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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0    최성철 시집 해설 댓글:  조회:1261  추천:0  2019-12-14
최성철 시집 해설 도시인의 고독한 내면의식을 담은 모더니즘의 언어                                                                 심 상 운(시인, 문학평론가) 1. 들어가는 글 최성철 시인은 1975년 월간『시문학』으로 등단한 중견시인이다. 그는 20대의 대학생 시절에 등단하여 1976년 3월에 발간된『시문학』출신들의 첫 사화집『환한 대낮』에도 참여한 바 있다. 그는 등단 후 개인사 때문에 적극적인 활동을 유보해 왔지만 2002년에 시집 『간이역에 머무는 아픔』을 발간하고, 본격적인 시작활동의 결과물로『도시의 북쪽』을 상재하고 있다. 이 시집의 서문「찬란한 자줏빛」은 그의 시세계로 들어가는 안내문의 역할을 한다. 이 짧은 산문은 그가 왜 도시를 자기 시의 중심에 두고 있는지. 그가 지향하는 이상향이 어디에 있는지를 암시한다. 그리고 시집의 제목 『도시의 북쪽』이 상징하는 그의 정신의 고향으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그는 이 글에서 ‘도시의 시’를 쓰게 된 이유를 “도시와 도시 안에 사는 사람들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면서 “아무 말 없이 각자 자기 표정을 가지고 총총히 제 갈 길로 사라지는 작은 도시인들의 모습도 좋아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그런 도시인을 “행복한 난쟁이”라고 한다. 이런 그의 낭만적인 감성의 시선은 그의 시가 도시를 시의 대상으로 하면서도 도시인들의 환경문제나 생존문제에 대해 관심을 두지 않고, 오직 도시인 또는 자신의 고독한 존재의 모습을 그리는데 초점이 모아져 있음을 알게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그의 시는 외부적인 현실보다 개인적인 내면의 세계에 더 가까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그의 시가 독자들에게 어떤 관념의 메시지를 전하는데 관심을 두지 않고, 낭만적 감성의 빛깔로 채색된 자신의 내면세계를 서술만이 아닌 모더니즘의 언어 이미지(가상현실, 사물 이미지의 집합)로 형상화하여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한다. 이런 그의 시에 대해서 시를 도구로 사회개혁을 주장하는 이상주의자들은 그들의 편향된 시론으로, 시를 종교적인 입장에서 인식하고자하는 이들은 그 나름의 시각으로 비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외부의 유혹에 끌려가지 않고 시를 순수한 감성의 언어표출이라는 입장에서 자기 시의 영역을 30여년 지켜온 그의 순수한 시관(詩觀)은 존중받아야 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순수시관은 시를 어떤 관념에도 의존하지 않는, 독립적이고 예술적인 존재로 만드는 가장 기본적인 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필자는 그의 시집 『도시의 북쪽』에 담긴 87편의 시를 읽으면서 그가 왜 도시를 자기 시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가를 다시 생각해보았다. 그것은 그가 정신적으로 단단한 성벽처럼 의지하고 있는 ‘고독’의 근원을 찾아내는 작업이기도 했다. 그는 한적한 시골보다 각종 소음과 사람들로 분비는 도시에서 더 절실하게 고독한 존재의 모습과 대면하게 되고, 그 내면의 실체를 고향처럼 인식하면서 물을 만난 물고기같이 그 속으로 침잠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이 글의 제목을 ‘도시인의 고독한 내면의식을 담은 모더니즘의 언어’라고 붙여 본 것이다. 2. 시편 들여다보기 가. 내면의식의 표출과 이미지의 환상적 결합 이 시집의 구성은 4부 (Ⅰ. 오십 너머 마신 술 Ⅱ. 가을을 지나 겨울 속으로 Ⅲ. 담장에 그린 그림 Ⅳ. 내 마음의 놀이터)로 분류되어 있다. 그 분류의 방법은 시의 형식이 아닌 내용에 의한 분류다. 먼저 「사람들은 금요일마다 술을 마신다」를 읽어 보자. 무너지는 서류더미 속에서 오후 내내/인생의 로드맵을 만들고, 또 파쇄기에 넣는다/어느덧 석양은 안개처럼 번지고/전동차는 여전히 소음 속으로 떠나고/어둠은 언제나 뒤척이다가 나타난다/멀리서 사람들이 돌아온다/어둠을 헤치며 흔들흔들 온다/불빛 희미한 사거리/휘청거리는 신호등이 길을 가로막는다/시계는 매번 정각을 맞추려고 숨을 죽이고/일단의 사람들이 폭탄처럼 몰려서서는/무의미한 시간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펄럭이는 자동차 불빛 앞에 /몇몇 남은 사람들은/손에 쥔 가방을 구겨버리며 술을 꺼내 마신다/쓱쓱 지우고 싶은 하루/그 금요일마다 사람들은 제 가슴을 열고/몰래 숨겨 놓은 술을 꺼내 마신다//-「사람들은 금요일마다 술을 마신다」전문 이 시 속에는 도시 직장인들의 삶의 현장이 영화 속의 장면들처럼 연결되어 있다. 서술보다는 묘사가 만들어 내는 이미지가 독자들의 시선을 당긴다. 그 중심 이미지는 “어둠은 언제나 뒤척이다가 나타난다” “휘청거리는 신호등이 길을 가로막는다/시계는 매번 정각을 맞추려고 숨을 죽이고” 등 명사+동사 또는 동사+명사 형태의 동적 이미지다. 다방면에서 동시적으로 발생하는 이 동적 이미지들은 집합적 결합을 통해서 퇴근 시간의 도시 분위기를 연출한다. 시의 화자도 그 속에서 움직이는 존재이지만 그의 눈은 카메라의 렌즈가 되어서 객관적인 위치에서 그 장면을 촬영하고 있다. 금요일마다 제 가슴을 열고 몰래 숨겨 놓은 술을 꺼내 마시는 사람들은 자신만의 밀실로 들어가고자 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곳에서 재탄생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그 밀실은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무의식의 공간이다. 그 공간은 태아를 보호하는 어머니의 자궁 속 같은 원초적인 생명의 공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불안과 초조, 정신적 스트레스에 지친 도시인들은 술을 마시고, 그 공간 속으로 잠수하려고 하는 것이다.「새벽의 빛」은 그 속에서 새롭게 탄생하고자 하는 시인(화자)의 무의식 속 자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새벽마다 나를 깨우는 이 누구인가/창문을 두드리는 이 누구인가/얼음장 밑을 흐르는 물소리/안개꽃처럼 번져오면/땅에서 시작된 어둠은 /다시 땅으로 사라지고/하늘이 열리고 빛이 내려온다//적막하여 외롭게 서 있는 지평선/드리워진 휘장을 서서히 걷으며/바람도 움직이지 않고/구름도 그 흐름을 멈춘 이 새벽에/저기서 다가오는 이 누구인가/눈부신 손을 내미는 이 누구인가//-「새벽의 빛」전문 “새벽마다 나를 깨우는 이 누구인가” 는 이 시의 화두다. 새벽마다 눈부신 손을 내미는 그 존재는 시인의 무의식 속의 모성(어머니)라고 추정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서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그 존재를 인식하는 자아의 존재다. S. 프로이트를 구조주의적으로 재해석해서 무의식의 존재를 발견한 자크 라캉(Jacques-Marie-Émile Lacan, 1901년 ~ 1981년)은 무의식 속의 자아는 한 개체 안에서 그를 이끌고 통제하는 타자(他者)라고 한다. 따라서 그 타자는 본래적 자아의 은유나 환유라고도 말할 수 있다. 「비 온 뒤」에는 그 본래적 자아가 하얗게 발가벗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우산을 접고 양지로 나오는 사람들/모두 눅눅했던 제 그림자를 벗고/환하게 피어나는 햇살을 만나러 간다/하늘은 이제 파랗게/나뭇잎에 걸린 물방울을 타고/지상으로 내려온다//그래서 세상은 하늘에서 온 도시/잔잔한 연못 속으로 지하철이 달리고/새소리, 바람소리 직조한 옷을 입으면/사람들은 차가운 분수에 못이 박힌 발을 씻고/마음속에 퇴적한 어둠을 털어낸다/다 보인다, 비 온 뒤에는/건널목을 지나가는 사람들/하얗게 발가벗은 모습이/무지개 틈새로 환히 다 보인다//-「비 온 뒤」전문 비 온 뒤 먼지가 다 빗물에 씻긴 세상은 “하늘에서 온 도시/잔잔한 연못 속으로 지하철이 달리”는 동화 속의 나라를 상상하게 한다. 그래서 “건널목을 지나가는 사람들/하얗게 발가벗은 모습이/무지개 틈새로 환히 다 보인다”는 새로운 시각의 세계를 열어준다. 이런 시각의 열림이 이 시에서는 관념에서 벗어난 선명한 사물인식의 이미지로 표현되고 있다.「2009년 겨울 독감」에는 시인의 내면의식의 환상적 이미지(가상현실)가 서사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이미지 속에는 어머니의 모습이 영화의 화면처럼 나타난다. 등산용 지팡이로 땅을 딛으며/어머니가 나타나셨다/어깨에 비스듬히 손가방을 둘러메고/어머니가 나타나셨다/오른쪽 눈 실명, 왼쪽 눈 백내장/주변을 자꾸 둘러보며, 한 손을 저으며/행길을 건너오셨다/오늘따라 시청 앞 횡단보도가 매우 넓었다/나도 얼른 길을 건너 우리는 한복판에서 만났다/괜찮다, 괜찮아/어머니는 항상 그렇게 말씀하시고/그래 감기는 좀 어떠냐/또 그렇게 말씀하셨다/괜찮어, 이제/나는 어머니 앞에서 기침을 할 수 없었다/어머니를 한쪽 품에 안고 길을 건너오면서/어깨뼈가 닭뼈처럼 손가락에 잡혀/너무나 면구스러웠다/찬 바람이 콧속에 스며들었으나/기침을 할 수 없었다/통장과 카드를 전해드리고/나는 택시를 잡으려고 했다/어머니는 또 평상시처럼 한 손을 저었다//-「2009년 겨울 독감」1연 겨울 날 시청 앞 횡단보도에서 만난 어머니. 오른쪽 눈 실명, 왼쪽 눈 백내장이지만 “괜찮다, 괜찮아” 하시는 어머니. “통장과 카드를 전해드리고” 택시를 잡으려 했지만 평상시처럼 손을 젓는 어머니의 모습 속에는 시인의 절실한 그리움이 투영되어 있다. 어머니는 시인의 정신적 안식처로 인식된다. 나. 도시인의 고독한 서정과 낭만적 피안의식(彼岸意識) 앞에서도 말했지만 그의 시편의 중심은 도시인의 고독한 서정이다. 연작시 「지하철․1」은 그의 그런 모습을 새벽에 출근하는 회사원의 모습으로 담담하게 객관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새벽의 징검다리를 건너/발목이 시리게 푸른 공기를 마시며/나는 출근길을 나선다/밤새 잠을 설친 새들은 새까만 머리를 서로 비비다가/졸린 눈으로 제 부리를 제 가슴에 파묻고/길게 늘어진 전깃줄을 바람이 두어 번 흔들고 간다/붉은 보도를 가로막고 선 지하철역 입구/하얀 불빛에 가지런한 계단을 내려서면/알 수 없는 그리움이 가슴에 밀려온다/아직은 다 깨어나지 못한 공간을 침묵만이 가득 메우고/희미한 전등불빛이 그 침묵더미를 조심스럽게 썰어간다/아무도 없다, 주변에는/항상 그렇게 살아왔다/바람 부는 날이나 비 오는 날이나/언제나 혼자였던 사람들/혼자라는 것에 이제 익숙해져서/외로울수록 편안해지는 것은 더 이상 이상한 일이 아니다/빛나는 어둠이 수북이 쌓인 철로를 보며/나는 잠시 가방을 내려놓는다/이제 조금만 있으면 이 철로를 우우 구르며/바람과 같이 전동차가 나타날 것이다-「지하철․1」전문 심경토로가 들어있지만 사실적인 이미지가 더 가슴에 닿는다. 새벽에 출근하는 자신의 모습을 밤잠을 설친 새들의 모습과 병치시킨 앞부분의 정경은 도시인들의 삶이 얼마나 각박하고 피곤한 것인가를 사물의 이미지로 전한다. 그리고 끝부분 “빛나는 어둠이 수북이 쌓인 철로를 보며/나는 잠시 가방을 내려놓는다/이제 조금만 있으면 이 철로를 우우 구르며/바람과 같이 전동차가 나타날 것이다”에서는 도시인들의 삶은 사회의 구조가 만들어내는 삶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순응하는 화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래서 화자의 ‘빛나는 어둠’이라는 역설이 도시인의 고독한 삶을 표현하는 언어로서 신선한 감각과 함께 내면적 슬픔을 남긴다. 그러나 고독감이 내면적 슬픔이라고 하여도 시인은 고독을 배척하지 않는다. 그는 오히려 고독의 각질 속에 들어가서 자신만의 낭만적 우주감각을 느끼고자 한다.「항아리 斷想」은 그의 그런 내면세계를 순수한 모더니즘의 이미지로 드러내고 있다. 밤은 깊고 깊은 항아리/가도 가도 끝이 없는 우주가 /그 안에 천천히 내려온다/오늘 밤 별들은 /항아리 가득 부어진 물에 풀어져/한 그림 속 조용한 빛을 이룬다/그 안에선 모두가 정지해 있다/바람이 분다 해도/흔들리는 것은 오로지 바람일 뿐/무슨 상관이 있을 수 없다,/ 서로 간에/편안한 항아리 속/단단히 여문 침묵만이 제 그림자를 안고 서 있다//부동의 항아리 속/별빛들이 하나 둘 일어서기 시작한다/별빛들이 일어설 때마다/그 빈자리를 어둠이 메워간다/나뭇잎들이 떨어져 은은히 쌓이듯이/어둠은 제 몸을 쌓아 빛의 자리를 천천히 메우며/저 깊은 바닥에서부터 견고한 안식을 다져나간다/빛의 흔적은 모두 지워지기 시작한다/물어보라, 무슨 미련들이 아직 남아 있는 건지/다 가지고 가거나, 다 놓고 가거나//이제부터는 이 단단한 공간에/모든 것은 오로지 태초의 제 모습으로만 존재할 뿐이다/내 숨소리가 천천히 내 눈을 덮는다//-「항아리 斷想」전문 이 시에서 밤, 항아리, 별, 빛, 바람 등의 언어들은 실제적인 의미에서 벗어나서 시인의 고독한 세계를 치장하는 기표(signifier 記票)로 사용되고 있다. 따라서 이 시의 공간은 실제의 현실적인 공간이 아닌 시인의 상상이 꾸며낸 가상공간이 된다. 그는 그 항아리의 단단한 공간 속에서 그에게 정신적인 “견고한 안식”의 자리를 다지게 하는 고독의 실체를 만난다. 그리고 그는 그 속에서 “태초의 제 모습”으로 존재하는 자아를 발견한다. 따라서 이 ‘항아리의 공간’은 선사(禪師)들이 본래적인 자아를 탐색하는 선(禪)의 공간과 통한다. 이 가상공간의 본질적인 풍경은「도시의 북쪽」에서 낭만적인 동영상의 그림으로 그려진다.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단풍은 아름다웠다/차를 한참 달려서 이제는/크고 작은 나무들로 가득 찬 숲길/하얀 빛 한 줄기 나무 틈을 밀며/힘겹게 들어오고 있었다/피치 파인이라고 부르는 리기다소나무들은/떼를 지어 하늘을 막고 서서/바람이 불 때마다 탬버린 소리를 냈다/그중에는 키다리 더글러스소나무도 있는 것 같았다/갑자기 주변이 환해지면서/나를 에워싼 나뭇잎들은 모두 황금빛 왕관을 쓰고/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나에게 달려왔다/눈이 부셔서 눈을 제대로 뜰 수가 없었다 /햇살들은 바람을 타고 내려와/뽀얀 분홍빛에서 찬란한 자줏빛으로/다시 뽀얀 분홍빛으로 변하다가 어디론가 사라졌다/길을 달리며 나는 그런 색깔로 물들어 갔다//손을 흔들고 서 있었다/수십 년 전에 헤어진 동네 꼬마친구가/길옆에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나는 황급히 차를 세웠으나//그 아이는 온 데 간 데 없었다/아아, 이름이 뭐였더라,/그곳에는 한 무더기 코스모스만이 흐드러지고 있었다//-「도시의 북쪽」1,2,3연 승용차를 타고 여행을 하는 내용으로 구성된, 이 시의 세부를 형성하는 사건들은 부분적으로는 사실적 체험이다. 그러나 그 사건들이 이 시에서는 시인의 상상, 감성, 정서, 무의식 등에 의해 재구성된 사건이라는 점에서 가상현실(假想現實) 속의 사건이 된다. 가상현실 속에는 물리적 가능성의 사건만이 아니라 그것을 뛰어넘는 판타지(fantasy)의 영상도 들어갈 수 있다. 시인은 차를 타고 도시의 북쪽으로 달려간다. 도시의 북쪽에는 아름다운 단풍이 있고, 크고 작은 나무들로 가득 찬 숲길엔 하얀 빛 한 줄기 나무 틈을 밀며 들어오고 있다. 그리고 바람이 불 때마다 탬버린 소리가 난다. 그는 그런 세계의 풍경을 “나뭇잎들은 모두 황금빛 왕관을 쓰고/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나에게 달려왔다/눈이 부셔서 눈을 제대로 뜰 수가 없었다”라고, 또 길을 달리면 “수십 년 전에 헤어진 동네 꼬마친구가/길옆에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라고 동화적인 낭만의 그림으로 보여준다. 그래서 인용된 시만으로도 ‘도시의 북쪽’이 시인(화자)의 정신공간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짐작하게 한다. 그리고 시의 화자가 왜 도시의 북쪽으로 여행을 떠나는지를 알게 한다. 그곳은 시인이 언젠가 어머니로부터 또는 우주의 어둠으로부터 떠나온, 그래서 시인의 무의식의 심층에 자리 잡고 있는 피안(彼岸)을 상징하는 이상향의 도시라고 유추되기 때문이다. 이 시의 끝부분, 돌아오는 차 안 그의 옆 좌석에 앉아 있는 “찬란한 자줏빛 외투를 입은 어둠 하나” 는 시인이 갈구하는 이상향의 분위기와 빛깔을 암시하고 있다. 그날 밤 나는 밤새도록 돌아갈 곳을 찾지 못했다//차의 머리를 돌렸지만 마땅히 갈 곳이 없었다/칠흑 같은 침묵을 헤치고 돌아오는 차 안 내 옆 좌석에는/찬란한 자줏빛 외투를 입은 어둠 하나가 /나를 외롭게 지키고 있었다/나는 그의 외투에 파묻혀/그 찬란한 자줏빛으로 물들고 싶었다//-「도시의 북쪽」끝부분 다. 시람 사는 풍경의 시편들과 사물성의 감각 이제까지 이 시집의 시편들 중에서 낭만적인 시선으로 자신의 내면을 응시하고 본래적인 자아를 회복하는 내용의 시편들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다음은 시인의 시선이 외부로 돌려진 시편들이 그려내는 풍경을 본다. 그 외부의 시선 속에는 나와 남(타자)의 두 모습이 들어 있다. 그 둘은 시간과 공간의 틀(frame) 속에서는 서로 분리될 수 없는 존재들이지만 서로 일정한 거리에서 각자의 공간을 침범하지 않는 독자적인 사고와 행동을 하고 있다. 그것이 시인의 고독감이 그려내는 도시의 풍경이다. 먼저 연작시 「사람 사는 풍경․1」을 읽어보자. 수서로 가는 전동차가 막 떠났다/먼지 섞인 바람이 가슴 가득 밀려오고/나는 낡은 나무의자에 몸을 기대고 앉는다/잠시 갈라졌던 공간이 다시 이어지면/건너편 플랫폼에 서 있던 한 여자가/우연히 나를 쳐다보다가 시선이 마주치고/누구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아도 /서로 모르는 사람일 뿐/태연스러운 서성임만이/그 여자와 나를 말없이 오갈 뿐/다시 적막감이 이곳을 휘감고 나면/침묵만 한가득 내려쌓이고/잠시 후 전동차가 이 침묵을 깨며 달려와/우리의 공간을 갈라놓으면/우리는 이미 떠나버린 사람들/어느 역, 어느 시간에 다시 만나도/우리는 여전히 모르는 사람들일 뿐/저 건너편 낯선 공간에 서 있는/희미한 그림자들일 뿐-「사람 사는 풍경․1」전문 수서로 가는 전동차역에서 우연히 만난 ‘한 여자와 나’는 영원히 모르는 사람으로 끝나고 있다. 서로 소통할 수 있는 매개도 없다. 시인은 그 여자와 나의 소통에 대한 어떤 상상도 시 속에 넣지 않는다. 그래서 “잠시 후 전동차가 이 침묵을 깨며 달려와/우리의 공간을 갈라놓으면/우리는 이미 떠나버린 사람들/어느 역, 어느 시간에 다시 만나도/우리는 여전히 모르는 사람들일 뿐”이라고 한다. 이런 태도는 인연(因緣)을 시의 근원으로 삼는 서정주(徐廷柱) 시인의 시와는 정반대에 위치한 시라고 판단하게 한다. 그것은 이 시가 이성적인 모더니즘의 과학적 태도에 가깝기 때문이다.「사람 사는 풍경․3」에서도 그런 시인의 자세는 변하지 않는다. 농협 양재동 마트에는/언제나 많은 사람들로 붐빈다/늦은 밤에도 상품 진열대 사이로/손수레를 밀고 당기며/어린 새댁은 이미 잠을 설쳤고/어쩌다 낯익은 얼굴을 만나는 즐거움도 있다/밤새도록 밀양에서 올라온 단감은/진열대 위에서 졸고/어제 따온 사과는/종이상자 속에서 익어간다/계산대 앞에 줄 이은 사람들이/각자의 표정으로 순서를 기다리고/지불을 마친 사람들은/하나 둘씩 빠져 나가는데/내 앞 손수레 안에는/한 아이가 잠들어 있다//-「사람 사는 풍경․3」전문 시인의 눈은 농협 양재동 마트의 풍경을 카메라의 렌즈처럼 객관적으로 촬영하고 있다. 그래서 진열대의 단감, 종이 상자 속의 사과, 계산대에 줄지은 사람들, 손수레 안에 잠든 아이들은 각자의 표정으로 존재할 뿐이다. 이런 냉정한 시선은 그의 시편들이 대상에 대해 어떤 간섭(판단, 주장)도 배제된 영상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관념에 시달려온 독자들에게 신선한 감각으로 다가온다. 그 감각은 독자들의 정신을 맑은 물로 씻어주는 사물성의 감각이다. 그래서 이 시 속에 들어 있는 시인의 빈 마음과 섬세한 감각, 그리고 날카로운 관찰은 사물시의 가능성을 확인하게 한다.「사람 사는 풍경․5」는 위에 인용한 시편들에 비해서 동적이고 활력이 넘치는 밝은 풍경을 담고 있다. 그러나 이 시에서도 시인(화자)은 철저하게 관찰자 또는 방관자의 입장에서 풍경을 촬영하여 보여주고 있다. 큰 수족관 앞에서/롤러스케이트를 신고 선 계집아이 둘이/수족관 안을 들여다보고 있다/한참 보다가 갑자기 한 아이가/허리를 잡고 깔깔깔 웃었다/웃음소리에 놀란 듯 지나가던 여자가/수족관 안을 잠시 들여다보다가/가던 길을 다시 가고 있다/나는 걸음을 멈추고 수족관으로 다가갔다/계집아이들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고/수족관 안에는 커다란 열대어들만 오가고 있다//-「사람 사는 풍경․5」전문 3. 나가는 글 이제까지 최성철 시인의 시집 『도시의 북쪽』에 담겨 있는 87편의 시편들을 읽어보고 나름대로 해설을 하였다. 이 해설은 이 시집의 전체 시를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인용된 시편들은 해설자의 의식 또는 무의식에 의해서 선택된 일부일 뿐이다. 그래서 해설자의 편협한 시선에 의한 해설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나름대로 중심의 줄기는 놓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최성철 시인만의 독특한 색채의 내면세계, 고독한 자아의 눈으로 대상을 응시하는 냉정한 자세, 자신의 관념을 순수한 사물 이미지로 표출하고 뒤에 침묵의 여백을 남기는 기법 등을 접하게 된 것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이런 그의 세계는 새로운 창조적인 세계와는 대칭적인 위치에 있으면서 독자들과 호흡을 함께하고 그들의 사유를 자유롭게 하는 시의 공간을 열어준다. 필자는 그의 시가 앞으로 더 단단히 자기의 세계를 구축해서 한국현대시의 현장에서 김현승(金顯承) 시인의 ‘절대의 고독’에 비견될 수 있는 ‘도시인의 고독’의 세계를 확고하게 형성할 것을 기대하면서 글을 줄인다.
1039    허순행 시집해설 댓글:  조회:1094  추천:0  2019-12-14
허순행 시집해설   내면세계가 펼쳐놓은 감각적 기표의 별무리                                                                        심상운 (시인 문학평론가)   1. 들어가는 말   허순행 시인의 첫 시집『꽃잎만 붉다』에 담긴 60편의 시를 읽으면서 그의 시속에서 무수히 탄생하고 움직이는 무의식(無意識) 속 환상(幻想)의 이미지들에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이미지들은 이미지로서 감지될 뿐 어떤 의미를 붙여 해석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것은 허순행 시인의 시편들 중 하이퍼시(hyperpoetry)의 구조를 형성하고 있는 시편들을 비롯해서 다수의 시편들의 이미지가 기의(signified)보다는 현실적 사실에서 이탈하여 행위하고 시간과 공간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무의식의 세계 속의 기표(signifiant)로 인식되었고, 그 기표의 이미지 덩이들이 시의 속살을 뜨겁게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의 궁극을‘언어의 예술’이라고 할 때 그의 시가 차지할 자리는 더 확실해진다고 생각되었다. 그래서 필자는 그의 시를 열고 감상하는 시론(詩論)의 근거와 키(key)를 문덕수 시인의 시론「내면세계의 미학」(1966년 사상계)과 프랑스의 철학자이며 비평가 롤랑 바르트(Roland Gérard Barthes,1915년~1980년)의『S/Z』(1970)에서 찾아보았다. 문덕수 시인은「내면세계의 미학」에서 “외면 세계의 속박을 끊고 내면세계로 옮기면, 외면세계의 합리적 구조를 벗어나게 되고, 따라서 비합리적인 내면세계의 구조를 반영하게 된다. 이와 같은 구조의 차이를 의식의 측면에서 본다면 ‘의식의 구조’ 와 ‘무의식의 구조’로 구분될 것이다. 외면세계의 대상에 의존했던 지금까지의 우리 시는 말하자면 의식의 구조의 산물이었지, 무의식의 구조의 산물은 아니었다. 물론 내면세계의 시라 할지라도 무의식과 의식, 꿈과 현실의 통합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무의식이라는 광활한 영역이 의식의 기초 세계가 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그 구조의 아나키즘(anarchism)적 성격을 일단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했다. 이 내면세계에 관한 시론은 무의식의 영역을 1960년대 한국현대시(韓國現代詩)의 새로운 영역으로 도입(導入)하고자 한 매우 혁신적(革新的)이고 개방된 시론으로 인식되고 평가되고 있다. 1960년대의 구조주의(構造主義)에서 탈피한 롤랑 바르트는『S/Z』(1970)에서 이음, 노드, 네트워크, 다중 경로 등의 개념을 사용하여 이미지들의 덩어리들(그의 말로는 lexia)로 구성된 이상적인 텍스트(text,글, 책)에 대해“이 이상적인 텍스트에서는 네트워크는 다양하고 상호작용적이며, 그들 중의 어떤 것도 다른 나머지를 초월할 수 없다. 이 텍스트는 기표들의 거대한 별무리이지 기의들의 구조가 아니다.”라고 했다. 그의 말에서‘기표들의 별무리’라는 말은 현대시는 기의(의미)에 구속되지 않아도 가능하다는 무의미시(無意味詩) 또는 기호시(記號詩)의 탄생을 선언(宣言)한 것으로도 해석된다. 그의 선언 속에는 시에서 ‘진리나 실재’에 대해 기존 관념을 위압적으로 강요하는 전통언어에 대한 반발이 들어있으며, 텍스트는 독자들을 고정된 의미의 소비자(消費者)에서 생산자(生産者)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들어있다. 그래서 위의 두 전위적(前衛的) 시론은 허순행의 시편을 감상하고 이해하는 기본적인 바탕으로 인식되었다. 이와 함께 허순행의 시를 구체적으로 세밀하게 감지하게 하는 것은 그의 감성이 뜨겁게 흐르는 서사(敍事)와 감각적 표현이다. 그가 즐겨 활용하는 활유(活喩 personification)와 무의식 속에서 분출하는 성적(性的) 이미지의 환유(換喩)는 그의 시를 관념에서 벗어나게 하는 사물성의 에너지가 되어 독자들에게 시적 긴장감, 감각적 충격, 상상의 공간을 열어주는 활력소의 역할을 하고 있다. 시집 해설의 표제를‘내면세계가 펼쳐놓은 감각적 기표의 별무리’라고 명명(命名)한 근거도 거기에 있다.   2. 시편 들여다보기   가. 환상적이고 감각적인 순수 이미지의 시   허순행 시에서는 환상적이고 서사적인 이미지, 성적감각(性的感覺)의 이미지와 그것의 바탕이 되는 생명의식(生命意識)이 사물처럼 만져진다. 그러나 그의 시에는 외부적인 가치관(價値觀)이나 교훈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관념이 아닌 실제의 감각과 무의식의 흐름에 시의 원적지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시편에서 순수한 이미지는「귀뚜라미가 울고」라는 시로 알려진 미국의 여류시인 에밀리 디킨슨 (Emily Dickinson, 1830년 - 1886년)의 회화적인 선명한 이미지를 연상하게 한다. 그의 시에서 신선함과 놀라움을 주는 것은 시어의 감각적 결합이다. 그의 시에서 무생물을 동물의 움직임으로 표현하는 활유는 표현의 생동감, 정서의 상승, 시적 긴장감에 큰 효과를 내고 있다.   이 시집의 첫 시「보름달」에서는 그의 생동하는 감각적 표현을 통한‘무의식 속의 나의 발견’을 감지하게 된다. 1연의“밤이/제 살에 묻은 달빛 뜯어내고/언덕 아래 숨었어요”에서는 밤의 활유가 일으키는 신선한 동물적 상상을 느끼게 된다. 2연의 말과 거울과 애(아이)의 이미지는 자크 라캉(Jacques Lacan 프랑스 철학자 정신분석학자)의 상상계⟶상징계의 구조로 해석의 실마리를 잡아보게 된다. “말이 입술에 닿자 그 애는 거울 뒤를 살피기 시작했어요/제 얼굴과 나누던 입맞춤도 사라졌어요”는 거울(상상)의 세계에서 언어(상징)의 세계로 이동하는 아이의 성장단계를 의미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그래서 3연의 “그러나 죽어서 거울 앞으로 왔어요/뼈마디 앙상한 거울이 그 여자를 들여다봐요”는 어릴 적 상상의 세계로 돌아가고 싶은 욕망의 표현으로 유추되고, 4연의 “벌거벗고 누워도/아랫도리가 춥지 않은 밤이예요”라는 어린 시절의 나로 돌아가는 행복한 의식을 감지하게 된다. 이 시에서 아이는 화자(시인)의 내면(무의식) 속의 아이로 인식된다.   밤이/제 살에 묻은 달빛 뜯어내고/언덕 아래 숨었어요//말이 입술에 닿자 그 애는 거울 뒤를 살피기 시작했어요/제 얼굴과 나누던 입맞춤도 사라졌어요/온갖 물상을 꺼내 손가락에 옮기고 제왕처럼 호령하던 졸병들 내다버렸어요/퍼즐 속에서 꺼낸 말이 그 애를 끌고 다녀요/조각 하나하나를 끼워 맞춰 입술 단정히 하고 높은 시렁 위에 올려놓은 말들이 그 애를 거느리기 시작했어요/종자처럼 말의 시중을 들었어요/어여쁜 그 애는//그러나 죽어서 거울 앞으로 왔어요/뼈마디 앙상한 거울이 그 여자를 들여다봐요/평생을 끌고 다녔던 그림자 받아들고 강물이 강물을 건너가요/보름달이 따라와서 발자국마다 하얗게 피를 쏟아요//벌거벗고 누워도 /아랫도리가 춥지 않은 밤이예요//-「보름달」전문   「꽃샘바람」은 이른 봄날 쌀쌀한 꽃샘바람을 여자로 비유해서 신선하고 놀라운 상상으로 독자들을 자극하면서 생명감이 출렁이는 소설적(小說的) 서사의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다. “언덕으로 올라간 여자는 치맛자락을 붙잡고 늘어지는 주정꾼을 만나자 사내를 번쩍 들어 품에 안고는 숲속으로 들어갔다 (중략)여자의 얼굴이 눈물로 번들거렸다 밤새도록 여자의 울음소리가 들판을 적셨다”의 역동, 환상, 성적 이미지는 읽을수록 맛을 낸다. 호흡이 길고 사건이 중첩되는 장편 서사시의 가능성을 예지(豫知)하게 한다.   여자가 왔다// 머리는 갈기처럼 풀어졌고 메마른 얼굴에 버짐이 허옇게 피어있다 마을로 들어선 여자는 아이들이 노는 양지쪽에 끼어 앉아 공기놀이를 했다 아이들이 까르르까르르 웃었고 이제 막 얼굴을 내민 꽃다지가 마른 숨을 토해냈다// 해가 설핏하게 기울자 여자는 갑자기 아이의 머리칼을 휘어잡고 흔들었다 놀라서 울어대는 아이의 목도리를 잡아채 멀리 던지고는 개울물 속으로 첨벙첨벙 걸어 들어갔다 앙상한 맨발에 핏물이 돌았고 깔깔깔 웃어대는 귓볼이 붉었다 개울물에 비친 그 여자의 속살도 붉었다// (중략)다음 날, 산수유나무에서 그 여자의 혼백이 노랗게 피어났다//-「꽃샘바람」처음과 끝부분   「열사흘 달」도 생명의식을 바탕으로 한 무의식 속의 성적 이미지 속에 여자애들과 사내애들을 등장시켜 짧은 서사구조로 갈무리하면서 시적 감각을 뿜어내고 있다. “여자애들이 먼저 속옷을 벗는다 달빛은 그 애들의 맨몸을 뚫고 들어가 달덩이 하나 만들고 은색 실타래를 풀어 허기진 가슴을 채운다”. 이 시에서 독자들은 관념에서 해방되어서 시인이 만들어 놓은 열사흘 달밤의 서사적 환상의 공간 속에 들어가서 놀고 느끼면 된다. 예술의 끝이 천진한 놀이라고 할 때 이 시의 자리는 확실해진다.   은사시나무 잎새들이 허연 정액을 쏟아낸다// 이런 밤,/ 여자애들이 먼저 속옷을 벗는다 달빛은 그 애들의 맨몸을 뚫고 들어가 달덩이 하나 만들고 은색 실타래를 풀어 허기진 가슴을 채운다 하얗게 날선 어둠이 젖어들기 시작하면 골목에선 웃자란 신음이 번지고 쓰레기더미 속에선 버려진 울음이 아기로 태어나기도 한다 사내애들은 휘파람을 불고 여자애들은 깔깔거리고 어둠은 한 걸음 뒤로 물러선다// 달빛이 더 높게 제 몸을 걸러내고 있다/ 소금밭보다도 더 낮게 몸을 웅크린 밤 나뭇가지에 걸린 바람이 귀를 털어내고 음모처럼 드리워진 어둠이 어둠을 껴안은 채 어둠 속으로 든다// 중천을 지나 서쪽 보리암 마당을 지나던 달이 땅바닥에 누운 제 몸에 입술을 대 본다 얕게 오르내리는 숨소리가 둥글다//-「열사흘 달」전문   「꽃잎만 붉다」에서는 4월의 이미지를 종아리에서 기어나 온 뱀 한 마리, 돌단풍의 붉은 혓바닥, 남자애의 허벅지를 적시는 붉은 물 등 시인의 내면적 생명의식이 무의식의 욕망으로 드러내는 기표의 무리들과 만나게 된다. 그 기표의 무리들은 외부세계의 어떤 것과도 연결되지 않는 시인 자신의 내부의식이며, 의미로 환원되기 어려운 감성의 환유(metonymy) 로 인식된다. 그러나 그 의식은 인간의 숨은 욕망의 노출(露出)이라는 면에서 객관성과 보편성을 획득하게 된다.   길이 하루 종일 나를 끌고 다니다가 나무의자에 내려놓았을 때, 종아리에서 뱀 한 마리가 기어 나왔다 돌단풍이 붉은 혓바닥을 내밀어 목덜미를 애무하고 벚꽃은 흔들리며 흔들리며 땅 위에 눕고 己巳年에 태어난 나의 욕망은 제 다리에서 생겨난 돌단풍에 취해 잠이 들었는데, 등 뒤에 바짝 붙어 몸을 비벼대는 남자애의 아랫도리 사이로 붉은 물이 쏟아져서 허벅지를 적셔도 좋을 일// 낮잠을 깬 4월,/ 나무 그늘 아래로 천천히 멀어지는/ 낙타 발자국 소리를 들은 듯한데/ 도랑물 따라 떠내려가는/ 꽃잎만 붉다//-「꽃잎만 붉다」전문   이외에도 「그네」「장마」「사랑은」「빈집」에서 보여주는 선명한 사물성의 감각적 이미지의 시들은 허순행 시인을 서사적이며 역동적인 이미지즘(imagism)의 시인으로 평가하게 하는 근거가 될 것 같다.   나. 하이퍼(hyper) 구조의 시   기승전결(起承轉結)의 인과적(因果的)인 시의 구조가 배제되고 이미지의 비순차(非順次)와 다선구조(多線構造)의 형태를 기본으로 하는 하이퍼 구조의 시편들은 독자들의 생각을 상상의 네트워크(network)로 퍼져나가게 함으로써 새로운 연결구조의 맛에 젖어들게 한다. 그러나 저자(著者)에 의해 정해진 순서와 기의에 익숙해진 독자들은 이미지만으로 끝나는 하이퍼 시의 구조에서 당황하기도 한다. 허순행의 시에서 다선구조는 내면세계의 연상공간(聯想空間)으로 퍼져나간다. 그것은 그의 무의식의 네트워크가 만들어내는 가상현실(假想現實)의 세계이기도 하다.   「동백꽃」에서는 1연의 붉은 노을, 2연의 사내를 더듬는 형수, 3연의 동굴이 바다를 건너가는 이미지, 4연의 머리칼에서 흘러내리는 기억, 5연의 바람을 등에 지고 혼자 걸어가는 사막의 이미지, 5연의 흔적을 지우는 어둠, 6연의 여자의 몸에서 뚝뚝 떨어지는 핏방울 등의 단절적(斷絶的)인 이미지가 다선구조의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하이펴 시에서는 연을 단위라고도 한다) 이 다선구조는 시를 의미에서 벗어나서 감각과 감성으로 읽게 하고 상상하게 한다. 그래서 동굴, 사막, 어둠 등이 의미하는 것은 독자의 유추와 상상과 시적 분위기에 맡기게 된다. 2연의“형수가 어둠 속에서 사내를 더듬어요/빗줄기가 쏟아지는데/치마 속에서 빨갛게 눈뜨는 비린내”의 성적인 감흥(感興)은 빨갛게 피는 동백꽃에 대한 감각적 상상의 이미지를 통해 뿜어내는 시인의 내면의식의 발현(發現)으로 인식된다.   가지마다 붉은 노을 매달았어요//형수가 어둠 속에서 사내를 더듬어요/빗줄기가 쏟아지는데/치마 속에서 빨갛게 눈뜨는 비린내//숨어있던 동굴이 어둠을 밀어내고/씻지도 않은 몸으로 바다를 건너가요//젖은 머리칼에서/허기진 기억들 흘러내려요//사막이 바람을 등에 지고 혼자 걸어가요/그림자도 없이 어둠은 흔적을 지워요//여자 몸에서/젖은 핏방울 뚝뚝 떨어져요//-「동백꽃」전문   「소나기」에서도 하이퍼 시의 다선구조가 선명하다. 1연의 문을 두드리는 밤비 소리, 2연의 말안장에 앉아 채찍을 흔드는 사내, 3연의 울타리를 넘어가는 유월의 장미꽃, 4연의 사내의 꿈과 고시원의 1인용 침대는 이미지의 집합적 결합을 통해서 시 속에 극적 효과를 연출하고 있다. 그 효과는 인과적 연결에서는 드러낼 수 없는 시의 감각과 의미를 함축한다. 이 시에서 사막횡단의 꿈을 가진 사내와 유월의 장미꽃, 말안장에 앉아 세차게 채찍을 흔드는 사내와 그의 뒷그림자에 매달려 하루를 사는 여자, 밤마다 낙타를 끌고 사막으로 가는 사내와 1인용 침대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하는 의미의 유추(類推)는 독자의 몫이 되어 독자가 의미의 생산자(生産者)가 되는 것이다. 주제의 다양성은 다선구조의 시가 안고 있는 특징이기도 하다.   문 두드리는 소리에 밤이 놀라 깬다/쏴하고 쏟아지는 비/시원한 바람 한 줄기 흐르고 베란다 문 열려 있어/순식간에 방안 젖어든다//말안장에 앉아 세차게 채찍을 흔드는 사내/빗줄기를 뚫고 서쪽으로 사라진 다음/여자들은 그의 뒷그림자에 매달려 하루를 산다/산을 넘어가는 저녁이 여자들 눈 속 들여다보다가/마음 적막해져서 어둠 속으로 드는데//유월이 장미꽃을 피워 울타리를 넘어 간다/햇살은 나무 그늘 아래 숨었다가 스커트가 짧은 허벅지에 붙어/스마트폰을 따라가고/엉덩이에서 튀어나온 말이 옷을 벗은 채 그 뒤를 따라 간다/그 애들의 시한은 200일/여름이 가기도 전에 기념잔치를 끝낸 사진이 울지도 않고 돌아서 간다//사막횡단이 꿈인 사내는/밤마다 낙타를 끌고 사막으로 간다/책상 위로 수북이 쌓이는 모래바람/1인용 침대가 고시원에 누워서 너덜너덜 늙어간다//-「소나기」전문   「석류」에도 하이퍼(hyper)시의 다선구조의 기법이 보인다. 1연의 한강다리에서 벌어지는 사내의 아랫도리 퍼포먼스(performance), 2연의 세헤라자데의 혀에서 돋아나는 붉은 꼬리, 3연의 간통 혐의의 여자 자하라의 검붉은 피, 4연의 한 낮의 태양의 흔적이 남은 석류의 붉은 속살 등의 이미지가 불연속적(不連續的)인 관계로 이어지면서 시인의 무의식(無意識)의 흐름을 엿보게 한다. 석류의 붉은 빛에서 연상되는 다채로운 성적(性的) 이미지가 그것이다. 그래서 이 시는 통일된 의미보다는 각 연에서 보여주고 있는 개별적인 가상현실의 이미지 속에 숨어 있는 의미가 흥미를 끈다. 그리고 이미지들의 집합에서 발생하는 시의 총체적 효과에 관심을 갖게 한다.   보름달은 황갈색으로 변했고 *세헤라자데의 말이 징검다리를 건너고 있다 때때로 혀에선 붉은 꼬리가 돋아나기도 한다 바람소리를 엿들은 왕들은 눈먼 소문을 찌르고 사막 한가운데 버려진 별빛이 일곱 번이나 죽고도 살아난 바람을 나무에 매단다 동굴 속으로 들어간 낮달이 환하게 눈을 뜨고 천 년 밖으로 도망갔던 발자국들이 검은 눈물을 훔쳐 달아나는데/밤새도록 모래바람이 불던 여자의 입술에서 쿵쿵 뛰는 심장소리가 들린다//*자하라가 건넨 테이프에서 늑대들이 기어나왔다 충혈된 음모가 말 속에서 똬리를 틀었다 컴컴하고 빠르게 자라난 혀끝에서 거짓말은 돌덩어리처럼 단단해지고 단단해진 거짓말에서 검붉은 피가 쏟아졌다 사내들은 사방에 눈알을 매달아놓고 돌아갔다 눈처럼 하얀 여자가 저녁노을을 끌어다가 제 주검을 덮었지만//-「석류」2,3연 *세헤라자데 : 아라비안 나이트에서 실처럼 이야기를 풀어가는 여자, 아내에게 배신당한 왕에게 천일 동안 이야기를 들려준다.*자하라 : 간통 혐의를 씌워 아내를 돌로 쳐 죽이는 남자들을 고발한 영화 (더 스토닝)에 나오는 여자주인공   「살모사 또는 말(言)에 대한」에서도 하이퍼 시의 구조가 인식된다. 1연의 그 애의 거미줄에 걸린 말, 2연의 살모사를 묻던 10살 아이가 말의 포식자가 된 것, 3연의 사전 속의 살모사 4연의 바람 든 무를 버리려다가 보름달을 버렸다는 엉뚱한 생각 등이 각각 하이퍼 시의단위(unit)를 형성하고 있다. 그래서 인과적 논리의 시와 비교할 때, 이 시는 입체적인 시의 공간을 형성한 극적인 영상의 시로 읽히게 된다. 그 공간 속에는 엄마, 아이, 살모사, 보름달, 거미줄 등의 생동하는 이미지가 있다. 이 시에서 말에 대한 시인의 사유는 이미지 속에 암시(暗示)되어 있다.   내 말이 그 애의 거미줄에 걸렸다 끈끈하다/넘어가는 저녁노을이 목덜미에서 뜨겁다// “살모사를 알아? 엄마 ”/10살이 되던 조그만 입으로 종알거린 말이 목구멍에 걸려 넘어가지 않던 이후로 그 애는 포식자가 되었다 길고 차가운 포박 팽팽하다 밧줄은 두껍고 내 몸은 터질 듯하다 부풀어 오르는 말// 사전 속에는 굵은 뱀 한 마리가 또아리를 틀고 앉아 있다/ 살모사 (살무사) : 몸빛은 엷은 회색이고 몸통의 측면에 암회색 얼룩무늬가 있으며 몸길이는 70㎝쯤 까치 살무사, 남도살무사, 독사, 殺母蛇 깔깔거리며 웃는 그 애의 입 속에서 속살이 꽉 찬 독사 한 마리가 기어 나온다 시린 바람이 내 몸을 휘감는다// 바람 든 무를 버리려다가 문득 중천에 걸린 보름달을 버렸다//-「살모사 또는 말(言)에 대한」전문   이 밖에도「우두커니 앉아 있는 날들은 」에서 보여주는 시간을 매개로 하여 나열하는 이미지의 다선구조, 아들과 아빠의 갈등과 화해를 희곡적(戱曲的)인 대화로 구성한 「내 몸을 떠난 별이 천년을 건너와서 네 발등에 닿는 다면」, 연의 순서를 바꾸어도 시가 구성되고 긴장감을 주는 「보이스피칭」등이 독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길 것으로 생각된다.   다. 서사적 구조와 가족의 이미지   허순행의 시에서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서사적 구조 속에 들어 있는 가족의 이미지다. 그의 시에서 강렬한 시적 생명력을 제공하고 있는 딸의 이미지, 갈등을 조성하면서도 끈끈한 연민의 끈으로 서로를 묶고 있는 아빠(남편)와 아들과 엄마의 이미지는 우주공간속의 암흑의 물질(dark matter)같이 그의 무의식을 지배하고 있다. 「기억 속에서 전쟁은」은 1950년 6월 25일 발발한 한국전쟁의 기억이 서사의 구조 속에 생생한 이미지로 담겨있다. 그 기억은 유년시절의 기억으로 엄마를 애타게 기다리는 아이의 이미지로 남아 60이 넘은 나이에도 꿈속에서 바락바락 소리 지르고 진땀을 흘리게 한다. 이 시속에는 얼굴이 까만 병사를 흠모하는 사촌언니, 오지 않는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 머리칼을 자른 딸애가 등장하여 입체적(立體的)인 서사의 공간을 형성하고 있다.   아이들이 차올린 허공으로 새 한 마리 날아가요 날개를 반짝이며 전투기가 나타날 때마다 우리는 이불 속으로 숨어야 했어요 -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 이불 속은 가마솥처럼 뜨거웠어요 땀으로 범벅이 된 어둠 속에서 소리에 어두운 귀가 소리를 먼저 들어요//개들이 어슬렁거려요 주둥이에 핏물을 묻힌 채 시궁창을 뒤지기도 해요 사촌언니는 다락으로 숨어들어 얼굴이 까만 병사들을 흠모했어요 벼슬이 붉은 수탉이 뒤뚱거리며 허공을 쪼았어요 연두색 저고리에 엄마가 남기고 간 눈물 자국을 아이는 오래 오래 만져보았어요//-「기억 속에서 전쟁은」2,3연   「서쪽에서 달이 뜬 까닭은」에는 제삿날 죽은 남편의 이미지가 등장한다. 1연의 죽어서도 질투심이 남아서 탕국을 아내의 발등에 쏟아버리고 가는 남편과 그 남편을 연민하는 아내의 마음, 2연의 시인의 무의식 속에 등장하는 피부가 검은 사내애와 붉은 뱃속에서 우는 아이의 이미지, 3연의 울고 있니? 하고 묻는 죽은 남편과 검은 달덩이의 이미지, 4연의 비명을 지르는 아내와 떠오르는 달의 이미지가 무의식의 단절적 구조 속에 하나의 서사를 이루고 있다.   죽어서 학생이 된 그는/죽어서도 질투할 힘이 남아 있어/김이 오르는 탕국을 아내의 발등에 쏟아버리고/갔다는데/마음까지 멈춘 그가 흰 달덩이 하나를/서쪽으로 끌고 갈 수 있었을까//그 애의 책상은 15쪽에 머물러 있다 글자들은 목소리를 숨겼고 피부가 검은 사내애들은 암막 커튼을 쳤다 운동장을 저벅저벅 걸었던 그 애들도 커튼 안으로 들면 옷을 벗었다 숫자는 넘어가지 않았다 수억 년 전에 사라진 꼬리뼈가 날을 세우고 아랫도리를 벗은 아이들이 코 밑에서 가랑이를 벌리고/붉은 뱃속에서 아이가 숨죽여 울고//울고 있니?/학생이 된 그가 누군가에게 묻고 사라지는 밤/창문이 열리고 검은 달덩이 하나가 문 밖으로 던져졌을 때/모든 집들이 등뼈가 휘도록 제 몸을 껴안았다/신음이 빠르게 연골을 빠져나가 그의 등짝을 때렸다//아내가 놀라 비명을 질렀고/아이는 면사포처럼 하얀 제 몸 속으로 기어들어 갔다/그리고 달이 떠올랐다//-「서쪽에서 달이 뜬 까닭은」전문   허순행의 시에서 딸의 이미지는 왕성한 생명력과 연결된다.「딸애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에서 시인은 그 생명력을 “아주 간혹은 붉은 혓바닥을 가진 뱀이 그 애의 말 속에서 꿈틀거리기도 했다 거미가 식탁 위를 빠르게 기어 다녔다 장미가 내 얼굴에 실뿌리를 내리고 해를 끌고 다니던 어둠이 현관문을 두드렸다 바람이 컹컹 짖었다”라는 감각적 사물 이미지로 만들어서 독자들이 실제같이 느끼고 감지하게 한다.   딸애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 지구가 공전하는 소리도 들렸다 깊은 어둠 속에서 소리는 소리에 흡수되고 그런 밤에는 그 애의 푸른 이마에서 용암이 솟구쳤다 새빨간 핏물이 흘러넘쳐 바위덩어리를 태웠다 돌들이 숯덩이처럼 투명해졌다/ 아주 간혹은 붉은 혓바닥을 가진 뱀이 그 애의 말 속에서 꿈틀거리기도 했다 거미가 식탁 위를 빠르게 기어 다녔다 장미가 내 얼굴에 실뿌리를 내리고 해를 끌고 다니던 어둠이 현관문을 두드렸다 바람이 컹컹 짖었다//-「딸애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2연   이와 함께 사망 1주기에 딸과 아내 곁으로 온 남편 혼령의 독백을 환청으로 듣고 벽에 걸린 남편의 사진을 보면서 그림자로 보이는 혼령에게 말을 하는 아내의 모습이 영화의 한 장면 같이 그려진「1週忌, 사진」이 가족애(家族愛)를 담은 서사적 구성의 시로 감동을 주고 있다.   아내와 함께 달빛이 하얗게 누워 있네 맞은 편 방에서 딸애도 얕게 코를 골고 있네 어둠은 물에 젖은 무명옷처럼 축축하네 비에 젖어 돌아오면 딸애는 늘 어지러운 꿈에 시달렸네 밤새도록 그 애의 이마에 물수건을 갈아주며 아내는 어둠 속을 헤매고 다녔네/ 얼굴 가만히 만져보네 그녀가 몸을 뒤척이네 당신은 긴장하고 그녀가 잠에서 빠져나와 화장실로 가네 개울물 소리가 들리고 그녀는 검은 물속을 걸어나와 어둠으로 앉아 있네 어둠 속에서 그녀 어둠 더 깊어지고 당신은 그림자도 없이 방안을 서성거리네/-「1週忌, 사진」1연 앞부분   3. 나가는 말   허순행 시인의 첫 시집『꽃잎만 붉다』의 시편들을 읽고 나서 필자는 외부의 가치관이나 공리적 교훈성에 전혀 물들지 않은 그의 무의식 속에서 빛의 굴절에 작용하는 우주의 암흑물질처럼 현실과 환상의 교직(交織)에 작용을 하는 이미지들에 대해 어떻게 접근하고 해석해야 할지 막연했다. 그래서 무의식의 자유로운 연상 작용의 시적활용을 말한 문덕수 시인의「내면세계의 미학」과‘이상적 텍스트의 언어들은 기의에 구속되지 않는 기표들의 별무리’라는 롤랑바르트의 탈구조주의 이론에 대입하여 문제를 풀어보았다. 이런 접근이 허순행의 시를 이해하는 바른 길라잡이 역할을 할 수 있을지 단언할 수는 없지만 매우 유용한 방법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이와 함께 허순행의 시를 구체적으로 세밀하게 감지하게 하는 것이 그의 장기(長技)라고 평가할 수 있는 서사적 구성과 이미지의 감각적 표현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의 서사능력(敍事能力)은 환상적이고 감각적인 이미지와 어울려서 장편의 판타지 시를 생산해낼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갖게 한다. 이 시집의 시편들은 환상적이고 감각적인 순수 이미지의 단선구조의 시와 하이퍼의 다선구조의 시가 섞여있다. 그 시편들의 내부에는 그의 시에서 강렬한 시적 생명력을 제공하고 있는 무의식 속의 가족애가 들어있다. 그의 의식은 외부세계보다 자신을 중심으로 한 내부세계에 더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현대성으로 인해 21세기에 빛을 받는 동양의 노장철학(老莊哲學)과 연결되는 끈이 되기도 한다. 인용된 시편들은 의도적으로 선택된 시편들이다. 더 좋은 시편들이 선택되지 못하였음을 부기하면서, 허순행 시인의 시적 성취를 기대한다.  
