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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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    간판시대의 풍경 댓글:  조회:7707  추천:1  2013-07-17
                                간판시대의 풍경                                        최 균 선           항간에서는 없는것이 없는것을 일러 고양이뿔외에는 무어나 다있다고 말한다. 이 말을 본따서 전개한다면 지금 중국에는 가짜로 된것이 없는것이 없다, 가짜술, 가짜 담배, 가짜화장품, 가짜광고, 가짜전형, 가짜학력…명패라고 번듯하게 상표를 붙인 《명패》에 더구나 가짜, 저질산품이 더 많다.       지금 도시환경미용에서 하나의 골치거리가 되고있는것이 바로 큰거리, 작은 골목 아빠트단지, 담장, 창고, 길바닥 곳곳에 “××××××办证”이라고 마구 갈겨댄 락서이다. 그것이 어찌하여 엄정하게 다스려지지 못하는지 필자는 알방법이 없지만도 아무튼 이 국토에 온갖 가짜 증명과 졸업증이 살판치고있다는 그 한가지 사실만은 잘 알것같다. 독자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고 계시는지?         그러나 그 잡다한 가짜산품들속에서 인재들중에서의“가짜저질품”들이 가져다주는 위해성은 더 이를데없지만 사람들이 별로 개의치않고있다. 다음 일부 가짜인재들이 거개 한자리하고 앉아있는데 나라와 민중을 우롱하고있다.     국제선구도보에 난 글에 의하면 가짜학력은 일종 부패이다. 그리하여 각국에서《관원들의 가짜학력조작》을 타격하는 전쟁을 선포하였는데 이런 학술부패가 세계에 만연되고있음을 알수 있다. 한국, 포도아, 미국 등 나라에서 갈수록 사람들의 눈길은 관원들이 손에쥔 권력으로 학력을 교역하는 비정에 쏠리고있다.     가짜학력성분은 복잡한데 그중에서 기편과 우롱이 있을뿐만아니라 더우기는 권력과 학력사이에 관계망을 펼치는것이다. 권력을 등대고 수업에도 참석하지 않고 론문도 쓰지않았으며 심지어 교정에 얼굴한번 내밀지 않고도 높은 학력증서을 척 받 아가지는 사실도 한두가지 아니다. 권력교역을 할 자격이없는 사람들은 거리거리, 골목골목에 지천으로 씌여있는《반증(办证)》광고가 계시하다싶이 뒤골목의 솜씨있는 자들의 손에서 어디서 왔는지도 알수 없는 졸업증을 사들인다.      오늘 날 공무원대오는 이미 날따라 전업화, 정영화에로 매진하고있기에 갈수록 많은 관원들이 보다높은 실무자질을 갖출것을 요구하고있다. 그러나 학력이 곧 능력을 상징한다고 여기는 그런 사유방식은 정말 웃기는 사유방식이다. 졸업증이 곧 실력 이라고 믿는 사람은 아마 이 지구촌에는 없을줄안다. 특히 정부관원의 관리능력은 대학에서 리론으로 배워서 익히는 학문이 아닌것이다. 그러므로 높은학위보다 그 관리를 우러러보게 하는데는 실무능력만이 확실하다.     한것은 중외정치사를 종적으로 고찰한다면 수많은 저명한 정치가, 군사가, 외교 가들중에서 많은 사람들이 대학출신이 아니였다는것을 알수 있기때문이다. 흔히 시대가 영웅을 만든다고 하지만 시대는 이미 달라졌다. 돌은 아무리 따뜻한 곳에 놓고 굴려도 병아리가 되는법이 없다. 사실상 가짜학위로 자기를 도금하려는것은 호박쓰고 돼지굴로 들어가는 어리석은짓이다. 자기의 자질제고의 길에 담을 쌓는것이 되며 더우기는 제도의 온정성을 허무는짓이다.     근간에 한국에서 가짜학력문제로 시끌시끌하다가 지난 7월초순 신정아 동국대 교양교육원 조교수의 가짜학위문제가 불거지면서 여러분야로 확산되여 가고있다. 8월 말엔 건국대리사장의 학력세탁 의혹도 보도되었다. 교수, 목사, 영화배우, TV 탤런트, 연극인, 예술인 등이 줄줄이 가짜 학력의 주인공으로 지목돼 곤욕을 치르고있다. 그밖의 정치및 경제계에도 가짜 학력은 수두룩 하리라 추측 하고있다.     한국의 한 지성인은《우리나라 사람들은 취직이나 승급과는 관계가 없는데도 단지 허명(虛名)을 위해 과거학력을 부풀려 속인다. 이것은 정직하지 못한 국민성을 드러 낼뿐아니라 한국생활문화의식의 후진성을 실증한다. 아직도 한국인들이 지나간 과거 사 부풀리기로 허명을 꾀차려는 폐습에 젖어있음을 노정시킨다. 한국인들은 사람을 평가할 때 현재의 실력과 능력파악으로 그치지 않고 과거를 캐보려는 성향이 높다. 과거사 캐내기에 젖어버린 한국인들은 자신의 과거도 포장해야겠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과거미화를 위해 거짓말도 서슴지 않는다. 어느 여고를 나왔느니, 어느 대학을 다녔느니 외국서 박사학위를 받았느니 하는 거짓말이 그것들이다.》라고 대성 질호하고있다.     듣건대 미국이나 유럽사람들은 허명을 위해 과거의 학력을 세탁하는 경우가 드물다고 한다. 리유는 미-유럽 사람들은 과거학력이나 가문을 개의치않고 오늘 존재하는 개인의 실체만을 중시하기 까닭이라고 한다. 리력서를 써내려가는 순서부터 우리와 미·유렵은 각기 다르다. 우리의 리력서는 케케묵은 과거부터 먼저 적는다. 가장 오래된 옛날의 직장과 학교이름부터 년대순으로 라렬하기 시작하고 최종의 학력, 최종학위는 맨뒤로 미룬다. 과거사를 중시함을 반영한다. 하지만 미,유럽은 그와반대로 간다. 최종 학력과 마지막 직위부터 적기시작한단다. 과거보다는 지금 그가 어떤 모습인가에 초점을 맞추었음을 실증한것이다.     꽤 오래전에 한 젊은이가 가짜 명패대학졸업증을 사가지고 일본으로 류학가려고 수속하던중 어디로 경유해 가려는가고 묻는 령사관 해당일군의 물음에 왕청같은 도시이름을 대서 중국에서 대학공부까지 한 사람이 지리상식도 없을수 없으니 의심 하게 되였고 결국 조사해보니 엉터리 대학생이라는것이 드러났다. 류학이 물거품이 된것은 두말할것 없다. 이렇듯 가짜 학력은 얼마나 많은 피해를 주는지 모른다.     그러나 가짜학력의 엄중한 피해는 거의 류행으로 되여진 관원들의 가짜학력에서 온다. 관원들의 가짜학력을 조작하는 행위는 비단 학술공기를 망태기로 만들뿐만 아 니라 가짜 학력을 얻으려는 작동이 일파만파로 퍼지여 권력과 학술교역이라는 중국 특색의 신형부패가 부패확장의 하나의 표지로 되고있다. 탐관부패를 숙청하는것에 비하여 관원들의 졸업증위조행위는 다스리기 어려운 정치문제로 되고있다.     가짜저질인재들이 득세하게 되는데는 우선 가짜학력의 범람에 근원이 있다. 가짜학력에는 두가지 종류가 있는데 한가지는 전부 가짜이다. 즉 고등교육을 받지않은 사람이 고등교육을 받았다는 증거인 대학졸업증, 학위증을 가지고있는것이다. 그리고 상관된 배양훈련을 받지도 않고 상응한 자격증서를 보란듯이 소지하고 리력서에 버젓이 써넣고 한몫 챙기는것이다.       다른 한가지는 반가짜인데 즉 자신의 학력이 낮기에 각종 목적을 위해 자신의 학력을 조작하는것이다. 례하면 중등전문학교졸업생이 대학전과졸업생 혹은 대학본과 생으로 둔갑하거나 대학본과졸업생이 학위를 도금하거나 석사, 박사학위를 조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가짜리력서를 만들어내는것으로서 사업년한을 부풀리거나 경력과 직위를 조작하는것이다. 이것은 실력이야 어떻든 “간판우선주의”가 낳은 괴태들이다.    포도아총리의 가짜학벌문제와 한국에서 빈번히 일고있는 명류들의 가짜학위문제는 세계적인 페단이라는것을 시사하고 있지만 외국의 관원들의 가짜학벌조작에 비하면 중국관원들의 수중에 있는 가짜 졸업증. 학위증명서는 자체의 특색이 있는바 우선 규모가 방대하고 수량이 많은것이며 개별적인 학교와 관원들 사이에 서로의 수요로부터 엄밀하게 교역되는것 등이다.       관원들의 가짜학위문제는 전국성적문제로 승급되고있다. 그러나 이런 “공성”은 류사한 문제에 필연성을 제공할 리유는 없고 더구나 어떤 합리성을 제공할수 없다. 일반적인 현황에서 고찰한다면 관원들의 가짜학위와 보통백성들이 사들이는 가짜학위에는 비교적 큰차별이 있다, 전자에는《가짜이면서도 진짜학위증》이 많고 후자들에는《진짜이면서도 가짜학위》가 많다.    후자는 전자에 비해 위험성이 적지만 지불한 대가는 더 높은데 아무사람이나 내키는대로 얻는것이 아니다. 실제 위해로 말하면 전자가 후자에 비해 그 위해가 더 심각하다. 가짜이면서도 진짜학위란 졸업증은 진짜이지만 상응한 지식함량가 학업경력이 없는것을 말한다.     대소관원들은 일정한 자원우세를 가지고있기에 학위증을 가지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관원이 졸업증제조행렬에 가입하는 위해성은 그들의 수중에 쥐고있는 진가가 문제인것이 아니라 이런 악렬한 행위가 사회에 심각한 해를 끼치는것이다. 대학은 학문의 최고전당이지만 절개를 잃고 관원들에게 가짜대군이 행진하도록 푸른등을 켜준다. 관원들의 가짜 학력은 관원들에게 문책해야 하지만 학교에도 죄가있다. 우리도 미·유럽과같이 과거보다는 현재를 중시하고 학력보다 능력을 존중하며 감투보다 기능을 보람으로 여기는 생활의식이 확산되여야 한다. 그렇게 될때만이 비로소 과거를 세탁하려는 가짜학력소동이 자연히 사라지게 될것이다.                                   2007 년 9 월 10 일
219    우상숭배 댓글:  조회:7882  추천:1  2013-07-17
                                       우상숭배                                           최 균 선       지금도 중학생들속에 우상숭배가 풍조로 되고있는지 모르겠지만 한때는 참으로 우상이 없다는것은 시대락오자이거나 어딘가 부족한것으로 치부될 정도였다. 우상이 뭐길래 그렇게 우상열이 청소년들의 마음을 휩쓸었는지?     우상이란 단어의 어원은 무엇인지 모르긴 하지만 전하는데 의하면 우상은 자초에 그리 장엄하게 시작된것은 아니였다. 구중대궐에 깊이 들어앉아계시는 황제를 눈앞에서 공경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모습을 속으로 그리며 룡안을 눈에 띄이게 만들고는 열성에겨워 마치 자리에 있는것처럼 아부했다. 그리고 장인의 야심은 임금을 알지못하는 사람들에게까지 우상숭배를 퍼뜨리도록 부추겼다.     그는 아마도 통치자의 환심을 사려고 솜씨를 다 부려서 그 닮은모습을 더 아름답게 꾸몄을것이다. 천하의 추남인 주원장의 초상화그리기 과정에서 있었던 살생극이 오늘까지 전해지고있듯이 말이다. 주원장의 초상화이야기가 그 전형으로 될수 있다. 이처럼 화공의 솜씨에 의해 가미되고 조작된 초상화의 매력에 이끌려 얼마전까지 인간으로 공경하던자를 숭배의 대상으로 여겼다. 이것이 권력의 노예가 된 사람들이 황제의 초상을 돌과 나무조각에 붙여서 극진히 모시게된 숭배의 력사이다    세상만사는 모두 뒤엉켜있다. 인간을 신격화하여 숭배하는것은 일종 사회악의 시작이고 원인이며 끝이다. 미신숭배자들은 미친듯이 열광하며 거짓예언을 하고 거리낌없이 마구 거짓조작을 한다. 생명없는 우상들을 신뢰하기에 해를 입으리라고는 생각하지도 않는다. 한 사람의 진정한 인격력량은 뭇사람들의 칭찬앞에서 어떻게 처사하는가에서도 뚜렷하게 현연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귀맛좋은 말에만 혹하고 칭찬에 웃고 귀에 거슬리는 말에 곧잘 얼굴빛이 변한다. 보통사람은 그렇더라도 지고무상의 위정자라면 귀에 거슬리는 말의 저변에 깔린 충정을 읽을줄 알고 마음속에 거슬리는 일이 있어도 사심으로 보복하지 말아야 덕정을 베풀수 있으며 위인으로서의 수행에 최상의 숫돌이 될것인데도 말이다. 가령 매사에. 언제어디서나 귀를 기쁘게 하고 마음을 둥둥 뜨게하기만 바란다면 빛나는 일생도 나중에 패필로 끝난다는 사실을 력사는 여러번 증명해 보였다.     이런 고사가 있다. 한무제는 많은 절을짓고 불상을 세웠다. 그는 천하에서 가장 큰공덕을 쌓았다고 생각하고 달마대사께 자랑하였다. 그는 자신만만하게《대사! 내가 100개가 넘는 절과불상을 세웠으니 내공덕이 얼마나 될지 어디한번 평가해 보시 오.”라고 큰소리로 호령하니 달마대사는 지엄한 황제의 질문이였지만 소신대로 《공덕은 무(无)》라고 당돌하게 대답하였다고 한다. 한무제는 개인숭배를 조장하려 하였고 달마대사는 아첨을 개여올리지않고 공덕을 자랑하면 곧 바로 그 공덕이 령점으로 된다는 치세의 도리를 깨우쳐주었다.    이 세상에 절대적이란 없다. 절대세계는 상대세계이다. 형상에서 비형상을 볼줄알고 생에서 죽음을 볼줄알고 낮속에서 밤의 빛을 볼줄알아야 한다. 강렬한 빛의 가장 가까운곳에 암흑이 있다. 진리에서 한걸음 더 나가면 오유라는 명언처럼 결국은 극과 극은 한장의 종이장 차이다.     우상숭배란 처음부터 있었던것도 아니고 영원히 있을것도 아니다. 우상들은 인간의 허영때문에 세상에 들어왔기에 얼마못가 끝장나게 되여있다. 봉건시대에는 백성들이 우매해서 그러했다면 문명의 20세기에 우리도 개인숭배 열광속에 리성을 잃어 버리고 인간을 신격화하면서 광란극을 연출했었다. 그때는 이런 문제를 두고 입한번 뻥긋했다가는 구족을 멸할죄를 짓게되였다. 지나간 력사이야기를 담소속에 할수 있게된 오늘날 그때 일들을 생각하면 정말 곤혹스러운 일들이 많고많았다.    일터러 나갈때 붉은기와 함께 위인의 초상화를 널판지같은데 붙여놓고 아래에 손잡이를 길게 만들어 일밭에 갈때나 투쟁대회에 나갈때나 신주모시듯 들고나가야 했는데 논에 가면 논두렁에 꽂아놓고 덕이에 가면 밭머리에 꽂아놓았다. 미풍에 펄럭 이는 붉은기는 밭고랑타고 세계를 내다보며 농사짓는다는 숭엄한 느낌을 주었지만 초상화만은 홀대하는것 같아서 속으로 안스러워했다면 나는 충직한 전사였던가?      이른 봄, 어느 하루 생산대 우사앞에서 두엄을 끄게되였는데 걸데도없고 기대여 놓을데도 방정치 않아서 두엄무지 한폭판에 꽂아놓은 반신상앞에서“청시”하면서 충성을 다질때 어찌 그렇게도 외로워보이고 곤혹스러워 보이던지 혼자 왼고개를 저었던 일이 기억에 생생하다. 내가 남달리 충성심이 돈독했다거나 유달리 숭배심에 겨워서가 아니였다. 내처지에서는 각별히 근신한 태도를 지어보여야 했던 그럴만한 사연이 있었다. 자라에게 물린놈 솥뚜껑을 보고도 놀란다고 위인의 초상화를 마주하면 자기도 모르게 긴장해지면서 정면으로 바라보기도 송구스러워했다.     한창 충성의 표지로 사람마다 가슴에 달고다니던 휘장도 처음엔 달고다닐 자격이 없다가 후에 정치기후가 느슨해지고 충성의 범위를 확대하면서 나도 달고다닐수 있었다. 그러나 분실하거나 훼손하기라도 한다면 더구나 목이 날아날 일이라 몹시 저어하면서도 달지 않을수 없어 조마조마했더랬다. 시간은 모든것을 색바래게 한다. 그렇게 뜨겁게 달아오르던 초상화열도 차차 흐지부지해지다가 대동란이 거의 끝날 무렵에는 충성극이 막을 내리고 여기저기에 위인의 마크가 나딩굴게 되였다.    심지어 어느 개인집 두엄을 끄다가도 드문히 발견될 정도였다. 남들은 어떻게 생각했는지 몰라도 숭배가 극도에 달하면서 오히려 박대가 자행된것이라는 위험천만한 생각을 하지않을수 없었다. 하여 남들이 대수롭지 않게 여길때 나는 마크가 보이 는 족족 모으다보니 자연스레 위인마크 수집가로 되였다. 나중에 헤여보니 크고작은 휘장들이 몇십개나 되였다. 결코 늦깎이 충성전사로 되려는것이 아니라 그저  보편적인 인간적심리로 그랬을뿐이다.    숭배심리는 인간의 정감사전에 정당하게 올라있은것으로 인간상정이기도하다. 그러나 그 숭배가 도를넘어 우상숭배로 되는것은 무지가 아니면 맹종, 굴종의 산물이다. 피숭배는 강자의 전매품이고 숭배심리는 약자들의 공통한 심리로서 별로 자랑스러운일은 아니다. 현대중학생들이 명배우나 명가수들에 대한 숭배는 우리 그 시대의 우상화와는 비길바기 아니지만 그 열도는 확실히 초월적이고 열광적이다.    각자 누구를 어떻게 숭배하든, 각자의 마음이, 의식이 어디로 흐르든 그의 자유이니 콩이야 팥이야 할것은 못되지만도 이 세상에서 진정 별처럼 우러르게 되는 사람들이 어디 명배우나 가수들뿐이랴, 그런데 인류문명의 앞길을 비춘 위대하고 찬란한 별들은 저 먼 하늘에 항성들처럼 우리에게서 멀리 떨어져있다. 자기민족의 영웅들을 숭배할줄 모르는 민족은 희망이 없는 민족이다.     지고한 지성을 마음으로 숭배하는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하다면 어디서 그런 숭배할만한 지성을 만날수 있을가. 지성적숭배는 오로지 자아가 탄복하는, 내자아가 숭배하는, 내자아가 사랑하는 지성을 숭배하는것은 일종 정신경지이기도 하다. 그 위대한 존재, 그 숭배의 대상을 그리워하다보면, 그 하늘의 태양을 우러러 보면, 그 존재가 나를 밝음에로 인도한다. 그리고 그 존재가 내마음안에서 빛나는 금탑으로 세워진다. 우리가 지성적인 그 언덕에 서서 그 금탑을 바라보며 자기를 성찰하면 숭고한 숭배심리가 되는것이다.                                                              2005 년 5. 8 일
218    걸어온 길, 가야할 길 댓글:  조회:8348  추천:1  2013-07-17
                                     걸어온 길, 가야할 길                                               최 균 선       길이란 무어냐? 어떤 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할수 있도록 땅위에 낸 일정한 너비의 공간을 길이라고 해석하고있다. 길ㅡ하면 직접적의미와 파생의미로 된 뜻이담긴 길이 무수하다. 크게 나누면 륙로, 하늘길, 바다길로 나눌수 있는데 오솔길, 큰길, 잿길, 외딴길, 벼룻길, 황토길, 서덜길, 두메길…두렁길, 고샅길, 사잇길, 뒤안길, 자드락길, 등굽이길, 굽이길…에움길, 지름길, 두름길… 발에익은, 늘 걷던듯이 걷는 건늠길이 있고 자칫 엎어질듯한 가파로운 비탈길, 소잔등처럼 밋밋한 언덕길, 가시가 총총하여 나아갈 틈이없는 푸서리길, 비내리는 광야의 길, 눈보라길…추상적의미로 좋은길, 나쁜길 등 이루다 렬거할수 없으나 아무튼 길은 갈수 있고 올수 있으면 다 길이다. 그러나 말이 아니면 듣지 말라고 했듯이 길이 아니면 가지고 말라는 조상님들의 가르침만은 잊지 말아야 할것이다.     길을 내기전에는 사람의 발길이 닿을수 있는 공간이면 다 길이였다. 그래서 누군가가 첫발자국을 내면 길이라 이름했다. 길은 자초에 어떤 목적지로 가기 위해 냈지만 또한 되돌아오기 위해서도 닦아졌다고도 할수 있겠다. 갈래갈래 갈린길 로마로 통한다는 말은 그만큼 사통팔달의 의미도 있지만 자유롭게 오고가기 위해 낸 길에 나중엔 우리 스스로 얽매이고말았다.     선사들은 묻는다.《어디로 갈것입니까? 어디서 오십니까?》그러나 대답할수 있는 자들은 흔치 않았다. 인간은 자기들이 만든 길우에서 방황하게 되여있고 또 그래서 대개 안내자가 있기를 소망한다. 선인들은 지혜로운자의 길은 흉금속에 있고 어리석은 자의 길은 마음밖에 있다는 고훈을 남기였다.     촌사람들은 자기가 가보지 못한 곳엔 길이 없으려니 생각하고 어디로 걸어갔던지 돌고돌아 길은 오직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만은 확실하였다. 그래서 농촌에서는 남이 걷지못한 길, 길아닌 길을 걸어본 사람이 잘난사람이 된다. 먼 덕이밭으로 오가며 풀속을 걷는것은 공연한 수고로움이다. 이미 굳어진 수레길을 걸으면서 편리함에만 자족한다. 그러나 개척의 희열이 발밑에 깔린다는것은 모른다. 한평생 고향길에서만 맴돌다가 세상을 하직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다른 길이 열릴 공간이 없다.     관습처럼 아는것만 알뿐이였던 우리는 생눈길을 걸을때도 앞사람의 발자국을 딛고싶어한다. 그리고 그냥 다니던길만 다니고 갈림길 많아 헛갈리는 초행길보다 사람들이 걸어서낸 길, 그것도 앞에서 걸어가는 대렬의 뒤꽁무니를 따르는데 습관되였다. 하지만 쫓기는자는 언제나 긴장을 놓을수 없다는것을 모르고 순리를 어기는일은 아시당초 생각도 아니한다.    사회라는 이 크낙한 공간에도 보이지 않으나 분명 존재하는 길이 갈래갈래 뻗어있다. 하지만 오래동안 우리들의 리념속에는 크게 두갈래 길이 갈라져있었다. 