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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최동일 아동소설집-민이의 산

정말 싫다
2012년 05월 11일 11시 05분  조회:1506  추천:0  작성자: 동녘해
정말 싫다


2004년 6월 1일, 밤 9시 15분.
정말 싫다.
영수랑 철호랑 수영이랑에게는 오늘이 좋은 날일수있겠지만 나는 오늘이 정말 싫다. 믿던 사람에게 속히워 본 사람만이 이 시각 이 심정을 리해할수 있을것이다.
아빠께서는 한주일전부터 나에게 “6.1”절날 나와 함께 공원에 가서 그럴사한 명절을 쇠주겠다고 장담하셨다. 이 말을 듣고 나는 얼마나 좋아했는지 모른다.
이튿날 나는 학교에 가서 영수랑 철호랑 수영이랑을 보고 큰 소리를 뻥뻥 쳤다.
“6.1절날, 우리 아빠 날 데리고 공원놀이 간댔어, 타고싶은건 다 태워준댔어.”
영수랑 철호랑 수영이랑은 나의 말을 듣고 참 부러워도 했다. 사실 그애들은 비록 아빠, 엄마와 함께 산다지만 가정생활이 풍족하지 못해서 늘 하고싶은 일을 맘대로 하지 못한다. 근데 우리 아빠는 해마다 날 데리고 공원에 가서 타고싶은 놀이감을 맘대로 타게 하니 나를 부러워하는 그 애들의 맘을 알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고무풍선도 너무 커지면 터지는 법, 나의 꽃같던 꿈도 오늘 아침 보기 좋게 탁 터져버리고 말았다. 아빠께서 오늘 “우에서” 온 손님을 접대하고 새벽 3시에야 집에 돌아왔던것이다. 그래도 혹시나 해서 공원에 가자고 졸랐더니 아빠는 눈도 뜨지 않고 말씀하셨다.
“바지호주머니에 돈이있다. 너절로 가지구 가서 놀아라!”
나는 아빠의 호주머니에서 돈 30원을 꺼내가지고 밖으로 나왔다. 아빠엄마와 히히닥닥거리는 놈들이 보기 싫어서 공원에는 가지 않고 난생 처음으로 PC방에 갔다. PC방에는 내 또래의 애들이 참 많았다. 아마 나처럼 아빠나 엄마께 속히운 애들이 엄청 많은가 보다…

2005년 6월 1일, 밤 10시 20분.
정말 싫다.
요즘은 아빠가 정말 싫다. 밤 열시를 넘겨 집에 올 때가 점점 더 많아지니 말이다. 맨날 우에서 손님이 와 접대를 하느라 늦는다고 말씀하신다. “우에서”란 어떤 곳인지? “우에서”온 손님들은 어떻게 생겼는지? 아마도 “우에서” 온 손님들은 가정도 없는 모양이다. “우에서” 온 손님들 때문에 올해 “6.1절”도 나 혼자 아빠의 바지호주머니에서 돈 50원을 꺼내가지고 PC방으로 갔다. 작년 “6.1절”에 첨으로 PC방에 들어설 때는 가슴이 떨렸는데 그새 나도 pc방에 습관이 됐는지 인젠 그 곳이 아니면 마음을 둘 곳이 없을것 같다…

“그래도 속이겠다구요? 이 연길판에 소문이 자자해요.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구요. 그래도 발뺌이에요?”
어머니의 앙칼진 목소리가 객실을 지나 빈이의 침실을 뚫고 들어왔다. 빈이는 읽어내려가던 일기책을 활 던져버리고 이불을 뒤집어 썼다.
“발뺌이라니? 당신 없는 5년사이, 내가 어떻게 살았는데? 빈이를 위해서 내가 어떤 고생을 하며 살았는데?”
“빈이를 위해서라구요? 그 말 한번 아름답네. 흥, 빈이를 위하는 사람이 이런 짓을 할수가 있어요?”
엄마의 목소리가 뒤집어 쓴 이불귀를 지나 빈이의 귀를 어지럽게도 괴롭혔다. 빈이는 입술을 꽉 깨물고 두눈을 지긋이 감았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벌써 두달째 지구전을 하고있다. 인젠 듣기만 해도 신물이 나는 일이다. 빈이는 이불을 밀어내치며 벌떡 일어섰다.
