가는 공자의 사상을 종주로 ‘인’을 주창하였고, 인은 유가철학의 핵심사상이 되었다.    仁은 ‘타인에 대한 사랑’이다. 이러한 인의 사상은 안중근의 유묵 에서 많은 수량을 찾아볼 수 있다. ‘仁’은 또 ‘忠’과 ‘恕’와 더불어 같은 맥락을 이루는데, ‘충’은 자기 내면에 있는 본성의 깨달음을 통한 사랑이다. 또 ‘恕’는 타인과 자기를 동일시 하는 일체감을 통한 사랑의 실천으로 이루어진다. 즉 ‘인’ ‘충’ ‘서’의 궁극적인 실천 목표는 ‘사랑’이다. 공자의 인사상은 맹자로 이어지면서 구체적 실천 강령 인‘義’의 개념으로 발전한다. 義는 인간 사회와 구체적 관계가 맺어진 표현이다. 義란 마땅함 이란 뜻으로 사람이 행해야 할 가장 마땅한 도리, 즉 가장 옳은 길을 의미한다.     안중근은 仁한 사람이었고 義를 실천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인과 義의 정신만으로는 한국의 독립을 이루기 어려운 실정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안중근은 살신성인하는 방법을 통하여 자기가 목적하는 바를 실천한다. 그의 이러한 인생 행보는 유묵들에 그대로 담겨있다.      안중근 유묵을 내용에 근거하여 갈래를 나누어 보면 아래와 같은 다섯 가지가 있다. 첫째는 유가사상의 격언을 빌어 자신의 심정을 나타낸 유묵, 둘째는 하늘을 노래한 천주교신앙의 유묵, 셋째는 조국산천에 대한 애착과 그리움을 담은 유묵, 넷 째는 일본 정부의 침략 정책을 질책하는 내용을 담은 유묵, 다섯 째는  조국을 위해 헌신하려는 영웅사상을 담은 유묵 등. 이 중에서 중국 유가문화의 형상이 가장 잘 체 현된 부분은 첫째와 다섯 째 유묵들인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을 골라 살펴보려 한다..     안중근의 유묵에는 주로 중국 유가문화 중에서도 ‘仁’의 형상이 잘 드러나고 있다. ‘仁’은 중국 전통 유가사상의 최고 이념으로 “인지위인人之爲人”의 최고 실천으로 평가 받고 있다. 상술에서 ‘인이란 사랑’이라고 한 말을 풀어서 말한다면 인이란 “여 러 사람을 널리 사랑하고, 백성을 편안하게 할 뿐만 아니라 자신을 단속하여 군자의 인격을 형성하고 인생의 이상을 실현하는 것”이기도 하다. 증자는 ‘잠시 부유한 것은 빈곤을 거울로 삼기보다 못하고, 치욕을 받으며 사는 것은 영광스럽게 죽는 것만 못하다. 피할 수 있으면 다행이지만 피하지 못한다면 군자는 죽음을 초개같이 여긴 다’고 말했다. 맹자는 공자의 ‘인’의 사상을 계승하고 발전시켰다. 그는 생과 사를 논하면서 “생은 내가 원하는 것이니라, 의 또한 내가 원하는 것이니라. 이 둘을 동시에 갖출 수 없거늘, 의를 위하여 생을 버릴지어다.’라고 했다.  안중근은 바로 이러한 사람이었다.      유묵 의 경우;  이 유묵은 《论语·卫灵公위령공편》에 나온 ” (지사와 어진 사람은 살기 위해 인을 해치는 일이 없고 몸을 죽여 인을 이룩한다)는 공자의 말을 인용한 것이다. 이것은 공자가 제자의 질문에 답한 데서 온 성구이다. ‘仁德과 생명이 충돌될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라고 학생이 물 었을 때 공자는 아주 심각한 표정으로 “이에 무슨 의문이 있단 말이냐? 무릇 진 정한 지사와 어진 사람은 죽음이 두려워 인의를 욕되게 하지 않을 것이며, 인의 를 위해 자기의 생명마저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라고 답하였다. 바로 이에서 이 성구가 유래하였다. 생과 사에 대한 공자의 인식에서 ‘생사’라는 것은 사람의 생명의 가치와 고상한 품격을 추구하는 정신적 가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생명 의 가치와 고상한 품격은 모두 사람의 생존과 발전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필요한 것들이지만 두 가지를 동시에 갖출 수 없을 때는 모름지기 仁義를 위하여 선뜻이 몸을 이바지해야 한다는 사상이다. 이로부터 사람의 정신적 가치는 생명의 가치 보다 더 높은 차원에 있다는 것을 알수 있다. 중국의 공자와 맹자의 이 사상은 후세의 수많은 사상가들과 志士仁人들에 의해 계승되고 널리 전파되었다. 그들 의 사상은 중국 뿐만 아니라 한자문화의 영향을 받고 있는 주변 지역에까지 심원한 영향을 미치였다. 안중근 의사가 옥중에서 쓴 이 부류의 유묵들, 그 중에 서도 은 중국 유교문화의 정수의 체현이며 또한 안중근이 자신의 하얼빈 의거에 대한 총화와 개괄이기도 하다.     유묵 (이익을 보거든 정의를 생각하고 위태로움을 보거든 목숨을 바쳐라)의 경우: 이 유묵에 체현된 안중근의 사상은 그 전에 쓴 “지사인인, 살신성인”의 계속이 라고 볼 수 있다. 민족을 진흥시키고 다 같이 힘을 모아 나라를 구하는 일은 안 중근의 영혼 깊은 곳에 뿌리 박고 있었다. 안중근은 나라가 위험에 처했을 때 이 익 앞에서 義를 잊는가 아니면 생각하는가, 선뜻이 앞장에 나설 것인가 아니면 죽음이 두려워 숨어 살 것인가 하는 것은 한 사람을 검증하는 시금석이라고 여겼 다. 왜냐하면 당시 일본 검사는 안중근에게 이등박문을 사살한 것이 잘못된 일이라고 승인만 하면 죽음은 면할 수 있다고 수차 권고하였으나 번마다 그의 단호한 거절을 당하였다. 그는 중국 의 위령공편과 獻文篇에 나오는 “杀身 成仁” “见危授命” 의 용기로 자신의 사상승화를 실현하였고 따라서 자신도 정정 당당한 사람임을 세상에 알렸다.    유묵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근신한다)의 경우: 이 유묵은 중국 문화 중 일상생활적인 이치를 담고 있다. 즉 “心平 气和”해야 마음과 행실을 닦고 어떠한 경우에도 변함 없이 자기의 소망을 이룩해 갈수 있다는 이치가 담겼다.  이 유묵의 원형 중 마지막 한 말을 보면 “故君子慎其独也”로 끝난다. 이 말을 줄이면 고대 중국의 유가 학설에서 가장 중요시하였던 “신독慎独” 이 되는데 이는 마음과 행실을 바르게 하는 방법론이다. 위의 유묵의 본래의 뜻은 ‘설사 곁에 아무도 없어도 자신에 대한 요구를 늦추지 말며 자신의 마음가짐과 행실에 주의하고 도덕에 어긋나는 생각과 행위가 발생하지 않도록 함으로써 항상 道義가 몸을 떠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신독’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사람에게 있어서 ‘신독’을 할 수 있는가, ‘신독’을 행하는 태도가 어떠한가 하는 것이 사람들이 마음과 행실을 닦고 있는가, 마음과 행실을 닦는 과정에 얻은 성과가 어떠한가를 가늠하는 중요한 표준으로 되고 있다.   에서는 “난초는 심산유곡에서 자라지만 복종하지 않는다고 하여도 향기를 잃지 않고, 쪽배가 바다와 강에서 항행하더라고 사람이 타지 않았다고 하여 뜨지 않는 것이 아니다. 군자가 의를 행함에 있어서 사람들이 모른다고 하여 멈추지 않는다” 고 하여 심독에 이르려면 남들이 없는 곳에서의 언행 모두를 엄격하게 요구하고 조금도 방심하여서는 안됨을 말하였는데 이는 에서 요구한 “신중하 기를 남들이 보지 않는 작은 것 부터 주의하며 다른 사람이 듣지 못하는 것도 신중 하여야 한다”는 것과 일맥상통하다. 당나라의 유명한 사상가 이고(李翱)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것이 제일 크게 보는 것이다. 남들이 듣지 못하는 것을 듣는 것이 제일 크게 듣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이 있으면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본 것이고 남들이 듣지 못하는 것을 듣는 것으로 이와 반대로라면 더욱 멀어지는 것으로 군자는 ‘신독’하여야 한다.”라고 했다.     남송의 朱喜는 “신독하는 사람은 남들이 모르지만 자기는 아는 경지에 이른 것을 말한다. 말이 명확하고 일이 미소해서 형체 가 아직 명확하게 형성되지 못하였지만 그는 이행하고 행동한다. 다른 사람은 비록 모르지만 유독 그만이 알 수 있다. 이는 천하의 일들이 비록 명확하지 않지만 신독한 사람들은 이미 다 알 수 있다. 그러기때문에 군자는 경상적으로 신독하고 그 기초 위 에 더욱 신중하여 진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을 억제하려는 욕망은 그 생각이 생길 때에 없애버려야지, 무성하게 자라게 내버려두어 도덕과 멀어지게 하여서는 안된 다”라 고 했다. 신독에 대하여 康有为도 이르기를 “中庸은 처음으로 사람의 천성의 수양 근본은 사람의 본성을 극복하기 위한 신독에서 찾아야 한다.”라고 말한적이 있다    상술한 옛 성현들의 말들에서 신독이 인간의 자아수양법에서의 중요한 가치를 알 수 있다. 안중근이 옥중에서 ‘신독’으로 자신을 다스릴 수 있었다는 것은 그의 고상한 사상경지를 보여주었을 뿐만 아니라 중국 유가철학인 ‘신독’을 빌어 자신이 이등 박문을 사살한 행동을 전면적으로 긍정하고 있다. ‘위태로움을 보거든 목숨을 바쳐라 (见危授命)’,‘살신성인(杀身成仁)’‘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근신한다(戒愼乎其 所不睹)’란 유묵은 바로 안중근이‘신독’을 통하여 몸과 마음을 닦아서 얻은 결과이다.     우리는 안중근이 유묵을 쓸 때 빌려온 , ,등 명언 경구, 그리고 안중근이 주장한 忠과 義 등으로부터 중국 전통 유가사상이 그에게 미친 영향을 보아낼 수 있다. 그는 유가사상의 영향 하에 충의의 신심과 책임감을 형성 하였을 것이다. 이로하여 “국가의 안위를 위해 노심초사 (國家安危 勞心焦思)”할 수 있었고, 사형에 임하여 마지막으로 남긴 유묵에서처럼 “나라위해 몸 바침은 군인 의 본분이다”라고 생각할 수 있었을 것이다. 