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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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    경신하지 말아야 댓글:  조회:8377  추천:0  2013-09-02
                                                  경신하지 말아야                                                       최 균 선       오늘 인터넷에서 이런 기사를 읽었다.    “다문화가정 지원 단체를 만든뒤 같은 중국동포를 상대로 사기친 중국동포들이 경찰에 적발됐습니다.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한국에 불법체류하고 있는 중국동포 20명을 상대로 8천800만 원 상당의 금품을 가로챈 혐의로 의료복지 단체 대표 47살 백 모씨 등 중국동포 3명을 구속했습니다.     경찰은 28살 박모씨 등 한국인 4명과 단체소속인 또 다른 중국동포 1명도 같은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습니다. 이들은 지난해 8월 서울 서초구 방배동에 의 료복지단체를 개설한 뒤 7개월간 불법체류자 14명에게 협회가입비 명목으로 350 만원에서 500만원씩 모두 6천300만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고있습니다.  ”(략)     한어에 “海内存知己,天涯若比邻”出门在外结实的都是朋友,更不要说是结实出门在外的老乡了,都说老乡见老”라는 말이 있듯이 타향에서는 한고향 사람이 아니더라도 그저 동족이라는 그 한가지 막연한 뉴대로만도 반가워 대번에 친근감과 믿음이 가는법인데 비록 소수라도 외국에 가서까지 동포형제를 상대로 사기치는 패륜아들을 같은 중국땅에서 오고 같은말을 쓰는 동족이라해서 경신함으로써 빚어진 비극은 과연 우리 들에게 무엇을 생각하게 할가? 인터넷에 이런 기사도 떠서 경악하였다.    “떼놈들이 떼거지로 들어와서” 식당주인 막말… 발끈했다 벌금 50만원     [한국인권신문] 지난해 11월 오후, 조선족 출신 귀화자인 정○○(여, 48세) 씨는 남편 허모(조선족) 씨와 멀리 중국에서 온 손님들을 모시고 관악구 신림동 한 식당에서 식사를 하였다.정씨 부부가 식당에 들어선 건 오후 5시경, 식사를 마치 고 한창 담소를 나누고 있는데, 갑자기 종업원이 다가와 “7시에 예약 손님이 있으니 일어나 달라”고 요구했다.     오랜만에 만난 중국손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정씨부부는 갑자기 나가달라는 종업원의 요구에 언짢고 화가났지만, 정중하게 “예약 손님이 있었다면 미리 이야기를 해줘야지 지금 나가라고 하면 어떻게 하느냐, 조금만 더있다가 나가겠다”고 말했다. 례의상 아무차질도없는 말인데 화를 불러올줄이야!    옆에있던 식당주인이 버럭 화를 내며 “떼놈들이 떼거지로 들어와서…”라고 하면서 당장 나가라고 소리쳤던것이다. 작정하고 한 모멸적인 언동이였다. 순간 격분한 정씨 부부는 주인을 향해 막말을 하게 되었고, 서로 고성과 욕설이 오갔다. 이 과정에 서 식당 종업원은 식당문을 잠그고 112에 신고를 하였고,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막아서자 감정이 더 격해진 정씨부부와 식당주인 사이에 몸싸움까지 벌어졌다. 이때 몸싸움 과정에서 정씨의 발이 카드 단말기 선을 건드리면서 단말기가 바 닥에 떨어졌다. 잠시후 경찰이 출동하고 나서야 싸움은 멈췄다. 식당주인은 경찰조사에서 정씨부부가 욕설을 퍼붓고 카드단말기를 바닥에 던지고 계산대를 발 로 걷어차는 등 소란을 피워 식당영업업무를 방해했다고 진술했다. 결국, 정씨의 남편은 무죄, 정씨는 업무방해죄가 적용돼 법원으로부터 벌금 50만원에 약식기소처분을 받았다. 가재는 게편인가? 이는 호로묘에 호로승의 판결이다.     정씨는 사건의 발단이 주인에게 있는데 벌금형처분은 억울하다며 정식재판을 청구하였으나, 법원은 50만원 벌금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하여 정씨부부는 항소를 준비한단다. 한편, 사건당시 조사를 받았던 정씨부부에게 담당경찰관이 놀리듯“부부관계는 좋으냐?”따위의 황당한 질문도 했다고 한다. (중략)     이번 사건을 취재하면서 “만약 정씨 부부가 미국이나 캐나다 출신의 외국인 이었다면 이같은 사건이 발생했을까?”라고 스스로 질문을 던져본다. 설령, 사건이 발생했더라도 어쩌면 법원의 판결은 달랐을지 모른다.…(하략)     요즘 “진정성 혹은 진심”이 키워드(관건어)로 활용되는 한국에서 이런 막돼먹은 식당주인같은 패덕자가 있다는것이 놀라운것이 아니라 법치를 고창하는 나라에서 이런 판결이 나왔다는데 개탄스러울뿐이다. 믿는도끼에 발등을 찍힌다는 말은 공연히 만들어진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고국이라고, 동포라고 믿었을 정씨부부도 딱하긴 딱하다.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는데 생면부지의 낯선사람은 물론 면목있는 사람을 대함에서 본능처럼 경계심을 앞세우게 되는것은 당연지사가 아니겠는가?     이런 의미에서 사람을 대함에서 불신감부터 앞세우는것은 선량한 사람들로 말하면 일종의 자아비애이지만 의심은 경신에서 오는 피해를 예방할수 방편이 아닐수 없다. 장사군이 제애비를 속인다는데 돈나오는 대목에 인정사정 가릴것인가? 웃는낯에 침뱉으랴고 하지만 보기에 그럴듯하게 보이는 그 리면에 추악한 령혼이 숨겨져있고 미소뒤에 교활한 몰골을 감추고있다는 사실을 부인할수 없는 현실이다. 이것은 매사에 목적의도적으로 내세우는것은 아니지만 불신시대의 진풍경이다. 더없이 선량해 보이는 사람과 상종하더라도 대번에 속을 줄수 없는것은 결코 속좁은 맹꽁이여서가 아니다. 빛좋은 개살구는 비일비재이고 비단보에 개똥도 얼마인지 모르니까말이다.     당신앞에서 속사정을 죄다털어놓는 사람도 드문히 있는데 그야말로 절절하다. 그 언술은 도도하게 흐르는 맑디맑은 대하와같다. 그러나 그 내심의 강바닥에는 혼탁한 암류가 굽이치기도 한다. 그런사람을 미워할수는 없다. 무릇 허위는 본래 가면으로 다른 사람을 속여넘기는 법이기때문이다. 누구든 전후좌우로 완전완미하게 처세하기란 쉽지않다. 자칫 같은류의 허위에 당할수 있다.      해빛이 밝은날에 당신에게게 우산을 가리워주고 갑자기 비내리면 우산을 펼쳐들고 저혼자 가버리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이다. 그러는 사람에게 원망의 눈길을 박을수는 없다. 그자신이 비맞기를 원치않고 황차 우산은 그의것이기때문이다. 그 사람이 당신과 어려움을 함께 나누려하지않는데 당신이 무어라 말할것인가? 가장 좋기는 자신이 우산이든 양산이든 잘챙기고 남에게 의뢰를 기대하지 않는것이다.     당신이 구슬땀을 흘리며 파종할 때 수수방관하며 불볕아래 한방울의 땀마저 흘리기를 싫어하다가도 당신이 로력의 열매가 주렁지게 되면 체면불구하고 로력의 단맛을 보려는 얄팍한 넋들도 부지기수이다. 그런 사람에게 반감을 가져봐야 물론 해결되는것은 없다. 그의 심보가 아무리 괘씸해도 실속이 없는대신 업적욕은 강한 표현이므로 그역시 어떤 인간들의 본성임을 시인하는게 편안하다.     다른 사람의 내속을 절반 읽으면 세련된것이고 나머지 절반을 투시하는것은 총명이다. 많은 실수는 겉모습을 보고 곧 믿어버리는데서 생긴다. 사회라는 대해속에는 준치들만 있는게 아니라 악어나 불가사리나 독종의 괴이한 생물들이 많다. 물론 후덕한 사람이 더많고 비루한 넋을가진 인간이 소수라고 말할수 있다. 그래서 보편적인도주의 각도에서 인간일반을 믿어주고 사랑하고 존중하는것이 원칙이겠으나 그로써 신뢰의 론거가 확실한것은 아니며 선험적인 의심이 해소되는것은 아니다.  《모든것을 의심하라》는 데카르트의 방법론의 기점이다. 사실상 그의 보편적인 회의론은 방법론상의 회의로서 그는 진리를 발견하고 확실한 지식을 얻기위한데 목적이 있었다. 불신이 불신을 부르는 지금 시대에는 숙인사회 (熟人社会) 라는 중국이라도 숙인이든 생면부지의 사람이든 맹신은 동정심마저 사절하는 우직함이다. 열번 거듭해도 경신은 천부당만부당하다.                                                                2013년 8월 17일     
239    옥에 티만이 아니였다 댓글:  조회:8918  추천:4  2013-08-26
                        옥에 티만이 아니였다.                                        최 균 선       20년전, 길림성제1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서예학박사, 문학박사로 성장한 서예가 서영근이 주최하에 “2013년 한,중,일 “별의 시인 윤동주 시와 서예의 만남” 이라는 주제로 열린 서예전시회의 참석차로 유명한 시인 윤동주의 생가와 그가 다니던 모교 인 명동학교를 다시보게 되였다. 이번 서예전은“하늘우러러 한점 부끄럼없기”를 읊었던 윤동주의 모교로도 유명한 명동학교 옛터에 복원된 새학교에서 열리였다.     서예전이 끝나자 그젯날의 원학교의 사진을 둘러보면서 저도모르게 착잡한 생각이 얽히고 서리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아득히 흘러간 세월의 저언덕너머에 우렷히 떠오르는 비장한 정경들이 내사색을 사로잡고있었다. 중국조선족교육의 효시이자 수많은 항일운동가를 배출했던 명동학교는1908년4월 규암 김약연 등 민족지사들이 설립한 근대적민족교육기관이였다.     1910년에 세워져서부터1925년 일제의 탄압으로 폐교될때까지 10여년간 명동학교는 신문화보급과 민족의식의 고취에 크게 기여하면서1,200여명의 졸업생을 배출하였는데 이들중에는 항일운동가와 교육자로 민족사에 방명(芳名)을 남긴이들이 적지않다. 이를테면 시인 윤동주와 청년문사 송몽규, 한국의 유명 감독 라운규 등 우수한 인재들을 배출하며 신문화보급과 민족의식 고취에 크게 이바지했으며 또한 민족지사들의 요람역할을 빛나게 수행했다.     당시 명동학교가 북간도민족운동의 근거지로 자리잡자 1920년 청산리전투에서 참패한 일본군은 명동학교를 불태우고 교장 김약연을 체포하는 등 로골적인 탄압을 가했다. 1923년에 출옥한 김약연이 폐허에 림시건물을 지어 다시 문을 열었지만 그 이듬해 특대흉년으로 명동학교는 경영난에 봉착했다. 중학부가 문을 닫게되였고 여러선생들도 떠나갔고 적지않은 학생들도 룡정의 각 중학교로 전학해갔다. 소학교는 명동교회가 운영하며 1930년대초까지 근근득실로 명맥을 유지하였다.        그후 80여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학교는 흔적도없이 사라지고 담배밭으로 변했으며“명동학교 옛터'라고 쓰인 표지석만이 과거 민족운동의 요람이였음을 알려주었을뿐이다.  건국후 다시 세워진 명동학교에서 교편을 잡은 경력이 있다는 정창복이라 는 79세나는 로인의 회상에 의하면 문화혁명시기까지 학교가 존재하다가 개인에게 팔리여 허물리였다고 하였다.     주지하디싶이 력사문물은 한개민족, 혹은 국가의 력사발전과정에서의 생존, 투쟁, 문화발전의 연혁사 등을 반영하기에 력사문물의 보존은 곧 문화,예술과 과학적가치 보존이며 전민족의 진귀한 문화유산을 지키는 성스러운 사업이다.  윤동주시인의 생가, 수많은 열혈지사들을 배출한 명동학교는 진귀한 력사문화문물로서 세월은 많은것을 씻어가버렸지만 명동학교는 월강민족으로서 우리 겨레의 수난시대의 견증자이다. 그만큼 거대한 감화력과 의취력을 내재하고있으며 민족발전행정에서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수 없는 력사적뉴대로서의 작용을 체현하고있다.     윤동주의 생가와 더불어 그가 다녔던 명동학교를 력사문물로 잘보존함으로써 민족전통교육을 진행하는 생동한 교재로 된다. 력사문물은 그 민족의 근로하고 용감하고 경정불이한 창조정신과 간고분투한 빛나는 력사의 상징이다. 그로써 민족의 우 량한 전통을 계승발양하여 민족의 자신심과 자호감을 증강시킬수 있기에 후대교육에서 중요한 현실적의의를 가지고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정체적으로 말하면 무릇 력사,문화적문물은 력사연구와 문화의 창신과 발전의 의거이다. 력사문물은 력사문화의 캐리어(载体)로서 력사연구에서의 우선적인 사료이며 과학발명과 문예창작발전에서의 중요한 귀감이고 원천이 되기도 하다. 만약 문물자료, 력사발전계단에 대한 문자기록 등이 없다면 시발점과 연혁과정에 대하여 알길이 없게되여 력사문화연구란 말그대로 공리공담이 되고만다.     력사문물은 우리 나라, 우리 민족과 세계각국, 여러민족간의 문화교류와 우호관계발전도 촉진할수 있다. 모두어 말하면 윤동주생가와 그의 모교의 유적지는 우리가 민족문화를 널리 홍보하고 민족정신을 진흥시키며 민족부흥을 고도로 실현할수 있는 물질기초인바 선조들이 남겨준 진귀한 력사문화문물을 완정하게 잘보존하여 자손만대에 물려주는것은 우리 세대들이 벗어버릴수 없는 력사적사명이다.     하여 룡정시유관부문에서는 중국조선족의 우수한 문화를 계승,발전시키고 룡정을  중국조선족 민족문화도시로 건설하려는 취지의 일환으로 2009년 9월부터130만원을 투입하여 원 명동학교 자리에다 새 명동학교를 복원하기 시작하였는데 근 일년간의 분투를 거쳐 이듬해 2010년10월말에 준공되였다.     옛터에 복원된 학교는 당시 평면도에 따라4채의 단층벽돌건물이던 1920년대초의 명동학교의 원모습을 그대로 재현하였는데 건축면적은265평방메터로서 4개 교실에 2개의 사무실로 구성되였다. 력사의 뒤안길에 사라졌던 명동학교가 사연도 많았던 옛터에 다시 일떠섬으로써 당년의 위용을 자랑하며 룡정시민족전통교육의 교양기지로, 룡정시의 또 하나의 관광명소로 국내외의 각광을 받고있다. 이런 장거는 찾아오는 지성인들의 가슴을 뜨겁게 달구고있다.     그러면서도 보이는대로 보여지는 또하나의 정경에 마음에 그늘이졌다. 지은지 3 년세월이 다되는데 주위의 곡식밭과 어울리지않게 잡초무성한 주위환경은 심하게 말하면 살풍경을 이루고있기때문이다. 나는 흑룡강신문사 연변주재기자인 윤윤걸선생과 함께 학교주위를 돌며 구석구석에 눈길을 박았다. 나의 눈에 안겨드는 정경은 결코 미중부족이라든가 옥에 티라는 말로 스쳐지날 그런 정도가 아니였다.     아무리 복원된 학교라도 학교의 이마이기도 한 운동장이 없는것은 둘째치고 사위에 건축할때 남겨놓은 웅덩이들에 잡풀이 무성해서 눈길을 찌프리게 한다. 기자의 혜안으로 이 모든 정경을 포착한 윤기자가 여기저기 렌즈를 돌리고있을 때 격에 맞지는 않은줄 알면서도 흘러간 옛노래가락을 떠올려보지 않을수 없었다.                                                             황성옛터에 밤이 되니 월색만 고요해                                                             폐허에 설운 회포를 말하여 주노나                                                             아 외로운 저 나그네 홀로 잠못이뤄                                                             구슬픈 벌레소리에 말없이 눈물져요                                                              성은 허물어져 빈터인데 방초만 푸르러                                                             세상이 허무한것을 말하여 주노나                                                             아 가엽다 이내몸은 그 무엇찾으려                                                             끝없는 꿈의 거리를 헤메여 있노라.     물론 노래가사와는 달리 황페하던 옛터에 아담한 교사가 세워져있지만 경물이란 무릇 그에 어울리는 배경에 조화되여야만 원모습이 흐리지않고 도드라지게 보이는법이 아니던가? 새건물은 지었으되 왜 그에 수반되여야 할 뒤수습은 흐지부지한채 세월을 거듭 기록하고있을가?      물론 내가 모르는 여러가지 여건들이 있을테지만 이런 정경이 지금까지 관광객들의 마음을 흐리게 하는 원인은 해당부분에 책임일군들의 관념속에 윤동주의 모교의 복원의 의미와 복원된 학교청사가 가지는 현실적이미지와 더불어 얼핏 계산할수 없는 실용적가치함량의 실현정신이 부재하지 않을가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물론 주관적 일수도 있다. 그러나 이미 시작작한 일을 깐지게 마무리하지 못할망정 학교이미지 창출에서의 기본은 갖춰져보이게 하는것이 초미의 문제가 아니겠는가 대상도없이 혼자 속으로 질의하며 눈길이 다시한번 잡초더미속에 박히였다.                                        2013년 8월 18일         8월 26일 흑룡강신문
238    남녀비교시조 100수 (3ㅡ-30) 댓글:  조회:8562  추천:0  2013-08-24
                       1.   세상엔 천사,마녀 두종류가 있더라                              천사는 행복일랑 마녀는 불행일랑                               취처는 운수소관이 어찌될지 어이알랴                           2.   남자는 즐기자고 욕정을 불사르고                               녀자는 행복하려 붙는불에 기름인가                               남자는 타산적으로 녀자는 리상적으로                           3.  녀자는 천성으로 설왕설래 좋아해도                              오히려 말 다사한 남자들을 질색하니                              남녀간 相间无语도 참정인가 하노라                         4.  남성의 의식속엔 녀자가 살아있고                              녀자의 무의식엔 남자가 새겨있어                              최고의 인륜지락이 이성지합 아니련고                           5.  남자가 바람피면 풍류남아 되여지고                              녀자가 탈선하면 불륜녀라 락인찍네                              아서라 도덕률에는 남녀구별 없니라                           6.  누구나 열수있는 좌물쇠는 무용지물                              아무나 점유하는 녀자라면 로류장화                              홍도야, 돈바람앞에 순정을 지키느냐                           7. 혼인의 전주곡인 불가결의 련애라도                              눈에서 난 사랑이 마음으로 맺어질가                              백년을 해로할 정이 씹다뱉는 껌이더냐                           8. 남자의 초련이란 즐거울사 춘사월                              녀자의 첫사랑은 화창한 5월인데                              시집의 문턱넘으며 뜨거운 여름해라                           9. 남자의 정애라면 욕정으로 치달으고                              녀자의 사랑이란 마음속에 불이붙고                             사랑의 계산식이야 더하기가 제일이제                        10. 남자야 네정신은 해빛밝은 한낮되고                             녀자야 고운심령 달밫좋은 봄밤되여                             저하늘 일월성신을 세월속에 빚으시라                                                1.  한인생 기탁하는 녀자들의 사랑인데                             유희로 즐긴다면  남자들이 즘생이제                             어저저 애기님들아 순진함은 위태로워                        2.  녀자는 하는말에 속마음을 담아가고                             남자는 제할말만 마음으로 엮어낸다                             두어라 피장파장에 어느뉘를 믿을건가                                                3.  나무에 落果하면 先飞鸟가 당연지사                             연못이 고갈되면 고운백조 다떠나네                             남자가 맹꽁이되면 마누라가 탈가하기                            4.  자고로 남녀애는 二元성에 화합이라                             이중주 조화되면 적격이요 대길인데                             상반된 량성합일에 완미함이 있을거냐                        5.  남자는 리성으로 녀자를 저울뜨고                             녀자는 인상으로 남자를 금을놓네                             아마도 녀자들이란 직각에 천재인가                          6.  안해의 충고에서 고상해진 남자라면                             남편의 인도하에 현처량모 되는걸가                             두어라 남자의 절반 녀자라고 하느니                        7.  열련은 서정단시 결혼은 긴긴 대화                             백년해로 한다할제 스스로 자문하라                             진지한 인생대화가 처음처럼 진지할지                          8.   남자는 녀자를 눈으로 선정하고                              녀자는 남자를 마음으로 고른단들                              두어라 밝은대낮이 밤의어둠 비출손가                          9.   남자는 의지로다 굴강의 화신이고                               녀자는 정감덩이 정서의 달인이니                               사랑을 실은 쪽배에 리지의 닻 올려라                         10. 남자여 녀자를 설득하려 하지말아                              설득을 하기전에 네가먼저 설복되리                               녀자의 자존심이란 병적인듯 고집이니                                                                                    1. 장부라 남자들은 우정에는 철저하고                             녀자는 애정에만 가차없이 꼼꼼해라                                                        남녀의 친구사귐은 그렇게 다르더라                                                      2. 미몽이 달콤해도 깨지않고 무궁하랴                             녀자는 사랑샘이 깊지않다 원망할제                             남자는 정애의 한계 그로부터 절감하리                           3. 남자는 녀자의 첫사랑이 되고싶고                             녀자는 남자의 최후랑만 되고싶고                             사랑은 리기적이고 배타성의 극치인가                           4.  남자는 멀리보고 녀자들은 깊게본다.                              사내《男》자 7획이고 계집《女》는 3획이라                              남녀가 어우러져서 十全十美 좋을(好)라                           5.   남자의 사랑이 든든한 옷걸이면                               녀자의 사랑은 화려한 류행복이                               걸리고 거는멋에서 울다웃고 그래살제                            6.  남자는 명예심에 녀자는 허영심에                               녀자는 동정심에 남자는 의협심에                               남자는 세계가 심장 녀자는 심장이 세계                                                     7.  남자는 마음에 없는말 잘져내고                               녀자는 생각에 없는말 쉽게하네                               속이고 속히우면서 사는게 부부잉겨                            8.  남자가 고심참담 인생극을 지어내면                               녀자는 마음맞게 주인공을 빚어내네                               녀자가 먼바다라면 남자는 쪽배여라                          9.  사랑이 없는남녀 반쪽짜리 인생살지                               일심동체 부부돼야 완정한 인간이라                               천륜인 이성지합에 인간으로 거듭나네                                                 10.  녀자는 첫사랑을 기억속에 간직하고                                남자는 첫련인을 가슴깊이 새겨둔다.                                서로가 비밀인것을 부득부득 캐지마오
237    밀어내기와 채우기 댓글:  조회:7267  추천:0  2013-08-23
                              밀어내기와 채우기                                        최 균 선       오늘도 바다의 숨결을 들으며 무엇인가 터득하려고 해저물도록 바다가에 넋을 풀어놓았다. 바다의 숨결은 오늘따라 더욱 거창하다. 노한것은 아닌듯한데 내밀한 격정에 사로잡힌듯 거세게 일렁이며 밀려오고 밀려가고있는 푸른물결, 천년천년 천만 년을, 만년만년 억만년을 격정을 안고살며 흰바위, 푸른섬바위, 조개껍질, 백사장을 씻어내린 바다는 무엇을 하자는것인가?    산은 산으로 살라하고 바다는 바다로 살라는데 천년만년이 가도 하늘에 도전하는 저 산들을 기어이 부셔버리고야 말겠다고, 더러운 그 때를 씻고야 말겠다고 시시로 술렁대는 바다!더이상 씻을것도없고 가진것이라곤 소금뿐인데 그래도 씻어내리기에 열을 올리는 바다의 심사를 대관절 무엇이라 표현할가?     창세이후 씻으려고만 하는 바다, 필사적으로 강을 씻고 대지를 씻고 산마저 휩쓸려하고 기진맥진할 때가없이 한결같이 덤벼들며 지상의 모든것을 천번만번 때리고 부수고 어르고 달래면서 억년만년 출렁인다, 바다는 모르지않는다. 그저 마음일뿐, 기슭에 연연한 저 산, 저들을 끝내는 단한번도 씻지못할줄 몰라서가 아닐것이다. 그러면서도 순간도 쉬지않고 하얀파도를 밀며밀며 달려온다.     더러운 옷을 빨아낸 물은 구정물이 되는데 때도시도 없이 씻어내렸건만 푸른 모습을 잃지않는 바다는 성모마리아같은 흉금을 가졌는가! 먼지낀 바위는 념려하면서도 자기가 더러워질줄을 모르는 바다는 너그럽기만 한것인가! 단하나의 바위도 씻 지못한채 그냥 설렁대는 바다는 지구덩이를 거의나 품고서도 만족을 모르고 산을 모르고 하늘을 그리는 바다는 호한하다. 어머니의 사랑처럼 무궁하다.     유흥에 아무렇게 내버린 문명의 쓰레기도 싹쓸이로 받아안고 밀려갔다가는 미구에 아무소용도없는 그것들을 다시 밀어낸다. 인간이 더럽힘을 받지않으려는 바다의 늘 푸른정조이랄가? 주어도주어도 출렁이는 창파, 채워도 채워도 입벌리는 창해로 보기엔 바다가 너무 고결한것이 아니랴!     바다가 그냥 허기져서 모든것을 받기만한다고 생각하는것은 그 숭고함에 대한 몰리해가 아닐수 없다. 인간만이 살면서 끝까지 해내려는 일이 욕심을 채우려는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알려하지 않는다. 가득채우려면 먼저 비워야 할것이요 받아들이려면 먼저 밀어내야 한다는것을, 채우지도 밀어내지도 않으려면 아무것도 하지말아야 한다는것을, 무엇을 채울지 무엇을 비울지 어느때에 비울지는 각자 가치관과 기준에 따라 달라지고 환경과 인성에 따라 변하기도하는 그 반복무상함에 눈을 감고있다.     창창 푸르게 열린 하늘엔 끝간데없는 내마음이 젊은시절 그때처럼 나래치고 설레이는 가슴속에 유리파편으로 부서지는 하얀파도가 태고적밀어를 해변에 쏟아낸다. 기슭에 철썩대는 소리는 바다의 하소연인가? 우주의 시원(始原)을 알리는것인가, 백 사장에 쉴새없이 세월을 부리워놓고 바다의 푸른이야기를 은모래 금모래로 수놓는데 바다의 전설은 이루지못할 나의 공상의 쪽배에 넘치게 담긴다,       창세이전의 원초적본능을 살리려는 그 신비한 힘을 알고싶다. 파도는 어이하여 일고 또 잦는지, 바람은 왜부는지, 기기묘묘한 높낮은 기암절벽들은 왜솟았는지, 천년 전 첫아침을 순백의 갈매기는 왜 오늘도 물어다 나르는지, 그것을 알수없어 온종일 들뜬 시인의 찬란한 마음에 취해서 고르로운 바다의 숨결을 마셔가며 바다가에 굳어지는 5월의 한나절은 이대로가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     사무치는 정서가 치솟아 바다를 통채로 품어버리고픈 이 하루는 하늘속을 흐르는 세계에 흠뻑 취해버린다. 바다는 제품으로 흘러드는 모든 강물을 마시며 하늘과 가슴을 맞대이고있다. 말없이 받아드리고 쉬임없이 밀어내는 바다의 로고를 망연히 바라보다가 문득 상상이 비약의 나래를 펼친다.     허(虛)에 대한 철학에 이르되 그릇에 무엇이 차있으면 아무것도 할수가 없으며 임무를 다한것이다. 빈그릇은 무엇이든지 채울수있는 가능성이 있으니 희망이다. 우주는 99.99%비여있다. 하늘과 땅사이에서는 못할것이없다. 그 공간은 창조를 위하 여 무엇이든지 할수있는 가능성이있다. 비여있는 모든곳은 생명이 잉태하는곳. 모든 유(有) 가 있을자리요 무(无)가 진행될 곳이기도 하다.      바다는 "존재하는 모든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시사한다. 존재하는 모든것은 내인생, 사람들과의 관계, 그리고 모든 사회적상황들을 뜻하는것인가? 지금까지 이 모든 상황을 옳바르고 좋은쪽으로 바꾸기 위해 우리는 애쓴다. 그러면서 좌절과 혼란을 겪는다. 이제 불평없이 받아들이고있는 그대로 수용하라고 바다는 나에게 요청하고있다. 있는 그대로 수용할때 부등키고만있던 온갖 욕망이 풀려나게 될것이다. 그러면 전혀 다른 인식과 인생이 시작될것이다.     세상사람들은 모두 한사코 채우려고만 한다. 비워야함을 모르지는 않지만 그러기를 바라지않는다. 마음도 비워있어야 새것을 채울수 있다는것은 상식이다. 그래서 곧잘 마음을 비웠다고 표방한다. 채움에도 진리가있다. 진리를 채우면 진리가 나올 것이고 마음에 쓰레기를 채우면 비루한 행동만 나올것이다. 성인들은 진리를 전파하려고 이 세상에 왔으니 그분들의 말씀(진리)으로 나를 채우라.     담담하기와 쏠림의 차이는 그렇게 다르다. 수수방관은 밀어내기이고 흐름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다. 잡동사니로 가득찬 서랍을 열때 련상되는것은 무엇일가? 확장 하면 물질적욕망의 세계이다. 얻고 잃게되는 환득환실이 섭리가 되는것은 이 세상에 서 나혼자만 사는것이 아니고 리타정신을 아예 등지고 살수없기때문이다. 눈부신 유혹에 마음이 헝클어지다가도 그것의 본질을 꿰뚫어보고자 하면 스스로 성스럽다.     마음의 문을 여는가 닫는가하는 문제이다. 무릇 튼튼한 문은 그 자체가 꽉차있으면서도 저쪽 어떤 빈공간을 가리우는 이중적인 제조물이다. 불가침범의 경계를 긋기도하고 열리면 경계가 허물어지기도하는 문, 가로막기도하고 받아들이기도하는 문, 가두기도하고 놓아주기도하는 문, 그것은 동시에 안이있고 밖이있다. 문은 눈앞에 있는것과 저 뒤에 있는것을 련관시키기도하고 분리시키기도 하기때문에, 안이자 곧 밖이기도 하기에 문은 어느 한측면에 속하지 않는다.     얻어도 곧 잃게되여있는 그 모든것을 가득가득 가지려고만하는 집착, 아집은 얼마나 허황한것인가? 인간이 물욕에 눈에 멀면 언제건 함정에 떨어지게 되여있으므로 물욕의 노예로 되면 마음도 제마음이 아니다. 유혹이 꼬실때 전혀 흔들림이없는 금욕주의자가 몇몇이랴만 내것이 아닌것을 밀어내고 내주기 위해 받아들이는 마음을 가지려고 자신을 단속하는 그 자태만으로도 너무 거룩한것이다. 꿀발린 종이를 펼쳐놓은 접시에 날아드는 파리의 랑만은 가볍게 내리치는 파리채에서 끝나고만다.     이 세상에서 채워도 채워도 하늘우러러 한점 부끄러울것없는 욕망이 무엇일가? 이 욕심, 저 욕망, 무지경의 욕망을 채워감에서 가장 미쁘고 말썽이 없는것이 있으니 바로 채우고 또 채워도 다 채울수 없는 량지가 아니랴싶다. [출처](창조주)하고있는 모든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한생을 적덕으로 자신의 욕망을 채우고 허욕과 허세를 밀어내면 앉으나서나 북적대고 서로 까밝히는 이 세상에서 꿀릴것 하나없이 저기 날개짓 례사로운 갈매기처럼 자유로울것이라 기원하면서 쓰잘것없는 자아위안을 먼바다에 실어보내는 로옹의 마음은 허무하기만 한것인가?! 하긴 다 부질없는 상념이기도 한것을, 바다물결만 생동하는것을…                                      2010년 5월 3 일                           2013,8,23일 연변일보에
236    남녀비교시조 100수 (2-40) 댓글:  조회:8333  추천:0  2013-08-17
