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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최동일 아동소설집-민이의 산

민이의 산
2012년 05월 11일 11시 07분  조회:1440  추천:0  작성자: 동녘해
민이의 산


세상에선 엄마가 좋아, 엄마 있는 아이는 보배같아요.”
밤에 들으면 더욱 심란해지는 노래이다. 하지만 초인종은 민이의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음산하게 울어댔다.
(아니, 오늘은 일찍 돌아오셨네. 취재가 일찍 끝나셨나?)
민이는 반신반의하며 출입문가로 달려가 투시경으로 밖을 내다보았다. 밖에는 아버지가 아니라 2층에 사는 친구 삼수가 헤벌쭉 웃으며 서있었다.
(그럼 그렇게지…)
아버지는 아침에 훈춘으로 취재를 간다고하셨던것이다. 이런 날엔 의례 귀가가 열시를 넘기는 법이여서 인젠 응당 그러려니 하는 민이였다.
(자식, 이 밤중에 웬 일이야?)
민이는 출입문 맞은켠 벽에 걸어놓은 시계를 흘끔 쳐다보며 건성으로 문을 열고 말했다.
“임마, 이 밤중에 웬 동네돌이야? 넌 시간개념도 없니?”
“히히히… 우리는 다 한 전호속의 전우가 아니냐? 그냥 한번 봐 줘라.”
삼수는 사람좋게 웃으며 끌신을 바꿔신고 민이보다 먼저 객실로 들어가며 너스레를 떨었다.
“내 이럴줄 알았지. 너네 집 큰 동지가 벌써 왔을리 있나?”
삼수는 평소 아버지가 마땅치 않게 느껴질 때면 아버지를 “큰 동지”라고 부르는 습관이있었다. 민이는 그러는 삼수가 얄미워서 한소리 높였다.
“임마, 큰 동지가 안 왔으면 작은 동지가 집을 지켜야지. 너까지 동네돌이를 하면 집은 어떻게 하니? 사람질 좀 해주라, 이 자식아.”
“피이, 너 오늘은 잘못 맞춘거야, 오늘은 우리 집 큰 동지가 오지 않은게 아니라, 하나를 더 달구 왔다는거다.”
삼수는 쏘파에 덜렁 들어앉으며 괴상한 목소리로 신비하게 말끝을 맺었다. 그것이 이상스럽게 생각되여 민이는 삼수쪽으로 한발 다가서며 물었다.
“하나를 더 달구 왔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챠~ 이번엔 진짜 죽이더라. 우리 아빠보다 아마 10살은 어릴걸…”
“얌마, 점점 한다는 소리가…도대체 뭐야?”
“나의 의붓엄마라 해야하는가? 아니지, 멋있는 말로 나의 준계모라구 해야지. 그것도 아니다, 우리 아빠애인이라고 해야 정확할걸…하하하하…”
주어섬기는 삼수의 목소리는 때에 맞지 않게 크게 들리고있었다.
“미친놈이, 그것도 자랑이라고 떠벌이고 다니니?”
하지만 삼수는 민이가 못마땅해 하든말든 계속 말끈을 풀어헤쳤다.
“다 쓸데 없는짓이야, 인젠 괜찮아, 우리 아빠, 벌써 몇번째야? 에잇, 오늘은 자리를 비켜준 값으로 50원을 벌었다. 너네 아버지가 오기전에 우리 양뤄챌(양고기뀀)이나 답새길가?”
“자식, 뭐 우리 아버지도 너네 아버지하구 같은가 하니? 우리 아버진 아니야. 아니란 말이다.”
민이는 삼수에게 어깨를 으쓱해보이며 당당하게 말했다. 그러자 삼수는 모든것이 귀찮다는듯 리모컨으로 이 채널 저 채널 돌려보며 부산스럽게 지껄여댔다.
“세상이 어쩌자구 이러는지… 엄마라는건 돈 벌겠다구 외국가서 헤매구… 아빠라는건 제 좋겠다구 녀자들이나 친하구… 난 뭐 하면 좋을가?”