(뭐, 나를 위해서라구? 내가 없으면 저들이 어떻게 살건데?)
빈이는 오른발로 문을 걷어차며 객실로 나갔다. 문을 걷어차는 소리가 아버지와 어머니의 침실을 습격했던지 침실문이 열리며 어머니의 놀란듯한 얼굴이 나타났다.
“빈이야, 너 웬 일이냐? 어디 아프니?”
어머니는 큰 일이나 생긴것처럼 쫑드르르 객실로 나와 빈이의 손을 부여잡았다. 빈이는 그러는 어머니가 싫어서 어머니의 손을 뿌리치며 소리질렀다.
“그래요, 아파요. 아파서 죽겠어요. 죽겠다구요.”
“빈이야, 에이구 내 아들아, 어디가 아픈데?”
파르르 떨리기까지 하는 어머니의 목소리는 빈이에게 말못할 거부감까지 안겨주었다.
“어디가 아픈가구요? 알려줄가요? 마음이 아파요, 가슴이 아프다구요. 엄마에겐 마음이 있나요? 가슴이 있는가구요?”
빈이의 말에 어머니는 잠간 멍해있다가 손으로 빈이의 어깨를 툭 치며 곱게 눈을 흘겼다.
“얘는 무슨 엉뚱한 소리를 하니? 몇년 보지 못했더니 영~ 엉뚱해졌네! 자자, 아침 먹구 우리 공원 가야지. 소학교에서의 마지막 <6.1절>인데 엄마랑 같이 가서 재미나게 놀아야지. 오늘 한 500원 메쳐볼가? 호호호호…”
맘껏 돈 쓸 일을 생각하니 웃음부터 나오는지 어머니는 아버지와 다툴 때와는 달리 제법 호들갑스레 웃어제꼈다. 빈이에게는 그러는 어머니가 점점 더 생소하게 느껴졌다.
“됐어요. 엄마랑, 아빠랑 함께 가서 한 5만원 메쳐보세요. 저 오늘 할 일이 많거든요.”
빈이는 어머니와 더 싱갱이질 하기 싫어서 다시 자기의 침실로 들어갔다. 침실바닥에 펼쳐져있는 아까 보다 만 일기책이 눈에 안겨들었다. 빈이는 허리를 굽혀 다시 일기책을 주어들었다. 일기책에 담겨진 지난 일들이 눈앞을 스치면서 빈이는 또다시 가슴이 뭉클해졌다. 일기책에는 어머니가 떠난후의 5년간에 있었던 희로애락이 고스란히 담겨져있었던것이다…

어머니가 떠나던 해, 빈이는 아홉살이였다. 아홉살의 하늘은 그야말로 외로움의 그 자체였다. 아빠엄마사이에 눕겠다고 설치다가 아빠께 꿀밤을 먹던 일까지도 그리워 몸살이 날 지경이였다. 그래서 아버지를 졸라 큼직한 인형을 사서 안고 자보았고 외로움이 지나칠 때엔 슬그머니 아버지의 밋밋한 젖가슴에 손을 얹어보기도 했다. 그때면 아버지도 외로움에 떠는 빈이가 안스러워서인지 커쿨진 팔뚝으로 빈이를 꼬옥 안아주었다. 하지만 모든것은 어머니의 품을 대신할수가 없었다.
빈이는 그같은 외로움속에서 차츰 웃음을 잃어갔고 그의 여린 가슴에는 야금야금 얼음이 얼기시작했다. 얼음이란 참 이상한 물건임에 틀림이 없다. 첨엔 그냥 누군가가 살짝 다쳐도 부서지고 금이 가더니 차츰 두터워질수록 누가 다치는것도 발로 짓밟는것도 두렵지가 않았다. 오히려 누가 건드리지 않으면 따돌림을 당하는것 같아서 불안하기까지 했다. 빈이는 차츰 누군가가 자기를 다쳐주고 밟아주기를 기다리는듯한 자신을 발견했다. 하여 학교에 가서도 방법을 다 해서 누군가가 자신을 발견해주기를 바랐고 얼음속에 감춰두었던 무언가를 자기만의 일기책에 끄적거려보기도 했다.