                               1.    녀자만 정조라는 사슬에 묶여살랴                                       남녀는 서로서로 지킬바 있느니라                                       남자도 량심으로써 충정을 지켜야제                                  2.   녀자엔 현미경을 남자에겐 망원경을                                      볼사록 매료되는 녀자들이 따로있고                                      볼수록 소원해지는 맹꽁이도 있더니라                                  3.   녀자의 사랑이란 자아희생 그자체요                                       남자의 사랑이란 자아실현 그뿐인데                                      남자가 더 총명한고 녀자가 위대한고                                             4.    남자는 헤여지면 추억의 시발점요                                       녀자는 앵돌아져 마침표 찍더란다                                      그래서 전자는 잊고 후자는 삭인다오                                  5.     외로움 삼키면서 녀자는 성숙하고                                       남자는 고독속에 인격화를 완성하고                                       남자는 포옹하지만 녀자는 포용하네                                 6.    진실에 눈뜬남자 환상에 눈먼녀자                                      진실에 놀란남자 허영에 취한녀자                                      우연이 필연이던가 가연맺고 그럭저럭                                                                     7.     남자의 배반이란 기계적인 작동이요                                       녀자의 배반이란 동물적인 반응이라                                       남자는 애욕때문에 녀자는 물욕땜에                                 8.    달콤한 사랑에 취해보지 못한녀자                                      불붙던 사랑이 꺼져버려 식은남자                                      무궁한 정감세계에 빈곤호라 불쌍타                                 9.     만남이 우연인걸 천생연분 있다마라                                       그남자에 그녀자라 짝이야 없으랴만                                       녀자는 리상적남자 별로이 없다하네                               10.    남자는 사랑을 다준다고 호언하고                                       녀자는 받는다 감사하매 어울리제                                       인륜의 백년해로에 진정밖에 더있으리                                                                    1.     녀자는 참는것이 말없는 용서이고                                      남자는 잊는것이 관용의 자세라고                                      사랑의 별명은 리해 좋도록이 살고지고                               2.      남자는 동물이요 녀자는 식물이라                                      남자가 외도함은 야성의 본능이요                                      녀자가 탈선하는건 물욕의 꼬심인가                               3.     남자는 명예의 큰배를 몰려하고                                      녀자는 감정의 쪽배에 잘오른다                                      하나의 항구찾아서 간다면야 좋고말고                                               4.      녀자는 마음속에 떠오르는 말을하고                                     남자는 생각으로 지어먹은 말을하네                                     남자야 너의 인격은 녀자들이 잘아니라                              5.     남자의 변심은 리성에서 시작되고                                     녀자의 배반은 감각에서 비롯되고                                     남자의 비밀은 랑만, 녀자에겐 추문이                              6.   부유는 남자들의 마음을 헝클어놓고                                   가난은 녀자들의 심령을 다듬어준다                                   사랑해 가난한것은 부유보다 낫니라.                              7.  미래가 없는남자 과거가 별로이고                                 과거가 얽힌녀자 미래가 하찮으리                                 어제는 래일을 비출 거울인줄 알거라                              8.   녀자는 상사병에 사진첩 뒤번지고                                  남자는 울화병에 술병을 기울이네                                   하나의 같은의미에 표현만은 다른가                              9.  사랑은 인간되는 힘겨운 인생수업                                  남자는 녀자로해 원시인 되여지고                                  녀자는 남자로인해 나쁜물이 되더라                          10.    녀자는 바이얼린 남자는 활이여라                                 인생의 멜로디는 둘이하는 이중주라                                 홀로의 애정극이란 눈물겨워 못보리                             1.     저혼자 불태워 가슴타는 짝사랑은                                 서로의 마음속에 들어가려 하지만                                  녀자나 혹은 남자의 마음밖에 세워두기                           2.     참으로 세상에서 바람직한 결혼은                                 벙어리 남자와 눈먼녀자의 결합이라                                 무언에 보지못하니 그런대로 좋을레라                                         3.     녀자는 참을성이 은연중의 미덕이요                                  남자는 너그러움 기본적인 품성이라                                 서로를 보듬어주며 백년해로 하여이고                         4.     남자들 제일특기 귀맛좋은 감언리설                                 녀자들 천성장끼 애교피워 홀려내기                                 속이고 녹여버리니 피장파장 아니던가                            5.   남자는 스스로 늙어감을 절감하고                                 녀자의 로쇠는 뭇눈길이 알아보네                                 꽃이야 늙어가던들 뿌리마저 늙어질고                            6.   나비는 하롱하롱 꽃송이는 말없어라                                녀자는 꽃일진대 남자들은 무엇인고                                멋겨운 탐화봉접에 꿀벌될가 나비될가                            7.   때되면 이성지합 자연좇아 되더라만                                비속한 남자가 제멋대로 리드하면                                녀자는 경박함으로 쾌절주를 맞추리라                            8.  웅성은 천성으로 동성들에 무관한데                                녀자는 본능으로 동성자가 천적이여                                어쩌노 웅성때문에 시기질투 생기는걸                            9.  지성엔 불붙는 욕정이란 없거니와                                미색을 혹하는것 오로지 감각일뿐                                녀자가 지성적이면 오히려 꺼리더라                        10.   녀자란 천성으로 감성의 천재여서                               야생마 남자들을 좋도록 길들여라                               일컬어 대남자주의 허장성세 아니런가                           1.     남자의 웅변은 녀자보다 요란타만                               설득은 녀자에 미치지를 못하거늘                                녀자의 눈물한방울 장편대론 막더란다                                             2.    남자의 사랑이란 인생길에 선택이라                               녀자는 깊은사랑 남자들은 잦은사랑                               비교를 초월한 사랑 녀자들만 갖니라                                                3.   남자는 강함으로 웅성을 과시되고                              녀자는 유연함에 미색이 가미되네                              남자는 연한 녀자를 녀자는 강한자를                         4.   남자는 토성이요 녀자는 수성이니                             남자보살 녀자라는 강물을 못건너네                             자고로 영웅호걸들 미색에는 무골이라                         5.   술한잔 굽을내니 얼굴이 주홍되고                              두잔술 넘어가니 가슴이 두근닥근                              녀자야 과음을 하면 취생몽사 하리로다                       6.    남자네 사랑이란 인생의 삽화인데                              녀자네 인생의 전부를 걸어두니                              사랑의 희비극이야 당연지사 아니리요                         7.   고우나 믿지못할 녀자를 어찌할고                              미우나 미더운 녀자는 어찌할고                             정이란 눈이 아니라 마음에서 난다하오                         8.    한사코 매달리면 매너가 없다하고                              모른체 담담하면 오히려 끌리는가                              당기면 버티는 녀자 밀어내면 달라붙나                         9.   남자가 한순간에 백마왕자 되여지듯                             바보로 여겨짐도 잠시이니 젠체마라                             지금은 남녀의 정이 반복무상 하거니와                      10.   남자가 리성의 고삐잡고 망서릴때                             녀자는 직감에 판단줄이 쳐진다네                             남자의 본능은 행동 녀자의 천성은 말    
235    남녀비교 시조 (100수) 1ㅡ30수 댓글:  조회:8500  추천:0  2013-08-13
                                    남녀비교 시조 (100수)                     1.                        녀자란 신비하고 몽롱한 난해시라                            해석이 서투르면 더구나 오리무중                            남녀의 행복지수가 얼마인지 뉘알리   2.                        녀자는 연연한 정 눈으로 써내려도                            남자는 본능으로 잘도나 읽노라네                            어즈버 남녀공동어 정이런가 하노라                    3.                        사랑의 이름성씨 그뉘가 아시는가                             남자는 인생에서 애정이 삽화인데                             녀자의 애정희극은 간막없는 장막극   4.                         남자는 점유로써 감탄표 찍어놓고                               녀자는 헌신으로 연장선 그어가네                             애욕의 긴 산문시는 각양인가 하노라   5.                         열련엔 거리미학 읽을줄 모르더라                             존경을 잃은남자 애심도 스러지여                             꼭지가 떨어져버린 늦호박 되리라                      6.                        남자여 열렬하되 냄비는 되지마라                            녀자여 화려해도 경박은 멀리하라                            더더욱 지페따위로 사랑을 팔지는마    7.                       녀자의 희생으로 남자는 향수하네                            진정에 분식하면 서투른 덧칠이니                            서로를 인형으로 만들려 하지마라       8.                        녀자가 웅성들을 쥐락펴락 하는것을                            묻지마 비상무기 난당인줄 네모르냐                             따스한 가슴가슴에 상하좌우 없느니  9.                       남자는 애욕에 지칠줄을 모르는가                           녀자는 받아도 넘치는줄 모르는가                           웅성은 즐기려하고 녀성 또한 갈구해   10.                    남자의 정욕은 점유로써 절정이요                           녀자의 애정은 피점유로 시작이니                               성애의 갈림길인가 행선지는 하나인데                         1.                      사랑은 예술극장 정신과 육체의 춤                           남자는 리드하고 녀자는 연주한다                           남자는 노래를 짓고 녀자는 부르나니   2.                       남자는 녀자를 불만족의 녀왕으로                           녀자는 남자를 챔피언을 만든다네                           결혼은 두가슴속에 새의미를 새기네                      3.                       녀자의 사랑이란 받는것에 비례하고                           남자의 사랑이란 주는것에 비례한다.                           열렬한 어느 일방이 밑진장사 하리라  4.                      웅성아 정복한다 호언장담 하지마라                            지키는 녀자라도 사랑싸움 무승부라                            나중에 포로되는이 너뿐인가 하노라   5.                       사랑의 가장멋진 수사학은 찬미가요                            녀성에 해독없는 마취제는 칭찬이라                            감동의 령단묘약은 칭찬인가 하노라   6.                        날좀봐 날좀보소 짙은화장 요란해도                            녀자들 밝은거울 뭇남자들 눈길이지                            동성만 사는 세상엔 치장이 불필요라   7.                        범나비 꽃의비밀 다알지를 못하듯이                            녀자도 남자에겐 풀길없는 수수께끼                            정답을 얻고싶거든 더뜨겁게 사랑해   8.                        안해란 개념이나 각양각색 아니던가                            악처를 만난남자 철학이 무용지물                            현처를 맞은남자는 주치의사 불필요    9.                        녀자와 목도리는 부드러워 가장좋고                            남편과 젓가락은 강할수록 좋다하고                            안해와 행주치마는 깨끗해서 좋니라    10.                     남자의 거짓말은 거적이라 숭숭하고                            녀자의 거짓말은 돌각담에 물이못나                            녀자는 거짓말달인 남자들은 애청자     1.                        녀자는 정감사전 최대의 백과사전                            하오나 남자들은 서투른 해석자라                            사랑의 착위현상은 그래서 생기지야   2.                        련애는 장님이요 결혼은 귀머거리                            결혼은 벙어리요 남편은 드레박이                            녀자는 항아리되여 삶살이 챙겨두네   3.                        남자는 련애하면 우정을 잃게되고                            녀자는 련애하면 인기를 잃게된다                            오호라 애정극에는 등장인물 단둘이        4.                       그모든 남자들은 녀자에 순화되고                            그많은 녀자들은 남자로 완성된다                              묘재라 이성지합은 인간의 에덴동산   5.                         녀자는 감동하고 남자는 감화된다                             남자는 경험주의, 녀자는 본능주의                             남녀로 엉킨인생에 좋을호(好)자 만세라   6.                        호을로 독배하면 녀자생각 하는남자                             담배를 피는녀자 남자에게 지친녀자                             실련에 녀자는 침묵, 남자들은 폭주라   7.                         녀자란 한권의 책 읽어보고 해석해도                             의연히 알수없는 대목있어 재미있고                             제목만 얼핏보아도 척알리면 흥심없어   8.                         녀자의 사랑이란 해면과 같으니라                             남자의 폭우같은 사랑도 스며드니                             정애의 드레박질에 석양이 붉더니라    9.                        녀자의 숨은매력 수집음이 아니던가                             수치를 모른다면 신비함도 사라져라                             함수초 부끄러움에 죽는다고 하거늘           10.                     남자는 감각만을 녀자는 감수만을                             녀자는 환상가요 남자는 공상가여                             남자는 이성지합을, 녀자는 부부애를                              
234    (중편소설) 머나먼 사랑탑 댓글:  조회:26686  추천:1  2013-08-06
                                                       머난먼 사랑탑                                                               최 균 선                             ㅡ사랑신의 영향은 각자 다르게 체현된다. ㅡ       사랑과 인생은 동의어라고 할수도 있다. 그로써 인생의 비밀인즉 사랑의 비밀이 되기도한다. 아득히 흘러간 세월의 풍진속에 묻혀버릴 이야기, 먼훗날 기억에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보면 그때는 들을수 없는 행동의 소리를 귀기울여야 조금은 들을수 있고 볼수 없는 행동의 모양을 애써 그려보아야 보일듯말듯 할것이다. 그래서 혼자라도 두고보려고 기억이 녹쓸기전에 이렇게 총총히 적어두는바이다.     인생의 첫아침에 혼자 자아도취되여 비틀거리기시작한 내사랑의 초행길, 참으로 한생을 건 치렬한 사랑이야말로 광증에 불안해지고 정염의 불꽃이 작열하고…천국과 지옥의 사자가 엇갈아 끌어당여 한번 굴러떨어지면 다시 솟아나기 어려운 그런 곤혹의 동굴이랄가? 누구에겐들 인생길에 희로애락의 뉘앙스가 없으랴만 채익기도전에 짓씹어삼킨 풋살구같던 그 시절에 멋모르고 덤벼치다가 미쳐서 그냥 빠져버린데서 시작된 나의 애정의 희비극일막은 혼자서도 기막혀서 흐느끼며 적어본다.                                         1.사랑을 찾아 천리길       칠칠흑야,곁에서 주먹을 내질러도 모를만큼 밤하늘이 먹통같다. 몇시간전, 남양역 출찰구로 나오지않고 세워놓은 활물차바곤사이로 몰래 빠져나오다가 초병들게 발각되여 추격당하게 되였다. 죽기내기로 달리는데 “서랏! 서지 않으면 쏜닷!” 하는 악에 바친 소리와 함께 총소리가 뒤통수를 때렸다.    선우는 겁결에 제자리에 굳어져버렸다. 씨근덕거리며 달려온 초병이 무작정 팔을 비틀었다. 사무실같은 곳에 들어서니 가죽장화를 신은 두발을 테블우에 올려놓고 건방떨던 군관이 “좋아서 건너온놈 일이나 착실하게 할꺼이, 왜 도로건너가려고 도망왔어? 이젠 맘대로 오가지 못하는줄몰라? 래일 원지로 돌려보낸다. 알갓어? 이 자를 보초실에 가두었다가 래일 되돌려 보내라구…”     선우의 귀향의 길에 악운이 닥쳤다. 다시 어느 농장에나 처박아두면 인생은 달리쓰일수밖에 없었다. 보초막에 난로는 피웠지만 몹시 썰렁했다. 밤이 점점 깊어졌다. 구석쪽 걸상에 쭈크리고앉아 밤을 새우다가 살펴보니 문밖에 섰던 보초병이 추위를 말리려고 난로가에 앉았다가 굳잠에 빠져 코를 곯고있었다. 생사관두에 용기를 내린 사람마냥 살며시 문을 빠져나와 강변쪽으로 줄행낭랑을 놓아 얼음이야 풀리고 있건말건 무작정 강판에 들어섰다.    다행히 도문쪽 강기슭에서 얼음이 꺼졌기말이지 고기밥이 될번했다. 구사일생으로 허우적거리다가 마침내 제방뚝에 주저앉으니 방금 깬 악몽에 몸서리쳐졌다. 졸업하자 바람으로“님”을 찾아 강을 건너갔던 자신의 황당한 작동의 결과가 허무하기 그지없었다. 허물어진 신기루때문에 허탈감에 빠져 전신이 떨리는지도 모른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그대로 있다간 얼어죽을수도 있었다.     마침 제방뚝아래 멀지않은 골목에 둘째숙모의 집이 있었기망정이지 정말 곤욕을 치를번했다. 꼭두새벽에 불성모양이 되여 문을 두드리고 들어서는 선우를 보고 숙모가 기겁초풍하였다. 바꿔입을 옷도 없어서 이붓숙부의 옷을 대충걸쳐입고 뜨시한 방에 들어가 누워버렸다. 불행중에도 신령님이 도와준덕에 살아서 돌아온것이다.  《 야조야, 너 공부한다고 말리는것도 듣지않더니 와 이렇게 돌아왔노? 》    선우는 숙모의 구시렁소리를 들으며 말며 하다가 그냥 노그라져 깊고깊은 꿈나락에 빠져들었다. 꿈속에 천애이역의 님을 만나고있었다. 사랑이란 때론 광증에 불안해지고 정염의 불꽃에 작열하기 쉽고…천국과 지옥의 사자가 엇갈아 지키는, 한번 굴러떨어지면 솟아나기 어려운 그런 곤혹의 동굴이던가.    선우가 뒤쫓아간 님이란 강을 먼저 건너간 정희라는 계집애였다. 모습전체가 정교한 조각품같이 매력적인데가 있어 초중때부터 남자애들의 눈길을 빼앗는 백설공주였다. 한창 망울을 터친 꽃송이같이 싱그러움을 안겨주는 화사한 얼굴에 크고 까만 눈에는 태생적인 장난기가 비껴있고 상큼한 코아래 봉긋한 입술은 고집스러움을 여실히 읽게 하지만 아무튼 매력둥이다. 정감의 뒤고방에 오래잠들어있어야 할 선우의 몽롱한 이성의 꿈을 그렇게 때이르게 깨워놓기에는 넘치고도 남을 녀자애였다.         비록 소꿉동무는 아니였지만 선우가 소학교 졸업학년 때 룡강촌에서 모아툰에 이사와서부터 중학교 3년을 내내 한반에서 공부하고 그후에도 그냥 끈끈한 인연에 얽매였던 그들이다. 그만한 나이면 서로 내외하며 아닌체하는 계엄시대였지만 그들 만은 남달랐다. 선우는 학교문예대의 연극조주역이였고 정희는 무용선수였다. 그러다보니 그들 사이엔 “3.8선”이 없었다. 정희가 무용련습이 늦어질라치면 기다려달라고 청을 들었고 그 소리는 선우에게 황후의 지엄한 명령처럼 들리였다. 때는 한창 대약진의 먼지바람이 자욱하던 때인지라 마을에서 비료랑 모으는 임무가 많았는데 그때마다 그들은 손을 잘맞추었다. 그 리고 쥐꼬리랑, 참새랑 바치는 임무를 완성하지 못해 안달하는 정희에게 늘 큰손을 내미는 선우였다. 어느날 노을빛에 물들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정희가 제의했다. 《 얘, 선우 너 우리 무용대에서 농악무 안출래? 상고를 돌릴사람 모자란데…》 《 네가 우리 연극조에 넘어오렴, 너 감정객이여서 연극 잘할것같은데, 이번 극에 녀자주역을 시켜줄게, 어때?》 《 너? 그냥 개살구질 할래? 남은 정식인데 늘 헤식은 소리나 하구》 《 가고싶긴 한데 그 준호란새끼 보기싫어서 안갈란다.》 《 걔가 어때서? 오라, 너 질투하는거지? 그애가 잘생겼으니까 》 《 그새끼 좋아하니? 한번 패줄갑다. 히…너 울겠지? 너의 장차 신랑…》 《 뭐라구? 이 얼싸같은게, 다시 너와 노는가봐!힝!》     그들은 이렇게 늘 티각태각하기도 잘했지만 이튿날이면 곧 봄바람에 눈녹듯 알륵이 풀어졌고 정은 그냥 씨알마냥 염글어갔다. 선우는 반에서 힘센축은 아니였지만 정희를 지키는데만은 용사로 자처해왔고 정희는 정희대로 그 마음을 읽고있었다. 그래서 늘 정나미돌게 굴었다. 무심히 웃는 꽃의 미소에 상사병이 걸린듯 선우는 너무 때이르게 이성에 눈이 떠버렸던것이다. 사랑은 배우지 않은 사람에게도 문학을 가르친다고 그때로부터 선우는 책귀신이 되였다. 그리고 정희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선우가 말솜씨가 좋아서라기보다 그 정성이 갸륵해서 들어주었는지 모르지만 늘 귀를 기울여주고 차차 웃고울었다. 그맘때 뿌쉬낀시집 한권을 얻어서 읽었는데 모방하여 써보기도 하였다. 이를테면 “정원인가 야채밭에 앵두나무 두그루 심었나이다” 를 “내 마음밭에 앵두나무 두그루 심었소 한그루는 나, 한그루는 그대, 두그루 앵두나무에서 앵두를 따시라”같이 껄렁한 시를 써가지고 주머니에 넣고다니며 줄가말가 하다가 그만 어데선지 잃어버리고 말았다.     원래 앙숙이던 준호가 그걸 주어서 제짝패들에게 보이고나서 정희의 필통에 넣어 장난치는 바람에 그만 사달이 생겼다. 정희가 콩팔칠팔 야단을 치고 선우가 개망신을 당하리라고 기다렸는데 한강에 돌을 던진격이 되자 흥이 깨져버린 준호가 특대뉴스를 반주임께 전했다. 그래서 정우는 비평깨나 받았고《나그네》라고 놀림받게 되였다.     선우는 정희가 소문을 낸것으로 알고 단단히 벼르고있었다. 마을에서 만나도 소닭보듯했다. 하루는 선우가 하학하고 돌아오는 길에 마을어구에서 정희를 기다리고 있다가 불쑥 앞을 막았다.  《 이 계집애야, 너, 나 좀보자》 《 왜이래? 지금 보는건 보는게 아닌감?》 《 너 성풀이 할라면 나한데 할거지 왜 반주임에게 고자질했어? 시시하게?》 《 이 아새끼야, 내가 시시해? 네가 시시하지, 》 《 나, 그 시를 네필통에 넣지않았어. 가지고 다니다가 그만…》 《 넣었으면 어떻고 안넣었으면 어떤데? 넌 바보야, 저절로 어떻게 할줄몰라?》     정희는 성이 독같이 나서 선우의 가슴을 어깨로 탁 밀쳤다. 전혀 방비없던 선우가 둥글소가 강판에 번져지듯 훌렁 자빠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정희는 찬바람을 씽 일구며 돌아섰다. 그날 이후 그들의 그림자는 제각기 걷기가 되였다.     얼마후 룡산2대앞에 있던 학교농업기지에서 삽으로 논밭을 번지던 날이였다. 한줄로 죽 서서 한삽한삽 번지며 나가는데 준호가 정희옆에 끼여들어서 시부렁거리며 선우쪽을 힐끔거렸고 여기저기서 키드득거렸다.     얼굴이 빨개진 정희는 거의 울상이 되였다. 제무안에 취하여 어쩔줄 모르던 선우는 정희에게 미안한 마음이 분노로 터져나왔다. 한달음에 달려가던 그 기세로 주먹을 내질렀다. 반주임이 다가와서 고래고래 욕을 해댔다, 녀자애들 앞에서 수모당한 준호가 정희의 삽을 뽑아들고 선우를 후려치려는 찰나, 정희가 본능적으로“선우야!” 하고 소리치는 바람에 얼결에 비켜서다가 어깨죽지를 호되게 강타당했다.     더 가릴것이 없었다. 내친김에 입방아를 찧는 또래들앞에서 헛위세라도 피워야 했다. 손에 잡히는대로 뽑아든 삽으로 준호의 허리를 후려쳤다.《아이쿠!》소리와 함께 준호가 논판에 고꾸라졌다. 일이 크게 벌어졌다. 준호는 병원에 들려갔고 선우 는 백기로 뽑히고 여러차례 비판을 맞고나서 그만 서리맞은 시래기가 되였다…     제딴엔 정희가 받은 수모를 갚아준다고 했지만 정희는 졸업할때까지 소닭보듯하였다. 사랑은 금이갔지만 인정은 끈질기였다. 실련의 우울덕분에 선우는 룡정고중에 붙고 정희는 룡정현위생학교에 붙었다. 그러나 그들 사이에는 의연히 깊은 골짜기가 패여있었다. 그러던 어느 늦은봄날 금이 실렸던 우정이 다시 어울리게 된 기회가 생겼다. 토요일이여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였다.     일이 될라고 그랬는지 정희가 멀리 앞에서 한들한들 걸어가고있었다. 그래도 선우는 달려가 말을 걸어볼 엄두도 못내고 멀찍히 떨어져서 스적스적 따랐다. 그런데 마을이 저만치 보이는 해란촌의 제방뚝에서 어떤 술주정뱅이가 정희를 붙잡고 실랭이 질하였다. 정희가 선우쪽을 연신 바라보며 바들바들 떨기만 했다.     사랑하는 처녀앞에서는 겁쟁이도 몇분간은 용감해질수 있는법이다. 선우는 씽하니 달려들어 취한을 걷어차 뚝아래로 처박았다. 그리고 다짜고짜 정희의 손을잡고 내뛰였다…한참 달려서 마을앞에 와서야 손을 놓아주었다. 정희가 숨가쁜중에도 발씬 웃었다. 열여덟, 한창 꽃펴나는 처녀의 웃음은 선우의 얼었던 가슴을 녹여주었다. 《 선우, 아니 오빠가 울뚝밸이 있는줄은 알았지만 어쩜 오늘 이렇게…》     생뚱같이 오빠를 부르는 바람에 조금 기분이 잡쳐졌다. 한마을에서 숭허물없는 사이라도 아무개오빠라고 부르지만 그저 오빠라고 부르는 습관이 없었던것이다. 하지만 선우로서는 정희와 다시 화해하게 된것이 얼마나 좋은지 몰랐다.     그후부터 그들은 집으로 올때마다 정다운 련인들처럼 어깨나란히 다녔다. 그들은 보다 성숙했다. 몽롱함이 벗겨질수록 신비스러운 감정의 꽃바구니를 엮어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름다운 첫꿈은 무참히 깨여졌다. 정희네가 항미원조에 나갔다가 높은 군관이 되여 제자리에 주저앉은 아버지를 따라나갔던것이다. 망울을 짓기시작하던 선우의 첫사랑은 그렇게 피기도전에 멋없이 시들어버리고말았다. 정우는 막연한 다짐으로 시한수를 총망히 써서 정희에게 주었다.                   꽃은 피여 향기를 풍기기도 전에                 리별의 비바람에 시들어버리는가                 불붙는 한숨이 뿌리채 불태우건만                 붙잡아둘수 없는 나의 꽃송이여                   꽃이 필때 락화의 한을 몰랐던가                 리별을 있을줄이면 기약이나 말지                 힘겹게 가꾼 내고향 나리꽃이여                 나는 그저 바라보며 울어야 하니?                   떠나는 네 뒤모습을 그저 지켜보며                 가슴이 재돼도 아무말 할수 없구나                 바람따라서 흘러가는 저 쪼각구름이                 어디가서 뜨거운 내눈물로 쏟아질가       정희도 떠나기 전날 편지를 전해주었다.       선우야, 이 편지를 읽을 너의 얼굴 표정을 얼마든지 상상할수 있어, 나 어떡하면 좋니? 막무가내로 떠나야 하는 이 시각에야 우리의 정은 그저 돌아서면 잊어버릴 아이들 유희같은것이 아님을 가슴으로 느끼였어.     한 녀자애에게 사랑의 의미를 알게해줘서 고마워, 차차 널 사랑하게 되여서 가슴이 부푸는 때에 이렇게 가야만하는 나는 어쩌니? 내마음속에 가둬두고 싶었고 그러다가 집착하게 된것같아, 그런데 뜻밖의 리별이 널 숨막히게 할것같아 가슴이 찢기는구나, 나도 일찍 너를 좋아했어, 네가 바보여서 내마음을 읽지 못하고 말썽만 피웠지만, 나도 인젠 널 사랑한다. 미안해, 이 말은 해도 아무소용없지, 바보같은 너에게 더깊은 상처가 될테니까,     너무 속태우지 말아라. 사랑의 문은 이미 열렸으니까 네가 정녕 나를 잊지못하면 인차 뒤따라 나오길 빌어본다. 우리 아버지가 너의 학업을 도울수 있으리라 믿는 마음으로 내슬픔도 달래본다야, 비가 오는날엔 나의 눈물이라고 생각해라. 이렇게 떠나도 널 못잊을것 같기에 내눈물을 씻어줄 유일한 너, 내곁에 없을 때 나도 바보처럼 눈물을 찔찔 짤거야, 이 말은 진심이야,   지금은 이렇게 가슴이 타지만 혹시 세월이 많이 흐르면서 가끔씩 그리워하다가 잊어버릴가? 나 이렇게 떠나며 행복한줄만 알지? 오래동안 널 잊지 못할거라는 나를 믿어. 그런들 어쩌겠니? 세월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을테지? 네가 써준 시를 글자로가 아니라 가슴에 깊이깊이 새기고 간다.     선우야, 잘 있어라. 마음만 있으면 세상이 아무리 넓어도 만날수 있다고 믿는다. 너는 나를 꽃이라고 하지만 너는 정처없이 떠도는 구름이 되지마, 구름이 되고싶으면 동해바다 하늘에 날아와서 떠돌기를 바란다. …        그렇게 떠난 정희는 한동안은 편지를 자주 보내왔다. 첫편지의 내용도 정우는 잘기억하고있다.          선우야, 보고싶구나, 정말 그립다야       매번 너에게 상봉을 호소하는 편지를 쓰고있는 내가 우습니? 이제는 잊겠노라고     너에게 고별의 편지를 쓸날이 올가봐 겁이난다. 아침이 되면 어제 고했던 작별은 태워버리고 다시 너에게 사랑한다는 이 편지를 쓴다. 어제도 아픈마음으로 너에게 보내지 못할 일기를 썼다. 쓰고써도 그저 가슴이 아프다는 말뿐이였다.     잊혀지지 않겠지만 잊을거라고. 잊기위해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 그래도 잊어야 하지… 생각을 다지지만 그게 잘안되는구나. 나없이 성공하라고, 잘지내라고. 행복하라는 축복의 말이 나오지않는다. 차라리 너를 잊는게 조금은 덜힘들련만 차마 너를 못잊는 내마음을 읽어주라, 열번, 백번…말하기는 쉬워도 견디기는 어렵구나. 전하지못할 일기이지만. 매일 매일 리별의 편지처럼 쓴다.……       정희에게서 편지가 올때마다 무슨대사나 치르듯이 정우는 남몰래 회답편지를 썼다. 아니 마음을 종이우에 통째로 쏟아놓고 허비적거리였다.         정희야, 너는 동해바다가의 경치를 말하기 좋아하지만 내가 바라는건 더이상 너에게 아픔이 되지않을 일만 생각한다. 너도 어쩔수 없다는걸 나는 알구있어, 너는 나를 부르면서도 언젠가 다른 사람을 보고 웃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네가 나를 부르는 소리만 한평생 기억할란다. 우리는 그동안 여러번 갈라지는 련습을 하면서 이튿날엔 곧 하하호호 웃었지? 그건 유희였구나.     네가 떠나 허전한 자리, 그 빈자만큼 나는 그리움으로 메우고있단다. 난 지켜야 할 어머니가 있기에 가슴이 아파도 내가 할수 없는 일을 두고 너에게 따라가겠노라고 확답을 못하고있어 더구나 슬프구나. 너와 나의 이 지독한 미련을 언젠가는 끊어어야 할거라고 생각하면 정말 황소울음이 나온다.     네가 입버릇처럼 말하는 그 바보란 말은 나한사람밖에 알아들을수 없고 리해할수 없다는것을 너도 알겠지? 나 정말 바보가 맞는것같고 정말 바보가 되여지는것같다.  너에게 숨겨두었다가 세상에 드러난 그때의 내순정을 늦었을망정 진정으로 받아준 너를 찾아 나도 하루 스믈네번씩 날아가고있다…     일년후 정희의 말처럼 외류바람이 동북각지에 불어쳐 너도나도 강을 건너가기 시작했다. 정희에게서 또 편지가 왔다. 무작정 나오란다. 그러지 않아도 마음이 허궁떠있던 선우는 대학이고 뭐고 때려치우고 곧장 정희를 찾아나가려했지만 홀어머니가 눈물로 만류하는바람에 차일피일 미루다가 졸업을 앞두고 마침내 어머니에게 한마디 하고는 훌쩍 강을 건너가 방황의 길에 올랐다.     그러나 인차 찾아가지 못하고 황해도 해주의 한 사과농장에 배치받아서 일하게 되다보니 세월이 또 꽤나 흘렀다. 뒤늦게 도망쳐서 원산에 찾아갔을 때는 정희는 학교에 없었고 어데갔는지 알아볼 방법도 없었다. 후에야 안일이지만 정희아버지가 부상당한 미열로 시름시름 앓다가 사망하자 꼭지 떨어진 호박신세가 된 그들은 원산을 떠났던것이다. 선우가 죽지부러진 새가 되여 다시 강을 건넌것은 두만강얼음이 풀리기 시작하던 지난 3월말이였다.                                                           2. 님은 다시 돌아왔어도       인연은 끊기지 않는 법이던가, 그해 가을이 저무는 때에 아름찬 기쁨이 선우에게 찾아들었다. 정희어머니가 어느 공장에 배치되였다가 친혈육들이 있는 중국으로 너무 오고싶어 다시 두만강을 넘어왔다. 정희는 배운 호사지식을 써먹지 못하는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사랑하는 선우곁으로 간다니까 생각이 확 달라졌단다.    그들은 해란강제방둑에서 만났다. 서로의 눈길이 눈길을 찾았고 오래오래 못을 박을듯 응시했다. 《 야, 눈자리나겠다. 귀신이나 보는듯한 낯을 해가지구》 《 또 훌쩍 날아가버릴가봐 그래.》 《 응, 그래 맞갖지 않으면 또 날아갈지도 모르지, 그래야 개 바위갔다온격으로 날찾아 팔도강산 헤매구돌지, 바보, 언녕 편지나 하구 왔어야지》    정희가 선우의 가슴을 내지르려는 서슬에 와락 그러안았다. 천애이역에서 서로 찾아헤매던 두젊은넋은 그렇게 오래오래 굳어져있었다. 정희가 할딱거리다가 급기야 새된 소리를 뽑았다. 《 아이, 숨넘어간다. 그만…》    정희의 입에서 단내가 확풍겨나왔다. 아니 향내였다. 꽃내음은 아니였지만 한창 부풀어오른 아릿다운 나이의 처녀에게서만 풍길수 있는 이성의 단내였다. 선우의 불같은 뜨거운 입술이 무작정 꽃술같은 정희의 입술을 덮어버렸다. 《 저리가!죽일작정이야? 아이, 숨차…》 《 그래, 죽이고 싶도록 그리워했단 말이야,》    선우가 입술을 채 떼지않고 반벙어리소리같이 중얼댔다.     이번엔 정희가 선우의 목을 꼭 껴안았다. 남자의 몸에서 거센전류가 흘러나와 온몸을 짜릿하게 하였다. 풀어져버릴것만 같았던 두넋과 몸에 다시금 팽팽한 긴장과 충전을 일으키게 한 푸들치는 생명이 발산하는 전류였다. 오래동안 서로 그리워하다 가 만난 그들이였기에 세상에서 태여나 이렇게 티없이 깨끗한 키스에 뒤미처 불안한 마음에 몸이 달아오름을 느끼자 수집어진 정희가 먼저 팔을 풀고말았다.     다시 두몸이 되였지만 둘이만 느끼고 알수 있는 사랑의 환희와 신비로움을 말로서는 도저히 표현할수 없었으며 마술같은 힘에 빨려드는것을 걷잡을길 없었다. 