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일
http://www.zoglo.net/blog/zhangzhengyi 블로그홈 | 로그인

※ 댓글

<< 4월 2024 >>
 123456
78910111213
14151617181920
21222324252627
282930    

방문자

나의카테고리 : 수필/칼럼/기행

이슬
2009년 02월 06일 21시 56분  조회:2218  추천:27  작성자: 장정일

이슬

                                                              최옥주스케치 


                                                              장정일


   
이른 아침 전화벨이 울려 수화기를 드니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북경의 조선족무용학교 최옥주안무가의 목소리였는데 연길에서 거는 전화라고 하였다. 하도 오랜만의 통화여서 전화번호를 어떻게 기억했지싶었는데


  “
목소릴 알아듣네요, 이전에 적어둔 번호여서 전화 아니면 어쩌나 했지요”  
하며 최선생은 안도하였다. 그의 반응으로부터 나는 전화번호도 포도주처럼 오랜 번호가 좋은거구나 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치였다. 부득이하면 이사는 가더라도 전화번호만은 가급적으로 변경하지 말아야 한다는게 나의 일가견이기도 하다.


   이전에
나는 최선생무용연구소(학교)후원회의 일원이기도 했었지만 근래엔 몇년에 한번꼴인 상봉이라서였던지 안무가와 나는 겨울을 녹일듯 이어지는 얘기에 시간가는 줄을 몰랐다.


   최선생은
목소리뿐만아니라 풍채도 여전한데다 정력도 의구했다. 몇달전 귀향을 하고 연길 하남에 새집도 마련했다며 선생은 자신의 예술생애사진전시회와 무용근작발표  타산을 들려주었다. 세월은 흘러도 변함이 없는 의욕에 넘치는 안무가였다.


   13
년동안 무용인재를 가르치는 한편 조선민족의 백여년사를 념두에 두고 신작들을 창작했다며 보여주는 공연사진들이 수두룩했다. 그중에서도 《이슬》이라는 작품이 특별히 눈길을 끌었다. 그렇게 미세한 이슬방울도 근사한 무용으로 만들어질수 있다는게 나로선 신기하였다. 11인군무사진이 마음에 들었고 선생이 들려주는 해설이 나에겐 신비로운 시적경지로 안겨왔다.


   태양이
지평선우로 뜨기 직전의 온도가 령도C이상이면 대기중의 수증기가 물체의 표면에 작은 물방울로 응결되여 맺히는게 이슬이다. 과학상의 이런 리치와는 별도로 안무가는 자연의 이슬을 살아숨쉬는 생명으로, 그것도 반짝인생을 사는 찰나의 생명으로 파악하고있었다.


   비록
찰나의 생명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찰나를 위해 온밤 열두시간을 머리우에 달빛을 이고 이름모를 숲과 한적한 골짜기에서 손을 뻗쳐 수십만개의 수증기를 하나하나 끌어안으며 죽도록 열성을 다해 생명을 잉태한다. 처절하고 끈질긴 노력을 경주해 밤새 유리집을 하나하나 짓는다.


   남
자는 적막하고 어두운 , 몸이 오싹하게 하는 랭기속에서 이슬은 맑은 진주알처럼 생의 갈망을 한가슴 가득 안고 풀잎과 꽃잎과 나무잎 우에서 밤새껏 열심히 동그란 수증기집을 짓는다. 이렇듯 간난신고끝에 탄생된 이슬은 밝아오는 아침의 노을녘까지 아름다운 생의 노래를 목청껏 부른다.


   이슬은
지나가는 아가씨의 코신에 살짝 걸터앉는다. 누구보다도 일찍 일어난 목동의 바지가랭이를 시원히 적셔준다. 부지런한 꽃밭주인에게 칠색의 령롱한 빛을 선물하기도 한다. 이슬이 천사의 얼굴에 내리면 안개비가 되고 상쾌한 느낌에 천사는 운다.


   급기야
아침해가 솟아오르면 이슬은 대지에 얼굴을 묻으며 사라져가면서도 입가에는 미소를 짓고 대지의 숨결과 화합한다. 목동과 처녀에게, 아니 드넓은 인간세상에 한방울의 빛을 선사하는 이슬의 순수한 마음은 거룩하다. 하얗게 살고싶어하는 백의민족의 밝은 마음과도 흡사한것이다.


   무대배경은
백년학으로 설정했고 학은 한송이를 물었다. 이슬은 꽃잎에 앉는다.


   순간에
영원을, 찰나에 정신적우주를 담고저 이슬의 이미지를 파고든 무용 작품을 말하는 안무가, 그녀는 분명 자연의 세계, 무용의 세계, 문학적상상의 세계사이를 자유자재로 넘나들고있었다.


