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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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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    생명 각성의 종소리 댓글:  조회:1992  추천:28  2009-09-18
. 평론 . 생명 각성의 종소리- 김혁 수필 속에 보이는 생명의식전경업   인간은 고독과 괴로움을 느끼기 때문에 교류를 해야 하는건가? 수천 수만, 아니 수십억의 인간들이 살아가고 있는 이 인간세상은 날따라 좁아지고 작아진다지만 인간은 외려 더 외로워지고 더 고독에 잠기게 된다. 하여 고소(高所)공포증이 생기고 폐소(閉所)공포증이 생기는가 본다.하여 인간들은 외롭고 적막함에 대한 초조에서 벗어나기 위해 교류를 원하는 것이다.외계인을 찾고 별나라를 탐구하고 화성과 금성에 등륙하여 인간과 같은 지혜자를 찾는 일과 같은 것들은 단지 과학기술이라거나 재부에 대한 탐욕, 아니면 신비로운 자기 밖의 외계에 대한 흥취에서만 온다고 하기에는 너무도 근거부족이다. 그것은 어쩌면 인간들이 자기를 외로움에서 구원하기 위해 동류를 잦고 있는 노력일 수도 있는 것이다. 동류를 찾음으로 서로 교류를 하고 고독과 적막함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인간의 교류는 우선은 자기 내심과의 교류이고 다음은 다른 사람과의 교류이고 또 그 다음은 자연과 다른 생물이나 자기의 생존공간과의 교류이다. 이러는 가운데서 인간은 자연과 어우러지게 되고 타인과 어우러지게 되고 사회와 어우러지게 된다. 그 지긋지긋한 적막의 습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김혁은 달마도를 그리고있다.화가의 꿈을 가지고 련환활르 모이기 시작해서부터 서투른 솜씨로 만화를 그리던 데로부터 달마도를 만나고 보고 그리기까지 우리는 김혁이 자기의 마음속으로 한걸음 한걸음 접근해가는 것을 볼수 있다.그것은 령혼이 육신과 함께 자라는 길이였고 그것은 령혼이 육신을 이끌고 천국에로 가는 길이였고 그것은 령혼이 육신을 떠나 령혼의 왕국으로 가서 다시 육신을 구하는 길이였다. 그 길은 령혼이 혼잡한 세상의 고독과 적막과 쓸쓸함과 싸운 가렬처절한 전장으로 붉은 피 랑자한 길이였다.그 길을, 그 길에서 생겼던 에피소드와 경악과 기적을 김혁은 잔잔한 한폭의 달마도로 독자들앞에 조용히 내놓는다.그래서 독자들은 고독에서 고요로, 적막에서 적열(寂悅)에로 가는 김혁을 볼 수 있다.한장 한장의 달마도와 함께 김혁은 달마를 따라 마음의 면벽(面壁)으로 무아지경에로 향하고있다.하여 그는 고독과 적막의 포위에서 벗어나 일상의 장막을 젖히고 자기의 인생을 열어가고(\"종이를 편다\") 생을 준비하고(\"먹을 간다/ 붓을 쥔다\") 인생을 생명으로 살아가는 것이다(\"달마도를 그린다\")그러나 이런 령혼의 면벽과정은 언제나 생활의 소란을 피면할수 없고 그 생활의 과정과정에서 인간은 언제나 현실을 외면할 수 없으며 또 그래서 그런 현실정시의 과정에 항상 외계와의 교류와 접촉으로 물젖어있다.그러나 그런 접촉은 처음부터나 아니면 항상 순조로운것이 아니라 많은 경우는 내적 또는 외적인 작용력으로 인해 때로는 막히고 때로는 열리고 때로는 어쩔수 없는 경우에 닥치기도 한다. 이런 막히고 열리고 막무가내한 경우는 기계나 자연의 힘보다는 인간 자체의 마음의 상설(霜雪)- 도덕, 인륜 이상(異常)으로 해서 더 무섭고 안타까운것이다.이런 과정과 또 이런 현실에 대한 공포로운 마음을 여실히 독자들에게 꺼내보인 수필이 바로 \"우리들의 엘리베이트\"이다.작아서 더 작을 수 없는 공간, 그 공간속에서 오가는 말들과 마음을 읽을 수 있는 곱고 미운 행위들, 그러나 그런것들은 또 엘리베이트를 오르고 내리는 사람들이 숨길수 없는 행위들이고 회피할 수 없는것들이다.그 자그마한 공간에서 사람 사이의 관계는 그처럼 요원하고 멀기도 한것이다. 몸이 닿는 공간과 어울리지 않게 물리적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마음은 멀리 멀리고 서로 버성겨지고 헤어지는것이다.그러나 진정 무서운 것은 그렇게 멀어지거나 버성겨지는 인간사이가 아니라 그것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의 마음인 것이다.그래서 김혁은 엘리베이트를 오르내리는 사람들로부터 엘리베이트가 하나의 농축된 세계임을 새삼스럽게 느끼고 그것을 독자들에게 남김없이 전해준다.\"깨끗한 몸가짐과 맑진 속마음으로 인생렬차나 진배없는 엘레베이트에 오르면서 새로운 하루를 어떻게 참답게 이어나갈가 속구구를 빼무는것이야말로 진짜 엘레베이트를 활용하는 실러리맨의 참자세가 아닐가\"하고 자기의 느낌을 독자들에게 감탄부호와 함께 던져주고있다.상승과 진보의 상징인 엘리베이트, 한층 오르고 올라서는 또 거기서 뛰쳐나오고, 이렇게 반복에 반복을 거듭하면서 인생의 새로운 승화를 김혁은 엘리베이트라는 공중장소로서는 가장 작은 공간을 통해 시도하고 있다.그러나 이런 시도와 느낌을 김혁은 독자들에게 강요한 것이 아니라 자기의 내심깊이에서 온 느낌 그대로 솔직히 말했기에 독자들이 반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고 마치도 차 한 잔 앞에 놓고 함께 자기의 마음을 숨김없이 털어놓으면서 한담하는 감을 준다.뿐더러 엘리베이트가 고장이 날가봐, 또 엘리베이트가 혹시 떨어나 지지 않을가, 중도에 갇히지나 않을가, 하는 등등의 엘리베이트를 탈때마다 느끼는 사람들의 공포감을 그대로 자기의 경력으로 내보임으로서 독자와 저자 사이의 공명의 성원(聲源)을 만들어 놓아 거부감을 주지 않는다.자기 내심으로의 교류와 생활환경, 생활공간과의 교류와 함께 우리들은 또 저도 모르게 외계와의 교류를 갈망하고 다른 객체, 그리고 력사와의 교류를 갈망하게 된다.수천만년전의 공룡에 관심을 그처럼 돌리는 오늘의 과학연구와 인간들의 마음은 단순히 예술이나 과학에 대한 애착으로만은 해석할 수 없다.그런 방식으로 인간들은 외계의 세계와 과거, 력사와의 교류를 시도하고 있다. 그래서 생명체와 비 생명체의 계선은 날로 희미해지기도 하는 것이다.전자 공룡과 진정한 생물간에 구별점은 구경 어느만큼이나 되는가, 인간은 갖은 방법을 다해 인류의 고독함을 풀려고 시도하고 있다. 비록 그것은 그처럼 어렵고 그런 노력은 그처럼 가렬처절한것이지만. 그러나 인간들은 그런 고독을 풀수 있는 기회를 너무나도 쉬이 흘러보내고 또 그래서 더욱 고독한 것이다. 때문에 김혁이 패러티한 공룡시는 이름할 수 없는 담담한 애상(哀想)을 담고 있다.풋풋하면서도 솔직한 언어로 누구에 향한 설교나 가르침이 아니라 자기 마음속 깊은 곳의 느낌을 곧이곧대로 말한 김혁의 수필은 그의 소설처럼 아름답고 진지한 것이다.  전경업 (\"도라지\"잡지사 사장, 길림시 조선족 문화관 부관장)문학 블로그:http://blog.naver.com/khk6699  
161    아이들을 향한 열정 그리고 따뜻한 시선 댓글:  조회:1622  추천:35  2009-08-06
   아이들을 향한 열정 그리고 따뜻한 시선 - 제3차 “윤정석 아동문학상” 평심보고서 김 혁 (소설가)     “윤정석 아동문학상”이 3회째를 맞았습니다. 짧은 기간이지만 그 립지를 빛내며 위상을 굳혀가는 중후한 문학상에 올해도 작품집 7부, 소설 4편, 동화 6편, 시 38수로 상당한 분량의 작품들이 공모에 응했습니다. 청소년발전추진회 한석윤 회장님, 연변대학 전국권 교수님 허송절 동시인과 저 네람으로 올해 평심단이 무어졌습니다. 우리는 응모된 작품들을 세세히 읽어내려가며 훌륭한 작품을 읽는 행복과 그중에서 단 2부만의 수작(秀作)을 가려내야하는 괴로움에 모대겨야했습니다. 우선 작가들의 적극적인 동참과 로고가 돋보였습니다. 응모작중에는 20여만자로 씌여진 장편소설도 있었고 13만자로 씌여진 동화도 있었으며 중편소설집도 있었습니다. 응모 편수가 많이 늘어났을뿐만 아니라 당선작들의 수준이 전반적으로 고르고 표현이나 기법이 세련된 작품들이여서 반가웠습니다. 다만 기존 아동작품의 발상이나 표현을 훌쩍 뛰여넘을 개성적인 작품이 눈에 띄지않은 아쉬움도 없지 않았습니다.   소설작품면에서- 시골정경을 한폭의 수채화같이 그려내면서 그 풍경속 오누이의 때묻지않은 시골정서를 생동하고 매끄럽게 그려낸 허두남의 “오누이와 개구리”, 백치를 소박주는 아이들과 그 백치를 돌보는 할머니로부터 인간의 온정(温情)에 대해 이야기한 전춘식의 “외로운 섬”등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그리고 김장혁의 과학환상소설 “야망의 바다”는 지구촌의 평화와 생태환경에 대한 파괴를 고발하고 그를 지키려나선 이들의 로고를 박진감 넘치는 스토리에 담아낸데서 과학환상소설이라는 쟝르가 결여를 보이고있는 조선족문단에서 장편이라는 부피로 이 쟝르의 부재를 어느정도 보태줄것으로 보입니다. 최동일의 작품집 “아직은 초순이야”는 그중 돋보이는 작품집이였습니다. 작품집에 수록된 5편의 작품 모두가 고학년을 상대로한 소년소녀소설로서 이 령역에서의 확장과 노력의 시도를 보였습니다. 아버지와의 소통, 성적순으로 모든것을 재이는 학원생활에 대한 고민, 젊은 감성과 스타일을 고집하지만 그에 대한 사회의 몰리해, 사춘기 아련하게 움트는 성적욕망에 대한 해결방식을 작품들은 보여주고있습니다. 리얼리즘에 충실한 상기 작품들이 주는 메시지는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우리주위에서 조금만 눈을 돌리면 어디에서든 흔히 볼수있는 이런 아이들을 작품의 “화자”로 삼아 우리 사회의 어두운 리면을 들추다 보니 적라라한 “리얼리티”에 의한 작품의 진정성은 확보하고 있지만“너무 어른스럽다”거나 “무겁다”는 지적을 보일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작품들은 비교적 다각적이면서 강렬한 메시지로 사회변혁기 어른들의 진통을 더불어 겪으면서 자라나는 청소년들의 실존적 고민과 성장통을 그려보이고있습니다. 그러나 이 작가들의 작품들에는 몇가지의 결점이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는데 다분히 꽁트적인 발상과 평면적이고 가벼운 문체가 주되는 통병이였습니다. 서술적 묘미나 극적 구성면에서 이렇다할 특징이 없고 정서를 뒤받침해주는 시대적배경이나 작품 전반을 관통하는 주제의식의 결여 혹은 부재, 그리고 결말의 창졸한 마무리, 언어미학적 구조의 취약함 등 허점을 보이고있었습니다. 주제가 충분히 소화되지 못하고 대화나 서술에 그대로 드러남으로써 르포식으로 되여 버리기도 했습니다. 작가가 독자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의식을 사건의 진전이라는 구조속에 녹여 간접적으로 형상화하지 못하고 직설적으로 드러내여 강요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다행히 이러한 허점에도 불구하고 많은 작품들은 문학의 교시적 기능에는 충실하고 있다는점입니다. 아동문학에서 재미와 깨달음이라는 기능에 충실하면서 감동의 진폭을 넓혀주는 그런 작품을 기대하는것은 평자(评者)만의 바람은 아닐것입니다.   동화면에서는- 학생들을 시험에 얽매이고있는 현 교육제도를 풍자한 전복록의 동화 “시험왕국 봉쇄선”, 자기몸을 던져 새끼들의 먹이로 되는 어미 거미들의 이야기로 부모들의 헌신에 대한 감동과 그에 대한 무마를 보여준 윤호남의 “거미동네의 풍파”, 개개의 교훈적인 메시지들로 엮어진 주덕진의 동화집 “가시돋는 뽈”등 동화들이 주목을 끌었습니다. 그중 리영철의 “일요일 오락성”과 “지구 보위전”에는 “기기박사와 토토계렬동화”라는 부제가 붙어있습니다. 련관성을 갖고 하나의 캐릭터를 등장시켜 동화시리즈를 시도한 그 의도가 사뭇 좋았습니다. 외국과 중국문단의 작가들은 많은 우수한 계렬작품과 그 계렬작품에서 나오는 주인공을 브랜드형상으로 주조해 냈습니다. 기기박사 역시 그러한 시도의 일환으로 앞으로 이 인물형상의 정착과 성공을 기원해 봅니다. 하지만 상기 동화들은 구애된 사유로 실험의식이 부족하고 현실에 안주하려는 진부함을 보여 동화공능의 활발하지 못한 사용을 보주고 있었습니다. 지나치게 간단한 구성, 의도설명의 불투명, 쟝르계선의 모호함, 동물동화와 식물동화에 얽매인 구태의연함을 보이고있어 아직도 7,80년대에나 볼수있을법한 진부한 내용에 캐릭터에 그 이름조차도 꿀꿀이 멍멍이, 야옹이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동화도 보였습니다. 발상과 결말이 너무 뻔해 읽지않아도 그 내용이 짐작이 되고  자칫하면 독자대상인 어린이들도 거부하는 유치한 이야기가 되고마는 경우를 초래할수도 있는 작품들도 보였습니다. 내심 동화의 본질에 가까운 작품을 기대해보았지만 동화를 그저 어린이가 읽는 환상이 가미된 작은 글이라는 안이한 자세로 응모한듯한 작품이 많아 퍽 안타까웠습니다. 동화라는 장르 자체가 누구나 쉽게 덤벼들수는 있지만 하다보면 어느 쟝르보다도 더 정교하고 어려운 작업이라는것을 이번 평심에서 또 한번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수상의 영예를 지닌 전춘식의 유아도서 “콩콩이가 울어요”와 “휘파람 소리”는 우선 그 좋은 시도에서 많은 평점을 얻었습니다. 과학적인 육아와 물질생활의 풍요로 요즘 아이들은 성장과 지력면에서 전세대를 초월하는 모습을 보이고있습니다. 때문에 조기교육에서 그에 걸맞는 표현형식도 따라서 연구되여야 할것입니다. 중국아동문단에서는 일찍 2006년부터 저유(低幼)문학이라는 새로운 어휘로 이 쟝르를 세분하고있습니다. 다매체 시대, 새로운 쟝르, 신조어들이 속출하고있는 오늘날 우리의 아동문단도 그 시대적 조류에 적극 보조를 맞추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만큼 전춘식의 이야기는 뚜렷한 주제의식을 안고 글에서 간결성을 지향하고있습니다. 이야기들이 기발한 소재와 주제보다는 생활속에서의 보편적 경험과 생각에서 얻어진것들이고 서사구조와 문체 역시 인위적인 기교의 산물이라기보다는 자연발생적인 진솔함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따라서 지루한 묘사와 중층(重层)적인 서사구조로 책 읽기를 기피하는 요즘의 어린이들에게 중압감을 주는 여타 동화와는 달리 쉽게 접할수있는 흡인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또한 미술편집의 로고도 빛을 발해 삽화에서 서정적인 색감과 소박한 기법이 조화를 이룬데서 그림이 이야기의 분위기를 한껏 살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저유문학은 아직도 실험단계이고 그 창작체계와 군체를 이루지 못하고 있으며 단 문자창작자뿐아니라 미술창작자와의 합작 등 문제점을 안고있는데 이번을 계기로 우리의 저유문학이 새로운 양상으로 아동문학의 일석을 차지할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동시부문에서는- 신인들의 동시들이 빛을 발하고 있는 가운데 김응준, 김득만, 최문섭, 강효삼 등 로익장의 작품들이 아직도 낡지않은 “보도(宝刀)”의 중후함과 열정을 더불어 보여주었습니다. 그중 신진들의 작품을 주목해 보았습니다. 김미선의 작품에서는 “냄비안에서 화산이 터졌어요”라고 우리들에게 친근한 “김치찌개”에서 화산의 분출과도 같은 상상이 폭발적인 비약을 보여주고 바람과 애보리가 “친구”로 되여 손잡고 파도타기하는 아련한 풍경을 보여주는가하면 한설매의 작품에서는 전선줄이 우는 소리에서 베토벤의 명곡의 음률을 헤아려 보고 공사장의 “굴착기”를 감기 걸려 크릉크릉 목청 다듬는 코끼리로 둔갑시키기도 합니다. 이들의 시들은 단순하지만 생동한 표현과 내용, 아이들에게 읽어주기 좋은 운률적 구성, 읽고나면 남는 강한 이미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시들은 짧음이 그 주류를 이루고있었습니다. 짧은만큼 경쾌하고 활달합니다. 휴지통이며 밤송이며, 굴착기며 이 세상 온갖 물상들이 시인의 눈길이 닿는 순간 저마다 새로운 의미로 깨여나고 살아나며 환해짐을 느낄수 있었습니다. 가식이나 수식이 없고 단도직입적인 절주의 경쾌함, 마음의 즐거움을 느낄수 있었습니다. 매우 인상적인 작품들이였으나 보내온 여러수들 중에서 이러한 수작은 한두편에 그치고 다른 작품들이 뒤받침해주지 못해서 아쉬웠습니다. 그리고 상기 작품들이 시의 대상을 쉽게 찾고 짧은 구절과 말놀이에 가까운 천착으로 해서 자칫 소재와 기법의 상투성에 빠질 위험성이 있다는 점은 시인 스스로 의식해야할 문제일듯싶습니다. 재치가 시를 반짝이게 할수는있으나 완숙하게 할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최종 최문섭 시인의 “봄비”등 7수의 시가 눈과 가슴에 닿았습니다. 보내온 여러수 작품의 수준이 고르고 시적 력량이 안정되여있는 점이 신뢰를 주어 수상작으로 선정했습니다. 최문섭시인이 다룬 소재는 봄비, 꽃씨, 나팔꽃, 줄당콩 등으로 우리 생활에서 익숙한것들입니다. 하지만 익숙하고 평범한 형태속에 보편적으로 내재해 있는것들을 원형적으로 찾아 내고자하는 작업에 의해 그의 손을 거친 소재는 전혀 새로운 풍경과 소리로 다시 태여났습니다. 자아와 대상사이에 놓인 보이지 않는 예민한 감수의 끈을 찾아내 당기니 꽃씨가 눈을 뜨고 줄당콩이 딸려나오고 봄비가 쏟아져 내립니다. 밝고 투명한 이미지 창조를 확실하게 보여주었기에 그의 동시는 같은 소재이지만 그만큼 상큼하게 다가온것입니다. 어쨌든 최문섭 시인의 동시는 그 독자가 어린이든 어른이든 그 시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묘한 힘이 있나봅니다. 그 리유는 아마도 시인이 오래동안 아동문학분야에서 편집사업을 해왔기에 동시가 무엇인가를 일찌감치 터득했거나 스스로가 여전히 동심을 오롯이 간직하고 있기때문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어린이에 대한 깊은 리해와 동시적 표현의 로련함이 묻어나 그래서 시편들이 례사롭게 보이지 않는것입니다.   아동문학작품에서 요구되는 기본적인 덕목은 “재미, 감동, 꿈, 희망”이라고 말하고들 있습니다. 모두어 보면 응모한 작품들은 그에 걸맞게 아이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으로 현실적 일상과 리얼리티를 다루고 그 구조와 표현방법에 주력한 작품들이였습니다. 작품의 구조와 문체가 꿈많은 아이들의 리듬을 닮으려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우리 작가들의 고민의 루적과 흔적들을 엿보아낼수 있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러한 고투를 거듭하여 우리 아동문학을 한단계 업그레이드시키며 더 짙은 문학적 향기가 배여나도록 해야 할것입니다. 우리의 아동문학작가들이 요즘 흔들리고있는 우리 공동체사회와 그 사회의 장래의 주인이 될 아이들에 대한 애정을 지닌 자세로 훌륭한 아동문학을 지양하여 두고두고 회자될수있는 좋은 작품을 쓰는 일에 작가적 상상력과 힘을 쏟아주기를 희망해봅니다.  감사합니다. 2009년 8월 5일
160    [김혁 독서만필 13] 사랑에 빠진 자의 헌신 댓글:  조회:3666  추천:50  2009-07-15
김혁 독서만필 13 사랑에 빠진 자의 헌신      히가시노 게이고(东野圭吾)의 “용의자 X의 헌신(容疑者X的献身/남해출판사)”을 읽다. 요즘 나는 이 작가에 빠져있다. 탄탄한 줄거리, 허를 찌르는 반전, 결말에서 무릎을 치며 감탄사를 련발하게 만드는것이 바로 본격추리소설의 강점이라면 히가시노의 작품들은 그에다 가슴 저린 사랑과 사회에서 소외된 인간들의 몸부림이라는 무거운 내용을 얹는다. 때문에 그의 작품들은 추리소설로도, 련정소설로도 문제소설로도 읽힌다. “용의자 X의 헌신”도 그에 다름이 아니다. 사건은 모녀가 중년의 남자를 교살하는것으로 시작된다. 전기담요줄에 교살당한 남자의 이름은 도미가시, 살인을 저지른 야스코의 전남편으로 리혼한 안해를 괴롭혀 돈을 갈취해 살아가는 파렴치한이다. 더는 참지못하고 살인을 저지른 야스코 모녀를 돕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있다. 옆집에 살고있는 고등학교 수학교사 이시가미. 그는 대학시절 “수학천재”라는 찬사를 들었던 비상한 두뇌의 소유자이다. 어쩌구려 이런 천재가 사회에서 소외되여 삶을 포기할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 그에게 해맑은 미소를 가진 이웃집 야스코의 존재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근거이다. 때문에 그는 자신의 삶을 포기하면서까지 그 모녀를 보호하려고 한다. 그는 자신의 천재적 재능을 범죄에 사용하게 된것이다. 강가에서 시체가 발견되고 피해자의 신원이 밝혀지고 용의자 이시가미도 경찰의 시선에 들어온다. 그런데 사건 해결이 쉽지 않다. 그래서 형사들은 천재적인 물리학교수 유카와에게 도움을 청한다. 사건의 의뢰를 맡은 유카와 교수와 용의자 이시가미는 대학시절 친구이다. 이로서 친구와 친구, 물리학 천재와 수학 천재의 대결로 작품이 이어진다. 나중에 유카와 교수는 드디여 친구가 만들어낸 범죄수단을 밝혀낸다. 하지만 자신의 절친한 친구의 범죄를 밝혀내야 한다는 인간적 고민과 더불어 그의 사랑의 헌신에 눈물을 흘린다…  저자 히가시노 게이고   보통 반전을 거듭하며 마지막에 범인이 밝혀지는게 우리가 읽어온 전통적인 추리소설의 구조이다. 반면 히가시노 게이고는 그 순서를 뒤바꿔 소설의 초반에 범인을 로출시킨다. 범인이 누군지 어떻게 살해했는지 다 알려주고 시작하는데도 이렇게 호기심을 자극할수 있다니! 속도감있는 전개와 가슴 뭉클한 사랑의 애틋함이 어우러져 한시도 손에서 놓을수 없었던 책이였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데뷔작으로 “에드가와 란포상”을 수상했고 이후 쓰는 작품마다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일본을 대표하는 추리소설 작가로 자리 잡았다. 또한 그의 작품마다 영화나 드라마로도 만들어져 히트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들이 추리물을 좋아하지 않는 독자에게도 어필한다는 사실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들에서 일본 추리소설에서 흔히 보여지는 잔혹함이나 렵기 공포같은것이 보이지 않는다. 작품들은 범인의 정체를 캐기보다는 사건이 발생한 근원을 파고든다. 더불어 사건에 말려든 인물간의 숙명적인 관계를 부각시킨다. 이로써 독자의 궁금증은 자연히 범인보다는 그 관계의 리면에 옮겨진다. 이렇게 히가시노 게이고는 치밀한 구성을 짜는 동시에 그와함께  물질만능주의 사회상과 그 란장속 인간들에 대한 문제의식을 파고드는데 주력한다. 그 깊은 문제의식과 높은 작품성으로 그의 작품은 추리라는 쟝르의 령역을 넘어 순문학 쟝르의 전당에도 오를만큼 경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남해출판사에서는 올해초부터 히가시노 게이고의 계렬을 련속 출간하고 있다. 나는 지금 그의 대표작으로 일컫는 “숙명”을 읽고있는중이다. 요즘들어 출판계에서 다시한번 무섭게 추리소설 붐이 무섭게 불어치고있다. 연변작가협회 번역분과 맴버들인 진설홍, 윤금단 등 번역가들도 추세에 맞춰 한국 추리소설가 김성종의 소설들을 중국어로 새롭게 번역소개, 지난 4월 서점가에 계렬로 출시되였다.  추리소설의 부활과 그 쟝르의 새로운 양상에 대해서는 편폭관계로 다음 기회에 전문 이야기 해보려 한다.)   ☞ 김혁 문학블로그: http://blog.naver.com/khk6699 ☜     영화 容疑者X的献身 예고편
159    문학 아고라 댓글:  조회:1840  추천:44  2009-07-12
. 칼럼 .  문학 아고라 김 혁   1 아고라(agora)란 희랍어로 “광장”, “회의장소” 혹은 “시장”이라는 뜻이다. 희랍시인 호메로스의 작품에서도 나오는 “아고라”는 동상, 제단, 나무, 분수로 장식되여 도시 한복판이나 항구 근처에 위치해 있었고 주위에는 공공건물과 사원과 상점이 있었다고 한다.  고대 희랍에서는 어쩌구려 남자들이 장 보러 다녔는데 그들은 아침 일찍 장바구니를 끼고 “아고라”에 나와 채소도 사고 잡담을 나누거나 정치를 론하고 예술가, 웅변가들의 연설을 듣기도 했다. \"아고라\"는 명절기간에는 연극 무대와 운동장으로도 씌이곤했다. “아고라”는 이렇게 시민들의 일상적인 경제활동과 문학, 예술. 정치 활동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이루어지는 공간이였던것이다. 2 치솟는 여름의 열기속에 “시와 시민의 만남- 중한 시화전”이 펼쳐져 사람들의 주목을 끌고 있다. 《2009 연변독서절 계렬행사》의 일환으로 연변청소년문화진흥회와 도문시문련에서 주최하고 연변시인협회, 연변작가협회, 한국시민문학협회의 협력으로 열린 시화전에는 해내외에 명성이 높은 시인들뿐만아니라 농민, 의사, 공무원들도 동참하여 최근작들을 시에 걸맞는 아름다운 화폭과 함께 전시했다. 지난달 연길공원에서 개최되여 두만강변에서도 계속 펼쳐지고있는 시화전은 연변주정부의 깊은 관심을 받았으며 국내의 15개 매체들에서 동원되여 보도하는 등 사회의 눈길과 공감을 자아내고 있다. 3  문학을 성립시키는 요소중의 하나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있는것이 바로 작가와 독자이다. 작가는 또하나의 독자이며 독자 또한 작가로 될수 있다. 따라서 작가는 가장 먼저 자신의 경험을 함께 공유할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 이 협력자는 문학령역에서 뛰여난 사람들만은 아니다. 당신의 작품을 사랑하고 애독하는 평범한 대중일수도 있다. 하지만 바로 이런 독자들이 작가의 작품을 작가자신을 변화시킨다. 작가에게 이런 사람들과의 관계는 중요하다. 독자와의 교감중에서 작가는 자신이 한곬에 버릇되였던 틀에서 벗어나 더 넓은 상상력이 이끄는 다른 방향으로 펜의 성향을 바꿀수 있다. 그리고 자신의 한계를 느끼고 독자의  의견에 귀를 귀울이는 과정에서 점차 성숙되여 간다. 그런 경험이 글에 녹아들고 그 글에 많은 독자들이 공감한다면 그게 바로 베스트셀러이고 명작이고 그 작가가 바로 어엿한 명작가로 대접받게 되는것이다. 지금 우리가 읽고 감탄하고 있는 명작들은 모두가 세대와 류행을 뛰여넘는 문학적 가치와 안목있는 독자와의 만남을 통해 이루어진것이다. 누구에게나 삶의 비탈진 굴곡이 있고 타인의 심장을 울릴만한 애틋한 이야기가 있다. 우리 작가들은 시대가 안고있는 이러한 고민과 아픔들을 우리 시대에 걸맞는 어법과 감성으로 독자들에게 친절하게 어필할 작품을 만들어내야할 의무가 있다. 작가와 독자가 함께 구축한 “아고라”에서 함께 읽고 함께 얘기하고 함께 눈빛에 기쁨을 간직하노라면 서로의 기쁨은 전달되고 외로움과 어려움은 물리칠수 있을것이다. 또한 모든것이 물질적 효응으로  계산되는 오늘날, 문학이 주는 작지않는 기쁨을 맛볼수 있을것이다. 이처럼 서로의 장점을 융합햐여 문학의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것이 바로 문학적 상생(相生)과 효응을 실천하는 길이 된다. “시와 대중의 만남”이라는 작은 시도가 반가운 리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158    극단의 순애보 댓글:  조회:3909  추천:39  2009-07-07
김혁 독서만필 12 극단의 순애보   중국판 "사랑의 류형지" 표지    “사랑의 류형지 (爱的流刑地/북경문화예술출판사)”를 읽다. 중국작가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실락원”의 작가 와타나베 준이치(渡边淳一)의 작품이다. 역시 “실락원”의 뒤를 잇는 격정 로맨스로 중년남녀의 불륜과 정사(情死)를 그리고 있다.   저자 와타나베 준이치 소설가 기쿠지는 교또에서 열렬한 팬이라는 세 아이의 엄마 후유카를 만나게 된다. 애잔하고 단아한 녀인 후유카에게 반한 기쿠지는 신간선을 타고 교또로 달려가 서로 만난다. 원거리 사랑이 시작되면서 기쿠지는 창작에 대한 열정까지 불태운다. 어느한번 정사중에 행복의 절정에서 죽고싶다는 후유카의 말에 기쿠지는 후유카의 목을 조른다. 그러다 정말로 후유카가 죽게된다. 기쿠지는 몇시간 동안 그녀의 시신곁에 머무르다가 경찰에 자수한다. 마른 나무잎처럼 사랑도 젊음도 다 시들었다고 생각하던 무미건조한 생활속 에서의 만남, 기쿠지를 만난 후유카는 새로운 세상을 만나고 새로운 자신을 찾게 된다. 하지만 그녀는 결코 뛰여넘을수 없는 현실의 벽앞에서 몸부림한다. 새로운 자신을 만나는 희열은 동시에 깊어지는 죄의식을 동반했던것이다. 가정을 버리고 기쿠지에게 갈수도 없고 지금같은 불륜의 길을 그냥 갈수도 없고… 그래서 후유카는 죽음을 선택했던것이다. 결국 그들은 함께 류형지로 떠나는 사랑의 죄인이 되여버렸다.   소설은 영화로도 각색되여 일본에서 공전의 흥행을 했고 중국, 한국 등지에도 DVD물로 나왔다.   영화 포스터 일본적인 가치관속에는 정사(情死)문화라는게 있다. 과거에는 게이샤를 사랑한 평민 등 도저히 뛰여넘을수 없는 처지에 놓인 남녀가 사랑을 이루지 못하자 동반자살을 했다. 그처럼 열렬하게 사랑하고 있는 절정의 순간에서 함께 죽을 수 있는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실락원”과 “사랑의 류형지”에서는 모두 그런 가치관이 관통하고 있다. 육체적 정신적 사랑의 교감 끝에 도달한 남자와 녀자의 지고지순한 순애보를 정사중 교살(絞殺)이라는 파격적인 소재로 끌어낸 “사랑의 류형지”는 특별한 러브스토리로 독자들을 끌었다. 신문에 련재되면서 회사원, 특히 직장녀성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와 함께 일본렬도를 뜨겁게 달구며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파격적인 스토리와 리얼한 세부묘사로 찬반량론을 일으킨 “사랑의 류형지”는 사회주의권 우리의 독자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울만큼 극단적인 사랑을 그린 작품이다. 하지만 극단적이기 때문에 오히려 그들의 사랑은 절실하게 다가온다. 세상은 그들의 사랑의 방식에 등을 돌리지만 어쨌거나 그들의 사랑은 생명을 바칠만큼 절실한것이였다. 이루어질수 없는 사랑과 고통, 소유 그리고 집착에 대한 본질적인 물음을 작품은 해석하고 있다. 이것이 렵기성이 아닌 진정성으로 독자들을 감동시키는 이 작품의 매력이요 와다나베 준이치의 작품들을 다시금 읽는 리유다.      
157    [김혁 독서만필 11] 차갑고 정밀한 기록 댓글:  조회:2139  추천:44  2009-07-01
김혁 독서만필 11 차갑고 정밀한 기록 유미리(柳美里)의 “명”(命/남해출판사)을 읽다. 알다싶이 유미리는 재일교포 작가이다. 때문에 이작가에 대해 특별히 주목하게 되였다. (그의 문명을 알린 출세작 “가족 시네마(家族电影)”는 영화로 제작되였는데 DVD로 소장하면서 처음 유미리의 작품을 접했다. 인민출판사 출간으로 그의 수필집 “사적인 사전(私语词典)”도 얼마전에 나왔다. 역시 그의 소설 못지않은 모난 감수성을 지닌 작품이였다.) 유미리의 작품은 전체적으로 어두운 편이다. 그 분위기를 파악한듯 중국에서 만든 “명”의 표지는 침침하고 어딘가 섬뜩하기 까지 하다. 검은 판을 배경으로 작가 유미리 본인이 금방 태여난 아기를 품에 안고 서로 망연하게 내려다 보고 올려다 보는 모습, 그 사진우에 명이라는 홀자가 커다랗게 씌여있다. 책 표지가 풍기는 범상치 않는 기분처럼 《명》은 작가 자신을 자기가 각본을 쓴 비극의 무대복판에 주역으로 사정없이 떠밀어 세우고있다. 느닷없이 원치않던 임신소식을 알게된 유미리, 아이를 지울까말까 고민하고 있을때 이전에 그녀와 10여년간 동거했던 히가시 유타카가 식도암에 걸려 죽어간다는 소식을 듣게된다. 히가시는 유미리가 배우생활을 하던 시절 극단의 스승이다. 치렬한 마음의 공방을 거쳐 “생명”이 태여나고 죽어가는 엄정한 순환의 방식을 유미리는 단연 받아들이기로 한다. 유미리는 만삭의 몸으로 히가시를 곁에서 돌봐주고 유미리가 아들을 낳고 나서 히가시는 숨을 거둔다. 창작하고있는 유미리  “명”은 다큐멘터리를 방불케하는 차갑고도 정밀한 회상기다. 유부남의 아이를 잉태해 겪어야 하는 미혼모의 고통과 말기암 환자의 이야기가 오버랩되면서 삶과 죽음, 사랑과 집착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하게 만든다. 사적인 치부를 조명이 찬란한 무대 전면에 드러내놓은듯한 문체, 그 부분이 꺼림칙하면서도 다 읽고나면 그 용기에 존경스러운 마음까지 들었다. 무엇보다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는 필봉의 권한을 쥔 작가가 자신을 조금이라도 합리화시키거나 미화시키지 않고 나약한 자신을 있는 그대로 표현한 점이 좋았다. 인간 실존의 가장 깊은 뿌리가 무언지 유미리는 몸으로 부딪히며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고 있다. 그리고 책을 읽어나가다보면 역시 천생 작가였어! 하는 감탄과 함께 작품 곳곳에서 작가의 풍부하고 예민한 감수성을 습윤하게 느낄수 있었다.  “지옥에 떨어졌다고해도 정확히 그걸 써내고 알뜰하게 뒤수습을 하는 유미리는 대단한 작가라고 일본문단은 그에 대해 평하고 있다. 불우했던 어린시절을 자양분삼아 랭정한 시선으로 가장 불행한 삶의 부분을 극도로 솔직하게 드러내보이는 것이 유미리 소설의 특징이다 . 재일교포 2세로 태여난 유미리는 집단 따돌림과 부모의 학대와 폭력속에 자랐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불화로 실어증, 부모와의 별거, 자살기도, 퇴학 등으로 힘들고 비정상적인 어린시절을 보냈던 유미리는 학교에 다니면서 특별한 문학수업을 받은적이 한번도 없었다. 가벼운 자폐증을 보일 정도로 온통 동물 기르기, 책 읽기 등 혼자 하는 취미에만 빠져 있었던 그는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도록 구구단조차 잘 외우지 못했다. 퇴학후 집에서 2년여 동안 칩거하면서 동서양의 고전 읽기에 빠졌으며 그렇게 쌓은 문학수양으로 어느날인가 필을 들었다. 1997년”가족시네마”로 아쿠타가와상을 받았다. ”명”은 일본에서 발행 5개월 만에 50만부를 돌파한 작품이다. 내가 소장한 유미리의 동명작품을 각색한 영화 \"가족 시네마\"  도꾜에 혼자 살고있는 그는 전화는 절대로 받지 않고 외부와의 련락은 팩스가 대신하고 있다고한다. “일생 혼자이고 싶으며 소설과 결혼하고 싶다”고 말해왔으나 2000년 미혼모로 아들을 낳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일본작가들의 작품을 읽다보면 저도모르게 유미리의 존재감을 떠올리게 된다. 동포2세, 녀류작가라는 딱지를 떼놓고 일본 본토작가들속에 나란히 세워놓고 보아도 그의 작품은 분명 대단함이 틀림없다. 그의 소설은 일본사회와 충돌하고 교류하여 형성된 정서로 씌이긴하지만 일본의 다른 작가들과 농도와 줄기가 많이 다르다. 그의 작품에서는 일본소설에서는 좀체 볼수없는 가족에 대한 강박, 민족적인 정체성이 끝없이 로출되고 있다. 때문에 그의 작품이 역시 재중국 소수민족의 일원인 우리에게서도 정서와 공감을 얻어내는것이 아닌가 싶다.
156    [김혁 독서만필 10] 벚꽃의 향기를 읽다 댓글:  조회:2924  추천:39  2009-07-01
  김혁 독서만필 10 벚꽃의 향기를 읽다   - 아시아 출판계를 독식하는 일본소설의 진미   김 혁 요즘 신문이나 TV를 보면 전에 많이 나오던 “한류(韓流)”라는 말 대신 “일류(日流)”라는 단어가 자주 나오는것을 볼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전반 아시아에서 만화, 영화, 소설과 같은 여러분야에 걸쳐 일어나고 있다. 서점가에서 베스트셀러 자리를 일본의 소설이 독식하고 있고 그 소설들을 토대로 한 드라마나 영화가 큰 인기를 얻고 있는것이 요즘의 추세이다. 중국의 드라마 마니아들이 즐겨보는 한국드라마 “하얀 거탑”이나 “꽃보다 남자” 역시 일본작품이 원작이며 서점가에서는 일본에서 떴다하는 류행소설이면 빠른 시일내에 그들과 결코 짝지지 않는 중국의 정서에 걸맞는 이쁜 디자인으로 출시되고 있다. 한국 출판계에서는 일본작품이 아예 홍수 수준이다. 한 주에 일본소설 신간만 10여 권이 쏟아져 나오며 지난해 한국에 소개된 일본 문학작품이 500여종이나 되여 줄곧 번역문학 출간발행 종수 1위를 차지했던 미국문학을 눌러버렸다고 한다 영화 \"이즈의 무희\"의 한 장면, 주역 야마구치 모모에는 80년대 중국인들에게서 최고의 우상이였다. 그런데 참말로 유감스럽게도 우리 조선족독자들에게 일본문학작품은 내내 체계적으로 소개되지 못하고 있다. 80년대 개방의 문이 열리면서 경직되였던 출판계가 어느때보다 활력을 보일때 일본작품들이 더불어 소개되긴 했지만 당시 출간된 “일본단편소설집”이나 연변인민출판사에서 간행했던 지금은 이미 절판된 “세계문학”총서 등에서 가와바다 야스나리의 “이즈의 무희”등 명작들을 우리말로 몇편 소개했을뿐, 우리 독자들에게 알려진 일본문학은 거개가 추리소설 정도였다. 그것도 에도가와 란포(江户川乱步), 마츠모도 세이쵸(松本清张)와 같은 거장의 작품은 한두편이고 나머지는 거의다 모리무라 세이이치(森村诚一)의 독주였다. 모리무라 세이이치전반 80년대에 거쳐 모리무라 세이이치의 작품은 중국출판시장을 독점하다싶이 했다.  근년래 문학지들에서 일본작품에 대한 소개는 몇해전 “연변문학”에서 일본 권위의 문학상인 아쿠타가와상 력대 최녀소 수상자 와타야 리사의 “발로 차주고 싶은 등짝”뿐인걸로 알고있다. 일본소설문학의 상징인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龙之介)의 “라쇼몽(罗生门)” 역시 80년대 중기 “연변문예”잡지사에서 조직한 강습반에서 문학학원들을 위해 비정기 간행물로 출간한 “개간지”잡지에서 어느 학원의 번역으로나마 우리는 접할수 있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오 겐자부로며 거의 10여년간 아시아에서 열풍을 일으킨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조차 거의 한편도 소개되지 않고있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라쇼몽\" 중국판 표지 반면 요즘 중국 출판계에서는 일본작품 복고풍이 일고 있다. 일본소설의 아버지로 불리는 나쓰메 소세키 (夏目漱石) 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我是猫/ 인민문학출판사), 20세기 일본 최고의 작가중 한 명으로 평가되는 다다자이 오사무 (太宰治)의 “사양”(斜阳/중경출판사), 미시마 유키오(三岛由纪夫)의 “금각사(金阁寺/상해역문출판사)”등등이 다시 현대인의 감수에 걸맞을 장정으로 다시 포장되여 나오고있는데… 일본문학사 내지 세계문학사에서 쟁쟁했던 작품들을 이제라도 마음껏 접하게 되니 그야말로 감개를 금할수 없다.  각설하고, 오늘 여기서 이야기하고저함은 다 아는 문학경전이 아니라 아시아를 강타하고 있는 일본의 근작류행소설들이다. 마침 벚꽃 피는 계절인 5월에 그 산뜻한 꽃내음을 맞듯 일본류행소설의 향기를 함께 맡아보기로 하자. <계속>
155    김혁 서점가산책 (5) 5월의 책들 댓글:  조회:2432  추천:38  2009-06-18
김혁 서점가 산책 (5) 2009년 5월에 구입한 책들  신록이 잡히면서 녹색의 과즙처럼 바람도 은근히 불어와 쏘다니기 좋은 계절 5월, 좁은 연길바닥의 서점들을 노량으로 거닐며  잡식의 취미로 구입한 많은 책들중에 몇부 괜찮은 쪽으로 (?) 뽑아 독서에 취미있는 \"책 버러지\"들과 정보를 공감하고저한다. 젊은이들을 위한 세계간사 (写给年轻人的世界简史)조지 웰스 저 사회과학문헌출판사 출간  연길시 공원서점에 가면 구입할수 있다. 책값은 29원. 영국의 소설가, 사회학자, 력사학자인 조지 웰스의 저서, 방대한 “세계사 대계”를 일반 대중을 위해 압축한 책. 세계사 필독서로 열렬한 호응을 얻은 책이라한다. 책은 력사를 소설처럼 흥미롭게 기록하고 있어 골치아픈 력사교과서보다 통속적으로 읽히면서 저도모르는 사이 세계력사에 대한 지식체계를 세울수 있는 지침서로 읽힌다. 강추한다. 수치심 (羞耻)살만 루시디(Salman Rushdie) 저강소인민출판사 출판  이슬람 지도자 무함마드를 풍자하는 소설 “사탄의 시편”을 발표해 암살 위협을 받기까지 하며 논란을 일으킨 그 영국 소설가의 작품이다. 살만 루시디가 격렬한 찬반 논란을 일으킨지도 20여년이 지난 오늘 중국에서 그의 저서들을 계렬로 출판하기 시작했다. 화제의 작가 루시디 소설 “수치심”은 풍자와 황당수법으로 파키스탄의 근대사를 그리고있다. 책 뒷표지에 밝힌 강소출판사의 출판기획을 훑어보니 물의가 큰 “사탄의 시편”은 출판서렬에 없었다. 사뭇 난해하더라도 대가의 문체를  배우고픈 문인으로서의 자세를 갖고 독서계획에 맞추어 읽어낼 작정이다.  20대에 홍루몽을 읽다 (二十几岁读红楼) 곽갑자 (郭甲子) 저 복단대학 출판사 (复旦大学出版社) 출판 저자는 전국작문콩클에서 1위의 경력을 가진 20대초반이다. 석학들의 홍루몽 연구관련 서적이 봇물처럼 쏟아지고있는 요즘 출판가에서, 20대의 눈으로 본 고전은 대체 어떤 모습일가? 190쪽의 크지않은 부피에 삽화까지 곁들여 부담스럽지 않게 읽힌다. 나의 잘못은 어른의 잘못 (我的错都是大人的错)지미 (几米) 저  현대출판사 (现代出版社) 출판  책 제목을 이렇게 번역해도 될런가 모르겠네. 여튼 그대로 직역해본다.나이에 걸맞지않게 언제부터인가 지미의 만화에 빠져버렸다. 지미의 거의 모든 만화책을 소장했다. 지미의 책은 그림위주이기에 종이질이 좋은 쪽으로 제본한데서 책값이 만만치 않다. 거개가 30원 좌우, 60원짜리도 있다. 이번 책값도 29원, \"당신이 뭐 10대유? 온갖 잡책을 죄다 사들이다 못해 이젠 만화책까지?!\"하는 마누라의 빈축을 살줄알면서도 사들였다. (팔불출이처럼 고백하지만 사실 마누라도 지미를 좋아하는 편이다.) 1958년 대만 대북시에서 태여난 지미는 문화대학 미술과를 졸업하고 광고회사에서 10여년간 근무하다가 이후 신문, 잡지 등 각종 출판물에 삽화를 게재하기시작했다. 90년대부터 ‘왼쪽 오른쪽’, ‘지하철’등 여러 작품을 발표하면서 뛰여난 창작력과 다채로운 표현방식을 보여주면서 출판시장에서 지금까지 식지 않는 그림책 창작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작품 중간 중간에 삽입해놓은 적절한 시의를 담고 있는 삽화들이 사람의 이목을 끄는 독특한 풍모를 발산한다.그림을 활용하여 청신하고 깔끔한 문학 언어의 령역을 개척한 그는 중국, 대만, 홍콩의 많은 독자들로부터 지속적인 사랑을 받고있다.  지미는 화려한 도시생활과는 유리된 동화같은 그림을 그린다. 삭막한 도시에서 발버둥치던 현대인들은 상상이나 꿈속같은 그의 글과 그림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한다. 따라서 좌절과 상처투성이인 마음에 따뜻한 온기를 불어넣어 준다.  책 속의 삽화 몇쪽을 올리니 잠시 동심의 여유를 공감하시길 바란다. 
154    밤은 노래한다 댓글:  조회:3102  추천:34  2009-06-18
김혁 서점가 산책 밤은 노래한다 김연수의 장편소설 ‘밤은 노래한다’를 한국에 있는 친지를 통해 구입했다.   책값이 1만원, 우송료 1만원 (다른책 한권도 포함)이니 인민페로 도합 100원좌우, 이곳의 책값에 비해서 조금 비싸지만 나같은 청빈한 문인도 받아들일수 있는  가격이다.  (책값이 비싸서 사고픈 책을 사지못한적 있었던가? 문전옥답과 바꿔서라도 좋은 책은 사들여 읽어얀다고 생각하는 나다.) 오래전 부터 읽고싶었던 작품, 1930년대 초반 연변지역 항일유격근거지에서 벌어진 ‘민생단 사건’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 “민생단 사건"은 쉽게 꺼낼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500여 명의 혁명가가 적이 아니라 동지의 손에 의해 죽어간 사건이니 얼마나 기막힌 사연이 많았을까?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혼돈과 암흑의 심연 속에 빠져든 인간들의 이야기를 한국작가가 처음으로 끌어안았다.” 사실 민생단 제재가 소설로 나오지 않은건 아니다. 80년대 중기, 작고한 조선족 작가 남주길선생에 의해 중편소설로 창작되여 "도라지"잡지에 실린것으로 알고있다. 창작에 밀려 잠시 서가에 꽂아 두었지만 스케쥴을 소화한뒤 선참 읽을 예정이다. 우리의 역사를 풀이하는 타인(?)들의 눈길과 그 습작방식이 궁금하다.  김연수 저자 김연수는 1970년 경북 김천에서 태어나 성균관대 영문학과를 졸업했다. 1993년 『작가세계』 여름호에 시를 발표하고 이듬해 장편 『가면을 가리키며 걷기』로 제3회 작가세계 신인상을 수상하며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나섰다. 대표작에 장편소설 『가면을 가리키며 걷기』, 『굳빠이, 이상』,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소설집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사랑이라니, 선영아』『나는 유령작가입니다』 등이 있다. 1994년 『 가면을 가리키며 걷기』 로 제3회 작가세계문학상을 수상했고, 2001년 『?A빠이, 이상』 으로 제14회 동서문학상, 2003년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로 제34회 동인문학상을, 『나는 유령작가입니다』로 2005년 대산문학상을, 단편 「달로 간 코미디언」으로 2007년 황순원문학상을 수상했다.   [출판사 서평] 역사에 묻힌 청춘의 노래가 시작된다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 중국과 일본 그리고 조선의 점이지대(漸移地帶)인 북간도(연변, 동만)를 배경으로, 조선과 중국의 항일 전사들의 유격구 활동과 당시 간도를 주축으로 한 민족해방운동진영을 벌집 쑤시듯 뒤흔들어놓았던 '민생단(民生團)' 사건을 모티프로 취한 장편소설이다.  만철 용정 지사의 측량기수인 주인공 '김해연'이 용정의 여학교 음악 선생이면서 기실은 조선청년공산당원인 이정희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그녀의 의문의 죽음 이후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조국과 이념, 사랑과 변절, 생과 죽음의 갈림길에 서면서 이야기는 숨 가쁘게 진행된다. 이른바 심리적 현실적 무국적자들의 삶과 사랑을 다룬 이 소설은, 김연수의 전작들에 이어 이른바 '국경을 내면화'한 채 경계 위에서 살아가는 개인들의 내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밀실이 아닌 벌판에서 역사와 대의에 묻혀 소리 없이 사라져간 무수한 '나-그들'의 이야기가 낮과 밤의 빛을 오가는 듯한 김연수 특유의 시적이고 밀도 높은 문장으로 펼쳐진다.  문학과지성사 2008-10-01 출간     Cranes (백학) - Losif Kobzon    
153    [김혁 독서만필-2] 서커스하는 녀자 댓글:  조회:1876  추천:37  2009-06-05
  김혁 독서漫筆 (2)  金革 독서만필 (2)    서커스하는 여자   전경린을 읽다전경린의 작품은 많이 읽지 못했다. 중국과 한국수교이후 한국작가들의 작품을 접할 기회와 폭이 넓어져 신경숙이며 은희경이며 하성란이며 한강이며 등등 한국 녀류작가들의 적지 않은 작품들을 두루 읽어왔지만 전경린의 작품은 웬지 다른이들에 비해 많이 읽지 못했다. 외려 전경린을 알게 해준것은 그의 작품 《내 생애 꼭 하루뿐인 특별한 날》을 각색한 영화 《밀애》를 보고서였다. 좋아하는 한국녀배우 김윤진이 열련을 펼친 영화에 매료되여 dvd로 소장해두었고 가까운 문우들에게 적극 추천하면서 빌려주기도 하다가 너무나도 탄탄한 시나리오구성을 느껴 누구인가 나중에 훑어보니 전경린의 작품을 각색한것이였다. 소설가 전경린 그의 작품을 문자로 읽은건 고작 한편 《메리고라운드 서커스 녀인》뿐이다. 하지만 내게는 그 한편만으로 족했다. 그 작품이 21세기문학상 수상작이라는 계관을 쓰고있어서가 아니였다. 우리가 읽어온 한국 녀류작가들의 작품들에는 거개가 사랑과 슬픔, 권태와 불륜, 령혼과 눈물, 류랑과 귀향… 녀성의 섹슈얼리티문제를 제기하려는 신열에 가까운 몸부림이 있었다. 하지만 이 작품에 심취된것은 전경린이 철두철미한 리얼리즘에 천착하는 한국의 허다한 녀류작가들과는 조금 달리 환성이 가미된 리얼리즘의 모습을 소설에서 보여주고있어서였다.  전경린의 소설 \"내 생애 꼭 하루뿐인 특별한 날\"을 각색한 영화 \"밀애\" 의 포스터 소설은 몸이 공중에 뜨는 괴상한 캐릭터의 녀자를 주인공으로 하고있다. 몸이 공중에 뜨는 주인공은 어느날 갑자기 집을 떠나 서커스단장과 함께 어떤 섬에 들어간다. 서커스단 단장인 최모는 《정처없고 황량하고 불안해보이는》 이 녀자를 사랑한다. 하지만 녀자의 사랑은 다른 곳에 있었다. 그녀는 자기의 령혼을 지닌 남자 《류》를 사랑한다. 《류》와 녀자를 소유한다고 생각하는 최모는 녀자와 류의 사랑을 용납하지 않는다. 결국 녀자는 모두가 떠나간 섬에서 원숭이, 타조, 불곰, 표범들과 함께 우리속에서 팔려갈 날을 기다린다. 어찌보면 골치거리 이 소설이 왜 나더러 쥐게 만들고 단숨에 읽게 만들었을가? 그 독서담은 간단하다.  녀성문제의식을 담고있는 이 소설이 남과는 다른 매혹적인 문체와 더불어 다른 한 개성으로 의미를 갖고있었기때문이였다. 작품을 읽는 동안 마치 겨울밤 이야기군에게서 이국적인 동화를 듣는듯한 환상적인 분위기에 매료되여있었다. 《저는 공중에 뜰수가 있어요.》 주인공이 이렇게 말하지만 서커스단장은 전혀 놀라지 않는다. 하지만 소설의 문체실험적성격을 모른채 책을 쥐였던 나는 적이 놀랐고 작품에 점차 흥미를 갖기 시작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초현실성이 존재한다. 우리는 결코 현실속에서 다른 존재의 내면에 방문할수 없다.  존재와 존재가 만날 때의 단말마적인 뒤틀림과 몽환성과 전률, 당신과 나는 세계의 표면이 열리는 그런 초현실성의 통로를 통해 잠시 결합하는것이다.》  전경린의 어느 에세이의 한 단락이다. 《현실과 환상 사이 본질적인 경계에서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고 전경린은 이 작품의 수상소감에서도 자신의 평소와는 달랐던 창작방식을 밝혔다. 작품을 읽고 작품평을 찾아 읽으니 《<메리고라운드 서커스 녀인>은 서커스라는 특이한 상황속에서 부단히 방황하고 방랑하는 상처 입은 사람들의 소외와 단절 그리고 사랑과 저항을 뛰여난 감수성으로 묘사한 수작이다.》라고 평론가들은 격찬하고있었다. 전경린의 이 소설속에 등장하는 녀주인공도 다른 한국 녀류작가들의 작품과 례외없이 녀성에게 강요되여온 제도적인 삶과 저항하며 여전히 같은 욕망과 열정으로 녀성의 삶을 관통해간다. 허나 그 표현방식은 사뭇 다르다. 녀주인공은 어느날 갑자기 남편과 아이들이 살고있는 집을 떠나온후 이 세상과의 모든 관계의 끈을 모두 놓아버린다. 이 끈으로부터 풀려나고싶은 주인공의 심리를 표현하기 위해 작가는 녀자를 《공중에 떠오르는 서커스 녀자》로 가공해냈으리라. 결국 전경린의 소설은 《공중에 뜨는 녀자》라는 환상적인 설정으로 우리에게 결혼과 가족이라는 삶의 울타리를 벗어나 생의 욕망이 지시하는 길을 따라간 상실의 령혼을 살아가는 한 녀자의 삶을 보여주고있다. 기상천외한 작중 주인공들의 모습에서 랭혹한 운명에 의해 모든 것을 빼앗긴 사람들의 삶과 저항을 읽게 되며 어느덧 심오한 존재론적 고뇌에  빠져들어가게 된다. 흔히 페미니즘문학은 아프다. 이제는 그에 심드렁해지려는 우리에게 새로운 시각과 재미(?)를 갖게 해준 전경린의 작품이였다.     *** *** *** *** *** 몇해 전 판타지작품 한편을 습작 발표했었다. 다년간 문체실험에 대단한 열성을 보여오며 첫창작집도 초현실주의 작품의 제명을 땄던 나는 내내 문체실험의 성격을 띈 작품이면 애정을 가진다. 그래서 어찌보면 우리 문단에서 처음으로 되는 판타지작품을 만들면서 다른 작품에 비해 더 많은 품을 들였었다. 고심을 보였고 꽤 권위성있는 잡지 톱소설로 나갔음에도 문단에서의 반응이 미비했다. 그래서 내가 꾸리고있는 블로그와 몇몇 까페에 올려보았는데 외려 거기서 반응이 좋았다. 조회수가 천여회로 치솟은건 물론 내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작품에 대한 과분한 찬사가 리플로 올라왔다. 생각이 착잡했다. 첫판타지작품이 랭담의 호수에 가라앉은건 나의 작품의 수준미달에도 있다고 자아위안을 했다. 그러나 놀라운건 적지 않은 독자 그리고 지어 같이 창작하고있는 문인들끼리도 이러한 문체에 반신반의, 지어 거부감을 갖고 작품조차 읽지 않은것이였다. 좀은 유감스러워졌다. 무라카미의 소설을 읽으면서 또 한번 우리의 작품이 갈수록 관념과 자아속으로 깊숙이 들어가는데, 이는 열독자와의 거리를 멀리 두는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져보았다. 일전에도 언급한적 있지만 여러가지 쟝르를 다루고있는 나에게 그중 한가지만 선택이 주어졌다면 무얼 택하겠는가고 물었을 때 나는 두말없이 동화를 쓰겠다고 대답한적 있다. 그리고 절박히 창작해야할 창작스케줄을 어느 정도 완수했다는 느낌이 올 그때에 가면 모든 쟝르를 접고 동화창작에만 몰두할것이라고 했다. 문학의 원형이라 말하는 체험을 토대로 작가는 작품세계를 형성해간다고 한다. 그러나 상상의 활동을 통해서 작가의 그 체험이 비로소 보편적인 확대와 효력의 힘을 얻을수 있다고 볼 때, 이러한 표현방식이야말로 과학적인 개념과 대응되는 이른바 문학의 궁극적인 단위가 아닐가.  사실 우리들은 환상에 익숙한 독자들이다. 박래품인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말고도 어려서부터 교과서처럼 접해왔던 중국의 고전들인 《서유기》,《봉신연의》,《료재지이》등은 환상작품의 극치인것이다. 독자들은  환상에서 감출수 없는 열망이나 현실비판, 더 나은 세상에 대한 꿈, 미래에 대한 호기심어린 전망, 영원하거나 궁극적인것에 대한 향수 등 다양한 숨은 그림을 찾을수 있다. 이제 와서 구태여 언급하는 환상은 창조의 요람이자 삶을 움직이는 엔진임을 새삼 확인하는것은 덤이다. 《붉은 수수》의 작가 막언(莫言)의 창작담 한구절을 빌어본다. 《오늘날 소설에는 언어도 있고, 이야기성도 있고, 구조도 있습니다. 하지만 뭐가 없는지 아십니까? <신비한 그 무엇>이 없습니다. 소설은 허구적인 신비를 노래하는것이거든요. 소설가가 언어와 이야기, 구조를 다 장악한다고 해서 독자에게 읽히고 위대한 작품이 되는건 아닙니다. 제가 고향을 제 서사구조에 끊임없이 삽입하는것도 이 세가지외에 다른 무언가를 찾기 위해서죠. 고향에는 신화의 세계가 있고, 인간의 령혼을 위로해주는 잃어버린 동심의 세계가 있지요.》  현실과 환상 사이를 넘나드는 이야기를 즐겨 다루어온 막언의 지적에서도 볼수 있다싶이 문학생태학에서 불균형이라 말할수 있을 정도로 환상의 고갈과 쟝르에서 단일을 우리는 보이고있는것이다. 따라서 어찌보면 우리 조선족 독자들의 맛망울도 경직되여 한가지 맛에만 버릇되여버린것 같다. 공상적이면서도 가능성을 지닌 미적표현을 통하여 인간일반의 보편적진실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면서 독자들에게 크나큰 즐거움과 황홀한 미감을 준다는 점에서 이러한 쟝르의 일독을 권장한다.
152    [독서만필-1] 양을 쫓는 남자 댓글:  조회:3407  추천:45  2009-06-05
  김혁 독서漫筆 (1)   양을 찾는 남자     무라카미 하루키의 "양을 쫓는 모험" (상해역문출판사)을 읽다 어느 중국드라마에서 나오는 장면이다. 녀자가 열심히 읽고있는 책표지를 보고 남자친구가 비아냥거린다. 《이제야 무라카미냐? 책 좀 읽고 살어!》 무라카미 하루키, 현시대를 살면서 문화적감각이 있다는 사람들이 그의 소설을 읽지 않으면 대화가 안된다는 정도로 대단한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작가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은 600만부이상 팔릴 정도로 기록적인 베스트셀러행진을 하며 오래전부터 중국, 한국, 독일 그리고 북유럽에서 많은 애독자를 낳아왔다. 중국에서도 80년대 중기로부터 진행돼온 그의 베스트셀러 행진은 지금까지 이어져오고있다. 하루키가 책을 내면 내용을 따질 필요도 없이 사는 사람이 많다. 그만큼 고정독자, 하루키중독자들이 많다고 할수 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대렬속에는 당연히 무라카미 하루키가 끼여있다. 그래서 나는 하루키의 작품이라면 거의 닥치는대로 다 읽었다. 그의 처녀작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부터 《댄스 댄스 댄스》, 단편집과 근작인 《해변의 카프카》까지… 하루키의 작품은 대표작으로 되는 《노르웨이의 숲》(후에 제목을 《상실의 시대》로 개칭)을 중문판본으로 맨 먼저 접했다가 후에 친지가 한국에서 부쳐온 삼진기획 88년 판본으로 다시 읽었다. 오래동안 《좌》의 철쇄에 매여 살아온 우리의 정서와 너무도 앞서간 그들의 성문화때문에 약간의  거부감을 가졌었고 그래서 오히려 기어코 읽었었다. 당시 하루키의 책을 처음 읽고 나는 생각을 많이 할수 없었다. 솔직하고 감성적인 소설속의 주인공들은 현실속에서 우리가 드러내지 못하는 숨겨진 모습이 아닐가? 하는 상당히 혼란스런 느낌을 받아안았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하루키의 팬이 되여버렸노라고 고백한다. 실상 하루키에 대해 잘 알고있는 사람들은 이 책, 《노르웨이의 숲》이 가장 하루키적이지 않은 책이라고 지적한다. 하지만 나에게서 이 소설은 재미는 없었지만 길게 느껴지지 않은것은 정말 신기했다.  무라카미 하루키  우리 독자층, 정확히 말하면 우리 조선족독자층에서 아직도 하루키는 낯설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뒤늦게나마 그의 작품을 환기시키면서 그중 한편을 뽑아본다. 오늘 함께 읽고저 하는 작품은 누구나 아는 《상실의 시대》가 아니라 그 이전에 창작한 《양을 쫓는 모험》이다. 80년대에 출간된 작품을 남해출판사의 중국판본으로 뒤늦게 읽었다. 제목 그대로 양을 찾는 이야기다. 《나》는 친구와 함께 작은 광고회사를 운영하는 리혼남이다. 안해가 집을 나간 뒤 《나》는 새로운 녀자친구와 사귀게 된다. 그녀는 예쁜 귀를 갖고있었기에 전문적인 귀모델을 하고있다. 또한 그녀는 미지의 앞날을 미리 점칠수 있는 기이한 예지능력을 갖고있는데 그녀는 《나》에게 앞으로 양을 쫓는 모험이 시작될것이라고 예언한다. 신비로운 그녀가 예언한대로 《나》의 삶에 양이 걸어들어온다. 어느날, 《내》가 친구와 함께 경영하고있는 광고회사에 어느 우익조직의 비서가 찾아온다. 용건인즉 《내》가 어느 잡지의 화보에 사용한 한장의 사진의 출처를 밝히라는것이였다. 그 사진은 양떼와 혹가이도의 자작나무숲이 찍혀져있는 평범한 사진이였다. 《나》를 찾아온 그 우익조직의 비서는 이렇게 말한다. 일본에는 신비한 양 한마리가 있다. 그 양이 우익조직의 거물과 관계가 있다. 우익조직의 두목으로 승격한 해에 거물은 자주 양의 환상을 보았다고 한다. 아마도 거물의 머리속으로 양이 들어간것 같다. 그리고 그 양이 거물의 탁월한 힘의 원천이 된것 같다. 이미 병상에 누워있는 거물은 의식을 잃고있으며 죽음이 림박해있는데 그가 죽기전에 그와 양 사이의 비밀을 해명하지 않으면 그가 친히 만들어낸 조직은 와해되여 힘을 잃을것이다. 양은 새하얀 털에, 등에 별모양의 갈색 털이 나있다. 그 사진에 찍혀있는 양을 발견해야 하는데 기한은 1개월이내이다. 《나》는 그 양을 찾아내야만 하는 절박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협박에 가까운 압력에 《나》는 예쁜 귀를 가진 녀자친구와 함께 멀리 혹가이도로 향한다. 사실 《내》가 사진의 출처를 밝히기를 거부한데는 리유가 있었다. 고향을 떠나 행방불명이 된 《쥐》로부터 《나》에게 편지가 왔기때문이다. 그 편지에 문제의 양의 사진이 동봉되여있었고, 《쥐》는 그 사진이 자신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고 덧붙인다. 한달이란 짧은 시간내에 양을 찾아야 하지만 어디서도 몸체에 별을 가진 양은 찾아볼수 없다. 《나》와 녀자친구는 호텔에 묵으며 일주일동안은 실마리를 잡지 못한채 시간을 허비한다. 그런데 등잔밑이 어둡다고, 정작 실마리는 《내》가 머물러있는 호텔안에 있다. 호텔의 지배인의 아버지인 양박사에게서 양에 대한 풍문을 알게 된다. 양박사는 30년대에 몸속에 양이 들어갔는데 이어 그의 몰락이 시작되였다고 한다. 그러나 양은 얼마후에 양박사의 몸에서 나가버렸는데, 양은 리용가치가 없어지면, 그 인간속에서 나가버리는 특성을 가지고있다고 한다. 박사의 몸에서 나간 양이, 지금은 거물이 된 당시의 우익 청년속으로 들어갔고 이어 또 그의 몸에서 나와버렸다는것이다. 《나》는 양박사의 이야기에 따라, 그 사진에 찍혀진 장소를 찾아간다. 목장의 한쪽 구석에 미국식의 시골집 2층 건물이 있었는데 한쪽방에 뜻밖에도 《쥐》의 소지품과 의복이 있었다. 하지만 《쥐》는 눈에 띄이지 않았다. 나는 《쥐》를 기다린다. 그리고 녀자친구는 두통을 앓고있었는데, 이상하게도 그녀의 예지능력이 이 목장에 들어온 뒤로부터는 작용하지 않았다. 녀자친구는 목장을 떠나가버리고, 차츰차츰 겨울이 다가온다.  눈이 내리는 날 밤에 《나》는 드디여 기다리던 《쥐》를 만난다. 사실상 《쥐》는 《내》가 이곳에 도착하기 일주일전에 이미 스스로 목을 매달아 죽었었다. 그 죽은 《쥐》의 유령이 《나》를 찾아온것이다. 《나》와 《쥐》의 유령은 맥주를 마시면서 지금까지 쌓였던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쥐》는 그 문제의 양이 자신의 몸속에 들어왔다고 알려준다. 그러나 자신은 양이 지시하는대로 행동하고싶지 않았고, 그래서 양을 죽이려고 결심했으며, 그러기 위해서 《쥐》는 자살을 택했던것이다. 목장에서 돌아와 나는 거물의 비서를 만난다. 그는 《쥐》를 만나기 위해 혼자서 목장으로 찾아간다. 그러나 《쥐》가 장치해둔 폭발약이 터지는 바람에 죽어버린다… 어찌보면 황당하고 혼란스럽기 짝이 없는 이야기, 하지만 책의 마지막장까지 덮고나니 폭풍이 한차례 휩쓸고 지나간듯한 느낌이다. 재미있고 스릴있는 모험, 그리고 양사내라는 초현실적 인물이 가미되여 완성된 읽을거리가 풍성한 소설이였다. 하루키의 다른 책과 마찬가지로 이 책을 읽으면서 흥미를 갖게 되는 점은 어쩔수 없는 운명에 휩싸인 주인공이 시련을 이겨나가는 과정이다. 하루키의 작중인물들은 저마다 살아가면서 갑자기 어쩔수 없는 힘에 이끌려 감당하기 어려운 시련에 당착한다. 자칫 그대로 좌초되여버릴것만 같지만 끝내는 고해의 수면밖으로 떠오르는데 성공한다. 그들에게는 끈질긴 생명력이 있다. 그리고 삶에 대한 애착과 나름의 살아가는 방식이 있다. 그것이 모든 일이 해결되고 모든 사람이 행복해졌다는 중국식의 모식인 대단원(大團圓) 결말 같은걸 기대할수 있는 방식은 아니지만, 마지막장까지 호흡을 달구는 그 불투명함이 하루키식의 모식이라면 모식일것이다. 이 작품에서 인간의 몸속으로 들어가 엄청난 힘을 발휘하는 별모양의 무늬가 있는 특별한 양, 이 《양》은 작가에 의해 용의주도하게 준비된 상징물임은 쉽게 알수 있다. 따라서 《내》가 벌린 양을 찾는 모험은 일상에 봉인되였던 과거를 찾아내는, 말하자면 자아를 찾는 려행이였다고 풀이해본다. 하루키의 작품은 그의 대표작 《상실의 시대》를 읽고서가 아니라 바로 이 《양을 쫓는 모험》을 읽고서 비로소 재미를 붙이기 시작했다. 《양을 쫓는 모험》에서처럼 무라카미 하루키의 많은 작품들은 실험의 씨앗이 철저하게 뿌려져있다. 그의 소설을 읽으면 현실과 의식의 구분이 모호해지곤 한다. 즉 판타지적요소를 보이는 작품들이 많은것이다.  어느 소설에서는 《일각수》라는 현실에는 없는 외뿔동물도 나온다. 하루키는 소설을 쓸 때 곳곳에 환상적인 부분을 설정함으로서 현실이 아닌 소설의 특성을 살려 다시 현실을 돌아보게 하는 기법을 사용한다. 《양을 쫓는 모험》에서 양 사나이나 귀가 특수한 녀인, 자살한 쥐 등등은 하루키가 말하고자 하는 미묘한 부분을 상징하는 주요한 설정이며 아울러 독자에게 그의 소설을 읽는 재미를 배가시켜주는 중요한 설정이기도 하다. 비현실적이지만 이런 요소때문에 하루키의 소설에 끌리는지도 모른다. 내가 늘 꿈꾸면서도 감히 행하지 못하는 꿈의 여유를 하루키의 소설에서 느낀다. 그러나 책을 내려놓고보면 하루키의 소설은 전혀 비현실적이지가 않다. 실재하기 어려운 모험적상황을 전제로 하고있지만 그렇게 설정된 상황은 또 현실주의를 뺨칠 정도로 리얼리티를 띄고있다. 현실과 직접적회로를 갖고있는것이다. 신기한 인물들과 신기한 세계를 합쳐 우리가 살고있는 현실로 만들어낸다. 그에 하루키만의 색이 더해져 알수 없는 소외, 허무 등 도시인의 일상을 보여주고있다. 즉 현실을 되돌아보고 낯설게하는 신비성이 그의 소설의 중요한 특징중의 하나다. 사실은 내가 살고있는 세계도 하루키의 소설에서처럼 여러가지 신기한 일들이 일어나지만 내가 모른채 살아가고있는게 아닌가 하는 착각을 느끼게 할 정도로 현실성을 가지고있다. 삶이 힘들더라도 우연을 기대하며 즐겁게 살아갈수 있게 하는 용기를 심어주는것 같다. 실제로 일본의 권위있는 문예비평가들 가운데는 하루키의 소설은 일본문학이라고 부를수 없다는 정도로 혹평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만의 문체 그리고 미국문화에서나 볼수 있는, 서양문학의 영향이 마음에 안든다는것이다. 미국에서 하루키의 소설은 대학에서 강의텍스트로 쓰이고있다고 한다.  그래서 많은 비평가들은 늘 셔츠에 청바지차림인 이 작가에게 일본 전통적인 문학의 풍요함이 결여된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사실 하루키는 전 세계를 경악시키고있는 새로운 스타일의 작가로서 주목받고있다. 《뉴욕 타임즈》는 《독창성과 매력, 완벽한 기법으로 사로잡는 기쁨과 자극의 천재》라고 그를 격찬하고있다. 《일본소설에는 모종의 전형적인 문체 같은것이 있는데 나는 그런것들과는 전혀 다른데에서 새로운 스타일의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때문에 내 소설을 받아들이기에는 시간이 많이 걸리고 그래서 비판도 많이 받는다.》 하루키의 답변이다. 현실과 환상의 공간을 즐겨 넘나드는 하루키는 개개인의 심리묘사와 의식세계를 그만의 문체로 묘사해준다. 또한 놀라운 관조력으로 모든 작품을 통틀어 그는 현대사회 소외된 군상들의 고독을 나라는 일인칭 시점으로 집요하게 파헤쳐왔다.      그의 작품을 가리켜 《무국적성》이라든가 《가벼움의 미학》이라고도 얘기하지만, 하루키문학의 외면적인 가벼움은 어쩌면 오늘을 살아가는 개인들에게 필연적으로 부과되는 존재의 무거움을 견뎌내려는 몸부림에 대한 표현이라 할 수 있다. 또한 그 무국적성이나 가벼움때문에 변강의 오지인 이곳 사람들에게마저도 이렇게 친근하게 읽혀지고있는것이 아닐가? 순문학을 한답시는 개인적으로는 거개가 대중적이면서도 튀는 소설을 쓰는 하루키가 특별히 좋은 글을 쓴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하지만, 내가 느끼는 하루키의 장점이라면 그의 글을 읽으면 위로받는 느낌을 받곤 하는것이다. 그런 그가 좋아서 그의 대부분의 책을 읽었다. 이상하게도 무라카미의 소설은 내 마음을 강하게 잡아끄는데가 있다. 이는 다른 외국작가들의 작품들을 읽었을 땐 느끼지 못했던 다른 느낌이다. 인물의 내면들이 놀랍도록 나와 비슷하잖은가.오래전에 쓴것이고 외국사람이 쓴것인데도 하루키란 사람이 생각하는 방법이 우리와 완전히 같은데가 있었다.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인간의 존재, 그들의 고독감을 그려내는 우화적 에피소드들이 꼭 서로 닮아있는것이다. 그것이 하루키의 작품에 심취되는 가장 큰 원인의 하나라고 해야 할것이다.  