1038    김순호 시집 해설 댓글:  조회:1142  추천:0  2019-12-14
김순호 시집 해설   내면의식의 오랜 뜨거움이 피워낸 진솔한 독백의 언어                                                                     심상운(시인 문학평론가)   1. 들어가는 글   김순호 시인의 첫 시집『보셔요 꽃동산에 봄이 왔어요 』에 실려 있는 66편의 시편들을 읽으면서 그 시편들의 진솔한 독백獨白의 힘에 자신도 모르게 끌려들어갔다. 극적장면劇的場面을 보여주는 서사敍事와 상상想像, 군더더기 없이 단순하고 선명한 인상을 남기는 단편적 이미지, 끝 연의 의미의 함축, 등은 개성적이고 세련된 미적 감각을 느끼게 했다. 또 일정한 규격에 얽매이지 않고 펼쳐내는 독백의 언어 속에 들어있는 여성적인 사랑과 열정의 정서는 자기응시와 생명의식과 현실인식의 밑바탕이 되어 단편적 이미지들을 뜨거운 감동과 깨달음의 언어로 다가오게 했다. 그리고 그의 시에 들어 있는 독특한 성적 감각의 언어는 잘 숙성된 술과 같이 독자들에게 시적 감흥을 안겨주고 있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그것은 그의 시의 감각과 사유가 관념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공간을 안고 있어서 독백의 언어가 객관적인 공감대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이런 그의 시편들은 경험을 밑거름으로 한 시적 에너지의 발산이라는 느낌을 주었다. 이는 이 시집의 시편들의 이미지가 시인의 무의식無意識 속에서 오랜 세월 잠재되었다가 병아리가 껍질을 깨고 나오듯 자연스럽게 언어로 태어난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 그래서 김순호의 시를 읽으면서 ‘시는 경험과 무의식의 산물’이라고 한 R.M.릴케의 산문집『말테의 수기手記』의 한 구절을 떠올리게 되었다. “나이 어려서 시詩를 쓴다는 것처럼 무의미한 것은 없다. 시는 언제까지나 끈기 있게 기다리지 않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 사람은 일생을 두고, 그것도 될 수만 있으면 칠십 년, 혹은 팔십 년을 두고 벌처럼 꿀과 의미意味를 모아 두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하여 최후에 가서 서너 줄의 훌륭한 시가 씌어질 것이다. ” R.M.릴케의 이 말은 너무 과장되어 반박을 당할 여지도 있지만 ‘진정한 의미의 시의 창작’은 시인의 일생에 걸친 일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창작의 교훈으로 영원히 남는 말이다. 이런 생각을 근거로 해서 필자는 해설의 제목을 ‘내면의식의 오랜 뜨거움이 피워낸 진솔한 독백의 언어’라고 붙이고, ‘사랑과 열정의 언어’ ‘생명의식과 자연’ ‘자기응시의 이미지’ ‘현실인식 속의 시간 이미지’를 소제목으로 해서 시의 내용과 함께 김순호의 시를 매끄럽게 하고 피부에 닿게 하는 언어의 절제와 감각, 시적 구성에 대해서도 찬찬히 살펴보았다.   2. 시편 들여다보기   가. 사랑과 열정의 언어   20세기의 모더니즘은 현대시에 ‘정서의 절제’와 ‘주지적主知的 인식認識’이라는 시의 방법을 도입하여 현대시를 19세기 낭만주의의 ‘감정의 유로流露’(워즈워드)에서 탈출하게 했다. 그러나 모더니즘이 현대시에서 대상에 대한 낭만적浪漫的 인식까지 거부하는 것이 아니다.   지하철 전광판에/그 남자의 집이 있는 동(洞) 이름이 써 있으면/난 하염없이 그 글씨들을 쳐다본다./그 남자는 지금 무엇을 할까/내가 사는 동(洞) 이름을 보면 그 남자도 나를 생각할까/반가움인지 쓸쓸함인지 모를 뒤엉킴 들이/혈관을 타고 발끝까지 퍼져간다.//그 남자의 집/한 번도 들어가 보지 못한 그 남자의 집은/꿀벌들이 꿀을 나르며/수없이 드나드는 벌집 같기도 하고/빨간 모자를 쓴 성냥개비들이 꼿꼿이 서있는/성냥곽을 포개 놓은 것 같기도 한 아파트/멀리서 바라보다 뜨거운 눈에 어른거려/하나, 둘, 층수만 세어보다 돌아서는 집/언제나 풍경으로만 서있는 그 남자의 집//그 남자/달밤엔 달빛이 창을 뚫고 들어와/마음을 송두리째 훔쳐간다고/비 오는 날엔 옥상에 올라/우산 위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전화선에 태우고/내게로 내게로 달려오는/그 남자/창밖엔 지천으로 봄이 왔다간다고/울울창창 까맣게 여름이 퍼져간다고/애틋한 가을이 그만 가고 있다고/무릎 끓은 겨울이 긴긴 밤 울고 있다고/소리로 소리로 소리로/풍경을 그려주는 그 남자//그 남자가 사는 집/막막한 열정에 우는 내 영혼이 연기처럼 스며들어가 서성이는 집/내 영혼이 사는 집 //-「그 남자의 집」전문   이 시집의 첫 시「그 남자의 집」은 시인의 낭만적인 꿈이 일상적인 형이하形而下의 언어를 넘어서서 ‘내 영혼이 사는 집’에 도달하는 형이상적形而上的 상승의 과정을 보여주면서 반복의 언어 속에서 솟아나는 정서의 뜨거운 열기를 감지하게 한다. 그리고 사실적 이미지에 섬세한 언어로 녹아든 여성女性의 풋풋한 감성이 농익은 시의 맛을 한껏 맛보게 한다. “그 남자의 집/한 번도 들어가 보지 못한 그 남자의 집은/꿀벌들이 꿀을 나르며/수없이 드나드는 벌집” 같기도 하다는 상상의 언어는 독자들에게 사랑의 감미로운 감각을 피부로 느끼게 한다. 그것은 관념이전의 사물적인 언어의 이미지가 주는 사랑의 원초적 감각 때문이다. 그래서 이 시는 읽으면 읽을수록 감미로운 맛을 더 느끼게 되고 사랑의 진실에 동감하게 된다. 이런 순수한 정서의 전달이 주는 감동은 김순호 시인의 가식假飾이 없는 의식이 허공 같이 자유로운 시적 공간을 형성하고 있음을 알게 한다.   꽃을 품고 싶어  안달이 난 남자가/매화꽃 두런거리는 광양 매화마을로 떠났다//'꽃바람 없는 건 남자도 아니지'//그 남잔 스마트폰으로/꽃불 번지는  매화마을을 /소방사가 물을 뿌리듯 구석구석/찍고 또 찍어 보내왔다//지금/매화꽃 고것들은/송곳 같은 꽃술은 감추고/언뜻언뜻 별 같은 심장을 흔들어대며/눈 시리게 활짝 웃고 있겠지//'앙큼한  고것들'//그러다 어느 순간/치명적인 향기를 내뿜어/봄마다 그 남자/꽃병이 들어 허둥지둥 달려오게 만들 거야//-  「매화꽃 고것들은」전문   「매화꽃 고것들은」에서도 감각적인 사랑의 언어가 생동한다. 남자와 매화꽃이 육감적인 사랑의 공간을 만들어내는 이 시는 시인의 언어감각이 얼마나 예민하고 세련되어 있는지를 느끼게 한다. ‘꽃바람’ ‘꽃불‘ ’꽃술’ ‘꽃병이 들어’ 등의 언어가 단순한 암시에 머물지 않고 시 속에서 걸림이 없는 낭만의 공간을 독자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그 언어들은 독자들에게 맛깔스럽고 풍요로운 시의 맛을 맘껏 즐기게 하는 시적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혹한을 견뎌낸 송곳 같은 순결/꺾고 싶은  도발적인 자태/너를 보고 떨리지 않을 바람이 어디 있으리//다가가면/사르르 벗어버릴 것 같은/투명한 옷자락/실핏줄 비치는 살내음의 유혹/네 앞에서 미치지 않을 가슴 어디 있으리//도도히 온몸을 불사르며/스러지는 교태의 몸짓/그 장엄한 뒷모습/서럽지 않을 영혼이 어디 있으리//아 바람을  타고 싶다/너와 나/태풍에 실려/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순정한  바람//-「꽃1」전문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주방에선/분수처럼 불기둥이 솟는다/푸른 바다 푸른 산 푸른 들이/후라이팬 속에서 오그라들고 있다//그 죽음을 난 먹는다//이제 알겠다/최후의 그날/내손을 잡아줄 이는/사랑했던 사람도/미워했던 사람도 아닌/용암처럼  성난 저 불덩이라는 걸//-「불덩이」전문    「꽃1」도 “다가가면/사르르 벗어버릴 것 같은/투명한 옷자락/실핏줄 비치는 살내음의 유혹” 등 성적 감각의 이미지가 꽃을 육감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이런 성적감각의 언어와 상상은 김순호 시인의 독특한 개성으로 파악된다. 이런 개성이 애정이나 탐애貪愛에 머물지 않고 더 활달한 어법- 어떤 것에도 구속 받지 않는 상상력을 바탕으로 깊고 넓은 자연의 생명력을 담을 때, 전통적인 감성이나 관념의 좁은 울타리를 과감히 부숴버리는 ‘생명의 시’를 탄생시킬 것 같다.「불덩이」는 그런 면에서 주목된다. 탐애에서 생명력으로 넘어가는 가교架橋의 역할을 하는 시로 파악되기 때문이다. 그 단서가 이 시의 끝 연 “최후의 그날/내손을 잡아줄 이는/사랑했던 사람도/미워했던 사람도 아닌/용암처럼 성난 저 불덩이라는 걸 ”에서 발견된다. 이외에도 「애인 하나 있으면 좋겠다」,「열병」등이 뜨거운 인상을 남긴다.   나. 생명의식과 자연   그리스 신화에서 손에 닿는 모든 것을 황금으로 변하게 해달라는 소원을 이룬 마이더스 왕이 금덩어리가 된 사랑하는 딸을 안고 비로소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달았다는 이야기는 탐욕을 경계하는 교훈으로만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생명이라는 것을 일깨워주고 있다. 따라서 이 신화는 돈을 가치판단의 기준으로 삼는 현대 자본주의를 각성시키는 경종이 되기도 한다. 현대철학에서 인간중심주의humanism의 호모사피엔스Homo sapiens‘가 비판의 대상이 되고, 공생인간共生人間이라는 호머심비우스Homo symbious가 거론되고 있는 것도 21세기 인류생존의 활로가 인간이 쌓아놓은 자본資本에 있지 않고 ‘자연과 인간의 공존‘에 있다는 강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생각할 때, 현대시에서 ’생명의식과 자연‘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시가 얼마나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하는지 알게 된다. 그것은 20세기 말 독일의 시단에서 태풍을 일으킨 ’생태시生態詩 운동‘이 증명하고 있다. 생태+시로 형성된 생태시는 모든 생명체에 대한 평등한 존중과 보존을 기반으로 한 지구의 생태환경의 보존이라는 선명한 메시지를 담은 시운동으로 세계의 시단에 큰 반향과 영향을 주고 있다. 그것은 생태시의 언어가 인간양심의 소리이며 인간의 생존을 위한 외침이기 때문이다.   싱가폴에선 킹크랩을 먹어야한다고/부둣가 노천식당에 사람들이 구불구불  쇠사슬같이  늘어서있다/자릴잡고 앉아 /빨갛게 삶아져 사람들의 입으로 쓸려 내려가는/킹크랩들의 최후를 본다 //사람들이/가위로 자르고 꼬챙이로 살점을  파내는 형을 집행하고 있을때 /그들의 벌거벗은 살육장에선/긴 다리로 허공을 할키며  질러대는  비명이 천장에 몰려 웅웅운다//부딪혀 꺾이는 소리/수증기 뿜는 소리/포연인 듯 넘실대는 비린 안개가 꽉찬다//싱가폴에선 킹크랩을 먹어야 한다고/먹이사슬의 맨 꼭대기 인간들이 줄지어 몰려온다/그들의 목숨도 줄줄이 끌려온다//싱가폴 부두가 붉디붉다//-「킹크랩」전문   * 킹크랩* 대게와 같은 갑각류* 킹크랩은 대게에 비해 몸통도 더 크고 껍질에 가시가 있으며 색도 대게보다 붉다.   「킹크랩」은 그런 관점에서 주목되는 시이다. 시인은 관념이 아닌 현실 속에서 킹크랩을 먹는 인간들의 행위를 사물적 언어로 생생하게 현장감을 느끼게 표현하여 먹이사슬의 맨 위에 있는 인간이 얼마나 자기중심적이고 잔혹한지를 생태적인 입장에서 관찰하여 보여주고 있다. “사람들이/가위로 자르고 꼬챙이로 살점을 파내는 형을 집행하고 있을 때/그들의 벌거벗은 살육장에선/긴 다리로 허공을 할키며 질러대는 비명이 천장에 몰려 웅웅운다”라고. 그리고 “싱가폴 부두가 붉디붉다”라는 구절로 킹크랩의 죽음을 애도하는 비감한 마음을 드러내고 있다.   종로 5가에/반라半裸의 여자그림 광고판이 빙글빙글 돌아간다/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길을 붙드는  쇼 윈도우/네온사인 불빛이 여자들을 난자 한다 //맞은편  바다횟집/물고기들이 납작하게 엎드린 체/오고가는 사람들을 무심히 쳐다본다/그러다 뜰 체가 다가오면/피할곳 없는 수족관 벽에 온몸을 부딪치고 부딪치다/거품은 가라앉히고  진한 비린 향을 고요로 남긴다//-「종로5가에 」전문   「종로5가에 」에서도 시인의 눈은 화려한 쇼윈도우에만 머물지 않고, 뜰 체를 피하려고 이리저리 부딪치던 물고기들의 모습이 사라진 바다횟집의 작은 수족관을 스케치하고 있다. 그것은 어느 날 서울 종로 5가의 단순한 소묘素描이지만 화려한 쇼윈도우의 대칭적 구성이 바다횟집의 수족관이란 점에서 주목된다. 그 장면은 인간과 물고기의 현실을 단편적 이미지로 보여주면서 독자들에게 생명체의 공존의 문제를 화두話頭로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백주에 혁명이 일어났다//하늘은 흰 천을 풀어/순식간에 세상을 덮어버리고/땅에 있는 모든 것은 그 안에 엎드려 항복 한다/백기를 흔들며 빠져나간 바람이/그들의 편이 되어 미친 회오리를 일으킨다//하늘은 드르륵 드르륵/거대한 빙산을  갈아 뿌리며  아래로 내려오고/눈을 찌르고 입을 막고 목을 조이며 휘날리는 눈보라/그것은 세상을 뒤엎는 혁명//나는 종종걸음으로 다지듯이 눈을 밟아나간다/뽀득 뽀득 소리 지르며 납작하게 죽어가는 눈의 무리들/땅은 높아지고 덩달아 나도 높게 들어 올려 진다 /밟아도 밟아도 끈질기게 낙하하는 살아있는 눈덩이들//백주에 혁명이 일어났다//-「폭설」전문   「폭설」은 폭설暴雪을 통해 세상을 개혁하는 혁명의 이미지를 보여주면서 자연이라는 거대한 생명체가 인간에게 어떤 존재인가를 암시하고 있다. 그래서 “하늘은 흰 천을 풀어/순식간에 세상을 덮어버리고/땅에 있는 모든 것은 그 안에 엎드려 항복한다” “밟아도 밟아도 끈질기게 낙하하는 살아있는 눈덩이들”이란 구절들을 생동하는 의미로 인식하게 된다. 그리고 문명이 인간의 위대성을 나타낸다고 하지만 무심하고 거대한 자연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왜소한 존재인가를 생각하게 하고, 자연을 구성하는 생명체들을 평등한 눈으로 성찰하게 한다.     집을 나오니/이게 웬일인가/몽실몽실 솜사탕을 문 벚꽃들이/안개처럼 새절역 거리를 삼키고 있다//내가/사관생도들이/칼을 높이 들어 도열해 만든 터널 속을/수줍은 신부가 되어 걸어 들어가고 있는 것인가/내가/목숨을 걸고 불속을 뛰어들어 걷고 있는 것인가/아니면  내가죽어/꽃상여를 타고 떠나는 것인가//아니다/그것은 햇살을 찢어발기는 태평소 소리/열두 발 상모를 돌려대는 서러운 남사당패의 한마당 같은/꽃들의 살풀이춤/꽃들의 이별이다//-「벚꽃 날리던 날」전문   「벚꽃 날리던 날」은 봄의 벚꽃이 인간에게 선물하는 ‘생명의 환희’를 포착하여 형상화하고 있다. 사관생도들이 도열한 터널 속을 걸어 들어가는 신부, 목숨을 걸고 뛰어든 불꽃 속, 꽃상여 등의 이미지가 시인의 화려한 상상력을 보여준다. 끝 연에서는 시인의 마음과 꽃의 마음이 한 덩이가 되어 춤을 추고 있다. “열두 발 상모를 돌려대는 서러운 남사당패의 한마당 같은/꽃들의 살풀이춤”의 장면은 시의 현실은 비현실의 꿈같은 것이지만 그 꿈이 진정한 의미의 현실이라는 것을 전달하고 있다. 그것은 시의 현실은 가장 본질적인 생명과의 만남이기 때문이다.   다. 자기응시의 이미지    자기응시는 자기도취나 자기탐애, 자기중심적인 나르시시즘(Narcissism)과 크게 다르다. 자기응시는 주관에서 탈피한 객관적 시각에 의한 자기존재의 발견이기 때문이다. 불교佛敎의 선禪은 자기응시를 통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실존적實存的 자기의 존재를 깨닫는 수행법이다. 20세기 한국불교를 대표한 성철成徹스님은 법문집『자기를 바로 봅시다』에서 “자기를 바로 봅시다. 자기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영원하고 무한합니다. 설사 허공이 무너지고 땅이 없어져도 항상 자기는 변함이 없습니다. 유형, 무형할 것 없이 우주의 삼라만상이 모두 자기입니다.”라고 자기존재의 원형原形을 깨닫게 하였다. 김순호 시인의 자기응시는 이런 철학적 사유와는 사뭇 다른 차원에서 ‘인간의 욕망’을 드러내고 있지만 그 무구無垢한 마음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거리에서/쇼 윈도우를 스치며 언뜻 본 내 모습/아직은 괜찮다 싶다//백화점 화장실 거울은 젊은 여자들이 다 차지하고 붙어있다/그 젊음에 주눅이 들어/나는 내 모습을 보면서도 도둑처럼 쓰윽  훔쳐보며 나온다//그러다 아무도 없을 땐/나도 그녀들처럼 거울로 기어 들어갈 듯 붙어 서서 훑어보는데/씨앗 주머니를 매단듯 늘어진 눈이 그렁그렁 웃으며 답한다/다음 이마를 슬적 들춰서/생선가시처럼 뻗대고  서있는 하얀 머리카락을/검은머리 속으로 꼭꼭 숨바꼭질 시키고/콤팩트를 쇼 윈도우 꺼내 거뭇하게 얼룩진 잡티를 공격한다/두드리면 두드릴수록 /배춧잎을 기어간 벌레의 안간힘처럼 퍼져가는 주름들//샤워를 하고/온 몸을 거울에 비춰본다/촉촉한 물기 때문일까/오. 괜찮다 /나는 한발 뒤로 물러나/도도하게 턱을 위로 치켜들고 서있다//-「쇼 윈도우와 거울」전문   「쇼윈도우와 거울」은 중년여성이 자기의 육체적 젊음을 젊은이들과 비교하고, 자신을 긍정적으로 인식하는 장면을 솔직담백하게 가벼운 터치로 그리고 있다. 언제나 젊고 싶은 욕망으로 거울 속의 자기를 바라보는 마음은 인간의 보편적인 욕망이면서 여성에게는 강한 자극을 주는 욕망이다. 이 시는 자신의 존재성을 ‘이성적 의식’(데카르트)이 아닌 ‘무의식의 욕망’(프로이트, 라캉)으로 드러내고 있어서 더 시적 미감을 풍긴다.   뜨겁게 포옹한다/그리고 화들짝 놀라서 깬다/웬 에로틱한 개꿈!//두 남녀를/바라다보고 있는 게 나인지/안겨있는 여자가 나인지 분간키 어렵다/이왕이면 안겨있는 여자이고 싶은데/바라다본 것도 같으니/꿈에서도 나는 아니다//아침 겸 점심을 먹고/잠시 누웠다 잠이 들었는데/사춘기 소녀처럼 야릇한 춘몽이라니/평생 딱 맞추는 꿈 한번 꿔보지 못했는데/심지어는  태몽조차도//송골송골/얼굴에 맺혀있는 땀을 닦으며/방금  꿈에 보았던/실루엣 같은 영상을 떠 올린다//-「개꿈」전문   「개꿈」에서도 무의식 속의 자기와 만나는 시인의 욕망이 적나라赤裸裸하다. 이런 성적인 욕망의 표출은 이성 쪽에서는 감추고 숨기려고 하지만 그럴수록 인간의 이성은 위선의 가면을 쓰게 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꿈속에서도 안겨있는 여자이고 싶다는 시인의 개방적이고 솔직한 욕망의 표출은 외설적 표현으로 문제가 되었지만 '사랑의 원초적인 의미의 회복‘ 이라는 평가를 받은 D. H. 로렌스의『채털리 부인의 사랑』을 떠올리게 한다. 이 외에도 젊은 연인들이 길에서 키스하는 장면을 포착하여 “축복받은 그들이 보란 듯이 키스하고 있다”면서 나도 저렇게 키스를 하고 싶다는 솔직한 욕망을 드러낸 「그들이 우리였으면」이 싱싱한 야생의 감성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라. 현실인식 속의 시간 이미지   시는 비현실의 꿈을 현실로 인식하게 하는 정신적 에너지를 발휘하는 언어예술이지만 현실 속에서 사는 시인은 현실을 외면할 수 없다. 현실은 시간과 공간의 결합으로 이루어진다. 떠나온 공간은 돌아갈 수 있지만 떠나온 시간 속으로 다시 돌아 갈 수 없다. 이것이 현실의 조건이다. 이것을 공간의 가역성과 시간의 불가역성이라고 한다. 김순호 시인은 불가역적인 시간을 시속에 담아내고 있다.       북촌 정독도서관엔/낡은 시간의 부스러기들이 굴러다닌다/공지사항과 문학 강연 광고는/옛날 영화 포스터 같이 나를 붙들고/어둑한 복도의  CCTV 카메라는 죄도 없이 무서운데/와본 적도 없는 오래된 복도를 걸으며/아득한 유년의 풍경 속으로 끌려 들어간다//천천히 다가오는 그림자/50 년 전 시립병원에서 죽어간 한 소녀가 웃으며 걸어온다/그림자처럼  복도를 느리게 걸어 다니던 아이/ 어느날 해맑게 웃으며 외출하듯 떠나간 아이/그때도 이렇게 햇살이 너울너울  유리창을 기웃거렸지// 그 애의 침대가 비워지고 /병실가득 뿌려지던 크레졸 냄새가 순간 퍼져온다/와락 달려와 안기는 날카로운 냉기/잊었던 시간들이 때 묻은 벽을 뚫고 있다//무심히 내다본 조각난 유리창 밖/까까머리 소년들이 버리고 간 추억이 먼지를 일으키며 몰려다닌다/떠나는 것은 다 붙들고 싶다 /흙먼지 날리는 쎈 바람도 찢어진 낙엽도// -「 떠나는 것은 다 붙들고 싶다 」전문          「떠나는 것은 다 붙들고 싶다」는 제목 그대로 시간 속에서 떠나는 것들을 붙잡고 싶어 하는 연민의 정이 물수건같이 촉촉한 느낌을 준다. 시인은 정독도서관 내부의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이미지에 50년 전에 죽은 한 아이의 영상을 넣어서 현재와 과거를 하나로 결합하는 입체적인 이미지를 연출하여 시적 효과를 높이고 있다. 이런 시의 구성을 하이퍼적 구성이라고도 한다. 이런 시간의 영상적 기법은 「저 여인 은 누구인가」에서도 시적 공간의 입체성을 만들어내고 있다.       터널속을 달리는 지하철/거울처럼 까만 차창에  박혀있는 한 여인이/손잡이를 잡고  바라본다/저 여인은 누군가/낯설다//눈을 깜박인다/물처럼 맑은 한 계집아이가 천진하게 웃는다/또 눈을 깜박인다/짙푸른 청춘이 터질듯 풋풋하게 웃는다/다시 눈을 깜박인다/이번엔 절정의 중년이 우아하게 웃는다//흔들리는 지하철/까만 차창 속에 박혀있는/한 늙은 여인이 쳐다본다/손잡이를 바꿔 잡자/차창 속 늙은 여인도 바꿔잡는다/까맣게 말라버린 마른 꽃처럼/만지면 바스라질것 같은 모습/저 여인은 누군인가/낯설다//-「저 여인은 누구인가 」전문     터널 속을 달리는 지하철을 배경으로 그 속에서 순간순간 변하는 여인의 모습이 영화의 장면변화 같다. 그것은 한 여인의 일생을 단편적으로 압축해서 보여주는 디지털적인 영상감각의 기법으로 비현실을 현실화하여 시적현실을 창조한다. 현실의 냉혹성을 보여주는「보셔요 꽃동산에 봄이 왔어요」는 서사적 구성을 현재⟶ 과거⟶현재로 해서 입체감을 살리고 있다. 그리고 시나리오의 기법으로 서사를 영화의 장면같이 보여주고 있다.   (전략)//'보셔요 꽃동산에 봄이 왔어요'//어려서 엄마에게 배워 간직한 유품같은 노래하나/구전동요인지 이후론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그러나 지금도 완벽하게 부를수있는 노래/오늘도 웅얼거리는 그녀의 목젖이 떨리며/살갗을 파고드는 냉기처럼 그날이 밀려온다//(중략)//외딴 초가의 문간방/갑자기 들이닥친 사내/방문은 국방색 담요로 급히 가려지고/깡마른 몸에 푸르스름한 빛의 남루한 옷차림/신발도 벗지 못한 채 산적처럼 수염이 덥수룩한 지아비와/깔끔하게 핀으로 고정된 신여성풍 까미 머리의 지어미가 마주보고 앉아있다/아이는 밥그릇 위로 빙 돌려 올려놓은/물에 씻은 김치를 밥에 얹어 먹으며 힐끔 거린다//(중략)//-「보셔요 꽃동산에 봄이 왔어요」부분      이 시에는 1950년 한국전쟁(6.25)로 인해 부모와 헤어진 시인의 아픈 기억이 하얀 서리꽃같이 피어있다. 필자는 이 시를 거듭 읽으면서 그 아픔의 사연을 냉정하게 객관화시켜 영화의 화면처럼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밝은 이미지로 끝맺음한 시인의 마음을 꽃동산의 빛으로 느꼈다.   3. 나가는 글   필자는 김순호 시인의 첫 시집『보셔요 꽃동산에 봄이 왔어요 』의 66편의 시편들을 나름대로의 시각으로 읽고 이해하고 해설의 제목을 ‘내면의식의 오랜 뜨거움이 피워낸 진솔한 독백의 언어’라고 붙이고, ‘사랑과 열정의 언어’ ‘생명의식과 자연’ ‘자기응시의 이미지’ ‘현실인식 속의 시간 이미지’를 소제목으로 시를 분류하여 해설했다. 앞의 에서 이미 언급했지만 김순호 시인의 진솔한 독백의 언어는 독자들의 가슴에 공감의 울림을 주기에 충분하다고 생각되었다. 그리고 극적장면劇的場面을 보여주는 서사敍事와 상상想像, 군더더기 없이 단순하고 선명한 인상을 남기는 단편적 이미지 등은 오랜 수련의 결과라는 것을 알게 했다. 특히 그의 시에 들어 있는 독특한 성적 감각의 언어는 잘 숙성된 술과 같고 시적 감흥과 싱싱한 생명력을 뿜어내는 항아리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김순호의 시가 또 어떤 놀라움을 줄지는 예측할 수 없어도 그의 무의식無意識 속에 오래 잠재되었다가 나오는 매력적인 시의 이미지들이 더 완숙한 경지에 이르리라 여겨진다.  
1037    김이원의 시집 해설 댓글:  조회:1148  추천:0  2019-12-14
김이원의 시집 해설   내면의식 속 ‘나’의 진실을 탐구하는 뜨거운 감각의 언어                                                                                                                            심 상 운 (시인 문학평론가)         1. 들어가는 글   김이원의 시집『말에 대하여』의 시편들은 위선의 가면을 벗어버린 자신의 내면의식을 벌거숭이 그대로 보여주고 있어서 그 감각이 매우 강렬하게 다가온다. 벌거숭이 의식의 언어 속에는 성적욕망과 몽상과 좌절, 그리고 희망이 돌출하면서 시와 진실 또는 실상(實相)과의 관계를 생각하게 한다. 그는 시편을 통해 인생의 진실은 무엇인가? 시는 인생의 진실에 도달할 수 있는 통로가 될 수 있는가? 하는 화두(話頭)를 던지고 있다. 따라서 그의 시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집요하게 붙어 있는 화두는 ‘내 존재의 탐구’다. 그의 시에서 ‘나’는 ‘육체의 나와 정신의 나’, ‘욕망의 나’와 욕망 속에서 탈출하여 ‘욕망 속의 나를 바라보는 나’로 구분된다. 욕망 속의 나는 무의식(無意識)의 나이고, 그런 나를 바라보는 나는 의식(意識)의 나라고 할 때, 그 ‘분열된 나에 대한 탐구’를 객관적인 시각으로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그의 시편들을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Lacan, Jacques 1901~1981)의 무의식(unconsciousness) 이론에 대입해보는 것도 한 방법이 될 것 같다.   자크 라캉은 S. 프로이트를 구조주의적으로 재해석해서 무의식이 언어적으로 구조화해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개인의 말이 특히 정신과 의사와 환자 사이의 관계에서 동시에 두 수준에서 작용한다고 본다. 개인은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의식하면서 말하지만, 동시에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와 전혀 다른 것을 무의식적으로 얘기한다고 한다. 데카르트에 따르면 주체는 '코기토'(cogito:생각하는 나)에 의해 구성된다. 이때 의식적·반성적 주체가 자아라면 다른 하나는 누구인가? 라캉은 이 다른 하나를 무의식이라고 본다. 그는 무의식이 언어처럼 은유와 환유의 체계로 구조화해 있다고 본다. 이 무의식은 한 개체 안에서 그를 이끄는 타자(他者)이다. 이 타자는 자아에 앞서서 얘기하며 자아의 욕망을 통제한다. 개인들은 자신이 행위하고 말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이 구조가 말하게 하고, 행위하게 하고 욕망을 갖게 하는 것이다.”(-브리테니카 백과사전에서 부분발췌)    이런 관점에서 김이원의 시편들을 이해하고자 할 때, 그의 시편에서 언어의 무의식적 구조가 중시된다. 그리고 기표(signifiant)보다 그 기표의 내면에 잠겨있는 의미를 더 중시하게 된다. 표면의 언어는 무의식이 은유와 환유로 변형된 언어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자크 라캉의 정신분석에 의하면 인간의 의식 속에는 욕구(need)와 요구(demand)가 들어 있다. 욕구는 사물들을 향하지만 요구는 사람들을 향한다. 그는 욕망과 욕구 사이에 ‘충동(pulsion)’을 넣는다. 충동은 욕구와 유사하지만 ‘성애적(性愛的) 모양’ 을 띤다는 점에서 욕구와는 다르게 해석된다. 성애적 충동은 예술적 에너지의 원천이 되기도 하는데, 작가에 따라서 작품의 내면에 잠재되기도 하고 표면으로 솟구치기도 한다. 김이원의 시에서 시의 표면으로 솟구치고 노골적인 이미지를 드러내어 시적 긴장감과 자극적 감각을 유발하는 성애적 표현도 인생의 진실에 도달하려는 그의 무의식의 환유로 해석된다. 그리고 그의 시편에서 발랄하고 자유롭게 분출하는 낭만주의적 언어 표현의 내면에도 성적 에너지’가 강렬하게 작용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따라서 그의 시편들의 언어는 매우 자유분방하고 저돌적이고 야생적(野生的) 생명력을 분출하는 언어가 된다. 이는 어떤 유파(類派)에도 소속되지 않는 그의 선천적 언어감각의 분출이기도 하지만 그의 시편을 형성하는 무의식의 구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이런 그의 언어감각은 전통적 서정시들의 통념화(通念化)된 언어구조를 쳐부수는 에너지를 발휘한다. 그리고 논리적 이미지, 압축과 생략의 모더니즘적 기법은 그의 시편들의 메시지가 암시적으로 함축되어 있음을 인식하게 한다. 그래서 필자는 해설의 제목을 라고 붙였다.   2. 시편 들어다보기   가. 길 잃은 욕망의 여행기   「어느 해 이 세상의 겨울이었네」에서는 삶의 겨울을 느끼고 죽음을 의식하면서 자신의 인생을 성찰하는 시인(시적자아)의 모습이 보인다. 그는 “주먹만한 눈덩이가 도시 전체를 덮고 있을 때/나는 자신의 안녕을 한없이 괴로워했었네”라고 독백한다. 그리고 “이미 마음의 눈(目)을 다쳐/보이지 않아/몸의 눈(目)마저 캄캄해”졌다고 한다. 그래서 이 시의 시적자아는 자신의 눈 먼 육체와 정신을 “길 잃은 욕망”이라고 한다.   1 어느 해, 이 세상의 겨울 이였네/그때 나는 이미 스스로 계획한 인생을 다 살아 버렸고/그 나머지 인생을 살고 있었네//주먹만한 눈덩이가 도시 전체를 덮고 있을 때/나는 자신의 안녕을 한없이 괴로워 했었네//나의 안녕은 수치스러운 것/죽어간 인생들에게 어떠한 안부도 건네지 못했으므로// 2 마음은 우연, 말도 우연 /마음의 눈도 우연, 몸의 눈도 우연/그 겨울 눈꽃 천지의 세상도 우연//우연이 우연을 만날 때 /자연이 우리에게 가르친 것은 욕망,//하지만 나/이미 마음의 눈(目)을 다쳐/보이지 않아/몸의 눈(目)마져 캄캄해//(길 잃은 욕망은 더 이상 욕망이 아니죠/불길한 미래의 추억들은 어떠한 인생도/차용하질 못하거든요 )// --「어느 해 이 세상의 겨울이었네」1-2 연   「오오, 내 인생이 행복해질 수만 있다면」에서 시적자아는 “가면과 가발을 눌러쓰고 척추 뼈를 짓누르며/ 전대미문의 쾌락을 요구하는 사내들!”과의 정사장면을 그려내면서 육체적 욕구의 허망함을 토로한다. 이는 길 잃은 욕망의 처절한 몸부림의 환유로 인식된다.   오늘도 면책 특권을 누리는 자칭 천재들의 원반던지기 시합/한창 어지러운데//나는 믿었지/내 정신의, 꽃의, 향기를 /놀라운 가속도의 그 휘발성을//가면과 가발을 눌러쓰고 척추 뼈를 짓누르며/전대미문의 쾌락을 요구하는 사내들!/(흥! 바람은 바람의 상승무드를 타고 바람과 함께 잘도 사라지더라)//나는 흥정했지/하룻밤의 숏 타임 정사를!//어지럽고 습기 찬 계곡사이를/꿀벌의 날개로 붕붕 날으며//밤하늘 히닥닥 요란한 신선놀음에 썩어 가는 건/내 나날의 힘없는 도끼자루들!//오오 내 인생이 단 한번이라도 행복해 질 수만 있다면//---「오오, 내 인생이 행복해질 수만 있다면」전문   이런 충족할 수 없는 욕망은 「시를 써야 한다」에서 정신적 또는 예술적 욕망으로 전환한다. 그러나 그는 살아남기 위해서 시를 써야 한다면서도 시를 쓰는 것이 자신의 욕망을 충족 시켜줄 것이라는 확신을 갖지 못한다. “시를 써야한다/인간의,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고상틱한 시?”라고. 그래서 그에게 시란 “무당벌레, 집게벌레, 그것들의 화려한 등껍질”로 비유될 뿐이다. 이는 ‘기의(signifié)는 떠 있는 기표 밑에서 계속 ‘미끄러진다.’는 자크 라캉의 언어관과 상통한다. 그것은 진실에 닿지 못하는 언어의 한계를 암시하기 때문이다.   시를 써야 한다/살아남기 위해서//라이프 이스 숏, 아트 이스 롱/책들은 친절하다/책들은 X 세대다/X 세대의, X 세대에 의한, X 세대를 위한,//책들은 가르쳐 준다/시대정신에 늦고/문학사조에 어두운 /무식한 예술가에게 나름의 세계관을 가르쳐 준다/그것은 시의 합법적 처세술이다, 테크닉이다//난 바퀴벌레가 아니다/그러니 바퀴벌레 따위와 놀지 않는다/굳어버린 빵 속에서 숨쉬는/바퀴벌레의 속사정쯤으로/내 인생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시를 써야한다 /인간의, 인간에 의한, 인간을 /고상틱한 시?//너는 알겠지/내가 밤새워 공부한 세계관/그 세계관이 그려낸 무당벌레, 집게벌레, 그것들의 화려한 등껍질 그래 너는 알겠지/.................알겠지!/..................알아?//손과 손이 인도하는 피아노 건반과/음표사이엔, 그러나 그러나 /그딴 세계관 따위는 존재치 않는다는 것쯤을?--「시를 써야 한다」전문   자크 라캉의 정신분석학에 따르면 무의식 속의 욕망은 모체이탈(母體離脫)의 원초적인 결핍에 대한 충족욕망이다. 이 욕망은 ‘떠나온 곳(잃어버린 곳)을 향한 강렬한 그리움’이라는 점에서 인간 삶의 정신적 동력이 된다. 그리고 그것은 예술적 혼(魂)으로 승화된다. 그러나 그 욕망은 허상(虛像)에 집착하는 번뇌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명령 불복종의 죄 값을 치르는 날이 오리라」에서 “불량 지도를 들고서/천국의 여행을 꿈꾸었던 나”라는 구절은 허상에 대한 집착을 상징적으로 표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가 여행을 꿈꾸는 천국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자크 라캉이 말한 유아시절의 나르시즘(상상계) 속에 있을까? 아니면 언어의 세계인 상징계에 있을까? 또 아니면 인간의 언어로는 도달하기 어려운 실재계에 있을까? 불교 경전『금강경』에서 붓다는 제자들에게 형상으로 여래를 찾으려는 것은 잘못된 것이므로 여래를 볼 수 없다고 하였다. 그러나 김이원의 시편들은『화엄경』입법계품의 선재동자의 구도기(求道記) 같이 ‘육체와 정신’을 편력하는 체험적 사유(思惟)를 통해서 천국에 대한 갈망과 허상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그래서 그의 일부 시편들은 인생의 어둠 속을 헤매는 ‘길 잃은 욕망’의 여행기라고 이름 붙일 수 있다.   명령 불복종의 죄 값을 치르는 날이 오리라/태양을 마주보고 랄랄라 서 있는 자들//당신의 여행은 즐거웠냐고/성급하게 물어 오지만/잘못 그려진 불량 지도를 들고서/천국의 여행을 꿈꾸었던 나여/그럼요/천국은 여자 혼자서 여행하기엔 무척이나 위험한 곳이랍니다/그러니 내 붉은 입술이 흘리는 어떤 말도 당신은 믿지 마세요/그러니/길 떠나온 길 위에서 떠나갈 길 따윌 묻는 어리석음을 다시 한번 범하지 마세요//-「명령 불복종의 죄 값을 치르는 날이 오리라」1부   이런 자신의 존재 탐구 여정은「그날 밤 나는 벌레처럼 웅얼거리며 파닥거렸다」에서는 절정에 이른 정신적 생존의 문제를 보여준다. 이 시의 나(시적자아)는 아무도 다른 누구에게 관심을 두지 않는 현대사회의 냉엄한 현실 속에서 죽음에 처한 처절한 운명의 한 여자로 등장하여 거대한 조직 속에서 소외된 존재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아무도 나에게 관심 없었어//죽음이 제 스스로의 의미로 가득 차/제 목을 조를 때//나는 알지/세계는 다음날,/조간신문에 난 기사화된 죽음을 즐긴다는 사실을”의 구절이 비인간적이고 몰개성적인 현대사회에서 소외된 존재의 단면을 매우 인상적인 장면으로 부각한다. 그리고 자신의 소외된 존재상황을 파닥거리는 벌레에 비유한 야성적인 언어 감각이 독자들에게 충격을 가한다.   그날 밤 나는 벌레처럼 웅얼거리며 파닥거렸다/파닥거린 죄?/세상은 너무 어두웠고 너무 너무 어두워/닫혀진 창문사이로 나는 소리 질렀지/질러지지 않는 끓는 쇳소리 넘쳐 흘렀어/캑캑 꺽꺽//여보세요!/여보시죠!/여어기 좀 봐 주시죠!/아무도 나에게 관심 없었어//죽음이 제 스스로의 의미로 가득 차/제 목을 조를 때//나는 알지/세계는 다음날,/조간신문에 난 기사화된 죽음을 즐긴다는 사실을//아무렴 알지 난/4월과 5월 사이/불법의 공포와 금지된 발광사이에/한 여자 숨 막혀 길바닥에 누운 날/대다수의 시민들은 시청율 60% 이상/TV 심야 영화를 즐겼다는 사실을//아무도 다른 그 누구에게 관심 없었어/모두들 스스로의 율법 속에서/생의 찬가를 높이 높이 불렀어//--「그날 밤 나는 벌레처럼 웅얼거리며 파닥거렸다」전문   「나의 단말마적 발작과 세기말적 발광사이에」도 제목부터 충격적이다. 그리고 “번개속 생각들은 천둥에게 괜한 날벼락을 때렸다/아픈 줄도 모르고 피뢰침위에 제 몸뚱이를 눕혔다” 등의 언어들이 보여주는 가상현실 속의 나의 모습도 전율적이다. 이런 전율과 자극의 언어들이 만들어내는 언어의 퍼포먼스(performance)는 생의 허무와 미궁에 대한 존재론적 도전으로 인식된다. 그것은 “찾지 못했다/앞서가는 저기 저 검은 구름위의 검은 옷 입은 한 사내/뛰어가 잡지 못했다”라는 구절의 이미지에서 유추된다.   나의 단말마적 발작과 세기말적 발광사이에/입버릇처럼 중얼거린 허무에 대해/그 정교한 치 떨림에 대해/기술한/그 어떤 말도 찾지 못했다//미궁은 불꽃 속을 날으고/번개속 생각들은 천둥에게 괜한 날벼락을 때렸다/아픈 줄도 모르고 피뢰침위에 제 몸뚱이를 눕혔다//찾지 못했다/앞서가는 저기 저 검은 구름위의 검은 옷 입은 한 사내/뛰어가 잡지 못했다//무한창공의 무한불꽃이 번쩍이는/창세기의 무한질주 굉음 사이로//그렇게 부질 없었다 //-「나의 단말마적 발작과 세기말적 발광사이에」전문   나. 형이상적 인식-바다의 발견   이런 처절한 정신적 존재상황의 과정을 거친 시인의 갈망은「바다에 갔다」에서 ‘말이 없는 바다’라는 공간을 획득한다. 그는 바다에서 무심(無心)의 의미에 접근하고 “어떤 위안들은/소리 내어 발음되어지지 않은/무형태속에 숨겨져 있는 것”을 깨닫는다. 이 시에서 바다는 기억 속에 존재하는 변함없는 옛 바다이다. 그 바다는 무심하게 그를 받아들임으로써 모체와 같은 역할을 한다. 진실은 말의 허상 속에 있지 않고 아무 형태가 없는 침묵의 마음속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침묵은 위안이 되고 말의 허상을 벗겨내는 공간이 된다. 이 공간은 ‘존재회복’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바다에 갔다/내가 아는 몇 개의 바다가 있었지만../오직 그 바다만이 나에게 감동을 주었기 때문에/나는 그 바다로 갔다//내가 좀 피곤해 있었기 때문일까//바다는 말이 없었다/모래 한 알의 흐트러짐 조차도 여전한 예전 그 바다/그 모습 그대로였기에/나는 그 무심함에 좀 슬퍼졌다//그 무심함 속에서/어떤 쓸쓸함 들은 전혀 공유되지 못함을/그리고 오로지 자신만의 것으로 남는다는 것을/나는 조금 이해해야 했다//그리고 생각해 보았다/어떤 무심함이란/가장 최선의 사랑방식일지도 모른다고//어떤 위안들은/소리 내어 발음되어지지 않은/무형태속에 숨겨져 있는 것이라고//-「바다에 갔다」 전문   이런 ‘바다’의 이미지가 그의 시에 어떻게 등장하게 되었는가? 제목 자체가 쉽게 이해되지 않는 사유의 옷을 입고 있는 시,「한때, 나는 세상이 이미지들의 단백질 합성체 같은 것 인줄 알았다」는 독백의 언어로 시적자아의 사유의 과정을 보여준다. 그 사유는 제목이 의미하는 것같이 세상을 보는 눈의 변화이다. 물질적 형상에서 벗어난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인식이다. 그래서 이 시에서는 선불교(禪佛敎)의 수도승 같은 시인의 모습이 감지된다. 그것은 이 시의 “태양의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제 몸을 비틀기 전에/나는 방문을 안으로 잠갔다/사생결단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라는 구절에서 드러난다. 시인이 사생결단(死生決斷)의 치열한 구도(求道)의 시간을 통해 얻은 것이 바다의 이미지이다. 그는 “바다로 배를 띄워야한다/내 헛되고 헛된 희망이 다시 자해의 심한 욕구를 느끼기 전에”라고 한다. 이 바다는 삶과 죽음이 하나로 합쳐진 본질적인 세계로 유추된다. 그것을 깨달은 시적자아는 오도송(悟道頌) 같이 확신에 찬 말을 한다. 그리고 외친다. “안개, 자욱한, 어디선가/오오 누군가의 낮은 휘파람 휘파람 소리/오오”라고.「바다에 갔다」에서는 바다가 위안의 장소라는 의미였지만 이 시에서는 바다의 이미지가 “성분미정의 합성체”라는 통합의 세계로 확장된다. 그래서 바다는 이 시에서 헛된 희망을 주는 허상의 공간에서 벗어난 해방공간의 이미지로 부각된다.   한때, 나는 세상이 이미지들의 단백질 합성체 같은 것인 줄 알았다/길고 검은 역사를 지닌 자궁의 생성 법칙에 따라 만들어진/오해였다, 그건, 내, 특유의//태양의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제 몸을 비틀기 전에/나는 방문을 안으로 잠갔다/사생결단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어깨 너머로 도끼를 번쩍 휘둘렀다/핏물 고인 채 부릅 뜬 눈동자의 물고기들/사방으로 흩어지며 죽음을 노래하였다//바다로 배를 띄워야한다/내 헛되고 헛된 희망이 다시 자해의 심한/욕구를 느끼기 전에//사람들은 말하겠지/얘야 아서라 참아라//태양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진단다/태양이 뜨고 지는 걸 막을 수는 없단다//오해였다, 세상은, 질컥이는 오해의 푸른 바닷물/염도32%의 짜디짠 성분미정의 합성체였다//지구가 태양을 돌리든/태양이 지구를 돌리든 어차피/내 이미지와는 아무 상관없는 일이였다/근심과 희망의 태양은/내 왼쪽 어깨에서/떠서 내 오른쪽 어깨로 지거든//그러니/이 막막의 망망 바다위에서 내 돗단배, 너무나, 외로워 다시 살고픈 욕망과 다시 죽고픈 욕망이/만 오천 번 쯤 휘돌며 솟구치는데//안개, 자욱한, 어디선가/오오 누군가의 낮은 휘파람 휘파람 소리 /오오//-「한때, 나는 세상이 이미지들의 단백질 합성체 같은 것 인줄 알았다」전문   다. 주관적 시각에서 객관적 시각으로   객관화된 시각은 대상을 관조(觀照)하는 바탕이 된다. 그래서 시도 ‘체험의 시’에서 ‘관조의 시’로 바뀐다.「어디서 바람은 불어오는 것일까」는 주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시각변화의 언어를 강렬하게 드러낸다. 이 시에서 ‘나’가 ‘그’로 바뀌는 것도 주관에서 객관으로 전환되는 인식의 변화를 표출한다. 그러나 초점이 맞지 않은 영상물을 보는 듯한 복잡한 인상은 의식의 미분화상태를 나타낸다. 그것은 ‘심야택시의 경련성에 비유된 그의 모습, 어디에서 불어오는지 알 수 없는 바람, 사람들이 벽을 만들고 집을 지어서 사랑을 나누는 모습, 그를 당황하게 하는 인류에 대한 생각, 목적지 없는 열차표 같은 감정의 무책임성, 무용의 동작에 상처를 받는 사람들, 누군가의 사실들은 마찬가지로 누군가의 기억 속에 그 사실대로 기억되지 못한다는 사실 등’으로 표출 되는데, 이는 시인의 무의식 속에서 돌출하는 무질서한 이미지와 사유 때문이다. 이런 시의 구조는 어디에도 초점이 없는 다시점(多視點)의 시를 탄생시키는 원천이 된다는 점에서 ‘실험적인 텍스트’로 인식된다.   심야 택시들은 모두 어떤 경련성들을 지니고 있다/발작과도 같은 어떤 힘들을 지닌 채 /제 흔적들을 두려워하듯 /달려가고 있다는 점에서/그것들은 어딘가의 그의 모습들과 아주 흡사하다//어디에서 바람은 불어오는 것일까/이런 바람들 때문일까/주변의 사람들이 벽을 만들고 집을 짓고/사랑을 나누는 모습들을 보게 될 때/참 신기하다는 생각이 든다//어떤 힘들은 이 거대한 인류구성에 참신한 활력이 되기도 한다/이런 생각들은 그를 당황케 한다, 해서 그는 당황한다/어떻던 그는 그 당황함 들에게 보여 주었던/잠시의 존경심들을 접어 두기로 작정한다//감정이란 원래가 그토록 무책임한 것이다/그는 목적지 없는 열차표를 읽어 본다//그 사소한 무용한 동작에 마음을 다치는 사람들도 있다는 사실/떠나야 할 곳이 없기에 머물러야 할 어떤 곳도 없다는 사실/누군가의 사실들은 마찬가지로 누군가의 기억 속에/그 사실대로 기억되지 못한다는 사실//대체로 이런 방식의 인생에는 어떤 희망도 살아남지 못한다/너무 많은 것을 잃고 살아 왔기에 더 이상 잃어야 할/어떤 것도 남아 있지 못한 사람들//그 무표정한 얼굴들이 무엇인가를 안타까워하고 있다면/이것은 명백히 하나의 허위일 것이다//그는 비웃는다 최근의 가장 위태했던 그의 집착을/그는 떠나려 한다 떠날 곳이 없기에/어떤 선택의 망설임도 없는 그/그는 그를 증오한다//-「어디서 바람은 불어오는 것일까」전문   「사랑에 취한 눈 먼 짐승이여」에서 보여주는 교훈적인 어조는 ‘깨달은 자’의 객관화된 발언으로 이해된다. ‘-이여’라는 감탄형 종결어미의 사용이 그것을 증명한다. 끝 구절 “아우성치는 사랑이란 이름의/저 조심성 없는 갈가마귀 떼들을“은 객관화된 이미지로 과거 자신의 모습도 투영(投影)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랑에 취한 눈 먼 짐승이여/집이 있어도 돌아가 누울 곳 없는/이방의 마음들이여//한 때 그대의 앞 발이 정처없이 할퀴었을/기억의 앙가슴팍이여/눈을 떠라/비극이 난무했던 순정의 시대는 갔다//반복은 얼마나 지루할 것이며/증오란 얼마나 허무할 것인가/네가 마련한/식탁의 음식들만큼/네 위장은 부풀어 오르는 법//너는 충분히 배부르다/지금까지 먹어 온 상처의 검은 고깃덩어리만으로도//그러므로 거부하라/다시 죽음의 힘을 빌려 달라고/다시 죽음의 장미 향기를 맡게 해달라고//아우성치는 사랑이란 이름의/저 조심성 없는 갈가마귀 떼들을//-「사랑에 취한 눈 먼 짐승이여」전문   「지상의 나날」은 열탕 같은 주관에서 벗어난 관조의 세계를 보여준다. 이 시에서 관조는 객관적 상상을 만들어내고 질서가 잡힌 인식의 공간을 열어 준다. 시인은 과거회상의 상상적 이미지를 통해서 자기 존재의 정신적 성장과정을 형상화 하고 있다.「어디서 바람은 불어오는 것일까」와 대조되는 선명한 이미지는 내면의식 속 ‘나’의 진실을 탐구하는 깊은 사유와 함께 시적미감을 높이고 있다.   지상엔 바람이 심하게 불었고/나는 땅속에 있었다/무풍지대의 평화와 안락을 즐겼다//태양은 따스하게 내려 쪼이고/사람들은 한가로웠다/아무도 땅위의 말 따위에 근심하지 않았다//꿈속에 가끔씩 장송곡이 울려 퍼졌다/누군가의 음울한 휘파람소리도 따라 들렸다/내 파리한 목덜미 뒤로/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느다란 비명이/새어나왔다//나는 눈을 떴다/참을 수 없었다//서서히 지상으로 기어 올랐다/동그랗게 모은 나의 눈과 귀사이로/바람이 휙휙 무리져 지나쳐 갔다/간혹 번개처럼 스치는 묘비명을 읽었다//나는 기다렸다//다시 폭풍의 눈 속으로 들어 갈/지상의 무시무시한 칼의 나날//-「지상의 나날」전문   「오늘 밤은 오늘 하루보다 분명 더 길고 길 것이므로」,「지친 자들은 더 이상 말을 나누지 않는다」,「나는 처녀야」 등의 시편도 성애적인 이미지의 객관화를 통해 자신의 존재탐구의 세계를 펼치고 있다.   3. 나가는 글   필자는 김이원의 시편들을 나름대로 읽으면서 자유분방한 상상력과 어느 유파에도 속하지 않는 언어감각을 경이로운 마음으로 감상했다. 그리고 그의 독특한 성애적 이미지를 무의식 속 욕망의 환유라는 관점에서 자크 라캉의 정신분석이론에 대입해서 그 비밀을 풀어 보고자 했다. 그래서 그의 시세계의 변화과정을 가. 길 잃은 욕망의 여행기, 나. 형이상학적 인식-바다의 이미지, 다. 주관적 시각에서 객관적 시각으로 분류하여 살펴보았다. (이 분류는 임의적인 것으로 필자의 시력이 미치지 못하는 또 다른 부분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의 시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집요하게 붙어있는 화두는 ‘자신의 존재에 대한 탐구’이다. 그는 이 탐구를 위해서 자신의 무의식 속으로 들어가 환유의 언어로 내면적 욕망의 실체를 과감하게 드러내고, 사생결단의 구도의 과정을 거쳐 존재의 해방을 의미하는 바다의 이미지를 발견한다. 그것은 자크 라캉이 말한 ‘기의의 심연(深淵)’을 뛰어 넘어 실상에 도달하려는 언어의 치열한 몸부림이 얻은 성과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그의 시편들은 정신적인 면에서 불교경전『화엄경』입법계품의 선재동자의 구도기(求道記)를 연상시킨다. 따라서 상투적인 언어에서 벗어나 시 속에 자신의 육체와 정신을 투영하여 집요한 내면탐구의 세계를 보여주는 시인으로서 김이원의 존재는 한국 현대시의 현장에서 특이한 개성의 시인으로 평가될 것으로 생각한다.  
1036    홍문표 시창작강의 노트 11 댓글:  조회:871  추천:0  2019-11-01
