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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예고 없이 닥친 불행 댓글:  조회:1981  추천:0  2010-03-10
예고 없이 닥친 불행 요즘 동학들은 모여 앉으면 <<6.1>>절주제반회를 둘러싸고 의론했다. 지난번 군이가 동학들에게 이번 주제반회의 내용을 <<하고 싶은 말>>로 정했다고 공포한후 저마다 주제반회에서 어떤 이야기를 하겠는가고 고민하는 모양이였다. 소학교에서의 6년간, 동학들은 정말 많은 말들을 가슴속에 고이고이 간직하고있었다. 이제 곧 6년간의 소학교 생활을 끝내면서 이것만은 정말 소학교 교정에 털어놓고 가야겠다고 생각되는 하고싶은 말 한가지, 과연 나에게는 어떤것이 될가? 오늘도 예비종소리가 울리자 동학들은 교실로 들어와 또 이문제를 둘러싸고 소조토론을 시작했다. 이때 갑자기 교실문이 벌컥 열리며 누군가 헐레벌떡 뛰여 들어왔다. <<얘들아, 얘들아, 들었니? 특종이다, 특종!>> 동학들의 눈길이 일제히 소리나는 쪽으로 쏠렸다. 목소리임자는 승화였다. 승화는 긴장으로 해서 얼굴마저 하얗게 질려있었다. <<웬 일이니?>> <<특종이라니?>> <<지구의 말일이라도 닥쳤다니? 동학들이 너한마디 나한마디 승화에게 다그쳐 물었다. <<자…자…자살이래.>> 승화는 너무도 긴장하여 말까지 벅벅 더듬고있었다 <<뭐 자살이라구?!>> 승화의 말은 폭탄처럼 동학들을 놀래웠다. <<방금 화장실에 갔다가 선생님들이 하는 말을 들었어. 자살했대.>> 승화는 역시 두서없이 자살이라는 말만 곱씹었다. <<천천히 제대로 말해라, 누가 자살 했다는 거니?>> <<은경이, 그 애가 자살을 하자구 약을 먹었대.>> <<뭐? 은경이가?>> 동학들은 승화의 말에 뒤통수라도 한대 얻어 맞은듯 깜짝 놀라며 서로서로 눈길을 주고 받았다. 은경이는 오전에 결석을 했었다. 선생님께서는 은경이가 아파서 청가를 맡았다고 했다. 동학들은 모두 은경이가 보통 감기정도나 앓는 모양이라고 생각하고있었다. 헌데 자살이라니? 동학들에게 충격이 아닐수 없었다. <<너 잘못들은거지? 은경이가 왜 자살을 해?>> 미림이가 목소리를 높였다. <<아니야, 내가 이 귀로 똑똑히 들었어. 분명 자살하려고 약을 먹었다고 했어.>> 승화가 확실하다는듯 자기의 귀를 툭툭치며 말했다. <<왜, 왜 자살을 했다니? 은경이가 어디 탐탐한데가 있어서 자살을 하겠니?>> 누군가 또 바투 들이댔다. 승화는 대답거리를 찾지못하고 꺽꺽거리며 얼버무렸다. <<건 나두 몰라. 방금 화장실에서 선생님들이 말하는걸 정말 내 귀로 직접 들었다니까…>> <<확실하지?>> 군이가 승화에게 짤막하게 물었다.. <<정말이라니까. 똑똑히 들었다니까.>> 승화가 목소리를 높였다 군이는 동학들을 뒤로 하고 조용히 교실을 나섰다. 담임선생님께서도 구체적인 원인은 말씀하지 않았지만 은경이가 약을 먹은것만은 사실이라고 했다. 시립병원에 입원했는데 이미 위를 씻어내서 생명위험은 없다고 했다. 교실로 들어오는 군이의 발걸음은 몹시도 무거웠다. (무엇때문일가? 구경 은경이가 무엇때문에 자살을 하려고 했을가?) 꿈을 꾸고 있는것만 같았다. 정말이지 언제나 동학들 앞에서 이 세상에 부러운것이 없는듯 도고해 하던 은경이였다. 너무 잘난체, 너무 아는체, 너무 있는체 한다고 많은 동학들이 뒤에서는 은경이를 썩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은경이를 서뿔리 대하지도 못했다. 언제나 대범하게 동학들을 위해 돈을 펑펑 쓰는 은경이여서 학급에서 말깨나 하는 애들속에서는 영향력이 꽤나 컸다. 이러한 은경의 눈에 난다는것은 동학들속에서 왕따를 당하겠다고 나서는거나 마찬가지였던것이다. 적지않은 애들이 앞에서 은경이에게 아부를 하는 눈치였다. 이러는 동학들을 보는것이 은경의 기쁨이고 자부심인것 같았다. 이같은 기쁨, 이 같은 자부심을 안고 사는 은경이가 자살을 시도 했단다. 과연 원인은 무엇일가? 마지막 종소리가 울렸는데도 동학들은 자리를 뜰려고 하지 않았다. <<청소당번들이 남아서 교실청소를 하구 다른 애들은 빨리 돌아가려무나.>> 군이가 동학들을 재촉하고는 먼저 가방을 메고 교실을 나왔다. 몇몇 동학들이 인차 군이를 따라나섰다. 그들은 또 은경의 일을 거론하기 시작했다. <<은경에게 무슨 큰 일이 생긴거야. 틀림없어.>> <<얼마나 큰 일이면 자살을 결심하겠니? 난 리해를 못하겠어.>> <<어떻게 저절로 제 목숨을 끊을수있니? 으~ 무서워!>> <<그 애가 원래 허영심이 있잖아.>> <<그러게 사람은 흉금이 넓어야 한다니까. 어떤 세상이라구.>> 동학들은 너한마디 나한마디 생각나는대로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왜들 이래? 옛말거리라도 생겼니?>> 누군가 갑자기 꽥 소리질렀다. 동학들은 놀라서 소리나는 쪽으로 머리를 돌렸다. 규호가 무서운 눈길로 동학들을 노려보고있었다. 동학들은 입을 다물고 서로 눈치만 살폈다. 규호가 격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모두들 이러고싶니? 은경이를 침대에 눕혀놓고 말장난을 하고싶니?>> 규호의 격한 행동에 동학들은 누구도 뭐라고 반박을 못했다. 동학들은 조용히 걸음을 옮겼다. <<가자, 우리 병원에 가서 은경이를 보자.>> 미림이가 누구에게라 없이 제기했다. <<그래, 가보자. 은경이가 지금 정말 괴로와 하고 있을거야.>> 누군가 호응해나섰다. 동학들의 눈길은 군이에게로 쏠렸다. 군이도 사실은 가는 길에 병원에 들려 은경이를 보려던 참이였다. 군이는 동학들을 향해 천천히 머리를 끄덕였다. 은경이는 링겔을 맞고있었다. 두눈을 퀭하니 뜨고 동학들을 바라보는 은경이의 모습은 마치도 모든 사색이 굳어져버린듯 했다. <<은경아, 우리가 왔다.>> <<널보러 왔다. 힘내라.>> <<빨리 회복돼야 <6.1>절맞이주제반회에 참석할수 있지? 힘내라! 은경아.>> 동학들이 다투어 은경이를 위로했다. 하지만 은경이는 묵묵히 동학들을 바라만 볼뿐 여전히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그러는 은경이를 바라보며 녀자애들이 눈시울을 붉히기 시작했다. 들어올 때 군이네를 보고 약간 머리를 끄덕여 인사를 보낸후 한참이나 잠자코 계시던 은경이 어머니가 끝내 참지못하고 손으로 얼굴을 가리우며 흐느끼기 시작했다. 동학들의 눈길은 은경이 어머니에게로 쏠렸다. 은경이 어머니는 동학들의 눈길을 피해 밖으로 나갔다. 군이가 그러는 은경이 어머니를 따라 복도로 나갔다. 은경이 어머니는 복도 유리창문을 마주서서 세차게 어깨를 들먹이고있었다. <<은경이 어머니, 은경이가 인차 좋아질겁니다. 너무 근심하지 마십시오.>> 군이가 은경이 어머니 옆에 다가서며 말했다. 은경이 어머니는 머리를 돌려 군이를 바라보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은경이를 보러와서 고맙다. 네가 군이냐?>> <<네.>> <<그렇구나. 평소에도 은경이가 자주 너에 대해 말하군 했다. 반장이 참 똑똑한 애라구.>> 은경이 어머니는 잠간 뜸을 들였다가 군이쪽으로 한발 다가섰다. <<군이야, 애들이 모두 은경의 일에 대해서 궁금해하지? 동학들이 이상한 추축들을 할것 같아서 이번 일을 너에게 이야기한다.>> 은경이 어머니는 고통스러운듯 두눈을 지긋이 감고 길게 숨을 들이쉬였다가 나직히 내 뿜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은경이 아버지는 자그마한 려행사를 꾸려놓고 사실은 로무자들의 출국수속을 해주고있었다. 한국이요, 미국이요, 프랑스요, 카나다요 하면서 1프로의 희망이 보여도 99프로의 노력을 들이며 물불을 가리지 않고 뛰여다녔다. 그새 돈도 좀 벌었다. 하지만 그 일도 그렇게 쉬운것만은 아니였다. 노력한만큼의 대가를 얻기가 그렇게도 힘들었던것이다. 하지만 은경의 아버지는 여전히 그 길에서 헤여나오지 못하고있었다. 지난해 가을, 은경이 아버지는 미국에서 큰 회사를 경영한다는 미국적 한국인과 손잡고 또 로무송출실무를 취급하게 되였다. 은경이 아버지는 로무자들로부터 매인당 십여만원의 수속비를 받아들였다. 미국측 대리인에게 어느 정도 수속비를 먼저 넘겨주고 출국수속을 밟던중에 미국측 대리인이 갑자기 잠적해버렸던것이다. 수속비를 낸 로무자들이 출국날자를 기다리다가 드디여 은경이 아버지를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미국측 대리인은 여전히 나타나지 않았다. 이미 사라져버린 수속비는 2백만원도 넘는 돈이였다. 출국이 가망이 없게 되자 로무자들은 련명으로 은경의 아버지를 검찰원에 고소했다. 은경이 아버지는 그날 저녁 집에 돌아와 은경이 어머니에게 사실을 이야기하며 문제가 엄중해질것같다고 근심했다. 은경이 어머니도 깜짝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은경이가 문제구만. 은경이가 모르게 일이 처리되여야겠는데. 일이 터지면 은경이가 얼마나 타격이 크겠오…>> 아버지는 진심으로 은경이를 걱정하고있었다. 하지만 사실은 은경이 아버지의 욕망처럼 쉽게 끝나지 않았다. 은경이 아버지는 끝내 사기죄로 구속령장을 받게되였던것이다. <<어머니, 그럼 아버지는 어떻게 되는거에요?>> 아버지의 소식을 듣고 은경이는 두려움이 가득찬 눈길로 어머니를 바라보며 애절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직은 결과를 알수없지만 아마도 오라지 않아 체포령장이 내릴것 같구나. 사실이 엄중하다고 하니까.>> <<그럼 아버지가 감옥에 가는 거예요? 아버지가 나쁜 사람이 되는거예요? >> <<은경아,>> 은경이 어머니는 두려움으로 파르르 떠는 은경의 갸냘픈 어깨를 꼭 안아주었다. <<그럴수 없어요. 아버지가 나쁜 사람이 되다니요. 아버지가 감옥으로 가다니요. 그럼 전 뭐가 돼요? 죄범의 딸이 되는 거예요? 그럴수 없어요. 그럴수 없어요…>> 이렇게 중얼거리던 은경이가 갑자기 어머니의 품을 떨쳐나가 자기의 침실로 들어갔다. 은경이 어머니는 근심스러워 인차 은경이를 따라섰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은경이가 침실문을 안으로 잠근후였다. 은경이 어머니가 은경에게 문을 열라고 그렇게 애원을 해도 은경이는 대답이 없었다. 은경이 어머니는 열쇠를 찾아 은경의 침실문을 열고 들어갔다. 은경이는 넋을 놓고 멍하니 천정을 쳐다보고있었다. 책상우에 펼쳐놓은 일기장에는 <<나쁜놈, 감옥, 죄범, 죄범의 딸>>과 같은 글들이 란잡하게 오려져있었다. 침실로 들어 온 어머니를 발견한 은경이는 갑자기 <<악!>>하고 소리치며 자기의 머리를 마구 잡아 뜯었다. <<은경아, 너 왜이러니?>> 어머니가 은경의 손을 잡았다. <<나가요. 나가! >> 은경이가 히스테리적으로 소리쳤다. <<은경아. 진정해라. 일이 다 잘 풀릴거야.>> 하지만 은경이는 막무가내였다. <<미워요. 다 미워요. 썩 사라져요.>> <<은경아, 진정해라. 그러면 더 힘들단다.>> <<그래요. 힘들어요. 죽고싶어요. 아니 죽을래요.>> 은경이는 자기의 가슴을 벅벅 긁어대며 고통스럽게 소리질렀다. 어머니는 은경이와 함께 있는것이 은경이를 더 흥분시키는 일이 아닌가싶어서 은경의 침실에서 나왔다. 어머니는 은경이가 근심스러워 객실 쏘파에 앉아 온 밤을 뜬눈으로 보냈다. 새벽녘에 은경의 어머니는 문열리는 소리를 들었다. 소스라쳐 놀라 눈길을 돌려보니 은경이가 주방으로 들어가고있었다. <<벌써 깼니?>> 어머니도 은경이를 따라 주방으로 들어갔다. 은경이는 음수기에서 물을 뽑고있었다. <<은경아,>> 어머니는 불안한 눈길로 은경이를 살폈다. 컵에 물을 꼴똑 받아 든 은경이는 몸을 돌리며 어머니께 말했다. <<어머니, 근심마세요. 돌아가 편히 쉬세요.>> 생각밖으로 은경의 표정은 담담했다. 어머니는 저으기 한시름을 놓으며 애써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그래, 오늘 힘들면 학교에 나가지말어라. 어머니가 선생님께 청가를 맡을게.>> 말끝을 맺고 보니 은경이는 벌써 침실로 들어가버리고 없었다. 어머니는 아침밥상을 다 차려놓고 은경이를 부르며 은경의 침실로 들어갔다. 은경이는 침대에 반듯이 누워있었다. <<아직도 자니? 웬간하면 아침을 먹고 계속 자렴.>> 은경의 어머니가 살펴보니 책상우에 약병이 놓여져있었다. 어머니는 섬찍한 생각이 들어 냉큼 약병을 주어들었다. 정통편을 넣었던 병은 밑굽이 들어나있었다. 은경의 어머니는 너무도 놀라 목석처럼 굳어졌다. 간혹가다 이발이 아프다면서 투정을 하기에 그때마다 림시구급으로 정통편을 먹으라고 며칠전에 50알이나 사서 병에 넣어놓았던것이다. <<은경아!>> 어머니는 은경이 쪽으로 몸을 돌리며 경악에 차서 소리쳤다. 은경의 입에서는 흰거품이 게질게질 흘러내리고있었다. <<은경아, 은경아!>> 은경이 어머니는 피터지게 소리치며 은경이를 잡아 흔들었다. 은경이는 완전히 의식을 놓아버리고있었다. 은경이 어머니는 황급해서 120긴급전화를 눌렀다. 구급차가 잠간새에 도착했다. <<그 속이 못된 계집애가 끝내 옥생각을 펴지못하고 일을 친거야. 며칠전까지만 해도 <6.1>절이 오라지 않다면서 소학교에서의 마지막 <6.1>절에는 아버지랑, 어머니랑 함께 대련으로 유람을 가고싶다고 아버지께 응석을 부리더니, 너무도 큰 타격을 당해내지못한거지. 그리구 은경이, 그 앤 늘 자기의 아버지로하여 자호감을 느끼고있었거든, 흐흐흑… 정말 우리는 은경이를 볼 면복이 없구나. 너희들이 은경이를 리해해줘라. >> 은경이 어머니의 목소리에는 여전히 울음이 섞여있었다. <<네. 은경이 어머니, 시름놓으십시오. 저희들이 자주 와서 은경이를 보겠습니다. 은경이가 마음을 돌리수있도록 잘 동무해 주겠습니다.>> <<그래 고맙다.>> 은경이 어머니는 군이의 손을 꼭 잡았다. 군이는 은경이 어머니의 손이 몹시 차다고 생각했다. 그 시각 군이는 몹시도 괴로왔다. 고통에 신음하는 자식을 바라보며 오열을 토하는 이 갸냘픈 어머니의 손을 뜨겁게 해주지 못하는것이 괴로왔고 소학교에서의 마지막 <<6.1>>절 소망을 이루지못하고 침대에서 신음하는 은경이를 보는것이 괴로왔던것이다. 군이는 돌아서서 주먹으로 눈굽을 찍었다.