151    옥상만가(屋上輓歌) 댓글:  조회:3442  추천:33  2009-06-01
. 단편소설 . 옥 상 만 가 (屋上輓歌) -  중국조선족문제테마소설계렬    김 혁   * 이 한 부의 작은 소설을  1990년대 중기 3만여명의 한국초청사기피해자들에게 삼가 드린다.  - 저자 ㄱ ...옥상에서 본 낮달은 그렇듯 가까웠다. 손을 펼치면 잡힐듯한 달은 가까스로 안색을 쓰며 한낮의 빨래줄에 걸린 구접스런 아낙네의 속곳마냥 훤한 중천에 대중없이 걸려있었다. 달은 만궁이 된 활같기도 했고 옻칠이 매끄러운 경대의 서랍속에 들어있는 엘레빗같기도 했다. 사내는 옥상에 말뚝처럼 뻗쳐서서 달을 쳐다보고 있었다. 빗에 생각이 미치자 사내의 잡초처럼 무정한 눈섭이 움씰했다. 며칠전엔가 무심코 체경을 들여다보다 놀랍게도 흰 머리 몇대를 발견했다. 논밭의 돌피를 가려내듯 흰 머리칼을 악지스럽게 뽑아내쳤다. 그결에 검은 머리칼도 함께 뽑혔고 사내는 그만 빗살 몇가치를 분질러 먹고말았다. 이빠진 빗은 합죽이 할망구처러 불썽사나워보였다. 사내는 덴겁히 경대우에 놓여진 화장품설명서로 빗을 덮어버렸다. 그러다 다시 화장대서랍속에 집어넣었다. 그러다 다시 쓰레기통에 슬그머니 던져버렸다. 그런데 제수가 어느결에 그 빗을 쓰레기더미속에서 귀신같이 뚜져내였다. 《이 빗이 그저 빗인줄 아세요.한국산이야요. 한국산!》 제수는 빗을 물증처럼 쳐들고 사금파리 긁듯 변형된 소리로 말했다. 물론 제 남편과하는 말이였지만 그 소리는 옆칸에 있는 사내가 들을수 있을 정도로 높았고 분명했다.한국제라면 빗마저 좋을가? 그 빗을 쓰면 뭐 염색 안하고 약 안써도 흰머리가 검은 머리 될가? 사내는 이렇게 속으로만 중얼거렸다. 그리고 해종일 남의 집 장독대 깬 애가 훈장의 눈길 피하듯 제수를 감히 정시하지 못했다. 그만큼 맞아서 부어오르기라도 한듯 눈두덩이에 유난히 살이 많은 제수의 눈빛은 마냥 장마철 하늘처럼 흐렸고 도무지 개일줄 몰랏다. 기실 제수에게는 빗이 많았다. 쥐이발처럼 빗살이 촘촘한 앙증맞는 빗이 있는가 하면 회자수의 칼처럼 무지스레 큰 빗도 잇었고 고대무사의 랑아봉처럼 괴상하게 생긴 빗도 잇었다. 그렇게 많은 빗중에서 빗살 몇가치를 분지른 일이 사내에게는 칠거지악을 범하기라도 한듯 두고두고 단죄할 일로 치부되였다. 조카애가 연필 깎다가 필촉을 분지르자 제수가 필요 이상으로 악청을 질렀다. 《그래 잘헌다. 잘해! 다 꺾어먹어라, 먹어! 연필도 꺾어먹고 집안기둥뿌리도 꺾어먹어.》  그 말속에 분명 자기를 향한 가시가 섞여있음을 잘 알고있었지만 사내는 항변거리를 잃고있었다. 이제 제수앞에서의 아주버님의 도고함 같은것은 사내에게 없었다. 아침엔 모두부, 점심엔 두부볶음, 저녁엔 두부장을 대충 응부해 던져주다싶이 하는 메뉴가 단조롭기 짝이없는 음식도 그릇소리 낼세라 눈치를 봐가며 먹어야 하는 처경이였다. 일일이 여삼추같았지만 동생네 집에 얹힌지도 어언 넉달째 가까워온다. 사내는 자기가 저서편으로 짜부라져가고있는 낮달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도 때도 모르는듯하지만 체념한듯 모두들앞에 무기력하게 떠있는 창백한 낮달이...   겨울탈곡장처럼 호젓한 이 옥상의 존재를 발견하게 된것은 눈두덩이에 유난히 살이 많은 제수의 눈빛이 점점 빙점아래로 추락해내리던 어느날이였다. 집에서 빈둥한둥 놀고있지만 왕모처럼 리유없이 당당햇고 또 자기에 대해 한입 가득 떼문 과일속에 옹송그리고있는 벌레처럼 질색하는 제수와 한공간에 있기 어려워 일없이도 집을 나서군 했다. 오늘은 어데로 가서 씨나락처럼 자잘하게 널린 시간을 까먹을가 궁리하던중 랑하에 낸 비상구를 발견했고 움덮개같은 그 비상구문을 따고 올라서보니 생각보다 훌륭한 옥상의 공간이 펼쳐져있었던것이다. 옥상에는 아무도 없었다. 대신 뚜껑을 열어젖힌 솔같은 안테나 열두개가 부착되여있었고 널직한 헛간이 없는 아빠트단지에서 분명 어느 늙은네가 부득부득 우겨서 가져왔을 김치독(혹은 장독?)세개가 설둥한 기분으로 놓여있었다. 그리고 그보다도 더 어울리지 않게 자전거 한대도 있었다. 안장의 해면도 다벗겨지고 바퀴의 김도 빠진 헐망한 자전거는 해부실의 골조표본처럼 앙상한 모습으로 옥상우의 한 귀퉁이에 넘어져있었다. 분명 안테나 부품을 담아왔을 종이박스 한개도 있었고 안장공들이 마시고 버렸음직한 빈깡통콜라병 네개도 뒹굴고 있었다. 어중간한 뙈기논만큼 면적이 넓은 광고판이 옥상의 이마우에 죽쳐앉아잇었다. 아래에서 그 광고판을 한동안 쳐다본덕 있었다. 광고판에는 수기를 건뜩 쳐들고 하늘로 날아가는 비행기 한대가 그려져있었고 그 아래쪽에는 비행기보다 엄청 더 큰 한복차림의 아가씨가 극속의 요정처럼 찬란한 웃음을 지으며 안내자인듯 한손을 쳐들고있었다. 그리고 광고판에는 이런 글발도 큼직히 씌여있었다   한국행 비행기표판매(서울특별할인)   본 판매처에서 비행기표를 구입한 분들은 무료로 공항까지 모셔다 드립니다. 광고판에는 네온싸인이 둘레를 치고있어 밤에도 엄청 큰 그 아가씨는 의연히 엄청난 유혹의 웃음을 발산하고있었다. 광고판이 던져주는 그늘밑에 종이박스를 펴고 누우니 제법 아늑한 휴식터가 됐다. 옥상평면에 콜타르를 칠했기에 냄새가 조금 나긴 했지만 제수가 쓰는 야릇한 향수내가 밀도 짙게 배인 집안보다 좋았고 시공중인 가까운곳의 공터에서 울려오는 신음으로 시끌시끌 했지만 제수의 밑도끝도 없는 투덜거림에 비하면 오히려 듣기에 편했다. 비오는 날을 제하고는 사내는 꼭꼭 옥상우로 오르군했다. 그 무슨 선경속에 지어진 다락방처럼 옥상이 사내에게는 둘도 없는 보금자리였다. 때론 해종일 옥상에 누워 까딱치 않았고 어느 한번인가는 옥상에서 밤을 지낸적도 잇었다. 동생과 제수가 말세처럼 싸움을 벌렸는데 그 내용인즉 또 한번 구실못하는 아주버니의 존재로 인기된 설전이라 피해서 옥상으로 올랐다가 그만 잠이 깜빡 들었던거였다. 한여름이라지만 열기가 식혀진 새벽녘에는 은근히 추워 잠을 깨였고 그 시간에 다시 들어가기도 무엇해 옹송그리고 앉아버렸다. 추위와 서러움을 잊어보련듯 깜박깜박 사라져가는 새벽별을 구명선을 쫓아가듯 집요히 세고 또 세였다. 이렇게 사내는 옥상의 환경에 차츰 습관이 되였고 높은 옥상에서 작은 몸에 담긴 버거운 근심걱정을 해소하는것이 사내의 일상의 전부로 되였다.                                  ㄴ   사내는 화장실의 거울속에 비친 자기를 남보듯 유심히 뜯어보았다. 눈자위가 어쩐지 맑지 못하고 흐릿했고 수염터기는 중등을 꺾은 돌피처럼 다시 집요히 고개를 쳐들고 있었다.그 볼썽사나운 모습을 선들한 면도칼로 박박 밀어버렸으면 시원하련만 동생네 집에 면도칼은 없고 대신 전동면도기를 사용하고있었다. 전동면도기를 쓰니 어쩐지 시원치 못한데다가《면도기 함께 쓰면 피부병 옮는답니다.》는 제수의 지론에 제수가 자리를 비운다음 도적면도를 겨우 하다보니 사내의 턱주가리는 마냥 불효자식을 둔 아비의 산소마냥 그닥 깨끗치 못했다. 거울속에서 사내는 또 틈사리를 비집는 흰머리 몇대를 보아냈다. 이제 그것을 뽑기마저 귀찮아졌다. 제수가 집을 비운뒤면 사내는 살초제가 비에 씻긴 풀처럼 잠시나마의 생기라도 찾은듯하였다. 공밥먹는것이 안쓰러워 일이나마 좀 찾아하려 해도 완벽함에 가깝게 깔밋하게 꾸며진 현대화한 아빠트에서 무지렁이 농촌사내가 찾아할 일은 보이지 않았다. 구들장 뜨끈뜨끈하게 불이라도 때맞추 때주려해도 스팀시설이 있는 집이였고 간혹 무거운 액화가스통이나 바꾸어주려 해도 액화가스까지 들어와잇었다. 제수가 하는 본을 내여 진공청소기로 집안청소를 하려 했으나 흡진기를 어떻게 작동하는지 몰라 눈가까이에 쳐들고 장님 코끼리 다리 만지듯 허우적거렸다. 마침 그 모습을 제수가 보고《그거 청소기야요. 장난감 아닙니다.》고 조소를 흘리는 바람에 그 일조차 찾아할수 없었다. 다행히 소학교에 다니는 조카애를 아침저녁으로 데려다주고 맞아주는 일이나마 그에게 차려졌다. 그 일조차 없었더라면 사내는 아마 옥상에서 더는 내려오지 못했을런지도 모른다. 그일말고도 사내가 하는 일이 또 하나 있었다. 제수는 결벽증세처럼 집안을 닦고 털고 또 닦았다. 화장실의 욕조며 세면대도 매일같이 시악에 가깝게 박박 닦았다. 허나 수세식 변기통만은 부시기 싫어했다. 공연히 코를 싸쥐였고 그저 소랭이에 물을 듬뿍 담아서는 불끄는 사람처럼 와락와락 끼얹군했다. 그것을 보아내고 사내가 변기통을 부셔주었다. 그런 구접스런 일을 사내는 명심했고 열심히 했다. 순간에는 더러웠고 야속했지만 하고난 뒤면 웬지 속이 편했다. 아무렇거나 일거리만 접하면 한가슴 꽉 미여지게 실렸는 근심과 걱정과 한을 잊고 덜어낼수 있을것 같았다.   여느때처럼 사내는 수세식변기의 물을 틀었다. 물은 변기속에서 작은 소용돌이를 만들었고 꿀꺽하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변기통을 멀거니 들여다보며 사내는 자기의 행복이며 희망이며를 이렇게 흔적도 없이 꿀꺽 삼켜버린 장본인을 생각햇다. 또 한번 코김 섞인 한숨을 하앟게 내쉬고나서 사내는 걸레를 집어들었다. 닦지 않아도 관찮을 변기통속에 세척액을 뿌렸다. 끈적한 세척액은 변기통속에서 송진처럼 눅진히 흘러내렸다. 사내의 가슴속에서 그렇게 피고름이 흘러내리고잇었다.   딩동!초인종이 울렸다. 제수가 왔냐부다고 사내는 덴겁히 달려나가 문을 열어제끼느라 부시럭거렸다. 안전장치가 여러겹으로 된 방범문을 사내는 어쩐지 열기 어려워했다. 그저 문설주에 박은 못에 문고리끈을 돌돌 감쳐매였다가 다시 돌돌 풀어내던 고항집의 사립문과 달리 도깨비주문을 외워야 열리는 전설속의 동굴문처럼 문을 열기가 지극히 어려웠다. 제수의 내놓은 야유속에 소학생계집애인 조카가 문을 손쉽게 따는것을 희한한 눈길로 지켜보았던 그였다. 간신히 문을 열어젖히고보니 낯모를 아낙네가 문켠에 서있다 껴안고잇던 보따리를 내밀며  《김밥 사십소.속 많이 넣고 참기름 많이 바른 김밥인디용.》하고 홍두깨 내미는 소리를 한다. 집에 온 하루 박혀잇노라면 이런 불청객을 만나는 수가 많다. 바닥에 깔쪽무이판을 팔러 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배연기 청소를 하겠느냐며 찾아오는 사람도 잇고 어느 한번은 식칼 파는 장사군마저 찾아온적 있었다. 《안삽니다.》 덜 좋은 기색으로 밀치며 문을 닫으려는데 아낙이 문고리를 잡아쥐였다. 애원처럼 간청한다. 《사십소. 한토막에 1원50전씩 하는걸 1원씩 드릴께용, 이거 한국김으로 만든건디.》 《안산다는데 왜 이럼둥? 정말 이상한 아줌마네.》 증을 버럭 내며 체면에 철판을 깐 장사군을 흘려보던 사내의 눈빛이 일순 일상한 빛으로 번져나갓다. 이윽고 사내의 입에서 반가운 음성이 신음처럼 튕겨나갓다. 《아니, 이거 아니시오?》 《부산댁!》,고향에서 인기가 유포했던 녀자. 산재지역에서 이사를 온데서 말투가 함경북도투성인 이 지여과는 달랏고 남편이 마을에서 맨 처음으로 부산으로 로무를 가게 된데서 지어졌던 별명이였다. 빚을 져서 나간 그남편이《노가다》판에서 사고로 비명에 죽은데서 손해배상비를 받느라 변호사를 청한다,북경에 있는 한국대사관을 찾는다 하며 진동한동 뛰여다니다 끝내는 손해비 못받고 죽는다며 농약을 마셨다가 되살아나는 험고를 치르며 동네 부산히 굴어 쌍증의 이미지로 별명을 굳힌《부산댁》이였다. 상대에서도 사내를 알아보고 환음을 질렀다. 사내는 저도모르게 서둘러 아낙을 집안으로 청해들였다. 《우와~, 삐까뻔쩍 잘 해놓구 사는구만 용,잉.》 얼음에 자빠진 소처럼 지릅뜬 눈으로 집안을 둘러보던《부산댁》의 감탄이 자지러졌다.     《끝내 성공했시용잉.목돈 잡아온다구 헐랑 떠난지 몇해 자알 되더니만용. 와-이거 학교 운동장같습니다. 이만치로 집장만할라면 돈냥 많이 부셨지용 잉.》 《부산댁》의 경탄이 발에 발을 잇는 바람에 사내는 미처 해석할 틈도 없었다. 그리고 제집이 아니라 동생네 집이라 까밝히기도 어려웠다. 《날래 앉으시쥬.》   그저 자리만 거듭 권했다.《부산댁》은 권하는 쏘파가 아니라 주단을 깐 땅바닥에 훌렁 앉아버렷다. 《그동안 어떻게 지웠습니까?실루 오래간만인데유.》   사내는 오랜만에 만나는 동네 사람에게서 고향소식이나마 귀동냥해 들으련듯 다잡아 물엇다.《부산댁》이 사내를 힐끗 쳐다보았다. 눈망울에서 벼락불처럼 스쳐지나가는 착잡한 심경을 사내는 순간이였지만 분명 보았다. 《부산댁》은 공연히 그릇을 감싼 보자기를 꽁꽁 비끄러맸다가 풀었다 다시 비끄러맸다. 코를 훌쩍 치걷고나서 방금 전과는 달리 힘겹게 한마디를 짜냇다. 《말마시용. 말두 마시라구용. 미친년 오밤중에 소탄다드니만 나가 꼭 그 꼴인디용》...                                        ㄷ 사내는 아스팔트와 황토길이 린접된 곳에서 뻐스에서 내렸다. 시교에서도 한참 떨어진 고향까지 곧바로 대여가는 뻐스가 있긴 했지만 그러자면 차표가 좀 비싼편이였다. 예전 같으면 외식뒤끝에 호기스레 받지 않을수도 있을 거스름돈값이였지만 지금에 와선 땡전마저 금쪽같게 여겨지는 처경이였다. 이마가 익어번질듯한 땡볕을 이고 사내는 먼지가 풀썩이는 황토길을 따라 스적스적 걷기 시작했다. 황량하기 짝이 없는 마음의 묵달밭에 비해 그런대로 길량켠에 펼쳐진 논밭에서 벼의 자람새는 좋은 편이였다. 오래만에 맡아보는 순수한 물내음 땅내음에 사내는 연신 코방울을 벌름거렸다. 느닷없이 만난《부산댁》의 출현은 사내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에 못이겨 사내는 오랜만에 실로 오랜만에 고향길에 발을 들여 놓은것이였다. 곰바지런히 다리를 놀려 사내는 드디여 마을에서 조금 벗어나있는 촌소학교까지 닿았다.원체 학생래원이 적어 조용하던 학교운동장에는 이상할만치 사람 하나없었다. 교학중이나보다고 사내는 토담아래에 쭈크리고 앉아 기다렸다. 그러던 사내가 홀연 스스로 머리통을 철썩 때렸다. 방학중이라는 생각이 무딘 더듬에 뒤늦에 잡혔던것이다. 토담곁에서 사내는 엄마치마꼬리를 잃어버린 미아처럼 한동안 서성거렸다. 교정가까이에 있는 물가에서 애들이 왁자지껄이는 소리가 들렸다. 사내는 막무가내로 그곳으로 향했다. 마을길로 자전거 몇대가 달려 오고있었다. 사내는 덴겁히 강가의 버드나무에 몸을 숨겼다. 사내애 몇몇이 자전거를 타고 어데론가 신나게 달려가고있었다. 탈옥한 죄수처럼 나무뒤에 숨어서 사내는 낯익으면서도 낯설은 애들의 모습을 헤아려보았다. 이 몇년간 애들이 물오이 크듯한데서 마을의 누구네 집 애들이라는것을 겨우 알아볼수 잇었다. 자전거가 멀리 사라져서야 사내는 나무뒤에서 몸을 일으켜 강으로 다가갔다. 깝치동이 사내애 몇이 옅은 물목에서 송사리떼처럼 어우러져 놀고있었다. 사내가 애들을 불렀다. 물장구치던 애들이 일순 손을 멈추고 일제히 사내쪽으로 머리를 돌렷다. 그중 한 애가 발가벗은 몸으로 고추를 달랑이며 부끄럼없이 뛰여왔다. 해볕에 그을려 오지독같아뵈는 애에게 딸애 이름을 대며 아느냐고 물었다. 《예- 그녀자앨 그럽니까?》   잘 안다는듯 소리질러놓고 애는 혀를 홀랑 내밀었다. 《술깡치》계집애라니??사내는 연유를 따져물었다. 애는 남의 별명을 부른것이 안됐다는듯 박박 깎은 머리를 싹싹 긁으며 어줍게 해석해주었다. 그 녀자애의 할머니가 돼지를 치는데 그 애와 함께 작은 밀차를 밀고 향에서 꾸리는 술공장에가서 술깡치를 받아오군 한다고 한다. 할머니를 도와나선 녀자애의 몸에 술깡치냄새가 배여 반급애들로부터 그런 별명으로 불린다는것이였다. 오지독같아뵈는 애의 말을 들으며 사내는 스프링처럼 튕겨오르는 흥건한 울음덩이를 울대뼈를 덜걱이며 연신 삼키고 있었다. 애가 볼가봐 얼른 머리를 돌렸으나 밤이슬같은 눈물방울이 그만 눈귀로 꾸역 배여나오고 말앗다. 《근데...손님은 누굽니까?》 애의 이상한 눈매가 사내를 향해 찔러왔다. 사내는 엄지로 눈가에 맺힌 눈물방울을 찍어내였다.그리고 신문지에 싸서 겨드랑이에 꼭 끼고왔던 물건을 애에게 내밀었다. 딸애에게 전해달라고 백당부를 했다. 그 속에는 사내가 딸에게 주는 선물이 들어있었다. 선물이란...조카애가 쓰다 버린 연필꽁다리와 크레용 몇개 과일냄새나는 고무 지우개, 주물다가 싫증나 버린 고무떡, 얼룩 곰모양으로 만들어졌으나 곰의 한쪽귀가 떨어진 연필깎개 그리고 때가 좀오른 인형하나였다. 가정조건이 윤택한지라 조카애는 연필도 몇번안쓰고 버렷고 인형도 새로운 양식이 나오면 산지 얼마 안되는곳도 던지군했다. 그런걸 주어모았다가 다시 주려니 제수가 쓰레기 장사군이냐며 질색했다. 하여 딸애에게 주려고 꿍져두엇던것이엿다. 조카애보다 두살가량 우였지만 여직 향마을을 벗어못보고 할머니를 도울수 있게끔 웃자라있는 딸애에게는 남의 퇴물림일망정 하늘이 내린 복음처럼 반가운 례품일것이였다. 누가 볼가봐 집에도 들리지 못하고 인차 자리를 뜨면서 사내는 연신 고개를 꺾어 마을쪽으로 눈길을 돌렷다. 몇몇 지붕너머로 텔레비죤 안텐나가 넘어질듯 찌그러져있는 자기집쪽에 시선을 박았다. 죄송하꾸마,어마이!죄송하꾸마, 죄송하꾸마... 사내는 혼 나간 사람처럼 입속말로 자꾸만 중얼거렸다. ...옥상의 장독대우에 진 콜라병이 놓였다. 사내는 돌덩이 하나를 주어들고 콜라병을 향해 던졌다. 콜라병을 맞히지 못했다. 다시 한번뿌렸다. 콜라병은 여전히 넘어지지 않았다. 까닭없이 울화가 치민 사내는 가까이 다가가며 돌멩이를 힘껏 내쳤다. 쩔그렁! 파렬음이 울렸고 콜라병대신 장독대가 그만 깨여져버렸다. 그와 함께 사내는 마음속에서 무언가 와지끈 깨여지는 소리를 분명듣고 잇었다. 장독대처럼 으깨진 마음을 사내는 어떻게 수습햇으면 좋을지 몰라했다. 옥상의 변저리로 다가가 바닥을 짚고 골만 내민채 아래쪽을 내려다보았다.꿈길인양 거리가 아득히 보였다. 거리에선 둥지털린 개미떼처럼 사람과 차량들이 오글거리고있다.그 어떤 이질감으로 사내는 아래쪽을 향해 흥건한 침덩이를 뱉았다. 침은 높은 곳의 실족자처럼 오래도록 떨어져내렸다. 그 침에 집요한 시선을 달고 사내느 키들키들 영문 모를 웃음을 혼자서 웃었다.                        ㄹ   1층집 문 손잡이에 벼룩신문 한장을 돌돌 말아 꽂고 어느 곽밥집의 광고를 붙였다.   2층집 문 손잡이에 벼룩신문 한장을 돌돌 말아 꽂고 어느 곽밥집의 광고를 붙였다.   3층집 문 손잡이에 벼룩신문 한장을 돌돌 말아 꽂고 어느 곽밥집의 광고를 붙였다.   자질구레하기 짝이 없고 해종일 층계를 오르내려야 했으며 게다가 사람들의 눈총을 덤으로 얹어야 하는 일이였기에 너나가 꺼려했지만 사내는 이 일을 선뜻 접했다. 동생의 주선으로 어느 광고회사의 허드레 광고원으로 잠간이나마 취직을 한것이다. 옛날급진 인사들이 네거리를 삐라를 살포하듯이 거리와 골목, 가가호호를 돌며 광고문을 내붙였다. 가련할 정도로 적은 박봉에 또 언제 어디서 쫓겨날지 모를 직업이였지만 사내는 일에 신명을 바쳤다. 눈두덩이에 유난히 살이 많은 제수에게 생활비라 이름지어 받쳐 올리고싶엇고 조카에게 필갑 한통이라도 사주고 싶엇다. 그래야만 아무일에라도 자기를 혹사해야만 위구로 쭉쪽린 마음을 위무할수 있을것 같았다. 전위선질병에 대한 치료며 유방 살리는 크림이며 포경수술이며 치질근치며 툽상스런 문구가 적혀진 광고문들을 한아름 꿍져안고 사내는 땀에 눈알까지 젖어서 층계를 오르고 층계를 내렸다.   농가에서 자라 뼈를 굳혔기에 사내는 원체 하루라도 일하지 않으면 사지가 욱신거려 못배기는 성미엿다. 가래질,후치질...농사일에 막힘이 없었고 이불장 짜고 유선 방송을 놓을줄도 알았으며 종자 다른 흑태(검정콩)도 심었고 병아리도 까고 물고기도 키우고 한데서 가근방에 이름이 자자한 감농군이였다. 그렇게 흙에 묻혀 살면서도 항상 달긋한 미소만 휘뿌리며 지내왔던 사내의 얼굴에 무거운 암운이 서리게 된것은 요몇년사이의 일이였다.   할수무가내로 동생네 집에 얹혔던 애초에 사내는 어느 골목길에 자전거 수리점포 하나를 차렸다. 원체 손부리 탐탁한데다가 마음씨 허랑해서 손님들이 많이 들었다. 더우기 도회지에는 자전거를 교통용으로 사용하는 이들이 수자를 셀수 없는 별처럼 많았고 거의 모두가 의표는 그런대로 보아줄만 했지만 잔손질 같은데는 전혀 숙맥인 량반 타입들이여서 수입이 짤짤했다. 눈두덩이에 살이 유난히 많은 제수에게 고기,채소값을 내줄수 있었고 조카애의 군입질먹이도 도맡아 사주었다. 그러던 사내의 점포에 어느날인가 염마전의 사자같은 녀석이 나타났다. 엄랑이 모지락스럽게 크고 살벌해보이는 녀석은 사내가 일껏 형체라도 일구어놓은 점포를 산산이 짓부수었다.   녀석은 사내의 고향에서 강을 하나 사이둔 한족마을의《쑹개》라는 자였다.사내는 쑹개네 집에서 5푼리자로 거금을 빌렸다. 사내네 마을에서 이렇게 한족마을에 가서 변놓이돈을 맡는 조선족들이 많았다. 태반을 넘겼다. 한족사람들은 조선사람들이 내버린 밭을 헐값으로 맡아 부쳤고 그렇게 번 돈으로 쌓아올린 밑천을 다시 조선사람들에게 변놓이를 했다. 년이 지나도록 사내네 집에서는 원금을 물지 못했을뿐만아니라 리자가 원금을 훨씬 넘겼다. 리자도 싫으니 원금이라도 돌려달라고 극성부렸지만 그렇게 농부일생 다 바쳐도 만져못볼 거금을 물어내는수가 없었다. 하는수없이 빚으로 처분해 밭을 내주었고 소를 팔았다. 그래도 안되니 집마저 팔았다. 허나 산같은 빚짐에서 겨우 돌멩이 몇개를 덜어내는 시늉에 지나지 않았다. 원체 마을에서 싸움질에 지릅났고 구치소에도 들렸다 온적 있는《쑹개》의 인내가 드디여 한계를 넘었다. 사내를 잡아다 자기집 김치움에 가두었다. 물 한모금 주지 않았다. 그렇게 돼도 불모로 잡힌 사내를 구해줄 사람이 없었다. 빚군의 다닥질에 더는 못배기고 안해는 집이고 딸년이고를 버리고 가출해버렸다. 어느 한번 발신주소도 없이 돈 몇천소시를 부치고는 지금껏 종무소식이다. 청도의 어느 한국합자기업에서 한국사람들을 상대로 밥을 해준다는 애기를 들었다. 또 누군가는 서울지하철에서 봤다고 했다. 이젠 동생의 손을 더 바란다는것도 참 어려운 일이였다. 동생에게서 언녕 적잖은 액수의 돈을 꾸었던것이다. 기실 동생과는 동부이모의 사이였다. 아버지가 세상을 버린 뒤 맏이인 사내는 어머니를 모셨고 동생은 창졸한 결혼과 함께 분가를 하였기에 어쩐지 동생과의 사이가 서름서름 해젔다. 한낱 촌녀자인 어머니와 소학교에 다니는 딸애로서는 빚군들의 횡포에 그저 떨고 있을뿐이지 어찌해볼 도리가 없었다. 빛 한불기 없고 습기가 지근거리는 어둠속에 쥐새끼 울음소리만이 찍찍 섬찍하게 들려오던 그 김치움에서의 시간을 사내는 영영 잊을수가 없을것 같았다. 다행히 《쑹개》의 로모가 가만히 김치움을 열어주어 이튿날엔가 사흩날엔가 몸을 뺄수가 있었다. 숨어있다가 또《쑹개》의 눈에 띄였고 광분하는《쑹개》의 삽날에 잔등을 찍혔다. 향위생소에서 응급처치를 대충하고는 그날로 사내는 마을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파출소에 신고하라고 곁에서 권유를 했으나 스스로 자초한 일이였고 바꾸어 처경을 따져보면 자기도 그렇게 많은 돈을 남에게 떼우고 온곱게 기다리고만 있을수 없을것 같았다. 그렇게 꿈에 보기마저 두려웠던《쑹개》를 외나무다리에서 만나듯 점포에서 만났던것이다. 한낮의 아닌 횡포에 길가는 사람들이 나서서 시비를 따졌고 누군가는 110방폭경찰대대에 신고전화를 넣었다. 그 란리통에 사내는 자전거수리기구고 뭐고 팽개치고 사람들의 틈바구니속에서 다시 한번 행적을 감추었다. 그리고는 여직껏 내내 눈두덩이에 살이 유난히 많은 제수의 수모를 감내하며 깁에만 붙박혀있었던것이다. 그러면서 한사람을 찾았다. 함께 흑태를 심어 가꾸던 《검정콩》이라 불리는 검정콩처럼 얼굴이 검실검실한 이웃을 감질나게 찾았다. 촌에서 맨먼저 치부를 했고 맨먼저 도회지로 나온 순발력있는 친구였다...     4층집 문 손잡이에 벼룩신문 한장을 둘둘 말아 꽂고 어느 곽밥집의 광고를 붙였다.   5층집 문 손잡이에 벼룩신문 한장을 둘둘 말아 꼭고 어느 곽밥집의 광고를 붙이...려던 사내는 등뒤에 인기척을 느끼고 돌아섰다. 늙수그레한 로파 하나가 어느결에 등뒤에까지 와 서있었다. 이어 또 한명의 로파가 헐씨금이며 층계로 올라왔다. 로파들의 짓물린 눈확에서 사내는 적의를 읽었고 이어 두 로파의 팔에 죄다 붉은 완장이 둘러져있음을 보아낼수 있었다.   《무슨 짓거릴 하고있소, 지금?》 먼저 올라온 로파가 카랑카랑한 소리로 따져물었다.   《광,광고원인뎁쇼?》   로파들의 느닷없는 위세에 질려 사내는 저도 모르게 말을 더듬거렸다. 《그게 제집 문창이라고 아무데나 바르고 붙여유?》   뒤미처 올라온 로파가 더 큰 소리로 채무했다. 로파들이 소리소리 지르는 바람에 굳게 닫혔던 방범문들이 열렸고 집주인들이 하나 둘 뛰쳐나왔다. 《할마이들 잘 붙들었어요. 그렇찮아도 이런 얌치없는 광고쟁이들 만나면 단단히 혼뜨검 줄려 했는데. 이 문짝 좀 보세요, 마마투성이 만들어놓은걸.》 《이건 시용을 흐리우는 행위입니다.》 《이런 사람 처치하는 법규가 나와야는건데...》 《요즘 잔 물건이 자꾸만 잃어지는데 이런 사람들 꿀꺽한것이 틀림없어요.》   사각 지대로만 알았던 아빠트층계에 어디에서 왔는지 순식간에 숱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문에 더덕더덕 나붙은 광고딱지를 두고 중구난방 의분을 토해냈다. 사내는 일순 자기를 어떻게 주체했으면 좋을지 몰라 쩔쩔 매였다. 천하죄를 혼자 지은듯 묶인 사람처럼 서서 말매를 맞기만 했다. 완장을 낀 로파 둘이 전체 거주민들을 대표하여 사내에게서 벼룩신문과 광고문들을 압수했다. 그리고 벌금을 하라고 했다. 저그만치 200원을 내라고 했다. 사내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호주머니 구석에서 땡전 몇푼만 달그락거릴뿐 어중간한 액면의 지페장을 만져본지도 아주 오래되였다. 그 무표정한 기색을 거역으로 알고 사람들의 분노가 바람을 맞은 불씨처럼 더 크게 살아올랐다. 완장을 찬 로파 둘이 다시 한번 거주민들을 대표하여 사내의 호주머니를 들추었다. 겨우1원50전을 들추어냈다. 그러자 이번엔 벌로 문에 붙인 광고문들을 청소해내라고 했다. 누군가 물 한바께쯔를 가져왔다. 또 솔까지 가져왔다. 사람들의 분노는 이제 조금 사라진듯했고 대신 막간극을 보듯 흥미에 절은 눈길들이 사내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있었다. 사내는 지령을 받은 로보트처럼 솔을 넘겨받았다.머리속은 해빛에 드러난 사진종이처럼 하얗게 비여있었다. 사람들의 살같은 시선을 뒤통수에 따갑게 느끼며 솔에 물을 뭍혀 기게적으로 문짝을 박박 문지르기 시작했다. 그 사람들의 틈바구니속에서 김밥보자기를 든《부산댁》이 환영처럼 보였다. ...《부산댁》은 달팽이집같은 세방에서 살고있었다. 생활의 틈바구니에 찡긴 사람들의 피여날줄 모르는 메마르고 야윈 흔적이 처처에서 보이는 집이였다.   《나 이런데서 살아용, 그 집에 비함 허청간 같지유,잉.》    부산댁은 지저분하게 널린 옷가지들을 치우며 자기네 루추한 모습을 보이는것이 무안한듯 연신 토를 달았다.    컵술 두개를 놓고 김밥을 만들다 남은 끄트머리를 안주로 하여 둘은 낮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사내는 접용당한 마음을 잊으련듯 덧없이 술을 들이켰고 《부산댁》은 그 마음을 무마해주련듯 곁들어서 함께 마셨다.《부산댁》은 독한 소주도 남정네 못잖게 잘했다.   《속창이 타서 재가 될 땐 그래도 이 빼갈이  젤이지용.》    남편을 해외에서 잃었고 그 손해배상비를 받아낼려고 소갈데 말갈데 헤매다보니 집안이 쑥밭이 돼버렸다. 외지서 시집온지라 함께 아파해줄 사람,속시원히 기대여 울 사람도 없는데 그런 와중에 고맙게도 딸년이 총기가 있어 음악쪽에 큰 기량을 보이는지라 그것이 살아나갈 계기가 됐다. 딸애를 위해 집 팔고 저건이 좋은 도회지로 단연 이사를 하고보니 지금 이꼴이란다. 김밥장사도 애초에는 돈냥 될만하더니 여사인 한국주방장까지 모신 전문 김밥집이 서는 바람에 그저 입심이나 하기에 족하단다.   《나 한국 갈꺼애용. 뼈를 부시든 피를 바치든 한국 나갈꺼애용.》    지금의 곤경에서 벗어나고 태깔을 벗으려면 그래도 한국으로 나가얀다고《부산댁》은 추병을 뒤에 바싹 달고 벼랑까지 이른 소장처럼 결연히 말했다.   《빛깔나진 못해도 남부럽진 않게 자알-살던 우리가 왜 이런 험지에 빠졌는지 쇠통 모르겠습니더.》   《부산댁》의 락담에 옮아들어 사내도 술 한잔에 탄식 한번 뱉아냈다. 그리고 대창이나 하듯이 이번엔 자기 신세담을 풀었다. 김치움에 갇히던 얘기며 녀편네를 찾아 낯설고 말도 통하지 않는 산동에서 헤매던 얘기며 눈두덩이에 살이 많은 제수가 어려워 잔기침도 소리 죽여가며 해야하는 처경이며...사내가 애기를 하는동안《부산댁》은 코방을을 잡고 찬 바람을 들이키며 내내 울었다.   《나가용! 우리 꼭 한국 나갑시다용. 나갔다와서 잘 살아봅시다용!》 차마 더 들어 내기 어려운듯 사내의 말을 중등 자르며《부산댁》이 또 한번 철규처럼 부르짖었다.   《가야지 가! 근데 그게 어디 동네마실 가는것처럼 그렇게 쉬운 일인감...》   《부산댁》의 류황불처럼 황황 피여오르는 눈길을 피하며 사내는 혼자말처럼 중얼거렸다.    컵술 두개를 더 가져다 마셨고 두사람은 취기에 흠씬 젖어들었다. 술기운에 발가우리해진《부산댁》의 도화볼에 언뜻 눈길이 미치는 순간 사내는 부지중 녀자를 머리속에 의식했다. 그동안 빚에 물려 음지쪽에서만 허우적이다보니 따스한 녀자의 몸을 가까이 한지도 까마득한 어제로 잊혀졌다. 동생네 집에 얹혀있으면서 무의식간에 두사람이 방사를 치르는 소리를 들은적 있었다. 생활이 윤택하니 마음도 편했고 마음이 편하면 향락을 탐하는 법.동생네 부부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그짓에 탐닉하고 있는것같았다. 그때마다 사내는 자기가 외려 덜미를 붉히며 덴겁히 자리를 피하군했다. 자리를 피해 옥상에 올랐고 하늘과 맞닿을듯한 옥상에서 맞은편 마천루꼭대기에 부착된 광고판에 그려진 금발머리 녀자를 보며 자위를 했다. 주리고 억눌린 몸과 마음을 간신히 달랬다. 허무같이 진묽은것이 한처럼 뿜겨나와 빛광이 란무하는 거리로 후둑후둑 떨어져내리는것을 실의에 빠져 지켜보군했다.   《부산댁》의 얄쌍한 얼굴에서도 사내는 분명 혼자사는 녀인의 허망함과 갈구 같은것을 단 취기가 아닌 다른 흔적으로 보아냈다. 두 사람은 자연스레 엉켜졌다. 접때 남편을 잃고는 농악을 마시고 쓰러진 부산댁을 사내가 손잡이뜨락또르에 싣고 시가지 병원까지 호송했다. 그때 본 풀꽃초럼 싱싱한 부산댁에 비해 지금의 부산댁은 많이 시들어있었다. 탄력 잃은 육체라도 주린듯 탐하던 사내는 끝내는 부산댁의 귀전에 굵다란 눈물방울을 떨구고 말았다.                                   ㅁ   사내는 지은지 시간이 꽤 오래된 시교쪽의 어느 구식 아빠트단지에서 문칫거리고 있었다.꼬깃꼬깃 접은 종이쪽지를 펴들고 다시 한번 번지수를 확인한 뒤 페갱같은 시커먼 복도로 들어섰다.세멘트가 다 떡어져 벽돌장이 벌겋게 보이는 층계로 올랐다. 그러는 사내의 손에  《고량주》두병이 들려있었다. 사내는 지금《검정콩》이라 불리우는 고향의 이웃을 찾고있는중이였다.《검정콩》은 항구의 《사두》들과 친교가 있어 가만히 밀항을 조직하고있었다. 절차가 엄격한 정상적인 로무로 한국에 나가지 못한 사람들, 위장결혼,가짜비자가 들통난 사람들은 모두가 《검정콩》에게 밀항을 의뢰했다. 배의 밀창에 숨어 사흘이고 나흘이고 큰숨 바로 못쉬며 해상순라대의 눈을 피해야 하는 잠입이였지만 사람들은 너나가 요행수를 바라고《검정콩》을 찾았다.《쑹개》에게 점포가 박살이 난 그날에 사내는《검정콩》을 찾기로 마음먹었다. 아침은 모두부 점심은 두부볶음, 저녁은 두부장을 겨우 먹으면서도 눈두덩이에 유난히 살이많은 제수의 랭대를 받아야하니. 그럴때마다 결심을 더굳혔다. 남 다 자는 밤에 옥상에서 왕별을 바라보며 오직 이길밖에  없다고 속마음을 뼈물어 먹었다.   자꾸만 거처를 옮겼기에 콩크리트숲속에서 《검정콩》을 찾기란 바다속의 바느찾기로 어려웠다. 추수가 좋은 흑태밭을 버린채 도회지로 나온뒤 《검정콩》은 조강지처와 리혼을 했다. 도회 에서 딸라암거래를 하고있는 녀자와 눈이 맞았고 배가 맞아버렸다. 풍대한 몸집의 그 녀바를 《검정콩》의 소개로 한번 만나본적 있었다.《부산댁》에게서 요행 《검정콩》의 거처를 알아내고 시한탄의 점화단추를 누르듯 조심스레 그 집 초인종을 눌렀을 때 바로 언젠가 본적 있는 그 풍대한 몸집의 녀자가 머리를 내밀었다. 은근히 공경스런 표정을 지으며 사내는 《검정콩》을 찾는 다고 했다.녀자는  사내의 아래우를  못볼 풍경을 보는듯한 눈길로 어보더니 문을 쾅 닫아버렸다. 돈냥깨나 벌더니 마른 위세를 부리나보다고 사내는 한숨 한번 지었다.술이라면 사죽을 못쓰는 이웃을 위해 술까지 사들고 왔는데...아침나절에 조용히  동생에게서 술 살 돈을 질렸다. 동생은 안해의 눈을 피해 지하공작이라도 하듯 형의 손아귀에 50원짜리 한장을 잽싸게 쥐여주었다.  그렇게 어렵게 한 걸음인데 꼭 만나고 가야지 하고 사내는 다시 한번 초인종을 눌렀다. 응대가 없다. 이번에는 이웃이며 친구사이라 밝혀야겠다고 생각하며 길게 초인종을 눌렀다. 문이 왁살스레 열렸다. 스리퍼를 끌고 나온 녀자는 사내앞에 두팔을 가새지르고 우뚝 뻗쳐섰다.   《어쩌자는거예요?용건이 뭐예요?》   돌처럼 딱딱한 기색을 짓고 녀자가 채중기 잔뜩 담은 소리로 물었다. 그 소리에는 란폭한 적의가 섞여있었다.   《급히..급히 만날 일 좀 있어서...》   녀자의 덜충함과 위악적인 자세에 사내는 조금 당황해지고있었다.   《몰라서 그래요? 아니면 빚진거라도 잇어 그러세요?》   사내는 그만 오리무중에 빠지고말았다.   《우...우린 친구지간인데...이...이웃사이였다구요.》   사내의 진지한 모습에 녀자는 그제야 표정을 조금 풀었다. 웬 일인지 정체불명의 한숨을 쉬였다. 입술새로 어눌하게 한마디 내뱉았다.   《그 사람...죽었어요.》   ...옥상의 장독대우에 빈《고량주》술병이 놓였다. 사내의 흐릿한 눈길에 술병이 둘로 보였다. 사나운 개를 쫓기라도 하는듯 병을 향해 돌맹이를 던졌다. 병을 맞히지 못하고 대신 또 하나의 장독대가 깨져버렸다.   사내가 감좋게 키워오던 희망은 또 한번 장독대처럼 산산히 박산나고말았다. 하늘처럼 지체 높이 믿고 찾던《검정콩》이 죽었다. 밀입국자들을 싣고 또 한번 모험의 파도를 탔다가 그만 해상순라대와 마주치게 되였는데 조직자의 신분이 무서워 바다에 뛰여들어 도망가려다 빠져죽고말았단다.강을 낀 마을에서 자랐다지만 단숨에 헤염쳐 넘을수 있는 강에 살던 작은 《송사리》가무변의 바다에서 용빼는수가 없었던것이다. 이튿날에 시신이 발견되였고 해상순라대에 의해 신원이 확인되였다. 이 참사는 밀입국단 속조치에 단호히 나서고있는 형국에서 해외의 매스컴들에게까지 대서특필로 보도되였다고 한다. 그 장안의 화제를 빚군들의 독아를 피해 동생네 집에 몯혀살던 사내는 아는수가 없었다.   사내는 옥상의 대형광고판이 만들어낸 그늘속에 해종일 앉아있었다. 《검정콩》에게 선사하려 들고갔던 《고량주》를 자기가 다 마셔버렸다. 취기와 울화가 화염이는듯 타올랐으나 어떻게 해소할길이 없었다. 소태같은 입을 다시던 사내의 충혈된 눈길에 깔고 앉은 신문중의 소식기사 한편이 잡혀들었다. 《서울 첫 직항이 드디여 이루어져》라는 표제의 톱기사였다. 사내는 엉뎅이에서 신문을 뽑아내였다. 반나마 찢어진 신문을 눈가까이에 쳐들고 보았다. 술트림을 섞어가며 식자본 떼는 애들처럼 소리내여 읽기 시작했다.   《조선족들의 관심사였던 서울직항이...꺼억...드디여 이루어져 첫 취항식을 가졌다.MD90려객기는... 아침 7시50분...꺽...50분에 떠나 오전 10시 50분에 서,서울에...꺽...도착하게 된다. 전세기 형식으로 비준이 내렷지만 실상은...꺽...전국매표망을 통해 티,티켓을 팔고있는바 153개 좌석이 몽땅 팔렸다고 한다.》   트림으로 쓰려나는 가슴을 문지르며 사내는 신문을 접었다.   (세시간이면 서울 갈수 있다아?)   본능적으로 하늘을 쳐다보았다. 서편하늘에 가슴이 섬찟하게 피빛노을이 번져가고 있었다. 사내의 손에서 신문이 짓이겨졌다. 신문을 뭉그려 커다랗게 덩이를 만들었다. 비칠거리며 옥상의 변저리로 다가갔다. 신문덩이를 층집아래로 뿌려던졌다. 신뭉덩이느느 풍력을 빌어 빙글거리며 천천히 아주 천천히 떨어져내렸다. 옥상에 엎드려 골만 내민채 사내는 그 가벼운 실추를 무겁게 내려다보았다.                                ㅂ 가려마 하는 사람은 가고야 만다더니 부산댁이 서울로 떠난다고 했다. 대구에서 사는 어떤 령감태기와 결혼의향이 오갔는데 드디여 비자가 내려왓던것이다. 떠나도 바래줄 사람조차 없는지라 사내와 둘이서 어느 괜찮아보이는 음식점에서 송별찬삼아 마주 앉았다. 사내는 손에 쥐고있던 구슬을 털린듯한 허전하기 짝이 없는 마음이였다. 동병상련의 처경에서 그동안 어설프게나마 마음도 주고 정도 주면서 서로서로 자꾸만 오금 꺾이는 신심을 부추겨주었는데...원체 근심걱정으로 구겨졌던 사내의 마음에 이 소식은 더 킁 응달을 만들어주었다. 엊저녁 동생이 그를 랑하로 불러내였다. 불도 켜지 않은 랑하에서 형의 손에 돈 500원을 쥐여 주었다. 그리고 랑하에 서서 형제간은 참으로 오랜만에 긴 이야기를 나누었다. 제수의 동생이 명년에 대학입시를 볼 나이인데 더 좋은 환경을 위해 누님네 집에 와 묵으면서 공부를 하게 된다고 했다. 느닷없이 그로 말하면 엄청 많은 액수의 돈을 넘겨받고 일순 어정쩡해졌던 사내의 무딘 더듬에 그제야 무언가 어둠속의 륜곽처럼 잡혀들었다. 진한 어둠속에서 그 표정을 읽을수는 없었지만 사내는 난감한 기색으로 변형되여있는 동생의 얼굴모양을 감득할수가 있었다. 그것은 분명 무언의 축객령이였다. 동생이 집으로 들어간 뒤에도 사내는 어둠의 동아줄에 얽동인듯 그 자리에 꼼짝 않고 서있었다. 그러다 몽유병에라도 걸린 사람처럼 말없이 옥상으로 올라갔다...그렇게 한푼 동냥마저 거절당한 거지같은 참담한 기분을 단말마로 지탱하고있는데 《부산댁》마저 떠난단다.   떠나는《부산댁》은 일희일비에 혼반죽된 착잡한 모습이였다. 두고 가는 딸애에 대한 걱정담을 많이도 했다. 항간에 전문 출국부모들의 자식을 위해 꾸린 기숙방이 많앗는데 그곳에 애를 맡기고 떠난다고 했다. 그런 기숙방도 많고 그런곳에 기거하고있는 애들이 엄청 많은것을 보고 놀랐다는《부산댁》이엿다.   《그 맘보가 여리디 여린것이 애들틈새에 찡겨 밥한술 나물 한점이라도 제대로 얻어먹을런지》하고 부산댁은 희색이 도는 얼굴로 말하다가도 지절해지는 눈시울을 하고 사이사이 코를 훌떡거리기도 했다. 덤덤한 기색으로 그런《부산댁》과 마주 앉은 사내는 실어증환자마냥 말을 잃고있었다. 혼자생각에 빠졌다가도 부산댁이 소리를 높이면 흠칫 놀라 깨서는 술잔만 기계적으로 들었다. 그리고 사내는 다급한 뇨의를 느꼈다. 급격한 정서파동이 있을 때면 마냥 있게 되는 괴의쩍은 버릇이였다.   화장실의 변기앞에 섰는데 어쩐지 일을 치러낼수 없었다. 한가슴 가득 청태처럼 낀것을 시원한 오줌발로 씻어내리고싶었다. 사내는 두눈을 느스름히감고 모지름을 썼다. 겉에 누군가 다가와서 변기앞에 마주섰다. 기분좋게 일을 보며 그러는 사내를 이상한 눈매로 지켜보았다. 그 사람에게 눈길이 미치는 순간 사내의 얼굴이 낮도깨비를 본듯 경련을 일으켰고 입으로는 헛바람 섞인 이상한 비명이 새여나갔다. 이발쑤시개를 물고 지근지근 씹으며 변기앞에 마주선 그 사람은 사내가 이 세상 가장 무서워하는 두억시니 같은 존재인《쑹개》였던것이다. 사내는 혁대도 조르지 못하고 바지궤춤을 쥔채로 후닥닥 화장실을 뛰쳐나갔다.   허허벌판에서 단신으로 맹수떼에 쫓기는 사람처럼 뛰고 또 뛰였다. 음식점을 멀리한 어느 뒤안길에 접어들어서야 뛰기를 멈췄다. 전주대를 짚고 서서 깊은 수심에서 수면우로 금방 떠오른 사람처럼 학학거렸다.한식경이 지나서야 사내는 파충류의 촉수처럼 뒤잔등에 달라붙은 공포를 물리치고 마음을 수습할수가 있었다. 무거운 위안의 매돌로 신경줄의 떨림을 누르고나니 그제야 혼자 두고 온《부산댁》에게 생각이 미쳤다. 허나 다시 그 음식점으로 돌아갈 용기가 사내에게는 없었다. 오도가도 못하고 길녘에 그렇게 섰는 사내의 눈앞으로 뻐스 한대가 느릿느릿 지나가고있었다. 차체에 어느 려행사의 자호를 큼직히 박아넣은 관광뻐스였다. 뻐스에서는 밝고 들뜬 표정을 한 이국관광객들이 창밖으로 흥미로운 눈길을 던지고있었다. 그 너무나도 행복해보이는 무리를 쳐다보는 사내의 얼굴이 이상하게 변조되여갔다. 막무가내로 서있던 사내는 순간에 행위의 좌표를 정한듯햇다. 사내는 길의 화단에서 반토막 남은 벽돌 한장을 집어들었다. 그리고 사내는 잰걸음으로 관광뻐스를 뒤쫓아갓다. 뻐스 뒤면의 차창을 향해 벽돌장을 힘껏 내쳤다...                              ㅅ   집중광이 사내의 얼굴을 향해 쏟아져내렸다. 수천만개의 동침처럼 얼굴을 찌르는 그 강렬한 빛줄기에 사내는 눈도 바로 뜰수 없었다. 빛의 열기때문이였던지 얼굴로 팥죽땀이 골을 지으며 흘러내렸다.   《당신 정신이 온전한 사람 맞어? 술에 취하지도 않았다는 사람이 퍼런 대낮에 미친소같이 객기는 왜 부려? 객기는??멀쩡한 뻐스에 돌은 왜 던지냐말이야. 그게 어떤 찬지 알어?한국유람객들을 실은 차였다구.사람이 상하지 않았기에 다행이지 ,큰 코 다칠본했어. 이 사람 국제망신 혼자서 다 시키는구먼...》   한입에 물어 삼킬듯 으르렁이는 채문소리가 사내의 귀에는 한마디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뒤로 탈린 손목에 채인 수쇠에만 온 정신이 쏠려있었다. 처음 실감해보는것이였기에 그 감수는 살갗을 칼로 에이듯 강렬한것이였다. 두리모자 몇몇이 번갈아가며 따졌으나 사내는 줄곧 입을 열지 않았다. 기왕 내쳐진 몸이니 체념을 방패로 하고있는 사내였다. 심문실의 문이 덜크렁 열리면 또 두리모자 하나가 들어섰다. 그사람을 향해 모두다 공경어린 표정을 지으며 고해바쳤다. 《이 허수룩한 나그네가 쇠통 불지 않네요.》   유난히도 넓은 어깨를 가진 그 사람이 사내곁으로 다가왔다. 바싹 다가서며 사내를 불렀다. 《이봐요-아저씨...》   사내는 천천히 얼굴을 들었다. 빛에 질린 눈을 좁히며 상대를 헤아려보려햇다. 살벌한 장소에서 저으기 부드러운 호칭을 듣고 설등해진 사내의 얼울고 순간에 손바닥이 짝 날아들어 귀뺨을 호되게 후려쳤다. 목이 한바퀴 돌아가는듯했고 눈앞에서 별무리가 쏟아져내렸다. 미처 정신을 수습하기도전에 한번 두번 세번 네번...우악진 손바닥이 숨쉴사이 없이 뺨을 강타했다. 이대로 죽고마는가보다 하고 숨넘어가는 신음을 억억 토해내는데 매질이 멈추어졌다. 사내의 바른편 볼이 삽이에 찐빵처럼 벌겋게 부풀어올랐다. 두리모자는 손바닥을 털어대더니 거친 숨을 삭이며 담배 한개비를 뽑아 물었다. 사내의 얼굴이 한껏 비틀어짠 걸레처럼 처참히 일그러져갔다. 볼에 아픔은 느껴지지 않았다. 대신 발가벗기우고 네거리에 내쳐진듯 해일같은 수모감이 사내를 형체도 없이 삼켜버렸다. 목줄기를 죄인 사람처럼 몸부림치다 사내는 급기야 울음과 함께 피고름에 덩이진 말마디를 뱉아냈다. 《...한국사람들에게...한국사람들에게 사기를 당햇으꾸마...가산 박박 끌어모은 돈에다가 5푼리자 내고 맡은 돈을 몽땅 사기 당했으꾸마... 한번두 아니구 세번이나 세번이나 말입꾸마... 가산 털어 모은 돈을 리자내고 빌린돈을... 어흐흐흑...》                             ㅇ   꿈결처럼 밤비가 내리고있다. 그리고 비에 젖은 도시에서는 경제 무역박람회가 한창이였다. 곳곳에서 한국산제품전시회가 열리고있었다. 거리는 숫제 명절분위기였다. 하늘에는 애드벌룬이 떠있고 마천루마다는 네온싸인으로 령롱했으며 광고현수 막이 칠색무지개처럼 드리워져있었다.   행인 몇몇이 길복판에 멈추어서 웅성이며 웃쪽을 쳐다보고 있었다.떨어져내리는 비방울에 눈시울을 좁히며 쳐다보는 그 시선들이 머무는 곳에 광고판 하나가 있었다. 옥상의 이마전에 세워진 그 대형의 광고판에는 하늘 향해 수기를 건뜩 쳐든 비행기가 그려져있었고 그 아래쪽은 비행기보다 엄청 더 큰 아가씨가 극속의 요정처럼 유혹으로 덩이진 웃음을 지으며 어디론가 안내하듯 한손을 쳐들고있는 모습이였다. 그리고... 네온싸인으로 둘레를 친 그 불밝은 광고판앞에 웬 사내 하나가 두팔을 드린채 뻗쳐서서 비내리는 거리를 멍하니 내려다보고있었다... "도라지" 1997년   ☞ 김혁 문학블로그: http://blog.naver.com/khk6699 ☜    
150    육필, 련꽃무늬 밥상우를 달리다 댓글:  조회:2147  추천:41  2009-04-29
  육필, 련꽃무늬 밥상우를 달리다 - 대하소설 “해란강”의 저자 리태수선생을 만나 김 혁      지난해의 이 봄날, 연길시 도심에서 위치한 시대광장에서 제2회 독서절활동이 성황리에 펼쳐지고있었다. 그때 광장의 가녁에 설치된 도서코너에서 나의 눈길을 대번에 사로잡는 책이 있었다. “해란강”! 정다운 고향의 강 이름을 딴 책의 제명이 마음에 들었고 그 저자가 다름아닌 고향의 문학스승 리태수선생의 작품이라는데서 좋았고 무엇보다도 대하소설이라는 부피가 주는 충격에 사로잡혀 들었다. 그로부터 얼마후 나는 선생님께서 몸소 싸인해 보내주신 “해란강”의 전(前) 4권을 무겁게 받아들었다. 그리고 봄양기가 꿈틀거리는 이 봄날 다녀온지 퍽 오래되는 고향으로, 문학스승 리태수선생님이 계시는 룡정으로 나는 달려 갔다.   룡정 안민소학교부근에 위치한 선생님의 집에 까지 도착했을 때이른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은 밖에 나와 기다리고계셨다. 너무 오랜만에 만나는 선생님의 손을 꼭잡고 유명작가의 이름에 어덴가 걸맞지 않을 낡은 건물 낮은 층수의 선생님의 집에 들어섰다. 문학도시절 대중없이 찾아가도 언제나 특유의 엎딘 자세로 글을 쓰시던 선생의 모습이 순간 뇌리에 떠올랐다. 인테리어가 퍽 오래된 낡은 집, 하지만 집안 가득 “문자향 서권기(文字香 书卷气)”는 배여 있었다. 서재에 들어서자 선생이 밥상을 펴놓았고 차탁대신 밥상에 쏘파대신 맨땅에 우리는 마주 앉았다. 역시 퍽 오래된 밥상, 옻칠이 군데군데 벗겨져있는 두리넓적한 밥상이였다. 하지만 련꽃무늬는 아직도 남아 서기롭게 피여있었다. 그 밥상이 선생님의 창작전초(前哨)라고 했다. 꿈많은 문학도시절이였던 80년대 중기, 나는 룡정의 문학도들과 어우러져 문학동아리인 “희망봉”협회를 만들었고 리태수선생님을 비롯하여 김재권, 오흥진 등 당시의 중견작가들이 흔쾌히 우리의 고문을 맡아주셨다. 선생님의 사모님과 나의 어머니가 한 학교동료라는 “우세”를 빌어 나는 시시때때 선생님의 집으로 뛰여들곤했다. 난삽하고 미숙한 작품임에도 부끄러움도 모르고 정독했고 선생님은 빙그레 미소를 띈채 그 긴 작품들을 마지막까지 들어주셨고 세세하게 수개평을 달아주시곤했다. 나의 처녀작 “피그미의 후손”이 발표되자 기뻐마지 않으며 우리 집까지 친히 찾아오셔 축하의 술잔을 들어주었다. 그후 선생님을 위시로하여 룡정의 작가들이 “보름회”라는 문학동호회를 창설했다. 기성작가들과 문학애호가 20여명으로 구성된 동호회는 보름에 한번씩 작품합평회를 가졌다. 그때 이미 연길의 “길림신문사”에 전근해 있었지만 나는 보름에 한번씩 룡정으로 달려가 작품합평회 그 열기의 현장에 뛰여들었다. 그때의 그 열렬하고 진지했던 문학분위기는 열혈문학도였던 나에게 아직도 화인(火印)처럼 남아있다. 그런 인연의 대스승님이였기에 선생님의 대하소설의 출산을 두고 나의 기쁨은 그 누구보다 진실했고 크기만 했다. 어제에 대한 회포가 잠간 오간뒤 거두절미하고 문학에 대한 화제가 밥상우에 진담으로 굴렀다. 그 련꽃무늬의 밥상을 마주하고 앉아 나는 선생님의 생애와 작품을 더듬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선생님은 정밀한 기억력으로 지난 시간들을 반추해 냈다. 리태수(李泰洙)선생은 1936년 10월 길림성 연길현 평안구 유신촌에서 아버지 리종식과 어머니 김숙자사이에서 항렬 셋째로 태여났다. 그래서 문필활동을 시작한후 때로 필명을 리삼(李三)이라 짓기도 했다. 룡정에서 학업을 마치고 1956년에 중국인민지원군에 입대했다. 원체 선생의 꿈은 흰 가운을 걸친 의사였다. 광복이 나던 무렵, 동생이 당시 괴질이였던 장질부사로 죽었고 동생의 주검을 지켜보면서 꼭 세상질병을 치유할수 있는 의사로 되여야겠다는 생각을 눈물과 함께 머금었었다. 의과대학 지망생이였지만 가정 여건으로 꿈을 이루지 못했고 미련은 남아 문화대혁명기간 맨발의사로 활약하기도 했다. 지금도 어중간한 두통, 설사쯤은 침 몇대로 고칠수 있다는 선생의 서가에 얹혀있는 빛나는 침통이 보였다. 무선전병이 되여 강원도 이천에으로 종군한 그는 손풍금도 잘치고 시랑송도 곧잘하는 매력덩어리 젊은 군인이였다. 기온이 찬 강원도에서 눈속에 피여있는 진달래를 보고 부푸는 애련과 감수를 머금었고 감흥을 못이겨 조기천의 시를 소리높여 읊기도 했다. 1959년에 복원, 처녀시 “복원군인의 노래”를 《연변문학》 3월호에 발표했다. 그후로 련줄로《연변일보》에 등지에 시 “초상화”, “새해에 드리는 세배”등 여러수를 발표했다. 화학공장에 취직하여서도 넘치는 끼를 주체못하고 업여연출대를 휘동하고 다녔고 가사도 쓰고 연출도 맡고 손풍금 연주도 했다. 1971년 연길현문화관으로 전근, 관원을 거쳐 군중문화보도조 조장을 맡았다. 당시 문화관에서는 매년 200일 하향이라는 규제가 있었는데 그렇게 오랜 시일 깊은 산골에서 순박한 농군들과 함께 하면서 많은 작품소재를 얻었다. 시창작외에도 연극창작에도 기량을 보여 대창극 “꽃피는 양돈장”, 촌극 “쓸데없는 경쟁” 등을 써냈고 주과외연극콩쿠르 창작1등상을 받기도 했다. 소설은 1974년 10명의 합집으로 된 총서에 단편 “우두봉의 매” 를 발표하면서 시작했다. 한편 아동문필회에 다니면서 아동문학쟝르에도 흥미를 보여 1982년 “세계동물운동회” 라는 동화집 단행본을 펴내기도 했다. 1984년 단행본 “체포령이 내린 ‘강도’”를 출판, 당시 십분 류행되였던 반특(反 特)제재인 작품은 동북3성 조선문우수도서 3등상, 전국 우수도서 2등상을수상했다. 1986년에는 5막6장으로 된 대형가극 “기생 봉선아씨”를 창작, 룡정현예술단의 공연으로 무대에 올렸다. 20년대 룡정에서 발생한 15만원 탈취사건 등 반일사건을 모티브로하여 박진감있는 스토리로 엮어진 가극은 당시 작지 않은 센세이숀을 일으켰다. 다쟝르를 넘나드는 선생님의 행보는 이에 그치지 않았다. 1988년 텔레비죤소품 “홈”(합저)을 창작, 전국콩쿠르에서 “금우상” 1등상 수상핶고1988년 가사 “산향길”와 “들놀이 가자 꽃놀이 가자”로 주정부 진달래문예상 수상, 1989년 국경 40주년 전국과외문예콩쿠르에서 “특등상”을 수상했다. 복격적인 소설창작으로 단편소설 “달동네” 등 80여편을 발표했고 텔레비죤극본 “한석봉과 그의 어머니”, “깍쟁이량반”등을 내놓았으며 “진달래꽃동산”, “산간의 마방울소리” 등 가사를 150여수 발표했다. 그중 “사회주의조국을 노래부르자”, “어머니 당이여 고맙습니다.”, “고향산”, “따사로운 품” “고임돌” 등 작품들은 중소학교 교과서에 수록되여 지금까지 읽혀지고있다.      선생님이 펴낸 저서들 여러가지 쟝르와 문체의 집필에 대해 선생은 장기간 문화관 일군으로 지낸 직업적 특수성에서 인기된것이지만 또한 작가라면 어느한 쟝르나 문체에 얽동여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시창작을 하면서 형상사유를 제고할수 있었고 연극에서는 대화를 정제하는 법을 배웠으며 동화쓰기에서는 작가의 심리를 정화할수 있었다”고 선생은 정리해 낸다. 그리고 매쟝르에는 정도 다르게 자신이 경험한 삶의 편린(片鱗)들이 슴배여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쟝르에 대한 다양한 수용과 탐구는1993년 《이야기천지》를 창간하기에 이른다. 리태수선생이 1임 주필을 담당한 통속문학지 “이야기 천지”는  내부간행물에 불황의 출판풍토에도 불구하고 발행부수 1만5천부라는 놀라운 “전적(前績)”을 자랑했고 독자들의 다양한 수요에 걸맞는  출판모식의 실험에서 좋은 본을 보여주었다. 선인들이 내놓은 “량춘백설” “하리바인”의 도리는 오늘날에도 적용되는바 창작과 출판에서 과감하게 시장수요에 맞추어야 한다고 선생님은 력설한다. 하여 신문의 폐간을 가슴아파 하며 무순에 까지 찾아가 타지방 신문과의 제휴방안을 내놓으며 신문발행번호를 얻으려 로심초사했던 그였다.  “문학은 한 민족의 얼굴이다. 민족의 세태, 의식주, 례의범절, 풍속, 종교신앙 등 거의 모든 부분들을 문학으로 기록할수 있는데 문학을 보면 그 민족이 알린다.”고 말하고있는 선생님은 그만큼 여러 쟝르에 민족적 소재만을 끈끈히 담아온 창작에 게을리 하지 않았다. 1996년 정년퇴직했지만 만년에도 여전히 필경(筆耕)에 주력하여 다산작가로서의 식지않은 정열을 보여주었다. 단행본 “춘삼월”, 중편소설집 “사랑은 S“를 펴내였고 2001년 《연변문학》에 장편소설 “재박골의 새 이야기”를 련재했다. 고희의 오늘에 이르기까지 고도(古都) 룡정에만 붙박혀 고향의 문화지킴이로 전력해온 선생님은 단지 개인적인 창작에만 그치지 않았다. 룡정문화발전추진회, 3.13기념사업위원회 등 단체의 요직을 맡고 우리것을 지키고 일으켜 세우기 위해 팔을 걷어부쳤다. 1992년 선생님은 조선족민속풍토를 다각적으로 보여준 다큐멘터리 “중국조선족민속”을 집필, 책은 국가관광국출판사에서 화책으로 출판되였고 한국 서울프라이즈(KBS)해외부문 1등상 수상했다. 수십년간 중국작가협회, 연변작가협회, 연변희곡가협회에서 활약하며 1급작가라는 직함과 수식도 갔고 있지만 선생님은 복잡한 문단의 패거리에 끼거나 손쉽게 문명(文名)을 팔려하지 않았다. 그저 나서 뼈를 굵혀온 고향을 뜨지않고 량산의 글농사로만 자신의 창작생애를 집계했을뿐이였다. 그 올곧은 외줄다리기의 결과가 조선족문단 최초의 대하소설을 출산하게 만들었다. 요즘 문단의 큰 이슈로 되고있는 대하소설 “해란강”은 룡정 해란벌의 “농민영웅” 김시룡을 원형으로 파란만장한 호조합작사시기로부터 개혁개방시기에 이르기까지의 장장 60여년의 조선족 농민들의 력사와 운명, 그리고 해란강지역의 독특한 력사와 풍속, 인정과 세태를 거대한 리얼리즘의 사시적인 기법으로 대하소설이라는 큰 그릇에 담고 있다. “중국조선족은 일찍 동북의 넓은 광야를 개척하여 삶의 터전을 마련했고 가렬한 항일전쟁, 해방전쟁에서 피흘리고 목숨을 바쳤다.  건국후 호조조, 합작화, 인민공사화 운동가운데서도 전국에 이름을 날린 김시룡과 같은 ‘농민영웅’을 배출했다. 이러한 우리의 력사를 어떻게 정리해야 할가? “하는 질문으로부터 필을 들었고 “애초에 거창하게 나온 것이 아니라 한글자 두글자 쓰다보니 그 파란많은 력사의 경륜을 원고지 부피가 꽤 두텁게 새기게 되였다.” 고 선생님은 집필동기에 대해 겸손하게 피력했다. 어찌보면 선생님의 평생의 창작리념과 경험을 집대성한 “해란강”은 1996년에 집필하기 시작하여 꼭 10년만인2007년에 마무리되였다. 오랜시간 문화파종의 구실을 톡톡히 하고있는 문화관에서 근무하면서 기층에 자주 내려가고 밑바닥 삶과 호흡을 같이 했던 과정에 피부로 절감해왔던 대중들의 생존상황이 그에게 그들의 모습을 원고지에 담아야할 충동을 느끼게 했던것이다. 모택동주석의 접견을 20여번이나 받은 “농민영웅” 김시룡, 빈농협회 회장이였던 삼촌의 경력과 구술, 당안관에 널린 방대한 자료의 수집 등 번쇄한 로동속에 자신의 주변에 떠다니는 서사의 무수한 조각들을 조합하여 “해란강”이라는 큰 곬의 창창한 흐름에 에워넣었던것이다. 문단과 독자들의 주목속에 “해란강”은 이미 4권까지 출간되여 서점가에 올려졌고 무난하면 명년까지 모두 출간될수 있다고 한다. “’해란강’ 은 작자가 20여년의 신근한 필경을 통해 우리 농민의 60여년의 력사를 반영하려는 전무유일의 장엄하고 힘겨운 시도인바 그 치렬한 작가정신과 민족적사명감을 충분히 긍정함과 아울러 그간의 로고에 우선 경의를 드린다”고 비평가들은 평한다. 한면 어떤 부분에서는 사관(史观)이 몽롱하여 단순한 흑백론리로 흐르고 가치판단의 문제점을 로정(露呈)한 아쉬움에 대해서도 제기되면서 작가가 조선족농민의 생활을 독창적으로 파악하고 특색있게 형상화하여 우수한 대서사시적 화폭을 창출할것을 문단과 독자들은 기대하고있다. 이제 작품에 대한 수정과 보완을 위해 또한번 볼펜을 잔뜩 거머쥐어야할것 같다고 선생님은 말했다. 늘 버리지않고 있는 창작태세에 대한 새로운 긴장감의 힘이 선생님과 작품을 또한번 거듭나게 할것 같다. 요즘 빨리 쉽게 써서 재빨리 인정받으려는 작가들이 스스로 호흡이 짧아짐을 느끼지 못해서인지 아니면 독자들이 짧고 쉬운 작품만을 요구하는 스낵식 풍토 때문인지 우리 문단에서 장편소설이 많이 나오지 못하고있다. 그러는 동안 우리 문단밖에서는 중국과 서구와 일본의 장편소설이 홍수를 이룬다. 작가가 작품을 통해 시대적 상황을 비춰 주는 거울의 역할을 하거나 한 미족의 시대정신 혹은 그 위대한 철학이나 사상을 구체화하기 위해서는 호흡이 긴 장편소설은 필요하다. 고금중외 명작가의 명작들은 긴 호흡으로 사회상황을 인간조건과 련결시켜 큰 성공을 거두지 않았던가! 조선족 공동체 삶의 문학적형상화는 우리 문학의 기본사명의 하나이다. 더구나 요즘처럼 큰 진통을 겪고있는 시점에서는 더 필요하며 그것이 대하소설과 같은 큰 편폭으로 루어질 때 더 값있는것일것이다. 때문에 이번 대하소설의 출산은 그 선보임이라는 선각적인 행위 하나만으로도 가지는 의의가 크다고 나는 선배에 대한 편파적인 존경만이 아닌 긍정의 분석을 해보았다. 선생님의 서재에는 미국에 류학 간 딸이 마련해준 컴퓨터가 있었지만 선생님은 컴퓨터를 쓰지않는다고 한다. 그러니 어마어마한 분량의 대하소설이 모두 육필로 나왔다는 이야기가 된다. “해란강”에는 등장인물이 165명 실제 실존한 력사인물만도 20여명으로 그들이 경과한 60년의 력사를 380만자의 편폭으로 새기고있다. 선생님이 뒤이어 내놓은 “해란강”의 원고들을 보고 부지중 감탄을 흘릴수 밖에 없었다. 마분지로 겉가위를 댄 원고지 묶음이 저그만치 15개, 원고지의 모서리는 모두다 닳아있었다. 작품에 투여된 시간의 흔적이 느껴지는 원고지 묶음이였다. 250자원고지에 써내려간 원고뭉치를 쌓으니 족히 1메터 반은 되였다. 원고지의 필적(筆跡) 또한 선생님처럼 단아했다. 단정한 기운의 글씨가 원고지 칸을 가득가득 채워 원고지가 아주 묵직해 보였다. 그리고 선생님은 여태 원주필로 원고를 집필한다고했다. 그러면 연필을 깎거나 잉크를 채우는 등 번거로움을 줄일수 있다는것이다. 육필로 15권, 380여만자를 써내려가면서 손목에 무리가 와서 근 한달간이나 치료를 받으며 집필을 중단했던적도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이야기하는 선생님의 손목은 오랜 글쓰기의 고역에 엄중하게 변형되여있었다. 원체 엎디여 글쓰는 습관이 있었는데 가슴에 통증이 와서 이제는 밥상앞에 마주 앉아 쓴다고 했다. 옻칠이 벗겨진 련꽃무늬의 밥상, 그 밥상이 선생님의 10여년 로고의 견증자가 된것이다. 사실 선생님은 컴퓨터와 같은 기계문명에 대해 거부 반응을 보이는 기피자는 아니였다. 철자 익히는 애들처럼 컴퓨터 지법을 외손녀에게서 배웠는데 이제 몸이 따라주지 않아 타이핑 속도가 늦다고했다. 키보드를 두드려 온 하루 5,6천자를 쓰지못하는데 육필로는 8천자는 거뜬히 써내려갈수 있다며 선생님은 무가내의 웃음을 보였다. 그래서 아예 몸에 배인 육필사용을 고수한다고 한다. 우리문단에서 6, 70대 이상 작가들 가운데서 컴퓨터를 활용, 집필에서 워드 프로세서를 사용하는 분들도 적지않다. 50대도 대부분도 꽤 능숙하게 컴을 사용하고있고 40대는 모두가 쓰지 않고 친다. 그 아래 세대는 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키보드우를 날아다닌다. 따라서 속도가 우선인 이 시대, 글씨 쓰기가 메모나 서명의 범주로만 남아 있는 이 디지털 무한 복제시대에 필자의 정성과 령혼이 담겨 있는 육필(肉筆) 원고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선생님의 정감이 묻어나는 손글씨가 새겨져있는 원고지들을 지켜보며 “나는 온몸으로 글을 쓴다”고 선언했던 어느 유명작가의 경구(警句)를 머리에 떠올려 보았다. 그리고 작가의 본령이라 할수있는 올바른 작가정신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 보았다. 각박한 표현 같지만 요즘들어 치렬한 작가태도와 작가의식을 지닌 작가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오늘날의 작가들은 창작 외의 일에 너무 관심이 많은것같다. 작가혼은 오간데 없고 속도나 경쟁 그리고 독선만이 보인다. 이러한 빈번히 풍토속에서 선생님과 같이 육필을 고수하는 이들은 시대에 떨어진 모습으로 오인(误认)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는 진정 부박(浮薄)한 속도의 가치에 저항하면서 한획한획 새겨나가는 철저한 장인정신의 표출이 아닐가! 넝쿨지지도 잔가지도 치지도 않고 반듯한 이파리와 환한 꽃잎을 피워올리는 련꽃, 그 무늬가 새겨진 낡은 밥상을 마주하고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며 나는 오늘의 작가들은 어디에 살고 있으며 그들이 살고 있는 공간의 의미는 무엇일까? 작가에게 창작의 공간은 과연 몇평이면 족할까?하는 생각을 굴려보았다. 작가가 거주하는 삶의 공간이 창작의 공간과 같을 수는 없겠지만, 세계와의 뉴대와 자기 동일성이 형성되는 실존의 중심공간임은 분명할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낡은 밥상의 반경이 주는 공간이 내게는 너무나 크게 보였다. 선생님의 모습을 내가 꾸미고있는 문학블로그에 담고저 선생님을 향해 카메라의 앵글을 맞추었다. 세상의 번화함을 멀리한 조촐한 서재에서 련꽃무늬 밥상앞에 마주 앉아 육필을 부여잡고 원고지를 메워나가는 선생님의 모습, 고감도 영상에 포착된 선생님의 모습에서 나는 어떤 아우라(Aura. 문학이나 예술 작품에서 흉내낼수 없는 고고한 분위기.)를 보았다.  \"연변문학\" 4월호  리태수 선생님과  
149    [김혁 독서漫筆-9] 몸 댓글:  조회:1980  추천:37  2009-04-23
  김혁 독서漫筆 (9)金革 독서만필 (9)  \'몸\' 중국판 표지 하니프 쿠레이시(哈尼夫•库雷西)의 “몸(身体. 상해문예출판사 출간)”을 읽다. 한편의 과학환상영화를 보는듯한 소설이다. “무릎과 등이 쑤시고 치질이 있고 궤양과 백내장도 있는” 60대 중반의 극작가인 애덤은 어느 파티에서 뜻밖에도 늙은 몸을 젊고 멋진 몸으로 바꿔 주겠다는 제안을 받는다. 살아온 세월동안의 현명함과 성숙함을 고스란히 유지한 채 싱싱한 육체를 이식할수 있다는 믿기 어려운 제안. 애덤은 고민 끝에 모험을 감행한다. 6개월의 시한을 정하고 새 몸으로 해볼수 있는 온갖 경험에 도전한다. 그 도전은 자유, 려행, 쾌락으로의 질주였다. 하지만 차차 그의 소망과 계획은 어긋나기 시작한다. 애덤이 새로운 몸이 주는 경이로움에 마음껏 려행을 하고 마음껏 육체적 쾌락을 누린다 해도 사람들은 그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몸과 마음 혹은 몸과 정신이 일치하지 않는다는것을 스스로 알고 남들과 겉돌기때문이다. 그래서 애덤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늘 혼자다. 20대의 몸과 60대의 령혼이 다툴때 과연 “나”는 어디에 있는가? “나”는 몸에 귀속되는가? 령혼에 귀속되는가?하는 자문으로 애덤은 고민에 빠진다. 몸의 변화속에 애덤은 가족들에게서 물리적인 거리뿐만 아니라 심리적인 거리를 가졌다는것을 확인하게 된다. 작가는 몸이라는 주체에 접근해 몸과 마음, 몸과 시간의 관계에 대해 생생하고도 충격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으며 박진감 넘치는 이야기속에 담긴 신랄함과 위트를 통해 인간 본성의 또 다른 일면을 보여준다.  하니프 쿠레이시 작가 하니프 쿠레이시는1954년 영국에서 출생, 영화와 연극, 소설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인 문필가로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면서 다재다능함으로 영국문단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주목을 받고 있는 작가이다. 볼만한 책이라는 평판속에는 재미와 감동이라는 대중적 기호가 숨어 있다. “쉽게 읽히지만 그렇다고 천박하지도 않은” 기준을 베스트셀러들은 갖고있다. 쿠레이시의 “몸”이 바로 그렇다. 남의 몸을 빌어가진다는 환상이 가미된 스토리 하나만으로도 이 소설은 상당히 흥미롭고 자극적인 이야기가 전개된다. 하지만 그 극적인 스토리의 행간에 삶에 대한 의문과 고민들을 요소요소에 빼놓고 있지 않은 탓에 재미있으면서도 심각하게 읽혀진다. 상해문예출판사 2008년 출간으로 된 “몸”에는 “접촉” 등 쿠레이시의 7편의 단편도 부록으로 수록되여있다. 성과 사랑의 관계에 대한 비범한 시각으로 발표작마다 화제와 논란을 불러일으킨 하니프 쿠레이시의 다양한 문체를 접할수 있어 좋았다.  