이른바 최고의 경지라는 사회주의길과 멸망에 이르는 자본주의길이였다, 무조건 한길을 따르 면 더없이 영광스러운 혁명의 길이요 반대의 길을 가려한다면 치욕스러운 반동의 길, 멸문지화의 길이였다.《그길로는 갈수 없다》는 소설처럼 길은 하나로 정해졌었다.     자본주의길이란 무엇인지 똑똑히 알지 못하면서도 맹종했다는것을 깨닫게 된것은 많은 댓가를 치르며 세월이 많이도 흐른뒤였다. 그때 오직 하나의 리념을 안고살아야 했던 우리 마음속에 틀고앉은것은 순복공구론이였다. 순응이 불원이면 타도였다. 그렇듯 격정을 불러일으키면서도 때때로 사이비와 곤혹을 안겨주던 영광의 길, 조류의 꼬리를 물고 맹종하는것이 아닌지를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다. 좌충우돌이면 어떠냐고 도전적으로 나올 선구자적인 이단자는 꿈에서도 태여날수 없었다.     비겁과 맹동에 대해 조소할줄아는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채찍이 몰아가는대로 몰켜가는 양떼처럼 순종에 길들여졌다. 그것이 우리들 삶의 표징이였고 살아있다는 증거였지만 현상에 안주하거나 일신을 상하지 않으려고 중용지도에 매달린 삶이였다. 병대신 병과 비슷한것, 아픔대신 아픔 비슷한것에서 위안받으며 자기를 마비시켰던 우리들. 그것이 역시 그 시절에 존재하는 생존기술이였는지도 모른다.     언젠가는 잘살게 되겠지하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놀라운 인내를 길러왔던것인가? 밤길을 끝까지 걷는자만이 제일먼저 새벽을 맞는다고 하지만 우리는 출구가 묘망한 미궁같은 리념의 턴넬을 걸었기에 모두가 각오의 지각생이였다고 해야하리라. 이런 반추는 스스로 무안하고 민감하고 위험스러운 회상일수도 있다. 조심스러운 회심의 미소로 떠올릴수도 없는 맹랑한 세월은 돌이킬때마다 우리의 속을 긁어놓는다.     도(道)란 곧 길이다. 하늘에는 천도가 있고 땅에는 땅의 도가 있으며 사람에게는 사람의 도가 있는데 천도와 지도는 우주의 섭리이나 인도만은 과거와 현재의 차이도 있고 동서의 차이도 있고 변화가 있다고 어떤 스님이 설교했다. 인생길이란 본래 고 달프고 힘든 가시밭길이라고 하지만 우리가 걸어온 인생려정은 왜 그리도 험난했고 한과 눈물로 얼룩져야 했는지? 찢어지게도 가난한 이 땅에 태여나 새 순같은 청초한 나이에 숙명에 매달려야 했는지? 그것은 우리 세대들의 정한일것이다.     마침내 모든것은 변한다는 진리가 상전벽해를 불러왔을 때 꿈결에도 얼비치지 못했던 리념의“초한계선”을 넘어 제좋을대로 걸을수 있는 광명한 대로가 열리였다. 처음엔 오리무중에 빠진듯하였다. 그러나 유일한 영광의 그길도 력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절대불가이던 “치욕” 의 길을 따라 치부의 꿈산으로 치달아오르게 되였으니 력사가 절대권력과 롱담한것인가?     우리가 이미 걸어온 길, 지금 걷고있는 길은 무슨 길인가?  이제 남은것은 잘 살수 있는 길만을 열심히 걸을일로서 불문률이다. 두갈래로선투쟁은 식후한담거리도 아니다.“그길로 갈수 없다”는 호매롭던 슬로건도,“우리는 큰길로 걸어가네. 의기 분발하고 투지앙양하여라”던 노래도 다 바람처럼 스쳐가버린 시대의 선률이였던가?     옛길이 세월따라 없어지고 새로 닦는것이 길이다. 모로가도 서울만 가라했다. 검은고양이든 흰고양이든 쥐를 잘 잡는 고양이가 좋은 고양이가 된 세상, 사람마다 돈나오는 길이면 칼산도 불바다에 뛰여든다. 여기에는 수단이나 방법을 가리지않고 목적한바를 이루면 불문에 부친다는 욕망이 담겨있지만 왈가왈부할 사람도 없다.    형이상학이든 “형이하”이든 력사의 흔적으로 남아있지만 우리들의 발자국은 기억속에서 사라진 오늘, 이제 걸어갈길이 요긴하다. 사회정영은 소수이고 높은곳이라해도 역시 사람이 살아가는 곳이다. 인생길은 한 시점에서 다른 한 시점에로 부단히 전환하는 연장선이다. 그 시점을 향해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가고 지나오고 장차 지나갈 수많은 사람, 지나올 수많은 사람들로 길은 어제로부터 오늘에 이르고 다시 래일에로 뻗어갈뿐이다. 지쳐도 그냥 걷고 간이역에 머물고 다시 떠나는 길일뿐이다.     어느 길로 가든 자기 자유이다. 길은 자초에 방황을 앞세우고 두발로 내였다. 아무도 당신의 다리를 대신해줄 사람이 없다. 걷고싶으면 그냥 걸어라. 그러나 자족의 동산을 지나서 자멸의 늪으로는 가지는 마시라. 아직도 길이 아니면 가지말라는 조상들의 유훈은 실효성이 있다. 가지말아야 할 길이라면 돌아서야 함에도 요행을 따라가다가 낭떠러지도 보지 못하는것은 행보는 무모한 행보이다. 남새스러운 걸음 새가 풍조가 된 시대라도 탐욕의 사잇길로는 용왕매진하지 마시라.                                                     2009 년 4 월 20 일
217    나는 계곡에서 보노라 댓글:  조회:7669  추천:8  2013-07-12
                             나는 계곡에서 보노라                                           최 균 선      산이라면 십상팔구 정상에 올라야 하는것으로 인지되여있다. 하긴 정상에 오르면 산하ㅡ천리를 굽어보며“절승경개는 험한봉에 있어…”정복감에 호연지기가 얹혀져서일것이다. 옳거니, 산정에는 바람결 스쳐가고 발아래 구름이 흘러가고…그러나 절승경개 험한봉에 있다는 말을 인용할수는 있되 그속에 담은뜻은 시구의 임자만의것이니 역시 록록지배에게는 진정한 호연지기가 못되리라.       아무튼 남들이 산정에 오르느라 허위허위 진땀을 훔칠때 나는 계곡에서 여유작작하게 산속을 느껴보기를 더 좋아한다. 산이 꼭 높아야 할 리유도 없는것처럼 산속은 청정해서 좋고 그 산에 고유한 자연의 냄새만 있으면 좋다. 물도 꼭 격류여야 만족된다는 법도없어 그저 맑고 고요한 흐름을 즐기면 족한것이다. 사람들의 발길이 잘 닿지않은 산곡간에 혼자앉아서 각양의 기암괴석들을 쳐다보고 굽이굽이 좁은 계곡을 빠져나가느라 분주한 청계천 바위틈에 뿌리박고 간거하게 자랐건만 하늘을 찌를듯 오연한 로송의 자태에 경탄하고 무명초와 산꽃들에 넋을 흘린다….     물가의 펑퍼짐한 둘위에 큰대자로 누워 푸른하늘에 유유한 흰구름을 바라보고 산새들의 지저귐소리에 산속의 고독을 달래보며…산꼭대기에서 그저 굽어보야 하는 풍경을 가까이 마주보는것도 별미다. 쳐다보는것과 굽어보는것은 초점이 달라서 감수도 다른것인가? 꾸밈이없고 조각하지않고 서로 조화를 이룬 모습을, 오염되지 않은 담담한 자연의 냄새는 여기 계곡에 있음을 다시 한번 느껴본다.     낮은 곳에서 쳐다보니 산이높고 하늘이 더 높은줄 알겠고 땅이 두꺼운것을 더욱 실감하게 된다. 그런 질감속에서 부지불식간에 천지자연에 대한 경이로움과 경의로움이 가슴그들먹이 고인다. 천지합일의 심오한 뜻을 새기며 스스로 한없이 왜소함을 다시다시 가슴에 간직하게 된다.     인류는 자연에서 낳건만 자연을 떠나 도시문명에 찌들고 나서야 자연에의“회귀” 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산정으로, 산정으로 흐르고있다. 떠들썩하고 뒤엉켜 붐비는 도시에서는 자연의 맛을 볼수 없게 된 현시점에서 저저히 산정에 오르려 하다보니 역시 산은 내외로 문명의 혜택을 단단히 받고있지만 여기, 깊고 으슥한 계곡에는 그래도 청산특유의 냄새와 멋이 아직 얼마간은 남아있어 더구나 찾고싶어진다.     그대 야초의 싱긋한 냄새를 맡으시려는가? 편리하게 오르라고 닦은 콩크리트길과 기름을 잔뜩 먹인 널층계에서는 맛볼수 없다. 대지의 젖줄기로 흐르는 록수청산 맑은물은 계곡에서만 흐른다. 산은 각양각색의 인조가설물이 지천이지만 아직 계곡까지는 손을 대지못하고 있기에 산정기는 골령에 남아있음을 느낄수 있더라.     등산과 인생을 비교해본다. 인생길에도 오르는 길밖에 없는가? 혹자는 인생이란 높고 험한산을 오르는것과 같다한다. 우리가 사는 모습을 보면 어느한 의미에서는 맞아떨어는것 같다. 등산해도 남이 오르지못한 천하제일봉을 제일먼저 올라 자기가 왕림했음을 새기고 싶어하고 청운에 뜻도 최고에 오를수 있다면 마다하지 않을 욕심들이다. 갑부에도 앞자리를 차지하고 높은 명예욕의 한꼭대기에 오르고…그러나 사회지위와 인생의 높은경지는 벌써 다른 개념이다.     산에 오르려면 숨이차고 힘이 빠지고 피곤하다. 인생도 왜 이리 힘들가? 따지고 보면 자꾸자꾸 오르려고 아득바득하기때문인듯싶다. 사람은 한평생 희망의 고봉에서만 살수는 없다. 절대대부분 사람들이 많은 경우 살기위해 살아간다고 해야 할것이다. 산정에서든, 권좌에서든 높은곳에서 굽어보며 한소리하면 자족감으로 끝나지만 올려다보면 어떤 바램이 생기게 한다. 바라본다는것은 일종 정신자세로서 우리네 생명으로 하여금 전률하게 할것이다.     영국의 시인 허버트는 말한다. 산을 칭찬하되 낮게 살고 바다를 찬미하되 육지에서 살라고, 사람들은 누구나 정상을 향해 오르고 또 오르려 하지만 인생이란 골짜기와 언덕에서 사는 삶이 절대다수이고 또 그렇게 지낼수밖에 없게 되여있다. 산에 오르는 맛과 향상하는 인생의 맛이 비슷한지 어떤지 나는 모른다. 정계의 최고봉에 올라서도 그냥 그자리를 독차지하고 싶어할것다. 그러지 않으면 봉건제왕들이 늙어죽을때까지 왕좌에 연연하여 구린내나는 로망까지 부렸겠는가?     현대인들도 별로 다를게 없다. 그런 무지경의 권력욕을 말리느라고 외국에서는 총통이나 대통령을 민주선거하고 임기제도를 만들었는데 결국 물리적으로 억제시킨것뿐 욕망자체를 두절한것은 아니다. 아마 그냥 해먹으라면 그만두겠다는 사람이 거의 없을게다. 그래서 련임제도 내오고 저저히 재당선되려고 기를 빡빡 쓰고…     그러나 세상엔 깨지않는 꿈이란 없고 결국 한바탕 봄꿈이 되고만다. 송조때의 조금시(趙今時)의 "후청록(候鯖錄)"에 소동파에 대한 고사가 있다. 소동파(蘇東坡)가 창화에 있을 때 하루는 표주박 달랑차고 여유작작하게 밭길을 가는데 일흔이 넘을 어떤 로파가 개탄했다.“옳거니! 지난날 부귀영화도 한낱 일장춘몽(一場春夢)라….”(東坡老人在昌化,嘗負大瓢行歌於田間,有老婦年七十,謂坡雲:「內翰昔日富貴,一場春夢。」坡然之。侯鯖錄/卷第七)     천하에 문장가로 이름을 떨쳤던 소동파였건만 늙어 초라한 모습으로 휘청이는 모습에서 인생의 불가피한 귀속을 절감했을것이리라. 그로써 로파는 (春夢)로파라는 미칭을 얻게 되고...이와 류사한 얘기가 더러있다.《남가태수전(南柯太守傳)》“남가일몽(南柯一夢)”,《침중기(枕中記)》“한단지몽(한鄲之夢)”등. 이야기는 조금 다르게 엮어졌지만 아득바득 엮던 상승기(上升记)는 얼마나 허황하며 한동안 누린 부귀영화는 또 얼마나 덧없는가에 귀결된다.     인생의 가치추구는 대체로 욕망이라는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채 현대인에 이른셈이다. 인생의 의미는 기실 각자 마음속에 근사한 해답이 있을뿐이다. 한것은 본능과 욕망으로 삶의 방식을 해석하는데 가장 진솔한 접근법이기때문이다. 이러한 접근법은 삶의 의미를 개체의 내적가치관으로만 해석할 수밖에 또 무엇이 있을가?     인생의 의미는 한가지만이 아니다. 사전식으로 말하면 사람이 세상에서 사는것도 인생이요 살아있는 시간도 인생이요 살아온 경험, 삶, 생애, 일생도 의미한다. 삶에 대한 견해나 삶의 의미의 리해방식을 인생관이라 한다. 즉 개인이 가지고있는 개념 이나 철학을 바탕으로 세상을 대하여 나아가는 생각의 갈림길중의 하나라고 할가,     산을 오르다와 산속에 들어가다는 그저 표현의 차이만이 아니라 풍물을 보는 시점이 달라지고 느끼는바도 다르다는 내함도 예시되여있다. 산도 산골짜기, 산기슭, 산허리, 산꼭대기 등 그 이미지가 각각으로 정체를 이루고있다. 산이 꼭 높아야 할 리 유가 없듯이 인생도 꼭 높이살아야 한다는 법도 없다. 포도는 시여서 먹지 못한다고 자위하던 여우의 심사로 하는 말은 아니여라. 결코!     누구에게나 인생은 미완성작이다. 한생이 아무리 화려해도 감탄표는 별로 없고 유감이란 미성(尾声)이 있을뿐이요 그냥 점층식의 시작만 있을뿐이니 절대적인 절정이란 없는것이다. 인생은 쓰다가 채쓰지 못한 편지같기도 하고 그리다만 그림일수도 있고 새기다가만 조각품일수도 있듯이 무릇 인생마당엔 어떠한 완성품이란 없는법이 아니던가? 그런데도 그냥 높은곳에만 오르려 한다면 얼마나 허무한 추구인가?                                                        2012년 7월 23일 ㅡ 흑룡강신문 2013년 5월 4 일
216    내손으로 하수구를 고치다 댓글:  조회:9702  추천:0  2013-07-10
                          내손으로 하수구를 고치다                                         최 균 선       몇해간 외지에가 있다가 집에 돌아와보니 워낙 지은지 오랜 아빠트주위환경은 더구나 불성모양이였다. 새로 난방도관에다 수도관을 묻느라 파헤친후 대수간 메워버리고 그냥 내버려두다보니 마치 폭격맞은 경상이였다. 더군다나 눈에 딱 걸리는것은 무너진채 몇해지났을 하수구였다. 듣자니 아래층 한집에서 식당을 하느라고 단독배수관을 내면서 마사놓았는데 후에 이사가버리고 자동차바퀴에 하수도뚜껑이 거의 떨어져들어갈듯 위태위태하였다. 그바람에 오물배수가 잘되지 않는것이였다.     오물을 퍼내가고 무너진것을 밑으로부터 쌓아올리자면 3,500원을 내야한다고 하는바람에 아무도 수리할 엄두를 내지못했단다. 돈있는 교원들은 거개 새 집을 사고 나가서 두개단원 28호가구들중에서 로약병자 원주민이 네댓집밖에 남지않은데다가 세를 든 몇집외 거개 비여있었다. 원주민에서 남자끄트머리란 나혼자이다.     연변에 돌아왔던 해에 하수도가 완전히 메여서 민화사회구역의 사업인원과 시건설국, 수리국 등 해당기관까지 출동하였지만 해결을 보지못하였다. 지금 살고있는 아홉집(세집을 포함하여)에서 겨우 돈을 거두어 두어번 쳐냈는데 금년 4월부터 또 문제가 생겼다. 하수구에 분변이 차고차서 막 넘쳐나기시작했다. 하여 또 사회구역 사무실에 찾아가서 징징거리렸다.…     …위생차가 와서 주관도를 좀 소통시킨후 하수도뚜껑을 열어보니 오수는 많이 내려갔지만 안이 말이 아니였다. 무너져들어간 세멘트덩어리에 벽돌쪼각에 오물이 엉켜서 하수도관이 보이지 않았다. 그동안 오수가 빠져나가는게 용하였다. 누런 분변 이 그대로 악취를 풍겼지만 그런걸 마다할 처지가 못되였다. 고물시장에서 20원주고 사온 네가닥쇠스랑으로 보물을 건져올리듯 조심스레 오물을 건져냈다. 건져낸 잡동사니들이 밀차한대에 실을만큼이 많았다. 혼자 낑낑거려도 내려와 구경할 사람도 없는 “나의” 아빠트여서 고군분투 “성전”을 하는 판이다.     무너진곳으로부터 다시 벽돌을 쌓아올릴만큼 안이 정리되였다. 제손으로 해내려고 그동안 길가에 벽돌이 보이면 벽돌을, 쓰다버린 모래가 보이면 모래를 날라들였기에 내돈으로 세멘트만 사면 되였다. 팔을걷고 함께 해줄사람도 없으니 울며겨자먹기이다. 제자랑같지만 젊어서 농민으로 산전수전 겪으며 못해본일이 거의 없었는지라 웬간한 궂은일은 겁내지 않는다. 나이가 웬쑤지만 로친을 조수로 시작할판이다. 한단원에 사는 고래희가 넘은 할머니 세분이 내다보다못해 내려와서 물도 길어내오 고 벽돌도 날라주고 세멘을 이기는 일도 거들어주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혼자일도 아닌데 돈을 거두어서 할일이지 선생출신으로서 해낼수 있겠는가고 반신반의하였다. 누가 뭐라든 내갈길을 가리라. 시작이 절반이라고 제집부뚜막을 쌓듯이 마음먹고 쌓아올리니 안될것도 없었다. 처음 막연하게 생각하였다는 할머니들이 좋아서 손벽까지쳤다. 점심도 담장그늘밑에서 대강 에때우고 일손을 재우쳤다.     오후가 이슥해서 마침내 다 쌓아올리고 하수도뚜껑틀을 올려놓은다음 잘 발라놓으니 하수구가 제모습을 찾았다. 아픈허리를 두드리면서도 일손을 거든 할머니들이 하루새 3000원을 번셈이라고 좋아하셨다. 즐거워하는 모습들이 고마웠다.…역시 더불어 사는 세상이다. 건져낸 오물을 처리하고 깨끗이 쓸어놓기까지 하니 해가 서산에 기울었다. 잔뜩이나 부실한 허리가 끊어지듯하였고 백리길을 단숨에 걸은듯 두다리가 뻣뻣했지만 로력의 보람은 넘쳤다. 일이란 마음먹기에 달린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눈에 안겨오는 나의 “걸작” 이 스스로도 대견스럽다.                               2013년 6월 17일      
215    感 谢 信 (外2篇) 댓글:  조회:10917  추천:0  2013-07-10
感 谢 信 尊敬的水利局各位领导: 你们好!我们延吉市参花街民和社区康宁胡同居民群众、向你们致以崇高的敬礼, 特别衷心地向金松哲同志表示深深的感谢。 感谢你们立党为公,执政为民;感谢你们以民为本,为民作主;感谢贵局的金松哲同志,为人民群众办好事、办实事的工作态度和大公无私精神。     今年6月17日, 金松哲同志接到居民的电话后,积极响应,第一时间来到现场,了解得知,原来今年入春以来,康华委6.7.22.24组的排污主管道出现堵塞漫溢现象,严重影响到了居民们的日常生活。 虽然社区也多次找到相关部门前来排查,但始终无法解决,由于这几栋楼都是老楼空房较多,并且维修主管道的费用比较大,虽然社区多次帮助沟通收费,还是相差甚远,看着排污道的脏水越积越多, 居民只好通过延吉市党员干部联系群众卡联系了水利局的相关领导,金松哲同志了解了居民的实际困难后,当场打开自己的钱包拿出1000元交给社区领导,说是自己的一点诚意,希望赶快解决居民们的实际困难。 小区的居民们知道这种事实之后无不为之感动,齐声叫 好干部,这不是仅仅1000块的问题,不少群众称赞说:“人民的好政府才有人民的好公仆,人民的好公仆体现了人民的好政府”。 居民群众一致要求给市水利局领导写表扬信,对尽职尽责、为民服务、为居民做出积极贡献的金松哲同志给予表彰和奖励,以弘扬这种想人民之所想, 急人民之所急的思想作风发扬光大。    最后,再次让我们向贵局领导和金松哲同志表示深深的感谢!                       延吉市参花街民和社区康宁胡同全体居民 2013年6月21日                          表  扬  信        尊敬的街道领导:     你们好!                 我们是民和社区康华委居民,今天,我们想以写表扬信的方式对民和社区城建主任表达我们居民最为真挚的感激之情。 也希望街道领导们对张金华主任给予表扬,因为她让我们感觉到了社区大家庭的温暖。 张金华主任在自己平凡的岗位上兢兢业业、勤勤恳恳的为居民服务,真正关心居民的具体困难,积极为居民做出贡献。 我们居民们都称赞张金华主任尽心尽力为老百姓舍身处地的办实事。 特别感谢社区为我们解决了这几年始终困扰我们的一大难题—下水道疏通问题。     今年4月份开始,张金华主任为解决这个问题费尽心血,一直奔跑联系有关部门。 终于,6月24日解决了居民头疼难题,正好应验了那句“具体行动能判定一个好干部的工作作风”。 和谐社区心系几万户,温馨民居情溢千家,我们为有这样的好社区而感到由衷的幸运!    谢谢民和社区长期以来给予我们体贴入微的关怀、你们是真正鞠躬尽瘁为民造福的人! 借此机会,我们感谢新兴街道有这么一批优秀的队伍感到很自豪, 千言万语都无法表达我们对新兴街道及民和社区的感激之情,我们全体居民祝福你们,好人一生幸福!                                 民和社区康华委居民                                 2013年6月26日                                                  表  扬  信          尊敬的市督察局领导:        你们好!        今天,我们怀着诚挚的谢意向新兴街道民生服务队勇于担当奋战在疏通下水道一线的 服务队王立永队长为首的几位同志以及新兴街道民和社区工作人员。        我们是民和社区康华委6,7,22,24组居民,我们所住的楼房都是老楼,下水道问题是我们多年来的一个大难题, 有一定程度损坏或堵塞,隔半年就出问题,极其影响我们的正常生活。民和社区的工作人员每次都组织收费,帮我们解决, 直到今年问题变的严重,社区工作人员协调多方想解决问题,又联系新兴街道民生服务队帮忙解决。       服务队员们不顾炎热,辛辛苦苦,一锹一锹地挖寻,王队长和刘班长一边扫通一边指挥挖寻主管道堵住点, 经过两天奋战堵住点终于被找到时已经长4米,宽1米,深度2米多了。开挖阴沟、疏通下水道,这些脏活干起来很劳累, 但是为住户解决困难,他们依然坚持到底。        疏通下水道是一项苦脏累险的工作,但是,他们始终保持积极的人生态度,十分珍惜自己从事的事业, 专心致力于自己从事的工作,千方百计地将工作做好,乐于奉献的精神。       居民感激他们,无法用语言表示感谢,只能用以此,写表扬信,表达我们居民由衷的谢意。 我们新兴街道服务队和民和社区工作人员是多么热心肠的人呀!        再一次向王队长为首几位同志及民和社区工作人员表示感谢!         谢谢!                               新兴街道民和社区康华委居民代表                                       2013年6月26日    