상술한 것 외에도 그의 유묵에서의 이러한 유가 문화형상은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유가 사상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바 이러 한 사상의 정수는 중국 문화 중‘인’의 문화를 가장 빛내여 준 사상 체계이다. 이에 속하는 안중근의 유묵으로는 “어질지 못한 자는 궁한 곳에서 오래 못견딘다. ”, “담백한 밝은 뜻이 편안하고 고요 하여 오래 전수된다 ”.“가난 하고 천한 것은 사람들이 싫어한다””등이 있다. 이러한 유묵은 공자의 『논어』 「이인편」>의 것을 인용한 말이다. 그리고 “민첩하고 배우기를 즐기며 아랫사 람에게 묻는 것 을 부끄러워 말라 ”,는 상무의 기질을 가진 안중근이 학 문을 중시하였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글귀이기도하다.    그 외에도 “가난하되 아첨하지 않고 부유하되 교만하지 않는다”, “눈보라가 친 후에서 송백이 시들지 않음을 안다”, “사람이 멀리 생각하지 못하면 큰 일을 이루기 어렵다.” ,”일을 도모하는 것은 사람에게 달려 있고, 완성하는 것은 하늘의 뜻에 달려있다. 谋事在人 成 事在天” “나물 먹고 물 마시니 그 속에 낙이 있다”, “해마다 계절따라 같은 꽃이 피건만 해마다 사람들은 같지 않 고 변하네,” 등 안중근의 유묵은 천주교 신앙 을 대표한 유묵를 제외하고 거의가 중국의 유가문화에 대한 새로운 이해로 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그의 유묵을 보면 아름답고 늠름한 느낌을 준다. 아름다움 속 에는 수양을 담고 있고 늠름한 속에는 민족정신으로 넘쳐난다. 그의 유묵들 속에는 중국 유가사상이 고스란히 살아 숨쉬고 있다.   Ⅲ .나가며 본 논문에서는 대련 여순러일감옥구지박물관 안중근 전시관에 전시된 안중근 유묵 53점을 상대로, 그의 유묵에 담긴 중국 문화형상에 대해 크게 두개 방면으로 살펴보았다. 그 첫 번 째는 안중근 유묵의 서체에 입각하여 중국 서예가들의 흔적을 찾아 보는 것으로 유묵에 담긴 중국 문화형상을 알아보았다. 안중근의 서체는 왕희지, 구양순, 안진경, 황정견 등의 필치을 하나로 만든 ‘안중근 필체’로 자리메김하여 서체 속에 본인의 모습을 담는데 성공하였다는 결론을 얻었다. 말하자면 침착하고 호기롭고 통쾌한 안중근 모습은 그의 서체에서 볼 수 있는 경지에까지 간 것이다. 8-9년 밖에 공부하지 않은 한문으로 자서전 와 저서 까지 쓸 수 있는 경지에 이른 안중 근은 하얼빈 의거로 영웅적 이름을 남겼지만 유묵의 체현된 서체의 개성으로서도 그 나름의 풍격을 갖추고 있음은 필자가 연구하면서 느낀 점이다.    다음은 유묵에 담긴 내용에 입각하여 중국 유가 문화형상을 살펴보았다. 먼 저 유묵을 내용에 따라 다섯 가지로 분류하고 중국 문화와 관련 없는  천주교 신 앙을 담은 유묵은 연구에서 예외화하였다. 그리고 유묵의 출처와 담긴 내용에 집중 입각하여 중국의 유가 문화형상을 살펴보았다. 그 결과 안중근 유묵의 내용은 소수 부분을 제외하고 중국의 경전으로부터 온 것임을 알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안중근 유묵에서 중국 문화의 경전들을 내면화하여 시대적 감각과 민족적 기개가 넘치는 자아의 사상체계를 수립하고 있음도 알게 되었다.     학계에서의 안중근에 대한 연구는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모든 연구는 그 의의 와 가치를 가지는 만큼 앞으로도 안중근에 대한 연구는 지속될 것이다. 또한 그 에 대한 연구업적도 놀랄만큼 많다. 본 논문에서는 이러한 선행 연구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고 노력하였다. 하여 사람들이 연구의 보습을 대지 않은 안중근 유묵의 중국문화 형상을 알아보고자 하였다. 하지만 새로운 영역인 만큼 자료의 부족함을 심히 겪었고 또 이로하여 본 논문을 써가는 과정에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마무리하는 이 시점에서도 본 논문이 많은 미흡한 점을 동반하고 있을 것임을 알고있다. 하지만 작으나 연구의 새 시작에 일조한 것은 의의가 있다.      여순러일감옥 구지박물관 안중근 狱中遗墨目录 1) , 2) 
9    우리말 우리글, 어디까지 왔는가? 댓글:  조회:1216  추천:3  2015-03-14
   재 중국 대학교들에서 한국어 밥그릇을 들고 있는 조선족 교수들 앞에 나선 새로운 과제를 풀어내는 데 일조하고자 하는 것이 이 글을 쓰게 된 나의 초심이다.     아시다시피 한국어란 한국의 언어기준을 본따 중국의 중국인을 가르친다 하여 생긴 이름이다. 하지만 실제 공식적 이름은 한국어가 아니라 조선어이다. 그래서 연말 총화문이나 업적물을 제출할 때거나 프로젝트를 올릴 때는 조건없이 소속을 조선어로 써야 하며, 어떤 이가 갖고 있던 습관을 일시 고치지 못해 한국어라고 썼을 경우에는 다시 지우고 써야 한다. 하긴 컴퓨터의 힘을 입어 하는 일이라 별 손해될 것은 없지만, 그래도 성 가신 부분은 없지 않아 있다.      이를테면 당사자가 지금 외출 중인데 표지의 소속을 고쳐야 한다고 인사관리부문이나 연구 부서에서 전화를 걸어왔다면 그 몇 글자를 고치기 위해 날개 달고 돌아갈 수도 없고 해서 답답해지는 경우가 비일비재다. 그러니 변화가 필요할 때는 때에 맞춰 스스로를 민첩하게 바꾸어내는 사람으로 살아야 불이익이 가지 않게 될 것이다.      모든 건 필요가 첫째라 이 시대의 맥을 바르게 짚고 가는 것이 밥 먹는데는 무리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 필요함이 언어에까지 미치고보니 단지 변화란 말로 간단히 스치고 가기에는 무거운 듯하여 고민을 해 보는 것이다     요즘 중국 대학들에 있는 조선족 지식인들이 조선어의 힘을 통째로 포기해야 할 때가 되었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우리글로 발표한 학술논문은 중국의 학술 무대에서 더 이상 설 자리가 없게 되었다는 말이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각 대학들에 재직 중인 한국어를 가르치는 조선족 교수들은 우월성을 가지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중국 내에 조선글 학술지가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한국 학술지에 발표할 수 있는 큰 길이 있었고, 게재된 논문은 인정을 크게 받아 높은 업적물로 평가 받았었다. 하지만 지금은 손바닥 뒤집기가 되었다.     물론 우리글로 된 문학작품은 조선족들이 읽어주니 우리의 민족적 생활권 내에서는 그나마 얼굴이 서고 있다. 그런데 비문학적인 글의 경우에는 생존의 마당이 갈라터지고 있다.  평가기준에 있어 중국어만이 가능하기때문이다. 물론 중한 번역과 같은 공구적 의미에서의 언어바꿈은 이 범위 안에 놓고 의논할 바가 아니다.      한국어를 가르치는 조선족선생들은 대부분이 유학파이기에 한글이 연구영역에서 1순위로 쓰이지만, 이제 이 언어적 우선 지위는 사라졌다. 자기 민족 언어를 씀이 순리라는 말이 통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하여 한국연구재단 등재지에 발표한 연구 업적물도 이제 빠지는 해가 되어버렸다. 부연설명을 조금 더 한다면 한국연구재단 등재지는 한국의 최고급 학술지로, 한국 자국내 교수의 경우에도 일년에 단 한 편의 연구논문만 실어도 년간 연구임무를 훌륭히 완성한 것으로 인정받는다고 한다. 이는 필자가 한국연구재단 관련부서의 확인을 얻은 바이다.      그런데 이제 중국 대학들의 한국어 선생들은 연구물을 한국연구재단 핵심 최고급 학술지에 발표했다고 해도 일반 학술지 취급을 받게 책정되었다. 그리하여 조선족 교수들의 조선어로 된 연구 논문들을 요즘 학술 기후라는 저울에 올려 놓았을 때는 속이 빈 것으로, 무게가 나가지 않는 다는 말이다. 이러한 사실은 한국어가 개설되어 있는180여개 대학들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조선족들이 교수 진급에 제일 커다란 걸림돌로 나서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그럼 이 새로운 과제를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 급선무로 나서는 건 관련 선생들이 중국어로 된 연구논문을 쓰고 발표해야 한다는 말이 되고, 또 그러기 위해서는 기존의 민족의 고유언어는 다만 소통의 공구로만 국한시키고, 보다 실속이 되는 부분은 중국언어로 바꿔야 한다는 말이 된다. 적응하는 것이 총명한 자의 선택이라고 한다지만, 적응이라는 것이 어디 그리 쉬운것인가!     그리하여 현재 상황을 볼진 대, 전국 경내에서는 북경대학을 주축으로 하는 북경대학핵심학술지, 남경대학을 주축으로 하는 남경대학핵심학술지가 정해져 있는데, 어느 민족이든 중국어로 그러한 학술저널에 당신의 연구물을 실어야만이 해빛을 볼수 있게 되어 있다. 출판물도 외국에서 낸 것은 인정을 받지 못하게 되어 있다.       이제 우리는 우리말에 대한 고집을 꺾어야만 할 때가 도래했는가?  이제 우리는 우리말로 가르치고 중국글로 펴내야 하는 다재다능 요리조리 조선족으로 살아야 할 시점에까지 온 것인가!?                                                                             2015년  2월  1일  해변옥도에서    
8    [수필]세월의 가슴에 꽃 달기 댓글:  조회:1018  추천:2  2015-02-27
