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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이 없는 시대, 영웅을 읽다
2013년 04월 17일 10시 38분  조회:2658  추천:11  작성자: 김혁

 

 

소설가 김혁의 독서칼럼 (10)

영웅이 없는 시대, 영웅을 읽다
- 시바료타로의 "류방과 항우"

 
지난한해 중국의 영화가에서는 한 가지 소재의 영화와 드라마가 여러차레 겹쳤다.
비평가들의 인적자원에 대한 랑비라는 혹평에도 유명 감독 배우들이 커다란 흥심을 보이며 만든 제재는 바로 초나라와 한나라의 전쟁을 텍스트로 한 작품들이였다.
영화로는 려명, 류엽, 장진, 오언조등 중국과 향항, 대만의 톱스트들이 대거 등장하는 "홍문연(鸿门宴)"과 "왕의 성연(王的盛宴)”이 나왔고 거기에다 “신 삼국연의”의 고희희감독의 80부 드라마 “초한전기(楚汉传奇)”도 브라운관을 달구었다. 극장가가 온통 류방과 항우의 이야기로 흥건했던 한해였다.
영화들을 보고나서 시바료타로의 "류방과 항우"를 다시 꺼내들었다.
인류사를 수놓은 숙명적 라이벌은 수없이 많았지만 장대한 스케일과 빛나는 인간적 매력, 극적인 반전으로 대미(大尾)를 장식한 류방과 항우를 따를 라이벌을 달리 찾기도 어려울것이다. 그래서 진말한초의 천하대란 한가운데서 제국의 패권을 놓고 다퉜던 두 영웅의 대결 즉 “초한지”는 삼국지와 더불어 내노라하는 작가들이면 저저마다가 다루고싶었던 소재의 상위권에 등극했다.
그중에서도 압권은 일본작가 시바료타로(司马遼太郞)의 “항우와 류방”이다.
 
 
  