   얘기가
깊어지니 그것은 경계를 넘다드는 정도가 아니였다. “시적인 감정이 없으면 무용의 률동이 없다 그녀는 아예 무용은 라고 정의하기도 하였다.  문학이 선행돼야 하고 문학이 있어야 마음을 그릴수 있다 선생은 나의 무용은 시정화의(詩情畵意)—시적인 정서와 그림같은 의미의 경지를 추구하며, 인간과 인생을 표현한다 소신을 밝히기도 하였다. “뼈에 스며드는 느낌을, 마음을, 형상을 찾고”,  특이하고 교묘하고 신선한것을 찾아야무용다운 무용을 만든다고 말하는 안무가는 무용가에 앞서 재능있는 시인으로 돼보이였다.


   최선생
예술수양의 내공(內功)을 엿볼수 있는 대목이였다. 무극 《춘향전》의 경전적인 경지는 물론 멀리로 관중에게 익숙한 《쌀함박춤》의 경쾌한 률동, 《벌목공》의 깊은 정서가  결코 우연이 아니였음을 새삼스레 확인하는 순간이였다.           


   문학으로
무용을 말하는 안무가는 후대양성을 말하면 교육자의 자상함을, 의상을 말하면 디자이너의 기질을, 무대배경을 말하면 미술가적인 감각을 나타내기도 하였는데 안무가자신의 인생살이얘기에 와서는 나이테가 우러나는 인생탐구자였다.


   “
《이슬》은 기실 나자신을 쓴(표현한)것이기도 하지요. 이슬과 마찬가지로 예술인은 고독하지만 나에겐 나혼자만의 유리집이 있답니다. 이슬이 나하고 이야기를 하지요. 사람관계는 복잡하지만 그런데는 눈을 감고 나는 자신의 유리집에서 음악을 듣고 책을 보면서 이슬의 세계에 심취하거든요. 이슬이나 나자신이나 고독의 운명은 한가지인가봐요.”


   사실
이슬도 인간도 제한된 삶을 살뿐이다. 찰나를 다루더라도 예술가의 작품이  영원의 내포를 갖게 된다면 찰나는 대지와 함께 영생하는것이 아닐까?


   찰나의
생명을 위해 안무가는 도약, 도전, 도박 여섯글자를 이마에 쓰고산다 했다. 어떤 역경속에서도 새로운 도약을 위해 끊임없이 도전하며 도전의 결과는 도박처럼 결과를 알수 없다는것이다. 연못가에서 날아예는 기러기처럼, 숲속에서 솟아나는 쌍학처럼 푸른 꿈의 포로로 되는것, 인류를 위한 리상과 환상의 길을 걷고 걸으려는것이 안무가의 유일한 념원인것 같았다.


   미국과
한국에서 성황리에 공연되였다는 《이슬》, 그리고 여러 신작들은 제목만 일별해도 기대가 간다. 《백두산환상곡》, 《눈물젖은 두만강》......


   창작과
인재양성을 위해 한생을 살아온 무용가, 최승희의 전통무용을 계승발전시키는것을 일생의 과업으로 간주한다는 예술인, 아직도 여전히 기러기처럼, 쌍학처럼 날기를 꿈꾸는 70 안무가가 환고향을 하여 바치는 춤추는 칠색《이슬》의 빛갈을, 시적인 정서, 그림같은 경지가 기대되는 신작들의 률동을 하루 빨리 예술극장에서 움직이는 시로 감상하고싶어졌다.


   종합세미나인듯한
반나절의 담화였는데 나는 이슬이라는 핵심단어를 골라잡고 돼새기는 흥미만으로도 흥겨웠고 만족스러웠다. 예술인의 넋을 한구석이나마  더알것 같게 된것도 보람이였다. 각일각 깊어가는 겨울, 격식투성이 공식적인 담론보다는 신분이나 분야의 경계의 벽을 허문 담화가 나에겐 좋다. 지성을 자극하는 환담에 관여한  나의 오랜 전화번호에 꾸벅 감사의 인사라도 해야 하나?

'문화시대' / 2009년 제1호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107
번호 제목 날자 추천 조회
107 예술 고봉을 향하여 2021-08-03 0 232
106 직선과 곡선 2013-08-21 0 2051
105 한락연의 그림앞에서 2013-08-07 0 2649
104 문화부호를 살리는 행보 2013-07-25 0 3869
103 이름지키기공모가 어떨가 2010-08-09 18 2451
102 한 로무자의 귀환 2010-07-07 39 3476
101 인구의 이동과 역이동 2010-02-05 28 2374
100 "문경고개"를 부르던 친구여 2009-12-07 44 3171
99 이 여름에 읽은 시 2009-10-15 24 2381
98 남은 과제 몇가지 / 수감록2 2009-10-14 27 2455
97 한여름의 예술향연 / 수감록1 2009-08-17 37 2289
96 직업선택의 자유 2009-07-09 23 2575
95 금불촌의 종덕이와 꼴로또브까의 야꼬브 2009-05-01 48 2471
94 뭔가를 남기며 건설하기 2009-04-16 26 2555
93 기인(奇人) 2009-02-15 28 2426
92 이슬 2009-02-06 27 2218
91 안돕기만 못했다 2009-01-28 39 2741
90 열병식 2009-01-28 46 2682
89 보리밥신세 2009-01-24 48 2812
88 산길 2009-01-23 38 2604
‹처음  이전 1 2 3 4 5 6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