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일
http://www.zoglo.net/blog/zhangzhengyi 블로그홈 | 로그인

※ 댓글

<< 4월 2024 >>
 123456
78910111213
14151617181920
21222324252627
282930    

방문자

나의카테고리 : 수필/칼럼/기행

남은 과제 몇가지 / 수감록2
2009년 10월 14일 11시 22분  조회:2456  추천:27  작성자: 장정일

남은 과제 몇가지

장백산아리랑수감록 2

 

장정일

 

건국 60주년맞이 신작가무 장백산아리랑수도공연을 마치고 연변가무단이 귀환했다. 수도공연이 성황리에 진행되고 귀향도중 청도공연도 원만했다는 후문이다.


   어느 정도 예견된 결과이고 경하할 일이나 지금 시점에서 중요한건 이번 공연이 남긴 과제에 대해 고민해보는 일이 아닐가 한다
. “장백산아리랑이 좀 더 탁마보완할 점, 좀 더 해결해야 할 점은 없는지를 두루 생각해보면서 나는 이런 몇가지 사고를 해보았다.

 

대형콤플렉스문제

 

장백산아리랑은 사실 가극도 아니고 무극도 아니고 가무극도 아니다. 별다른 극성()이 없이 무용프로 9(근래엔 늘 무용위주이다. 무용단으로 변신할 셈인가?), 성악프로 5, 기악프로 1개로 구성된 가무프로집성일뿐이다. 그런데도 관례인듯이 거기에 대형조선족민족가무라는 수식어를 붙였고 무슨 서막, 1, 23, 종장이라는 구분을 설정했다.


   무엇이 대형인가
? 교향악이나 오페라, 무극이라면 혹시 대형을 론할수 있겠지만 그런데는 굳이 대형이라고 붙이지 않는것이 상례이다. 그 쟝르 자체가 큰 규모를 뜻하기에 대형운운은 군더더기인것이다.


   10
여개 가무프로임에도 습관처럼 그앞에 대형이라고 붙이는것은 일종 맹목적인 대형콤플렉스가 아닌지 검토해볼 일이다. 근래에는 거시적인것이 너무 많다. 외향성, 전시성을 추구하는 가무문화풍조의 영향으로 허다한 기획과 구상의 스타일에 류사성, 복제성의 페단이 나타난 점은 십분 류의할바이다.


   실제로
장백산아리랑에 앞서 몇년전 연변가무단은 장백의 정”, “천년아리랑을 공연했다. 모두들 명칭도 비슷하고 구도설정 아이디어도 거기서 거기이다. 거기에 또 관광문화의 하나의 풍경”(일년내내, 그것도 때론 10명좌우 관광팀을 상대해서도 공연하는 풍경, 과외공연팀이 더 어울릴듯)이라고 하는 연길시조선족예술단(조만간 연룡도를 대표할 직업예술단)사계절의 노래까지 합해보라. 모두들 자연과 어우러져 살아가는 모습, 인정세태, 민속민풍, 민족정신을 표현한다고 표방한다. 모두들 대형민족가무”, “대형무용시”, “대형가무서사시”, “대형민속풍정시화(风情诗画)”라며 대형임을 강조한다. 아무튼 무릇 가무프로면 다 대형으로 표기된다. 모두들 장백산을 배경으로 도라지아리랑무용으로 시작해 민요나 물동이춤, 학춤, 부채춤, 장고춤 또는 전통혼례표현류를 이어가다가 말리꽃”, “만수무강노래(개인신격화는 대중우매화. 과학적발전관을 실천하는 오늘에도 무대에 올린다면 선진성자랑일가, 후진성전시일가?)를 부르고는 대동소이한 북춤, 상모춤으로 끝난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여러해째, 여러 공연, 여러 단체가 이렇게 민속민풍, 전통가무의 대형(?)전시성을 추구하면서 비슷한 구도, 비슷한 스타일의 작업에 몰려있는것이 과연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모습일가?


   한때 양려평의
운남영상을 비롯하여 토속적인것, 원생태적인것이 각광을 받은적이 있다. 전도된 구호이지만 한때 경제가 극을 놀고 문화가 무대를 마련한다는 얘기도 있었다. 그 영향때문에 외향적인것, 전시성을 추구하는 가벼운 음악무용문화풍조가 만연되였을가?


