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참, 늦었구나! 늦었어. 어걸 어쩌면 좋을가?) 남수는 가슴이 두근거리는것을 어쩔수가 없었다 (그럼 이 시간이 끝난 다음 들어갈가?) 하지만 역시 신통한 궁리가 아니라고 생각되였다. 연고 없이 한시간을 빼먹은걸 담임선생님이 아시면 그 후과가 더 엄중해질것 같았던것이다. (에익, 욕을 먹어도 한번이겠지! 들어가자.) 남수는 내려오지도 않은 가방끈을 들어 다시 어깨에 멘후 조용히 문을 밀고 교실에 들어섰다. 삽시에 60여쌍의 눈동자가 일제히 남수쪽으로 쏠려왔다. 순간 남수는 얼굴이 화끈화끈 달아오르고 호흡이 빨라짐을 느꼈다. 남수는 머리를 푹 숙이고 입술을 감빨며오른쪽 발가락들을 애꿎게 꼼지락거리기만 했다. “남수학생, 왜 늦었습니까?” 높지는 않으나 날이 선 선생님의 목소리였다. “저… 아… 아침이 늦어져서…” “남수학생, 후에는 일찍일찍 다니십시오. 들어가십시오.” 선생님의 목소리가 떨어지기 바쁘게 남수는 머리를 수긋한채 잰걸음을 옮겼다. 대여섯 발자국을 걸었을 때 갑자기 무엇인가 남수의 오른쪽 어깨에 맞혀 툭 하고 땅에 덜어졌다. (아뿔싸!) 교탁우에 놓였던 선생님의 교안책이 어깨에 다치우면서 그 옆에 있는 분필통을 쳐 땅에 떨구어놓았던것이다. 삽시에 교실에서는 폭소가 터졌다. 남수는 머리에서 “윙~”하는 소리가 울리는것같았다. “조용하시오. 웬 일입니까? 남수학생, 냉큼 분필통에 분필을 주어넣으십시오.” 남수는 선생님의 말씀이 떨어지기 바쁘게 허리를 굽혀 사처에 널린 분필을 한대한대 분필통에 주어넣었다.그후 제자리에 들어가 앉은 남수는도무지 선생님의 강의를 제대로 들을수가 없었다. 얼굴이 점점 더 화끈거리고 머리에서 “웅웅~”소리가 더 세차게 났던것이다. 남수는 책상에 머리를 틀어박고 두 눈을 꼭 감았다. 저도모르게 눈굽이 촉촉하게 젖어올랐다. 남수는 입술을 옥물며 왼손으로 자기의 허벅다리를 꽉 꼬집었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방금 자기의 행동이 동학들 앞에서 큰 웃음가마리로 된것 같았던것이다. (참, 이걸 어쩌면 좋을가? 후유~ 다 아버지와 어머니 때문이야.) 하는 생각이 미치자 남수의 눈앞에는 또 다시 아침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그것은 아침 여섯시반 쯤이였다. 남수가 아직 잠도 채 깨지 못했는데 아버지와 어머니의 침실에서 어머니의 격한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밑졌다구요? 또 밑졌어요? 그럼 우린 어떻게 사는거예요? 아이구~ 내 팔자야, 왜 올해엔 이런 일밖에 안 생기는지…” 한달전에 무슨 장사인가를 한다며 남방으로 갔던 아버지가 어제밤에 돌아오신 모양이였다. 남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아버지와 어머니의 침실앞으로 다가갔다. “말해보세요. 어찌된 일인가? 며칠전에 또 그 년이 그 곳에 갔댔지요. 제가 그럴줄을 알았어요. 지난번 장사 때도 제가 미심쩍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그래, 어쩔 타산이예요?” “입을 다물지 못하겠소? 내 장사가 안된게 그 녀하고 무슨 상관이요? 그 녀가 아니면 더 처참하게 왔을것이요.” 아버지도 어머니 못지 않게 격한 목소리로 소리를 지르는것이였다. 