7    아픔속에서 크는 나무 댓글:  조회:1768  추천:0  2010-03-10
아픔속에서 크는 나무 군이네는 끝내 은경이와 한마디 대화도 나누지 못한채 병원을 나왔다. 그들은 모두 은경의 모습에서 큰 충격을 받았는지 말 한마디 없이 머리를 푹 숙이고 걸음만 재우쳤다. 시립병원 앞에있는 공공뻐스정류소에서 친구들은 제 각기 흩어졌다. 미림이랑 몇몇은 7선 뻐스를 타고 먼저 떠났다. <<곧추 집으로 가니?>> 규호가 군이 옆으로 다가서며 조용히 물었다. <<그래, 집으로 가야지. 저녁 때가 다 되는데.>> 군이가 서산에서 빨갛게 타오르는 석양을 바라보며 머리를 끄덕였다. <<그렇지, 군이야. 넌 여기서2선을 기다렸다가 타고 가야지?>> 규호의 목소리에는 어딘가 서운함이 깃들어있었다. 군이는 직감적으로 규호에게 무슨 할 말이 남아있음을 느꼈다. <<규호야, 너, 3선을 타려면 신문사역에 가야지 않니? 출판사쪽으로 해서 두 정거장을 더 가야 도착할수있는가?>> <<그래.>> 규호가 머리를 끄덕였다. <<가자, 내가 널 동무해줄게.>> <<넌 어떻게 가자구?>> <<괜찮아. 3선을 타고 가다가 북동시장역에서 내려 두정거장 정도 더 걸으면 집에 도착하는데 뭐.>> <<그래두 어떻게 그렇게 돌아가겠니?>> 규호가 미안스럽다는듯 군이를 바라보았다. <<가자. 신체단련을 한다고 생각하지 뭐.>> 군이는 규호 먼저 걸음을 옮겼다. 규호도 인차 군이를 따라섰다. 군이와 규호는 잠간 말 없이 조용히 걸음만 옮겨놓았다. <<군이야~>> 규호가 갑자기 군이를 바라보며 짧막하게 불렀다. <<어, 규호야 왜?>> <<아무리 생각해도 울아버지, 어머니와 리혼하는게 옳은것 같다.>> 규호의 목소리는 몹시 가라앉아있었다. 군이는 잠간 걸음을 멈추고 규호를 뚫어지게 건너다보았다. 지난번에 아버지와 어머니의 리혼을 두고 그렇게 흥분하던 규호의 변화가 이상하게 생각되였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리혼하는게 옳은것 같다구?>> 규호는 군이를 보며 힘껏 머리를 끄덕였다. <<너, 지난번에 뭐라 했니? 어머니가 기어이 아버지와 리혼하겠다면…>> 군이는 뒤말을 이을수가 없었다. 아버지, 어머니가 정말 리혼하면 어머니를 죽여버리겠다며 절규를 하던 규호의 그 말을 차마 다시 옮길수가 없었던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다.>> 규호가 약간 흥분한 목소리로 확실하게 말했다. <<어떻게?>> <<리혼하는게 아버지가 행복해지는 길이야, 난 그렇게 믿어. 나도 인젠 심리준비가 다 됐구.>> <<너의 아버지도 그렇게 생각하시니?>> <<어제 밤에 아버지께 나의 생각을 말했다. 아버지도 생각해 보신다 했어.>> 군이와 규호는 말하면서 신문사 앞의 청년공원까지 걸어왔다. <<가자, 청년공원에 들어가 잠간 앉았다 가자.>> 군이가 규호의 손을 잡아 끌었다. 그들은 나무의자에 나란히 앉았다. 규호가 담담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규호가 군이와 어머니의 이야기를 나눈지 이틀이 되던 날 저녁무렵, 규호의 어머니는 정말 규호네 집을 찾아왔다. 그때까지 어머니가 설마 진짜 아버지를 찾아올수있을가 하는 생각으로 어머니가 왔다는 사실을 아버지께 말하지 않고있던 규호는 갑작스러운 어머니의 출연에 당황하여 어쩔줄을 몰랐다. <<가세요. 어서 돌아가세요. 아버지가 금방 돌아와요.>> <<안돼, 아버지를 보고갈거다. 만나서 직접 말해야겠다.>> 어머니의 태도는 뜻밖으로 몹시도 강경했다. <<그럼 있으세요. 내가 나갈테니까.>> 그냥 지청구만으로는 어머니를 돌려보낼수 없음을 느낀 규호가 밖으로 나와 버렸다. 어머니가 집에 온 사실을 먼저 아버지께 말씀 드려야겠다고 생각했던것이다. 규호는 집옆에 난 골목길을 따라 종종 걸음을 놓았다. 뻐스역까지 거의 도착할 무렵에야 규호는 삼륜차를 몰고오는 아버지와 마주쳤다. <<규호야, 너 어디로 가니?>> 아버지께서 삼륜차에 앉은 대로 반갑게 소리쳤다. 규호는 아버지 곁으로 뛰여가서 대답했다. <<어디로 가긴요. 아버지 마중을 나왔죠.>> <<그래?>> 아버지는 매우 기뻐하셨다. <<빨리 올라 타라. 제꺽 가자.>> <<아니요. 아버지, 제가 밀게요. 걸읍시다.>> <<허허허, 그래? 그것도 좋지. 아들하구 나란히 걸어본지도 오랜데.>> <<주세요. 제가 밀게요.>> 규호가 삼륜차손잡이를 잡았다 <<괜찮대두. 빨리 가자.>> 아버지께서 삼륜차를 밀며 걸음을 옮겼다. 군이는 자기 앞에서 걸어가시는 아버지의 뒤모습을 잠간 응시했다. 허리를 구부정하고 삼륜차를 미는 아버지의 모습은 그렇게도 작아보였다. <<아버지,>> 규호가 아버지곁으로 다가서며 나직히 불렀다. <<어.>> 아버지께서 머리를 돌렸다. <<아버지께 하지못한 말이 있어요.>> <<그게 뭔데?>> 아버지께서 다잡아 물으셨다. 규호는 잠간 머뭇거리다가 끝내 입을 열었다. <<아버지, 집에 어머니가 와있어요.>> <<뭐라구?>> 아버지는 자기의 귀를 의심하는듯싶었다. <<집에 어머니가 와있다구요.>> <<엄마가? 집에 왔다구? 엄마가 왔다구?>> 아버지가 어린애처럼 환성을 질렀다. 규호는 그러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천천히 머리를 끄덕였다. <<가자, 빨리가자. 어때? 어머니가 몹시 축하셨지? 많이 힘들어 보이지?>> 아버지는 규호를 재촉했다. 규호는 아버지의 독촉을 못이겨 삼륜차에 올라 앉았다. 규호는 차마 그처럼 기뻐하시는 아버지께 어머니가 리혼을 제기하러 왔다고 밝힐수가 없었다. 아버지는 힘차게 페달을 밟으셨다. 아버지의 얼굴은 해덩이가 내려앉은듯 활짝 밝아있었다. 어머니가 떠나가신후 규호는 그렇게 밝은 아버지의 얼굴을 본 기억이 없었다. 저 밝은 아버지의 얼굴에 쏟아질 폭풍우를 생각하니 규호는 정말 미칠것만 같았다. 어머니는 집문앞에 나와서 규호네를 기다리고있었다. 먼저 어머니를 발견한 아버지께서 삼륜차에서 뛰여내려 소리치며 어머니를 향해 뛰여갔다. <<여보, 여보~>> 한달음에 어머니옆에 다달은 아버지가 어머니의 목을 으스러지게 껴안았다. <<올줄 알았소. 돌아올줄 알았다니까. 규호의 엄만데. 우리 규호의 엄만데…>> 분명 아버지의 목소리는 떨리고있었다. <<네. 규호 아버지. 그 동안 잘 있었어요?>> 어머니가 아버지의 품에서 몸을 빼며 아무 색채도 없는 다디찬 목소리로 인사했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그런 기분도 느끼지못하시고 다시 어머니의 손을 와락 잡았다. <<됐소. 돌아왔으니 됐소. 고맙소. 정말 수고했소.>> 아버지는 흥분으로 어머니의 손을 마구 흔들더니 규호쪽으로 머리를 돌렸다. <<규호야. 가자. 우리 시내에 가서 식당놀이를 하자. 엄마의 환영식을 해야지.>> 아버지의 얼굴은 여전히 싱글거리고있었다. <<아니예요. 규호 아버지, 오늘은 안돼요. 할말도 있구요.>> 어머니께서 여전히 차디찬 목소리로 말했다. <<할말이라니, 천천히 하면 되지, 이게 얼마만이요.>> <<중요한 말이에요. 아마도 오늘 저녁에 꼭 해야할것 같아서요.>> 어머니는 몸을 돌려 먼저 집안으로 들어갔다. 그날 밤, 어머니는 과연 아버지에게 돌아온 사연을 그대로 이야기했다.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아버지의 얼굴은 약간 경련을 이르키는듯싶더니 점차 검푸르게 굳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주먹으로 구들바닥을 탁 내리치며 투우장에 나선 성난 황소처럼 소리쳤다. <<리혼이라니? 미친소리를 걷어치우오. 리혼이라니!>> <<인젠 쏟아놓은 물이예요. 저도 어쩔수가 없어요>> 어머니도 사뭇 견결하게 나왔다. <<생각해보세요. 다시 오겠어요.>> 아버지에게 자기의 뜻을 다 밝히고 난 어머니는 뒤도 돌아보지않고 돌아갔다. 아버지는 사라져가는 어머니의 뒤모습을 멀거니 바라보며 길게 한숨을 내쉬였다. 아버지는 긴긴 밤을 엎치락뒤치락 하며 잠을 못이루고 있었다. 이튿날, 어머니는 또 아버지를 찾아왔다. 아버지의 태도는 여전히 견결했다. 지금처럼 갈라져있더라도 리혼만은 절대 안된다는것이였다.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행악질을 해대며 꿈을 깨라고 고래고래 소리쳤다. 그날밤, 어머니가 돌아가자 아버지는 혼자서 흰술을 꾸역꾸역 마셔대기 시작했다. 어느새 술 한병이 굽이났다. 아버지는 술독이 올라 뻐얼개진 눈으로 안스럽게 규호를 바라보았다. 규호는 그러는 아버지를 지켜보기 괴로와 자기의 방으로 올라갔다. 아버지는 자리도 펴지않고 옷을 입은채로 누웠다. 잠간 잠드신듯싶던 아버지께서 일어나 규호의 방문을 열었다. <<규호야, 아버지는 정말 너에게 에미 없는 아픔을 더는 주지말자고 그랬는데. 이 불쌍한것아.>> 규호의 친어머니가 행방없이 사라진후 새 어머니를 친 어머니로 알고 크는 규호에게 다시는 어머니의 사랑을 잃지 않게 하자고 그렇게 바라는 아버지였던것이다. 이튿날에도 아버지는 의연히 삼륜차를 몰고 일거리를 찾아나섰다. 규호는 그날 밤에도 아버지께서 혼자 술을 마시고 이불속에서 내내 한숨을 쉬는 것을 눈치채고있었다. 그후에도 어머니는 두번이나 아버지를 찾아와 울고불며 리혼을 해달라고 란리를 피우고 갔다. 아버지는 번마다 안된다고 잡아떼다가는 어머니가 돌아가신후 술을 마시고 한숨으로 밤을 샜다. 아픔에 치를 떠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규호는 깊은 생각을 굴렸다. 과연 아버지께서 이렇게 어머니를 잡아두는것이 옳을가? 진정 아버지는 그게 더 행복하실가? 규호는 새 어머니에 대한 원한이고 리혼으로 오는 자기의 아픔이고를 떠나 처음으로 아버지를 대신해서 생각해보았다. 어머니의 마음은 진작 아버지곁을 떠난지가 오래다. 이미 돈 많은 한족사람의 품에서 사치를 배우고 사치에 습관되여온 어머니는 다시 삼륜차를 몰아 그날그날 생활을 영위해가는 아버지의 곁으로 돌아오지 않을것이다. 규호는 돌아오지 않는 사람을 기다린다는게 얼마나 힘든 일이라는것을 어머니를 기다리며 배워서 알고있었다. 어제밤, 아버지께서 돌아오시자 규호는 마음을 다잡고 말문을 열었다. <<아버지, 할 말이 있어요.>> <<그래, 해 봐라!>> 아버지께서 규호를 바라보았다. <<아버지, 리혼하세요.>> 규호는 끝내 진종일 가슴속으로 되네이던 말을 해내고야 말았다. <<뭐라구?>> 아버지께서 깜짝 놀라셨다. <<리혼하세요, 저 때문이라면 리혼하세요. 아버지가 괴로와 하시는것을 더는 못보겠어요.>> 아버지께서 또 긴 한숨을 내쉬였다. <<엄마 없는 애라는 소리를 듣는게 얼마나 힘든지 너 아니? 비록 새 엄마라지만, 지금까지는 그래도 기다리면서라도 마음은 든든하지 않았었니?>> <<하지만 어머니의 마음은 이미 다른 데로 갔어요! 어떻게 잡아올수도 없잖아요? 보내버리세요. 저도 다 컸어요. 아버지가 편하다면 보내버리세요.>> <<규호야!>> 아버지는 규호의 어깨를 꽉 끌어안아주었다. 아버지의 두 볼에서는 주먹같은 눈물이 주르륵 굴러떨어졌다. 규호는 처음으로 아버지의 눈물을 보았다. 어쩜 새 어머니를 기다리며 눈물마저 말라버렸는가 싶던 아버지에게도 아직 눈물이 남아있다는것을 규호는 이제야 느끼고있었다… 규호는 말을 마치고 천천히 머리를 들었다. 두눈에는 눈물이 아니라 그 무엇을 결심한듯한 장엄함이 어려있었다. <<정말 괜찮겠니?>> 군이가 근심스러운 눈길로 규호를 바라보았다. 규호는 머리를 끄덕였다. <<정말 많이 생각해봤다. 첨엔 막막하기도 하구 무섭기도 하구, 살고싶은 생각이 없었지만 마음을 굳히구 다시 생각하니 그렇게 무서운것도 아닌것 같아. 글구 뭐 아버지, 어머니가 리혼한 애들이 한둘이니? 그래도 모두들 잘 뻗쳐가고있지 않니?>> <<하긴 그래, 우리도 인젠 다 컸으니까.>> <<그래, 피해가지 못할 일이라면 맞다들어 보는거지 뭐.>> <<규호야, 너 참 멋져!>> 군이는 으스러지게 규호의 손을 잡아주었다. <<아버지를 독촉할거야. 빨리 어머니와 리혼해버리라구. 그리구, 거뜬한 마음으로 소학교에서의 마지막 <6.1>절을 쇠달라구 할거야.>> 규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두어깨를 쩍 벌리고 힘있게 앞으로 걸어갔다. 군이는 규호의 뒤모습을 바라보며 머리를 끄덕였다. 어쩜 한그루의 소나무를 보는듯싶었다. 한여름의 폭풍우에도, 엄동의 설한속에도 푸름을 잃지 않고 대굵게 커가는 한그루의 꿋꿋한 소나무를 보는듯싶었다. 군이는 아픔속에서 크는 나무이기에 더 튼실한것이 아닐가고 나름대로의 생각을 굴려 보았다.