   소수민족이 특별히 많은 운남성은 산이 많고 교통이 불편해 워낙 민속적인것
, 토속적인것, 원생태적인것이 원상보존이 잘돼있고 그런 원생태적인 이미지가 도시인, 현대인에게 인기로 작용했던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원생태적인것(비전문인출연도 가능한것)은 예술과 련계되면서도 간단하게 등호를 칠수는 없는것이고 그것이 미적인 장구한 생명력을 가지자면 예술적인 승화의 과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과학적발전관의 출범과 더불어 문화를 경제의 둘러리쯤의 하위개념으로 폄하시키는 론조도 신문지상에서 비판받은지가 이슥하다. 문화예술이 제위치를 찾지 못하고 제대접을 받지 못하며 전시성 같은 단기행위에 머문다면 어떤 국면이 초래될지 심사숙고가 필요하다. 적어도 , 시 예술단체의 심각한 인재부족, 인재류실 상황이 이미 근심의 정도를 넘어 위기상황으로 기울고있음은 엄연한 현실이다.


   중요한것은 우리 민족은 민속적이고 원생태적인 문화자원이 풍부하면서도 그 기초우에서 우수한 음악무용작품 더 나아가 교성곡
, 교향곡, 가극, 무극을 창작공연했을 정도로 현대적인 음악무용예술이 상대적으로 발전한 상황이라는 점이다. 또 그런만큼 그 창작공연은 시대적인 숨결을 지닌 자체의 남다른 전통과 창의력, 열린 사유에 바탕을 두고있다는 점이다.


   또한 앞서가는 이와 같은 고유한 전통과 창의력과 현대적인 열린 사유로 말미암아 우리 예술은 건국초기부터 이미 전국적
(부분적인것은 외국도)으로 알아주는 예술로 자리매김(특정시기 만수무강노래 한수때문에 연변이 그리고 우리 민족이 알려졌다는 주장은 무수한 사람들의 장구한 노력의 땀방울을 도외시하는 극히 일면적이고 자의적인 견해에 불과한것이다)이 되였던것이다. 그 하나하나의 황홀한 선률과 춤가락들에도 분명 민속민풍이, 민족정신이 고스란히 담겨있는것이 아닌가! 그것은 예술화된 민속민풍, 민족정신이며 이런 예술진품만이 일시적이 아닌 장구한 생명력을 가질 가망이 있는것이다.


   따라서 문화전통의 보호라는것도 박물관의 박제품처럼 보관전시만 하면 되는게 아니라 시대와 함께
, 타민족문화, 외국문화와 부딪치면서 개변되고 형태를 바꿔가며 발전하는것이다. 굳이 대형이라는 콤플렉스에 의뢰하지 않더라도 언제 어디서든 진검승부를 할수 있는 력작이 기대된다. 력작이란 대형여부와는 필연적인 관계가 없는것이다. 가무는 비록 순간의 예술이고 찰라적인 존재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진정한 예술인은 실망이 없다. 발없는 향기가 천리를 가고 천년을 남는다고 하지 않는가.    

 

심미적인 경지 발굴문제

 

우에서 언급한 생각때문에 나는 한여름의 예술향연이라는 수감록에서 장백산아리랑을 두고 건국 60주년맞이 특별공연”, “교향조곡을 닮은 공연프로라는식의 격찬을 하면서도 대형이라는 말은 삼가하였다. 구체론의에서도 전통의 승화, 보류종목에 기초한 심도있는 재창작, 창작진의 열린 사고와 창의력에 대한 언급에 주안점을 두었다. “장백산아리랑의 성과는 표면적인 시각적장면성, 단순한 극장적볼거리에 치중하지 않고 시대와 생활에 부응하는 진실된 작품성과 예술성을 추구하면서 예술인들이 나름대로 심미적인 경지발굴의 노력을 경주하였기때문이라 사료되였기때문이다.


   이를테면 그들은 가무단 고유의 예술적 방법이나 스타일을 허투루 버리지
않고 오랜 시간 쌓아온 보류종목의 원형을 창조적으로 변주함으로써 문화예술의 창의적인 보존태(保存)를 보여주었으며 전통이 있고 품위를 가진 예술단체로서의 명맥과 문화적자긍심을 보여주었다. 탄탄한 보류종목의 보유는 예술단체의 저력을 말해주며 그 원형에 대한 변주나 재창작의 성과는 창작진의 전통전승(传承)의 의지와 전통초월의 실력을 보여주는것이다.