남수에게 있어서 이런 장면은 더는 생소한것이 아니였다. 올해 들어와서 아버지는 벌써 세번째나 장사에서 목돈을 떼운 모양이였다. 그때마다 아버지는 엎어진 자리에서 일어나야 한다면서 다시 돈을 꾸어 장사를 벌렸고 그때마다 어머니는 이렇게 아버지와 시비를 걸었던것이다. 남수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입싸움을 더는 듣고싶지 않아서 자기의 침실로 돌아와 이불을 쓰고 들어누웠다. 남수는 이불속에서 오만가지 생각을 굴려보았다. 그럴수록 무엇이 무엇인지를 분간할수 없었다. (어른들은 참!) 남수의 입에서 긴 한숨이 새여나왔다. 아버지가 장사를 벌리기전 남수네 집은 가정생활이 좀 궁색한 편이였지만 그래도 아버지와 어머니가 화목하고 밥상에서 웃음이 피여나는 화가애애한 분위기였다. 하지만 아버지가 장사를 시작하면서부터 남수는 매일 피곤에 빠진 아버지의 얼굴을 보아야 했고 신경질적인 어머니의 얼굴을 대해야 했다. 언젠가는 하학하는 길에서 아버지 어머니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 제 또래의 남자애를 보고 제 설음에 돌아서서 눈굽을 적신 일도 있었다. 이만침 요즘에 와서 남수는 인정에 지쳐있었던것이다. 오늘 아침도 남수는 어머니가 던져주는 돈을 들고 나와 길옆 난전에서 기름튀기 두개를 사먹은후 잡생각을 하며 학교에 오다보니 등교시간이 늦어졌던것이다. “따르릉~” 흐리터분한 기분속에서 한 시간이 흘러버렸다. 동학들은 초롱에서 벗어난 새들처럼 여기저기로 뛰여다니며 즐겁게 뛰놀았다. 하지만 남수는 그러는 동학들이 보기싫어서 소리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와버렸다.남수는 학교 뒤쪽에 있는 백양나무 아래로 천천히 걸어갔다. 백양나무에 몸을 기댄 남수는 교실쪽으로 눈길을 주었다. 대개 이런 경우이면 평소에 남수에게서 한국원주필깨나 얻어가진적이 있는 남자애들이 한둘이라도 남수의 뒤를 따라오군 했던것이다. 그러나 오늘은 웬 일인지 누구도 따라오는 양이 없었다. 남수는 주먹으로 백양나무를 툭 치며 “퉤!”하고 침을 뱉어버렸다. 오늘따라 동학들에게 버림을 받은듯한 외로움이 갈마들었던것이다. (나쁜 자식들, 나에게서 가질것이 있을 때엔 졸졸 따라 다니더니 오늘 내가 일을 치니까 업수이 보는게지. 량심이 없는 놈들!) 남수는 생각할수록 분하기만 했다. 때마침 반에서 마음이 어질기로 소문난 성남이가 화장실쪽으로부터 교실쪽으로 가고있었다. 남수는 성남이도 자기를 업수이 보는것 같아서 못내 괘씸스럽게 생각되였다. 남수는 부리나케 성남이를 맞받아가서 길을 막고 섰다. “임마, 어데 갔다 오니?” “변소에…” “왜 혼자 갔댔니?” “히히… 변소도 함께 가야 하니? 오줌은 내가 누는데…” “나도 오줌이 마렵다. 같이 가면 안되니? 임마!” 남수는 성남의 엉뎅이에 발길을 날렸다. “너… 너 왜 나를 차니?” “임마, 가! 꺼져버려.” 남수의 성난 목소리에 겁을 집어먹은 성남이는 더는 변명도 못하고 엉뎅이를 문지르며 교실쪽으로 걸어갔다. 남수는 교실쪽으로 사라져가는 성남이의 뒤모습을 지켜보며 어쩐지 이름못할 쾌감을 느꼈다. 하지만 그것도 한 순간, 오전 학습이 끝나자 반장이 담임선생님께서 부른다고 일러주었다. 남수는 또 다시 가슴이 철렁했다. (성남이, 그 새끼가 고발한게로구나.) 남수는 가방을 손에 든채로 두 눈을 디룩거리며 어쩔가 속궁리를 해보았다. 담임선생님을 찾아가면 꼭 된욕을 먹게될것 같았다. (세상은 참 재수 없게 생겼구나! 