                           세월의 가슴에 꽃 달기                                                                                                  5.1 연휴가 왔습니다. 오늘도 남편은 그림의 세계에 상상력을 도배하고 있습니다. 아시겠지만, 예술의 광장에 가면 자연은 언제보나 진솔한 도우미 역할에 충성 다하며 산답니다. 갖가지 유화오일로 새로운 색상을 만들고 있는 남편의 뒷 모습 너머 보니 이제 막 초봄 차림을 벗고 여름의 입구 앞에 선 백두산천지가 눈앞에 펼쳐집니다. 숲과 꽃이 어우러져 빙 둘러 손잡고 서서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거룩한 천지와 정을 나누고 있습니다. 그 아름다움의 초대장을 받은 내 마음 공간 또한 순간 아담하고 싱싱한 숲이 된듯 합니다.          봄은 가고 있습니다. 가는 계절의 미학은 우리에게 영원한 것이란 이 세상에 없 는 법임을 말해줍니다. 그야말로 계절에도 생리연령이 있으니 한 세대가 가면 또 한 세대의 탄생이 오는 법입니다.  인간도 자연의 자식인 계절을 닮았나 봅니다. 그러니 오늘도 이런 자연의 보석으 로 이루어진 땅 위에서 나름 삶의 마당을 닦고 어색함 없이 살아 가는가 봅니다.   봄이 작별 인사를 보내니 포름포름 초여름이 상큼거립니다. 시장문화가 발달한 이 고장에는 제철 야채가 문앞에서 반기고 체감에 따른 의상패션도 세계를 아름답게 장식합니다. 세월의 숨소리가 한창 바뀌고 있나 봅니다. 나도 그러한 바꿈에 익숙해진 세상의 표정을 따라봅니다. 새 인생을 열어줘야 할 겨우내 잠자던 옷가지들 , 따사로운 해볕 아래 해독을 시켜야 할 옷가지들, 이 시각부터는 장농 깊숙한 곳으로 잠적을 시켜야 하는 옷가지들… 한 가족에게 새 마음, 바뀐 기분으로 새 삶을 맞이해야 할 의무를 지닌 계절 옷 정리에 하루라는 시간의 허리를 통째로 잘리웠습니다.         스케줄 book을 봅니다. 에어로빅 코스가 다음입니다. 기분이 금방 흥분의 너울을 씁니다. 체내의 독을 땀으로 일소해 주는 건강지기로. 피곤을 죽이는 해시시로 사는 것은 운동이 누리는 삶의 전부랍니다. 큰 거울 앞에 츄리닝 차림으로 흘러나오는 스포츠 리듬을 밟으며 일에 시든 육신의 세포에 통풍을 시켜줍니다. 마음과 표정은 금방 젊음의 에너지원을 찾아갑니다.           집문 들어서기 바쁘게 욕실에 들어갑니다. 땀의 축복을 받은 몸은 물의 세례를 갈망합니다. 집이라는 안식처에 있어 샤와는 나에게 제2의 휴게소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게 무슨 벼락입니까! 샤워실에 켜진 등불이 명멸하고 침침습습한 냄새가 후각 신경을 파고 들어옵니다. 화장실 천정에서 물방울이 락하산을 타고 면상 위에 내려왔습니다. 눈앞 일에 양호했던 기분이 짜증으로 오염되기 시작합니다. 위층 이웃 출입문을 노크했습니다. 한참 후에야 문이 열렸습니다. 할머니분이었습니다.        기분 제어가 잘 되어 있지 않았는지 나의 두 발은 성큼 이웃 거실에 들어섭니다. 수도물 장치가 고장 났나 봅니다. 화장실과 인접한 거실쪽은 물이 자유를 누리고 있 습니다. 불쾌감으로 발작 일보 직전이던 심정은 잠깐 주춤해졌습니다. 억양에 부드러 운 올리브를 발라 물이 아래로 줄줄 세고 있으니 수리전담소에 신고하는 게 어떤가 제안을 붙여봅니다. 그런데 할머니는 '아니요' 라는 가위로 내 호의의 테이프를 싹둑해버립니다. 은행 간 주인 아저씨가 귀가하면 돈푼 안 들이고 바로 수리 가능하다며 생뚱 고집울타리를 세 우고 나섭니다.  내 인내의 뚝이 끊어졌습니다. 자신을 끝내 말리지 못했습니다. ‘아이구 할머니두, 언제 아저씨를 기다린다구 그러세요. 우리집 화장실 천정이 줄줄 쇠고 있는 거 못보셨군요!’      나의 딱딱함 앞에 할머니는 한걸음 양보했습니다. 주인 아저씨에게 전화를 하라며 거실 구석쪽에 놓인 수화기를 가리켰습니다. 천만다행히도 할머님 사리의 눈금은 파랗게 살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전화기쪽으로 가다가 발목이 잡혔습니다. 주방쪽에서 '주르륵, 뚜욱 뚜욱' 거리는 애기 물장난같은 소리가 청각의 문고리를 잡았습니다. 눈길을 그쪽으로 돌려 보니 백발 할머니가 난쟁이 쪽걸상에 앉아 물먹은 걸레를 쥐여짜고 있었습니다. 허리 굽혀 인사를 드렸건만 응답조차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의아해진 나를 보며 ‘귀가 갔 어요’ 라고 할머니가 뀌띰했습니다.        할머니는 이번엔 놀라움에 커진 내 눈을 마주보며 자기 시어머니라고 덧붙혔습니다. 하늘 사람이 전해주는 말 같았습니다. 할머니가 할머니 시어머님을 모시고 살고 있다 니, 나는 입을 딱 벌렸습니다. 나도 인륜의 아름다움을 구겨 밟고 노인네와 멀리하는 것에 익숙해진 시대에 살고 있는 똑똑한 바보이었나봅니다.         알고 보니 아흔 셋 고령의 시어머니와 예순 여섯되는 며느리가 한집에서 43년을 함께 살았답니다. 스물 셋에 시집와서부터 지금까지라고 할머닌 담담한 웃음을 보였 습니다. 나는 할머니와 마주하고 앉았습니다. 천상 락하수땜에 찾아 갔다는 건 완전 망각해 버렸습니다.        문을 열어준 분은 며느리 할머니였습니다. 그는 여자로 걸어온 스스로의 시집살이 인생에다 단백하고도 자그마한 점 하나를 달랑 찍었을 뿐입니다   ‘’말도 말아요’  이것이 전부였습니다.      사랑에 찍어주는 점처럼 아름다움으로가 아니라 역사의 위인 에게 찍어주는 거룩함의 피조물이 되여 내 인지의 세계를 빈자리 없이 채워 주었습 니다. 시집살이 설움 많이 겪었다든지, 사는 게 식상하다는식의 한탄같은 건 시궁창 에 버린지 오래랍니다. 분명 하마슐더가 남긴 말처럼 “지나간 모든 것에 감사하고 다가 올 모든 것을 긍정하면서 오늘에 최선을 다하”는 삶이 그를 지탱했나 봅니다.   그 할머니는 행복한 고생을 먹으며 사는 게 인고를 초월한 보람된 것임을 아십니다.      정말 세상 터널을 빛으로 살아 나왔다고 하는 며느리 할머니의 마음 우물에 고여 있는 정답이 무엇일가가 궁금해 집니다. 미지의 집을 탈출하고자 지혜의 정미소를 방문합니다. '참을 인'자 하나가 인생의 선구가 되여 걸어가는 길에서 만나는 모든 ‘점’ 들에 보낸 미소, 삶의 정체성에 대한 무한한 확신,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시어머니 할머니가 주방에서 나오셨습니다. 쏘파에 와 앉았습니다. 머리카락 겉층에 티끌같은 것이 묻어 있었습니다. 며느리 할머니는 시어머니 할머니에게 '이리 좀 와 바’ 하더니 그것을 떼여 주었습니다. 딸을 대하듯 하는. 혈육같은 이야기가 그 짧은 말 한마디 속에 또렷또렷 펼쳐졌습니다. 따뜻하고 깊은 온정의 아름다운 사실화 그대로 이었습니다.      그 정경을 보며 들으며 느끼고 있을라니 마음의 계곡에 아름다운 격류가 만들어 집니다. 그리고 그 위로 순금의 옷을 입은 감동의 무지개가 화알짝 비껴오고 있음도 막을 수가 없습니다. 인간 세상에서만 볼 수 있는 최정상 풍경입니다. 그 풍경 위를 거닐었다는 참 좋음이 내 마음의 집을 따뜻하게 포옹해 줍니다.      지금도 며느리 할머니의 미담은 세월의 줄을 타고 열려있는 마음과 마음들의 세계로 흘러갑니다. 나무가 흔들리지 않음은 뿌리의 깊음에 있고 인간이 인간다움은 효라는 마음의 풍경을 갖고 있음으로 가능합니다.      아마도 인간에겐 자잘한 삶의 이야기들이 있어 지척에 태양을 둘 수 있고, 거룩한 아름 다움이 있어 시대를 주름잡아 갈 수 있나 봅니다. 그야말로 우리는 누구 나 이 고운 느낌 하나하나를 부각하며 사는 인생의 조각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 도 우리는 두 손에 조각용 찰흙을 부드럽게 이겨 들고 삶을 조각해 가고 있습니다.  그대는 지금 어떠한 인생상을 조각하고 있습니까?                                                                                                                  발표내역: (2014년 6기)
7    [수필]당신은 온 마음으로 울어본적 있습니까! 댓글:  조회:1031  추천:3  2015-02-14
                                           당신은 온 마음으로 울어본적 있습니까!                                                                                               인간은 마음의 안방에서 우러나오는 욕구에 자기만의 코스를 따라 삶의 마라톤경기를 이어갑니다. 그것의 목적지는 티끌하나라도 주고야 떠나는 성장의 집입니다. 쓰거움과 같이 할 때는 마음이 세례를 주게 합니다. 노을이 비낄때는 모으고 모았던 열심의 조각들은 즐거움의 샘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줍니다. 이같이 인간의 성장은 심적인 이치의 승화로 만들어진 것인가 봅니다. 그러한 승화는 아름다움의 절정을 누립니다. 제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영원한 삶의 조각상이 되어 우리와 더불어 살아갑니다. …인간은 이러한 지적인 차원향상에 한생을 투자해갑니다.       인간의 성장에 있는 고통의 이미지를 핥아봅니다. 성숙해지자면 많은 눈물의 비단을 깔아야 합니다. 아픔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 누구에게든 달갑지 않습니다. 하지만 잠시도 자지 않고 슬픈 옷을 입고 삶의 마당을 오락가락하는 울음을 누구든 막을수가 없습니다. 아픔의 제단으로 되어버린 땀의 노동때문에 울었습니다.    