   가무단 자체의 전통보류종목중의 가곡
, 가요들을 기반으로 녀성독창과 남성중창 아름다운 연변”, 녀성군무 내고향 오솔길”, 녀성군무 사과배 따는 계절”, 남녀6인창 손풍금 타는 총각을 만들었으며 그중의 무용형식들을 빌어 무용 샘물”, 남성군무 얼씨구를 창작하였으며 그중의 기악프로형식을 활용하여 가야금병창 내 사랑 가야금아등을 출품했다. 창작진, 배우진 신로교체의 와중에서 이뤄낸 참으로 적시적이고 소중한 결실이 아닐수 없다. 이밖에도 민요에서 소재를 찾은 무용 도라지”, 전설을 무용언어로 풀어낸 무용 칠선녀그리고 전통타악기와 바이올린을 접목시킨 바이올린과 사물놀이 축복’” 등이 가미되였다. 예술적인 참신성, 다양성의 추구 그리고 동서양의 자양분을 아우르는 변화와 갱신의 의지가 안받침되였기에 장백산아리랑은 수준급의 공연효과를 거두지 않았나싶다.


   하지만 조절되지 못했던 확성기의 지나친 볼륨때문인지
, 적어도 내가 관람한 공연에서는 음향의 조화보다는 고음일색이라는 인상이여서 유감스러웠다. 어찌보면 공연 전반이 고음과 저음, 쾌속과 느림, ()과 정(), ()과 허()의 조화와 기복이 아쉬웠던것 같다.


   이를테면 무던히 호감이 가는 녀성독창과 남성중창
아름다운 연변이였지만 음향장치 볼륨때문인지 쏠로는 쏠로대로 고음이고 중창은 중창대로 고음으로 치달았지만 그 내적융합이 아쉬웠다. 쏘프라노에게는 고음부에서의 장기발휘도 중요하겠지만 그에 못지 않게 정감어린 곡상처리, 관객을 사로잡는 능수능란한 무대장악력도 필수임을 주문하고싶다. 


   그리고 예술처리가 출중한 무용
내 고향 오솔길이나 남녀6인창 손품금 타는 총각같은 정서적이고 정적이고 내면세계에 천착하는 성향의 프로가 적은대신 프로의 대부분은 격정, 쾌속, 포만, 고음의 뉴앙스가 짙어 공연의 균형과 신축성, 함축성, 여백미가 부족하지 않았나싶다.


   예술본위가 중요하다
. 북경올림픽개막식공연에서 노래하자 조국은 느린 절주로 변조되어 더큰 감동을 주었다. 그 씩씩하던 노래를 한 녀자애가 기원을 하듯 조용히 천천히 불러 효과 만점이였다. 개막식 주제가도 표어식, 구호식의 웨침이 아니고 큰말이 아니였다. 누군가 지구우에 앉아 혼자말로 중얼거리듯 불렀던 나와 그대라는 고요와 느림의 미학에 세계는 진짜 감동으로 화답했다. 전쟁영화도 거대화면전시보다는 그속에서 인간성을 보여주는 영화가 매력이 있다. 예술본위는 정치구호, 고성방가가 이뤄내지 못할 인간적인 감동을 성취시킨다.


   모두어말하면 심미적접근여하에 따라 관중은 여러가지 감동을 얻게 된다
.  단순한 극장적볼거리가 주는 감흥이 있는가 하면 심미적공명에 포로돼 찬탄과 함께 남몰래 눈물을 흘리는 감동도 있다. 후자와 같은 감동이 많아야 하지 않을가.

 

쏠로와 관현악대의 결석문제

 

이번 공연에는 관현악과 합창, 방창의 음향(록음)이나 중창, 군무는 있었어도 웬지 독창, 독무, 독주 종목은 없었다. 쏠로의 결석은 심미적경지의 창출과 무관한것인가?


   기실 예술단체의 실력과 명성은 출중한 쏠로의 존재와 갈라놓을수 없다
. 이는 마치 축구강팀에는 반드시 마라도나 같은 핵심선수가 있어야 하는 리치와 다름없다. 우리는 메시가 없는 아르헨띠나축구팀이거나, 박지성, 박주영이 없는 한국축구팀의 선전(善戰)을 상상할수 없다.