214    현대판 “류문채”들은 아닌가? 댓글:  조회:9384  추천:0  2013-07-06
                             현대판 “류문채”들은 아닌가?                                                      진언         오래전 중학교를 나온 사람들치고 그것이 가상적이고 분식되고 외곡된것이라는 설이 주류를 이루고있지만도 만고의 “악패지주”류문채의 “수조원”이니“물감옥”이니하는“죄악”사를 기억하지 못한 사람들이 별로없을것이고 특히 60나이를 처먹고도 가난한 농가의 젊은녀성들의 젖가슴에 매달려 신선한 젖을 빨아먹었다는 악행에 치를떨지않은 사람들이 없었을것이다.     지금은 그게 진실인지 아닌지가 그리 요긴하지 않다. 그게 진실이였다면 그것이 력사상 가장 가소롭고 가장 슬픈 특급공급제도 설립에 본보기를 세워주었다는 사실이다. 돈과 지위가있어 특수공급대상이 된다는것은 참으로 됴코됴흔일이 아니겠는 가? 수림이 깊으면 벼라별 잡새들이 많다더니만 요즘 광동의 일부 다 큰“아이들”이 모유를“보약”으로 마시고있다는 “남방(南方)도시보”의 보도가 나오면서 대강남북, 장성안팎 신주대지가 시끌벅적하여 사람이 사는 냄새가 한결 짙어가는것같다.     모유중개업자는 "유모의 젖가슴에서 직접 빨거나 이 방법이 불편하면 유축기로 짠 모유를 마실수 있다"고 했다. 고객상당수가 신선한 모유를 공급받으려고 유모를 집으로 데려가기도 한단다. 심수시 공안은 증거확보가 어려워 성범죄여부를 증명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모유가 성인에게 좋은지는 불분명하다. 심수시 제2인민병원은 유모에게 전염성 질환이 있을수 있다고 경고했다.     “젖어미”라는 이 직업은 고대로부터 있었는데 개혁이후 오늘의 상품경제시대에도 다시 재현되는데는 물론 다방면적인 원인이 있는것은 사실이다. 과거에는 대다수 권세있고 돈이 많은자들이 포유기의 젊은녀성들을 고용해 모유를 마시면서 부하고 귀함을 과시하였더랬다. 한편 민간에서도 생모가 신체가 허약해 젖이 안나오거나 젖이 부족할 때 젖이 잘나오는 녀자들을 고용하거나 청해서 아이에게 먹였다.     오늘날 일부 돈많은자들이 젖에미를 두기시작했는데 아이에게 먹여야 할 젖을 남겼다가 자신이 향유하는데 얼핏 들어봐도 황당 그 자체이다. 결국 모유를 먹으려는 자에게 중개하는자나 젖을 공급하는 녀자나 모두 개도 안먹는 그 돈을 위한것이다. 젖을 먹으려는 자는 몸보신에 제비둥지를 먹는것보다 더효용이 있다고 믿어서 기를쓰는것이라 한다. 하긴 일대의 의성(医圣)인 리시진의《본초강목》에도 사람의 젖을 형용하기를 “내즙선가주(乳汁仙家酒)”라고 하였다. 또 “补血、充液、填精、化气、生肌、安神、益智、长筋骨、利关节、壮脾养胃、聪耳明目”등 다종공능을 가지고있다고 했다.     각설하고, 사회의 진보와 더불어 인류는 이미 수천년을 진화하였지만 돈많은 갑부라도 동물은 아니다. 이는 구실여하를 제거하고 분명 변태적인 추구라 말하고싶다. 돈을 벌려는 녀자의 아이와 젖을 쟁탈한다는것은 그 발설부터 비인도적이기때문이다. 이는 엄격한 의미에서 한 어린생명의 생존권을 강탕하는 행위와 다를바없다. 젖먹이 아이가 죽거나말거나 나만좋으면 된다는 극악한 리기주의가 아닌가? 그러지않아도 중국에는 종종 원인으로 젖을 못먹는 유아가 수천수만이 된다고한다.     보도에 의하면 한 젖어미의 월급은 1.5만원인데 돈있는자는 매일 적어도 세번은 젖을먹어야 하고 매한차례 500그람으로 계산하는데 170원좌우라고 한다. 돈많은 자들이 한번에 먹는 젖값은 일반가정의 아이들이 일주일분 우유가루값이라 한다. 젖 어미로 충당되는 녀자들이 도덕의 방선을 무너뜨렸는가? 돈을 위해 자기 아이에게 쏟는 사랑의 단꿀을 돈많은자에게 내주는 행위는 령혼을 파는 행위와 무엇이 다른가? 어른이 유치하게 포유하는 행위는 상업형식이라지만 너무 몰렴치하다.     겉에서 듣건대도 그 감각이 오입하는것과 같더라도 도덕륜리면에서는 어떻게 변명해도 말이 되지않는다. 로신의 “인혈만두”거나 사람의 젖이 미용에 좋다거나 태반이 보신에 제격이라는 인성과는 아무관계도없는 비과학적인 의거들을 너무 미신하더라도 그 고귀한 입술에 인간의 정을 남겨둬야 사람같지 않을가? 전문가들은 모유가 어른들에게는 결코 령단묘약이 아니라고 선언한다. 물론 형식적으로는 젖이나오지 않으면 물매를 안겼다는 류문채처럼 강압성을 띠지않고 자원원칙하에서 하는 일이라지만 이건 매맞는 황개나 볼기를 치는 주유와도 틀리는 일이다.     유모의 젖을 먹겠다고 주둥이를 내미는자나 아이에게 사랑의 정으로 먹어야 할 자기의 사랑의 샘터를 디미는 녀자나 량자 모두 기형적인 수요에 착각하고있는것은 아닌가? 젖을빨고 젖을 짜주는 기이한 풍경에서 우리는 또 한번 사회계층분배의 불 공평을 보게되지 않는가? 녀성의 존엄은 둘째치고 숭고한 모성마저 일종의 소비로 되고있다는것은 인륜의 최저선을 돈으로 망가버린것으로서 결코 정상일수 없다.     로망난 치마바람에 강산을 날려버린건 둘째치고 백성을 도탄에 몰아넣은 만고의 악녀인 자희할망구도 일년내내 사람의 젖을 먹었지만 백년장수하지 못하였다. 많은 경우 자기 생명연장에 너무 집착하는 사람이 더 오래살지 못한 실례들이 많다. 만청의 말대황제 부의는 자기의 자서전《나의 전반생》에서 자기의 유모 왕초씨(王焦氏) 에 대하여 이렇게 쓰고있다.    “…순왕부에서는 나를 위해 요모를 구했던바 20명의 응모자중에서 그가 몸맵시가 단정하고 젖이 걸어서 뽑히게 되였다. …그는 자기 자식을 만나서는 안되며 간 치지 않은 돼지허벅다리를 매일 한그릇씩 먹어야 한다는 등등 가장 굴욕적인 조건을 받아들였다.…그가 나의 유모로 된지 3년째 되던 해에 딸은 영양부족으로하여 죽었다. 순왕부에서는 그의 슬픔을 자아내여 젖의 질에 영향이 미치지 않기 위하여 이 소식을 봉쇄해버렸다.”(료녕인민출판사 상집 124페지) 이 얼마나 잔인한 행각이며 반인도적인 “극악한 전통”인가? 그것을 답습하는것은 민족성의 계승발양인가?     경우는 비록 다를지라도 심수에서 어른이 젖을 마신다는 기문은 몇해전 한 곳에서 벌린“인유안(人乳宴)”처럼 황당하며 녀성의 신체를 리용한 악취미이다. 아무리 상품경제시대라도 인간이 공공연히“상품화”되여진 현상은 사회구조의 어디에 나사가 빠져도 한두개 빠져버린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된다. 물론 단면적으로 본다면 시장경제체제속에 상품교환의 원칙의 체현이고“어른이 사람젖을 마시다”는 확실히 상품교환가치의 실현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인간은 공방형의 기탄없은 횡포에 몇번이나 귀뺨때기를 얻어맞아야 하고 뒤통수에 일격을 당하고 또 당해야 하는가? 지금 류문채가 살아있어 이런 현상을 본다면“늬놈들 없는 사실을 공공연히 꾸며내고 이 어른을 욕보였잖아? 지금 늬들이 하는짓이 나를 곤백번 뺨치고도 남을일이잖아?”하고 제가슴을 칠수 있겠다. 류문채의 개탄이 진실인지가 중요하지않다. 거의 같은현상으로서는 똑같이 황당하며 력사가 번복된다는 착각속에 현대인도 얼마나 더 타락할것인지 궁금하다.     이런 현상은 과연“옳소국(对对国)”에서만 생성될수 있는 인문풍경인가? 사람의 젖을 마시는것이 고귀한 신분의 상징이고 자본축적의 뽐냄이라면 인간적소질로서는 제로라고 할것이다. 돈많은 어르신들이 녀자의 젖을 먹으며 득의양양해 할 때 그것이 사회의 비정을 알리는 경종이라고 생각은 아니하는가? 사람들은 유의무의하게 인간의 존엄과 도덕과 륜리에 대한 관념이 희석되고 대신 돈이 “귀신을 석마를 돌리게 하는” 기관에 넋을 잃게될것이고 이대로 발전한다면 이 땅에 가난한 사람들이 모두 상품으로 륜락될수밖에 없다고 상상한다면 결코 기나라사람의 하늘근심이 아니리라.                                                    2013년 7월 4일
213    머시냐 긍께로 댓글:  조회:9188  추천:4  2013-07-03
                                  머시냐, 긍께로…                                        최 균 선       “머시냐”는 말하는 도중에 어떤 사람이나 사물의 이름이 얼른 떠오르지 않거나 또는 그것을 밝혀 말하기 곤난할 때 하는 삽입어이고“긍께”는 그러니까라는 전라도사투리고“요거이”는 요것이라는 뜻일터이고. 좋은 연변조선말대신 남도사투리를 쓰는것은 괜히 멋부리리거나 제목을 퍼그나 이색적이게 하려는것보다 표술하려는 문제에 련관시키다보니 자연히 이렇게 되였음을 우선 밝혀두는바이다.     긍께로 머시냐, 요거이가 력사의 락엽속에 묻혀버렸던 한 인물에 대한 평가문제인디 그게 뉘꼬하면 오해의 소지가 많은 김유신인기라. 지금까지 한국에는 발해의 대조영, 고구려 연개소문, 광개토토왕, 리순신과 환단고기, 신채호에 관련된 력사서들은 많은데 신라 또는 김유신에 관한 책들은 가물에 콩싹처럼 희소하다고 하느니, 왜냐? 딱히는 모르지만도 아마 그만큼 관심밖의 소외된 력사의 잔류라는 분위기에 따라 백안시된 인물이라고 추단하는바이다.     일설로 김유신은 최초로 삼국통일을 한 명장이라고 전해졌다. 하지만도 김유신과 김춘추의 권력획득의 정당성, 계략가적인 기질과 지휘자로서의 자질문제 등 쟁의의 소지가 많았던것도 사실이다. 그런데도 혹자는 김유신을 민족사 제일의 인물로 꼽고 “위선과 무지에 의해 자신의 조국인 이 나라에서 무시당하고 있는 그의 진면목을 재조명하면서”“삼국통일”과 더불어 당나라와 싸워 령토를 확보하고 동아시아에 번영과 평화를 정착시킨 자주와 자존의 큰인물이라고 칭송해마지 않는다. 과연 그런가?     례컨대 한국에《평양성》이라는 영화가 있던데 신라가 당나라와 련합하여 고구려의 최후의 보루인 평양성을 공격하는것을 배경으로 “력사사실”을 재현한 영화이다. 긍께 머시냐 주인공 김유신은 머시당가? 고거이 영웅인가? 천추에 용서못받을 대역부도한 죄인인가? 하는 문제로 의론이 현재형으로 분분하기에 던지는 질의렸다.     영화의 스토리인즉 당나라 황제와 신라의 왕이 야합하여 평양성을 치기로 약속하는데 다만 선결조건이 있었다. 즉 신라군이 앞장서서 돌진할것이며 전쟁에서 승리 할경우 고구려령토는 신라에 준다는것이다. 약속은 쾌히 맺었지만 당나라가 바보국 이 아닌이상 얻지도못할 땅을 누구좋으라고 도와주겠는가? 하는 곤혹이 앞선다.     기실 당군은 고구려와 신라가 살륙전을 하게 한후 어부지리를 얻으려고 하였다. 영화에서는 김유신이 당나라의 꿍꿍이를 미리 파악하고 결국 약속대로 고구려령토를 얻게되고 당나라는 빈마당질만 한격이 되였다는 얘기를 엮고있는데 력사실과는 왕 청벅박골이다. 아닌게 아니라 “승전”한후 672년 8월, 라당군은 석문들판에서 맞붙었는데 신라군은 당군의 기습을 받아 크게 패하였다. 자업자득이니 누구를 원망할 일도 못되였던것이다. 씨나리오작자는 력사를 외곡하고있지만 그렇다고 력사사실이 뒤바뀌는것도 아니여서 사후청심환같은 자기위안도 되지 못하고있다.     백제가 멸망되고 라당연합군들의 겁탈이 무서워 백제귀족녀자들이 삼천궁녀라는 이름으로 락화암에서 꽃처럼 떨어져 죽었으며 의자왕을 비롯해서 20만명이라는 포로가 당나라에 끌려갔다. 그 와중에 얼마나 많은 녀자들이 겁탈당했을까? 고구려의 평양성을 점령한 라당연합군은 고구려녀자들을 로소를 불문하고 강간하였다고 기록되여있으며 수많은 고구려유민들이 서역지방에 끌려가 말로서는 도저히 형용할길없는 온갖 릉멸과 수모를 받으며 고통의 날들을 보냈을것이다.     당나라에 조공으로 녀자도 바쳐가며 국가로서 치욕스런 력사를 물려받게 만든 김유신, 김춘추의 만고에 씻지못할 죄는 세월과 함께 묻혀야만 하는가? 이런 력사사실을 두고도 김유신을 삼국통일통일의 주역이라고 력설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외세를 끌어들인 보응으로 당나라에“전과물”을 빼앗긴것은 그저 아이러니인가? 천추의 공과 죄를 뉘라서 두부모베듯 가를수 있으랴만 력사는 망각되여도 지워지지는 않는다.     김유신을 미화한 설화들을 다시 분석해보면 야망을 이루기 위해 가족도 져버렸는데 그에게 있어서 모든것이 단지 리용물과 수단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 비정함과 부도덕함을 잠시 눈감아주더라도 정말 단군족의 력사에 기릴만한 천추업적을 쌓았 다면 용허될수도 있다. 그러나 실상은 자신과 자기 문중의 리익을 얻기위해, 신라귀족의 국토야망을 위해 외세를 끌여들여 동족들의 등에 칼을 꽂은 행각밖에 더 안된다. 현상적으로는 삼국통일이라 칭하지만 실상은 당나라를 등에업고 호가호위하며 백제를 삼킨것에 지나지않고 소위“통일신라”는 고구려를 계승한 발해국과는 교류도 하지않으면서 당조에 매달리려고 머리를 조아린 사대주의적인 부용국이였을뿐이다.      멋모르고 력사이야기만 혹했던 그때는 김유신이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누이동생을 가지고 술수를 부린것을 두고 아주 지모가 있다고 찬탄했다. 그러나 차차 판단력이 서면서 마음속으로 고구려를 기리게되고 신라는 가증스럽게만 생각되였다. 강대한 군력으로 령토를 확장하고 어떤 외세의 침략에도 굴복하지 않았던 고구려는 너무나 멋진 력사를 남긴반면 외세를 끌어들여 백제,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삼국을“통일”한 신라는 리유불문하고 최악의 비렬한 막장왕조로 저주받을수밖에 없다.     김유신이라는  인물을 두고 오래동안 시시비비가 그치지 않았지만 한국근대사학연구에서 신채호로부터 인식의 본질적인 전환이 시작되였다. 신채호는 "김유신은 지용이 있는 명장이 아니오 음흉하고 독살스런 정치가이며 음모로 이웃나라를 어지럽 힌 자이다"라고 질타하였다. 김춘추나 김유신의 경우 삼국통일의 공로를 인정하기는커녕 오히려 신라가 당나라를 끌어들여 동족인 고구려와 백제를 멸망시킨 일을 민족사에서 가장 치욕적인 사건이라고 평가,절하하였다.     이러한 평가는 김유신과 그 동조세력에 의하여 이루어진 결과에 국한된 비하, 폄하이기도 하겠지만 그의 립신양명의 배경과 자질도 간과할수 없는 문제라는 쟁의도 있다. 김유신은 우선 야망가이다. 유명한 일례로 김춘추가 장차 신라의 대통을 이을수 있다고 예감한후 문희와 김춘추의 사통을 조작한것은 정치적발판을 놓기위한 미인계로서 결국 야망을 이룰수 있는 기반을 닦는 기량이였던것이다.     종래의 봉건사가들과 사대주의사가들은 신라에 의하여 3국이 통일되였다고 본데서 김유신을 삼국시기의《큰 인물》로, 3국통일에 이바지한《인물》로 내세우고 극구 칭송했지만도 력사적사실이 보여주는바와같이 김유신을 비롯한 신라집권자들은 령토 확장야망은 컸으나 제힘으로는 강대한 고구려를 누를수 없고 또 백제를 먹을수 없으니 당나라를 끌어들여 동족상잔을 벌리고 죽을쑤어 개를 준격이 되고만것이다. 호랑이가 무서워 승냥이무리를 끌어들인다면 그보다 무모한 작동이 더 있을가?      결과적으로는 소탐대실이 되였으니 일세영달을 위해 잔꾀를 부린 김유신은 치욕의 기둥에 매달아야 할 간웅이라 할것이다. 한국에서는 시비거리 인물로 남았는데 조선에서는 김유신과 더불어 김춘추도“사대주의가 골수에 사무친 인물로, 야심가로, 조선민족사에 큰죄악을 남긴 반역자, 사대주의자”로 딱 찍어서 기록하고있다.     력사의 수레바퀴는 앞으로 굴러갈뿐 뒤로 구르는법이 없지만 우회적이고 곡절적이다. 마크 트웬의 “력사는 중복되지 않는다. 그러나 놀라우리만큼 비슷하다”고 한 말은 과시 명언이였다. 합한지 오래면 나뉘고 나뉜지 오래면 합해지는것은 력사가 증명해준 규률이다. 조선반도에 3국이 정립하여 수백년 서로 으르렁거리며 동족상쟁하다가 김유신의 간능함으로 신라로 “통일”되였지만 결코 영광의 력사는 아니였다. 여북하면 한국의 력사학자 함석현선생이 통일신라의 력사는 수치의 력사, 고려의 력사는 간신들의 력사, 리조의 력사는 똥물의 력사라고 했겠는가?                                              2013년 4월 24일
212    진정성의 기준치 댓글:  조회:9123  추천:16  2013-06-27
                                 진정성의 기준치                                          최 균 선          근간에 세간에서 언필칭 “진정성”이 어쩌구하던데 진정성이란 진정 무엇이며 그 진정한 의미란 진정 무엇이며 그 기준치는 진정 누가 정하는가 하는 문제는 진정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 “진정”을 사전에서는 참되고 옳바르다. 참으로 틀림없다로 해석하고있다. 따라서 진정성ㅡ하면 진실하고 참된성질이라하고 류사어로 실정, 충정(衷情)을 례로 들고있다.     진정한 우정, 진정한 사랑, 진정한 우의, 진정한 의미, 진정한 학자, 진정한 충고, 진정한 무엇무엇…등처럼 이 진정이란 단어를 말머리에 붙이는것으로도 자신의 주장에 어떤 설득력을 기하여 “약국에 감초”같은 역할을 한다. 가령 사전적인 의미를 떠나서 진정이란 말의 어감에서 어떤 절실함같은것이 진정 느껴지는것인가? 무엇이 진정한것이고 무엇이 진정하지 못한것이라 말할 때, 그 기준의 근거는 무엇이고 또 그 근거의 진정성은 무엇으로 확인하는지 누가 단마디 명창을 내놓을수 있을가?      포스터나 약광고,학생모집광고, 취직광고 등 온갖 잡다한 광고들에서 직접 혹은 우회적으로 내세우는“진정성”을 감지하며 서로가 진정하다고 하면 도대체 무엇이 진짜 진정한것이고 무엇이 아닌것인가? 진정성은 과연 좋은것인가? 상호불신의 시대, 이 세상에 진정성이 과연 존재하는가? 간단하게 리해한다면“진정성이란 허구”라고 말한 철학자도 있었고 꿈을 분석하려했던 프로이드는 본능에 따르는것만큼 진정성이 있는것이 없다고했다. 례하여 동물의 생존과 번식을 위한 일련의 행위들이나 어떤 위기에서 인간을 포함한 동물들이 본능으로 취하는 자세나 표정, 행위…물에빠진 사람이 살기위해 몸부림치는 바로 그 행동과 아비규환 등등이 진정성일것이다.      이렇게 감성과 리성으로 판단하지않고 오로지 본능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행하는 모든것들이 진정한 의미의 진정성이다. 리성적의지에 지배된 진정성이란 진정성이 아니라는 말이된다. 어쨌든 이 진정성을 증명하려는 시도들은 아직까지 계속되고 있지만 진정성의 기준치는 미확정이다. 그런데도 이 심오한 개념을 일상에서 너무 쉽게 사용하고있다. 문제는 사용 그 자체가 아니라 그 말의 용도에 담긴 리기성과 자기중심주의적 판단에 있다고 볼수 있겠다.      이 진정이란 말은 흔히 자기리페를 기준으로 가늠하는데 나는 절대적으로 진정성을 가지고있는데 오직 대방만이 진정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일방주의가 문제이다. 자기의 진정성은 무엇으로 증명할수 있는가? 례컨대 진정한 사랑을 무엇으로 증명할것 인가? 자기 말이 증명하는가? 진정한 사랑이란 말은 사랑의 실체가 증명되였음을 전제로하는 말이다. 실제로 증명가능한 대상들에 진정이란 단어가 붙는 경우를 과연 누가 가려낼것인가? 본적이 있는가?  진정한 개, 진정한 나무, 진정한 보따리…?     상술한바와같이 관념을 실체화하거나 대상화할 때처럼 우리는 실체가 분명하지 않거나 무언가 존재자체가 의심스러운 경우에 바로 이 진정이란 단어를 상표처럼 붙이고 있음을 보며 곤혹을 가지지 않을수 없다. 즉 사람들을 기만하고 속이기 위한 용도로 이 “진정'”혹은 “진정성”이란 단어를 껌처럼 씹는것은 너무 얄팍하다.     진정성이란것이 인간의 심령세계에 존재하느냐 않느냐를 고증할 생각도 없고 시비를 걸고싶은 마음은 더구나 없다. 