홍문표 시창작강의 노트 45 광복이후 모더니즘 시의 전개 ​ 홍문표 ​ (1) 광복기 모더니즘 ① 광복 공간기 시단 ​ 좌파시단- 오장환 이용악 설정식 박아지 임학수 등 우파시단 - 박목월, 박두진, 조지훈 신석정 유치환 서정주 등 중간파시단 - 김광균 구상 김춘수 조병화 박인환 김종길 김규동 전봉건 등 ​ ② 김기림의 모더니즘 퇴조와 절필 초기 - 모더니즘 시론의 대표자, 새로운 감수성 주장 (1930) 중기 - 모더니즘의 위기, 전체시론 강조(친일) (1939) 후기 - 시와 정치의 결합. 모더니즘 시 퇴조 (1945) 1947년 「시를 쓴다는 것이 이미 부질없고나」를 발표하고 절필 ​ 철쭉꽃 피면 강화섬 가자던 약속도 잊어버리고 좋아하던 ‘존슨’ ‘브라운’ ‘테일러’와 맥주를 마시며 저 세상에서도 흑인시를 쓰고 있느냐 ​ 해방후 수없는 청년이 죽어간 인천 땅 진흙밭에 너를 묻고 온 지 스무 날 시를 쓴다는 것이 이미 부질없고나. ​ -김기림“시를 쓴다는 것이 이미 부질 없고나”1947 ​ ​ ③「신시론」동인과「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 ​ 모더니즘 시가 새로운 운동으로 전개되기 시작하는 것은 1948년 김경린, 박인환, 등이 중심이 된 ‘신시론’ 동인에 의해서이다. 이들은 1948년 동인지 『신시론』을 발간하고 1949년 동인 사화집 『새로운 도시와 시민의 합창』을 발간한다. 신시론 동인은 1950년 『신시론』을 『후반기』로 개제하고 조향, 이한직 등이 새로 참여한다. ​ ④ 시인, 시민, 도시 ​ 시민들은 샘물이 흐르는 도심지대를 향하야 질주하고 있었다. - 김경린「나부끼는 계절」 ​ 폭풍이 머문 정거장 거기가 출발점 정력과 새로운 의욕 아래 열차는 움직인다 격동의 시간 꽃의 질서를 버리고 - 박인환「열차」 ​ (2) 1950년대 모더니즘 시운동 ① 모더니즘시의 새로운 모색 1930년대의 열정 1940년대의 퇴조 -「신시론」,「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 1950년대의 새로운 모색 -「후반기」동인 6.25와 폐허의 도시, 현대인의 불안, 새로운 존재인식 ​ ② 후반기동인 1949년 김수영, 김경린, 박인환 등이 모더니즘을 표방한 사화집 『새로운 도시와 시민의 합창』을 펴내고, 그해 이한직, 조향, 박인환, 김경린 등이 모더니즘을 표방하는 ‘후반기’ 동인을 결성한다. ‘후반기’ 동인은 임시 수도였던 부산에서 활동했다. ​ ③박인환, 김규동, 김경린의 전쟁과 도시 ​ 한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그저 방울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 상심한 별은 내 가슴에 가볍게 부서진다. 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소녀는 정원의 초목 옆에서 자라고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愛憎)의 그림자를 버릴 때 목마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한때는 고립을 피하여 시들어가고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한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여류작가의 눈을 바라다보아야 한다. - 박인환「목마와 숙녀」에서 ​ 현기증 나는 활주로의 최후의 절정에서 흰나비는 돌진의 방향을 잃어버리고 피 묻은 육성의 파편들을 굽어본다. ​ 기계처럼 작열할 심장을 축일 한 모금 샘물도 없는 허망한 광장에서 어린 나비의 안막을 차단하는 건 투명한 광선의 바다뿐이었기에 - 김규동「나비와 광장」에서 ​ 오늘도 성난타자기처럼 질주하는 국제열차에 나의 젊음은 실려가고 - 김경린「국제열차는 타자기처럼」에서 ​ 목마와 숙녀 - 산문적 리듬감, 전후의 서울, 불안, 허무 나비와 광장 - 6.25와 상처에 대한 관심, 신선한 발상 국제열차는 타자기처럼 - 도시의 역동성 ​ ④ 조향의 초현실주의와 데뻬이즈망 ​ 낡은 아코오뎡은 대화를 관뒀습니다. ​ -여보세요! 에 피는 들국화 ​ -왜그러십니까? ​ 모래밭에서 수화기 여인의 허벅지 낙지 까아만 그림자 ​ 비둘기와 소녀들의 「랑데부우」 그위에 손을 흔드는 파아란 기폭들 나비는 기중기의 허리에 붙어서 푸른 바다의 층계를 헤아린다 -「바다의 층계」 ​ 데뻬이즈망이란 자리바꿈, 곧 전위를 의미한다. 조향에 의하면 전위시키는 방법으로는 서로 관계없는 것들을 한데 갖다 붙이는 방법 ​ ⑤ 김춘수의 존재탐구와 언어중심주의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꽃」 ​ 언어는 존재의 집 - 하이데거 언어가 있기에 사물이 존재한다. - 언어중심주의, 이성중심주의, 모더니즘, 존재탐구 소쉬르, 기표와 기의의 불일치, 기표의 독립성 - 무의미시의 계기 ​ ⑥ 김수영의 반이성적 아이러니 시작 ​ 흥분할 줄 모르는 나의 생리와 방향을 가리지 않고 서 있는 서가와 서가 사이에서 도적질이나 하듯이 희끗희끗 내어다 보이는 저 흰 벽들은 무슨 조류의 분뇨와도 같아 ​ 오 죽어있는 방대한 서책들 ​ 너를 보는 설움은 피폐한 고향의 설움일지도 모른다 예언자가 나지 않는 거리로 창이 난 이 도서관은 창설의 의도부터가 풍자적이었는지도 모른다 -「국립도서관」에서 ​ 책의 죽음 - 이성의 죽음 책 - 근대 - 전통에 대한 아이러니 역사적 현대의식 - 참여적 관심 ​ (3) 1960년대 모더니즘 시 ① 1930년대 시단 순수시 - 박용철, 김영랑 카프시 - 임화, 권환, 이용악 모더니즘 - 이상, 김기림, 정지용, 김광균 ​ ② 1945년대 문단 좌파시, 우파시, 중간파 모더니즘 퇴조 ​ ③ 1960년대 시단 참여시 - 김수영(모더니즘), 신동엽, 이성부, 조태일, 최하림, 김준태 순수시 - 김춘수, 전봉건, 김구용, 김종삼, 김광림 (모더니즘) 전통시 - 서정주, 박목월, 이동주, 박재삼, 이형기, 박용래 ​ ④ 4․19와 참여시 ​ 푸른 하늘을 제압하는 노고지리가 자유로왔다고 부러워하던 어느 시인의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 자유를 위해서 비상(飛翔)하여 본 일이 있는 사람이면 알지 노고지리가 무엇을 보고 ​ 노래하는가를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 혁명은 왜 고독한 것인가를 ​ 혁명은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 -「푸른하늘을」 ​ 4․19직후 작. 문학의 현실참여. 정치참여고취 ​ ⑤ 김춘수의 무의미 ​ 눈보다도 먼저 겨울에 비가 오고 있었다 바다는 가라앉고 바다가 있던 자리에 군함이 한 척 닻을 내리고 있었다. 여름에 본 물새는 죽어 있었다. 물새는 죽은 다음에도 울고 있었다. 한결 어른이 된 소리로 울고 있었다. 눈보다도 먼저 겨울에 비가 오고 있었다. 바다는 가라앉고 바다가 없는 해안선을 한 사나이가 이리로 오고 있었다. 한쪽 손에 죽은 바다를 들고 있었다. - 김춘수 「처용단장」 1-4 ​ 언어-기표(응성기호)와 기의(의미) ​ 기표만의 언어, 의미 배제 관념적인 참여시, 목적시 반대 - 관념의 공포- 서술적 이미지 추구 비유적 이미지(의미 대리) - 서술적 이미지(의미 배제) - 순수시 자유연상 - 대상의 사라짐 액션페인팅 - 기하학적 추상에서 추상적 표현주의, 행위중심(퍼포먼스), 글쓰는 행위. ​ ⑥「현대시」동인들의 다양한 모색 ‘현대시’ 동인은 1962년 처음 발행된 시집 『현대시』1집부터 1972년 마지막 발행된 26집까지 10년 동안 26권의 동인지를 펴내면서 60년대 우리 모더니즘 시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한다. 전봉건, 김광림, 김요섭, 김종삼, 박태진, 주문돈, 신동집, 허만하, 김하림, 민웅식, 장만영, 김수영, 박양균, 한성기, 이수익, 정진규, 장호, 박남수, 김춘수, 김윤성, 등 ​ 월광의 물 비늘과 비늘이 부서지는 라벨의 비단 손 가을의 차고 선명한 물의 월광 광란의 여름을 전송하고 그는 돌아온다 성으로 바람이여 빈 천정을 울리는 월광의 물결소리 - 김형태의「월광」에서 ​ 현실이 탈락한 추상의 공간 - 시인의 내면 자유연상, 초현실주의, 밝은 환상, 환각적 유희. ​ 사나이의 팔이 달아나고 한 마리 흰 닭이 구 구 구 잃어버린 목을 좇아 달린다. 오 나를 부르는 깊은 명령의 겨울 지하실에선 더욱 진지하기 위하여 등불을 켜놓고 우린 생각의 따스한 닭들을 키운다. 닭들을 키운다. 새벽마다 쓰라리게 정신의 땅을 판다. 완강한 시간의 사슬이 끊어진 새벽 문지방에서 소리들은 피를 흘린다. 그리고 그것은 하아얀 액체로 변하더니 이윽고 목이 없는 한 마리 흰 닭이 되어 저렇게 많은 아침 햇빛 속을 뒤우뚱거리며 뛰기 시작한다. - 이승훈「사물A」 ​ 젊은 시절의 내면풍경, 어두운 환상, 환각적 유희. ​ 내가 한마디의 말을 알았을 때 처음 내가 한마디의 말을 알았을 때 나의 나무엔 슬기의 이파리 하나 피어나고 점 점 그것은 예지의 숲을 이루어 가던 그러한 나의 영광이여, 집중의 때여 - 정진규「집중」에서 ​ 나뭇잎이 처음 피어나는 순간의 감각, 황홀감 ​ 우체국에 가면 잃어버린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 그곳에서 발견한 내사랑의 ​ 풀잎되어 젖어 이는 비애를 지금은 혼미하여 내가 찾는다면 사랑은 또 처음의 의상으로 돌아올까 - 이수익「우울한 샹송」 ​ 상실한 사랑과 현대인의 우수 - 내면풍경 - 우체국 ​ 밤이 자기의 심정처럼 켜고 있는 가등 붉고 따뜻한 가등의 정감을 흐르게 하는 안개 ​ 젖은 안개의 혀와 가등의 하염없는 혀가 서로의 가장 작은 소리까지도 빨아들이고 있는 눈물겨운 욕정의 친화 - 정현종「교감」 ​ 사물들의 감각교환, 사물의 친화 - 욕정, 에로티시즘 ​ 고요한 환상의 출장소 뜰,뜰의 달콤한 구석에서 언어들이 쉬고 있다 추상의 나뭇가지에 살고 있는 언어들 중의 몇몇은 위험한 나뭇가지들 사이를 날아다니다 떨어져죽고 나의 고장난 수도 꼭지에서도 뚜욱뚜욱 언어들이 죽는다 - 오규원「환상의 땅」 ​ 언어의 휴식과 죽음. 추상과 사물에외 언어의 죽음 ​ (4) 1970년대 모더니즘 시 ① 1970년대 시단 민중시 - 김지하, 조태일, 신경림, 고은, 최하림, 이성부, 정희성 전통시 - 조정권, 나태주, 이성선 외 전통적 서정시인들. 도시적 감수성의 시 (모더니즘 계열) 언어시 - 김춘수, 황동규, 김영태, 이승훈, 정현종, 오규원. 도시시 - 감태준, 김광규, 이성복, 최승호, 정호승. ​ ② 도시적 감수성 -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의 경계 산자락에 매달린 바라크 몇 채는 트럭에 실려 가고, 어디서 불볕에 닳은 매미들 울음소리가 간간이 흘러 왔다 다시 몸 한 채로 집이 된 사람들은 거기, 꿈을 이어 담을 치던 집 폐허에서 못을 줍고 있었다 ​ 그들은, 꾸부러진 못 하나에서도 집이 보인다 헐린 마음에 무수히 못을 박으며, 또 거기. 발통이 나간 세발자전거를 모는 아이들 옆에서, 아이 들을 쳐다보고 한번 더 마음에 못을 질렀다 - 감태준 「몸바뀐 사람들」에서 ​ 산업화과정에서 소외된 삶 - 리얼리즘 상실한 자아, 분열된 삶 - 모더니즘 ​ 한줄의 시는커녕 단 한줄의 소설도 읽은 바 없이 그는 평생을 행복하게 살며 많은 돈을 벌었고 높은 자리에 올라 이처럼 훌륭한 비석을 남겼다 그리고 어느 유명한 문인이 그를 기리는 묘비명을 여기에 썼다 비록 이 세상이 잿더미가 된다 해도 불의 뜨거움 굳굳이 견디며 이 묘비는 살아남아 귀중한 사료가 될 것이니 역사는 도대체 무엇을 기록하며 시인들은 어디에 무엇을 남길 것이냐 - 김광규 「묘비명」 ​ 삶의 부조리에 대한 비판적 성찰- 리얼리즘 낯선 언어형식의 추구 - 모더니즘 ​ 징이 울린다 막이 내렸다 오동나무에 전등이 매어 달린 가설무대 구경꾼이 돌아가고 난 텅 빈 운동장 우리는 분이 얼룩진 얼굴로 학교 앞 소주집에 몰려 술을 마신다 - 신경림 「농무」에서 ​ 대상 - 집단, 민중 역사적 주체, 통합된 자아. ​ ③ 이성복의 새로운 모더니즘 실험 ​ 어느날 갑자기 망치는 못을 박지 못하고 어느날 갑자기 벼는 잠들지 못한다 어느날 갑자기 재별의 아들과 고관의 딸이 결혼하고 내 아버지는 예고없이 해고 된다 어느날 갑자기 새는 갓 낳은 제 새끼를 쪼아먹고 캬바레에서 춤추던 유부녀들 얼굴 가린 채 줄줄이 끌려나오고 어느날 갑자기 내 친구들은 고시에 합격하거나 문단에 데뷔하거나 미국으로 발령을 받는다 어느날 갑자기 벽돌을 나르던 조랑말이 왼쪽 뒷다리를 삐고 과로한 운전수는 달리는 버스 핸들 앞에서 졸도한다 - 「그러나 어느날 우연히」 ​ 오세영 - 파격적 산문시, 회화의 직접 도입 대위법적 이미지, 내면 독백 형식의 자유연상, 언어 실험 이승훈 - 그는 기존문법을 파괴하고, 우연의 미학을 강조하고, 유물적 초현실주의를 지향 한다. 그가 노리는 것은 무슨 결론이나 해결이나 종합이 아니라 끝없는 부정이고, 이 부정이 아방가르드적 요소가 된다. 그가 보여주는 이런 특성은 80년대에 이른 바 해체시라는 용어를 낳는다.   홍문표시창작강의 노트 46 1980년대 이후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 홍문표 ​ (1)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① 리얼리즘, 모더니즘, 포스트모더니즘 리얼리즘 - 총체성의 회복 (이성중심) 모더니즘 - 질서회복(이성중심) 포스트 모더니즘 - 질서와 총체성 부정 (이성중심 거부) ​ ② 작가란 무엇인가 모더니즘 리얼리즘 - 전지전능한 신적 존재 포스트 모더니즘 - 작가의 특권 부정, 작가의 죽음, 독자 중심, 다원주의 ​ ③ 진리의 현현이 가능한가 모더니즘 리얼리즘 - 진리의 현현(epihany) 가능, 중심, 절대 신봉 포스트모더니즘 - 진리는 계속 유보됨. 디페랑, 계시록적 시대. ​ ④ 확실성의 문제 모더니즘 리얼리즘 - 언어에 의한 확실성 포스트모더니즘 - 구심점, 축, 절대적 확실성 없음 ​ ⑤ 양극화의 극복 리얼리즘 - 예술의 이념화, 모방, 산문적 모더니즘 - 예술의 형식성, 차이, 시적 포스트 모더니즘 -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의 양극성 초월 ​ ⑥ 제임슨의 포스트 모더니즘 제임슨은 포스트모더니즘을 후기 자본주의의 지배적인 문화형태로 규정하고 있다. 초기 시장자본주의가 사실주의를 독점자본주의나 제국주의가 모더니즘을 등장시킨 것이라면 다국적 자본주의 형태에서는 포스트모더니즘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포스트모더니즘은 리얼리즘이나 모더니즘의 특징으로 미학적 대중주의, 역사의식의 빈곤, 의미의 해체, 행복감, 비판적 거리의 말소, 반영이데올로기의 약화를 들고 있다. ​ (2) 1980년대의 해체시 운동 ① 해체시의 의미 80년대 우리 시를 지배한 건 리얼리즘과 해체이다. 민중시나 해체시나 궁극적으로 노린 것은 현실 부정이고, 현실 파괴이고, 현실을 지배하는 질서 파괴이고, 질서를 구성하는 아버지라는 이름을 죽이기이다. 그러나 방법은 다르다. 리얼리즘이 형식을 지킨다면 해체시는 형식을 파괴한다. ​ 80년대 해체시의 감각은 우선 ‘광주’로 대표되는 한국 근대성의 파산에 기초하고 있다. 60년대 이래의 근대화가 이룩한 한국 산업자본주의와 그 문화인 한국 모더니즘이 모순의 한 극점에 이른 것이 ‘광주’로 시작된 80년대라 할 수 있다. 해체시는 80년대가 보인 한국 근대성의 끔찍한 얼굴에 직면하면서 이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몸짓에서 생성되었다. 전면적인 부정이라는 점에서 해체시는 전위적이다. ​ ② 해체시의 전략 -형태파괴 그러니까 형태파괴의 전략은 1) 우리 삶의 물적 기초인 파편화된 모던 컨디션과 짝지워진 ‘훼손된 삶’에 대한 거울이며, 2) 파시즘에 강타당한 개인의 ‘내부파열’ 에 대한 창이며, 3) 의미를 박탈당한 언어의 넌센스, 즉 지배 이데올로기에 대한 교란이었으며, 4) 검열의 장벽 너머로 메시지를 넘기는 수화의 문법이었다고 할까요? ​ - 황지우 「끔찍한 근대성」 ​ 오늘 오후 5시 30분 일제히 쥐(붉은 글씨)를 잡읍시다 벽4 1984년은 쥐띠 해이다 재앙의 날들이여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버텨다오 - 황지우「오늘 오후 5시 30분 일제히 쥐를 잡읍시다」 ​ 벽보라는 일상의 세계와 시적 상상력의 경계해체. 시니피앙의 강조, 콜라주기법(다다이즘) - 신문기사인용 인쇄효과 (미래파) ​ ③ 유물적 초현실주의 바퀴벌레들이 동요하고 있어 꿈이 떠내려가고 있어 가라앉는 산, 길이 벌떡 일어섰어 구름은 땅 밑에서 빨리 흐르고 어릴 때 돌로 쳐죽인 뱀이 나를 감고 있어 깨벌레가 뜯어먹는 뺨, 썩은 나무를 감는 덩굴손, 죽음은 꼬리를 흔들며 반기고 있어
1035    홍문표시창작강의 노트 10 댓글:  조회:1036  추천:0  2019-11-01
홍문표시창작강의 노트 42 모더니즘시의 이해와 창작 ​ 홍문표 ​ (1) 모더니즘의 일반적 개념 ① 근대 또는 현대의 지향 - 모더니즘(Modernism)은 바로 모던(modern), 즉 근대 또는 현대를 지향하는 인간 문명의 역사적 이념이다. ② 이성중심주의 - 근대는 인간의 이성에 의한 합리적, 과학성, 전체성을 향한 플라톤 이래의 보편적, 본질적 가치중심주의 사상이다. ③ 반과거 주의 - 모더니즘은 언제나 전시대를 불완전한 것으로 보고 완전을 향해 진보한다고 보는 변증법적 사고다. 헤겔 - 현재는 과거의 완성이다. ​ (2) 20세기 모더니즘 문학 ① 반 19세기 사조 기존의 리얼리즘과 합리적인 기성 도덕, 전통적인 신념 등을 일체 부정하고, 극단적인 개인주의, 도시문명이 가져다 준 인간성 상실에 대한 문제의식 등에 기반을 둔 다양한 문예사조들을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넓게는 니체의 허무주의, 마르크스의 유물사관과 혁명이론,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을 포함한다. ② 20세기 모더니즘의 두 양상 주지적 모더니즘 - 20세기 모더니즘은 이미지즘, 주지주의, 형식주의, 구조주의, 기호학 등 아방가르드적 모더니즘 - 다다이즘, 미래파, 입체파, 초현실주의, 부조리문학, 해체주의, 포스 트모더니즘 등이 있다. ​ (3) 모더니즘 문학의 공통적 특징 ① 전위성과 실험성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것은 모더니즘과 관계가 있다. 실험적인 까닭에 이들은 일정한 형식을 이루지 못한다. 또한 모더니즘의 예술은 의식적으로 제작하는 만큼 기존의 것들을 파괴한다. 이런 경우 파괴는 거의 현대문명, 과학적인 기술 등에 의해서 창조의 의의를 갖게 된다. 그리고 파괴의 대상이 되는 것은 전통, 특히 바로 전 시대의 예술방법과 주제 및 소재다. ​ ② 반사실주의 모더니즘은 더 직접적으로는 사실주의 및 자연주의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다. 사실주의와 자연주의는 19세기적 유물론과 관련이 깊은데 모더니즘은 그러한 유물관은 물론 일체의 물질주의와 산업주의를 개인 정신의 부자유로 보고 반발한다. 그런 점에서는 상징주의나 초현실주의와도 상통한다. ​ ③ 현실과 미래 지향 모더니즘 문학은 과거 지향적이라기 보다는 현실 지향적이고 나아가서는 미래에 대하여 예언적인데, 그 예언은 묵시록적인 세상의 파멸, 반 유토피아에 대한 비젼의 형태를 취하는 것이 보통이다. ​ ④ 지적인 문학 반낭만은 필연적으로 주지적이다. 이는 낭만주의가 주정적이기 때문이다. “시는 현대의 지성과 정신을 통하여 의식적으로 소위되는 정신적 소산물인 따름이다.” - 김광균 “시는 언어의 구조물이다” - 김기림 ​ ⑥ 형식화된 내용 사상이나 내용은 일정한 형식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형식화된 내용이 바로 문학이다. 사상의 조형성(造形性)이 최대의 관심이다. ​ ⑦ 이미지의 중시 사상의 형식화, 조형성의 논리는 바로 이미지즘의 시각성 내지 감각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파운드(E. Pound)의 시각시(phanopoeia)에 통하는 개념이고, “시어는 시각적이며 구체적인 언어”라고 말한 흄(T.E. Hulme)의 정의에 통하는 말이다. 플린트(F.S. Flint)의 이미지즘(Imagism)이나 랜솜(J.C.Ransom)의 물질시(physical poetry) 엘리엇(T.S. Eliot)이 말한 객관적 상관물(objective correlative)도 같은 개념이다. ​ ⑧ 현실비판 모더니즘시는 이성적이고 도시적이지만 동시에 도시적인 현대와 문명에 대한 비판을 가한다. 엘리엇의「황무지」김기림의「기상도」등이 그것이다. ​ ⑨ 도시어 사용 모더니즘 시인들은 도시어․ 문명어․ 외래어 등을 즐겨 사용한다. 김광균의 경우 시집명으로서「와사등」과 「기항지」가 있고 그밖에 공장, 교당, 분수, 호텔, 급행열차, 전신주, 새로팡지, 램프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사용했다. ​ ⑩ 반자연, 비개성적 자연 모더니즘시의 가장 중요한 태도는 모든 자연, 또는 사물에 감정을 배제한다. 소위 객관적 주관의 서술태도를 보인다. ​ 바다는 뿔뿔이 달아 날랴고 했다. ​ 푸른 도마뱀처럼 재재 발렸다. ​ 꼬리가 이루 잡히지 않았다. - 정지용의「바다」에서 ​ 하늘이 내게로 온다. 여릿여릿 머얼리서 온다. ​ 하늘은, 머얼리서 오는 하늘은 호수처럼 푸르다. ​ 호수처럼 푸른 하늘에 내가 안긴다. 온 몸이 안긴다. - 박두진「하늘」에서 ​ (2) 주지주의적 모더니즘 시 ① 주지주의(主知主義, intellectualism) 문자로 보면 지성을 모든 가치 기준으로 생각하는 것인데 정리하면 인식론에서는 감각론, 경험론, 직관주의, 신비주의 등에 대립하며 실재는 이성에 의해서만 파악될 수 있다는 이성중심주의에 근거한다. 주정주의의 대립개념으로 감각과 정서보다는 지성을 중요시하는 창작태도 또는 그 경향을 의미한다. ​ ② 주지주의와 엘리엇의 객관적 상관물 1) 시는 개성과 정서으로부터의 도피 엘리어트는 「전통과 개인의 재능」에서 시는 감정의 표현이 아니고 감정으로부터의 도피다. 그것은 개성의 표현이 아니고 개성으로부터의 도피라는 충격적인 발언을 하였다. 지금껏 전통적인 시론은 감정과 개성을 시의 절대적인 요건으로 생각하였는데 엘리어트는 이를 정면으로 거부한 것이다. ​ 2) 의미와 이미지가 동일한 객관적 상관물 작품이 독자에게 주는 효과는 작가의 자서전적인 의미보다 오히려 기교, 즉 이미지에 의한 깊은 매체로서의 작품 그 자체에 중점을 두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의미와 이미지가 동일하게 되어야 한다. 이처럼 관념이나 정서와 동일한 이미지를 객관적 상관물(objective correlative)이라고 그는 부른다. 객관적 상관물은 표현하고자 하는 어떤 정서나 사상을 그대로 나타낼 수 없으므로 그 정서와 사상에 상응하는 사물의 이미지나 장면 등을 찾아내어 표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시창작에 있어 감정보다 이미지의 중요성이 강조된다. ​ 난 인생을 커피 숟갈로 되질하듯 살아왔던 것이다. - 엘리어트의「J.A. 프로푸록의 연가」에서 ​ 인생을 커피 숟갈로 되질했다는 표현은 바로 객관적 상관물의 설명에서 특정한 정서(particular emotion)가 될 수 있는 일단의 대상, 상황, 사건이라는 말과 상통한다. 지겹고 무의미하게 살아온 과거를 ‘커피 숟갈로 되질한 인생’이라고 표현할 때, 우리는 갑자기 충격적인 정서적 환기를 실감하게 된다. ​ 그러면 우리 갑시다, 그대와 나, 지금 저녁은 마치 수술대 위에 에텔로 마취된 환자처럼 하늘을 배경으로 펼쳐져 있습니다. 같은 작품에 나타난 일절이다. 여기서는 희미하고 몽롱한 저녁을 ‘수술대 위에 에텔로 마취된 환자’라는 객관적 상관물로 대응함으로써 신선한 감각의 환기를 느낄 수 있다. ​ 3) 사상의 감각화 이는 결국 사고의 감각적 파악, 사고를 감각으로 재창조하는 작업으로 귀착된다. 말하자면 사상을 장미꽃 향기처럼 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어야 한다는 그의 시론이기도 하다. 사상의 감각화, 이를 통합된 감수성(unified sensibility) 이라고도 한다. ④ 랜섬의 형이상시와 컨시트 1) 시의 세 유형 랜섬은 시를 사물을 표현하는 형이하적인 물질시(platonic poetry)와 사상만을 나타내는 관념시(physical poetry), 메타포와 내포적 언어를 쓰는 형이상시(metaphysical poetry)로 구분하면서 사상만으로 치우친 명상시, 감정으로만 치우친 낭만주의 시 등은 감수성의 분열( dissociation of sensibility)을 보이는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사물을 총체적으로 보는 힘, 즉 사상과 감각이 통합된 감수성으로 드러나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방식은 형이상학적 기상(metaphysical conceit) 즉 컨시트로 달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 그 푸른 치맛 자락을 훨훨 휘두르며 학교와 탑 밑 잔디밭을 거쳐, 늙은 완고덩이 선생들의 강의 들으러 가라 한 마디로 믿지는 말고 ​ 흰 리본으로 너의 윤나는 머리를 묶어라 그리고 결말 같은 건 전연 생각지 마라 저 풀밭을 거닐고 하늘에서 지저귀는 푸른 새들과 같이 -「푸른 소녀들」 ​ (2) 모더니즘과 이미지즘 ① 흄의 이미지론 1) 건조하고 단단한 이미지 영국의 비평가 겸 철학자인 흄(T.E. Hume)은 종래 낭만주의 문학의 주관적인 입장과 시의 모호성을 비판하고 예술에 있어서 객관성과 훈련은 물론 시에 있어서는 축축하게 젖어 있는( wet and damp) 시가 아니라 건조하고 단단한(dry and hard) 이미지의 시이기를 강조하였다. ​ 2) 음악에서 조각으로 새로운 시는 음악보다 조각과 같은 것이다. 그것은 청각에 대해서보다는 시각에 대하여 호소한다. 그것은 머릿속에서 만들어진 일종의 조형이라고 할 수 있는 이미지를 입체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 3) 정확, 정밀, 확실 이미지는 시각적이고 구체적인 구상의 언어이기 때문에 그는 추상적이고 개념적인 것을 싫어한다. 그래서 그는 시의 세 가지 목표로서 정확, 정밀, 확실을 내세운 것이다. 이러한 이론이 이미지즘(imagism) 형성의 철학적 바탕을 이룬다. ​ 가을밤의 싸늘한 촉감 나는 밖을 걸으면서 얼굴이 붉은 농부같이 불그레한 달이 울타리를 넘보는 것을 보았다 나는 멈춰 서서 말을 걸지 않고 고개만 끄덕였다 둘레에는 도시의 아이들처럼 흰 얼굴을 하고 생각에 잠긴 별들이 있었다. - 흄「가을」 ​ ③ 파운드의 이미지론 시란 간결하고 견실한 언어, 리듬과 의미의 일치, 관용적인 표현의 거부, 형용사는 장식이 아니라 직접 내용이라는 것인데 이는 한자나 한시의 영향을 받은 바 크다. 한자가 갖는 상형성은 소위 은유의 그림(picture of metaphor)과 선명한 시각적 이미지, 고도로 긴축된 언어의 묘미에서 많은 것을 발견한다. ​ 군중들 사이에서 홀연히 나타난 이 얼굴들, 축축한 검은 가지의 꽃잎들 -「지하철 정거장에서」 ​ “3년 전에 나는 파리의 라꽁꼬르드의 지하철에서 내려 갑자기 한 아름다운 얼굴, 그리고 또 다른 얼굴, 그리고 또 다른 얼굴, 그리고 한 아름다운 어린아이의 얼굴, 그리고 또 다른 아름다운 부인을 보고서, 그 날 종일 그 인상 받은 것을 나타낼 말을 찾고자 애썼지만, 그 돌연한 감정만큼 가치 있고 아름다운 말을 찾을 수 없었다. 나는 30행의 시 한편을 썼지만 그것을 찢어버린 것은 그것이 소위 강열도 제 2위의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6개월 후에 그 반 정도 길이의 시를 썼고, 7년 후에 위와 같은 글귀를 지었다.” - 파운드   홍문표시창작강의 노트 43 아방가르드, 다다와 초현실주의 시 ​ 홍문표 ​ (1) 모더니즘과 아방가르드 ① 예술의 혁명운동 전위, 아방가르드(avant garde)란 본시 군대용어로 전투할 때 선두에 서서 적진을 향해 돌진하는 부대의 뜻이다. 이것이 변하여 러시아혁명 전야 계급투쟁의 선봉에 서서 목적의식으로 일관된 정당과 그 당원을 지칭하게 되었다. 그것이 예술에 전용(轉用)되어 끊임없이 미지의 문제와 대결하여 이제까지의 예술개념을 전복시킬 수 있는 혁명적인 전위예술경향 또는 그 운동을 뜻하기에 이르렀다. 아방가르드는 1차 대전 전후 유럽에 나타난 것인데 아도르노는 물화된 이성의 해방을 위해 비이성적 세계관으로 대응하는 예술운동이라고 했다. 다다이즘․ 미래주파 운동이 그 출발이었고, 추상예술과 초현실주의가 전위예술의 2대 조류를 이루게 되었다. 오늘날에는 기성예술에의 반항이나 혁명정신 그 자체가 대중사회의 다양한 풍속 속에 확산하여 전위예술은 특정 유파나 운동에 그치지 않고 첨단적인 경향의 총칭이 되었다. ​ ② 모더니즘과 아방가르드 모더니즘이나 아방가르드는 모두가 반과거적 새로움의 지향이지만 주지적 모더니즘은 이성을 통한 새로움의 추구이고, 아방가르드는 반이성, 비이성을 통한 새로움의 추구라는데 차이가 있다. ​ (2) 다다이즘 ① 다다의 선언 “나는 하나의 선언을 한다. 그러나 그것에 의해 아무것도 구하지 않는다. 나도 무엇을 말하려고는 한다. 그러나 나는 주의를 내세우는 선언에는 반대하는 바이다. 나는 주의 자체를 반대한다. 그리고 나는 설명은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는 의의란 것이 싫기 때문이다. 다다이즘은 관념을 버린다는 말이다. 다다는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는다. 다다, 기억의 폐지, 다다, 고고학의 폐지, 다다, 예언자의 폐지, 다다, 미래의 폐지, 다다, 자연에서 비롯된 모든 우상에 대한 이의없는 절대적 신앙, 다다.” - 트리스탄차라, 1918 ​ ② 다다의 형성 다다이즘은 세계 1차대전 도중에 일어난 예술운동이다. 1916년 루마니아에서 스위스 쮜리히에 망명해 온 트리스탄 차라(T.Tzara)를 비롯하여 같은 해 독일로부터 역시 쮜리히에 망명해 온 위고 발(H. Ball) 등 몇몇 망명 예술가들에 의해 ‘다다’라는 단체가 조직되고 1919년 파리에서 브르똥(A. Breton), 아라공(L.Aragon), 수뽀(P.Soupault) 등 여러 시인들이 「문학」이라는 잡지를 발간하며 이 운동에 가담함으로써 시의 한 조류를 이루게 되었다. ​ 소리도 없이 많은 문이 열렸다. 그것은 팔을 내밀은 무거운 광야의 날개다. 쇠의 초원은 길잃은 대상의 뼈가 흩어져 있는 운하를 넘는다. 공중에 매달린 길에 뻗은 주검은 추운 군중의 목구멍 속에서 타고 있다. 하상에는 녹모토의 한 가닥 빛이 가로누어 유리의 축으로 바람은 찢어지고 있다. 바다의 뇌우에서 눈은 익고 기르는 빛에 싸인 많은 옥석은 많이 모여서 잠든다. 어떤 고통도 입술의 물결에 미끼를 뿌리지 않는다. 권태는 야생의 직물원료의 물가에 좌초했다. - 차라의「문은 열렸다」에서 ​ (3) 이상의 전위적 모더니즘 ① 이상과 전위적 모더니즘과 그 계보 이상의 시는 20년대 정지용이 보여주던 미래파적 요소나 임화가 보여주던 초현실주의적 요소가 새롭게 계승된 것이라고 봄. 이런 변증법적 연속이 50년대 김수영의 초현실주의적 기법이나 조향의 데뻬이즈망, 김춘수의 무의미 시, 60년대 ‘현대시’ 동인 일부가 보여주는 내면탐구, 비대상 시, 80년대의 박상배, 이성복, 황지우, 최승호, 90년대의 송찬호, 박상순같은 시인들에 의해 계승됨. ​ ② 분열과 단절의 현대성 벌판한복판에 꽃나무하나가있소. 근처에는꽃나무가 하나도없소. 꽃나무는 제가 생각하는 꽃나무를 열심히 생각하는 것처럼 열심히 꽃을 피워가지고 섰소. 꽃나무는 제가생각하는 꽃나무에게갈수없소. 나는 막달아났소. 한꽃나무를위하여 그러는것처럼 나는참그런 이상스런흉내를 내었소. -「꽃나무」 ​ 꽃나무로 표상되는 자연과의 소외, 대상과의 단절감, 공포의 확인. 이 시는 자연과 자아의 단절, 대상과 주체의 단절뿐만 아니라 자연의 내적 분열, 자아의 내적 분열이라는 2중의 단절을 보여준다. 30년대 많은 이미지스트들이 대상에 대한 감각적 인상에만 집착함으로써 주체의 고뇌나 불안이나 절망을 괄호친다면 이상에 의해 비로서 우리 모더니즘 시는 주체와 객체의 단절, 주체의 내적 분열이라는 현대적 주제가 드러난다. ​ 1) 거울때문에나는거울속의나를만져보지못하는구료마는 거울아니었던들내가어찌거울속의나를만나보기만이라도했겠소 ​ 나는지금거울을안가졌소마는거울속에는늘거울속의내가있소 잘은모르지만외로된사업에골몰할께요 -「거울」 ​ 2) 나는거울없는실내에있다. 거울속의나는역시외출중이다. 나는지금거울속의나를무서워하며떨고있다. 거울속의나는어디가서나를어떻게하려는음모를하는중일까 -「오감도시 제15호」 ​ 1)의 시는 이상시의 모태이며 출발점으로 대상, 객체, 세계와 단절되면서 이상이 체험하는 내적 분열, 자아 찾기, 자아 성찰의 풍경이며 그는 마침내 이 풍경 속에서 분열한다. 그의 자아 찾기는 네 가지 모티프로 나타나는데 그것은 거울, 신체기관, 섹스, 수학적 기호이다. ​ 2)의 시에서 ‘거울 속의 자아’는 진정한 자아, 혹은 자아의 본질에 해당된다. 이상은 이런 자아, 본질 앞에서 공포를 느낀다. 이유는 거울 속의 자아는 허위의 자아, 가상, 이미지, 허구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그의 자아 찾기는 허구와의 만남으로 끝나고, 산책자로서의 그의 시선, 보고 / 보여지는 시선은 분열되고 리얼리즘이 아니라 기호의 공간으로 넘어간다. ​ ③ 절망에서 기호로 몽타쥬 기법 - 파편성 강조 ​ (수염(鬚.鬚)- 그밖에 수염일수있는것들모두를이름) 1 눈이존재하여있지아니하면아니될처소는삼림인웃음이존재하였다 2 홍당무 3 아메리카의유령은수족관이지만대단히유려하다 그것은음울하기도한것이다 -「수염」 ​ 유기적결합법칙파괴 초현실주의기법시도 ​ 꽃이보이지않는다. 꽃이또향기롭다. 향기가만개한다.나는거기묘혈을판다. 묘혈도보이지않는다.보이지않는묘혈속에나는들어앉는다.나는눕는다. -「절벽」 ​ 무의식의드러남, 자동기술법, 성행위묘사, 반합리주의 ​ (5) 초현실주의와 자동기술법 ① 브르똥의 쉬르레알리즘 선언 다다의 일원이었던 브르똥은 다다와 결별하고 쉬르레알리즘이란 초현실주의를 선언하였다. 쉬르레알리즘이라는 말을 처음 쓴 사람은 아폴리네르로 알려져 있다. ​ “초현실주의란 새로운 표현방법도 아니고 보다 순수한 것도 아니고 시의 형이상학도 아니다. 초현실주의는 정신 및 그것에 관련된 모든 것으로서의 전적인 해방이다. 우리는 사람들이 무슨 잘못을 고칠 것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고 그들 사상의 허약성을 그들에게 보여주며 그들이, 즉 기성 가치관들이 얼마나 흔들리는 기초이며 다져지지 않은 땅 위에 흔들리는 집을 짓고 있는가를 알려주려고 한다. 우리는 부정의 전문가다. 초현실주의는 시의 단순한 한 형식이 아니다. 초현실주의는 스스로의 방향으로 되돌아가려는 정신의 절규다.” ​ ② 초현실주의와 자동기술법 무의식의 언어 질서 초현실주의는 자연에서 직접 얻어지는 이미지 대신에 잠재의식의 이미지를 비현실적(또는 초현실적)으로 결합하여 표현하려고 하기 때문에 자각된 의식에서 보면 무질서하고 일종의 분열증을 일으켜 조리가 닿지 않지만 정신분석학상에서 보면 현대문명에 대한 비판적 혁신의 예술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자동기술법에 의해 이미지의 아날로지(유사성)를 무시하는 듯이 보이지만 원래 이미지는 아날로지에 의해 서로 연결되어 하나의 작품을 이루게 마련이며 쉬르레알리즘이라 해서 이 일반적인 언어의 구성원칙을 부정할 수는 없다. ​ 여름도 다간 무렵 중앙 시장을 지나가는 그 여자 손님은 발톱으로 걷고 있었다 하늘엔 절망이 너무나 아름답다 그 막대한 배암풀을 굴리고 있었다 핸드백 속에는 나의 꿈 그 신의 어버이만이 빨아들였다는 ​ 소금 프라스크가 들어 있었다 담배를 피우는 개에게 마치 상태가 수증기처럼 퍼져 있었다 거기에 막 시비의 판단이 내려진 순간이었다 젊은 여인은 그런 시비의 판단으로 흉악하게 보이고 또 눈총을 받는 도리밖에 없었나 보다 나는 대체 조상 칼리움의 대사 부인과 거래를 하고 있는 것인가 - 브르똥「해바라기」 ​ (6) 조향의 초현실주의와 데뻬이즈망 ​ 낡은 아코오뎡은 대화를 관뒀습니다. ​ -여보세요! ​ 에 피는 들국화 ​ -왜그러십니까? ​ 모래밭에서 수화기 여인의 허벅지 낙지 까아만 그림자 ​ 비둘기와 소녀들의 「랑데부우」 ​ 그위에 손을 흔드는 파아란 기폭들 나비는 기중기의 허리에 붙어서 푸른 바다의 층계를 헤아린다 ​ -「바다의 층계」 ​ ​ 데뻬이즈망이란 자리바꿈, 곧 전위를 의미한다. 조향에 의하면 전위시키는 방법으로는 서로 관계없는 것들을 한데 갖다 붙이는 파피에 콜레, 이것이 발전된 콜라주, 살바돌 달리의 편집광적 기법 등이 있다. 이 시의 경우 ‘뽄뽄따리아’ ‘디이젤 엔진’ ‘들국화’ 같은 이미지들은 일상적 합리적 문맥에서 벗어나 새로운 창조적인 관계를 맺는 오브제가 된다. 그러나 너무 기계적이다.   홍문표 시창작 강의 노트 44 한국 모더니즘 시의 두 양상 ​ 홍문표 ​ 1.은유와 환유 1) 은유법의 기초 은유는 시(詩)에 가장 많이 사용되는 수사법으로 가장 철학적이고 문학적인 표현기법이다. 직유법이 “달처럼 예쁜 얼굴” 등 유사성을 토대로 만들어지는 표현기법이라면 은유법은 유사성이 약하거나 없는 사물이나 개념을 대비시켜 동일성을 느끼도록 만드는 표현기법이다. 은유법은 표현적 유사성보다 '내면적 동질성'을 중시한다. 따라서 은유의 핵심은 등가성, 두 사물을 동일시하려는 시인의 상상력이 작용하며 여기엔 분열된 사물을 통합하려는 시 정신이 있다 ​ 하늘은 동전이다. 책은 칫솔이다. 눈발은 마음의 어두움을 가리는 하얀 커튼이다. 창문은 영혼의 통로다. 너는 나의 반쪽이다. 내 마음은 호수요 ​ 2) 환유법의 기초 ​ 수사학에서 환유법은 대유법 중 하나로 대유법에는 제유법과 환유법이 있다. 이중 제유법은 부분으로 전체를 대신하는 비유로 “사람은 빵만으로 살 수 없다”에서 빵은 음식 전체를 그 일부인 빵으로 대신한 경우다. “빵(식량, 먹거리 전체) 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 “빼앗긴 들(조국 강토 전체) 에도 봄은 오는 가” 한편 환유법은 부분이 아니라 특징으로 전체를 대신하는 비유로 예를 들어 철수가 항상 야구 모자를 쓰고 다닌다고 할 때, "야, 저기 야구 모자 온다."라고 할 수 있다, 사실은 철수가 온다는 것인데 야구 모자로 철수 전체를 대신한 것이다. 이런 것을 환유법이라고 한다. “펜(글)이 칼(무력)보다 강하다” “요람(탄생)에서 무덤(죽음)까지” “한 잔(술) 했다” 글이나 문장 또는 문학작품을 펜이라고 할 때 이것도 넓게는 은유 또는 상징적 비유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은유와 근본 차이는 등가성이 아니라 인접성 또는 접촉성이다. 따라서 이는 사물을 더욱 분리하고 구체화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현대에 와서 은유와 환유에 대한 문제는 단지 이런 수사학의 문제가 아니라 심리학 철학 언어학 시학의 근본적인 문제이고 서정시와 모더니즘 시의 특징을 설명하는 원리가 되고 있다. ​ 2. 은유와 환유의 시학적 이해 1) 야콥슨의 시와 산문과 은유와 환유 시인들이 시어를 선택하여 산문과 다른 낯설음을 만드는 보다 근본적인 이유에 대하여 야콥슨은 등가성(equivalence) 원리를 제시하였는데 그는 시의 언어는 등가성의 규칙에 따라 선택의 축에서 결합의 축으로 시어를 투사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이때 등가성이란 바로 은유적 방식을 말한다. 이에 비하여 일반 산문은 등가성의 원리를 선택의 축으로 하지만 결합의 경우는 접촉성에 의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접촉성은 환유의 방식이 된다. ​ ㄱ) 일상어법       접촉성       접촉성                                   저       식사       한다     나 는 +     밥   을 +   먹는다     소인       끼니       때운다     등가성     등가성     등가성     ​ ㄴ) 시의 어법       등가성     등가성   등가성                                       폭포     흐르는   퍼런   징소리     분수 처럼+ 흩어지는 + 푸른 + 종소리     빗물     뿌려지는   시퍼런   새소리     등가성     등가성   등가성   등가성                                     ​ 산문의 문장은 낱말과 낱말이 인접성에 의하여 환유적으로 결합하는 구조이고 시의 문장은 낱말들이 등가성에 의하여 은유적으로 결합하는 구조다. 시는 등가성의 원리에 따라 계열축의 언어를 선택의 축으로 하여 결합해 가는 언술이고, 산문은 전체와 부분이라는 환유적 접촉으로 결합해 가는 언술이다. ​ 2) 프로이드의 꿈과 은유와 환유 ​ 그런데 은유와 환유의 원리를 프로이드는 꿈에서 찾고 있다. 프로이드는 꿈을 억압된 무의식적 욕망이나 소망의 변장된 성취라고 했다. 말하자면 현실이 어떤 욕망을 직접 충족하지 못할 경우 무의식적으로 억압을 느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꿈이라는승화 방식을 택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프로이트에게 있어서 꿈은 잠재적 꿈과 현시적(드러난) 꿈이라는 이분법적 구조를 갖고 있다. 이 둘은 인과론적 관련성을 가지는 것으로 무의식적 꿈의 사고라는 것이 먼저 존재하고, 그것이 꿈의 작업이라는 변형(위장) 과정을 거쳐서 의식계에 떠오른 것인데 우리가 잠을 깨고 기억하는 현시적 꿈이 그것이다. 왜 잠재적 꿈이 위장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인가 이는 무의식의 내용이 의식계에 떠오르기에 부적절하거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누굴 죽였으면 또는 누구와 잤으면 하는 부도덕한 무의식적 욕망이 그대로 꿈에 나타난다면 도덕적인 의식이 이를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의식이 허용하는 방식으로 그 욕망을 변형시켜 버리는 것이다. 따라서 죽이고 싶다 자고 싶다는 것은 꿈 사고를 이루는 잠재적 꿈이고 위장하는 과정이 꿈 작업이며 실제로 우리가 꾸는 꿈이 현시적 꿈이된다. 꿈의 해석은 이 현시적 꿈을 재료로 해서 꿈 작업을 해명하고 잠재적 꿈을 알아내는 작업이다. 문학이나 시도 그러한 꿈의 원리와 같다. 마음속에 있는 생각을 상상이란 창조 과정을 거쳐 작품으로 내 놓기 때문이다. 그런데 꿈 작업에는 크게 압축방법과 전치(치환, 자리바꿈)방법이 있다. 압축이란 하나의 꿈이 잠재적인 꿈보다 내용이 적어지는 것으로 잠재적인 것이 생략되는 과정이다. 이러한 압축의 꿈 작업이 문학 창작에서는 은유의 문장으로 드러난다. 반면 전치는 실체를 위장하기 위해 일련의 연상을 통해 잠재적 꿈 사고의 요소들을 현시적 꿈의 요소들로 바꾸는 것이다. 예컨대 여인과 자고 싶다는 무의식은 여인과 관련 있는 핸드백이나 머플러 등을 만지는 꿈으로 바뀌는 것이다. 이러한 전치의 작업이 문학에서는 환유가 된다. ​ 3) 라캉의 무의식의 언어와 은유와 환유 ​ 한편 라캉은 인간이 태어나 사회 생활을 하는 과정을 프로이드의 심리학과 소쉬르 등의 언어학과 결합하여 설명한다. 그는 인간이 태어나 어떻게 의식이 형성 되는 가를 상상계, 상징계, 실재계의 삼 단계로 설명한다. 상상계를 거울단계라고 하는데 생후 6개월 내지 18개월 된 어린아이가 거울에 비친 자기 영상을 보고 거울 앞의 모습과 실제를 혼동한다. 어린이는 처음에 자신의 전체적인 모습을 볼 수 없다. 손이나 발 등이 자신이 볼 수 있는 자신의 모습의 전부일 뿐이다. 그러다가 거울에 비친 자신의 총체적인 모습을 보게 된다. 바로 이 시기에 주체성이 발달하기 시작하며 자기 몸 일부를 사랑하는 자기성애의 단계에서 몸 전체를 사랑의 대상으로 여기며 발전해간다. 상상계에서 어린이는 아직 자신과 타인의 구분하지 못한다. 어린이는 다른 아이가 울면 따라 우는데 이것이 자신과 타인을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린이는 가장 가깝게 지내는 어머니도 자신과 동일시한다. 상상계는 이러한 상상적 오인을 특징으로 하는데 상상계에서 형성되는 주체성은 결국 허구적일 뿐이다. 왜냐면 자신이 본 자신의 총체적인 모습은 거울을 통해 본 허구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나와 타자를 구분하지 않고 동일하게 보는 사고를 은유적 사고라고 한다. 자궁에 대한 그리움 어린 시절 고향이나 엄마 품에 대한 그리움의 원천은 바로 나와 객체간의 구별이 없는 상상계의 무의식적 심리다. 이는 에덴에 대한 향수도 그렇다. 왜 시인은 나와 사물을 동일시하는 가 그 때가 가장 행복했기 때문이다. 서정시가 나와 사물을 동일시하고 은유가 나와 너를 동일시하는 근거가 여기에 있다. 그런데 어린이는 '자아'라는 개념을 갖게 되면서 아이의 자아는 분열되고 만다. 분열된 자아 때문에 상상계에서 어린이는 혼란을 겪게 된다. 그리고 다음 단계인 상징계로 넘어간다. ​ 상징계는 언어와 문화로 이루어진 보편적 질서의 세계다. 자아가 형성될 수 없었던 상상계와는 달리 상징계에서는 자아가 형성되기 시작하는데 그러나 이러한 상징계로의 진입은 희생을 필요로 한다. 바로 어머니라는 존재 외에 아버지라는 금기를 받아들임으로서 상징계로의 진입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상징계로 진입한 어린이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겪으면서 어머니에 대한 욕망을 아버지의 법으로 전치 즉 바꾸게 된다. 그동안 어머니라는 존재는 자신과 동일시했기 때문에 별다른 정의 없이 그 존재를 이해하였다. 그러나 아버지라는 외부의 금기를 받아들이고 사회라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그런데 외부 사회의 무엇을 받아들일 때는 그 사물의 이미지를 그 사물의 이름으로 전치하게 된다. ​ 실재계는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은 항상 의미작용의 영역 너머에 존재하는, 즉 상징적 질서바깥에 존재하는 접근할 수 없는 영역과 분리되는 것을 뜻하는데 라캉은 이 영역을 ‘실재계’라고 부른다. 특히 우리는 어머니의 몸과 분리되어 있다. 사람들이 외디푸스 콤플렉스의 위기를 겪은 다음에는 아무리 노력해도 이 소중한 대상을 다시 획득할 수 없는 일이다. 비유적으로 얘기하면 상상계(바라봄만 있는 세계)와 상징계(보여짐을 의식하는 세계)가 뫼비우스 띠처럼 연결된 것이 실재계다. 즉 나의 욕망을 완벽히 충족시킬 짝이라고 믿었다가(상상계), 포착하는 순간 허상이 되고(상징계), 이 때 상징계로 들어가며 제외된 부분이 잔여물(대용물)로 남아 다시 숭고한 대상이 생긴다(실재계). 라캉의 실재계는 우리의 일상생활의 균형을 탈선시키기도 하지만 동시에 바로 이러한 균형을 진행시켜 주기도 한다. 1 ​ 한편 소쉬르 이론에서는 체계적인 구조를 이루고 있는 랑그와 그 언어를 사용하는 개개의 주체사이의 관계에 대한 빠롤이라고 했다. 그런데 랑그는 개인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약속된 규칙의 세계이다. 개인들이 말을 하기 위해선 그 규칙에 따라야 하고, 그 규칙의 체계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따라서 의미는 개인이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언어체계 안에서 랑그에 따라 만들어 지는 것이며, 개인들은 그 규칙에 따라 의미를 말하고 또 받아들일 수 있다. 따라서 사고나 판단은 개개의 ‘주체’가 하는 게 아니라, 언어의 의미체계(구조) 속에 있는 것이며, 개인들은 그것에 따라 판단하고 행동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런 점에서 의미나 판단 혹은 사고가 ‘주체’에 의존하는 게 아니라 언어 구조에 내장되어 있고, 거꾸로 ‘주체’들이 사고하고 판단하기 위해선 이 언어 구조에 따라야 한다는 말이 가능해진다. 그 결과 ‘주체’는 더 이상 자기가 말하고 받아들이는 행위의 중심이 아닌 게 되며, 그 중심은 오히려 주체 외부에 있는 언어라는 객관적 구조에 있다는 게 분명해 진 셈이다. 이는 은유중심의 언어에서 환유중심의 언어로 전환함을 의미하며 주체에서 타자로 개인에서 사회로 통합에서 분열로 모더니즘에서 포스트모더니즘으로 아날로그시대에서 디지털시대로의 전환을 주도하는 논리가 된다. ​ 나’라는 주체 속에는 바라봄과 보여짐이라는 두 개의 주체가 있다. 데카르트식 주체는 보기만 하는 주체, 즉 보여짐을 당하는 주체를 상정하지 않은 셈이다. 보여짐을 모르는 주체는 왜 위험한가. 그것은 아직도 거울단계에 있는 주체이기 때문에 대상을 실재로 믿고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소외된 신경증환자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이 고착에서 벗어나 대상이 허구임을 깨닫고 다시 또 연기된 대상을 향해 가는 것, 대상으로부터 탈출하는 것, 대상에서 벗어나는 반복 없이 삶은 지속될 수가 없는 것이다. 타자를 인정하지 않는 고립된 주체는 심한 경우 히틀러처럼 역사를 광기로 몰아넣는다는 것이다. ​ 3. 시에서 은유와 환유 ​ 시의 언어는 기호의 차원에서 두 가지 기본적인 수사학을 상정할 수 있다. 은유와 환유가 바로 그것이다. 은유는 기호가 기호 체계 너머의 세계나 관념과 같은 지시대상을 지칭하고 표현할 수 있다는 전통적인 언어관을 지향하는 것이라면, 환유는 하나의 기호가 지칭하는 세계가 또 다른 기호일 뿐이라는 기호 내적인 언어관을 지향한다. 환유에 의해 형성되는 기호는 그러므로 기호 너머의 세계를 지칭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미끄러진다. 초현실주의로 대표되는 아방가르드나 포스트모더니즘시의 기호관이 대표적인 환유적 기호관이다. ​ 이에 비해 서정시의 기호는 그것 자체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기호 너머에 존재하는 진리의 세계를 지향한다. 이는 곧 은유적 세계관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은유가 원관념과 보조관념 사이에 형성되는 동일성의 세계를 지향한다면 기호의 관점에서 생각할 때 기호와 지시대상 혹은 관념과의 사이에 형성되는 동일성을 상정할 수 있다. 이 경우 시의 언어는 언어 기호의 차원을 넘어 사상이나 관념, 정서 혹은 절대의 세계를 담아내는 그릇이 된다. 서정시가 근원 혹은 본질을 지향하고 그것을 표현할 수 있다고 믿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1) 서정시와 은유 서정시란 주체의 감정을 드러내는 시다. 이는 보여줌의 시가 아니라 바라봄의 시다. 그리하여 세계를 자아화한 동일성의 세계로 만들어 주체와 객체가 하나로 통일되는 세계다. 과거에는 이를 감정이입(感情移入, empathy)이라 했다. 자기의 감정을 대상 속에 투입하여 나와 대상과의 감정적 교류를 시도하고 심적 연합을 이룩하려는 시적 태도다. ​ 산이 날 에워싸고 씨나 뿌리고 살아라 한다. 밭이나 갈고 살아라 한다. ​ 어느 산자락에 집을 모아 아들 낳고 딸을 낳고 흙담 안팎에 호박 심고 들찔레처럼 살아라 한다. - 박목월의 「산이 날 에워싸고」에서 ​ 동일성의 논리는 나와 너, 자아와 세계, 주체와 객체가 하나로 되는 화해의 시학이기도 하지만 고정된 사물의 의미가 새롭게 명명되고 전환되는 창조적 행위이기도 하다. 동일시는 내가 네가 되는 객체의 주체화, 한 사물이 다른 사물이 되는 사물의 변질, 정신이 물질이 되고 물질이 정신이 되는 전이와 창조가 자유롭게 실천되는 세계다. 그것은 기존의 가치나 의미가 해체되고, 새롭게 재구성되고 재창조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따라서 시에서 동일성의 논리는 바로 시학의 원리이기도 하고 시를 창작하는 근본적인 방법이기도 하다. ​ 존재는 근원적으로 개체적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개체적인 만큼 존재는 고립적이며 단독자이며 그래서 정서적으로 보면 고독하고 불안한 것이다. 그러기에 존재들이 지니는 근원적인 불안의 속성을 벗어나고자 하는 것이 종교적으로 보면 신앙적 구원 논리가 되고, 철학적으로는 초월의 논리가 되며, 시적으로는 상상을 통한 정서적 구원의 논리가 된다. ​ 물결이 햇살을 마시면서 토한다 歲月에 결리는가 이따금 허릴 튼다 바람이 손 발을 씻고 내 머리에 닦는다 ​ 山이 거꾸로 매달린 채 빠져 있다 가까이 가서 보니 내 얼굴도 걸려 있다 아무리 또 건져봐도 자꾸만 달아난다 ​ 때묻은 本性을 열심으로 헹궈냈다 썩어가는 俗性을 하나하나 씻어냈다 한웅큼 떠서 마셨다 고대로 하늘 맛이다 ​ 나도 자꾸 마시면서 토한다 하늘을 마시고 山을 마시고 나를 마신다 난 그만 저 江이 된다 기어이 江이 된다 - 유제하 「강」 ​ 2) 은유적 모더니즘시 ​ 1930년대 정지용 김기림 김광균 등을 우리는 모더니즘 시인 또는 주지주의 또는 이미지즘 시인이라고 한다. 모더니즘시라면 서정시와 달리 모두가 환유적인 것으로 안다. 그런데 이들 시에도 은유적인 요소가 강하다. ​ 琉璃에 차고 슬것이 어린거린다. 열없이 붙어서서 입김을 흐리우니 길들은양 언날개를 파다거린다.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 새까만 밤이 밀려나가고 밀려와 부디치고, 물먹은 별이, 반짝, 寶石처럼 백힌다. 밤에 홀로 琉璃를 닥는것은 외로운 황홀한 심사이어니, 고흔 폐혈관이 찢어진 채로 아아, 늬는 山ㅅ새처럼 날러 갔구나! - 정지용, 「유리창」 ​ 유리창의 차가우면서도 투명한 이미지 속에 자신의 정서를 담고자 하는 노력 속에서 이미지를 통해 다른 그 무엇을 전달하고자 하는 시인의 의도를 읽을 수 있다. 여기서 이미지들이 재현적 차원의 세계를 담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이미지를 통해 시인의 정서를 담아내는 역할까지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미지의 사용에서 은유적 관점의 언어관을 읽을 수 있다. ​ 정지용의 시에 나타나는 이미지들은 그 너머에 항상 관념이나 정서의 덩어리들을 거느리고 나타나는 은유적인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은 기호와 지시대상 사이의 동일성을 상정하고 기호가 지시대상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는 은유적 세계관에 바탕을 둔 것이다. ​ 아모도 그에게 水深을 일러 준 일이 없기에 힌 나비는 도모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 靑무우밭인가 해서 나려 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저러서 公主처럼 지처서 도라온다. ​ 三月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거푼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 -- 김기림, 「바다와 나비」 ​ 이 시에서 서술 대상인 나비와 자아는 완전한 일체감을 형성하고 있으며, 이 점은 수사학적 차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김기림은 이 시기의 시에 오면 이처럼 자아와 대상 사이의 일체감을 회복하면서 대상에 대한 이해 방식이 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자아와 대상 사이의 동일성의 세계를 회복하게 될 때, 대상에 대한 풍자나 조소는 사라지고, 자아와 대상 사이에서 달성되는 동일한 정서를 표출하게 되는 것이다. 이 시에서 나비의 정서는 자아의 정서와 무관하지 않다. 자아와 정서와 나비의 정서는 분리된 것이 아니라 동일성 속에서 일체화되어 있는 것이다. ​ 外人墓地의 어두은 수풀뒤엔 밤새도록 가느단 별빛이나리고 空白한하늘에 걸녀있는 村落의時計가 여윈손길을 저어 열시를가르치면 날카로운 古塔같이 언덕우에소사있는 褪色한 聖敎堂의 집웅우에선 ​ 噴水처럼 흩어지는 푸른종소래 - 김광균, 「외인촌」 ​ 김광균의 모더니즘적인 특성을 잘 드러내는 시 중의 하나인 이 시에서는 도시적인 소재와 이미지를 통해 당대의 도시적 감성을 드러내는 이들 모더니스트들의 지향을 읽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속에 진하게 묻어나는 감정의 밀도에서 김광균만의 독특한 한 측면을 읽을 수 있다. 그런데 김광균은 이러한 도시적 감성을 드러내는 이미지들을 객관화된 시각으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여기에 주관적인 정서를 덧씌워 표현한다. ‘공백한 하늘’, ‘여윈 손길’ 등과 같은 표현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표현 속에는 시인이 지닌 고독과 비애의 정서가 강하게 묻어있는 것이다. 이러한 고독이나 비애의 정서가 어떤 의미를 지니느냐 하는 데 있다. 서정시는 본질적으로 자아와 대상 사이의 동일성을 지향하는 장르이다. 자아의 정서와 대상의 정서가 완전한 일체감을 이룸으로써 이 둘 사이의 구분이 전혀 불가능한 융화의 상태에 도달하는 것이 서정시의 본질적인 요소라면, 김광균의 시에 나타나는 대상이나 이미지가 바로 이와 같은 서정시의 본질과 동일한 측면에서 사용되고 있음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여기에 30년대 모더니즘시의 한 특성을 읽을 수 있다. 정지용이나 김기림의 시에서와 마찬가지로 김광균의 시에서도 은유적 세계관을 발견할 수 있다면, 30년대 모더니즘시 특히 영미 주지주의 계열의 모더니즘시는 본질적으로 은유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하여 서정시의 세계를 추구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 3) 환유적 모더니즘시 ​ 같은 1930년대라도 이상의 경우는 은유라기보다 환유적임을 볼 수 있다. ​ 1 나는거울없는室內에있다. 거울속의나는역시外出中이다. 나는至今거울속의나를무서워하며떨고있다. 거울속의나는어디가서나를어떻게하려는陰謀를하려는中일까. -이상 일부 ​ 화자인 '나'는 거울이 없는 실내에서 거울 속에 있을 또 다른 '나'를 생각하고 있다. 거울은 이상적 자아가 존재하는 무의식적 공간을, 그리고 실내는 의식적 공간인 현실을 상징한다. 그런데 거울 속의 '나'는 이미 실내에 나와 있기 때문에 ‘外出中’이라고 판단한다. 그러나 그렇게 판단하기 이전에 거울 속에는 현실에 존재하는 '나'와 다른 '나'가 있으며, '나'는 거울 속의 '나'를 무서워하며 떨고 있다. 왜냐 하면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거울 속의 욕망하는 '나'가 '나'를 ‘어떻게 하려는 陰謀’를 하는 중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室內에 있을 뿐만 아니라 거울 속에도 존재하는데 그 두 명의 '나'는 화합이 되지 않고 균열을 보이고 있다. "내가 존재하지 않는 곳에 내가 생각하고, 내가 생각하지 않는 곳에 나는 존재한다"는 라캉의 상상계에서는 거울속의 나와 거울 밖의 나가 일치한다. 은유가 그렇고 서정시가 그렇다. 그런데 현실에 존재하는 '나'와 무의식에서 생각하는 '나'는 일치하지 않고 분열된 상태이다. 이는 상징계다. 바로 환유적 발상이다. 이러한 태도는 1960년대 김춘수에 이르러 더욱 심화된다. ​ 사랑하는 나의 하나님, 당신은 늙은 비애다. ​ 푸줏간에 걸린 커다란 살점이다. 시인 릴케가 만난 ​ 슬라브 여자의 마음속에 갈앉은 놋쇠 항아리다. ​ 손바닥에 못을 박아 죽일 수도 없고 죽지도 않는 사랑하는 나의 하나님, 당신은 또 대낮에도 옷을 벗는 어리디어린 순결이다. 3월에 젊은 느릅나무 잎새에서 이는 연둣빛 바람이다. -김춘수< 나의 하나님> 전문 ​ '하나님'은 '늙은 비애', '살점', '놋쇠 항아리', '어리디어린 순결', '연둣빛 바람' 등의 다양한 이미지에 비유되면서 시적 의미는 고정되지 않고 구체화 또는 확장된다. 특히 비유적 이미지들이 ‘늙은/어리디어린, 생물/무생물, 밝음/어두움, 구체/추상’ 등으로 대립되면서 통합되지 않고 분열된다. '하나님의 의미를 지연시키고 그 폭을 확장시킴으로써 모호성이 극대화되어 그 통일된 의미를 파악하기가 어렵다. 이는 의미의 고정화가 아니라 무한한 지연, 확정적인 것이 아니라 연기된다는 점에서 환유적이다. ​ 잎진 후박나무 아래 땅을 파고 새끼를 낳는 어미 개 싸락눈이 녹아드는 두 눈을 반쯤 감고 태반을 꾸역꾸역 먹고 있다 배 밑에서는 아직 눈이 감긴 새끼가 꿈틀거리고 턱 밑으로는 몇 줄기 선혈이 떨어지고 ​ 그 위로 어린 싸락눈은 비껴날고 - 오규원, 「후박나무 아래․1」전문 ​ 오규원의 시도 대상에 대한 해석이 아니라 ‘후박나무/어미 개/새끼/싸락눈/태반/선혈’ 등이 어미 개를 중심으로 한 시간과 공간의 인접성 사물들로서의 환유적 언어체계를 보여줄 때, 우리는 은유적 사유체계로부터 환유적 사유체계로 이행해 온 한국 현대시의 한 모습을 본다. ​ 社稷公園 비탈길 벚꽃이 필 때면 나는 아팠다 견디기 위해 도취했다 피안에서 이쪽으로 터져나온 꽃들이 수은등을 받고 있을 때 그 아래에선 어떤 죄악도 아름다워 아무나 붙잡고 입맞추고 싶고 깬 소주병으로 긋고 싶은 봄밤이었다. ​ 사춘기 때 수음 직후의 그 죽어버리고 싶은 죄의식처럼. 그 똥덩어리에 뚝뚝 떨어지던 죄처럼, 벚꽃이 추악하게 다 졌을 때 나는 나의 생이 이렇게 될 줄 그때 이미 알았다 ​ 이제는 그 살의의 빛 그 죄마저 부럽고 그립다 이젠 나를 떠나라고 말한, 오직 축하해주고 싶은, 늦은 사랑을 바래다주고 오는 길에서 나는 비로소 이번 생을 눈부시게 했던 벚꽃들 사이 수은등을 올려다본다 황지우 “수은등 아래 벚꽃” ​ "사춘기 때 수음 직후의 그/죽어버리고 싶은 죄의식처럼,/그 똥덩어리에 뚝뚝 떨어지던 죄처럼,"(수은등 아래 벚꽃)이라 했을 때 똥덩어리에 뚝뚝 떨어지는 건 "죄"가 아니라 다른 무엇이었지만 거기 느닷없이 "죄"라는 추상어를 데려옴으로써 삶의 심각한 본질을 환기시킨다. 그것은 다시 벚꽃의 만개와 겹치면서 아름다움과 죄악을 현란하게 교직한다. 이처럼 그의 환유는 이 시의 중심축이 된다. ​ 은유는 남자의 문자현상을 특징짓는 기법이라면 환유는 여성적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여성적인 글쓰기는 만져지는 무엇을 비롯한 근접한 어떤 것에 대한 욕망이 강한 특징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는 환유적 욕망이 승한 특징을 보이기 쉽다는 지적을 하기도 한다. 은유란 무엇인가를 보다 생생하고 풍성하게 이해시키기 위한 방식이라면 환유는 한 개체를 그 개체와 관련된 다른 개체로써 말하는 방법이다.  