 
시바료타로

 
  일본의 “국민작가”, “동양 력사소설의 거목”으로 정평이 나있는 시바료타로는 본명이 “후쿠다 사다이치(福田定一)”로 1923년 일본 오사카 후쿠오카현에서 태여나 오사카외대 몽골어과를 졸업하고 처음엔 저널리스트의 길을 걷다가 그후 본격적인 작가의 길을 걷게 되였다. 살아 생전 백여부의 소설과 평론, 에세이, 대담집 등을 발간했는데 그중 1백만부이상 판매된 작품만해도10종이 넘는다. 국가, 종교, 환경등 제분야에 걸친 깊이있는 학문적 견해들뿐 아니라 력사소설을 통해 2차 세계대전후 일본이 나아갈 길과 일본인의 원형을 제시해준 인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지난 1996년 시바 료타로가 이순의 나이에 타계했을때 일본의 매체들은 사설을 통해 “국사(国士)가 돌아가셨다”라며 그의 위치를 높이 승격시켰다.
력사 소설를 집필할 때마다 “트럭 하나분의 자료를 가지고 글을 쓴다”고 할 정도로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그의 소설들은 력사의 큰 흐름을 주도한 인물들에 대한 뛰여난 통찰력과 묘사로 전세계 독자들의 깊은 사랑을 받았다.
초, 한의 대결과 한 제국의 성립을 다룬 재래의 거의 모든 저술은 한무제 시대의 력사가 사마천이 저술한 “사기”에 근거를 두고 있다.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초한지의 구성과 진행을 보면 진시황은 아비규환의 전국시대를 통일에로 이끌지만 그의 폭정은 다시 란세를 다시 부르고 결국 류방과 항우라는 두 영웅을 세상에 불러낸다.
시바료타로는 이 소설의 집필을 위해 역시 철저한 준비를 했다. 사마천의 “사기”를 거듭 정독한것은 물로 풍부한 사료를 찾기 위해 전쟁이 치러졌던 중국의 여러 전적지를 둘러보고 락양의 곡물 저장창고에까지 직접 들어가 보는등 눈으로 보고 듣는 작업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고한다.
저자는 사마천의 혼이 되여 류방과 항우가 뛰놀던 시절의 풍경과 사람들의 모습을 재구성하여 소설화하고 있다.
우선 시바료타로의 "항우와 류방"은 특히 캐릭터의 새로운 창조라는 측면에서 매우 뛰여나다.
한시대의 력사적 사실들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변주해 내고있는데 그렇게 되 살아난 인물들은 선이 분명하다. 따라서 그들의 그 행동과 감정을 굴곡속에 이끌어가면서 독자들로하여금 그들의 운명에 환호하게 만들고 슬퍼하게 만든다.
처음부터 류방은 항우의 적수가 아니였다. 모든 면에서 류방은 항우보다는 한 단계 아래 있었다. 항우는 초나라의 반듯한 귀족의 집안에서 출생하였지만 류방의 출신은 보잘것없는 천민이였다. 그의 원명은 “류계(刘季)”라고 불렸다. “계”란 넷째 아들 또는 막내라는 뜻으로 변변한 이름도 없이 “류씨네 막내놈” 정도로 통했다는 이야기다. 그 아버지 이름인 류태공도 “류씨 할아범”, 어머니의 이름도 “류씨 할멈”이라는 뜻밖에 없어 류방이 얼마나 변변찮은 집안 출신인지 알게 해준다.
게다가 류방은 일도 안 하고 주색잡기로 소일하는 백수건달이였다. 그래서 나중에 왕이 되였을 때까지도 거칠게 살던 버릇이 남아 있어서 귀족들을 곤혹스럽게 했다고 한다. 류방 스스로도 그것을 인정하고 항우를 무서워하였다.
처음부터 항우와 류방은 철저하게 대비되는 인물이였다.
항우는 뼈대있는 가문 출신에 머리도 총명하고 힘도 천하장사였던 빼여난 인물이였다.  20대의 젊은 나이에 천하를 놓고 장정에 나선다.
류방은 동네 건달 출신에 일자 무식이며 힘도 없었다. 그가 천하쟁패에 나선 것은 40살의 나이. 그러나 결국에 승자는 류방이 된다.
류방은 결코 도덕심이 강한 인물은 아니였다. 탐욕도 있었고 녀자도 밝혔다. 하지만 그에게는 사람이 있어 늘 그의 주위를 감쌌다. 류방이 항우보다 나은 점이라곤 포용력이였다. 어떻게 보면 그 포용력도 자기가 보잘것 없다는데서 생겨난것일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많은 사람이 필요하였고 그들을 공경할수밖에 없었을것이다. 그래서 곁에는 그후 고사에도 빈번히 나오는 뛰여나고 충성스러운 인물들이 많았다. 처음부터 류방을 따랐던 소하, 번쾌, 하우영은 물론이고 그후 천하의 충신 장량, 한신까지도 얻을수 있게 되였다.
이것이 절대 강자인 항우를 이길수 있는 밑거름이 되였다. 항우는 자신의 재주만 믿고 인재들을 소홀히 했으나 류방은 그런 인재들을 끌어들여 점점 힘을 불려서 마지막에 항우를 쓰러뜨릴수 있었다.
이런 평가는 일본작가의 소설적 상상력에만 근거한것이 아니다. 사마천(司马迁)의 “사기”를 보면 초, 한 전쟁의 최종 승리를 축하하는 자리에서 류방은 스스로 자신의 승인을 이렇게 분석한다.
“나는 행정에서는 소하(蕭何)에 못 미치고 지략에서는 장량(张良)에 못 미치고 군사지휘에서는 한신(韓信)에 못 미친다. 그러나 나는 이 모두를 부릴수 있었다. 반면 항우는 범증(范增) 한 사람도 제대로 부리지 못했다. 그래서 내가 승리한것이다.”
이렇게 류방이 이기고 항우가 진것은 일종의 “사필귀정”, 두 사람의 인성을 놓고 연구가들은 리더십 리론에서 사례연구를 하기도 했다.
 