세월이 류수라더니 과연 시간은 쉬지 않고 멀리도 흘러갔다. 돌아올것 같지 않던 빈이의 어머니도 5년이라는 세월을 용케 견뎌내고 지난 4월에 돌아왔다.
그날 빈이는 아버지와 함께 공항으로 어머니의 마중을 나갔었다. 이제나저제나 어머니를 기다리며 빈이는 나름대로 많은 생각을 굴려보았다.
(어머니를 만나면 과연 내가 눈물을 흘릴가?)
빈이도 갈피를 잡을수 없었다. 흘러간 5년간의 그리움을 생각하면 눈물이 날것 같다가도 또 흘러간 5년간의 외로움을 생각하면 눈물이 나오지 않을것 같기도 했다. 빈이는 또 어머니의 얼굴을 그려보았다. 연길역에서 기차를 타고 심양공항으로 비행기를 타러 떠나던 어머니의 얼굴에는 가무스름한 주근깨들이 옹기종기 박혀있었던듯싶었다. 그리고 항상 근심에 싸여있던 얼굴에 눈까풀은 외까풀이였던것 같았다. 외할머니의 말씀에 의하면 어머니는 한국에서 참 고생을 많이도 하셨다고 한다. 첨에는 식당에서 사발을 부셨고 후에는 치매가 온 어느 집 할머니의 병간호를 하며 구박도 엄청 받으셨다고 한다. 빈이는 5년간 어머니께서 흘린 눈물을 합치면 도람통으로 다섯개는 될거라며 락루하시던 외할머니를 본적도 있다.
(아마 어머니를 보고 내가 꼭 울거야. 그렇게 고생을 하셨으니 엄마의 신체가 얼마나 못쓰게 되셨을가? 주근깨는 아마 갈 때보다 더 많이 났을테지…)
빈이는 가슴이 쓰려나기 시작했다. 사실 지난 5년간 그 시각처럼 어머니를 진심으로 그려보기는 처음이였다. 어머니에 대한 죄스러운 마음도 갈마들었다. 그리고 어머니께 고마운 마음도 새록새록 생겨났다.
사실 그랬다.
겨울이면 입김이 모락모락 피여나는 25평짜리 단층집에 세를 들어 살다가 빈이에게는 이 고생을 물려줄수 없다면서 단연히 다니던 공장에서 이름을 긁어버리고 한국행을 결심했던 어머니였다. 그새 돈도 많이 부쳐와 100평방도 넘는 객실이 두개 달린 아빠트에 장식까지 그럴듯하게 해놓고 이사를 하게 되였다. 어머니의 희생이 아버지의 출세길을 열어놓았던지 어머니께서 보내온 돈으로 아빠트를 사던 그 해에 보통직원으로 일하시던 아버지가 과장으로 승진을 하셨다.
그해부터 아버지는 “우에서” 오는 손님들을 접대하는 일이 많아졌고 밖에서 밤을 새우는 일도 잦아졌다. 그리고 어머니의 전화를 받으면서 자주 다투기도 했다. 참츰 어머니께서 보내오는 돈 찾으러 가는 일도 뜸해지더니 지난해 부터는 아예 없는 일로 되여버렸다.
5년이란 참 긴 시간인가 보다.
빈이도 변했고 아버지도 변했다. 하지만 빈이는 연길역을 떠나갈 때 얼굴에 주근깨가 가무스름하게 났던 외까풀눈의 어머니만은 그대로 있을것 같은 생각이 갈마들었다. 순간 빈이는 눈물이 왈칵 쏟아져내리는것을 걷잡을수 없었다. 빈이는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게 머리를 숙였다. 그리고 주먹으로 눈물을 닦으며 자기에게 어머니가 이처럼 큰 존재였음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럴거야. 어머니를 만나면 눈물이 엄청 날거야. 쳇, 그래도 참아야지. 사내가 돼 가지구 눈물을 어떻게, 내가 울면 어머니는 더 가슴 아파할거야. 그래, 참아야지. 꼭 참는거야!)
“나온다, 나와! 저기~, 빈이 에미 옳구나!”
