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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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선과 곡선
2013년 08월 21일 10시 02분  조회:2053  추천:0  작성자: 포럼관리자

농촌마을은 언제 보아도 정답다. 도보로 지나며 보든 기차나 뻐스를 탄채 멀리서 바라보든, 초가는 고박(古朴)해서 푸근함을 주고 기와집은 멋스러워서 정이 간다. 산기슭에, 시내가에 오손도손 자리잡은 마을들은 마음의 고향으로 통한다..

그 농촌가옥들이 근래엔 벽돌집으로 완전교체되는 추세여서 농촌의 변모를 실감케 한다. 초가집이 사라져간다고 아쉬워하는 관광객도 있다고 들리지만 그들의 향수를 달랠 묘수는 인젠 민속촌정도뿐인것 같다.

성질은 다르지만 나에게도 하나의 아쉬움이 있다. 마을 전부를 새로 지은 경우 동일규격의 밀집형마을들이 적잖은것 같은데, 면적도 양식도 일매지게, 그것도 너무 빽빽이 지어진탓에 오붓한 농촌 동네라기보다는 규칙적인 병영을 방불케 해 서운하다.

게다가 마을들에 울타리와 담장 수만메터를 새로 둘러주고, 철제대문 수백개를 달아주었다는 소식도 들리고 있으니 도시는 담장허물기, 농촌은 담장두르기라는 엇박자의 현상에 다소 곤혹스러워지기도 한다.

두부모처럼 일치한 그 집들을 “창고”같다고 싫어하는 농민들도 있고 실제로 통일적인 밀집주택은 방치한채 농민들 스스로 단층 또는 2층가옥을 각자 마음에 들게 짓고사는 마을도 있다. 한뉘를 쓰고 살아야 할 제 집 짓기이니 농민개인의 의사는 당연히 중요한것이고 “규격화”나 “통일”만이 능사는 아닐것이다.

집은 감정의 의복이다. 초가는 속절없이 사라져가더라도 농촌특유의 정취만은 살리면 좋을것 같다. 좀 시간을 들이더라도 풍수지리를 살피며 혹은 언덕에 혹은 산기슭이나 평지에, 그리고 가정식구, 취향, 경제사정이 다름에 따라 면적, 층수, 양식도 차이가 나게 듬성듬성 지어진 마을이 자연스럽다. 뉘집은 남다른 마루가 있어 아늑하고 뉘집은 추녀가 독특한 마을, 앞집은 버드나무, 뒤집은 백양나무가 그늘을 지어주고, 상징적인 바자안엔 과일나무, 채마전이 탐스러운 그런 마을이 정취가 있는 살기 좋은 보금자리가 아닐가.

병영(창고)모양의 밀집농가와 비슷한 사례로 중소학생들 통일복을 들수 있다. 웬일인지 우리 학생들은 여태껏 교복이 따로 없이 말짱 운동복차림으로 학교를 다닌다. 그들이 전부 스포츠맨인것은 아니고, 그렇다고 중소학교들이 모두 체육학원으로 전향을 한 변고도 없었건만 식상하잖은가, 학생들은 모두 무색무취의 운동복 한본새다.

바람에 뒤집히지 않게 설계된 단마르크 우산을 례로 들면서 북유럽 사람들의 출중한 설계 아이디어와 능력을 찬미한 작가 풍기재의 글이 생각난다. 우산따위 일상용품은 물론 복장, 자동차, 주택에서 공공건축에 이르기까지 삶 전체를 통하여 그들은 디자인을 현대생활의 대명사로 알고있다고 력설한 대목이 인상깊다.

다행히 우리 여기서도 연길시중앙소학교 학생들이 선참으로 산뜻한 교복을 입었다는 소문이 들리여 반갑다. 무개성, 무설계의 천편일률에서 과감히 탈피한 그들의 장한 행동은 희망적인 교육사상의 발로가 아닐가? 그들처럼 학교마다 너도나도 품위있는 교복을 일반화한다면 남녀학생들이 신나할것은 물론 도시모습도 한결 환해지련만 복장설계사와 공장들에 신식교복 주문이 밀려들 날은 그렇게도 요원한것인가?

직선사유가 있고 곡선사유가 있다. 규격화, 속도숭배, 천편일률, 무사안일 같은것이 직선사유의 범주에 든다고 한다면 다양성, 개성, 창의, 깊이에의 지향은 곡선사유의 특징이라 할것이다. 직선을 긋기는 쉽고 빠르다. 그대신 조야함과 단조로움의 페단이 뒤따른다. 곡선은 다르다. 어디로 어떻게 그을것인지, 훌륭한 아이디어가 우선이고 잇달아 섬세함을 기하는 노력이 필수이지만 그렇게 공을 들여 곡선을 그으면 좋은 그림이 나온다. 그림뿐이 아니다. 문귀완곡(文贵婉曲)이라고 글의 묘미 역시 직선적이 아닌 굴곡성에 있음을 우리는 익히들 알고있는터이다.

내실이 있는 삶, 윤택하고 넉넉한 삶을 위해서는 곡선의 사유가 절실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연변일보 2013년 8월 2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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