왜 나에겐 귀찮은 일만 생기는걸가?) 이제야 남수는 접때 영문없이 성남이의 엉뎅이를 차준것이 좀 후회되기도 했다. (에라, 이 길로 도망갈가? 아니, 그러다가 선생님이 가정방문이라도 하면 어쩔가? 그럼 또 어머니에게 된 욕을 보게되겠지!) 남수는 아침에 어머니가 자기에게 아침을 사먹으라고 돈 5원을 던져줄 때의 그 눈길을 보는것만 같았다. 정말이지 오늘 일이 어머니에게 알려진다면 어머니는 꼭 아버지에게 쏟지못한 울분을 남수에게 퍼부어버릴것이다. (에라, 이럴 바엔 선생님을 찾아가자.) 남수는 발끝으로 가방을 툭툭 걷어차며 터벅터벅 교무실을 향해 걸어갔다. 교무실은 조용했다. 남수는 발뒤축을 쳐들고 유리창문으로 교무실안을 들여다보았다. 교무실에는 담임선생님밖에 없었다. 담임선생님은 손칼을 들고 교펀을 다듬고있었다. 우멍하게 들어간 두 눈으로 교편을 바라보며 부지런히 칼질을 하는 선생님의 모습이 그렇게도 무서워 보였다. (안돼, 절때 안돼. 선생님이 성나시면 아무도 없는 교실에서 저 교편으로 날 막 때려줄거야. 그럼… 아이, 무서워!) 남수는 슬금슬금 뒤걸음을 하다가 몸을 픽 돌려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냅다 뛰기 시작했다. 얼마쯤 뛰고나니 숨이 턱에 닿아오르고 두다리가 매시근 해났다. 남수가 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살펴보니 학교에서 많이 떨어진 어느 논머리였다. (어데로 갈가?) 남수는 죽어도 집으로는 가고싶지 않았다. 담임선생님이 이제 곧 집으로 찾아갈것만 같았던것이다. 남수는 가방을 가슴에 안고 목표없이 터벅터벅 앞으로 걸어갔다. 어데선가 졸졸졸 개울물소리가 귀맛좋게 들려왔다. 남수는 저도모르게 개울을 찾아 발길을 옮겼다. 개울가에는 파아란 잔디풀이 탐스럽게 자라고있었다. 남수는 개울가에 가방을 던져버리고 잔디우에 털썩 들어앉았다. 파아란 풀잎들이 한들한들 춤을 추며 개울물을 따라 떠내려오는것이 보였다. 남수는 무심중 개울물에 손을 넣어 풀잎을 건져냈다. 남수는 건져낸 풀잎을 눈앞에 대고 한참이나 들여다보다가 다시 개울물에 놓아주었다. 파아란 풀잎들은 시름없이 개울물에 실려 어디론가 동동 떠내려갔다. 남수는 자유로운 풀잎들이 사무치게 부러워났다. 새삼스럽게 풀잎이 되고싶었다. 풀잎이 되여 어디론가 정처없이 가보고싶었다.그러면 아버지와 어머니가 성가시게 입씨름을 하는것을 보지 않아도 되고 담임선생님의 무서운 얼굴을 보지 않아도 될것 같았다. 남수는 두팔을 베고 하늘을 향해 반듯이 누웠다. 이때 어데선가 개굴개굴 하는 개구리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전에는 그저 무심하게만 들어오던 개구리의 울음소리였다. 하지만 오늘은 개구리의 울음소리에 그렇게 마음이 쓰이는것이 이상스러웠다. 남수는 벌떡 뛰여일어나 개구리를 찾았다. 개굴개굴, 울음소리를 찾아 살금살금 다가가면 개구리는 또 다른곳에서 개굴개굴 노래를 부르고있었다. (요놈이 날 놀리려구? 안되지. 난 널 꼭 찾아내고야 말테다.) 남수는 또 소리나는 쪽으로 발면발면 다가갔다. 폴싹! 청개구리 한마리가 남수의 발밑에서 개울 저쪽으로 뛰여갔다. (그렇지, 너 들켰지.) 남수는 개구리를 쫓아 개울을 훌쩍 건너 뛰였다. 하지만 왼 발이 풀잎에 밀키는 바람에 남수는 개울 건너쪽에 닿지를 못하고 개울물에 풍덩 빠져버렸다.차디찬 개울물이 남수의 입으로 꼴깍 들어갔다. 