민이는 망가져가는 삼수의 꼴을 쏘아보며 이마살을 찌프렸다. 사실 삼수에게서 이런 소리를 들은것도 한두번이 아닌지라 별로 신비할것까지는 없지만 어쩐지 삼수를 돌보지않고 늘 밖에서 돈다는 삼수의 아버지가 얄미워지고 그러는 아버지에게 반항심을 가지고 하루 새롭게 비뚤어져가는 삼수의 모습이 축은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서 삼수가 밉다가도 어딘가 또 통하는듯 느껴지는 모양이였다. 이만큼 민이에게도 나름대로의 아픔이 있었던것이다.
5년전 민이의 아버지는 어머니와 리혼을 결정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어린 나이라 아버지와 어머니가 어째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알수가 없었지만 눈물을 뿌리며 떠나가는 어머니를 바래면서 엉엉 소리내여 울던 정경만은 지금도 눈앞에 새롭다. 그날 그 후로 민이는 아버지와 둘이서 생활을 하고있었다.
민이의 아버지도 열여섯살 때 부모님을 다 여읜 분이라 민이는 평소에 어디로 갈 곳도 없었다. 전에 종종 다니던 외가집도 어머니가 없으니 발길이 돌려지지 않았던것이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것은 아버지가 사업의 여가에 특별히도 민이를 잘 챙겨주는것이였다. 하지만 기자사업을 하시는 민이의 아버지는 평소에 출장이 잦은편이라 저녁시간에 늦게 돌아오는것은 보통일이고 하루, 이틀 밤을 새우는것도 이젠 이상한 일이 아니였다. 이만큼 민이도 차츰 자기 집의 생활 리듬에 길들여지고있었고 그나마 평소에 자기를 위해 로심초사하시는 아버지가 계시는것이 대행으로 생각될 때가 많았다.
(그래, 나도 14살인데 뭐, 다 컸지. 무서울것도 없구… 일에 바쁜 아빠만 바라볼수 없는것이 아닌가?)
민이는 가끔 이렇게 자신을 단속하며 나름대로 아버지를 돕느라 애를 쓰기도 했다. 이만큼 헴이 든 민인지라 2층에 사는 친구 삼수의 행동이 어처구니가 없을 때가 많았다. 사실 삼수의 처지는 민이보다 낫다면 낫다고도 할수있었다. 삼수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리혼한것도 아니고 그저 삼수의 어머니가 한국으로 나간지 6년철을 잡고있을뿐이였다. 그리고 삼수의 할머니가 늘 삼수네 집에 와서 집안일을 거들어주시군 했다. 그렇게라도 믿을데가 있어서인지 삼수의 아버지는 늘 밖으로 돌고 삼수는 그것이 미워서 늘 아버지와 맞서는것이였다.
“임마, 여기서 이러구 있지말구 이젠 집에 가봐라!”
민이는 왼쪽 발로 삼수의 엉뎅이를 툭 차며 재촉했다.
“싫어, 그 녀자, 아직 안갔을거야.”
“그럼? 안 가면 너 오늘 여기서 잘거야? 그러지말고 돌아가서 아빠께 말씀드려. 이젠 잘 때가 됐다구. 벌써 아홉시가 지났잖아.”
“말해서 들으면 좋지. 쳇 너도 너무 너의 아빠를 믿지 마라. 아빠들이란 다 그런거야, 늑대들이라구.”
“자식, 우리 아빠가 어떻다는거야? 말끝마다 령감처럼… 우리 아빠는 세상에서 제일 점잖구, 또 제일 맘씨 곱구, 젤 열심히 살아가는 분이야.”
“놀구있네... 여기서도 맘 편히 살수가 없구려. 후~ 이 피곤한 나의 령혼이여!”
삼수는 손에 쥐고있던 리모컨을 덜렁 쏘파우에 뿌려던지고 두팔을 벌려 으윽 기지개를 켰다.
