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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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    애정시조 (100수)-40ㅡ60 댓글:  조회:8231  추천:0  2013-10-14
                    1. 련정은 잘 모를때 불길로 치솟거늘                         몰랐다 후회마라 알고나면 더 알리니                         그래서 동네혼사가 어렵다고 했니라                      2. 사랑은 지력으로 하는것 아니여라                          초련이 열련되고 련애학교 졸업하면                           미구에 결혼이라는 사랑학교 첫개학                      3.  사랑이 사탕이냐 씹다가만 껌이더냐                           서로가 잊지못할 사람으로 남았다면                            아파도 너의 사랑이 진심인줄 알거라                      4.  서로가 지은빚을 갚는듯이 살아가며                            화내고 풀어주고 불평하고 동그리는                            끈질긴 찰떡궁합은 가난해도 살만해                         5. 잔들어 마시기전 벌써부터 취해오고                            마시면 알딸딸한 만취되는 술이있어                            爱情酒 건배한다면 취생몽사 되리라                         6. 사랑은 황금욕의 함수가 아니더라                            사랑은 루만금의 자변량 못되더라                            사랑의 가감승제에 정답이란 미지수                                       7. 사랑아 명함장에 뭐라고 쓴것이냐                            예술의 주제라고, 인생의 주제라고                            뭐이든 그게 대수냐 좋으면 다인것을                         8.  사랑과 인생이란 동의어 아니던가                            사랑의 비밀인즉 인생의 비밀되고                             7정에 희로애락이 사랑책의 내용되고                         9. 젊어선 무지개꿈 늙어선 추억이요                           사랑이 자성하면 인생의 자성이라                              인생은 유희라지만 사랑만은 아니여                      10. 사랑은 한권의 책 영원히 미완성고                           젊어선 랑판파요 중년엔 황당파극                           늙어서 가을산문에 에필로그 쓰리라                                          1.  연습도 할새없이 등장하자 막열리니                         실패작 되더라도 둘이만의 금서인걸                         읽을때 감추어둘 때 뚜껑을랑 씌우소                                       2. 사랑은 꽃구름이 비구름이 될때 있고                         잔잔한 우물되고 천리장강 격랑되고                         지심속 광맥같아여 캐고캐도 못캐리                      3. 랑만에 넘친사랑 련환화가 될터이요                        파란이 만장하면 초사본이 될것이되                        부디나 리혼이라는 절판서는 내지마                        4. 아담과 이브씨가 금단이라 욕심냈듯                        련애에 방애자는 붙는불에 키질하네                        아서라 들뛰는 사랑 고삐인들 있을고                      5.  얼굴에 꽃노을은 爱情树에 첫꽃이요                         이브가 금단먹고 깨우친 지혜랑께                         부끄럼 모르는 처녀 운치인들 이시랴                      6. 세상에 아름답고 멋진말은 사랑이여                        사랑이 없는세상 엉겅퀴만 무성하리                        사랑의 한갈래길은 绿洲가는 길이여                      7. 사랑은 리해이고 승화된 배려이요                        증오란 찌꺼기요 싸늘히 식은재여                        사랑의 금빛궁전은 지성으로 열어야                        8. 사랑신 찾지마라 공방형 토템되니                         쥬피터 화살촉도 지페로 만드노라                         사랑이 팔리던 시각 눈물먹고 죽었지                      9. 사랑도 기술이여 진솔하면 웃기니라                        사랑은 팽이여라 칠수록이 팽팽돌고                        생명의 불꽃인 사랑 정염을랑 불살라                     10. 사랑해! 처음하면 천사의 선언이라                          사랑해! 두번째면 달콤한 황통이여                          부부간 사랑해요는 타협조의 구두어                                       1. 사랑은 오해이요 착각의 미학이여                        이루지 못했기에 첫사랑 되여지고                        애달픈 짝사랑이라 평생토록 못잊지                     2. 자연의 대걸작은 노을과 미인인데                        아쉽네 좋은것과 고운것이 순간이라                        단촉한 아름다움이 소중한줄 알괘라                     4. 사랑은 눈이부신 마음의 빛이되고                        인생에 수를놓는 지혜가 되더란다                       사랑의 실책인즉 곧 인생사에 败笔이여                     5. 사랑의 바다에는 꽃물결도 있거니와                       사나운 폭풍있어 파선될수 있더니라                       항구는 멀고멀거니 열심히들 노저어라                      6. 불타지 않는다면 사랑이 못되여도                        보르르 잘끓어도 참사랑 아닐터이                        녹일듯 거찬 불길에 지혜랑도 증발돼                      7. 시작과 대단원이 그렇게 다른것은                        아마도 전쟁과 사랑이란 두가지리                        사랑의 유적지에는 비애가 누워있다                     8. 어젯날 사랑했던 사람은 새겨두라                       오늘은 네사랑을 가슴에 세워두라                       사랑은 애를 쓴다고 얻어지지 않나니                     9. 사랑의 늪이좋냐 폭포가 더좋으냐                        련정의 물속에는 해와달 없거니와                        좋아서 빠진것이니 익사해도 가만둬                   10. 현대의 애정신도 로출증에 걸렸도다                        키스도 공중앞에 전시하고 자랑하네                        아서라 최다정인양 남을위한 련애냐
259    대학살만행은 잊혀지지 않는다 댓글:  조회:8973  추천:0  2013-10-11
                                         대학살만행은 잊혀지지 않는다                                                            발취문       조선민족의 백년숙적 일제가 지난날 우리 민족에게 감행한 미증유의 죄악은 결코 세월의 물결에 씻겨지지 않는다. 쌓이고 쌓인 민족의 원한은 날이 갈수록 더 생생히 살아날뿐이다. 력사는 똑똑히 기억하고있다. 조선“로동신문”에서 발표한 재료를 여기에 발취하여 인용한다.    “지금으로부터 90년 전인 1923년 9월 1일 간토지방에서 일본역사상 최대의 지진이 일어나 막대한 인적, 물적피해가 났다.”며 “이 지진으로 인하여 수많은 사 망자와 행방불명자가 났으며 10여개 도시와 마을들이 불바다로 변하여 120 여 만명의 주민들이 한지에 나앉았으나 그러나 일본반동정부는 사상자들과 리재민들에 대한 아무런 구제대책도 취하지 않았다. 일본인들속에서는 자기들을 돌보아주지않는 정부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였고 민심이 소란해졌다. 일본반동정부는 폭동에로 넘어갈 기세까지 보이고 있는 인민들의 반정부적 감정을 딴데로 돌리기 위하여 혼란이 일어난 책임을 조선사람들에게 넘겨씌우기 위한 무서운 음모를 꾸몄다. 일제는 심각한 사회정치적위기를 모면하는 동시에 합법적으로 재일조선인들을 탄압하고 학살할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발악하였다.”     “조선인집단학살은 참으로 상상을 초월하는 만행이었다. 일제는 조선사람들을 10여명씩 묶어 제방에 세워놓고 새로 만든 기관총의 성능검사대상으로 삼아 죽였고 해탄로에 집어던져 불태워죽였고. 임신부의 배를 가르고 태아를 꺼내여 밟아죽였고 음부에 참대창을 박아죽였다.”    “당시 조선인학살에 직접 참가하였던 한 일본인경찰은 참살정형은 도저히 입으로 표현할수 없었다.…어린아이들을 줄을 세워놓고 부모들이 보는 앞에서 목을 잘랐으며 그다음 그 부모들도 찔러죽였다. 살아남은 조선사람들의 팔을 톱으로 켜는자도 있었다. 그것도 도중에서 팽개치고 또 다른 조선사람들을 톱질하는 모습은 보기도 끔찍하였다. 죽은사람들의 눈을 식칼로 도려내는것도 보였다. “… 경찰서구내는 피바다를 이루었으며 장화를 신지않으면 걸을수 없는 형편이였다. ” 라고 실토하였다.”     이 신문은 “실로 일제야수들의 만행은 말과 글로써는 다 표현할수 없는 전 대미문의 야만행위였다. 이때 일제야수들이 무참히 학살한 조선사람의 수는 무려 2만 3000여명이나 되였다. 재일조선인들에 대한 일제의 귀축같은 살륙만행은 그들이야말로 인간증오와 민족배타주의사상, 야수성이 골수에 꽉배인 천인공노 할 야만들이고 사람잡이를 유희, 도락으로 삼는 살인마, 조선인민의 철천지원쑤 라는것을 똑똑히 보여주었다.”며 “조선사람들의 피로 얼룩진 간토대지진을 계기로 한 조선인살육만행은 조선민족을 말살하기 위하여 일제가 감행한 죄악의 일부이며 침략과 략탈, 파괴와 피비린내 나는 살륙만행으로 얼룩진 일제의 범죄행위 의 한토막에 지나지 않는다.”…     또 다른 글에서 퍼온 글을 간략해 서술보자. “북한에서 조사한 정신대 보고서”        일제가 감행한 "종군위안부" 범죄사건에 대한 진상조사 보고서     ㅡ1993. 8. 평양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일제의 조선강점피해조사위원회ㅡ     …이기간 일본이 감행한 수다한 잔악한 행위로 말미암아 조선에서 징용, 징병, "정신대" 등의 명목으로 600여 만명이 강제련행되고 "종군위안부"으로 근 20만명이 끌려갔다. …일본군은 성봉사를 거절하는 여자들에게 갖은 폭행을 다 하였다. 그래도 말을 듣지않을 때에는 "종군위안부"들을 다 모아놓고 그들이 보는앞에서 가장 완강히 반항하는 여자들을 군도로 목을 베거나 생식기에 대고 총을 난사하는것과 같은 잔인 한 방법으로 처형함으로써 다른 "종군위안부"들을 순종하게 하였다.     일본자민당 전 중의원 의원이며 자민당의 장로이며 중의원 부의장인 아라후네가 1965년 11월 20일 선거구민들앞에서 강연하였는데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조선인 위안부 14만 2,000명이 죽었다. 일본군인이 죽여버렸던것이다. " 일부 일본군부대는 전황이 위급하게 되자 "종군위안부"들을 그냥 내버리고 저들만이 도망쳤다. 그리하여 나이어린 "종군위안부"들은 말도 모르고 지형도 모르는 이국땅 무인 지경의 정글속에서 행방없이 헤매지 않으면 안되었다. 방치된 "종군위안부"들 가운데서 대다수가 낯설은 이국땅의 이름모를 고장에서 마을을 찾지못하여 굶어죽거나 폭격에 희생된것으로 보인다. 일부만이 갖은 고생을 다하다가 기적적으로 살아남아 돌아올수 있었다.…     지금까지 "종군위안부"들의 명단이나 총수자를 확인하는 공적자료가 발견된것은 없다. 그러나 "종군위안부"들의 총수를 20여만명으로 추산할수 있는 근거자료는 얼마든지 있다. 당시 일본군내에는 "니꾸이찌"라는 일본말이 광범히 유통되었는데 이는 "일본사병 29명에게 1명의 위안부가 당대되었거나 필요하였다"라는 뜻이다. 이상의 사실자료를 가지고 "종군위안부" 피해자수를 추산해보면 대략적인 수자가 나온다.     300만명 ÷ 29명 =10만 3,448. 3명,12년동안 성봉사 강요를 견디어낸 "종군위안부"은 아직 확인된것이 없으므로 병, 사망, 도주 등으로 발생한 결원을 부단히 보충하였다는 제반사정을 고려하여 유지하고 있던 "종군위안부"들의 총수자를 적게 잡아서 1.5~2.0배로 환산하면 10만 3,448.3명 × 1.5명 (2.0명) =15만 5,173~ 20만 6,896명이 된다. 1941년이후 여성들을 대대적으로 더많이 련행하였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종군위안부"의 총수를 20여만을 훨씬 넘는 것으로 추정할수 있다.     일본 정부와 군부는 조선녀성들을 "종군위안부"으로 끌어갈 당시 차후에는 그들을 소멸할것을 전제로 하였다. 일본군부는 "종군위안부"들의 생명과 건강 그리고 그들의 생식능력을 보존하기 위한 그 어떤 법률이나 규정을 제정함이 없이 소모품처 럼 마구 취급하였다. 일본병사들이 "종군위안부"들에게 마음대로 폭행하거나 살해한 자료는 수없이 많으나 그러나 행위를 감행한 일본병사의 죄행이 일본군대의 법정에서 취급되었다는 자료는 아직 발견되지 않고있다. 즉 일본은 조선민족 자체를 말살 하려 하였기때문에 근 20만명에 달하는 방대한 규모의 젊은조선녀성들의 존재자체와 그 생식능력을 소멸하여도 일본의 법률에 저촉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당시 실시 되고있던 조선민족 말살정책에 부합되였던것이다.     이외600여만에 달하는 조선의 청장년들이 징용, 징병, "정신대" 등 각종 명목으로 국내와 일본의 탄광, 광산 그리고 공사장들에 끌려가 노예노동을 강요당하였으며 전쟁마당에 내몰려 대포밥이 되거나 불구가 되었다. 일제의 조선강점기간 100여 만명의 무고한 조선사람들이 희생되었다. 로동신문은 끝으로 “일본당국자들이 정의와 량심에 도전하면서 과거청산을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것처럼 여기며 요리조리 회피해보려 하다가는 언제가도 국제사회의 저주와 규탄을 면치못할것”이라고 경고했다.     ㅡ전쟁은 인간들이 인성을 내치고 벌린 살인광대극이다. 네죽고 내가 사는 전쟁마 당에서 인도주의, 인간의 선량지심이 설자리가 없다. 결국 전쟁당사국 사이는 피장파 장인것이다. 그러나 일본이 무고한 조선인민을 학살한것은 결코 전쟁행위가 아니다. 일제의 살륙만행은 많은 잊어야 하는 사실들에 속할수 없다.(작성자)                                                     2013년 9월 3일 ( 발취)            
258    미국은 사실상 제3차 세계대전중 (펌글) 댓글:  조회:9865  추천:1  2013-10-10
                                                                                             미국은 사실상 제3차 세계대전중 (펌글)                             등록 : 2013.08.09 19:03 수정 : 2013.08.09 22:10 (자주민보)        1945년 2월23일 일본 도쿄 남쪽 해상의 화산섬 이오지마의 스리바치산 정상에 미국 성조기를 게양하는 미 해병 4사단28연대 군인들. 제2차대전 중 미국이 일본 본토 공습의 전략적 요충지였던 이 작은 섬을 탈환하는 과정에서도 일본군 2만여명 과 미군 6000여명이 전사했다. 노스캐롤라인 디지털역사관 제공                                  [토요판] 정문태의 제3의 눈 2차대전 종전 68주년     제1, 2차 이라크 침공에 이어 아프간 침공과 코소보전쟁, 파키스탄·팔레스타인 낀 중동 묶으면 상시전쟁 체제 이름만 안 붙였을뿐 3차대전 지구상에 사는 인간들 이 내부충돌로 3~4%나 사라진 최고 악질전쟁 2차대전 이를 포함해 미국 개입한 전 쟁 희생자 최대 3천만명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세상 곳곳에서 제2차 세계대전 종전을 기려왔다. 올해 8월15일 로 68번째다. 주로 승자들의 회상으로 메워왔지만, 이따금 패자들의 회한도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승자도 패자도 그 전쟁에서 얼마나 많은 이들이 죽임을 당했는지, 아무도 진실을 말하지 않았다.    연구자들에 따라 시민 3천만~5천만명을 포함해 5천만~8천만명이 희생당했다는 추측만 나돌 뿐이다. 하여 기껏 68년 전 역사가 아직도 공백으로 남아 있다. 두가지 는 분명하다. 하나는 현대사에서 연구자에 따라 이처럼 엄청난 셈값 차이를 보인 경 우가 없었다는 사실이고, 다른 하나는 어떤 셈값을 따르든 제2차 세계대전은 인류사에서 최대 희생자를 낸 최고 악질 전쟁이었다는 사실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터졌다는 1939년 세계 인구가 약 20억명이었던 것을 놓고 보면 지구상에 존재하는 한 종의 생명체가 내부 충돌로 6년 만에 3~4%나 사라진 꼴이다.     생물학적으로도 충격적인 일이다. 이때쯤 떠오르는 말이 하나 있다. “한 사람 죽음은 비극이지만 수백만명 죽음은 통계다.”러시아 정치인 스탈린이 미국 대사 윌리엄 에이브럴 해리먼에게 했다는 말이다. 냉전기간 내내 스탈린의 대량 숙청을 비난할 때 미국 언론과 학자들이 즐겨 써먹는 유명한 문구가 됐다.     물론 러시아 정치 사료에서는 그런 문맥을 찾을 수 없어, 요즘도 심심찮게 연구자들끼리 부딪치는 논쟁거리다. 누가 옳은지는 연구자들 몫으로 남겨두고 오늘은 제 2차 세계대전 최대 승자였던 미국식‘수백만명 죽음은 통계다’를 이야기해 보자. 아주 특별한 전쟁 전문 국가의 탄생 미국은 237년이라는 짧은 역사를 거치는 동안 시시콜콜 모든 기록을 남겼지만 유독 전쟁 기록만은 부실하기 짝이 없다.    미국은 거의 모든 전쟁에서 교전 상대국 희생자뿐 아니라 자국 희생자 수도 정확한 기록으로 남기지 않았다. 미국 역사는 승리만 기록할 뿐이었고, 미국 정부는 국 가의 이름으로 저질러온 가장 야만적인 정치 행위인 전쟁을 감춰왔다는 뜻이다.    그들은 베트남전쟁에서 적군 희생자 숫자를 매일 밝히는 이른바 ‘보디 카운트’(bod y count)를 했지만, 부풀려졌다는 의혹에 직면한다. 전쟁에서까지 패하면서 호된 비난 을 받자 그뒤의 전쟁에선 공식적인 집계를 포기했 다고 한다.    1991년 제1차 이라크 침공에서 국방장관 도널드 럼스펠드가“우리는 다른 사람들 (이라크인)의 보디 카운트를 하지 않는다”고 밝혔듯이 말이다. 하지만 237년 미국 역사를 훑어보면 그 보디 카운트를 하지 않은 건 최근 일이 아니었다. 심지어 미국 안에서 자신들이 학살한 인디언 원주민 수마저도 자료나 통계가 없을 정도니.     그동안 미국의 전쟁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지 어림잡아 보자. 1776년 독립을 선언한 미국은 8년에 걸친 독립전쟁(1775~1783년)에서 미군 5만여명과 영 국군 5만여명을 합해 10만명 웃도는 희생자를 냈다. 이어 19세기 말까지 단 한해 도 쉬지않고 영토확장 전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인디언 원주민 300여만명을 학살했다. 그사이 남북전쟁(1861~1865년)이란 내전에서는 60만명 웃도는 희생자를 냈다.     그러면서 미국은 독립전쟁 때 프랑스로부터 빌린 전비를 갚지 않겠다고 우기며 도미니카에 해병대를 파견해 프랑스 전함을 나포했던 이른바 준전쟁(Quasi-War 179 8~ 1800년) 을 시작으로 온 세상에 군대를 파견해 공격적인 국제정치의 발판을 깔 았다. 미국은 지중해의 트리폴리 왕국을 공격한 제1차 바버리전쟁(1801~1805년), 제2차 브 리티시-아메리카전쟁인 1812년전쟁(1812~1815년), 국경선 분쟁인 멕시코-아메리카 전쟁 (1846~1848년) 같은 굵직굵직한 전쟁을 벌이더니 1898년 스페인-아메리카전쟁을 통해 쿠바, 푸에르토리코, 필리핀, 괌에서 스페인군과 충돌해 10만여명 희생자를 냈다.     이어 미국은 필리핀 독립전쟁이었던 필리핀-아메리카전쟁(1899~1902년)에서 100만명 웃도는 필리핀 시민을 학살했다. 그렇게 20세기 초까지 미국은 내전과 국제전을 동시에 치르면서 아주 특별한 전쟁 전문 국가로 성장했다.     미국의 무력 도발은 사연도 가지가지였다. 쿠바(1822년), 푸에르토리코(1824년), 그리스 (1827년)를 해적 소탕 빌미로 공격했고, 수마트라(1832년), 일본 (1853~ 1854년), 조선(1871년)엔 개방을 요구하며 쳐들어갔다. 그런가 하면 미국 탐험대나 선원, 외교관 공격에 대한 보복으로 피지(1840년), 사모아(1841년), 포모사(1867년), 중국 (1866년)을 침략했다.     또 아르헨티나(1852~1853년), 우루과이(1855년), 파나마(1856년), 앙골라 (1860년), 이집트(1882년), 하와이(1889년), 칠레(1891년), 니카라과(1896년), 콜롬 비아(1901년), 온두라스(1903년), 시리아(1903년), 터키(1912년)엔 정치적 혼란 으로부터 미국 시민과 재산을 보호한다며 군대를 파견했다. 이렇듯 몇몇 본보기만 늘어놓았지만 미국은 제1차 세계대전 전까지 이미 전쟁의 이름으로 최소 500만명 웃도는 희생자를 냈다. 미국이란 나라가 태어나면서부터 전쟁을 먹고 자랐다는 사실이 드러난 셈이다.     테러와의 전쟁, 왜 희생자 수 밝히지 않나? 제2차 세계대전 뒤부터는 미국이 개입한 전쟁에서 희생자 수가 치명적으로 늘어났다. 제2차 세계대전 뒤 미군이 개입한 첫 대규모 국제전인 한국전쟁에서 민간인 250만명과 군인 55만명을 포함 최소 300 만명이 사망했다. 이어진 베트남전쟁(1955~1975년)에선, 미국이 본격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한 1965년 부터 1975년 사이에만도 340만명(로버트 맥나마라 미국 전국 방장관 추산)에서 510만명(베트남 정부 발표, 1995년)에 이르는 희생자가 발생했다.     그 베트남전쟁 기간 미국은 라오스를 인도차이나반도의 공산화를 막는 방파제라 부르며 1964년부터 1973년까지 50만톤 웃도는 각종 폭탄을 라오스에 쏟 아부어 20만 명에 이르는 시민을 학살했다. 이른바 비밀전쟁이라 불렀던 그 라오스 공습이 끝나고도 지난 40년 동안 2만여명이 집속탄을 비롯한 온갖 불발탄에 목숨을 잃었다.     마찬가지로 미군은 베트콩을 잡겠다며 1969~1973년 사이에 이웃 중립국 캄보디 아에 폭탄 54만톤을 퍼부어 30만~80만명에 이르는 시민을 학살했다. 그 50만톤 폭탄이란 건 미군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에 투하했던 16만톤을 3배나 웃도는 양이었다. 그 뒤로도 미국은 1980년대 소비에트가 점령한 아프가니스탄의 무자히딘 지원을 비롯해 이란-이라크전쟁(1980~1988년), 엘살바도르(1981년), 레바논(1982~ 1983년) 전쟁에 개입, 그레나다(1983년)와 파나마(1989~1990년)를 무력침공 했다.     이어 미국은 1991년 제1차 이라크 침공으로 군인과 민간인 포함 약 20만 명을 살해했고, 대이라크 경제제재로 최소 56만명에 이르는 어린이를 의약품 부족과 기아로 숨지게 했다.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한 2001년부터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해 12년째, 그리고 2003년 이라크를 제2차 침공해 10년째 전쟁을 벌이고 있다.     앞선 전쟁들과 마찬가지로 미국 정부는 이 두 전쟁에서도 희생자수를 밝힌적이 없다. 최근 브라운대학의 민간인 희생자 조사보고서가 아프가니스탄 1만6천~1만 9천명, 이라크 13만4천명을 추산한 적이 있을 뿐이다. 미국이 개입한 전쟁의 희생 자는 이렇게 제한적인 지면을 통해 어림잡아 보아도 1500만명을 웃돈다. 이건 미국의 중앙정보국을 비롯한 각종 스파이 조직들이 온 세상을 대상으로 벌여온 국지전 이나 지역분쟁의 희생자를 제외한 수다. 참고로 전쟁사 연구자들은 제2차 세계대전 을 포함해 그동안 미국이 전쟁에서 죽인 사람 수를 2천만~3천만명으로 꼽아왔다.     타이 1년 예산보다 많았던 아프간전쟁 비용: 현대사를 들춰보면 제2차 세계대전 뒤 지구상에서 벌어진 거의 모든 전쟁을 미국이 주도했거나 직간접적으로 개입했음이 드러난다. --이건 태생적으로 전쟁을 먹고 살아온 미국의 생존방식에서 비롯되 었다.--미국경제 60~70%가 군산복합체와 연동된 상태에서 미국식 자본주의는 군사비 지출을 계속 늘리지 않고는 경제성장이 불가능한 이른바 군사케인스주의에 매몰 당해 결국 전쟁 없인 굴러갈 수 없는 체제를 구축해 왔기 때문이다. 미국의 군사비 가 좋은 본보기 거리다. 예컨대 테러와 전쟁을 벌이기 전인 2000년 2890억 달러였던 미국의 군사비가 2013회계연도(2012년 10월~2013년 9월)에 이르면 6330억 달러(약 681조원)로 2배 이상 늘어난다.     -이건 세계 경제 지표에서 10위권을 오르내리는 한국의 2012년 정부 총예산 325조의 2배를 웃도는 엄청난 돈이다. 같은 기간 세계 군사비 총액이 1조 7560억 달러임을 놓고 보면 미국이라는 한 나라가 쏟아부은 군사비가 세계 전체 군사비의 40%에 이른다. 같은 기간 미국이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투입한 전비만도 885억달 러였다. 미국이 전쟁 하나에 투입한 비용이 타이, 말레이시아, 대만 같은 아시아 주요 국가 정부들의 1년 총예산을 웃돈다.     그렇게 미국은 12년째 전쟁을 벌여온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이미 약 6500억 달러를 썼다. 10년째 전쟁을 벌이고 있는 이라크 침공에서는 그보다 많은 8천억 달러를 썼다.그런 막대한 군사비 지출을 통해 현재 미국은 독일, 일본, 한국을 비롯한 63개국에 737개 해외 군사기지(펜타곤 발표로는 865개)를 두고156개국에 25만명 웃도는 군인을 파견해 국제사회를 통합전쟁시스템 아래 주무르며 전쟁과 경제라는 떨어질 수 없는 미국식 쌍발엔진을 돌리고 있다.     실제로 미국은 이미 상시전쟁 체제에 들어선 상태다. 미국은 제1차 이라크 침공(1991년)에 이어 코소보전쟁(1999년), 아프가니스탄 침공 (2001년~오늘), 제2차 이라크 침공(2003년~오늘) 같은 전지구적 규모의 전쟁을 줄줄이 벌여왔다. 이 전쟁들의 전비와 파괴력 그리고 동맹군 수는 제2차 세계대전 규모를 웃돈다. 여기에 파키스탄을 비롯해 팔레스타인과 시리아를 낀 중동전쟁을 묶으면 이름만 붙이지 않았을 뿐, 우리가 인지하지 못했을 뿐, 미국은 이미 새로운 형태의 제3차 세계대전 을 벌이고 있는 셈이다. 그 미국의 전쟁 제물이 바로 세계 시민사회였고 그 희생자가 바로 세계시민이었다. 미국식 전쟁의 통계에 마저 잡히지 못하는 존재들이었다.        우리는 미국의 살림 살이를 위해 오늘도 이 세상 어디에선가는 반드시 전쟁판이 벌어져야 한다는 참혹한 시대를 살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즈음에 미국을 다시 보면서, 그 미국의 전쟁을 반대하는 까닭이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에 부쳐 아인슈타인이 미래의 전쟁을 예언하며 즐겨 썼던 말을 올린다. “제3차 세계대전에는 어떤 무기들로 싸울지 알 수 없지만, 제4차 세계대전에는 몽둥이와 돌을 들고 싸울 것이다.”                                                          2013년 6월 10일 (인용ㅡ작성자)                  
257    력사의 카메라 댓글:  조회:7886  추천:0  2013-10-10