1034    홍문표시창작강의 노트 9 댓글:  조회:1067  추천:0  2019-11-01
홍문표시창작강의 노트 38 반자연의 미학과 역사적 자연 ​ 홍문표 ​ (1) 전통적 자연의 시학 1) 원래 자연은 시학의 근본개념이었다. 시학으로서의 자연은 첫째 시인의 타고난 재능을 의미한다. 동양의 소위 기상론(氣象論)은 이 타고난 천품의 재주와 기상을 후천적 수련보다 더 중시한다. 2) 둘째로 자연은 시의 한 기법을 가리킨 말이다. ‘시는 자연의 모방’이라고 할 때 ‘자연의’란 말은 ‘자연을’하는 목적어의 구실도 하지만 ‘자연스럽게’란 기법을 의미한다. 낭만시학의 자발성, 우주원리에 조화로움. 3) 셋째로 자연은 인간성을 뜻한다. 이 경우 인간성은 사상과 감정의 단순성․소박성을 의미한다. 그것은 비합리적이고 직관적이고 본능적인 인격 양상이다. ​ (2)현대와 반자연의 시학 1) 인위적, 인공적 세계의 삶 - 인공성과 복잡성은 전통적인 자연의 시학을 거부한다. 2) 반자연적 미학의 탄생 - 인공적인 자연의 탄생. 모더니즘 시학의 태도. ​ ① 김춘수의 반자연 시학 ​ 눈 속에서 초겨울의 붉은 열매가 익고 있다 서울 近郊에서는 보지못한 꽁지가 하얀 작은 새가 그것을 쪼아 먹고 있다. 越冬하는 忍冬잎의 빛깔이 이루지 못한 人間의 꿈보다도 더욱 프르다 -「忍冬잎」 ​ 이것은 과거의 자연시와는 다른 차원에 놓인다. 현상적으로 보면 실제 대상을 객관적으로 묘사한 뎃상 같지만 이 풍경은 시인의 내면속에만 존재하는 별개의 세계다. 시인의 상상력이 실제의 자연을 해체해서 재구성한 내면풍경이다. 즉 작품 속에만 존재하는 자연이다. 그리고 화자는 인간 편에 서지 않고 사물 편에 서서 사물만을 내용으로 삼는다. 인간의 탈을 벗기려 하는 데서 사물시는 탄생한다. ​ 도토리나무 어깨가 떨리고 있다. 도토리는 陰山山脈 이쪽 萬里長城 이쪽 始皇帝 발등에도 우수수 우수수 떨어지고 있다 다람쥐야 다람쥐야 뭐가 그리 이상하냐 푸줏간 식칼은 뒤로 실컷 휘고 ​ 가도 가도 하늘은 黃砂빛이다 달이 뜨면 밤에는 늑대가 운다 -「匃奴」 ​ 이 작품의 자연물도 실제의 자연이 아니라 시인의 상상적 질서에 따라 재조직된 작품 속에만 존재하는 자연이며 이 자연에서 오는 익명의 정서 역시 이 작품 속에만 존재하는 정서다. 실제의 자연을 재현한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장면들을 유사성에 의해 결합시키지 않고 폭력적으로 병치시킴으로써 이 작품은 아무런 논리적 의미를 갖지 못한 무의미시로서 익명의 정조만을 창조하고 있는 것이다. ​ (3) 자연의 변화성 현대시인은 과거의 자연과 같은 불변적이고 항구적인 것보다 자연의 변화와 역동성에 더욱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더욱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그리고 자연도 정신적인 것이라기보다 물질적인 것이다. 이것은 자연을 그 자체로 보는 객관적 태도의 시나 자연에 인간적 감정을 투영한 주관적 태도의 시를 가리지 않는다. ​ 구름을 휘몰아 허공을 달리며 숲과 지붕을 마구 덮치고 짓밟으며 시머리 자진머리 온갖 장단과 가락을 마음대로 뽑는 名唱이다가 ​ 꽃가루와 열매를 옮겨 은밀한 입김으로 싹트게 하다가 애무하며 흔들어 못견디게 자라게 하다가 ​ 강물을 넘치게 하고 나무를 뿌리째 뽑아버리며 일체를 부수고 쓸어버리는 行動으로 나타내 보인다. - 李仁石,「바람」의 일부 ​ 바람의 역동적 이미지, 정적 서경적 자연이 아니라 변화무상한 자연 ​ 겨울 육지에서 불던 바람이 바다끝에서 끝없이 무너지고 있었다 아 썰물이다 썰물 마른 가지들이 산 기슭에서 속삭이고 허망하게 갈매기가 울다가 파도와 함께 부서진다 아 밀물이다 밀물 갈매기들은 사라지고 이윽고 모든 뻘밭이 바다가 되어 무너진 바람을 빨아 들이고 있고 빈 가지들이 밤에 잠기어서 개처럼 앓고 있다 - 李裕憬「草落島4」 ​ 겨울과 밤이라는 자연의 시간적 배경만이 음산한 분위기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무너지고 속삭이고 부서지고 사라지는 자연의 움직임들이 그 변화성이 풍경을 을씨년스럽게 한다. 여기서의 자연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무상하게 변화하고 움직이는 자연이다. 그것은 영원히 본질적인 것을 표상하던 과거의 자연과는 무관한 자연이다. ​ (4) 분열된 자연 ① 자아해체의 상관물 현대의 자연은 파괴되어 조각이 나버린, 고뇌로 가득 찬 자연이다. 인간으로부터의 소외되는 정도가 아니라 인간에 의해서 비정하게 파괴되는 비참한 모습으로 현대시에 수용되고 있다. 그것은 자아해체의 상관물이기도 하다. ​ 그리움으로 더욱 희어진 기억의 머리칼을 쓸어 올리며 너는 마르고, 길고 험한 마음의능선마다 잡목숲이나 거느리며 너는 계곡처럼 아프게 패여만 간다 그러나 후회하지 않으련가 그대여, 아무리 불러봐도 좀처럼 성한시절의 메아리를 되돌려주지 않는 먼 산이여 방부 처리된 생선 통조림 같은 세월의 빈깡통들만 걷어채이는데 못잊힐 그 날의 흔적조차 거의 판독할수 없는 문자로 희미하게 푸른바위손에 덮여 가는데 허나 누구도 그걸원한건 아니었는데 너는너대로, 나는나대로 여전히 하나되지 못하고 그렇다고 둘이되지도 못한 채 그냥 이대로 늙어갈것인가 - 임동학「먼산」에서 ​ ② 현대문명의 비판 자연의 파괴감은 자아의 내적 고뇌만을 반영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것은 엘리어트의 「황무지」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세속화되고 타락된 현대 문명사회의 비판을 담고 있다. 그것은 기계문명이 가져온 정신의 황폐화와 비인간화를 고발한다. ​ 현기증나는 활주로 최후의 결정에서 흰 나비는 돌진의 방향을 잊어버리고 피묻은 육체의 파편들을 굽어본다. ​ 기계처럼 작렬한 작은 심장을 축일 한모금 샘물도 없는 허망한 광장에서 어린나비의 안막(眼膜)을 차단하는 건 투명한 광선의 바다뿐이었기에- - 김규동「나비와 광장」에서 ​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 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 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에 떨다가 가슴에 금이 갔다. 그래도 성북동 비둘기는 하느님의 광장같은 새파란 아침 하늘에 성북동 주민에게 축복의 메시지나 전하듯 성북동 하늘을 한 바퀴 휘돈다. - 김광섭「성북동 비둘기」에서 ​ (5) 역사적 현실의 자연 ​ 눈으로 덮힌 前方의 저녁은 포도빛으로 저문다. ​ 休戰線 안에서는 콧잔등이 얼어붙은 여우들이 헤맨다. ​ 나무사이로 누벼 돌개울 上流로 사라졌다. ​ 가시덤불 깃든 까투리가 놀라 날아오른다. - 박목월「발자국」에서 ​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 그런 어느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 - 신경림의「갈대」   홍문표시창작강의 노트 39 시와 인생 ​ 홍문표 ​ (1) 시와 인생 ① 시의 정의 시는 상상과 정열의 언어다. - Hazlitt 시는 미의 운율적 창조다. - Poe 시는 인생의 비평이다. - Arnold 시는 상상과 감정을 통한 인생의 해석이다. - Hudson ​ ② 인생에 대한 두 가지 관심 존재론 - 나는 누구인가. 개인적 존재. 사회적 존재. 근원적 존재. 당위론 - 어떻게 살 것인가. 문학의 사회적 역사적 기능 ​ ③ 인생과 서정시 서정시가 자아를 표출하는 것이나 자신의 사상과 감정을 시적으로 표현한다는 말도 따지고 보면 자신의 인생에 대한 성찰과 의식을 드러내는 방식에 불과하다. 누구나 자아를 우주의 주체로 하여 세계를 인식한다. 이 때 때로는 자아를 우주에 빗대어, 예를 들어 흘러가는 구름이나 강이나 계절이나 꽃이나 이런 자연에 비교하면서 자신을 자연에 투사하거나, 자연을 자기에게로 동화하는 방식으로 상상하는데 이러한 동일시의 방식이 서정시다. ​ ④ 시와 철학과 종교 인생에 대한 깊은 통찰과 절대자나 근원적인 우주와의 관계를 인식하려는 철학적인 또는 종교적인 자세, 시의 서정적 자아가 인생과 우주에 대한 발견과 깨달음의 노래가, 궁극적으로는 자유와 해탈과 구원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동일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다만 시가 고도의 예술적 언어형식을 통하여 초월을 시도하는 것에 비하여 철학은 사변의 논리를 거치고, 종교는 믿음이라는 종교적 행위를 거친다는 것이 다른 점이다. ​ ⑤ 인생에 대한 보다 강한 관심의 시 어느 시대나 시는 인생의 표현이다. 그러나 근대이후 물신주의, 기술만능주의에서 인생의 위기, 자아 상실감, 정체성의 위기를 맞으며 생의 철학, 허무주의, 실존주의, 정신주의를 논하게 되고 시에서도 이러한 의식을 강하게 드러내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인생파, 생명파라 한다. ​ (2) 생명파 또는 인생파 시 ① 생명파의 등장 1936년 일제의 암울한 시대 동인지『시인부락』에 모인 서정주. 오장환. 함형수와 이들 노선을 함께 한 유치환은 그동안 ‘시문학파’가 음악성과 서정성으로, 모더니스트들이 도시적이고 지성적인 이미지의 구사로 일정 부분 순수문학을 일궈낸 업적은 인정하면서도 그들의 지나친 감각주의와 기교주의 성향에 대해서는 반발하는 태도를 보인다. 이들의 시적 추구는 저 시원(始原)의 꿈틀거리는 인간의 생명력으로 회귀하는 것이었는데 사람들은 이들을 생명파 또는 인생파라고 부르게 된다. ​ ② 서정주의 생명의식 ​ 麝香薄荷의 뒤안길이다 아름다운 배암...... 을마나 크다란 슲음으로 태어났기에 저리도 징그러운 몸둥아리냐 ​ 꽃다님 같다 ​ 너의 하라버지가 이브를 꼬여내든 達辯의 혓바닥이 소리 이른채 낼룽거리는 붉은 아가리로 푸른 하늘이다 - 무러 뜨더라. 원통히 무러 뜨더 ​ 다라나거라 저놈의 대가리! ​ 돌팔매를 쏘면서 쏘면서 麝香芳草ㅅ길 저놈의 뒤를 따르는 것은 우리 하라버지의 안해가 이브라서 그리는게 아니라 石油 먹은 듯...... 石油먹은 듯...... 가쁜 숨결이야. 바늘에 꼬여 두를가보다 - 꽃다님보다도 아름다운 빛. ​ 크레오파트라의 피 먹은양 붉게 타오르는 고흔 입설이다 - 슴여라 배암! 우리 順네는 스물난 색시 고양이 같은 고운 입설- 슴여라 배암...... -「花蛇」전문 ​ 「자화상」“애비는 종이었다”「문둥이」“꽃처럼 붉은 울음을 밤새 울었다.”「화사」와의 관계, 니체의 허무주의와 권력의지, 보들레르의 악의 꽃 영향. 인간의 이중성, 원죄와 욕망, 선과 악, 이성과 감성, 미와 추.「화사」는 보들레르의「악의 꽃」- 꽃과 뱀의 연결 ​ ③ 유치환의 허무에의 의지 ​ 내 죽으면 한개 바위가 되리라 아예 愛憐에 물들지 않고 喜怒에 움직이지 않고 비와 바람에 깎이는 대로 億年 非情의 緘黙에 안으로 안으로만 채찍질하여 드디어 生命도 忘却하고 흐르는 구름 머언 遠雷 꿈꾸어도 노래하지 않고 두쪽으로 깨뜨려져도 소리하지 않는 바위가 되리라. -「바위」전문 ​ 서정주가 보들레르적이라면 유치환은 니체의 허무와 의지에 가깝다. 「깃발」 “이것은 소리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탈쟈의 손수건” 「생명의 서」 허무를 초극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 ​ (3) 인간 존재에 대한 자각 ​ 잊어버려야한다. 진정 잊어버려야만 한다 오고가는 먼 길가에서 인사 없이 헤어진 지금은 누구던가 그 사람으로 잊어버려야만 한다 온 생명은 모두 다 흘러가는데 있고 흘러가는 한 줄기 속에 나도 또 하나 작은 비둘기 가슴을 비벼대며 밀려 가야만 한다 - 조병화「하루만의 위안」에서 ​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 정호승「수선화」에게 ​ 이렇게 말을 하고 저렇게 말을 바꾸어 보아도 인생은 쓸쓸한 것이다. 서글픈 것이고 외로운 것이고 적막한 것이다. 언제든 쓸쓸하지 않으려고 서글프지 않으려고 할 때 산통이 깨졌다. 일이 터졌다. 이눔아 나도 이렇게 쓸쓸하고 서글프고 외롭고 적막한데 네 놈이라고 별 수 있겄냐! 하늘 위에서 누군가 대갈일성 호령으로 뒤통수를 때리는 소리. 후두둑 빗방울 던지신다. 이마 위에 찌익 날아가던 새가 물똥 갈기신다. 나태주“골목길” ​ 산은 옛 산이로되 물은 옛 물이 아니로다 주야(晝夜)에 흐르니 옛 물이 있을소냐 인걸(人傑)이 물과 같아야 가고 아니 오노매라. ​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 감을 자랑 마라 일도창해(一到滄海)하면 다시 오기 어려워라 명월이 만공산(滿空山)하니 쉬어 간들 어떠리. -황진이- ​ 강물을 따라 걸을 때 강물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네 인생은 이렇게 흐르는 거야 너도 나처럼 흘러봐 하얗게 피어 있는 억새 곁을 지날 때 억새는 이렇게 말했네 너도 나처럼 이렇게 흔들려봐 인생은 이렇게 흔들리는 거야 연보라 색 구절초 꽃 곁은 지날 때 구절초 꽃은 이렇게 말했네 인생은 한번 피었다 지는 꽃이야 너도 이렇게 꽃 피어봐 커다란 느티나무 아래를 지날 때 느티나무는 이렇게 말했네 인생은 이렇게 뿌리를 내리고 그자리에서 사는거야 너도 뿌리를 내려봐 하늘에 떠 있는 구름 밑을 지날 때 구름은 이렇게 말했네 인생은 이렇게 허공을 떠도는 거야 너도 그렇게 정처 없이 떠돌아봐 내 평생 산 곁을 지나 다녔네 산은 말이 없었네 산은, 지금까지 한마디 말이 없었네 김용택 “산” ​ 날마다 산에 오른다 오를수록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아슬한 오만을 키우기 위하여 악착같이 기어오른다. ​ 날마다 산에 오른다. 오를수록 순진하게 복종하는 시퍼런 독재를 키우기 위하여 목숨 걸고 기어오른다. ​ 날마다 산에 오른다. 오를수록 외로워지는 내영혼의 절망을 위하여, 빗살처럼 흔들리는 아쉬운 지상의 연민을 위하여 안간힘으로 기어오른다. ​ 바람으로 이미 어질펴진 목숨 너절한 인연들의 손짓들은 측백나무 마른 가지에 걸어두고 기다리는 마음 한곡조 흥얼거리면서 홀홀단신 빈몸으로 기어오른다. - 홍문표「날마다 산에올라1」 ​ 홍문표시창작강의 노트 40 기독교적 서정시 ​ 홍문표 ​ (1) 종교와 시 ① 공통점 유한성의 극복, 마음의 평화와 위로, 정신의 구원. 객관적 논리의 초월, 직관과 비유의 언어 사용, 불가시의 세계를 가시의의 세계로 하나님은 나의 목자시니(하나님=목자) 내 마음은 호수요(마음=호수) ​ ② 다른 점 종교 - 신의 힘에 의한 유한성의 극복, 도덕적 실천 믿음을 통한 현실 극복, 믿음은 하늘나라 와 구원이라는 특정한 목적지를 향해가는 마음과 행동 , 천국이라는 공간과 미래의 시간 문학 - 인간의 상상에 의한 정서적 자유, 감성적 체험 상상을 통한 현실 극복, 상상은 상상력을 통한 다양한 세계로의 벗어남 상상의 공간은 제한이 없으며 시간도 과거 현재 미매가 있음 ​ (2) 기독교문학의 구조원리 ​ 일반언어: 발신자 - 사상과 감정 - 수신자 (일반 문법에 따른 어법) 성서 : 하나님 - 하나님 나라 - 인간 (육화와 계시의 문학적 어법) 문학 : 작가 - 사상과 감정 - 독자 (이미지와 플롯의 문학적 어법) 기독교문학 : 작가 - 하나님 나라 - 독자 (이미지와 플롯의 문학적 어법) - 홍문표「기독교문학의 이론」에서 ​ (3) 기독교시의 세 유형 첫째는 기독교 사상의 진리나 구원의 논리를 관념적으로 받아들여 사랑, 희생, 봉사, 용서, 회개 등을 시어로 채택하면서 기독교적이기를 강조하는 경우. 기독교의 본질에 대한 실존적 접근이 아니라 극히 교화적이고 설교적인 서술의 시. 둘째로는 기독교를 신앙하는 입장에서 전도의 목적이나 신앙의 고백 형식으로 발표되는 경우, 기독교의 입장에서는 말씀의 전달이라는 명제 때문에 문학을 단순히 전도의 수단으로 사용하게 되는데 이러한 경우 대개는 목적의식이 앞서 시로서 성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엘리엇은 이를 ‘이류의 시’라고 했음. 셋째로는 그리스도의 본질에 대한 추구, 침묵하는 신에 대한 몸부림, 고난과 구원으로 엮어지는 신의 은총에 관한 문제 등을 고도의 예술적 은유와 상징을 통하여 표현하는 경우. 이는 기독교시 뿐만 아니라 모든 종교문학의 문제. ​ (4) 서정적 기도시 ​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이게 하소서 ​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 김현승「가을의 기도」 ​ 오늘은 가장 깊고 낮은 목소리로 당신을 부르게 해 주소서 ​ 더 많은 이들을 위해 당신을 떠나보내야 했던 마리아의 비통한 가슴에 꽂힌 한 자루의 어둠으로 흐느끼게 하소서 ​ 배신의 죄를 슬피 울던 배드로의 절절한 통곡처럼 나도 당신 앞에 겸허한 어둠으로 엎드리게 하소서 ​ 죽음의 쓴 잔을 마셔 죽음보다 강해진 사랑의 주인이여 ​ 당신을 닮지 않고는 내가 감히 사랑한다고 뽐내지 말게 하소서 ​ 당신을 사랑했기에 더 깊이 절망했던 이들과 함께 오늘은 돌무덤에 갇힌 한 점 칙칙한 어둠이게 하소서 ​ 빛이신 당신과 함께 잠들어 당신과 함께 깨어날 한 점 눈부신 어둠이게 하소서 - 이해인「기도」 ​ (5) 기독교적 신앙시 ​ 신발이 다 닳고 발바닥이 피흘러도 올라갈 수 없어라. ​ 정강이로 오르고 무릎으로 오르고 가슴과 턱 이마로 올라가도 다다를 수 없어라. ​ 눈으로 볼 수 있는 하늘의 하늘 끝 마음으로 닿을 수 있는 마음의 마음 끝 어떻게도 이대로는 바라다볼 수 없는, ​ 그 음성 아득하게 내리시올 자비 커다랗게 허릴 굽혀 안아 올려 주실 그 정상 이마직서 홀로 울어라. - 박두진「지성산(至聖山)」 ​ 내 목숨을 꽃밭처럼 씨뿌리게 하소서. 왕이신 당신의 집 보석으로 깎은 궁전이게 하소서. 그러나 나는 지금 마음대로 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꽃밭 같은 내 목숨의 의미, 그것을 모르고는 나는 확실하게 시들 수가 없습니다. 왕이신 당신을 수정궁에 모시지 않고서는 나는 마음대로 낡을 수도 없습니다. 나를 살리기 위해 대신 죽으신 이여. 나는 당신을 위해 어떻게 죽으리까, 언제 죽으리까, 어디서 죽으리까, 죽었다가 일어나서 어떻게 살리까 죽었다가 사신 그대를 위해 무엇을 감히 바칠 수가 있으리까 땅위를 걸어가는 나날의 아, 별떨기를 바라보면서 어떻게 빛나리까, 어떻게 피우리까. - 이향아「땅 위의 나날」 ​ 하늘 빛 침묵으로 겹겹이 숨겨온 비밀 천년의 밤을 지켜온 지순한 옥빛 기다림 ​ 문둥이 시몬 그 천형의 살점을 어루만지시던 당신의 다스한 온기에 나의 긴 밤은 아침 이슬이 되고 ​ 당신과의 만남은 오히려 이별의 시작일 수 있고 결코 돌아올 수 없는 시간들의 절망과 이승의 마지막 식탁일 수 있기에 이제 내 가슴에 숨겨온 기다림의 옥함을 열겠습니다. ​ 그리하여 나는 당신의 머리칼로 흐르는 향유의 빛깔이 되고 당신 발아래 엎드린 가난한 마리아 후회 없는 기억의 향기가 되겠습니다. ​ 그러나 이별은 만남의 시작이 되고 순간이 영원일 수 있다는 당신의 언약으로 하여 슬픔은 기쁨의 노래가 되고 나는 또다시 향유로 가득한 옥합이 되어 새 천년을 기다리는 돌이 되겠습니다. - 홍문표「옥합을 열겠습니다」 ​ 하나님이 쓰시다 사망권세를 이기고 다시 사신 이야기를 성경책에 쓰시고 그래도 부족했던지 어린 풀잎에 쓰시고 하찮은 곤충의 애벌레 위에 쓰시고 삼라만상에 쓰시다 ​ 믿음이 없는 세대를 위하여 늘 불안한 세상을 위하여 제자들과 미리 음식을 잡수시고 오백여 형제에게 보이시고 게바에게 보이시고 그래도 부족했던지 친수(親手)로 쓰시다. ​ 봄이 오는 들판에 쓰시고 버들가지와 실개천에 쓰시고 어디메 불어오는 남쪽 바람 위에 쓰고 또 쓰시다. - 김지원「하나님이 쓰시다」   홍문표시창작강의 노트 41 불교적 서정시 ​ 홍문표 ​ (1) 불교시의 이해 ① 한국 불교시의 형성 토속적인 샤머니즘 + 불교 - 삼국시대, 국교 신라시대 향가로 승화 고려시대 대장경, 호국불교 조선시대 척불숭유(斥佛崇儒)로 퇴조 현대 불교문학의 전통유지 ​ ② 불교문학의 개념 신문학 초기 - 승려들의 문학작품 최근 - 불교의 사상 또는 신념을 문학적으로 표현 모든 불교의 경전 및 불교인의 불교적 삶, 포교 행위를 포함한 불법승(佛法僧) 삼보(三寶)의 세계를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작품. ​ ③ 삼보란 무엇인가 불교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귀의 대상인 불 법 승을 삼보(三寶)라 한다. 이를 통해서 깨달음을 이룰 수 있기 때문에 불교의 처음과 끝이라고 할 수 있다. ‘불(부처림, Buddha)’은 석가모니의 출현과 성도(成道)를 인정하는 데에서 귀의 대상이 되며 불교의 출발점이 된다. ‘법(Dharma, 부처의 가르침)’은 그가 남긴 가르침이며 그 법을 통해서만 깨달을 수 있기 때문에 불교를 성립시키는 두 번째 기본요소이다. ‘승(Sagha, 僧家)’, 진리[佛法]는 그 가르침을 듣는 자가 있어야 하며, 실천자가 있어야 한다. 가르침을 듣고 불[覺者, 깨달은 자]이 되기 위해 도를 실천 수행하는 사람들의 집단을 ‘승’이라 한다. ‘승’이 있음으로써 불교의 생명이 영원히 계승되는 것이다. ​ (2) 초기 불교시 ① 1920년대 불교시단 - 홍사용, 박종화, 오상순, 한용운 1) 박종화 「석굴암대불․1」 ​ 천 년을 지키신 沈黙 萬劫도 無恙쿠나 ​ 태연히 앉으신 자세 배움직함 많사이다 ​ 동해바다 물결이 드높아 ​ 허옇게 부서져 사나우니 미소하시어 누르시다 천 년 긴 세월을 두 어깨로 받드시다 新羅의 功德이 임 때문이시라 -「석굴암대불․1」에서 ​ 3) 한용운 -「불교유신론」「님의 침묵」 ​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 당신은 흙발로 나를 짓밟습니다. 나는 당신을 안고 물을 건너갑니다 나는 당신을 안으면 깊으나 얕으나 급한 여울이나 건너갑니다 ​ ​ 만일 당신이 아니 오시면 나는 바람을 쐬고 눈비를 맞으며 밤에서 낮까지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당신은 물만 건너면 나를 돌아보지도 않고 가십니다 그려 그러나 당신이 언제든지 오실 줄만은 알아요 나는 당신을 기다리면서 날마다 날마다 낡아갑니다 ​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 한용운「나룻배와 행인」 ​ (3) 1930년대 불교시 - 김달진, 서정주, 조지훈, 신석조 ① 서정주,「귀촉도」「동천」 ​ 내마음 속 우리님의 고운 눈썹을 즈믄 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 하늘에다 옮기어 심어 놨더니 동지 섣달 나는 매서운 새가 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 -「동천」 ​ 이 시집의 후기(後記)에서 미당은 “특히 불교에서 배운 특수한 은유법의 매력에 크게 힘입었음을 여기 고백하며, 대성(大聖) 석가모니에게 다시 한 번 감사를 표한다”고 불교의 삼세인연(三世因緣)을 바탕 삼은 시세계인 것을 지적했다. ​ ② 조지훈 승무 얇은 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 파르라니 깍은 머리 薄紗 고깔에 감추오고 ​ 두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 빈 臺에 黃燭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이 접어올린 외씨 보선이여 ​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두오고 ​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세사에 시달려도 煩惱는 별빛이라 ​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깊은 마음 속 합장인양 하고 ​ 이밤사 귀또리도 지새는 三更인데 얇은 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 (4) 광복이후 불교시 ① 1950년대 - 조병화, 이원섭, 이설주, 김관식, 이형기, 박희진, 박제삼, 고은 ② 1960년대 - 박제천, 김초혜, 박정만, 홍신선, 문정희, 오세영, 허영자, 정진규 ③ 1980년대 - 김지하, 황동규, 정현종 ④ 1990년대 - 석지현, 장이두, 김정류, 이청화, 이향봉, 석성우, 돈연, 석성일, 석자명, 박진관, 조정권, 최동호 ​ 버리고 찾는 것 모두가 덧없음이라 끝내는 無心으로 돌아선 그대 ​ 깊은 가슴 열어 밝혀도 지난 시간 되찾을 수 없어 멀고 괴롬인 것을 ​ 어찌하면 편안하겠소 돌 위에 무릎꿇어 모두 버리는 뜻 견디려하오 - 김초혜 「사랑굿」 ​ 업보처럼 쑥쑥 자라는 아이들만 남았다 ​ 지은 죄 많고 아직도 더 죄지을 듯 불안한 하루하루 눈앞에 커다랗게 업보처럼 남았다 ​ 다 놓아버릴 수 없을까 마음만 그저 노을처럼 떴다간 스러지고 ​ 한 방울 두 방울 씩 가슴 밑에 고이는 업보사랑 - 김지하「업보」 ​ 어릴 때 참 많이도 본 나팔꽃 아침을 열고 이슬을 낳은 꽃 아침하늘의 메아리 이슬 맺힌 꽃 이슬에 비췬 꽃 만다라 무한반영의 꽃 만다라 피, 붉은 이슬 의 메아리, 그 메아리 속에 생명 만다라 눈동자 에 맺히는 이슬 그 이슬 속에 삶 만다라 - 정현종「생명 만다라」 ​ 모든 것은 단지 하나의 먼지라고 술주정뱅이가 뇌까렸다 가로수 잎이 깔깔대고 웃는다 하늘과 땅이 깔깔대고 웃는다 온 우주가 깔깔대고 웃는다 - 돈연「백개의 이야기․49」 ​ 나는 부처를 팔고 그대는 몸을 팔고 버들은 푸르고 꽃은 붉고… 밤마다 물위로 달이 지나가지만 마음 머무르지 않고 그림자 남기지 않는도다 - 조오현「절간 이야기 25」에서 ​ 잔잔한 바다처럼 쓸어놓은 빗자루 흔적 새벽 기침소리 바다 위에 뜬 작은 나뭇잎 - 최동호「나뭇잎 하나  
1033    홍문표시창작강의 노트 8 댓글:  조회:983  추천:0  2019-11-01
홍문표시창작강의 노트 34 시의 종류와 서정시 ​ 홍문표 ​ 1. 시의 종류 (1) 형식상 ① 정형시: 일정한 형식(틀)에 맞추어 쓴 시. 시조가 대표적인 형식 일본 하이꾸. 중국 한시. 서구 소네트. 한국 시조. ​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홀로 앉아// 긴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 하는 차에// 멀리서/ 일성호가는/ 남의 애를/ 끊나니// - 이순신 ​ ② 자유시 : 정형시가 지니고 있는 운율적, 형식적 제약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형식. 현대의 대부분 시 ③ 산문시 : 시의 내용을 행의 구분 없이 연 단위로 산문처럼 표현한 시. ​ 구름은 딸기밭에 가서 딸기를 따먹고 '아직 맛이 덜 들었군!' 하는 얼굴을 한다. 구름은 흰 보자기를 펴더니, 양털 같기도 하고 무슨 헝겊쪽 같기도 한 그런 들을 늘어놓고, 혼자서 히죽이 웃어보기도 하고 혼자서 깔깔깔 웃어보기도 하고…… 어디로 갈까? 냇물로 내려가서 목욕이나 하고 화장이나 할까보다. 저 뭐라 는 높다란 나무 위에 올라가서 휘파람이나 불까보다…… 그러나 구름은 딸 기를 몇 개 더 따먹고 이런 청명한 날에 미안하지만 할 수 없다는 듯이, ' 아직 맛이 덜 들었군!' 하는 얼굴을 한다. - 김춘수의 「구름」 ​ (2) 내용상 ① 서정시 : 개인의 주관적인 정서와 감정을 표현한 시, 과거와 현대의 대표적 인 시 ② 서사시 : 일정한 사건을 객관적인 시각으로 노래한 시, 과거 영웅시, 소설 의 원류 ​ [1] (아아, 무사히 건넜을까. 이 한 밤에 남편은 두만강(豆滿江)을 탈 없이 건넜을까. 저리 국경강안(國境江岸)을 경비하는 외투(外套) 쓴 검은 순경(巡警)이 왔다 갔다 오르며 내리며 분주히 하는데 발각도 안되고 무사히 건넜을까? 소금실이 밀수출마차(密輸出馬車)를 띄워놓고 밤 새가며 속 태우는 젊은 아낙네, 물레 젓던 손도 맥(脈)이 풀려서 파아 하고 붙는 어유(漁油) 등잔만 바라본다. 북국(北國)의 겨울밤은 차차 깊어 가는데 -김동환의 「국경의 밤」에서 ​ ③ 극 시 : 극적인 내용을 시적 언어로 표현한 시, 공연을 고려하지 않을 때 극시(dramatic poetry) 공연을 고려할 때는 시극(poetic drama)이라 함. ​ ※시를 내용상 서정시 서사시 극시로 나누는데 이는 다분히 고전적 구분이다. 원래 문학은 언어의 음악성이 서정시로 사건이 서사시로 행동이 드라마로 발전한 것이라면 서정시는 오늘의 시로 서사시는 오늘의 소설로 극시는 오 늘의 연극으로 분화 발전된 것이기에 시의 주류는 서정시이고 오늘의 서사 시 극시는 시에 소설과 드라마 의 형식을 혼합한 것이라고 보아야한다. ​ (3) 목적상 ① 순수시 : 예술성을 추구한 시, 비정치 비이념의 시, 사물시 ​ 깊고 그윽한 저녁으로 빠진다./ 물의 근원 속엔/ 내가 빠져 있고,/ 나는 몇 개의/돌로 되어 있다./ 보이지 않는 삽질을 한다./ 묻힌 나를 캐어낼 수록/ 어린 날의 혼돈은 뛰쳐나와/ 시름겨운 정열을/ 옛 사랑을, 보여준다 – 마종하 「한여름날」 ​ ② 참여시 : 역사와 현실의 문제에 책임감을 갖고 이를 개선하겠다는 목적의 식의 시 계몽시 정치시 이념시 ​ 푸른 하늘을 제압하는 노고지리가 자유로왔다고 부러워하던 어느 시인의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자유를 위해서 비상하여본 일이 있는 사람이면 알지 노고지리가 무엇을 보고 노래하는 가를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있는가를 혁명은 왜 고독한 것인가를 혁명은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 – 김수영의 「푸른하늘은」 ​ (4) 경향상 ① 주정시(主情詩) : 개인의 정감과 정서를 노래한 시, 서정시가 대표적 ② 주지시(主知詩) : 감정보다 이성과 심상을 중시한 시, 이미지즘시 모더니즘 시 ​ 낙엽(落葉)은 폴란드 망명정부(亡命政府)의 지폐(紙幣) 포화(砲火)에 이지러진 도룬 시(市)의 가을 하늘을 생각게 한다. 길은 한 줄기 구겨진 넥타이처럼 풀어져 일광(日光)의 폭포(瀑布) 속으로 사라지고 조그만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포플라 나무의 근골(筋骨) 사이로 공장의 지붕은 흰 이빨을 드러내인 채 한 가닥 구부러진 철책(鐵柵)이 바람에 나부끼고 그 위에 셀로판지로 만든 구름이 하나 자욱한 풀벌레 소리 발길로 차며 홀로 황량한 생각 버릴 곳 없어 허공에 띄우는 돌팔매 하나 기울어진 풍경의 장막(帳幕) 저쪽에 고독한 반원(半圓)을 긋고 잠기어 간다. - 김광균의 「추일서정」 ​ ③ 주의시(主意詩) : 인간의 의지의 측면을 중시한 시, ​ 매운 계절의 채찍에 갈겨 마침내 북방(北方)으로 휩쓸려오다. ​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高原) 서릿발 칼날진 그 위에 서다. ​ 어디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한발 재겨 디딜곳 조차 없다. ​ 이러매 눈 감아 생각해 볼 밖에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 이육사의 「절정」 ​ 2. 서정시(抒情詩)의 어의 1) 악기에 맞춘 가사 서정시(lyric poetry)는 원래 리라lyra라는 현악기에 그 어원을 두고 있다. 서정시는 본래 악기에 맞추어 부르는 노래가사를 뜻했던 것이다. 그러나 후에는 주로 읽기 위해 쓰여진, 개인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짧은 시를 뜻하게 되었다. 여기서 개인적인 감정이란 개인의 정서, 상상 또는 사상까지를 포함하는 말이다. 2) 마음의 드러냄 한자어의 抒情은 마음을 끄집어 냄, 털어냄의 뜻으로 내면, 감정, 마음, 주관 등을 밖으로 드러내는 시라는 말이다. 3) 서사시(敍事詩)와 서정시 서사시는 敍事, 즉 사건을 펼침. 사건의 전말을 서술하는 시라는 데서 서정시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 강물이 모두 바다로 흐르는 그 까닭은 언덕에 서서 내가 온종일 울었다는 그 까닭만은 아니다. ​ 밤새 언덕에 서서 해바라기처럼 그리움에 피던 그 까닭만은 아니다. ​ 언덕에 서서 내가 짐승처럼 서러움에 울고 있는 그 까닭은 강물이 모두 바다로만 흐르는 그 까닭만은 아니다. - 천상병 「강물」 ​ 3. 서정시의 연원 1) 서양의 서정시 서양에서는 서정시의 장르가 여러 가지로 변화 발전해 왔는데,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은 오우드ode, 소네트sonnet, 엘레지elegy, 패스토럴pastoral, 쌔타이어satire, 에피그램 epigram 등이다. 오우드는 음악과 같이 노래를 불렀던 시형식으로서 그리이스 시대부터 신과 영웅찬양, 소네트는 14행의 소곡, 엘레지는 비가, 만가, 패스토럴은 목가, 쌔타이어는 풍자시, 에페그램은 경구시. 2) 한국의 서정시 우리나라에서 서정시의 전통은 오래된다고 보겠는데 고대의 경우, 고구려 시대 유리왕의 작이라고 하는「황조가」, 곽리자고의 처가 불렀다는「공무도하가」를 비롯하여 향가, 고려가요, 시조, 가사 등에도 수많은 서정시를 볼 수 있다. 그리고 현대시의 경우 90%가 모두 서정시다. ③ 서정시와 리듬 1) 서정시와 음악 서정시(lyric poetry)는 악기의 명칭에서 유래될 만큼 음악과 밀접하다. 그러나 시의 본질을 이해하는 보다 중요한 것은 음악이나 시나 근본적으로 감동을 위한 표현양식. 모든 것을 지적으로만 전달하지 않고 감동적으로 전하려는 어법이라는 사실이다. 2) 고대시가의 음악적 리듬 따라서 고대시가는 음악적 리듬(음성율, 음위율, 음수율)을 최대한 활용한 운율, 율격을 사용하였다. 또한 감동의 언어적 기능을 신비롭게 생각하여 신과 영웅의 찬양, 집단의 소망, 기쁨의 표현 양식 등으로 활용하였다. 3) 노래시의 보편적 형식과 민요 노래와 어울린 고대시는 개인적이기 보다 집단적이다. 모두가 공유해야하는 노래시는 낱말과 수사법이 선율과 어울려야 할 뿐 아니라 노래를 부르면서 동시에 쉽게 가사를 알아들을 수 있어야 했다. 그래서 노래의 호흡, 리듬, 선율 등 음악적 조건에 맞도록 말의 음성적 요소들을 선택하고 배열한 결과 이른바 율격(meter)이 라는 것이 발생하였다. ​ 우이와라 우이와라 아랫논에 메베 비고 웃논에 참베 훑어 우리 오빠 장가갈 때 메쌀일랑 밥을 하고 찹쌀일랑 떡을 찧어 너두 한 상 채려 주께 우리 논에 앉지 마라 우이와라 우이와라 - 부여 지방 민요 ​ 민요의 특성은 공동성, 단순성, 보편성, 민중성, 민족성, 개인성이라고 장덕순은 지적한 바가 있다. 인용한 민요를 보면 전통적인 2음보의 반복형식이다. ​ 4) 개인적 서정시 문자언어의 활발한 발달은 노래시가 갖는 음악적 리듬보다 언어가 갖는 감각적 이미지, 의미의 반복적 강조 등을 통하여 내면적인 리듬을 통한 감동의 형식으로 현대에는 서정시가 변모되기에 이르렀다. ​ 내마음 속 우리님의 고운 눈썹을 즈믄 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 하늘에다 옮기어 심어 놨더니 동지섣달 나는 매서운 새가 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 - 서정주의 「동천」     서정시의 본질, 세계의 주관화 ​ 홍문표 ​ (1) 공간세계의 주관화 ① 과학과 시의 공간 과학 - 모든 사물의 분리, 차별성의 확인, 개체적 존재확인, 물리적 공간 분리 - 소외 - 고독 - 절망 (에덴의 상실) 시 - 주체와 객체의 통합, 모든 사물의 동일성, 융합과 조화 주관적 공간 평화공존 - 충만함 - 시적 구원 (에덴의 회복) ② 물리적 거리의 초월, 객관적 공간의 주관화 서정시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자아의 내적인 세계와 외적인 세계가 철저히 결합하거나 충돌하는 관계다. 이를 주관적인 정서와 객관적인 사물의 교감에 의하여 빚어지는 창조라고도 말한다. 또한 주관과 객관, 자연과 인간, 세계와 자아, 객체와 주체 등의 대응관계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결국은 시인의 내면적인 의지와 외부적인 세계와의 긴장이나 충돌을 통하여 새로운 세계를 조망하는 아름다운 노력인 것이다. 이것은 일상적이고 물리적인 거리의 초월이며 객관적 공간의 주관화다. ​ 너에게 가려고 나는 강을 만들었다 강은 물소리를 들려주었고 물소리는 흰 새 떼를 날려 보냈고 흰 새 떼는 눈발을 몰고 왔고 눈발은 울음을 터트렸고 울음은 강을 만들었다 너에게 가려고 - 안도현 「너에게 가려고 나는 강을 만들었다」 ​ ③ 내 마음의 공간 듀이 - 마음이란 동사(verb)다. 마음은 외부세계와 끝임 없이 교섭하고자 한다. 훗설 - 의식의 지향성, 노에시스(noesis) 슈타이거 - 서정시란 자아에의 회귀 ​ ④ 동일성의 세계 듀이는 자아와 세계의 만남이 동일성으로 이루어질 때 이를 미적 체험이라고 하였다. 유기체와 환경의 각각 특성이 소멸된 완전한 결합, 즉 자아와 세계가 각각 특수한 성격을 상실하고 하나의 새로운 동일성의 차원에서 융합된 주객일체의 경지, ​ 여릿여릿 머얼리서 온다. ​ 하늘은, 머얼리서 오는 하늘은, 호수처럼 푸르다. ​ 호수처럼 푸른 하늘에 내가 안긴다. 온 몸이 안긴다. 가슴으로, 가슴으로, 스미어드는 하늘, 향기로운 하늘의 호흡, ​ 따가운 볕 초가을 햇볕으론 목을 씻고, ​ 나는 하늘을 마신다. 자꾸 목 말라 마신다. ​ 마시는 하늘에 내가 익는다. 능금처럼 마음이 익는다. - 박두진 「하늘」 ​ 저 안에 천둥 몇게 저 안에 벼락 몇 게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날 - 장석주 「대추한알」 ​ (2) 시간의 주관화 ① 물리적 시간과 시적 시간 물리적 시간 - 물리적 시간은 화살처럼 가는 시간, 과거 - 현재 - 미래 불가역의 시간, 일회적 시간, 실존의 시간, 절망의 시간 시적시간 - 원형적 시간, 수직적 시간, 초월의 시간, 구원의 시간 ​ 겨울을 이기고 사랑은 봄을 기다릴 줄 안다 기다려 다시 사랑은 불모의 땅을 파헤쳐 제 뼈를 갈아 재로 뿌리고 천년을 두고 오늘 봄의 언덕에 한 그루 나무를 심을 줄 안다 ​ 사랑은 가을을 끝낸 들녘에 서서 사과 하나 둘로 쪼개 나눠 가질 줄 안다 너와 나와 우리가 한 별을 우러러보며 - 김남주 「사랑은」 ​ ② 시간의 동일성 1) 비동일성의 세계 플라톤 - 인간은 한 순간도 동일할 수 없다. 만물은 계속 변한다. 자기정체성 불가 2) 자기동일성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물리적인 논리로 볼 때 결코 같을 수 없지만 이를 같은 것으로 동일시하려는 몽상, 그리하여 나는 시간의 흐름 속에 연속적인 존재가 아니라 고정적인 존재라는 생각이나 느낌이 바로 자아 동일성의 한 단서가 된다. 그리하여 시인은 과거 - 현재 - 미래 라는 선조적 수평적 시간관을 파괴하고 수직적, 또는 혼합적 시간의 질서를 새롭게 구축한다. ​ 훠이훠이 산을 넘고 엉겅퀴 어우러진 골짝을 지나 억만 년 숨어 사는 넓적바위 아래 옹달샘 하나 낮에는 푸른 하늘 가슴에 품고 밤에는 은하수 한줄기로 목을 축이고는 졸졸졸 찬송가 78장을 연거푸 불러대는 저 태고의 청아한 목청 - 홍문표 「생수를 마시며」에서 ​ ③ 영원한 현재 서정시에 있어서의 시간은 과거를 현재화하고 미래도 현재화한다. 이것은 앞서 밝힌 바와 같이 한순간도 동일할 수 없는 삶이지만 그러한 변화 속에 불변의 영원함을 찾으려는 플라톤적 이상이기도 하며 불변하는 자아의 동일성을 지속적인 시간 속에서 발견하려는 통시적 인생관이기도 하다. 또한 인과관계나 객관적인 논리를 통하여 인생의 리얼리티를 표현하려는 서사시나 소설과는 달리 순간의 감정과 정서와 관념을 표현하려는 것이 서정시이기 때문에 과거, 현재, 미래라는 물리적 시간의 순서를 초월하여 과거와 미래도 현재로 허구화하는 것이다. 이러한 진실에서 서정시는 영원한 현재가 되는 것이다. ​ 에밀레가 운다 에밀레가 운다. 시간조차 스며들 수 없는 무쇠성 속에 갇히어 어린 슬픔이 운다. 목이 타서 목이타서 호소할 곳 없는 기막힘이 운다. - 이원섭 「에밀레」에서 ​ (3) 세계의 주관화 의미와 정서의 동일성 ① 객관적 세계의 비극 객관적 세계는 존재들을 한결 같이 사전적 개념, 인습적 개념의 울타리 속에 감금하고 있다. 따라서 객관적 세계 인식에서는 인간과 물질, 정서와 사상, 사물과 사물 모두가 개별화 고립화 되어 있다. 여기에 객관적 세계의 소외가 있고, 고독이란 비극이 있다. ② 시정신, 그리고 서정시 - 새 하늘과 새 땅 따라서 시의 본질은 바로 객관적 세계인식의 고립화, 소외현상을 극복하고 세계의 통합, 감금된 개념의 철폐, 모든 존재들의 숨겨진 가치를 발견, 이질적인 의미와 정서의 동일성을 찾아가는 새 하늘과 새 땅의 끝없는 탐험이다. ​ 낙엽은 나비가 되고 나비는 가난한 불꽃 새벽이슬 비탈진 언덕의 개나리 빙하기의 공룡 발자국 여자의 아린 눈물 가시 돋힌 흑장미 에덴의 처음남자 - 자작시 「낙엽은 나비가 되고」에서 ​ 의식은 한 마리 작은 산새 톱니 같은 부리와 羽毛의 날개를 단 무색투명한 어둠 속의 새 무성한 여름 날엔 나무가지 잎새 속에 숨어 살면서 까칫까칫 잎새마다 구멍을 뚫다가 목말라, 목말라, 구멍을 뚫다가 - 홍윤숙 「한 마리 작은 새」에서   한국서정시의 전통 ​ 홍문표 ​ (1) 사랑과 한의 노래 과거 서정시의 중심은 역시 사랑의 노래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 사랑을 주제로 한 시들의 공통점은 모두가 부재(不在)한 님에 대한 연민의 노래가 주류를 이룬다. 현재는 님이 없는 그래서 님에 대한 그리움과 연모의 정이 시로 표출된다. 떠나간 님에 대한 그리움이나 다시 돌아올 것을 기다리는 여인의 안타까운 감정이 심화된 상태를 우리는 한(恨)이라고 한다. 우리는 역사적으로 많은 이별을 경험한 민족이기에 부재한 님에 대한 연민과 한이 많다. ​ 펄펄나는 꾀꼬리는 쌍쌍이 즐기는데 외로운 이내 몸은 누구와 함께 돌아갈거나 - 유리왕 「황조가」 ​ 가시리 가시리 잇고 나난 바리고 가시리 잇고 나난 위증즐가 태평성대 ​ 날러는 엇디 살라 하고 바리고 가시리 잇고 나난 위증즐가 태평성대 ​ 잡사와 두어리 마나난 선하면 아니욜셰라. 위증즐가 태평성대 ​ 셜온님 보내압노니 나난 가시는 듯 도셔오셔쇼 나난 위증즐가 태평성대 - 「가시리」 ​ 동지달 기나긴 밤을 한허리를 버혀내어 춘풍니블 아래 서리서리 너헛다가 어론님 오신 날 밤이여든 구뷔구뷔 펴리라. - 황진이 시조 ​ (2) 현대시의 서정적 전통 ① 서정적 전통의 의미 한국시의 서정적 전통이라면 한국적 정서, 한국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는 시를 말하는 것인데 정서적으로 보면 앞서 본 것처럼 부재한 님을 노래하는 사랑의 시와 민중성을 지니고 있는 민요적 가락, 한국적 특징을 나타내는 자연미의 표현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② 근대시에 나타난 서정적 전통 개화기 이후 근대시에 나타난 전통적 서정은 한과 애상(哀傷)을 기조로 하고 역시 전통적 형식인 민요적 율격을 사용하여 독특한 시의 세계를 개척한 것이 김소월이다. 또한 서구사조를 수용하면서도 전통적인 가락과 정서를 표현했던 김억, 일제라는 현실에서 부재한 님을 노래했던 한용운 등은 소월의 유교적 의식, 김억의 서구적 의식, 한용운의 불교적 의식이라는 편차에도 불구하고 전통적 정서와 가락에 접맥된 서정시라 할 수 있다. 1930년대 시문학파, 1940년대 청록파 등에서도 전통적 서정을 발견할 수 있다. ​ 접동 접동 아우래비 접동 ​ 진두강 가람가에 살던 누나는 두강 앞 마을에 와서 웁니다. ​ 옛날, 우리 나라 먼 뒤쪽의 두강 가람 가에 살던 누나는 의붓어미 시샘에 죽었습니다. ​ 누나라고 불러 보랴 오오 불설워 시새움에 몸이 죽은 우리 누나는 죽어서 접동새가 되었습니다. ​ 아홉이나 남아 되던 오랩동생을 죽어서도 못 잊어 차마 못 잊어 야삼경(夜三更) 남 다 자는 밤이 깊으면 이 산 저 산 옮아가며 슬피 웁니다. - 김소월 「접동새」에서 ​ 내 마음의 어딘듯 한편에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돋쳐 오르는 아침 날 빛이 빤질한 은결을 도도네 가슴엔 듯 눈엔 듯 또 핏줄엔 듯 마음이 도른도른 숨어 있는 곳 내 마음의 어딘 듯 한편에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 김영랑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 섭섭하게, 그러나 아조 섭섭치는 말고 좀 섭섭한 듯만 하게, ​ 이별이게, 그러나 아주 영 이별은 말고 어디 내생에서라도 다시 만나기로 하는 이별이게, ​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 아니라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 엊그제 만나고 가는 바람 아니라 한두 철 전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서정주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 하늘로 날을 듯이 길게 뽑은 부연(附椽)끝 풍경이 운다. 처마 끝 곱게 늘이운 주렴에 반월이 숨어 아른아른 봄 밤이 두견이 소리처럼 깊어가는 밤 곱아라 고와라 진정 아름다운지고 파르란 구슬빛 바탕에 자주빛 호장을 받친 호장 저고리 호장 저고리 하얀 동정이 환하니 발고소이다. 살살이 퍼져 내린 곧은 선이 스스로 돌아 곡선을 이루는 곳 열두 폭 기인 치마가 사르르 물결을 친다. 치마 끝에 곱게 감춘 운혜(雲鞋) 당혜(唐鞋) 발자취 소리도 없이 대청을 건너 살면서 문을 열고, 그대는 어느 나라의 고전을 말하는 한 마리 호접 호접인 양 사풋이 춤을 추라, 아미(蛾眉)를 숙이고...... 나는 이밤에 옛날에 살아 눈감고 거문고 줄 골라 보리니 가는 버들인 양 가락에 맞추어 흰 손을 흔들어지이다. - 조지훈「고풍의상」 ​ ③ 현대시에 나타난 전통적 서정 1950년대 이후 전통적 서정의 모습은 구자운, 박재삼, 박성룡 등에서 볼 수 있고 1970년대를 넘으면서도 전통적 서정의 맥락은 여전하다. 송수권, 민용태 등의 시는 향토적인 자연을 소재로 하여 그 안에 살고 있는 한국의 서민 의식을 재치 있게 형상화하고 있다. ​ 누님의 치맛살 곁에 앉아 누님의 슬픔을 나누지 못하는 심심한 때는 골목을 빠져나와 바닷가에 서자. ​ 비로소 가슴 울렁이고 눈에 눈물 어리어 차라리 저 달빛 받아 반짝이는 밤바다의 질정(質定)할 수 없는 괴로운 꽃비늘을 닮아야 하리. ​ - 박재삼 「밤 바다에서」에서 ​ 누이야 가을산 그리메 빠진 눈썹 두어 낱을 지금도 살아서 보는가 爭爭한 눈물 돌로 눌러 죽이고 그 눈물 끝을 따라가면 즈믄밤의 강이 일어서던 것을 그 강물 깊이깊이 가라앉는 苦惱의 말씀들 돌로 살아서 반짝여 오던 것을 더러는 물속에서 튀는 물고기같이 살아오던 것을 그리고 山茶色 한 가지 꺾어 스스럼없이 건네이던 것을 - 송수권 「山門에 기대어」에서 ​ 그대 보고 싶은 마음 죽이려고 산골로 찾아갔더니 때 아닌 단풍 같은 눈만 한없이 내려 마음속 캄캄한 자물쇠로 점점 더 한밤중을 느꼈습니다 벼랑끝만 바라보며 걸었습니다. - 조정권 「벼랑끝」에서 ​ 난 물이 좋아 맑디맑은 물이면 더욱 좋지만 진흙탕 물이라도 좋아 더러운 것도 좋아 물로 사는 나의 식욕은 뭘 먹어도 곰삭아 날마다 순수를 배설하고 시퍼런 결백으로 푸르른 깃대 하나 세우고 하늘만을 바라보며 널 기다리는 그리움이 되거든 난 뜨거운 것도 좋아 활활 타는 햇살이면 더욱 좋아 널 먹고 서야 봄부터 기다려온 여린 꽃봉오리 붉디붉은 가슴 활짝 열고 네가 오는 소부리 길목에서 청사초롱 불꽃으로 태어나거든 -홍문표“연꽃의 노래”  
1032    촛불의 미학 의 해석 - 비수선생 댓글:  조회:919  추천:0  2019-10-24
젖어 있는 불꽃, 타는 액체가 위쪽을 향해서, 하늘을 향해서 수직의 시냇물처럼 흘러가는 것을 볼 것이다.   따로 설명이 필요치 않는 문장이면서도 백만 점짜리 묘사죠. 그럼 어떻게 이런 사유에 이르렀는지를 추적해볼까요? 추적방법은 바로 여러분께서 고생하셨던 보리차 끓이는 방법에서 배우셨습니다.     바슐라르는 초를 본다 불꽃아래서 녹고 있는 촛농을 본다 녹은 촛농이 심지로 스며들고, 스며든 촛농이 불꽃이 되어 치솟는 것을 본다 촛농이 심지의 가장 높은 곳까지 오르는 것을 본다 그리고 그 촛농의 본질을 찾는다 그리고 촛농의 액체적 성질을 물과 비유한다 촛불의 좁고 날렵한 이미지를 떠올린다 물과 좁고 날렵한 이미지를 결합하여 시냇물을 떠올린다 시냇물은 위에서 아래로 내리는 것이나 촛불은 아래에서 위로 수직으로 흐르는 시냇물이라는 이해 가능한 결과에 이른다 그 과정을 하나의 문장으로 만든다       며칠 전 과제로 제시된 보리차 끓이는 법이 왜 그토록 중요한 것이었는지 이 풀이를 보시면 감이 잡히실 겁니다. 여러분들이 좋다고 여겨지는 모든 문장을 역순으로 또는 처음부터 해체하면 이처럼 좋은 문장을 만들 수 있는 매뉴얼을 얻을 수 있습니다. 시적 표현도 좋고, 세밀한 묘사도 좋으니 여러분은 이 방법을 통해 좋은 표현들을 캐내보시기 바랍니다.   좋은 문장들은 필사하면서 체크해두셨던 것을 이용하면 됩니다. 천천히 시간이 허락할 때마다 꼭 문장의 해체를 해보시기 바랍니다.     같은 책상 위에 촛불과 모래시계가 있는 것을 본다. 두 개 다 인간적인 시간을 말하고 있으나 그러나 얼마나 다른 스타일에서인가! 불꽃은 위쪽을 향해서 흐르는 모래시계다. 부서져 내리는 모래보다 가벼운 불꽃은 마치 시간 자체가 항상 무엇인가 해야 할 것처럼 그 형태를 쌓고 있다.   위에서는 ‘초’라는 하나의 사물에서 불꽃과 촛농을 분리하여 상상의 문장을 만들었는데요, 여기서는 모래시계라는 사물을 추가로 끌어들여 그것보다 조금 더 어려운 문장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풀어보면 이 역시 비슷한 순서로 전개된 사유입니다.       책상으로 간다 책상 위 촛불과 모래시계를 본다 모래시계를 관찰한다 위에서 아래로 모래가 떨어져 내린다 마치 물이 아래로 흐르는 것 같다 모래가 떨어져 내리는 것은 시간이 흐름을 의미한다 모래시계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위가 작아진다 양초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아래가 작아진다 따라서 모래시계는 아래로 흐르는 시간이고 양초는 위로 흐르는 시간이다 이 얼마나 다른 스타일의 시간인가 불꽃은 위로 흐르는 모래시계다       불꽃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며 꿋꿋하다. 이 빛은 조금만 불어도 꺼진다. 그리고 또한 그것은 하나의 불씨로서 다시 켜진다. 불꽃은 켜기도 쉽고, 끄기도 쉽다. 삶과 죽음이 여기서는 아주 나란히 놓여 있다.   불꽃을 ‘삶’으로 바꾸어 읽어봅시다.   삶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며 꿋꿋하다. 이 삶은 조금만 불어도 꺼진다. 그리고 또한 그것은 하나의 불씨로서 다시 켜진다. 삶은 켜기도 쉽고, 끄기도 쉽다. 불꽃, 그 속에서 삶과 죽음은 아주 나란히 놓여 있다.   이처럼 좋은 비유는 그것을 바꾸어 읽었을 때 전혀 어색함이 없이 잘 어울리는 것입니다. 이 말을 꼭 기억해두셨다가 시를 쓸 때 적용하는 비유가 비유하고자 하는 원래의 그것과 동떨어지는지 아닌지를 잘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몽상가의 독방에서는 아주 낯익은 물건들이 우주의 신화가 된다. 꺼지는 촛불은 죽어가는 태양이다. 촛불은 하늘의 별보다도 더 천천히 죽는다.   자연적으로 꺼지는 촛불은 어둠에 점점 잠식되어 죽어가는 태양과 같다고 말합니다. 여기서도 느끼셨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바슐라르는 이번에도 촛불을 다른 무엇과 비유하여 그것의 성질을 잘 나타내는데요, 이번엔 태양입니다. 촛불과 태양의 유사성이 이것들을 잘 연결시켜 놓은 것입니다만 실은 이 두 가지는 매우 다른 성질을 가진 것들입니다.   그 이유는 태양은 낮에 존재하고, 촛불은 밤에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이 두 관계는 사랑과 이별, 기쁨과 슬픔, 물과 불의 차이와도 같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는 촛불과 태양이 같거나 비슷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두 사물 모두 빛을 가졌다는 것과 어둠을 밀어낸다는 공통성을 지녔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모든 사물은 같거나 다른 면을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는 마그리트의 논문에서 성질이 다른 각각의 사물을 한 폭의 그림에 담아 신비감을 자아내는 것이 ‘데페이즈망’이라는 회화기법이라 배웠는데요, 위의 초와 태양도 이것을 어떤 측면에서 보고 인식하느냐에 따라 두 사물은 매우 멀게 묘사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문학적 데페이즈망을 시도해보겠습니다.   ‘도마’를 ‘자동차’화 하여 상상으로의 접근을 해볼 참인데요, 이 두 가지 사물은 매우 어울리지 않는 성질의 것들입니다. 서로 어울리지 않으므로 이 두 가지의 관념연결과 시적 비유로의 전개는 되지 않는 것일까요? 그러나 답은 ‘NO’입니다. 단지 모든 비유에서와 같이 도마를 자동차화 하기 위해선 도마에 자동차의 본질을 대입시켜야 하는 것만 잊지 않으면 됩니다. 그럼 시도해볼까요?   먼저 도마를 자동차化 하기 위해서 자동차의 대표적인 특징인 바퀴를 도마 아래 달아서 시동을 걸어봅시다. 그 대상은 ‘노모’로 해봅시다.     /노모가 저녁을 해요, 정차된 도마에 시동을 걸어요/     어떤가요? 도마에 시동을 건다는 표현이 어색한가요? 아니죠? 이것이 바로 ‘낯설게 하기’며 시적 상상이라 불리는 전개죠.   여러분, 시인은 사물의 한쪽 면이 아닌 다른 이면을 보는 자라 했습니다. 이 책을 통해 끝없이 반복하게 될 말이지만 사고의 유연성을 가지십시오. 시의 표현에서 안 되는 것은 없습니다.     심지가 구부러지고, 심지가 까맣게 된다. 불꽃은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어둠 속에서 자신의 아편을 먹는다. 그리고 불꽃은 아무 말 없이 죽는다. 그것은 잠들면서 죽는다.   촛불의 관찰에서 잘 보셨겠지만 불꽃은 까맣게 탄 심지를 둘러싸고 어둠 속에서 자신을 깎아 없애는 아편을 먹습니다. 초는 그렇게 고독한 아편중독자가 되어 사그라지고 깨어나고 합니다.     불꽃 속에서 공간은 움직이며, 시간은 출렁거린다. 빛이 떨면 모든 것이 떤다.   어두운 방 안에서 촛불은 켭니다. 그리고 그것을 살짝 붑니다. 흔들리는 것은 촛불이 아닌 집 전체에 드리워져 있던 육중한 어둠들입니다. 다시 말해 작은 입김으로 어둠을 흔들어 놓는 것입니다. 이것이 빛의 힘입니다.       [과제] 위의 해설을 참조하여 ‘TV’를 ‘나무’화해서 5행짜리 상상의 시를 쓰세요.     눈물의 홈을 따라 눈물이, 숨겨진 눈물이 흘렀던 것이다   초가 눈물을 흘렸다. 초는 촛불의 육체다. 그 육체가 녹아 눈물이 된 셈이다. 그러나 눈물은 멀리 가지 못한다. 초의 눈물은 제 몸을 흘러 다시 살이 되어 굳는다. 그래서 초는 눈물이 살이 되고, 살이 다시 눈물이 되는 윤회의 사물이다.   눈물은 짜다. 그것이 만들어낸 살점의 맛은 맹맹하다. 살점이 온전히 녹아야 한 톨의 소금을 얻는 것인가? 내가 흘렸던 그 많은 눈물도 내 몸의 일부였을까? 그렇다면 지금까지 내가 흘려온 눈물만큼의 살점들이 내 몸 어딘가에서 살점으로 붙어있을 텐데,   나는 가끔 그 눈물들이 내 살갗에 집을 짓고 동그랗게 부풀어 올라오는 일을 몇 번이나 본 적이 있다. 눈물의 집, 그것을 사람들은 물집이라 줄여 읽기도 하였다. 얇은 살갗의 벽을 허물어 그 속의 맑은 눈물들을 흘려낼 때 왈칵 쏟아지는 대책 없는 눈물들, 모든 눈물들이 빠져 나온 빈 집처럼 허물어져버린 그 얇은 살점들,   빗방울도 눈물이다. 겨울에 내리는 빗방울이 처마 끝에서 굳어 물의 튼튼한 살점으로 변한다. 강도 그렇고, 호수도 그렇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눈물은 그 자체가 육체다. 살아 있음이다. 그래서 눈물 그 자체를 우리는 카타르시스라 부르기도 한다.   눈이 내린다. 저것은 구름의 육체다. 저 눈물도 땅에서 쌓여 거대한 구름을 이룬다. 비로소 땅이 하늘이 되는 순간이다.       [과제]   위의 해설을 참고 하셔서 7행짜리 시를 쓰세요. 제목은 자유입니다. 단, 주제가 선명하게 드러나게 쓰세요. 이해를 돕기 위해 눈물로 여러 가지 사유를 보여드린 것뿐이오니 눈물에 너무 많이 치우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보통의 생활에서는 빛을 내기 위해 불을 붙이는 것이다.   보통의 생활에서 우리는 빛을 내기 위해 전등을 켭니다. 보통 생활에서 전등은 단지 빛을 내기 위한 사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 사물은 스위치만 누르면 어둠을 빛으로 바꿉니다. 이것이 전등의 본질입니다.   저를 따라 해보세요. 밝은 방에서 눈을 감습니다. 방이 캄캄합니다. 다시 눈을 뜹니다. 밝은 방이 보입니다. 다시 눈을 감습니다. 방이 캄캄합니다. 눈을 감은 채로 전등을 끕니다. 다시 눈을 뜹니다. 눈 앞이 캄캄합니다. 어둠 속에서는 눈을 감으나 눈을 뜨나 모두 캄캄합니다. 그러나 이 체험은 언제까지나 보통의 생활에서 느낄 수 있는 체험입니다.   그렇다면 똑 같은 방의 똑 같은 환경에서 시적인 체험을 해보겠습니다. 밝은 방에서 눈을 감습니다. 어둠이 보입니다. 눈을 뜹니다. 방이 보입니다. 다시 눈을 감습니다. 어둠의 세계가 보입니다. 다시 눈을 뜹니다. 여전히 밝은 방이 보입니다.   그렇습니다. 눈을 감아서 생기는 어둠의 세계는 공간의 제약이 없습니다. 거긴 벽도 없고 하늘도 없고 나무도 없고 물도 없고 오직 어두운 허공뿐입니다. 신비롭지 않습니까? 여러분은 이 어둡고 넓고 신비로운 세상을 1분에 수십 번이나 다녀옵니다. 이것이 무의식이며 습관처럼 깜박이는 눈꺼풀이 여러분을 의식과 무의식의 세계로 번갈아 이동시키고 있습니다.   눈을 감으면 단지 앞에 있는 것이 안 보이는 게 아니라 현실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은 두 개의 세상을 공존하며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둠의 세계입니다.   다시 돌아갑니다. 저는 위에서 전등을 켜는 순간 어둠이 빛으로 바뀐다고 했습니다. 그럼 이 말이 얼마나 터무니 없는 모순인지 느꼈을 겁니다. 세상의 모든 촛불이나 형광불빛은 어둠을 빛으로 바꿀 수 있는 힘이 없습니다. 그저 그것이 켜지면 어둠은 제 몸에 조그마한 구멍 하나를 내어주는 것뿐입니다.   그리하여 촛불을 켜면 불꽃의 사방으로 검은 나방 떼가 몰려듭니다. 파르르 집단적인 날갯짓으로 촛불을 향해 돌진할 태세로 웅웅거립니다. 그 검은 나방 떼가 바로 어둠입니다. 형광불빛이나 가로등 불빛이나 세상의 모든 불빛으로 검은 나방 떼들이 몰려듭니다. 그 무시무시한 나방들도 어둠의 작은 살점에 불과 합니다.   세상의 모든 불꽃은 그 검은 나방 떼의 습격을 받고 죽습니다.   검은 나방 떼, 그 검은 나방 떼가 어둠의 육체에서 떨어져 나와 빛을 쪼고 빛을 먹고 다시 어둠으로 가 붙습니다.   밤에 검은 나방 떼가 있다면 대낮에는 그림자가 있습니다. 이들도 어둠의 육체들입니다. 이 어둠의 육체들이 사람의 발목을 붙잡고 사물의 발목을 붙잡고 지상의 모든 발목을 붙잡다가 어스름이 내릴 즈음 어둠의 살점으로 붙어 한 몸이 됩니다.   이처럼 우리는 낮과 밤으로 어둠의 살점들로부터 자유롭지 못합니다. 불꽃은 잠시 그림자와 검은 나방 떼를 우리의 등뒤로 물리는 일에만 열중합니다.   이것이 일반적이 아닌 시적의 시안으로 빛을 보는 방법입니다.     [과제] -. 어둠과 노숙자를 잘 엮어 10행짜리 시를 만들어보세요.   ‘불꽃과 동일한 선을 따라 그것은 땅 속에 뿌리를 박고, 촛불이 왁스나 양초나 무슨 기름 따위에서 그 양분을 빨아들여 타고 있는 것처럼 땅 속에서 그 양분을 섭취하는 것이다. 즙이나 수액을 빨아들이는 줄기는 촛불에 있어 그 불이 스스로에게 당겨진 액체로 하여 자신을 유지시키는 것과 같으며, 흰 불꽃 부분에 해당하는 것은 이파리들을 달고 있는 큰 가지와 가느다란 가지들 바로 그것들이다. 그리고 나무의 마지막 목표인 꽃과 열매는 모든 것이 거기에 환원되는 흰 불꽃 부분에 다름아닌 것이다.   어떤 비유를 하기 위해서는 두 사물의 일치점을 찾아내야 합니다. 위의 글은 불꽃과 나무의 일치점을 말하고 있는 것인데 촛불과 나무를 나란히 두고 상호 공통적인 부분들을 끄집어 내어 묘사했습니다.   시적 비유와 묘사란 바로 이런 것을 의미합니다. 비유를 하면서 두 대상의 근접한 이미지를 표현하지 못한다면 그 비유는 실패한 비유입니다.   시적 상상이란 먼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이 사물과 사물의 전범위적인 일치점을 찾는 것이 상상입니다.   늦가을, 플라타너스 낙엽이 떨어집니다. 갑자기 세찬 바람이 불어 그 넓고 붉은 낙엽이 일제히 허공에 흩날립니다. 그 모양이 마치 새 같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는 낙엽과 새의 관계가 형성됩니다.   그럼 그 낙엽을 가리켜 ‘나뭇가지에 앉아있던 새들이 후두둑 날갯짓을 하고 일제히 허공으로 날아오른다’는 비유를 할 수 있습니다. 이 비유에 행을 주면   낙엽   바람 분다 가지 위 새들이 일제히 후두둑 날갯짓 한다 허공으로 새 떼들 떠난다   이와 같은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시가 탄생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중요한 건 어떤 사물을 다른 무엇으로 보고 그것의 연관성을 객관적으로 이을 수 있어야만 좋은 비유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저 사물이 비슷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고 연결만 해놓고 그것의 연관성은 고려도 않은 채 무작정 글을 쓴다면 그 시는 실패한 시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여기서부턴 여러분 모두에게 따끔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은 이미 사물로 침잠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 과정에서 사물의 정면이 아닌, 사물의 이면을 보아야 한다는 말을 수없이 들어왔습니다. 그리고는 과제를 통해 또박또박 잘 해내셨습니다. 그런 여러분께서 실제로 시를 쓰는 과제에선 대부분 그 말을 망각하시고 맙니다. 고정관념을 가지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말씀을 드렸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고정관념으로 사물을 보고, 그 관념으로 시를 쓰시고 계신다는 말씀입니다.   자전거를 타는데 여러분 스스로가 어렵다고 생각하시고 분명히 혼자서도 잘 탈 수 있는 정도로 충분히 인지하고 계신데도 여러분은 아직 뒤에서 누가 자전거를 잡아주길 바라고 있다는 것입니다.   노숙자를 봅시다. 노숙자라는 과제를 드렸더니 대부분 여러분은 학습된 ‘기억’에 의한 노숙자를 호출하여 사유합니다. 노숙자를 고정된 관념으로 보시고는 그들에게 연민을 가지거나 그들의 지저분한 행색을 쓰기 바쁘셨습니다. 심지어는 일상적으로 접하는 그들의 죽음이라든지 도무지 알 수 없는 그들의 가정사까지 넘겨짚기까지 합니다. 지하도와 광장과 대합실과 잠 등 노숙자 하면 떠오르는 관념들 모두가 일반적인, 즉 고정된 관념이란 것입니다.   노숙자에게 행복은 없습니까? 그들이 장난치고 웃고 떠드는 삶은 즐거워 보이지 않습니까? 내가 고단한 육신으로 어두침침한 지하도를 건널 때 기둥과 기둥 사이에서 잠을 청하는 그들이 오히려 행복해보이진 않습니까? 노숙자의 지저분한 얼굴이 그냥 더럽다가 아니라 어떤 부족의 성인식에서 얻은 무늬로 인식할 순 없습니까? 그들의 냄새를 더 깊게 파고 들어가서 그저 ‘냄새 난다’ 가 아닌 그 냄새의 근원을 밝히는 데 집중하는 것은 또 어떻습니까? 슬프겠다. 힘들겠다. 아프겠다. 외롭겠다. 춥겠다. 씻고 싶겠다 등등 그들을 보면 떠오르는 이런 일반적인 사유들로 시를 쓰려 하시니 그 시가 진부하고 식상할 수 밖에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또한 그들을 사람이 아닌 다른 사물로 볼 순 없습니까. 웅크리고 있는 사람을 자루로 볼 순 없습니까? 굳이 사람 전체가 아닌 그 신체의 일부를 확장시켜 시를 쓸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의 손톱도 있고, 머리카락도 있고, 발바닥도 있고, 찢어진 외투도 있고, 주름도 있고, 앞니 빠진 입도 있고, 발가락도 있고, 소주병도 있지 않습니까.   물론 학습은 학습일 뿐이었고 직접 시를 쓰려하니 그 사유가 먹먹해질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스스로 연상력을 키우는 연습을 게을리 하시면 절대 시적 상상력을 키울 수 없습니다.   길을 걷다가 발견하는 모든 사물과 현상들을 다른 무엇으로 대입하여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연습을 한시도 쉬지 말고 하시길 바랍니다.     [과제] -. 고정관념을 벗은 병아리 -. 고정관념을 벗은 할머니 -. 고정관념을 벗은 수감자   각각 고정관념을 벗은 시각으로 위의 사물을 써보시기 바랍니다.      
1031    이미지와 상징 그리고 언어 / 김 잠선(철학 ) 댓글:  조회:1335  추천:0  2019-10-24
이미지와 상징 그리고 언어   김 잠선(철학 )     "그러나 사람들은 그런 것은 보지 않았다. 모두 자신들이 지니고 있던 '이미지'만을 보았던 것이다". 라고 엘리아데는 본 책의 서문에서 그의 견해를 밝히고 있다. 요컨대 인간인식 구조를 형성하고 있는 '이미지'를 칸트의 선험성과 같은 것으로 말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에서 내가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그것이 '이미지'든지 혹은 '상징'이든지 간에 이것들은 인간의 심층적인 구조 안에서 이미 형성된 것이라고 본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 개념들을 다시 '언어'적인 개념으로 정리하고자 한다. 본문의 여러 곳에 예시되어 있는 갖가지의 상징과 제의들은 인간들이 관계해야만 하는 것들 사이의 질서유지를 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를테면 상징은‘저지된’ 욕망들을 서로 어르고 달래며 보듬는 것으로써, 상호간의 합의와 인정을 전재하는 ‘말’(言語)이라는 것이 내가 논지를 전개할 방향이다.     1. ‘이미지’의 개념정리   우리는 ‘이미지’를 시각적인 표상이 주는 것이 전부인 것으로 종종 오인(誤認)한다 . 물론 시각적인 ‘이미지’가 우리가 알고 있는 이미지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또한 중요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은 이미지의 일부분일 뿐이다. 여기서 말하는 이미지는 표상적인 이미지 보다는 좀더 심층적인 차원의 이미지를 말한다. 말하자면 이것은 우리인식이 접하는 모든 경험과는 상관없이 존재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인식이 만나는 모든 경험을 위하여 반드시 필요한 어떤 초월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 인식에 전제된 기본 구조라는 것이다.     2. 인식구조의 토대로 작동하는 ‘이미지’의 영속성   “그러나 사람들은 그런 것은 보지 않았다. 모두 자신들이 지니고 있던 ‘이미지’만을 보았던 것이다”1). 위와 같은 문구를 통해 우리는 엘리아데가 말하고자 하는 인간인식에 대한 개념을 엿 볼 있다. 그의 말처럼 “인간은 대상자체를 그대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고유한 범주를 통하여 인식한다. 다시 말하자면 인간에 의해서 인식된 대상은 이미 언제나 인간적 필터를 통과한 대상이다.”2) 요컨대 엘리아데는 인간의 인식 구조를 형성하고 있는 ‘이미지’를 칸트의 선험적 범주와 유사한 개념으로 말하고 있다. 즉 인간은 대상을 인식 할 때 결코 대상자체를 그대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그의 내부에 조건 지워진 어떤 특정한 형식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정리해보자면 인간인식의 조건적 특성, 그것이 엘리아데가 말하는 ‘이미지’ 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신이 지닌 이미지의 조건이나 한계를 토대로 하여 세상을 본다는 것이다. 인간은 단순히 사물을 순수하게 바라보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가진 인식의 틀에 맞추어 사물들을 재조합, 재구성하여 자신에게 이미 전제된 조건 안에 끼워 맞추는 것이라 할 수 있다.     3. ‘이미지’는 ‘상징’으로   인식하는 주체로서 인간들은 대상을 만날 때, 자신의 이미지에 타당한 근거를 전재로 하여 수많은 ‘이유’와 ‘상상력’을 호출한다. 이것들은 너무나 닮은 것과 다른 것들을 동시에 빚어낸다. 여기에서 관계성은 한계성을 지니게 된다. 이를테면 어떤 대상과 관계를 성립함에 있어 서로 갖는 유사한 이미지와 상반되는 이미지는 인간욕망을 저지 혹은 지연시키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머뭇거릴’ 수밖에 없는 욕망들은 서로를 인식하게 된다. 결국 이들 이미지들은 합일점을 구사하는 어떤 특정한 대안을 모색하게 된다. 그렇게 탄생된 것이 ‘상징’이다. 말하자면 상징은 수많은 이미지들의 결합이며, 모든 인식들의 소망 같은 것이다. 인간이 지닌 ‘이미지’는 ‘상징’을, 상징은 인간심리의 깊이를 만든다. 또한 인간은 자신이 만든 ‘상징체계’에 결박당한다. 이처럼 ‘이미지’는 표면화된 상징체계의 토대로서 존재한다. 말하자면 인간의식 표면에 드러난 모든 상징체계는 무의식적인 ‘이미지’의 토대 위에 세워진 건축물인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상징은 인간심리를 결코 벗어날 수 없을 뿐만 아! 니라, 언제나 실존적 제방(諸方)을 끼고돌게 마련이다.     4.이미지 와 상징은 곧 ‘언어’이다   이미지와 상징을 ‘개념정리’ 혹은 ‘표본’으로의 의미로 이해할 때 우리에게 쉽게 다가온다. 이것은 언어와도 같은 구도 이다. 가령 인식하는 주체로서 대상에 대한 관점은 순전히 ‘나’ 의 관점이다. 내가 대상을 인식하여 정의를 내리기 까지 소용되는 모든 이미지와 상징은 나와 상관되는 것이다. 이들 상관관계를 연결짓는 연결 고리역할을 하는 언어는 인간이 타자와(그것은 인간일 수 있고 자연일수도 있겠지만) 관계할 때 그 관계를 지탱해주는 것이다. 즉 언어는 굳이 입을 맞추지 않더라도 이들 관계가 이루어지도록 매개하는 것이 라고 볼 수 있다. “상징적 세계를 가능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인간의 언어다. 칸트가 인간과 대상 사이에 인식의 선험적 범주가 있다고 하였다면 흄볼트(Humboldt)는 인간과 자연 사이에는 언제나 언어가 존재한다고 하였다. 인간은 대상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의 세계를 통해 흡수하고 소화한다. 소화된 대상은 순수한 외적 대상이 아니라 정신적 행위의 결과다. 따라서 인간의 인식은 수동적 인상(impression)이 아니라 능동적 표현(expression!! )을 포함하고 있다. 대상은 단순히 물질적 대상이 아니라 정신적 대상으로 변화한다. 여기서 정신적 대상은 언어적 의미화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3) ” 요컨데 인간이 지닌 모든 감각기관들 (시각, 청각 후각 촉각 등을 비롯한 모든 감각기관)은 언어로 구성된 조건적 틀에 의해 한계 지어진다는 것이다. 즉 전제조건으로 작동한 언어가 사물을 투과함으로서 정보처리 과정을 거쳐 상징처럼 뚜렷이 그 사물을 판단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사물에서 발산되는 모습 자체가 아니라 이미 조건지어진 언어의 구조로서 우리에게 인식된다는 것이다.     5. 인식의 조건으로서의 언어   철학자 하이데거는 ‘인간의 모든 존재는 언어를 뒤집어쓰고 있다’고 말했고, 가다머는 어떤 존재도 ‘언어로서 이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요컨대 인간이 세상과 만날 때는 반드시 매개인 ‘언어’를 통해서만이 가능한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언어를 통해서 세상을 창조한다. 따라서 인간에게 있어 언어는 신과 같은 것이다. "결국 그 어떠한 의미 체계도 인간의 사고를 벗어날 수 없으며 또한 사고의 유일한 도구는 바로 언어이기 때문에 사고와 언어는 서로 동질의 것이라는 형이상학적인 가정을 기본으로 한다." 또한 "신화의 문제는 사실상 심리학의 문제가 되었으며, 또 우리의 정신이 주로 언어를 통하여 우리에게 객관적인 것이 되므로 언어 과학의 문제가 되었다. 언어와 사고는 분리할 수 없는 것이요. 따라서 언어의 병은 사고의 병과 동일한 것이다. "4)   이처럼 언어는 인간인식의 모든 사유조건으로서 존재한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있어 언어는 선택할 수 있는 어떤 사항이 아니다. 단지 운명처럼 주어지는 것으로서 이미 결정된 사항을 그저 수긍해야만 하는 수동적인 형태를 취해야만 하는 것이다. “인간은 생각이 있기 때문에 말을 하는 것이 아니고, 단지 말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밥을 먹는다거나 걷는다거나 하는 것과 똑같은 자연적인 문제입니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말에 의해 있고 말에 의해 살아가는 것이 자연사적인 조건이라는 것은, 그것을 없앨 수도 해결할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 나는 그것을 이를테면 ‘비극적’이라 불러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5) 고진의 사유처럼 언어는 우리에게 축복이기보다는 삶의 무게로서, 실존에 얹혀두고 전전긍긍하며 살아가는 무거운 비애일 수도 있을 것이다.     6. 언어의 한계성   "언어는 특정한 순간에 한 랑그 속에서 통용되고 있는 명령어들, 암묵적 전제나 발화 행위 같은 명령어들의 집합으로 정의 될 수밖에 없다. 언어는 정보전달을 위한 것도 의사소통을 위한 것도 아니다. 언어는 정보의 소통이 아니라 그와 전혀 다른 어떤 것, 즉 명령어의 전달이다. 또한 이 도식은 잉여를 이론적 최대치로 감소시키는 단순한 제한 조건으로 만든다. 행위와 언표의 잉여 복합체는 필연적으로 집단적 배치 물을 얻어낸다. 이 행위들은 특정 사회에서 통용되고 있으며 이 사회의 몸체들에 귀속되는 비물체적 변형들의 집합이라고 정의될 수 있는 것 같다."6)이처럼 언어는 우리인식 조건에 전제되어 있으면서 욕망에 대한 보편적인 구도형식을 띠고 있다. 결국 언어는 우리 모두가 소망하는 것들이 충돌될 수 있는 요인을 제공하게 된다. 따라서 결코 언어영역을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인식은 한계점에 다다르게 된다. 따라서 타자와의 관계를 지속시키기 위한 합일점을 모색하게 된다. 이러한 한계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에서 계획된 것이 ‘상징’이라고 볼 수 있다.     7. ‘질서 체계’로서의 상징   “상징은 다른 인식 수단으로는 전혀 포착할 수 없는 현실의 어떤 심오한 양상을 밝혀준다. 이미지, 상징, 신화는 마음이 아무렇게나 만들어 놓은 창조물이 아니다. 이것들은 어떤 필요성에 응하고 있으며, 어떤 기능을 다하고 있다. 그 기능은 존재의 내밀한 양상을 숨김없이 드러내주는 데에 있다.”7) 말하자면 인간 인식구조에서 발생된 욕구는 곧 상징들의 결정체라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그 사회가 안고 있는 한계에 대한 예감이나 불안은 신화를 창조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다시 말하자면 한 사회 안에 반드시 발생하기 마련인 한계 상황을 막기 위하여 상징들의 집합체인 신화는 필수적인 것이다. 이를테면 모든 상징, 신화적 행위들은 언술 행위로서 사회질서 유지를 전제로 요청되는 필수적인 것들이다. 이러한 내 사유 방식은 다분히 말리노우스키8)적인 경향에 따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역사적, 구체적, 본원적 존재로서 인간은 '상황' 속에 있다. 인간의 진정한 실존은 역사 속에서 시간 속에서 아버지의 시대가 아닌 자신의 시대 속에서 실현된다. 더욱이 인간은 역사적 시간, 즉 자신에게 ! 속한 자신의 시간, 역사적 동시대성만을 아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시간적 리듬을 알고 있다. "9)이처럼 인간은 상황에 근거한 실존에 의하여 자신을 움직이게 된다는 것이다. 실존적 한계에서 발생되는 상황들은 인식자체가 보유한 '이미지'의 형식에 맞추어 상징들을 창조한다. 이것들은 욕구들의 결정체인 만큼 특수한 힘을 지닐 수 있는 신화로 채택된다. "신화나 상징은 원초의 인간에 의해 자연발생적인 발견 물이 아니라 어떤 사회에 의해서 범위가 정해지고 완성되고 전달된 문화적 복합체의 창작물이라는 것이다. 이 창작물은 원래의 발생지에서 멀리 확산되어, 이렇게 확산되지 않았다면 알려지지도 않았을 민족과 사회에 흡수되었다." 10) 어떤 식으로든지 세상과 함께 삶을 살아내야만 하는 인간들은 그리 폭넓은 선택권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결코 헤어질 수 없는 타자와의 합의를 전제로 하여 어떤 대표성을 띠는 거대한 언술 행위를 사방에 뿌렸어야만 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인식하는 행위자들의 욕구를 저지하거나 억압하여 세상과 인식주체 사이의 질서를 확보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를테면 이것이 언어가 창조해낸 유토피아적 기? ???갖춘 거대하고도 새로운 세상을 열었다고 볼 수 있다. " 구체적인 것은 바로 역사 속에서, 역사를 통해서 구현된 종교현상이다." 11)   『이미지와 상징』의 전 후반을 관통하는 엘리아데의 사유는 줄곧 인간고유의 인식조건이 인간과 다른 세상을 어떻게 파악하고, 재구성하여 우리의 인식구조 속에 포획하게 되는지에 대하여 서술하고 있다. 물론 이 모든 계획들은(우리가 대상을 이해할 수 있도록 우리인식의 구조에 알맞도록 재 서술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에서 실현되는 행위들) 인간 고유의 영역인 이미지와 상징을 통해서만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우리에게 '이미지'가 있어 세상을 바라볼 수 있고, 우리가 어떤 것을 '기억'할 수 있어 '상징'을 건립할 수 있다. 또한 이모든 것은 언어구조의 형식으로 되어있다. 그러므로 내가 상상력에 빠지는 순간 내 사유 속에 내재되어 있던 무수한 낱말들은 익숙한 언어로, 혹은 문장으로 내 사유 깊숙이 내려앉아 새로운 창조를 시도한다.     ---- 1)미르치아 엘리야데,, 이재실 옮김 (까지,1998),14쪽. 2)이 경재, , (다산, 2002), 23쪽. 3)같은 책, 24쪽. 4) 신항식, , (문학과 경제사, 2003),98쪽. 5) 가라타리 고진, , 조영일 옮김 (도서 출판 b, 2004), 66쪽. 6)질 들레즈, 페트릭스 카타리, ,김재인 옮김 (새물결 ,2003),154 ∼ 157쪽. 7)미르치아 엘리아데, , 이재실 옮김 (까치.1998쪽), 15쪽. 8)말리노우스키는 그의 저서인『원시 시화론』에서 모든 신화는 한가한 서사시도, 혹은 목적 없는 공허도 아니며, 이것은 매우 중요한 문화적 힘이라고 말한다. 그는 신화는 인간이 세상과 만나 일생을 살아 나가는 동안의 실용적인 모든 중요한 면에 집중되어 있음을 강조하였다. 9)미르치아 엘리아데, , 이재실 옮김(까치, 2002),37~38 쪽. 10)같은 책, 38~ 39쪽. 11)같은 책, 35쪽.