“그래, 갈란다. 가야지. 넌 너네 점잖구, 맘씨 곱구, 열심히 살아가는 아빠를 기다리며 바람벽이나 쳐다봐라. 오~ 불쌍한 나의 령혼이여, 구경 어디로 가야하나이까…”
민이는 노래조로 흥얼거리며 출입문가로 걸어가는 삼수의 뒤모습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임마, 곱게곱게 집에 들어가라. 밖에서 돌지말구.”
“그래 알았나이다.”
소리와 함께 “탕!”하고 문닫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다시 조용해진 객실에서 민이는 새삼스레 스물스물 기여오는 외로움을 만나고있었다. 어쩜 전에도 간혹 이런 기분을 느낀적이 있었던지는 모를 일이지만 오늘은 삼수의 열띤 목소리가 귀전에 맴돌아서인지 다시 뭔가를 조용히 생각해보고싶어졌다.
(그래, 아버지는 참 열심히 사시는 분인거야, 그러게 해마다 선진사업자로 되여 증서를 타오는것이지. 그리구 다른 일이 없을 때는 언제나 제 시간에 집에 들어오시구. 그래, 아빠가 끓인 김치찌개는 또 얼마나 맛있다구… 김치찌개에 넣은 떡국대는 번마다 참 맞춤히 익었었지. 그래, 아빠는 나의 보호산이야. 그리구 나의 친구야, 그래… 아빠도 전에 그렇게 말씀했잖아.)
민이의 입가에는 저도몰래 환한 미소가 피여나기 시작했다.
아마도 재작년의 6월이였을것이다. 아빠는 어느날 문뜩 컴퓨터를 사들고 집에 들어오셨다. 너무도 뜻밖의 선물이라 민이가 입을 다물지못하자 아버지는 그렇게도 들뜬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셨다.
“이젠 우리 민이도 컴퓨터를 만질 때가 된거야. 컴퓨터를 모르면 앞으로 사회생활을 할수가 없지. 자, 민이야, 앞으로 아빠와 컴에서 메일로 속심말을 주고받자. 알겠니?”
그날 밤 민이는 아버지와 함께 한메일에 아디를 신청하고 주소를 앉혔다. 비밀번호를 설정할 때 아버지는 서로 아는것으로 설정하자고 제기했다. 하지만 민이는 그것을 딱 잘라서 거절했다. 그러자 아버지께서 한술 먼저 뜨는것이였다.
“자식, 아빠와 친구하겠다면서… 아빠것을 먼저 알려줄게. 아빠의 비밀번호는 ********번이야. 인젠 너의 걸 알려줘야지.”
“안돼요. 메일이란 편지인데 그걸 어떻게 아빠께 알려드려요? 이건 분명히 은사권 침범이에요.”
“뭐야, 은사권? 자식 다 컸네.”
그날 서운해하시던 아버지의 모습을 생각하면 민이는 지금도 웃음이 나왔다. 그날 그후로 아버지는 정말 민이의 메일에 어떤 내용이 오가는지를 통 묻지않고있었다. 간혹가다 요즘 어떤 불량메일이 뜬다는데 그런것은 체크하지 말고 그냥 삭제해버리라는 짤막한 조언을 줄뿐이였다. 민이는 이렇게 자기를 믿어주는 아빠가 그렇게 고마울수가 없었다.
헌데 삼수가 다녀간 오늘밤 민이는 짙어가는 외로움을 헤치고 문뜩 한가지 생각이 머리를 드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그래, 아빠는 평소 무슨 생각을 하실가? 그리구 어떤 사람들과 메일을 주고 받을가? 아빠에게는 정말 녀자친구가 없을가?)
생각할수록 커지는 궁금증을 걷잡을수 없었다. 민이는 조용히 컴퓨터앞으로 다가가 컴퓨터전원을 눌렀다. 이어 귀신에게라도 홀린듯 아빠의 메일을 헤쳐버리고 말았다. 아빠가 전에 알려주던 그 비밀번호를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있었던것이다.
민이는 후둑후둑 뛰는 가슴을 진정하며 메일을 하나하나 체크해나갔다. 3일전에 들어온 메일이였다.