영화 "홍문연" 포스터


시바 료타로를 읽는것은 이렇듯 여러모로 재미있는 경험이다. 그에게는 그만의 사관이 있고 그가 펼쳐놓는 여러 장치들, 가령 력사적 고증이나 인물에 대한 그만의 해석 솜씨, 우리가 익숙히 아는 사건에 대한 의미 재부여 등을 갖추고 있다. 우연적이고 소설적인 상상이 가미되여서 이야기를 끌어가지만 창의성과 치밀함은 물론 사적인 사실의 추론을 통한 그 나름대로의 인간 분석이 참 멋있었다.
제목부터 시사하는 바가 크다. “류방과 항우”가 아니고 “항우와 류방”이다. 류방이 승자이고 항우는 패자인데 항우를 앞자리에 놓았다.
어떤 의미에서 이 책의 주인공은 "류방"이 아니라 "항우"이다. 시바 료타로는 승자가 아닌 패자로서의 항우에 좀더 매력을 느끼고 있었다. 책의 전개 역시 류방이 어떻게 승리했는가하는것보다는 항우가 어떻게 패배하게 되였는가에 중점을 두고 있다.
항우는 패배했기에 력사의 뒤안길에 사라져야할 사람이였다. 하지만 오늘날 그는 오히려 더 추앙의 대상이 된다. 항우의 그 기개와 그 패배가 작품들마다에서 예술로 승화되였다. 중국의 국수(国粹) 경극에서 레퍼토리 종목인 “패왕별희”가 로 바로 그것이다. 싸움에 나가서는 용맹을 떨치며 어떠한 상황에서도 당당히 맞붙어 굴하지 않는 기개를 보였다. 죽는 순간까지 그러한 태도를 보이며 죽어갔다. 하늘이 버린 영웅을 후세사람들이 기리고 있는것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대업을 위해 비굴함도 마다하지 않았던 철저한 현실주의자 류방과 기개와 힘을 갖춘 대장부의 전형 항우의 두 면면을 읽을수 있었다.
천하 용력을 자랑하던 귀족 출신의 항우가 보잘것 없는 미천한 류방에게 결국은 패하는 력사적 사실은 비단 우리에게 소설적 재미만을 선사하는것이 아니다.
소설은 춘추전국에서 진 한으로의 전환기에 그 소용돌이를 해처나간 인물들의 개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처세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즉 고대의 물로서 현대의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계수해 주고있는것이다.
사실 류방과 항우의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우리 삶 속에 이미 깊이 침투해있다. 자고로 가장 서민적인 게임이였던 장기놀이가 그에서 비롯되였기 때문이다. 초나라와 한나라의 양보할 수 없는 한판 승부. 영웅 항우와 류방이 천하를 손에 넣기 위한 고전(苦战)- 두 영웅의 파란만장한 각축전을 우리는 장기판을 통해서 대리전을 치루어 온것이다. 때문에 일본작가의 작품일지라도 우리에겐 전혀 낯설지 않게 읽힌다.
요즘의 드라마속에 종종 등장하는 력사적 사실은 야사를 내세워 진실을 가장하고 있다. 진실이 아니란 점에서 의사력사(疑似历史)이다. 여기서 철저한 고증을 거친 사마료 타로의 작품이 다시금 읽혀진다.
그리고 오로지 "삼국연의"등 몇부만이 력사소설 대접을 받는 우리의 폭이 무척이나 좁은 독서풍토에서 시바 료타로의 품격있는 력사소설을  만날수 있다는건 애독자로서는 크낙한  행운이다.
 
연변일보” 2013 4 15
 
 
 

김혁 문학블로그:http://blog.naver.com/khk66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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