6    그날밤, 하늘에는 별찌가 없었다. 댓글:  조회:1787  추천:0  2010-03-10
그날밤, 하늘에는 별찌가 없었다. 군이는 해가 서산으로 넘어간 후에야 마지막 공공뻐스를 잡아 타고 부랴부랴 집으로 돌아왔다. 길에서 군이는 내내 침대에 누워서 링겔을 맞고있던 목석과도 같은 은경의 얼굴을 떠올렸고 흥분에 떨며 아버지를 리혼시키겠다고 열변을 토하던 규호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정말이지 군이는 모든것이 꿈만 같았고 모든것이 그처럼 낯설어 보였다. 아빠트에서는 집집마다 전등불이 명멸하고있었다. <<인제야 오니?>> 집에 들어서자 주방으로부터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군이는 주방쪽에 머리를 돌리고 짤막하게 대답했다. <<어서 와라, 저녁을 먹자.>> 아버지께서 그냥 주방에서 군이를 불렀다. 군이는 침실에 들어가 바삐 옷을 갈아입고 주방으로 나와 밥상앞에 앉았다.. <<학급에 무슨 활동이 있었니?>> 아버지께서 밥술을 뜨며 물었다. <<아니요. 병원에 갔다오느라구요.>> 은경의 일이 더 충격적이여서인지 규호와의 진지한 대화보다도 은경의 사건이 먼저 머리를 쳤다. <<병원이라니, 왜? >> 아버지께서 급히 말꼬리를 잡았다. 군이는 밥술을 뜨다 말고 아버지에게 눈길을 주었다. 피뜩 이런 말도 아버지에게 해야하나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던것이다. 아버지도 군이의 속궁리를 읽었던지 그냥 물어본것 뿐이라는듯 한마디 했다. <<그냥, 누가 입원이라도 했나해서 그런다.>> 군이는 아버지의 담담한 목소리를 들으며 어쩐지 아버지에게 못할짓을 하는것 같았다. 군이는 아버지에게 만은 아무것도 속이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던것이다. <<우리 반에 은경이라는 애 있잖아요.>> <<알지, 그 애 아버지가 려행사를 한다 했던가? 가정형편이 괜찮다고 하던데…>> 어머니가 한국으로 간 3년사이 학부모회의에 한번도 빠짐없이 다닌 아버지인지라 군이네 학급의 웬간한 애들의 이름은 다 알고 있었다. 하여 평소에도 군이와 마주앉아 누구는 공부는 잘하는데 성격이 괴벽하고 누구는 품성이 좋은데 수학성적이 따라가지 못하고 또 누구는 노래에 장끼가 있더라는 것과 같은 대화를 얼마든지 나눌수있었다. <<보기에는 애가 건실해보이던데, 무슨 병이래?>> 아버지께서 근심스러운듯 물었다. <<병이 아니구요, 오늘 그 애가 죽자고 약을 먹었어요.>> <<죽자고 약을 먹었다구? 저런, 웬 일루 그 애가 그런짓을 한다니?>> 아버지께서도 너무나 충격적인 모양이였다. 얼굴에 복잡한 표정이 교차되였다. <<따르릉, 따르릉~>> 이때 전화벨이 울렸다. <<제가 받을게요.>> 군이가 수저를 놓고 일어섰다. 군이는 객실로 나가 수화기를 쥐며 번호표시판을 피끗 내려다보았다. 군이는 날듯이 기뻤다. 번호표시판에는 분명 한국 전화번호가 찍혀져있었던것이다. (어머니의 전화구나. 어머니께서 지난번에 내가 보낸 메일을 읽으셨나 봐. 그 메일을 보고 어머니는 아버지를 믿고 아버지를 리해하려고 생각하셨나 봐. 그래, 어머니께서는 그 메일을 보시며 많은 생각을 하셨을거야, 어쩜 아버지를 잠시나마 의심한것을 매우 미안하게 생각하셨을지도 몰라… 그래서 이번에 집에 와서 아버지와 함께, 그리고 나와 함께 <6.1>절을 쇠려고 생각하셨을지도 몰라. 그래, 어머닌 참 리해심이 많은 분이시니까.) 군이는 이런 생각을 굴리며 내심의 기쁨을 누를길이 없었다. 지난번 병원에서 아버지와 진지한 대화를 나눈후 군이는 집으로 오자바람으로 어머니께 메일을 보냈었다. 군이는 메일에서 어머니에게 아버지를 믿고 리해해주자고 절절하게 이야기를 했다. 아버지는 자기만의 방법으로 자기만의 생활을 참답게 배치해 가시는 훌륭한 분이라고 자기 나름대로의 생각을 피력했다. 그러면서 <<6,1>>절 무렵에 한번 집에 다녀오라고 권했다. <<6.1>>절도 함께 쇨겸, 오랜만에 한가족이 단란히 모여 회포를 풀자고 했다. 드디여 오늘 어머니께서 전화를 걸어온것이다. 군이는 높뛰는 가슴을 가까스로 진정하며 높은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어머니, 저 군이에요. < 6.1>절에 오시는거예요?>> <<미안합니다. 전영호씨 댁인가요?>> 뜻밖에도 전화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굵은 남자의 목소리였다. 군이는 잠간 한풀 꺾이며 나직히 대답했다. <<네, 맞습니다.>> <<전영호씨 계신가요?>> 대방의 목소리는 여전히 굳어진대로 딱딱하게 들렸다. <<네, 계시는데요. 잠간만 기다려 주십시오. 바꿔 드리겠습니다.>> 군이는 수화기를 놓고 주방에 대고 소리쳤다. <<아버지, 전화 받으세요.>> <<알았다~.>> 아버지께서 객실로 나와 수화기를 받으며 누구냐는듯 군이에게 눈길을 주었다. 군이는 홀랑 혀를 내밀어 보이며 도리머리를 했다. 아버지께서는 알겠다는듯 머리를 끄덕이며 수화기를 받아들었다. <<네, 전화 바꿨습니다.>> 기분좋게 전화를 받아들고 이야기를 하던 아버지의 얼굴이 점차 흐려지기 시작했다. 무거운 구름이 감도는듯한 표정이였다. 차츰 아버지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래, 지금 어떤 정황입니까? >> 아버지의 목소리는 공제를 잃어갔다. <<네? 아직도 의식을 차리지 못하고있다구요? 상처는 어떻습니까? 그럼 어떻게 되는 겁니까?>> 아버지는 황소숨을 몰아쉬고있었다. <<네,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대방에서 뭐라고 말하는지 아버지는 완전히 사색이 되여 연신 머리를 끄덕였다. 전화가 끝났다. 아버지는 수화기를 내려놓고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눈길은 초점없이 허공에서 돌고있었다. 할말을 찾지못하고 있는지 입은 하~ 벌린채로있었다. 큰일이 터졌구나! 하는 생각이 군이의 뇌리를 쳤다. 더럭 무서움이 엄습해왔다. 군이는 아버지의 손을 잡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아버지, 웬 전홥니까?>> <<어, 아무일도 아니다!>> 아버지가 와뜰 놀라며 도리머리를 했다. 하지만 군이는 믿고싶지 않았다. 아무일도 아닌것 같지 않았던것이다. 군이는 심장을 치는 긴장을 한가슴 안고 아버지의 앞에 한뼘 다가 앉았다. 아버지는 불안한 눈길로 군이의 얼굴을 일별하더니 드디여 무겁게 입을 열었다. <<어머니가 사고를 당했단다.>> <<어머니가… 사고를요? 언제요? 무슨 사고를요?>> <<오늘 아침에 어머니가 일하는 식당에서 액화가스가 폭발했단다. >> <<그래서요? 어머니가 어떻게 됐대요?>> <<어머니는 다행이 액화가스와 좀 떨어져있었기에 목숨은 건졌지만 아직은 병원에서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있단다.>> <<그럼 어떻게 되는거예요? 어머니가 어떻게 되는거예요?>> 군이는 아버지의 턱밑에 바싹 다가 앉으며 아버지의 어깨를 잡아 흔들었다. 아버지는 그린듯이 한참이나 꼼짝하지 않고있다가 수화기를 잡아들었다. 아버지는 잡지사사장님께 전화를 했다. 어머니의 사고 때문에 래일 심양으로 출발해야 한다고 하셨다. 이어 아버지는 또 할머니네 집에 전화를 넣었다. 무시로 눈굽을 찍으며 한참이나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셨다. 수화기를 내리워 놓은 아버지는 근엄한 얼굴로 군이를 바라 보았다. <<아버지가 한국에 나가서 어머니의 일을 처리해야겠다. 그새 군이가 집을 돌봐야겠다. 아마 할머니께서 래일 오전에는 우리집에 내려올거다.>> <<아버지, 어머니는 어떻게 되는거예요? 네, 어떻게 되는거예요?>> 군이는 여전히 정신을 추스리지못하고 당황한 눈길로 아버지를 바라보며 곱씹었다. 아버지는 약간 떨리는 손으로 군이의 손을 꼭 잡아주며 말씀했다. <<괜찮을거다. 한국은 의학이 발달해서 어머니는 얼마든지 의식을 회복할수있을 거다. 근심하지 말어라. 어머닌 꼭 아무일도 없을 거다.>> <<아버지, 어머닌 정말 괜찮은거죠? 네, 아버지.>> 군이는 울먹울먹해서 아버지의 손을 잡아 흔들었다. 아버지께서는 불깃불깃한 눈으로 군이를 바라보며 머리를 끄덕이셨다. 아버지는 침실로 들어가 웃옷을 찾아들고 객실로 나왔다. 아버지는 두려움에 떨고있는 군이의 어깨를 조용히 다독여 주며 말했다. <<군이야, 너무 근심하지 말고 먼저 자거라. 아버지는 지금 잡지사에 가서 한국에서 온 팩스를 찾아야겠다. 어머니가 일하던 식당에서 아버지를 한국으로 오라는 서류를 보냈 다는구나. 오늘 저녁에 자료를 작성해가지고 래일, 심양으로 들어가야 할것 같다.>> <<네, 아버지! 시름놓고 가보세요. 제가 집을 지킬게요.>> <<그래, 너무 근심을 하지 말어라.>> 아버지는 다시 한번 군이의 어깨를 다독여 주고는 문을 열고 나갔다. 군이는 사라지는 아버지의 뒤모습을 멍하니 바라 보았다. 군이는 밑둥잘린 나무처럼 쏘파에 털썩 주저 앉았다. 너무도 고통스러워 자기의 머리를 부등켜 안았다. (이국타향에서 어머니는 혼자 어떻게 그 아픔과 싸우고 계실가? 어머니는 이 시각, 병원의 어느 한 구석에 혼자 버려진채로 누워서 신음을 하고있는것은 아닐가? 혹시 어머니께서 영영 일어나지 못하면 어쩔가?…) 오만가지 생각이 군이의 머리를 엄습해왔다. 그러자 못견디게 어머니가 보고 싶어졌다. 군이는 당금 어머니의 곁으로 날아가지 못하는것이 한스럽기만 했다. 군이는 자기의 침실로 들어가 책상서랍을 열었다. 서랍안에는 사진첩 몇권이 들어있었다. 군이는 그중에서 가위에 예쁜 녀자애가 고무풍선을 들고 어디론가 뛰여가는 그림이 그려져있는 사진첩을 꺼내들었다. 그 사진첩에는 어머니가 한국으로 가기전에 군이와 함께 찍은 사진들이 들어있었다. 