   연변가무단의 력사를 돌이켜보더라도 유명쏠로가 활약하던 때는 가무단의 실력과 명성이 전성기를 누리던 때였다
. 순간의 예술이여도 나는 반세기전 방송에서 김재청의 바이올린독주 연변무곡을 듣던 때의 감명을 잊을수 없다. 공연무대에서 바이올린협주곡 량산백과 축영대를 연주하던 박재범, “처녀의 노래”, “사과배 따는 처녀”, 쏘련영화삽곡 잠자리처녀를 부르던 방초선, 구성진 중음으로 건드러진 박연폭포를 부르던 왕개평, 연변목가깜둥처녀를 부르던 김인숙, 성악협주곡 완계사를 부르던 김선옥, 삼동을 꺾으며 장고춤을 추던 리록순, 콘트라바스와 아코데온 반주자의 중간에 서서 화려한 클라리네트연주를 하던 백문순과 같은 쏠로들은 더구나 잊을수 없다. 그분들의 지금 행적은 알수 없지만 그분들이 남긴 멋진 음악은 아직도 나의 마음속에 살아있고, 무수한 청중의 마음속에 살아있으리니 그들 개개인의 에너지는 얼마나 크고 예술의 생명력 또한 얼마나 강한것인가! 쏠로의 결석은 예술단체의 실력저하로 이어지기 마련이니 적시적인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에 못지 않은 큰 문제는 관현악대의 결석이다
. 근래에 예술극장에 가보면 무대에서 악대석이 사라진 모습이 슬픔을 자아낸다. 비록 승강장치를 해놓아 악대석사용이 가능하기는 하지만 언제 가보아도 악대석은 닫혀있다. 주인 잃은 집 대문을 잠근 녹쓴 자물쇠를 보는 기분이다.


   모두들 무감각하게 지나쳐버린다고 해도
, 옆에서 누군가 나의 팔소매를 잡으면서 그건 경비때문이라며 말린다고 해도 나는 무대에서의 관현악대, 무대아래 악대석의 실종은 일종 불행의 상징이라고 대성질호하고싶다.


   리유는 간단하다
. 록음은 록음이지 현장음악, 현장연주가 아니기때문이다. 이는 비전문성의 표현이고 예술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 태도이다. 한건 사업의 행사성, 일회적인 무슨 행사뒤바라지, 형식적인 전시성을 위한것이라면 몰라도 예술감상을 목적으로 한 예술공연이라면 악대의 현장음악을 파기할수 없다. 만약 가수가 록음으로 노래를 대체하면서 가성출연을 한다면 기만당한 관중과 사회가 호된 지탄을 쏟아낼건 불보듯 뻔한 일이다. 하다면 가수의 가성은 사기행각으로서 타매의 대상이 되여도 악대의 가성(록음)만은 정당한것이고 괜찮은것인가?


   그저 허구픈 웃음을 웃으며 지나칠 일이 아니다
. 작은 일을 가지고 침소봉대(針小棒大)하는것도 아니다. 악대의 결석으로 말미암아 이미 장백산아리랑은 물론 근년의 여러 공연 모두가 예술효과가 반감된 같은 속도, 같은 절주의 기계적인 표현에 안주하는 모습이다. 당연한 귀결로 관객은 관객대로 현장음악의 감미로움 대신 록음음향의 높은 볼륨(이전엔 앞에만 놓여있었는데 지금은 극장 사방곳곳에 음향장치계기천지)의 횡포에 무방비로 로출되여 귀를 막거나 지대한 인내심을 가져야만 비로소 그 횡포를 겨우 견뎌낼수 있는 운명이다.


   가성
, 가짜반주의 문제만이 아니다. “춤은 움직이는 음악”(조지 발란신)이라는 말도 있고 나는 음악에 맞추어 춤추지 않고 음악을 춤추어낸다”(알렉산드르 사하로브)는 말도 있거니와 훌륭한 음악무용작품의 출현과 그 표현은 완숙한 테크닉우에 즉흥성과 창조적령감성이 보태져야 가능한것이다. 악대의 록음은 한번 하고나면 표현의 즉흥성과 령감성을 죽이는 기계적인 표준으로 고정되기 마련이다. 언제 어디서나 가수와 춤군은 그 고정불변한 표준에 맞춰야 하지 즉흥에 겨워 한초, 두초나 한두박자 여유를 가지고 제멋에 겨워하다간 큰일이 난다. 예술가가 령감을 접고 록음의 노예로 되지 않으면 록음의 고정된 속도를 어기게 되고 공연전체가 헝클어지게 될테니 말이다. 자유로운 예술, 즉흥의 죽음이 아닌가?