머릿 속의 아이디어를 동원시키는 것은 참다운 인간에겐 쉬움으로 다가옵니다. 그것을 종이집에 심어 마음을 펴내기 위해 펜을 빌어 쓰는 일도 어려움은 아닙니다. 하지만 펜에서 흘러나오는 것의 생명은 스스로가 좌우할 수 있는 자기만의 것이 아닌가 봅니다. 인정의 광에서 쫓겨나 죽음의 암흑통에 던져졌을 땐 울음이 말없이 찾아줍니다. 볼멘소리 나가는 입에 지퍼를 닫고 참을 인자를 바닥에 쓰며 울었습니다. 타자의 예지의 열매에 반발을 달아매기보다 울음으로 자신을 이기고 지혜의 숫돌에다 마음을 갈아보는 일이야말로 때벗김이라고 생각해봅니다.   불운감에 잡혀 울었습니다. 자신을 내보일수 있는 요즘 세상의 거인인 경제의 난쟁이가 되어 찾아준 울음입니다. 구매력 불가의 칭호를 하사한 살아있는 종이의 발에 밟혀 잘 펼 자리를 거세당한 내 마음속 발화자와 슬픈 이야기 나누며 운명의 괴로움으로 울었습니다. 스스로를 선보이기 위해 먼저 내놓아야 한다는 논리는 호흡이 있는 곳마다 다를바 없는 윤리인가봅니다. 보고자 했던 이름자 지우고 지어진 전당을 읽으며 미래를 손짓하는 학문의 집에도 지지리 못난 심사가 문지기할 때 있음을 알았습니다.   억지에 밟혀 울었습니다. 약속의 생명을 한 순간에 뭉개는 억설 앞에 밤바다가 되었습니다. 노함은 위험의 집에서 나오는 호랑이입니다. 나에게 아무것도 찾아주지 않았고 있던 것마저 삼켜버렸습니다. 빈 마음의 주인은 고독입니다. 살아남을 방법 가르쳐주는 천사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법률자문의 최상 인격도 편나눔을 하는데는 마음의 눈에 모래가 끼기도 하는가봅니다. 하루 노동에 한 시간의 보수를 주는 엉망에 울었습니다.    떠남 앞에서 울었습니다. 정으로 걸군 폭신해진 곳을 떠나야 할 때 울었습니다. 생의 여정이 멈추어지는것 같은 쓰라림으로 울었습니다. 꿈이 깨어지는 것 같은 아픔으로 울었습니다. 떠남의 아픔은 새로운 비약의 시작을 만들었습니다. 떠나는 아픔이 있어야 다시 돌아오는 기쁨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떠남의 눈물은 떠나고 싶을 때 떠나는 높은 결단입니다.    비방울처럼 혼자 울었습니다. 개나리 핀 산길에 널려있는 아픔과 고독을 주으며 마음의 등대를 상상 속에 반짝여봅니다. 늘 성공하고 늘 이기는 일은 없다고 마음을 다독여 줍니다. 최선ㄴ을 다하고도 실패의 잔을 마셨을 때 울음은 내곁에 왔습니다. 그는 나더러 다음의 더 큰 행로를 생각하라 했습니다. 끝없는 용기와 도전을 품도록 눈물은 자리를 같이해주었습니다. 울음은 비애를 쏟아내고 자아를 찾아주는 변환의 서러운 자유인입니다.     그리움에 잡혀 울었습니다. 통통 불어난 모성애를 펼길 없는 아픈 그리움의 오솔길에 주저앉아 내내 울었습니다. 사랑이 노래하는 품속에서 울음이 홍수났습니다. 금방 심은 삶의 애러인 나무는 그리움의 눈물을 먹고 자라고있습니다. 그리움은 가족애의 터전에 뿌려진 보석이었음을 알았습니다.    행복에 겨워 울었습니다. 주위의 모든 것과 하나라고 느끼는 방법을 배워내는 순간이었습니다. 배움의 무한자유를 누리고있는 기쁨과 감사로 충만해지는 기분의 애무속에 마음의 치유가 옵니다. 행복은 손수건 갖추어진 눈물입니다. 불행을 상상하면 불행해지고 행복을 상상하면 행복해짐을 눈물로 알아냅니다. 승리를 상상하면 승리하게 되고 패배를 상상하면 패배하게 되는것은 심플한 삶의 공식임을 알게 해주는 울음의 통과의례였습니다.     한번쯤은 몸과 마음을 던져 울어보는 것도 심신의 보약이 됩니다. 물레방아처럼 온 몸으로 울어보고 싶습니다. 고귀함 아닌 이기심에서 오는 것이라 해도 나는 울어보려 합니다.  울음은 마음의 독창입니다.  울음은 눅눅한 기억이 아닙니다. 스스로의 의식에 갇힌 죄수의 사슬을 풀어줍니다.  울음은 정신적 어머니였고 인간을 가꾸는 독특한 사랑의 철학이었습니다. 울음은 정신과 몸에 있는 누더기를 새 옷으로 만들고 내면의 원초를 고스란히 지켜주었습니다.  울음의 정체는 100년 인간 나무가 자라감에 필요한 밑거름이라 편하게 생각해봅니다. 울음의 흔적을 씻어내고싶지 않습니다. 울음은 친구입니다.                                                              2005년 3월 26일 작                                            발표내역: (  2006년 9월호)
6    [수필]당신은 사랑을 위해 무엇을 걸겠습니까? 댓글:  조회:828  추천:2  2015-02-09
      희망을 걸겠습니다. 쉬지 않고 희망의 문을 두드리다보면 얻어지는 것이 있습니다. 인간의 아름다움에 날개가 된 희망은 정성으로 빚어진 사랑의 떡을 먹어야만 자랄 수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희망으로 만들어진 사랑은 늘 푸르답니다. 푸른 사랑은 늘 새로운 사랑을 만들어가는 희망의 축복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기쁨을 걸겠습니다. 인간에게 있어 마음의 집엔 늘 퐁퐁 솟아나는 기쁨의 구멍이 있습니다. 그것은 약수와도 흡사합니다. 밑으로부터 솟아나와 갈증난 사람들에게 자신을 헌신하는 샘물은 그 전부가 사랑의 천사를 닮았답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밥을 먹으면 건강에 만능보약이 된답니다. 모르는 상대라고 해도 미소를 보냅니다. 그러면 바로 아름다운 인연이 맺어진답니다. 그늘이 진 마음을 기쁘게 해주는 사람이 진정 사랑을 알고있습니다.   포용을 걸겠습니다. 죄송함의 느낌을 깨끗이 씻어주는 파워세탁제 포용 앞에서 깨끗해지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어색해하고 죄스러워하는 사람에게 포용보다 더 필요로 하는 아름다운 마음의 포장지는 없는 줄로 압니다. 서로의 마음 페이퍼에 적혀있답니다.   정성을 걸겠습니다. 허물어져가는 집에 들어갔을 때 우리는 삶에 정성이 모자라는 주인집의 식은 마음을 느낍니다. 삶이라는 천정에다 정성어린 고임목을 받쳐준다면 집은 살아가는 안식처로 당신을 따듯이 거느려줄 겁니다. 정성을 다해 사는 사람은 피곤보다는 정성 속에 풀어지는 매듭들을 보고 행복한 미소를 짓게 됩니다. 정성은 늘 당신의 마음의 밭에다 즐거움의 나비를 보내줍니다.   믿음을 걸겠습니다. 사랑의 뿌리는 믿음이 옥토에서만 성장이 가능합니다. 양광이 아무리 충분하여도 믿음의 토양이 없으면 사랑의 곡식은 순식간에 무덤 속에 묻힙니다. 남편이 당신에게 의심을 품더라도 당신은 믿음으로 대합니다. 그러면 그 의심은 해빝을 맞은 안개처럼 금방 보따리 싸지고 영영 지옥의 세계로 가버립니다. 사랑의 가마엔 보다는 적성에 맞는 온도가 필요합니다.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아 성장에 안성맞춤한 것은 바로 믿음이라는 토양이 만들어낸 기적의 대리인이랍니다. 믿음이란 온갖 잡초가 생성할 수 없는 마음의 경비실이랍니다. 사랑은 믿음이 지어주는 하루 세끼 밥을 먹고 자랍니다. 믿음의 배가 고프면 헬스를 다녀도 댄스를 해도 사랑의 면역력은 허기지고, 이로 하여 당신의 사랑에는 마침표가 생기고 맙니다.   순종을 걸겠습니다. 순종의 아지들로 무성해진 사랑의 나무엔 늘 행복의 열매가 주렁집니다. 오고가는 마들에 가시를 달지 않고 순종으로 대함은 그 사랑에 주는 가장 필요한 정의 비타민입니다. 순종으로 서로를 대하는 부부는 요즘 세상에 제일 멋있는 풍경이랍니다. 순종은 사람의 마음에 주는 마사지와 같은 것이어서 마음은 늘 생기넘치는 넓은 바다가 됩니다.   미소를 걸겠습니다. 미소는 마음이 차가운 겨울에도 얼지 않게 하는 부동액입니다. 기상하는 그이에게 미소를 지어줍니다. 그러면 당신의 하루는 행복의 키스와 같이 합니다. 미운 사람에게도 미소를 보내봅니다. 당신을 향해 달려오던 미움의 화살도 금방 방향을 비켜 가버리고맙니다. 주방에 들어오는 남편에게 미소를 지어보입니다. 당신의 아침밥을 차려주는 남편을 만들겁니다. 칭찬을 할 때도 미소란 삶의 양념을 꼭 곁들입니다. 그러면 살맛나는 삶의 하루하루가  대범한 부자마냥 당신을 향해 마음이 배낭을 풀고 푸짐한 배려를 한답니다. 부탁이 필요할 때도 미소를 지어보입니다. 당신의 부탁은 조건엇이 만들어질 수 있는 우선권 티켓을 산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부탁을 들어준 다음에도 미소짓는 것을 잊지 맙시다. 감사의 마음으로 당신을 늘 기억하고있을 겁니다. 귀에 거슬리는 말을 들어도 미소를 지어보이는 사람이 됩니다. 의사의 의료기가 되어 당신 마음의 가시를 뽑아줍니다. 미소는 온 마음에다 발라도 낯가림 없이 잘 스며드는 삶의 화운데이션입니다.   변화를 걸겠습니다. 변화하는 모습을 만들어갑니다. 대충 에때우던 끼니대신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서 멋있는 식탁 위에 놓고 먹습니다. 그리고 식탁 위에 생화 한 송이 갖추어 놓는걸 잊지 맙시다. 당신의 변화는 사랑을 불러오는 봄바람이 됩니다. 사랑을 전제한 존중이 당신의 곁을 찾아줄 겁니다. 성형수술보다는 에어로빅하는 여자가 되어봅니다. 찜질방보다는 조깅하는 사람이 되어봅니다. 당신의 건강은 금방 당신의 지혜로운 투자에 사랑의 메시지를 보내줍니다. 화장대 앞에만 앉지 말고 책을 드는 사람으로 변화합니다. 삶의 주인은 풍성한 잔치플 베풀어놓고 당신을 기다린답니다. 얼굴이 아름다워서 아름다운 것이 아닙니다. 변화의 버튼을 자주 클릭하는 삶에는 아름다움의 극치로 빚어진 웰빙의 삶이 숨쉽니다. 변화는 당신과 나를 삶의 귀족으로 꾸며줍니다.   칭찬을 겁겠습니다. 칭찬을 잘 하는 사람의 마음엔 샘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타인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랑의 옹달샘입니다. 