외할머니의 목소리가 빈이의 사색을 깨뜨렸다. 빈이는 발돋음을 해가며 외할머니께서 가리키는 곳에 눈길을 날렸다. 선글라스를 끼고 빨간 웃옷을 화려하게 차려입은 귀부인이 커다란 려행용가방을 끌며 한들한들 걸어나오고있었다. 외할머니께서는 분명 “빈이 에미”라며 흥분을 하고 계셨지만 빈이는 좀처럼 그 녀인에게서 어머니의 옛 모습을 찾을수 없었다. 빈이는 빈이대로 빨간옷의 귀부인으로부터 눈길을 돌려 다른 곳을 둘러보았다. 그새 빨간옷은 검문소를 지나 어느새 외할머니의 손을 잡았다.
“엄마, 아이고 우리 엄마, 이렇게 늙으셨네요. 이미지가 이게 뭐예요. 래일 나가서 스타일을 확 봐꿔드려야겠네요.”
빨간옷은 외할머니의 손을 잡고 호들갑을 떨다가 아예 외할머니의 목을 끌어안고 콜짝이기 시작했다. 빈이는 그러는 빨간옷을 바라보며 누구에겐가 뒤통수를 한대 얻어맞는듯한 감이 들었다. 그러건 말건 빨간옷은 외할머니의 목에서 손을 풀더니 목청을 한옥타브 높이며 빈이에게로 다가왔다.
“아니아니, 이 애가 우리 빈이라구요? 아이고, 엄마키를 넘어섰네. 빈이야~”
빈이는 빨간옷이 쓸어질듯 자기에게로 덮쳐오는것을 한쪽으로 피해버렸다.
그날 저녁, 빈이네는 백산호텔 서울관에서 환영만회를 열었다. 친가집 와가집 해서 30여명이 3상을 차려서 풍성하게 한 때를 즐겼다.
그날 밤, 빈이는 누군가 소리지르는 바람에 놀라 깨여났다.
“말해봐요. 그 년이 누군가, 어데서 굴러먹는 녀인가구요?”
정신을 추스리고 귀를 귀울여보니 분명 어머니의 목소리였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만났어요? 서울에서 보지 못한다고 귀까지 멀었는가 했나보죠? 지난 가을엔 그 년하구 해남도에 려행까지 갔었다면서요? 흥 어디라구! 어림도 없어요!>.
히스테리에 가까운 어머니의 목소리는 한밤의 고요를 깨며 청승스럽게도 빈이의 귀속을 파고들었다.
그날 싸움의 도화선은 아버지가 과장으로 승진을 한후부터 밖에 다른 녀자를 두었다는것이였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 칠 소리지, 누가 어데서 어떤 소리를 했게 이 야단이요? 하늘이 굽어 본단 말이요! 당신은 그래서 2년간 생활비도 보내주지 않았소? 로임을 받아 빈이를 키우며 내가 무슨 돈으로 칭푸(애인)를 둔단 말이요?”
빈이는 어지럽게 들려오는 그 소리가 불안스러워 머리끝까지 이불을 뒤집어 썼다. 하지만 불안은 얄밉게도 이불귀퉁이로 기여 들어와 빈이를 괴롭혔다.
(과연 아버지가 애인을 두고 살았을가? <우에서> 온 손님이 과연 아버지의 애인이였을가? 이것이 정말이라면 아빠와 엄마는 과연 어떻게 되는것일가? 아무리 아빠와 엄마라 해도 떨어져 살면 이렇게 애인이 생기는것일가? 어른들은 참…)
그날 빈이는 이상한 꿈을 꾸었다. 꿈결에 자기가 아지랑이 하늘거리는 해변가에서 정처없이 달리고있었다. 그리고 뒤에서 빠알간 수영복을 곱게 차려입은 예쁜 녀자애가 소리치며 자기를 쫓아오고있었다. 빈이는 녀자애를 뒤에 두고 달리면서 말못할 쾌감을 느끼고있었다.
