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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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되돌아보는 감사절의 의미 댓글:  조회:3663  추천:2  2011-11-29
금년 11월 24일은 감사절(Thanksgiving Day)이다. 추수감사절 또는 감사일이라 하는데 기독교신자들이 한해에 한번씩 가을곡식을 거둔 뒤에 하나님께 감사례배를 올리면서 기인되였다 한다. 1620년에 미국으로 이주한 영국청도교들은 다음해 가을에 첫 수확을 거두자 감사한 마음으로 례배를 올리기 시작하였다. 후에 미국대통령 링컨이 매년 11월의 네번째 목요일을 감사절로 정하면서 미국의 감사절기념행사는 우리 나라 음력설 못지 않게 성대하게 기념되고있으며 점차 구미의 전통명절로 전해내려오고있다.    우리 나라의 문호가 개방되면서 발렌타인데이와 같은 서방의 기념일이 들어와 젊은층들속에서 점차 선호되고있는가하면 상가들에서는 이런 서방명절을 호기(好机)로 리용하고있다. 언제부턴가 달력에도 우리 나라의 전통명절과 함께 감사절도 표기되여있다.   감사절이 다가오면서 상점에 들어가보면 여기저기에 감사절 판촉이벤트가 눈에 띄이고 매스컴에서도 감사절 부모나 은인에게 드리는 좋은 선물이라는 상품광고의 빈도도 높다. 물론 상품판매를 위한 판촉수단이기는 하나 한번 감사절의 의미를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그 어느때보다 금전욕이 팽배되여 우리 사회는 갈수록 부모와 자식, 친척, 이웃 등 모든 인간관계가 소원해지고있다. 우리 사회가 갈수록 “사막화”되여가면서 “오아시스”가 더욱 필요한 시기다. 이번 추수감사절을 빌어 감사의 마음을 한번 가져보고 그 감사메시지를 사랑에 담아 전한다면 우리 주변은 순간이라도 사랑으로 넘치지 않을가.   지난해 이런 일이 발생해 전 사회적으로 큰 파문을 일으킨바 있다. 한 빙상운동선수가 시상대에서 메달을 목에 걸고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부모님께 감사한다고 하여 귀국후 체육관원한테 나무람당했다는 소식이다. 이처럼 우리의 사회는 여러가지 원인으로 하여 아직도 경직되여있는 면이 많고 상호간 소통과 리해, 사랑이 너무 린색하다.     감사절을 계기로 하여 아무리 바쁘더라도 나를 낳아주고 길러준 사랑하는 부모님께, 지식의 물꼬를 틔워준 존경하는 스승님께, 그리고 나에게 은혜를 베풀어준 이들에게 감사하다는 전화 한통 해보는것도 감사례배를 드리는것 못지 않게 의미깊은 일인것 같다.     작은 일에도 항상 감사한 마을을 갖고 행복한 추억을 차곡차곡 쌓아가는것이 열심히 살아간다는 의미가 아닐가 한다. 