량심껏 사는 사람들속에 진정성이 있을수도 있겠지만 진정이란 단어가 사용되는 빈도와 함께 문제라고 생각하는것은 어떤 사고나 행위의 가치를 결정하는 중요한 기준이라는 편견과 리기적인 기만술이다.     진정성은 참되고 옳바르다이여도 절대적이 아니라 복합적이다. 가령 진정 분노와 미움에서 살인했다면 면죄가 되는가? 진정성있는 독선은 정당화될수 있는가? 생명을 노리는 맹수가 내뿜는 살기의 진정성을 운운하는것이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질것인가? 코앞도 보이지 않는 칠칠흑야에 그 어둠의 진정성을 론해서 얻을것이 무엇인가? 충심으로부터 충고하는 사람은 구태어 “내가 진정으로 말하는데…”따위의 군더더기를 붙이지 않는다. 오히려 진정성이 없는 사람이 진정성이 어쩌구 하며 너스레를 떤다.        진정성을 대방에게서 기대하기전에 내자신은 과연 얼마나 진정성을 가지고있는가를 반성하는게 진정한 덕목을 갖추기전 진정한 기본품성이다. 가증스러운 거짓말쟁이들이 말끝마다 진정성을 내건다. “나는 바담풍해도 너는 바람풍해라”하고 요구하는 촌훈장의 바램이 진정이라 하더라도 웃기는 가르침이다. 자신은 진정 정확한 발음을 하지못하면서도 바르게 발음하라는것 자체가 교육자로서의 진정성의 결여가 아난가?     “인자견인,지자견지(仁者见仁,智者见智)”라는 말이 있는데《주역.계사상편(周易·系辞上)》“(인자견지위지인, 지지견지위지지(仁者見之謂之仁, 智者見之謂之智).”에서 유래된 말이다. 뜻인즉 어진사람은 그것을 어질다고 보고 지혜로운 사람은 그것을 지혜로운것으로 본다인데 하나의 같은문제에 대하여 부동한 사람들이 부동한 립장 혹은 부동한 각도에서 부동한 관점이 있다는것을 비유한것이다. 여기서 진정성을 어떻게 볼것인가 하는 좌표가 세워진다. 그러나 그것도 그저 좌표로 남을뿐이다.     개체이든 집단이든 자신의 립장이 있고 관점이 있고 주장이 있으며 리해득실의 기준치가 있다. 어진사람은 선량(仁)의 관점으로 세상을 보고 지혜로운 사람은 지(智) 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기마련이다. 또 조금 비틀어서 풀이한다면 착한 사람이라야 비로소 착한사람을 알아볼수 있고 지혜로운 사람이라야 지혜로운 자를 알아볼수 있는 그런 개인적인 능력과 수준의 차이도 있다. 따라서 각자의 관점도 용인되여야 하지만 개인의 능력과 수준, 수양의 차이도 인정되여야 한다. 그러지 않고 나만 잘나고 나만 정확한것처럼 대방에게서만 결점을 찾으려는 자는 속창이 뻔할 뻔자이다.    이소프의 우화《두개의 주머니》가 있다. 프로메테우스가 사람을 다 만든후 그들의 목에 두개의 주머니를 걸어주었다. 한 주머니에 다른 사람의 결점을 넣고 다른 한 주머니에는 자기를 넣게 하였다. 다른 사람의 결점을 넣은 주머니는 앞에 걸고 자기를 담은 주머니는 뒤에 메였다. 그때로부터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결함은 인차 보아내게 되였고 자기의 결함은 보지못하게 되였다. 이것은 인간의 원초적인 본성이다.    “충언역이(忠言逆耳)” 에서 왜 충언이 귀에 거슬릴가? 충신의 간언은 진정하지만 왕은 몸에 좋은 약이 입에 쓰다는 도리는 몰라라하고 자기 존엄이나 왕권을 건드리면 무작정 아니꼽게 본다. 이처럼 진정성도 어떤 심리로 가늠하느냐에 적대성이 된다는 설명이 된다. “지록위마”에서 함구한 신하들이 진정성이 있는가? 아니면 조고에 동조한자들이 진정성이 있는가? 뻔한 물음이지만 조고로서는 해답이 다를수밖에 없다.     이처럼 진정성은 영원히 상대적이며 어디까지나 변증법적이다. 하건만 나는 절대 진정인데 대방만 진정하지 않다고 고아대는것은 진정 편견증과 소아병에 걸린자이다. 오는말이 고와야 가는말이 곱고 가는말이 고와야 오는말이 곱다하고 가는떡이 커야 오는떡이 크고 오는떡이 커야 가는떡이 크다한다. 가는떡이 큰것은 진성성문제이겠고 오는말이 고와야 가는말도 곱다는것은 조건부적이다.     그냥 오는떡이 크기만 바라거나 오는떡이 크지만 가는떡은 크게 보내기 아쉬우면 지극히 리기적이요 자기중심적이요 결국 속물근성에 젖은 인간이다. 내리익에 부합되면 진정이고 아니면 함께 콩으로 메주를 쓰자해도 곧이 들으려 하지않는다. 혹 콩이 메주로 될수 있음은 진실이지만 함께 메주를 쓰자는 제의는 진정성이 없지않냐? 편견부터 앞세우면 그냥 독선주의자, 위군자로 되여 제마음을 속여먹는 꼴이다.                                                 2013년 6월 23일
211    “…같이 놀지마라” 댓글:  조회:9315  추천:2  2013-06-21
                             “…같이 놀지마라”                                         최 균 선       고서에 “근주자적, 근묵자흑(近朱者赤,近墨者黑)ㅡ나쁜 사람을 가까이하면 나도 그렇게 된다”라는 말이 있는데 절대적은 아니지만 진리적인 고훈이다. 친구따라 강남간다는 속담이 있듯이 어떤 친구를 사귀는가에 따라 인생이 달리씌일수도 있다. 좋은친구는 나의 인생거울이 될수도 있고 나락으로 유혹하는“싸탄”이 될수도 있다. 이런 도리를 본능처럼 알고있어서 그랬는지 일자무식의 부모들이라도 “××랑 같이 놀지말라”고 신측(방언?)하군 하였다.     특히 옛날에는 잘사는 부자집에서 제새끼가 가난한집 아이들과 휩쓸리면 체면이 깎인다고, “본보기없는”집안에 호로자식이라고 질색하였다. 그러나 그저 좋은대로 뛰놀던 아이때는 마음이 맞으면 그게 뉘기든 함께놀고 쉬틀리면 수탉처럼 싸우다가 곧 또 어울리군했다. 살차고 부출이(방언)센 아이들은 그러루하게 잘 얽히고“인자견인, 지자견지(仁者見仁, 智者見智) ”는 아니라도 마음이 여린 아이들끼리 동아리가 될듯싶은데 실제상 성격이 판이하거나 기질적으로 왕청이여도 단짝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어른들말처럼 아이때는“올리놀아야 한다”고해서 덩치가 훌쩍 큰 아이들의 꽁무니를 따라다니면 속절없이“강아지”가 되거나 가마치랑 “진상품”을 개여올려야 하고 치승개(방언?)노릇하기 십상팔구이다. 하긴 그덕에 우쭐해서 호가호위할수도 있지만 마음맞고 손이맞는 죽마고우는 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어른들의 당부와는 차원이 다르지만 아이들도 또래끼리도 곧잘 “××랑같이 놀지말래이, 내까만 놀자구 응! 나 가마치랑 자꾸줄게…”라고 제편만들기에 짝골을 쓰기도 하였다.      그때는 지금처럼“왕따”라는 멋스러운 말은 꿈에도 생각해내지 못하고“외목낸다, 체메들지 못하게 한다”고 말하였는데 어린마음에도 리간질의 싹이 일찌기도 움텄는지 간지럽게 노는 친구들도 있었다. “××야, ××가 널 헤딱먹기로 이긴다카더라, 그리구 언제 한번 널 패주겠다카더라…”,“왜? 그애가 무섭니? 내가 니랑 안놀아줄까봐 내앞에서 양공질하니? ”,“그새끼 자꾸 날 업신본단말이야, 너 한번 그애를 엎어놓겐?” “안돼, 그애는 ○○와 오래 친했던 사이거든, 나도 ○○는 못재끼구… ”,     “야, 그건 걱정마라, 전망하건대 ○○도 인제 그애를 싫어한대, 누가 그러던데 인젠 친하지 않겠다던가? 코집이 너무 세서 말을 잘듣지 않아서일게야, 그래 딱친구가 아니라 그저 일반관계라구 말했을게라카더라, 요즘 너도 눈치챘지? 어째 둘이 그닥재인것같데, 형도, ○○를 싫어하면서도 친한듯하재야? ○○를 시켜 그새끼를 외목내라고 청하면 안돼? ”,“임마 이재보이 너 아주 구미여시구나. ○○가 내말들을 사람이니? 그리구 둘이는 옛날부터 그저 사이가 아니야, 우리가 쑥닥질해도 떼놓기 어려울걸. 그건그렇구, 참 한마을서 살메 핵교랑 같이다니면서 매나네 그렇게 남잡으면 나쁜거야, 뭐야, 니 엠나들처럼 홀리떼기질하구…저리가! 메스껍다.”,“에씨, 그 새끼는 그냥 미워죽겠는걸…”,“야, 이 종간나, 앗싸리 한번 붙어볼일이지, 이기고지고 제절루 어찌는게 남자아이야? 그냥 야구랑수만 쓰며 징징거리지말구…”      확실히 누구에게“승치”를 먹고있거나 앙심을 품고있은 아이가 있으면 동네는 물론 학급내에서도 이아이, 저아이와 이른바 “공작” 을 하는 얄팍한 애들도 있었다. 물론 그런 얍삭한 아이들은 또래들속에“쌔우지(얽히지)” 못하고 비웃음의 존재가 되였지만 어째 그런지 그 자신은 능사인체하하며 마냥 제가 잘나서 힘이쎈 애들의 꼬랑지가 되는줄로 알고 호들갑을 떨어대며 “호뜰내비질(방언}”하고 다녔다.      누구나 나와만 친해야 하고 내까만 같이놀아야 하는데“놀지말라”는 누구네집에 다니며 친하는듯싶으면 멋대가리없이 심통이 꼬이여서 어째갔을가? 나를 외목내려 무슨 꿍꿍이를 치냐? 하는 등 추측을 넘겨짚느라 마음이 싱숭생숭 제사 마음을 주름잡던 못난이들도 있었다. 그 친구가 누구네집에 놀러가면 들여놓지 말기를 바랬는데 정작 무난히 들여놓고 환대를 받고  “내”가 알수 없는 쑥닥질을 한것같아 속부터 끓이며 역시 의도를 파내려 하고 의중을 저울질하고…     “너 그새끼와 다시 친하니?”하고 묻기라도 할 때“아니, 그저 심부름을 갔다가 좀 놀아줬을뿐이야, ”라고 대답하면 “그래무 그렇지, 형이  워낙 그새끼와 쉬틀린걸  나 다알아 아무렴 내까 친한다고하구 그새끼와 친할라구?” 하고 제좋은 궁리부터 엮어대고 제귀로 들은것처럼 다른 애에게 구수하게 가능성을 엮어“××가 그새끼를 혼내주었대, 인제 우리도 겁날게 없어, 우리 다방해서 그새끼를 멕줄거리를 만들어줄가? ” 하며 비린내풍기는 친구들은 누구라없이 참으로 불쌍해보였다.     어떡허나 쉬틀려서 판이 깨져야 하는데 그럴기미가 보이지 않으면 이애,저애 찾아다니며 렴탐질하고 누구와 친하지 않으면 나와도 친할수 없다는 등 야살을 떨었다. 팔은 안으로굽지 밖으로 굽는법이 없다. 세상사가 순리대로 풀리게 되여있지 누구를 추기여 내세우려 해서는 잘되는법이 없다. 때때로 힘센 “형니미”가 배돌석이가 맞은 봉창을 한다고 나섰다가 기특한 곽오주를 만나는 림꺽정이가 될수도 있을것이고 억지춘향을 시켜놓아봤대야 원해서 “수청”을 들어준다고 할수는 없다.     나에게도 형들이 “같이 놀지마”하고 계엄을 내린 김우철이라는 한살위인 친구가 있었는데 어디서 어찌하여 배우게 되였는지는 몰라도 “쓰리(소매치기)”를 귀신같이 하는 괴짜였다. 아니들어가는데가 없었고 못훔쳐내는것이 없었다. 소매부에 사이다병, 개눈깔사탕 몇알은 제것이고 병원에 메스랑 다 후무려오는 수준이였으니 그 솜씨를 가히 알만한 친구였는데 천주교신도인 제형에게서 매일같이 야단맞고 살았다.     내가 담이 작았던 탓인지 워낙 심성이“될성부르지” 못한탓인지(近墨者黑)를 실천해보지 못하였으나 한번 얽혔다가도 변심잘하는 아이들의 의리라도 형들의 “같이 놀자마”가 꿈에 네뚜리가 되고 청년이 될때까지 쭈욱 미더운 친구로 있다가 새 삶을 찾는다고 강을 건너간후에도 그냥 생각나던 친구였다. 하긴 나도 “같이 놀지말라” 는 경계대상이 되여 자존심이 구겨지던 때가 있었으니 동병상린이였을가…     “같이 놀지말아라”가 나의 숙명적이였던지 사회인이 되고 농촌사회주의교육이 시작되면서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되다가 위대한 “10년대동란” 때에는 더구나 “못생긴 새끼오리”로 철저히“같이 놀지말라”의 대상이였다. 일밭에서 허드레잡담은 주고받아도 속사정친구가 없었고 외려 내사 그럴 념두를 내지않았다.       류류상종이라 마음과 리해득실이 엮이는대로 끼리끼리 노는데 내가 미워한다고 남들마저 미워해야 하고 “편재끼”하여 “외목”내려는 사유는 아무래도 미숙아의 작태 이다. 나에게 생각이 있으면 타방에도 궁리와 타산이 있기마련인데 내가 어찌 사사건건 조종할수 있겠는가? 아무튼 아이때 친구들끼리 푸술히 있었던 유치한 작간들이 오늘날 국제게임에서도 엿보여서 허황하다. 동맹, 파트너라는 미명을 쓰더라도…     제힘으로는 어쩌지못하니“덩치큰 형”들을 쫓아다니며 “친하지마쇼, 말려주쇼”를 개여올리고 동네방네서“왕따”시키느라고 잔꾀를 부리는 “어른아이”를 보는것같다. 사대주의란 그렇게 골수에 사무친것이던가? 하더라도 세상만사를 내구미에 걸맞게만 료리할수 있는가? 아무리 아전인수해도 내일은 자구해야지 도를 넘도록히 남새스럽게 놀면 곁에서도 웃을 일이다. 양코씨네도 뻔질나게 대국문을 두드려대며 “◎◎을 좀 어떻게 해봅시다”하고 청탁인지 구걸인지 야살피우는데 국제게임이라도 아이들심사 같아서 왼고개가 절로 비틀어지는것을 어쩔수 없다. 맙소사, 아멘이여!                                                         2013년 5월 24일
210    인생의 봄언덕에 희망을 댓글:  조회:6931  추천:0  2013-06-18
                                   인생의 봄언덕에 희망을…                                           최 균 선       역시 직업적인 본성의 관성이랄가? 몸은 청도빈해학원을 떠났지만 내가 맡아 가르치던 정겨운 학생들이 곧 졸업하게 되였다는 생각이 뇌리를 치면서 그동안 너무 정들었던 그들에게 다하지 못한 축복을 전하고싶어 “일필휘지”하고싶어진다.     그들은 졸업에 즈음하여 꿈도 많고 생각도 많을것이다. 졸업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스타트선에 나섰을뿐이다. 이제 그들은 희망으로 한껏 부푼가슴으로 벽공만리 날으려는 수리개들이다. 그야말로 “십년창하무인문, 일거성명천하지(十年窗下无人问,一举成名天下知)의 호기를 피울수도 있으리라. 비록 만리 먼 변강에 있지만 나의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보람이 차넘칠 미래를 기원하고싶다.     꿈은 청춘의 특허권이다. 이제부터 진짜로 사회의 진실을 투시하고 생활을 체험 하고 인간을 알게 되면서 차차 인생의 진미를 절실히 맛보게 될 그들이다. 자신들이 가야 할 길은 한갈래 탄탄대로가 아니며 갈래갈래 선택의 갈림길이 놓인 초행길임에 주저주저 망설이기도 할것이다. 선택은 행운잡기가 아니라 분투의 스타트이기때문이다. 갈래갈래 모든 길은 로마에로 통한다면 갈래갈래 인생길은 성공의 높은 봉에로 뻗어있다고 등을 밀어주고 조언해주고싶다.     인생려로에는 행선지가 주어지지 않는다. 선택은 자유이면서도 지혜를 가늠하는 지침일진대 지름길도 없다. 속담에 “질러가는 길이 돌아가는 길”이라 했다. 젊은시절에는 굽은길을 걷기마련, 굽은길을 많이 걸었다해도 랑패인것만은 아니다. 굽은길이 사람들에게 지름길을 찾는 경험을 주기때문이다.     “인생의 려정에 오르라. 앞길이 멀고 어둡지만 두려워말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라야 앞에 길이 열린다”는 로신선생의 말을 다시한번 상기시키고싶다. 누구나 날씨를 개변할수 없다. 그러나 자기의 심정은 맑게 할수 있다. 사람은 자기의 용모를 선택할수 없지만 가히 자기의 표정은 무시로 선택할수 있다. 인생의 초행길을 떠난 그들로 말하면 래일을 내다볼수는 없지만 내처 힘차게 걷는다면 새날의 아침해가 웃으며 마중할것은 의심할바 없다.     누구나 살다보면 고난의 저곡에서 방황할 때가 있고 어려운 처경에서 설상가상으로 무단적인 차별시와 좌절을 당할수도 있다. 살아보려고 애를 쓸때 인간의 존엄을 짓밟으려는 무뢰배를 만날수도 있다. 그럴때 굴종하지도 말고 격노한 나머지 그런 자들보다 더 포악하게 복수를 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해주고싶다. 모든 사악한것들은 정의와 진실앞에서 설자리가 없다는것을 자기 인격으로 보여주어야 할것이다.     어느날, 강의가 끝나고 이런 얘기를 해준적이 있었다. 불의신의 명령을 받고 두개의 홰불이 세계고찰을 떠났는데 회불하나는 불을 달지않고 다른 홰불은 불을 달고 앞길을 환히 비추며 천하를 편답하였다. 얼마후 두개의 홰불이 돌아와서 고찰보고를 올렸는데 불을 달지않고 고찰한 홰불이 먼저 “신이여, 온 세계가 암흑천지였습니다. 상황이 지극히 나빴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불을 달고 고찰한 홰불의 보고는 정반대였습니다. “그렇지 않았습니다. 어디에가나 한가닥 광명을 볼수 있었습니다. 세계는 십분 희망이 있어보였습니다…”두홰불의 각이한 보고를 듣고난 불의 신은 첫번째 홰불에게 “혹시 얼마만큼의 암흑을 우리가 조성한것인지 자문해 보는것이 좋지않을가?”라고 질문하고는 각자 질문속에 현답을 찾아보라고 뒤를 달았다.     그리고 철학자연 횡설수설하기도 했다. 세상을 보는 우리의 눈은 자기의 형상으로부터 금을 긋기십상이다. 자기 몸의 연소를 아끼여 불을 달지않은 홰불은 눈앞에 펼쳐진 세계는 암흑으로 가득차서 희망이 없다고 느낄것은 당연하다. 불을 붙이여 자 기를 태우며 광명한 앞길을 개척한 그 홰불처럼 자기를 불태운다면 광명이 마중올 것이다. 생명은 운동에 있다는 말을 빌어 생명의 보람은 연소에 있다고 할수 있다. 희망은 바로 그 광명속에서 여러분을 손짓할것이다. 이 세계가 얼마나 밝고 얼마나 어두운가 하는데는 누구에게나 자기몫의 책임이 있다는것을 자각해야 한다고.     한차례 성공은 자기를 이겨낸 승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금방 올라선 개척의 길에서 자신이 서고있는 위치가 중요한것이 아니라 각자 걷고저하는 방향이 중요하다. 방향은 나아갈길을 찾도록 예시해줄것이지만 방향이 곧 길은 아니요, 길은 곧 목적지가 아니다. 길은 오직 걸어야만 축이난다.     지혜롭게 산다는것은 뼈저린 반성으로 과거를 대하고 가장 작은 랑비로 오늘을 가꾸며 가장 충족한 신념으로 래일의 려명을 맞이하는것, 유아시기에는 보이는것만 보았고 소년시기에는 보고싶은것만 보았으며 청년시기에는 차차 보이는것 뒤에 무엇을 발견하려 하는 시선이다. 바로 보지 않으면 안되는것을 보는것이야말로 어른의 성숙된 시각과 의식이라 할것이다.     한 사람의 마음속에 어떤 생각을 담고있는가에 따라 그 사람의 인생을 결정할수 있다.“나는 지금 잘하고있는가?”라는 생각과 “나는 희망을 가지고있다”라는 말을 음미해보면 같은 상황이라도 자신의 삶을 생각하는가에 따라 삶의 양태는 달라진다. "너무 힘들어!" 하는 사람은 삶의 무게에 짓눌려 주저앉을것이고 "어떻게든 이겨내야 해!”라고 뼈물면 아무리 힘들어도 희망의 상록수는 무성할것이다. 무조건 더 열심히 일할수록 그만큼 더 성공의 언덕에 다가서게 되는것은 그들도 잘 알것이다.     인생행보에는 거리미학이 수요된다. 이를테면 젊은이들의 인생에 기본주제인 사랑문제에서도 그렇다. 갑작사랑 영리별일 때가 많고 너무 지끈하면 자끈 부러지기도 하는법, 열련에 빠져 의식마저 하나로 된다면 새의 두날개를 하나로 묶어버리는것이라는것을 알고있을것이다. 하지만 애정예술에 거리미학에서의“광환효응”은 누구나 리해하기 쉽지만 실천은 어렵다. 무작정 팽창하는 욕망을 통제하기엔 리성의 힘이 너무도 약해있는 청춘, 그러나 용기하나로 모든것을 해내려는 그들이다.     누구나 변증관계속에서 산다. 원과 네모진것, 점과 선, 쾌속과 만속, 진실과 허위, 성실과 음모, 명암, 넓은것과 협착한것, 낡은것과 새것, 깊은것과 옅은것, 짙은것, 담박한것 등등은 사회속의 잠재적인 규칙이 된다. 인간의 정신적추구는 영예획득으 로서 눈부신 계관이 우연히 날아온게라면 무가치하다는것을 그들은 잘 납득되여하지 않을것이다.     영예는 1차적인것, 영예의 정상은 산정과 같다. 산정에서 발아래 풍경을 마음껏 향수한후에는 내리는길밖에 없다. 영예는 그렇게 과거의 등에 업혀가버리는것이다. 그 한번의 영예가 오늘, 래일의 당신을 값매기지 못한다는 도리는 모두 알지만 생각속에서는 그게 아니다. 그 한번은 검표한 기차표와 같다. 영예는 자신의 노력에 대한 단 한차례 보상일뿐 그냥 무료연회를 담보해주지 않는다.     속담에“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린다”고 하였는데 시작부터 희망의 상록수를 잘 키워야 한다고 부탁하고싶다. 식물의 생명은 잎에서 나타난다는 단떼의 명언처럼 청춘의 꽃을 피우기전에 과정-록엽의 광합작용을 중요시하라고, 그들도 꿈나무 는 자신의 땀과 눈물과 수고를 먹고 자라야 탐스러운 열매가 주렁질것임을 알것이다.     대부분 농촌에 부모를 둔 그들은 부모님들이 심은대로 거두겠다는 일념으로 구슬땀을 흘리는것을 잘 알고있을터이니 인생의 풍년가을도 그렇게 가꾸리라 믿어진다. 인생의 봄언덕에 희망을 심으라!인생의 여름에 땀흘려 가꾸고 중년―인생의 가을에 풍작을 거두기 위하여! 인생길에는 언젠가 석양이 비끼기마련이지만 열정에는 노을이 금상첨화!좋아서 경영하는 사업에는 황혼이 없다는것을 기억하기 바란다.     무릇 진짜 능력은 주어지는것이 아니라 가꾸어지는것이다. 인간의 일생 또는 그 운명을 결정하는것은 한순간, 오늘을 잘 가꾸지 못하면서 래일의 황금열매를 환상하지 말아야 한다. 행운은 오직 달에만 걸려있다. 자기의 길은 자신의 발밑에 있다. 졸업하고 나가는 어엿한 모습들을 볼수 있다면 그들이 나가는 걸음마다에 축복을 꽃보라처럼 뿌려주고싶다, 영광도, 성공도, 행복의 눈물도 그대들에게!                                                                      2012년  5월 20일 (2013.6.7 연변일보)    