“사랑하는 나의 하늘이여, 오늘도 맑은 날이였나요? 어쩐지 당신의 얼굴이 보고싶어지네요…”
글을 읽는 민이의 심장은 팔딱팔딱 밖으로 튀여나올것만 같았다.
(세상에 이럴수가, 이럴수가 있단 말인가!)
마우스를 쥔 손이 후둘후둘 떨려 제대로 굴릴수가 없었다.
민이는 아에 마우스를 옆에 밀어놓고 손으로 건반을 누르며 아래를 훑어내려갔다. “무지개”라는 아이디를 가진 한 녀자가 보낸 메일이였다. 분명 어른들이 말하는 련애편지였다. 민이는 두 눈을 꼭 감았다. 평소 아버지의 자애롭던 얼굴이 클로즈업 되면서 눈앞을 스쳐갔다.
(아니야, 아니야!)
아무리 머리를 흔들어도 이건 사실이였다. 아빠에게도 녀자가 있는것이였다. 민이는 결김에 컴퓨터를 닫는 순서고 뭐고 다 걷어치우고 손으로 전원을 꾹 눌렀다. 그리고 씽하니 자기의 침실로 들어가 이불을 푹 눌러썼다. 목이 꺽 메여오면서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배반이란 어떤것인지를 처음으로 느껴보는 순간이였다.
(나쁜 사람, 얼굴에 웃음을 띤 위선자, 거짓말쟁이…)
민이는 정말 여태껏 하늘이 무너지면 받쳐줄수 있는 기둥으로, 홍수가 터져오면 막아줄수있는 큰 산으로 느껴오던 아버지에게 이 세상에서 제일 나쁜 이름을 다 달아주고싶었다.
(그래, 이젠 나 어쩌지? 아빠가 정말 계모를 데려오는걸가? <무지개>가 정말 나의 계모가 되는걸가?)
민이는 덮쳐드는 고통으로 머리를 잡아뜯었다.
“세상에선 엄마가 좋아. 엄마있는 아이는 보배같아요…”
시간이 얼마나 흐렀는지 반갑지 않은 초인종이 또 청승맞은 노래소리를 내며 울려왔다. 민이는 이불을 꾹 눌러쓰고 죽은듯이 까딱 움직이지 않고있었다. 초인종소리는 한참을 더 울리다가 즘즉해지더니 이어 아버지의 자취소리가 들려왔다.
“어, 우리 아들, 자는거야? 엉? 그런거야?”
술기운이 섞인 목소리와 함께 발자국소리가 침실밖에까지 왔다. 민이는 안으로 침실문을 잠그려는 생각으로 벌떡 일어섰다. 하지만 문은 벌써 아버지에 의해 열리고있었다.
민이는 아버지를 떠밀어 객실로 나가며 볼부운 소리를 했다.
“또 취했어요? 정말, 아버지를 믿구 어떻게 살아요? 나, 랠 집에서 나갈래요.”
“뭐? 미… 민이냐, 너…”
“실망이예요. 실망! 나 아버지 아들 맞아요?”
“너 오늘, 뭐 잘못 먹은거 아니야?”
너무도 뜻밖의 사태에 아버지도 잠간 갈피를 잡지못하는듯 싶었다.
“그래요. 잘 못 먹었어요. 아님 왜 아버지의 그 가짜 얼굴에 속히웠겠어요? 미워요, 랠 이 집에서 나가겠어요. 아버지 맘대로 살아요.”
“이 자식이 미쳤나?”
순간 아버지는 그 커쿨진 손으로 민이의 뺨을 쫙 울리부쳤다.
“미워요!”
민이는 소리치며 몸을 홱 돌려 침실로 들어가 문을 잠가버렸다. 객실에서 아버지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민이야, 문열어! 문을 열란 말이다.”