7    친일문학과 최삼룡선생 댓글:  조회:2854  추천:15  2011-10-20
친일문학과 최삼룡선생 Author:관리자 Date:10/20/2011 전 연변사회과학원 문학예술연구소 소장 최삼룡 친일문학하면 일본에 친근하고 일본을 구가하는 문학으로 인식되여왔고 우리와는 거리가 멀어 별로 연구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일전 “김문학씨 70권 도서출간식” 참석차 심양에 온 전 연변사회과학원 문학예술연구소 소장 최삼룡선생(72세)과 대화를 나누면서 친일문학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가지게 되였다. 1999년 4월 정년퇴직한 최선생은 《중국조선족문학사》와 2005년에 출간한 《중국조선족문화사대계》 중 문학사(산문과 시) 집필에 참여하였다. 또 《해방전 친일문학자료집》 출간(2002년)을 토대로 2008년에 《해방전 재만조선족친일문학선집》을 출간하였다. 이 책자는 2009년 한국문화관광부 우수학술도서상을 수상하였다. 중국에서는 토지개혁을 거치면서 친일분자가 청산되였기에 친일문학을 거의 제기하지 않지만 해방전 문학관련 자료를 정리 발굴하면서 친일문학의 존재를 느꼈다고 그는 소감을 밝혔다. 하여 력사를 정시한다는 차원에서 친일문학관련 자료를 수집 발굴하여 책자까지 펴냈다. 《해방전 친일문학자료집》은 연변대학 도서관의 자료에 근거해서 발굴한것이라면 《해방전 재만조선족친일문학선집》은 세미나차 한국에 간 기회에 사비를 털어가며 한국국회와 연세대학의 귀중도서실과 열람실에서 수집 발굴한것이다. 강경애의 “간도여 잘 있거라” (룡정에서 쓴 글), “두만강례찬”은 연활자체에 복사체로 오랜 책자여서 어떤 글자는 희미하여 부득불 현미경으로 확대해 정리하는 등 간고한 작업도 마다하지 않았다. 최선생은 이러한 자료들은 중국조선족들이 처음 보는 글이라며 “우리 민족의 문학사는 물론 정신사 연구에서 필수자료”라고 했다. 그가 발굴한 자료들은 한국이나 조선에서 여직껏 발굴하지 못한 자료들이여서 더욱 값지고 귀중했다. 박팔양은 카프에서 탈퇴한 뒤 1937년에 만주로 가 일본인들이 꾸리는 신문 《만몽일보》(만선일보로 개명)에서 사회부 부장을 맡았고 1940년에 만주제국협화회총회 상무리사로 전근되여 조선인대표로 왕정위 등 친일파들과 친일활동에 참여했으며 “청목팔양”이라는 일본이름으로 여러수의 친일시를 창작했는데 이번에 최선생이 발굴해낸것이다. 광복후 박팔양은 조선에 가서 평양 김일성대학 교수, 《로동신문》 부주필, 작가협회 제1부위원장 등 직을 력임하였다. 또 다른 중요자료로 당시 연길에서 “대친일주구”로 불리웠던 김동한(전 쏘련공산당 당원에서 일본이 만주에서 만든 협조회 회장을 맡고 항일투사 1천여명을 귀순시키는 등 친일행적을 하였다가 항일투사에게 가목사에서 피살당함. 일본제국주의는 연길공원에 그의 동상을 세우고 “욱일훈장”을 수여)을 구가하는 장막극을 카프성원이였던 김영팔이 창작했다는것 역시 그에 의해 발굴되였다. 또 “대동아전쟁과 문인의 각오” 라는 동제목으로 일본식민지침략을 구가한 글을 여러 사람이 써냈는데 그가 11편을 찾아냈다. 한국에서 한편만 찾아내도 신문 톱기사에 나갈만큼 중요사료라 한다. 중국조선족소설의 기초를 닦은 김창걸도 역시 친일글을 썼다. 이에 대해 그는 일제강점기 친일글을 몇편 썼다하여 모조리 친일파로 몰아서는 안된다며 문학에서 친일행적과 성향을 따져보고 문학인들을 평가해야 한다고 주석을 달았다. 즉 의식에는 친일경향이 있으나 그 내용의 밑바탕에는 민족애환이 담겨있다면 고려할바라는것이다. 해방후 조선에서 “김일성장군의 노래”를 지은 리찬은 당시 유명한 친일작가였고 조선의 유명한 작가 송영도 친일연극을 많이 창작한 사람중 하나다. 그러나 청산되지 않았고 오히려 조선작가협회 요직을 맡았는데 “조선에서 줄을 잘 섰다”는 평이다. 친일은 력사문제로 당시 일본제국주의 식민치하에서 만주국건립의 건국리념을 찬양하고 일본의 중국침략을 구가하고 반공을 주장하는 등 친일행적 여부로 친일문학인가 아닌가를 판단해야 한다고 그는 주장했다. 따라서 최근년에 한국 모 방송에서 재일조선족 중한일비교문화학자 김문학씨를 친일명단에 포함시키고있고 중국조선족문단내 일부 사람들도 그를 친일파로 오해하고있는데 “현시기에는 친일파가 존재하지 않는다”며 “엉터리”라고 일축했다. 