1030    홍문표 시창작 강의 노트 7 댓글:  조회:952  추천:0  2019-10-24
홍문표시창작강의 노트 29 리듬의 본질과 한국시가의 율격 ​ 홍문표 ​ (1) 리듬의 본질 ① 리듬은 소리의 반복성만이 아니다 리듬(rythm)의 기본 의미는 율동(律動)이다. 이 말은 규칙적인 동작이란 뜻이다. 따라서 소리의 일정한 규칙만이 아니다. 우리는 주로 리듬을 음악의 요소로만 배워왔고 고대시가의 경우 운문(verse, 韻文), 율격(metre, 律格), 음수율, 음보율 등으로 작시법을 말하고 있기에 일반적으로 리듬이라면 음악의 요소나 소리의 일정한 규칙으로 알고 있고, 시에서 리듬이라면 당연히 음성적인 규칙인 것으로만 알고 있다. 이러한 선입관을 버려야 시의 진실을 체득할 수 있다. ​ ② 리듬은 지상적인 인식의 단위다. 규칙적인 동작의 인식, 모든 것을 나누어 보고 같은 것끼리 모아보고 마디를 나누어 보는 것은 인간의 감성적인 인식만이 아니라 지적이고 과학적인 사고다. 그러한 작업을 통해 사물의 변별성과 의미의 차이와 가치를 구별한다. 천상엔 영원한 시간, 영원한 공간, 영원한 감성만 있기에 길고 짧음, 시작과 끝의 변별성이 없다. 그러나 지상의 모든 존재는 처음과 끝이 있고, 전체와 부분이 있고, 모든 전체는 부분과 마디들에 의해서 구성되고 있다는 인식체계를 갖고 있다. 혈관의 맥박 즉 혈류의 리듬을 통해 병세를 진단하는 것도 그런 이치다. ​ ③ 모든 생명체는 리듬이 있다. 생명체는 기본적으로 호흡과 맥박의 리듬이 있고, 탄생, 성장, 죽음이란 성장의 리듬이 있다. 인간의 경우 유아기, 유년기, 청년기, 장년기, 노년기로 구분한다. 시간의 경우도 과거, 현재, 미래, 역사의 경우는 고대, 근대, 현대라는 마디의 리듬이 있다. 따라서 리듬이 있는 것은 생명이 있는 것이고 변화가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우주에도 리듬이 있다. 해달 별들은 각자의 리듬을 가지고 우주 질서를 유지한다. 따라서 문학, 특히 시가 생명력을 갖는 것도 리듬이 있기 때문이다. ​ ④ 리듬은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 문학의 생명은 감동이다 그런데 감동이란 변화와 반복에 대한 심리적 반응이다. 자극의 길이, 강도, 성질에 따라 반응도 다르다. 따라서 리듬은 슬픔, 기쁨, 놀라움, 깨달음 등 인간의 감정을 조절할 수 있다. 그 조절의 대표적 양식이 음악이다. 음악은 소리의 리듬으로 감정을 조절한다. 그러나 감정의 조절은 소리 뿐만 아니라 색깔, 냄새 등 모든 감각적 요소로도 가능하며 동작과 의미 있는 언어의 반복으로도 가능하다. ​ ⑤ 리듬의 신통력 리듬은 개인의 감정을 조절할 뿐만 아니라 집단의 감정을 조절한다. 노동, 전쟁, 제사, 군중대회 등에도 리듬의 음악과 반복되는 가사가 사용된다. 기도문, 주문, 최면사의 주문도 그 반복성으로 신비감을 체험한다. ​ 모시자 모시자 지신님네를 모시자 지신님네를 모시어라 남선부중아 대한민국 경상북도 울진군이요 면은 기성면이요 기성아 대동아 시우야 삼년만큼 우별신으로 드리시구요 좌별신을 드리시는데 차례차례로 모시어라 - 울진군 지성면 기성리 지신굿 무당의 주문 ​ 강신제 - 접신 - 엑스타시(extasy) 굿거리장단 + 무당의 주문 + 춤 = 격렬한 반복적 리듬이 작용. ​ (2) 리듬의 체험 ① 우주자연의 리듬 천체의 운행 1년 365일의 반복. 해와 달의 주기적 운행. 밤과 낮의 반복. 4계의 반복. 밀물과 썰물. 소생. 개화. 결실. 낙엽의 반복. ② 생리적 리듬 맥박. 호흡. 운동. 동작. 일과 휴식. 잠과 깸. ③ 심리적 리듬 행복과 불행. 기쁨과 슬픔. 만족과 불만족. 쾌감과 불쾌감. 희망과 절망. 아픔. 괴로움. 두려움. 쓰라림. 달콤함. 외로움 등 감정의 변화. ④ 삶의 리듬 성공과 실패. 만남과 이별. 탄생과 죽음. 선과 악. 결합과 분열. 가치와 무가치. 진실과 거짓. 전진과 후퇴. ⑤ 리듬의 정의 따라서 리듬이란 음성뿐만 아니라 모든 존재들 속에 나타나는 등시성(等時性), 등장성(等長性), 반복성(反復性), 규칙성(規則性)등 율동(律動)으로 야기되는 감동(感動)의 현상을 말한다. ​ (3) 고대시가와 리듬 ① 음악적 리듬만을 중요시한 고대시가 고대시가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음악적 리듬을 시의 감동적 방식으로 사용하였다. 고대 문학의 2대 장르 운문(韻文, verse)과 산문(散文, prose) 운문 : 운이 있는 글. 여기서 운(韻)이란 소리의 규칙이다. 그 규칙을 운율(韻律) 또는 율격(律格)이라고 한다. ② 한시의 운율 운율은 소리(sound)의 규칙이다. 좀 더 감동적인 시가를 위해 과거 한시나 영시에는 소리의 규칙을 정했는데 이러한 규칙을 압운법(押韻法) 이라 한다. 한시의 압운법은 짝수구 말미를 동일한 운으로 하는 것이고, 영시의 압운법은 자음과 모음, 또는 서두(두운) 중간(요운) 끝(각운)에 동일한 음성을 배치한다. ​ 客睡何曾着 객수하증착 나그네 잠이 어찌 일찍 오리 秋天不肯明 추천불긍명 밝은 가을 하늘 즐기지 않는데 入廉殘月影 입렴잔월영 새벽 달 그림자 발 사이로 비취고 高枕遠江聲 고침원강성 베개를 높이니 멀리 강물 소리 計拙無衣食 계졸무의식 재주가 없으니 옷도 밥도 없어 途窮仗友生 도궁장우생 살아감이 어려워 친구에게 의지했네 老妻書數紙 노처서수지 늙은 아내 몇 장의 편지에는 應悉未歸情 응실미귀정 못 가는 내 뜻을 다 안다고.. - 杜甫의 「客夜」 ​ 위 시는 다섯 자를 규칙으로 한 오언시다. 그리고 두 구절을 한 행으로 한 오언율시다. 그런데 시인은 짝수 구 마지막 자를 명․성․생․정 등 ㅇ음으로 압운하고 있다. 이를 압운법이라 한다. 이러한 시를 운문이라고 한 것이다. ​ (4) 한국시가와 율격 ① 한국시가의 특징 한국 시가는 한시나 영시와 같이 엄격한 운율, 즉 압운법은 형성하지 못했다. 간혹 압운의 형태를 볼 수 있지만 정해진 규칙이라기보다 우연의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 ​ 그냥 갈까 그래도 다시 더 한번... ​ 저 山에도 까마귀 들에 까마귀 西山에는 해 진다고 지저귑니다. ​ 앞 江물 뒷 江물 흐르는 물은 어서 따라 오라고 따라 가자고 흘러도 연달아 흐릅디다려. - 김소월,「가는 길」전문 ​ 압운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단위로서 ‘그’(그립다, 그리워, 그냥, 갈까, 그래도) ‘하’(할까, 하니)를 지적할 수 있다. 이 경우는 모두 ‘두운’의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그러나 규칙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다만 이러한 음성의 청각적 효과가 리듬감을 조성하는 것은 사실이다. ② 한국 전통 시가의 율격 다만 한국의 전통적 시가에는 압운법 대신 율격이 있었다. 율격이란 시가의 모든 음성적 규칙이라는 면에서 포괄적 개념이다. 따라서 음수율, 음성율, 음위율을 말한다. 여기서 음수율은 글자의 수, 음절의 수를 말하고, 음성율은 음성의 고저, 장단, 강약, 음위율은 운의 위치 즉 압운을 말한다. 이중에서 한국의 시가는 음수율(音數律)과 음보율(音步律)만 있다. ③ 음수율 1) 자수의 규칙 음수율은 음절의 수, 곧 행의 마디를 구성하는데 사용되는 일정한 자수의 규칙을 말하고 있다. 영시에서는 강약 중심의 운율이 사용되지만, 한국 시에서는 중국의 오언시, 칠언시, 그리고 일본의 하이꾸(배구)와 같이 음절수를 율격의 원칙으로 삼고 있다. 음수율은 음절의 수, 곧 자 구 행을 구성함에 일정한 수를 배열하는 법칙, 즉 음절시(syllabic verse)의 율격이다. ​ ㉮ 살어리 살어리 랏다. 청산에 살어리 랏다. -「청산별곡」에서 ​ ㉯ 元渟文 仁老詩 公老四六 李正信 陣翰林 雙韻走筆 -「翰林別曲」 ​ ㉰ 청산은 어찌하여 만고에 푸르르며 유수는 어찌하여 주야에 궂지 아니난고 우리도 그치지 마라 만고상청 하리라. - 李滉의「陶山十二曲」에서 ​ ㉱ 무심한 세월은 물흐 고야 염냥이  아라 가 고텨오니 듯거니 보거니 눗길 일도 하도 할샤 - 鄭徹의「사미인곡」에서 ​ ㉲ 송화가루 날리는 외딴 봉우리 윤사월 해 길다 꾀꼬리 울면 - 박목월의「윤사월」에서 ​ ㉮ 3 3 2 조 ㉯ 3 3 4 조 ㉰ 3 4 3 4 조 ㉱ 4 4 조 ㉲ 7 5 조 ​ 2) 음수율의 문제점 한국의 전통시가의 음수를 보면 2자 3자 4자가 가장 많다. 그러나 이것은 규칙이라기 보다. 한국어의 어휘가 2음절 또는 3음절이어서 조사가 붙으면 3자 또는 4자가 된다. 뿐만 아니라 시조의 경우 3․4․3․4(초장) 3․4․3․4(중장) 3․5․4․3(종장) 이라하지만 이 규칙에 맞는 시조는 7%에 불과하다. 따라서 한국 시가의 음수율은 객관성이 약하다. 이에 음보율이 제기된다. ​ ④ 음보율 1) 음보의 규칙 음보(音步, foot) 는 낭독시 읽혀지는 호흡단위로 이는 악보의 마디와 같다. 4박자 마디일 경우 음절(가사)이 몇이든 4박자의 길이(시간) 안에 소리를 내듯이 한국 시가는 한 행이 3음보, 4음보의 등장성으로 되어 있다. ​ ㉮ 대동강 / 너븐디 / 몰라셔 비내여 / 노다 / 샤공아 -「서경별곡」에서 ​ ㉯ 내버디/ 몇이나니/수석과/송죽이라 동산의/오르니/긔 더욱/ 반갑고야 두어라/ 이다 밧긔/ 더야/ 무엇리 - 윤선도의「오우가」에서 ​ ㉰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 민요「아리랑」에서 ​ ㉮ 3음보 ㉯ 4음보 ㉰ 3음보 ​ 2) 동량음보와 층량음보 인용된 ㉮는 한음보의 음절이 3이다. 그러나 ㉯와 ㉰의 음보는 음절수가 각각 다르다. 앞의 것을 동량음보, 뒤의 것을 층량음보라 한다. 3) 음보의 전통과 현대시 나 보기가/ 역겨워 / 가실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 - 김소월「진달래 꽃」에서 ​ 못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대로/ 한세상/ 지내시구려// 사노라면/ 잊힐날 / 있으리다// - 김소월「못잊어」에서 ​ 남들은/ 자유를/ 사랑한다지마는// 나는/ 복종을/ 좋아하여요// 자유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당신에게는/ 복종만/ 하고 싶어요// - 한용운「복종」에서 ​ 해야/ 솟아라/ 해야/ 솟아라// 맑갛게/ 씻은 얼굴/ 고운해야/ 솟아라// 산넘어/ 산넘어서/ 어둠을/ 살라먹고// 산넘어/밤새도록/ 어둠을/ 살라먹고// 이글이글/ 애뛴 얼굴/ 고운해야/ 솟아라// - 박두진「해」에서 ​ 송화가루/ 날리는/ 외딴 봉우리// 윤사월/ 해길다/ 꾀꼬리 울면// - 박목월「윤사월」에서 ​ 그립고/ 아쉬움에/ 가음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 서정주「국화옆에서」에서 ​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풀아래/ 웃음짓는/ 샘물같이// - 김영랑「돌담에 속삭이는 햇발」 ​ 어느 먼-곳의/ 그리운/ 소식이기에// 이 한밤/ 소리없이/ 흩날리느뇨// 처마끝에/ 호롱불/ 여위어가며// 서글픈/ 옛 자췬 양/ 흰 눈이 내려// 하이얀 입김/ 절로/ 가슴이 메어// 마음/ 허공에/ 등불을 켜고// 내홀로/ 밤 깊어/ 뜰에 내리면// ​ 먼- 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 - 김광균「설야」에서   홍문표시창작강의 노트 30 현대시의 리듬 ​ 홍문표 ​ (1) 보다 감동적인 형식으로서 시의 리듬 ① rythem and metaphor 시의 근본적인 특성이 무엇일까. 논자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웰렉과 워렌은 시의 근본적인 특성을 rythem과 metaphor(은유)라고 했다. 이는 보다 감동적인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산문도 리듬이 있고 은유도 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시보다는 약하다. ② 과거엔 리듬을 외형적 음성의 규칙에 있다고 생각했다. 정형시 - 5언시, 7언시, 4.4조, 7.5조 율격 - 음수율, 음성율, 음위율, 음보율 운율 - 두운, 요운, 각운, 모음운, 자음운. ③ 현대시는 리듬을 외형적(객관적, 기계적) 음성규칙에 한하지 않고 개성적이고 다양한 리듬을 구사하고 있다. 이를 내재율(內在律)이라고 한다. 따라서 현대시에도 리듬이 절대적 요건이고 앞으로도 불변의 요소다. ​ (2) 현대시의 개성적 리듬과 행과 연 갈이 ① 리듬으로 행과 연 가르기 시의 행과 연은 산문이 사건의 연속을 드러내기 위해 어휘를 연속적으로 기술하는 것과 달리 행과 연을 갈라 사물의 어떠함을 느낌의 마디(행), 의미의 마디, 이미지의 마디를 만들고 있는데 그 원칙은 오직 개인의 창조적이고 주관적인 입장에서 구분한다. ​ 이 개미들을 위하여 6월은 연분홍 잠옷속에 있는 소녀의 ​ 이마위에서 푸른 6월은 총살되고 - 전봉건의 「개미를 소재로 하나의 시가 쓰여지는 이유」에서 ​ 이 시는 과거의 음성적 규칙, 음수율, 음보율을 거부하고 독자적인 행갈이와 연 갈이를 통해 개성적이고 신선한 리듬을 창조한다. 감동의 방식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다. ② 객관적 등장성과 현대시의 주관적 등가성(等價性) 과거의 행갈이는 음수나 음보의 길이의 동일한 규칙, 즉 등장성에 근거했다. 4.4조, 7.5조, 3음보, 4음보가 그것이다. 그러나 현대시는 철저히 시인 자신의 주관적인 등가성의 기준에 따른다. 전봉건의 앞의 시에서 각 행은 음수도 음보도 다르지만 각행의 중요성, 가치, 중량은 동일하다는 시인의 주관적인 판단으로 쓰여진 것이다. ​ (3) 현대시의 리듬 만들기 ① 문법적 어휘의 반복 1) 문장의 반복 ​ 나 혼자 훌훌 떠나 바다로 간다. ​ 난초도 거문고도 백자항아리도 버리고 장서도 가족들도 꽃밭도 버리고 ​ 바다만 앞에 있는 바다만 뒤에 있는 바다만 옆에 있는 바다 망망한 가운데 심해선 저쪽 일렁이는 파도 위를 알몸 누워 간다. ​ 가슴에는 다만 하늘 가슴에는 다만 태양 ​ 갖고 싶던 아무것도 잊어버리고 알고 싶던 아무것도 잊어버리고 보고 싶던 아무것도 잊어버리고 ​ 처음 혼자 홀로인 혼자만의 나 순간이 그 영원 영원이 그 순간으로 출렁거리는 ​ 나 혼자 훌훌 떠나 바다로 간다. 동해 파도 한가운데 바다로 간다. - 박두진「바다로 간다」 ​ 인용한 시를 보면 우선 “나 혼자 훌훌 떠나 바다로 간다.”라는 문장이 처음과 끝에 반복된다. ​ 2) 구절의 반복 동일한 어구나 어절을 반복하는 경우다. 앞에 인용한 「바다로 간다」에서 보면 이러한 방식이 두드러진다. ​ (1) 바다만 앞에 있는 바다만 뒤에 있는 바다만 옆에 있는 ​ (2) 가슴에는 다만 하늘 가슴에는 다만 태양 ​ (3) 갖고 싶던 아무것도 잊어버리고 알고 싶던 아무것도 잊어버리고 보고 싶던 아무것도 잊어버리고 ​ 3) 어휘의 반복 셋째로 동일한 낱말의 반복을 들 수 있다. 인용한 시에서 ‘바다’라는 명사가 7회나 반복된다. 뿐만아니라 ‘간다’, ‘있는’, ‘버리고’, ‘싶던’, ‘아무것도’ 등의 낱말들도 반복되어 나타난다. 동일한 낱말의 반복은 그것이 명사일 수도 있고 동사나 부사일 수도 있다. ‘바다만 앞에 있는’ ‘가슴에는 다만 하늘’ ‘갖고 싶던 아무것도 잊어버리고’ 의 경우 마지막 단어를 보면 한 행의 끝인데도 관형어, 명사, 부사어 등으로 그 다음을 생략해 버린 경우도 있다. ​ 4) 조사의 반복 조사의 경우 ‘도’ ‘는’ ‘만’ ‘에’‘로’ 등이 많고 어미의 경우 ‘ㄴ다’ ‘고’ 등이 있어 음악적 흥취를 고조시키고 있다. 허사는 이처럼 실사들의 관계나 문법적인 기능만을 갖는 것이 아니라 이들의 반복적 배열을 통하여 시의 리듬을 강화하고 의미의 요소들이 해결할 수 없는 보다 섬세한 감정의 세계를 구체적으로 나타내는 데 절대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다. ② 의미의 반복 리듬이란 소리의 일정한 반복만이 아니다. 행동의 일정한 반복, 사고의 일정한 반복, 빛의 일정한 반복도 리듬이다. 리듬이란 바로 율동(律動)이다. 모든 움직임의 규칙적인 반복이란 뜻이다. 따라서 현대시의 리듬, 현대시의 내재율을 이해하는 길은 반드시 시에 나타난 음성적 규칙만이 아니라 이미지의 반복, 의미의 반복, 정서의 반복도 모두 시의 리듬이 된다. ​ 1) 님은 갔습니다(a1)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a2)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지고 갔습니다.(a3)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세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b1)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 놓고 뒷걸음질 쳐서 사라졌습니다.(b2)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b3) - 한용운「님의 침묵」에서 ​ 2) 구겨진 누더기들의 동그란 어깨 위에 해는 지고 어둠이 깔리고 있었다.(a1) 누더기들의 하얀 가슴팍엔 진한 땀내음이 번지고 있었다.(a2) 누더기들의 입언저리엔 오장육부에서 튀쳐 나오는 구린내가 번지고 있었다.(a3) - 정상구「북을 치는 綠豆의 씨들」에서 ​ 1)의 (a1)(a2)(a3)는 님과 이별 ‘갔습니다’의 의미상 반복. (b1)(b2)(b3)는 님의 부재에 대한 심정의 반복 2)의 (a1)~(a3)는 누더기의 상태에 대한 의미의 반복. ​ ③ 이미지의 반복 이는 먼 해와 달의 속삭임(a1) 비밀한 울음.(a2) ​ 한 번 만의 어느날의 아픈 피 흘림(a3) ​ 먼 별에서 별에로의 길섶의 위에 떨궈진 ​ 다시는 못 돌이킬 엇갈림의 핏방울(a4) ​ 꺼질 듯 보드라운 ​ 황홀한 한 떨기의 아름다운 정적(a5) ​ 펼치면 일렁이는 사랑의 湖心아.(a6) - 박두진「꽃」에서 ​ 이미지(a1) - 해와 달이 속삭임 이미지(a2) - 비믹한 울음 이미지(a3) - 아픈 피흘림 이미지(a4) - 엇갈림의 핏방울 이미지(a5) - 아름다운 정적 이미지(a6) - 사랑의 호심   홍문표시창작강의 노트31 구조시학의 논리 ​ 홍문표 ​ (1) 시와 구조 ① 사물에 대한 구조적 인식 1) 구조의 의미 - 구조란 사물을 지탱하고 있는 골격. 존재원리를 말한다. 모든 사물은 전체와 부분의 유기적 관계라든지 우주만물은 모두 그 속에 원리가 있다는 생각은 이성적 가치를 추구하는 인간의 부단한 이상이다. ​ 2) 구조의 역사적 논리 플라톤 - 현상은 본질(Idea)의 그림자다. 아리스토텔레스 - 문학작품은 하나의 물고기 마르크스 - 경제적 하부구조와 문화적 상부구조 프로이드 - 이드, 자아, 초자아. 과학 - 물질 = 분자 - 원자 동양 - 음양오행 인식론 - 정신과 물질, 이성과 감성 소쉬르 - 언어 = 랑그 + 빠롤 ​ 3) 구조주의 입장 ㉮ 전체성의 논리, 전체는 부분들의 단순한 집합이 아니다. 일정한 법칙에 의하여 유기적으로 결합된 전체. 문학 - 형식적 부분 - 소리, 낱말, 문장. 내용적 부분 - 주제, 소재, 태도. 소리의 구조, 낱말의 구조, 문장의 구조, 주제의 구조. ㉯ 법칙이 지배하는 세계, 언어-문법, 국가-헌법, 물질-원리 축구-규칙, 바둑-규칙, 식사-규칙, 정치,경제, 문화, 삶, 역사를 지배하는 원리 ㉰ 구조의 법칙은 자율적이고 독립적, 축구와 농구는 규칙이 다름. 물질과 정신, 시와 소설도 모두 규칙이 다름, 모든 차이와 변별성은 규칙의 차이 구조의 차이. ② 시의 구조에 대한 역사성 1) 시의 구조에 대한 전통적 논의 - 그 원론적 관점 내용과 형식(2원론) 현실의 반영(인과론) 이성과 감성(심리론) 현실과 상상(심리론) 욕망과 전이(심리론) 2) 시의 구조에 대한 현대적 논의 - 존재론적 관점 시는 언어의 구조(형식주의, 뉴크리티시즘, 구조주의, 기호학) 형식주의 - 낯설음의 구조(쉬클로브스키) - 전경과 후경의 구조(무카로부스키) 뉴크리티시즘 - 객관적 상관물(엘리엇) - 텐션(테이트) - 역설(브룩스) - 아이러니(시플레이) 구조주의 - 계열체와 통합체(소쉬르) - 은유와 환유(야콥슨) 기호학 - 외연과 내포(퍼어스) ​ (2) 시와 산문의 언어구조 ① 문장쓰기의 원리 1) 언어의 선택과 결합 문장 쓰기란 단어들의 선택과 결합이다. 그런데 단어를 선택할 경우 유사한 단어, 즉 같은 계열의 축에서 적절한 단어를 선택하고 그 다음의 단어는 앞의 단어와 어울리는 단어를 선택하여 계속 결합해 가는 것이다. ​ 선택의 축  
1029    홍문표 시창작 강의 노트 6 댓글:  조회:903  추천:0  2019-10-24
이미지란 무엇인가 ​ 홍문표 ​ (1) 이미지의 이해 1) 시에서 이미지의 참뜻 원래 이미지(image)란 사물의 그림자 즉 사물의 모상을 말하는데 심리학에서는 심상(心象) 즉 mental picture라고 한다. 여기서 마음에 새겨지는 그림이라 하니까 시각적인 언어, 그림 언어만을 생각 하는데 사실은 감각 기관, 시각 청각 촉각 후각 미각 등을 통해서 반응 되는 모든 현상을 말한다. 시는 지적인 이해(머리)의 문장이 아니라 정서적인 감동(가슴)의 문장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물을 논리적으로 설명하지 않고 구체적으로 보여 주어야 하는데 그러기에 이때 사용되는 언어들은 감각적인 언어가 된다. 이를 시에서는 이미지어 또는 이미지라고 한다. 2) 이미지와 현대시 과거의 시 - 주로 청각에 자극을 주는 청각적 이미지의 시들이 많았다. ​ 살어리 살어리랏다 靑山에 살어리랏다 멀위랑 래랑 먹고 靑山에 살어리랏다 얄리얄리얄랑셩얄라리얄라 -고려 청산별곡에서 ​ 현대의 시 - 1910년대부터 시의 시각성을 강조하는 회화시 운동 즉 이미지즘 운동이 전개되면서 시는 시각적인 이미지 시여야 한다는 생각들을 하게 되었는 데 물론 시에서 시각적 이미지가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시는 모든 오관의 이미지어를 사용한다. ​ 가을밤의 싸늘한 촉감 나는 밖을 걸으면서 얼굴이 붉은 농부같이 불그레한 달이 울타리를 넘보는 것을 보았다 나는 멈춰 서서 말을 걸지 않고 고개만 끄덕였다 둘레에는 도시의 아이들처럼 흰 얼굴을 하고 생각에 잠긴 별들이 있었다. - 흄 「가을」 ​ 구름은 보랏빛 색지 위에 마구 칠한 한 다발 장미 ​ 목장의 깃발도 능금나무도 부을면 꺼질 듯이 외로운 들길 - 김광균 「뎃상」에서 ​ 3) 왜 감각적이어야 하나 예술 - 정서적, 환기적, 감동적 세계 음악 - 음성을 통한 청각적 환기 미술 - 회화를 통한 시각적 환기 시 - 언어의 감각성을 통한 5감의 환기 ​ 해와 하늘 빛이 문둥이는 서러워 ​ 보리밭에 달 뜨면 애기 하나 먹고 꽃처럼 붉은 울음을 밤새 울었다. - 서정주 「문둥이」 ​ 구름 한점 없는 먼 하늘에 둥근 사발물이 꽁꽁 얼어붙어 있다. ​ 하얗게 - 조병화 「겨울날」 ​ (2) 이미지의 기능 1) 감동의 수단 이미지는 우리들의 마음속에 자각적 감각적 체험이나 대상을 재구성하여 시의 세계를 실감있게 형상화한다. 또한 정서를 환기하여 보다 감동하게 한다. 이는 시의 주제를 보다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방법이기도 하다. 또한 분위기나 배경, 상황을 제시한다. 그리하여 죽어있는 일상의 언어를 신선한 충격과 감동의 언어로 만든다. 2) 의미내용의 구체화 약대와 바늘구멍 - 부자가 천국에 가기란 약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기 보다 어렵다. 3) 말할 수 없는 세계의 표현 ​ 물에서 갓 나온 여인이 옷 입기 전 한때를 잠깐 돌아선 모습 ​ 달빛에 젖은 탑이여! ​ 온몸에 흐르는 윤기는 상긋한 풀 내음새라 ​ 검푸른 숲 그림자가 흔들릴 때마다 머리채는 부드러운 어깨 위에 출렁인다. ​ 희디흰 얼굴이 그리워서 조용히 옆으로 다가서면 수줍음에 놀라 그는 흠칫 돌아서서 먼뎃산을 본다. - 조지훈 「여운」에서 (3) 이미지의 종류 이미지의 종류는 관점에 따라서 다양하게 설명될 수 있으나 현재 논의되고 있는 것을 종합해 보면 첫째는 정신이나 마음에 나타나는 감각적 경험만을 강조하는 감각적 이미지(mental image), 둘째는 어떤 관념이나 사물을 비유하여 보여주는 비유적 이미지(figurative image), 셋째는 어떤 복잡하고 고차원적인 관념을 암시하는 상징적 이미지(symbolic image)로 나누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 감각적 이미지 감각적 이미지란 우리의 신체 구조상 외부의 사물에 대한 직감적인 반응을 일으키고 있는 감각기관, 즉 시각, 촉각, 후각, 미각, 근육감각, 기관감각 등을 통하여 지각될 수 있는 직감적인 사물이거나 상상적인 사물을 말한다. 1, 시각적 이미지 시각적으로 느낄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이미지 a, 직접적 시각 이미지 ​ 그는 잔에 커피를 담았다 그는 커피 잔에 우유를 넣었다 그는 우유 탄 커피에 설탕을 넣었다 그는 작은 숟가락으로 커피를 저었다 그는 커피를 마셨다 그리고 그는 잔을 내려 놓았다 내겐 아무 말 없이 그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는 연기로 동그라미를 만들었다 프레베르의 「아침식사」 ​ b, 비유적, 상상적 시각 이미지 해는 출렁이는 빛으로 내려오며 제 빛에 겨워 흘러 넘친다 모든 초록, 모든 꽃들의 왕관이 되어 자기의 왕관인 초록과 꽃들에게 웃는다, 비유의 아버지답게 초록의 샘답게 하늘의 푸른 넓이를 다해 웃는다 하늘 전체가 그냥 기쁨이며 神殿이다 정현종의 「초록기쁨」 2, 청각적 이미지 과거의 정형시 - 음성적 리듬 현대시 - 사물의 소리를 언어로 표현하는 사물의 가청화(可聽化) a,의성어가 대표적임 ​ 우면산 가랑이에서 떡갈나무 등걸에서 삐요시 삐요시 삘릴리이 삐요시 삐요시 삘릴리이 숫매미 자지러지면 집 떠난 처녀들 귀 가렵고 아파트에 혼자 누운 그 사람들 속 쓰리다 삐요시 삐요시 삘릴리이 삐요시 삐요시 삘릴리이 박라연의 「서울매미」 ​ b, 의성어가 아닌 사물의 가청화 이미지 ​ 비가 옵니다. 밤은 고요히 깃을 벌리고 비는 뜰 위에 속삭입니다 몰래 지껄이는 병아리같이 주요한의 「빗소리」에서 ​ 3, 근육감각적 이미지 감각적이미지는 5감(눈, 코, 귀, 혀, 살갗)을 통한 시각, 후각, 청각, 미각, 촉각 이미지다. 그러나 시각과 촉각을 겸한 신체근육 감각이미지도 실감나는 감각적 이미지다. 몇 개의 낱말들이 놀고 있다. 희부연한 안개를 움켜쥐고 물구나무 선 놈도 있고 황달들린 하늘을 베고 낮잠을 즐기는 놈도 있다. ​ 그래도 나이는 먹어 더러는 주름진 얼굴이고 청자빛 이끼가 돋아난 가슴도 있다. - 자작시 「비구상전」에서 ​ 마지막으로 잠긴 창의 단추를 벗기고 단추구멍의 실밥을 벗겨내고 자갈 위로 눈 내리는 소리를 듣자. 여섯 개의 수정 깃을 달로 어둠을 자기 몸만큼씩 흔들어 녹이고 어둠과 함께 팔다리도 녹이고 끝내는 몸뚱어리까지 녹여 없애고 작고 하얀 자들이 날아 다닌다. 없는 팔로 바람을 껴안고 서로 만나고 피하며 부딪치고 숨다가 바람이 바람이 되기 위해 몸을 흔들 때 하나씩 들켜 하얀 결정체가 되어 내린다. - 황동규 「겨울의 빛」에서   홍문표시창작강의 노트 23 이미지 드러내기 ​ 홍문표 ​ (1) 사물의 감각화 ① 사물의 구체화와 변형화 이미지는 기존의 사물들을 보다 구체화하거나 기존의 사물을 변형함으로 신선한 감각적 미학을 조성한다. ② 사물의 변형화 ​ 이는 먼 해와 달의 속삭임 비밀한 울음 한번만의 어느 날의 아픈 피흘림 - 박두진 「꽃」에서 ​ ③ 사물의 구체화 잔디 잔디 금잔디 심심산천에 붙는 불은 가신 님 무덤가의 금잔디 봄이 왔네 봄빛이 왔네 버드나무 끝에도 실가지에 봄빛이 왔네 봄날이 왔네 심심산천에도 금잔디에eh -김소월의 금잔디 ​ (2) 정서의 감각화 이미지를 통해 사고하는 것을 심상사고(image thinking)라 하고 이를 달리는 상상(想像)이라 한다. 여기 상(想) 자에 묘미가 있다. 마음(心) 위에 어떤 모양(相)을 얹어 놓은 글자다. 보이지 않는 마음의 세계를 보이는 어떤 모양으로 형상화(形像化)한다는 뜻이다. 이처럼 이미지는 마음, 즉 내면의 무형한 느낌의 세계를 유형화하는 수단이다. ​ 내 마음은 호수요. 그대 저어 오오. 나는 그대의 흰 그림자를 안고, 옥같이 그대의 뱃전에 부서지리다. ​ 내 마음은 촛불이오. 그대 저 문을 닫어주오. 나는 그대의 비단 옷자락에 떨며, 최후의 한방울도 남김없이 타오리다. ​ 내 마음은 나그네요. 그대 피리를 불어 주오. 나는 달 아래 귀를 귀울이며, 호젓이 나의 밤을 새이오리다. ​ 내 마음은 낙엽이요. 잠깐 그대의 뜰에 머무르게 하오. 이제 바람이 일면 나는 또 나그네 같이 외로이 그대를 떠나오리다. - 김동명 「내 마음은」 ​ 가슴 속에 키워온 그리움 하나 어느 무더운 여름밤 견디다 못해 모래밭에 피를 쏟듯 배앗았더니 천지가 가득 채우는 고래가 되어 바다를 꿀꺽 삼켰습니다. 나는 죽지 않는다 죽지 않는다. 캄캄한 몸뚱일 뒤척이면서 어둠 속에 기슭까지 기어오서는 가늘고 구슬프게 울었습니다. 밤새도록 잠 안자고 울었습니다. - 신규호 「밤바다」 ​ (3) 의미의 감각화 이미지는 사물이나 정서만을 드러내는 수단이 아니라 의미, 즉 사상이나 관념까지도 감각화한다. 이는 인간의 삶 전체를 감각적으로 드러내려는 시적 미학의 본질이기도 하다. ​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 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기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 김수영 「풀」에서 ​ 1. 호루라기는, 가끔 나의 걸음을 멈춘다 ​ 호루라기는, 가끔 권력이 되어 나의 걸음을 멈추는 어쩔 수 없는 폭군이 된다. ​ 2. 호루라기가 들린다. 찔끔 발걸음이 굳어져, 나는 뒤를 돌아 보았지만 이번에는 그 권력이 없었다. 다만 예닐곱살의 동심이 뛰놀고 있을 뿐이었다. ​ 속는 일이 이렇게 통쾌하기는 처음 되는 일이다. - 박남수 「호루라기의 장난」 ​ (4) 이미지의 사물화 절대적 이미지- 이상에서 보면 이미지는 어떤 사물의 감각성만을 구체적으로 드러내어 정서적 분위기를 들어내거나 사물과 나와의 주관적 관계가지도 명료화하려는 리얼리티의 구체화 방식이 있는가 하면 철학적 사고나 현실 상황에 대한 정치적 관심 등 내면적인 의미나 가치의 문제들도 감각적 이미지로 구체화하는 방식이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순수하게 사물의 이미지만을 추구하는 일이나 관념의 이미지화를 모두 거부하고 무의미한 기호로 남거나 전체적인 논리성이나 관련성을 거부하고 서로가 병치적인 상태에서 어떤 심리적 분위기만을 드러내려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김춘수는 이러한 시를 무의미시라 하였고 일부에서는 탈 언어화 언어의 기호화 절대적 이미지라는 말들로 사용하기도 한다. ​ (1) 1+3 3+1 3+1 1+3 1+3 3+1 1+3 1+3 3+1 3+1 3+1 1+3 ​ 선상의일점A 선상의일점B 선상의일점C ​ A+B+C=A A+B+C=B A+B+C=C - 이상 「3차각 설계도 선에 관한 각서 2」 ​ (2) 바보야, 우찌 살꼬 바보야. 하늘수박은 올리브 빛이다 바보야, 바람이 자는가 자는가 하더니 눈이 내린다 바보야, ​ 우찌 살꼬 바보야, 하늘수박은 한여름이다 바보야, 올리브 열매는 내년 가을이나 바보야, 우찌 살꼬 바보야, 이 바보야, - 김춘수 「하늘수박」 ​ (5) 동적 이미지 드러내기 ① 명사형 이미지 지금까지 이미지라면 심상(心象)이니, 영상(映像)이니 하는 말들 때문에 마음에 비춰진 그림이나 그림자, 즉 사물의 어떤 상태를 정적으로 또는 명사형으로 표현되는 경향이 강하다. 사실 시적 이미지의 종류를 말할 때도 대개는 시각적, 청각적 이미지에 주력하게 되며 이들 이미지의 대부분은 명사형이다. ​ 꽃 - 속삭임, 울음, 피흘림 (박두진의「꽃」) 마음 - 호수 (김동명의「내 마음」) 풀 - 민중 (김수영의「풀」) ② 동사형 이미지 그러나 시에 있어서 이미지의 근본 기능은 정서적 환기, 감동하는 마음의 움직임에 있는 것이다. 그것은 정적인 것이 아니라 동적인 것이다. 따라서 이미지는 명사형보다 동사형에 그 생명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 달빛이 웃는다. 달빛이 춤춘다. 달빛이 발광을 한다. 달빛이 떨고 있다. 달빛이 구역질을 한다. 유리에 차고 슬픈 것이 어른거린다. 열없이 붙어서서 입김을 흐리우니 길들은 양 언 날개를 파닥거린다.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 새까만 밤에 밀려나가고 밀려와 부딪히고, 물먹인 별이, 반짝, 보석처럼 백힌다. 밤에 홀로 유리를 닦는 것은 외로운 황홀한 심사이어니, 고은 폐혈관이 찢어진 채로 아아, 늬는 山새처럼 날러갔구나. - 정지용 「유리창 1」에서   홍문표시창작강의 노트 24 비유의 개념과 직유 ​ 홍문표 ​ (1) 비유의 올바른 이해 ① 수사학적 인식의 오해 원래 한자어인 비유(比― 견줄비 喩― 깨달을 유)의 본 뜻은 다른 것과 비교하여 참 뜻을 깨닫는 어법이다. 그런데 수사학(修辭學)이라면 말을 그럴듯하게 꾸미는 기술이라는 뜻이 된다. 그래서 문학은 꾸미는 것, 기교주의, 형식주의라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 원래 그리스의 수사학(rhetoric)은 꾸미고 변론하는 화법이었다. 전형적인 정치꾼들이나 철인들의 어법이다. 이와 유사한 말로 문채(文彩)란 말을 쓰기도 한다. 이것도 장식적 개념이다. 모두 묘사적 개념이다. 그러나 비유의 참뜻은 묘사가 아니라 표현(表現)이고 현현(顯現)이다. 감추어져 있는 것을 겉으로 드러내는 어법이다. ② 감추인 것의 드러냄 비유란 한자어에서 보듯이 비교하여 새로운 것을 깨닫는 어법이다. 불멸의 고전 성경과 예수의 어법에 이런 구절이 있다. ​ 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선지자로 말씀하신바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고 창세부터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리라 (마 13:34―35) ​ 감추인 것들을 드러냄,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여줌. 내면의 세계를 드러냄 telling→ showing ​ 그대 물음표 투성이의 가슴을 가르고 들어가 생 빛 한 줄기 찾으려 했네 얼굴도 눈도 없이 허공만 숨어사는 그대 몸 전체에서 거듭되는 어제를 지켜보며 동행할 빛을 잃었네 - 김초혜 「사랑굿」에서 ​ ③ 변화, 창조, 확장 비유의 올바른 개념은 트롭(trope)에 있다. 그 어원은 전환(turn)이다. 이는 아리스토텔레스도 비유를 전이(transform)라고 한 것과 같다. 이는 사물, 의미 등 모든 기존 개념을 바꾸는 것,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것, 그러기에 기존의 세계를 변화시키고, 창조하고 확장하는 것이다. ​ 언덕은 꿈을 꾸는 짐승 언덕을 깨우지 않으려고 유월이 능금꽃 속에 숨어 있었다 꽃잎 지는 소리가 옛날의 바람소리 같다. - 김요섭 「옛날」 ​ ④ 육화와 생명화 진리의 가시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니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 (1) 꽃이 피어 있다 (2) 꽃이 그녀의 미소처럼 웃고 있다. (3) 꽃은 그녀의 미소다. 그녀의 웃음이다. ​ 언제부터 이 잉걸불 같은 그리움이 텅 빈 가슴속에 이글거리기 시작했을까 ​ 지난여름 내내 앓던 몸살 더 이상 견딜 수 없구나 영혼의 가마솥에 들끓던 사랑의 힘 캄캄한 골방 안에 가둘 수 없구나 ​ 나 혼자 부둥켜안고 뒹굴고 또 뒹굴어도 자꾸만 익어 가는 어둠을 이젠 알알이 쏟아놓아야 하리 - 이가림 「석류」 ​ (2) 비유의 방법 ① 유사성의 비유 비유적 이미지의 대표적인 구조는 유사성에 의한 비교 형식이다. 유사성이란 두 사물간의 공통점, 비슷한 점, 등가성, 인접성, 동일성이란 말로도 설명되겠는데 이는 서로 두 사물 사이에 어떤 유사점을 인정하여 두 사물을 동일시하거나 등가성을 내세워 표현하는 방식이라 할 수 있다. ​ (1) 포옹은 죽음의 신비와 같다 아니 검푸른 심연의 그 암담한 빛깔과 같다 - 조지훈 「포옹」에서 ​ (2) 꽃처럼 붉은 울음을 밤새 울었다 - 서정주 「문둥이」에서 ​ ​ (3) 환한 아침 햇빛에 그것을 읽었을 때 글씨는 뱀처럼 꿈틀거렸다. - 로웰 「형태」에서 ​ (4) 비가 개인 날 맑은 하늘이 못 속에 내려와서 여름 아침을 이루었으니 녹음이 종이가 되어 금붕어가 시를 쓴다. - 김광섭 「비 개인 여름 아침」 ​ ② 비유사성의 비유 비유적 이미지의 대표적인 형식은 유사성이나 등가성에 의한 동일성의 구조가 되겠지만 때로는 비유사성, 대조성에 의해서 오히려 본의를 분명히 하거나 정서적 분위기를 새롭게 하는 경우가 있다. ​ 사랑하는 하나님, 당신은 늙은 悲哀다. 푸줏간에 걸린 커다란 살점이다. - 金春洙, 「나의 하나님」에서 ​ 모래 밭에서 受話器 女人의 허벅지 낙지 까만 그림자 ​ 비둘기와 소녀들의 랑데뷰우 그 위에 손을 흔드는 파아란 기폭들, ​ 나비는 機重機의 허리에 붙어서 푸른 바다의 층계를 헤아린다 - 趙鄕, 「바다의 層階」 ​ (3) 직유의 방법 ① 언어의 발달 단계 언어학자 어번(W.M. Urban)은 언어의 발달 단계를 사실 그대로 흉내 내거나 그대로 기록하는 모사적 단계, 기지(旣知)의 사물로 미지(未知)의 사물을 미루어서 인식하는 유추적 단계, 관념의 세계를 가시적인 사물로 대신 표시하는 상징적 단계가 있다고 했다. ② 직유의 방법 직유나 은유나 모두 비유이지만 ‘-같이’, ‘-처럼’ 등의 서술형식을 가지고 비유하는 것이다. ​ 내 사랑 너는 어여쁘고도 어여쁘다 너울 속에 있는 네 눈이 비둘기 같고 네 머리털은 길르앗 산 기슭에 누운 무리 염소 같구나 네 이는 목장에서 나온 털 깎인 암양 곧 새끼 없는 것은 하나도 없이 저마다 쌍둥이를 낳은 양 같구나. 네 입술은 홍색실 같고 네 입은 어여쁘고 너울 속의 네 뺨은 석류한 쪽 같구나 네 목은 군기를 두려고 건축한 다윗의 망대 곧 일천 방패 용사의 모든 방패가 달린 망대 같고 네 두 유방은 백합화 가운데서 꼴을 먹는 쌍둥이 노루 새끼 같구나 날이 기울고 그림자가 갈 때에 내가 몰약산과 유향의 작은 산으로 가리라 나의 사랑 너는 순전히 어여뻐서 흠 잡을 데 하나 없구나. - 구약성서 「아가 4장」에서 ​  
1028    홍문표 시창작 강의 노트 5 댓글:  조회:1019  추천:0  2019-10-24
시어론 1, 정서적 시어 ​ 홍문표 ​ (1) 시어에 대한 새로운 인식 ① 창세기의 말씀 인간은 언어적 존재- 인간은 언어 속에 태어나 언어를 배우고 언어를 사용하다가 언어를 남기고 간다. 창조주와 언어- 그러나 놀라운 것은 인간들만이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도 언어를 사용하신다. 성경 요한복음 첫 줄에는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라 했고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했다. 창세기 첫 장을 보면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그 빛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은 빛과 어둠을 나누사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는 언어의 창조능력을 말한 것이고, 신의 존재성도 언어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언어는 존재의 집- 철학자 하이데거는 언어를 ‘존재의 집’이라고 하였다. 모든 존재는 언어라는 집에서만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언어라면 의사전달의 도구로만 생각한다. 그러나 언어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모든 존재들의 탄생, 소멸, 창조의 힘을 가진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언어를 통하여 그 절대성을 행사하신다. 이처럼 언어는 문학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신이나 인간, 과학과 예술, 철학과 종교, 문명과 문화 등 모두가 사용하는 소통수단이다. ② 문학과 비문학 그런데 모두가 언어를 사용하는데도 문학과, 철학과, 과학이 구별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언어라는 재료는 동일하나 그 재료를 사용하는 방법에 차이가 있다. 문학과 비문학은 같은 언어를 사용하지만 그 선택과 배합의 방법이 다를다. 따라서 문학을 이해하고 문학을 창작하는 일은 바로 언어를 예술적으로 선택하고 배합하는 기술, 그 비밀을 터득하는 일이 가장 중요한 열쇠가 된다. ③ 시와 산문의 차이 이는 같은 문학이라도 시와 소설이 구별되는 이유도 그렇다. 시와 산문도 사용하는 언어의 사용방법에 차이가 있음을 알게 된다. 따라서 시가 무엇인가 하는 문제는 시의 언어, 즉 시어란 무엇인가를 아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2) 시어의 의미 ① 시적인 언어와 시의 언어 여기서 시어라는 말을 하지만 시어에 대한 개념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언어 가운데 시적인 성격을 지닌 언어가 따로 있어 이를 골라서 사용해야 한다는 시적인 언어(poetic diction)라는 입장이고, 다른 하나는 시에 사용되는 일상의 언어를 모두 시어라고 하는 입장인데 이를 통칭 시의 언어(language of poetry)라 한다. 말하자면 시에만 사용될 수 있는 시적인 언어와 시에 사용된 모든 언어를 통칭하는 시의 언어로 구분된다는 말이다. ② 고전적 시어관 ― 시에만 쓰는 말(시적인 언어) 문어체- 문장을 쓸 때 상투적으로 정해진 말씨, ‘각설하고’ ‘가라사대’ 등 완곡어법- 서양시의 경우, 소년들 - 게으른 자손들, 물고기 - 지느러미 달린 족속, 양 - 음매하고 우는 짐승 시조어법- 이 말도 거즛말이 져 말도 거즛말이 시비를 뉘 아더니 하늘이 알려마난 어즈버 구만리 우희 뉘 올나가 살아보리. ③ 근대적 시어관 ― 워즈워드의 「서정 민요집」 시적인 언어의 시관에 대한 붕괴는 워즈워드에 이르러서다. 그는 진정한 시어법은 자연적인 것이고 인위적인 것은 거짓된 시어법이라 했다. 시는 소수의 오락물이 아니라 만인의 것이어야 하며 형식이나 제도에 얽매인 문어체가 아니라 개성적이고 일상적인 구어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서정 민요집」의 골자였다. 그는 훌륭한 시는 강한 정서가 자연 발생적으로 넘쳐흐르는 것(over flow)이라고 되풀이하여 말했다. ​ 수탉이 운다 강물이 흐른다 작은 새들이 지저귀고 호수가 빛나고 푸른 벌판이 햇빛에 잠들고 있다 늙은이와 어린것들이 장정들과 함께 일하고 있다 들소들이 풀을 뜯는다 머리조차 들지 않고 마흔 마리들이 하나같구나! - 워즈워드 「3월에 부침」 ​ ④ 필자의 시어론 시가 시답고 산문과 구별되는 근본적인 변별성은 무엇인가. 그것을 시를 구성하고 있는 언어에서 찾고자 한 것이 필자의 「시어론」인 바 여기서는 정서적 시어, 상상적 시어, 동일서의 시어, 낯설음의 시어, 내포적 시어 등으로 나누어 살피고자 한다. ​ (1) 시적 정서의 의미 ① 시다움의 언어 시를 시답게 하는 언어의 용법은 먼저 정서적인 언어를 추구한다는 데서 찾아볼 수 있다. 인간에게 있어서 물질적 요소를 제거한다면 남는 것은 바로 정신적인 것이다. 정신적이란 말은 매우 포괄적이다. 그래서 대개는 정신을 지(知), 정(情), 의(意)로 구분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의식과 무의식, 이성과 감성, 마음과 영혼, 심리, 자아, 감각과 지각, 상상 등 무수히 많은 용어들로 정신적인 세계를 설명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를 종합해 본다면 결국 인간이란 합리적으로 이해하고 분별하는 이성적 세계와 감각기관이나 내면적 심정을 통하여 느끼는 정서의 세계가 있다. 그런데 과학이나 철학은 이성적 세계를 통하여 사물을 인식하고 예술은 정서적 세계를 통하여 세계를 인식하고자 한다. 여기에 시다움의 언어는 보다 정서적이어야 하는 이유가 있다. ② 정서의 의미 여기서 느낌의 세계를 다시 세분한다면 감정, 기분, 정조 등의 용어를 생각할 수 있고 이러한 환기성을 포괄적으로 정서(情緖)라고도 한다. 정서란 심리학적으로 말하면 인간의 마음이 어떤 자극이나 동기에 의하여 일어나는 감정적 현상이다. 소중한 것을 잃었을 때 슬퍼한다든지, 만족스러울 때 기쁨을 느끼거나 웃음을 짓는 일, 슬픔, 기쁨, 즐거움, 괴로움, 놀람, 미워함, 사랑함, 불안함, 외로움, 그리움 등 참으로 미묘한 심리적 변화가 우리들의 삶을 통하여 끊임없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③ 정서의 기능 과거엔 정서를 감각적 기능으로만 생각했거나 중추신경의 반응 체계로 설명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최근의 실험에 의하면 인간의 두뇌에는 합리적 사고를 하는 부분과 감정적 사고를 하는 부분으로 구별되고 있음을 앞서 좌뇌와 우뇌의 기능으로 설명한 바가 있다. 그렇다면 두뇌의 온전한 기능이나 사고의 온전한 기능이란 바로 이성적 사고와 감성적 사고를 종합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되겠는데 현대인들의 사고 경향은 이성적인 사고, 즉 지적인 세계, 실용적인 세계, 물질적인 세계만을 추구하고 있어 사고의 불균형, 정서의 결핍, 삶의 부조리를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불균형의 극복은 안정감, 행복감은 물론 육체적 건강까지 돕는다. ​ (2) 정서적 시어의 모색 ① 감탄사와 정서적 시어 시적 정서를 유발할 수 있는 시어법에서 언어의 품사 중 감정 표출도가 높은 감탄사를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이 점에 대하여 일본의 요시모도는 감정 표출의 정도, 즉 표출도(表出度)에 의한 품사를 구별하면서 자기표출도가 강한 순서를 보면 감탄사, 조사, 조동사, 부사, 형용사, 동사, 대명사, 명사의 순이라는 말을 하고 있다. ​ 빛깔 오호 빛깔! 살포시 음영을 던진 갸륵한 빛깔아 조촐하고 깨끗한 비취여 가을 소나기 마악 지나간 구멍 뚫린 가을 하늘 한 조각 물방울 뚝뚝 서리어 곧 흰 구름장 이는 듯하다. ​ 그러나 오호 이것은 천년 묵은 고려 청자기! - 박종화 「청자부」에서 ​ 감탄사 시 조사 적 부사 ↑ 형용사 자 동사 기 표 대명사 출 명사 지시표출 → 산문적 ​ ② 언어의 리듬화 둘째로 과거의 시어들은 후렴구나 반보적인 어휘, 정형적인 자수율을 통하여 음악적 리듬감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는데 이러한 노력들도 결국은 시어의 정서적 기능에 대한 인식에서다. 음악성이야말로 우리의 심리적 충동을 강하게 유도하는 가장 대표적인 수단이다. ​ 못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대로 한세상 지내시구려, 사노라면 잊힐날 있으리다. ​ 못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대로 세월만 가라시구려, 못잊어도 더러는 잊히오리다. ​ 그러나 또 한껏 이렇지요. 그리워 살뜰히 못 잊는데, 어쩌면 생각이 떠지나요? ​ - 김소월 「못잊어」 ​ ③ 유포니의 시어 셋째는 시어의 미적인 효과를 높이고 환기력을 강화하기 위하여 음운의 성질을 활용할 수 있다. 의성어나 의태어가 그 대표적인 것인데 이 밖에도 양성모음은 밝고 단단하며 작은 느낌을 주며, 음성모음은 어둡고 거칠며 큰 느낌을 준다. 그리고 장모음은 느린 동작을, 전설모음은 빠르고 선명하며 가늘고 밝은 느낌을 주며, 후설모음은 느리고 둔하고 맥빠지고 어두운 느낌을 준다는 점을 이용할 수 있다. 또 자음의 경우, 유성음은 무성음에 비하여 부드러운 느낌을 줄 뿐만 아니라, 호음조(euphony)를 이루기 쉽다. 그리고 평음은 평순한 느낌을, 경음과 격음은 강하고 예리한 느낌을, 파열음과 마찰음과 파찰음은 거칠고 둔탁하고 부딪히는 느낌을 주는 동시에 악음조(cacophony)를 이루기 쉽다. 또 어말에 있어서[m]은 넓고 평평한 느낌을, [n]은 가벼운 느낌을, [ng]은 둥글고 가득찬 느낌과 웅얼거리거나 노래하는 느낌을, [r]과 [l] 같은 유음(流音)은 흐르는 느낌을, [s], [ts] 같은 처음은 섬세하고 가볍게 부딪히는 느낌을 준다. ​ 얇은 사(沙)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薄紗) 고깔에 감추오고 ​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아서 서러워라. - 조지훈 「승무」에서 ​ 새악시 볼에 떠오르는 부끄럼같이 시의 가슴에 살포시 젖는 물결같이 보드레한 에메랄드 얇게 흐르는 실비단 하늘을 바라보고 싶다 ​ - 김영랑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에서 ​ 시적 조어- 시작에 있어 서술형의 변형, 새롭게 만드는 시적 조어(詩的造語)에 관심을 기울이기도 한다. 고요한-고요로움, 푸른-푸르른, 흙냄새-흙내음, 파란-파아란, 아득히-아스라히, 곱게-고웁게, 천천히-시나브로, 조그만-조매로운, 뒷길-뒤안길, 따뜻한-다사로운 등도 그러한 예들이다. 정서적 어휘들- 그런가 하면 일상적인 어휘 중에서도 시어의 정서적 효과를 기대하는 경우 감탄사나 조사의 어미 등을 제외하고도 주로 심리적 현상을 표현하는 어휘, 예를 들어 사랑, 그리움, 아련함, 슬픔, 회상, 사연, 안타까움, 외로움 등이 있는가 하면 시각이나 청각에 호소하는 색채어, 의성어를 들 수 있는데 우리의 시가에서 색채어를 사용하는 빈도를 보면, 청(靑)-백(白)-적(赤)-흑(黑)-황(黃)의 순으로 밝혀지고 있다. 말하자면 파랑, 하양, 빨강, 검정, 노랑의 순으로 색채어를 사용하여 정서적 효과를 노리거나 의성어나 의태어를 통하여 보다 사실성을 드러내고자 한 것이다. 자연물에 있어서는 특히 우리들의 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갖거나 익숙해진 것으로 나무, 풀, 꽃, 과일, 별, 태양, 물, 공기, 땅, 새 등의 명칭을 통하여 시적 환기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시어론 2, 상상적인 시어 ​ 홍문표 ​ (1) 처량하다와 밝은 초롱 ① 정서적 언어에서 상상적 언어로 과거 시어법은 정서적 효과를 위해 감탄사, 리듬, 유포니 등의 언어의 음성적 성질을 활용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정서적 효과는 음성적인 청각적 기능만이 아니라 시각적 후각적, 미각적, 촉각적 기능 즉 오관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며 이러한 기능은 신선한 감각적 이미지, 즉 상상을 통해서 보다 효과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앍게 되었다. 훌륭한 연기자는 자신이 우는 것이 아니라 청중이 그 연기를 상상하며 울 수 있어야한다는 말이다. ​ ② 처량하다와 밝은 초롱 ​ 울 밑에 선 봉선화야 네 모양이 처량하다 길고 긴날 여름철에 아름답게 꽃 필 적에 어여쁘신 아가씨들 너를 반겨 놀았도다. - 홍난파 「봉선화」에서 그 푸른 잎새 속에 층층이 밝은 초롱을 걸었다 한 알의 작은 꽃씨 속에 잠자던 여인의 피가 이 여름 봉선화로 피어…… 사나이의 체취같은 더위를 안아 꽃은 저리도 붉었다 앞 뒤 주변의 그 뭇 풀들이 너에게로 부득부득 기어 오르고 이 계절에 지친 마음 속에 핀 젊음은 진정 너 같이 아름다운 것. 꽃은 뉘에게도 언제나 한결같은 마음…… 그 마음으로 피어있다. - 이석 「봉선화」에서 ​ 봉선화 처량하다 밝은 초롱 구별 관념어추상어불가시어직설적 형용사정서어막연함자기표출감정의 주관화관습어 사물어구체어가시어상상적 이미지상상어분명함공감감정의 객관화창조어 ​ (2) 포엠과 포에트리 ① 포에트리와 창조성 현대는 포엠(poem)은 있어도 포에트리(poetry)는 없다는 말이 있다. 외형적으로는 시와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는 포엠은 많아도 포에트리의 어원이 만들다, 창조하다라는 말처럼 시적 창조성을 드러낸 상상력을 구사한 시는 드물다는 뜻이다. ② 산문, 시적인 글, 시 ​ (1) 1945년 8월 15일 우리는 그동안 잔악한 일제의 압제에서 고생하다가 자유와 독립을 구가하는 광복을 맞게 되었다. ​ (2) 아아! 얼마나 기다렸던 그날인가! 파도처럼 솟아나는 광복의 기쁨이여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아름답게 피리라 민주주의 꽃 영원히 빛나라 조국강산아. ​ (3) 순이야. 영이야. 또 돌아간 남아. ​ 굳이 잠긴 잿빛의 문을 열고 나와서 하늘가에 머무른 꽃봉오릴 보아라 ​ 한없는 누에실의 올과 날로 짜 늘인 차일을 둘은 듯, 아늑한 하늘가에 뺨 부비며 열려 있는 꽃봉오릴 보아라 ​ 순이야. 영이야. 또 돌아간 남아. ​ 저, 가슴같이 따뜻한 삼월의 하늘가에 인제 바로 숨 쉬는 꽃봉오릴 보아라 - 서정주 「밀어」 ​ (3) 상상적 시어의 모색 ① 광인과 연인과 시인 ​ 광인과 연인과 시인은 똑같이 상상으로 가득하나니, 광인은 넓은 지옥을 채우고도 넘칠 마귀들을 눈으로 보고 마찬가지로 사랑에 들뜬 연인은 집시의 낯짝에서 헬렌의 아리따움을 보며, 시인의 눈은 예민한 황홀 속에 구르며 하늘에서 땅으로 땅에서 하늘로 시선을 옮긴다. 미지의 사물의 형상을 상상이 구현하면 시인의 붓은 그들에게 모습을 부여하여 존재하지도 않은 것에다 있을 집과 이름을 준다. - 세익스피어 「한 여름 밤의 꿈」에서 ​ ② 비유적인 상상 시어의 정서적 효과는 상상적 언어를 통해 극대화할 수 있다고 했는데 상상이 일차적 작업은 비유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다. 비유적 언어란 드러내고자 하는 사상, 감정, 사물 등 미묘하고 난해한 세계를 우리가 유추할 수 있는 낯익은 사물들로 대신하여 사물의 의미를 분명하게 하거나, 새롭게 하거나, 정서를 신선하게 하는 것으로 이는 상상적 어법의 기본적 작업이다. ​ 이는 먼 해와 달의 속삭임 비밀한 울음. ​ 한번 만의 어느 날의 아픈 피 흘림. - 박두진의 「꽃」에서 소재 의미 비유 꽃 신비성개화붉은 빛 해와 달의 속삭임비밀한 울음아픈 피 흘림 ​ ③ 감각적인 상상 그런데 상상적 언어의 공통적인 특징은 반드시 구체적인 감각성을 지니는데 있다. 구체적인 감각성이란 빛깔과 무게와 소리와 냄새가 있어 우리고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느낄 수 있는 언어를 말한다. 예술이 감성의 기능을 극대화하는 것이라면 시의 경우도 당연히 감동성을 지녀야 하는데 바로 그러한 감동은 언어의 감각성으로 가능한 것이다.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감각적 언어가 시각에 호소하는 회화적 이미지, 청각에 호소하는 음악적 이미지가 된다. 그밖에도 후각적, 미각적, 촉각적 이미지가 있다. ​ 구름은 보랏빛 색지 위에 마구 칠한 한 다발 장미 ​ 목장의 깃발도 능금나무도 부을면 꺼질 듯이 외로운 들길 - 김광균 「뎃상」에서 ​ 시몬느, 너의 머리칼 숲 속에는 커다란 신비가 있다. ​ 너는 마른풀 냄새가 난다. 너는 짐승이 자고 난 돌의 냄새가 난다. 너는 무두질한 가죽 냄새가 난다. 너는 타작한 밀 냄새가 난다. 너는 아침마다 가져오는 빵 냄새가 난다. 너는 무너진 흙담에 나란히 핀 꽃 냄새가 난다. 너는 나무딸기 냄새가 난다. 너는 비에 씻긴 등나무 냄새가 난다. 너는 저녁때 베어 들이는 등심초와 양치풀 냄새가 난다. 너는 호랑가시 냄새가 난다 너는 이끼 냄새가 난다. 너는 생울타리 그늘에 자라서 여물고 말라버린 노랑풀 냄새가 난다. 너는 꿀풀과 나비꽃 냄새가 난다. 너는 마소거름 냄새가 난다. 너는 우유냄새가 난다. 너는 회향풀 냄새가 난다. 너는 호두냄새가 난다. 너는 잘 익어서 따온 실과 냄새가 난다. 너는 꽃이 만발한 버들과 보리수 냄새가 난다. 너는 벌꿀 냄새가 난다. 너는 목장을 헤지를 때 갖는 삶의 냄새가 난다. 너는 흙과 시냇물 냄새가 난다. 너는 정사(情事)냄새가 난다. 너는 불 냄새가 난다. ​ 시몬느, 너의 머리칼 숲 속에는 커다란 신비가 있다. - 구르몽 「시몬느」에서   시어론3, 동일성의 시어 ​ 홍문표 ​ (1) 심리적 동일시 ① 욕구불만과 대리만족 인간은 심리적으로 자기가 목표로 하는 것이 이룩될 수 없을 때 목표를 수정하거나 대리적 목표를 설정하여 대리만족 하려는 경향이 있다. 말하자면 욕구가 발생하였을 때 이를 합리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면 욕구불만이 생기고 긴장감을 느끼게 되는데 이러한 심리상태를 해소하고 심리적 안정을 얻기 위하여 보상이나 합리화, 승화, 동일시, 투사 등의 심리적 방어기제 defence mechanism를 사용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솝 우화에 여우가 포도를 못 먹게 되자 저 포도는 너무 시어서 라고 하는데 이를 합리화 라고 한다. ② 프로이트의 동일시 프로이트는 동일시(同一視, identification)를 네 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화장대 앞에서 거울 속에 있는 자신을 보고 만족하는 나르시즘적 자기애(self love)에 빠지거나, 자신의 부족함을 자식에게서 얻으려는 목표대치의 동일시, 부모의 인정을 받으려고 부모가 원하는 쪽으로만 행동하는 대상상실의 동일시, 그리고 법을 지키거나 아니면 도둑이 무서워 도둑의 편에 서는 공격자와의 동일시가 있다는 것이다. ​ (2) 동화와 투사 시란 객관적인 세계를 자아의 욕망과 의식의 지향에 따라 가정하고 창조하는, 그리하여 분리된 세계와 자아를 동일성의 세계로 만들어 주체와 객체가 하나로 통일되는 세계다. 