이때 누군가 빈이에게 이곳이 해남도의 은사탄이라고 알려주면서 애들이 이런 곳에 왜 왔느냐고 꾸짖는것이였다. 그 바람에 빈이는 와뜰 놀라 잠에서 깨여났다. 눈을 뜨고보니 해살은 이미 창문을 두드리고있었다. 빈이는 흐리멍텅한 기분속에서도 이상한 느낌이 들면서 가슴이 불안해났다. 그리고 아래쪽이 축축해나는 감이 들었다. 빈이는 본능적으로 오른손을 팬티속에 쑥 집어넣었다. 팬티가 흥건히 젖어있었다. 손가락에 찐득찐득한것이 만져졌다. 빈이는 깜짝 놀라며 손을 뽑아 눈앞에 가져다 댔다. 처음 보는것이였다. 어쩜 물같기도 하고 아닌것 같기도 했다.
(어디서 생겨났을가? 죽을 병에라도 걸린게 아닐가?...)
빈이는 순간 말못할 불안에 온몸을 떨었다. 빈이는 벌떡 일어나 바지를 주어입고 아버지네 침실쪽으로 달려갔다.
“아버지~아버지!”
아버지네 침실문은 열려져있었다. 하지만 아버지와 어머니는 보이지 않았다. 빈이는 그 걸음에 주방으로 달려갔다. 식탁우에는 돈 50원과 메모지가 놓여져있었다.
“아버지는 어제 밤에 어디로 나간것이 들어오지 않았구나. 엄마도 일이있어 먼저 나간다. 너 절로 맛있는걸 사먹구 학교에 가거라. 엄마가.”
메모를 보는 순간 빈이는 아래다리에서 힘이 쑥 빠지는 감을 느끼며 걸상에 털썩 주저앉았다…

빈이는 어쩜 어머니가 돌아온 후의 두달도 채 못되는 시간들이 엄마가 떠났던 5년간 보다 더 길어보였고 힘들어보였다.
아버지와 어머니에게는 정말 다둘 일도 많았다. 꼭 첨에는 다른 일로 다투다가도 나중에는 “빈이가 아니면은”으로 돌아갔다.
(내가 아니면 저들이 어떻게 살건데? 내가 없어지면 저들이 시름이 놓이겠지?)
빈이는 일기책을 서랍에 넣고 자물쇠를 잠근후 웃옷을 들고 침실에서 나왔다.
“빈이야, 어데로 가니? 엄마하구 공원으로 가야지.”
어머니는 빈이한테로 쫑드르르 달려와 옷섶을 잡았다.
“됐어요. 저 갈데가 있어요.”
“소학교에서의 마지막 <6.1절>인데 오늘 잘 쇠야지.”
“언제 어머니가 <6.1절>을 쇠줬어요? 저 인젠 <6.1절>을 쇠는 어린애가 아니거든요.”
“애두, 난 그래두 오늘 한 500원을 메칠 생각을 했는데…”
“메쳐보세요. 돈이 많으면 맘대루 메쳐보세요.”
빈이는 신을 신으며 날카롭게 내쏘았다. 그러자 어머니의 목소리도 곱지 않게 터져나왔다.
“너 정말 말이 아니구나. 엄마가 없는 새에 너 잘못 번진게 아니냐?”
“네, 잘못 번졌어요. 제가 죽일 놈이예요. 됐어요?”
빈이는 몸을 삑 돌려 문을 차고 나가서는 다시 쾅하고 닫아버렸다. 이어 어머니가 문을 열고 빈이의 뒤에 대고 소리쳤다.
“빈이야~ 돈을 가지고 가거라. 돈을 가지구 가~”
빈이는 어머니의 간드러진 목소리를 뒤에 남기며 잰걸음으로 층계를 내렸다.
빈이는 저도몰래 공원쪽을 바라고 발걸음을 옮겼다. 거리는 오가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엄마아빠의 손에 이끌려 희희락락 깔깔대며 걸음을 옮기는 애들이 빈이의 눈에 거슬려왔다.
“싸가지들, 뭐가 좋다구 깔깔이야. 깔깔대긴…”
빈이는 속으로 누구라 없이 욕지거리를 해대다가 공원다리란간에 몸을 기대고 섰다. 어쩐지 더 이상 공원을 바라고 가고싶지 않았다. 사실 말이지 빈이로서는 정말 소학교시절의 마지막 “6.1절”을 공원에서 여느 애들처럼 맘껏 즐기고싶었다.