148    슬픈 속죄 댓글:  조회:3402  추천:43  2009-04-01
  슬픈 속죄 김혁 독서漫筆   소설 "속죄"의 중국판 표지   이언 매큐언(伊恩 .麦克尤恩)의 “속죄(赎罪)” (상해역문출판사. 上海译文出版社 출간)를 읽다. 이 소설은 신진소설가 리진화씨가 추천하고 보내주어 읽었다. 사실 이 소설 역시 영화로 이미 보았었다. (근년래 출판계와 영화시장을 살펴보면 문자로 나온 베스트셀러는 거개가 영상으로 각색된다. 단 문자에만 머물지 않고 영상매체로 뻗어가며 상호보완하고있는 요즘 문학의 발달이요 풍토라 할수 있다.) 리진화씨와 대만작가 기미(几米)에 대해 서로 공감하며 이야기하다가 연변에서는 구하기 어려운 기미의 작품들을 리진화씨가 소주에서 보내주었는데 그 책묶음속에 “속죄”도 끼여있었다. 후배의 추천작이라 자못 진지하게 읽었다. 영화못지않게 감수는 여전했다. (나에게는 명작이나 유명세를 탄 작품이면  꼭 소설과 영화DVD를 함께 소장하는 기호가 있다. 원작과 그를 개편한 영화는 서로의 장점과 단점이 있다고본다. 영화의 경우 장점으로는 섬세한 재구성을 들수 있다. 이를테면 고대가 배경인 경우에 전문적인 지식이 없는한 거리의 모습이나 사람들의 복장, 소품 등까지 상상하기가 힘들다. 묘사를 통해 느낌을 받을지 모르지만  영화는 그런 모습들을 곧바로 립체감있게 보여준다. 또 책을 읽으면서 감명을 받았던 명대화들이 배우들의 열연에 힘입어 생생하게 살아난다. 분위기에 맞는 음악 또한 작품에 몰입하게 준다. 영상작품은 동시에 단점도 안고있다. 수준미달의 감독이 자기의도대로 제멋대로 해석할수도 있고 그러한 오류는 원작의 가치를 떨어뜨린다. 또 주인공의 모습은 책을 읽으면서 자신이 원하는 모습대로 상상하기 마련인데 그 상상을 영화가 앗아간다. 글을 읽으면서 독자마다 상상한 한 것은 확실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 않지만 영화는 하나의 형상으로 되풀이해서 보여준다. 이렇게 우렬을 갖고있지만 원작 소설이나 그것을 개편한 영화를 모두 갖추고있다는건 열독자로서는 나름 행복한 일이 아닐수 없다.)  영화 포스터  1935년의 영국. 소설가를 꿈꾸는13살 소녀가 있었다. 감수성 풍부한 소녀 브라이오니. 그의 언니인 세실리아와 가정부의 아들인 로비는 사랑에 빠지고 브라이오니는 그들 사이에 벌어지는 일들을 곁에서 지켜본다. 그러나 두사람의 사랑이 불편했던 브라이오니는 자신의 공상과 오해를 부풀려 로비를 강간범으로 지목한다. 로비는 루명을 쓰고 옥살이를 하게되며 이어 곧 프랑스전선으로 끌려간다. 로비를 잊지못한 세실리아는 집을 뛰쳐나와 간호사가 되여 역시 전장으로 찾아간다. 기약은 없지만 언젠가 다시 만날 날에 대한 갈망으로 끔찍한 전장에서 두사람은 재회를 꿈꾸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소설은 여느 눅거리 애정소설처럼 애틋하고 극적인 사랑을 다루고 끝을 맺는것이 아니다. 소설에서 후반부는 독자에게있어서 가히 충격적이다. 동생 브라이오니의 실수로 가혹한 운명에 놓였던 언니 세실리아와 련인 로비는 재회하여 아름다운 가정을 꾸미고 행복하게 생활해 나간다. 하지만 독자들이 행복에 겨워 아름다운 결말에 심취되여있을 때 작가는 그 환상을 사정없이 부수어버린다. 결국 이 아름다운 풍경은 로년이 된 소설속 작가 브라이오니의 작가적인 환상이였을뿐 두 사람은 서로 만나지도 못한채 이미 전장에서 목숨을 잃었던것이다. 브라이오니는 자신의 질투심때문에 비극적 사랑의 주인공인 된 세실리아와 로비를 위해 그리고 독자들을 위해 “아름다운 결말”을 만들어 주었다. 소설가인 그가 할수있는 일은 문학으로 속죄하고 참회하는 길 뿐이였다.  현실속에서는 일어날수 없는 일들을 아름다운 상상으로 풀어내면서 마음의 짐을 내려놓으려 몸부림한것이다. 이 마지막 장면은 많은 독자들로하여금 탄식을 내뿜으며 무릎을 치게 만든다. 소설은 이렇게 브라이오니가 자신의 잘못을 깨달은후 진중하게 속죄를 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면서 돌이킬수 없는 과오를 범한 인간이 겪는 고통을 그리고 있다. 작가 매큐언은 “인간의 어두운 욕망과 집단 무의식”에 관한 주제를 다룬 일련의 작품들을 발표해 주목을 받다가1998년 영국 최고의 문학상인 부커상을 수상했고 이번 작품 “속죄”로 명실공히 영국 최고의 작가 반렬에 올랐다.  저자 매큐언 소설을 읽고나서 은연중 우리의 문화대혁명제재의 작품들에 대해 련상해 보았다. 우리의 작품은 모두가 피해자의 시점에서 공소문처럼 되여있고 가해자의 시점은 거의 없다. 여기서 우리 작가들의 창작에서의 발상의 문제가 제기된다. 해외작가들에게 문화대혁명과 쌍둥이로 비견되는 나치스의 폭행을 다룬 작품들도 많다. 피해자로서의 아픔을 친히 다룬 작품도 많았지만 가해자들의 반성을 보여준 작품도 적지않았다. 그 일례로 노벨문학상 수상작품 “양철북”의 작가 귄터 그라스를 들수있다. 귄터 그라스는 나치의 친위대가 되였던 광채롭지 못한 리력을 가진 사람이였다. 전쟁과 파시즘을 목격하며 야만의 력사를 거듭하지 않기 위해 랭정한 관찰자이자 기록자로서 반성의 작품을 써냈고 그로서 문명을 세상에 알렸다. 이러한 발상의 전환으로의 집필이 주는 생신감과 그로인한 문체의 다양성이 이 책을 읽으며 역시 소설만드는 사람으로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이기도 했다. 완전무결한 신이 아닐진대 인간이라면 누구나 대동소이하게 죄라는것을 짓는 실수를 범하게 된다. 하지만 그다음으로 중요한것은 그 죄값을 치르는 과정이 어떻게 진행되는가에 있다. 바로 자신이 저지른 행위에 대하여 반성하고 그에 걸맞는 방법으로 죄값을 달가이 치루어 내는것이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이런 량심의 궤적을 따라갈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가마는 그런 사람들이 많지 않은 오늘의 사회요, 오늘의 인간들이기에 이 소설이 주는 메시지는 너무나 깊고 필요할지도 모른다. 동명 영화의 한 장면     ☞ 김혁 문학블로그: http://blog.naver.com/khk6699 ☜
147    적(笛) 댓글:  조회:3970  추천:39  2009-03-29
    .중편소설. 적(笛)                           김   혁                    1   ...운무(云霧)가 흐르고 있었다. 운무와의 혼빈속에 그 지층을 꿰지르고 따라서 개여울이 흐르고있었다. 암바위뒤에는 로송 하나가 서있는데 우거진 잎새가 정자를 이루고있었다. 바위밑 둘레에는 꽃 몇송이가 피여있었다. 자주빛을 머금은 꽃은 여울이 주는 자그마한 한기에도 이파리를 하르르 떨고있었다.   발자국 소리 하나가 새벽의 끈적한 고요를 찢었다. 분명 길섶에 기장차게 자라난 풀잎을 차며 오는 소리였다. 허나 그 소리는 흐트러지지 않았고 온곱게 간헐적으로 들려오고있었다. 운무를 엷은 문발처럼 열고 그 발자국소리의 임자가 륜곽을 드러냈다.    그 사람은 흰 빛갈의 바탕에 검은 헝겊으로 가녁을 넓게 꾸민 학창의를 입고있었다. 관골은 높이 솟았고 인중이 깊었다. 눈확에는 검은 테가 둘레를 치고있었다. 허나 그에 반해 검은 자위는 짙고 또렷했고 흰자위는 밝았다. 잘 쪽찌잖은 상투머리에서 머리칼 몇오리가 흩어져내려 야윈 뺨을 치고있었는데 그로 해서 무표정한 얼굴에 별다른 내용과 기품을 첨가해주는상싶었다.   여울께까지 와서 그 사람은 질척한 물녘을 가볍게 저며딛고 쭈크리고 앉았다. 품너른 소매를 접어올렸다. 좀 작은편, 허나 기름한 손가락이 드러났다. 그 사람은 서서히 손을 물에 담갔다. 새벽물은 뼈를 찔렀다. 그 사람은 손을 맞비비며 오래도록 씻었다. 다음 두손을 소쿠리지어 물을 담뿍 떠서 입에 넣었다. 목을 뒤로 젖히고 하늘을 우러러 두볼을 풀무잣듯 자았다. 이어 혼탁한 물을 한켠에 뿜어냈다. 이러기를 한동안...다음 손을 펴들고 멀거니 내려다보았다. 손등에 얼기설기 긁힌 생채기가 보였다. 바위틈새에 돋은 약재를 뽑아내려면 손에는 생채기가 자꾸 나군 했다. 그 생채기에 물을 다시 몇번 끼얹었다. 다음 풀대가지 하나를 꺾어들었다. 손톱사이에 밀어넣고 각질에 집요히 엉켜붙은 때를 말끔히 후벼냈다. 왼쪽 무명지의 손톱이 키를 돋구고있는듯했다. 그 손톱을 바위의 꺼끌한 표피에 대고 잦게 문질렀다. 세세한 절차가 끝나자 그 사람은 바위로 올라가 정좌하고 앉았다. 한기가 우로 치받쳤지만 그는 전혀 무감각한 표정이였다. 품속에서 무언가를 끄집어냈다.   생초비단에 길죽한것이 돌돌 감겨져있었다. 그 사람 숨을 꺽 죽이고 생초비단을 한겹한겨 풀어내렸다. 드디여 물건이 드러났다. 두뽐 남짓한 그것은...피리엿다! 순간 여직껏 돌의 표피처럼 딱딱해있던 그 사람의 얼굴이 놀랍웁게 변조되여갔다. 코방울이 벌름거렸고 입술이 떨렸다. 그 사람 혀를 내밀어 마른 입술을 적셨다. 숨을 흡 들이마시고나서 피리를 집어들었다. 눈시울이 스르륵 깔려졌다.   그 무슨 진기품을 다루듯 손가락들이 조심스레 피리의 혈(穴)을 하나하나 눌러짚었다. 소리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밀집히 앙금져있는 새벽의 운무를 모난 칼끝처럼 금그으며 소리는 그물그물 기여올랐다. 반공중에 기여올라서는 추락했다가는 다시 튕겨오르면서 빈 공간에 은빛이 소리물을 짜고있엇다. 피리소리와 함께 산자락아래에 널린 농가들의 아침이 시작되였다. 아낙들이 동이 이고 고무신을 자박자박 끌며 우물가로 모여들었고 남정들은 하품을 삼키며 외양간에 찾아들어 마소를 기웃이 들여다보았다. 깝치동이들이 잠기가 대롱대롱 묻은  눈시울을 집어뜯으며 마당가녁에서 바지춤을 까고 밤새도록 참았던 장난끼 같은것을 쫘악 내 쏘았다.   산자락에서 우켠으로 치우쳐들어가면 계곡이 입을 벌리고 있다. 아름드리 분비나무, 황철나무, 자작나무, 떡갈나무 우듬지들이 하늘변으 ㄹ가리우며 들어섰는데 계곡 그 입구에 이제는 퇴락해버린 구름집(중들이 수도하는 집)하나가 있었다. 새벽기운이 다하고 저자거리로 나가는 우마들의 목에 걸린 방울소리가 산자락아래로 난 자드락길에서 구을 때면 피리부는 사람은 잠간 구름집으로 들어가군했다. 보리가루를 빻아 만든 떡에 산나물무침 등으로 조반을 치르고는 다시 그 바위께로 나오군 했다. 이어 피리소리는 그칠줄 모르고 다시 울렸다. 높이 쳐든 두팔이 시큰둥해나고 열성껏 오무렸던 입술이 자주빛이 되면 피리소리는 잠간 멎군 했다. 그때면 그 사람은 손가는대로  풀대를 꺾어 입에 집어넣고 지근지근 씹군 햇다. 싱그러운 풀의 원액(原液)이 온 입안에 엉켜들고 식도를 따라 혈관을 따라 온몸에 잦아들면 그의 몸은 풀잎새처럼 다시 일어섰고 신들린 피리소리는 다시 이어지군 했다. 그러다가도 그 어떤 관능같이 유발되는 깨도의 밀착에 구름집으로 달려들어가 이미 벼루에 담가놓은 붓을 들어 마지(麻紙)에 대고 무언가 정신없이 적군했다.   누군가 악사의 피리소리는 홰치는 닭소리보다 준확하다고 말했다. 또 누군가는 악사의 피리소리는 읍내의 파루(새벽을 알리는 북소리)소리처럼 어김없다고 말했다. 여하튼 악사는 해마다 여름이 늦드는 이 산을 찾았고 이 산을 찾았고 이맘때면 어김없이 산자락에 앚아 피리를 불군했다.                              2    산자락아래로 난 자드락길은 개암나무에 가리워 토막이 나 보였다. 그 길로 수레바퀴 구으는 소리가 들렸다. 피리가락에 혼신을 쏟고잇던 악사의 귀바퀴가 움찍했다. 그 소리는 한간에서 흔히 듣는 우마차의 구름소리와는 조금 이색적인데가 있엇던것이다. 소리에 익숙해진이라만이 미세한 파장의 변화에서 대상무을 준확히 가려낼수 있는것이였다.   소리의 도(道)를 깨치려 고심했던 악사는 그 누구에 비해 귀가 밝았다. 소리의 환몽속에 잠길 때면 온갖 만물의 동(動)적인것은 물론 정(靜)적인것조차 소리의 의미로 그의 뇌리에 락인되군 하였다. 그는 지어 해가 빛을 발산하는 소리를 들을수 있엇으며 그름이 청공을 떠가는 소리를 들을수 있었으며 연기가 허공을 톱는 소리를 들을수 있었으며 꽃잎이 물에 떠가는 소리를 들을수 있었다. 그의 인상에 있어서 해빛의 소리는 싸르락싸르락 이남박의 흠을 스치는 백옥미 이는 소리였고 구름의 소리는 바가지를 물에 엎어놓고 물매기 장단을 치는 소리엿으며 연기의 소리는 서까래를 기여가는 작은 벌레의 소리였으며 곷잎의 소리는 거문고의 약선을 섬섬옥수로 쪽 훑어내는 소리였다. 하기에 그 어떤 소리도 그에게는 무심히 들리오지 않앗으며 그만큼 그의 귀는 소리를 포박하는데 버릇되여온것이였다.   이어 악사느느 분명 자기쪽으로 다가오는 발자욱소리를 들었다. 그 자욱소리도 여느 사람들보다 달랐다. 걷다가는 돌부리도 차고 기품없이 털썩털썩 되는대로 내치는 소리가 아니였다. 한마리로 시골무지랭이들의 그 무지스러운 발자욱소리와는 동이 다른 소리였다. 악사는 적어도 마을사람이 아닌 읍내사람,혹은 귀골높은 길손임을 단졍했다. 발자욱소리가 가까와왔고 곁에 와 뚝 멎은 때까지 악사는 피리에서 입과 손을 떼지 않앗고 그 불청객의 도래로 하여 피리가락의 음조 역시 풀리지 않고있었다.   《여보시오 거사님(벼슬을 마다하고 심산에 붙박혀 지내는 사람)!》     그 사람은 낮은 소리로 불렀다. 차분한 그 소리의 밑바닥에는 공경한 비슷한것이 깔려있는듯했다. 허나 악사는 여전히 반쯤 내리뜬 눈도 치뜨지 않고있었다.   《거사님이 지금 불고잇는것은 향가(鄕歌)가락이 아니십니까?》   악사의 피리소리는 여전히 끊기지 않고잇엇다. 그 사람 한수 더 떴다.   《지법(指法)은 옳바른것 같습니다. 헌데...호흡의 절주가 좀 빠르다 할수 있지 않겠습니까? 향가라면 구선짐에 그 격조를 두고잇으나 향촌에 대한 사념의 정을 일관시켜 면면한 애수도 가끔 끼여넣음이 좋을듯합니다. 하기에 이럴 땐 지법도 느슨히 호흡도 빠름속에 늦음이, 늦음속에 빠름이 있게 혼반시켜야 하지 않을가요?》   악사의 피리가락 음조가 삐익-외곬으로 나갔다. 장장 30여년간을 피리와 벗해온 그의 취기(吹技)에 대해 진맥해낼 사람은 이 세상에 한사람밖에 없다고 생각해왔던 그였다. 그 사람은 재너머에 있었다. 재너머 양지바른 명소에 목비 하나를 앞세우고 진토를 뒤집어쓴채 한줌의 재로 사위여 누워있엇다. 그는 악사의 스승이였다. 그런데 오늘 누군가 언감 그의 앞에서 감놓아라 배놓아라 수선을 똘고있는것이였다. 한가닥의 염오가 솟아올랐으나 그와 함께 그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벌떡 한귀를 쳐들었다. 필경은 산속애ㅔ서 사람이 그리웠던 그였다. 악사는 번쩍 눈을 치떴다. 미목이 청수하고 옷차림도 화려한 남아 하나가 그의 앞에 서있엇다. 말그대로 옥골선풍이였다.   《뉘시오?》   악사 그 사람한테서 어떤 기품을 느끼며 따져물었다.   《지나가던 빈객이 거사의 피리소리에 환혹해 이렇게 찾아들었습니다. 거사의 경지를 깨뜨린것 같은데 하다면 죄송하기 짝 없구려.》   그 사람 흔연히 대꾸하며 악사곁으로 다가왔다.   《빈객도 악리(樂理)를 깨치려다 성사 못한 사람인데 오늘 거사의 피리소리에 촉동을 받았습니다.》   그 사람의 얼굴에는 성근한 빛이 갈마들고있었다.   《초야에 묻혀서 해종일 피리와 짓거리하는 사람에게서 뭘 느껴받을거 잇다고 그러오?》    악사 그 사람의 공경을 무질러버렸다.   《아니올시다. 이런 시구가 있지요.    창생은 한낮에도 조으려만    산속의 로자(老者)는 밤에도 깨여있네.》    악사 빙그레 웃음지었다.   《그렇다면 나를 로자에 은유한거구만. 세속을 간파한 로자가 되려면 동이 뜨오. 기어코 나를 은유하련다면 이런 시구를 읊음이 지당할듯하오.    아침에도 귀뚜라미처럼 중얼거리고    저녁에도 부엉이처럼 중얼거리는    너 쓸개빠진 로자여!》   《훗하하하-》   두사람 함께 웃음보를 터뜨렸다. 이어 손에 들려진 피리를 응시하더니 악사 웃음기를 거두며 정색한 낯빛으로 입을 열엇다.   《선인들은 음악을 가르치는것으로 사람들의 심성을 바로 잡고 나라를 다스리려 했소. 헌데 지금 그러한 악성(樂聖)이 적어졌고 따라서 악리를 써내려는 사람조차 없어지고 말았구려.》   그 사람 악사의 말에 흥심을 느끼며 귀담아듣고 있었다.  《사람이란 본시 칠정 육욕이 마음속에 엇갈려 잇음으로 하여 너나의 심성은 하나같이 바르게 간직되기 어렵소. 심사가 좋지 못하면 자연히 몸도 그에 따라 균형이 깨지고 행위도 절차를 잃어버리게 되지. 음악이 사람들의 귀에 익도록 하고 사람들의 마음에 젖도록 하면 혈맥은 항상 조화롭게 되고 온고운 심성을 항상 가질수 잇는것 아니겠소.》     악사 저으기 흥분되며 바위에서 내려 그 사람 가까이로 다가갔다.    《예로부터 가무승평한 나라는 모두가 태평성세를 누려올수 있었던거요! 그로써 백성을 안무하고 나라를 안정케 하여야 하오. 여기에 악의 현모와 공리가 있지 않을가.》   그 사람 연신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그야말로 귀밝은 리치입니다. 거사의 재주와 애기에 흠뻑 취했네그려!》   홀연 그 사람 청구 하나 내들었다.  《거사의 피리소린 실로 벽계수처럼 듣는 사람들의 마음을 적셔주는 청쾌한 소리군요. 저...청컨대 거사께서 한곡조 더 불어줄수 없을가요. 도원곡(桃園曲)이라든가...》   악사의 안색이 순간에 엎어졌다. 악사 옆눈으로 그 사람을 흘려보았다. 이어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런 곡이라면 활량들이 저자거리에 나서 돈냥이나 끌기 위한 곡이 아니겠소. 난, 그런 곡을 불 심경은 못되는가 보오.》   그 사람의 얼굴에 약간 아쉬운 표정이 얼비쳤다. 그 사람 악사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거사의 수련을 깨쳐 미안하고 좋은 깨도를 받아 고맙습니다.그럼 빈객은 이만 자리를 뜨려 합니다.》악사 따라서 읍하고 나서 다시 바위우에 올라 정좌하고 앉았다.  떠있는 기분을 곰삭이고나서 다시 피리를 집어들엇다. 길목까지 나갔던 그 사람 다시금 터진 청아한 피리소리에 귀 기울여 말뚝모양으로 섰다가 가재걸음치며 사라져버렸다.                              3   날이 저물었다. 별이 하나 둘씩 들추어 나오고있었다. 기름을 아끼려 등을 켜지 않은 구름집에서 사제향(사향으로 만든향)한대가 타오르고있었다. 그 한점의 불은 아무런 조명작용도 하지 못하고있었지만 어둠을 누비는 향내음은 어둠의 농도를 묽혀주고있는듯했다. 률리 맑은 피리소리가 향내음과 뒤엉켜 방의 구석구석에 밝음 못지 않은 생기를 돋쳐주고있었다. 수수깡으로 결은 천정에는 거미줄이 흐늘흐늘 수없이 드리우고있엇다. 향내음의 촉동에 적막에 감겨들려는 신심을 부추겨 세우며 구름깔개 (참나무를 엷게 밀어 곁은 자리)우에 앚아 악사는 피리를 불고있는것이였다.   문뜩 요란한 발자국소리가 울리더니 누군가의 왁살스런 손짓에 문이 벌컥 열어젖혀졌다.  《어이구 깜깜이야. 이거 코 베먹어두 모르겠군 그래.》   구리종같은 목소리가 울렸다. 어둠에 익숙한 악사 얼른 부시에 깃을 달아 등에 불을 붙였다. 방은 삽시간에 어둠의 포박에서 풀렸다. 악사 눈이 새그러워 눈시울을 좁혔다. 그의 앞에는 거쿨진 몸매를 한 사내 하나가 서있었다. 그 사내의 한손에는 술항아리, 다른 한손에는 보자기가 들려있었다. 악사는 그 사람이 계곡의 입구에 닿기전에 벌써 누군가 자기의 거소쪽으로 오고있고 그 발걸음소리에서  그 사람이 다름아닌 자신과 함께 악리를 익혔던 사형(師兄)임을 기수챌수 있었다.   《여봐 동생. 그렇게 도닦는 스님모양만 꾸미지 말고 우리 한잔 먹어보자꾸나. 자, 이제 고만 피린 걷어장지구. 뭐니뭐니 해도 사내 생겨서 술생긴것 아니겠냐.》   사형은 손수 구석쪽에서 대접이며 간새가 들어있는 그릇이며를 찾아내여 벌려놓았다. 닷새배보자기를 풀어헤치니 잘 삶겨져 구수한 내가 코를 푹쑤시는 소갈비 한짝이 드러났다. 일면 요란통을 벌리면서 혼자말처럼 중얼거렸다.  《괜스레 악(樂)에 미쳐가지고 멀쩡한 사람 다 버려놓았네. 차암. 성정이 모질지 못해 그런지 난 차마 못보아내겠다.》   소매깃으로 대접을 닦아내고서 사형 항아리의 술을 철철부어 악사앞으로 내밀었다.  《나 근자에 약주를 들지 않는걸 사형도 알고있지 않습니까.》   악사 벙시레 웃으며 밀막았다.  《그 좋은 술도 끈고. 너 정말로 극락갈려구 그러잖아. 》  《적적한대로 혼자 드세요. 제가 지켜보고있으리다. 》   사형 기분 접질려하며 혼자서 술대접을 기울였다. 악사 그저 갈비 한토막을 집어들고 조용히 뜯기만 했다.   《네가 술을 입에 대지 않을줄 번히 알면서두 말동무나 해주러 왔다.》   사형 혼자서 부어라 마셔라 했다. 입과 손을 닦고나서 악사 또다시 피리를 집어들었다.  《허참, 이거 짜장 상감마마나 된 기분인걸. 술마시는데 한켠에서 풍악까지 잡혀주고 좋다! 나 취도록 마일거니 너 그 염병할 피리나 계속 빨고있어.》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사형의 눈길에는 측은한 빛이 갈마들고있엇다. 다시 올리는 피리가락을 타고 악사의 몸은 환몽의 돌계단을 밟기 시작햇다.   그들은 원체 셋이였다. 초동머리적 악사가 첨거해있는 이산자락을 감도는 강에서 송사리, 메기를 반두질해서는 방아간에서 쌀훔치고 찬장에서 된장, 고추장 후무려내고 울바자틈사이로 애호박, 풋고추를 따서는 강녘에 솥단지 걸고 천렵을 즐기며 어우러져 놀던 셋이였다.   서늘한 물에 발잠그고 발가락으로 강바닥의 조약돌 굴리며 풀피리 꺾어 불기도 했다. 셋은 풀피리도 제법 잘 불었다. 그 간단하기 그지없는 자연의 《악기》였지만 신묘한 입놀림, 손놀림으로 어른네들이 늘 부르는 향가를 제법 옮겨냇고 술상머리에서의 권주가며 툽상스러운 육담가의 음조까지 죄다 섭렵해들이며 그 조그만 입으로 뿜어내군 했다. 그 광경에 환혹해 길 지나가던 싱거운 령감 하나가 기어코 자청해내서 그들에게 악리를 가르치고 피리를 배워줬다. 그 령감은 원체 궁악에 조예깊었으나 벼슬을 마다하고 음악의 현모를 찾아 입산하던 왕궁의 악공이였다. 령감은 이 마을의 뒤산에 있는 퇴락한 구름집에서 자신의 평생의 재간을 집대성하여 《악론》을 펴내기 시작했고 자기 희마응ㄹ 세 제자에게 기탁하여싿. 허나 악론을 절반도 못써내고 령감은 지쳐눕고말았다. 각혈하면서도 령감은 피리를 놓지 않고있엇다. 때로 그 적의 일곱구멍으로 피의 분수가 치솟기도 했다. 그 혈혼의 아픔을 딛고 범인들로서는 깨칠수 없는 악리가 씌여졌고 범인들이 낼수 없는 현묘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자연을 그렇게 사랑햇던 령감은 자연에서 자신의 생의 소리를 마감했다. 강가에서 돌베개를 베고 피리를 안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림종시 세 제자는 령감의 두리에 개벙하게 둘러앉아 령감의 마지막 소원대로 피리를 불었다. 눈물을 씹으며 장단곡(腸斷曲)가락에 스승의 혼을 실은 꼭 상여를 태워 멀리멀리 바랬다.   세 제자가운데서 둘째엿던 악사는 악기다루는 재주가 제일 밭은편이였다. 맏이의 소리는 음조가 데퉁스러울망정 구성졌고 셋째의 소리는 음조가 높을 망정 격앙이 있엇다. 허나 둘째의 소리만은 마냥 한본새로 진척이 없었다. 허나 그에게는 남다른 성정미가 잇엇다. 빛나는 진주를 빚기 위한 조개의 몸부림같은 그것-그것은 바로 인고(忍苦)의 성정미였다. 이 한점을 엿보아낸 스승은 맏이와 셋째의 재주를 격찬하였지만 둘째의 둔감에 대해서도 도를 넘은 타매의 언동 같은것은 따로 없엇다. 셋은 스승의 묘소앞에서 다 꼬지 못하고 간 악론의 률을 마저 꼬기로 서약하였다.   그렇게 2년이 지났다. 그네들의 아직 옅은 재주로는 스승이 이미 자욱을 뗀 심오한 리론의 명맥을 이어내려갈수 없었다. 그러던중 셋째가 맨처음으로 서약을 파기하고 피리를 버리기로 하였다. 셋째가 혀아래소리로 그 의사를 내비쳐보이자 맏이는 하늘이 낮다하게 길길이 날뛰엿다.  《뭐라구? 스승의 성묘 3년도 채 지나지 않아 네가 배신하려 들다니 짜식, 한주먹에 평토제르 ㄹ차려줄가보다. 》   악사 광분하는 맏이를 겨우 밀막아내였다.  《좋아. 네가 기어코 스승의 뜻을 기이련다면 그 속죄로 스승의 묘앞에서 피리를 불어얀다. 동류석별곡(同類惜別曲)을 불어! 하루낮 하루밤을 내처 불어얀다.》   셋째는 아무 말도 없이 피리를 들고 스승의 묘소를 찾았다. 목비앞에 앉아 피리를 불기 시작했다.  《동류들아 석별가 들어보소    동류정애 자별하나    리별하면 다 잊나니    한오백년 노니자던 인정    일조에 끊는단 말인가...》   셋째는 한루낮 하루밤을 내처 그렇게 한곡조를 되풀이하여 불고 또 불었다. 맏이는 그만 가슴이 질려 아무 말도 못했다. 그저 비지숨만 몰아쉴뿐이였다. 기력을 탕징해버린 셋째 비칠거리며 일어섰다. 스승의 묘소와 사형들을 휘둘러보고나서 아무 말도 없이 산을 내렸다. 그러는 그의 손에서 피리가 미끌어떨어져 돌서덜밭에 뒹굴었다.   셋째의 탈적(脫籍)에 그렇듯 유감천만해하던 맏이도 종내는 피리를 내려놓고 말았다. 둘째는 아무 말도 못했다. 쓴 약 마시듯 체념을 삼키고있었다.  《내가 못난이야. 난 셋째와 한바리에 처실어야 할놈이다. 둘째야! 그렇게 말없이 서만 있지 말고 날 욕해다오. 때려다오. 둘째... 둘째야 이럴 땐 좀 모질게 구박줘야 하는거다. 으흐흑...》   악사 창연한 기색으로 굳어져 자기 무릎가에 머리를 처박고있는 사형을 내려다보앗다. 이윽고 낮은 소리로 불렀다.  《사형...》   맏이가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쳐들었다.  《형도 스승의 묘소앞으로 갑시다. 가서 을 불러봐요.》   《그래그래. 내 불지 불어... 난 항렬로 맏이니깐 너희들 세곱되게 사흗날 사흘밤을 불면서 속죄하련다.》   허나 하루밤도 채 못불고 맏이는 묘소앞에서 고부라져 코를 골고있엇다. 악사가 스승의 묘소를 찾아 산자락에 치달아올랐을 때 인기척에 잠을 깬 맏이는 피리를 주어들고 부는 생색을 내려 햇다. 악사 다가가 피리를 앗아들었다. 두손으로 량끝을 잡아 무릎뼈에 대였다. 뚝 분질러버렸다. 참대의 파편이 허공에 튕겼다.   지금에 와서 재기 발랄했던 셋째는 읍내사람들이 우러르는 현령(縣令)이 되였고 품성이 돈후했던 맏이는 육포 하나를 차려 마을에서 꽤 유족한 갑부로 탈바꿈하였다...  《후-》부지중 한숨이 섞여들어 피리의 음조가 탁음으로 변조되였다. 악사 피리에서 입을 떼엿다. 맏이 홀연 흥심한 표정으로 악사의 앞에 손을 내밀엇다.  《자, 그 피리를 인다오.》  《왜요?》  《이 백정의 손으로 나도 한곡조 불어보련다.》   악사 마지못해 피리를 넘겨주었다. 넌들한 코물을 훌쩍 치걷고나서 맏이 기름방울이 대롱히 달린 다박솔수염틈바구니에 피리를 처박았다. 이어 소방두같은 손으로 피리의 혈을 더듬어 짚었다. 마디마디 순대토막을 이어놓은듯이 풍대해진 손은 이정의 그것 같지 않았고 그 동작도 매우 서툴렀다. 헛바람소리에 섞여 곡조가 울렸다. 허나 그 곡조는 고르롭지 못한 호흡에 의해 자주 끊기군햇다. 문뜩 곡조가 뚝 끊기더니 터진 보뚝처럼 갑자지른 기침이 한무더기 터져나왔다.  《안... 안되겠어. 쿨룩쿨룩, 술에 절고 쿨룩...육븉이에 절고 해서 이젠 심기르 ㄹ바로잡지 못하겠단 말이야. 일전에 내가 피리불면 그 소리에 동네계집들이 삭신이 오그라들어하며 질질 묻어다니잖앗나, 쿨룩쿨룩...》   맏이는 방금전의 곡조, 일전에는 그렇듯 신들리게 다루었던 악기의 실패에 대해 완연 무감각해잇었다. 현실에 배부른 표정으로부터 그 실패를 일상중의 허드레 실수거리로 여겨 괘념하지 않고 어덴가 만족어린 표정만을 짓고잇다는데서 악사는 어지간히 놀랏다. 슬며시 그의 손에서 피리를 잡아빼였다. 피리에는 술내음과 기름기에 엉겨진 걸직한 타액이 발려져있었다. 악사 질색을 하며 옥소매로 피리를 문질럿다. 악사의 기분전환을 시수채지 못한채 맏이는 소갈비에 엷게 붙으 ㄴ고기발을 이발로 긁기에 열심하고있엇다. 기분나쁜 이질감이 가슴에 흘러들었다. 악사 그만 고개를 틀고말았다. 누우런 메돼지기름이 담겨진 등에서 불심지가 뿌지직 신음을 지르고잇엇다. 그아픈 연소를 이윽토록 지켜보던 악사 응어리진 한숨을 토하고 나서 머리를 들었다.  《형,나도 한잔주오.》   악사 피리를 내려놓고 술대접을 집어들었다.                                                             4   ...무명필,피물, 패물함, 쌀자루가 악사의 앞에 놓여잇엇다.  《뭐요? 그날 그 사람... 그 사람이 상감마마였다고???》   악사 경악해마지않으며 자리에서 몸을 후닥닥 일으켯다.  《그렇소이다. 다름아닌 임금님이였지유.》   악사와 무르을 마주한 셋째사제-현령이 기름진 목소리를 뽑으며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수수한 복색차림으로 자신에게 존대어를 괴여올리면서 그렇듯 진지하게 악론에 대해 귀담아듣던이가 다름아닌 만민의 군주인 임금이였다는 느닷없는 사연에 악사 그만 설둥해지고말았다.  《임금은 사형의 악기다루는 재주와 그 악론설에 그만 감복했다고 그럽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보내여 이렇게 많은 물목을 하사했는데 내가 그 사람들을 대동해가지고 예까지 왔지요.》  《이거, 이거 웬 감투끈인지... 나 아직도 오밤중이군 그래.》   악사 어쩔바를 모르며 손에 들려진 피리만 연신 매만졌다.  《그날 임금께서는 비복을 하고 사냥하러 갔다오는 길에 마침 이곳을 지나치다 사형의 피리소리를 듣게 되였소이다. 원체 악기를 즐기셨던 까닭에 하늘같은 존재를 잊으시고 평민의 신분이 되여 사형과 만난거지요.》  《그런줄 모르고 난 방약무인하게 놀면서 혀가는대로 지껄여댔지 않고 뭐요.》  《아니올시다. 임금은 사형의 매 한마디를 곱새겨두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구 궁궐에 허다한 악공들이 있다 하지만 사형의 재주와 비하면 어설프기 짝없다고 하더랍니다. 》   악사 여직도 어리친 기색이 되여 구름집이 다하게 올망졸망 놓인 물목들을 눈빗질하였다.  《그런데...나같이 악기나 말아먹는 비천한 놈에게 이렇게 많은 귀품을 내려주시다니.》  《그뿐이 아니옵니다.》   현령 한보 다가앉았다. 열기 가득한 소리로 말을 이었다.  《사형같은 인재들을 널리 섭렵하고저 보름내로 궁궐로 입시하라는 분부도 내리셨습니다.》   악사의 피리를 틀어잡은 손이 부지중 떨리고있엇다. 그의 두눈에서 면면한 감동이 출렁거렸다.  《둘째사형의 처경을 두고 맏형과 저는 여간만 간집을 달구지 않았더랫는데...사형에게도 해볕이 드는 날이 종내는 왔구려. 하늘의 뜻인가 봅니다.》   현령 악사보다도 더 흥분한 기색이였다. 악사 이윽토록 아무 말도 못했다. 구름집 구석의 무더기로 쌓아놓은 악론에 관한 저서들이며, 이빠진 벼루며, 몽당붓이며를 자기의것 같지 않게 새삼스런 눈길로 둘러보았다. 그러면서 혼자말처럼 중얼거렸다.  《궁궐에 입시하면 탁월한 악공들과 접촉할수 잇고 악리에 정통한 바다건너의 외인, 그리고 체계적인 악론저서도 접촉할수 있을거요. 그 정수에서 깨도를 받는다면 스승의 평생추구를 마무리하는데 큰 조력이 될것 아니겠소.》  《악론도 악론이거니와 여직껏 불운하게 지내신 사형께서 부귀의 진미도 좀 맛보셔야지요.》   악사 서글프게 웃어보이고나서 몸을 일으켰다. 현령과 함께 구름집을 나섰다. 구름집 문전에는 물목을 지니고 왔던 관차들과 현령의 뒤를 묻어온 청지기 몇명이 공손히 대기하고있었다. 악사 그들의 틈바구니를 빠져나와 산중턱으로 치달아올랐다. 자그만한 목비가 세워진 묘소앞에 꿇어앉아 피리를 꺼내 들었다.   읍내로 향한 길, 들춤질하는 가마우에 앉은 현령은 산자락을 타고 내려와 환청같이 들려오는 그 피리소리에서 사형이 어데로 가있는지 짐작해낼수 잇엇다. 피리의 음률에 따라 현령의 손가락이 저도 모르게 률동하였고 입가로 곡조가 흥얼거리며 새여나왔다. 허나 그 흥얼거림은 얼마 못가서 곡조의 음부 몇개를 홀라당 까먹고 끊어지고말았다. 완연 다른 줄기의 곡조가 현령의 입에서 이어져나왔다. 그것은 간밤 자기의 거소에서 읍내서 장가락 꼽히는 명기가 타던 거문고곡조였다. 허나 그 곡조의 흥얼거림 역시 썩 개운치 못했다. 희한과 내구심 등으로 혼반이 되여 사제의 얼굴에는 복잡한 표정이 지어지고잇엇다.                                 5   붓을 연적에 내려놓으며 악사 당혹감을 금치 못해하였다. 어스름이 내리는데 분명 구름집쪽을 향해 다가온느 발자국소리...늘 찾아주던 사형의 자욱소리는 완연 아니였고 색다른 음식이 생기면 꼭 몇점이라도 집어다주던 마음씨 허랑한 돌배집할매의 발자국소리도 아니였다. 쓰던 글을 중둥무이하고 다시한번 귀를 도사리던 악사 부지중 몸을 부르르떨고말았다. 돌밭을 달그락달그락 즈려 밟으며 오는 소리, 그것은 분명 녀자의 발자국소리였다.   사형과 사제가 련이어 서약을 파기한 마음의 상처를 채 씻기전에 새로운 아픔들이 스승의 《악론》답습에 불면 불휴하고있는 악사에게 언거번거 덧놓여졌다.   사금이 아끼듯해오던 하나밖에 없는 아들애를 잃었던것이다. 애녀석들끼리 술래잡이를 하였는데 덴겁이 숨을 곳을 용뇌하던 그 자식이 드레박줄에 매달려 우물속에 곤두박혀버렸다. 물은 깊지 안앗으나 우물벽체로 둘쑹날쑹 내민 모난 돌에 머리를 박았던것이다. 그를 찾지 못한 애녀석들은 그의 존재를 가맣게 잊고 놀음에 싫증나자 뿔뿔이 헤여져 집으로 가버렸고 악사는 한밤을 패며 애를 찾아 산곬을 누볐다. 이튿날아침 마을의 한 아낙이 맨처음으로 물길러 나와 드레박을 당겨보니 즐벅한 피물이 담겨져 올라왔다. 그날로 산자락에는 작은 봉분 하나가 생겨났다. 악사는 울음조차 울지 못하였다. 그날 밤 마을사람들으느 산쪽에서 울려오는 피리소리를 들을수있었다. 가슴을 찢는 그 곡조에 온 마을이 잠을 잃었다.   다음 안해, 조강지처로 알았떤 그의 안해가 그를 버리고 야밤도주를 해버렷다. 마을로 가끔 찾아들던 읍내의 소금장사와 눈이 맞고 배가 맞았떤것이다. 투전놀이에도 이름있고 발달목침도 이마빡으로 받아 쪼갠다는 보통분수는 넘는자였다. 악사는 안해를 찾을양으로 읍내에 있느 ㄴ그자의 집을 찾았다. 결국 도척같은 그 놈의 골받이에 타작마당의 북데기처럼 늘어지고 말았다. 허나 악사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자네 울바자곁에 쭈크리고 앉아 피리를 뽑아들었다. 터진 입술로 쭈크리고 앉아 피리를 더듬었다. 향가도 아니고 별곡도 아닌 무질서한 잡음, 늙은네들의 한숨같기도, 사금파리쪼박을 맞비비는것 같기도 한 불규칙적스러운 음조가 야음을 찢었다. 그것은 깊은 통한과 허망스러움이 스민 소리였다. 발길질로 내쫓으면 다시 기여와 불고...그러기를 몇번이나 거듭하자 그자 역시 맥이 진했던지 더는 나타나지 않았다. 북두칠성이 앵돌아질무렵, 삽짝문이 조용히 열렸다. 익숙한 몸매 하나가 머리를 기웃이 내밀었고 이어 악사의 앞으로 와서 털썩 끓어앉았다.  《죽여주세요...》   악사 피리에서 입을 떼였다. 흐트러져 내려온 머리카락새로 안해, 지금은 남의 안해로 된 그 안해를 째려보았다. 안해는 겁기에 질린 눈길로 남편의 처참한 궁상을 곁눈질해보고있었다.  《가자...돌아가자...여직껏 같이 지낸 정분을 봐서라도.》   안해 머리를 쳐들어 악사를 바라보다 그의 눈길과 맞부딤하자 덴겁히 눈을 아래로 깔았다.  《가자!돌아가-》   악사 급기야 안해의 손목을 감쳐쥐였다. 안해 왼고개를 탈며 손을 뺐다. 집요한 당김에 비해 그녀이 거부 역시 강했다.  《더러운 년!》   악사 피리를 들어 그녀의 볼을 힘껏 후려갈겼다. 그녀는 피할념도 않았고 신음성도 지르지 않았다. 얼굴에 대뜸 시뻐걱ㄴ 멍자욱이 줄을 그은것이 희음스레한 별빛이 보였다. 안해의 눈확에 그들먹히 고였던 눈물이 드디여 주르르 넘쳐흘렀다. 어깨를 달싹이던 안해 울음기섞인 소리로 입을 열었다.  《쓸개빠진 년인줄을, 미친년인줄을 저도 아옵니다. 조련찮은 가군님을 둔것도 아옵니다. 허나, 허나...》   안해 머리를 쳐들어 악사를 정시하였다.  《...그 피리에서 그 이라는데서 쌀이 나옵니까? 무명이 나옵니까? 부끄런 애기지만도 마을서 촛손꼽히는녀잘 색시로 맞아들이구 저한테 은비녀를 꽂아주어보았습니까? 금팔찌를 끼워 주어보았습니까? 애녀석이...그 다 못가고만 애녀석에게 엿가락이라도 뻐끈히 녹이게 해주었댔습니까? 사형처럼 넉넉한 재물이 있습니까? 사제처럼 높은 귀골이 있습니까?》   련달은 물음의 홍수앞에서 악사 그만 아연해 지고말았다. 답변을 잃고  았다. 그 물음물음에 한마디 대답조차 줄수 없는 자신을 놀랍게 의식하였다. 한생을 유한히 살게 해주마하고 호기에 넘쳐 맞아들였던 안해, 그 안해에게 자기가 준것이 뭣이며 그 안해를 위하여 자기가 한 일이 무엇인가는 자문이 새삼스레 들었다. 남들의 광이 나는 살림에 부러운 눈매를 짓는 안해를 보고 머리는 길지만 세치보기 소견이라고 까박을 주었고 빈궁에 시달려 바가지를 긁을때면 제쪽에서 외려 증을 버럭내였던 그였다. 오늘에 와서야 가정이란 존재를 뇌리에 떠올려보게 되엿고 사내의 손에서가 아니라 안해의 가녀린 손에 의하여 한가정의 명맥이 여직껏 이어져왔음을 숙지(熟知)할수 있었다. 이한 상념에 악사 멍청한 꼴이 되여 점도록 그 자리에 뿌리내려있엇다. 여직껏 청고했던 그의 심신을 휩싸며 자격지심이 엄한처럼 밀착해왔다. 진득한 한숨을 한번 짓고나서 악사 다시 한번 눈앞의 낯익은듯하면서도 낯선 안해를 소상히 뜯어보았다. 다음 악사는 몸을 돌렸다. 휘청거리며 몇걸음 가다가 겨우 한마디를 힘아리없이 내던졌다.  《잘살아봐...》   며칠후 악사는 입산을 해버렸다.   ...발자국 소리는 가까와지고있엇다. 그 소리는 혼자뿐망의 소리가 아니였다. 나귀의 자국소리, 투레질소리 그리고 분명 견마잡이인듯한 남성의 저력있는 걸음소리와 뒤섞여 들려오고 있엇다. 발자국소리는 구름집에 와 뚝 멎었다.  《어서 들어오도록 해라.》   분명 어줍게 서잇는 녀자의 심기를 헤아려 악사 피리에서 입을 떼며 그녀를 불러들였다. 조용히 문이 열렸다. 치마자락을 사뿐 쳐들며 그녀 문을 넘어섰다. 하얀 코신의 앞코숭이가 얼핏 드러났다. 사라졌다. 그녀 살며시 머리우로 감쳐썼던 남바위를 벗었다. 곧은 가리마, 땀이 함씬 배인 반듯한 아니, 반쯤 내리감은 눈, 안존한 코마루, 꽃잎을 문듯한 입술... 구름집안이 삽시에 훤히 밝아졌다. 악사가 권하는대로 그녀 깔개우에 몸을 틀고 앉았다.  《어떻게 이렇게 루추한 곳으로...그것도 밤길에 대여 왔소?》   악사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며 물었다. 그녀 어줍은 기색이 되여 입을 열었다.  《악사님의 피리소릴 듣고 넋을 놓고 그 소릴 따라왔나이다. 》   악사 참지 못하고 웃었다.  《예서 읍내까지 몇리더냐?》  《아니, 분명 들었사옵니다.》   그녀 두손을 가슴앞에 모아쥐였다.  《마음으로 듣고있었습니다. 그것은 분명 추월가(秋月歌)의 곡조였습니다.》   악사 몸을 흠칫 떨었다. 방금전 그는 진짜로 추월가 한곡조를 불었던것이였다. 악사 어리친 표정으로 눈앞의 그녀를 다시금 새삼스레 뜯어보았다...   이 녀를 만난것은 해포전의 일이였다. 어느 한번 읍내로 갔다가 사제인 현령의 손에 이끌려 기녀들이 운집해있는 춘향루로 갔다. 《음악을 깨친다는 사람이 녀자를 모르고서야 어이 되겠습니까? 한번 만나보십쇼. 웬간한 녀자가 아닙니다. 이 현령의 수청도 감히 거절하는 녀잡니다. 천금일소(千金一笑)라고 여느 청루녀자들과는 완연 다를겁니다...》   춘향루 앞골목까지 와서 낯꽃을 확 붉히며 주자를 놓으려는 악사의 옷자락을 현령은 기어이 잡아쥐였다...두사람 실랭이를 벌리는중에 악사 홀연 몸을 흠칫했다. 춘향루에서 들리고 있는 웃음소리, 노래소리, 거문고소리...그중에서 유독 한가락의 싱그러운 거문고소리만을 악사는 가려듣고있엇다. 그저 유홍자의 처경에서 멏곡조 뜯을줄 아는 그만한 재주가 아니였다. 분먕 악에 대해 어느 정도의 수련을 쌓은 그런 솜씨였다.  《저 거문골 타는 녀자를 뵙고싶다.》   악사 밀막던 방금전과는 완연 다르게 웨치다싶이 말했다. 이렇게 만난것이 바로 이 녀자였다...  《한곡조 듣고싶습니다...다문 한곡조라도 듣고퍼서 예까지 외람되게 찾아온것입니다.》   그녀 청구의 눈매로 악사를 쳐다보았다.  《밖에 같이 온 사람 있잖느냐? 먼길을 배동해온 사람을 저러헥 내쳐둘순 없지.》  《자리가 협착하여 들어오지 말라고 했삽니다. 춘향루에 있는 부목(땔나무 해들이고 불때는 머슴)이옵니다. 쇤네가 하도 지청구를 해서 나귀를 몰고서 밤길을 대여주었습니다.》   그녀의 진한 청구의 눈빛에 밀려 악사는 피리를 입에 가져다대였고 그녀는 곰상궃게 악사의 곁에 앉아 곡조 가락에 말려들었다. 그녀의 아버지 역시 악에 미친 사람이였다. 왕궁의 악공으로까지 발탁되였댔으나 그 탁월한 재주를 시기하여 곁에서 간계를 놓는 바람에 파면당하고 귀향하였다. 청빈을 못이겨 어머니는 오간데없이 사라지고 그녀는 아버지의 손에서 자랐다.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그녀 역시 음악에 현혹했으나 현금같은 악기 하나 변변히 갖출수 없는 찌든 처경이였다. 하여 아버지는 삼실 여섯가락을 나무판대기우에 매고 잎으로 소리가락을 흥얼거리며 그녀에게 현금타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그녀는 악에 대해 배웠고 사람사는 도리를 배웠다. 악기 아닌 악기에 매달려 삼실을 튕겨대며 악경속으로 빠져들어가는 딸애의 모습, 그것은 아버지에게 있어서는 살같이 아픈 육감의 밀착이였다. 그 모습으 ㄹ보다 못해 아버지는 아래입술을 지그시 악물었다.   달도 없고 별도 없는 어느날 저녁, 아버지는 야음을 타서 읍내의 한 부호네 집으로 잠입해들었다. 간거하게 현금 하나를 흠쳐내였다. 돌각담을 뛰여넘다가 너무도 긴장한 나머지 현금을 담안에 떨구어버렷다. 현금의 가락이 듣그러운 악음으로 울엇다. 그 소리는 고요한 밤대기속에서 여느적보다도 높이 울렸다. 아버지는 그때 뛰여야 했다. 허나 그 현금으 ㄹ다시 주으러 들어갔고 그만 가노(家奴)들에게 잡히고 말았다. 도적으로 치부되여 감나무에 거꾸로 달리웠다. 날샐녘까지 혹독하게 물매를 맞았다. 그것이 빌미로 되여 아버지는 드러눕고 말았는데 생명이 경각에 달했다. 그녀의 길쌈으로 아버지에게 약을 갈아대기가 어려웠다. 약점 바로 곁에 춘향루라는 기생집이 있었다. 매일 약점으로 드나드는 청초한 소녀, 그 수심에 잠긴 얼굴에서 불운한 처경을 엿보아내고 춘향루의 주인이 연거번거 약값을 선불해주었다. 결국 아버지는 구해내지 못했고 그 엄청난 빚을 치르지 못해 그녀는 청루에 륜략된 몸이 되였다. 춘향루주인의 흉산(凶算)에 들었던것이였다.   이한 뼈저린 연고가 있음으로 하여 그녀와 악사는 첫만남으로부터 의기투합될수 있었다. 더우기 음악이라는 이 하나가 그들의 공감을 유발시켰으며 끈끈한 동아줄처럼 그들을 한데 얽동여 떨어질수 없게 하였다...  《호-어쩜.》   악사가 한곡조를 끝내자 그녀는 두손을 가슴앞에 사려쥐며 가벼운 한숨을 지었다. 그 재주에 너무나 감복한 나머지 감탄이 그만 한숨으로 변용되여 나온것이였다. 그녀는 넋을 놓고 악사를 바라보았다. 그 빛나는 눈길에서 점직함을 느낀 나머지 악사는 고개 돌려 그 눈길을 피해버렸다.  《오늘이,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고계시옵니까?》   그녀 은근한 소리로 물었다. 악사 설둥한 기색을 지으며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칠울 초엿새날, 분명 악사님과 처음 만났던 날이엿습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감미로움에 젖어있었다. 악사 그 소리에 몸을 흠칫 떨었다. 그 기간 청루에서 벌어들인 한푼 두푼의 뼈돈으로 지묵도 사주고 묵달밭같던 가슴에 정도 심어주면서 악사를 음으로 양으로 많이 도왔던 그녀였다. 또 일개 청류녀자였지만 그녀에게서만 《악론》을 계속 펴나갈 내조의 힘을 얻었던것이다. 악사 고개를 돌려 그녀를 정시하였다. 그녀 악사의 눈길을 정차게 받아들이였다. 면면한 감회와 애모쁨에 출렁이고있는 눈길, 그 눈길속에 진한 사랑의 색조도 어울려잇음을 악사는 감득할수 있었다. 악사 덴겁히 눈을 돌려버렸다. 그녀 한걸음 다가앉았다.  《악사님...》   불러놓고는 이윽토롯 멈칫이다가 그녀 드디여 입을 열었다.  《청추에서 사는 몸이라 쇤네를 얕보고있지 않사옵니까?》  《아니, 아니다 절대루.》   악사 덴겁히 소리를 높여 말했다. 접품이나 언행이 퍽 유하고 숙성한 그녀에게서 비천을 느껴본적이 없는 악사였다. 또 청루의 녀자지만 그녀의 삐여난 미모에서 별다른 잡념도 가지지 못했던 그엿다. 접촉이 잦았지만 그들사이엔 이성적인 친교는 없었다. 기실 그들은 악(樂)을 위한 사형사매(師兄師妹)의 역으로 어우러지고있는것이였다.  《정녕 그렇게 생각하시온다면 오늘 저녁...》   그녀 악사의 손을 당겨 잡았다. 여유있고 애정어린 눈으로 악사를 지켜보다가 혀아래소리로 말했다.  《쇤네를 드리고싶습니다.》   낮고 자닝스러운 목소리였지만 악사에게는 돌사태같은 진동음이였다. 악사 덴겁히 손을 당겨 뽑았다. 허나 이번에는 몸 전체가 품으로 콕 실려들었다.  《악사님을 만난 그 이후로부터 기(技)만 팔고 몸은 팔지 않았더랫씁니다. 비록 이미 더럽혀진 몸이지만두 다시한번 가꾸고 싶어졌습니다. 꺼리지만 않는다면 악사님께만...단 악사님에게만 드리고싶었습니다. 너무나 불운하게 지내오신 악사님에게 녀자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행복을 드리고싶었습니다.》   그녀 축축히 젖은 소리로 말하며 악사의 목을 끈끈히 삼쳐안았다. 그 서슬에 악사 뒤로 벌렁 넘어졌고 그녀 홍칠로 달아오른 볼을 악사의 마른 볼에 맞부벼댔다.  《임금의 부름을 받은 애기를 들어삽니다. 그렇게 되면 악사님과의 지란지교(之蘭之交)도 일약 진대가지 부러지듯 마는구나고 생각하니 가슴이 미여지는것 같앗삽니다. 청루의 몸인지라 떠나는 악사님에게 드릴만한것이 없는것이 마음이 걸려와요. 이 몸을 드리고싶었습니다. 그래서...》   그녀의 한몸은 작열하는 불덩이 같이 정염에 불타고있었다. 밀착해오는 따스하고 부드러운 육체, 그 현란한 육향에 악사 부지중 몸을 부르르 떨었다. 바른 손으로 피리를 으스러지게 틀어잡았다. 뿌지직-피리, 그 참대의 표피와 손바닥의 마찰음이 요란히 울렸다.  《안돼... 이, 이럼 안돼...》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그녀의 차분하고 섬세한 손더듬에 악사는 여직껏 고독만 반초해오며 잠자고있던 남성이 서서히 일어섬을 거부할 길 없었다. 그녀 옷고름을 풀어내렷다. 반라체가 된 무르익은 몸매, 순백의 눈부신 육체가 드러났다. 등잔 불빛의 광환에 어려 그녀의 뽀얀 살결은 진한 색조를 머금고 있엇다. 타령의 음조처럼 늘차게 어깨우로 흘러내린 머리발, 전주곡처럼 조용히 뻗어내린 목줄기를 타고 뉘연히 선을 긋다가 휑가래쳐오르는 곡조의 높이처럼 너무나도 급작스레 부풀어오른 곤혹적인 젖가슴. 그 묵직한 유방의 가녁에 차분한 곡조처럼 비껴 머물은 아름다운 그림자...그녀는 짜장 응고된 한수의 음악이였다. 그녀 수줍게 치마폭을 올리고 생활에 대한 묘연하나 필연의 희마응로 솟구고잇는 악사의 커다란 집념에 자신의 애모쁜 정감을 밀어붙였다.  《아흐흑...》현금의 선을 훑어내리듯 그녀의 입에서 감창이 터져나왔다. 대보름날 떵방아 찧듯이, 한가위날 그네판 구르듯이, 타작마당 씨를 까불리듯이 그녀는 춤굿의 변화많은 춤사위먀냥 신들린듯 악사를 탐닉하고들었다. 거부의 몸짓을 힘아리없이 버리며 악사 격정에 끊어질듯 비틀리고있는 그녀의 허리를 두손으로 꼭 잡아주었다.   홀연 바깥으로부터 어험! 하는 마른 기침소리와 무료한듯 발끝으로 자갈을 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곡이 바뀌는 소절사이의 쉼표처럼 그녀 무춤 동작을 멈추었다. 허나 집요한 정감의 소요에서 헤여나오지 못했다. 그녀 눈시울을 내리깔고 머리를 뒤로 한껏 젖혀버렸다. 반쯤 열린 그녀의 붉은 노래소리로 나마 부끄러움을 위장해보려는 알큰 심사에서였다. 아래우로 요분질하면서 그녀 소리를 뽑았다.   《사랑 사랑 사랑이야   봄바람에 넘노나니 꽃을 물고 즐긴 사랑   원앙처럼...짝을 지어   마주 둥실 떠노는 사랑   어화, 어화둥둥   연연히...고운, 고운...사랑   네가 모두...사...랑...이로구나》   악사 자신의 령혼을 그 곡조에의 음률에 붙들어매였다. 음률의 사래긴 밭우에서 두사람 짜장 한개의 음부로 화하여 뒹굴었다. 숨가삐 울리는 음조에 끌려 여직껏 경직되엿던 그의 정감은 깊은 늪으로 자꾸만 자꾸만 빠져들어갔다. 그 곡조에 따라 너울거리는 불빛이 그네들의 찬연한 정사를 비쳐보고있었다.                               6   셋은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여앉았다. 악사의 입궁을 앞두고 사형이 풍성한 주연을 차렸던것이였다. 악사는 억병으로 여느때보다도 술을 많이 마셨다. 주기에 구시월 단풍처럼 불깃해진 얼굴에 그로서는 보기 힘들던 기쁨의 웃음이 어려 열기의 빛을 더해주고있었다.  《내 그럴줄 알았지. 그럴줄 알았어. 나 비록 락수가 처마밑의 돌절구를 구멍뚫는 심오한 리치까지는 채 깨쳐알지 못하지만 사제의 끈기에서 그 앞날의  룩이 아슴히 안겨오더군 그래. 매지구름이 쫘악 끼였던 우리 동생의 하늘에도 훤한 별이 쭈욱 비집고 드는 날도 있구만 그래.》   맏이가 술, 기름에 얼룩진 턱수염을 쓸어내리며 감개에 젖어 너스레를 떨었다. 악사 사형과 사제의 잔에 술을 듬뿍 부었다. 다음 자신도 한잔 따라들고나서 그들을 둘러보았다.  《형, 그리구 동생 이 못난이때문에 그 기간 로고가 많았소. 여하튼간에 나의 입궁이 스승의 평생의 소망을 이루는데 유조한것 같아 기쁘기 한량없구만. 자, 그런 뜻에서 이 술을 기꺼이 받아주오.》  《그래. 묵자, 묵어, 이 아니 기쁜 일손가 묵어야지. 취토록 묵고 마시면서 우리 셋이서 만단정회를 풀어보자.》   맏이가 맨먼저 굽을 내였다. 그런데 셋째는 어쩐지 묵연한 기색이였다. 술잔을 멀거니 내려다보는 셋째의 거동에서 그제야 여직껏 색다른 기분으로 죽쳐앉아잇는 그를 맏이는 기수챌수 있었다.  《웬 일이냐? 우리 현령어르신님은...》   졸다가 불리운 사람처럼 현령은 바삐 응수하며 술잔을 쳐들었다.     《어디 말짼거나 아니냐?》   술잔을 만지작이다가 현령은 이윽해서야 입을 열었다.  《이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기쁜 마음들에 동침을 꽃는것 같아서...》   악사 입가까지 가져다댔던 술잔을 되내려놓았다.  《우리들지가넹 무슨 넘지 못할 마음의 벽이라도 있느냐?》  《그러기에 더 말치 못하는겁니다.》  《아하. 툭 깨놓고 말해라, 사내눔들이 갑자지르긴?》   맏이가 증을 버럭 냈다.  《그럼 나 툭 깨쳐 말하리다.》   악사를 바라보던 셋째가 술잔을 쭉 굽내였다. 그리고는 잠겨든 어성으로 입을 열었다.  《사형이 임금의 신변으로까지 발탁되였다니 나도 애초엔 기뻐했더랫습니다. 헌데 사형은 지금 너무나 좋은 꿈을 꾸고 계십니다. 그곳에 가서 악론을 계속 펴보려는 사형의 심성이 얼마나...짧은지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하는 말이지?》   셋째는 악사의 질러오는 눈길을 피하며 말을 이었다.  《접때 임금이 하사한 문물을 지니고 온 관차중에 사제와 천교가 밭은이 하나가 있습니다. 그의 말에 좇아보면 임금이 사형을 부른것은 그 무슨 악리를 깨치려는것이 아니라...》  《그것이 아니라면?》  《소문이 나면 재미적을 일이지만두 그 관차가 취중에 토파합디다요. 임금님은 매번 내시들의 거들음을 받으며 궁녀들을 점지하여 침상에 오르군 하는데...》   현령이 악사를 힐끈 곁눈질해 보았다.  《...그때마다... 그때마다 침전어구에서 악공 하나가 유연한 피리곡조를 내야 그 일을... 행하는데 버릇됐다고 합더이다.》   짤그랑! 악사의 손에서 술잔이 미끌어떨어지며 조각이 났다. 악사의 불깃하던 얼굴이 삽시에 험악하게 변조되여갓다. 몸을 부르르 떨던 악사 자리르 차고 일어났다. 문을 콱 떠박질러 열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사형! 사형-》   셋째가 붙쫓아나섰다. 뜰의 담께까지 달려가서 악사는 한손으로 돌각담을 짚고서 몸을 옹송그렸다. 어깨가 오르내리고 있었다. 방금전까지만도 앞길이 소연히 밝게 보이는것 같아 기뻐마지 않았던 악사였다. 그런데 그한 마음에 세찬 작달비가 한무더기 쏟아져내리며 미진하게 그려보던 감몽에 사정없이 길고 깊은 균렬을 준것이였다. 이윽고 악사는 머리를 쳐들었다. 별빛에 드러난 그의 얼굴에 눈물자욱이 얼룩져있었다. 별빛에 드러난 그의 얼굴에 눈물자욱이 얼룩져있었다. 하늘을 바라고 악사는 넋을 놓은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일월성신이여, 진세를 굽어보고 살피는 일월성신이시여, 나 둔감한 머리와 미달한 재주로나마 악리의 절정에 오르려고 로심초사해왔는데 어이, 어이 남의 유흥이나 보태주는 활량이 역애만 그치겠나이까?이 비천한 악기쟁이로 말하면 크게 욕될 일이 아닐는지도 모르나 우리 스승이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받들어왓던 그 악(樂)으로 놓고 말하면 심한 치욕이 아니겠나이까? 신성한 악을 더럽히는것이 아니겠나이까?》    현령이 다가가 악사의 어개에 손을 얹었다. 악사 으깨진 심정을 수습해들이며 소매자락으로 눈굽을 닦았다. 셋째를 뒤돌아보며 이사이로 말을 내뱉었다.  《나 입궁 안한다!》  《안될 일이옵니다. 사형!》   셋째가 필요이상으로 펄쩍 뛰였다.  《임금의 칙지온데 어떻게 언감 거역한다구 그러십니까?》  《아무리 자존한 임금이기로서니 그래 내 악사의 자존이고 뭐고를 하루밤 궁녀처럼 마음대로 주물리우란 말이냐?》  《경치게 엄턱스런 소릴 하지 마십쇼. 사형, 일국의 군주로서 자기 뜻을 어긴자에 대해서 무슨 엄벌이든 행하지 못하겠습니까? 큰 변고를 치르자고 이러십니까?》   셋짼느 악사의 팔뚝을 부여잡으며 당황망조해마지않았다.  《나 비록 미천한 백정이긴 해두 한마디 삐쳐보자.》   어느새 맏이도 따라나와있었다.  《심산 초야에 묻혀 여뀌풀로 썩느니보다 그런대로 화려한 궁전에서 수긍하고있는편이 더 낮지를 않겠느냐?》   맏이가 상냥조로 나왔다. 악사 그들을 둘러보며 허구픈 웃음을 지었다.  《스승의 뜻을 너무나 잘 알지 못하고있소. 사형도 그렇구 사제두...》    악사 머리를 쳐들었다. 구름집으로 다시 돌아가려고 뼈무는 그였다. 비록 한마리의 나비가 남기고 떠난 빈 고치나 다름없는 한산한 구름집이였다. 허나 그곳에는 그를 맞아주는 석굴이 있고 산초가 있고 산화가 있고 계곡이 있고 절벽이 있고 송(松)이 있었다. 산의 그 유원한 맛에 흠뻑 심취해버린 악사였다.  《작달비속을 내처 가더라도 낮은 처마밑에 목을 꺾고 싶지 않소!》    악사 대문을 박차고는 계곡쪽을 향한 길로 사라져 버렸다. 왜소하나 그 어떤 결의로 깎아내린듯한 그 작은 체구를 맏이와 셋째는 멍하니 지켜보고있었다.                            7     춘향루의 그녀에 대한 비보를 접한것은 그로부터 며칠후였다. 읍내에서 갑부줄에 꼽히는 한자가 춘향루로 찾아와 거금을 내치고 그녀에게 수청을 요했다. 그녀 기(技)만 팔지 몸은 팔지 않는다고 거부했다. 취기에 절은 그자 수욕이 발작하여 야수처럼 그녀에게 덮쳤다. 그녀 광분하는 그자의 귀때기를 물고 늘어졌다. 더러운 욕구를 달성치 못한 그자 짜장 리지를 잃고 말았고 그녀를 주먹으로 쳐눕히고 실랭이를 벌리는통에 깨여진 그릇쪼각으로 그녀의 얼굴이며 몸매를 성한 곳 없이 째여놓았다.   악사 악연히 놀라며 그녀를 찾아 읍내로 달려왔다. 춘향루로 치달아올랐을 때 탕개풀려 누워있던 그녀 시위에 놀란 새처럼 후딱 몸을 일으키더니 벽쪽을 향해 돌아앉으며 두손으로 얼굴을 감싸쥐였다.  《가까이 오지 말아요! 제발.》   악사 그녀의 두손을 잡아떼려 햇으나 그녀의 거부는 집요했고 강했다.  《보지 말아요. 제발 물러가주세요.》   이어 그녀는 목놓아 울음을 터뜨렸다. 그러는 그의 드러난 손, 손목과 목덜미에  얼기설기 버얼건 상처자욱이 깊숙이 배여있음을 악사는 보아낼수 있었다. 분노가 갈퀴발처럼 일어 악사의 가슴을 허비였다.     《개놈새끼! 짐승같은 놈새끼!》   악사 악에 받쳐 부르짓고나서 몸을 훌쩍 일으켰다.   악사 단걸음에 읍내 북판에 위치하고있는 관청으로까지 뛰여왔다. 관청의 높다란 널대문곁에 백성들의 설분을 관청내에 전갈하기 위한 커다란 북-신원고(伸 鼓)가 세워져있었다. 북채가 보이지 않자 악사는 피리로 북을 힘껏 두드렸다. 둥!둥!두웅-드디여 대문이 삐걱 열리더니 가암른 몸집을 한자가 머리를 쑥 내밀엇다.  《웬 놈이 이렇게 성가스레 구는거냐?》  《나 현령을 만나 긴히 여쭐 말이 있소.》   포졸같아뵈는 그자는 파의파립이 악사의 복색을 가려보자 입을 삐쭉이며 눈알을 굴렸다.  《현령께서 심기가 좋지 못해서 오늘 일체 면회 거절이다.》  《나 현령의 사형이니 어서 현령과 만나도록 알현케 해주오.》   포졸 동공을 키웠다.  《네가 엄감 현령의 사형이라면 난 현령의 아비쯤은 될거다.》   대문이 쾅하고 닫혀졌다.  《여보시오!여보시오-》   악사 목청 깨져라고 소리지르며 연해연방 대문을 두드려 댔다. 허나 더는 응대조차 없엇다. 커다란 실의를 느끼며 돌아서려던 악사 대문앞에 쭈크리고 앉았다. 피리를 뽑아들엇다. 깊은 통한에 절은 피리소리가 관청의 대문을 두드리며 흘러나왔다. 대문이 다시 열렸다. 허나 이번에는 포졸의 야윈 낯짝이 아니라 낯익은 사제의 얼굴이 나타났다.  《아니, 사형께서 어찌하여? 오실거면 미리 전갈해둘것이지?》   현령 황급히 그를 대문안으로 모셔들였다. 그 모양에 방금전의 포졸이 한켠에서 어리친 기색이 되여 멍하니 악사를 바라보고있었다.  《춘향루 녀자의 일은 어떻게 할 작정이냐?》   동헌(곤청의 대청)에서 악사 정곡을 찌르며 대번에 그 이야기부터 꺼냈다.  《자, 우선 안채로 들어가 숨이나 돌리고 애기해봅시다.》  《아니, 예서 먼저 정답해봐라.》   셋째는 낯살을 찡그렸다. 이윽토록 말을 꺼내지 못하고있었다.  《현령이란 한개 읍내의 부모맞잡이다. 그러한 처신으로 비록 기녀라 하지만 그 역시 하늘이 낸 몸인데 그들의 아픔과 재화를 못본척할수 있겠느냐. 흉범을 잡아 오라를 지워야지!》   악사가 설분에 길길이 뛰는데 비해 현령은 담담한 표정이였다. 딱한 표정으로 말을 받았다.  《사형도 아다싶이 그자는 읍내에서 엄지로 꼽히는 부잡니다. 그자의 재력으로나 위세로는 읍내에서 큰 기침 할만허죠. 우로는 왕궁 아래로는 시골나부랭이에 이르기까지 세도가 커서 광청에서마저 용빼는수가 없는 일이 가끔 있습니다.》  《그래도 비뚤어진 권도는 용인할수 없다. 그만한 의리조차 잡지 못한다면 그 관모부터 벗어던져라.》   악사 증을 버럭 내였다. 한동안의 혈기가 곰삭은 뒤 악사 또다시 따져물었다.  《춘향루 주인들은 어떻게 할예정이더나...기녀들을 치고 있는 그네들이...》  《그들에게 이미 사죄금을 보내왔더랍니다.》  《사죄금...흥! 아무리 옆채기가 불룩한 갑부라 하더라도 금액이 얼마면 그 설분을 풀수 있다더냐?》   셋째 한결 음밀해진 소리로 말했다.  《대단합더이다. 사죄금으로 춘향루를 죄다 살수 있게끔 맞먹을 돈을 보내왔다 하더이다. 그러게 이쪽에서도 잠자코 있는거죠. 참, 사형도 지금 세월엔 한쪽눈을 질끔 감고 사는 법도 배워야 합니다...》   악사 부지중 허무한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사제의 뉘연히 군살이 오르기 시작한 허연 얼글을 건늬여보았다. 웬지 사제의 얼굴이 퍽 낯설어보였다. 일전보다 행실이 퍽 오활해진 사제를 두고 그 어떤 염요감 비슷한것이 욱 치밀었다.  《그래 종내는 주체할 길 없단 말이지.》   현령이 켕긴 표정으로 머리를 가로 저었다. 천착할듯한 눈길로 사제를 쏘아보던 악사 피리를 으스러지게 쥐고 불쑥 한마디 했다.  《나 생각을 고쳐 왕궁으로 갈 예정이다.》                               8   방에는 끈적한 침묵이 흐르고있었다. 벽쪽으로 고개를 돌리고있던 그녀 갸냘픈 소리로 그 침묵을 찢었다.  《미천한 쇤네를 위해서 그 높은 지조를 버리고 입궁하려 한다면 악사님의 생각은 틀린겁니다.》  《아니요!》   악사 그텨쪽으로 몸을 내밀며 말한다.  《나 이제 입궁한 뒤 임금의 위풍을 빌어 그 귀축같은짓을 서슴없이 지르는 놈들을 주멸하려오. 왕궁의 명의원들을 불러 임자의 모습도 환원시켜드리고...그렇게만 될수 있다면 내가 좀 곤욕을 참아보지.》  《아니올시다!》   그녀 덴겁히 내뿜었다.  《쇤네는 이미 버린 몸이옵니다. 제가 밥먹고 있는 일은...바로 이 얼굴 한장입니다. 그것을 쇤네는 잃었습니다. 쇤네는...단념했습니다...》     그녀의 소리가 울먹이는 소리로 변조되여갔다.  《...쇤네는 아버지 만나러 가겠습니다. 황천의 주막에서 그이와 만나...현그을 켜겠습니다.》  《그런말 마라! 살아야 해! 나처럼 이렇게 산속에서 짐승처럼 구을면서두 살아야 해!》   악사 천둥같이 소리질렀다.그녀 탄력잃고 습하게 변해있는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아니옵니다. 모르고 하시는 말씀이옵니다. 이 모습으로... 쇤네는 도저히 이 세상을 살아갈수 없삽니다.》   그녀 서서히 몸을 돌렸다. 본능적으로 얼굴을 감싸쥐였던 손을 천천히 내리웠다.  《아!!!》악사 저도 모르게 비명을 뽑고말았다. 주먹으로 바닥을 힘껏 내리쳤다. 그것은 깨뜨러진 하나의 도자기였다. 완만한 질감과 현요한 무늬로 장식되여 광채를 뿜던 도자기에 어설기 금실린듯한 그런 형국이였다. 그녀의 얼굴은 성한 곳이 라곤 없었다. 일전의 청초한 미모를 뽐내던 그 얼굴이 지금은 꿈속에서나 보았던 악귀의 그 얼굴 같은 형상으로 악사의 눈앞에 놓여있는것이였다. 눈물이 깊숙이 배인 그녀의 상처자국을 따라 여러곬으로 어지러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입궁할 생각은...단념해주십시오.》   악사의 앞에 처참한 몰골 그대로 체념하고 앉아 그녀는 잠겨든 소리로 입을 열었다.  《악사의 스승님도 그렇고 쇤네의 부친도 그렇고 악리의 현묘를 깨치려다 성사 못하고 불귀의 객이 되였습니다. 그 크나큰 장거를 악사님이 맡아가고있습니다. 악사님은 큰일 할 사람입니다. 그런 중임을 깨치지 못하고 사사로운 정분에 매워 입궁하고 남의 유홍받이나 돼서는 완됩니다. 이러는것을 황천계신 스승님께서도 알고계신다면 결코 수락해들이지 않을겁니다.》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체할 길 없어 그녀의 말은 자주 동강이 났다.  《원체 쇤네가 그렇게 장한 일을 하시고있는 악사님을 내내 받들려 했는데 이제 더는 그렇게 할것 같지 못하옵니다. 하늘은 언녕 쇤네의 운명을 점지했나봅니다. 가탈만 자꾸 지는 운수사나는 팔자를요. 그저 단 하나...악사님을 더는 받들지 못하는것이 가슴저리울뿐...》  《자꾸 그런 신수 불길한 소릴 하지 마라.》   악사 그녀의 말을 주웅 잘랐다.  《저의 이 몰골로 악사님을 받들수 없습니다. 깨끗한 모습으로 꾸며져야 할 악사님의 곡상이 저의 흉측스러운 모습으로 해서 그 맑은 률리가 깨여져선 안되는것이옵니다.》  《내가 입궁해서 명의원을 보낸다잖아!》  《입궁, 그 입궁만은 단념해주십시오. 범은 주려도 풀은 뜯지 않습니다. 입궁하는건 악사님의 본의와 어긋난 일입니다. 악사님은 구름집으로 돌아가셔얍니다. 그 집으로 가서 피리를 들어얍니다.》   악사 눈을 습벅거리며 저도 모르게 배여나온 물멀기를 지웠다. 그녀는 진정 악사를 악리의 반석우에 올려주기 위해 주추와 서까래를다듬는 역할을 해왔던것이였다. 그러한 그녀를 위해서라면 악사는 섶을 지고 불속에라도 뛰여들수 있을것 같았다.  《나 꼭 입궁하고말거야!》   악사 용단을 내리며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녀 엎어지며 악사의 발목을 부둥켜안았다. 추연한 눈빛으로 악사를 올려다보았다.  《악사님의 소견이 그렇게 얕으시면 안됩니다. 그건 피리를 버리는것과 같삽니다! 그건 피리를 모독하는 처신이옵니다!》   악사 그녀의 몸을 부추켜 일으켰다. 그 력력한 상처자욱들을 에모삐 어루쓸고나서 몸을 홱 돌렸다.  《기다려줘. 1년이든 10년이든...》  《안되옵니다-》등뒤에서 그녀의 다급한 부름이 들렸으나 악사 개의치 않고 춘향루를 내렸다. 아래층의 문을 빠져 몇걸음을 내쳤을 때였다. 루각에서 피타는 부름성이 울려나왔다.  《악사님-》그녀가 루각우에 나타났다. 봉두란발에 하얀 소복차림인 그녀는 그 어떤 가상스러운 각오를 한듯한 모습이였다.  《추월가를 불어주세요. 제 생각 날때면.》   루각아래를 향해 그녀는 목청 다해 웨쳤다.  《피리에 미안한 처신을 해선 안됩니다.-》   말을 맺음과 함께 그녀 루각우에서 몸을 훌쩍 날렸다.  《안돼!!!》   악사 울부짖으며 두팔을 펼치고 그녀를 받아안으려 미친듯이 뛰여갔다. 허나 때는 늦었다. 스러진 한점의 락화처럼 그녀는 치마폭을 날리며 곧추 추락해내려 루각아래의 돌계단에 머리를 박았다. 현금의 굵은 선을 튕기는듯한 질타성이 악징의 종지곡처럼 들려왔다.                            9  《...거사의 재주를 어여삐 살피시사 입궁시켜 악공으로 삼을 지어니 즉일로 행하라!》   관차 하나가 한무릎을 꺾고 앉아 어필을 쳐들고 높이 읽었다. 악사 부복하고 머리를 땅에 대이고있었다. 구름집아래로 난 자드락길에 말탄이들이 두줄로 늘어섰는데 빈 가마 하나가 대기하고있었다. 왕궁에서 보낸 관차들이 대각소리 높이 울리며 악사의 입궁을 맞으러 온것이였다. 그들속에는 그들을 대동하고 온 사제-현령의 얼굴도 보였다. 이윽고 몸을 일으킨 악사 현령을 한켠으로 잡아끌었다. 관차들이 보이잖는 곳까지 와선 입을 열었다.  《나 간밤에 야밤도주를 해버릴것 그랬네.》  《사형, 환장한거나 아닙니까? 입궁을 하랍시고 행차마저 들이닥쳤는데 웬 지각머리없는 소릴 하고있습니까? 지금...》   악사 들숨 한번 길게 그었다.  《그래 나더러 악론의 편찬을 버리고 한생을 남의 노리개로나 륜략하란 말이냐?》  《소릴 죽이십쇼. 사형 이 대목에 와서 웬 망령이십니까? 언감 군주의 청을 거부했다가 가차하면 목을 낮출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사형께서 주자를 놓아 모면한다손쳐도 온 마을 온 읍내의 관련된이들이 그로 해서 재화를 입을것 아니겠습니까?》   현령 구름집쪽을 힐끗힐끗 보며 어성을 낯추어 말했다. 그러는 그 소리는 몹시 떨리고있엇다.  《일개 청루의 아녀자 마저도 절개를 굽히지 않으려고 육골이 스러짐을 마다치 않았는데 여직껏 악리의 탑을 쌓아왔다는 내가 부귀와영달을 바라 허리를 꺾는단 말인고?》   악사 진득한 한숨을 내쉬였다. 품속에서 피리를 꺼내들었다. 자신의 체취와 손때가 올라 반들거리는 그 피리를 처음 보느 ㄴ물건처럼 멀거니 내려다보았다. 그 혈(穴)들마다는 꼭 마치 하나하나의 눈이 되여 악사를 쳐다보는것 같았다. 눈을 깜박이며 악사와 힐문하는듯했다.   (정녕 입궁하시려는겁니까?)   순간 깡그리 참살돼버리나 다름없던 리성의 한귀가 엄혹한 현실의 부하를 밀쳐내며 고개를 번쩍쳐들었다. 악사 한숨처럼 한마디 내뱉었다.  《먼저 가서 준비를 서두르게나. 나 인차 따라설테니.》  《왜 그러십니까?》  《나 마지막으로 이 구름집앞에서 한곡조 뽑고싶어 그래.》   악사 피리를 쳐들어보였다. 그러는 악사의 얼굴로 그 어떤 비장한 결의 같은것이 비쳐보이고있었다.  《입궁을 거를 생각같은건 아예단념해주십쇼.》   현령 한마디 력점찍어 이르고는 연신 뒤를 돌아다보며 물러갔다.   악사 피리를 들고 아침마다 수련하군 하던 그 개여울앞의 바위께로 다가왔다. 손을 깨끗이 씻고 입을 가셔낸 뒤 바위우에 정좌하고 앉았다. 피리를 불기 시작햇다. 무애곡(无碍曲)의 선률이 흘러나왔다. 여느때보다도 혼신을 다해 불었다. 눈확으로 넘쳐흐르는 눈물이 볼으 ㄹ타고 내렸고 손짬으로 스며 피리의 혈마다에 흘러들었다. 짜거운 눈물을 씹으며 악사는 음울한 선률의 곡조를 불고 또 불었다. 이윽해서야 곡이 끊었다. 악사 피리에 얼룩진 눈물을 옷자락에 문질러 깨끗이 닦았다. 다음 자신의 기름한 왼손을 이윽토록 내려다보았다. 오른손 하나면 악론을 편찬하는 붓대를 잡기엔 족하다고 그는 생각했다. 들숨을 길게 긋고나서 악사 여울가에서 돌멩이 하나를 주어들었다. 그 돌이 작아보여 조금 더 큰 돌을 찾았다. 그 돌이 유연해보여 모난 돌을 찾아들었다. 묵직한 돌의 중량을 한동안 가늠해보았다. 떨리는 왼손을 펼쳐 바위우에 놓았다. 그러는 악사의 눈에 뱀의 그것 같이 무서운 발광체가 번뜩이고있었다. 눈을 질끈 감으며 악사 돌을 추겨들어 왼손가락을 힘껏 짓찧었다. 피가 얼굴에 튕겼다. 악사 짧고 다급한 비명을 지르며 돌멩이를 떨구어버렸다. 전신이 부르를 떨렸다. 비지숨을 몰아쉬던 악사 다시한번 돌멩이를 주어들었다. 뺨으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입귀로 물며 돌멩이를 주어들었다. 뺨으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입귀로 물며 돌멩이를 추켜들었다. 한번...두번...세번...극심한 동통이 뼈짬으로 스며들었고 그 아픔은 또 흥건한 땀 방울로 화해서 일신의 모공으로 배여나왔다. 미친듯한 자학에 악사의 손, 범인(凡人)들로서는 도저히 낼수 없는 곡조를 더듬어내던 그 손가락이, 그 범상치 않은것들이 악사의 신체의 한부분같지 않게 떨어져나갔다. 악사의 학창의 앞자락이 피칠갑이 되였다. 드디여 피로 얼룩진 돌멩이를 떨어뜨리며 피가 샘솟듯 하는 손, 그 페해버린 조막손을 움켜잡고 악사 그자리에 무너져내렸다. 피리! 바위우에 정히 놓아둔 피리가 보였다. 피투성이 된 손을 떨며 악사 피리를 집어들었다. 아픈 육체,아픈 마음,아픈 눈길로 그 피리를 멀리로 힘껏 내쳤다. 반공중에서 호를 그리며 날던 피리는 개여울에 가서 철렁하고 떨어졌다. 여울에서 빙그르르 맴을 돌다가  피리는 서서히 떠내려가기 시작했다. 들쑹 날쑹 박힌 돌에 부딪치기도 하고 급류에서 몸부림치기도 하다가 피리는 드디여 저멀리 시야밖으로 사라져 버렸다.   쏴,쏴아- 솔에 불리는 바람소리가 들렸다.   따각!따각! 딱따구리가 단단한 각질부리로 나무를 쪼아대는 소리가 들렸다.   돌돌돌돌...여울이 자갈을 핥으며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후꿍,후꿍,후유휴꿍! 시뻑건 울음을 토해내는 소쩍새의 소리가 드렸다.   맴, 매-앰 독새풀짙은 논뚝에서 풀뜯는 소의 파장음이 들렸다.   악사는 여전히 그 자리에 어떤 정물처럼 고착되여있었다.   그는 짜장 자연의 소리속에 화해버리고있는것이였다....                                                    도라지 94년 5월호    
146    [김혁 독서만필-7] 연을 쫓는 아이 댓글:  조회:1930  추천:36  2009-03-23
 김혁 독서漫筆 (7)  金革 독서만필 (7)     할레드 호세이니(卡勒德 胡塞尼)의 “연을 쫓는 아이 (세기출판집단/世紀出版集团 출간)”를 읽다. 아프가니스탄 출신의 작가가 쓴 소설이다.  내가 소장한 \"연을 쫓는 아이\" 중국판 표지  1970년대 아프가니스탄에서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여난 주인공 아미르는 자기집 머슴의 아들인 한살 어린 하산과 형제처럼 지낸다. 하산은 언청이이고 글을 배우지 못해 늘 아미르의 놀림을 받는다. 하지만 마음씨 고운 하산은 항상 웃음으로 넘기며 아미르에게 충성을 바친다. 그러던 어느날, 마을에서는 년중행사로 연 날리기 대회를 여는데 아미르는 하산에게 날아간 연을 가져오라고 시킨다. 하산은 연을 쫓다가 동네 불량배들에게 걸려 폭행당한다. 이광경을 목격하지만 아미르는 하산을 구하지않고 혼자 도망쳐 버린다. 이일 때문에 저으기 안면이 가려워난 아미르는 급기야 하산에게 시계와 돈을 훔쳤다는 루명을 씌워 집에서 쫓아낸다. 시간이 흘러 아미르는 성장하게 되고 전쟁을 피해 미국으로 건너간다. 그러던 중 아프가니스탄에서 한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아버지의 친구에게서 걸려온 전화였는데 아미르는 그에게서 하산이 탈레반 무장대오에게 살해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자신과 하산은 결국 어머니가 다른 형제사이였다는것을 알게 된다. 아미르는 하산과 그 안해 사이에 아들이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그를 찾아내여 함께 미국에서 살게 된다. 어느날, 아미르가 하산의 아들과 공원을 산책하고 있는데 그 곳에서 아이들이 연을 날린다. 아미르는 하산의 아들과 함께 연놀이를 하면서 어제날의 용서를 구한다.  동명영화 \"연을 쫓는 아이\"의 한 장면  “연을 쫓는 아이”는 보편적인 이야기 구조를 지니고 있다. 작가가 보여준것은 그저 어린 시절의 잘못을 깨닫고 뉘우치는 우화적인 이야기이다. 하지만 이 평범한 이야기에서 주목해야할 점은 소설이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의 립장에서 쓰여졌다는 사실이다. 아미르의 사죄의 이야기는 국계나 민족을 넘어 어느곳에나 있는 더 큰 잘못을 저질렀지만 무감각한 가해자들의 몰렴치를 부각시킨다.  “연을 쫓는 아이”는 이렇게 반성과 속죄라는 묵직한 주제를 딱딱한 률법보다는 평범한 이야기속에 담고있다. 사실 난 아프가니스탄에 대해 잘 알지못한다. 그저7시 뉴스를 통해 전해지는 중동전란의 소식들을 아무렇지 않듯 그저 스쳐지나가는 일상의 한면으로 들었을뿐이다. 이 소설을 통해서 그들의 아픈 과거사. 그리고 현재까지 이어진 질곡의 력사와 이채로운 문화에 대해 륜곽적으로나마 알게되였다.  저자 호세이니 할레드 호세이니는 1965년,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출생, 쏘련이 아프가니스탄 을 침공하자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미국으로 망명했다. “연을 쫓는 아이”는 현재 캘리포니아에서 의사로 활동하는 와중에 틈틈이 써온 호세이니의 첫번째 작품이라고 한다. 처녀작이였지만 “뉴욕 타임즈” 120주 장기 베스트셀러를 차지하며 미국 전역을 휩쓴 베스트셀러로 떠올랐다. 중국에서도 2년도 안되는 사이에 24쇄를 거듭했다. 전업작가가 아니고 의사행업을 하는 사람의 첫작품이 이렇듯 절찬을 받는것은 작품속에 현재 세계적으로 정치적 초점에 놓였는 나라의 문화의 질곡에 대한 시대감있고 질감있는 묘술에 있다고 평론가들은 말한다. “가장 민족적인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라는 말을 다시한번 실감하게 하는 작가와 작품이다.  작가의 두번째 작품 \"천개의 태양\" 중국판 표지  일전 작가의 두번째 작품인 “찬란한 천개의 태양(灿烂千阳)”도 사두었다. 쏘련의 침공, 내전에 뒤이은 탈레반 정권의 폭압, 그리고 미국과의 전쟁 등 아프가니스탄의 비극적인 현대사와 그 전란속 녀자들의 이야기로 다시한번 화제를 불러 일으킨 작품이라고한다.이제 호세이니의 팬으로서 짬을 내여 또 한번 정독해야겠다. \"연을 쫓는 아이\" 영화 포스터  
145    오빠의 \'별\'을 우러르며 댓글:  조회:1906  추천:43  2009-02-18
   오빠의 “별”을 우러르며  - 윤동주 시인의 녀동생 윤혜원녀사를 만나    2월 16일은 민족의 시성- 윤동주 옥사 64주기를 맞는 날이다. 필자는 지난해 여름 연변행차를 했던 윤동주의 녀동생 윤혜원 녀사와 자리를 같이하는 소중한 기회를 가졌다. 오늘 윤녀사에 대한 인물탐방을 다시 게제하여 친인의 눈에 비친 시인의 진솔한 모습을 조명하는 것으로 시인의 넋을 기리고자 한다.   윤동주라는 고고한 별이 스러진지도 어언 반세기를 넘었다. 현재 윤동주의 친족중에서 유일한 생존자는 친누이동생인 윤혜원(尹惠媛)씨뿐이다. 무더위가 막바지로 치닫던 지난 여름, 연변행차를 한 윤혜원씨(83)와 남편 오형범씨(83)를 만났고 그들을 통해 윤동주의 생애를 반추해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가졌다.   사실 두분과의 만남은 어렵게 이루어졌다. 윤혜원 부부의 건강상태가 좋지 못한데다가 스케줄이 빼곡한것도 있었지만 두분은 매스컴의 취재를 잘 접수하지 않는 편이기때문이였다. 윤혜원녀사의 인터뷰기피증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윤동주는 나의 오빠이기도 하지만 그의 시를 사랑하고 그의 정신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의 형님이요 오빠이기때문에 공연한 말들로 그의 <티없는 초상>을 훼손시켜서는 안된다. 동주오빠가 온 민족의 추앙을 받고 그의 생애가 대체로 잘 정리되여있는 마당에 녀동생이라고 해서 자꾸 나서는것도 덕스럽지 못한 일이라고 생각한다”며 극구 인터뷰를 사양해왔다.   일제 강점기에 레지스탕스 시인으로 젊은 나이에 순절한 오빠의 고결한 이미지에 흠이 될가봐 조용히 숨죽여왔던 윤혜원씨. 그러던 그가 조심스레 입을 열기 시작했다. 나이가 듦에 따라 살아서 오빠의 추모행사를 지켜보는것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자신만이 알고있는 오빠와 관련한 비화를 털어놓기로 마음먹은것이다. 때론 장난기가 발동하여 동생들을 울리기도 했던 오빠, 대학진학문제로 거의 반년 가까운 세월을 아버지와 대립한 끝에 문학의 길을 걸어간 오빠, 일본 류학시절에 만난 녀자에게 호감을 가졌으나 적극적인 프로포즈를 하지 않아 남의 부인이 된 뒤에야 가슴아파했던 못난 오빠, 자기에게만 그녀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예쁘지 않으냐고 물었던 일 등은 윤혜원씨만이 전해줄수 있는 일화들이다.   더우기 앞으로 오빠의 시를 읽는 많은 사람들이 시를 통한 문학적가치를 더듬는것과 함께 오빠의 인품과 인격을 리해한 기초에서 시에 대한 리해를 깊이 했으면 하는 바람에서였다.       윤혜원, 오형범 부부   윤혜원녀사를 만난것은 연변국제무역청사 7층 커피숍에서였다. 여든의 나이였지만 너무나 잘 정돈된 깨끗한 이미지를 수호하고있는 윤혜원녀사였다. 낮고 조신스러운 말투로 그녀는 말머리를 뗐다.   “해마다 특별한 리유 없이 몸이 아프다하면 또 그날입니다. 그토록 념원하던 해방을 목전에 두고 오빠가 옥사한 그날이 오면 느껴지는 애석한 감정이지요.”   오빠가 옥사한 2월이 오면 뚜렷한 병명도 없이 시름시름 앓는다는 윤혜원씨, 반세기도 더 지났지만 차마 떨쳐낼수 없는 정신적외상에 시달리고있는 그다.   그만큼 오빠의 각별한 애정을 받아왔던 윤혜원씨였다. 윤동주가 류학생활을 보내는 과정에서 보낸 수많은 편지의 수신인은 윤혜원이였고 매양 오빠가 귀향할 때마다 강 건너 삼삼봉역까지 마중 나갔던이도 윤혜원씨였다.   윤혜원씨는 윤동주와 일곱살 터울, 1924년 길림성 화룡면 명동촌에서 태여났다. 윤동주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모두 독자인지라 대를 이을 장손 윤동주의 출생은 집안의 큰 경사였다고 한다. 몸이 허약했던 윤동주의 어머니는 한동안 아이를 갖지 못하다가 7년만에 딸 혜원씨를 얻었다. 광명소학교와 명신녀교를 다닌 뒤에 결혼하기전까지 윤혜원씨는 현지의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했다.   윤혜원씨의 기억속에 남아있는 오빠의 가장 어린 시절은 윤동주가 외삼촌 김약연목사가 시무하던 명동교회당의 맨 앞줄에 앉아서 례배를 드릴 때다.   은진중학교에 진학한 오빠가 늦은 밤까지 등사용지에다 글을 써서 등사하던 모습도 기억난다고 했다. 윤동주는 명동시절부터 등사판 학교잡지를 만들어왔던것이다. 그런 오빠의 손가락엔 늘 등사잉크가 묻어있었다고 했다.   서울에서 공부하던 윤동주가 방학을 맞아 돌아오면 할머니는 두부를 만들어서 먹이시곤 했는데 윤동주는 할머니와 마주앉아 매돌을 돌리며 콩을 갈기도 했다.   할아버지는 동네에 나갈 때는 사각모자를 쓰고 다니라며 서울서 공부하는 손주에 대한 자랑을 감추지 않았다. 그러나 생색을 내는것을 싫어했던 윤동주는 할아버지 소원인지라 사각모자를 쓰고 나갔다가도 집식구들이 보지 않는 틈을 타서 담장너머로 훌쩍 던져버리고 밀짚모자를 쓰고 다녔다고 한다. 할아버지가 키우시던 소떼를 몰고 산등성이로 올라가 하루종일 책을 읽다가 해질녘에야 집으로 돌아오곤 했는데 그때 오빠가 입었던 삼베옷과 밀짚모자를 지금도 잊을수가 없다고 했다.   우리가 알고있는 윤동주는 과묵하고 수줍은 모습이지만 윤혜원씨에 의하면 사진속의 모습처럼 늘 심각한건 아니였다고 한다. 늘 조용하던 그가 녀동생 윤혜원씨에게는 무척 지꿎은 오빠였다는것이다. 몇번 아주 심각한 오빠의 모습을 목격했는데 연희전문을 지원하면서 의대로 진학하라는 아버지의 말씀을 거역하고 문과를 지망할 때였다. 윤동주는 절식까지 감행해가면서 문과에 진학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결국 할아버지께서 아버지에게 젊은이의 뜻을 꺾지 않는게 좋겠다고 거들어서 윤동주가 문과로 가게 됐다.   윤동주가 즐겨부르는 노래는 흑인성가 “내 고향으로 날 보내주오”였다고 한다. 이 노래는 오래동안 타지를 떠돌던 윤동주가 고향 북간도와 부모형제를 그리며 자주 불렀던 노래다. 또 방학때마다 고향에 와서 동생들에게 가르쳐주며 함께 불렀던 노래이기도 하다. 윤동주시인은 이 노래뿐만아니라 동생들과 동네 아이들에게 “아리랑”, “도라지”도 가르쳤다고 한다.   윤동주가 옥에 갇힌후 간혹 집에 엽서가 왔는데 번마다 일경의 서신검열에 걸려 줄이 까맣게 지워져있었다고 한다. 그 와중에도 “자기 장가보낼 걱정은 하지 말고 혜원이부터 시집보내라”는 뜻을 전해와 부끄러우면서도 감격스러웠다고 했다.   윤혜원씨는 1948년 한국으로 이주하면서 고향집에 남아있던 오빠의 시 원고와 사진들을 챙겨왔다. 그중엔 윤동주시인의 초기와 중기 작품 대부분이 들어있었다. 시 원고를 고이 챙겨온 윤혜원씨 덕분에 우리는 더욱 풍성한 윤동주의 시세계를 만날수 있게 된것이다. 윤동주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증보판에는 116편이 실려있는데 그중 85편이 윤혜원씨의 품에 안긴채 보존된 작품들이다.   윤혜원씨는 1947년 당시 청년사업가였던 오형범씨와 결혼했다. 한국으로 이민한 뒤에는 주로 고아원에서 지도선생을 했고 나중에는 건축업을 하는 남편의 뒤바라지를 했다. 2남1녀를 보았고 기독교 집안답게 목사 사위를 두었다.   윤혜원씨 내외는 1986년 오스트랄리아로 이민온 뒤 교회에 다니는것을 유일한 활동으로 조용한 나날을 보내왔다. 때문에 교회 목사와 교인들은 한동안 윤혜원씨가 윤동주의 녀동생이라는것을 전혀 몰랐다고 한다. 어느날 우연히 윤동주의 책을 보다가 윤혜원씨의 사진을 보게 됐고 깜짝 놀라서 책을 들고 찾아가 물으니 그제야 빙긋이 웃어보였을뿐이였다.   윤혜원씨는 일거리를 찾아 오스트랄리아로 오는 연변동포들의 대모(代母)이기도 하다. 그의 신분을 알고 찾아오는 고향사람들을 위해 일자리를 찾아주고 후견인으로 되여줄뿐아니라 관광안내원까지 자청해 맡곤 했다. “고향 사람들 아닙니까. 믿고 찾아온 사람들이니 힘닿는데까지 도와야지요. 대신 연변으로 돌아가면 윤동주 생가나 묘소를 찾아보라고 부탁하기도 합니다” 고령에 병환에 시달리면서도 두 량주는 윤동주를 위한 일이라면 적극 로구를 움직인다. 그들이 여러차례 연변땅을 밟은것도 여름철이면 고향에서 활발하게 진행되고있는 윤동주를 기리는 각종 행사에 참여하고 오빠의 묘소를 돌아보기 위함이였다.   이번 연변행차에 앞서 두분은 일본을 거쳐 왔다. 1995년 일본 도시샤대학 이마데와 교정에 윤동주시인 시비가 처음 세워진 뒤를 이어 일본 교또의 교또조형예술대학 교정에서도 윤동주시비제막식이 거행되였던것이다.   교또조형예술대학 교정은 윤동주가 일본 도시샤대학 류학시절에 주숙했던 아빠트가 있는 곳이며 또한 창작의 불꽃을 지폈던 마지막 거소였다. 시인은 이곳에서 사상범으로 몰려 일경에 체포되였고 1945년 2월에 일본 후꾸오까교도소에서 옥사했다. 그날 제막식에서 발기자들은 “시인의 인생을 돌연히 닫아버린것은 전쟁이고 식민지화였다”며 예술과 문화의 힘으로 평화를 되돌리자고 호소하였다.   윤동주추모비건립운동은 일본의 다른 곳에서도 활발하다. 안자이 인꾸로리쓰메이칸대학에서 설립된 “시인 윤동주 기념비 건립위원회”는 윤동주가 체포되기 2개월전에 도시샤대학 학우들과 함께 사진을 찍은 장소인 교또 우지시 아마가세다리부근에 기념비를 또 세우기로 하고 추진중이라고 한다. 윤동주는 숨진 일인들의 땅에서도 아세아의 평화와 화해의 상징으로 부상되고있는것이다. 윤혜원씨는 오빠의 시와 삶이 나라를 초월하여 사랑을 받고있다는것을 실감하고있다고 감개를 머금었다.   윤동주 시인 만큼이나 정갈하게 한 평생을 살아오신 윤혜원씨, 언제부턴가 그가 거주하는 시드니는 윤동주 연구의 중심지가 된 느낌이다. 1995년에 열린 윤동주 50주기를 비롯하여, 2005년의 60주기 추모행사가 가장 큰 규모로 열린 곳도 시드니였다. 또한 윤동주에 관한 각종 소식이 전 세계로부터 시드니로 전해진다. 한국, 중국, 일본, 미국, 카나다, 독일, 로씨아,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삶에 쫓겨 서울, 부산, 필리핀, 오스트랄리아 등으로 계속 자리를 옮겼지만 윤동주라는 별은 윤혜원씨의 마음 한자락에 늘 떠서 빛나고있었다.   커피숍가까이 게임방과 테이프매장 스피카에서 흘러나오는 시끌한 소음이 새여들어오는 가운데서도 장장 4시간동안 인터뷰는 이어졌다. 일제강점의 암흑기에 깊은 고독과 번뇌와 참회 그리고 슬픈 소망으로 빚어진 시어(詩語)들을 각혈하듯 토해냈던 윤동주, 그의 친족을 통해 직접적으로 한 민족시인의 삶과 철학을 유추해본 소중한 시간이였다.   윤혜원 부부를 모시고      윤동주 \'서시\'노래: 조영남   parent.ContentViewer.parseScript(\'b_13636039\');
144    무정천리 꽃이 지네 댓글:  조회:3253  추천:32  2009-01-30
. 추모수필 . 무정천리 꽃이 지네 - 유정의 “은사” 류원무 선생님 김 혁   비보를 인터넷에서 접했다. 선생님이 병상에 누웠다는 소식을 듣고 한번 꼭 찾아보려했는데 이렇게 빨리도 가시다니! 선생님의 문학생평을 정리한 글과 사진들을 나의 문학블로그에 올리고 타계소식을 신문 문화면에 톱기사로 내면서 점차 이 망지소조(忘知所措)의 소식이 기성사실임이 피부로 느껴졌다. 선생님은 내 소시적의 문학우상이였다. 요즘의 형용어를 빈다면 당시 선생님의 아동소설 “우리 선생님”과 “장백의 소년”은 서점가를 강타한 베스트셀러였다.  그리고 정탐소설 “숲속의 우등불”과 번역서인 “쇼헤마의 이야기”등 동심을 아우른 많은 작품들은 꽤 유명한 어린 독서가였던 나의 여린 동공(洞空)에 그렇게 많은 것을 부어넣어주었다. 짤깍돈을 모아 그 책들을 사서는 내 책장의 현요한 자리에 꽂아놓고는 몇번이고 곱씹어 읽었었고 라디오방송국 소년아동시간에 나오는 련재방송도 빼놓치 않고 들었었다. 나에게는 그렇게 큰 글재주를 가진 선생님이 당시 보았던 련환화 “바다를 소동한 나타”속 삼두륙비(三头六臂)의 기인으로 생각되기도 했었다. 선생님을 맨처음 뵙게된것은 80년대 중기 “천지” 잡지사에서 조직한 문학강습반에서였다. 여러 작가들이 나와서 창작담을 이야기했지만 나의 시선은 온통 선생님에게로 몰부어져 있었다. 중간휴식시간에 나는 쭈볏거리며 다가가 선생님과 사진을 찍자고 청구를 들었다. 숫기가 적은 애송이 문학도가 어떻게 유명한 작가와 그렇게 도담한 청을 들었던지 모를일이다. 선생님은 흔쾌히 대답해 주었고 쏘파에 나란히 앉아 사진을 남겼다. 그런데 다급한 마음으로 사진관에 달려가 사진을 뽑아보니 사진속의 내가 눈을 감고있는 것이 아닌가! 원체 눈을 슴벅거리는 습관이 있는 나였다. 하지만 그 사진을 나는 지금까지도 앨범에 고히 간직해 두고있다. 내가 생애 처음으로 유명 작가와 남긴 사진이였으니깐. 그후 문학행사에서 선생님을 만나면 그때 이야기를 꺼내며 다시 사진을 남기자고 여러 번 간청했었다.  94년께로 기억된다. 예술극장에서 무극 “춘향전”을 관람하고 있는데 막간휴식시간에 누군가 나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류원무선생님이였다. 선생님은 조용하지만 조금은 근엄한 모습으로 내게 의문을 쳐들었다. 근간에 발표한 나의 아동력사소설이 도작이라는 말이 떠 도는데 정말로 본인이 쓴 것이 맞냐?고 물으셨다. 나는 “만약에 내 작품이 아니면 제 머리를 내놓겠습니다. 하고 격해지며 말했다. 선생님이 웃으셨다. “대작가가 되겠다는 사람이 하필이면 다른것도 아닌 머리를 내걸어서야 되겠나? 난 혁이를 믿네.” 그후로 나는 련속 중편아동력사소설 “신라의 검”, “혼불”을 발표했고 도작이라 물의를 빚었던 그 소설 “거북구슬”은 연변인민출판사 “별나라” 아동문학상 1등상을 수상했다. 그후 문학행사에서 만난 선생님은 유난히 기뻐하셨다. “아동문학을 홀시하지 않고 성인문학과 병행하련다니 참 기쁘네. 사실 똘스또이 같은 대문호도 아동문학을 아주 돋보며 창작했다네.” 하면서 선생님은 근작인 장편동화 “코대황제와 울보황후”를 특별히 싸인해 선물해주셨다. 그때 아직 여린 나에게 직접 소설가라는 호칭을 붙여 싸인해 준 그 동화집을 나는 그렇듯 황공하게 무겁게 받아들였었다. 그 이후로 선생님은 자신의 거의 모든 작품을 나에게 보내주셨다. 지어 한국에서 찍은 부수가 아주 적은 책도 특별히 나에게는 정히 싸인하여 보내주셨다. 새 책이 출간될때마다 잊지않는 그 모습에서 후배 소설가에 대한 다정한 기대를 나는 깊이 체념할수 있었다. 그러나 나의 필봉이 시나브로 무르익고 있을 때, 나의 신상에 큰 변고가 일었다. 인위의 “번개”를 맞고 나는 창작의 전당에서 일조일석에 한지로 떨려나고말았다. 내 삶의 전체를 송두리째 흔드는 변고에 나는 어찌할바를 모르고 나의 몸을 향해 란타하는 부조리의 우박을 우산도 미처 갖추지 못한채 맞기만 하고있었다. 참말로 유감스럽게 가까이 다가와 우산을 건네는 사람도 몇이 없었다. 해빛 찬란하던 그제날 어깨겯고 양광대도를 함께 달리자 약속하던 소위 지인들조차 이 순간만은 어데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한때 눈빛을 빛내며 온몸을 던져 이루었던 모든것들이 결국은 허접쓰레기가 되어버렸지만, 그래도 그때는 꿈꿀수 있어 행복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이뤄내야 할 꿈도 상실해 버리고 무정과 소외의 높은 벽만이 굳건히 버티고 있을뿐이였다. 질량을 헤아리기 어려운 무력감이 온몸을 덮쳐와 나는 세상과 담을 쌓은채 몇해고 서재에만 지친 신심을 감추고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내내 벙어리가 돼있던 우리집 전화통이 문뜩 울렸다. “혁이요? 나 류선생일세. 해빛 쪼이려 한번 나오지그래.” 연변일보사 뒤골목에 있는 “한라산” 숯불고기집에서 나는 선생님과 마주 앉았다. 소주를 하시는 선생님이였지만 나의 맥주에 대한 기호를 알고 맥주를 많이 올렸다. 그리고 마음껏 마시라고 극진히 권했다. 말없이 그저 맥주잔을 벌컥벌컥 기울이며 선생님이 구워주시는 고기를 집어먹던 나는 홀연 선생님이 전혀 드시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발이 온전치 않아 그러네. 혼자라도 많이 들게나.” 선생님은 금방 틀이를 다시 맞추셨지만 미처 고정하기전에 급박하게 나를 만나신것이였다. 그날 선생님이 하신 한마디 말이 강하게 나의 뇌리를 때렸다. “기죽지 말고 아프지 말고 틀이를 낄때까지 악착같이 살아봐. 그리고 악착같이 글을 써.” 선생님과 같은 유정한 선배님들의 괘념의 눈길속에 나는 몇해만에 웅크려있던 서재에서 나왔다. 나를 저버린 문단일망정 창작의 끈을 놓지않았고 또 생계를 위해 큰 사업건에 희망을 가지고 투신했다. 자신의 특기를 살려 신문사를 차렸다. 나는 언감 조선족에서 처음으로 16면 모두가 동판지 칼라 타블로이드판으로된 호화롭고 내용이 알찬 주간신문을 만들려 시도했다. 창업의 길은 문자그대로 극난의 길이였다. 여태껏 책상물림으로 “두부값 콩값도 변변히 계산할줄 모르던” 내가 편집뿐아니라 경영까지 맡아해야 했다. 종이질과 인쇄값이 엄청 높은 칼라 동판지라 한달 인쇄비만도 만여원을 넘겼고 게다가 네, 댓명의 직원의 로임까지 대려니 그야말로 일보가 백보맞잡이로 힘에 부쳤다. 원체 청빈한 문인에 근년에는 수입 한푼 없이 못나게도 안해의 박봉에 기대여 사는 나로서는 그야말로 “륙지오리 바다 건느기”였다. 애된 편집들을 휘동하여 힘들게 신문을 편집하는 한편 출판자금을 얻으려 낯에 철판을 깔고 밤낮으로 뛰였다.   류원무 선생님을 모시고    첫 신문이 나온지 며칠 안되여 뜻밖에도 선생님이 세기호텔에 림시로 차린 편집부로 찾아오셨다. 시중에 발행된 신문을 보고 찾아오신것이였다. 선생님은 기쁘다기보다 걱정기 어린 얼굴이였다. “해낼수 있겠나? 우리 같은 글장이들이 경영에 붙을려면 쉽지않을건데…” 선생님은 걱정을 련발하시다가 한숨 한번 짓고 돌아가셨다. 그후로 선생님은 일주일에 한번씩 꼭꼭 신문사로 찾아오시곤했다. 내가 자택에 까지 신문을 부쳐보내려니 운동삼아 와서 가져가시겠다고 했다. 그리고 신문 몇장씩 드릴라치면 굳이 한장만 뽑아들었다.. 매 한장이 한잎의 돈이니 아껴야 한다고 말하셨다. 알찬 내용의 신문을 만들려 꿈꾸었던 나는 선생님에게 하나의 간청을 들었다. 신문의 련재란에 선생님께서 금방 출간하신 “연변취담”을 련재하고 싶었던것이다. 하지만 신문사 여건상의 어려움으로 원고비는 드릴수 없다고 모기소리로 말했다. 그런데 선생님이 흔쾌히 대답하셨다. “그럲잖아도 어떻게 혁이를 도울가 생각이 많았네. 이렇게라도 도움을 줄수 있다면 참 기쁘이.” 그렇게 나는 선생님의 주옥 같은 글을 원고비도 드리지 못한채 신문에 그냥 련재했고 련재를 본 독자들의 반응은 사뭇 좋았다. 선생님은 월요일마다 찾아오셔 새로 나온 신문을 받고 나의 어깨를 힘있게 두드려주셨고, 때로 내가 자금을 미처 마련하지 못해 신문이 나가지 못한 날에는 퍽 걱정어린 모습으로 돌아가시곤 했다. 그러다 생계를 위해 오욕을 진채 단말마로 뛰고있는 나의 신상에 또 한번의 “번개”가 내려졌다. 글외에는 글밖에 모르고 대인관계에는 백치에 가까웠던 나는 또 한번 사람의 덫에 치여 본의아니게 신문사를 접을 수밖에 없었다. 결과는 참담했다. 직원들의 로임도 바로 주지 못해 편집실에서 쓰던 컴퓨터와 같은 계기들로 대신했고 신문의 명맥을 이으려 리자돈을 겁모르고 꾸어 들이댔던 나는 문인의 수입으로서는 도저히 갚을수 없는 천문수자같은 빚짐에 깔려야 했다. 한두명도 아닌 빚쟁이들은 낌새를 알아채고 우리집에 몰려 들기 시작했다. 빚군들은 한밤중에도 뛰여들어 나보다 퍽 어린 녀자가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울 말마디를 골라 극언을 퍼부었고 또 어떤이들은 나의 책밖에 없는 살림을 둘러보더니 조소를 흘리며 서재에 불을 달겠다고 위협 하기도 했다. 나는 빚쟁이들을 피해 지어 친지들과의 일체 련락도 끊은채 북대의 자그만 세방집에 근 여덟달 동안 피신해 지내는수밖에 없었다. 그날, 급한 일로 어쩌다 핸드폰을 열었는데 눈에 익은 번호가 현시되여있었다. “어디서 어찌 지내냐? 얼굴 한번 보자.” 선생님이셨다. 핸드폰이 먹통이 된데서 십여번은 전화를 했다고 하셨다. 다시 또 그 “한라산” 숯불고기 집, 나는 맥주를 마셨고 선생님은 소주를 마셨다. 선생님은 가난 때문에 학업도 미처 마치지 못했던 서러운 과거를 이야기 해주셨고 역시 엄청 난 빚을 지고 수년간 오로지 그 빚을 갚기 위해 이를 악물었던 힘들었던 시간을 이야기해 주셨다. 어린 후배에 대한 걱정에 안쓰러워하시며 위무(慰撫)의 이야기를 끊없이 해주셨던 선생님, 하지만 나는 그동안 선생님이 병환으로 사모님을 잃으신것도 모르고 그저 나의 설음만 읊조렸을뿐이였다. 선생님을 마지막으로 만난건 내가 “윤정석 아동문학상”을 수상한 날이였다. “다시 창작에 돌아온 모습이 보기에 좋네. 아동문학 다시 시작하겠다니 반갑고”. 선생님은 남들처럼 오랜만에 보는 나를 향해 요란은 떨지 않았고 그저 또한번 조용히 나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그때 선생님의 병은 이미 골수에 깊어 있었고 그것이 내가 선생님을 본 마지막시간이였다… 힘들었던 한해가 또 저물었다. 세모(岁暮)에 선생님을 보내신 그 슬픔이 많은 힘든 사연중의 큰 리유이기도 했다. 선생님의 명함앞에 고자가 붙여져 나가는 그 어제라는 과거형의 시간이 너무나 슬프다. 그리고 많은 것을 돌이켜보게 한다. 오늘날 우리는 너나 할것없이 빈틈없는 시스템속에서 관리되고 길들여진 삶을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이것을 세련된 삶, 근대적인 삶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인간적인 배려와 반응은 오늘의 절주빠른 사회 시스템에서 완벽하게 쇠외되고 지어 봉쇄되여있다. 도처에서 제도화되거나 상품화되여있는 “정”, 게다가 부담없이 드러내는 몰인정을 우리는 목격하고있다. 이미 이 체제에 잘 길들여진 사람들에게 정이란 오히려 촌스러운것으로 비칠뿐이다. 그러나 이러한 촌스러운 끈끈한 정이 아직 살아 있는 삶이야말로 진정으로 인간다운 삶이라는것을 우리는 기억할 필요가 있다. 문학도 사람의 일이라 치렬한 문학정신의 저변엔 탄탄한 인성이 깔려야 하는것, 정을 나눌 줄 모르는 사람이 어찌 좋은 글을 내놓을수 있을가? 진정 바람직한 문단의 풍기와 성장은 이러한 “정”으로 점철된 배려와 련대(连带), 선의의 협력에서 나온다는 생각을 새삼 해본다. 독선이나 타락의 샛길로 빠지지 않고 문인사회가 요구하는 질서와 규률에 적응하도록 대선배님은 몸으로 가르침을 주었다. 사실 나는 선생님과 그렇게 자주 만난 편은 아니였고 경륜과 창작리념도 많이 달랐다. 하지만 선배와 후배로서 서로의 배려하고 존경어린 마음이 이런 에피소드를 낳은것 같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나도 선생님과 비슷한 문제의식을 지닌 중견의 작가로 성장하고있다. 선생님과 내가 묵묵히 나누고 드러내고자한 것은 문학에 대한 드팀없는 애정같은것이라든가, 실추하고있는 문단에 대한 걱정같은것이라든가 , 진정 올바른 삶에 대한 질의와 행동같은것에 모아진다고 생각하고있다. 우리 주변에는 우리가 보기를 저어한 만큼 더 잔인한 삶이 숨겨져 있다. 그렇다고, 내 삶이 힘들다고 다른 이에게서 눈 돌려버린 일들이 얼마나 많은 것일까. 불행을 맞이하는 태도와 남의 불행에 면려의 눈동자를 돌릴줄 아는 태도를 나는 선생님에게서 배웠다. 불행을 피해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맞이하기 위해 준비하는 자세를 선생님은 자신의 경험을 들어 배워주었다. 나에게 “훌륭한 배사공은 거친 파도가 만드니 그 파도를 두려워하지도 피하지 말라”고 가르쳐 주었고 “작은 작가에 그치는 끼와 열정이 아니라 지성인다운 기와 에네르기가 필요하”다고 가르쳐 주었다.  선생님의 가르침처럼 눈물을 닦고 한숨을 거두고 내 안팎을 정리하고 덜어내고 채우고 되새기는 동안, 불행을 견뎌낼 수 있는 내성(耐性)이 생겨나고 해결사처럼 다가온 시간은 많은것들을 해결해주고있다. 다시 추운 겨울이다. 나에게는 마치 누군가 부당하게 반은 툭 잘라먹은것처럼 해가 짧아진 요즘 시간이요, 계절이다. 나는 작렬하는 빛이 무척이나 그리운 응달속에 웅크린 작은 작가이다. 그만큼 선생님이 계시지않은 올 겨울은 유난히 추워보인다. 하지만 불행과 추위를 반복하다보면 의외로 주변이 선명해진다. 선생님이 남긴 작품을 통해, 내 생애 가장 곤고했던 시절 이어졌던 선생님과의 인연을 통해 나의 행위를 찬찬히 되돌아보면서 선생님의 가르침을 되새겨볼수 있어 이번 겨울이며 이제 다가올 무수한 겨울의 추위는 무섭지 않을 모양이다. 근년래 세월의 흐름을 거스르지 못하고 우리의 스승들이 하나 둘 떠나시고 있다. 그들을 묵묵히 배웅하고 있노라니 진짜배기로 마치 혈육과 헤여지듯 마음이 고적해진다. 문단 서렬로는 아직도 한참 후배이나 인생 선배들이 많아 그분들의 떠나는 모습을 다 지켜보아야 할것 같은 마음에 우울하던 때도 있었다. 누군가 떠나는 뒤모습을 바라보다가 언젠가 자기도 떠나야 하는 세상살이… 어쩌면 우리들의 삶 전체가 그런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고보면 누군가의 뒤모습을 지켜보는것도 사람이 할수있는 중요한 일중의 하나이리라. 어떻게 보내고 또 어떻게 남겨지는가에 대해 생각해 볼 바이다 이로서 실제 교정에서의 수업절차를 가진 선생이 아니지만 류원무선생님과 나는 스승과 제자의 연(緣)으로 이어지는 느낌이다. 오호 애재(呜呼哀哉), “우리 선생님!”  "연변문학" 2009년 2월호      
143    두 사람의 탑 댓글:  조회:3245  추천:48  2009-01-30
김혁 독서漫筆 두 사람의 탑 - "도쿄 타워"를 읽다 중국판 "도꾜 타워"    에쿠니 가오리의 “도꾜 타워” (청도출판사)를 읽다 영화로 먼저 본 작품이다. (에쿠니 가오리의 또 다른 작품 “랭정과 열정사이”도 역시 영화로 먼저 보았다.) 때문에 뻔한 스토리를 기대를 하지 않고 읽기 시작하였다. 지나치게 정열적인 사랑 이야기에 혹여 공감하면서도 흔히는 멀게 느껴졌지만 어쨌든 역시 에쿠니 가오리.  그의 작품은 읽고 나면 왠지 또 끌린다.  마흔살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의 미모와 교양을 가진 매력적인 아줌마 시후미는 친구의 아들인 스무살의 토오루와 위험한 사랑을 나눈다. 토오루는 오직 시후미만을 위해 살아가고 그녀를 통해 세상을 배운다. 도쿄 타워가 지켜보는 장소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는 작가는 사랑에 빠진 사람들이 품고 있는 절박감이나 열정을 투명하게 보여준다. “터무니없는 불륜이야기”라는 평도 있는 작품이다. 하지만 주제가 불륜이었다 해도 등장인물들의 심리가 절절하게 다가왔다. 파격적인 이런 소재를 담담하게 써낸 작가 덕분에 나 역시 담담하게 읽어낼 수 있었다  간결하다 못해 건조한듯한 문체.. 어떠한 미사려구도 길게 늘여쓰지 않은 문체들. (혹 중문으로 읽어서일가?) 하지만 아무런 준비없이 그냥 풍덩 뛰여들어도 차지도 뜨겁지도 않을정도의 적당한 온도와 무심코 지나가면서도 충분히 볼거리가 있는 에쿠니 가오리의 작품들이다. 요즘들어 유난히 많이 편애한 일본작가와 작품들 하지만 무라키 하루키를 봐주기엔 이젠 류행이 지난듯 하고 류의 상상속으로 들어가기엔 너무 벅차고 요시모토 바나나를 읽기엔 무언가 더 깊은것을 갈망하게 되여 에쿠니 가오리의 작품이 더 다가오는지 모른다.  에쿠니 가오리는 일전 한국에서 5년 연속 꾸준히 사랑받는 작가 2위에 올랐다. 한국뿐만아니라 중국에서도 일본소설은 곧잘 읽힌다. 십여년전까지만도 일본소설이라면 추리문학정도로만 알아왔지만 요즘 서점가는 각양각색의 일본소설코너가 설치될 정도로 다시 독자들에게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있다. 일본 소설은 무게를 잡지 않고 독자들을 편안하게 이끌어들인다. 자기가 아는것도 조금만 말할 뿐이다. 오만가지를 다 아는듯 독자들을 가르치려 하지 않는 대신 어딘가 가벼운 경쾌함으로 무장한다. 한편 담담하게 독자들의 감성을 건드린다. 그 부드러운 터치가 종당에는 독자들의 가슴에서 활화산을 이끌어 내는것이다. 에쿠니 가오리의 작품도 이와 다름 아니다.    에쿠니 가오리는- 1964년 도쿄에서 태여나 미국 델라웨어대학을 졸업했다. 동화적 작품에서 연애소설, 에세이까지 폭넓은 집필 활동을 해나가면서 언제나 참신한 감각과 세련미를 겸비한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반짝반짝 빛나는』(1992)으로 무라사키시키부 문학상을 수상했으며, 『나의 작은 새』(1998)로 로보우노이시 문학상을 받았다. 그 외 저서로 『제비꽃 설탕 절임』 『장미나무 비파나무 레몬나무』 『수박 향기』 『모모코』 『웨하스 의자』,『냉정과 열정사이』와 『반짝반짝 빛나는』 『호텔선인장』 『낙하하는 저녁』 『울 준비는 되어 있다』등이 있다.   영화 "도쿄 타워" 포스터  에쿠니 가오리는 일본 문학 최고의 감성작가로서, 요시모토 바나나, 야마다 에이미와 함께 일본의 3대 녀류작가로 불린다. 소설쓰기에 대해 에쿠니 가오리가 어느 인터뷰에서 한 공감의 말 한구절을 인용해 본다. “저는 독자들에게 메시지 전하기를 좋아하지 않아요. 그냥 이야기 공간을 만들어 독자들에게 ‘와 보세요’라고 합니다. 소설 읽기는 하나의 여행이에요. 마치 여행을 떠나 자기가 사는 곳과 다른 공간으로 가보고, 그곳의 공기를 마시면서 다른 체험을 해보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이 소설의 매력이지요.”      