가슴을 터놓고 나누는 그 속삭임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둘도없이 매력적인 부호일것이다. 정희는 연분을 찾아 두만강을 넘어온 자신이 얼마나 잘했는가를 다시 한번 절감하면서 선우의 그 의젓한 모습을 가슴에 통채로 옮겨다심었다.……     정희는 농사일에 숙맥이였지만 선우의 곁에 있다는것만으로도 밭일에 나가는것이 즐거웠다. 일터에서 눈으로 하많은 사연을 주고받는 신비한 느낌으로 하여 힘겨운줄 몰랐고 밤이깊도록 밀회를 가졌지만 피곤이 무엇인지 몰랐다. 사랑의 정은 그렇게 무르익어갔고 이제 더는 헤여나올길 없는 열련의 호수에 빠져 자맥질하게 되였다. 정희는 아예 선우의 사랑의 호수에서 익사하고 싶었다.     그러면서도 도적이 제발저리다고 속을 앓는것은 선우였다. 황홀한 사랑의 호수에 빠져들수록 숙명같은 비애에 젖는 때가 많았다. 억누를길 없는 사랑의 표식을 몇번이라도 찍을수 있는 그들 사이였지만 그에게는 달콤한 기쁨을 진동시키는 사랑의 금선 이 가장 슬픈가락을 연주할수도 있다는 불길한 예감을 떨쳐버릴수 없었던것이다. 아닌게아니라 멋모르는 농민들의 의식속에도 정치기후가 이상해져가고있었다. 농촌 사회주의교육이 터지면서 그리 눈을 밝히지 않던 출신을 처처에 캐기시작했다. 《 정희야, 난 어째 막연한 생각만 나면서 맥이 빠지는지 몰라,》 《 그게 무슨 말이야, 그런 말 자꾸 할래? 천리를 헤매며 나를 찾았다던 그때 용 기는 시래기국에 말아먹었니?》 《 아니야, 우리 사이엔 넘을수 없는 장벽이 있다는걸 지금 날마다 말하잖아? 《 싫어, 난 사랑이 죽음보다 강하다고 너불대던 네입을 잊지않고 있거든 》 《 고마워, 내정희야, 너 고추성격 언제까지 매울지 모르겠지만 좋아…》     그들은 이렇게 은밀한 사랑에 세월을 포개여 쌓으며 해와 별을 두고 몇번이나 맹세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 맹세가 모래우에 쓴 글이 되지 않으리라고 누가 장담한다던가? 《 엄마가 눈치챘어. 천장이 낮다고 펄펄 뛰네, 애를 먹을것같아, 우린 어쩌지?》 《 운명의 안배라면 내가 무슨수로… 너도 지금은 견결하지만…》 《 듣기싫어, 방법을 대야겠어》 《 무슨 방법?》   조급증에 눈까지 울뚝해진 선우의 말을 정희가 중둥무이했다. 《 바보, 몰라서 그러니? 순진한체 하는거니? 엄마도 쑨죽을 밥으로 만들수 없도록 하자는거지…》 《 엉? 아아…아니야, 그러다가 무슨 경을 치라고?》 《 그래? 이 맹꽁이야, 누군 몰라서 그러는줄 알아?》    련줄포를 쏘듯 줄욕하던 정희가 다시 선우의 귀에 입을 대였다. 《 지금도 강을 건너가는 사람들이 있다더라. 아니면 우리 둘이 건너갈가?》 《 그러면 두홀어미들이 기막혀 지레 죽을거야》 《 그럼, 어쩐단 말이야, 엥이, 나두 몰라.》    달빛아래 아롱지는 정희의 눈물을 보는 선우의 두눈에서도 뜨거운것이 흘렀다.    …어느새 새벽빛이 동쪽으로부터 서서히 스며들기 시작했다. 산아래 우사마당에서 두런두런하는 소리가 들리기시작했다. 건조실담배를 뜯어내여 널어놓고 일군들이 잠간 눈붙이려 집에 들어간 사이 그들은 뒤산에 올랐던것이다. 그들은 얽히고 서렸던 팔을 아쉽게 풀어내리고 제각기 다른 길로 산을 내리여 일군들속에 새여들었다. 정희는 눈물을 삼키노라니 문뜩 며칠전에 선우가 써준 시를 떠올라 가슴에 모닥불이 일었다. 제목은《내 인생길》이였다.                                                     기구한 인생의 오솔길에                           나는 걸음마다에 짓채인 조약돌이였지,                       사나이 칠석간장이 부서져                           피맺힌 아픔이 굳어진 한의 덩이였나?                         매말라 헐벗은 가지에                           쓰디쓴 열매하나 외로웠지,                       저것에도 있을법한 꽃시절                           지금은 하늬바람에 떨고있구나.                         쑥대 우거진 마음의 무덤가에                           찢어진 추억의 돛폭,                       굽이 많은 인생의 오솔길에                           락엽에 묻힌 파아란잎새,                         인습에 절은 지친가슴이                           버리운 네거리에 헤매였어도                       참고 이겨낸 고달픔은                          인제 여기 오솔길에서 굳어지는가,                         가시넝쿨 덮인 내 마음의 오솔길                           내 사랑의 비탈길에                       사나이 칠석간장이 부서져                          피맺힌 아픔 조약돌로 딩구누나.            정희는 그때나 이때나 시를 잘 모르지만 선우의 가슴에 이런 정한의 불덩어리가 굴러다니는데는 슬펐다. 시에 감동되였다기보다 선우가 쓴것이라서 자꾸 눈물이 났다. 선우도 울었다. 다만 그로해서 한가지만은  명백해졌다. 거절당한 사랑보다 사랑할 권리가 없다는것이야말로 열불이 터질일이라는것이다. 누구를 사랑하기때문에 가슴이 아프다는것은 얼마나 공평하지 못한 일인가? 사랑한다는것은 따스해지고 신이나는 느낌이여야 하련만 선우ㅡ자기만은 왜 사랑에 가슴이 찢어지고 멍들어야 하는 것인가? 이 시각도 자기 가슴에 밀착시켜 올 때 그 뭉클함과 따습은 체온과 달콤한 욕정이 더욱 참을수 없는 격정으로 펄펄 끓어오르는것을 식혀낼길 없었다.     정희가 믿어주고 아껴줌으로써 소외된 이 인생마당에서도 생활의 한구석을 찾아 그녀를 삶의 기둥으로 삼아 살수 있게되였다고 굳게 믿던 그였다. 이제는 더 가슴이 죄이고 기다림에 목마를 일도 없지만 아픈추억으로 남을수도 있다고 절감할 때 오열이 북받친다. 천정이 너무 낮은 집에서 너무 오래살면 등허리가 휘여드는거처럼 정신도 압박감으로 하여 형태가 이그러지고 우울증과 심리장애가 오는법이다,                                                                           3. 잃어버린 사랑        마침내 신주대지를 휩쓴 문화대혁명이 터졌다. 정치분위기는 소름이 끼치도록 살벌해졌다. 모든것을 부시고 모든것을 비틀어놓는 광란의 년대라도 인륜지락을 누리고 뒤끝에 생육이 연장되는 사람들의 본능만은 여전히 왕성해서 마을처녀들은 하나둘 시집을 가고 애엄마로 되고 친구들마다 무릎아래 올롱이 졸롱이가 뛰놀았건만 선우만은 풍랑이 세찬 세월의 물결우에 간신히 생의 노를 젓고있었다.    로처녀로 늙어가던 정희도 세월이 점점 험악해지고 엄마말처럼 새끼도 락자없이 전도가 없을것이 불보듯해서 끝내 견뎌내지 못하고 시집을 가기로 작정했다. 코를 꿰여 끌려다니는 소처럼 그저 일밭으로 오가는 선우의 꼬락서니가 청승맞아서 위로의 말한마디 하려해도 곁에서 어찌나 눈을 밝히는지 엄두도 못냈다. 정희가 약혼택을 낸다고 청년들을 청할 때 자기 사랑을 가진 궁금해서 묻어들어가 보았다.     왕청 어디라고 소개했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다만 숫총각으로는 너무 골기 가 없는듯한 느낌이 들어 서운했다. 정희의 고추성격을 맹물에 삶으면 매워질수도 있겠지만 어째 석연치 않았다. 스스로 싱거운 걱정을 할것도 없다고 자신을 질책하는 의미로 생전처음으로 술을 억세게 마시고나서 강변에 나와버렸다.     해란강다리 란간에 기대여 어둠속을 주절대며 흘러가는 강물을 굽어보며 연신 마라초를 태우며 혼자 도깨비 여울건너는 소리를 씹어냈다. 강바람에 흩어져가는 담 배연기처럼 사랑은 자취없이 사라질것인가? 사랑하고싶은 사람은 곁에 있었건만 멀리 떠나보내야 하는가? 위해주고싶은 그 사람, 아, 못다 길어올린 속상한 사랑의 드레박질이여,     모아산 고개를 타고넘은 밤바람이 삽시에 강물을 얼궈붙이고 자기는 맨발로 그 얼음판위를 건너면서 기슭에 닿지 못하고 자꾸만 미끄러져 넘어지고 있는듯한 자신의 불운을 발견하면서 속썩은 한숨을 토하였다. 밤은 깊어가건만 인적이 끊긴 큰길을 꿈 길가듯이 걸었다. 그의 두눈에서는 꺾여진 자존심과 몸부림치는 절망, 분노의 빛이 번뜩이였다. 그 속에는 너무도 공상적이였던 자신에 대한 조소도 타번지고있었다.          정희는 약혼해서 한달만에 시집을 갔다. 시집가기 전날밤, 그가 편지를 보내왔다.          …선우야,     나는 래일 새벽차로 내 사랑이 꽃피던 모아산을 떠난다. 철석같이 맹세했던 그 사랑을 끝내는 지키지 못하고 가는 나쁜년이 이런 편지를 써서 무슨 소용이 있겠니만 이제 다시 다정한 말 나누지 못하고 이산과 저 산에서 바라봐야 할 리별이란 아픔을 달랠길 없어, 미안한 가슴을 눈물로 적시며 이 편지를 쓴다.    네사랑, 내사랑을 찢어버리는 이 마당에 아픔만 밀물처럼 밀려들지만 나는 서러 워 울며간다는것만 알아달라. 눈물로 한글자 한글자 쓰는 이 편지, 다 쓰고나면 눈물에 얼룩져 글자마저 잘 안보이겠지만 사랑을 묻어두고 가는 내 마음이야 읽을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너의 초가집이 빤히 건너다보이는 마당에서 사랑의 맹세로 기약하던 저 별들을 마지막으로 보면서 온갖 슬픔에 잠기게 되는구나. 정말 떠나야 하는 내마음 아리도 록 괴로움에 젖어 뜨거운 눈물만 나는구나. 다시 만날수야 있지만 나는 이미 다른 남자의 녀자가 되는 몸, 너도 이제 장가들면 다른 녀자의 남자가 되여 우리는 생전 보지 못하던 사람들처럼 그리도 서먹서먹하겠지?     가슴속에 내리는 눈물의 비를 잉크로 삼아 하얀 편지지를 채우기가 왜 이리도 힘 겨울가? 편지지만 뿌옇게 보일뿐 내마음을 전하려는 편지는 엮어지지 않는구나. 손으로 눈물을 닦아도 훔쳐도 내가 쓴 글자가 보이지 않는구나. 내가 너를 생각하며 울 고있다는것은 나의 미래남편에게 죄를 짓는다는것도 생각하면서도 첫사랑에 목매는 나를, 눈물로 채워지는 나의 마지막 편지를 너는 읽을수 있니?      늘 죄지은 사람처럼, 쫓기는 사슴처럼 황황해하던 네모양이 불쌍해서 시집가는 첫날각시의 설레이는 마음도 나는 모른다. 사랑한다고, 사랑을 찾아헤매였으면 왜그 용기로 나를 찎어넘기지 못했니? 시집가는 처녀로서 이런말을 하면 나쁜년이 되는줄 나도 안다. 이렇게 벌써부터 가슴이 타는데 내가 결혼생활에 행복할지 모르겠다.     선우야, 마지막으로 네이름 불러보자. 청년답지 않게 두가닥 밭고랑이 깊숙히 건너간 환상가다운 번듯한 이마아래 늘 속심을 숨기고있는 형형한 눈, 견딜성을 말해주는듯싶은 턱, 넓은 어깨폭, 여느 남자애들보다 높고 탐탁한 동가슴…어느모로 보나 애정의 불행아는 아닌것같은데 너는 어찌하여 못생긴 새끼오리가 되였니?      내앞에 있으면 왜 너는 바보가 되는지? 그래서 네가 너무 불쌍하고 사랑이 아픈지 모른다. 시집을 가고 첫날밤을 치러야 할 각시로서 지금 생각하면 네가 한편 고맙기도 하지만 그렇게 못나게굴던 네가 밉기도하다. 한쪽에 죄를 짓고 가더라도 한쪽에는 죄책감이 덜어질게 아니니? 미칠듯 사랑한다고 하면서 왜 미치지 못하니? 이렇게 가슴은 까맣게 타는데 왜 네가 나를 고이지켜주었는지 모르겠다.     잘 있으란 말은 하고싶지 않아, 잘있으라고 네가 잘있을 처지가 아닌줄 나는 잘 아니까, 거짓같은 말로 아픈 네마음에 소금까지 뿌리고 싶지는 않다.     선우야, 넌 바보다, 어설픈 사랑을 바보처럼 시작했던 그때처럼 그냥 바보다.                    ………………………………………………                                          너의 녀자였던 정희 씀       아침차를 타기 위해 새벽같이 떠나는 둘너리들과 함께 정희가 마을뒤산을 오를 때, 선우는 마당가에서 몰래 눈물로 바랬다. 정희가 정말 마음의 눈이 있었다면 언녕 보아냈으리라. 정희의 뒤모습이 사라지자 선우는 자존심을 꺾어들고 오래오래 울었다. 울지않을수 있단말인가?불행해도 행복해도 첫사랑으로 돌아오는 법이라 하였거늘…     정희가 나이를 잔뜩 먹었지만 공소사에 판매원으로 있다는 월급쟁이에게 시집을 간다고 부러워하던 마을아낙네들이 한달쯤 지나서 다시 정희가 리혼하고 돌아온다고 입방아를 찧었다. 신랑이 고자쟁이여서 원래부터 마음에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다는 정희가 잔치이튿날부터 앙앙불락했다는둥, 남자가 아무리 주사를 맞으며 역사질해도 안되였다는둥, 로처녀여서 그런 일로 정신분렬증까지 왔다니 별랗다는둥 벼라별 억측 이 란무하며 한동안 아낙네들의 입이 심심하지않게 되였다.   소문은 어데서 났는지 귀동냥을 하면서도 종잡을수 없다. 당사자가 그런 은사까지 한것은 아닐테고 외동딸이 시집가자 곧 리혼하고 돌아오게 된 정당한 리유를 밝히느라고 정희어머니가 발설했다고 생각할수밖에 없다. 선우는 혼자 설마설마 했는데 아닌게 아니라 정희가 본가에 돌아오는 모습을 멀리서 보았다.     다시 소문이 나래를 폈다. 5월이 저무는데도 그냥 첫날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있다는둥, 자고깨면 엉엉 울다가도 노래를 부르고 그러다 또 혼자 깔깔 웃어댄다는둥 소문이 무성할 때 선우의 마음은 착잡하기만 했다. 그러다가 정희네 집앞에 있는 논바닥을 논삶이를 하다가 큰 마음먹고 랭수핑게를 대고 정희네 집마당에 슬며시 들어섰다. 정희어머니는 어데갔는지 보이지 않고 열려진 출입문을 기웃거리니 정말 정희가 두꺼운 첫날이불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는 선우는 자기의 눈에서 깊은 애수와 더불어 까닭모를 환멸감과 미움과 암담한 빛이 저도모르게 흘러나왔을것이라고 생각했다. 이것은 스스로 생각해 도 불결한 표정이다. 결국 녹쓸어붙은 항아리에 허위의 불씨를 집어넣는 괴로운 마음이라고 해야 할지, 사랑은 거의 사색을 대신한다. 사랑은 모든것을 리해하고 용서하고 잊게하는 생명의 세찬불길이기도 한것이리라. 그러나 정감에 론리를 요구해서는 안된다. 선우는 체념을 지어먹어야 했다. 그에게 남은 인생의 의미란 문학에 대한 막연한 꿈과 잃어버린 사랑뿐이였다.    그에게 있어서는 정희를 사랑했다는것만이 진실로 남아있고 그외것은 죄다 무가치한것들이였다. 남들은 반란파요, 혁명이요, 투쟁이요 하고 광분할 때, 그런 광란속에도 끼일자격이 없다보니 오히려 세상을 등지고 사는격이 되기도 했다. 로총각의 이성에 대한 민감성, 걷잡을길 없는 충동, 그런 갈구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억제되는 고민에서 분출되는 그 모든 욕념들에 자기를 주체하지 못하기도 하였다.     사랑보다 정이 더 무서운 법이던가, 사랑은 시간이 지날수록 줄어들지만 정은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났다. 사랑은 좋은걸 함께 할때 더 쌓이지만 정은 어려움을 함 께 할때 더 쌓인다. 사랑때문에 서로를 미워할수도 있지만 정때문에 미웠던 마음도 되돌릴수 있는것이다. 사랑은 꽂히면 뚫고 지나간 상처라 곧 아물지 몰라도 정이 박히면 빼낼수 없는 독화살처럼 온몸이 아프게 하는듯했다.    사랑엔 류통기한이 있지만 정은 숙성기간이 있는 모양이다. 정희와 나누던 그 사랑은 상큼하고 달콤하게 기억되지만 정은 이리도 아프게 선우를 울렸다. 사랑은 깨여지면 남이지만 정은 돌아서도 다시 하나로 엉키고있었다. 사랑이 깊어지면 언제 끝이 보일지 몰라 불안하였지만 정이 깊어질대로 깊어진 선우의 가슴에는 마음대로 떼여버릴수 없어 더 무서운것으로 가슴을 지지 눌렀다.                                               4. 사랑의 용량        지지리 찌물쿠던 여름도 지나가고 찬서리가 모아산에 단풍을 수놓는 가을이 성큼들어섰다. 정희에게서 기적이 생기고있었다. 안쪽 어디서 중의질을 한다는 그의 삼촌이 무슨 약을 먹였는지 차차 완인으로 돌아고있다는게 마을아낙네들의 평가이다. 그녀를 위해서 너무나 다행한 일이 아닐수 없었다. 그런데 선우에게 이러지도 저러지도못할 난제를 안고 정희가 무상출입을 하기시작했다.     누가 부른듯이 문을 떼고 들어와서는 방구석에 두루루 말아놓은 로총각의 때많은 이불에 기대여 앉으면 선우는 책상앞 걸상에 앉아야 했다. 마음에 준비없던 선우는 여간 어정쩡한게 아니였다. 정신이 또렷해 보이면서도 멍한것같기도 하여 정말 제정신으로 돌아왔는지 반신반의하지 않을수 없었다. 이미 메우기 어려운 깊은골짜기를 넘어 다시 손길을 섣불리 내밀수도 없었다.       그저 생각없는 사람처럼 하염없이 창호지를 바라보며 무덤덤히 앉아있기만 하는 정희가 저으기 겁을 주기도하였다. 무엇을 말해야 하고 무엇을 말하지 말아야할지, 그냥 정신이상자로 치부하고 자극하지 않는것이 상책일지 알수 없었다. 미친사람은 절대 자기를 미쳤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섣부르게 말을 내뱉았다가 나쁜면으로 자극할수 있기에 정상인에게는 관심으로 들릴 병문안도 가볍게 하는게 아니였다.     정희는 련며칠 그렇게 눈을 내리깔고 한시간이고 두시간이고 앉았다가는 간다온다 말없이 가버리군 하였다. 눈도 마주치지 않고 웃지도 않고 말도 먼저 건네지않는 정희와 마주앉아 있다는것은 선우에게는 견디기 어려운 압박 그자체였다. 그렇다고 축객령에 자극받고 이상하게 나올것같았다. 인간의 정감사전에 진퇴유곡이란 어떻게 해석되고있는지… 마침내 선우는 무슨말이든 해야겠다고 작정하였다.  《 정희, 오래간만이야, 정말 반갑다. 그런데 놀러왔으면 말이라도 해야지, 왜 말할라치면 기관총쏘듯하던 네가 입이 붙어있으니까 내가 먼저 답답하구나》 《 오, 이제야 말꼭지떼네, 내가 무슨말을 먼저할수 있다고 먼저 말하래? 내가 미친녀자라구 생각하지? 그리고 무섭고, 미워하고 그렇지? 그래, 나정말 미쳐있었던같아. 난 쌍통이지, 너도 그렇게 생각했지? 그래 미워할수밖에 있겠니?흐흑… 》     말하는품을 보아서 전혀 횡설수설이 아니였다. 그동안 시도 때도없이 울었다는 정희의 흐느낌이 정상적인 사람의 진정한 슬픔에서 새여나오는 흐느낌인지는 파악이 없었다. 눈이 빛나고있었다. 정신이상이 온 사람은 눈빛부터 알리는법이다. 아무튼 운다는것은 정서의 골짜기에 메아리가 울린다는것이 아닌가? 차가울수도 더울수도 없었던 선우의 가슴에 련민의 정만은 그냥 넘치고있었다. 중병을 앓고나서 얼굴이 많이 망가져버린 정희의 얼굴을 바라보느라니 저도모르게 말이 튀여나갔다. 《 정희, 울지마, 너 우는모습 얼마니 보기싫은지 알지? 난 너를 한시도 미워한적이 없어, 내가 꺾지못한 꽃이라고 고운꽃을 곱지않다고 말할수 있겠니? 내마음에서 너의 모습은 그냥 그대로야, 각시가 되고나니 정말 성숙한것같을뿐…》 《 그말 진심이니? 날 놀리는거지? 아이, 우스워, 내가 지금도 사랑스럽다구? 하하하, 너정말 사람 잘웃긴다야 호호호…》     정희는 이상야릇한 눈길로 선우를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폭죽이 터지듯 깔깔 웃어제꼈다. 소름이 끼치는 웃음이였다. 더는 무슨말이 나갈것같지 않았다. 《 이러는 내가 무섭고 소름이 끼치지? 나도 내가 왜 이 집에 오게되는지몰라, 집문을 나서면 발길이 여기로 향해지는구나. 아직도 내가 올똘한 사람이라고 믿기지 않을거야, 나도 나를 믿을수 없는데 네사 더하겠지뭐, 미친녀자의 헛소리라고 생각하지말고 내말 좀 들어볼래? 말하지 않고는 가슴이 그냥 터질것같으니까》 《 그래, 듣지, 네말마따나 나 바보잖아. 말해봐, 무어든지》     크고 검은 두눈을 지그시 감았다뜨는 정희의 눈가에서 구슬몇방울이 굴러떨어졌다. 남편될 사람을 처음 마주할 때 기대보다 실망이 너무컸다. 아마 선우의 사람좋은 얼굴과 비교하며 생긴 오차일지 몰랐다. 정우가 아무리 마음에 딱드는 남자인들 어쩐단 말인가? 시집가는 처녀에게는 우선 조건이 출신이였고 온사회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기에 출신이 좋은녀자가, 특히 자기같은 렬사의딸이 부농의 아들에게 시집간다는것은 가문의 비극만이 아니라 시대적으로 대역부도한 일이였다.    아무리 사랑이 강하다고해도 선우와는 영원히 어울리수 없는 처지이다. 그래서 월급쟁이고 출신좋고 장차 공소사주임이 된다는 남자에게 운명을 기탁하기로 마음을 정하고말았다. 첫날밤이다, 로처녀로서는 부끄러움보다 당연한 기대감으로 넘치는 화촉동방이였다. 그동안 선우와는 수없이 포옹하고 입도 많이 맞추었지만 정작 남자의 냄새가 코를 자극하고 땅땅한 살결이 부딪쳐오느는듯싶더니 온몸을 짓누를때는 과거가 가뭇없이 사라지고 알수 없는 신비감에 몸이 달아올랐다. 시집은 늦게왔지만 호사공부하면서 이성지합에 대해서는 많이 아는 그녀였다.     이제나 저제나 기다려지는 그 황홀한 서막은 열리지않았다. 처음이여서 그러려니 하고 내심히 기다리며 은근히 호응해보았지만 속은 이상하게 바질바질 타기만했다. 아무리 역사질해도 남자의 땀방울만 얼굴에 끈적거리고 거친 숨결만이 애타는 마 음에 부채질만 하였다. 스스로도 부끄럽고 민망스러워졌고 실망감에 신비감도 차차 사라지는것을 붙잡을수 없었다.     남자도 풀이죽어 각시를 바로 쳐다보기를 주저했다. 그러다가 남편이 무슨 즉효라고 하면서 주사약을 가져와서는 맞고는 검질게 달라붙었다, 그러나 역시 빈배를 맞추는 일밖에 해낸일이 없었다. 신혼의 밤은 구곡간장이 굽이굽이 녹아내린다더니 이게 무슨 밀월이란말인가? 정희는 공연히 신경질을 피우기시작했다. 남편도 제무안에 취했는지 숙직이라며 매일 돌아오지 않았다. 남편이 없는 밤은 홀가분하기도 했지만 마음 한구석이 비여있다는것이 서러웠다.     멋모르는 시어머니가 신혼에 외박이 말이되냐며 드러내놓고 닥달질하자 남편은 다시 한자리에 들었다. 실속없는 웅성이 비틀려졌는지 아니면 반발심에서인지 녀자의 몸을 탐하는데는 극성이였다. 그럴수록 정희는 욕정에 불탈대신 실망감에 앵돌아졌다. 남자는 그러는게 불만이여서 찡내다가 다투기도 하였다. 생각하면 남자도 불쌍했지만 자기가 더 불행해서 울기도 했다. 그렇게 신혼인지 밀월인지 한달이 지나가버렸다.     집안에 차차 찬기운이 감돌기작했다. 시어머니와 말대꾸도 서슴치않았고 남편이 무슨 말을 걸어와도 단마디말로 건너뛰였다. 그러는 며느리를 시어미가 곱게 보아줄리 없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정희는 할일도 없고 해서 낮잠을 자는게 일이였다. 그만 큼 밤에는 잠들수 없었다. 남편이 칭칭 감겨들어서 못자고 오만 잡궁리가 뒤얽히여서 잠들지못했다. 선우는 어쩌고있을가하고 생각하면 가슴에 억울함만 맺혔다.     그러던 어느날, 새벽녘에야 토끼잠이 들었다가 깨여나니 웬일인지 방문이 빠끔히 열려있는데 가마목에 흰옷을 떨쳐입은 선우의 어머니가 가마목에 그린듯이 앉아있었다. 돌아보니 선우의 높은 동가슴이 힘차게 오르내리고있었다. “아, 원래는 내가 선우네집에 시집왔던건가?” 다시다시 보아도 선우의 단정한 얼굴이였고 선우의 특색인 긴머리가 굽실거리고있었다.     너무도 기쁜김에 발딱일어나 정주에 내려서며 “어머니, 왜 아직도 주무시지않고 그리앉아있습니까? 아침은 제가 지을게요. 쌀독이 어데있나요?” 정희가 방싯웃으며 다가서는데 선우어머니가 발딱 일어서며 욕부터 퍼붓는다.“이년, 이 량심없는 년아, 공부하는 내아들 강건너까지 홀려가더니 다시 돌아와서 속만 말려주다가 다른데로 시집간년이 무슨 염체로? 이년, 내 오늘 너를 가만놔두지…”       갑자기 마귀할미처럼 달려드는 선우어머니를 피하다가《악!》하고 소리치는 서슬에 깨여보니 꿈이였다. 갑자기 골이 뗑해내고 눈앞이 흐리마리해졌다. 정통편을 찾아먹고 누워도 낫지않았다. 겨우 아침을 치르고 나서도 그냥 머리가 지끈거렸다. 시어머니가 곱게 보든말든 이불을 뒤집어쓰고 새벽에 있었던 악몽을 더듬어보니 황당하기 그지없었지만 속절없는 추억만이 얼기설기 갈마들었다.    가도록 심산인가? 헌걸찬 남자를 버리고 출신좋은 남자라고 훌쩍 시집온 자신이 어리석지 않을수 없었다. 중매쟁이에게 홀딱 넘어간 어머니가 원망스럽기전에 자신이 더원망스러웠다. 지금 꼴같아서는 평생 아이하나도 낳아보지 못하고말것이 불보듯했다. 씨를 뿌리지못한 밭에 잡초밖에 더자랄게 있는가? 아이가 없고 가난하더라도 금슬만 좋으면 잘들산다고 하더라만 지금 남편에게는 세월도 그런 행복은 가져다 줄것같지 못했다. 생각할수록 선우의 모습만 서성거린다. 《  이 사람 새각시, 이게 무슨일이오, 시집와서 하루같이 그냥 잠만자니? 》     저도모르게 흐느꼈던지 눈치하나는 되우 빠른 시어머니가 방문을 활짝 열어부치며 정식으로 질책하기 시작했다. 얼결에 이불을 제끼고 일어나앉았다. 《  아니? 며느리, 또 울었던거요? 신혼에 눈물이 나올일이라도 있소?》 《 예? 제가 울었습둥? 》      어망결에 눈가에 손을 가져간 정희는 눈굽이 축축히 젖어있는것을 알았다. 《 며느리 이보게, 낮에 정 할일이 없으면 공소사에라두 놀러가서 남편도 거들어주며 무슨 얘기라도 나누어야 신혼부부같지 않겠소? 그좋은 신랑재를 두구 쯧쯧》     그좋은 신랑재를 두고 무슨청승을 떠느냐는 시어머니말이 어째 그리우스운지 그만 “키드득”하고 웃어버렸다. 《 이 사람이 보자보자하이, 그게 무슨버릇이요? 시에미 말하는데 웃어대구?》 《 예? 제가 웃었습니까? 아이 웃었겠는데… 》    정희의 시어머니는 억이막힌다는듯 한참 째려보다 방문을 쾅!하고 닫고는 힝하니 밖으로 나가는 모양이였다. 혼자 빈집에 남은 정희는 참지 못하고 그만 엉엉소리내며 울어버렸다. 점심에 집에 들어와 며느리의 눈이 퉁퉁 부어있는것을 이상하게 찍어보다가 구들이 꺼지게 한숨을  내쉬니 정희도 할말이 없었다.     아닌게 아니라 정희 자신도 자신이 이상하게 변해간다고 생각하였다. 시없이 웃음이 나왔고 혼자있을때는 어린애처럼 엉엉 소리치며 울어제꼈다. 홀어미로 아들을 키웠다는 시어머니가 아들며느리의 사이가 심상치않음에 은근히 신경을 쓰고있던 차 며느리가 “히히” 하고 웃다가는 꺼이꺼이 우는것을 여러번 발견하였다. 문제가 보통이 아니라고 생각한 그는 아들더러 얼른 병원에 데리고 진찰해보라고 윽발질렀다. 정희도 늘 머리가 아프고 실없이 눈물이나고 웃음이 터지는게 좋은징조가 아니라고 느끼던차라 두말없이 따라나섰다.     병원에 갔다온 그날부터 남편의 눈길이 홱달라졌고 시어머니의 얼굴이 퍼러딩딩 해졌다. 후에 알게된 일이지만 그날 의사가 남편을 단독으로 불러놓고 ‘정신분렬증” 징조가 있으니 주의하라고 귀뜸했단다. 무슨약인지 남편이 먹으라는대로 먹었지만 머리가 아픈것은 그냥 그본새였고 어디에 나사가 풀렸는지 웃음과 울음이 번갈아 터지기는 마찬가지였다. 차차 몸도 보기싫게 나기시작했다.     결국 시집에서는 사람을 속였다며 리혼을 제출해왔다. 리혼까지는 생각도 못했던 정희에게는 타격이 아닐수 없었다. 남편도 경계하는 눈치가 심해지더니 밤에도 친친 휘감겨들지 않았다. 이래저래 열불만 터지는 판이라 정희의 정신상태는 점점 엉망이 되여갔다. 현대녀자로서 리혼당하여 본가집에 쫓겨가는 일이 너무 희귀한 일은 아니지만 정희로서는 본가로 돌아가기가 죽기보다 더 싫었다. 무엇보다 비웃는듯 할 선우의 눈길이 떠오르면서 더구나 질색했다. 그럴수록 머리는 더 뗑해졌다.     정희는 흐리마리한 정신에도 울고매달릴 생각은 없었다. 차라리 제구심도 못하는 남자와 밤에 정도없이 살바하고는 리혼하고 재가하는게 낫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별군소리없이 리혼서에 도장을 찍었다. 결혼하여 두달이 채안되였다. 정희는 사람들이 미친녀자라고 말하는 소리를 들으며 점점 더심하게 미쳐갔다……. 《 선우, 내하는 말이 소설을 쓴다고 생각하지? 다행히 삼촌이 잘 치료해줘서 정신도 맑아지고 우선 머리아픈 증세는 없어졌어, 그러나 그냥 울고싶고 웃음이 나오군해, 나 인제 끝장인가봐, 재가라도 갈려고했는데…흑흑…》    정희의 말은 끝났지만 선우로서는 무슨말을 할수 없었다. 그저 정희의 얼굴을 오래오래 바라보기만했다. 정희로서는 선우의 눈길에서 변함없는 믿음을 읽었는지도 모른다. 그날이후부터 정희는 매일이다싶이 찾아왔고 선우도 무랍없이 대해주었다. 무슨 목적이 있어서보다 옛정을 생각해서라도 될수록이면 그의 헝클어졌던 생각들을 다듬어주고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해 줄지언정 매몰차게 차던질수 없었다.    선우의 어머니도 정희가 있을때는 일이 날가봐 말없다가도 일단 돌아가면 야단쳤다. 마을에서도 아무리 장가비위가 난들 과부에다 미쳐났던 녀자에게 치근거린다고, 정치적으로 보아도 절대 아니될일이라고 입방아를 찧다가도 정희앞에서는 아닌보살 했다. 그러던 어느날, 정희가 금방 돌아가자 반란파두목으로 제노라고 살판치고있던 산호란놈이 정우를 찾아와 훈계했다. 《 너 매일 정희와 무슨 짓을 하는거니? 》 《 뭐? 내가 무슨짓을 할수 있을것같니?》 《 꿈도 꾸지마, 비록 정신이 나간 녀자라도 렬사의 딸이야, 네가 이러는건 무슨 남녀문제가 아니라 계급투쟁의 새로운 동향인거야, 큰일나기전에 생각을 집어쳐라, 아무리해도 넌 자격이 없는거다, 알아들었니?》    선우는 하도 어이없어 상대하기조차 싫었다. 산호란 룡강촌에서 소학교도 함께다닌 고향친구였고 함께 이 모아툰에 분산호로 이사온처지였다. 그러나 선우는 문화혁명이 터지자 바로 이 고향친구에게 닥달질당하며 비판도 밥먹듯이 받고있는터이다. 온 동네일에 삐치지않는 일이없는 작자였다. 선우는 그의 가시돋친 말을 귀등으로 들을처지가 아니였지만 정희가 절로 찾아오는것을 내쫓을 생각도 없었다.     정희를 원래의 그 모습대로 돌려세우는데는 과거에 묶어두는것이 제일좋다고 생각한 선우는 늘 중학교때 일이며 강건너던 일이며를 얘기하면서 정신이니 병이니하는 말은 일절 내지않았다. 한때 미쳤던 녀자이든 완인으로 돌아왔든 옛정은 정대로 굳어있으니 남이야 뭐라든 정희가 재가를 가기전까지는 더 자극주고 싶지않았다. 그래서 정희가 하는말을 귀담아 들어주었고 살뜰하게 대해주려 애썼다. 《 정희, 너 재가하고 싶다고 말하더니 시집안가니? 그러면 안돼, 오빠의 말처럼 여기고 좋은자리가 나지면 얼른 시집가, 아직도 얼마나 곱고 참한데말이야,》     선우의 말이 끝나기도전에 정희가 악을 바락바락 쓰며 대들었다. 《네마음 내가 다안다, 권할것도없어, 난 다신 시집이란거 안가니깐, 시집이라고 갔다가 미쳐서 리혼당하고나니 인젠 시집소리는 듣기도겁나, 나는 한고개넘은 녀자여서 못할말이 없거든, 남자와 두달살았지만 변한건없어, 넌 믿고싶지 않을것이고 내가 이상하다고 여기겠지? 네가 서방가면 그때 나도 이 마을을 떠날거니까 지금처럼 이렇게 보내면 안되니? 내가 정말 보기싫다면 놀러오지 않을게. 흐흑…》     정희가 또 어깨를 들먹거리니 선우는 어찌할바를 몰랐다. 사랑이 없이 못살아갈것은 아니지만 정희를 사랑했던 그 기억마저 까맣게잊고 살아갈수는 없을것 같았다. 사랑이 마음의 명령으로 시작되는것이라지만 리성의 명령으로 물리쳐지지 않는것도 역시 사랑이 아닐가? 사랑을 잃어버린다는것은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정이라는것마저 잃었을때는 더구나 마음이 구멍이 펑 뚫릴것이다. 《 아참, 전번날 내가 간후 산호새끼 왔더랬지? 그새끼 뭐라하던?》 《 나 죽어도 너를 좋아할 자격이 없다구, 경치기전에 조심하래》 《 그새끼 나도 그냥 불러놓고 교육하느라 야단이야. 새끼를 둘이나 둔 놈이 치사하기는, 내가 이러구 돌아오니까 길가에 개살구처럼 입에 넣고싶으면 아무때나 따넣을줄 알았는지…입이 쓰거워서 더말하지않겠다. 》 《 그새끼 제정신이 아니구나. 너 주의해라, 승냥이는 양을 잡아먹겠다고 선포하지 않으니까, 그런데 요즘은 왜 보이지않니? 하루건너 사원대회를 열구 나를 내세우더니? 너를 믿고 하는말이지만 나 그자식 안보는 날이면 살이진다.》 《 정말, 너 아무것도 모르지? 전번에 2대에서 영화를 돌리던 날, 집체호 복화를 무슨 쪼궁하는 문제로 담화를 한다며 먼저 데리고 올라오다가 저기 제방둑에서 짓을 쳤다지않니? 빈하중농회의서 희열이가 그러는데 중앙지시가 내려온 때 걸려서 모범 껨을 칠거래, 그 자식때문에 늘 소름이 끼쳤는데 콱 총살이나 맞으래라.》    선우는 우물에 빠진놈에게 돌을 던질만큼 악하지는 않지만 듣던중 반가운 소리였고 앓던이를 뺀것처럼 시원해났다. 그냥 여기저기 물어떼는 벼룩이처럼 무슨트집이나 잡아가지고 계급투쟁을 한답시고 으시대더니 사필귀정인가, 아니면 량심을 바로 써야 된다는 말이 맞아떨어진것인가, 아무튼 산호가 그렇게되니 “타도”되였던 생산대간부들이 기를펴고 다시 나서게되였다.     그럭저럭 세월이 흘러 7년남아 소란피우던 광란도 시들해지더니 정치분위가 나아졌고 선우의 처지도 좀씩 풀리였다. 신문에 통신글도 내주고 신문잡지에 시랑 발표하기 시작하자 사람들이 보는 눈길이 달라졌다. 흑판보를 꾸리는일도 맡기고 생산대 목수도 시키더니 난생처음 로동모범도 되여봤다. 이제야 사람대접받으며 살게되였다고 마음펴고 살려는 때에 그동안 장가도 못가고 늙어버린 아들을 보며 애를끓이던 선우의 어머니가 그만 황천길을 앞당기였다..                                            4. 사랑의 열매      로총각의 잠못드는 어느 날 밤, 문소리가 나더니 누군가 정주구들에 올라왔다. 《쉿, 나, 정희야,》 《 정희? 너, 이밤중에? 미쳤니?”》 《 그래, 미쳤고 너때문에 그냥 미쳐있어, 등가교환하자는거 아니다, 나도 청춘을 이렇게 묵일수 없어, 네가 나무리지 않는다면 내 처녀를 너에게 바치고 재가든지 뭐든지 갈란다, 왜? 유치하다고 생각하니?》   정희는 정말 미친녀처럼 옷을 와락와락 벗어버리더니 알몸으로 이불에 쏙새여드는것이였다. 선우는 정신이 다 아찔해났다. “너? 너…”소리만 나왔다. 그러거나말거나 정희는 몽글거리는 알몸을 밀착해왔다. “미쳤다고 무서워할것없어” 녀자는 한사코 남자의 가슴에 감겨들었다. 정욕에 달아오른 녀자는 남자를 위해 가시풀우에도 드러누울수 있다. 순간 애욕에 주렸던 웅성에 불길이 확솟구쳤다. 이런 돌발 상태에서 성인군자가 어데있으랴, 걷잡을길없이 숨이 차올랐다.     창문으로 새여드는 달빛에 한껏 부풀어오른 하얀젖무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드디어 웅성이 쏟아내는 정염의 불덩이가 정희의 몸 구석구석에서 마구굴러다녔다. 그것이 순수동물적인 육욕이래도 좋다. 다른 남자가 부딪치고 비벼대던 라체, 흐느끼고 있는 녀자의 라체…그러나 본능이 부르고있는데 그게 무슨대수인가.    정희의 눈에서 파란빛이 흐르고있었다. 마침내 단쇠처럼 뜨거워진 두입술이 녹아붙었고 녀자의 부드러운 손이 남자를 서서히 끌어올렸다. 정희의 입에서 신음소리가 터지더니 남자의 목을 죽어라고 껴안으며 울고있었다. 달도 창가를 비껴 서천가에 멀직히 걸렸다. 밤은 새벽으로 달리고 너무늦게 융합된 젊은육체는 서로의 가슴속으로 파고들지 못하는것이 한스러운듯 얽히고 비탈리며 꿈틀거렸다…… 《 정희, 이미 이렇게 된 이상 우리 같이살자 응?》 《 바보, 오늘 지내보니 욕심이 생겼니? 또 가져봐, 이제 죽어도 원이없어… 》     녀자는 도리를 감정으로 해석하고 남자는 리성으로 감정을 흥량한다. 선우는 아무말도 하지않고 근육이 불끈거리는 넓은 가슴으로 정희의 가슴을 무겁게 그리고 더없이 살틀하게 덮었다… 정희는 기진맥진한듯 선우의 높은가슴을 벤채 죽은듯이 굳어졌다. 사랑은 두마음속에 뿌리박았지만 향락의 가지는 하늘로 뻗었다. 이제 누가 뭐래도 남자를 내주지 않으려는듯 목을 감은 두팔을 옥죄이며 전률하였다. 선우는 그동안 정희에게 가끔 가져보기도 했던 나쁜 선입견을 부끄러워하면서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저 꿈을 꾸는듯 느껴졌기때문이다.     남자가 애욕의늪에 빠지면 리성을 잃기마련이다. 문제는 감정의 영구성인데 그런 마비상태가 오히려 더좋을지도 모른다. 사랑이 성스럽고 진지한것이라면 감정의 충동으로 어떤 부끄러운 일을 저질렀다 하더라도 그것을 실수라고 할수 없지않은가? 밀물이 다시 일렁이기 시작한 선우의 마음의 항구에 불안과 곤혹스러움과 의혹의 안개가 완전히 걷히면서 범상치않은 생각의 배가 닻을 내린것이였다.     난생처음 녀자를 겪는 그로서 잘알수는 없지만 정희는 쉽게 몸이 달아오르지않아도 일단 달아오르면 식을줄 모르는 체질임을 느꼈다. 첫사랑에 장님이 되였을 때 정희는 자기를 가지라고했다. 만약 그때 선우가 어떻게 나온다해도 녀자의 덕성이 순종에 있다고 생각하는 정희는 기꺼이 다내주었을것이다. 드디어 치정의 절대적인 높이에까지 치달아오른 그들은 본능의 충격파에 실린 몸이든, 좋아서 내맡긴것이든 더 문제시될것이 없었다. 늦바람이 곱새를 벗긴다는 속담이 맞는것같다.     앓음핑게를 대고 일밭에 나오지않던 정희가 부지런히 일밭을 쫓아다니기시작했다. 얼굴이 감스레 타고있었지만 보기가 좋았다. 눈으로 주고받는 언어가 그처럼 생동하고 풍부할수 없었다. 정희는 밭김을 매면서도 정열의 질풍노도에 지칠줄 모르던 선우를 떠올리며 혼자 얼굴을 붉히군했다. 선우의 남다르게 높고 떡버러진 가슴팍을 마주해도 몸이 달아오르고 속에서 불덩이가 이글거렸다. 녀자가 남자를 너무 밝히면 못쓴다고 시집가기전에 엄마가 말했지만 선우가 한없이 좋은걸 어쩌랴,     선우와 함께누우면 정열이 금방 폭발하였고 불공정한 운명의 희생자, 사랑에 목말라있던 남자에게 무더기사랑을 폭폭 쏟아주고싶어지고 푸들치는 웅성의 기백을 확인할 때마다 그냥 버릇처럼 흐느끼면서 다시다시 감겨들군하였다. 남녀간의 감미로 운 사랑의 의미를 선우의 억센육체에서 확인할 때마다 그 어떤 경우라도 이 사랑을 지켜가리라 윽벼르는 정희였다.     엄마의 눈치를 보며 선우를 찾아가지 못하는 날에는 일찍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우면 선우의 숨소리가 들리는듯 가슴이 막혀왔다. 그는 자신이 앓고나서 더병적이 아닌가하는 부끄러움을 가져보았지만 심장을 속일수 없었고 온몸으로 체험하고있는 행복감을 말릴수 없었다. 선우를 바라보는 정희의 눈길에는 신뢰, 감격, 미안, 기대, 온유…그 어떠한 낱말로도 표현할수 없는 복잡한 감정세계의 세부들을 담고있었다.     