김문학씨의 문화평론에 대해 어떻게 보는가 하는 물음에 그는 중국조선족문학거두였던 김학철선생이 작고하기 몇달전 “집중포격은 금물이다”는 글에서 “괴재”라고 평가한것처럼 학자적인 열정과 노력으로 만들어낸 성과, 그리고 그의 문학장(文學場)이나 문화장(文化場)은 조선족가운데 누군가가 해야 할 일을 그가 해내고있는것이라고 직언했다. 최선생은 김문학씨가 《중국조선족대개조론》에서 연변대학 교수들을 북경에서 아이스크림을 파는 사람보다 의식이 못하다고 폄하하고 연변지역인과 중국 기타지역인을 분리시키고 장단점들을 죽 렬거하여 연변문단의 집중포격을 당한바 있는데 비교문학의 관점으로 조선족의 렬근성을 잘 지적하였고 또 그가 자기의 여러 책자들에서 중한일 3국의 차이점을 잘 들어내고있는데 “신선한 충격”이 아닐수 없다고 했다. 또 중국조선족문학이 세계로 진출한다고 제기한지는 20여년이 되였지만 김학철외 김문학씨를 거론하지 않을수 없다며 그러나 해외에 나간 조선족지식인들을 “신조선족”으로 지칭하는 등 신조어를 만들어내고 “문화자본주의” 등 혼동하기 쉬운 제기법을 나름대로 제기하는것에 대해 공중지식인으로 책임감을 갖고 더욱 신중성과 과학성을 기해야 한다며 아쉬움도 드러냈다.                       오지훈기자  
6    백청강의 승리 1, 2, 3… 댓글:  조회:4095  추천:30  2011-06-14
               백청강의 승리 1, 2, 3…                                                      석천    연변의 23살의 당당한 신세대 백청강이 지난 5월 27일 한국 MBC “위대한 탄생”에서 단연 우승을 거머쥐면서 연변의 사투리인 “앙까(압니까)” 단어가 널리 알려질 정도로 백청강의 이름과 함께 백청강의 효과가 중국과 한국에 조선족의 새로운 “코리안드림”과 함께 신드롬을 만들어내고있다.      백청강이 7개월간의 대장정속에서 한국, 중국, 일본, 미국, 동남아 등 나라에서 온 300여명의 경쟁상대를 뚫고 쾌거를 이뤄낸데 대해 언론매체들은 “백청강의 승리”에서 “연변의 자랑”, “조선족의 승리”로 대서특필하였다. 한국이나 조선족 언론은 물론 중국신문넷 등 중국 주요 언론매체에서도 그의 승리와 상금기부 등 소식을 생생하게 전하고있다.     백청강의 승리에 조선족들은 환호하고 그의 성공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고있다. 필자는 백청강의 승리를 지켜보면서 백청강의 승리내면에 잠재한 몇가지 현상을 짚어보려고 한다. 우선 그의 성공은 인간 백청강의 불굴의 노력과 도전의 결과이다. “코리안드림”으로 하여 많은 조선족아이들이 그러하듯 부모가 한국에 돈벌러 나가면서 그도 결손가정의 아픔을 감수했고 술집에서 공연 아르바이트를 뛰며 가수의 꿈을 열심히 키워왔다. 따라서 백청강의 승리는 조선족세대들에게 역경속에서도 꿈과 희망을 갖고 노력하면 성공할수 있다는 신심과 희망의 메시지를 주고있다. 다음 한국에서 더는 흩어진 모래알이 아니라 뭉쳐보려는 조선족의 힘을 과시했다. 한국내 쟁쟁한 대상들과의 겨룸속에서 백청강이 이길수 있었다는것은 최근년에 적극적으로 다문화정책을 통한 한국의 공정사회 구사와도 관계되지만 또한 이번 오디션이 심사위원들의 평가와 시청자들의 문자투표로 진행되는 특점을 감안하면 재한조선족들의 적극적인 투표가 백청강을 역전과 함께 최종 승자로 등극할수 있게 하였다. 따라서 백청강의 승리는 “조선족의 승리”라고도 할수 있다.     백청강의 승리가 더욱 돋보이는데는 우승후 약속대로 한화 5천만원 상당의 현금과 물품을 보육원 등에 당당하게 기부하여 한국사회에 감동을 선사한데 있다. 어찌보면 그의 기부는 한국내 실추된 조선족이미지 개선과 동시에 한국사회에 훈훈한 중국동포의 정을 뿌려주었다.     백청강의 한국에서의 쾌거는 격변기속에서 몸부림치고있는 조선족사회에 희망과 활력을 불어넣었을뿐만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조선족의 성공가능성을 활짝 열어놓았다. 따라서 그의 승리는 한국뿐만아니라 중국에서 조선족의 위상을 높여주었다고 할수 있다.     백청강이 한국에서 연예인으로서의 성공을 기대하고 응원한다.         