군이는 사진을 보면서 한가지 새로운 점을 발견했다. 사진마다에서 어머니는 군이를 꼭 끌어안고있지 않으면 군의 손을 잡고있었다. 군이와 함께 하는 어머니의 얼굴에는 사진마다 그처럼 행복한 미소가 어려있었다. 군이는 사진첩을 번지며 어머니의 진한 향기를 맡는듯싶었다. 방불히 어머니께서 옆에 계시는듯싶었다. <<어머니!>> 군이는 조용히 어머니를 불러보았다. 어머니의 얼굴이 가담가담 눈앞에서 지나갔다. 군이는 갑갑한 마음을 달래려고 밖으로 나와 천천히 층계를 내리기 시작했다. 군이는 아빠트 정원에 있는 정자를 향해 걸어갔다. 아빠트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이 정자를 밝혀주고있었다. 정자에는 두 꼬마가 앉아있었다. 머리를 짧게 깎은 남자애가 이상인듯 해보였다. 양뿔머리를 한 녀자애가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남자애에게 물었다. <<오빠, 오빠는 어느 별을 가질래?>> <<나는 저기서 제일 반짝이는 저 별들을 가지겠다.>> 남자애가 북두칠성을 가리키며 말했다. 녀자애가 손벽을 치며 종알거렸다. <<히야~ 오빠, 나도 그 별을 가지고 싶은데. 저 별들이 얼마나 밝니? 저렇게 밝으니까 엄마랑, 아빠랑 있는 한국에서도 볼수있을게 아니야. 그렇지 오빠야, 아빠랑, 엄마랑도 저 별을 보고있겠지?>> <<볼수있겠지뭐. 근데 볼수 없을거야.>> <<왜 볼수 없는데?>> 양뿔머리 녀자애가 못내 아쉬운듯 남자애에게 물었다. 남자애는 뭔가를 생각하고있는지 잠간 말이 없었다. 녀자애가 칭얼거렸다. <<오빠야, 응? 왜 볼수 없는데?>> <<지난번에 할머니가 하는 말씀을 못들었니? 엄마는 식당에서 새벽까지 일하고 아버지는 돈을 더 벌겠다고 공장에서 맨날 곱대거리를 한다고 하시던 말씀을 말이다. 그러니 어떻게 시간이 나서 지금 우리처럼 별을 보겠니?>> <<참, 아빠랑, 엄마랑도 저 별을 봤으면 좋겠는데, 그러면 아빠랑, 엄마랑도 우리가 저 별을 보고있는걸 알수있을텐데, 그치? 오빠야~>> 녀자애는 못내 아쉬운듯 오빠를 불렀다. 군이는 못박힌듯 그자리에 서서 오누이의 이야기에 귀를 귀울였다. 어쩜 인기척에 별구경을 하는 오누이가 놀랄가 우려되였다. <<오빠야, <6.1>절에 할머니가 우리를 데리고 공원에 갈가?>> 녀자애가 무척 기대에 찬 목소리로 남자애에게 물었다 <<나도 모르지, 할머니는 맨날 허리가 아프시다는게 어쩌겠는지.>> <<우리반 애들은 전번에도 공원에 가서 원숭이랑, 공작새랑, 락타랑, 하마랑 보았다더라. 나도 보고싶은데.. 할머닌 맨날 허리가 아프다면서…>> 녀자애가 여기까지 말했을 때 갑자기 등뒤에서 신경질이 가득한 할머니의 목소리가 꼬장꼬장 들려왔다. ` <<<야, 이것들아, 여기서 뭘 하고있니?>> 녀자애는 하던 말을 딱 끊어버렸다. 몸매가 겨릅대같이 여원 할머니 한분이 군이의 등뒤에서 허이허이 걸어 나왔다. <<이것들아, 독보조에 일이 있어서 갔다 오자고 그새 혼자 있으라 했더니, 그 어간을 참지를 못하고 이 어두운데 밖에 나왔냐? 호랑이가 와서 물어가면 어쩔라구 그러니? 아유~ 이 원쑤들아. 애비, 에미는 어디 가서 제 돈을 버느라 헤매구, 이 늙은것은 그 새끼들을 건사하느라 이 고생을 하구! 유~ 세상 돌아가는 꼬라지하구는…>> 할머니는 정자에 올라가 오누이를 끌고 내려오며 입을 쉬우지 않았다. 오누이는 아무 대꾸도 못하고 비틀비틀 할머니에게 끌려오고있었다. 군이는 멍하니 선자리에 선채로 할머니에게 끌려가는 오누이를 지켜보았다. 녀자애는 할머니의 손에 끌리우면서도 머리를 들어 가끔 하늘을 쳐다보고있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보고있을지 모르는 그 북두칠성을 찾는 모양이였다. <<이것아, 온천히 걷지 못하겠니? 왜 이렇게 흐믈 거리니?>> 할머니가 녀자애를 마구 잡아 흔들었다. 녀자애는 여전히 대꾸 한마디못하고 걸음을 옮기고있었다. 군이는 할머니의 손에 끌려 자기 앞을 지나는 오누이를 축은하게 지켜 보았다. 그들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군이는 방금 오누이가 앉았던 정자에 가서 오누이가 앉았던 그 자리를 찾아 앉았다. 군이는 하늘을 바라고 머리를 쳐들었다. 오누이가 보면서 아빠, 엄마를 그리던 그 북두칠성을 찾았다. 은구슬을 뿌려 놓은듯 망망한 별무리들속에서 국자모양의 북두칠성이 유난히도 반짝이고 있었다. 문뜩 시골에서 할아버지와 나란히 창가에 서서 별찌를 보던 달콤한 추억이 또 머리를 쳤다. <<군이야, 별찌를 보면서 소망을 빌면 그 소망이 이루어 진단다.>> 할아버지의 말씀이 방불히 귀전에 들려오는듯 싶었다. 군이는 정성을 다해 별찌를 찾았다. 별찌를 보면서 어머니께서 무사하기를 빌고싶었다. 그리고 어머니께서 빨리 병상에서 일어나기를 빌고싶었다. 군이는 어머니의 몸이 완쾌 된다면 어떤 일이 있더라도 어머니를 집으로 모셔오리라고 다졌다. 어머니와, 아버지와 단란히 모여 오손도손 달콤하게 살고싶었다. 하지만 그날 밤, 하늘에는 별찌가 없었다.
5    가는 사람 오는 사람 댓글:  조회:1569  추천:0  2010-03-10
가는 사람 오는 사람 객실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군이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계를 보니 다른 날보다 30분쯤 먼저 깨여난듯 싶었다. 군이는 잠옷바람으로 객실로 나갔다. 아버지께서 행장을 꾸미고 계셨다. 행장이라해야 평소에 입던 옷 몇견지와 간단한 생활용품이 전부였다. 려행가방에 옷들을 주어넣는 아버지의 얼굴은 무서울 정도로 이그러져있었다. <<아버지,>> <<어, 좀 더 자지.>> 군이를 발견한 아버지는 애써 얼굴에 웃음기를 띄우며 머리를 끄덕였다. 굳어진 얼굴에 웃음을 짜올리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군이는 말못할 괴로움을 느꼈다. <<오늘 심양차에 들어가야겠구나.>> 아버지께서 담담하게 이야기를 하느라 애썼다. <<하루 기다렸다가 비자가 떨어지면 그 길로 한국에 나가겠다. 어머니의 일처리를 하느라면 며칠 걸릴지 잘 모르겠다. 그새 할머니께서 오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군이가 집안의 일들에 신경을 좀 써줘야겠다. 할머니는 인제 년세가 드셔서 힘든 일은 버거워하실거다.>> <<알겠습니다. 아버지, 시름놓으십시오.>> 군이는 힘껐 머리를 끄덕였다. 군이는 아버지의 적삼을 포개여 려행가방에 넣으며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펴지지않은 아버지의 얼굴은 밤새 십년이상 늙어버린것 같았다. 푹 꺼져들어간 아버지의 두 눈에는 안스럽게도 많은 피발이 서있었다. <<아버지, 빨리 짐을 꾸려놓고 한잠 쉬십시오. 어제 밤에 한잠도 못쉬셨죠?>> <<아니, 잠간 눈을 부쳤댔다. 휴~, 너의 어머니… 정말 고생도 수없이 했지. 남부럽지 않게 살겠다고 한국에 나가 악착스럽게도 일하더니…>> 아버지께서 뒤말을 흐리우며 머리를 숙였다. 꺽 하고 목이 메여오는 모양이였다. 군이도 따라서 가슴이 뭉클해왔다. 눈굽이 젖어들기 시작했다. 군이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머리를 숙였다. 아버지께서 직접 군이에게 이 같은 말을 하기는 이번이 처음이였다. 아버지의 목소리에는 어머니에 대한 미안함과 무한한 고마움이 반죽되여있는듯싶었다. 군이는 이처럼 진정으로 마음속의 이야기를 할수있는 아량을 가지신 아버지가 참 멋지다고 생각했다. 접때 승화때문에 잠시나마 아버지를 의심해본 자신이 아버지에게 미안하다고 생각되였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이 깊으신 아버지를 의심해서 어머니에게 나쁜 말을 전한 누군지 모를 그 사람도 미워졌다. 군이는 무슨 말로 아버지를 위로해 드려야 할지 가슴이 답답하기만 했다. 심양으로 가는 기차는 점심 11시25분에 있었다. 군이는 선생님께 말미를 맞고 부랴부랴 기차역으로 나갔다. 아버지께서는 아침에 학교에 가는 군이를 보고 시름놓고 공부나 잘 하라고 하셨지만 군이는 좀처럼 아버지를 혼자 떠나보낸다는게 가슴에 걸려 진정을 할수가 없었다. 역전에는 할머니도 와 계셨다. 할머니께서는 아버지의 옆에 서서 찔끔찔끔 눈굽을 찍으셨다. <<할머니, 언제 오셨어요?>> 군이는 조용히 할머니 옆으로 다가섰다. 군이를 발견한 할머니는 끝내 소리내여 꺼이꺼이 울음을 터뜨렸다. <<군이야, 아이고, 내 새끼야!>> 사람들의 눈길이 할머니의 몸에 와 멈췄다. 그러건 말건 할머니는 군이의 어깨에 몸을 맏기며 흐느끼기 시작했다. 군이는 으스러지게 할머니를 껴 안았다. 순간 군이는 할머니의 몸이 참 왜소하다고 생각되였다. 어릴적 할머니의 등에 엎혀 옥수수 밭으로 가며 투정을 부릴 때 엉뎅이를 다독여 주시던 그 할머니가 아닌듯싶었다. 군이는 할머니의 얼굴을 오래도록 응시했다. 검버섯이 가담가담 돋아난 할머니의 얼굴에는 세월을 말해주는듯 얼기설기 주름살들이 패여있었다. (할머니가 울고계신다. 돈을 벌어 잘 살아보겠다고 이국 타향에서 악착같이 일하다가 변을 당해 의식을 잃고 누워있는 며느리를 그리며 꺼이꺼이 울고 계신다). 군이는 할머니의 아픔이 심장으로 와 닿는듯했다. 군이는 울먹이며 말했다. <<할머니, 제가 있잖아요. 어머닌 인차 일어나실 거에요.>> <<고맙다, 군이야, 이렇게 잘 자라줘서 할미가 감사하다.>> 할머니는 소나무껍질같이 터실터실한 손으로 군이의 등을 다독여 주었다. <<어머님, 그만 하십시오.>> 아버지께서 흐느끼는 할머니를 군이로부터 떼여내고는 힘있게 두손을 꼭 잡아드렸다. 금방 쓸어질듯 갸냘픈 할머니를 내려다보시며 아버지는 어금이를 꽉 깨무셨다. 아픈 눈길만 보낼뿐 더 이상 말씀은 아끼고있었다. 아버지를 떠나보낸 군이는 그 길로 곧장 학교에 왔다. 운동장은 뽈을 차는 애들로, 술래잡기를 하는 애들로, 고무줄 뛰기를 하는 애들로 법썩거렸다. 