그렇게 꿈속같이 즐기던 정희는 문득 자기몸에 이상이 생기고 있음을 발견했다. 후과가 무서웠지만 끝내는 자신을 증명할 새생명이 잉태되였다고 생각하니 그 자체가 감동이였다. 한편 사랑의 진정한 고험이 시작되였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떨리였다. 선우가 어떻게 나올지 알수 없고 그것이 훔친 사랑으로 말썽이 되겠지만 분명 둘이의 사랑의 씨앗임을 어찌 거절할수 있을것인가?     정희는 비장한 결심을 내리고 선우를 해란강버들숲으로 불러냈다. 선우가 어정쩡해 서있자 긴두팔로 목을 휘감았다. 《 내말 놀라지말고 차분한 마음으로 들어야해, 나임신했어? 기쁜가요? 우리의 사랑이 열매맺았어요, 나정말 완정한 녀자라는게 증명되였어, 당신은? 》    정희가 갑자기 당신을 개어올리며 까불어대는데 갈피를 잡을수 없는 선우가 정희의 두팔을 풀어내리며 정색해서 물었다. 《 습니다는 무어고 당신은 또 무어야, 그리고 열매란 웬 뚱딴지같은 소리야?》 《 인제부터 너가 당신이 되였어. 허물없던 동무사이도 영원히 지나가버리고 남편만 남았어. 바보, 나 당신의 아이를 가졌다는데 뭘 못알아들어? 이 문제를 조용히 토론하자고 불러냈어. 혹시 집에서 말하다가 언성이라도 높아지면 누가 지나가다가 엿듣기라도 하면 어째요? 난 당신무릎에 앉을래, 자, 이렇게, 아이 편안해라》    선우는 그제야 무슨 감투끈인지 알았다. 무슨 밭이든 씨를 뿌리면 싹이 움트고 열매가 맺히는 법이지만 이건 다른일이다. 갑자기 두려워났다. 다른 친구들은 언녕 아들딸을 두었지만 자기에게만 때가 아니고 그게 사랑하는 정희라는데서 문제는 더구나 심각해진다고 생각하였다. 《 우리 결혼해. 내가 엄마를 설복할게, 이제 다쑤어놓은 죽을 설사 밥으로 만들자고 하겠어요? 대담하게 나오세요, 당신과 하는 말은 아니니 노엽게 듣지 말아요, 난 과부이고 정신나갔던 녀자로서 동등한 자격이니 엄마도 승인할거에요》   선우는 정희의 말뜻을 알수 있었다. 그러나 그게 정희의 말이지 사회적인 평판은 아닌것이다. 이미 리혼한 녀자니까 가정파괴란 말은 안서겠지만 아직도 봄이온것도 아니고 봄이왔더라도 자기의 사랑의 꽃이 필때는 아니다. 어떻게 해야하는가? 욕심을 부리다보면 자기가 철저히 파멸되는것은 둘째치고 정희마저 영영 잃어버리게 된다. 정희도 이점을 모를리없지만 감성적인 정희가 말을 듣지 않을게다.   《 정희, 나도 인간이고 남자야, 이보다 더좋은일이 어데있겠어? 그런데 지금은 아닌것같아, 아깝더라도 아이를 지우는게 어때? 》 《 나도 많이 고려해보았어요. 그럼 어쩔가? 대상자가 없으면 류산도 못하는데, 나도 정말 갈팡질팡이에요, 아이참, 난 어쩌면 좋아?》   정희가 또 버릇처럼 어깨를 달싹거렸다. 선우는 정희가 운다면 겁부터 더럭난다. 한창 좋은때에도 눈물을 줄줄흘리며 흐느끼는 녀자이지만 지금 경우는 다른일이다. 그들은 밤이깊도록 이랬다저랬다 하며 결정을 내리지못했다. 《 그럼 좋아요, 당신의 말대로 지웁시다, 이제 정식결혼하면 인차 생기겠지뭐. 그러나 여기서는 안돼요, 삼촌이 의사질하는 흑룡강 이춘에 가겠어요, 삼촌이 무슨 방도를 대줄거예요. 인차 행동해야 해요, 몸이나는걸 아낙네들이 눈치채면 큰일이니까, 내가 엄마몰래 준비하고 알릴테니 가만히 역전까지 배웅해줘요, 》 《 그게 좋을것같은데 혹시…에이, 내가 미안하오, 그냥 제좋은 멋에…》 《 바보, 그게 어째 당신잘못인가요? 내잘못이지, 그래도 난 좋아죽겠어…》 《 그렇게 가서 다시 돌아오지 않을가봐 걱정도 되구…….》 《 에이, 미친소리하지마》   정희는 선우의 넓은가슴에 얼굴을 묻고 오래오래 흐느꼈다.                                                                            5. 사랑의 봄은 오는가?        며칠후, 정희와 선우는 모아산고개넘어 룡포동 골짜기를 내리느라고 숲속길을 걸었다. 뻐스를 탈수도 없었고 큰길로 걸어갈수도 없었다. 극비밀리에 진행되는 그들만의 유격전이여서 동네사람들에게 들키면 안될일이다. 《 이렇게 가면 힘들텐데 걸을만해? 》 《 힘센 남편이 있는데 뭐가 걱정이여? 힘들면 업어달랄게, 안돼?》    그들은 손에손잡고 숲길을 헤쳤다. 단풍나무씨를 채집하느라 여러번 다녀본 길이라 대충 걸어갈만했다. 저녁차를 타니까 쉬염쉬염가도 되였다. 그들은 이깔나무아래에서 쉬였다. 이렇게 앉으면 정희는 아이처럼 무릎에 올라앉는다. 오늘따라 숲속의 풍경은 유멸난 정서를 자아냈다. 대자연은 푸른색갈만이 아니라 청신하고 맑은 갖가지 색채를 계절의 섬세하고도 열정적인 붓끝에 담아 한폭의 수채화를 그리고있었다.     참나무의 부드러운 연록색이 산등성이를 바탕색으로 칠해놓고 사색가인듯이 키높은 이깔나무들은 청갈색우듬지를 추겨들고 말이없다. 듬성듬성 들어선 사시나무들은 푸른잎사귀를 미풍에 떨며 고독을 쫓고있는데 그옆에 산버들이 수집음을 타는 듯 춘정을 머금고 긴머리를 풀어내리고있다. 이 모든 설레임과 빛갈을 하나의 음향과 푸름으로 조화시키며 소나무들이 숲의 왕자답게 억센 가지들을 펼치고섰다.     정희도 제나름의 사색에 잠겨 말이없다. 세상에는 녀자를 점유하고 곧 식어버리는 사랑도있다. 그러나 선우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좀 공상적인데가 다분하지만 얼마나 실제적인 남자인가? 시집갔다오고 미쳐나기까지했던 자기를 받아준 남자에게 자기는 영원히 갚을수 없는 빚을 지고있는것이다. 정희는 선우의 마디굵은손을 살며시 끌어다 가슴에 껴안으며 더없이 달콤하게 웃어주었다.   사람이 진실을 말할 때에는 눈속에 빛이 움직인다. 그 진실이 또하나의 진실과 불꽃을 튕길때에는 더욱 진한 색갈을 띠는법이다. 선우는 정희의 눈에서 그것을 읽고있었다. 불행을 겪고있는 두젊은 심장이 뿜어올리는 빛은 그처럼 찬란하였다. 선우는 조금 풍만해진 정희를 살며시 끌어안았다. 이처럼 부드러운 몸에 굽이굽이 서려있던 사나이의 정한을 마음껏 풀어놓게 해주고 신비로운 이성지합의 행복을 만끽하도록 정성껏 받쳐주던 정희의 몸은 그에게 있어서 너무너무 소중하였다.     정희의 몸이 전률하고있었다. 그리고 눈물을 흘렸다. 정우는 그 눈물을 말없이 빨아들이며 으스러지게 껴안아주었다. 정희가 다시 돌아오겠지만 또 애타게 눈이빠지게 기다리는 안타까움과 미쁜그리움에 속을태울것이다. 남자의 한가슴에 무지개를 띄워놓고 두번이나 사라진 아지랑이같은 녀자, 마침내 자기의 살뜰한 녀자가 되여진 정희를 껴안고 그냥 꺼이꺼이 울고싶기도 했다.  《 정희야, 가서 자주 편지 할거지? 》  《 그동안도 날 보고싶어하겠어? 보고싶어죽게 편지안할래,호호호》   《 참, 그런데 엄마에게는 어떻게하고 떠났어?》   《 머리가 자꾸 지끈거리구 정신이 아물아물해질때 많은게 좋은징조같지 않다고 거짓말했어, 그리고 내가 삼촌이 있는 병원에 호사로 갔다고 말하라 했어.》    정희의 거짓말은 정말 물이 못새게 잘도 짠것이였다. 저녁 목단강행렬차에 정희를 앉히고 쓸쓸히 돌아서는 선우의 마음은 단지쓴지 몰랐다. 그동안 정희가 몰래 와서 반찬도 해주어서 살만했는데 이제 곧 수라장이 될것은 물론 저절로 밥을 해먹는 신세를 생각하면 정희를 하루급히 가마목에 앉히고싶은 마음이 불붙듯했다. 그런데 현실은 왜 나만 골탕을 먹이는것인가…며칠후 정희에게서 편지가 날아왔다.        선우님, 잘있어요? 나, 정말 그런게 맞아, 삼촌이 펄쩍뛰며 임자가 누군가 대라고 호령했지만 내가 머리만 붙안고 울어대면 곧 물렁팥죽이 되여버려, 너무 근심하지 마세요, 이 편지를 쓰는 시각에도 내선우님의 달아오르던 숨소리가 가슴에 뜨겁게 느껴져서 그리워져, 상처받은 내가슴속 골방에 인제 척들어앉아서 나를 지켜준다고 생각하면 눈물나요. 그 정열에 타던 숨결은 날마다 내마음의 골방에서 고패치고있어요. 그 숨결따라 내사랑도 끓어올라요.    당신과 함께걷던 그 숲길이 보란듯이 가는 첫나들이길이였다면 얼마나 좋을가 생각했어요. 그날은 정말 하늘이 맑고 바람이 살틀해서 또 울어버린 나를 리해할수 있었겠지요? 당신이 내눈물을 빨아넘길 때, 나는 자꾸자꾸 울고싶어졌어, 당신과 헤여져 며칠이 안되지만 그날의 그 맑은하늘이야말로 당신이 나에게 펼쳐준 드넓은 사랑의 품이였어요. 그 하늘이 다시는 흐리지않고 비바람이 불어치지않기만 바라는 마음으로 당신을 다시다시 꼭 껴안아봐요.     남자들은 흔히 첫사랑을 잃은후에도 자신과 희망을 완전히 잃지않겠죠. 하지만 마지막 사랑을 잃는다는것은 나에게 생활의 의의와 자신심, 삶에 대한 애착마저 잃는다는것을 의미하고있어요. 나, 돌아갈 때 당신에게 이 세상에서 우리 둘에게 가장 귀중한 선물을 안고갈테니 조급해말고 기다려주어요…       그렇게 첫편지가 오고 다시 련락이 없었다. 그렇다고 정희어머니에게 물을수도 없었다. 선우의 심통이야 터지든말든 봄은 제멋에겨워 풍성한 잔치를 무르녹이고있다. 호을호을 눈앞에서 아물거리는 아지랑이, 넋을 홀리는 파란하늘, 그리움을 실어주는 쪼각구름…어느새 봄도가고 격정을 인내한 꽃의 꿈이 지고있다. 분분한 락화, 꽃은 결실의 축복속에 꽃다운 최후를 마치는가? 봄의 서러운 사연을 주절대듯 쉼없이 흘러가는 해란강의 물소리, 버들숲에서 울어싸는 이름모를 새소리가 애간장을 뜯어도 봄은 기어이 가고 무성하는 태양의 계절, 여름이왔다.      기다림이란 속타는 조우이다. 그러나 님을 기다리는것은 즐거운 안타까움이다. 언녕 해결을 보고 돌아올 때가 되였건만 정희는 감감무소식이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란 웬 헛소리냐. 또 흰나비처럼 영영 날아가버렸는가? 선우는 편지를 썼다가는 찢어버리군 하였다. 그것들이 흰나비가되여 정희를 찾아가고 땅속에 묻혀 하얀나리꽃으로 피여나기를 바라는 마음인지도 모른다. 아름다우나 무기력하고 성결하나 쉽게 얼룩지기도하는 인간의 감정을 포함하여 흰꽃처럼 스러져버리는것들이 얼마나 많은 세상인가!선우는 이 세상이 더없이 두려워졌다.    그러나 소리쳐 불러보아도 화답이없다. 달밝은 밤이면 모아산고개에 올라 정희가 있음직한 북녘의 하늘을 바라보노라면 달빛속에 들쑹날쑹한 저 먼 련산련봉은 비애의 무덤같이 우중충하기만 하였다. 삶의 고뇌, 죽음의 안녕, 영원의 수수께끼들을 산은 알고있으련만 침묵을 지키고있다. 구름속에서 숨박곡질하는 달은 웃지도않고 시들어버린 여름에 대한 미련을 울어싸던 풀벌레도 입을다문지 오래다. 어데선가 구슬픈 부엉이 울음소리가 선우의 가슴을 애절하게 후벼댄다.     마침내 떠도는 소문에서 정희의 행각을 대충이나마 알았다. 정희가 삼촌의 련줄로 거기 향병원의 호사로 일하며 좋은자리가 나지면 거기서 시집을 갈거란다. 다른말은 없었다. 모르긴해도 정희어머니의 입에서 나온 말일것이다. 그러나 충분히 가능 한 일이다. 녀자가 새로운 환경에서 마음이 변해서는 안된다는 법은없다. 인제 원망도 너무 창백무력하다. 선우도 마침내 머리가 돌았다.    사랑은 야심보다 현명하지못하다. 마를대로 메말라버린 감정을 치약처럼 짜내서라도 누구를 좋아해야 한다고, 그 어느곳에서 새로운 사랑이 있을것이라고,진정으로 정희를 사랑한다면 잘되기를 축원해야 한다고 생각하다가도 자기의 실제적인 감정은 그 경지에 미치는것을 방해하고있었다. “취처는 운수소관”이라 하였거늘 운명이 하는대로 하지않으면 무슨수가 있단말인가? 사랑은 강요가 아니거니와 더구나 명령이 될수는 없다. 정희가 잠시 자기손바닥우에 놓였던 수은이라 할 때 움켜쥐려고 그러 쥐면 영영 새여나가버릴것이다.    사랑은 이성과 이성의 절반이 함쳐져 하나가 되는것이 아니라 할 때 자기의 사랑은 정희라는 하나의 존재와 자기의 존재, 둘이 완전한 하나로 되여질 때에라야만 믿고 살아갈 사랑이 되는것이라고 자기를 위안했다.정희까지 끝끝내 돌아오지않는다면 어찌 새로운 사랑을 믿을수 있단말인가? 사랑은 기다림속에 의지의 실천이다.    선우는 결혼이란것을 접어버리고 문학에 미쳐서 살기로 마음을 먹었다. 애정의 철저한 실패가 인생의 실패라고 하더라도 삶에 대한 애착심이 지꿎어졌고 역반심리가 강렬해졌다. 그저 이렇게 살다가 멋없이 일생을 마치기엔 자신이 너무 억울했다. 그는 늘 무표정한 얼굴이였지만 마치 얼음장밑에서 급류가 용용히 굽이치듯이 심방에서는 더운피가 사품치고있었다. 그러면서도 지나온 나날보다 더 피가 랑자하고 더 고통스럽게 터져야할 상처를 감내하며 살수도 있다는 숙명같은 각오를 하였다.                                                                                6. 실락원의 새 봄       그맘때 장가를 못가고 늙어가는 선우의 꼬락서니에 속을태우던 숙모가 웬 로친을 데리고 선우네집에 들어섰다. 말로는 신을업고 점을 보아서 도문판에서 이름이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선우는 정치각오가 높아서가 아니라 쓸데없이 말썽이 날가봐 이게 어느때라고 점을치러 다니는가고 성을냈지만 꼬브랑 할머니가 다된 숙모의 정성에 찬물을 끼얹을수도 없고해서 감히 축객령은 내리지못했다. 고모가 점쟁이 더러 관상을 먼저 보아달라고 청들었다.    점쟁이로친은 비스듬히 앉은 선우를 돌려앉히고 찬찬히 뜯어보더니 하는 말이 제법 유식하였다. 번듯한 이마가 높이 자리잡았으니 궁량이 트인 사람이요 이목구비가 단정하니 풍류의 기질을 가졌는데 하관에 동화살이 비껴서 이성지합에 복이 있으나  출신이 희살이란다. 취처는 운수소관이요 길흉화복을 손안에 쥐고나오는것이 사람인즉 손금도 보아야 운세를 점칠수 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선우는 귀신이 씨나락까먹는 소리를 한다고 속으로 우습게 여기면서도 무슨말이 나올가 궁금해서 일에 터갈리고 마디진 손을 내보였다.   《 에구나. 명금하나는 잘쥐였구나, 여든두살까지 명줄이 뻗었네. 자식은 2남 1녀를 낳을복을 가졌지만 때를 놓쳤음이요 녀자의 금이 외따로 뻗어나가 금실은 찰떡같지 아니할것이요 나이를 많이먹구서야 성가할 운일세. 장가를 간다해도 한번 남의 문턱을 넘어서 액풀이를 하고난 녀자라야 조강지처가 될것이우.》 《 이제 화력서를 좀 보아볼가? 음, 호랑이를 그리려다가 되지 아니하매 도리어 개자식이 되였다. 룡이 높은하늘에 있어 온 바다를 바라고 령리한체하나 어찌하리오, 어느것을 취하고 어느것을 버리려노? 오른쪽에 일곱있고 왼쪽에 일곱이라 처와 첩이 서로 싸우니 하나도 제것이 없으리라.》 《 일곱같은소린 다뭔고, 하나라도 얻어야 장갠지 서방인지 가지비》      숙모가 한소리를했다. 하긴 엄청난 풀이인지라 선우도 그저 시무룩히 웃었다. 《 에라, 불길한 소리는 그만두세, 자 다음해에것을 보아줄가? 비내리는 날 행인 진퇴량난이라 괴롭고 괴롭다. 상중이 되여서 서로 충돌하니 창파에 눈물을 뿌린다. 묶인나무가 어이자라리요. 구하고저해도 구하기 어렵도다. 기간 꽃다운 인연이 있어 녀자는 길하고 아름다울지어다.》 《 선우에게 맞지않는 소리라구? 숙모가 돼가지구 어째 자꾸 불길하게 군말이 많으우? 자, 지난해는 어떤했는지 보자. 동풍에 해빙되니 마른나무가 봄을 만났다. 좋은곳에 봄이저물매 저물게 남쪽하늘이 열릴줄 알았도다. 물이 성가에 흐르며 적은것이 쌓여 큰것이 된다. 락양성 동편에 복숭아꽃 빛난다.》 《 올해는 어떠냐? 에라, 버들꽃에 춘풍이라 꾀꼬리노래도 태평하나 늦게야 량마를 얻으니 어이 백락을 부러워할고? 천지가 득합하니 물건마다 이룸이 있으리라. 적은이, 걱정해봐야 쓸데 없소다. 룡이 북해에 들어가매 좋은일이 반드시 이루질괘이니 마침내 가중에 풍악이 울리고 만춘호접이 춤추겠구려. 음, 또 총각의 상에 만인을 희롱하며 살명이 섰으니 서른 네살쯤이면 어디 훈장자리라도 나질듯싶네》 《 에구, 성님은 꿈같은 소리만 하네그레, 훈장이야 가당하겠소만 빨리 장개를 들어야제, 저게 가문에 장손인데 씨라도 받아놓아야지비……》    선우는 오지랖넓게 무슨 유물주의요 무신론자요 하는 어마어마한 말을 할 자격이없지만 듣기좋은 점쟁이의 말에 기분이 잡치지는 않았다. 점친 돈은 숙모가 내주었다. 세상에 예언가야 많지만 점쟁이 로친의 말은 무슨예언도 아니였으나 몇달안되여 나라에 잘알수 없는 변화의 조짐이 보이기시작했다.    겨울이 이미왔거니 봄인들 멀소냐? 세상엔 끝까지 울퉁불퉁한 길이란 없는법이다. 그리고 광풍이란 휘몰아칠때가 무시무시하지만 역시 잠풍할때가있고 해가 창천에서 웃을때가 있기마련이다. 쥐구멍에도 볕이 들날이 있다는 속담도 틀리지않았다. 살벌하던 대동란은 미성도없이 흐지부지해졌다. 시대의 선두주자가 말썽많던 세상을 남겨두고 타계하였기때문이다. 사람들이 불멸의 태양을 믿었지만 거인인들 생로병사의 섭리를 어이 힘으로 이겨낼수 있으랴,    선우는 문학창작에 진전이 많았다. 시만 쓴것이 아니라 꽤나 긴 줄글도 발표하여 농촌사람치고는 조금 소문이 나게되였다. 꼭 10년동안이나 못난새끼오리로 살아오던 선우에게 앞길이 빠끔히 열리였다. 새인물이 등단하면서 사람을 들볶던 국책이 홱 달라진것이다. 때에 개산툰에 문우가 놀러왔다가 저아래 영성학교서 어문교원을 수요한다며 한번 덤벼보라고 추기였다.     귀가 솔깃했다. 기회에는 필연성이란 없다. 오직 우연만이 있을뿐이다. 좋은기회만 있었을뿐 말째인 기회란 있어본적이 없었다. 우연한 일확천금은 있을수 있어도 우연히 현명해진 사람은없다. 기회령감은 결단성과 용기를 가진 사람의 손을 잡기좋아한다. 선우는 워낙 대학선생이 필생의 꿈이였다. 대학선생은 이미 물건너간것이나 민반학교에 교원이야 못해냐랴 자신감을 가지고있었다.     희망은 곤궁에 빠진자에게는 약담배와같이 효력을 본다. 희망은 생명의 강심제이고 인생항로에 등대이다. 희망은 눈을 뜨고있는 선우의 깨지않는 꿈이다. 별로 가망성을 내다보지 않았지만 우둔한놈 곰잡는다했고 움안에서 떡함지를 받을수도 있거늘 밑져야 본전이라 큰맘먹고 영성학교를 찾아갔다. 막연한 희망에 운명을 걸고갔는데 룡산소학교에 있었던 양선생이 극구추천하는 바람에 문교장선생이 가지고 간 작품들을 두루 보고나서 흔쾌히 승낙하였다.    상전벽해라 못난새끼오리가 어엿한 교원행렬에 끼이게된것이다. 다른사람에겐 대수로운일이 아니지만 선우로서는 후반생을 다르게 쓰게된 일대전환점이였다. 호사다마라고 진흙탕속에 미꾸라지가 “룡”이 되자니 심술부리는 사람들이 뛰여나와 애를 먹이였다. 은인은 어데든 있는법이던가? 산호에게 피터지게 얻어맞으며 타도당했던 원대대서기가 다시 올라오는 바람에 도움을 받을수 있었다.     그는 원래 해방전쟁으로부터 인민군중위로 되기까지 산전수전을 겪은사람이였고 문학에도 뜻을 둔 사람인지라 인정사정에 밝았다. 선우는 이사라고 할것도 없이 트렁크 하나만 달랑들고 한많고 사연도 많았던 모아툰을 몰래 떠나버렸다. 그러나 정희에게 희소식을 알려야 할지말지를 결정짓지 못하였다. 자기의 새생명도 지워버렸는데 무엇이 그를 더잡아당길수 있으랴싶으며 허무만 짓씹었다.     교단에 오른지 두어달 되였는데 교장선생이 8월달 방학간에 민영교원을 정식교원으로 넘기는 시험이 있으니 잘준비하라고 귀뜸해주었다. 그러면서 정식교원이 되여도 어디로 전근하지 않는다는 선결조건이 붙는단다. 시험과목은 세가지뿐이였다. 그러지않아도 일취월장을 꿈꾸고있던 그로서 시험준비에 등한할리없었다.     손꼽아기다리던 시험을 무난히치렀고 개학이되여 성적이 나왔다. 전향적으로 제일높은 점수라고 교장이 좋아하였다. 현에 가서 신체검사까지 마치고나서 드디어 국가교원이 되였다는 통지서를 받아안은 선우는 감격에 목이메여 한평생 인민교원으로서 충성을 다바치리라 다지고 또 다지였다. 그리고 사람을 알아봐준 김시룡어른이 얼마나 고마운지 몰랐다.  영성학교는 대대에서 꾸리는 학교였지만 초중, 고중반까지있었다. 지도부에서는 고중조선어교수까지 맡기였다.    인생은 필연의 왕국에서 엮어지지 않는다지만 역시 우연한 일치도 있는법이던가? 어느 날, 은근히 속심을 주고받던 친구가 찾아와서 희한한 소식을 전했다. 정희가 난데없이 돐이지난 남자애를 업고 마을에 돌아왔다는것이다. 선우는 무슨감투끈인지 더듬어볼수 있었다. 그 사이에 다른 남자와 결혼했다해도 아이까지 낳아가지고 올수는 없었다. 그러나 앙큼한 정희가 아이를 지우지않고 낳아서 업고 올줄은 꿈에도 생각하지못했다. 마을에 이런저런 억측과 류언비어들이 많다고 하였다.     녀자들은 어떻게 심어진 씨앗이든 변함없는 모성애로 키우려한다. 왜 자기는 그 점을 미처 생각하지 못하였던가? 정희가 그동안 소식한장 전하지 않은 내속을 조금 알것같기도 하였다. 정희가 깊은 호수라면 자기는 노없는 쪽배이였던가? 정희야말로 난해한 정감사전이고 자신은 엉터리해석자였던가? 사랑이란 쉽게 변하기에 더욱 사랑해야 한다고 하지만 정희가 소식이 없자 녀자의 가슴속에서 흐르는 정감이 언제나 청류인것은 아니라고 단정해버린 자신이 정희의 정에 미치지 못함을 절감했다.     사랑은 시작부터 필연적이 아니기에 론리적으로 발전하는것이 아니라고 생각은 해보았지만 사랑은 지배하는것이 아니라 자유를 주는것이라는 그런 높은경지에는 이르지 못하였다. 사랑은 서정시로 해석할수 없다. 행위만이 가장 좋은 설명서이다. 사랑은 바위처럼 가만히 있으면서 새들을 불러들이는것이 아니다. 사랑은 빵처럼 늘 새로 다시 만들어야 하는것이리라.    선우는 친구에게 쪽지를 써주며 정희에게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일요일날 선우는 20리길을 걸어서 떠났다. 개산툰으로 나가는 큰길을 건너 마을에 들어서려는데 아이를 업은 한 녀자가 마을아래 산굽이를 돌아 총총히 걸어오고있었다. 자세히 볼것도 없이 정희였다. 아아, 참으로 세상사란 요지경속같으니 어느것이 필연이고 어느것이 우연인지 누가 일일이 헤아려 볼수 있을손가?    만화속세상에 만화같은 인생의 내함은 다양하고 풍부하여 수십억창생이 해석하는 한 풀이도 각색일수밖에 없다. 인생을 한권의 소설이라면 그들은 생활같은 소설을 읽는것이 아니라 생활속에서 소설을 엮었고 그들만의 사랑의 화폭으로 고조를 장식하고 있는것이다. 인생소설은 길수도 짧을수도 있지만 고난의 려정부분이 가장 크고 매력적인법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사랑만은 완벽하고 아름답다고 착각힌다.    그러나 선우는 자기들의 사랑이 완벽함에는 이르지 못했을지라도 이 대단원만은 그렇게 완벽할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사랑은  반드시 시련과 행복을 함께준다. 시련을 이겨내지 못했다면 행복의 뚜껑도 열어보지 못했을것이다. 끝끝내 도달할수 없을 듯 머나멀던 사랑탑이 지금 눈앞에서 솟아오르며 찬란한 빛발을 뿜어올리고있다. 허궁들리는 걸음에 앞서 마음이 달리였고 달리는 마음에 앞서 심장이 메아리쳤다. 《 정희야ㅡ!!!》 《 선우님ㅡ!!!》     정희도 아이를 들추어대며 마주달려왔다. 그들은 다른 방향에서 지금 마주향해 달려오지만 이젠 같은방향을 바라보며 인생길 굽이굽이 여한을 찍으며 걸어가기 위해 달려오고있는것이다. 드디어 손과손이 얽히였다. 남의눈이 무서워 부등키지는 못하고 말없이 마주보았다. 서로의 눈길에는 감격과 위안, 신뢰와 존경, 충정의 빛으로 가득차있었다.     그녀의 꽃술같은 속눈섭이 파르르 떨리며 마주붙자 맑은이슬이 맺거니덧거니 하다가 창백해진 두볼을 타고 쪼르륵 흘러내렸다. 웃음만 전염되는것이 아니라 울음도 전염되는 법이다. 선우도 뜨거운 눈물을 삼키였다. 그동안 선우는 정희의 울음에 너무도많이 전염되여 왔었다.    이제 더 누구의 눈치를 볼것도없었다. 정희는 잔등에서 해득해득 웃는 아이를 내리여 선우의 넓은가슴에 안겨주었다. 《 고난의 박토를 뚫고 용케도 태여난 씨앗부터 받아요, 해석은 나중에 할게》     선우는 서툴게 아이를 받아안으며 바보처럼 웃었다. 《 웃을때 바보처럼 순진한 그멋이 정말좋네. 선우선생님, 많이 원망했지요?》 《 원망이 아니라 원한이라고 해야 맞겠지, 요 흰나비야》    그들은 서둘러 신작로를 따라 보란듯이 해란강으로 행했다. 그들만의 그자리가 기다리고있었다. 정희는 남편될 사람의 어깨에 기대여 멋모르고 뱅긋거리는 아들과 애비의 얼굴을 번갈아보며 눈굽을 찍고 또 찍었다. 《 여보세요, 먹고누었지요? 우린 운명의 틀을 짓부실 권리는 없었지만 그안에 무엇을 채워넣을지는 너무나 잘 알고있었다고 말할수 있겠지요?》 《  어쭈, 문장이 막나오네, 그렇소. 우리같은 사람들이 확신할수 있는것은 이 세상에 없었다고 해야 하겠지? 그러나 우리는 서로를 확신했기에 여기까지 왔구려. 당신은  내게는 세상에서 제일 아름답고 향기로운 꽃이야, 그러나 그것을 따기위해서는 아찔한 벼랑끝에 나서야했어. 사랑은 그렇기때문에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라고 말해야 할지도 몰라.》     《어쭈, 또 서정시를 쓰느라구? 하나도 감동되지않네. 나는 당신을 사랑하기때문에 사랑한것이 아니라 사랑할수밖에 없었기때문에 사랑했던거에요. 바보랑군,》 《 정희야, 고맙다, 누군가 첫사랑이 아름다운것은 흔히 이루어지지 않아서이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내첫사랑은 이루어졌기때문에 더아름답고 비장한거야, 사막에서 쓰러지지 않고 내처가는 사람은 어딘가에 샘이 있으리라는 믿음때문이 아니겠어?》 《맞아요. 참, 나 정말 눈이 바로박힌 녀자이구, 원견이있어, 당신 국가교원으로 되였다는 말까지 듣고 얼마나 울었다구, 너무 감동되여서요, 당신 정말 대단해! 나 이제 작가부인에 사모님이 되였네, 호호호…호구에 올리지 못한 애지만 인제 잔치고 뭐고 당신 따라 결혼등기를 내고 그저 살아도 되여요. 엄마도 알고있어요, 당당한 국가간부가 되였는데 마다할리 있겠어요. 호ㅡ요렇게 고운 외손자가 생겼다고 너무좋아서 죽어지내요. 근데 우리 아기를 림시로 선정이라고 불렀어요. 힘들게 난 아기니까 멋진 이름을 지어줘야지요. 당신의 이름 선우정도가 좋지만 복잡해요. 호호호…》 《 뭐, 이름 잘지었네, 이름이 명과 관계된다지만 그저 부르기좋게 선우정이라 하면 어떨가? 남자니까 당신의 정자가 아닌 편안할 정(靖)자를 씁시다. 어떻소?》 《 선우정(鲜于靖)이라…좋아요, 선우의 정희라는 의미도 들어간것같네 호호호… 자, 어디 보자! 우리 작은 선우정님!!》     정희는 아이를 높이추겨들고 빙돌리다가 깔깔웃어대다가 다시 셋이 한덩이로 엉키였다. 례의 정희는 맑은이슬을 한가득 머금고 선우를 쳐다보았다. 중천에 높이 뜬 해가 만리장천에서 뜨거운 열기를 쏟아주고있었다.…                                                      2000년 2월 26일  
233    (중편소설) 한 남매의 비극 댓글:  조회:15461  추천:2  2013-07-31
                                  한 남매의 비극                                      최 균 선       해변도시 청도, 따스한 봄날 저녁, 진종일 빛과 열을 쏟아주던 해는 직책을 다한 배군처럼 광명의 바줄을 내려놓고 하늘가에서 대해와 주변의 질탕거리는 도시를 굽어보고있다. 하늘과 대지, 바다는 장엄하게 태양과 작별을 고하고있다. 황금색으로 물든 구름이 련련한 정을 버리기 아쉬운듯 태양을 부축하고 바다는 거대한 금빛화환을 엮으며 십리금사탄을 경이원지하고있다.     슬프도록 우울한 황혼빛이 차차 걷히더니 야색이 광림한다. 오광십색의 네온싸인이 눈이 현란하도록 명멸하고 마천루도 휘황한불빛으로 휘감고있어 그야말로 불야성인데 꼬리에 꼬리를물고 달리는 자동차행렬은 불룡을 방불케한다. 도시문명을 향수 하느라 분주히 흐르는 인파속에는 하늘에 명월따위엔 눈길을 주는 사람이 별로없다.     그녀와 남동생은 이 해변도시, 백통교부근의 으슥한 골목에 세를맡은지 얼마안되여 그녀가 뒤골목의 밤모기라는것을 많은 남자들이 알아버렸다. 그러나 그들 남매는 아닌보살하고 생존을 위해 안깐힘을 다하고있었다. 그녀가 최하층기생이라고 손가락질해도 그녀의 남동생은 제누나가 그런생활에 너무 익숙해있고 어쩌면 좋아하고있다고 느끼면서 비애에 잠길때가 많았다.     그녀가 동생과 대화할 때에는 가늘고 섬세한 손가락사이에서 늘 가느다란 담배가 파아란 연기를 몰몰 피워올리고 한손에는 술병이 들려있다. 그녀는 자기가 매음에 집착하는것은 별로 힘을 들이지않고 돈을 벌고 벼라별 남자들이 정신을잃고 놀아대는 꼴을 보는게 재미있기때문이라 하였다. 그렇게 말하면서 얼굴도 붉히지 않았다.     아직 녀자에 대해서 감감인 동생이 보기에도 누나의 눈은 늘 추파를 흘리고 있는듯하였고 앉으나서나 곧고 긴 다리를 조금 벌리는데 그리 좋아보이지 않았다. 동생의 눈에는 누나가 얼굴이 너무 잘생겼지만 형형색색의 남자들과 너무 과도하게 뒹굴며 밤을 새우는때가 많아서 초췌하였고 애젊은 처녀로서는 생기가 없어보이였다. 그러나 짙은화장을 하고 사냥에 나설때는 환골탈태한듯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였다.       동생은 누나가 무치하게 생각되까지 하였다. 그러나 무어라 말할자격이 없었다. 누나가 그렇게 굴욕적으로 벌어들이는 피눈물젖은 돈으로 굷지않고 헐벗지도 않고 살아가기때문이다. 동생은 이 시내에서 제노라하는 남자들이 누나의 아름답고 풍만한 몸을 얼마나 거쳐갔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밤이되면 멋진 옷차림의 남자들이 세집에 들어서자바람으로 위군자의 가면구를 벗어던진다. 몸을파는 녀자앞에서 몸이 달아하는 그런모습을 보면 앙증스러운 원숭이같아 보인다. 누가 더 고상하고 누가 더 비렬하다고 말하랴! 동생은 열다섯살이고 누나는 열아홉살, 한창 꽃피는 시절이다. 그러나 누나의 생활은 암담하였다. 후에 량부모가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자신은 물론 누나도 그들에게 애잡짤한 감정커녕 오히려 잘코사니를 부를 심정이였다.     부모들이 살아있을 때 그와 누나를 때리는것이 그들의 락인듯하였다. 동생은 비록 친누나가 아니라지만 정말 온순하고 착한 녀자애라는것을 잘 알기에 엄마보 다 더 따랐다. 누나가 아버지와 엄마의 죽음에 대해 그렇게 악을 먹고 저주하는 까닭을 아홉살때 알게되였다.    누나가 아버지에게 맞은일 때문에 그토록 미워하는것만도 아니였다. 어느날, 학교에서 돌아와 문을 열려는데 아버지가 또 때리는지 누나가 울고불며 악을 쓰 는 소리가 들렸다. 들어가서 말리고싶었지만 공연히 자기까지 맞을가봐 문틈으로 들여다보았다. 아버지가 누나의 배위에서 어째서인지 몸을 아래위로 흔들어댔다. 자세히 보니 누나가 아래도리를 벌거벗고있었다. 동생은 그게 무엇을 하는건지 잘 몰랐지만 언젠가 대낮에 엄마에게 하던 동작과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나는 더 울지도 못하고 죽은듯이 누워있었고 아버지가 드디어 일어나 바지를 입을 때 엄마에게 하던짓을 했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말하기싫은것도 누나몰래 엄마(누나의 엄마)에게 가만히 말했다. 이제 아버지가 엄마에게 혼이날것이라고 믿었는데 어째서인지 아무일도 없는듯 덤덤했다.    후에 누나에게서 알았지만 그“어머니”라는 녀자가 그렇게 할수밖에 없었던것은 매우 엄중한 부인과병이 있어서 성욕이 특별히 강렬한 남자를 만족시킬수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엄마는 남자가 다른 녀자를 찾아갈가봐 겁을냈고 자기 딸 을 망친것을 알면서도 모른체 하였다는것이다. 자기의 어리디 어린딸을 훗남편에게 희생물로 바친 그 엄마의 마음이 어쨌을가는 그 자신만이 알일이다….     어른들이 말하듯이 비료물이 다른사람의 밭에 흘러가지 못하게 한다는것이 통용된것인가? 그러나 그것은 너무 잔인한 선택이였다. 일이 있고나서 누나는 무시로 못살게구는 아버지가 무서워서 집을 뛰쳐왔고 자기도 죽기내기로 누나를 따라나섰다. 사처로 류리걸식하다가 누나가 마침내 매음을 하게되였다. 그리고 자기는 남자들을 끌어오는 어간다리역할을 했다…지난일을 생각할때마다 동생은 누나를 와락 껴안고 엉엉 울어버리군 하였다.     어느날 번화한 백통로부근의 과일점에서 누나의 엄호하에 돈이 많아보이는 한 신사의 돈지갑을 훔쳐내다가 잡히고말았다. 그때 누나는 얼마든지 동생을 내 버리고 도망칠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 남자는 아주 신사답게 “도적 을 잡아라”고 고아대는 속된행동을 하지않았다. 다만 동생이 달아날가봐 돈지갑을 든 손목을 꽉 틀어쥐고있었다.     그러면서 당황해서 어쩔바를 모르는 누나의 얼굴을 홀린듯 훑어보다가 아주 괴상한 눈짓을 하는것이였다. 그의 눈이 무엇을 암시하는지 누나는 너무 잘알고있었다. 일찍 열다섯살 때 훗아버지에게서 터득한터였으니 말이다. 그 신사는 동생을 놓아주었고 누나는 조용히 그 남자를 따라갔다. 누나의 희생으로 동생은 무서운 경찰아저씨를 만나 닥달당하는일을 면하게되였다.     누나는 돈지갑을 훔친 죄값으로 몸을 바치려고 따라갔는데 생각밖에도 그 신사는 실신한듯 누워있는 누나에게 돈을 두툼히 뿌려주었고 후에 찾아와서는 더 좋은 집을 잡아주고 일년집세까지 대주었다. 그런후 하루건너 누나를 찾아와서는 밤을 묵어가군했다. 동생은 한번에 그렇게 많은돈을 쥐여뿌리는걸 보아서 써도써도 다 쓰지못할만큼 돈이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남자와의 육체교역은 누나를 완전히 변하게 하였고 또 동생도 변하게 하였다.     그때로부터 그들 남매는 소년,소녀의 순정과는 인연을 끊었다. 울긋불긋 명멸하는 네온등불빛이 사람을 미혹시키는 밤이면 남매는 지하공작이나 하러가는듯이 긴장을 앞세우고 거리에 나서는때였다. 그런데 동생이 줄곧 괴이하게 느낀것은 녀자가 없는 남자들만이 아니라 집에 녀자도 있고 자식들도 있는 남자들도 누나를 찾아와서 한바탕 열을올리고 간다는 사실이였다.     일반적으로 돈이 많은 남자들은 5성급의 외국인호텔에 방을 잡는다. 그러나 누나는 나꾸어챈 남자를 꼭 세집에 데리고왔다. 남동생은 밖에서 망을보았다. 그렇게 하는것은 자기의 유일한 가족이란 동생밖에 없기에 동생이 가까이에서 지켜야 안심하고 “사업”할수 있기때문이라며 설득했다. 그 말은 누나가 입버릇처럼하는 말이였지만 동생을 매번 감동시킬수 있는 말이였다.     그리고 동생은 누나가 자기에게 그런말을 할 때 내심으로 얼마나 적막감을 느끼고있는가를 절감했다. 동생은 누나가 수요하는것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안전감이라는것도 잘알고있지만 동생으로서 자기가 누나에게 줄수없는것이여서 누나를 지켜줄 힘이 없는 자신에 통탄하고있었다. 비록 몸을팔아 살지만 진정한 사랑이 수요된다는것을 자기가 아니고 누가 알아주겠는가?     동생은 돈이많은 허다한 남자들이 호텔방의 안전감을 버리고 기꺼이 누나를 따라 모험일수도 있는 세집에 오는데는 누나의 성실한 자태, 남달리 웅성을 끄는 육체적매력때문일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많은 남자들이 싫증을 내지않고 몇번이고 제발로 누나를 찾아오는것은 젊고 싱싱한 향기때문일것이다.     한번은 동생이 돈도 많아보이는 뚱뚱한 남자를 꾀여서 누나앞에 세워주었는데 몇마디 주고받더니 코꿴송아지처럼 남매의 뒤를 졸졸 따라섰다. 여느때처럼 누나가 남자를 끌고 저쪽방으로 들어간후 동생은 여느때처럼 문밖에 나앉아 망을 보았다. 밤하늘의 희미한 별들과 은은한 달빛, 코끝을 스치고 머리와 어깨를 어루만지고 가는 바람결, 길고양이들이 자유롭게 어슬렁거리는 골목엔 아카시아향기가 어느새 물러나고 밤꽃향이 진득하게 찾아와 쌓여간다…     누나는 남자들에게 거부감을 가지게하고 손해를 주는 존재가 아니라  수요되고 득이되는 존재로 되여있다고 생각할 때 자기도 공밥을 먹지않고 이 세상에 존재할 진정한 리유를 가지게 된다고 자긍했다. 그러나 귀찮은 존재로 치부하고 있음에도 스스로 존귀한 존재인듯 양양자득해 하는 자들이 모두 자기 아버지처럼 증오스럽다. 일을 시작했는지 어쩌는지 몰라 궁금하던차 방안에서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리더니 그 남자가 전화를 받는 말소리가 들렸다. 그의 목소리가 너무 천연덕스럽고 다정다감하여 제몸의 어딘가도 간지러워날 지경이였다.     ㅡ 친애하는이, 당신이였구려, 그럼, 오늘이 우리 결혼 3주년인것을 잘기억하고말구, 이 랑군님이 언녕 당신에게 줄 선물을 준비했다구. 나 지금 회사의 회의가 늦어져서 몸을 빼지 못해 안달하고 있다구, 내가 없으면 안되는 회의거든, 응, 그래, 일처리가 끝나는길로 곧장 달려갈게 기다리라구, 응, 요 나의 장미야. 그래그래, 오늘 밤 우리 세번째 화촉동방을 밝히자구 히히히…     이런 경우에 누나는 숨도 바로 쉬는것같지 않았다. 그리고 남자는 전화를 거는 시각, 누나의 배우에 엎드려있다고 생각되였다. 매번 이런 허위적인 남자들 을 보며 동생은 쓰겁게 웃었다. 그러나 분명 눈물을 머금은 웃음이였다. 자기가 이런데 누나의 마음인들 어떠할가? 특히 누나의 가슴위에 엎드려서 동작하면서도 회의니 어쩌니 태연스러메 전화하는 남자들을 눈앞에 그려보면 누나를 위해서 원 통하고 분하고 메스껍고 증오심이 북받치여 당장이라도 쳐들어가 몽둥이로 그자 들의 뒤통수를 박살내고 싶은것을 참군했다. 그는 왜 참아야 하는지 자신도 잘 모른다. 이 허위로 가득찬 세계에 왜 분노하고있는것일가?     누나의 눈물겨운 헌신과 그 대가로 하루세끼 밥을 먹으며 세월을 흘려보낸다. 동생은 이 도시에 한자리 하고있거나 총명하고 돈많은 호색가들을 여지없이 경멸하고 있었지만 그들의 덕을 볼때에는 자기 모순에 빠지기도 했다. 이를테면 공안 국에서 돌격적으로 매음소굴을 들이칠 때 그들이 통풍해 주어서 매번 무난하게 재난을 피할수 있어 탄복되기도 했다.     세계적으로 매음은 오랜 력사를 기록하고있는 고루한 직업으로 자리매김되여있고 가장 뚜렷한 남녀불평등의 표지로서 인류의 수치라고들 곧잘 말한다. 중국에서는 과거에 사회주의사회의 시금석은 사회상에 기녀ㅡ매음녀가 없는것이라고 자랑하였지만 지금은 그런 말이 통하지 않는다. 여북하면 매음녀를 실족부녀라고 개칭하여 부르며 그녀들의 명예, 인권, 생명보호를 웨치고있겠는가?     맑은 하늘에 찬란한 태양이 고층건물 너머로 지고 어스름이 깃들면 누나와  동생은 두마리 적막한 고기마냥 거리와 골목을 누비며 로획물을 포착하려 온갖 전술을 다쓴다. 