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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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불촌의 종덕이와 꼴로또브까의 야꼬브
2009년 05월 01일 19시 02분  조회:2472  추천:48  작성자: 장정일

               금불촌의 종덕이와 꼴로또브까의 야꼬브 

                                                             장정일

   올들어 문학지 《연변문학》의 변신에 기분이 매우 좋다. 장정이 기품이 있다. 디자인이 몰라보게 우아해졌다. 상상력이 있는 디자인감각이 그윽한 문화향기를 뿜고있다고 할가.  

   《연변문학》 최근호(제2호)를 보았다. 톱소설 “호박골의 떡호박”(중편, 홍천룡 작)을 단숨에 읽었다. 이뻐진 잡지에 금상첨화라는 느낌이 들었다. 바보스러워보이는  우직한 사람의 저력과 인격적인 숨은 매력을 보여주는 이야기였는데 나는 무엇보다 먼저 소설의 반전의 흐름이 마음에 들었다.

   호박골이라 불리는 경치 수려한 금불촌에 호박처럼 둥글둥글하게 자란 박종덕이 산다. 비오는 날 돼지굴어구에서 태여나서였는지, 출생한 날 아버지를 여읜 과부의 아들이여서였는지 종덕이는 어릴 때엔 개구쟁이들의 놀림감이 되였었고 학교문을 나와 농사를 지으면서도 동네사람들의 따돌림을 당한다. 어느 점쟁이는 종덕이 어머니 눈섭사이에 박힌 기미가 악재를 가져다준다고도 했다. 놀림을 당해도 종덕이는 너그럽게 받아주고 서른이 넘도록 혼사말 들어오지 않아도 여유작작하고 인품이 좋다. 

   반전은 새 촌장선거를 계기로 시작된다. 긴장감이 감돈다. 원래의 촌장과 당지부서기가 촌장당선을 바라고 필사적으로 대방 흠집내기를 불사하며 표심잡기에 광분한다. 허지만 자신의 당선가망이 희박해보이자 묘하게도 두사람 모두 약속이나 한듯이 차선책을 꾀한다. 바보취급을 하던 종덕이를 촌장으로 내세우고 “수렴청정”을 시도하는 묘수이다.
    
   본의아니게 촌장직을 맡은 종덕이는 원 촌장과 당지부서기간의 모순을 조화시키기도 하고 그들의 능력에 기대기도 하고 위험에 봉착한 그들을 믿어주며 최선을 다해 보호해주기도 한다. 굴곡적인 절실한 체험을 통해 그들은 마침내 종덕의 됨됨이에 감복하며 촌의 투자유치에 힘을 보태기도 한다. 금불촌은 살기좋은 풍경구로 거듭날 전망이다. 종덕이 어머니 미간의 기미가 복기미로 재평가된것은 물론이다.
    
   작중인물의 수수한 말 한마디도 나에겐 값진 음미거리로 다가온다. 종덕이가 촌장이 되여 모두들 석연치 않아 할 때 마을의 한 로인만은 의미심장한 한마디를 던진다ㅡ

    “관들 두시우! 하늘이 무너지겠수. 똑똑하다구 잰내비처럼 들볶아치던 눔들이 할 때보담 무뚝뚝한 눔들이 걸썽걸썽 할 때가 더 잘되더라니, 이제 두고 보시우, 에헴!”

   세월의 풍상을 겪은 로자의 예지가 묻어나는 그 한마디 말은 적중했다. 그것은 삼검불처럼 뒤엉켜보이는 력사의 뒤안길 실타래를 명쾌하게 정리한 진주같은 말이요,  묻혀있던 주인공의 성격적특점, 그의 도의적, 정신적 우위에 대한 작가의 예리한 안목이 어려있는 경구같기도 하다. 그것은 아마도 오래동안 묵묵히 고독을 씹으며 인간과 삶의 면면을 유심히 관찰해온 작가의 승화된 감오내지 철학적인 사고가 낳은 결실일것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어쩐지 저 농노제라는 암울한 시대에 억압받고 미개인취급을 당하던 농민과 평민들속에서 그들의 놀라운 천재성과 비범한 재능을 보아냈던 로씨야작가 뚜르게네브의 단편소설 “노래군들”이 떠올랐다.