남수는 입에 들어간 개울물을 뱉어내며 일어섰다. 온몸이 홀딱 젖어서 후줄근한것이 마치도 물에서 갓 건져낸 병아리 같아 보였다. 남수는 얼굴에서 줄줄 흘러내리는 물을 쓱 쓸어닦았다. 그러면서 머리를 털었다.머리칼에 묻은 물이 사처로 뿌리워나갔다. 남수는 머리에서 튕겨나가는 작디작은 물방울을 보면서 형용못할 쾌감을 느껴졌다. (아~ 시원하구나!) 남수는 다시 한번 개울물에 털버덕 들어앉았다. 남수는 손으로 개울물을 퍼서 뿌려던지기도 하고 개울물을 차며 즐겁게 뛰여보기도 했다. 한참이나 이렇게 혼자 즐겁게 뛰여놀고 나니 정신이 번쩍 드는듯싶었다. 남수는 개울가로 올라와서 물이 뚝뚝 떨어지는 웃옷을 벗어 비틀었다. 하늘은 더 푸르러 보이고 대기는 더 맑아보였다. 남수는 방금 비틀어 짠 웃옷을 빙빙 휘두르며 망아지마냥 앞으로 깡충깡충 뛰여갔다. 남수는 어느덧 집문 앞에 이르렀다. “어쩔 예산이예요? 말 좀 해보세요. 그래 계속 이렇게 살겠어요?” “당신 입을 닥치지 못하겠소? 아무리 돌아서면 남이라지만 우린 그래도 아들까지 있는 부부가 아니요? 돈이 뭐길래 이러는가 말이요?” “그래 돈이 뭐가 아니면 당신하고 나는 서북풍을 마시고 남수에겐 맹물만 주겠어요? 무슨 남자가 이래요? 이렇게 능력이 없나 말이에요. 남들을 보세요. 어떻게들 사나?” 이어서 뭔가를 쥐여뿌리는 소리가 들렸다. 문밖에서 이 소리를 듣고있는 남수는 너무도 고통스러워 두 눈을 꼭 감고 손바닥으로 귀를 틀어막았다. 개울에서 찾았던 즐거움이 가신듯 사라져버렸다. 어서 빨리 이 지긋지긋한 집을 떠나버리고만 싶었다. 남수는 몸을 픽 돌렸다. 정처없이 잰걸음을 옮겨놓았다. “두부사세요. 뜨끈뜨끈한 두부사세요.” 자전거 뒤에 손때묻은 두부판을 실은 나그네가 무시로 긴 소리를 뽑고있었다. 남수는 발걸음을 뚝 멈추고 두부 파는 나그네를 쏘아보았다. 두부를 파는 나그네의 피곤섞인 목소리가 “그래 그냥 이렇게 살겠어요?”하던 어머니의 히스테리적인 목소리로 변하여 남수의 귀전에서 울리는듯 싶었던것이다. “얼음과자 사시오. 얼음과자요.” 앞에서 꼬부장한 할머니의 목쉰 사구려 소리가 바람에 날려왔다. 남수는 묵묵히 소리나는 쪽을 바라보았다. 흰색을 가려보기 바쁘게 때자국이 흐르는 앞치마를 두른 할머니 한분이 얼음과자상자를 실은 삼륜차를 밀어오며 힘겹게 소리치고있었다. 언제나 이맘 때면 이 곳에서 보게되는 그 할머니였다. 남수는 여느 때 같으면 1원짜리 돈 을 한장 뿌려주고 쵸콜레트를 바른 얼음과자를 한대 받아먹었으련만 오늘은 그 할머니의 사구려소리가 무심히 들리지 않았다. 마치도 “돈이 뭐가 아니면 남수에게 맹물만 주겠어요?”하던 어머니의 울음섞인 목소리로 변하여 들려오는듯 싶었다. 남수는 두 눈을 꼭 감았다. 저도몰래 오른 손이 바지호주머니로 들어갔다. 아침에 귀름튀기를 사먹고 남은 거스름돈 4원 20전이 손끝에 마쳤다. 그 시각 남수는 그것이 돈이 아니라 어머니의 성난 얼굴같이 느껴졌다. 남수는 호주머니속에서 그 돈을 움켜쥐였다. “얼음과자 사시오. 얼음과자요.” 길에는 누구도 없었지민 할머니는 남수의 옆으로 지나가며 길게 소리를 뽑았다. 할머니는 분명 남수의 호주머니를 넘겨다보는 모양이였다. (돈, 다 이 돈 때문이다. 돈 때문에 아버지와 어머니는 무섭게 다투시기만 하고 저 나그네는 힘겹게 두부를 팔아야 한다. 돈, 이 돈 때문에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을 잃어야 하고 이 할머니는 이 더운 날씨에도 사구려를 불러야 한다.) 