142    와 늘 (중편소설) 댓글:  조회:4058  추천:43  2009-01-09
. 중편소설 . 와 늘   김 혁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거저 방울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 별이 떨어진다 상심한 별은 내 가슴에 가벼웁게 부숴진다 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소녀는 정원의 초목 옆에서 자라고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의 그림자를 버릴 때 목마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 박인환 “목마와 숙녀”중에서   조춘 (早春) 너를 처음 만난건 5월이였지? 아마? 푸르름이 신들린 무희(舞姬)의 치마자락처럼 마악 산자락을 덮으려 하고, 해빛이 구태여 어깨전 까지 찾아와 툭툭 건드리고는 올올이 부서져 내리던 5월, 그래, 5월이였다. 흔히 봄은 아름다운 계절이라하지만 또한 사람들이 쉽게 잊혀져하는 계절이기도 하지. 봄이 쉽게 잊혀짐은 여름의 지긋지긋한 더위도, 가을의 못견딜 쓸쓸함도 겨울의 몸서리치는 추위도 아닌 온화함으로 조용히 왔다가 조용히 가버려서일가? 하지만 봄날이. 그 봄날이 오래도록 잊혀지지않음은 나의 시인 된 흥감스러운 감성때문일가? 아니면? 잊지못할 그날 네가 남긴 인상의 락인때문일까? 그래, 5월이였다. 정확히 5월의 첫주 월요일이였지.      그날 서울에서 시인들이 왔고 시인들은 “하늘 우러러 한점 부끄럼없는 시인”의 생가를 가보고싶어했다. 잡지사 시 편집인 내가 그네들의 향도를 맡기로 했다. 고향의 산야와 고향의 시인에 대한 향도를 맡기엔 내가 가이드 못지않은 적임자라 난 생각했지 그런데… 서울서 오신 시인님들은 려행사와 이미 련락이 되여있었고 가이드도 이미 배당되여 있었다. 그렇다고 그냥 뿌리치고 나올수도 없고 나는 어쩐지 잉여인간이 된 기분으로 그네들의 틈바구니에 끼여 려행사의 자호가 큼지막하게 찍힌 관광뻐스에 올라야 했다. 그리고 서울서 오신 귀하신 손님들이 한참 기다리게 해놓고 늦게야 등장했다. 넌. 안녕하세요? 오늘 가이드를 맡은 심예나입니다! 허겁지겁 뻐스로 올라와 좌석등받이를 손으로 잡고 넌 말했다. 필요이상으로 소리높게 말했다. 그렇게 말하는 네 작은 입술, 립스틱은 심하게 번져져 있었다. 그리고 양광이 지극히도 찬란한 차창밖을 내다보며 뱉은 다음 말, 그말은 이렇게 오래동안 널 기억하게 만들었다. 오래동안, 오래동안… 오늘 날씨 와늘 좋지요? 서울서 오신 시인님들은 일순 머리를 갸웃했고 다음순간엔 설둥해져 버렸다. 사실 윤동주시인의 생가는 이곳에서 와늘 가깝슴다. 시인 한분이 참지 못하고 물었다. 저 한마디 물읍시다. 와늘이란 무슨 뜻이죠? 낯꽃을 확 붉혔다. 넌. 그리고 미처 해석을 가하지 못했다. 넌. 그 모습이 안쓰러워 내가 곁에서 해석해 주었다. 이 말 함경북도 방언인데… 아주, 영, 대단히, 썩 이런 뜻으로 쓰입니다. 아~ 네~ 시인들이 이구동성으로 머리를 끄덕이였다. 처음 보는 풍경과 처음 듣는 방언에 그들은 즐거워하고있었다. 그럴수록 넌 몸둘바를 모르고있었다. 하지만 일신에 배여 체질화된 방언을 넌 쉽게 버리지 못해 했다. 잠시 내릴가요. 와늘 볼만한 곳 또 있어요. 너에게서 와늘이란 방언이 튀여나올때마다 사람들은 미묘한 눈길로 널 지켜보았고 저마다 눈이 빛나며 얼굴에 감추지 못하는 웃음이 묻어 났다. 널 지켜보며 사람들은 모두 유쾌해했고 즐거운 기대와 궁금증으로 가득 차 했다. 급기야 한 시인이 이죽거리며 불렀다. 이보세요 와늘 아가씨 웃음소리가 차안에서 얽혔고 이렇게 너의 별명은 붙여졌다. 와늘이라고. 와늘 촌스럽고 와늘 우숩고 와늘 귀엽기도 한… 그리고 일견에도  초짜 가이드였다. 너 “와늘”.     너의 해설은 관광수첩 몇페지를 읽고 설핏 버무린 느낌이였다. 윤동주 생가로 가던 중 여러곳에 차를 세우고 고향의 명물들을 소개해 주었지만 많은 곳을 틀리게 말하고 있었다. 반일의사릉에서 년도를 잘못 말했고 15만원 탈취 의거현장에서 넌 의거를 주도했던 최봉설의 성씨를 틀리게 리봉설이라고 말했다. 내가 곁에서 일일이 시정해 주었다. 일면 난 안쓰러움을 금치 못했다. 이러다 내가 네 밥통을 깨뜨리는건 아닌가 하는 위구심에. 하지만 외지서 온 이들에게 우리의 력사는 제대로 알려주어야 했다. 드디여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 한 시인”의 생가에 이르렀다. 생가 퇴마루에, 우물가에, 생가 가까이의 교회옛터에 숙연함을 머금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생가 전람실에서 윤동주 관련 서적을 고르고있는 나의 옆구리를 네가 쿡쿡 찔렀다. 무슨 일이라도 있나 하여 난 너의 뒤를 따라나섰다. 구석쪽으로 가서 네가 소리를 죽여 물었다. 저… 윤동주 친구 이름이 뭐든가요? 문 뭐였던가요? 문익환, 그분 한국에서 알아주는 목사야 아. 맞다 문익환, 그럼 윤동주 사촌 이름은요? 송씨라고 있잖아요. 난 그만 실소를 머금지 않을수 없었다. 그런데 네가 한마디 속살거렸다. 이 책값 제가 낼게요. 학비 낸 셈 치고요.   그리고 넌 기어이 책값을 물었다.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실랑이질 하기도 그렇고 해서 나는 네가 선물하는 “윤동지 시 해제”를 받아들고 말았다.   코를 찡긋 하고 웃으며 네가 말했다.   “오늘 와늘 감사했슴다”     그런 네 눈이 짓궂은 개구쟁이 같았다. 순간 왠지 엉터리 가이드에 어처구니를 머금었던 난 네가 사랑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와늘”. 자두알처럼 동그란 얼굴형의 널 다시 바라보았다. 작은 몸집에 비해서 너의 목소리는 랑랑했고, 매우 적극적인 인상이였다. 넌 순진무구, 단순 그 자체였다. “와늘”.    감흥을 싣고 돌아서던 뻐스는 어느 유원지에 멈추어 섰다. 시골 음식점에 들려 시인들은 이곳의 일품인 토닭을 맛보았다. 진짜 알곡 먹여 기른 닭, 이곳 토닭 와늘 맛잇어요! 하고 네가 극적인 표정으로 말했다.  네가 몸 담고있는 려행사와 음식점간의 교역을 념두에 둔 과장적인 광고 티가 좀 나긴 했지만 음식은 참말로 훌륭했다. 서울서 오신 손님들은 토속 막걸리로 해갈을 했고 토종 닭다리를 뜯었다. 도회지 인스턴트 음식에 찌든 입맛을 확 사로잡는 시골음식에 감흥에 넘친 술잔들이 돌았다. 한잔 드세요 와늘 아가씨! 취흥에 몇몇 시인이 너의 별명을 부르며 권주를 했지만 넌 완연 막아버렸다. 사업시간엔 절대 술 마시지 않는다고 했다.     와늘 진지하시네 와늘아가씨가!     권주자의 말에 술판이 웃음으로 뒹굴어졌고 나도 그만 따라서 웃고 말았다. 더불어 술 몇잔 마셔주고 나는 그들의 격정을 방치한채 밖으로 나왔다. 음식을 포식한뒤의 게나른한 자의 유흥으로 뜨락을 거닐던 난 보았다. 유원지의 뜨락에 부설되여있는 회전목마를. 그리고 회전목마에 실려 가고있는 너 “와늘”을 어딘가 툽상스러운 회전목마였다. 말이나 동물의 형태도 아닌 그냥 안장을 만들고 페인트 칠을 올린 수동식 회전목마, 그마저도 칠이 벗겨져 녹물이 든 쇠붙이가 드러나 보였다. 그래도 목마는 잘도 돌아갔다. 목마를 빙그르르 돌려놓고 넌 잽싸게 목마에 뛰여올랐다. “와늘”. 나무가지에 매달려 꿀밤 찾는 다람쥐처럼. 날씨는 너무 맑아 쨍그랑쨍그랑 명랑하게 소리내여 웃는것처럼 보였다. 잘게 찢어진 목화송이 같은 구름들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고 오월의 화사한 태양이 머리우에서 빛살을 흩뿌리고있었다. 푸르고 청정한 공기를 안고 계절을 앞질러 화사한 너의 치마자락이 부풀어올랐다. 정오의 빛줄기는 직사광으로 내리비쳤고 그 아래 너는 발광체처럼 빛났다. 길고 풍성한 머리털이 흩어져 후광처럼 얼굴을 감싸고 있었다. 머리칼이 뒤로 날릴때면 길고 아름다운 목선이 드러났다. 빛줄기아래 귀바퀴의 연골이 투명해 보였고 그 연골을 타고 찰랑이는 머리칼의 끝머리마다에는 해빛은 묻어있었다. “와늘” 넌 그 간단한 작희(作戏)에 빠져 있었다. 그리고 아주 부드럽게 또 때론 아주 힘있게 넌 회전목마의 리듬을 만들어내고있었다. “와늘”. 영화의 한 장면을 스틸(剪辑)하기라도 한듯한 그 장면에 일순 멍해지고 말았다. 난. 무슨 의식이라도 치르는 사람처럼 한동안 그자리에 서버렸다. 목마의 회전을 따라 나의 눈길도 나의 머리도 움직이고있었다. 한 자락 신선한 산소를 들이키는 듯한 상큼함을 느껴 나는 장력(張力)에 끌리듯 너에게로 다가갔다.    접붙이마다 녹이 슬기 시작한 회전목마의 삐걱대는 소리, 하지만 그 소리가 왜 내게는 청동악기의 연주소리처럼 들려온걸가? 놀랍게도 너의 회전에 따라 잃어버렸던 내 세포 하나 하나의 감각이 다시 되살아나고 있었다. “와늘”. 삐걱거리는 회전목마의 쇠소리에 뒤섞여 너의 깔깔대는 웃음소리도 흘렀다. 그리고 난 오랜만에, 참으로 오랜만에 시인의 단전(丹田)에서부터 올라오는 어떤 감흥을 느끼고있었다. 따스한 피줄속에서 돋아 오르는 순(筍)같은것을 근지러움으로 감지했다. 하늘은 그야말로 투명에 가까운 블루(蓝色) 톤이였고 봄의 지열이 아지랑이처럼 피여올랐다. 해빛이 색실이 풀리듯 회전목마를 휘감는다. 슬슬 깃을 단장하기 시작한 봄 새들이 여러 가지 목소리로 지저귄다.  바람을 가르며 목마가 돈다. 빛속에서 너의 모습은 신기루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저만치 한 무더기의 사과 꽃이 보였다. 근처 과수원에서 접붙이를 해와 울타리 대용으로 심어 놓은 꽃, 그래. 넌 꽃이였다. “와늘”. 항거할수 없는 봄날의 꽃이였다. 넌 빛과 풋풋함을 흩뿌리고있었다. “와늘” 그리고 풋풋함의 저변을 묻어 동인들의 시 한수가 내 귀바퀴를 맴돌았다.   너의 푸른 뼈속엔 산골 물소리 랑랑하고 들바람 내음이 풋풋하다 네 산뜻한 눈동자엔 령롱하게 해살이 깃들고 맑은 구름이 쉬였다 간다 네 옆에서 나는 물가에 산속에 대숲에 유유히 살아가는 어진 사슴이다 … … … - 박설매 “란아 너의 이름으로”       시의 음절을 안고 넌 돌고있었다. 그 눈부신 회전은 슬로우모션(慢镜头)처럼 느릿느릿 돌다가 정지되여버렸다. 문뜩… 나의 머리속에 나의 심방속에 영원히, 영원히. 그리고 못나게도 그날부터, 시나브로 봄이던 그날부터 난 널 기억해 버렸다. “와늘”.       나 방   모색(暮色)이 창연한 연길로 관광뻐스는 그제야 도착해 서울서 오신 려행객들을 이 작은 시가지의 낯설은 거리에 꾸역꾸역 토해냈다. 하지만 서울사람들의 여흥은 계속되였고 난 손님들을 섬기는 립장에서 그 여흥을 묻어갈수밖에 없었다. 그 대오에는 너도 끼여있었다. 관광뻐스와 함께 사라지려는 너를 어느 시인인가가 함께 가요! 와늘 아가씨~하며 손목을 잡았고 막무가내라는듯 너역시 따라나섰다. “와늘”. 서울에서 온 시인들은 감흥을 주체하지 못하고 서울 명동의 축소판인듯한 이 작은 도시를 누볐다. 보신탕도 마시고 양꼬치구이도 뜯었다. 다방에 가서는 윤동주를 읊고 김소월을 읊고 릴케를 읊었고 노래방에 가서는 “일송정 푸른 솔은 늙어갔어도”를 열창했다. 그리고 맥주며 소주며 콜라며 각약각색의 술이며 음료며가 너를 향해 몰부어졌다. 수고많았어 “와늘”씨! 원샷! 연변 아가씨! 술 못합니다. 술 와늘 못합니다! 하다가 겨우 몇잔 마셨는데 노래방 쏘파에 류탄(流弹)에 격중 된 사람처럼 넌 픽- 쓰러지고 말았다. “와늘” 정말 주량이 “와늘” 적은 모양이였다. 서울손님들은 그런 널 내쳐두고 그냥 18번을 열창했고 뒤처리는 내가 나설수밖에 없었다. 널 부축해서 노래방을 나와 택시에 앉혔다. 어데냐? 살고있는 집이 어데냐고? 내가 쓰러져있는 널 깨워라도 볼 요량으로 소릴 높여 물었고 다음순간 또박또박 대답했다. 넌 선생님, 우리 술 한잔 더 해요.     사실 멀쩡했다. 넌. “와늘” 멀쩡했다. 손님들이 끈질기게 술 권할가 연극을 놀았다고 했다.     선생님도 내가 와늘 취한줄 알았죠.     깔깔 웃어댔다. 넌. 장난기 가득한 웃음이 작고 령롱한 구슬처럼 택시안을 뒹굴었다. 나도 그만 따라 웃고 말았다. 하루의 피곤이 그 웃음 한방에 날아가는듯 한 느낌이였다. 사실 나도 어떤 핑계를 대서라도 알콜로 질퍽해가는 그 자리를 언녕 뜨고싶었던것이였다. 그런데 너의 깜냥에 끌려 나도 은연중 탈출구를 연것이다. “와늘”. 우리들의 웃음에 감염된듯 뭐가 그리 우수워요?하고 택시기사도 멋모르고 따라 웃었다. 웃음을 실은 택시는 네가 원하는 곳을 향해 달렸고 어정쩡하면서도 재미난 기분으로 난 널 따라서고 말았다. “와늘”.     북대의 밤시장. 방수포로 하늘을 이고 네변을 두른 조야한 밤시장의 음식난전에서 우린 마주앉았다. 여름의 전조(前兆)가 풍기는 5월의 밤, 금방 개장한 밤시장에서 난 흔쾌히 돈지갑을 열었다. 무얼 먹겠는가고 물으니 뻔데기를 먹겠다고 했다. 놀랍게도 앳된 처녀애가 그런 징그런 놈을…    와늘 맛있슴다. 잡숴보세요 한번.    드디여 뻔데기 튀김 한 접시가 올랐다. 술 한모금 비우고 노르스름하게 튀겨진 뻔데기 하나를 집어 아삭아삭 씹어먹었다. 와늘 맛있게 먹었다. 너 “와늘”. 평소 웬간한 주량이고 안주도 가리는 쪽이 없는 나였지만 뻔데기만은 먹어보지 못했다. 잡숴보세요. 먹는다고 죽지않아요. 영양가만 높은걸요. 바삭바삭하면서도 뒤맛이 고소하답니다. 와늘 맛있는데요. 너의 간청에 못이겨 나는 한 점 집어 입에 넣었다. 자기 몸에 대고 시약(试药)하는 약사의 기분으로. 종이장을 씹는듯 어딘가 퍽퍽한 느낌, 그런데… 아닌게 아니라 뒤맛이 고소했다. 환장하게 고소했다. 저도모르게 또 한점 집어 입어 넣고 말았다. 다시 한번 작고 령롱한 구슬이 내 신변에서 구을렀다. 웃으면서 사실 오늘이 가이드 첫날이라고 말했다. 너 “와늘” 그럴줄 알았어. 그렇게 티가 많이 났어요? 그래 와늘 많이 났지. 내가 과장된 표정으로 너의 어폐를 흉내냈지만 넌 웃지않았다.   나 아마 가이드 감이 아닌가 봐요.     걱정을 뿜으며 넌 연거퍼 술잔을 비웠다. 난 오늘 저지른 너의 몇가지 실수를 지적해 주었다. 부끄러운듯 넌 술만 들이켰다. 듣는둥 마는둥 했지만 난 나대로 윤동주라는 시인의 청고한 일생이며, 시인이 소외된 사회며, 관광지보호의 중요성이며에 대해 열기를 뿜으며 말했다. 말해놓고 나스스로 무안해 졌다. 그만큼 너처럼 나도 대화가 필요했나보다. 처음 만나는 가이드와 이렇게 말 주머니를 열고 대화거리를 만드는걸 보면.  이번엔 제 얘기 들어보실래요. 취기에 눈시울이 발가우레해진 네가 입을 열었다. 사뭇 진지한 표정이였기에 나도 진지하게 귀를 빌려주었다. 낮은 톤으로 너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넌. 가끔씩 뻔데기 튀김을 입에 넣어가면서.   넌 업둥이였다고 했다. “와늘”. 다섯살때 양모가 업어왔는데 친부모의 얼굴은 생각나지 않지만 양모의 집에 온 첫날은 그 나이에도 또록또록 생각이 난다고 했다. 유난히 넓은 양모의 집이 추워 보였고 공격적인것 같이 뾰죽한 양아버지의 코가 무서웠고 안고 다독여 주었지만 양모에게서 풍기는 향수냄새가 낯설었다고 했다. 그렇게 남의 집 양녀로 자랐는데 고중에 입학하던 해, 정을 붙여온 양어머니가 뺑소니차에 치여 죽었다고했다. 뒤미처 양아버지는 중국 녀자와 재혼하고 그 녀자의 고향인 관내로 따라 가버렸다. 또 한번 원치않게 낯선 세상에 내쳐져야만 했다. 넌. 학비를 대줄 사람도 없고해서 고2에 사회로 나오고 말았다고 했다. 친구네 집을 떠돌다가 먹여주고 재워준다는 미장원에 잠시 취직했다.  미장원에 몇해째 붙박혀 있는데 머리하러 오던 단골인 려행사의 책임자가 가이드에 의향이 있나고 물어서 처음 나섰다는것이였다.   아직 어린 육신에 토네이도(龙卷风)처럼 들이닥친 인생의 불행에 대해 넌 아프게 말했다. 생맥주 한모금에 뻔데기튀김 하나씩 씹어가며. “와늘”. 그리고 이야기하고있는 너의 눈은 모호한 슬픔과 갈등, 그리고 약간의 불안기 같은것을 가득 담고 있었다. “와늘”   더는 크게 뜰수없는 작은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았네 그 이상 더는 작아질수 없는 작디작은 귀로 바람소리, 새소리 그리고 세상이 떠드는 소리를 들었네 하늘이 어찌하여 나를 만들었는지 나는 그것을 몰라도 좋네 더는 작아질수 없는 가슴에 바늘귀 같은 뙤창을 만들고 푸른 하늘 흘러가는 구름을 보며 나도 시간의 하늘을 오가는 한오리 바람인줄 알았네   - 김동진 “말하는 이끼”   화장을 지우며 눈물이 흘러내렸고 네 왼쪽 눈가장자리에서 무언가가 서서히 드러났다. 그건 태짐이였다. “와늘”. 팥알처럼 도드라진 하나의 푸른 태짐(胎痣).   어머 들켰네. 사실 나 눈물짐 있어요. 그래서 맨날 울며 살 팔자래요. 모두들…   나의 시선을 의식하고 핸드백에서 화장솔을 끄집어 내여 넌 눈가를 문질렀다.   싫어요. 남들앞에 눈물짐 보이는거   바삐 화장을 고쳤고 잠간새에 태짐은 사라져버렸다. 화장으로 생기를 되찾은 얼굴로 넌 말을 이었다.   사실 제 이름 심예나 아니얘요. 건 려행사 사장님이 달아준 이름이고요. 제 진짜 이름은… 듣고서 웃지 말아요. 제 진짜 이름은 심순애랍니다. 좋아하던 연극의 주인공 이름을 본따 지었대요. 울 양아버지가. 이름이 와늘 웃기죠? 령롱한 구슬이 또 한번 구을렀다. 하지만 네 눈귀에 아직도 완고하게 맺혀있는 이슬을 난 보았다. “와늘”. 네 이야기를 듣는 동안 하나의 형상이 내 눈앞에서 그물거렸다. 그건 나방이였다. 한 마리의 나방이였다. 이제 겨우 뻔데기속에서 탈출한, 하지만 높고 너넓은 세상의 하늘에서 작은 나래를 어찌할지 주체하지 못해 파득이는 나방. 딱 한 잔이라고 했던 술은 두잔 석잔으로 이어졌고 그날 우린 밤늦도록 밤시장에서 앉아있었다. 눈까풀이 풀어질 때까지 술을 마셨다. 밤시장의 음식난전마다에는 알전구가 밝혀져 있었다. 알전구가 뿜는 희윱스르레한 불빛아래 눈물짐이 있는 처음 만난 녀자와 마주해 난생처음 씹어보는 환장할 맛의 뻔데기와 환장하게 우울한 이야기들, 내 시인의 감수로서는 환장하게 인상적인 밤이였다.  “와늘”.         재 회   사실 그 무렵 나 역시 환장하게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내내 책상물림이라 글외에는 또 글밖에 모르는 청빈한 문인과 몇해를 힘들게 살아준 안해는 두손을 들었고 리혼수속을 마치자 곧 출국을 해버렸다. 그리고 화는 단으로 오지 않았다. 모두들의 말처럼 화는 쌍으로 왔다. 혼인의파렬로 몸부림하는 나에게 또 한번의 타격이 왔다. 내가 여태 근무하던 잡지사가 정간되고 만것이다. 우리 말로 된 유일한 시 전문지가 우리 말의 위축으로 더는 지탱하지 못하고 그 “페지”를 닫아버리고 만것이다. 난, 사거리에서 엄마의 치마꼬리를 읽어버린 미아(迷儿)처럼 되여버렸다. 격심한 실의끝에 난 한숨을 거두었고 눈물을 닦았다. 눈물을 흘린뒤의 보다 명징(明澄)해진 시선으로 현실을 정시했다. 그만큼 의연하고 담대한 마음을 갖지 않으면 살기 힘든 세상이였다. 정말이지 이제부터 내가 혼자 가야할 길은 멀었다. 리혼한 안해에게로 집은 넘겨졌고 둥지털린 멧새처럼 난 시급히 엉덩이를 놓을 보금자리를 마련해야 했다. 세방집을 찾아 나섰다. 이곳저곳을 누볐고 어눌하게나마 세방주인과 실랑이질하며 방세를 깎고하면서 겨우 북대부근에 집 한채를 세맡았다. 이사짐은 많았다. 많은 이사짐은 모두다 책이였다. 삼륜차부들을 동원해 책을 날랐다. 볼썽사나운 한 시인을 동반해 보들레르와 릴케와 뿌쉬낀과 김소월과 리상과 윤동주가 일렬로 나를 따라 작은 세방으로 붐비며 들어갔다. 어머, 책이 와늘 많네! 층계에서 이사짐의 행렬을 보고 누군가가 놀란 소리를 뿜었다. 그 소리, 그 익숙한 말마디에 나는 문뜩 멈춰 서고 말았다. 책짐을 든채로. 그래 너였다. “와늘”. 이 세상에는 수많은 만남이 있고 그중에는 인차 잊혀질 만남도 많았지만 난 순간에 널 기억해 내고 말았다. “와늘”. 너도 미구에 날 알아보았다. 어머, 선생님! 이사하세요? 어머 묘하네. 와늘 묘해! 어폐를 쓰는 그 버릇은 여전하구나. 공교롭게도 나의 세방주인은 네가 아는 분이라 했다. 넌 내게서 이사집을 앗아냈다. 굳이 함께 날랐다. 드디여 이사짐을 다 나르고 땀을 들이고 있는데 네가 누군가와 함께 들어섰다. 나에게 인사시켰다. 제 남자친구얘요. 그래? 반갑네 난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런데 그 앤 나의 손을 받아주지 않았다. 두 손을 바지주머니에 찌르고 키 큰 맨드라미처럼 서서. 그저 안녕하세요! 한마디만 던져왔을뿐이였다. 그렇게 말하는 애의 키가 압도적으로 컸다. 대보름날 민속춤을 추는 사람들이 나무다리를 짚고선듯 엄청 컸다. 그런데 솔직히 첫 인상이 좋지않은 애였다. 손님에게 일별의 목례조차 없는애. 크지만 비쩍 마른 몸에 온 얼굴이 좁쌀을 한 되박 쏟아붓기라도 한듯 여드름투성이였다. 강파르고 뾰족한, 그리 너그럽지도 않은 성품이 보이는 아이였다. 미안하지만, “와늘”.       그 앞에 서니 넌 도토리처럼 작아보였다.  하지만 그애의 겨드랑이밑에 끼여 웃고만 섰는 네 얼굴은 엄청난 키 차이에도 불구하고 밝아보였다. 선생님의 이 세집 제 남자친구 이모부가 세주는 집이랍니다. 오, 그래? 키도 크고 좋구나 남자친구 난 본의에 없는 덕담을 할 수밖에 없었다. 흡독하는 사람 같은 인상의 네 남자친구는 아무말도 없이 사라졌고 넌 나의 이사짐을 풀며 도와주려했다. 잘 생겼죠? 내 친구? 너의 물음에 엉.하고 난 애매한 단답을 주고 말았다. 하지만 넌 나의 반응을 느끼지못하고있었다. 이사짐을 정리하고있는 내곁에서 끝없이 남자친구 이야기를 했다. 잘 생겨서 좋고 키가 커서 좋고 이모부네가 잘 살아 좋고… 묻지도 않는 남자친구에 대한 칭찬을 이어댔다. 남자친구 덕분에 힘든 가이드직도 때려치우고 집에서 그냥 논다고했다. 이때 네게서 투명한 새소리가 울렸다. 내가 흠칫했고 넌 웃음을 토했다. BP호출기의 소리였다. 내 남자친구 사준거랍니다. 옆구리에서 BP를 떼내 보이며 네가 자랑했다. 날 부르네요. 그리고 경쾌한 뮤지컬 배우의 보법으로 넌 집에서 뛰여나갔다. “와늘”.       우 기 (雨季)   혼인이 조종을 울리고 직장을 잃은뒤로 난 전전긍긍 이 도시를 떠돌아 다녔다. 뿌리잘린 부초(浮草)처럼. 네 남자친구의 이모부가 세를 주는 세방집도 기한이 찼고 난 또 세집을 옮겨야만 했다. 얼마후 난 이 시가지의 서쪽 가장자리에 자그만 세책방 하나를 차렸다. 남자친구네 집에 올때마다 내 방을 노크하고는 어줍은듯 들어와서는 돌각담처럼 무져있는 책무지 앞에서 내가 타주는 싸구려 막대커피를 마시며, 재깔이던 너를 더는 볼수 없었다. “와늘” 책 안 읽는 풍토의 이곳에서 책방수입은 보잘것 없었다. 수많은 관념과 방향들로 들어차 있을것 같은 저 두꺼운 책들도 결국은 나의 생활에 대한 향방을 제시하지 못했다. 하지만 책상물림인 내가 뾰족히 찾아할 일거리도 없고 하여 난 책방에 매달려 입칠을 하고있었다. 확실한 내 일을 갖고 몰두하다보니까 인생에 좀 자신감이 생기기도 했다. 한편 아직 페간당하지 않은 우리말로 된 순문학지들에 열심히 투고했다. 몇줄 안되는 시와 내 이름 석자가 적혀나온 문학지들을 받아들고는 법열(法悅)을 느끼듯 기쁨에 몸을 떨군하였다. 그리고는 나의 시가 적힌 그 문학지들을 책방의 세책코너에 꽂아두기도 했다. 읽는 사람도 없을터지만. 그것이 그무렵 내 인생의 전부였다. 사라져버린 꿈과 랭혹한 현실에 대한 인식 때문에 아름답지만 뼈아픈 시를 쓰고 인생이며 문학이며에 대하여 고민하는, 고작 몇평방메터의 책방에서 수백권의 책을 임대하면서 임대료를 챙겨 살아가는 이 시대 서러운 시인일뿐이였다. 난.   그날도 비 내리던 날이였다. 하늘은 연신 더러운 비물을 재빛 도시의 정수리에 무진장 흩뿌리고 있었다. 난 비오는 날이 싫다. 책에 누기가 드는건 물론 가슴도 습해지는 그런 날이. 그래서 여느때보다 일찍 문을 닫으려는데 해종일 손님없던 책방에 비소리를 들려주며 문을 밀고 녀자 하나가 뛰여들었다.     전화 한통 합시다! 녀자는 급박하게 수화기를 쳐들었고 급박하게 버튼을 눌렀다. 푼돈이라도 끌려고 난 책방에 공용전화를 가설했고 때로 책 임대료 한잎도 못받는 날에 외려 전화비값이 더 많을때도 있었다. 오빠야? 나야! 한 마디를 떼놓고 녀자는 울기 시작했다. 녀자의 어깨가 톱질하듯 오르내렸다. 밖에선 비가 내렸고 책방안에서는 눈물이 내렸다. 울음섞인 코멩멩이 소리로 녀자는 말을 이어나갔다. 수화기가 그 무슨 고해상사를 하는 신부의 창구인듯이 많은 말을 했다. 시끄러운 곳이나 먼 곳에서 거는 듯 높은 목소리다. 실내를 가득 채우는 녀자의 톤이 높은 소리가 비소리의 단조음을 갉아먹었다. 어떻게 지내? 아프지는 않아? 음식은 입에 맞고? 고기는 먹여줘? 하루 몇시간씩 잠을 재워? 한 방엔 몇이 들어 있고? 그 사람들 오빨 괴롭히진 않아? 난 괜찮아. 몸상태도 좋고. 정말이야 와늘 좋아…. 나는 흠칫 녀자에게로 눈길을 주었다. 드디여 끊나지 않을것 같던 통화가 끝났다. 얼마얘요? 녀자가 호주머니에서 짤깍돈을 꺼내여 세면서 나에게로 다가왔다. 아직도 그치지 못한 울음이 딸국질처럼 이어지고있었다.   난 아무 대답도 못했고 녀자에게 들붙은 시선을 거두어 들이지도 못했다.  비물이 떨어지는 긴 머리칼, 회가루라도 뒤집어 쓴것처럼 창백한 얼굴, 발갛게 질린 눈가에 또렷이 박힌 눈물태짐. 얼마나 울었는지 얼굴 선이 울퉁불퉁하게 부어있었다. 그래 너였다. “와늘” 어머, 선생님? 급기야 너도 나를 가려보았다.  눈물에 씻겨진 네 눈동자는 까맣고 깊었다. 덩그마니 쌍꺼풀 진 큰 눈은 경계심으로 가득했고 또 그것은 한없이 텅 비여 보였다.  첫 만남때보다 넌 유약해 보였고 조금은 지저분해 보였다. “와늘”. 애초의 미려한 모습은 오간데 없었다. 헐렁한 옷이 네 피부에 눅진하게 달라붙어 있었다. 비에 젖은 바지에 척척 감긴 네 다리가 마냥 무겁게 보였다. 흰 양말에 든 검은 흙물이 보였다. 끈적하고 탁한 공기가 네 주위를 감돌고있었다. 비물에 흠뻑 젖은 너의 일신에선 꿉꿉한 냄새가 날것만 같았다. 넌 중량 없이 허허 안개바다에 떠있는 사람처럼 처연하게 보였다. “와늘”. 그리고 들먹이는 높은 가슴 그 아래로 배가 선연하게 불어있었다. 난 결례(缺礼)라는것도 잊은채 뚫어지게 그것을 바라보았다. 드러난 목이며 팔이며가 너무 말라있었지만 배만은 베개라도 품은듯 툭 튀여나와 있었다. 너의 작은 몸속에 분명 또 하나의 숨결이 숨어 있었다. 겨우 한두해 보지 못했더닌 넌 산월을 앞둔 녀인네로 되여 내앞에 나타났다. “와늘” 보도랑이 터진 물처럼 너의 눈물이 다시 흘러내렸다. 푸른 태짐우로 흘러넘쳤다. 동전을 움켜쥔 손으로 입을 틀어막으며 넌 울기 시작했다. 이윽고 눈물을 손가락으로 훔쳐내면서 네가 입을 열었다. 낮게, 조금은 부끄러움이 섞인듯한 소리로 물었다. 라면있어요? 뭐? 뭐라고? 잘못 듣기라도 한듯 내가 다시 물었다. 라면 있어요? 뜨끈한 라면 먹고픈데 부끄럽게, 하지만 또박또박 넌 말했다. 잠시만, 잠시만 기다려봐! 난 쏜살같이 책방을 뛰쳐나갔다. 우산도 쓰지않은채 길건너 슈퍼까지 달려가 라면이며 짠지들을 샀다. 합자기업에서 만든 라면이 아니고 비싼 수입제 라면 몇개를 사들었다. 다시 비를 가르며 돌아와 책방뒤에 붙은 작은 자취방에 들어가 라면을 끓였다. 달갈도 넣을가? 네가 머리를 까땍가땍했다. 달걀을 깨넣었다. 두개를 넣었다. 이젠 홀아비생활이 몸에 배인지라 나 라면만은 그런대로 잘 끓였다. 라면이 다끓자 짠지봉지의 입구를 이발로 물어 찢어서는 짠지를 라면 그릇에 몽땅 부어넣고는 선채로 넌 라면을 건져 먹기 시작했다. 후르륵~ 후르륵~ 그 무슨 음식 빨리먹기 오락쇼에 나간 사람처럼 빨리도 한그릇을 비웠다. “와늘”. 네가 상기된 얼굴로 들이붓듯 허겁지겁 라면 한그릇을 다 비울 동안, 나는 우두커니 앉아 너의 둥근 등만 애처롭게 지켜보았다. 굽은 등은 먹이를 뜯는 맹수의 뒷모습처럼 굼지럭거린다.   미안하다 정말 너무도 먼먼 길을 너는 외로이 홀로 걸어왔구나 다시 한번 마주서서 생각해 봐도 미안하다 정말…   - 윤청남 “꽃이 꽃으로 보이는 순간”   그런 질문 따위는 하지 말아야 옳은거라고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지만 너의 그 심하게 불어오른 배를 자꾸 의식해 나의 질문은 터져나오고야 말았다. 어떻게 된거니? 매워서 실실거리며 입가로 번져진 국물자국을 휴지로 닦다가 네가 다시 입을 비죽이며 울기시작했다. 울음에 사연을 담아냈다. 남자친구에게, 키큰 맨드라미 같은 그 남자친구에게 일이 생겼다고 했다. 원체 남자친구의 이모부가 들어있는 집과 세를 놓는 세방집은 모두 남자친구의 어머니가 한국에서 부쳐 보낸 돈으로 이모네가 산것이라고 했다. 동생네 집에 얹혀있는 아들 때문에 매달 어김없이 학비며 생활비들을 부쳐왔다고 했다. 그러던 어머니가 어느날부터인가 소식이 끊겼고 그날로부터 이모와 이모부의 태도는 급변했다. 그녀와 결혼할 요량으로 집을 내달라고 하자 그때로부터 남자친구와 이모네는 전쟁이 시작됐다고 했다. 집의 소유권을 두고 법놀음까지 벌렸다고 했다. 실랑이가 오가다가 이모부가 남자친구의 귀뺨을 때렸고 남자친구가 우직함을 참지못해 재떨이로 이모부의 머리를 깠다고 했다. 이모부는 중태에 빠져 입원했고 모질게도 이모는 그런 조카를 고소했다고 했다. 그래서 3년의 실형을 받고 “콩밥”을 먹고있는 중이라고했다. 남자친구가 판결받기 전날 그녀도 임신사실을 알게 됐다고 했다. 비는 그냥 내렸고 비처럼 습한 어조로 넌 진창길처럼 엉망이 된 네 신세를 이야기했다. “와늘”. 말을 마치고 너는 울었다. 한동안 울었다. 깊은 오열이였다. 너무 깊어서, 나는 그 순간 너를 건드리지 못했다.  지금까지 넌 허방위를 걸어온 듯했다. “와늘” 네 이야기를 들으며 목구멍으로 무언가가 뜨겁게 치밀어 올라 나는 자주 입술을 깨물어야 했다. 왜 내 삶의 테두리에는 사연 아픈 사람들만 있는거지? 문뜩 네가 내 팔뚝을 잡았다. 급박한 어조로 말했다. 날 여기 있게 해주세요! 있을데가 없어요.  애원에 가까운 소리였다. 그러면서 넌 불안한 시선을 연신 좌우로 날려보내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후두둑 무너져 내릴것만 같이 지쳐 있는 그 눈빛이 새삼스레 내 가슴을 후벼냈다. 오래 가진 않을거애요. 이제 법원판결이 나서 집 찾으면 나갈게요. 잠시 진지한 침묵이 실내를 감쌌고 스스로도 그 침묵이 싫어져 난 머리를 끄덕이고 말았다. 네 모습이 혼란스러운 탁류속에 떠내려가는 한가닥 지푸라기 같아서. 그리고 이 순간엔 목석이라도 머리를 끄덕이였을것이였다.     작고 초라한 내 자취방에 이 몇년간 손님을 치르지 않았다. 네가 첫 사람이였다. 이렇게 카메라의 줌렌즈로 눈앞에 바짝 끌어다 놓은것처럼 불쑥 나타난 너와 난 참으로 묘한 인연으로 엮어져 한 처마밑에서 한 솥밥을 먹게 되였다. 큰 물고기의 배에 붙은 작은 흡반어처럼 책방에 붙여 지은 작은 자취방에서, 이제 겨우 몇번 만났던 남녀가. 그야말로 소설 같은 이야기였다.    나에 대한 감사를 표하고자 넌 무거운 몸으로 일을 손에 잡았다.    나를 도와 돌려온 책들을 정리하고 파손된 책들을 손질했다. 미처 정리하지 못해 창고에 박혔던 책들이 서렬을 찾았고 낡고 너덜너덜 하던 책들이 새옷 단장을 했다. 책방의 창문을 필요이상으로 알른알른 닦았다. 그때로부터 우리 책방의 유리는 그 무슨 의류전시장의 창문처럼 그렇게 깨끗하고 맑아졌다. 청결함을 좋아하는 그것이 곧바로 네 깨끗한 마음의 표출이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와늘” 집안 구석구석 빗질을 하고 닦기를 반복했다. 물건들이 제 자리로 정리되고 방에 윤기가 흐렀다. 나의 밀린 빨래도 기어이 앗아내 해주었다. 음식도 네가 끓였다. 아침이면 들려 오는 나지막한 도마소리, 기름타는 냄새, 그리고 슬리퍼를 잘잘 끌고 오가는 너의 발소리... 불편함보다 그 어떤 충만감이 작은 방을 들먹히 채웠다. 꽤 오래된 홀아비생활로 부잇하게 거미줄 어렸던 내 방과 내 심성이 먼지를 털고 일습을 개비하기 시작했다. “와늘”. 하지만 네 얼굴엔 물 그림자 같은 수심기가 마냥 어려있었다. 일을 하다가도 잠시 손을 놓고 멍하니 앉아서 바보 같은것, 바보 같은것하고 혼나간 사람처럼 중얼거리기도 했다. 배속의 아이를 위해 저녁이면 가끔 산책을 나가곤했다. 어느 날인가부터 내가 널 배동해주었다. 어스름이 내리고 한낮의 화끈했던 열기가 삭아드는 초저녁 도시의 가녁을 우리는 노량으로 거닐었다. 어느날 네가 내손을 더듬어 잡아 쥐였다. 그리고 부여잡는 네손엔 힘이 들어가 있었다. 혼자서 생활의 중량을 감싸안은채 추운 비속을 가르며 온 넌 사람의 온기가 그리웠나 보다. “와늘” 그 손을 난 꼭 사려쥐여 주었다. 신혼에 아기를 가진 부부처럼 우리는 손을 꼭 잡고 산책을 했다. 세간의 눈길을 난 의식하지도 않았고 피하지 않았다. 이렇게 터무니없고 허무맹랑한 관계가 어디있을가만은 사랑이 필요한 너에게 조금이라도 위무(慰撫)를 줄수있다면 어떡하든 좋다고 난 생각했다. 그건 또 어찌보면 외로웠던 나 자신에 대한 위무이기도 했다. 산책으로 책방 가까이에 있는 공원에도 자주 갔다. 그곳에는 회전목마가 있었다. “와늘”. 밤의 어둠을 썰며 음악을 안고 돌아가는 회전목마는 이승의 그것 같지않게 신비스럽고 영묘해 보였다. 목마가 돌고 음악이 울리고 아이들의 웃음이 어우러져 천국의 풍경을 그리고있는 그곳을 넌 무척이나 좋아했다. 기쁨의 회오리에 잠긴 아이들을 지켜보며 넌 속삭이듯 말했다. 나도 저렇게 이쁜 애를 낳을거애요. 우기였다. “와늘”. 우기에 우리는 또 만났다. 이렇게 습습한 우기속에 여의치 못한 운명을 가진 사람이 한사람도 아니고 두사람이 있다는 건 슬픈 일인데, 이상하게도 슬프지만은 않았다. “와늘”. 우리는 서로의 체온으로 애써 상대의 눈물을 말려주었고 젖어드는 가슴에 온기를 주고있었다. 거부할길 없이 우리몸을 두다리며 쏟아져내리는 세간의 장대비를 피하고 막아주며 우린 살아가고있었다. “와늘”. 책방에는 수업을 끝낸 학생들로 점심나절에 손님이 가장 많았고 오전엔 손님이 거의 없었다. 더구나 기분이 찜찜한 우기라 요사이는 손님이 거의 끊기다 싶이 되여있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것 같은 오전, 그런데 그날은 오전나절에 웬 손님이 뛰여들었다. 선뜻 들어서지 못하고 뭉그적거리다 손님은 계산대쪽으로 다가왔다. 아침에 네가 깨끗이 닦아놓은 바닥에 큼직한 발자국을 내며 다가와 물었다. 순애 여기 있습니까? 일순 멍혀졌던 나는 순애라는 이름이 너의 본명이였음을 급기야 떠올렸고 마주한 사람의 키가 엄청 크며, 그 사람의 머리가 까까머리이며, 그가 누구라는것을 뒤미처 알아보았다.     인기척을 듣고 뒤방에서 네가 머리를 내밀었다. 예리한 날에 상처를 입을 때 나는 비명 같은 소리로 넌 불렀다. 오빠!- 녀석이 네 앞에 몸을 내던지더니 서러운 아이처럼 울기 시작했다. 한쪽 다리를 꿇은채, 녀석은 깨지기 쉬운 유리를 다루듯 네 둥시런 배우에 손을 올려놓고 울었고 넌 불어난 몸 때문에 녀석을 안을수도 없어 그저 손을 뻗쳐 녀석의 박박 밀어버린 머리통을 만지며 울었다. 나는 조용히 책방을 빠져나오고말았다. 두 사람의 시간을 갖게해주고싶었다. 나오고보니 불시에 가출한 소년처럼 갈 곳이 업어졌다. 그 시간을 난 찜질방에서 먹고자며 보냈다. 형형색색색의 사람들로 시끌벅적한 찜질방에서 혼탁한 온도에서였던지 아니면 딱딱한 목침때문에서였던지 꼬박 잠못 이루고 뒤척이였다. 그런데 왠지 허전한 이 감정은 또 뭘가? 무언가 설명 못할 미진함 같은것이 발목을 잡아채는 듯한 끈끈한 느낌? 이튿날 책방에 돌아와 보니 뜻밖에도 책방앞에 경광등(警光灯)을 단 경찰차가 서있었고 푸른제복의 경찰들이 서슬퍼렇게 보였다. 난 난생처음 파출소로 불려갔다. 너와 내가 무슨 관계인가고 경찰들은 매눈을 하고 어조를 살려 물었다. 경찰들의 질문에 난 일순 대답을 잃었다. 너와 난 대체 무슨 관계였던가? “와늘”? 경찰에 진술할념 않고 난 스스로에게 묻고있었다. 다른곳도 아닌 파출소에서 다른 사람도 아닌 경찰들의 채문앞에서 난 너와의 관계에 대해 새삼스런 답을 구하고 있었다. 그저 언젠가 려행길에 엉성하게나마 가이드를 해준적 있는 녀자. 내가 들어있던 세방집 주인의 조카의 녀자친구, 그렇게 알게된 면목으로 불쌍해서 내 집에 잠깐 아주 잠깐 묵게 해준 녀자… 이렇게 설명하기로는 세간의 리해는 물론 나 자신의 해석도 모자랐다. 사실 좁은 자취방에서 너와 지내며 난 우리들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본적있었다. 그때면 이상하게도 TV의 “동물세계”프로에서 보았던 한 장면이 떠오르군했다. 작은 소(沼). 그 푸른 소에 몸을 담근 코뿔소며 소에 다가와 물을 마시는 령양이며 양의 뿔우에 앉아 해바라기를 하고있는 새며… 이런 진풍경이 자꾸 떠오르군 했다. 너와 나는 그렇게 덥고 목이 마르고 해바라기를 하고싶어하는 소며 양이며 새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각자의 수요는 있지만 서로를 다치지 않고 서로를 리해하며 의존해 지내온 순하디 순한 온혈동물. 그렇지않을가? “와늘”? 탕! 경찰이 손으로 사무상을 내리쳤다. 아마 내가 대답을 거부한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넘이 어떤 넘인지 알아? 탈옥범이라고! 탈옥범! 경찰이 나를 향해 소리소리 질렀다. 결국 내가 고용한적 있는 책방의 영업원이였다는쪽으로 아퀴를 지었다. 어디있나요? 그애? 진술을 마치고 난 너의 행적부터 물었다. 뿌즈도우! (不知道)! 퉁명한 대답으로 너의 행적은 일축되여버렸다. 파출소에서 나오니 밖은 그냥 비의 세상이였다. 거리의 축축함이 달라붙듯이 나에게 다가왔다. 몸이 가늘게 떨렸다. 옷깃을 올린채 비물 추적거리는 거리를 가로질러 책방으로 왔다. 책방에 돌어서서 영업할념도 하지않은채 난 창 가까이의 의자에 앉아 버렸다. 장마철의 축축하고 후덥지근한 열기를 안고 멍하니 앉아있었다. 굵은 비방울이 창문을 타악기처럼 두드렸다. 힘있게 때리고는 아픈듯 몸을 허물며 주르르 흘러내리고…… 우리가 함께 했던 시간들, 그 시간들이 허무하게 유리창으로 부서져내리는것 같다. 언젠가는 화창한 해빛이 스며들던 창, 네가 호호불며 극성스레 닦은데서 현실감없이 환장하게 빛나던 창, 지금 그 창에 얼룩을 내며 그 창을 때리며 차가운 비만 턱없이 내린다. 차겁게 그리고 허무하게. 이 차거운 비에 그 무거운 몸으로 너 어디 갔느냐? 밖에는 어둑시니 같은 어둠이 웅크리고 있는데 너 어디 있느냐? “와늘”?     몽 롱 (朦胧) 끝내 나는 서점을 부도내고 말았다. 나 같은 이들은 책을 쓰고 책을 만들어도 책을 팔줄은 모르고있었다. 책 안읽는 풍토에 하필이면 책으로 장사를 하려했으니 부도를 낼수밖에. 그렇게 세간의 눈에 비친 난 언제나 모자라고 서러운 시인일수 밖에 없었다. 안쓰러워보였던지 동인들이 일자리를 알선해 주었다. 작은 신문사에 취직했다. 큰 잡지사에서 오랜 편집으로 있던 내가 연예계 스캔들이나 스포츠계의 어둠을 들추며 어수룩한 독자들의 말초를 자극해 부수를 올리는 그런 신문사에서 밥줄을 이으려 뛰여다녀야 했다. 그래도 꿈은 그냥 가지고있었다. 예전처럼 현란하지도 않고 색채도 바래진 흑백의 꿈, 그 때문에 한결 더 현실같아보이는 소박한 꿈은 그냥 꾸고 있었다. 그 작은 꿈은 시집 하나를 내는것이였다. 여태 써놓은 그렇게 많은 시중에서 딱 100수의 정수만 골라 가위에 내 이름 또박이 찍어박고 장정도 아치(雅致)하게 내고싶었다. 그 누가 읽지 않더래도 나와 비슷한 처지의 동인들께, 내 못난 시를 수첩에 베껴두고있을 흔치않을 독자들께 싸인하여 척 내여줄 그런 시집 하나 내고 싶었다. 다행이도 요즘 세월에 보면 유치하고 진부하고 어리뜩하기 짝이없을 그런꿈을 들어주는 사람이 나타났다. 어느 한번 신문사의 회동에서 취기에 나의 꿈을 역설했는데 자리에 끼여 내곁에 앉았던 광고부 부장이 듣고서 시집에 협찬해줄 사람을 찾아준것이였다. 어느 건강원의 사장님이였다. 말이 건강원이지 농촌에서 상경한 아직 촌티를 벗지못한 녀자애들에게 후다닥 단기훈련을 시킨후, 똑 같은 유니폼을 입히고 술 취한 나그네들의 목줄기며 발가락이며 허리통이며 간간이 다른곳이며를 주물러주는 그런 안마업소였다.  하지만 난 개의치 않았다. 따질 계제가 못되였다. 좋은 작품을 량산해도 팔리지않고 자비출판을 해야만하는 풍토가 야속했지만 그런 자비출판이라도 할 밑천마저 마련하지 못나는 자신한테 화가 났고 따라서 이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겠다는 가상스러운 각오까지 머금은 나였다. 때묻은 돈이건 코묻은 돈이건 그 돈으로 바꾼 것이 깨끗하면 되지않나?하고 스스로를 위안하고있었다. 난. 사장님에게 한턱 내면서 술로 공략하라고 광고부장이 귀뜸해 주었다. 이건 국이다, 이건 나물이다며 세세히 일러주는 광고부장의 제안에 따라 난 사장님을 청했다. 당연하다는듯 마다하지 않았고 친구까지 하나 달고왔다. 눈이 연필심 구멍만하게 뚫리고 주독에 절은듯 코가 유난히도 빨간 사내였다. 광고부장과 함께 그들을 손님이 문전성시를 이룬 어느 유명한 맛집에 청했다. 첫대면에 나는 그들과 맞지않고 겉돈다는 느낌이 들었다. 고귀한 척 해보았지만 내재되여있는 그들의 천박성은 금세 드러났다. 하지만 내 이름 석자가 박힌 책 한권을 꼭 내고야말겠다는 각오를 머금고 주억거리며 그들과 어긋나는 궤도를 맞추어 공전하려고 부득부득 애를 썼다.    나이에 비해 이마가 지나치게 벗겨오르고 갓 출품한 오지독처럼 반들반들한 건강원 사장님과 객반위주(客反为主)로 감놓아라 배놓아라 말도 많은 “딸기 코” 친구는 술을 엄청 마셨다. 2차로 간 노래방에서 나와서도 사장님의 취흥은 제어가 되지않았다. 자기가 아는 술집으로 가자고했다. 그러면서 한마디 했다. 글쟁이들 사는거 받아먹을려니 속이 더부룩하구먼. 목소리에는 베푸는 자가 보이는 거만함이 묻어 있다. 사장님의 자가용에 앉아 허깨비처럼 흔들거리며 달렸다. 한참 달려서 시가지 변두리에 있는 처음 와보는 술집으로 왔다. 난 “관청에 들어선 소”처럼 어색하게 실내를 두리번거렸다. 조명을 적게 쓴 홀 안은 어두우면서도 탁했다. 신문지 글씨를 식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조도(照度)가 낮다. 벽면에 모조품 그림들이 걸려 있었다. 사장님이 반고흐를 좋아하는지 아니면 모르고 그냥 걸었는지 죄다 반고흐의 그림들이였다. “해바라기”며 “론강의 별밤”이며 “의사 가제의 초상화”며… 홀에서는 쉰듯한 목청의 팝송이 흘렀고 결이 그대로 드러난 목재 마루바닥우로 웨이터들이 기분좋은 구두소리를 내며 걸어 다녔다. 유독 불이 환한 길다란 바엔 갖가지 종류의 양주가 들어차 있었다. 사장님이 한병 청했다. 이런 술 마셔봤어? 시인? 이거 나뽈레옹 꼬냑이야! 비싼 술이라고. 사장님이 양주에 넣는 얼음조각을 먼저 집어 입에 넣고 서걱서걱 씹으며 말했다. 나보다 겨우 한두살 위인 사장이 반말을 틱틱해가며 시종 건방을 떨고 있었지만 난 참았다. 외려 난 여태 비싼 양주 한번 마셔보지못한 처지의 자신한테 화가 나 있었다. 깔끔하고 뒤끝도 개운했지만 결국은 40도가 넘는 독한 술인지라 목이 연탄을 삼킨듯 했다. 난 알프스산을 공략하는 나폴레옹처럼 독기를 품고 그 술을 공략했다. 술이 몇순배 돌자 사장이 문뜩 웨이터를 불러 녀자를 요구했다. 인차 녀자들이 나왔다. 굽높은 신으로 나무바닥을 탕탕거리며 다가와서는 향수냄새를 폭탄처럼 터뜨리며 우리곁에 털썩 드러앉는다. 밤을 먹고 사는 녀자들인지라 화장기 진했고 로출도 심했다. 미니스커트가 감싼 엉덩이들이 풍선처럼 터질듯 했고, 몸을 틀때 잘록한 허리가 금방이라도 끊어질것 같았다. 부담스럽게 밀착해 앉아 요란스럽게 몸을 비트는 그들의 몸짓에서 단내가 났다. 그녀들의 도발적인 에로티즘에 사로잡혀 일순 멍해졌는데 사장이 내곁의 녀자를 불렀다. 흐느적거리는 눈빛으로 자기곁으로 오라고 손짓했다. 나의 허락도 없이 자기녀자와 바꾸어 앉혔다.. 나 좀 살이 붙은 녀잘 좋아해. 흐흐     허연이를 드러내며 낄낄댔다. 성긴 이 사이로 흘러나오는 웃음소리가 술집바닥에 굼닌다. 폭발하는 순간의 화염을 보듯 염색하고 란발한, 내곁에 앉았던 녀자는 기다렸다는 사장에게로 다가갔다. 넘어지듯 그에게 안겨들었다. 우와, 양귀비구먼 아주 그냥 죽여주는데… 사장이 녀자의 도드라진 엉덩이를 찰싹 치면서 입술이 벗겨지게 웃었다. 제가 양귀비면 사장님은 뭐애요? 녀자가 코소리를 내며 애교를 떨었다. 난 네 시아버지다. 어머 오빠도 아니고 사장님도 아니고 하필 시아버진 왜요? 당태종이 제 아들의 녀잘 빼앗지 않았더냐. 그러니 양귀비면 내가 오늘 저녁은 당태종, 네 시아버진거지 크크큭… 사장이 야비하게 웃었다. 웃으면서 녀자의 목이 훤히 패인 분홍빛 상의의 옷섶으로 손을 밀어넣었다. 오늘저녁 어디한번 시아버지와 즐겨볼가? 녀자는 만수받이로 받아주고있었고 사장은 우리가 보는앞에서 내놓고 녀자를 만지고 주물고 했다. 독한 술이 돌았고 질퍽한 육두문자가 오갔다. 그 어울리지않는 좌석에서 나는 반고흐의 그림속 “가제 의사”처럼 식지로 관자놀이를 짚고 있었다. 거칠고 천한 언사와 행동들에 난 눈살을 찌푸렸다.  머리꼭지가 맹렬히 뜨거워 지는것 같다. 내가 왜 이자리에 있지? 지금 대체 뭘하고 있는거냐? 하는 반문이 들었다. 그리고 저들이 필요로 하는것은 뭘까. 세상것 가운데 금전과 치환할수 없는것이 있을까.하는 자문을 구했다. 나는 그렇게 욕망의 틈바구니에 보잘것없이 앉아있었다. 문뜩 엄습해오는 질문들에 해답을 찾지 못해 몸부림하며 그 해소법으로 곁의 녀자가 따라주는 대로 술을 마셨다. 맨숭한 정신으로는 견딜수가 없었다. 더 강한 알콜을 계속 위속에 머리속에 주입했다. 먼 길을 강행군한 것 같은 피로감이 엄습한다. 질량을 헤아리기 어려운 무력감이 온몸을 덮쳐온다. 곁에 바싹 밀착해 앉은 녀자의 물컹한 살 때문에 에어컨을 튼 방이였지만 더웠다. 땀이 났고 위가 쓰렸고 머리가 폭발할것만 같았다. 욕이 나올것만 같았다. 이대로만 간다면 난 저 고민하는 모습의 “가제 의사”를 그려낸 반고흐처럼 자기 귀를 뎅겅 베여버릴지도 모른다. 나는 취한 게 아니고 분명히 지쳐 가는 거였다. 소주에 맥주에, 소주와 맥주를 섞은 혼합주에, 위하여! 원샸!을 수없이 웨치고 나서 사장님이 곯아떨어졌다. 드디여 끝나려보다 안도의 숨을 쉬는데 범없는 골에 삵이 나타났다. 사장님의 친구가 이번엔 그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그냥 술을 청했다. 역시 사장처럼 작은 안마업소를 차리고있다는 그 “딸기 코”친구는 사장못지않게 바람을 잡고 구름을 타고 있었다. 사장의 술배동녀였던 폭발머리녀자를 핧듯이 바라보던 “딸기 코”가 한사코 몸을 트는 녀자의 옷섶으로 부득부득 손을 밀어넣어 녀자의 부푼 가슴을 잔뜩 움켜쥐였다. 그리고 길고 날렵한 혀가 녀자의 얼굴로 덮쳤다. 다음순간, 녀자가 찰싹 남자의 뺨을 때렸다. 썩을 놈! 이를 앙다물고 녀자가 투명한 고음을 질렀다. 나 원 드러워서. 참자참자 했더니 이젠 별 허접쓰레기가 다 건드리고 지랄이야. “딸기 코”의 얼굴이 불판처럼 시뻘겋게 달궈졌다. 땀구멍이 숭숭한 붉은 코가 벌름거렸다. 어허 이 년이? 미쳤나? 야, 너 거기에 금띠 두른 팔자는 아니잖아, 이년아? “딸기 코”는 욕설 한번에 덤 한번으로 녀자의 가슴을 툭툭 건드렸다. 내가 만졌다. 왜? 만지면 어떡할래? 이 순 걸레 같은 년, 이 순 창녀 같은… 어떤 기를 모아들이듯 거친 숨을 들이마시던 녀자는 아주 길게 야- 이- 개-새-끼-야!하고 앙칼지게 내지르며 맥주병을 들어 “딸기 코”의 이마빡을 깠다. “딸기 코”가 비명도 지르지못하고 폭삭 거꾸러졌다. 순간 난  나는 아득해 졌다. 멍청한 눈길로 맥주거품에 섞여 피가 솟는 “딸기코”의 이마와 피처럼 붉게 루즈를 바른 녀자의 폭언이 쏟아져 나오는 입술을 쳐다보았다. 무성영화처럼 아무도 들리지 않았다. 기분이 얼얼해 말도 나오지 않았다.       다행이 크게 상하지는 않았다. 부근의 병원분원을 찾아 몇코를 꿰멘뒤 야단칠 여력이 없었던지 “딸기코”는 택시에 앉아 집으로 가버렸다. 뒤수습을 마저 하려고 다시 술집으로 왔는데 광고부장은 란동에도 곯아떨어져 있는 건강원 사장을 챙겨 사라지고 없었다.     난 미간을 일그러뜨린 채 맥주병을 휘두른 그 폭발머리 녀자를 찾았다. 웨이터 하나가 화장실쪽을 가리켰다. 난 거칠게 화장실문을 와락 열어젖혔다. 사실 난 화가 잔뜩 나 있었다. 어떤 허탈감과 함께 알수 없는 분노가 목구멍까지 차 올라왔다. 이런 추잡한 란동이 벌어졌다는데 대해 그리고 이런 란동의 중심에 청고한 시인으로 자처하던 내가 끼여있다는것에 화가 났다. 화장실의 세면대에 녀자가 엎드려 있었다. 녀자는 토악질을 해대고있었다. 오페라를 부르듯이 소리높혀 구역질을 하고있었다. 오늘 장소를 쑥대밭으로 만든 장본인으로 생각되는 그 녀자를 격한 소리로 불렀다. 여보세요! 아가씨! 나 좀 봅시다! 녀자가 세면대에서 꺼수수 풀린 머리를 쳐들었다. 순간, 내 머리속에서 하얀 새떼가 화르르 날개를 펴며 날아갔다. 토악질을 하던 녀자의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고있었고 눈물이 번져져 화장기가 지워진 얼굴이 추례하게 드러났다. 그리고 아이새도우(眼影)가 벗겨져 시커먼 눈물줄기로 흘러내리는 녀자의 볼에서 난 무엇을 보았던가? 눈물에 땀에 화장이 벗겨진 눈가에 드러난 그것은 푸른 태짐이였다. 난 덫을 밟은 사람처럼 혼자말로 중얼거렸다. 순애? 너 순애 맞냐? 그래. 인정하고 싶진 않았지만 믿기어렵게도 너였다. “와늘”. 너를 끌고 꿈의 자락에 이끌리듯 술집을 나와 밤시장에 앉았다. “와늘”. 너는 토하자 속이 좀 개운하니 술을 더 마시자고 했다. 사실 나도 술이 말짱 깨여있었다. 안주를 청하려니 아무것도 싫다고 했다. 그냥 술이면 된다고 했다. 그러던 네가 철제화로앞에서 양고기꼬치를 굽고있는 주인장을 불렀다. 저 여기 뻔데기 있어요? 뻔데기 튀김이 올랐다. 너와 처음 만났던 그 5월의 밤이 환영으로 떠올랐다 사라졌다. 뻔데기 튀김을 안주로 맥주 몇잔을 들이켰다. 양주에 타던 목에 랭동이 잘된 맥주를 구명환처럼 부어서 삼켰다. 술 한모금 하던 네가 속이 쓰리다며 잔을 내려놓았다. 거품이 삭은 맥주잔을 내려다보며 넌 길게 하품을 했다. 부스럭거리며 핸드백에서 무언가 찾았다. 한동안 뒤적여 무건가 끄집어 내였다. 담배였다. 몸서리치도록 빨갛게 메니큐어를 한 손톱으로 한 개비를 끄집어내여 입에 물었다. 리이터를 찾았다. 라이터가 없는 모양이였다. 이봐요! 불이 없나요 불? 네 목소리는 자정으로 가는 밤시장을 흔들었다. 곁에서 수타면(手墮面)을 먹고있던 련인인듯한 한쌍의 눈길이 너에게 몰부어져있었다. 입에 잔뜩 문 국수발을 끊치않은채, 짧은 미니스커트에 불량인형처럼 화장하고 담배를 꼬나문 너의 일신을 훑어보고있었다. 순간 나의 얼굴이 먼저 달아올랐다. 주인장이 다가와 라이터를 켜주었다. 고개를 숙여 불을 붙혔다. 깊게 패인 앞섶으로 커다란 가슴의 륜곽이 거침없이 드러났다. 나는 덴겁히 시선을 돌렸다. 맛나게 한모금 빨고나서 도넛(圈饼干)처럼 동그란 담배연기를 토해내고는 그 얇은 연기의 망사를 뚫고 넌 나를 말똥하니 쳐다보았다. 화장을 고쳐 한 얼굴에 푸른 태짐은 사라졌고 숱 많은 인조눈썹이 달려졌다. 그런 너를 난 잘못 부른 이름에 뒤돌아보는 사람처럼 생경하게 쳐다보았다. 네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근데 아저씨! 술집에서처럼 여전히 간드러진 소리였고 칭호도 이전처럼 선생님이 아니고 아저씨다. 근데 왜 저런 사람들과 다녀요? 돈 좀 있다고 세상 유세 다 떠는 저런 새끼들하고. 아저씨 맞아요? 그 김동주인지 윤동주인지처럼 시 쓴다는 아저씨. 나는 나인데 넌 네가 맞느냐?       난 가라앉은 소리로 대답했고 물었다. 맞아요. 나 “와늘”인데 네가 깔깔 웃었다. 웃음이 밤시장을 뒤흔들었다. 거품 같은 웃음이였다. 나는 온몸에 전기가 오른듯 소름이 돋았다. 나 이제 와늘이란 말을 안해요. 그게 언제일인데. “와늘”인 죽었어요. 그 촌시런 “와늘”이는 넌 숨이 막힐듯 웃어댔다. 웃음소리는 천막안에 가득히 명멸했다. 헛바람이 새는듯한 그 웃음소리는 자못 방탕하기까지 했다. 수타면을 먹던 한쌍의 눈길이 또 한번 너에게 쏠렸다. 천장 쪽에서 푸드득 소리가 들려왔다. 웃음소리에 놀란듯 나방 한 마리가 천장에 달린 알전구에 제 몸을 부딪치고 있다. 나방의 날개짓에 따라 불빛이 어지러워졌다. 나는 말없이 나방의 란무를 지켜보았다. 알전구의 빛줄기가 만들어내는 빛의 반경안에서 나방은 어지러운 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빛을 갈구하며 날아들고는 가까이하다가는 뜨거워 튕겨나는 나방의 몸짓은 애처롭게 보였다.     어찌된 일이냐? 어떻게 된거냐? 난 너의 사정이 궁금했다. 웬지 그 궁금증은 필요이상으로 컸다. 뻔데기를 한점 집어 입에 넣고 소리나게 씹으며 네가 되물었다. 스코필드라고 알아요? 스코필드? 외계인의 음성을 듣기라도 한듯 난 네 입을 지켜보았다. 그럼 “탈옥”이란 드라마는 보셨어요? 미국 드라마인데… 아, 그런 드라마 들어본것 같애. 지금 시청률 젤 높은 드라마지. 근데 자다가 봉창두드리냐? 드라마는 웬?      스코필드, 그 드라마서 나오는 주인공 이름이죠. 근데는? 나는 궁금증이 나고 초조해 미칠지경이였다. 내 남자친구 별명이 스코필드래요. 스코필드. 오빠가 정말 스코필드처럼 잘 생겼잖아요. 웃을 대목이 아니였지만 네가 웃었다. 그 웃음이 또 한번 날 괴롭게 했다. 왜 스코필드냐구요? 드라마속 얘기처럼 탈옥을 시도했니까. 그래서 깜방에서 불리는 별명이 스코필드래요. 네가 두번째 담배를 꺼내물었고 또다시 새된 소리로 주인장을 불렀다. 여기요 불있어요 불? 내가 일회용 라이터를 가져다 불을 붙여주었다. 불을 붙여 물고 연기를 한숨처럼 토하더니 넌 말을 이었다. 희극을 연기하다가 갑자기 비극을 연기하는 배우처럼 얼굴을 바꾸어서 말했다. 오빠가 또 탈옥하다 잡혔어요. 이번엔 깜방밥 더 오래 먹어얄것 같애요. 녀석은 무려 세번이나 탈옥을 시도했고 중형을 받았다고 했다. 그렇게 되자 녀석은 면회를 온 순애와의 절교를 선포했다. 이제 감옥에서 나오면 늙어갈 터이니 청춘을 아껴 다른 남자를 찾으라고 했다고 한다. 아이는 지우라고 덤덤하게 말했고. 그후부터는 면회를 가도 아예 만나주지를 않았다고했다. 그렇게 수십번 찾아가도 녀석이 만나주지도 않고 모질게 나오자 모든것을 체념했다고 했다. 아이를 키울 자신도 없고 자기처럼 낳아서 남의 업둥이로 보낼바에는 지우기로 마음먹었다고했다. 자신은 얼빠진 녀자, 이제 곧 태여날 아이는 죄수의 새끼라는 꼬리표를 달리게 하고싶지않다고 했다. 그리고 의사들도 말리는 인산(引産)을 기어이 강행하다가 하마터면 죽을뻔했다고 했다. “와늘”. 소리없이 나타난 눈물이 네 얼굴을 적셨다. 화장기 진한 얼굴에 흉터같은 길을 만들던 눈물은 곧 소금처럼 얼어붙었고 그 소금우로 새로운 눈물이 길을 만들었다.   나는 다시한번 너를 쳐다보았다. 진한 파운데이션 화장에 짙은 인조눈썹, 붉은 립스틱으로 입술을 도색한, 요염한 얼굴. 하지만 너의 제슈체어(行为)는 어색했고 짙은 눈화장에가려진 눈동자는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난 마음이 저릿했다. 상처입고 두려워 떠는 짐승의 눈이 저럴까. 불안함이라고도, 슬픔이라고도 할수있는 그 떨림, 그 눈은 대상을 주시하는 눈이 아니라 안으로 잠긴 눈이였다. 거침없이 사위를 보고있지만 넌 나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내 뒤의 먼 곳을, 결국은 자기자신을 안으로 응시하는 듯했다. 그러고보니 네 몸체의 곡선은 당차지 않고 연약했고, 어딘가가 허술한듯 허물어져 보였다. 나는 휴지를 건네주었다. 휴지로 얼굴을 닦자 그 푸른 태짐이 다시 드러났다. 너의 끝없는 눈물샘을 자극하는 그 눈물짐을 지켜보며 나는 몽롱한 혼돈속을 헤쳐나오고자 몸부림했을 너의 아픈 시간들을 그려보았다. 그리고 그 아픈 몽롱속에서 허우적거리는 네 손을 잡아주고싶어졌다. 끄당겨 주고 싶어졌다.   내 하늘에는 지난 사랑을 불러보는 시계 하나가 걸려있다 우걱거리는 그리움이 시계바늘을 타고 흔들흔들 달려나오면 그우에 어진 파초처럼 드러누워 비온뒤 보았던 하얀 목련의 죽음 같은 절망을 뜯어먹는다 뿌려진 상처로 시간은 얼룩지고 아픔의 맛은 비릿하고 사납다 이제 그 시계를 별밭에 부수어 이지러지게 하련다 그리고 다음날 노란 장미로 피여나 누군가의 입에 곱게 물려있게 하고싶다.   - 심명주 “보름달”   어수선한 그 밤이 지난뒤 넌 내가 남긴 전화번호대로 나를 찾아왔다. 내가 제의한대로 내게서 타이핑(打字)을 배우겠다고 했다. 어차피 술집에서 쫓겨난 처지이고 나의 진지한 요구처럼 새 길을 걷겠다고했다. 저녁이나 휴일이면 넌 나의 거처로 찾아와 타이핑을 배웠다. 넌 오성(悟性)이 빠른 애는 아니였지만 부지런한 덕성이 있었다. 힘들게 허나 열심히 넌 타이핑을 배웠다. 네 숨결곁에서 네게서 풍기는 농익은 향기를 맡으며 너의 지법을 바로잡아주며 때때로 난 옆면으로 보이는 네 붉은 뺨에 입술을 가져다대고 싶은 충동을 느끼곤했다. 하지만 나를 쳐다보는 아직도 명암이 또렷한 눈망울에서 소스라쳐 깨여나 다시 근엄한 선생의 모습을 짓곤했다. 어찌보면 너와 난 끊어질듯한 세실로 짠 인연으로 이어진 오랜 친구였다. “와늘”. 스쳐 지날수도 있는 가벼운 인연인줄 알았는데 우리들의 운명을 단단히 련결 지운 끈 하나가 이처럼 분명하게 존재하고 있었다니. 그 동안 네가 겪은 고통, 네가 견뎌낸 시간들을 생각하며 난 동정에 젖었다. 그리고 동정과 련민이 인간의 천박한 속성과 한계를 뛰여넘을수 있다고 나는 믿었다. 인간적인 그런 량식(良识)을 끝내 믿으려고 했다. 어쩌면 그러한것들이 너를 향해 꿈틀거리는 한 가닥 욕망의 촉수마저도 둔화시키는것인가 보다. “와늘”. 근 한달동안의 신고를 거쳐 넌 자유자재로 타이핑을 구사할수있었다. 은빛 레루를 따라 들녘을 질주하는 기차의 절주와 같은 키보드의 소리를 들으며 나는 어떤 성취감에 웃음을 머금었고 너 역시 어떤 자부감에 높은 가슴을 들먹이였다. 난 벼룩신문에 타자원으로 너를 취직시켜주려 했다. 비록 작은 광고지라 하지만 그 주접스러운 아수라장에서 너를 빼내여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늘에만 숨어 지내던 내 육신에게도 해빛을 만끽하게 해주고, 최소한의 표면적을 갖고 살던 령혼에게 너른 세상의 숨결을 주고 싶었다. 신문사 주필을 구워삶고 겨우 너의 일자리를 구했다. 드디여 면접보기로 한 날이 왔다. 화장 진하게 하지마라. 넌 화장 안하는 편이 낫다, 로출이 심한 옷 입지마라. 묻는 말에 주저하지말고 또박또박 대답해라. 전날 상차림을 앞둔 시어미처럼 곁에서 세세히 일러주었던 나는 너의 변모된 모습을 그려보며 신문사앞에서 즐거운 궁긍증으로 너를 기다렸다. 그런데… 넌 오지 않았다. 너에게로 핸드폰을 넣었다. 따르륵 따르륵 따르륵, 신호음 소리가 이어졌다. 하지만 넌 받지않았다. 나는 오래동안 이어지는 신호음 소리를 초조하게 듣고 있었다. 이윽고 전화가 끊어졌다. 뚜뚜뚜, 하는 날카로운 기계음이 나의 귀속을 깊숙이 찔렀다. 신문사앞에서 나는 풍선을 놓친 아이처럼 서글픈 얼굴로 굳어져렸다. 마음은 투명이 걷히고 연기가 자욱하기만 했다. 자꾸만 가슴 한 귀퉁이가 조금씩 조금씩 허물어져 내리는 듯한 느낌에 손가락을 뚝뚝 꺾었다. 그날 넌 종내는 오지 않고 말았다. “와늘”   5월에는 온다고 했지 꼭 온다고 했지 5월은 왔는데 너는 아니 와라 … … … 5월을 적시는 단비는 내 오뇌의 쓴 술 숲은 무성해 가도 나는 수척해가라 짧아진 밤 길어진 실면 꽃은 웃어도 나는 울어라 5월에는 온다고 했지 꼭 온다고 했지 5월은 왔는데 너는 아니 와라   - 조룡남 “네가 없는 5월”   며칠뒤 뜻밖에도 네게서 메일이 왔다. 메일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짤막하게. 선생님께서 배워 첫 사람으로 선생님께 메일을 띄워봅니다. ㅎㅎ 그동안 고맙고 감사했습니다. 잊지않을게요! ㅠㅠ 그리고 약속을 어겨서 미안했습니다. 지송~ 사실 난 시집가요. 서울로. 빠이빠이!       락화   드디여 시집이 나왔다. 겉봉에 내 이름 석자가 박히고 장정도 아치한 나의 첫 시집. “돈냥 좀 있다고 유세떠는 사장님”들의 적선을 받아서가 아니고 내 스스로가 악착같이 모은 적금을 부어서였다. 그런 인간들과 엮여서 시를 읊고 나의 미래를 꿈꾼다는것이 역겨워서 힘들더라도 스스로의 힘으로 낸것이다. 서점가 진렬대에 꽂혀 몇 년이 지나도 누구도 보지 않을 시집일지라도 나는 홀아비생활에 아껴먹고 모은 돈을 부어 굳이 시집을 냈다. 그것은 어찌보면 궁핍한 한 시인이 밑바닥 생활을 바꾸어보려는 몸짓이자, 지성이 소외당하는 이 뒤틀려진 세상에 내미는 도전의 출사표였라고나 할가? 시집이 인쇄소에서 출고하던 날 나는 작은 세방집에 책들을 무져놓고 그 싱긋한 인쇄잉크의 향을 맡으며 시집의 행간에 눈물을 떨구고 말았다. 몇해간 홀아비로 지내온 볼썽사나운 인생을 반추해 보았다. 백기를 들고 내게서 떠난 짧은 혼인의 녀자를 그려보았고 청춘을 바쳐왔지만 정간을 맞아야했던 우리 말 잡지의 운명에 대해 떠올려 보았고 곤고했던 책방에서의 나날들을 떠올려 보았고 어수룩하지만 이젠 정이 붙는 작은 주간지에서의 생활들을 떠올려 보았다.  나의 재능과 나의 노력에 보상이라도 주련듯 동인들이 모여서 출간기념회를 열어주었다. 분에 넘치게 이 시가지에서 가장 좋은, 한인들이 꾸리는 외국독자기업 호텔에서 치러주었다. 시인협회 회장의 치하가 있었고 평론가들의 평문이 있었고 꽃바구니가 올라왔고 덕담이 넘쳐 흘렀다. 출간식의 모든 식순이 끝나고 호텔 정원에 모여 합영을 남겼다. 사진사의 배치에 따라 앉고 서며 서렬을 정하고 있는데 갑자기 호텔 대문밖에서 대문밖에서 갑작스런 소음이 끓었다. 장마기 홍수의 포효소리같기도 이동하는 동물들의 발구름같기도 한 그 소리는 점점 가까워 지더니 불쑥 대문께에 한무리의 사람떼가 나타났다. 그들은 서로 서로 팔을 겯고 몇줄의 종대(纵队)를 짓고 있었다. 저마다 마스크를 끼고있었는데 마스크에는 붉은 칠로 x표가 쳐져있었다. 저마다 충혈된 눈동자를 가진, 기름에 절은 머리카락 사이로 허연 비듬을 달고 있는 똑같은 인상을 가진 사람들이였다. 그 인상은 한결같이 하얀 분노에 달아올라 있었다. 성난 행렬은 대문의 수위를 사정없이 밀쳐버리고 곧바로 정원으로 쳐들어왔다. 호텔 정문앞까지 대여와서 멈추어섰다. 앞장선 한사람이 운을 떼였고 그를 따라 우렁우렁 구호를 목청껏 웨쳐댔다. 한국 사기범들을 응징하라! 한국정부는 사기피해자를 우선 입국시키라! 동포 고용허가제를 강행하라!    그들은 모두가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자들, 그리고 그 상처를 벗어나려고 안깐힘을 쓰는 자들이였다. 한국으로 가려다 브로커들에게 사기를 당한 한국출국사기피해자들. 우리 주간지에서도 전재한적있는 김혁이라는 소설가의 장편르포에서 우리들은 사기피해의 실태를 놀랍게 읽었었다. 출국붐, 그 열기에 휘말려 숭어가 뛰니 망둥이도 뛰는식으로 너나 할것없이 출국행렬에 붐비며 끼여들었던 사람들은 출국사기라는 덫에 치여 비명을 지르고 신음하기 시작했다.  저그만치 3만명, 그 피해액이 3억에 가깝다니 놀라운 수자가 아닐수 없다. 급박한 부(富)에 대한 집착과 열망은 허점을 보였고 일부 몰지각한 한국인들이 그 허점을 파고든것이였다. 소팔고 집문서 땅문서 들이밀고 그래도 안되면 고리대까지 맡아 브로커들에게 내밀었다가 돈도 떼우고 출국도 못한 사람들의 절망은 하늘에 닿았다. 하여 벼랑 끝까지 내몰린 사기피해자들끼리 뭉쳐 정부청사앞이나 사거리에서 시위를 벌린 일도 수차 있었다. 그러다 오늘은 이 시가지에서 유명짜한 한국인의 독자기업까지 쳐들어온것이였다. 구호를 웨치는 사람들의 목줄기에는 굵은 지렁이가 섰고 목청은 쉬여있었다. 울분에 찬 소리를 쥐여짜다가 누군가 참지못하고 돌멩이를 들어 호텔 출입문을 향해 뿌렸다. 잘그랑! 회전유리문이 박살났다. 그를 선두로 하여 시위자들은 너나없이 돌멩이를 찾아들고 뿌리기 시작했다. 호텔경비원이며 직원들이 뛰여나와 시위자들과 몸싸움을 벌렸고 욕지거리소리, 비명소리, 창문깨지는 소리 그 와중에도 드팀없는 구호소리… 호텔은 삽시에 아비규환의 수라장이 되여 버렸다. 합영을 남기려던 하객들은 비명을 지르며 우왕좌왕 흩어져 버렸다. 무양하던 나의 출간기념회의 마지막 부분은 이렇게 시위자들의 소란속에 창졸하게 마무리되고말았다. 남의 경사의 날에 이게 무슨 난동이야. 재수에 옴붙네. 동인들이 가자고 잡아끌었으나 난 그자리에 못박혀 버렸다. 그네들의 아픔과 처절한 몸부림에 동조하고있는 나의 눈길은 시위자 중의 한 사람에게 몰부어져 있었다. 맨 앞장에서 새처럼 투명한 고음을 지르며 돌을 뿌리고있는 녀자, 돌이 창에 까지 닿지 못하자 또다시 돌을 찾아들고 사력을 다해 뿌리고있는 녀자, 웅크리고있는 거대한 몸체의 호텔이 그 무슨 자신의 생을 송두리째 위협하고있는 괴물이기라도 한듯 머리카락이 바람에 새집이 진 녀자는 호텔을 향해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며 돌멩이를 날리고있었다. 그런 녀자의 붉은 x표가 쳐진 마스크우로, 눈가에 또렷한 태짐 하나가 보였다.     너였다. 틀림없이 너였다. “와늘” 혼란의 폭이 도가 지나치게 부풀려져 110 경찰까지 동원되였다. 그제야 시위자들은 뿔뿔이 흩어져 도망치기 시작했다. 란장속에 네가 밀쳐 넘어지는게 보였다. 나는 사람들 틈새를 비집고 달려가 너를 부추켰다.     왜 사람을 잡아! 우리가 뭘 잘못한거야! 놔, 놔아!     상처입은 짐승처럼 몸부림쳤다. 넌 격투하듯 온몸으로 거부했다. 넌. 목청 터져라 악다구니를 질렀다. 넌. 그런 너의 입에선 상하기 직전의 비릿한 우유같은 냄새가 났다. 진정해! 나야 나. 진정해 순애, 심순애!     그제야 휩뜨고 겉돌던 실핏줄이 도드라진 눈이 나의 몸에 와 정착했다.     선생님! 네가 마른 입술을 떨며 목메여 불렀다.   전장으로부터 돌아온 패잔병들처럼 우리는 밤시장에 마주 앉았다. 포옹을 한다거나 유난을 떨며 재회의식을 갖는다는것은 우리 둘 다에게 쑥스럽고 고통스러운 일이였다. 일전처럼 술도 마시지않았고 담배도 피우지 않았다. 넌. 입술은 까칠하다 못해 허물 같은 살갗을 드러내고 있다. 네 몸 구석구석에 차지게 들러붙어 있는 고단함을 나는 보았다. 온 하루 격정의 신돌림에 지쳐 배가 고팠던 넌 수타면 한그릇을 단숨에 비웠다. 술마시라고 내가 청한 뻔데기튀김을 후식처럼  씹다가 입을 열었다. 몇번째였더가? 난 또다시 네가 걸어온 아픈 행보의 이야기에 귀를 빌려줘야 했다.     광고지에서 국제혼인광고를 보고 서울서 온 청혼자를 만났다고 했다. 나이가 많고 말이 많은게 흠이였지만 너의 눈에는 괜찮은 재력가로 보였다고했다. 그와 함께 이 생애 최고의 석달을 보냈다. 장백산에 올라 천지도 보고 북경으로 가서 의화원도 거닐고 샹해로 가서 상해타워(塔)에도 올라보고… 한국사장님이 급히 출국한 몸이라 현찰 지닌게 적다고 하자 자기가 물장사하면서 모은 돈을 서슴치않고 내놓았다. 돌아가서 요청장을 보낼터니 곧 서울로 와요. 이제 할일이라면 행복만 깨작깨작 누리는거애요!하고 단키스를 남기고 사장님은 서울로 날아갔다.  하지만 요청장은 오지않았고 님도 나타나지 않았다. 서울주소로 전화를 해보았지만 존재하지않은 번호라는 기계음만 들려올뿐이였다. 혼인을 주선했던 혼인소개소도 어느샌가 꼬리를 사리고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울분을 안고 사기피해자협회에 몸을 의탁하게 된것이였다. 난 정말 지지리 운도 없는 년이지요? 평생 눈물 흘리며 살 팔자라더니… 쉬이 기우는 마음을 가진 녀자에게 내려진 하늘의 벌일지도 모른다고 넌 말했다. 그런 너의 음성은 일전과는 달리 간신히 새여나오는 것 같았다. 그리고 붉어진 눈가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를 몰라 했다. 넌 그 모습을 보는 난 가슴에 각진 소금을 뿌린것 같이 따갑고 쓰라렸다. 그러나 바로 다음 순간 넌 표정을 바꾸며 자신의 얘기에 엉뚱한 조항을 달았다. 그리고 그 말은 나를 놀라게 했다.     나 꼭 한국 나갈거애요! 밀입국을 해서라두요. 꼭 그길로만 가야하겠니? 소스라쳐 놀라며 내가 물었다. 갈거얘요! 무릎이 부스러지더라도 나갈 거얘요! 목소리가 의외로 단호했다. 그리고 눈빛은 열에 들뜬 것처럼 깊고 강했다. 그 결단에 나는 순간 두려움을 느꼈다.  난 밀입국의 위험성에 대해 역설했고 출국의 좁은 소로에 붐비는 요즘 세태에 대해 비난의 말을 했다. 그런데 네가 펄쩍 뛰였다. 그럼 어떡해요? 나더러 어떡하라구요? 엄만 죽고 남자친군 감빵 가고 혼자인데. 언제봐도 혼자인데. 나더러 어떡하라고요? 다시 술집가서 주물리고 비탈리며 물장사해요? 아님 재주도 안되는 가이드 노릇 해먹어요? 그렇찮음 몇푼 안되는 돈 받으며 팔목 쑥 빠지게 타자나 하면서 살아요?     목소리가 걷잡을수 없이 높아졌다 말의 사소한 뉘앙스 차이에도 넌 예민하게 반응했다. 상궁 지조(傷弓之鳥)한 너의 마음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너는 자신에게 몰부어진 그런 불리익들이 어디에서 연유하는 건지 알수없어했다. 낯빛이 심한 혼돈으로 무눌져 심각한 어지러움에 자맥질하는것 같았다. 뒤죽박죽인 인생의 장본인이 앞에 있기라도 한듯 나를 향해 소리소리 질렀다. 어거지로 리치에 닿지않는 질문들을 얼기설기 엮다가 감정이 상승과 하강을 몇 번인가 반복하고 난 뒤에야 넌 가까스로 평정을 찾았다. 죄송해요. 선생님! 나 힘들어서 그래요. 화투패의 불길한 운세를 들여다보듯 마뜩찮은 표정으로 넌 혼자말처럼 중얼거렸다. 깜깜해요. 세상이. 앞이, 앞이 보이지 않아요… 너의 퀭한 눈그늘이 섬뜩하도록 어둡게 느껴졌다. 그래. 세상은 호락호락 하지도 않고 아름답지도 않아. 하지만 참고 견디느라면모든것이 다 풀릴거야. 다 잘 될거야. 무슨 말인가 해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난 위로의 말을 갖다붙였다. 하지만 그저 추상적인 위안을 련발하고 말았다. 어떻게 해주어야 할지 가리사니가 서질 않았다. 그래서 그저 너의 맥없이 늘어뜨린, 공기처럼 가볍고 물에 젖은 휴지만큼한 너의 손을 꼭 잡아 주었다. 그날 점도록 넌 하염없이 앉아 있었다. 수천년의 세월을 뚫고 일어난 미이라처럼 수분없이 앉아 있었다. 팍 사그라질 듯한 모습으로. 그날 이후로 난 또 너와의 련락이 끊겼다. 피해자들과 함께 합숙한다고는 하지만 그곳이 어느곳인지 몰랐다. 다시 난 내 생활의 반경안에서 숨가삐 채바퀴돌리듯하며 널 잊어가고 있었다.   어느하루 사회면을 맡은 기자가 나를 불렀다. 나의 주당붕우(酒党朋友)인 그는 나와 못하는 말이 없는 사이였다. 대박이애요. 대박. 좋은 기사 하나를 건졌는데 주필이 이번주 톱기사로 내기로 했다는것이다.    절강성 녕파에서 밀입국 했지 뭡니까! 스물다섯명이. 네. 밀입국자 모두가 조선족이지요. 곁에 모여드는 편집들을 보고 사회기자가 대박감 뉴스의 내용을 말했다. 좁은 배 밑창 물탱크에 돼지싣듯 빼곡하게 밀어 넣고 문을 닫고 그물을 씌워 위장했다 합니다. 그런데 통기성이 나빠서 그 스물다섯이 덜컥 질식사했지않고 뭡니까! 나 원 세상에!  전남 여수 앞바다에서 밀입국 조직했던 넘들이 몽땅 잡혔대요. 하지만 잡은들 뭐합니까! 모두 죽어버렸는데. 아주 돌아버렸어요. 돈에 그냥 환장들을 한 거지요 편집들이 혀를 찼다. 사회부 기자가 컴퓨터에 CD를 밀어 넣었다. 공안국 외사과에서 복사해 온 사진자료와 동영상을 곁들어 보여주었다.     문제의 선박이 나타났다.     무장한 해경들이 선박을 훑는다.     검거된 밀입국자들이 렌즈에 담겨졌다. 렌즈를 피하며 옷으로 머리를 감싸고 있다.     질식사한 밀입국자들이 선박의 갑판에 놓였다. 방수포로 몸이 덮여 그 무슨 커다란 어물처럼 놓여있다.      렌즈가 시체의 수를 확인하련 듯 한구 한구 훑고 지나갔다. 잠시만요! 나의 시망막을 찌르는 무엇이 있어 나는 엄청 높은 소리를 지르고말았다. 컴퓨터에 달려들어  급박하게 동영상의 단추를 뒤로 젖혔다.     시체가 다시 나왔다. 그중 한구에 이르러 정지버튼을 눌렀다.     화면이 코르크 핀(押钉)으로 꽂아놓은 듯 정지됐다.     뛰는 가슴을 진정하며 눈시울을 좁히며 난 그 화면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숨이 탁 막혔다. 혈관을 흐르던 피가 얼어붙는듯 했다. 방수포 밖으로 익사자 하나의 얼굴이 반쯤 드러나와 있었다.  마네킹같이 경직된 살갗의 익사자, 그 눈가에 태짐 하나가 또렷이 보였다. 난 홀로 밤시장으로 나왔다. 겨울이 다가오는 처처(凄凄)한 계절. 밤시장의 천막이 바람의 손길에 뒤척이고 있었다. 날씨도 추워져 이제 며칠후면 밤시장도 문을 닫을거라고 했다. 뻔데기 튀김을 청했다. 주인장이 철이 아니여서 신선하지못하다며 다른 특색의뉴를 추천했지만 난 굳이 뻔데기 튀김을 요구했다. 식도를 타고 흘러내리는 소주의 아린 기운을 느끼며 뻔데기 튀김 한 점을 입에 넣었다. 고소하지 않았다. 마분지를 씹는듯 했다. 아, 퍽퍽한 이 느낌, 목이 메는 이 느낌. 왜 그때 그맛을 찾을수 없을가? “와늘”! 어느새 차거운 눈물이 흘러내려 나의 볼을 간지럽혔다. 나는 어두워져 가는 초겨울의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천막에 달린 알전구 주위에는 박명(薄明)이 서려있었다. 알전구가 만들어내는 옹색한 불빛아래 볼썽사납게 홀로 앉아 나는 못나게도 울고있었다. 눈물짐이 있어서였던지 내내 눈물을 흘리며 살아온 녀자를, 어느 허허바다에서 무주고혼이 됐을 기구한 그 녀자의 짧은 생을 그리며 내가 무슨 그녀의 상주(丧主)이기라도 한듯 슬픔의 술잔을 비웠다. 입가로 흘러드는 짭조름한 눈물을 빨다가 난 보았다. 알전구의 빛을 따라 날아예는 나방을. 초목이 얼어드는 이 겨울에 무슨 나비일가만은 난 분명 보았다. 혼혼해진 눈 기운으로. 처절한 나방의 몸짓을.환영으로 보았다. 수선스레 날개를 터는 나방을 보며 난 너를 떠올려 보았다. 그래 그 나방은 바로 너였다 “와늘”   꽃의 시간은 끝났다 아름다운 꽃들은 다 떠나갔다 가버린 꽃들의 표적으로 나비의 날개 하나 꽃잎대신 꽃대우에 말라서 얹혀있고 … … … 너를 위해 꺾은 꽃이 영원한 아픔의 표본으로 박물처럼 누워있는 가을언덕우에 영원한 사랑의 미이라로 나도 말라서 굳어져 꽃과 함께 합장될가 꽃을 심듯 꽃을 파묻는 이로 나는 이제 나를 파묻어 꽃을 심을가 내 상복입는 리유를 나만은 안다   - 조광명 “꽃 가신 뒤길에”       영 춘 (迎春)   다시 봄이다. 은밀하게 그러나 사실은 재빠르게 변화하는 계절처럼 나의 신상에도 큰 변화가 일었다. 편집부 부장으로 승격했고 하필이면 요즘 같은 세월에 못난 시인을 돋보며 사랑한 어떤 과년한 처녀와 새 가정을 이루었다. 소형 임대아파트에서 살림을 시작한 우리는 적금을 부어 넓고 쾌적한 새집도 한채도 마련했다. 이렇게 내 삶은 새로운 출항의 깃발을 올렸다. 금방 일떠선 아파트구역은 신록을 입은 산처럼 깨끗했고 새집들이 한 사람들의 얼굴은 환한 미소로 들떠있었다. 아파트 구역에 슈퍼며 세탁소며 로인활동실이며가 들어섰고, 광장에는 간단하지만 어떤 감흥을 주는 조각물이 섰고 운동기구도 설치되여 있었다. 아이들이 즐길수 있도록 수동식 회전목마도 놓였다. 천방지축 제멋대로인 아이들이 곡예를 하듯 회전목마에 매달려 있다. 더러는 핫도그나 붕어빵 같은 것을 입에 물고 있었다. 과일나무에 매달린 원숭이처럼 회전목마에 매달려 지칠줄 모르고 돈다. 아이들의 환성에 광장에서 먹이를 쫓던 햐얀 비둘기 몇 마리가 날아올랐다. 어디선가 따뜻한 바람 한줄기가 불어와 낯설고 먼 곳의 향기를 묻혀 놓는다. 그 향기와 목마의 풍경이 나에게 어떤 찰나의 기억을 실어준다. 하지만 그 기억의 내용이 무엇이던지 나는 흐릿해 했다. 그 기억은 마치 감광제(感光剂)가 고루 발리지 않은 필림과도 같았다. 어느 부분은 환히 빛나며 뚜렷이 떠오르고 어느 부분은 아주 깜깜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즐기던 명시나 잠언, 한 포기 풀이나 꽃, 시인들의 모임이나 송구영신 등 극히 례사로운 일들이 떠올랐지만 나는 끝내 그 기억의 내용을 더듬어내지 못했다. 기억이란것은 굉장한 에너지여서 언제 어디서든 사람들을 원했던 그곳으로 굴려간다지만 이제는 너무 멀리 와버려 떠올릴수 없는 과거의 기억들. 회전목마에 매달린 아이들을 재미나게 지켜보다 아파트 단지에서 금방 개장한 슈퍼로 들어갔다. 새집들이 한터라 이것저것 생필품들이 자꾸만 수요되였다. 어서 오세요! 슈퍼의 젊은 녀주인이 반겨 맞아주었다. 저, 방향제 있습니까? 화장실 냄새 제거하는 그런 방향제. 네 있습니다. 녀주인이 명랑하게 대답했다. 국산으로 드릴가요? 아니면 외제쪽으로… 문뜩 그녀가 말을 멈추었다. 나를 뚫어져라하고 지켜보았다. 왜요? 얼굴에 무엇이라도 묻었나 턱을 만지며 난 그녀의 당돌한 눈길에 일순 당황해 했다. 절 모르시겠어요? 난 뜨악해하며 그녀를 유심히 뜯어보았다. 화사한 얼굴을 한 30대의 녀자. 눈매며 입언저리가 어디서 본듯한 느낌이 들긴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에 없었다. 미안 합니다. 누구신지… 그녀가 계산대에서 명세를 적으려고 놓았던 볼펜을 집어들었다. 볼펜을 들어 눈가장자리를 쿡 찍었다. 그것은… 하나의 태짐을 방불케 했다. 아~ 나의 입으로 신음이 새여나갔다. 지그재그 모양을 그리던 기억의 빛이 머리를 뚫고 쏜살같이 지나가는 듯하다. 나는 머리 속에 잠자고 있던 몇가지 단상들을 끄집어 올렸다. 금방 얼핏 본 슈퍼의 이름이 “순애 슈퍼”였던것이 떠올랐고 슈퍼에 들어오기전 회전목마를 보면서 기억을 살리려고 했던 조각나고 분해된 내용이, 잊혀졌던 그 짙은 기억의 원형이 순간에 퍼즐조각이 맞추어지듯 온전한 형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순애? 심순애! 녀주인이 힘차게 머리를 끄덕였다. 그래 너였다. “와늘”. 그간 무사하셨죠. 선생님? 너 배 탔다 잘못되지 않았어? 내가 떨떠름해지며 물었고 령롱한 구슬이 구는 소리로 네가 웃었다. 아이 선생님도. 누가 죽어요! 이렇게 멀쩡한데, 막 이렇게 잘살려하고있는데… 슈퍼 전체를 안을듯 두팔을 활짝 벌려보이며 넌 다시 환한 웃음을 지었다. 난 다시 나름대로 머리속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온갖 상상이 소다를 넣은 빵처럼 부풀어오르기 시작했다. 요즘 세월에 어쩌면 너 같은 사연을 품은 사람이 한 둘일가? 밀입국하다 죽은 녀자는 아마 몸에 너와 비슷한 태짐을 가진 녀자였을거다, 너는 무양하게 출국했고, 출국해서 열심히 일해 돈 많이 벌었고, 몇해후엔 이렇게 잊을수 없는 고향으로 돌아왔고, 여유가 생기자 더 아름다워지려고 눈물 짐도 빼면서 성형했고, 슈퍼도 차리고 막 성업을 시작하고 있고… 현실감을 붙잡기 위해  다시 널 바라보았다. 이건 순간에 떠오른 나의 판단이였지만 적중한것 같았다. 네 얼굴에서 피어오르는 온유함, 기쁨, 밝음을 난 똑똑히 보았다. 너의 더 예뻐지고 더 생기 오른 얼굴이 그를 말해주고 있고 너의 떠나지 않는 웃음과 마음속의 어떤 그윽하고 힘찬 상태가 그를 증명해 주고있었다. 오늘 개업 첫날입니다. 지금 막 시작이얘요. 어때요? 와늘 좋지요? 네가 장난기로 옛날의 사투리를 구사했고 너와 나는 파안대소를 했다. 슈퍼의 남향으로 낸 창으로 양광이 미여지게 들어와 차넘쳤다. 그 창으로 아파트 구역이 훤히 내다보였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회전목마가 첫눈에 보였다. 그 풍경이 흘러와 우리들의 마음에 스민다. 어느 볕바른 날, 유원지에서 돌아가던 회전목마가 얼핏 떠올랐다가 사라진다. 우리는 세월이 이끄는 대로 따라서 돈다. 각자의 삶을 돈다. 정해진 궤도와 짝져진 순서대로 순응해 가다가 끝내는 내 생의 회전방향을 깨달게 되고, 내가 돌아온것의 속도가 얼마나 덧없는것이엿던가를 깨닫는다. 이렇게 원륜(圆轮)의 세월을 허위허위 돌다 멈추어보면 어딘가에서 잃어버린 나를 만날것만 같다. 내 삶의 출발 지점에서나 볼수 있었던 아직도 청춘인 나와 아직도 남아있는 그런 순수함을… 그러니 회전은 본래의 그 자리로 돌아가는것이다. 가득 찬 찌꺼기를 시간을 통해 버리고 그 자신으로 돌아가는것이다. 그 여여히 돌아가는 목마의 회전을 너는 홀린듯 지켜보고있다. 그 동안 넌 참말로 백년 하청(百年河淸)의 세월을 걸어온것만 같다. “와늘” 해볕에 젖은 빨래를 말리듯이 넌 인생의 신산스러움이 곳곳에 상처처럼 남아있는 축축한 과거를 말리고있다. 그리고 희고 바삭거리는 새 옷감이 되여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있다. “와늘” 어두운 미로를 헤매다 간신히, 드디여 출구앞에 선 넌 지금 찬란한 빛살의 세례를 맞받고 서있다. “와늘” 봄의 절정답게 해살은 더욱 부풀어오르고있고 성하(盛夏)의 꽃처럼 화사하고 푸른 너의 미소도 따라서 부풀어 오르고있다. 계절은 사뭇, 아니 와늘 좋다. 그렇지 아니한가? “와늘” ! "연변문학" 2009년 1월호   ☞ 김혁 문학블로그: http://blog.naver.com/khk6699 ☜  