세상에 근심걱정이란 없는듯이 웃고 떠드는 애들을 보면서도 군이의 마음은 좀처럼 가벼워지지 않았다. 오는 길에 내내 어머니와 아버지의 얼굴이 번갈아 눈앞에 떠올라서 도무지 감정을 정리할 길이 없었던 것이다. <<군이야~>> 어느새 군이를 발견한 미림이가 저쪽에서 뛰여오며 불렀다. 미림이의 얼굴은 기쁨 반, 근심 반으로 종잡을 수 없이 번져가고있었다. <<어디 갔댔니? 선생님께 물어봐도, 그저 일이 있어 청가를 맡았다고만 하시지, 어디 근심스러워 살겠니? 말도 없이…>> 미림이가 련주포를 쏘아댔다. 군이는 미림이를 향해 어색하게 입귀를 들어보였다. <<규호도 아까 나에게 묻더라. 네가 어디 갔는가구. 그래서 내가 되려 너에게 물어보자 했다고 말했지. 빨리 교실로 가자, 규호도 한창 근심하고있을 거다.>> 미림이는 군이를 재촉하며 앞에서 잰걸음을 놓았다. 군이는 말없이 미림이의 뒤를 따랐다. 군이가 들어서자 동학들의 눈길이 일제히 군이쪽으로 쏠렸다. 정말 모두들 무척이나 근심하는 눈치였다. 군이는 그러는 동학들이 참 고맙게 생각되였다. 순간 가슴속 저 끝으로부터 무언가 훈훈한것이 서서히 올리밀기 시작했다. 군이는 얼굴에 가벼운 웃음을 띄우고 누구에게라 없이 머리를 끄덕여 주었다. 규호가 바삐 군이의 곁으로 다가왔다. 얼굴에는 벌써 의문이 가득차있었다. 군이는 그러는 규호에게 얼굴을 돌렸다. 규호가 먼저 물었다. <<무슨 일이 있었댔니?>> <<어머니가 한국에서 사고를 당했대, 하여 아버지께서 어머니의 일을 처리하려고 오늘 한국에 가셨어.>> <<너의 어머니가? 어떤 사고를 당했는데.>> 규호의 목소리에는 순간 불안이 섞여 나왔다. 삽시에 동학들의 눈길이 다시 군이와 규호의 쪽으로 쏠렸다. 군이는 잠간 머뭇거리다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똑똑한건 모르겠는데, 어머니가 일하던 식당에서 액화가스가 터졌다나 봐.>> <<야!, 그럼 너의 어머닌 어떻게 되는 거니?>> <<몹씨 상했대?>> <<지금 병원에 있다니?>> 동학들이 근심에 찬 목소리로 다투어 물어왔다. 이때 출입문이 열렸다. <<얘들아, 안녕~>> 얼굴이 환하게 피여난 승화가 손에 큼직한 비닐봉지를 들고 교실에 들어섰다. 승화는 아직 교실안의 분위기를 파악하지 못했는지 손사래를 쳐댔다. <<미안미안, 오늘 오전에 울집에 큰 경사가 있었거든. 그래서 오전에 청가를 맡은거야.>> 승화는 자기의 자리를 찾아 책상우에 비닐봉지를 올려놓고는 계속 너스레를 떨었다. <<우리 아버지가 한국에서 돌아온거야. 나의 생일도 쇠주구, 소학교에서의 마지막 <6.1>절도 함께 보내면서 뜻깊은 추억을 만들어준다나? 히야~ 짐이 어찌나 많은지, 손에다 빼크(려행가방)를 두개나 들고, 또 세개나 화물로 부치구…>> 한참이나 고아대던 승화가 문뜩 가라앉은 교실의 분위기를 파악했는지 동학들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미림이는 벌써 눈살이 꼿꼿해서 승화를 쏘아보고있었다. 승화는 인츰 규호쪽에 머리를 돌렸다. 규호도 얼굴이 퍼렇게 부어가지고 승화를 노려보고있었다. 당금이라도 씽 하니 뛰여와 귀뺨이라도 올리부칠 태세였다. 승화는 <<아차.>> 하고 혀를 홀랑 내밀어 보이고는 자리에 앉아 옆자리에 앉은 짝꿍에게 머리를 돌렸다.. <<웬 일이냐? 반에 무슨 일이 있었니?>> <<군이 어머니가 한국에서 사고를 당했대.>> 옆자리에 앉은 짝꿍이 나지막하게 알려주었다. 승화의 얼굴이 대번에 굳어졌다. <<승화야, 축하한다. 좋겠구나. 아버지가 돌아와서.>> 군이가 무겁게 흐르는 분위기를 깨며 입을 열었다. <<군이야, 난 정말 몰랐다. 그런 줄을.>> 승화가 기죽은 목소리로 얼버무렸다. 군이는 애써 얼굴에 웃음을 띄웠다. <<아니야, 별 일 없을거야. 승화야, 너 가지고 온게 뭐니? 그 비닐주머니 안에 있는게 말이다.>> 군이가 승화의 책상우에 놓여진 비닐주머니를 가리키며 물었다. 승화의 얼굴에 금방 웃음기가 돌았다. 승화는 벌떡 일어나 비닐봉지를 헤쳤다. <<이게 울아버지 직접 한국에서 사가지고 온 사탕이다. 너희들을 먹어보라고 가져왔다.>> 승화가 비닐주머니를 먼저 군이의 앞으로 가져갔다. <<군이야, 먹어봐, 영~ 맛있더라.>> <<그래? 와~ 한국사탕맛을 보자.>> 군이가 일부러 목소리를 높이며 비닐주머니안에서 사탕을 한줌 꺼냈다. <<많이 먹어라. 많이 가져왔거든.>> 승화는 차례로 동학들 앞을 돌려 비닐주머니를 벌리고 사탕을 집어내게 했다. 동학들의 얼굴에는 차츰 웃음기가 돌았다. 학급간부회의까지 끝나서야 군이는 하학길에 올랐다. <<6.1>>절맞이주제반회의 시간이 가까와 오기에 동학들의 발언준비가 어떻게 되였는지를 검사하라고 담임선생님께서 포치하셨던것이다. 담임선생님께서는 이번 주제반회가 소학교에서의 마지막 주제 반회가 될지도 모르기에 회의시간이 좀 길어지더라도 모든 동학들이 다 발언을 할수있게 하라고 특히 강조를 하셨다. 간부들은 분조 별로 한사람씩 책임을 지고 준비정황을 조사해보기로 했다. (소학교를 졸업하면서 가장 하고 싶은 말! 과연 내가 가장 하고싶은 말은 무엇일가?) 군이는 속으로 자기에게 물어보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6.1>>절이 명절로 머리속에 자리를 잡던 그때로부터 군이는 은근히 <<6.1>>절이 기다려졌다. <<6.1>>절이 오면 아버지, 어머니는 어떤 일도 제쳐놓고 군이와 함께 공원으로 가군했다. 열살나던 해 <<6.1>>절날, 군이는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공원에서 처음으로 공중렬차를 타보았다. 아스라니 높은 공중레루우에서 렬차를 타고 질주하며 군이는 아버지의 품에 꼭 안겼다. 어머니는 그 장면을 부지런히 필림에 담으며 행복하게 웃고 계셨다. 그것이 아버지, 아머니와 함께 보낸 마지막 <<6.1>>절이였다. <<군이야~>> 교실에서 나와 금방 대문을 나서자 군이는 누군가 자기를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군이는 본능적으로 소리나는 쪽에 머리를 돌렸다. 승화가 손을 흔들고있었다. 군이는 웬 일이냐는듯 승화를 바라 보았다. <<같이가자구 기다렸다. 군이야.>> <<그래?>> 군이는 승화의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승화가 군이를 보고 히쭉 웃고있었다. <<우리 같이가자. 내가 너네 집부근까지 가서 우리집 방향으로 가는 차를 타면 되니까.>> <<웬 일로 그렇게 돌겠니?>> <<그냥 그러고 싶어서. 그리구 이걸…>> 승화는 쑥스러운듯 가방에서 정교하게 포장한 선물을 꺼내여 군이에게 건넸다. <<뭔데? 나를 주는거니?>> <<응, 울아버지 한국서 가져온거야, 만년필하구 원주필.>> <<이렇게 좋은 걸 내가 어떻게 가지니? 싫어, 네가 뒀다가 써라.>> <<아니야, 내겐 또 있다. 너에게 주고싶어서 그런다. 받아라.>> 기어코 선물을 넘겨주는 승화의 얼굴은 자못 진지해있었다. 군이는 그러는 승화의 진정을 물리치는것이 저으기 미안스럽게 생각되였다. <<승화야, 고맙다.>> <<아니야, 군이. 내가 네게 더 고맙지 뭐.>> 승화가 제법 얼굴까지 붉혔다. <<네가 아니면 이번에 정말 엄마하구 화해를 못하고 밖에서 헤맬번 했다. 그날은 정말 가출하구 싶었거든.>> <<가끔 그럴 때도 있는거지 뭐. 아버지가 돌아왔으니 얼마나 좋겠니?>> 군이는 걸으면서 승화쪽에 얼굴을 돌렸다. 승화를 바라보는 군이의 눈길에는 진정 승화에 대한 부러움이 가득 담겨있는듯 싶었다. <<군이야, 엄마가 아파서 어쩌겠니?>> 승화의 목소리에는 어딘가 근심이 어려있었다. 군이를 위해 함께 아픔을 감당해 주고싶다는 승화의 진정이 물씬 풍겨왔다. <<어쩌겠니? 방법이 없지 뭐. 하지만 인츰 좋아질거다, 아버진 한국의학이 발달해서 괜찮을 거라고 했어.>> 군이가 낮은 목소리로 승화를 건너다 보며 말했다. <<너의 아버지가 한국에 갔다니까 참 잘됐다. 너의 아버지가 옆에 계시면 너의 어머닌 더 힘을 낼거야.>> 승화는 군이를 보며 힘있게 주먹을 흔들어 보였다. 군이는 승화의 말에서 어딘가 묘한 기분을 느꼈다. 지난번에 있은 <<아버지의 데이트>>사건이 떠올랐다. 군이는 피식 웃으며 승화를 보고 물었다. <<어때? 너의 어머닌 지금도 편집선생님들을 만나러 자주 나가니?>> <<아니야, 차수가 많이 줄어들었어. 생각해보니 그런거지 뭐, 어머니도 아버지가 없으니 집에 혼자 있기 싫었겠지. 그래서 그냥 놀러다니기는 미안하고 하니까, 편집선생님들을 만나러 다닌다고 했겠지 뭐.>> <<히히히, 승화야 너 오늘 무척 헴이 든것 같다.>> 군이가 승화에게 오른 눈을 찡긋해보였다. <<쳇, 나도 너 같은 14살이다. 너만 14살을 먹었나 하니?>> <<그래, 14살, 참 재미나는 나이지. 다 큰것같으면서도 그게 아니구, 다른 사람들이 우릴 어리다고 하면 또 맘속으로는 다 커버린것 같아서 듣기가 불편하구.>> <<선생님이 그랬잖아, 14살의 하늘은 심술많은 아낙네의 얼굴같다구. 금방 맑았다가두 또 금방 벼락이 쏟아지는 심술많은 아낙네의 얼굴 같다구말이야. 히히히…>> 승화가 키드득 웃음을 터뜨렸다. 군이도 승화를 따라 소리내여 웃었다. <<승화야, 오늘 보니 너, 제법 시인감이 잖아, 그래, 너 어머니를 닮았구나.>> <<뭐야?>> 승화가 군이를 보며 곱게 눈을 흘겼다. 파출소에 잡혀가던 그 날의 한장면이 떠올랐던것이다. 승화는 또 한번 키드득 웃으며 군이를 향해 손바닥을 펼쳐들었다. <<군이야, 아자!>> <<고맙다. 승화야!>> 군이는 승화의 손바닥에 자기의 손바닥을 힘있게 부딛쳤다. 순간 군이는 승화에게서 전에 없던 감동을 느끼고있었다. 둘은 마주보며 씽긋 웃었다. 둘은 힘있게 인파를 헤집고 앞으로 걸어갔다. 가는 사람 오는 사람, 모두들 무슨 일이 그렇게도 바쁜지 서로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제 갈길만 재촉하고있었다.