209    “프로크루스테스침대”계시록 댓글:  조회:9211  추천:0  2013-06-15
                                    “프로크루스테스침대”계시록                                                           최 균 선       프로크루스테스는 희랍신화에 나오는 인물로서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아들이다. 이름에 담긴뜻은 “늘이는자 또는 두드려서 펴는자” 이며 일명 폴리페몬(풀루피이언?) 또는 다마스테스라고도 한다. 화제는 세인들이 잘 알고있는 신화에 그치는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철학문제가 은밀하게 함축되여있다는것이다.     프로크루스테스는 아티카(아테네) 교외의 케피소스 강가에 살면서 지나가는 나그네를 자기집으로 유인하여 쇠로만든 침대에 눕히고는 침대길이보다 짧으면 다리를 망치로 잡아두드려 늘이고 길면 잘라버리는 방법으로 죽였다. 그는 인과보응으로 아테네의 영웅 테세우스에게 자신이 저지른 악행과 같은수법으로 죽임을 당하였다.     신화는 편견과 아집과 고정관념으로 일정한 형식적인 틀을 만들어놓거나 실제로 있지도 않은 기준을 설정해놓고 만사를 이 틀이나 기준에 억지로 틀어맞추어 획일적으로 처사하려는 무모한 사람을 경고하였는데 이로부터 “프로쿠루테스침대” 라는 말이 격언처럼 되여졌다. 이는 백사에 자기중심적이고 자기본위로 판단하면서 자기 자신이 만물의 척도인양 착각하는 사람에게는 다시없는 행동지남이 될것이다.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는 형식이고 긴다리, 짧은다리는 내용이 된다는것이 론점이라 할 때 론증이 따라서야 할것이다. 내용이 우선이냐 형식이 우선이냐 하는 문제는 닭이 먼저냐 닭알이 먼저냐 하는 문제와는 격(格)이 틀리는 문제이다.     요즘 “형식이 내용을 지배한다”는 론거부재, 론증불가의 괴담이 다음에 버젓이 떠있는데 그 화자가 누구이든 틀리는것은 틀릴수밖에 없다. 흔히 명인이 한말을 명언이라 할지라도 장마다 망둥이가 나오랴 하는 속담처럼 명인이라해서 마디마디 명언만 나올수는 없는 노릇이다. 가령 한 명인이 배고프면 음식을 먹는게 가장 좋고 병이 나면 죽을수도 있다는식의 말도 명언이 될수 없기때문이다.     형식이 내용을 지배한다는 말이 괴리인가? 괴담인가 하는 물음자체가 우문에 우문이라 정답이 아닌 엉터리대답도 불가하지만 그러하다는 론증은 가능하다. 모든 사람을 자기기준에 맞추려고 세상은 넓고 사람은 많으며 각각이라는 현실마저 도외시하며 부득부득 인정하려하지 않은것은 무슨 주견이 아니라 외고집도 아니고 억지이다. 획일화된 사회가 아니거늘 다양성, 층차성이 당연지사가 아니겠는가? 자신의 기준을 다른사람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해서 억지로 맞추려는 편견과 고집은 백해무익하다. 그것을 알면서도 행하는 자들이 고대에도 있었으니 뿌리깊은 병페인것같다.   《한비자의 외저설좌상편(韩非子·外储说左上)》에 우화를 많이들 읽었을것이다. 정나라에 어떤 사람이 장에가서 신을 사려고 별렀다. 그는 노끈으로 치수를 재여놓았는데 이튿날 서둘러 떠나다보니 장에 이르러서야 치수를 재인 노끈을 두고온것을 알았다. 그는 신파는 사람에게 발을 잰 노끈을 두고와서 다시 가져와야 하겠다고 말하고는 부랴부랴 집에 달려가서 노끈을 찾아가지고 장마당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날이 저물어 이미 장이 파한뒤인지라 숨차게 왕복길을 달렸지만 신을 사지못했다.     곁에서 보던 사람이 괴이해하며 물었다. “당신은 어이 제발에 신어보지 않고 기어이 잣대를 가져올 궁리만 하였소?” 정나라사람의 대답이 만고절창이였다. “쳇, 모르는소리!나는 잣대를 믿지 내발을 믿지않는단 말이요.” 한비자의 뜻인즉 객관실제를 불구하고 굳어진 틀을 고집하려는 사람은 흔히 황당하고 가소로운 웃음거리를 만들어낼수 있다는것을 꼬집은것이다. 역시 내용과 형식문제이다. 현대시점에서 진실한 내용인 제발을 뇌두고 형식인 노끈만에 목을맨 옛사람은 가소롭다.     사람의 발이 있었기에 신이 필요하게 되였다. 옛사람들의 발과 현대인의 발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갈수록 각양각색의 신개발은 형식미의 수요일뿐 사람의 발이 천태만상으로 달라졌기때문이 아니다. 아닌가? 하지만 내용이 형식을 결정한다는 이 규 률을 기계적으로 리해하지 말아야 함은 자명하다. 내용은 사물을 구성하는 일체요소의 총화로서 바로 사물에 내재한 각종 모순 및 그로부터 규정되는 사물의 특성, 성분, 운동과정과 발전추세의 총화인것이다.     형식이란 내용의 제요소가 통일된 결구 혹은 내용을 표현하는 방식이다. 주지하다싶이 내용과 형식의 관계는 대립통일의 관계일뿐만아니라 상호의존하고 작용하는 관계이다. 무릇 어떠한 내용이든 모종 형식을 가지게 된다. 형식을 떠나서 내용이 존재하지 않지만 반대로 어떤 형식이든 모두 일정한 내용의 형식으로서 내용을 떠난 형식이란 없다. 소가죽이 없는데 털이 있을소냐?     물론, 아무도 형식이 내용에 대하여 반작용을 한다는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은 형식이 내용을 지배한다는 론리와는 정반대문제이다. 우리는 형식을 선택하고 리용하며 적합한 형식을 창조해내여 내용의 발전을 촉진하게 해야 한다는것을 부정하지 않으며 내용을 충실히 하는것과 형식을 결합하는것을 홀시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내용과 형식의 변증관계의 원리를 몰각하면 아무일도 해낼수 없기때문이다.     형식과 내용의 관계는 복잡한바 동일한 내용에 부동한 조건으로 말미암아 여러가지 형식이 묻어설수 있고 부동한 형식 역시 부동한 내용을 표현할수 있다. 새로운 내용에 가히 낡은형식을 리용할수 있고 낡은내용에 새로운 형식을 리용할수 있다. 내용과 형식은 광범위하면서도 구체적인 개념이다. 량자의 구별은 상대적이지 결코 절대적이 아니다. 그리하여 다만 추상적의의에서 그것을 나누어보게 될뿐이다.     내용과 형식의 관계는 결코 병렬관계일수 없다. 어쨋든 내용이 주도작용을 하며 결정적작용을 논다. 내용이 형식을 결정(지배?)하고 형식은 내용을 위해 복무한다. 이는 내용과 형식의 일반관계이다. 내용은 사물존재의 기초이고 형식은 사물존재의 조건이다. 그만큼 내용은 다변적이고 활약적이지만 형식은 상대적으로 온정상태이다. 내용이 형식을 결정하므로 형식은 반드시 내용에 적합해야 한다. 이는 절대적이다.     내용의 발전여하가 형식의 늦고 혹은 빠른 변화를 결정하게 된다. 내용과 형식의 상호작용은 어디까지나 변증적인 모순운동의 과정으로서 적합한것으로부터 불적함에 이르게 되고 다시 새로운 적합성을 찾게되는 그런 부단한 발전과정이다. 한복처럼 구식의 옛옷이 다시 돌아와 선호되는 경우처럼 형식미는 륜회의 속성도 가지고있다.     어떤 사람이 “형식이 내용을 지배한다”는 말은 형식이 없는 곳에 내용이 없다는 말을  강조한것으로 유교적가치관에서 나온것이라고 단언하면서 중국의 유교는 형식, 절차, 순서를 중시했다는것을 론거로 내세웠다. 참으로 기담이 아니라 천하괴담이다. 꽃과 꽃병으로 말할진대 꽃은 꽃병의 내용이고 꽃병은 꽃의 형식이다. 그런데 꽃병이 없으면 꽃이 없어지는가? 화분이나 화단이 없으면 꽃은 존재하지 않는가?유교가 형식과 절차. 순서를 중시한다해서 유교의 내용이 소실되는것은 아니지 않는가?      더 의론한다면 약탕관을 바꾸었다해서 약이 달라지는가? 약탕관에 보약약탕관이라 크게 써붙이고 전문 보약을 달이려한다면 그건 자유이지만 보약약탕관이니 익모초나 명아주를 넣고 달여도 보약이 될것인가? 무모하고 부질없는 일이다. 무릇 기준의 성립도 보편성이 전제될때만 합의가능하다.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기준은 강권론리로서 강박증의 근원은 심리불안이다. 나의 잣대로 남을 가늠할 때 대방도 나를 자기 저울로 떠보려 한다. 만사에 상대성원리가 통용되는것이다. 리념적으로 형이상학을 고집한다 하여도 내용과 형식의 관계를 해석함에서 주관성은 발붙일곳이 없다.                                                     2013년 6월 12일
208    자존심에 무엇이 문제냐? 댓글:  조회:7876  추천:1  2013-06-12
                             자존심에 무엇이 문제냐?                                              진언       언제부터인가 자존, 자애, 자립, 자강정신을 키워주어야 한다는 구호(슬로건)인지 호소인지가 사람들의 귀에 못박혔다. 맞다. 두말 할것없이, 황차 자존심과 자부심을 갖고있는 자만이 살아남을수 있는 세상이라 웨치는 사람도 있음에랴 ! 왜 자존, 자애, 자립, 자강정신을 지양해야 하는가?     교육자가 아니더라도 자식을 키워보면 인성교육을 시킬때 코가 부딪치는 벽이 바로 아이의 자존심이라는 벽이다. 민감한 회음벽같은 그네들의 자존심을 자칫 잘못 건드리면 가르침이 잘먹혀들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역반심리로 번지여 될일도 버르집어놓는다. 인생관교육이니 가치관교육이니 하는 거창한 개념들을 거론할것없이  인성각도에서만도 인간의 자존심문제는 백사에 막아나서는 난제이다.     보통 자존심을 말할 때 자기 존재의 절대적독립성이라는 자존성을 덧붙이는데 의미를 알아서라기보다 스스로에 절대적가치를 부여함으로써 다른 사람앞에서 일종의 우월성을 나타내려는 본능적인 심사이다. 자존감은 자기 자신을 제대로 사랑할줄 아는 방법이며 모든 행동과 변화의 근원이 되는 마음가짐이다. 자기의 지식, 지혜, 재능을 타인과 비교하지 않고도 든든해 있는 마음이 자부심으로서 객관평가야 여하튼 자기만의 삶을 당당하게 살아갈줄아는 마음이 진정 자부심의 내핵이다.     자부심은 긍정적자의식으로서 지속성보다 어떤것을 이루었을 때 주변사람들의 칭찬과 성취감에서 생기는 일시적인 만족감이라는 특징이 있다. 자존심과 자부심이 다른 사람과 외부환경에 영향을 받는것에 반해, 자존감은 스스로 자신의 존재가치를 인정하고 사랑하는 마음이다. 자존감은 자기가치와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당당하게 잘 해낼수 있다는 자신감이라는 두가지 요소로 이루어진다.     세상에 갓태여난 아기의 자존감은 백지로서 살면서 형성된다. 크면서 자존감이 기형인 아이들은 자신이 100점을 맞고 늘 일등이 되고 제일이 되는게 중요하지 다른 아이들이 몇점인지는 개의치 않는다. 자존감을 세워야 한다고해서 스스로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만 내리려하는 아이는 심성이 반듯하지 않다. 자신의 허점, 부정적인 점을 인식하고 받아들일줄 알아야 장차 함께하는 세상에서 발을 붙일수 있다. 역경을 억차게 헤쳐나가려는 그 굳센 마음이 진정한 자존심, 자존감이 높은 아이다.     사람은 누구나 어떤 경우에서든 자기의 인격존엄을 지키려하고 자기 자신을 아끼는 보편심리를 본능처럼 가지고있다. 자기를 사랑할줄 모르는 사람이 어찌 타인에게서 존중받겠는가? 따라서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애호하는 문제는 아초에 론할나위도 없다. 다음 바늘에 실이 따라가듯이 자립, 자강정신을 형성해나가야 한다. 아이들을 어릴때부터 독립성이 강하여 자립할줄 알고 스스로 자강하는 성격특징을 갖추도록 해야 하는데 그게 욕망처럼 안된다.     어른들의 삶에서도 자존심이 문제이다. “가난한 사람이 베풀어주는 음식을 먹지않다 (贫者不吃嗟来之食)”는 옛이야기가 있다. 춘추전국시기, 어느해 제나라에 심한 기황이 발생했는데 가난한집 솥에 거미줄이 칠지경이 되여 수많은 사람들이 주린배를 움켜 잡고 창천을 바라보며 죽어갔다. 때에 검오(黔敖)라는 귀족이 길가에 먹을것을 갖추어놓고 기민들에게 은혜를 베풀려하였다.     하루는 굶어서 불성모양인 사람이 얼굴을 가리고 허위적허위적 걸어왔다. 검오는 기민을 향하여 “차, 래식(嗟!来食)=喂!来吃吧!”하고 불렀다. 그 굶주린 나그네는 심히 경멸하는 눈빛으로 “그런 던져주는 음식을 먹지않아 내가 이꼴이 된거요”하고 말했다. 금오는 자신이 좀 무례했다고 느끼고 사과하며 진심으로 권했으나 길손은 종내 먹지 않고 그냥 가다가 굶어죽고말았다. 그로부터 “차래지식(嗟来之食)”이란 한어에서 모욕성적인 시사(施舍)를 상징하게 되였다.     봉황은 굶어죽어도 좁쌀을 먹지않고 량반은 얼어죽어도 겻불을 쬐지 않는다는 속담이 있던가, 굶어죽으면 죽었지 남이 “옛다, 먹어라!”하고 던져주는 음식을 먹지않고 굶어죽은 사람을 어떻게 보아야 할것인가? 자존심인가? 자부심인가? 아니면 자강정신인가? 각자 평가가 나름대로일것이다. 이것은 중국의 민족혼 문일다선생이 굶어죽으면 죽었지 미국의 구제량은 먹지않는다는 기개와는 차원이 다른 문제이다.     좌절을 미소로 대하는것을 일종의 인생경지라하고 자존은 생활을 대함에서 가치로운 인생이라 한다. 인생에 꽃다발과 영예는 없더라도 자존심이 없어서는 안될 일이라는것이다. 사람은 먼저 자신심이 있은 연후에 자존심이 생길수 있다. 진정한 자존심은 자사자리가 아니며 자존감은 자고자대가 아니라 사람이 사람이 되는 기본 원칙이다. 자존은 한 사람에게 있어서 무슨 의탁점도 아니고 무엇에 힘입음이 아니라 하나의 벋침대로서 인격의 충실이고 에너지이며 정신동력으로 유지되는 생존양태이다     자존심은 내함이 풍부한 인간의 소양을 표징하지만 무작정 내세우면 턱없는 도고함으로 오해되기쉽다. 그렇다고 바람따라 돛을 달고 권세에 무릎을 꿇고 유혹에 자신을 디밀라는것은 아니다. 그만큼 자존은 동력이면서도 인격력량이기도하다. 자존은 세속의 먼지바람속에 세우는 한폭의 선명한 기치이다. 자존심이 제몸을 굽히지 않고 스스로 높이는 마음이라면 자부심은 자아가치나 능력을 믿는 당당한 마음가짐이다.     우리는 자존심 하나로 살아가는가? 자존감으로 비교의 무변대해를 무난히 건너가는가? 자존심은 자기중심주의에로 나가면서 리기주의로 변질될수 있다. 모두와 공생하되 일방적인 리득을 추구하는것은 속창머리가 좁아터진 편리공생(片利共生)의 삶이다. 자존은 자아의식으로 살아가지만 결코 남에게 그것을 강요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과의 공생하는 가운데 서로 리득을 취하는것은 상리공생(相利共生)의 길이다.     처사에서,처신함에서 무엇을 잣대로 할가? 자존심도 요긴하지만 자부감으로 처신하는게 명지할것같다. 자기만의 리해력과 주장을 중심으로 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자존심의 경계를 넘어 고집이 되고만다. 서로의 고집인즉 불협화음의 시원이 되고 마 침내 다툼질이 된다. 그런 고집(민간에서는 도를 넘으면 똥고집이라한다.) 때문에 끼리끼리 편짜기를 하면서 사양과 관용을 버리고 대립각을 세우기에 몰두한다.     자존심은 내세우는것이고 자존감은 간직하는것이다. 자존심은 객관평가를 저울로 자기만족을 꾀하는 마음이지만 자존감은 어떤 상황에서도 스스로에 대한 존중과 사랑이 굳게 지켜지는 마음이다. 자존심은 무작정 타인을 의식하기에 자기감정의 화분통에 곧잘 상처받는 여린꽃이 될때가 많다. 흔히 "사람은 자존심을 지켜야 해." , "너는 그래 자존심도 없니?", "자존심 상해서 못살겠어."라는 말을 잘한다.     그런데 야릇한것은 시험에서 혼자 100점을 받았을 때와 여럿이 100점을 받았을 때의 반응이 엇갈린다는것이다. 혼자만 100점을 받았을때는 자존심이 도고해지는 반면 여럿이 100점을 받았다면 최상의 결과를 얻어냈음에도 못내 자존심을 비틀어 짜는게 아이들의 심사이다. 이런 심사는 어른들도 마찬가지이다. 개체간에도 그렇고 국제적대화의장에서도 그렇다. 아이가 커서 된 어른이여서인가?      이 세상에 나혼자만 있다면 나를 내세울 필요가 없다. 사람에게는 주관적자아와 객관적자아가 있다. 자존심의 자아와 자부심의 자아는 될수록 일치해야 한다. 내가 보는 나와 남들이 보는 내가 일치하면 겸손한 사람이고 반면에 두개 자아가 별로 일치하지 않으면 오만인데 심하면 현실감각을 잃고 망상증에 빠질수 있다. 나를 랭정하게 객관적으로 평가하는것은 우리가 현실에 발을딛고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다. 하지만 이에만 얽매여 신념을 잃어버린다면 그 내면은 공허해질수밖에 없다. 그 공허한 내면을 채우기 위해서 허영과 위선을 내세우며 쓰잘것없는 자존심에 집착한다.     우리는 본능처럼 자존심만은 꼭 지켜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자신을 지휘하고있다. 말하자면 누군가와 비교를 통해 충족되는 마음ㅡ자존심 하나에 목을맨다. 한 말뚝에 매여 습관된 당나귀처럼 말이다. 주변사람의 말, 표정, 눈빛에 따라 감정을 주름 잡으며 자신감을 잃는다면 다른 사람의 평가때문에 렬등감을 느끼거나 의기소침해질수밖에 없다. 사람이란 살아가는 지혜를 찾아 끝없이 헤매다보면 자존심과 자부심과 자만심의 높은 벽에 자주 부딪친다.    소인배나 군자나 똑같은 감정을 가지고있고 자극받으면 자연히 치밀어오른다. 그러나 표현방법은 다르다. 소인배들은 비틀어진 감정을 주체할길없어 음모궤계를 꾸미느라 잔머리를 굴리고 군자는 여유작작하게 자신을 성찰하며 침묵한다. 군자는 자존 심을 상하게 만드는 상대를 삶의 참조계로 생각하기에 자존심을 내세우지 않는 반면 소인배는 자존심만을 내세워 처처에서 적을 만들어버린다. 중용철학인지는 몰라도 중국어에는“대장부는 능히 굽히고 능히 펼줄알고 군자는 발등에 떨어진 불을 피할줄 안다 (大丈夫能屈能伸、君子不吃眼前亏)는 말이 있다.      이처럼 자존심은 절대적이 아니다. 내가 자존심의 날창을 꼬나들때 다른 사람도 자존이라는 방패를 내든다는것을 모른다면 무모하다기보다 무지막지하다. 기왕이면 자존심을 버리고 자부심을 가지고 일에 림하라. 이는 개체지간은 물로 대사를 론하는 외교관에게도 적용될것이다. 자존심은 그 자신을 고집하는데는 유용하지만 많은 경우 대사를 망쳐놓기도 한다. 그것은 자존보다 본위주의에 치우친 맹목으로 되고만다.                         2013년 6월 10일
207    민족정신을 보듬어본다 댓글:  조회:11055  추천:2  2013-06-10