5    민간단체도 이런 책임을 댓글:  조회:3376  추천:65  2011-05-23
  얼마전 한 민간단체의 상무리사회의에 참가한적 있다. 금년 사업요점 확정이 회의 주요의제였는데 협회의 "로령화" 화두가 나오면서 회장은 삽시에 열띤 분위기로 변했다.   누군가 40세이하 젊은이들이 점점 줄어들고있다며 특히는 과학연구소, 대학교분야 조선족젊은엘리트로 구성된 우리 협회도 이런 추세로 나가면 5-10년뒤 협회의 존속도 어렵다고 했고 또 갈수록 학생원이 매년 줄어들고 또 대학졸업후 남방이나 외국으로 많이 류실되고있는것이 현실이라 하면서 수수방관할것이 아니라 현실을 직시하고 지금부터 대책마련에 나서야 한다는 등 각자의 의견을 내놓았다. 한동안의 여론끝에 과학연구소나 대학교에서 조선족젊은인재를 심도있게 발굴하는 동시에 입회 문턱을 낮추어 조선족중학교의 골간교사들도 흡수하고 년령층을 “80”에서 “70”에로 확대하여 “젊은피를 많이 수혈하자”는데로 의견이 모아졌고 조선족중학교 중층이상 간부들을 영입할데 관해 구체인원분공까지 했다. 또한 조선족학생들이 어려서부터 과학기술에 관심을 갖도록 이끌기 위해 조선족중소학교가운데서 과학기술발명활동을 적극 조직 창의하자고 하였다.   “민족인재의 발굴, 양성은 우리 협회의 미룰수 없는 책임이다. 이는 협회존속에 관계되는 문제일뿐만 아니라 민족생존과 미래발전에 직관된다” 이 협회 책임자의 말을 들으면서 민간단체의 의무와 책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본다.    민간단체는 말그대로 협회원들간 친목을 도모하는 단체다. 그렇다고 만나서 술잔을 나누면서 지나간 회포를 푸는데 그친다면 별 의미가 없다고 할수 있다. 이 몇년래 산재지역 민간단체의 역할은 이 범위를 넘어서고있는데 어떤 민간단체는 "범정부"의 역할로 개혁개방시대 외자유치, 지역경제발전에 일조하고있을뿐만 아니라 이 지역 조화로운 조선족사회건설에도 이바지하고있다. 이러한 사실들은 성조선족경제문화교류협회나 료녕성조선족기업가협회, 심양시조선족기업가협회 등 여러 민간단체들이 최근년에 민족사회 경제문화발전을 위한 노력과 기여에서도 기껍게 찾아볼수 있다. 여러회를 이어오는 조선족 민속절, 유원회나 불우학생돕기, 기금모으기 등 여러가지 행사와 활동들은 단순한 행사범위를 벗어나 민족정신을 고양하고 민족전통을 보존, 전승, 발전시키는데 있어서 한층 깊은 의미를 부여하고있다.   주지하다싶이 민간단체들은 초기 어떤 목적을 갖고 “탄생”하였든간에 과거의 단순한 친목도모의 단체가 아니라 새로운 력사격변기에 들어서서 민족운명과 맥을 같이하고 그 지역 조선족사회의 응집력을 구성하고 구심점역할을 하는 단체로 발전하고있다. 본지 “민간단체 민족공동체구축의 진두에 서야” (1월 1일자) 이 글에서도 민간단체의 역할과 사명에 대해 여러방면으로 깊이있게 전개한바 있는데 우리 모두가 이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때라고 생각된다.    주류사회발전에 적응할수 있는 민족후세대의 양성은 물론 새로운 시기 조선족사회정체성 보존, 민족공동체구축에 있어서도 우리 민간단체들의 역할과 책임이 그 어느때보다 필요하고 막중한것 같다.  석천