민이는 손으로 두 귀를 감싸쥐고 어깨를 들먹이기 시작했다. 난생 처음 아버지에게서 맞은 뺨이 그냥 화끈거리고있었다. 그후에도 얼마간 아버지의 다급한 부름소리가 들리더니 드디여 조용해졌다. 한바탕 광기를 부리고나니 민이도 지쳤던지 소르르 굳잠에 빠졌다.
그날 밤 꿈에 민이는 꼬리가 아홉개 달린 구미호를 보았다. 이름은 “무지개”라고 하는데 하늘에서도 살고 숲속에서도 산다고 했다. 구미호는 아버지를 업고 어디론가 훨훨 날아가고있었다.
“아버지, 아버지~”
민이는 손을 저으며 아버지를 쫓아가다가 “툭”하는 소리와 함께 깨여났다. 두 눈을 번쩍 떠보니 바닥에 떨어져있었다. 온몸은 땀에 흥건히 젖어있었다. 민이는 두 눈을 꼭 감고 그대로 잠간 누워있다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순간 굽혔던 다리가 펴지며 발치에 뭔가가 맞혀오는 감을 느꼈다. 민이는 놀라며 머리를 홱 돌렸다.
아빠였다.
민이가 잠든후 열쇠를 찾아서 잠겨진 침실문을 열고 들어오신 모양이였다.
아빠는 옷도 벗지 않고 이불도 덮지 않은채 잠들어있었다. 추우셨던지 힘껏 옴츠린 아빠의 몸은 생각밖으로 너무나 작아보였다. 민이의 눈앞에 비쳐진 아빠는 전에 홍수라도 막아줄수있을듯 커보이던 산이 아니였다. 녀자친구가 많은 삼수네 바람둥이아빠처럼, 홍실이의 학잡비를 마련하려고 힘들게 삼륜차를 모는 까아만 얼굴의 지쳐버린 홍실이 아빠처럼, 그리고 당뇨병으로 늘쌍 앓음자랑을 하는 병색 띤 가냘픈 철이네 아빠처럼 너무도 평범하고 또 평범한 나그네였다. 아버지는 술김에도 민이의 교복에 때가 있나를 살피셨던지 오른손에 교복바지를 꼭 쥐고있었다.
아버지의 그 초라한 모습을 보는 순간, 민이는 어쩐지 울고싶었다. 어제밤의 고깝던 생각도 얼마간 사라진듯했다. 그리고 엄마도 없이 저 가냘픈 몸으로 이 집을 꾸려가느라 힘드신 아빠를 위해 뭔가를 해드리고싶어졌다.
민이는 두 주먹을 꾹 쥐여보고는 허리를 굽혀 아버지를 안아올렸다. 아버지를 침실에 모셔다가 이불이라도 정히 덮어드리고싶어서였다. 민이는 두 팔에 힘을 넣어 천천히 아버지를 들어올리다가 왼쪽 팔에서 쏙하고 힘이 빠져서 그만 아버지를 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쿵”하는 소리와 함께 아버지께서 벌떡 일어나 앉으셨다.
“민이야, 웬 일이냐?”
“아버지…”
민이는 게면쩍게 아버지를 바라보며 말끝을 흐렸다.
“참, 내가 왜 여기서 잤지?”
아버지도 뒤더수기를 긁적거리며 민이의 얼굴을 넌지시 바라보고 계셨다.
“아버지, 아직도 무겁습니다.”
“허허허, 그래? 자식…”
아버지께서 어설프게 웃으시며 민이의 머리를 툭 쳐주었다. 입에서는 아직도 술냄새가 간간히 풍겨오고있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목소리에는 어느새 힘이 들어가있었다.
“암, 무겁지, 무겁구말구. 아버지는 산이니까. 우리 민이의 보호산이니까!”
아버지는 우줄우줄 침실을 향해 걸어가고있었다.
민이는 못박힌듯 선자리에 서서 아버지의 뒤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민이는 알겄같았다.
그랬다.
아버지는 산이 아니였다.
자기를 믿고 이 세상에 온 자기의 자식을 위해 산처럼 살려고 애쓰시는 너무도 평범한 아버지일뿐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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