4    미움이란 없다 댓글:  조회:1807  추천:0  2010-03-10
미움이란 없다 승화의 생일파티가 끝난것은 오후 2시무렵이였다. 군이와 친구들은 승화 아버지의 배웅을 받으며 승화네 집에서 나왔다. 규호는 자기가 승화의 생일파티에 초대를 받은것이 못내 감격스러워 무시로 벙글거리고있었다. 미림이는 그러는 규호를 재밌다는듯 바라보며 까르르 입을 열었다. <<규호야, 너 오늘 벙어리 례단 받은 거야?>> 규호가 시무룩히 웃으며 대답했다. <<그럴수 있지. 히히히히. 쩍하면 답새겨 놨는데, 승화가 무슨 생각하구 나까지 초대했을가? 히히히히… 초대하지 않았다가 내가 알면 재미 없을것 같았던 거지, 흥! 아마 그래서 일거야.>> 규호의 말을 들으며 미림이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있었다. 평소 규호가 승화를 살갑게 대해주지 않는다는것은 동학들 누구나가 다 아는 사실이였기 때문이다. <<승화, 그 애가 전화번호를 잘못 누른게 너한테로 갔겠다.>> 미림이가 짐짓 규호의 비위를 긁어댔다. 과연 미림의 말에 규호가 목소리를 높이며 반박했다. <<이것 좀, 모르면 입을 다무시죠, 난 전화를 받은게 아니라, 어제 오후 하학할 때 벌써 기별을 들었다. 승화가 직접 자기의 생일파티에 꼭 와달라구 하더라.>> <<정말? >> <<두말이면 잔소리지.>> 규호가 씨뚝해서 대답했다. <<이상한데, 아마도 승화, 그애가 너에게 사탕폭탄을 던지는것 같다.>> 미림이가 얼굴에 묘한 웃음을 띄우며 규호를 향해 까르르 웃어보였다. <<이 렴치없는것들아, 방금 생일파티에 가 잘 대접받구 나오면서 그건 왜 씹구있니? 승화에게 미안하지두 않아?>> 군이가 얼굴에 웃음을 날리며 악의 없이 핀잔을 주었다. 그 바람에 규호도 미림이도 우습다고 깔깔 소리내여 웃어제꼈다. <<욕을 먹어도 그렇게 좋니? 웃는걸 봤으면… 근데 규호야, 너 오늘 왜 늦었니?>> 청년공원 대문을 지나며 군이가 말머리를 돌렸다. 오늘 승화의 생일파티에 규호가 약속 시간보다 반시간이나 늦게 도착했던것이다. 군이의 물음에 규호는 깜짝 놀라는듯싶더니 잠간 군이와 미림이의 얼굴을 일별했다. <<그럴 일이 있었다. 우리 공원에 들어가 앉을가?>> 해맑던 규호의 얼굴에 옅은 구름이 스쳤다. 군이와 미림이는 가볍게 규호를 향해 머리를 끄덕였다. 규호가 먼저 공원안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라일락이 탐스럽게 피여난 오솔길섶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자갈돌을 예쁘게 깔아놓은 오솔길 아래에는 아담한 인공호수가있었다. 인공호수에서는 빠알간 금붕어들이 자유롭게 헤여놀았다. 양뿔머리를 한 예쁘게 생긴 녀자애가 엄마의 손을 잡고 금붕어를 구경하고있었다. <<엄마, 금붕어도 엄마가 있나?>> 녀자애가 까아만 두눈을 깜빡이며 어머니에게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물었다. 어머니의 얼굴에 금방 웃음꽃이 피여났다. <<금붕어도 엄마가 있지. 금붕어 엄마는 한번에 예쁜 금붕어새끼를 여러마리 낳는단다.>> <<그럼 저 금붕어들은 다 쌍둥이겠네.>> 녀자애가 또 금붕어를 가리키며 종알거렸다. 그바람에 녀자애의 어머니도 웃고 군이네도 웃었다. <<얼마나 귀엽니?>> 미림이가 속삭이듯 말했다. <<좋을 때지… 근심도, 걱정도 없구, 아마도 저 녀자앤 이 세상이 다 금붕어처럼 빠알갛게 보일거다.>> <<하하, 요즘은 웬 일들이야. 너희들 모두가 시인이 되는 기분이다.>> 군이가 규호의 어깨를 툭 치며 웃었다. 규호는 머리를 돌려 군이를 바라보더니 옆에서 작은 돌멩이 하나를 주어 호수에 뿌렸다. <<오늘 갔어. 아까 기차역에 나갔다 오느라고 늦은거야.>> 규호의 말에 군이는 일시 갈피를 잡지 못해서 되물었다. <<누가 갔니?>> <<어디로 갔기에?>> 미림이도 한술 떴다. 규호는 다시 한번 작은 돌멩이를 주어 호수에 던져 넣으며 입을 열었다. <<우리 어머니라는 사람이 영~ 가버렸다.>> <<아,>> 군이가 신음비슷한 소리를 냈다. <<어머니라는 사람이라니? 그런게 어딨니? 어머니면 어머니구 아니면 아닌거지.>> 미림이가 규호의 곁으로 한뼘 다가 앉았다. <<떠난다고 전화가 왔더니?>> <<아니, 지난 목요일에 아버지와 어머니는 리혼수속하러 갔었어, 떠나면서 말하는거야, 리혼수속이 제대로 되면 토요일에 북경으로 들어간다구. >> 규호는 잠간 말끝을 맺고는 두손으로 땅을 짚고 머리를 쳐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가슴이 갑갑해나는 모양이였다. 그때까지도 무슨 영문인지를 확실하게 모르고있는 미림이는 분위기를 보니 끼여들 틈이 보이지 않아서 참견은 못하고 그저 규호만을 이윽토록 바라보았다. <<그래서 오늘 역전에 나갔댔구나. 잘했다.>> 군이가 진심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군이야, 너두 그렇게 생각하니?>> 규호가 군이에게 눈길을 돌렸다. 촉촉히 젖어오르는 규호의 눈길에는 많은 이야기가 담겨져있는듯싶었다. 군이는 규호를 향해 말없이 무겁게 머리를 끄덕여보였다. 규호는 감격어린 눈으로 군이를 바라보았다. 언제나 진심으로 자기를 리해해주고 믿어주는 군이를 두고 규호는 마음속으로부터 감격해 하는 모양이였다. 규호가 말을 이었다. <<첨엔 역전에 나가지 않으려고 생각했었다. 어머니를 증오하기까지 했거든. 근데 어머니가 떠나겠다는 날이 가까와 올수록 마음이 불안해나는거야. 그래서 그냥 어떤 모습을 하구 떠나는가를 보기나 하자구 나가기로 했지.>> <<너의 어머니가 아버지와 리혼하구 다른 데로 간거니?>> 미림이가 끝내 궁금증을 참지못하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규호는 미림이에게 머리를 끄덕여보였다. 미림이가 안스러운듯 젖어든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일이 있었구나. 그런 아픔이 있었구나.>> <<어머니는 혼자 대합실밖에서 서성거리고있더라. 어머니는 나를 보더니 엎어질듯 달려오는거야. 와서는 나의 목을 끌어 안고 마구 울기 시작하는거야.>> 군이도 미림이도 조용히 규호의 눈길을 지켜 봐 주었다. <<첨엔 그냥 말못할 반감이 생겨서 어머니의 품을 벗어나려고 몸을 비탈았지. 그럴수록 어머니는 더 으스러지게 나를 껴안는거야. 도무지 뺄수가 없었어. 난 어머니에게 그런 강한 힘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거든. 그래서 어머니에게 그냥 몸을 맞겨버렸어. 어머니는 오래도록 말 한마디 못하고 울기만 하는거야.>> 규호는 잠간 하던 말을 줄이고 다시 머리를 쳐들었다. 눈길은 어느새 저 하늘을 떠가는 구름송이에 가 멎어있었다. 유유히 떠가는 구름쪼각과 함께 규호의 젖어버린 눈길도 어디론가 흘러가고있었다. 어쩜 흘러가는 구름에서 어머니의 흔적을 찾아내려고 집착하는것 같았다. 미림이는 또 다른 규호를 보는것 같았다. 평소 말없이 있다가는 엉뚱한 일들을 깜짝깜짝 벌려내는 우직한 규호의 마음속에도 14살 소년의 여리디 여린 감성이 숨어있음을 보아낼수있었던것이다. <<그럼 어머닌 영 떠나버린거니?>> 미림이가 규호를 향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렇겠지뭐, 어머니는 나를 붙들고 한참이나 울기만 하다가 한마디 하더라. 나에게 미안하다는거야. 그말을 남긴후 어머니는 손으로 얼굴을 싸쥐고 대합실로 뛰여들어갔어. 따라 들어가보니 어머니네 식구들이 모두 나와 있더라. 어머니가 도망간후 한번도 본적이 없는 사람들이였지. 서로가 어색한 기분이여서 뭐라고 말할것도 없구, 난 개찰구에까지 나갔댔어. 기차가 떠나갈 때까지 바라보았지. 그때까지 울고있는 어머니가 차창으로 보여왔어.>> <<규호야, 너의 어머닌 너를 고맙게 생각할거다. 아무래도 떠나는 사람인데 좋은 추억을 가지고 떠나게 하는게 얼마나 좋니? 너 오늘 잘 나간거야.>> 군이가 규호의 손을 으스러지게 잡아주었다. 규호는 고맙다는듯 머리를 끄덕였다. <<인젠 어머니를 증오하지 않기로 했다. 증오해서 뭘해. 필경은 나를 키워준 분인데. 어디 가서든 잘 살면 좋은거지 뭐. 인젠 나에게서 어머니에 대한 미움이 없어졌어. 그래 미움이란 없는거야.>> 애써 담담한체 목소리를 가다듬는 규호의 얼굴은 빠알갛게 피여오르고있었다. <<그럼 너의 아버진 어쩌니?>> 미림이가 근심스러운듯 물었다. <<울아버지?>> 규호가 짤막히 되물었다. 미림이가 여전히 정색해서 머리를 끄덕였다. <<새 장가보내지무. 난 꼭 울아버지를 다시 장가 보낼거야.>> 규호가 신심에 차서 이야기를 했다. 군이는 열띈 목소리로 열변을 토하는 규호를 이윽히 바라 보았다. <<우리 아버지, 인젠 정말 행복해야 해! 난 아버지보구 새 어머니를 데려오라고 말하겠다. >> 규호의 목소리에는 힘이 들어가있었다. 절대 롱담이 아닌것 같았다. <<규호야, 너, 지금은 녀자들이 안 밉니?>> 군이는 피뜩 떠오르는것이 있어 규호에게 짤막하게 물었다. 규호가 후~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몰라, 하지만 우리 아버지에겐 녀자가 있어야 해. 누군가 옆에 있어야 울아버지가 행복할수있을거야. 외롭지 않을거야.>> <<옆에 네가 있잖니?>> 미림이가 끼여들었다. <<아니야, 울 아버진 나에게 고생스럽다는 말을 안하셔. 내 앞에서 아버진 그냥 강한체만 하거든. 나는 그게 아닌줄을 안지 오랜데.>> 그말을 들으며 군이가 정곡을 찔렀다. <<아버지만을 위해서 새 어머니를 모시겠다는거니? 넌 새 어머니가 필요없구?>> <<내가? 나라면 문제가 달라지지. 난 정말 녀자가 싫거든, 으~ 생각만 해도 불안해나거든.>> <<그럼 장가는 어떻게 갈건데?>> 미림이가 피씩 웃음을 날리며 바투 들이댔다. 규호도 피씩 따라 웃더니 말했다. <<누가 장가를 간댔어? 난 독신주의야, 울아버지의 삶이 산 교재로 날 그렇게 가르치는데? 죽어도 난 울아버지처럼은 안 살거야. 녀자들, 헤잇, 어떻게 믿어.>> 규호는 또 무언가 격한 감정이 치미는지 조약들을 주어 호수에 던졌다. 돌은 수면에 커다란 원을 그리면서 잔잔한 파문을 일어갔다. 미림이는 잠간 퍼져가는 파문을 지켜보다가 말했다. <<독신주의는 무슨 얼어죽을 독신주의야? 난 커서 좋은 남편을 만나 아들 낳구, 딸두 낳구, 잘 살고싶은데.…>> 오손도손 가정을 이루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자기의 미래를 그려보는지 미림의 얼굴에는 달콤한 미소가 퍼져가고있었다. 규호가 그러는 미림이에게 찬물을 껴얹었다. <<시집 좋아하고있네. 너같이 드살짝이 센 계집애를 어느 남자가 데려간대? 수호전의 흑선풍 리규나 환생하면 모를가? 크크크…꿈을 깨라, 꿈을 깨!>> <<너 리규호!>> 미림이가 주먹을 메고 달려들었다. 규호가 벌떡 일어나 뛰여가며 소리쳤다. <<시집간대요~ 시집간대요~>> 군이도 그들을 따라 일어섰다. 미림이는 종주먹을 쥐고 규호를 쫓아가고있었다. 규호의 건들건들한 목소리가 차분한 5월의 해살을 헤치며 바람에 날려왔다. <<시집간대요~ 시집간대요~ 말괄량이 미림이가 시집비유 났대요~>> 규호와 미림이는 깔깔 거리며 저쪽까지 갔다가는 돌아오고 돌아왔다가는 또 뛰여가며 시름 없는 한순간을 즐기고있었다. <<어머니를 증오하지 않기로 했다… 인젠 나에게서 미움이 없어졌어, 그래 미움이란 없는거야.>> 군이는 흥분에 들떠 이야기 하던 규호의 목소리가 방불히 귀전을 스치는듯싶었다. 미움을 긁어버린 14살 소년의 마음속 끝자락에서 아지랑이처럼 피여오르는 맑은 향기가 바람에 날려오는듯싶었다
3    크면서 깨치면서 댓글:  조회:1563  추천:0  2010-03-10