올해 나이14살, 이 나이로 소학교를 마감해야 하고 “6.1절”을 마감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아쉬운 점도 많았다. 그래서 지난 4월 어머니께서 돌아온다는 소식이 왔을 때 저절로 기분이 좋아진것도 사실이였다. 어쩜 올해의 “6.1절”은 아빠엄마와 함께 공원놀이를 할수있을것이라는 기대감에 부풀었던것이다. 하지만 어머니가 돌아온 후의 집은 빈이가 공원놀이를 상상할수 있을만큼 평온한 풍경이 아니였다.
빈이는 공원으로 물밀듯 흘러가는 인파를 바라보며 저절로 울적해지는 자신을 발견하고있었다.
(도대체 뭐가 잘못되여가고있는것일가? 옛날보다 돈도 많아 살기도 좋은데 아버지하구 어머니는 왜 자꾸 싸우시는걸가? 정말 아버지와 어머니의 말대로 내가 있어서 이렇게 되는것일가?)
생각이란 참 이상한가보다. 물고가 트이니 오만가지 생각이 한곬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그래, 내가 없어져버리는거야. 내가 없어져야 아버지와 어머니가 맘대루 살수가 있는거야.)
빈이는 다리란간에 비스듬히 기대고 섰던 몸을 추스리며 주먹을 꼭 부르쥐였다.
(그래, 내가 없어져 주는거야!)
빈이는 결심을 내린듯 기차역전을 바라고 씨엉씨엉 발걸음을 옮겼다.
사람들 모두가 공원으로 가서인지 대합실은 여느 때 없이 한산해 보였다.
빈이는 호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혹시나 오늘 아빠엄마와 함께 공원놀이를 갈수 있겠는지 하고 생각해서 준비해두었던 돈이 손끝에 만져져왔다. 평소에 받아두었던 소비돈을 절약한것이 젖지 않았다.
(어디로 갈가?)돈은 손끝에 만져져 오지만 마땅하게 가야할 방향이 선뜻
떠오르지 않았다.
(북경으로 갈가? 그 큰 도시에 내가 살 곳이 없을라구!)
북경이라면 자신이있을것 같았다. 지난해 여름방학, 학교에서 조직한 캠프 때 북경으로 가서 열흘간 명승고적을 돌아보았던것이다.
(그래, 북경으로 가는거야.)
빈이는 호주머니에서 돈을 꺼내들고 매표구쪽으로 다가갔다. 매표구앞에는 서너사람이 줄을 서서 순서를 기다리고있었다.
빈이도 사람들 뒤에 자리를 하고 섰다.
빈이의 차례가 왔을 때였다. 갑자기 머리에 노랑물감을 들인 남자애가 뛰여오더니 앞에 끼여들며 매표구에 대고 소리쳤다.
“북경, 북경까지 가는 침대표가 있나요?”
순간 빈이는 그 남자애가 자기를 얕보는것 같아 진한 모멸감을 느겼다.
“줄을 서, 순서를 기다려야지.”
“급한 일이 있어서 먼저 물어보려구 그러는데 안되니?”
“안된다. 자식, 어데다 대구 반말이야?”
빈이는 저도몰래 주먹을 날려 남자애의 얼굴을 들이쳤다. 순간 남자애의 코에서 뻘건 피가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남자애도 질세라 빈이에게 덮쳐들었다. 삽시에 둘은 서로 엉켜붙어 치고 박고 무섭게 돌아갔다. 그 시각 빈이는 자기가 누구와 왜 싸우는지도 알고싶지 않았다. 그냥 누군가를 때리고 싶었고 끊임없이 쳐야만 직성이 풀릴것 같았다. 빈이는 악악 소리치며 주먹을 날렸다.
역전경찰들에게 끌려 파출소 심문실에 들어간 빈이는 어쩐지 큰 일을 치르고난 기분이였다.
“자식들, 어쩌라구 그렇게 쌈질이냐? 있다가 보자.”