                                                    력사의 카메라                                                          작성자 진언                                                             “왜 친미에서 반미로?” (펌글)                         출처: 시사평론 : 정론직필을 찾아서 (생명사랑) 2013.5.9. 18:45                       글쓴이: 그사랑, 이슈속의 진실찾기     (상략) 미국은 일본과 1905년 가스라 테프트(미국27대 대통령)밀약을 맺아 조선을 일본식민화시킨 당사자이다. 밀약의 내용은 한국에 대한 일본의 지배권을 미국이 인정하고 일본은 미국의 필리핀 지배를 인정하는것이였다.    (참고문헌) 한일합방과정 일본에 천문학적인 재정지원한 미국(현재가치로 14조원 상당)ㅡ《외세에 의한 한국독립의 과정에서》발췌, 서울대출판부,    미국은 비밀조약을 통해 일본에 조선을 넘긴 장본임에도 불구하고 해방과 동시에 남한에 해방군인체 점령군으로 들어와서… (하략)                         미국의 추악한 침략 살인 역사   1. 인디언 7천만 대량살상(인종청소) 2. 1801ㅡ1806년 트리폴리와 모로코전쟁 3. 1803ㅡ1806년 스페인과 전쟁 4. 1812ㅡ1814년 스페인 령 서부 플로리다 강탈 5. 1812ㅡ1815년 캐나다와 플로리다를 빼앗기 위해 영국에 선전포고 6. 1813년 말카스제도 누크히 섬 상륙 침공 7. 1816ㅡ1818년 알제리 전쟁 8. 1819ㅡ1825년 쿠바 푸에토리코 산토밍고, 멕시코의 유가탄 반도 침략 9. 1819ㅡ1829년 옐로우스톤 원정 10. 1826년 하와이제도 침공 11. 1826년 그리스 미코노스 섬, 앤드로스 섬 침공 12. 1831ㅡ1832년 포클랜드 군도 침공 13. 1832년 스마트라섬 쿠알라토르침략 14. 1833년 아르젠티나의 부어노스 아이레스 침공 15. 1835년 사모아제도 침공 16. 1838년 수마트라 침공 17. 1840년 피지군도 침략 18. 1841년 길버트 군도의 드레몬드 제도 침공 19. 1843년 리베리아 침공 20. 1847년20. 1847ㅡ1848년 멕시코와 전쟁 21. 1847년 아이티의 사마나 만 점령 22. 1852ㅡ1853년 부에노스 아이레스 침공 23. 1853ㅡ1854년 니카라과 침공 24. 1854ㅡ1856년 중국 상해, 광동 침공 25. 1858년 피지군도 침략 26. 1855ㅡ1858년 우르과이의 몬테바데오 침공 27. 1858년 뉴 그레네이더 하나마 침공 28. 1857년 니카라과 침공 29. 1858년 유이하 제도 침공 30. 1858ㅡ1859년 파라과이 침략 31. 1857년 중국 상해 침공 32. 1859년 판 데트카 해협의 산판섬 침공 33. 1859년 멕시코 침범 34. 1860년 포르투갈 령 서아프리카 키센보 침략 35. 1963ㅡ1864년 일본 시모노세키 침공 36. 1863ㅡ1864년 중국 침공 37. 1865년 콜롬비아 침공 38. 1866년 멕시코 침략 39. 1865년 파나마 침공 40. 1867년 대만 침략 41. 1867ㅡ1872년 조선 침략 42. 1868년 우르과이의 몬테바데오 침공 43. 1868년 일본 침공 44. 1868년 콜롬비아 침공 45. 1870ㅡ1873년 멕시코침략 46. 1870년 콜롬비아 침략 47. 1870ㅡ1873년 파나마 침략 48. 1874년 하와이 호놀룰루 침략 49. 1876년 멕시코 침략 50. 1882년 이집트 침공 51. 1885년 파나마 침략 52. 1888년 아이티 침공 53. 1888년 조선 상륙 54. 1890년 아르젠티나의 부에노스 아이레스 상륙 55. 1891년 아이티 침공 56. 1891년 칠레 침공 57. 1893년 호놀룰루에 상륙 하와이 제도 점령 58. 1894년 브라질의 리오데자이네이로 침공 59. 1894년 니카라과 상륙 60. 1894ㅡ1896년 조선과 중국에 상륙 61. 1895년 콜롬비아에 상륙 62. 1896 니카라과에 상륙 63. 1898년 하와이제도 병합 64. 1898년 니카라과에 상륙 65. 1898ㅡ1899년 미서전쟁 66. 1898ㅡ1899년 쿠바 점령 67. 1898ㅡ1899년 필리핀 점령 68. 1898ㅡ1899년 괌 점령 69. 1898ㅡ1899년 푸에르토리코 점령 70. 1899년 니카라과에 상륙 71. 1899년 피지제도 군사원정 사모아 침략 72. 1899년 추추리이 섬 점령 73. 1899ㅡ1*02년 필리핀과 전쟁 74. 1900ㅡ19*02년 파나마 상륙 75. 1900ㅡ1902년 중국 의화단진압 군사원정 76. 1900ㅡ1902년 파나마 상륙 77. 1903ㅡ1904년 사마르 섬, 필리핀 섬의 이슬람교도에 대한 군사작전 78. 1903년 파나마운하 영구 점령 79. 1903ㅡ1904년 산토도밍고 침공 80. 1904년 파나마 상륙 81. 1904년 조선상륙 82. 1906ㅡ1909년 쿠바 점령 83. 1910년 니카라과 침공 84. 1910ㅡ1911년 온두라스침공 85. 1911ㅡ1912년 중국 상해, 북경 침공 86. 1912년 파나마 침략 87. 1912년 쿠바 상륙 88. 1912년 터키 상륙 89. 1912ㅡ1915년 니카라과 침공 90. 1913년 멕시코 상륙 91. 1914년 아이티 상륙 92.1915ㅡ1916년 멕시코 침략 93. 1916ㅡ1925년 산토 도밍고 점령 94. 1917ㅡ1918년 제1차세계대전에 참전 95. 1918ㅡ1920년 파나마 치리키 점령 96. 1918ㅡ1926년 신생국 쏘련을 침공 97. 1919년 온두라스 상륙 98. 1919년 코스타리카 침공 99. 1920년 괴타말라 침략 100. 1921년 파나마 침공 101. 1921년 코스타리카 침공 102. 1922ㅡ1941년 중국에 무력개입 103. 1924ㅡ1925년 온두라스 침공 104. 1925년 파나마 침략 105. 1926ㅡ1933년 니카라과 침공 106. 1936년 온두라스 침공 107. 1933년 쿠바연안 정찰 108. 1937년 중국 양자강연안 점령 109. 1938년 중국 광동, 태평양의 엔더베리 점령 110. 1941년 그린란드 항구 점령 111. 1941년 아이슬란드 점령 112. 1950ㅡ1953년 한국침략전쟁 113. 1953년 이란의 모다디그정권 정복 114. 1954년 괴테말라 군사개입 115. 1958년 중동위기 선동 116. 1958년 케므이 섬, 마쓰섬 주변에서 무력시위 117. 1960년 Uㅡ2 첩보기 쏘련 영공 정찰 118. 1960년 콩고에서 유엔 군사작전 선동 119. 1961년 파그만 침공 120. 1961년 베를린 위기 선동 121. 1964년 통킹만 무력 도발 122. 1964ㅡ1972년 베트남전쟁 123. 1965년 도미키카공화국 내정 개입 124. 1966년 엔쿠루마정권 정복 125. 1970년 라오스 무력 개입 126. 1970년 캄보디아 무력 개입 127. 1973년 칠레 아안데 정권 전복 128. 1974ㅡ1975년 포르투갈에서 파괴활동 129. 1975년 케냐의 무왕기 카리운기 암살 130. 1975년 오르트렐리아 노동당정권 전복 131. 1977년 콩고인민공화국정권 전복 132. 1979ㅡ1981년 이란에 대한 군사행동 133. 1960ㅡ1981년 카스트로암살 기도 134. 1981년 카다피암살 계획 135. 1981년 파나마의 트리호스 암살 136. 1981년 인디라 간디에 대한 음모 137. 1981년 잠비아 대통령 암살 계획 138. 1980ㅡ1984년 폴란드내정 간섭 139. 1980ㅡ1984년 아프카니스탄 군사 개입 140. 1981ㅡ1983년 엘바도르 내란 군사 개입 141. 1981ㅡ1983년 니카라과에서 군사 도발 142. 1982년 시드라 만에서 리비아에 대한 도발 143. 1983년 그레네아더 침공 144. 1990ㅡ1991년 페스시아만 전쟁 145. 1992ㅡ1995년 소말리아  무력 개입 146. 1994년 6월 조선민주주의공화국 침략기도 무산 147. 1998년 수단 공격 148. 1998년 아프카니스탄 미사일공격 149. 1998년 이라크 침공 150. 1999년 유고연방 침공 151. 2001년 아프카니스탄 침공, 탈레반정권 붕괴시킴 152. 2003년 이라크 침략 ※ 이라크 침공, 싸담 후세인 제거 ※ 리바아 침공으로 카다피 제거    ※※※※※※※※※※※※※※※※※※※    우에 통계에서 볼 때1776년을 아메리카합중국의 건국년으로 잡아서237년 기간 거의 평균 해마다 침략전쟁과 음모로 령토를 확대하고 치가한 철두철미 전쟁장사군들 이였다는것을 읽을수 있다. 세계의 악의축이 누구인가? 물음속에 정답이 있다. 미국 이 엎지른 피물은 미국이 담아 마시면 되는것이다. 그런날이 언젠가 있을게다 (편자) “첫단추를 잘못 꿴 미국은 나중에 꿴 단추 모두를 스스로 풀고 첫단추부터 다시 꿰어야 한다.” (거짓말 협상으로 침략본성 드러낸 미국, 한반도에서 꺼져라| 자유론 광장 팔달 ”  조회 44 |추천 1 | 2013.04.14. 01:15) (본문에서 인용함 )                             2013년 4월 15일 (작성)
256    애정시조 (100수)-1ㅡ30 댓글:  조회:8216  추천:1  2013-10-07
                                                애정시조 (100수)                                        1.  病魔가 좋으랴만 사랑병은 유독좋아                                         령약이 따로없어 앓을수록 신명나오                                         홍역을 앓아야 하듯 사람되는 앎음이라                                      2.  사랑에 눈뜨매로 인생아침 열리는가                                         연출이 없더라도 련애극은 제법이라                                         둘이서 주역이 되고 관중되니 자극적                                     3.  원숭이 사람될제 사랑도 진화했노                                        우자는 약아지고 현자는 눈이멀고                                        지혜에 사랑이 죽어 희비극을 엮니라                                   4.  사랑에 론점있냐 론거도 집어쳐라                                        인생의 주제여도 론증이 불필요해                                        서로의 됨됨이만이 확실한줄 알리라                                                     5.  마가을 궂은비는 하늘의 눈물인가                                        줄줄이 하염없이어 그칠줄 모르는데                                        외국간 로친생각에 령감님이 우시네                                     6.  사랑이 병이되야 질정을 못하는데                                         마음도 간질간질 긁은들 말려내랴                                           시작이 따로 없으매 말자해도 안되네                                     7.  온다는 소식없이 남몰래 왔다가도                                         한바탕 수선떨다 나는간다 잡아봐라                                         둘이서 하는 련애가 웨그리도 힘든고                                     8. 맹목인 련정인데 목적되면 교역이제                                        뜨거워 진정인가 담담함이 기본이라                                       사랑은 짜는것이냐 두심장이 녹여진것                                   9.  사랑이 더하기면 치렬함에 빠지리라                                                 사랑이 덜기라면 기점이 되리로다                                        사랑에 곱하기하면 유일한것 되리라                                                   10. 눈에서 생긴사랑 눈으로 나가거늘                                        리성아 비키거라 뵈는것 없노매라                                        가슴에 치솟는 애욕 물불을 가릴손가                                                           1. 사랑이 격류라면 장쾌해 좋으리라                                        잔잔한 호수라면 익사도 좋으리라                                        실개천 옅은사랑은 곧 바닥이 나리라                                     2. 체할때 있으랴만 싫증은 잘오더라                                       줄때는 아낌없고 받아서 만족없는                                       사랑은 천당과 련옥 그사이에 있어라                                     3. 사랑에 슬퍼해도 사치한 비애이요                                        깊어도 좋은것은 사랑의 고뇌여라                                        환희와 비애와 후회 애석함이 주제여니                                     4. 사랑의 핵분렬은 자기의 헌신이다                                          희생이 없다면야 눈감은 감정유희                                        준다고 말하지말고 바친다고 하거라                                     5. 사랑의 비밀이란 초련의 그한때라                                        초야가 새고나면 비밀아닌 은사일뿐                                        애정엔 답이 없더라 2×2=5가 나오니                                    6.  영원한 사랑이라 입가볍게 외우지마                                       다함도 없거니와 수명도 있음에랴                                       즐김은 가담가담에 번뇌랑은 无时라                                      7.  사랑신 아모르는 난공불락 없노란다                                       철옹성 무너지고 철석간장 엿이되네                                       삼자야 끼여들지마 일대일의 유희니                                    8. 사랑에 시기질투 약국에 감초인가                                       퇴직을 모르나니 백년가지 하리라                                       정이란 수은같아여 움켜쥐면 새니라                                    9. 초련이 돌풍이면 티끌만 자욱하리                                       사랑의 급행렬차 시간표교 따로있냐                                       늦바람 곱새를 벗겨 날새는줄 모르듸                                  10. 사랑은 만질수도 볼수도 없는것을                                       가진다 말을말고 포기한다 선언마라                                       저좋아 찾아오다가 나는간다 하느니                                     1. 사랑에 눈을떳냐 사회인이 되는도다                                      행복의 역참으로 금마차를 달려보렴                                      인생에 사랑없이야 불모지라 못살제                                    2. 한손에 축배들고 한손에 고배들고                                      얄궂은 아모르는 번갈아 권하누나                                      취하고 또 깨고나서 네리성에 물어라                                    3. 사랑은 후회해도 뉘우침 모르네라                                      치렬의 문을나서 증오가 득달해도                                      좋다만 추억뿐이여 사랑한죄 무죄더라                                   4.  사랑에 배부르면 가난해도 행복한가                                      지금은 랑만이라 코방귀도 아니뀌리                                      사랑이 밥을 주느냐 자가용을 굴리냐                                    5.  사랑과 증오에는 선후가 있더라만                                      싫은데 질투하랴 미운데 감화되랴                                      묻지마, 리유가 뭔지 정답이란 없거늘                                   6. 유인이 최귀하야 정으로 사자는데                                     사랑탑 꼭대기에 재물신 호통치네                                     조건부 붙은 사랑은 현대인의 특허라                                     7. 사랑이 진정이면 사해도 헤여가고                                     칼산도 절벽도 필사코 오르리라                                     사랑산 절승경개를 그무엇에 비하리오                                                                        8. 애정의 비극이란 실련이 아니여라                                     괴로워 가슴쳐도 추억은 소중커니                                      사랑할 권리마저도 없는것이 가련타                                  9.  좋아서 하는사랑 리유는 왜캐는고                                       말로야 태산인들 지고오지 못할소냐                                     얽혀서 사는 까닭을 세월만이 아니라                                10. 련애는 탐사과정 결혼은 채광일세                                    광맥이 바닥나면 리혼에 페광되고                                    사랑의 등불꺼지면 추억의 긴 갱도뿐
255    “아베 노부유키”가 돌아오려 하는도다? 댓글:  조회:9211  추천:3  2013-10-05
                                 “아베 노부유키”가 돌아오려 하는도다?                                                                야 조       마침내 일본이 “집단적자위권”을 명문화하였다. 즉 이 명분으로 어떤 전쟁에든 투입할수 있는 상태로 전환한것이다. 미국도 속심이 따로있어 일본의 야망을 지지한다고 공공연히 밝혔다. 아메리카사자가 섬도의 이리의 뒤에서서 추기고있는 형국이 되였다. 혹시나가 역시나로 된 사실은 우리에게 무엇을 상기시키는가?     일찍, 만악의 조선총독부 최후총독이이였던 아베 노부유키란자가 패전의 치욕을 짓씹으며 쫓겨가는 며느리 두두벌거리듯 씨벌인 말이있다. 침략자의 최대역설은 패배의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오는 경우가 거의없다는 엄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아베 노부유키의 그말은 망발이지만 끔찍한 예언이기도 하여 포의한사의 심사숙고를 불러온다.     "우리는 패했지만 조선은 승리한것이 아니다. 내 장담하건대 조선국민이 제정신을 차려 찬란하고 위대했던 옛조선의 영광을 되찾으려면 100년이란 세월이 훨씬 더걸릴것이다. 우리 일본은 조선국민에게 총과 대포보다 무서운 식민교육을 심어놓았기때문이다. 결국 조선국민은 서로 리간질하며 노예적삶을 살것이다. 보라! 실로 조선은 위대했고 찬란했지만 현재 조선은 결국 일본식민교육의 노예로 전락했다. 그리고 나 아베 노부유키는 다시 돌아올것이다! "  [출처]     노부유키의 말의 可不可보다 선행되는 사색은 그후 우리 민족들의 문화심리에 그가 한 말의 독소가 침투되였는가?독소가 골수에 퍼져있지는 않는가? 하는것이다. 이른바 일제가 심어놓았다는 그 식민교육의 독소가 오늘날에도 자기의 혈관속에서 흐르고있지 않는가는 배달민족의 구성원으로서의 각자가 스스로 알수 있을뿐이다.          니체가 “혼혈아들은 어쩔수 없이 뒤섞인 도덕심을 만들어가게 된다. 일반적으로 혼혈아들은 순수한 우리들에 비해서 더 심술궂고 더 잔인하고 정서적으로 더 불안하다.” 라는 말을 하였는데 혈형에 의한 인간의 이질성을 두고한 말이지만 이 말을 본따서 정신적, 사상적으로 식민지교육의 괴태인 사대주의로 혼합된 사람들이라면 그 괴질은 격세유전의 불치증으로 유전될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곰곰히 따져보면 아베 노부유키의 말이 맞아떨어지는듯해서 등곬이 섬뜩해지도록 끔찍한 “예언”이 되고있지 않는가? 하는 의혹을 짓씹게 된다. 아닌가? 일찍. 열혈의 투사들은30여년간 피어린 항일투쟁을 벌려왔다. 결과적으로 자체의 힘으로 광복을 맞은것이 아니니 민족자체의 힘으로 왜적을 물리친 승리의 과실은 아님은 사실이다.      침략자의 녕악한 몰골을 하고 3천만 배달민족의 머리위에 군림한 일제였지만 어망결에“찬란하고 위대했던 옛조선의 영광”만은 탄복하고있다는 속심을 토로하고 말았다. “조선국민이 제정신을 차려을 되찾으려면 100년이란 세월이 훨씬 더걸릴 것이다”라는 말처럼 광복되여 60여년동안 과연 민족정신을 제대로 살려왔는가?    “…결국 조선국민은 서로 리간질하며 노예적삶을 살것이다. 보라! 실로 조선은 위대했고 찬란했지만 현재 조선은 결국 일본식민교육의 노예로 전락했다. 그리고 나 아베 노부유키는 다시 돌아올것이다! "라는 노부유키의 말에서 어느 점이 당나발이고 어느 말은 정곡을 찌른것이라고 할것인가? 모종 의미에서“예언”은 아닌가?     아닌게아니라 반도남부에서는 식민지교육의 독소가 반세기를 넘었어도 해독되지 않았고 그 독성이 골수에까지 슴배인 친일매국노들은 물론 그 후대들이“영광스러운”의발을 계승해가고있는 현실이 음으로 양으로 드러나 있지않은가? 리념으로 분단되여 이제는 민족정체성마저 접어두고 반목대결에로 치달아올라 외세와 한바지가달안에서 민족분렬의 곡조에 맞추어 디스코를 추고있는 패류들은 과연 없는가?     68번째로 맞는 8.15 광복일, 광복일이란 5천년의 유구한 력사를 가진 우리 민족이 90여년전에 일본제국주의에 나라를 빼앗겨 36년 망국노의 피젖은 설음을 안고 살아오다가 마침내 치욕적인 식민지굴레를 벗게 되고 배달민족의 빛을 회복하던 일희일비의 날이다. 식민지로서의 36년이라는 세월은 억겁의 우주운행에서 순간이지만 결코 잊을수 없는 처절한 시련과 수모를 겪은 민족수난의 100년과도 맞먹는다.     우리 민족은 반만년의 찬란한 문화를 창조한 자랑스러운 배달민족이다. 그러나 그것도 나라를 빼앗긴 동안은 아무것도 아니였다. 36년이라는 식민통치하에 민족의 주체성이 송두리채 말살되여 자랑찬 5천년력사가 세계사에서 깨끗하게 지워질뻔했 던 끔찍한 악몽이였다. 누구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UN을 통해 빼앗긴 주권을 회복 하게 된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이었는지 모른다고 감지덕지하고있다만 역시나 사대주의관념에서 나오는 자조적인 희열이 아닌가?      올해가 나라를 빼앗기는 치욕을 당한지 한세기가 넘는다. 이제는 더이상 그런 치욕을 당해서는 안된다고 납함하면 자다가 봉창을 두드리는격이지만 지난날 일제에 의해 저질러진 만악의 식민통치잔재를 사상적으로 청산하였는가? 흩어졌던 민족의 정기를 바로 세우 고있는가? 아직도 단연코 청산해야 할것을 청산하지 못한채 그 후유증으로 몸살을 앓고있지는 않은가? 그 몸살을 영광의 전통으로는 여기지는 않는가? 수많은 질의들이 련달아 뛰여나오는것은 배달민족의 보통성원이라도 당연한것이 아니겠는가?     아직도 력사적심판을 달가워하지 않고 “대동아공영”이라는 승냥이꿈을 버리지못하고 준동하는 일본정권을 직시하고 있다면 그에 상응하는 대책은 있는건가? 그들은 조선강제병합, 식민지배의 마수를 정당화하려고 력사사실을 부정하며 력사교재까지 고치고 또 고친다. 그게 과거의 잘못을 합리화하고 미화하는 틀린 력사인식에 그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사유의 빈곤인가? 민족기개의 부재는 아닌가? 가렵지도 아프지도 않게 유감이나 좀 더나아가서 입으로 “항의”하면 만사대길인가?     자기들의 침략죄악사를 공공연히 정당화하는 작태는 아직도 자기들의 노예였던 “죠센징”으로밖에 보지않고 두번 릉멸하는 악랄한 행위이다. 반성을 모르는 민족에게 미래가 없고 거짓말하는 민족에게는 현재가 없다는식의 경고에 눈한번이나 깜짝할 족속들이 아니다. 요즘 아베의 로골적인 동산재기의 망동을 보라 력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려는 그들에게 침략당한 피해자들에게 다시 상처를 주는것이라고 비난한들 결국은 구두신고 발바닥을 긁기밖에 더 될것인가?     동아시아의 평화와 공존을 위해 미래지향적으로 공동히 노력하자고 청들면 그들은 속으로“빠가야로”를 복창할게 분명하다. 미래와 화합이라는 사탕을 주면서 부디 그러시지 말라고 기대하는것은 승냥이더러 양을 잡아드시지 말라는것과 뭐가 다른가? 그들이 건전한 력사인식을 형성하지 못해서라고 생각한다면 그들이 오판하는게 아니라 그러지 말아달라고 청드는 사람이 오판하고있는것이다. 그들은 자기들의“빛나는” 력사를 너무도 잘 기억하고 있고 죄악적력사의 과실을 다시 맛보려 윽벼를뿐이다.     자세가 비뚤면 그림자도 비뚜는법이다. 일제가 조선사람들의 자주성과 주체성을 말살하기 위한 명제인 “반도적성격론”을 거부하기전에 우리의 력사가 타률(他律)성과 사대(事大)주의로 점철됨으로써 그 성격이 우유부단하고 부화뢰동적이며 주변성에다 의뢰성과 같은 민족적렬근성이 형성된것이 아닌가를 반성해야 한다. 조선민족의 뿌리깊은 력사와 독특한 정신문화는 일제식민사학과 중화사대에 의해 사지가 찢기고 몸통마저 잘리여 세계민족지림에 미아로 되였는데, 그 후유증으로 오늘날까지도 민족의 정체성을 수립하지 못하고 력사의 천덕꾸러기로 우왕좌왕하고 있지않은가? 저 야심찬 “아베 노부히키”네들이 이제 돌아오려는데, 망발같은 “예언”이 정언이 될듯싶은데…                                          2013년 8월 15일 초고 ㅡ2013년 10월 4일 수정
254    사랑의 만가 댓글:  조회:8069  추천:0  2013-10-02
                                                           사랑의 만가                                                                         최 균 선     마음마저 시들어가는 로옹이 사랑을 들먹거린다는것은 우스운 일이지만 지나간 인생행로에 분명히 씌여졌던 일이니 차마 잊힐리야, 내 그때 세속사정을 잘 몰랐어도 사랑의 탑만은 충심으로 쌓으려했는데 어이 그리도 아픈사연만 남게 되였던가? 이제 인생도 다 저물어 황이든 인생의 가을날 불우하여 잃어야만 했던 그 사랑을 다시금  새김질하게 되는것도 피치못할 인간상정이리라.     누군들 다르랴만은 내 정신적진화는 사랑으로부터 시작되였다. 사랑은 내문학의 주제이기전에 먼저 내삶의 주제이다. 사랑이란 워낙 국계도 없고 피부색도 가리지 않는다지만 그 살벌하던 시절, 나에게는 출신이 불가침범의《3.8선》이였다. 사랑은 예이제 흔하기도 하고 희귀하기도 하다. 사랑은 형체가 없다. 정의할수도 없고 잡아 둘수도 없다. 사랑은 무엇이고 사랑은 도대체 누구인가? 나는 그 모든 닿을수 없는것들을, 모든 품을수 없는것들을, 모든 만져지지 않는것들과 불러지지 않는것들을 사랑이라 불렀고 모든 건널수 없는것들과 다가서지 않는것들을 인생이라 불렀다.     사랑의 비극은 인류의 모든 비극에서 가장 정채로운 장절이다. 사랑극은 시작이 필연적이 아니기에 극정도 론리적으로 발전하지 않는다. 극에 갈등이 없으면 단둘이 노는 유희처럼 재미없다. 이루지 못한 사랑이 사랑의 전형이라고 누가 말했던가? 그래서 애정극은 대개 모종의 장애, 좌절, 집착, 고조, 대단원…의 모식을 벗어나지 못한다. 하지만 내 애정드라마에는 있어야만 하는 대단원이 없었다.     련애는 뒤숭숭한 초행길이고 결혼은 행선지가 주어진 익숙한 길이다. 사랑이란 시로써도 해석할수 없다, 어떠한 리유도 수요되지 않는 감정이 있다면 바로 사랑의 감정이리라. 행위만이 가장 좋은 설명서이다. 사랑의 상록수는 두마음속에 뿌리박 았지만 향락의 가지는 하늘로 뻗어오른다. 철새들은 사랑의 상록수에 깃들수 없다. 하지만 나는 남의 둥지에 알을 낳는 뻐꾸기마저 될수 없었다.     이 세상에서 자진하여 되는 포로는 사랑의 포로일게다. 게다가 명예롭다고 여기면서, 사랑때문에 받는 고통은 즐거운 고통이라고 종래로 불평을 부린 사람이 없었다. 사랑은 인생의 아름다운 꿈이다. 그러나 누구나 다 아름다운 꿈을 꾸는것은 아니다. 사랑할 대상이 없다는것도 불행이지만 사랑할 권리가 없다는것은 더구나 참을수 없이 모멸적인 불행이다. 나는 그것을 절실하게 체험하였다. 사랑에 최초로 탄식한 사람이 누군지 몰라도 참으로 위대한 선각자라고 해야 하리라.     사랑할 권리도 자유도 없었던 젊은시절 아무리 성심이여도 닿을수 없는것들과 불러도 대답이 없는것들을 눈물을 머금고 보듬어보던 어느 가을날이 추억의 언덕에 사랑의 변주곡으로 이어진다. 광란의 10년, 모든것이 뒤죽박죽이 된 그 시절에 소외당한 인간에게만 있을법한 내 심령의 골짜기에는 상념의 길이 없어 끝간데없이 헤매기만했다. 생각은 생각되지 않았고 생각되지않는 생각들은 그저 아프고 슬프고 오리오리 찢기기만 하였더랬다.     거절당한 사랑이 엮은 애잡짤한 애정드라마가 아니였다. 울분에 가슴이 파도치는 황혼녘이면 의례히 뒤산의 소나무숲에 퍼더버리였다. 황이 드는 가을의 숲이 사랑은 모든 닿을수 없는것들의 이름이라고 가르쳐주었기때문이다. 나의 가망없고 령세한 사랑에도 언젠가 풍경이 있게 된다면 아마도 황든 가을의 숲일것이라고. 나의 사랑은 황혼의 숲에 주저앉은 속수무책이고 막무가내함이라고, 한창나이, 뜨거운 심장으로 살던 시절이였건만 사랑이 없는, 아니, 다할수 없었던 사랑에 내가슴은 란장판처럼 심란하고 멍든자리처럼 오래오래 아팠다.     나는 사랑과 결혼의 경계를 수백번이고 긋고있었다. 사랑이 결혼으로 이어질수는 있어도 결혼이 곧 사랑으로 꽃핀다는 법은 없다. 그때 내게는 사랑이 정신병적인 징후였다. 몸이 없는 마음의 질주가 련애인가? 몸을 가질수 없어 상대방의 몸에만 마음이 집중되였을가? 먼먼 후날에 몹시 유치하게 느꼈지만 그때는 확실히 그랬다.     상대방의 몸을 광적으로 겨냥할 때 상대방은 줄수 없는 몸이였다. 몸이 없는 마음과 줄수 없는 몸은 결코 만날수 없는것이다. 그것은 3류애정극도 아니다. 사랑은 떠나는것, 증오는 항상 곁에 있는것, 원하는것은 오히려 우리 곁에 머물지 않는다. 이것이 인생의 법칙이고 사랑의 잠규칙이다.     그때 나의 련정은 사랑의 왕국에서 가장 척박한 변방에 추방당했다. 변방이 아니라면 백년고독이 통곡하는 절해고도였던가? 련애소설속에서처럼 환상과 랑만을 꿈구던 내가 련애와 결혼을 혼동한것은 100메터달리기와 마라손과의 차이를 인정하 지 않는것과 마찬가지였다. 사랑은 따스한 몸과 끓는 마음이 서로 만나는것이다. 사랑하게 된 리유를 조목조목 말할수 없어도 그냥 좋은것이 사랑이다. 어느 한쪽이 그러지 아니하면 사랑이 아니라 타산이거나 헌신이거나 희생일수밖에 없는것이였다.     사랑은 인간고를 즐거이 감당하게 하고 이겨내게 하는 원동력이라지만 그때에 내게는 사랑이 괴로움, 분노 그 자체였다. 하여 사랑이란 고명한 기술인것도 몰랐다.     사랑은 눈물일수는 있어도 어떤 교역일수는 없다. 사랑은 량지에서 자라나서 충성을 먹으며 늙어가야 할것이다. 그런데 그런 간단하고 명백한 도리가 왜 나에게는 통하지 않았던가? 모든것이 상품화된 현시대처럼 돈을 주고《사랑》을 팔고사는 시절도 아니 거니와 가진것없는 나에게 있어서 교역이란것이 꿈에도 있을수 없는 일이였다.     내게는 첩첩준령을 넘는 사랑의 길이여서 거의 체념에 가까운 환멸을 짓씹기까지 하였다. 그저 녀자면 된다는 욕념으로 장가들려했다면 운명이 달라졌을지 모르나 내인생사는 필경 다르게 씌여졌을것이다. 인명과 취처는 운수관이라 하였지만 사랑의 신성함이 치마끈을 풀어내린데서 끝난다면 신비감도 쾌락도 그 시각에 마침표를 찍는다. 그 다음은 사랑이 아니라 습관과 어떤 의무감에 생활의 점선을 찍을것이고…     사랑의 내함은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세상에 돈이 있기전에 사랑이 있었지만 돈을 만들어내고 사랑을 저당잡혔다. 인류사에서 맨 처음으로 녀자가 팔릴때 사랑은 죽었다. 하건만 사람들은 그냥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고있다. 지금은 사랑사전을 해석하기 쉬워졌다.   권세와 재부앞에 기꺼이 석류치마가 벗겨진다. 그리고 호들갑을 떨기시작한다. 미모로써 남자들에게 황후로 받들리고 녀자로써 남자의 노리개로 되는 사이비랑만의 시대가 된것이다. 오늘 돈다발에 앉아 천애지각으로 날아가는 수천 수만의 처녀들이 사랑에 새긴 의미는 과연 무었일가?     지금은 인격력량이 사랑의 초석이 아니다. 하루밤 풋사랑도 만리성을 쌓는다지만 돈주고 산 육체에 십리성인들 가당하랴, 사랑은 인성에 속하는것이고 섹스는 동물성에 속하는것이다. 사랑이 가난을 꺼리지 않던 시대는 색바랜 페지로 남았다. 인간이 경제동물로 진화되였으니 기형화된 사랑에 만족할수밖에 더 있으랴,     《사랑은 아무나 하나? 눈이래도 마주쳐야지/ 만남의 기쁨도 리별의 아픔도 두사람이 만드는걸/ 어느 세월에 너와 내가 만나 점 하나를 찍을가?/ 사랑은 아무나 하나. 어느 누가 쉽다고 했나?》태진아의 노래가 노래로만 떠오르지 않는구나.