그곳에서 끊임없이 사랑의 물이 솟아나와 칭찬으로 옷을 갈아입고 삽니다. 칭찬을 들어서 싫어하는 사람은 없답니다. 가족은 너무 익숙한데 무슨 칭찬이냐는 생각을 하고 있다면 시급히 변화의 옷을 입혀봅시다. 가족인도 내밖의 존재입니다. 사람에게 똑같이 필요한 것은 화장실 갈 때 휴지 필요하듯 칭찬은 누구에게나 정신의 보약이 돔을 사랑은 힘은 약속합니다. 사랑은 칭찬을 동반자로 압니다. 칭찬엔 돈을 쓰지 않아도 됩니다….   시간을 걸겠습니다. 사랑을 위해 시간의 에너지를 사용하는 모든 사람에게는 사랑스런 사람들이 당신 마음에다 집을 지어놓고 모여들 것입니다. 더 이상 시간이 없어 시간의 힘을 베풀지 못할지라도 사람들은 떠나지 않고 받았던 사랑을 존경과 함께 되돌려 줍니다. 사랑의 샘은 늘 마르지 않습니다. 아무리 퍼 올려도 마르지 않는 내 안의 샘물입니다. 사랑은 생명의 마지막 길에도 꽃으로 향기로 다시 살아나 우리가 머물고 있는 거친 땅에 푸름과 윤택과 희망을 만들어주는 씨앗으로 삽니다. 놀라운 힘은 사랑이 만듭니다. 삶의 가장 아름다운 이유라면 이 사랑과 만나기 위해 사는 것이랍니다. 사람을 움직이는 마술사는 사랑입니다.   사랑은 삶에 필요한 모든 에너지를 만드는 제조원입니다. 사랑의 마음은 영원한 유행어입니다. 우리 삶의 키워드가 되어줍니다. 사랑의 순금은 마음이란 오피스텔에서 완성되어집니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사랑합니다는 한마디만 가지고도 이 세상은 모두 당신의 것이 됩니다.  사랑합니다!                                                                                           2006년 2월 작                                                       충남대 유학생기숙사 개발동  303호                                                                         발표내역 ( 2006년 6월호)
5    [수필]무궁화의 향기 댓글:  조회:926  추천:3  2015-02-07
                                                                                   무궁화의 향기          나는 삶의 이미지가 갖고 있는 진정한 모습이 어떠한 것인지도 속속들이 알아봄 없이 인생의 중반까지 허위허위 걸어왔다. 어릴 때는 하루에 한번씩 벌떡쇠가마에 돼지죽을 끓여 열마리나 되는 돼지키우기 심부름을 하는 것으로, 바람부는 날이면 풋고추 말림대를 재빨리 발아놓아 바람밥이 될번했던 고추나물건지기에 실수없은 것으로, 개보다 낫다는 엄마의 칭찬을 받아보는 것으로 사는 멋을 알았다.        저린 추위에 감나무 떨듯하다가 따뜻한 온돌방 차지하고 앉아 반질기름 잘잘 흐르는 새까만 국가마에서 퍼주는 엄마의 얼큰한 장찌개 먹는 것으로사는 의미를 음미해보았다. 일주일간 옥수수밥 수수밥 까끌까끌 조밥 겨우 넘기다가도 토여일 기숙사 떠나 그리운 집 찾아가면 엄마의 하얀 찐빵 하늘같은 만족의 미소와 함께 와중에 스며있는 사는 재미를 돼씹어보았다. 대학이라는 승학통지를 받아들었을 때 마음으로 뭉클해오는 그 이름못할 흥건한 감각으로 세포마다에 분세수시키며 인간이 살다나면 위성을 발사할 수도 있구나로 자아만족의 넓은 강에서 헤엄을 쳐보았다.         마음에 드는 랑군이 첫날 저녁 옷고름 풀어주며 백년가약의 맹세애 도금을 했을 때 내 인생의 들판에 비끼는 무지개를 살며시 쳐다보며 행복으로 마사지된 마음으로 흐뭇해하였다. 새 생명의 고고성 들으며 사랑의 태줄를 온몸에 감고 조물주 만든 지구촌에다 새별을 보탬할 때 장함으로 벅찬 가슴 울렁이었다. 영원함속에 인생의 멋진 시작을 달콤히 적어보았다.    그렇다. 사람이란 언제나 천상천하를 감싸고있는 혜택의 기운이 자기에게 와 닿는 그 시각에야 행활의 구멍마다에 도사리고 있는 구슬같은 묘미를 체험하고 보람이라 두 글자와 진정한 한집식구가 되는 법인가 한다. 그리고 그속에서 행복을 실감하며 커진 자신의 그림자를 눈주어보고 마음이란 저울에 동을 달아본다.        사람은 누구나 매 일반인줄 안다. 하지만 이러한 범상한 인간들의 중펍으로 이루어진 행명수의 참다운 흐름은 자기가 바라던 어떤 것이 풀릴 때 오는 그럿만이 아님을 요즘 나는 심심히 감수하고 있고 날이 갈수록 그 깊아가 더해지고 있음을 직언하고 싶다.      무엇이든 최선을 다하여 타인에게 수요되는 바를 정성으로 챙겨주고 자신의 안일보다 희열에 젖은 다른 사람의 얼굴에서 자신의 삶의 자태의 갖음새를 보는 그 높은 처사가 눈에 띄었을 때 사람은 자연 옥돌의 맑음속에 깃든 감동으로 가슴을 채우게 된다.    고귀한 가문이라면 만인의 부러움을 등에 지고도 그 티를 조금도 내지 않고 부지런히 수요되는 이를 위하여 앞뒤를 헤아려 뛰는 사람을 보게 될 때 사람은 자연 그 순수함에 황홀한 인생철리가 살아있다는 것을 알게된다. 허리굽히는 곳에 진리가 있고 베푸는 속에 인간향기가 짙어진다면 언제나 굽혀 겸손을 지키는 그 아량이 혼송이 꽃이라면 그 꽃은 장세월간 피고피어 오고가는 인간에게 아름다운 미소로 남을 줄 안다.      나는 자기 주머니의 거액을 쏟아내면서도 행복에 항상 젖어사는 그이미지를 무궁화의 향기라고 이름지어 부르고 싶다.  꿀배가 아무리 달다한들 그러한 분들이 나에게 남겨준 기억의 능금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줄 나는 안다. 엄마의 말대로 한다면 남의 은혜는 한평생 마음주머니에   담아두고 대를 이어가면서 두고두고 보답을 해야 한다지만 나는 무엇으로 어머니의이런 인생이치를 지키며 살랴. 이런 짤막한 글 한편으로 내 오장륙뷰속에 자리를 차지한지 오랜 감동을 토하여 낼뿐.      사실 인간 생명수의 참다운 흐름은 인간의 생활권마다에 잠재해있는 조화로움의 극치일뿐임을 우리는 안다. 이러한 조화를 나는 인연이라고 불러본다. 하진 이것도 이번 한국방문기간에 배워낸 도리인줄 나는 감추고 싶지 않다. 나가서 다닐때는 논은 똑똑이나 마음은 바보가 되어있을 때가 비일비재이었는데 제 집에 돌아오고 보니 혜안이 늦게나마 눈을 떠주어 내앞에 너무도 많은 선물감을 렬거해놓았다. 나 자신만이 알 일이나 무작정 자랑하고 싶어지는 마음을 접을 수 없어 지금 필을 달린다.    나는 우리의 생활에서 인간 서로간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는 윤활재에 대하여 이 시각 사색의 우물에 논을 감고 뛰어들어본다. 지적인 곬으로 흐르는 생각의 건데기를 삶이란 그릇에 건져 담아보면 사실 사람은 그 어느 누구든지 모든 것을 무료로 공급해주는 우주세계와 부단이 주고 받으며 일개의 개채로 세상 한자리를 차지하고 살아가는 존재이다.    어떤 욕심쟁이 인간이 일단 이 혜택을 주는 법칙을 거세해버리고 제밖에 넚는듯 코대만 쳐들고 산다면 그 인간의 정신적 피는 순식간에 흐름이 막히게 되고 이렇게 되면 가죽만 있고 령혼은 없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말라꽹이로 될 뿐이다. 타인이 수요되는바를 형편이 허락서를 내리는데까지는 주며 사는 이 사람의 법칙을 마음으로 지켜간다면 당신의 재부는 알을 낳고 부유가 새끼를 치며 인간 생명의 하수도에 꽉 차 있는 욕망의 세계에까지도 빈자리가 없게 부로 이어져 알찬 풍요로움을 누릴 것이다.    부유하고 유족한 것을 만능의 돈덩러리로만 생각지 않고 삶의 발원지에서 흘러나오는 정의 흐름이다, 마음의 바다가 시키는 나눔이다 로 사색보따리를 다시 꾸며보면 어떠할는지. 식사를 그쳤는데도 체면에 배불리지 못했을가봐 로라케익을 챙겨줄 때 그 받는 마음과 주는 마음속을 누비는 것은 흠뻑 젖은 행복의 어여쁜 멜로디인줄 알고서 지금 이 글줄을 이어쓰는 내 마음이 행운으로 가득차있다면 당신은 이해가 갈는지.    한알의 종자는 수림을 만들 웅대한 포부를 지니고 있다. 허나 그렇다고 하여 그 종자를 별도로 저축할 궁리만 할것이 아니라 모름지기 비옥한 땅의 넓은 품에 돌려줘야만 당신은 진정 상상도 못할 하많은 종자와 무연하 록음을 보상받게 될 것이다.      이처럼 생명중 일체 가치가 있는 물건은 바로 줄 때만이 천만종으로 변할 수 있다. 그렇다고 주기 싫은 걸 억지로 주었다면 그뒤에는 아무런 에너지도 운운할 수 없게 되는 줄도 안다. 그러하니 당신이 주기로 할 때는 당신이 가지는 마음상태가 자못 중요한 줄 안다.  줄 수 있는 것으로 하여 받는 사람에게 만들어지는 기쁨을 포옹해줄 때만이 즐거움이란 천사가 당신곁을 지켜줄 것이다.      즐거움은 바로 생명의 나무이고 생명이 연속되는 힘의 원천이며 생명의 푸른 나누가 무병장수하게 자랄수 있는 근본 터전이다. 어느모로 보나 주면서 사는 이 삶의 신약은 당신에게 무한한 즐거움과 크낙한 성공의 희열을 선물하기 마련이다.     만약 당신에게 즐거움이 수요된다면 타인에게 즐거움을 주라. 만약 당신이 사랑이 수요된다면 남ㅇㄹ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라. 반약 당신이 타인의 각광과 흔상이 수요된다면 타인을 류의하고 관심하고 흔상하는 수양을 키우라. 만약 당신이 물질상 부자고 되고 싶다면 먼저 타인을 도와 부자가 되게 하라. 만약 당신이 생명중 일체 아름다운 물건을 가지고 싶다면 타인의 만사순리를 묵묵히 축복하는 참다움을 배우라.    인간이 얻을 수 있는 제일 간단한 방법은 옆에 있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들이 수요되는것을 얻게 하는것이다. 또 이러한 생활철리는 모든 인간에게 적용되는 불멸의 기존법칙인줄 안다.      오직 주려는 생각만 있다면 오직 축복의 갸륵한 마음만 있다면 그것이 단지 한마디의 짤막한 말일지라도 영원한 아름다움으로 살아남는 법이다.     우리 인간 모두는 무궁화의 넋을 본받아 한송이 꽃으로 피어 산다면 당신의 유한한 생명체는 찬연한 삶의 즐거움으로 길이길이 수놓아질 것이다.                                                                      2002년 10월 15일 작                                                         발표내역: ( 2003년 11월 호)         