말을 마친 담당경찰이 어디론가 나가면서 한마디 했다. 빈이는 입술이 터져 약간 부은듯했지만 기분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빈이는 머리를 돌려 노랑머리 남자애를 바라보았다. 남자애는 머리를 푹 숙이고 앉아있었다. 얼굴에 퍼런 멍이 들고 노랑머리가 푸시시해진것이 꼭 패전병같아 보였다. 빈이는 시뚝해서 입을 열었다.
“야, 노랑머리, 아프냐?”
“자식, 저렇게 됐는데 안 아파?”
어느새 왔는지 담당경찰이 빈이의 옆에 서있었다.
빈이는 담담경찰의 닥달에 끝내 아버지와 어머니의 휴대폰번호를 불고말았다.
반시간쯤 지나자 어머니가 먼저 파출소에 도착했다.
해당서류에 손도장을 찍운후 어머니가 빈이를 데리고 파출소문을 나섰다. 금방 대문을 벗어나자 빈이네는 씨엉씨엉 걸어오는 아버지를 만났다.
아버지의 기분은 말이아니였다. 아버지는 빈이를 보자 바람으로 주먹을 날렸다.
“웬 일이예요? 애는 왜 패요?”
어머니가 악을 쓰며 아버지에게 달려들었다.
“사람질도 못할 자식! 어디 와서 쌈질이냐?”
빈이는 뜻밖에도 너무나 기분이 차분해지는 자신이 이상하리만치 놀랍게 느껴졌다.
“아버지, 언제 절 관계했어요? 왜 때려요? 내가 파출소에 잡혔다니 무서워요? 낯이 깎여요?”
“너 정말 말이아니구나. 어쩜 이렇게 덜 익어버렸니?”
“그래요. 내가 덜 익어벼렸어요! 어쩔래요? 내가 없어져 줄게요. 그래야 아버지와 어머니가 맘대로 살수있잖아요.”
“빈이야, 걸 말이라구 하니? 엄마가 누굴 위해 사는데!”
어머니는 빈이의 어깨에 몸을 맏기며 울음을 터뜨렸다. 빈이는 그러는 어머니를 밀치며 쓴 웃음을 지어버렸다.
“그래요. 어머닌 누꾸 땜에 사는데요? 그리구 아버지는 또 누구 땜에 사는데요? 저 때문에 살아요? 아니죠? 그 <칭푸>라는 사람, 오늘 이 장면을 봤으면 재미겠네요.”
“너 뭐라구? 못하는 말이 없구나.”
아버지의 주먹이 또 어쩔사이 없이 날아와 빈이의 어깨에 박혔다. 그러자 어머니가 기를 쓰고 소리쳤다.
“애는 왜 잡아요? 그 애 말이 틀렸어요? 아이구~ 빈이야, 너 다 컸구나. 다 컸어! 너 앞에서 이게 무슨 망신이냐? 어시들이 돼 가지구…”
어머니는 빈이의 목을 끌어안으며 넉두리를 시작했다. 빈이는 그러는 어머니를 밀치고 몸을 돌렸다.
“빈이야~ 빈이야! 너 어데로 가니? 같이 가자~>.
빈이는 어머니가 소리치건말건 앞을 향해 뛰여가다가 마주오는 택시를 잡아탔다…

2006년 6월 1일, 밤 11시 45분
정말 싫다.
소학교에서의 마지막 “6.1절”을 파출소에서 보냈다.
생각해보면 정말 명절도 싫고 어머니도 싫고 아버지도 싫고 나 자신도 싫다. 어쩜 모든게 엉망진창이 된것 같다.
낮에 파출소에 있을 때는 두려운 감이 없었는데 다시 낮에 있은 일을 생각해보니 정말 무섭다. 내가 이대로 나가다가는 정말 감옥에 가는것이 아닐가?
어머니는 낮에 나를 보고 다 컸다고 했다.
열네살!
어쩜 정말 다 큰것 같기도 하고 또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할것 같기도 하다.
영수란 놈은 참 못났다. 아직도 잘 때 엄마옆에서 잔다고 한다. 그래서 아직도 아빠께 꿀밤을 얻어먹는다고 한다.
히히히히…
낮에 서점에 가서 “사춘기의 비밀이야기”라는 책을 샀다.
시간을 내서 잘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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