그녀의 전업이 그러니 다른 생업을 생각하지 않고있었다. 그렇게 고달픈 유격전을 하다가 누나가 영준하게 생긴 남자를 만난후 남매의 처경은 완전히 달라졌다. 더는 도적고양이처럼 밤거리를 헤매고 다니지 않게 된것이다.     뭇호색가들은 매음녀들에게 돈벌이 대상이면서도 “하느님”이라고 한다면 그 영준한 남자는 그녀의 진정한 “하느님”이였다. 그가 누나를 만나서 긴가민가 망서리다가 따라서던 모습이 인상적이였다. 동생은 많은 웅성들과 교섭했지만 한번도 감동된적이 없었다. 동생의 눈에는 그저 걸어다니는 인출기일뿐이다. 그런데 누나와 그남자의 오고가는 눈빛은 동생을 진동시켰다. 서로 바라보는 눈빛은 결코 정욕에 넘친 그런 눈빛, 돈을 짜래려는 눈빛이 아니라는것을 알았던것이다.     동생은 누나의 얼굴에서 완전히 소실되였다고 생각한 수치심의 표징인 홍조가 스쳐지나가는것을 보았다. 처음 만나는 녀자와 남자의 눈길과 거동은 매음녀 와 도색자의 그런것이 아니였다. 마치 첫눈에 정이들어 대번에 묵결을 이루는 한쌍의 다정한 남녀같았다. 동생은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천생연분이라는 말을 떠올리며 멀찌기 피해서 지켜볼뿐이였다.     그녀는 녀성의 제 6감각으로, 그리고 직업적인 본능으로 남자를 첫눈에 감지 해버렸다. 거의 녀성적인 미로 점철된 잘생긴 얼굴과는 조금 비대칭적으로 억세여 보이는 골격과 애욕으로 끓고있는 검실검실한 눈과 그리고 자진하여 받아들이고 싶어지는 탄력적일 입술, 남자의 그것을 상징한다는 우뚝한 코며 사소한 동작에서 벌써 격렬한 성정을 가지고있음이 력연한 이 남자야말로 종래로 느껴보지 못한 이성의 정복력과 침투력으로 자신을 기절하도록  만들것이라고 확신하였다.     그러면서도 의심하는듯한 눈빛과 발톱을 숨긴 매의 눈을 련상시키는 섬찍한 예감, 그저 섹스가 목적인 여느 막돼먹은 남자들과는 현저히 구별되는 우아한 외모에도 불구하고 여성편력이 간단한 남자는 아닐것이라는 추측이 앞서기도 하였다. 자기의 녀성은 변두리 싸구려 세방의 선반우에 얹어놓고 백원짜리 지페냄새가 나는 웃음을 지으며 열심히 남자들을 리드하던 그녀에게있어서 이 남자는 례외라고 느껴졌다.     남자도 녀자를 저울질하고 있었다. 전업적인 매음녀로 생각하기엔 너무나 청순한 얼굴과 수많은 남자들을 꼬셔들였을 그 불가항력적인 매력을 가진 눈에서는 요사스 러운 기운이 전혀 없었고 꾸며내는듯한 우아한 표정이 아닌 내심의 발로가 그대로 체현되고있는 얼굴은 매음녀들은 거개 천박하다는 선입견을 물리쳐버렸다.     사실 그러했다. 그녀는 애욕의 구지레한 늪에서 매일 육체교역을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스스로 에덴동산의 이브가 되여 늦게 발견한 아담의 량해와 용서와 사랑을 확인할 생각만 하고있었다. 그녀는 그저 돈으로 바꾸는 웅성을, 그것이 어떤 어마어 마한 외투에 감겨있는 웅성이든 손쉽게 끌어들이였는바 절대가인같은 미모가 안받 침된 그런 천부가 있었다. 수많은 남자들이 거쳐간 녀자이건만 어쩌면 이리도 싱싱 하고 청초하고 순결해보일수 있단말인가?    그렇게 방탕한 생활속에 부대끼면서도 어쩌면 숫처녀같은 표정을, 아니 어딘가 어린 소녀애같은 표정이 남아있을수 있단말인가? 그것이 바로 남자가 알고싶어지는 류다른 이 녀자의 맛일게라고 군침을 삼켰다. 매음녀와 도색자들은 동상이몽을 하면 서도 도달점은 그 한가지뿐이고 결국 교역으로 슴슴하게 끝나지만 이 녀자만은 일차성적인 교역으로 끝내버리고 싶지않다는 욕망에 전신이 부르르 떨리였다.     매음녀와 도색자의 사이엔 감정을 이어놓을 매개물은 결코 다정한 말이나 우아한 자태가 아니라 그저 미색과 성감, 그것을 매개로 얻으려는 지페장이다. 그러나 누나는 옴니암니 값을 흥정하는것 같지도 않았다. 하긴 누나는 무슨 자신심을 가졌는지 매번 물건을 사용해본후 만족하면 내키는대로 돈을 내라는 그런 배포 유한 교역을 하는 스타일이였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밑지는 때가 없었다. 이번에도 누나는 방에 들어가자 바람으로 옷을벗고 남자를 죽여줄 준비를 서두르는것 같았다. 동생은 누나가 하는일을 일종 직업으로 생각하고있기에 호기심을 가지지않고 무덤덤 망을보았지만 이번에는 괴이한 호기심이 동했다.     그래서 밖에 나가는척하면서 문가에 다가서 엿들었다. 누나는 다른때와 달리 문을 꼭닫았다. 그러나 문틈으로 간간히 새여나오는 누나의 신음소리에서 (누나는 종래로 신음이나 괴성을 내는적이 없었다.) 누나와 남자가 얼마나 유희에 몰입하고 있는가가 짐작되였다. 시간도 다른 때보다 곱절 걸리는것이 일차전역이 아닌것 같았다. 동생은 누나가 속결전을 좋아하는데 별스럽다고 생각되였다.     남자는 분명 이 녀자의 미모와 자태는 실물이라고 생각할수 없을만큼 매혹 그 자체이고 불타는 욕정만을 위해 태여난 녀자인듯 느끼였을것이다. 누나는 그의 어머니가 그대로 쏙 빼서 물려준 녀인 특유의 매력과 불가항력적인 성적유혹력이 구비 되여있었다. 누나가 이 모든것을 그저 슬쩍 내보이기만 하여도 아무도 벗어나지못하고 길들인 망아지처러 졸졸 묻어오고 그리고 정신이 황황해서 나가군 했다.     이 시각, 그녀는 그 비상한 보배가 로쇠하지 않는한 육체교역에서 성공할것이며 얻고싶은 돈을 벌것이라는 자신감을 접어버렸다. 이 남자앞에서는 그런 부끄러운 오기가 와르르 무너져버리고 이미 너저분해진 녀성궁을 꺼리지 않기만 바랬다. 황홀 한 동경과 자기로서는 최고로 접대할 온갖 자세를 그려보면서 언녕 식어버린 그의 성애의 회음벽에서 아름다운 메아리가 울려나오기만 바랬다.     그녀는 화촉동방에서 첫신랑을 맞는 숫처녀처럼 당치않은 불안한 감이 온몸을 팽팽하게 하였다. 그녀는 유린이 아닌 부드럽고 따스한 사랑을, 남자는 오로지 마구 뚫고들어가고싶은 욕정으로 한몸이 되여버렸다. 사랑하는 남자에서 처녀를 바치지 못한다는 스스로의 안쓰러움이 미친듯이 굴러대는 남자를 묵묵히 받아들였다.     처음엔 원치않게 등뼈가 굳어지고 있었으나 그 초조함도 차차 사라지고 그녀의 몸속 어디에서 꿈틀대는 미묘한 감각에 취하면서 이 남자에게서만은 돈을 받고하는 섹스가 되게 하지 않으리라 작심했다. 돈으로 바꿀수 없는 너무너무 좋은 감각적 향수를 넘치도록 몸속에 부어넣는 이런 남자에게서 돈을 받는다는것은 아무리 육체교역을 하는 녀자라도 량심이 없다고 생각하였던것이다.     그녀는 눈을 살며시 뜨고 남자를 올려다 보았다. 마치 치통이라도 앓는듯 이를 드러내 보이는 이상한 웃음을 지어내며 탐닉하는 모습이 처음으로 가소롭게 보이지 않는것은 무엇때문인지…그녀는 일에 익숙해진 후로부터 남자로부터 오는 감당하기 어려운 충격을 차디차게 견뎌냈지만 이 남자에게서 오는 충격력은 견뎌내기 어려울 만큼 뜨겁고 특이하여 저도모르게 물먹은 햇솜처럼 노그러지는것 같았다.     그녀는 기계적인 동작반응이 아니라 일종 강렬한 고마움과 사모의 정을 만끽하고 있었으며 육체적인 만족감을 뛰여넘어 마음으로 사랑이 불타고있음을 두렵게 느끼 였다. 이 남자는 그녀를 속으로부터 녀성본능의 욕정을 만족시키고 있을뿐만아니라 사랑 그 자체를 완성해가고 있는것이다.    성급하게 달려들어서 장기전이나 할듯 거센체 하다가도 자신의 특기로 인차 김 빠진 공이 되여져서는 그녀의 젖가슴에 대가리를 떨구며 뻔뻔스럽고 싱거운 웃음을 흘리던 남자들을 너무많이 보아온터이지만 자신이 먼저 몽롱해져서 그가 격렬한 동작을 멈추어버린 뒤에도 가슴위에 녹여붙이고 자기의 몸안에 생명체를 그냥 그대로 머믈러있게 하였다.  그런 특기로 하여 남자는 다시 무진장한 힘을  얻은듯 재돌격을 가해왔다. 그녀도 저도모르게 “아, 너무좋아, 고마워요, 이렇게 처음….”하고 떨리는 소리로 속삭이며 감동의 눈물을 흘리였다…    수많은 남자를 불러들이는 그녀로서는 육체는 순종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었지만 정신은 항거하고 울부짖고 환멸감을 가지고 있음으로해서 남자가 아무리 로련한 기교를 부리여도 자신의 욕정을 불러일으키지 못하였으며 아무리 부드럽게 입을 맞추어도 아무런 위안도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이 남자앞에서는 가식을 부리고싶지 않았다. 그래서 정서를 다잡으며 리성이 시키는대로 그저 잠에 취한듯, 꿈속에 빠진듯 말없이 누워서 남자가 하는대로 내버려두었다. 남자의 행위란 모두 거기서 거기이지만 이 남자의 행동의 격렬성과 절정에 치닫는 전률이 모두 자기것으로 생각되였기에 자기 자신을 위해서 더 이상 가동작을 할 필요가 없었던것이다.     그녀를 힘차게 뒤흔드는 진동력도, 그녀의 몸속깊이에서 요동치는 미묘하기 그지없는 감각도 그리고 세차게 분출되는 따스한 정액도 모두 꿈이고 향수였다. 그녀는 남자가 자기가슴우에서 곯아떨어진듯 미동도 하지 않고 있는것이 좋았고 더없이 정겨워졌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스스로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막연하게 예감되는 이 상한 기대감이였다. 왜 건장하고 잘생긴 많은 다른 남자들에게서는 이런 느낌을 못받았는지…주동적으로 하는 일이여도 정신이 피동적이였던탓인가?     다같은 일이라도 사랑을 앞세우고 노는 성유희이여서일가? 아무튼 좋아하는 남자의 가슴아래에서 산곡간을 가득 메우는 아침안개같이 몽롱하고 꽃밭속에 누운듯이 찬란하고 씨알마냥 꽉박힌 별하늘같이 신비하고 황하의 파도같이 장쾌한 느낌이 한껏 달아오른 남자의 거센숨결과 체취와 애무에 섞이여 휘둘리고 소용돌이치고 맴돌쳐도 지칠줄모르는 육체, 사랑을 안고하는 성이 이렇게 감격스러울줄은 몰랐다.    이 남자의 가슴밑에서는 아무 굴욕감도, 수치감도 없이 내내 덮혔있던 마음의 구름을 말끔히 걷혀지고 너무 자연스러운 융합으로 평화로운 밤을 마련해 주는것으로 느껴지는것은 무엇때문인가? 사실일까? 내가 지어낸 느낌일가? 남자의 우스꽝스러운 엉덩이짓이 다른 남자들의 그짓처럼 전혀 우습지않고 생명속에 생명의 아름다운 률동이라고 생각되였다. 그것은 너무도 부드럽고 힘찬 생명찬가이다.     그녀는 자신을 남자들에게 바쳤던 가지가지 경험들을 일시에 떠올렸으나 이 시각보다 더멋진 시각이 단한번도 없었다고 단정해버렸다. 이 남자에게만은 임신의 위험을 경계하고 싶지않았으며 그저 황홀한 무지개동산에서 그네를 타는듯한 느낌으 로 하여 아무것도 고려할 여지가 없었다.     아아, 남자, 남자, 어떠한 의미에서는 녀자들에게 쾌락을 가져다주는 존재이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그런것을 안겨주지 않은 사악한 존재들이기도 한것이다. 그녀는 자기와 같은 행업의 녀자들이면 다그렇게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남자들은 인간이기전 에 먼저 웅성으로 매음하는 녀자의 육체를 탐하고 정신활동같은것은 말살해버리는게 보통이다. 하지만 자기는 그런 남자들을 수요하고 그들의 발설에 응해주고있다. 자신이 그런 웅성의 발설을 돈과 바꾸어왔으니 자신은 녀자로서는 죽어있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수많은 남자에게 바친 똑같은 몸뚱이지만 이 남자의 그것은 너무너무 사랑스럽고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할 근육질의 생명체였다. 이 남자가 그리고있는 환영같은 모든 동작의 진행은 무지개빛속에서 연장되고 있었다. 그녀는 이런밤을 수없이 가지리라고 마음다지면서 남자를 꼬옥 껴안았다…….     마침내 그렇게 생생하던 남자가 후줄근한 모습으로 나가버리자 한참 있다가 누나도 따라나왔다. 역시 더없이 지쳐버린 모습이였다. 종래로 그런 모습을 보인적이 없는 누나였는데 이번만을 심상치 않았다. 누나는 동생을 쳐다보지도않고 좀 점직한듯 기여드는 목소리로 말했다.    ㅡ 이번에 나 돈을 요구지 않았어…     동생은 그저 고개만 끄덕거리며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매 한차례 누나가 얼마나 고역을 치를것인가를 짐작하고 있는 동생으로서는 매우 마뜩지 않았지만 말이 나가지않았다. 수고하는것은 누나가 아닌가? 누나는 다시 방안으로 들어가 더니 한번도 나오지 않았다. 동생은 문틈으로 방안을 엿보았다. 누나는 침대위에 비스듬히 기대여 앉아있었지만 목석같았다. 격렬함이 지나쳐서인가?     동생도 자리에 누웠지만 잠기가 말짱 달아났다. 한번도 녀자를 경험해 보지못한 그로서는 남녀간의 오묘한 사연을 다알지 못하지만 누나의 직업특성으로 해 서 조숙해버린 그는 누나의 얼굴에 비껴갔던 홍조가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충분히 가늠할수 있었다. 비록 짧은 한순간이였지만 황홀경에 빠진듯하던 누나의 눈빛에서 누나가 그 남자에게 진정으로 매료되였다는것을 읽을수 있었던것이다.     틀림없었다. 청춘을 팔고있지만 한창 청춘이 무르익고 있는 녀자로서 진정한 애정의 유혹에 자연스럽게 얼굴을 붉히는 그런 순정이 아직 고스란히 남아있 는것이다. 그것은 누나의 마음의 류출이며 청춘의 권리이다. 뭇남자들의 노리개로, 발설도구로 전락되였지만 누나도 모든 정당한 녀인들이 가지고 있는 그런 순결한 사랑과 행복한 가정을 동경하고 있는것이다. (아, 불쌍한 나의 누나야…)    그날 그 남자가 왔다간후 누나는 얼이 나간사람처럼 멍해있기가 일쑤였다. 그러면서도 동생의 시탐조의 눈길을 무시할수 없었던지 하루는 동생을 앉혀놓고 얼굴을 붉히면서 자신이 한 남자를 진정 사랑하게 되였다고 고백하였다. 동생은 짐짓 웃는 표정이였지만 목소리는 담담하게 짐작하고 있노라고 대답해주었다.    그녀는 오래간만에 사람을 사로잡는 얼굴에 애처로운 웃음기를 띠였다. 동생 은 누나의 손가락에 담배가 끼여있지 않다는것을 발견하고 놀랐다. 자기와 대화 를 나눌 때 쉴새없이 담배연기를 뿜어올리며 다리를 벌리고서지 않는다는것을 발 견했다. 누나는 며칠새에 예전의 얌전하고 수집음을 잘타던 순결한 소녀로 돌아 간듯 싶었다. 사랑의 힘이 누나를 대번에 내심세계까지 갈아엎은것이다.    그런 누나를 이상하게 여길것도 없었다. 녀자들이란 사랑의 단비를 맞아야 더욱 활짝피는 법이라던가, 만약 한 녀자가 사랑에 절망한다면 그것은 그의 인 생에 치명적인 심리장애이다. 물론 이것은 어느 소설에서 본것이다. 몹쓸 아버지 가 너무 일찍 누나에게 감행한 그 악행이 불치의 후유증을 남겼다면 누가가 이렇듯 애정에 대한 순결한 동경이 있을수 없을것이다. 천만다행한 일이다.     한사람으로 말하면 가장 두려운것은 머리속에 자기는 날때부터 불행한 사람이라고 생각을 새겨두는것이다. 운명의 녀신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기사상의 왕 국에는 운명의 녀신이 들어설자리가 없다. 지금 누나가 자기 심령세계에 녀왕으로 거듭나고 있는것이 아닌가? 그런 누나를 훔쳐보며 동생은 속으로 눈물을 삼켰다.    그 남자가 그들의 생활에 개입된후 남매사이는 점점 소원해졌다. 그들은 더는 “야간공작”상 합작을 하지않았다. 가령 이 도시에서 언녕 그들을 눈박아 둔 사람이 있었다면 꽃보다도 더 아름다운 매음녀가 한 남자와 동시에 거리에 나타나는 모습이 보이지 않아 이상하게 생각할것이다. 그동안 얼마간 저축했던 돈도 거덜이 나고있지만 그녀는 개의치않고 무엇하러 가는지 매일 나갔다가 이튿날 오기도 했다.         그 희한하게 잘생긴 남자가 남매가 든 세집에 나타나지 않았지만 동생은 누나와 그남자가 매일 함께 뒹그며 향락을 누리고 있다는것을 짐작하고 있었다. 누나에게 그 남자에 대해 한마디도 묻지않았거니와 어느 정도로 관계가 발전하고 있을가하고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물이 도랑에 이르면 흐르기마련이 아닌가?     시작도 되기전에 너무 처참하게 일그러진 오랍누이의 인생인데 이제 무슨 사치한 동경인들 있으랴, 그저 되는대로 살아가자는 생각뿐이다. 동생은 나날이 량가집의 건강한 녀자애들처럼 우아하고 청신한 그런 모습에 아무런 내색을 내지 않았지만 보기좋았고 내심 축하했지만 살아갈 문제에 무슨 도움이 되는것은 아니였다.    아닌게 아니라 그 남자에 대한 그녀의 사랑은 날이 갈수록 깊어가고 열광적이였다. 그 남자는 그 녀가 잠들기전과 잠이 들면서 그리워하는 사람이였고 꿈속에서 만나는 유일한 남자였으며 눈을 뜨자마자 불러보는 존재였다. 그녀는 마침내 자기 몸속에 얽어두었던 진정한 정욕을 활 풀어놓게 되였으며 자기가 뭇웅성들의 정욕을 만족시켜주기 위한 존재로부터 이제부터는 한남자만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것을 발견하고 저절로도 눈물겨워하였다.     그녀는 자기에게 진정 성적쾌락을 가져주는 남자는 오직 그 남자일뿐이고 그가 주는것이야말로 한 녀자의 일생에서 유일하게 기묘하고 소중한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감각향수를 지난날 멋진 남자들에게서 찾아내려고 애도썼지만 종시 찾아내지 못했는데 이 남자는 더없이 훌륭하여 번마다 새로운 감각으로 혼미해지게 하였다. 계곡에서 쾅쾅 쏟아지는 폭포수마냥 격동적이여서 좋았고 사품치며 흐르는 급류여서 좋았다. 그래서 그녀는 남자보다 더 극성을 부렸고 자신이 원해서 하는 정사인만큼 무상봉사였다. 그래야만 성결한 사랑이라고 믿었기때문이다.     그녀는 직업병이듯이 뭇남자들의 가슴밑에서 몸이 달아오른적이 거의 없었지만 그남자는 가까이에 서있어도 지레 몸이 끓고 육체의 모든 신경계통이 통제를 잃고말았다. 맹목적일만큼 절대적인 사랑을 추구하고있는 녀자로서는 쉽게 굴종상테에 이르기마련이다. 그래서 매번 한두번으로 끝내버리고 돌아오지않는 검질긴 체질의 녀자로 되여버렸다. 남자는 탄복된다고 칭찬했고 그녀는 곧이들었다.     그러나 간능한 그 남자는 정욕의 발설이 곧 목적이고 수단이면서도 자기 정체가 드러나지않도록 교묘하게 녀자를 리드하면서 마치 남자로서 주는 쾌락과 행복감을 자기만이 선물하는 자태로 나왔다. 멋모르는 그녀는 그것마저 진심으로 받아들였으니 속으로 쓴웃음을 머금고 무료로 향수했다. 그렇듯 그 남자는 그녀에게 세상에서 둘도없이 인정미가 넘치는 남자로 각인되였고 그녀로서는 자기가 가지고있는 정열과 마음과 육체로 남자가 기뻐하게 하려고 가능한 모든 작태를 창출하고있었다.         매음녀로서는 수집음이란 당치도 않지만 꾸밈없이 얼굴을 붉히고 몸을 비꼬는 그녀를 그 남자는 불가사의하게 생각하면서도 능청떨며 다정한 말과 몸짓을 아끼지 않았다. 마침내 보통의 매음녀로서는 불가능한 무상헌신을 하면서도 감지덕지하도록 만들어버렸다. 남자는 녀자의 잠꼬대같은 속삭임소리를 귀등으로 흘리면서도 자신이 두다리사이에 그녀를 끼고 천국에 오르내린다고 착각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모든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그녀의 본질적인 성심리를 알지 못했다. 녀자가 바라는것이 정녕 무엇인가를 알고싶어하는 기본정서부터 갖추지 못했던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남자가 하는 말이 마치 잠자리에 든 신혼부부들만이 주고받는 정담으로 들리였고 그리함으로써 언젠가는 현실로 될듯싶은 신혼차야의 서곡처럼 감미로움에 도취되였다. 확실히 남자는 다정한이였고 초련의 서정곡을 격정에 넘치게 작곡하고 있었다. 구구하는 비둘기의 소리를 알아들을수 없듯이 그 남자가 하는말의 참뜻을 알아들을수 없을때가 있었지만 그냥 다감한 심장이 자기의 심장에 전파하는 애정이중주로 받아들이며 감동의 눈물을 머금었다. 남자는 그눈물을 빨아삼켰다.     그녀는 남자의 열광에 감동되기도 하였지만 짜릿한 긴장감이 너무나 통쾌하게 풀리고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미묘한 전류를 끊임없이 몸속에 전달해주는 그 힘찬 동작에서 첫희열이 신음으로 터져나왔고 바라던 성애가 선물하는 짜릿짜릿한 감각의 흐름이 전신으로 퍼져가면서 매번 그녀를 넋을 잃게하였다. 가장 진실하고 가장 감격적인 장면을 갈망하다가 마침내 그 욕망이 너무 멋지게 진행되고 그 성취감으로 지칠줄모르게 된 그녀는 래일 지옥에 떨어진대도 원망하지 않을것이라고 생각했다.     매일 스스로 찾아가서 아무조건도 없이 나누는 육체와 육체의 대화, 젖과 물처럼 융합되는 감각과 감각, 그냥 원시적이고 본능적인 욕정과 욕정의 불길속에서 확인되 는 쾌감, 만족의 산봉에로 함께 치달아오르는 숨가쁜 순간들을 영원으로 지속시키고 싶어졌고 몽환경에서 전률하며 흘러나오는 생명의 찬가를 내내 엮고싶었다.            그러나 그녀가 사랑이라 부르는 줄기찬 성유희가 남자가 매일 알심들여 각본을 짜고 그 각본대로 자기를 꼭두각시로 만들고있다는것을 어찌 알았으랴, 나중에야 남자의 선포에서 소스라치게 놀랐지만 자기들의 섹스를 아무리 미화하여도 남자가 자기를 완성의 경지에로 이끌어간다고 생각한것은 그녀 자신의 자아감각뿐이였다.     사랑이 없는 남녀의 정사라해도 본능적감각에 절정에 이르고 잠시 자기를 망각의 상태에 처하게 하면서 인간의 악을 떠올리지 않음으로써 동시에 선량함도 잃어가고있다는 그런 심오한 도리를 그녀는 알수도 없었다. 동정으로 빚어진 착한 녀자 들은 성유희를 하면서도 자기의 감각보다 남자의 감각에 더 신경을 쓰는법이기에 훗날 마시는 고배는 치명의 독약이 되는법인데 그녀는 그 독약을 마시고 또 마셨다.     동생은 누나가 그 남자와 미친듯한 열련에 빠져 아무것도 관계하지 않는다는 사실과 서랍속에 피임투가 줄어들고 저축통장의 돈은 눈에 띄게 줄어들고있다는 현실에 허탈감에 빠져버렸지만 누나와 다툴수도 없어 그저 벙어리 랭가슴앓듯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할수없이 다시 숙련되지 못한 좀도적의 행각을 벌일수밖에 다른방법이 없었다. 잡히는 날에는 곤욕을 치를줄 잘알지만 울며겨자먹기다.    똥물싸개도 3년하면 바자굽을 넘긴다는 속어처럼 동생은 재간이 차차 늘어서 운수가 트는 날에는 엷고 두터운 돈지갑을 너덧개씩 후무리기도 했다. 수입이 짭짤한 날에는 단정한 학생처럼 한 커피숍에서 진지하게 커피맛을 음미하는 우아한 자태를 지어보였다. 그러다가 단아하게 생긴 한 녀자애가 단골이라는것을 발견했다.    그 녀자애는 풀어놓은 커피가 식는줄 모르는듯 책에 머리를 파묻고있는다. 그는 녀자의 그런 자태에 그만 반하고말았다. 워낙 눈썰미빠른 그는 녀자애가 어쩌다 머리를 들때 입가에 까만짐이 있다는것을 보아냈다. 너무 사랑스러운 복짐이였다. 아직 한번도 마주보지 못해서 눈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른다. 궁금했다. 그는 누나의 유별나게 아름다운 눈길을 떠올리며 이 녀자애도 그런 기막힌 눈매를 가지고있으리라는 엉뚱한 기대를 가지였다.     커피맛이 유달리 감미로워졌다. 그동안 묵고 썩어가던 청춘의 본능도 살아나면서 이성에 대한 동경이 무지개처럼 피여올랐다. 투철히 파악하려면 근거리 매복을 해야 하였다. 그는 수단를 써서 그녀의 차탁 맞은켠에 자리를 정했다. 그는 드디어 녀자애의 얼굴을 넌지시 건너다볼 기회가 생겼다. 커피숍아즈미가 그녀에게 다른 커피를 타오라는가고 물을 때 녀자애가 고개를 반짝 쳐든다.     하야말쑥한 두볼에 볼우물을 살짝 파며 그리도 애교있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의 정기흐르는 두눈도 생글생글 웃는것만 같았다. 눈에도 볼우물에도 달콤한 웃음이 활짝 피고있었다. 앉은자태를 짐작해도 몸매는 야리야리하고 키는 알맟춤하고 다리가 미끈하게 쭉 빠져있을듯싶었다. 화사한 얼굴전체에 부끄럼을 잘타는 녀자애들의 착한 본성이 찰찰 흐르고있어 마주보는것만으로도 가슴이 따스해졌다.     누나가 드물게 잘생긴 남자애라고 말하지만 그는 믿지 않고있다. 그녀의 얼굴과 우아한 자태에 비추어볼 때 자신은 정말 못생긴 새끼오리에 불과하다고 느끼면서 자비감에 푹 절어드는것을 어쩔수없었다. 얼굴은 잘생겼다손치더라도 그 자신은 사악 한 문제아인것이다. 매번 수입이 짭짤할 때면 흥취도도하게 커피숍에 들어와 커피를 청해놓고 자아도취에 빠졌다가도 그 녀자애가 보이면 그만 주눅들면서 한없는 비애에 잠기게 된다. 그리고 돌아앉아 눈물을 씻어내군 했다.     그가 원해서 선택한 인생행로가 아니지만 형편없이 타락해버려 이 사회에 귀찮은 존재로 되여진 오늘 운명을 개별할 힘과 능력이 없다. 그래서 더 슬퍼졌다. 그녀에 게 접근할 담량도 없었거니와 그녀와 공동어를 찾을 신심도 없었다. 누나와 자기가 예상하지 못한 일이 발생한다면 영원히 그녀와 말을 걸어볼 기회마저 잃을것이다. 아닌게 아니라 그런 날이 너무도 일찌기 들이닥쳤다. 어느날, 동생은 누나의 화장대의 서랍에서 저금통장을 찾다가 피임투를 넣어두던 서랍에서 두툼한 편지봉투를 발견했다. 혹시 돈인가하여 꺼내보니 비뚤비뚤한 글씨로 도배질된 편지였다.       그냥 사랑하는 당신에게       마지막으로 호소해 봅니다.     나는 매우 비천한 녀인이지만 당신을 너무너무 사랑했습니다. 거짓말을 잘하던 당신이라도 이 사실만은 부인하지 못하겠지요? 당신의 그 무정한 배반은 모든 패덕한 남자들이 나와같은 녀자들앞에서 저지르는 그런 가지가지 패륜중에서 가장 너절하고 파렴치한것이라면 당신은 성이나서 펄펄 뛰겠지요? 성낸다고 자신이 저지른 행위가 지워지는가요? 헤아릴수없이 많던 성유희에 몰입하면서 당신은 한번도 나의 생각은 해보지도않고 그저 자기 감각에만 매달렸을것을 이제야 알았으니 나만 바보지요. 당신은 일종의 유희였지만 나에게는 인생을 건 선택이였어요. 그래서 내자신이 죽고싶 도록 원망스러운것입니다.     진정으로 좋아한다고 사랑한다고, 마냥 기쁘게 해주어서 고맙다고 횡설수설하던 그 입으로 말해보세요. 그 알량한 심보를 눈치채지못한 내가 멍청하지만 당신은 나의 신성한 사랑을, 더구나 나의 전부의 인생이기도 하였던 사랑을 그리도 간악하게 리용하고 단순하리만큼 순진한 녀자를 그럴듯한 감언리설로 미혹시키면서도 일년나마 한낱 수욕을 만족시키는 도구로만 여겼기에 나의 육체적존재만 인정했지요?     이제 와서 이런 성토가 당신을 돌려세울수 없지만 당신도 최저로 인간성을 가지고 이 세상에서 살려면 그 더럽고 질긴 뿌리를 다른 매음녀들에 뻗치려하지 말고 량심상 얄팍한 베일을 벗어야 할 종점에 도달한것이라고 생각되지 않는가요? 앞으로 당신의 생명이 얼마나 긴 세월을 이어갈지 모르지만 내량심의 법정은 당신을 용서 하지 않으며 지옥에 가서라도 당신을 쫓아다니며 복수할거예요.      당신은 살아있더라도 마음은 편안하지 못할거예요. 그리고 어디서 정의의 손길이 뻗치여 당신의 숨통을 확 끊어버렸으면 하고 기도해요. 순결한 소녀들은 배반하고 간 자기의 “백마왕자”를 죽으면서도 원망하지 않는다는 말은 다 너절한 붓쟁이들의 락 서일뿐, 뼈에 사무치는 나의 증오와 저주앞에서는 통하지 않아요.     당신이 무심히 뿌린 생명의 씨앗이 내배속에서 움튼지 100날이 되였어요. 처음 으로 내아이의 아빠라고 불러볼 그 환상적인 시각에 진정한 사랑을 갈구하던 녀자의 환희를 무엇으로 비유해야 하는지 나는 몰라요. 그저 어머니가 된다는 모든 평범한 녀자들의 그런 느낌만은 아님을 당신은 잘알아야했어요. 당신은 알려고하지 않았지요. 처음 임신한것을 알고 당신이 아버지로 된다는 그 성숙의 결실에 대하여 나처럼 기뻐하리라고 믿었어요. 하지만 그꿈이 깨여진 오늘 나는 당신을 죽이고싶어요.     내사랑의 결실, 첫아이라는 말을 외워보며 당신에게 더없이 감사하는 마음과 당신에 대한 나의 식을줄모르는 사랑과 당신의 그 끈덕진 진공력에서 느끼는 쾌감, 이 두가지중에서 어느것이 더 당신을 사로잡을가 생각해보며 저절로 몸을 달구곤 하였어요 그리고 그 모두를 이 세상에서 내생명으로도 바꿀수 없는 소중한것으로 껴안고 보듬었어요. 돈때문에 자기를 내버린 직업적본성마저, 내생계의 어려움마저 기꺼이 버리고 몸을 바쳐왔다는 사실을 당신은 과연 인정하지 않으려는가요?     나의 생명의 가장 소중한 희망이, 내가 찾은 참사랑이 지펴준 행복의 횃불이라 생각할 때 나는 눈물없이는 감동이 올수 없었으며 배가 불룩해져 당신을 받아주기 불편한감이 들더라도 당신을 더 정욕의 도가니속에 잠기게하고 더 강렬하게 나를 진동시키게 하고싶었어요.    이제 소중하게 여겼던 당신의 종자도 당신의 추악한 존재와 더불어 죄악의 씨로 밖에 느껴지지 않기에 녀자로서는 차마 할수없는 잔인한 생각이지만 내불행한 목숨 과 함께 죽여버리려고 결심했어요. 물론 나도 고사리같은 손에 기구한 운명을 움켜 쥐고 고고한 울음을 터뜨리며 이 모진세상에 첫얼굴을 내민 나의 분신, 내아기의 모습을 바라보며 지쳤으나 행복한 웃음을 웃는 자기를 무수히 그려보기도 했어요…    …그녀는 후회하고 있으나 너무 늦었다. 악마에게 처녀를 잃었다면 그후의 자기 행각은 자신이 선택한것이다. 매일 생면부지의 벼라별 남자들에게 친절을 베풀며 딩굴어온 인생궤적에 종점이 죽음밖에 없을것이라고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지만 그 남자를 만나기전까지는 발더듬이로 인생의 터널을 걸어가는 장님의 행로였다.     누구를 원망하랴, 그녀 자신이 자기의 청춘을 혹사시킨 결과로 마침내 무거운 사랑의 십자가에 자기를 달아매야 하였다. 그녀는 통곡이 나왔지만 입을 틀어막고 울음을 삼켰다. 자기의 더러운 력사도 개의치 않는다던 그 남자의 속임수, 사람은 량심으로 짐승과 구별된다는데 사람이 어찌 그렇게 뻔뻔할수 있단말인가?!     낯모를 남자에게 짓눌리면서도 거짓 신음을 간드러진 목소리로, 달콤한 애교로 빚어내기도 지겨웠고 남자가 쏟아붓는 정자를 자기 몸에서 죽이고 그리고 또 다른 정액을 받아내야 하는 그런 일이 죽기보다 싫어졌다. 세상에 참된 사랑이 있는줄로 알았던 자신이 우스웠다. 음욕이 사랑을 공공연히 목졸라죽이고 편견이 순수를 우습게 보고있으며 허위가 진실로 분장하는 웅성들의 세계에서 진정한 녀자로 거듭나기는 백번도 틀린 일이다. 음이 헝클어진 피아노는 그냥 도끼로 패버리는게 낫지 않는가?     그녀는 그 남자에게 수없이 많은 육체만찬을 제공했지만 그 남자는 자기에게 사랑에도 공짜가 없다는것을 보기좋게 선포했다. 자기가 젊어있는 한 청춘밥을 먹고 살수 있겠지만 늙도록 해먹을수 없는 행업이 이것이다. 기나긴 인생려로를 손잡아줄 사람도, 부축해줄 사람도 없이 자기의 지친 그림자와 함께 걸어가야 할 자신을 그려 보며 몸서리치지 않을수 없었으며 혼돈의 이 세계와 더럽고 치사한 남자들이 보기 싫어서도 죄많은 몸을 미련없이 버려야 하였다.     그렇게 생각하고 유서를 대신해 써놓고도 마음이 약한 그녀는 남자에게 직접건네 지도 우편으로 부치지도 못하고 혼자 끙끙거리다가 동생이 그 편지를 보게된것이다. 편지지에 원주필이 미끄는대로 갈겨쓴 구구절절에서그 그 남자가 여태껏 누나를 일전 한푼 안주고 거저 놀아대도 되는 매음녀로만 대했던것이 드러났다. 누나는 더 쓰지 않았지만 그 빌어먹을 놈팽이가 피임투를 사는 돈마저 내지 않았던것이다. 동생은 울어야 할지, 앙천대소해야 할지 그저 단숨을 몰아쉬며 으드득 이를갈았다.      불쌍하면서도 미워지는 누나였다. 물론 누나로서는 이 일년이 자기의 짧은 일생에서 가장 행복한 나날이였을것이다. 성스러운 사랑이란것이 허위의 면사포에 싸여있 다는것을 아무리 순진한들 그리도 눈치채지 못했단말인가? 그러나 누나를 탓할마음 이 전혀 없다. 이미 수없이 버린몸인데 놈에게 버림받은들 어떤가? 하고 생각하다가 일전한푼 내지않고 제멋대로 누나를 짓밟은 일이 통분해서 참을수 없었다.     사람이란 자기의 각종 욕망을 위해서는 이렇게 저렇게 분장할수 있지만 이건 너 무한것이 아닌가? 근 일년을 한 녀자의 아름다운 육체를 마음껏 향락하면서 진심인듯 의미심장한 눈길을 지을수 있지만 이처럼 야비한 놈도 있다는것이 처절하게 절통했다. 물론 누나가 너무 쉽게 그 자식의 그럴듯한 가상에 유혹당한것이다. 돌이켜 생각하면 첫날 공짜로 성을 바쳐준 누나의 순진한 마음이 그 놈팽이에게 빌미를 준것이다.     그날저녁, 누나가 특별히 늦게 집에 돌아왔다. 동생은 누나의 얼굴이 여느때와 달리 밀납처럼 창백해 있다는것을 대번 읽어냈다. 희미한 정등불빛아래 밝은 모습을 보여주려 애쓰는것 같았다. 그녀는 동생이 잘먹는 기름에 튀긴 돼지발족을 사왔다. 누나는 동생에게 술까지 가득부어주고 천천히 먹으라는 말을 남기고는 제방으로 들어갔다. 동생은 조금 이상한 느낌이 들었지만 더 캐여묻지않았다. 편지를 읽은후 누나의 정신적, 육체적타격이 얼마나 심각할것인가를 생각하면서도 누나가 나쁜마음 을 먹을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미 발을 벗었는데 물을 겁낼것인가?     한밤중, 소변을 보려고 일어나보니 누나의 방에 그냥 불이 켜져있었다. 별스레 불안한 감이 슬슬 가슴을 파고들었다. 동생은 노크도 하지않고 살며시 문을 열고 방에 들어섰다. 그는 눈앞에 벌어진 정경에 정신이 황홀해졌다. 누나는 침대에 이불 도 덥지 않고 반듯이 누워있었는데 희미한 전등불빛아래 누나의 얼굴은 마치 동화 속에 고요히 잠든 백설공주를 련상시키면서도 산사람이 잠든 모습이 아니였다.     겁이 더럭났다. 유난히 불룩한 가슴도 오르내리지 않는다. 곧게 펴고있는 다리를 살랑살랑 흔들어보아도 반응이 없었다. 손을 쥐여보았다. 싸늘했다. 급기야 몸을 만져 보았다. 차디차게 굳어져있었다. 그의 코앞에 얼굴을 대여보아도 숨이없었다. 누나가 죽은것이다. 그는 본능처럼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반쯤 뜨고있는 누나의 고운눈을 내리쓸어주었다. 그로써 죽음보다 더 강한 사랑을 한다고 그녀는 진정한 애정에 절 망하지 않을수없는 현실을 더는 보지않게 되였다.     처녀애들마다 제나름의 사랑의 기점과 원인이 있으며 서막도 다르고 극정도 부동하게 발전하는 희비극을 쓰고있다. 그러나 그녀처럼 불행한 녀자일수록 더욱 완미 하고 아름다운 사랑을 그리워하고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은 현실속에서 환상하다가 그런 사랑을 요행 만나게 되였다고 생각하면 맹목적으로 도취되고 마는법이다.     그녀의 유서에서 이 가련한 처녀의 매 한차의 육체교역의 정경을 련상할수 있다. 그가 왜죽어야 했던가? 그의 화용월태가 싸늘한 시체로 굳어져 버렸다는것은 그저 애석한 일만이 아니다. 매음하는 녀자들로 말하면 첫육체교역이 진행될 때 그들의 진정한 생명은 그로써 죽은것이다. 육체를 팔고 팔아야 했던 전후사정이야 여하하든 방탕한 생활의 결과는 처참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녀의 죽음은 “동백꽃처녀”에 마그리 트의 운명과 다르다고 할수 있지만 비슷한데도 있다고 해야 할지…     그녀가 죽으면서 녀자로서의 존엄을 갈구했지만 다른 사람들의 관용과 동정을 살수는 없겠지만 한을 품고 죽음을 택하였을 그녀의 찢어진 마음의 부르짖음을 들 을수 있었다면 아마 세상에서 가장 처절한 단말마의 비명이였을것이다. 그녀는 자기 의 남부끄러운 나날을 참회한것보다 자기가 운명이 시키는대로 인생의 주산을 튕기고 그로써 더러운 돈을 벌었다는 그 사실때문에 더구나 그럴수밖에 없을것이다.     자신의 성욕의 발로도 아니고 그 어떤 성적쾌감도 느끼지 못하면서도 뭇남자들이 자기의 풍만한 육체를 되는대로 짓밣게 하는것을 생계를 위한 일종의 직업으로 삼고 기계처럼 운행되였을뿐이다. 하루이틀도, 한두번도 아니게 수없이 많이 황음무치한 타락의 구렁텅이에서 뒹굴어어야했던 그녀, 너무 일찌기 이성을 알아버림으로써 세상을 어떻게 살고 어떻게자기의 생명을 대할것인가 하는 가장 기본적인 지혜마저 산산쪼각이 나버리였다. 그렇게 된것이 단순히 운명의 안배이기만 한것인가? 이 점 에 대해서 그녀자신이 한번이라도 랭정하게 생각해 보았다면 좋았으련만 뒤늦게 죽음과 함께 깨달은것은 누구의 탓인가?     네온등이 휘황한 네거리, 어둑시그레한 밤골목에서 그녀가 밤나비처럼 하늘거 리던 모습을 그 누가 기억이나 해줄것인가? 이 시대의 적라라하게 타락한 사회도덕이 한 순결무구한 소녀를 그리도 쉽게, 그리고 만구할수 없을정도로 오염시키고 썩게 하였다고 그를 위해 변명할것인가? 매음녀의 가슴우에서 발정난 짐승처럼 태질면서도 마음속으로는 경멸하며 무참히 짓밟은 그모든 남자들의 령혼은 그녀의 령혼보다 더 추악한것이 아니란말인가? 그러나 그런행각을 로맨스라고 부르는 이 시대이다.     응당 천부의 미모처럼 아름다운 이성생활을 누려야 할 한 소녀를 과연 운명이 타락의 구덩이로 밀어넣은것인가? 운명이 가련하게 여기여 마음에 꼭 드는 한 웅성을 붙여주었을 때 그 짧은 나날의 미친듯한 욕정에 몸을 맡긴것이 그의 전부의 행복이였 을것이라고 생각할 때 과연 참된 인성이 분노하지 않을수 있단말인가?    왜 운명은 그녀가 고통스러운 매음의 나날을 보내며 수없이 많은 웅성들의 사정없는 발설에 몸부림치기전에 그런 기회를 주지 않고 또 늦게나마 붙여준것이 짐승 보다 더 인정머리없는 비겁하고 잔악한 자란말인가? 왜 그녀가 사랑의 씨앗이라고 눈물을 머금고 불러오는 자기배를 어루쓸 때의 그 기쁨과 행복감을 인간의 허위성이 비웃도록 내버려두었는가? 너무너무 즐거워 전률하며 만든 새생명을 축복하며 순수한 자연적인 녀자를 되찾은것으로 하여 자기를 미워하면서도 자기를 용서하기도 하였을 그녀의 아픔 마음을 정녕 랭소해 버릴수 있단말인가?      자기들의 치사한 행각은 까맣게 잊고 그녀를 치욕의 고기덩이로 주무르던 위선 자들을 포함하여 소위 성결하다고 자긍하는 모든 웅성들은 그녀를 위해서 아무런 반성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것이다. 원인과 과정은 그네들에게 중요하지 않다. 오직 결과로써만 평가하고 그런 야비한 심통속에 자기를 숨기려고 급급해 할뿐이다.    이 시대, 너무 많은 매음녀들의 각이한 운명과 각이한 처경과 각이한 조우와 각이한 행각들을 글로써는 다 엮어낼수는 없지만 그녀 하나만의 렬악한 조우에서만도 우리는 사이비한 사회상을 투시하기엔 족하다. 