253    사계절의 사색 댓글:  조회:8854  추천:0  2013-10-02
                                                      사계절의 사색                                                                                                최 균 선       조화많은 대자연의 변화를 뚜렷이 보여주는 사계절, 계절은 계절마다 제나름의 멋과 운치와 매력을 가지고 있고 그에 따라 아롱다롱한 사색을 선물한다.     누구는 꽃피고 산새 우짓는 봄날의 랑만에 물든 사색을, 누구는 또 천고마비의 호시절-오곡백과 무르익고 단풍이 피빛서정을 시사하는 가을의 사색을 즐길 것이다. 그러나 나는 자기의 권리를 찾아 어김없이 군림하는 매 계절의 정취에 매혹되어 사색을 익혀가기를 즐긴다.     흔히들 꿈많은 봄날이란다. 그래서 봄을 청춘의 계절이라고도 한다. 그렇다. 봄은 얼마나 기다려지는 계절인가. 단비로 실실이 일곱빛 무지개 수놓아서 그렇듯 청신하 고 활발하고 오색찬란한 봄! 봄은 희망의 씨앗을 뿌리는 계절이다..    이제 인생의 봄언덕에 살며시 올라선 우리 청춘들도 남몰래 고운꿈을 마음의 뜨락에 심어놓고 성숙의 계절을 당겨본다. 그래서 봄은 좋은것이고 그래서 봄날의 사색은 예쁜 초록이다. 여름이야말로 성숙을 기약하는 계절, 태양처럼 뜨거운 열정의 계절이다. 딸흘려 풍년을 가꾸는 농민아저씨들의 가슴에서 뛰는 심장의 박동을 가늠해 보라. 나는 땀속에서 우썩우썩 커가는 곡식을 그려본다. 그러다가도 우리의 학습 생활에서이 여름은 확실히 피곤한 계절이라는 생각이 구름처럼 몰려와 마음의 하늘에 그늘을 덮는다. “흑색의 6월”은 얼마나 많은 좁고 여린 가슴들을 지지리 끓게 하는가?    하지만 조을 수 없지 않으냐?! 이 여름 질풍을 불러다 게으른 졸음 쫓아버리고 땀흘려 내꿈을 가꾸는 보람에 여름의 매력이 있다고 금시 무너져버릴 듯한 내 마음을 다잡아본다.    분망한 가을날은 황금의 계절, 단풍잎 정깊은 그 모습 내가슴도 불태운다. 풍작을 안아온 외할아버지의 고동색얼굴에 웃음이 주렁지는 가을이다. 내인생의 가을에도 생활은 보람으로 주렁질가? 오곡의 설레이듯 그 가을을 믿어 내마음 한껏 설레인다     나는 겨울도 좋아한다. 더구나 첫겨울 반가운 첫눈이 내리는 날은 고마움에 젖는 날이다. 은빛세계의 그 짜릿한 정취에 내 더운 피 더욱 설설 끓는게 아닌지…누군가 겨울을 사색의 계절이라 했다. 동장군의 모진 채찍질에도 말없이 버텨서서 새 봄의 꿈을 꾸며 고요히 숨쉬고있는 저 겨울나무를 무심히 보지않는다. 겨울이 없다면 봄날의 따스한 태양의 은혜를 사람들은 절감하지 못할 것이다. 겨울의 사색은 냉정하다. 그 냉정함 속에 오히려 뜨거운 꿈이 익고 있는것이 아니랴!     따지고 보면 어느 한계절 나무랄것 없다. 다만 잡아둘수 없는 계절의 엇바뀜 때 문에 아타까울 때가 많다. 오고 또 가는 계절, 그 계절은 하루도 게을러서는 안될 나날로 이루어졌다는것을 절감한다는것은 성숙의 표징일까? 촌음을 아끼면 세월령감도 나를 락오자로 만들지는 않겠지? 내인생의 춘하추동도 적, 등, 황, 녹, 청, 남, 자-칠색으로 아롱지게 가꾸어질것을 가만히 기도하며 나는 미래 세계에 주소없는 편지를 쓰고 또 쓴다.                
252    웃음의 이미지 댓글:  조회:6760  추천:1  2013-10-02
                                                 웃음의 이미지                                                         최 균 선         조화옹이 천지간에 중생을 내실제 유일하게 7정6욕을 가진 인간을 내시고 또 웃을줄 아는 기특한 본성까지 하사하시니 그때로부터 인류의 정감사전에 웃음이라는 당혹스러운 현상이 기록되여왔다. 하여 인류의 력사는 웃음으로 수놓아진 력사이기도 하였다.     옛사람이《질풍노우(疾风怒雨)위에는 금수도 근심하고 청풍명월에는 초목도 즐거 워하나니 인심에 한시라도 화기가 없어서야 되리오》라고 이른것을 본다거나 현대문 명인들이 저마다《웃으며 살자!》는 생활신조를 내세우고 웃음거리를 찾아내고 웃음 꽃을 피워가며 인생을 풍요롭게 영위하고있는것을 보면 확실히 울면서 이 세상에 온 인간들에게 즐거움과 웃음이 없이는 그 존재의 가치마저 운운할수 없음을 잘 알겠다.     그렇지 않으랴! 괴롭고 즐겁고 밉고 고운것이 뒤얽힌 인생살이일지라도 마음가짐에 있다 하거늘 밉게 보면 모두가 화날일이요, 명랑하게 웃으며 바라보면 모두가 기뻐할 일인바하고는 웃으며 살줄아는 마음가짐부터 기르는것이 현명한 처사로다.     철학자 베르그송은 자유로와야 할 인간이 부자유한 기계와같은 운동을 할때에도 웃음이 나온다고 희극적인것을 의미론적으로 해석하면서 웃음의 사회성에 대해서도 깊이 연구하였다.아닌게 아니라 웃음에는 웃는리유, 웃음의 의미, 웃음의 색채, 웃는 양태… 등등 깊고 오묘한 학문이 깃들어있음은 사실이다.     또 능글능글 웃으면 어떤 비밀을 감추고있는듯한 인상을 줄수 있고 히죽히죽 웃으면 그 의미를 가늠하기 어려운 우음이 되고《하하하…》하고 크게 소리내여 웃으면 포복절도할 웃음거리에서 기인된 심벽의 세찬파동일수도 있거니와 반대로 어떤 악의 의 표현인 앙천대소일수도 있다.    보통 우리가 말하는 웃음은 쾌적한 정신활동에 동반하는 감정반응의 일종으로서 비교적 지적인 생활이거나 사회생활에 대응하는 현상을 말한다. 웃음은 눈물과 같이 다 감각의 수레바퀴를 굴리는바 전자는 바람의 힘이요, 후자는 물의 힘이라 할것이다     그러나 잘웃는다 해서 곧 웃을줄 안다는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허다한 웃음은 고통스러운 웃음이라 해야 할것이다. 어떤 웃음이 고통스러운 웃음인가?자기 마음에 어긋나는 그러한《웃음》이다. 바로 그래서 거짓웃음이요, 비굴한 웃음이요, 허구픈 웃음이요, 이지러진 웃음이요 하는 말들이 생겼거니와 소위《웃음속에 칼이 있다.》는 그런 웃음은 오싹 소름이 끼치게 한다.    물론 사회인으로서 우리는 일생동안 자기마음에 사전의 챙김이 없는 그러한《웃음》을 얼마나 웃어야 할지 아무도 모른다. 마음차림이 없는 허다한 웃음은 스스로도 감내키 어려운 고통스러운《웃음》이며 지어는 막무가내한 굴욕이라 할수도 있 다. 그러한《웃음》들은 자기 심령의 기꺼운 해방이 아니라 일종의 사회종합증이 사람들에게서의 병적반응이라 말해야 할것이다. 이는 우리 인간이 또 하나의 영원한 비애를 안고사는 보잘것 없는 동물로 되게 하는 슬픈 궤적이라 하겠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웃음은 어리석은자, 표히부동한자, 주견이 없는자들의 처세술이 아니라 대바르고 성실하고 자아를 나름껏 실현해가는 그런 지성인들의 내심의 반영인것이다. 또 그러한 진짜웃음이야말로 그 나라의 국민성과 그 사회의 화목정도 를 가늠하는 시금석으로 되는것이다.    《웃으며 살자!》아무렴 웃으며 살아야지, 울음으로 시작한 힘겨운 인생이지만 웃음으로 주욱 가꾸어간다면 그보다 더 큰 행복이 또 어데 있으랴!그러나 웃음이 자발적인것이 아니고 그 어떤 처세수단으로 된다고 생각하는 갈대들, 돈에 웃음을 파는 그러 가련충들에게는 저 열혈의 반역작가 최서해처럼 남이 웃을 때 혼자 울줄도 알고 의에 울지언정 아첨에 웃으려 하지 않는 그러한 마음가짐이 필요하리라.     묵시할수 없는 부패분자가 상급이라 해서《웃음》으로 굴종하는데 반해 차라리 굳어진 얼굴로 맞서나가는 그러한 사람이 얼마나 우러러보이는가?!《매서운 눈초리로 천부의 손가락질에 대하고 머리숙여 유자의 소가 되리라》는 로신선생의 말씀을 우리 모두가 명기할바라고 생각한다.                                                            1995년 8월 9 일  
251    세상을 사는 맛 댓글:  조회:8402  추천:1  2013-10-02
                                                   세상을 사는 맛                                                          최 균 선       인생이란 무엇이냐? 하고 묻는다면 자다가 봉창두드리는 격일것이고 한걸음 물러나서 대관절 세상을 사는 맛이란 뭐길래?하고 묻는다면 또 너무 심각할텐데…     득의한자는 인생을 향그러운 술이라 할것이며 부귀공명한자는 인생을 무지개라 할것이며 누구누구는 또 어쩌구저쩌구 할것이다. 나로 말하면 후반생은 그래도 운이 튼 셈이지만 전반생은 하도 험악한 민초인생을 살아서인지 세상사는 맛이 쓰다고 해야 할지 달다고 해야 할지 답이 막연한 인생숙제이다.     불가에서는 인생을 망망고해라고 한다. 누구의 약속을 받고 온 이 세상이 아니라 아무 준비도없이 빈주먹을 쥐고 우연히 온 이 세상이다. 그러나 이미 온바하고는 사는맛이 깨소금같이 오래오래 살았으면 좀좋으랴만 억겁으로 헤아리는 무한세월에 비하면 풀잎에 아침이슬같은 짧은 인생이여서 두고두고 무슨맛을 느껴볼수도 없게 되였다. 이래저래 허무하기만 한 인생이다.     누군가 노래에서《인생은 무지개란다. 아, 무지개란다》라고 했더라만 느끼는 인생은 희극이요, 체험하는 인생은 비극이란 말이 있지 않던가? 젊은이의 상상속에는《즐거워라》가 씌여있지만 살고보면 체험속에는《괴로워라》가 씌여있음을 지성인은 공통하게 절감하고있다. 그러니 무지개같다는 인생타령은 수박겉핥기로 세상을 알고 하는 뜬 소리요, 희망에 속한 기대라고나 할가?     세월이, 네월이 가는가? 우리 인간들이 이 세상에 총망히 왔다가 가는 과객들인가? 우리가 잠간 머물러있는 이승에서 시간은 어데서 오고 어데로 가는지 누구도 모른다. 그나마도 우리 생활의 시계는 무미하고 단조롭고 텅 비고 메마른 시계이다. 우리는 다 이 텅빈 시간의 노예로 어떤 삶의 의미를 만들어가며 산다.     발길이 가는대로 걷고걷는 인생길에 고달픈 길손들인 우리의 인생락은 무엇일가? 서유럽의 한 철인은 인생마당에 세가지 락이 있다고 했다. 그것인즉 녀인의 가슴과 말잔등과 책이란다. 3천궁녀를 거느린 력대의 제왕들이나 탕아들은 녀인의 가슴 우에서 발설의 쾌락을 느끼며 살았을것이고 일대천교 칭키스칸같은 영웅들은 들뛰는 말발굽으로 천하를 주름잡는 정복욕으로 인생을 장식했는지 모른다. 책속에서 문명의 들창을 하나 또 하나 열어온 인류의 선구자들은 창조의 희열로 살았을것이지만 그것은 선택된 선지선각자들만이 느낄수 있는 락일뿐이다.     그랑데같은 황금미치광이들은 재부를 축적하는 재미로 살고 한여름 서늘한 그늘 밑에서 노래만 부르는 매미처럼 한가로운 사람은 여유로운 재미에 살고 무거운 수레를 끌고 비탈길 오르는 황소처럼 한생을 구슬땀으로 목욕하는 사람도 일하는 그 멋에 살지모른다. 이렇게 살든 저렇게 세상사는 맛 ㅡ단맛, 쓴맛은 다 살아가는 과정에 있음은 자명하다.     복속에 화가 화속에 복이 있는 인생이지만 살아가는 사람들 거의 모두가 이런저 런 불행을 안고 산다. 그중에서 제일 불행한자들은 제 할 일 찾지 못하고 무위도식 하며 몽유병처럼 인생마당을 맴도는자들이리라. 인간은 리상의 화신이 아니라 조건속의 존재물이니 말이다.     두주먹 불끈 부르쥐고 숨차게 뛰여도 자칫 뒤처질수 있는 우승렬패, 적자생존의 세상인데도 술 잘마시고 춤 잘추고 노래 잘부르는 자랑스러운 전통을 안고 사는 우리 배달족속들 가운데 날이감에 따라 격에 맞지않는《매미》들이 늘어가고 있음 을 어떻게 보아야 할가? 아직도 《아니놀지 못하리라《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를 부르기 좋아하는 민족은 이 땅에서 우리 민족밖에 없을것이다.《게으름병》이라는 몹 쓸병이 마을마을에, 도시의 골목골목에 만연되기 시작한것은 언제부터였던가? 인간의 어떠한 결함이든 다 고쳐줄수 있지만 유독 무직업자 ㅡ유민에 대해서는 교육해낼수 없다고 대성인 공자님이 말씀했다.     불볕 쏟아지는 건축공사장에서 동이땀 쏟으며 생활의 벽돌을 열심히 쌓아가는 관내사나이들의 구리빛 얼굴에서 우리는 무엇을 읽어야 하는가? 그들의 땀에 절은 가 슴들에 사는 맛이 깃들어있는지 않다고 말할수는 없으리라. 그러나 우리네 난부자 든 거지ㅡ신사님네들은 진잎 먹고 잣죽트림을 하려 할뿐 인생의 쓴맛을 보려하지 않는다. 저 유명한 만리장성은 몽골인들의 말발굽을 막지못하였지만 눈에 흔하게 띄우는 마작청마다에서 쌓아가는《장성》은 남녀로소를 가두어놓고 라태를 부화시키고있다.     바로 이렇게 사는 멋때문에 할아버지가 심은 사과나무에서 손자가 사과를 따먹게 된다는 과정과 인내의 철학을 진저리나 하며 그 옛날 우리 할배들이 망국의 한을 짓 씹어 삼키며 무딘 괭이로 일구고 우리네 아버지들이 피로 지켜 땀으로 걸구어 온 자 신들이 보금터마저 헌신짝 내버리듯하고 부평초같은 삶을 안일고 행운에 기탁하는 사 람들이 얼마던가? 이 산에 앉아 저 산이 높은것만 바라보며 공연히 팔소매만 걷어올 리고있는 사람들의 인생이야말로 싱거운 인생이 아닐수 없다.     어떻게 대운이 튼다해도 인생은 단것과 신것을 함께 먹도록 주어졌다. 인생살이를 한송이 포도를 먹는방식에 비유한 재미있는 서술이 있다. 어떤 사람은 먼저 신것을 좋아한다. 그들은 신것을 먹은 연후에 가슴설레이는 희망을 안고 단것을 먹으려 한다. 반대로 어떤 사람들은 먼저 단것을 먹은후 아름다운 추억속에서 신것을 먹는다. 첫부류의 사람들이 포도를 먹는방식은 고전적이다.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젊어서 한 고생은 은을 주고도 못산다는 인생철리를 깨닫고있는 사람들이다. 현대인들속에는 먼 저 단것을 먹어치우고 그다음은 어떻게 될지 관계치않는 사람들이 더많다. 이런 사람들은 급공근리(急功近利)적이요 목이 마르면 소발자국에 고인물도 약수라고 마실수 있는 사람들이다.     어떤 사람들은 금세에 신것만 먹으려 하면서 단것은 두었다가 래세에 먹으려한다. 이런 사람들은 굳은 땅에 물이 고인다는 근검정신은 잘알고있다. 비록 물을 가두기만 하는 저수지와 같은 삶을 살지만 곰이 옥수수따기식으로 무모하게 사는 사람들보다는 퍽 사랑스러운 사람들이다.     또 내내 단것만 먹으려 하는 맹랑한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신것을 먹어야 할 때 아예 살고싶은 마음이 없어한다. 안해나 남편이 외국에 로무일군으로 나가 서 기시받고 눈물 흘리며 땀에 절은 돈을 벌어들이건만 그야말로 유한계급으로 호강 하기 일쑤이다. 특히 집에 두고 간《귀공자》,《공주님》들이 이류의 단맛보기에 더 열중하고있다.     또 다른 부류의 사람들은 단것, 신것 다 맛보았지만 어떤 맛인지 모르거니와 원래의 맛마저 잊고만다. 이런 사람들은 늘 희망에만 매달려있다가 실망의 쓴 술잔을 들게 된다. 행운은 언제나 달에 걸려있는것이 아니던가? 어떤 사람들은 신것을 먹어 보고는 나머지 포도알은 죄다 달콤할것이라고 단정해버린다. 그러나 흔히 헛다리짚기 식으로 너무 일찍 좋아한 셈이다. 마지막 포도알마저 신것일수 있기때문이다. 오늘의 맑은 하늘만 쳐다보며 언제 밀려올지 모르는 비구름은 예상하지 못하는 단순한 사람 들이다.     포도가 수백종이듯이 한송이 포도송이도 그맛이 꼭같은것은 아닌지라 사람에 따라 느끼는 맛이 각양각색일수밖에 없다. 례컨대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의 포도는 꼭 신것일것이라고 선험적으로 판단하는데 자신이 쥔 포도가 달것이라고 믿고있기에 나중에 예상과 다르게 되면 자신의 포도가 세상에서 제일 신것이라고 운명을 원망한 다.     철학적사유를 하는 사람들은 신것도 단것도 먹을수만 있다면 곧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예술형사유방식을 가진 사람들은 포도가 좋읁 술로 빚어지기를 기다렸다가 먹으면 더 취할것이라고 믿는다. 아니면 건포도가 된 다음 먹으려한다. 메마른 인생을 있는 그대로 살아가려 하지않고 가능한한 가미하고 가꾸어가면서 사는 운치있는 사람들이다.     매우 많은 다른 부류의 사람들은 리해득실부터 앞세우면서 자신이 남보다 손해볼가봐 안달하고 량껏 먹지못할가봐 속을 썩인다. 이런 사람들은 경쟁의식이 있고 생활의 강자로 될 기질이 있는지 모르나 자칫 참새 방앗간 지나는격이 될수도 있다. 어떤 사람들은 어둠속에서만 포도를 먹게 되는데 선택의 여지가 없으므로 운수에 맡기지 않으면 손더듬으로 고를수밖에 없다. 만약 신것을 골랐다면 자신이 불우하다 고 한탄하고 혹 단것을 먹었다 해도 아름다운 포도의 색갈은 볼수 없다. 생활의 장님들이라 할수 있다. 그들은 주어진 운명에 순종하며 인생의 긴 턴넬속을 무작정 걷고 걷는 타입들이다. 이런 사람들 가운데 요행심리가 곧잘 나온다. 이를테면 달나 라 광한궁에서 절구질하는 옥토끼가 은절구공이를 든채 제집 가마안에 떨어져 삶기 지나 않을가 하는 환상속에서 늘 요행을 바라고 긴목을 빼든다.     어떤 사람들읁 신포도 몇알을 먹고 포도는 죄다 신것이라고 단정해버리고 어떤 사람들은 단 한알의 단것을 떼먹고는 미만한 인생에 감격하고만다. 이들은 다 코끼리 다리를 만져보고 코끼리는 기둥같다고 하고 배를 만져보고 코끼리는 바람벽같다고들 말하는 장님들과 같다. 이런 사람들은 흔히 한차례 좌절에 눈물코물 쥐여짜는 약지자 (弱智者)들이다.     혹 어떤 사람들은 신것과 단것을 통채로 삼켰으나 미각이 마비되여서 시고 단맛을 분별하지 못하거나 시든달든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다. 이런 사람들은 눈물젖은 빵을 먹어보지 못했거나 하루밤 통곡해보지 못하고 그저 살아있음을 느끼면서 도일 (度日)할수 있다. 세상에 완전완미하거나 맛이 똑 같은 포도송이는 없다. 오직 최적 의 먹는 방식만이 있을뿐이다.     한 사람의 인생을 에필로그가 없는 길고 짧은 소설에 비유할수도 있다. 어떤 사람들은 별생각이 없이 훌훌 넘겨버린다. 그러나 명지한 사람들은 한페지 한페지 알심들여 읽으면서 사고하고 음미한다. 그들은 두번다시 읽을수 없는 생활의 책이라는것을 잘알고있기때문이다. 남이 써가는 인생노트를 어깨너머로 보면서 장훈이야, 멍훈이야 하면서 혼자 흥분해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제 목숨을 제가 산단는것을 잊고 있는 격이다.     이렇듯 생명은 하나의 발견과정이 아니라 창조과정이다. 환언한다면 당신은 자신을 발견하는것이 아니라 자신을 다시 창조하는것이다. 그속에서 사는 맛이 느껴 진다. 그러므로 내가 누구인가 하는 발견에 급급해 하지말고 누구를 만들것인가에 급급해해야 할것이다.      아무튼 세상을 사는 맛은 당신이 빚고있는 지금의 생활, 그  자체일뿐이다.                                            2003 년  7 월 5 일    
250    문인의 비애 댓글:  조회:7741  추천:0  2013-10-02
                                            문인의 비애                                                  최 균 선       철없는 시절의 야망은 이름짜한 작가 아니면 무슨 학자나 되는것이였는데 워낙 그렇게 생겨먹은 놈이여서인지 아무것도 성사하지 못하고 조촐하게《서당훈장》으로 주저앉고말았다. 그래서 느껴지는 실망감에서일가? 아니면 해놓은 일은 없이 나이테만 자꾸 둘러지는 허무함에서일가? 오락가락하는 비애의 낭떠러지에 해답이 묘연한 의문의 갈구리들만 잔뜩 걸려서 절그럭거린다.     글이란 뭐냐? 글을 써서 무엇해? 하다가도 여우가 포도를 먹을수 없으니깐 포도는 시다고 하는 말같아서 얼굴이 간지러운데 환상의 다락방에서 낮꿈을 꾸면서 지구를 달속으로 쏘아올리면 시라는것이 튀여나올가? 큰길을 어정어정 걷다가 누구에게 밀리워 하수도구멍에 빠지듯 아슬아슬하고 기이한 우연을 잡아쥐면 소설이 이루어질가? 하는 생각이 지꿎기만 하다.     아무튼 자고로 어떤 형태의 글이든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로 선(善)을 권도함으로써 인간을 향상시키는것이 목적이였지만 맑스님이 말한《비판의 무기》도《무기의 비판》이 되여진적은 없으니 이 아니 비애냐? !     옛날옛적에 공자님이《춘추》를 지으시자 란신적자(乱臣贼子)들이 모두 두려워했다하고 근대에 누군가《문자성공(文字成功)》이자 자발적인 세계혁명의 고조의 날이라고 말했지만 결국 문인의 아름다운 념원에 불과한것이 아니였던가? 그래서 조선 조시기의 백호 림제가《말하면 미치광이라고 하는 세상/ 입다물고있으면 어리석다하는 세상/ 절레절레 머리젓고 가는 까닭/ 아는이 어이없으랴 》라고 읊었는지도 모른다.     로신선생의 동생이자 문호였던 주작인도 붓을 희롱하던 끝에《문자는 민속상에서는 아주 신비한 위력이 있지만 실제상에서는 교훈적인 효력이 조금도 없다. 비록 력대의 많은 문인들이 문장을 지어 나라를 다스리고 세상을 바로잡으려고 희망해왔 지만 종당에는 자기위안에 그치고말았다.》고 개탄했다.     그럼 오늘을 살펴보자.《탐관오리》들이나 부정부패를 탄핵하는 도덕성토의 글들 이 여러 신문들에 심심찮게 실리지만《춘추》를 두려워한 《란신적자》들을 당신은 보았는가? 예로부터 문인정신의 핵은 우국우민정신이였던것만은 사실이다. 사회정수 로서 이런저런 나라일을 관심하고 이끌려는것이 나쁜일은 아니였것만 그들이 아무 실권이 없는데다 사대부들이 심히 아니꼽게 보아왔으니 딱지투성이머리가 빗을 꺼려하는것과 같은 도리이다. 그러니 옛성현들의 기개를 본받아 격앙문장이나 써내여  선비의 오기를 뽐낼수밖에 없었다.     구사회에서 문인이란 정권이라는 가죽우에 난 털에 지나지 않았으니 무엇을 어쩐단말인가?《죽림칠현》도 좋고 당조《4걸》도 좋고 청조의《무술6군자》도 좋고 모두 어쩌지 못했으니 아마도 이것이 문인의 비애이리라.옛날은 옛날이려니와 지금도 만약 현대 중국문인들이 로신선생처럼 담량이 있어서 날이 선 문장들을 쓰려고 마음먹는다면 소재의 결핍은 느끼지 않을것이다. 선지선각자가 아니래도 말이다.     하긴 시대적추이에서 감안한다면 로신선생의《비수》도 시대성의 제약성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할수도 있겠다. 한때 얼마나 많은 문인들이 배부른후 식은 차물을 마실 때의 그런 싱거운 심정으로《제비가 춤추고 꾀꼴새 노래하는》아주 좋은 형세에 감탄부호를 찍기에 열중했던가? 지금도 신을 신고 발바닥을 긁는식의 글들을 드믄히 볼때면 문인의 행렬에 들어서지 못한 내 주제에도 비애에 빠져들지 않을수 없다.     하기사 어떤 권세가들에게는 당규률과 국법마저 보통 문건에 지나지 않는데 문인들이 시야비야하는 글들이 다 무엇이랴싶어지면서 더구나 막무가내한 허탈감에 빠져 들기 일쑤이다. 수천년의 문화사에서《문자옥》은 수많은 문인들을 압살하였으니 릉 연각상(凌烟阁上)에 뉘 얼골 그렸던고? 문인은 종래로 세상을 놀래울 일을 한적이 없었고 또 해낼수도 없었다는것을 뒤늦게야 깨달았을 때 실로 굳잠에 빠졌다가 귀찮게 깨여난 때처럼 짜증이 나고 재수없음을 느끼지 않을수 없다.     그런데 어찌보면 좋은 글을 써내지 못하면서도 여윈 코등에 250도짜리 돋보기를 연신 추슬러가며 문인말석에라도 앉아볼가 하여 모지름을 쓰는 나자신도 되게 딱한 놈이다. 그도 그럴것이, 《지호자야》하고 뇌까리던 저 공을기처럼《회자도 쓰는 법이 네가지인데 너 아니?》하는식으로 자신도 잘알지 못하는 무슨 창작지식 같은것을 청년학생들에게 되풀이하느라 머리가 다 세였으니 실로 가련도 하다.     자신이 문인으로 거의 숙성되였다고 착각될 때는 열정의 밤을 달구다가도 밝는 날에는 풀이죽어버린다. 별로 먹물이 들지 못한 사람들도《바다》에 뛰여들어 고래서껀 잘만 건져내여 벼락부자가 되는판에 차라리 남는 정력이면 조류에 따라 미역을 건져내든 새끼조개를 줏든지 하는게 명지했을거라고 생각이 들때면 무슨 조처를 낼듯이 서둘다가도《군자는 리익을 말하지 않고 선비는 가난을 꺼리지 않거니…》하는 곰팽이낀 옛계률에 주저앉아 청고함이나 론하면서 안빈락도(安贫乐道)에 만족해야 하니 한심하지 않으랴!     분노가 시인을 낳고 불행이 작가를 낳는다고 누가 말했던지. 아무튼 문인들은 진리에 매달려 자기생명의 가치를 확신해보려 한다. 인간이 하느님앞에서 진리를 말하면 씩 웃어버리고 너무 진리에 가까운 질문을 들이대면 그만 노여워하는데도 말이 다. 이래저래 고통과 유감은 문인의 숙명이라 하겠다. 그런대로 고통을 짓씹어삼키고 한과 울분을 토해낼 용기라도 있으면 대문인이 되는것이고 내심상 고통스럽지 않거나 덜 고통스럽다면 평범한 문인으로 만족해야 할것이다. 그래서 문학은 더구나 고민의 상징체요, 문학은 생명력의 직접적인 웨침이 되는것이다. 진실한 인생에 유감이 있기마련일 때 문학도 유감의 문학이 되여질수밖에 없다.     허나 문인의 고통은 지혜로운 고통이다. 헤겔도 하나의 심각한 령혼속에서의 고통은 어디까지나 아름다움을 잃지 않는 고통이라 말했거늘 문인은 비판적생명체일 수밖에 없는것이다. 자결로 자기생명에 종지부를 찍은 모파쌍이나 헤밍웨이, 쟈크 론돈  또는 마야꼽쓰기 등 문호들도 고통과 비애속에서 해탈하기 위한 다른 길이 없었던 모양이다.     거짓이 판을치며 돌아다니는 비정한 현실속에서 찬가만을 엮기에는 벌써전에 목이 쉬여버린 문인들이고 너무 지쳐버린 문인들이다. 물론 생활은 거짓때문에 훼멸 되지않을것이며 문인의 량지는 진리와 함께 영생할것이다. 문인의 감정표달에 예술 화의 기교가 수요되는것은 사실이지만 자기의 정감, 사상을 위장해서는 안될 일이다.     그러나 아직 넘지 못한 높은 문턱앞에서《들깨!문열어》하고 가냘프게 웨쳐볼수밖에 없는 나ㅡ되다가만 문인의 비애는 더구나 처절할수밖에 없다.                                             1999년 3 월 9 일                                             《길림신문》      