   사시 어느 철에도 위안이 될만한 경치라고는 볼수 없는 꼴로또브까마을의 조그마한 주막 “안락옥”에서 평민인 청부업자와 이 고장 으뜸가는 노래군 야꼬브가 노래부르기 내기를 한다. 진사람이 맥주살내기이다. 주막 주인내외와 농부 몇몇이 청중의 전부이다. 청부업자의 노래도 갈채를 받기는 하였지만 야꼬브의 노래는 한수 우위였고 감동 그자체였다ㅡ

   “그는 깊은 한숨을 짓더니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첫 음성은 약하고 고르지 않아 그의 가슴속에서 울려나오는것이 아니라 어데선지 먼곳에서 흘러와서 우연히 이 방에 스며들어온것 같았다... 이 첫소리를 뒤이어 좀더 굳고 느리나 손가락으로 힘있게 타니 갑자기 소리를 내고는 재빨리 사라져가는 현악기줄소리처럼 간신히 울리는 두번째소리가 따르고, 그 두번째소리를 뒤이어 세번째소리가 울려 조금씩 열을 가하며, 폭을 넓히며, 애수를 띤 노래가 흐르기 시작하였다… 약간 째진것처럼 잘 돌지 않는것 같고, 처음에는 어덴지 병적인듯싶기까지 한 목소리였다. 그러나 그 목소리에는 마음속에서부터 울려나오는 깊은 정열과 젊음과 힘과 달큼함과 그리고 매혹적이면서 편안해보이는 애틋한 설음이 깃들어있었다. 그 속에서는 로씨야의 진실하고 따거운 심정이 울리고, 숨쉬고, 사람들의 심장을, 바로 그 심장의 로씨야의 금선을 잡아쥐였다… 그의 매 음성에는 마치 눈앞에 낯익은 광야가 늘여놓인것처럼 무슨 친근하고 무한히 광활한것이 있었다.

“나는 눈물이 심장에 뒤끓고, 차츰 눈에 몰려오르는것을 느꼈다… 니꼴라이 이와늬츠는 머리를 숙이고, 깜박쟁이는 돌아앉았다. 오발두이는 어찌나 감동하였던지 얼빠진이처럼 입을 벌리고 서있었다. 허술히 입은 농부는 서러운듯이 중얼거리며 구석에 머리를 박고 울음을 터뜨렸다… 만약 야꼬브가 높고, 유달리 가는, 마치 목청이 끊어진듯한 소리로 노래를 끝마치지 않았으면 우리들의 곤비(困憊)상태는 어떻게 끝났을런지 모른다. 소리친 사람도, 꼼짝한 사람도 없었다. 마치 그가 다시 노래를 시작하는것을 기다리기나 하는것 같았다…”

   연미복을 입어야만 가수이고 오페라극장의 가수만 가수인가? 한적한 마을 제지공장의 평범한 배수공 야꼬브의 천재성을 그려낸 뚜르게네브의 필치는 얼마나 놀랍도록 섬세하고 감격스럽고 긍정적인 기분에 차있는가. 

   농노, 평범한 사람, 최하층사람, 외면된 구석의 사람들에겐 이와 같이 무시못할 재능이, 무궁한 위력이 살아숨쉬고있는것이다. 그 재능, 그 위력은 보아내느냐 못내느냐가 문제이지 있고없음의 대상은 결코 아니다. 동북의 산과 들판, 저 멀리 이역의 로무현장들에서 “걸썽걸썽” 일하는 우리 민족 “무뚝뚝한 눔들”(“호박골의 떡호박”)에게도 분명 암장과도 같은 “깊은 정열과 젊음과 힘”(“노래군”)이 깃들어있다는 믿음에 마음이 한결 든든해지고 푸근해지는것은 나 혼자만의 느낌일까? 

   서두에서도 내비쳤지만 요즘 나는 솔직히 잡지 디자인혁명에 관해 뭔가를 쓰고싶었다. 시기상조일것 같은 일말의 주저심때문에 그만두었지만 사실 올해 내놓은 《연변문학》은 서울의 교보문고나 북경 왕부정 서점에 내놔도 부끄럽지 않을 이쁜 장정이다. 

   그러니 관건은 거기에 부응하는 내용물이다. 그래서 기대를 가지고 《연변문학》 최근호 페지를 뒤지다가 “호박골의 떡호박”을 만나게 되였고 나의 글은 엉뚱하게도 종덕이, 야꼬브들얘기로 번진것 같다. 

   나는 목적한바와는 다른 이런 엉뚱한 결과가 좋다. 나의 생각은 새로움과 만난다. 나의 느낌은 정체를 모르고 한결 다채로와진다. 덕분에 교통비나 려권도 필요없이 금불촌 풍경구와 꼴로또브까마을의 주막에 다녀올수 있었으니 얼마나 흐뭇한 일인가. 좋은 디자인, 좋은 소설이 고맙다.

연변문학 / 2009년 제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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