그녀는 버림을 받음으로써 녀자의 순결한 정조감을 찾았기에 다른 남자들을 받아들일 생각을 하지도 않았다기보 다시 찾은 소중한 정조관을 고스란히 안은채 죽었다는 사실 자체는 너무 애처롭다.    혹자는 입이 더러워서 이런 문제. 그런 녀인들의 조우를 론하지 않는게 명지하다고 할것이나 그녀와 그녀와 같은 모든 매음녀들의 몸속에 일체를 찔러넣는 모든 남자들은 입을 다무는것이 아니라 할말이 없는것이다. 사람들은 그런 밤골목의 녀자 들을 질책하고 침을 뱉으면서 그녀들의 내심의 고통스러운 하소연에 귀를 기울이려 하지 않는다. 그만큼 무조건적인 멸시가 곧 그녀들에 대한 불공정한 평가로 대체되고 있다. 그저 수치스럽다는 그 한마디일것이다. 그러나 그런 수치를 누구들이 돈으로 감싸고있으며 자기들의 몸속에 지니고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명백해진다.     왜 이렇게밖에 될수 없는것일가? 현대세계는 다만 제멋대로 풀어놓은 천박한 감각밖에 없으며 사람들이 한사코 추구하는것은 그런 감각일뿐이기때문이다. 사람들은 매음녀들과 벌린, 남들에게 알릴수 없는 그 동물적인 동작의 련속성을 외도라고도 하고 풍류라고도하고 더 허위적으로는 사랑이라고 부르는데 얼굴한번 붉히지 않는다. 그러면서 도고한 군자연하는 자세를 취하지만 그런 자세야말로 매음녀들의 행위보다 더 가증하다는것을 모른다. 그것은 남자들이 영원히 천박한 동물로 남게한다.     고도로 발달한 물질문명의 이 시대는 제정신이 아니다. 돈과 소위 섹스라는 이 두가지 광열과 광기뿐이다. 공방형이 부리는 광기는 옛날부터 있은 일이지만 시대에 따라, 수많은 개체에 따라 제나름의 광기속에서 돈의 지배를 받는 일과 섹스에 더구 나 미쳐서 열중하고있다. 추구한다는것은 곧 돈을 버는일이며 향락하는 일이란 녀자 들의 몸속에 쏟아붓는 일이다. 거의 모든 남자들은 자기의 가장 쾌락적인 의미를 매음녀들에게 제공한다고 생각할것이다. 웅성의 발설로 진정한 남성으로 현연시키는 것은 원숭이로 되여지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진실하고 따스한 사랑인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아름답고 풍만한 육체를 탐하는 그 광증에서 남자로서의 존엄과 성실성을 생각한 남자가 과연 있었던가? 그들이 열중하는것은 녀자의 육체가 제공 하는 아찔한 감각적향수가 유일한 추구였을것이다. 녀자의 라체앞에서는 권력자도, 군자도 없고 오직 발정난 웅성만 남는다. 그래서 이 세상의 유일한 평등은 바로 침대우에서만 체현된다고 말할수있다. 이것은 확실히 이성지합의 아이러니이다.     물론 인간이란 너나없이 모두 이런것은 사실이다. 금욕. 절제, 도덕, 량심이 몇푼 어치 가는가? 향락이란 거대한 소용돌이속에 무섭게 빨려들어가는것을 말릴 제동 장치는 인성에 없다. 스스로 엉망진창이 되여서 존재할줄 알면서도 그것을 짧은 인생 에 누리는 무한한 향락이라 이름한다. 우리는 의지의 힘, 도덕의 방파제로 감각의 충격파를 이겨내지 못한다. 아니 막아내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온 사회가 육체를 파는 매음녀들의 온상이 되여지는것이요 이러한 상태가 정정당당한 인간의 생명활동이 되고 사회상이 되여지고있다. 이런 전 사회적인 타락 의 원인 제공과 결과를 모두 매음녀들에게 뒤집어 씌우는 웅성들이말로 얼마나 위선 적이고 비겁하고 야비한 존재들인가?  “풍류”에 휘말려든 남자들이여! 당신들은 이런 녀자들을 점한것이 실수이고 부도덕하더라도 량심적으로는 불쌍하다고 여겨야 남자다운 아량이 아닌가? 그런데 이 세상사람들은 당사자이면서도 강도나, 좀도적들이나 육체적장애자들을 인간적으로 리해하려는 아량을 가지고있으면서도 자신들 이 저지른 행위들은 덮어버리고 육체를 파는 녀자라는 그 한가지 리유만으로 비정한 사회의 산물이고 자기들의 걸작이라는 것을 승인하려 하지 않으면서 전혀 리해력을 달려보려 하지도 않는다.     그녀들이야말로 강도들에게 당한 피해자들이며 도적맞힌 주인들이며 정신적인 불구자, 상처입은 사슴들이지만 그냥 짓밟히기만 한다. 이건 아무렇게 변명해도 불공 정한 대접이다. 그녀들을 더구나 방종하게 함으로써 인생의 정도로 들어서지 못하게 하고 그럴 능력도 박탈하며 자기를 가꾸려는 희망마저 잃어버리게 하는 장본인이기도 하다는것을 왜 부인하는가? 그녀들이야말로 고비사막보다 더 메마르고 쓸쓸하고 광막 하고 무정한 정신적인 사막에서 죽어가가 있다고 생각해볼수 없단말인가? 스스로 죄를 범하고있는 자로서 남의 죄를 용서할수 없는 그런 변태심리인가?     이 세상엔 어떠한 힘들고 어지럽고 남보기 부끄러운일이 있기마련이고 그만큼 지망자도 있는법이다. 매음을 하는 녀자들도 자기가 하는 일이 남들의 혐오를 사고 있다는것을 모르지 않으며 생명의 가치창조와 생계수단의 불문률이 완연히 다른 문제 라는것을 모르지 않는다. 아무리 추한 매음녀라도 거쳐가는 남자가 있기마련이고 어떠한 군자도 매음녀와 딩굴면 그자신도 그만큼 너절하지 않을수 없는데도 왜 녀자 들만  매음한다고 금을 긋는것인가? 매매라는 시점에서 다같은 매음이 아닌가?     만약 모든 선량한 처녀애들의 참된 사랑이 노력으로 이루어질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가? 그러나 그녀들의 사랑은 뿌리처럼 마음속 깊숙한 곳에 묻혀있는게 보통이며 그것이 아름다운 꽃을 피워올리기를 은근히 기대하는데 아무도 나무릴 권리가 없다. 육체는 망가져도 순정마저 망가지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애정극장에는 원래 희극과 비극이 반반으로 연출된다. 남자에 대한 무조건적인 맹종에서 녀자들의 사랑이 비극으로 막을 내리게된다. 남자들을 그만큼 겪어봤으면 응당 녀자에게 친절하게 매달리는것은 정욕의 만족을 위한것뿐이라는것을 알아야 했지만 그녀는 그렇게 총명하지 못하였다. 고운꽃에는 꿀을빚는 꿀벌만이 날아드는것이 아니라 똥파리들이 더 많이 날아든다. 밥상이 엎어지고나서야 단란하게 식사하려 던 념원이 깨여졌다는것을 깨닫는 그런 조우는 참으로 슬픈 일이다….     그 시각, 동생은 오직 처절한 복수로 누나의 원혼을 위로해주어야 한다고 뼈무르 면서 누나의 침대옆에 장승처럼 버티고선채 고스란히 날을 밝혔다. 아무리 순박한 소년이라도 애석함과 억울함과 증오가 점철된 심리속에 어찌 피비린 복수를 부르지 않을수 있겠는가? 그에게는 인생을 종말짓는 무서운 후과도 고려할 여지가 없었다. 증오와 복수는 인간의 본능이다. 세상이 더러워지는것은 인간들이 거짓으로 증오를 가중시키고 법이 정의와 진실대신 허위와 횡포를 휘두르기에 분노와 보복에 불을 지르기때문이다. 법은 약세군체를 억누르는 장치가 되는 한 세상이 밝아질수 없다.    동생은 누나를 렴습도 하지않고 곧 복수의 길에 올랐다. 별로 힘들이지 않고 그 놈팽이의 행동반경을 장악했고 그의 일거일동을 포착했다. 볼수록 눈에 불이일고 복수의 칼이 울었지만 경거망동할수는 없었다. 이 더러운 사회를 더 더럽히는 자를 일거에, 소리없이 제거함으로써 또 다른 누나같은 녀자가 생기게 하지 않게 하여야 한다고 자신의 비장한 결심을 보듬었다.    보슬비가 잔잔히 내리는 황혼무렵, 그는 그남자를 찾아갔다. 그는 동생을 기억 하고 있는듯했다. 동생은 몰인정한 남자로서는 읽어낼수 없는 차다찬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남자도 본능인지 미소를 지었다. 혹시 자괴감에서 나온 가식적인 미소인 가? 하지만 마음이 들떠있는 녀자들을 단번에 사로잡을수 있는 치명적인 미소였다. 그러나 동생은 이 자가 외모는 번듯하지만 더없이 우둔한 작자라는것을 보아냈다. 총명한 사람이라면 대방의 눈에서 내뿜기는 살기를 간파했을것이다. 동생이 먼저 그 남자에게 차겁지도 덥지도 않게 말을 건넸다.     ㅡ 어쩌지요? 누나가 당신을 몹시 그리워하고 있는데요?     ㅡ 무슨 말이야? 네 누나가 성을 내며 나와 헤여졌는데?     ㅡ 누나가 성을 내요? 모를 소린데요, 혹시 두분이 너무 좋아하다가 다투기나 했는가요? 아니면 싫증이 난다고 말해서 누나를 울렸는가요?    ㅡ 아니, 아니야, 나 아직도 너의 누나를 좋아해, 쓸만한 물건을 가지고있거든…    ㅡ 그래요? 그럼 우리 누나앞에 가서 그렇다고 직접 말해요, 누나가 좋아하게…    놈은 무슨 제좋은 생각이 났던지 그날밤처럼 순순히 동생의 뒤를 따라섰다. 그러나 놈팽이가 저승길로 간다는것을 어찌 생각이나 하랴, 남자들은 정욕의 늪에 빠지기 좋아며 청춘을 팔며 괴롭게 살던 누나로서는 순결한 애정의 그물을 벗어날수 없었다. 그러나 결과는 매한가지이다. 순진한 녀자를 공짜로 유린한 남자는 그 대가를 목숨으로 갚고 누나는 스스로 자초한 실련으로 죄많은 한생을 마쳐야 했다.     놈이 누나의 방에 들어서는 순간, 동생은 “잠간”하고 소리쳐서 그 남자가 홱 돌아서는 순간 시펗게 갈아둔 식칼로 그의 가슴을 사정없이 찔렀다. 너무나 돌연적인 습격에 미처 방비할수도 없었던 그남자는 단칼에 치명상을 입었다. 그남자가 가슴을 부등켜안고 쓰러질듯 할 때 두번째 칼날이 그자의 손가락을 끊이며 심장에 박히였다. 쓰러진 그 남자가 숨이 넘어가자 동생도 탈진한듯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는 스스로도 놀랐다. 그때 자기의 나이는 겨우 열일곱살이고 체대도 다크지 못했는데 거구의 젊은남자를 죽인것이다. 치솟는 복수심은 얼마나 잔인하며 미쳐난 리성이 부른 폭발력이란 얼마나 무서운가를 느끼며 전률했다. 그는 낑낑거리며 그자 를 누나의 곁에 나란히 눕혀놓았다. 칼도 그자의 가슴팍에 올려놓았다…     피비린내에 속이메스꺼웠다. 그의 머리는 텅비여졌다. 아무 생각도 할수없었고 아무궁리도 나지않았다. 바깥방에 나온 그는 피묻은 옷을 아궁이에 말끔히 태워버 리고 새옷으로 바꾸입은후 집을 나섰다. 골목길은 려명전의 어둠으로 어둠컴컴하였 다. 그는 알고있었다. 자기 짧디짧은 인생은 이로써 끝장나고 그처럼 사랑했던 누나의 원혼은 위로받을대신 자기의 살인행각을 용서하지 않을것임을,     그는 방향없이 휘청휘청 걸으면서 문득 커피숍에서 첫눈에 반하게 하였던 그 녀자애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 사랑스러운 얼굴에 피여나던 그 매혹적인 미소와 보조개를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보고싶었다. 그러나 무슨 자격으로 그녀자애를 마주한단말인가? 이 세상에 사랑이란게 있지만 사랑은 누구에게나 행복을 가져다 주지않는다. 그 자신은 야밤도주하는 살인범이다. 갑자기 구천에 아버지가 애석해할가? 하는 엉뚱한 생각이 떠올랐다. 이 모든 비극은 그가 막을 올린것이 아니던가? 동생은 앞날이 캄캄하였지만 가련한 누나를 위해서는 조금도 후회되지 않았다. 어차피 글러먹은 인생인것을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랴…                                        2010년 6월 23일          청도에서                           
232    “니전투구”의 괴질 댓글:  조회:11083  추천:8  2013-07-25
                              “니전투구”의 괴질                                           진 언       어떤 리해득실, 주장,견해를 두고 옥신각신, 아웅다웅하는 현상을 “니전투구”라는 말로 잘 비유하는데 개들의 싸움은 제쳐놓고 인간사회에서 니전투구의 문화현상은 뿌리깊은 정신괴질로서 그 후유증은 심각하다. 일찍 조선조 태조인 리성계가 정도전에게 팔도사람의 품섬을 말해보라고 일렀다.  정도전은 고려를 뒤엎고 조선왕조를 건립한“설계자”였으나 방원(芳遠)에게 “역적” 으로 몰리여 자업자득한 사람이다.     조선팔도인에 대한 비유적평론이 인상적이다. 정도전이 가로사대 경기도사람들은 경중미인(鏡中美人)이요  충청도사람들은 청풍명월(淸風明月)요, 전라도사람들은 풍전세류(風前細柳)요 경상도사람들은 송죽대절(松竹大節)이요 강원도사람들은 암하노불(岩下老佛)  황해도사람은 춘파투석(春波投石)이요 평안도사람들은 산림맹호(山林猛虎) 요 함경도사람들은 “니전투구(泥田鬪狗) ㅡ진흙탕에서 싸우는 개”라 하였다.     자기 고향사람을 개에 비유하자 리성계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이에 당황해난 정도전은 강인함뿐만 아니라 돌밭을 가는소 “석전경우(石田耕牛)”처럼 우직한 품 성도 있다고 둘러대어 대왕페하의 기분을 풀었다한다. 리성계가 자초에 노여움이 진동하였겠으나 자기의 후손들이 진짜“니전투구”가 될줄이야 어이 알았으랴     리성계가 “위화도회군“”으로 리왕조를 세운 초기부터 왕자의란으로 막을 열어서 소론,로론, 남인,서인, 사색당파 등 붕당싸움은 끝이 없었다. 그러다가 조선의 제21대왕 영조 (英祖)가 즉위해 당쟁의 폐단을 지적하고 “탕평책”을 폈는데 노론과 소론의 사이의 화해를 유도하고 당파를 가리지 않고 인재를 등용하겠다고 선언해 이전까지의 격렬한 당쟁은 영조대에 이르러 한동안 사라진듯 하였다.      비록 영조가 자구지책으로 탕평책을 펼쳤으나 호경기는 길지않았고 가도록 숭산이라고 그 과정에서도 오히려 “탕평책”을 지지하는 “탕평당”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당파를 만드는 결과를 낳았다. 승냥이를 잡으니 호랑이가 하산했다고나 할가, 붕당의 개싸움이 얼마나 소란스러웠으면 정몽주어머니가 시조를 지어 경계하였겠는가?                                     까마귀 싸우는 곳에 백로야 가지마라.                                   성낸 까마귀 흰빛을 세우나니.                                   청파에 씻은몸 더럽힐까 하노라       이 시조에서 당쟁싸움에 공연히 끼여들지 말라고 권고한데는 막무가내한 체념속에서 도출된 일리가 담겨있어 청고한 선비들의 탈속리념에는 맞을지라도 결국 명철보신으로서 능사는 아니였다. 소인배들이 득세하던 리씨조선, 임진왜란중에서도 당파 싸움으로 많은 우국지사(忧国之士)들을 사지에 몰아넣은 몹쓸놈의 당쟁과 패거리 문화의 부패상은 극한에 이러르렀다.     당시 북인은 대북, 소북으로 나누어지고 대북은 골북, 육북으로 쪼개지고 소북은 다시 탁소북, 청소북으로 쪼개진다. 이렇게 사분오렬이였으니 국방을 튼튼할수 있었겠는가? 임진왜란시기 해전의 기적을 창조한 리순신도 당쟁싸움의 희생자였다. 원래 리순신은 류성룡의 천거로 전라좌수사가 되였기에 동인으로 분류된다. 반면 서인은 원균을 옹호했다. 선후7년전란속에서 백성이 도륙당하는판에 얼마나 한심한 일인가? 그게 고려 5백년혈통을 뒤엎은 리성계가 세운 리씨조선의 걸작이였다.      보통 조선은 당파싸움때문에 망했다고 말하는데 그게 일본인들이 먼저 제기한 주장이라고 반기를 드는 학자도있고 당쟁이 조선사에 긍정적으로 작용했다는 얼빤한 궤변도 있다. “조선인의 혈액에는 특이한 검푸른 피가 섞여있어서 당파싸움이 계속 됐으며 이는 결코 고칠수 없는것이다”라는 일본인들의 평가라고해서 무작정 부인하는것은 늘어나지못할 느지를 하는것이다.     그게 망언인지 극언인지가 중요하지 않다. 스스로를 재량해보면 알수 있는 일이다. 리조가 “당파싸움때문에 망한건 아니다”라고 주장하는데 자다가 봉창을 두드리는 격이려니와 매우 옹색한 궤변이다. 그래서“리조(李朝)는 왜 쇠망하였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하여 근세 조선은 500년이나 지속할수 있었는가” 하는 질문을 던져야한단다. 조선왕조가 500년을 버틸수 있었던 리유를 당시 지배층이 그들 나름대로 엄격한 책임감으로 사회를 지탱해왔다는 점을 떠나서는 생각할수 없다던가? 누구를, 무엇을 위한 “책임감”이였던가? 참으로 사이비도 아닌 어불성설이다.    “이조의 당파싸움 체질은 조선사회의 다양성의 존중을 반영하는 동시에 다양성 진작에도 크게 기여했다. 물론 다양성을 나쁘게 말하면 분렬주의지만 분열하지 않고 어떻게 다양해질수 있겠는가”고 한다. “분렬”과 “다양”이 뭐냐? 소학생도 알다싶이 분렬이란 하나로 존재하던 사물이나 집단, 사상따위가 갈라져 나뉨이요 갈라져 나뉘게 된다는 의미이다. 다양은 종류가 여러가지로 많음을 뜻한다.      하나의 완정한 거울이 산산쪼각이 났다면 다종인가? 다양인가? 참으로 사이비철학이다. 기득권을 위한 “니구투전”으로 나라가 사분오렬될수록 다양화라는 뜻인가? 그러면 반만년 혈통을 이어왔다는 단군족의 민족혈통이 허리가 동강난 분단현상도 바람직한 다양화이겠다. 그리고 “성패를 결정지은건 늘 상황과 맥락이었다”고 하는데 환경에 지배되는 인간이라해도 국사는 세상이 돌아가는대로 맡겨두고 위정자란 주색이나 즐기면 된다는 말인가? 참으로 무지해도 그저 무지막지한 소리가 아니다. 한국의 력사학자 함석현선생은 “통일신라는 수치의 역사,고려의 역사는 간신의 역사, 리조의 역사는 똥물의 역사이다”라고했다. (2009.02.07 | 미디어다음 아고라)에서     보통 당파싸움은 현대말로 리론,로선투쟁이라기 보다는 리익,권력투쟁을 먼저 떠올리게 한다. 그것은 그 어떤 분식도 불필요한 피비린 암투였다. 패거리지어 인재를 모함하고 모살하는 행태는 어느 민족국가에서나 비일비재하였지만 리씨조선에서 극 치를 창출하였다해도 과언은 아닐것이다. 리조통치배내부의 “니구투전”은 조선민족의 힘을 잃게하였고 마침내 “을사늑약”으로 망국노로 전락되고말았다.     진정한 사가들은 일제에 나라를 빼앗겼던 원인도 역시 당시 조정내부의 당파싸움 때문이였다고 판정하고있다. 일제가 부국강병책으로 대륙진출의 기회탐색에 여념이 없을 때, 리씨조정에선 끊임없는 당파싸움에 나라걱정, 백성걱정은 안중에도 없었다. 매관매직, 가렴주구에 친일파모리배들까지 뒤엉켜 설쳐댔으니“고래싸움”에 등터지는건 죄없는 백성들뿐이였다. 내우(內忧)는 반드시 외환(外患)을 자초한다. 조선반도를 발판삼고 대륙침공을 노리던 일본이 혼란스런 한반도 시국정세를 리용했던것이다.     흔히 력사는 라선식으로 발전한다고 한다. 일본군국주의자들은 식민통치향수를 곱씹으며 개꿈을 지금 행동으로 보이고있다. 이는 무엇을 설명하는가? 일찍 당태종은 “력사를 거울로 삼으면 천하의 흥망과 왕조교체의 원인을 알수 있다.”는 경세지언을 남긴바있다. 이는 치욕스러운 망국노의 력사를 기록하였던 배달민족에게는 현시대의 거울로서는 전혀 무가치한것인가? 력사에 대한 망각은 배반이라 하였다.     우리 민족은 36년 식민지질곡에서 벗어나자 아무런 죄도없이 미쏘의 작간으로 분단되여 60년!오늘에 이르렀다. 력사발전의 곡선은 부정의 부정이다. 자체내에서도 “니전투구”처럼 소수인의 기득권을 놓고 으르렁거리여 민심이 사분오렬되는 민족은 결코 리상적인 민족일수는 없거니와 미래가 명랑할수 없다.                                           2013년 7월 12일
231    간판에서 홀대받는 조선어 댓글:  조회:8828  추천:1  2013-07-23
                         간판에서 홀대받는 조선어                                             최 균 선       15년전에 연길시내 일부간판들에 비쳐진 민족어의 실태에 대한 글을 발표한적이 있은 탓인지 지금도 때때로 큰거리, 작은 골목을 지나며 눈에 띄는 괴이한 간판들에 눈길이 가게 된다. 물론 신경을 써봐야 해결될 일도 아닌것을 공연히 혼자 아는체 하기도 그렇고해서 그냥 스쳐지나다가 하루는 보이는 족족 적어보았다.    아래 렬거하는것은 의학원터에서부터 연변대학부속소학교 구간, 10중부근골목, 삼꽃거리의 한구간에 있는것들을 대강 베껴본것들이다. 1. 雷士照明 ㅡ 러시조명 2. 慧光灯饰  ㅡ 희광등장식광장 3. 朝汉人家烤肉 ㅡ 조한인가불고기 4. 顺姬冷面 ㅡ 순이랭면 5. 星园茶吧 ㅡ별원까페 6. 格瑞澜整体橱柜 ㅡ 거레란주방가구 7. 丽莎美容学校 ㅡ 르사미용예술학교 8. 酒吧 ㅡ 부킹빠 9. 圣伯纳整体橱柜 ㅡ 성백나정체가구 10. 韩国五鼎门业 ㅡ 우딘문업 11. 木子鐡 ㅡ 가락익 12. 超群水果店 ㅡ 초천과일점 13. 怪合味香酥鸡鸭 ㅡ 귀한미행수닭게 14. 北大小串店 ㅡ 북대작운뀀점 15. 大麦谷土鸡店 ㅡ 보리골토닭집 16. 烤兔子 ㅡ 토끼구위 17. 鑫合食品商店 ㅡ 흠협뢰식품상점 18. 秀霞書法班 ㅡ 수하서여강습반 19. 金秋美发美容 ㅡ 금구미발미용 20. 哇骨文具店 ㅡ 와글와글문구방 21. 北苑家店维修中心 ㅡ 북윙가전제품수리쎈터 10중부근 21. 可利亚泡菜 ㅡ 커리아김치 22. 非常烤翅 ㅡ 매운닭날개 23. 北大兰妹子麻辣香锅 ㅡ 란계집마라향솥 24. 李家村饭店 ㅡ 이고집마을식당 25. 龙于面食店 ㅡ 롱우면식점 26. 北大坐套保洁服务部 ㅡ 북대시트커버청결복무부 27. 신선한 가격, 맛있는 하루 福马特 ㅡ복마트 28. 麦思酒吧 ㅡ 맥스술집 29. 善良美发设计 ㅡ 착한헤어 30. 晓叶干洗店 ㅡ 초엽세탁소 31. 昌福平价超市 ㅡ 창복평사슈퍼 32. 惠邻日用品商店 ㅡ 회령일용품상점 33. 博奥汽车美容中心 ㅡ뱌 퍄 쳐 퓨 툐 오 터 펴 츄 쳐 (북대병원 동남쪽큰길옆) 삼화가 34. 马丽咪花坊 ㅡ 말리미꽃방 35.鸿海正综云南过桥线 ㅡ 홍리정종운남구교미선 36.云祥餐店 ㅡ 운산스낵 37. 逍遥宫 ㅡ 놀부집 38. 老庄园柴菜卷 ㅡ 옛고을장원김밥 39. 画图明太鱼 ㅡ 맞고명태집 40. 오빠케익점 ㅡ 欧巴蛋糕店       상술한 실례들은 전 연길시내에 대비하면 빙산일각에 불과할것이다. 한조문 직역으로 대강 맞는것도 있고 왕청같은것들도 있었다. 가로가도 서울만 가라고 간판임자들이야 장사가 잘되면 그까짓 조선말이야 남천방이 되든말든 개의치않을것이나 무심히 보는 눈길에도 너무 어처구니없다. 어째 망태기고 어떻게 고쳐야 된다는것은 보는이들마다 생각이 있을것이니 구구하게 해석하지 않겠다.     간판은 그집의 얼굴이요 일차성적이 아닌 영구성광고인데 왜 대수롭지 않을가? 한걸음 물러서서 생각하면 남이야 젓가락으로 이를 쑤시든말든 웃고지나면 될이지만 오지랖이 넓어지는지 나도 모를일이였다. 문제는 간판에 조선글을 써야 한다니까 썼으되 틀리고 맞고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있다는 느낌속에서 우리의 아름다운 조선어가 너무나 홀대받고 무시당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마 자기민족어사용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면 이런 사이비간판글에서 아무런 감수도 없을수 없으리라. 조금 심각하게 문제를 론한다면 거리거리에, 골목골목에 즐비한 크고작은 간판들에서 연길의 정체적인 이미지가 흐려질것은 물론이요 연길의 문화소양의 한구석을 보여주는 특이한 풍경선이라고 할수도 있다.     외지의 한족들이나 영어계외국손님들이야 거꾸로 썼는지 갈겨썼는지 알배없지만 그래도 조선, 한국의 손님들도 들락거리는 자치주의 수부에 간판글이 이 모양이면 결토 자랑스러운 일은 아닐것이다. 간판글에서 일그러져버린 조선어실태임에도 관계해야 할 해당부문의 묵인한 결과라면 대중들도 할말이 없을것이나 지성의 눈마저 감길수는 없다.     중국어에서 “没事找事”,“小题大做”에 해당하는 일인지도 모르겠으나 사실은 그 무엇보다 유력한 웅변이다. 그리고 이런 문화현상은 바람직하지 않을것만은 자명하리라 생각한다. 자명하지만 멋대로 되여있는 현실이라 막무가내이기도하고…                            2012년 10월 14일                          
230    (교육에세이) 아이들 이런 책을 읽어야 할가? 댓글:  조회:8571  추천:0  2013-07-20
                              아이들 이런 책을 읽어야 할가?                                          최 균 선       대저 책과 독서의 효용가치에 대해 말하면 군소리이다. 그러나 그 효용성에도 불구하고 인터넷 정보화시대에 우리사회는 날로 독서열이 식어가다 못해 그 감소률이 “점입가경”이다. 이러한 때 아이들에게 좋은 도서들을 추천하여 열독량과 질을 높이려는 동기와 의향은 두말할것없이 좋고도 좋은일이다.     하지만 학교에서 내보낸 “여름방학간독서추천서목(저급학년)”을 눈빗질하는 순간, 눈이 다 휘둥그래지고 2학년생 손자가 어떤책인가? 무슨내용인가를 설명해달라는 지청구에 그만 실어증에 걸린듯했다. 학교에서 내준것이고 그렇게 하라고 하는것은 하늘이 무너져도 해야한다는 아이가 무작정 다산고해서 암산으로 대충 계산하니 도합 495원 75전이였다. 돈도 돈이려니와…     추천한 도서들중 십중팔구가 나의 서가에 있는것인데 아동용이 아니여서 사주기는 해야 할것같은데 과연 산다음 도서로서의 가치실현이 이루어질것인가가 문제였다. 물론 추천도서인만큼 무조건 다 사야한다는것은 없지만 추천한이상 많은 문제가 제기 되는것도 사실이다. 원래 지루하게 앉아서 긴글을 읽기싫어하는 성미에도 허영비슷한 욕심만은 굴뚝같아서 다 산다고 우겨댄다. 아래에 제기된 도서목록을 다시보았다.     중국조선족중소학생백과문고: 토끼전, 두꺼비전, 장화홍련전,흥부전, 금방울전, 숙향전,  심청전, 춘향전, 전우 치전, 장끼전, 홍길동전, 금오신화, 한중록, 박씨전, 인후황후전, 란중일기, 사씨남정기, 림경업전, 목민심서, 구운몽, 우물안의 개구리 (우호300편) 삼자경,  36계,      명작속의 과학: 80일간의 세계일주, 곤충기, 바다밑2만리, 화성인과의 대전, 영화의  유래, 쵸콜레트의 유래, 게으른 고양이의 하루(일기), 읽길잘했다.(독후감), 청개구리 왕자, 취미물품의 제일, 우주의 비밀, 내고향 연변     추천도서 대부분이 본과대학의 조선(한국)문학사에서 취급되는 조선고전작품이다. 과학지식서적은 새것을 읽고 문학서적은 오래된것을 읽으라는 명언도 있다만 이제 겨우 소학2학년을 마친 어리디 어린애들에게 상술한 도서들이 과연 합당하기나 한것인가? 의문을 앞세우지 않을수 없다. 무릇,지식전수는 학생들의 년령단계, 심리특징, 인지능력단계에 맞게 설정해야 한다는것은 아동교육학상식이다.    소학교 저급학년에서 이런 책을 읽을것을 제창한다면 중급학년, 고급학년에서는 어떤책들을 추천해야 하며 초중, 고중, 대학생들에게는 어떤책을 추천해야 하는가? 괄호안에 분명 (저급학년)이라고 밝혔으니 분명 중급학년, 고급학년용이 따로 있을듯 싶고 중복성이 없을듯도 싶다.아니면 저급학년이라고 주명할 필요가 없지않겠는가?     물론 아동문고로 새로 엮은것이여서 통속성을 전제로 가독성을 도모하였겠지만 고전은 고전이고 기본내용들은 삭제될수 없는 노릇이다. 그리고 지금 아이들은 로세대사람들이 어렸을때에 비하여 엄청“총명이 과인”한것은 사실이나 그래도 아이는 아이이고 저급학년은 저급학년이다. 이점은 아무도 주관의욕대로 변경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런 책들을 읽어야 한다면, 알고모르고 읽는다하더라도 과연 아이들이 터득할것은 무엇이며 건전한 심신건강에 어떤 도움이 될것인가? 도서들을 두루 검색해보니 거개 한국에서도 출판한것같고 한국에서는 아이들에게 읽히는것같기도 하다. 그 책들을 들여다가, 그들의 작법대로 하느라고 하는지 몰라도 가령 그렇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남이 장보러 간다니까 거름지고 따라가는격이 아닐가 얼핏 생각하게 된다.     어쨋거나 추천한 도서들은 언젠가 한번쯤 읽어두면 좋은 고전명작들이지만 아직은 아니다. 적어도 필자의 생각만은 그렇다. 인지능력엔 곡식이삭을 잡아당겨 키를 키우는식의 우는 금물이다. 이도 나기전에 콩밥부터먹이는건 어떤 경우에도 명지함이 아니다. “우이독경”이 아니면 소귀에 해금타기도 잘하는 일은 아니다. 총명한 우리애들이 “소”는 아니지만 경우가 그렇다는 말이다. 책을 추천한 사람은 상기한 책들의 내용의 인식적, 교육적, 오락적 및 미학적가치를 어떻게 가늠하고 저급학년애들에게 합당한 도서라고 생각했는지 모르겠지만 춘향전, 심청전 등을 비롯한 조선4대고전명 작은 아동용작품이 아니다. 그것을 중소학생용으로 개편했다해도 마찬가지이다.     책을 사다가 책꽂에 보란듯 꽂았더라도 읽지않으면 파지와 같다. 베이컨의 독서방법대로 어떤책은 삼키고,어떤책은 리해에 그치고 어떤책은 소화해야 한다면 상술한 책들중에서 소학교2학년생들이 어느책은 리해하고 어느책을 소화하며 볼책인지 필자로서는 오리무중이다. 아무튼 인식규률과 심신발전의 층차에는 엇박자를 치는격이 아닐수 없다. 급공근리라도 과유불급이 아닐가?   《토끼전》은 령리하고 림기응변을 잘하는 토끼에 대하여 새롭게 인식시킬수도 있겠고《두꺼비전》에도 주제의 적극면도 있지만 검색해보라. 내용줄거리에 창녀니. 성관계장면이니 하는 말들이 나온다.《장화홍련전》은 이본이 30여종인데 어느 판본을 기준한것인지는 모르되 조선시대 녀성들의 한많은 삶의 단층면을 엿보게하는 훌륭한 작품인것은 사실이나 훌륭하다해서 어린애들에게도 다 좋다는것은 아니다.      《장화홍련전》에서 계모허씨가 장화를 모함하기 위해 생쥐를 잡아 락태아로 위장하는 장면이랑 삭제되였는지 모르나 아무튼 봉건가정내부의 참혹한 경상을10살좌우의 아이들에게 부득부득 알려줄 필요는 나변에 있는가? 부대적으로 말하면 중소학생용 축소판고전작품이 많은데 현대시점으로 변용, 분식, 가미하는 등 작자의 멋대로는 금물이다. 그리고 귀중한 고전작품들의 문학적, 예술적가치가 희석 내지는 폄훼될 우려도 없지않다. 아이들에게 아무런 유익점이 없기에 하는말이다.     김시습《금오신화》는 고대단편소설집으로서 주지하다싶이《만복사저포기 (만복 사윷놀이)》,《리새규장전》,《취유부벽전기(부벽정의 달맞이》,《남염부주지(남염부주지 이야기)》,《룡궁의부연록(룡궁의 연회)》등 다섯편이 수록되여있는것으로 알려졌다. 《금오신화》는 한국에서도 각대학 국문과의 필수학습자료로써 한국(조선) 소설사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와 역할을 담당하고있다. 다섯편 가운데 처음 세편은 죽은녀인 또는 전설속 선녀와의 사랑이야기이고,뒤의 두편은 염라국과 룡궁에 다녀온 선비가 그곳에서 듣고 본 이야기를 적은 기록이다.     다섯편 모두 사람과 귀신과의 사랑 또는 이계(異界)로의 진입을 다루고있는 셈인데《리새규장전》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이 사범학교를 다닐때 열독과에서 배운작품이다. 하다면 지금 아이들을 얼마나 비약시키고있는가? 아무리 중소학생들의 인지수준에 맞게 개편했다해도 기본내용은 새로 꾸미지 못할것이다.    《한중록》이란 1795년, 헤경궁 홍씨가 남편의 참변과 자신의 기박한 운명을 회상하여 자선전적으로 기록한 수상이다. 이 작품은 비빈이라는 신분의 인물이 쓴 글이라는 점에서 력사적으로 정계야화로서의 가치를 지니는 한편, 궁중용어와 풍속을 잘 보여주는 궁중문학의 효시로도 평가될 만하다. 문장과 표현에 있어서 고상하고도 우아한 어휘의 사용, 절실하고도 간곡한 묘사, 전아하고 품위있는 분위기를 지니고있어 가히 한글로 된 궁중문학의 백미라 일컬어진다.     이 작품은 국문 실기문학의 위치를 결정적으로 굳혀주었고 19세기 이후에 규방가사가 널리 창작되고 필수적인 교양물로 읽히자 국문문학의 저변이 크게 확대된 계기를 마련한 작품이다. 그뿐아니라 국문소설은 녀성을 독자로 발전했으며 녀성이 요구하는바를 나타내는것으로 흥미를 삼게된 계기도 마련하였다. 그런들 어떻단말인가? 항간에 “눈을 떠야 별을 보지”하는 말이있다. 2학년 아이들에게는 곤백번 좋은 작품이라해도 제구미에 맞지않으면 흥미제로가 될게 아닌가?   《사씨남정기》는 아이들에게 합당당한 작품인가? 본작품은 봉건가부장적가족제도와 축첩제도의 불합리성과 량반귀족사회의 가정적모순고 갈등을 폭넓게 폭로비판하고 량반상층사회의 도덕적, 정치적부패상을 사실적으로 반영한 조선고전사실주의 소설의 뚜렷한 발전을 보여주는 대표적작품의 하나임은 사실이다. 그런들 그게 어린아이들에게 먹혀들어갈것이란 말인가?     조선후기의 실학자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이 지은 는 각지방의 관리들이 백성을 다스리는데 필요한 지침을 제시한 책이다. '목민(牧民)'은 '백성을 돌보며 다스림'을 뜻하며 '목민관((牧民官)은 백성을 돌보고 다스리는 각지방의 원님'을 말한다. '심서(心書)'는 정약용 자신이 이 책을 쓸때 귀양살이를 하고있어서 백성을 직접 돌보고 다스리고싶은 마음은 있으나 실제로는 그럴수없기에 붙인 이름이다. 즉 '목민심서'는 '목민관(원님)이 한 고을에 부임해서 임기를 마치고 떠날때까지 백성을 돌보고 다스리는데 마음속의 지침으로 삼아야 할 책'이라는 뜻으로 12개 항목으로 나누어 설명하고있다.     위에서 구구히 해설한 두세개 작품만이 아니라 조선고전명작들 모두가 소학2학 년학생들에게는 부적격이라는 말로 단정지을수 있다. 아무리 먹음직스럽다해도 아직 그림속에 떡으로 남겨두자. 과학보급서로서의《80일간의 세계일주》,《곤충기》, 《바다 밑2만리》, 《화성인과의 대전》, 《우주의 비밀》 등과 실용문인《게으른 고양이의 하루》 (일기),  《읽길잘했다.》(독후감)과 《청개구리 왕자》같은 이야기책은 그래도 읽혀질수 있겠으나 영화의 유래, 쵸콜레트의 유래,취미물품의 제일같은것을 왜 애들이 지금 읽어야 하는가? 나로서는 할말이 없다.        그러구보면 연변에서 출판한 조선족작가들의 아동작품은 한편도 없고 지방작품으로《내고향 연변》을 추천했는데 필자가 알건대 아동문학작품이 아니다. 우리 아이들의 추천도서에 본민족창작품이 부재하다는것은 우리 조선족학생들로 말하면 슬픈 일이 아닐수 없거니와 아동문학작가들의 비애가 아닐수 없다. 물론 현실이 그러니까 비애는 비애로 남을테지만도 아이들을 독서세계에로 인도함에서 조급성을 뒤로 미루고 아동실제에 맞게 추천해도 추천해야 한다고 본다.     고전명작은 둘째치고 대부분 어떤 책이 어떤 내용인지 모르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손자손녀를 키우는 이 마당에서 만약 아이들이 멋모르고 대고 사려한다면 그것도 실제적인 문제가 아닐수 없다. 추천도서이고 어떠한 일에도 지망자가 있는법이니까 각자 자기정도, 자기취미에 맞게 좋도록 사서 읽겠지만 추천자로서는 앞뒤와 상하를 잘 고려해야 한다고 본다. 교육은 욕심으로하는 일이 아닌것이다.                                      2013년 7월 19일  
229    글은 작자의 것이로되… 댓글:  조회:7169  추천:0  2013-07-18