249    제 잘난 멋 댓글:  조회:8491  추천:0  2013-10-02
                                                       제 잘난 멋                                                             최 균 선       《장자. 추수편》에 《한단학보(邯郸学步)》라는 전고가 있는데 얘기인즉 걷는 맵시가 각별히 우아하고 대범해보이는 조나라 사람들의 걸음새를 배우러 간 연나라 사람이 결국은 그 걸음새도 배워내지 못했을뿐만아니라 자기의 걷는능력마저 잃어버리고  나중엔 벌벌 기여서 귀국했다는것이다.     현대문명인들에게는 한낱 웃음거리로밖에 안되는 얘기이지만 우리 말 속담에 《재내비잔치》라는 말이 있는것처럼 이 이야기도 남을 흉내만 내는것을 예로부터 경계하고 꺼려했음을 알려준다. 흉내를 내는데는 원숭이를 으뜸으로 꼽아야 할것이고 버금으로는 앵무새를 추천해야 할것이다. 그것들이 어찌하여 그토록 신통히도 얄망궂게 사람흉내를 잘내느냐 하는것은 동물학자들에게 맡겨둘 일이고 아무툰 흉내쟁이 원숭이가 구경군들의 흥심을 자아내기 안성맞춤이나 아무리해도 사람으로 될수는 없는것이요. 앵무새가 총명하고 령리하여 주인의 애완용으로 귀여움을 받겠지만 역시 그런 숙명에서 해탈될수는 없는지라 이 역시 그것들의 멋일는지…     하긴 인간도 선천적으로 모방이라는 기특한 심리를 고유하고있는데 자기보다 월등하거나 돋보이면 그저 닮아보고싶어하는것은 인간의 주체정신의 결여라고 하겠다. 예로부터 항간에 사람은 제 잘난 멋에 산다는 말이 있는데 지지리 못난이라도 제나름 대로 마음의 기둥을 세우고 남에게 끌림이 없이 스스로를 영위한다는것이 삶의 멋일게다. 시체말로 하면 생명본체의 본위성에서 오는 자립, 자존, 자강, 자애같은 이른바 주체의식을 권장하는 의미도 다분한것이다.     아닌게아니라 사람에게 이런 오기마저 없다면 살맛이 다 없어져 자기존재마저 귀찮아질테니까. 그래서 조금만 패기있는 사람이면《까짓걸, 나는 나지》하며 오기를 가지고 세상을 열심히 살아가고 지성인들은 자기 생활의 궤적우에 너절한 흉내따위는 아예 멀리하고 창조ㅡ자기가치의 발현에서 삶을 빛내는것이다.     그런데 이 몇년래. 박래품의 밀물과 더불어 많은 사람들이 가져오기주의로부터 아예 닮아가기, 험하게 말해서 흉내내기에 열을 올리고있는데 그야말로 단번에 환골 탈태라도 할듯이 서두르는 품이 정말 왼고개가 탈릴 일이다. 그래서《가시내가 오랍 아 하면 머시매도 오랍아 한다》는 속담이 생겼는지 모르겠다. 재주껏 열심히 제낚시 로 큰 고기든 붕어든 미꾸라지든 낚아보려 노력해야지 남의 다래끼에 넘치는 물고기 를 꺼내들고 붕어니 잉어니 하면 너스레를 떤다면 보는이가 먼저 얼굴이 화끈해질 일 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우리 주위에는 그 옛날의《연나라사람》이 너무도 흔하다. 무슨 옷차림새요, 말씨요, 노래창법이요 지어는 감정세계까지 본따려는듯 무병신음같 은 노래를 부르며 득의양양해하는 그런 뼈대없는 사람들을 보면 다시 쳐다보이게 된다. 따라배운다는것과 흉내낸다는것은 인격적으로 다른 몸가짐이다. 우리의 생활권 내에서 자신의 산을 조금씩이라도 쌓아볼 마음을 가져보자. 그저 모래바람이 불어치 면 모래언덕이 되고 홍수가 들이닥치면 구지레한 소택지가 되는 평지로만 한생을 자 족하지 말고 우리도 자기의 자랑거리를 만들어보자는 절규이다.     잘살고 못살고가 량심과 얼까지 빼앗길 일이라면 그 사람에게 남을것은 허울밖에 더 있을가? 개방의 창문이 열린것은 좋다. 그런데 신선한 공기와 향기뿐만아니라 구리내도 페부에 스며들고 똥파리도 날아들수도 있다.     무작정 남의 흉내만 내고 다닌다면 뼈대없는 맹종자가 될것이요, 마침내는 굴종 이 되고 그 뒤에 오는것은 자아상실과 허무감뿐일것이다.    아하, 사람들은 제 잘난 멋에 산다는데 우리 연변의 겨레들도 오기를 부리며 좀 제 잘난 멋에 세상을 활개쳐가는것이 어떠할가?                                   1994 년 7 월 9 일     
248    《정치방귀》와 그 위해성 및 기타 댓글:  조회:8030  추천:0  2013-10-02
                        《정치방귀》와 그 위해성 및 기타                                                       최 균 선       항간에서는 터무니없는 거짓말이나 허튼소리를 속된 말로 개방귀같은 소리를 한다고 욕하거나 개나발을 분다고 타매한다. 개란 워낙 똥을 먹고살고 또 그래서 여느 짐슴보다 방귀가 특별히 구려서 이렇게 비유했는지 알수없으나 개방귀든 개나발 이든 아무튼 인명사고와는 관계없으니 그저 구린대로 코를 싸쥐고 돌아서며《에익, 망할것!》하는수밖에 없다.     세상에는 구리기로 유취만년하고 또 지구적으로 인류에게 위해로운《방귀》가 있으니 그것을 필자는《정치방귀》라고 불러둔다.《정치방귀》란 곧 어느 나라의 정부수뇌자나 정치거두들이 자국의 정치수요에 따라 허튼소리로 자기를 분장하거나 죄악 을 덮어감추는것을 이르는 말이다. 이런《정치방귀》를 뀌는 나라가 세계에 어찌 한두개 나라뿐이랴만 고금동서에 일본을 첫손가락으로 꼽아야 할것이다.     필자가 공연히 일본을 미워해서가 아니라 계제가 그렇게 되였으니까 하는 말이다. 《인민일보》만화증간인《풍자와 유모아》에 화군무선생의 만화 한편이 실렸는데 작자는 항일전쟁시기에《상해보》에서 일본사회에서 방귀뀌기시합을 한다는 소식 한 편을 본적이 있다고 주석을 달았다. 작자의 말에 의하면 방귀시합이 민간풍속인것이 아니면 어느 미친놈이 우연하게 발기한것인지 잘 모르겠으나 이것으로 보아도 일본에서는 워낙 방귀에 각별한 흥취를 가지고있지 않느냐고 하였다.     그건그렇다치고 일본사람들이 확실히《정치방귀》도 썩잘 뀐다는 사실은 대서 특필할만하다.《정치방귀》가족의 족보를 들추어낸다면 70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당시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악마의 화신인 도죠 히데끼를 선조로 모셔야 할것이다. 도죠 히데끼는《사흘내에 지나를 멸망시킨다》는《정치방귀》를 요란하게 뀐후 발톱까지 무장한 이른바 무사도 졸개들을 내몰았다. 그런데 그번《정치방귀》는 대단히 잘못 뀌였다. 사흘이 아니라 8년항전끝에 결국 골탕을 먹고 나중엔 원자탄의 세례까지 받아서 무조건투항을 선포하지 않을수 없었던것이다.     물론 그번《정치방귀》는 중국, 조선 나아가서 아시아 여러 나라에 참혹한 재난을 가져다준 지독한것이였다. 따라서 일본 자신도 자아훼멸의 재난을 자국인민들에게 덮씌웠다. 도죠 히데끼의 충실한 후손중 둘째로 손꼽을수 있는자는 원일본법무대신 이였고 현임중의원 의원인 오끼노이다. 세인이 치를 떨고있는 《위안부》 문제를 《영업주가 경영한《상업행위》라느니《일본정부는 그런 일을 저지른적이 없다》느니 하고 나발분 이자는 일본군국주의죄행을 공공연히 덮어감추는 후안무치하기 짝이 없는《정치방귀》선수라 하겠다.     그의 뒤를 바싹 따라 방귀시합에 뛰여든자는 현임 일본수상 하시모도이다. 이자는 7월초에 금년《8.15》일본전패기념일에는  야스쿠니신쟈를 참배하지 않겠노라고 전 세계를 향해《정취방귀》를 팡 뀌였다. 야스쿠니신쟈란 세상이 공인하는 력차의 침략전쟁에서 죽은 자들을 제사지내는 곳으로서 도죠히데끼 등 14명 갑급전쟁범들 을《소화순국자》로 삼아 봉사한 악명높은 장소이다. 일찍 여러가지 신분으로 신쟈를 참배해오다가 1985년에는 수상의 신분으로 버젓이 신쟈를 참배하여 세계적인 물의를 일으켰던 나까소네도 한바지가랭이안에서 《정치방귀》를 뀐 선수라 할것이다.     근간에 일본 나까사끼시의 한 자민당의원단에서도 이따위《정치방귀》를 요란하게 뀌고있다. 이른바《원자탄폭발자료관》에 진렬된 2차대전에 관한 자료를 그들은 38개곳이나 뜯어고쳤는데 아시아 각국에 대한 침략을 그 무슨《세력확장》이요 《군사행동》이라고 불어댔는가 하면 더구나 한심한것은 남경대도살자료를 고의적으 로 빼버린것이다. 리유라면《일본군대의 잔혹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면서 인과보응으 로 잘못 인식하게 할수 있다.》는것이다.     이런《정치방귀》는 마치 일본이 전쟁도발자가 아니라 피해자인것처럼 가상을 지어 자국인민을 기만하기 위해 알심넣어 뀐것이다. 아무튼 일본에서는 이런저런 《정치방귀》소리가 요란하기 그지없다. 이를테면《대동아공영권론》,《아시아식민 지해방론》,《원동군사법정비법론》,《남경대도살사건날조론》등 많고 많다.     대저 소리가 요란하게 방귀를 뀌는자들은 후안무치하다고 한다면 그것을 잘한다고 응원하고 선동하는자들도 또한 가증스럽기 그지없다. 그게 어떤자들이냐?《일본 유족회》전무리사 모리따는 하시모도가 참배가《계속되여 자연스러운 행위로 될수 있기를 바란다.》고 손벽치며 응원했고 일본여론계의 적지않은 사람들도 하시모도의《정치방귀》를 칭찬하면서《정정당당하게 신쟈를 참배하라》고 선동하고있다.    일본의 내속을 알수 없는 나라이고 일본사람은 내속을 알수 없는 사람들이라는 세계적평판이 딱맞는것 같다. 일본인은 사람과의 관계에서나 국제래왕에서 극구례 절을 차리는 인상을 주고있고 또 스스로《유술로 왕도》를 실행한다고 자칭하고있다. 하지만 인정을 절멸시킨 남겨대도살을 감행한것도 일본인이요, 중조인민을 세균실험 용으로 삼은것도 일본인이며 이른바《선풍식자살공격기》로 자국쳥년들을 가차없이 대포아구리로 밀어넣은것도 일본이다.     무엇때문에 한개 민족이 그렇듯 모순된 이중성격을 가지고있는가? 이 역시 하나의 수수께끼가 아닐수 없다. 그러나《알수 없다》는것은《알필요가 없다》는 말이 아니다. 우리는 사람마다《일본학》을 참답게 연구해야 할것이다. 왜냐하면 내속을 알수 없게 하는 작법에 위험천만한《정치방귀》가 들어있기때문이다.     제2차대전후의 일본의 국민성에 대해 한 미국학자가 심각하게 개괄한바 있다. 일본민족은 국화와 군도의 도안으로 이루어진 민족으로서 그들은 국화를 재배하면서 예술의 꽃을 피우는 동시에 또 군도를 숭배함으로써 무사도를 숭배한다. 그 국민성으 로 보면 싸우기 좋아하면서도 회해롭고 착하며 무(武)를 숭상하면서도 또 미를 사랑하고 지극히 야만적이면서도 고상하고 우아하며 각박하기 짝이 없으면서도 적응성 또한 강하다. 상급에게 귀뺨을 얻어맞으면서도《하잇, 하잇》하는 순종형이면서도 의리를 지키지 않고 배신을 잘하며 책임을 회피하는 등등이다.     미국학자의 관찰과 연구는 확실히 독특하면서도 또 흥미를 끈다. 또 일부 면에서 확실히 일본국민성의 심층을 파헤쳤고 요해를 찔렀다고 할수 있다. 그러나 다른 견해를 세울수도 있다. 이런 분석, 개괄은 표면현상의 퇴적이라 할수도 있다. 왜냐하면 어떤 민족의 국민성이든 하나로 통일된 조화로운 정체일수 없으며 하나가 둘 혹은 셋으로 나뉘듯이 이중, 삼중의 성격일수도 있으며 좌중우익의 여러 류파로 구분되기도 하니 말이다.     하기는 제2차세계대전후 일본민족가운데에 국화숭배자와 군도숭배자들간에 모순이 지금까지 일본국내모순의 초점으로 되고있다는것이다. 어떤 일본정객들이 우익분 자들의 수요에 발맞추어 제2차대전에 대해 심각하게 반성하려 하지 않고 력사를 뜯어고치는 등 추태극을 벌려 자기들의 력사적죄악을 덮어감추면서 부단히《정치방 귀》를 뀌고 야스쿠니신쟈따위를 참배하는 등 활극을 놀고있다.     이 모든 사실과 경향들을 일본의《군도숭배자》들의 력량을 가볍게 볼것이 아니며 그들의 대변인들이 계속《정치방귀》를 뀌고있다는것을 우습게 보아서는 아니된다 는 계시로 되고있다. 이런자들이 일단 득세하여 다시 력사무대에 등장하게 되면 일본은 기필코 피비린 전철을 무시해버리고 군국주의전차에 뛰여올라 아시아 각국 인민들에게 재난을 들씌울수 있다는것은 뻔하다.     한국소설《무궁화꽃이 피였습니다》에서는 이런 비밀적대화묘사가 있다.《저 망망한 태평양과 풍요한 씨비리를 돈주머니로 다스릴수 있는가? 없다. 오직 군력에 의거해야 한다.》이것은 비록 소설에 나오는 검은 세력의 두목들간에 주고받은 말이 지만 악마가 잠시 칼을 놓았다 해서 결코 부처님으로 될수는 없다는 단적인 증명이기도 한것이다. 일본은 이미 자위대의 범위를 훨씬 벗어나 국방력을 가강하고있으며 세상에 다 알려진바 7000여개의 핵폭탄을 만들수 있는 핵재료구입을 다하고있다. 근년에는 또 외국에 파병하는데 흥취를 가지고있으며 실제로 파병을 하고있다.     일본은 1960년대에 이미 국민경제를 회복하였으나 의연히 어떻게 가난하다고 우는 소리를 하면서 3등국가로 보이기에 애썼으며 1970년대에 공농업현대화를 완수하여 국력이 넘쳐났으나 여전히 자기들의 참모습을 숨겨왔던것이다. 1980-1900녀대에 와서야 비로소 경제면에서 출격하여 자동차, 전자공업에서 미국을 꺼꾸러뜨리렸다. 이러한 이웃을 둔것이 우리 중국사람들에게 행운인지 불행인지는 력사가 증명할것이다. 물론 일본국내에서《국화숭배자,《군도숭배자》간의 투쟁은 치렬한것도 사실이 다. 일본 와세다대학의 한 교수는 중국에 방문왔을 때 다음과 같이 솔직하게 고백한바있다.   《지금 일본통치자들이 이따금씩 제2차세계대전시기에 중국을 침략한것을 사죄한다지만 그것을 결코 믿지말아야 합니다. 그것은 근근히 정치수요에서 하는 겉치례로서 총체상에서 말하면 일본민족에게는 중국에서 저지른 침략죄행에 대한 참회의 식이 없습니다. 중국의 지나친 관대는 오히려 그들의 기염을 돋구어줄뿐입니다.》     이에 수반하여 노벨문학상수상자인 일본작가 오에 겐신로도 중국작가들에게 건의한바 있다.《제2차세계대전에 관한 력사문학작품을 잘 써서 일본인민들로 하여금 당년 일본군국주의자들의 침략만행을 잘 인식하도로 해야 합니다.》     이런 우방인사들의 충언은 참으로 심사숙고할바이며 젊은세대들에 대한 경종이 아닐수 없다. 사실상 새 일대들은 력사를 좀 배워서《7.7로구교사변》이나《9.18사 변》,《8년항전》같은 력사개념들을 두루 기억하고있으나 우리가 지불한 참혹한 대가와 혈채에 대해서는 절감하지 못하고있으며 오히려 일본이 중국보다 더 잘산다는 데 대한 호감이 더 강하고 일본상품에 군침을 흘리고있는 형편이다.     하긴 우리 나라에서《갱도전》이나《지뢰전》,《철도유격대》같은 전통교육영화를 때때로 돌리나 예술작품속의 오락성에 의해 자칫 일본군대를《소일본》의 허수아 비로 인식하기 쉬우며 그나마 우리의 중소학교 학생들은《시시하다》고 여기고있다.     되돌아와 부언하거니와 오끼노와 같은자들의《정치방귀》하시모도같은 혀가 두가닥인《군도숭배자》들의 선동이야말로 군국주의를 부활시키고《대동아공영권》의 옛꿈을 꾸고있다는 징표라는것을 국민이 다 알아야 한다. 우리 중국에는《족제비가 방귀를 뀌여서 자기를 보호한다.》는 말이 전해내려오고있다. 오끼노나 하시모도가 바로 이런《족제비》들로서 아무리《정치방귀》로 자기들의 원형을 덮어감추고 력사를 외곡하여도 각성한 전 세계인민은 절대 용납하지 않을것이다.                               1996년 9월 21 일                                       《흑룡강신문》           
247    사회의난잡증을 전문 치료함 댓글:  조회:8603  추천:0  2013-10-02
                                  사회의난잡증을 전문 치료함                                                      최 균 선       버릇처럼 무딘 붓끝을 꼬나봤대야《비수》나《투창》이 될리만무하고 혹 꼬나봤댔자 해도 제자신이나 상하기 십상이니《식자우환》이라 할가? 그렇다고 사사건건 신변잡사를 늘여놓거나 화조월석을 뇌까리면서 까다로운 문구를 치약 짜내듯 하며 오기를 피우는것도 싱거운 짓이라 그저 붓방아만 찧다가 담배연기 굴뚝같이 토해봐도《령감》은커녕 상사병에 죽은처녀귀신도 접어들지 않는다.     청조때 장조란 선비가 《로년의 독서는 대에 올라 달을 희롱하는것과 같을진 저…》하였으니 초당의 학구나 되여본다? 낡은 책을 얻어내여 도깨비 기와장 번지듯 하다가 문득 붓놀림이 귀신같이 될만큼 만권서를 독파하기전에 늙은 책귀신밖에 더 되랴싶어서 빈 하늘만 막연히 바라보고 앉아도《동쪽 울타리밑에 심은 국화꽃 따다가 / 유연히 남산을 바라보노라》하고 읊었던 도연명같은 초탈함도 가질수 없으니 내가 무슨 의난잡증에나 걸린게 아닌지…     그래서 맨머리 샤쯔바람으로 거리에 나섰지만 오라는 곳이 없고 나 또한 가보고 싶은 곳이 없는지라 이 골목 저 골목 기웃거리다가 한 우중충한 4층집앞에서 발길을 멈추었다.《사회의난잡증을 전문 치료함》이라는 생경스러운 글이 내발길을 잡은것이다.     호기심에 끌려 찾아들어가니 4층 맨 구석방에 로선생이 근엄하게 앉아있었다. 선풍도골은 아니였으되 도고한 그 모습은 옛날 덕망높은 은자를 련상시키기에 족했다. 게다가 눈까지 형형했고 석쉼한 목소리에 저력까지 있어 위엄스러웠다.     《선생은 무슨 의난잡증에 걸렸기에 여기로 오셨소?》     《예, 다른게 아니고 로선생께서 유별난 행업을 택하신게 궁금해서 얼핏 들려보 았았습니다.》     《이 로옹을 공연히 난처하게 굴려는게 아니라면 지인지감으로 받아들이겠소. 서구의 한 사회학자가 마음이 밝은 사람에게는 사회가 하나의 큰 병원으로 보이고 인간은 곧 병자라고 하였소. 문인의
246    도적의 도의와 부패 댓글:  조회:7970  추천:0  2013-10-02
                                            도적의 도의와 부패                                                    최 균 선       예로부터 인간의 만가지 악행중에서 첫째로 치는것이 도적질과 강탈이였다. 살인 하고 훔치고 로략질하는자들이야 원체 인의와 량심하고는 인연이 없는 늑대들이니까 더 왈가왈부할것이 있으랴만 동서고금에는 또 소위 의로운 도적에 대한 미담도 전해 지고있으니 도적도 제나름인가 본다.     이런 야담이 있다. 고려시대에 한 유생이 있었는데 재능과 도량으로 말하면 일국 동량지재이나 살림이 궁핍하기로 말이 아니였다. 글공부에만 전념하는 그 남편을 안해가 품팔이해서 공양하고있었다. 그러다가 그만 지친 안해는 절에 있는 남편에게 머리태를 베여팔아 마련한 쌀몇되박과 함께 절명서를 보내였다.     청운에 뜻을 두고있던 유생은 더는 배겨내지 못하고 깊이 개탄하며 책을 덮어버 리고 도적의 무리에 가담하고 마침내 그 도적무리의 괴수로 되였다. 유생이 괴수로 받들리는 날 자기 부하들을 모아놓고 훈시했다.     《다들 듣거라. 대저 도적들에게도 이른바 예로부터 내려오는 도의가 있느니라. 그것인즉 곧 지(智)》와 인(仁)과 용(勇)이다. 이 세가지 덕을 갖춘후에라야 명실공 히 대도라 할수 있느니라.“지”는 홍길동의 “활빈당”처럼 지혜롭게 거사하는것을 이름이요 “인”이란 사람의 목숨을 해하지 않고 차마 손을 대지 못할 재물은 범하지 않는것이다.     이를테면 보통행상들의 본전인데 그것을 빼앗으면 남의 목줄기를 자르는 잔혹한 짓이므로 절대 행하지 말아야 한다. 더욱 삼가할것은 국고이다. 백성들의 피땀에 손 으 대면 결국 백성을 수탈하는것이니 량민이 아닌 도적이지만 역시 국민이니 국고를 털지 말아야 하느니라. “용”이란 대담하게 행하되 만용을 부리지 말아야 한다는것 이다. 이에 모두 명심하고 차실이 없도록 하라.     이제 우리가 취할 재물은 나라의 후한 국록을 타먹으면서도 토색질에 눈이 빨개 져 음으로 양으로 뢰물을 받아삼키는것도 족하지 않아 나라의 재물까지 절취하여 기름배를 튕기는 탐관오리들의 불의지재이다. 그놈들의것은 모두 권세를 빙자하여 날치 기한것이니 그놈들의것을 도적질한다고 말할것이 아니라 취한다고 말해야 옳을것이다. 그것으로 다시 가난한 백성을 구체하면 곧 의로운 거사가 될지라 이에 명심하라!》     이렇게“약법3장”을 세우고 도처에서 의적질하니 천하대도라도 백성들이 알아봐주었다. 그러다가 서울 만호후의 가택을 들이쳐서 루만금을 취한 유생은 다시 부하들을 모아놓고 분부를 내렸다.     《제군들, 우리 하는짓이 죽지못해 하는일이니 탐욕이 무변이면 천벌이 내릴것이다. 이제 우리가 한밑천잡고 살만큼 되였으니 손을 싹씻고 정도로 사람다운 삶을 살도록 하라.》     그말에 모두 순응하므로 마침내 소굴을 불사르고 헤여져갔다.     이야기속에 담긴 민중의 념원만은 가히 흔상할만한것이다. 그때로부터 세월이 흘러 문명사회에 이른 지금 의적같은 애기는 당치않겠지만 물질문명의 발전에 따라 인간의 탐욕이 갈수록 심해지고 죄악이 더욱 창궐해지는 이 시대에 하나의 반디불같 은 반짝임으로 안겨오는 이야기가 아닌가? 버젓한 양복차림에 회전의자에 틀거지 차리고앉아 곧잘 렴결봉공을 뇌까리는 문명하고 합법적인《도적》을 두고 더욱 개탄 하는바이다. 이네들이 국고를 헐어 사욕을 채우는 수단은 이루 말할수 없고 그 수자 또한 놀랄만큼 많으니《시대영웅》이라 할가?     옛날 봉건사회에도 청렴한 관리들이 많았다. 이런 고사가 있다. 송나라의 어떤 사람이 큰 옥을 주어서 제나라 대부인 자한에게 헌납하려 하였다. 그런데 자한이 옥을 탐내지 않고 결연히 사절하였다. 이에 송나라의 사람이 물었다.     《소인이 용한 옥장에게 물어보니 진짜 “무가지보”라 하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마다하시나이까?》     이에 자한이 한 대답이 천고절창이요 금언이였다.     《나는 관리로서 재물을 탐냄이 없이 렴결하는것을 으뜸가는 보배로 여기고있는 데 네가 부득부득 내게 권하는것은 내 보배를 빼앗는것과 같을지어다. 가령 내가 네 옥을 취하면 너도 보배를 잃게 되는것이 아니겠느냐? 이는 오히려 제 보배를 남겨 두느니만 못하니라. 더 구시렁거리지 말고 물러가거라.》     이렇게 자한은 끝내 자기를 의젓이 지켜냈다고 한다.     목전 반부패의 투쟁열조가 우로부터 내려오게 되자 안달복달할것은 송나라사람과 같은자들일것이다. 민심에 호응하는 이런 국가대사에 누가 관심을 모으지 않으랴만 바라건대 구린똥을 싸놓은 큰놈은 아닌보살하고 우무룩해서 두눈만 디룩거리며 선 웃음을 치고 요란하게 방귀를 뀐 놈만 잡혀나와서 방패로 되지말기를…     하긴 요즘 인기뉴스로 어느 성의 부성장같은 거물도 별수없이 뒤덜미를 잡혀나 오고있지만 말이다. 한차례의 회오리바람이 아니라 밑뿌리를 빼는 전 국민적인 폭풍이 되여서 나라의 담벽을 뚫고 국고에 손을 뻗쳐 살만지우는《인간쥐》들을 다시 일 어서지 못하도록 호되게 족쳐야 할것이다.     전근시키고 제명하고 처분을 주는 등으로 무마하지말고 법률의 신성한 무쇠비로 구석구석을 모조리 쓸어내서 혼쭐이빠진 인간쥐들을 사회광장에 모아놓고 성토의 불길을 지펴 국민경제와 백성들의 생활에 끼친 그 죄를 단죄해야 할것이다.                         1994년 1 월 22 일 
245    랭각문학의 열점 댓글:  조회:7901  추천:1  2013-09-29