남수는 꼬깃꼬깃 꾸겨진 돈 4원 20전을 꺼내들고 할머니를 불렀다. “얼음과자를 사려구?” 밭고랑처럼 주름이 패인 할머니의 얼굴에 알릴듯말듯 웃음이 피여났다. “아니, 이 돈을 할머니가 가지세요.” 남수는 할머니의 얼음과자상자우에 돈을 올려놓았다. 할머니는 돈을 내려다보며 어이가 없다는듯 말했다. “애두 웃긴다야, 내가 왜 영문 없이 네 돈을 가지겠니?” “그저 가지라는 겁니다.” “별난 애도 다 있네. 이렇게 돈을 망탕 구을려서는 안되는거다. 잘 건사했다가 학용품이나 사서 써라.” 할머니는 얼음과자상자우의 돈을 집어서 남수에게 건네주었다. “아닙니다, 할머니 그냥 가지십시오.” “이런… 오, 알겠다. 학교에서 좋은 일을 하라고 한 모양이로구나. 그래두 그렇지, 난 이렇게 얼음과자를 팔아서 살수있는데 왜 너의 구제를 받겠니?” “아닙니다. 할머니, 돈이 더러운 물건이 돼서 그러는겁니다.” “엉?” 할머니는 뿌연 눈길로 이윽토록 남수를 지켜보더니 석쉼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 방금 돈이 더럽다고 말했니? 얘야, 돈이 왜 더럽겠느냐? 제 손으로 깨끗이 번돈은 더러운것이 아니란다. 돈이 없이야 어떻게 살수있겠니?” “할머니…” 남수는 그만 입을 필룩이며 어깨를 들먹였다. “애야, 너 어떤지 억울함을 당하는것 같구나. 자 이리 와 앉아라. 억울한게 있으면 얼음과자나 먹으면서 이 할미에게 말해봐라.” 할머니는 얼음과자통을 열고 쵸콜레트를 바른 얼음과자를 한대 꺼내여 남수에게 건네주었다. 남수는 입술을 감빨며 살래살래 머리를 저었다. “어서 먹으렴, 이 할미가 주는것은 먹어도 괜찮다. 애야, 이 어린것이 웬 일로 이렇게 속을 태우느냐?이할미가 매일 여기로 얼음과자 팔러 오니까 어서 속말을 해다오. 이 할미가 들어줄란다.” 할머니는 소나무껍질 같이 꺼슬꺼슬한 손으로 남수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남수는 어쩐지 할머니의 썩썩한 그 손바닥이 그처럼 자애롭게 느껴졌다. 그러면서 또 다시 가슴이 뭉클해나고 코끝이 시큼 저려왔다. 정말이지 아버지가 장사길에 나선 그때부터 부모님들은 언제 한번 이렇게 남수의 머리를 쓰다듬어준적이 없었다. “할머니, 사람이란 꼭 장사를 해야하는겁니까?” “아니지, 꼭 장사를 해야하는것은 아니지만 나처럼 고정직업이 없어 퇴직금을 못 타먹는 할망구야 이렇게 해서라도 소비돈을 벌어야 하는게지.” “그럼 사람이란 돈이 없으면 못 사는겁니까?” “그렇잖구. 돈이 없으면 어떻게 살가?” “그럼 사람들은 다 돈을 벌려구 일하는겁니까?” “글쎄…” “할머니, 장사 안하구 사는 세상은 없습니까?” “얘가 원, 그런걸 내가 어찌 알겠니? 살아가느라면 그런 세상도 오겠지. 헌데 죄꼬만 놈이 왜 이런 소리만 하는겨?” 할머니는 터실터실한 손으로 남수의 얘리얘리한 얼굴을 받쳐들었다. 남수는 그 손으로부터 전해져 오는 따스한 전률을 느꼈다. 남수는 어쩐지 그 할머니가 미더워 보이고 다문 한순간만이라도 그 품에 얼굴을 파묻고 안기고싶었다. 그리고 그속에서 서리고 서렸던 설음을 확 토해놓고싶었다. “할머니!” 남수는 할머니의 품에 와락 안기며 울먹울먹한 목소리로 말했다. “할머니, 저…저의 아버지도 장사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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