                               글은 작자의 것이로되…                                             최 균 선       글은 왜 쓰는가? 이것은 확실히 우문이다. 글은 사람들게 읽히려고 쓴다. 이는 우문에 현답이다. 물론 자기의 철학과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사상감정을 표현한 글이니 작자의것이다. 그러나 결국에는 독자의것이다. 독자군속에 오독이거나 몰리해가 없을수 없으나 정체적으로 독자의 안광은 명경이고 특히 지적인 독자들은 자칫 자아감각에 도취될수 있는 작자보다 더 객관적이고 명석한 판단력을 가지고있기에 작자는 독자들에게 자기 작품을 기탁하지 않을수 없다. 그러니 무릇 발표한 글은 곧 독자의것이다. 지식산권, 저작권에 대한 법률적규정이 있는데도? 그러나 그것은 소유권문제일뿐 실질적인 가치실현은 아니다.     글은 특수한 정신상품이다. 가치실현면에서 본다면 읽히지 않은 글은 존재리유를 잃는다. 일단 상품이 팔리면 사간사람의것이라는 도리는 글을 “팔아먹는”일에도 적용된다. 결국 글은 독자의것이다. 독자는 작가가 전부의 지식함량과 인격내함을 동원하여 신고스럽게 쓴 글이 마음에 들어하지 않을수도 있는데 이는 결코 독자의 잘못이 아니며 더구나 흔히 말하는 독자의 열독능력따위를 내들고 탓할바가 못된다.     사람은 누구나 살면서 다른 사람의 시선과 평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특히 정신상품을 만들어내는 작가도 독자의 시각과 평판을 등질수 없다. 글의 내용이 무엇이든, 어떤 쟝르이든간에 독자들이 “과연 그렇구나, 내가 하고싶은 말을 하고있군, 나는 왜 이런 말을 못하지?” 하는 공감을 얻어야 글을 쓰는 멋이나고 보람이 있게된다.     독자에게 적어도 반감이라도 줘야 글이 목숨값을 한다. 정신상품인 글은 일반상품과는 팔리지않아 재고품이 되면 가치실현이 막연하게 된다. 무릇 글은 사회성을 지니고있으며 공유성도 가지고있다. 그래서 어떤 글도1차로 독자를 의식하게 되고 2차로 독자에게 유익성을 주려하며 3차로 글의 반응은 결국 자기에게로  돌아온다.      독자보다 나름대로의 진리 그 자체를 추구하는 글을 쓰기도 한다. 그 경우에도 일단 발표되였다면 내것만이 아닌 독자의 소유가 된다. 독자의 흉금을 울리려면 작가의 이야기, 작가의 관점, 주장을 쓰더라도 독자의 시점과 관점으로 표술, 피력해야 글이 살아남는다. 그래서 책임성이 있는 문필가들은 매양 등뒤에 독자가 서서 감독하는듯한 위압감을 느끼며 독자를 대신해 나를 쓰면서 전적으로 독자를 위해 말한다.     어떤 사람은  독자를 전혀 의식하지 않고 자기의 순수한 생각이나 경험을 그대로 써나가는 경우가 있을테지만 그렇더라도 발표하는 순간 독자에게로 가기에 최저로 공감력을 고려하여야 한다는 운필잠규칙이 세워진것이다.  또 그만큼 작자도 “이렇게 해야 한다. 저러면 안된다.”는 훈계조로 쓸것이 아니라 내심상에서 “나는 이렇게 보고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나는 다른 관점이 있습니다. 나는 반대 (찬성)합니다. ” 는식으로 의논조가 되여야 갖잖은 독선이 되지않을수 있다.     례하여 “행복하게 살려면 근심을 버려라”하던가 “긍정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등 공리공담을 말하면 허궁 띄우는 감을 준다. 누군들 근심을 부등켜안고 있기를 좋아하겠는가? 부정적현싱도 많은데 매사에 긍정만 할수 있는가? 이건 그저 상식도 아니다. 구미도 각각, 독자들이 자기 취향에 따라 어떤 글에 혹할수 있는데 그것은 당연한 일이다. 작가는 글을 가지고 사회와 대화하고 직접 영향을 미친다. 글이 독자의 관심을 끌면 관심은 글을 쓴 사람에게로 이어진다는것을 명기하자.     글쓰는 사람들이 저지르기 쉬운 하나의 잘못은 현학(玄学的)적인 허세로써 자신을 과시하는것이다. 현학적표현은 사상의 유치함을 립증할뿐아니라 사람됨됨이에 허영스러움을 드러낸다. 그만큼 글은 여러사람의 칭찬을 받을 필요는 없다. 그러나 되도록이면 여러사람이 읽고 알수 있고 리로운 점이 있도록 써야 바람직하다.     그런데 누구나 다 좋아하는 사람은 기실 좋은사람이 아니듯이 누구나 다 좋아하는 글은 좋은글일수 없다. 동글동글 밴질밴질한 아란석은 정맞을 일은 없으나 마주쳐 불꽃을 내기에는 아니좋고 아무나 쥐여던져도 손이 아플일이 없다. 글도 마찬가지다. 주작인의 문풍처럼 간지럽지도 아프지도 않고 신신고 발등을 긁는식의 글은 말썽이 일어날 소지는 없으나 충격력, 감화력, 공명성은 미흡하게 된다.     남을 위해 자기 지식을 파는 작자로 말하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당신의 글을 싫어하는가가 중요하지만 보다는 당신의 글을 어떤 사람들이 좋아하는가가 요긴하다. “꽃이 싫어하면 닢에서 자고가쟈”라는 시조가락이 있던지…먹을만큼 빚어어진것이면 빈대떡이든 보리만두이든, 호박떡이든 필경 사먹는 사람이 있기마련이다. 그리고 그 자체의 영양가가 없을리 없고…독자를 의식하되 모든 구미에 맞출필요는 없다.     작자는 어떤 독자를 대상할지 분명하게 설정해야 한다. 독자들의 성분은 다양하지만 크게 대체상 다수의 독자와 특정 소수의 독자로 나누어볼수 있다. 불특정 다수의 독자란 가변적인 일반독자를 말한다. 기사, 시, 소설같은 문학적인 글의 독자이다. 특정 소수의 독자란 명확하게 범위가 한정된 일부독자를 말한다. 론문이나 리론서글이 이에 속한다. 따라서 특정 소수의 독자를 전제하고 쓰는 글들은 반드시 독자의 독특한 성격에 어울리는 내용과 형식을 가져야 한다.     모든 사람들의 취향을 통일시킬 능력은 아무에게도 없다. 모든 독자들을 만족시키는 글은 아무도 써내지 못한다. 많지않더라도 진정 리해하는 지음이 몇몇 있으면 무효로동은 아닌것이니 그로써 만족해야 한다. 작가는 자기의 글에 흐뭇해하고 머리 가 뜨거워있을 때 “무정한”독자들의 시선은 랭정하다는것을 자각해야 한다. 그래서 조금은 랭철한 시선으로 문제를 파악하고 자기 주관적사상감정을 공성화하게 된다.     글은 패션고객의 취향에 맞춰짓는 양복은 아니다. 전문성이나 합리적인 글에는 잠시 독자가 몰릴수 있으나 반복적인 재독성이 미비하여 자동저장된다. 독자가 원하는것을 쓰는것도 좋지만 외면당하거나 쟁론을 일으킬 소지가 있는 글이라도 써야 할 필요를 절감할때가 있다. 독자의 리해와 량해를 구하는것은 딴문제이다.     글을 대하는 독자도 남이 쓴 글이 내눈에 들어와 내것이 되였다고 자기 감수대로 료리하면 아예 원맛을 배제하게 된다. 노래자랑에서 노래부르는 사람을 보는 청중의 감수와 평판이 저마끔인데 무작정 부정하려들면 공정하지 못하다. 자신은 노래부를 용기, 실력이 있는지 없는지 자신감이 서지도 않았으면서도 시키지않은 평가위원이 된것처럼 처음부터 자기취미에 기준한다면 례의에 어긋난다. 천재들을 내놓고 각자 자기 경험적관점에서는 다다소소 다를수도 있어도 판단력에서는 어슷비슷하다.     사람은 제쓰던 몽당비자루도 버리기 아까워하는 본성이 있기에 금방 산 상품이 마음에 안든다고 둘러메치거나 짓밟아버리는 사람은 흔치않다. 두고 살피지도 않고 당장에서 내버리며 상품을 탓한다면 공평하지못한 처사이다. 작자는 좋은“상품”을 내놓아야 할것은 두말할것 없고 독자도 내가 읽어서 이미 내것이 된 상품(글)을 아끼 는 아량도 있어야 하겠다는 주장이다.     글은 탈고하기까지는 작가의것이지만 완성품이 되여 상품으로 전화하면 바로 독자의것이라는 견지에서 독자가 기꺼이 사도(읽도)록 글을 써야함은 자명하다. 장사군에게는 고객이 황제라는데 작가에게는 독자가 왕이다. 왕은 왕이로되 제우스(신)는 아니다. 읽은 글이 내것이 된이상 정신상품을 제공한 사람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최저로 인격적으로 존중하며 아끼는것이 문화지성인의 기본자세가 아닐가?                                                                        2013년 3월 10일
228    치욕의 기둥에는 견책의 설한풍만... 댓글:  조회:8505  추천:0  2013-07-17
                       치욕의 기둥에는 견책의 설한풍만…                                                  진 언       치욕의 기둥이란 서방국가들에서 범죄자를 징벌하던 도구였는데 죄범을 위에 달아매고 사람들에게 전시하였다. 이는 아주 오래전의 징벌형식이지만 현대에 이르러 치욕의 기둥의 함의로치욕스러운 사건과 인물을 형용한다. 맑스의《프랑스내전》에서“회자수들은 이미 영원한 력사의 치욕의 기둥에 매달렸다…”라고 준렬히 통책하였다.    중국에서는 고대의 진회, 악명이 자자한 왕정위(汪精卫)를 위수로 (陈公博)、주불해(周佛海) 등 민족패류들이 견책의 설한풍이 휘감아치는 력사적치욕의 기둥에 높이 매달려있다. 제2차대전기간 쏘련, 미국, 영국, 프랑스 등 국가에서도 이른바의 “쏘간(苏奸)”,“미간(美奸)”、“영간 (英奸)”、“불간 (法奸)”들이 생성되였데 응당 가야할 18층지옥에 떨어졌다. 그것이 그들이 갈길이기때문이다.     물론 직접 겪어보지 못한 우리가 력사진상을 파헤치려면 현유의 문헌들과 문물로 추단할수밖에 없다.그러나 우리는 그 어떤 사학가들이든 주관의식의 개체라는 전제를 잊지 말아야 할것이다. 하나의 인물에 대한 평가는 각자의 시점에 따라 달라질수밖에 없다. 더구나 편견과 편향의 색안경을 쓰고 고찰하면 각양각색이 된다. 어둠속에서 보는 고양이는 모두 회색이라는 말과 맥을 통할것이다.     김민철(한국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선생의 이광수의 “친일변호론” 비판글에서도 이점을 잘읽을수 있다. 저자는 친일파를 변호한 론리를 크게 공범론, 생존론, 인재론, 순교론 등으로 정리하고있다. “친일파  아닌 사람 누가 있느냐, 전 민족이 친 일파이다.”라는 친일파들이 대표적으로 내세우는 공범론, “일제의 강요에 못이겨서 협력했고, 생활때문에, 살기위해서 협력했다”는 “불가피론ㅡ필자”, “능력있는 인재를 처벌하면 당시의 난국을 누가 수습하느냐. ”는 “회피론ㅡ필자”,“민족을 보존하기 위해 스스로 십자가를 짊어졌다.”는 “구실론ㅡ필자”등에 대한 분석은 론리가 정연하고 론거가 확실하며 론증도 엄밀하고 설득력이 매우 강하여 동감, 동조를 부른다.     화제거리 친일파가 많지만 이미 화제로 떠오른 춘원 리광수를 어떻게 볼것인가? 그가 가로사대 "나는 지금에 와서 이런 신념을 가진다. 즉 조선인은 전연 조선적인 것을 잊어야 한다고. 아주 피와 살과 뼈가 일본인이 되어버려야 한다고. 이 속에 진 정으로 조선인의 영생의 길이 있다고... 조선놈의 이마빡을 바늘로 찔러서 일본인 피가 나올만큼 조선인은 일본인 정신을 가져야 한다." (매일신보, 1940. 9. 4)>이 말은 일제의 창씨개명령이 선포되자 그 다음날, 가야마 미쓰로(香山光郞)라고 창씨개명을 한후 에 날린 말이다.   《매일신보》 1944년 1월 1일자에 실린 “새해”라는 춘원 리광수의 자작시는  그의 친일파로서의  철저한 타락상을 극명하게 보여준 자화상이다.                         씩씩한 우리 아들들은 총을 메고 전장으로 나가고                         어여쁜 우리 딸들은 몸뻬를 입고 공장으로 농장으로 나서네                         이날 설날에 반도 삼천리도 기쁨의 일장기 바다                         무한한 영광과 희망의 위대한 새해여    그의 말한마디, 상기한 시한수에서 그의 친일ㅡ매족의 행각이 시작부터 자발적이고 가도록 심산으로 얼마나 심각한가를 알수 있다. 리광수에 못지않은 불쌍한 넋이 더있다. "조선어를 존속하도록 허용하는 한 조선인적인 사상경향도 존속한다. 우선 조선어를 폐지하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된다. 조선어를 폐지하라. 일본어로 사물을 생각하도록 노력을 시키라. 조선인은 조선어를 망각해야 한다…조선민 족의 독립을 공상하는 돈키호테 같은 족속들에게는 조선어가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세계를 전체로서 볼 때 한낱 조선어의 문제가 대체 무엇인가. 조선인이 정말로 일본인이 되려 한다면 우선 조선어부터 망각해 버려야만 하는 것이다..." (新生 朝鮮の出發, 大版屋書店, 1939) >제 2대에 걸쳐 친일파로 이름을 날린 현영섭이란자가 내뱉은 말은 일본에서 오줌갈기던 개도 다리를 든채로 웃을 망발이 아닌가? 이 마당에 “ ‘친일파’의 무덤에도 봄은 오는가”고 언녕 저주맞은 넋을 기리는 “망혼곡”을 부르다니 그러지 않아도 력사적으로 “문인의 비애”가 처절한데 이 무슨 자학인가?    김작자는 글머리에 “식민지 체험은 피식민 민족에게 기나긴 어둠의 회한을 낳는다. 따라서 그것은 그만큼 내면의 양태로 풀기 어려운 숙제들을 남기기도 한다.”라고 글의 동기비슷한것을 제기하는데 작자의 저의가 너무 잘보인다. 리광수에 대한 력 사적평가는 이미 한국내에서도 언녕 정답이 나온 “숙제”이다. 그런데도 자다가 봉창을 두드리고 자다가 남의 허벅지를 긁으려는 심사도 유분수이다.   “필자가 근대 아시아를 재조명 하는 동기의 하나가 이런 풀지 못한 숙제를 풀어보자는 소박한 의도에서 이기도 하다. 100년이 지난 오늘까지 “친일”은 “반일”의 음지에 있는, 우리 민족의 치욕이자 통한의 주제로서 항상 우리의 가슴을 비분하게 만든다. 이렇듯 우리 민족사회의 덧나는 상처처럼 괴롭히는 “친일파”문제, 그에 대한 처우 문제에 대해 필자는 근대 100여년을 읽으면서 다시금 재고하게 되었다.”   “친일”은 매족적인데 왜 민족적인 장거인 “반일”의 “음지”에 있다고 애탄하는가? 이것은 말주둥이에 당나귀주둥이를 갖다대는것과도 다른 발상이다. 작자는 처음부터 자가당착에 빠지고있다. 부정할래야 부정할수도 없는 안중근은 나름대로 찬양하더니 여기서 천추의 “반일투사”와 수화상극인 “친일역도” 를 위해 변호하니 자기를 혀를씹는 작동이 아닌가? 안중근에 대해서는 매우 인정적이던데 그 인정을 되돌려서 배족패류에게도 하사하려는것인가? 누구를 위해서?   “친일파=매국노”, “친일파를 처벌주고 척결해야 된다” 라는 주장이 지금까지 성세를 이루고있는데, 이런 의식,주장이 과연 얼마나 합리적일 수 있는가?, 과거 역사의 진실에 얼마나 접근한 발산인가? 하는 반추와 반문조차 제기 되지 않은 채 무조건 맹종하고 있다. 필자가 근대사를 읽으면서 재 발전되는 역사사실(史實)에서 “친일”행위 보다도 오히려 “친일”에 대한 인식, 반성에 대한 현대인의 문제도 문제 삼아 타당하다는 점이다.”라고 하는데 필자가 보건대논 조금도 타당하지 않다. 친일파를 처벌주고 척결해야 된다” 는 의식, 주장이 합리적일수 있는가? 의문을 가졌다면 그것부터 차례차례 해답해나가는것이 사유의 순리인데 슬쩍 수수께끼도 아닌것을 제기하는것은 직언해야 하는 “학자”의 기풍이 아닌것같다. 그 많은 사람들이 “무조건 맹종”한다고 보는 그 시각이 너무 유아독존이고 독선이다. 나만 사유할줄아는 머리가 있다는식으로 나오면 실제적인 “접근발상”인가? 이러면 좀 “골란”하다.    근대사를 읽는것은 왈가왈부할 일이 아닌바 사실 많은 지성적학자들이 이런저런 여러 판본의 근대사를 읽고 또 많은 정보와 사고문제들을 알고있을것이다. 요는 누가 쓴 어떤 근대사를, 어떤 시점에서, 어떤 선견을 가지고 읽는가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무릇 력사학가들은 누구라없이 주관의식의 개체라는 전제를 망각해서는 아니된다. 황차 력사란 아무나 치장해놓을수 있는 소녀와 같고 고대사란 합의를 본 신화라는 말도 있지않은가? 나만 반추하고 나만 반문한다는 발상부터가 비뚤어졌다.     “일제의 만행을 또 영구히 기억하려는 단순한 모순,…필자는 이 모순적 사실에서 현대 우리 민족의 과거 역사에 대한 기본적인 태도의 “모순”을 읽는 듯 했다.” 한국인들의 과거사에 대한 태도가 단순한 모순이라는 근거를 먼저 설파해야 하는데 붉은찰도깨비 밤여울거는 소리같이, 귀신이 씨나락까먹는 소리같이, 구렁이 담을 넘어가는 소리같은 애매모호한 발설을 하지말고 구두를 활벗고 시원히 발등을 긁든 발바닥을 두드리든 광명정대한 언설이라면 일목료연하게 언필하자.   “친일파=매국노”의 등식의 대극에 있는 우리의 최대의 민족 영웅 안중근 의사. 그의 양상은 “친일파”의 모습을 다시 조명하는 거울 내지, 지금까지 미처 하지 못한 “발견”을 하게 되리라고 필자는 믿는다. ”이 말은 옳은 말이지만 역시 자가당착이다. 그러니 횡성수설이 엮어질수밖에 없게 된다. 무슨 “발견”은 꿈에 네뚜리가 될게고,    “…그러므로 안중근이 근대 반일독립의 최고의 영웅이 되는 것은 당연한 흐름 이리라. 안중근은 “동양평화론”의 사상가였다. 이 의미는 지대하다. 그런데 냉철히 말해, 그렇게 아름다운“동양평화론”이 권총 탄환의 형태로 밖에 나타나지 못한 것이 안중근에게도, 이등에게도, 그리고 모두 조선인과 일본인에게도 비극이었다. (김기협《망국의 역사 조선을 말하다》) 참으로 웃기는 론리이다. “안중근이 근대 반일독립의 최고의 영웅이 되는 것은 당연한 흐름이리라.”면 그 대립면에서 추행을 저지른 리광수가 “친일파”로 견책받는것은 거슬리는 흐름이인가? 땅바닥은 울퉁불퉁해도 장구는 바로놓고 쳐야하고 입을 비뚤어도 주라는 바로 불라하지 않았던가?     안중근이 “반일구국”의 선구자, 열혈투사로서 영웅으로 추대되는것이 아니라 “동양평화론”의 사상가로 영웅이 되고 이 의미가 지대하고 아름다운 “동양평화론”이 권총탄환의 형태로밖에 나타나지 못한것은 무슨 비극이라고한 김기협의 론조를 옮겼는데 소귀에 경읽기도 아니고 승냥이앞에 양을 가져다놓고 선덕을 베풀라는것과 같은 황당 그 자체이다. “한일합방”이라는 력사비극을 조작해내고 발톱까지 무장하고 간도, 대륙의 도처에서 살인방화하는 일제침략군을 피흘리지 않고 감화시킬 그런 천사가 있단말인가? 당신인가? 행차뒤 나발같은 소리이고 사후청심환을 내대는 격이다.     작자는 ““친일파”가 왜 “친일파”로 되었는가 하는 역사적 상황, 이유를 따져야 한다”고 하면서 그 론거로 당시의 경제, 군사적인 약소국, 식민주의시대에 부응되지 못하고 불가피하게 강대국에 의뢰하지 않으면 안되는 절박성, “김옥균, 박영효 등 개화파가 “친일파”로 된데는 그 역사적 배경에서 오는 심각한 번뇌를 안고 있었다. 이를 외면하고 단순히 “친일파=매국노”로 지탄해도 의미가 없다.”는 력사사실, “3.1 독립선언문의 기초자 최남선이 그랬고…”다고 론거를  내놓는다.     생명보존, 책략적인 “전향”을 고려하더라도 남이 모두 도둑질하니까 나도 도둑 질했는데 나혼자만의 징벌받아야 하는가 하고 격분해하는 어리석은 도둑놈의 항변과같다. “친일파”를 매국노로 이제 추세가 된 우리가 비판, 지탄함은 너무도 쉽다. 그러나 여기에는 우리 추세의 현재의 심정을 그대로 역사의 과거에 투영시켜 버린 그 우(愚)가 남을 뿐이다.”라고 우국지성을 발하고있는데 어떻게 하면 그 “우 (愚)가 남을 뿐이다”가 우가 아닌 “명지함”으로 남을가? 작자는 직언할수 있는가?     빙빙 에둘러 독자를 어리둥절하게 만들려하지 말고 콩은 콩이고 팥은 팥이라고 말하자. “친일파”를 매국노로…이제 추세가 된 우리가 비판, 지탄함은 너무도 쉽다.” 고 하는데 즉 인간은 생명보존의 본능과 부귀영화의 욕망이 본성인만큼 인간으로 당시 돌아가는 세상에서 그렇게밖에 할수 없었은즉 2분법으로 분석하고 친일조류에 휘쓸려 개발헤염친 정도이니 리광수의 정상을 참작하여 새끼무당의 억울함을 밝히자는 식으로 말하면 안되는가? 력사규명에서는 우회법도 미사려구도 필요없다.  “인간의 문화사가 입증해주는 바와 같이, 인간은 현실과 타협하여 적응시키는 자만이 살아남는 법….”이라는데 인간은 많은경우 적자생존으로서 이역시 살아남는 법이란 말은 맞다. 맞고, 우선 자신을 보존함으로써 후일을 도모한다는 생각도 일종 지혜인것도 사실이다.하다면 리광수류의 매국매족도 사내대장부는 발등에 떨어진 불을 피할줄안다(好汉不吃眼前亏)는 처세술인가? 과연 현실과 격투하여 적응하면서 지혜롭게 사는것을 배워주기 위해 치욕의“친일파”로 자아희생을 했단말인가?       고소원(固所願) 이나 불감청(不敢請)은 아니던가? 훗날 리광수가 안전한 기회를 보아서 일제와 격투하려 하였는데 아쉽게도 일제가 그만 앞당겨 망해서 격투할 좋은 기회를 놓쳤단말인가? 두말이면 잔소리라고 작자의“대서특서”는 어불성설도 아니고 언어도단이다. 리광수의 친일행각에 대한 수많은 글들과 문헌들이 있으니 한번 다시 읽어보고 재량하든지 얼토당토하지 않은 재발설이라도 내기를 바란다.    작자는 “지금도 “친일파”의 무덤에는 차디찬 겨울의 엄동설한이 맴돌며, 무덤에 침 뱉고 채찍으로 타매하기에 여념이 없다. 실로 슬픈 일이다. 이제 역사에 대해 좀 더 현명하고…그러면 얼어 붙은 삭막한 “친일파”의 무덤에도 봄은 올 것이라고. 그리고 진달래가 만발 할 것이라고.”애원하는데 력사는 덮어버릴수 있으나 소실되 지는 않는다는것을 알자. 력사에 현명하지 못한 나로서는 호랑이가 죽으니 슬피우는 여우의 호곡성처럼 들리는것은 무엇때문일가?   혼자 명지한체 하지말자.     해해년년 오고가는 봄이야 만산편야에 얼룩을 남기랴만 봄이왔다고 모든 꽃이 일시에 피는것도 아니다. 하지만 독버섯도 양광속에서 서식한다. 자연의 섭리를 인간의 의지로 헝클어놓을수 없으니 리광수류의 무덤에 봄빛이야 다르랴만 력사적치욕의 기둥에 매달린 자들에게는 견책의 설한풍만 휘몰아치고 세월과 더불어저주의 화살만 빗발칠일밖에 없다. 무주공산 리광수의 무덤가에 잡초나 났는지 설사 봄은 오더라도 선구자의 상징인 성결한 진달래가 피기를 기다리는것은 나무밑에서 토끼를 기다린 고대우자와 또 무엇이 다를가 ???  21세기 우화가 될것이 뻔한데…                                        2013년 6월 30일
227    “싸가지가 없다” 를 두고 댓글:  조회:9038  추천:0  2013-07-17
                             “싸가지가 없다” 를 두고                                            최 균 선       한국드라마의 대사에서 “싸가지 없다”라는 말이 자주쓰이고 흔히 대방이 펄쩍 뛰는데 국어사전에서는 “싸가지”가 “싹수의 방언”이라고 해석하고있다. 이와 궤를 같이하는 어원의 설명에 따르면 싸가지는 ‘싹’과 동물의 새끼나 작은것을 가리키는 ‘-아지’가 합쳐서 이루어진 말로 싹이 막나오기 시작하는 처음 상태인 싹수를 일컫는 말이라고 한다. 따라서 본래뜻은 막움트기 시작하는 싹의 첫머리를 가리키는 이 말이 일상에서는 비유적으로 씌여서 어떤 일이나 사람이 앞으로 잘될것인지 아닌지를 나타내는 낌새나 징조를 가리키는 속어로 쓰인다고 해석하고있다.    “싸가지없다”가 “싹수가 글러먹은놈”,“싹수없는 자식”,“될성부르지못한 아이”, “전도(희망)없는자”와 거의같은 의미이지만 싹+아지가 련음현상으로 발음되는것을 그대로 적으면 싸가지가 된다. “싹”이 사람을 대하여 사용될 때는 “싹수가 보인다”, “싹수가 노랗다”,“싹수가 없다”등으로 쓰이는데 어원은 전라도방언이라 한다.     아무튼 인간에게 있어서 희망이란 그렇듯 중요하기에“싸가지없다”가 좌절감을 안겨주는 인신모욕이 되는 모양이다. 요즈음은 이 싸가지를 네가지로 표현하기도 한다. '싸가지가 없다=네가지가 없다. 이를테면 버릇이 없고 례의가 없고 렴치가 없고 희망이 없는것이란다. 또 이 사가지가 인,의,례,지를 가리킨다고도 한다.     한국의 시인 공영구씨는 ‘사가지와 마음씨’에서 “네(사)가지가 없다” 로 해석하 고있다. 그 네가지는 첫째 성씨, 둘째 말씨, 셋째 솜씨, 넷째 맵씨이다. 이 네가지는 사람을 평가하는 기본으로서 그것이 없으면 정상적인 사람이 상대할수 없는 별종이 라고 정의하고있다. “싸가지없다”는 말이 처음엔 생경하고 입에 잘오르지 않았지만 한국에서는 그래서 아주 기분나쁜 욕으로 쓰고있는지…     그런데 어떤 자가 진정 “사가지가 없는자” 이냐? 첫째로 자기 민족혼마저 헌신짝 내버리듯이하면 성씨를 잃은것이요 자기 민족을 위해 말할대신 적들의 나발이 되면 자기 말씨를 잃은것이요, 심사가 카멜레온같으면 말솜씨가 아무리 일인자연인듯해도 싸가지 없음이요 자기 민족을 팔아먹으면 맵씨가 아니라 꼴불견이다.     장자의 추수편에 이런 고사가 있다. "황하의 신 하백이 물의 흐름을 따라 처음 바다에 나왔다. 그는 북해에까지 가서 동해를 바라보면서 그 끝이 없음에 놀라 탄식하였다. 그러자 북해의 신약이 말하기를 우물안에서 살고있는 개구리에게 바다를 이야 기해도 알지 못하는것은 그들이 좁은 장소에서 살고있기때문이다. 또 여름 벌레에게 얼음을 말해도 알지 못하는것은, 그들이 여름만을 굳게 믿고있기때문이다. 따라서 식견이 좁은 사람에게 도를 말해도 알지 못하거니와, 그것은 그들이 상식의 가르침에 구속되여 있기때문이다. 그러나 당신은 지금 좁은 개울에서 나와 큰바다를 바라보고 자기의 추함을 알았기때문에, 이제 더불어 큰 진리에 대하여 말할수 있을것이다. "장자는 추수편에서 이런 이야기를 인용하여 우물안 개구리를 론하였다.     외국에 나가 있으면 하백쯤 되는건가? 하백처럼 북해에도 가보고나서 되돌아보며 고향사람들이 어쩌고 저쩌고해야 감복이 가든지 해야 하겠는데 한곳에서 다른 한곳에 가서 천하를 굽어보는듯이 말하면 좀 싱거운감이든다. 하긴 하늘이 푸르다는것을 알기위해 온세상을 돌아다닐 필요는 없지만 세상을 더많이 알기위해서는 세계적인 박람이 필요하다. 한국이나 일본쯤에 가서 살면 고향사람들보다 안계가 좀 텃다고 할수도 있으나 지구적으로 역시 우물안개구리가 아닐가?     근본을 잃으면 정말 “싸가지가 없다.” 물론 고향의 건설과 민족의 개화발전을 도모한다는것이 출발점인듯 하지만 태줄을 묻고 잔뼈를 굳혀준 고향ㅡ어머니품을 개떡나무리는듯 하는것은 결코 아무런 깨우침이 되지않으며 거부감을 앞세우고 오기에 더구나 설득적이지 못하다. 보기에는 요란한 장편대론이나 웅문이라도 기실 탁상공론에 불과하고 지상담병일뿐이다. 조괄의 화끈함은 주는지 몰라도 말이다.     탁상공론끝에 제시된것은 무엇이며 해결된것은 무었인가? 글이란 본디 자기의 정서나 관점따위를 토로할뿐으로 해결책은 아닌것이다. 동냥은 못줄망정 쪽박은 깨지말랬다, 나서자란 고향을 실질적으로 돕지는 못할망정 이것저것 헐뜯으며 난데없이 선각자나 인의지사나 된듯이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자세는 정말 “싸가지가 없다” 고 해야 할것이다. 앉을자리 설자리 모르면 “싸가지가 없다는”는 말을 듣기보다 팔불출 이라는 말을 듣기가 십상이다.     거의 모든 사람들은 자기를 위하여 사고하고 자기 사상을 창조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상 아무도 어떻게 사상이 창조되는가를 분명히 말할수 없다. 그것이 어디서 오며 어떠한가를 말하지 못한다. 사상을 리용하고나서야 어디에 귀속되는지를 알뿐이다. 사실상 이미 터득했거나 혹은 바야흐로 가지게 되는 소유의 사상은 이미 창조되여 완성된것으로서 마치 심령처럼 우리 주위에 존재할뿐이다.     그만큼 한 개인이 전사회적, 세계적으로 공인되지도 않은 관점이나 견해를 소위 ×××의“주의(主义)”라고 명명한다면 과대망상이 아닐수 없다. 다 아다싶이 주의란   사상이나 학설상에서의 일정한 립장, 주장을 말하고 사회제도나 정치, 경제체제를 가 리키기도 한다. 인류문화사상 무슨무슨 주의가 단숨에 일일이 렬거할수 없을만큼 많지만 그것이 그 개인의 자고자대한 감각으로 언감생심“ “×××주의”라고 자칭하는것 이라면 되우 웃기는 발상이다.    잘모르긴 하지만 맑스, 엥겔스나 레닌이 자기들의 사상, 학설을 자칭하여 맑스- 레닌주의라고 명명한게 아니라 후세사람들이 객관적으로 공인한것일게다. 그런데 스스로 무슨 “주의”를 창제한듯이 떠벌이는데 세상을 웃겨도 너무 웃길일이다. 중국 에 위인들이 있었으나 “×××사상”이라고 격을 낮추었지×××주의”라고 하지 않고있 다는 사실에서 아무런 느낌도 없었단 말인가? 한심한일이 세상에 많지만 너무 주제 넘다고 해야 할것이다. 이건 스스로를 아는 현명성 문제도 아니다.     위인이나 성현이 아닌 사람으로 말할 때 문제를 분석하고 사고하노라면 우리는 창조자가 아님을 알게되고 내키지 않더라라도 사상의 관찰자일뿐임을 자인하게 된다. 위대한 사상(주의)은 우주의 지혜를 대표한다. 우리는 다만 심령의 잠의식으로 그런 지혜를 터득할뿐이다. 즉 우리같은 보통백성의 마음은 남의 사상의 접수기일뿐인것 이다. 그런데도 어떤자가 스스로의 성숙되지도 않은 이런저런 잡설을“주의”라고 자칭한다면 그게 정상적문화인의 머리에서 나올법한 착상이 아님이 틀림없다.  각설하고, 사회적비리. 인간의 렬근성 등을 비평하려면 스스로 영욕과 리득에 목매인 제모습을 돌아보라. 금전과 쾌락. 부유의 유혹은 꼬시는게 본성이다. 잘사는 나라에서 살고 많이배우려하고 명리를 얻으며 살려는 욕심은 죄아니다. 그러나 자기 가 태줄을 묻은 고향에 불만족해하고 불평부리고 폄훼하고 싶은대로 비하하는건 개체행각이지만 도의적으로는 고향(조국)에 대한 죄행이다.    풀잎에 이슬같은 인생인데 덕행은 못할망정 배은망덕해서야 쓰겠냐? 가난한 자기“어머니”를 불쌍히 여길대신 깔보는것은 대역부도이라. 더구나 지페쪼각에 매료되여 돌아가며 물어뜯는 미친개처럼 이것저것 기성된 사실을 끄집어내여 소위 분석이니, 평가니 횡설수설하면서 스스로 아무리 요란한 “문화비평가”의 모자를 높이쓴다해도 높이볼 사람은 아무데도 없다. 배신자의말로는 영화들에서 많이 보여주고있지 않던가? 새앙쥐는 쥐인체 하는것이 자신의 일신안전에 좋을게다.                                           2010.10. 6
226    개구리와 올챙이철학 댓글:  조회:7704  추천:0  2013-07-17
                          개구리와 올챙이의 철학                                      최 균 선       개구리와 올챙이가 근원적으로 다른가? 아니다. 올챙이는 개구리의 유아기일때이고 개구리는 올챙이가 커서 변모한 모습일뿐이다. 양서류인 개구리들은 대부분 알에서 부화하면 꼬리가 긴 개구리 특유의 올챙이라는 유생시기를 거치게되는 과정문제이지 결코 종의 기원문제가 아니다.     늪가에 사는 개구리이든 논도랑에서 사는 개구리이든 숙명처럼 사랑을 하다보니 알을 낳게되고 비바람부는 생존환경속에서 살아남은 알들은 올챙이라는 이름으로 거듭나고 나름대로의 생존에 몸부림치며 대가리와 몸뚱아리와 긴 꼬리뿐인 몸으로 바글대며 진화를 재촉한다.     그렇게 바둥대다보면 다리가 생겨나고 반비례적으로 꼬리가 사라진다. 자연은 인간이야 알던 모르던 자연스레 진화와 퇴화를 거듭하는 법이다. 개구리 자신도 모르게 꼬리가 없어지고  발달된 근육질의 네다리가 도약을 마련해준다. 그것이 자연이고 그것이 개구리의 본연이다. 사지와 꼬리의 함수관계를 구태어 해석할 필요가 있을가? 꼬리는 네발과 반비례한다. 그것 하나만 헤아린다면 쉽게 개구리와 올챙이를 리해할수 있다. 그런데 종의 기원문제인것처럼 왈가왈부하니 우습지 아니하랴,     올챙이가 꼬리를 버렸는가? 저절로 떨어져버렸는가? 그것은 선각자, 후각자문제가 아니라 행동방식의 진화에 따른 퇴화일뿐이다. 왜 백두호랑이의 꼬리는 그렇게 아름답고 힘있어 보이는데 염소의 꼬리는 그렇게 볼품이 없는가고 생각하는것이 부질없는것과 같은 문제이다. 빈호수에 빈낚시대를 드리고 별을 헤아리는것은 아름 다운 무료함이나 여기서는 별개의 문제이다.     개구리와 올챙이하면 언뜻 개구리 올챙이적생각 못한다는 속담이 생각난다. 분명 개구리가 된적도 없고 올챙이가 된적은 더더욱 없었으련만 선조님들의 재치와 해학이 돋보이는 속담이다. 국문이 열리고 외류가 가능해지여 제살던 고장을 떠나 새 삶의 방식을 터득한 사람들이 많이 생겨나면서부터 마치 대번에 선각자가 된듯이 고향사람들을 우물안개구리니 안광이 좁으니하는 말들이 지면에서나 인터넷글에 심심찮게 오르는데 그야말로 개구리가 올챙이적 생각을 못하는것이라고 생각된다.     제가 나서자란 땅을 떠난지 몇해 안되면서도 곧장 연변이 어떠하고 조선족이 여사하오 조선어가 어떻소하는 뜬소리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 큰바람이 새여나오는 껄껄 소리는 아니 나오고 그저 지나가는 바람과 구름에 허황함을 띄워보고싶다.     조선족개조론도 좋고 신조선족도 좋고 조선족종말론도 좋고 콩이야 팥이야 한들 해결되는게 무엇인가? 의론은 문제의 제기일뿐 해결방법은 아니다. 설계도가 건축물이 아니듯이, 설계도도 못그리면서 소위 대개조론을 운운하는것 자체가 허황한 일이 다. 그냥 국외인처럼, 하늘에서 뚝떨어진 천생적인 선각자인양 하는데 조괄의 지상담병으로부터 온 탁상공론이란 말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그런데 세상사람들은 렴파의 경륜보다 조괄의 화끈함을 좋아하는 이상한 취미가 있다. 관념문제는 늘 이 시점에서 생긴다. 나가돌아다니는《개구리》들은 고향을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들을《올챙이》로 치부하는데 한 민족의 사회청사는 나돌아다니는《선각자》들에 의해 세워지는것이 아니라 실천하고있는《후각자》들의 어깨에 받들려 이루어지는법이다. 그렇지않은가?    무엇이 뒤틀렸가는 지각있는 사람이면 다 알수 있다. 진리는 고아대는 사람한테서 도망친다. 진리는 평범한 농민들의 입에서 나온다던가? 누가 더 진실을 살고 진리를 모색하고 있는가? 답은 뻔하다. 한갖 서생의 의기로 고아봤대야 아무것도 달라질것 없다. 지지미를 번져놓듯이 그렇게 쉽게 번져지는것이 민족이며 어느 개인의 의지에 의해 개조되는것이 민족인가? 소위 신조선족이란 제기법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시각이 위치를 결정하지 못하지만 위치는 영원히 시점의 부동함에 따라 달라진다. 관건은 우리가 하나의 확정된 위치에 처해있지만 시각은 의연히 아무방향에로든 지향할수 있다는것이다. 만약 눈길이 줄곧 위로 향해있다면 자신은 그냥 아래에 있는것으로 느껴지고 반대로 그냥 아래만 굽어본다면 자신이 늘 위에 있는것으로 지각된다. 만약 줄곧 자신이 앞자리에 있다고 생각하면 줄창 뒤만돌아보게 될것이다. 자신이 의연히 뒤떨어져있다고 생각되면 필시 앞만바라볼것이다.     시각을 돌리면 새로운 풍경이 보이지만 풍경자체게 새롭게 부연된것은 아니다. 여기에 개구리의 삼단론법이 있다. 큰늪가에 옮겨가서 살던 어떤 개구리가 제가살던 물웅덩이가 생각났던지 개선장군마냥 찾아왔다. 역시 그때의 동류들이 그냥 거기서 서식하고있었다. 실망이 나오는것 같았다.  《야, 늬들 아직도 여기서 사냐? 그 꼴이 뭐니? 촌스럽게… 》   토박이개구리들이 어이없어 쳐다보았다. 분명 동족인데 중뿔나게 굴었다. 《넌 누구냐? 갖잖게스리》 《누군가구? 나 신개구리족이야,》 《웃긴다. 역시 개구리가 아냐?》 《그러나 늬들과 차원이 달라?》 《그럼 개구리신사인감???》 《정말 깨지못했구나. 3단론법 들어봤어?   대전제: 무릇 타고장에서 사는 개구리는 모두 신개리족이다.   소전제: 나는 타고장에서 산다.   결론:   고로 나는 신 개구리족이다.   늬들 촌놈들은 이런 새로운 추리방법을 모르지?  《흥, 개가 뜨물먹는 소릴하고 자빠졌네. 그소릴 지껄이려고왔냐?》 《그래? 그럼 늬들 낡은터에서 이밥이랑 지어먹으며 잘들 살아보래이》    대천세계 늪가에 산다는 개구리의 철학은 참으로 기특하다. 개구리의 철학대로라면 미국에 이민간 한국인들은 왜 신한민족이라 부르지않을가? 그리고 그들보다 더 일찌기 동남아를 비롯해 세계각지에서 군체를 이루고사는 엄청많은 중국인들을 왜 신한족이라 부르지않는가?북미주에 건너가 정착한 유럽인들은 곧 미국인이라 불렀지 신구라파인이라 하지않았다.     이건 아닌것도 아니고 아닌게 아닌것도 아니고 소가 하품하는 사이에 소의 혀바닥에 재빨리 쉬를쓿고 도망치려는 쉬파리의 꼼수인가? 진리를 평범하게 말하게 되여있다. 소총명이 과잉해도 걱정이다. 늪가에가 살던 개구리가 올챙이들을 보고 왜 상기도 꼬리를 달고있는가고 비웃는것은 우스운 사유이다.    본지방에 남아있다해서 다가 멍청이들인것은 아니다. 토박이지성인들이 많이는 침묵을 하고있는것에 무지해서라거나 사유에 개연성이 없어서라고 단정하지 말아야 한다.《해외선각자》들 못지않게 사색하고 있을뿐이다. 왜 사색할수밖에 없는가? 민족이란 개념은 임의대로 해석되는 개념이 아니요 한 민족의 생리와 신진대사를 어느 누가 의지대로 할수도 없기때문이다.    늪가에 개구리들은 온밤 합창해도 영원히 곡조가 맞는 합창은할수 없다. 아무리 배불뚝이 청개구리로 컸더라도 그냥 개구리이다. 올챙이는 필경 크면 큰개구리가 되지만 들고양이가 아무리 살이쪘더라도 호랑이로는 될수 없다.                                 2010. 9. 7
225    속담풀이 댓글:  조회:8036  추천:0  2013-07-17
                                    속담풀이                                                                              최 균 선        우리 말 속담집에 미꾸라지에 관한것이 서너개 있는것으로 기억된다. 이를테면 미꾸라지 한마리 온 웅덩이를 흐린다거나 미꾸리지속에도 부레풀은 있다거나 미꾸라지 룡됐다거나 미꾸라지 천년에 룡이 된다거나 등이다.    첫번째는 못된사람 하나가 온 집안, 온 사회를 망친다는 뜻이라는것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것이다. 요즈음 조글로에서 판을 치고있는 김문학씨와 그에게 찬송가를 불러주는 사람, 격분하여 반대 리플을 다는사람. 김관웅선생의 직설을 비아냥거리는 사람, 그를 성원하는 사람들로 시끌벅적하는데 문뜩 조선족동네앞 맑은물에 미꾸리 한마리가 흙탕물을 일으키며 제멋대로 놀아댄다는 느낌을 쫓아낼수 없다. 똥묻은개 겨묻은개를 흉본다고 그 미꾸라지가 누구들을 미꾸라지라고 욕은 하더라만은,     그의 언론들이 기막히게《가관》이지만 필자는 여지껏 조금도 흥미를 두지않고 네미덜머리로 넘겨버리고 있었다. 내가 도고해서가 아니라 적어도 우리 민족사회를 위해서, 력사진실의 규명을 위해서 일푼의 가치도 없다는 선입견이 방해하기때문이다. 김문학이 위대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제멋이니 상관할바 아니나 여러지성인들은 공연히 휘말려든다는 안타까운 생각이 들어서 남이 보리방아찧는데 께끼듯 싱거운걱정 한마당 털어놓으려 한다.     그에 먼저 내사유의 집에《미꾸라지 한마리가 터무니없는 일을 만들고있는데 우리 모두 미꾸라지한테 놀아나는 어른들이 되지말자!》는 현수막을 드리우고싶다. 민족심이 있고 량지가 있다보니 보다보다 참을수 없어서 시비를 바로잡으려고 타매의 몽둥이를 든줄은 알지만 덕은 배푼대로 가고 죄는 짓는대로 간다고 언젠가 응징을 받을날이 있을것이니 미친년 달래캐듯 마구락서를 흘리는데 소중한 “각주”까지 달아줄 필요가 꼬물만치도 없다고 사료된다.     어떤 글은 론박하려해도 워낙 론점이나 론거가 형편없는것일 때 그럴생각마저 아예 없어지는 경우가 종종있다. 어불성설이라는말은 비조리성을 말하지만 말도 안된다는 뜻으로 비약해 쓸수도 있다. 그만큼 김문학의 글은 자세히 읽고 사색할것도 없이 그 자체가 원래 구지레한 흙탕물인데 그속에서 저혼자 꼬리치든 자맥질하든 멋대로 놀라하라. 왜 귀중한 정력과 시간을 랑비해가며 아무쓰잘것없는 허겁뜬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대꾸해줘야하는지…미꾸라지 주제에 이무기가 될려고, 룡이 될려고 용을 쓴다고, 제풀에 튀고싶어서 그런다고 아예 전부 무시해버리면 그만이다. 그게 우리 민족사회문화계를 위해서 생산적인 일이니까 하는 말이다.     그 자신은 소위 “해양민족”의 “거두”로 자처하면서 무소부지하고 무불통지한듯 건드리지 않는것이 없지만 미꾸라지 모래 쑤시는격이요 두루뭉수리이다. 그런것을 여러분들이 본의아니게 표가나도록 해준 일면도 없지않다. 하긴 미꾸리지속에도 부레풀은 있다고 김문학씨도 언론을 발표하고 글도 발표할 자유가 있기는하다. 그러나 말이면 다하는것이 아니며 써내면 다 글인것이 아니다. 로신의 중국사람에 대한 비판은 김문학씨의 이른바 비판과는 동기와 목적이 다르고 차원도 엄청다르고 따라서 민족성도 인격력량도 봉황과 닭의차이 그것이다.     한 민족인으로 말하면 민족군체는 모체이다. 자기를 낳아길러준 부모가 아무리 못나고 가난하여도 부모는 부모이다. 그런 부모를 마구 뭇매질하는것은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할짓이 아니다. 개도 가난한 주인을 꺼리지 않는다는 속담이 있는데 황차 먹물깨나먹은 사람임에랴! 우리 민족의 백년숙적인 일제의 망혼을 대신해서 제민족을 모욕하고 중상하는것도 문화비판인가? 본인은 민족의 발전과 미래를 위해서라고 말은 번지르르하게 하지만 그렇게 가정하더라도 동기가 곧 좋은 결과와 등호로 되는것도 아니다. 그의 글의 골자가 과연 무엇인지 누가 모른단말인가?     그래서  ‘말이 아니면 듣지를 말고 길이 아니면 가지를 말라’는 속담이 떠올려진다. 옳지않은 말은 듣지말고 옳지않은 일은 행하지말라는 뜻임은 중학생도 안다. 이 속담은 신통히도“주껍에도 들지않는 (지방사투리임)” 그 무슨 조선족대개조론을 뇌까리는자, 동에도 닿지않는 만주국찬미의 궤변을 늘여놓는자, 눈감고 아웅하는 수작으로 악명이 자자한 섬나라악마들의 침략행각과 피비린 만행을 찬미하느라 침방울을 튕기는자를 경계하여 만들어진것같다.     여기서 말이 아니면 듣지 말라는 말은 절대적으로 믿어도 좋지만 길이 아니면 가지말라는 말은 변증법적으로 참작해볼수도 있겠다. 지금 김문학은 길이아닌 길을 가면서 스스로 초탈한듯 양양자득해 하고있다. 낭떠러지로 향하든 일본군국주의 자들의 품에 안기든 제좋아서 가는길이니 그냥 가라고하라. 개가 콩엿사먹고 버드나무에 올라간들 사람이 상관할게 뭔가? 김문학선생이 일본개눈깔사탕 사먹고 그들을 위해 망발을 하는것을 우리가 절대 용납하지 않으면 더 볼일이 없는것이다.     개입에서는 영원히 상아가 나올수 없다는 외국격언이 있다. 그에게서 민족인답고 량지가 있는 문화인다운 론조가 나오기를 바라기는 다틀렸으니 작정하고 물을 흐리고있는 그의 얄팍한 유희에 속지말자. 아무도 들어주는이가 없으면 주책없는 로친네의 뇌까림처럼 싱거워질것이다. 여우의 칭찬한마디에 입에 물었던 고기를 떨어뜨리고 목청을 돋우어 노래하였다는 우화를 모두 알고있을것이다. 그때 그 까마귀가 무슨 노래를 불렀는지 모르나 분명 청승맞은 소리였을게다.     빈통은 굴려놓으면 더 소리가 요란하고 똥통은 다치면 더 구린내가 진동한다는 농촌의 류행어가있다. 표현이 좀 야하지만 제가 눈 똥에 제가 주저앉게 되여있으니 우리는 우리식으로 민족사회나 열심히 가꾸어가자. 그저 혼자놀게 내버려두는게 그를 위하는 일이다. 옆에서 북치고 장구치고 꽹과리를 불라하라. 우리 귀에 들린다해서 다 마음에 담아둘것은 아니니까,     김문학씨가 중국의 량심인 로신선생이 일본문화의 영향을 받아 중국인민을 비판한듯이 어물넙쩍 해석을 달더니 오늘은 악명이 자자한 민족반역자 리광수마저 제비위에 맞게 해석하고 자기를 변호하고 위상을 높이려는 방편으로 삼고있는데 참으로 돼지가 돼지를 고와한다는 농촌의 류행어가 생각나서 웃음이 피씩 나온다. 리광수가 누구인가? 문학으로서는 성공한 사람이라 할수 있지만 민족인으로서는 치욕의 말뚝에 매달린자이다, 그런자의 썩은 령혼마저 리용하려는 그 심사가 되우 고약하다.     말이 많으면 쓸말이 없고 말단집에 장이곤다고 그의 글은 처음부터 끝까지 다른 심보를 가지고 내키는대로 써갈긴 락서로서 민족사회를 위해서는 백해무익한것이다. 그래서 애초에 대꾸해주지도 말아야했고 역으로 “영향력” 을 불궈줄 필요가 없었다. 재삼 말하거니와 “한마리 미꾸라지가 물을 흐려놓는데 함께놀아주는 어른이 되지 말자! ”    물이 흐린김에 손을 넣어 고기를 잡는다는 말은 있지만 미꾸리 한마리가 흐려놓은 물에 손을 넣어봐야 아무것도 잡힐것이 없다. 있다면 썪은내나는 령혼뿐일게다. 지금 미꾸라지가 웅덩이는 흐려놓고있으나 민족사회의 장하는 그의 놀이터가 아니다. 필자의 속담풀이가 야하다고 힐 걱정이 없지는 않으나 그냥 접어두고 먹을알없는 “보리방아간”이 절로 닫겨버릴 날이 있으리라 기대해 본다.                                        2010년  10월 2 일