4    [수필]연띄우는 할아버지 댓글:  조회:661  추천:1  2015-02-07
                                    연띄우는 할아버지     사랑만난 숫처녀의 가슴속에 숨쉬는 건 봄의 격정이고 소주를 앞에 놓은 로씨야 남자의 표정은 봄의 충동이며 숨소리만 들어도 만년퇴적밑에 소생의 기지개를 피는 건 인간의 오색 심상이다. 그래서인지 내 마음의 의상도 봄기운으로 바뀌어진다. 시양에 파고드는 건 귀여운 아장걸음으로 인간신변을 찾아와 수줍게 옷섶을 쥐고 흔들어주는 풀싹, 마음속 비집고 드는 건 바람과 해빛과 구름과 동체가 되어 재잘거리며 뛰어노는 꼬마의 동심.     피려고 준비 다그치는 3월 꽃봉오리의 꿈, 부글거리는 된장국에 깃든 구수함의 진맛, 주대를 고집하며 버티는 실버들의 가냘픈 몸부림, 천태만상을 풍경으로 꾸며가는 자연이 짚는 뮤지선다운 아름다운 운률의 템포속에 인간의 마음은 넘실대는 바다가 되어버린다.     하여 봄날의 부름소리 듣기 바쁘게 봄처럼 가뜬히 하고 찬연한 여름잔치에 참가할 마음가짐이 갖우어진다.    봄바람이 마음의 문을 열고 마실을 다니는 호시절이라 연 뛰우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난다. 봄날의 부름소리 듣기 바쁘게 봄차림 가뜬히 하고 나선 나도 생명에 활기를 만들어주고자 아들애를 앞세우고 혼하강변을 달려가고 달려온다. 하늘을 가리운 아파트가 들어앉아있는 주택구에서는 보기조차 어려운 새 세계, 자연의 순수한 마음을 담은 바람이란 존재가 노래와 춤을 선사하고 있는 강변이다. 변덕을 부리는 바람길을 따라 걷기도 달리기도 하며 연 띄우기에 열심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움직이는 그림처럼 안겨온다.     나는 아들애가 원하는대로 독수리모양을 본따서 만든 연 중에서 가장 큰 놈을 골라잡았다. 어릴 때 아버지께서 다 보시고 난 신문지를 오려 밤알로 붙여 만든 연과는 너무 판이하게 훌륭하고 멋진 연이다. 예술미와 실용미를 함뿍 갖춘 연을 사서 두손에 드니 어쩐지 그 속에 무엇이 모자라는듯한 서운함이 내 가슴 한귀통이를 파고 들었다. 지폐만으로 뭐나 편리하게 살 수 있는 줄 알고 있고 자기손을 움직여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못가진 아들애가 좀 가엾게 보이기도 했다. 편안하게 살기 위하여 편안하지 않았던 세월조각속에 빛이 나는 그 삶의 기억을 과거라는 무덤속에 몽땅 던져버린 인간들, 환경의 흐름에, 적자생존에 걸음맞춰 살아가는 것이 바로 인간인가보다.    연띄우는 사람들로 공간이 좁아진 틈틈을 용케 비집고 뛰며 하늘을 향해 열심하고 있는 아들애 모습이 내 카메라렌즈에 포착되었다. 자기의 연이 높이높이 날기를 간절히 바라는 그 애티나는 얼굴에 노을같은 희망이 비꼈다.    잠간은 잘 나는가 싶던 연이 무엇에 발목을 잡히기라도 한듯 몸을 비틀어꼬며 고통스레 땅에 내려꽂힌다. 나의 마음에도 순간적이나마 실망의 그림자가 스치고 지나갔다. 아들애의 서운함을 지워버리기라도 할 듯 나는 어린 생명 다루듯 연을 조심스레 보들어들었다. 새로운 도약을 꿈꾸며 바람에 날려 맡기곤 아들애와 같이 뛰어본다.   수차례의 어려움을 거쳐 연이 드디어 반공중에 날아올랐을 때 아들애의 얼굴이 나에게로 홱 돌로졌다. 성공의 희열로 두 눈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꼬맹이의 연을 따라 걷기도 뛰기고 하던 나는 지쳐오는 다리힘때문에 잠시 멈추어섰다. 바로 그 순간 나는 좀전에는 보지 못했던 광경을 발견하였다. 연띄우는 사람들 속에 깃든 한점의 신기한 풍경이랄가, 자식들의 기쁨을 함께 하는 엄마나 아빠외에 백발의 할아버지들이 무척 량을 차지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정말로 나의 사색을 자아내는 광경이었다.     아이들이야 천성이 놀기를 좋아하는 동심이라 쌀쌀한 바람이 판을 치는 추위에도 즐거울테지만 할아버지들은 무슨 연고로 강바람만 소리높은 저 텅빈 하늘을 쳐다보며 공중을 날으는 연을 지키고있는걸가!    시간에 쫓기며 일에만 붙들려 살았던 그 야속한 시절때문에 한으로만 남았던 옛삶의 한페이지를 이제 와서 벌충해보느느걸가! 아무런 시름도 없이 저 하늘을 나는 연을 바라보며 미처 실현하지 못했던 자신의 꿈의 세계에 다시 살아보는걸가! 아니면 무시로 덮치는 야박학 고독의 쓰거움을 저 말못하는 연줄에 실어 먼먼곳으로 날려보내는걸까!    사상가다운 모습으로 점잖게 걸상에 앉아 연줄을 다루는 저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면상에는 세월의 자취가 력력하니 찍혀있었고 그 력력한 자욱속에 어찌 보면 느긋한 미소가 깃들어있는듯도 하다. 타인의 호기심이나 오가는 방관자에게는 한가닥 눈길도 주지 않는 그 박정에 가까운 몸가짐에서 나는 파아란 두루마기옷 이비고 환한 생기를 발산하는 전심(专心)의 발원지를 보았다. 석양의 다리밑에서도 리상이라는 지팽이만을 버리지 않는 고상한 집요함의고향이었다.      할아버지의 연은 높이높이 날고 있다. 문득 한 깨달음이 문을 두드렸다.  한가지에 몰두하는 전심이 없이는 날릴 수 없는 연! 전심 없이는 창공을 오연히 나래칠수 없는 인생의 무거운 연!     연 띄우는 할아버지를 보노라니 나는 아침 기상시 커턴을 열어젖힌듯 내 마음이 환히 밝아옴을 느꼈다. 먼지를 털어버린듯 마음의 갈피들이 깨끗해진다. 화초들이 새로운 자양분을 빨아들이머 만족함을 느끼듯 나도 만족에서 오는 달콤한 웃음이 저절로 흘러 나온다.    그 웃음은 하늘을 향하여 들판을 달리며 향상의 래일을 그려보는 한 인간의 마음공부이다. 험난한 세상을 오연히 나래치고 싶어하는 한 인간의 갈망이다! 그 웃음은 분명 아름다운 유혹에 눈길을 뺴앗기지 않고 알뜰한 전심에 인생의 연을 멋지게 띄우고 싶어하는 한 인간의 깨달음, 그리고 그 깨달음에서오는 행복한 그림이었다!                                                                                                                                                                             2002년 3월 18일                                                            발표내역: (  2002년 8월 3집) 
3    [수필] 마무리의 이미지를 새겨보며 댓글:  조회:566  추천:0  2015-02-06
                    마무리의 이미지를 새겨보며                  땅속에 심어진 파아란 꿈이 살뜰한 봄기운에 포옥 젖어 봄노래를 듣고 있던 어느 하루, 문학인들이 같이하는 자리에 갔었다. 헌데 그만 어리석은 실수의 차실로 그 모임을 떠나게 될 줄은 몰랐다. 오늘까지 내 가슴 한귀퉁이에다 암흑의 뿌리를 내린 그대로이다. 그일이 얼마나 큰 것이어서가 아니고 그것을 말미로 어떤 깨달음같은것을 받았다는 느낌이 들어 무엇을 기대해보는 심정이 되어 자신에게 향한 메스를 들어본다. 물론 이 메스가 들어가는 자리는 아픔이 따라간다는 이치를 모르는바 아니지만 자신이 죽데 되었는데도 나는 무척 건강하게 멋있게 살고 있습니다라고 가식을 꾸미어 나자신을 분칠하고 싶지는 않다는 얘기다. 하여 나는 제모습 그대로를 하며 이 글을 펴본다.         어린애를 키운 여자들이라면 다 경험했을 일인데... 그날 나는 몸은 연회석상에 앉아있었으나 심경은 통채로 급급함에 빠져있었다. 아들애 혼자만 집에 있게 한 탓때문이기도 하거니와 보다는 아침에 떠나올 때 아들애 점심밥을 잊어버리고 온 데서 근심이 되어 분초를 잡으며 귀가하려 서둘렀다. 자식을 가진 녀자들이 다 그러하듯 얘기는 나에게 있어 슈프레머시한 존재이다.        부산히 서둘러 맞추는 일 잘 풀어지는 법 없다고 했다. 나는 작별인사 겸 례의범절도 행할 겸 년장자인 선배님들께 잔을 채워 드렸다. 다음은 허리굽혀 건강의 축복도 보내고 했다 그리곤 쫓기는 사람마냥 부랴부랴 자신의 물건만을 챙겨들고 귀로에로 발을 옮겼다. 자기가 따라놓은 향긋한 그 술을 마시든 말든을 전혀 불문하고 말이다.  바로 여기에서 실수가 생긴 것이다. 자 우리 함께 뜁시다 하고 시작만 멋지게 해놓고 자기는 돌아서 가버리는 경우와 같은 것이다. 교학때 수업의 첫시작을 그를듯이 떼놓고 교단에서 떠나와버리는 것과 동질적인 처사였다. 하길래 오늘에 와서 그때의 나자신의 모습을 살려 아프나마 그 처사가 어떤 류에 속했더냐고 곰곰히 생각해보면 소양의 깊이가 한센치도 못넘겼다는 사실이 때 되면 식사해야 하는 일처럼 자명함이다.         사실 이 모빌리터사회에서 나와 같은 속세인들은 동질적인 경우를 수없이 만들어가고있다. 바라마지 않은 복된 하루들을 알뜰히 만들어 마음에 담고 행복의 품을 찾아가는 삶의 길을 걷는 와중, 시작의 요긴함은 전신으로 지켜보고 온 마음으로 포옹해주는 자태가 되어 사는 인간이 되어있다. 허나 해가는 과정에 땀동이나 흘리게 되고 또 신경 아픈 이러한 날들이 무작정 흘러가가지만 차츰 심드렁함이 되어 맥을 놓는 이가 비일비재가 아니냐고 생각해본다.          