141    [김혁 독서만필-5] 쥐 덫 댓글:  조회:3396  추천:43  2008-12-07
[removed][removed]  김혁 독서漫筆 (5)  쥐 덫   捕鼠器   추리소설의 녀왕 애거서 크리스티의 “쥐덫” (상해역문출판사/上海译文出版社)을 읽다. 크리스티의 작품은 오래전에 적지않게 읽었지만 연극본으로 된 이 작품은 이제야 중문으로 읽었다. 크리스티의 여느 작품들과 같이 엄청난 반전이 일품이다   세계 최장기 연속공연 기록을 세우고 있는 “쥐덫”은 지난 1952년 11월 25일 런던에서 막을 올려 지금까지 33년째하루도 빠짐없이 공연되여 세계 공연사에 신기원을 수립하고 있는 작품이다. 런던 스코틀랜드 지방에서 한 녀인이 피살된다. 한편, 려인숙을 처음 운영하는 젊은 부부에게로 형사, 정신병자, 외국인, 귀부인 등이 찾아와 투숙한다. 눈사태로 외부와 단절되고 전화마저 끊긴 이곳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한다...분명 이들중에 범인은 있다.... 련쇄적 살인사건과 손님들사이에서 일어나는 갈등이 크리스티 특유의 치밀한 구성과 반전, 독창적 트릭 등으로 얽히고 설키여 읽는사람들에게 재미를 준다. 나는 추리소설에 내내 특유의 흥미를 가져왔다. 연변에는 80년대 중기로부터 일본의 사회파 추리소설가 모리무라 세이이치의 작품과 한국의 김성종이 주로 소개되여 왔지만 외국의 추리거장들의 상당수는 아직도 소개되지 못한 상태이다. 추리소설의 녀왕으로 일컫는 크리스티의 작품도 우리는 겨우 “동방열차 살인사건”, “나일강 살인사건” 등 영화로 몇편 정도 접촉한 상태.    80년대 중국에서 출간된 크리스티의 작품들 "동방렬차 모살사건", "나일강의 참안"  내가 추리소설을 써보련다고 하자 몇몇 선배작가며 동인들이 기겁하며 말린적 있다. 꼭 마치 추리는 정통문학의 범주에 들지못하는 허접쓰레기인양 치부하면서, 쟝르문학이 대세인 요즘이다. “다빈치 코드”나 “해리포드”를 구태에 례를 들지않아도 독자층의 쟝르문학에 대한 선호도를 우리는 알고있다. 쟝르문학은 최근 전세계 대중문화의 가장 중요한 화두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불붙어 문학에서 뚜렷하게 감지되는 쟝르 효과의 징후를 우리는 느끼고 있다. 하지만 무협, 공포, 추리, 판타지, SF 등 쟝르가 굳건히 자리 잡은 미국, 일본, 한국 그리고 중국문학계와는 달리 연변에서 이한 쟝르는 내내 비주류로 인식되고 있다. 쟝르가 척박한 우리 문학의 토양에서 다양성 확보에 기여할수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과거에는 문화가 류입되는 창구가 방송 하나뿐일 정도로 일원화에 가까웠다. 시대가 바뀌고 인터넷, TV 채널 증가 등 외부에서 들어오는 문화창구가 다원화되면서 독자들에게서 참조계는 많아졌다. 따라서 주류를 장악하던 순문학이 그 위상을 잃기 시작하자 그 빈자리를 채울 대안(?)이 쟝르문학이라는 키워드로 떠오르게 된것이다.    내가 소장한 크리스티의 영화들 다양한 쟝르문학을  어떻게 우리의 소위 본격문학과 접목할지는 여태껏 쟝르문학의 대표작가 한 사람도 배출하지 못한 우리 조선족문단이 연구해야 할 하나의 과제라고 생각된다. 쟝르문학을 그 어떤 하위문학으로 알고 폄하를 서슴치 않고있는 이들에게 “쥐덫”을 한번 읽으라 권장하고 싶다.     아가사 크리스티  (Agatha Mary Clarissa Miller Christie Mallowan)  추리소설의 여왕 애거서 크리스티는 1890년 9월 15일 영국의 데번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뉴욕 출신의 아버지 프레드릭 앨버 밀러와 영국 태생의 어머니 클라라 버머 사이의 삼남매 중 막내로 어린 시절을 애슈필드라 불리는 빅토리아 양식의 집에서 보냈고 이때의 경험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열한 살에 아버지를 여읜 그녀는 열여섯에 파리로 건너가 성악과 피아노를 공부하다가 1912년에 영국으로 돌아와 1914년 크리스티 대령과 결혼, 남편이 출전하자 자원 간호사로 일했다. 미스터리 소설을 즐겨 읽던 그녀는 1916년 첫 작품으로 『스타일즈 저택의 수수께끼』를 썼는데 1920년 출간되었다. 이후 계속 소설을 발표하던 그녀는 남편과의 불화로 1928년 이혼한 후 이듬해 메소포타미아 여행을 하던 중 고고학자 맥스 멜로윈을 만나 1930년 재혼하였다. 1967년 여성으로는 최초로 영국 추리협회의 회장이 되었다. 1971년에는 뛰어난 재능과 왕성한 창작욕을 발휘한 업적으로 영국 왕실이 수여하는 DBE 작위(남성의 Knight에 해당하는 작위)를 엘리자베스 여왕으로부터 받아 데임 애거서가 되었다. 1976년 1월 12월 런던 교외의 저택에서 8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removed]parent.ContentViewer.parseScript('b_16481751');[removed][removed] [removed]
140    [김혁 독서만필-4] 굶주린 녀자 댓글:  조회:3369  추천:39  2008-12-07
[removed][removed] 김혁 독서漫笔 (4) "굶주린 여자" "饥饿的女儿"   홍영(虹影)의 장편소설 ‘굶주린 여자’를 읽다. ‘굶주린 여자’는 열여덟살 소녀가 문화대혁명을 거치면서 겪은 일상사를 그려낸 소설이다. 여기서 ‘굶주림’은 배고픔은 물론 제목에서 보여지듯 여자로서의 굶주림, 또한 정에 대한 굶주림을 포괄하는 복합적인 굶주림이다. 책 속에 묘사된 가난에 대한 사실주의적 시각은 다른 어떤 작품과도 비교할 수가 없다. 홍영은 문화대혁명의 경험들을 드러내놓고 비난하거나 또는 미화하지 않고 자신의 성장과정으로 덤덤하게 바라본다. 소설 속에서 자신의 치부를 아름답게 꾸미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드러낸다. 시종 담담한 사실적 묘사와 소박한 필치가 돋보인다. 그의 소설을 읽은 독자들이 그에게 던지는 질문은 흔히 “굶주린 여자”의 스토리 중 어디까지가 픽션이고, 또 어디까지가 실제 이야기인가” 하는 것이다. 이에 그는 “굶주린 여자”는 가난한 세월을 거쳐왔던 내 지난날의 일기장과도 같은 작품”이라며 ‘100% 자전적 소설”이라고 했다. “굶주린 여자”는 여느 소설처럼 재미로 읽기가 힘들다. 엄격히 말하면 아주 완미한 이야기 결구조차 이루지 못하고 있다. 소설은 그저 나와 나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나의 시각 테두리속에 집합해 놇았을뿐이다. 허나 이러한 서사방식과 서사책략이 외려 소설의 내함을 넓혀주고있다. 소설은 시종 작은 이야기속에 담담한 서술방식을 취하고 있지만 그속에서 중국인들의 그 동란의 세월에 겪은 천재(天災), 인화(人祸),라는 큰 이야기를 극명하게 그려 보이고있다.     홍영(본명• 陳虹影)은 중국 사천성 중경(重慶) 출신으로 18살 나던 해부터 창작활동을 시작, 시와 산문, 소설 등 다양한 장르에 걸쳐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 중국의 10대 녀성작가로 꼽히는 그녀의 소설은 유럽과 미국, 카나다, 호주, 이스라엘, 일본 등 25개 언어로 번역돼 나왔다. 2000년 중국 “북경석간”의 10대 인기작가에, 2001년 '중국도서상보(中國圖書商報)'가 정한 최고의 녀성작가에, 뉴욕에서 발행되는 전위문학잡지 '트라피카'의 '중국 최우수 단편문학상'을 받는 등 중국 페미니즘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떠오르고있다.     홍영의 또 다른 대표작 [영국 연인]   [removed]parent.ContentViewer.parseScript('b_16481727');[removed][removed] [removed]
139    초심을 잃지않고... 댓글:  조회:3178  추천:77  2008-08-18
제2회 "윤정석아동문학상" 수상소감 김 혁   수상소식을 접하던 그날도 오늘처럼 무더운 날씨였습니다. 많은 작품을 량산하다보니 받은 상 또한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번의 수상소식은 저에게서는 한여름의 더위를 사르는 시원한 청량제같은 소식이였습니다.   모두들 아시고있겠지만 이 몇년간 저는 세상과 담을 쌓고 자숙과 인고의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면벽하는 중처럼 서재에만 묻혀 문학가의 작업륜리에 대해 고민을 거듭해 왔습니다. 치렬한 고민끝에 저는 두가지 화두를 건져올렸습니다. 하나는 우리의 족속을 위한 글을 써야겠다는 깨우침이였고 다른 하나는 아이들을 위한 글을 써야겠다는 각오였습니다. 물론 아주 간단한 명제같지만 오랜시간의 문학수업에서 더듬어낸 궁극적인  결론이였습니다. 우리 조선족공동체는 지금 절체절명의 위기에 흔들리고있습니다. 이러한 시점에 어떤 유흥이나 자아아픔의 발로에 그치는 문자유희에나 매달릴것이 아니라 우리의 민족을 위해 미래의 지금 우리자리에 서있을 아이들을 위해 글다운 글을 써야겠다는 자각을 드디여 가지게 된것입니다. 그런 상념에 아동문학지들과 손잡고 새해부터는 저의 이름으로 된 코너도 만들고 본격적인 아동문학창작을 서두르고있을때 바로 이번상을 수상하게 되였습니다. 이는 저의 립지를 한층 더 굳게 하고 저의 창작의취에 대한 고무와 추동력으로 되고있습니다. 시상식을 앞둔 어제 로씨야의 노벨상 수상작가 솔제니친이 타계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솔제니친은 한평생 자기가 처해있던 사회와 문단으로부터 불공평한 대우를 받으며 살아온 사람입니다. 하지만 솔제니친은 자기를 버린 사회와 문단에 대한 애정을 결코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그 문단과 그 사회와 그 민족에 대한 애정과 우려어린 시선을 작품에 몰부었습니다. 그런 몸가짐으로 시간의 고증을 거쳐 솔제니친은 드디여 로씨야를 대표하는 작가의 반렬에 우뚝 서게된것입니다. 그이의 깊은 시선과 드팀없는 행보는 지금 힘들게 자신의 행동반경을 구하고있는 저에게 어떤 제시와 현답을 주고있습니다. 1993년 한부의 아동력사소설이 화림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면서 관례대로 저는 작가협회에 입문했습니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났습니다. 모든것이 원점으로부터의 시작이라는 생각이 문뜩 드는군요.  아무리 어렵더라고 초심을 잃지 않겠습니다. 낮게 조용히 흘러서 큰 바다와 만나는 물처럼 겸허하게 자신을 낮출대로 낮추면서 정직한 문체로 창작에만 전념하겠습니다. 장시간 매스컴에 몸담그고있은 저로서는 우수한 언론인인 윤정석선생님의 이름으로 몀명된 상을 수상하게 된데대해 자호감을 느끼면서 훌륭한 상을 설립한 청소년문화진흥회 한석윤회장님과 윤진리사장님등 여러 지성인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올리고싶습니다. 창졸하게 씌여진 작품이라 부족함이 많이 보임에도 뽑아주신 평심위원 여러분들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이자리를 빌어 우리말이 위축되고 잃어져가고있는 시점에서 우리의 아이들을 위하여 아동문학이라는 외로운 외줄타기를 하고있는 모든 아동문학창작자들에게 경의를 드리면서 이제 저도 소신껏 그 줄타기에 동참할것을 서약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정진하겠습니다! 2008/08/5                                                  
138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 댓글:  조회:3075  추천:71  2008-08-18
  . 아동소설 .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   김 혁 (제2회 "윤정석 아동문학상" 소설본상 수상작품)     1  비행선은, 아이가 연필심 약한 연필로 도화지우에 선을 긋듯이 천공을 죽 긋고 있었습니다. 천공에는 보석상이 현시하듯 쥐여뿌린 다이야몬드처럼 커다랗고 빛나는 별들로 총총했습니다. 비행선은 술래잡이를 하는 아이처럼 그 별 사이를 누비고 있었습니다. 기내는 조용했습니다. 비행선은 몇시간째 태양계에서도 멀리 떨어진 “그린”별을 향해 날고있었습니다. 비행선이 리륙하면서 들떴던 려객들도 시간이 지나자 흥분이 어지간히 가라앉아 있었습니다. 앞좌석에 부착된 스크린으로 뉴스를 보거나 귀에 에어폰을 꽂고 음악을 듣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용이만은 아직도 한껏 달아오른 모습이였습니다. 용이는 우주려행이 처음입니다. 돈많은 집의 애들은 방학이면 “금성 하루 려행”, “화성 1박2일 려행”같은데를 다녀오군 했지만 려행비가 엄청 드는지라 용이네 처럼 여느 집들에서는 엄두를 못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다 가까운 금성이나 화성이 아니라 이처럼 하외성계에 있는 멀고도 먼 “그린”별로 가본 애는 용이 말고는 반급에 아직 없습니다. 학교에서 열린 “우주사랑 우주정복”활동의 일환으로 열린 웅변회에서 용이는 금상을 따냈습니다. 큰 상이였습니다. 그 상을 바라고 용이는 웅변련습에 땀을 쏟았습니다. 노력을 바친 결과 소망했던 상을 따게 된것입니다. 기쁜나머지 용이는 교실이 좁다하게 훌쩍 뛰였습니다. 만약 무중력상태였다면 용이는 그대로 하늘로 날아올랐을것입니다. 주어진 상품은 다름아닌 학부모와 함께 “그린”별로 려행하는 티켓 석장이였습니다. 그래서 오늘 내내 들뜬 기분으로 아버지를 모시고 “그린”별로 향하는 우주선에 오른것입니다. 꿈에도 바라던 우주려행을 하게 되였습니다는, 그것도 자신이 따낸 금상으로 당당하게 하게 되였다는 상념에 용이는 오래토록 부푼 가슴을 눅잦히지 못해 했습니다. 비행선에서의 간단한 식사를 마치자 로보트 승무원에 의해 기내 후식이 나왔습니다. 빨갛고 파랗고 노란 캡슐이 그릇마다 듬뿍 담겨있었습니다. 그 무슨 영양제 같은 캡슐을 미심쩍어 하며 맛보니 사과맛, 파이내플 맛, 딸기 맛, 키위맛… 세상의 과일은 다 모여있었습니다. 참으로 꿀맛이였습니다. 지금 용이에게는 세상 무엇도 다 달콤한 맛의 향연입니다. 비행선 A구역에 앉은 아버지는 앞좌석에 부착된 스크린으로 “로보트 프로축구리그전”을 관람하고 있었습니다. 로보트들이 펼치는 축구대항경기, 인간들이 하는 경기보다 사뭇 달라 경기장이 세배쯤 넓고 꼴문대도 두배는 큽니다. 선수도 량쪽이 네명씩뿐입니다. 하지만 경기는 나름 치렬했습니다. 로브트선수들이 펼치는 발놀림은 묘기에 가까웠습니다. 한쪽팀이 약세로 몰려 경기는 181대 7로 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용이는 축구에 관심이 없습니다. 또 참지못하고 안전벨트를 풀었습니다. 과일캡슐을 한웅큼 집어 입에 넣으며 몸을 일으켰습니다. 축구에 빠진 아버지를 향해 말했습니다. - 나 잠간 화장실 갔다올께요.   2   - “그린”별은 표층이 록색의 흙으로 덮여있기에 “록색의 성”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기내 스피카에서 승무원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흘러나옵니다. 려행지에 대한 안내가 나오고 있습니다. - “그린”별은 45억 5천만년 전에 형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대부분은 암석과 금속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엷은 대기층으로 둘러싸여 있어 생물들이 살 수 있는데 “그린”족이라는 외계인 들이거주해 살고있습니다. 완전한 구(球)가 아닌 회전타원체에 가깝고 적도 지름 약 6378㎞입니다.다. 태양까지의 거리는 약 1억 5000만㎞ 입니다. 23시간 56분 4.091초의 주기로 자전하고 있으며 궤도 속도는 평균 초속 30km 정도이다. 려행지에 대한 소개를 들으며 용이는 비행선의 B구역으로 찾아왔습니다. 스피카에서 승무원의 음성이 그냥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 “그린”별에는 고층건물처럼 높이 치솟은 용암기둥, 깊은 계곡, 그리고 “그린”별의 원주민인 작은 외계인들로 동화속 선경과도 같은 신기한 풍경이 펼쳐집니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최대의 볼거리는 이 별의 해돋이입니다. 다른 행성과 달리 동에서 서로 자전하는 별, 즉 해가 서쪽에서 뜨는 것입니다. B구역에 나타난 용이는 아직도 한껏 달아오른 모습이였습니다. 학교에서 열린 “우주사랑 우주정복”활동의 일환으로 열린 웅변회에서 용이는 금상을 따냈습니다. 주어진 상품은 다름아닌 학부모와 함께 “그린”별로 려행하는 티켓 석장이였습니다. 그래서 오늘 내내 들뜬 기분으로 어머니를 모시고 “그린”별로 향하는 우주선에 오른것입니다. 비행선 B구역에 앉아 앞좌석에 부착된 스크린으로 드라마를 보고있던 어머니가 용이를 향해 의뭉스런 눈길을 던졌습니다. - 너 왜 이렇게 부산스러워? 어데갔다 인제 오는거냐? - 저길 보세요 어머니! 용이가 대답을 피하며 기창으로 보이는 밖을 가리켰습니다. 기창에 부착되여 있는 줌 렌즈를 틀자 하나의 행성이 깜짝 놀래키기라도 하듯 커다랗게 나타났습니다. 푸르른 별, 어찌보면 사과같기도, 야구공같기도 한 푸르디 푸른 별이였습니다. - 존경하는 려객 여러분, 12시간의 긴 려행을 거쳐 우리들의 목적지 “그린”별, “그린”별에 도착했습니다. - “그린”별이다아! 승무원의 안내원의 말과 동조하여 기내에서 환성이 터져올랐습니다.   3   비행선은 “그린”별에 조용히 내려앉았습니다. 비행선이 착륙하면서 내뿜는 기류에 록색의 먼지가 자오록히 분만해 올랐습니다. 로보트 승무원의 안내로 모두들은 헬멧을 쓰고 우주복의 지퍼를 올렸습니다. 등에는 원주형의 공기통을 메였습니다. 마지막으로 무중력극복장치가 되여있는 가죽장화를 신었습니다. - 존경하는 려객여러분, 드디여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지금 “그린”별의 원주민들이 지구인을 마중하려 나와 있습니다. 그들과 인사를 나누시기 바랍니다. 우주복 안의 소형 인터콤을 통해 승무원의 안내말씀이 그냥 들려왔습니다. - 외계인들이라서 “그린”별 원주민들의 생활습성이 지구인들보다 몹시 다릅니다. 우리모두 외계인들과의 례절을 지키고 존중하며 평화로운 우주인으로 거듭납시다. 비행선 기체의 앞부분으로부터 승강대가 내려왔습니다. 려행자들은 줄을 지어 승강대를 따라 우주선에서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온통 푸르름으로 넘치는 행성이였습니다. 지구인이 선호하는 푸른 색을 띄고 있기에 이곳 려행이 요즘들어 부쩍 인기를 얻는 코스라고 합니다. 아스라니 너른 벌판에 가담가담 용암기둥이 높이 솟아 있었습니다. 용이가 살고있는 도시의 무역빌딩보다도 더 높은 용암기둥입니다. “지구보다 중력이 작기에 용암기둥이 기상천외로 높이 솟아 있다”고 승무원이 소개하는 말이 들려 옵니다. 곳곳마다 풍력발전소의 거대한 풍차가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바람이 세찬 행성인데 그 바람을 생활에 리용한다고 합니다. 류성의 마찰로 생긴 거대한 웅덩이속에 수박을 절반 쪼개여 놓은듯 한 반구형의 집들이 지어져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비현실적으로 보였습니다. 마치 막 촬영중인 과학환상영화 세트장에 온 기분이였습니다. - 애개개! 이건 또 뭐야? 용이는 또 한번 놀란 탄성을 지르고 말았습니다. “그린”별의 원주민들이 어데있을가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승무원의 안내의 말대로 허리를 굽히고 보다가 그만 탄성을 지르고 만것입니다. 둥근 공처럼 생긴 것들이 일렬로 서있었습니다. 꼼지락거리는 것으로 봐선 살아있는 생명체임이 분명합니다. 온몸에 푸르른 잔털이 나 있었고 눈은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그 눈이 온 몸의 3분의 1이 되도록 컸습니다. 지구의 애들이 즐겨보는 카톤만화속의 아이들처럼 말입니다. 머리꼭대기에는 저마다 “안테나” 같기도 “더듬이”같기도 한 것이 달려 한들거리고 있었습니다. “더듬이”의 맨끝이 록색 형광등을 켜놓은듯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가느다란 팔로 그들은 프랑카드를 쳐들고 있었습니다. 프랑카드에는 상형문자같기도 꼬맹이의 락서같기도 한 글발이 씌여져 있었습니다. - 지구인을 환영한다고 씌여있구나 아버지가 희한한 눈길로 그들을 굽어보다 말했습니다. - 어머, 아버진 “그린”별의 언어를 알아요? 용이가 놀라며 아버지를 쳐다보았습니다. 아버지가 용이의 헬멧을 기리켰습니다. - 언어 번역 공능이 되는 헬멧이야. 아까 승무원이 가르칠 땐 뭘했냐? 부산 하게 비행선을 쏘다니기만 하고. 엉덩이에 뿔이라도 났냐? 아버지가 가볍게 꾸짖으며 헬멧에 달려있는 중의 하나의 버튼을 눌렀습니다. 헬멧에서 안경이 내려왔고 그 안경으로 보자 프랑카드의 글이 우리언어로 변해서 보였습니다. 프랑카드에는 “지구에서 오신 귀한 손님들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그린”별 주민 일동”이라고 씌여져있었습니다.    “그린”별의 원주민들이 지구인들을 향해 손가락이 세개밖에 없는 손들을 쳐들어 보였습니다. 아버지도 그들을 향해 오른손의 새끼 손가락을 뽑아들었습니다. - 지금 뭐하는거애요? 아버지? 용이가 깜짝 놀라며 아버지의 괴의쩍은 행동을 지켜보았습니다. - 적의가 없고 우호적이라는 뜻이야. 이 별에서는 이런 식으로 한다나. 려행수첩 좀 읽어봐라. 아닌게 아니라 다른 지구려행자들도 저마다 “그린”별의 원주민들을 향해 새끼손가락을 쳐들고 있었습니다. - 인사법 한번 괴상하네. 하고 중얼거리며 용이도 그들을 향해 새끼 손가락을 뽑아들어 보였습니다. 지구에서는 자칫 욕설로 보일 그 동작을 인사로 하려니 어쩐지 어색하기만 했습니다. 가까이 반구형의 금속외각 건물이 보였습니다. 용이네가 머무를 태공려인숙이라고 승무원이 알려주었습니다. 건물은 마치 거대한 딱정벌레가 내려앉은듯 보였습니다.   4   원하는 려행자들에게는 “그린”별의 원주민이 가이드를 맡아주게 되였습니다. 부과되는 팁이 엄청나기에 거절하는 려행자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적지않은 이들은 “그린”별의 원주민 가이드를 원했습니다. 금액이 좀 비싸더라도 외계인들과 함께 한다는 기이한 체험을 맛보려는것이였습니다. 용이네도 “그린”별 가이드가 배치되여 있었습니다. 용이가 금상으로 딴 티켓은 가장 비싼 VIP고급석이였기에 당연히 “그린”별에서의 모든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었습니다. 려인숙에 들어서 짐을 풀기 바쁘게 아버지는 벽에 걸려있는 TV를 틀었습니다. “로보트 프로축구리그전” 하반전이 계속되고 있었던것입니다. 지구려행자들의 편리를 위해 려인숙내의 배치는 모두 지구의 습성처럼 설계되여 있었습니다. 다만 다르다면 곁에 공처럼 생긴 “그린”별의 원주민이 바싹 따라붙어 있는것이였습니다.    용이의 뒤를 묻어선 “그린”별의 원주민은 어쩌면 야구공을 꼭 닮은 모습이였습니다. 한 손에 품을수 있게 둥근 몸체도 그렇고 몸체에 난 파르슴한 잔털, 그리고 몸체를 한바퀴 돌며 생긴 자국은 야구공의 봉합자국을 방불케 했습니다.  용이는 “야구공”을 아니 “그린”별의 원주민을 손아귀에 품어보았습니다. 공처럼 생긴 것이 생명체라는것이 도무지 실감나지 않았습니다. 저도모르게 벽에 대고 힘껏 내쳤습니다. 그러자 “공”에서 소리가 터져나왔습니다. - ㅠㅠ ㅠㅠ 다급한듯한 소리였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눈은 화등잔마냥 더 커졌고 머리우에 달린 “더듬이”에서 록색의 빛이 구급차의 등처럼 다급히 반짝였습니다. 그제야 그것이 하나의 생명체라는것이 실감된듯 용이는 혀를 홀랑 내밀었습니다. - 너 이름이 뭐니? 용이가 커아란 호기심을 보이며 물었습니다. - #&*-*/X$?",?!#;⊙ø ⊙ø#&*-£&£    “공”에게서 도무지 알아들을수 없는 소리가 흘러나왔습니다. 외래어를 할줄 모르면서도 안다고 허풍치며 아무소리나 섞어 하는 애들의 소리 같기도, 취한 사람이 혀를 꼬며 얼버무리는 소리같기도 했습니다. - 이름이 뭐냐고? 그리고 몇살이냐? - #&*-£&£*/X$?",#&*-£&£*/X$?"#;⊙ø   또 쇠통 알아들을수 없는 소리를 내뱉습니다.   - 변역기를 한번 써봐   곁에서 둘이의 모습을 재미나다는듯 지켜보던 아버지가 에어폰 하나를 건네주었습니다. 겉보기에는 꼭 마치 MP3을 듣는 보통 에어폰같았지만 그것은 다공능 번역기로서 려행자들 저마다에게 하나씩 지급되여 있었습니다. 에어폰을 걸자 거짓말처럼 원주민의 소리를 가려 들을수 있었습니다. - 난 그린 3세야 조금 가느다란 소리였습니다. 입도 보이지 않는데 어데서 나오는 소리인지 용이는 그저 신기하기만 합니다. - 난 용이야. 드래곤이라는 그 용자. 반갑다 용이는 손을 내밀다가 급기야 이곳의 례법이 생각나서 새끼 손가락을 내밀었습니다. “그린 3세”도 새끼 손가락을 내밀었습니다. 머리우에 달린 “안테나”가 홍조를 띄듯 반짝 반짝 빛났습니다. - 나 열한살이야 넌? 잠재울수 없는 호기심에 용이는 끝없이 의문을 쳐들었습니다. 그리고 다음순간, 용이는 그만 어안이 벙벙해 지고 말았습니다. - 난 99살이야. - 뭐? 99살이라고? 네가? 잘못 듣기라도 한듯 용이는 다시 캐물었습니다. - 그래 99살. (그럼 이렇게 작고 갸날프게 생긴 것이 나의 증조할아버지뻘이란 말인감?)   용이는 그만 할말을 잃었습니다. - 우릴 처음 보는 지구인들은 모두 놀라고 그래. “그린 3세”가 해석을 주었습니다. - 우리 “그린”별 원주민들은 평균수명이 3천세야. - 뭐 3천세? 동박삭이 따로 없고나. 용이는 또한번 입을 딱 벌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면서 옛이야기에서 들었던 3천살을 산다는 “삼천갑자 동방삭”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 그러니 난 아흔아홉이지만 지구사람들 나이벌로 따지면 아직 소학생년령대 야. 너하고 비슷한 뻘이지. 우리 친구할가? “그린3세”의 머리우 “더듬이”가 반짝반짝 빛났습니다. “그린3세”가 새끼 손가락 을 뽑아들었습니다. - 그래 우리 친구하자! 용이도 그를 향해 흔쾌히 새끼 손가락을 뽑아들었습니다.   5   - 어머니 나 친구하고 바깥 구경 좀 하고 올게요. 어머니에게 외계인친구 “그린3세”를 소개시키고나서 용이는 그와 함께 밖으로 나왔습니다. 처음하는 우주려행에 지쳤던지 어머니는 그런 용이를 말리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쏘파에 편히 기대여 “그린족의 어제와 오늘”이라는 책자를 읽고있는 중이였습니다. 그만큼 오늘따라 천방지축인 아들애를 어머니는 말려낼 재간이 없었습니다. 그 저 안전에 주의하라 바가지를 거듭 긁으며 용이가 태공복을 입는 것을 꼼꼼히 거들어 주었습니다. 그사이 부쩍 친해진 “그린3세”와 용이는함께 태공려인숙을 나섰습니다. 려인숙 직원이 “그린”별 관광에 나선 그들에게 썰매 하나를 내주었습니다. 땅크처럼 바퀴에 레인이 씌워진 썰매였습니다. 썰매마다 기압조절기가 작은 굴뚝처럼 달려 있었습니다. “그린”별은 거개가 구릉지대인데 이렇게 레인이 씌워진 썰매는 구릉도 톺아오를수 있다고 려인숙 직원이 설명하면서 썰매 조종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용이가 썰매를 몰고 “그린3세”는 용이의 헬멧우에 앉았습니다. 커다란 계곡을 따라 관광썰매는 달렸습니다. 계곡 언저리에 둑이 지어져 있 었고 둑의 가장자리에는 금속란간이 설치되여 있었습니다. “그린3세”의 안내에 따라 둑을 따라 썰매는 미끄러져 갔습니다. 이윽고 용이는 썰매에서 내렸습니다. 금속란간을 부여잡고 계곡 아래를 내려다 보았습니다. 골짜기가 깊었고 맞은 켠 봉우리는 멀고도 멀었습니다. 헬멧에 부착된 망원경의 줌렌즈를 틀자 천태만상의 봉우리가 한눈에 안겨왔습니다. 지구의 산은 비교가 안될 아아하게 높은 산맥들, “그린”별의 아름답고 웅장한 풍경에 용이는 저도모르게 감탄을 내뿜었습니다.  - 저쪽으로 가볼래 “그린3세”가 용이의 왼쪽 어깨우에 내려앉아 한눈이 모자라게 저쪽 봉우리를 쳐다보는 용이를 보고 물었습니다. - 저 먼곳으로 언제간다고 그래. 또 저렇게 높은 곳으로 계곡이 너무 넓고 산봉우리가 너무 높아 용이는 기겁한 소리를 했습니다. - 날아가지 뭐     - 뭐? 날아가? 뭘 타고? 용이는 잘못 듣기라도 한듯 “그린3세”를 쳐다보았습니다. “그린3세”가 용이의 어깨우에서 내렸습니다. 두팔 벌리고 계곡의 변두리에 섰습니다. “그린3세”의 “더듬이”가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더니 더듬이의 맨 끝이 꽃봉오리가 터져나오듯 갈라졌습니다. 갈라져 몇 쪽으로 나뉘였습니다. 이어 그 몇쪽으로 나뉜 “더듬이”가 직승비행기의 날개처럼 빙빙 돌기 시작했습니다. 순간 “그린3세”가 공중으로 붕- 떠올랐습니다. 용이의 입이 또 한번 떡 벌어졌습니다. 멍청하니 눈앞의 놀라운 광경만 지켜볼 뿐이였습니다. “그린3세”가 손을 내밀었습니다. 가느다란 팔이 엿가락처럼 주욱 늘어나더니 얼빠져있는 용이의 손을 감쳐쥐였습니다. - 자, 가는거야! 앗차! 할 사이도 없이 용이는  “그린3세”의 손에 이끌려 허공중에 떴습니다. 그 가느다란 손에는 커다란 힘이 실려있었고 그 힘에 끌려 용이는 허공으로 날고 있었습니다. 콩나물줄기 같이 가느다란 그 손에서 어떻게 이렇게 큰 힘이 생겨나는지 용이는 놀라왔습니다.    - 손에서 힘 빼, 무서워 하지마! 우리 “그린”족은 모두다 날수 있어. 설마 추락한다해도 네가 입은 우주복에 락하산이 달려 있어. 용이는  “그린3세”의 힘을 빌어 새처럼 하늘을 날았습니다. 푸르른 계곡우를 날았습니다. 반구형의 려인숙이며 태공역앞에 내려앉은 비행선이며가 장난감처럼 작게 보였습니다. - 야호! 신난다! 용이는 차차 두려움을 잃고 두팔을 한껏 벌렸습니다. 새매처럼 어깻죽지를 한 껏 펴들며 목청껏 환성을 질렀습니다.   둘은 잠간새에 맞은 켠 봉우리에 다달았습니다. - 아름다운 고장이였어. 우리 별… 맞은 켠 봉우리우에 내려 아직도 비행의 여흥을 삭이지 못하고 있는 용이를 보며 “그린3세”가 입을 열었습니다. 산봉우리에서 “그린”별의 풍경을 살펴보며 말했습니다. 조금전보다 가라앉은 목소리였습니다. - 그런데… “그린3세”의 목소리가 차분해졌기에 용이는 정색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습니다. - 그런데 언제부턴가 아름다움을 잃기시작했어. 우리 별. 무슨 사연이 있나보다하고 용이는 “그린3세”의 말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 “분홍별”이라고 있어. 저 멀리에 “그린3세”의 가느다란 손가락이 허공 멀리를 가리켰습니다. - 언제부터인가 모두들 그곳으로 떠나가기 시작했어. 언제부턴가. “그린3세”가 눈을 느스름히 내리 깔았습니다. - 우리 누님. 우리 이모, 지어 우리 어머니들까지. ㅠㅠ, ㅠㅠ…   “그린3세”가 울고 있었습니다. 용이가 벽에 뿌려던?을 때 아파하던 그 모습, 그 괴상한 소리로 울기 시작했습니다. 용이는 “그린3세”의 말을 귀담아 들으련듯 언어번역기가 달린 에어폰을 두손으로 꼭 잡았습니다. “그린3세”가 말을 이었습니다. - 좋은 곳이라고 해. 좋은 곳이기에 우리 누나들이 우리 엄마들이 엄청 비싼 우주티켓을 돈을 빌려 사가지고는 날아가는거지. 다 그래. 이곳에선 엄마 아빠가 갈라져서라도 그곳에 가. 그곳만 가면 먹을 거리가 많다고 해, 잘 살수 있다고 해.   하지만 그곳에만 가면 우린 다신 엄마를 볼수 없어. 너무 머니깐 너무나도 머니깐. 용이는 숲속의 꼬마요정같던 “그린3세”를 이윽토록 지켜보았습니다. 그의 정서에 이끌려 말없이 그가 하는 긴 이야기를 듣고만 있었습니다. - 원체 우리 “그린”별 가족들의 몸은 합체가 될수 있어 기쁠때나 슬플때면 엄 마, 아빠 그리고 아이들이 합체가 돼. 한덩이가 되여 커다란 원을 만들지. 날씨가 ?으나 추워도 합체가 되여 비를 막고 추위를 막지. 그리고는 기쁠땐 공처럼 구을고 튕기기도 해. 이야기를 하는 “그린3세”의 더듬이는 풀이 죽어 축 늘어져 있었습니다.     - 부모와 갈라진 애들은 모두 흉터가 남게 돼. 이렇게 나처럼 흉터 가 난 애 들은 부모가 갈라지고 홀로 남은 애들이라는 징표야. 그제야 용이는 “그린3세”의 몸에 난 야구공의 봉합자리 같은 흉터의 래력을 알수 있었습니다. - 부모들은 왜 좋은 고향을 버리고 다른 별로 가는거야? 왜 갈라지는 거야? 합체가 되면 얼마나 좋은데! 합체가 되면 얼마나 따뜻한데… “그린3세”는 혼자말처럼 중얼거렸습니다. 그의 하나밖에 없는 커다란 눈에 액 체 같은 것이 고여들었습니다. 그 눈물은, (용이는 그것이 바로 이들의 눈물이라고 단정지었습니다.) 록색의 그 “눈물”은 장마철에 벌창해진 보도랑의 물처럼 드디여 눈확에서 넘쳐났습니다. 흘러나온 눈물은 무중력 때문에 허공중으로 날아올랐습니다. 날개다 돋친듯 눈물은 “그린3세”가 엄마가 가 있다며 멀리를 가리켰던 그곳으로 날고 있었습니다. 용이는 얼음망치에라도 맞은듯 그자리에 굳어져 버렸습니다. 그 날아오르는 푸른 눈물에서 용이는 다른 눈물을 보고 있었습니다. 용이의 아버지와 어머니도 갈라졌습니다. 요즘들어 용이네와 같은 집들이 너무 많았기에 어른들은 괜찮다고 말했습니다. 용이는 두 사람이 석달에 한번 꼴로 번갈아 부양하기로 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서로 용이를 잘 대해주려 애썼습니다. 하지만 용이의 마음에 짙게 어린 응달을 지울수는 없었습니다. 아버지곁에 가면 어머니가 그립고 어머니 곁에 가면 아버지가 그리웠습니다. 못 견디게 그리울때면 용이는 립체앨범을 꺼내곤 합니다. 립체앨범속에 아버지어머니와 함께 놀이터에서 함께 찍은 3D립체사진이 있습니다. 사진속의 세사람은 함께 회전목마를 타고 있습니다. 회전목마는 빙빙 돌고 있습니다. 회전목마우의 아버지는 웃고 있습니다. 어머니도 웃고 있습니다. 중간에 품어안은 용이도 함박웃음을 웃고 있습니다. 하지만 앨범속으로 손을 뻗어 만져보면 아버지의 얼굴도 어머니의 얼굴도 현실감이 없습니다. 질감은 느껴지되 차기만 합니다. 웅변회때에도 다른집은 부모가 모두 와서 응원해 주었지만 용이네는 아버지밖에 오지 못했습니다. 금상이라는 커다란 영예를 따냈지만 부모와 함게 경축하지 못하고 따로따로 가서 축하해야 했습니다. 마냥 그 반쪽의 빈자리가 용이에게는 가슴아린 커다란 빈구석입니다. 용이는 앨범속이 아닌 현실에서 진짜 두분과 함께 있기가 정말로 소원입니다. 용이는 먹먹해 오는 마음의 파동을 느끼며 “그린3세”를 손아귀에 꼭 품어쥐였 습니다.   6   “그린”별에서의 이튿날 아침. 지구에서 온 려행자들은 일찍이도 잠에서 깨였습니다. 시차가 바뀌면서 불편을 겪어서가 아닙니다. 려행코스가 아침 일찍 배치되여 있는 까닭입니다. 잠만 들면 곁에서 장구치며 노래해도 깨여나지 못하는 잠버릇이 있는 아버지는 아직도 코를 골고 있습니다. 밤늦게 까지 “로보트 축구경기”를 관람한 탓도 있을겁니다. 어머니의 방에서 빠져나온 용이는 급급히 아버지가 투숙하고있는 방으로 가서 코골이로 벨칸토창법을 연주하고 있는 아버지를 깨웠습니다. 급급히 씻고 승무원이 부르는대로 려인숙밖의 둑으로 모였습니다. 둑에는 먼저 나온 려행자들로 가득했습니다. 잠기가 가셔지지않은 모습들이지만 또 어덴가 들뜬 모습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저저마다의 손에는 디지털카메라가 들려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번 려행에서 가장 큰 볼거리인 “그린”별의 해돋이를 보려고 몰려 든것입니다. 밤새 용이를 동무했던 “그린3세”가 용이의 왼쪽 어깨우에 앉아있습니다. “그 린”별의 사람들은 평생 잠을 자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 까닭에 용이는 잠이룰수 없는 밤을 “그린3세”와 끝간데 없는 이야기로 보낼수 있었습니다. 어머니를 깨울가 베란다로 나가 온밤을 지냈습니다. “그린”별의 밤은 아름다웠습니다. 주먹만한, 수박만한 별들이 가까이에서 빛났습니다. “그린3세”의 머리우 “더듬이”도 조도가 알맞춤한 탁상등의 빛처럼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그 빛속에 둘은 지구와 “그린”별의 차이며 엄마없는 꼭 같은 서러움이며에 대해 이야기 하고 또 했습니다. 그러면서 용이는 오로지 날이 밝기만을 기다렸습니다. 이제 날이 밝아 해가 막 뜰 때면 용이가 일껏 계획해 왔던 이번 우주려행의 프로젝트가 실시되는 시각입니다. 용이는 벌렁거리는 가슴을 억누르며 자기가 직접 대본을 쓰고 감독을 맡은 그 시각을 기다리고 또 기다렸습니다. 용이가 아버지의 손을 이끌었습니다. 아버지의 손을 이끌고 두리번거리며 누군가 찾았습니다. 저마다 태공복을 입은데서 비슷해 보이는 사람들중에서 한 사람의 앞으로 다가가 멈춰섰습니다. 용이가 그 사람을 소리높여 불렀습니다. - 어머니! 어머니가 기겁한 모습을 지었습니다. - 너 대체 어데 갔다오는거야? 왜 이렇게 들말처럼 날뛰고 그러냐. 자꾸만 자리를 비우는 용이를 두고 걱정의 푸념을 하던 어머니의 말이 문뜩 멎었습니다. 용이의 손을 잡고있는 아버지의 얼굴을 그제야 헬멧아래에서 가려본겁니다. 아버지의 얼굴에도 놀란 기색이 력력했습니다. 어색하게 바라보던 두 사람의 눈이 동시에 용이의 몸에 몰부어졌습니다. 도대체 웬 감투냐 는듯한 눈길들이였습니다. 이때 어색한 사이를 비집으며 려인숙 가이드의 안내소리가 메가폰을 통해 높이 울려 왔습니다. - 자, 여러분, 서쪽으로 돌아 서 주십시요. 자, “그린”별의 진풍경입니다. 해가 막 뜨고 있습니다. 몰려섰던 려행자들이 술렁이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도 어색함을 감추지 못하면서 가이드가 안내하는 쪽으로 몸을 돌렸습니다. 서쪽 하늘편이 물감을 들인 듯 온통 자홍색으로 물들어 올랐습니다. 그 붉은 기운을 머금은 색조의 너울을 헤치며 둥근 해가 수면으로 떠오르는 침전물처럼 차츰차츰 륜곽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 해가 뜬다아!  누군가 흥분되여 감탄사를 터뜨렸습니다. 썰매우에 앉아있던, 용암기둥에 기 대여 기다리고 있던 려행자들이 이 금쪽 같은 시각을 목격하려 후닥닥 뛰여일어났습니다. 망원경, 카메라와 육안들이 일시에 그 해를 바라고 몰 부어졌습니다. 용이는 격동에 심장이 당금 밖으로 뛰쳐나올 것만 같았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손을 꼭 잡아쥐였습니다. 그들을 쳐다보며 간절한 어조로 또박또박 말했습니다. - 아버지, 어머니, 그때 갈라지면서 다시는 만나지 않겠다. “만약 해가 서쪽 에서 뜬다면 몰라도” 하고 말했잖아요. 용이의 목소리에 울음이 잔뜩 섞여 들었고 목소리도 겉잡을수 없이 높아졌습니다. - 어머니, 아버지. 지금 해가 서쪽에서 뜨고 있어요, 그러니 이젠 만나줄거죠. 이젠 돌아올거죠. 아버지 어머니. - ㅠㅠ 용이의 귀전에서 “그린3세”의 울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 우리 엄마도… 우리엄마도 해가 동쪽에서 떠야 돌아온다고 했어.ㅠㅠ…     “그린3세”의 록색의 “눈물”이 허공으로 날아올랐습니다. 용이의 눈물에 선글라스가 뿌옇게 흐려졌습니다. 아버지, 어머니의 선글라스도 부옇게 흐려져 있었습니다. 곁에서 남의 일 같지않게 이 광경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선글라스도 부옇게 흐려져 있었습니다. - 왜 우린 갈라져야만 해요? 왜 우린 이렇게 살아야만 해요? 돌아와주세요! 어머니! 돌아와 주세요! 아버지! 지금, 지금 해가 서쪽에서 뜨고있잖아요_ 용이의 절규하는듯한 호소가  “그린”별의 상공으로 울려펴졌습니다. “그린”별의 깊은 계곡을 배경으로 해가 막 서쪽에서 떠오르고 있었습니다.    
137    깊은 바다속 충혈된 고래의 눈으로 댓글:  조회:2570  추천:77  2008-08-02
. 작가수기 .  깊은 바다속 충혈된 고래의 눈으로 - 잡문 코너를 열며 김 혁   1 잡문은 현대산문중에서 의론과 비평을 위주로한 일종의 문체로서 산문의 하나의 분기(分支)이며 의론의 하나의 변체(变体)이다. 수감록, 단평, 잡설, 만필, 소품, 문예정론 등 문체를 모두어 총칭한다. 흔히 편폭이 짧으면서도 형식이 다양하고 창작자는 각종 수사수법과 곡절적인 전달로 자신의 견해와 정감을 전한다. 중국문학사 상 맨처음 잡문이라는 개념을 내놓고 그를 독립적인 문체로 만든 사람은 남조시기 문예리론가 류협이였다. 그는 《문심조룡(文心雕龙)》에서 전문 한장을 분절하여 잡문이라는 글을 썼다. 더 거슬러 올라가 진나라 산문이 흥기하던 시기 잡문이 나타났다는 주장도 있다. 당시 제자백가(诸子百家)들의 문장들이 사실상은 잡문이라는것이다. 그후로 잡문은 대대로 발전해왔는데 당나라 한유(韩愈)의《잡설(杂说)》、 명나라 류기(刘基)의《귤파는 사람의 말》등이 유명하다. 잡문은 그 시원이 일찍하고 애초의 지위도 매우 높았다  현대잡문은 5.4운동중에서 다시 나타났는데 《수감록》이라는 이름으로 《신청년》에 발표되였다. 20년대 가관적인 성취를 보인 잡문은 3,40년대에도 계속 문단을 휩쓸었고 그후로 근 반세기동안 침체를 보이다가 80년대부터 다시 흥기하기 시작하였다. 잡문하면 바로 이사람이 떠오른다. 중국 근대문학을 확립한 로신이다. 로신은 중국의 가장 걸출한 잡문대가이며 잡문을 고도의 성숙한 경지에로 올려놓은 사람이다. 그외 잡문의 달인들로는 림어당, 구추백, 곽말약, 모순, 하연, 파인 등척 등이 있다. 잡문은 로신의 저작 가운데서 의심할 여지없이 매우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심지어는 그의 소설과 시보다도 훨씬 앞선다.  로신은 자신의 ≪차개정잡문이집․후기≫에서 ≪내가 <신청년>에 수감록을 쓴 이후 이 문집의 마지막 편을 쓰기까지 18년이 지났는데 그중 잡문만 해도 80만자 가량된다≫고 말했다. 이에서 알수 있듯이 그는 매우 많은 잡문을 창작했으며 그 잡문들은 ≪열풍≫≪무덤≫≪화개집≫≪화개집속편≫,≪차개정잡문≫등 단행본에 수록되여 보귀한 유산으로 남았다. 변법유신, 신해헉명. 5.4혁명, 4.12정변 등 중국 근현대사에 있어 가장 치렬했던 격동기속에서 그는 잡문을 통해 리상과 현실, 근대와 반근대, 혁명과 반혁명의 복잡한 근대 중국사회의 모습과 사상조류를 그려내였다. 하기에 어느한 평론가는 《로신은 심해속 충혈된 고래의 눈처럼》어두운 사회상을 부릅뜬 눈으로 응시하였는바 《그의 잡문은 곧바로 비수요, 투창》이라고 격찬했다.  잡문이라는 쟝르안에서 로신은 인류와 인성의 근본문제들에 대해 자유로이 사색했다. 그리고 첨예, 신랄함, 유머, 풍자등 수법으로 마음껏 자신의 분노, 증오, 경멸, 사랑 따위를 표현했다. 다양한 내용과 형식의 예술을 하나로 녹여낸 이 무형식의 형식은 전인(前人)과는 판이하게 독특한 풍격과 면모를 지니고 로신의 호방표일(豪放飄逸)한 사상과 예술을 남김없이 담아내고 있다. 로신은 조금도 잡문이 기타 문체의 가치보다 낮다고 보지 않았으며 오히려 잡문은 여느 문체와도 같이 불가결의, 대체할 수 없는 성질의것이라고 보았다. 우리가 중국 전통문학에서 산문이 차지하는 중요한 지위를 감안해 본다면 로신의 이 방면에서의 계승과 창신은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로신의 현대중국문학에 대한 기여와 위대성은 인정 받을만 한것이다.로신의 잡문은 중국산문사상 내지 세계 산문사상에서의 진기한 꽃이다. 2 여기 또 한명의 잡문을 능수능란하게 다루어온 달인이 있다. 바로 조선족문단의 거장 김학철옹이다. 일찍 50년대중기부터 잡문창작을 시작, 김학철잡문의 출현은 우리 조선족문학발전사에 잡문가가 없던 력사에 종지부를 찍은것으로 된다.   일찍처부터 로신을 깊이 숭배했던 김학철옹은 19살때 한 친구와 함께 상해의 로신의 자택을 찾아간 일까지 있었다고한다. 그러나 집문앞에까지 갔다가 《저축해가지고 온 용기가 판이 나서 문을 두드릴 엄두》를 못내고 한동안 머뭇거리다가 결국은 돌아서고말았다. 열혈청년시절부터 그는 로신의 책을 즐겨 탐독하였으며 로신의 정신은 간난한 개혁의 길, 혁명의 길을 걸으려는 그에게 확고한 신심을 안겨주고 열화와같은 용기를 북돋아주었다. 김학철옹은 조선족문단에 로신을 소개하고 그의 작품을 번역, 출판하는데 열을 올린 공로자의 한분이다.《아큐정전》,《공을기》,《고향》,《축복》, 《약》등 로신의 명작이 거의다 그의 손에서 번역되여 나왔다. 도합18편, 로신의 중단편소설이 도합 33편인 점을 감안할 때 김학철옹은 로신소설의 3분의 2정도를 번역한것이다.  김학철옹 역시 숭배했던 로신을 꼭 닮아《심해속 고래의 눈》을 갖추었다. 그러한 심안(心眼)과 인간과 력사에 대한 확고한 사명감으로 독자들의 령혼에 강한 울림을 남겨주었다. 넓고 깊은 사회의식과 력사의식, 풍부한 사회현실적내용과 심각한 철리, 생동한 형상, 다양한 표현수법으로 김학철옹의 잡문은 그야말로 우리 문단, 나아가 우리 겨례문화권속에서 참으로 독특한 일석(一席)을 차지하고있다. 3 왜? 이제와서? 잡문인가? 질문할수 있다. 피부로 느끼다싶이 요즘의 문학판도는 사뭇 달라지고 있다.새로운 문학장르의 개척을 시도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으며 날에날마다 무언가 새로운 시도의 기운을 느끼게 된다. 문학이 쟝르를 넘어서고 있다. 시도 소설도 평론도 수필도 아닌 새로운 형태의 것들이, 어느 장르로 분류해야할지 난감할 새로운 문체들이 문학의 기존을 충격하고 있다. 팩션이니, 엄지소설이니, 칙릿이니, 증권소설이니, 등등등으로 들어도 못본 쟝르의 소재가 다양하고 다양해서 벙벙하다. 여기서- 팩션(Faction)이란 팩트(fact)와 픽션(fiction)을 합성한 신조어로 력사적 사실이나 실존인물의 이야기에 작가의 상상력을 덧붙여 새로운 사실을 재창조하는 새로운 문화예술 장르를 일컫어 말한다. 엄지소설이란 즉 휴대폰 소설(Mobile Novel), 말 그대로 휴대폰의 자판을 리용해 작성한 소설이다. 7년전 일본에서 고고성, 작가가 휴대폰에 올린 글을 사용자들이 이를 다운받아 감상한다.칙릿(Chick-lit)이란 젊은 녀자를 지칭하는 영문 속어 칙(chick)과 문학(literature)의 줄임말 릿(lit)의 합성어. 젊은 전문직 녀성을 주인공으로 그들의 일과 사랑을 무겁지 않게 그려내는 새로운 쟝르를 지칭한다. 기존의 손꼽을수 있는 몇몇 쟝르에 길들여진 맛망울에 생소한 이러한 쟝르들은 대중독자의 욕구를 정확하게 꿰뚫고 기존의 문학적 틀에 갇히지 않고 자유롭고 생생하게 현실을 담아내는 신종의 쟝르로 급부상하고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통한 이런 충격을 문학인의 예민한 감수성으로 감지하는 반면 잊혀져가고있는 고유의 훌륭한 쟝르를 보존해야할 의무와 충동도 은연중 느꼈다. 짧지만 정밀, 심각하고, 날카로우면서도 매서운 문장. 언중유골의 문장이자, 신랄유익한 문장, 고도의 언어공력와 판단분석능력이 요구되는 잡문, 이렇게 훌륭하고 유장한 쟝르를 어이 방치해두고 망각할수 있을손가! 그리고 우리 민족은 지금 새로운 격변기의 갈림길에 서있다. 사회발전과 생활환경의 변화로 나타난 절체절명의 위기의 상황들은 참신한 분석과 연구를 수요한다. 따라서 사실과 진실을 바라보는 랭정과 온유와 절제의 쟝르가 더 절실하게 수요된다. 이런 쟝르는 다소 떠있고 격정적인 형식인 픽션(虛构)을 보완하는 다큐(紀录)나 논픽션(非虛构)에서 두드러진다고 생각한다. 타자를, 자아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서도 정서에 감겨들지 않는, 문학적 감동과 학술적 객관성을 함께 지닌 아취(雅趣)가 바로 이런 쟝르- 잡문에 있는 것 같다. 진실의 깊이와 문학의 감동을 함께 담아낼 이 장르에 생기를 불어넣고 바른뜻을 부여하는 일이 필요하다. 로신은 특별이 《잡문, 쓰기 쉽지 않도다》라는 잡문도 쓴바있다. 그 한구절을 따보면,《그렇다. 높다란 천문대와 비교해본다 해도, 잡문은 어떤때 분명 작디작은 것을 보는 현미경과도 같아 오수도 비추고, 고름도 보며, 어떤때는 림파선균도 연구하고 어떤때는 파리까지도 해부한다. 고매한 학자께서 보시기엔 보잘것없고 더러우며 심지어는 밉살스럽겠지만 로동자 자신에겐 오히려 엄숙한 작업이며 인생과 유관하며 그다지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 이제 나도 안목 벼루기를 할 요량이다. 나도 이제 깊은 바다속 고래처럼 충혈된 눈을 떠야겠다. 고래눈이 못되면 새우눈이라도 명징하게 떠야겠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선인들의 품격높은 령혼과의 대화를 시도하면서 장기간의 문학수업을, 인간수업을 받을 각오이다. 쉬울손가? 쉽지않도다!    \"연변문학\" 2008년 8월호   parent.ContentViewer.parseScript(\'b_16051054\');
136    김혁의 서점가 산책 (3) 댓글:  조회:1959  추천:72  2008-07-30
08년 7월 26일에 산 책-  바벨의 개캐롤린 파크허스트 著남해출판사 刊  사랑하는 연인을 잃은 한 남자가, 사고의 원인을 추적해나가는 과정을 통해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재조명하고 있다. 작가는 \'개에게 말을 가르친다\'는 설정을 통해 사람 사이의 의사소통의 어려움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게 만드는 \'사랑\'의 놀라운 힘에 대해 이야기한다.    캐롤린 파크허스트 지은이 캐롤린 파크허스트는 1971년 미국 뉴햄프셔 주의 맨체스터에서 태어났다. 웨슬리안 대학을 졸업한 후, 아메리칸 대학에서 문예창작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잡지나 신문에 단편을 기고하면서 재능을 인정받다가 로 장편 데뷔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 어린 왕자생택쥐페리 著작가출판사 刊 전 세계의 독자들에게 사랑받아온 생택쥐페리의 이 필독서는 이미 한글판으로 소장해 두었다. 생택쥐페리  하지만 감성적인 일러스트에 뒤부분은 생택쥐페리의 생애를 조명한 평문, 그리고 그의 진귀한 사진들을 더해 새롭게 펴낸 책이기에 또 한 권 사들었다.    퐁듀보다 맛있는 이야기저자 : 모파상 등저 출판사 : 머니플러스  명작가 14인의주옥같은 단편 모음집. 보행거리의 신화서점 분점에서 25원을 주고 샀다. 안톤 체호프를 비롯해 알퐁스 도데, 모파상 등 명작가들의 명단편을 선별하였다. 모파상의 “의자 고치는 여인” 오스카 와일드의 “거인의 정원” 등 익숙하면서도 다시 읽고픈 소설들이 수록되여 있다. 아름다운 단편들은 모든 것을 이겨내고 살아갈 힘의 원천이 바로 사랑과 희망이라는 평범하지만 소중한 진리를 전한다. 주옥같은 소설과 어울리는 정교한 삽화가 곁들여져 있다.     parent.ContentViewer.parseScript(\'b_16193707\');
135    김혁의 서점가 산책 (2) 댓글:  조회:2520  추천:65  2008-07-25
  08년 7월 22일에 산 책   “검은 책”  오르한파묵  著상해인민출판사  刊 2006년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오르한 파묵의 걸작소설 『검은 책』(1990)은 ‘프랑스 문화상’을 받았으며, 이 소설을 통해 파묵은 대중적이면서도 실험적인 작가로 터키와 전 세계에 이름을 알렸다. 오르한 파묵은 “이 책에서 비로소 자신의 목소리를 찾았으며 이 소설은 나의 정신 상태를 설명하는 내 영혼의 혼합체\"라고 밝힌 바 있다. 오르한 파묵의 다른 소설처럼 『검은 책』도 독특한 서술 구조를 보여 준다. 홀수 장은 3인칭 시점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고, 짝수 장은 1인칭 시점으로 서술된 칼럼으로 이루어져 있다. 저자 오르한 파묵 모두들 읽기가 난해하여 몇장 못 내려가고 내려놓는 책이라 한다. 한번 도전해 보자!     “개구리 철학자 리빗이 들려주는 젊은 날의 동화” P.J. 포크베리저 著큰나무 刊 연길시 보행가의 신화서점 분점에서 한국도서를 대량 수입하여 팔고있다.그곳에서 골라 든 철학동화 삶에 대해 끊임없이 호기심 어린 시선을 가지고, 젊은 세대들의 가치관과 그들의 갈등을 현실에 맞게 잘 풀어간 철학 동화! 술, 마약 ,혼전 순결 등 다소 무거운 주제를 개구리 철학자를 통해 간결하고 쉽고 재미있게 표현한 책이다. 우리 청소년들이 지닌 가치관에 대한 갈등들을 현실에 맞게 적용하여 우화로 풀어 나간다. 개구리 철학자의 간결하면서 핵심적인 말들이 올바른 방향이 되어준다.   “창가의 토토” 구로야나기 테츠코 著남해출판사 刊오래전에 알고있는 작품이지만 이제야 개정판을 샀다. 주인공 토토가 초등학교 시절을 추억하며, 자연과 친구와 다불어 사는 삶의 아름다움을 가르쳐 준 당시의 스승을 추억하여 풀어나간 이야기.  이미 일본에서 860만부 이상이 팔려나가 단행본 사상 최대판매부수를 기록해 기네스북에 등재되어 있기도 한 이 작품은 그동안 세계 32개국에서 번역 출간되어 부모들과 교사들에겐 대안교육의 고전으로, 20대 여성들과 청소년들에겐 토토짱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던 문제작이라 한다. 저자 테츠코 이 책의 저자이자 주인공 ˝토토˝인, 쿠로야나기 테츠코는 현재 방송일과 유니세프 친선 대사로 일하고 있다. 아이들도 자기 또래의 이야기라서 읽을 수 있고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정말로 좋은 것 그리고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어 유익한, 아이와 어른들 모두에게 권할만한 책이다.   parent.ContentViewer.parseScript(\'b_16143370\');
134    김혁의 서점가 산책 (1) 댓글:  조회:3463  추천:65  2008-07-24
08년 7월 20일에 산 책-     `고양이는 정말 별나, 특히 루퍼스는’ 도리스 레싱 著 절강문예출판사 2008년 3월 刊   2007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도리스 레싱의 `고양이는 정말 별나, 특히 루퍼스는’(중국 번역명- “특별한 고양이”)을 샀다. 어릴적 ‘빱까’라는 고양이를 길렀던 나에게 있어서 고양이는 그 어느 애완물로도 대체할수없는 존재로 각인되어 있다. 그리고 금방 “뜨거운 양철지붕위의 고양이”라는 중편을 끝낸 시점에서 대가의 필끝의 고양이는 어떤 모습이 갈지 궁금이 가서 냉큼 사들었다. `고양이는 정말 별나, 특히 루퍼스는’은 영국 출신 여류작가이자 2007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도리스 레싱의 에세이식 소설이다.  고양이를 명제로 삼아 고양이의 생태, 인간사회에서의 불안한 위치 등을 그려 인간의 참현실은 얼마나 암담하며 비이성적인가를 말하고 있다. 「고양이는 정말 별나, 특히 루퍼스는…」은 고양이의 이야기이면서 사람의 이야기이며 또한 모든 생명 가진 것들의 이야기이다. 이 책은 비록 고양이를 명제로 삼고 있으며 실제로 고양이의 생태, 인간사회에서의 그 불안한 위치 등을 매우 세밀하고 실감나게 서술하고 있기는 하나 한편으로는 그에 못지않게 인간에 대한 것, 인간에 에워싼 모든 것에 대해 말하려 한다. 즉 작가는 고양이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참현실은 얼마나 비이성적이며 암담한가, 그 상태에서 인간을 조금이라도 나은 삶으로 구출해 내기 위해서는 얼마나 강한 이성과 향상된 의식이 필요한가를 말한다. 물론 다른 한편으로, 인간도 이렇듯 처량한 처지인데 인간과는 비교도 할 수 없게 불리한 지경에 몰려 있는 고양이는 얼마나 가련한가, 그토록 사랑스럽고 많은 매력을 가졌으나 그런 것과도 무관하게 그들은 얼마나 무력한가를 거듭 강조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렇듯 그는 고양이를 통하여 인간을, 그리고 인간을 통하여 고양이를, 또한 다른 모든 생명체를, 연민과 이해 그리고 사랑의 대상으로 그린다. 그리고 어떻게 보면 복잡하지만 더한층 확실한 기법으로 고양이나 사람이나 다 같이 가련한 생명체라는 사실을 지적한다. 물론 사람과 고양이 중 어느 쪽이 더 가련한가 하는 점은 따로 말할 필요가 없다. 중요한 것은 이해와 연민 그리고 사랑이 얼마나 좋은 것이며 필요한 것인가 하는 점이다. 그리고 작가는 이 점을 정교하고도 설득력 있는 방법으로 잘 말해 준다. – 설순봉 (한국판 역자) 저자 레싱은 현실생활에서도 고양이를 좋아한다고 한다 고양이를 통하여 인간을, 그리고 인간을 통하여 고양이를, 또한 다른 모든 생명체를, 연민과 이해 그리고 사랑의 대상으로 그리며, 더한층 확실한 기법으로 고양이나 사람이라 다 같이 가련한 생명체라는 사실을 지적한다. 작가는 이해와 연민, 그리고 사랑이 얼마나 좋은 것이며 필요한 것인가를 정교하고 설득력 있게 들려주고 있다. 소설에 나타나는 그녀의 날카로운 정치 의식과 사회비판 의식은 전통과 권위라는 이름으로 위장한 어리석음, 반가치 등 집단 폭력으로부터 인간 개인의 삶과 정신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모든 문학이 그러하듯, 인간과 생명에 대한 깊은 사랑과 경외가 깔려 있다 “위고 카브레” 브라이언 셀즈닉 글.그림 광서성 접력출판사 2008년 5월 刊      “위고 카브레” (중국 번역명-“꿈 만드는 위고”) 검은색 양장표지에 연필로 스케치된 그림들이 눈길을 끌었다. 원체 그림책 매니아라 하루밤에 후다닥 먹어버렸다 복잡하지 않는 복선과 잔잔함 그리고 어떤 무게감을 느끼게 하는 책이다. 인생이 뭘까. 어떻게 살까 등등의 실마리를 던져주는 책이였다. “위고 카브레”는 기차역의 시계를 관리하며 살아가는 열두살짜리 시계지기 소년 위고가 잿더미 속에서 아버지가 고치다 만 자동인형을 찾아 수리하면서 그 속에 감춰진 비밀을 파헤치는 과정을 사실적으로 담아낸 추리 소설이다. 저자 브라이언 셀즈닉은 원래 삽화가로 유명하다. 《워터하우스 호킨스의 공룡》으로 칼데콧상(매년 미국 도서관협회 산하 어린이도서관협회에서 어린이 그림책의 삽화가들에게 주는 상)을 수상했고, 《월트 화이트먼》으로 뉴욕 타임즈 베스트 일러스트레이션 상을 수상하는 등 수많은 유명한 그림책과 동화책의 삽화를 그렸다. 현재 뉴욕의 브루클린에서 살고있다. 이 책에서도 그는 삽화를 이야기 전개의 핵심 요소로 사용했다. 마치 영화의 한 컷, 한 컷처럼 책장을 넘기면서 점점 줌인되는 독특한 구성이다. 저자는 종이책에 그림의 특수효과를 덧입힌 셈이다. 그림책도 아니요 소설책도 아닌 책은 영화의 컷처럼 한 컷, 한 컷 세밀하게 스케치들로 텍스트와 텍스트 사이를 메워 나가며 서사를 완성해간다. 인물의 심리를 양파 벗기듯이 분절분절 클로즈업해 들어가 긴장감을 높였다. 정교한 삽화   뉴욕타임스 등 해외에서는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고  영화로도 곧 나온다고 한다. 내용도 물론 재미있지만, 어린이 책으로 보기 드문 ‘팩션 추리 소설’인 데다 형식도 독창적이어서 아이들의 독서 지평을 넓히는 데 한몫 할 듯싶다.    