4    인제 식탁거리가 두렵다 댓글:  조회:3307  추천:71  2011-05-23
  석천   30년전만해도 별로 먹을거리가 없어 걱정이였는데 요즘은 먹을거리가 넘치지만 먹기가 두려운 시대다.   요즘 뭘 사먹나?  매일 유독식품을 먹고있으니 팔십은커녕 륙십도 제대로 살가? …   요즘 신변에서 들려오는 대화를 들으니 아닌게아니라 식품안전이 가장 무섭다.   3년전 유아들의 분유에서 멜라민성분이 검출되면서 오래동안 잠자고있던 중국내 식품안전이 화산처럼 “분출”된것 같다. 최근년에는 가짜보다 더 무서운 유독성 첨가제를 넣은 식품이 우리의 주변에 더욱 넘쳐나는판이다. 올 들어 유독성 첨가제를 사용한 콩나물과 생강, 유해색소를 첨가한 옥수수만두, 또 식용금지의 약물인 클레부테롤 등을 섞은 돼지고기가 류통되다 잇따라 적발됐다. 요즘은 "불임오이"까지 나와 세상이 이런 일이 할 정도로 중국식품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지고있다.   심양에서 “유독콩나물”이 적발된지 얼마안되여 "불임오이"사건이 터졌다. 광동과 섬서 두성에서 동시적발된 이 “불임오이”는 생장촉진과 신선도유지를 위해 피임약을 사용해 재배한 오이로 "피임약사용은 오이재배농가들사이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할 정도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들은 먹지 않으면서 시중에 버젓이 류동시키고있다.   누리군들은 "무엇하나 안심하고 먹을게 없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중국식품안전이 최근년에 이렇게 심각해진데는 여러가지 원인이 있다. 우리 나라 문호개방과 더불어 서구의 사고방식과 금전욕, 물질욕이 점차 사람들의 의식속에  침투되면서 돈밖에 모르는 일부 부도덕한 장사군들이 첨가제의 기준치를 초과하거나 유독성 첨가제를 사용하여 식품안전을 크게 위협하고있지만 이에 따른 법률적제도가 완선화되지 못한데 있다. 또한 식품안전에 대한 언론감독의 중요성이 강조되는면도 홀시할수 없다. 외국언론도 중국언론이 정부를 도와 언론감독의 채찍을 들었다는 평이다. 어찌보면 중국이 언론을 통해 식품안전을 강화한다는 강한 메시지이기도 하다.   가짜, 모조상품 범람으로 “짝퉁이천국” 별호까지 붙은 중국, 식품안전에 서서히 초비상이 걸리고있는 가운데 유독식품을 만들어내거나 류통시키는 자는 무조건 사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갈수록 높아지고있다.    음주운전 단속이 그 어느때보다 강화된것처럼 식탁거리에 대한 보다 완선화된 관리제도와 식품범죄에 대한 보다 엄하고 단호한 법률적조치가 필요하다.