                                                    랭각문학의 열점                                                              최 균 선     소시적에 넋을 빼앗겨서 백발이 성성하도록 문학을 한답시고 신들린것처럼 읽고 끄적거리며 쇠힘줄 하나로 오늘까지 왔건만도 이렇다 할 성과도없이 요모양요꼴로 황혼의 언덕에 올라서니 문학의 비애, 아니, 나의 문학의 비애에 허탈감만 남는다. 벌써전에 문학의 저조기요, 문학의 랭각시대요 하며 의론이 분분하던 선각자들을 흉내내여 자다가 봉창두드리며 뇌까리는것일가?     눈들어 멀리 풍물을 내다보지는 못해도 지난날은 선연하다. 1980년대까지만도 이 땅에서 작가의 계관을 썼다면 특별석을 가진 사회존재로서 실리는 못챙겼지만 명예 만은 돈독했다. 온 사회가 작가를 숭경하고 흠모하는 눈길로 우러러 보았고 애들마 거개 작가의 꿈을 몽그리였다. 그리고 랑만적인 청년학생들은 약속이나 한듯이 문학도의 꿈을 달구어더랬다.     그러나 문학의 렬차는 또 한굽이돌아 새 풍경선에 들어섰다. 문학은 문화생활의 결구에서 막무가내하게 변두리에 밀려났다. 돈이 란무하고 향락이 흐드러진 풍경속에서 문학은 경제적으로 쓰잘것없고 보잘것없는 존재, 구석에 훌쩍 버려지는 휴지같은 존재가 되였다. 물질만능, 리기의 소용돌이속에서 얻은자와 잃은자의 희비가 엇갈릴 때 선망되는 단어들중에서《작가》라는 개념은 사용빈도나 무게로 보아 심상하게 념겨버릴것이 아니였는데 영광은 이미 무지개발같이 사라졌다.     몇해전, 중국문단에서는 또 한차례 떠들썩하였다. 말하자면 중국문학은“전대미문의 고도”라는가 “전례없는 저곡”이라는 쟁론으로 들끓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는 중국문학도 저곡에 들어선것은 사실이다. 시대발전의 필연적결과라고 생각하면 자위가 될런지는 몰라도 저곡에 들어섰던 문학이 마침내 랭각지대에 들어섰다. 숙명인가? 사명을 다했는가? 시대의 물결따라 떠오르다가 가라앉기를 반복했어도 명칭만은 당당했는데 시대의 실락자로 되다니? 이런 현상을 시대관념의 변화라고, 돈으로 영웅을 론하는 사회의 결과라고 해야 하는가?     내재적원인을 찾는다면 문학의 자유적창작정신과 리상의식은 쇠퇴하였고 따라서 평론가의 비평의식과 비평영향도 쇠락하였다. 한것은 상업화가 문학화원에 전면 침투함으로써 오직 돈만이 문학창작마당에 주류가 되였기때문이다. “인민페를 위하여 복무 (为人民币服务)”는 중국작가들의 공개적인“창작비밀”로 되였다. 문학창작의 흥성에도 거품현상이 일고있다. 문학창작내용의 저속화, 비속화는 문학의 저곡상태에서의 가장 돌출한 표현이다. 작가군체가 세계에서 제일 방대한것으로는 미봉되지 않는다.     이런 문학의 저조현상은 문학의“테두리”밖에 사람들이 너무나 똑똑하게, 그리고 랭정하게 보고있다. 우리는 모종 면에서 아직도 작가의 고유한 꿈속에서 자족하고있는지도 모른다. 문학의 접수와 공명의 거도에 감동의 물결은 흐르고있는가? 문학비 평의“정수기”는 고르롭게 잘 돌아가고있는가? 조선족작가들은 물론 여타민족작가들속에서 민초들의 저층생활을 파헤치는 열정을 지닌 작가들이 얼마인가?     우선적으로 사작기교와 서사방법에만 몰입하다보니 작품속에 흙냄새, 땀냄새와 저층의 정한과 개탄이 피부로 느껴지지 않는다. 문화시야의 국한성이 문제인가? 아니면 현실생활속에 어두운면과 추악한 현상에 대한 투시에 흥미를 잃었는가? 작가는 물론, 독자들도“비판적사실주의경향”은 한물 지난 창작수법으로 인지되는지 모르나 심미취미가 마냥 감각적으로 간질간질하고 몽롱한 정경에 심취되고있는듯싶다.     아무튼 문학의 비애의 시대이다. 문제는 문학의 랭각시대를 불러온것이 작가인가? 독자인가? 문학이 시대에 의해 령락되였는가 문학이 시대를 령락시켰는가? 독자가 작가를 버렸는가? 작가가 독자를 도외시하였는가? 하는것이다. 그 모두일수 있다. 작가는 작품으로 사회와 대화한다. 그런데 문학은 단지 소일거리로서만 남았다.     파금선생이 일찍《작가는 일종 자격도 아니고 지위도 아니며 관직도 아니다》라고 말했지만 그러나 지금은 문인들의 사정은 판이하게 달라졌다. 작가협회회원증은 문단출입의 자격증이고 리사님쯤 되면 곧 한자리 한것이 되며 주석이나 부주석님에 위임되면 일종의 관직이다. 근원적으로 작가협회란 군중단체이지만 권력과 리득과 명성을 다투는 곳으로 보이고…이것은 자타의 실사구시적인 평가이기도 하다.     작가의 몸값이 내려간 다른 중요한 인소는 무엇인가? 예전엔 멀리서도 높디높던“성전”의 작가협회 문턱이 너무 낮아지면서 출입자격 기준이 느슨해지다가 심지어 인맥이 있으면 그럭저럭 회원님이 되기도 하기에 작가군체의 자질이 하강했다는 여론이 분분하다. 그리고 그런 사회의론들에 도리가 전혀 없는것이 아니다. 출판도 그렇다. 책한권을 내려면 몇해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 책을 내고싶은 사람들에겐 호시절이나 한걸음 물러서서 생각하면 문학의 비애이고 작가의 비애가 아닐수 없다. 특히 자랄줄 모르는 눈섭같은 우리의 원고료도 한가지 병페이다.      전국적으로《잡탕문학》,《눅거리문학》이 소비시장에 범람하게 된것도 문학의 령락을 불러왔다고 할수 있다. 문학의 령락은 작가의 령락이다. 누구의 비애인가? 순문학의 비애인가? 소일문학의 비애인가? 이는 문학의 비애이자 비애의 문학이라는 해답을 담고있다. 진정한 문학은 무슨약을 잘못먹었는가? 한시대를 풍미하던 문학은 지금 어느구석에서 기죽어 숨이 한줌만해 서있는가?     진정한 문학의 내부퇴직이 비애의 문학을 불러온 또 다른 원인의 하나라면 갑작스레 대두한 인터넷문학의 충격파이다. 편집의 심사도 까다로운 층층의 그믈도 없고 독자만 있다면 만사대길이다. 그야말로 자유분방하게 종횡무진할수 있는 원야로서 조회수가 많으면 집필자에게는 만족이다. 그러나 실제상 인터넷의 독자들을 맹목적으로 신뢰할수는 없다. 간이음식점에서 대강 끼니를 외때우듯이, 혹은 말타고 꽃구경하듯 하는 독자들도 많다. 그리고 인터넷문학인들은 날이갈수록 자기도취에 빠질수 도 있는바 이것이 인터넷문학의 제약성이 되기도 한다.     인터넷문학의 시비거리는《평론》이다. 리플이라는 형식의 평론은 그 무슨 기준이나 리론적의거도 필요하지 않으며 즉흥적이고 감성적이고 인상의 호불호에 따르기에 심기가 불편하거나 편견의 안경을 쓸때면 혹평이 아닌 악평마저 꺼리지 않는다. 컴퓨터를 마주할 때 감각이 불러오는 물음은《인터넷이여, 너는 도대체 문학에 무엇을 가져다줄수 있는거냐?》이다. 물론 일가견은 아니다. 요란하게 말할것없이 오늘날 작가의 분투목표는 빵이 아니라 자아실현이다. 그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작가는 인류의 희노애락에 강장제를 제공하고 생활에 조미료를 가공해줄뿐 누구의 인생을 결정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작가들은 소리높이 뇌까린다.《독자들이여, 나를 따라오라. 내가 당신들에게 정신적인 빵을 주겠노라!》하다면 유혹의 책임은 전적으로 작가 자신에게 있다고해야 할것이다. 오동이 무성하면 봉황이 절로 날아든다고 작가의 정신의 열매가 감칠맛이 없고서야 만끽할 독자들이 어디있겠는가?     이 시점에서 문학의 랭각시대, 작가의 실락의 근원은 작가와 작품에 맺혀있다고, 문학의 비애와 비애의 문학은 변해버린 독자들보다 결과적으로는 작가들의 몫이라고 말한다면 괴담인가? 공자가 시를 읽음으로써 바른마음이 일어나고 례의를 지킴으 로써 몸을 세우며 음악을 들음으로써 인격을 완성하게 된다고 했다.“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고 했지만 평양감사도 제하고싶어야 한다던가? 힘으로 못시키는것이 공부라고 억지로 내리먹일수 없는것이 문학소비이다.   식은 문학을 훌훌 불며 마실 사람은 이제 더는 없다. 사람이 떠나기전에 차가 식은것인가?                                                       2012년 1월 27일 
244    말하기와 말이 나가기 댓글:  조회:8790  추천:0  2013-09-24
                                                 말하기와 말이 나가기                                                               진 언       벙어리를 내놓고 사람은 말하지않고는 견뎌내지 못하는 동물이다. 말하기와 말이 나가기는 결과적으로는 같은문제이지만 경우가 달라지는 때도있다. 이를테면 마음에 챙김없던 횡설수설이 바로 말이 나가기에 속한다. 무릇 말에는 자기 생각을 토로하는것과 남의 말을 전달하는 말이 있다. 말을 잘한다는것은 우선 말하려는 취지가 분명하고 말하는 내용에 조리있고 설득력이 있다는것이다.     말하기는 예술이기전에 일종 지혜이다. 말에서 화자의 문화수양과 사람의 됨됨이가 여실히 내비치기에 말은 때와 장소를 가려하라고 하는것이다. 우둔한 사람은 입으로 말하고 총명한 사람은 머리로 말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마음으로 말한다. 꼭 말 해야 할 때 말하는것은 수준이고 말하지 말아야 할 때 말하지 않는것은 총명이며 어느 때 말해야 하고 어느때 말하지 말아야 하는가를 아는것은 지혜이다.     현명한 사람이 되는데는 혀가 생각앞에서 날름거리게 하지 않는것이다. 말하기에서 지혜는 달변에 있는것이 아니라 말해야 할 때 말하고 말하지 말아야 할 때 말하지 않는데 있다. 다하지 못한 말에는 보충,수정할 기회라도 있지만 쏟아낸 말을 되삼킬수 없다는것은 예로부터 상식도 아니다. 말이 많으면 쓸말이 없다는 속담이 있지만 말을 많이할것인가 적게 할것인가에는 고정된 좌표가없다. 어망결에, 어망간에, 얼떨결에, 무망간에 나가는 말이 재화를 부를수 있는데 되짜듯 말짜듯이 작정하고 하는 말들도 어불성설이면 더구나 아니하기만 못한 언동들이다.     례컨대 말하려는 내용에 스스로도 확신이 없어“…것으로 볼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밝혔다.…그렇게 보인다.…라고 전해졌다.…에 힘이 실리고 있다.…것으로 알려져있다. …것으로 예고된다.…것인지 주목된다.…에 힘을 얻고있다.…에 설득력을 얻고있다. …하지 않았느냐는 분석이다.…것이라는 지적이다.…다는 평가이다.…라는 지적이다. …라고 제언하였다.…것이라는 관측이 가능하다.…된것 아니냐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는식의 언설은 애매모호하기 짝이없다.      말에는 크게 참말이 있고 거짓말이 있을뿐 중성적인 말이란 없다. 사적인 한담도 아닌 공공언론이라면 아니면 아니고 옳으면 옳다고 긍정부정이 명확해야 하지 붉은찰도깨비 밤여울을 건너는소리같거나 구렁이 담넘어가는 소리같으면 언론으로서는 태생병신이나 다름없다. 하긴 똑부러지게 밝힐수 없기에 통용하는 수법이라는것이 들여다보이지만도 3류소설이 아닌가 의구심을 앞세우게 된다.       긁어부스럼이란 속담이 있는데 내버려두었다면 괜찮을것을 공연히 건드려 화를 자초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하지말아야 할말, 아니할 말을 해놓고 다쑨죽에 코를 빠뜨리는격의 현상들을 강건너 불구경하듯 하노라면 섣부르게 추측, 억측하지 말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예의 주시하고 있다”는 말을 상기시키고 싶어진다. 달리말하자면 차분히 지켜보다가 판단하든지 단언하든지 해야 정상인의 사유가 아닐가싶다.     례를 들어9월 23일자 연합뉴스가 이른바 미국의 국방안보전문인 싱크탱크인“랜드연구소” '인지 하는데서 오뉴월 소불알 떨어지면 어떻게 구워먹을가 하는 바보같은 “연구결과”를 제안했다는 뉴스를 다음에 올리자 누리꾼들이 중구난방으로 시야비야하고 있는데 남의 땅을 벼락맞은 쇠고기처럼 칼질하려는 망상에 분개하는 지성인들도 많았지만 남의 손바닥에서 춤추면서도 얼싸좋다는 무뇌아들이 더 많았다. 떠오르는 제생각이면 곧 정설인듯 자아감각에 도취되여 그림의 떡을 그리고 있으니, 그런 사람들 참불쌍해 보이기도 한다. 판단은 결코 념원이 아니며 연필이 가는대로 오리는것이 곧 설계도일수 없는데도 저저 우국우민의 선각자인듯 열성을 내는것을 기특하다고 해야하나? 상상은 원래 좋은것이지만 실체가 없으면 환상이고 환상이 공상이 되고 종당엔 허황한 과대망상에 빠지게 된다는것을 모르시는가? 서로 뒤질세라 수선을 떨어대니 생각머리가 고로콤밖에 안되는건가? 무쟈케 어리석어 보인다.     백사에 서투른 단언은 금물이다. 시간은 가장 현명한 재판관이란 멋스러운 말이 있는데 농촌에서는“젠장, 새도래를 떨긴, 두고봐야제…”하고 우회적으로 사용하였다. 아닌게아니라 시간이 일체를 개변시킨다는것은 사람마다 신봉하는 진리이다. 그만큼 시간은 또 일체를 검증하는바 실천이 진리를 가늠하는 유일한 표준이라는데에 이의를 가질수 없을게다. 하다면 대양건너 코큰씨네는 코가 너무커서 못보시는겨?     실천과 시간은 융합관계로서 시간이 바로 실천으로서 시간은 리론적개념이고 실천은 행위로 체현된 사실이다. 그래서 시간의 로인은 가장 훌륭한 판관이라 하는것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이 세상에는 특정국가에 무슨일이 어떻다하면 선견지명도 아닌 가언적판단 비스므레한 제좋은 생각을 려과없이 내뱉는 너무“해까븐” 사람들이 지천으로 많음에 일개 촌늙은이로서도 도배(사투리)없이 개탄하게 된다.     가언적판단이란 전건이 성립되면 후건이 성립되는것을 나타내는것이기때문에 그 이외에 후건을 성립시키는 전건이 있는가 없는가는 문제삼지 않는다. 례를 들면 "병 나면 학교를 쉰다"라는 가언적판단이 성립된다해도 병이외의 원인으로 쉬는 경우도 있으므로 병이 나지 않았기에 쉬지 않는다고 말할수  없고 또한 쉬였기때문에 병이 났다고도 할수 없다. 따라서 가언적삼단론법에서는 전건을 부정함으로써 후건을 부정한다든지 후건을 긍정함으로써 전건을 긍정하는것은 뛸데없이 오유이고 망발이다.     론리학에 젠벽인 사람이라도 남의 일을 두고 이렇쿵저렇쿵 하는것은 선언적판단을 구사하는것으로 되는데 이런 제좋은 판단에서 입이 너무 가볍게 너불거리는 현상이 생긴다. 입이 말문일때 입술은 말이 새는것을 방지하는 역할도 하는것이다. 그래서 할말, 아니할 말을 가리지 못하고 헌울바자에 개대가리 나가듯이 아무말이나 불쑥불쑥 토해내는 푼수없는 사람을 두고 곧“말이면 다하는줄아냐?”하고 질책하는게다.     말이란 사상의 옷이라할진대 잘못하는 말은 되돌아와 생각ㅡ사상적오유로 된다. 주지하다싶이 틀린 론리적과정을 오유라한다. 오유는 부주의로 생긴것 즉 사유혼란, 불정확성, 불철저성, 혹은 감정의 격앙, 비뚤어진 선입견, 편견 등으로 부지불식간에 오유에 빠지는것을 착오라하고 상대방을 기만 혹은 미혹시키기 위해 고의로 론리적 규칙을 무시하고 해대는 말을 허위 또는 궤변이라 한다. 보통 말할때 3단론법을 앞세 우고 말하지는 않지만 결과적으로 말에는 론리성이 체현된다. 아니면 로망든 로친네의 횡설수설이나 어불성설이 되고만다. 연역법상의 오유를 례로들어 보자.    1.언어적 오유:               녀자는 장수한다                                             섬약한 자는 여자다                                            그러므로 섬약한자는 장수한다         소개념이 애매하기에 엉터리론리가 된것이다. (2)종합의 오유:                 3과 7은 홀수다                                                                          10은 3과 7로 되여있다                                                               그러므로 10은 홀수다        개별적부분은 진(真)이나 그 부분의 합성체인 전체로서는 거짓이기에 괴론이다. 개체간의 대화이나 국제어경에서 흔히 방정떠는 입이 사달이다. 그래서 말하기는 지혜이지만 말이 나가기는 우직함이다. 요즘 다된밥에 재뿌리는격의 망발들이 민족적인 대사를 망치는 현상들을 보면서 “두고봐야제…”라는 농촌철학을 문뜩 떠올리게 된다. 평민이든, 연구가이든, 뭘하는 자이든간에 좀 생각들하고 발설하자. 말이란게 누운소 똥누듯해서야 쓰것냐?                                                  2013년 9월 23일
243    (중편소설) 인간성문제 댓글:  조회:11743  추천:1  2013-09-20
                                                        인간성문제                                               ㅡ  생활은 희극화되여 있지않다.                                                   생활은 소설이 아니다. 그러나                                                   나는 생활속에서 소설을 읽었다 ㅡ                                                                 최 균 선                                                                          1       ××학원의 한국어연구쎈터에 네사람은 나이가 지숙하여 인정이 통하고 호흡도 잘맞아돌았다. 모두 연길에서 왔고 학벌의 높고낮음을 불문하고 다같은 “품팔이군”인 지라 각자 제맡은 학과에만 몰두하보니 쉬틀릴 일도 없었다. 하여 가족들도 친척처럼 보내면서 색다른 음식이 나지면 서로 돌렸을뿐아니라 륜번으로 식당놀이도 하여 이웃에 한족교원들이 부러워할정도로 화기애애하게 지냈다.     그렇게 첫학기를 무난하게 보냈는데 3월, 새학기에 들어와서 생각밖에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동방언어학계 선두주자인 진교수가 제남의 어느 사립대에 있다는 공선생을 자기 후임으로 추천하려하자 기초부에서 온 미련선생이 웬일인지 한사코 반대하고 나섰다. 공도일선생이라면 30여년전 일면지교가 있어서 생면부지의  선생이 오기보다는 낫겠다고 생각하는데 왜 그녀가 한사코 말리는지 알수 없었다. ㅡ 선생님두 참, 그 선생님이 어떤 사람인줄 몰라서 데려오겠다고 애씀니까? ㅡ 성격이 좀 그렇지 전문가 아니요. 명성도 있고…사업은 사업이니까. ㅡ 그가 무슨 사람이든 우선 인품이 돼먹야지요. 아시겠지만 그와 어울리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자기 동창들은 물론 제스승과도 드잡이를 하는 괴짜인것을 정말 몰라서 그램까? 그 선생님이 오면 한달도 채안되여 교연실에 말썽이 생기지 않는가 보세요. 화목하던 사무실이 시끌해질것이고 먼저 선생님이 피해를 볼거예요     둘사이에 오고가는 말을 들으며 무척놀랐다. 예로부터 문인상경이라해도 각자 량심에 부끄럽지 않게 제앞에 노릇이나 잘하면서 돈이나 벌면 될텐데 서로 찡낼일이 무어란말인가? 녀자셋이 모이면 덕대우에 사발이 덜렁거린다는 말은 있지만 남자들 끼리야 두루맞춰가면 되는데 서로 티각태각할 일이 생기랴,      사람은 그가 무엇을하고 어떻게 이름이 혁혁하든 우선은 인간이다. 제아무리 학벌높고 명성이 뜨르르하여 젠체해도 인간성이 제로이면 그외는 별볼일이 없는것이다. 소처럼 시키는일만 꾸벅꾸벅하면서 세상과 다투지않기로 작정하고 산설고 물설은 이 황도에 온터이니 남의 사돈이야 가든말든 내알바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소식통인 허선생의 말에 의하면 면접시험을 보고나서 맥총장의 마음에 들지못했다고 한다. 원래 세상만사 부불통지요 무소불위인듯이 남이하는 학과는 시답지않게 보는터라 돌아가며 부정하고 나무리는 본색이 금방 드러나서 하늘이 낮다하고 도고한 맥총장을 노엽혔다는 말도 있다고 하였다. ㅡ그것 보세요. 그 본질이 어디가겠습니까? 아니받는다니 백번 잘된일이예요.      내가 혼자있을 때 허선생이 전혀 믿기지않는 말을 해주었다. ㅡ공선생이 차일선생님을 뭐라했는지 압니까? (저사람이 그런 수준으로 어떻게 대학선생질을 한단말이요. 나참,)라고 하지 않겠어요. 한반에 동창까지 내리깎는 그런 사람입니다. 나도 그 선생의 학생이긴 하지만 좋다는 제자들이 하나 없답니다…     나는 미련선생이 사람을 보는 눈이있고 대바른 녀자라고 다시보았다. 그런데 열 길물속은 알아도 한길물속은 모른다는 옛말그른데 없었다. 때에 북경의 모대학에서 금방 퇴직한 문교수가 오려한다는 말이 돌았다. 나도 선성은 많이 들은 사람이였다. 청도의 ××대학에 재직이면서 겸직교수로 와있는 리박사가 담배를 피우면서 한담삼 아 자기가 한창 힘쓰는중이라고 넌지시 털어놓았다.      실력있는 사람들이 모이면야 나쁠것이 없고 은근히 기대되기도 하였다. 그런데 그가 오는일이 나와 련계될줄은 생각하지도 못했다. 어느날, 점심먹으러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서 허선생이 어찌생각하고 그랬는지 뚱단지같은 소리를 했다. ㅡ 최선생님이 기초부로 가십시오. ㅡ 그건 무슨 생소나무가지를 부러뜨리는 소리요? ㅡ 북경에 문교수님이 오게 되면 자리를 내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닌밤중에 홍두깨를 내밀어도 유만부동이다. 인사과장도 아닌 사람이 감놔라 배놔라하니 단통 속에서 열불이터졌다. 챙김없었던말이 거칠게 튕겨나갔다. ㅡ 거 무슨말이요? 문선생이 오는데 나와 무슨상관인데? 그리고 허선생 뭔데 나를 오라가라 한단말이요? 굴러온돌이 박힌돌을 많이 빼지만 내가 왜? 내가 너무 과격하게 나오니 대뜸 김이빠졌는지 허선생이 더 긴말하지 않았다. 무엇을 대꾸한단말인가? 만약 한마디 더한다면 정말 박살을 먹일 거친 내성미였다. 그날이후 나는 허선생의 인격소질을 다시 저울질하였고 서로의 마음에 그렇게 앙금이 갈앉게 되였다.     며칠후, 공선생이 다시 온다는 소식이 있는차에 북경에 문교수도 면접보러 왔다. 저녁, 함께 저녁식사를 하게 되였는데 공교수도 여기에 오고싶어한다는 말이 오갔다. 그런데 두사람은 한반동창이지만 소닭보듯하는 사이란다. 동창모임에도 어느 한사람 이 있으면 서로 피하는 정도라니 불구대천인것같았다. 문교수가 마음을 돌렸는지, 아니면 진교수가 더 맥을 썼는지 4월달에 공교수가 먼저 부임하였다.     뭉툭한 체형에 좀 치째진 눈, 그 이상 평범할수 없는 생김새인데 성미가 괴짜라니 겉이자 속이란 공자님 말씀이 빗나가는것은 아닌지, 안하무인격의 타잎은 별로 변하지 않은것 같았다. 그와 악수하며 불현듯 얼마전에 연길에 한 지기가 모쪼록 메일을 보내여 공선생은 제밖에 없는체하여 평판이 좋지않은 사람이여서 어디가서나 평지풍파를 잘일으키니 알고대하라고 충고하던 일이 떠올라 공연히 서먹서먹해졌다.     말이 질주하는 길에 황소도 느렁느렁 걷기마련이니 혹 부딪칠수도 있겠으나 무작정하고 걸고드는 사람이 세상이 있을가, 하기사 세상에는 태생병처럼 공연히 남을 깎아내리기 좋아하는 괴짜들이 있긴한데 먹물을 먹고 내노라하는 사람이 간대루야 그렇게 막되고 야비하게 놀지는 않겠지하며 왼고개를 비틀었다.     나는 거목도 아니고 가지가 무성해 질투의 바람을 불러올만한 존재도 아니고 모아산 돌틈에서 애일배일 자라난 못생긴 가둑나무에 불과하다. 청송홍송은 가둑나무와 섞이지않는 수림의 군자이다. 황차 우물이 강물을 범하지않고 강물이 우물을 범하지 않듯이 각자 제할일을 하면 될것이니 부딪칠일도 없다. 황차 우리는 전공부문이 다름에랴, 그런데 까마귀날자 배떨어진다더니 허선생의 말처럼 과연 예상치않던 돌개바 람이 일어 먼지지를 말아올리듯 평온하던 교연실에 일장풍파가 일었다.                                                                                                                  2       결국 약한다리에 침질이요 강판길에서 조심해 걷다가 오히려 넘어져서 코를 깨는격이랄가, 때는 바로 학생들이 졸업론문을 쓸때였다. 내가 지도한 학생가운데 소이 연이란 녀자애가 있었는데 천주교신도여서인지“중국에서의 천주교의 박해사”라는 과 제로 론문을 집필하였다. 이건 원쑤를 외나무다리에서 만나는격도 아닌데 일이 생길라고 그랬는지 내가 지도한 9명학생은 론문을 공교수께서 론문답변자격을 가늠하는 심사위원이 되여 초심하였는데 생뚱같이 문제가 발생했다.     그날, 남쪽책상가에서 신경질적으로 벌컥벌컥 종이장을 번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두툼한 론문고를 책상에 탕내려놓으며 하는소리가 유달리 자극적이였다. ㅡ저거 썬머화야? 엉? 꿍찬당탠쌰 페이양 썬마렌차이야? 쩌부쓰쐔양 쭝죠마? 헝, 쩌, 쩌거 썅화마? 쩐쓰더…또디 썅깐 썬머야? ……     소이연은 연구과제 선택목적을 밝힐 때 자기는 천주교신도여서 일정한 료해가 있기에 이 연구과제를 선택했노라고 언명했다. 그리고 감사의 말을 쓸 때 참고재료랑 제공해준 왕신부에게 감사드린다고 특히 밝히였다. 신앙자유의 시대인지라 나는 별다르게 생각하지 않고 나름대로 수정해주고 바치게 하였는데 고명하신 공교수님이 문제거리로 삼은것이다. 그의 정치신경이 어느정도로 민감한지 그리고 얼마나 높은 지는 모르고 또 흥미를 가질바가 아니지만 제견해란 별로없이 두루두루 조합한 학생 론문을 두고 정치성에 배양취지까지 들먹거리는것이 너무 어거지라 한마디했다. ㅡ지금 어느때입니까? 종교신앙이 자유라고 헌법에 번듯하게 적혀있는데 왜 그렇 게 쌍강쌍샌하는지 알고도 모르겠군요. 그리고  론문을 어느 공개간물에 발표할것도 아니고 나중에 다통과시키고나면 저기 책장뒤 구석에 그대로 처박힐것인데 사회성을 따질계제가 됩니까? 게다가 녀자애가 천주교에 물들면 얼마나 물들었겠습니까?     내가 시비조로 걸고들자 코방귀만 힝힝거리며 들은체도 하지않았다. 저녁에 당 직이여서 사무실에 나와보니 진교수가 나를 들으라는 책략인지 계주임 왕씨에게 하는 전화내용이 귀에 딱걸렸다. 내용인즉 낮에 회보한 론문상에서 발생한 엄중한 문제를 혼자 깔고앉으면 후과가 좋지않으니 즉시로 상급에 보고하라고 독촉하는것이였다. 마음씨가 착하고 대바른 학자형의 진교수가 갑자기 왜저렇게 나올가 생각하면서도 무엇인가 예감되였다. 이게 어느때라고 문화혁명때의 묵은 화약내를 풍기는가싶었다. ㅡ 교수님 들을라니 저와 관련된 말씀같은데 대관절 어찌된 일입니까? ㅡ 당신이 지도한 그 학생의 론문에 엄중한 정치문제가 있다이, 그래서… ㅡ 거기에 문제있다구요? 설사 그렇다고칩시다. 그러면 사전에 여사여사하다고 하면 고칠것은 고치겠는데 먼저 위에다 말하면 어쩌자는것입니까? 고발입니까? 생면 부지의 저를 천거해주시여 고맙지만 이건 아니지않습니까?사람을 데려다놓고 이렇게 하는것은 골탕을 먹이는것이 아닙니까 그럴분이 아닌데 정말 유감스럽습니다. ㅡ최선생이 정치에는 아주 유치하구만. 내가 보건대도 정치문제가 성립될듯도 하고… 이게 다 선생을 위하는것이 아니겠소? 유감스러운것은 오히려 나란 말이요. ㅡ그 말씀 한번 괴상합니다. 솔직히 말하면 한국어를 겨우 배워가지고 여기 저 기서 베껴다가 조합하는 사립대학생들의 론문에 정치사상성이 있다면 얼마나 있다고 문장을 지으려 합니까? 죽이풀어져도 가마안에 있다는데 같은 조선족들끼리…     그러다보니 서로 정서가 격앙되였고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러지 않아도 공교수가 오면서부터 진교수가 조금 이상하게 변해간다고 생각하며 그 까닭을 알듯싶었는데 암튼 문서가락이 있는게 분명했다. 나는 은혜를 원쑤로 갚는격이라 생각하면서도 곁을 쳐서 복판을 울릴심사로 격한 감정그대로 쏟아내지 않을수 없었던것이다.     그날밤, 혼자 풀풀거리며 뜬눈으로 새우고나서 소이연을 아침일찍 불러내여서 교연실주임에게 론문을 보이고 계주임을 찾아가서 해명하라고시켰다. 점심때 이연이 가 찾아와 자초지종을 알려주었다. 교연실주임이 먼저 론문을 자세히 읽고 별문제 될것없다고 하면서 왕주임에게 자기의 견해를 설명했단다. 한국어를 전혀모르는 계주임이 다듣고나서 내린판단은 그래도 객관적이고 공정하더란다.     종교신앙은 자유이기에 정치문제로 보는건 객관적이 아니지만 신도라해도 아직 학생인만큼 종교문제에 료해가 깊지못할것이고 잘못다루면 시끄러움이 생길수도 있으니 차라리 다른 과제를 선택해서 쓰는게 좋겠다고 하더란다. 