                         민족정신을 보듬어본다                                       최 균 선       민족정신이란 한 민족이 장기적으로 공동한 생활과 사회실천의 기초상에서 표현되여 나오는 풍부한 생명력을 가진 우수한 사상, 고상한 품격과 견정한 지향의 집중적체현으로서 력사적으로 루적되여 형성된 민족의식, 민족문화, 민족습속, 민족성격, 민족신앙, 민족가치관념과 가치추구 등 공동한 특질을 반영한다. 민족정신을 떠나면 민족문화는 근저로부터 생명력과 창조력을 잃는다.     이 지구촌에 모든 민족들의 민족성은 부동하다. 일본사람들은 섬나라 사람들의 고유의 근성인 교활과 악착한 성질로 정평나있고 프랑스사람들은 정감적인만큼 예술적기질도 풍부하며 독일사람들은 과학적이여서 매사 정확성을 따지며 영국사람들은 보수성이 강한만큼 대남자주의가 강하고 미국인은 인디안인을 멸족시키고 형성된 입침족이라서 근성이 강압적이고 허위적인 족속들이다. 이런 특성은 어느 민족들에게나 다 들어맞는다고 할수는 없지만 매개 민족의 고유의 민족성을 보여준다.                                                                                                                                                                                                                                                                                                                                                                                                                                                                                                                                                                                                                                                                                               다른 민족을 말할것없이 단군민족은 단일민족으로서의 전통이 강하였다. 그 뿌리깊은 전통문화, 즉 고유문화를 한자리에서 굳건하게 지켜왔었다. 비록 작지만 지정학 적으로 조선반도라는 천혜의 자연공간을 확보하면서 반만년을 단일민족을 이루고 동 일한 문화권속에서 나름의 물질문명을 창조하였다. 이는 장기간에 걸쳐 단일민족의 전통문화를 영위해 온 결과물이다. 단군족은 인간상호간의 조화, 자연과의 조화, 주변국과 화해하면서 홍익인간정신을 추구하였다. 이는 오래 지속되여온 공동체생활에서 터득한 지혜이며 인간관계의 평화로운 공존을 위한 조화성에의 지양이기도 하다.     단군족은 애국애족의식이 강하다고 자긍하였는데 이런 민족사상을 “조선심 (朝鮮心)”이라 일러왔다. 우리 배달민족은 정이 많은만큼 한도 많으며 또 그래서 끈기있고 충동적이며 결백, 관용, 인내, 평화, 정의감, 인도주의정신, 예술성, 용감성 등을 그 장점으로 삼고있는바 그중에서도 민족의식,민족정기,애국심이 조선심의 핵심으로서 조선민족의 정신이 오늘 우리 민족근간이 되였던것이다.     조선민족은 보수성, 우유부단, 충동성, 편협성, 비단합성, 당파성, 시기심, 허영심 등과 함께 의타심이나 사대주의 등 단점도 가지고있다. 이외에도 민족성격속에는 지나친 감상성, 과거에의 집착, 권위주의, 체면의식 등이 굳어졌다. 세기말에 이런 민족 주의정서가 사람들의 가슴에 슬며시 그리고 끈덕지게 싹트기 시작했던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얼마나 좋은것인가? 민족정서는 민족정신의 체현이기도 하기때문이다.     그것은 조선사람들의 민족자존심과 자호감과 자신심을 격발시키고 뜨거운 피가 끓게 한다. 그러나 또한 위험한 방향에로 흐르게도 한다. 력사적적으로 약소국가였기에 뿌리깊은 피해의식속에 렬등감이 굳어져있고 따라서 본능적자기방어심이 봉페성을 조성하기도 하였다. 따라서 남을 리해, 포용하지 못하고 남을 죽임으로써 자기가 살수 있다는 약자 선손식의 분노가 무시로 표출된다.     민족은 인류생존경쟁의 결정체이다. 민족주의를 국수주의라고 하는데“민족주의”는 당대사회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의식형태의 하나로 되여졌고 민족정신, 민족정 서가 민족주의로 번지여“극단주의”로 나가기도 한다. 한때“협애한 민족주의”란 개념을 랭궁에 처넣었지만 민족주의의 빗장은 근원적으로 풀어지기 마련이다. 민족주의가 아무리 나쁘다고 질타해도 리론에 그치는 대도리일뿐이기때문이다.     민족주의는 영원히 당위성을 가지고있는바 민족주의 기발을 거부할 민족이 이 지구촌에 없을게다. 민족정신은 민족의 심리기둥이며 공존의 동력이다. 한나라에 하나의 국가정신이 있어야 하듯이 한개민족에는 하나의 민족정신이 살아있어야 한다는것은 기성도리이다. 민족정신은 력사성과 시대성의 유기적통일로서 부동한 시대에 민족정신의 표현도 부동하다.국가정신, 민족정신이 없다면 흩어진 모래알같고 물먹은 토담처럼 저절로 무너질것이다.     력사는 민족의 흥망성쇠에 대하여 세가지 준엄한 결론을 내리였다. 첫째는 문명이 생존을 보장하지 못한다는것이다. 고대문명을 창조한 수많은 민족이 지금은 흔적도 없지않은가? 만용적인 무력도 생존의 수단일뿐 근원은 아니였다. 강대한 로마 제국도, 칭키스칸의 몽고대제국도 멸망하지 않았던가?     조선반도에 비록 3국이 정립되여 오래 각축전을 벌려왔지만 나중에 조선왕조로 통일되여 단군의 한핏줄로 이어진 세계상에서 많지 않은 단일한 민족군체로 되였다. 조선조가 장기적으로 통일상태로 온정하게 존속된것은 지정학적인소 및 단일한 민족 정신, 전통적민족문화 등 제인소때문이였다. 반만년 조선력사에서 본다면 수없이 외세의 침탈을 받았왔지만 끈덕지게 살아왔다.     특히 만악의 일제놈들이 36년간 악착스럽게 민족말살정책을 시행해왔지만 3천만 박달족은 절멸되지 않았다. 무엇때문인가? 바로 민족정신이 죽지않았기때문이다. 죽지않은 민족정신에서 불의에 대한 굴강한 반항정신이 핵심이였다. 배달민족은 반만 년의 유구한 력사와 문화, 전통을 자랑하는 단일민족으로서 창조한 인류사적재부와 유산도 많아 긍지와 자부심, 존엄도 남다른 민족이다. 그런데 일찍 지극히 리기적이고 음흉한 미쏘의 땅따먹기로부터 이 지구촌에서 유일한 분단민족으로 남아있게 되였다. 민족이 분렬되면 언제든지 외세에 놀아나게 된다.     반세기가 넘도록 분단비극속에서 통일을 갈구하고있는 하나여야 할 배달민족이 너무 오래 분렬되여 있음으로해서 국제적인 비극으로 되고있다. 치렬한 민족정신의 부재때문인가? 문화, 언어, 정신적으로는 물론 민족성에서까지 점점 더 심각하게 이질화되여 가고있는것은 배달민족이 렬등민족이여서인가? 절대 아니다. 민족정신에 시대성이 침투되지만 세속환경으로 인해 세화변질되여서는 안될 일이다. 그러나 민족혼이 산산히 부셔져가고 민족정신이 리념의 갈등으로 무색해졌다.     분단지속의 문제점이 리념에만 있지 않건만 력사의 수레바퀴를 한사코 저마끔의 산으로 끌어올린다. 민족의 통일은 전 민족의 마음이 하나로 똘똘 뭉쳐도 될가말가한데 국민적으로 상호간 적대시하고 서로를 잡아먹지 못해 으르렁거리고있는 비참한 형국이다. 더구나 신라처럼 외세를 빌어서 정권을 확보하려는“사심”이 득세한다면 그보다 더 처절한 민족비극과 민족적비애는 없다.       우리 배달민족만큼 생존의 고험을 처절하게 겪어온 민족도 없을것이다. 력사적 시각으로 본다면 인구의 대소도 생존의 본전이 못되였다. 국토가 크다해서 결코 강국이 아니였고 한때 부유하다해서 멸망하지 않은것은 아니다. 불멸의 완강한 민족은 그 어떤 렬악한 환경속에서 살아남을줄아는 생존능력을 가진 민족이였다. 민족정신의 공능으로서 첫째는 정신기둥이 되는것이고 둘째는 민족의 결집력이며 세번째는 민족성계승이다. 민족정신의 결집력은 민족의 생존과 번영의 결정적요인이다. 민족정신이 살아야 세계의 민족지림의 파워게임판에서 생존할수 있다.     뭐니해도 민족정신융합이 우선이다. 한혈통의 민중들은 서로 적대시하고 알륵을 조성하며 분렬을 조장할 아무런 리유도 없다. 지금 조금 잘산다고 미래지향적인 사유가 꽉막혀 가지고 재세를 피우는 잘난사람들이 “민족성”마저 몰라라하며 그냥 이대 로에 자족한다면 희망없는 민족으로 될것이다. 민족통합의 주체는 민족성, 민족정신이다. 국익이란 결국 민족리익이다. 민족리익이 리념앞에 놓이고 개체의 은원(恩怨), 호악, 사심을 초월하여야 민족의 미래가 있다.                                2012년 6월 12일                
206    (교육칼럼) 교육은 아무나 하나? 댓글:  조회:8268  추천:2  2013-06-05
                                         교육은 아무나 하나?                                                      최 균 선       외항(문외한)이 내항을 령도할수 있냐? 없냐? 하는 문제는 반세기도 훨씬 넘도록 쟁론되여 온 묵은 화제다. 외항이 내항을 령도할수 있다고 찬성하는 사람이 많은데 근거로 류방이 숙하, 장량, 한신을 거느리고 천하를 얻은 일이라든가 제갈량이 류, 관, 장 삼형제와 5호대장을 령도하여 촉국을 세운 일이라든가 곽말약이 과학원원장을 력임한 사실 등을 내세우고있다.     외항이 내항을 절대 령도할수 없다고 말할수 없듯이 외항이 꼭 내항을 령도해야 한다는 주장도 무리이다. 세상의 어떠한 일이든지 절대적인것이 없으므로 변증적인 시각으로 보아야 함은 물론, 보편적인 규률성 유무를 제쳐놓고 중국의 경우 그 연원이 깊고 거의 체계로 되여졌으므로 문제를 일도량단할수 없다는게 정론이다.     외항이 내항을 령도하는 문제는 거시적각도에서 외부사물이 내재적방향을 결정한다는 엉뚱한 괴론을 련상시킨다. 비유하건대 사람의 인체기관에 위는 옹근 몸을 위해 복무하고 대뇌속에 해당한 신경계통이 위의 활동을 지휘하듯이 정체가 국부를 결정한다는 설명이 되고 그로써 론증되는지 잘 모르겠다     2009년 4월 23일 중화석박망 (中华硕博网) 보도에 의하면 국가행정학원에서 전국의 122개 현교육국장들의 임직전의 신분에 대해 설문조사했는데 41%의 현교육국 국장이 정부기구나 기타 관리부문 출신이란다. 그중에 19.7%가 향진간부이고 각 학교 교장출신은 근근히 18.9%이며 교육국에 관리인원, 교원 및 기타 인원들중에서 경쟁하여 제발된 비례는15.8%였다. 사회발전을 추동하는 기본동력인 기초교육령역에서 제일책임자인 현교육국 국장중 60%가 “외항령도”라는 설명이 된다. 이에는 원교통국 국장, 원축목국 국장. 환경처 처장 등 기관출신들이 많은것으로 집계되였다. 전국각지 고등원교의 제일책임자들의 임직전 신분에 대해 조사한다면 역시 락관적이 못된다는 전문가론단이 있는데 대학이 “관청화”되는 원초적리유라고도 한다.     왜 아직까지도 이런 사이비 국면이 지속되는가? 그것은 사유모식, 사유의 관성이 조성한것이다. 어떤 학자가 기자와의 대담에서 외항이 내항을 령도하는것은 보편적인 진리라고 하면서 그 귀감으로 섭영진원수를 들었다. 일정한 조건하에서 외항이 내항을 령도하고 잘 할수도 있다. 그런데 “외항”이 아주 개명하고 허심하고 달관적이여야 하며 고심히 문화과학지식을 학습하여 “외항”으로부터 재빨리“내항”으로 전변되여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붙어선다.     확실히 섭원수는《덕고망중(德高望重)》한 로일대 혁명가이다. 그러나 모든“외항”들이 그와같은 숭고한 품질과 훌륭한 자질을 가질수는 없다. 이 시점에서 외항이 내항을 령도하는것이 보편적인 진리라는 론단은 지극히 편파적이다.“외항이 내항을 령도”하게 된것은 력사적조건, 건국초기 특정시대의 수요에서 시행된것이지 아무도 영원한 법보라고 한적은 없다. 역시 고정관념의 관성이랄가,     그러나 그때로부터 세월은 반세기가 넘어 흘렀고 력사적조건에도 거대한 변화가 일어났다. 작금의 력사조건하에서도 그때의 사유모식을 고집하면서 의연히 “외항이 내항을 령도”해야 한다는 관성에 끌리면 시대의 수요에 적응될수 없다는것은 무슨 전문가가 아니라도 알수 있다. 지금은 정보화, 고기술화, 지식경제시대로서“전업화”령도문제가 절실하게 제기되고있다. “전업화”령도란 바로“내항령도”이다 특히 교육, 과학, 문화예술, 의료, 등 전업성요구가 극히 강한 행업과 부문에서“내항령도”는 박절성과 필요성을 가지고있다. 돼지잡이에서 칼놀림이 능숙하다해서 외과수술의사가 될수 있는가? 문학을 몰라도 작가협회주석이 될수 있는것과도 다른 문제이다. 이른바 과학지식이“대폭발”하고 과학기술이 밤자고 나면 일신하는 시대에 “문외한”의 신분으로 생경한 부문의 사업을 령도한다면 오유와 편차밖에 낳을게 있겠는가? 물론 체육부부장이 꼭 국가급축구대원일수는 없지만도, 이는 벌써 별개의 문제이다.      2009년11월 7일 교육부부장 원귀인(袁贵仁)은 비등하는 사회여론에 중시를 돌려 교사대오의 “입구”를 엄격하게 단속하고 재직교원들의 자질을 제고시키는 한편 불적격의 재직교원들을 적당한 자리에 안배하라고 지시했다. (11월 8일 ‘중국청년보’) 이미전부터 요구해온 교사대오건설을 강화하는것은 에누리없이 정확하지만 그 먼저 기초교육계의 기관차역할을 하는 교육국장, 교장대오를“청리”해야 순리에 맞다고 했다. 기관차가 끄는데 따라 렬차들이 이끌려가게 되여있지 않은가?     엄격한 의미에서 교육국장과 중소학교교장들은 당연히“교사대오”에 속한다. 교원은 교원자격증이 있어야 교단에 오를수 있다는 규정이 있다. 현실속에 교장들과 국장들은 언녕 교사대오를 리탈하여“관원”으로 되였다. 교육정책의 진행여하는 교육국장과 중소학교 교장에 달린것이다. 국가교육의 제1해석자로, 당지 교육행위의 제1획 책자로서의 교육국장의 수준, 안계, 리념은 국가교육정책의 집행의 방향을 결정한다. 따라서 국장들의 수준이 교장들의 수준을 결정하고 중소학교 교장선발은 그 학교, 나아가서 모지구의 교육발전을 결정하게 된다는것은 론리적해석만이 아니다.     교육을 잘 모르는 국장, 정계의 표준으로 선발한 교장들이 학교를 꾸리면 어떻게 꾸려나갈것인가? 한마리의 게가 한무리 준마를 이끌고“정보로 갓”한다면 어떻게 될가? 하고 비유적으로 질타한 지자가 있다. 이런 현상을 두고 온가보총리는“교육가가 교육을 주도하게 하라”고 지시했다. 교장이 강의할줄 모르고 드믈게 과당교수를 참관하고 교육국장이 교육전업지식의 부재로 교육규률에 좇아 일처리하지 않는다면 그 결과는 어떨가? 교원들도 령도자가 어디를 손짓하면 어디로 달려갈것이다.     교장, 교육국장의 “관원화”현상은 악순환을 초래할것이다. 전국인대대표이며 산동성교육청 부청장인 장지용 (张志勇)은 이런 현상은 우리 나라 교육목표실현에 영향줄것이므로 가급적으로 교장, 교육국장의 임명제도를 개혁하여 교육가가 학교를 꾸리게 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그는 또 “일부 지방에서 왕왕 교육사업의 전업특성을 고려하지않고 교육을 잘모르는 사람을 교육국장의 보좌에 떠밀어올리고 있는데 중소학교육이 건전하게 발전할수 없다. 학교를 잘 꾸리는 못꾸리는가는 그 학교의 교장과 교원들에 달렸다. 그래서 교육가가 학교를 꾸려야 한다고 납함하게 되는것이다”라고 역설하였다.     교육을 모르면서 교육국 국장자리에 앉으면 왕왕 경제를 관리하던 사유모식으로 교육을 관리하기 십상이다. 이리하여 전국적으로 많은 중소학교교장들이 갈수로“관료 냄새”를 짙게 풍기는 반면에 “인문냄새”는 갈수록 희석되고 “서생의기”는 갈수록 멀어진다고 중국의 덕망높은 유지지사들이 이구동성으로 개탄하게 되는것이다.     적재적소란 말이 공연히 만들어진게 아니다. 전업성이 강하지 않은 부문에서는 앉히면 국장이 될수 있는지 모르거니와 그 부문에서는 적격일수도 있지만 교육국에도 적격이라고 단언할수는 없다. 여러갈래 강을 건너보았다해서 다음 건널강도 잘 건너갈것이라는 추단은 형이상학이다. “사랑은 아무나 하나? ”처럼 교육은 아무나 하나? 교육만큼은 아무나 하는게 아니다. 외항이 내항이 령도하는것은 분명 착위(错位) 현상이다. 물건이 제자리에 놓이지 못하면 무용지물이 될때가 많다.                                2010년 9월 10일 (청도에서)
205    개관정론 댓글:  조회:7819  추천:0  2013-05-31
                                            “개관정론”                                                                                         최 균 선     아침, 떠난지 오랜 모아툰에서 먼조카벌되는 사람이 느닷없이 장례식에 참석해 달라는 전화를 걸어왔다. 옛정을 보아서 아니갈수 없어 부랴부랴 떠났지만 영결식은 끝나고 제사차비를 하고있었다. 제사에 앞서 추도식이 있었다. 빈의관에서 고용한 사람이 추도사를 읽었다. 추도사라야 보통농민으로서 생산대 대장직을 한외에는 별로 기릴만한 업적이란 별로 없어 추도사는 질박하고 간단명료했다.      추도사란 글자 그대로 죽은 사람을 생각하여 추도의 뜻을 나타내는 말이나 글을 말하지만 죽어간 이를 상대하여 하는것이 아니라 그자리에 참석한 사람들을 대하여 하는 연설과 같은것이다. 현대중국에서 추도회가 시작된것은 아마 장사덕이란 전사가 희생된후 열린 그번 추도대회부터인것 같다.     추도문에 쓴 본인의 생애와 업적은 곧 죽은 사람이 민초백성이든 위인이든간에 그 본인에 대한 평가, 일컬어 “개관정론”인 셈이다.《개관정론》을 찾아보니 (명,려곤 (明ㅡ吕坤)”《대명가의대부형부좌시랑신오 려군묘지명(大明嘉议大夫刑部左侍郎新吾吕君墓志铭)》에《선악재아,회예유인, 개관정론, 무적우자손 지걸언이(善恶在我,毁誉由人,盖棺定论,无藉于子孙之乞言耳)》이라고 쓴데서 기원했다. 뜻인즉 한 사람에 대한 평가 는 죽은 다음에야 최종적으로 결론을 내릴수 있다는것이다.      중국고대인들은 “개관정론”을 특별히 중시해왔는데 당송이후 묘지에 비석을 세우고 비문을 쓰는 풍조가 일었다, 묘지명은 전부 좋은말만 쓰면서 악행은 감추고 덕행만 고양하며 금상첨화하는게 관례였다. 심지어 동에도 닿지않게 조작하여 어느게 진짜인지 어느게 가짜인지 식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고 한다. 물론 효자현손들이 보면 흐뭇하였을것이다. 조상이 덕망높은자라 분명 음덕을 입을것이니 말이다.     현대인들의 시각에는 분명 틀에박힌 교조로서 한 사람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에 불리한 작법으로 보일것이다. 사람은 살아있을 때 이외의 변화가 있을수 있으므로 너무 서둘러 결론내릴수 없다는것은 도리있으나 절대적인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죽은후 몇십년이 지나서야 제기될수도 있고 우연한 경우에 다시 재평가되면 행운이요 억울함이 영영 땅속에 묻히는 경우도 많았다.     자고로 죽음에 대한 문제는 관념문제로서 죽은 사람으로 하여금 산사람들의 기억의 힘으로 “영생”하도록 바라는 마음으로서“개관정론” 역시 가치관념문제인것이다. 원인이 곧 결과일수는 없으나 존재는 리유이자 결과이다. 기실 죽은후 “개관정론” 하든 불후의 묘비문을 새겨넣든 그 본인에게는 아무 실익도 의의도 없다.     초민백성들에게는 “개관정론”이 버거운것으로서 관습상 력사인물들에만 해당한것으로 인지되여있다. 그러나 력사인물에 대한 평가표준에 대하여 사학계에서는 오래동안 쟁론이 그치지 않았고 바람직한 해답이 묘연한 난제로 남아있다. 쟁론에서 대표적인것은 “당시당지”표준과 “현실수요”표준인데 두가지 표준이 다 편파적이라는데 제 3자의 의견도 있다. 이런 낡은 화제에 대한 명랑한 해답을 함에서 관건적인 환절은 력사인물을 부동한 류형, 부동한 정황에 따라 획분한후에 부동한 류형과 정황속에서 부동한 대상들을 부동한 평가표준으로 평가해야 한다는것이다.      력사학의 발전사상에서 본다면 력사인물에 대한 “정론”이 매우 적다. 평가객체의 복잡성 그 활동에 수반하는 사회발전의 불일치로 하여 실제상 “개관정론”은 불가능하 다는게 많은 사가들의 관점이다. 