크면서 깨치면서 <<얘들아, 얘들아, 들었니? 최신 소식이다.>> 문소리와 함께 승화가 교실로 뛰여 들어오며 소리쳤다. 승화는 숨이 차서 헐떡거리고있었다. 얼굴은 방금 뛰여와서인지 빨갛게 상기되여있었다. 하지만 동학들은 별로 궁금해하는 눈치를 보이지 않았다. 승화에게는 노상있는 행동이였던것이다. 아니나 다를가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승화쪽에서 되려 숨기지못하고 내용을 방송했다. <<방금 내눈으로 똑똑히 봤다. 은경이, 은경이가 걔 어머니와 함께 교무실에 들어가더라.>> 승화는 손까지 흔들며 기본내용을 다 전달하고는 어떠냐 하는듯 동학들을 빙~ 둘러보았다. 삽시에 동학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은경이가 어떻더니? 몸이 몹시 축했더니?>> 누군가 승화에게 물었다. <<아니야, 내 보기엔 원래 보다 더 실해진것 같았어. 음~ 원래 미츨한 장미였다면 지금은 푹 퍼진 함박꽃이라 할가?>. 승화가 두 손으로 활짝 핀 함박꽃을 그려보이며 신비하게 두눈을 껌뻑거렸다. <<자식, 함박꽃 좋아하네. 암튼 꽃이면 되는거지 뭐.>> <<은경이가 마음고생을 무지도 했을 거다.>> <<그래, 얼마나 힘들었으면 자살하려고까지 했겠니?>> 동학들이 은경이를 두고 걱정을 하고있을 때 출입문이 열렸다. 담임선생님의 뒤로 은경이가 따라 들어왔다. 승화의 말대로 은경의 얼굴은 퉁퉁 부어있었다. 전에 쩍하면 눈을 올롱하게 뜨고 <<그건 말이다…>>하고 서두를 떼던 도고하고 깔끔하던 은경이가 아니였다. 동학들은 측은한 눈길로 은경이를 바라보았다. <<은경이, 제자리에 가서 앉아라.>> 담임선생님께서 <<제자리>>라는 말에 힘을 주었다. 은경이는 머리를 수긋한채로 두번째 줄 세번째 책상을 찾아 들어갔다. 바로 미림이의 뒤자리였다. 은경이는 미림이의 옆을 지나다가 책상우에 놓인 미림이의 필기장을 팔로 쳐서 땅에 떨어뜨렸다. 툭! 하고 가벼운 소리가 났다. 은경이는 와뜰 놀라며 그 자리에 멈추어 섰다. <<괜찮아. 은경아.>> 미림이가 허리를 굽혀 필기장을 주으며 상냥스럽게 말했다. 갑자기 은경이가 미림이의 손에서 필기장을 나꿔채서 책상우에 콱 하고 던졌다. <<괜찮다구? 속에 없는 말을 하지 말아! 내가 모르는 줄 아니?>> 은경이의 너무나도 신경질적인 반응에 미림이는 깜짝 놀라서 멍하니 은경이를 건너다 보았다. 은경이의 눈은 이글이글 타고있었다, <<미안, 은경아. 책이 떨어지는거야 늘 있는 일이지 뭐. 정말 괜찮아.>> 미림이가 애써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말했다. 그러건 말건 은경이는 자기의 자리에 가서 앉더니 책상에 머리를 틀어박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내가 이럴줄 알았어. 이럴줄을 알았다니까. 너희들 원래 부터 날 미워하고있었지? 그래, 날 눈에 든 가시처럼 미워했던거야.>> 동학들은 모두들 숨을 죽이고 은경이를 지켜보았다. 조용한 교실에서는 은경이의 흐느낌소리만이 구슬프게 울려퍼졌다. 잠자코 은경이를 지켜보고있던 담임선생님께서 조용히 은경이의 곁으로 다가갔다. <<은경아!>> 담임선생님께서 은경의 어깨를 다독이며 나지막하게 불렀다. 은경이는 화들짝 놀라며 머리를 쳐들었다. 은경의 눈에는 공포와 증오와 애절함이 섞여서 흐르고있었다. <<은경아, 마음을 넓게 가지고 옛날처럼 동학들을 대해라, 동학들은 언제나 은경의 편이란다.>> 담임선생님께 은경의 어깨에 부드럽게 오른손을 올려놓으며 말씀하셨다. 은경의 입가에 경멸에 찬 웃음이 찰랑 스쳤다. <<아닌데요. 얘들은 모두가 위선자들이예요. 뒤에서 모두들 내가 죽었으면 했을 거에요. 내가 죽지않고 돌아오니 심술이 나 하는 거예요.>> 은경이가 동학들을 쏘아보며 이사이로 한마디한마디 내뱉었다. 은경이의 목소리는 소름이 끼칠 정도로 동학들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은경아, 그렇게 생각하지 마라, 제발. 우린 모두 네가 빨리 회복되기를 손꼽아 빌었단다. 이건 진심이야.>> 미림이가 머리를 돌리며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또박또박 말을 이었다. 갑자기 은경이가 <<악!>> 하고 소리치며 일어났다. <<이 여우같은년, 마귀같은 년! >> 은경이는 와락 달려들어 미림이의 머리칼을 잡아챘다. 미림이는 <<악!>> 하고 비명을 지르며 두손으로 자기의 머리를 움켜잡았다. 담임선생님께서 힘껏 은경이의 팔을 잡아당겼다. 은경이는 미림이의 머리칼을 놓지 않으려고 바락바락 힘을 썼다. <<은경아, 이러지 말어, 은경아!>> 담임선선생님께서 미림이의 머리칼을 잡은 은경이의 손을 뜯어내며 급하게 소리쳤다. <<은경아, 이러지 말어. 이러면 너만 더 힘들어지잖니?>> 군이가 뛰여가서 담임선생님을 도와 은경이의 손을 뜯어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은경이는 드디여 미림이의 머리칼을 잡았던 손을 풀었다. <<너희들, 조심해라. 다 없애버리고 말겠다. 다 없애버려!>> 은경이는 누구에게라 없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더니 가방을 확 나꿔채가지고 휑~하니 밖으로 나가버렸다. <<은경아, 잠간만.>> 담임선생님께서 은경이를 따라 나가며 애타게 소리쳤다. 망가져가는 제자를 바라보는 선생님의 마음이 찢기는 순간 같았다. 담임선생님의 목소리는 안타까움에 파르르 떨리고있었다. 뛰여나가는 담임선생님을 멍하니 바라보던 미림이가 갑자기 얼굴을 싸쥐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꺽꺽 하는 울음소리는 그렇게도 슬프게 고요한 교실을 녹이고있었다. 은경이가 뇌과병원 정신과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전한 사람도 승화였다. 교무실 앞을 지나다가 은경이 어머니가 담임선생님과 이야기하는 소리를 엿들었다는 것이였다. 누구하나 뭐라고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 모두들 머리를 수긋하고 책만 들여다보았다. 도무지 서로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갈피를 잡을수가 없었다. 담임선생님께서 하루 총결을 지으며 은경이에 대해서 말씀해서야 승화의 말이 사실임이 증명되였다. <<선생님, 이번 주 토요일에 저희들이 은경이를 보러 가겠습니다.>> 군이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담임선생님께서 머리를 끄덕이셨다. <<그래, 너희들의 진정으로 은경의 얼어버린 마음을 녹여줘라. 지금 은경이에게 제일 수요되는 약은 아마도 너희들의 진정일것이다.>> 담임선생님께서는 말을 마치고 동학들을 바라보았다. 선생님의 눈길이 강한 빛을 뿜고있었다. 군이는 선생님의 타는듯한 그 눈길을 보면서 갑자기 목이 메여왔다. 담임선생님이 녀자분이라면 어떨가 하는 생각이 야릇하게 머리를 스쳤다. 군이는 담임선생님께서도 지금 속으로 눈굽을 찍을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천천히 눈굽에 주먹을 올렸다. 담임선생님께서는 불깃불깃한 눈으로 묵묵히 교실을 나갔다. 하지만 동학들은 누구하나 일어날 념을 하지 않았다. 군이가 조용히 교단에 올랐다. <<얘들아, 토요일까지 하루가 남았구나. 하루 동안 은경이에게 보낼 선물을 준비하자. 물건으로가 아니라 저마다의 진정으로 말이다. 은경이가 마음이 편할 때 볼수있게 편지를 한통씩 쓰는게 어떻겠니? >> 군이는 동학들에게 고마운 눈길을 보냈다. <<소학교에서의 마지막 <6.1>절맞이주제반회도 얼마 남지않았다. 아마도 은경이는 이 주제반회에 참가할수 없을것 같구나. 어느 순간, 은경이가 우리들의 편지를 보고 자기의 마음을 적을수있다면 얼마나 좋겠니? 6년동안 함께 했던 우리의 우정을 소학교에서의 마지막 주제반회에서 진실하게 이야기 할수있다면 얼마나 좋겠니? 우리 함께 은경에게 힘을 주자.>> 누군가 먼저 조용히 박수를 쳤다. 삽시에 교실에서 우뢰와 같은 박수소리가 터져올랐다. 군이를 비롯한 몇몇 학급간부들이 동학들의 편지를 가지고 뇌과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토요일 오후 3시경이였다. 은경이는 2층 병실에 입원해있었다. 군이는 복도를 걸으면서 창문으로 병실안을 들여다보았다. 환자복을 입은 사람들이 병실안을 분주히 거닐고있었다. 은경이는 214호 방에 들어있었다. 네사람이 한방을 쓰고 있었는데 모두 은경이보다 나이가 많아 보였다. 호사가 문을 떼고 들어서며 은경이를 불렀다. <<친구들이 널 보러왔다. 은경아.>> 멍하니 벽을 마주한채 동상처럼 앉아있던 은경이가 군이네를 향해 머리를 돌렸다. 눈길은 여전히 굳어진채로 초점이 없었다. <<은경아, 우리가 보러왔다. 동학들이 너에게 쓴 편지를 가지고 왔다.>> 군이가 은경의 옆으로 다가가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은경아. 정말 보고 싶었다. 너두 우리가 그리웠지?>> 미림이가 은경이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미림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던 은경이가 픽 웃어버렸다. <<우리 아버지 부자다. 바쁜 일이 있으면 나에게 말해라. 다 해결된다니까.>> 미림이는 은경의 말에 뭐라고 대답할수가 없어서 담당호사에게 눈길을 돌렸다. 담당호사가 아무 일도 아니라는듯 은경이와 맞장구를 쳐주었다. <<은경이 참 좋겠다. 아버지가 부자 돼서. 은경아, 우리 빨리빨리 치료하구 나가야지? 아버지가 집에서 기다리는데.>> <<히히히히… 우리 아버진 감옥에 안간다. 우리 아버진 부자거든. 우리 아버지, 엄청 돈이 많거든. 우리 아버지 부자다…>> 은경이는 두서없이 주절거리고있었다. 군이네는 가슴아프게 은경이를 바라보다가 가방에서 가지고 온 편지들을 꺼내서 은경이에게 내밀었다. <<은경아, 보고싶을 때 봐라. 친구들이 널 그리며 쓴 편지란다. 모두들 네가 빨리 낫기를 기다리고있단다. 우린 한 반에서 공부하던 동창들이 아니냐? >> 은경이는 군이의 손에서 편지묶음을 받아 가슴에 꼭 가져다댔다. 초점없이 데글거리던 두 눈을 꼭 감았다. 감겨진 눈에서 구슬같은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리고있었다. 제 정신으로 돌아온걸가? 군이네는 긴장해서 담당호사의 얼굴을 살폈다. 담당호사도 군이네와 마찬가지로 은경이를 주시하고있었다. 갑자기 은경이가 손에 든 편지묶음을 담당호사 앞에 내밀며 애원에 차서 소리쳤다. <<이 돈을 다 드리겠습니다. 집을 팔아서라도 받은 돈을 다 물어드리겠습니다. 우리 아버질 감옥에 넣지 마세요. 네? 우리 아버지를 집에 보내주세요, 아버지~>> 은경이는 통곡하며 벽구석을 찾아 쪼크리고 앉았다.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당황한 눈길을 마구 날리고있었다. <<진정제주사를 맞고 한 잠 자게 해야겠다. 너무 흥분해서 저런다.>> 담당호사가 군이를 보고 말했다. 군이네는 묵묵히 은경이에게 손을 흔들어보이며 병실에서 나왔다. 긴 복도를 지나며 누구도 말이 없었다. 뚜벅뚜벅 발걸음소리만이 청승스럽게 긴 복도를 울렸다. <<참, 너무 잔인하다. 어쩜 은경이가…>> 밖으로 나오자바람으로 미림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누구를 탔하겠니? 은경이 아버진 응당한 벌을 받은거 잖아. 집을 팔아서 은경이 아버지에게 수속비를 낸 사람들도 많다던데…>> 누군가 미림의 말을 받았다. <<그래, 은경의 아버진 응당한 벌을 받았다고 하자. 하지만 은경인 저렇게 안 돼도 되잖니?>> 미림이가 흥분에 들떠 목소리를 높였다. 미림이가 어째서 그렇게 흥분하고있는지 군이는 은근히 알것같았다. 군이는 미림의 말을 긍정하며 자기의 생각을 털어놓았다. <<미림이 말이 맞아, 은경인 얼마든지 저렇게 안될수도 있었지. 하지만 은경이는 평소 자기의 아버지를 너무 믿었던거야. 우상처럼 믿던 아버지가 사고를 치니 일시 방향을 잃은거지 뭐. 생활의 방향이 없어지니 이 세상 무엇이나 다 무서워 보이고 자신 없어진거지.>> <<참, 난 그것을 리해하지 못하겠단 말이다. 유치원이나 1, 2학년 때라면 몰라도, 고급학년에 올라온 후에는 저절로 자기의 주장을 길러야 하는게 아니니? 생활에서 자기의 주장이 없다면 우리는 늘 누군가에게 의지하면서 살아야 하는거야. 평소에는 보호산이 있어서 큰 소리를 치며 당당한체 할수있어도 그 보호산이 없어지면 생활의 방향을 잃게되는거지. 은경이가 이 점을 더욱 잘 말해주잖아?>> 미림이는 마치도 온갖 세파를 다겪은 누나가 동생들을 가르치듯 오돌차게 자기의 뜻을 펼쳐나갔다. 군이는 알것같았다. 이것이 미림이의 진정이고 미림이가 가파로운 14살 인생길에서 배우고 깨친 인생의 철리라고 생각했다. 군이는 머리를 끄덕였다. 사람이란 아픔속에서 크고 크면서 살아가는 도리를 깨치는 것이라고 믿고싶었다. 깨치는 도리가 많을수록 세상을 살기가 더 쉬워질것이라고 생각했다. 군이는 머리를 건듯 쳐들고 앞을 향해 힘있게 발걸음을 옮겼다.