결국 상부에 고발하여 나를 골탕을 먹이자던 그 누군가가 닭쫓던개 울쳐다보는격이 된셈이였다. 그런데 론 문답면이 사흘남았는데 조합하는 론문을 엮자고해도 쉬운일이  아니였다.     녀자애는 울상이되였다. 이미 개판이 된판에 책대로 한다는것 자체가 현실적이 못되였다. 그래서 김만중의“구운몽”을 론제로하고 쓰기로 합의했다. 다른애들의 론문도 결국 거의다 교원이 주물러만든것이지만 이연이의 론문은 말바른대로 내가 대필할수밖에 없었다. 결국 론문은 무난히 통과되였다. 그러나 나는 쓴웃음이 나왔다. 태산명동에 서일필이란 말은 이런 경우를 두고하는 말인가? 그렇게 수선을 피우고나 서 아이들이 아글타글 쓴 “걸작”들은 뒤구석에 처박아두면서도 공연히 형식을 피워대는 그런 작태들에 감개무량하다고해야 할런지…     그런데 내가 인간관계에 락제생이여서 또 문제가 생겼다. 쓸데없이 삐치지말라는 구두어가 또한번 적중하다는것을 깊이느낀 사건이 터진것이다. 교연실주임이 맡은 한 녀학생이 퇴근때가 다되였는데 낮에 공교수에게서 두마디 안짝에 퇴자를 맞 고 울먹이던 녀자애가 도와달라고 나에게 청들었다. 그렇찮아도 말썽이 많은판에 지도교원도 아닌 내가 중뿔나게 지도해주면 교원들 사이가 딱해진다고 사절했더니 금방 눈물을 가득머금고 사정사정하는것이였다. ㅡ 우리 선생님도 어떻게 고쳤으면 좋을 모르겠다며 교수님을 찾아가라고해서… ㅡ 정말인가요? 글쎄 지도교원이 알고있다면 문제가 다르긴한데…     내가 유예미결하고있는데 녀자애는 울면서 말했다. 자기는 제남시의 교외에있는 농촌에서 왔는데 아버지가 두달전 자동차사고로 지금도 병원에 누워있고 방정맞게도 온마을이 허물리게 되여 엄마혼자 속태우고있단다. 게다가 사흘후엔 요행 구한 직장에 출근해야 하는데 초심에서부터 걸렸으니 어쩌면 좋으냐고 어깨을 달싹거렸다.     나는 감동되였다. 결코 녀자의 눈물은 웅변이요 무언의 명령이여서가 아니였다. 사립대라도 졸업해서 운명을 바꾸려는 녀자애의 방울방울의 눈물이 너무너무 맑았다. 그래서 저녁을 먹을생각도 접어두고 론문수정에 달라붙었다. 맞춤법이 틀린곳에 붉은 원주필로 고추밭을 만들어놓았다. 한국어를 몇년배운 학생들의 론문에서 맞춤법같은 것이 문제가 아니다. 컴퓨터에 입력해놓고 최후 심사때 교정을 보면 끝날일이다.     오히려 졸업논문은 과제의 가치, 의의, 현실성이 전제이고 론리결구랑, 론거의 객관성, 합목성 등이 요긴한것이 아니던가? 둘이서 머리를 맞대고 소근거리는데 교연 실주임이 건너왔다가 보면서도 아무말도 없었다. 묵인하고 있는셈이였다. 마침내 론문을 비슷하게 수개한후 내가 방조했다는 말을하면 안된다고 당부했다. 어려움에 처한 학생을 도와주지못할 리유가 없었지만 실은 그리 마음편하게 가질일이 아니였 다. 아닌게아니라 그것은 나혼자의 아름다운 생각이였지 다른 선생들의 눈에는 쓸데 없는 일에 삐치는 일로 인지되였다는것이 증명되였다. 이튿날, 그 녀자애가 새로 찍어낸 론문을 공교수에게 바치였다. ㅡ 교수님, 저의 론문을 다 수개했는데 합격을 주세요. ㅡ 엉? 밤새에 다 수개했다구? 니쯔지 까이마? ㅡ 네, 아니, 저, 저…다른 선생님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만… ㅡ 쓰쎄이야, 어느 선생님인데?? ㅡ 누구라는것을 꼭 말해야 합니까? ㅡ 또디쓰 쎄이 께이니 쓔까이야? 콰이숴야! ㅡ 저뒤에 최선생님이…그러면 안됩니까? 우리 지도교원도 허락했는데요. ㅡ 뿌싱, 워 이징 께이니 뿌지걸, 나ㅡ넝 께이니 허걸? 니쯔지 충씬까이바! ㅡ 논문이 잘 고쳐졌습니다, 저의 집에 딱한 사정이 있어서 그래요. 잘 봐주세요. ㅡ 뿌우씽, 워숴 뿌싱 쮸뿌싱, 쩌 뿌쓰 니쯔지 까이더, 삐쉬 충씬까이! ㅡ 제수준으로는 더이상 못고칩니다. 내일모레 뽀도하지않으면 직장이… ㅡ 나쓰 니 쯔지더 쓰칭, 워 메이씽취, 나 니 칸저빤바… ㅡ 교수님 정말 이렇게 하깁니까? 잘 보시지도 않고 벌써 몇번째입니까?     마침내 산동계집애들의 성깔이 솟구쳤는지 얼굴이 검으락푸르락해졌다. 학생이 자기선생과 다퉈봐야 맨발로 바위차기이다. 그애가 나에게 청원의 눈길을 돌리는 순 간 더시비하지말고 옆방에 지도교원을 찾아가라고 눈짓했다. 애가 나가서 인차 지도 교원인 조주임이 들어왔다. ㅡ 공교수님, 어제 얜얜의 논문을 주시고 수개한 이 논문을 심사하세요.   공교수가 알은체도 하지 않자, 조주임은 책상귀퉁이에 쌓아놓은 론문들을 뒤적 여 그애의 원론문과 바꿔놓는 모습이 눈결에 보이였다. ㅡ 교수님, 어제 논문을 가져갑니다. 새건 여기 놓았습니다. ㅡ 니 께이워 짠주, 니 쩐머 수이밸 나쩌우? ㅡ 어째 안된다는 말입니까? ㅡ 나쓰 쩡쥐야, ㅡ 쩡쥐? 썬머이쓰? 이게 무슨 증거란 말입니까? 누굴 기소라도 하나요? ㅡ 내가 이미 불합격을 준것은 불합격이란 증거요. 쩐머? 니예 유의잰마?    한족처녀로서는 워낙 성미가 보통내기가 아닌 조주임이 가만히 있을리 없었다. 왜 안되느냐? 하고 따지고 들다보니 자존심이 하늘에 가닿은 공교수도 지고들리 만무 했다. 그러다보니 교연실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언성이 높아졌다. 결국 불씨는 내게서 튕긴것인지라 앉아있기가 조마조마했다. 만약 내가 끼여들어 해석하려들면 공선생이 더구나 천정이 낮다하고 길길이 뛸것이였다.     그냥 듣고만 앉아있을수 없어서 담배피우러 나가는데 “니쏸 로지야?.” 하는 고음이 귀청을 때렸다. 사태가 이정도로 번져진것이 안되였지만 (나이깨나 먹은 사람이 젊은이들의 자존심을 엿가락처럼 여겼으니 저런 박대도 받게 되는구나)하며 허구프게 웃었다…지금 책대로 되는일이 어디있는가? 운명을 고쳐보겠노라고 학비가 엄청난 사립대에라도 와서 애쓰는것을 보기만해도 불쌍한데 저렇게까지 각박하게 굴어서 뭐 먹을알이 있단말인가? 정규대학에서는 책대로 하는지? 지구는 둥글고 세상사는 서로 랑패나지않게 하면 안되는가…하고 생각하니 담배맛도 유별나게 쓰거웠다.    일은 그로써 그치지 않았다. 전날 교연실에서 벌어진 대전의 전후과정을 모르고 있던 진교수에게 공교수가  공소했는지 진교수가 다짜고짜 나를 힐난했다. ㅡ 최선생은 왜 늘 그모양이오? 정말 둬꽌쌘썰이라더니… ㅡ 미안합니다. 현상적으로 쓸데없는 일에 참견한것이 되겠지요. 하지만 학생이 하도 울면서 사정하길래 도와주었다는 사실자체로는 저 꿀릴데가 없습니다. ㅡ 남이 퇴자를 놓은것을 당신이 합격시키려한다면 공교수를 허수애비로 만들어 버린게 아니고 뭐요? 그리고 지도교원이 알면좋다고 하겠는가 말이요? ㅡ 글쎄요, 결과적으로는 불편한 일이 벌어졌지만 학생을 위한 일에 무슨 네자 존심, 내자존심입니까? 사실 거절할수 없었습니다. 나도 앞뒤를 재여보고 한일이지만 반성하겠습니다. 하지만 나는 누구를 허수아비를 만들려는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공교수가 퍼러딩딩해서 말했다. ㅡ 가만히보니 당신은 쓸데없는 일에 삐치기 좋아한단 말이요, 혼자 다하는체… ㅡ 내가 혼자 다하는체 하는거라면 구체적으로 무얼 말합니까? ㅡ 다말해야 알겠소? 당신을 찾아오는 따좐반학생들이 도대체 얼마요? 사무실 이 안정할새없이 아이들을 뒤에다 달고다니고 대체 뭐이 그리 대단하오? 진교수도 한마디 께끼였다. ㅡ 내본건대도 그렇두만, 다 당신을 생각해서 하는 말인데 그 많은아이들의 론 문을 일일이 고쳐주느라면 정력이 얼마나 들겠소? 본과생들만 책임져도 버거운데… ㅡ 고맙습니다만. 그게 어째서 나와 관계없는 학생들입니까? 전과반학생들은 이 뚱위시에 학생들이 아닙니까? 게다가 150여명 전과학생들의 습작을 내가 자청한겜 니까? 본과학생들까지 260여명도 더되는데 자연히 찾아오는 학생들이 많기마련이 아닌가요? 사실 애들이 교연실에 한번 오자면 큰마음을 먹어야 하는데 그 심정들이 오죽하겠습니까? 나를 믿고 찾아오는 학생들을 거절할 리유가 없습니다. ㅡ 흥, 그럼 전 뚱위시애들의 졸업논문을 당신 혼자 다할께나… ㅡ 공선생님, 그 말씀은 너무 극단이 아닌가요? 내가 무슨 명예를 날리자고 하는 것도 아니고 림시채용교원으로서 게바라올라가자는것도 아니고 내가 맡은 학생이니 그저 자신의 책임을 다하자는것뿐이데 그게 무슨 못할짓이라도 된다는겁니까? ㅡ 쏸라바, 하겠으면 하든지말든지, 그러나 좀 자기를 아는게 좋을것같소. ㅡ 그러지 않아도 자기를 잘알려고 합니다. 너무 신경들을 써주어서 말입니다. 현상을 보면 이 연구실에서 말썽꾸러기는 학벌도없고 로임도 제일낮은 나인듯 싶 다. 그러나 누구마따나 하늘우러러 한점 부끄러운 마음은 없었다. 이튿날 공교수가 누구의 론문을 보고 그러는지 또 쨩!소리나게 책상에 둘러메치며 화를 내였다. 또 어느 불쌍한 애가 닥달질을 당할고? 하는데 내이름이 그에 입에서 튕겨나왔다. ㅡ헝, 유쓰 추이쮠싼, 쩌 하이쓰 룬원마? 짼즈쓰 후숴빠도, 따쟈 라이 칸칸바, 쩌거 쐬성 쐔양 황써땐잉아. 쩐쓰더…써후이주의따쇠리 페양 썬머양더 런차이야?     내입에서 저도모르게 헛김이 피씩!새여나왔다. 저자식은 뭘달라한적도없고 가진적도 없는데 왜저리도 못잡아서 야단인가? 자치동갑이지만 스승이라고 꼬바꼬박 존대말을 붙여주니 너무하지 않은가? 내이름이 무슨 반동명단에라도 올랐단말인가? 옛날 공사판에서 굴러먹던 그때 성미대로라면 언녕 주먹이 그의 코등을 깠을것이다.     역시 교연실조주임의 학생이였다. 며칠전, 남자애 하나가 한국영화발전사에 대해 쓰겠다고 하는데 자기는 한국영화를 많이 접촉못해보았고 더구나 발전과정같은것은 깜깜이니 학생에게 필요한 재료를 찾아줄수 없느냐고 청들었다. 비록 한족이지만 같 은 연변내기고 좀 괴짜인데는 있어도 성미가 괄괄하여 나는 그를 인간적으로 좋아하는터였다. 그저 재료를 찾아주는데 무슨죄되랴싶어서 찾아주었던것이다.     그러나 결국엔 마감에 손을 봐준 론문이여서 서언부터 결말까지 내머리에 똑똑히 씌여있었다.절대 내이름을 언급하지도 말라고 신신당부했는데 이자식이 감사의 말을 쓸때 나에게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써넣은 모양이였다. 그러거나말거나, 학생이면 다같지 네학생, 내학생이 따로있는가? 흥, 개는 짖어도 기차는 달리기만 하더라. 문제의 구절은 이러했다. “한국영화는 다방면적으로 발전하다보니 제재발굴에서도 금구가없다. 심지어 색정적인것도 대담하게 탐색하고있다…” 이게 무슨문제란 말인가? 사실대로 썼는데 황색적인 영화를 선양하는게 론문의 목적인가? 상식이 통하 지않는 독선이다. 베끼고 조합이 기본인 학생들의 론문치고는 망태기는 아닌것이다. 공선생의 근엄한 학술태도라고 생각하기에도 너무 비린 발상이다.     나의 역반심리는 극에 달해서 더는 그의 눈치를 보지않기로 작심했다. 관영이라는 녀자애는 벌써 스믈두번째나 퇴자를 맞고있었다. 노루도 악이나면 문다던가? 키가 훨쩍 크고 헐치않게 생긴 전형적인 산동녀자애가 마침내 대항성적으로 나왔다. 두 손을 허리에 척 올려놓고 공선생을 찍어보며 시비를 캐는데는 기세가 자못 흉흉했다. 내가 그러지 말라고 눈치질하고 밖에나와 담배를 피우는데 녀자애가 따라나왔다.     녀자애의 공소를 들으니 민망스러웠다. 스므페지가 넘는 론문을 스물두번이나 복사하면 그 돈만도 적지않거니와 자존심인들 얼마나 상했을것인가는 짐작하고도 남았다. 나는 그애의 요청을 들어주기로 마음먹었다. 밤도와 수개한것을 스물세번 째로 찎어서 바쳤는데 역시 퇴자를 맞았단다. 이번엔 내가 진짜 자존심이 상했다. 팔 을 걷어부치고 대수술을 했다. 마침내 론문이 통과되였다면서 내가슴에 얼굴을 묻고 아이처럼 엉엉울었다. 얼마나 마음상했으면 이러랴싶으며 마음이 쓰르르해졌다.     론문을 다읽어보지도 않고 맞춤법부터 먼저보고 불합격을 준 논문이 많다보니 다른 부문에 교원들이 지도한 론문이“불”자 맞은게 많았다. 그래서 공교수에게 의견 들이 많았다. 독불장군이다. 조주임이 조장을 맡은 조에서는 공교수가 지도한 학생의 론문에 퇴자를 놓고 공교수의 조에서는 내학생은 물론 조주임의 학생론문이 “챵비”당 하는 웃지도울지도 못할일이 벌어지고말았다.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진다지만 나로서는 새우싸움에 등이 터진 머저리고래격이 되였다.     나는 공선생에게서 퇴자를 맞은 아이들이 청들기만 하면 작정하고 밤도와가며 수개해주어 제2차답변에 참가하게 하였다. 공선생의 독선을 비웃어주려는 마음보다 그것이 애들을 위한 일이라고 여겼다. 한국에 교환생으로 나가있다가 부랴부랴 날아 왔다가 그만 답변에 불합격이 되는바람에 비행기표까지 무효가 될판인 왕녕이라는 애의 론문도 그랬다. 결국 돌아돌아 나를 찾아온 그애가 불쌍해서 수개해주었다.     장백산문화가치를 백두산문화가치라고 해야 하는데 한국인의 시각과 관점을 그대로 옮겨쓴게 문제였다. 밤도와 고쳐주어 두번째 답변에 참가여 합격받고 제때에 한국 에 돌아갈수 있었다. 젊은이들의 심장은 진정이 무엇인지 너무나 잘새기고있다. 남들 이야 뭐라든 눈물이 글썽해서 좋아하는 애들을 보며 나는 일종의 보람과 미묘한 쾌감 을 느끼였다. 결토 내가 누구보다 아량있고 가슴이 따스해서가 아니다.     그런데 론문을  너무 잘고쳐주어도 문제였다. 왕혜라는 녀자애는 청도의 한국회사에 취직했는데 중국에서의 한국기업의 발전상황에 대한 론문을 썼다. 회사사장이 경제전문가이고 마음씨고운 지성인이였던지 회사를 경영해 온 재료도 제공하고 통계 표도 그대로 내주어서 아주 전업성이 강한 론문이 되였다. 그런데 결구상에서도 그렇고 한어문재료번역에서도 어수선한데가 많아서 마음먹고 잘고쳐주었다. 그러다보니 어데서 절취한것이 아닌가 의심을 받게 되였다.  분명 한국사람이 대신 써준게 아니면 학생이 한국어를 이렇게 잘구사할수 없다는게 공동한 의론이였다.      눈치를보니 말썽이 일것같아서 애를 가만히 만나서 다시한번 론문의 재료출처와 표절여하를 확인해 보았다. 초고를 보며 자신이 낑낑거리며 조합한게 느껴진대로였다. 그래서 답변시 준비할 골자를 알려주며 심리준비를 잘시켜놓았다. 그애의 부탁대로 제일 마지막 사람으로 답변하게 만들어놓았는데 그런데 질문이 점점 까다로워지고 깊어가자 너무 긴장해서 말도 제대로 못하더니 급기야는 교단에 쓰러졌다. 마음이 안정된다음 계속 답변을 진행할것인가가 문제였다.     역시 내가 주제넘게 사람까지 쓰러졌는데 통과시키는게 좋겠다고 의견을 내놓고 애들더러 숙소로 데려가라고시켰다.  정신을 차린 녀자애는 자기론문을 통과시킨다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엉엉울며 나갔다. 심사위원들이 마무리작업을 하고 교실을 나오는 데 한 녀자애가 다가와 귀속말로 왕혜가 위생실에 들어갔다가 쓰러진것을 금방 발견 하고 남자애들이 학교위생소로 데려갔다고 알려주었다.      비록 내학생이 아니지만 내가 공연한 짓을하여 애를 더 난처하게 만들었다고 생 각하니 그냥 스쳐지날수 없었다.  위생소에 찾아가니 점적주사를 맞고있었다. 론문답 변에 통과되였으니 시름을 푹놓고 안정하라고 당부하고 돌아서서 나오는 내마음이 참으로 별스러웠다. 학생애들로 말하면 졸업장을 타느냐, 4년 공부가 나무아미타불이 되는냐 하는 운명과 직결되는 문제였던것이다.                                                                                                                  3.         자승자박이라할가, 그동안 내가 학교유관부문의 “요시찰인물”이 된 사건들이 한두가지 있었다. 첫학기에 기말시험지를 채점할 때 손에 쥐이는대로 푸른 색원주필로 채점했는데 별탈이 없었다. 다음학기에 학교독도조에서 시험지를 매기는 요구를 개혁 하였다는것을 모르고 그냥 푸른원주필로 점수를 매겨나가는데 교연실조주임이 와서 반드시 빨간색으로 고쳐매겨야 한다고 하였다.     그러다보니 시험지가 얼룩덜룩해졌다. 그런데 그게 문제가 되여서 계주임이 호출했다. 시험지가 이렇게 어지럽고서야 상급에서 내려와 검사할 때 어떻게 내놓는가고 핀잔하였다. 무어라 해석할가 하다가 성근하게 접수하고 다음부터는 각별히 주의하겠노라고 다짐했지만 결국 좋은인상을 주지못한것이 분명했다.     사람은 어디에서 무슨일을 하든 상급에에 잘못보인다는것은 명랑한 일이 아니다. 아닌게아니라 학기말에 나의 아량으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사건이 생겼다. 원래 나의 시험지에서 문제가 발견되였던것이다. 뒤에 작문에서는 28점이라 매기고 시험 지머리에 성적종합란에 26점이라고 쓴것이 하나이고 점수를 합할 때 76점을 78점 으로 올린게 용납못할 엄중한 착오였다. 교연실주임이 찾아와서 이건 학교에서 엄중하게 처리하는 문제여서 반성문을 써 야 한다고 하였다. 한심했다. 반성하면 끝인가했더니 그저 반성으로 끝나는것이 아니 라 벌금해야 하는데 약2천원은 될것이라고 하였다. 서로 시험지를 바꾸어 검사 하면서 최후로 핵실해야 한다는 규정대로 차선생이 나의 시험지를 검사했지만 문제를 발견하지 못하였기에 역시 검토서를 써야 한다고 하였다. ㅡ 여보, 차선생, 문제는 내게서 생긴것이니까 그따위 반성문인지 검토서인지 절대 쓰지마오. 아무리 따궁하러 온 사람이라고 왕창 더럽게 보고있잖은가? 헝!     마음이 워낙 어질고 참해서 법이없이도 살사람인 차선생은 그저 허구프게 웃고나서 검토서를 쓰느라고 끙끙거리는것이였다. 나도 쓰기로 작심했지만 검토서가 아니 라 의견서였다. 역시 한어수준이 두둑한지라 정작 쓰자니 말이 잘어울려지지 않았다. 이렇게 쓴것을 보면서 더구나 우습게 볼것이였다. 그러나 후퇴아니면 돌진이다.     후과를 고려하고 작심하고 쓴것을 바쳤더니 새로온 녀자계주임이 나를 불렀다. 무슨검토를 이렇게 하는가고 힐난했다. 나는 독도조에 바치는 검토가 아니라 교장이 나 총장이 보라고 쓴 건의라고 언명했다. 내가 너무 강경하게 나오자 장주임이 타협조로 나왔다. 벌금은 자기가 협상하여 면제하도록 노력하고 안되면 상징적으로 할터이니 문제를 크게 만들지 말자고 하였다. 새로온 령도에게마저 처음부터 득죄할 필요는 없겠다고 생각하고 사업에 근엄하지 못하여 차질이 빚어진 부분은 책임지며 재발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반성했다.     원래있던 계주임인 왕씨가 왜 영어계로 옮겨갔는지 몰라도 내게는 불행중다행이였다. 황당무계한 일로 왕주임과 대전한후 사이가 껄끄러웠댔다. 지난학기말이였다. 기말시험사업회의에서 학생들이 기말시험담보서를 썼는데 본과학생들이 약속이나 한 듯이 아래에 날인하지 않았다면서 사작규칙을 모른다는것은 불가사의하다고 하였다. 실용사작과는 왜설치했냐며 사작교원에게도 일정하게 책임이 있다고 하였다.     비록 이름을 찍지 않았지만 분명 나를 두고하는 비평이였다. 대학3학년생들이 날자를 써야한다는 상식을 몰라서 쓰지못했다는 말은 비론리적이다. 생각할수록 속이 부글거렸지만 참았다. 밸대로면 당장일어나 대성질호하고 싶었지만 여러사람앞에서 령도를 존중하지 않는다것은 되돌아와 나의 인격문제이기도 했기때문이다.     회의가 끝나서 왕주임이 한 얘기가 나를 두고한것이 아니냐고 확인해 보았다. 모두 그렇게 리해했다고 하였다. 허선생은 롱담삼아 (어떻게 사작지도를 해서 대학생들이 날자를 쓸줄도 모르게 만들었는가?)고 시까슬렀다. 사람이 늙으면 노여움이 많아 진다니 진짜 노여워서 안정할수 없었다. 온밤 생각해보아도 속이 내려가지않았다. 나는 왕주임과 대전하기로 작심했다. 그저 그런것처럼 당할수가 없었다.     이튿날 아침, 일찍 등교하여 학생들한테서 정황을 료해했다. 어제 교원대회에서 있었던 일을 간단히 말하고 왜들 그랬느냐고 했더니 아이들이 웃었다. (교수님, 웃기 지마세요. 그게 어째 선생님 잘못인가요? 학기마다 그런 형식적인 각서를 쓰는것이 시끄러워 고의적으로 안썼는데요…) 하면서 참으라고 말렸다. 내가 문제를 깨야 한다며 그길로 왕주임의 사무실로 쳐들어갔다. ㅡ 미안하지만 어제 회의에서 그런 말을 한 론리가 무엇입니까? ㅡ 엉? 선생이 팅리가 차해서 잘못들은것이지 선생을 땐밍해서 한말이 아닌데. 보통교원이 이렇게 계주임실로 쳐들어오면 됩니까? 정말 가소롭군요. ㅡ 가소롭다구요? 왕주임을 인간적으로 그렇게 보지 않았는데 나도 정말 가소롭습니다. 당신이 계주임이지만 이 학교에서의 분공일뿐이고 별로 대단할것도 없습니다. 다같이 따궁하는데 피차일반이 아니겠습니까? 인격은 동등한것입니다.     내가 하도 험악하게 나오니 왕주임은 내가 잘못들은게라고 한발 물러섰다. 그쯤하면 심리작전의 목적에 거의 도달했으니 하급으로서 너무 각박하게 나갈필요가 없 었다. 나는 엎지른물을 담듯이 례의적으로 사과하고 교연실로 돌아왔다. 미구에 왕 주임이 공선생을 데려갔다. 진교수가 건강관계로 공선생에게 자리를 내주고 귀향하 다보니 공교수가 선줄군교수로 군림하였다. 왕주임에게 갔다온 공교수 힐책했다. ㅡ 왕주임칸에 쳐들어가서 노했다면서? 사람이 령도를 존중할줄 모르면 그게 어디 례의를 아는 사람이오? ㅡ 글쎄요, 미안하긴 한데, 그날 당장에서 말할것을 참은 나입니다. 령도도 먼저 사람이지요 사람이 인격존엄을 내놓고 존재할 리유가 없지않습니까? 나도 심리작전의 각도에서 벌린일입니다. 뭐, 먹고살데가 없는 령감쟁이가 빌어빌어서 선생질하는것도 아닌데 뭘 꿀릴일이 있다구, 조선족이라고 우습게 알지말라구 한번 침을 놓았을뿐… ㅡ 그런들 칼자루 쥔 사람이 이기지 당신이 이길같소? 결과가 좋지 않다이 ㅡ 결과가 어떤데요? 나도 각오하고 있습니다. 기껏해야 계약을 파하고 사퇴시키 기는것밖에 있습니까? 아따, 그만두라면 그만두면되지 하늘 무너질일이라구, 그렇지 않아도 정이 싹떨어졌습니다. 그리고 내가 사업착오를 범하지 않는이상 먼저 계약을 파괴하지 못합니다. 내가 배상금을 받아내려 할테니까요     그런 일이 있은후 왕주임은 영어계로 넘어갔던것이다. 아무튼 나로서는 나쁜일이 아닌데 새로온 장주임에게마저 득죄하게 되였으니 “내 전도”가 스스로 내다보이였다.    …년말에 가서 벌금이 체현되는가 어쩌는가 지켜봤더니 과연 로임에서 벌금을 뗀 흔적이 없었다. 벌금은 당하지 않았지만 다른데서 봉창을 당하였다. 역시 칼도마위에 고기는 주인이 베기에 달린것이다. 새학기 첫달로임명세표에서 기본로임이 60원 줄어있었다. 차선생도 50 원이 줄었다면서 두덜거렸다. 칼자루 쥔놈이 이긴다고 하지만 이건 단순히 일년에 720원을 손해보는 문제가 아니였다. 뒤통수를 맞아도 까닭을 알고 맞아야 어째서 아픈지 알게 아닌가     계주임을 찾아 원인을 따지니 자기는 모르는 일이라고 하였다. 아마 독도조에서 평의하고 교무처에서 정한것이 아니면 인사처에서만 할수 있는 일이라고 발뺌했다. 차선생도 상급을 찾아가면 함께 가자고 하면서 묻어나섰다. 인사처의 간능한 녀과장 은 자기도 모르는 일이라고 하였다. 아마 계에서 정한것이 아니면 독도조에서 결정 한것을 재무처에서 실행한것 같다고 하였다.     역시 올리밀고 내리밀고 회피하는 판이였다. 속에서 주먹같은것이 울컥 치밀었다. 비록 3년합동을 하였지만 평양감사도 제싫으면 그만이라는데 이건 무슨 감사자리도 아닌데 그만두면 끝이지하고 성이 독같이 올라있었다. 하지만 명철보신하며 교묘하게 둘러맞추는 인사과장을 나의 한어수준으로는 이길수 없었다. 저절로 한심해졌다.     결국 구체적으로 로임지불규정을 밝히지도 않은 계약서에 서명한 내가 어리석었다. 이제 와서 법률적 근거를 찾을수도 없었다. 그렇게 해먹은 사람들이 우둔할리 없었다. 그래서 기껏 했다는 소리가 단순히60원문제가 아니라 인격과 존엄문제이고 학교측의 신뢰문제라고 꼬집었다. 그들이 가려워나 했으랴, 결국 나만 불평불만이 많은 사람으로 락이찍혔을것이고 형식이 다르게 벌금을 봉창한 그들이였다.                                                                               4.       2010년 상학기가 거의 끝나가서 학생들은 졸업론문을 준비하느라 바삐돌고 연구생시험을 칠 학생들이 바지런히 사무실을 찾아들었다. 어느날 참고참느라 배배꼬 여있던 밸이 활풀리며 끝내 분노로 터져버린 사건이 발생했다.     그날, 연구생시험을 준비하는 리몽이란 녀자애가 나를 찾아왔다. 왜소한 몸집에 총명하게 생긴 그애는 싹수가 보이는 우수생이였다. 시간마다 제일앞자리에 앉아서 한국문학사강의를 받으며 때론 내학식으로는 당장 대답할수 없는 까다로운 문제를 들이대군해서 저으기 괘씸하게 여기기도하던 애였다. 그런데 후에 그애의 작문을 읽고나서 그애에 대해 호감을 가지게 되였다. 그래서 이것저것 돌봐주었고 방학에 집에 돌아갈때마다 낡은옷보따리서껀 챙겨보내기도 했다. 조선족애들같으면 자존심이 상해 고깝게 생각하련만 엄마. 아버지가 잘입겠다고 고마워하는 그런 순진한 애였다.     유방시의 시교에서 온 애였는데 아버지는 매일 집수리를 하는 집들을 찾아다니며 모래마대랑 메여올리며 푼돈을 벌어서 아이의 소비돈을 마련하는 처지였다. 자기도 여름방학이면 아버지를 따라가서 모래마대랑 춰주며 아버지가 어떻게 인생고에 모대 기는가를 페부로 느끼고 연구생까지 나와서 성공하려고 결심했다고 하였다. 워낙 공부를 잘해서 3년내내 장학금을 타서 공부하고있었다. 내가 그런 가정형편으로 연구 생공부까지 할수 있겠느냐고 걱정했더니 장학금을 타서 공부하며 한국어를 철저히 장악하겠노라는 기특한 처녀애였다.     그러던 리몽이가 며칠째 수심이 가득한것을 발견했다. 무슨 어려움이 있는가고 캐여물으니 청도대학에서 조직한 정치보도반에 보명비가 300원이고 보도받는 기간 려관에 들어야 하는데 학교서 내준다는 장학금이 나오지 않아서 근심이라고 했다. 나는 먼저 점심이나먹고 사무실로 오라고했다. 나의 정성이라며 돈천원을 건네주었다. 사양사양하다가 천원까지는 필요없다며 먼저 5백원을 빌려쓰고 장학금이 나오면 꼭 갚겠다는것을 억지로 밀어주었다. 마음이 여린 녀자애는 그만 눈물이 글썽해졌다. 그런 사연이 있는지라 리몽이는 나를 각별하게 따랐고 혼자 해결할수 없는 문제 이면 서슴없이 찾아왔다. 그날도 “춘향의 인물성격의 의의”라든가 “카프문학의 문학 사적 지위”라든가 하는 문제를 300자이내로 함축해달라고 찾아왔다. 