파란 봄에 파종만 해놓고 누렇게 익는 가을에 걷어들일 념을 하지않아 깡그리 랑패고 되고마는 격이다. 물심 량면으로 온갖 준비를 하여 척박한 땅 비옥하게 걸구고 벼씨를 뿌려놓은 다음에는 익은 벼이삭이 하얀 입쌀이 되어 저절로 곡물창고안에 걸어들어오기를 바라는 어리석이라면 어떠할는지. 스다트선에서 있는 힘 모조리 다 뺐으니 종점의 일등은 무조건 내거야 하는식의 무지한 배포유가 되어있다면 어떠할는지, 인간의 모든 희망과 즐거움을 당신들에게 바쳐드리겠습니다 하고 돌아서선 그 아름다운 환락의 맛을 혼자 싹 거두어가버리는 행혹함이라면 맞아들는지, 방금 걸음카타는 어린애를 용타고 하며 짝짝꿍 쳐주던 아버지의 인자함이 오라고 하는데까지를 못걸어온다고 하여 일약 엉뎅짝 박아내는 무자비함이라면 어떠할는지....         기억속에 저장된 어제날 생활의 페지들을 펼치고 자상히 더듬어 보면 내 삶의 스케줄에도 이처럼 빈 구석을 한타스는 묶어낼 수 있을 듯 하다. 매달의 생활비용을 계획해쓰는 일 한가지만을 놓고 말해보자. 처음에는 열심이 되어서 매일의 지출액과 지출명세를 꼭꼭 밝혀 적어놓는 일을 조금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넉넉치 못한 봉급계층에 묻혀사는 몸이니 착실하게 다져가며 살지 않는다면 아니될 그 리유가 시켜서 하는 일이래도 괜찮겠다. 그런데 월말에 가보면 그 가정용돈지출기록부엔 처음 10여일쯤의 기록만이 알뜰히 적혀있을 뿐 뒤는 흘려버리고있는 찝찝함이 되어 있는 상황이 거의다.          하여 가끔 돈귀신에게라도 도적맞힌듯한 경제적 불확실함에서 신경질적으로 량미간을 찌프고 여기저기 숨은 돈이 있는가 하여 마구 들추는 때가 많다 끝처리가 제로였던 자신의 부실함을 비단천으로 덮어버리고 우리는 생활의 새 페이지에다 또다시 시작만 아름다운 함정을 파기 시작한다.        나는 이렇게 처음에는 마음의 작간에 속혀 오랜 세월을 살아온듯한 서글픈 느낌이다. 반성의 마음이 된다. 가령 인간마다가 나는 오늘밖에 못산다, 나의 여생은 오늘 하루밖에 없다고 생각하며 매사의 끝에 가서 한결같이 여물어있는 작법으로 대한다면 인간은 마냥 둥근달마냥 둥근 삶을 살지 않을까.         신문지상에서 본적이 있는 한가지 일이 내 필ㄲㅌ에 매달린다. 섬서에 사는 한 녀자는 여시 나와 같은 교원출신인데 50여년간을 가정용지출기록을 하루같이 기록하여왔다는 이야기다. 애초에는 별 큰 뜻이 보이지 않던 그 종이장들이 오늘은 변신을 하여 국가적 문물이 되어 박물관의 한 자료로 인기를 모은다고 한다. 시작을 했으면 꼭 끝까지를 바라보는 그 녀자의 꼼꼼함은 나에겐 그 어떤 벅찬 감동으로 다가왔다.        무슨 일이든 두 입술을 부딪쳐 말하기는 쉬우나 그것을 알이 찬 자신의 실제로 만들기는 무지무지 어려운 법이다. 어느 누구든 생명을 갖고 있는 기간 스스로의 삶의 궤도에 알뜰함으로 매 한페이지를 꼭꼭 차게 엮어가고 싶지 않으랴. 어느 누가 스스로가 마음을 먹고 온갖 어려움을 이기고 시작했던 일에 똥칠하는 패배자가 되고 싶으랴.       시작과 끝이 일치를 보기란 평민이 황제되기만큼이나 극난한 일이라는 일리는 사람들 모두가 모르는바 아니다. 다만 뒤를 보면 깨끗이 닦은 다음 옷을 입어야 하는 도리와 같이 일의 끝머리를 올바로 마쳐야 하는 일에 사람들이 해이해 있는 틀림의 이데올로기를 통째로 바꾸어야 하는 절박감이 적다거나 없다는 얘기다.        바로 이것이다. 발을 들었다가 땅에 내려놓지 않으면 그 다음의 걸음은 내디딜수가 없어지고 새로운 차원의 사작을 가지려면 끝이 깨끗해야 한다는 말이다.    만사의 성패는 어쩌면 마무리의 이미지에 있을 것이다.                                                                    2001년 10월 작                                          발표내역: ( 2002년 1월  제 2집)  
2    [수필]부러움의 고향찾아 댓글:  조회:964  추천:2  2015-02-06
                          부러움의 고향 찾아                                                                            고향이란 말만 나오면 내가슴 한귀퉁이는 언제나 아픔에 쓰려지고 눈귀에는 자연 시키지도 않은 물기가 촉촉히 젖어 오른다. 타향에 몸을 담고 생활에 쫓겨 다니며 시들어버려진 마음의 한구석에 고스란히 자리잡고 있는 그리움의 정감을 다쳐서인지, 아니면 나서 자란 곳을 오랜 세월 멀리하고 별 관계없는 방관자마냥 고향의 모든것을 외면한 속에 살아도느 내 삶의 터전에 텅 비어있는 구멍같은 한페이지를 읽어서인지 딱히 무엇이라고 찍어 내보일 수는 없다만 요즘은 가끔 넉넉해지는 생활감에 윤택흐르는 마음이 되어있음을 기분좋게 펼쳐 본다.         내 생명의 파란 바다에 왕성하니 숨쉬고 있는 그 완미한 기상의 떠밀리움속에 하냥 새 언덕을 바라고 출렁이는 생의 활력소를 놀랍게 읽어낸 리유때문이라고 생각해본다. 내가 사그라져갈 때, 내가 포기를 시도하고 있을 때 사막된 가슴에 오아시스를 뿜어주며 구겨진 항심을 높이 추켜세워주며 마냥 나와 함께 어깨나란히 하고 있는 부러움의 고향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본다.       사실은 인간은 누구나 마찬가지이다. 그가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대통령이건, 더불어살며 지내는 일반 평민계층이건 언제나 마음속에다 부러움의 보금자리를 펴놓고 살아가는 모습을 가진다. 전자의 경우에 내 나라 국민의 생활수준을 보다 고차원적인 생활을 하고 있는 여러나라를 따라잡아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심각한 사색을 하여 이루려 하는 것 속에서 삶을 엮을 것이고, 후자의 경우엔 자가용차를 갖고 있는 이웃을 보았을 때 나도 언젠가는 꼭 가져야겠다는 야심같은 것을 핥으며 동분서주하는 사람이 되어 살아갈 것이다.         그들의 가슴 심처에 심어진 이미지는 얼마나 ㅈㅎ으냐 나도 언젠가는 저렇게 도리 수 있을거야가 모든 인간의 등을 밀어주는 그런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아직은 걸어다니고 있는 지둔함과는 달리 욕망껏 날아다니고 있는 타인을 무조건 부러원하는 마음을 걷잡지 못해 애태우는 사람이 있다면 너무도 리해가 잘 가는 얘기가 아니냐싶다. 서로가 어울려 살아가는 이 삶의 마당은 바로 천가지 상태에 만가지 변화가 조화되는 와중에서 꽃피고 열매 캦고 성숙의 계절을 맞아 둥글어지고 넓어지고 살쪄간다.        부러움없는 삶을 만들어보겠다고, 무지개빛속에 숨쉬는 행복의 그림자를 잡아보겠다고 쉬지 않고 뛰는 이가 빼곡이 들어찬 지구촌의 한 방위에서 함께 숨쉬며 살아가고 있는 인간들의 모습니다.       기대했던 리상의 터미널에 닿았다고 한숨을 돌리고 있는 사람이나 아직도 종착역을 바라고 뛰며 땀도 들이지 못하는 있는 사람이나, 마음속에 자리잡은 부러움 하나만으로 그 힘을 삼고 사는 것이 인간 삶의 전부의 모습이다. 세인들이 객관에서 성공한 사람이라고 인정을 해주는 사람일지라도 그의 심중에는 만족의 포근한 이부자리가 펴져 있지 않다.        다만 보다 이상의 복을 누리는 사람을 쳐다보며 다시 주먹을 쥐고 보이지도 않는 그 아름다운 래일을 위해 모든걸 갖추고 많을 것을 시작하는 속에, 보람이라는 뜻이 주는 묵직한 기쁨을 맛보는 속에 다시 찾아드는 인생의 광망을 발산하며 사는 게 인간자체인가 한다.        하여 힘든 인간, 괴로운 인간이라고 하지만 삶을 영위해가는 인간은 바로 이러는 속에서 자신의 생활내용을 푸짐하게 채워가고 시시각각 죽음에로 이끄는 세월의 무정한 발걸음소리속에서도 뒤돌아봄 없이 아담하고 빛이 나는 생의 새 원지를 만들어가고 장식해가며 산다. 하다면 타인에 대한 부러움을 가지는 일을 부질없는 허영심이나 부정한 바람기기 배안에 찬것이라고 빗댈 이유는 없지 않을가. 그에 반하여 남을 조금도 쳐다보지 않고 사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설사 걷고 있다 해도 황소걸음이 되어 타인은 우수세계에서 활개치며 온 천하를 굽어보며 살 때 그는 땅굴집에서 빛이 들어오지 않아 창백해진 가엾은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이 세상에 부러운것이 너무도 많은 사람이다. 유치한지 모르겠지만 이런 이야기를 깨놓고 해보고 싶다. 몇해전의 일이다. 몹시 숭배하고 존경해오던 선배님 한분이 갔었다. 추도모임을 하는 시각이 왔다. 선배님의 유상을 지척에 모시고 마지막 고별식을 올려야하는 그 비통한 자리에 함께 간 이들은 감정 그대로를 담은 눈물을 소리없이 쏟아놓으며 어깨를 들먹이는데 나는 마음과는 달리 눈물샘이 말라붙어 눈물이 나오지 않아 그 잘에다 구멍이라도 파고 싶은 안스러움때문에 머리를 들수가 없었다. 몰인정이라는 나쁜 이미지로 되어 주위사람들에게 감겨질 것 같아 불안하기만 했다. 그일이 세월의 얼굴에 때자국을 묻힌지도 오래건만 때에 따라 슬픔을 말할 줄 아는 동행인들에 대한 그 부러움은 아직도 내 마음의 종이에 또박또박 적혀있다.        하다하다 별것을 다 부러워한다고 할지 모르나 그때는 정말 그런 마음이었다. 그런데 그 후에 안 일이지만 놀랍게 알게 된건 그 자리를 떠나 나를 부러워하는 이도 있었다는 사실이다. 눈물을 흘리지 않았던때문에 얼굴화장에 얼룩이 가지 않고 얼마나 보기 좋으냐고 말하는 치도 있었다.    인간존재란 나에겐 하나가 차려져있을 때 두손에 다 쥔 자를 올려다 보며 나에게도 좀더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으랴, 나도 언젠가는 많아질거야 하는 식으로 사는 법이 아니냐 싶다. 