2    꿈꾸는 천사들 댓글:  조회:1970  추천:0  2010-03-10
꿈꾸는 천사들 군이는 잠결에 아렴풋이 들려오는 전화벨소리를 들었다. 꿈인가? 생시인가? 군이는 흐리터분한 잠길을 헤치며 힘겹게 눈을 떴다. 전화벨소리는 계속 울리고있었다. 군이는 간신히 일어나 수화기를 손에 들었다. <<군이니?>> 전화 저쪽에서 석쉼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아버지, 이른 새벽에 어쩐 일이세요?>> <<자는 걸 깨웠구나. 어머니의 일차 수술이 방금 끝났다. 얼굴에 화상이 심해서 먼저 덴 자리를 제거하고 새살이 돋아난 다음 2차수술을 해야한다는구나.>> <<어머니가 몹시 힘들었겠네요.>> 군이가 일어나 앉아 정신을 추스리며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전신마취를 해서 괜찮다고는 하더라만, 오늘 너희 반 주제반회가 있지? 수술이 끝나구, 시름이 활 놓이니 피뜩 생각나서 전화했다. 미안해서 어쩌니? 군이야.>> 군이는 이국타향에서 아픈 안해를 병실에 눕혀놓고 자식을 근심하는 아버지의 심정을 알것같았다. <<괜찮아요, 아버지. 시름을 놓으세요.>> <<소학교에서의 마지막 <6.1>절이라는게 얼마나 기념할만한 순간인데. 이런 뜻깊은 명절을 기념해서 조직한 주제반회에 참가하여 우리 군이를 응원해주자고 했는데. 참…>> 아버지께서 말끝을 흐리셨다. <<괜찮아요. 아버지, 할머니께서 학교에 오신다고 했어요. 아버지, 저 잘 할게요. 시름 놓으세요.>> 군이가 일부러 목소리에 힘을 넣어 말했다. <<그래 아버지는 믿는다.>> 군이는 아버지께서 밝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시느라 애쓰시는 모습을 보는듯싶었다. 오후 3번째 시간이 끝나서 나가보니 많은 학부모들이 벌써 복도에 와서 기다리고있었다. 평소에 얼굴이 익은 분들도 있고 초면인 분들도있었다. 군이는 그속에서 손쉽게 할머니를 발견했다. 군이는 할머니 옆으로 다가갔다 <<할머니, 일찍 오셨네요.>> <<군이야, 어쩌니? 다른 집에서는 여럿이 왔건만… 넌, 이 귀신 같은 할미밖에 없어서…>> <<괜찮아요. 할머니, 전 얼마든지 잘 할수있어요.>> 군이는 할머니의 손을 꼭 잡았다. 꺼슬꺼슬한 할머니의 손에는 온기라곤 없었다. 얼굴에 근심이 폭 담겨져있는 갸냘픈 할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군이는 손처럼 얼어있을 할머니의 마음을 보는듯싶었다. <<6.1>>절맞이주제반회는 오후 3시에 시작되였다. 학교의 령도선생님들이며 학부모들까지 참석을 하게 된데서 주제반회는 교실이아니라 학교의 다공능실에서 진행되였다. 교실보다는 2배나 큰 곳이였지만 발디딜틈이 없이 사람들로 붐볐다. 군이는 이번 주제반회를 위해서라도 마음을 크게 먹고 자기의 정서를 잘 조절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은경이를 제외한 48명의 동학들이 모두 주제반회에 참석했다. 운동복으로 된 하늘색 교복을 차려입은 동학들이 군이의 구령에 따라 먼저 학교 령도와 학부모들에게 대례를 올렸다. 교실에서는 우뢰와 같은 박수소리가 터져올랐다. 군이는 긴숨을 한번 들이쉬고는 천천히 또박또박 서두를 뗐다. <<6년전 우리는 엄마의 손에 이끌려 도심소학교라는 이 배움의 요람에 들어서게 되였습니다. 우리는 이 곳에서 아,야,어,여… 우리 글을 익혔고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수자도 익혔습니다. 키도 크고 마음도 컸습니다. 비록 그 사이 이 곳에서 크고 작은 일들도 많이 겪었지만 우리는 서로 보듬어 주고 이끌어 주면서 천사같은 예쁜 마음으로 아름다운 성장이야기를 엮어 놓았습니다.>> 군이는 잠간 말을 멈추고 동학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모두들 빠알갛게 얼굴이 상기되여 있는것이 흥분을 가까스로 누르는 모양이였다. <<소학교에서의 마지막 <6.1>절을 맞으며 우리는 가슴속 깊은곳에 간직해두었던 진정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자리를 마련하기로 했습니다. 그 이야기가 친구들사이의 우정에 대한 것이든지, 아니면 학교생활에서의 고민이든지, 그리고 또 가정생활로부터 오는 방황이든지. 이 모두가 우리들의 진정이라는것만은 믿어주십시오.>> 동학들은 순서대로 교단에 나가 소학교에서의 마지막 <<6.1>>절을 맞으며 가장 하고싶은 말들을 털어놓았다. 승화의 차례가 왔다. 승화는 벌써 좋아서 죽겠다는 표정이다. 입이 귀에 가 걸리고 원래 작은 눈이 거의 맞붙다싶이 되여버렸다. 교단에 오른 승화는 먼저 장내를 둘러보며 씩 웃음을 날리고는 학부모석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관중석에 앉아 있던 승화의 아버지와 어머니도 늦을세라 밝게 웃으며 승화에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규호도 연단에 올랐다. 그는 벌써 이마에 잔이슬이 번져가고 있었다. 규호는 주먹으로 이마의 땀방울을 쓱 닦고는 관중들을 바라보다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오늘 주제반회가 있다는것을 알고 아버지께서는 일하던 삼륜차를 그대로 끌고 여기에 오셨습니다. 평소 저는 말수가 적은 편입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한번도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하는 말을 못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여태껏 하지못했던 그말을 하고싶습니다. 아버지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규호는 주먹으로 눈굽을 찍으며 교단을 내려갔다. 강마른 몸매의 40대 사나이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규호는 아버지의 어깨를 꽉 끌어안았다. 아버지의 왜소한 어깨는 규호의 품에 채 차지도 못했다. 규호의 아버지는 뭐라고 한마디 말도 잇지 못하시고 눈시울만 붉혔다. 어금이를 꽉 깨물면서 규호의 볼에 수염이 꺼슬꺼슬한 자신의 얼굴을 연신 문다져주었다. <<아버지, 커서 꼭 아버지께 효도하겠습니다. 아버지, 믿어주십시오.>> 장내에서는 오래도록 박수소리가 이어졌다. 미림이도 연단에 올랐다. 미림이는 천천히 자리에서 누군가를 찾는듯싶었다. 미림의 눈길은 학부모님들 좌석의 두번째줄에 앉은 소박한 차림의 녀인한테 가서 멎었다. 미림의 입술이 파르르 떨리고있었다. 눈굽에 맑은 이슬이 맺히더니 두볼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렸다. 교실은 바늘 떨어지는 소리마저 들릴듯 고요했다. 관중들은 숨을 죽이고 미림이를 바라보고있었다. 미림이가 갑자기 피터지게 소리쳤다. <<엄마!>> 미림이는 교단을 내려 어머니를 향해 뛰여갔다. 어머니께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엄마!>> 미림이는 어머니의 품에 머리를 파묻고 주먹으로 어머니의 가슴을 팡팡 치더니 건듯 머리를 쳐들고 장내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이분이 저의 엄맙니다. 제가제일 제일 사랑하는 저의 엄맙니다.>> 미림이는 손으로 얼굴을 감싸쥐더니 엉엉 소리내여 울었다. 어머니는 세차게 파도치는 미림이의 어깨를 꼭 껴안아주셨다. <<여러분, 앞에서 여러 동학들이 말했듯이 <6.1>절을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즐겁게 보내려는것은 너무나도 소박한 소망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 학급의 대부분 동학들은 이런 소망마저 이룰수가 없습니다. 저도 그중의 한 사람입니다.>> 군이가 관중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벌써 옷섶으로 눈굽을 찍고 계시는 할머니가 뿌잇하게 군이의 눈에 안겨들었다. 군이는 천천히 입술을 깜빨고 아래 말을 이었다. <<이번 주제반회를 위해 저는 동학들속에서 한차례의 조사를 해보았습니다. 우리 반에는 현재 49명의 동학들이있습니다. 이중에서 아버지 혹은 어머니가 외국이나 큰 도시로 돈 벌러간 동학이 24명입니다. 그리고 아버지, 어머니가 리혼을 한 동학이 11명입니다. 그외 다른 원인으로 부모중 한분이 계시지 않는 동학이 2명입니다. 그러니 현재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생활을 하고있는 동학이12명밖에 되지 않습니다. 37명이나 되는 우리의 동학들이 아버지, 혹은 어머니를 부르며 그림움속에서 소학교에서의 마지막 <6.1>절을 보내야 합니다. 어머니, 보고싶습니다…>> 군이가 끝내 주먹으로 눈굽을 찍었다. 터지려는 울음을 가까스로 참으며 잘근잘근 입술을 씹었다. 동학들속에서 누군가 먼저 흐느끼기 시작했다. 삽시에 교실은 울음바다로 변해버렸다. 몇몇 녀학생들은 서로 목을 끌어안고 어깨를 들먹이기 시작했다. 주제반회는 무거운 기분속에서 끝났다… 군이네가 약속대로 뇌과병원 문앞에 모인것은 <<6.1절>>날 오후 2시경이였다. 군이는 먼저 핸드폰으로 지난번에 만났던 담당호사에게 련계를 했다. 생각밖으로 은경이의 정서가 오늘 매우 좋다는 것이였다. 담당호사가 은경이를 데리고 병원 정원으로 나왔다. 환자복을 입은 은경이는 그새 얼굴색이 파리하리 만침 창백해 있었다. 은경이는 작으마한 비닐주머니를 가슴에 꼭 껴안고 천진하게 까치뜀을 하며 달려왔다. <<은경아,>> 동학들이 은경의 앞으로 뛰여가며 반갑게 불렀다. 동학들을 알아보는지 은경이는 얼굴에 함뿍 웃음꽃을 피우며 초점이 없는 눈을 껌뻑이고있었다. <<은경아, <6.1>절을 축하한다.>> 동학들이 가지고 온 생화묶음을 은경에게 넘겨주었다. 은경이는 또 한번 벌씬 웃으면서 생화묶음을 받아들었다. <<나는 천사다, 나는 천사 됐다.>> 은경이는 말하면서 품에 안고 있던 비닐봉지를 군이에게 내밀었다. 군이는 은경이로부터 제꺽 비닐봉지를 받아들었다. 비닐봉지 안에는 수십개의 종이학이 들어있었다. <<나는 천사 됐다. 종이학을 내가 접었다. 학을 접으면 천사 된다.>> 은경이는 얼굴에 천진한 웃음을 띄우고 연신 중얼거리고 있었다. 담당호사가 설명해주었다. 지난번 군이네가 다녀간후 은경이는 심심하면 동학들이 보내준 편지를 침대우에 쫙 펴놓고 한장, 두장 세더라는 것이다. 하여 담당호사가 이 편지들로 은경이의 집중력을 키울수있지 않을가 싶어서 종이학을 접으면 천사가 되여 인차 병이 나을수있다고 일러주었던것이다. 과연 은경이는 담당호사의 도움밑에 날마다 종이학접기를 견지했다. <<많이 좋아 졌단다. 정서를 조절하고 약물치료를 견지한다면 조만간에 완쾌될수있을것 같구나.>> 담담호사가 기쁨에 겨워 말씀해주셨다. <<은경아, 힘내라, 넌 꼭 천사가 될거다. 그래, 넌 이미 천사가 된거야.>> 미림이가 은경이의 손을 꼭 잡으며 속삭였다. <<너두 웃어봐! 천사는 잘 웃는거래! 천사의 웃음소리는 하늘로 날아가는거래. 천사의 앞에는 마귀가 오지 못하는거래. 스마일~ 히히히히히…>> 은경이가 갑자기 소리내여 웃음을 터뜨렸다. 창백한 얼굴에 어울리지 않게 목소리는 그처럼 맑고 청아했다. <<그래, 우리는 이미 거뜬한 마음으로 새로운 출발을 시작하는 천사가 된거지!>> 군이가 머리를 끄덕이며 의미있게 말했다. 누군가 먼저 박수를 쳤다. 따라서 박수소리가 병원정원을 을 쩌렁쩌렁 울리며 퍼져나갔다. 저마다의 얼굴에 아름다운 미소가 피여나고있었다. 그랬다. 이들은 정녕 가슴속 밑자락에 묻어두었던 아픔도, 고민도, 비밀도 다 털어버리고 미궁과도 같은 사춘기를 헤치며 새로운 나래를 퍼덕이는 14살의 꿈꾸는 천사들이였다. (끝)
1    후기 댓글:  조회:1643  추천:0  2010-03-10
후기  저는 그들을 천사라 부릅니다. 그들은 천사의 하얀 날개만침이나 티없이 맑고 깨끗한 마음씨를 지닌 천진하고 귀여운 친구들입니다. 정말이지 그 하얀 마음에 오점이 묻을가 차마 가까이 하기도 주저되는 심정입니다. 그런 친구들이 아파하고있었습니다. 그들을 보는 저의 마음은 너무도 괴로왔습니다. 사람들은 요즘 중국조선족사회가 흔들리고있다고들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정든 고향을 등지고 외국으로, 대도시로 나가는 아빠들이, 엄마들이 날로 더 많아지고있습니다. 그들은 돈을 벌어서 내 자식도 남들 부럽지 않게 잘 살게 하련다고 말씀하십니다. 아빠, 엄마들이 정말 많은 돈을 벌어오기도 했습니다. 그만침 남부럽지 않게 물질상 부요를 누리는 친구들도 참 많습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우리 친구들이 아파서 우는것은 또 무엇때문일가요? 이것은 청소년들을 위한 텔레비죤프로를 만들어오면서 늘 제 마음에 걸리는 문제였습니다. 과연 우리 친구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있는지? 우리 친구들이 진짜로 바라는것은 또 무엇인지? 어느 한번 인터넷채팅을 통하여 <<슬퍼하는 왕자>>라는 아이디를 가진 열네살의 소년을 만난적이 있습니다. 소년은 엄마가 미국에 간지 10년에 난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엄마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는다며 소년은 무척이나 상심해 했습니다. 꿈에 어떤 녀인이 자주 나타나 <<엄마>>라고 자처하는데 그 녀인이 미워서 못살겠다고 소년은 말했습니다. 자식을 위해서 돈을 번다고 하는데 구경 <<내가 <6.1절>날 아빠 엄마의 손을 잡고 공원에 가는 애들을 바라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엄마가 알고있겠는가고 소년은 저에게 물어왔습니다. 소년은 자기의 가슴속에서 엄마는 지금 죽어가고있다고 말했습니다. 우리 천사들의 가슴속에서 엄마가 죽어가고있답니다. 이 얼마나 무서운 현실입니까? 요즘 우리 친구들은 정말 아파하고 있습니다. 아파하는 친구들을 보면서도 제가 할수있는 일이 너무나 적은것이 정말 안타깝습니다. 저는 늘 아파하는 우리 친구들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말해주고싶은 충동을 느꼈습니다. 2007년 5월부터 석달간, 저는 북경 로신문학원에서 문학공부를 하게 되였습니다. 로신문학원의 짙은 문학적 분위기는 저의 가슴속 밑자락에서 잠자던 수많은 천사들을 깨워주었습니다. 저는 그들을 만나면서 무엇인가를 쓰지 않고는 못견딜 그런 감동을 느꼈더랬습니다. 그 천사들이 바로 오늘 이 책에 나오는 군이가 되고 승화가 되고 규호가 되고 미림이가 되고 은경이가 되였습니다. 저에게 수많은 천사들과 대화를 나눌수있도록 기회를 마련해주신 연변작가협회 지도부에 감사를 드리고 저에게 다시 문학공부를 할수있게 황금같은 시간을 허락해주신 연변텔레비죤방송국 지도부에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저의 졸작을 이처럼 예쁜 책으로 만들어 출판해주신 연변교육출판사의 지도부와 지금껏 저의 성장을 지켜보시며 뒤에서 밀어주고 앞에서 당겨주신 선배님들과 동사자들께도 머리숙여 고마움을 전합니다. 늘 내곁에서 힘이 되여 주는 사랑하는 안해와 튼실하게 쑥쑥 잘 커주는 금쪽같은 두아들- 민이와 성이에게도 항상 감사한 마음입니다. 언제나 고마운 마음으로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여러분들께 보여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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