평가주체가 받은 여러가지 인소의 제약성 및 인식의 부단한 번복현상에서 보아도 역시 불가능하다. “개관정론”은 력사가들의 주체의식의 발휘를 제한하거나 비틀어놓기를 잘하며 사람들의 가치규준의 변화로 하여 그럴듯한 “정론”은 영원히 미시적이 아닐수 없다. 표준은 표준이로되 왕왕 “현실수요”기준이 우세하는것같다. 마치 력사는 승리자의 기록이라는 잠규칙처럼 말이다.     그러므로 “개관정론”이라 해서 절대적으로 공정한것은 아니다. 고왕금래, 력사상의 부동한 조대, 부동한 시기 종종의 원인으로하여 어떤 사람과 사건을 억울하게 처리하였거나 혹은 모종 원인으로 객관실제를 등지고 왕청같이 “정론”하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자고로 “개관정론”이 뒤엎어진 선례가 적지 않은바 억울한 일, 그릇된 결론을 다시 평판하여 원혼을 풀어주고 명예를 회복하여주었다. 혹은 진상을 덮어감추고 미명으로 휘감아놓은 소위“정론”을 뒤엎고 력사의 진면목을 회복하기도 하였다.     이런 현상을 력사상에서 흔히 “번안(翻案)”이라 한다. “번안”은 원뜻 외에 주요하게 정의와 공정의 립장에서 객과사실을 존중하는 전제하에서 착오적인 판결을 뒤엎고 완전히 상반되는 정확한 결론을 내리는것을 가리킨다. 학술계에서는 “번안”에도“정번안”과 “반번안”으로 나눈다. 원래 나쁜사람, 나쁜일로 결론지어 반면교재로 삼은것을 좋은사람, 좋은일로 되돌려놓아 명예를 회복하는것을“정번안”이라 한다.     곰팡이 낀 봉건력사인물들은 제쳐놓고 개국공신인 류소기가 타계한후 “자본주의 길로 나아간 집권파두목, 당에 숨어든 역적, 간첩, 공적이며 죄악이 가득한 제국주의, 현대수정주의와 국민당반동파의 주구”라고 결론을 내렸다. 만약 후에 “사인무리”가 타도되지 않았더라면 류소기는 그때에 내린《개관정론》이 영원히 굳어졌을지 모른다.     반대로 정면적인 력사인물로 부각된것을 뒤번져 원형을 드러냄으로써 나쁜인물, 나쁜사건으로 정정하는것을 “반번안”이라 한다. 례하여 어떤 사람이 홍수전을 민족 영웅으로부터 끌어내리고 민족의 패류, 력사의 죄인으로 번안하였다. 한족들의 심목속에 영웅인 악비를 암해한 진회나, 력사의 죄인으로 락인찍혔던 증국번이나 리홍장의 거듭나기, 드라마에서 부각된 강희, 옹정, 건륭 등 제왕들의 형상은 일찍 우리가 력사에서 배운것과는 뒤틀려도 너무 뒤틀려있다. 역시 “현실수요”에 기준한것인가?     력사상 조조만큼 성격이 복잡하고 이미지가 다양한 인물이 없을것이다. “치세의 능신, 란세의 간웅”이라 평판나있던 조조였지만도 곽말약, 전백찬의 붓끝에서 환골탈태하여 민족영웅, 걸출한 정치가, 군사가로 거듭나게 되였다. 그리고 곽말약이 권위 자의 구미에 맞춰 “리백”은 하늘만큼 올리띄운 대신 사실주의시인 두보는 별볼일이 없는 시인으로 덧칠해놓지 않았던가?     각설하고, 사람은 늙으면 뒤일을 걱정한다고 하더라만 평민백성들은 사후 한줌흙이나 한오리 연기로 사라지면 그만이다. 대저 력사에 남을 인물들은 확실히 후사가 걱정이다. 육체의 소실로하여 그 존재는 사라지지만 명성이나 사상같은것이 오래오래 남았을것이니 천고의 력사죄인이 되느냐, 치욕의 기둥에 매달리느냐는 생전보다 더 근심될수밖에 없다. 생전에는 개인숭배를 강요할수 있으나 사후에도 마음대로 될리가 없다. 그래서 후대에게 멋진 “개관정론”을 기탁하는것이다.     그러나 살아서 혼군이 죽어서 명군으로 분식된다한들 그게 무슨 소용인가? 력사는 우롱할수 있지만 사실은 문질러버릴수 없다. 이면에서 원견이 있기로 무측천을 꼽아야 할것이다. 무측천의 무자비에 대하여 의론이 분분하다. “무자비”가 기실 자기를 자랑하는것으로서 문자로서는 크낙한 공덕을 표달할수 없다는 뜻이라고도 하며 혹자는 스스로“무자비”를 세우게 한것은 자기가 지은죄를 누구보다 잘 알기에 비문을 쓰지 않는게 그래도 좋다고 생각했늘것이라는것이다. 관덥개를 덮기전에 자기에 대하여 정론한것이라고 인식하여도 무방할것같다.     먼 얘기는 여기서 접어두고 우리 민족사에 속하는 일로 말할 때 리승만, 박정희, 김대중, 로무현 등 력대의 한국대통령들에 대한 소위“개관정론”은 끝났는가? 네편, 내편을 전제로, 내리익, 네리익을 기준해 중구난방인데 그나마도 번복이 무상하고 자가당착이 많아서 누구도 바람직한 평가를 내리지 못하고있다. 흘러간 물 방아를 돌릴수 없듯 력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사람들이 현시대의 수레바퀴를 돌릴수는 없지만 많은 경우 죽은사람이 산사람들을 조종하는 현상은 지금 진행형이다. 실감나는 감수를 표달할수 없어서 제멋대로의 시조로 대충 얼머부려본다.                                    호랑이 죽으매 여우가 슬퍼하고                                  사자가 쓰러지니 나귀도 걷어차네                                  어즈버 개관정론도 이같지 아니한가                                                    2012년 4월 10일 
204    욕설에도 인간성이… 댓글:  조회:8085  추천:0  2013-05-28
                                 욕설에도 인간성이…                                       최 균 선       욕설도 언어의 구체운용기교와 능력이므로 인류의 일종 진보라고 간주되고있다. 욕할 매(骂)자는 보다싶이 말마(马)자위에 두개의 입구(口)자가 있지만 두개의 입으로 욕한다는 뜻이 아니다. 두개의 입구자는(xuān)이라고 읽었으며 말(马)의 소리, 소란스러움을 표현하였는데 후에 사람을 욕하는 뜻으로 전화시켜 사용하고있다.     욕설도 일종 대화로서 변태적이고 저차원이나마 일종의 “언어예술”이다. 욕설의 원천은 분노에 있다. 얽혀도는 인생마당에서 서로 부대끼노라면 어찌 마음이 상하고 격분하지 않을때가 없으며 욕설이 터지지지 않을 때가 없으랴, 꼭 욕질해야 할때 욕을 못하면 심리혼란이 올수도 있으므로 욕하는것도 대역부도한 일은 아니다. 욕설도 언어예술일진대 저질적인 언행이 되지않으려면 “욕설미학”을 강구해야 한다.     잔뜩이나 잘 조화되지 않는 사회에서 욕설이 란무하여 험악한 “대화”에 귀가 멍멍해진다면 세상이 너무 험하고 사람이 무섭다는 생각이 들게 되고 세상을 향해 열려있던 마음들이 하나둘 닫히게 되여 마침내는 소통이 꽉막힌 세상이 되고만다. 이렇게 닫힌 세상은 련쇄반응적으로 험하고 모욕적인 악담들을 더 많이 만들어내고 그 말이 사람들 사이에서 더 많이 회자되면서 사회구성원의 심성은 더욱 팍팍해지고, 인간관계는 더욱 팽팽해지고 그런 관계들로 얽혀진 세상은 인정미가 고갈될것이다    욕설이 터지더라도 부동한 심정에서, 부동한 목적에서 욕할때에는 형식과 내함이 부동하기마련이다. 사람이 감정이 극도로 격해지면 무슨 말인들 나오지 않으랴만 마디마디 독발린 말만 골라 욕하면 저질적이다. 흔히 “내입이 더러워질가봐서 그만 둔다”라고 단념하는데 제입이 먼저 더러워질가 악담을 삼가하는것이다.      욕하는 방식도 다종다양한바 그 사람의 문화소양과 성격과 당시의 정형에 따라 달라진다. 호매롭고 격앙하여 대포처럼 쿵쿵 울리는 욕이 있는가 하면 음산한 귀신바 람같이 소름끼치는 욕도 있고 여유롭게 내뱉는것 같지만 한바탕 설한풍이 불어치듯이 서리찬 욕질도 있으며 너무 격하여 폭풍취우같은 욕설도 있다.     두손을 허리에 얹고 골목길이 떠나갈듯 조종삼대를 거들며 욕설질하는 막돼먹은 아낙네들의 욕은 욕이 아니라 발설로서 하다하다 나중엔 스스로 누구를 욕해대는지도 모르게 되면 결국 자기를 욕한 꼴불견이 되고만다. 보통 벼르고 벼르던 욕이 아니라 마음에 챙김이 없이 격노해서 터질때는 론리는커녕 어법을 따질새도 없다. 그래서 욕질에는 기교만이 아니라 문화자질도 수반되는것이다.     로신선생이 욕설과 공갈은 전투가 아니라고 하였는데 개체들간에 욕질은 입으로 하는 싸움질이다. 일반적으로 도리에 꿀리는자가 먼저 욕설로 시비캐기를 대체하고 도리로 당해내지 못할 때 주먹을 내든다. 입싸움을 하든 주먹질하든 정당한 도리와 질타하게 된 근거가 있어야지 하늘이 낮다고 삿대질하고 손짓발짓해대며 마구잡이가 되면 자의가 아니게 자신의 인격에 똥칠하는 추태로 될수밖에 없다. 리해관계도 없이 무작정 욕질하고싶어 욕질하는자는 벌써 인성의 망나니이다.     욕설질도 대략 두개 차원으로 나누어볼수 있는데 첫째는 무뢰배풍격의 욕질로서 귀가 멍멍해질만큼 소란스럽지만 주어가 없어 대방이 응수하려 하다가도 맞대꾸질할 가치마저 다 없어지는 욕이다. 게다가 온통 저속한 말을 내뱉아 듣는 사람의 귀만이 아니라 공기마저 오염시킬 정도이다. 다른 일종은 문인식욕설로서 욕설질해도 법도가 있기에 풍도를 잃지 않고 요란을 피우지 않지만 대방의 급소를 찌르는데 상대가 욕을 먹은후 분한중에도 심사숙고하게 한다. 비록 더러운 말마디를 섞지않지만 등곬이 써늘하게 만드는데 그야말로 “욕설예술”에서 달인이라 할것이다.     욕설에는 세가지 경지가 있다. 첫경지는 다른 사람을 개자식(王八蛋)이라고 욕하여 스스로 쌍놈의 자식이 되는것이고 두번째경지는 쌍욕질해댄 결과 결국은 제입에 똥칠한격이 되는것이며 세번째경지는 천하에 가장 몹쓸 욕을 하고나서 소경이 하늘에 삿대질하듯 절로 몰취미해지는것이다. 이런 욕을 바보의 뇌까림이라 한다.    시나 글로 욕하는것을 문필욕이라 할수 있는데 함축적이고 은밀하고 의미심장해야 격에 맞다. 비록 인터넷에서 키보드를 두드리며 몇줄씩 악플을 달면 문필행위라 칭할수는 없으되 아무튼 문자기호로 욕질하는것이니 그경우 문화냄새가 좀 나게해야 자기 감각도 “짱”이 될것이고 대방에게도 어느정도 지적인 자극이 될수 있다.     무단적으로 하는 욕은 사람을 공갈하는 어투인데 받아들을만 말마디가 별로 없다. 련좌법을 배운듯 대방의 가문을 거들어 조상삼대를 욕하는사람은 기실 본인의 가문도 보잘것없다. 아니면 자신이 그런 욕을 삼가할것이다. 개니, 돼지니하고 동물에 빗대고 욕하는 자들도 많은데 자신은 모른채 눈감고 공연히 무고한 개돼지를 욕보인다.      음담패설로 욕을 하거나 입에서 구정물이 나가는지 오줌물이 나가는지 분별없이 세상에 제일 치사한 말로 욕하거나, 대방의 신분을 들춰내며 욕하거나, “벼락맞을놈” 이라는 등 막말로 욕하거나, 대방의 신체적특징(약점)을 거들어가며 욕하는 등등은 다 언어폭력으로서 문화소양은 제쳐놓고라도 인간성이 제로임을 드러내고있다.     욕은 주먹닥질의 전주곡일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욕을 해도 먼저 자기를 잘 알고 본분에 맞게 욕해야 하지 마구덤볐다가 되려 얻어터지는수도 있다. 자신은 별랗지도 않은데 욕의 내용만 고차원이면 명지하지 못한것이 아니라 제낯에 침뱉기다. 이처럼 욕설도 꽤 학문적으로서 아무나 본때나게 배우는 일이 아니다. 대방에게 충격적이고 극한의 악독한 말만 퍼부으면 소기의 목적에 도달하는것이 아니기때문이다.     습관적으로 욕설질 잘하는 사람은 자신을 공연히 강하게 보이느라 허장성세하는 경우도 많고 입에 담지도 못할말로 인신공격함으로써 변태적으로나마 대방을 찍어누르고 싶어하는 렬등의식을 시사한다. 마구난 창구녕에 창호지를 게바르듯 입을 욕으로 도배질하면 그 심리상태는 심리자문을 받아야 할만큼 비틀어져있다는 표징이다.     고금중외에 욕을 한번도 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은 없을것이다. 욕질한다는것은 단면적으로 도덕관념의 문제로도 된다. 사람을 욕할 때 욕하는 사람은 대방의 욕먹을 짓을 알아야 하며 실제적이고 객관적이여야 한다. 누구를 욕하고 어째서 욕해야 하며 욕하는 목적이 무엇인가 명확해야 하므로 극히 도덕적인 문제로 나서게 되는것이다.     욕설은 그 본인으로 말하면 비상한 감정이 역설적으로 분출되는 시적효과이고 정채로운 즉흥연설이지만 보통 부정적인것으로서 순화해야 할 심리현상으로 각인된다. 고차원의 욕설(비평)의 긍정적가치실현은 사회공공언론에 있다. 즉 “욕설”을 통해 세상의 사실적모습을 리해시킬수 있을 때 “리얼리즘”이 체현된다.  단순히 자신의 적대감과 스트레스를 해소하려고 내뱉는 욕설은 서민적습성에서 인기되는 막돼먹은 언동에 그치고만다. 그래서 욕설에도 인간냄새가 풍겨야 한다고 말하는것이다.     자국내의 이런저런 비리하고 비정한 사회현상들을 두고 상하좌우를 가릴것없이 욕설질로 도배한다면 정체적으로 불만정서의 로출방식이다. 지금 사람들이 어찌하여 잘 격노할가?고기한사발을 다먹고 젓가락을 놓자마자 제에미를 욕하는격이 많은것은 일종 시대적인 초조감의 발로서 집안내 욕설이기에 공감이 가는멋도 있다.     그런데 타국인텃넷에 댓글들을 눈더듬이하노라면 국내일에 콩팔칠팔하는것은 리유가 있을세 이웃나라의 대소사에 감놔라 배놔라 하고 시비곡직도 모르면서 누운소 똥(卧牛出粪) 누듯 무차별 욕설질하는데 걔중에 자다가 남의 다리를 긁는듯 무모한 사람들도 있지만 거개 천리안의 지자들이고 결책가들인양 하던데 인간의 정서가 비틀어지면 저렇게 야질적바탕이 폭로되는듯싶어 동족으로서 절로 개탄이 나온다.       게다가 언제부터인가 밥술이나 들게 되였다고 쩍하면 애매한 민초들까지 싸잡아 “거지니 뭐니”를 입버릇처럼 고아대던데 기실 남이 부러울정도로 잘사는 갑부들은 길에서 빌어먹는 거렁뱅이도 면전에서 “거렁뱅이”라는 욕을 삼가한다. 물질적으로만이 아니라 정신적으로“귀족적인”품격도 갖추었기때문이다. 빈궁했던 자가 조금 살만큼 되면 곧 없는 배를 내밀며 소인배적인 본성을 드러내는게 보통이다.     력사적현실이 보여주다싶이 부하고 곤궁함은 가변적이다. 흥부와 놀부의 이야기도 이를 시사하지 않던가? 현대에는 백만부자가 하루아침에 빈털털이가 되는 인생현장이고 로숙자가 로또에 당첨되여 갑작부자가 되는 기상천외의 기적도 비일비재인 현대사회인데 사람의 앞일을 어찌알고 그리도 기고만장인지?     기실 만백성이 다 잘사는 천국은 아무데도 없다. 비탈길을 톺지않고 산정에 오르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 내밥그릇 덜어주지 않은면서도 남의 밥솥걱정을 하는건 식은차를 놓고 하는 횡설수설에 지나지 않는다. 하긴 건망증이 심한 중국사람들속에도 불과 30여년전 배곯고 헐벗던 과거를 말짱 잊었는지 강건너 꾸짖기로 락후니 빈궁이니를 거론하며 발설하는 누리꾼들이 많던데 올챙이적 일을 잊은 개구리들을 보는듯싶다. 개구리는 미물이여서 그렇지만 사람이 과거없는 오늘이 없다는 상식도 모르니…     입을 가졌다고 저저히 정의를 신장하는체, 시비깨나 하는체, 대담한체 하는 욕쟁이들치고《삼국연의》에 북을 치고 옷을 벗어부친채 면전에서 조조와 그 수하들에게 줄욕을 퍼부은 “광인”문사 예형처럼 모가지를 내놓고 질타할이 몇몇이나 있을가? 강건너 꾸짖기는 아무도 할수 있으며 죽은사자는 당나귀도 걷어찰수 있다. 칭찬도 욕도 상대가 듣지 않으면 그저 말한 사람이 혼자 시부렁거리는격이 된다. 예형같이 못할바엔 공연히 객기를 부리는 작태이고 무모함이다. 욕질에 침을 튕기더라도 자기를 좀 알고 누구를 욕하든 욕해야 말본전이나 찾을 일이다.                                                  2013년 4월 5일
203    잡문에 대한 잡감 댓글:  조회:8514  추천:0  2013-05-21
                                  잡문에 대한 잡감                                           최 균 선        대저《잡문》이라 하면 로신선생을 떠올리지 않을수 없으며 그를 떠나서 중국 잡문발전사를 론할수 없다. 로신선생에 의해 고봉기에 오른 20세기 20년대말부터 “문화대동란”시기에 이르는 50년동안《로신풍》의 잡문의 발전맥락 및《로신풍》의 잡문작가들의 운명의 기복은 주지하는바이다.     1956년 1957년간에도 각 신문들에서는 잡문의 중흥을 개혁의 주요내용으로 삼았다. 그러나 잡문의 중흥은 뒤미처 지식계를 쑥대밭으로 만든 반우파바람이 휘몰 아치면서 중도이페하게 되였다. 당시 잡문은《백화제방, 백가쟁명》의 급선봉이였고 또한《백화제방, 백가쟁명》의 청우계였다. 그러나《백화제방, 백가쟁명》이 압제되면서부터 잡문의 흥성시기도 종말을 고하게 되였다.     1960년대초 산문의 제2차《부흥》과 더불어 잡문창작도 활약하기 시작하였지만 1961년부터 1962년사이 짧은 시기였다. 이 시기《악명높은》,《삼가촌잡기(三家村札记)》가 륙속 출간되여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등척의 유명한《연산야화(燕山夜话)》도 전국을 흔들었다. 그들의 잡문은 일종 사상태도와 문체풍격을 제시하였으며 관용과 중용의 형태속에서 현실생활의 결함을 랭철하게 투시하고 관심하고 용납하면 서 현대교조주의와 굳어진 사상질서에 대하여 질의하고 회의적인 비판을 들이댔는바 그로써 서술자의 정직하고 견강한 사상풍격을 부각하였다.     그러나 결과는 처참하여《삼가촌(三家村)》은《천하제일 검은촌(天下第一黑村)》이 되였고 그속에 잡문들은 대독초가 되였다. 입이 재화의 문이라고 잡문도 이처럼 재난을 불러와 20세기 문자옥의 새력사를 기록하였다. 잡문가는 비평에 은이박혀 송가에 등을 돌린탓이고 나서부터 하느님이 내려보낸 사회의《등애》로 될지언정 빈번이 “희소식”을 전하는 까치가 되려하지 않았기때문이다.      결국 로신풍의 잡문을 선호하던 많은 대가들은 최고권력자의 의지대로 하나둘 제거되였다. 로신은 일찍 “생존의 소품문은 독자와 함께 한가닥 생존의 혈로를 뚫고나갈 비수여야 하고 투창이여야 한다.”면서 잡문도 사람들에게《유쾌함과 휴식》을 줄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잡문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는 두가지다. 한부류는 비수와 투창의 작용만 강조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살기등등한 감각을 느끼게 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잡문은 모종 부류의 반감을 가지게 한다.     아닌게 아니라 예로부터 잡문은 재화를 불러왔다. 화를 부른 잡문은 건넌산 꾸짓기가 아니라 주위 사면팔방을 둘러보며 마뜩치 않은 사회악과 비리한 현상, 국민의 렬근성과 인성악, 도덕의 패륜 등 문제를 다루디보니 누구에겐가 득죄할수 밖에 없었다. 물론 화를 자초하지 않은 대잡문도 있다.     례컨대 제국주의, 수정주의를 비판하는 잡문은 하늘을 손가락질하고 발을 구르며 납함해도 누구나 탓할 일이 없었다. 그런데 그런 대잡문은 시대에 맞추어 나팔을 불었으므로 한때 들썽하였지만 화를 불러오지 않는 보도글처럼 력서장과 함께 훌훌 번져지면 곧 잊혀지고만다. 그러나 당년 사회의 암흑면을 파헤치고 채찍질하여 화를 부른 잡문은 지금도 생명력을 과시하고있다. 무엇때문인가? 답은 그속에 있다.     잡문은 폭로와 비판과 풍자를 수요한다. 풍자의 생명은 진실이다. 진실을 떠난 풍자는 원천이 없는 물과 같고 뿌리없는 나무와 같다. 진실한 말은 잡문의 생명으로 서 민의를 꾸며댄다면 신기루처럼 흔적없이 사라질것이다. 잡문은 산범을 직접 찌르 고 왜 사람을 잡아먹는가 하는 원인을 두리뭉실함이 없이 말해야 쓸모가 있다. 그러지 않고 서리발치는 비수로 새앙쥐나 발바리나 죽은 범을 찌르고 긴요한 관두 에는 에둘러대고 구두신고 발바닥을 긁는격이 되면 문자의 퇴적이 될뿐이다. 만약 잡문이 사람들에게 좋은 점을 념두에 두지 않고 범에게 잡혀 먹힐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진정 명리를 탐내는 소인지배가 아니겠으나 지금같이 총명해진 작가들속에서 어느 멍청이가 범의 아가리에 머리를 디밀겠는가?      드디어 춥고 어둡던 문화의 겨울이 지나가고 백화만발하는 새 시대가 도래하였다. 《문화대동란》이 결속되자 각 신문들에 부간이 회복되고 잡문은《사인무리》를 성토하고《문혁의 재난》을 청산하는 가장 경쾌하고 유력한 무기로 되였으며 그와중에 로,중,청의 수많은 잡문가들이 용솟음쳐 나왔다. 잡문가들의 출현과 잡문의 부흥은 새 시기가 안겨준 선물이라해야 할것이다.      그런데 사회가 상품경제시대 전국적으로 잡문이 불경기에 들어선것은 물론, 우리 조선족문단에는 더구나 잡문이 가물에 콩싹나듯 희귀하게 되였다. 무엇때문일가? 결코 잡문가들이 담략이 없고 문필이 무디여진 결과라고 말할수는 없다. 현시대 잡문 이 불경기에 처하게 된 주요한 원인은 말하기가 불편하지만 보이지 않는 문화의 주재자가《수렴청정》하면서 너무 단속하여 위축된때문이다.      듣건대 로신선생의 잡문도 중학교 교과서에서 하강하였다고 한다. 필마단창으로 적진을 향해 돌진하던 투사의 피어린 정신도 인제 “리직”하는것인가? 잡문의 저조는 우선 문화의 흥망성쇠와 유관된다고 생각해본다. 소일문화가 번창하고 지어 장려함 으로써 더욱 팽창하게 한것이다. 문화의 흥기와 쇠락은 절대적으로 시장경제의 수요에 의해 결정되는것은 아니며 문화가치에 의해 결정되는것도 아니다. 이는 로신선생 의 비애만이 아니라 이 시대의 비애이기도 한것이다.     다른 한가지 원인이라면 소일문화가 팽창함으로써 비평문화가 위축될수밖에 없다. 잡문에 비판성이 없다면 더는 잡문으로 존재할 리유가 없는데도 말이다. 필자도 로신선생을 숭배하던 나머지 잡문이랍시고 얼마간 끄적거려 보았는데 차차 가소로운 작동이였다는것을 깨닫게 되였다. 날카로운 필봉을 지향했지만 총명한 독자들은 역시 놀이감검을 휘두르는 꼴이라고 우습게 보았을것이다. 내가 정말 진짜 비수나 투창을 뿌리느라 설쳐댔더라면 해놓은 일도없이 처절한 웃음거리를 만들었을것은 자명하다.     지금의 잡문은 그저 잡문으로서 별것이 아니며 란신적자들이 가려워도 하지 않는 글에 머물고 만다. 폭로해도 그만이요 비평해도 그만이요 찬양해도 그만, 그 반응은 다 거기서 거기이다. 누가 자기 집문앞에 와서 재수없이 우짖는 까마귀의 소리를 노래로 받아들이겠는가? 하는 반성으로 또 한번 빈가슴만 두드렸을뿐이다.      불세출의 로신선생과 그의 정신을 이어받으려던 투사들은 이러저러하게 다 화를 불러와서 절명하고말았다. 암흑을 찢던 “비수”는 이미 땅속에 묻히였고 재빨리 녹이 쓸었다. 혈로를 헤치고 나올때 피에 얼룩진 다부산즈가 보이는듯싶고 한편 싸우면서 한편 퇴각하다가 이젠 더 물러설자리가 없게 되고 투창도 곳곳에 이가 빠졌음을 보는듯싶다. 따라서 지금은 사회라는 방패를 뚫을 창은 어데도 없음을 절감하게 된다. 잡문이 걸어온 력력한 발자국은 점점 희미해지고 잡문이 걸어갈 길은 오리무중이다.    지금은 로신의《비수와 투창을》받아들고 잡문을 쓰는 사람이 별로 없건만 그냥 잡문시대라고 칭한다. 하긴 잡문은 그 취지야 좋지만 창과 방패를 자랑하던 고대우화처럼 자가당착에 빠지게 하고 망연자실하게 한다. 잡문의 화원에 기어이 황혼이 오고야 마는가? 로신선생이여, 평안히 가시라!! 길이 명복을 비옵니다.                                     2012년 1월 14일  