224    욕설의 철학 댓글:  조회:7843  추천:0  2013-07-17
                                욕설의 철학                                      최 균 선       욕설도 일종 정서의 발로이고 감정의 폭발이다. 노하여도 욕사발이 쏟아지고 어데다 분노를 풀수 없을때에도 욕바구니가 터지고 원한에 사무쳤을 때에도 욕이 화산을 터지기 일쑤이다. 까닭없는 무덤이 없듯이 리유없는 욕설이란 없을게다. 어떤 방식으로 대방을 욕하는가 하는것이 곧 욕설력학인데 구미의 선진국이나 아프리카의 후진국이나 동방례의지국이나 욕설은 욕설이로되 그 표현방식은 각이하다.     영국인들의 욕설은 대방의 인격, 출신, 종족성을 폄하하고 대방의 인격이 더럽고 출신이 비천하며 종족이 저렬하다고 비하한다. 영미의 국가급욕설로는 흔히 똥처럼 더럽다인데 우리 말로는 창부년이 낳은자식이나 개승냥이가 키운놈이라고 번역할수 있을것이다. 그네들의 욕설철학을 한마디로 개괄한다면  인격기시라 할수 있다.     일본의 욕설력학은 대방의 재능이나 수양을 폄하하는것인데 어떻게 우둔하고 무능하며 얼마나 교양이 없다는 내용이다. 례컨대 “빠가야로”는 기실 한자로 쓰면 곧 “馬鹿野郞”이다. “馬鹿”은 “八嘎野路”에서 “八嘎”인데 진조의 간신인 조고가 진2세 호애에게 사슴을 말《지록위마 (指鹿为馬)》이라고 가리킨데서 유래된것이다. 따지고 보면 일본국의 욕설은 어느 나라의 욕설보다 빈약하지만 욕설의 리면에는 약자에 대한 기시성이 짙다는것을 읽어낼수 있다.     욕설력학으로는 아마도 중국이 그 어느 나라보다 독특해서 세계1등급일것이다. 한것은 그 대상 개인에 대해 욕질할뿐만아니라 대방의 가족어른, 선조까지 9족을 거들어 욕하여 대방으로 하여금 최대의 모욕감을 느끼도록 하기때문이다. 그래서 중국의 국욕으로 《他妈的》,가장 듣기 역한것으로“cao 你 妈”《네미씹할것》등이다. 그리고 북경지구의 가장 경전적인 욕으로 “傻BI!”가 있다고 한다. 총적으로 대방의 체면을 깎아내리는것이 목적이다.     남을 욕하기란 쉬운일이다. 그러나 욕질에도 인간의 도리가 있고 수양이 요청되 며 학문이 있어야 한다. 말하자면 철학성, 예술성…등이 있어야 한다. 욕설을 퍼부어도 우아하고 풍도가 있고 유모아가있는 욕이 있다. 그러지않고 입에서 뱀이 나가는지 구렝이가 나가는 모르고 사복개천이 된다면 결과적으로는 욕을 한 자신의 공중형상에 치명적인 오점을 남기게 된다.     례컨대 대방의 조종8팔대를 거들고 개,돼지니 쇠새끼, 양새끼니, 량성관계를  내키는대로 지절대는것은 막돼먹은 녀자의 쌍욕에 그친다. 반대로 아프지도 가렵지도 않게 욕한다거나 혼자 시설질하거나 하는것은 욕을먹는 사람의 머리에 안개를 덮어주는격이다. 대방의 칠규에서 연기가 날만큼 생채로 삼키려들거나 세워놓고 껍질을 벗길듯이 기세등등해서 욕하는것은 보통 욕설에서 삼가해야 할 잠규칙이다.     해당자 개인을 상대하여 욕하는데 그치는 외국사람들에게는 대방의 에미는 물론 조종3대까지 거들어 마구욕하는 중국의 독특한 욕설방식에 대해 잘 리해하지 못한다. 한사람이 잘못했는데 왜 그의 어머니, 조상까지 욕하느냐 하는것이다. 그러나 중국의 욕설에는 기시성단어가 적고 종족기시의 성질을 띤 욕설도 비교적 적다.     중국사람들의 욕설력학에는 국인들의《체면제1주의》성격특징이 체현되여있다. 외국사람들의 욕질은 단지 대방에 국한되기에 목소리가 높지않지만 중국사람들은 욕할라치면 최대로 목청을 높인다. 그리고 동네방네 들으라고 길거리에 나서서 맥이 진할때까지 진종일 욕질한다. 대방으로 하여금 공중앞에서 여지없이 체면이 깎이게 하는게 목적이기때문이다.     그러나 대방에 대해 고래고래 욕질한다는것은 동시에 자기형상에 침뱉는것과 다름없다. 남을 욕하자면 리유가 있어야 한다. 아무 연고도없이 마구욕해대면 욕을 듣는 사람에게는 미친개가 아무나 무는식으로 접수될뿐이다. 욕에는 일종 정서의 발설인 욕과 욕을먹는 대방이 잘못을 고치게 하려고하는 욕이 있다.     뒤에서 하는 욕에도 전자의 목적이 있을수도 있고 후자의 목적이 있을수 있다. 아무튼 사람을 욕하는것은 결과적으로 밸풀이를 하려는것이고 통쾌감을 찾는데있다. 구체대상을  욕하거나 사회 혹은 군체를 욕하는 등 비구체적욕설이 있다. 례하여 한 학생이 수업이 끝나자《에익, 이번 시간 정말 재미없어,》라고 한다면 선생을 욕하는 것이고 아무개가 뚱뚱해졌다고 말하면 그를 욕하는것이고 “에참  오늘은 씨름에 몇번이나 지고말았어”하며 자기를 욕하는것이다. 사람은 이처럼 매일 이런저런 욕을 하게 되는데 매일 거짓말을 얼마간씩 하는것고 마찬가지 도리이다.      중국사람들이 욕설을 잘하는데는 심리상에 어떤 쏟아내지 못할 울분같은것이 가득하기때문에 발설이 수요되는것이다. 례컨대 탐관들에 대한 불만, 악리들에 대한 원한, 사회분배의 불공평에 대한 불만 등 심리상에 쌓여있지만 직접 상대하여 욕하지 못하는 분기를 결국 다른 사람에 쏟아붓는 병태적심리발설인 경우가 많다.     이런 심리는 국인들로 하여금 축전지에 전기를 축전하는식으로 되게하여 일단 어떤 계기에 부딫치면 격렬한 불꽃을 튕기게 되는것이다. 이를테면 뻐스안에서 조심하지않아 남의발을 밟게되면 욕사발이 쏟아지기 여반장이다. 국민자질이 높은 외국같은데서는《미안합니다.》하고 사과하면 보통 있을수 있는 자질구레한 일이라 그렇게 지내보내고 말지만 여기서는 자칫 분노의 화산이 터질 계기가 되고만다.     그러나 그 경우 대방의 세력이 강대하면 감히 입한번 뻥긋하지 못하고 다른데가서 시어미역정에 개배떄기 차는격으로 다른 약자와 해내는게 상례이다. 말하자면 유명한 아Q실용설철학이 관철되는것이다. 국인들에게는 한방탕 욕사발을 퍼붓는것이 일종 심신건강료법이나 되는듯이 여긴다. 이것이 전국적으로 욕설의 풍경선을 이루게 되는 심리환경이 아닌가싶다.        욕설전쟁이 이렇게 비일비재이기에 자연히 귀가 고생하게 되여있다. 바른말, 귀기울일 말, 고단한 삶에 위로가 될말 등 좋은말도 하고많은데, 왜서 험한말, 속상하는 말이 란무하는지 알수 없다. 남들만 비난할게 못된다. 조선말에도 걸직한 욕이 많다. 그중에서 사용빈도가 비교적 높은 말이 “개새끼”,“개종자”,“망할놈”, “개×으로 난 새끼”등등 많다. 한어에 “操你妈”라는 욕을 우리 연변사람들은 발음이 정확하지 않아서인지 보통 “차우니마”라고 한다. 우리 말에《네미붙을것》 이라는 말과 맞먹을것이다. 이 말이 번져지고 두루 보태져서《씨팔년 (새끼)》이란 말로 류행되는데 한국인가운데서 입이 개천같이 더러운 사람들속에서는《씨팔》이 공동욕이 되여있다.     야한대로 말하면 누구나 그것으로 만들어져서 태여난것이랸만 왜 그것이 제일 쌍트러운 욕이 되였는지 알고도 모를일이다. 결국 누워서 침뱉기요 제에미,애비를 욕보이는 광채롭지못한 악담패설이 되는것이다. 가끔씩 듣게되는 말이지만 청년학생들 사이에 별악의가 없이 오가는 말이 “개머저리” “개○대같은 새끼”이다. 옛날엔 남녀사이에 오가는 욕이 기껏해야 년놈자가 붙거나 “간나새끼. 아새끼” 였는데 지금은 욕도 자연스럽게 현대화되였는지 적라라하기 그지없다.     새파란 녀자애들도 뜻이나 알고 있으련만“개○대”같은 말을 서슴없이 토해내는것을 흔히 듣게된다. 심지어 련인사이 같은데 남자애가 “개○○같은게 내언제 그랬니?”하니 녀자애도 정말 자기가 그런 존재인것을 승인하는지《늬 그랬재야》 하고 대꾸하고 있었다.     누운소 똥누듯(臥牛出糞)이라는 말이 있는데 그보다 더러운 말을 내뱉는 그런 짓거리를 듣게된 귀가 치사했지만 코앞에서 찧고까불고하는데는 정말 화가치밀 지경이였다. 세상 모르는 아이들도 고운말보다 쌍스러운 말을 먼저 배운다더니 그래서 그런지 모르겠다고 도리머리질이나 할수밖에.    한 덕망높은 도사가 려행을 하게 되였는데 도중에서 자기를 좋아하지 않는 려행자를 만나게 되여 동행하였다. 도사의 동행자는 기회를 만났다는듯이 련며칠 길을 가면서 온갖방법으로 모욕적인 말을 들씌웠다. 그가 욕설끝에 맥이 진하자 도사가 그 에게 물었다.    《한가지 묻겠소, 만약 어떤 사람이 당신에게 례물을 보내왔는데 당신이 사절하 였다면 그 례물이 누구에게 속해야 하는가?》     웬 뚱딴지 같은 질문에 어정쩡해진 동행자가 별생각없이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도사란 사람이 생가머리라구야, 아따, 두말이면 잔소리지, 그러면 갈데없이 례물을 주려던 사람의것이 아니겠소?》    그의 말에 도사는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보기보다는 썩 총명하구려. 대답을 잘했소, 그렇다면 이제껏 당신이 나에게 쏟아부은 욕설을 내가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그 욕은 누구에게 차례지는것이요? 아니, 변명하지 마시오, 결국 이 며칠 당신이 풀어놓은 욕보따리를 스스로 안게된것이 아니겠소? 내말에 일리가 없는거요? 》     더없이 무안을 당한 그 동행자는 낯짝이 수수떡이 되여 아무말도 못하고 제코만 어루쓸다가 주자를 놓아버렸다. 속담에 욕은 듣는게 먹는다고 하지만 그 자신이 심령이 깨끗하고 건전하다면 다른 사람의 지어먹은 목욕비방도 어쩌지 못한다. 비방의 화살을 날리기 좋아하는 자에겐 자기가 날린 화살이 되돌아와 박히는법이다. 욕설에 이골이튼 사람이라면 한번 생각해 볼만한 일이 아니겠는가?     시끌벅적한 이 세상을 살아가노라면 욕설을 주고받는것은 일상이 될수도 있다. 욕을 해야하는가? 욕할일이면 욕을 해야한다. 욕하려면 머리도 들지못하고 대꾸한 마디 못하도록 줄욕을 퍼부을수도 있다. 그런데 지나고보면 허구픈 웃음이라도 나올 하찮은 일을 가지고 자타를 욕하는것은 바람직한 인생자세가 아님에 틀림없다.     욕설이 문명일수는 없지만 사회성을 띠고 공성을 띤 “욕”은 우리 사회에 아직 필요한것이다. 사회부정이나 비리, 인간패류들은 욕해야 한다. 욕해도 호되게 욕해야 한다. 그러나 어떻게 욕하는가에 따라서 그의 문화소양과 인격의 질이 알리게 된다. 군자나 현인들은 어쩌는지 모르겠지만 사람은 누구나 욕을먹고 욕하며 살게된다. 욕설은 생리, 심리수요이지만도 개체생명간에 욕질이 뜸해질수 있다면 그게 조화세계, 밝은사회의 인생현장이 아닐가?                             2007 년 10월 6 일  
223    식도락의 변증원리 댓글:  조회:7368  추천:0  2013-07-17
                               식도락의 변증원리                                       최 균 선       공자가 이르기를《인이식위천(人以食为天》》이라 하였으니 먹는일이 과연 인생의 주제인셈이다. 식사란 과연 무엇인가? 소박하게 말하면 내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다른 생명체(식물도 생명이거늘)를 먹어 에너지를 산생시킬 영양을 흡취하는 일이다. 아무튼 인류에게 제일 모질고 끈질기게 달라붙는것이 먹는일이다. 그래서 우리 선조님들은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비유하였을것이다.     그런데 세월이 많이 흐르고 살기가 많이도 좋아져서 목구멍이 포도청이 아니라 “락원”이 되였다. 굶주림대신 만포식에 뒤이어 식복을 즐기게 되였으니말이다. 수(寿) 부(富) ·강녕(康宁) ·유호덕(攸好德) ·고종명(考終命)이라는 오복에 식복은 들지않았더 라도 곳곳을 다니며 여러가지 음식을 두루 맛보는것을 즐기는 일인 식도락은 오늘날 민초들의 인륜지락에도 색욕버금에 가는 락이 되였으니 하좋은 세월이라     세월이 좋아지니 사람들은 먹는일에 갈수록 극성이다. 하루건너 명절이라 먹고 맛으로 먹고, 멋으로 먹고, 교제로 먹고, 파티로, 색으로, 영양지식으로, 몸보신으로, 병치료를 위해서 먹기싫어도 먹고 또 먹는다. 생리욕구의 음식은 배가부르면 그만먹지만 맛과 멋으로 먹는 혀끝의 음식은 줄창인데 몸에는 오히려 해롭다는것은 상식이다. 현대인의 과식습관과 미식, 담배, 알콜 설탕, 커피 등 최대식용은 체내에 부패한 독성물질을 쌓여 생체를 시궁창으로 만들어가고있음을 알면서도 막무가내다.    중국에서는 식생활에 가장 먼저 신경을 쓴다. 그런데 예로부터 음식섭취 목적은 단순히 맛있는 음식을 탐하는것이 아니라 건강과 장수에 초점을 두어왔다. 이러한 특성은 의식동원(医食同源)이라는 용어로 설명할수 있는데 즉 의약과 음식은 본래 그 뿌리가 하나라는 의미로 중국에서는 음식으로 몸보신하고 병을 예빙치료하여 장수 한다는 전통관념이 실도락에 매몰되여버린 현실이다.    음식자체에는 생각도 지성도 없다. 그러므로 사람이 음식을 다스려야지 사람이 음식의 지배를 받으면 식충으로서 벌레의 삶과 다름없게 된다고 한다. 인체는 실제로 필요로하는 음식의 3배를 소화, 보관, 처리하는 잠재능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과식은 불식이라 과식하면 불필요한 소화, 흡수, 보관, 배설하는데 엄청난 생명에너지를 소모한다. 결국 생명력을 소모하는것이다.     사람은 부자이든 가난뱅이든 명인이든 인간이니 평생 먹을량은 비슷하다. 먹을 복이 많다고 과식하면 자기 생명을 단축하는것과 같는것은 상식이다. 그래서 최고로 훌륭한 의사는《식사에 독종이 되라》고 권고한다. 먹는데 악돌이가 되지말고 적당히 린색하라는 말로 리해하여도 될것이다. 너무 뒷생각없이 먹는데 열중하면 간장, 위장이 탈나고 현대부자병인 당뇨요, 지방간이요하는 병이 무성하고 그러면 볶은 콩알을 주어먹듯이 무쟈케 약을 먹는다. 그러니 건강은 점점 더빨리 좀먹어간다.     건강학자가 설파하기를 많이먹으면 독이되는 3가지는 설탕과 소금과 지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에 당기고 마음에 당기면 무엇이나 마구잡수신다. 이천식천 (以 天食天)…하늘이 하늘을 먹는다. 곤혹스러운 문구이다. 하늘의 태양빛의 혜택을 받아 서 성장하고 염그는 남새, 쌀한알에도 태양빛이 그속에 있고 먹는사람에게도 하늘이 그속에 있게된다. 그러니 태양빛을 받으면서 하늘의 기를 받아서 생겨난 모든 농작물, 동물은 우리와 같은것이라 하는것이다.     현대인들은 물질욕이 팽창하는 그만큼 날이갈수록 식욕과 성욕에 집착한다. 그것이 부단히 생활의 터전에 고통의 씨앗을 뿌려간다. 요즈음 사람들이 누가 무엇이 몸에 좋다고 하면 무엇이나 다 잡아먹는다. 관성, 타성이 몸에 배어있으므로 나쁜줄 도 모르며 고칠생각도 없으니 고통받는것은 본인의 무고한 위장이다. 인간은 자신의 칼과 포크로서 자신의 무덤을 파고있다는 서양속담이 이를 설명해준다.     행복이 실체가없이 정신지수이듯이 식도락도 실체는 없고 느끼는 자기 마음속에 있을뿐이다. 사실상 돈이 많으면 최대의 복일듯싶으나 많을수록 더욱 불안, 초조, 사람기피증, 갈등이 더많아지게 하고 정신안정제복용, 몽롱한 의식상태, 차츰 노이로제, 뚱보와 인연을 맺게한다. 몸과 마음을 만드는것이 곧 음식일진대 먹는멋은 자기가 존귀함을 과시한다. 어찌보면 오늘날 너무 유족한 사람들의 건강문제는 폭식과 폭음과 관련된다. 결코 내가먹는 음식량과 질이 바로 곧 삶의 질인것은 아니다.     굶주리는것은 최대의 불행이고 비애이지만 무슨 병이아니라 너무 잘먹고 너무 많이먹어서 비대해지는것은 웃지도 울지도못할 아이러니가 아닐수 없다. 일생에서 밥상앞에서 보내는 시간은 6년이라는 통계가 있다. 이런 견지에서 먹는것을 자률로 조정하는것이 절제, 의지훈련, 건강, 문명인의 최대의 인격수련이라고 하고 자기를 이기는 또다른 싸움이라 하는것이다.     인류의 식문화가 현대문명의 절정에 치달아오르면서 온갖 살생이 많아지고 인간은 그것을 만물의 령장이 향수할 당연한 권리로 인정하기에 아무 죄책감도 없다. 불교에서는 최대의 악이 살생이다. 고기를 먹지않는 중을 내놓고 누군들 타생명을 먹 지않으랴만 자기 생명에 필요한만큼 먹고 그 타생명의 희생을 의식하지 못할망정 산채로 닥달질하다가 냠냠 먹어대는 쾌락은 너무 리기적이다.     하긴 인간이 타생명을 학대하는것마저 락으로 여기고 있는데 어찌 살생의 죄과를 념두에두랴, 그러기 가장 지독한 욕으로는 동물을 거드는 욕이다.“짐승만도 못한 놈”,“흉악하고 잔인한 놈(狼心狗肺)”, 쌍놈새끼,(兔崽子),잡종놈(兔蛋)개자식(王八犊子),쩍하면“개”를 빗대고 욕한다.“개같은 놈”,“개보다 못한놈”, “개나발 분다”,“개지랄”,“돼지새끼같은 놈”, “쇠새끼같은 놈” 등등.     일면적으로는 사실을 진술하는듯하나 그렇게 욕할때 사람의 충후는 돼지보다 못하며 부지런하기로 소보다 못하며 충직하기로 개보다 못하며 민첩하기로 토끼보다 못하다. 웅장하고 용맹하기로 사자보다 못하며 용맹하기로 새매보다 못하며 용맹하 기로는 범보다 못하다. 사람이 짐승보다 나은것은 말할줄 아는것과 부끄러움을 아는것과 사유할줄 아는것, 그리고 갖은수단으로 잡아먹고 그 가죽을 리용할줄 아는것이다.     수없이 많은 동물을 잡아먹으며 찬란한 문명을 창조해낸 고급령장동물로서 뒤늦게야 야생동물애호법이니 뭐니하는것은 스스로 제혀를 깨무는것이고 수많은 동물들이 멸종위기에 이르니 리기심에서 나온 자구지책이다. 이것은 병주고 약주기도 아닌 자가당착이다. 모든 생명은 동등하다고 할때 타생명도 존중되여야 하지만 지극히 리기적인 인류는 약육강식을 너무나 당연시하였다. 물론 니체식의 초인간은 아주 막연하다. 그러나 세계에 현존하는 인종의 실태로 보건대 장래에는 분명 더욱 고상하고 원만한 인류가 나타나리라 확신할수는 있다.     한편 우리는 농민들이 지은 쌀밥을 먹고 어부들이 잡아들인 생선을 먹으면서도 그들을 공공연히 깔보고있다. 예로부터 남자는 촌놈, 촌뜨기라 하면서 촌놈은 밥그릇 높은것만 안다는 속담까지 만들어냈다. 웃기는 발상이 아닐수 없다. 올방자틀고 앉아 독상을 받은 량반님네는 밥사발이 곯을수록 좋아했던가? 그리고 농부의 안해는 무조건 촌년이라 하였으며 그들의 손에서 길러낸 닭에게도 촌닭이라는 딱지를 붙여놓았다. 이것은 우리 스스로에 대한 3류 유모아이다.     농사꾼은 인간의 생명을 다루고 인간생존의 지배자이다. 주식이 량곡인데 그들이 땀흘리지 않는다면 우리가 무엇을 먹고 살가하는 문제는 오늘날 우문이 되고있으니 이런 의론도 우답이라 말할지 모르겠다. 아무튼 식도락을 즐기더라도 온갖 먹거리를 제공하는 대자연과 먹거리를 제공하는 이들에게 고마운 마음만은 가져야 할것이다. 이는 식도락의 변증법의 기초의 기초임에 틀림없으렸다.                                   2010 년 12월 10일  
222    신뢰의 금자탑 댓글:  조회:7555  추천:1  2013-07-17
                                    신뢰의 금자탑                                                                         최 균 선       신뢰란 무어냐? 신뢰(信賴) 신임, 신용과 맥이 통하는 복합개념으로서 타인의 미래 행동이 자신에게 호의적이거나 또는 최소한 악의적이지는 않을 가능성에 대한 기대와 믿음을 말한다. 신뢰에는 세가지 성질이 포함된다. 첫째, 시한부의 약속력으로서 신임문제의 전제이며 둘째, 불확정성이고 셋째, 확실한 객관적인 근거없이 무조건적인 신뢰이다.     신뢰는 일종 주관념원이자 대방에 대한 태도이고 인류의 생존을 위한 수많은 책략가운데서 중요한 책략의 하나이며 또한 사회자원으로서 가령 인간에게 신뢰성이 없다면 사회도 존재할수 없다. 신뢰는 일종 사회관계이며 일정한 사회조건과 문화 전통속에서 형성된 권리와 의무규범이고 암묵적 결약이기도 하다. 인류문명의 건설은 자초에 잘아는 사람들 사이의 화목과 신뢰에서 시작되였고 그것이 차차 낯선사람들 사이에 화목과 신뢰로 확대되였다.     그리하여 신뢰성은 예로부터 인격의 시금석으로 되기도 하였다. 그만큼 신뢰에 유관된 성구가 많이도 만들어졌다. 례하여 믿지못할 사람은 쓰지말것이며, 일단 쓴사람은 의심하지 말라 (疑人勿用 用人勿疑)든가 겉으로는 달콤한 태도로 상대를 유혹 하면서 속으로 상대를 해칠생각을 가지고있다는 의미로 쓰이는 구밀복검(口蜜腹剑)같은 말은 세인들이 다아는 성구이다.     옛날에 미생이란 사람이 다리밑에서 녀자와 만나기로 약속하고  기다려도 오지않으므로, 물이차도록 떠나지않고 기다리고 있다가  결국 다리를 안고 죽었다는 이야기로부터 기인된 미생지신( 尾生之信) 이라든가, 어려움을 당하여도 굳은 절개와 신뢰를 알수 있게 된다는 말로 쓰이는 질풍지경초(疾風知勁草)도 있고  말에게 물을 먹일때 먼저 돈을 물속에 던져서 물값을 지불할 정도로 결백한 행실을 비유하는 음마투전( 饮马投钱)이라는 성구도 있고,한번 승낙하면 반드시 실행함을 비유하는 계포일낙( 季布一諾)도 있으며 믿을만한 말은 겉을 꾸미지않는다는 뜻으로서의 신언불미(信言不美),등 많고 많다.     그런데 많은 지자들은 현시대는 량심이 씹다가 뱉아버리는 껌처럼 되였듯이 사회도덕이 곤두박질한 신뢰위기시대라고 입을 모으고있다. 신임위기란 사회의 인간관계에서 대량적인 허위과 불성실, 사람과 사람간에 발생한 엄중한 위기를 두고하는 말로서 사람들 사이에 도덕적련계와 약속력의 결핍을 가리킨다.     비록 중국경제가 비약적인 발전을 가져왔지만 문명과 문화건설은 탈절되고있다. 신임위기현상은 공무원, 교원, 의사, 병원과 보험회사 등 전반 사회계층에서 돌이킬수 없이 만연되고있다. 정계에서 자기자리를 지키고 승급하려면 상급의《신뢰》를 사야 하고 제아이가 선생님에게 잘보이게 하려면 울며겨자먹기로 돈과 례물로《신뢰》를 사야하고 수술이 원만하게 끝나지않을가봐, 후유증이 있을가봐《수고비》를 두툼하게 마련해야 하고 말그대로 생명보험인데도 종시 걱정이 앞서고…     한마디로 아무도 감히 믿을수 없는 신뢰부재의 지경에 이르렀다. 채소를 사는데도 약을 사는데도 믿음성을 가늠하게 된 현실이다. 독일의 사상가 로만 (卢曼)은 한 사람이 세계에 대하여 완전히 믿음을 잃었다면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나기도 어려울것이라고 하였다. 그것이 지금 현실로 재현되고있지 아니한가?     하여 중국에는 가짜가 많고 사기군이 많은 국토로 이름나게 되였다. 이른바 화해사회건설은 기실 신뢰의 결핍에서 기인된 사회적불협화음을 념두에 두고 제기된것이다. 그런데 한 민족의 문명이 통치자에 의해 창조되는것이 아니듯 신뢰도 정부의 능력으로 가강되지 않는다는것이다. 그러나 심층적인 원인은 신뢰의 위기이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익숙하고 가까이 지내던 사람을 잘 믿는다. 낯선 사람은 모두 신뢰할수 없다는 관념이 경화되여있기때문이다. 홍일법사(弘一法师)가《지자불혹, 신자장존, 식부족측다려, 위부족측다노, 신부족측다언(知者不惑,信者长存, 识不足则多虑,威不足则多怒,信不足则多言)이라하였는데 개인간의 신임문제, 사회신뢰문제는 복지사회의 기본바탕이 되는 문제이지만 해법이 묘연한 일대 난제이다.     공자님도 신뢰성을 두고 개탄한바있다. 주유렬국하던 공자가 한번은 진채일대의 한곳에서 어려움을 당하여 이레동안이나 밥한술 입에 넣지못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점심때 제자 안회가 얼마간의 쌀을 얻어다 서둘러 밥을지었다. 밥이 거의 될무렵 공자는 무심결에 안회가 가마에 손을 넣어 밥을 움켜먹는것을 보았다. 공자는 짐짓 못본체하고 있다가 안회가 밥을 들라고 권하자《방금 꿈에 선조를 보았는데 음식은 먼저 어른에게 권한다음 먹어야 한다고 하더구나. 그런데 네가 어찌 스승인 내먼저 먹는단 말이냐?》하고 엄하게 꾸짖었다.    안회는《스승님, 잘못 알고 계셨습니다. 실은 그런게 아니라 재티가 가마안에 날려들어갔는데 재가 묻은것을 제가 치우느라 먹었나이다.》하고 황급히 해석하였다. 제자의 성심을 오해했던 공자는《사람이 유일하게 믿을수 있는것이란 눈인데 제눈도 믿지 못할때가 있구나. 그러면 믿을수 있는것은 마음인가? 그러나 마음도 정히 믿을수 없을때가 있느니, 너희들은 한 사람의 진심을 안다는것이 쉽지 않음을 마음에 새겨두어라.》하고 길이 개탄하였다.     자로가《스승님의 지향을 듣고싶나이다.》라고 하자 공자는《로자안지, 붕우신지, 소자회지 (老者安之,朋友信之,少者怀之)》라고 대답하였다. 풀어서 말한다면 나의 지향은 늙은이들은 나에게 의뢰하고 동년배들은 나를 신임하고 어린자들은 나를 그리게 한다는것이다.     자공이 나라를 다스리는데 필요한 세가지가 있다면 무엇이 필요한가고 물었다. 공자는 첫째 군사 즉 힘이 필요하고 둘째, 백성들을 배불리먹일것, 세번째로 백성과의 약속을 지킬것이다. 무릇 신뢰성이 무너지면 무슨일이든 할수 없다. 자공이 다시 나라를 다스리는데 이 세가지 중에서 어느것이 가장 중요한가고 다시물으니 공자는 백성의 신뢰성이라 하면서 군사력의 약하다고해서 나라를 다스리지 못하는것이 아니며 또한 먹을것이 없다고 해서 백성을 다스리지 못하는것이 아니지만 신뢰성 이 무너지면 어떻게 백성들과 소통하면서 국가를 다스리겠는가고 대답하였다.     일체를 맹신하는것도 두려운 일이지만 일체를 의심하는것은 그보다 더 두려운 일이다. 신뢰는 누구에게나 한잔의 진한 차처럼 따스함과 살가움을 전해준다. 신뢰는 한자루의 초불처럼 소리없이 녹아내리며 사람들에게 광명을 준다. 신뢰는 말없는 축복으로서 사람들에게 쾌락과 향기를 준다. 이 지구촌에 신뢰의 바다가 펼쳐진다면 어디에 가든 평화가 깃들것이고 사람들은 인정의 냄새에 취할것이다.     신뢰는 깊이숨겨진 보물고와같이 사람들의 탐색과 발굴을 기다린다. 신뢰는 왕왕 우리와 일보차이밖에 없다. 마음을 열고 신뢰에 다가서면 신뢰심은 곧 당신에게 성큼 다가설것이다. 그리고 가슴탑에 무너지지 않는 신뢰의 금탑이 솟을것이다. 신뢰 와 의심은 낮과밤에 비유할수 있다. 그러나 낮과밤이 바뀌는것처럼 신뢰와 의심이 반복무상하다면 인간사회는 참으로 괴롭고 피로해서 살아갈수 없을것이다.     바라노니 신뢰여, 이 사악해진 인간들의 마음속에 강림하소서.                                      2011년 9 월 10
221    성공학초탐 댓글:  조회:8858  추천:1  2013-07-17
                               성공학초탐                                     최 균 선          한 사람의 성공은 무엇에 의거할가? 흔히 “천부의 재질+기우”라고 한다. 천부란 곧 천성적지력을 가리키는 말이며 한 사람의 지력발전의 수준을 지력상수(IQ)라 한다. 이전에는 지력년령과 실제년령을 비교하는 비률지력상수 방법을 채용하였는데 지금은 같은 년령의 아동들을 비교하는《리차지력상수(离差智商)》방법으로 지력을 측정하여 지력상수가 높을수록 지력이 높다고 단정한다.     그런데 인류사회는 종래로 어떤 인위적인 고정모식에좇아 운행되지 않았다. 또한 “천부+기우=성공”이라는 공식도 현실생활에서는 부정당하고 조롱받았다. 하여 사람들은 한 사람이 사업에서 성공하는데는 천부와 기우외에도 방불히 모종의 중요한 인소가 작용한다는것을 의식하게 되였다. 이런 중요한 인소가 “정감상수”로서 “EQ” 로 표시한다.     학자들은 “EQ”란 주요하게 한 개인의 정서에 대한 자아인지(认知), 자아공제능력, 자아획책능력 및 다른 사람의 정서에 대한 식별과 반응능력이라고 정의하고있다. 상 술한 여건에 남들이 만나기 어려운 천재일우의 기회까지 마련된다면 그의 성공은 익은과일이라고 말할수 있다. 그런데 파란만장한 인생길이요 운명의 신은 구두쇠여서 그 모든 우세를 한사람의 몸에 다 쏟아주지않는다.     아닌게 아니라 학식이 많고 타고난 자질도 높으나 세상물정을 모르다보니 한 말글을 한되로도 써먹지못하고 천생 글뒤주인 공을기의 신세로 한생을 마친 사람들이 부지기수이다. 반대로 먹물은 별로 들지않았지만 한되글을 서말로 써먹으면서 행운을 줄타기하는 사람도 많고많다. 이처럼 사회에는 지력상수도 출중하고 정서상수도 뛰여난 전면적인 인재는 그리 많지 않다. 그리하여 경기장같은 인생마당에선 지력상수와 정서상수의 소리없는 줄다리기가 지속되여왔던것이다.    물론 이런 겨룸에서 어느편이 더 우세인가 하는것을 통계학적으로 정확한 해답을 낼수는 없었다. 다만 증국번이 자기의 막료, 문객들에 내린 평가에서 그 해답을  찾을수 있다. 증국번은 그들을 네가지류형으로 나누어 평가하였는데 첫째는 실무능력 도 있고 고분고분 순종하는 부류이고 둘째는 능력은 있지만 잘 순종하지않는 부류이고 셋째는 능력이 별로없거나 대단하지 않으면서도 잘 순종하지도않는 부류이고 넷째는 능력도 없거니와 순종도 잘하지 않는 부류이다.     자격도 충분하고 사람을 쓴 경험도 풍부한 어떤 현대령도자가 증국번의 인재배렬법을 보고 랭소하면서 나름대로 좌석배렬을 했다. 첫째류형이 우선이고 버금으로 세번째류형이고 연후에 두번째 류형이여야 하며 네번째부류는 서렬에서 배제해야 한다고 하였다. 이 령도자가 인재를 흥량함에서 바로 지력상수와 정감상수라는 잣대를 사용하였다. 량자가 겸비하지 못했을때 우선 정서상수가 높은 자를 선택해야 한다는것이다. 모난돌이 먼저 정을 맞기가 십상이고 암투가 처절한 정계에서 굴러온 사람으로서는 가히 취할만도 한 선택이라 하겠다.     물론 여기서 동서고금의 인재등용의 철칙을 보아낼수는 없지만 매우 보편성을 띠고있음은 사실이다. 그렇지않다면 중국력사상에 굴원, 도잠, 신기질 등 흉중에 륙도삼략을 지녔음에도 진충보국의 문을 열지못하고 초야에 묻혀버린 수많은 천하기재들 과 시선 리백, 시성 두보같은 불우한 걸사들이 력사의 유감으로 남게되지 않았을것 이다. 그리고 리백이 “행로난”에서 《큰길은 청천하늘 같건만 나만 나갈길 없구나 (大道如青天,我独不得出 》라고 개탄하지 않았을것이다.     중국력사에는 정서상수가 비상히 높은《능사(能士)》도 많았다. 례를 든다면 청조말기에 자희태후의 측근태감이였던 리련영을 첫손에 꼽아야 할것이다. 중국항간에 임금을 배동하면 반은 범이라는 말이 류전되고있는데 리련영이 뫼신 자희는 과연 어떤 “암펌”이였던가! 음험하고 극악무도하고 투기와 의심이 많기로 언제 비내리고 언제 청천벽력이 떨어질지 모를 마귀할미가 아니던가?     권력욕에 미치고 혈안이 되여 이단자는 물론 심지어 자기골육인 광서황제마저 연금하여 죽음에로 몰아넣었으나 충실한 문지기개였던 리련영만은 자희의 엉덩이를 싸고돌며 갖은 교태로 총애받아 일세영달하였으니 벼슬마당의 일이야말로 알쏭달쏭이 아닌가, 문명한 현시대에도 리련영같은 용속한자들이 얼마일지 모른다. 패당과 부패 로 얼룩진 리씨조선력사에도 조광조같은 기재는 비명횡사하고 남곤같은 비렬한 용재 가 득세한일이 얼마였던가?     결국 돌고돌아서 진실과 허위의 게임이 되겠다. 불보듯 빤히 들여다보고 있는 진실임에도 바꾸기가 쉽지 않은것이 외적인 면만을 강요하는 사회와 문화가 고질적이고 또 그에 순응하기를 강요하고 그에 길들여져 있기때문이 아닐까? 절친한 친구라도 흠을 들춰내지 않으면 내키지 않아하는 인정세태, 오히려 진실되지 못함으로 받아들여지는것이 이 시대의 사회풍조이다.     하긴 성실하면 더 소외당하고 무시하는 사회이기에 공연히 똑똑한척 하여야 하고 잘난척 해야하고 부자인척하지 않으면 안되는지 모른다. 3류연극배우처럼 그냥 이런척하고 저런척해야하니 이런 모순된 사회, 그렇게 겉치례와 허세에 집착하는 참으로 진실하지 못하고 불편스러운 사회이다. 성공했다는 사람조차도 마음의 탕개가 풀어질세라 필요이상으로 노상 자기를 과시하는데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니 그들에게 질시와 부러움을 동시에 보내는 이래저래 진실이 서글프다.     넉살좋고 거짓말 잘하는자가 득세하는 현실, 여러가지로 불편한 진실이 바로 이 시대의 현주소이다. 중국사람들은 자기와 리해관계가 없는 일에는 아예 끼여들지 않기에 쓸데없는 일에 삐치지말라는 좌우명을 앞세우고 처신하지만 우리 민족처럼 남과의 대비에 신경을 살리고 남의 일에 관심이 많은 민족은 없을것이다. 자타가 피곤하게 겉치례가 강한 우리 민족이지만 늘 자신은 그속에 들지 않은듯이 생각한다.     인생현장은 경기장에 비유된다. 무위도식자에게는 성공의 희열도 실패의 쓴맛도 인연이 없다. 성공은 구슬땀의 산물이요, 정신적악전고투의 열매이다. 누군가가 설겆이를 하다가 접시를 깨는것은 이상할것 없다는 절창을 내놓았다. 우리가 흔히 외우는 성패는 병가지상사라는 고전과 맥락을 같이하는 말인듯싶다. 골짜기가 없는 봉우리가 없듯이 착오없이 따낸 성과란 있을수 없다. 실패와 좌절앞에서 반성과 함께 끝까지 자기를 인정하는것이 중요하다.     유태법전에 이렇게 씌여있다. 승자는 일곱번 쓰러져도 여덟번 일어나고 패자는 일곱번을 낱낱이 후회한다. 승자는 과정을 위해 살고 패자는 결과를 위해 산다. 승자는 달리는 도중에 이미 행복하나 패자는 경주가 끝나보아야 행복이 결정된다…스콧 펙은 말한다.《당신이 스무살이든, 마흔, 예순살이든, 당신이 성공자이든 실패자이든, 당신의 어제가 빛났던, 폭풍이 불었던, 무덤덤한 하루였던간에 당신에게 오는 모든 아침은 새로운 삶, 새로운 시도, 새롭게 눈을 뜨는 시작이다…》     쓰러지더라도 다시 일어서라. 그거 성공에로 향하는 첫걸음이다. 한번 넘어지면 누군가가 뒤집어주지 않으면 안되는 거북이가 되지 말고 번져놓아도 거듭거듭 일어나는 오또기 정신이 필요하다. 신(神)은 실패자는 쓰셔도 포기자는 안쓴다고 한다. 살아가면서 하는일에 큰성과만 있기를 바랄것이 아니라 실패가 없다면 다행으로 만족해야 한다.                     꼭 높은 곳에 위치해있다고 성공한 인생은 아니며 남보다 많이 가지고있다 해서 다 행복할수 없다. 첫새벽에 떠났다고 해서 반드시 제일 먼저 도착하는것이 아니듯이 일찍 핀 꽃이 꼭 향그러운  열매를 맺는다는 보장도 없다. 일찍 돋은 잎이 먼저 병들 어 떨어질수도 있거늘. 모든것이 불온정한 삶속에서 자기의 땀으로 삶터에 로력의  열매가 주렁지게 하는것이 가장 확실한 소득이다.      누군가가 설겆이를 하다가 접시를 깨는것은 이상할것 없다는 절창을 내놓았다. 우리가 흔히 외우는 성패는 병가지상사라는 고전과 맥락을 같이하는 말인듯싶다. 골짜기가 없는 봉우리가 없듯이 착오없이 따낸 성과란 있을수 없다. 실패와 좌절앞에서 반성과 함께 끝까지 자기를 인정하는것이 중요하다.     그러나《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고전명구를 무작정 미신하지는 말아야 한다. 성공은 꼭 실패를 바탕으로 하는것이 아니며 실패했다해서 꼭 성공한다는 법은없다. 실패를 임신부에 비유할 때 임신부는 류산할수도 있고 분만기가 되여 해산한다 해도 난산일수도 있다. “성공”이라는 아들도 두말할것없이 살릴수 없다. 그만큼 실패란 개연성을 가지고있고 변수인것이다.     중요한것은 신이 랭철한 두뇌를 가지는것이다. 그냥 인생현장의 눈부신 풍경속에 숨어있는 기우를 잡는것을 배우느라 눈길을 팔지말라. 기량 실패가 당신의 귀뺨을 후려쳐서 되돌려세웠더라도 꼭 뜨거운 축복의 키스가 기다린다고 말할수 없다.불행과 좌절을 당했을 때 가다듬으면 신심이요 아예 포기한다면 해탈이 될수도 있다. 능히 놓아버릴수도 있는것은 일종 생명의 평형운동이기도 하다. 틀어쥘곳과 놓아버릴 곳을 찾아낸다면 나아갈 길이 넓어지고 성공에 집착하던 마음도 밝아질수 있다.                                           2007 년9월  4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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