해답을 거의 작성하는데 공교수님이 다가왔다. ㅡ 리멍, 니 깐썬머라이야, ㅡ 네, 한국문학사에서 모를 문제가 있어서 최교수님을 찾아… ㅡ 아이야, 리멍,니야니야, 니쩌양쒜시 쩐머코쌍 앤쥬성아? 쒜시야 잉가이 쯔시마, 하이유, 샌자이쓰 치머코스라, 치머코스치잰 쒜성 뿌넝 수이밸 진쬬앤스, 니메이 칸잰 먼상테더 즈툐마? 깐콰이 추취, 뿌요 짜이라이, 쯔도마?     기말시험 때 학생들이 교연실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것은 틀리지않는다. 졸업 생은 먼저 시험이 끝나서 아래학년 학생들의 기말시험과 관계없는 상황이다. 그러면 자기를 찾아오는 학생들에게는 왜축객령을 내리지않는가? 제무안에 취해 울상이 되 여있던 리몽이가 교연실을 나갔다. 공교수가 왜그렇게 나오는지 모르는바 아니지만 참기로 했다. 그런데 허선생이 오래동안 벼르던 말인듯싶은 느닷없이 내뱉은 말이 나의 분노의 화약고에 불을달았다. ㅡ 그래 선생님은 학생들이 다 선생님을 찾아오니 영광스럽습니까?     그야말로 자다가 남의 다리를 긁는격이였다. 어감에 둔감한 내가 아니였지만 한동안 실어증에 걸린듯 어안이 벙벙해졌다. 마침내 감각을 되찾았다. 곱게 생긴데라 곤 한군데도 없는 얼굴, 공자가 겉이자 속이니라했는데 남자의 생김새가 성격을 내비친다면 녀자의 생김새는 태생적성품을 말해준다고 할수 있겠다. 막생긴 얼굴처럼 심사도 비틀어져있다는것은 슬픈일이다. 잘나지 못해도 품성 하나로 사랑스러운 녀자는 확실 히 많다. 그러나 동시에 나쁘게 변해버린 녀자는 나쁜남자보다 더 나쁘 다. 과연 저런 녀자를 두고 하는 말인가? ㅡ 그게 무슨말이요? 그래 학생이 선생을 찾아오는게 비정상인가? 그래 내가 학생들을 찾아오라고 사탕을 주며 유혹해서 오고 광고해서 찾아온단 말이요? 하긴 교원출신이 아니니까 잘모르겠지만 그렇게 말하는게 아니오. 정말 그렇게 안되여서 그렇지 교원으로서 학생들이 많이 찾아오는 영광과 보람이 또 있을것같소? ㅡ 조용히 시험지를 매기겠는데 시끄러워서 그럼다. ㅡ 시끄럽다구? 그럼 학생들이 허선생을 찾아올때는 어떻소?     그 무슨 개뜨물먹는소릴 하는가? 라는 말이 튀여나오다가 입술에 걸렸지만 복창이 터질노릇이였다. 분위기가 점차 험악해지자 공교수님도 차선생도 약속이나 한듯이 정말 시끄럽게 느껴지더라고 집중공격을 해댔다. 오랜 지기였던 차선생마저 그렇게 나오는데는 실망이였다. 나는 떨리는 주먹을 주체못하고 사무상을 내려쳤다. 쾅- 하는 소리에 모두 와뜰했다. 사무상위에 놓은 5미리메터짜리 유리가 덜러덩했다. ㅡ 왜들 모두 개×같이 노우? 너무 그러지맙시다. 보자보자하니 공선생님이 내가 함수출신이라고 없신여기는것 같던데 당신들 그리 높이계시여 해내싼 일이 뭔데요? 사람마다 제특장대로 이런저런 성과들을 올리지만 그래 내가 당신들과 높이를 겨 누오? 자리를 다투오? 다같은 연길서 와가지고 왜들 가만히있는 사람을 잡지못해 지랄이요? 티각태각하면 저옆칸에 한족교원들이 비웃는다이. 놀아두 더럽게… ㅡ 당신이 누구를 감히 개×같다고 욕하는게요? ㅡ 바루 당신같은 사람을 개×같다고 했소, 함수때 스승이라구 존중해주었더니 바루 대단한것처럼, 나이는 자치동갑이라구, 뭐가 그리잘나서…계약이 끝나면 더러 워서도 갈것이니 콱 잘해 먹으시게나. 그러나 가기전까지는 너무 그러지맙시다.     나는 제분을 못이겨 목이 꽉메면서 말을 더잇지못하고 문을 차고나서니 학생몇몇과 옆간에 조주임이랑 문가에 서있었다. 대문밖에 나가서 련거퍼 두대를 피워도 분이 삭아지지 않았다. 대노한다는것은 다른 사람의 잘못을 가지고 자신에게 성풀 이하는것을 의미하지만 언제 그런 사치한 철학까지 풀것인가? 다시 교연실에 들어와 허선생에게 따졌다. ㅡ 허선생, 아까 한말을 다시 해보오, 뭐 영광스러운가구? 영광이란게 뭔데?     내가 너무 험상궂은 얼굴로 들이닥쳐서인지 허선생은 대꾸를 하지않고 시간보러 총총히 나가버렸다. 나도 교수청사앞 련못가에 나앉아서 담배를 피우며 (교정내에서 담배를 피우다 들키면 200원을 벌금하지만) 방금 있었던 일들과 자기의 인간상을 돌이켜 반성해 보았다. 내가 좀 과격하고 거칠게 나온것은 있지만 원인제공도 생각해 보면서 자신을 변명해보기도 하였다.     나로서는 분노에 리유가 있다고 자기를 변명하지만 충족한 리유는 아닌것이다. 일은 왕왕 분노로 시작되여 자괴감으로 끝나는 법인줄을 모르는 내가 아니다. 분노 속에서도 온화함을 잃지 않는 사람은 확실히 현자이리라. 그러나 나는 현자가 아니다. 누구나 세가지 성격이있다. 드러내고있는 성격, 가지고있으나 드러내지않은 성격, 자기가 가지고있다고 생각하는 성격 이 세가지인데 나는 드러내지 않은 성격을 로출 시킨것이라면 허선생이나 공선생은 원래부터 드러내고있는 성격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뒤집어진 부아통을 바로 잡을수 없었다. 아무튼 나의 내심의 독립왕국이다.     나는 퇴직3년을 앞두고 기구간정인지 뭔지에 걸려 학교에 밀려나온후 7년남아 연길시내에 사립학교들을 전전하며 저희들 마음에 들지않는 교원을 쫓아내는 학생 들도 보았고 산지사방에서 초빙된 교원들 사이에서 음으로 양으로 벌어지는 알륵도 겪어았지만 공선생같은 사람은 처음이다. 세상을 살다보면 만나서 소중하게 느껴지는 사람들이 있고 이러저러하게 섞인것을 후회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지만 말이다.    후에 아이들한테서 들었지만 그날 리몽이가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책상에 엎디여 한시간이나 소리내여 울었다는것이였다. 자존심이 한창 살얼음같은 녀자애가 그렇게 상심하였다는것은 이상할것 없었다. 일심불란 공부하는데 “그렇게 공부하고 어떻게 연구생이 되겠는가?”고 한 한마디가 된서리를 안겼을것은 당연하다.     원래 록취점수가 높은 해양대학인지라 다른 애들은 신심이 없었던것도 있었지만 리몽이 하나만이라도 붙으라고 밀어주었다. 그런데 공선생과 허선생은 그래도 깊은 골을 쓰는데는 남자가 낫다며 연변대학에 지망까지 낸 조수란 남자애를 설득해서 지망을 바꾸게 했다. 조수도 리몽이와 앞서거니 뒤서거니하는 우수생이였지만 한학 교내에서 경쟁자를 만드는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였다. 보다못해 한마디했다. ㅡ 글쎄 남자에게 우점이 있을수도 있으나 리몽이 하나만이라도 붙겠는지 알수 없는 판에 한학교에서 경쟁자를 내세우는것은 잘하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오. 허선생이 나의 말을 되받아쳤다. ㅡ 리박사에게 조수를 제자로 받으라고 청탁했더니 같은 값이면 분홍치마라고 남자면 더 좋다고 합디다. 그리고 될수록 돌봐달라고 했더니 그러마하고 답복했는데 리몽이만 해양대학에 가야 한다는 법이 있습니까? 나는 그렇게 나오는 허선생과 더할말이 없어 토를 달지않았다. 범이 제흉을 하면 온다더니 그런판에 조수가 들어왔다. 자기를 적극천거하는 허선생인지라 자주 찾아 와서 조언을 듣군하는터였다. ㅡ 문학에 관한문제는 다른 선생을 찾을것도 없이 저 차교수에게서 지도받으면 되고 어법은 공교수에게서 지도받으면 돼요. 알아들었어요?…     내가 한국문학사를 강의하고 사작과랑 맡았다해서 꼭 나만이 문학과를 지도해야 한다는법은 없지만 작심하고 공공연히 나를 무시하는것이 분명했다. 아녀자와 다투면 사내대장부가 아니렸다. 아무나 붙으면 좋은일이니 내명예, 네명예를 따질필요는 없다. 사람은 누구나 다 사심이있다. 내가 리몽이를 밀어주는 사심이나…                                   인간의 마음이란 물과 같은것이여서일가? 공교수가 오는것을 그렇게 반대하던 허미련선생은 녀자의 간능한 처세술로 어느새 령도분이 된 공교수와 단짝이 되여졌다. 그러는 양자를 보며 인간의 마음이 아무리 무상하다해도 왼고개가 비탈리여 바로 볼수 없었다. 그것이 사는데 제일 기술인지 나는 모른다. 다만 표리부통과 아첨하는 성질은 인간의 넋중에서 가장 너절하고 가련한 넋이라는것만을 알고있을뿐이다.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속에서 스스로도 괴물이 되지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우리가 괴물의 심연을 오래동안 들여다 본다면, 그 심연 또한 우리를 들여다 보게될것이다.ㅡ니체 ”                                                                               5.       또 말썽많을 졸업론문답변을 할 날자가 코앞에 다가왔다. 해마다 7-9명이 차례졌는데 이번에도 말썽이 나자고 그랬는지13명이나 되였고 론문초심도 공교수님이 친히 맡으셨다. 달걀에서 가시라도 찾아낼 심사인 공교수가 심열하는 론문에서 차질이 발견되지 않으면 오히려 비정상이다. 역시 동작은 같았다. ㅡ헝, 쩌쓰 썬머화야? 찐쓔웨? 김소월도 모르는 주제에 무슨 론문을 쓴다구?     말썽이 된 론문은 흑룡강 이춘에서 온 풍첩이란 녀자애의것이였는데 이미 석가장에서 직장을 찾아서 출근하고있었다. 표지에 오타가 나타난것은 확실히 엄청난 실 책이다. 변명으로 들릴지 몰라도 내가 소홀한것도 아니였다. 표지를 찍고 장정하여 심사위원회에 바치는것은 학생의 몫이였다. 창피한대로 다가가보니 한자 “金素月”은 제대로 썼는데 아래 한국어번역이 “김수월”로 되여있었다. ㅡ 이애가 잘못한것은 사실이지만 학교에 남아있는 친구에게 부탁하여 찍는다고 하더니 이런 실수가 생겼군요. 다 내가 소홀했던 탓입니다. 하지만 론문에는 김소월 이 김소월로 되여있는데 그렇게 말하면 결국 내가 김소월도 잘모르면서 론문지도를 했다는 뜻으로 들리는군요. 작정하고 한말이라도 그렇게 말해서야 되겠습니까? ㅡ 그래 내가 없는 사실을 말했소? 지도교원은 뭐하고? ㅡ 알다싶이 학생이 론문을 찍어 먼저 심사조장에게 바치게 되여있지 않던가요? 그다음 지도교원에게 나누어주고….아직 나의 손에는 들어오지 못해서 표지가 어떻게 되였는지 보지 못했습니다. 이건 선생님도 알지요? ㅡ 어쨋든 읽어보나마나 형편없는 논문이오, 그 학생을 오라고 해서 다시 찍소 ㅡ 표지를 몇장 찍는건 간단한데 석가장에서 일하는 애를 차비를 팔며 왔다가라 는것은 무리입니다. 하루 앞당겨 오라고 전화는 하겠습니다만은… ㅡ 당신 똥집대로 하구려.      내가 공교수를 들으라는듯 성내며 하루앞당겨 오라고 호통쳤더니 풍첩이가 밤차를 타고 헐레벌떡 달려왔다. 학생이야 어떻게 오해하든 공선생이 듣는데서 호되게 닦아세웠다. 내가 전에없이 콩팔칠팔하는 속심을 풍첩이가 꿰뚫어보았다면 아마 웃다 가 눈물이 다 나왔을것이다. 첫장부터 나쁜인상을 준 론문이 무난하게 통과되게 하려고 풍첩에게 잘 반성하라고 일렀다. 깜찍하게 생긴 그대로 애교를 발라올리며 사정 사정했지만 엄연한 도사님의 표정은 종시 풀리는것 같지않았다.     아닌게아니라 풍첩의 론문은 답변에서 통과되지 못했다. 짐작이 갔지만 그 원인을 물었더니 어처구니없었다. 답변할 때 심사위원들의 질문에 성근하게 답복하지 않 았을뿐만 아니라 태도가 나빠서 젊은교원들의 의견대로 통과시키지 않았다는것이 였다. 풍첩에게 물어보니 밸은 났지만 겉으로 드러내진 않았단다. ㅡ 아니, 답변시 학생의 태도가 인상문제이지 론문자체와 무슨 관계가 있다는것 입니까? 뭐, 꿍관쑈제를 뽑습니까? 론문의 질을 심사합니까? ㅡ 나혼자 결정한 일이 아니오? 젊은교원들이 다 안된다는데… 시비해봐야 벽을 마주하고 소리치는 격인지라 더말하지 않고 소위 태도를 보았 다는 젊은교원들을 찾아가 캐여보니 자기네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하였다. 결국 풍첩이는 며칠후에 있게 되는 보충답변을 위해 석가장에 갔다가 다시오지 않을수 없었다. 사리에 밝은 교연실주임이 작정하고 그번에는 공선생을 참녜시키지 않고 자 신이 조장을 맡아 심의하였다. 사실 론문자체는 문제가 없어서 우수를 맞았다…     …연구생시험이 끝나는날 리몽이가 신심이 있다면서 집에 돌아가 아르바이트를 하겠다고 전화를 걸어왔다. 비록 내명의하에 학생은 아니지만 부디 붙어줍시사하고 속으로 빌었다. 방학을 앞두고 교연실에서 회식을 하던 날이였다. 어느새 아홉시가 다되였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이밤에 누가 전화하는가고 의아쩍게 생각하며 받아보니 은방울을 굴리는듯 고운목소리가 귀속을 파고들었다. 리몽이였다. 인터넷에서 찾아 보았는데 여덟번째 성적으로 록취되였다는것이였다. 나는 너무 기뻐서 전화도중에 좌중에 희소식을 전했다. ㅡ 희소식이오. 리몽이가 여덟번째 성적으로 해양대학에 록취되였다오! 그런데 모두 들었는지 말았는지 아무도 반응이 없었다. 내가 맹물에 명태대가리 놀듯이 혼자 찧고까불어댄셈이다. 자신이 애써가꾼 나무가 꽃이 피지않아 심통이 났 더라도 그만한 신분들이면 아량들이 있어서 겉치례라도 “아무튼 잘되였구만!”하고 말하려니 했는데 웬걸, 무슨 헛소리를 줴치는것으로 간주했던지 덤덤해있었다.     너무 한심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지 않을수 없었다. 누가붙으나 모두의 기쁨이고 자랑이 아니겠는가? 사립대에서 명성이 뜨르르한 해양대학연구생, 그것도 한국어 전공의 연구생이 나온것이 여간한 일인가? 나도 그들을 시까슬러주고싶었다. 이튿날 낮에 걸어도 될것을 그 전해에 해양대학연구생으로 된 조경연이란 녀자애에게 전화 를 걸었다. 리몽이란 후배가 연구생으로 가게 되였으니 언니처럼 잘돌봐주라고 하지 않아도 될 부탁을 했던것이다. 역시 얄팍하기로는 그나물에 그밥인 나의 심사이다. 조경연이란 녀자애는 첫해에 영어성적이 3점 모자라서 록취되지 못했는데 청도 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다시 복습해서 붙은 아이였다. 그애가 록취되였다고 소식을 전해왔을 때 내딸년이 성공한것처럼 기뻣다. 집에갔다가 돌아와서 인사드리겠노라고 하던 그애가 어느날 무엇인가 꽉 채운 커다란 비닐주머니를 들고 집을 찾아왔다     락화생이였다. 할머니가 가꾼것인데 한알한알 골라서 넣은것이라며 맛을 보라는 것이였다. 눈물이 찔끔 나올번했다. 하남성의 먼 시골한끝에서 뻐스타고 기차를 갈아 타며 오다보니 비닐주머니는 볼품없이 더러워져있었다. 조선족처녀애들, 더구나 대학 졸업생이라면 말만 들어도 천정에 나붙을 일을 조경연이란 처녀애가 한것이다.     늘 옷차림이 수수하고 얌전해서 겉볼바엔 조금 어리숙해 보이지만 당당한 대학생이다. 녀애가 남의 눈치도 보지않고 락화생주머니를 들고 찾아왔다는 사실 자체가 나를 감동시키고도 남았다. 자기가 연구생이 된데는 내덕분이라고 했지만 기실 내가 해준 일은 별로 없었다. 인정이란 주고받는것이요 그 어떤 대가를 바라고 주는것이 아닌것이다. 인정많은 녀자애들이 많지만 경연이가 더 각별하게 가슴에 새겨졌다.     이야기가 될라고 그러는지 새록새록 사건들이 터졌다. 아니, 터진게 아니라 바보스러운 내가 엮었다고 해야 더 적합할것이다. 신년차야에 맥총장이 교내의 로교수님 들을 위로한다면 학교초대소에서 연회를 차렸다. 미구에 료리들이 들어오고 주연이 시작되였다. 칸칸이 돌아다니며 술을 붓고 오는지 총장께서 들어오더니 내옆에 빈자리에 앉았다. 수장어른을 모신지라 모두 어줍은 표정들을 짓고있었다. 술이 몇순배 돌자 맥총장이 이 기회에 좋은 건의들이 있으면 제기해달라고 하였다.     아무도 감히 입을 열지 못하고 서로 눈치들만 보았다. 선줄군의 보직에 오르기전까지는 학교의 이런저런 일이 다 눈에 차지않는듯이 불평불만이 제일 많던 공선생쯤 해서는 건설적인 건의를 말씀드릴듯 싶기도한데 만면춘풍이 되여 좋은소리만 하고 있었다. 아첨기가 줄줄 흐르고있었다. 돌고돌다가 맥총장이 인사치례로 나에게 몸을 돌리며 좋은건의가 있으면 서슴치말고 제기하라고 하였다.     물론 내가 나설자리는 아니지만 아무도 말하지 못하는 문제를 내가 말하리라 작심하고 썩잘하는 중어를 답새기였다. 첫째는 뒤에서 의견이 방치같은 집세문제였 다. 당초 초빙할 때 가족을 데리고 오면 단독으로 숙소를 제공한다고 하였다. 그런데 정작 오고나니 40평방의 집은 107원을 내고 가외로 물세, 전기세, 취난비도 다 내게 되였다. 그렇고 그런 세상이니 내라는대로 다내며 살았다. 그런데 갑자기 집세가 네배로 올라서 430여원이 되고 취난비도 엄청나게 부쩍 올려버렸던것이다.     두번째는 무어냐고 하기에 매일저녁 자습전에 보통화훈련을 하는데 일주일에 하루나 이틀시간을 한국어훈련을 시키면 좋겠다고 하였다. 리유가 무어냐고 바투들이대니 말이 좀길어졌다.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들이 언어환경이란 과당수업 45분밖에 없으니 문법지식이랑 괜찮지만 대화는 아주 차한즉 보다더 한국어를 잘하려면 한국어 훈련환경을 창조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랬더니 아이들마다 엠피싼으로 한국노래도 듣고 또 학교의 어음실에서도 한국 어훈련을 하고있다고 했다. 총장이 그렇게 나오니 더 할말이 없었다. 기색을 보니 그리 밝지 않았는데도 마지막까지 말씀하시란다. 결과야 어찌되든 이미 빼든칼이니 그대로 거둘수는 없었다. 외국어는 본토언어를 많이 듣는게 좋으니까 매일 듣게 하는 뉴스시간을 한시간만 덜어서 한국텔레비를 볼수 있게 했으면 좋겠다고 하였다.      총장은 들었는지 먹었는지 열정적인 반응이 없더니 인차 자리를 떠나버리였다. 혼자 잘난체하고 입바르게 논 자신이 머절싸하게 느꼈지만 엎지른 물을 다시 담으랴, 애들의 한국어수준을 어떻게 제고시킬것인가 하는문제는 나같은 비둘기패가 관여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그게 내마음이고 내생각인데야 어쩌랴, 다행히 세가지 건의에서 한가지는 채납되였는지 새학기에 수요일마다 보통화훈련대신 한국어훈련 시간을 안배했다. 학생들을 위해선 잘한 일이나 입덕은 내가 입었다.                                                                             6.       봄이 왔다. 겨우내 회색꿈을 꾸던 교정이 깨여났다. 여기저기 잔디밭이 푸르러지고 나무들에 새싹이 돋는듯싶더니 어느새 연록을 물들이고있다. 교정의 곳곳이 부드 러운 연초록빛속에 생기를 띠고있다. 미구에 복숭아꽃이 피고 살구꽃이 하얗게 흐드 러지고 정향, 옥란, 무궁화, 사꾸라가 만개하여 향기롭다. 연못가에 다시 영어, 일어, 한국어 단어를 외우는 학생들이 랑랑한 글소리가 귀맛좋게 들린다.     봄은 그 자체만으로도 즐거운 계절이지만 주어진 생명이 또 한해 단축되는것에 민감한 로옹에게는 구십춘광도 그저 그렇다. 더구나 내일생에서 생각하지 않게 제일 재수없는 봄날이라 할가, 두눈을 펀히 뜨고 최면술에 걸린듯 완전히 바보가 되여진 봄이기도 하였으니말이다. 물론 그들로서는 스스로 멋스러웠을지도 모른다.       하루는 공선생이4월 23일에 길림신문사 “한국어촌”편집부에서 청도에 와서 백일장을 한다고했다. 이상했다. 그동안 “한국어촌”에20여편의 학생작문을 발표시 키다보니 편집들과도 련계가 잦은데 나에게는 왜전화하지 않았을가? 명색이 사작 교원이니까 결과적으로 내게 임무가 차례질터이지만 속이 찜찜했다.     2년전, 청도대학에서 있었던 첫번째 백일장에서 죽쩡이농사도 못지은 바람에 한편 부담이였고 한편 봉창을 하여 구겨진 체면을 세우고싶기도했다. 그때 어찌된 일이냐고 계주임어른이 싫은소리를 하던 일을 생각하면 공연히 속이 곯는판이였다. 그런데 별스러운것은 사작교수와는 아무상관도 없는 허선생이 열성을 내는것이였다. 숭어가뛰니 망둥이도 뛰는격인가? 아니면 달리깨비 춤추니 베졸배도 춤추는격인가? 아닌게아니라 공선생과 오가는말이 점입 가경이였다. 그러다가 말말간에 장을 빌듯이 첫번 백일장에는 어떤 제목이 났으며 어떻게 지도해야 하는가고 물었다. ㅡ 첫번에 빈탕치고나니 나도 파악이 없수다. ㅡ 그때는 그게 어디 선생님이 잘못인가요? 전미가 사작교원을 한것인데요.     하긴 그랬다. 나는 오던해 학기에 한국개황과 한국문학사를 강의하다보니 학생들의 글짓기수준에 대한 료해가 없었다. 그래서 월수대학에 리선생이 한국어를 배우는 대학생들의 작품집을 출판하자고 할 때 응낙하였지만 원고래원은 사작과를 맡은 전미 선생과 열독과를 강의 하는 진교수가 추천한 23명의 학생작문을 주물러서 보냈다. 그탓에 백일장에 내가 지도교원으로 가게 되였다. 명액이 하나인것을 잘하노라고 한명 더 달라고해서 둘을 데리고 갔는데 그만 하나도 걸리지 못하였었다.     나는 바보처럼 학교에서 먼저 선발대회를 하고 선수를 뽑는게 좋겠다고 속생각 을 말해버렸다. 그게 무슨 계시가 되였던지 며칠후 교내작문경연이 있다고 하였다. 내가 직접 책임질일인데 내가 너무 순진했다. 어느날, 계주임이 경연에 참가할 학생 들이 다왔는데 뭐하냐고 공선생과 허선생을 재촉했다.     그때까지도 편애와 객관성을 보장하느라고 아무상관없는 허선생에게 책임는 가하고 생각하며 작문지가 나오면 나에게 가져오려니하고 기다렸다. 그런데 웬걸, 경 연이 끝나서 허선생이 작문지를 자기가방에 쑤셔넣는게 아닌가? 그제야 무슨 감투끈 인지 어렴풋이 알아챘지만 하회를 더 기다려보기로하고 참았다. 분노와 불안에 대한 최고의 대책은 판단을 늦추는것이라 하였거늘…     이튿날, 드디어 공선생과 허선생의 고명한 작전방안이 드러났다. 명색이 사작교원인 나를 왕따시켜놓고 저희들끼리 할 작정이였던것이다. ㅡ 차선생님, 바쁘신대로 이 작문들을 보시고 골라내보세요. 그리고 공교수님도 이걸 보세요. 나혼자 온밤 읽어보았지만 그나물에 그밥같아서 결정못했어요.     나에게는 눈길도 돌리지 않았다. 그때까지 얼빤한 놈처럼 눈만 뒤룩거리던 나는 속에서 주먹같은것이 치밀었다. 그러나 참았다. “그래 잘들 해봐라” 아무일도 하지 않으면 공로는 없지만 적어도 말썽들을 일은 없다했거늘, 말썽이 많은 이 학교에서 차라리 잘되였다고 생각하니 분이 저으기 가라앉았다. 굿이나 보다가 떡이나 얻어먹을 일도없이 수수방관이 상책이 아니겠는가? 작문들을 심열하시는 모습들이 참 가소 로웠다. 이틀지나 생각밖에 허선생이 종이뭉치를 내책상우에 놓으며 지시했다. ㅡ 선생님은 따좐반학생들의 작문을 보고 선수를 골라보세요. 잔뜩 밸이 꼬여있던 내입에서 고운소리가 나올리 없었다. ㅡ 내가 왜 따좐반을 보아야 하지? ㅡ 선생님이 따좐반을 가르치지 않았는가요? ㅡ 내가 언제? 내가 맡았던 애들은 이미 졸업시험을 다치고 직업찾으러 뿔뿔이 헤여졌다는 사실을 몰라서 하는 말이요? 결자해지라했으니 시작한 어른들이나… ㅡ 그래도 작문선생이 아닙니까? 자기 책임은 다해야 하지요 ㅡ 무슨 개가 풀을 뜯어먹는 소리를 하는거요? 언제는 괄호밖이더니 지금와서는 작문교원리라구? 사람을 뭘로 보는거요? 난 싫으니 능자들이 알아서 하시지요. ㅡ 이게 우리가 결정한게 아니라 계주임이 그렇게 안배한것입니다. ㅡ 그래요? 그럼 계주임더러 선발하라고 하시지요.     …그러나 바보같은 나는 끝까지 고집을 부리지못했다. 손자놈을 소학교3 학년까지만 한족학교에 다니게 하여 한어를 제대로 배우게 하고 세번째 수필집이나 출판할 돈을 마련할가하는 욕심에 한 3년 더하려고 생각하던차 너무 삐딱하게 나오는것도 명지하지 못하였다. 20여편의 작문에서 두편을 골라내고 아래층에 전과반선생들을 찾아가 학생에 대해 료해했다. 과임들은 왕명명이란 애는 알지만 작문을 잘쓰는지 어 쩐지는 잘 모르겠다고했다.     담임을 찾아가니 아이가 학생회간부로서 공부도 잘하고 총명령리하다고 하면서 아이를 불러왔다. 곱살스럽게 생긴건 둘째치고 말하는 품을 보니 상상력도 괜찮은듯 싶어서 그애의 정황을 허선생에게 회보했다. 며칠지나서 무슨 꿍꿍이판인지 본과반 남자학생 하나와 전과반 명명이의 작문을 지도하라고 하였다. 수필한편도 발표해보지 못한 허선생이니 지도능력은 불보듯 뻔하니 벌써부터 물러설 역은 궁리를 하는 역은 수작이라고 비틀어 생각하며 두마디안짝에 여지없이 면박주었다. ㅡ 싫수다, 선수는 당신들이 뽑았으니 잘하시는 분들이나 하이소. 죄는 도깨비가 짓고 벼락은 고목이 맞는다고 성적을 따내면 다 당신들이 지인지감이 있어 성과를 따냈다고 할것이고 아무성과도 없으면 싫은소리는 고스란히 나한데 돌아올것이 뻔한 데 내가 무슨 넘쳐나는 바보인가? 처음부터 관계하지 않은게 불행중다행인데…     …그러나 결국 나는 작문교원으로서의 책임을 벗어나지못했다. 스스로 참 불쌍한 놈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임무를 맡기로했다. 역시 어떨궁이 사람을 죽인다고 혹시나 성적을 따내여 땅바닥에 떨어진 위신을 살릴수도 있겠다고 다시 검토해보았던것이다. 그들이 골랐다는 학생을 보니 그동안 신문에 작품이랑 발표하였고 개성이 강한만큼 사유도 독특하다고 점찍었던 대련태생 증효욱이란 녀자애는 후선인 명단에도 없었다. 그애를 제기하니 그래도 남자애들이 현장발휘능력이 있다고 우기였다.     작문지도란 속전속결로 해결할 일도 아닌지라 성과를 따내고보자는 야심으로 씹어서 먹여주기로 했다. 부르기좋은 개똥녀처럼 거의 공통제목이 된 “어머니”,“나의 친구”, “내고향”같은것을 씌우고 윤색해서 암송게 하였다. 그리고 시기가 봄인만큼 “봄”이라는 큰틀안에서 여러편 짓게하고 수개해주었다. 매학생이 열편도 넘게 썼다. 이만하면 먹은소 똥누듯 할것같아서 기대심을 잔뜩 부풀리고 청도에 건너갔다.      이튿날, 작문제목이 공포되자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본과반에는“봄날의 약속”외에 “내고향”이 났고 전과반에는 “내친구”가 첫제목이였다. 명명이가 쓴“나의 친구”는 착안점이 새롭고 주제도 선명해서 그럴듯하게 잘 다듬어주었던것이라 2등쯤은 가능하겠다고 혼자 좋아했다. 그러나 기대란 언제나 약속을 지키지 않는법이다.     