심리학적인 용어를 빌린다면 그것은 동화(assimilation)와 투사(projection)의 방식이기도 하다. 객관적인 세계를 시인의 내면인 세계로 끌어들여 자아화하는 것은 동화의 방식이고 자신을 객관적 세계에 이입시켜 자아와 세계의 일체감을 꾀하는 것을 투사하고 하겠다. ​ ① 노래도 바람도 아닌 괴이한 소리 따라 산을 넘어가고 있노라면 ​ 뒤에서 부르는 소리 있어 돌아다 보면 아무도 없는데 내가 이고 가던 하늘이 저 나뭇가지에 걸려 신음하고 있다. - 최선령의 「다리를 건널 때」에서 ​ ② 내가 당신의 자녀가 되는 것은 아슬한 봉우리 휘날리는 깃발 가을 하늘에 덩그랗게 빛나는 결실 바로 추수군의 얼굴입니다 - 홍문표의 「내가 당신의 자녀가 되는 것은」에서 ​ (3) 감정이입 시학에 감정이입(感情移入, empathy)이라는 말이 있다. 자기의 감정을 대상 속에 투입하여 나와 대상과의 감정적 교류를 시도하고 심적 연합을 이룩하려는 시적 태도다. ​ 산이 날 에워싸고 씨나 뿌리고 살아라 한다. 밭이나 갈고 살아라 한다. ​ 어느 산자락에 집을 모아 아들 낳고 딸을 낳고 흙담 안팎에 호박 심고 들찔레처럼 살아라 한다. - 박목월의 「산이 날 에워싸고」에서 ​ (4) 자기화의 언어 ① 분열된 인간 이성의 세계, 과학의 세계는 철저히 인간과 사물, 인간과 인간을 차별화하고 분열화한다. 여기에 근본적인 소외와 고독과 절망이 있다. 따라서 시는 이처럼 분열된, 상실된 자아를 회복하는 데 있다. ​ 나는지금거울을안가졌소마는거울속에는늘거울속의내가있오 잘은모르지만외로된사업에골몰할께요. ​ 거울속의나는참나와는반대오마는또꽤닮았오. 나는거울속의나를근심하고진찰할수없으니퍽섭섭하오. - 이상의 「거울」에서 ​ ② 동일성의 시학 동일성의 논리는 나와 너, 자아와 세계, 주체와 객체가 하나로 되는 화해의 시학이기도 하지만 고정된 사물의 의미가 새롭게 명명되고 전환되는 창조적 행위이기도 하다. 동일시는 내가 네가 되는 객체의 주체화, 한 사물이 다른 사물이 되는 사물의 변질, 정신이 물질이 되고 물질이 정신이 되는 전이와 창조가 자유롭게 실천되는 세계다. 그것은 기존의 가치나 의미가 해체되고, 새롭게 재구성되고 재창조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따라서 시에서 동일성의 논리는 바로 시학의 원리이기도 하고 시를 창작하는 근본적인 방법이기도 하다. ​ 바다는 강물의 발목을 잡고 강물은 청산의 겨드랑을 잡고 청산은 하늘의 허리를 잡고 해적선 노예들의 족쇄처럼 화인맞은 엉덩이의 문신처럼 ​ 자작시 “늘푸른 강물이듯이”에서 ​ (5) 공간과 시간의 동일성 ① 공간의 동일성 모든 존재는 시간과 공간의 변별성 위에 그 나름의 자율성을 지닌다. 존재는 근원적으로 개체적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개체적인 만큼 존재는 고립적이며 단독자이며 그래서 정서적으로 보면 고독하고 불안한 것이다. 그러기에 존재들이 지니는 근원적인 불안의 속성을 벗어나고자 하는 것이 종교적으로 보면 신앙적 구원의 논리가 되고, 철학적으로는 초월의 논리가 되며, 시적으로는 상상을 통한 정서적 구원의 논리가 된다. 여기서 구원의 논리란 바로 공존성의 인식이다. 그것은 너와 나의 거리를 좁히는 일이며 이질적인 개체적 공간들을 동질적인 공간으로 융합하는 노력인 것이다. 신과의 거리를 좁히는 것이 종교적 구원이라면 인간과 인간, 인간과 사물과의 거리를 좁히는 것은 시적 구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기존의 나를 버리거나, 기존의 존재성을 포기해야 한다. 이질적인 공간을 해체하여 어느 한쪽으로 통합하거나 전혀 새로운 존재로 변형해야만 하는 것이다. ​ 물결이 햇살을 마시면서 토한다 歲月에 결리는가 이따금 허릴 튼다 바람이 손 발을 씻고 내 머리를 닦는다 ​ 山이 거꾸로 매달린 채 빠져 있다 가까이 가서 보니 내 얼굴도 걸려 있다 아무리 또 건져봐도 자꾸만 달아난다 ​ 때묻은 本性을 열심으로 헹궈냈다 썩어가는 俗性을 하나하나 씻어냈다 한웅큼 떠서 마셨다 고대로 하늘 맛이다 ​ 나도 자꾸 마시면서 토한다 하늘을 마시고 山을 마시고 나를 마신다 난 그만 저 江이 된다 기어이 江이 된다 - 유제하 「강」 ​ ② 시간의 동일성 부단히 흘러가는 시간 속에 한 순간도 머무를 수 없고, 고정적일 수 없는 것이 인생이고 세계라면, 자아의 발견이나 인식이란 애당초 불가능한 허무와 좌절의 욕망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시간 속에 단절감이나 부단한 변화 속에 고정된 자아의 실체를 발견할 수 없는 절망적인 실존을 인식하면서도 불변하는 실체로서의 영원한 자아를 몽상하고 연민하게 되는 것이 바로 서정적 자아의 모습이며 시간적 동일성을 발견하려는 시적인 삶의 정당성이기도 하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물리적인 논리로 볼 때 결코 같을 수 없지만 이를 같은 것으로 동일시하려는 몽상, 그리하여 나는 시간의 흐름 속에 단절적인 존재가 아니라 연속적인 존재라는 생각이나 느낌이 바로 자기 동일성의 한 단서가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유한한 시간, 그 한스러운 시간의 족쇄에서 잠시 자유를 얻는다. ​ 훠이훠이 산을 넘고 엉겅퀴 어우러진 골짝을 지나 억만 년 숨어 사는 넓적바위 아래 옹달샘 하나 낮에는 푸른 하늘 가슴에 품고 밤에는 은하수 한줄기로 목을 축이고는 졸졸졸 찬송가 78장을 연거푸 불러대는 저 태고의 청아한 목청 ​ 수백길 암반을 뚫고 피를 토하듯이 땀을 흘리듯이 오직 순수로 솟아나는 열정 샘물은 용감한 혁명이 되어 가장 확실한 믿음이 되어 역사를 만들고 목숨을 다스린다. - 홍문표 「생수를 마시며」   시어론 4, 낯설음의 시어와 내포적 시어 ​ 홍문표 ​ (1) 낯익음과 낯설음 ① 쉬클로브스키 러시아 형식주의 비평가 쉬클로프스키의 표현을 빌리면 시의 문학성은 시어의 낯설음의 구조에 있다는 것이다. 친숙한 의미의 이미지가 아니라 생소한 충격을 주는 이미지, 뭔가 새롭게 생각하고 느끼도록 활력을 주는 언어의 창조가 바로 낯설음이며 산문과 구별되는 시어의 정수가 된다는 것이다. ② 낯익음의 언어 일상적인 언어, 반복적으로, 기계적으로 사용하는 언어, 공식적인 언어는 이해는 있으나 감동이 없다. 바닷가의 파도소리는 처음엔 낯설지만 차츰 익숙해 진다. 이를 친숙화라 하는데친숙화는 동일한 사물에 대한 우리의 지각이 반복되어 습관화되었을 때 조성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지각은 자동화되고 감각은 마비되어 낯익은 사람 사이에는 언어를 생략하고 손짓이나 눈짓으로 의사를 교환하는 탈언어화 상태가 된다. 지각적인 의식의 언어가 생략될 때 남는 것은 기호뿐이다. 인간과 사물, 인간과 인간 사이에 기호만 존재하게 될 때 그것은 시의 세계가 아니라 수학이고 과학이고 산문이다. 추상적인 개념과 습관적이고 기계적인 생활만 존재하는 삶이란 이미 창조적 인간이 아니고 기계나 동물이나 다를 바 없는 비인간화의 무의미한 세계일 뿐이다. 바로 분열과 소외가 그것이다. ​ 달 달 무슨 달 쟁반같이 둥근 달 어디어디 떴나 남산 위에 떴지 ​ ③ 낯설음의 언어 시어의 참 기능- 따라서 예술가가 대항하고 투쟁해야 할 것은 바로 이 일상과 습관과 안일과 매너리즘의 권태다. 대상을 습관적인 문맥에서 뜯어내고 본질적으로 다른 개념들과 함께 묶음으로써 시인은 상투적 표현과 거기에 따르는 기계적 반응(stock response)에 치명적인 일격(coup degrace)을 가해서 대상들의 감각적인 결(texture)을 고양된 상태에서 인식하도록 해야만 하는 것이다. 따라서 시의 언어는 바로 일상적인 낯익음의 용법을 배제하고 보다 낯선 용법을 창조하여 지각의 신선함을 회복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시적 자유이고 해방이다. ​ 당신은 짐승, 별, 내손가락 끝 뜨겁게 타오르는 정적 외로운 사람들이 따모으는 꽃씨 외로운 사람들의 죽음 순간과 머나먼 곳, 異邦의 말이 고요하게 시작됩니다 당신의 살갗 밑으로 大地는 흐릅니다 당신이 나타나면 한 개의 물고기 비늘처럼 무지개 그으며 내가 떨어질 테지만 - 이성복 「당신은 짐승, 별」 ​ (2) 전경과 후경 역시 형식주의자 무카로브스키는 낯익음과 낯설음의 관계를 전경(foregrounding)과 후경으로 설명했다. 일상적인 친숙한 언어는 후경, 즉 배경의 언어가 되고 시어는 전경으로 내세워져 전경과 후경이 이질화됨으로써 보다 신선한 시적 충격을 얻게 된다는 말이다. 이는 사진 예술에서 중요한 부분에 초점을 맞추거나 클로즈업시키는 것과 같다. ​ 활자 사이를 코끼리 한 마리가 가고 있다. 잠시 길을 잃을 뻔하다가 봄날의 먼 앵두 밭을 지나 코끼리는 활자 사이를 여전히 가고 있다. 너무 작아서 잘 보이지도 않는 코끼리, 코끼리는 발바닥도 반짝이는 은회색이다. - 김춘수 「은종이」 ​ 코끼리 은종이 (전경) (낯설음) (후경) ​ (3) 낯설음의 정도 그렇다면 여기서 같은 낯설음의 언어라 할지라도 낯익음과 낯설음의 차이, 전경과 배경의 거리에 따라서 시적 효과가 다를 수 있다는 평가의 문제를 생각할 수 있다. 비록 낯설음의 언어가 시적이기는 하지만 정도의 차이가 있을 수 있는 것이다. ​ (1) 어린이가 노래한다. (2) 새가 노래한다. (3) 꽃이 노래한다. (4) 강물이 노래한다. (5) 돌이 노래한다. (6) 질투가 노래한다. (7) 고독이 노래한다. ​ (4) 시어의 내포적 의미 ① 시적 언어의 특성 지금까지 시의 언어는 정서적이고 상상적이라 했다. 이 점은 음악과 미술과 같다. 그러나 이들과 다른 점은 시어는 음성적 요소도 있고 회화적 요소도 있지만 의미를 움켜쥐고 있는 언어라는 점이다. 언어는 소리, 형상, 의미라는 세 요소가 공존하는 것이다. 따라서 시의 경우도 의미의 요소를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시의 언어는 정서적 요소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의미가 일반 언어와 달리 내포적 의미가 있다는데 시의 특성이 있다. ② 내포적 의미 의미의 문제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서 생각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물을 H2O라고 할 땐 물이라는 의미 이외에 전혀 다른 의미가 없다. 이처럼 음성 기호인 문자와 그것이 지시하는 의미가 1:1의 관계를 갖는다. 이러한 언어의 의미를 외연(denotation)적 의미라고 한다. 객관적, 사전적, 일상적 의미다. 그런데 시에서 사용하는 언어는 그러한 사전적 의미나 객관적 의미를 넘어선 다양한 의미를 갖는다. 이를 내포(connotation)적 의미라 하는데 달리는 함축적, 주관적, 다의적, 심층적, 2차적 의미라고 한다. 리처즈는 이를 ‘의미의 의미’라고도 하였다. ​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 이육사 「광야」에서 ​ 시어 외연적, 1차적 의미 내포적, 2차적 의미 눈초인 겨울의 눈뛰어난 사람 괴로운 시대, 고독감 등구원자, 광복 등 바르트의 기호학적 의미분석 2차 언어…(내포) 초인(기표)  광복, 구원자(기의) 1차 언어…(외연) 초인(기표) 뛰어난 사람(기의)      ​ (5) 문맥적 의미 ① 개념의 시간화와 공간화 문학이란 추상적인 세계를 언어를 통하여 구체적으로 드러나게 하는 형상화의 작업이다. 그런데 언어 행위는 일정한 시간과 일정한 장소에서 일어나므로 구체화하는 방법은 원칙적으로 개념의 공간화와 시간화다. ​ 꽃 : 침묵의 언어 아침에 핀 꽃(시간화) 우리집 마당에 핀 꽃(공간화) 아침이면 나를 반겨주는 우리집 마당의 꽃(시간․공간화) ② 문맥적 의미 산문에서 쓰이는 지시적, 외연적, 언어는 주체와 객체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사전적 의미(lexicat meaning)로 선명하게 드러난다. 따라서 주체와 객체와 언어가 분리된다. 그러나 내포적 언어는 주체와 객체가 상호침투하면서 문맥적 의미(contextual meaning)로 작용한다. 주체와 객체와 언어가 하나되어 질적 변화를 일으키는 언어다. ​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 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 서정주 「국화 옆에서」 에서 ​ 누님(나이 많은 여자 형제) + 거울앞 = 중년부인(문맥적 의미) 국화(식물) + 누님 = 원숙한 꽃(문맥적 의미) ​ 내 영혼의 벌판에 쏟아지는 꽃비 그 속을 걸어가며 때로는 눈보라 때로는 달빛 때로는 폭우로 쏟아지는 혼자서 걸어가는 그 속의 외로움 - 박두진 「너」에게 ​ 내 영혼의 벌판(심리상태) + 꽃비 + 눈보라 + 달빛 + 폭우 = 인생살이(문맥적 의미) ​ 나는 그림 그리는 푸주업자를 알기를 원한다. 시를 짓는 빵 제조업자를 노래로서 그 영혼을 잘 일깨워주는 촛대 만드는 자를 아니면 벙어리 - 브라우닝 ​ 사향 박하의 뒤안길이라 아름다운 배앞 얼마나 커다란 슬픔으로 태어났기에 저리로 징그러운 몸뚱아리냐 꽃대님 같다 - 서정주의 「화사」에서 ​ (6) 영원한 디페랑 ① 계시의 언어, 묵시적 언어 예수의 재림, 새 하늘과 새 땅, 무지개 ② 소쉬르의 기의와 기표 의미의 불확정성 ③ 데리다의 디페랑 ― 포스트모더니즘 의미는 차별성을 지니면서도 끊임없이 미래로 유보되는 차이와 연기 즉 차연(differance)이라고 했다.  
1027    홍문표 시창작 강의 노트 4 댓글:  조회:904  추천:0  2019-10-24
시적 언술의 시간 ​ 홍문표 ​ (1) 서사문학과 과거의 시간 ① 완결의 형식 서사란 이미 일어났던 사건을 보고형식으로 쓰는 글이다. 문학에서는 소설, 수필 등이 대표적인데, 소설이 비록 허구적인, 즉 꾸며진 글이라도 인과성 있는 필연성의 사건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경험을 재구성하여 질서정연한 줄거리를 가진 완결된 형식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서사(narration)적인 문학 양식은 과거 시제나 과거완료 시제를 사용하는 것이 기본적인 조건이 된다. ​ ② 김동인의 「감자」에서 ― 과거시제 사흘이 지났다. 밤중 복녀의 시체는 왕 서방의 집에서 남편의 집으로 옮겨졌다. 그리고 시체에는 세 사람이 둘러앉았다. 한 사람은 복녀의 남편, 한 사람은 왕 서방, 또 한 사람이 어떤 한방의사―왕 서방은 말없이 돈주머니를 꺼내어 십 원짜리 지폐 석 장을 복녀의 남편에게 주었다. 한방의사의 손에도 십 원짜리 두 장이 갔다. 이튿날 복녀는 뇌일혈로 죽었다는 한방의의 진단으로 공동묘지로 실려갔다. - 김동인의 「감자」에서 ​ (2) 서정시와 현재의 시간 ① 서정시의 현재성 그러나 서정시는 서사문학의 양식인 소설이나, 주인공의 행위를 중심으로 언술하는 서사시와는 달리 시인 자신의 현재 순간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과거의 사실을 인과관계나 시간적인 순서에 의해서 서술하는 서사문학과 달리 현재의 시제를 사용하는 것이 원칙이다. 시는 사건이나 인물의 행위를 전달하는 형식이 아니라 사건이나 인물의 인상이나 정서를 감각적 이미지를 통하여 ‘어떠하다’고 표현하는 것이지 ‘어떠했다’고 전달하는 방식이 아니라는 말이다. ​ ② 시의 허구적 현재 서정시가 현재의 시제를 사용하는 것은 반드시 시적 언술의 시간이 물리적으로 현재이기 때문이 아니라 어떤 사실을 가상적으로 현재화한다는 데 그 특성이 있다. 말하자면 허구적 현재라는 말이다. 이는 과거의 사건이든 미래의 사건이든 모두 현재의 감정이나 인상인 것처럼 가장하는 시의 장치다. ​ 주름의 집이 기우뚱 하수구 위로 기운다. 금방 쓰러져 캄캄한 하수구 맨홀 속으로 빨려들 것처럼 구부린다. 아주 주저앉는다. 집이, 오랜 세월 견뎌온 주름의 집이, ​ 그리고는 차창에 스치는 붉은 꽃을 마구 토해낸다. 환한 대낮, 수많은 주름이 집을 의지한 채 길가에 비틀비틀 부지런히 방향을 찾고 있다. - 유강희 「노인」 ​ 한 개의 원이 굴러간다. 천사의 버린 지환이다. 그 안팎으로 감기는 별빛과 ​ 꽃잎들……. 금빛, 수밀도만한 세 개의 원이 천 개의 원이 굴러간다. - 문덕수 「원에 관한 소묘」에서 ​ (3) 전달을 위한 의도적인 시간 물론 서정시는 현재를 원칙으로 하지만 어떤 사실을 의도적으로 전달, 호소하고자 할 때, 과거나 미래의 시제를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목적시나 의지적인 시에서 볼 수 있다. ​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 신경림 「갈대」 ​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며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 잡고, ​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 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 천상병 「귀천」 ​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 ―그 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던가 ​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 보자. ​ 그러면 어느 운석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 온다. - 윤동주 「참회록」 ​ (4) 무시간의 시적 언술 ① 무시간성의 문장 논설문이나 논증문은 시제가 필요하지 않다. 그것은 어떤 인물의 행위나 개인적인 감정의 궤적을 기록하는 시간적 형식이 아니라 사실을 객관적으로 공간적으로 서술하기 때문이다. ​ 자연에 인공이 끼여서는 자연이 아니다. 자연은 미추를 초월한, 미 이전의 세계다. 사람의 꾀에서 생겨나는 인공의 미가 여기서는 있을 수가 없다. 자연에는 오직 자연의 미가 있을 따름이다. 자연의 섭리에 입각한 만유존재 그 자체의미가 있을 뿐이다. 미추를 인식하기 이전, 미추의 세계를 완전 이탈한 미가 자연의 미다. - 강원용 「한국의 미」에서 ​ ② 무시간성의 시 시간은 살아 있는 존재, 생명이 있고, 감정이 있고 존재의 행동이나 심리변화가 있을 때 가능한 것이다. 문학에서 시간성이 요구된다는 것은 결국 생명 있는 존재를 언술하는 양식이기 때문이다. 과학에서는 추상적인 공간성이 요구되기에 시간성이 배제된다. 그런데 시의 경우에도 극단적으로 시간성을 배제하여 시의 공간화, 시의 무시간화를 시도하는 경우가 있다. 실험적인 시의 방법이나 철저히 사물을 객관화할 경우다. ​ 數字의方位學 數學의力學 時間性(通俗事考에依한歷史性) 速度와座標와速度 - 이상 「3차각 설계도 선에 관한 각서 6」에서 ​ 하얀 창 앞에 마구 피어 오르는 것은 활활 타오르는 불길이다. ​ 바다 앞세 날리운 모닥불 같은 것으로 스스로 전율에 이어온 사랑 ​ 여기 아무도 반거(蟠居)할 수 없는 하나의 지역에서 가을의 음향을 거두는 것이다 - 임강빈 「코스모스」     시의 공간과 거리 ​ 홍문표 ​ (1) 공간의식과 시적 상상력 ① 시적 공간의 탄생 인간이란 지상에 던져진 공간적 존재다. 지상에 태어나 지상을 경험하고 그 공간의 질서를 발견하고 그러한 질서를 진리로 인식하며 그러한 공간적 경험들을 재구성하며 새로운 공간을 그려본다. 그것이 상상(imagination)이다. 이는 자연적 공간이 아니라 시인의 주관적 공간, 상상적 공간, 바로 시적 공간이 된다. ​ (ㄱ) 능수버들이 지키고 있는 낡은 우물가 우물 속에는 푸른 하늘 조각이 떨어져 있는 윤사월 ​ (ㄴ) 아주머님 지금 울고 있는 저 뻐꾸기는 작년에 울던 그놈일까요? 조용하신 당신은 박꽃처럼 웃으시면서 ​ 두레박을 넘쳐흐르는 푸른 하늘만 길어 올리시네 두레박을 넘쳐흐르는 푸른 전설만 길어 올리시네. - 김종한의 「낡은 우물이 있는 풍경」에서 ​ (ㄱ) - 자연적 공간 (ㄴ) - 상상적 공간 ② 상징과 은유의 공간 상상에 의한 가시적 공간을 시학에서는 이미지라고 말한다. 이미지란 시인의 실제 경험한 현실적 공간의 재구성인데 이러한 상상적 공간은 실제의 공간만을 재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이념이나 정서 등 불가시의 세계도 대신 들어 내는 공간이 된다. 이러한 이미지를 상징이나 은유의 공간이라고 한다. ​ 산새도 날아와 우짖지 않고 구름도 떠가곤 오지 않는다. ​ 인적 끊인 곳 홀로 앉은 가을 산의 어스름. ​ 호오이 호오이 소리 높여 나는 누구도 없이 불러 보나 울림은 헛되이 빈 골을 되돌아 올 뿐 - 박두진의 「도봉」에서 ​ 산 - 현실공간 + 상징공간 ③ 시적 공간화의 의미 시가 현실공간에서 상상공간으로 확대 변형할 수 있음은 바로 현실에서 이상으로, 지상에서 천상으로 초월할 수 있다는 것이며 이는 유한한 삶의 한계를 벗어나는 자유, 해방, 구원의 방식이기도 하다. ​ (2) 시적 공간과 심리적 거리 ① 긴장의 관계와 심리적 거리 공간에 대한 의식은 내가 어떤 공간에 관심을 가질 경우, 또는 공간이 나에게로 다가오는 경우인데 감동이란 결국 나와 대상과의 관계성에서 야기되는 심리현상이다. 따라서 나와 대상, 대상과 대상 사이의 공간적 거리, 심리적 관심이 어느 정도인가에 따라 미적 효과가 다르게 나타난다. 현대시에서 긴장의 문제는 충돌의 논리나 병치의 논리에서 잘 드러나고 있지만, 결국 이는 현실공간과 시적 공간 사이에 나타나는 대응관계에서 분명하게 파악할 수 있는 일이다. ​ 어둠은 새를 낳고, 돌을 낳고, 꽃을 낳는다. 아침이면, 어둠은 온갖 물상을 돌려주지만 스스로는 땅 위에 굴복한다. - 박남수의 「아침 이미지」에서 ​ 어둠 + 새, 돌 꽃 = 병치, 충돌, 심리적 거리 조정 ② 시적 대상과 거리 시인은 시적으로 사물을 보고 표현한다. 여기서 시적으로 본다는 것은 주관적인 순수한 심정에서 사물을 보고 미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주관적인 표현일 경우 그 대상과 어느 정도의 거리를 유지해야 할 것인가, 멀리서 볼 것인가, 가까이서 볼 것인가, 표면만 볼 것인가, 내면까지 볼 것인가 하는 거리의 문제가 제기된다. 여기서 이러한 거리의 문제란 결국 그 대상에 대한 내 감정의 개입을 어느 정도 함으로써 미적 표현이 성취될 것인가 하는 심적 거리를 말한다. ​ (1) 선은 가냘픈 푸른 선은 아리따웁게 구을러 보살같이 아담하고 날씬한 어깨에 4월 훈풍에 제비 한 마리 방금 물을 박차 바람을 끊는다. 그러나 이것은 천년의 꿈 고려청자기! - 박종화 「청자부」에서 ​ (2) 바다는 강물의 발목을 잡고 강물은 청산의 겨드랑을 잡고 청산은 하늘의 목숨을 잡고 해적선 노예들의 족쇄처럼 화인 맞은 엉덩이의 문신처럼 ​ 나는 당신의 폭력이 되고 당신은 나의 눈물이 되고 빙글빙글 돌아가는 물레방아 훠이훠이 날아가는 서역 구만리 - 자작시 「늘 푸른 강물이듯이 19」에서 ​ ③ 바람직한 시적 대상과 미적거리 미적거리- 시인과 작품과 독자 사이에 감동을 자아내는 미적 거리의 조건은 무엇일까. 칸트는 예술적인 미를 사심 없는(disinterested), 이해관계를 초월한 상태에서의 경험이라 했고, 벨로우(E. Bellough)는 육지의 안개와 바다에서 느끼는 짙은 안개와의 심리적 차이를 심리적 거리(psychicaldistance)의 효과라 했다. 객관적 상관물- 여기서 엘리어트(T.S. Eliot)가 지적한 것처럼 감정과 이성의 등가(等價)적 작품이 가장 적절하다고 한 말을 수긍할 수 있다. 감정과 이성을 적절히 조절하는 행위는 바로 시인의 의도적인 작업이며 이를 조절하는 시적인 장치가 바로 시적 형식이며 시적 창조작업이다. 시를 하나의 유기체로 보는 것이나 여러 요소와 유기적으로 결합된 하나의 구조(structure)로 보는 것, 무질서한 감정이나 사고를 미적으로 형식화(forming)하는 것은 모두가 적절한 거리 조정(distancing)작업이다. 이에 대하여 엘리어트는 “시는 정서로부터 해방이 아니고 정서로부터의 도피이며 개성의 표현이 아니라 개성으로부터의 도피다”라고 하였다. 여기서 정서로부터의 도피란 일상적이고 상식적인 정서로부터 시는 벗어나야 한다는 말이다. 이는 일상적인 개성과 정서에서 벗어나 시적이고 미적인 정서와 개성을 창조해야 한다는 말로서 여기에는 대상과의 미적거리, 심리적 거리가 요구되며 그 구체적인 장치가 바로 객관적 상관물(objective correlative)이라고 하였다. 그는 예술적 형식으로 정서를 표현하는 유일한 방법은 객관적 상관물을 발견하는데 있다고 하였다. 객관적 상관물이란 어떤 대상을 시적으로 표현할 때 그 대상에 대한 정서나 관념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 대상을 은유화 하거나 상징화한 특정한 이미지를 통하여 보다 새로운 정서와 개성을 창조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상과의 심리적 거리가 필요하고 특정한 화자와 특정한 어조가 요구되기도 하는 것이다. ​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 정현종 「섬」 ​ 허공에 매달린 외줄이 우리들 밥 멕이는 밥줄이요 밥줄. 줄광대 한평생 뼛골만 쑤셔 마디마디 삭아버린 삭신 죽어 송장 염도 못할 거요. 그냥 이대로 화장터에 불살라서 한줌 가루 고향으로 보내주면 쓰겄소 잉. - 이성부 「줄광대 김씨」 ​ ④ 부족한 거리와 지나친 거리 조정 심리적 거리의 적절한 조정, 이것이 시인이 시를 창작하는데 있어서 고심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하였다. 너무 대상과의 거리를 가까이 한답시고 일상적인 감정을 직설적으로 노출하는 경우 부족한 거리조정(underdistancing)이 될 수 있고, 감정을 배제하고 관념만을 드러낼 욕심으로 무슨 정치적 구호를 내뱉을 때는 시적인 미학과 무관한 지나친 거리조정(overdistancing)이 될 것이다. ​ (1) 바람아, 오― 폭풍아 흑풍아 그 불꽃을 ​ 불어 날려라 쓸어 헤치라 몰아 무찔러라. - 오상순 「허무혼의 선언」에서 ​ (2) 산야에서 푸르른 새순들은 돋고 진달래는 선홍을 피어 타오르는데 쑥국새 하염없는 울음속에 우리들 4월의 혼은 잠들 수 없다. 지나간 25년의 세월 하루도 편할 날은 없었다. 코쟁이 쭉발이들 감놔라 대추놔라 호령하는 소리 이 땅의 똥개나 뀌고 힘깨난 쓴다는 자들 금방망이 도끼방망이 제멋대로 휘두르는 소리 이 통에 민주주의 계속 작살나는 소리 - 채광석 「산자여 답하라」에서   시의 화자와 어조 ​ 홍문표 ​ (1) 시의 화자와 소설의 화자 ① 문학의 허구와 화자 문학이란 시인이나 소설가 자신이 말하는 주체가 되어 자신의 사상이나 감정을 직접 언술하는 경우도 있지만 다른 인물들을 내세워서 언술하는 간접화법을 쓰기도 한다. 다른 인물을 내세워 말하게 하기에 허구(fiction)라 하는데 이것도 상상이고 창작이다. 뿐만 아니라 청자도 임의로 설정하여 말을 듣도록 한다. 그래서 임의로 설정한 화자를 허구화된 화자, 또는 청자를 허구화된 청자라고 한다. 이는 소설만 그런 것이 아니라 시도 그렇다. 여기에 시 창작과정에서 화자와 청자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② 소설 화자와 시점 소설에서는 허구화된 인물의 이야기 방식을 화자의 시점(point of view)이라고 한다. ​  사건의 내적 분석 사건의 외적 관찰 스토리 속의 등장인물로서의 화자 ① 주인공이 자신의이야기를 함 ② 부수적인 인물이주인공의 이야기를 함 스토리 속의 등장인물이 아닌 화자 ④ 분석적이고 전지적인 작가가 사상과 감정을 포함한 이야기를 함 ③ 작가가 관찰자로서 이야기를 함 ​ 이 도표에서 보듯이 소설에는 네 가지 유형의 서술 시점을 생각할 수 있다. 그 첫째는 사건의 주인공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경우다. ‘나’라는 주인공이 자신이 경험한 사실들을 서간체, 일기체, 수기, 신변소설, 심리소설 형식으로 서술하는 것이다. 이상의 「날개」나 김유정의 「봄봄」이 그런 경우다. ​ 나는 우선 내 아내의 직업이 무엇인가를 연구하기에 착수하였으나 좁은 시야와 부족한 지식으로는 이것을 알아내기 힘이 든다. 나는 끝끝내 아내의 직업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말려나보다. - 이상 「날개」에서 ​ 둘째는 사건의 부수적인 인물인 ‘나’가 주인공의 이야기를 하는 경우다. 주요섭의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가 그 대표적인 경우다. 셋째는 작가가 관찰자가 되어 등장인물을 모두 3인칭화하여 서술하는 방법이다. ​ 소년은 개울가에서 소녀를 보자 윤 초시네 증손녀 딸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소녀는 개울에다 손을 담그고 물장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서울서는 이런 개울물을 보지 못하기나 한 듯이 - 황순원 「소나기」에서 ​ 인용한 문장에서는 작가가 소년과 소녀의 행동을 관찰하는 형식이다. 그러나 네 번째는 1인칭 ‘나’나 3인칭인 ‘그’를 고정적으로 하지 않고 외부적인 사건이나 내부적인 심리까지도 분석하고 해석하면서 서술해 가는 전지적 작가의 서술이다. 이광수의 「무정」이 그 예에 속한다. 이처럼 소설에서는 크게 네 가지로 화자의 서술 시점을 구분하고 있다. ​ (2) 시의 화자와 청자 ① 시의 화자와 청자 시의 경우도 작품 속에는 시적 화자가 있고 시적 청자가 있으며 이들 각각에는 드러난 화자 드러난 청자, 숨은 화자 숨은 청자가 있다. 시작품(text) ​ 실제시인 → 시적화자 드러난 화자 → 드러난 청자숨은 화자 → 숨은 청자 시적청자 → 실제청자 ​ ② 드러난 화자와 드러난 청자 시의 언술을 보면 시 문장에 ‘나’라는 화자가 명시될 뿐만 아니라 나의 상대인 ‘너’나 ‘그’나 어떤 대상이 명시되어 독특한 대화의 국면을 조성하고 있는 작품을 볼 수 있다. ​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 당신은 흙발로 나를 짓밟습니다. 나는 당신을 안고 물을 건너갑니다. 나는 당신을 안으면 깊으나 옅으나 급한 여울이나 건너갑니다. ​ 만일 당신이 아니 오시면 나는 바람을 쐬고 눈비를 맞으며 밤에서 낮까지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당신은 물만 건너면 나를 돌아보지도 않고 가십니다 그려 그러나 당신이 언제든지 오실 줄만은 알아요. 나는 당신을 기다리면서 날마다 날마다 낡아 갑니다. ​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한용운의 「나룻배와 행인」 ​ ③ 드러난 화자와 숨은 청자 둘째로는 시 문장 속에 구체적으로 ‘나’라는 화자만 명시적으로 드러나고 그 대상인 청자는 숨겨진 경우가 있다. ​ 내 마음의 어딘 듯 한편에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돋쳐오르는 아침날빛이 빤질한 은결을 도도네 가슴엔 듯 눈엔 또 핏줄엔 듯 마음이 도른도른 숨어 있는 곳 내 마음의 어딘 듯 한편에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 김영랑 「끝없이 강물이 흐르네」 ​ 한결같은 망각 속에 나는 구태여 움직이지 않아도 좋다 나는 소리쳐 부르지 않아도 좋다 시작도 끝도 없는 나의 침묵은 아무도 건드리지 못한다 ​ 무서운 것이 내게는 없다 누구에게 감사 받을 생각도 없이 나는 나에게 황홀을 느낄뿐이다. ​ 나는 하늘을 찌를 때까지 자랄려고 한다 무성한 가지와 그늘을 펼려고 한다 - 김윤성 「나무」 ​ ④ 숨은 화자와 드러나 청자 셋째로는 화자는 숨어 있고 청자만 드러난 경우가 있다. 이 때 청자는 물론 너라는 2인칭의 형식이 되겠지만 다른 사물을 2인칭화 하여 명령하거나 권고하거나 요청하는 경우도 가능하다. ​ (1) 껍데기는 가라. 四月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 껍데기는 가라. 東學年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 신동엽 「껍데기는 가라」에서 ​ 눈은 살아 있다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마당 위에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 위에 대고 기침을 하자 눈더러 보라고 마음놓고 마음놓고 기침을 하자 - 김수영 「눈」에서 ​ ⑤ 숨은 화자와 숨은 청자 네 번째로 상정할 수 있는 것은 시의 문 면에 시적 화자나 시적 청자가 모두 생략되어 버린, 숨은 화자와 숨은 청자의 시를 생각할 수 있다. 우리말의 일상적 어법에서도 영어에 비하여 주어를 생략하는 경우가 많이 있지만 시에 있어서 언술의 주체인 화자나 청자를 숨기거나 생략하는 것은 단순히 우리말의 어법의 관습이 아니라 가급적 화자의 주관적 감정을 배제하고 사물의 인상을 객관화하려는 모더니즘적 기법에서 볼 수 있는 언술이다. ​ (1) 1 향료를 뿌린 듯 곱―다란 노을 위에 전신주 하나하나 기울어지고 ​ 2 구름은 보랏빛 색지 위에 마구 칠한 한 다발 장미 ​ 목장의 깃발도 능금나무도 부을면 꺼질 듯이 외로운 들길 - 김광균 「뎃상」 ​ 눈보다도 먼저 겨울에 비가 오고 있었다. 바다는 가라앉고 바다가 있던 자리에 軍艦이 한 척 닻을 내리고 있었다. 여름에 본 물새는 죽어 있었다. 물새는 죽은 다음에도 울고 있었다. 한결 어른이 된 소리로 울고 있었다. - 김춘수 「처용단장」에서 ​ (3) 시의 화자와 어조 시인이 시적 화자를 세울 경우, 필요에 따라 남자를 세울 수도, 여자를 세울 수도 있다. 또한 남자인 경우라도 어른이나 어린이, 도시인이나 농촌사람 등 무수히 다양한 계층의 인물을 세울 수 있으며 이들을 통하여 말을 할 때는 시적 화자의 개성과 시적 청자에 대한 관계상황에 따라 그 나타내는 태도나 목소리를 달리 할 수가 있는 것이다. 시적 화자의 어조(tone)의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어조는 인물의 성격을 드러낼 뿐만 아니라 시에서는 통일성, 리듬감, 정서를 드러내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 개나리 보고 싶어. 할머니 병아리떼 물어낸 개나리 보고 싶어, 봄이 어떻게 생겼는지 잘도 찾아낸 그 병아리는 닭장에서 나오지 않고 왜 그림책 속에만 갇혀 있지. 할머니 봄비도 보고 싶어. - 양왕용 「도회의 아이들 8」에서 ​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 ​ 그냥 갈까 그래도 다시 더 한 번…… ​ 저 산에도 까마귀, 들에 까마귀, 서산에는 해 진다고 지저귑니다. - 김소월 「가는 길」에서   시적 진술의 세 유형 ​ 홍문표 ​ (1) 누구에게 말하는가 ① 진술의 대상에 따른 언어의 기능 말을 할 때는 기본적으로 말을 하는 사람, 즉 발신자가 있겠고, 그 말을 들어주거나 말에 따라 움직여 줄 수 있는 수신자, 즉 대상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발신자인 내가 2인칭인 ‘너’에게 향해서 말할 수도 있지만 때로는 ‘너’가 아닌 제3자적인 인물이나 사물에 향하여서도 말할 수 있다. 사실 연설문이나, 사랑의 편지 등은 듣는 청중이나 어떤 대상에게 무엇인가 요구하는 문장이다. 그러나 학술적인 문장이나 공공의 언어들은 어떤 대상에 대하여 객관적으로 설명하거나 증명하기도 하며 자신의 견해를 밝히기도 한다. 그런데 문학, 특히 시의 경우는 2인칭인 ‘너’나 3인칭인 ‘그’에 대하여 뿐만 아니라 화자 자신의 심정을 넋두리처럼 말할 수도 있다. 혼자 중얼거리는 형식이다. 이렇게 스스로 중얼거리는 독백을 언어의 정서적 기능이라 하고 ‘너’에게 무엇인가를 요구하는 언어를 사역적 기능, 그리고 그에 대하여 말하는 것을 지시적 기능이라고 한다. ② 야콥슨의 소통 구조와 언술의 기능 야콥슨은 발신자와 수신자 사이에 이루어지는 이러한 언술을 좀더 세분하여 발신자와 수신자 사이에는 제시물인 관련사항만 있을 것이 아니라 무의미 시처럼 전언 그 자체를 지향하는 시적 언어, ‘여보세요’, ‘네’ 등 접촉성을 나타내는 친교적 언어, 신호체계에 대해서만 언급하는 메타언어가 있다고 하였다. ​  지시적(referential)     ↕     시 적(poetic)         정서적(emotive) ↕   능동적(coactive)  ↕          친교적(phatic)     ↕     메타언어적(metalingual)      관련상황(context)     ↕     전 언(message)        발신자(addresser)  ↕ 수신자(addressee)    ↕          접촉(contact)     ↕     신호체계(code)        ​ (2) 독백적 진술 ― 화자지향형 ① 독백적 진술의 성격 독백적 진술은 스스로가 시적 대상이 되어 반성하고 기원하는 형태다. 말하자면 1인칭 지향형이다. 이는 철저히 자아에 대한 자각이며 넓게는 인생에 대한 자각일 수 있다. 자각은 과거를 통한 현재의 자작이거나 현재를 통한 미래에의 소망일 수 있다. 따라서 회고적 독백과 기원적 독백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하지만 나에 대한 이야기라고 해서 모두 화자 지향형이라고 볼 수는 없다. 자기에 대한 이야기도 자아가 둘로 분리하여 하나의 자아가 다른 자아를 관찰자 입장에서 이야기할 경우에는 화제 지향형으로 바뀌게 된다. 따라서 화자 지향형이란 의 주관적인 정서나 신념을 다루는 유형으로 제한해야 한다. ​ ② 회고적 독백 ​ 어제 내가 본 건 그럼 뭐더라? 해변도 아니고 마을도 아니고 개도 아니고 개도 아니고 교회도 아니고 교회의 첨탑은 더욱 아니고 아니고 아니고 아니고 그럼 뭐더라? 꿈이런가? 어제 내가 본 건 어제밤 내가 벚꽃이 비바람에 떨어지던 학교 뒤뜰에서 본 건 그럼 누가 본 건가? - 이승훈 「어제 내가 본 건」에서 ​ ③ 기원적 독백 ​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 천상병, 「귀천」 ​ (3) 권유적 진술 ― 청자지향형 ① 권유적 진술의 성격 권유적 진술은 자신의 입장이나 주장을 단수인 너(you)뿐만 아니라 복수인 너희(you)에게 적극 동조하기를 요청하는 진술형식이다. 따라서 2인칭인 청자지향형이다. 개화 계몽기의 많은 시가들을 보면 대부분 부국강병, 문명개화를 부르짖는다. 윤리도덕이나 이념적인 내용을 내세우는 경우도 권유적 진술을 한다. 특히 국가나 단체의 중요한 행사를 할 경우 행사의 성공적인 기원이나 참여자의 각성을 촉구하는 정치적 모임에도 권유적인 목소리가 강하다. 그런데 권유적 진술에는 화자가 청자보다 우위에서 강요하는 경우, 하위에서 애원, 찬양하는 경우가 있다. 선동시나 어용시가 그렇다. ​ ② 화자가 우세한 경우 (명령적 권유) ​ 껍데기는 가라. 4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東學年)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 신동엽, 「껍데기는 가라」에서 ​ ③ 화자와 청자가 대등한 경우 ​ 우리 모두 화살이 되어 온몸으로 가자 허공 뚫고 온몸으로 가자 가서는 돌아오지 말자 박혀서 박힌 아픔과 함께 썩어서 돌아오지 말자 ​ 우리 모두 숨 끊고 활시위를 떠나자 몇십 년 동안 가진 것 몇십 년 동안 누린 것 몇십 년 동안 쌓은 것 행복이라던가 뭣이라던가 그런 것 다 넝마로 버리고 화살이 되어 온몸으로 가자 - 고은 「화살」에서 ​ ④ 청자가 우위에 있는 경우 (기원) ​ 말씀이 뜨거이 동공에 불꽃튀는 당신을 마주해 앉으리까 랍오니여 발톱과 손가락과 심장에 상채기 진 피흐른 골짜기의 조용한 오열 스스로 아물리리라 이 상처를 랍오니여 조롱의 짐승소리로 이제는 노래절벽에 거꾸러짐도 이제는 율동 당신의 불꽃만을 목구멍에 삼킨다면 피눈물이 화려한 고기비늘이 아니리라 랍오니여 발광이 황홀한 안식이 아니리라 랍오니여 - 박두진 「당신이 사랑 앞에」 ​ (4) 해석적 진술 ― 화제지향형 ① 해석적 진술의 성격 해석적 진술은 어떤 사물에 대하여 시인이 주관적으로 상상적으로 해석하고 이러한 해석을 제3자인 다중에게 설명하거나 새로운 정보를 제공하는 형식이다. 따라서 이러한 언술에는 문맥의 표면에 화자나 청자가 잠재되는 것이 보통이다. 그리고 정서적 표현과 의미 부여를 억제하고, 카메라 렌즈로 사물을 비춰 보이듯 이미지화 하는 것이 특징이다. ​ 개나리 진달래 흐드러진 꽃밭이다. 맹진사 댁 청사초롱이다. 사월의 산언덕 포등한 등성이마다 ​ 너울 쓴 신부처럼 파닥이는 가슴이다. ​ 두려움의 껍질들이 허물을 벗고 차마 부끄러워 마지막 정절에 혼절하는 잔인한 환성이다. ​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운명의 시간을 헐고 한 순간의 황홀을 위하여 아, 온몸을 투신하는 아리디 아린 눈물이다. - 자작시 「꽃밭에서」 ​ 햇살은 모두 둑 밑에 내려와 있다 미루나무 가지 사이로 강 바람이 분다 ​ 자전거를 타고 가는 시골 청년 자전거 바퀴 살에 햇살이 실려서 돌아간다 ​ 그 바퀴 살 사이로 투명한 강 ​ 얼마쯤 걸었을까 미루나무도 가고 있는지…… 미루나무는 조금씩 작아져 갔다 - 한성기 「둑길․1」 전문   주제와 소재의 형상화 ​ 홍문표 ​ (1) 시의 주제 ① 산문의 주제 산문의 필수적 요소- 주제(主題)를 글자의 뜻으로 보면 문장의 중심이 되는 제목이라든지 핵심이 되는 과제라는 뜻인데 이는 산문의 필수적인 것, 말하고자하는 핵심이다. 사실 일반 학술 논문에서는 주제와 제목이 일치한다. 예를 들어 「3․1운동의 역사적 의미에 대하여 논함」이라든지 「춘향전의 근대성에 대한 연구」라는 등의 제목은 그대로 그 글의 중심 과제와 일치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문학작품에서 소설이나 희곡, 또는 수필의 경우 반드시 주제는 있어야 하지만 그 주제는 형상화되어야 한다. 소설론에서는 이를 이야기꾼과 작가, 말하기(telling)와 보여주기(showing), 스토리와 플롯으로 구분하여 설명하기도 한다. 전자는 사건의 서술을 시간적인 순서에 따라 흥미있게 전달하기만 하는 방식이고, 후자는 사건의 서술을 인과관계에 의해 서술하면서 이야기 속에 어떤 주제를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② 소설의 대표적인 주제 포스터- 탄생, 밥, 잠자리, 죽음, 사랑 현대문학의 주제- 첫째로 인간적인 것과 비인간적인 것의 대립을 볼 수 있다. 현대는 물질주의, 기계 만능, 폭력, 전쟁, 권력의 횡포 등 갖가지 비인간적인 것들이 우리의 인간성을 유린한다. 과거에는 선과 악의 갈등, 즉 도덕적인 것과 비도덕적인 것으로 이분되었던 것이 오늘날에 와서는 인간적인 것과 비인간적인 것들의 대립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둘째로 낡은 것과 새로운 것들의 마찰이다. 기성 세대와 젊은 세대, 보수와 진보, 과거의 가치관과 현대의 가치관의 대립 등은 결국 지나간 것들과 새 것들의 갈등이기도 하다. 셋째로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지배자와 피지배자, 도시적인 것과 농촌적인 것, 전통적인 것과 외래적인 것 등의 대립이다. 넷째로 개성적인 삶과 상식적인 삶, 개인주의와 집단주의, 또는 한 개인에게 있어서 내면적인 심리적 갈등, 생의 근본 문제 등에서 오는 갈등이 있을 수가 있다. ③ 시의 주제에 대한 인식 관점에 따라 문학의 인식 차이- 모방론, 표현론, 효용론, 존재론 시와 산문의 장르적 차이- 소설은 주제를 드러내는 문학양식, 시는 사물에 대한 감정, 태도의 표현양식 사르트르- 시는 있음(being), 즉 존재의 문학이고 소설은 행동(doing), 즉 당위의 문학이다. ​ 시는 둥근 과일처럼 만질 수 있고, 잠잠해야 한다. 시는 의미할 것이 아니라 다만 존재해야 한다. - 매클리시의 「시법」 ​ 발레리- 시는 춤(dancing)이고 소설은 걷기(walking)이다. 소설은 주제의 보여줌(showing)에 중심적인 양식이고 시는 존재의 보여줌(showing)에 중심을 두는 양식이다. ​ 나는 불현듯이 겨드랑이가 가렵다. 아하, 그것은 내 인공의 날개가 돋았던 자국이다. 오늘은 없는 이 날개, 머리 속에서는 희망과 야심의 말소된 페이지가 딕셔내리 넘어가듯 번뜩였다. 나는 걷던 걸음을 멈추고 그리고 어디 한 번 이렇게 외쳐 보고 싶었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 한번만 더 날자꾸나.” “한번만 더 날아보자꾸나.” - 이상 「날개」에서 ​ 영산홍 꽃잎에는 산이 어리고 ​ 산자락에 낮잠 든 슬픈 소실 댁 ​ 소실댁 툇마루에 놓인 놋요강 ​ 산 넘어 바다는 보름사리 때 ​ 소금 발이 쓰려서 우는 갈매기 - 서정주 「영산홍」 ​ (2) 주제의 형상화 시가 존재의 표현 양식이라 하지만 존재라는 말에는 물질적 존재 역사적 존재, 인간적 존재 등이 있어 정치적인 사상적인 문제를 주제로 할 수 있다. 문제는 물질적 존재든 역사적 존재든 시적인 미학으로 형상화되어야 한다. ​ 미군이 없으면 삼팔선이 터지나요 삼팔선이 터지면 대창에 찔린 개구락지처럼 든든하던 부자들 배도 터지나요 - 김남주 「다 쓴 시」 ​ 간다 울지 마라 간다 흰 고개 검은 고개 목마른 고개 넘어 팍팍한 서울 길 몸팔러 간다 ​ 언제야 돌아오리란 언제야 웃음으로 화안히 꽃 피어 돌아오리란 댕기 풀 안쓰러운 약속도 없이 간다 울지 마라 간다 모질고 모진 세상에 살아도 분꽃이 잊힐까 밀냄새가 잊힐까 사뭇사뭇 못 잊을 것을 꿈꾸다 눈물 젖어 돌아올 것을 밤이면 별빛 따라 돌아올 것을 ​ 간다 울지 마라 간다 하늘도 시름겨운 목마른 고개 넘어 팍팍한 서울 길 몸팔러 간다. - 김지하 「서울 길」 ​ 구두를 닦으며 별을 닦는다 구두통에 새벽별 가득 따 담고 별을 잃은 사람들에게 하나씩 골고루 나눠 주기 위해 구두를 닦으며 별을 닦는다. 하루 내 길바닥에 홀로 앉아서 사람들 발 아래 짓밟혀 나뒹구는 지난 밤 별똥별도 주워서 닦고 하늘 숨은 낮별도 꺼내 닦는다. 이 세상 별빛 한손에 모아 어머니 아침마다 거울을 닦듯 구두 닦는 사람들 목숨 닦는다. 목숨 위에 내려앉은 먼지 닦는다. 저녁별 가득 든 구두통 메고 겨울밤 골목길 걸어서 가면 사람들은 하나씩 별을 안고 돌아가고 발자국에 고이는 별바람 소리 따라 가랑잎 같은 손만 굴러서 간다. - 정호승 「구두 닦는 소년」 ​ 햇살이 칼날 하나를 빼어 눈을 후려친다 하루가 팔딱 뛰어 일어난다 어제와 오늘과 내일 사이에서 - 민용태 「청개구리 만세」 ​ 그대 물음표 투성이의 가슴을 가르고 들어가 생 빛 한 줄기 찾으려 했네 ​ 얼굴도 눈도 없이 허공만 숨어 사는 그대 몸 전체에서 거듭되는 어제를 지켜보며 동행할 빛을 잃었네 - 김초혜 「사랑 굿 11」에서 ​ (3) 소재의 형상화 ① 벽돌집 흙은 바로 벽돌이 되지 않는다. 흙을 뜨거운 불에 구워서 질적인 변화를 주어야 벽돌이 된다. 흙으로 직접 집을 짓는 것이 아니라 벽돌을 만들어 집을 짓듯이 소재를 상상력의 용광로에 넣고 구운 다음 시라는 새로운 집에 알맞은 이미지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 나의 내부는 무척 은밀하다 깎아 놓은 붉은 과일과 갈아 놓은 시퍼런 칼이 깊이 간직되어 있으므로. ​ 나의 내부는 항상 무섭다 가능한 모든 짐승의 발톱과 번뜩이는 눈을 담고 기막힌 싸움을 기다리고 있으므로 ​ 그러나, 나는 싸우지 않는다 더욱 더 무섭게 살아갈 것이다. ​ 언제나 깎아 놓은 붉은 과일과 갈아 놓은 시퍼런 칼이 있으므로 나는 살아 있다. 분명, 살아 있다. - 임승천 「나의 내부는」 ​ ② 살아있는 생명체 둘째로 소재는 살아서 행동하고 사고하고 감동해야 하는 것이다. 전혀 다른 동물로 태어나 독자적인 삶을 행사하는 존재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시의 소재는 그것이 사물이든 관념이든 상관없이 새로운 생명과 영혼과 감정을 가지고 우리 앞에 다정히 다가와야 하는 것이다. ​ 구름은 딸기밭에 가서 딸기를 몇 개 따먹고 아직 맛이 덜 들었군! 하는 얼굴을 한다. 구름은 흰 보자기를 펴더니, 양(羊)털 같기도 하고 무슨 헝겊쪽 같기도 한 그런 것들을 늘어놓고, 혼자서 히죽이 웃어 보기도 하고 혼자서 깔깔깔 웃어 보기도 하고 어디로 갈까? 냇물로 내려가서 목욕이나 하고 화장이나 할까 보다. 저 뭐라는 높다란 나무 위에 올라가서 휘파람이나 불까 보다…. 그러나 구름은 딸기를 몇 개 더 따먹고 이런 청명한 날엔 미안하지만 할 수 없다는 듯이, 아직 맛이 덜 들었군! 하는 얼굴을 한다. - 김춘수 「구름」 ​ ③ 다양한 소재와 형상화 셋째로 시의 소재는 도시든 농촌이든 전통이든 통일이든 민중이든 부자든 가난이든 그 어느 것도 선택될 수 있다. 전통이나 자연을 소재로 해야만 참다운 시고 농민이나 노동자를 소재로 한 것은 불온한 것이 아니다. 어느 것을 소재로 하든 소재가 정서화되고 내면화되고 형상화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1026    홍문표 시창작 강의 노트 3 댓글:  조회:939  추천:0  2019-10-24
