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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로무자의 귀환
장정일
얼마전에 초대를 받고 한 친구의 집을 방문한 적이 있다. 친구의 부인이 한국로무를 마치고 귀환했다는 소식을 이미 알고있던 터라 내심으로 무척 반가운 심정이였다.
그런데 그날 친구의 집에 들어선 나는 저으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기억속 친구의 집은 분명 수수한 보통집이였었는데 이게 웬일인가, 공간은 그 공간인데 그의 집은 어느새 고급한 인테리어를 마친 집처럼 온집안이 우아한 기품이 넘쳐나고 기름기가 도는 집으로 변모해있었다. 장판이 알른알른하고 흰벽이 눈부시고 방마다 세련되게 정돈된 모습이였다.
소문없이 새로 실내장식을 했느냐고 물었더니 주인은 부엌만 다시 손을 본 정도일뿐 장식같은건 별로 하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정돈된것은 집안모습만이 아니였다. 가정식구들이 대단원을 이루어 더구나 아름다운 풍경이였다. 한때는 혼자서, 몇년뒤에는 류학을 마치고 귀국한 아들과 함께 남정 둘이서 힘겹게 살던 친구-나로 말하면 직장을 다니면서 그가 하루 삼시 때시걱을 스스로 해결한다는 사실이 제일 탄복이 가는 부분이였다-였는데 부인의 귀향과 함께 동생집에 모셨던 어머니도 다시 모셔와 친구는 마침내 십년 리산의 장정을 끝마치고 오붓한 한가정 대단원의 경사를 맞이했던것이다.
친구의 부인은 이 땅에 도래한 “하해”의 도도한 흐름에 합류한 전형적인 녀성이였다. 옷가게운영, 로씨야장사, 그리고는 십년 한국로무. 어떻게 이렇듯 가냘픈 녀인의 몸으로 그렇듯 파란만장한 고난의 려정을 밟아왔는지, 나는 친구의 부인을 다시 쳐다보지 않을수 없었다. 확실한 승산이 없는 장사길, 산 설고 물 설은 이국타향에서의 힘든 모험, 그동안 겪은 고생과 고뇌는 얼마였으며 고향과 가족을 그리며 흘린 눈물 또한 얼마였을가?
그러나 그것은 경제적어려움을 타개하는 개척의 나날이였고 결과적으로는 뜻하지 않은 류학의 코스였다. 낮은 못소리로 잔잔하게 이야기하는 친구의 부인은 말씨부터 세련된 감을 주었다. 고향에 돌아와보니 공항에서건 거리에서건 사람들 목소리가 너무 높다는 감이 들었다고 말하는 그녀는 심지어 재상봉을 한 남편의 말도 톤이 높아 간혹 “싸우는것 같은” 억양으로 들리였다고 한다.
단지 말씨의 변화일뿐일가?
결코 아닐것이다. 나는 그녀가 일가족 경제생활향상에 기여한바를 긍정함과 동시에 그녀가 본의 아니게 무의식적으로 비교문화공부를 하고 돌아온 류학생으로 돼보여 더구나 기분이 좋았던것 같다. 말씨도 문화다. 문화는 세련도의 차이가 엄연히 존재한다. 우아한 말씨, 세련된 언어구사, 그것은 말씨자체의 의미를 넘어 사회교제와 사회발전의 수준을 나타내는 척도의 하나이고, 더 깊이 말하면 멋과 아름다움을 지향하는 인간 삶의 질적향상과 직결된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인구이동의 현장, 로무자의 일상은 분명히 대학강단을 무색케 하는 위대한 사회대학이다.
나는 그날 친구 부인의 손길이 낳은 기적-기름기 도는 집안살림-에 감동을 받았고 자녀교육, 가정살림, 자치주로무경제에 기여한 그녀가 대견스러웠고 술에 익숙하던 자신이 아침마다 부인이 타주는 커피에 익숙해지고있다는 친구의 말 역시 귀맛좋게 들리기도 했지만 마음속으로 제일 박수를 쳐주고싶었던건 가정의 대단원이 가능할수 있도록 적절한 시기에 내린 그녀의 현명한 귀향선택이였다. 틱낫한이 말했듯이 “그대가 지금 이 순간에 살아있고 발걸음을 옮기고있음을 느끼는것은 하나의 기적이다… 모든 사람들이 땅우를 걷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혀 자유롭지 않게 노예처럼 걷는다. 그들은 미래나 과거에 붙잡혀서 자신들의 삶이 있는 지금 이 순간에 살수가 없다.” 미래를 위한 고생은 물론 더없이 값진것이다. 허지만 이와 동시에 세상의 온정을 만끽하며 가정을 가정답게, 오늘을 오늘답게 사는것도 현명한 선택이다.
오래동안 부부나 식솔들이 흩어져살다가 다시 모인 집들이 한두집이 아닌줄로 안다. 연변조선족자치주창설 60주년이 다가오는 이 때 나는 자치주가족지형도에 대단원의 가족이 차지하는 비중이 한결 많아지기를 기대해본다.
연변일보 / 2010년 7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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