그때문에 세상을 누리는 길은 천만갈래이나 하나만을 향하여 한결같이 한길우로 걸아가는 인간들이 겨루고 비기는 상태가 세상사로 되어있고 우리가 발을 내려야 할 터미널은 영원히 끝남이 있을 수 없는 부러움의 고향이 되어버린다고 나는 나름의 결론을 가지고 싶다.        나에겐 화가 남편이 있어 부유한 생활길을 열수 있는 도경이 많다고 흠모하는 이도 있지만 나는 기업인 남편을 가진 친구가 좋아보인다. 내 남편은 밤늦게 귀가하지 않기에 달콤한 생활의 맛을 유지할 수 있어서 좋다고 생각하다가도 악어가죽으로 된 외국제 핸드빽을 들고 출근을 오는 기업인 안해가 눈앞에 보이면 그가 나에 비해 퍽 멋스러워보이고 또 나는 언제가야 저런 손가방 한번 가져볼가 하는 미래식 희망같은 동경을 가슴에 심어본다.        이러한 부러움은 필요한 것이라 생각한다. 허영중에서도 알짜 허형이라고 할 수 있는바 삶의 차원을 하루가 다르게 꾸미기 위해 아랫배에 힘주어 살아가는 생생한 모습을 갖추게 되는 법이 아닌가싶다. 나는 이러한 삶의 태도를 향상의 빛으로 어프로치해본다.        가지고 싶을 때, 누리고 싶을 때, 두손에 고인 힘과 온몸에 퍼져있는 지혜로 이루려 애쓴다면 이보다 더 장한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걷고 있는 길에 엄청 큰 돌이 가로 막고 있을때 둣걸음없이 스스로가 마음속으로 그리고 있는 그날을 그려보며 힘을 내어 제거해본다. 며칠이고 몇달이고  몇해가 되던 간에 애로를 헤쳐나가는 사람이 되어본다. 이처럼 부지런히 걸어가는 사람이 되어 살아보는 것만이 인간 삶의 의젓한 자세라고 찬사를 할수 있을 것이다.쉬지 않고 걷는 곳에 다분한 생의 따뜻함이 생성할 수 있고 놀지 않고 열심히 하는 곳에 삶의 푸름이 살아 숨쉬게 되는 법이다.         이튿날 아침에 다시 보면 알아볼 수 없도록 변모해가는 대천세계에서 끊임없이 좋아지는 모습을 하고 웃으며 살자면 이세상 다해도 마르지 않을 부러움의 고향에다 삶의 튼튼한 근거지를 세워가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하늘의 행복은 푸르름을 걸친 것이고 삼림의 행복은  초록빛옷을 입은 것이며 태양의 행복은 눈부신 빛을 뿜어내는 것이고 석양의 행복은 황혼의 아름다운 노을을 가진것이다. 인간의 행복은 가슴속 밑바닥에 언제나 고요히 숨쉬고 있는 부러움의 고향에 아름다운 씨앗을 뿌려 가꾸며 살아가는데 있다.                                                                                                                                    2001년 4월에 씀                                             발표내역: ( 2001년 7월 제 1집)
1    [수필] 땅의 의미 댓글:  조회:710  추천:1  2015-02-06
                                    땅의 의미 (수필)                                                                   마음이 시키는대로 실말을 한다면 내가 땅에 대한 최초의 소감은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막무가내와 그에 따른 미간의 찌프림이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벌레들이 기어나오고 산천이 파란 숨을 쉬는 계절만 되면 나는 홀로 엄마의 조수가 되어 땅과 더불어 땀통이 되어 씨앗을 뿌려야 했고, 벼들이 유아기를 벗어나 소년기에 들어서면 거머리한테 피를 빨리우면서도 논밭의 가운데 서야 했다.         그리하여 늘 비오는 날이 그리웠다. 비가 오면 땅에 앗겼던 자유를 찾아올 수 있다. 비만 오면 친구들 속에 끼어앉아 내 동심보따리를 풀어놓는 한없이 빛나는 시간을 가질수도 있다. 보다 중요한 것은 비오는 날이면 논밭에 나가지 않아도 되고, 밭고랑을 타고 앉아 고추밭 잔풀을 뽑지 않아도 된다. 그래서 비가 오는 날이 좋았다. 그러다가 언제부터인지 비가 오는 날이면 땅과 멀리할 생각을 남몰래 작은 가슴에 묻기 시작했고 종국에는 그 극단적 이상을 따라 땅냄새를 떠나는 역사를 쓰고 말았다.        돌고 돌아서 돈이라고 하지만, 돌고 돌아서 세월이 되기도 하는가보다. 얼마전부터 나는 가끔 뙈기밭이 한마지기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유기농을 제창하는 웰빙 시대의 숨소리에 맞추기 위한 것이라기보다 장거리버스에서 느낌한 감동이 마음에 새 충동을 심어준 것이라고 자의한다.        때는 늦은 봄이다. 시아버님 병문안을 가는 차에 앉아 차창밖으로 시선을 던지고 있노라니 자석에 끌린듯 땅에서 눈을 뗄수가 없게 된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파름파름 애곡식들이 산들산들 봄바람에 속삭이듯, 재롱부리듯 춤추는 모습은 정녕 갓 걸음마 타는 아기의 귀여움이 깃들어 있어 금방이라도 달려가 안아주고 뽑뽀해주고 싶은 생각으로 가슴 한 구석이 설레인다.         보면 볼수록 가슴에 즐거움이 이 고여왔고 그 즐거움이 만들어낸. 행복이 웃음짓는다. 세상에 태어난지 얼마된다고 저렇게 행인의 시선을 채워줄까! 넉나간 모습을 하고 그들에게서 시선을 못떼고 있다가 익숙한 깜둥이얼굴을 알아봤다. 그것은 내가 지겨워서 떠났던 땅이었다.  그는 가슴을 풀어헤치고 젖을 먹이고 있는 젊은 엄마의 얼굴에 흐르는 진한 행복의 그림자를 닮았다. 그는 사경을 넘어온 산모가 제몸에서 갈라져나온 생명을 바라보는듯한 한없이 부드러운 눈길을 닮았다. 나는 그 황홀경에 빠져버렸다. 천년 산삼을 캔 가난한 부자처럼 미칠것 같은 희열에 온 몸을 달구었다.  열한 번 째 예술을 익혀 질주하고 있는 차를 멈춰놓고 땅의 품에 안겨 그 거룩함을 만끽해보고 싶은 충동이 마음에 가득해졌다. …      세상에 땅같은 존재가 있다니, 좀처럼 믿어지지가 않는다. 농부의 희망을 담고 예리해진 보습날에 전신이 토막되면서도, 제 몸을 잘라서 씨앗을 품어주고 전망을 약속해준다 자신의 헌신으로 무르익은 곡식들이 제품을 떠나 밑빠진 인간의 배안에 들어가는 생리별 가을이 언젠가는 올 줄 알면서도 궂은 내색 모른다. 늙그막 자식 키우는 정성과 사랑으로 만들어진 심장인지!       태초부터 어머니가 사랑의 대용으로 인간에 머무르고 땅은 참된 인간이 생의 의욕을 이루어내는 광장으로 자연에 머물게 되었을 것이다. 바다같은 흉금과 하늘 같은 사랑이 모성의 구조물이라면 땅의 원조는 인간삶의 미래가 영구히 숨쉬게 하는  덕성의 꽃으로 만들어졌을 것이다. 그를 보면 태양이 늙어도 자기를 위한 욕구가 뭔지도 모른다. 농부들의 땀 스민 봄타령 한 곡조에 최대의 만족을 알고 가을 바람타고 시집 장가가는 성숙의 향기 속에 최상의 보람을 맛본다. 땅의 가족원은 인간에 무한한 은혜를 베푸는 세습을 제도로 알고 그것을 칼날같이 지킨다. 일년의 수확을 남김없이 선물하고 허허벌판에 짐을 푼 고독과 한몸이 될 때도 배신의 원한을 모르고 보복의 칼을 갈지도 않는다. 다만 또다시 자신을 고스란히 바칠 그날을 기대하면서 한겨울 침묵 속에 비옥한 몸이 되고자 고요히 잠들어 있는다.       이처럼 땅은 자기의 본분을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그는 자기의 본분 뒤에다 이치의 자를 숨기고 있다. 그래서 부지런하고 성실한이에겐 풍요로움의 복을 주고, 게으름에 빠진 이에게는  미풍에도 날려갈 쭉정이만 내준다. 인간의 침묵에 위대한 언어가 들었다고 한다면 그것 역시 땅의 침묵이 준 가르침일 것이다.       땅은 예나 지금이나 앞으로나 변함을 모르고 만물을 포용할 힘으로 세상을 살 것이다. 그는 참된 덕성을 한몸에 지니고 있다가 필요한 인간이 나서면 뿌리채 환원해주는, 한없이 넓고 깊은 신화적 존재이다. 그는 참된 생명에게 무한한 사랑을 주는  자연의 불후의 걸작이다. 겉으로 보기엔 무덤덤하고 거지같고 화려하지 않지만 실속은 억대의 갑부로 산다.        그래서 인간은 그를 가장 믿음직한 생명의 벗으로 삼게 된 것이겠지! 그의 몸에는 무시로 삶의 도리를 말해주는 백과사전이 있고, 자연을 잉태하는 힘이 있고, 기적의 풍경을 만들 수 있는 우주가 있다. 땅의 가슴에 귀를 대면 행복의 집을 짓고 사는 천사의 노래소리가 또렷이 들려온다.      가령 땅의 영혼을 커룽해내는 기술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혹시 변신술이 있대도 괜찮을 텐데. 그러면 그의 원심에 파고 들어가 오고가는 잡귀신 소리에 심란해진 마음을 정화시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하다.! 좋은 것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 자리에서 땅의 좋음을 구가하는 내 목소리가 건물들의 콩크리트 밑에 깔리는 경작지들의 슬픈 하소연과 합성이 되어 정상 청각으로는 분별키 어려운 별개의 소리로 부각이 되고 있다. 좋지 않은 느낌이 마음을 잠식한다. 그래서 그런지 땅의 아름다운 독창이 신변에 머물던 시절이 사무치게 그립다.                                                                                                                        1999년 4월 완성                                             발표내역: ( 2000년 12월  당대중국조선족녀류작가 수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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