133    문학자서전 (3) 댓글:  조회:4435  추천:71  2008-05-17
    . 문학자서전  3 .   시지포스의 언덕 - 문학, 그 궁극적인 짓거리      입사 그 이듬해도 나는   ,  ,  등지에 육속 작품들을 발표했다. 그와 함께 나의 인생이 궤적이 느닷없이 바뀌게 되었다. 당시 창간초기의 인원결핍으로 고민하던 성급신문인 사에서 파격적으로 나에게 요청을 보내왔다. 하여 학교에서 정학처분을 받은 문제아였던 나는 , 어느 사영기업의 양계장에서 달걀이나 깨우던 허드레 부화공이였던 나는, 필재가 양양한 문학청년으로 인정받고 일조일석에 신문사 기자로 변신을 했다. 그때 내 나이가 만 스무 살이었다. 중학교문도 채 나오지 못한 스무 살 내기가 일약 신문기자로 된다는 것은 그 당시 편집원들이나 내 곁 사람들의 경악에 쳐들린 눈초리가 보여주다시피  말도 안 될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나대로 사회접촉면이 넓은 기자 사업에서 단련하면서 나의 눈과 필봉을 벼리여 당시에 이름을 드날리고 있던 중국작가 호연과 같은 대작가가 되겠다고 마음을 단단히 뼈물어 먹었다. 한낱 뜨내기 부화공이 기자로 발탁되는 조건은 가혹했다. 2년의 시간은 고험기로 견습기자, 그 기간 로임이나 장려가 한 푼도 없다는 조건이었다. 대신 원고비는 내준다고 했다. 이를 작가로 향발하는 길에서의 기회와 전환으로 여긴 나는 그 조건을 겁 없이 흔쾌히 받아들였다.   86년 5월, 온 거리에 흩날리는 하얀 비술나무 씨를 축복처럼 맞으며 좀은 어리친 모습으로 나는 신문사 편집실에 발을 디밀었다. 배치되어 맨 처음 맡겨진 임무가 선배들과 함께 당시 베스트셀러였던 장편실화 을 번역하는 것이었다. 선배들은 일찍 번역을 마치고 차물을 마시고 있었지만 나는 점심도 먹지 못한 채 팥죽 땀을 흘려가며 번역에 매어있었다. 번역이 늦어져 부장이 곁에서 재촉하고 주필님까지 찾아와 지켜보는데 난해한 단어들이 많아 안달아난 나머지 눈물이 나올 지경이었다. 그날 밤을 꼬박 새워가며 겨우 번역을 마무리했다.   내가 쓴 첫 기사는 86년 전국소수민족운동회에서 그네가 정식경기종목으로 되였다는 예고소식이었댜. 그런데 신문기자습작에 관한 강의나 학습도 없이 착수했던 나는 그 기사를 밥도 죽도 아닌 으로 만들어 버렸다. 앞머리에 그네에 대해 읊조린 옛 문사들의 시조를 곁들였고 소식에 그네 뛰는 여인들에 대한 찬미의 서정까지 토로했다. 글을 들고 울지도 웃지도 못하던 주필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길림성을 상대로 한 성급신문이라 취재범위가 넓었다. 룡정을 작은 반경으로 다람쥐 채 바퀴 돌리 듯했던 나는 상경한 시골 닭처럼 전전긍긍하며 장춘, 길림, 교하, 류하, 통화, 매하구, 구태, 장백 등지를 사철 내내 돌아다녔다. 촌부락에 내려가서는 하도 어린 나이였기에 가짜기자로 의심받고 초대도 받지 못한 채 어스름이 내렸으나 잠자리도 찾지 못하다 학교접수실의 마음씨 고운 당직 아바이에게 청구하여 한 온돌에서 비비 닥이며 자기도 했다. (그때 나는 어린 모습을 조금이라도 가려보려고 덜 고운 의붓아버지에게 청구하여 호구부를 고쳐 나이를 한살 올렸고 콧수염을 무성히 기르고 다녔다.) 그렇게 어려운 기자 생활중에서 나는 문자라는 부호의 합의된 배열법칙과 음훈을 익혀나갔고 따라서 나의 필봉은 서서히 벼려지게 시작했다.    하지만 로임을 주는 날이 내게는 가장 어려운 감내를 겪어야 하는 날이었다. 매양 19일날, 모두가 희희락락 로임봉투를 타들고 음식점을 찾아 갈 때면 나는 조용히 자리를 피하군 했다. 신문사를 멀리한 상점으로 가서 가련한 원고 비를 잘라 홀로 맥주잔을 기울이곤 했다.    그렇게 8년의 시간이 흘렀다. 나는 신문기사를 곧잘 다루는 합격된 기자행렬에 들어서게 되었다. 당시 신문의   ,  와 같은 칼럼란에서 나의 이름과 필명을 하루 멀게 볼 수 있었다. 북향, 초군, 설봉, 각설이 그때 나의 필명만 해도 13가지나 되었다. 그때 문단의 원로 김학철선생의 신랄한 잡문에 홀딱 반해 나는 잡문쓰기에 커다란 열성을 보였다. 지어 선생의 풍격인 글 사이에 풀이표를 쳐주는 것도 꼭 같이 모방하여 잡문을 저그만치10여편 발표했다. 한편 기자생활에서 받은 감수로 20여 편의 소설과 100여수의 시를 발표할 수 있었다.   그 8년간 대학졸업장이 없다는 단 한 가지 리유로 학교 문을 갓 나서고 취업한 애송이들보다도 적은 가련할 정도로의 로임을 받았고 직함이나 대우, 집 분배 등 기본 적인 면에서 아무런 보장도 없었다. (신문기자행업에 투신한 17년이란 기간 그런 대우는 내게서 여전히 거리가 멀었다. 어찌 보면 나는 졸업장 한 장으로 한 사람의 우렬을 제쳐놓고 락인부터 찍어놓는 그런 미완숙한 사회규제의 가장 큰 희생자였는지도 모른다.)   오른손잡이를 위해 고안된 세상에서 왼손잡이의 불편함을 망각한 그 속에서도 나는 이를 악물고 버텨냈다. 오로지 오기와 치기로 한곳 향해 매진하는 외뿔 소마냥 문학의 뿔을 혼자서 갈고 닦으며 버텨내었다.   기자라는 것은 나에게서 직업이었고 문학은 본능이었다. 이를 나는 개인적 수행의 방법으로 간주했다. 그 방법을 통해 나는 어섯눈을 개안할 수 있었고 부족한 나의 천성을 다독이며 달랠 수 있었다. 넋 건지기에서 닭을 희생시키듯 하나의 제물로 나는 문학의 제단에 던져져 있었다. 그런 제물이 되여도 나는 유감이 없다.   8년간의 고험을 거쳐 글 다루기에서 제법 웃자라난 나를 두고 광복과 함께 창간된 조선족 최대의 일간지 에서 백락처럼 손짓했다. 94년, 나는 해란강문예부간 편집기자로 전근하게 되었다. 스무 살에 시작하여 1여년의 기자생활에서 제법 이름 있는 로기자라는 딱지가 앉게 되였고 그 기간 나는 1000건에 달하는 기사를 발표, 문학상과 전국소수민족신문상을 비롯한 각종 신문보도상 20여차를 수상하게 되였다.   동호 (同好) 여려서 사회에 내쳐졌고 기자와 작가라는 이중신분으로 여러 계층에서 자맥질해왔던 만큼 나에게는 각종 부류의 친구들이 많다. 그중에서 물론 가장 도타운 친구들은 문학동호인들이다. 나는 문학인들과 적극 사귀였고 각종 문학협회를 꾸리는 남다른 열성을 보여 왔다.    처녀작을 발표하던 85년, 룡정에서 젊은 문학도들과 함께 문학협회를 꾸렸다. 비서장을 맡고 각 현시 문학도들을 조직했고 한편 등사본잡지에 상당한 분량의 무협소설 를 련재하기도 했다. 그 후에는 룡정의 유명작가들이 꾸린   협회에 가입, 보름에 한번 씩 열리는 작품합평회에 참가하러 퇴근 후면 늦은 밤 버스를 잡아타고 룡정으로 빠짐없이 다녔고 회의마다에 작품을 내놓았다.  에 입사한 86년 나는 또  문학협회를 만들었다. (협회 이름은 당시 의기투합됐던 지금의 사 최호사장과 함께 백조사진관에 가서 협회창립기념을 남기며 내가 사진관 이름을 본 따 단 것이었다.) 연길시 당안관 자리를 빌어 협회명의로  60여명의 작가와 문학 지망생들이 참가한 대형 련환회를 조직하기도 했다.  등사본잡지를 몇 기 발행, 창간호에 나는 설봉이라는 필명으로   이라는 평론을 실었다. 그러한 우리 문학도들을 대견히 여겨 등사본잡지의 앞머리에 김학철선생과 리상각시인께서 왕붓을 허비해 제사까지 써주셨다. (그 동아리들 중에서 대부분이 사회 각 기관의 어마어마한 령도인물로 성장. 오직 나만이 외줄타기로 지금도 경황없이 글밭을 경작하고 있다.) 그후에도 여러 문학협회에 적극 참여, 청년시인협회인  의 부회장직을 맡고 수천원의 자금도 협찬 받아오고 내가 경영하고 있던 식당을 협회전용처럼 내밀고 각 잡지에 동호특간도 조직해내고 하면서 동호회를 만드는데 혼신을 기울이기도 했다.   어떤 동아리를 만들기에 열중하는 나이가 지났음에도 그러한 지인들지간의 이해와 교류의 분위기의 멋을 잊지 못해 몇 해 전에도 전국 각지의  기성문인들을 동원하여   라는 인터넷동호회를 설립, 한국의 유명홈에 개설한 우리 동호회가 그중 가장 활약적인 양상을 보여 왔다.   문학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만큼 나는 나의 동인들을 사랑한다. 그리고 동인들을 위해서라면 내가 즐겨 읽는 무협지중의 녹림인물들처럼 자신을 내던지곤 했다. 당년에 책을 쌓아 놓고 나면 엉덩이도 간신히 들이밀 나의 8평방짜리 셋방 집에 들리지 않은 동년배 동인이라곤 없다. 싸구려 생맥주에 북어끄트러기라도 맛나게 찢으며 문학을 안주삼아 밤을 지새곤 했다.문예부에서 편집을 하면서 나의 손으로 편집하고 그 작품이 상을 받은 내 또래 동인이 10여명이 된다.. 문학 외에 아는 것이란 또 문학밖에 없는지라 합격 못된 세대주로 첫혼인이 파렬된 후에 거칠 것 없는 나의 셋방 집은 아예 문학 살롱이 되다시피 했다.   우리집에 묵으며 꼬박 2년간 나와 함께 지낸 문학도들이 몇몇 있다. 석탄도 사지 못해 한겨울에 불 때지 못한 찬구들에 이불 몇 채씩 깔고 앉아 매운 소주에 청국장 하나만 달랑 놓고도 우리는 문학의 진미를 담론했다. 그사이 우리 집 식객이었던 그 문학도들의 내가 편집한 작품이 어느 해에는 연변일보 , , 을 몽땅 도거리해서 보람으로 기쁨에 눈굽을 적신적도 있었다. 회사에서는 불경기로 로임까지 체불 받으면서 직장도 없는 그애들을 부둥켜안고 책을 팔아 쌀을 사야 하는 극난한 생활고에 시달렸던 그 나날에 나는 일곱 편의 중단편소설과 수십 수의 시를 발표, 4차의 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조선족 최대의 사회열점을 건드린 장편르포 를 집필, 연재, 출판해 내었고 첫 작품집 를 내놓았다. 그네들과 함께 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무원조하고 지지리도 어려운 그 나날을 버텨내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문학의 위상이 땅에 떨어진 요즘 세월에도 문학의 외길을 고집하며 함께 하는 그네들을 나는 좋아한다. 친지가 적은 내게서 그들은 살밭은 형제와도 같다. 바른 심성을 갖춘 그들이 문학에 불어넣는 생의 기미에 대한 전언을 읽어내고 서로 긍휼을 나누는 지음이 될수 있기를 나는 진심 바랬다.     무드(mood)   신문기자로 발탁된 이듬해 연길로 이사 오면서 나는 28개의 사과배광주리에 나의 전부의 가산인 소장한 책들을 담아 싣고 왔다.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나는 내내 붙박이로 책 더미에 내 옹근 몸뚱아리를 부장품처럼 묻어버렸다,   나의 일상에서 독서가 없는 나날이란 상상할 수도 없다. 나는 편집광적인 독서광이다. 언감 이 세상에 나오는 모든 좋은 책들을 모조리 읽고자 망상하고 있다. 시시때때 그 시대의  의식형태에 맞추어 나오는 각종 종류의 책들을 모조리 읽으려 들었다.   종소리에 반응하는 파블로브의 실험용 동물처럼 좋은 책만 나오면 예민한 후각으로 알아내고 선참 사들여 허겁지겁 읽었다. (멋모르고 읽다나니 독일철학가 쇼펜하우어의 이름을 한어로 읽고 중국인으로 여긴 웃음거리를 자아내기도 했다.)     '홍루몽'     '닥터 지바고'     '몽떼 그리스도 백작'     '여기의 려명은 고요하여라'     노르웨이의 숲     김용의 '영웅문', '연성결'     산샤의 여황 '측천무후'     백거이의 '장한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대만작가 지미의 모든 만화   세상의 모든 책을 읽고 싶다. 독서광으로 통하는 나, 이상은 세번 다섯번, 지어 열번 이상으로 읽은 좋아하는  책들이다.   삶에서 우리가 취하는 어떤 행위에 대한 보상은 두 가지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중 적극적인 보상으로서는 어떤 가치의 획득이고 소극적인 보상으로서는 자기유지이다. 적극적인 보상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자기유지를 해야 한다. 체계적인 교육을 재대로 받지 못한 콤플렉스가 심각하기에 남보다 몇배로 되는 책을 읽고 있다. 그 것이 이제는 내 생리적인 행위에 가깝게 체질화되었는가 보다.    나의 독서범위는  오지랖이 넓어도 무지 넓은 편 , 단 문학 류뿐 아니라 종교, 천문학, 회화, 동식물학, 민속 등등 여러 부류의 책들도 대량 사들여 읽는다..신간베스트셀러면 죄다 사들이는 외에도 꼬박 10 여년 주문하거나 사서 읽는 잡지만도 다섯 10여 종류가 된다.   , , ,,,,,, , , ...   보잘것없는 박봉마저 그 3분의 2는 잘라 거의 사흘에 한 번꼴로 책과 잡지를 한 아름 사드는 나를 두고 안해는 우리 집이 내내 쪼들리고 있는 까닭은 책을 너무 사들이기 때문이라고 찬사절반 푸념절반을 섞곤 한다. 일찍부터 나는 책을 사면 책의 맨 앞장에 나의 이름 병음자모와 책을 산 곳과 일시를 적곤 했다. 그 날자가 적힌 5천여 권의 책과 매달기수가 빠짐없는 수천 권의 잡지들을 배열해놓으면 나의 지금까지의 문학적 행보가 년보처럼 역력히 엿보인다. (89년도에 생활고를 덜어보고자 나는 주 공안국부근에 책방 하나를 차린 적 있다. 라는 대문호의 이름을 딴 서점, 그 서점을 꾸릴 적에 내가 소장한 책 수천 권이 있었기에 맨손으로 시작할 수 있었다.) 바람벽을 꽉 메운 책장과 침실, 주방 지어 화장실까지 쌓여있는 책속에 파묻혀 나는 예이제 없이 신들린 듯 독서에 혼 줄을 앗긴다. 나를 잃는다.    전국유명체인서점인 석수(席殊)서점은 책 안 읽는 풍토의 연길에서 고작 한해가 못 되여 문을 닫았다. 나는 그곳의 가장 충실한 고객 이였고 회원 이였다. 보통회원으로부터 준회원 고급회원으로 되려면 천 원어치씩 사야 한 급씩 오른다. 남들이 4,5년 지나야 될 수 있는 고급회원증을 나는 불과 일 년도 안 되는 사이에 땄다. 일년 사이에 3천 원 어치, 매달 평균 3백원 어치의 책을 사다 읽었다는 얘기가 된다. 사들여서는 허기 끝의 탐식처럼 읽는다. 송충이가 솔잎을 떠나 살수 없듯 어려서부터 길러 온 미친듯한 독서 관습은 골수깊이 체질화되어 있다.       내가 열광적인 영화디스크 수집애호가라는 것을 문인들은 다 알고 있다. 이 시가지에 있는 음향테이프 점들에서 나를 모르는 경영자들이 없을 정도로 나는 영화광이다. 어릴 적부터 영화에 심취되어왔다. 명작개편영화와 할리우드의 대작영화 중국 신세대 감독들의 영화를 비디오테프와 VCD디스크로 대량 사들였다. 세계명작
132    문학자서전 (2) 댓글:  조회:3917  추천:104  2008-05-17
[removed][removed]      . 문학자서전  2 .   시지포스의 언덕 - 문학, 그 궁극적인 짓거리   [removed][removed]       등 단 양부가 세상 뜬 5년 만에 의붓아버지가 우리 집에 들어왔다. 내가 일곱 살 적에 우리 집에서는 오누이를 만들어준다며 또 3살짜리 여자애를 수양했다. 이로서 우리 집은 한 가정에 성씨가 다른 네 사람이 모여든 특수한 가정으로 어우러졌다. 특수한 가정이라 남보다 더 잘 보듬어야 했지만 의붓아버지는 그런 도량형의 인간이 아니었다. 한때 어떤 작은 잡화점을 경영한적 있다고 자신을 경리님이라 불러야 흡족해 하는, 나의 양모가 네 번째 여자였던 의붓아버지의 출현은 외려 온가족의 불행의 시작이었다. 일 년 사철 하는 일이란 어중이떠중이들을 불러 술 마시는 짓거리, 입만 열면 저속하고 상스러운 말들이 튕겨 나오고 이제 백만 원 잡아온다, 천만 원 잡아온다 하며 허풍을 쳐댔지만 결국 어머니의 퇴직비나 말아먹는 용모마저 추악했던 의붓아버지였다. 의붓아버지와 어머니는 일년내내 사사건건 싸움으로 나날을 보냈다. 교원가정의 청고한 분위기에서 자랐던 나는 의붓아버지로 인해 돌변하는  상스런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해했다. 따라서 의붓아버지의 눈에 나는 속곳에 든 가시였다. 나는   침묵으로 아버지에게 항거했다. 나중에 모순이 극화되어 꼬박 3년 동안 아버지와 말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한 밥상에서 밥도 먹지 않았다.   바로 이때에야 나는 자기가 입양아라는 사연을 알게 되었다. 의붓아버지가 이 원체 복잡한 가정에 들어오면서 일으키는 역작용에 또 내가 어머니의 친자식이 아니었다는 엄청난 비밀에 나의 무양하던 심기는 정을 잘못 맞은 못처럼 외곬으로 꼬부라들기 시작했다.   한 가슴 가득 찬 실의를 이기지 못해 나는 사회의 불량배들과 휩쓸리기 시작했다. 나는 하루아침 새에 문제아로 변해버렸다. 나중에 아버지와 어머니는 교외 쪽에 집을 잡고 나가버렸고 어린 나 혼자만 집에 남았다. 어머니가 때때로 와서 쌀 사주고 밥 지어주고 갔지만 그 짙고 쓴 외로움과 고독감은 내 소년기에 큰 응달로 자리 잡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내가 1순위로 놓는 작가 로신, 그의 대표작 아큐정전'은 교과서에 수록되어 중학시절 부터 통독했었다.   그 고독감을 달래준 것이 또 책이었다. 이때는 온 나라가 동란의 부진을 씻고 좌적인 철쇄에서 벗어난 시기라 좋은 작품들이 많이 나왔고 금서로 치부되었던 세계명작들이 본격적으로 소개되기 시작했다.   나는 신들린 사람처럼 걸탐스럽게 독서를 했다. 세계명작들을 거의 다 이 시기에 읽었다. 어머니가 명심해 주문하는 , 외에도 연변인민출판사에서 나오는   과   , 민족출판사에서 나오는  총서들을 빠짐없이 사들였다. 그 잡지와 총서들을 통해 나는 세계문학과 중국문학, 중국조선족문학에 대해 알게 모르게 대량 접촉하게 시작했다.   그때 나에게 화약 같은 인상을 남긴 작품들로는 다니엘 디포의   ,엑또르 말로의  , 로신의  과 구소련작가 라 쁠레예브의  , 중국 작가 량효성의  , 진국개의   와 일본작가 모리무라 세이이치의 추리소설과 호시가라 싱이치의 꽁트들, 그리고 연변작가들의 작품인 김성휘의  와 림원춘의  였다.     당시 우리 집에서 주문해 보았던 베이징에서 꾸리는 '인민화보' 겉봉은 거개가 모택동주석의 초상화로 도배되어 있다시피 했다.     그리고 다빈치의 그림  , 일본영화 ,중국영화 ,브라질의 TV드라마   , 중국통속가수 등려군, 정림의 노래와 프랑스영화   중의 여배우 나타샤 킨 스키와 중국영화배우 장유와 통기타와 디스코음악과 나팔바지와 원숭이해의 원숭이 우표 등등을 나는 좋아했다. 나는 음식 탐을 하는 허기진 애 마냥 그 경전과 류행들을 내 작은 두뇌의 빈 동공(洞空)속에 아낌없이 부어넣었다.     중국영화 '고뇌에 찬 웃음'     일본영화 '행복의 노란 손수건'     북한영화 '이름없는 영웅들'     프랑스 영화 '낡은 렵총'     쥬고슬라비아 영화 '다리'      알바니아영화 '여덟번째 동상'   당시 중국에서 흥행을 보였고 내가 좋아했던 영화     일본배우 다까구라겐     중국배우 장유     일본배우 야마구찌 모모에     프랑스 배우 알란 들롱      '더버빌가의 테스'중의 나타사   * 사춘기  우상들     그때 학교에서 나는 줄곧 어문과대표를 맡고 있었고 작문 짓기에서 큰 기량을 보였다. 내가 쓴 작문이면 죄다 범문으로 낭독되었다. 그리고 문화대혁명이후 전국적으로 처음 있게 되는 제1회 전국조선족중학생 작문콩클에서 지도교원도 없이 나절로 써서 투고한 작문이 우수상을 수상하여 라디오와 상패를 수상하는 잊지 못할 벅찬 나날이 있었다,        나의 앳된 영혼을 들쑤셔주는 벅찬 문화적인 감수에 못 이겨 나는 필을 들었고 작문에만 그치지 않는  본격적 인 창작을 언감 시도했다.   당시 일본추리영화와 무협영화가 처음 나와 우리 또래는 그에 열광했다. 하여 나는 무협소설과 추리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집에서도 썼고 학교에서는 내가 싫어하는 수학시간에도 썼다. 반년도 안되는 사이에 각각 3만 여자에 달하는 무협소설, 추리소설 을 써냈다. 는 무협영화의 고루한 형태의 본을 내여 절을 배반하고 나간 무림계의 흑세력을 동자중들이 성장하여 타승 하는 내용을 처럼 장회체로 썼고, 은 당시 중국에서 가장 흥행했던 일본영화 과 문화혁명 때 수사본으로 유행되었던 반 간첩 소설 을 한데 버무려놓은 모방작들이었다. 그중에도 나름대로의 창의성이 보인다면 주인공이 나처럼 남의 집 양자로 자랐다가 아버지를 찾고 보니 자기가 대결하고 있는 흑세력의 두목이었다는 그런 나만의 정감을 부여한 점이었다.   나의 이 소설이라 해야 할지 영화대본이라 해야 할지 작문이라 해야 할지 장르를 획분 할 수 없는 글들은 당시 학생들 중에서 로 대인기를 누렸다. 반급 애들이 다투어 돌려보고는 휴식시간이면 작중인물들의 무림초식(招式)이나 그들의 운명에 대해 열변을 토하곤 했다. 그들은 자기신변에 선 작달만한 애가 이 책의 저자라는 것을 감감 잊은 채 어떤 명작이나 영화를 담론하는 것처럼 이야기를 나누었고 나는 곁에서 눈을 슴벅이며 득의연한 표정을 감추지 못해했다. (지금도 82년 고중시절에 수학공책 뒷장에 쓴 이 글들을 나는 고이 보존해두고 있다. 일전 서가를 정리하다 다시 오점투성이인 그 글을 보면서도 나는 그 시절의 내가 스스로 대견해나지 않을 수 없었다)   허나 나는 교정 문만 나서면, 썰렁한 집에만 들어서면 다른 아이로 변하군 했다. 무리싸움에 이은 무리싸움, 그것이 방과 후면 하는 가장 큰 짓거리였다.   결국 고중2학년에 나는 룡정 말발굽 산에서 있은 어느 한차례의 큰 무리싸움의 주모라는  죄장으로 학교에서 퇴학당하고 말았다. 애를 이제 완전 망쳤나보다고 어머니는 낙루를 하셨다. 하지만 나는 나대로의 배짱이 있었다. 내가 가장 숭배했던 쏘련작가 고리끼처럼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유명작가가 될 거라고 나의 퇴학소식을 접하고 걱정스레 모여온 친지들 앞에서 호기에 넘쳐 선언했다.   아이러니 적인 것은 그로부터 한 달도 못되어 내가 쓴 작문이 또 중학생작문 콩클 대상을 수상한 것이다. 허나 시상식날 수상자는 퇴학당하고 없었다. 학교교무처의 선생들과 반주임이 상품인 반도체라디오와 상장을 들고 우리 집에 찾아와 장끼가 있는 학생인지라 다시 학교에서 받아들일 의향을 말했다. 허나 성숙치 못한 치기에 넘쳤던 나는 호의로 찾아온 선생들에게 축객령을 내렸다. 색안경 끼고 나를 사회 불량배 대하듯 하는 학교는 싫다, 광활하고 할일 많은 사회대학을 나와 이제 고리끼처럼 명작가로 될거다!며 가슴을 탕탕 쳤다. 아직도 천지분간 못하는 애송이었던 나는 스스로 다가오는 어떤 기회를 잘라 던졌고 그 기회를 잃고 그 후로 내내 큰 대가와 무거운 부하를 겪어야했다.       나의 모교- 용정중학. 대성중학으로 불렷던 학교는 시성 윤동주의 모교이기도 하다.     그때의 용어를 빈다면 나는 취업대기청년이 되어버렸다. 직업은 없고 하여 친구들과 함께 샌들장사에 나섰다. 연길로 와서 그때까지도 시공 중인 서시장의 골목길에서 대련에서 넘겨온 샌들을 팔았다. 허나 장사에 재미를 붙일 무렵, 불량배들에게 샌들을 빼앗겼고 그 것을 지키려다가 늘씬히 얻어맞고 장사도 그치고 말았다.   다음에는 룡정 과수농장에서 꾸리는 주물공장에 취직을 했다. 하수도 덮개와 스팀을 만드는 공장이었다. 자전거로 오가는 출근길만 해도 반시간 푼히 걸려야하는 자그만 민영공장에 서 기능공들이 단숨에 100여차 휘두르는 메를 10여차도 못 휘두르고 헐떡이었고 지글지글 끓는 쇳물 바가지를 어떻게 주체할길 없어 그 앞에서 쩔쩔매었다, 그때 내 나이가 17세, 번중한 로동이 힘에 버거워 속눈물을 떨 군적이 얼마였는지 모른다. 허나 처음 당착해보는 직장생활은 나에게 불꽃 튀는 영감을 주었고 그 주물공자의 생활을 모태로 하여 무협이나 추리가 아닌 순수소설이라 생각하고 작품 한편을 썼다.   , 세계에서 키가 가장 작은 인종인 피그미라는 토착민들처럼 평균 키가 작은 주물공장의 몇몇 청년들의 사업과 사랑에 대해 쓴 1만 7천자짜리 단편소설이었다. 였던 나는 그때 이 작품에 대해 신심이 컸다. 당시 베스트셀러였던 중국작가 장자룡의 공업소설 에 못지않을 대작이라고 스스로 만족의 미주를 기울였다. 당시 젊은이들 층에서 인기 높은 종합지였던 잡지에 투고했다.   석달 후엔가 편집부에서 신씨 성을 가진 편집 한분이 나를 찾아왔다. 양모의 학교를 연계주소로 했기에 편집들은 나를 40대의 교원으로 착각하고 있었다. 이름도 필명인줄로 알고 있었다. 그러다 애송이티를 가시지 못한 나를 본 편집이 헛 밟은듯 움찔했고 허구픈 실소를 머금었다. 편집부에 한번 왔다가라는 말만 남기고 두수 없는 행차를 한 듯 돌아가버렸다.   며칠 후 나는 토끼를 품은 듯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추리며 연길에 있는 편집부를 찾아갔다. 편집선생들이 모조품을 보는듯한 웃는 눈길로 나를 에워쌌다. 표절, 혹은 번역작품으로 미심쩍어하지만 그 의사를 완곡적으로 얘기해주는 편집원들에게 나는 미덥지 못하면 내가 또 한편의 작품을 써 보이겠다고 배심 두둑이 여쭈었다. (나이가 어린지라 애초에 발표한 나의 작품들은 늘 표절이 아니면 번역 작품이라는 의심을 사곤 했다. 하지만 그 자체가 나의 글 수준을 고도로 인정해주는 거나 다름없다고 나는 배포를 머금었다). 편집들은 마지못해 나의 하회를 기다렸다.   친지를 볼모로 둔 심정으로 돌아와 그 작품을 구하기 위해 또 한편의 작품을 썼다. 라는 제목으로 남을 위한 좋은 일만 해서 백치로 몰리는 한 쌍의 신혼부부의 밀월기간에 일어나난 사연을 소재로 단편을 만들었다. 여자 손목도 쥐여 못 본 애송이가 어떻게 밀월을 썼던지 모르지만 그 작품마저 읽은 편집원들이 내 어께에 신뢰의 손길을 얹어주었다.   드디어 1985년 8월호 지에 나의 첫 소설  이 실렸다.(그 이듬해에 나는 자매편  을   잡지에 발표하여 작지 않은 센세이숀을 일으켰다. 3부작으로 예정하고 을 창작, 아쉽게도 채용되지 못했다.) 편집들의 면려로 소설뒤끝에 짤막한 약력까지, 첨부되어 나갔다. 지금 보면 가위의 장정설계도 조야하기 그지없고 잡지 값도 겨우 45전, 하지만 처녀작이 실린 그 잡지를 받아든 나의 기쁨은 하늘에 닿을듯했다. 대번에 여섯 부를 사서 친지와 친구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초등학교 반주임이며 룡정에 있는 리태수 김재권 등 작가분 몇몇이 우리 집에 모여와 작은 파티를 열어주었다. 십대의 나이에 그것도 정학처분을 받은 내가 유명잡지에 당당하게 처녀작을 냈고 선생들과 의붓아버지 앞에서 나의 호언을 완수해 가기 시작했다는 생각에 나의 기쁨은 하늘에 닿을 듯하였다.   하지만 의붓아버지의 빈축의 눈길은 여전하였다. 그 눈길이 싫어져 그 무렵 나는 집을 나와 버렸다. 연길로 와서 동쪽 교외의 동광양계장에서 달걀을 깨우는 부란공일을 하게 되었다.   장장 21일을 자지 못하고 열을 고루 받도록 부란기의 손잡이를 반시간에 한번 꼴로 돌려주며  오리 알이며   종자달걀을 깨웠다. 그 부란기의 동음이 귀청을 멍멍하게 하는 부화실에서 군용침대에 엎디어 나는 쉴새없이 읽고 또 썼다. 처녀작을 발표하던 19살 그해에 련이어 ,  등 3편의 단편을 발표했다.  잡지에서 잡지 뒷면에 나의 작가사진을 실어주었고 작가협회 기관지 에서 조직한 문학 강습반에서는 우수학원으로 선정되어 중국의 대문호 로신의 반신상을 상패로 수상했다.   그 석고상을 부란실의 창턱에 놓고 바라보며 문학이 주는 즐거움과 성취감에 나는 가정에서의 소외감이며 번중한 로동의 고달픔이며를 잊어버렸다.   그리고 그때로부터 운명의 신은 나와 글쓰기라는 짓거리를 단단한 동아줄에 옭매듭으로 칭칭 얽동여놓았다.     [removed] [removed]   [removed]parent.ContentViewer.parseScript('b_15465899');[removed][removed] [removed]
131    문학자서전 (1) 댓글:  조회:3550  추천:84  2008-05-17
. 문학자서전  .   시지포스의 언덕 - 문학, 그 궁극적인 짓거리     동란의 문화대혁명이 일던 첫해의 어느 가을날, 고색 짙은 변강의 오지인 룡정현에서 시장부근의 한 교원가정은 암울한 분위기에 잠겨 있었다.   봉당에는 보자기에 동여진 아기 하나가 그 무슨 물건처럼 내쳐져있었다. 태여 난지 이제 겨우 사흘이 되는 아이는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석현에 있는 어느 처녀가 결혼 전에 아기를 뱄는데 부모의 결사적인 반대와 항간의 눈이 무서워 룡정의 병원에 와서 아이를 낳고 버렸다고 한다. 그 아이를 룡정 어느 소학교의 아이 낳이를 못하는 교원이 안아왔는데 아이가 풍을 일구고 담이 목에 막혀 우유도 넘기지 못한 채 죽어 가는지라 막 버리려던 참이었다.   이때 이웃집 영감이 여느 때와 같이 마실 돌이를 왔다. 봉당에 놓인 들숨도 쉬지 못하는 아이와 그 사연을 들은 영감은 자기가 아이를 살려보겠다고 나섰다. 중의경력이 있다지만 고주망태로 이름 있는 데데한 영감인지라 집 식구들이 반신반의하고 있는데 영감이 부엌으로 씽-내려가더니 솥 가마를 뽑아들었다. 웬일이냐고 모두들 경악하는데 영감이 가마 밑굽에 앉은 흙 그을음을 긁어내더니 대접에 물을 담아 그 먼지를 삭혀냈다, 먼지를 삭혀낸 물을 아기의 입에 흘려 넣었다. 순간 목구멍에 꽉 막혔던 담이 내려갔고 아기가 급기야 미약하게나마 울음을 터뜨렸다.   민간토방법의 힘을 입어 가마 밑굽의 먼지를 삭힌 물을 먹고 살아난 아이, 불운의 화인(火印)을 찍고 세상을 버리지 않은 그 아이가 바로 나였다. 동년 옹근 동년을 나는 병원에서 지내다시피 했다. 엄중한 칼슘결핍증에 몸은 장작개비처럼 말라있었고 대신 머리만은 어른의 모자를 쓸 수 있을 정도로 컸다. 어릴 적 내 흑백사진을 보면 머리가 되 박처럼 크고 눈이 알전구만한 가분수모양, 꼭 마치 할리우드 공상영화 속에 나오는 외계인 같은 형상이다. 나의 생모가 배속의 나를 떨어뜨리려고 각가지 약들을 람복한 결과였다.   신체가 약한 만큼 성정미도 여리였던 나는 종일 양모의 치마꼬리를 떠날 줄 몰랐다. 몸이 좋지 않아 집에서 몇 년 간 휴학을 하고 있던 어머니는 심심풀이삼아 나에게 글을 배워주었다. 다섯 살에 나는 철자를 다 떼였고 독서가 가능하였다. 학교에 붙던 날, 나는 등록하는 선생들 앞에서 고과서 읽기는 물론 모택동주석의 이며 당시 베스트셀러였던 장시 이며를 줄줄 외워 모두들을 놀라게 했다.   병원 장 출입에 온 몸 어디라 없이 주사바늘을 꽂고 부어오른 곳을 뜨거운 물어 담근 수건으로 찜질을 해주며 아파서 우는 나를 달래는 방식의 하나가 바로 그림책을 사주는 것 이였다. 나는 병원에서 집에서 내내 그림책하고 벗해 지냈다. 어찌 보면 련환화(連環畵) 읽기는 내 동년의 전부라 할 수 있었다. 48권으로 된 며, 40권으로 된 이며, 22권으로 된 며, 15권으로 된  과 같은 고전명작들, 그리고 구쏘련 작가 고리끼의 자서전적 3부작  ,   ,  이며를 나는 맨 처음 모두 그림책으로 접했다.           당시 나를 매료시켰던 그림책들- '삼국지', '수호지', '악비전' , '손오공이 백골정을 세번 치다' 지금도 나의 서가에 고히 보존되어 있다     그때는 지금처럼 책이 한꺼번에 한 질이 출판되는 것이 아니라 며칠을 사이 두고 한 권 한 권씩 나오는 바람에 그 기다림 나에게는 피를 말리는 일 이였다. 나는 기차를 기다리는 승객처럼 매일이고 서점에 붙박여 신간 련환화들이 나오면 모조리 사들였다.(지금도 룡정 신화서점의 퇴직일군들은 당년의 극성스런 꼬마단골이었던 나를 한눈에 알아본다.)         내가 맨 처음 좋아했던 작가 고리끼와 그의 대표작을 각색한 그림책 고리끼의 '동년'   아버지는 신발장에 페인트를 칠해서 책장을 만들어주었고 나중에 더 넣을 자리가 없게 되자 또 찬장을 고쳐 책장을 만들어주었다. 그 신발장 책장에, 찬장 책장에 잃어질세라 서배에 번호를 단 련환화들을 차곡차곡 꽂아 넣었다. 이렇게 옹근 동년에 나는 천 권에 달하는 련환화를 소장했다. 그때 나는 룡정에서 책이 가장 많은 아이로 불렸다.   그렇게 진중하다고 정평이 나있던 내가 어느 한번 온 룡정을 놀래 우는 사건을 저질렀다. 어쩌다가 방화범이 되여 헛간에 불을 질렀던 것이었다. 불은 헛간을 다 태우고 번져 나와 곁에 붙여지은 변소와 이웃집 반 채를 태워버렸다. 온 동네가 불끄기에 떨쳐나섰고 소방차 두 대까지 동원되어서야 드디어 불을 끌 수가 있었다.   나는 너무도 무서워 김치 움에 숨은 채 큰 숨도 바로 쉬지 못했다. 이웃 아낙에게 발견되어 어스름이 내릴 때에야 김치 움에서 끌려나왔다. 모두가 그 영문을 따져 물었다. 나는 울먹이며 내가 저지른 동기를 말했다.라는 그림책이 있었다. 홍군의 덕택으로 소작농이 겨우 집 한 채를 마련했는데 토비들이 그 집에 들이닥쳐 홍군토벌음모를 꾸미는지라 토비들을 소멸하게 위해 소작농의 아들애가 소중한 자기 집에 불을 다는 그런 이야기의 그림책, 그 그림책을 읽고 나는 소작농의 아들의 본을 내여 그처럼  거사를 치르려 했던 것이었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이웃들은 울지도 웃지도 못했다. 그 후로 소학 시절 내내 나의 별명은 이였다.         문제의 그림책- '화소야우' 이제보니 겉봉의 애의 모습이 어쩌면 당시의 나를 닮은 꼴이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성인들의 책을 읽기 시작했고 장편도 손에 쥐였다.  ,   ,   ,   ,   ,  ... 지금처럼 어린이들의 심성에 맞는 아동도서가 많지 못했던 그 시절 죄다 어른들의 책을 읽었다. (많지 않은 아동도서 중에서 내가 가장 인상 깊게 읽은 것은 구 사회를 경유해온 이의 자서전적 소설였다)       당시 아동문학서중에서 공전의 히트를 쳤던 소설 '고옥보'   그러다 비판용으로 앞머리에 모택동주석의 어록이 몇 폐지나 붙은   이 나왔는데 그 록림호걸들의 이야기는 나를 환혹시키기에 족했다. 수호전을 줄줄 외우다시피 했다. (그때 우리 학교선생들이 아직도 철자를 바로 익히지 못하고 있는 아이들을 훈시하는 말의 한마디가 아무 반급의 혁이라는 애는 장편을 왕왕 내리읽는다던데 너희들은 이게 무슨 꼬라지냐?였다.) 반급 애들이 내게서   이야기를 들으러 방과 후면 우리 집에 가맣게 모여들곤 했다. 개구쟁이들이 한 구들 모여 앉은 그 양말 구린내가 천지를 진동하는 방에서 재봉침우에 올라앉아 나는 중국 옛 찻집의 평서(評書) 이야기꾼처럼 장회체로  을 내리엮곤 했다.   초등학교를 마칠 무렵, 양부였지만 나에게 친아버지 못지않은 사랑을 몰 부었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문화대혁명 때  나치스집중영 같은 에서 치른 옥고를 빌미로 장기간 투병 끝에 한 많은 눈을 감은 아버지였다.   아버지의 장례 날, 동료들이 많이도 모여왔고 하늘 향해 조총을 울리였다. 모두들 비감에 물젖어있었지만 나의 정신은 다른 곳에 팔려있었다. 그 조총을 쏠때 튕겨 나온 탄알 깍지가 못내 갖고 싶어졌다. 그래서 장례식이 끝나기 바쁘게 허겁지겁 탄알 깍지를 줏는데 어머니가 하고 오열하며 나의 뒤통수를 철썩 아프게도 때렸다.(나의 첫 장편소설  중에 이러한 나의 동년의 모습이 가감 없이 세세히 그려져 있다.)   그때 탄알 깍지나 탐내던 개구쟁이였던 나는 양부의 죽음으로 인하여 이제 덧쌓여지게 될 불행에 대해서는 예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계속)      ☞ 김혁 문학블로그: http://blog.naver.com/khk6699 ☜  
130    바람과 은장도 댓글:  조회:4183  추천:51  2008-05-14
. 중편소설 .   바람과 은장도   김 혁      얇은 사 하아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비 일레라…  두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듯 날아가며  사뿐히 접어올린 외씨버선이여…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방울이야  세사에 시달려도 번뇌는 별빛이라…   - 조지훈의 “승무(僧舞)”중에서 (1)    바람없는 호수는 면경(面镜)과도 같다. 호수가에는 상록수들이 바자처럼 둘레를 치고 그 둘레의 저변을 따라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여있다. 하얀 의상의 녀인들이 그곳에서 노닐고 있다. 나무그늘에서 턱을 고이고 앉아있기도 하고 꽃가지를 꺾어 코밑에 대보기도 하고 호수물에 섬섬옥수를 담가보기도 한다.  “따가닥 따가닥…” 홀연 잦은 말발굽소리가 녀인들의 유흥을 비집고 들려왔다. 녀인들은 일제히 고개를 쳐들었다. 연미복차림의 신사 하나가 껑충한 가라말을 타고 다가오고있었다. 고수머리에 깊숙한 눈, 날카로운 코마루에 사랑스러운 턱을 가진 애젊은 신사였다. 신사는 천착할듯한 눈길로 녀인들은 하나하나 참빗질했다. 그 타는듯한 따가운 시선을 피해 녀인들은 하나 둘 머리를 떨구어버렸다. 신사의 눈길이 맨나중에 선 녀인의 몸에 와 멎었다. 신사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헛바람섞인 감탄이 새여나왔다. 첫눈에 선뜻 안겨오는 아름다움이 일신에 배여있는 여자였다. 고니처럼 미끈하게 뻗은 하얀 목에 태짐 하나 박힌 것이 신사의 눈길을 포박해갔다. 신사는 말등자를 밟고 내려 녀인쪽으로 다가갔다. 홀연 호수가 설레이였다. 기류를 이루며 파문을 이루며 물매미를 짓더니 돌고돌아 호수는 한장의 커다란 레코드음반으로 변해버렸다. “봄날원무곡”의 선률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신사는 하얀 장갑을 낀 손을 내밀었다. 녀인은 마다하지 않고 신사의 손을 받았다. 두사람은 가볍게 잔디우로 미끄러져갔다. 랑만의 왈쯔가 시작되였다. 녀인들은 곡조에 맞춰 두손으 사려잡고 노래를 불러주었다.     “봄날이 왔어요, 봄날이 왔어요.     아, 얼마나 아름다워요…”     “두부요- 뜨끈뜨끈한 두부 사세요!”     “콩물, 기름튀기요- “     홀연 하나의 악청이 무르익어가는 곡조 사이를 비집고 들어왔다. 현수의 입가에 실렸던 미소가 거두어졌고 잠기 자부룩하던 두눈이 번쩍 뜨이였다. 끈끈한 잠의 포승줄에서 풀려나온 현수는 마른기침을 꿀꺽 삼키고나서 두팔을 쭉 뻗으며 아흐흑 기지개를 켰다. 살구꽃이 망울을 터치는 계절이 왔지만 새벽대기는 아직 카랑하게 매웠다. 현수는 일어날념 않고 이불을 턱밑까지 당겨 덮었다. 바람벽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그곳에 달력 하나가 결려있었고 장발의 팔등신 미녀가 선정에 가까운 웃음을 던져오고있다. 현수는 그 달력 미녀의 시원히 뻗어내린 목을 지켜보았다. 그가 찾고저 하는 것이 보이지 않았다. 침대머리에서 담배갑을 찾아들고 한 개비 붙여물던 현수는 검댕이가 게발린 성냥가치를 들고 달력앞으로 다가가 그 미녀의 목에 점을 쿡 찍었다. 태짐같은것이 또렷이 박혀졌다. 그 “태짐”을 현수는 한동안 지켜보았다.   “우리 선생보다 못해…”  현수는 혼자말로 중얼거렸다. 옷장의 전신체경에 팬티바람의 건장한 동체가 비껴들었다. 현수는 쑥스럽게 웃으면서 식지로 달력을 문질렀다. “인공태짐”이 순식간에 지워졌다. 침대머리에 놓인 탁상시계가 막 일곱시를 가리키고 있다. 현수는 TV를 틀었다. 작달비 내리는 소리가 나며 화면에서는 눈꽃이 아물아물 흩날렸다. 현수는 손바닥으로 TV를 탁 쳤다. 화면이 나타났다. 흉부가 유난히 발달된 녀자가 5분간 건강미체조를 배워주고있었다.  “하나 둘 셋 넷…둘둘 셋 넷 머리를 뒤로 돌리며 허리도 함께 돌립니다. 팔은 위로 쳐들고 자, 하나 둘 셋 넷…둘둘 셋 넷”   현수는 그 박자에 보조를 맞췄다. 벅차게 팔다리를 저으며 또 한번 입속말로 되뇌였다.   “우리 선생보다 못해.”   “5분간 건강미체조”가 끝나자 가스로에 불을 달고 냄비에 라면 세개를 털어넣었다. 그리고는 체경앞에 다가가서 코밑과 턱에 허옇게 뻑뻑 비누칠을 해대기 시작했다.    예술단에서 거리쪽을 향했던 기숙사를 비워 영업방으로 대외에 세주는 바람에 독신자배우들은 세방살이를 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단위에서는 마지못해 세방비의 일부를 대주었다. 그만큼 세방살이 독신자가 몇이 못되였다. 무용조에는 장현수 한사람뿐, 악대에 둘이 있었는데 세사람이 세방 하나를 맡고 합숙하고있는터였다. 그나마 열련에 빠져있는 한사람은 거의 미래의 처가집에 붙박혀있는터여서 현수와 첼로 켜는이 둘이서 지내는 때가 많았다. 황보라는 괴상한 두자 성씨를 가진 그 친구를 현수는 그 괴까다로운 성과 이름을 제쳐놓고 직설적으로 “첼로”라고 불렀다. 생김생김도 첼로를 방불케 하는 비만형의 친구였다. “첼로”는 요사이 어느 나이트클럽에 가서 첼로 대신 전자풍금을 쳐주면서 일당 30원씩 벌군 했다. 상품경제 바람이 불어치니 “숭어도 뛰고 망둥이도 따라 뛰는” 형국이였다. 밤늦게 되면 나이트클럽의 그 많은 독실중에서 한칸을 찾아들고는 밤참도 얻어먹는 재미를 보고있는터에 현수는 그만 “독수공방”의 꼴로 되고만것이였다… 국수가 다 끓었다. 때와 같이 면도를 끝낸 현수는 파란 무우처럼 싱싱해 보이는 턱주걱을 기분좋게 만지면서 가스로앞에 마주선채로 국수를 건져먹었다. 절인 오리알 하나를 이마에 대고 딱 깨여서는 열심히 호벼먹었다. 다음 무대는 등장하는듯한 경쾌한 보법으로 살구꽃 화사한 거리로 뛰쳐나갔다.   (2)   “… 라는 제목의 무극입니다. 옛날 어느 한 고을에 사랑하는 남녀가 있었답니다. 사랑이 무르익어 혼수날까지 받아두었는데 총각이 그만 수자리를 나가게 됐지요. 두사람은 눈물뿌리며 재상봉을 기약했어요. 처녀는 몸에 지니고있던 은장도를 사랑의 징표로 총각한테 주면서 영원히 변심않겠다고 서약했어요. 총각은 매일이고 그 은장도를 만지고 들여다보고 하면서 험난한 역고를 치러냈지요. 드디여 귀향날자가 돌아왔어요. 그런데… 영원히 기다려주마하던 그 처녀는 그 기간의 고생을 이겨내지 못하고 고을의 어느 한 제 아비벌 되는 갑부와 눈이 맞아버렸어요. 총각은 처녀의 배신을 꾸짖으며 마음을 돌려세우라 권유하면서 사랑의 징표인 은장도를 내보였지요. 허나 처녀는 매정하게 그 은장도를 뿌리쳐버렸어요… 이에 총각은 은장도로 그만 처녀를 찔러버렸답니다. 그리고 은장도를 강에 내던지고는 자기도 그 강물에 뛰여들었지요. 이렇게 … 이렇게 아름다운 전설을 무대에 올려보는겁니다…”     차수경은 자기가 구상해왔던 무극의 경개를 감개에 젖어 이야기했다. 휴계실에서 그녀를 마주하고 개벙하게 둘러앉은 무용수들은 열심히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있었다. 차수경이 몇해간 뼈물러 창작해온 대형무극이였다. 3년에 한번 꼴로 년말에 있게 될 전국무용콩클에 이 극을 꼭 내놓으려고 고심하고있는 그였다. 그만큼 애젊은 나이에 1급무용가로까지 발돋움한 그녀의 창작은 언제나 남보다 신선하고 무거웠고 충격력이 있어 모두들 신중히 수긍해 들이고있는터였다.   “그런데… 장현수 지금 뭣하고있는거얘요. 멍하니 망석중이 돼가지고.”   차수경의 이야기를 들으며 눈 한번 깜짝이지 않고 사색에 잠겨있던 현수는 그제야 몽상에서 깨여났다. 고개를 떨구며 귀밑을 붉혔다. 방금전까지도 차수경선생의 젖혀진 옷깃우로 곱게 뻗은 하얀 목줄기에 박혀있는 까만 태짐을 쑥스럽게, 그리고 황홀경에 가깝게 지켜보고있던 그였다. “그담… 는 그게 또 뭐얘요?” 맨 등뒤에 앉아있던 무용수, 라고 점명된 녀자무용수는 주먹만큼 큰 사과하나를 들고 소리를 죽여 야금야금 뜯어먹다가 자기를 점명하는 소리에  엉겁결에 소리높여 응수했다.   “옛!” 그통에 웃음잔치가 벌어졌다. 먹새가 크고 무엇이든 잘 먹어주는바람에 “흡진기”라는 별호를 가진 그녀는  온 하루 이몸이 뻐근하게 씹어대지 않으면 직성이 풀려하지 않는 성미였던것이다.    “이제 두고봐요. 그렇게 이어대다간 몸집이 로씨야 아줌마처럼 돼가지고 무대에도 오르지 못하잖나.”    선생의 책망에 그 무용수는 헤식게 웃으며 등뒤에서 비닐구럭 하나를 어줍게 내밀었다. “잡숴보세요. 차수경선생님.” 구럭에는 철 아닌 사과가 수북이 담겨있었다.    “히야, 사과다, 사과!”     무대조형을 이루듯 여기저기서 손들이 번쩍번쩍 쳐들렸다. “가만!” 차수경이 “흡진기”의 손에서 사과구럭을 앗아냈다.    “의 턱은 조금 있다 내기로 하고…” 차수경은 방금전의 구상을 이어나갔다. 모두들 시무룩해졌다가 다시 진지한 차수경의 말에 귀를 귀울였다.     “…지금 우리 춤들이 태깔을 벗지 못하는 까닭은 표현방법과 수법들이 비슷하고 또 단일화 된데 있다고 보여져요. 에서는 이런 재래식격식을 버리려 해요. 완전히 파격해 버리는겁니다. 무대공간과 구도선사용에서는 일전에 써오던 평형식, 대칭식, 2등분식의 틀을 깨고 가- 만…” 손으로 형태를 지어가며 이야기하던 차수경은 구럭에서 사과를 끄집어냈다. 유난히 붉은 사과 두개를 남녀주역모양으로 복판에 놓고 푸르스름한 사과를 단역모양으로 배렬시키며 조형을 구축해냈다. “… 틀을 깨고 불평형수법으로 형태며 립체미를 자연 그대로 형상화해 줍니다. 자 보세요…”    차수경의 손놀림에 따라 사과들은 동(动)적인 모습으로 꼭마치 춤추는 무용수들의 모습으로 변조되여갔다. “붉은 사과 그러니 바로 저 주역은 내꺼다.” 장현수가 그 움직임을 자세히 지켜보며 입속말로 소곤거렸다. 오기가 가득 묻은 그 어조에 곁에서 남자무용수 하나가 그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임마, 너무 자신하지 마. 이 극단의 주역은 네가 뭐 도거리한줄로 알고있니?”     차수경의 격정에 넘친 무용강의가 한단락 끝나자 모두들 사과의 성찬을 벌려나갔다.    “헌데 차선생님, 우리 예술단에서도 처음인 이 대형극을 올리려면 30만원이나 든다고 하잖았어요?”    누군가 극의 운명을 괘념하듯 질문을 내들었다.   “네. 어제 지도부회의서 통과됐어요. 문화국과 예술단 10만원 대가로 하고 나머지 20만원은… 내가 맡기로 했어요. 찬조를 받아 온다든가…”    “네? 선생이요?”    “기실 30만원이란 많은 돈일수도 있지만 또 적은 돈일수도 있지요. 지금 동쪽단지에 짓고있는 호화 아빠트를 봐요. 비싼건 50만원, 제일 싼것이라도 20만원이나 하잖아요. 극만 공연된다면 집 한채의 향수에만 비기겠나요?” 차수경은 어덴가 결의에 어린듯한 어조로 말했다. 하디만 그 어조가 무거운 중하에 짓눌려있음을 모두들은 느낄수 있었다. 차수경의 손에서 유난히 큰 사과를 넘겨받던 현수는 어덴가 랭각되여가는 기분을 전환시켜보련듯 화제를 바꾸었다. “참, 사과맛이 일품인데.”    “때이르게 먹을수 있어 그렇지요. 한근에 4원50전이나 되는걸요. 알고나 잡숴요.”   “흡진기”는 성찬의 주인공으로 된 그 자체에 희열을 느끼며 득의연한 어조로 말했다.   “철을 당겨 먹는다, 딱 그것만 아니고… 사과는 모든 과일중에서 유난히 독특한 것, 뭐라할가? 사연이 많이 깃들어있는 과일이얘요!”    제법 사색이 되여 말하는 현수에게로 눈길이 일제히 쏠리였다.    “자 봐요. 인류의 시조인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서 이브가 아담에게 넘겨준 사랑의 징표가 뭐얘요. 바로 이 사괍니다. 사과! 그때 아담은 이렇게 사과를 먹고나서…” “야, 문자쓰지 마라, 지가 뭐 아담이라도 된듯한 기분으로 말해 제끼고있네.”    “아담이 장현수라면 이브는 또 누구예요? 가만. 방금 누가 현수씨한테 사과를 넘겨줬던가요?”    “흡진기”도 현수의 말을 꼬리물며 이죽거렸다. “, 허튼소리 말아요.” 웬지 차수경이 얼굴을 붉히며 소리질렀다.    “아담과 이브말고도 또 하나 있지.”     현수가 사과를 한입 떼물며 롱탕질을 계속 쳐댔다.     “사과를 따먹으라 귀띔해준 뱀! 징글징글한 뱀 말이얘요!” 현수가 뱀을 형용하며 험상궂은 모양을 짓는 바람에 “흡진기”가 “워메- ”하고 기급한 소리를 질러댔고 따라서 또 한번 웃음보가 터져올랐다. 차수경도 따라 웃으며 살며시 사과를 깨물었다. 그러다 새그러워 낯살을 찌프렸다. 그 찌프린 모습마저 현수에게는 아름답게 보였다.   (3)   “첼로”가 거울앞에 마주서서 넥타이를 조여매고있다. 머리를 정연히 벗어넘기고나서 턱밑에 돋은 여드름을 열심히 쥐여짰다. 출근할 때는 봉두란발에 아무 옷이나 대강 걸치고 초라한 행색을 짓던 그가 저녁에 나이트클럽에 갈 때면 각별히 몸단장에 신경을 쓰는것이였다. 침대우에 젖버듬히 누워 TV에 정신팔려있던 현수가 꼬집는 소릴 했다. “야야. 선뵈러 가는거냐? 어둑시그레한 구석에서 건반이나 두드려주면 고작인데 누가 널 보아줍시산다고 뿌리고 바르고 야단이냐.” “첼로”는 그 풍대한 체대에 걸맞게 사람좋은 웃음을 짓고나서 느릿느릿 대꾸를 했다.     “그럼 넌 뭐냐? 저녁마다 치고박는 저 무협편이나 보는게 네 생활의 전부냐?”    “야, 내가 그저 눅거리 영화에만 정신 팔려있는줄 아냐? 난 저 치고박는 무술동작들에서도 춤의 률동을 찾아본단 말이야.” “말 한번 잘 배웠다, 너.” “첼로”는 코김섞인 웃음을 웃었다. 그 비아냥이 흐르는 모습에 현수는 정색해지며 화제를 내들었다. “그건 롱담으로 치구, 차암, 시끌시끌한게 요즘 세월이다. 나야 합동공처지니 나가서 떡팔든 약팔든 괜찮지만 너희들은 뭐냐. 당당한 예술단 량반님네들이 무도장 한구석에 가서 치고 불고 아래선 좋다고 볼따구니 붙이고 손 쥐고 엉뎅이 흔들고.”    현수는 몸을 벌떡 일으키며 목청을 살렸다.    “네가 하는 직업 뭐냐? 음악의 황후로 불리는 바이올린의 아버지처럼 생긴 첼로 아니고 뭐니? 음악가의 인격이고 뭐고가 다 없고 우아한 예술이 술냄새, 커피냄새에 절고 유흥에 취해서 흥청거리고있으니.”    “첼로”는 여전히 느릿한 소리로 격정을 가볍게 받았다.    “우리 예술단서 아르바이트하지 않는 배우 몇이나 되니? 성악조, 악대, 무용조 통틀어봐라. 지휘가선생도 어느 초중학교애의 피아노교학을 해주고 있고 성악조서 그 벨칸토 잘하는 박씨있잖니? 그마저 요사인 밤가수로 여기저기 뛰여다닌다던데.”    “그래! … 벨칸토로 성에 가서도 1등, 2등까지 해옵신 분들이 그 좋은 목청을 바꾸어 염소감기앓는 소릴 하면서…” 현수는 벌겋게 흥분하며 말을 계속했다.    “온몸을 막 학질환자 떨듯하면서 하고 바보 같은 가사를 주어댈 때면 난 막 죽어버리고싶어. 염오감 그리고 염세감이 막 든단 말이야.” “너무 심각하지 마라. 얘, 너처럼 예술이요. 인격이요 하고 있다간 하늬바람마시고 살겠니? 그리구 요즘 세월엔 예술이요, 인격이요 하면서 정색해하는 사람 대체 몇이나 된다고 그래? 지금 세월엔 돈 없으면 예술도 허물어지고 돈 없으면 인격도 기운다.” 현수는 저도 모르게 어성을 높였다.   “차수경선생님 있잖니? 그리구 나 장현수 있고.”    첼로공명함 같은 불룩한 배에 혁띠를 조여매면서 “첼로”는 의연히 낮지도 높지도 않은 소리로 말했다.  “너 아직도 염분 더 보충해야겠다.”   “뭐야, 나보다 겨우 두달 앞선 놈이 시뚝하긴? 그래 넌 염분을 너무 자셔 옥체가 그리 좋으시냐?” 다시 히죽거리며 롱탕을 쳐대던 현수는 홀연 TV화면을 바라보며 동공을 키웠다. TV에서는 아릿답기 그지없는 녀인 하나가 나와 생리대 광고를 하고있었다.    “표, 부드럽고 편안합니다. 번거로운 나날에 녀성들의 건강은 , 가 지켜줍니다…”    “아니 저게 누구냐?…” 현수의 입에서 헛바람 섞인 소리가 새여나갔다. 철이르게 치마차림을 하고 나온 미모의 광고모델에게 현혹돼버린 감탄만이 아니였다. 우아하게 틀어얹은 머리, 부드럽고 그윽한 눈, 상아를 쪼은 것 같은 운두높은 코마루, 풍만한 오렌지빛 입술, 그아래로 연연히 흘러내린 하얀 목에 까만 태짐 하나… 도시녀성의 세련미를 일신에 풍기고있는 그 광고모델은 다름아닌 차수경선생이였다. 홀연 TV가 작달비내리는 소리를 내며 화면은 온통 아물아물 눈꽃으로 메워졌다. 현수는 침대에서 뛰여내려 TV를 박살낼듯 후려쳤다. 화면이 다시 밝아졌다. 분명 차수경이였다. 방금정의 광고대사를 다시한번 되풀이하고있었다.   “번거로운 나날에 녀성의 건강은 , 가 지켜줍니다…” 현수는 부르르 진저리를 쳤다. 현수의 눈에 차수경선생이 저렇게 즉물형으로 보이기는 처음이였다.    “선생님이, 선생님이 저런 광고를 하고있다니?”    “봐, 너의 지체높으신 안무가선생마저도 저렇게 구접스럽지 않은 광고를 하고있지 않니?”    “첼로”는 때나 만난듯 현수를 시까슬러주었다. 자존심이 상처를 받은 양 현수가 벌컥 소리소리 질렀다.    “야, 임마 여덟시가 넘었어. 네가 빨리 가서 톱질해야 그 주린 사내놈들이 다른 녀자 허리를 안아볼수 있지 않니? 그러니 빨리 꺼져! 가!… “ “역시 너는 염화나트리움을 더 보충해야겠어. 너무 격동하지 마라. 차수경이 너하고 무슨 사지어금이기에… 너의 안무지도, 과년한 로처녀, 그저 그런 정도인거지.”    현수의 흐려진 기분에“첼로”는 얼른 세집방을 빠져나가버렸다. 으깨진 심정으로 한동안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있던 현수는 체증기를 발설하며 TV의 채널을 드르륵 돌려버렸다. 다른 채넬에선 쏘세지광고가 나오고있었다. 드르륵 돌려버렸다. “회춘령”보약광고가 나오고있었다. 드르륵 돌려버렸다. 주권시장의 인상폭명세가 나오고있었다. 온통 상품과 금전이 란무하는 세계였다. 현수는 텔레비죤의 플라그를 콱 빼여버렸다. 하나의 광란하던 세계가 갔다. 창문을 드르렁 울리며 어스름이 내린 거리로 바람이 일기 시작하고있었다. 현수는 창틀에 붙어서서 바람이는 거리를 언제고 내다보았다.   (4)   무극 “은장도”의 훈련은 본격적인 시작단계로 들어갔다. 련습홀에서 차수경이 극조인원들에게 열심히 시범을 해보이고 있다.    “… 자 다음은 주인공 남녀의 열련장면입니다.” 반듯한 이마에 함함히 배인 땀을 씻어내리며 차수경이 장현수를 불렀다. “자, 장현수 나와봐요.” 웬지 아침부터 볼이 밤알처럼 부어서 훈련에 열중하지 않는 그를 짐짓 시범상대로 불러낸것이였다. 차수경은 현수의 두어깨를 손으로 잡고 외다리로 오연하게 선 학과 같은 자태를 지었다.    “…절주에 따라 자연스레 회전하다 중심을 남측의 팔에 주며 계속 한다리를 지점으로 다른 한 다리는 오금죽이기를 했다가 다시 높이 쳐듭니다. 남자분은 그 힘을 빌어 녀자분의 허리를 뒤로 꺾어…” 차수경이 말을 채 잊지 못하고 교성을 질렀다. 현수가 란폭함에 가깝게 차선생의 허리를 뒤로 꺾었던것이다. 그 사위대로 주저앉아버렸던 차수경이 허리를 부여잡으며 일어났다.    “아니, 싸리단 꺾고있는거얘요 지금! 좀 더 집중해서 해요.” 현수는 데퉁스레 다시 차수경의 자세에 수긍해나섰다.    “자 오른쪽 비껴 앞 사선방향으로 몸을 향하여 남자분이 이끄는대로 끌려갑니다. 다음 두팔은 기본위치에서…” 차수경은 또 한번 동작을 맺지 못하였다. 현수가 콱 잡아제끼는 바람에 위치보다 멀리 뿌리워나가듯해서 비칠거렸다. 팔이 쑥 빠지는듯했다.    “아니? 저치가 오늘 왜 저래?”    “식혜먹은 고양이상 해가지고.”    “돈거나 아냐. 선생하고 저게 뭐니. 시건방진 자식!”     좌중이 웅성거렸다. 차수경은 당혹한 표정으로 현수를 지켜보았다. 여태껏 없었던 일이였다. 그 누구보다 춤의 세세절절에 열성을 보여왔고 그로 해서 전업생들을 엎누르고 마냥 주역을 빼앗아왔던 장현수였던것이다. 장현수는 모두들의 눈총에도 전혀 개의치 않고 있었다. 외려 그 어떤 도전이 출렁이는듯한 눈길로 차선생의 원망과 의혹에 가까운 눈길을 맞받고있었다. “들어가요.” 차수경은 굳이 책망하지 않았다. 여전히 당혹함에 커다랗게 쳐들린 눈길로 현수의 훤칠한 뒤어깨를 지켜볼뿐이였다. … 퇴근하자바람으로 차수경은 박물관을 찾았다. 무대도구로 쓰일 은장도 실물을 찾아보려는것이였다. 뜻밖에도 박물관입구에서 장현수를 만났다.    “여긴 웬 일이죠?”     “조금 구경거리가 있어서요. 선생은요?” “나 여기에 소장해둔 민속복장이나 은장도가 없나 보러 왔어요. 무대도구를 본따 만들어야지요. 관장실이 몇층인지?” 차수경이 마악 들어가려다 무춤 맘춰섰다.    “아깐 어찌된 일이죠?”련습홀에서 있었던 현수의 반상적인 거동을 떠올리고 차수경이 심각히 채문하였다. 장현수는 대답을 기피하고 대신 청탁 하나 내들었다. “저와 함께 구경 하나 합시다. 그런 다음 답안 드리지요.” 현수는 2층전시청으로 올라갔다. 입구곁에 앉았던 수수깡 같이 마른 중국인령감쟁이한테서 관람권 두장을 사들었다.    “뭔데요?” 차수경이 오리무중이 되여 물었다. 현수는 입구곁에 붙여진 포스터를 가리켜보였다.    “천년전 미녀의 웃음을 보시렵니까? 강소성에서 출토된 천년전의 녀자시체  성 박물관에서 기증특별전시. 기상천외의 구경거리를 놓치지 말기를 바람. 관람권 성인 20원, 아동 10원.” 차수경은 순간 기겁을 했다.    “안돼요. 난 이런걸 못보아내요.”    “아니 선생님은 보셔야 합니다. 꼭 보셔야 합니다. 보고나면 느낌이 많을겁니다.”    현수는 뒤걸음치는 차수경의 팔목을 부여잡았다. 안들어가겠다고 부등부등 우기는 것을 현수가 강압에 가깝게 끌고 들어갔다. 전시청에는 사람이 몇몇밖에 없었다. 대청 한귀가 수족관(水族馆)의 커다란 어항을 방불케 하는 유리함 하나가 놓여있었고 너나가 호기심에 쳐들린 눈매로 들여다보고있었다. “보세요. 선생님.” 눈을 딱 감았던 차수경이 본능적으로 눈시울을 언뜻 쳐들었다. 깡깡 말라버린 수목 같은 눈 귀 코가 시커먼 문지광 같고 간신히 붙어 색바랜 의복사이로 살은 문드러져 떨어지고 륵골뼈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굴왕신 같은 형상 하나가 걸레처럼 그속에 구겨박혀있었다. 순간 기분나쁜 이질감이 들며 욕지기가 울컥 올라왔다. 차수경은 입을 막으며 덴겁하여 전시청을 뛰쳐나왔다. 층계의 란간을 부여잡으며 눈물이 쑥 나오도록 연신 헛구역질을 해댔다. 장현수가 어느새 따라나와 그곁에 섰다.    “왜, 왜 강요하는거예요? 왜 이렇게 무례해요?” 차수경은 눈귀로 배여나온 물멀기를 지우며 알수 없다는 표정으로 장현수를 쳐다보았다. 장현수는 머리를 숙였다.    “용서하십쇼. 헌데 선생님- “    장현수는 필요이상으로 목청을 한옥타브 높였다.    “선생님은 이런 생각을 해보셨습니까? 저 녀자, 저 전시청에 누워있는 천년전의 녀자 말입니다. 생전에 귀골높은 신분이였는지 비천한 천민이였는지 알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천여년이 지나서 자신이 전시품으로 될지 누가 알았겠습니까?! 본의 아니게 남들의 구경거리로나 되여버렸지요. 지금 사람들은 짜장 돌아버렸습니다! 돈에 미쳐버린거죠. 원체 저런 출토품들은 과학연구용으로 엄밀히 소장되여야지 않겠습니까? 헌데 돈에 미쳐 죽은 사람을 무덤에서 끄집어내고 또 광대처럼 내세우고있는겁니다…”    “그런데는요?”    벌겋게 흥분하며 달변을 쏟아내고있는 장현수를 보며 차수경은 그게 나와 무슨 관련의 끈이 있느냐는듯한 눈길을 던져왔다. 지페장들을 차곡차곡 모아쥔 전시청입구의 문지기령감이 련인들사이의 사랑싸움을 엿보는듯한 흥미로운 기색으로 이쪽을 유심히 지켜보고있었다.    “선생님도 그런 사람들의 틈바구니에 끼여 함께 하고있지 않나 하는 로파심이 들어서 그럽니다. 주제넘는지 모르겠지만두…”    장현수는 꽈배기처럼 배배탈린 소리로 말을 이었다.    “엊저녁 광고를 보고 텔레비를 박살내고싶었습니다. 그게 뭐얘요, 그게… 선생님은 신분있는 사람입니다. 국가 1급안무가란 말입니다. 이 바닥에서 선생님의 높이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몇이나 됩니까? 그렇게 지체높으신 선생이 그런 광고를 다 하다니요…”    차수경은 장현수의 말을 곰곰히 들어주고있었다. 그러다 나지막이 웃었다. 어덴가 자조의 그늘이 드리운듯한 웃음이였다.    “모두다 우리의 무극을 위해서였어요. 사실 광고제작사에서 높은 값으로 다가오기에 …”    “고작해야 2천원좌우겠지요. 그렇다면 그런 구접스런 광고를 몇차례나 해야겠습니까? 열차? 백차? 그러다 선생님의 아름다운 형상이 엉망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선생님은 단지 개체적 존재만이 아닙니다. 선생님은 우리 전 예술단의 징표로 되는 인물이란 말입니다. 어찌 그런 선생님을 일상용구 같은 허드레물건이나 지어… 그런… 구접스런 물건과 병령시킬수 있습니까?”    현수는 기성을 지르다싶이 하고 있었다. 차수경은 엷게 웃으며 현수의 어깨에 가볍게 손을 얹었다.    “그래 이 일로 그렇게나 화딱지 나셨어요? 여하튼 걱정해줘서 고마워요.”    장현수는 차수경선생을 직시했다. 그러다 선생의 빼여난 미모와 기품에 기가 질려 고개를 떨구어버렸다. 이윽고 용기를 내여 혀아래소리로 여태껏 뼈무르고있던 말을 또박또박 뱉어냈다.    “아마… 제가 선생님을 … 선생님을 사랑하고있나봅니다.”   (5)      장현수는 중심거리의 호화로운 아빠트단지앞에 한동안 서있었다. 시가지에서 가장 좋은 위치에 주택을 신건, 이 도시의 갑부들이 자신의 호기를 현시하고있는 곳이였다. 그 아빠트의 2층에는 장현수의 외삼촌이 살고있었다. 홀라당 벗겨진 머리, 쌍둥이를 잉태한 막달 산모같은 뒤주배… 장현수가 이 세상에서 가장 염오하는 사람은 단둘뿐이였다. 한사람은 오페라“오쎌로”중에서 간계로 오쎌로와 에디모스나의 사랑을 깨뜨린 이아고였고 다른 한사람은 바로 이 외삼촌이였다. 외삼촌은 장식회사 몇개를 차려 이 시가지에서 다섯손가락안에 꼽힌 갑부로 살쪘다. 돈가리에 높직이 올라앉자 그가 맨처음 한 일은 가정성원의 그루바꿈이였다. 조강지처를 버리고 자기보다 스물여섯살이나 어린 처녀애를 맞아들였다. 그 바람에 그 안해가 달리고있는 장식회사 트럭앞에 몸을 던져버렸다. 하나밖에 없는 누님인 장현수의 어머니가  꾸짖자 무지막하게 누님과도 절연을 선포했고 또한 타매하는 조카 장현수에게 귀쌈을 갈기고 발길로 차서 내쫓았다. 그때로부터 외삼촌은 장현수의 뇌리에서 가장 혐오스런 인물로 메모되였던것이다. 그렇게 근 3년간이나 찾지 않던 외삼촌의 집을 오늘 현수는 찾으려 하고있는것이다. 한동안 멈칫거리다가 현수는 용단을 내린듯 들숨을 길게 한번 긋고나서 아빠트의 2층으로 치달아올랐다.    땅거미가 내리고 도시의 상공으로 별이 하나 둘씩 들추어 나올 때 현수는 외삼촌의 집을 나섰다. 휘파람으로 “맥주통 뽈까”의 경쾌한 선률을 불며 , 엄지와 식지를 맞부벼 딱딱 소리를 내며 어깨바람이나서 길을 가는 현수의 얼굴은 발가우리하게 상기되여있었다. 사물사물 좋아지는 기분을 주체할길 없는 현수였다. 뜻밖에도 외삼촌이 일전의 험상을 바꾸고 느닷없이 이것저것 괘념의 물음을 묻기도 하고 저녁 한끼까지도 푸짐히 대접해주었던것이다. 그 무엇보다도 현수가 궁극스레 말을 돌려가다 낯에 두툼히 철판을 깔고 차선생의 무극의 협찬에 대한 의향을 내비쳤을 때 외삼촌이 커다란 흥심을 보였던것이다.    “차수경이라… 나두 그 녀자 얼굴 알고있다. 춘향이 뺨치게 잘생긴 녀자지. 너희들 단위서두 기둥으로 씌우고있는 것 같더구나. 요사이 광고에 자주 나오는 그 녀자 맞지? 그런 사람 가리켜 절세가인이라 하는거야!” 외삼촌은 연신 차수경에 대한 격찬의 말을 하였다. 그 용모에 심취됐던지 무극제작비용의 엄청난 액수를 듣고도 외삼촌은 놀라는 기색을 비치지 않았다. 그러면서 주말쯤에 한번 면담해보는 것이 어떠냐고 외려 자기쪽에서 아퀴를 지었던것이다.    현수는 경쾌한 선률우에 뜬듯한 보법으로 달렸다. 앞에 전화박스가 보였다. 설레발치며 급급히 전화버튼을 눌렀다.    “살랑살랑해요. 이 총각 전화통을 부셔먹고말겠네.”    전화박스속의 풍대한 몸집을 가진 아낙이 격동에 전화버튼을 피아노건반 두드려대듯하는 현수에게 온곱지 못한 눈길을 던졌다. 허나 차수경선생에게 한시바삐 이 소식을 알리고픈 현수는 그 데퉁스러움을 개의치 않았다. 벌씬 웃으며 그 아낙에게 거수경례를 척 붙여보였다. 그리고는 수화기에 귀바퀴를 바싹 붙였다.    “좋아도 해쌌네. 녀자친구 찾는 길인감.”    “뚜-“ 신호음이 울리더니 이어 말소리가 들려 왔다.    “여보세요?” 차수경선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은수저를 두드리는것 같은, 신변가까이에서 속삭이는듯한 그 자닝스런 목소리에 현수는 느닷없는 아슴푸레한 현기증의 발열을 느꼈다. 전화박스속의 염세스러운 모양을 지은 아낙을 방임한채 지어 자신이 전화를 걸고있다는 현실을 깜박 잊은채 현수는 환각의 늪에 몰입돼갔다.    현란한 조명이 내린다. 무대우로 운무가 굼실굼실 흐른다. 높아가는 곡조속에 차수경선생과 둘이서 무대가 좁다하게 격정의 춤사위를 벌린다. 관람석에서 갈채가 터져오른다. 카메라의 섬광이 번쩍인다. 생화바구니가 올라온다…     “여보세요?” 다시한번 소리높여 채문하는 소리에 현수는 정상상태로 환원할수 있었다. 허나 그 여흥의 동아줄에서 풀려나오지 못한듯 엉뚱한 통화를 하고말았다.    “사랑합니다. 차수경선생님!” 아무런 화답도 들리지 않았다. 무언가 곰삭이는듯 높은 숨소리가 들리더니 전화가 철컥 끊겼다. 현수는 한동안 멍해졌다가 다시 버튼을 눌렀다. “접니다. 장현숩니다. 선생님, 그런게 아니라…”    “허튼짓 그만두세요. 장현수! 다시한번 분명히 말해주지만 우린 동료지간이얘요. 적절히 말하면 사제지간이란 말이얘요.”    “선생님, 선생님 그런게 아니라…”    전화가 또 한번 끊겼다. 장현수는 덴겁해 다시한번 버튼을 눌렀다. 받아주지를 않았다. 장현수는 진득한 한숨을 내 쉬였다. 기좋게 키워가던 비누풍선이 금세 터져버려 울상이 돼버린것같은 실망감을, 그것보다 가배로 되는 실망의 중하를 현수는 느끼고있었다. 현수는 뜨직이 몸을 돌렸다.    “이봐요 저 총각, 전화비는 내잖고 례장감으로 쓸 작정인감?”   전화박스속에서 앙칼진 소리가 터져나왔다. 거리에서 찬바람이 일고있음을 현수는 그제야 느낄수 있었다.    “거스름돈은 안받으려나?- ”    장현수는 몸을 잔뜩 옹송그리며 옷깃을 여몄다. 가로등아래 외로운 그림자를 흘리며 미적미적 걸음을 옮겼다. 답답하고 울적하고 쓸쓸하고 외로왔다.   (6)        비가 내리고있었다. 현수는 뻐스정류소의 간소한 비막이 처마밑에 좋이 두시간은 서있었다. 정류소 맞은켠에 숯불갈비집이 보였다. 갈비집의 호화스로운 간판의 네온싸인이 비안개속에 더 눈부셨다. 갈비집앞에 “벤츠”한대가 주차해있었다. 현수의 외삼촌 차였다. 현수는 여태껏 그 차를 지켜보고있었다. 갈비집을 나와서 그 차를 탈 사람을 기다리고있는것이다. 밤은 이슥했고 게다가 비까지 내리고있어 거리에는 사람 하나 없이 한산했다. 점퍼깃을 올리고 두팔소매에 손을 집어넣은채 현수는 그 자리에 미동도 하지 않고 서있다. 올 들어 처음 비답게 내리는 억수의 비, 그 비에 유보도 변두리의 살구꽃이 떨어져내리고있다. 거리에 랑자한 그 락화를 보며, 그 슬프게 아름다운 꽃을 황홀이 지켜보며 현수는 단조로운 시간의 나락을 야금조금 기억의 편린으로, 그 편린의 날카로운 모서리로 썰어내고있었다.      현수는 춤을 좋아했다. 소학교때부터 소년궁 무용조에 뽑히여 기량을 보여온 그였다. 뭐 어째도 공부에 집념해서 대학엘 가야 한다!는 어머니의 모성애에 짙은 념려도, 사내놈이 분 바르고 연지 찍고 무대우에서 진동한동 달아다니는 꼴이 뭐냐?는 친구들의 조소도 그에게는 먹혀들어가지 않았다. 그만큼 한곡의 좋은 음악이면 밥을 거르고 들을수 있고 그 음조에 혼을 매달고 눈물 그들먹해지는 자신의 음악감각과 롱구선수를 방불케 하는 자신의 매끈한 신장만으로도 춤에 전생의 인연의 끈을 가지고 있다고 그는 생각했다. 현수는 목소리가 이상스런 음조로 뒤틀려지고 코밑이 별스레 가무스레해지던 사춘기의 그해, 맨처음 차수경선생의 춤을 보았다. 그때 차수경선생은 승무를 추었다. 발군(拔群)의 위세로 빼여난 미모, 하얀 베적삼, 너울거리는 긴 소매… 끈끈한 가락에 연연한 춤사위를 벌려가다가도 잦은 가락에 숨가쁜 경쾌로 신들린듯 무대가 비좁게 감동의 보따리를 하나하나 터쳐주는 차수경선생, 게다가 밝은 조명아래 붉은 입술, 하얀 옥치의 웃음과 득달한자의 그것 같은 그윽한 눈매. 그 서기롭고 아름다운 모습은 수천명 관중들을, 그리고 예술의 겹대문앞에서 바장이고있는 한 소년을 뇌쇄시키기에는 충분했다. 장현수는 기립하고 갈채를 보내고있는 관중들사이에 끼여 죽어라고 박수를 쳤다. 어느새 감동의 눈물이 눈확으로 그득 넘쳐나오고있었다. 그날 저녁 차수경선생이 장현수를 찾아왔다. 꿈결에 찾아왔다. 수경선생의 얼굴은 처음 보는듯하면서도 그렇게 익숙했고 또한 그렇게… 요염했다. 아침에 깨여나 장현수는 이부자리가 축축히 젖어있음을 부끄럽게 발견했다. 장현수의 소년은 이렇게 완수되였다. 양말 한짝 씻어보지도 못했던 그는 그 요자리를 힘겹게 씻어 가만히 널며 자신이 춤과 어쩔수 없는 연분을 가지고있고나 하고 다시한번 생각했다. 그후 장현수는 시적으로 벌린 브렉댄스콩클에서 단연 1등을 했다. 그 평심위원들중에는 차수경선생도 들어있었다. 차수경선생을 그렇게 가깝게 하고 선생의 손에서 증서와 상금을 받아쥐던 그때를 현수는 죽어도 잊을수 없었다. 그후 예술단에서 전국소수민족운동회를 맞으며 대형광장무를 기획, 군중역을 사회에서 초빙했는데 장현수가 쉽게 입선됐고 그중 출중한 표현으로 하여 파격적으로 예술단에 입적했던것이다. 이렇게 장현수는 차수경선생의 호흡곁으로, 예술의 전당으로 운명적인 한보를 내딛게 되였던것이다.    … 갈비집의 흔들이문이 열려졌다. 외삼촌의 잘 구워진 찐빵을 방불케 하는 얼굴이 나타났고 그 어깨너머로 차수경선생의 청초한 모습이 보였다. 두사람은 비에 쫓기다싶이 해서 차에 올랐다.     “저, 선생님-“      현수 달려가며 불렀다. 비소리에 두사람은 듣지 못하고있었다. 헤드라이트가 켜지고 엔진이 울리더니 차는 비속을 헤갈랐다. 현수의 연줄로 차선생과 외삼촌은 면담을 가졌고 장식회사에서 강개하게도 20만원의 협찬금을 주기로 일은 잘 진척되였다. 어느사이에 매스컴에서도 이를 보도했다. 민족문화의 축제를 위한 기업계의 훌륭한 동참이라고 높이 칭송했다. 여하튼 차수경선생에게 큰 조력을 줄수가 있어서 현수는 내심 기뻤다. 오늘저녁도 친구들없는 하숙집에 홀로 앉았노라니 차수경선생이 못내 그리웠다. 자기 주변에 아교풀처럼 끈끈히 도배된 선생의 형상을 지워버릴수가 없었다. 출근해서 매일 만나는 얼굴이였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둘이서 만나 무슨 이야기든 끝없이 하고싶었다. 그저 조용히 마주보고만 있어도 좋았다. 허나 차선생은 마냥 현수의 만남의 전화요청을 딱 잘라버리군 했다.     “장현수, 나에겐 현수보다 두살이나 이상인 동생까지 있어요. 씨도 덜 여문 소릴 그만두세요.”    “또 취한거나 아니세요?”     “오늘 지도부에서 무극의 남주역을 현수에게 맡기기로 초보로 합의되였어요. 그러니 허튼 생각 집어치우고 사업에나 집념하세요.”      이렇게 잘라버리군 했다. 그럴수록 차선생에 대한 현수의 경모와 련모는 장작이 덧놓여지는 잉걸불처럼 점점 더 세차게 타올랐다. 하여 선생의 집을 찾아가던둥 도중에 숯불갈비집으로 들어가는 선생과 외삼촌을 극적으로 목격하고 망부석처럼 굳이 가다린것이였다. 차가 비안개속으로 형체를 감추고있었다. 현수는 본능적으로 차를 쫓아 뛰였다. 차는 시가지 서켠으로 뛰고있었다. 외삼촌이 선생을 저택으로 전송하려는것임이 분명하다. 현수는 지름길로 차선생의 집을 향해 뛰여갔다. 코스를 뛰는 선수의 사명감처럼, 구명선을 뒤쫓는 물에 빠진자의 욕구처럼 정신없이 뛰였다. 진창길을 철썩철썩 밟으며 얼굴로, 입귀로 흘러내리는 비방울이며 땀방울을 푸푸 뿜어내며 억척스레 뛰고 또 뛰였다. 그러면서 웨치다싶이 되뇌이였다.    “사랑합니다. 선생님!”    “사랑합니다. 선생님!” 차선생의 집 가까이까지 뛰여갔을 때 마침 차의 도어가 열리고 선생이 나왔다. “감사합니다.” 차를 향해 손을 저어 보인 차선생이 손채양으로 비를 맞으며 현관으로 뛰여들어가려 했다. 현수는 달려가며 갈린 소리로 웨쳤다.    “선생님!- “    차수경이 무춤 멈춰섰다. 몸을 돌리고 손채양아래로 상대를 헤아렸다.    “아니, 장현수 어찌된 일이얘요! 이 큰 비에…”    “… 갈비집서… 나오는걸… 봤습니다… 그래서…”    현수 숨이 턱에 닿아 말했다.    “그래 여기까지 따라 달려왔단 말씀이세요?” 차수경은 악연히 놀라며 흰김이 서려오르는 현수의 머리며, 함씬히 젖어버린 일신, 흙감발이 된 신을 훑어보았다. 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거센 숨을 곰삭이느라고 모지름을 쓰고있었다. 그러는 그 얼굴에는 순진한 어린애 같은 행복한 표정과 사춘기의 불안감, 그리고 성숙에로 달리고있는이들의 고민과 추구가 혼반죽되여있었다. 차수경의 붉은 볼에 감동의 파장이 머물렀다. 자기보다 여섯살은 손아래인 제자에게서 뜻밖의 사랑의 고백을 들었을 때 차수경은 그저 웃고 지나치려 했다. 현수가 춤에 그 누구보다도 천부가 있다는것과 그 뛰여난 예술감응력에 가끔씩 놀라 다시금 그를 지켜본적 있었다. 그만큼 그에게 각근한 배려도 주었었다. 그리고 박력은 있지만 세련미가 없는 애젊은 피라고 생각했다. 그저 그뿐이였다. 그러던 얼마전 현수가 그에게 작은 열쇠 하나를 주었다. 설둥한 기색이 되여 그 열쇠로 자물쇠가 달린 노트를 연 순간부터 차수경은 그만 전설속의 온갖 칠정오욕이 담겨있다는 판도라의 함(盒)을 잘못 연것과 같은 심경이 되여버렸다. 그속에는 한 소년의 사춘기의 황홀한 꿈과 예술에 대한 미칠듯한 추구가 적혀있었다. 그리고 그 꿈과 축구의 구구절절과 갈피갈피에는 차수경의 형상이 짙게짙게 배여있었다. 차수경은 그 집요한 추구앞에서 일순 어쩔바를 몰랐다. 그저 어린아이 타이르듯 어르기만 했다.     “난 현수가 생각하는것처럼 그렇게 완전무결한 사람이 아니얘요. 그저 사업에서 남보다 조금 빼여났달뿐이죠. 여덟시간 밖의 차선생은 그렇지 않아요. 게으르고 매정하고… 지어… 남몰래 담배까지 곧잘 피우거든요.”     이렇게 타일러도 허사였다.     “선생님! 선생님의 결점까지도 모조리 사랑하고싶습니다.”      현수가 자신과 예술사이에 레루장처럼 긴 같기부호를 긋고는 자신을 련모하고 지어 우상화하고있다는데서 차수경은 놀라왔고 우습강스러웠고 자랑스러웠고 또 불안했다. 현수는 말없이 내리는 비속에 체념하고 서서 차수경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어둠속에 유난히 빛나고있는 그 시선을 피해 차수경이 덴겁히 눈길을 돌렸다. 매양 그 무어나 다 태워버리고 오조시킬듯한 눈길이였다. 그 눈길에 닿으면 빙점아래의 붉은 수은주도 대번에 가열점에로 쭉 오르며 용해되여 암장처럼 뿜겨나올 것 같았다.      “그만 … 돌아가요.”       차수경은 눈께까지 흘러내린 현수의 머리칼을 쓸어올려주었다. 그 손을 현수가 와락 부여잡았다.      “사랑합니다, 선생님!”       현수는 차수경의 허리를 감쳐안아 젖은 품으로 콱 끌어당겼다. 젖은 몸으로부터 한기가 느껴졌다. 불의식간의 놀라움과 한기에 차수경은 몸을 오싹 떨었다.      다음 순간 뜨거운 입술이 얼굴에 날아들었다. 차수경은 반사적으로 몸을 뒤로 꺾었다. 그러는 선생을 장현수는 놓아주질 않았다. 부잇한 비안개속에 뒤로 젖힌 하얀 목이 아름답게 보였다. 그 목에 , 그 까만 태짐에 현수는 떨리는 입술을 대였다. 현수에게는 뿌연 비안개가 무대로 비쳐주는 으늑한 조명처럼 생각되였고 비소리는 관현악의 부드럽고 아름다운 음조로, 그리고 자신과 선생은 생활의 거대한 회전무대우에 선 작은 배역으로 생각되였다. 밀고 부여잡고, 둘은 비속에서 조용한 춤사위를 벌렸다…   (7)       차수경이 무용련습홀의 거대한 거울앞에서 홀로 열심히 뛰고 있다. 차수경에게 있어서는 남보다 퇴근시간이 반시간가량 늦게 되여있었다. 그 반시간에 구상과 기량을 무르익히는데 버릇되여온 그였다. 그러는 차선생의 모습을 장현수는 마냥 문짬으로 지켜보아 왔었다. 장현수는 한동안 비싯거리다가 문을 밀고 무용홀로 들어섰다.     “엊저녁의… 무례함을… 용서해주십쇼.”      장현수는 남의 집 장독대를 부시고 훈장앞에 불리운 학생 같은 꼴을 지었다. 경직되였던 몸을 풀며 차수경이 한켠에서 타올을 집어들고 이마며 목으로 내배인 땀을 씻어내렸다.     “마침 잘 왔어요. 지금 극의 마지막 장절이 탐탁치 못해서 홀로 익혀보는중이얘요. 주인공이 사랑하는 처녀를 은장도로 찌르는 그 장면 말이얘요. 주인공의 하나하나의 동작에는 안타까움 그리고 허망스러움이 깃들어야 하는건데… 그저 상식적이고 평면화된 동작을 지어서는 안돼요.”      차수경은 현수 말은 못들은둣 완연 스승의 모습으로 돌의 표피처럼 딱딱한 얼굴을 지으며 말했다. 차수경이 한켠에 놓여진 록음기의 테이프를 풀었다. 무극의 곡조가 나왔다.      “자, 이리봐요. 잡념을 버리고 열심히 따라해요.” 차수경이 자세를 지으며 한켠에 멍청한 꼴을 짓고있는 장현수를 불렀다. 장현수는 그제야 덴겁해 응수하며 선생의 곁으로 다가섰다. 싱긋한 땀내가 섞인 체취가 담담히 끼쳐왔다. 장현수는 그 훈향을 흡 들이마셨다. 선생을 따라 돌고 뛰고 구을렀다. 홀연 선생의 목에 눈길이 가 닿았다. 하얀 목의 태짐부근에 발가우리한 입도장의 흔적이 알렸다. 비 내리는 엊저녁을 떠올리며 장현수는 불의불식간에 낯꽃을 확 붉혔다. 은연중 동작이 흐트러졌고 그 동작을 마무리짓지 못한채 현수는 비틀거렸다.      “안되겠어요. 그만.”      차수경이 거울속으로 장현수의 눈길을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 장현수는 반찬먹다 들킨 강아지 같은 표정을 지었다.      “다시 시범을 잘 봐요. 좀더 집중해서 해요.” 차수경이 곡을 다시 풀고 시범을 해보였다. 처절한 음조에 동작을 맞추던 그가 홀연 입을 열었다. 춤을 추면서 이야기했다. 방금전의 딱딱함을 벗은 어덴가 회한이 푸근히 담겨진 소리였다.      “나에게도…사랑했던 사람이 있었어요…”       장현수로서는 처음 들어보는 차선생의 사랑담이였다.     “지금 단위에 신진들이 많이 바뀌여 저의 과거를 잘 모를뿐이지요. 그이도 무용배우였어요…”      차수경은 여전히 춤을 멈추지 않고 말했다. 대신 춤에 깊이 빠져있었다. 아니면 과거에 대한 추억에 빠졌을지도 모른다.     “… 우린 무용파트너였어요. 그이가 리몽룡을 맡으면 제가 춘향이 되고 그이가 로미오를 맡으면 제가 쥴리에트로 되고… 모두들 하늘이 내린 짝이라 했어요.  그인 춤기량이 높고 완연예술에 빠져버린 사람이였어요. 우리가 지금 하고있는 의 초보구상도 그이가 내놓은것이였어요. 경모하고 사랑할만한 사람이였지요. 우린 지독하게 사랑을 했댔어요… 그러던 어느 한번…”     차수경의 춤사위가 조금 늦추어졌다. “… 림장의 생활을 반영한 무용을 만들려고 그인 림장으로 갔어요. 눈내리는 수장으로 말이예요. 생활체험을 한답시고 벌목공들과 함께 채목을 했지요… 그러다…”      차수경이 맴을 돌았다. 고통스러움을 잊으련듯 빠르고 격렬한 회전을 하였다. 다시 느린 보법으로 돌아와 차수경이 축축히 젖은 소리로 숨가쁜 추억을 이었다.      “그러다 그만 넘어가는 통나무에 다리를 치였어요… 다리… 한쪽다리가 아니고 두다리가 모두 엉망이 되였어요. 분쇄성 골절이 됐던거얘요. 치료의 가망은 전혀 없었어요. 나중에 다리를 자르고말았지요…”      차수경은 극정을 이야기하듯 기억의 반추에 삽입되였던 추억을 춤사위에 담아 풀어내리고있었다.      “… 그인 완연 절망했어요. 그인 무용가였어요… 무용가가 두다리를 잘랐으니 그 고통인들 어디에 비할 수가… 그가 옥생각을 먹을가봐 우린 그의 신변에서 예리한 철기며 약이며를 죄다 집어치워버렸어요… 그러나 그 누구도 그를 절망의 심연에서 구할수 없었어요… 그의 침방에는 제가 선물한 그림 한폭이 있었어요… 드가(德加)의 … 너무나 아름다운 파스텔화였지요… 그인 그 액자의 유리를 깨고 그 유리조각으로… 그 유리조각으로… 손목의 정맥을 베였어요…”      곡이 끊겼고 차수경은 춤사위에 맞춰 조용히 무너져내렸다. 그 동작 그대로 한동안 그 자리에 무너져있었다. 련습홀에는 썰물후의 모래사장 같은 참담한 침묵이 감돌았다. 그 한켠에 장현수는 돌처럼 뿌리내여있었다. 소절마다 추를 달아맨듯 무게를 느끼게 하는 그 말마디에 가슴이 먹먹해오는 감정의 굴절에 빠져버린 그였다. 이윽고 차수경이 몸을 일으켰다. 타올로 눈언저리를 문질렀다. 다시 스승의 그것과 같은 메마른 표정이 그의 얼굴에 지어졌다.     “자, 오늘은 이만해요.”     차수경이 휴게실로 가려 련습홀의 문을 열다말고 몸을 돌렸다. 여전히 그 꼴 그대로 서있는 장현수를 바라고 나직이 한마디 했다.     “그후로 전 모든 사랑을 물리쳐버렸어요. 기실 전 이미 시집간 녀자얘요. 예술에게 시집가버린거죠.”   (8)         일요일, 장현수는 해종일 네거리를 헤매고 다녔다. 시가지 변두리의 자그마한 례물점까지 뒤져서야 원했던 그림 하나를 살수 있었다. 정교하고 사치한 액자에는 파스텔화 한폭이 끼여져있었다. 하얀 의상차림의 무용수가 무대복판에서 아름다운 춤자태를 짓고있는 그림이였다. “참 좋은 그림이죠. 지금 세월에 인상파대가 드가의 명작까지 알고 사가는 사람이 드문데…” 월봉의 3분의 1을 잘라서 서슴없이, 그것도 희색이 만면해서 그림을 사고있는 장현수를 보고 점원은 알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장현수는 곁들어 라이터도 하나 샀다. 점화단추가 붉은 심장모양으로 된, 짤깍 켜지면 불과 함께 명곡 “솜다리”의 곡조까지 은은히 들려오는 앙징맞게 예쁜 라이터였다. 하숙집으로 돌아와 장현수는 그 라이터의 한귀에 예리한 칼끝으로 무언가 새겨넣었다. 도금칠이 벗겨지며 “장현수”라는 이름 첫자 자모중의 ㅈ자가 새겨졌다. 사랑의 징표삼아 장신구 같은 라이터를 먼저 선물하고 “춤추는 무녀”는 몇달후 정월께, 선생의 생일날에 드리려는 들큰한 환상을 하였다.      저녁엔 합숙하고있는 “첼로”와 함께 한식관으로 갔다. “첼로”가 술 한잔 사겠노라고 잡아끌었던것이다. 두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용납해낼수 없으리만큼 풍성한 음식이 차려졌다.     “아니 오늘은 이게 어찌된 일인감? 자기 머리비듬도 남이면 주잖던 첼로님께서…”      구두쇠로 통하고있는 친구의 반상적인 거동에 현수는 동공을 키웠다. “먹어라 먹어.” “첼로”가 사람좋은 웃음을 지으며 현수앞에 찬을 자꾸 집어주기만 했다. 술이 몇순배 돌고 술기운이 화닥화닥 피여오르자 “첼로”는 그제야 본제를 꺼내들었다.     “이것이 우리들사이의 으로 될것 같다.”     “건 또 어느 장단에 붙여 하시는 말씀인지…” 김치찌개를 훌훌 불며 떠마시던 현수가 경아의 낯빛을 지었다.     “나 직업바꿈을 하려고 그런다.”     “네 그 풍만한 옥체에 싸이판으로 로무 나가려 그러니?”     “아니 롱담 아니고 진짜야!”      “우리 예술단이 메마른 시국에 적만 남겨두고 홀라당 빠져 굿이나 보려구.”      “아니 완연 버렸어. 지금 세월에 직업이 다 뭐니?”      “뭐? 버렸다구? 대체 어떤 직업이기에? 어디 대통령자리라도 비였더냐?”      “멍첨지한테로 가려고 그런다.”     “멍첨지라니?”     “멍멍! 강아지 말이야. 애완견사육회사 있잖니?” 장현수는 입에 물었던 맥주를 푸! 내뿜고말았다. 입가에 맥주거품이 게발린채 네거리에서 낯도깨비나 만난 기색을 지었다. 호주머니를 부산히 뒤지며 담배를 찾았다. “첼로”가 복무원을 불러 “락타”한갑을 요구했다. 담배를 절반쯤이나 태우고나서야 현수가 입을 열었다.    “너 돌았다. 완전히 돌았어.”    “막지 마. 그리고 비웃지도 마, 난 이미 용단을 내렸어.”     “너 네가 어떤 신분인지 알고나 있니? 넌…”     “첼로”는 현수의 말을 중등 잘랐다. 현수의 본을 내여 말을 받았다.     “알고있어. 를 다루는 연주가야. 하지만 지금 세월에 음악만으로는 허기진 배를 못말려.”    “그렇다고 그 연주가의 손으로 강아지 털이나 쓰다듬고 강아지 똥이나 쳐대야 한단 말이냐?” 현수는 숭어마냥 몸을 벌컥 솟구며 열기를 뿜었다.    “그건 비단 제 자신의 인격을 낮추는것일뿐만아니라 신성한 음악을 모독하는거야. 아무리 애완견장사가 돈벌이 잘돼도 그렇지. 그래 네 존안에는 음악이고 예술이고 개보다 못해보이느냐?”  “교과서 읽지마. 넌 아직 세상돌아가는 리치에 참눈이 밝지 못해…”    “첼로”는 담담한 기색으로 현수의 상설 같은 노기를 가볍게 받았다. 그 무여지한 배포유에 현수는 그만 기가 딱 질렸다.     “됐다 됐어! 소귀에 첼로타기로구나. 에이- 김샌다. 술이나 따라아, 임마!”    현수는 억병으로 맥주만 벌컥벌컥 들이켰다. 현수가 소리소리 지르는 바람에 무슨 변고라도 생겼나싶어 한식관 마담이 뛰여왔다. 이미 취기가 오른 현수는 마담을 보고 피씩 웃어보였다.     “별일없을테니 걱정말아요. 아줌마, 친구사이에 한잔 들어가니깐 너무너무 좋아서 그래요. 그러게 자꾸만 걱정스런양 하지 말라니깐요. 우린 예술단서 일봅니다. 난 춤추고 저 놈은 첼로켜고, 자 봐요, 아줌마. 이 자식 꼭 마치 챌로처럼 생겼죠…”     현수는 “첼로”를 등뒤로 껴안고 그의 풍대한 배를 손가락으로 박자 짚으며 다른 손의 식지로는 첼로의 코밑에 대고 밀고 당겼다. 마담이 풀럭 실소를 뿜었고 곁두리의 복무원들도 그 모습이 재미나다는듯 기침소리처럼 쿡쿡 웃었다. 그 웃음이 멎기도전에 현수의 장난기 묻었던 얼굴이 험상궂게 변조되여갔다.     “그런데 이 첼로가 지금 줄이 끊어져버렸어요. 망가지고있단말이얘요!” 하면서 현수는 주먹으로 “첼로”의 그 풍성한 배허벅을 모질게 들이박았다…     “첼로”는 취하여 자기를 주체하지 못하며 자꾸자꾸 무너져내리는 현수를 끌다싶이해서 하숙집으로 향했다. 밤바람이 불어왔다. 여름날의 혼탁함을 실은 바람이였다. 갑갑해난듯 현수가 자축자축 활개치며 네거리가 터져라 하고 노래를 불렀다. 이딸리아민요 “여름날의 마지막 장미”의 구절이였다. 악청을 지르다싶이 노래를 불렀다.     “여름날의 마지막 한송이 장미가 /피여나고있네/ 장미의 모든 반려는 죽어갔다네/ 그래도 장미는 계속 피여나려 하네…”   (9)       수확의 계절에 무대에 올린 “은장도”는 풍요론 수확을 가져왔다. 관중들이 접하기 어려운 무극극종이였지만 번마다 만좌를 이루어 예정했던 공연기일을 연장해야만 했다. 그에 따라 외성의 조선족잡거지역들을 돌며 공연해 역시 선풍을 일으켰다. 여느 매스컴이 말하다싶이 “극은 그 묵직한 예술력량으로 불황의 늪에 빠진 연예계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키고”있었다. 이날은 선전부 부장이며 문화국 국장이며 주요지도자들이 극을 관람하고 극에 높은 격찬을 주었다. 극이 끝나자 배우들은 스스로 밤시장에 모여 축하의 성찬을 벌렸다. 주역을 맡은 현수의 기쁨은 그 누구보다 절정에 닿아있었다. 그런데 웬지 그 성찬에 녀주역이며 안무인 차수경선생이 보이지 않았다. 차선생과 이 격정을 함께 나누고픈 현수는 저으기 허전한감이 들었다. 며칠전 어줍게 라이터를 선사했을 때  소리없는 웃음과 함께 말없이 받아주던 차선생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라이터로 담배 한가치를 붙여물고 어스름이 내리는 창가에서 춤에 대한 구상(혹은 저돌적인 이 제자에 대한 생각?)을 하고있을 차선생을 그려보았다. 들큰한 웃음을 입귀에 물며 현수는 기쁘게 술을 많이 마셨다. 밤은 자정으로 다가온다. 홀로 하숙집을 향할 때까지도 현수는 기쁨과 격정을 곰삭이지 못하고 있었다. 중심거리를 지나치던 그의 눈에 외삼촌의 집이 보였다. 늦은 밤이였지만 불이 밝혀져있었다. 현수는 저도 모르게 외삼촌의 집으로 치달아 올라갔다. 부풀디부푼 이 격정을 아무와라도 함께 나누지 않으면 그 체증된 기쁨에 질식할것만 같았던것이다. 2층으로 올라가 조금은 미안쩍게 허나 상기된 얼굴로 현수는 초인종을 눌렀다. 응대가 없다. 다시한번 길게 눌렀다. 역시 응대가 없다. 실망감을 안고 층계를 내리는데 절컥 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 잠옷바람의 외삼촌이 문을 반쯤 열고 기웃거리고 있었다. 아 외삼촌!” 현수는 반색해하며 뛰여갔다.      “현수로구나. 헌데 오밤중에 왜?”    “한밤중인데는요. 외삼촌네 집인데 그런 허물도 세워야 합니까?”     현수는 끼니때 찾아온 손님을 보듯 귀찮은 표정을 짓고있는 외삼촌을 밀치다싶이하며 접대실로 들어가 쏘파우에 벌렁 주저앉아버렸다. 잠옷깃을 여미며 한켠에 켕긴 표정으로 섰는 외삼촌을 보며 현수가 말했다.    “극이 잘돼서 너무 기뻐 그럽니다. 여하튼 외삼촌이 고마웠어요. 그렇게 큰 도움을 주어서.”     외삼촌의 얼굴에 어덴가 힘든 웃음이 지어졌다.    “오늘 령도들도 관람하러 갔댔다면서. 전국콩클에 이 극을 내보기로 합의가 다된 셈이더라. 래일저녁 내 한상 차리고 단장님과 배우들을 청할란다. 축하해줘야지.”     외삼촌은 역시 그 자리에 엉거추춤 선자세로 말했다. 그러면서 자주 침실쪽을 곁눈질했다. 흥분의 도가니에 흠씬 빠져들었던 현수는 뒤늦게야 외삼촌의 궁한 표정을 읽어낼수 있었고 따라서 옷걸이에 걸려있는 녀자용 핸드빽을 보아낼수 있었다. 딸 같은 녀자를 맞아들이고 전처를 비명에 가게 하며 야단법석을 떨던 외삼촌은 그 애젊은 처녀와도 두해를 채 지내지 못하고 갈라져버렸다. 그리고 여태 혼자서 지내고있는터였다. (령감태기. 그러니 가만히 군재미를 보고있었고나. 실로 안스러운 걸음을 했는걸.) 현수는 침실쪽을 곁눈질하며 속웃음을 웃었다. 허나 다음 순간 버림받은 외삼촌댁의 참사가 떠올랐고 녀자를 주리게 밝히고있는 외삼촌에 대한 염오가 욱 치밀어올랐다. 황홀함이 끊기고 체증된 심경이지만 조카인지라 축객령은 내리지 못하고 오만상만 찌프리고있는 그 모양이 얄밉고 우스워 현수는 배포유하게 그 자리에 눌러앉아 떠날념을 않았다. 악동들 같은 장난기 묻은 웃음을 지으며 탁자우에 놓인 담배갑에서 담배 한개비를 꺼내물었다. 그러면서 딴전을 부렸다.     “외삼촌, 이 조카의 연기가 괜찮았죠?”     “응 좋았다, 좋았어.”      외삼촌은 다른 곳에 눈을 팔며 대답을 괴여올렸다. 현수는 터져나오려는 웃음을 꿀꺽 삼키며 라이터를 켜들었다. 불이 확 일었다. 그리고 음악이 터져나왔다. 낮고 연연한 가락이였지만 현수에게는 신경을 지끈 란타하는 질타성처럼 들렸다. 현수는 몸을 흠칫 떨었다. 명곡 “솜다리”의 음조였다. 현수의 입에서 담배가 떨어져나갔다. 현수는 라이터의 뒤면을 뒤집어보았다. 커다랗게 커다랗게 클로즈업되며 현수의 시야로 예리한 창끝처럼 박혀들어오는 “ㅈ”! 현수는 라이터를 팽개치며 몸을 벌떡 일으켰다. 앞을 막아서며 기급한 소리를 지르는 외삼촌을 밀치며 침실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시몬스 침대우에 이불을 잔뜩 끌어 머리까지 뒤집어쓴 몸뚱아리가 보였다. 현수는 달려들어가던 그 서슬대로 이불을 콱 제껴버렸다. 풍만한 알몸뚱이를 한껏 옹송그리면서, 하얀 살갗을 한사코 가리면서 얼굴을 죽어라고 베개에 틀어박는 녀자… 그 와중에도 그만이 가질수 있는 유연하고 아름다운 목에 박힌 태짐을 현수는 분명히, 분명히 보았다. 현수의 수정체에 불이 피여 황황 일었다. 현수의 입에서 괴상한 절규가 터져올랐다. 현수는 미친 사람처럼 침방을 뛰쳐나와버렸다.     층계를 달아내리다 넘어져 콩단처럼 뒹굴었다. 아픔이 느껴지지 않았다. 깊은 호수에서 악어에게 쫓기는 려행자처럼. 깊은 수림에서 늑대에게 쫓기는 심마니처럼, 허깨비에 놀라 쫓기는 야행자처럼 죽어라고 뛰고 뛰였다. 밤택시 하나가 그의 앞을 스치다 까악! 쇠갈기소리를 내며 급정거했다. 머리가 불쑥 나오고 욕설이 터져나왔다.    “죽고싶어 환장냐? 쌍놈새끼!” 허나 택시를 방임한채 욕설도 듣지 못한채 현수는 뛰기만 했다. 그러다 그 체력의 한계를 넘고 또 넘어서 더는 지탱하지 못하고 가로등을 짚으며 길녘에 서버렸다. 단김을 헉헉 뿜어내였다. 하늘 향해 머리를 한껏 젖혀버렸다. 밤하늘의 자그만 별들이 소슬한 가을바람에 오돌오돌 떨고있었다. 안주하지 못한 령혼들이 방황하는것 같은 별, 그 별이 현수에게는 뭉근한 시각적 괴로움이였다. 현수는 머리칼을 집어뜯으며 하늘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     “아! 아!! 아!!!”     응고된 슬픔을 도무지 깨뜨릴수가 없어 목울음도 뿜겨나오지 않아 그저 고함만 지르고 또 질렀다.   (10)     장식회사에서 마련된 축하연회는 시가지에서도 가장 호화로운 회관에서 있었다. 모두들 즐거워하며 식탁에 둘러앉았다. 현수만이 침체된 모습이였다. 염병을 앓고난듯 표상이 우울하고 해갈했다. 여느때와 달리 빗지 않고 눈께까지 흘러내린 머리칼사이로 사람마다를 째려보고있었다.     “다음은 우리의 무극에 두터운 협찬을 주신 장식회사의 최경리께서 축하의 말씀이 있겠습니다.”     필줄 모르는 깡마른 체구의 단장이 평소와는 달리 필요이상으로 격동하며 소리높여 말했다. 박수가 터져올랐다. 한동안 지속된 요란한 박수가 끊겼다. 그런데 한사람의 박수소리만은 끊길줄 몰랐다. 현수였다. 의자에 젖버듬히 앉아 현수는 야유어린 자세로 박수를 짝짝 쳐대고 있었다. 곁에서 팔을 당겨내려서야 박수는 멎었다. 현수의 외삼촌이 비대한 몸집을 힘들게 일으켰다. 마른기침을 두어번 짜내고는 입을 열었다.     “에- 우리는 무극 에 많은 돈을 협찬했습니다. 허나 민족문화의 번영을 기리는 의미에서 본다 할 때…” 또 박수소리가 울렸다. 한사람의 박수소리였다. 현수였다. 곁에서 덴겁해하며 그의 팔을 부여잡았다. 외삼촌이 마른기침을 또 한번 깇고나서 말을 이었다.     “…민족문화의 번영을 기리는 의미에서 본다 할 때 이 돈은 그렇게 많은 돈이 아니라고 봅니다. 또한 아주 유용하게 쓴 돈이라고…”     최경리가 밤새껏 구사해낸 화려한 연설은 또 한번 현수의 박수소리에 끊겼다. 이번에도 곁에서 제지를 했고 단장의 아니꼬운 눈초리가 질러왔다. 최경리는 말을 채 마무리지 못하고말았다. 현수쪽을 힐끗 건너다보고나서 어색한 웃음을 띄우며 잔을 추켜들었다.     “자! 그런 의미에서 우리 다 함께 잔을 듭시다!”    모두들 의자를 덜컥이며 일어나 잔들을 맞쪼았다. 허나 현수만이 그 자리에 미동도 하지 않고 앉아있었다. 무용조의 친구가 그를 당겼다.    “너 오늘 왜 그래? 기쁜 날인데 한잔 들어야지.”    “나 술 끊었다. 그저 약수면 돼!”   그 친구는 알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현수의 컵에 약수를 듬뿍 부어주었다. 현수는 한모금 찌우다가 짐짓 오만상을 찌프렸다.    “이 약수가 왜 이래? 분명 가짜저질품이야. 어이, 복무원- “     애된 얼굴을 가진 처녀접대원이 달려왔다.    “이 물맛이 그닥잖구만, 표 약수가 있나?”     말세가 트집스러웠다. 인차 약수병이 바뀌였다.    “어? 이 물은 더 한심해. 수도물을 그대로 넣어 팔잖아.