공든탑이 무너지랴는 속담이 나를 비웃었다. 셋중에서 가작상에도 걸린애가 없었던것이다. 령도신분으로 간 공선생을 보기가 창피했다. 말은 교원탓인가 하면서도 “뭐, 네밑천이 그뿐인데 뭘어쩐다고…”하는듯싶기도 해서 식탁이 넘치도록 차려놓은 료리가 내입으로 들어가는지 목구멍으로 넘어가는지도 몰랐다.     기대에 못미치여 죄송하다는 아이들에게 무어라 말할수도 없었다. (나자신이 몸만 늙은게 아니라 창신정신도 볼장을 다봤구나…)하고 생각하니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시킨다는 속담을 떠올릴 리유도 없었다. 저절로도 한심해졌다. 학교에 돌아와서 공선 생이 어떻게 회보했는지 계주임이 즉시 나를 부르지는 않았다. 다행인가?     이튿날 여느때처럼 문학사를 강의하는데 별스레 긴장한 기색으로 이상한 눈짓을 하는 애들이있어 뒤쪾을 살펴보니 미리 아무연통도없이 영어를 하였다는 독도조에 녀선생과 역시 영어계출신이라는 장원장(내부적으로는 원래의 계를 학원이라 불렀 다)과 공교수님이 근엄하게 앉아계시는게 아닌가? 기분이 이상해지면서 심상치않은 징조를 련상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간, 죽으라고 소리질러도 무슨말인지 알아듣지 못할 사람들이 기껏 본대야 교수태도나, 수업분위기나 가늠할것이니 문제는 공선생이 그들에게 강의가 여사여사하다고 회보할탓에 달린일이였다.    느닷없는 참관교수를 공선생이 획책했는지 원에서 기습적으로 들이댔는지 알수 없었지만 공선생이 나에 대해 좋게 말할리 없다는것은 뻔하다. 다만 교원의 량심으로 공정하게 말해주기만 바랄뿐이였다. 마음은 그렇게 다잡았지만 심리준비가 없었던차 라 좀 당황한 가운데서 지어먹은 열정을 내였고 한마디 한마디에 근신하였다. 강의를 듣고 무슨 소득이나 있는지 그냥 나가는 그들을 보는 내마음은 씁쓰레했다.     까마귀날자 배떨어진다는 속담이 맞는지는 모르나 생각하지 않은 결과가 나온것은 사실이다. 이튿날 장원장께서 나를 오시라는 전갈이왔다. 별로 접촉이 없었지만 공연히 시뚝해하는 자태를 별로 곱게보아오지 않던 나이고 그녀도 나에게 일종 선입 견을 가지고 있었을게 분명한지라 차겁지도 뜨겁지도 않았다. 내가 쏘파에 엉덩이를 붙이기전에 본론적인 대화가 시작되였다. ㅡ 최교수님은 금후 무슨 타산을 가지고 있는지요, 말하자면 계약이 이번학기에 끝나는데 더 연장해서 할 생각인지요? ㅡ 글쎄요, 뭐 내가 더하자고해서 더할수도 없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ㅡ 아, 그러니까 더 있고싶다는 뜻인가요? ㅡ 그렇다고 할수 있지요, 학교에서 수요한다면 말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내가 여기에 온 개인적목적은 손자에게 한어를 잘 배울 기회를 만들어주려는것이였습니다. 유치원 3년을 다녀서 일반대화에 막히지 않고 글자도 적잖게 장악했으니 한족 소 학교에 붙어도 잘 따라갈것 같습니다. 그래서 가능하다면… ㅡ 아, 그건 선생님의 개인사정이고 우리 학교에서는 수요에 의해서 최교수를 더 초빙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러니 재초빙을 신청하지 않겠다는… ㅡ 그런가요? 그럼 그러세요. 학교좋을대로, 할말이 끝났는가요? ㅡ 최교수는 왜 그렇게 잘 격동합니까? ㅡ 하긴 내가 격동할 일도 아닙니다만. 그만하시죠, 그렇게 알고 가겠지만 한마 디만 하고 갑시다. 로동합동법에는 계약이 끝나기 두달전에 알리기로 되여있는데 넉 달이나 앞당겨 알리는 의도가 무엇입니까? 나 계약을 다시 맺지않는다는 그런 서명같 은걸 안합니다. 계약기가 지나면 자동해제되고 경제결산만 제대로 하면 끝인데 무슨 형식주의를 피우고 있습니까? ㅡ 너무 정서적으로 나올필요는 없fmg것 같습니다. 아무튼 맡은바 교수임무를 잘하기를 바람니다. 그리고 서명은 안하여도 본인에게 이미 알렸으니 됐습니다. ㅡ 공연한 근심이군요. 안나가겠다고 생떼질 쓸것같아 보였던가요?웃기지 마시오. 그리고 정서를 가지지 말고 공작을 잘하라는 말은 무른 론리입니까? 나는 학교에 책 임지는 각도에서 맡은 일을 끝까지 잘하려는게 아니라 학생들을 위해서 량심껏 잘 할 자신이 있으니 그런 부탁은 공연한것입니다. 잘해보십시요.     하긴 솔직히 말하면 나는 자존심이 무척상해 있었다. 사실 그동안 있는정력, 없는힘을 다내며 심혈을 쏟았건만 나중에 학벌이 없다는 조건을 내대니 입이 쓰거워질 뿐이였다. 엎친데 덮친다고나 할가, 하루건너 불쾌한 일이 련달아 터졌다. 새학기 교재를 합동하는 때여서 교연실조주임이 내대신 사작과를 맡는다는 허선생에게 사작교과서는 무엇으로 합동하겠는가고 물었다. ㅡ 최교수님이 그만두지만 이 선생님이 사작교재가 곧 나온다니 같은값이면… 허선생의 대답이 참으로 서리차고 맹랑했다. ㅡ 난 그런 책을 쓸 생각이 없소. 어디 책이 없다구, 쌔구버린게 작문교과선데… ㅡ 그래도 이 학교에 있던 선생님이고 잘아는 사람이 쓴것인데… 공교수님이 진지한 말씀이 계시였다. ㅡ 쪼주런나, 쬬커수마, 잉가이 런커로쓰 쯔지 쇈저야, 쩌쓰 타더 쵄리마… ㅡ 조선생, 그만두시오, 싫다면 말구,     내가 볼부은소리를 하였다. 허선생이 자기 수요대로 교재를 선택하는것은 나무랄 일이 아니다. 그러나 소위 작자를 앉혀놓고 그렇게 나오는것은 나에 대한 로골적인 무시였다. 너무 인정머리없다고 해야 하는가? 죄지은놈 볼기를 쳐도 사정을 본다는데 이건 대방의 자존심을 건드리려고 작정한 그의 언동은 자신이 얼마나 빈충맞고 아둔한가를 드러냈을뿐이다. 똥이 무서워 피하냐? 참기로 작심하였다.     그러나 더 분통이 터질일은 그후에 있었다. 3년간 사작강의를 하면서 얻은 체험으로《한국어글짓기지남》을 집필하였는데 흑룡강출판사에서 출판하기로 하고 출판 합동서까지 받아둔 상황인데 생각밖에도 책을 출판하지 못하겠다는 전화가 걸려왔다. 소식이란 참 빠르기도 하였다. 나는 그들에게 학교를 그만두게 되였다고 알린적이 없는데 그들이 어떻게 벌써 알았을가? 사람은 떠나가니 차물도 식는다더니…     출판합동서를 쓰자고 먼저 제출한것도 출판사인데 그렇게 나오면 법률적책임을 진다는것을 모르느냐고 했더니 사정을 좀 봐달란다. 원인을 물으니 이것저것 문제가  많다는것이였다. 좋은원고를 주어서 감사하다고 말하던 그입으로 그렇게 말할수 있 냐고 바투 들이댔더니 경제효익을 고려하지 않을수 없다고 한다. 참으로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였다. 결국 내가 교단에서 물러난다는 소식이 충격이였던 모양이다.     자존심이 상하여 분한 마음같아서 당장 법정놀음을 벌리고싶었지만 상급에서 동 의하지 않아도 어떻게든 출판하려고 올리뛰고 내리뛰고 한 자기의 진심을 생각해서라 도 부디 소송을 걸리지 말아달라는것이였다. 나는 출판법을 잘모르지만 마음만 먹으 면 얼마든지 꼴을 먹일수 있고 일정한 경제보상도 받을것은 뻔했다. 청도, 북경 등 지에서 변호사로 있는 옛제자들에게 문의해보니 무상변호를 해주겠다고도 하였다.      그러나  조선족끼리 말썽을 일구면 설사 내가 판결에서 이기더라도 별로 광채로운 일은 아닐것이다. (에라, 지는 놈이 이기는 놈이라던가) 나는 구겨진 자존심과 억울한 마음을 다리미질하다가 마음을 접었다…사람이 늙으면 무슨 일을 벌리기가 싫고 두려운법이다. 게다가 대단하지도않은 책을 가지고 남새스럽게 분주를 떨필요도 없 으니 한번 기편당한셈치고 소송을 포기하기로 했다.     그러나 백일장에 갔을 때 여러대학의 한국어선생님들에게 책이 곧나오니 많이 주문해달라고 청탁까지 한 나는 황통쟁이가 되였고 교내에서도 실속없이 으시댄꼴이 되였으니 맹랑하기 그지없었다. 내가 빈해에서 더 교학하지 못하게 되였다는 소식을 득달같이 전해주고 내책에 그렇게 관심을 쏟아준 자상한 분이 누군지 궁금했다.    꽃이 싫다면 닢에서 자고가지…하는 시조가 있던가? 사람은 자존심때문에 별짓을 다하는 법인지 교주에 있는 “明天学院”찾아갔다. 부원장이란 사람이 단마디에 받 겠노라며 면접강의를 시켰다. 85평짜리 집도주고 로임도 교수급으로 주겠다고 선선 히 응낙했다. 그런데 학교를 나오며 보니 근처에 소학교같은것이 전혀 보이지않았다. 주변의 마을에 들려 알아보았더니 애들이 통학뻐스를 타고 시내학교에 다닌다고했다. 내가 산동에 더 있으려는것이 손자의 한어공부때문이지만 이건 아니였다.     연태에 무슨 학원이 있다는 광고가 그럴듯하기에 전화로 련계했더니 와보라고 해서 부랴부랴 찾아갔다. 연태시의 정치, 경제, 문화중심지에 위치했다더니 웬걸, 택시기사도 들어보지 못한 학교란다. 아닌게아니라 중심은커녕 먼교외의 한적한 곳에 조그마한 교수청사가 있었는데 “동방한국어학원”이였다. 제공할수 있다던 집은 보이지도 았았다. 신성한 교육의 기발아래 돈만 추구하는 타락한 교육에 실망했다.     황도에서 륜도(轮渡)로 가는길 어디어디에 무슨학원이 있다고해서 찾아갔더니 길을 알려주는 한족령감이 황이난지 오랜 학교라며 광고를 믿지말라고 충고했다. 상품광고만이 아니라 교육광고도 기편성이 많다는것을 철저히 깨달았다. 위해의 무슨 학원에서 와보라는것도, 대련 어디에 무슨 학교에서 련락이 왔지만 마침내 나는 이사짐을 꿍지였다…유감이야 어찌없으랴만 고향으로 돌아간다니 헛욕심을 다털었다.     메돼지마냥 앞으로 돌진하고 사자마냥 효률을 따지고 황소처럼 끈질고 고양이처럼 사람이 좌우지하지 않게 하고 개들마냥 무리들과 협조할줄 알고 원숭이처럼 기민령활해야 하며 매화록처럼 근신해야 한다는 인생지남이 있더라만 희비극이 연출되는 인생마당에서 각자가 각색하는 인간성문제가 내게는 내내 난제일것이다.                                                   2011년      8월 20일 초고     2012년 8월 20일 정리                       
242    력사극의 가치함량 댓글:  조회:9170  추천:0  2013-09-13
                                      력사극의 가치함량                                              최 균 선     “력사극”과“력사”는 한글자 차이인데 예술창작에 얼마나 큰공간을 제공할것인가? 이러한 문제는 영화평론계에 심각한 과제로 나선다. 력사극은 어디로 흐르는가? 력사는 누가 뭐라든, 그리고 마땅히 객관적사실이여야 한다. 진상은 오직 하나, 과거 의 사적에 대한 기재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물론 력사연구와중에 사람들의 주관의식에 따라 변화하고 완정성을 기하면서도 외곡되고 꾸며지는것도 사실이다.     학자들은 “력사는 아무나 치장해놓을수 있는 소녀”라고 하였는데 이 말에 담긴 진실성은 지금도 론쟁중이니 이에 대해 필자는 왈가왈부하지는 않겠다. 다만 력사가 참으로 치장해 내놓은 “소녀”가 된다면 그것은 력사의 비극이기전에 사학자들의 치부로 될수밖에 없다. 이 글의 취지는 력사사실들을 소재로 찍어내는 수많은 소위“사극”들을 얼레빗처럼 빗질해보면서 떠오른 나름대로의 감수를 적어볼뿐이다.     한국사극들에도 물론《용의 눈물》,《임진왜란》같이 비장한 력사사실들을 다루면서 우리들이 한번쯤 생각해 보야아할 력사적사건들을 진지하게 재현시킨 드라마들도 있지만《여인천하》,《왕의 여자》등과 같은 거의 대부분 사극들은 권력의 암투나 녀자들의 시기와 질투 그리고 당파싸움을 다룬 작품들이다. 물론 재음미할 가치도 별로이지만 력사사실이라 할 때 부정할수 없고 치욕스러운 력사라해서 덮어버릴수는 없다. 그러나 예술작품으로서의 가치함량에 대해서는 재고해볼 필요가있다.     우리가 수요하는 력사극은 어떤 력사극인가? 력사는 객관적존재이고 예술작품창작에서 작자의 주관과 가치취향을 피면할수는 없지만 가능한껏 객관적으로 예술적으로 재현하여 관중들이 각자 심미수요에 따라 음미하고 사색하게 해야 한다. 물론 문헌상의 력사기록이 곧 력사사실인것은 아니기에 사극드라마에서 완정하고 진실된 력사공부를 할수는 없다. 그러나 시청률을 전제로 시청자들의 기호와 취미에 맞추려고 극정을 구성한다면 사극의 본연, 이를테면 그 의의, 문화가치는 매몰당한다.     력사의 맥락과 력사사건은 임의대로 비틀어놓거나 분식할수는 없다. 사극제작자들은 력사사실의 생생한 재현보다 오늘의 시점에서 작가의 상상을 매개로한 허구를 통해 시청자들에게 무엇을 시사하는가가 중요하다고 하는데 이역시 편파적이다. 극 정의 수요로 세절상에서는 허구할수는 있지만 될수록 력사를 존중하고 력사를 환원시키면서 이미 화석이 된 골격에 살과 피를 부여함으로써 진실하고 생생하게 살아나게 해야 한다. 여기에 사극드라마의 생존리유와 의거가 있게 되는것이다. 아닌가?     병자호란때 치욕을 당한 조선을 보며 청나라에 맞서 조선의 기상을 떨치려한 효종과 장군인 이완의 이야기나 고구려가 만주벌판을 호령했다는 광개토대왕에 대한 이야기, 삼국시대 동북아해상을 장악했던 장보고의이야기 조선후기 의병장들의 이 야기 등은 정말 값지고 소중한 우리의 력사적장거라 할것이다.     그러나 간신들의 손안에서 놀아대는 핫바지같은 왕들은 당쟁싸움에 속수무책이면서도 주색잡기에 빠져있고 왕비와 후궁들은 서로 시기질투로 모함하고 비행을 놀음처럼 저지르는 악행을 보면서 상층의 조선녀자들은 원래 저리도 흉악무도했는가를 의심하게 되면서 편견을 가지게 되여 자세히 보기전에 지레 지겨워난다.     극정발전에서의 세절을 가미하더라도 력사극에서 허구는 어디까지나 력사사실을 기초로 해야 한다는것은 상식도 아니다. 한국사극이 력사기록을 무시하고 허구를 내달리게 하는것은 잘하는 일이 아니거니와 더구나 창조랄것도 없다. 허구라는것은 사료를 무시해도 된다는 그런 발상이 아니다. 력사사실을 외면하는 사극은 가짜사극으로서 드라마라는 배가 산이고 골짜기고 가리지않고 오르게 된다.    드라마《광개토대왕》은 초반에 시청자를 매료하는데만 신경을 쓰는바람에 과거를 재현하지않고 과거를 현대에 대입해버려 범벅이를 만들어버렸다. 그러다가 현재에서 과거에로 다가가려는 억지시도를 하였고 거기다 현재가 아닌 과거를 현대적사상이나 민족주의적인 분위기를 띄우려하다보니 스토리가 뒤죽박죽으로 치달아오르고 각 사건들의 전개에 있어서나 론리성이 어긋나고 심지어 결여되게 만들어지고말았다.     전쟁이 중심이 되는 사극에서는 시기적문제고 뭐고를 넘어서 력사서를 새로 쓴다. 연개소문에서 살수대첩이 나와야 할 리유와 대조영에서 안시성전투가 나와야할 하등의 리유가 없다. 사극드라마에서는 시대성이 짙게 하기위해서서 옛스러운 냄새를 풍겨야 하는데 일상대화는 무척 현대적으로 고급스러운 말까지 드문히 내뱉는다. 례를 든다면 “예의 주시한다”등 현대어구사는 그저 실망할 정도가 아니다.     력사적문예작품 창작은 력래로 두가지 완판 다른 관점들이 있었다. 첫째는“응당 력사의 몸퉁이에 력사의 외투를 입혀야 한다”이고 두번째는 력사극은 마땅히 옛것을 빌어 오늘을 풍자해야 한다는것이다. 어느 길로 나갈것인가? 하는 문제는 어진자가 어진자를 알아보고 지혜로운자 지혜로운자를 알아본다는 고훈에 맡겨야 할것이다.     옛것을 빌어 오늘을 풍자하려고 력사형식을 가지고 현재의 일을 말하려고 한다면 자칫 력사를 비틀어짜게 되며 인물들이 옛날복장을 입고 현대생활을 표현하는 광대극으로 된다. 특히 목적의도적으로 주제를 선행시킨 력사드라마들은 멀리 가지못 하고 좌초할것이다. 례하면 신라의 력사작용을 선양하고 김춘추나 김유신 등을 추겨세우려는 리념적인 작동은 그 자체에 편협성과 단명을 잉태하고있는것이다.     봉건제왕에 대한 분식과 공덕을 기리는 경향은 중국에서나 한국에서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문제인데 옛것을 빌어 오늘을 풍자하거나 오늘을 빌어 옛것을 풍자하려는 의도는 잘 읽혀지나 주제발굴에서의 가치성을 의론해 볼필요가 있다. 현재의 도덕준칙으로 봉건제왕들을 묶어놓을 때 그들은 언녕 력사의 락엽으로 변해버렸고 먼지로 되여져있다는 사실을 외면해서는 안될일이다. 릉라비단으로 벼짚을 감싸는격이니까.     그러나 작자들마다 높은 담장을 타고앉아 의기양양해하는 태도를 가지고 있는듯싶다. 한개 시대에는 그 시대의 사상이 있는데 후세의 사회화제에 덮혀지기마련이다.   력사드라마들에서의 모순충돌은 기실 생활(력사진실)과 예술의 진실의 모순이며 관중들로말하면 오락과 예술의 모순이며 문예학적시각으로 본다면 침중한 력사와 가볍게 유희식으로 다루는 드라마의 모순이다.     현대 사극의 문제점은 매우 많다. 가장 큰문제는 옛시대를 전형환경으로 삼았지만 시대적특징을 살리려하지않고 현대에 초점을 맞추어 개인과 그 개인과의 관계에 중심을 두고 그시대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력사사건이 아니라 개인이 극의 구심점이되여 이야기가 전개되다보니 사적인 감정이나 관계에 의해 시대적환경과 탈절되는것이다. 한편의 사극을 보며 력사적맥락은 어찌되든 애정스토리와 복수극이 되여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일시적감각자극에 머물고만다.     사극으로 선정하였다면 명실상부하여야 하는데 작가의 창의성으로 외곡된 력사사실로 극을 전개시킨다고 할 때 청소년들이 사극의 허구성을 믿어버리고 자기민족의 력사를 재해석한다면 사회적문제가 될수 있다. 사극이라면 력사적교훈을 줄수 있는것이여야 한다. 사극은 과거와 현재를 다르게 평가해보도록 모든것에 물질적가치를 선행시키는것이 가장 실용적이여서 아무리 예술적, 문화적가치가 있는것이라도 금전적인 가치로 환산되는가? 오늘날 중외사극들이 사극으로서의 구실보다 드라마로서의 상업행위에만 치중한다면 력사드라마를 막다른 골목에 들어서게 할것이다.                                      2013년 5월 20일
241    드라마로 보는 한국녀인들의 이미지 댓글:  조회:9410  추천:0  2013-09-07
                             드라마로 보는 한국녀인들의 이미지                                                                         진 언      한국드라마는 1990년대 이후 대중들의 문화에 대한 관심의 증대와 거대자본의 류입등으로 인해 규모가 점차 커지고 또한 다양한 주제와 실험적드라마의 등장 등으로 한시기 호황을 이루었다. 그처럼 한국텔레비드라마는 획기적인 영상의 시대에 참신한 구상, 새로운 문화현상의 조각으로 자리매김하면서 다양한 이야기로 대중들의 심령세계를 풍미함으로써 국내외시청자들의 호평받은 작품들도 적지 않았다.     례하면 “사랑이란 뭐길래”와같은 드라마는 평범한 이야기와 가정륜리를 다루었지만 친근감을 주었듯이 적지않은 한국실내드라마들은 세절의 진실감으로 사람들을 매료시킨것은 사실이다. 어느 평론가가 말한것처럼 한국의 드라마들은 왕성한 생명 력주입을 목적으로 편성되고있는듯싶다. 녀주인공 박지은과 리대발의 새 사상, 새 관념의 모순충돌은 희극색채로 충만된 스토리로 드라마의 예술가치를 실현하면서 드라마에서 인물성격들이 풍부하고 진실감이나고 흡인력이 있게 하였다.    “사랑이 뭐길래”에서 불요불굴의 기개로 현대신녀성들의 애정, 혼인관, 가치기준에 대한 아름다운 추구를 시사하였다면《대장금》에서는 주인공의 다사다난하고 파란많은 생활의 비바람속에서 조선녀인들의 외유내강한 전통적인 성격미를 잘 부각하 고있다.《대장금》에서 장금이는 가장 우수하고 가장 현숙하고 가장 아름답고 가장 지혜로운 전통적한국녀성의 모델로 생동하게 살아있다.     한국드라마에서는 보편적으로 녀성이 남자에 비해 제고점을 차지하고있다. 남자의 정갱이를 마구걷어차는것은 공용된 장면이고 남자의 뺨을 치기는 여반장이고 녀자들속에 모순갈등의 전개에서 마냥 꽥꽥 소리지르고 히스테리적으로 발광하거나 머리끄뎅이를 잡고 싸우는 등 “야만적인 녀자”들이 심적광분으로 보통 고래고래 고함지르면 남자들은 막무가내인듯 받아들이는것으로 웅성의 아량을 보이는지 모르겠다.     한국전통문화를 잘 모르는 외국인들의 눈에는 자칫 한국녀성들은 자초에 “암펌” 이였는가하는 곤혹을 가지게 할수도 있다. 그만큼 한국드라마에서는 자고로 배달녀인들의 전통미덕이던 외유내강의 성격미가 사라지고 말괄량이들이 보란듯 활개친다. 제3자로 충당됨에서 도덕적, 륜리적, 량심적인 가책같은것은 아예 뒤로 밀리고 지극히 리기적인 애정행각에 몰입한다. 그래서 “나 절대 포기안해!”라는 말이 자기 감정의 확고성을 가장 유력하게 표백하는 공통대사로 되여졌는지 모른다.     한국드라마의 심미특징은 주거환경, 음식생활, 고부관계, 남녀리합, 감정융합과 갈등 등 일상화제재에서 체현되고있다. 그리고 드라마형광막은 십상팔구 호화스러운 거실, 알쭌한 준남, 가녀 및 익숙해진 몇몇 단골인 로배우들로 채워지고있다. 한국의 전통관념가치가 무었인지 모르는 외국인들은 어리둥절해 할것이다.       한 나라의 드라마들에 어떤 내용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가에서 어떤 나라이며 국민의 가치관념 등 정신상태를 읽어낼수 있다. 어찌하여 드라마로 참조물을 삼을수 있는가? 드라마제작에서 사회의 정체적성격과 의식의 흐름으로 말할 때 한 사회의 정체적성격과 의식의 흐름은 한 나라의 문화발전및 제도형성에도 직접적으로 심각한 영향을 끼치기때문이다. 그리하여 한국의 드라마는 국민성에 앞서 반도남부 배달민족 의 민족성을 시사하는 창구로 되고있다고도 말할수 있겠다.     더 부연한다면 드라마는 사회에서 범위가 가장 광대하고 가장 많은 사람들이 선택하여 흔상하고 계발받고 영향받는 일종 매체로서 동시에 대부분사람들의 가치취 향을 대표하기때문이다. 만약 드라마가 상술한 조건들을 갖추지 못한다면 사람들이 그렇게 시청하지 않을것이다. 그러므로 텔레비드라마는 해당국가의 절대대부분 국민들의 심리상태를 반영할수밖에 없게 된다.     드라마자체가 일종 가정문화의 외연의 체현이다. 한국드라마는 제재는 부동하지만 가정생활과 애정이야기 등 어슷비슷한 내용으로 엮어지고있다. 드라마내용에서 주류를 이루고있는것이 애정스토리이다. 한국녀인들만이 아니라 범세계적으로 가장 아 름다운 환상적인 사랑은 영원한 화제로서 남자들에 비해 더욱 강렬하다. 하지만 한국 에서는 애정극장에서 남성들보다 녀성들이 더 공격적인것으로 나타나고있다.       한국드라마에서 녀성형상의 정수는 아름답고 깜찍한 소녀인으로서 련애에 전부의 인생을 걸고 마지막에 리상적인 남자의 품에서 최종의 행복을 누리는것이다. 이런 저런 드라마들을 눈요기하느라면 청춘우상극(青春偶像剧)에서 사랑은 흔히 상상의 산물로서 처처에서 모식화의 흔적을 보인다. 이 류의 극에서 녀주인공은 왕왕“회색 처녀”혹은 못생긴 오리로서 렬악한 환경속에서 고군분투하는 와중에 우연한 기제로 알게 되고 백마왕자의 사랑을 받게 되는 그러루한 모식에서 맴돌아치는것이다.     이들 생활의 전부가 애정으로인한 희노애락으로 도배질되여있고 사업관계, 사업상황 등은 애정극을 이루는데 무대로 될뿐이다. 마치 자나깨나, 앉으나서나 남자는 녀자생각으로, 녀자는 남자생각으로 심령세계가 운행되고 진심이든 타산적이든 사랑 은 곧 녀자들의 인생의 전부인듯 읽혀진다. 그런데 영화마다 부모들이 극구반대하는것으로 극정을 이끈다. 지금 어느때라고 자식의 결혼을 도맡아서 되니안되니 한단말인가? 정말 전사회풍조라면 정말 락후하고 락후한 결혼문화이다. 애정의 갈등과 화합은 한국드라마에서 영구한 주제라는것은 상식적인 인식으로 되였다. 바꾸어 말해서 애정이 주선으로 되지 않는 드라마는 한국드라마라고 말하지 못할 정도이다.     쟝르가 희극(코미디)이나 통속적인 대중극(멜로드라마)이 성행되면서 그 한계점을 더욱 심각하게 드러내기시작했다. 억지로 짜맞춘 긴장감없는 전개, 상영시간을 늘이기 위한 엉성한 구성과 스토리, 말도 안되는 상황설명 너무도 실망을 주고있단다. 대부분 시청자들은 새 쟝르, 유익한 계시, 아름다운것을 지향하는 드라마를 좋아한다.      한국드라마에 나오는 녀배우들은 한국녀성들의 인생좌표가 될것이다. 이 시점에서 드라마가 보여준 일반 한국녀성들의 군상을 소묘할수도 있겠다. 보도에 의하면 독일,미국, 등 외국녀자들이 한국녀인들을 보는 눈길은 그저 곱지만 않다. 례컨대 독 일녀자들이 종합적으로 잘 평가하였는데 심사숙고할바이다.     그녀들은 자신들의 종합자질이 높은 정신내함에 비추어 한국녀자들은 오직 결혼, 명품, 성형, 연예인, 사생활, 화장 등 사회공익에 전혀 도움이 안되는 사적인것에만 관심을 두다보니 남을 돕고자하는 마음이없이 자기만을 위해서, 남들에게 보이기 위 해서만 산다고 평가하였다. 한국여자들은 내면은 빈깡통인데 외모만 가꾸고 남자가 다 챙겨주길 바라는데 도대체 왜 사는지 리해가 안된다고 직언하였다.     미국녀자들도 성형에 눈이 멀어 대출까지 받아 성형하는 한국녀자에 곤혹스러워 한단다. 한국여성은 돈이면 사죽을 못쓴다. 돈에 굴복하며 사는 한국녀자들의 인생은 너무 비참하다고 생각한다. 커피를 마시는것도 맛을 즐기기 위함이 아니라 자기가 고급향수를 하는 녀자임을 증명하고 자랑하기 위해서 허세부리는것이라 꼬집었다.     스페인녀자들의 눈에 비낀 한국녀대생들은 명품가방에 환장하여 명품가방을 사기위해 밤에는 술집다니고 낮에는 대학생인척하는데 도무지 리해안되며 현실은 시궁창인데 겉치장에만 착각하는“미녀”들에게 정신을 차리라고 경고한다. 무조건 류행에 따라야 하고 렬등의식에 매달려사는 한국녀자들이 불쌍하다 하였다. 외유내강하고 현처량모형의 배달녀인들의 이미지는 영영 지나간 인문풍경들인가?                                                                    2013년 6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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