3    "제구실"과 "찬밥신세" (석천) 댓글:  조회:3530  추천:45  2011-03-31
"제구실"과 "찬밥신세" -석천어릴 때 “언제 저놈이 제구실을 하겠냐”며 푸념반 걱정반 하시던 부모님의 말이 생각난다. “제구실”이란 언뜻보면 “언제 철이 들겠는가” 하는 뜻과 통하지만 “마땅히 해야 할 일이나 책임”을 말하는것으로 중국어의 “분내사(分內事)” 혹은 지금 사회적으로 사용빈도가 높은 “작위(作爲)”나 “유위(有爲)”로 말할수 있다.  “우리가 제구실을 해야 사회에서도 우리를 더 지지하고 후원해줄것입니다.” 대련시조선족학교 김영실교장의 말이 새삼스럽고 감명깊다. 그만큼 자기가 할 일을 스스로 해서 가치를 창출하여 사회적으로 인정받아야 그만큼 떳떳하고 의의가 있다는것이다. 학교졸업식에서 사회적후원이 줄을 이었다는것은 단순하게 경제적후원 차원을 벗어나 학교가 학생들의 다방면 능력양성에 쏟은 심혈과 그 노력에 대한 긍정이고 응원이다. 어찌보면 중점대학진학에 편중하는것보다 졸업한뒤 사회에 진출하여 취업할수 있는 길을 넓혀주기 위한 하나의 대담한 실천이다. 또한 무작정 사회에 손을 내밀고 “구걸”하는것보다 퍽 효과적인 학교 “수익창출”의 루트이기도 하다.   제구실을 한다는것은 말처럼 결코 쉽지 않다. 작게는 개인이나 가정에서, 크게는 사회와 민족을 볼 때 그가 갖는 의의와 영향은 매우 크다. 그만큼 자기에 대한 책임, 사회에 대한 책임을 갖고 자기가 설 자리를 찾을 때만이 비로소 제구실을 거론할수 있다. 만약 제구실을 못한다면 우리 앞에 차례지는것은 “찬밥신세”다.  21세기 격변의 시대를 맞아 타민족에 비해 우리의 우수성이 많이 떨어지고 주류사회에서 우리 민족의 립지가 점점 좁혀지는것은 우리가 제구실을 못하고있다는것과도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경제기반이 위축되고 민족간부가 신속하게 줄어들고있는 현실에서 스스로 제구실을 한번 깊이 따져보는것도 필요한것 같다.                                
2    이젠 우리에게도 “면허증" (지훈) 댓글:  조회:3537  추천:56  2011-03-31
이젠 우리에게도 “면허증”    -오지훈    “중국동포도 한국취업에서 ‘면허증’이 있어야 한다.” 일전 한국직업전문학교 한 관계자가 전산탈락자(C-3)들의 한국내 취업을 설명할 때 한 말이다.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07년부터 무연고동포의 한국어시험에 의한 방문취업제도 실시로 하여 4년동안 8만 9000명이 H-2비자를 쥔 반면에 한국어시험 합격자 9만 7천여명이 전산탈락자로 대기중이다. 따라서 한국정부는 래년부터 한국어시험제도를 페지한다고 공고한 한편 전산탈락자들에게 한국체류 90일짜리 C-3을 발급하였다. 또 최근에는 C-3비자로 입국하여 지정 연수 및 교육기관에 가서 교육을 받으면 D-4비자로 변경하여 취업도 시켜주고 주말(토,일요일)에 1년간 수료하면 H-2비자로 변경되고 또한 6개월안에 국가기술자격증을 취득하면 바로 H-2비자로 변경하여 취업 또는 영주권 취득까지 가능한 제도로 이어지고있다.    국가기술자격증이 바로 “면허증”이다. 과거의 저급인력에서 일정한 기술을 습득하면 고급인력으로 업그레이드되여 한국내에서도 당당하게 취업할수 있고 귀국해서도 정착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는것이다.   실로 우리의 코리안드림은 뼈아프고 가슴저린 20세기 아리랑 영탄곡이라 할수 있다. 우리의 코리안드림은 중국 문호개방과 더불어 80년대말 90년대초 친척방문을 빌미로 한국에 나가 약장사를 하면서 시작된다. 당시 친척방문은 한정된 범위내에서 허용되여 한국에 한번 나간다는것은 하늘의 별따기와 같았다. 그러다 수교가 되고 친척방문의 길이 점차 트이면서 조선족사회는 산업화의 물결과 함께 해외로무붐으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1997년 한국 IMF  경제위기 발생 등 여러가지 원인으로 한국내 조선족들에 대한 단속이 강화되면서 하루아침에 “불법체류자”로 전락되였다 . 2007년부터 무연고동포에 대한 방문취업제도 실시로 하여 한국에 가 합법취업을 할수 있는 길이 열리긴 했으나 “코타”제한으로 하여 상당수가 “문전박대”를 받기도 했다.   전산탈락자(C-3)들에 대한 이번 조치는 어찌보면 우리에게 또 하나의 기회이자 도전이다. 재한조선족들중 당당하게 자영업자로 운명을 바꾼 사람들도 적지 않다. 불완전한 통계에 의하면 식당이나 부동산중개 등 서비스업소 사장으로 된 사람이 1천여명을 헤아린다.   21세기를 맞으며 한국은 외국인 120만명의 다문화시대에 진입했다. 120만명 외국인중 약 40만명이 조선족으로 재외동포정책에 걸맞게 중국조선족에 대한 정책적 관심과 배려가 마땅히 돌려져야 하며 우리도 “면허증”을 갖고 자기의 운명을 새롭게 탄생시켜야 한다.