129    뜨거운 양철지붕위의 고양이 댓글:  조회:4686  추천:62  2008-04-03
. 중편소설 .   뜨거운 양철지붕위의 고양이 (제3회 "김학철 문학상" 수상작품) 김 혁   놈은 멋있었다. 놈은 부드러운 순백색의 털을 가졌다. 눈빛은 짙은 에메랄드색이다.     삼각형의 귀, 엷은 핑크 색의 입과 동침 같은 은빛수염, 입 벌리면 드러나는 호랑이의 그것 같이 날카로운 렬육치(裂肉齒)...    견갑부(肩甲部)에는 감색의 털이 조금 섞인 나비 모양의 무늬가 있다. 목과 가슴의 풍성한 털이 인상적인데 조그마한 녀석이 그 무슨 사자처럼 갈기를 가지고 있다.    꼬리는 길고 풍성하며 높이 추켜 올라가 있다. 원산지가 노르웨이, 인위적으로 교배된 품종이 아니라 여러 대를 거쳐 북유럽의 춥고 혹독한 환경속에서 살아남은, 자연선택에 의해 탄생된 품종이라 한다. 성격이 까칠한듯 하지만 아빠트에서도 곧잘 적응을 하는 장모종(长毛种)의 고양이, 애묘인(愛猫人)들의 총애를 무척이나 받는 놈이다.     그런데… 나는...  놈이 싫다.     고양이를, 우리 집에서 1년도 더 살아온 고양이를 버리기로 했다.     1 한 잡지사에 있는 동료에게 고양이를 주기로 했다. 편집부에서 시 편집을 맡고 있는 후배이다.    -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 중에는 예술에 종사하는 사람이 많대요. 신비스러운 이미지와 개인주의적 성격이 예술가들에게 공감을 준다고 할수 있죠. 외국영화서 보면 깃털 펜을 든 시인 곁에 탐스러운 털을 가진 고양이가 몸을 웅크리고 있는 장면이 자주 나오지 않아요. 시 편집이 고양이의 턱밑을 간질이자 놈은 가래 끓는 듯 골골거리는 소리를 내며 그의 품에 머리를 기댔다. 감사의 표시로 한턱 쏜다며 후배가 퇴근길에 맥주집으로 청했다.     - 근데 선배님은 왜 고양이를 안 키우려 하세요?     술 몇 잔이 돌자 시 편집이 나를 보고 물었다.     - 고양이를 왜 안 키우냐고? 음... 그냥    후배의 진지한 질문에 어눌하게 입술을 움직이다 나는 애매한 대답을 주고 말았다. 그리고 그 질문에서 한 녀자를 떠올리고 말았다. 고양이 같은 호동그란 눈매를 가진 한 녀자를.    그녀는 마거릿 미첼의 작품을 각색한 동명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녀주역을 꼭 닮았다. 주인공 스칼렛 역을 맡은 배우 비비안 리가 평소에 “고양이 눈매를 가진 녀자”라 불렸듯이 둘의 눈매는 닮은 데가 있다. 그래서 그녀의 별명을 내가 “비비안 리”라고 지었다. “비비안 리”는 내 소설의 애독자이다. 처음에는 문학지에서 나의 략력에 실린 주소를 보고 조심스레 문안메일이 왔다. 나의 전부의 소설을 읽었다고 했다. 그리고 몇부의 소설에는 깊이 빠져있었다. (실은 나 스스로 보기에도 별로인 작품임에도 말이다.) 소설에 대한 나름대로의 감수와 작가에 대한 궁금증 등으로 메일이 몇 번 오간 뒤에 그녀에게서 만날 수 없겠냐는 간청이 왔다. 그래서 만났다. 요즘같이 문학의 위상이 땅바닥에 떨어진 시국에 팬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팬 쪽에서 만나고 싶다는 청구는 과히 기분 나쁜 일이 아니였다.     어느 봄날, 그녀가 자주 간다는 차집에서 만났다. 들어서는 그녀를 보는 순간, 즐거운 기대나 궁금증 같은 것을 가지지 않았던 나는 테이블에서 엉거주춤 몸을 일으키고 말았다. 우리가 흔히 보아온 녀성문학인이나 문학애호가라면 두터운 도수안경에 복고적인 풍의 옷차림의, 머리는 비상하나 외모는 평범하기 짝이 없는, 지어 못나기까지 한 이들이 다수였다. 하지만 그녀는 이런 기존의 인상들을 엎질러버리며 미려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배시시 웃어 보이며 들어서는 모습이 더없이 당차고도 단아했다. 이른봄이라 사람들의 옷차림은 아직 두껍고 칙칙했지만 그녀의 복장은 계절을 앞질러 엷고 화사했다. 블루의 상의와 스커트가 매치 되는 투피스 차림, 패션 잡지를 한 페이지 찢어 놓은 그림 같았다.  부드럽게 웨이브 진 긴 머리, 선연한 주홍색 립스틱, 핑크 빛 아이새도우(眼影)... 본능적인 관능미와 정제된 세련미가 어우러져 묘한 분위기를 도출해내고 있는 녀자였다. 못나게도 나는 흥분하고 말았다. 엄지로 안경테를 연신 추어올리며 오랜만에 문학이니 인생이니 하는 대단한 명제에 대해 감상적이고도 격조 높게 담론했고 그녀는 핑크 빛 아이새도우를 바른 눈시울을 깜박이며 들어주었다.     그 후로 우리는 자주 만났다. 고료나 편집비가 나올 때면 나는 그녀를 불러서 같이 술을 마셨고, 그 동안 묵혀두었던 이야기들을 털어놓곤 했다. 얼굴바탕이 좋은 녀자들에게서 흔히 보이는 가식이나 허영 같은 것이 조금 보이긴 했지만 녀자는 총명, 령리, 눈치 따위로 끝내주는 녀자였다. 그 무렵 나는 천사가 따로 없다고 믿고 있었다.    순백색의 털에 에메랄드빛 눈을 가진 장모종의 고양이, 고양이는 이런 그녀가 키우던 고양이였다. 그녀처럼 고귀한 품종의 고양이, 그런데 지금 나는 그 고양이가 싫다. 내가 버리려던 참에 내여준 고양이를 받아 안고 괜스레 흥분하는 시 편집과 술을 억척스레 마시고 집으로 돌아왔다. 문을 따자 언제 나와 같이 자잘한 생필품들이 너절너절 널려있는 빈방, 어지러움과 고요가 마중한다. 아무렇게나 던져져 있는 리모컨을 찾아 들고 TV를 향해 버튼을 눌렀다. 고요가 싫어져 집에 들어서면 내가 제일처음 하는 동작이다. TV는 왁자하니 소란한 소음을 쏟아낸다. 지루한 드라마 프로는 건너 띄고 오락쇼 프로를 틀었다. 사회자가 입담을 자랑하고 무대아래우가 웃음으로 자지러진다. 하지만 화면 가득 메운 웃음소리도 나의 기분을 상승시키지 못했다. 소리가 엄청 높았지만 볼륨을 조절하기조차 귀찮아져 버려둔채 나는 그대로 쏘파우에 무너져 내렸다. 안해가 한국으로 나간지 어언 7년째이다. 그때 겨우 걸음마를 타던 딸애가 이제는 학교를 다닌다.    몸이 잰 안해는 그 누구보다 순발력이 있어서 사람들은 내게 처복이 있다고들 했다. 출국 붐에 세상이 들썩거리자 안해가 가만있을리 없었다. 작가님이라 우러러보고 시집왔더니 책에서 읽은 거 빼고는 아는 게 없는 나를 두고 식상한 나머지 안해는 돈벌이를 위한 출국을 유일한 비상구로 삼았다. 나는 그런 안해를 막지 않았다. 막을 수도 없었다.     남들과 근사하게 아니, 남보다 더 잘사는 꿈에 신명을 걸고 시악을 박박 쓰는 안해에 의해 우리 집은 변모되기 시작했다. 강을 낀 아빠트단지의 알맞은 층수의 집, 그리고 그 집안을 채우고 있는 초대형TV, 에어컨, 세탁기, 김치랭장고와 가스오븐레인지, 지어 전기압력밥솥에 이르기까지 각종 브랜드제품들이 다 안해덕에 마련된 것이다. 나의 두번째 소설집도 안해덕에 자비출판을 할수 있었다, 작품량은 적지 않은데 호주머니사정이 안되여 감질내다가 첫 작품집을 낸 5년후에야 안해덕분에 제본 훌륭하게 나올수 있었다. 황금 알을 품은 거위 같은 안해를 둔 나를 보고 모두들 복이 홍수로 터졌다고 한다. 그러나 자신이 행복하다고 느낄 때야말로 가장 불안한 순간일수 있다. 요즘 내게는 행복이라는 말보다는 차라리 견디고 있다는 말이 나을 거 같다.    언제나 그렇게 대개는 계란 프라이 하나에 딱딱하게 굳은 빵 한 조각, 틱틱한 우유. 아니면 전기밥솥 안에서 하루를 묵은 밥과 시여 빠진 김치를 대충 올려놓고 볼 가심하는 을씨년스러운 식탁, 다른 애들보다 옷차림은 화사하지만 어미의 자리가 빈 데서 어딘가 풀죽어 있는 아이의 모습… 3년이면 돌아온다던 안해는 7년째 되건만 오지 않는다. 이제 안해의 존재는 나와 아이에게 있어서 그리움 따위의 정서적인 것이 아니라 보름마다 걸려오는 국제전화속의 판에 박은 목소리, 사진첩에 꽂혀있는 사진처럼 정물적인 것, 그리고 퍼런 액면의 지폐 같은 것이였다. 나는 안해가 3D업종에 혹사하면서 부쳐 보낸 돈으로 일껏 마련한 보금자리에서 은연중 안해에 대한 원망의 싹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외롭기 짝이 없었다. 외로워 미칠것만 같았다. 그 외로움의 표출로 매일 술을 마시고 TV의 마지막 프로그램이 끝날 때까지 궁싯거리며 뽀얗게 밤을 새우는 내 모습, 오한이 들만큼 질식할 듯한 정적 속을 서성이는 나의 이런 모습들이 스스로 보기에도 소연(蕭然)하다.     그리고 자제하기 어려운 금욕의 시간들... 늘 같이 하다가 혼자 눕는 이부자리가 얼마나 헛헛한지 겪어본 사람만이 안다. 혼자만의 체온으로 버텨내야 하는 이불 속은 아무리 난방온돌바닥이 절절 끓어도 허전하고 쓸쓸했다. 뼈 마디마디에 남아있는 한기는 어쩌지 못했다. 처음 혼자 남게 되었을 때 육체적 욕망따위는 누룰수 있다고 나는 믿었다. 가정을 위해 타향에서 손 지문이 지어지도록 일에 혹사하는 안해를 두고 떠올리는 육체적 욕망은 곧 오욕의 덩어리였다. 내가 욕망을 따라가려 할 때마다 멀리에 있는 안해가 그 견고한 얼굴을 들이밀며 붙잡았다. 그러나 시간이 좀 흐르자 몸과 마음에 욕망의 열기가 터질 듯이 고여 왔다. 그때마다 내 안에서 사막의 초열(焦热) 같은 괴성이 소리를 질렀다. 그 괴성은 나의 온 몸을 들쑤셨고 그 발열은 나의 온 몸을 태우려 했다. 앞으로 주어진 시간들도 온통 이런 적막과 무미함으로 채워진 인고의 시간들이리란 상상에 두려움을 금치 못해 했다. 그러다 튕겨져 오르는 음악의 클라이막스 부분처럼 현이 끊어지기 직전의 고뇌의 분출구에서 그녀를 만난 것이다.    여러 번의 만남이 있은 뒤의 어느 날, 나는 용기를 내여 그녀를 편집부 동료들이 벌리는 은밀한 파티에 초청했다. 모두가 마누라를 출국시키고 볼썽사납게 남은 남편들이 모여 벌리는 파티, 모두는 자기가 지금 사귀고 있는 애인들을 현시라도 하듯 동참시켰다. 요즘 같은 세월에 애인 하나쯤 끼고 있는 것은 무슨 천기(天機)와 같은 비밀스러운 일이 아니였다. 좀 그런 모임이라지만 편집부에서 한다 하는 인물들 거의가 참가하는 모임이라 빠질수도 없었는데 번마다 혼자 참석하는 나를 보고 파티의 우두머리 격인 편집부장이 웃음을 날렸다. - 너 혹시 고자 아니여? 부장의 웃음소리는 내 고막을 란타하며 방에 가득히 명멸했다. 헛바람이 새는 듯한 그 웃음소리는 자못 방탕하기까지 했다. 그러다가 정색을 하면서 목에 잔뜩 힘을 주어 다소 경멸 섞인 어투로 부장은 덧붙였다. - 다음에도 외짝으로 오면 사람들 앞에서 확인부터 해 볼 것이니 그리 알고 잡도리 한다 실시!     사실 가속이 출국한 중에 나와 50대의 수필편집이 밖에 넘보는 녀자가 없다. 그래서 그 동아리들은 나와 그 로편집사이에 같기 부호를 그어주고 있었다. 생각 끝에 나는 그녀를 불렀다. 가짜 애인 역을 맡아 달라고 갑자르며 말했다. 그녀가 웃었다. 허리 까부러지게 웃었다. 그러나 흔쾌히 동의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주인공을 닮은 “비비안 리”를 이끌고 들어선 나를 본 평집부장의 안경테가 코 마루에서 집장(執杖)고도 뛰기를 했다. 부지런히 오가던 수저를 멈춘 채 나를 쳐다보는 다른 동료들, 그들이 끼고 앉은 이젠 익숙해지기까지 한 애인들의 얼굴은 반신반의 그리고 경악 그 자체였다. 그날 잠자는 숲속의 공주를 깨워 데리고 온 왕자라도 된 기분으로 나는 즐거운 주말을 보냈다.     2차 3차 끝날 것 같지 않던 파티가 드디여 파하고 내가 그녀를 집에까지 바래주었다. 그녀는 몹시 취해 있었지만, 그러나 취기 가득함에도 불구하고 눈빛은 상쾌한 물방울처럼 나를 향해 툭툭 튀고 있었다. 그 눈은 사랑에 달뜬 십 대의 소녀처럼 빛나고 있었다. 아파트로 오르는 층계에서 바램을 마치고 돌아서려는 나를 그녀가 불러 세웠다. 휴~ 하고 그녀가 이마로 내려온 앞머리를 입김으로 불어 올렸다. 그리곤 말했다. - 우리 진짜 애인 하면 안 돼요? 현관의 창으로 새여든 달빛이 층계를 은백색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알콜에 사로잡힌 나의 시선이 그녀의 얼굴을 헤맸다. 그 시선을 받은 녀자가 쓰러지듯 내 몸에 안겨들었다. 그러면서 녀자는 내 뺨을 감싸 쥐였다. 내게 입을 맞추었다.  입술 사이로 녀자의 혀가 들어왔다. 혀는 뜨겁고 부드럽고 미끈거렸다. 순간 당황했고 가슴이 더워졌다. 이러는 거 아니라고, 이러면 안 된다고 뜨거워나는 가슴을 달랬지만 몸은 뜨겁게 절절이 끓고 있었다. 그 동안 용케도 참아 왔다고 느꼈는데. 나는 어느 결에 팔로 녀자의 등허리를 감고 말았다. 녀자의 집으로 달려 올라가 우리는 카펫 우에서 뒹굴었다. 서두르며 서로를 가졌다. 우리는 오랜 시간을 초토화 된 사막을 건너와 물웅덩이를 만난 려행자들처럼 서로를 마셨다.     이윽고 녀자는 커피를 끓였다. 일을 치르고 나면 커피를 마신다고 했다. 별난 취향이였다. 컵에 설탕을 넣고 충분한 크림을 얹고 뜨거운 커피를 부어 저었다. “연와(燕窩)”커피, 어쩌면 내가 즐기는 커피였다. 처음 다른 녀자와 침대우에서 마시는 커피, 야릇했고 달콤했다.     그 그윽한 향기처럼 사랑은 느닷없이 다가왔다. 커피를 처음 마셨을 때의 쓴맛이나 떫은맛과 같이 고통이 따르지만. 곧이어 감미로운 뒤맛으로 바뀌여 입 속에 오래도록 추억과 흔적으로 여운을 남긴다. 그래서 커피를 즐기듯 사랑도 중독이 되는걸가?     커피잔을 놓고 녀자는 나의 가슴에 뺨을 붙이며 안겨들었다. 잘 익은 복숭아 빛으로 녀자는 두 볼이 물들어 있었다. 풍성한 저녁식사 뒤에 따라나온 후식을 즐기듯 달콤하고 평안한 모습이였다. 녀자가 입을 열었다.     - 3년이 됐어요. 혼자 있은 지가…     남편이 로무수출로 한국에 나갔다고 했다. 시골학교가 페교되면서 체육교원이였던 남편과 작문지도교원이였던 자기는 일조일석에 직업을 잃었다고 했다. 그래서 남편은 배를 탔고 자기는 상경했다고 했다. 녀자의 목소리가 내 온 몸에서 웅웅 울렸다. 녀자가 커피 포장지에 그려진 둥지 속의 한 쌍의 제비를 지켜보며 말했다. - 우리 이렇게 가끔 즐겨요. “연와” 커피를 마시듯이. … 이런 그녀. 이런 그녀와 키우던 노르웨이 산 고양이, 그런데 지금 나는 그 고양이가 싫다. 그래서 남에게 주어버리고 오는 길이다.     2 아침, 출근하자 시 편집이 들어서는 나를 보고 다짜고짜 물었다.     - “톡소플라스마”라고 들어 봤어요?     목소리가 다급하고 진지했고 나는 오리무중에 빠지고 말았다.     - 톡 소 플 라 스 마?     시 편집이 허겁지겁 설명했다.    - 임산부에게 치명적인 병균이 아니고 뭡니까! 류산을 유발하고 무뇌증과 같은 기형아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래요.     - 그런 데는??     - 그런 데라니요. 그 병균이 고양이 몸에 들어있다지 않고 뭡니까?     그제야 나의 더듬이에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시 편집의 안해는 지금 임신중, 녀석을 빼닮을 소심한 성격의 후대를 이을 준비를 하고있었던 것 이였다. 녀석이 병원체(病原体) 샘플이라도 넘겨주듯이 오만상을 찌푸리며 고양이가 들었는 종이박스를 나에게 넘겨주었다. … 되돌려져 온 고양이를 사무실에 그냥 둘 수도 없고하여 핑계를 대고 남보다 앞당겨 퇴근했다. 집에 들어서서 장물(贓物)을 어디에 감출지 몰라하는 범죄자처럼 나는 종이박스를 든 채 한동안 우두커니 서 있었다. … 고양이의 눈매를 닮은 그녀- “비비안 리”가 어느 날 무언가 들고 나타났다. 전기 밥솥 박스였다. 그런데 박스속에 든 것은 밥솥이 아니였다. 고양이였다. 고양이를 좋아한다고 했다. 함께 키우자고 했다. 그러는 그녀의 얼굴이 아이처럼 빛났다. 그녀가 고양이 눈을 닮았던지 고양이가 그녀의 눈을 닮았던지 그 두 쌍의 눈매가 지켜보는 중에 나는 얼떨결에 고양이를 수납해 들이고 말았다. 그녀는 진짜 고양이를 좋아했다. 고양이와 머리를 맞대고 알고도 모를 대화를 나누기도 했고 핸드폰 카메라로 고양이의 재롱을 찍어 간직하기도 했다. 때때로 치솔모가 굵은 치솔로 고양이를 씻어주기도 했다. 긴 털을 살살 비벼 땟물을 씻어내고 수건으로 물기를 빼고 큰 수건에 감싸고 물기를 닦아냈다. 헤어 드라이기를 “약(弱)”약으로 고정해 놓고 젖은 털을 말리며 천천히 빗으로 빗겨주었다. 그러면 고양이의 털이 보기 좋게 윤기가 흘렀다. 그의 애틋한 손짓은 고양이를 그리고 보는 나를 나른한 행복감에 잠기게 했다. 그녀 때문에 고양이에 대한 학문도 늘었다. - 이쁘죠? 고양이? 털이 좀 길지만 기름기 많아 손질이 거의 필요없고 털도 잘 안빠져요.  - 고양이는 상온(常溫)의 음식을 좋아해요, 랭장고에서 금방 꺼낸 음식은 별로 좋지 않습니다. 또 너무 뜨거운 거나 너무 매운 것도 주면 안돼요. 요구르트 잘 먹어요. - 고양이는 씹지 않고 그대로 삼키는 동물이얘요. 그러니 각별히 주의하셔야 합니다. 닭고기나 물고기 등뼈는 너무 딱딱해서 소화시키지 못하고 위장에 상처를 주는 일도 있으므로 주의해 주세요. 아셨죠. - 고양이에게 주면 절대 안되는 것이 뭔지 아세요? 양파, 양파입니다! 양파를 고양이가 지속적으로 먹으면 적혈구가 파괴되어 빈혈을 일으킨대요.  독락(獨樂)하는 듯한 표정으로 그녀는 종알거렸다. 그렇게 좋아하는 고양이를 신변에 두지않고 우리 집에까지 가져 온 데는 원인이 있었다. 우선 나에게 선물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원인은 실상 다른데 있었다. 동생부부가 출국하여 조카를 그녀가 맡고 있는데 말썽꾸러기 그 애가 고양이를 몹시 구박한다고 했다. 고양이 보호대책을 강구하던 중 나에게 맡기기로 했다는 것이다. 도수안경에 순한 머리칼을 가진 자상한 모습의 내가 고양이를 잘 돌볼수 있으리라 그녀는 믿었다. 그러나 사실 나는 고양이를 그닥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고양이에 대해 관대할 수 없었다. 고양이가 가구나 벽, 카펫이나 방석 따위를 발톱으로 할퀴고 물어뜯는 것을 용인할수 없다. 더욱이 서재로 뛰여 들어 책이라도 호비고 뜯기라도 하면… 하지만 그녀의 청이라 거절할수 없었고 또 애들이면 그러하듯이 딸애가 무척이나 좋아했다.. - 우리 사랑의 견증인이야요 이 고양이가. 고양이 볼 때마다 날 생각하세요. 어느 날, 격정의 순간이 지나고 침대우에서 게나른히 커피를 마시고 있는 벌거벗은 우리를, 어느새 다가왔는지 고양이가 이상한듯 지켜보고 있었고 그 고양이를 껴안아 쓰다듬으며 그녀가 말했다. 그녀의 눈매를 닮은 고양이를 나는 역시 “비비안 리”이라 불렀다…     야오옹! 가정용 전기제품 박스속에서 고양이가 울었다. 박스를 젖혔다. 나를 향한 고양이의 눈이 더욱 호동그랗게 보였다. 그 에메랄드 빛의 눈은 분명 “왜 나를 버리려 하죠?”라고 묻고 있었다. 현관에 선 채로 생각에 빠졌던 나는 고양이가 들어있는 박스를 들고 다시 집을 나섰다. 아빠트단지 정문을 나서서 백여메터 쯤 가면 길은 두 갈래로 나누어지고, 바로 거기 길녘 가로등 곁에 철제 쓰레기 분리 수거함, 4개가 놓여있다. 쓰레기들을 비닐주머니에 넣어 집 출입문 곁에 놓으면 아빠트 청소부가 쓰레기 수거함까지 가져가도록 돼 있지만 나는 층계를 내려 멀리 쓰레기 수거함까지 손수 가져갔다. 그럴수 밖에 없는 노릇이기도 했다. 이는 다른 폐기물과는 다른 것이였으니깐. 나의 서재 창으로 거리쪽이 보인다. 쓰레기 수거함이 놓인 그 방향이. 집으로 돌아와 왜서였던지 나는 창가에 다가섰다. 엄지로 안경테를 추어올리며 거리쪽을 향해 시선을 박았다. 빨리 청소부가 다가오고, 쓰레기를 수거하다 박스속의 고양이를 확인하기를 바랬다. 그리고… 그리고 어떻게 될지는 나도 모른다. 청소부에 의해 아니면 누군가에 의해 고양이는 부양되겠지… 누군가 쓰레기 수거함쪽으로 다가간다. 나는 긴장하며 창에 얼굴을 붙혔다. 중고품 TV의 화면처럼 멀리의 풍경은 흐릿하나 그런대로 가려 볼수 있었다. 허리를 구부정히 하고 수거함에 다가간 그 사람이 쓰레기를 뒤진다. 왠지 옷차림이 괴상했다. 귤색 노란 조끼를 받쳐 입은 청소부가 아니였다. 봉두란발, 꾀죄죄한 입성, 일견에도 분명 거지였다. 거지가 박스앞에 쭈크리고 앉는다. 비닐 테이프로 봉한 박스를 열어젖힌다. 순간 갇혔던 고양이가 용수철처럼 튀여오른다. 거지가 그 자리에 주저앉는다. 고양이의 난데없는 출현에 기겁초풍했을 거지의 얼굴이 떠오르고  짤막한 비명이 예까지 들리는듯 하다. 뛰쳐나온 고양이는 한동안 사위를 두리번거리다가 곧추 아빠트 단지쪽으로 뛰여온다. 아빠트 철책 사이로 빠져 들어와 아빠트 광장을 가로지른다. 나는 의자에 주저앉고 말았다. 저도모르게 귀를 세우고 무언가 기다렸다.    한동안 지나자 아닌게아니라 꿈결처럼 출입문쪽에서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울음소리는 절박했다. 그리고 잦게 울렸다. 울음소리는 아마 아빠트 랑하를 가득 메울것이다.  문을 열어주는 수밖에 없었다. 문을 열자 고양이가 풀쩍 조약해 오르며 내 품에 안겼다. 꽃순 같은 입속을 보이며 울었다. - 야아아옹~ 오늘 저녁 나는 이 괴기스러운 울음소리를 들으며 또 지리한 밤을 새야 할 것이다.     3 유난히도 추웁던 이 겨울이 끝나는 출구에서 나는 가상한 결정을 내렸다. 한바탕의 혼란과 망설임, 고심끝에 내린 결정이였다. 고양이 눈매를 닮은 그녀, 그 동안 나에게 경희와 사랑(?)을 주었던 그녀- “비비안 리”와 관계를 정리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나는 그렇게 베고 자르고 할수 있는 단호한 성격은 아니였다. 비밀 실험으로 희귀한 묘종이라도 키우듯이 세간의 눈을 피해 조심스레 키워 온 그녀와의 사랑의 싹을 그냥 비밀한 하우스 속에 키우고 싶어했다. 내 마음에 떠돌던 메마름에 감로수를 부어준 그녀에 대한 감사의 마음도 잊지 않고 있었다. 그러했던 내가 그녀와의 사랑을 매듭 지으려 마음먹은 것은 다름 아닌 안해쪽의 느닷없는 변고때문이였다. 안해가 귀국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돌아오라고 애걸하듯 호소하듯 해도 조금만 기다려줘요!하고 매몰차게 거부하며 오로지 돈 버는 재미에만 환혹해 있던 안해가 드디여 귀국하겠다고 했다. 사실 너 나가 붐비며 출국돈벌이라는 외곬으로 밀려들고 있어 인력시장이 부하상태, 일거리 찾기가 쉽지 않고 임금 또한 오를줄 모르고 외려 내려갈 조짐이라 했다. 그보다도 오랫동안 음식점에서 막일에 혹사한데서 얻었던 안해의 관절염이 더는 지탱하기 어려운 정도로 심해졌던 것이다. 전화를 받으며 나의 머리속은 하얗게 비여있었다. 홀아비 생활에 질린 나머지 그렇게 안해의 귀국을 원했던 나였지만 이 순간을 어떻게 주체해야 할지 몰라했다. 며칠 후, 절교의 통첩을 준비하고 그녀와 만났다. 무얼 먹고픈가 물으니 우육면이 먹고싶다고 했다. 사실 마지막 만찬이니 만큼 더 근사한 곳에서 만나려 했는데. 주문한 면이 나왔는데도 나는 수저를 든 채 머뭇거렸다. 다시 보아도 그녀는 아름다웠다. 음식을 씹는 입매가 싱그러웠고, 고개를 약간 치켜들고 이발로 국수발을 뽑아 올릴 때의 턱과 턱으로부터 흘러내리는 목선이 티없이 고왔다. 그런 그녀를 보면서 얘기를 해야 하는 건지 말아야 하는 건지 가리사니가 서질 않았다. 심각한 어지러움에 나는 자맥질하고 있었다. 비밀하고 분명치 않은 색채로 뒤범벅된 혼란에 가득 찬 어제와 복잡한 오늘과 수없이 다가올 래일들을 뭉뚱거릴 한마디의 말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저가락을 면발에 꽂았다. 팔꿈치를 식탁우에 올려놓고 두 손을 맞잡으며 군색하게 나는 입을 열었다. - 저… 이제… 그, 그만… 만나요 우리. 더듬으며 갑자르며 매우 힘들게 한마디를 뱉어냈다. 목에 걸린 생선 뼈를 토해내는 사람처럼… 그리고 기다렸다. - 뭐?! 갈라져? 나를 무슨 술집 여자로 알았어? 부르면 오고 가라면 가게? 악청을 지른다던가 그녀가 내 얼굴에 먹다 남은 음식을 끼얹는 등등의 격한 행위를… 상상하며 기다렸다. 그녀가 머리를 쳐들었다. 염색한, 길고 숱 많은 머리털이 흩어져 후광처럼 얼굴을 감싸고 있었다. 작은 귀고리가 귀볼에서 흔들렸다. 내가 사준 귀고리였다. 휴~ 하고 그녀가 입김으로 앞머리를 불어 올렸다. 그러나 이내 그녀의 입가에 가는 명주실 같은 엷은 주름이 지어지며 미소가 만들어져 있었고 그 생각밖의 미소에 나는 당황해 지기까지 했다. 그녀가 나를 향해 짓고 있는 그 미소 속에 사람을 꿰뚫어보는 힘이 느껴져서 나는 몹시 무안해졌다. 그 미소가 나의 마음을 어지럽고 갈래지게 했다. 어정쩡한 침묵이 흘렀다. 그 침묵이 어색해져 왼손을 말아 쥐고는 입에다 대고 두어 번 잔기침을 뱉아냈다. 그녀는 다시 머리를 숙이고 그릇 속의 면을 휘젓는다. 얼굴은 내내 생각 속을 헤매는 표정이다. 그 얼굴은 내가 가진 고민과 아주 큰 공통분모를 보여주고 있었다. - 이렇게 끝나네요 우리… 언젠가는 끝날 것이고 또 끝나면 또 어떤 방식으로 끝나려니 궁금했는데… 독백처럼 그녀는 아주 작고 어눌한 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면을 마저 먹기 시작했다. 그릇 속의 면은 금세 식어 있었다. 표면에 떠오르기 시작한 촛농 같은 기름덩어리를 저가락 끝으로 밀어내며 그녀는 다시 면을 건져먹었다. 먹는 것으로 어색한 분위기를 뭉때리려는 듯 하다. 집까지 바래다 주려 했으나 그녀는 혼자 택시를 잡았다. - 잘 가. 그렇게 손들을 엇갈리며 작별인사를 하다가 이것이 마지막 인사라는 느낌에 소스라쳐 놀라며 나는 가슴 밑바닥을 흔들고 지나가는 어떤 진동을 느꼈다. 찌르르하고 배속에서 앙가슴을 거쳐 머리까지 치솟아 오르는 그 떨림은… 미련? 아니, 말하자면 막연하고 알 수 없는 불안감 같은 것이였다. 택시는 가버렸고 두 손을 바지주머니에 찌르고 우육면 집 앞에 나는 오래도록 서 있었다. 혼자 단골로 가던 맥주집을 찾아 술을 엄청 많이 마셨다. 그리고는 비틀거리며 중얼거리며 홀로 집으로 돌아왔다. 기다려지던 월요일이였는데… 안경도 벗지 못한 채 쏘파에 너부러졌다가 새벽, 갈증에 잠을 깼다. 주방으로 가서 랭장고를 열어보았다. 랭장고마저 텅 비여 내 속을 우울하게 했다. 생수 한 컵을 단내 나는 입속에 부어 넣었다. 그러다 나는 보았다. 랭장고 곁에 도사리고 앉은 고양이를. 랭장고의 불빛속에 푸짐한 몸체를 한 고양이는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 힘들어? 하고 고양이가 묻는 것 같았다. 고양이의 눈매는 천착할 듯 나를 핥고 있었다. 순간 그 눈매가 남의 속을 꿰뚫는 인간의 그것을 닮았다는 섬찍한 생각이 들었다. 나는 수정처럼 차게 빛나는 고양이의 도도한 눈을 바로 정시하지 못했다. - 우리 사랑의 견증인이야요. 이 코냥이가 전기밥솥 박스에 고양이를 들고 나타나  “비비안 리”가 하던 말이 떠올랐다.    안해가 오기 전 고양이부터 처리해야겠다는 생각을 그날 새벽 나는 하였다. 그녀에게로 전화를 넣었다. - 그쪽에 선물한 거니 마음대로 처리하세요. 옛날처럼 그냥 기르던지, 아니면좋은 주인 찾아 주던지…    그녀의 목소리 톤이 달라져 있었다. 그녀는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옛날이라는과거형에, 한 때라는 시간으로 한정 지어지는 관계에 나는 새삼스런 서글픔을 느꼈다. 그 아주 허무맹랑한 태도는 나로 하여금 이 고양이에 대한 마지막 미련을 버리게 했다. 그래서 며칠 전 나는 또 고양이가 종이박스를 넣어 들고 집을 나섰다. 작은 시가지에 하나밖에 없는 륙교(陆桥), 그 우에 애완동물을 파는 사람들이 있었다. 언제부터였던지 애완동물 장사군들이 도시의 주요한 위치인 이곳에 운집해 들었다. 간혹 공상국이나 도시관리소 일군들이 나타나면 도망가고 단속이 뜸해지면 또 찾아 들곤  했다. 그래서 이곳은 사실상 애완동물시장으로 간주되여 있었다. 박스를 들고 허위단심 찾아와보니 애완동물 장사군들은 거개가 한족 아낙네들이였다. 그리고 륙교우에 펼쳐진 “애완동물 시장”에서는 거의 모두 개를 팔고 있었지 고양이는 보이지 않았다. 몰려든 이들은 거개가 한창 호기심 많을 나이의 10대와 화려한 옷차림의 유한부인들이였다. 나는 그 틈바구니에 끼여들어 기웃거렸다. 장사군들중에 반갑게도 조선말이 들렸다. 반가운 마음에 그쪽으로 다가갔다. 고양이를 요구하지 않냐고 낮은 소리로 물었다. 그냥 그저 줄 터라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그녀는 머리를 저었다. - 고양이보다는 개를 좋아해요 요즘 사람들… - 왜요? 나는 떨떠름해지며 물었다. - “개는 주인을 섬기지만 고양이는 주인이 섬긴다”잖아요. 옛말에 - 그래도 한번 보세요. 노르웨이산 명품이라는데요 나는 고양이를 박스속에서 꺼내 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한 마디로 못박아버리고 고개조차 돌리지 않는다. 오로지 자기 장사에만 여념없다. 신통하게 새끼 노루를 닮은 애완견을 들고 지나는 사람들과 호객행위를 한다. 나는 연회석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사람처럼 한 구석에 서 버렸다. 일순 다음의 행동반경을 구할수 없어 했다. 륙교를 지나는 쿵쾅거리는 발자국소리가 새삼 요란하다. 그렇게 서있는 나의 팔뚝을 누군가 툭툭 쳤다. 열살 푼 되여보이는, 머리가 구리철사처럼 빳빳이 선 애 녀석이다. - 그 고양이, 내가 갖고픈데 히~ 녀석이 쭈볏거리면서도 또박또박 말한다. - 고양이 좋아해? - 예! 녀석이 머리를 까땍까땍한다. - 좋은 애로구나! 동물을 사랑하고     나는 그 무슨 큰 상을 시상하는 사람처럼 덕담을 란발하며, 트로피(奖杯)를 넘겨주듯 고양이를 애의 손에 냉큼 넘겨주었다. 고양이를 받아 든 녀석의 입이 귀밑에 걸렸다. 귀엽다는 듯 고양이 머리에다 마구 입방아를 찧었다. - 감사합니다! 녀석은 나를 향해 허리를 굽석해 보이고 나서 고양이를 안고 겅중겅중 뛰여갔다. 종이박스에 고양이를 담아 줄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빈 종이박스를 들고 나는 녀석을 눈바램했다. 녀석과 “비비안 리”는 재빨리 륙교아래로 사라졌다… 또 월요일이다. 월요일이면 나는 그녀에 대한 생각을 떨치지 못해 했다. 햇과일의 달콤한 과육을 씹듯 한 그 맛, 생생한 환희와 야생적인 즐거움을 잊을 수 없다. 그녀에 대한 기억은 잘려진 몇 컷의 필름처럼 버려졌기에 외려 너무나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녀에 대한 기억은 때로 맨 몸에 나의 헐렁한 와이셔츠를 걸치고 쏘파우에서 열심히 다듬던 메니큐어를 바른 발톱으로 클로즈업(放大)되고, 때로 주방에서 영양가 높다는 쪽을 골라 나에게 기어이 권하던 브로콜리(西蘭花)로 클로즈업되고 때로 침대우에서 나의 갓 면도를 한 푸른 턱을 비비던 붉은 뺨으로 클로즈업된다. 그녀의 훈향도 난 기억하고 있다. 살갗을 근지럽히던 냄새, 몽환제를 품은 듯 그 동안 퇴화된 내 세포들을 하나하나 깨워놓던 냄새, 아침 이슬에 젖은 꽃처럼 화사하고 푸른 그녀, 그녀가 품고 있던 그 꽃은 이제 지고, 집안엔 이제 그 숨결이 없다. 어질러진 채로 가라앉아 있는 집안, 예전처럼 홀아비만이 볼썽사납게 남은 방에선 알싸한 독풀 냄새 같은 것 만이 난다. 그녀에 대한 미련을 떨치기 어려울 때면 TV를 켠다. 짐짓 분위기를 살리는 오락쇼 프로를 찾아본다. 볼륨을 높여놓고 듣는다. 보고 나면 곧 잊어질, 저질에 가까운 프로라도 보면서 시간을 잊고 자꾸만 헛헛해 지는 마음을 무마하려 한다… 높은 TV소리 사이를 비집고 초인종이 울렸다. 그간 홀로 지내면서 사람이 그리운 나에게 초인종소리는 마냥 반갑다. 달려가 문을 따던 나는 그만 눈 확을 키우고 말았다. 사내애 하나가 문 켠에 서있다. 분명 며칠 전 륙교에서 만났던 그 애, 머리칼이 구리철사처럼 빳빳한 그 애를 나는 대번에 알아볼수 있었다. 예기치 않은 애의 등장이 놀라웠고, 왜 나를 찾아 왔는지도 궁금했다. 사내애가 들고 온 종이박스 하나를 내 앞에 쑥 내민다. 이번에는 전자레인지 박스다. 순간 그 속에 무엇이 들었는지 나는 직감으로 알아차릴수 있었다.  - 고양이를 돌려드리려고요. 아빠 엄마가 모두 출국하고 할머니 손에서 자라는 애라고 했다. 할머니가 만수받이로 애의 청구를 다 들어주는데 그 할머니마저 아직 일을 할만하다며 나이를 속이고 출국하게 되여 고양이를 키울 사람이 없다고 했다. - 그럼 너 어디서 사니? 저도 모르게 애의 신상이 걱정되여 문가에 선채 내가 물었다.     할머니가 가면 이모네가 맡기로 했단다. 이모네 집에 애 말고도 사촌 몇이 함께 얹혀 산다고 했다. 출국 붐에 한집 건너 한집씩 난장이 돼버린 요즘, 별 이상한 일도 아니였다. 애는 박스안에 손을 넣어 고양이 머리를 자꾸만 쓰다듬었다. 그러는 애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애는 지금 잠시는 떠나는 할머니보다 내놓아야 하는 고양이 때문에 더 서러운가 보다. 허리를 굽석해 보이고 나서 애가 몸을 돌렸다. 차마 발이 떨어지지 않는 듯 목각인형처럼 걸음이 어색하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버튼을 누르는 애에게 내가 몸을 내밀며 순간에 떠오른 의문을 물었다. - 근데 너 어떻게 우리 집을 알어? 우리 집 아래층인 8층에서 피아노를 배우는 애, 엘리베이터에서 나를 본적 있다고 했다. - 고양이를 부탁해요! 엘리베이터 문이 닫힘과 함께 애가 소리치듯 말했다. 그러는 녀석의 소리는 물기에 젖어 있었다.    그 사이 “비비안 리”는 박스속에서 뛰쳐나와 천연덕스레 쏘파우에 올라가 있다. 녀석은 에메랄드 빛 눈으로 나를 지켜본다. 그 눈이 짓궂은 개구쟁이 같다.   4   오전나절이여서 그런지 공공뻐스에는 사람이 적었다. 하여서인지 그 녀자의 통화소리는 더욱 유표하게 들렸다. 내 앞자리에 앉은 녀자, 40대로 보이는 녀자의 전화벨이 끊임없이 울린다. 전화벨소리는 핸드폰마다에서 흔히 들을수 있는 한국 드라마 “대장금”의 주제곡이다. “오너라 오너라 아주 오나”… 한번 전화를 들면 수다가 넘친다. 타령조의 그 전화벨소리가 녀자에게 말문을 열도록 주문을 거는 것 같다. 벨소리 울리기 바쁘게 핸드폰을 열고 바보처럼 소리높여 말하는데 적어도 3개 역을 지나도록 녀자의 통화는 끝날줄 모른다. 그 소리의 홍수속에 나는 종이박스를 잔뜩 껴안고 무가내로 앉아있다. 고양이 울음소리가 새여나와 좌중의 눈길을 끌면 어쩌랴 싶었는데 녀자의 투명한 고음에 묻혀 들리지 않는다. … 출국했던 애초에 안해에게서는 일주일에 한번씩 전화가 왔다. 전화는 번마다 안해쪽의 수신부담으로 걸려왔고 내 쪽에서 높은 전화료금을 부과하며 전화를 하지 말라고 안해는 당부했다. 바쁘다, 힘들다, 돌아가고 싶다, 미칠것 같다… 라고 안해는 울음 잔뜩 섞인 소리로 처음 해보는 서비스 업종의 어려움과 그곳 사람들의 동포에 대한 차별시와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토해 냈다. 잦던 전화는 보름에 한번씩 한 달에 한번씩으로 뜸해 졌다. 통화내용도 괜찮다, 견딜만하다로 바뀌였다. 그러다 전화는 한 달에 한번도 아니고 명절때만 걸려왔다. 통화내용도 낡은 레코드 되 풀듯 그저 딸애에 대한 문안과 부탁뿐이였다. 어느 한번 안해와의 통화가 일곱 달이나 없었다는 생각에 후딱 놀라기 까지 했었다. 그날도 오랜만에 참으로 오랜만에 안해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날따라 전화는 타이밍이 맞지 않게 울려 왔다. 나와 “비비안 리”가 한창 격정의 고조에 오르고 있는 시점이였다. - 받지마 그녀가 헐떡이며 나의 허리를 잔뜩 껴안았다. 하지만 거실 탁자에서 전화벨소리는 집요하게 울렸고 나는 오징어 빨판처럼 내 몸에 감긴 그녀의 손을 뜯어내고 침대에서 뛰여 일어나고 말았다. 왜 이렇게 늦게 받느냐? 잠들었냐? 또 술 많이 마시고 쓰러진 거나 아니냐?고 버릇처럼 묻는 안해의 물음에 나는 그저 응응 하고 웅얼거리며 단답형으로 대답하고 있었다. 거친 숨과 함께 나는 당황감과 안해에 대한 죄의식 같은 것들을 삭이고 있는 중이였다. 흡사 안해가 벌거벗은 나의 몸을 의식하고 있는 것 처럼 느껴져 활처럼 몸을 옹송그렸다. 열린 침실 문으로 “비비안 리”의 모난 시선이 나를 찔러왔다. 수화기를 든 채 갑자르고 있는 나를 침대쪽에서 그녀가 반라의 몸을 드러내고 이상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나를 향해 한 쌍의 유두가 도발적으로 추켜져 있다.  그녀가 몸을 일으켰다. 내 쪽으로 다가왔다. 일순 당황했으나 나는 수화기를 내려 놓지 못했다. 그녀가 뒤로 나의 벗은 몸을 껴안았다. 풍성한 가슴이 비누거품을 가득 머금은 목욕용 스펀지(海綿)처럼 나의 등을 문질렀다. 귀속에는 안해의 높은 소리가 가득 차고 등에는 그녀의 풍성한 몸이 가득 실린다. 어질머리가 인다. 나는 그녀를 제지할념 못했다. 실랑이질 하다 안해가 눈치를 챌가 봐서였다. 그녀의 부드러운 손이 내 몸 구석구석을 훑는다. 그녀의 손놀림에 맞춰 나는 호흡을 고르고 몸을 비틀고 있다. 힘들게, 괴롭게. 핑크빛 매니큐어를 한 손톱이 나를 제동하는 것 같다. 그녀의 뜨거운 혀가 나의 귀등을 핥는다.  이어 그 혀는 도료를 잔뜩 머금은 한 자루의 붓처럼 나의 전신을 화선지로 삼고 훑기 시작한다. 턱선을 타고 목선을 타고 내려 딱딱해진 유두에 머물렀다가 배꼽에도 머물렀다가 아래배 쪽으로 내려간다. 그리고 한껏 긴장해진 “나”를 한입 베여 물었다. 그녀의 대담한 터치에 나의 입으로 헛바람소리가 새여 나갔다. 고문같던 통화가 끝났고 수화기를 놓음과 함께 나는 그녀를 와락 밀쳤다. - 장난하냐? 장난해? 그녀가 탁자에 머리를 쪼으며 넘어졌고 곁에서 고양이도 놀라 펄쩍 뛰였다. 이마를 감싸 쥐던 “비비안 리”가 몸을 후딱 일으켰고 재빨리 옷을 주어 입었다. 조금 전 까지 풀어헤쳤던 긴 머리는 보라색 구슬 핀 속에 단정히 묶여졌고 그녀의 표정도 금세 다른 사람으로 바뀌여져 있었다. 조금은 미안해져 그녀의 어깨를 잡으며 물었다. - 미안해 다치지나 않았어? 그녀가 나를 와락 밀쳤다. 손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그녀는 상처 입은 짐승처럼 나의 어깨를 강하게 밀쳐냈다. - 왜? 지 마누라 한테서 전화가 오니 금세 내가 부담스러워 졌어요? 현관에로 나서며 그녀가 소리소리 질렀다. 그의 눈에 확 붉은 기운이 몰려들어 있었다.  - 사실 나도 힘들어요. 힘들다구요. 어제 전화를 받았어요. 우리 그이가 일하다 다쳤대요. 힘들게 얻은 일자리서 짤릴가봐 다친 몸으로 그냥 일한다해요. 그런데 난 이게 뭐얘요! 그럼에도 이렇게 눅진눅진한 여자가 돼 있다는 것이 나 스스로도 더러워요! 그녀의 소리는 빨랐고 건조했다. 주르르 설음을 뱉어 놓고 나서 그녀는 문을 쾅 차고 나가 버렸다…  … 뻐스 속을 휘저으며 전화벨은 그냥 울렸고 녀자의 통화는 끝날 줄 모른다. “오너라 오너라 아주 오나” - 예 한국 수속하는 사람이 맞슴다. 40일내로 비자 나옴다. 예 꼭 나옴다. 백프로 나옴다 “오너라 오너라 아주 오나” - 수원남자임다, 전자회사 대리임다, 마흔여섯인가… 아, 마흔여덟. 키는 64 음… 여하튼 60은 넘꾸. 키가 좀 작고 나이가 좀 있긴 한데…  집 있고 승용차도 있담다. “오너라 오너라 아주 오나” - 예 한국 수속하는 사람임다. 예 이 광고 장기유효임다. 근심마쇼. 녀자의 소리는 감내이상으로 높았다. 파렬음이 섞인 거북살스런 소리다.  통화내용이 만천하에 공개되여도 녀자는 개의치 않는다. 숭어가 뛰니 망둥이도 뛰는 격으로 출국열에 들 뜬 사람들에게 출국수속을 해주고, 섭외혼인 중매를 해주고 떼돈을 챙기는 거간군, 요즘 세월에는 잘 나가는 신종의 직업이다. 나의 미간이 저도 모르게 찌푸려졌다. 고양이를 두고 내릴 기회를 호시탐탐 내리던 나는 그 고문 같은 소리를 피해 예기치 않던 다음 역에서 내리기로 했다. 좌우를 살폈다. 모든 사람의 눈길은 그 통화에 신명을 건 녀자에게 몰부어져 있다. 나처럼 이마살을 모은채… 차장이 정류소의 이름을 말하기 바쁘게 탈출하듯 뻐스에서 뛰여내렸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음을 재우쳤다. 그러면서 입속말로 되뇌였다. 안녕! “비비안 리”! - 이보쇼! 문뜩 부름소리 하나가 곰바지런한 나의 발목을 사로잡았다. 나는 못들은 척 하고 걸음을 빨렸다.  - 이보쇼! 안경 끼고 쥐색 양복 입은 분! 파렬음이 나의 인상착의까지 정확하게 짚으며 울려 왔다. 나는 멈춰 설수 밖에 없었다. 뻐스속에서 독주라도 하듯 전화쇼를 펼치던 그녀였다. 들고 쫓아온 종이박스를 내민다. - 정신을 들고 다님까? 물건 들고 다녀야지 - 저… 이거 제 물건 아닌데… - 아니긴 뭐가 아임까? 젊은 나이에 치매라도 왔슴까? 내 분명 안고 오른걸 봤는데두…    볼멘소리를 툭 질러놓고는 박스를 내 품에 와락 떠민다. 그러면서 또 한마디 한다. - 뭐 안에 죽은 아기라도 들었슴까?  가만히 버리게… 묘하게 한번 웃더니 또 옆구리에서 울리는 핸드폰을 꺼내든다. 수다를 쏟아내며 상가쪽으로 걸어간다. 투.두.둑. 느닷없이 비방울이 듣기 시작한다, 올 들어 첫 비다. 비 줄기가 제법 굵어지기 시작하자 미처 우산을 대비하지 못한 사람들은 비를 피해 뛰여 간다. 지하도로 뛰여들어가는 이들, 편의점으로 들어가는 이들, 우체국으로, 꽃집으로 들어가는 이들… 첫 비라 비를 맞으면서도 즐거운 표정들이다. - 야옹! 천변(天變)을 알아챘는지 박스속에서 고양이가 운다. 양복을 벗어 박스를 덮었다. 굵은 비방울에 와이샤츠가 눅진하게 피부에 달라붙는다. 비방울이 안경알우로 주르르 흘러내린다. 첫 비가 내릴 즈음에 만났던 우리, 우리를 스쳐간 시간들, 손가락 사이로 마음 사이로 빠져나간 시간들이 부서져 내리는 것 같다. 첫 비가 내리는 변경도시의 번화가, 그곳에 종이박스 하나를 든 채 내가 혼란스러운 얼굴로 서 있다.   5 밤하늘에 달 하나가 덩그마니 떠 있다. 9층집 높이에서 달은 손을 뻗치면 잡기라도 할듯 가깝다 그리고 크다. 나는 달의 장력(張力)에 끌리듯 창가로 다가갔다. 창을 열어젖혔다. 작은 환기창이 아닌 옹근 전체의 창을 열어젖혔다. 추위를 떠나온 봄이였고 그래서 올 들어 처음으로 창을 크게 열어젖힐수 있었다. 그 크게 열린 창으로 나는 고양이를 내던졌다. 그리고는 덴겁히 창을 닫았다. 커튼을 가렸다. 불 밝히지 않은 거실에서는 오락쇼 프로의 웃음소리가 터져 오르고 있었다. 높이 틀어놓고 어둠속에서 들으려니 웃음소리도 왠지 불안한 음조로 변형되여 들리고 있었다. 거실 바닥에는 빈 술병이 연주를 마친 취주악기처럼 아가리를 크게 벌린 채 내 버려져 있다. 술병을 들어 귀가에 흔들어 보았다. 술이 없다. 슈퍼에 전화를 걸어 더 주문하려다 귀찮아져 그만두었다. 사실 오늘 마신 량도 만만치 않다. 마른 낙지 다리를 입에 넣고 허겁지겁 씹었다. 입아귀가 찢어져라 씹었다. 아래턱에서 힘이 빠졌지만 아귀아귀 그 무슨 불안처럼 씹고 씹었다. “비비안 리”도 마른 낙지를 좋아했다. 그녀 “비비안 리”, 그 고양이 “비비안 리”도. 그녀가 붉은 입술을 O형으로 만들며 낙지다리를 씹을 때면 나는 곧바로 이상한 충동을 느끼군 했다. 그래서 한참 먹고 있는 그녀를 침대에 쓰러뜨리기도 했다. 그리고는 둘이서 달아오른 몸을 엮고 문어처럼 흐느적거렸다. 그녀와 나는 침대에서 고양이는 그 아래에서 낙지의 향연을 벌리곤 했다. 어느 날 한낮에 “낙지의 향연”을 벌리고 있는데 출입문 쪽에서 인기척이 났다. - 오늘이 무슨 요일이던가? 그녀의 몸우에 엎딘 채 내가 물었다. - 화요일 - 오, 마이갓! 똥됐다! 그녀와 나는 월요일이면 우리집에서 만났다. 주말이면 외할머니에게 맡겨졌던 딸애가 오는 날이기에 만날수 없고 또 홀아비 살림에 난장이 된 집안을 장모님이 때때로 집을 거두어 주려 오시기에, 그래서 한 주동안, 가장 바빠야 할 월요일이 우리에게는 만남의 날이였다. 웬일인지 월요일에 장모님이 왔던 경우는 거의 없었다. 이런 수치까지 계산해야 하는 내가 치졸스러워 보이겠지만 여하튼 우리에게는 월요일이 그 무슨 미사의 날같이 빠칠수 없는 날로 여겨졌고 이날이면 어김없이 만나서 육체의 향연을 즐기곤 했다. 미치도록 서로를 원했던 우리는 이날 위험 수위를 잊은 채 또 만났던 것이다. 우리는 둥지를 털린 개미처럼 헤매였다. 서두르며 침대를 수습하고 그녀를 옷장속에 숨기고 그녀의 신발을 컴퓨터 테이블 밑에 감추었다. 나의 예감대로 장모였다. 장모는 따로 소지한 우리 집 열쇠로 문을 따고 들어왔다. 하지만 장모는 겹겹이 잠긴 방범문을 여는데 매번 서툴렀다. 그 서투름이 우리에게 금쪽 같은 대피의 시간을 만들어준 것이다. - 엊저녁 편집부서 회식 있어서 술 좀 과했습니다. 늦잠 자느라고 장모가 따져 묻지 않았지만 나는 늦게 문을 연 사연에 주해를 달았다. 핑계에 신빙성을 가하느라 짐짓 하품까지 만들었다. 스스로 느끼기에도 하품이 신통치 않았다. 집안을 둘러보는 장모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나 스스로 보기에도 민망했다. 집을 거두기에 앞서 육체의 향연에만 급급했던 집안은 문자 그대로 난장이였다. 하지만 언제고 장모는 미주알고주알 까발리는 법이 없다. 다른 집 같으면 장모님의 입방아가 오죽하랴만 하지만 워낙 말수적은 장모는 그 그늘을 구태여 잔소리 같은 표현에 담아내려 하지 않았다. 화려한 경력은 없지만 퇴직후 가두에서 오래동안 주임직을 맡을 만큼 대바른 성품과 사리에 밝기로 정평이 난 장모는 아낙없이 홀로 지내고 있는 사위의 처경에 대해 누구보다 리해해 주었다. 때때로 찾아와 맛있는 찬거리도 가져다 주고 어지러워 진 방도 치워 주곤 했다. 장모는 또 예전처럼 아무 말도 없이 쓸고 닦고 씻고 만들고 하였고, 그 동안 나의 신경은 온통 옷장쪽에 쏠려 있었다. 옷장속에서 “형벌”아닌 형벌을 받고 있을 그녀가 미안했지만 거기까지 배려할 게제가 못 되였다. 장모가 걸레를 들고 옷장가까이로 갔을 불안한 시선을 연신 좌우로 날려보내고 있던 나는 기겁하며 장모의 손에서 걸레를 앗아 들었다. - 제가 좀 할게요. 방 닦는 것쯤은 저도 할수 있습니다. 낚아채기라도 하는듯 걸레를 앗아냈고 그러는 나를 장모가 의아쩍은 눈길로 쳐다 보았다.  - 앗취! 공교롭게도, 하필이면 이때 옷장속에서 재채기 소리가 울렸다. (오, 마이갓!) 나는 순간 얼음구덩이에 빠진듯 했다. 차고 매끄럽고 각진 당황함의 모서리리 어느 곳을 잡아야 할지 몰라 절절 매였다. 장모가 옷장쪽을 쳐다보았다. 그 잠깐 동안의 일별이 나에게는 영원인 것처럼 여겨져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할 지경이였다. 장모가 입을 열었다. - 계절이 바뀌는 때이니 감기 조심하게나.  이전 같으면 옷장을 뒤져 꿍져둔 속내의 따위를 찾아냈을 장모가 다행히 오늘만은 옷장 문을 열지 않았다. 팽팽한 긴장감이 극을 향해 치닫던 시간이였다. 고양이에게 따뜻한 국에 밥까지 말아 주고 나서야 장모는 몸을 일으켰다. 눈가에 주름을 잡으며 청결을 찾은 집을 휘둘러보았다. 장모의 주름이 더 깊어졌음을 나는 새삼 느꼈다. 주름사이로 미지근한 피로 같은 것이 느껴졌다. 떨꺽! 목에 고인 침을 소리나게 삼키고 나서 역시 아무 말도 없이 문을 나섰다. 나는 서둘러 옷장을 열어젖혔다. - 옹이에 마디라더니, 요긴한 대목에 재채기 하면 어떻게 해! 나 오늘 죽는 줄 알았어 나는 탕개 풀려 바닥에 주저앉아버렸다. 그녀도 얼빠진 듯 침대모서리에 앉아버렸다. 무생물체 같은 얼굴로 표정 없이 그렇게 앉아 있었다. 요즘 들어 그녀의 무표정은 늘 무언가 참고 인내하고 있는 듯한 무거운 인상을 주기도 했는데 어쩌면 그 인내의 대상이 바로 자신의 곁에 부적당하게 끼쳐있는 나라는 부조화였는지도 모른다. 그녀가 감당하고 있는 부조화의 대상이 정말로 나였다면 우리들 사이에 비밀스러이 웅크리고 있는 것을 풀어야 될 것이라고 나는 단정을 내린 적이 있었다. 무심한 척하고 있었으나 그 눈빛 속에서 나는 쉽사리 불안을 읽어내고 말았다. 둘 사이에 존재하고 있는 그 분명한 불안이 나는 서글펐다. 나는 다가가 그녀를 껴안았다. 등을 부드럽게 쓸어주었다. 다친 짐승을 감싸고 어루만지듯이, 천. 천. 히. 그녀는 고양이처럼 내 가슴에 고개를 기대고 손길에 얌전하게 등을 내맡겼다. 그리고 고장난 수도꼭지처럼 울기 시작했다… … 어디선가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낙지를 씹다 말고 나는 그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집안 구석구석에 배였는 그녀의 소리와 냄새, 언제면 이 소리를 지워질수 있을가? 혹 돌아온 안해가 이 냄새 이 소리를 맡아내고 들어낼수 있지 않을가? 소리는 그냥 울렸고 환청을 의심하던 나의 입귀에서 낙지꼬리가 떨어져 나갔다. 소리는 출입문 쪽에서 울리고 있었다. 의식이 허공에 아연하게 떠서 기계적으로 다가가 문을 열었다. 다음순간, 나는 힘이 빠지기 시작하는 종아리를 접고 벽에 기대여 쪼그리고 앉아 버렸다.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솜털이 일어나는 듯한 소름이 온몸을 쓸고 지나갔다. 현실감을 붙잡기 위해 눈확을 키우며 다시 문밖을 바라보았다. 문가에 고양이가 도사리고 있었다. 방금 전 내가 9층에서 내던진 고양이가 눈망울을 크게 열고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6 8촌 동생이 왔다. 낯가림이 심한 나는 친지들과의 교왕이 적은 편이였다. 그러니 8촌의 뻘수면 나에게는 남과 같은 존재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이 8촌 동생은 남보다 달랐다. 얼굴에 두툼히 철판을 깔고 다가왔다. 형! 형! 하면서 외려 촌수가 밭은 4촌이나 6촌보다 더 자주 나타나곤 했다. - 나 본디 롱구선수 감인데… 돈 있는 집에서 났더라면 체육학교 가서 롱구했을 건데… 녀석이 늘 입에 달고있는 말이다. 키 큰 거 빼고는 장점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는 녀석, 키가 커도 어중간히 큰거 아니다. 180이 넘는다. 녀석은 나에게서 괴물 같은 존재, 지금 버리려는 고양이 만치로 귀찮은 존재다. ...내가 던진 고양이가, 그것도 9층에서 내던진 고양이가 다시 돌아왔다. 그것은 어찌보면 한차례 기이한 체험이였다. 9층 높이에서 추락한 고양이가 아무 탈 없이 돌아오다니?! - 야옹! 어디가 말째인지 아니면 배가 고픈지 고양이는 자주 운다. 아주 작은 소리인데도 권태롭고 적막하기만 한 방의 정적 속에서 그것은 제법 큰 소리로 들렸다. 고양이 소리는 마치도 주술적인 힘을 지닌 북소리처럼 어둠 저편으로부터 갑자기 그리고 은밀하게 나를 덮쳐 온다. 그 소리 속에서 나는 본능적으로 어떤 불길한 파괴의 냄새를 감지했다. 그것은 지금까지 안해와 내가 일껏 이루어온 것들을 밑바닥부터 송두리째 휘저어 놓고, 그리고 어쩌면 머잖아 그것들과 가차없이 결별해야만 하는 최악의 상태까지도 감수해야 할지 모른다는 위험스러운 사실을 예고하는 것 같게 들렸다. 때문에 전에는 자주 들어왔을 고양이 울음소리에 나의 불안과 초조함은 배가해 가기 시작했다. 고양이 울음소리 속에 컴퓨터의 검색창에 “고양이는 높은 곳에서 떨어져도 왜 아무렇지도 않는 것일까?”라고 쳐 넣고 답을 구해 보았다.     해답이 여러 개 나와 있었다. 엄지로 안경테를 추어올리며 허겁지겁 읽었다. “그 비밀은 귀 안과 눈 속에 있습니다. 고양이 귀 안에는 평형감각을 주관하는 반고리관이 있습니다. 고양이가 높은 곳에서 뛰여내리거나 떨어지면 자극을 받아 뇌로 반고리관의 평형상태를 전합니다. 눈 속의 수정체에도 자극이 더해져 자신의 머리위치가 뇌에 빠르게 전달할수 있습니다. 이러한 정보들에 의해 고양이는 재빠르게 머리의 위치를 바꾸어 몸도 방향을 바꾸어서 다리를 지면에 착지할수 있습니다. 고양이의 회전 락하와 착지를 가능케 하는 것은 유연한 등뼈와 다리의 골격에 그 원인이 있습니다. 그리고 두터운 발바닥의 쿠션, 게다가 겨드랑이 밑과 다리 부분의 막이 락하산 역할을 해 줍니다. 아무튼 고양이는 몸의 구조상 아주 높은 곳에서 떨어져도 회전 락하로 한군데도 다치지 않고 착지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는 불이 났을 때 20m높이에서 뛰여내려도 상처를 입지 않은 고양이도 있다 합니다…” -  20메터 높이서 뛰여내려도 다치지 않는다? 이거 액션배우 뺨치게 생겼구만 느닷없이 밀려오는 망연자실함에 나는 실없는 소리를 되뇌였다… … 동생이, 8촌동생이 오는 날은 우리 집 수난의 날이다. 랭장고속 식품이 거덜난다던가, 아끼던 CD가 깨여진다던가, 일껏 골라 산 재미난 모양의 맥주병 따개가 잃어진다던가 오늘도 들어서기 바쁘게 녀석의 입에서는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가 튀여나온다. - 헝님! 나 돈 한번 꿔주송! - 돈은 왜? 나는 천정 등에 닿을듯한 녀석의 머리를 위태롭게 바라보았다. - 나두 로무 나갈까 하우. 동생이 마음 한번 다잡고 열씨미 돈 벌어볼려 는데 한번 꿔주송! 울 가문에 헝님네 젤 가는 부자아니우! 이제 떼돈 벌면 리자도 다 쳐 드릴테니. 꿔주송! 나의 두뇌는 빠르게 회전하고 있었다. 어떻게든 녀석의 입막음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나의 마음은 바빠지고 있었다. - 사실은… 그럴듯한 거짓말을 짜내려다 나는 엉뚱한 쪽으로 내 뱉고 말았다. - 장모님이 위독하셔. 큰 병으로 진단 나와서… - 뭐유? 그럼 암이란 말이우? 나는 차마 말 못하고 머리를 끄덕이는 시늉을 했다. “미안합니다. 이 천둥벌거숭이를 막으려고 내가 그만…” 나는 속으로 본의 아니게 불치병 환자로 치부된 장모님께 용서를 빌었다. 한편 요즘 친지친우간에 우애가 이렇게 까지 땅에 떨어졌나하는 자문이 스스로 들었다.  돈이 엄청 들 것 같다. 미안하다! 니가 어쩌다 청 드는데… 키가 컸지만 녀석의 머리통은 작았고 그만큼 지극히 단순했다. - 정 그렇다면야 별수 없지. 환자집에 돈 꾸러 왔으니 내가 무지한 놈이우. 엄청난 거짓말로 녀석의 진지한 청구를 밀막아 버리고나니 일순 녀석에게 미안했다. 다른 보상이라도 주고픈 생각이 일었다. 그러는 나의 눈에 발치에서 어른거리는 고양이가 보였다. - 정말 저 고양이 네가 가져라 - 어허, 왜 하필이문 고양이를 주시우? 줄라면 돈이나 꿔줄 것이지 - 너 고양이 고기도 먹을수 있다면서 말해놓고 스스로도 놀랐다. 왠지 오늘의 나는 잔인한 별종으로 둔갑해 버렸다. 사실 녀석에게 특기가 하나 있었다. 롱구쪽이 아니다. 녀석은 음식탐이 심했다. 그리고 괴이했다. 무어든 잘 먹어 주었다. 하늘에 나는 건 비행기 빼고, 땅우에 네발 달린 건 책상 빼고는 다 먹을수 있다는 녀석이다. 어느 한번, 밤참 먹으로 녀석과 함께 야 시장으로 나갔다가 녀석이 털이 까시시한 병아리의 형체가 그대로 들어잇는 곤계란을 구워먹는 것을 보고 진저리 치며 놀란적 있다. 그런 나를 보고 그때 녀석이 무용담을 펼쳤다. - 나 고양이 먹어 봤수. 쥐고기도 먹어 봤지. 고양이 고기 범고기와 맛이 꼭 같수. 개그맨 같은 허세로 말하는 품이 범의 고기까지 맛 본 듯한 양이다. - 거짓말 없기우. 나 정말 가져다 먹을거유. 녀석이 고양이를 추켜올리며 입을 쩌억 벌렸다. 대사를 하듯이 과장된 소리를 내였다. - 니가 내 밥이로구나 히히 벌건 혀바닥과 드러난 목젖, 마치 외국영화속 드라큐라(吸血鬼)를 보는 것 같다. 랭장고속 먹을 것을 결단내고서야 이튿날 떠나는 8촌 동생에게 나는 촌마을 학교에 전해주라고 아이들에게 맞을 책과 잡지들을 묶어 주었다. 그런데 녀석은 무겁다며 뿌리쳐버렸다. 대신 고양이만은 안고 갔다.     7 4월의 해맑은 태양이 머리 우에서 빛살을 흩뿌리고 있다. 푸르고 청정한 공기, 력동성과 온기가 물씬 풍기는 봄이 새삼 느껴진다. 길게 뻗은 아스팔트 도로우에서 햇살은 더욱 부풀어오르고 그 길을 내가 가고 있다. 손에는 종이박스를 든 채… 고양이는 9개의 목숨을 가졌다는 말을 들은 적 있는 것 같다. 고양이가 목숨이 매우 질긴 동물, 죽었다가도 되살아나는 영악한 동물이라던 옛사람들의 말 그른데 없다.  고양이가 돌아왔다. 녀석이 되돌린 것이다. 햇나물 팔러 시내 장터로 오는 마을 아낙에게 부탁해 우리 집에까지 되돌려 왔다. 뒤미처 전화로 녀석이 전하는 고양이를 돌린 리유는 간단했다. NBA 롱구 스타 요명이 먹지 말라고 했다나. 요명이 공익광고에서 야생동물을 먹지 말라고 호소했다는 것이다. - 요명이 누군데? 내 우상 아니우? 요명도 안 먹는다는데. 내가 어찌 먹수! 나 돈 있는 집서 났더면 롱구 할 사람인데… 나 이제부터 곤계란, 고양이 고기 이런거 안 먹수. 그때 싸스도 이래서 온거 아니우!  끓어오르는 속을 누르며 그러면 마을 아무 사람에게나 주고 말지 구태여 먼 길 떠난 장군에게 짐이 되게 예까지 돌려왔는가 묻자 명색이 작가분이 기르던 고양이인데 함부로 취급할수 없었다고 했다. 녀석! 잡아먹겠다며 덥석 안고 가던 때는 언제고. - 키만 컸지 롱구뽈도 만져 못 본 녀석이 맨날 롱구타령은… 짜식, 요명좋아하네. 짜증이 끓어올라 수화기를 던지듯 내려놓았다. 녀석이 말하던 그 광고가 저녁 프로 중간에 방송되고 있었다. 요명은 미국에 본부를 둔 유명 동물보호단체와 함께 동물보호 캠페인에 나선 것이였다. - 참, 너와 나는 참말로 악연이다. 악연 잠시의 려행에서 돌아오기라도 한듯 집안 구석구석을 어슬렁거리다 내 발목에 감겨 드는 고양이를 발로 치워버리며 내가 불쾌감을 내뱉었다. - 그렇다면 그녀와의 인연은? 어떤 인연이라 말해야 할가? 스스로 무심코 내뱉은 말에 나는 스스로도 자문을 구하지 못했다. … 포장도로를 벗어나 농로에 오르자 산개하는 푸른빛이 더 실감되였다. 인공의 소음 대신 점점 자연의 향기와 소리가 다가오기 시작했다. 생각 밖으로 시교에도 사람들의 발길은 무성했다. 어떤 이는 도보로, 어떤 이는 자전거로 산자락을 향한다. 등산객들은 아닌 것 같았다. 차림새도 등산복장이 아니고 평소의 입성, 저마다의 손에는 커다란 비닐물통들이 들려있다. 나이 지긋한 한 남정네와 물으니 나의 예측대로 산기슭에 약수터가 있다고 했다. - 헌데 그쪽에선 왜 물통 아니고 종이박스를? 물 받으러 가는 거 아닌가 봅니다. - 아. 네 그냥, 허허. 나는 마땅한 답변거리가 떠오르지 않아 멍청한 웃음으로 얼버무리고 말았다. 남들이 보면 의문스러울 법도 했다. 산길을 약수 뜨는 물통도 등산용 장비도 아니고 종이박스를 들고 가고 있으니. 스스로 생각해도 론리적, 리성적 설명이 불가능했다. 사람 없는 쪽을 찾다 보니 어느 새 산중턱 소나무 숲에 까지 왔다. 해볕이 쨍쨍한 날이였지만 막상 숲에 들어서니 숲바람이 바람이 우수수 소리내며 내달리고 있다.     종이박스 뚜껑을 조금 열고 쟁기 하나를 꺼내 들었다. 땅을 파려니 삽 같은 마땅한 쟁기가 없었다. 도시 사는 사람 집이고 더욱이 글 쓰는 사람 집이니 그럴법했다. 그래서 찾아낸 것이 국자였다. 목제자루가 자주 빠져 버리려던 국자, 그것이면 흙을 팔수 있을 것 같았다. 이렇게 까지 해야 하는가 하는 자문과 자조가 들었지만 나는 이미 자신을 주체할길 없어 하고 있었댜. 고양이는 이미 내 생활 전체를 휘두르고 있었다. 이제 고양이만 눈앞에서 사라지게 할수 있다면 나는 무엇이든 할수 있을 것 같았다. 산속 어딘가에서 나로서는 이름 모를 새가 청아한 울음을 토한다. 그 괴이쩍게 들리는 투명한 고음속에서 나는 국자로 땅을 파기 시작했다. 완연한 봄임에도 땅은 채 풀리지 않은 것 같았다. 겉흙을 치우기까지는 쉬워도 정작 깊게 파려니 힘이 들었다. 상자크기만큼 파면 되는데… 땅을 파면서 나는 에드거 앨런 포의 단편소설 “검은 고양이”를 떠올려 보았다. 벽에 가두어 놓은 고양이의 울음소리에서 죄의식을 느끼는 환상적이고 괴기스런 단편소설. 실제 서양에서는 고양이를 건물의 벽 속에 넣은 채 건축하면 악령에게서 건물을 지킬수 있고 또 쥐들이 범접하지 못한다는 미신이 있었다. 실제로 런던에서는 18세기에 지어진 건물들의 보수 공사 중에 고양이의 사체가 여럿이 발견되기도 했다고 한다. 고양이는 오랜 이전으로부터 인간과 함께 해온 집짐승으로서 고대 애급에서는 고양이가 숭배의 대상이기까지 했다. 기르던 고양이를 잃거나 죽으면 가족이 눈썹을 잘라 죽음을 슬퍼했다는 풍속도 있다. 그러나 서양의 중세시대에 들어서면서 “고양이 수난시대”가 열렸다. 고양이를 이교도의 상징이자 사탄의 앞잡이로 연결해 마녀들이 기르는 사악한 동물로 취급했다. 마녀에 대한 공포와 혐오로 사람들은 고양이의 꼬리를 자르거나 귀를 잘랐고 모의재판을 거쳐 화형을 하거나 교수형을 하는 등 “고양이 학살 놀이”를 하기까지 했다. 이 풍조는 미국에까지 번져 15세기 말엽부터 18세기에 걸쳐 고양이는 심한 박해를 받았다고 한다. 고양이를 좋아하던 그녀에게서 듣고 또 요즘들에 고양이에 대해 심각한 콤플렉스를 앓는 내가 인터넷에서 수집한 고양이에 대한 일화들이다. 어찌되여 나는 고양이학살에 광분했던 그 시대 사냥군처럼 돼 버린 것이다. - 어흠! 구덩이를 파느라 끙끙대고 있는 나를 향해 소리가 날아왔고 그 소리가 바로 등뒤에서 울려 나는 소스라쳐 놀라고 말았다. 솔숲에서 점퍼차림의 사내가 헛목청을 가다듬으며 나왔다. 바지춤을 추슬리며 다가오는걸 봐선 용변을 보다 나온 것 같다. - 지금 뭐 하는 겐가? 산속에서    귀밑머리에 희끗한 새치가 보였지만 사내의 눈매는 매웠고 목소리는 저력감 있었다. 나는 순간에 그 기세에 눌려버렸고 답변거리를 찾느라 낑낑댔다. 국자를 손에 든 채… 사내가 발로 종이박스를 건드렸다. 야옹! 고양이가 구원을 바라는 듯 울었고 발톱으로 박스를 박박 긁어댔다.  - 고양인가? 지금 고양이를 묻으려는 겐가? 반말로 사내가 물어왔고 나는 공채에 나선 신인배우처럼 예하고 공손하게  대답을 올렸다. 목소리가 저도 모르게 움츠러 들어 있었다. - 왜?     - 저… 집에 안 좋은 일 있어… 방, 방토를 좀 해볼려구… 더듬기까지 하며 겨우 변명거리를 찾아 냈다. 그럴듯한 변명거리에 속으로 쾌재를 부르는데 그 사람의 소리가 한 옥타브 높아졌다. - 참 못 됐구먼 이사람,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아직도 그런 지랄춤 추는 겐가? 형법에 동물학대죄도 있다는 거 모르는 겐가? 97년에 수정한 형법에 동물학대죄가 규정 돼있다고. 형법 260조! 경하면 1년이하 유기도형 먹고 구류, 관제 먹을수도 있고, 벌금형도 있다고. 엄중하면 1년이상 5년까지 갈수 있다고! 버럭 호통 치는 그 량반앞에서 나는 문자 그대로 고양이 앞에선 쥐 모양이 되여 버렸다. 그래도 명색있는 신분인데 누구의 호통질과 삿대질 받는 건 처음이였다. - 그런데… 구박 받으면서도 나는 궁금증을 참을수 없어 의문점을 하나 내 들었다. - 어떻게 되여 법률지식에 그렇게 해박하신지… - 나 변호사 35년에 정년 퇴직한 사람이요 왜? 아, 자꾸만 처져 내리는 안경테를 검지로 추어올리며 나는 머리를 주억거렸다. 그러다 종이박스를 내밀었다. - 그럼 선생님께서 이 고양이를 가지시던가… 버럭 호통이 또 한번 울었다. - 이 사람 아직도 정신 못 차린 겐가? 어디서 갖고 왔으면 어디로 돌려가아! 누군가 손에 쥐여준 연극대본을 들고 전전긍긍하다가 엉겁결에 무대에 나가서는, 어설프게 연기를 하고 내려오는 배우처럼 나는 종이박스를 들고 향해 휘적휘적 산을 내리고 말았다.  종이박스를 그대로 내동댕이치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으나 나를 향해 고정시킨 시선이 있을 것 같았다. 뒤덜미가 어쩐지 서걱거렸다. 약수 뜨러 산을 오르고 내리는 모든 사람들마다 의심과 호기심을 가득 담은 초점을 내게 모으고 금방이라도 달려들어 나를 타매할것만 같았다. 오늘 하루 마치 자신이 연극 무대우에 서 있는 느낌이다. 고양이 때문에 요즘 들어 나는 본의 아니게 코등에 분칠한 광대가 되여버렸다.     8   처치곤란의 고양이는 이제 나에게 공포의 대상이다. 어느 날부터인가 정신은 온통 고양이에게 쏠려져 있다. 열번 못해주고 한번 잘해줘도 그 한번을 기억하는 개라면 열번 잘해주고 한번 못해줘도 그 한번을 기억하는 고양이라 한다. 고양이가 자기를 버리려 하고 지어 없애려는 나의 의도를 충분히 알고 있는 것처럼 나는 생각되였다. 고양이 발바닥에는 연한 육구(肉球)가 있어 소리를 내지 않고 걸을 수 있다. 컴퓨터를 치다가 무심코 뒤를 돌아보면 고양이가 어느새 뒤에와 옹송그리고 있다. 스멀스멀 상기되는 공포에 잠을 설치기가 일쑤다. 밤에 잠자리에 누우면 괴물이 머리맡에서 성큼성큼 걸어 다니는 것 같은 절박한 위기감이 나를 짓눌렀다. 가르랑. 가르랑. 고양이가 목구멍으로 내는 소리가 들린다. 뒤로 팔을 뻗으면 정삼각의 고양이 머리에 손가락이 스칠 것 같다. 얽히고 설킨 그 음산한 숨소리에 모골이 쭈뼛해지면서 진저리를 친다. 적막한 귀속에 가득 담긴 그 소리는 잠 속으로까지 밀려들어와 소용돌이치며 떠돌다가 식은땀으로 밀려나온다. 밤에 깨여 어둠을 더듬으며 화장실로 가다가 고양이에게 발이 걸채여 와들짝 놀란 적도 있다. 조도 낮은 화장실 조명 속에서 맹수처럼 두 개의 눈이 번쩍인다. 고양이의 눈이 이글이글 타올라서 불티가 탁탁 튈 것만 같다. 고양이의 평균 수명은 약 14년이며, 최고 31년의 기록도 있다고 한다. 고양이의 한 살은 사람으로 치면 15세와 맞먹는 나이라고 한다. 6개월의 고양이는 10살의 어린이와 비교가 되며 한 살된 고양이는 18세의 청년과 맞먹는 나이이고 두 살된 고양이는 24살에 해당된다고 한다. 두 살 이후에는 고양이도 조금씩 로화가 되여 1년마다 사람의 나이로 4년에 해당된다고 한다. 6년생인 “비비안 리”는 40세, 어쩌면 나와 나이가 꼭 같다. 녀석은 몸부림치는 이 시대 40대의 인간들과 꼭 같이 생존을 위해 발악하고 있는 것이다.  어제 신화서점에 들리고 정류소로 가려고 거리를 가로지르는 지하도 층계를 내리다 그녀- 고양이의 임자를 보았다. 선글라스를 머리띠처럼 이마전에 올리고 있었다. 머리를 높이 틀어 올려 깨끗한 목덜미, 내가 무수히 입맞춤 했을 그 목덜미가 오늘따라 환장하게 눈부시다. 그녀의 익숙한 웃음이 지하도에 차고 넘쳤다.  그러나 다음순간 도수안경을 밀며 나의 코마루가 움찔했다. “비비안 리”는 다른 남자와 같이 있었다. 훤칠한 키의 준수한 남자, 건강미가 일신에 풍기는 남자와 팔을 겯고 있었다. 그 남자는 언젠가 “비비안 리”의 핸드폰속에 저장된 사진속에서 보았던 그 남자, 바로 그녀의 남편이였다. 아주 잠깐 나는 몸이 굳었다. 놀라움과 더불어 가벼운 질투 같은 것이 일었다. 어깨를 스치는 순간 나와 그녀의 눈이 시선이 섬광처럼 부딪혔다. 휴~ 그녀가 입김으로 앞머리를 불었다. 그리고 그녀는 황급히 나를 외면했다. 별안간 머리가 텅 비여 오는 듯한 느낌에 나는 멍청하게 그녀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마치 무인지경을 가듯이 그렇게 나를 지나쳐 가버렸다. 한번이라도 돌아볼 줄 알았지만 그녀는 남편의 팔뚝에 매달린 채 그냥 그렇게 가버렸다. 층계를 오르는 그녀의 구두소리가 또각또각 내 심장에 와 박혔다. 그녀에게 들붙은 시선이 거둬지지 않아 나는 층계에 못박히고 말았다. 아직도 뭔가 묘연하고 암담하기만 한 응어리가 발걸음을 자꾸 옥죄였고 목구멍으로 무언가가 뜨겁게 치밀어 오르는 것 같아 나는 입술을 깨물어야 했다. 귀볼을 간지럽히며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말들이 아직 귀바퀴를 맴돌고 있는데 우리는 이미 서로를 떠나 버렸다. 그와 몸을 섞고 그의 몸을 어루만지며 열락에 들뜬 시간들이 한낱 춘몽이였다는 자각이 나를 견딜 수 없게 했다. 부드러운 혀로 그의 몸뚱이의 세세한 부분까지 핥으면서 그는 내 것이라는 충만감에 전률하곤 하지 않았던가. 사귀여 온 동안 내내 우리는 형언할 수 없는 환상에 뜨겁게 사로잡혀 있었지만 이제 그것을 정리하는 시간이 온 것이다. 지하통로에서 어깨를 스쳤지만 그 멀지 않은 듯 먼 거리의 의미를 나는 다시 한 번 고통스럽게 확인했다. 만나서는 마치 자신을 소진시키듯 살을 섞고, 푸슬푸슬하게 서로에게서 떨어져 나가고 만 우리였다. 응집된 환상이 깨여진 뒤면 인간들은 자아를 찾아 뿔뿔이 흩어져 간다. 그 깨여진 환상의 조각에는 현실, 우리들 각자의 새로운 시작이라는게 던져져 있을 뿐이였다. 무엇 때문인지 스스로도 분간키 어려운 온갖 감정들이 엉망으로 헝클어지고 엉켜져서 가슴 한 귀퉁이가 조금씩 조금씩 허물어져 내리는 듯한 느낌에 나는 손마디를 뚝뚝 꺾었다. 절교한지 한달 만에 보는 그녀, 기묘하고 쓸쓸하기만 한 재회였다.     … 알아듣기 어려운 경제론단 프로를 켜놓은 채 나는 TV앞에 멍하니 앉아 상념에 빠져 있다. 그런 나의 무릎으로 고양이가 스르륵 기여 올랐다. 천연덕스럽게 내 품으로 기여드는 고양이를 보는 순간, 불쑥 혐오와 허탈감이 뒤엉켰다. 