202    입이 보살이니라 댓글:  조회:10363  추천:2  2013-05-21
                                입이 보살이니라                                      진 언                                         속담에 일신 천냥에 눈이 팔백냥이라는 말이 있지만 생존기능의 각도에서는 아마 입이 으뜸이리라. 그래서 우리 말에는 입과 말과 관련된 성구나 속담이 퍼그나 많다. 떠오르는대로 옮긴다면 입만 살다(성하다), 입만 까다, 입만 아프다, 입밖에 내다, 입을 놀리다, 입을 다물(봉하다)다, 입을 틀어막다, 입이 굳어지다, 입을 맞추다, 입을 모으다, 입을 떼(열다)다, 입이 가볍(무겁)다, 입이 천근같다, 입이 재다, 입이 뜨다, 입에 담다(올리다), 입(말밥)에 오르다…     입을 잘 단속할것을 제시하는 성구,속담도 여러가지이다. 입이 빠르다, 입이 싸다, 입이 달다, 입이 걸다, 입이 여물다, 입이 더럽다, 입이 개차반이다. 입이 사복개천 같다. 입이 닳도록(닳게), 입에 발린소리,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입이 광주리만해도 말 못한다, 입이 채구멍만큼 많아도 말할 구멍은 하나도 없다. 입에서 구렝이 나가는지 뱀이 나가는지 모른다, 입은 닫고 눈을 벌려두라, 입은 비뚤어도 주라는 발로 불라, 조상덕은 못입어도 입덕은 입는다, 짧은 혀 잘못 놀리면 긴목 잘리운다, 혀밑에 도끼 가 있다. 입이 보살이다.    말 안하면 귀신도 모른다, 말은 바른대로 하고 큰 고기는 내앞에 놓아라, 말은 청산류수같다, 말로 온동네를 겪는다. 살은 쏘고 주워도 말은 하고 못줏는다. 말은 할 탓이라, 말은 꾸밀탓으로 간다, 말이 많으면 쓸말이 적다, 말이 많으면 실언이 많다, 말이 말을 만든다, 말이 씨된다, 말이 아니면 갚지 말라, 말만 잘하면 천냥빚을 갚는다. 말한마디에 천근이 오르내린다. 말 많은집 과부집종년, 말 많은집 장이 쓰다. 말살에 쇠살에, 말잘하고 징역가랴, 말하는것을 개방귀로 안다.…     혀끝에서 살인난다는 말처럼 말은 하기에 따라 막중한 후과를 빚는다. 내입에서 나오는 말한마디가 내삶은 물론, 주변사람의 삶을 그리고 공중의 대소사를 망칠수도 있다. 입은 화(禍)의 문이요, 혀는 몸을 베는 칼이라고 했거니와 곰은 쓸개때문에 죽고 사람은 말때문에 죽는다고도 했는데 옛말 그른데 하나도 없다. 그래서 어느 시대이고 젊은세대들의 입을 잘 건사하지 못하여 구설수에 오르거나 막된 말, 악담, 쌍트러운 말, 허겁뜬 말…을 할가봐 걱정하여 입버릇처럼 입단속을 시켜왔다.     우리 연변농촌에서는 쓸말은 별로없이 입이 쉴새없으면 새새발이라하고 남자의 경우 듬직한 멋이란 없이 이랬다저랬다 변덕을 잘부리면 “당개(단개?)얕기는 새× 같다 ”고 사람들이 질색했다. 그도그럴것이, 말이 많은 사람은 거개 “당개가”얕고 입이 잰것이 아니라 헤프기십상이다. 생각없이 아무말이나 되는대로 내뱉은 사람을 두고 “그렇게 혀를 날름거리다가 입덕을 입지 않나봐라” 하고 질타하군하였는데 제버릇 개못준다고 말문이 닫힐때가 없는 사람은 힐난을 밥먹듯하고 살게 되였다.     위에서 지루할만큼 새삼스러운 말을 늘여놓은 속담들은 귀담아두고 말하기전에 한번 더 숙고해야 한다는 민간철학들이다. 산에 버섯이나 독풀, 뱀에게만 독즙이 있 는것이 아니라 이 세상 최고의 독이 스며있는것은 인간의 말이다. 킹코브리라는 뱀의 독성은 코끼리 한마리도 죽일만큼 지독하이지만 인간의 입에서 나가는 독설은 그보다 더 어마어마할 때가 많다. 독설은 대방만 죽이는게 아니라 그 자신도 심병을 앓는다.     말로 사람을 죽일수도 살릴수도 있다. 살리는 말을 하면 약이지만 죽이는 말을 한다면 이 세상 최고의 독설가가 될것이다. 입은 생각없이 잘 열리는 말문이니 평생 모두에게 리롭고 모두를 살리는 말만 할수 없지만 사람이면 입놀림에 심히 류의해야 할것이다. 한사람의 지혜란 사람이 되는 지혜인데 처사함에서 첫째로 지혜가 수요되는것은 언동이다. 말을 하는것은 자기의 의사가 말의 대상ㅡ청자를 향해 참여할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러나 청자가 듣지 않거나 들은 말에 반감을 가질 때 상대자와의 일차적관계를 상실함으로써 그 말은 자신의 근거를 상실한채 빈말이 되고만다.    “나”는 세계의 중심일수 없으므로 청자의 심리와 정서반응을 고려하지 않을수 없다. 세상에서 가장 리해할수 없는 일은 세상을 리해할수 있다고 생각하는것이라는 아인슈타인의 명구가 있다. 이 말을 패러디한다면 스스로도 리해할수 없는것은 다른 사람들의 심사를 알고있다고 생각하는것이다, 나도 나를 알수없는데 어찌 대방을 다 안다고 말할수 있는가? 그래서 떠오른 생각을 즉시에, 죄다 털어놓을 필요가 없다. 대방이 듣고싶어하는 말만 골라할수는 없지만 망탕소리는 각별히 삼가할바이다.      말에는 할말과 하지말아야 하는 말이 있다. 개체간에도 조롱하고 비아냥거리면 타방의 자존심을 건드리고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히기 마련인데 작정하고 심기를 건드리는 말만 골라하는 사람은 그 자신은 똑똑하다고 젠체할지 몰라도 겉에서 보건대는 너무 바보스럽다, 참새떼가 처마끝에서 재잘거려도 합창이 되지 못하고 개구리가 밤새 요란스레 울어도 주제곡이 없는경우과 같다면 그 화자는 너무 불쌍하다. 개체로 말하면 여물지못했다고 점찍거나 덜떨어진 팔삭둥이쯤으로 여기면 그만이다.      헌데 공공언론인의 위치에서 방송국이나 신문사 등의 보도기관에서 어느 한 세력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여론을 몰아가려는 보도행위(언론플레이)가 전업이라도 못내 심사숙고하고 매 한마디를 잘 선정해야 한다. 이는 기자로서의 최저의 상식이다. 말 이란 어떤 자리에 있든, 무슨 직책을 맡았든 기분, 정서에 수반되여 이렇게 저렇게  불쑥불쑥 튀여나가게 되지만 내기분, 내정서대로 풀리거나 해답을 주는 일은 하나도 없다. 왜냐? 어울려사는 세상속이니까, 어울려살면 타자를 의식해야 하니까.      입이 보살이라 하여도 혀를 잘못놀리면 입덕을 입는것은 변소문을 열면 구린내가 나는것처럼 당연한 일이다. 자극적인 말은 대방의 분노와 만용을 자초할수 있을뿐더러 긍정적인 역반심리을 촉발시켜 폭발력을 산생시키기도 한다. 발전하는 세계, 모든것이 변화하는 마당에서 아직 생기지도 않은 일을 두고 콩이니 팥이니 한다거나 나만 진리이고 대방의것은 무조건 나쁘다는식의 힐난, 아전인수식의 갖잖은 해석, 꿈보다 해몽이 그럴듯한 언론풀이, 긴장조성의 빌미가 되는 횡설수설, 대방은 아무것도 아니라느니, 거지니 하는 등등의 막말은 부메랑으로 돌아올것은 불보듯 뻔하다. 부함도 귀함도 일장춘몽인데 잘사고 못살고가 영구불 변이라고 생각하며 “장비야 내배 다칠라”한다면 한참 부족한 사람들이다.       언론 역시 자신들의 무분별한 말에 의해 엄청난 후과를 가져온 실태에 대해 깊이 반성하는 자세가 있어야 할것이다. 말한마디, 한마디가 소사는 물론 대사를 망치기마련이다. 지금 눈앞에서 돌아가는 많은 일들이 그것을 시사하고 있지 않는가?! 아무리 수시로 열리는 입이라도, 아무리 자물쇠를 채웠다가여는 말문이 아니라도 혀가 돌아가는대로 말을 내뱉아서는 실언에 그칠일이 아니라 살생을 자초할수도 있다. 혀밑의 도끼를 내키는대로 휘두르는것은 능사가 아니다. 인간은 그가 누구이든 감정적으로 처사하지 않을수 없지만 분촌이 있어야,      “적대국가”가 청자인경우도 그렇다,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붙여야 할 언론이 작정하고 격한 감정만 불러일으키고 붙는불에 키질하는식으로 입방아로 대결과 반목만 조성한다면 얻어질것은 민족의 분렬의 고착일뿐이요 닭싸움을 붙여놓고 구경하는식으로 호시탐탐하 어부지리를 노리는 강대국들만이 쾌재를 부르며 손벽칠일밖에 남지않는다. 그래도 그냥 외세와 짝짝꿍을 치며 잘코사니를 부르며 좋아죽겠는가??? 인생살이에는 혹여 너무 좋아하다가 죽는 일도 있거늘…                                          2013년 4월 20일
201    참, 중구난방이로세 댓글:  조회:9730  추천:0  2013-05-14
                               참, 중구난방이로세                                     진 언                                    중구난방이란 여러사람의 입은 막기가 어렵다는 뜻으로 사방에서 마구 지껄임을 이르는 말이다. 장마당에서는 중구난방으로 와짝 고아대지만 그런 와중에 잘들 팔고 사더라만, 그러나 아래와 같은 “언론상품”은 임자가 있는듯 곧 없어질것이다. 인터넷에서 이런 국제기사들을 읽으면서 참으로 중구난방이란 이런거로구나 하고 생각했다.     1) “'움직이는 中' '숨통 막힌 北'… ” “中, 대북 석유뿐 아니라 주민용 가스공급도 축소한·미 양국의 대북 압박·제재 효과가 현실화하고 있는 징후가 포착되고 있다. 먼저 중국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중국이 4월 중순부터 북한 경제의 유일한 에너지원인 대북지원용 석유 물량을 대폭 줄 인 데다, 북한 주민에게 필수적인 취사용 가스 공급까지 축소하면서 대북 레버리 지(지렛대)를 적극 활용하기 시작했다. 이에 북한은 제재 국면 탈피를 위한 대남·대미 위협언사를 통해 중국을 곤혹스럽게 만드는 동시에…”  (신보영·방승배 기자)     2) 출처: 시사평론 ㅡ 정론직필을 찾아서   “중국측 통관 검사 강화에도 북중 교역은 여전히 탄탄”   “중국 정부가 북한과의 무역 통관 검사를 강화했지만 여전히 양국간 무역은 탄탄 하다고 로이터 통신이 30일 보도했다. 로이터는 단둥(丹東)과 다롄(大連)에서 일하는 12명 가량의 대북 무역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물어본 결과, 약 절반은 세관 당국이 선적되는 물건들을 예전보다 더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대부분 사업가들은 통관이 엄격해졌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무역이 큰 타격을 입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단둥시 해외무역경제협력사무소 관계자는 "접경 무역 정책은 예전과 똑같으며 아무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단둥의 다른 관리도 "중국과 북한간의 무역은 국가 차원에서 조정되고 있다. 우리는 결정할 수 없다. 그리고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하략)     3) “WSJ "개성공단 멈춘 北, 對中 교역량마저 감소"…    中, 1분기 對北 수출 13.8% 줄었다"中, 평양의 잇단 도발 위협에 점점 인내심 잃어가고 있다" 조선일보 | 베이징 | 입력 2013.05.03 03:21 |    4) (상략)“현재 중국은 북·중 접경에서 대북 통관 규정을 엄격하게 적용하고 있다. 실제 4월 28일~5월 1일 검색하기">랴오닝성 단둥(丹東)에서 열린 '국제 공예미술품 및 여행상품전람회'에 북한은 미술품 등 물건만 보내고 사람은 보내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작년 10월 '중조 상품전람회' 때 북한 100여개 기업에서 300여명이 참가한 것과 대조를 이뤘다. ⓒ 조선일보- 5) 중국, "北에 비료 대량 공급"    "엔녀보다 빠른 4월26일부터 각 도에 중국 비료 공급이 시작" 노컷뉴스 | 노컷뉴스 안윤석 대기자 | 입력 2013.05.08 07:33     중국이 최근 북한에 비료를 대량으로 공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함경북도의 한 농업부문 관계자는 7일 "예년과 다르게 중국정부가 상당히 이른 시기에 화학비료를 지원했다"며 "협동농장들에 분배되는 량으로 추산해 보면 대략 20만 톤 이상 지원이 된 것 같다"고 자유아시아방송에 말했다.(하략)     6) [中, 北은행과 금융거래 중단… 美 요청 전격수용 왜?] 조선일보 | 이용수 기자 | 입력 2013.05.08 03:17 | 수정 2013.05.08 09:23 '중국 외환 거래의 허브'로 통하는 중국은행(Bank of China·BOC)이 7일 북한 조선무역은행과의 거래 중단 사실을 공개한 것은 북한에 대한 중국의 생각이 근본적으로 바뀌기 시작했다는 신호로 볼 수 있다. (하략)     7) 中 건설은행 북한 송금 업무 계속해" 연합뉴스 | 입력 2013.05.10 23:09    (단둥 교도=연합뉴스) 북한과의 거래를 중단한 것으로 알려진 중국 건설은행이 단둥에 있는 지점을 통해 북한으로의 송금 업무를 계속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익명을 요구한 단둥은행 관계자는 10일(현지시간) 중국 건설은행이 중국과 북한이 함께 운영하는 단둥 지점을 통해 북한으로 돈을 보내는 채널을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중국 4대 은행인 중국은행, 건설은행, 농업은행, 공상은행 등이 북한으로의 송금 업무를 중단했다는 기존 언론 보도와 차이가 나는 것이다…    8) 중국 4대은행 대북송금 중단    한겨레 | 입력 2013.05.10 21:00  [한겨레]브리핑    중국은행을 비롯한 중국의 4대 국유 상업은행이 대북 송금 업무를 모두 중단 했다고 이 10일 보도했다. 은행 관계자들은 "북한 미사일 발사 및 핵실험에 대한 제재조처의 일환으로 중국 정부 기관으로부터 (북한 계좌를 폐쇄 하라는) 직접 지시가 있었다"면서 "중국에서 일하는 북한인의 본국 송금에 영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4대 국유 상업은행은 중국은행·건설은행 ·농업 은행· 공상은행이다.    9 ) 【서울=뉴시스】유세진 기자 = 북한이 남북한 협력 사업의 상징이던 개성 공단에서 일하던 자국 노동자들을 고용해줄 것을 중국에 요청했다고 일본 아사히 신문이 9일 중국 당국자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10) 【서울=뉴시스】강수윤 기자 = 정부 당국자는 9일 북한이 중국 측에 개성 공단 철수 근로자를 고용해달라고 요청했다는 외신 보도에 대해 "개연성은 있다고 볼수 있지만 확인하기는 어렵다"며…(하략)    11)  "중국, 최근 북한에 비료 20만t 무상 지원"< RFA> "채찍과 당근 병행…대북제재 동참하면서 인도적 지원" 연합뉴스 | 입력 2013.05.15 "채찍과 당근 병행…대북제재 동참하면서 인도적 지원" (서울=연합뉴스) 조성대 기자 = 중국이 최근 북한에 대량의 비료를 무상으로 지원한 데 이어 조만간 식량 원조도 재개할 방침이라고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이 14일 보도했다.     이만 략하고, 옛날 우리는 아이때 “그 거짓말이 정말이니?”하는 말을 잘썼는데 상기한 기사문들에서 어느 “정말”이 거짓말인가? 첫번째 기사를 두번째기사가 완전히 뒤집어버렸다. 세번째, 네번째, 다섯번째…열번째 각인각설이다. 언론플레이를 한다는게 개구리합창단이 되여버렸다고 비유하면 너무 비약하고 동문서답인가?     무릇 모사가 많아야 경영이 잘되지만 의론이 저마끔이면 아무일도 성사시킬수 없는법이다. 언론영향의 높이와 넓이와 길이와 깊이를 확보하는것은 매체경영의 성공의 요건이다. 태생적으로 남을 깎아내리고 멸시하는 “덕성”을 가진자들은 종합적 사고방식을 모르거니와 눈을 들어 멀리 풍물을 내다볼줄 모르고 눈앞에 현상만 보고 왈가왈부한다. 그네들의 그런 언론전략은 언제나 반복되고 동일하다. 거짓말도 세번 반복하면 정말인듯 들리는것과도 차원이 다른 일이다.    보통 우물안개구리로 견식이 좁고 젠체하는 사람을 비유하는데 궁리, 계획, 방책, 계략, 책략, 지혜 등의 부재는 쓰잘것없는 오만과 아집에 있다. 타인에 대해 작정하고 비난하는 악습은 결코 만유의 각기 본질과 그 정체성과 그 기능과 역할과 반응을 다 고려할줄 모른다. 같은 사건에 제좋은소리만 줴치면 “개구리합창”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믿거나 말거나인가? ”, “아니면 말구식인가?” 혹은 이른바의 모욕적인 지칭, “반도인”의 고질적인 소인적기질이라고 세인들이 비웃지는 않을가?    그저 리간질하고싶어 혀가 절로 날름거리더라도 스스로 씹어대서야 쓰것냐? 그냥 대방에 재난이 첩첩하기만 바라다가 그만 섣부른 “잘코사니”를 불러서 제혀를 씹고들 있다. 수탉님이 “꼬끼요”하는 소리는 전지구적으로 약속이나 한듯이 한결같다. 수닭이 울어서 날이 밝지않지만 한결같은 그 정성만으로도 좋은것이다. 언론인도 따라 배워야 할듯싶은데…                                                                     2013년 5월 10일, 5월 15일 (보충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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