1    “소금사재기”와 국민자질 (석천) 댓글:  조회:3997  추천:55  2011-03-23
“소금사재기”와 국민자질                           -석천 일본대지진은 순식간에 일본동북부를 페허로 만들었고 곳곳에 차마 눈으로 볼수 없는 참상만 남겨놓았다. 9.0의 강진과 10여메터의 높이에 시속이 헬기속도를 릉가하는 해일의 파괴력에 인간은 전률했다.    주변국은 물론 세계가 모두 이어지는 일본 원전폭발에 따른 핵물질 확산에 대한 심한 공포와 우려로 휩싸여있을 때 중국에서 난데없는 “소금사재기”사태가 벌어졌다. 외신에서는 “‘나비효과?’…일본도 깜짝 놀란 중국의 ‘소금사재기’”라고 일제히 보도했다.   16일부터 소금사재기열풍이 광풍처럼 광동, 복건, 절강 등 남부지방에서 일어 하루사이에 북경을 지나 동북3성을 덮치더니 중국 전역이 갑작스런 “소금공황”속에 빠져들어간것이다. “소금샀어요?” 만나는 사람마다 전하는 첫마디 말이다. 대형할인점은 물론 서민들이 주로 리용하는 재래시장까지 소금이 불티나게 팔려나가면서 소금매진현상이 이어졌고 소금을 구하지 못한 일부 식당은 당분간 정상적인 영업을 하지 못할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중국염업총공사는 소금의 재고량이 충분한만큼 사재기할 필요가 없다는 긴급통지문을 내고 또 중국 소금의 대부분은 천일염이 아닌 광산염으로 바다오염과는 무관하다고 밝혔다. 위생부도 소금이 방사선피폭을 치료한다는것은 과학적 근거가 전혀 없으며 과다 복용은 오히려 심장병과 고혈압을 유발할수 있다고 경고했다.   중국인들사이 방사성물질이 바다물에 섞여들어가면 앞으로 생산될 소금이 오염될 가능성이 있고 또 요드성분이 든 소금을 먹으면 방사선피폭에 의한 부작용을 예방할수 있다는 설이 퍼지면서 이번 사태를 초래한것이라 한다.   그러나 주목할점은 정작 방사선피폭이 현실로 드러난 일본에는 소금사재기가 없다는 사실이다. 도꾜시내의 슈퍼와 편의점을 취재한 중국 기자는 라면, 물, 건전지 등에 품귀현상이 나타나고있으나 소금은 정상 류통되고있다며 일본인들이 중국의 소금사재기를 리해하지 못하고있다고 전했다.   너무나 판이한 대조이다. 우리는 일본인들이 그렇게 엄청난 자연피해를 겪으면서 슈퍼앞에 질서있게 줄을 서서 물건을 사는 광경을 보고 놀랐을것이다. 일본은 이처럼 시장경제질서가 잘 되여있기도 하거니와 국민들의 자질이 보편적으로 높은바 우리에게 시사하는 면이 크다.   최근년에 물가가 마구 뛰면서 나타난 “쏸니헌(蒜你狠)”, “떠우니완(逗你玩"  “탕꼬우중(糖高宗) ” 등 신조어와 같이 “옌스니(盐死你)”라는 신조어가 나타날가봐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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