순간, 내 마음 깊은 곳에 똬리를 틀고 있던 짐승 한 마리가 기지개를 켜며 몸을 일으키는 것을 나는 느꼈다.    고양이의 몸에 손을 얹었다. 요즘 나 못지 않게 시련을 겪고있는 녀석은 살이 몹시 빠져 있다. 갈비뼈가 만져진다. 그 갈비뼈의 개수를 세는 듯 하다가 나의 두 손이 고양이의 목을 잡아 눌렀다. 나의 내면 깊숙이 웅크리고 있던 것이 투두둑 터져 나왔다. 나는 몹시 곤혹스러웠고 속에서는 알 수 없는 반란이 일고 있었다. 미쳤어, 내가 미쳤어! 자신에게 채찍을 내리치듯 나무라면서도 나는 손에 힘을 주었다. 고양이의 투덕거림이 손으로 전해져온다. 나는 이 순간 쾌감을 느낀다. 녀석이 움직임이 힘차다.  필사적으로 살고자 하는 의지가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비비안 리”의 몸이 터질 듯 팽팽하다. 둥근 갈비뼈 밑에서 툭, 툭, 툭, 진동이 느껴진다. 유리섬유처럼 털이 뻣뻣해 진다. 경련이 시작된다. 필사적으로 숨을 들이쉬려는 고양이의 턱이 벌어진다. 눈이 돌아간다. 네 개의 다리가 나무 막대처럼 꼿꼿해진다. 경련과 고통스러운 호흡이 번갈아 이어진다. 문득 “비비안 리”가 숨을 크게 들이쉰다 불그스름한 거품이 “비비안 리”의 코구멍과 이빨 틈으로 흘러내린다. - 힘드냐? 나도 힘들다… 그러니 차라리 죽어, 빨리 죽어!    나는 나직하게 넋두리하듯이 하며 고양이와 함께 몸부림쳤다. 이때 출입문 쪽에서 인기척이 났다. 내가 흠칫 하는 사이 죽은 줄로 알았던 고양이가 최후의 발악으로 몸을 솟구며 내 손에서 벗어났다. 녀석은 고통에서인지 공포에서인지 목구멍으로 그르렁대는 소리를 내며 주방쪽으로 사라졌다.     장모였다. 여느 때와 같이 짠지 등속을 가져다 주고 어질러 놓은 집을 거두어 주려 온 것이다. - 집에 있었구만 힘들게 문을 따고 들어온 장모가 거실 복판에 서있는 나를 보고 놀란 기색이였다. - 그런데 자네 어디 아프기라도 하남? 얼굴색이 왜 그래? 장모의 이상한 눈초리가 나를 찔러온다. 분명 붉게 상기되였을 내 얼굴을 상상하며 구차한 변명을 둘러댔다. - 아, 운동 좀 하느라고요 - 밖에 나가 소풍이라도 좀 허지 날씨도 따뜻한데. 뭐니뭐니 해도 건강이 첫째일세 혼자말처럼 중얼거리며 장모는 집안 구석구석을 치우기 시작했다. 이마에 흠씬 배인 땀을 씻으며 나는 고양이의 종적을 살폈다. 손등이 얼얼해 나서 그제야 살펴보니 붉은 줄 네 개가 선명히 그어졌고 그 줄을 따라 살갗이 보풀처럼 일어나 있다. 분명 고양이 발톱에 할퀸 것이다. 베란다에서 잘 거두지 않아 희뜩희뜩 말라 가는 화초에 물을 뿌려 주시던 장모가 문뜩 나를 불렀다.  - 사위, 나 좀 보세 아마 아끼는 화분을 잘 거두지 않아 화가 나신 모양이다. 물 조로로 꽃에 물을 주고 늘어진 잎 파리를 걸레로 닦아주며 장모는 입을 열었다. - 나 이 말 할가 말가 고민이 많았네만… 한 번만 물읍세     장모가 머리를 돌렸다. 그런 장모의 얼굴은 꼿꼿하게 들려 있었다. - 그 날… 옷 장속에 숨어있던 사람은 누군가? 나는 찬물이라도 뒤집어 쓴 듯 몸을 흠칫 떨었다. 장모가 오랫동안 뒤집어 썼던 나의 비밀의 한 자락을 잡아채어 매몰차게 벗겨내고 말았다. 그리고 그 이부자리 속에서 기어코 우리의 수치스런 알몸은 드러나 버린 것이였다.     장모는 구태여 나의 답변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다시 조로를 집어 들었다. 구멍이 좀 막혔던지 물 줄기가 간신히 새 나왔다. 장모가 가라앉은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 처자가 좀 잘 살아보겠다고 외국가서 애면글면 손톱 벗겨지게 일하는데 그게, 그게 사람 된 도린가? 자넨 책 읽은 사람이니 이런 리치는 나보다 더 잘 알겠소마는 내 굳이 한 마디만 해야겄네. 이 한마디도 못 하다간 내 속이 뒤집혀서 못 살 것 같아 그러네. 장모의 소리는 메마른 저수지처럼 갈라져 있었다. 화분 잎 파리를 닦는 그의 손이 눈에 띄이게 떨리고 있었다. - 물론 홀아비 처지로 한 두해도 아니고 7년 8년 지내온 사위 처지도 리해 할만하이. 아직 젊은 나이에 참고 견디려니 오죽하겄나? 허지만 자네 같은 처지가 어디 한두 집인가? 그렇다고 집집마다 자네처럼 처사한다면 요즘 같은 세상 성한 집이 남아 있을란가 모르겄네. 장모의 떨리는 목소리는 채찍이 되여 나를 후려쳤다. 그 소리는 고요하면서 강렬하게 고동치며 내 몸을 장악해나갔다. 극심한 부끄러움과 죄의식이 나의 온 몸을 강타했다. 살갗 깊숙이 박히는 장모의 시선을 받아내며 나는 뒤미처 장모앞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 애 어미한테는 알리지 않겠네. 남들처럼 돈 벌어 와 갔고는 오히려 갈라지고 부서지고 하는 꼴 난 볼수가 없네. 다음 달이면 애 어미가 돌아오겠는데 이제 좀 자제해 주게나. 자네가 누군가. 책 쓰는 사람 아닌가. 내 딸 뿐 아니라 나도 자네가 맘에 들었네. 자넨 이 집안의 자랑이자 희망이기도 허지. 이 희망을 이 집안을 하루밤 정분 때문에 그렇게 쉽게 부서뜰릴겐가. 왜 그러나 이 사람아~ 장모의 목소리가 물기에 젖어 들었다. 말을 잇지 못하고 목구멍으로 애증만을 꺼억 거릴 뿐이였다. 남향 창으로 미여지게 들어오는 해빛에 장모의 얼굴에는 굴곡마다 진한 그림자가 생겨나 있었다. 나는 장모의 얼굴에 깊숙하게 깃든 주름과 그 주름에 앙금진 음울한 그늘을 보았다. 그것은 예의 피곤함이였다. 형언하기 어려운 짙은 피곤함이였다. 금방이라도 후두둑 무너져 내릴 것만 같이 지쳐 있는 장모의 지친 눈빛이 나의 가슴을 후벼냈다. 그 눈길을 보노라니 마치 커다란 엿 한 덩이를 목구멍으로 겨우 삼키고 있는 듯한 기분이였다. 이윽고 한숨 같은 심호흡으로 머리속을 정돈하고 나서 장모가 말을 이었다. - 난 자넬 믿네. 신분있는 사람이니만큼 우리가 믿는 사람인 만큼 조신있게 처사할수 있으리라 믿네. 장모의 말에서는 여러 가지 느낌이 묻어 났다. 그 참담한 진정을 나는 숙연한 마음으로 들었다. 그 말들이 풍겨내는 체념과 초월의 냄새를 나는 맡을수 있었다. 마침내 나는 고개를 깊숙이 떨어뜨리고 말았다. - 죄송합니다!   9 고향은 번개를 맞은 괴사목(愧死木)을 방불케 했다. 학교는 페교되고 비운 채 떠나버린 집들은 이영이 곰삭아 주저앉고 있었다. 봄이라지만 전간에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젊은 층이 죄다 도시로 해외로 나가버려 로인네 몇몇이 남았으니 그럴법도 했다. 그럴수 밖에 없었다. 오랜만에 고향을 찾았던 나는 참담한 기분으로 나를 낳고 키워 주었던, 이제는 살풍경으로 남은 그 곳을 점도록 지켜 보았다. 팔 목 시큰하게 들고 온 종이박스를 내려놓을 것도 잊은 채…  요사이 편집부에 허리케인(龍券風)이 몰아쳤다. 그것은 우리로 말하면 7시 황금뉴스 시간에도 톱뉴스로 나올만한 참말로 특대뉴스였다. 수필편집의 로친네가 귀국했다. 로씨야로 옷장사를 나갔다 4년만에 돌아왔는데 그가 새삼스럽게 우리 편집부를 찾아 왔다. 그런 인상을 가져서 였던지 로씨야 녀인들처럼 풍성한 몸매를 한 그녀는 편집부에 들어서자 바람으로 남편, 수필편집의 얼굴에 책상우에 놓여진 두툼한 사전을 집어 던졌다. 카랑카랑한 악청이 사무실을 강타했다. - 빵 부스러기 같은 령감태기, 기껏 공대해 주었더니 바람을 펴!!! 유독 다른 녀자에게 한 눈 파는 일 없이 곧은 직(直)자로 살아오려니 여겼던 ,그래서 편집부내에서 놀림 과녁으로 되였던 그에게 밖에 둔 녀자가 있었다고 했다. 사진을 찍어 숨겨두었는데 어찌구려 그 사진이 귀국한 호랑말코 같은 로친에게 발견된 것이다. 세대차이는 못 말릴 듯 했다. 디카(디지털 카메라) 세월에 하필이면 필카(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 뽑아 간직해 두었으니 걸릴 법도 했다.  - 황홀한 바람 피워 볼려면 “까게베”를 배워야 돼, 눈치가 빠르고 몸이 빨라야지. 그보다 중요한건 증거나 단서를 남기지 말아야는 거야. 간첩 같은 스릴 그 스릴을 즐기는 거라고   수필편집의 로친네가 울고불고하며 한바탕 벌린 공소의 굿 장단을 파하고 돌아간 뒤 스산한 분위기를 무마하련 듯 부장이 우스개를 피웠다. 하지만 웃음이 들리지 않았다. 모두는 남의 일 같지 않다는 모습이였다. 누구보다 나의 뇌리를 선점한 건 나의 장모님의 얼굴이였다. 무너져 내릴 것 같던 장모의 눈빛, 그 락망과 희망이 교차한 눈길을 며칠 내내 잊을수 없었다. 곁의 눈을 살피며 나는 슬그머니 핸드폰을 열었다. 핸드폰 속에 저장된 그녀의 사진이 문득 생각 났던 것이다. 핸드폰 속 비밀한 파일속에 그녀, “비비안 리”가 있었다. 그녀의 눈매를 닮은 고양이를 안고 있다. 사진 속에 갇힌 시간들이 보인다. 그녀의 둘레를 꽉 채우고 있는 비밀한 나날들. 그녀 곁에 나도 보인다. 이제 보니 왜서였던지 우리의 얼굴들은 웃는 듯 마는 듯 묘한 표정을 하고 있다. 남몰래 어울려 있음에 대한 비밀함, 혹은 힘든 삶의 도피에서 맛본 향수의 모습이 라 할까. 이제 그 모습을 지워야 한다. 지워야 할 때가 온 것이다. 힘겨운 리별. 이 리별이 힘들었던 건, 우리에게 무수한 만남들이 있지만 어떤 만남은 꼭 헤여지기 마련이라는 것을 미리 생각하지 못한 충동이 자초한 것이 기때문이리라. 한숨 한번 짓고 나서 나는 단연히 삭제버튼을 눌렀다… 중세기 고양이 학살에 광분했던 그들처럼 고양이와의 전쟁을 벌리던 나는 뒤늦게 흩어진 리성을 수습하기에 이르렀다. 나는 고양이를 그렇듯 미워하고 버리려하고 지어 죽이기까지 하려 했던 것이 단지 애완동물에 대한 무감각한 정서따위가 아니라 그녀와 남겼던 즉물적인 사랑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서, 하지만 지우기 어려운데서 다른 곳에 투영된 변형된 아집임을 뒤늦게 깨우칠수 있었다. 그래서 이제 미안쩍은 생각이 드는 고양이를 버리되 정중하게 내가 나서 자란 고향에 버리기로 했다. 겸사겸사 오랫동안 발길이 미치지 못했던 고향에도 가볼 겸. 인품 순후한 그곳이면 누군가 나의 고양이를 거두어주고 잘 키워 줄수 있다고 나는 믿고 있었다. 무슨 의식이라도 치르는 사람처럼 동구밖에서 나는 박스를 열어젖혔다. 갑갑했던 고양이가 용수철처럼 튀여나왔다. 만곡된 허리를 펴며 꽃잎 같은 입술을 열며 기지개를 쭈욱 켰다. 나는 고양이의 보법으로 슬금슬금 자리를 떴다. 다행히도 따라오지 않았다. 해바라기를 하는 듯 고양이는 그 자리에 웅크리고 꼼짝하지 않는다. 탈출하는 사람처럼 먼지를 일구며 걸음을 재촉하다가 나는 뒤를 돌아다 보았다. 보다 강렬해진 봄 해살이 쏟아지고 그 빛 속에서 고양이의 모습은 신기루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돌아오는 뻐스에서 나는 길게 별렀던 살인을 마친 킬러처럼 단잠에 곯아 떨어졌다. 집으로 돌아와 먼지투성이의 몸을 샤워기 밑에 들이 밀었다. 따뜻한 물줄기에 그 기간 온몸 골골샅샅에 밴 채 응어리로 남아돌던 피곤이 싹 풀리는 듯 했다. 홀가분했다. 묵은 각질을 벗겨낸 것 같은 후련한 심정이였다. 겨우겨우 촌극을 벌여 나는 드디여 고양이에서 벗어났다. 그 동안 자신의 보따리를 버려야 한다는 강박증에 나는 줄곧 시달린 듯 했다. 나에게 씌워진 모든 감정과 책무, 그 동안의 삶을 속박했던 육신의 욕망, 그리고 그 주기에서조차 벗어난 기분이였다. 무성했지만 귀찮아 내버려두었던 수염도 깎았다. 뺨과 턱에 비누를 허옇게, 신명나게 칠하고 면도칼을 들었다. - 옛날 애급사람들은 고양이를 잃으면 한쪽 눈썹을 밀어 기념했대요    어데선가 내레이션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고소를 머금으며 나는 면도를 시작했다. - 오, 마이갓!    면도를 끝내고 무우 밑둥처럼 매끈하고 수염 터기가 파란 턱을 기분 좋게 만지던 나의 입으로 헛비명이 새여 나갔다. 어느결에 왜서 그랬던지 나의 왼쪽 눈썹의 절반이 말끔히 지워져 있었다.       ****************************************************************   안해가 왔다. 드디여 안해가 돌아왔다. 공항터미널에서 나를 보고 처음 한 안해의 말은 “당신 눈썹이 왜 그래요?” 였다. 과거는 흔적을 남긴다. 집에는 아직도 모서리마다 고양이에게 긁힌 자국이 어딘가 있고, 내 얼굴에도 그 흔적은 남아있다.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그저 안해를 껴안았다. 오래도록 그리고 꼭 껴안아 주었다. 안해는 눈에 띄이게 얼굴이 갸름해져 있었다. 그는 이 몇년동안 마치 다른 시간의 경계를 지나 이 곳으로 온 것처럼, 여리고 화사하던 얼굴빛을 잃어버렸다. 그러나 눈빛은 열에 들뜬 것처럼 깊고 강했다. 가늘던 목소리도 명료하고 무겁게 변해 있었다. 그날 저녁, 참말로 오랜만에 안해와 정을 나누었다. 첫사랑 그때처럼 다소 민망하고 부끄러워하면서 하지만 격렬하게 서로를 가졌다. 오래동안 덮었던 솜이불 같은 친근한 느낌이 몸을, 마음을 감쌌다. 버릇처럼 내가 커피를 풀었다. “연와” 커피 한 잔을 받쳐주는데 안해는 커피를 마시지 않고 록차를 마신다고 했다. 커피를 버리고 다시 록차를 풀었다. 뜨거운 록차를 마시며 우리는 7년이라는 세월의 시차(視差)에 담겨진 많은 이야기를 하고 또 했다. 귀국 후의 그 며칠은 친척친지들과의 해후상봉의 술자리가 발에 발을 이었다. 그리고 안해는 오래전에 원했던 것을 하나둘 현실로 옮기기 시작했다. 기물도 사들이고 가물도 바꾸었다. 이제 옛말하며 잘 살아봅시다. 흥분한 안해의 얼굴과 몸짓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어느 날, 딸애와 함께 쇼핑을 마치고 돌아온 안해의 눈이 여느 때보다 빛나며 얼굴에 감추지 못하는 웃음이 묻어 났다. 커다란 쇼핑백에서 무언가 끄집어 냈다. 안해가 사온 물건에 궁금증을 가지며 눈길이 주던 나는 급기야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입에서 소용돌이처럼 맴도는 비명을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 오, 마이갓! 그것은 한 마리의 고양이였다. - 애가 하도 졸라서 사줬어요. 그 동안 집에서 고양이 기르다 잃어버렸다면서요. 짙은 에메랄드 색 눈빛을 하고 견갑부(肩甲部)에 감색의 털이 조금 섞인 나비 모양의 무늬가 있고 목과 가슴의 털이 풍성한 고양이는 호랑이의 그것 같이 날카로운 렬육치(裂肉齒)를 드러내며 나를 바라고 야옹!하고 울었다.   "도라지" 2008년 3월호      ☞ 김혁 문학블로그: http://blog.naver.com/khk6699 ☜     
128    [창작담] 도덕과 욕망 사이, 그 절박한 줄다리기 댓글:  조회:1786  추천:77  2008-04-03
도덕과 욕망 사이, 그 절박한 줄다리기 \"뜨거운 양철지붕위의 고양이\" 창작후기 김 혁     1   “톰소야의 모험”의 저자 마크 트웬, 집에 무려11마리의 고양이를 길렀던 그는 \"고양이 꼬리를 잡고 있으면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다.\"라고 고양이에 대한 재미있는 말을 남겼다. 이 소설이 바로 고양이의 꼬리를 잡고 있는 한 남자의 이야기다. 일탈적인 사랑과 가족제도 사이에서 오랜 방황을 거듭하다 결국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는 식상한 이야기다. 70년대 까지도 조선족은 전통적인 유교사상에다 사회주의 금욕사상이 공고하게 녹아들어 있어 결혼관과 정조관이 아주 건전한 이미지로 정평이 나 있었다. 리상화된 가족의 유지를 “도덕”이란 이름으로 보존하면서 사회질서를 유지해 왔다. 따라서 배우자가 아닌 타자와의 사랑은 “불륜”이란 락인이 찍힌 채 사회로부터 도덕적 리상주의를 거스르는 금지된 욕망으로 인식되여왔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불륜에 대한 이 시대의 태도는 엉거주춤해져 버렸다. 개혁개방을 맞아, 또 출국붐이 일면서부터 고유의 결혼관과 정조관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중 피부에 실감되게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는 것이 곧바로 리혼률의 급증과 가정의 파탄, 편부모나 부모 부재로 인한 비행소년소녀들의 급증이다. 이렇케 인간의 륜리적 가치가 금전으로 쾌락으로 이동되고 있는 시점에서,  가족마다에 닥쳐 온 우환을 우스꽝스럽기도, 사랑스럽기도, 때로는 안쓰럽기도 한 한 어눌한 사내의 에피소드를 통해 풀어보려 했다. 그 사내와 함께 한 고양이의 족적(足跡)과 함께 엮어 보려 했다. 그로서 가족의 문제, 순결 이데올로기와 자신의 정체성찾기를 보여주려 했다.   2   요즘의 소설문단을 평단하는 자대는 그 기준을 잃은듯 하다. 진정 소설 만드는 사람이 몇손에 꼽기 바쁠 정도로 적어지고 그에 아우성인 문학지 편집들과 년말년시 상을 주면서도 어쩐지 탐탁치 못한 이른바 수작들, 이게 다 소설이냐? 악풀을 달면서도 자신은 쓰지도 해법도 내놓지 못하는 성숙치 못한 독자군… 게다가 우리의 작가들은 상업주의와 허명에 자기에게 걸맞던 쟝르를 버리거나, 문화권력에 치우치고 그와 제휴하면서 스스의 존립근거를 허물고 있다.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소설문학은 서두르지 않는 변화를 통한 오랜 숙성 과정이 더 많이 필요하다. 하기에 이는 속도만 추구하는 요즘의 속성과 반대다. 요즘의 작가들은 연구하고 공부하지 않고 잽싸게 쓴 글로 재빨리 인정받으려 한다. 그런데다 나름의 독선에 빠져 남의 글을 읽으려 하지도 않는다. 이렇게 숙성의 시간이 주어지지 않으니 우리문단에서 좋은 소설 좋은 작가를 기대하기 어렵다. 또 간혹 좋은 작품이 나와도 편협한 독선과 나르시즘에 빠진 창작자, 평론자들은 그것을 가려내지 못하니 좋은 작품이 소외당하고 잊혀지게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소설쓰기를 좋아한다. 소설이라는 쟝르가 갖는 정직성을 좋아한다. 작가가 노력하는 만큼, 그리고 살아내는 만큼의 삶의 무게가 고스란히 담기는 우직스러움과 정직함이 소설에 있고 그 정도에 깊이 들어 갈수록 자신을 청정하게 걸러낼수 있다고 믿고있다.   3   세상고에 시달리며 그 부조리를 밝혀보자 한동안 논픽션(非虚构) 쟝르에만 매달렸다가 오랜만에 집필한 허구가 가득한, 하지만 현실같은 소설.소설을 끝낸 날이 바로 경칩이였다. 곧 다시 봄이다.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하는…“봄은 고양이로소이다”라고 갈파했던 어느 시인의 한 구절을 련상케 하는…     parent.ContentViewer.parseScript(\'b_15010456\');
127    김혁 출간저서 댓글:  조회:2735  추천:89  2007-12-19
  출간저서- 장편소설 <마마꽃,응달에 피다> 중편소설집 <천재죽이기> 장편르포 <천국의 꿈에는 색조가 없었다> * 편찬저서- <<조선족전통미덕 이야기>> (충성효도 편) <<조선족전통미덕 이야기>> (용감정의 편)   위인전기 \"주덕해의 이야기\"     parent.ContentViewer.parseScript(\'b_11710988\');
126    김혁 프로필 댓글:  조회:5072  추천:127  2007-12-19
    김 혁 (金革)  中國 길림성 룡정 출생 연변대학 조문학부 석사연구생, 북경 로신문학원 수료 연변작가협회 부주석, 소설창작위원회 주임 룡정.윤동주연구회 회장 중국작가협회 회원 “길림신문” , “연변일보” 등 매체에서 20여년간 언론인으로 근무  1985년 단편소설 “피그미의 후손”, "노아의 방주"로 데뷔   장편소설:  “시인 윤동주”, “마마꽃, 응달에 피다”, “국자가에 서있는 그녀를 보았네”, “완용황후” "춘자의 남경" "무성시대"   소설집: “천재죽이기” "피안교"   인물전: “주덕해의 이야기”, “한락연의 이야기” "별헤는 밤: 윤동주 평전" "청년문사의 꿈: 송몽규 평전" "실크로드에 서다: 한락연 평전" "소금꽃: 강경애 평전"  장편력사기행: “일송정 높은솔, 해란강 푸른 물”  문화시리즈: “영화로 읽는 중국조선족” 장편르포: “천국의 꿈에는 색조가 없었다”, "[페스카마 호]사건" 련작칼럼집: "윤동주 코드"  인물만필계렬: “소설가 김혁의 중국조선민족인물시리즈” 편찬저서: "중국조선족전통미덕이야기"(1,2), "룡두레" 외 다부   수상: "윤동주" 문학상  “연변문학” 문학상 “김학철” 문학상 “장백산” 장편소설상 “도라지” 중편소설상 연변일보 “해란강” 수필문학상 연변일보 CJ문학상 소설대상 흑룡강신문 “한얼패” 실화문학 대상 길림신문 “두만강”문학상” 소설상 연변인민출판사 “아리랑” 시 문학상 연변작가협회 “화림”문학상 연변작가협회 문학상 "민족문학" 년도 소설상 연변자치주정부 “진달래” 문예상 한국 계몽사 해외특별상 한국재외동포재단 “제1회 한민족청년상” 한국문인협회 해외문학상 등 수상      문학블로그: http://blog.naver.com/khk6699 中文博客:http://blog.sina.com.cn/jg6599 메일: khk6699@naver.com 邮箱:13704483299@sina.cn 핸드폰: 137- 0448- 3299 사무실 전화: 322-1917  
125    환(幻)을 말하다 댓글:  조회:3653  추천:45  2007-09-30
. 평론 . 환(幻)을 말하다                                        김 혁    《해리포터》와 《반지의 제왕》 이론의 여지없이 21세기는 “판타지의 세기”다. 현재진행형인 판타지물은 현학(玄學), 신화, 무협, 과학환상, 동화, 로맨스, 추리, 호러 등 요소를 용납해들여 읽을라치면 “현혹”될수밖에 없는 신종의 쟝르로 급부상하고있다. 그 정상에 오른 작품으로는 단연 «해리포터»와 «반지의 제왕»을 들수 있다. «해리포터»는 영국에서 출간된 이래 전세계 46개 언어로 번역돼 1억2천만권의 판매기록을 세웠다. 세계 각종 상을 휩쓸었고 영국 최고문학상인 위트브레드상에서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셔머스 ․ 히니와 각축을 벌인 끝에 한표 차로 2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그 작가인 30대의 아기엄마 조앤 K ․ 롤링은 명가의 덤에 올라 권위지가 선정한 세계 저명인사 100명중 25위를 기록했고 녀왕으로부터 대영제국훈장을 수여받았다. «해리포터»의 열풍이 얼마나 대단했던지 어른용까지 출간됐을 정도다. 현재 6권까지 출간, 모두 7권으로 완결될 예정이다. «해리포터»시리즈를 읽는 즐거움중 하나는 소설속에 감추어진 주제들을 찾아내는것이다. 작자 롤링은 «해리포터»에서 보통 판타지문학에서 즐겨 다루는 단순한 선과 악의 구도를 초월하는 다양한 주제들을 탐색하고있다. 이 소설에서 두드러진 주제는 혼혈 마법사들에 대한 순수혈통 마법사의 편견이라는 주제이며 또 한가지 상류층 출신과 중류층 출신사이의 계층갈등이다. 그리고 이 세상에 절대적진리란 없다는것, 우리는 미지의 존재에 대해 근거없는 두려움을 갖고있다는 포스트모던적인 주제도 발견할수 있다.      남아프리카의 작가 J ․ R ․ R ․ 톨킨(1892 - 1973) 이 창작한 «반지의 제왕»도 출간된후부터 «기독교인이 성서를 읽지 않는것은 용서될수 있지만 소설의 독자들이 을 읽지 않는것은 용서될수 없는 일»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있다. 20세기를 마감하면서 각종 영미문학 걸작 25위, 20세기 최고의 소설 4위, «100권의 책»중 4위 등의 위치를 차지하기도 했다. 이미 전세계 10억명 이상의 독자가 «반지의 제왕»을 읽었다. 딱히 영미권에 살고있는 사람이 아니라도, 판타지애호가가 아니라도 누구나 한번쯤은 접할만한, 시대를 초월한 명저이다. 톨킨이 최초로 출판한 책은 «호빗»이라는 동화였다. 전설의 일부 요소들이 등장하는 «호빗»은 예상외로 독자들의 엄청난 반응을 끌어냈고 후편의 출판에 대한 문의가 비발쳤다. 이렇게 해서 씌여진 작품이 바로 «반지의 제왕»이다. 인간과 다양한 종족이 살고있는 중간계(Middle Earth)라는 가상의 세계를 창조하고 다양한 종족들의 언어와 풍습까지 만들어낸 «반지의 제왕»은 1954년에 처음 출간된후 12년만에 완성됐다. «반지의 제왕»은 판타지모험소설로서뿐만아니라 러브스토리로도 그리고 당대 사회에 대한 강력한 고발장으로도 읽을수 있다. 우선 이 판타지는 위험한 려정을 떠나기 위해 뭉친 인간과 마법사들 사이의 상호교류를 묘사하면서 위기의 시기에 일어나는 각기 다른 인종들 사이의 사랑과 애정 그리고 동정과 리해의 가능성을 탐색하고있다. 톨킨은 그 반지가 절대권력을 추구하는 인간 욕망의 상징이라고 암시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반지를 소유하려고 하는것이다. 그러나 반지를 찾으러 가는것이 아니라 반지를 버리러 간다는 사실은 대단히 상징적이다. 그것은 곧 절대권력은 갖는것보다 버리는것이 더 힘들다는것을 의미한다. 2004년 2월 29일, 76회 아카데미시상식에서 누구도 꿈꾸지 못했을 기적이 일어났다. «반지의 제왕 ․ 3»이 자그만치 11개 부문의 상을 독식하며 이날의 주인공이 됐는데, 특히 세인들의 주목을 끈것은 이 작품이 력사상 최초로 아카데미작품상을 거머쥔 판타지영화라는 점이였다. 전세계의 관객과 평론가들은 수십년 동안이나 가상의 괴물과 마법사, 난쟁이들을 스크린에서 목격하고도 판타지물의 진정한 가치를 이날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인정”하게 된것이다. 그후 «반지의 제왕»시리즈는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영화사에서 가장 위대한 100대 영화»에 뽑혔다. 가족판타지물로 각색된 «해리포터»도 아직 완결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세계적으로 관림인수 9억2610만명의 흥행성적을 거두었다. «해리포터»와 «반지의 제왕»은 여러가지로 다른 지점에 있는 작품이다. 하지만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이 두 작품 모두가 판타지작품이라는 점에서 판타지라는 쟝르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환기시키고있다. 판타지란? 우리 작가와 독자들에게는 어딘가 낯설은 이른바 판타지란 영상, 상상을 뜻하는 그리스어로서 우리의 경험, 현실과는 다른 시공간에서 초자연적 존재들에 의해 펼쳐지는 초자연적인 사건을 다루는 일종의 가상소설(假想小說)과 같은 쟝르문학을 가리켜 말한다. 19세기말 E ․ 네즈비트는 마술적존재를 그린 아동문학을 발표하면서 이러한 주제들을 “일상의 마술”이라 하여 판타지라는 이름을 붙여 처음으로 명확한 정의를 내렸다. 오늘날에는 환상문학 가운데 괴기(怪奇)와 공포를 주제로 하지 않는 작품, 공상과학소설 가운데 과학리론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운 발상에 의한 작품, 현실과 전혀 다른 가공의 신화적세계를 무대로 영웅모험담을 그린 작품 등을 가리킨다.   영국에서는 판타지의 독자적인 뜻이 인정되여 문학의 최고 형식이라 불리는 동화와 함께 문학적으로 성숙하였고 프랑스에서는 18-19세기에 걸쳐 요정이야기가 류행하였지만 괴기소설, 암흑소설에 밀려 A ․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1943) 등을 제외하고는 공포이야기가 판타지로 불리는 례가 많았다. 따라서 판타지걸작은 잉글랜드 및 북유럽권에서 많이 나왔으며 우리가 잘 알고있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1865), «오즈의 마법사»(1900) 등이 그 대표적인 작품이다. 20세기 후반에는 특히 근대의 아동용 공상이야기를 전승(傳承)문학으로부터 구별하는 쟝르로서 “판타지”를 쓰고있다. 한편 심리학용어로서 판타지는 현실에 있을수 없는 일을 떠올려 욕망의 충족을 꾀하는 마음의 움직임을 나타낸다. 최근 심층심리학, 정신분석학은 공상력의 작용이 무의식과 깊은 관계가 있음을 발견, 판타지문학과 심리학을 련관시킨 연구를 진행하고있다 중국은 판타지의 비조(鼻祖)? 중국에서는 판타지를 기환(奇幻)소설, 혹은 현환(玄幻)소설이라 부른다. 일찍 륙조(六朝)시대에 지괴소설(志怪小說)이라는 쟝르가 십분 풍미되였다. 오늘의 판타지를 꼭 닮은, 귀신, 선술(仙術), 괴담, 이문(异聞) 등의 내용으로 이루어진 소설인데 후날 당대(唐代)의 전기(傳奇)를 거쳐 명청(明淸)으로 그 맥을 이어간다. 대표적인 작품을 들어보면 «신이경(神异經)», «렬이전(列异传)», «사기 ․ 유협렬전(史记 ․ 游侠列传)», «수신기(搜神记)», «장한가전(长恨歌传)», «남가전(南柯传)》 등을 들수 있다.  모두가 익숙한 «서유기», «봉신연의», «료재지이» 등은 «신마소설(神魔)»이라는 명칭을 띠고있지만 두말할것없이 오늘날의 기환, 현환작품의 범주에 드는 작품들인것이다. 로신선생도 이러한 류의 작품을 쓴적이 있다. 바로 «고사신편(故事新编)»에 수록된 «미간척(眉间尺)»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말 고전도 환상을 떠나서는 존립하기 어렵다. «구운몽», «춘향전», «홍길동전», «박씨부인전»이 그 대표적인 례이다. «구운몽»은 조선 중기의 전형적인 량반사회의 리상을 반영한 본격적인 고전이다. 현실에서 꿈, 꿈에서 현실에로 돌아오는 구조를 바탕으로 한 소설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환몽구조를 가진 작품들의 원형이 되고있다. 판소리를 텍스트로 한 «심청전»은 장님인 아버지를 위해 인당수에 몸을 던진 심청이가 룡궁에서 환생하고 아버지가 눈을 뜨는 등 환상적인 요소가 다분하다. «박씨부인전»에서는 못생겼다고 구박받던 박씨부인이 어느날 아름다운 녀인으로 변한후, 초인간적 힘으로 17세기에 조선을 침입한 청나라 장수를 물리쳐 나라를 구한다. 최초의 국문소설인 허균의 «홍길동전»은 조선 인조 때를 배경으로 적서(嫡庶)차별이라는 사회적 모순을 고발하고있는데 서자로 태여나 출세길이 막힌 홍길동은 도술을 부려 탐관오리를 응징하고, 억압받는 서민들의 한을 대변한다. 왜 판타지인가? 문학계에서뿐만아니라 영화계에서 2001년부터 작년까지 6년 련속 세계 박스오피스 1위 자리는 판타지영화가 독식(獨食)했다. 판타지영화만 나오면 북미 흥행 3억딸라는 기본으로 먹고들어가는 초대형 판타지시리즈도 바로 이 시기에 탄생했다. 그렇다면 대중들이 21세기 들어서 판타지의 매력에 갑자기 푹 빠져버린 근본적 리유는 뭘가? 독자가 판타지소설에 중독되는 리유는 답답하고 궁색하고 진부한 현실의 일상에서 벗어나 우리의 빈약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원대한 스케일안에서 위대한 영웅을 만나고 랑만적인 로맨스를 대리경험하면서 한번쯤 상상해봄직한 환상의 세계를 누려보기 위함일것이다. 판타지소설의 주인공에 자신의 감정이 이입되면서 현실에서는 못이룰 꿈을 이루는 쾌거를 맛볼수 있게 해주는것이다. 현실의 삶이 어렵거나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 사람들은 종종 공상의 세계로 빠져든다. «해리포터»의 작가인 롤링은 남편 없이 어린 딸을 키우며 외롭고 힘든 나날을 보내던 음울하고 어두컴컴한 아파트에서 «해리포터»를 탄생시켰다. 이렇게 환상의 세계가 있어 현실에서 초라하고 비참한 나대신 행복하고 근사한 자기를 꿈꿀수 있었던것이다. 사실 여태껏 판타지물은 문학이나 영화쪽에서도 가장 경계가 모호한 쟝르로 치부되여왔다. 문학사에서 판타지문학은 오래동안 문학의 주류로부터 제외되여왔다. 부적절하고 받아들여질수 없는것으로 취급되여 눈에 띄지 않았으며 주변부에 위치해왔다. 환상문학이 문단에서 차지하는 주변적인 위치때문에 작가들은 판타지소설쓰기를 꺼려 했으며 비평가들 역시 그것이 비리성과 광기를 포용한다는 리유로 판타지문학을 늘 폄하해왔다. 톨킨의 «반지의 제왕»시리즈도 발간 애초에 숱한 비평가들로부터 “유치한 쓰레기작품”이라는 지금은 믿기지 않는 혹평을 받아왔다. 그 근본적인 리유는 19세기이후 팽배한 사실주의숭배 풍조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오래동안 독자와 관객과 평론가들의 작품평가의 척도는 리얼리즘쪽에만 머물러있었다. 판타지물이 독자로 하여금 현실의 책임과 사고를 회피하도록 유도하며 그들을 무지에 빠지게 한다는것이 비평계의 주장이다. 판타지물의 직선적 세계관이나 권선징악적 주제, 인종차별적요소 역시 집중 비평대상이였다. 그러나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상황은 크게 바뀌였다. 판타지문학은 상상속의 환상적즐거움을 위해 현실세계를 버리지는 않았다. 전혀 단순하지 않으며 현실도피적이지도 않는것이다. 오늘의 판타지문학은 환상속으로의 려행을 통해 리얼리즘의 관습을 재점검하며 현대 독자들에게 맞는 새로운 리얼리티를 찾아내는 작업을 한다. 우리를 환상속으로 데리고 들어감으로써 판타지문학은 우리의 일상 리얼리티가 사실은 얼마나 환상적인가를 리해하도록 해준다. 오늘의 판타지문학은 언제나 자아와 타자, 픽션과 리얼리티, 또는 사회와 개인사이의 관계에 관심을 돌리고있다. 따라서 판타지물의 구조를 바라보는 시각이 예전과 크게 달라졌다. 전통적인 정의에 따르면 판타지물은 “마법, 초자연현상, 가상의 동물, 공상의 세계 등을 다룬 일련의 작품들”이라 할수 있다. 하지만 현실세계와 병존하는 가상의 세계를 다룬 판타지물들은 현실적이며 대중친화적이였다. 많은 독자, 관객과 평론가들은 21세기의 판타지물들이 현실의 도피도구가 아닌, 현실을 해명하는 도구로 그 역할이 변질됐음을 주목했다. 오히려 이전까지 현실과 전혀 관계없는 별천지였던 판타지의 세계가 점점 현실세계에 가까워지고있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덕분에 독자와 관객들은 비로소 마법과 상상의 동물 등 판타지물의 허무맹랑한 요소들을 아무런 거부감없이 받아들이게 됐다. 이런 경향은 평론가들이 목놓아 웨치던 “리얼리즘”이라는 요소를 판타지물이 자발적으로 흡수한 결과로 해석되기도 한다. 포스트모던시대에 리얼리티의 또 다른 측면인 환상령역을 탐색하는 판타지문학이 새로운 주요 소설쟝르로 부상하게 된것은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수 없다. 따라서 급기야 판타지열풍이 일기 시작한것이다. 우리들의 판타지 세계를 강타하는 판타지붐에도 무감각한 우리 문단에 얼굴 붉히며 나는 몇해전 늦깎이로나마 판타지 한편을 만들어보았다. «불의 제전»- 민족의 통일을 얼개로 영원한 주제인 로맨스와 한 예술가의 구도자적인 삶을 형상화한 작품은 나의 소심한 출산이였지만 이외로 반응이 괜찮았다.  먼저 나의 홈페이지며 블로그에 등재, 다시 문학지에 투고했는데 톱소설로 실리고 그해 «윤동주문학상» 본상을 수상했다. 첫 판타지를 만들면서 박래품에 대한 모방으로 그치지 않으려 애썼다. 북유럽권의 판타지 베스트와 중국 고전의 장점을 두루두루 따서 그리고 풍부한 유산인 우리의 민속풍토를 많이 차용해서 이 쟝르의 첫 습작에서 보이는 모자람의 틈새를 메우고 우리 특색의 판타지를 만들려 시도해보았다. 문학의 원형이라 말하는 체험을 토대로 작가는 작품세계를 형성해간다. 그러나 상상의 활동을 통해서 작가의 그 체험이 비로소 보편적인 확대와 효력의 힘을 얻을수 있다고 볼 때, 이러한 표현방식이야말로 과학적인 개념과 대응되는 이른바 문학의 궁극적인 단위가 아닐가. 우리 문단에서 가히 처음으로 되는 판타지물을 만들며 가지는 감흥은 깊었다. 판타지는 환상, 상상 등 력동적인 단어로 묶인 새로운 쟝르다. 판타지문학은 그만의 순발력으로 앞으로 살아남을뿐만아니라 순수문학이 남겨놓은 진공상태를 차지하며 번창해나갈것이라고 평론가들은 예견하고있다. 또한 고대 신화와 전설과 민담, 그리고 컴퓨터게임 모두의 영향을 받은 판타지문학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픽션과 리얼리티를 효과적으로 뒤섞으며 현대사회와 리얼리티를 충실하게 반영해나갈것이다.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포터» 시리즈같은 탁월한 수준의 문학을 산출할수 있는 한, 판타지문학의 미래는 분명 밝고 고무적일것이다.     아직은 미개척지인 우리의 판타지의 모습은 어떠할지 아렴풋이 기대해본다. 문학과 예술 2007년 제4호  
124    [자치주55돌특집] 소설 조선족이민사 (3) 댓글:  조회:3300  추천:50  2007-09-02
  . 한 부의 소설로 읽는 중국조선족 이민사 .   조모의 傳說 (3) 김 혁     이듬해 쌍가매는 등돌린 미운 신랑을 꼭 닮은 아들을 낳았다. 그해 겨울은 여느때보다도 추웠다. 어느 별도 성긴 어두운 밤, 훈장네 아들이 느닷없이 마을에 나타났다. 거쿨진 사람 몇을 거느리고 마을로 찾아 왔다. 뒤따른 사람들은 모두들 그를 <<리대장>>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머리를 짧게 치깎고 있었고 볼이 홀쭉하게 패여있었으나 혁대를 두르고 발목에 각반을 친 훈장의 아들은 그렇게도 기품이 있어보였다. 성에 불린 도수안경속으로 보다 명징하고 날카로워 진 그의 눈길을 모두들은 느낄수 있었다. 그 타는듯한 눈길이 허공에서 쌍가매의 눈길과 얽혔고 쌍가매는 부지중 머리를 숙여 버렸다.   오랜만에 나타난 훈장네 아들의 품에는 돐도 안된 아이가 피륙에 쌓여 안겨 있었다. 그가 낳은 아이라고 했다. 밀림에서 생사를 함께 하던 녀자와 결혼했?아이를 보았는데 일본토벌대의 습격에 녀자가 죽었던것이다. 배가 고팠던 애는 꽃잎같은 입술을 열며 애자지게 울었댔다. 어떤 련민이 쌍가매의 가슴을 모질게 훑고 지났다. 쌍가매는 품에서 자는 자기 애를 내려 놓고 낯선 아이의 입에 젖을 물렸다. 가슴을 파고드는 애의 태열과 황달이 채 가시지않은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훈장집 아들을 꼭 닮은 아기를 꼭 껴안으면서 쌍가매는 왠지 구름덩이같이 붙잡을수 없는 이름할수 없는 미열(微熱)을 느꼈다. * 궐기해 나선 항일련군 전사들  * 김좌진장군이 일본군 수천명을 전멸한 청산리대첩 유적지부모에게 아이를 맡기고 떠난후로 훈장의 아들은 자주 마을로 찾아왔다. 허나 아이를 보러 온것이 아니였다. 마을의 청년들을 무어 동맹청년단을 만들었다. 삼굽집이 그들의 거점으로 되였다. 원체 라병환자의 집으로 소박맞던 집이니 일본사람들이 기피하기에 안전하다는 것이였다. 마을의 젊은이들은 밤이면 살며시 모여들어 훈장집 아들의 연설을 들었고 그에게서 노래를 배웠다. <<만주의 벌에 불이 붙는다 시뻘건 화염 그속에서 반일하는 대중의 함성이 난다...>> 여직껏 노래라고는 엄마가 부르던 <<월강곡>>밖에 몰랐던 쌍가매는 열심히 <<총동원가>>라는 그 노래를 배웠고 훈장아들의 불꽃튀는 연설을 들었다. 나지막하나 박력있는 그의 소리에는 사람을 옭아매고 불러일으키는 힘이 있었다. 방안에는 겨릅대등의 불빛으로 밝은 귤빛이 가득 들어차 있었고 격앙된 노래가 등의 불티처럼 튀여오르고 있었다. 불빛에 익은 얼굴얼굴들이 유약을 바른 질그릇처럼 번들거렸다. 스러진 아궁이에 솔가지를 꺾어넣고 모여온 사람들에게 우물물을 길어 대접에 부어 놓고는 아이를 껴안고 곁에서 훈장아들의 선창을 받아 노래를 부를때면 충격이 달군 인두처럼 쌍가매의 가슴을 지지고 있었다. 신심을 다잡는 노래를 흥얼거리노라면 불꽃 사윈 가슴에 뜨는 별빛을 쌍가매는 은연중 느낄수 있었다. 훈장아들이 보급한 노래소리는 한사람 두사람에 걸쳐 온마을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노래는 뒤산 자락의 자두나무숲에도 이슬처럼 내렸고 내가 갈대숲에서도 바람처럼 서걱이였고 아낙들이 빨래하는 우물가에도 잠자리처럼 내려앉았다. 우물곁에 섰는 버드나무의 수천수만의 잎사귀에도 노래의 음조는 깃들어 있었다. 그리고 그동안 쌍가매는 은근히 훈장의 아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물에서 물을 푸다말고 두레박을 늘어 뜨린채 멍해 있기가 일쑤였고 겨릅대등 밝힌 집에서 사념에 잠겨있기가 일쑤였다. 로인들은 겨릅대등의 등찌가 우로 꾸불면 손님이 오고 아래로 꼬불면 안온다고 미신 했다. 쌍가매는 겨릅대등의 등찌가 우로 꼬불기를 바랬다. 쌍가매는 자신속에 움추려있는 어떤 주체할수 없는 기다림을 스스로 느낄수 있었다. 일본총령사관놈들과 그들이 사촉하여 무어 만든 자위단이 마을로 덮쳐든것은 그해 겨울이 지난 봄께였다. 총칼차고 군화를 절걱이며 누렁옷을 입은 한무리의 군대가 광분하는 맹수처럼 덮쳐들었다. 혼겁한 나머지 참깨처럼 줄어든 마을사람들은 둔탁한 총박죽에 날큼한 창끝에 윽박질려 우물가로 끌려갔다. 우물가에서 사람들은 공포에 밀려 한폭의 벽화같이 고착되여 버렸다. 매운 봄바람이 사람들의 이마를 날카롭게 베며 지나갔다. * 항일지사들을 체포하고있는 왜놈토벌대 일본 토벌대가 황구처럼 질질 끌고 온 사람 하나를 마을사람들앞에 내 세웠다. 비인간적인 구박으로 그 사람은 몰골이 말이 아니였다. 매돌속에 들어간 물불린 콩알처럼 으깨여져 있었다. 피투성이 얼굴에 깨여진 안경이 간신히 걸려 있었다. 등뒤로 결박을 지운 그 사람이 비틀거리며 간신히 일어섰다. 바람에 피로 적셔진 그의 머리칼이 불불이 일어서고 있었다. 그것은 꼭마치 화염처럼 보였다. 마을사람들을 향해 그사람은 피발린 얼굴을 비틀어 간신히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 사람을 겨우 헤아려 본 쌍가매가 입으로 헛비명이 새여나갔다. 그는 다름 아닌 훈장의 아들이였다. 집총자세를 하고 저승사자처럼 험상궃은 표정을 한 왜놈들 무리앞에서도 훈장의 아들은 두렴없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처참하게 몰골이 일그러졌지만 그 미소만은 금속같이 세련된 미소였다. 그 찬란한 미소가 사라지기도 전에 타앙! 총성이 울렸다. 공포에 응고된 침묵을 찢어발기는 총소리속에 훈장의 아들은 우물가에 천천히 모로 쓰러져 버렸다. 쌍가매는 터져나오는 공포와 울음을 막으려 주먹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두눈을 지질러 감았다. 구(區)의 서기직무를 맡아나서 일제의 주구와 악패지주를 청산하고 무기를 탈취하며 항일무장투쟁을 성세호대하게 벌려나가던 훈장의 아들은 광복을 앞둔 어느 날, 그 어떤 신념을 미소와 함께 머금고 쓰러졌다. 산더기마다 류혈하듯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피여나던 봄날이였다.           * 항일련군전사를 참살하고있는 일본토벌대 그날 훈장네 일가족도 일본토벌대와 자위단에 의해 몰살당했다. 놈들은 훈장네 집에 불을 질렀고 일가족의 시체를 우물에 처넣었다. 토벌대가 간후 마을사람들은 시체를 건져내고 우물을 가셨다. 우물가 높은 더기의 락엽을 걷어내고 부엽토 밀어내고 붉은 흙속에 훈장아들의 시체를 묻었다. 훈장네 아들은 우물의 수호자로 되여 우물가에 묻혔다. 그후로 봄만 되면 사람들은 그 무덤가에 진달래가 아름벌게 놓여 있는것을 볼수 있었다. 훈장네 집은 일가족이 다 죽고 다행이도 밀영에서 낳은 그 돌잡이만이 살아 남았다. 훈장의 아들이 참살당한 우물가에서 쌍가매는 등짝이 터질것 같은 슬픔을 느꼈다. 포수의 아들이 죽었을때 속울음을 울었던 그는 이번에는 소리내여 울었다. 련줄로 자기곁을 떠나는 인연밭은 이들의 죽음을 두고 내장을 토해낼듯 한 뜨겁고 깊디긴 오열을 느꼈다. 빨갛게 짓무른 눈으로 쌍가매가 그 강보의 애를 맡아 나섰다. <<어째 이래냐? 니하구 훈장집 아들이 무슨 사지어금이라구 다른 사람도 아니구 니가 나서서 이래냐?>> 아버지가 야단을 떨었고 동네 사람들도 의뭉스런 눈을 치떴지만 쌍가매는 흔연히 그애를 맡아 나섰다. 자기의 삶에 조용히 련루되여 있는 훈장의 아들을, 번개맞고 연기나는 자기의 삶에 힘과 정열을 주었던 훈장의 아들을 쌍가매는 잊을수 없었던것이였다. 아이들은 도담도담 잘도 자랐다. 탐스런 머리칼, 호박(琥珀)색피부, 통통히 살이 오르는 손목, 그 작은 생령들을 지켜보는 쌍가매의 부연 눈빛도 아이들의 눈을 닮은 검은 생기로 빛났다. 그리고 그애들을 위해 한 몸을 던졌다. 비행장이나 신작로를 닦는 근로봉사대속에 끼여 인부들에게 밥을 해주기도 했고 정미소에서 벼겨를 넘겨다 팔며 푼돈을 벌기도 했고 솔뿌리를 뽑아 기름 짜는 공장에서 일하기도 했다. 산에 가 쑥을 뜯어 쑥떡을 해 먹였고 다 캐여간 감자밭을 뚜져 감자알을 얻어냈으며 눈밭을 헤매며 배추뿌리를 캐였다. 애들이 방안이 비좁다하게 텀벙텀벙 기여다니고 장난감같은 이로 질긴 음식을 씹어댈때 그녀의 깎은 듯 패인 볼에 발가우리한 홍조가 떠올랐고 여직껏 경직된 얼굴을 하고 있던 아버지도 험상을 풀며 애들을 바라 소리없이 웃었다. 세월지나도 우물은 그 우물이였다. 피는 꽃과 지는 잎의 섭리를 우물은 말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사당패집 아들이 다시 마을로 나타난것은 그후로 썩후의 일이였다. 그때 쌍가매는 물초롱을 이고 물을 긷고 있었다. 장님거지처럼 어정거리며 마을어구에서 사당패집 아들은 쌍가매가 물긷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 보았다. 이제는 그제날의 청초함이 사라진 쌍가매, 하지만 그는 아직도 보폭하나 틀림없이 건강하게 걷고 있었다. 우물가에서 소곤대기 좋아하는 아낙들이 옮긴 풍문에 의하면 사당패집 아들은 사금판에서 정말로 떼돈을 벌고 국자가에서 작부퇴물림과 살림을 차리고 짐벙진 한때도 누렸었지만 그 눈맞고 배맞았던 요상스런 녀자에게 재산을 하루밤새에 몽땅 떼웠다고 했다. <<송충벌거지(벌레) 솔낭구(나무)잎 떠나 못살지비유>> 허기끝의 탐식처럼 사당패집 아들은 우물물을 정신없이 들이마셨다. 자기앞에 섰는 쌍가매와 비온뒤의 제비쑥처럼 자라난 자기를 꼭 닮은 아들과 친형제처럼 곁에 바싹 붙어섰는 훈장네 아들을 면괴에 어린 눈길로 바라 보며 시래기처럼 푸석푸석한 머리를 피나도록 긁적이였다. 쌍가매는 똬리를 만지작이며 허공에 아연하게 떠 있었다. 입에 엿 머금은 사람처럼 우물거리다 아무말도 못했다. 가슴 깊은곳이 막연하게 아프고 습기차 있고 걷잡을수 없는 슬픔에 모대기게 하던 그 사람이 막상 나타나고 보니 욕 한마디도 할수 없었다. 그사이 표나게 수척해진 그가 겨울을 지난 목이 긴 새처럼 허기져 보였고 따라서 그에 대한 대책없는 련민을 느꼈다. 사당패집 아들이 나타나던 날, 마을사람들은 그의 출현보다 더 큰일에 흥분하고 있었다. 간도의 상공으로 비행기가 날아 지났다. 사당패집 아들의 경력담을 들을려고 그의 집에 몰려들었던 마을사람들은 비행기의 동음에 너도 나도 집을 뛰쳐나왔다. 목을 젖히고 비행기를 우러르 었다. 비행기의 꼬리쪽에서 무언가 하얗게 너울너울 날아 내리고 있었다. 하늘의 선녀가 꽃을 뿌리듯 날아 내린것은 삐라였다. 삐라는 우물가에도 날아내렸다. 사람들은 몸을 솟구며 신변에 까지 날아온 그 삐라들을 허겁지겁 받아들었다. 삐라에는 조선글과 중국글이 힘찬 글발로 새겨져 있었다. 그 전문은 이러했다. <<일본은 무조건 투항을 했다! 이로서 약소민족은 해방되였다!>> 삐라를 집어들고 소리내여 읽던 이가 마른 소리로 웃음을 웃었다. 그 소리를 듣고 그 웃음을 따라 우물가에 개벙하게 모여섰던 사람들이 하나 둘 웃기 시작했다. 질마를 벗은 소처럼 오랜만에 참으로 오랜만에 마음을 탁 터놓고 웃음들을 토해 냈다. 쇳목이 잠길때까지 환희의 웃음을 웃고 또 웃었다.    * 1945년 8월 15일 일본천황은 조서를 발표하여 전세계에 일본의 무조건 투항을 알렸다 * 1945년 중국 동북지역에서 투항하는 일본군     근 10년세월이 지난뒤에야 나타난 사당패집 아들에게는 이전과 같은 여유와 흥감질이 없었다. 조용히 돈을 내고 사람을 불러 우물의 드레박을 다시 앉혔다. 드레박줄도 새것으로 바꾸었다. 마을사람들이 삐라장을 받아들고 눈굽젖어 만세를 높이웨치던 그날 사당패집 아들은 자기의 실수를 조목조목 회고했고 인연의 자락을 놓지못해 속을 앓아 왔던 쌍가매는 끝내는 배신했던 그를 용서해 주었다. 쌍가매의 조건이라면 렬사의 후대인 훈장 아들의 자식을 함께 키우자는 것 뿐이였다.   돌아오자 사당패집아들은 그 기간의 밀린 세대주의 힘을 보상하련듯 두 아들의 혼사를 치러주었다.   해방의 기쁨을 맞았으나 그 희열을 눅잦힐 사이가 마을사람들에게는 없었다. 중국에서 국공량당지간의 전면 내전이 일었다. 해방받은 동북해방구조선족들은 고향의 승리의 열매을 보호하기 위하여 결연히 동북을 해방하고 전 중국을 해방하는 투쟁에 궐기해 나섰다. 현성과 마을에서는 전에 없던 참군열조가 일었다. <<군대에 나가는것은 영광스럽다>>는 것은 그때의 기풍이였다. 마을의 청장년들이 분분히 싸움에 탄원해 나섰다.   잔치를 치른 이튿날로 쌍가매의 아들은 전장에 나갔다. 쌍가매는 아들은 전장에 보내면서도 훈장아들 자식의 참군요구만은 부득부득 우겨가며 밀막아 바렸다. 자기의 친혈육을 내보내더라도 렬사의 후예를 아끼려는 마음에서 였다.   아들을 전선에 내보낸 뒤로 쌍가매는 밤만 되면 우물가로 나가곤 했다. 우물물을 길어 대접에 부어놓고 대접을 우물가장자리에 놓고는 언젠가 보았던 엄마의 본을 내여 비손질을 했다. 아들이 전투에서 공세우고 돌아 오기를 빌었고 무양히 살아서 돌아오기를 빌었다.   허나 마을 앞산더기의 진달래가 색색이 연분홍 등롱을 켜들었을때 쌍가매는 아들의 비보를 듣고야 말았다. 아들은 장춘 동정거장을 함락하는 전투에서 류탄을 맞고 쓰러졌던것이다. 물긷다 억장이 무너지는 비보를 접한 쌍가매는 두레박을 우물 속에 떨어뜨리며 그자리에 퍽적지근 주저앉고 말았다. 두레박줄이 다르르 풀어져 내리는 소리가 공명으로 들렸다. 어머니의 마음도 그처럼 깊은 곳으로 추락해 내렸다. 곧 이어 나의 아버지가 유복자로 태여났다.     예이제이없이 그네들이 일구고 다듬어 온 들판의 곡물들이 무르익어 빛나오를 무렵, 드디여 민족자치의 숙원이 이루어져 연변조선민족자치구가 고고성을 울렸다. 마을에서도 성대한 자치구성립경축대회가 열렸다. 우물가에 경축회장이 꾸며 졌다. 우물 곁 버드나무에 매단 스피카에서 노래소리가 흘러 나왔다. 그것은 사당패집 아들의 목소리였다. 스피카를 통해 튀여나온 노래소리는 그렇듯 구성지게 명랑한 가을공기를 휘젓고 있었다. 포장이 터지도록 울리는 흥겨운 가락에 맞추어 상모를 돌리고 장고를 두다리며 흰옷 입은 사람들은 신들린듯 춤을 추고 또 추었다. 너나의 마음을 담은 노래소리는 강을 타고 산발을 타고 랑랑히 울려 퍼졌다. <<에헤라 어절씨구 좋구나 좋네 해란강도 노래하고 장백산도 환호하네 에헤라 어절씨구 장고를 울리세 연변조선족 자치구 세웠네>>    * 1952년 9월 3일 자치구 성립을 선포하는 연변조선족자치구 초대구장 주덕해       환락의 도가니로 끓고 있는 성립대회 회장으로 차 하나가 달려와 섰다. 차에서 젊은 간부 하나가 내렸다. 사람틈바구니를 헤치고 달려와 <<어머니!>>하고 쌍가매를 얼싸안았다. 귀티가 나는 깔끔한 젊은이였다. 그도 아비를 심통히 닮아 안경을 걸고 있었다. 그는 지금 자치구에서 비서직을 맡아하고 있었다. 그의 안내로 차에서 자치구의 구장어른이 내렸다. 주씨성을 가진 구장은 땀발을 씻어 내리며 곧추 우물가로 다가갔다. 명절옷 단장을 한 쌍가매가 새것으로 줄을 바꾼 드레박을 힘껏 우물에 던져 넣었다. 드레박에 물을 푸어 다시 대접에 받아서 구장에게 받쳐 올렸다. 대접을 단숨에 굽 내고 나서 구장이 걸걸한 소리로 웨치다싶이 말했다.   <<우물맛이 차암- 좋습니다!>>   마을사람들은 구장의 팔을 잡고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자치의 기쁨에 넘쳐 춤을 추고 또 추었다.      춤에 신명을 바치는 쌍가매의 춤사위는 정말로 고왔다. 희열에 굽이쳐 돋솟아오르는 눈물을 씻어내리며 쌍가매는 춤의 휘모리에 묻혀들었다.  축제를 맞는 마을은 숫제 봄을 다시 당겨 온듯 마을사람들이 정성껏 결어 만든 꽃송이에 묻혀있었다.   용드레틀도 꽃송이와 채색기로 정성껏 단장이 되여 있었다.   보다 다수워진 가을 해살을 담아 안고 우물물은 빛나 오르고 있었다.     쌍가매는 크렁하게 젖은 눈으로 우물물을 들여다보았다. 그 우물을 지켜보며 쌍가매는 이 맑은 하늘을 별똥별처럼 장식하고 사라진 훈장의 아들을 생각했고 포수의 아들을 생각했고 자기의 아들을 생각했다. 그의 눈에 오늘의 우물가는 그렇게도 아름다워 보였고 그렇게도 비장해 보였고 그렇게도 신성스러워 보였다. 군청색의 이끼가 돋은 돌쯤사이에서 우물은 그 깊숙한 시선으로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 시선은 내재하고있는 오래된 신산스럽고 고통에 쌓인 삶을 불러 일깨웠고 그 사랑과 증오를 하나하나 되새김하는 그녀는 우물과 자신이 하나로 화함을 느끼고 있었다...     할머니의 전설은 이즈음에 와서 끝나군 했다. 허나 세월의 층적층에는 묻힌 사연들이 많았다.     * 조선전쟁이 일자 <항미원조 보가위국>이라는 정부의 호소에 맞추어 중국의 젊은이들이 압록강을 뛰어 넘었다.    광복이 나고 땅을 분여받고 복구건설이 시작되고 조선전쟁이 일고 그다음엔 중국에서 전례없던 문화대혁명이 일었다.   그해 반란파들에 의해 구장과 그 주변의 일군들이 옥에 갇혔고 <<낡은것을 청산한다>>하여 우물의 석비는 깨여지고 우물은 묻어버렸다. 우물을 묻던날 구장의 비서는 우물을 묻는 반란파들을 제지시키려 했다. 그러다 <<완고분자>>로 락인되여 그들에게 머리를 깎이우고 고깔모자를 씌워 길에서 조리돌림을 당했다. 수모를 더는 이겨내지 못하고 렬사의 후예는 우물자리의 버드나무에 목을 매 달았다.   우물을 묻어 버린뒤 할머니는 밤이면 가만히 우물자리를 찾군했다. 엎드려 우물자리에 귀를 대여 보았다. 그때 할머니는 분명 땅밑에서 굽이치는 물소리를 들을수 있었다고 했다. 물소리는 호곡하는 녀자의 울음소리처럼 음울하게 들렸다고 했다.    * 중국전역을 휩쓸며 10년간 지속된 광란의 의 문화대혁명 많은 조선족들이 이 전대미문의 비극에 휘말려 들었다.     그로부터 10년후, 구위비서와 같은 수많은 이들이 억울하게 뒤집어 썼던 모자를 벗고 하나하나 평판을 받았고 온 중국이 오금꺾었던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정보(正步)로 가기 시작했다.     그 즈음에 월강족속의 제4대로 내가 태여 났다.   정부에서는 우물자리를 다시 복원했다. 구두쇠로 이름 있던 나의 증조할아버지가 우물복원에만은 거액의 돈을 내놓았다. 물론 그렇게 된데는 우물과 끈끈한 사연의 동아줄로 얽동여진 할머니의 지청구에 의해 서였다.   그 동안 우리의 조부들이 첫괭이를 박았던 사득판은 촌마을에서 부락으로, 부락에서 현으로, 현에서 진으로, 진에서 시로 탈바꿈을 했다. 그리고 그와 함께 나의 할머니의 쌍가매 진 머리는 창포에서 백발로 바뀌 였고 숱많던 머리가 빠져 이제는 쌍가매도 찾아볼수 없게 되였다.       할아버지도 앞세웠지만 그래도 할머니는 만추에도 잎사귀를 떨어뜨리지 않는 고목처럼 그 누구보다 정정하셨다. 주름이 자글자글한 얼굴에 등맞은 고양이처럼 만곡된 허리로 할머니는 자주 우물자리를 찾군 했다. 복원된 우물을 희한과 련민과 애상 어린 눈길로 쓸어보군 했다. 자신들을 기쁘게 하기도 아프게 하기도 슬프게 하기도 안도하게 하기도 했던 우물을 지켜보며 오래도록 그 자리를 뜰줄을 몰라 했다.   모두들 나의 증조할머니가 백세까지는 앉을것이라고 했다. 조선족집거구인 현성의 우리말 텔레비에서 <<세기의 로인>>이라는 제명으로 할머니를 취재한 특집프로를 만들기도 했다. 취재시에 옹근 한 세기를 가로질러 새 세기의 문전까지 닿아온 그 건강의 비결을 물었을때 할머니는 그중 하나가 매일 랭수 한 사발씩 마이는것이라고 했다. 확실히 할머니는 매일이고 빠침없이 랭수를 마시군 했다. 나중에 바깥출입도 할수 없었던 할머니는 <<씨원-한 우물물 한번 마셨봤음 좋겠는데...>>하고 감질나게 되뇌이군 하였다. 우리가 드링크에 포장한 약수물을 랭장고에 넣었다 다시 드려도 할머니는 <<그때 그 우물맛에 비하겠냐? >>하고 감개를 머금군 했다.   할머니는 증손을 보기를 원했다. 허나 증손녀가 태여나기를 며칠 앞두고 할머니는 끝내는 백세의 정수(正數)를 채우지 못하고 운명하고 말았다. 애가 물이 찌고 나시시 배내머리가 자라고 얼굴모양이 잡혔을때 집식구들은 그만 감개에 젖은 환음(歡音)을 질렀다. 아이의 머리 앞부분에 작은 가마가 하나가 소담히 틀고 앉아 있었던것이다.   <<격세유전이란 말이 있더니 할매를 꼭- 떼닮았네>>   친척친우들이 희한해 마지 않았다.      아이가 돌잡히던 날, 돌잔치를 치르고 나서 우리가족은 우물가를 찾았다. 할머니의 유상을 앞에 모시고 딸애를 안고 우물가에서 가족사진을 남겼다. 흰 수건을 낭자쪽에 겹쳐서 앞이마를 가리우고 하얀 무명실수건을 어깨에 걸치고 모시빛저고리를 받쳐입은 모습으로 할머니는 사진 속에서 웃고 있었다. 유현한 눈길로 할머니는 당신의 마늘타래처럼 주렁주렁한 자식들과 당신이 파시고 마셔오고 지켜오신 우물을 지켜보고 있었다.   사진을 다 찍고도 나는 오래도록 우물가를 뜨지못했다. 새삼스레 우물을 들여다보았다. 우물은 꼭 마치 우멍눈처럼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영원을 찰나 속에 품은 듯한 외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세월이 흘러 우물물도 가버렸지만 순간 나는 코를 푹쌍 찌르는 물내음을 맡을수 있었다. 세월의 더께를 밀어내고 청렬한 우물물냄새를 맡을수 있었고 가슴속에 넌출거리는 우물의 창명(彰明)한 물결을 볼수 있었다. 그리고 우물물이 룡트림쳐 솟아오르는 소리를 환청으로 들을수 있었다.   우물은 소리를 내고 있었다.   악기의 하현찰(下弦擦)처럼 소리를 내고 있었다.   이 구색이 잡힌 현성의 력사와 그 력사의 년륜에 새겨진 사람들의 전설을 소리에 담아 우물은 무겁고 웅숭깊은 유장한 소리로 세기의 오페라를 속울림으로 연주하고 있는것이였다.   그리고 그 순간 지지리하고 조악한 삶을 밟아온 할머니의 섬약하나 끈질긴 아집과 그 와중에 기어코 전하고자하는 할머니네 세대들의 상상력에 수렴되는 룡의 전설이 주는 언질을 나는 읽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전설에 비하면 돈과 명리에 매이고 빈약한 상상력에 기대인 요즘 삶의 풍속이 얼마나 부박한 것 인가한 것 을 깨칠수 있었다. 그리고 그 전설을 받아서 이어나가야겠다는 자긍심과 사명 같은 것에 사로잡혀 들기 시작했다.     딸애의 앞이마에 숙명처럼 틀고 앉은 가마를 자꾸만 매만지면서 나는 오래도록 우물가를 뜨지 못했다. 그리고 다시금 할머니의 전설을 되새김 해보았다... ♡    * 본 작품에 인용한 귀중한 사진자료들은 \"중국조선족사화집\", \"중국동북년감\", \"중국옛사진모음집\", 용정민속박물관, 한국독립기념관 등 곳에서 차용, 출처를 밝히며  졸고를 빛내준 귀중한 사진자료에 감사를 드린다.    
123    [자치주55돌특집] 소설 조선족이민사 (2) 댓글:  조회:4105  추천:46  2007-09-02
. 한 부의 소설로 읽는 중국조선족 이민사 .   조모의 傳說 (2)  김 혁     우물가는 애들의 둘도 없는 놀이터였다. <<머리칼 떨구지 마라. 침 흘려넣지 마라. 부정탈라.>> 어른네들이 백당부했지만 우물가에는 늘 야청옷을 입고 쥐꼬리만한 머리태를 기른 쌍가매네 또래들이 모여 놀군 했다. 그때 집집마다에 서는 바퀴성화가 극성이였다. 어른들은 롱조로 바퀴장례를 치러주면 바퀴가 없어진다고 했다. 그래서 아이들은 바퀴장례를 치렀다. 파지로 고깔상모를 만들었고 나무가지로 걸채?만들었다. 걸채의 앞과 뒤를 포수네 아들과 훈장네 아들이 들고 사당패집 아들은 앞에서 어른들의 본을 내여 아이고데고 호곡소리를 내였다. 그뒤를 쌍가매가 졸졸 묻어 다녔다. 피는 속일수 없는 법, 사당패의 혼줄을 타고 태여났던지 녀석은 어른들의 목돌림을 심통히 받아서 곡조를 제법 잘 넘겼다. 북망산천 어디메뇨 저기 저산 북망일세 내 집이 어디메뇨 무덤이 내집이로구나 그래도 바퀴는 없어지지 않았다. 밤이 되면 집 뒤의 수풀속에서는 귀신불이 날아 다녔다. <귀신불이 아이다. 가둑낭기(나무)나 도토리낭기 썩으면서 그 썩박이 뿌리가 밤이 되면 파란 빛을 뿜는게다.> 얼굴바닥이 계집애들처럼 하얀 훈장네 아들애가 열심히 해석해 주었지만 그 귀신불이 못내 무섭기만 한 쌍가매는 밤중이면 오줌누려도 못나갈 지경이였다. 사당패집 애가 돌배 세 개를 들고나와 누가 귀신불 떠올수 있겠냐고 내기를 걸었다. 얼굴이 구운 밤돌처럼 반질반질한 박포수네 애가 나섰다. 썩박나무가지를 들고와 애들앞에 놓았다. 썩박나무에서 푸른 불들이 눈부시게 끓어 번졌다. 쌍가매는 우악 혼절할듯한 소릴 지르며 집으로 뛰여들어가 버렸다. 겨울이 오면 연놀이를 했다. 사당패집 아들이 한족마을에 가서 백지를 사 가지고 온다. 훈장네 아들이 연을 만든다. 수수대목을 갈라 다듬고 종이를 접어 자르고 어머니의 반짇고리에서 몰래 가져온 무명실로 단단히 걸어 매여 연을 만든다. 포수네 아들은 사금파리 조각들을 주어와서는 김치독 누르는 단단한 몽돌로 사금파리들을 산산이 부순다. 사금파리들은 몽돌에 맞아 사방으로 흩어지며 눈부신 빛을 발한다. 연체에 종이를 바르고 양 옆과 가운데에 꼬리를 단다. 연줄이 견디도록 사금파리 가루를 풀에 섞어 발라서 날을 세운다. 드디여 장방형에 십자살을 붙힌 왕연이 형체를 드러낸다. 가슴이 철렁하도록 맑은 얼음장같은 하늘. 문풍지 소리를 내며 얼레에서 풀리는 은빛 연줄을 타고 연이 오른다. 연은 자유롭게 간도벌의 대공(大空)을 누볐다.   머슴애들은 연싸움에 해가는줄을 몰랐다. 쌍가매가 곁에서 지켜보면 애들은 더구나 신나 한다. 빨갛게 상기된 얼굴로 넌들넌들한 코물을 흡흡 들이마시며 머슴애들은 얼레를 한껏 풀고 활개를 크게 벌려 힘차게 잡아 당긴다. 쌍가매는 해빛에 눈이 부셔 찡긋거리면서도 오래도록 젖힌 목고개가 아파 목을 쩔레 쩔레 흔들면서도 계속 하늘을 쳐다본다. 맞바람을 탄 연은 쌍가매의 머리위 높은곳으로부터 위용을 떨치면서 서서히 다가온다. 머리우를 아슬아슬하게 스쳐지나기도 한다. 얼레가 감겼다 풀렸다하는 소리속에 연은 곧장 하늘로 날아 올랐다가는 대지를 향하여 독수리처럼 나래를 꺼수수 펴고 내려오다가 땅에 닿기전에 연줄을 풀어주면 다시 연머리는 하늘로 향한다. 연줄과 연줄이 부딪히는 소리가 우물가에 가득하다. 사금파리를 잔뜩 먹인 연줄의 얽힘속에 누군가의 줄 끊긴 연이 팔랑거리다 몸체를 흔들며 떨어져 나간다. 박포수아들의 연이다. 훈장의 아들의 연은 하늘로 우뚝 솟구쳤다가는 백학처럼 멀리 사라져 간다. 사당패집아들의 연은 날고 날아 우물가에 심은 버드나무에 가 걸렸다. 애들이 버드나무를 향해 우르르 몰려 갔다. 연이 갖고 싶은 쌍가매는 맨 앞에서 뛰여 갔다. 박포수네 애가 잽싸게 나무에 올라 연을 내리워 주었다. 가까이 까지 달려온 쌍가매에게 연을 넘겨주다 포수의 아들이 불현듯 쌍가매의 머리결을 함부로 만졌다. <<쌍가매는 스나(남자)가 둘이래>> 내숭기 많은 훈장네 아들이나 행위가 애매한 사당패집 아들에 비해 박포수의 아들은 그 성미가 숭글숭글했다. 쌍가매는 부끄러운 나머지 연을 받아들고 정신없이 집으로 뛰여들어 갔다. 그 서슬에 문 짬에 끼여 연이 찢어져 있었다. 쌍가매는 그저 그 연이 아까울 뿐이였다. 동네 녀자애들중에서 발군(拔群)의 미모를 가진 처녀애로 자라고 있는 그였지만 자신의 농익어가는 몸의 싱그러움과 그 몸이 바라는 꿈과 갈구를 아직 알지 못하고 있는 쌍가매였다. 현성에 사숙이 섰다. 공부할수 없는 동포들을 계몽시키기위하여 사숙의 교원들은 마을을 돌며 야학을 열었다. 야학에서는 신문화를 적극 전수했고 어려운 살림들에 도움을 주고저 양잠, 양봉업도 곁들어 배워 주었다. 구학공부 5년에 <<대학>>, <<론어>>를 읽었다는 리훈장이 이곳의 교원직을 맡게 되였다. 물푸레 회초리를 들고 리훈장은 엄하게 아이들을 대했다. 그런 훈장에게 마을사람들은 아이를 시름놓고 맡겼고 가을이면 <<교원쌀>>을 내주군 했다. 작으나마 공터가 있는 우물가가 교실이였다. 리훈장의 열성적인 동원에 마을사람들은 한사람 두사람 야학에 모여 들었다. 옹색한 김서방도 자기집에서 애지중지하던 남포등을 가져와 우물가의 버드나무에 내걸었다. 나중에는 우직한 박포수마저 야학에 나왔고 그 청동방울 흔들어대는것 같은 소리로 훈장에게서 식자본을 따라읽었다. 가을볕과 쓰르라미의 울음소리속에 들판의 곡물들이 빛나게 익어갔고 마을사람들은 사당패집에서 울려나오는 흥겨운 노래소리를 들을수 있었다. 어얼싸 좋구나 농사한철 해보세 어얼싸 좋은데 무슨 농사 해볼가 어얼싸 좋으니 조농사나 해보세 옥토금토 량전에 어떤것을 뿌릴가 만알박이 왕옥조 느실느실 방치조 천리타향 강남콩 오동총백 비단콩 황금보화 황참외 개똥전에 떡참외 어서빨리 박으세 어서빨리 놓으세... 이렇게 아슴한 현기증같은 풍수의 희열에 젖었는 그들앞에 느닷없이 누군가가 나타났다. 중국사람 하나가 살쾡이 처럼 나타났다. 진화가 덜된 원숭이 같은 상판을 가진 그 사람은 발목을 덮는 남색 호복을 입고 있었다. 그 사람의 곁에 화승총을 거꾸로 멘 사람들이 묻어 서있었고 발치에서 갓난 송아지만큼 트대 큰 개가 혀를 빼물고 있었다. 황둥개는 황모꼬리를 흔들며 흰옷 입은 마을사람들을 보고 사납게 짖어 댔다. 어흠 어흠 헛목을 다듬고 나서 그 호복차림의 사람은 마을사람들이 도무지 알아 못들을 말마디들을 사금파리 긋는듯한 거북살스런 소리에 담아 질렀다. 그 귀신 씨나락 까먹는듯한 사금파리 긋는 소리를 훈장이 간신히 알아듣고 해석한 결과 동네사람들이 부쳐 먹고있는 땅은 이 왕씨성을 가진 사람의 땅이라는 것이였다. 마을사람들은 금세 덫을 맞은 듯 벙벙해졌다.     * 당시 청나라 사람들의 모습  <<바위돌은 뉘기 들구 가재는 뉘기 먹는담둥?>> <<곁방살이 큰방 차지 할려문 주인집양반 옴치고 있겠수? 남의 땅 함부로 뚜져놨으니 별쉬 없지비. 후유- >> 바람이 들이닥친 도적떼처럼 마을을 한바퀴 저었다, 한결 결이 세진 가을바람에 마을 사람들은 몸을 으스스 떨었다. 만만치 않은 서슬로 왕씨가 돌아간뒤 몇 해간 마을사람들이 손톱눈 다슳게 사득판을 번져 만든 옥답은 일조일석에 왕씨네 땅으로 되고 말았다. 마을들은 이를 숙명으로 받아들였다. 왕씨와 같은 중국사람들이 주변에 많았다. 그들은 산마루나 골짜기와 시냇물을 경계로 토지점유세를 납주하면서 이민들을 받아들였다. 동네사람들은 이런 땅주인들을 <<지팡이(地方)>>이라고 했고 중국사람들은 월강해 온 사람들을 개간민 이라하여 <<컨민(墾民)>>이라고 불렀다. 그날 감때사납게 마을사람들에게 으름장을 놓고 나서 왕씨는 목이 갈하다며 우물물을 맛보았다. <<호우(好)!>>하고 엄지를 뽑아들며 감탄을 련발했다. <<기럼 이 우물꺼정두 지팡이네 우물이 된담둥?>> 물을 긷던 쌍가매 어머니의 얼굴에 수심이 비껴들었다. 강 건너 웃마을, 자두나무가 빽빽히 섰는 산더기 앞에 고래등같은 왕지팡네 기와집이 있었다. 왕지팡네 땅은 어찌나 넓은지 그가 하루동안 말을 타고 돌아다녀도 남의 땅은 밟지 않는다고 했다. 린근에서 내놓고 건가래를 뗄 넉넉한 재물과 세도가 있었던 왕지팡은 집에 사병(私兵)까지 네댓명 기르고 있었다. 그 위세에 눌려 <<컨민>>들은 가을에 가서 벼수확의 6할을 왕지팡네 집에 바쳐야 했다. 수확을 초곡채로 밭에서 왕지팡네 집 마당에 실어다 부리고 타작하여 알곡을 뒤주에 까지 넣어주었다. 그러고 나면 한해 식량이 태부족 이였다. 벼농사를 짓고도 입쌀밥을 먹지 못하고 왕지팡네 집에서 조며 옥수수며를 빌어먹었다. 자기 땅을 소작 지으려면 이곳에 입적을 해야 했다. 청나라에 입적한 <<귀화인>>들은 토지소유권을 가질수 있었다. 허나 그러자면 반드시 상투를 자르고 만인(滿人)들이 입는 호복을 입어야 했다. <<치발역복(雉髮易服)>>을 해야 했다.     * 청나라에 입적한 <<귀화인>>들은 상투를 자르고  그들이 입는 호복을 입어야  했다. 즉  <<치발역복(雉髮易服)>>을 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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