   경제적으로 보면
21세기는 표준전쟁의 시대이다. 윈도스, 타자용지, 신용카드에서 와인잔에 이르기까지 무엇이든 국제표준이 되여야 편리하다. 하지만 예술도 문화도 표준화돼야 하는가? 아니다. 기계화, 표준화는 예술의 죽음이다. 왜 하필 예술이 필요하겠는가? 한마디로 표준적인 틀에 갇혀 살기가 지겨웁기때문이 아닌가? .


   예술은 고정틀이 아니라 창조이고 상상이며 발휘이고 초월이다
. 노래춤에서는 모든게 놀이이고 즉흥이다. 심지어 흥에 겨운 허튼 가락이요, 때와 분위기에 따르는 기분이다. 그런 무대, 그런 마당, 그런 분위기에 나설 기회를 주지 않으니 악대는 창조적인 현장하모니연출의 기회를, 악사는 독주가와 같은 실력을 키울 현장공연기회를, 지휘는 현장의 분위기를 리드할 권리를 잃기 마련이다.


   연변가무단의 지난 어느 시기에도
(심지어 기아에 시달리던 지난 세기 “3년재해시기에도) 있어본적이 없었던 가성반주(록음계기의 기계화반주)라는 기현상의 도래때문에 연변가무단관현악대는 한때 전국적으로 알아주던 전성기의 모습을 잃어가고있다. 공연을 꽤 자주보는편인 나와 같은 열성관객마저 지금의 악대지휘, 바이올린수석이 누구인지도 모른다. 이러고서야 어찌 전성기 관현악대의 실력과 영광을 되찾아 유지할것이며 김재청, 박재범, 백문순 같은 유능한 독주가, 박우, 안국민, 최룡국과 같은 출중한 지휘가의 출현을 기대할수 있으랴. 물질문화생활이 전례없이 향상된 지금 그렇게 대형에 집착하면서도 왜 유독 악대만은 유페상태로 방치해둘가? 가난하던 지난 세기 50년대에 주덕해가 북경에서 장백의 노래를 공연하던 연변가무단 악대와 합창대 전원에게 새로 양복을 해입게 조처를 했다던 미담이 그리워난다. 


   빛나는 전통과 력사를 지닌 연변가무단이 최고의 창작진
, 출연진과 더불어 최고의 예술작품을 보유하고 대를 이어가며 국내외관중의 사랑을 받는 동북아의 유명예술단으로 승승장구하기를 바란다.

/ '예술세계' 2009년 제5호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전체 [ 1 ]

1   작성자 : 보 는이
날자:2009-10-21 08:48:18
옳은 말씀입니다 .그 옛날 오케스트라 무대공연,교향악 까지 연주하시던 전통은 다 사라지고 인젠 연변땅에선 어디가서 클래식음악을 들어야 하나요.록음으로 하는 연출 신물이 납니다 .
Total : 107
번호 제목 날자 추천 조회
107 예술 고봉을 향하여 2021-08-03 0 232
106 직선과 곡선 2013-08-21 0 2053
105 한락연의 그림앞에서 2013-08-07 0 2650
104 문화부호를 살리는 행보 2013-07-25 0 3869
103 이름지키기공모가 어떨가 2010-08-09 18 2451
102 한 로무자의 귀환 2010-07-07 39 3477
101 인구의 이동과 역이동 2010-02-05 28 2374
100 "문경고개"를 부르던 친구여 2009-12-07 44 3171
99 이 여름에 읽은 시 2009-10-15 24 2381
98 남은 과제 몇가지 / 수감록2 2009-10-14 27 2456
97 한여름의 예술향연 / 수감록1 2009-08-17 37 2290
96 직업선택의 자유 2009-07-09 23 2575
95 금불촌의 종덕이와 꼴로또브까의 야꼬브 2009-05-01 48 2472
94 뭔가를 남기며 건설하기 2009-04-16 26 2555
93 기인(奇人) 2009-02-15 28 2427
92 이슬 2009-02-06 27 2218
91 안돕기만 못했다 2009-01-28 39 2741
90 열병식 2009-01-28 46 2682
89 보리밥신세 2009-01-24 48 2812
88 산길 2009-01-23 38 2605
‹처음  이전 1 2 3 4 5 6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