시와 제목 ​ 홍문표 ​ (1) 제목의 의미 ① 이름 놀이의 세계 모든 존재는 이름이 있다. 인간도 그렇다.(국적, 호적) 이름은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명명. 명명되지 않은 존재는 존재로 인정되지 않는 것이 지상의 조건 ― 세계내 존재(하이데거) 그러기에 언어는 존재의 집(하이데거) 학술적인 제목 ― 연구 주제를 나타냄 「소월 시의 민요성에 대한 연구」 문학작품의 제목 ― 제목을 본문과 함께 작품의 구성요건(작품 = 제목 + 본문) ​ 중국의 시인 왕유는 「녹시(鹿柴)」라는 제목의 시를 쓴 일이 있다. 사슴 울타리라는 뜻이다. 매우 호기심을 자아내는 제목이다. 그러나 작품 내용은 예상밖이다. ​ 空山不見人(공산불견인) 但聞人語響(단문인어향) 近景入深林(근경입심림) 復照靑苔上(복조청태상) ​ 텅빈 산 속에 사람은 보이지 않고 두런두런 말소리만 들려올 뿐 석양볕만 깊은 숲에 스며들어 어제처럼 이끼 위를 비추고 있네 ​ ② 넥타이와 스카프 내용과 조화- 바람직한 시의 제목이라면 우선 시의 내용과 조화와 통일이 있어야 할 것이다. 특히 시는 각 부분들이 생물체의 기관들처럼 유기적인 결합을 이루어서 통일체를 형성하는 것이므로 시의 제목은 시의 주제나 의미, 정서, 분위기, 이미지 등과 서로 부합되어야만 한다. 신선한 제목- 그러나 시의 제목은 참신하고 매력이 있어야 한다. 시의 제목은 넥타이와 같다. 여인의 스카프라고 할 수도 있다. 넥타이와 스카프는 분명 외모를 돋보이게 할 뿐만 아니라 그의 인격과 교양과 매력을 동반한다. ​ (2) 소재를 드러낸 제목 ① 중심소재와 부분소재 소재라는 말에는 하나의 작품을 이루기 위한 중심적인 재료, 즉 제재(題材)와 부분적인 재료를 소재(素材)라고 한다. 그러나 제재를 포함하여 작품을 구성하고 있는 모든 재료를 소재라고 하기도 한다. ② 중심소재를 제목으로 한 경우 ​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 언제나 점잖은 편 말이 없구나 관(冠)이 향기로운 너는 무척 높은 족속이었나보다 ​ 물 속의 제 그림자를 들여다보고 잃었던 전설을 생각해내고는 어찌할 수 없는 향수에 슬픈 모가지를 하고 먼데 산을 쳐다본다 - 노천명 「사슴」 ​ 제목 주제 중심소재(제재) 소재 사슴 향수 사슴 긴 모가지, 관(뿔), 물 속, 그림자, 전설, 향수, 산   ​ ③ 부분소재를 제목으로 한 경우 ​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 ​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 김소월 「진달래꽃」 ​ 사람이 다니는 눈길 위로 누더기가 된 낙엽들이 걸어간다 낙엽이 다니는 눈길 위로 누더기가 된 사람들이 걸어간다 그 뒤를 쓸쓸히 개미 한 마리 따른다 그 뒤를 쓸쓸히 내가 따른다 누더기가 되고 나서 내 인생이 편안해졌다 누더기가 되고 나서 비로소 별이 보인다 개미들도 누더기별이 되는 데에는 평생이 걸린다 - 정호승 「누더기별」 ​ ④ 이미지화 된 제목 결국 시의 제목은 시의 본질이 창조성에 있듯이 제목도 창조적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때 창조적이란 바로 제목부터 상상력이 구사된 제목이며 이는 이미지화 된 제목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 온몸이 몇천만 도로 타면 시체의 기억을 태워버릴 수 있을까? 그리고 내가 아닌, 순금의 기억, 아 기억만을 후대도 아닌, 손닿지 않고 느껴지기만 하는 느껴지지 않고 간직되기만 하는 간직되지 않고, 있는 그런 순금의 보통명사를 남겨줄 수 있을까? - 김정환 「純金의 기억」 ​ (3) 주제를 드러낸 제목 ① 명사형 주제를 제목으로 한 경우 ​ 주신 것 잎새. 꽃. 때 이르러 열매이더니 오늘은 땡볕에 달궈 낸 금빛 씨앗. - 김남조 「선물」에서 ​ 껍질을 더 벗길 수도 없이 단단하게 마른 흰 얼굴. ​ 그늘에 빚지지 않고 어느 햇볕에도 기대지 않는 단 하나의 손발. ​ 모든 神들의 거대한 정의 앞엔 이 가느다란 창끝으로 거슬리고 생각하던 사람들 굶주려 돌아오면 이 마른 떡을 하룻밤 네 살과 같이 떼어 주며, ​ 結晶된 빛의 눈물 그 이슬과 사랑에도 녹슬지 않는 견고한 칼날 ― 발 딛지 않는 피와 살 ​ 뜨거운 햇빛 오랜 시간의 회유에도 더 휘지 않는 마를 대로 마른 목관악기의 가을 그 높은 언덕에 떨어지는 굳은 열매 ​ 씁쓸한 자양 에 스며드는 에 스며드는 네 생명의 마지막 남은 맛! - 김현승 「堅固한 고독」 ​ 제목 주제 이미지 견고한 고독 고독 1연 ― 흰 얼굴 2연 ― 손발 3연 ― 창끝 마른 떡 칼날 4연 ― 목관악기 굳은 열매   ​ ② 주제문(theme sentence)을 제목으로 한 경우 ​ 지금은 남의 땅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나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다오. - 이상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에서 ​ 별빛이 쓸고 가는 먼 길을 걸어 당신께 갑니다. 모든 것을 다 거두어간 벌판이 되어 길의 끝에서 몇 번이고 빈 몸으로 넘어질 때 풀뿌리 하나로 내 안을 뚫고 오는 당신께 가는 길은 얼마나 좋습니까 이 땅의 일로 가슴을 아파할 때 별빛으로 또렷이 내 위에 떠서 눈을 깜빡이는 당신과 가는 길은 얼마나 좋습니까 동짓달 개울물 소리가 또랑또랑 살얼음 녹이며 들려오고 구름 사이로 당신은 보입니다. 바람도 없이 구름은 흐르고 떠나간 것들 다시 오지 않아도 내 가는 길 앞에 이렇게 당신은 있지 않습니까 당신과 가는 길은 얼마나 좋습니까 - 도종환 「당신과 가는 길」 ​ (4) 내용과 무관한 제목 ​ 남자와 여자의 아랫도리가 젖어 있다. 밤에 보는 오갈피나무, 오갈피나무의 아랫도리가 젖어 있다. 맨발로 바다를 밟고 간 사람은 새가 되었다고 한다. 발바닥만 젖어 있었다고 한다. - 김춘수 「눈물」   시의 행 가르기 ​ 홍문표 ​ (1) 행과 연의 원리 ① 시와 산문의 구성단위 일반문장- 단어 → 단문 → 단락 - 문장 모든 존재- 부분 + 부분 = 전체 시- 행 + 행 = 연 + 연 = 작품 ​ 바람은 발기발기 찢어진 기폭 ​ 어두운 산정에서 하늘 높은 곳에서 ​ 비장하게 휘날리다가 절규하다가 ​ 지금은 그 남루한 자락으로 땅을 쓸며 경사진 나의 밤을 거슬러 오른다. - 정한모 「바람 속에서」 ​ 4연 12행의 시인데 산문으로 표기하면 “바람은 발기발기 찢어진 기폭, 어두운 산정에서, 하늘 높은 곳에서 비장하게 휘날리다가, 절규하다가 지금은 그 남루한 자락으로 땅을 쓸며 나의 발을 거슬러 오른다.” 단일문장이 된다. ​ ② 행갈이의 본질 왜 시는 이처럼 행과 연을 갈라 문장을 도막치는가. 바로 여기에 산문과 구별되는 시의 원리가 있다. 산문은 이야기 문장이기 때문에, 또는 원인과 결과가 있는 완결된 문장이기 때문에 연속성이 생명이다. 그러나 시는 이야기 문장이 아니라 마디마디로 느낌을 토해내는 감정적인 문장이고, 충동적인 문장이기 때문에 리듬이 있고, 호흡이 있고, 행마다, 연마다 독립된 단절이 있어야 한다. 이는 시가 음악성이나 회화성을 추구하는 예술이라는 이유이기도 하다. ​ ③ 행과 연의 등가성 등가성(等價性)의 원리- 그렇다면 행과 연은 어떻게 가르는가. 마음대로 가르는가. 물론 과거의 시는 행과 연에도 일정한 규칙, 즉 자수율이나 운율이 있었지만 현대시는 이러한 규칙이 없으니 당연히 마음대로 가른다는 것이겠지만 여기에 엄연히 내적인 규칙이 있다. 전통적인 우리 시가의 행은 3음보나 4음보의 규칙적인 반복이고, 음보의 원리는 읊조릴 때 시간의 등장성(等長性)을 단위로 한다. 이에 대하여 현대시는 행과 연 구분의 원리를 주관적인 등가성(等價性)으로 한다. ​ 눈이 오는데 옛날의 나직한 종이 우는데 ​ 아아 ​ 여기는 명동 성 니콜라이 사원 가까이 - 박목월 「폐원」에서 ​ 행구분의 원리는 리듬, 즉 감동을 조성하는데 있다. 리듬은 일정한 것의 반복적 형식이다. 시는 행갈이와 연갈이의 문학장르다. 구분의 원리는 시인의 주관적인 등가성이다. ​ (ㄱ) 눈이 오는데 (ㄴ) 눈이 오는데 ​ (ㄱ)은 ‘눈이’와 ‘오는데’가 대등한 단계다. (ㄴ)은 ‘눈이’가 주고 ‘오는데’는 종속이다. ​ 행과 연은 시인의 사물에 대한 주관적, 예술적, 창조적 관심을 말한다. 이를 수치로 말하면 ‘눈이’가 10g일 경우 ‘오는데’도 10g, ‘옛날의 나직한 종이 우는데’도 10g이고, ‘아아’는 따라서 30g이어야 한다. 물론 ‘여기는’도 10g, ‘명동’도 10g, ‘성 니콜라이 사원 가까이’도 10g이어야 한다. ​ ④ 이미지 마디와 행갈이 과거엔 자수나 음성적 리듬이 행갈이와 연갈이의 규칙이었지만 현대시의 행갈이는 이미지를 단위를 행갈이로 하여 보다 감각적인 효과를 노린다. ​ 푸드득 푸나무 서리 푸르름 하나 이파리 이파리 이파리 파도 이파리의 바다 여름 ​ 푸석이는 가을 녘 푸르뎅뎅한 눈두덩이며 엉덩이며 풍년을 모아놓고 푸닥거리나 한다 ​ 날 때는 우리 모두 푸르렇고 날 때는 우리 모두 조그마 했고 이제 우리 모두 푸석푸석한 푸나무 몇 단 - 민용태 「푸닥거리」에서 ​ 월 화 수 목 금 토 하낫 둘 하낫 둘 일요일로 나아가는 「엇둘」소리…… ​ 자연의 학대에서 너를 놓아라 역사의 여백(餘白)…… 영혼의 위생(衛生)데이…… 일요일의 들로 바다로…… ​ - 김기림 「일요일의 행진곡」 ​ ⑤ 의미마디와 행갈이 행과 연을 가르는 또 하나의 기준은 의미를 단위로 하는 경우이다. 이는 한 행에 하나의 의미, 한 연에 독립된 의미를 표현할 수도 있고, 전체적인 작품에서 의미를 드러낼 수도 있다. 그러나 의미를 중요시하는 관념시나 목적시의 경우 행 갈이나 연 갈이의 비중을 덜 가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고도의 시적 기교를 통한 문학성보다 주제의 설득이나 의미의 전달에 비중을 두기 때문이다. ​ 해가 지기 전에 산 일 번지에는 바람이 찾아온다. 집집마다 지붕을 덮은 루핑을 날리고 문을 바른 신문지를 찢고 불행한 사람들의 얼굴에 돌모래를 끼어 얹는다. 해가 지면 산 일번지에는 청솔가지 타는 연기가 깔린다. - 신경림 「산 1번지」에서 ​ 산그늘 내린 밭귀퉁이에서 할머니와 참깨를 턴다. 보아하니 할머니는 슬슬 막대기질을 하지만 어두워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젊은 나는 한번을 내리치는 데도 힘을 더한다. 세상사에는 흔히 맛보기가 어려운 쾌감이 참깨를 털어 대는 일엔 희한하게 있는 것 같다. 한번을 내리쳐도 셀 수 없이 솨아솨아 쏟아지는 무수한 흰 알맹이들 도시에서 십년을 가차이 살아본 나로선 기가막히게 신나는 일인지라 휘파람을 불어가면 몇 다발이고 연이어 털어댄다. 사람도 아무 곳에나 한번만 기분좋게 내리치면 참깨처럼 솨아솨아 쏟아지는 것들이 얼마든지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 정신없이 털다가 “아가, 모가지까지 털어져선 안되느니라” 할머니의 가엾어하는 꾸중을 듣기도 했다. - 김준태 「참깨를 털면서」에서 ​ ⑥ 현대시와 내재율 고시가의 정형성과 등장성- 과거의 시는 리듬을 들어내기 위하여 정형적, 외형적, 자수율, 음보율을 갖는다. 그리고 이러한 음보나 자수는 등장성(等長性), 즉 길이가 일정한 음성적 형식의 반복으로 하였다. ​ 오 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 데 없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 길재 「회고가」 ​ 장르 행 음수율 음보율 의미마디 시조 1 2 3 3 4 3 4 3 4 3 4 3 5 4 3 4음보 4음보 4음보 도착 상태 회고   ​ 현대시의 내재율- 현대시도 리듬은 절대적인 조건이다. 웰렉은 현대시의 특징을 리듬(rhythm)과 메타퍼(metaphor)라고 하였다. 다만 현대시에서 리듬을 들어내는 방식이 과거의 외형적 정형적 등장성이 아니라 주관적, 내면적, 창조적 등가성의 리듬을 활용한다. 앞서 ① 행과 연의 구분방법에서 음수나 음보의 등장성이 아니라 주관적 가치의 등가성으로 행과 연이 구분됨을 밝혔다. ② 이미지 마디를 통한 반복적 리듬을 시도하기도 하였고, ③ 의미마디를 반복적 리듬으로 하여 행과 연을 가르기도 하였는데 이러한 리듬의 방식을 내재율이라 한다. ​ ⑦ 전통적 리듬과 현대시 시행의 일정한 규칙성은 한국 고대시가나 한시, 그리고 영시에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며 이는 시의 리듬감을 드러내기 위한 방식이었다. 이러한 현상은 지금도 민요나 노래를 위한 가사의 경우 필수적인 조건이 되고 있으며 현대시에서도 과거 시가의 운율을 답습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전통적 리듬이라고 말한다. ​ 그리운/ 우리 님의/ 맑은 노래는// 긴 날을/ 문 밖에/ 서서 들어도// 그리운/ 우리 님의/ 고운 노래는// 해 지고/ 저무도록/ 귀에 들려요// 밤들고/ 잠드도록/ 귀에 들려요// - 김소월 「님의 노래」에서 ​ 송화가루/ 날리는/ 외딴 봉우리// 윤사월/ 해 길다/ 꾀꼬리 울면// 산직이/ 외딴집/ 눈먼 처녀사// 문설주에/ 귀 대이고/ 엿듣고 있다// - 박목월 「윤사월」 ​ 남들은/ 자유를/ 사랑한다지마는// 나는/ 복종을/ 조아하여요// 자유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당신에게는/ 복종만/ 하고 싶어요// - 한용운 「복종」에서 ​ 말많은놈 엮어엮어 뒷골큰놈 엮어엮어 눈깔큰놈 엮어엮어 귀밝은놈 엮어엮어 이리 엮고 저리 치고 요리 얼렁 조리 뚱땅 돈 발라 탈 섹스 발라 분 발라 탈 디올 발라 - 김지하 「탈」에서   현대시의 연 가르기 ​ 홍문표 ​ (1) 연의 의미 원래 연을 영어로는 스탠자(stanza)라 하여 방(房)이라는 어원을 갖고 있다. 하나의 집은 여러 개의 방으로 이루어지듯이 한 편의 시도 여러 개의 연으로 이루어진다는 논리다. 따라서 연 구분의 원리도 행 구분이 논리를 확장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행들이 작은 리듬의 단위, 이미지의 단위, 감정의 단위로 설명된다면 연은 그보다 확대된 리듬이나 이미지나 의미나 감정의 단위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 (2) 현대시의 바람직한 연 구분 현대시를 리처즈와 테이트는 충돌과 긴장이라고 했다. 무카로브시키는 낯설음이라 했다. 이는 외형적 규칙성에서 주관적이고 내면적이고 창조적인 행갈이와 연갈이를 통해서도 가능하다. ​ 내 마음은 호수요 그대 저어 오오. 나는 그대의 흰 그림자를 안고, 옥같이 그대의 뱃전에 부서지리라. ​ 내 마음은 촛불이요 그대 저 문을 닫아주오. 나는 그대의 비단 옷자락에 떨며, 고요히 최후의 한 방울도 남김없이 타오리다. ​ 내 마음은 나그네요 그대 피리를 불어주오 나는 달 아래에 귀를 기울이며, 호젓이 나의 밤을 새이오리다 ​ 내 마음은 낙엽이요 잠간 그대의 뜰에 머무르게 하오 이제 바람이 일면 나는 또 나그네 같이, 외로히 그대를 떠나오리라. - 김동명 「내마음」 ​ 더러는 옥토에 떨어지는 작은 생명이고저…… ​ 흠도 티도, 금가지 않는 나의 전체는 오직 이뿐! ​ 더욱 값진 것으로 드리라 하올제, ​ 나의 가장 나종 지닌 것도 오직 이뿐! 아름다운 나무의 꽃이 시듦을 보시고 열매를 맺게 하신 당신은, ​ 나의 웃음을 만드신 후에 새로이 나의 눈물을 지어 주시다. - 김현승 「눈물」 ​ (3) 시의 연과 내면 구성 ① 시의 내면적(주관적) 논리성 시의 행이나 연들의 경우 객관적인 논리성을 요구하는 산문의 구성방식과 동일할 수는 없지만 시도 일차적으로는 의미나 메시지가 독자에게 전달되어야 하는 언어 행위이며 여기에 정서적 환기나 시학적 미학이 종합적으로 작용해야 하는 것인 만큼 행과 연의 구성방식은 시인의 시적 창조성과 더불어 의미와 정서를 표출하는 의식적 행위로 추정할 수도 있다. 그리하여 시인은 한 편의 작품을 의미상 단일구성, 2분 구성, 3분 구성, 4분 구성, 기타 잡다한 열거식 구성을 하는데 이들은 결코 인위적인 것이 아니라 우주적 필연성에 의한 것임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 ② 2분 구성법 확대와 축소의 2분 구성 요즈음은 詩 몇 줄 쓰기 바쁘게 지워 버리기 일쑤입니다     5 ①     개나리 진달래 木蓮       ②     이런 것들이 책상머리에 와서 빤히 눈을 뜨고 들여다보는 것입니다 그래 나는 간신히 잡은 詩 한 줄을 뭉개 버립니다       ①     錦江 洛東江 漢灘江       ②     그리고 南漢江의 돌밭에서 만나 함께 내 집에 와서 살게 된       ①       - 전봉건 「요즈음의 시」에서 ​ ③ 3분 구성법 외형과 내면의 일치된 3분 구성(초중종형) ​ 남으로 창을 내겠소 밭이 한참 갈이 괭이로 파고 호미론 풀을 매지요 ​ 구름이 꼬인다 갈 리 있소 새 노래는 공으로 들으랴오 강냉이가 익걸랑 함께 와 자셔도 좋소 ​ 왜 사냐건 웃지요 - 김성용 「남으로 창을 내겠소」 ​ 내면적 3분 구성 아내는 두 번이나 마굿간에서 아이를 낳고 지금 아내의 毛髮은 구름 위에 있다.     5 ①     봄은 가고 바람은 평양에서도 동경에서도 불어오지 않는다. 바람은 울면서 지금 西歸浦의 남쪽을 불고 있다.       ②     西歸浦의 남쪽 아내가 두고 간 바다, 게 한 마리 눈물 흘리며, 마굿간에서 난 두 아이를 달래고 있다.       ③       - 김춘수 「이중섭 2」 ​ ④ 4분 구성 외형과 내면의 일치된 4분 구성(기승전결형) ​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 산에서 우는 작은 새요 꽃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 ​ 산에는 꽃 지네 꽃이 지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지네 - 김소월 「산유화」 ​ 내면의 4분 구성 황아장수 황아짐 따라 장길 골목을 기웃대다 얻었구나 잡동사니 온 주머니 가득 얻었구나     5 ①     피리 소리 꽹과리 소리 초라니 따라 떠돌다가 잃었구나 다 잃었구나       ②     털털 빈 손 남았구나 풀밭에 무릅 꿇으면 보이느니 핏빛 노을 돌밭에 턱 괴이면 들리느니 설은 설움       ①     빗소리 바람소리에 몰려 밤길 진흙길 허둥대다 찾았구나 잃은 세월 그 잃었던 모든 것들       ④       - 신경림 「길」 ​ ⑤ 열거식 구성 ​ 난초 잎은 차라리 수묵색 ​ 난초 잎에 엷은 안개와 꿈이 오다 ​ 난초 잎에 한밤에 여는 담은 입술이 있다 ​ 난초 잎은 별빛에 눈떴다 돌아 눕다 ​ 난초 잎은 드러난 팔구비를 어쩌지 못한다 ​ 난초 잎은 작은 바람이 오다 ​ 난초 잎은 춥다 - 정지용 「난초」 ​ 무연의 열거행 ​ 우리는 협동조합 방앗간 뒷방에 모여 묵내기 화투를 치고 내일은 장날, 장꾼들은 왁자지껄 주막집 뜰에서 눈을 턴다. 들과 산은 온통 새하얗구나. 눈은 펑펑 쏟아지는데 쌀값 비료값 얘기가 나오고 선생이 된 면장 딸 이야기가 나오고. 서울로 식모 살이 간 분이는 아이를 뱃다더라. 어떻할거나. 술에라도 취해볼거나. 술집 색시 싸구려 분 냄새라도 맡아볼거나 우리의 슬픔을 아는 것은 우리뿐. 올해에는 닭이라도 쳐볼거나. 겨울밤은 길어 묵을 먹고 술을 마시고 물세 시비를 하고 색시 젓갈 장단에 유행가를 부르고 이발소집 신랑을 다루러 보리밭을 질러가면 세상은 온통 하얗구나. 눈이여 쌓여 지붕을 덮어 다오 우리를 파묻어 다오. 오종대 뒤에 치마를 둘러쓰고 숨은 저 계집애들한테 연애편지라도 띄워볼거나. 우리의 괴로움을 아는 것은 우리뿐. 올해에는 돼지라도 먹여볼거나. - 신경림 「겨울밤」   시적 표현의 네 단계 ​ 홍문표 ​ (1) 묘사와 표현 ① 산문문장의 서술방법 목적 서술방법 알려주기 서술을 알기 쉽게 풀이한다(설명) 주장하기 주장의 타당성을 증명하고 설득한다(논증) 그려내기 느낌과 인상을 잘 표현한다(묘사) 이야기하기 내용의 줄거리를 늘어놓는다(서사)   ​ ② 묘사와 산문문학 묘사의 방법- 묘사란 사물의 현상을 관찰하여 그 인상을 감각적으로 언술하는 양식이다. 여기서 현상이란 사물의 형태, 색채, 감촉, 향기, 소리, 다른 사물과의 관계 장소 등 주로 감각적이고 표면적인 인상을 말한다. 물론 인상이란 객관적일 수도 있고, 주관적일 수도 있다. 인식의 정도, 관찰의 각도, 관심 등에 따라 차이가 드러날 수도 있다. ​ ① 비가 유리창을 적시고 있다. ② 빗방울이 유리창을 흔들어대고 있다. ③ 빗방울은 유리창에 날벌레처럼 매달리고 미끄러지고 엉키고 또르르 뒹굴고 흠이 지고 한다. ​ ①은 비교적 사실적인 문장이다. ② 비가 유리창을 흔들어댄다는 표현을 통해 그 묘사가 좀 구체적이다. ③은 묘사가 세부적이고 비유적이어서 훨씬 실감나는 언술이 되었다. ​ ③ 주관적 묘사와 개관적 묘사 - 주관적 묘사 만추는 햇살이 만든다. 햇볕이 나면 풀과 나무가 활짝 꽃피며 웃다가 해만 구름에 가리면 금방 시무룩하니 몸을 움츠린다. 코를 찌르던 여름의 풀 냄새는 없고 산에서는 마른풀 향기가 희미하게 떠돈다. 잎이 성긴 나무들이 서 있는, 아무도 없는 과수원에 들어선다. 한쪽 양지바른 풀밭, 버려진 묘 위에 털썩 드러누우니, 참 억새며 다 자란 풀들이 눈앞을 가리고 해에 비쳐 반짝인다. 눈을 감고 사지를 뻗으면 한가한 즐거움이 나른하게 몸에 와서 잠긴다. 나는 마른풀에 볼을 비비며 크게 숨을 들이마신다. - 진동기의 「가을 풀」에서 ​ - 객관적 묘사 사십이 가까운 처녀인 그는 주근깨 투성이 얼굴이, 처녀다운 맛이란 약에 쓰려도 찾을 수 없을 뿐인가. 시들고 거칠고 마르고 누렇게 뜬 품이 곰팡 슬은 굴비를 생각나게 한다. ​ 여러 겹 주름이 잡힌 훌렁 벗겨진 이마라든지, 숱이 적어서 맘대로 쪽지거나 들어올리지 못하고 엉성하게 그냥 빗겨 넘긴 머리꼬리가 뒤통수에 염소 똥만 하게 붙은 것이라든지, 벌써 늙어 가는 자취를 감출 길이 없었다. 뾰족한 입을 악물고 돋보기 너머로 쌀쌀한 눈이 놀랠 때에는 기숙사생이 오싹하고 몸서리를 치리만큼 그는 엄격하고 매서웠다. - 현진건 「B사감과 러브레터」에서 ​ ④ 시의 표현과 현현 묘사와 표현- 묘사는 어떤 사물이나 인물의 실상을 보다 효과적으로 설명하고자 하는 언술방법이지, 시에서처럼 사물의 의미를 새롭게 창조하는 전복적 언술행위가 아니라는 것이다. ①의 첫 문장은 꽤 암시적이다. 그러나 그 의도는 햇볕과 풀과 나무의 불가분의 관계를 보다 효과적으로 언술하고자 한 것이며, ②의 언술도 주인공 노처녀의 인상을 보다 실감 있게 설명하려는 의도일 뿐이다. 그러나 시의 경우는 보다 효과적인 설명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대상을 질적으로 다른 사물로 개조하는데 있다. 이 말은 기존의 의미에서 완전히 깨닫지 못했던 존재성을 발견하고 새롭게 명명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시나 예술에서는 묘사란 말보다 표현(表現)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시와 표현- 표현(expression)이라는 말은 내면적, 정신적, 심적인 상태를 겉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불가시의한 세계를 가시의 세계로, 무형의 세계를 유형의 세계로 형상화하는 것이다. 인상주의가 외부적인 사물의 형상을 내면에 각인시킨 다음 이를 다시 나타내는 것이라면 표현주의는 처음부터 내면의 세계를 외형화 한다는 데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이처럼 표현은 철저히 무형의 유형화다. 이 말은 표현(表現)이라는 뜻과 일치한다. 시와 현현- 한편, 시는 자신의 내면만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사물의 내면, 즉 숨겨진, 아직 알려지지 않았던 세계를 들어낼 경우도 있다. 그래서 이를 현현(顯現)이라고도 한다. 따라서 시는 묘사적 언술이 아니라 표현적 언술이고 현현적 언술이다. ​ 참 맑은 물살 발가락 새 헤적이네 애기 고사리순 좀 봐 사랑해야 할 날들 지천으로 솟았네 어디까지 가나 부르면 부를수록 더 뜨거워지는 너의 이름 ​ 참 고운 물살 머리카락 풀어 적셨네 출렁거리는 산들의 부신 허벅지 좀 봐 아무 때나 만나서 한몸되어 흐르는 눈물나는 저들 연분홍 사랑 좀 봐. - 곽재구 「참 맑은 물살」 ​ (2) 시적표현의 네 단계 ① 이토 케이치의 나무를 보는 방법 (1) 나무를 그대로 나무로서 본다.(객관적인 나무) (2) 나무의 종류나 모양을 본다. (3) 나무가 어떻게 흔들리고 있는가를 본다.(동적인 나무) (4) 나무의 이파리가 움직이고 있는 모습을 세밀하게 본다. (5) 나무속에 승화된 생명력을 본다.(내면의 나무) (6) 나무의 모습과 생명력의 상관관계에서 생기는 나무의 사상을 본다. (7) 나무를 흔들고 있는 바람 그 자체를 생각해 본다.(나무 저편의 세계) (8) 나무를 매개로 하여 나무 저쪽에 있는 세계를 본다. ​ ② 객관적인 나무 먹구름 뚫고 파아란 하늘만 우러러 폐원의 石塔처럼 겨우내 앙다문 裸木 ​ 오늘도 不動이다. ​ ​ 사나운 눈보라에 시달린 胴體 사지는 바람에 찢기우고 여름을 여윈 가슴은 밤마다 무서운 객혈이어도 ​ 선채로 억 년을 지켜 동결된 계절의 이랑 끝에 저리도 오만하게 버틴 겨울 哨兵이여! - 홍문표의 「裸木」 ​ ③ 동적인 나무 여기 바람 한 점 없는 산 속에 서면 나무들은 움직임 없이 고요한데 어떤 나뭇가지 하나만 흔들린다 그것은 새가 그 위에 날아와 앉았기 때문이다 별일없이 살아가는 뭇사람들 속에서 오직 나만 홀로 흔들리는 것은 당신이 내 안에 날아와 앉았기 때문이다 새는 그 나뭇가지에 집을 짓고 나무는 더이상 흔들리지 않지만 나만 홀로 끝없이 흔들리는 것은 당신이 내 안에 집을 짓지 않은 까닭이다 - 유시화의 「새와 나무」 ​ ④ 내면의 나무 그 잎 위에 흘러내리는 햇빛과 입 맞추며 나무는 그의 힘을 꿈꾸고 그 위에 내리는 비와 뺨 비비며 나무는 소리 내어 그의 피를 꿈꾸고 가지에 부는 바람의 푸른 힘으로 나무는 자기의 生이 흔들리는 소리를 듣는다. - 정현종 「사물의 꿈 1」 ​ 길이 없다면 ​ 내 몸을 비틀어 너에게로 가리 ​ 세상의 모든 길은 뿌리부터 헝클어져 있는 것, 네 마음의 처마끝에 닿을 때까지 아아, 그리하여 너를 꽃피울 때까지 내 삶이 꼬이고 또 꼬여 오장육부가 뒤틀려도 나는 나를 친친 감으리 너에게로 가는 ​ 길이 없다면 - 안도현 「등나무 그늘 아래에서」 ​ ⑤ 나무 저편의 세계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 윤동주 「서시」  
1025    홍문표 시창작 강의 노트 2 댓글:  조회:830  추천:0  2019-10-24
상상의 세계와 시적 창조 ​ 홍문표 ​ (1) 상상의 이해 ① 상상과 예술과 인생 시,또는 문학은 객관적이고 과학적이고 이성적인 방법으로 지식을 전하려는(telling) 세계가 아니라 주관적이고 감성적이고 정서적인 방법으로 감동시키려는 세계라고 했다. 그러기에 추상적인언술이 아니라 구체적인 사물의 표현이 생명이라고 했다. 그런데 구체적인 사물 표현의 보다 효과적인 방법에는 쉽게 느낄 수 있는 감각적 사물이나 사건으로 보여주는(showing) 방법이 최상의 것임을 알게 되었다. 따라서 모든 예술의 행위는 바로 어떤 생각이나 심정을 구체적인 어떤 사물이나 사건으로 예를 들어 보여 주는 작업이 된다. 이때 예를 들어 보여 주는 그 사물, 비유적 상관물을 이미지(image)라 하고 이러한 사고를 상상(imagination)이라 한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인간은 사물의 의미를 쉽게 이해하고 새롭게 발견하고 느끼며 풍요로운 세상을 만든다. ​ ② 상상의 개념 상상(想像)을 심리학적으로 말하면 과거의 경험으로 얻어진 기억의 심상(心像 image 기억 에 남아 있는 상)을 새로운 형태로 재구성하는 정신작용이다. 따라서 기억은 과거의 경험을 그대로 생각해 내는 것이므로 상상이라고는 하지 않으며, 사고(思考)는 과거의 경험을 추상적 으로 유추하는 것으로 이미지에 의존하지 않기 때문에 상상과는 구별된다. 또한 상상의 내용이 물리적 현실에는 없는 것이라고 생각되는 경우 이것을 공상이라고 한다. 그러나 달 여행은 공상이었지만 점차 상상으로 발전되더니 이제는 현실이 되었다 망상(忘想)이나 환각(幻覺)은 있지도 않은 것을 현실로 생각해 낸다는 데서 상상과는 구별된다. ​ (2) 상상의 탄생 ① 상상의 원리 체험의 재구성- 축적된 과거의 경험을 재구성하는 것. 제임스- 상상은 과거에 보고 듣고 느꼈던 원물(原物)의 이미지를 재생하는 것. 예술적 창조- 과거 경험했던 이미지를 결합하여, 새로운 작품의 세계를 만들어 내는 것. ② 시대와 상상 르네상스 이전- 르네상스 이전까지만 해도 상상은 합리적 사고를 방해하는 이상심리로 간주하였다. 특히 플라톤은 이것을 비합리적 세계라 하여 위험시하였고 진리와 실재의 발견에 저해되는 기능으로 보았다. 문학예술 경멸, 시인 추방설 칸트 이후- 그러나 이성과 상상의 대등한 위치, 칸트(Kant)는 진(순수이성비판), 선(실천이성비판), 미(판단력비판)를 구분, 진과 선은 이성적 영역, 미는 감성적, 상상적 영역으로 인정. 한편 급진적인 낭만주의자들은 상상과 이성의 대등한 관계나 상호 보조적 관계에 만족하지 않고 인간의 참다운 인생이나 예술에서는 이성을 아주 제외하던가 극히 부차적인 역할만을 맡기고자 하였다. 시인 블레이크(Blake)는 상상만이 본질적 실재에 도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뛰어난 상상력을 천재성으로 인정하기도 했다. 예술지상주의 ​ ③ 체험의 재구성 방법 ​ 골짝물이 이렇게 조잘대며 흐르는데 ​ 바위들에게도 귀가 있을꺼야 ​ 산나리가 이렇게 예쁘게 웃어주는데 ​ 나무들에게도 정말은 눈이 있을 꺼야 ​ 상상- 바위들에게도 귀가 있을꺼야, 현실+상상, 바위(광물)+귀(생명체) 상상과 인생- 우리의 삶이 현재에서 미래로 이어지는 연속이듯이 상상은 현실을 미래로, 풍요로, 가능성으로 이끌어 주는 영원한 깃발이다. 따라서 우리에게 상상이 없다면 미래도 없고, 초월도 없고, 자유도 없고, 삶의 확장도 없다. ​ 우두커니 서서 뒤뜰을 지키던 오동나무 보랏빛 향기 산으로 불어 보내면 ​ 발정한 수캐처럼 부리나케 내달려 오는 밤꽃 냄새. ​ 목하(目下) 산천은 온갖 교성(嬌聲)으로 들끓는다. ​ 덩달아 헐떡이는 나무들, 그 곁에 기대어 서면 나도 모르게 파르르 떨리는 가슴. ―김승봉의「자연(自然)」전문 ​ ④ 직관과 영감 현대에 와서 상상의 문제를 강력히 제기한 사람으로, 크로세(Croce)는 예술을 직관(intuition)이라 하였는데 이는 영감(inspiration)이라는 말과도 상통한다. 심리를 과학적으로 설명하기 전에는 직관이나 영감의 놀라운 상상력을 음악의 신인 뮤즈(muse)의 특별한 신통력, 즉 접신(接神)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시인이나 무당이나 사제들은 시를 쓰거나 제사를 지낼 때 반드시 뮤즈의 이름을 불러 강신(降神)을 청하는 초령(evocation)의 행사를 벌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직관이나 영감도 잠복되었던 과거 경험의 이미지가 갑자기 드러나는 상상의 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 (3) 심상사고와 무심상 사고 ① 존재의 두 세계 물질의 세계 , 정신의 세계 (산, 밥, 돈/사랑 진실 영원) 물질의 세계, 의미의 세계 (산-의지, 밥-목숨, 돈-생활), ② 언어의 두 세계 물질적인 언어, 비물질적인 언어 감각적인 언어, 관념적인 언어 이미지가 있는 언어(장미, 달, 강), 이미지가 없는 언어(진리, 생명, 계속) ③ 심상 사고(image thinking) 무심상 사고(imageless thinking) 이렇게 인간의 의식이나 사고에는 이미지가 떠오르는 물질이나 형상의 세계가 있는가 하면 전혀 이미지가 없는 관념의 세계도 있다. 언어에도 물질적 이미지가 있는 언어가 있고 전혀 이미지가 없는 관념적 언어도 있다. ‘사과’나 ‘장미’는 물질적 이미지의 언어지만 ‘성실’이니 ‘민족’이니 하는 언어에는 물질적 이미지가 없다. 이는 가슴으로 느낄 수 있는 언어와 머리로만 이해할 수 있는 관념적 언어의 차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이는 바로 과학적 언어와 시적인 언어, 과학자와 시인의 사고의 차이 이기도 하다. ​ ④ 심상사고와 시인 이미지를 지닌 언어는 모양과 부피와 무게가 있고 빛깔과 냄새와 움직임이 있어 사물을 구체적으로 인식하게 하고 감동적으로 느끼게 한다. 그러나 이미지가 없는 관념적인 언어는 이성적인 판단을 통하여 추상적으로 인식하게 할 뿐이다. 그러기에 시인은 바로 이미지를 지닌 언어를 사용하여 보다 감각적이고 구체적인 방법으로 물질적인 세계는 물론 비물질적인 관념의 세계까지도 감각적으로 표현하고 존재를 증명하고 자신의 감정을 전달하려고 한다. 헬렌켈러와 사랑(love)의 교육. ​ ⑤ 작품 보기 ​ 1) 닫힌 창고가 열리고 2) 하나의 현실을 세우기 위하여 3) 굳은 열매가 쪼개지고, 지금 4) 아직도 이루지 못할 통일을 위하여 5) 철조망의 가시가 붉게 붉게 녹이 슬고 있다. 6) 열 두 시가 되기 위하여 시계는 열 시를 지나 열 한 시로 가고 7) 우리는 죽음의 자유를 위하여 건강한 육체를 키운다. 박남수의「무제」 행 무심상사고 (추상) 심상사고 (구체) (1) (2) (3) (4) (5) (6) (7) (부자유, 고통, 분단) 현실 (분단, 자유, 통일) 통일 (분단, 휴전선) (통일 접근) (국력신장) 닫힌 창고 쪼개지는 열매 철조망의 가시 열한시, 열두시 건강한 육체   ​ 1)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2) 저 안에 태풍 몇 개 3) 저 안에 천둥 몇 개 4) 저 안에 벼락 몇 개 5)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6)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7)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8) 저 안에 초승달 몇 날 장석주의 ‘대추 한 알’ ​ 행 무심상사고 심상사고 (1) (2) (3) (4) (5) (6) (7) (8) 대추의 붉음 저 안에 저 안에 저 안에 대추의 둥금 저안에 저안에 저안에 태풍 몇 개 천둥 몇 개 벼락 몇 개 무서리 몇 밤 땡볕 두어 달 초승달 몇 날   ⑥ 무심상사고와 심상사고의 혼합 그러나 시인이라고 해서 순전히 심상사고만으로 시종할 수는 없다. 심상사고는 의식이 가장 집중될 때만 가능한데 그러한 집중적인 상태로만 오래 계속될 수는 없는 일이다. 시인의 정신은 고도의 심상세계로 올라갔다가 다시 일반적인 개념의 세계로 내려올 수밖에 없다. 또 시인의 상상이 심상세계를 비상(飛翔)하는 경우일지라도 그러한 이미지와 이미지를 연결하여 통일된 서술(discourse)을 확보하는 고리는 전치사와 접속사 등 문법적 관계를 나타내는 관계사와 추상적인 언어다. 따라서 시인은 과학자에 비하여 보다 사물을 상상적으로, 즉 심상을 통하여 표현하려고 노력하는 예술가들이고, 과학자는 보다 무심상사고를 통하여 사물을 보려는 입장이다. ​ 삼월의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글픈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승달이 시리다(시각의 촉각적 심상) 김기림의 “바다와 나비”에서 ​ 퇴색한 성교당 지붕 위에선 분수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소리(시각의 청각적이미지) 김광균의 “외인촌”에서 이것은 소리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海原)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순정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의 푯대 끝에 애수(哀愁)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 아아 누구던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   유치환의 “깃발”   시적 상상의 세 유형 ​ 홍문표 ​ (1) 상상의 분류 ① 제임스(W. James) 그는 상상을 과거에 느꼈던 원물의 이미지를 재생하는 능력을 일컫는 명칭이라고 말하면서 상상을 재생적 상상(reproductive imagination)과 생산적 상상(productive imagination)으로 나누었는데, 전자는 과거 감각의 이미지가 그대로 나타나는 경우고, 후자는 여러 원물들에서 축출된 요소들이 결합해서 새로운 전일체를 구성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상상력이란 무한한 창조의 능력이 아니라 과거 체험을 기본으로 하여 보다 새로운 이미지와 관념을 만들어 내는 능력이라고 했다. ② 윈체스터(Winchester) 창조적 상상(creative imagination)- 경험에 의하여 주어지는 요소들 중에서 자발적으로 선택하여 그들을 결합해서 새로운 전일체를 만들어 낸다. 이 결합이 자의적이고 비합리적이라면 그 기능을 공상(fancy)이라 부른다. 연상적 상상(associative imagination)- 물체, 관념 혹은 정서에다 정서적으로 친근한 이미지들을 연합한다. 그러한 연합이 정서적 친근성 위에 기초를 두지 않을 때에 그 과정을 공상이라 부를 수밖에 없다. 해석적 상상(interpretative imagination)- 정신적 가치 혹은 의미를 지각하여 그러한 정신적 가치가 들어 있는 부분 또는 성질을 가지고 대상을 표현한다. ​ (2) 연상적 상상 ① 유사성의 재구성 연상적 상상은 우리가 일상적 경험에서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기지(旣知)의 유사성에 근거한 상상이며 창조적 상상은 시인의 비상한 직관에 의해서 전혀 유사성이 없는 사물들을 결합시킬 수 있는 것이다. “그 사람은 강철이다”라는 말은 그 사람의 강인한 체력을 강철에 견주어서 표현한 연상적 상상이지만 “그 사람은 놋쇠 항아리다”라는 말은 분명 상상력에 의한 진술이지만 사람과 놋쇠항아리 사이에는 전혀 예상을 뛰어넘는 이질성을 느끼게 하는 창조적 상상이다. ​ ② 길과 넥타이 ​ 낙엽은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 포화에 이즈러진 도룬시의 가을 하늘을 생각케 한다 길은 한줄기 구겨진 넥타이처럼 풀어져 일광의 폭포 속으로 사라지고 조그만 담배 연기를 내어뿜으며 새로 두 시의 급행차가 들을 달린다 - 김광균 「추일서정」에서 ​ ③ 빵과 쨈과 과수원 ​ 이 창가에서 들어요 둘이서만 만난 오붓한 자리 빵에는 쨈을 바르지요 오 아니예요 우리가 둘이서 빵에 바르는 이 쨈은 쨈이 아니라 과수원이예요 우리는 과수원 하나씩을 빵에 얹어서 먹어요 - 전봉건 「과수원과 꿈과 바다 이야기」에서 ​ ④ 겨울나무와 악기 ​ 잎이 지면 겨울 나무들은 이내 악기가 된다. 하늘에 걸린 음표에 맞춰 바람의 손끝에서 우는 악기. ​ 나무만은 아니다. 계곡의 물소리를 들어보아라. 얼음장 밑으로 공명하면서 바위에 부딪혀 흐르는 물도 음악이다. ​ 윗가지에는 고음이. 아랫가지에서는 저음이 울리는 나무는 현악기. 큰 바위에서는 강음이 작은 바위에서는 약음이 울리는 계곡은 관악기. ​ 오늘처럼 천지에 흰 눈이 하얗게 내려 그리운 이의 모습이 지워진 날은 창가에 기대어 음악을 듣자. ​ 감동은 눈으로 오기보다 귀로 오는 것. 겨울은 청각으로 떠오르는 무지개다. - 오세영의 「음악」 ​ (3) 창조적 상상 ① 비유사성의 상상 앞서 인용한 시들은 모두 물질적 소재와 물질적 이미지의 상상적 연결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김광균의 「추일서정」에서 낙엽이 지폐로 되거나 전봉건의 작품에서 쨈이 과수원으로 되거나 돌이 연꽃으로 되는 일은 모두가 물질과 물질의 이미지를 1:1로 단순 대비한 유사성과 비유사성의 관계다. 그러나 물질과 물질의 이미지나 관념들이 상식적으로 인정하기 어려운 비유사성으로 결합하는 경우가 있다. ​ ② 돌과 연꽃 ​ 내가 돌이 되면 ​ 돌은 연꽃이 되고 ​ 연꽃은 호수가 되고 - 서정주 「내가 돌이 되면」 ​ 나(인가)와 돌(광물)- 비유사성 돌(광물)과 연꽃(식물)- 비유사성 연꽃(식물)과 호수(광물)- 비유사성 ③ 나와 위험한 짐승 ​ 나는 시방 위험한 짐승이다. 나의 손이 닿으면 너는 미지의 까마득한 어둠이 된다. ​ 존재의 흔들리는 가지 끝에서 너는 이름도 없이 피었다 진다. 눈시울에 젖어드는 이 무명의 어둠에 ​ 추억의 한 접시 불을 밝히고 나는 한 밤내 운다. 나의 울음은 차츰 아닌 밤 돌개바람이 되어 탑을 흔들다가 돌에까지 스미면 그이 될 것이다. ​ ……얼굴을 가리운 나의 신부여. - 김춘수 「꽃을 위한 서시」 ​ ④ 내 마음 속 우리 님의 고운 눈썹 ​ 내 마음 속 우리 님의 고운 눈썹을 즈믄 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 하늘에다 옮기어 심어 놨더니 동지 섣달 날으는 매서운 새가 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 - 서정주의 「동천」 ​ (4) 해석적 상상 우리는 사물에 직면하게 될 때 먼저 객관적으로 그것을 인식하게 되고, 연상작용을 통하여 인식을 확대할 뿐만 아니라, 나와 인생과 세계와 어떤 관계, 어떤 의미가 있는 가를 주관적으로 새롭게 해석하여 이를 이미지로 표현한다. ​ ①당신과 눈송이 당신의 불꽃 속으로 나의 눈송이가 뛰어듭니다. ​ 당신의 불꽃은 나의 눈송이를 자취도 없이 품어 줍니 김현승의 “절대신앙” ​ ②손의 상상적 해석 ​ 물상(物像)이 떨어지는 순간, 휘뚝, 손은 기울며 허공에서 기댈 데가 없다. ​ 얼마나 오랜 세월을 손은 소유하고 또 놓쳐왔을까. ​ 잠깐씩 가져보는 허무의 체적(體積). ​ 그래서 손은 노하면 주먹이 된다. 주먹이 풀리면 손바닥을 맞부비는 따가운 기원이 된다. ​ 얼마나 오랜 세월을 손은 빈 짓만 되풀어왔을까. ​ 손이 이윽고 확신한 것은, 역시 잡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뿐이었다. 박남수의 “손” ​ ③ 나무의 상상적 해석 ​ 그 잎 위에 흘러내리는 햇빛과 입 맞추며 나무는 그의 힘을 꿈꾸고 그 위에 내리는 비와 뺨 비비며 나무는 소리 내어 그의 피를 꿈꾸고 가지에 부는 바람의 푸른 힘으로 나무는 자기의 生이 흔들리는 소리를 듣는다.   - 정현종 「나무의 꿈」   에덴의 상실과 회복 시정신을 찾아서1 ​ 홍문표 ​ (1) 에덴의 상실 ① 에덴의 특징 영원한 시간, 무시간의 세계 거리가 없는 무한한 공간 생로병사가 없는 곳 완전한 행복, 욕망, 결핍이 없는 곳 인간과 타자가 공존하는 세계, 이성보다 감성의 세계 ② 에덴의 상실 성서적 설화, 금단의 열매 선악과, 선과 악을 구별할 수 있는 이성적 사고의 상징물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지혜(이성)의 욕구 이성적 욕망의 선택과 감성적 삶의 상실 이성(지혜)의 선택은 인간중심주의로의 전환(신중심에서) 신, 인간, 자연의 공존질서 붕괴, 죽음과 저주, 신과 단절, 진리의 부재 치열한 투쟁의 세계, 카인과 아벨 시간 공간의 유한한 세계내 존재(하이데거),허무, 절망 ③ 이성의 타락과 인간의 절망 이성의 두 얼굴- 하나님 말씀 같은 logos적 보편적 이성과 이성,양심 물질적, 인간적 욕망을 계산하는 도구적 이성 이성의 타락- ‘말씀’같은 보편적 지혜인 logos 보다 물신주의를 조장하는 수단으로 전락 이성의 도구화, 이성의 물화(物化), 폭력화 폭력화된 이성, 인간성 상실, 주체와 타자의 분리, 물신주의, 빈부 격차, 불평불만, 방그라데시의 행복 지수 서열주의, 개인마저 소멸, 절망의 실존상 ​ 나무도 없는 산정이다 여윈 등성이 한줄기 바람 고목의 가지가 바르르 떤다 ​ 허공을 향한 무위한 응시 영겁을 더듬다 지쳐버린 침묵 사나운 부리가 언덕을 치닫는다 마지막 심장마저 노리는 두려운 대낮 벼랑에 매달린 아슬한 절망이다. - 자작시 「산정에서」에서이상, 거울 ​ 거울속에는소리가없소 저렇게까지조용한세상은없을것이오 ​ 거울속에도내게귀가있소 내말을못알아듣는귀가있소 ​ 거울속의나는왼손잽이요 내악수를받을줄모르는-악수를모르는왼손잽이요 ​ 거울때문에나는거울거울속의나를만져보지를못하는구료마는 거울이아니었던들내가어찌거울속의나를만나보기라도했겠소 ​ 나는지금거울을안가졌소마는늘거울속의내가있소 잘은모르지만외로된사업에골몰할게요 ​ 거울속의나는참나와는반대요마는 또꽤닮았소 나는거울속의나를근심하고진찰할수없으니퍽섭섭하오 이상의 “거울” ​ (2) 에덴의 회복 ― 구원의 길 ① 구원의 본질적 구조 실낙원 → 복락원 지상(인간) → 천당(신) 유한한 시간 → 영원한 시간 분리된 공간 → 너와 내가 공존하는 공간 죽음 →영생 불안 → 평화 절망 → 희망 신과의 회복, 진리의 회복, 참 존재와의 만남, 구도의 길 ② 인간으로서 구원은 불가 불교-제행무상, 기독교-죄의 값은 사망 키에르케고르- 실존의 세 단계 미적 실존, 윤리적 실존, 종교적 실존 지상에서 천국으로의 초월은 신의 영역(인간의 영역이 아님) ③ 인간으로서 가능한 길 불교-참선수행, 기독교-신의 은총과 믿음으로 상상을 통하여 분리된 공간에서 너와 내가 공존하는 공간으로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를 느끼는 사고 물화(物化)- 내가 네가 되는 것(인간의 사물화․ 신격화) 육화(肉化)- 네가 내가 되는 것(사물의 인격화, 신의 인격화) 이성 → 감성(동일시, 상상, 시적 구원의 가능성) ​ 그렇게 산은 말하고 있었다. 뭉치면 산다고 뭉쳐서 덩어리져서 푸르딩딩 버티면 산으로 남으면 산다고 산은 말하고 있었다 뭉치자고 덩어리지자고 이렇게 웅크리고 잔뜩 웅크리고 버티자고 산은 산들에게 산은 산 것들에게 말하고 있었다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 박의상 「산 1」에서 ​ 아무도 안데려오고 무엇 하나 들고오지 않은 봄아, 해마다 해마다 혼자서 빈손으로만 다녀가는 봄아, 오십년 살고나서 바라보니 맨손 맨발에 포스스한 맨머리결 정녕 그뿐인데도 참 어여쁘게 잘도 생겼구나 봄아, - 김남조 「봄에게」에서 ​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허리를 베어 내어 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어론 님 오신 날 밤이어든 구뷔구뷔 펴리라 황진이,시조 ​ 이는 먼 해와 달의 속삭임 비밀한 울음 ​ 한 번만의 어느 날의 아픈 피 흘림 ​ 먼 별에서 별에로의 깊섶 위에 떨꿔진 다시는 못 돌이킬 엇갈림의 핏방울 ​ 꺼질 듯 보드라운 황홀한 한 떨기의 아름다운 정적(靜寂) ​ 펼치면 일렁이는 사랑의 호심(湖心)아   박두진의 “꽃”     존재탐구와 시적 구원 시정신을 찾아서2 ​ 홍문표 ​ (1) 자아의 존재인식 ① 인간의 길 인간의 참 모습은 무엇인가(인간의 정체성) 나의 참모습은 무엇인가(나의 정체성) 자연, 세상 등 존재의 참모습은 무엇인가 자연과학적․인습적 참모습이 아니라 내가 발견하고 깨닫고 느끼는 실존적 참모습은 무엇인 가 인간은 삶의 정당한 것, 궁극적인 것, 가치 있는 것에 대한 질문을 하는 존재 ② 나(인간)는 어떤 존재인가 불교- 인연의 존재, 무상의 존재 유교- 음양오행의 운명적 존재 기독교- 피조물, 타락한 죄인의 존재 프로이드- 욕망의 존재(이드, 이고, 슈퍼이고) 사르트르- 인간(대자), 자연(즉자)의 부조리한 존재 하이데거- 인간은 존재 망각의 과정 ③ 불완전한 결핍의 존재 ​ 흘러도 흘러도 바다를 향한 춘향의 丹心 ​ 하루도 열두 때 걸신들린 갈증이게 하소서. ​ 분화구로 치솟는 불만의 식욕이기에 강물은 늘 들녘을 적시고 시간을 적시고 서러움을 적시고 이 바스락거리는 목숨을 적시고 ​ 정갈한 낮이면 하늘 언저리 순진한 감색자락 입에 물고 찝질한 사랑가도 불러 봅니다. - 자작시 「늘 푸른 강물이듯이․2」에서 ​ (2) 참존재는 어디 있는가 ① 존재의 은폐성 이러한 질문은 참모습, 참진리가 은폐되었다는 것이 전제된다. 종교적 은폐성- 본래 하나님은 본 사람이 없으되(요 1:18) 하나님, 절대자의 은폐성 ② 존재의 가변성 모든 존재는 시간과 공간의 변화에 따라 변함, 참모습의 변질(본질의 상실, 변질) 골드만의 「숨은신」- 보편성의 상실 니이체- 신은 죽었다 ​ 신을 찾는 것 본질을 찾는 것 진실을 찾는 것 가치를 찾는 것     5 참을 밝히려는 노력       ​ ③ 시인의 길, 시의 궁극적인 목표, 가치 ​ 노래가 낫기는 그 중 나아도 구름까지 갔다간 되돌아오고, 네 발굽을 쳐 달려간 말은 바닷가에 가 멎어 버렸다. 활로 잡은 산돼지, 매로 잡은 산새들에도 이제는 벌써 입맛을 잃었다 꽃아. 아침마다 개별하는 꽃아. 네가 좋기는 제일 좋아도, 물낯바닥에 얼굴이나 비취는 헤엄도 모르는 아이와 같이 나는 네 닫힌 문에 기대 섰을 뿐이다. 문 열어라 꽃아. 문 열어라 꽃아 벼락과 해일만이 길일지라도 문 열어라 꽃아. 문 열어라 꽃아. - 서정주 「꽃밭의 독백」 ​ (3) 참존재와의 만남 ① 존재와의 만남은 불가능한가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열릴 것이요(낙관주의) 과학- 물질적인 존재발견(가설과 증명) 철학- 우주와 인생의 존재발견(사유) 종교- 신앙생활(득도, 체험) 불가능하다(허무주의) ② 만남의 방법과 조건 만남의 조건- 소통이 가능해야 함. 소통을 위해서는 소통의 통로 코드(code), 계시물, 중개자필요. 전열기와 전선 무당 신(신의 코드)과 인간(인간의 코드)의 근본적 단절(코드가 다름) 천상과 지상, 참존재와 현실 소통 불가능은 코드가 다르기 때문 코드를 일치시킬 수 있다면 소통이 가능- 만남, 깨달음, 득도, 구원 일반종교 : 인간의 노력으로 신적 코드 가능(상향적) 불교 유교 기독교 : 신의 사랑에 의한 하향적 코드(인자, 육화) 시의 원리- 상상과 이미지에 의한 코드의 발견과 소통 ③ 소통과 만남의 원리 주체 - 코드 - 객체 화자 - 메시지 - 청자 신 - 계시물 - 인간 하나님 - 예수 - 인간 시 - 이미지 - 시적 진실 ​ 바람도 없는 공중에 수직의 파문을 내며 고요히 떨어지는 오동잎은 누구의 발자취입니까? 지리한 장마 끝에 서풍에 몰려가는 무서운 검은 구름의 터진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은 누구의 얼굴입니까? 꽃도 없는 깊은 나무에 푸른 이끼를 거쳐서 옛 탑 위의 고요한 하늘을 스치는 알 수 없는 향기는 누구의 입김입니까? ​ 근원은 알지도 못할 곳에서 나서 돌부리를 울리고 가늘게 흐르는 작은 시내는 굽이굽이 누구의 노래입니까? 연꽃 같은 발꿈치로 가이 없는 바다를 밟고 옥 같은 손으로 끝없는 하늘을 만지면서, 떨어지는 해를 곱게 단장하는 저녁놀은 누구의 시입니까?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그칠 줄을 모르고 타는 나의 가슴은 누구의 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입니까? - 한용운 「알 수 없어요」 ​ ④ 존재증명의 유일한 수단 하이데거- 은폐된 존재를 발굴하는 유일한 수단은 언어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언어는 존재의 집 그런데 참다운 존재는 이성적 언어, 산문적 언어로는 불가능하고 오히려 휠더린의 시, 반 고호의 회화가 오히려 존재를 분명히 드러낸다(시적인 언어). 직관과 영감- 직관이란 논리적인 유추를 통해서 사물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 속 에 잠재되었던 체험이나 이미지가 돌발적으로 노출되면서 놀랍게 사물의 존재성을 발견하 는 방식이다. 이를 달리 영감(inspiration)이라고 하는데 과거에는 이것을 시신(詩神)이 접 신 되어 작용하는 것으로 믿고 있었다. ​ (3) 시적 구원의 길 ① 종교적 구원 불교- 종교적 구원이란 불교의 경우, 번뇌와 무상의 사바에서 벗어나 성불이 되는 경지다. 이러한 과정에는 고행이 있고, 깨달음의 과정에 법열이 있고, 마침내 아트만(atman), 즉 자타불이(自他不二)의 경지와 해탈이 있다. 기독교- 아담의 원죄는 에덴의 타락, 신과의 단절, 죽음인데 신의 사랑으로 예수의 현현과 십자가의 대속으로 이를 믿음으로 구원된다. 이 과정에 성령의 역사하심, 충만함, 영혼의 자유, 영생이 있다. ② 구원의 본질 ― 영혼과 육체의 치유 불완전에서 완전, 유한에서 무한, 무지에서 깨달음, 절망에서 희망, 구속에서 자유를 느끼는 감정, 인식- 삼매경, 법열, 입신, 엑스타시(extacy) 신명, 충만함, 카타르시스, 영혼의 치유, 육체의 치유(대체의학, 마음이 육신을 지배하고 치유한다) ③ 시적 구원 물아일체, 깨달음, 초월의 경지, 새로운 명명, 새로운 세계의 창조, 새로운 세계에 대한 경험과 기쁨, 해탈, 자유. ​ 네 안에 내가 있고 내 안에 네가 있고 너는 내 욕망의 무지개가 되어 내 손에 가득한 장미가 되어 흐르적거리는 육질의 껍질을 벗고 날마다 비상하는 오월이 되어 육자배기로 돌아가는 자유가 되어 현재로 자족하는 서정시가 되어 아스라히 펄럭이는 깃발이 되어 ​ 존재의 뿌리가 되어 존재의 가지가 되어 존재의 존재가 되어 - 자작시 「늘 푸른 강물이듯이 17」에서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 김춘수 「꽃」 ​ 너의 눈은 번개와 눈물의 조국 말하는 고요 바람없는 폭풍, 파도 없는 바다 갇힌 새들, 졸음에 겨운 황금빛 맹수 진실처럼 무정한 수정 숲속의 환한 빈터에 찾아온 가을, 거기 나무의 어깨 위에선 빛이 노래하고 모든 잎사귀는 새가 되는 곳 아침이면 샛별같이 눈에 뒤덮인 해변 불을 따 담은 과일 바구니 맛 없는 거짓 이승의 거울, 저승의 문 한낱 바다의 조용한 맥박 깜박거리는 절대 사막   - 옥따비오 빠스 「너의 눈동자」  
1024    홍문표 시창작 강의 노트 1 댓글:  조회:916  추천:0  2019-10-24
1. 시학의 길 ​ ​ 홍문표 ​ (1) 시학의 개념 ① 시학의 의미 시학(poetics)이란 시에 대한 학문이다. 법학이 법에 대한 학문인 것처럼, 시학은 시에 대한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이론이며 객관적인 진술이다. 따라서 거기엔 엄격한 이성의 사고와 과학적 탐구의 과정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② 시학의 어려움 그러나 시는 과학의 대상처럼 고정적인 물질이거나 객관적인 논리를 통하여 제작된 이성의 산물이 아니라 오히려 논리나 이성을 초월한 상상과 정서를 통하여 표현된 창조적 산물이기 때문에 이러한 비논리적인 대상을 논리적으로 분석하고 종합하여 어떤 법칙을 발견하고 체계를 세워야 한다는 데 어려움이 있다. ③ 인생관과 시관 시가 무엇인가 하는 문제는 인생이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만큼 간단하지 않다. 그러나 인생이란 무엇인가를 논리적으로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저마다 인생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처럼 시인들도 시가 무엇인지를 논리적으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저마다 시적인 체험과 인식을 토대로 시를 창작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시의 정의가 천차만별이 될 수밖에 없음을 알게된다. 그러므로 엘리어트는 시의 정의에 대한 역사는 오류의 역사라고 지적하면서, 시의 정의를 논하는 것은 무용한 일이라고 말한 바가 있다. ④ 시학의 정당성 그러나 인생관이 분명하지 않은 자의 삶이 무가치, 무책임한 것처럼 시에 대한 분명한 논리와 신념과 비젼이 없을 때 그는 다만 언어를 희롱할 위험이 있다. 시가 무엇인지, 왜 써야 하는지, 어떻게 써야 하는지, 분명한 시관이 있고서야 전문적인 시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 (2) 시학의 방법 ① 종합주의와 다원주의 산 밑에 있을 때는 자기가 오르려는 산봉우리 아니면 몇 그루의 나무만 보인다. 그러나 높이 오를수록, 멀리 보이고 여러 개의 산이 있음도 알게 된다. 학문의 길, 시학의 길도 보다 많이, 보다 높게 산에 오른 자가 보다 깊고, 보다 넓게 시를 볼 수 있다. 이는 인생의 길도 그렇다. ​ 발치엔 질퍽하게 밟히는 아카시아향 중턱엔 천년 침묵의 속살을 후벼대는 쑥국새 정수리에 오르니 하늘문이 열리네. ​ 무질근한 일상을 털고 신발끈 조여매고 허위허위 오른 산길 엉클어진 호흡을 내뱉으며 한 시간을 버틴 결심 팔각정에 앉으니 하늘 복판에 내가 있네. ​ 손 끝에 잡히는 새하얀 낮달 싱싱한 햇살 몇 두룸 소나무 잔가지에 걸어 놓고 눈을 감으니 사르르한 이브의 눈짓 세상이 온통 꽃밭이네 - 자작시「날마다 산에 올라․5」 ​ ② 장님과 코끼리 시의 이성적 접근 방식으로 인도에서 전해지고 있는 장님들이 코끼리를 구경한 일화를 들고 싶다. 장님들이 코끼리를 구경한 소감은 경험한 조건에 따라 각자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동안 시학이나 문학비평에 다양한 이론과 논쟁은 결국 어느 한 편만을 보고 주장한 편견의 역사다. 그러나 그들의 소감을 종합하고 정리하여 본다면 어느 정도 코끼리에 근사한 모습을 추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미술에 몽타주라는 수법이 있다. 여러 사람들의 부분적인 인상을 들어서 이를 종합하여 실물과 유사한 모습을 재현하는 일이다. 시학이란 결국 시적 체험들의 논리적 종합이고, 시적 인식들의 객관적 몽타주이다. 거기엔 과거로부터 오늘에 이르는 시론들의 종합적인 정리가 있어야 하고 작품 속에 나타난 구조의 원리를 발견해야 하는 분석의 과정이 있어야 한다. 따라서 가급적 광범위한 시론의 정리와 작품의 분석을 통한 끝없는 모색과 논의가 가장 정직한 시학의 접근 방식이다. 흄은 보편적 지식의 유일한 토대는 경험과 관찰이라고 했다. 물질적 영역은 실증주의, 정신적 영역은 경험주의다. ​ (3) 에이브럼스의「거울과 등불」 ① 문학의 기본적인 구성조건 시학에의 접근방식은 물론 관점에 따라 무수히 열려질 수 있는 세계다. 그러나 아무리 시학의 영역을 확대한다 하여도 그 기본 문제는 작품 그 자체에 관한 것, 작품을 창조한 시인, 작품을 읽는 독자, 그리고 작품과 시인과 독자를 둘러싸고 있는 현실적인 세계, 즉 우주와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이점에 대하여 에이브럼스는 그의 문학 이론서인「거울과 등불(The Mirror and The Lamp)」에서 예술 작품을 형성하는 네 요소를 들어 구조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예술 작품이란 소재와 사건 또는 환경적인 요인이 될 수 있는 우주(universe), 예술가(artist), 그리고 청중(audience)이 삼각을 이룬다고 하였다. ​ 우주(모방론) 작품 (존재론) 예술가(표현론) 청중(효용론) 따라서 그의 이론은 작품과 그 대상인 우주와의 관계에서 전개되는 모방론(mimetic theory), 작품과 독자와의 실제적 효용관계에서 전개되는 실용론(pragmatic theory), 작가의 내면적 정신, 영혼, 상상, 정서 등의 표출이라는 관점에서 전개되는 표현론(expressive theory), 작품을 어떤 외부적 사항과 독립시켜 오직 작품 그 자체만의 객관적 존재로 논의되는 존재론(objective theory)으로 구분하고 있다. 이처럼 작품의 이해나 해석을 작품 외적인 조건과의 총체적인 관계성에서 파악하려는 자세와, 그것을 체계적으로 분석하여 다각적으로 조명한다는 입장은 매우 합리적인 방법이라고 생각된다. ​ (4)모방론의 시관 ① 모방론의 의미 거울의 시학- 모방론이란 거울처럼 우주, 자연, 인간, 사회, 현실에 대한 생각을 거울처럼 작품에 그대로 반영한다는 뜻에서 에이브럼스는 거울의 시학이라고 했다. 무엇에 대한 시학-따라서 시나 예술이 작가에 의하여 표현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제기되는 부분이 바로 무엇(object)을 표현하느냐 하는 문제다. 오랜 전통- 모방론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시는 자연의 모방이다”라든지 플라톤이 “지상의 모든 현상은 본질(idea)의 모방”이라는 고대의 문학관에서 시작하여, 고전주의나 근대 사실주의에 이르기까지 가장 강력한 문학의 이론으로 이어지고 있다. ② 모방론의 유형 플라톤의 모방론- 플라톤의 견해처럼 모방이란 진리나 본질과는 무관하고 무가치한 현상을 흉내내는 정말 거짓의 모조품(imitation)이란 생각이다. 현상은 진리의 그림자에 불과하다. 그런데 예술은 바로 진리의 그림자인 현상만을 흉내낸다는 데 모방의 부정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플라톤은 시인은 그의 철인공화국에서 추방해야 한다는 시인추방설을 제기 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모방론-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방이란 모든 예술의 본질이라는 생각이다. 그는 모방은 인간의 본능이며 본능의 만족은 또한 즐거운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모방은 관념의 세계에 관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살고 있는 구체적인 세상을 모방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는 진실을 삶의 현실에 내재한 것으로 보았다. 모범에 대한 모방- 모방은 문학적 모범에 대한 모방을 뜻했다. 이것은 작가의 글쓰는 훈련을 강조한 로마시대 이래 지속되는 개념이다. 이른바 고전이 후배 작가의 모범이라는 이러한 생각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어디서나 믿어지고 있다. 고전주의나 복고주의도 그러한 발상이다. 재현과 반영- 근대에는 모방론이 재현(representation)이라는 말로 바뀌었다. 이는 우주적 본질의 모방이 아니라 현실을 그대로 재현한다는 말이다. 이는 특히 근대 사실주의 문학의 발전과 관계가 깊은 개념이다. 근대문학은 인간의 본질, 실재보다도 눈에 보이는 사실의 표면을 충실히 보여주는 일에 주안한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재현은 다시 반영이란 말로 바뀌었다. 반영의 경우에는 사실의 반영보다 현실의 반영에 주안점을 두었고, 현실은 또한 역사적 현실이나 모순된 현실 등 비판적 관점에서 비판적 사실주의 계급주의에서는 계급간의 투쟁을 반영으로 사회주의적 사실주의가 제기된다. ​ 신 새벽 뒷골목에 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내 발길은 너를 잊은 지 너무도 너무도 오래 오직 한가닥 있어 타는 가슴속 목마름의 기억이 네 이름을 남몰래 쓴다 민주주의여 ​ 아직 동트지 않은 뒷골목의 어딘가 발자국 소리 호르락 소리 문 두드리는 소리 외마디 길고 긴 누군가의 비명소리 신음 소리 통곡 소리 탄식 소리 그 속에 내 가슴팍 속에 깊이깊이 새겨지는 네 이름 위에 네 이름의 외로운 눈부심 위에 살아오는 삶의 아픔 살아오는 저 푸르른 자유의 추억 되살아오는 끌려가던 벗들의 피 묻은 얼굴 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 떨리는 치떨리는 노여움으로 나무판자에 백묵으로 서툰 솜씨로 쓴다. ​ 숨죽여 흐느끼며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 김지하「타는 목마름으로」 ​ (5) 효용론의 시관 ① 효용론의 의미 문학의 존재이유- 문학도 인간의 것이라고 할 때 작품은 필연적으로 작가는 물론 독자와도 불가분리의 관계를 갖기 마련이다. 즉 작품은 독자에게 무엇을 기대하며 어떤 기능을 수행하는가 하는 작품의 존재 이유에 대한 물음이 제기되는 것이다. 작품과 독자와의 관계에서 생각할 때 문학은 독자에게 어떤 효과를 준다는 효용성이 제기된다. 심리적 효과와 교훈적 효과- 독자에 대한 효과는 크게 보아 독자의 감정을 움직인다는 심리적 효과와 삶에 유익한 지식이나 도리를 알려준다는 교훈적 효과를 생각할 수 있다. 끝없는 논쟁- 문학의 존재성을 개인적인 것인가. 사회적인 것인가. 심리적인 것인가. 윤리적인 것인가. 오락적인 것인가. 교훈적인 것인가. 세계관, 인생관에 따라 문학의 존재이유는 늘 논쟁거리가 된다. ② 효용론의 전개 시인추방설과 시적 카타르시스- 일찍이 플라톤은 시인이란 본질(idea)을 추구하지 않고 본질의 그림자인 현실을 모방하고 쾌락을 조장하는 시인을 추방해야한다고 했다. 그러나 사회에 유익한 교훈적인 시만은 인정한다고 했다. 교훈설의 선구가 된 셈이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쾌락을 행복의 속성이라 했고, 유덕한 생활이 바로 쾌락이라고 했다. 자연을 모방하는 것도 쾌락이라 했다. 그러나 비극시에서 보듯이 모순되는 두 정서, 공포와 연민을 통해 마침내 평형상태로 돌아가는 것을 그는 쾌락이란 말보다 카타르시스(catharsis)라고 했다. 카타르시스란 심리적 정화작용이다. ​ 어버이 살아신제 섬기기란 다하여라 지나간 후이면 애닲다 어이하리 평생에 고쳐 못한일 이뿐인가 하노라 -정철 ​ 독자중심의 문학론- 그동안의 문학은 작가가 독자를 어떻게 길들일 것인가 하는 작가 중심적 문학관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작품의 존재성을 독자가 결정하는 논리로 전환했다. 이는 오늘날의 상품은 소비자가 결정한다는 시장경제의 논리와 같다. ​ (6) 표현론의 시관 ① 표현론의 의미 등불의 시학- 모방적 시관이 시는 자연을 반영하는 거울로 설명되고, 효용론적 시관이 시는 독자에게 어떤 실제적 효과를 주는 것이라고 설명한다면 표현론의 시관은 시인의 내면적 세계를 창조적으로 표현한다는 입장이다. 예술 작품이란 근본적으로 내면 세계의 구현이다. 그리고 이러한 창조과정은 시인의 지각이나 사상, 감정 등이 결합하여 구체화된다. 따라서 표현론은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하는 거울이 아니라 스스로를 태워 빛을 발하는 등불의 시학이 된다. 낭만적 시관- 표현론의 중심은 물론 낭만주의이겠지만 고대에는 시인의 창조적 기능을 신비적인 영감의 산물로 보려 하였고, 근대에 와서 워즈워드의 정서의 자발성이나 코울리지의 상상설이 대표적이며 동양에서는 詩言志나 詩氣論이 주종을 이루고 있음을 보게 된다. ② 표현론의 전개 영감과 창조- 표현론이 본격적으로 논의된 것은 근대 낭만주의시대이지만 시가 시인의 내면적인 특성으로 창조된다는 생각은 고대로부터 시작하였다. 먼저 플라톤은 시를 특별한 영감의 선물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는 시인이란 신령한 힘에 접신된 상태에서 그의 입을 통하여 말, 즉 시를 토해내는 것이라 하였다.「대화편」이온에서는 그것을 시신(muses)이 준 것이라고 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도 시의 영감설을 인정하고 있었다. 그는 시는 영감을 받은 물건이라든지 시의 기술이라는 것은 천부의 재주를 가진 자 또는 광기가 있는 자가 가질 물건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견해는 후대의 천재론과 결부되기도 한다. 그러나 로마의 호라티우스는 영감론을 비판하고 문학이란 후천적 연마의 소산이라는 기술(art)론을 제기하였다. 로마의 실용적 사고의 일단이라고 할 수 있다. 워즈워드의 자발성- 시신의 영감을 받아서 시를 쓴다거나, 시인은 보통 사람과 달리 특별한 재능을 지닌 천재라는 논의는 마침내 문학의 보편적인 법칙성을 극복하고 창조적 개성이니 독창성이니 하는 자유분방한 낭만주의 시대를 열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낭만주의의 대표적인 선구자로 워즈워드를 발견하게 된다. 그는 시란 감정의 자발성(spontaneity)에 의한 흘러 넘침(over flow)이라고 했다. .코울리지의 상상력- 내면의 표현은 결국 상상력으로 구체화된다. 해즐리트는 시는 오직 상상의 언어라고 했고, 코울리지는 상상은 시적 능력이고, 시적 능력은 곧 시인이라고 하였다. ​ 너에게 가려고 나는 강을 만들었다 강은 물소리를 들려주었고 물소리는 흰 새 때를 날려보냈고 흰 새 떼는 눈발을 몰고 왔고 눈발은 울음을 터트렸고 울음은 강을 만들었다 너에게 가려고 - 안도현「 너에게 가려고 나는 강을 만들었다」 ​ (7) 존재론의 시관 ① 존재론의 의미 존재의 의미- 한 사물이 그 자체로서의 독립된 구조와 법칙을 가지고 객관적으로 드러날 때 이를 존재(being)라고 한다. 물론 존재의 본질적 개념은 비유(非有)나 무에 대한 대립 개념이며 상징적으로는 시간과 공간을 점하고 있는 실재물이란 뜻이기도 하다. 따라서 문학에 있어서의 존재란 작품 그 자체라는 의미이며, 이는 객관적(objective) 또는 형식적(formal) 관점에서의 인식이기도 하다. 존재론의 문학관- 문학 작품이 작가에 의하여 제작되고 독자에 의하여 인정된다 하더라도 문학 작품은 그 자체로서의 독립된 내용과 형식을 지니며 독특한 미학적 기능을 발휘하고 있음을 전제하고 작품의 고유한 존재 양식의 구조를 통해서 문학을 인식하려는 것이 존재론(objective theory)의 관점이 되는 것이다. 문학에 있어서 존재론은 작가가 한 작품을 통하여 드러내고자 한 설명된 내용(paraphrasable content), 즉 이야기 되어진 무엇(what)이 아니고 어떠한 방법(why)으로 이야기 되었는가 하는 표현방식이 문제가 된다. 형식화와 형상화- 작가는 작품에서 무슨 말을 하려고 한다. 그러나 그가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은 작품 제작이라는 커다란 종합화, 즉 형식화의 과정을 충족시키는 부분들이다. 작품 속에서의 사상 감정이란 다양한 의미 구조일 뿐이며 그것이 형식화되지 않으면 작품이란 전체 속에 참여할 수도 없는 것이다. 따라서 사상과 감정은 형식을 통해 형상화된다. ② 존재론의 전개 처음․중간․끝- 아리스토텔레스는 하나의 완전한 전체는 처음, 중간, 끝이 있는 것이다. 처음은 필연적으로 그 앞에 아무것도 따르지 않되, 그 뒤에는 다른 것이 자연히 따르는 것을 말하고, 끝은 그와 반대로 필연적으로 다른 어떤 것을 따르되 그 뒤에는 아무것도 따르지 않는 것을 말하며, 중간은 무엇을 따르고 동시에 뒤에 무엇이 따르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플롯을 엮는 사람은 아무데서나 시작할 수도 끝낼 수도 없다. 유기적 형식- 낭만주의 시대 문학관은 다양성과 통일성, 생명적, 역동적인 형식을 말했는데 쉴러는 살아있는 유기체적 형식만이 아름다움을 구현할 수 있다고 했다. 아름다움의 최고 이념은 ‘사실과 형식의 완전한 결합과 균형’이라고 했다. 여기서 유기적 형식이란 전체와 부분이 생명체와 같이 긴밀한 조화를 갖는 것을 말한다. 구조적 형식- 현대에 와서는 형식이란 말보다 구조라는 말을 사용한다. 러시아 형식주의, 영미 신비평, 프랑스 구조주의 등 일련의 형식주의는 형식과 내용을 분리하지 않고 작품을 구성하는 내적 질서로 본다. 내적 질서에 대한 용어로는 랑그(lange), 아이러니(irony), 역설(paradox), 긴장(tension), 낯설게 만들기, 전경화 등의 말들을 사용한다. ​ 한 개의 원이 굴러간다. 그 안팎으로 감기는 별빛과 꽃잎들...... 금빛의 수밀도만한 세 개의 원이 천 개의 원이 굴러간다. ​ 신의 눈알들이다. 어떤 눈알은 모가 서서 삼각형이 되어 쓰러진다. 어떤 눈알은 가로 누운 불기둥이 되어 뻗는다. 한 개의 원이 8월 한가위의 달만큼 자라서 굴러간다. 문덕수의 「원에 관한 소묘」     사물 인식의 두 방법 ​ 홍문표 ​ 1. 주관적 인식과 객관적 인식 (1) 국화와 누님 시인이 시를 쓴다는 것은 시인의 눈에 비친 우주나 사물이나 내면의 세계를 시라고 하는 언어형식으로 표현하는 미적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이 말은 결국 시인의 사물에 대한 인식과 언어적 표현이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그런데 사물에 대한 인식과 언어적 표현이란 말은 결코 시인에게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과학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과학자도 사물을 관찰하고 거기서 발견한 진리를 언어로 기술하는 점에서 시인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과 시가 구분되고 철학과 시가 구분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다음 두 글을 보자. ​ ㉠ 국화 : 명. 식물. 엉거시과에 속하는 식물. 줄기는 나무질화 하며 잎은 대개가 깊이 찢어지고 품종이 다양함. 꽃의 빛깔이나 모양도 여러 가지여서 대국. 중국. 소국으로 나눠지며 꽃이 피는 시기에 따라 하국. 추국. 동국으로 나누기도 함. - 현문사「한국어 대사전」에서 ​ ㉡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에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 서정주「국화 옆에서」 ​ ㉠의 문장 :국화에 대한 객관적, 사전적, 학술적 서술 국화의 생태, 종류, 특징들을 객관적으로 인식 ㉡의 문장 : 국화에 대한 시인 자신의 주관적 견해, 비과학적 서술 국화꽃과 소쩍새, 국화와 누님, 과학적으로 전혀 무관 그러나 시인은 모든 현상들이 유기적 관계가 있는 것으로 인식, 주관적 인식 ​ (2) 주관과 객관 ① 인간의 의식 작용 인간의 정신이나 의식이란 언제나 움직이는 에너지다. 만일 의식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그것은 죽어 있거나 잠자는 상태일 것이다. 우리가 살아 있다는 것은 깨어 있다는 것이고, 깨어 있다는 것은 의식이 작용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의식의 움직임은 밖으로 나아가려는 원심력과 안으로 들어가려는 구심력으로 항상 줄다리기를 한다. 이렇게 의식이란 언제나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이 때 원심력은 기존의 객관적 기준에 의한 인식이고 구심력은 개인적이고 사적인 기준에 의한 인식이 된다. 이를 객관과 주관이라 한다. ② 과학자의 의식 작용 : 원심적, 객관적, 사회적, 역사적, 물질적, 실증적, 추상적, 합리적 ③ 시인의 의식 작용 : 구심적, 주관적, 개인적, 개별적, 정신적, 구체적, 정서적, 심정적 ④ 객관적 인식의 특징 : 일회적, 지적, 현실적, 실용적, 물질적, 침묵적 ㉠의 문장 ⑤ 주관적 인식의 특징 : 생명력, 영원성, 충만함, 행복감, 감동적 ㉡의 문장 ​ 2. 감성적 인식과 이성적 인식 (1) 감성과 이성의 본질 인간은 근원적으로 이성(logos)과 감성(pathos)을 공유한 존재다. 그런데도 문명사는 이성, 지혜, 지식, 합리성, 과학성의 우월성만을 강조, 이성만능주의, “아는 것이 힘이다” 감성적 기능을 경시 (2) 좌뇌와 우뇌 최근의 뇌과학- 좌뇌와 우뇌의 기능분석, 좌뇌-이성적 기능, 우뇌-감성적 기능. 두뇌의 좌측을 상한 사람은 이성적 기능을 상실하게 되고 우측을 상한 사람은 감성적 기능을 상실하게 된다. 따라서 좌뇌를 상하면 수량을 헤아리지 못하고 우뇌를 상하면 눈물이나 웃음을 모르는 목석 같은 인간이 된다. 좌뇌는 사물을 판단하고 계산하고 추상화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우뇌는 척추신경과 더불어 느끼고 상상하고 창조하고, 즐거워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최근의 천재교육- 우뇌를 키워라, 지능지수(IQ)보다 감성지수(EQ)를 높이는 것 (3) 현대인 비극 신은 우리에게 좌뇌와 우뇌를 균형있게 개발하여 이성과 감성의 조화로운 삶을 향유하도록 축복하셨다. 그런데 인간들은 좌뇌만 개발하여 이성적 사고, 이성의 문화에만 치중한 정신의 반신불수, 불구자의 삶을 살게 된다. 지식, 기술, 이성만을 중시하는 이성중심주의가 인간의 물질적, 기술적, 지적, 권력 등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목적으로만 수행되어질 때, 세상은 이기적이고, 경쟁적이고, 차별적이고, 불평등한 세상을 만듦. 여기에 현대인의 비극이 있음. (4) 시는 감성적, 주관적 세계 인식 시란 이성 중심에서 감성 중심으로 객관에서 주관으로 세계를 인식하여 이성중심의 불균형의 삶에서 이성과 감성의 균형적 삶을 회복하려는 구원의 행위다. ​ 손바닥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나의 얼굴이 보인다. 내게로 불 밝혀 가야 하는 땅이 보인다. 세상을 다 받아들고도 비어 있는 손 잠들지 못하는 나라 산맥이 일어서고 골짜기가 깊다. 강물이 꿈을 꾼다. 바다가 깨어 있다. 미래의 내 음성이 들리는 곳 손바닥 깊이 들어가면 고요하다. 이 고요한 길속에 길이 엇갈려져 끝이 없다. 혼돈과 창조의 거센 바람소리 우주의 숨소리 밤하늘 별의 운행이 화안히 비친다. 모두가 죽어 여기 돌아와 한 송이 꽃으로 피어난다. 항시 침묵으로만 말하는 내 미지의 손이여. 이 깊은 신비의 기슭에서 누군가 밤마다 내 영혼을 향하여 활을 쏘고 있다. - 이성선「손의 명상」 ​ 3. 과학적 진실과 시적 진실 (1) 과학적 진리에 대한 우상 과학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이고, 실증적이기 때문에 이성중심의 인간들은 과학에만 진리가 있다는 우상을 갖고 있다. 그러나 과학이나 지식의 세계는 개개의 구체적인 실존이나 리얼리티를 무시하고 이들의 공통된 속성만을 축출하여 이를 개념적으로 추상화한다. 그것은 존재의 다양성이나 존재의 절대성을 무시하는 평균적인 것이며 산술적인 것이다. 한국인의 평균 수명은 80세라 한다. 이는 매우 과학적인 결론이다. 그러나 꼭 80세, 일 분 일 초도 틀리지 않는 만 80세 정각에 죽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다만 평균 수치로 그러한 결론을 추상할 뿐이다. 이처럼 개개의 존재들에 대한 실체가 사멸되고 추상화된 기호만 남는다는 것은 하이데거가 말한 ‘존재의 망각’이며 릴케가 지적한 바와 같이 ‘개개의 사물을 죽이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과학의 세계는 개별성, 특수성, 내면성, 영혼의 세계가 무시된 한 쪽만의 세계일 뿐이다. (2) 진리와 패러다임 최근에는 같은 과학이라도 관점이나 구성방식, 해석과정에 따라 그 진실성이 다르게 나타난다는 이론이 설득력을 갖는다. 전체를 구성하고 있는 개별적인 요소들의 의미는 그 전체의 방향과 성격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이다. 쿤은 이와 같이 개별적인 구성요소의 의미를 결정하는 전체적 관점을 패러다임(paradigm)이라고 하였다. 가장 분명한 예로 물리학에서는 전기를 파장(波長)으로 보지만 화학에서는 미립자(微粒子)로 보는 것이다. 즉 어떤 패러다임이냐에 따라 과학에서조차 진실은 천의 얼굴을 갖게 된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패러다임조차 애당초 존재한 체계가 아니라 인간이 만든 체계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학적 지식만이 절대적인 객관성을 지닐 수 없으며 과학적 진리도 상대적이며 오히려 주관적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다만 과학적 진리가 객관적이라고 하는 경우 그것은 일정한 패러다임이라는 범주 내에서 논리성을 지녔다는 뜻일 뿐이다. 그러므로 패러다임이 바뀔 경우 객관성이나 논리성은 함께 상실되거나 변하는 것이 과학적 진리의 서글픈 운명이기도 한 것이다. (3) 시적 진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도 진리에 대한 겸허한 이해가 필요한 시점이 되었다. 즉 과학적 진실은 과학적 패러다임에 따른 것이고, 종교적 진실은 종교적 패러다임에 의한 것이며, 시적 진실은 시적 패러다임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우리는 과학적 진실만이 진실이 아니라 종교적 진실도, 시적 진실도 각각 그들 나름의 진실이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 ​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薄紗) 고깔에 감추오고 ​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 빈 대(臺)에 황촉(黃燭) 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잎 잎새 마다 달이 지는데 ​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히 접어 올린 외씨 버선이여.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두오고. ​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세사에 시달려도 번뇌는 별빛이라. - 조지훈「승무」에서 ​ 우리의 전통무용 중에 승무(僧舞)라는 춤이 있다. 고깔 쓰고, 장삼 입고, 때로는 법고를 두드리며 춤을 춘다. 명칭 그대로 승무는 불가의 승려들이 추는 춤이다. 그런데 실제로 나이든 남승들이 추는 승무를 보면 좀 투박하고 지루한 느낌이다. 그런데 조지훈의 시「승무」를 읽노라면 승무의 아름답고, 신비로운 춤사위에 사로잡힐 뿐만 아니라 세사에 시달린 우리들의 번뇌마저 벗어나는 듯한 황홀경에 빠지게 된다. 이성적 판단으로는 승무가 대수롭지 않은 춤인데 감성적으로 표현된 시「승무」를 통해 보면 황홀하고 신비로운 세계가 현실적으로 드러나게 된다. 이성적 사고 속에 매몰되어 있던 승무의 의미가 이처럼 시인의 감성적 언어를 통하여 이른 봄의 개나리처럼 활짝 피어나는 것이다. ​ 달빛은 무엇이든 구부려 만든다 꽃의 향기를 구부려 꿀을 만들고 잎을 구부려 지붕을 만들고 머나먼 비단길을 구부려 낙타 등을 만들어 타고 가고 입 벌린 나팔꽃을 구부려 비비 꼬인 숨통과 식도를 만들고 검게 익어가는 포도의 혀끝을 구부려 죽음의 단맛을 내게 하고 여자가 몸을 구부려 아이를 만드는 동안 곧은 약속을 구부려 반지를 만들고 - 송찬호,에서 ​ 구부리다라는 단순한 낱말이 이처럼 낯설게 사용되어 우리 정서를 얼마나 세련되게 하며 공간과 시간 또 다른 의미의 세계를 창조하고 확장하여 정신의 깊이와 폭을 넓혀가고 있는가? 또한 개념적인 낱말들이 구부리다라는 한 시어 속에 들어가 아름다운 이미지를 만들면서 얼마나 폭 넓은 감동의 세계를 창조하고 있는가? 정보 언어와 유통언어에 물든 관습적인 기존 가치 세계를 뒤집고 한 번도 여행해 보지 못한 새로운 세계를 펼쳐 보이며 끝없는 상상력으로 우리를 초대하는가?   감성 감정 정서의 세계 ​ 홍문표 ​ 1. 시는 감성 감정 정서의 세계 (1) 미묘한 감정 감성 감정 정서 마음 등의 용어들을 실질적으로 말하면 그것은 오감을 통해 느끼는 순간적 감각적 인식이다. 이성의 세계, 지식의 세계는 한 번 습득하면 영구적이지만 감성의 세계는 순간 느꼈다 사라지는 감각이다. 이는 외부의 자극에 대한 지적인 이해가 아니라 순간순간 느끼는 심리적 반응이다. 따라서 상황에 따라 늘 변할 수 있는 예민하고 미묘한 세계다. ​ 나의 마음은 고요한 물결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고 구름이 지나가도 그림자 지는 곳 ​ 돌을 던지는 사람 고기를 낚는 사람 노래를 부르는 사람 ​ 이리하여 이 물가 외로운 밤이면 별은 고요히 물위에 나리고 숲은 말없이 잠드나니, ​ 행여, 백조가 오는 날, 이 물가 어지러울까 나는 밤마다 꿈을 덮노라 - 김광섭「마음」 ​ (2) 감정과 카타르시스 이원론과 서열주의- 플라톤이래 본질과 현상, 정신과 육체, 이성과 감성을 이원화하여 본질, 정신, 이성 등에 우월한 것으로만 서열화하여 감성적 예술, 시 경멸했다. 그러나 감정은 해방감. 행복감, 만족감, 충만함을 주는데 이를 아리스토텔레스의 카타르시스(catharsis)라고 했다. 인간은 어떠한 자극을 받는가에 따라 신체의 각 기관이 다양하게 반응하고 이에 따라 슬픔, 기쁨, 웃음, 노여움, 두려움, 놀라움, 그리움, 사랑스러움 등의 정서적 감정을 느끼게 된다. 예컨대 시끄러운 소리는 불쾌감을 줄 뿐만 아니라 신체적으로는 소화기 장애를 일으킬 수 있고, 짜증스런 기분을 유발하게 된다. 그러나 경쾌한 리듬은 소화기능을 돕고, 즐겁고 유쾌한 감정을 느끼게 한다. 만병의 근원은 스트레스, 카타르시스는 바로 스트레스 해소 육체적 건강에 지대한 효과- 시치료, 문학치료(대체의학)의 원인이 됨 ​ 나무가 되고 싶다. 나무가 되어 바람에 흔들리거나 양지바른 산자락에 앉아 시나 몇 줄 쓰고 싶다. ​ 청청한 하늘 바라보면서 새털구름 한 자락 잘라 백두산에는 바늘꽃 심고 한라산에는 미나리아재비 밤에는 초롱한 별빛을 세면서 흥얼흥얼 콧노래나 부르고 싶다. ​ 가지는 꺾이어도 좋다. 허리는 부러져도 좋다. 잎들이 떨어져 너에게 짓밟혀도 좋다. ​ 봄이면 속살이 돋고 여름이면 또 꽃이 피는 것을 꺾어지면 어떠리 부러지면 어떠리 짓밟히면 어떠리 ​ 순리를 씹으며 고독을 씹으며 풋내를 씹으며 ​ 바람처럼 살다가 강물처럼 살다가 청산에 붙어사는 나무가 되고 싶다. - 자작시「나무가 되고 싶다」 ​ (3) 가슴의 세계 정서는 지성적인 사고와 지식의 축적을 목적으로 하는 머리의 세계가 아니라 충격과 놀라움과 뜨거움으로 느끼는 가슴의 세계가 되는 것이다. 물론 가슴의 세계란 비유적 표현이고 과학적으로는 뇌와 중추 신경의 작용이다. 러시아의 시인 푸슈킨은 칸트의 혈관에는 이성이라는 맹물이 흐른다는 말을 했다. 드퀸시는 지식의 문학과 힘의 문학을 구분한 바가 있다. 지식의 문학은 가르치는 것(to teach)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고, 힘의 문학은 감동시키는 것(to move)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다. 지식의 문학은 언제나 유용성을 따지고 논리를 따지고 나에게 얼마나 유익한 것인지를 냉정하게 살피며 머리를 굴린다. 그러나 힘의 문학, 즉 시의 세계는 머리를 굴리는 것이 아니라 뜨거운 가슴으로 모든 것을 품는다. 그리움과 슬픔과 사랑과 황홀함으로 세계를 끌어안는다. ​ 하늘의 무지개를 바라보며는 내 가슴은 뛰누나 내 어렸을 때도 그랬고 어른이 된 지금도 그렇고 늙어서도 그렇기를 바라노니 그렇지 않으면 차라리 죽는 이만 못하리. - 워즈워드의「내 가슴은 뛰누나」에서 ​ (4) 정서의 훈련 정서의 의미- 리쳐즈는 정서를 일종의 유기적 혹은 전신적 감각이라고 하였다. 제임스는 자극이 되는 사실을 지각한 뒤를 따라 신체적 변화들이 일어나는데 그 변화의 의식이 곧 정서라고 하였다. 시인과 예술가와 악기- 정서란 악기와 같은 것이다. 특히 예민한 현악기와 같은 것이다. 가야금이나 바이올린은 반드시 그 예민한 줄을 자극했을 때만 소리가 난다. 뿐만 아니라 악기는 잘 다루면 다룰수록 그 소리가 더욱 예민하고 예술적이다. 명기(名器)라는 말이 있다. 훌륭한 장인이 만든 소리가 뛰어난 악기를 가리켜 하는 말이다. 그러나 명기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악기도 같아서 잘만 길들인다면 좋은 명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 은행나무 그늘엔 노오란 음부(音符)들이 떨어진다. ​ 은행 이파리들에다 내 귀여운 어휘들을 적어 본다. ​ 적어 놓은 어휘들은 제법 노오란 발음들을 한다. - 양명문「은행나무 산조」에서 ​ 2. 감정의 구체적 표현 (1) 사랑의 묘약 ① 감정의 구체성 감정은 순간순간의 느낌이기에 보다 구체적일 때 보다 효과적인 속성이 있다. 사랑은 근본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느낌이란 너무나 미묘하고, 어떠한 경우도 동일할 수 없다. 이것이 사랑의 실존이고 진실이다. 따라서 사랑을 주제로 한 시를 추상적으로 또는 막연한 언어로 기술한다면 이는 사랑을 느끼는 것도, 사랑을 실천하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다. ​ ② 춘향전이 위대한 이유 ― 구체적 표현 ​ 월하의 삼생 연분 너와 나와 만난 사랑, 허물없는 부부 사랑, 화우동산(花雨東山) 옥란화 같이 펑퍼지고 고운 사랑, 연평 바다 그물같이 얽히고 맺힌 사랑, 청루미녀(靑樓美女) 금침같이 솔마다 감친 사랑, 시냇가의 수양같이 펑퍼지고 늘어진 사랑, 남창북창(南倉北倉) 노적(露積)같이 다물다물 쌓인 사랑, 은장옥장(銀藏玉藏) 장식같이 모모이 잠긴 사랑, 영산홍록(映山紅綠) 봄바람에 넘노나니 황봉백접(黃蜂白蝶) 꽃을 물고 질긴 사랑, 녹수청강 원앙조격으로 마주 떠 노는 사랑, 년년 칠월 칠석야에 견우직녀 만난 사랑, 양귀비를 만난 사랑, 명사십리 해당화 같이 연연히 고운 사랑 네가 모두 사랑이로구나, 어화 둥둥 내 사랑아, - 「춘향전」에서 ​ ​ ③ 사랑의 묘약 감정은 섬세하고 예민한 것이어서 한 가지 대상에 대해서도 느끼는 정도는 사람마다 다르고 시간마다 다르다. 그러기에 감정은 가장 주관적이며 개별적인 것이며 동시에 구체적인 것이어야 한다. 사실 주관적이란 말은 사물을 공통된 것으로 묶어서 보는 것이 아니라 개개의 특성을 구별하여 보는 것이며 이는 개별적인 존재성을 중시하는 시적 리얼리티이기도 하다. ​ 손금에 맑은 강물이 흐르고, 맑은 강물이 흐르고, 강물 속에는 사랑처럼 슬픈 얼굴 ― 아름다운 순이의 얼굴이 어린다. 소년은 황홀히 눈을 감아본다. - 윤동주 「소년」에서 어둠 속에서도 불빛 속에서도 변치 않는 사랑을 배웠다 너로 해서 ​ 그러나 너의 얼굴은 어둠에서 불빛으로 넘어가는 그 찰라에 꺼졌다 살아났다 너의 얼굴은 그만큼 불안하다. - 김수영 「사랑」에서 ​ (2) 사물의 구체화 ① 시간의 구체화 봄 - 이른 봄 - 이른 봄날 - 이른 봄날 아침 - 이른 봄날 아침 동트는 시각 ② 공간의 구체화 무덤 - 할머니 무덤 - 망우리 언덕 할머니 무덤 - 망우리 언덕 사철나무 아래 할머니 무덤 ​ 잔디, 잔디, 금잔디, 심심산천에 붙는 불은 가신 님 무덤가에 금잔디. 봄이 왔네, 봄빛이 왔네. 버드나무 끝에도 실가지에. 봄빛이 왔네, 봄날이 왔네. 심심산천에도 금잔디에. - 김소월 「금잔디」 ​ 공간 - 잔디 → 금잔디 → 심심산천 → 가신 님 무덤가의 금잔디 시간 - 봄 → 봄빛 → 버드나무 끝 → 실가지 봄 → 봄빛 → 봄날 → 심심산천 → 금잔디 ​ ③ 예수와 바울 ― 구체화와 감동 바울 :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예수 : 공중에 나는 새도 깃들 곳이 있고 여우도 굴이 있건만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노라 ​ (3) 시의 원근법 ① 원근법의 표현 ​ 머언 산 청운사 낡은 기와집 ​ 산은 자하산 봄눈 녹으면 ​ 느릅나무 속잎 피어가는 열 두 구비를 ​ 청노루 맑은 눈에 ​ 도는 구름. - 박목월 「청노루」 ​ 머언 산 → 청운사 → 느릅나무 → 청노루 → 맑은 눈 → 도는 구름 (최원경) (원경) (중경) (근경) (최근경) (심경) ​ ② 구체적 공간과 시간 ​ 이 몸이 죽어가서 무엇이 될꼬하니 봉래산 제일봉에 낙락장송 되었다가 백설이 만건곤할 제 독야청청 하리라. - 성삼문 「이 몸이 죽어가서」 ​ 죽음의 공간화 - 봉래산 - 제일봉 - 낙락장송 죽음의 시간과 공간 - 백설(겨울 시간) - 만건곤(공간) - 독야청청(의미공간)   감정과 지성의 조화 홍문표 ​ (1) 지나친 감정 표현 ① 감정의 여러 모습 미묘한 정서는 시시각각으로, 분위기에 따라서 무수히 변하는 것이다. 사람에 따라, 상황이나 대상의 변화에 따라 정서는 천태만상이다. 전통적으로 동양에서는 일곱 가지 정서, 즉 칠정(七情)이라 하여 희(喜), 노(怒), 애(哀), 락(樂), 애(愛), 오(惡), 욕(欲)이라는 정서의 유형을 말한 바가 있고, 러스킨(J. Ruskin)은 사랑(love), 존경(venernation), 찬탄(admiration), 기쁨(joy)과 이에 대응하는 미움(hate), 분노(indignation), 공포(horror), 슬픔(grief) 등 여덟 가지 정서를 제시한 바 있다. 따라서 시인은 상황에 따라 감정을 적절히 표현하는 것이 정상이다. 그런데 어떤 시인은 늘 한가지 감정만을 집중적으로 드러낸다. 지나칠 경우는 센티멘탈리즘이 되지만 적절할 경우는 시인의 독득한 개성이 된다. ② 1920년대 센티멘탈리즘 1920년대 「백조」, 「장미촌」 등의 동인지를 중심으로 감정이 중시되는 낭만주의 사조가 유행하였는데 식민지의 암울한 시대, 3․1 운동은 실패로 돌아가고 마침 일본으로부터 들어온 세기말 사상 등으로 이 시대 낭만주의 시들은 실망, 좌절, 허무, 이별 등 어두운 감정을 주로 하는 경향이었다. 이를 센티멘탈리즘이라고 한다 ​ 저녁의 피묻은 동굴 속으로 아 - 밑없는, 그 동굴 속으로 끝도 모르고 끝도 모르고 나는 꺼꾸러지련다. 나는 파묻히련다. ​ 가을의 병든 미풍의 품에다 아 - 꿈꾸는 미풍의 품에다 낮도 모르고 밤도 모르고 나는 술 취한 집을 세우련다. 나는 속 아픈 웃음을 빚으련다. - 이상화 「말세의 희탄」 ​ 바람아, 오― 폭풍아 흑풍아 그 불꽃을 불어 날려라 쓸어 헤치라 몰아 무찔러라 ​ 오, 위대한 폭풍아 세계에 충만한 그 불꽃을 오, 그리고 한없고 끝없는 허무에 춤추어 비치라. - 오상순 「허무혼의 선언 ​ (2) 1930년대 ‘시문학파’의 밝은 감정 그러나 1930년대는 싱싱한 자연을 발견하면서 다시 순수하고 깨끗한 정서로 어두움이 극복되고 밝은 하늘과 자연 속에 속삭이는 심정의 순수함을 보게 된다. ​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풀아래 웃음 짓는 샘물같이 내 마음 고요히 고운 봄길 위에 오늘 하루 하늘을 우러르고 싶다. ​ 새악시 볼에 떠오는 부끄럼같이 시의 가슴을 살포시 젖는 물결같이 보드레한 에메랄드 얇게 흐르는 실 비단 하늘을 바라보고 싶다. - 김영랑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 ​ (3) 1970년대 ‘민중시’의 부정적인 감정 1970년대부터 우리 사회는 급격한 도시화, 산업화로 빈부의 격차가 극심하게 되었고, 소외계층의 불만은 가진 자, 지배자에 대한 부정과 저항의 정서로 팽배하였다. 이러한 시대적 자각은 민중의식이라는 이념과 행동을 구체화하게 되었고 이러한 의식에서 제작된 시를 민중시, 실천시 등으로 불리어지게 되었다. 이들 시의 공통점은 권력과 자본의 불평등에 대한 철저한 비판, 부정 개혁이었다. ​ 우리 세 식구의 밥줄을 쥐고 있는 사장님은 나의 하늘이다 ​ 프레스에 찍힌 손을 부여안고 병원으로 갔을 때 손을 붙일 수도 병신을 만들 수도 있는 의사 선생님은 나의 하늘이다 ​ 두달째 임금이 막히고 노조를 결정하다 경찰서에 끌려가 세상에 죄 한번 짓지 않은 우리를 감옥소에 집어 넌다는 경찰관님은 항상 두려운 하늘이다 ​ 죄인을 만들 수도 살릴 수도 있는 판검사님은 무서운 하늘이다 ​ 관청에 앉아서 흥하게도 망하게도 할 수 있는 관리들은 겁나는 하늘이다 ​ 높은 사람, 힘 있는 사람, 돈 많은 사람은 모두 하늘처럼 뵌다 아니, 우리의 생을 관장하는 검은 하늘이시다 - 박노해 「하늘」 ​ (4) 뜨거운 감정의 시 ​ 정서가 고정화될 때 정조가 되고 정조가 불건전할 때 센티멘탈리즘에 빠진다고 하였는데 감정이 지극하면서도 뜨겁게 타는 경지를 열정이라고 한다. 원래 열정을 영어로 패션(passion)이라고 하는데 이는 ‘고통을 받는다’라는 어원을 갖고 있다. 고통을 감수하고 고통을 내재한 언어야말로 가장 값진 시어다. 기독교에서는 예수께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십자가의 고통을 지는 사건을 그리스도의 수난(The Passion), 즉 패션으로 표기한다. 인간을 위해 십자가의 수난을 달게 받는 사랑의 경지야말로 열정의 최고 감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서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 한숨의 미풍에 날아 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 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은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 한용운 「님의 침묵」 ​ (5) 절제된 감정 ① 모더니즘시의 실험 서구 문학사에서 낭만주의가 세기말 사상과 결탁하여 침울하고 병적인 퇴폐주의(decadanism)로 후퇴하였을 때 감정보다는 지성적인 표현을 강조하는 주지주의(主知主義)가 발생했는데 이미지즘과 더불어 이를 모더니즘이라고 한다. 이들은 사물에 대한 주관적 감정을 감각적인 이미지 즉 객관적 상관물로 드러내고자 했다. ​ ② 사물의 객관화 ​ 바다는 뿔뿔이 달아 날려고 했다 ​ 푸른 도마뱀떼 같이 재재 발렀다 ​ 꼬리가 이루 잡히지 않았다 ​ 흰 발톱에 찢긴 珊瑚보다 붉고 슬픈 생채기! - 정지용 「바다」에서 ​ ③ 지나친 지성 그런데 모더니즘 시의 경우도 지나치게 지성적이어서 감동보다는 난해성으로 독자를 곤혹스럽게 하는 경우를 보게 된다. ​ ELEVTER FOR AMERICA 세마리의닭은사문석의층계이다.룸펜과모포 빌딩이토해내는신문배달부의무리.도시계획의암시 둘째번의정오싸이렌 비누거품에씻기어가지고있는닭.개아미집에모여서콩크리트를먹고있다. - 이상의 ‘대낮’ ​ (6) 감정과 지성의 등가 현대시의 두드러진 경향은 과거의 규칙적인 음성적 리듬의 시에서 개성적인 리듬의 시로, 과거의 지나친 주정적인 시에서 주지적인 경향으로 전환하고 있다. 그러나 현대시가 주지적이라고해서 감성을 완전히 배제한 것으로 오해하는데 사실은 감성과 이성을 균형있게 배열한 감정과 지성의 등가(等價)의 시를 말한다. 엘리어트는 시란 감정과 지성의 등가물(等價物)이라고 하였다. ​ 가장 깊은 부리에서 아슴히 높은 정수리까지의 내 외로움을 사람아 너에게 드릴밖에 없다 동쪽 비롯함에서 서녘 끝 너메까지 한 솔기에 둘러 낀 하늘 가락지 돌고 돌아서 다시 오는 이 마음을 - 김남조 「雅歌」 ​ 새양철 지붕위로 쏟아지는 쇠못이여 쇠못같은 빗줄기여 내 어린날 지새우던 한밤이 아니래도 놀다 가거라 ​ 잔디 위에 흐느끼는 빗줄기여 늬맘 내 다 안다 ​ 늬맘 내 다 안다 내 어린날 첫사랑 몸져눕던 담요짝 잔디밭에 가서 잠시 놀다 오너라 - 조정권의 ‘비를 바라보는 일곱가지 마음의 형태1’에서 ​ 몇 트럭씩 논밭으로 실려 나가는 묶인 고뇌와 고장난 시간들 ​ 지나다 보면 낯이 선 사투리들이 발길에 툭툭 채였다.   - 노향림의 ‘K읍 기행’에서  
1023    시詩를 잃어버린 아이들 /권정생 댓글:  조회:690  추천:0  2019-09-20
시詩를 잃어버린 아이들 권정생 (1937∼2007 아동문학가) 옥이네가 살던 절안골 외딴 곳에는 고만고만한 초가집이 네 집이 있었다. 60년대까지만 해도 골짜기에 흩어져 있는 논밭에서 부지런히 농사지어 때 묻지 않고 착하게 살았다. 감자밥 보리밥이 그다지 싫지 않고 뭣이나 맛이 있고 따뜻했다. 옥이네 삼촌 내외만 빼놓고는 모두 삼대가 한 집에 사는 대가족이었다. 닭들이 울타리를 넘나들며 봄에는 어미닭이 병아리를 까서 데리고 다니고 개들이 텃밭을 뛰어다니고, 송아지도 함께 장난치며 다녔다. 감나무 살구나무 대추나무 모과나무들이 집 뒤꼍에서 무성히 자라고 맛있는 과일을 달아주었다. 십 리길이 넘는 장터에 장이 서면 아버지들은 올망졸망 장거리를 짊어지고 갔다. 해질녘이면 외딴집 아이들은 산모롱이까지 아버지 마중을 가서 갖가지 사온 물건들을 받아들고 깡충깡충 달려왔다. 이날 저녁은 모든 집에 고등어 굽는 냄새가 나고 저녁상 앞에서 아버지들이 들려주는 바깥세상 얘기에 정신이 팔린다. 호롱불 밑에서 밥을 먹으며 도란도란 나누는 얘기는 저절로 정신이 홈빡 빠지게 마련이다. 날라리 약장수 이야기, 동동구리무 분장수 이야기, 야바위꾼 이야기, 장터에서 일어나는 얘기는 밤이 깊도록 들어도 재미가 있다. 봄이면 온산에 진달래꽃이 피고 여름엔 산나리꽃이 피었다. 이쪽저쪽 골짜기에 흐르는 물은 깨끗해서 그냥 퍼마시고 미역도 감았다. 가재도 잡고 버들치도 잡고 쟁개미도 잡았다. 가을엔 감나무에 빨간 홍시가 열리고 여름엔 눈이 내리고 노루랑 토끼들이 집 마당까지 먹을 것을 찾아 내려왔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옛날얘기를 들려주고 움 속에 묻어둔 배추뿌리도 깎아먹고 날무도 깎아먹었다. 좀 가난하고 고달프기도 했지만 외딴집 마을은 동화처럼 아름다웠다. 그런데 새마을운동이 시작되면서 이 절안골 외딴집들이 수난을 겪기 시작했다. 초가지붕이 슬레이트 지붕으로 바뀌고 그곳 아이들 말대로 하면 “대통령 아버지가 전깃불도 넣어주고 텔레비전도 넣어준댔어요.” 이렇게 마음을 들뜨게 만들었다. 그러나 외딴집 아이들은 전깃불이 들어오기 전에 국민 학교만 마친 채 도회지의 공장으로 뿔뿔이 떠났다. 개울 건너편으로 자동차 길이 뚫리고 못골 옆에 난 데서 온 사람이 목장을 만들었다. 옥이네 삼촌도 도회지로 떠나고 탄광 갔던 인수네 아버지는 폐암으로 죽고 할머니만 남았다. 조용하던 골짜기가 그렇게 허물어져 가면서 꿈같은 행복을 약속했던 대통령들도 모두 가짜로 드러났다. 군사정권은 농촌을 이렇게 망가뜨렸다. 지금은 절안골 외딴집 네 집은 하나도 남지 않았다. 대신 고속도로 공사가 한창이다. 주변 논밭들이 높은 값에 팔려나가자 근방 마을 사람들도 하나 둘 객지로 떠났다. 수정처럼 깨끗하던 골짝 물은 구정물로 바뀌어 지고 버들치도 쟁개미도 가재도 모두 사라졌다. 이용가치가 없는 골짜기 따비밭이나 다락논들은 가꾸는 사람이 없어 쑥대밭이 되었다. 베틀가나 물레노래를 부르며 길쌈을 하던 할머니도 없고 논매기 노래와 밭매기 노래를 구성지게 부르던 할아버지 아저씨도 없다. 장날이면 술 취한 장꾼을 골탕 먹인다는 톳제비(도깨비)도 어디론가 가버렸다. 외딴집 아이들은 뿔뿔이 헤어져 어디서 어느 기업체 사장님 밑에서 공장노동으로 살아가고 있을 것이고, 더러는 원하지도 않는 어둔 뒷골목에서 타락해버린 아이들도 있을 것이다. 대통령 아버지가 약속했던 꿈같은 행복은 이렇게 절안골 아이들의 운명을 바꿔버렸다. 농촌에 아이들이 없어 학교가 문을 닫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어쨌든 타의든 자의든 젊은이는 농촌을 마다하고 떠나갔고 아이들도 끌려갔다. 왜 이래야만 되는 걸까? 오래 전에 여름 뒷산에 뻐꾸기도 울지 않고 꾀꼬리 소리도 듣기 어려워졌다. 산에는 새가 날아오지 않고 강물엔 물고기가 없고 아이들이 없는 농촌은 죽은 농촌이 되었다. 노인들만 남아서도시인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살균제, 제초제—제초제가 아니라 살균제—를 뿌려 가꾼 쌀과 고추와 양파와 온갖 채소를 만들어낸다. 살기 위해 사는 게 아니라 모두가 죽을 날짜를 세면서 살고 있는 것이 지금의 농촌이다. 아이들은 시인이라는데 그 아이들을 있어야 할 곳에 있지 못하게 하는 슬픈 현실은 무엇 때문이며 누구 때문인가. 아이들이 시인인 것은 틀림없지만 그 아이들을 시인이 되게 한 것은 아름다운 자연이다. 어머니의 젖을 먹으면서 새소리를 듣고 흰 구름을 보고, 별을 바라보며, 그리고 짐승들과 벌레들과 어울려 땀 흘리는 고통을 배우고 따뜻한 생명들과 살을 비비는 삶이 있어야 한다. 봄날의 비릿한 풋내와 작은 꽃들과 여름날의 소낙비와 무지개와 지루한 장마 비도 알아야 한다. 비지땀을 흘리며 들판에서 일하는 삶의 현장도 배우고 고통의 대가로 얻어지는 가을의 풍성함, 겨울의 추위와 그 추위를 이겨내는 생명들의 힘찬 인내도 체험해야 한다. 시인은 절대 공짜로 얻어지는 게 아니다. 삭막하다 못해 살벌해져 가는 오늘날의 도시환경은 ‘죽은 시인의 사회’ 그대로다. 일회용품을 찍어내는 기계처럼 아이들도 그 기계가 되기도 하고 일회용 싸구려 상품이 되기도 한다. 똑같은 시간에 일어나 똑같은 책가방을 메고 똑같은 학교에 가서 똑같은 선생님께 똑 같은 방법으로 공부를 하고 똑같은 텔레비전에 똑같은 쇼를 구경하면서 크는 아이들은, 개성도 없고 하나같이 똑같다. 시를 익히지 못하는 아이들은 이렇게 죽은 인간으로 키워져 사고력도 행동도 획일적으로 되어버린다. 행여나 다른 아이와 다르게 될까봐 오히려 불안한 지경이다. 앞집 아이가 피아노를 배우면 우리집 아이도 배워야 하고, 옆집 아이가 태권도를 하면 우리 아이도 태권도를 해야 한다. 그래야만 남에게 뒤쳐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콘크리트로 된 똑 같은 집에 살며 친구보다 기계하고 놀기를 좋아하는 아이들은 덩치만 크고 가슴은 그야말로 옹졸하기 그지없다. 가까운 친구를 사랑하기보다 경쟁의 대상으로 만들어 평생 적으로 살아야 하는 인간에게 무슨 시심(詩心)을 키울 수 있겠는가. 자연에서 격리당한 아이들에게 우리는 진정한 시인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이 이 때문이다. 구태여 몇 줄의 노래를 읊어내는 시인만이 시인이 아니다. 농촌의 농부들은 모두가 시인이다. 그들은 생명을 만드는 온갖 것을 몸과 마음을 쏟아 부어 키워내기 때문이다. 씨 한 톨 심어놓고 싹이 트기를 기다리는 마음, 어미닭이 알을 품고 병아리가 깨기를 기다리는 마음, 보리 이삭이 패고 그 이삭이 알이 영글어 누렇게 익어가는 것을 지켜보는 마음, 이런 마음만이 건강하고 힘찬 시를 낳을 수 있다. 자연스런 것은 결국 자연 속에서 살아야만 자연스러워질 수 있다. 만드는 것은 어쨌거나 만든 것이며 인위라는 가짜가 될 수밖에 없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으니 우리 아이들을 자연으로 돌려보내야 한다. 기계에서 해방시키고 콘크리트 벽속에서 풀려나야 된다. 흙냄새 거름냄새 풀냄새를 맡게 하고 새들과 짐승들과 얘기를 하도록 하자. 괭이질을 하고 지게를 지며 땀 흘리는 농군이 되게 하자. 그래서 시인으로 살게 하자. 똑같은 것을 흉내만 내는 인간이 되어 일생을 시체로 살게 버려두는 건 죄악이다. 조금은 가난하고 조금은 불편하고 힘들어도 아이들을 시인으로 키우고 생명 가진 인간으로 키워야 한다. 살충제, 살균제, 살초제 같은 농약을 버리고, 두엄을 만들고 김을 매고 지게를 지는 튼튼한 농사꾼으로 크면, 강물도 살아나고 들판도 살아날 것이다. 물고기가 살고 새들도 날아오고 온갖 벌레들이 살아나면 도덕도 함께 살아난다. 도시의 물질문명과 기계 문명은 영혼을 망가뜨리고 온 몸뚱이의 기능마저 퇴화시킨다. 도시 아이들은 좌변기 말고는 똥도 못 눈다. 뜀박질은커녕 재대로 십 리길도 걷지 못한다. 장애인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온갖 일을 기계에다 의존 않고는 못하는 게 지금 도시 사람들이지 않는가. 손으로 옷에 단추 하나 못 달면서 어머니 노릇한다는 건 말이 아니다. 어머니는 아기의 옷을 손수 만들어 입히는 일부터 시작해야 제대로 어머니 노릇을 할 수 있다. 어머니가 기워준 옷을 입고 자란 아이는 사물을 보는 눈에 사랑이 담기기 마련이다. 기계적인 감각에서 손의 감각과 대자연의 감각으로 뻗어나가면 결국 하늘을 발견하고 그 속에 아이도 하늘이 된다. 겨울의 눈보라와 여름 비바람을 헤치며 꿋꿋하게 살아가는 건강한 인간만이 마음이 따뜻한 시인이 될 수 있다. ([중학생을 위한 산문 50선] 엮은이 김 훈 ‧ 안도현) |작법공부| 이 작품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부분은 새마을운동이 시작되기 전 절안골 사람들은 가난하였지만 얼마나 아름답고 순수하게 살았는가에 관한 이야기다. 두 번째 부분은 새마을운동이 시작된 후 절안골 사람들은 어떻게 황폐화 되었는가에 관한 이야기다. 세 번째 부분은 그러니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에 관한 이야기다. 작가는 “지금이라도 늦지 않으니 우리 아이들을 자연으로 돌려보내야 한다.”고 대답한다. 그러나 독자는 굳이 작가의 대답을 기다릴 필요가 없다. 새마을운동이 일어나기 전에는 절안골 사람들이 어떻게 순수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았는가를 논리로 설명하지 않고 선명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로 들려주고, 새마을운동 이후 황폐한 절안골 사람 이야기도 논리로 설명하지 않고 눈에 선한 이야기로 들려주고,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대답도 너무도 절절한 이야기로 보여주고 들려주기 때문에 독자가 작가의 논리에 설득당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에 감동 먹기 때문이다. 논리적 전개를 아주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권정생 작가의 작법을 보라. 논리로 논리를 펴지 않고 이야기 중간 중간에 “아이들이 없는 농촌은 죽은 농촌이 되었다.” 혹은 “왜 이래야만 되는 걸까?”라는 질문 형의 문장, “조용하던 골짜기가 그렇게 허물어져 가면서 꿈같은 행복을 약속했던 대통령들도 모두 가짜로 드러났다. 군사정권은 농촌을 이렇게 망가뜨렸다.” 같은 작가의 불같은 분노가 타오르는 문장을 섞어 넣고 다시 다음 이야기로 이어지는 작법의 글을 쓰고 있다. 이것이 조연현 교수가 말한 ‘창작적인 변화가 용인 되는 현대수필에세이’의 이다. 이태동 교수는 “훌륭한 수필을 쓰려고 하는 사람은 쉽게 그리고 많은 글을 쓰려고 하지 말고, ⑩남다른 통찰력으로써 생生의 이면이나 자연 가운데 숨어 있는 도덕적 진실을 발견할 수 있을 때만 글을 써야 한다.”고 하였다. 이 작품이야 말로 ‘생生의 이면이나 자연 가운데 숨어 있는 도덕적 진실을 발견’하는 작법의 작품이 아닌가. 필자가 사는 동네는 80년대 식 다가구 3층 벽돌집들이 아직 남아 있는 변두리 동네다. 골목마다 쓰레기가 여기저기 쌓여 있다. 그 앞에는 어김없이, 얼굴 맞대고는 차마 할 수 없는 갖가지 저주들이 씌어져있다. ‘이곳에 쓰레기를 버리는 자는 3대가 망한다.’는 문구도 본 일이 있다. 그런 모양들을 10년 넘게 보면서 ‘이 민족은 쓰레기 치울 방법조차 생각해 낼 줄 모르는 구나!’ 탄식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1백 년 동안 ‘신변잡기’ 비난을 들어오고 있는 수필계 지도자들이야 말로 ‘쓰레기(신변잡기) 하나 치울 방법조차 생각해 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아닌가. 이 나라 수필계 지도자들이 피천득의 대신 권정생 작가의 같은 작품을 귀하게 여길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면 진즉에 ‘신변잡기’에서 벗어날 방법도 찾아내었을 것이다. 필자의 어린 시절까지만 해도 특별히 똑똑하게 태어나는 아이 가 있다는 말이 잘못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전혀 잘못된 생각이라는 사실이 수많은 과학 연구 결과 밝혀지고 있다. 80년대 이후 사회 전반에 뛰어난 여성들이 진출하고 있다. 문학도 예외가 아니다. 소설문단만 해도 젊은 여성작가들이 해마다 쏟아져 나오고 있다. 젊은 여성 소설가들은 타고나서 소설작가가 되었고 3천 5백여 수필가들은 그렇지 않아서 ‘신변잡기’ 작가가 되었는가? 아니다. 잘못된 선택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을 선택하면 ‘신변잡기’에서 깨끗이 벗어날 수 있다.  
1022    갇힌 사자獅子의 눈동자 /정현종 댓글:  조회:613  추천:0  2019-09-20
갇힌 사자獅子의 눈동자 정현종 (시인) 지금으로부터 한3년 전 일이다.(라는 말은 좀 우스운 감이 있으나 그냥 쓰기로 한다.) 하기는 말이 3년이지, 지난 3년을 정확히(!) 말하라고 한다면 고 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는 말이 정확하다니! 이건 필경 필자가 역사의식이 없다는 얘기일 것이다. 저 신화적인 역사의식! 그러고 보면 실제 역사는 역사적이 아닌데 역사의식만 항상 역사적이라는 느낌도 든다. 그나마, 다시 말해서 역사적인 역사의식도 실지 역사가 허용되지 않으면 뜨내기나 다름없게 된다. 하기는 이 경우 뜨내기도 상팔자일 법하다. 얘기가 잠깐 빗나갔는데, 하여간 3년 전쯤 나는 어떤 농원의 사자우리에 가서 사자와 눈싸움 비슷한 걸 한 적이 있다. 거기에는 사자우리 속으로 통로를 만들어 철책을 사이에 두고 사자들을 볼 수 있도록 해놓은 데가 있었다. 나는 스스로는 잘 설명 할 수 없는 충동에 따라, 사자와 눈을 맞춰보고 싶어져서, 얼굴을 철책에 바싹 대고 사자를 불렀다. 사자는 빠른 걸음으로 걸어와서 두 앞다리를 들어 올려 철책을 턱 집고 직립(直立)해서는 나의 얼굴을 바싹 마주 댔다. 우리는 서로 상대방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처음 느낌은 사자가 나를 아주 맛있게 바라보는 것 같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계속 서로 바라보는 동안 나는 갇혀있는 사자의 눈동자 속에서 아프리카의 밀림과 초원을 보았다. 다시 말하면 사자의 고향이며 살아야 할 곳인 밀림과 초원의 파노라마를 보았다. 그 광활한 밀림과 초원의 전개는 아주 선명했으며, 그래서 갇혀 있는 그의 눈동자는 그다지도 깊고 머나멀게 넓었다. 나는, 갇힌 맹수를 보면 늘 그렇듯이, 깊고 광활한 슬픔과도 같은 연민을 느꼈다. 그날 아마 사자도 내 눈 속에서, 내가 그의 눈 속에서 본 것과 똑 같은 광경을 보았음직하다. 사자의 눈동자는 다름 아니라 내 마음의 거울이었을 테니까. 생각해 보면 사실 사람은 여러 가지에 갇혀서 산다. 우리의 몸과 마음은 흔히 자신을 가두는 우리가 된다. 우리는 마음 안팎의 여러 가지에 스스로 가두며 또 서로를 가두려고 한다. 그래서 장 그르니예라는 사람의 다음과 같은 말은 깊은 울림을 갖는다. “……인간들은 남이 자기 자신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이 자기 자신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세상 만물 중에서 오로지 나는 새에 대해 거의 열등감을 느끼는 심리적 동기도 위의 문맥과 상관이 있을 법하다. 그리고 앞에서 갇힌 사자의 눈동자 얘기를 했지만, 또한 를 생각해 본다.(1981) (정현종 –삶과 詩에 관한 에세이 [생명의 황홀]) |작법 공부| 정현종 시인, 나에게 이 너무도 유명한 시인은, 아침에 집에서 나올 때 틀림없이 든든하게 잠그고 나온 내 마음의 아랫도리 지퍼가 열렸다고 느닷없이 깜짝깜짝 놀라게 하는 시인이다. 이 짧은 한 편의 산문을 읽으며 필자는 똑 같은 경기를 느꼈다. 그러므로 이것은 산문이 아니고 詩작품이다. 그날 아마 사자도 내 눈 속에서, 내가 그의 눈 속에서 본 것과 똑 같은 광경을 보았음직하다. 사자의 눈동자는 다름 아니라 내 마음의 거울이었을 테니까. 서두문장에서 라는 표현과 는 표현에 대한 시인의 언어에 관한 걱정은 무엇을 말 해 주는가? 시인은 말을 창조하는 사람이다. 일상어는 말이 아닌 말도 무수히 사용한다. 그러나 詩에는 ‘말이 아닌 말의 창조’란 있을 수 없다. 산문의 기반은 일상어에 있다. 시인은 지금 운문이 아닌 산문을 쓰면서 산문이 쉽게 범할 수 있는 언어의 비언어성을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종결어 ‘또한 를 생각해 본다.’가 서두와 연결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만약에 정현종 시인이 사자의 눈 속에서 아프리카 초원만 발견하고 말았다면, -그래도 ‘隨筆’보다는 훨씬 창조적인 글이었겠지만- 시적 창조 글까지는 못 되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말의 창조’ 곧 가 빠졌을 테니까. (죄송하다. 대 시인의 글을 ‘신변잡기’에 비하다니!) 이 짧은 한 편의 산문이 운문으로 쓸 것을 산문으로 형상화한 ‘시적 산문’이라고 할 수 있는 말의 창조는 무엇인가? “생각해 보면 사실은 사람은 여러 가지에 갇혀서 산다.” 이하의 문장이 아닐까? 시인은 우리에 갇혀 사는 자사의 눈 속에서 ‘여러 가지에 갇혀’ 사는 인간의 열린 지퍼를 발견하였던 것이다. ‘붓 가는 대로 隨筆’이 만약에 사자의 눈 속에서 아프리카라도 발견하는 글을 썼다면 처음부터 ‘신변잡기’ 혹평까지는 듣지 않았을 것이다. 한 발 더 나아가 ‘여러 가지에 갇혀’ 사는 지퍼 속까지 발견 할 줄 아는 문학이 되었다면 오늘 문단과 독자들로부터 완전 따돌림을 당하는 ‘왕따’가 되었겠는가?
1021    본능대로만 써도 ‘신변잡기’는 면한다 /이관희 댓글:  조회:717  추천:0  2019-09-20
본능대로만 써도 ‘신변잡기’는 면한다 이관희   저녁 먹는 자리였다. 낙지볶음이 먹음직스럽다. 수저를 들기 전에, “소주 한 잔 할까…….” 했더니 일행 중 한 사람이, “선생님도 술 생각나실 때가 있으세요?” 그런다. “글쎄, 나도 뜻밖이네. 그러니까 이 현상이 무슨 의미냐……, 평소에 술을 즐기지 않던 사람이 갑자기 소주 생각이 났다……. 그래 요놈이 범인이었던 거야. 요 먹음직스러운 낙지볶음. 술꾼 쳐놓고 요놈 앞에서 소주 한 잔 유혹에 안 넘어갈 자 있는가? 술꾼이 아닌 나도 소주 생각이 나는데……. 이게 바로 작법인 게야.” “선생님 또 18번 나오시네요.” 그래서 좌중이 한바탕 웃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신간 호 지상 작법은 이 이야기를 소재로 삼아야겠다.’고 생각하였다. 결론부터 말하면 문예작법은 본능에서 시작된다. 을 보면 [저것]이 생각나는 것은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창조적 본능이다. 저 유명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모방론은 전혀 천재적 발명품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라도 다 가지고 있는 에 근거한 이론이다. 모방론뿐만 아니다. 문학개론서를 펼치면 첫 페이지에 나오는 것이 문학 발생설이다. 모방(模倣)본능설, 유희(遊戲)본능설, 흡인(吸引)본능설, 자기표현본능설 등 이 네 가지 기본 문학발생설 모두가 에 근거한다. 오늘 이 짧은 에서 다른 것은 다 옆으로 밀쳐두고 딱 한마디만 기억하도록 하자. 는 말이다. 문학 발생설이 모두 본능에 근거한다는 것은 ‘본능이 곧 작법의 시작’이라는 사실을 말 해 준다. 본능 : ①생물이 선천적으로 갖고 있는 동작이나 운동 ②동물이 후천적 경험이나 교육에 의하지 않고 외부의 변화에 따라서 나타내는 통일적인 심신의 반응형식(에센스국어사전) 이 낱말의 뜻에서 작법과 관련하여 중요한 것은 ‘후천적 경험이나 교육에 의하지 않고’라는 말이다. 내가 지난 14년 동안 조사하고 실제 맞부딪치며 경험한 수필가들은 불행하게도 공부를 할 기회를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빼앗긴 사람들이었다. 수필계 지도자라는 사람들이 그렇게 만들어 놓았던 것이다. 아무 글이나 한 편 써 가지고 돈 백만 원만 들고 가면 신인 당선작으로 발표해 주었으니 문학을 學으로 공부할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 수필가가 만약에 자신의 본능만이라도 일깨운다면 ‘신변잡기’는 쓰지 않게 된다는 것이 국어사전의 낱말 뜻이다. 다시 한 번 정신 똑바로 차리고 국어사전을 들여다보자. “후천적 경험이나 교육에 의하지 않고”라고 했다. 수필계 지도자들이 아무리 문학공부를 안 한 신인장사 장사꾼들이라 해도 그 밑에서 수필공부를 한 수필가가 본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후천적 경험이나 교육에 의하지 않고”도 적어도 ‘신변잡기’는 안 쓰게 된다는 뜻 아닌가? 금호에 작품이 게재된 이정록 시인의 어머니, 함민복 시인의 어머니, 이어령 교수의 어머니……, 이분들을 필자는 시인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이정록 시인은 어머니 말을 그대로 詩로 썼다고 한다. 견물생심(見物生心)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도 모른다고는 하지 않을 것이다. 견물생심이 무슨 뜻인가? ‘물건을 보면 가지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는 뜻이다. 【물건 을 보면 가지고 싶다 [저것] 생각이 난다】 이것이 바로 작법인 것이다. 수필가들도 [입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가? 수필가들도 을 보면 [사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가? 수필가들도 금은방 [끼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가? 수필가들도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멋진 옷을 보면 입고 싶고, 멋진 핸드백을 보면 사고 싶고, 다이야반지를 보면 끼고 싶다면, 진정으로 그런 ‘견물생심’이 저절로 생기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이라는 소재를 보고 [저것]이라는 다른 생각이 안 날 수 있는가? 더 이상 수필교실 선생이 가르쳐 준 일 없다고 하지 말라. 더 이상 문학이 어렵다는 말도 하지 말라. 예술창작의 기본은 을 가지고 [저것]을 만들어 내는 일이다. 그런데 그것은 본능대로만 해도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얼마나 쉬운 일인가! 이 강의 처음으로 돌아가자. 나는 그날 술 마실 생각이 없었다. 단순히 저녁식사를 할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을 보자 저절로 [소주] 생각이 났던 것이다.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반응이었다. 이것은 순전히 의 본능에 의한 것이다. 바로【이라는 ‘낙지볶음’을 보자 [저것]이라는 ‘소주’】생각이 났던 것이다. 바로 창작에세이의 대표적 기본 작법인 소재에 대한 비유창작, 가 되지 않는가.(혹은 경우에 따라서는 가 될 수도 있다.) 隨筆이 망한 까닭은 처음부터 만 썼기 때문이다. ‘낙지볶음은 낙지볶음이다.’ ‘낙지볶음은 낙지볶음이다.’ ‘낙지볶음은 낙지볶음이다.’ 백날 라고 써도 문학은 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렇게 중얼거리면 ‘저 사람 미쳤나보다’ 한다. 실제로 만 썼더니 ‘신변잡기’라고 하지 않는가! ‘낙지볶음은 소주다’라고 써야 사람들이 눈이 휘둥그레진다. ‘그게 무슨 소리냐?’ 하고! 이것이 문학이고 예술이다. 만 쓰는 것은 문학(창작)도 아니고, 예술(창조)도 아니다. 에서 [저것]을 발견하여 그 [저것]을 써야 비로소 문학도 되고 예술도 된다. 그런데 에서 [저것]을 발견할 수 있는 능력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본능만 발동해도 된다는 것이다. 그 같은 본능설이 최초의 문학이론인 아리스토텔레스의 모방론인 것이다. 필자가 작법강의를 시작한 첫 시간부터 모든 예술의 기본 작법은【을 [저것]으로 발견】하는 데에 있다고 한 말은 무슨 굉장한 이론 연구 결과가 아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의 본능론일 뿐이다. 작법 : 소재 ‘낙지볶음’ ➜ 작품 [저것] ‘소주’ 본능대로만 써도 ‘신변잡기’는 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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